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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그 사람48

영화 '1987' 속 실제 교도관 한재동 교도소 넘은 진실…전병용→김정남→함세웅으로박정기-아들보다 두 살 많은 아버지 39 1987년 3월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보안계장 안유를 통해 상황을 파악한 이부영은 한재동 교도관에게 볼펜과 종이를 요청했다. 한재동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볼펜과 근무용지인 ‘보고전’ 몇 장을 제공했다. 수감자들에게 필기도구조차 금지된 때였다. 이부영은 3통의 편지를 써서 “박종철 사건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며 건네주었다. 한재동은 편지를 교도소 밖으로 가지고 나가 전직 동료 교도관 전병용에게 전달했다. 그는 당시 수배상태였던 전병용과 연락하고 지내고 있었다.한재동은 영등포교도소 안에 있는 철공장의 재소자들을 관리·감독하는 일을 했다. 철공장에선 재소자들이 수갑 등을 만들었다. 일을 마치는 오후 5시부터 퇴근시간인 .. 2025. 1. 11.
이영희와 ‘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 민주주의, ‘젊은이의 피’와 ‘리영희의 혼’ 먹고 자랐다‘전환시대의 논리’ 발간 50주년거짓·폭압, 권력 판칠수록…푸르게 타오르는 진실의 불꽃“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국가나 애국이나 그런 것이 아니야, 진실이야” (고 리영희 선생 2004년 인터뷰, 리영희 재단 갈무리)시인 김지하는 ‘1974년 1월’이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했다.“1974년 1월을 죽음이라고 부르자/ 오후의 거리, 방송을 듣고 사라지던/ 네 눈 속의 빛을 죽음이라 부르자.”왜 1974년 1월은 죽음이었던가. 그 두 해 전 10월, 박정희는 보통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헌법을 폐지하고 영구 집권을 보장하는 ‘유신헌법’을 만들어 민주주의의 숨통을 끊었다. 이듬해 8월 국외에서 반유신 투쟁을 하던 야당 정치인.. 2024. 10. 6.
방자명 중령-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쿠데타 막다 옥살이, 63년 만에 무죄 받아든 아들의 한탄[인터뷰] 고 방자명 중령 장남 문성씨 "돌아가신 아버지, 사과 없는 국가... 공허한 마음“▲ 육군 헌병대 제15범죄수사대 대장 시절 방자명의 모습.ⓒ 방자명 유족 "이렇게 기쁜 소식을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들았다면 제게 뭐라고 하셨을까요?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 고 방자명 중령의 장남 방문성씨63년. 쿠데타를 막으려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한 군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까지 걸린 세월이다.아버지의 출소를 반기던 초등학생 아들은 장성해 가정을 꾸리고 나서야 알았다. 아버지가 박정희 소장이 일으킨 5·16 군사정변의 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25년이 지나서야 말할 수 있게 됐다. 내 남편은 무죄.. 2024. 9. 27.
박래군 인권운동가 박래군씨, 왜 그렇게 사세요? 이름대로 살았습니다[길을 찾아서-박래군의 인권의 꿈] 1화 연재를 시작하며나만의 이야기 아닌 동료와 함께했던인권운동 기록 진솔하게 써 나갈 것박래군과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소속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이 2016년 9월6일 오후 서울 광화문 ‘4·16광장’에서 시국기자회견을 열어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박래군씨, 왜 그렇게 사세요?”12년 전, 이세영 한겨레21 기자가 나를 인터뷰한 뒤 내보낸 기사의 제목이다. 내가 사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투의 제목이다. 마냥 기분 좋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취지의 질문들을 종종 한다. 왜 아직도 그러고 사냐고? 이런 질문의 의.. 2024. 5.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