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괜찮은 詩

똥바다

by 이성근 2024. 1. 15.

 

https://www.youtube.com/watch?v=yjnD60h6ZYA&t=49s

똥바다 임진택 창/김지하 작, 똥바다

/ 정낙추, / 마경덕, / 이홍섭, 새똥 / 정호승, 토끼똥 / 이동순, 산토끼 똥 / 송찬호, 멸치똥 / 복효근, 멸치똥 / 정일근, 거위 똥 / 유종인, 똥꽃 / 오봉옥, 말똥 한 덩이 / 공광규, 파리똥 / 임보, 누런 똥 / 곽재구, 다국적 똥 / 반칠환, 마차가 있는 풍경 / 이시영, 똥을 베껴 쓰다 / 정일근,

 

/ 정낙추

한 사발의 밥을 먹고 누는

한 덩이의 똥

반드시 흙에 누어야 되리

 

그 똥

맛난 밥이 되어

살찐 흙

우리에게 고봉밥 한 사발 담아 주리니

 

밥이 똥이고 똥이 흙이고 흙이 밥이고

그 밥

달게 먹고 땀 쏟는 사람

비로소 흙을 닮은 사람 되리

- 정낙추, 그 남자의 손(도서출판 애지, 2006)

 

/ 마경덕

 

내 하루는

입에서 항문으로 이어지는 미로를

벌레처럼 꿈틀꿈틀 기어가는 것

숨 막히는 갱도(坑道)를 더듬어

출구를 향해 나아가는 일

 

오로지 하강만이 허락되는

내 평생의 하루는

소멸의 두려움에 떨며

어둠 속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

 

내 슬픔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기억하는 것

 

어쩔 수 없는 길의 끝에서

가장 천한 이름으로

 

추락한다

첨벙!

- 마경덕, 신발론(문학의전당, 2005)

 

 

/ 이홍섭

똥에 관한 근사한 시를 써서

아들에게 전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세상으로 잘 들어가고

또한 세상에서 잘 나오는 법을 전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이런 애비의 우비고뇌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홉 살 아들놈은

바나나똥을 누웠다고 만세를 부른다 어제는

고구마똥을 누고 생고구마처럼 웃었다

 

지나온 시절은

늘 누다 만 똥 같았다 다들 엉거주춤 팬티를 올리고

팔자걸음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나도 속고

당신도 속았다

 

바나나똥 고구마똥의 시절을 지나면

매화똥 국화똥 연꽃똥이 만발한 시대가

오리라 적어도

잘 여문 콩똥의 시대는 오리라 믿었다

 

똥을 내려다보면서

니 똥 굵다고 가르쳐 줄 스승 하나 없이

되다 만 선승처럼

똥통에 갇힐 줄은 몰랐다

그러니 아들아 정말 미안하지만

똥에 관한 근사한 시는 끝내 전하지 못할 것이다

- 이홍섭, 검은 돌을 삼키다(달아실, 2017)

 

새똥 / 정호승

길을 가다가

길바닥에 새똥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

인간의 길에도

새들이 똥을 누는 아름다운 길이 있어

그 길을 걸어감으로써

나는 오늘도 인간으로서 아름답다

- 정호승,당신을 찾아서(창비, 2020)

 

 

토끼똥 / 이동순

최정산을 오르려고

길도 없는 산길을 가랑잎만 밟고

허위허위 올라가노라니

묵은 싸리나무 밑동의 껍질이 하얗게 벗겨져 있고

바싹 마른 토끼똥이 거기에 소복하였다

나는 싸리나무 앞에 앉아

바싹 마른 토끼똥을 주워들고 중얼거린다

모질게도 추웠던 지난 겨울

그 눈구덩이 속에서

산토끼란 놈들은 이렇게 지냈구나

조금만 쌀쌀해져도

우리는 호들갑 떨며 보일러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늘 먹던 음식에 지쳐 별미만 찾아다닐 적에

이놈들은 싸리나무 껍질을 이빨로 갉아

주린 배를 채우며 지냈구나

- 이동순,​『봄의 설법(창작과비평사, 1995)

 

산토끼 똥 / 송찬호

산토끼가 똥을

누고 간 후에

 

혼자 남은 산토끼 똥은

그 까만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지금 토끼는

어느 산을 넘고 있을까?

