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2 월간 함께사는 길
낙동강특별법 파산 부른 김해매리공단 ‘각하’ 판결
지난 11월 2일, 경남 창원지법 213호 법정에서 김해매리공단 설립허가 취소소송에 대한 선고공판이 있었다. 재판부 강구욱 부장판사는 감기를 이유로 마스크를 쓴 채 ‘각하’라고 판결했다. 재판장은 소송을 제기한 원고(박만준 외 부산시민 357명)가 피고의 김해매리공단 추진으로 침해받는 ‘구체적인 법률적인 이익’이 없다고 했다. 재판장은 친절하게도 각하 이유에 대해 전례에 없는 보충설명까지 곁들였다. 재판을 방청하던 〈김해매리공단 저지와 낙동강상수원보호를 위한 범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 회원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칠게 재판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재판결과를 주목하며 대기중이던 언론을 대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재판부 정도를 잃다
분노의 격류가 흐르던 기자회견 현장은 이날 저녁 지역주민들에게 방송뉴스로 전달됐다. 뉴스를 접한 부산시민들은 재판부가 ‘정상’이 아니라고 간단히 진단했다. “상수원 인근에 공장에 들어서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 법의 이름으로 확인될 것이라던 기대가 무너진” 것이다. 재판부는 낙동강의 현실을 도외시하고, 소송이 진행되는 중 낙동강 주요 취수장과 정수장에서 발생했던 퍼클로레이트 및 유해화학물질의 검출에 대해 외면했다. 무엇보다 소송의 핵심쟁점인 사전환경성검토와 사전예방에 대한 논쟁을 비켜가기 위해 법원 스스로가 규정했던 ‘사안의 심각성’을 무시하고 서둘러 종결하고 말았다.
대책위는 재판부가 ‘각하’할 것이란 예상을 하고 재판부에 민의를 전달하기 위해 10월 초순부터 전국시민사회단체에 협조를 구하는 한편, 3차심리가 있었던 10월 12일 ‘매리공단저지 상수원보호 낙동강특별법 개정 100만인 서명운동’ 중간집계(7~10월 현 34만 명 서명) 결과를 토대로 창원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법부는 법형식이 아니라 유역간 상생의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은 재판장에게 전달됐다. 재판장은 불쾌함과 당혹감이 섞인 표정을 보였다. 재판은 정시에 열리지 못하고 한참을 경과한 다음 속개됐다. 이날 원고측 증인으로 참석했던 김좌관 교수(부산가톨릭대)는 그동안 김해시가 주장했던 사전환경성검토 보완자료의 문제점을 낱낱이 제기하며, 피고측의 반론조차 무색하게 만들었다. 대책위는 더욱 강하게 여론을 조직하기로 하고 다시 전국환경시민사회단체에 협조를 당부했다.
선고 이틀 전 10월 31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전국공동기자회견에는 대책위의 요청에 호응하여 전국 총 185개 단체가 참여했다. 특히 낙동강수계에서는 안동과 대구, 마산창원 지역 대표들이 한목소리로 정부의 소극적 대응을 규탄하고 사법부의 현명한 처신을 촉구함으로써 부산시민의 이해를 대변하기도 했다. 또한 금강네트워크 최충식 사무처장은 수계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물문제는 전국 어느 수계에서나 공통분모를 이룰 수밖에 없는 현실임을 감안한다면 김해시의 어처구니없는 발상과 재판부의 경솔은 비판받아 마땅하고 즉각 백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보탰다. 김혜정 환경연합 사무총장은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전제하고 전국적으로 미분양 공단의 사례와 예산의 낭비를 지적하며, 잘못된 계획, 불필요한 개발이 지역경제를 왜곡하고 지역공동체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며 그 현장의 하나인 김해시를 규탄했다.
위천공단 반대 김해시민 대책위원장 출신 김해시장
한편 전국공동기자회견이 있기 하루 전날인 10월 30일 대책위는 새벽을 달려 국회의사당을 찾았다. 환경부 국정감사에 열린우리당 조성래 의원의 요청으로 김해시장이 증인으로 출석하기 때문이었다. 대책위는 국회 기자회견을 열어 김해시의 부당성을 알리고 일부는 국회 정문에서 순번을 바꾸어 가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점심시간, 지난 10월 19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낙동강유역환경청 국정감사에서 만났던 환경노동위 소속 위원들이 대책위의 노고를 격려했지만, ‘국회는 김해시의 반환경행정을 규명하라!’는 피켓 문구를 제대로 읽었는지는 의문이다. 이날 오후 4시 넘어 10분 남짓, 김종간 김해시장에 대한 조성래 의원의 증인심문이 있었지만 열심히 잘해보겠다는 말만 되풀이된 싱거운 심문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만 소송의 결과에 따라 패소하면 어쩔 수 없지만 승소하더라도 부산시와 환경단체 등과 협의를 통해 강도 살리고 공단도 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판에 박힌 발언을 되풀이했다.
김종간 김해시장은 민간인 신분으로 있었던 90년대 중반, 대구시의 위천공단 조성계획에 반발하여 김해시민을 상대로 위천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해시 대책위원장 출신이다. 그랬던 김 시장은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서 매리공단의 정당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10년 전 김 시장은 무슨 마음으로 위천공단을 반대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잘못된 입지, 잘못된 허가 매리공단
김해매리공단은 김해시가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토지수용업체와 관내 산재한 업체들을 통합해 부산시의 상수원 주변인 물금취수장 근처에 새로이 공단을 만들고자 하는 과정에서 대두되었다. 부산시민이 김해시의 이 같은 움직임을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낙동강유역청의 사전환경성 검토에 대한 전문가 협의과정을 통해서였다. 협의는 모두 두 차례 진행되었고 모두 부동의 처리되었다. 김해시는 이를 무시하고 공단승인을 강행했다.
