2050 거주불능 지구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스|역자 김재경|추수밭 |2020.04.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뉴욕매거진》의 부편집장이자 칼럼니스트. 미국 싱크탱크 기관인 ‘뉴아메리카’의 연구원이다. 2017년 7월 9일 지구온난화가 가까운 미래에 일으킬 수 있는 재난 시나리오를 밝혀낸 리포트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BITABLE EARTH〉를 《뉴욕매거진》에 기고함으로써 세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뉴욕매거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이 리포트는 더욱 상세하게 풀어 쓰여 《2050 거주불능 지구》로 출간되었고 출간 즉시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현재 저자는 TED 강연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통해 지구온난화 시대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적극적인 행동과 생활 방식 등을 활발히 전하고 있다.
목차
1부 이것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이미 이산화탄소 한계치를 넘어선 지구 / ‘자연재해’가 아닌 ‘대량 학살’의 위기 / 소용없는 협약, 공허한 말잔치, 감춰진 미래 / 인간보다 한참을 앞서나가는 기후변화의 실체 / 붙잡지 않으면 멈추지 않을 ‘전쟁 기계’ / 거대하고 압도적이면서 어디에나 있는 위협 / ‘북극곰 우화’마저 판타지로 만들 실질적 재난 / 미래를 낙관할 만한 이유가 있는가 / 대가는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 치를 것이다
2부 12가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
1장 살인적인 폭염
너무 빨리 더워지니 예측 따위가 소용없다 / 가장 고통스러운 열사병의 유행
2장 빈곤과 굶주림
지구의 미래를 착취하며 ‘복지’에 투자해온 결과 / ‘굶주림’이라는 제국의 지배
3장 집어삼키는 바다
지도를 바꿀 정도로 빨리 녹아내리는 빙하 / 베이징을 ‘수중 도시’로 만들 ‘빙하 폭탄’
4장 치솟는 산불
지금의 화재는 ‘불장난’ 수준이 될 것이다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폭발하는 탄소
5장 ‘날씨’가 되어버릴 재난들
‘5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재난에 익숙해진다 / 점점 가로막히는 재건과 회복 기간
6장 갈증과 가뭄
개인의 절약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 대가뭄으로 인한 수자원 약탈의 전쟁
7장 사체가 쌓이는 바다
바다 오염이 일으켜온 대멸종 사태들 / 거대한 바닷물 순환 시스템의 붕괴
8장 마실 수 없는 공기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오염 / 에어로졸과 지구 온도 사이의 무시무시한 연관성
9장 질병의 전파
더욱 강하고 빨라진 바이러스 / 존재도 몰랐던 수많은 박테리아의 출현
10장 무너지는 경제
대침체나 대공황을 넘어서는 ‘대몰락’ / 쌓여 가는 비용과 늘어나는 복리
11장 기후 분쟁
헐벗은 지구 위에서 빽빽한 인구가 벌일 자원 전쟁 / 개인 간에 발생하는 분노와 폭력
12장 시스템의 붕괴
비인간적 생활 조건이 ‘일상’이 되는 순간 / 인류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충격적인 영향
3부 기후변화 시대는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
1장 ‘아포칼립스’에 그칠 수 없는 이야기
누구 하나만 악당으로 몰아갈 수 없는 이야기 / 자연에 대한 감상적인 태도 / ‘우화’ 속에 문제를 가둬 두기 / ‘인류세’에 담긴 핵심적인 메시지 / 아무도 이야기를 들어 주지 않는 이유
2장 걷잡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위기
너무나 거대하고 심각해서 외면하고 싶은 문제 / 기후변화 시대를 맞이한 자본주의 제국 / 자본주의 시스템이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들 / 시스템의 생존에 따른 대가와 책임 / 적응과 완화 명목으로 청구될 엄청난 비용
3장 기술이 종교처럼 되었을 때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약속 문제 해결에 요구되는 기술 혁신의 규모 / 거의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판타지 / 기술이라는 종교가 가르치는 핵심 교리
4장 소비할 것인가, 정치할 것인가
책임 회피에 불과한 선택적 소비 / 신자유주의 생존 전략의 한계 / 온난화의 충격 속에서 나타날 정치권력
5장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의 붕괴
‘진보’라는 가면을 벗겨 낸 역사의 민낯 / 더 이상 ‘과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이유
6장 절망 끝의 허무주의
문명의 기반을 갉아먹는 종말론 / 세속적인 위안을 찾는 회피와 금욕주의 / 새로운 용어를 만들기 위한 암울한 경쟁 / 차라리 ‘체념’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
4부 인류 원리, ‘한 사람’처럼 생각하기
우리가 알고 있는 딱 하나의 문명 / 우리는 행성을 선택할 수 없다
감사의 말
주석
“이미 재난은 닥쳐왔고, 미래는 결정되었다”
‘살인적인 폭염’부터 ‘반복되는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상식과 사회의 근간을 뒤엎을 기후재난의 미래
“절망할 겨를도 없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21세기 인류 사회를 뒤흔들 12가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
