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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서평

계급 천장과 아이들의 계급투쟁

by 이성근 2024. 3. 10.

계급 천장 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402

목차

추천의 글

일러두기

샘 프리드먼 대학/대학원 교수런던정경대학 사회학 교수로 계급과 불평등 문제, 특히 현대 사회 계급 분화의 문화적 차원에 관해 연구한다. 영국 사회이동성위원회Social Mobility Commission(SMC) 위원, 영국 사회학 저널The British Journal of Sociology공동 편집자로 활동하며, 런던정경대학 국제불평등연구소에서 불평등과 사회과학석사과정 지도교수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코미디와 구별짓기Comedy and Distinction, 21세기의 사회 계급Social Class in the 21st Century(공저) 등이 있다

대니얼 로리슨- 대학/대학원 교수 미국 스워스모어칼리지 사회학 조교수이자 영국 사회학 저널편집장으로 계급 불평등과 사회 이동성, 정치 참여와 캠페인, 정치에서의 인종 및 계급 불평등에 관해 연구한다. 2021~2023년 카네기 펠로우로 선정되었다. 지은 책으로 정치 만들기Producing Politics등이 있다.

 

머리말

계급의 (때 이른) 종말 󰠐 사회 이동, 그리고 불평등의 정치 󰠐 정상에 대한 공정한 접근 󰠐 오늘날 영국의 계급 태생과 목적지 󰠐 부르디외와 계급 태생의 긴 그림자 󰠐 유리 천장의 교훈 󰠐 진입에서 성공으로 󰠐 이 책의 구성

1장 진입하기

특권의 재생산 󰠐 엘리트 직종 전반에 걸친 접근성 󰠐 가업을 이어받다: 미시 계급 재생산 󰠐 계급 재생산 설명하기: 교육의 역할 󰠐 계급을 넘어선 배제 󰠐 계급, 인종, 성별의 교차 󰠐 접근에서 진전으로

2장 성공하기

계급 임금 격차 󰠐 계급 임금 격차의 규모 󰠐 이중의 불이익 󰠐 계급 임금 격차가 발생하는 곳

3장 계급 임금 격차 파헤치기

특권층에 나이 많은 백인 남성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 교육은 정말 위대한 평등 기제일까? 󰠐 그렇다면 노력, 기술, 경험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 누가 런던에서 일하는가 󰠐 적합한 자리 찾기: 직업 분류 󰠐 설명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명

4장 엘리트 기업 안으로

전국 규모의 방송사 6TV 󰠐 대형 다국적 회계법인 터너 클라크 󰠐 건축 회사 쿠퍼스 󰠐 연기자 󰠐 계급 임금 격차에서 계급 천장으로

5장 엄마 아빠 은행

가족의 재산 󰠐 돈이 결정한다: 타입캐스팅에 대한 대응 󰠐 새는 파이프라인: 분류, 분리, 정체 󰠐 특권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쿠퍼스와 터너 클라크에서는 돈이 덜 중요하다

6장 도움의 손길

파트너가 되는 길: 경험의 축적 󰠐 방송업계는 꽤 중세적이다: 6TV에서의 후원과 비공식적 채용 󰠐 반대의 상황: 쿠퍼스에서의 후원 󰠐 인맥과 불평등

7장 적합성

유리 구두 󰠐 당신은 파트너 재질인가? 회사 생활에서 세련됨의 힘 󰠐 학습된 비격식성 󰠐 헛소리 간파하기: 실용적인 건축가들의 회사 쿠퍼스 󰠐 능력은 모호하다: ‘적합성의 횡포

8장 정상에서의 전망

엘리트는 어떻게 정상을 봉쇄하는가 󰠐 헤겔이라니! 외주제작국의 고상한 문화 󰠐 발화로 드러나는 계급 구분: 표준 발음의 힘 󰠐 고객과의 문화적 유사성 󰠐 높은 자리 󰠐 거울에 비친 능력

9장 자기 제거

기회를 회피하기 󰠐 안전한 길을 택하기 󰠐 더 나아가는 것은 무리다 󰠐 상승을 위한 감정적 비용

10장 계급 천장: 사회 이동성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

계급 천장: 종합적 이동성 분석 󰠐 스냅숏을 넘어: 계급 태생의 긴 그림자 포착하기 󰠐 맥락 속 자본

11장 결론

보이지 않는 (위로 올려주는) 󰠐 능력의 퍼포먼스 󰠐 같은 깃털의 새들 󰠐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 󰠐 이것이 왜 중요한가 󰠐 이것이 사회학에 왜 중요한가 󰠐 몇 가지 추가적인 설명 󰠐 우세한 바람

에필로그

계급 천장을 부수는 10가지 방법

서평

계급은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또 언제까지 중요한가

방송, 회계, 건축, 연기 등 엘리트 직종에 존재하는 계급 천장을 드러내다

2014년 영국 정부는 최대 규모의 고용조사인 노동력조사(LFS)에 처음으로 계급 태생(class origin)에 대한 질문을 도입했다. 그 핵심 내용은 설문조사 대상자가 14세였을 때 부모 가운데 주 소득자인 사람의 직업을 묻는 것이었다.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과 대니얼 로리슨은 그 결과를 포함한 3년간의 LFS 데이터를 취합하여 108000명의 개인과 18000명의 엘리트 직종 종사자의 대표 표본을 확보했다. 이 표본을 영국 정부의 직업 분류 체계인 국가통계사회경제분류(NS-SEC)에 기초해 크게 세 계급, 전문직 및 경영직(=상위 중간 계급=특권층), 중간직(=하위 중간 계급), 노동 계급으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조사 대상자들의 계급 태생(부모의 직업)이 계급 도착지(본인의 직업)로 향하는 흐름을 살펴보았다. 영국 사회에서 출신 계급의 힘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람들의 예상 혹은 바람과 달리, 특권층 출신이 노동 계급 출신보다 엘리트 직종(의료, 법률, 금융, 회계, 건축, 방송 등)에 종사할 확률이 약 6.5배 높았다. 분야별로 개방성의 정도가 크게 달랐는데, 예를 들어 특권층 출신이 의사가 될 확률은 노동 계급 출신에 비해 12배 더 높은 반면 엔지니어가 될 확률은 2배였다. 더 놀라운 발견은 계급 임금 격차였다. 엘리트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 계급 출신은 같은 일을 하는 특권층 출신 동료보다 평균 16퍼센트 더 적게 번다. 격차가 가장 큰 금융과 법률 분야의 경우 연평균 약 3,0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여기에 여성, 장애인, 인종-민족적 소수자 등 다른 불평등의 축이 더해지면 이중, 삼중의 불이익에 직면하게 된다.

두 저자는 나이, 성별, 인종 등 인구통계적 요인, 출신 대학이나 학위 등급 등 교육적 성취, 근무 시간이나 직무 교육 수준, 재직 연수 등 객관적 능력지표를 비롯해 근무 지역, 기업의 규모 등 임금 격차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요인을 차례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 모든 요인을 종합해도 계급 임금 격차의 47퍼센트밖에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나머지 절반을 설명하기 위해 이들은 직장 내부로 들어간다. 대규모 설문조사로 확인할 수 없는 직장 내부의 역학, 출신 계급에 따라 임금과 승진에 차이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확인하기 위한 질적 조사를 시작한 것이다. 전국 규모의 방송사 6TV, 대형 다국적 회계법인 터너 클라크, 건축 회사 쿠퍼스의 직원들, 그리고 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연기자들까지 총 175명을 상대로 부모의 직업, 물려받은 경제 및 문화 자본, 본인의 학력과 경력, 소득, 회사 및 업계 특유의 문화나 인재상 등을 포함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결과 엘리트 직종마다 양상이 다르기는 했지만, 중간직이나 노동 계급 출신이 맞닥뜨리는 계급 천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방송사인 6TV는 직원의 67퍼센트가 특권층 출신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외주제작국의 경우 79퍼센트가 특권층 출신이었다. 외주제작국의 고위직만 놓고 본다면 90퍼센트가 특권층 출신이고 노동 계급 출신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회계, 건축, 연기 분야에서도 특권층 출신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능력을 펼쳐 보일 기회와 자리를 얻는 반면, 중간직이나 노동 계급 출신은 자주 야망이 부족하다거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내부의 언어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기회를 잃었다. 두 저자는 다양한 계급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구체적 직업 경험, 커리어 진전이나 실패의 결정적 순간, 감정적 난관과 자기성찰의 목소리를 들으며 계급 천장의 동인을 탐색해나간다.

