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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는 이야기

막내의 열 번째 어린이 날(12.5.8)

by 이성근 2013. 6. 9.

 

 

어린이날 특별히 갈 곳을 정하지 못해 심심해 하기 일보 직전의 막내를 꼬셔 황령산으로 향했다.  마눌에게 애들 좋아하는 거 사주라고 건냈던 봉투에서 다시 일부를 건네 받아 마트와 김밥집, 피자집에 들려 베낭을 채운 뒤 산으로 향했다.  저녁은  어버이날을 앞 당겨  본가에서 삼겹살이나 구워 먹자는 연락을 받은 터라 동선과 시간은 자연스레 연결되었고, 막내도 순순히 길을 따라 나섰다.

막내가 며칠 전 학교 소풍을 황령산(荒嶺山 427m)으로 갔다 왔다길레 길은 임도가 아닌 중앙 능선을 타기로 했다.  

숲은 들머리 벚나무길에서 사방오리 숲을 지나자 자연식생을 보여주고 있다. 떡갈나무와 산벚나무가 많았다.  그 사이 몇 번이나 쉬었다.  하긴 점심때가 다 되어 오른 산행이라  막내는 배가 고프다고 노래를 불렀다. 

쉬는 틈틈이 산에서 내려다 보는 세상의 신기함과  동네와 학교를 중심으로  지리감각을 깨워주고자 했다. 

그리고 바위 이름붙여주기 놀이도 했다.  주로 공룡의 이름이 많이 등장했다. 사진은  '근심어린 남자' 혹은 '심각한 사내'라 이름 붙인 바위. 마치 내 같다.  

갈미봉에서 뻗어나간 줄기들, 신축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단지가 공룡이다.  아니 괴물이다.  

재개발이 이루어 지고 있는 북항도 간만에 보았다. 막내가 어른이 되면 저곳 워토프론트를 거닐까.  막내는 집들이 쪼잔해 보인다고 했다.  준혁아 그럴 때는 쪼잔하다는 말 대신에 그냥 작다거나 성냥갑 같다고 해야지 하며 교정해주다 말고 '성냥갑' 이란 단어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작다라고 얼버무렸다. 세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하긴 막내와는 40년의 차이가 있다.  어쨌거나 나도 저 꼬물거리는 인간세상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특히 이 오월에는 더욱 그렇다.  지난 3월 불거진 사무실 문제가 급기야 막다른 골목에 다달았다.  하지만 집에는 말하지 않았다.  점차 압박이 가시화 되고 있다.  처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골똘히 고민하지만,  생각하면 화부터 난다.       

마치 거미줄 위에 버둥거리는 꼴 같아 화가 난다. 대관절 사무처장으로서 내가 뭘 잘못했단 말인가.  갈등의 중요축이라고 비상대책위 참여도 봉쇄당했다.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 없었다. 문제를 누가 일으켰는데,.. 비겁한 짓이다. 그럼에도 변화 또는 쇄신의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명암이 달라 진다.  여전히 국제가 칼자루를 쥐고 요리하겠다는 심산이라면  뒤틀리게 된다.   조만간 결정이 난다.  비상대책위는 일괄 사표를 요구했다. 황당함과 무력감, 그럼에도 이대로 당할 수는 없다는 저항과 대안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집을 나서기 전 베란다 쪽 책꽃이의 화분의 식물들이 가지며 줄기 잎을 남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보고 찍어 둔 장면인데, 사람사는 세상 역시 권력과 자본을 지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 권력과 자본이 옳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부당한 것에 대항하고 저항함이 당연함이 아니든가.  헌데 나름 아끼고  생각 해준다고 하는 몇 몇 사람들은 내가 모난 돌이 되지말고  못이기는 척 해바라기가 되라고  한다.  비대위 구성원들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모르지만,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관점과 처한 상황의 차이가 가져온 시각 차가 아닌가 본다.   

산철쭉 꽃빛이 곱다. 철쭉과 진달래의 구분도 가르쳐 본다.  한마디로 일 보다 꽃이 먼저  피는 게 진달래다.   또 잎의 생김새가 주걱모양이면 철쭉이고 가늘고 긴 피침형이면  산철쭉인데 작은 가지에 털이 있고 꽃자루가 끈끈하다.  막내는 그러거나 말거나 ...

사자봉으로 오르는 비탈

마침내 오른 사자봉 주변, 당조팝나무가 피었다.  반가웠다.

그리고 조개나물 위에 풀표범나비로 보이는 나비도 조심스레 관찰한다.

그 옆엔 각시붓꽃도 한 송이 피었다.

봉수대가 지척이다. 금련산과 장산이 뒤어어 있다. 금련산맥의 주요축이다.  금련산맥은 부산 3대 산줄기 중의 하나로 기장 달음산에서 영도 봉래산까지다.  