2020년 4월 22일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이해 출간되는 《2050 거주불능 지구》는 《뉴욕매거진》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히며 화제를 모은 2017년 리포트 〈거주불능 지구The Uninhabitable Earth〉를 확장한 책이다. 환경운동가도 아니었고 평소에 딱히 자연 친화적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기후변화에 대한 칼럼을 써줄 것을 의뢰받고 몇 년에 걸쳐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와 이야기들을 수집한다. 그리고 기후변화가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끔찍한 상황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환경운동’의 차원에서만 다뤄지고 있다는 점에 심각성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 쓰였다. ‘플라스틱 쓰지 않기’나 ‘채식주의’와 같은 개인의 윤리적 각성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막대한 영향력을 규명하는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라서며 인류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세계적인 책으로 주목을 받았다.
“기록적 한파가 왔으니 지구온난화는 거짓말이다” 지금 그 말의 대가를 우리가 치르고 있다
“나처럼 지적인 사람도 안 믿는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과학자들이 제출한 기후변화 보고서를 거부하며 한 말이다. 2017년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하고 더욱 자신만만하게 기후변화를 부정해온 트럼프는 결국 허리케인 마리아가 푸에르토리코에 들이닥쳤을 때 사망자가 3,000여 명에 이르렀는데도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물론 트럼프만 비난할 일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온갖 이상기후와 재난에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딱히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한계치 400ppm을 넘어섰고 평균 온도는 해마다 최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2100년까지 1.5도 내지는 2도 상승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2050년 아니 그 이전에 찾아올 끔찍한 미래를 감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2도 상승을 막아낼 가능성보다 3도 심지어 5도 이상 상승할 가능성이 더 크긴 하지만 말이다.
“‘북극곰의 위험’마저 판타지로 만들 실질적 재난” ‘자연재해’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대량 학살’의 위기
3~5도의 기온 상승이 ‘기정사실화된’ 의견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온도 상승에 따른 결과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보고하려는 책이 아니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이미’ 기후변화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따라서 이 책에 ‘서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장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재난을 언급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저자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는 기후변화의 실질적 재난을 긴급하고도 절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런 구성을 취했다.
아울러 이 책의 1부 제목이 말해주듯 “이것(기후변화)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기후변화는 더 이상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고 북극곰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자연의 문제’로만 국한할 수 없다.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으로부터 동떨어진 곳에서 동물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식의 감성적인 접근은 오히려 기후변화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게 했다. 많은 환경 책들이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켜 깨끗한 ‘녹색 자연’의 입장에 서서 인간의 행위를 꾸짖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자연과 얽혀들며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류세’에 직면했음을 강조하며 기후변화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문명을 파괴하는 ‘자살 행위’이자 사회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대량 학살’의 범죄임을 명백하게 밝혀낸다.