능력은 계급화된 퍼포먼스다,.특권이 능력으로 오인되는 몇 가지 경로

이 책이 공들여 입증하는 것은 직업적 성취의 핵심 요건이라 여겨지는 능력이 사실상 매우 모호한 개념이며, 많은 직종에서 유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더 쉽게 획득하고 더 적합해 보이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이 학력이나 기술, 자격의 획득 같은 능력의 객관적 지표나 타고난 재능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것들이 식별되고 인정받는 방식이 특권층에게 유리한 쪽으로 형성되어 있어 노동 계급이나 중간직 출신은 동일한 역량을 가졌더라도 그것을 수행해 보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능력이라고 여겨지는 것의 많은 부분이 특정 계급의 문화, 언어, 취향, 행동 규범 등에서 비롯한 계급화된 퍼포먼스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저자들은 특권이 능력으로 오인되는 몇 가지 경로를 제시한다.

첫째는 엄마 아빠 은행이다. 특히 방송이나 연기처럼 불안정한 단기 계약과 저임금을 견뎌야 하는 직종에서는 부모의 재력이 커리어 진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런던에서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며 다음 오디션을 기다리는 일, 납작하게 희화화된 캐릭터를 거절하는 일, 무보수에 가까운 크리에이티브한 경력을 쌓아가는 일은 부모의 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163~164) 저는 항상 노동 계급 출신 피해자로 캐스팅되었습니다. () 매 맞는 아내, 마약 중독자 또는 자신의 잘못이나 부주의로 인해 아이를 잃은 사람 등의 역할을 했죠. () 예외 없이 상층 계급 남성 작가들이 지어낸 () 좀 더 용기를 내서 더 이상 이런 역할은 맡지 않겠다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바라는 만큼 용감하게 행동할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특히 런던에서 생계를 유지하려면요. - 미아(강한 스코틀랜드 억양을 가진 노동 계급 출신 여성 연기자

둘째로 문화적 유사성 혹은 동종 선호에 기초한 비공식적 후원을 들 수 있다. 인맥이나 연줄의 힘 같은 것은 지난 시대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업계에서 인재 발굴같은 중립적인 용어로 포장된 비공식적 후원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후원은 공식적인 승진 절차를 우회하여 임원급 고위 직원들이 유망한후배 직원을 발굴해고속 승진시키거나 진급에 필요한 경험을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때의 유망함은 업무 역량보다는 취향을 공유하고, 말이 통하고, 여가 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계급-문화적 매칭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계급-문화적 매칭은 특권을 능력으로 보이게 하는 세 번째 경로인 적합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회계법인의 최고위 직급인 파트너에 유독 적합해 보인다. 회계업계에서는 이를 파트너 재질(partner material)’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여기에는 표준 발음과 적절한 옷차림, 자연스러운 유머를 구사하는 세련됨’, 암묵적인 규범과 언어, 스타일을 체화한 학습된 비격식성같은 요소가 포함된다. 특정 계급의 모습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적합성의 이미지는 노동 계급 출신에게 특히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215) 회의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은 언제 발언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고 있어요. () 언제 대화에 끼어들고 개인적인 일화를 풀어놓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보면 예외 없이 더 상류층(더 나은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더 편하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떤 얘기를 하는지가 관건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얘기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어떻게 대화하고 상호 작용하는지, 일종의 언어적 신호와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 필립(노동 계급 출신, 회계법인 자문 부서 파트너)

이러한 계급 천장 효과는 고위직으로 올라갈수록 더 강력해진다. 엘리트 직종, 그중에서도 임원 환경에서는 고상한 문화혹은 체화된 문화 자본이라 일컬어지는 예술적 취향, 지적인 태도, 미적 성향 등이 울타리를 형성해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에게만 문을 여는 사회적 봉쇄가 일어난다. 그 결과 각 직업의 최상층에는 특권층 출신만 남게 되고, 결국 이들이 가장 능력 있는 사람들로 보이게 된다.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또 하나의 경로는 자기 제거. ‘자기 제거란 노동 계급이나 중간직 출신으로 엘리트 직종에 진출한 사람들, 즉 사회적 상향 이동을 경험한 사람들이 커리어의 어느 단계에서 기회를 회피하거나 더 안전한 길을 택하거나 정상에 근접한 시점에 더 나아가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을 뜻한다. 비즈니스나 정치의 영역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개인의 야망 부족으로 보며 자신감 키우기와 같이 개인을 뜯어고치는해결책을 내놓지만, 저자들은 이를 앞서 살펴본 모든 장벽에 대한 반응 또는 예상이자 사회적 상승을 꾀하는 과정에서 얻은 깊은 감정적 각인으로 본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들이 상승의 여정에서 치른 감정적 대가를 토로했다. 가족이나 친구를 배신했다는 죄책감,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완전히 속하지 못했다는 소외감, 언젠가는 정체를 들키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이 부분을 서술하며 저자들은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사회 이동성 증진이 마치 모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제시되는 것을 경계하며, 정서적 삶의 질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성공적인사회 이동이라는 것은 매우 불확실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계급 천장을 부수는 것은 유리 천장을 부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다

여러 불평등의 축을 함께 고려하는 교차적 관점의 중요성

이 책은 페미니즘에서 발전시킨 유리 천장개념을 계급 천장으로 재구성해 제안하고 있지만, 계급 천장이 유리 천장을 대체했다거나 계급이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불평등의 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저자들은 책 전반에 걸쳐 계급, 성별, 인종-민족, 장애 등 여러 불평등의 축이 함께 작용하여 개인에게 이중, 삼중의 불이익을 주는 현실을 강조하고 있으다. 특히 사례 연구 대상인 방송, 회계, 건축, 연기 분야에서 직종에 따라 불평등의 축이 어떻게 달리 작용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6TV는 흑인 및 민족적 소수자 직원의 비율이 전국 평균의 2배이고, 여성 직원이 명백한 다수를 형성하여 성별 및 인종-민족적 다양성 측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계급의 측면에서는 이 패턴이 역전되어 전 직원의 67퍼센트가 특권층 출신이며, 노동 계급 출신은 9퍼센트에 불과하다. 반면에 기술 전문성을 중심으로 승진과 보상이 이루어져 뚜렷한 계급 천장이 확인되지 않았던 건축 회사 쿠퍼스는 고위직인 파트너 가운데 인종-민족적 소수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대형 다국적 회계법인 터너 클라크는 직원의 48퍼센트가 여성이지만, 여성은 더 오랜 기간 자신의 전문성을 가시적으로 입증해야 파트너 자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승진에 요구되는 상급자의 비공식적 후원이나 중후함이라는 역량이 특권층 출신 남성에게 유리한 젠더화된 메커니즘이었기 때문이다.

(339~340) 서로 다른 환경에서 무엇이 가치 있게 여겨지는지를 주목하는 일은 또한 불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기술 자본을 쉽게 축적하고 그로부터 보상받는다는 우리의 연구 결과가 가진 중요한 한계, 즉 이런 쉬운 접근이 여성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을 경고한다. 공학과 같이 사회 이동성 측면에서 더 개방적으로 보이는 많은 직업이 남성에게 크게 편향되어 있다. () 따라서 우리는 기술 자본의 획득이 반드시 또는 확실히 사회적으로 더 개방적이고 능력주의적이라고 선언하기에 앞서 매우 신중해야 한다. 결국 기술 자본도 다른 모든 자본과 마찬가지로 효과를 발휘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럴 가능성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낮았다. 다시 말해, 계급 천장을 부수는 것은 유리 천장을 부수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다.

저자들이 이미 상당한 비판을 받은 유리 천장개념을 재구성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성 불평등을 공공 의제의 우선순위로 끌어올리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연례 보고서를 통해 BBC 내부의 극명한 성별 임금 격차가 드러나자, BBC 사장 토니 홀은 직원 연봉에 대한 즉각적인 감사를 승인하고, 고액 연봉을 받는 남성 진행자 여섯 명의 급여를 삭감하는 등 신속한 조치를 취했다. 이처럼 성 불평등은 학문적, 법적, 제도적 노력 끝에 유의미하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저자들은 이와 마찬가지로 계급 천장이라는 개념이 출신 계급에 의한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지식의 축적과 정치적 행동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썼다.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의 대물림 현상이 뚜렷하고, 계급 간 격차가 점점 커지는 한국 사회에서도 이들의 연구와 정치적 호소가 주는 울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커리어 진입에서 끝나던 기존의 연구를 커리어 진전으로 확대

부르디외 사회학 이론으로 계급의 장기적 영향력을 살펴본 방법론적 혁신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기존의 사회 이동성 연구를 혁신했다. 첫째, 부모의 직업(계급 태생)과 응답자 본인의 직업(계급 도착지)을 비교해 위치 변화를 측정하던 주류 이동성 연구에 페미니즘의 유리 천장개념과 엘리트 채용의 사회학의 오랜 연구 전통을 결합해 계급 구조 최상위층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봉쇄에 초점을 맞춰 사회 이동성 분석을 진행했다.

