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링링과 노거수
'부산시, 낙동강 에코센터 민간위탁 절차 돌입…진통 예고
자연사 수수께끼' 이끼도롱뇽, “기후변화로 위험”
국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벡스코 3전시장, 올림픽공원 부지 최적”
멸종위기 토종 거북 ‘남생이’ 최대 서식지 발견
수정터널 상부공간 연결(공원화) 사업 준공
수온·해수면 상승 ‘도리언’ 비극 불러
태풍 ‘링링’ 강타 인천…500년 수령 ‘보호수’ 부러지고 뽑히고
경기장에 나타난 거대 숲…"기후변화 경고"
지식인 664명 기후위기 선언..."한국, 기후악당 불명예"
다시 불붙는 ‘금정산 특수학교 건립’ 갈등
시민공원 공공성 확보 위해 특별건축구역 지정해야”
태풍 '링링'이 할퀸 들녘, 복구 나선 군인들
日 나리타공항, 태풍에 고립…여행객 1만3천명 누울 자리도 없어
사람도 닭도 사는 법’…달걀 하나에 1천원
쏘이면 사망? 말벌집 직접 제거해보니…
국내 최초 꿀벌 가해, 침입외래종 '등검은말벌' 천적 나타나
한반도를 습격한 또 다른 불청객
지구 면적 10%, 기온상승 억제선 넘어섰다
생태계 위협하는 '붉은귀거북의 난'…예산 없어 방치
시장규모 14조원 일본 반려동물 산업의 그늘, '반려동물 경매장'
태풍 '링링'에 따른 강풍으로 7일 경남 합천군 해인사 학사대 전나무(천연기념물 제541호)가 부러져 있다. 수령 250여년으로 추정되는 이 전나무는 신라 말 한림학사를 지낸 최치원(崔致遠. 857∼?)이 해인사에 지은 작은 정자인 '학사대'에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을 간직한다. 현재 전나무는 그 손자뻘쯤 되는 나무로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가 높고 규모가 커서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바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서 500년 넘은 느티나무의 한쪽 가지가 강풍으로 부러져 있다.(연합)
'부산시, 낙동강 에코센터 민간위탁 절차 돌입…진통 예고
전시실 운영·생태 관광 등 위탁 조항 신설 조례 개정 예고
- “전문성 없는 개방직 채용 문제”
- 노조, 반대위원회 결성해 대응
- 환경단체는 민간 위탁 지지
부산시가 공무원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사무 가운데 일부를 민간에 위탁하는 절차를 밟는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사무의 민간 위탁 건은 지난해부터 시 정무직과 공무원노조, 이른바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언제나 공무원)’이 겪는 갈등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시가 이번에 환경단체의 지지를 업고 ‘강행’ 의사를 분명히 밝히면서, 추진 과정에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시 낙동강관리본부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운영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입법예고했다고 5일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위탁 조항’을 신설하는 게 핵심이다. 시는 이달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개정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한 뒤, 다음 달 시의회 심의를 마치고 오는 11월 조례를 공포해 시행할 계획이다. 시가 민간에 위탁하려는 낙동강하구에코센터의 사무는 ▷대외 활동 ▷전시실 운영 ▷생태 관광 등이다. 낙동강관리본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일을 잘해 왔지만, 에코센터 위상을 더 높이려면 변화와 혁신이 필요해 민간 위탁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사무의 민간 위탁이 본격화하자 공무원노조의 반발도 거세진다. 민간 위탁으로 에코센터를 혁신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려는 시와 달리 공무원노조는 “전문성 없는 개방직 센터장(4급)을 채용하는 건 문제가 있다”는 등 이유로 반대한다. 공무원노조는 시가 민간 위탁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절차도 무시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공무원노조는 최근 ‘민간 위탁 반대·저지 특별위원회’를 결성했다. 또 시의 조례 개정에 대응하려고 5일 긴급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앞으로의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부산공무원노조 김종수 수석부위원장은 “민간 위탁을 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직원을 상대로 의견을 수렴하기는커녕 공청회조차 열지 않았다. 시는 또 개정 조례안이 통과되기도 전에 내년 본예산에 민간 위탁을 위한 예산 3억 원을 이미 포함했다”며 “무리한 민간 위탁을 반드시 저지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면 부산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단체는 시가 추진하는 민간 위탁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동안 낙동강하구에코센터가 관료화돼 소극적으로 운영됐다는 이유에서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에코센터는 관료화로 인해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프로그램 운영 부분이 대표적이다”며 “시 구상대로 민간 위탁이 이뤄지면 민간의 유연성과 전문성으로 에코센터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했다.
시 낙동강관리본부가 운영하는 사하구 을숙도의 낙동강하구에코센터는 을숙도철새공원을 보전·관리하고, 시민에게 생태 관련 전시·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임동우 기자 guardian@kookje.co.kr
자연사 수수께끼' 이끼도롱뇽, “기후변화로 위험”
유라시아와 북미 연결됐던 증거…온난화로 서식지 40% 사라질 가능성
이끼도롱뇽은 북·중 아메리카에 종의 99%가 사는 미주도롱뇽과에 속한다. 베링 해를 건너 북미에서 유라시아로 건너온 것이나, 한반도에서 이 종이 살아남은 것도 수수께끼다. 김현태 서산 중앙고 교사 제공.
허파가 없어 피부로만 호흡하는 특별한 양서류인 미주도롱뇽은 아메리카 대륙이 본고장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 미주도롱뇽의 일종인 이끼도롱뇽이 널리 서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자연사의 비밀을 안고 있는 이끼도롱뇽의 생태는 아직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이들의 서식지가 크게 줄어들 것이란 예측이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이끼도롱뇽을 처음 채집한 건 일본인 학자로 1971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 도롱뇽의 자연사적 가치가 밝혀진 건 훨씬 뒤인 2005년이었다.
이끼도롱뇽은 물가 야산 높은 곳에 돌이 많이 쌓인 너덜에 주로 서식한다. 김현태 서산 중앙고 교사 제공.
민미숙 서울대 수의대 박사 등 우리나라와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네이처’에 이 발견 소식을 알렸다. 이 연구의 교신저자이자 도롱뇽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웨이크 미국 버클리대 교수는 “내 연구 인생에서 가장 짜릿한 발견”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끼도롱뇽의 학명 ‘카르세니아 코리아나’(Karsenia koreana)에서 ‘카르세니아’는 당시 대전 외국인학교 교사였던 스티픈 카슨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대전 장태산에서 야외수업을 하다 이 도롱뇽을 발견하고 미국 연구자에게 표본을 보내 발견을 이끌었다. 이 발견이 세계 학계의 관심을 끈 이유는, 세계 도롱뇽의 약 70%가 포함된 미주도롱뇽과 도롱뇽의 주 서식지가 북·중미로 종의 99%가 그곳에 살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유일한 예외가 지중해안 이탈리아 북부에 일부 서식하는 미주도롱뇽으로, 왜 그곳에 살게 됐는지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이끼도롱뇽의 계통분류학적 위치(오른쪽 네모). 왼쪽 위는 미주도롱뇽과 종의 현재 서식지. 아래는 유라시아와 미주대륙이 연결돼 도롱뇽이 이주해 분화한 두 시기의 지구 모습. 데이비스 바이에 외 (2007)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 제공.
그런데 한반도에도 미주도롱뇽이 살고 있음이 드러나고,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수수께끼가 풀리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도달한 결론은, 약 8000만년 전 중생대 백악기 말 한랭화하던 지구가 잠시 온난기로 접어들었을 때 북아메리카의 일부 도롱뇽이 육지로 드러난 베링 해를 건너 유라시아로 이동해 분화했다는 것이다. 이 이끼도롱뇽의 조상은 이어 유라시아를 횡단해 지중해 일대로 퍼져나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반도와 지중해를 뺀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멸종했다.
그러나 지질시대의 자연사를 간직한 이끼도롱뇽은 기후변화가 이대로 계속된다면 한반도의 삶터를 상당 부분을 잃을 것이란 예측 결과가 나왔다. 아마엘 볼체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박사 등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다양한 기후변화 모델에 따라 이끼도롱뇽 서식지가 어떻게 변할지를 예측했다. 그 결과 도롱뇽 서식지가 늘어나는 것은 ‘인간활동 영향을 지구 스스로 극복하는 경우’(RCP 2.6)와 ‘온실가스 저감이 상당히 이뤄지는 경우’(RCP 4.5)뿐이었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더 큰 ‘온실가스 저감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경우’(RCP 6.0)와 ‘저감 없이 이대로 증가하는 경우’(RCP 8.5)에는 2070년까지 서식지가 각각 40%와 39%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볼체 박사는 “전체적으로 볼 때 기후변화는 이끼도롱뇽의 적절한 서식지가 줄어 개체수의 감소로 귀결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이메일 인터뷰에서 말했다.
온실가스 감축이 ‘어느 정도’ 이뤄지는 시나리오(C)와 특별한 감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D) 이끼도롱뇽의 서식지 변화. 볼체 외 (2019) ‘사이언티픽 리포트’ 제공.
그는 “이끼도롱뇽은 이동능력이 부족한 데다 적절한 서식지가 늘어난다 해도 집단끼리 단절돼 있어 서식지 확대로 이어지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기후변화로 인한 3도 기온 상승에 대응하려면 생물종은 고위도로 350㎞, 또는 500m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끼도롱뇽은 기후변화 영향은커녕 기본적인 생태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의 교신저자인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지난 10∼20년 사이 더운 날씨를 싫어하는 참매미가 남부지역에서 거의 사라질 정도로 기후변화 영향이 두드러진다”며 “이끼도롱뇽은 산란하기 좋은 돌이나 나뭇가지 주변을 차지해 암컷을 맞고 경쟁자를 쫓아내는 등 독특한 행동이 주목받지만 알려진 것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돌 밑에 붙여놓은 이끼도롱뇽의 알. 이끼도롱뇽은 세력권 방어나 짝짓기 구애 행동 때 페로몬을 많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현태 서산 중앙고 교사 제공.
실제로 이끼도롱뇽이 돌 밑에 거꾸로 매달린 형태의 알을 낳는다는 사실을 문광연 대전 중일고 교사 등이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것은 2016년이었다. 이끼도롱뇽 서식 실태를 장기간 조사해 온 공동저자 김현태 서산 중앙고 교사는 “여름에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 땅속에 숨을 수 있는 하천 근처 너덜 지대에서 주로 발견된다“며 “전국적인 서식 실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환경부는 이끼도롱뇽을 멸종위기종에 지정하기에 앞서 보호관찰 대상인 관찰종으로 지정해 놓고 있다.
대전 장태산의 이끼도롱뇽. 미국인 교사가 이곳에서 발견한 이끼도롱뇽을 미국에 보내 이 도롱뇽의 자연사적 가치를 세계에 알리게 됐다. 김현태 서산 중앙고 교사 제공.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maël Borzée et al, Climate change-based models predict range shifts in the distribution of the only Asian plethodontid salamander: Karsenia koreana, Scientific Reports (2019) 9:11838, https://doi.org/10.1038/s41598-019-48310-1
조홍섭 ecothink@hani.co.kr
국화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나
기후변화 틈타 전 세계로 퍼져…수많은 꽃이 한 송이 이룬 것도 비결
남아메리카 국화과 고유 속인 쿤트. 신생대 에오세 때 아프리카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해 남아메리카에서 진화한 식물이다. 국화과 식물의 기원지인 남아메리카에서 세계를 한 바퀴 거쳐 다시 돌아온 셈이다. 비키 펑크 제공.
