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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더불어 살기

엇갈렸던 호랑이 아종, 전체 게놈 분석해 “6종이 맞다” 결론

by 이성근 2018. 10. 28.



호랑이는 민화, 전설, 동화, 애니메이션 등 다양한 경로로 접할 만큼 친숙한 동물인 동시에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국제적인 노력 덕분에 최근에는 개체 수가 4000마리 안팎으로 유지되면서 급감하던 추세는 잠시 멈춘 상태다. 하지만 여전히 서식지 파괴, 밀렵 등의 위협을 받으면서 지구상에서 사라질 위험에 처한 동물이다. 세계자연기금(WWF)20172월 기준으로 야생 호랑이는 약 3890마리가 남아 있으며 99% 정도인 3846마리가 아시아에 서식하고 있다고 집계한 바 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아직까지 호랑이의 아종이 몇 종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종은 종을 다시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를 말한다. 종으로 나눌 만큼 다르지는 않지만, 형태나 크기 등에서 서로 차이가 많고, 사는 곳도 다른 경우를 가리킨다.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보호 정책을 수립할 때는 아종 단위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종이 몇 종인지 밝히는 것은 기본적이자 필수적인 요소이다. 서로 다른 종인 생물의 경우 번식이 불가능하지만 아종끼리는 번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현재 살아남은 호랑이의 아종은 6종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학계에는 2종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이견도 존재했다.

 

2015년 독일 라이프니츠동물원 및 야생동물조사연구소, 영국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덴마크 국립자연사박물관 등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어드밴스에 호랑이의 아종을 순다 호랑이와 대륙 호랑이 2종으로만 구분해야 한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이들 국제 공동연구진은 200마리 이상의 호랑이 두개골과 100마리 이상 호랑이 가죽의 색상과 줄무늬, 분자유전학 데이터, 생태학적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 분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구를 주도한 라이프니츠동물원은 동물원 운영뿐 아니라 멸종위기종 복원 및 생태 연구에도 기여하고 있는 곳으로, 전시·보전·교육 등 동물원이 갖춰야 할 기능들을 활발히 수행하고 있는 동물원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에 중국 베이징대,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게놈(유전체) 분석을 통해 호랑이의 아종은 6종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국제학술지 커런트바이올로지’ 25일자에 발표했다. 게놈은 유전정보의 총합을 말하며 연구진은 분석이 완료된 32마리의 호랑이 게놈 전체를 비교, 분석했다.

 

호랑이 아종이 6종이라는 유전학적 연구 결과가 처음 나온 것은 2004년이다. 25일 발표된 논문의 저자이기도 한 뤄수진 베이징대 교수를 포함한 미88국 메릴랜드 국가암연구소 게놈다양성실험실 등 연구진은 당시 인도차이나 아종은 인도차이나 아종과 말레이 아종으로 나누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 결과는 러시아 동부, 중국, 인도, 동남아 국가들에 서식하는 호랑이 130마리의 세포 내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것이었다. 이 내용이 발표되기 전까지 호랑이 아종은 형태적 특징과 지리적 분포 등을 기반으로 8종으로 여겨져 왔다. 여기에는 이미 멸종한 호랑이 아종 3가지도 포함돼 있었다.

 

아종이 두 종이냐 여섯 종이냐는 과학적인 의미뿐 아니라, 현재 야생에 남아 있는 호랑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말레이 호랑이와 인도차이나 호랑이를 각각 다른 아종으로 보는 것과 같은 아종으로 보는 것은 멸종 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어떤 동물이 멸종하지 않고 번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개체 수 이상이 필요하다. 서로 다른 아종으로 보고 관리할 경우 각각 이 개체 수 아래로 내려가 멸종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를 최소 존속개최군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종 복원이 진행 중인 지리산 반달가슴곰의 최소 존속개체군은 50마리로 여겨진다. 연구진은 학계의 호랑이 아종에 대한의견 불일치는 이 동물을 보호하고, 멸종위기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세계적인 노력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었다포획 후 번식을 통한 개체 수 보전, 야생의 개체 수 조절 등 보존·관리 정책을 수립하는 데도 이견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호랑이 아종 가운데 벵골 호랑이는 주로 인도에 서식하며 약 2500개체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의 호랑이도 포함되는 아무르 호랑이는 주로 중국과 러시아 등에 서식하며 수백마리 정도만 남아 있다. 남중국 호랑이는 최근 25년 동안 야생에서 발견되지 않은 탓에 거의 멸종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는 동물원에만 존재한다. 수마트라 호랑이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만 서식하며 남은 개체 수는 400마리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차이나 호랑이는 동남아시아에 서식하며 수백마리 정도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서식지는 태국과 미얀마 국경지대다. 말레이 호랑이는 2004년 인도차이나 호랑이와 구분되는 아종으로 밝혀진 호랑이로 역시 동남아시아에만 서식하는 아종이다.

