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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이전 흔적

2012.3.18 -4차 수미시 갈맷길 그린워킹 : 노포동 오시게 장터에서 취하다

by 이성근 2016. 8. 30.

 

 

수미시 갈맷길 그린워킹 기점부인 남산동역에서 동래베네스트CC를 관통하는 고갯길로 이동중이다.

이날은 날씨가 불순하여 거의 행사를 진행하지 못할 것이란 판단을 내리고, 가볍게 집결지로 나갔건만 그럼에도 오신 분들이 있었다.

일기예보는 주말 흐리고 비 소식을 전했다. 하여 걷고싶은부산 (www. greenwalking.or.kr )공지시항에 올렸던 내용,

"일기예보가 수상한 가운데 급기야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는 내일 오전에 멈춘다고는 합니다만 하늘의 움직임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여 진행팀들이 급히 모였고 다음과 같은 원칙을 정했습니다.

첫째, 오전 8시30분을 기준, 비가 올 경우 행사는 5월로 순연하겠습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를 위해 출발하신 분들을 위해 진행팀들은 현장에 대기할 것입니다 (남산동역 8번 출구)
모쪼록 맑은 날이 되기를 희망하면서 좋은 주말되시길 "

 

에나 날씨는 걷기에 딱 좋았던 이날 준비한 프로그램은 다음으로 미루고 코스도 수정했다. 반성의 계기로 삼는다.

하정 소류지 옆 하정마을

이길을 따라 가다 보면 이만직영세불망비와 최연수애휼역졸비가 있다.

하정집을 돌아 금정구 자활자립센타를 빠져나오면 경부고속도로 선동교가 있는데, 하정마을은 조선시대 한양으로 가던 주요 교통로 역할을 했던 황산도가 지나는 길이다. 동래 선비들의 과거 길인 동시에 왜(倭)로 가던 통신사가 한양으로부터 내려오며 거치던 길이다. 다시말해 영남대로(부산~대구)의 부산~경남 밀양 구간인 '황산도(黃山道: 양산 물금초등학교 뒷산 기슭에 있던 황산역의 명칭을 따 붙여진 이름) 16개 속역 주의 하나로서 소사역이 있던 곳이다. 소산역은 양산과 황산도의 끝인 동래 휴산역을 잇는 기능을 했다.

 

국제신문 기획 '영남대로가 깨어난다' 한양천리-황산도를 찾아서 박창희 선임기자 의 글 일부를 옮겨다 싣는다.

" ...동래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을 흔히 '영남대로'라고 부르지만, 동래~밀양 구간은 황산도가 원래 명칭이다. "휴산역(休山驛)을 찾아봐야 해. 그곳이 황산도의 기·종착점이거든. 부산 길의 원형이 되는 역참인데 그 존재를 모르고들 있으니…."(주영택 원장)


휴산역은 문헌에만 존재하는 역이다. '동래부읍지' 역원조에는 '휴산역은 동래부의 남쪽 1리에 있으며, 북쪽의 소산역과 20리 떨어져 있다. 중마 2필, 짐말 5필, 역리 58명이 있다'고 기술돼 있다. 위치는 논란이 따르는데, 주 원장은 현 동래경찰서(옛 농주산 자리) 일대로 본다. 좌수영에서 오면 이섭교(현 연안교 아래)를, 부산진에서 오면 광제교(현 세병교)를 지나온다. 따라서 휴산역에서 해안 포구를 거쳐 해외로 나갈 수 있고, 동남 해안의 역로로 울산-경주 쪽으로 갈 수 있다.

조선 후기 황산도에는 동래부 관할의 휴산역과 소산역(蘇山驛)을 포함해 16개소의 속역이 있었다. 당시의 역(驛)은, 오늘날 터미널 이상의 기능과 역할이 부여됐다. 역에는 역마(驛馬)를 배치하여 관청의 공문서 전달, 진상 공납물의 수송, 공무 여행자를 지원했다. 주 원장은 "휴산역 자리를 찾아 표지석이라도 세워 놓아야 한다"고 했다.

...동래읍성 암문에서 온천 입구 사거리까지는 '대낫들이 길'로 불리는 곳. 동래부사가 이·취임할 때 기치창검을 세운 늠름한 행렬이 자못 장엄하여 큰(대) 나들이라 했다는 것이다. 명륜초교 뒤편 파리바케트 빵집 앞에 작달막한 표지석이 서 있다. 대낫들이 길에 이야기가 없을 수 없다.


