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여 년 환경운동을 하다가 길 걷기운동에 발을 들여놓은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 부산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해 왔지만, 막상 걷다 보니 그동안 겉모습만 읽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길은 부산의 자연과 사람살이에 대해 많은 것을 새롭게 익힐 기회를 제공했다. 철따라 피고 지는 야생화며 숲의 변화, 자연경관과 역사·문화의 현장을 새롭게 알게 됐다.
한편 길은 내가 숨기고 있던 상처나 아픔을 치유하는 병원이자 멘토로 존재했다. 지난 2년 마음의 빗장을 닫고, 내가 익숙히 알고 있던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살았다. 아쉬울 것 없다는 오만과 상했던 마음이 길을 걸으면서 지워지거나 치유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에서 나는 길에서 배우는 공부가 재미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다. 나만의 학습과 즐김이 아니라 더많은 사람이 길 위에 서게 하자는 것이다. 무릇 길은 누구에게든 스승이라고 했다.
유감스럽게도 그 배움터가 중장년층 중심으로 굳어질까 걱정스럽다. 물론 그 나름의 의미와 가치는 있다. 그럼에도 나는 길이 청소년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기를 희망한다. 밤 11시가 되어서야 귀가하는 아들의 일상 앞에 나는 무력하다. 그리고 늘 같은 주문을 되풀이 한다. 놀 때는 놀더라도 평균 90점은 유지하라고 주문하는 이 모순적 사고가 너무 이기적이고 불만이다. 하다못해 격주로 마련되는 시민 그린워킹에도 나는 아들을 데려가지 못한다. 학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를 통해 새로운 교육감이 뽑혔다. 나는 그에게 원한다. 아이들에게 채워진 경쟁의 재갈을 풀어줄 방안을 마련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아이들을 길 위에 서게 하라고 요구하고 싶다. 쉽지 않은 주문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언제까지 아이들을 가두어 둘 것인가.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다들 장래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사실은 부모들의 욕심 아닌가.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말도 필요 없다. 길을 걸으며 눈으로 보고 가슴에 담으면 된다. 내가 아이들에게 길을 통해 심어주고자 하는 화두는 '호연지기'다. 동시에 지역의 이해와 자연과의 교감이다. 전국 어디에 견주어도 으뜸인, 부산의 수려한 해안 갈맷길이 가진 변화무상한 풍광 앞에 아이들이 서게 하는 일이다. 사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마음을 통해 하늘과 땅 사이에 넘치도록 가득한 원기를 마시게 하는 방법을 길에서 터득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공명정대하게 하늘을 부끄럼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기르게 해야 한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세상살이에 옳은 것을 취하게 하는 일은 마땅히 부모가 할 일이고, 그 사회가 권장하고 마련해 줘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많은 굴종을 강요받았고 대를 이어 넘겨주려는 어이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국제신문2010 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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