고등식물의 95%를 차지하는 꽃을 피우는 식물 가운데 세계적으로 큰 두 ‘가문’이 있다. 종 수가 많기로 국화과와 난초과 식물이 난형난제하다. 국화과에는 2만5000∼3만5000종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전체 꽃식물의 약 10%에 해당한다.
그러나 얼마나 널리 분포하는지를 따지면, 국화과가 윗길이다. 온난한 곳에 주로 분포하는 난초와 달리, 국화과 식물은 남극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대륙에서 자란다.
우리에게 낯익은 많은 식물이 이 무리에 속한다. 다양한 국화를 비롯해 해바라기, 코스모스, 민들레, 백일홍, 엉겅퀴, 쑥, 상추, 취, 우엉, 씀바귀, 달리아, 캐모마일 등이 모두 국화과 식물이다. 이 식물들은 어디서 기원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구를 ‘점령’하게 됐을까. 최신 염기서열 해독 기술을 이용해 국화과 식물 약 250종의 유전자를 분석해 이 수수께끼를 푼 연구결과가 나왔다.
브라질 고유의 국화과 식물인 운더리키아 속 식물. 5000만년 전 남아메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져나간 국화과 조상 식물과 자매 계열인 옛 국화과 식물이다. 캐롤리나 시니스칼치 제공.
제니퍼 맨델 미국 멤피스대 교수 등 미국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7월 9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국화과 식물의 기원이 8300만년 전인 중생대 백악기로 거슬러 오르며, 남아메리카가 기원지라고 밝혔다. 또 국화과 식물은 기후변화를 틈타 남아메리카에서 북아메리카로, 다시 베링 해를 건너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했고,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코스모폴리탄’의 이동 경로를 보였다고 밝혔다.
국화과 식물의 원조는 극지방에도 열대림이 분포할 정도로 따뜻했던 백악기에 남아메리카 남부에 출현했다. 그러나 지구의 기후는 백악기 말 소행성 충돌과 함께 공룡시대가 막을 내리는 대멸종 사태를 겪으면서 한랭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6종 중 5종이 멸종하는 격변에서 살아난 국화과 조상은 춥고 건조해지는 기후에 적응해 다양화했다. 약 5000만년 전 기후 격변 때 이들은 북아메리카로 퍼져나갔다.
신생대 에오세의 지구는 춥고 건조해 유라시아와 북아메리카 대륙은 낮아진 해수면 덕분에 연결됐고, 국화과 식물은 베링육교를 건너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이동했다. 연구자들은 약 4200만년 전 아프리카의 건조화로 대륙 내부 숲이 초원에 자리를 내주었을 때 이들 식물은 다시 한 번 폭발적으로 다양하게 진화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민들레, 국화, 해바라기, 엉겅퀴 등 현생 국화과 식물의 95%가 이때 생겨났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국화과 식물은 이처럼 지구기후가 춥고 건조해질 때 다양하게 진화해 넓은 지역에 퍼져나갔다. 현재 이들이 많이 분포하는 곳도 사막, 초원, 산악지대 등 건조한 지역이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고려엉겅퀴. 꽃잎 하나하나가 별개의 꽃으로 전체는 꽃송이 하나가 아닌 커다란 꽃다발이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연구자들은 이처럼 국화과 식물이 진화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유로 독특한 꽃의 구조를 들었다. 국화과 식물은 수많은 개별 꽃이 모여 하나의 꽃다발을 이룬다. 국화꽃 한 송이는 꽃잎 수만큼 수많은 꽃이 모인 형태다. 또 국화과 식물은 씨방에 깃털이 달렸는데, 이것이 씨앗이 멀리 퍼지는 것을 돕고 초식동물이 먹는 것을 방해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Jennifer R. Mandel et al, A fully resolved backbone phylogeny reveals numerous dispersals and explosive diversifications throughout the history of Asteraceae, PNAS 2019 116 (28) 14083-14088, https://doi.org/10.1073/pnas.190387111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
“벡스코 3전시장, 올림픽공원 부지 최적”
벡스코 제3전시장 건립 부지로 올림픽공원이 최적이라는 용역 결과가 나왔다.
벡스코는 최근 열린 ‘벡스코 시설확충 타당성 검토와 기본계획 수립용역’ 최종 보고회에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8일 밝혔다. 벡스코는 올 4월 용역 수행기관으로 부산대 산학협력단과 일신설계종합건축사사무소로 구성한 컨소시엄을 선정하고 5개월간 용역을 진행했다. 용역팀은 제3전시장 후보지로 본관 야외주차장과 올림픽공원을 제시하고, 전문가와 시민 대상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올림픽공원에 대한 평가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고 밝혔다.
‘벡스코 시설확충 용역’ 최종 보고회서
공사 제약 덜하고 상권 확대 용이 이유
‘공원 녹지 부지 훼손’ 비판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올림픽공원이 벡스코 본관 야외주차장보다 공사의 어려움과 제약이 덜할 뿐만 아니라 공사 중 이용객의 불편이 덜할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인근 지역 상권과의 연계성이 높고 식당이나 사무실, 카페 등 입점 선호도가 높은 곳으로는 본관 야외주차장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향후 지역 상권 확대와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곳으로 올림픽공원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용역 결과로 제3전시장은 대지 면적 3만 1615㎡ 규모에 전시장 면적 2만 2638㎡, 회의실 7215㎡, 지하주차장 등 연면적 8만 9194㎡ 규모로 설계되었다. 이렇게 되면 벡스코의 전시장 면적은 총 7만㎡(기존 1·2전시장 면적 4만 6380㎡) 수준으로 늘어난다.
시설 확충에 드는 총사업비는 2830억 원으로 예상됐다. 경제성 분석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값은 1.02로 분석됐다.
일부에서는 벡스코가 공사의 편리성에 무게를 두고 올림픽공원의 녹지를 훼손하려 하는 데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대해 용역팀 측은 “제1전시장 야외주차장에는 벡스코가 원하는 2만㎡ 이상의 전시장 확충이 불가능한다는 판단이 나왔다”고 밝혔다. 벡스코는 부산시와 함께 전시장 확충 부지와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방침을 확정하고, 올해 중 산업통상자원부의 전시산업발전협의회의 심의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올림픽부지 건립안은 최종 보고에서 나온 결과일 뿐 아직 확정된 건 아니다”며 “추후 논의를 통해 최종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일보 이자영 기자
멸종위기 토종 거북 ‘남생이’ 최대 서식지 발견
경북 농업용 저수지서 20여 마리…경쟁자인 붉은귀거북이 큰 위협
대표적인 토종 민물 거북인 남생이는 외래종인 붉은귀거북이 전국에 퍼지면서 자취를 감췄다. 국립생물자원관 제공.
남생이는 자라와 함께 전국 하천과 저수지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토종 거북이었다. 그러나 붉은귀거북 등 외래종 유입과 서식지 파괴 등으로 대부분 자취를 감춰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위기’ 종으로 지정한 국제적 멸종위기종이기도 한 남생이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발견됐다. 구교성 전남대 생태모방연구센터 연구교수 등 연구자들은 지난해 5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경북도의 한 소규모 농업용 저수지에서 각각 28마리와 21마리의 성체와 어린 남생이를 확인했다고 ‘한국환경생태학회지’ 8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연구자들은 이 저수지가 “국내 최대 규모의 남생이 개체군”이라며 “남생이와 서식지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대식 강원대 교수팀이 2009년 섬진강과 남강 유역의 저수지 99곳을 조사했을 때 남생이는 9개 저수지에서 모두 33마리가 발견됐을 뿐이다. 또 환경부가 전국자연환경조사 등을 통해 확인한 전국의 남생이 서식지는 경남을 중심으로 28곳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에 발견된 서식지는 둘레가 약 500m인 작은 저수지이지만 물에 잠긴 나무가 일광욕 장소를 제공하고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서식 여건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생이를 위협하는 요인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남생이의 최대 경쟁자인 활발한 붉은귀거북이 다수 서식하며 번식까지 해 우려를 낳는다.
이훈복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 등 연구자들은 2017년 ‘한국환경생태학회지’에 남생이와 붉은귀거북에 무선추적기를 붙여 연구한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남생이와 붉은귀거북은 제한된 일광욕 장소, 먹이 자원 활용, 동면 장소 등 여러 방면에서 중복되는 행동권과 서식지 이용 패턴으로 경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경쟁의 패자는 늘 몸집이 작고 소극적인 남생이었다. 거북에게 일광욕은 먹이 섭취 후 원활한 대사 작용과 비타민과 같은 필수 영양소 생성에 중요한 행동이다. 이 저수지에서 남생이와 붉은귀거북은 모두 수몰지역에서 발견됐는데, 거북은 물에 잠긴 나무에 기어올라 햇볕을 쬔다.
이번에 최대 규모 서식지로 밝혀진 저수지의 물에 잠긴 나무에 올라 일광욕을 하는 남생이(A)와 붉은귀거북(B). 좋은 자리는 크고 활발한 외래종 차지다. 구교성 외 (2019) ‘한국환경생태학회지’ 제공.
북아메리카 원산인 붉은귀거북은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들여오기 시작했고, 부처님 오신 날 방생 등에 쓰여 1996∼2000년 사이에만 600만 마리가 저수지 등에 풀려나갔다. 이번 남생이들이 발견된 저수지에서는 새끼 남생이를 잡아먹는 황소개구리가 다수 확인되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위협요인의 제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밖에 저수지 주변에서 대규모 문화재 발굴 작업이 벌어지고 있고, 논의 물이 저수지로 흘러들어 농약과 비료로 인한 오염도 위협요인으로 꼽혔다. 저수지 주변에는 낚시꾼들이 버린 것으로 보이는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연구자들은 “남생이의 인공증식이 이뤄지고 있지만 자연 서식지에서 계속 번식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남생이뿐 아니라 남생이의 서식지를 보호할 구체적이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남생이는 중국, 일본, 타이완에도 분포하며 해캄 같은 수초를 비롯해 곤충, 다슬기, 갑각류, 죽은 물고기 등을 먹으며 4월부터 11월까지 활동하다 겨울잠을 잔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수정터널 상부공간 연결(공원화) 사업 준공
‘수정터널 상부공간’은 2001년 수정터널 개통으로 지역생활권단절, 소음, 분진 등의 환경악화에 따른 주민불편이 가중되어 온 지역에 공원과 주민참여형 커뮤니티 공간을 설치, 녹지‧문화‧복지 환경을 개선하고자 중심시가지재생사업으로 추진된 문화공간이다.
수정터널 상부공간 공원화 사업은 2013년 국토교통부 도시활력증진사업으로 선정되어 2014년 관련예산을 확보, 2015년 12월에 실시설계 완료 후 2016년 3월 도시관리계획으로 공원시설로 결정·추진되었다. 2016년 4월 총 사업비 218억 원을 투입하여 공사를 시작, 2019년 8월 조경공사를 마무리하고 이번 준공식을 개최하게 되었다.
