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수습까지 총리의 기록/ 저자 간 나오토|역자 김영춘, 고종환|에코리브르 |2018.03
원제 東電福島原?事故 ?理大臣として考えたこと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났을 때 간 나오토 전(前) 총리가 최고 책임자의 자리에서 경험한 일을 담은 기록이다.
지진, 쓰나미, 원전 사고가 일어난 시점부터 수습 과정, 탈원전 결심까지 간 총리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 : 간 나오토는 1946년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태어났다. 도쿄 공업대학 이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했고 1980년 중의원 의원 선거에서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사회민주연합 부대표를 지냈으며 신당 사키가케 정조회장 등을 거쳐, 1996년1월부터 11월까지 제1차 하시모토 내각의 후생대신을 역임했다. 같은 해 민주당을 결성하고 공동 대표를 지냈다. 1998년 새롭게 결성한 민주당의 대표와 정조회장, 간사장을 거쳤고 하토야마 내각에서는 부총리, 국가전략담당대신, 재무대신을 역임했다. 제94대 내각총리대신(재임 452일간)을 지냈다.
현재 도쿄 무사시노시에 살고 있으며 중의원 의원이자 변리사, 입헌민주당 최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 대신(大臣)》 《 간 나오토 ‘원전 제로’의 결의(菅直人?‘原?ゼロ’の決意)》 《 총리와 순례자(?理とお遍路)》 등이 있다.
역자 : 김영춘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임학과를 졸업했고 부산시 녹지과 산림계장을 지냈다. 일본 지바 대학 대학원에서 환경녹지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시녹지사업소장, 푸른도시과장을 거쳐 부산국제교류재단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현재 부산시민햇빛협동조합 상임이사, 지역신문인 〈해운대라이프〉 〈부산여성뉴스〉 객원기자 등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베이징 임업대학에서 방문학자로 1년간 연구한 성과를 담은 《 발로 뛰며 보고 느낀 중국》 등이 있다.
목차
책머리에
1 각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 사고와 도카이무라 JCO 임계 사고15|후쿠시마 원자력발전 사고17|원전 사고의 악화18|초기 대응19|타지 않는 원자력발전소20|최악의 시나리오21|원자력위원회 위원장의 시나리오22|《일본 침몰》이 현실로24|계속되는 최악의 시나리오28|최고 책임자의 고뇌31|도쿄전력 철수 문제와 통합본부33|반전 공세36|신의 가호37|일본 붕괴의 심연을 들여다보다38|원전 문제는 철학이다40|인간과의 공존42
2 심연을 들여다본 하루하루
3월 11일 금요일 대지진 발생 전43|흔들리는 샹들리에44|긴급재해대책본부45|후쿠시마 제1원전, 모든 교류전원 상실47|원자력 긴급사태 선언49|원전 사고와 지진·쓰나미는 대응이 다르다51|총리의 권한과 책임52|전문가들의 조언54|기능하지 않는 오프사이트 센터56|원자력안전보안원이란 어떤 조직인가58|전원차 확보와 운반60|벤트와 피난 지시63
3월 12일 토요일 재빨리 벤트를64|시찰을 둘러싼 의견65|야전병원 같았다68|요시다 소장의 결의70|상공에서 본 쓰나미 피해72|텔레비전을 보고 알게 된 폭발74|피난 구역의 단계적 확대76|해수 주입의 진상78|미증유의 국난81|비공식 자문을 구하다83
3월 13일 일요일 관저에서 잠든 하루하루85|도착하지 않은 원조 물자86|도쿄전력 수뇌의 부재89|갑작스런 계획 정전90
3월 14일 월요일 3호기 폭발94|2호기의 위기97
3월 15일 화요일 철수는 없다99|각오100|통합대책본부 설치 선언102|도쿄전력 본사에 들어가다104|4호기 폭발, 2호기 압력 저하106|행운108|국민에 대한 당부110|일본 팔기113|반전 공세114
3월 16일 수요일 자위대에게 지시하다116
3월 17일 목요일 자위대의 상공 주수118|협력 요청120|이례적인 인증식122
3월 18일 금요일 자민당 다니가키 총재에게 요청하다124|일주일의 매듭126|일주일 만에 공저로130
3월 19일 이후 계속되는 위기130|광범위한 파급132|사고 현장의 목숨 건 노력134
3 탈원전과 퇴진
피난소137|방향 전환138|에너지 정책 재검토의 표명140|도쿄전력의 배상 책임 문제142|하마오카 원전 정지 요청142|에너지 정책의 전환146|해수 주입 문제로 받은 공격147|1000만 가구의 옥상에 태양광 패널 설치를148|움직이기 시작한 정국149|재생가능에너지특조법을 성립시키겠다150|모두 웃었던 열린 회의152|부흥기본법 성립155|원전사고담당대신의 탄생156|겐카이 원전 재가동 문제157|모두 납득할 규칙159|탈원전 선언160|원전 의존도 낮추기162|또 하나의 과제163|퇴진을 향해165|마지막 인사166|마음에 남는 것170
4 탈원전 정치와 시민
큰 숙제173|자연에너지 시찰174|경제계의 원전 필요론175|원전의 진정한 비용176|백엔드는 해결책이 없다177|전력 회사의 채무초과179|성장하는 재생 가능 에너지181|에너지 절약도 성장 분야181|개혁의 첫걸음182|노다 내각의 원자력 정책183|에너지환경회의184|시민의 역할186|국민의 선택188
감사의 글
옮긴이의 글
원자력 안전성과 비용, 핵연료사이클에 이르기까지 성역 없이 국민적 의논을 시작했습니다. 총리를 사직한 뒤에도 대재해, 원전 사고 발생 때 총리를 맡았던 한 정치가의 책임으로서 피해를 입은 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방사능 오염 대책, 원자력 행정의 근본적 개혁 그리고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 실현에 최대한 노력하고 싶습니다. (168쪽)
2018년 현재 탈원전 정책을 폐기한 아베 정부는 피난 지시를 해제했고, 이에 따라 전 세계에서 오염 지역으로 돌아와 살고 있거나 살게 될 시민들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7년이 지났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조사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 인근의 방사성 오염이 다음 세기까지 지속될 정도로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이 큰 혼란에 빠지고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국가 존망의 위기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이 최악의 시나리오는 위기일발,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할 수 있었던 것으로, 지금이라도 같은 사고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우선 일본인이 경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국가 존망의 위기였다는 공통 인식을 가지고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것을 잊은 의논, 무시한 의논은 정말로 ‘비현실적’이다. (176쪽)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 철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20퍼센트 이상 건설된 신고리 5, 6호기의 중단 여부에 관해 3개월 동안 치열한 공론화 과정을 거쳤지만 결국 2017년 10월, 재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11월 중순,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3의 지진은 규모 7 이상 강력한 지진의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고 다시 원전 철폐에 대한 주장이 나오는 등 원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는 원전 정책을 고민하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원전 사고는 잘못된 문명의 선택으로 야기된 재해다
사고 발생 첫날인 2011년 3월 11일 20시쯤, 1호기에서는 이미 멜트다운이 일어났다. 다음 날 오후에 1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13일에는 3호기의 멜트다운, 15일 6시쯤 2호기에서 충격음이 발생했다는 보고와 거의 동시에 4호기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다. 모든 원전이 제어가 불가능해지면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쳐 원전과 사용후핵연료 풀이 전부 멜트다운하고 막대한 양의 방사성물질이 방출된다. 그렇게 되면 도쿄를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에서 약 5000만 명이 피난을 해야만 한다.
간 나오토 총리는 사고가 일어난 직후 피해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최악의 가설에 근거해 기술적으로 예측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든다. 이에 따르면 강제 이전 구역은 반경 170킬로미터 이상, 희망자의 이전을 인정하는 구역은 도쿄도를 포함한 250킬로미터로, 약 5000만 명의 대피가 예상되는 상황이 된다. 그리고 이 250킬로미터 권역이 수십 년에 걸쳐 사람이 살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대기와 바다를 통해서 세계에 방사능을 뿌리는 것을 뜻한다. 이에 간 총리는 “나 자신도 3ㆍ11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의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열린 대화로 소통하며 국민의 의사를 바로 가까이에서 물었던 간 총리는 결국 원전은 단순한 기술이나 경제가 아니라 인간의 생존 방식을 확실히 문명에 묻는다고 하며 “원전 사고는 잘못된 문명의 선택으로 야기된 재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더욱더 탈원전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최종적으로 국민의 의사다. 철학의 문제인 것”이라고 하며 아직도 전 세계 곳곳을 다니며 탈원전 운동을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한 번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당신이 피난을 지시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 p.27
원전에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 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원전을 54기나 만든 것도 이 전제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법률도 제도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현실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대응할 수 없었다. 정치가도 전력 회사도 감독관청도 ‘상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이다. --- p.30
자연에 존재하는 태양과 달리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핵에너지 발생 장치, 핵무기와 원전은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인간 세계에 심각한 모순을 던진다. 나는 인류가 멸망한다면 핵이 원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불합리가 여기에 있다.