 

"1836년 대흉년 때 민영훈 동래부사가 천 포대의 곡식을 풀어 만민구명(萬民救命)을 했어. 굶어 죽게 된 백성을 살린거야. 이에 탄복한 두구·작장·남산마을 주민들은 이듬해 민 부사 이임때 대낫들이 길에 적삼을 벗어 밟고 걸어가게 했다는 거야.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장면 아닌가."(주영택 원장)

대낫들이 길을 벗어나면서 1592년 임진왜란 때의 그 사내들을 떠올린다. 부산진과 다대진의 첨사 정발과 윤흥신을 차례로 죽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군 선봉대는 동래성을 겹겹이 포위했다.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적에게 한양 가는 길을 내줄 수 없다"며 목숨을 버렸고, 경상좌도 군사책임자인 이각(경상좌부사)은 겁을 먹고 북문지기를 죽인 후 도망쳤다. 송상현(당시 나이 42세)은 짧게 살고 불멸의 충신으로 부활했지만, 이각은 목숨을 부지했지만 영원한 비겁자로 전락했다. 길에서 빚어진 순간적인 판단의 결과가 섬뜩하도록 무섭다

온천 입구 사거리에서 명륜로로 직진하면 공수물 소공원(금정구 부곡2동)에 다다른다. 공원에 '부사민영훈거사단'이 옮겨져 있다. 만민구명의 덕을 잊지않은 두구·작장·남산마을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원래 황산도 길목인 지경고개(금정구 노포동 녹동마을)에 있던 것을 1993년 이곳으로 옮겼다.

공수물마을에서 조금 더 가면 부곡3동 기찰(譏察)마을이다. 고지도에 나오는 십휴정기찰(十休亭譏察)은 지금의 금정농협 기찰지점이다. 기찰은 요즘으로 치면 검문소다. 기찰포교(捕校)를 주재시켜 통행자나 신분, 물품 등을 검문검색했다. 동래여고 앞 체육공원로를 따라가면 왼쪽편에 태광산업이 있다. 옛날 '역들'이라 불린 자리다. 과거 소산역의 경비 조달을 위해 지급된 역전이 있었다고 한다.

브니엘중고교를 지나자 소산고개가 나온다. 고개 너머에 소산역이 있다. 지금의 금정구 하정마을이다. 소산고개는 임진왜란 때 아군이 방어선을 치고 전투를 벌인 곳으로, 동래성서 빠져나온 경상좌부사 이각이 도주한 길이다. 관군의 방어선이 무너진 곳에 지역의 의병들이 들고 일어나 싸웠다. 이른바 소산전투다. 주 원장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한다.

"장수들이 숨고 도망 가서 전열이 흐트러진 곳에 상현마을 출신의 김정서 의병장이 나타났어. 그는 기장의 김일덕 오흥 의병장 등과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소산역 일대에서 게릴라전을 펼쳐 큰 전과를 올렸지. 그러니까 김정서는 임란 최초의 의병이었고, 소산고개는 조선 의병의 발상지야."

고개를 넘어 상현마을 입구 사거리에서 좌회전,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면 하정마을이다. 마을 입구 신일농원 가는 길이 황산도 옛길이다. 옛길을 따라 노포동 고분길→팔송 경찰초소→작장마을→대룡마을→지경고개까지 이르는 길가엔 영세불망비, 신도비 등이 즐비하다. 옛길을 증언하는 비석들이다.

하정마을의 노인정이 역터, 개울가가 마방터라고 하고, 지금의 당산나무 옆에서 거릿대제를 지냈다고 하는데, 현장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한가하기만 하다. 오히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40여호의 변두리 마을이 더욱 고립된 형국이다. 길로 번성한 역촌이 길로 인해 고립돼 버렸으니 길의 무정이다...." 라고 전한다. 언젠가는 걸어볼 길이다.

경부고속도로를 넘어서면 선동 상현마을이다.

상현마을 입구가 소란하다. 없던 집들도 새로 생겨나고 가로등이 설치되면서 길도 정비중이다.

그렇지만 좌측 담벼락이 아쉽다. 이왕 조성할 거면 마을 들머리인데다 최근 각광받는 회동수원지 갈맷길의 주요지점인데,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그 안타까움은 수원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사전 답사때 보았던 오륜본동의 변화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란 원들이 최근 오륜본동에 새로 들어섰거나 들어서고 있는 신축건물이다. 그리고 빨간 네모 역시 신축 건물이 들어 설 자리다. 문제는 건물의 성격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갈맷길의 주요한 지점으로서 길이 필요한 건물들이 들어서는 한편 오륜본동이 새롭게 단장되는 방식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예컨데 현재 김민정 갤러리가 카페를 겸해 들어 섰다. 그 옆집 기와건물은 대형 오리집이다. 두 신축 건물만 놓고 보자면 갤러리를 중심에 둔 방식의 예술문화체험마을로서 변화를 시도하는 한편 게스트하우스 등이 들어 섰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램은 이미 비켜난 것 같다. 건축승인을 하는 금정구가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이곳을 찾는 방문자들이 밥집이 없어서 새로운 밥집을 찾는 것이 아니다. 산수갑산이며, 소나무집을 비롯하여 오리며, 향어요리며 찜을 파는 집은 인근에 널렸다.