 

이미 멸종한 아종 가운데 발리 호랑이는 1940, 카스피 호랑이는 1970년대, 자바 호랑이는 1980년대에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아종은 형태적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아무르 호랑이는 다른 아종에 비해 털 빛깔이 옅은 편이고, 수마트라 호랑이는 진하고, 두꺼운 줄무늬를 지니고 있다. 열대지방 호랑이는 대체로 온대, 한대지방 호랑이보다 작은 경향이 있다. 이미 멸종한 자바 호랑이 수컷의 몸무게는 아무르 호랑이의 3분의 1가량인 100정도였다.

 

연구진은 또 호랑이가 공통 조상으로부터 어떻게 나뉘어 진화해왔는지도 알아냈다고 밝혔다. 화석 연구에 따르면 호랑이 조상이 처음 지구상에 나타난 것은 약 200~300만년 전이다. 연구진은 현존하는 호랑이 아종들의 공통조상은 약 11만년 전 중국 남부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서식하고 있었고 아종들이 본격적으로 분기한 것은 약 6만년 전에서 3만년 전 사이라고 설명했다.

 

67300년 전 이들 일부가 인도네시아 쪽으로 남하해 수마트라 호랑이로 갈라졌다. 또 약 52920년 전 서쪽인 인도 방향으로 이동한 집단이 나왔고, 이들이 벵골 호랑이로 갈라졌다. 이어 약 33830년 전 북상한 집단은 남중국 호랑이와 아무르 호랑이로 분기했다. 인도차이나 호랑이와 말레이 호랑이가 서로 다른 아종으로 갈라진 것은 가장 최근인 276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연구진은 각 호랑이 아종의 게놈 전체를 분석해 호랑이의 자연사를 밝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야생에서 멸종한 탓에 한 마리만 분석 대상에 포함된 남중국 호랑이와 이미 멸종한 아종들의 표본으로부터 게놈 정보를 확보해 추가 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0.28 경향


백두산호랑이 남북이 함께 살릴까'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협력 나선다 경향 1031

 

경북 봉화군 국립백두대간 수목원의 호랑이숲에 사는 백두산 호랑이들의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조선범으로도 불리는 백두산호랑이는 100년 전만 해도 한반도를 비롯해 만주, 몽골 북부와 러시아 극동지방 넓은 지역에 걸쳐 살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무차별 포획돼 남한에서는 1920년대 이후 야생에서 모습을 감췄다. 북한에는 일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야생에 살고 있는 개체 수는 몇 백 마리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백두산호랑이를 비롯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복원하기 위해 환경부가 북한과 협력에 나선다. 멸종위기종 복원 목표를 비무장지대(DMZ) 너머 한반도 전역으로 늘리는 것이다. 환경부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 2018~2027’을 수립하고 보전정책의 방향을 개체 복원에서 서식지 보전 중심으로 전환한다고 30일 밝혔다.

 

정부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10년 단위로 종합계획을 세운다. 이번 계획에선 멸종위기 야생생물의 안전한 서식처, 생명의 한반도를 비전으로 삼아 2027년까지 25종을 자연으로 되돌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환경부 멸종위기종에 올라와 있는 것은 267종이다. 이중 64종을 복원대상종으로 선정하고, 그 중에서도 25종을 우선 복원대상종으로 정했다. 2000년대부터 지리산 일대에서 복원작업을 해온 반달가슴곰을 비롯해 산양, 여우, 수달 등이 포함됐다. 조류에서는 저어새와 황새, 양서파충류에서는 여울마자, 모래주사가 우선 복원대상에 올랐다. 식물로는 나도풍란, 만년콩 등이 선정됐다.