상부공간에 조성된 감고개공원은 6,443㎡ 면적에 대왕참나무 등 교목 13종 316주, 영산홍 등 관목 10종 22,670주, 애란 등 지피식물 12종 11,360본, 잔디(평떼) 1,181㎡, 휴게쉼터 및 운동시설 등 16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수온·해수면 상승 ‘도리언’ 비극 불러
ㆍ가옥 1만채 파괴 등 바하마 쑥대밭으로 만든 허리케인 도리언
ㆍ더운 바다에서 올라오는 수증기를 연료 삼아 초강력 힘 발휘
ㆍ1만km 떨어진 한반도, 온난화·산업화로 인근 해역 수온 증가
ㆍ바하마 바다와 유사한 기상 구조 작동…“한국도 안심 못해”
지난 2일 320여㎞ 상공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촬영된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공
푸른 바다 위에 군데군데 검은 대륙이 눈에 띄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작은 창밖을 소용돌이 모양의 흰색 구름이 가득 채우고 있다. 지면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름의 두께는 두껍고 밀도는 촘촘하다. 지난 2일 지구 상공 320㎞ 지점을 돌던 ISS에서 촬영된 사진은 한때 위력이 5등급까지 올라간 초강력 허리케인 ‘도리언’의 모습이다. 허리케인의 위력은 1등급에서 5등급까지 구분되며 숫자가 클수록 강하다.
도리언은 카리브해의 섬나라 바하마 일대에서 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지난 1일 상륙 뒤 가옥이 1만 채 넘게 부서지며 인구 40만명의 작은 나라 바하마는 쑥대밭이 됐다. 사상자가 수십명 발생했지만 복구 과정에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도리언이 가진 가공할 위력의 핵심은 바람이다. 최고 시속 297㎞의 바람을 내뿜은 것인데 이 정도 힘을 보인 허리케인은 육지에 상륙한 허리케인 기준으로 역대 3차례밖에 없었다는 게 미국 기상 당국의 설명이다. 도리언이 바하마 주변에서 이틀간 머물며 세력이 2등급까지 약화됐지만 플로리다 등 미국 남동부에선 주민 대피령과 공중이용시설 폐쇄 등 도리언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지난주 내내 부산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런 초강력 허리케인은 왜 지구에 나타났을까. 과학 매체 뉴사이언티스트 등 외신은 도리언이 발생해 이동한 대서양 일부의 표면 온도가 평소보다 1도 높았다고 지적했다. 허리케인이 생기고 위력을 유지하는 핵심은 더운 바다에서 증발하는 수증기다. 허리케인은 바다에서 생기는 거대한 폭풍인데, 이런 힘을 유지하는 연료 역할을 하는 물질이 수증기인 것이다. 극지방에 가까운 차가운 바다에서는 허리케인이 안 생기는 이유다.
게다가 도리언이 할퀴고 지나간 지역의 해수면이 예년보다 0.2m 높아져 있었다는 점은 폭풍 해일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뉴사이언티스트는 지적했다. 해수면이 높다면 해안선 안쪽의 가옥 등 시설물을 파도가 덮칠 가능성도 커진다. 물이 가득 찬 컵은 손가락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물이 쉽게 흘러넘치는 것과 비슷한 일이 도리언이 휩쓸고 간 대서양과 카리브해 주변에서 일어난 것이다.
문제는 허리케인 도리언이 단순히 1만㎞ 넘게 떨어진 먼 곳에서 벌어진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다 수온과 해수면 상승의 영향은 ‘태풍’이 만들어지는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10월5일 한반도에 상륙했던 태풍 차바는 바람의 세기가 최대 시속 203㎞에 이를 만큼 위력적이었다. 당시 차바의 풍속은 우리나라를 통과한 태풍 가운데 4번째로 강했다.
집도 공항도 항구도 모두 폐허로 허리케인 ‘도리언’이 강타하면서 피해를 입은 바하마의 모습. 가옥들이 파괴되면서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었고(위 사진), 마시 하버 공항은 물에 잠겼으며(가운데) 선착장에는 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바하마 | AFP·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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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태풍 차바가 한반도로 향하던 2016년 10월2일 바다 수온이 심상찮았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에 따르면 당시 동중국해 수온은 평년보다 3도 높았다. 동중국해는 태풍이 우리나라 남해 또는 서해로 진입하기 직전에 지나가는 일종의 관문이다. 높은 수온에서 다량 발생하는 수증기를 잔뜩 공급받으며 차바의 힘이 크게 올라간 것이다. 차바가 한반도를 덮친 때는 시기상 가을이었다. 예년이라면 바다의 수온이 내려가 태풍이 우리나라 주변으로 들어오기 어렵다. 바다가 가을답지 않게 따뜻한 상황이 이어졌다는 얘기다. 가을 태풍은 지난해에도 있었다. 태풍 콩레이가 지난해 10월6일을 전후해 한반도를 통과한 것이다. 당시에도 태풍의 탄생을 저지할 정도로 해수면 온도가 낮지 않다는 점이 학계에선 지적됐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해수면 온도 상승을 전 지구적인 동향으로 볼 수 있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한반도 주변의 수온 증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온난화로 인한 해류 흐름의 변화나 중국 등이 속한 동북아가 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열원 증가가 수온 상승의 유력한 이유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수온이 올라가면서 생기는 해일 증가도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백민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더운 바다에서는 차가운 바다보다 부피가 커지는 ‘열팽창’ 현상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열팽창이 생긴 바다는 덩치가 커져 해수면도 올라간다. 도리언이 강타한 바하마 인근 바다와 유사한 해수면 상승 현상이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 생길 여지가 크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해수면이 높아지면 비교적 약한 태풍이 와도 해일이 해안을 덮치는 일이 더 자주 생길 가능성이 크다”며 “2016년 차바로 인해 생긴 해일로 해안가에 접한 아파트 단지인 부산 마린시티 일대가 침수된 건 일종의 전조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태풍 ‘링링’ 강타 인천…500년 수령 ‘보호수’ 부러지고 뽑히고
강화 연민정 500년 수령 느티나무 등 피해 심각
환경단체 “보호수 전수 조사 및 보호 조처 해야”
제13호 태풍 ‘링링’이 강타한 인천 강화군 연미정 옆 500년 수령의 보호수 느티나무 밑둥이 부러졌다.
제13호 태풍 ‘링링’이 할퀴고 간 인천에서 수령 수백년된 나무 등 보호수들이 심각한 피해를 본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 녹색연합은 “태풍 피해 현장을 둘러본 결과, 인천시 지정 보호수 중 강화 연미정 느티나무, 교동도 고구리 물푸레나무와 인사리 은행나무, 옹진군 이작도 소나무 등이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9일 밝혔다.
연미정 느티나무 두 그루 가운데 한 그루는 강풍에 완전히 부러졌다. 2000년 11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된 이 느티나무는 지상으로부터 1m 위 줄기가 부러져 회생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연미정 좌우의 느티나무들은 모두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연미정도 느티나무가 부러지는 과정에서 일부 파손됐다.
수령 330년 된 인천 교동도 인사리 은행나무는 강풍에 뿌리째 뽑혔다.
수령 330년으로 1982년 10월15일 보호수로 지정된 교동도 인사리 은행나무는 뿌리째 뽑혔고, 바로 옆 느티나무 노거수도 큰 줄기 두 개가 부러졌다. 또한 수령 400년으로 2001년 8월6일 보호수로 지정된 교동도 고구리 고목근현지에 위치한 물푸레나무도 큰 줄기 중 하나가 꺾였다. 이 물푸레나무는 과거에도 큰 줄기가 부러지거나 갈라져 철근으로 연결해 놓은 상태였다.
이 밖에도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의 소나무를 비롯해 남동구 구월동 회화나무도 두 동강이 나는 등 보호수 피해가 잇따랐다. 인천녹색연합은 보호수 피해 실태에 대한 신속한 전수조사와 회생 조처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앞서 천연기념물 제521호인 백령도 무궁화는 2012년 태풍 볼라벤 때 뿌리째 훼손된 데 이어 지난해 태풍 솔릭 때 추가로 가지가 부러져 결국 최근 고사했다. 장정구 인천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은 “보호수와 노거수 등 인천의 소중한 자연환경자산들이 방치되지 않도록 꼼꼼한 전수조사와 보호조처 강구와 함께 가치발굴과 시민홍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천에는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로 백령도 무궁화나무, 대청도 동백나무, 볼음도 은행나무, 강화도 갑곶리 탱자나무, 사기리 탱자나무, 첨성단 소사나무,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 등이 있다. 인천시지정 보호수 116그루 등 120여 그루가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경기장에 나타난 거대 숲…"기후변화 경고"
오스트리아의 한 축구 경기장입니다. 잔디로 덮여있어야 할 경기장에 나무가 무성합니다. 마치 동물원에서 동물을 구경하듯 관객석에서 나무를 바라보게 돼 있네요,
스위스 예술가 클라우스 리트만의 작품 '끝이 없는 자연의 매력'입니다. 리트만은 한 화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경기장에 나무 300그루를 옮겨놨습니다. 기후 변화의 위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건데요,
언젠가는 자연의 모습을 이런 공간에서밖에 볼 수 없을 거라는 경고입니다. 전시는 다음 달까지 계속되는데, 전시가 끝나면 나무들은 경기장 주변에 다시 심어질 예정입니다. 최소라[csr73@ytn.co.kr]
지식인 664명 기후위기 선언..."한국, 기후악당 불명예"
"한국 정부 전환 의지 의심...인류에 시간 없다" 경고
기후위기 선포를 촉구하는 지식인·연구자 선언
지구의 미래를 위한 저항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3월과 5월, 전세계 수백개의 도시에서 청소년들이 앞장 선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에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동참했다. 화석연료 사용의 신속한 중단을 요구하며 점거 시위를 펼치는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과 토지의 종말(Ende Gelaende) 운동을 지지하는 목소리도 전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전면적인 대응을 촉구하는 시민사회의 요구는 '기후행동 정상회의'(Climate Action Summit)가 열리는 기간에 맞춰 펼쳐질 전지구적인 기후 파업에서 다시 한번 분출될 것이다.