“최상의 시나리오마저 참혹하고 고통스럽다” 지금 당장 우리가 ‘살아갈’ 기후재난의 일상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가장 믿을 만한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기존 기후변화와 관련한 다양한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종합해 우리의 일상을 파괴할 지구온난화의 실제적인 영향과 그림을 제시한다. 많은 사람들은 지구온난화가 오래전 산업혁명에 따른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지금 대기 중에 떠도는 탄소 중 절반 이상은 불과 지난 30년 사이에 배출된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더 이상 찬반을 나누어 한가로이 논쟁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인류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방법을 강구해야 할 생존 프로젝트인 것이다.
코로나19가 초래한 걷잡을 수 없는 전염병으로 지금 전 세계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눈으로 목도하고 있듯이 재난은 더 이상 일부 지역에서 멈추지 않고 급속도로 전 세계를 향해 퍼져 간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재난 대부분이 바로 그와 비슷한 전 지구적 ‘기후 되먹임climate feedback’ 시스템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12가지 형태로 분류되긴 했지만 각 재난은 개별적으로 따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재난의 명칭만 보고 이 책을 빈부격차의 현실을 드러내는 사회과학서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2050 거주불능 지구》가 보여주는 기후재난은 선진국과 중진국, 빈국을 가리지 않고 가차 없이 찾아오는 것일 테니 말이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결국 작가는 우리 자신이다”
인간의 행동과 변화를 촉구할 기후변화의 새로운 미래
기후변화는 단순히 자연이 인간에게 가하는 ‘복수’도 아니고, 인간이 손쓸 도리가 없는 자연의 ‘처벌’도 아니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만큼이나 나쁜 태도는 이미 찾아온 재난 앞에서 인간은 어찌할 수 없다는 ‘절망’과 ‘체념’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이와 같은 섣부른 종말론이나 허무주의를 경계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물론 우리 자신의 삶과 태도마저 송두리째 바꿀 기후변화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한다.
저자는 먼저 시장 중심적이고 소비적인 태도로만 일관했던 여타의 환경 운동을 비판하며 화석연료로 뒷받침됐던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다. 아울러 ‘탄소포집 기계’나 ‘행성 이주 계획’ 등 자본과 기술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이 망상에 가깝다고 지적하며 몇몇 똑똑한 사람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민주적이고 협력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고의 전환을 도모하는 방편으로 ‘인류 원리’를 제안하며 ‘지구’와 ‘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온 인류와 지구를 ‘한 사람’처럼 생각할 수 있는 관점으로 안내한다. 《2050 거주불능 지구》는 총체적 위기를 맞이한 인류 사회가 반드시 참고해야 할 기후변화 대응 매뉴얼이자 미래보고서다.
책속으로
그러나 실상은 훨씬 더 무시무시하다. 일상 자체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일상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동물이 어느 지점까지 견딜 수 있을지 확신도 계획도 없는 도박이라도 하듯 애초에 인간이 진화할 수 있었던 환경적인 조건을 벗어던져 버렸다. 인류 자체는 물론 우리가 문화와 문명이라고 일컫는 모든 것을 자식처럼 길러 낸 기후 시스템은 이제 고인이 된 부모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관찰한 대로 이 땅을 연이어 두들겨 온 기후 시스템은 우리가 맞이할 암울한 미래의 예고편 같은 게 아니다. 그보다는 이미 저 뒤편 쓰레기통 속에 추억으로나 남아 있는 이전 기후 체계가 남긴 산물이라고 이해하는 쪽이 더 정확하다. 더 이상 ‘자연재해’ 같은 것은 없겠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엄밀히 말해 상황은 지금도 이미 악화돼 있다.