 

북한과 환경협력을 강화해, 함께 DMZ의 생물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백두산호랑이를 비롯한 상징동물서식환경 보호에서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륙사슴, 따오기, 반달곰 등 한반도 남쪽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을 북한에서 들여오는 남북 생물종 교류도 추진한다.

 

환경부는 앞으로 남북이 연결되면 동북아 전체로 생태축이 확대될 것으로 본다. 지리산에 반달가슴곰 숫자가 늘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곰들이 생겼듯, 단순히 마릿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서식지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쪽으로 정책을 변환할 필요가 생겼다. 환경부는 산줄기나 강·습지 등 야생생물 서식지를 조사해 생태축을 이을 방법을 찾고, 기후변화 취약종 서식지도 발굴할 계획이다.

 

정종선 환경부 자연보전정책관은 반달가슴곰 복원을 시작으로 환경부가 종 보전정책을 추진한지 15년이 지나고 있다면서 앞으로 10년간 한반도의 많은 생물들이 비무장지대에서 만나고, 백두대간 생태축을 따라 안전하게 남북을 오가며 공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31일에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경북 영양군에 문을 연다. 2015년부터 764억원을 들여 지은 것으로, 축구장 358개를 합친 크기인 255부지에 16029규모의 연구·실험시설을 갖췄다. 야생동물의 자연 적응을 위한 야외훈련장과 대형 조류가 날 수 있는 실외방사장, 활강연습장이 있다. 개원과 함께 여울마자, 황새, 수달, 나도풍란, 양비둘기, 참달팽이, 금개구리 등 7종의 복원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멸종위기종 복원기관이 난립해 혼선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환경부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에게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고, 국립생물자원관이 하던 멸종위기종 조사·연구와 데이터베이스 관리는 2020년까지 복원센터로 옮기기로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하던 반달가슴곰 등 주요 종 복원사업은 2020년까지는 지금처럼 하다가 이후에는 야생적응훈련이나 모니터링 등 서식지와 현장 관리로 기능을 축소하기로 했다. 배제선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은 업무가 중복되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복원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향 1031


한국호랑이, 시베리아 아닌 아무르에 산다

아무르호랑이 1마리가 서울 두 배 면적 생태계 지켜

조조-마초 용호상박(龍虎相搏) 혈투

아무르호랑이 발굽동물 5.5t 먹어

가재 버들치처럼 환경 바로미터

먹이 활동만으로 생태계 지킴이

 

아무르호랑이. [GettyImage]

 

하늘을 나는 용과 지상 최강의 맹수 호랑이가 벌이는 용호상박(龍虎相搏)은 대단한 실력자들이 전력을 다해 싸울 때 쓰는 사자성어(四字成語). 수준 낮은 상대끼리 벌이는 마구잡이식 닭싸움과는 격이 다르다. 축구로 치면 유럽 대표 독일과 남미 대표 브라질이 월드컵 결승에서 격돌할 때 사용하면 적격이다.

 

용과 호랑이 싸움 펼친 조조와 마초

 

용호상박 조조(왼쪽)와 마초. [위키피디아, GettyImage]

 

중국 역사에서 후한(後漢) 말은 난세 중 난세다. 황제의 눈과 귀를 가린 십상시(十常侍)의 발호와 미신으로 민심을 현혹한 황건적의 반란이 연이어 일어나며 사회는 극도의 혼란에 빠진다.

 

세상이 혼탁해지면 야심가가 발호하는 법이다. 야심가들은 당시 중국의 중심이던 중원(中原)을 차지하고자 경쟁에 돌입한다. 조조(曹操)도 야심가 중 하나다.

 

야심을 현실로 만들려면 욕심만 가득해서는 안 된다. 명석한 두뇌와 냉정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조조는 중원을 노리던 다른 야심가들과 달리 다양한 재능을 두루 겸비한 인물이었다. 조조는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서 경쟁자를 차례로 물리쳤다. 패자(覇者)의 자리에 다가선 것이다.

 

조조는 영리하게도 목표를 한 번에 취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름만 남은 허수아비 황제의 보호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겉으로는 한() 조정을 보필하는 충신의 모습을 취했다. 이렇듯 가면을 쓰고 연극을 하면서 조조는 황명(皇命)을 통해 전국의 제후를 호령했다.