기후행동이 세계 각지에서 지지를 받는 까닭은 무엇보다 일상에서 기후변화의 위험을 체험할 수 있을 만큼 지구의 기후가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동안 경험할 수 없었던 폭염이 더 자주, 더 오랫동안, 더 많은 곳을 강타하고 있다. 예기치 못한 폭우, 폭설, 가뭄, 홍수, 한파 소식 또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급변하는 기후로 인해 수십년 내 전세계의 주요 도시가 인간의 생존이 어려운 곳으로 변할 수 있다는 암울한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기후위기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자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아가 기후위기가 다차원적인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한다. 단적으로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사막화, 토지 이용방식의 변화는 식량 생산의 감소를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식량 생산 감소로 인한 식량 가격의 상승은 가난한 지역과 계층의 식량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또한 기후위기와 식량위기는 물 공급과 사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에너지위기이자 식량위기, 나아가 물위기를 포함하는 총체적인 위기의 징후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2019년 들어 영국, 아일랜드, 캐나다, 프랑스 등이 앞장서 기후위기 또는 기후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지방정부로 내려오면, 세계 각지에서 수백 곳 이상의 지방정부가 기후위기 비상 선언에 동참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유럽의 주요 선거에서 기후변화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면서, 그린 뉴딜(green new deal)과 같은 전향적인 정책들이 제안되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과 역량을 동원해서 2030-2050년 탄소 배출 제로, 신속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 2030-40년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중단과 같은 장기적인 전환 계획을 수립·실행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은 한참 뒤쳐져있다. 문재인 정부가 탈핵·에너지전환으로 에너지정책의 방향을 돌린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기후위기의 현실에 비춰보면 전환의 속도는 느리고 포괄 범위도 제한적이다. 한국은 이산화탄소 배출량 세계 7위, 기후악당국가의 불명예를 안고 있으나 석탄화력발전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많고 폐쇄 계획은 더디다. 도전적인 '탄소 배출 제로' 목표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한국은 아직 국제적으로 매우 불충분한 것으로 평가받는 BAU 대비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머물러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에너지전환의 추진력이 약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 정책은 전환의 의지 자체를 의심할 수준이다. 기후변화 대책의 사각지대가 곳곳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기후위기 대응방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정확한 인식, 기후변화 및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통렬한 성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기후위기 비상 선언과 장기적인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의 조속한 수립은 기후위기를 헤쳐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한 걸음 더 나아가려면, 기후위기 대응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거나 위험을 새로운 형태로 전가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기후위기 대응의 원칙으로 확립해야한다. 누구도 기후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기후위기의 책임과 피해가 동등한 것은 아니다. 기후재난의 피해는 역설적으로 기후위기의 책임이 가장 적은, 가난한 지역과 취약한 계층에 집중되어 이들의 삶의 권리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대기업의 온실가스 배출의 책임은 점점 더 느는 데 반해 폭염과 같은 기후재난은 야외 노동자나 주거 빈곤층과 같은 취약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국제적 차원과 국내적 차원을 모두 고려해서 기후변화의 책임과 피해 간의 불일치를 교정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나아가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나 비용이 특정 지역과 집단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사회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기후정의의 문제는 기후위기가 복합적인 사회위기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따라서 기후위기는 에너지원의 변화를 넘어서 에너지 다소비적인 산업구조의 변화, 사회적 불평등의 해소, 고용 및 복지 체계의 변화, 사회경제적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 등 사회 구조의 변화를 동반할 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기후위기 대응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대규모 투자, 녹색 일자리의 창출을 넘어서서 산업구조의 개편, 발전모델의 전환으로 나아가야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새로운 기술적 해결책을 도입하거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정책으로 국한될 수 없으며 핵발전의 유혹에 흔들려서는 더더욱 안된다. 전지구적으로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system change, not climate change)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를 곱씹으며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변화를 사회적으로 폭넓게 논의해야한다. 그 시점이 늦어질수록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 예산(carbon budget)은 더 빠르게 줄어들고 기후위기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1.5-2℃ 상승 억제는 요원해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몇 년이 채 남지 않았다.
9월 21일, 전지구적 기후 파업의 일환으로 국내에서도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전국 곳곳에서 개최된다. 우리는 기후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기후행동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국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개인을 아우르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변화를 이끄는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 정부가 국제적인 책임을 다하며 국내적으로 정의롭고 신속한 전환을 이끌기를 기대하면서, 전환의 출발점으로 다음의 세가지 사항을 요구한다.
○ 정부는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실시하고 온실가스 배출 제로 계획을 조속히 수립하라.
○ 기후정의의 원칙에 입각하여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포괄적으로 재검토·강화하라.
○ 신속한 탈핵·에너지전환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국가 특별기구를 설치하고 관련 법·제도를 정비하라.
2019. 9. 9.
기후위기 비상 선포를 촉구하는 지식인·연구자 일동(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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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불붙는 ‘금정산 특수학교 건립’ 갈등
부산대가 잠정 중단했던 금정산 부지 내 특수학교 설립을 재추진한다. 이에 환경단체는 국립공원 지정에 나선 금정산을 훼손해선 안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대는 지난 9일 부산대 사범대 부설 특수학교 설립이 예정된 금정산 부지의 근린공원 해제를 부산시에 요청했다고 10일 밝혔다. 부산대는 장전캠퍼스 대운동장 위쪽 금정산 부지 1만 6120㎡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근린공원’으로 지정돼 있어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부산시가 이를 해제해야 한다.
부산대, 장전캠퍼스 위쪽 부지
市에 근린공원 지정 해제 요청
연면적 1만 2377㎡ 학교 재추진
환경단체 “국립공원화 역행” 반발
대학 측 “친환경 설계로 만들 것”
부산대가 설립 추진 중인 특수학교는 문화·예술·체육 분야를 가르치는 장애인 대상 교육기관이다. 21개 학급, 학생 138명을 받을 수 있는 연면적 1만 2377㎡ 규모로, 오는 2021년 9월에 개교가 예정돼 있다. 학령인구는 감소하고 있지만 장애학생 수는 증가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교육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 대학 측 설명이다.
부산대 캠퍼스기획과 관계자는 “특수학교를 예정된 기간 내 설립하기 위해 부산시에 특수학교 부지 근린공원 해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교육부에서도 특수학교 설계 용역비로 받았던 13억 6000만 원을 서둘러 집행하라는 요구를 받아, 지난달 초에 특수학교 설계 용역도 들어간 상태”라고 밝혔다. 이는 부산대가 본격적인 특수학교 설립 재추진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대학은 지난해 5월부터 금정산 내 학교 부지에 특수학교 설립을 시도했지만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로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이와 관련, 부산대는 올해 3월에 학교·환경단체 관계자와 간담회를 열고, 6월에는 공청회도 개최했지만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은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되면 금정산 국립공원 지정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반발했다. 범시민금정산보존회 유진철 생태국장은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해 부산시와 시민들이 힘을 모으고 있는 지금, 부산대가 금정산 부지 개발을 추진하는 것은 시민들의 바람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대학본부는 금정산이 아닌 다른 대안 부지를 찾아 특수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금정산국립공원지정 범시민네트워크'와 '2020도시공원일몰대응 부산시민행동'은 "시민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금정산에 특수학교 설립을 추진하는 부산대를 규탄한다"며 부산시에 도시계획위원회와 도시공원위원회 개최를 공식 요청하기로 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시민공원 공공성 확보 위해 특별건축구역 지정해야”
부산시민공원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특별건축구역으로 시민공원 일대를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별건축구역이란 조화롭고 창의적인 건축을 통해 도시 경관을 관리하고, 건축 기술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지정하는 구역으로 완화된 규정을 적용받는다.
10일 오후 2시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부산시민공원 공공성 확보를 위한 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 부산환경회의가 공동 주최했다.
부산시청서 시민 대토론회
“공원과 접하는 부분 저층 조성
나머지 부분 고층화해 경관 관리”
이날 토론회에서 안용대(가가건축 대표) 부산시 총괄건축분과위원장은 특별건축구역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개별 아파트 단지 위주의 설계가 진행돼 시민공원의 개방성이 떨어지고 천편일률적 박스형 구조로 조망의 공공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안 위원장은 특별건축구역이 될 경우 공원과 접하는 부분은 저층부로 꾸미고 나머지 부분을 고층으로 꾸미는 등의 방식으로 단조로운 스카이라인을 극복할 수 있으리고 봤다. 또 경사 지형에 들어서는 3, 4구역의 경우 공원과 인접한 부분은 테라스형 주거를 검토해 공원 조망의 공공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안 위원장은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된 서울 고덕강일지구를 사례로 들기도 했다. 서울 고덕강일지구는 현행 건축법보다 건물 간격을 줄이는 대신 건물과 건물 사이로 마당과 길을 만들었고 저층과 고층을 적절히 배치해 일조권을 확보하는 설계를 선보였다. 건축법상 일조권 등을 이유로 ‘높이×0.8’만큼 간격을 두어야 하는데 고덕강일지구는 일조권 문제를 저층, 고층의 배치로 해결한 셈이다. 대신 줄어든 간격만큼 저층 건물을 지어 경관의 공공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용적률도 확보했다. 안 위원장은 “현재 시민공원 주변부 개발로 우려되는 폐쇄성, 부족한 일조량 등을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부산대학교 정주철 도시공학과 교수는 부산(6.6㎡)이 서울(8.1㎡)과 비교해 1인당 도시공원 면적이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하며 도심 가운데 위치한 시민공원의 중요성과 공공성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은 “부산시의 공원에 대한 정체성 부재가 가져온 문제”라며 “시민공원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민 참여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병진 기자 joyful@busan.com
태풍 '링링'이 할퀸 들녘, 복구 나선 군인들
(나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10일 오전 전남 나주시 금천면 들녘에서 육군 31사단 병사들이 제13호 태풍 '링링'이 몰고 온 강풍에 쓰러진 벼를 세우고 있다. 2019.9.10 hs@yna.co.kr
日 나리타공항, 태풍에 고립…여행객 1만3천명 누울 자리도 없어
"(대중교통을) 기다릴 장소도 없네요", "여기서 잘 수밖에 없으니 음료수를 확보해야겠네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공항에서 잠을 잘 수도 없어요"
제15호 태풍 '파사이'가 일본 수도권을 강타하면서 도쿄의 관문 나리타(成田)공항이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10일 NHK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은 나리타공항이 공항과 도심을 연결하는 철도가 끊기고 도로 통행이 중단되면서 1만3천여명이 밤새 누울 공간조차 없는 공항 터미널에 갇힌 상황이 됐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발 묶인 승객들로 가득 찬 나리타공항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수도 도쿄의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에 9일 도착한 뒤 도심으로 나가는 교통편이 끊겨 발이 묶인 승객들로 가득 찬 공항터미널 모습. 지난 8일 밤부터 9일 아침 사이에 제15호 태풍 '파사이'가 휩쓸고 지나간 여파로 나리타공항과 도쿄 도심을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 곳곳이 쓰러진 나무 등으로 막히면서 9일 낮 동안 전철과 버스 운행이 중단됐다. 2019.9.9 photo@yna.co.kr
나리타공항과 도쿄를 연결하는 게이세이(京成) 전철과 버스 운행은 태풍의 영향으로 전날 오후부터 중단돼 이날 새벽에야 재개됐다. 이에 따라 지바(千葉)현 북부에 위치한 나리타공항은 육지이면서도 섬처럼 고립된 상황이 밤새 이어졌다. 택시가 운행하기는 했지만, 여객기 도착편이 늘어나면서 공항을 가득 메운 승객들을 이동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태풍 파사이 일본 수도권 강타…넘어진 나무들
(도쿄=연합뉴스) 김병규 특파원 = 제15호 태풍 '파사이'가 일본 수도권 간토(關東) 지방을 강타한 가운데 9일 도쿄도 고토(江東)구 도요스(豊洲)의 아파트 앞에 나무들이 뽑힌 채 넘어져 있다. 2019.9.9 bkkim@yna.co.kr
공항 측은 공항 터미널에 모인 여행자에게 물과 과자, 침낭을 나눠주고 휴대전화 충전기를 배포했지만 곳곳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태국에서 귀국한 한 여성은 "공항 주변 호텔도 모두 빈자리가 없어서 공항에서 잘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브루나이에서 일본으로 돌아온 80대 여행자는 "내년 도쿄올림픽 때 이런 일이 발생하면 치명상이 될 것"이라며 "공항 접근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탄했다.
일본 정부는 철도회사가 태풍이나 폭우 등의 대형 재해가 예상될 때 미리 운행 중단을 발표하는 '계획 운행 중단'을 작년부터 실시하고 있지만, 운행 중단과 재개 일정이 자주 변경되고 정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도심이 마비 상태가 됐다.
