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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벌레가 사라진다, 기후변화의 새 재앙인가

by 이성근 2018. 10. 21.

벌레가 사라진다, 기후변화의 새 재앙인가

푸에르토리코 열대림 40년 새 최고 99% 줄어

독일서도 27년 간 75%↓…생태계서비스 위협

 

열대우림의 대벌레. 곤충의 종다양성에 더해 생물량 자체의 감소가 문제가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지구가 6의 대멸종을 맞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코뿔소나 자이언트판다 같은 크고 카리스마 있는 포유류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세계의 생물종 가운데 포유류는 5% 이하일 뿐이고 곤충과 거미 등 절지동물은 70% 이상이다. 하찮고 성가시기만 한 벌레가 실은 생태계의 기초를 이룬다.

 

곤충은 종이 다양하기도 하지만 양도 풍부하다. 그런데 멸종과 별개로 곤충의 양 자체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곤충의 양을 장기간 측정한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곤충 없는 세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 먹이그물이 토대부터 흔들린다는 경고가 나온다.

 

곤충의 장기연구가 이뤄진 푸에르토리코의 엘 융케 국유림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브래드퍼드 리스터 미국 렌슬레어 폴리테크닉대 생물학자는 푸에르토리코의 잘 보전된 열대림에서 1970년대부터 곤충을 연구해 왔다. 그는 19761977년 이 원시림에서 곤충과 이를 먹는 새·개구리·도마뱀을 조사했다. 그는 20122013년 멕시코 공동연구자와 함께 다시 같은 장소를 찾아 같은 방법으로 조사했다.

 

연구자들이 16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밝힌 결과는 충격적이다. 포충망을 휘둘러 잡은 곤충과 거미의 마른 중량은 1977년과 2013년 사이 4분의 18분의 1로 줄었다. 끈끈이를 숲 바닥과 중간에 설치해 포획한 곤충의 양은 30분의 160분의 1로 감소했다. 40년 사이 최고 99%의 곤충이 사라진 셈이다. 줄어든 절지동물에는 나방, 나비, 메뚜기, 거미 등 가장 흔한 10종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곤충의 주 포식자인 아놀리스 도마뱀도 곤충 격감과 함께 30% 이상 줄었다. PNAS 제공.

 

곤충과 거미의 감소는 이들을 주 먹이로 삼는 척추동물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나무 열매나 씨앗을 먹는 새는 그대로였지만 벌레를 먹는 새는 90%가 줄었다. 벌레를 먹는 도마뱀도 30% 이상 감소했다. 개구리의 양도 곤두박질쳤다.

 

연구가 이뤄진 루킬로 숲은 1930년대부터 철저히 보전돼 사람에 의한 교란이 거의 없는 곳이다. 1970년대부터 푸에르토리코의 농약 사용량은 농업 축소와 함께 80% 줄었다. 그렇다면 왜 이 천연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곤충 포식자인 코키개구리 역시 격감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숲의 온도는 평균 2도 상승했다. 우리의 연구는 이런 기후 온난화가 숲 먹이그물의 붕괴를 일으킨 원동력임을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온도변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열대림에서 기온 상승은 생물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연구자들은 기후 온난화가 절지동물의 감소를 초래했고, 이는 다시 곤충을 먹는 동물의 감소를 부르는 고전적인 상향식 파급효과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장기연구에서 곤충의 격감이 보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열대 아메리카 이외에 유럽 온대림의 보호구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지난해 10월 보고됐다. 네덜란드, 독일 등 유럽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에서 19892016년 사이 독일의 보호구역 63곳에 설치한 표준화한 곤충 포획장치에 얼마나 많은 나는 곤충이 잡히는지를 비교해 분석했다. 놀랍게도 곤충의 양은 27년 동안 75%나 줄었다. 그러나 유럽 연구자들은 곤충 감소의 원인이 기후변화나 토지 이용 때문이라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농약과 비료를 많이 쓰는 집약농업과 토지가 쉴 틈을 주지 않는 농사법의 변화가 곤충 격감을 초래했다고 보았다.