 

조조가 거북하게 여긴 상대가 원소(袁紹). 원소는 기주(冀州), 병주(幷州), 유주(幽州), 청주(靑州) 4개 주를 차지한 군벌이었다. 강한 군사력을 가졌음에도 서기 200년 관도대전(官渡大戰)에서 조조 군에 대패한다. 식량창고인 오소(烏巢)를 기습당한 게 가장 큰 패인이었다. 조조는 병참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것이다. 관도대전 패배 이후 원소는 조조에게 대항할 세력을 복원하지 못한다.

 

원소가 사망한 후 막내아들 원상(袁尙)이 대를 이었다. 원상의 운명은 아버지 원소보다 가혹했다. 원상의 목은 애석하게도 207년 조조에게 바쳐지고 만다. 북중국을 주름잡던 원씨 세력이 조조에 의해 후한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마중적토 인중여포(馬中赤兎 人中呂布)라는 말이 있듯, 여포(呂布)는 최고의 무장이었으나 용맹하기만 했을 뿐 작은 그릇에 불과했다. 원소와의 대전을 앞두고 불안 요소를 정리하던 조조의 칼끝이 여포를 겨눈다. 여포는 199년 온몸을 결박당한 상태로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했다. 조조는 여포가 주인을 여럿 죽인 배신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여포는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하늘의 용에 대항하는 산군(山君)

조조와 다투던 원소, 여포, 원술(袁術)은 차례로 사라지고 만다. 이들은 모두 조조와의 싸움에서 상대를 결정적 궁지에 몰아넣지 못했다. 조조를 치명적 상황으로 몰아넣은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량(西凉)의 마초(馬超).

 

마초는 거친 삭풍이 부는 서량에서 과거 진()의 근거지이던 관중(關中)의 군벌들과 10만 대군을 꾸린다. 서량은 현재 간쑤(甘肅)성에 해당한다. 211년 중원의 최강 조조와 서량의 마초가 벌이는 동관전투(潼關戰鬪)는 기존에 조조가 겪은 전투와 격이 달랐다. 마초는 조조를 상대로 최후의 승리를 거둘 뻔했으나 하늘은 마초 대신 조조를 선택한다. 조조는 기적적으로 회생해 마초의 세력을 관중 일대에서 쓸어버린다.

 

조조와 마초의 싸움을 후대에서 용호상박(龍虎相搏)’이라고 했다. 용의 지혜와 권능은 훗날 조조의 차지가 되고, 호랑이의 용맹은 마초의 것이 된다.

 

용과 호랑이는 현실에서 결코 싸울 일이 없다. 용이 실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동양과 서양의 용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동양적 세계관에서 용은 천상(天上)의 거룩한 존재로서 하늘을 상징한다. 서양의 용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존재다.

 

조선도 용을 숭상했다. 조선 왕의 정복인 곤룡포(袞龍袍)에는 화려한 용이 새겨져 있다. 곤룡포를 입은 왕은 하늘 그 자체다. 왕은 지상에 내려온 용의 현신(現身)이다. 왕의 뜻에 어긋나는 신료들의 언행은 역린(逆鱗·임금의 노여움을 이르는 말이다. 용의 턱 아래에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면 용이 크게 노해 건드린 사람을 죽인다고 한다)이다. 용은 일국의 지배자가 아니면 함부로 그 이미지조차 사용할 수 없는 고귀한 존재다.

 

동양적 세계관에서 용에 대항할 존재는 호랑이밖에 없다. 인도가 속한 남아시아와 달리 동아시아에는 사자라는 동물이 애당초 산 적이 없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호랑이가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 선조들은 호랑이를 두고 산에 사는 임금이라는 뜻의 산군(山君)이라고 높여 부르기도 했다.

 

작은 나라일지라도 임금은 왕의 격에 어울리는 공간에서 산다. 임금은 넓고 호화로운 궁궐에서 자신의 왕국을 다스린다. 그런데 야생의 임금인 호랑이도 인간 세상의 임금과 비슷하다. 호랑이에게는 드넓은 자신만의 왕국이 필요하다. 호랑이가 영토 욕심을 부리는 이유는 매우 현실적인 것으로 먹잇감을 충분히 확보하기 위해서다.