나는 어떻게든 탈원전만은 실현시키고 싶다. 그것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총리로서 경험한 정치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 p.42
원전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조직이 없는 것은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직을 만들면 정부는 사고가 일어난다고 상정하는 것이 되고 원전 건설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다. --- p.58
현장을 알지 못했다. 게다가 관저의 견해가 현장에 도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현장에서 도쿄전력 본사, 본사에서 보안원, 보안원에서 관저 또는 본사에서 관저에 있는 도쿄전력 사원으로 ‘전언 게임’이 계속된 것이다. 전언이 정확하면 좋겠지만 어딘가에서 중요한 부분이 빠지거나 고의는 아니라도 왜곡될 가능성도 있었다. --- p.66
나는 원전 사고 발생 직후부터 원자력안전보안원 등 원래 사고에 대응하는 부서가 아닌 외부 전문가의 ‘비공식 자문’을 듣고 싶었다. --- p.84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각오를 했다. 선택지는 없었다. 이대로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 싸울 수밖에 없다. 원자로라는 적, 방사능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었다. 일본은 방사능에 점령되려 했다. 적은 밖에서 공격해온 것이 아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적이다. 도망갈 수는 없다. --- p.102
이전부터 생각하던 안전성의 발상으로는 지진, 쓰나미, 원전의 3중 리스크를 감당할 수 없다. ‘원전의 안전을 지키는 5중의 벽’을 7중으로 하더라도, 쓰나미 대책으로 제방을 높인 곳에서도 결국 인간의 과실을 포함해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 p.139
소와 흙 후쿠시마,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다 / 저자 신나미 교스케|역자 우상규|글항아리 |2018.03 ※2015 고단샤 논픽션상 수상작
저자 : 신나미 교스케는 논픽션 작가. 1951년 오사카 이바라키시에서 태어났다. 홋카이도대를 졸업하고 출판사, 편집 프로덕션 등을 거쳐 1992년에 출판사 라이브스톤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주로 의학, 의료 분야
잡지와 책을 편집하고 출판한다. 2002년부터 『마이니치신문』 오사카 본사 특약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세러피도그의 자장가: 치매 환자와 개들의 3500일』 등이 있다.
목차
서장 안락사라는 이름의 살처분
제1장 경계 구역의 소들: 아사도 안락사도 아닌
제2장 이타테촌의 소들: 사람도 소도 자취를 감췄다
제3장 흩날린 방사성 물질: 흙과 동물의 피폭
제4장 방치된 소와 소 사육사의 도전: 울타리의 안과 밖, 소의 삶과 죽음
제5장 고향에서 멀리 떨어져: 소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제6장 소가 계속 살아가는 의미: 소 사육을 지원하는 연구자
제7장 피폭의 대지에서 살다: 가축과 야생의 틈에서
제8장 귀환 곤란 구역의 소들: 소가 지키는 고향
제9장 검문을 넘어 소의 나라로: 소가 가르쳐준 것
종장 소와 대지의 시간
출판사 서평
무인지대로 바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구역,
살아남은 소의 생태와 소를 살리려는 인간들의 모험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직후, 피난의 지옥이 돼버린 이곳에 저자는 고양이와 개를 뒤쫓으려고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게 있었고, 그는 4년간 이들의 삶을 쫓게 된다. 바로 피폭됐지만 안락사 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소들과 이를 돌보는 소 사육사들이다. 폭발 현장에 자위대가 투입돼 위험을 무릅쓰는 와중에 돈 뭉치로 원전을 추진해온 도쿄전력 직원들은 이곳에서 재빨리 빠져나갔다. 한편 소를 남겨놓고 발을 떼지 못하는 농민에게 국가는 “정리해라, 죽여라”라는 지시로만 일관했다.
시간당 20μSv 이상의 고선량 목장에서 소를 계속 돌봤던 와타나베 후미카즈. <소와 흙>에는 와타나베를 비롯한 농민들이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끝까지 소를 돌보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글항아리 제공
워낙에 순종적인 도호쿠 지역 농민들은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는 국가의 명령에 토 달지 않고 가축을 모두 살처분했다. 하지만 이후 그들에게 남겨진 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뿐. 이번에도 국가는 제1원전에서 20킬로미터 내에 있는 가축은 모두 죽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 사이에선 뜻밖의 목소리들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소를 계속 키우겠다, 내 몸의 피폭은 내가 알아서 감수하겠다, 방치된 가축을 돌보는 건 우리 늙은 수의사들 몫이다, 라는 결연한 태도였다.
이 책은 원전사고 후 죽음의 땅에서 소와 함께 살고 있는 농민들을 추적한 르포다. 농민들은 소들을 좀더 잘 먹이고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더 오랜 시간 그곳에 머물게 해달라고 정부를 상대로 지난한 협상을 벌이고 있다. 방사능의 반영구적인 공포에 짓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상황과 이에 맞서는 강인한 의지는 이 르포를 끌고 나가는 심리적 내러티브다. 안락사의 칼날을 피해 살아남아 사람들이 사라진 푸른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소, 점점 야생화하여 스스로 교배하고 자식을 낳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소들의 몸 안에는 방사능이 축적되고 있다. 그런지도 모르고 소들의 몸엔 윤기가 흐르고 눈빛은 초롱초롱하며 흙냄새도 여전히 살아 있다. 이러한 소의 야생화 과정과 방사능 생체 축적을 동반하여 추적하는 이 책은 한 편의 동물문학이라 불러도 될 만큼 소의 입장에 선 관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야 마땅한 상황에서 어떻게 생명은 그것에 맞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고 제한된 조건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인류학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소와 함께 피폭되는 사람들, “제 아이랑 똑같으니까요”
흰색의 방호복을 입은 남자들이 사고 이후 덤불로 뒤덮인 마을에 며칠 간격으로 계속 나타난다. 이들은 큰 자루를 칼로 찢어 울타리 안에 먹이를 듬뿍 놓아두고 떠난다. 짙은 냄새가 울타리를 넘어 바깥으로 멀리 퍼진다. 며칠 후 사내들은 또다시 나타나 향기로운 건초와 강한 냄새를 풍기는 사료를 두고 사라진다. 그동안 제대로 된 사료와 물을 먹지 못한 한 마리 소가 울타리에 접근하다 멀어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선뜻 울타리 안에 발을 들여놓진 못한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세 마리의 소가 나타나 울타리 안으로 돌진해 먹이를 정신없이 먹는다. 망설이던 소도 경계 태세를 풀고 무리에 합세한다. 이때 나타난 검은 그림자들. “와, 포획 작전 대성공! 싱거울 정도로 일망타진이네요!” 국가가 명했는데도 여태껏 살아남은 소들은 안락사 감이었다. 안락사는 진정-마취-근육 이완의 3단계로 진행된다. 진정제를 근육에 투여해 얌전하게 만든 뒤, 정맥에 마취제를 주입해 잠들게 한다. 마지막으로 소들이 주사기의 근육 이완제를 빨아올리게 함으로써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게 한다.
2011년 3월 11일 사고 당일. 두려움에 떨며 피난 행렬을 이룬 이들과 달리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신이시여, 집은 무너져도 상관없지만 외양간만큼은 무사하게 해주세요.” 소 사육사들은 빌었다. 하지만 국가는 이곳을 피난 지시 구역으로 정했고, 사람은 한 명도 예외 없이 피난할 것을, 동물은 전수 안락사 시킬 것을 지시했다.
경계 구역의 소 3500마리 중 2015년 1월 20일 현재 안락사 처분한 소가 1747마리, 소유자가 동의하지 않아 계속 사육하는 소가 550마리다. 결국 국가의 명을 따르지 않고 이 땅에 들락거리며 먹이를 준 농민들이 있다. 지진이 났을 당시 이들의 머릿속에 농가를 떠나는 일은 단 한 번도 고려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지 5개월째. 국가는 피폭당하는 걸 본인 책임으로 한다는 전제하에 일주일에 한두 차례 고방사선량의 지역으로 농민들이 드나들 수 있게끔 허가증을 발급한다. 가령 시간당 30마이크로시버트의 방사선량을 나타냈는데, 이는 하루 반을 체류하면 국가가 일반인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연간 1밀리시버트의 피폭 선량 한도를 넘어서는 수치다. 하지만 외양간과 목장으로 되돌아온 농민들은 피폭된 존재가 살아가는 의미를 끊임없이 찾으며 아직도 이곳에 살고 있다.