혹시 기적적으로 인류가 탄소 배출을 중단하더라도 지금까지 배출해 온 양 때문에 추가적인 기온 상승은 따라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탄소배출량이 여전히 증가 중임을 고려할 때 탄소 배출이 중단될 리는 없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기후변화 역시 지체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곳곳에서 목격하는 재난은 미래에 지구온난화가 초래할 재난에 비하면 최상의 시나리오나 다름없다.--- p.39
현재 최상의 시나리오에서 2100년까지 기온이 2~2.5도 상승하리라 예측하므로, 확률분포 곡선의 가장 두툼한 부분, 즉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에서는 2100년까지 약 3도 혹은 3도를 약간 웃도는 상승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탄소배출량이 지금도 계속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약 3도 상승을 목표로 삼는다 하더라도 어마어마한 수준의 마이너스 배출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과학적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는 위험 요소도 존재한다. 우리가 자연계를 기껏해야 얕은 수준으로만 이해하다 보니 자연이 가져올 피드백의 영향 역시 과소평가했을 가능성이 있다.
혹시 자연계의 피드백 고리가 활성화된다면 설령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탄소배출량을 유의미하게 줄인다 하더라도 2100년까지 기온은 4도 상승할 수 있다.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이후 인류의 행보에서 드러나듯이 근시안적인 인간의 특성상 탄소배출량이나 지구온난화에 관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해 봐야 생산적인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예측하는 편이 더 낫다. 그리고 그처럼 가능성을 예측하자면 한계는 끝이 없다.---「1장 살인적인 폭염」중에서
주어진 환경이 자원 남용으로 붕괴되거나 쇠퇴하기 직전까지 인구를 수용한다면 최대 얼마나 되는 인구를 지탱할 수 있을까? 하지만 특정 부지 내에서 최대 산출량이 얼마나 나오는지 계산하는 것과 그만한 산출량이 도출되는 데 환경 체계가 어느 정도나 통제력을 가지는지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자연환경 체계는 볼로그 같은 특급 마법사조차 제대로 이해하고 제어하기 어려울 만큼 광범위하며 변수가 산만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는 환경 수용력을 구하는 공식에 바로 집어넣을 수 있는 단일한 변수 따위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우리가 환경 수용력을 높이기 위해 시행하는 온갖 실험이 벌어지는 일련의 조건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가 직면한 상황은 사회적 갈등, 전쟁, 불공정 등 수많은 역경이 지구상에 해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반복되는 와중에 기후변화라는 문제가 하나 더 얹어진 상황이 아니다. 오히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 온갖 역경이 한데 모여 있는 상황인 셈이다. 다시 말해 기후변화란 미래의 모든 문제와 해결책을 담고 있는 지구환경 그 자체다.---「2장 빈곤과 굶주림」중에서
바다가 그만큼 범람하는 경우 세상은 굳이 따지면 알아볼 수는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알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일단 영국 런던은 물론 캐나다 몬트리올까지 거의 통째로 물에 잠긴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해수면이 50미터만 높아지더라도 플로리다 주는 북서부 지역에 일부 언덕만 남긴 채 97퍼센트 이상이 사라진다. … 도시로 따지면 뉴욕, 필라델피아, 프로비던스, 휴스턴, 시애틀, 버지니아비치는 물론이고 샌프란시스코와 새크라멘토까지 바다 아래에 가라앉는다.
…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 유럽에서는 런던에 더해 더블린, 브뤼셀,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스톡홀름, 리가, 헬싱키,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물속에 잠긴다. … 아시아에서는 도하, 두바이, 카라치, 콜카타, 뭄바이 등의 연안 도시들이 기억조차 나지 않을 수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사막에 가까운 바그다드에서 내륙으로 160킬로미터 들어간 곳에 위치한 베이징까지 쭉 수중 도시 유적을 발견할 수도 있다.---「3장 집어삼키는 바다」중에서
화재가 미치는 피해는 선형적으로 증가하거나 순수하게 독립적으로 더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생태계에 새로운 피드백 시스템을 가동한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앞으로 날씨가 한층 더 건조해지면서 캘리포니아에는 메마른 덤불 지대가 형성되고 그만큼 더욱 심각한 화재가 빈번해질 수밖에 없겠지만 과학자들은 그와 동시에 전례 없는 수준의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구체적으로는 1862년 캘리포니아 대홍수 수준의 재해가 3배나 증가하리라 전망한다.---「4장 치솟는 산불」중에서
‘500년에 한 번 나타날 폭풍’이라는 표현은 복원력 문제를 설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고난에 짓눌려 아무리 황폐해진 공동체라 할지라도 재산이 풍부하고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100년에 한 번, 무리해서 50년에 한 번꼴로 재건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오랜 회복기간을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10~20년에 한 번꼴로 극심한 폭풍이 닥쳐서 10년 만에 재건을 해야 한다면 미국만큼 부유한 국가나 휴스턴 도시권만큼 잘사는 지역이라 할지라도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뉴올리언스는 카트리나의 여파로 10여 년이 넘도록 비틀거리고 있으며 로워나인스워드 같은 동네는 카트리나를 겪기 전에 비해 인구가 3분의 1도 채 안 된다.
