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아이들과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함양이다. 거기 지리산 자락에 친구가 있기에 간만에 얼굴도 볼겸 지리산 자락도 맛볼 겸 떠난 길이었다. 그 보다는 고 2학년인 큰아들이 앞으로 맞닥뜨릴 시간을 고려한 여행이었다. 운전을 못하다보니 달리 움직일 방도는 없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늘 절반도 안되는 승객을 태우고 다니던 시외버스를 생각하고, 그렇지만 30분 더 빨리 움직였건만 아플사 오후 3시 차는 이미 매진이었다. 다음 차는 5시, 두 시간을 달리 보낼 곳이 없어 큰 아들이 제안한 pc방으로 갔다. 8월 땡볕에 중고생 아이들이 득실거렸다. 담배 연기 자욱한 거기서 아이들은 간접흡연에 무차별 노출되고 있었다. 칸막이가 있긴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게임에 흥미없던 나는 지금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변화 초안을 pc방에서 꺼적였다.
오후 5시 함양행 버스는 승객을 빈 자리 없이 빼곡히 채우고는 출발했다. 막내와 같이 앉았고 큰 아들 옆 자리는 대학생인듯한 여학생이 앉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앞으로 아들의 옆 자리에 어떤 여자 친구가 앉을까. 2년 뒤, 5년 뒤, 10년뒤
약 두 시간 만에 함양읍에 도착했다. 오랜 벗 갑주가 1톤 포트를 끌고 마중나와 있었다. 2박 3일간 지낼 양식이며 부식거리를 사기위해 함양장으로 갔지만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 당장 필요해서 사긴 했지만 비싸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급히 저녁을 먹고 작은 연주회?도 가지고 영화도 같이 보았다.
그리고 짧지만 큰아들과의 이야기 나눔도 있었다. 대학진학 이야기며, 아버지의 일과 수입... 한마디로 아버지 왜 일반적 삶을 살지 않았냐 때로 그기서 비롯되는 생활의 불편함이 불만이었다. 넉넉하지 못함에서 오는 부족이 부족함을 넘어 구차해질 때 ...실은 그게 걱정이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지내왔다만 앞으로 짊어질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피곤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또 방법이 있을 것이다. 차근차근 준비할 것이다. 하지만 힘이 부친다.
물놀이를 하러 가는 날 주변 풍광을 살펴 보았다.
주변 산락은 대부분 경작지로 이용중이지만 묵정논이나 밭이 많았다.
칠선계곡으로 가는 길 아이들은 짐칸에서 타고 가질 원했다.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도시에서는 꿈도 못 꾸는 방식이다.
이동거리는 7km정도, 60번 국도를 따라 둘레길 함양안내센터에서 의탄교를 건너 칠선계곡으로 올랐다. 광아리마을에서 칠선 휴개소방향으로 하여 마지막 마을인 두지동에서 하차하여 계곡으로 들어 간다.
물을 찾아 온 사람들이 계곡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 우리만의 물놀이 장소를 간다는 것은 마치 낙동강하구 진우도로 가는 느낌과 비슷했다.
벗이 안내한 인적이 뜸 한곳, 작은 폭포와 소가 있었다. 수심은 1~3.5m
차고 맑은 물은 금새 더워를 날려 버렸다.
물에서 뛰어 내리기, 허우적거리며 헤엄치기 ...
준비해 간 막걸리 5병에 오징어 회무침 안주를 비우고 그렇게 칠선게곡에서의 오전 나절 물놀이는 끝냈다. 막내는 이날 너무 몸을 많이 놀린데다 먹는 것이 탈을 일으켜 일찍 귀가를 서두르게 했던 원안을 제공했다.