“우리는 원전 때문에 피폭 중이고 방사능으로 병에 걸릴 가능성도 높지만 결국 소를 선택했어요.” 위험한 경계 구역에 넘나들며 사고 이후에도 계속 소를 키우고 있는 기미코 씨의 말이다. “남편한테서 나랑 소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냐는 핀잔을 듣지만, 소는 제 아이랑 똑같으니까요.”
단 한 번도 피난을 생각하지 않았다
2010년 7월 17일 새벽, 나미에정 오마루에 있는 외양간 한 귀퉁이 볏짚에서 향기가 감돌았다. 동이 터오지만 아직 엄마 뱃속에 있는 태아는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지 못했다. 진통은 이미 시작된 터였다. 어제부터 볼록해진 외음부가 젖어 있다. 와타나베 후미카즈는 수의사 없이 혼자 출산을 치를 준비가 돼 있다. 마침내 1차 파수가 일어나 막이 찢어지고 붉은 물이 흘러나왔다. 30분 뒤 태아의 앞발이 나오더니 곧이어 2차 파수. 머리가 쏙 나오고 순식간에 온몸이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나타났다. 와타나베는 고생한 어미 소를 쓰다듬고 초유를 먹인 뒤 자리를 떴다. 잠시 후 돌아온 와타나베는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아까 어미 소가 송아지를 다 핥았는데 반쯤 양막을 쓴 채 송아지가 누워 있는 게 아닌가. 알고 보니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었다, 야스이토마루 1호와 2호!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와타나베 후미카즈가 외양간에서 슬슬 작업을 시작하려는데 맹렬한 흔들림과 동시에 천장에서 굉음이 들려왔다. 소들은 이상한 울음소리를 냈다. 구모, 우웃, 구모, 우오온…… 발정할 때나 배고플 때가 아닌, 인간에게 포획될 때 궁지에 몰려 내는 소리였다. 그가 기르고 있던 것은 쌍둥이 야스이토마루 형제를 포함해 어미 소 10마리와 송아지 10마리.
인공수정에 의한 번식이 널리 보급되면서 수컷 99퍼센트는 생후 2~5개월에 거세되고 육우가 되는 비육 송아지로 길러진다. 가축 시장으로 가는 송아지의 출하 월령은 8~10개월. 일부 암컷만 번식용으로 내보내지고, 나머지 암수컷은 모두 비육 송아지로 거래된다. 비육되는 농장에서 18~20개월 머문 뒤 육류 시장에 출하되므로, 사람 입 속에 들어가는 건 생후 26~30개월 무렵이다. 한편 번식용 암소는 만 1세에 수정을 해, 9개월 반 동안 임신하며 2세쯤 초산한다. 이후 10여 년간 출산을 계속해 15산까지 가는 소도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일상은 이제 잃어버린 세계가 되었다. 모든 것은 원전 사고와 함께 물거품이 돼버린 것인지 모른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서북쪽으로 14킬로미터 지점. M목장을 운영하는 무라타 준은 소 사육사이면서 대규모 목장의 경영자다. 매일 아침 5시 반에 일어나 자택 인근 목장에서 450마리의 소를 돌보는 데서 일과를 시작하는 그는 후쿠시마 현 내 일곱 군데에서 1200마리의 육우를 사육하고 있다. 3월 11일 사고 당일, 무라타와 함께 농장을 운영하는 요시자와는 시내 마트에 있다가 지진이 발생하자 농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오던 길에 쓰나미가 덮쳐 사람들이 바다 속으로 삼켜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그는 가까스로 농장에 도착했다. 피난 행렬의 지옥이 되어버린 그곳이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소들을 남겨놓고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안에서 불거지는 갈등
“소들을 풀어놓고 철수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다, 끝까지 돌보자.” 위험 지역에서의 철수를 놓고 농민들의 의견은 서로 달랐다. 도쿄전력과 국가가 입히는 상처에 더해, 농가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말로 생채기투성이가 됐다. 국가의 안락사 지시를 둘러싸고도 반응은 둘로 나뉘었다. 그중 피폭을 감수하고 계속 사육을 하는 농민들은 사회로부터 괘씸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너네는 왜 국가에서 보상금을 받고도 안락사를 하지 않는 거냐?” 하지만 보상금은 농가가 입은 경제적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지 안락사와는 관계없다. 안락사에 찬성한 농가들로부터도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너희들 소가 평등하게 죽어주지 않으면 안락사에 동의한 우리만 손해 본다.”
한편 사고 지역에서 개와 고양이를 살려내야 한다고 말하는 동물 애호가들도 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한 방울 떨구게 했다. 주인이 울타리 안에 소를 가둬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 먹이를 주러 오는 사이, 동물애호 단체들이 울타리의 잠금 장치를 풀어 소들을 방출해버린 것이다. 다른 외양간에서 소들이 굶어 죽은 걸 본 애호가들이 소들을 풀어준 듯싶다. 하지만 다른 누구보다 소를 아끼는 건 소 사육사들이다. 소가 야생으로 나가면 상상도 못할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소들이 물을 먹으려고 늪에 발을 디뎠다가 무리 전체가 빠져 죽은 일도 있었다.
한편 안락사에 반대해 소 사육을 계속해온 요시자와 등은 피폭된 소들을 관찰하면 방사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여겼고, 이로써 소들을 살려둘 명분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반대는 예상치도 못한 데서 나왔다. ‘학술 연구에 협력한다는 것은 결국 동물 실험을 한다는 것 아니냐’며 동물애호 단체에서 항의해온 것이다. 이런 일들로 소 사육사들의 마음에 새겨진 멍 자국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무라타와 요시자와는 안락사 처분에 맞서 소를 계속 키운다는 것은 ‘삶의 의미’를 둘러싼 투쟁이라고 말한다. “소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사라져 더 이상 가축이 아니다. 여기 있으면 피폭하고, 앞으로 먹이 값이 들어갈 뿐만 아니라, 손도 많이 간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을 찾아내야 한다.”
소는 점점 더 야생동물이 되어가고 버려진 마을들은 야생동물의 낙원이 되어가고 있다. 여기서 어떻게든 자타가 인정할 만한 의미를 발견해야 한다. 무라타와 요시자는 국가 및 도쿄전력과도 싸워야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성 물질, 나아가 얼굴이 없는 사회의 평판과도 싸워나가야 한다. 이들은 무력함에 의욕을 잃기도 하고, 귀에 들려오는 말에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잘못된 비판과 분별없는 아유는 흘려넘길 수 있겠지만, 지진 피해자끼리, 소 사육사끼리 헐뜯는 것은 참기 힘들었다.
요시자와는 “소도 피폭했고, 나도 피폭했다. 그러나 소 사육사의 마음은 꺾이지 않는다. 여기서 소를 사육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 실제로 일어난 일은 전하는 것이 내 남은 20년 인생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즉 그 스스로가 소와 함께 피폭의 산증인이 되는 것, 이야기꾼이 되는 것이 그가 찾아낸 인생의 의미다.
답은 흙이 쥐고 있다
열심히 소를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흙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원전 사고가 미치는 피해의 실태를 알려줄 뿐 아니라 이를 최소화하는 열쇠 또한 흙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오사카대학 핵물리연구센터의 한 연구실. 2011년 3월 15일에서 16일로 넘어가려는 시점, 후지와라 마모루 교수는 전국의 핵물리학자들에게 원전 사고에 대응하자는 메일을 발송했다. 16일 오후 연구센터에 70여 명이 모였고, 후지와라를 중심으로 핵물리학자들이 할 일이 정해졌다. 이들은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80킬로미터 범위는 약 2킬로미터씩, 80~100킬로미터와 그 바깥은 사방 10킬로미터씩 한 곳에서, 도합 2200개소, 한 곳당 사방 3미터의 다섯 지점씩 표층 5센티미터의 토양을 채취했다. 이로써 토양에 침착한 방사성 물질별 농도 분포를 나타내는 지도를 작성할 수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현지 흙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종류와 양을 측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토양의 피폭선량으로부터 계산하면 몇 년 후 어느 정도로 방사능이 줄어들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취재한 마을들 역시 사람도 소도 모두 흙에 의지하며 살아왔다. 이 땅의 흙이 키운 벼는 사람과 가축에게 나뉜다. 소에게 볏짚은 식량이며, 잠자리도 된다. 흙이 키운 풀을 소가 먹고, 소가 배출한 배설물은 퇴비가 되어 흙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 흙이 오염돼버렸다. 소 사육 마을에서 사람과 소는 사라지고, 방사성 물질만 남은 것이다.
