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2 월간 함께사는 길 [지역칼럼 19] 너희들의 천국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귓전을 맴도는 모기 때문에 밤잠을 설쳐야 했다. 급기야 자다 말고 몇 번이나 파리채를 들고 거실을 어슬렁거리며 모기를 잡았다. 그렇다. 11월 중순에 모기 때문에 잠을 설친다는 것은 뭔가 잘못 됐다.
이런 적은 없었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해 봄날 꽃 피기가 이르다 늦다 했어도, 명태가 고급어종이 된 지 한참이 되고, 제주 먼 바다 아열대성 어류가 동해에 서식하고, 상어, 다랑어가 부산 공동어판장에서 거래된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들었어도, 나아가 지난 봄 제주 용머리 해안의 일부가 잠겨버렸다는 소식조차도 그런가 보다 했지만, 모기의 역습은 그 모든 현상에 대해 주관적 답을 확실하게 각인시켜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별안간 나타난 현상이 아님을 미국 국방부 비밀보고서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 연례보고서 등 각종 보고서는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벽두부터 언론을 필두로 사회적 화두가 되었던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와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고 재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올여름 고유가 상황은 대통령 선거가 놓친 기후변화에 대한 사회적 시스템을 재정립하고 과제화하여 국가와 사회 비전으로 합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그린벨트의 수혜자들
그랬다. 부산시가 명물이라고 안팎으로 자랑해마지 않는 광안대교의 조명이 꺼졌다 다시 켜지는 우여곡절의 그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천명했던 ‘저탄소 녹색성장’은 날이 갈수록 무늬만의 녹색선언 아닌가에 대한 의구심이 사실로 분명해지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전문 환경운동단체며 전문가 그룹이 아닌 일반 서민의 인식이라면 다른 차원이다. 그것은 핵발전소 위주의 전력수급 정책과 수도권 규제완화며 그린벨트 해제에 이어 경기부양이며 활성화의 이름으로 남발되는 개발사업들 속에서, 그 최종 수혜자가 누구인가를 따져 묻는 도표에서 명확해지는 작금의 상황 때문이다.
예컨대 그린벨트 해제의 명분이, 수도권은 주택건설이지만 부산의 경우 공장용지 확보 등 산업용지 확보차원에서 1천만 평이 해제되었다. 응당 지역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겠지만 냉담하다 못해 전투적이기까지 하다. 삶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더 이상 장난치지 말라는 항변이다. 김해평야 대부분을 점유하는 일대의 농지는 대부분 외지인의 소유가 된 지 오래며, 그들은 일찌감치 토지를 매입하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확실한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백방으로 노력했고 마침내 그 결과는 조만간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철새비행의 허브 낙동강 하구까지
그렇다. 상대적으로 몇십 배나 뛰어오른 땅값은 지역민의 삶과는 무관한 투기의 세계인 것이다. 과연 진짜 공장용지가 부족하고 집 지을 땅이 부족해서였던가. 전국의 미분양아파트며, 남아도는 공장부지는 왜 생겨났더란 말인가. 낙동강하류 수십 길 끝간 데 없는 연약지반에 고가의 보상금을 지불하고 토지안정화작업을 통해 탄생한 초고가의 공장부지는 그 자체로 이미 경쟁력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하물며 값싼 공장부지를 찾아 그린벨트 해제를 목놓아 주창한 상공인들의 명분은 무어란 말인가.
한편 공교롭게도 그린벨트가 해제될 지역은 문화재보호구역과 겹쳐 있고, 서낙동강, 평강천 맥도강 수변부 대부분이 낙동강 하구 철새의 도래와 서식지며 먹이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내년 3월 부산시가 어떤 그림을 그릴지 우려스럽기 그지없지만 최소한의 고려는 확인되어야 하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람사르회의를 통해 밝혔던 습지보전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낙동강 하구는 부산만의 공간이 아니다. 호주를 비롯한 동남아 각국과 러시아 중국 등 동북아시아 국가들을 아우르는 동아시아 비행로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그린벨트의 해제가 기정사실이라 하더라도 해제될 지역은 생태 우위의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노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국가 신인도와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다.
또 다시 들썩이는 운하사업
내친김에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과 했던 약속 하나 더 언급해본다. 다름 아닌 지난 늦봄 촛불정국의 막다른 골목에서 천명했던 대운하사업의 포기 발표 때문이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신반의했다. 더욱 확고한 입장이 요구되었지만 유야무야 넘어가더니 아니나다를까, 대운하로 한몫 노리고자 했던 잔당들이 잦아들 만하면 불을 지피고 해대더니 급기야 김태호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대구 부산 울산 경북 경남 등 영남권 5개 광역자치단체장들이 멀쩡한 낙동강을 병이 들었다고 규정하고 수술을 명분으로 각종 정비사업에 국가예산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홍수피해와 만성적 수량부족, 수질오염, 생태계 훼손심화를 이유로 내걸었지만 적지 않은 사업이 운하 정비와 유사한 사업으로 짜여 있다.
예컨대 저수로 단면 확대, 주수로 정비(준설)제방확대, 댐 및 홍수조절지, 하천이용활성화, 하천주변 도시계획 및 지역개발계획, 수변도시 택지개발을 위해 2012년까지 14조 원의 예산을 요구하고 있고, 이 중 낙동강, 금강, 영산강을 선도시업지구로 선정하여 당장 내년부터 부산시, 연기군, 나주시가 정비사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국가하천의 정비사업을 지자체가 추진한 사례는 없다.
이미 운하는 답이 아닌 것으로 규명된 마당에 이따위 꼼수로 국민을 기만하고 강을 유린하겠다는 것은 결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강은 강답게 흐르게 두고, 사람살이의 팍팍함은 애면글면 다독이는 지혜가 필요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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