 

곤충 양의 변화를 장기 측정해 온 독일 보호구역()과 채집 시설의 모습.

 

원인이 어쨌든 곤충의 감소는 곤충이 자연에서 공짜로 해 주던 생태계 서비스, 곧 꽃가루받이, 다른 동물(사람을 포함해)의 먹이원, 병해충의 포식자, 죽은 동물의 청소 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 들어 세계 농작물의 35%와 야생식물의 80%는 꽃가루받이를 곤충에 의존한다. 곤충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의 규모는 미국만 해도 연간 570억 달러에 이른다. / 한겨레 10.1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새들이 먹는 곤충, 인류 고기 소비량 맞먹어

6000여 종이 연간 세계서 45t 잡아먹어

해충 제거 효과 탁월, 과소평가된 생태계 서비스

 

땅강아지를 사냥한 후투티. 새들이 잡아먹는 곤충의 양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봄부터 초여름까지 어미 새는 새끼에게 부지런히 단백질이 풍부한 곤충과 절지동물을 잡아 먹인다. 그 메뉴엔 딱정벌레, 파리, 개미, 거미, 진딧물, 메뚜기, 귀뚜라미 등이 오른다. 많은 새가 숲 속에서 수많은 벌레를 잡는다. 새들이 사라지고 해충이 들끓고 나서야 우리는 새들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는지 안다.

 

그렇지만 과연 새들은 얼마나 많은 곤충과 절지동물을 잡아먹을까. “새들이 제공하는 생태계 서비스는 대개 보이지 않고 과소평가됐다고 믿는 동물학자들이 기존 연구를 활용해 정량화 작업을 했다. 마틴 니펠러 스위스 바젤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사이언스 오브 네이처’ 9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조류가 얼마나 많은 곤충을 잡아먹는지를 다룬 103개 과거 연구를 바탕으로 연간 그 양이 지구 전체로 45t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연구자들은 열대림, 온대림, 농지 등 7가지 생물군계별로 곤충 포식량에 해당 면적을 곱하는 방식으로 계산했다.

 

숲에 사는 새들, 특히 새끼를 기를 때 새들은 많은 곤충을 잡는다. 모리스 베이커 제공

 

지구에는 1700종의 조류가 산다. 이 가운데 적어도 한때라도 곤충을 잡아먹는 조류 6000여종이 연구대상이다. 집계 결과 새들이 연간 세계적으로 먹는 곤충과 절지동물의 양은 45t(연구자들은 4t에 더 가까울 것으로 본다)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인류의 연간 육류·생선 소비량 4t과 비슷한 수치다. 니퍼러는 2017년에도 세계의 거미가 잡아먹는 곤충의 양이 연간 48t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관련 기사: 지구 최대 포식자는 거미, 연간 곤충 등 8억톤 먹어)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 연구에서 흥미로운 건, 새의 생물량이 잡아먹는 곤충의 양에 견줘 매우 작다는 사실이다. 새들은 날기 위해 몸이 가볍고 호흡량이 많아 체중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먹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곤충을 먹는 새들의 생물량이 세계적으로 300t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는 거미 2500t이나 개미 28000t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그런데도 잡아먹는 곤충의 양이 비슷하다는 건, 새들로서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지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곤충을 없애는 효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뜻한다.