낙동강유역청 주관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이해집단과 관련기관 협의기구도 만들어졌지만 소용없었다. 또한 대체부지를 물색하고 재원을 조달하기 위한 부산시와 환경부의 방침이 천명되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한 채 표류중이다. 대신 매리공단의 설치로 상수원보호구역 지정이 가시화될 것을 우려한 상동면 대포천 및 소감천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을 뿐이다. 환경부며 국무조정실을 찾아 국가하천에 대한 관리감독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을 주문했지만 김해시라는 지자체의 벽을 넘지 못했다. 국가하천관리에 대한 실종이었다. 또한 직무유기였다. 두 명의 환경부 장관이 승인을 전후하여 현장을 방문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매리공단이 들어설 김해 상동지역은 이미 천여 개의 공장이 입주한 상태다.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공장에 대한 규제는 처음부터 없었다. 그것이 시나브로 1천 개가 넘는 공단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도로변에서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골짜기마다 들어찬 공장들이 천연스레 굴뚝연기를 내뿜고 있다. 골마다 들어선 공장들은 법망의 사각지대였다. 매리공단은 여기에 더해 28개의 공장으로 묶어진 이전업체들의 묶음이다.
정부의 통제가 사라진 이곳을 일러 노무현 대통령도 전국 최대의 난개발지역이라고 표현했다. 부산시민들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상동면 일대와 매리공단이 들어설 소감천 일대와 부지를 돌아본 다음 피력한 소감은 절망적이었다. 한마디로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탄식과 원망, 그리고 분노였다. 상수원 주변에 이토록 많은 공장이 밀집하도록 정부나 부산시는 무엇을 하였으며, 김해시는 제 정신인가 하는 의문을 표한 것이다.
허수아비 낙동강특별법
물문제로 지속적으로 고통과 피해를 강요당해온 부산시민으로서는 경악할 일이었다. 실제 부산시민은 지난 91년 페놀사태로부터 94년 암모니아 식수파동, 96년 위천공단문제 등 매년 되풀이되는 물문제를 겪으며 낙동강과 한 몸이라는 등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한 사람들이다. 위천공단백지화 투쟁은 그런 시민정서가 관통된 일대 사건이었다.
그것은 전자에서 언급했듯 부산경남을 아우르는 거대한 전선이었다. 기나긴 싸움의 결과로 이른바 ‘낙동강특별법’(낙동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고, 2002년부터 이 법에 기초하여 부산시민들은 한 해 360억 원 이상을 물이용부담금으로 내고 있다. 하나의 강을 이용함에 맑은 물을 제공하는 상류지역민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하류민이 내는 물값인 것이다. 유역상생의 원칙을 고수하기 위한 감내인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낙동강특별법은 부산시민의 식수원을 지켜주지 못하는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법은 4조와 5조를 통해 일일 50만 톤 이상 대규모 취수원이나 상류 일정구간의 양안 500미터를 수변구역으로 지정할 것을 말하고 있으나, 정작 대상지는 댐 상류에 국한하고 있다. 한편 상수원보호구역 지정권은 해당 시도지사에게 권한이 위임됨으로써 법조항 자체가 사문화됐다. 김해 상동 일대와 매리공단은 이렇듯 낙동강특별법을 조롱하면서 부산시민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민대책위가 김해매리공단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전술은 유역상생의 원칙에 입각한 대화 중심의 접근이었다. 상당수의 부산시민이 김해시에서 생업을 영위하고 김해시민 상당수가 부산에 직장을 두고 있으며, 이들은 구포다리를 통해 일상을 교환하고 있다. 때문에 대책위는 물리력이 아닌 법과 제도의 개선, 부지 매입과 대체부지 물색을 통한 이주기업 고통분담을 천명하고 다양한 활동을 경주했다. 그러나 6월 6일 새벽 김해시는 기습적으로 허가증을 교부하고 말았다.
부산시장이 나서야
김해매리공단의 문제는 단순히 공단 하나가 더 들어서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공단 설치에 따른 수질오염 피해를 넘어 제2, 제3의 매리공단을 가능케 하는 선례가 되며, 힘겹게 구축되어 온 물관리 정책의 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531 선거 직전까지 부산시의원으로 활동했던 박주미(민주노동당) 전 의원은 매리공단 문제와 관련하여, 성장우선주의 정부정책 이전에 부산시의 책무를 언급하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한마디로 부산시는 “자기 권리도 행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직무를 유기함으로써 오늘의 문제를 야기시켰다.”는 것이다. 부산시민이 내고 있는 물이용부담금에 대한 권리를 통해 상수원을 오염시키는 행위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할 권리를 가졌음에도 부산시가 이를 포기했다.”는 것이다. 박 전 의원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역 내 시민단체 대표들은 허남식 부산시장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다.
‘왜 그렇게 조용하냐?’는 질책과 비난의 시선이다. ‘각하’ 판결 직후, 대책위는 허 시장과의 면담을 통해 김해시장과의 직접적 만남을 통해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을 요구했다. 낙동강 유역민의 기장 기초적인 기본권인 낙동강 수계의 생명수에 관한 이해를 같이하지 못한다면 낙동강공동체는 허구의 개념일 수밖에 없다. 현재 대책위는 부산시의 분발을 요구하며 부산고등법원에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
노래출처: 다음 블로그 길 떠나는 나그네
김정미 -오솔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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