둘째, 직업에 진입하는 시점에 사회 이동이 끝난다고 보던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진입 이후 누가 성공하는가’, ‘커리어 진전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로 초점을 옮겼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부르디외의 이론적 렌즈를 도입했다. 부르디외의 하비투스, 자본, 장 등의 개념을 통해 개인이 직장에 가져가는 자원 또는 자본이 무엇인지, 그것이 사람들의 이동 궤적에 장기적으로 어떤 파급 효과를 미치는지 살펴보았다.

셋째, 사회 이동성을 개인의 자원이나 행위 주체성이라는 프리즘뿐만 아니라 개인이 진입하고 통과하는 특정 직업 공간, 즉 부르디외의 에 의해 매개되는 경험으로 이해하고 각 직종 및 직장 내부에서 요구하는 장 특수적 자본에 주목했다. 저자들은 개인이 각자의 계급 배경에서 물려받은 자본이 노동 시장에서 자동으로 이점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장에 특화된 형태로 전환되어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네 직종의 175명을 대상으로 한 이들의 질적 조사는 개인이 상속받은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이 특정 직종이나 직장이라는 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떻게 더 수월하게 혹은 가까스로 현금화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 속으로

능력 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믿음에 대한 도전

이 책은 엘리트 직업에서의 성공이 단순히 정당한 행운의 문제라는 믿음에 도전한다. 나아가 우리는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는 사람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다수가 특권층 출신이며, 그들의 성공이 능력만으로 설명될 수 없음을 입증한다. () 마크 본인이 설명했듯이 그에게는 또한 자신의 능력을 선보일 특정한 발판이 주어졌으며, 이 발판을 통해 자신의 여러 가지 능력과 그것을 선보이는 방식이 고위 인사들에게 손쉽게 인정받았다. ‘능력을 자리의 획득으로 잇는 이 역량, 그리고 그것이 개인의 배경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바로 이 책의 핵심이다. 실제로 마크의 경력 궤적을 뒷받침한 엄마 아빠 은행’, 비공식적 후원, 조직에 적합한 사람으로 손쉽게 인정받는 것 등은 우리가 진행한 인터뷰 전반에 걸쳐 거듭 반복된 테마였다. () 이 각각의 요소는 영국의 계급 천장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19~20

계급 간 격차는 자신감의 문제라는 개인화된 설명의 오류

우리는 특권층의 성공이 타고난 자신감에서 비롯한다는 견해로 인해 () 여러 메커니즘이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는 대다수가 자신감을 타고난 성격적 특성이자 그저 개인차가 있는 역량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많은 정책 입안자들은 ()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불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자신감, 성격, 포부를 키우고 개인별 코칭, 교육 또는 더 나은양육을 통해 부족한 자질채워주는것이라고 주장한다. () 많은 경우 자신감은 직장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자신이 그곳에 속한다고 느끼는지,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근본적으로 어떻게 일부 사람들은 대담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은 억제하는지에 따라 형성되는 연막이다. () 근본적으로 이 책은 계급 태생에 따른 직업적 성공의 차이가 노동 계급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 아님을 입증한다. () 엘리트 직종에서 일상적으로 능력으로 분류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사실상 특권의 순풍과 분리될 수 없다. - 53~54

교육은 위대한 평등 기제가 아니다

부모가 의사인 사람은 부모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의사가 될 확률이 무려 24배나 높다. 마찬가지로, 변호사의 자녀는 법조인이 될 가능성이 17배 더 높고, 영화 및 방송 분야 종사자의 자녀는 부모와 같은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이 12배 더 높다. ()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불평등을 교육적 성취의 차이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 그러나 이는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 교육 수준을 막론하고 전문직이나 경영직 배경을 가진 사람은 노동 계급 출신보다 상위 직종에 종사할 확률이 여전히 더 높다. 학위가 없는 특권층 출신이 학위가 없는 노동 계급 출신보다 상위 직종에 도달할 가능성은 2배 이상 높다. () 이 결과는 교육이 접근의 불평등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편, 출신 계급의 영향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수 세대에 걸친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희망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성취는 현대 영국에서 위대한 평등 기제가 아니다. - 65~72

방송 및 연기 분야의 계급 편향이 특히 우려스러운 이유

6TV에서 특권층 출신이 상당히 과대 대표되고 있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노동 계급 출신이 고위 관리직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어 조직 내에 매우 명백한 계급 천장 효과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6TV가 편성하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외주제작국의 상층부에 계급 천장이 특히 견고하다는 점이다. 이 결과는 특히 현대 영국 TV의 소위 빈곤 포르노장르를 통한 노동 계급 공동체에 대한 낙인찍기 및 평면주의적 묘사, 그리고 그 잠재적 인식론적 효과에 대한 논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최근 많은 유명 배우들이 사회 이동성 문제에 대해, 그리고 배우 데이비드 모리시가 서서히 진행되는 경제적 이유로 인한 노동 계급 배우들의 퇴출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잇달아 우려를 표명했다. 사회 현실을 반영해 표현하는 연기자의 역할, 그러한 현실 반영이 다시 계급(뿐만 아니라 인종, 성별, 장애 등)에 대한 강력한 상식적이해를 형성하고 재생산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기라는 영역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 131~142

엄마 아빠 은행의 장기적인 영향력

경제적 완충 장치는 많은 경우 어떤 유형의 업무를 전문 분야로 삼을지, 어디에서 일할지, 리스크 감수와 창의적인 자기표현 등에 어떻게 접근할지 등 커리어상에 존재하는 선택지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특권층이 상속 또는 증여받은 자금은 종종 커리어를 시작할 때 중추적인 윤활유 역할을 하여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고 더 유망한 커리어 경로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인맥을 형성하는 데 집중하거나, 착취적인 일자리를 거부하고 리스크가 따르지만 가능성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하는 등 장기적인 커리어 진전에 도움을 준다. () 일하지 않고 얻은 부의 혜택을 받는 것과 지배적인 능력주의 규범을 고수하는 것 사이에는 상당한 긴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은행은 한 사람이 거둔 성공의 도덕적 정당성의 핵심을 타격한다. () ‘엄마 아빠 은행의 진정한 가치는 직장 생활에서 거의 회자되지 않으며, 그것이 개인의 궤적에 미치는 왜곡된 영향은 대중의 시야에서 숨겨진 채로 남아 있다. - 154~175

회사 생활에서 세련됨의 힘

세련됨에는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 첫 번째는 억양과 말투, 특히 용인 발음(RP)에 대한 선호호다. () 또한 외모, 복장, ‘에티켓에 관한 것 () 특정한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 노동 계급 배경을 가진 터너 클라크 소속 인터뷰 참여자들은 거의 모두가 세련됨에 대한 지배적인 기대치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거나 이런 점에서 열등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많은 이들이 특히 직장에서 자신을 거침없이 드러내라는 회사의 명시적인 권장 사항과 자신의 남다른 점을 관리하거나 숨겨야 했던 경험 사이의 모순을 지적했다. () 세련됨은 () 특히 자문 부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중요성이 더 크다. () 자문의 품질을 고객이 직접 평가할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신뢰할 만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자문 부서에서는 자기표현과 인상 관리가 특히 중요하다. () 적절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설득 행위로 작용하며, 세련됨의 표식은 고품질의 조언을 제공한다는 신호가 된다. - 213~221

특권의 영향력에 대항하는 기술 자본의 힘

건축 분야에서는 () 계급 천장의 증거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쿠퍼스의 파트너 중 절반이 노동 계급 또는 중간직 출신이었다. () 쿠퍼스에서는 기술 지식이 모든 직급에서 핵심이다. () 이것이 사회 이동성에 왜 중요할까? 이런 종류의 기술 지식은 방송사 외주제작국이나 금융 자문에서 강조하는 역량보다 훨씬 더 투명하고, 학습 및 평가가 가능하며, 특권적 배경을 통해 전수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세련됨이나 학습된 비격식성 같은 계급화된 행동 규범의 발달에 대항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 231~233