 

아무르에 사는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강. [KBS 제공]

 

호랑이는 고양잇과 표범속에 속하는 빅 캣(big cat)’이다. 호랑이와 혈연적으로 가까운 친척의 모임인 표범속에 속한 동물 중 호랑이와 맞먹을 체구를 가진 것은 사자뿐이다. 재규어, 표범, 눈표범(雪豹·설표) 같은 중간 크기 친척은 호랑이에 견줄 만한 몸집이 아니다.

 

호랑이의 아종(subspecies·亞種)은 아홉이다. 인도네시아의 발리호랑이, 자바호랑이와 중앙아시아의 카스피호랑이는 멸종했다. 현존하는 호랑이는 벵골, 말레이, 인도차이나, 수마트라, 남중국, 시베리아 등 여섯 종에 불과하다.

 

호랑이 아종 중 체구가 가장 큰 것은 시베리아호랑이(Siberian tiger). ‘시베리아호랑이라는 명칭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아무르호랑이(Amur tiger)라고 칭하는 게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팩트 체크(fact check)를 해보면 시베리아호랑이 서식지는 시베리아가 아닌 아무르다. 아무르는 아무르강(Amur River) 인근을 뜻하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국경 지역을 포괄한다. 아무르강은 한자로 흑룡강(黑龍江), 중국어로는 헤이룽장(Heilong Jiang)이다. 고구려, 발해의 역사와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아무르호랑이는 고양잇과 동물 중 체격이 가장 크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사자보다 덩치가 크다. 성체 수컷 기준 평균 체장(주둥이 끝에서 척추 뒤끝까지의 길이) 3m, 체중 250에 달한다.

 

호랑이 아종 중 유일하게 냉대 지역에 사는 아무르호랑이는 열대·온대 지역의 친척에 비해 체구가 상당히 크다. 이 같은 거대화 현상은 독일 생물학자 카를 베르그만(Carl Bergmann)이 정리한 베르그만의 법칙(Bergmann’s Rule)을 떠올리게 한다. 베르그만은 추운 지역의 항온동물(恒溫動物)은 그렇지 않은 곳의 동종(同種)보다 체구가 크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중대형 발굽동물 44마리 먹어

미네소타주(Minnesota State)는 미국 본토에서 겨울이 가장 춥다. 춥고, 서늘한 기후 덕분에 미네소타동물원(Minnesota Zoo)은 러시아의 연해주나 미국의 알래스카 같은 냉대·한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호랑이, 그리즐리, 늑대 같은 동물을 전시·연구·보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미네소타동물원에서 아무르호랑이 관련 자료를 보면 이 호랑이가 얼마나 많은 양의 고기를 먹는 대식가인지 알 수 있다. 아무르호랑이는 연간 5500의 고기를 먹는다. 허기진 상태에서는 한 번 식사에 20넘는 고기를 먹어버린다. 정육점에서 사용하는 근 단위로 환산하면 33근이 넘는 고기를 한 끼 식사로 꿀꺽한다는 뜻이다.

 

아무르호랑이의 식사량을 아무르에 사는 발굽동물(ungulate mammal)의 종류와 마릿수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다. 매년 산양(Goral) 2마리, 꽃사슴(Sika deer) 11마리, 멧돼지(Wild boar) 12마리, 말사슴(Red deer) 19마리 등 도합 44마리의 중대형 발굽동물을 사냥해 먹는다. 초식동물 사파리를 꾸려도 될 만큼의 동물을 먹어치우는 것이다.

 

한국호랑이가 바로 아무르호랑이다. 한국호랑이와 아무르호랑이는 혈연적으로 같다. 호랑이가 한반도에 생존했다면 과잉 번식으로 농경지에 피해를 일으키는 고라니나 멧돼지의 개체수가 안정적으로 조절됐을 것이다.

2018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3만 달러를 넘었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은 선진국(advanced country)과는 엄청난 격차가 있는 개발도상국(developing country)이었다. 시민들은 한여름에도 멀리 피서(避暑)를 가기 어려웠다. 최고의 피서지는 도심에서 가까운 계곡이었다.

 

1970년대 소년들은 계곡에서 가재잡기 놀이를 즐겼다. 가재는 차갑고 맑은 1급수에서만 사는 갑각류다. 희소성 덕분에 가재를 잡은 게 무용담의 소재가 되곤 했다. 요즘 중장년에게 인기 있는 TV 다큐멘터리 나는 자연인이다에 가재와 버들치가 자주 등장한다. 가재와 버들치가 사는 곳은 수질검사를 하지 않아도 된다. 존재만으로 1급수임을 증명한다. 깨끗한 곳에서만 사는 동물을 환경지표종(indicator species)이라고 한다.