 

새끼에게 먹이기 위해 말벌을 잔뜩 잡아 문 녹색제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곤충을 먹는 양의 4분의 3은 산림 조류가 차지했다. 그만큼 새들이 숲에서 곤충을 조절하는 효과가 크다는 방증이다. 니퍼러는 곤충을 먹는 세계의 새가 소비하는 에너지는 거대도시인 뉴욕시 수준이다. 새들은 이런 에너지를 잠재적으로 인류에게 해로운 곤충과 절지동물 수십억 마리를 잡아먹으며 얻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박쥐, 유인원, 땃쥐, 고슴도치, 개구리, 도롱뇽, 도마뱀 등도 곤충을 많이 잡아먹고, 특히 도마뱀이 열대림에서 차지하는 기여도가 높지만 새들만큼 효과적이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새들이 하는 생태적 기능은 위협받고 있다. 니퍼러는 새들을 위협하는 요인은 산림 벌채, 집약농업, 제초제 살포, 길고양이에 의한 포식, 인공 구조물과 충돌, 빛 공해, 기후변화 등 많다. 이런 위협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는다면 해충 억제라는 새들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핵심적인 생태계 서비스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95%가 사라진 '멸종 위기' 토종 꿀벌되살릴 수 없나

 

경기도 양평군 농가의 토종벌. [중앙포토]

 

꿀벌 (Honey Bee)

꿀벌은 꽃가루받이를 통해 생태계를 유지하고, 사람에게는 꿀도 준다.

꽃가루받이를 통해 꿀벌이 제공하는 경제적 가치는 전 세계적으로 50조 원이 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 세계에는 2만 종가량의 벌이 있다.

그 중에서 밀랍으로 벌집을 짓고 꿀을 모으는 꿀벌은 아피스(Apis) ()10여 종뿐이다.

사람이 기르는 꿀벌로는 동양의 꿀벌인 토종벌(학명 Apis cerana)과 서양벌(Apis mellifera)이 대표적이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 127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칠곡군청 관계자들과 함께 독일 뷔르츠부르크 인근 뮌스터슈바르자흐 수도원에서 영구 대여 형식으로 돌려받은 '양봉요지'. 이 책은 독일인 신부 카니시우스 퀴겔겐이 1918년에 한글로 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양봉 교재다. 사진은 양봉요지 표지(왼쪽)과 내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연합뉴스]

 

국내에서 토종벌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 고구려 시대부터이고, 서양벌은 조선 시대 말 고종 때 독일인 선교사가 들여오면서 기르기 시작했다. 이런 꿀벌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10년 이어진 토종벌의 위기

 

지난 11일 오후 전남 곡성군 죽곡면 보성강변에서 토종벌 농민들이 낭충봉아부패병에 걸려 폐사한 벌통을 불 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1일 오후 전남 곡성군 죽곡면 보성강변에서는 토종벌 벌통 수십 개가 한꺼번에 불에 타올랐다. 토종벌(한봉) 농민들이 스스로 벌통에 불을 붙인 것이다. 낭충봉아부패병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농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벌통을 소각한 데에는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이 병에 대해 정부가 근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항의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뚜렷한 해법이나 예방책이 없어 농가는 완전 파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육각형의 벌방 속에서 자라는 꿀벌 애벌레의 소화기관에 바이러스가 침입해서 나타나는 질병으로, 벌방의 뚜껑이 쭈글쭈글해지고 감염된 애벌레는 부어오르면서 죽게 된다.

 

토종벌 [중앙포토]

낭충봉아부패병은 토종벌 농가에는 끔찍한 재앙이다.

 

김대립 전국한봉협회 한봉 복원 비상대책위원장은 낭충봉아부패병도 제2종 법정 감염병이고,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살처분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과는 달리 살처분해도 정부에서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95%가 사라진 토종벌의 재앙

 

봉충낭아부패병으로 위협받는 토종벌 [중앙포토]

 