능력은 모호하다 - ‘적합성의 횡포

모든 직종에서 이러한 규범이 객관적인기술, 재능, 기량 등 능력의 지표로 오인되고 있다는 증거가 존재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주로 누가 적합하다고 인식되는지, 따라서 누가 앞서 나가는지에 대한 명확한 패턴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우리의 데이터는 그 대상이 지배적인 행동 규범을 가장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능숙하게 활용하는 특권층임을, 즉 터너 클라크의 모토를 빌려 말하자면 자신의 전부를 업무에 투입할 수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임을 거듭 드러냈다. 이는 특권층이 그런 규범을 자연스럽게체화하고 있고,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치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처럼, 많은 엘리트 직종의 집단적 이미지가 바로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마법처럼 그들이 자연스럽게적합하고 유능해 보이는 것이다. 이는 차별의 범주에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명백히 불공평하다. - 237~238

상향 이동한 사람들의 자기 제거행위

불리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매우 현실적인 수요 측면의 장벽을 본능적으로 예상하여 상향 이동에서 스스로를 배제하는 계산을 한다. 의미심장하게도 이러한 예상은 앞으로 다가올 일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 등의 감정적 반응을 동반한다. () “아주 상류층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때로 제가 그런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낍니다. 건축가협회나 젠틀맨스 클럽 같은 곳에 가입해달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 항상 거절했어요. 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까지도 모두 각자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게리의 이런 결정이 포부나 야망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보다는 감정적인 자기 보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자기 제거 행위였다. () 이 개인들은 위를 바라볼 때는 불안감이나 자괴감을 표현하다가도 자신의 출신 계급을 향해 아래를 바라볼 때는 죄책감과 소외감에 휩싸이곤 했다. - 282~295

사회 불평등을 야기하는 직업 성취의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개인의 능력차로 설명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교육적 성취는 이 이야기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불평등 문제에 천착해온 영국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대니얼 로리슨은 책 '계급천장'에서 수세대에 걸친 정치인들과 정책 입안자들의 희망과 확신에도 불구하고 교육적 성취가 영국 사회에서 더 이상 '평등 기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객관적 자료를 통해 증명한다.

'계급천장'이란 특정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능력과 기술을 갖추더라도 성공을 가로막는 보이지 않는 천장에 부딪힌다는 의미다. 노동 계급의 자녀가 엘리트 직업을 갖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아는 사실. 책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다. 출신 계급에 따른 임금 격차,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 등 각종 통계와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동원해 노동 계급 출신이 엘리트 직종에 진입하더라도 한계에 직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엘리트 직군 종사자들의 인터뷰에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능력주의' 개념이 사기이며, 엘리트 직종에서 '능력'으로 분류되는 대부분 자질이 계급 특권의 '순풍'과 분리될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 진단이 넘쳐난다는 점은 특히 흥미롭다. 결국 현재의 시스템이란 '잘 사는'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 그 계급을 이용해 '더 잘 사는' 위치에 서게 하는 시스템이라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책의 부제를 인용하자면 계급천장은 한 인간의 커리어와 인생에 드리운, 여간해선 떨치기 힘든 긴 그림자다.

영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블랙홀처럼 대한민국을 빨아들이는 의사 파업 사태에서 나온 말들을 듣고 있자면 '계급 특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영국 사회에 대한 저자들의 분석과 진단이 부쩍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 사회도 '계급'이 어떤 담론이나 이념보다 상위의 가치로 작동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됐기 때문일 터다. 과연 계급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건 누구인가.[출처] 부모가 의사면 의사 될 확률이 24배 높은 건 '계급 천장' 때문이다 [책과 세상]|작성자 참 좋은사람

 

인도에서는 전기도 평등하지 않다. (brunch.co.kr)

 

인도에서는 전기도 평등하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인도 첸나이에 강력한 사이클론이 지나갔다. 거친 바람과 많은 비를 뿌리며 한 날 새벽에 들이닥친 사이클론은 도시를 희롱하듯이 구석구석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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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유리천장 (brunch.co.kr) 

 

'기생충' : 넘을 수 없는 계급의 유리천장

영화 '기생충' 다시보기 | 1.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을 얘기했습니다. ‘계급의 관행을 재생산하는 원칙’이 사전적 정의인데요, 쉽게 풀어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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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까지 버티는 것도 '금수저 특권'

싸구려 커피B급 감성을 노래한 가수 장기하는 알고 보면 대형 서점 창업주의 손자다. 말춤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싸이의 부친은 반도체 종합 장비 기업 대표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가업과 관계 없는 분야에 도전해 성공했다는 점이다. 자라 온 환경에서 이들은 아마도 별종취급을 받았을지 모른다. 이들이 이룬 직업적 성공에 부모의 직접적인 지원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들이 풍족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도 별종이라고 불릴 만한 무모한 도전에 나설 수 있었을까.

<계급 천장>은 성공할 때까지 버티고 도전하는 용기를 내는 것도 이른바 금수저의 특권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런던정경대와 미국 스워스모어칼리지에서 각각 계급 및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는 샘 프리드먼과 대니얼 로리슨 교수다. 제목 계급 천장은 성별이나 인종 차별 등 조직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에서 발전한 개념으로, 출신 계급이 초래하는 커리어와 임금 격차를 가리킨다.

저자들은 출신 계급에 따라 임금과 커리어 진전에 차이가 나는 이유는 능력으로 포장된 특권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는 능력은 사실 매우 모호한 개념이라는 설명이다. 능력으로 여겨지는 것의 많은 부분이 특정 계급의 문화나 언어, 취향, 행동 규범 등에서 비롯한 계급화된 퍼포먼스라는 것이다.

책에선 특권이 능력으로 오인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엄마 아빠 은행이 나온다. 예컨대 방송이나 연기처럼 불안정한 단기 계약과 저임금을 견뎌야 하는 직종에선 부모의 재력이 커리어 진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높은 주거비와 생활비를 감당하면서 기약 없는 오디션을 기다리는 일, 소모적인 캐릭터를 거절하는 일, 무보수에 가깝지만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경력을 쌓아가는 일은 모두 든든한 배경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존의 사회 이동성 연구가 직업에 진입하는 시점까지 파악하는 데 그쳤다면, 이 책은 직업 진입 이후 조직 내에서 적응하고 승진하기까지 계급이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저자들은 노동 계급 출신은 설령 엘리트 직종에 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새로운 벽에 부딪힌다고 설명한다. 엘리트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 계급 출신은 같은 일을 하는 특권층 출신 동료보다 평균 16% 더 적게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학 교수들의 연구를 정리한 책이지만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 등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어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설문조사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직장 내부의 역학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직장 내 심층 인터뷰 등이 연구의 설득력과 생동감을 더한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세상은 부모빽이 중요...그걸 넘어서려면 결국 '기술

사회적 이동이 가능한 시대가 왔지만 능력주의는 가짜라는 연구 조사가 있다. 하층 출신이 특권층 자녀와 비슷한 수준의 상위 직업을 갖더라도, 특권층 자녀보다 약 16% 적은 수입을 얻는다. 사회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탓에 경력 쌓기와 승진 경쟁에서 밀려나 좌절도 많이 겪는다. 또 하층 출신은 의료, 법률, 금융, 회계, 방송 등의 상위 직종에 종사할 확률이 약 6.5배 낮았다.

위 연구는 런던정경대학(LSE)의 사회학자 샘 프리드먼과 다니엘 로리슨의 저서 계급천장에 담겨있다. ‘계급천장은 여성의 사회적 성공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에서 따온 말이다. 하층 출신의 계층 이동을 방해하는 사회문화적 요인을 뜻한다.

책은 108000명과 엘리트 직종 종사자 18000명의 계급을 분석한 데이터에 기반해 작성됐다. 그리고 175건의 인터뷰를 진행해 타고난 조건에 대한 불평등과 능력의 모호한 개념을 지적한다. 계급 천장을 극복하는 10가지 방법도 제시했다.

현재 사회에선 특권이 특권을 되물림하는 증폭 효과가 두드러진다. 부유한 부모가 있으면 자녀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의사 자녀는 의사가 될 확률이 남들에 비해 24배가 높았다. 변호사 자녀가 법조인이 될 가능성은 17, 방송인 자녀는 방송계통에 종사할 확률이 12배 높았다.

반면 엔지니어들은 비교적 장벽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되는 역량이 특출난 배경을 통해 전수될 가능성이 작아서다. , 하층 출신의 자녀는 기술을 배우는 게 신분 상승에 유리하다고 풀이된다.