 

아무르호랑이가 사는 곳도 가재, 버들치 서식지와 비슷하다. 아무르호랑이가 사는 숲에는 수많은 발굽동물이 서식하는데 이는 생태계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다양한 발굽동물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호랑이가 살 수 없다. 또한 호랑이는 먹이 활동을 하면서 자연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더욱 녹색으로만든다.

 

늑대 사라지자 옐로스톤 황폐화

 

옐로스톤국립공원 늑대(왼쪽)와 엘크. [AP, 뉴시스]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에서 늑대가 사라지자 환경이 급속히 황폐해졌는데, 다른 지역의 늑대를 데려와 살게 하자 숲이 녹색을 되찾았다. 왜 그렇게 된 걸까.

 

늑대는 인류와 공존이 쉽지 않은 맹수다. 양이나 염소를 키우는 유목민에게 늑대는 적으로 간주됐다. 인간은 늑대의 가까운 친척인 개를 베스트 프렌드(best friend)로 여기면서도 늑대는 박멸할 대상으로 여겼다.

 

옐로스톤국립공원의 늑대들도 인류가 가진 적대감 탓에 희생됐다. 1927년 공원 내 마지막 늑대 무리가 인간의 손에 소탕된 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호랑이가 없는 산에서 여우가 왕 노릇한다는 속담처럼 늑대의 먹잇감이던 엘크(Elk)가 공원을 차지한다. 엘크는 체중이 400에 달하는 거대 사슴이다. 늑대 무리 정도는 돼야 사냥할 수 있다.

 

늑대가 사라진 숲에서 엘크는 체중을 유지하고자 엄청난 양의 풀과 잎을 먹었다. 브레이크 풀린 자동차처럼 제어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과잉 번식하던 엘크가 결국 공원의 녹색 자원을 고갈의 위험에 빠뜨린다. 평화로운 얼굴의 거대 사슴이 공원 내 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식물 자원 고갈은 토양 침식으로 이어져 숲의 생태계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

 

생태계 지킴이아무르호랑이

 

[위키피디아]

 

숲과 나무는 작은 동물의 보금자리다. 조류는 나무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운다. 다람쥐나 청설모 같은 작은 설치류도 열매를 먹으면서 하루의 상당 시간을 나무 위에서 보낸다. 이런 작은 동물에게 엘크의 과잉 번식은 재앙과 같았다.

 

늑대가 사라진 공원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포식자는 코요테(Coyote) 뿐이었다. 코요테는 진돗개보다 체구가 작다. 체중 10내외의 중형 포식자 코요테에 엘크, 무스 같은 거대 발굽동물은 화중지병(畵中之餠·그림의 떡)이다. 코요테는 사슴의 사체를 처리하거나 설치류를 사냥하는 데 적합한 동물이다.

 

생태계가 나날이 황폐화하자 공원 측은 1995년 늑대 복원 프로젝트에 나선다. 공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늑대들은 오로지 먹이 활동만으로 생태계를 복원시킨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역할을 늑대가 한 것이다.

 

공원이 녹색을 되찾으면서 조류와 중소형 동물이 돌아왔다. 나무로 물을 막아 호수를 만드는 건축가 비버(Beaver)가 돌아오면서 수생생물의 서식지도 복원됐다. 생태계 복원이라는 옐로스톤의 기적은 최상위 포식자 늑대가 귀환한 덕분이었다.

 

호랑이가 사는 자연도 늑대 무리가 지배하는 옐로스톤과 똑같다. 호랑이는 늑대처럼 먹이 활동을 하며 발굽동물의 개체수를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한다.

 

아무르호랑이의 영역은 야생의 임금답게 상당히 넓다. 호랑이 한 마리의 활동 공간이 서울 면적 두 배에 약간 못 미치는 1165에 달한다. 아무르호랑이 한 마리가 넓은 영역을 지속적으로 순찰하며 생태계 지킴이노릇을 하는 것이다.

신동아 201911월호/이강원 동물칼럼니스트 powerranger7@hanmail.net



Goodbye My Love Goodbye  - Demis Roussos     (1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