사자봉 정상은 거대한 암반이며 거칠다. 봉수대가 있는 황련산 사이에는 사자봉에서 떨어져 내린 바위들이 너들을 이루고  있다.  90년대 중반 이 산도 뻔질나게 올랐다. 금련산 쪽에 온천개발 때문이었다.  관련한 자료는 부산일보 이병철 기자의 박사학위 논문 '탐사보도와 공공저널리즘의 융합을 통한 대안적 언론모델 연구(2011)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온천개발을  백지화시키긴 했자만 절개된 부지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들어선 것이  망해버린 스키돔 사업이었다.  이후 그 건물을 시가 매입해서 국립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자는 제안을 칼럼으로 제안하기도 했지만  부산시는 침묵했다.  대신 여러 사람으로 부터 좋은 제안이었다는 호평만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물건너 가고 말았다.  공공의 공간이 사유화 되는 과정에서 부도가 난 스키돔은 필연적 귀결이다.  그렇게 한 시절이 흘러 갔다. 

마침내 올랐다는 성취감으로 팔을 치켜던 막내

기념하여 한 장면 기록해둔다

해발 400m에 불과한 높이지만, 익숙한 일이 아닐 뿐더러 나름 힘이 들었기에 박수로서 답해주었다,  그리고 호연지기를 심어주고자 했다.

쇠물푸레나무의 꽃이 지는 참이다.  자연과 동떨어진 세상에 매몰되어 살다보니 꽃이 언제 피었고 언제 지는지도 모른 채  봄을 보내고 있다.  얼마나 많은 꽃들이 알게 모르게 피었다 지는 것일까.  이 단절의 세상에서 행복이란 과연 뭘까.

이왕 온 걸음 봉수대까지는 가 봐야지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사자봉 까지 라는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다.  그때 등장한 회유책이 봉수대에 가면 아이스크림 장사가 있다는것이다.  솔깃해진 막내가 두개를 사주면 가겠다고 했고,  지나는 이들이 아이스크림 먹고 오는 길이라며 부추켜 주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봉수대로 오르는 길도 가파르다. 

헌데 막상 도착한 봉수대에서  아이스크림 장사는 다 팔려서 없다고 했다. 급실망하는 막내, 신경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입이 한발이나 튀어 나왔다.  나 역시 정색을 하고 급수습에 들었다. 사주겠다고 했지만 없는데 없다는데 어떻하라는 것이냐. 그렇다고해서 성내면 안된다.  맞는 말이고 사실이니 막내는 마지못해 수긍한다.  기분 좋게 하산하기 위해  바람고개에도 아이스크름 장사가 있다고 귀뜸해주자 아이스크림을  4개 사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마 하고  황탑쉼터로 이동한다.

황탑쉼터는 어느 한 개인의 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곳이다.  암벽지대 아래 일일이 돌과 바위를 켜켜이 쌓아 돌탑을 만드는 한편 이용자들이 다리쉼하며 요기할 수 있는 석판 테이블과 의자도 곳곳에 만들었다.  비록 주변 식생과는 어울리지 않는 외래종을 더러 심어두기는 했지만 그의 수고로 하여 수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쉬었다 간다. 조망점도 좋아 시원스레 펼쳐진 경관도 그만이다.

둥굴레를 비롯하여 좀꿩의 다리가 깔끔하니 피어 있고 의외로 사람주나무가 많았다.

황탑쉼터에서 막 내려서는 길  길가에 튀어 나온 바위를 보고 또 이름을 붙여 준다.  '거북머리 바위'

편백숲으로 들기전 숲은 사자봉을  넘어온 햇살에 상큼하다.

1970년대 조림한 편백 숲,  썬 하다. 

빛의 침투 여하에 따라 숲은 모습을 달리 하고 있다.

편백숲이 끝나는 곳에 바람고개가 있다. 안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막내는  아이스크림 장사의 존재부터 확인했다. 아이스크림 장사는 수년 전부터 주말을 지키고 있어 낯이 익다. 사진은 2년전  비슷한 계절에 찍어 두었던 것이다. 약속대로 막내는 앉은자리에서 3개의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한마디 했다. " 아빠가 약속 어기는 거 봤냐  ?"

황령 약수터를 돌아 성암사 아래 본가로 향한다.  그 길에 여직도 잎을 내지 못한 벽오동을 보며 생존전략을 생각한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오지않고  /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 가지에 걸렸더라 "-조선시대 작자미상 - 곧고 깨끗한 기운을 지녔다는 벽오동은 절개 높은 선비정신을 상징한다.  녹청빛 수피의 상징성에 비해 꽃은 여름 황록색으로 작다.

일대에는 벚나무와 참나무류가 많다. 길 아래 쪽은 밤나무와 사방오리가 우점한다. 그 숲에서 큰오색딱다구리가 나무결을 파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쫒아 왔지만 더는 들리지 않아 한동안 길가에 섰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본가에서는 동생네 식구들과 우리집 식구들이 모였다.  아버지께서 어린이날이라고 봉투를 하나씩 준비했다고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막내 싱글벙글이었다.  올해도 인천 여동생은 돈만 보냈다.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날로 쇄잔한 모습을 보인다.  마음이 무겁다.  두 분다 일하러 다시신다. 

There's A Kind Of Hush - Capent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