책 저자에 의하면 평등한 사회를 위해선 엘리트 직업 내 출 신계급을 정기적으로 파악해 천장을 만드는 요인들은 제거해야 한다. ‘부모 빽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무급 및 미공고 인턴십을 일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비공식 후원을 못하도록 투명한 인사 절차를 보장하며, 노동계급 출신들을 지원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윤소희 인턴기자 ysh@hankyung.com© 매거진한경

아이들의 계급투쟁 브래디 미카코 저/노수경 역 | 사계절 | 201911

브래디 미카코 (Brady Mikako)-1965년 일본 후쿠오카현 출생. 팝 음악에 심취해 고등학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와 영국 체류를 반복했고, 1996년부터는 영국에서 살고 있다.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일하다 보육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빈곤 지역의 탁아소에서 일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계급투쟁으로 2017년 제16회 신초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고, 2018년 오야 소이치 기념 일본 논픽션 대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2019년 제73회 마이니치출판문화상 특별상, 2회 서점대상 논픽션 부문 대상 등을 수상했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시리즈는 일본에서 총 1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그 밖에 지은 책으로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 2』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여자들의 테러등이 있다.

 

목차/추천의 글/들어가며 보육사와 정치학

1부 긴축 탁아소 시절(2015. 3 - 2016. 10)

빈부격차와 분리 보육

평행우주에서 추는 블루스

아이들을 둘러싼 세계 1 - 빈곤 포르노

올리버 트위스트와 이치마쓰 인형

긴축에 침을 뱉으라

분리되는 가난

아이들을 둘러싼 세계 2 - 출세ㆍ분노ㆍ봉기

꼬마 괴물과 지상의 별들

들쭉날쭉 호박들

탁아소, 쿨한 사회 변혁의 장

갱스터 래퍼와 무슬림 공주

대량 생산된 천사들의 나라

가난과 군대

탁아소에서 본 브렉시트

아이들을 둘러싼 세계 3 - 축구와 연대

터키에서 보낸 여름휴가

푸드 뱅크와 탁아소

피날레: 다 함께 웃는 승리의 그날까지

이 책의 구성에 관하여 - 211

 

2부 저변 탁아소 시절(2008. 9 - 2010. 10)

저 그네를 미는 사람은 당신

분노보다 더 붉은

그 앞에 있는 것

고무장갑을 낀 요한

소설가와 저변 탁아소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엄마라는 이름의 맹수, 그렇게 사라져가는 아이들

정상 가정이 답은 아니야

백발의 앨리스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사람들

함께 키운 아이

우여곡절 끝엔 언제나 억수 같은 비

썩어 문드러진 세계의 사랑

나의 작은 인종차별주의자

땅에 떨어진 브라이턴 록 혹은 온센만주

또 한 명의 데비

통합교육의 문제점

추도

마치며 땅바닥과 정치학

옮긴이의 말

 

출판사 리뷰

국가의 손이 닿지 않는, 어쩌면 버려진 세계

왼쪽도 오른쪽도 아닌 아래쪽 세계를 굴러다니는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

사회 밑바닥에서 신음하는 아이들의 삶을 기록한 현장 보육사의 일기

부와 권력을 독점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기치로 등장한 펑크 음악에 매료된 탓일까? 1996년 영국으로 건너간 브래디 미카코는 2008년의 어느 날 평균 수입, 실업률, 질병률이 전국에서 최악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브라이턴 빈민가의 무직자와 저소득자를 위한 지원센터부설 무료 탁아소에 자원봉사자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어리고 가난한 여성들이 양육 보조금을 타기 위해 계속해서 낳은 아이들과 이민자의 자녀들을 돌보며 약물과 알코올 중독, 폭력과 섹스에 찌든 영국 최하층 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을 목격한다.

이 탁아소에는 웃지도 울지도 않는 아이 앨리스, 무표정한 얼굴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켈리, 분노 조절이 어려워 화가 나면 빙글빙글 도는 잭, 엄마가 쏟아버린 맥주와 같은 황금색으로 도화지를 가득 채우는 모건,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제이크, 자폐증 때문에 끝 모를 흉포함을 보이는 재스민 같은 아이들이 다닌다. 사회의 밑바닥, 아니 그보다 더 아래 어두운 지하실쯤에 내던져진 이 작고 연약한 존재들은 예측할 수 없는 폭력과 폭언, 싸늘한 표정, 냉소적인 눈빛, 이상 행동 등으로 자신이 안고 태어난 불운에 저항한다.

저자는 혐오하지도 미화하지도 않으며 이들의 하루하루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 거기에는 구역질나는 장면도 있고, 찰나의 아름다움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가 있다.

정치에 대한 내 관심은 모두 탁아소에서 비롯했다. …… 정치란 토론하는 것도 사고하는 것도 아니다. 살아가는 것이며 생활하는 것이다. …… 저변 탁아소와 긴축 탁아소는 땅바닥과 정치학을 이어주는 장소였다. 그런 장소가 특정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온 천지에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걸 지금의 나는 알고 있다. 땅바닥에는 정치가 굴러다니고 있다. - 321~324

현장에 단단히 뿌리를 박은 그의 글은 어떤 거창한 이론이나 통계 없이도 사회에 뚜렷이 존재하는 계급 차와 특정 계급을 배제하고 몰아내려는 견고한 벽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낮은 곳에 서 있으면 정치가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지가 잘 보인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펼치는 격투를 통해 좌우가 아닌 위아래로 나뉜 세계에서 정치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숙고하게 한다.

재정 지출이 줄어들면 사람의 마음도 작아진다

긴축에 침을 뱉으라

이 책은 다소 변칙적인 구성을 보인다. 저자가 처음 무료 탁아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시기(2008.9~2010.10)를 뒤로 배치하고, 보육사 자격증 취득 후 중산층 전용 민간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다 다시 이 탁아소로 돌아와 일한 시기(2015.3~2016.10)를 앞에 놓았다. 그 사이 영국에서는 20105월 총선의 결과로 집권 정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고, 사회 전반의 복지제도가 축소되는 긴축의 바람이 불었다. 언론에서는 노동하지 않고 생활보호수당으로 먹고살면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구제불능의 언더 클래스under class’에 대해 연일 보도하고, 이에 분노한 여론을 등에 업은 보수당은 생활보호수당이나 실업보험, 양육 보조금 등을 대폭 삭감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러한 긴축의 영향이 하층 계급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한층 극명하게 보이기 위해 긴축 시대를 앞에, 거기에 없는 무엇인가가 아직 남아 있던 저변 시대의 이야기를 뒤에 놓았다.

긴축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민자를 위한 영어 교실을 제외하고는 지원센터와 탁아소에 지급되던 모든 지원금이 중단되었다. 탁아소는 이민자의 아이들이 채우기 시작했고, 탁아소에 올 차비조차 없는 영국 하층 계급 아이들은 소수자가 되었다. 앞 시대의 인종차별이 이제 근면 성실하며 상승 욕구가 강한 이민자들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허비하는 백인 하층을 혐오하고 배제하는 계급차별의 양상으로 바뀌었다. 4세 이전에 이미 심각하게 나타나는 발육의 격차를 시정하기 위해 노동당 정부가 실시하던 영유아 교육 과정, 보육사를 베이비시터에서 교육자로 키워내기 위한 지원 정책들이 약화되면서 건강한 교육 현장이었던 탁아소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알아서 운영해야 하는 버려진 공간이 되었다.

과연 생활보호수당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은 긴축 이후 술과 약물을 끊고 직장을 구해 열심히 일하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몇 년 사이 영국은 밥을 굶는 사람이 속출하는 나라가 되었고, 백인 하층과 이민자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며 갈등도 하고 이해도 하며 살아가던 밑바닥 사회는 혐오의 전장이 되고 말았다. ‘제힘으로주의가 길바닥에 내버린 사람들은 제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고 그대로 굶어 죽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탁아소는 굶주린 이들을 위한 푸드 뱅크에 자리를 내주고 문을 닫았다. 탁아소가 정치에 완패했다.

좋은 복지란 사람에게 존엄을 돌려주는 일

일본의 문학평론가 구리하라 유이치로는 일본의 소위 리버럴한 교양인들이 긴축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게 된 것은 브래디 미카코의 영향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저자는 전 세계적인 긴축의 흐름에 확고한 반대 의사를 표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바라는 것은 단지 정부가 다시 생활보호수당을 넉넉히 주어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일까? 저자는 금전만을 허락하는 복지는 국민을 국가의 가축으로 만들 뿐이라며 역시나 경계하는 입장을 보인다.