그렇더라도 단 한 오라기의 희망도 없는 건 아니다. 이곳에서 과학자들이 할 일은 대규모 생물의 피폭 상태를 계속 조사하는 것이고, 소들일 할 일은 이곳이 덤불이 되지 않도록 여기저기 흩어져 풀을 뜯는 일이다. 이 두 가지 일을 외면한다면 미래에 도움이 될 과학적 진실과 자연이 자연을 스스로 정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들은 가축으로서 인간 문명의 재앙을 당했고, 살아갈 의미를 따지는 무대에 강제로 올려졌으며, 이제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저자는 처음엔 소와 흙을 별개의 것으로 여기고 취재했지만, 결국 흙투성이가 된 소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소’와 ‘흙’은 서서히 하나로 이어졌다. 살아 있는 소를 위해, 흙은 녹색 융단을 깔아줬다. 죽은 소를 위해, 흙은 이불을 준비하고, 흙의 나라로 불러들여줬다.
도쿄 최후의 날 핵의 수호자들, 전쟁과 대재앙의 숨은 조종자 / 저자 히로세 다카시|역자 최용우|글항아리 |2018.03
목차
들어가며│냉정한 마음으로 예측해야 할 일이 있다
1장 일본인의 체내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장 어둠 속에 묻혀 사라지는 진실
3장 지형적 조건의 영향
4장 글로벌 우라늄 산업의 탄생
5장 원자폭탄으로 막대한 부를 독점한 핵자본 네트워크
6장 산업계의 끔찍한 인체 실험
7장 냉전 체제의 어두운 그림자
8장 거대 악의 본거지, IAEA의 정체
9장 세계 곳곳으로 유출되는 원자폭탄 재료
나가며│원전은 근절시킬 수 있다
출판사 서평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에서 발생한 대지진이 일본을 덮쳤다. 간토 지방에서 홋카이도에 이르는 광활한 태평양 해안에 해일이 밀어닥치면서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높이 14미터 이상의 거대한 해일이 들이닥친다. 대규모 해일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든 전원이 나가면서 노심용융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튿날인 3월 12일부터 3월 15일 사이,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4기가 잇따라 폭발 및 파괴된다. …… 그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사고로부터 한 달 후, 1년 후,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 대재앙은 여전히 ‘수수께끼’로만 남아 있다. 그토록 엄청난 대참사에 대해 7년간 밝혀진 것이 한 줌도 채 되지 않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향에 돌려보내진 피해지역 주민들, 널뛰는 피폭 한계치,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전문가의 말들과 가늠할 수 없는 여파餘波. 이 수수께끼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암시한다. 3ㆍ11은 결코 3ㆍ11만으로 파악될 수 없다는 것. 또 그렇기 때문에, 3ㆍ11은 3ㆍ11 자체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는 것. 일본을 대표하는 반핵운동가 히로세 다카시는 3ㆍ11을 기점으로 핵의 발견이 지금의 거대 핵자본 네트워크로 이어지기까지 ‘쌍둥이 재앙’ 원전과 원폭의 세계사적 계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괴담이 아닌 실제 피해가 말해주는 것
“그이는 정말이지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갔습니다. 마지막에는 너무나 괴로워하며 손등을 물어뜯는 바람에 살갗이 전부 떨어져나갔습니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간 거죠.” “오염된 구름이 지나간 후로 머리카락이 몽땅 빠졌어.” “눈이 없는 아이가 태어났어.” “사실 방사선의 영향도 싱글벙글 웃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걱정하며 끙끙대는 사람에게 찾아오죠.”
‘괴담’같이 들리는 이 말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실제 피해자의 증언과 전문가의 발언이다. 이 책에서 방사능의 위험과 피해는 결코 괴담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저자는 오히려 실제 피해 사례로부터 눈을 돌리려는 세력을 예의 주시하며, 오랫동안 현장 취재와 문헌 조사를 병행해 밝혀낸 방사능 피해의 양상과 실태를 제시한다. 그 사례는 우라늄ㆍ플루토늄 등 핵물질 연구자들에서부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미국 세인트조지 주민, 불안을 애써 모른 체하며 살아가는 대도시 도쿄의 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또한 저자는 이 광범위한 피해자들을 적재적소에서 상기하고, 연결시키며 더 커다란 그림을 그려낸다.
1956년, 미국 유타주 세인트조지에 살던 장의사 엘마 피킷은 어느 날 놀라운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장례를 치른 대다수의 사람이 암으로 숨진 것이다. 이후 수년간 끔찍한 사태가 이어졌다. 불행은 피킷 자신에게도 찾아왔다. 그는 아내를 비롯해 여동생, 조카, 할머니, 큰아버지, 장모, 처제, 숙모까지 모두 잃었다. 이들은 모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세인트조지에서는 어린아이부터 성인에 이르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암에 걸리거나 그로 인해 사망했다. 원인은 전 미 육군중사 폴 쿠퍼에 의해 밝혀졌다. 그는 1957년 네바다 핵실험 훈련에 참가한 지 11년 만에 백혈병을 얻었고, 피폭된 지 20년 만에 세상에 나와 피해를 알렸다. 그와 같은 실험에 동원된 병사들의 백혈병 발병률은 통상 대비 338퍼센트를 넘어섰고, 50퍼센트라는 높은 비율로 2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영화 「정복자」의 출연진 및 제작진이 방사능 피폭으로 수없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유명하다. 대기권 내 핵실험이 종결된 지 약 20년 후인 1977년부터 1981년까지 5년간 목숨을 잃은 할리우드 영화인의 사인을 정리하면 암에 의한 사망이 61명, 그 외 명확한 병명으로 사망한 사람이 95명, 원인 불명 및 사고사가 207명이다. 156명 중 61명, 39퍼센트에 달하는 높은 비율로 암에 의한 사망이 발생한 것이다.(현재 미국 내 암 사망률은 약 20퍼센트.)
우랄산맥 뒤편에 위치한 첼랴빈스크에서도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곳으로부터 30킬로미터 지난 지점까지 절대 자동차를 멈추지 말고 최고 속력으로 통과할 것. 차에서 내리는 것을 금지함”이라는 팻말이 세워진 그곳에는 부서진 집들만 있을 뿐 인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방사능 수치는 이상하리만치 높았고, 폐허의 면적은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달했다. 생물체는 방사능에 오염되어 조류는 수렵이 아예 금지되고, 개구리, 장수풍뎅이, 거미 등은 사멸했으며, 호수의 어류들에서도 비정상적인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첼랴빈스크외 근처 대도시의 병원을 가득 채웠던 환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러시아인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그러나 조레스 메드베데프의 연구가 입증하듯, 1957년 고위험군의 폐기물 처리과정에서 새어나간 액체가 땅속에서 대폭발을 일으킨 이후 불모지가 되었다.
네바다의 핵실험과 첼랴빈스크의 대폭발 등 핵폭발 사건, 그리고 스리마일섬과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 등은 방사능으로 인한 인류의 피해는 이전 사례를 재현하고, 다음 사례를 예고하며 계속해서 반복돼왔고, 현재도 반복되고 있다. 왜 이 끔찍한 참사의 반복을 끊어낼 수 없는가? 어째서 여전히 원자력 안전론이 대두하고, 새로운 원전이 지어지는 것도 모자라 노후 원전이 재가동되며, 잦은 지진 발생 등 재해로 원전 입지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에서조차 원전이 세워지는가? 그 배후에는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쥐고, 국제연합UN 등 국제기구와 학계까지 장악한 거대 핵자본 네트워크가 존재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가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들의 계보를 들여다보지 않고는, 후쿠시마와 포스트 후쿠시마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맥으로 연결된 글로벌 핵자본 네트워크의 실체
우라늄은 19세기 말 에너지 자원으로서 전 세계를 술렁이게 만들었다.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을 설립해 화석연료인 석유와 원자력 원료인 우라늄을 장악하고자 했다. 그는 막대한 금융자본을 쏟아부어 ‘방사능 안전론’을 강력히 추진한 시초였다. 또한 금융과 철도로 부호가 된 존 피어폰트 모건은 모건상사를 설립하고 제너럴일렉트릭GE을 설립해 세계적인 ‘원자력 제국’을 구축한다. 화폐 교환과 광산업으로 재산을 일군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은 ‘리오틴토징크’의 설립을 시작으로 전 세계의 우라늄 광산을 지배한다. 이렇게 인류 역사상 최대의 원자력 카르텔이 형성된다. 록펠러와 모건 단 두 집안의 자산 총액은 1225억 달러에 달했는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9조 달러로, 당시 미국 세입 총액인 40억 달러의 약 30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또한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 지출 총액의 약 7분의 1에 달하는 수익을 올리며 전 세계 경제를 장악한다.