20105월 여름 평창·영월·정선 등 강원도와 전북 등지에서는 토종벌을 기르는 농민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토종벌 성충(일벌)이 애벌레를 벌통 밖으로 물어 나르기도 하고, 어떤 벌통에서는 벌들이 아예 사라져버리는 일까지 벌어진 것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2008년 국내에서 처음 발생했고, 2010년 전국으로 번진 낭충봉아부패병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낭충봉아부패병이 퍼지기 전인 2010년 전국 토종벌 벌통 수는 42만여 개에 이르렀다. 하지만 2016년에는 전국 토종벌 양봉 농가들은 벌통 숫자가 1만개(2%)로 줄었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회복됐는데도 3~10만 통 수준이다. 여름철에 10만 통 정도로 늘어났다가는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병이 퍼지고 벌이 죽어 3만 통으로 다시 줄곤 한다. 그러다 보니 토종벌 농가도 과거 2만 가구에서 이제는 300가구 정도로 줄었다. 반대로 벌통 하나의 값은 20만원에서 이제는 50~70만원으로 올랐고, 한때 1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농식품부는 2010년 말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하고, 2014년까지 30만 통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토종벌 종 복원 사업도 추진했다. 2011~2016년에는 토종벌 보존을 위해 1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새로 토종벌통을 분양받는 농가에는 벌통 하나당 40만원을 지원했고, 농가에서는 10만 원 정도만 자부담하면 됐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 사업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진행한 복원 사업이 오히려 질병 확산을 부추겼다는 비판마저 제기됐다.

양평군에서 토종벌을 기르는 홍정석(54··전 경기도의원) 씨는 정부 지원과정에서 감염된 벌을 제대로 가려내지 않고, 보급만 장려하는 바람에 오히려 병을 확산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농민들 사이에서는 병에 걸린 벌통에서도 꿀을 얻기 위해 내버려 두거나, 감염된 벌통을 거래하기도 한다. 병을 근절하지 못하는 원인인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부터는 토종벌 종 복원 사업도 중단했다. 워낙 토종벌 감염이 심해 분양을 받으려는 농민이 크게 줄면서 배정된 예산도 다 못 쓰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농가도 크게 줄었고, 피해도 더는 늘어나지 않고 만성 질병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농가에서 관리를 소홀히 하면 퍼지고, 좋아졌다가 다시 나빠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대구시 달서구 도원동 월광수변공원 인근 아카시아 군락지에서 양봉인들이 서양벌을 기르며 꿀을 채취하고 있다. [중앙포토]

 

토종벌 대신 서양벌 양봉 숫자가 2015년 말 현재 전국에 1963000(22000여 농가)이나 있기 때문에 토종벌이 사라져도 꽃가루받이 등에 문제가 없다는 정부와 일부 전문가의 인식도 작용했다.

 

서양벌 양봉 농가의 밀도(단위면적당 숫자)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토종벌 사라지면 생태계도 '흔들'

 

지난 5월 강원 춘천시 온의동 산책길에 만난 애기똥풀의 꽃에서 꿀벌이 꿀을 찾고 있다. 꿀벌의 다리에는 애기똥풀의 노란 꽃가루가 잔뜩 묻어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적으로 꿀벌이 식량·과일·사료 작물 가운데 30%가 넘는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담당할 정도로 중요하다. 서양벌보다 크기가 작은 토종벌은 꽃 크기가 작은 야생화, 멸종위기종의 꽃가루받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싸리꽃 같은 경우 토종벌은 꽃가루받이할 수 있지만 서양벌은 덩치가 커서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토종벌이 전체 꽃가루받이의 25% 정도는 차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양벌에만 의존할 경우 꽃가루받이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토종벌 자체가 자칫 사라져버리게 되고 생태계에는 큰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안동대 식물의학과 정철의 교수는 토종벌은 한반도 자연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야생 멸종위기 식물의 꽃가루받이에 기여하기 때문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토종벌이 사라지면 꿀벌에 꽃가루받이를 의존하지 않는 식물 종이 더 늘어나면서 생태계가 바뀔 수도 있다.