언더 클래스를 만들어낸 것은 대처만이 아니다. 시종일관 PR에 급급해 인기몰이 정치를 하던 토니 블레어 또한 그랬다. 마치 마약상처럼 무직자들에게 생활보호수당을 계속 쥐여주어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입 다물게 했다. …… 이 빈곤 포르노는 동정할 거면 돈을 달라는 식의 포르노는 아니다. 그들은 이미 돈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을 받는 대신에 그보다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 - 47~48

탁아소의 설립자인 애니는 이들이 잃은 것을 자존감이라 했고, 저자는 아나키즘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문화 연구자 엄기호는 하층 계급 불량소녀의 전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일으킨 로자리와 비키를 예로 들며 우리가 이 책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탁아소가 정치에 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사람에게 존엄을 돌려주는 행위인 존중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탁아소는 약물 중독자 혹은 범죄자의 딸인 이들에게 머물 공간을 제공하고, 미래를 꿈꿀 기회를 주었다. 온갖 혐오와 배제의 말들에 맞서 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을 돌려주었다.

저변 시대에는 있었으나 긴축 시대에는 사라진 것, 그것은 바로 삶이 무너져 내린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존엄을 돌려주는 일이다. 어딘가 아프거나 모자라거나 망가져 이 빈민가로 흘러든 사람들이 거칠고 투박하게나마 서로의 손을 잡는 짧은 순간, 그 잠깐의 온기를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저자의 글쓰기 역시 그들에게 존엄을 돌려주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약자를 지원한다는 것, 복지제도를 운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려 깊고, 정교하며, 구석구석까지 미치는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확인할 수 있다. 긴축에 침을 뱉으라, 그리고 게으르고 무신경한 제도에 돌을 던져라.

거침없고 날카로운 비판, 경쾌하고 따뜻한 묘사

직구와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펑크 보육사의 출세작

저자 브래디 미카코는 요즘 일본 출판계의 핫 이슈다. 영국에서 아일랜드인 배우자와 함께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는 그녀는 빈민가 무료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한 경험과 이민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일들, 펑크록 마니아이자 아나키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담은 책들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후지오 교코는 뾰족한 펑크 문체로 썩은 정치를 겨누는 직구와, 유머와 섬세함을 마술처럼 뒤섞는 변화구를 넘나드는 투수다. 브래디 미카코는 지금 글 쓰는 이들 가운데 가장 기대되는 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사회성이 0에 가까울 정도로 없기도 하고, 이렇다 할 특기도 없이 멍청하게 살아온 쓸모없는 인간”(310)이라고 평가하는 그녀에게 일본의 언론과 출판계에서 끝없는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녀의 독특한 이력에 대한 관심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과 만남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글로 남기는 성실한 기록자이자, 자신이 발을 딛고 선 땅바닥, 곧 현장에서 얻은 통찰을 거침없이 말하는 용감한 발언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브래디 미카코의 출세작으로, 국내에 소개되는 그녀의 첫 책이다.

책 속으로

유아 교육 현장에서는 계급 분리가 진행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사라지지 않았다. ‘유나이티드여야 할 킹덤에서 인종이 아니라 계급을 기준으로 이와 같은 분리가 일어나고 있다.

…… 중산층 부모를 둔 아이는 하층 계급 아이보다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어휘를 구사했으며, 숫자도 셀 줄 알았다.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런 겉으로 보이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아이들의 손끝이 야무지다는 점이었다. 유아기의 뇌 발달은 손가락의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나는 아이들과 자주 종이접기를 한다. 어린이집의 3세 아동은 저변 탁아소의 3세 아동이 절대로 접을 수 없는 형태로 솜씨 좋게 종이를 접을 수 있다.

…… 빈민가 아이들은 보육 시설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를 전부 자기들과 같은 계급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공부하게 되며 자기보다 높은 계급에 속한 아이와는 친구가 될 기회는커녕 옷깃을 스칠 인연조차 맺지 못한다. 이는 위쪽 계급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에게 하층 계급이란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밖에 본 적이 없는, 현실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p.26~38, 계급 분리, 접점이 없는 평행우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중에서

유럽 젊은이들 사이에는 반긴축이 체제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힙한유행어가 되었다. 정치적으로 각성한 젊은이들이 많아진 것은 당연하다. 긴축의 영향을 온몸으로 받는 이들이 바로 젊은이들이기 때문이다. 실업과 저성장, 사회적 격차의 확대를 가져온 긴축 재정은 학교를 나와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할 거라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쁠 것이 분명하다는 어두운 전망을 품는 젊은이를 양산했다. ……

긴축으로 인해 젊은이보다 더 큰 피해를 입는 세대가 있다. 그들보다 더 어린 아동들이다. …… 이전부터 나는 영국 빈곤층을 가리켜 저변이나 밑바닥이라는 말을 써왔다. 하지만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빈곤한 적은 없었다. …… 이민자 아줌마가 길바닥에서 주워 와 집 안 욕실에서 소독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이 21세기 영국에 실제로 살고 있는 것이다.

--- p.67~69, 유럽에 드리운 긴축의 그림자중에서

여러 가지 색을 그저 갖추어두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는 보육사와 아이들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인종차별을 하지 맙시다”, “인류는 모두 형제라고 플래카드를 내다 걸고 아무리 외친들 그런 걸로 바뀌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사회가 진짜 변한다는 것은 밑바닥이 변하는 것이다. 땅바닥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외국인과 만나 두려워도 하고, 접촉하거나 충돌하고, 서로 품어주면서 공생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이런 경험이야말로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이는 최소 단위라고 하기에도 터무니없이 작은, 하나의 커뮤니티에서 담담하게 시작되는 변혁이다. 여기에 지름길이란 없다.--- p.109, 다양성 교육의 의의중에서

저와 미카코는 9년 전부터 여기서 일했어요. 그때는 직원, 보호자, 아이들이 거의 영국인이었어요. 우리 외국인이 소수였지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직원들과 완전히 똑같은 대접을 받았어요. 이곳은 어디서 온 사람이든, 어떤 사람이든,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이든 환영한다는 이념으로 만든 탁아소입니다. 직원은 바뀌더라도 우리 정신은 변함없어요.”

…… 난민 문제다, 백인과 무슬림의 충돌이다 하는 뉴스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을 전달할 뿐이다. 살아 있는 유기체인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좀 더 깊숙한 무언가가 있다. 지역의 영국인을 배제하려는 이민자를 꾸짖는 무슬림 여성이 여기에 있다.

…… 변화는 이렇게 일어난다. 처음에는 한 사람, 두 사람이 변하고, 그것이 세 사람이 되고 다섯 사람, 열 사람으로 늘어나면서 커뮤니티가 변하는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하면 영국의 보육 시설은 단순히 아이들을 맡아주고 교육하는 장소가 아니다. 미시적 수준에서 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운동의 장인 셈이다.--- p.119~122, 탁아소, 쿨한 사회 변혁의 장중에서

탁아소는 푸드 뱅크가 되었다. …… 저변 탁아소 시절, 아나키하고 사악하고 어떻게 손을 대야 좋을지 몰랐던 빈민가 아이들이 푸드 뱅크 시대인 지금은 모두 배를 곯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설 무렵의 영국은 브로큰 브리튼이라 불렸지만, 2016년에는 갑자기 빅토리아 시대로 돌아갔다.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 정치의 변화가 사회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잘 알 수 있다. 최하층 아이들의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세웠던 애니 탁아소는 이제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한 식료품 창고로 변했다. 애니와 우리가 해온 일이 푸드 뱅크에 졌다.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이것이 긴축 재정의 축도다. 탁아소, 정치에 완패하다.

…… 푸드 뱅크에 줄을 선 부모들이 존엄에 상처 입은 채 선반 위의 식료품을 움켜쥐고 비닐봉지에 집어넣는 동안 아이들은 즐겁게 웃는다. 웃을 수 있는 한 우리는 진 것이 아니다.

KEEP ON SMILING.--- p.207~209, 탁아소, 정치에 완패하다중에서

예전에도 저변 탁아소는 가난했고 긴축 탁아소보다 혼란스러웠다. 저변 탁아소는 도덕이고 뭐고 다 붕괴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아나키한 나라, ‘브로큰 브리튼을 체현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열은 없었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백인 언더 클래스, 슈퍼 리버럴한 사상을 가진 인텔리 히피, 이민자 보육사, 이민자 가정이 모두 같은 장소에서 어떻게든 함께 살았다. 서로 다른 신앙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친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통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필요할 정도로 증오하지는 않았다. 거기에는 오른쪽왼쪽도 아닌 아래쪽 사람들의 공동체가 분명히 존재했다.