JR히가시니혼에 따르면 계획 운행 중단으로 피해를 본 사람은 277만명이나 됐다. 태풍 파사이는 전날 새벽부터 오후에 걸쳐 수도권을 관통하면서 폭우와 강풍 피해를 줬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태풍으로 인해 3명이 숨지고 60명 이상이 크고 작은 부상을 했다. 곳곳에서 정전 피해가 발생해 이날 오전 9시 현재 62만 가구가 정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발 묶인 승객들로 가득 찬 나리타공항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수도 도쿄의 관문인 나리타(成田)공항에 9일 도착한 뒤 도심으로 나가는 교통편이 끊겨 발이 묶인 승객들로 가득 찬 공항터미널 모습. 지난 8일 밤부터 9일 아침 사이에 제15호 태풍 '파사이'가 휩쓸고 지나간 여파로 나리타공항과 도쿄 도심을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 곳곳이 쓰러진 나무 등으로 막히면서 9일 낮 동안 전철과 버스 운행이 중단됐다. 2019.9.9 photo@yna.co.kr
사람도 닭도 사는 법’…달걀 하나에 1천원
고품질 달걀 만드는 유기축산 농장 ‘킹스파머스’
산란계 3600마리로 공장식 사육닭 3만 마리 2배 순익
통현미를 먹고 자라는 ‘킹스파머스’의 병아리들. 킹스파머스 제공
경북 경주 천북면의 논길이 끝나는 곳. 허름한 농장들이 길게 이어진다. 좁은 도로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농장(계사) 건물 안, ‘A4용지 한 장의 세상’이 펼쳐진다. 산란계(달걀 낳는 닭)를 밀집 사육하는 ‘공장’이다. 닭들에게는 A4용지 한 장 정도 공간이 주어진다. 몸을 꼭 붙이고, 평생 날갯짓을 잊고, 기계처럼 날마다 달걀 낳기를 반복한다. 1년이면 생산성이 떨어져 ‘퇴출’된다.
달걀 낳는 닭들이 한 해 남짓이자 평생을 갇혀 지내는 집은 ‘3층 혹은 4층 아파트형 공장’이다. 3~4단 케이지(닭장)에서, 닭 위에 닭이 놀고 그 위에 또 닭이 층층이 살아간다. 이들이 쏟아내는 오물은 케이지 틈틈이 찌들어 있다. 자세히 보면 진드기의 온상, 살충제 없이 감당할 도리가 없어 보인다. 마을 안쪽엔 8층 케이지를 올려세워 생산성을 극대화한 신축 계사도 들어서 있었다.
닭의 일생
산란계 병아리는 태어나는 첫날 운명이 정해진다. 수평아리로 감별되면 유정란 농장으로 출하되거나 분쇄기로 들어가 하루짜리 일생을 마감한다. 암평아리는 마취 없이 기계로 부리가 잘리는 천형의 고통을 겪는다. 공장식 밀집사육의 길로 들어서는 필수 과정이다. 좁은 닭장에 갇혀 지내게 될 닭들은 생애 내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게 심해지면 서로 항문을 쪼고 그 속의 내장이 흘러 죽게 되는데 그런 사고를 원천 봉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마취 없이 병아리 부리를 자르는 ‘고문’을 금지하라고 계속 촉구한다.
태어나자마자 부리 잘린 병아리는 70일가량 또래 병아리들과 함께 길러진다. 주기적으로 백신을 접종받는다. 빽빽한 케이지에서 70일을 갇혀 지낸 병아리는 나중에 들판에 풀어놔도 날지 못한다. 다리 힘이 퇴화했고 날아오르는 본능을 상실했다. 70일이 지나 평생의 ‘공장’으로 들어온 산란계는 수시로 살충제와 항생제의 도움을 받는다. 제힘으로 질병을 이겨낼 면역력이 약할 대로 약해져 있다. 한 농장주는 “살충제 달걀 파동 뒤로 약 사용을 자제한다”면서도 “하지만 닭을 지키고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전혀 안 쓸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닭의 부활
경주의 전형적인 공장식 밀집사육 농장 마을에 돌연변이가 생겼다. ‘킹스파머스’라는 동물복지 농장이 들어섰다. 정확하게 말하면 동물복지보다 요건이 더 까다로운 유기축산 농장이다. 5년 전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온 여기혁(50) 대표가 아버지의 기존 공장식 닭농장을 확 바꿔놓았다. 달리 말하면, ‘닭의 부활’ 선언이다. 동물보호단체에서도 여 대표의 도전에 관심을 보인다. 공장식 밀집사육을 하다 동물복지나 유기축산으로 바꾼 국내 닭농장의 전례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억~수십억원의 막대한 투자가 들어간 기존 공장식 시설을 포기하기 어렵고 수익성 전망이 불투명하다. 지난 4월과 9월 두 차례 경주를 방문해 공장식에서 유기축산 농장으로 대전환한 모험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사실 결정적 계기는 닭보다 사람이었어요. 너무 힘들어하시는 어머니 때문이었죠. 공장식 축산에 매여서 하루도 못 쉬셨어요. 아버지가 꾸리던 계사가 여섯 동, 하루 3만 개 달걀이 나왔어요. 닭을 케이지에 넣어놓고 기계로 일일이 관리하려니, 어머니한텐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었어요. 주객이 전도돼, 사람이 일의 노예가 됐어요. 닭은 닭대로 죽어나고 있었고요. 이러다가는 사람도 죽고 닭도 죽는다는 두려움이 들었어요.” 여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자연농법으로 닭을 풀어놓고 키우면 사람 노동력이 적게 들고, 그러면 어머니가 쉬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사람도 동물도 복지를 누릴 수 있는 행복한 농장을 꿈꿨어요.”
튼튼한 병아리 직접 길러
유기축산에 도전하면서, 병아리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70일 자란 병아리를 받아왔더니, 산란통에도 날아오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병아리 100마리가 들어가는 상자를 특별히 제작하고, 밤 기온이 영하 가까이 떨어지는 2~3월과 10~11월에 보온 없이 튼튼한 병아리를 길러냈다. 첫 먹이부터 굵은 통현미를 먹였더니, 내장이 굵어져 병에 잘 걸리지 않았다. 댓잎과 산야초를 통현미에 섞어 먹이다가 유기농 곡물로 발효시킨 다양한 자가 사료와 토착 미생물을 먹였다.
“농장을 이렇게 바꾸는 걸, 아버지가 가장 심하게 반대했어요. 병아리를 추운데 그냥 방치하고, 백신 접종도 하지 않는다고 야단치셨죠. 그런데 한 마리도 죽지 않는 거예요. 신기해하다가 결국 격려해주시더군요. 닭들한테 면역력이 생기니, 더위나 추위나 강하게 이겨내는 겁니다.”
부엽토 덮고 미생물 뿌려
여 대표는 지금 3600마리의 건강한 유기축산 닭을 기르고 있다. 땅에 놓아 기르는 평사 사육의 요건이 평당 29마리 이내인데, 킹스파머스에서는 평당 7마리의 여유로운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흙바닥 위에 30㎝ 두께의 부엽토를 덮어, 닭들이 마음껏 흙목욕을 하도록 했다. 닭장 안으로 들어서도 고약한 계분 냄새가 나지 않았다.
“부엽토에 볏짚을 살짝 덮어주고 주 한두 차례 좋은 미생물을 뿌려줘요. 부엽토는 한 달에 두세 번 뒤집기를 해주죠. 그렇게만 해줘도 냄새가 안 나요. 닭은 날아오르려는 본능이 있어요. 힘센 놈일수록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고 하죠. 서열 본능을 유지하도록, 횃대도 높은 것과 낮은 것 여러 개를 만들었어요.”
어두운 공장식 계사와 달리, 닭들이 밝고 따뜻한 햇볕을 넉넉히 쬘 수 있도록 했다. 공장식 계사에서는 달걀 껍데기 색깔을 좋게 내기 위해, 조도를 낮게 유지한다. 어두워지면 잠이 드는 게 닭의 본능이나, 공장식 사육에서는 최대한 많이 먹고 달걀을 많이 낳도록 밤늦게까지 불을 켜놓는다. 하루 5~6시간만 잠을 재운다. 그렇게 잠을 못 자고 모이를 많이 먹은 닭은 1.1~1.2일마다 달걀을 대량생산한다. 사흘마다 달걀을 낳는 자연상태의 닭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달걀을 과다 생산한 닭은 1년이면 힘이 떨어져 생산성도 낮아지고 결국 도태의 길을 걷는다. 그 빈자리는, 70일짜리 새 닭으로 채운다. 기계처럼 아귀가 맞아 돌아가는 대량생산 공정이 끝없이 이어진다.
본능대로 해가 지면 잠을 자는 킹스파머스 닭들은 일반 공장식보다 20%가량 달걀 생산성이 낮다. 하지만 닭이 건강해 훨씬 오랫동안 건강한 달걀을 생산한다. 공장식의 두 배 이상인 2년 동안 고품질 달걀을 낳는다.
여기혁 대표는 ‘닭들의 아버지’, 암탉 한 마리가 어깨 위에 올라서 있다. 킹스파머스 제공
지속가능한 경영 수익 보장
킹스파머스에서는 모이에 특히 정성을 쏟는다. “수입 유전자변형생물(GMO)로 만든 옥수수와 대두박(콩에서 기름을 짜내고 남은 찌꺼기)을 섞은 일반 배합사료를 먹이면 오메가3 지방산은 부족하고 오메가6 지방산이 과다해져요. 건강의 균형이 깨지죠. 우리는 다양한 유기농 발효 곡물을 풀과 섞어 먹여 오메가3와 오메가6를 일대일로 유지해요. 충분히 발효한 미생물과 산야초도 듬뿍 먹이고요. 발효 사료라 소화가 잘돼요. 똥에서 냄새도 훨씬 덜 나는 거지요.” 메뚜기와 밀웜(갈색거저리 애벌레), 귀뚜라미도 킹스파머스 닭들이 즐겨 먹는 반찬이다.
3600마리 산란계를 사육하는 여 대표는 공장식 사육으로 달걀 3만 개를 얻을 때만큼 매출을 올린다. 순이익은 두 배 이상 많다. 사료비가 훨신 덜 들기 때문이다. “직접 고영양 사료를 만드니,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들어요. 수입 곡물 사료 값이 너무 올랐거든요.” 그가 말하는 비결은 간단하다. 몸에 좋고 맛있는 달걀을 생산해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최근 달걀 값이 추락했지만, 킹스파머스 달걀은 변함없이 1개 1천원의 최고가를 받는다. 일반 공장식 생산 달걀은 1개 100원도 받기 힘든 형편이다. 브랜드 있는 달걀의 시장가격도 1개 200~300원, 방사형 달걀도 600원 정도 받는 데 그친다.
신선도 유지를 위해 달걀 전량을 직접 배송 방식으로 공급한다. 통상 달걀은 농장에서 나와 마트에 진열되기까지 5~7일 걸린다. 신선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전국의 달걀을 거점 물류센터로 모았다가 재선별 포장 과정을 거친 뒤 각 매장으로 다시 공급하기 때문이다. 킹스파머스의 고객은 포항·경주 지역이 절반, 수도권이 절반이다. 포항·경주 지역에는 그날 오전에 낳은 달걀을 그날 저녁 시간 전에 식탁까지 배송한다. 수도권은 하루 더 걸린다.