루이지애나 해안 지대를 바다가 통째로 집어삼켜 이미 5,0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면적이 사라졌다는 사실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루이지애나 주는 축구 경기장만 한 면적을 매시간마다 잃어버리고 있다. 플로리다키스 제도에서는 고도를 해수면보다 높이 유지하기 위해 들어 올려야 하는 도로가 240킬로미터 존재하며 공사비는 1킬로미터에 410만 달러로 총 10억 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2018년도 도로 건설 예산은 2,500만 달러에 불과했다.---「5장 ‘날씨’가 되어버릴 재난들」중에서
지난 100년에 걸쳐 지구상의 거대 호수는 대부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앙아시아의 아랄해는 한때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호수였지만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부피가 90퍼센트 이상 줄어들었다. 라스베이거스에 상당량의 물을 공급하는 미드 호는 한 해에만 15억 세제곱미터에 달하는 물이 증발했다. 포포 호는 한때 볼리비아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였지만 현재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란의 우르미아 호는 지난 30년 동안 부피가 8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아프리카 중서부의 차드 호 역시 거의 다 말라 버렸다. 물론 기후변화는 한 가지 요인일 뿐이지만 문제는 기후변화의 영향이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으리라는 점이다.---「6장 갈증과 가뭄」중에서
인간 활동 때문에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속도가 1,000배 가까이 증폭됐을지 모른다는21 대멸종 시대를 인류가 살아간다는 말은 오늘날 꽤 흔한 이야기가 됐다. 어쩌면 ‘해양 무산소화ocean anoxification’의 시대를 살아간다는 말도 타당할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산소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해수의 양은 전 세계적으로 4배 증가했으며 결과적으로 ‘데드존dead zone’은 400군데를 넘어섰다.
산소가 부족한 지역은 수백만 제곱킬로미터 증가했으며 이는 전 유럽의 크기에 맞먹는다. 현재 해안 도시 수백 개가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악취가 진동하는 바다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물이 따뜻할수록 함유할 수 있는 산소량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는 지구온난화 자체가 무산소화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7장 사체가 쌓이는 바다」중에서
하지만 기후변화가 공기에 미치는 영향 중 이산화탄소는 가장 사소한 문제에 가깝다. 앞으로 지구상의 공기는 더욱 뜨거워질 뿐만 아니라 더욱 더럽고 답답하고 건강에 나빠질 것이다. 가뭄은 공기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쳐 현재는 ‘분진 노출dust exposure’이라고 불리고 미국 더스트볼 시기에는 ‘분진 폐렴dust pneumonia’이라고 불렸던 현상을 초래한다. 또한 더스트볼이 일어났던 대평원 지대에 기후변화로 새로운 모래 폭풍이 발생하면 분진으로 인한 사망률은 2배 이상, 입원율은 3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지구가 뜨거워질수록 오존은 더 많이 형성되며 국립대기연구소에 따르면 21세기 중반에 미국인이 오존 스모그로 고통받는 날수는 70퍼센트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2090년대쯤에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안전’ 등급을 넘어서는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 전 세계적으로 20억 명에 이를 것이다. 지금도 대기오염으로 사망하는 사람 수가 매일 1만 명에 달한다. 단 하루에 사망하는 사람 수가 여태까지 원자로 노심 용융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 수 총합보다 훨씬 더 많다.---「8장 마실 수 없는 공기」중에서
기후재난 지구를 구할 기술, 그런 마법은 없다