- 송찬호,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멸치똥 / 복효근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 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릴 적에 똥마저 버렸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박힌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에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들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 복효근,마늘촛불(도서출판 애지, 200

 

멸치똥 / 정일근

시인 행세하며 이런저런 자호 가졌다

시인 서른 해 보내며 꺼내 펼쳐보니

반은 세상에 부끄럽고 반은 스스로 민망하다

영주 사는 권석창 시인의 호는 서각鼠角인데

풀이하면 쥐뿔, 시 쓰는 일은 없는 쥐뿔보다 하찮은 일

독자 앞에 먼저 고개 숙이는 시인의 하심이 부럽다

아내의 저녁 도와서 부산 기장에서 나는 청어멸치

똥 빼다가! 멸치 약, , 약똥, 멸치똥!

무릎을 치며 쥐뿔을 뽑았다고 즐거워 웃는 나에게

아내는 머리 가로젓는다, 멸치똥도 과분하다는 경고!

- 정일근,소금성자(산지니, 2015)

 

 

거위 똥 / 유종인

해묵은 질책처럼

호수 저편에서 거위가 울어댄다

 

안개가 걷혀도 거위의 질책은 쉬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방(四方)이 잘못인 모양이다

약간의 허스키로 중성(中性)의 물에 떠 있다

따지듯이 뭍으로 걸어나오는 아줌마,

이번엔 허스키가 깊고 우렁차서

물가의 중년남녀가 슬그머니 맞잡은 손 놓으며 달아난다

 

마지막 불륜이라면 좀 봐주지 그러냐

좀 물으려 하면, 이도 안 박힐 소리!

거위는 핏대를 세우며 호통치듯 대들어

그때, 날개가 조금 들린다

 

그런 들린 날개 사이로 하늘이 높아 보였다

해도 날아가기는커녕 뒤뚱뒤뚱 호숫가로 걸어가

수초를 헤집는 저 깊은 흰 엉덩이들

 

다른 새들 날거나 우듬지 지붕에서 똥 눌 때도

물가 버드나무 그늘에 웅숭그리고 앉아

생이가래 삭혀낸 듯 풀빛 선똥 같은 뒤를 본다

할 만만 해도 목이 거친 허스키의 아줌마에게

요즘은 꽃핀 사방(四方)도 잘못인 모양이다

-​『창작과비평136(2007년 여름호)

 

똥꽃 / 오봉옥

소가

똥 한 무더기 질퍽하게 싸놓고

더운 입김 내뿜으며 떠난 뒤

쇠통구리 달려들었다

민들레 홀씨 달려들었다

어쩜 그렇게

맛있는 풀 내음을 풍길 수 있는지

바람도 와서 놀다가

구멍 숭숭 뚫어놓고 먼 길 떠났다

시간이 흘러, 똥에 꽃 핀다

봄바람 불어오면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

똥꽃 핀다

이제 나비들 날아와 꿀을 빨 것이다

그것이 맛있는 똥인 줄도 모르고

한참을 빨아 먹다 갈 것이다

- 오봉옥,​『!(천년의시작, 2018)

 

말똥 한 덩이 / 공광규

청계천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광교 위에 똥 한 덩이를 퍽! 싸놓았다

인도에 박아놓은 화강암 틈으로

말똥이 퍼져 멀리멀리 뻗어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잘게 부순 풀잎 조각들

풀잎이 살아나 퇴계로 종로로 뻗어가고

무교동 인사동 대학로를 덮어간다

건물 풀잎이 고층으로 자라고

자동차 딱정벌레가 떼 지어 다닌다

전철 지렁이가 땅속을 헤집고 다니고

사람 애벌레가 먹이를 찾아 고물거린다.

- 공광규,​『말똥 한 덩이(실천문학사, 2008)

 

파리똥 / 임보

세상을 이미 떠난

어느 대가의 시() 한 편을 놓고

기라성 같은 비평가들이

화려한 논란을 쏟아냈다

 

문제가 된 것은

시행(詩行)의 중간에 찍힌

하나의 피리어드(종지부, 終止符))였다

 

수식어와 피수식어를 갈라놓음으로

시정(詩情)의 미적 확대를 의도적으로 꾀했다.

 

의미의 연결에 포즈(pause)를 줌으로

이미지의 자동화를 방지한 낯선 장치다.

 

복잡다단한 현대 도시 소시민의 순간적인

의식의 단절을 시각화한 것이다.

