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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칼럼 기고

부도난 황령산 스키돔을 국립자연사 박물관으로

by 이성근 2013. 6. 17.

 

부도난 황령산 스키돔을 국립자연사 박물관으로

 

눈이 내리지 않는 도시에 인공 눈썰매장을 만들어 한 몫 보려했던 장사치들이 망하고, 대표는 법정에서 실형을 받았다. 이런저런 달콤한 말로 투자자들을 끌어 모우고, 지역에서 꽤나 이름 있는 인사들을 데려다 거창하게 개막 커팅식을 가졌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허망한 일이다. 애시당초 의문이 제기된 사업이었다.

 

 

원래 스키돔 자리는 산지전문 개발 업자의 농간과 부산시의 무분별한 허가 속에 이루어 진 자연 파괴형 개발사업이었다. 체육시설 만든다고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맹물온천으로 온천지구로 지정되면서부터 시민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거대 자본과 권력 핵심부가 깊숙이 개입된 전형적인 케넥션 사업이었다. 전임 시장이 더 이상의 불길이 번지기 전에 기자회견을 통해 백지화를 천명함으로써 일단락되듯이 보였던 황령산 개발은 절토된 사면을 복구한다는 미명으로 등장한 것이 스키돔 사업이었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일부 시민단체에서도 대안부재를 핑계로 스키돔 사업을 두둔함으로써 개발업자가 반환경적 시설을 합법적으로 짓게 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스키돔은 적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고에너지를 투입하는 원시적이고 반경제적 개념의 사업이었다. 들리는 말로는 채권단이 공매를 통해 새로운 투자자를 모집하는 일정을 노정하고 있는 줄 안다. 결자해지라 했든가. 이제 부산시가 새로운 시선으로 황령산을 바라 볼 때가 되었다. 현재 부산에는 영도에 국립해양자연사 박물관이 건립 중에 있다.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기대한다. 나는 여기에 덧붙여 스키돔건물을 국립자연사 박물관으로 전환하는 운동을 부산시에 제안한다. 부끄럽게도 세계 10위권의 통상대국이자 OECD 정회원국인 대한민국에는 이렇다 할 자연사박물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마침 정부가 1999년 외환위기로 중단됐던 국립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최근 다시 추진하기로 방침을 정한데다 빠르면 올 연말까지 후보지를 선정한다고 했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불꽃튀는 유치경쟁에 돌입했다. 국비 6,500억 원이 지원되는 데다 연간 방문객이 400만 명에 달해 수조원의 경제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산시는 미동도 않는다. 녹색성장을 주창하는 마당에 문화재보호구역이나 축소하고, 더 많은 개발을 획책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슬로시티를 도입했으면서도 시정은 여전히 팽창주의와 일방적 성장주의에 빠져 허우적 되고 있다. 앞뒤가 맞지 않다. 발상의 전환이 요청된다. 지역 국회의원들의 역할도 요구된다.

 

 

황령산은 접근성과 수요를 유발 시키는 조건들이 뛰어나다. 시민적 합의와 추진세력만 제대로 꾸려진다면 어느 곳 보다 경쟁력이 있다. 상상해보자. 국립해양자연사 박물관과 국립자연사 박물관이 한 도시에 있다면 어떤 파급효과를 가질 것인가. 설마 아니 국립해양자연사박물관이 건립되는데, 염치없다고 아예 꿈도 안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답답한 노릇이다.

 

시민에게 자긍심, 새로운 일자리를 제공하고, 외지인에게는 머물고 싶고,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다. 부산은 국립자연사박물관을 유치하기 위한 자격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토대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시내 곳곳에 고생대로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연사의 현장과 유물이 산재해 있다. 다시말해 전 해안이 공룡의 놀이터 였고, 지금도 그 발자국들은 선명히 남아 있다. 스키돔은 그런 유산을 현대에 맞게 재생산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이 도시가 기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또 다른 열쇠다. 십수년 전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나는 부산 국립자연사박물관을 꿈꾸었다. 이왕이면 내가 사는 부산이 그 주인공이기를 갈구한다.     (부산일보2009. 8.10)

 

 

 

    an Keating - Bring You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