…… 예전을 그리워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옛날에는 안 그랬다고 한탄한들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며 그저 후퇴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예전에 있던 좋은 것이 지금 없다면, 그때 있던 그것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는 태도마저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p.212~213, 예전엔 있었으나 지금은 없는 것중에서

빈곤. 아이들을 초라하게 입힌다. 가정 폭력남과 헤어지지 못하고 아이들이 가정 폭력을 목격하게 한다. 동거 중인 남자 혹은 자기 자신이 알코올이나 약물에 의존한다. 혹은 의존증을 진단받은 과거가 있다. 우울증에 걸린다. 몇 번이고 응급실에 아이를 데려간다. 아이에게 항상 상처가 있다. 초등학생이 혼자서 집을 지킨다. 슈퍼마켓이나 쇼핑센터 등지에서 아이가 여러 번 길을 잃는다.

이는 전부 그들에게 약점으로 간주되는 사항이다. 이 나라에서 아동 보호 과정을 밟으며 알게 된 것인데, 위에 적은 것들은 모두 위험한 징후의 목록에 들어간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사실이나 증거 없이도 복수의 해당 사항이 있다면 지방자치단체는 정신적 학대 등을 이유로 부모에게서 아이를 빼앗아갈 수 있다.

…… 그녀는 엄마라는 이름의 맹수가 되어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잠든 사이에 아이를 도둑맞지 않기 위해서. 혼자 멍하니 있는 사이에 누군가 아이를 데려갈지도 모르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

아이들을 지원한다는 것은 그 아이들의 부모를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듣기 좋은 이상론이 아닐뿐더러 정치가의 수사도 아니다. 현장에서 엄마라는 맹수의 등을 쓸어주던 사람만이 토해낼 수 있는 리얼한 아동 보호론이다. --- p.252~254, 엄마라는 이름의 맹수중에서

지원센터에는 이런 여성들이 꽤 있다. 분명히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애나 정신건강 문제로 세상에 나가 그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아줌마들이다. …… 술과 약물, 섹스에 빠져 아이를 줄줄이 낳아 정부 보조금으로 사는 여성들과는 또 다른 종류의 하층 계급 여성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 센터 같은 자선단체는 이런 여성들의 능력 덕분에 운영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어떤 사람은 요리에 대단한 수완을 발휘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영국인 주제에뛰어난 계산 능력을 가졌으며, 전문 사진작가 뺨치게 사진을 잘 찍는 아줌마도 있고, 말도 안 되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도 있다.

힘을 가진 사람을 세상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이는 이전 직장 상사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세상의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잊혀가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그 이라는 것에

실무 능력은 별로 포함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분명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서로를 이어주는 수완 같은 작업 환금력80~9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리라. 그렇다면 앞에서 이야기한 아줌마들은 전혀 이 없다. 그저 신기할 정도로 뛰어난 작업능력이 있을 뿐이다.--- p.269~290,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사람들중에서

평소 부모가 여기저기 데리고 다녀주지 않는 빈곤 지역 아이들이니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 날씨가 좀 적당히 도와주면 좋으련만, 어째서인지 저변 탁아소에서 외출을 하려고 하면 마치 정해놓은 것처럼 큰 비가 오거나 폭풍이나 비바람이 부는 끔찍한 날씨가 되곤 한다.

…… 생각해보면 이들은 노숙자가 되거나 부모가 교도소에 가는 등 심상치 않은 일이 평범하게 일어나는 가정에서 태어난 불운한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한데 모여 있으면 마이너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플러스로 변하는 것처럼 상황이 반전되어 행운이 찾아올 법도 한데, 역시 인생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부정적인 기운의 집결은 큰 비와 폭풍과 비바람을 부를 뿐이었다. ……

왜 나에게만 비가 내리는 걸까? 맑은 날조차도 내 머리 위에는 번개가 쳤어.”

이런 가사였던 것 같다. 이 노래가 청년의 섬세한 마음속 풍경을 나타낸다면 저변 탁아소 꼬맹이들에게는 물리적으로, 정말로 호우가 내리기 때문에 다 기분 탓이야같은 말이 아무 소용이 없다.--- p.280~283, 왜 이 아이들에게만 비가 내리는 걸까중에서

저변 탁아소에는 싱글맘 가정이 압도적으로 많다. …… 아직 학교에 다니지 않고, 우정이나 연애 감정 같은 타자와의 관계를 키워가기 이전인 유아들의 모든 생활이 어머니 한 사람에게 달려 있다. …… 이 지나치게 밀도 높고 도망갈 곳 없는 인간관계를 술이나 약물 혹은 섹스로 잊어버리려 한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맞다, 틀리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이상하지 않다는 말이다.

…… 아이들의 작품을 정리하다 보니 작품의 주제가 엄마인 경우가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엄마의 얼굴, 엄마의 기분, 엄마가 하는 일, 엄마가 좋아하는 것. 모건에게는 도화지를 황금색으로 꽉 채운 오줌 혹은 엄마의 맥주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앨리스에게도 빨강과 검정 물감 붓으로 도화지를 두드려 칠한 다음, 가위 끝으로 구멍을 잔뜩 뚫어놓은 화난 엄마라는 압도적인 작품이 있다. 아이들의 이런 파워풀한 미술 작품과 어머니들의 글을 비교해보면 서로가 미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호흡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

“‘예쁜 금색 도화지가 되었구나라고 말을 걸자 모건이 대답했습니다. ‘이건 엄마가 쏟아버린 맥주의 색깔이야. 마개를 열어서 전부 버렸거든. 쉬야처럼 가득 흘러내렸어.’”

썩어 문드러진 세계에는 썩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p.286~289, 썩어 문드러진 세계의 사랑중에서

브래디 미카코, 밑바닥 탁아소에서 발견한 인간다움

아이들의 계급투쟁브래디 미카코 저자 인터뷰 영국 탁아소에서 본 긴축 정책의 민낯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의 가족과 동익(이선균)은 다른 공간, 다른 동선, 다른 계획을 가진 삶을 산다.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두 삶은 섞이지만, 영화관을 떠나면 우리는 기택의 삶을 만날 수 있을까? 외면하기에는 가까이 있고 알기에는 불편한 언더 클래스의 이야기 말이다.

브래디 미카코 저자는 영국의 탁아소에서 보육사로 일하며, 언더클래스(저변)의 삶을 기록해왔다. 현장에서 겪은 일을 밤마다 블로그에 썼고 그 이야기가 한 권의 책 아이들의 계급투쟁으로 묶였다. 영국의 정치는 노동당이 언더 클래스에 복지와 안전망을 제공하던 저변 시대에서 복지제도가 대폭 축소된 긴축 시대로 변화했다. 보육사에서 이 변화를 지켜본 브래디 미카코는 긴축 시대가 망가뜨린 연대의 흔적을 과거 저변 시대에서 찾아낸다. 저자는 멀찍이 떨어진 관찰자가 아닌, 그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당사자로서 말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기회의 문을 열어 주는 것이라고. 절망의 순간에도 거기서 끝날 수 없는 무언가”(232)를 찾아내는 브래디 미카코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작가님의 이력이 독특해요. 영국 펑크 음악이 좋아 무작정 영국으로 가셨고, 지금은 20년 넘게 살고 계시다고요. 영국에 정착하시면서 아 이건 정말 생각했던 것과 다르구나하신 것이 있다면요?

-아니요, 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1980년대에도 몇 번인가 영국에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그렇게 큰 충격을 받았다든가 위화감이 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비교적 잘 적응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일본보다 영국이 체질적으로 잘 맞나 봐요.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보육사로 일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제게 아이가 생겨서 육아라는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을 때예요. 당시 노동당 정권이 외국인 보육사를 대대적으로 모집을 했거든요. 문화적 다양성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좋다는 취지였어요. 하지만 그건 겉으로 그랬다는 거고요. 실은 보육사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 흐름을 타고 저는 보육사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런던의 일본계 기업에서 일한 적도 있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한 적도 있는데,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달까요. 지금 생각하면 그랬던 것 같아요.

이 책은 2017년 일본어로 출간되었습니다. 영국의 이야기를 일본 독자에게 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요?

-책을 만들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에게 읽힐 거라 생각하고 쓴 글도 아니었어요. 이 책 뒷부분(2)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탁아소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한 아이들이 옵니다. 정말 심각한 상황의 아이들도 있었고요. 실제로 빈곤의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괴로운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 다른 사람이 읽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내일도 힘내서 일할 수 있는 기분을 만들기 위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본 독자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에요. 책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걸요.

그 블로그를 발견하고 글을 읽은 출판사 분이 이런 걸 잡지에 연재해주시지 않겠습니까?” 하고 연락을 주셨어요. 그래서 연재한 것이 책의 앞부분(1)입니다. 그것도 매월 마감에 임박해서 쫓기듯 썼습니다. 정말 흘러가는 대로 그냥 놔뒀더니 한 권의 책이 된 거예요. 저는 그다지 계획을 세우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서 대부분 뭐든 흘러가는 대로 놔둡니다.