확인이 필요한 일이지만 통미골에서 나와 삼삼오리촌으로 가는 길, 미나리꽝과 수원지 수변(우측 상단) 에 공연장을 설치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사실이라면 재고되어야 한다. 규모며 어떤 양식이 될련지 모르지만, 오륜본동의 진정한 발전 방식에 대해 지역민의 이해와 부산의 길 자원이란 측면에서 사전 협의와 공유가 필요하다. 어줍잖은 계획이 아니함만 못한 것들을 무수히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상현마을의 변화 역시 예사롭지 않다.

상현마을에서 상현2길에 있는 가이즈까향나무 골목길

저마다 이 녹색골목길에 찬사를 보낸다. 월간 산 연재 부산갈맷길 신회동팔경 중 3경에 속하는 곳이다.

수영강이 회동호를 앞두고 유로를 꺽는 지점.

편백이 줄지어 선 이 길 맞은편에도 짝을 이루어 편백이나 메타쉐퀘어가 서 있다면 아치를 이룬 길이 더없이 정겨운 100% 만족을 선사할 것 같다는 바램이랄까. 더하여 닫힌 길이기 보다 뜨문뜨문 창문을 달듯 조망공간을 틔워준다면 좋지 않을까.

신회동팔경 2경에 해당하는 구 신천교에서의 조망, 멀리 계좌산과 윤산의 자락이 겹겹으로 포개어져 있고 수영강이 목을 향해 흘러가는 장면

스포원 가는 길, 여인네 셋이서 나란히 길 위에 서니 그림이 된다.

중간 중간 징금다리도 건너 본다.

손주보기로부터 잠시 자유스러운 주말 수미시그린워킹에 참여 했다는 이분,

스포원 앞 테크에서 각자 준비해 온 점심을 나눠 먹고

기념촬영, 준비했던 프로그램을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

두구교를 건너 오시게 장터로 향하는 길, 걷기 전 코스를 말하며 오시게 장날이고 하니 장구경을 마무리로하자 하여 ...

봄이 왔다고 나플거리는 배추흰나비 한 마리 버들개지에 앉았다.

도시철도 1호선 노포동역을 빠져나와 울산방면으로 10분쯤 걷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교각을 돌면서 노포수련연꽃 농장으로 우회전한다. 들머리에 해당하는 이 지점이 신회동필경 1경이다.

미나리꽝 너머 양산 동면쪽 금정산 자락과 기장 철마산 자락이 수영강을 중심으로 병풍을 쳤다.

오시게 장터가 와글거리고 있다.

부산에서 장구경 하기에는 노포동 오시게장이 좋다.

오시게 장은 2.7장이다. 옛날 동래군의 읍내장으로 지금의 동래시장에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상설시장인 동래시장이 들어서면서 현재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서동으로 가는 고개 마루로 옮겨졌는데 장터 이름 유래는 근처 마을에 ‘까마귀가 많이 사는 까막 고개 주변’ 이라서 붙은 이름이다. 몇번을 와보았지만 늘 재미있다. 정리하자면 일단 흥겹다. 이단 정겨운 촌 냄새가 난다. 삼단 왁자지껄한 장터 특유의 맛이 매력이다.

살아있는 닭이며 오리등은 장터 뒷쪽에 있다. 이곳 장터에도 나름의 질서가 있다. 자리세 비슷한 것을 내는 곳은 안쪽 그렇지 못한 쪽은 바깥쪽이며, 바깥쪽도 신참과 고참의 차이가 있다. 거기에 꽃집이 많아 정말 발 디딜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 붐빈다. 대강 장바닥을 표시 해보았다.

수수부꾸미 굽는 아짐 좌우로 앉을 자리가 없다. 소주나 막걸리 한 병으로 불콰해진다.

그래도 근동에서 알아주는 5일장이다. 식재료부터 시작 육고기며 바다,민물고기 이른바 육해공이 다 있다.

풀빵도 인기 품목이다. 만들어 내기 바쁘다.

계절식도 한 자리 한다. 딸기 향이 진동한다.

남새는 대부분 집에서 키운 것 중심이다. 연제구 걷기동회회 김정옥회장이 돼지감자를 한 봉지 사준다. 생 돼지감자 맛은 야콘 맛이다. 깐장에 조려 먹으면 좋다나 ...

소풍가는 도보길 박영선씨가 즐겨찾는 찌짐(부침개)집으로 갔다. 좀체 자리가 나지 않아 한동안 대기 했다가

우르러 몰려 들었다.

박영선, 박경애, 김정옥씨

찌짐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 건배 수미시! 라고선창하면 갈맷길! 하고 잔을 들어 건배하고 이날을 마감한다. 4월은 둔치도로 간다. 쑥을 뜯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