모건상사의 회장이던 토머스 러몬트는 루스벨트 대통령의 고문을 역임했고, 로스차일드 가의 헨리 모건도는 재무장관을 지내며 대통령의 자금 후원자 역할을 했다. 대통령의 아들 프랭클린 루스벨트 주니어는 모건 계열의 군수 기업 듀폰 가의 딸 에설 듀폰과 혼인했으며, 또 다른 아들 제임스 루스벨트는 모건과 록펠러의 동지였던 철도 기업 집안 해리먼 가의 규벌에 속해 있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연계된 하버드대, 시카고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UC버클리 등은 스탠더드오일, GE, 듀폰, 유니언카바이드, 웨스팅하우스 등과 긴밀한 협력 관계에 있었다. 이들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전 세계에서 유능한 과학자들을 소집해 원자폭탄 개발에 열을 올렸는가 하면, 의학 부문에서는 살아 있는 인간에게 플루토늄 등 방사성 물질을 주사하고 치사량의 엑스레이를 조사하는 등 끔찍한 인체 실험을 자행했다.
무기 개발자와 생체 연구자들은 서로 밀접하게 연락을 취하며 조직적으로 활동했고, 이러한 인맥은 전후 더 위험한 냉전을 도발하는 데 일조했고, 또다시 일본으로 계승되면서 ‘원전 방사능 무해론’을 퍼뜨리고 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원자폭탄 제조→원자폭탄 투하→피폭자 조사→원자ㆍ수소폭탄 실험→방사능 인체 실험 등 일련의 사건은 같은 네트워크에 의해 벌어진 것이다. 또한 이 네트워크의 이중 스파이로 활동한 클라우스 푹스에 의해 소련도 원폭 개발에 착수하게 된다. 로스차일드은행 회장이자 영국 BBC의 ‘그림자 총재’로 불린 빅터 로스차일드 역시 셸연구소 소장으로 원자폭탄 개발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자, 소련과 내통하던 스파이였다. 그의 6촌의 남편은 베르트랑 골드슈미트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유대인으로, 나중에 IAEA 의장을 맡는다. 또 다른 로스차일드 가 사람인 알렉산더 색스는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원자폭탄 서간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인물로, 리먼브러더스 부사장을 지냈다.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러더스 모두 로스차일드 일족의 근친이다. 책은 이들의 계보와 조직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그들이 중심이 된 ‘원자폭탄’과 ‘원전 카르텔’의 진상을 파헤친다.
1957년 10월 26일 원자ㆍ수소폭탄 실험을 반복해온 AEC의 주도하에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UN 자치 기구로서 출범한다. 이들이 주창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원자ㆍ수소폭탄을 보유한 미국과 소련, 영국(이후 추가되는 프랑스, 중국)이 이들 무기를 독점한다는 의미에 다름아니다. IAEA는 그 시작부터가 군사적 조직이었으며, 핵의 독점을 목표로 하는 국제 신디케이트 조직으로서 원자력산업의 세계적 권위 기구로 자리매김한다. 이로써 방사능 위험성과 관련된 모든 실권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IAEA는 세계보건기구WH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방사선방호학회IRPA 등의 방사선 학회, 그리고 영국, 미국, 유럽, 일본, 캐나다 등 각국 원자력 마피아가 주도하는 기구에서 자금을 조성해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를 지원했다. ICRP가 피폭 안전론을 전파하는 광고탑 역할을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이들의 네트워크는 일본 내 원자력산업 및 원자력 학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베 신조가 존경한다는 그의 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A급 전범 용의자)는 원자력발전소 입지 심사 지침을 정한 과학기술청 장관을 지낸 사토 에이사쿠의 친형이다. 기시 노부스케가 1959년에 추진한 도카이촌의 원자로로부터 일본의 원자력발전 시대는 시작되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아베 신조는 후쿠시마 이후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을 감행했다. 저자는 “조부의 전쟁범죄 때문에 미국에 목덜미를 잡힌 아베 신조는 ‘주일미국대사’ 역할을 하면서 백악관을 향해 꼬리를 흔드는 속국 메커니즘을 계승 중”이라며 날 세워 비판한다. 미국의 거대 군수 기업 록히드마틴은 미 정권과 결탁해 헤노코 신기지 건설 계획 및 오스프리 배치로 일본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또한 일본 내 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해외로 반출되어 프랑스, 파키스탄 등에서 핵탄두와 원자폭탄의 재료로 유용되었다.(이스라엘, 이란, 토르코, 터키, 이라크, 인도, 파키스탄, 중국, 타이완, 한국, 북한과 일본의 정세와 핵 위기 역시 이 같은 네트워크 차원에서 전체적으로 조망된다.)
1981년부터 미일 공동 연구기관인 방사선영향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한 시게마쓰 이쓰조는 1986년 체르노빌 사고 발생 후 IAEA가 조직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피해 조사단을 단장을 맡은 인물이다. 그는 피폭지역을 방문한 뒤 보고서에 “주민에게 이렇다 할 방사능 피해는 전혀 없다”면서 “원인은 방사능 공포증에 있다”고 적어 전 세계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는 ICRP에서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A급 전범 용의자 사사카와 료이치의 사사카와재단(지금의 일본재단)으로부터 후원을 받았고, 작성된 보고서는 WHO와 IAEA로 보내져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와 손잡고 체르노빌 피폭 현지 파견 전문가를 이끈 이들은 나가타키 시게노부와 야마시타 이치였다.
야마시타 이치는 일본 내에서 원자력 전문가로 활동하며 나가사키대 교수, WHO 긴급피폭의료협력연구센터 센터장, 일본갑상선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후쿠시마현 방사능건강위험관리 고문으로 취임한 그는 “안정 아이오딘제를 복용할 필요가 없다. (…) 갑상선에 이상이 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단언했고, “일본 원자로에서 수소 폭발로 인해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는 일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는가 하면, “방사선의 영향력은 방긋방긋 웃는 사람에게는 그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까지 했다. 나가타키 역시 안전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책이 쓰인 2015년까지도 동일본 아이들에 대한 건강검진에 반대한 인물이다. 그들과 긴밀한 관계인 또 다른 전문가 다카무라 노보루, 가미야 겐지도 마찬가지로 일본 내 방사선 관련 주요 자리를 꿰차고 ‘20밀리시버트는 물론 100밀리시버트 이하도 문제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포스트 후쿠시마의 선택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죽음의 재’는 원자폭탄 약 1000발에 해당되는 양이다. 미국 및 유럽 연구자들이 제시한 방사성 세슘 방출량 추정치인 97만 퀴리는 네바다 핵실험 때 방출된 양의 6배.(다만 인간의 거주지역에 떨어진 양은 이의 5분의 1이나, 여전히 네바다 핵실험 때에 비해 20퍼센트가량 더 많다.) 후쿠시마현 내 귀환 가능 지역의 방사능 피폭량은 네바다 핵실험에 동원된 병사들 가운데 대량의 암 환자가 발생한 8.0~9.5밀리시버트보다 2배 이상 높다. 핵실험과 원전에서 방출된 방사성 물질은 다르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출된 방사성 가스와 네바다 핵실험에 의한 죽음의 재는 200종 이상의 동일한 방사성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던 2015년 무렵에도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계속해서 대량의 방사능이 방출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국회는 ‘특정비밀보호법’을 통과시켜 방대한 양의 원자력 및 군 관련 자료를 감추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사고와 피해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피해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도쿄에 사는 저자의 집 근처 공원 흙만 해도 1제곱미터당 9만 2235베크렐의 세슘137이 검출됐다. 체르노빌 위험 지대 제 4구역(엄중한 건강 관리가 필요한 구역)에 해당되는 수치다.
후쿠시마현립의과대학은 대규모 주민 건강관리 조사를 실시해 갑상선암 발병이 수십 배로 급증한 점이 밝혀졌다. 아이들은 방사성 물질에 피폭됐고 72배라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비율로 암 발병 피해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전문가 집단은 “전보다 더 정밀하게, 전원을 대상으로 검사를 했기 때문에 발견된 암의 건수가 증가했을 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설명을 내놓았다.