다시 벽소로 와서 아아들이 좋아하는 짜파게티로 점심을 대신하고 오후 물놀이는 뱀사골로 향했다. 하지만 너무도 많은 차량행열은 발길을 돌리게 했다. 퍌량마을로 갔다. 귀농학교 1기 출신이 거기 들어 온지 4년 쯤 되었다는
산내면 세걸산 (1,220m)인월면 바래봉(1,165m)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경남 함양과 전북 남원을 잇는 옛길인 八良峙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를 이루던 고갯마루였는데(진평왕 시대), 신라 산성 터가 남아 있기도 하다. 여덟 굽이를 맴돌아 나간다 하여 '여드랑 고개'라 불렸는데, 서동(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개선 행진곡이 울려 퍼지던 고개이기도 했다고 한다(국토학교 제27강 소개글 중)
봄날 철쭉이 장관이다. 월래 숲이 있었던 곳인데 1970년 대 초 목장이 들어서면서 방목한 양떼로 인해 철쭉만 남았다고 한다.
십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고 사는데, 이런 집도 아직 있다.
마침 후배의 아버지가 생신이라 일가친척이 아들네 집에서 모여 한창 놀때 였다. 본의 아니게 그 놀이판에 끼어들게 되어 벗은 노래를 부르고 막내아들은 심부름도 하는 묘한 상황이 되었다.
소나기가 지나갔다. 그 빗줄기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었다
비를 좋아하는 큰 아들은 내리는 비 감상하고
그렇게 한참 놀다 백숙도 얻어 먹고 마을을 벗어 났다. 그 길로 뱀사골로 향했지만 비는 계속 내리고 물은 삽시에 불어나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실상사로 향했다. 물빛은 황토물이 되어 흘러 내렸다.
방뇨도 하고
실상사로가는 길에 무지개가 떳다.
바람이 비구름을 걷어내면서 산빛이 수시로 색을 바꾸었다.
실상사는 참으로오랫만에 방문했다. 일대에 지인들이 많이 산다. 대부분 귀농자들이다
실상사는 신라 후기의 '9산 선문(禪門)' 중에서도 최초로 개창된 유서 깊은 가람임을 내세우고 최근에는 '인드라망 생명공동체'의 중심도량임을 자임하고 있다.
천황문에서 바라본 경내 보광전과 두 기의 삼층석탑(보물 37호)이 보인다. 가운데 석등(보물35호)과 같이 통일신라시대 세워졌다.
보광전은 별도의 이렇다 할 장식이 없다. 수수하다.
다소 벽소로 와서 아이들이 먹고싶어 하던 바베큐를 준비해주고 저녁도 마다하고 잠이 들어 버렸다. 아니 설겆이까지는 했는가 보다. 팔량마릉에서 마신 소주기운에다 피곤이 더했던 모양이다.
그 시각 까지도 비는 내렸다.
일찍 눈을 떴다.
벽소 앞은 세 물머리에 해당된다. 람천, 덕전천, 임천이 합수하는데 임천으로 흘러 내린다. 림천은 물이 탁한데 덕전천은 맑다. 그 물소리 밤에도 골짜기를 울리며 흐른다. 함양 장항리에서 경호강과 합류하여 남강으로 흐른다. 한때 휴천면 문정리 송전리 일원 임천에 댐 길에 400m, 댐 높이 103m, 총 저수량 9억7400만㎥ 규모의 콘크리트 중력식 함양댐 건설계획이 나돌기도 하였다. 이 장면이 평화롭지 않는가
일데에는 고사리밭과 옻나무 재배지가 많다.
람천은 여전히 탁한 물이다. 남원시 운봉읍 덕산저수지로부터 물길을 내어 굽이굽이 흐르다 임천과 합류한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오니 막내가 고통을 호소했다. 열이 많았다. 급히 인근 약국을 찾아 해열제를 사 먹이고, 급히 귀가를서둘렀다. 차 시간이 마땅찮은 가운데 부고 소식을 접한 벗이 부산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2박3일의 벽소행은 마무리 되었다. 생각보다 지출이 많았던 나들이었다.
The Loco-Motion - Little Eva [1962년곡]
'사는 이야기 > 사는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월 마지막 주말의 평화 (0) | 2013.08.25 |
---|---|
2013 여름 가족 나들이 (0) | 2013.08.11 |
소리소문도 없이 가버린 사람들 (0) | 2013.07.21 |
2013년 6월 마지막 주에 (0) | 2013.06.29 |
이해는 하지만 황당하고 짜증난다. (0) | 2013.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