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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소리소문도 없이 가버린 사람들

by 이성근 2013. 7. 21.

만나고 기억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별시리 친하지는 않았지만 또 선뜻 마음을 내비치지 않았기에 응당 그 만남이란 것이 서로 기억할 만한 위치는 되지 못했다. 허나 잘살고 있겠지 막연히 생각했던 이들이  뜻밖의 소식으로 아침나절 잠시 혼란스럽다. 다들 나름대로 아픔을 간직한 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다.  궁금했다. 대관절 어떻하다 ... 이들과 더 친하게 지냈던 박정애시인에게 전화를 냈다.  내가 이들을 알게 된 계기도 박시인 때문이다. 

제주의 정군칠 시인과 주부가수로 이름 난 변해림씨가 그들이다.  정군칠 시인은 작년 이맘때 지병으로, 변해림 가수는 몇 달전에 운명했다. 고 정군칠 시인은 점잖고 말이 없을 듯 보이는 사람으로 시도 시인을 닮았다.  반면 고 변해림씨는 대단히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시원스럽고 거침없었다.  여기 시인이 남긴 시 몇수와 노래를 담아 본다.

 

 

 

나비상여

외따로 난 산길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개미들 간다

죽어서 맴돌기를 멈춘 나비

오색 무늬 제 몸이 만장이 된다

ㅡ 시집 '물집'에서

 

달의 난간

파도는 부드러운 혀를 가졌으나 이 거친 절벽을 만들었습니다

열이레 가을달로 해안은 마모되어 갑니다 지워지다 이어지고 이어졌다 끊어지는 신엄의 오르막길, 바다와 가장 가까운 벼랑에 이르자 누군가 벗어놓은 운동화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생의 난간에 이르면 달빛 한 줌의 가벼운 스침에도 긁힌 자국은 선연할 터인데 내 안의 빗금 같은 한 무더기 억새, 바싹 다가온 입술이 마릅니다

生涯의 끝에 이르러 멈추었을 걸음 망설임의 흔적인 듯 바위 틈에 간신히 붙은 뿌리, 뿌리와는 달리 땅 쪽으로 뻗은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누군가 온몸으로 지나간 길, 마음 한 번 비틀어 曲을 만들고 마음 다시 비틀어 折을 만들었으나 길 밖을 딛었을 자의 흔적은 허공뿐입니다

자주 바람 불어 달이 잠시 흔들렸으나 죽음마저 품어버린 바다는 고요합니다

 

해녀콩

태아의 발길질에

멀미나는 세상이 있었다지

저승길 멀다 해도

바닷속 그 길만 할까

들숨이 있는 한 살아있는 목숨이라

홑적삼에 달랑 바지 한 잎

 

날아가다 멈추었다는 비양도, 펄랑못 가

바다 향해 섬칫섬칫 줄기 뻗은 해녀콩

줄기 끝 콩꼬투리 야물게 매달려 있다

바다는 날콩의 비린내를 노을빛으로 받아낸다

 

바닷속 드나듦이 사는 길이라

속엣것 지우려

한 됫박 날콩을 먹었다지

불턱에 모여 앉은 젊은 해녀들

상군 해녀의 허리에 찬 납덩이같은,

탯줄처럼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하지

 

그런 날 바다의 낯은 놀빛 더욱 붉어지고

 

제주작가회의 이사였던 정군칠 시인은 중문에서 태어나 1998년 ‘현대시’로 등단하여  2003년 시집 ‘수목한계선’ 2009년 시집 ‘물집’을 발간했고2011년 제1회 서귀포문학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7월에 세상을 떠났다.

 

 

고 변해림씨는 1988년 MBC 주부가요열창으로  가수가 됐다. 당시 그녀는 최초로 3연승을 하였는가 하면 그해 12월 <주부가요열창> 제 1회 연말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녀는 자신이 주부가요열창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도, 또 가수로 데뷔하게 된 것도 모두 부처님의 가피라고 했다. 그녀는  부상으로 받은 피아노를 군법당에 보시하였다. 또 외국 여행이 그리 흔하지 않던 시절인데도 부상으로 받은 유럽 여행 티켓을 반납하고 그 만큼의 액수만큼 전국 고아원과 양로원에 보시를 하였다.

 

1989년 변해림씨는 제 1집 앨범 <애증의 그림자>를 냈고 ‘애증의 그림자’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애창곡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것을 계기로 그녀는 불자 가수로도 활동하였고, 전국의 수많은 사찰을 오가면서 음성공양을 하였다. 변해림씨는 찬불가 음반 제 1집 <육바라밀>과 제 2집 <해탈의 기쁨>을 내면서 찬불가 가수 1호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년는 지병인 당뇨와 교통사고의 휴의증으로 심하게 고생했다.  박정애시인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최근 산청 모처에 촌집을 구해놓고 두 사람이 틈틈이가서 마당을 가꾸며 후일 거처를 도모했다는데 갑자기 운명했다. 그녀를 기억하게 하는 노래는 <천(千)의 바람이 되어>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온 어머니를 위하여 작곡을 하는 아들이 음반을 내자고 해서 나왔던 음반인데  이 노래는 ‘죽은 이가 산자를 위로하는 노래'이다.  고인은 시방 저승에서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묘지 앞에서 울지 말아 주세요/ 그곳에 저는 없어요/ 자고 있지 않아요/ 천의 바람이 되어 드넓은 하늘을 날고 있을 거예요// 가을엔 빛이 되어 땅을 비추고 있고/ 겨울엔 보석처럼 반짝이는 눈이 되고/ 아침에는 새가 되어 당신을 깨우고/ 밤엔 별이 되어 당신을 바라볼꺼야.

 

 

이 세상 한번 / 변해림

이세상 한번 사는 동안
나만의 흔적 남기고파
고통에 눈물 참아내며
욕심에만 매달렸소

가지고 싶은 모든것들
어깨에 가득 짊어지고
사랑과 이별 미련까지
나 혼자서 만들었소


지나온 세월
한숨돌려 돌아보니
무엇을 찾아
여기까지 왔나싶소

부끄런 지난순간들은
되돌릴수가 없는 얘기
가져갈 수 없는 인생
비워가며 살고싶소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마음이 만들잖소

 

 

                                                                            노래출처: 다음 카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