정 교수는 서양벌은 산림과 농경지 경계부에서 양봉이 이뤄지지만, 토종벌은 산속에서 이뤄지는 게 보통이라며 토종벌은 육식성 곤충과 새들의 먹이가 되는 등 산속 먹이사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말벌이 도심에 자주 출몰하는 것도 먹이가 되는 토종벌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정 교수는 추정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의 토종벌 벌통. [중앙포토]

 

서양벌의 경우 경제성에 맞춰 장소를 옮겨가면서 양봉을 하지만, 토종벌은 보통 한 곳에서 이동하지 않고 기른다. 토종벌은 벌통 입구를 10만 틀어놓아도 집을 못 찾을 정도라서 벌통을 옮겨 다니며 기르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토종벌 살릴 방법 아직은 있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벌을 기르는 홍정석 씨가 봉충낭아부패병을 차단하기 위해 여왕벌을 별도의 틀 속에 가둬 일벌과 일정 기간 차단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일벌이 감염된 알을 완전히 내다 버릴 때까지 여왕벌의 산란을 억제하는 방법이다. [중앙포토]

 

농민들은 토종벌이 멸종위기에 처했지만 되살릴 방법이 있다고 주장한다. 낭충봉아부패병 청정지역을 지정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청정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지역의 농민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오염지역이란 낙인이 찍힐 경우 벌꿀 등을 제값에 팔지 못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양벌이 토종벌이 모아 놓은 꿀을 훔쳐가기 때문에 토종벌 벌통에서 반경 5내에는 서양벌을 기르지 않아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농식품부는 내년부터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토종벌을 보급할 계획이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원이 지난해 개량한 품종은 감염 때 생존율이 79.1%로 일반 토종벌 생존율 7%보다 10배 이상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감염된 토종벌을 살처분이나 소각하고, 건강한 벌만 증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처분·소각하려면 소·돼지 구제역처럼 정부가 농가에 보상을 해줘야지만 정부는 검토만 하고는 시행은 하지 않았다. 김대립 대책위원장은 토종벌을 지킬 방법이 아직 있다""종 복원 사업이 문제가 많다고 중단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유럽에서도 꿀벌 사라져

 



지난해 1030일 프랑스 남부 지역에서 한 양봉 농민이 겨울을 앞두고 벌통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30% 가까운 벌 무리가 사라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에서는 2005년 꿀벌(서양벌)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캐나다서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이른바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 CCD)이다.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는 꿀벌의 30~60%, 동부 해안지역에서는 70%가 사라지기도 했다.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해마다 30~40%의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2035년쯤 꿀벌이 지구 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많은 학자가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매달렸다. 바이러스나 곰팡이, 응애가 원인으로 꼽히기도 했고, 전자파·농약 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 농경지에서 단일 작물을 재배하면서 잡초를 제거해 꿀벌들이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도 원인으로 제시됐다. 대기오염도 원인이 될 수 있다.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벌들이 꽃향기를 제대로 맡을 수 없고, 특히 한 가지 꽃에만 의존하는 벌의 경우 먹이를 제대로 구하지 못할 수도 있다.


먹이를 얻지 못하면 벌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 수 있다. 집단 크기가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먹이 찾기와 알 기르기, 방어 등 다양한 역할 분담이 가능하고, 집단을 유지하기도 쉽다. 집단 크기가 일정 수준 이하가 되면 집단 내 협력이 무너지고, 결국 집단이 유지되지 못하고 붕괴한다   말벌의 공격을 받은 토종벌은 말벌을 에워싼 뒤 날개 근육을 움직여 열을 발산해 열로 태워 죽이는 방식으로 방어한다. 그런데 집단이 25000마리 이상은 돼야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세력이 좋은 집단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파종하기 전에 종자를 처리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neonicotinoid)라는 농약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서는 2013년부터 네오니코티노이드 농약 3종을 꿀벌이 찾는 화초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제했고, 지난 4월 야외에서는 이들 농약 일절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올 연말부터는 벌과 접촉이 없는 온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의 살충제 규제 강화안 표결이 예정된 지난 4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시민들이 살충제 사용 금지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VAAZ 제공, AP=연합]

 