ICRP는 후쿠시마 사고 10일 뒤인 2011년 3월 21일 일본 정부에 긴급 성명을 내 피폭 한계치를 말도 안 되게 높은 수치인 20~100밀리시버트로 조정할 것을 권고한다. 기존 기준치는 연간 1밀리시버트였다. 일본 정부가 채택한 기준은 20밀리시버트.(체르노빌 사고 당시 ‘강제적 피난이 요구되는 피폭 한계치가 연간 5밀리시버트였다. 일본 내 원전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암이나 백혈병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산재로 인정되는 기준도 연간 5밀리시버트부터다.) 원전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의 당시 피폭 한계치는 100밀리시버트에서 250밀리시버트로 상향 조정됐다. 패닉이 일본 전역으로 퍼질 것을 우려한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현 주민 200만 명과 동일본 주민을 희생양 삼아 피폭자들을 방치한 것이다. 방사능이 위험한 이유는 그 장기성과 농축성에 있다. 생물체의 몸 안에는 수천, 수만 배에 달하는 피폭량에 상응하는 농축이 일어난다. “결국 지구상의 공기나 물은 극소량의 방사능에 오염되었을 뿐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어마어마하다는 말이다.”
원자력규제청 구성원의 80퍼센트는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자들이다. 이들은 원자력 용어를 통째로 암기해 문서나 확인할 줄 아는, 현장에 무지한 관료 집단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일본에서 통용되는 ‘방사능 섭취량(베크렐)×실효 선량 계수=피폭량(시버트)’라는 공식도, 지진에 비유하면 ‘규모magnitude’와 ‘진도’를 혼용한 근거 없는 계산법이다. 베크렐을 시버트로 환산해 체내 피폭량을 추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지역ㆍ지리적 조건에 따라, 피폭자의 성별, 연령, 체질, 건강 상태 등에 따라서도 피해는 상이하게 나타난다.
이런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저자는 일본에 또 한 차례의 대지진이 닥칠 것을 우려한다. 태평양 판의 격심한 운동으로 발생한 지각변동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일으킨 것처럼 또다시 커다란 재해를 불러올 수 있다. 실제로 사쿠라지마섬, 기리시마산, 니지마섬, 온타케산, 자오산, 하코네산 등에서 지진 및 대분화가 발생했다. 지진판의 연쇄 충돌 현상은 타이완-인도네시아-필리핀-중국-네팔-인도-이란-터키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위기에 원전을 재가동하고, 심지어는 새로 지을 것인지, 아니면 더 저렴하고 안전한 전력 구조로 전환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원전은 근절시킬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실제로 멈춰 있는 원전의 유지 및 관리, 재가동을 위한 안전 대책 비용으로 수조 엔을 쏟아붓던 원전 비율이 높은 전력 회사들은 경영 악화로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했지만, 원전 비율이 낮았던 호쿠리쿠전력과 주고쿠전력은 요금 인상을 하지 않았다. 저자는 전력 회사 및 소비자가 원전을 단념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특별 손실을 감수한 뒤 새롭게 재출발한다면 모두가 아름다운 미래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한다. 국가 차원에서 원자력 신디케이트에 막대한 돈을 투입해온 일본의 전력 자유화는 그런 점에서 국제적 신디케이트의 연결고리를 끊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게 히로세 다카시의 견해다. 북핵과 원전으로 양분된 한국의 핵논의도 원폭과 원전이 쌍둥이 재앙임을 상기하면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지진 발생 지역, 지진 발생 위험 지역의 원전 재가동 문제는 생명권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며, 이를 논의할 때 안전보다 더 중요한 조건은 없다. 우리는 또한 그 안전을 논의할 때 제시되는 연구 결과와 전문가의 발언, 정부의 입장이 어떠한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를 엄정하고 면밀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도쿄 최후의 날』에서 저자가 실증하고 논증하는 사안들은 탈핵이 가능성의 문제이기 전에, 의지의 문제임을 확인시켜준다.
책속으로
피해 지대란, 최근 수많은 피해 자료가 보고되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및 벨라루스 등의 방사능 오염 지대를 가리키는 게 아니다! 바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피해지역인 동일본과 거의 동일한 양의 방사능에 피폭된 ‘미국 서부의 오염 지대 세 개 주’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게다가 이들 오염 지대의 면적은 정확히 일본 전 국토의 면적과 거의 동일하다. (…) 이것이 미국 전역을 뒤흔드는 엄청난 문제로 부상한 것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따라서 후쿠시마 사고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체내에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암 잠복기’에 있는 셈이다.
---「들어가며」중에서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공포에 떨며 집에서 뛰쳐나가 황급히 차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음식도, 물도 없는 상황이었다. (…) 정전에 통신망도 불통이라 유선전화, 휴대전화 모두 사용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현 내의 휘발유도 바닥이 나고 지진으로 도로 곳곳이 함몰된 데다, 해일이 덮쳐 지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부분의 자동차가 국도로 몰렸기 때문에 어디를 봐도 염주처럼 늘어선 차량이 빼곡했으며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인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외부로부터 휘발유 및 구호물자를 전달받기로 했으나 원전 사고로 방출된 방사능을 이유로 무산되었다. 도와주러 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1장 일본인의 체내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중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모두 피해자’다. 이 둘이 서로 싸우는 것은 ‘후쿠시마 사고의 책임자’를 어부지리로 구름 뒤에 숨어버리게 만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농가와 어민 등 생산자를 비롯한 주민이 받은 엄청난 피해는 모두 책임자가 배상해야 한다. 이때 배상의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에서 실증하는 방사능에 의한 실질적 손해다.
---「2장 어둠 속에 묻혀 사라지는 진실」중에서
인체 실험의 목적은 피폭 데이터를 손에 넣음으로써, 제3자의 발언을 용납하지 않는 방사선의 권위자가 되어 ‘안전 기준치’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데 있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들 자신이 ICRP와 UN 조직에 군림한 이후 벌어진 일들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한다. (…)‘권력을 좇아 온 이들’은 원자폭탄을 개발하려던 맨해튼 프로젝트의 애초 목적을 강제로 원자력 개발 쪽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AEC, ABCC, ICRP, IAEA, WHO, 원자력규제위원회NCR, 미국에너지부DOE 등의 조직을 만들어내면서 방사능의 안전성을 선전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며, 원자력의 권위자로 군림해왔다. ---「6장 산업계의 끔찍한 인체 실험」중에서
체르노빌의 아이들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 저자 히로세 다카시|역자 육후연|프로메테우스 |2011.04 원제 チェルノブイリの少年たち : ドキュメント ノベル
목차
운명의 금요일
죽음의 대초원
둘째 날 밤의 방문객
위험지대로부터의 탈출
외로운 소년
검문
병동
수색
키예프의 하늘 아래
탈출
미래의 주인공들에게
책은 결코 소설적 재미나 구성에 치중한 책이 아니다. 그보다는 핵사고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망가뜨리는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더불어 원전 건설의 위험성과 무모함을 부각시키려 애쓴 작품이다. 책은 1986년 4월 26일 운명의 그 날, 우크라이나의 밤하늘에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키예프 북쪽에 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 원자로에서 방사능이 누출되었던 그 때, 죽음의 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하였지만 끝내 죽음을 맞게 되는 이 비극의 중심엔 발전소 책임자인 안드레이 세로프의 가족이 있다. 당국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화재 진압을 위해 발전소로 돌아갔다가 마침내 죽게 되는 아빠 안드레이, 그러나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제일 먼저 희생되고 가장 큰 고통을 당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그들은 인생을 채 꽃 피워보지도 못한 채 죽음과 맞닥뜨려야 했고, 살아남은 자는 질병과 싸워야 했으며 미래마저도 저당 잡혀야 했다. 아이들은 쓰러져 죽고 가축들도 죽어나가고,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이 스러져간다. 간호사에게 오빠를 찾거든 건강하게 살아 있다고 전해달라며 차가운 시체가 되어 버린 딸 이네사, 사고로 눈이 실명되어 낯선 병원에 수용되었다가 당국의 지시에 의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끝내 생을 마감하는 아들 이반. 끝으로 남편을 잃은 아내 타냐는 아이들만이라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그녀에게 남은 것은 부러진 팔과 방사능에 오염된 몸뚱이, 그리고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된 자식들의 생사를 끝내 알지 못해 애끓는 심장이다.
