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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이전 흔적

백양산 숲에서( 2009.05.07 )

by 이성근 2018. 5. 22.

지난 1999년 재벌 롯데가 백양산 자락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고 천명한지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롯데는 틈나는 대로 골프장 건설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지역사회의 반대에 부딪혀 철회를 거듭해왔다. 그때 마다 환경단체들의 롯데제품 불매운동설이 따라 붙었다. 지역 정치권이며 허가권을 가진 부산시며 구청에서도 지역민이 반대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하지만 10년이 경과한 지금 상황은 변했다.  돌아가는 판이 수상하다. 들리는 말로는 상당히 많은 작업을 롯데가 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조만간 사업신청서를 접수할 예정이란다. 끔찍한 노릇이다. 롯데가 시미정서를 무시하고 밀어붙인다면 충돌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어쩌면 그런 충돌조차도 롯데는 추진 시나리오 속에 가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정말로 백양산에 골프장이 들어설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그 숲에 살던 또는 숲을 방문했던 생명들은, 그리고 도심 한가운데 바리깡으로 밀어붙인 듯한 골프장이 들어섬으로 인해 ‘뒤틀릴’ 경관과 지역민의 휴양처로서의 기능은, 더 나아가 부산의 지형과 생태적 연결지점으로서의 기능은 어떻게 될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갑자기 위기감과 답답함이 교차함에 백양숲의 안부가 궁금하여 현장을 다녀왔다. 때는 봄이 익어가는 계절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숲의 내부 구성원들은 그들 나름의 프로그램을 수행중이었다.  이른 봄 생강나무가 꽃을 피울 즈음 뒤따라 노루귀며 현호색, 족도리풀이 숲 바닥을 장식하고 시방 애기나리, 둥굴레, 쥐오줌풀 등이 덜꿩나무, 비목나무와 함께 어름덩굴, 큰꽃으아리를 피워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 숲 덤불에서 여름새를 만났다. 호랑지바귀와 노랑쥐바귀가 숲바닥을 뒤지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산허리  숲에서는 큰오색딱다구리가 초파일을 앞두고 목탁을 두드리듯 아카시며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굴참나무를 방문하고 있었다.


내년 봄에도 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까?  롯데는 시민반대가 노골적인 이 산에다 왜 욕을 먹어가며 골프장을 만들려고 그토록 안달일까? 부산시는 이런 정서를 알면서도 사업신청서가 접수된 적이 없기 때문에 가타부타 뚜렷한 입장을 감추고 있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지역경제가 이 봄날 이산 곳곳에 꽃 피운 꽃들 마냥 꽃이라도 필 것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일까?


그렇다.  골프공화국이 되다시피한 이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골프장이 들어섰다고 해서 잘 산다는 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백양산은 부산의 산맥을 지배하는 금정산맥의 줄기 산으로 생태적 연결 고리의 핵심 거점 산이다. 그나마 고립되지 않은 산군이다. 4백여 종에 가까운 식물상과 수십 종에 이르는 동물과 양.서파충류는 차치하더라도 이 산이 있음으로 해서 부산시민과 지역민이 누리는 환경적 혜택은 무시되고 있다.   무엇보다 생태.환경 측면에서 지속가능성에 치명타를 입는다.  반면 골프장의 이용은 극히 제한된 사람만이 출입하는 특별한 공간이며, 이윤창출의 장소이다. 그들은 돈을 벌기위해 골프장을 만들 뿐이다. 그들이 지역을 위해 도움을 준다는 것은 기만이다.


만일 백양산 골프장이 현실화 된다면 사유지가 전체의 80%에 가까운 부산의 산지 사정상 금정산이며 황령산이라고 해서 들어서지 못한다는 법이 없게 된다. 형평성의 문제며, 선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경제적이라면 차라리 부산지역 산자락 전체를 골프장 단지화해야만이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도심부에 입지가 차단되어 온 골프장의 건설에 대한 ‘특혜의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동안 반대 아닌 반대 입장을 견지해왔던 부산시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한때 골프장 입지를 반대 공약으로 내세웠던 부산시장은 최종 허가권자로서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롯데 역시 롯데야구에 대한 시민적 성원과 백양산 골프장건설은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백양산에서 만난 시민들을 상대로 롯데의 백양산 골프장 건설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들은 단호하게 반대했다.  인근 지역민을 포섭하여 지역공동체를 이간과 분열시키며 찬반논쟁으로 명분을 구축하려는 그 저의도 비열한 책동이다.


틈날 때 마다 제안해 왔던 바지만 차라리 롯데 백양산 숲이나 수목원을 제안한다.  재벌 롯데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다.  그런 바람으로 산을 내려오니 어디선가 소쩍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김추자(꿈속의 나오미)/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