살충제 실상 털어놔
킹스파머스는 달걀 낳는 2년의 소임을 마친 닭도 좋은 값에 판다. “달걀도 팔고 닭도 팔아” 부가 수입을 올리는 것이다. 암탉은 3만원, 수탉은 5만원을 받는다. 건강한 닭이어서 파는 데 어려움이 없다. 여 대표는 “전통식 밀집사육 농장들은 많은 돈과 노동력을 들이고도 점점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한다”면서 “유기축산이나 동물복지 농장으로 전환이 이상적인 제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영상으로도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어주는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여 대표는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당시 일부 언론에 살충제 실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가 공장식 사육 농가들한테 엄청난 욕을 얻어먹었다.
“아버지의 기존 공장식 농장에서 10년 동안 두 달에 한 번씩 살충제를 뿌렸거든요. 내 코와 입이 다 헐고, 살충제를 뿌리고 나오면 온몸이 휘청거렸어요. 진드기란 놈이 닭장 곳곳에 숨어 있어요. 닭의 깃 속에도 들어가 있고요. 그놈을 잡으려면, 살충제로 닭장 샤워를 할 수밖에 없어요. 물통이나 모이통에도 살충제가 뿌려지지 않을 수 없잖아요. 이런 달걀 먹고도 아이들이 건강할 것인지, 소비자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실상을 이야기했던 건데, 주변 농가들에 엄청나게 공격을 받았어요.
여 대표는 “닭의 깃 속에 진드기 1마리가 남아 있으면 9주 만에 1억3천만 마리로 불어난다”는 끔찍한 사실을 전했다. “살충제 없는 달걀을 위해서도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기 어려울 거예요. 결국 동물복지나 유기축산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항생제 투여의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운 현실도 조심스럽게 경고했다. “공장식 밀집사육 환경에선 면역력 떨어진 닭들이 질병에 잘 걸려요. 어떻게 무엇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여 대표 아버지가 30년 전에 세운 기존 공장식 닭장 모습. 동물복지 농장으로 탈바꿈한다. 김현대 기자
10억 기존 공장식 닭장 포기
여 대표는 최근 아버지 때부터 30년 동안 밀집사육하던 3만 마리의 산란계를 모두 처분했다. 각 150평 규모 6개 동의 크고 작은 공장식 계사 시설을 뜯어내 모두 내다버렸다. 기계설비만 5억원, 건물까지 합쳐 모두 10억원 정도 들어간 어마어마한 구조물이다. 그는 행정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기존 건물을 헐어내는 공사를 곧바로 시작할 생각이다. 거기에 자신이 설계한 200평 규모 높이 7.5m의 새로운 동물복지 닭농장 4개 동을 짓는다는 꿈을 꾸고 있다.
“새로 짓는 계사에는 한가운데에 야자수를 심고 벽을 타고 넝쿨을 올릴 거예요. 소비자가 찾아와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기에 상큼한 공간으로 만들 겁니다. 그리고 계사 안을 여러 칸으로 나눌 거예요. 각 칸에 수탉 1마리와 암탉 15마리를 넣어 한 가족으로 지내도록 할 겁니다. 또 각 칸은 별도의 방사장과 연결해, 오전엔 달걀을 낳고 오후엔 닭들이 방사장에서 놀도록 할 거고요.”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이미 너무 많은 시설 투자를 해놓은 터라, 킹스파머스처럼 기존 계사를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든 결단”이라면서 “공장식 사육을 하던 아버지가 새로 바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고 가장 심하게 저항했는데, 이를 이겨내고 사업으로도 성공한 모델을 만들어 보인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여 대표의 변화와 도전을 평가했다. 그는 또 “여 대표 자신이 동물복지에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더 이상 예전 방식의 대규모 공장식 케이지 사육이 수용될 수 없다는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사례”라면서 “동물복지(유기축산) 전환에 성공한 하나의 개별적 사례지만 머잖아 이런 변화가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올 것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경주=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쏘이면 사망? 말벌집 직접 제거해보니…
성묘철 뱀 물림 사고보다 벌 쏘임 사망사고 더 많아…그 중 90% 이상 ‘말벌 사고’
외래종 등검은말벌로 인한 농가 피해, 5년이면 1조…‘대책 시급’
말벌의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는 이른 추석 탓에 벌초 시기가 앞당겨 지면서 벌 쏘임 사고가 급감했지만, 세력이 팽창한 말벌들이 수풀과 산림 너머 최근엔 도심 한복판에도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말벌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특히 말벌 몇 마리만으로도 수천 마리의 꿀벌과 벌집에 타격을 입는 양봉 농가는 매일같이 말벌과의 사투로 비상이 걸렸고, 소방서 역시 이어지는 말벌집 신고 전화에 출동 횟수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 사람과 농가에 끼치는 피해로 인해 공포의 대상이자 대표적 해충으로 지목되고 있는 말벌을 직접 잡아 유해성을 확인해보기 위해 기자가 말벌집 채취 현장을 찾아가봤다.
다수의 TV 프로그램 출연을 통해 말벌 헌터로 알려진 심마니 박성용(59) 대표와 함께 찾은 곳은 경기도 안성의 한 야산에 위치한 기숙학원. 건물 4층 왼쪽 모서리 부분에 건축공사 당시 마감을 제대로 안한 부분 틈에 말벌이 파고들어 집을 지은 것으로 추정됐다. 멀리서 봐도 주변을 날아다니는 십 여 마리의 말벌이 육안으로 관찰됐는데, 지역 소방서에 신고도 해봤지만, 출동한 소방관으로부터 높고 외진 벌집 위치에 집이 바깥이 아닌 건물 틈 내부에 자리 잡고 있어 제거가 어렵다는 답변을 듣고는 박 대표에게 연락을 취했다는 학원 원장은 지난해부터 말벌로 인해 학생들이 창문을 못 열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말벌떼 공격 막아주는 방충복(벌복), 그 효과는?
사다리차 기사와 몇 차례 논의 끝에 어렵게 위치를 잡고 투입된 현장. ‘말벌복’이라 불리는 방충복을 입고 말벌에 대한 주의사항을 교육받은 뒤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마주한 말벌집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마감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벽돌 한 개 크기의 틈을 파고든 말벌은 그 속에 넓고 깊은 자신들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입구를 부수자 수백 마리의 말벌이 쏟아져 나와 공격을 시작했는데, 순간 시야를 가릴 정도로 몰려든 벌들은 그 소리와 쏘아대는 독침으로 있는 힘껏 위협을 가했다. 4층 규모의 말벌집 안엔 애벌레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고, 이 집을 제거하자 그 안엔 작년에 지은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에게 위협을 가하는 국내 대형말벌 10종 중 ‘참말벌’이라 불리는 말벌이 왕국의 주인이었다.
곧이어 향한 현장은 전북 고창의 한 폐가, 인근 감 농장 주인의 신고로 찾은 이곳에선 몸에 털이 나 있고 집을 비교적 작은 규모로 짓는 털보말벌의 집이 확인됐다. 처마 밑 비교적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해있어 먼저 두 개 나 있는 집 구멍 중 한 곳을 막아 쏟아져 나오는 벌을 잠자리채로 잡고, 집은 통째로 지퍼 망에 담은 뒤 끝을 뜯어 손쉽게 제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외래종 등검은말벌로 인한 양봉농가 피해만 연 1,750억
쉬는 것도 잠시, 인접한 전북 정읍에서 등검은말벌집 제보가 들어왔다. 2003년 부산 영도에서 처음 발견된 이래 빠르게 북상해 지금은 한반도 전역에서 관찰되고 있는 ‘위해 2급종’인 등검은말벌은 특히 꿀벌에 대한 공격성이 토종 말벌보다 높아 양봉 농가 최대의 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10m 높이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등검은말벌집은 그 크기가 상당해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의 규모를 자랑했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사다리차나 크레인이 들어오기 어려운 상황. 박 대표는 승목기를 착용하고 오직 두 팔의 힘에 의존해 나무 끝으로 올라 벌집이 매달린 가지를 잘라 밑으로 내려보냈다. 엄청난 크기만큼이나 수백 마리의 등검은말벌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잠자리채로 벌을 잡는 내내 시큼한 향이 코를 찔렀고, 공격성 역시 앞서 만난 말벌이나 털보말벌 보다 강력했다. 지난 2015년 말벌집 제거작업을 마친 소방관이 방충복을 벗던 중 벌 쏘임 사고로 사망한 사건의 주범 역시 이 등검은말벌이었다. 덕분에 33도 더위에 제거작업을 마쳤음에도 방충복을 입고 100m가량을 걸어 나와야 했다. 벌집제거작업 중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바로 모든 작업을 마치고 벗는 순간임을 박 대표는 수시로 강조했다.
땀과 눈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진 말벌 취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말벌 중의 말벌 ‘장수말벌’을 못 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박성용 대표를 붙잡고 장수말벌 취재가 가능한지 문의했고, 며칠 뒤 야산 벌목꾼들로부터 장수말벌 제보가 들어왔다는 전화에 필자는 그 즉시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 ‘장수말벌’, 독 주입량 꿀벌의 수십 배
사방이 나무와 수풀로 둘러싸인 야산, 간벌작업 중 말벌 쏘임으로 병원에 실려 갔다는 벌목꾼의 제보로 찾은 산에서 대략의 위치만 듣고 장수말벌 집을 찾아야 하는 상황. 여기에 전날부터 쏟아진 빗줄기에 벌들의 움직임 또한 잦아들어 있었다. 어렵사리 주변 탐색 끝에 찾아낸 장수말벌의 집은 수풀 사이 나무뿌리 밑에 은밀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보통 땅속이나 나무 그루터기에 집을 짓는 장수말벌은 다른 말벌을 2배 확대해놓은 크기와 위력을 자랑한다. 장수(將帥)라는 이름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 간밤 내린 비로 움직임이 둔해진 장수말벌의 집 입구를 뜯어내자 한 마리, 한 마리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붙잡는 순간 내뿜는 독의 양은 흡사 주사기에서 백신 용액을 뿜는 것에 비견할 만했다. 특히 집에서 나오는 벌들을 손으로 잡던 중 손에 잡힌 벌은 장수말벌 중에서도 크기가 2배 가까이 더 크고 날개와 몸통의 움직임이 격렬했는데, 이를 본 박 대표는 여왕벌이라고 답했다. 이 한 마리의 벌로부터 이 집과 일벌과 애벌레가 생성됐다 생각하니 일순 소름이 끼쳤다. 농가에서는 말벌 여왕벌이 활동하는 3월에서 6월 사이에 이들을 방제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으나, 한 군집의 여왕이 그리 손쉽게 잡힐 리 없었다. 본래 야산과 수풀, 나무 밑동에만 터를 잡던 장수말벌 여왕벌들이 인간과의 접촉이 잦아짐에 따라 일반 가정집에서 겨울잠을 자고 그대로 그곳에 집을 짓기 시작해 최근엔 도시에서도 심심찮게 장수말벌 발견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고 한다
취재를 마무리할 즈음, 올해로 28년째 말벌집 제거 작업을 했다는 박성용 대표는 최근 폭증한 등검은말벌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밝혔다. 토종말벌에 비해 크기는 작지만, 집단성이 강하고 집을 크게 지어 함께 생활하는 개체 수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양봉 농가를 비롯한 민간의 피해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 현장에서 그가 느낀 우려는 수치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양봉 농가 추산 등검은말벌로 인한 피해액은 약 1,7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해마다 피해액은 더욱 늘어나 5년 후엔 누적 피해액이 1조에 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국내 말벌전문가인 최문보 경북대 응용생명과학부 연구교수는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등검은말벌이 국내 생태계를 잠식한 상황에서 말벌집 제거만으로는 개체 수 조절은 어려울 것”이라면서 “생태계교란종으로 지정되고, 양봉 농가 피해가 급증하는 만큼 등검은말벌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기초생태와 방제연구를 통해 보다 근본적인 관리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 해 뱀으로 인한 사망사고보다 벌 쏘임 사망사고가 많은 대한민국, 여기에 생태계 상위 포식자로서 먹이사슬의 균형을 유지해주던 토종말벌의 역할이 외래종 등검은말벌로 인해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해충으로 오해받던 말벌의 입지는 점차 사실로 굳어져 가고 있다. 농가 산업 피해와 매년 발생하는 사망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말벌에 대한 근본적인 생태연구가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등검은말벌 Vespa velutina Lepeletier, 1836 (영어: Asian predatory wasp 또는 Asian hornet, Yellow-legged hornet)
열대 아시아가 원산인 아열대성 말벌으로,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대한민국 그리고 일본에 유입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2003년 중국 상하이를 경유하여 부산에 침입한 외래종이다.