“상황은 심각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2050 거주불능 지구>에는 서문이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이미 닥쳐온 기후변화의 영향을 무시무시하게 쏟아낸다. 당장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재난을 새삼스럽게 개괄하는 것이 심각성을 희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는 4월22일 ‘지구의날’ 50주년에 맞춰 출간되는 <2050 거주불능 지구>는 기후변화의 미래 시나리오를 최신 연구 자료와 통계적 근거를 바탕으로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자신이 환경론자가 아니라고 말문을 연다. 경제 성장을 위해선 자연에 대가가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동물까지 법적 권리를 보장하자는 데 불쾌함을 느끼는, 기후변화를 외면해온 평범한 미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랬던 저자가 기후변화에 대한 칼럼을 의뢰받고 몇 년에 걸친 조사 끝에 내놓은 결과물은 정말이지 절박하다. 멱살을 잡고 제발 좀 정신차리라고 하는 것 같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온갖 이상기후와 재난에 몸살을 앓고 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오늘 우리에게 하는 얘기다.
쪼개진 빙하·거북등 논밭·홍수…
기후변화의 ‘진부한 그림’ 대신
가뭄·빈곤·오염·질병·경제붕괴까지
연쇄적, 중첩적, 전방위적 ‘심각성’ 경고
기술만능의 해결책엔 ‘오만’ 비판
‘시스템을 바꿔야’ 정치적 해법 제시
“기후변화는 우리가 난생처음 마주하는 질병, 다시 말해 아예 존재 자체를 몰라서 걱정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질병 역시 불러일으킬 것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온갖 동물들이 들어찬 중국 우한의 한 시장에서 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증하는 감염병들은 동물 몸 안에 있던 미생물이 인간을 비롯한 동물종에 옮겨가면서 변이를 일으킨 것들이다. 팬데믹이 불러온 공중보건 붕괴와 경제적 충격이 뉴스를 뒤덮고 있지만 이러한 위기는 앞으로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지구적 차원의 연쇄 속에서 근본적 배경일 수도 있는 원인에는 눈감고 있다. 기후변화다.
연구자들은 지구온난화 때문에 현존하는 질병이 장소를 옮기고, 관계망을 바꾸며 심지어 진화를 거듭하는 상황을 이미 우려해왔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엉켜 있는데도 특정 질병이 어느 지역에만 머무는 이유는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생태 환경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면 “전염병이 마치 스페인의 정복자 코르테스처럼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이를테면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질병이 열대 지방에만 있었지만, 열대 지방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거대 도시 주변까지 황열병을 걱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책에선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던 라임병(진드기를 매개로 한 감염증) 감염자가 해마다 수백명씩 늘어난데도 주목한다. 북극의 얼음이나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에 갇혀있던 각종 미생물들이 기온 상승으로 풀려나고 있다는 국제 뉴스도 낯설지 않다. 지구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바이러스가 100만종 이상 존재한다는 과학자들 추정이 섬뜩하다.
더욱 무서운 위험은 우리 몸속에 있다. 평화롭게 몸속에 공존하는 박테리아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저자는 귀여운 난쟁이처럼 생긴 중앙아시아 토착종 큰코영양의 사례를 들려준다. 2015년 5월 큰코영양 전체 개체 수의 3분의 2가 며칠 만에 떼죽음을 당해 수십만마리에 달하는 사체가 해당 지역을 덮었다고 한다. 비현실적인 사태를 두고 외계인 소행이라는 음모론까지 나왔지만 범인은 파스테우렐라 물토키다라는 평범한 박테리아였다. 큰코영양의 편도선에 기생하던 이 박테리아가 갑자기 확산해 온몸으로 퍼진 것이다. 이 지역에서 이례적으로 기온과 습도가 높아진 탓으로 분석됐다. “기후변화가 방아쇠라면 파스테우렐라균은 총알과 같았다”. 이처럼 기후변화가 수백만년에 이르는 우호적 공생 관계를 어떻게 끝장낼지 현재로선 전혀 예상할 수 없다. 체험할 일만 남았다.
