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날이 흐렸든가. 눈이 올 것이란 기상대의 예보가 있었지만 신뢰하지 않았다. 설사 온다고 하더라도 싸락눈 잠시 흩날리다 내 언제 그랬냐고 능청뜨는 하늘을 매번 봤기 때문이다.
14일 아침 간밤의 과음탓도 있고 해서 아침까지 뒤척이던 때, 베란다 넘어 창밖을 내다보던 마누라가 한 마디 했다. " 눈이 제법 오네 " 라고 했지만 그럴려니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출근길을 지우기 시작했던 눈은 쉴새 없이 내리더니 퍼붓는가 하면 돌연 몰아치기도 했다. 슬금슬금 걱정스러운 표현들이 들리기도 했다. " 이거 와이라노"
눈은 오후들어서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 상가집 조문을 갔다. 늦은밤에 갔다가는 귀가길이 안전하지 못할 것 같아 , 헌데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었다. 도로가 통제되자 시민들은 지하철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걸었다. 간만에 눈길을
눈길에는 낙동강도 평화로웠다. 4대강 공사로 엉망진창인 강변은 감쪽같다. 그 장면을 찍어두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멀리서 눈이 내릴 동안의 평화를 감상했다.
구포역에서 장례식장까지는 질척이는 미끄러눈 빙판길이었다.
거기 가로수며 조경수들이 눈꽃을 달아 또 한참이나 구경하며 걷는다
자동차들은 체인을 감아 달리느라 그 소리가 도로에 깔렸다.
공식적으로 7cm의 적설량을 보였지만 지역마다 달랐다. 구포일원은 십 수 센치정도될까. 화단에 수북히 쌓인 눈은 일대의 대기상태를 말해주는 것 같다.
지구본을 들고 있는 한무리의 조각상 눈은 그 위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은행나무의 겨울눈이 유난히 돋보이는 길
그 시각 금정산 자락 범어사는 이렇듯 눈속에 폭 파묻혔나 보다. 사실 상가집 핑게되고 어디고 이런 장면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접근 자체가 어려워 포기했다. 대신 http:/blog.daum.net/kapoad/1176님은 이런 장면을 담는 시간이 있어 한 컷 빌려 왔다.
아무튼 눈은 그렇게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이렇게라도 세상이 바꿀 수 있다면, 그리하여 모두가 평등한 저 빛깔의 세계에서 산자와 죽은자의 영혼이 하나가 되는 시간도 좋으리라. 눈오는 날 죽는 사람의 자손은 잘 풀린다는 덕담을 호상이라는 핑게 삼아 전하고 귀가하는 길
거리는 조용하다.
집앞 골목길에 주차해둔 차량들을 덮은 눈들 , 눈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다소간의 오르막이 다음날 아침 출근길을 걱정하게 했지만 이 겨울 엉금엉금 빙판길의 추억은 금방 지워진다.
조심조심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등교길에는 간만에 아이들의 장난기 어린 비명이 머물기도했다. 하긴 더 비탈진 고지대 분들은 몹시나 힘들었던 하루였다고 한다.
도시가 잠시 통제불능의 마비를 일으키기도 하였지만 누구도 눈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이례적이고 드문 부산의 폭설이 가져온 설경과 에피소드는 14일 하루만 허용됐다. 다소 싱겁기도 했다. 어쩌면 이정도에서 끝났다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고작 7cm의 눈 때문에 속수무책 도시가 되는 부산의 여건을 고려한다면 부산의 복인지도 모르겠다. 아쉬운 일은 모처럼 눈 다운 눈이 내렸음에도 눈구덩이 속에서 제대로 놀지 못했던 것이다. 눈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눈싸움도 없었다. 거짓말처럼 눈은 사라졌다.
16일 현재 눈의 흔적은 먼 산자락이나 비탈, 가로수 밑둥치나 응달 골목길 담벼락, 어쩌다 외출하는 자가용의 지붕위에 남았을 뿐이다. 한밤중에 함박눈 쌓이고 쌓인 그 길을 걷고 싶다. 부산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비소식이 들린다.
綾戶智繪(CHIE AYADO) Chie Ayado-Get int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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