하지만 전문가들은 군집 붕괴가 어느 하나의 원인에 의해 나타나기보다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하나하나는 영향이 적더라도 상승작용을 일으켜 꿀벌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미국 연방 기구인 '어류 및 야생동물국(Fish and Wildlife Service)'에서는 20169월 말 꿀벌은 아니지만, 하와이 토종벌 7종을 미 연방 '멸종위기종' 리스트에 벌 종류로는 처음으로 포함했다. 개발로 인한 시식지의 감소, 산불, 외래 곤충과 식물의 유입, 가뭄·허리케인과 같은 기상재해 등으로 인해 토종벌들이 멸종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들 하와이 토종벌은 하와이에 서식하는 멸종위기 식물의 꽃가루받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보호가 필요하다고 미국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새 집을 찾는 꿀벌의 집단 지능

 

행동 연구를 위해 연구자들은 꿀벌 하나하나를 번호로 표시하기도 한다. [중앙포토]

수만 마리의 일벌과 한 마리의 여왕벌로 이뤄진 벌 무리는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난다. 숫자가 너무 불어나 한집에 같이 살 수 없게 되면 분봉을 하는 것이다.

 

분봉의 준비 단계로 여왕벌이 낳은 알에 로열젤리를 먹여 딸 여왕벌을 기르는 일이다. 분봉할 때는 새 여왕벌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새 여왕벌과 기존 벌 집단의 3분의 1 정도는 옛집에 남겨두고, 옛 여왕벌과 나머지 일벌이 떠난다. 새 여왕벌이 자라는 동안 어미 여왕벌은 일벌로부터 시달림을 받아 몸무게가 25% 정도 줄어든다. 이 다이어트를 통해 비행이 가능한 몸매를 갖추게 된다   옛집을 벗어난 벌 무리는 멀리 이동하지 않고 덩어리를 이룬 채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가까운 임시 거처, 즉 나뭇가지에 붙어 지낸다. 이 사이 수백 마리의 정찰대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집터 후보지를 찾아낸다. 후보지를 찾아낸 벌들은 나머지 벌들의 지지를 끌어낸다. 후보지 가운데 가장 좋은 곳이 선택되면 함께 이동한다   좋은 후보지를 발견한 정찰 벌은 임시 거처로 돌아와서는 숫자 8 모양으로 비행하는 이른바 ‘8자 춤을 추면서 위치를 보고한다.

8자 춤은 목표지점의 방향과 거리를 동료에게 알려줄 때 사용한다. 후보지의 가치가 뛰어날수록 정찰 벌은 8자 춤을 더 많이 반복한다. 탐색한 곳이 마땅치 않으면 아예 보고하지 않는다.

 

벌들은 벌집 후보지를 결정할 때도 8자 춤을 추지만, 평소에는 꿀을 얻을 수 있는 꽃의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릴 때 사용한다.

 

꿀을 얻을 수 있는 꽃의 위치를 동료들에게 알리기 위해 벌은 8자 춤을 춘다. 8자 춤에는 꽃의 방향과 거리를 알려주는 내용이다. [중앙포토]

이렇게 8자 춤을 계속 추면 다른 정찰 벌이 그 보고 내용을 확인하러 후보지를 방문하게 된다. 후보지를 다녀온 벌들도 자신의 평가 결과를 표시한다. 지지할 경우 동일한 모양의 8자 춤을 추게 된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특정 후보지에 대한 지지가 퍼진다. 결국 모든 정찰 벌들이 한 후보지를 가리키는 8자 춤을 추게 되고, 그렇게 되면 벌 집단 전체가 최종 합의에 도달하게 된다.

한편 벌 집단이 유지가 되려면 여왕벌의 페로몬(pheromone)이 필요하다. 페로몬은 동물들 사이에서 번식 등 성적 행동이나 집합 등 다양한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호물질이다. 여왕벌이 분비한 페로몬은 일벌 전체로 계속 전달된다. 페로몬이 전달되지 않으면 일벌은 더는 무리를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꿀벌 사회도 유지되지 않는다.

2018.06.16 강찬수중앙일보 환경전문기자




Riders on The Storm  - The Doors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