기후변화라고 하면 쪼개진 얼음 위에 위태롭게 떠가는 북극곰, 태풍으로 물에 잠긴 마을, 가뭄에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경작지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책에서 제시하는 기후재난은 연쇄적이고, 중첩적이며, 전방위적이다. 살인적인 폭염, 빈곤과 굶주림, 집어삼키는 바다, 치솟는 산불, ‘날씨’가 되어버릴 기상이변, 갈증과 가뭄, 사체가 쌓이는 바다, 마실 수 없는 공기, 질병의 전파, 무너지는 경제, 기후 분쟁, 사회 시스템의 붕괴까지 재난은 ‘일상’이 된다.
“극심한 열기로 말할 것 같으면 당신이 피부를 벗어던지고는 살 수 없듯이 그런 열기를 피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한국에서도 2018년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후변화의 충격을 실감한 바 있다. 와닿지가 않아서 그렇지 경고의 내용은 들어본 것들이다. 1980년대 이래로 위협적인 폭염이 발생하는 빈도가 50배 이상 증가했고, 2000년대 들어 해마다 여름 최고기온을 경신하고 있고, ‘평균적인’ 기후변화 시나리오에서도 2080년이면 현재 연간 최고기온보다 높은 기온을 기록하는 날수가 250배 늘어날 수 있으며, 거주 가능지역은 대폭 축소될 것이다 등등. 현재 1도 올랐는데도 이 정도로 세계가 뒤죽박죽되고 있는데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2100년까지 기온이 2도 넘게 상승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렇다.
대기오염은 어떠한가. 코로나19 사태가 역설적으로 맑은 하늘을 돌려줬지만, 지난해 봄 가장 큰 이슈는 미세먼지였다. 이 역시 기후학자들은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기상 패턴에 변화가 생겨 바람이 정체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기서 우리의 대응은 중국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책에선 오염과 지구 온도 사이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연관성을 일깨운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입자들을 포괄하는 에어로졸은 햇빛을 지구 밖으로 반사해 지구온난화를 억제한다. 즉 오염물질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줄여왔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건강을 망가뜨리는 오염물질을, 다른 한쪽에는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맑은 하늘을 두고 선택하라는 의미일까.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과학자들이 미세입자를 띄워서 기온을 낮추려 하거나 탄소포집 기술을 사용해 탄소를 없애려는 ‘기술만능주의’로 기후변화를 해결하려는 오만이다. 현실성도 적고 부작용도 큰 ‘마법을 바라는 생각’을 버리고 진정한 변화에 나서라는 비판이다.
이 책이 이전의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기후학의 진부한 언어’를 피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해수면 상승과 같은 얘기들로 문제를 추상화하거나 자연을 대상화하는 시선으로 심각성을 흐리는 우화를 단호히 피한다. 채식을 하거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식의 ‘백인들의 윤리적 행동들’도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지 개인의 각성만을 촉구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차원의 생활양식 조정은 전체적인 큰 영향을 주지 못하며 오직 정치적 차원의 움직임으로 확장될 때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위험은 각자가 전부 책임을 공유하기 때문에 “민주적”이다. 한국도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7위를 차지해 책임이 적지 않다. 책에선 “집은 무기로, 도로는 죽음을 부르는 덫으로, 공기는 독약으로 바뀔 것”이라는 묵시록적인 경고를 한다. 일상을 일상으로 지킬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다.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Have You Never Been Mellow - Olivia Newton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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