제목이 아이들의 계급투쟁이에요. 어떤 계기로 정하게 되셨나요? 작가님이 인종, 젠더에 앞서 계급을 중요한 키워드로 강조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근 영국에서는 클래스 폴리틱스(계급정치)가 부활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요. 노동당 당수 코빈의 등장이나 미국의 샌더스 열풍 같은 일들이 있었지요. 영국에서는 토니 블레어가 내건 3의 길노선 이후 좌파와 자유주의자는 인권과 젠더, LGBT 같은 아이덴티티 폴리틱스(정체성 정치)만 중시하고 계급정치의 문제를 잊어버렸던 거예요. 그래서 경제 격차가 이렇게까지 벌어지고 빈곤 문제도 심각해졌다고들 합니다. 이것이 브렉시트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분석도 있었습니다. 저는 스트레이트한 정치 시평도 씁니다. 그런 책도 냈고, 신문 칼럼도 씁니다. 그 분야의 일로 지금 말한 것 같은 계급정치로의 회귀라는 문제와 좌파가 경제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해왔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의 계급투쟁에도 그런 관점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도 나오듯 저변(언더 클래스)의 삶을 전하는 것은 자칫하면 빈곤 포르노로 소비될 수 있어요. 탁아소의 이야기를 쓰실 때, 그런 걱정은 없으셨나요?

-좀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2부는 제 개인 블로그에 쓴 글을 가져온 거예요. 늦은 밤, 맥주를 마시고 취해서 쓰기도 했습니다. 언더 클래스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괴롭기도 했고요. 제 자신의 당시 상황도 좀 그랬고 해서 갑갑한 기분으로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쓰자고 마음먹고 썼다기보다는 그것이 내 일상이었으니 쓴 셈이지요. 특별히 빈곤 현장의 르포를 써보겠다는 마음을 먹고 잠입한 것도 아니고요. 보육사 자격을 따기 위해서는 실습할 곳이 필요했고, 그런 저를 받아준 곳이 저변 탁아소였을 뿐이었습니다. 보통의 어린이집에서 몸도 마음도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요.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인데요. 2(블로그 시절의 글)에서 제가 반복해서 썼던 이야기는 영국의 밑바닥에 있는 상호부조의 정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희망을 느꼈던 것 같아요. 상호부조의 정신에 대해 쓰면서 영국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 북돋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제1부에서는 그 상호부조 정신마저 부숴버린 긴축재정의 잔혹함에 관해 썼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빈곤에 대한 책이 아니라 긴축재정에 반대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경제 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긴축 정책이 망가뜨린 것

이 책의 구성은 역순이에요. ‘긴축 탁아소이후의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과거 저변 탁아소시절이 그 후에 나오죠. 이러한 구성을 택하신 이유가 있다면요?

-이 책의 구성은 담당 편집자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 시간 순서대로 쓰지 않아도 되나?’ 싶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긴축재정으로 공적 보조금이 큰 폭으로 삭감된 부분을 앞으로 가져오고, 그 이전 아직 탁아소에 활력과 여유가 있던 시대의 이야기를 뒤로 가져가니 긴축재정의 잔혹함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편집자의 생각에 찬성했습니다. 매우 훌륭한 편집자예요. 그녀가 없었다면 이 책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변 탁아소시절, 애니를 주축으로 보육사들이 진정한 교육을 고민하는 모습이 놀라웠어요. 상응하는 보수가 없어도 어째서 이런 사람들이 이런 곳에 있을까”(64) 싶은 뛰어난 사람들이 있었죠. 이런 분위기는 어떻게 가능했나요?

-1970년대 페미니즘이 크게 대두되던 때, 런던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에게는 남다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지방의 공영주택지 같은 가난한 곳으로 이사를 와서 탁아소, 취학 아동 보육소(맞벌이 부부의 자녀 등 초등학생의 방과후 보육을 담당하는 곳 - 옮긴이), 가구와 의복 재활용센터, 여성의 쉼터(가정폭력 등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사람들을 위한 - 옮긴이), 법적인 조언을 해주는 주택공동조합 등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무료 탁아소도 그 흐름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애니를 비롯해 탁아소에서 일하던 여성들, 다양한 곳에서 이런 흐름을 이어가던 같은 세대의 여성들은 스스로를 활동가라고 불렀습니다. 단순한 보육사라기보다는 자신이 발을 딛고 선 커뮤니티에서 시작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만난 소위 밑바닥 아이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고 폭력적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작가님은 거기서 끝낼 수 없는 무언가를 관찰하시는데요. 여기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책의 마지막 부분에도 쓴 것처럼, ‘존엄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작가님은 저변 탁아소긴축 탁아소를 대비시키셨지만, ‘저변 탁아소시절이 마냥 좋았던 시절만은 아니에요. 그럼에도 저변 시절에는 적어도 아이들이 충돌하고 의지하는 인간적인 소음이 있었죠. 그 시절을 돌이켜 볼 때, 가장 그리운 것은 무엇인가요?

에너지랄까요, 혹은 활력이랄까요. 그리고 밝은 마음과 관용이요. 긴축재정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위축되면 사람의 마음 또한 위축됩니다. 째째해지고 편협해지고 자기와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것조차 인정할 수 없게 돼요.

이민 가정의 아이를 교육시키는 문제는 까다로울 것 같아요. 작가님은 아이가 자라 영국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그 나라에서의 정상성을 가르치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가정에서 습득한 것(부모의 문화)과 탁아소에서 가르치는 것이 충돌하는 상황을 겪으신 적이 있나요?

-예를 들면, LGBT에 속하는 사람들도 탁아소에 있었습니다. 인형 놀이를 준비(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도록 인형의 집에 인형을 배치해둡니다)할 때도 항상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는 가정만이 아니라, 아버지 인형 둘을 인형의 집에 넣어두기도 했는데, “이건 아니야” “이상해라고 하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그런 아이들의 부모는 대개 동성애에 그다지 관용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온 이민자이거나,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 종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대등한 인간

저자님은 인종 차별은 반대하면서 하층 내국인을 혐오하는 소셜 레이시즘을 자주 관찰하셨어요. 자신은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혐오가 왜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나요?

-자기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요. 그런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집단에 벌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벌을 내리는 행위는 일단 자기가 어딘가 높은 곳에 있는 듯한, 마치 신이 된 듯한 착각을 맛보게 하기 때문에 쾌감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겠지요. 이 쾌감을 맛보려는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어 다른 집단을 처벌하기 시작하면 폭주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정치적 올바름은 다양화된 세계에서는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을 처벌해 자기 기분이 좋아질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님은 하층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나 푸드 뱅크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자신의 가능성을 더 넓혀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에게든 그 기회를 주려고 하는 사회요.

우리는 하층의 삶을 모르는 만큼,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잘 모릅니다. 경멸 아니면 시혜적 대상으로 보게 됩니다. 저변의 사람들, 특히 저변의 아이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이 아이의 입장이었으면 우리는 어땠을까 상상해보는 것. 그리고 자기가 잘 모르는 세계에 사는 사람과 만나보는 것. 모르는 것은 만나다 보면 알게 됩니다.

언더 클래스의 사람들이 드러내놓고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한국 사회의 문제는 빈자가 아예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요?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연히 저변 탁아소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만, 재미있는 것은 같은 영국에 살고 있는 일본인이라도 이 사람이 쓴 것은 믿을 수 없어. 이런 건 본 적이 없거든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계층과 생활 범위가 다르면 빈민과 우연히 스쳐 갈 기회도 없는 것은, 지금 아마도 전세계 어디든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회가 분리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과 만나는 수밖에 없습니다. 책상 앞에서 궁리한들, 인터넷에서 답변을 찾으려 한들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인간들끼리 실제로 만나서 지뢰를 밟기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서로에 관해서 배워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노키즈존논란이 있었어요. 카페, 극장 같은 공공의 장소에 아이를 동반하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인데요. 아이가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영국에도 이런 현상이 있나요? , 우리 사회가 어린이를 대하는 시각은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영국에서도 아이들을 데려가서는 안 되는 호텔 같은 것은 있지만 그것이 늘어나는 움직임은 보지않습니다.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보육사 자격증을 땄을 때, 가장 먼저 들은 이야기는 일대일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같은 시선으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을 말할 때는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라는 것이지요. 이는 정신적인 메타포이기도 합니다. 어른이 아이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은 어른과 대등한 작은 인간임을 뜻한다고 생각합니다./ 번역: 노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