이 책은 체르노빌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그리고 무기력하게, 또 억울하게 죽어나가고 있었던 지를 세세히 묘사하며 핵의 위험성을 알리는 한편으로 당시 소련 당국이 얼마나 비인도적으로, 그리고 무책임하게 그들을 방치하고 또 이 사고를 은폐하려 했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후기에서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핵발전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떤 비극 속으로 몰고 가는가”를 알리고 싶어서였다고 적고 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건은 막은 올랐지만 전혀 내릴 생각이 없는 연극처럼, 시작은 있어도 끝이 없다. UN보고서에 따르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영향은 최소한 2010년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했고 그 이후에도 그것이 멈출지는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이 사건을 ‘과거’라 치부하고 무시하며 안심하고 생활해도 되는 것일까. 그런 점을 인식한다면, 이 책은 오래 전 우크라이나만의 이야기도, 현재 일본의 이야기만도 아닌, 바로 우리 모두의 현재와 미래에 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때 하늘을 덮었던 버섯 구름, 그때 날라간 방사능 먼지는 전 세계 곳곳에 퍼져 지금도 서식하고 있다. 결국 체르노빌 사고는 그때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게다가 전 세계에서 아직도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고 건설 중인 이 시점에서 누구라도 안전하거나 자유로울 수는 없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이 분명 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등장인물들이 결코 허구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이 책의 저자 히로세 다카시는 강조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고. 원자력 발전소 추진책은 에너지 부족 문제가 아니라 독점 자본의 이익과 결부된 문제인 거라고. 진실은 그렇게 뒤바뀌어 감춰졌다.
내가 처음으로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된 계기는 십여 년 전에 신문에서 보았던 ‘원자력의 날’ 특집기사였다. 기사에는 원자력 발전소의 미래상을 그리며 앞으로 세계에서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수천 기로, 1기 당 사고의 위험성은 2만 년에 한 번이라고 나와 있었다. 얼핏 읽어 보면 2만 년에 한 번은 극히 적은 횟수 같이 여겨지지만, 만약 2천 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있다고 계산하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된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 분야를 공부한 탓도 있겠지만, 당시 나는 방사선 관련 서적 번역일도 꽤 했기 때문에 방사능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특집 기사를 읽은 나의 첫인상은 ‘이렇게 무서운 내용을 신문은 태연하게 잘도 쓰고 있구나’였다. 그 후 얄궂게도 원자력 발전소에 관한 문헌의 번역 의뢰가 나에게 쇄도했다. 그들 문헌에는 예외 없이 핵발전의 위험성이 극명하게 씌어 있었다. 번역을 하면서 점점 무서워진 나는 원자력 발전소 문제에 결론을 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책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금 사람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끝장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체르노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대사고’라는 말이 여전히 실감나지 않겠지만, 실제로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를 알게 된다면 원자력 발전소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위해 어쩌면 실제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들을 소설 형태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가 원자력 발전소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고자 하는 것은 원자력공학자가 되기 위함이 결코 아니다. 그저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핵발전이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떤 비극 속으로 빠뜨려 가는가를 절실히 알리고 싶었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2015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역자 김은혜|새잎 |2011.06 / 원제 Voices from Chernobyl : The Oral History of a Nuclear Disaster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산드로브나 알렉시예비치(СВЕТЛАН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АЛЕКСИЕВИЧ)
1948년 우크라이나 스타니슬라브(1962년 이바노-프란콥스크로 개명)에서 벨라루스인 아버지와 우크라이나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민스크에 있는 벨라루스 국립 대학교 언론학과를 졸업하고 여러 지역 신문사와 문학예술잡지 《네만》기자로 일했다. 그 후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간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기술했다.
10년 넘게 집필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97년 처음 출간되었고 2006년 미국 비평가협회상을 받았다. 2008년 개정판에는 검열 때문에 초판에서 제외됐었던 인터뷰와 새로운 인터뷰가 더해졌다.
그 외 저서로는 1985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 《마지막 증인. 어린이를 위한 솔로》, 1989년 《아연 소년들》, 1993년 《죽음에 매료되다》 등이 있다. 알렉시예비치의 저서는 22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수십 편의 연극과 다큐멘터리를 위한 대본으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영원한 사냥의 아름다운 사슴》을 집필 중이다.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의 최고 정치 서적 상(1998), 국제 헤르더 상(1999),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평화상(2001) 등을 수상했다.
한국어판 서문 |
저자의 독백 인터뷰 |
역사적 배경 |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하나
ChapterⅠ 망자의 땅
기억의 이유 | 산 사람과도 죽은 사람과도 대화할 수 있다 | 문에 기록된 삶 | 같이 울고 밥 먹자고 영혼이 하늘에서 부른다 | 닭도 지렁이를 찾으면 기뻐하고, 솥에서 끓는 것도 영원하지 않다 | 가사 없는 노래 | 오래된 두려움과 여자들이 말할 때 남자가 조용히 있던 이유 | 사람은 악을 통해서만 완벽해지며 솔직한 사랑의 말에 마음을 열 만큼 단순하다 | 군인의 합창
ChapterⅡ 조물주
오래 된 예언 | 달의 풍경 | 그리스도가 넘어져 소리치는 모습을 볼 때 이가 아팠던 증인 | 걷는 먼지와 말하는 흙 | 우리는 체호프와 톨스토이 없이 살 수 없다 | 성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했다 | 무제 : 고함 | 두 목소리 : 남자와 여자 | 전혀 낯선 것이 내 속으로 기어들어온다 | 데카르트 철학과 부끄럽지 않으려 오염된 샌드위치를 먹은 이야기 | 오래 전에 숨어버렸지만 다시 나갈 방법도 만들지 않았다 | 막힌 우물 옆에서 | 역할과 슈제트에 대한 갈망 | 민족의 합창
ChapterⅢ 슬픔의 탄식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 줄 몰랐다 | 흙이 되는 것은 너무 쉽다 | 위대한 나라의 상징과 비밀 | 무서운 일은 조용하고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 러시아인은 언제나 무언가 믿으려 한다 | 위대한 시대의 작은 생명은 보호 받지 못한다 | 한 때 우리가 사랑했던 물리 | 콜리마,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를 넘어서 | 자유와 평범한 죽음을 꿈꾸다 | 못생겨도 사랑할 아이 | 흔해 빠진 삶을 이해하려면 뭔가 덧붙여야 한다 | 벙어리 군인 | 저주받은 영혼의 질문 :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의 탓인가 | 소비에트를 지킨 자 | 어린 올렌카를 만난 두 천사 | 한 사람의 거대한 권력 | 희생양과 제사장 | 어린이 합창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둘 | 맺음말 대신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는 단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벨라루스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실화다. 지은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 책을 위해 무려 10여년에 걸쳐 100여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초판에서 몇몇 인터뷰를 검열로 인해 실을 수 없었을 정도로 이 책은 체르노빌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 저자가 서문에서 이야기하듯이 이 책은 미래를 보여준다. 체르노빌 사고는 과거에 일어났지만 지금 후쿠시마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의 미래이다. 그래서 미래의 연대기이다.
▷ 국경이 의미가 없는 원자력 공포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에서 일어났지만 우리는 마치 사고 당사자인양, 언론의 소식에 귀를 기울인다. 원자력 공포 앞에 국경은 의미가 없다. 벨라루스는 어땠을가? 인구 1천만 명의 작은 나라 벨라루스는 놀랍게도 원전이 하나도 없다. 단지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국경에 인접했기 때문에 국토의 23퍼센트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되었다. 오염지역 거주민은 210만 명이며, 이 중 어린이가 70만 명이다. 방사선 피폭은 벨라루스 국민의 주요 사망 원인이다. 계속되는 저준위 방사선의 영향으로 암, 지적장애, 신경정신 질환 유전자 돌연변이의 발생률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체르노빌 이후에 태어난 아무 죄없는 아이들이 이런 병을 앓으며 살아가고 있다.
소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실제 이야기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준다. 소방대원의 아내, 심리학자, 마을 주민, 아버지, 군인, 엄마, 고멜 국립대학교 교수, 해체작업자, 사냥꾼, 카메라 감독, 마을 간호장, 언어학 교사, 가정실습 교사, 기자, 벨라루스 의원, <체르노빌의 아이들에게> 재단 대표, 농업학 박사, 화학 엔지니어, 환경 보호 감독, 역사학자, 해체작업자의 아내, 사진작가, 모길료프 문화예술대학 교수, 전 슬라브고로드 당 지역 위원회 일등서기관, 전 벨라루스 과학 아카데미 핵에너지 연구소 소장, 모길료프 여성 위원회 <체르노빌의 아이들> 대표 등 100여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체르노빌, 자신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남겨줄 것인가?