 

일상적 구문의 해체로 심리적 갈등 곧

정서의 와해를 표출하려 했다.

 

알다가도 모를 현학적인 해설들이

작품보다 더 어렵게 지상을 수놓았다

거기에 왜 마침표가 들어가야 하나?

아무리 해도 이해를 못한 한 숙맥 시인이

출판사에 찾아가 대가의 친필 원고를

가까스로 찾아보았다

 

원고에 분명 마침표가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침표의 생산자는 대가가 아니라

한 마리의 불손한 파리였던 것을

세상은 아무도 몰랐다)

- 임보,장닭 설법(시학, 2007)

 

누런 똥 / 곽재구

ㅡ 평사리*에서

풋고추 열무쌈 불땀나게 먹고

누런 똥 싼다

돌각담 틈새 비집고 들어온 바람

애호박 꽃망울 흔드는데

이쁘구나 힘주어 누런 똥 싸다보면

해지는 섬진강 보인다

사는 일 바라거니 이만 같거라

땀나고 꽃피고 새 거름 되거라.

*평사리: 하동군 악양면 섬진강변 마을. 앵두나무와 돌각담과 모밀꽃밭이 아름다움. TV토지의 촬영 무대가 됐음.

- 곽재구,서울 세노야(문학과지성사, 1990)

 

다국적 똥 / 반칠환

또 배탈이군. 한때 돌조차 삭이던 위장이었는데. 그렇지, 장모가 전라도 배추를 경상도 고춧가루로 버무린 탓일 거야. 아냐, 맥도널드 햄버거에 우리 밀빵을 함께 먹은 탓인지도 몰라. 아니, 방부제와 잔류 농약이 십이지장, 소장, 대장을 방제하는 날일까? 쯔쯧, 세계화 시대에 이렇게 편협한 국수주의자의 내장을 가지고서야. 신토불이? 우린 모두 지구촌 읍민이니 지구에서 나는 모든 음식이 신토불이인 거야. 저녁엔 다시 캘리포니아 쌀에 중국산 콩을 놔 먹어보자. 끄억ㅡ. 미제트림에 중국산 방귀를 뀌어볼까나. 비록 제3세계의 셋방에 살지만 오늘도 난 다국적 똥을 눈다.

- 반칠환, 뜰채로 죽은 별을 건지는 사랑(시와시학사, 2001)

 

마차가 있는 풍경 / 이시영

프랑스 노르망디의 한 도시에서는 아침마다 통학버스 대신 친환경적인 19세기식 마차가 집집마다 들러 어린이들을 실어나르고 있다 하는데, 바람에 부드러운 갈기를 날리며 흰 콧김을 내뿜으며 천천히 거리를 오가는 말의 자태 또한 그린 듯이 아름다울뿐더러 그놈이 도심의 한복판에서 엉덩이를 들고 풀내음 가득한 똥을 마구 내지를 때엔 어른들은 물론 마차 안의 어린이들이 제일 환호한다고 한다.

- 이시영, 경찰은 그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창비, 2012)

 

똥을 베껴 쓰다 / 정일근

시외버스 공중화장실 쪼그리고 앉는 변기에

누군가 쓰고 간 단단한 일 획 읽었다

 

얼굴 붉어지도록 힘주지 않아도

발 저리도록 오래 견디지 않아도

쓰윽, 단숨에 사람의 몸속에서 빠져나왔을

몸의 뜨끈뜨끈한 일부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써내려간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한ㅡ 자

 

저 거침없는 쾌도난마!

 

오래 쪼그리고 앉았지만 몸의 문 쉽게 열지 못하는

오래 곤궁하였지만 마음 문 쉽게 열지 못하는

속 좁은 나를, 대오 쾌활하게 하는 똥이여

 

읽을수록 아랫배까지 시원해지는 똥의 문장 앞에

나는 부러워 손바닥에 몇 번씩이나 베껴 쓰며

얽히고 막힌 길의 시작을 찾는다

- 정일근,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9)

 

'서미동 사람들의 이야기' 전시 예정이었던 이승곤 작가의 '똥바다'

'시(詩) > 괜찮은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호의 길 위에서 읽는 시  (0) 2024.04.23
30주기 혁명시인 김남주를 다시 읽는다  (0) 2024.02.16
쑥부쟁이 사랑  (0) 2023.12.25
즐거운 일  (0) 2023.12.25
임화(林和)의 詩  (0) 202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