동남아시아 등검은말벌의 서로 다른 체색변이 분포도. 한반도의 유입종은 nigrithorax이다.
국내 최초 꿀벌 가해, 침입외래종 '등검은말벌' 천적 나타나
국립수목원 애벌레와 번데기 공격하는 토착 천적 '은무늬줄명나방' 확인
은무늬줄명나방(사진제공=산림청 국립수목원)
우리나라 토착종인 '은무늬줄명나방(Pyralis regalis)'이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의 벌집내에 기생하면서 벌집을 갉아 먹을 뿐만 아니라 유충 및 번데기를 공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원장 이유미)은 27일 꿀벌을 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등검은말벌의 애벌레와 번데기를 공격하는 토착 천적 '은무늬줄명나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등검은말벌은 중국 남부 저장성 일대가 원산지로, 국내에서는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10여 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돼 지난달 환경부 생태계교란 생물로 지정됐다.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주로 사냥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관련 산업의 경제적 피해 뿐 아니라,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생태적, 공중 보건적 피해가 증가하고 있어 방제를 위한 연구가 시급한 종이다.
국립수목원 연구진은 경북대학교 연구팀과 '은무늬줄명나방(Pyralis regalis)'이 등검은말벌의 벌집내에 기생하면서 벌집을 갉아 먹을 뿐만 아니라 유충 및 번데기를 공격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인 말벌 연구자인 경북대 최문보 교수는 “이번에 확인된 국내 토착천적을 활용하여 등검은말벌의 개체수를 조절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렸으나, 아직까지 그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고 다른 기생자들도 발견될 가능성이 있어 등검은말벌에 대한 기초생태·방제연구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수목원 산림생물다양성연구과 김창준 박사는 “산림 내 포식성 말벌류의 분류 및 생태학적 연구을 통해 국내에 분포하는 위해 말벌류의 종합적 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연구결과를 국민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의 정보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첫 번째 성과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벌류를 대상으로 분류, 생태, 독성, 행동요령 등이 담긴 필드가이드북을 발간, 배포할 예정이다. 제주환경일보19.8.27
말벌과 꿀벌 침 모양 비교 출처: doopedia.co.kr
장수말벌의 머리. <출처 : (cc) Gary Alpertat en.wikipedia>
한반도에 또 다른 불청객이 나타났다. 바로 말벌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도심에서 말벌이 나타났다는 신고건수가 꾸준히 늘고 있고 최근 2~3년 사이 증가 폭이 가팔라졌다. 지구온난화로 말벌이 늘어난 걸까. 아니면 말벌이 도시생활에 적응한 걸까. 그런데 과연 말벌은 사람과 함께 살아가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동물일까. 말벌 생태를 연구하는 영남대 생명과학과 최문보 박사의 도움으로 말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본다.
말벌에는 어떤 종류가?
사람들이 흔히 말벌이라고 부르는 곤충은 분류학에서는 벌목(目)에서 말벌과(科)에 속하는 무리다. 벌목은 14만 4000여 종으로 이뤄져 있어 딱정벌레목(36만여 종), 파리목(15만 2000여 종), 나비목(15만 7000여 종)과 함께 곤충의 주요 4대 목이다. 꿀벌과 개미도 벌목에 속한다.
도시인들이야 말벌과 꿀벌을 간신히 구분하는 수준이겠지만 눈썰미가 좋았던 우리 조상들은 말벌과 곤충을 크기나 형태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불렀다. 말벌과 땅벌, 쌍살벌이다. 흥미롭게도 분류학에서도 이들은 각자 속명이 다르다. 최 박사는 “우리나라에는 말벌과 곤충이 5속 30종(3아종 포함)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며 “이 가운데 말벌속 10종, 땅벌류가 중땅벌속 3종 땅벌속 5종, 쌍살벌류가 뱀허물쌍살벌속 2종 쌍살벌속 10종”이라고 말했다.
말벌과(科)는 말벌과 땅벌, 쌍살벌로 나뉜다. 말벌과 땅벌은 복부 첫 번째 마디가 가슴과 연결 마디에서 거의 수직으로 올라간 반면➊ 쌍살벌은 완만하게 올라간다➋
말벌에서 ‘말’은 ‘크다’는 뜻의 접두사다. 즉 말벌은 큰 벌이라는 말이다. 말벌 가운데서도 가장 큰 종인 장수말벌은 몸길이가 어른 새끼손가락만한 5cm에 이른다. 장수말벌은 덩치만 큰 게 아니라 무는 힘도 세고 독침의 독도 강력 하다. 꿀벌집을 초토화해 양봉농가를 울리는 녀석들도 대부분 장수말벌이다. 추석 때 벌초나 성묘를 하다가 벌에 쏘여 죽는 경우가 매년 몇 건씩 나오는데 역시 장수말벌이 주범이다. 이밖에 몸집이 약간 작은 꼬마장수말벌, 그리고 그냥 ‘말벌’이라고 부르는 종이 있다. 다들 조심해야 하는 녀석들이다. 다행히 이 녀석들은 주로 땅 속 빈 공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도심에 출몰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집 처마나 벽, 구조물 틈 같은 곳에 집을 짓는 털보말벌이 도심에서 주로 목격되는 말벌이다. 털보말벌은 등에 털이 많다.
쌍살벌과 말벌, 땅벌은 집구조도 다르다. 왼쪽은 쌍살벌인 왕바다리집으로 내부가 노출된 단층이다. 반면 오른쪽 털보말벌집은 아파트처럼 여러 층으로 이뤄져 있다. 원래는 껍질에 싸여 있는데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 껍질을 뜯어냈다.
“난 이제 지쳤어요, 땡벌 땡벌, 기다리다 지쳤어요, 땡벌 땡벌.”
이런 재미있는 가사에 나오는 땡벌은 땅벌의 사투리다. 땅벌은 말 그대로 땅에 집을 짓는 종류인데 말벌에 비하면 덩치가 훨씬 작고 꿀벌 보다 약간 큰 정도다. 하지만 땅벌을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잘못 집을 건드렸다 수백 마리한테 집단공격을 당하면 목숨이 위험하다. 다행히 땅에 집을 짓다보니 도심 외곽에서나 볼 수 있을 뿐이다.
도심에 나타난 말벌 대다수는 쌍살벌이라고 부르는 종류다. 쌍살벌은 말벌이나 땅벌에 비해 체형이 날씬하고 크기는 꿀벌보다 조금 커 땅벌만하다. 쌍살벌은 자연상태에 서 나뭇가지나 바위에 집을 짓기 때문에 도심에서도 처마나 벽, 전봇대 등 다양한 장소에 집을 짓는다.
우리나라에는 말벌이 5속 30종 확인됐다. 영남대 생명과학과 최문보 박사가 이 가운데 4속 15종을 채집해 한 눈에 비교해 볼 수 있게 배열했다. <사진제공 : 최문보>
아열대 등검은말벌의 습격
도심 말벌 대다수는 쌍살벌이지만 부산을 비롯한 경남과 최근 들어 대구 인근까지 도심에 가장 많이 출몰하는 말벌은 등검은말벌이다. 이 벌은 중국남부지역이 원산인 아열대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부산에서 처음 발견된 뒤 매년 10~20km 속도로 퍼지며 세를 넓히고 있다.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은 2003년 처음 확인된 뒤 매년 10~20km 속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최 박사는 대학원생 시절 채집을 나갔다가 부산 영도에서 등검은말벌을 처음 발견했는데 인근 부산항에 정박한 배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등검은말벌은 도심에도 위협이 되지만 특히 꿀벌집을 전문적으로 터는 녀석들이라 경남 양봉농가의 피해가 극심하다. 최 박사는 “현재 등검은말벌은 통제가 안 되는 수준”이라며 “말벌집 하나만 남아있어도 이듬해 여왕벌 수백 마리가 각자 집을 짓기 때문에 말벌을 퇴치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등검은말벌은 2004년 프랑스에도 상륙해 현재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한다.
최 박사는 “등검은말벌은 특히 도심에 더 잘 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2010년 8~9월 부산 금정구에서 말벌 관련 119신고가 78건이었는데 32건(41%)이 등검은말벌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최 박사는 외래종인 등검은말벌이 불과 수년 사이에 기존 말벌이나 쌍살벌을 제치고 도심에서 우점종이 되게 한 요인을 찾고 있다.
말벌과 꿀벌, 공통점과 차이점은?
말벌과에 속하는 종은 모두 사회성 벌이다. 즉 꿀벌처럼 집을 짓고 적게는 수십 마리에서 많게는 수천, 수만 마리가 모여 산다. 꿀벌처럼 여왕벌, 일벌(생식력이 없는 암컷), 수벌로 이뤄져 있다. 일벌은 여왕벌이 낳은 알에서 부화한 애벌레를 먹이고 집을 지킨다. 최 박사는 “말벌은 벌집이 공격당했을 때 가장 흥분한다”며 “꿀벌처럼 초개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화밀과 꽃가루를 먹고 모으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포식성이다. 나방과 나비의 애벌레를 비롯해 매미, 잠자리, 꿀벌 심지어 다른 종류의 말벌까지 닥치는 대로 공격한다. 그런데 말벌 성충은 자신이 잡은 먹이의 고깃덩어리를 자기가 먹지는 않는다. 대신 강한 턱으로 먹이를 짓이겨 동그란 고기 경단을 만들어 벌집 안에 있는 애벌레한테 먹인다. 정작 말벌 성체는 수액이나 과일즙, 화밀 같은 식물성 영양분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먹다버린 요거트 통이나 청량음료 캔 주변에 말벌이 모여드는 것도 과일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수말벌이 버마재비를 포식하고 있다. 실제로는 자신이 먹는 게 아니라 고기로 경단을 만들어 애벌레에게 먹인다. 말벌 성체는 화밀(꽃의 꿀)이나 수액을 먹는다.
말벌과 곤충은 원래 목재를 뜯어내 침과 섞어 집재료로 쓰지만 도심에서는 종이도 이용한다. 쌍살벌이 전단지 종이를 뜯어내고 있다.