체르노빌의 고통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리고 안전을 장담했던 일본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 현재 전세계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중이다. 이중 일본에는 55기, 우리나라에는 21기, 중국에는 13기가 있으며, 중국은 추가로 원전을 건설 중이다. 한반도는 원전으로 둘러싸인 셈이다. 독일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남겨줄 것인가?
책속으로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당기는데 충분한 개수다. 그 중 20퍼센트가 지진 위험 지역에 있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의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 흙과 집은 주인을 잃은 채로 남아 있고, 들판은 다시 숲으로 변하고 있으며, 사람의 집에 동물이 살고 있다. 수백 개의 죽은 전깃줄과 수백 킬로미터의 도로가 의미 없이 연결되어 있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한국어판 서문 12-13쪽
군사적 핵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것이지만, 평화적 핵은 집집마다 있는 전구 같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군사적 핵과 평화적 핵이 쌍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 공범자라는 사실을……. 우리는 더 똑똑해졌고, 전 세계가 더 똑똑해졌지만 체르노빌이 발생한 후에야 그렇게 됐다. 오늘날 벨라루스인들은 살아 있는 ‘블랙박스’처럼 미래를 위해 정보를 기록하고 있다. 모두를 위해…….- 저자의 독백인터뷰 21쪽
계속 죽고, 갑자기 죽는다. 길가다가 쓰러지고, 잠들고는 깨어나지 않는다. 간호사에게 꽃을 가져가다 심장이 멎는다. 버스 정류장에 서 있다가…….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가 무엇을 견뎌냈는지, 무엇을 보았는지, 아무도 제대로 물어보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무서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나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내가 한 사랑에 대해…….- 사람의 외로운 목소리, 하나 52쪽
로봇이 죽어갔다. 과학자 루카초프가 화성탐험을 위해 만든 그 로봇들이……. 사람을 닮은 일본 로봇도 높은 방사선 수치 때문에 그 속이 다 타버린 것 같았다. 고무옷을 입고 고무장갑을 낀 군인들이 뛰어다녔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정말 작았다.
나는 모든 것을 머리에 새겼다. 아들에게 이야기해 주려 했다. 집에서 아들이 물었다.
“아빠, 거기 어땠어요?”
“전쟁이야.”
다른 말을 찾지 못했다.
- 군인의 합창 131쪽
아직은 모르지만, 언젠가 물어볼 것이다. “왜 나는 사람들이랑 달라요?” “왜 나는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없어요?” “왜 나는 아이를 낳을 수 없어요?” “왜 모두한테, 나비, 새한테도 일어나는 일이 나에게는 안 일어나요?” 나는……. 나는 증명해야만 했다. 딸이……. 나는 증명 서류를 받고 싶었다. 딸이 자라서 이 사실을 알도록. 바로 나와 내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사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또 울음을 참는다) 4년을 싸웠다. 의사들과, 공무원들과 싸웠다. 높은 사람들과 면담도 했다. 힘들게 노력했다. 4년 만에 딸이 앓는 무서운 병이 전리 방사선, 저준위 방사선과 관련이 있음을 확증하는 진단서를 받아냈다. 나는 4년 동안 거절당했고, 그들은 내 딸이 소아 장애를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아 장애라니? 내 딸이 앓는 장애는 체르노빌 장애다.- 오래된 예언 136쪽
원래는 조용하고 말 없을 것 같은 남자아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 거기 남은 동물들을 도와주면 안 됐어요?”
그러게, 왜? 나도 생각 못 해본 거였다. 그래서 대답도 못 했다. 우리가 하는 예술은 사람의 고통과 사랑에 대한 것이지, 모든 생물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사람만! 다른 세계, 동물, 식물에까지 몸을 낮추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 않은가. 다 죽일 수 있다. 요즘 세상에는 그런 게 더는 판타지가 아니다. 사고 후 처음 몇 달 동안 사람 이주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일 때, 동물도 같이 이주시킬 프로젝트가 논의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모두를? 땅 위를 걸어 다니는 동물들은 어떻게 시도라도 하겠지만, 땅속에 사는 벌레, 지렁이는? 저 위에, 하늘에 있는 것들은? 참새, 비둘기를 어떻게 대피시키지? 어떻게 하지? 그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성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했다 175쪽
그런데 제가 알고 싶은 건, 누가 잘못했느냐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누가 잘못했는지 밝혀야 합니다. 도대체 누구 탓일까요? 과학자? 발전소 직원? 아니면 세상을 그런 식으로 보는 우리 탓? 물질적인 욕구를, 가지려는 욕구를 멈추지 못한 우리 탓? 범인을 잡았습니다. 발전소 소장과 그날 당직을 섰던 기술자들입니다. 과학 잘못입니다. 그런데 왜? 대답해주세요,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 만들어낸 자동차와는 안 싸우면서 왜 발전소와는 이렇게 싸웁니까? 왜 핵 발전소를 다 폐쇄하라고 요구하고, 원자력 전문가들에게 소송을 걸려 합니까? 그리고 그들을 왜 저주합니까?- 두 목소리 : 남자와 여자 185p
모두 전쟁과 비교한다. 하지만 전쟁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전쟁 이야기를 해주셨고, 내가 직접 책에서 읽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는? 우리 마을에는 묘지가 세 개 남았다. 첫 번째 묘지는 오래된 묘지로 사람이 묻혀 있고, 두 번째 묘지에는 우리가 버려 총살 당한 개와 고양이, 세 번째 묘지에는 우리 집이 묻혀 있다.
우리 집까지 장사지냈다. - 민족의 합창 249~250p
다른 한 사람은 위에서 구멍을 뚫었는데, 내려갈 때가 되어도 계속 망치질을 하더이다. 우리가 손을 흔들어 내려가자고 신호를 보내도 아예 무릎을 꿇고 계속 내리쳤소.
그 자리에 구멍을 뚫어 쓰레기를 내려보낼 배수관을 설치해야 했기 때문이오. 구멍이 뚫리기까지 일어나지 않았소. 1천 루블의 보상금을 받았소. 당시 돈으로 오토바이 두 대 값이었소. 지금 그는 1급 장애인이오. 그런 거였소. 두려움에 대한 보상은 즉각 주어졌소. 하지만 그리고 죽어가는 거였소. 지금 죽어가고 있소. 끔찍한 고통으로 괴로워하고 있소. 지난 휴일에 그를 보러 다녀왔소.
“내 소원이 뭔지 물어봐 줘.”
“뭔데?”
“평범한 죽음…….” - 자유와 평범한 죽음을 꿈꾸다 319~320p
나는 집에만 있어요. 나는 장애인이에요.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에 오면 할아버지와 내 연금을 가져 와요. 우리 반 애들이 내가 백혈병 걸렸다는 걸 알아냈을 때, 내 옆에 안 앉으려 했어요. 나한테 닿을까 봐 무서워했어요. 내 손을 한 번 봤어요. 내 책가방과 공책도 봤어요. 아무것도 안 바뀌었어요. 그런데 왜 나를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께서 그러는데요, 우리 아빠가 체르노빌에서 일해서 내가 아픈 거래요. 나는 아빠가 갔다 온 다음에 태어났는데도요.
그래도 난 아빠가 아주 좋아요. - 어린이 합창 386p
규모 8.8 이상 '거대 지진', 가까운 미래 일본 '홋카이도' 앞바다 덮칠 수 있다2017-12-21
지난 2011년 일본 열도를 강타했던 '동일본 대지진'보다 규모가 큰 대형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 정부의 지진조사위원회는 지난 19일(현지 시간) 홋카이도 연안 쿠릴 해구에서 동일본대지진과 같은 초거대지진이 30년 이내 일어난 확률이 최대 40%라고 발표했다. 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진도 8.8 이상의 거대 지진이 예상되는 곳은 도카치 앞바다에 길이 300km 이상의 진원 지역이다.
일본 지진조사위원회
조사위는 "이 일대에서 평균 340~380년 간격으로 큰 지진이 반복해서 있었다"며 "1611~1637년 사이 마지막 지진이 발생한 이래 약 400년이 지난 만큼 대지진이 임박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홋카이도에서 동일본 대지진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당부했다.
앞서 홋카이도대학 등은 "400년 전 이곳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땐 동쪽 태평양 연안으로부터 4km 거리까지 20m 이상 높이의 쓰나미가 밀려왔던 것으로 보인다"는 내륙 지역 퇴적물 조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GettyimgaesKorea
히라타 나오시 도쿄대 교수는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에 근거해 재난 대비책을 검토하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2011년 3월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은 2만여 명이 넘는 사상자를 냈으며,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규모 9.0의 강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18.3.11 중앙일보
18.3.11 오마이뉴스
Patoma(비가 내리네) - Haris Alexi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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