한편 왁스 성분인 밀랍을 분비해 집을 짓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나무껍질 같은 목재성분을 갉아 침과 섞어 만든 재료로 집을 짓는다. 따라서 말벌집을 만지면 거친 종이 같은 느낌이 든다. 실제 도심 말벌은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 같은 종이를 갉아 건축재료로 이용한다.
무리가 겨울을 나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가을이 깊어지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빈 집만 남는다. 그렇다면 말벌은 어떻게 생존을 이어갈까. 최 박사는 “애벌레 가운데 여왕벌로 태어난 개체와 수벌로 태어난 개체가 가을에 교미를 하고 이들 신참 여왕벌이 땅속이나 나무 틈에서 겨울을 난다”며 “이듬해 봄 여왕벌 홀로 작은 집을 짓고 알 몇 개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나온 일벌들이 힘을 합쳐 더 큰 집을 짓고 여왕벌은 집안에 들어앉아 본격적으로 알을 낳아 식구를 늘려나간다. 최 박사는 “봄에 말벌 수백 마리가 나타났다고 들어온 신고는 분봉을 하는 꿀벌무리를 착각한 것”이라며 “말벌무리는 6월 이후에나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가을이 되면 뿔뿔이 흩어져 죽고 교미를 한 여왕벌만 겨울을 지낸다. 봄이 되면 여왕벌(사진은 두눈박이쌍살벌)은 홀로 작은 집을 짓고 알을 몇 개 낳는다. 여기서 자란 일벌이 여름에 집을 확장하고 여왕벌은 본격적으로 알을 낳아 수를 늘린다.
말벌 독 얼마나 독한가
말벌 역시 몸통 끝에 있는 독침이 무기다. 원래는 알을 낳는 산란관이었으나 독침으로 진화했다. 따라서 암컷만이 독침이 있는데 어차피 일벌은 암컷이므로 큰 의미는 없다. 한편 침을 쏠 때 내장이 함께 빠져나가 죽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은 주사바늘처럼 찔렀다 뺐다를 반복할 수 있다. 또 덩치가 클수록 더 독이 많다. 장수말벌은 한두 마리에만 쏘여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말벌 독은 얼마나 독할까. 최 박사는 “독에 대한 반응성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면서 “채집을 하다보면 가끔 벌에 쏘이는데 쌍살벌에 쏘였을 때는 15분 정도 지나면 통증이 가라앉지만 땅벌에 쏘이면 하루 종일 아프고, 말벌에 쏘이면 보통 2~3일은 퉁퉁 붓고 꽤 아프다”고 본인 경험을 이야기했다.
말벌 독은 히스타민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과 포스포리파아제, 히알루노니다아제 같은 효소로 이뤄져 있다. 물린 부위가 붓고 가렵고 아픈 건 히스타민, 세로토닌 같은 물질 때문이다. 포스포리파아제는 세포막을 허물고 히알루노니다아제는 탄수화물을 분해시킨다. 벌 독이 무서운 건 그 자체의 독성보다는 일부 사람들이 독성분에 강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과민충격’이라고 부르는데 심할 경우 온 몸이 퉁퉁 부어 기도가 막혀 질식해 죽기도 한다. 따라서 벌에 쏘였을 때 온 몸이 가렵거나 호흡이 가빠오면 즉시 병원으로 옮겨 에피네프린 같은 알레르기 억제 약물을 투여해야 한다.
말벌 몸통 끝에는 독침이 달려있어 침을 찌르고 주사기처럼 독을 내뿜는다. 침 끝이 갈고리처럼 생겨 찌르면 뽑히지 않아 거꾸로 내장이 빠져나가 죽는 꿀벌과는 달리 말벌 침은 찌르고 빼고를 반복할 수 있다.
채집을 나갔다가 쌍살벌에 쏘인 최문보 박사의 가운데 손가락이 벌겋게 부어있다.
소수 사람들은 말벌에 쏘이면 과민충격이라는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벌 독 자체의 독성으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말벌도 있다. 바로 장수말벌이다. 영문명 ‘Asia giant hornet’에서 짐작하듯 장수말벌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대와 특히 일본에 많이 산다. 장수말벌을 비롯한 말벌 독에는 땅벌이나 쌍살벌의 독에는 없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많이 들어있어 더 고통스럽다. 한편 일본 연구진은 지난 1982년 장수말벌 독에서 사람 잡는 성분이 ‘만다라톡신’이라는 신경독임을 밝혀냈다. 바다가재에 독을 주입한 결과 만다라톡신은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신경계의 작용을 멈추게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말벌과 공존할 수 있을까
도심에 말벌이 출몰하는 건 그만큼 도심 환경이 말벌이 살 만큼 좋아졌다는 증거다. 포식성 곤충은 먹이가 되는 곤충이 있어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1970, 80년대에는 일단 엎어놓고 보자는 식으로 도심개발을 하다 보니 녹지도 없고 하천도 복개했지만 1990년대 들어 ‘삶의 질’을 생각하게 되면서 공원이 늘어나고 하천도 복원되고 있다. 그 결과 도심 곤충이 급증했다. 반면 주거지가 확대되면서 산과 들은 줄어들었다. 결국 자연숲이 줄어들자 벌들이 인공숲(도심 녹지)으로 눈길을 돌렸고 그 결과 출현이 잦아졌다는 말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조대가 화염으로 벌집을 부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012년 7월에만 2000건이 넘게 신고가 들어왔다. 최 박사는 “벌은 먼저 해코지를 하지 않는 한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말벌은 쌍살벌에 비해 공격성이 크고 벌침 독성도 더 강하기 때문에 벌집을 없애는 게 불가피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직접 벌집을 없애다가는 큰 일이 날 수 있으므로 반드시 119에 연락해 전문가가 없애게 해야 한다.
등산이나 추석 벌초나 성묘 중에, 또는 밤이나 도토리를 줍다가 벌에 쏘이는 사고가 종종 일어난다. 말벌이나 땅벌 집은 덤불 속이나 땅 속에 있기 때문에 눈에 안 띄어 실수로 건드리거나 가까이에서 지나갈 때 진동이 전달될 경우 흥분한 벌들이 나와 공격을 하기 때문이다. 다만 벌집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이상 초기에는 정찰벌 몇 마리가 다가와 위협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벌이 보이면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벌을 때려잡겠다고 덤벼들거나 겁을 먹고 팔을 마구 휘젖다가는 자칫 벌이 공격 페로몬을 내뿜어 벌집 안의 벌들이 나오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최 박사는 “장수말벌은 땅 구덩이에 집을 짓기 때문에 무덤 주변에 많다”며 “해마다 추석 때 되면 벌초나 성묘를 하다가 벌에 쏘여 사람이 죽는 사건이 일어나는데 본의 아니게 벌집을 건드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한편 말벌은 사람 머리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데 이에 대해 일본 곤충학자인 마사토 오노 교수는 1997년 펴낸 책 ‘말벌의 과학’에서 진화론으로 설명했다. 즉 벌집을 공격할 만한 동물은 곰 같은 대형 포유류밖에 없었을 것이고 말벌이 강력한 독침을 갖게 진화한 것도 이런 공격에서 집을 방어하기 위함이라는 것. 그런데 곰은 검은 털로 뒤덮혀 있기 때문에 이런 형태와 비슷한 사람 머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벌은 먹이사슬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역시 천적이 있어 숫자가 조절된다. 왼쪽 사진에서는 쌍살벌집에 접근하는 기생벌(화살표)이 보인다. 기생벌은 쌍살벌 애벌레 몸 안에 알을 낳고 도망간다. 부화한 기생벌 애벌레는 쌍살벌 애벌레 몸을 파먹고 자란다. 오른쪽은 장수말벌이 쌍살벌집을 습격하는 장면이다.
최 박사는 “말벌은 때로 사람이나 꿀벌을 공격하기 때문에 해로운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상위 포식자인 말벌 덕분에 곤충 생태계의 균형이 유지되고 있다”며 “한 번 말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말벌이 공포심에서 무조건 없애야 할 대상으로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박사는 “최근 수년 사이 도심 말벌 수가 어느 정도 늘고 있는 걸로 보이지만 신고건수가 늘어나는 것만큼 폭발적인 건 아니다”라며 “그만큼 사람들이 민감해진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를 따라가 보면 주먹보다 작은 말벌집인 경우가 많다고. 예전 같으면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쳤을 텐데 말벌에 대한 경각심이 워낙 높아지다 보니 눈에 띄면 신고부터 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런 집이 있지만 예전 시골에는 처마 밑에 말벌집이 서너 개씩 있는 집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다들 별일 없이 함께 살았죠.”
- 한반도를 습격한 또 다른 불청객 (생물산책, 강석기, 과학동아)
지구 면적 10%, 기온상승 억제선 넘어섰다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올라...미국 땅 5배 크기
1.5도 상승 지역은 20%나...중동,유럽 등 최고 올라
산업화 이전(1880!1899) 대비 현재(2014~2018) 기온 상승폭. 주황색은 1.5도, 빨간색은 2도 이상 상승 지역. 워싱턴포스트에서 인용
섭씨 2도는 과학자와 전세계 지도자들이 지구온난화에 따른 전 지구적인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후의 마지노선으로 정한 지구 기온 상승폭이다. 과학자들은 현재 지구 전체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 1도가 상승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에 따라 북극지역에서도 산불이 자주 일어나고 빙하는 큰 폭으로 줄어드는가 하면, 영구동토는 녹아내리고 있다. 또 해양 생태계가 크게 변화하면서 전 세계의 어업도 요동을 치고 있다. 최근 또 하나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다. 기온 상승 폭이 억제 목표선인 2도를 웃도는 지역이 지구 전체의 10%에 해당한다는 분석 결과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해양대기청(NOAA) , 민간 싱크탱크 버클리어스(Berkeley Earth)와 영국 요크대 과학자(Kevin Cowtan & Robert Way)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고 최근 보도했다. 지구 10%는 미국 땅의 5배에 이르는 크기다. 1.5도 이상 상승한 지역은 지구 전체의 20%나 된다. 계산 결과에 따르면 한반도는 1.5도 상승한 지역에 속한다.
<포스트>는 이번 분석에서 기준 기간과 비교 기간을 각각 두개씩 설정해 기온 상승 폭을 계산했다. 기준 기간인 `산업화 이전' 시기는 1850~1899년과 1880~1899년으로, 비교 기간은 최근 5년(2014~2018년)과 10년(2009~2018년)으로 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추이. 워싱턴포스트에서 인용
2도를 초과한 지역의 비율은 비교 기간에 따라 약간 차이가 났다. 비교 시점을 최근 5년으로 할 경우 2도 상승지역의 비율은 전 세계의 8~11%에 이르렀다. 반면 비교 시점을 최근 10년으로 좀 더 넓히면 이 비율은 5~9%로 약간 떨어졌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기온 상승폭이 커지고 있음을 뜻한다. 두 기간을 비교하면 지난 5년 사이에 2도 상승 지역이 대략 40%나 늘어났다는 계산이 나온다.
기온이 가장 많이 오른 지역으로는 북극, 중동, 유럽, 아시아 북부, 북미 북부가 꼽혔다. <포스트>는 캐나다는 대부분의 지역이 2도 이상 상승했으며, 스위스와 카자흐스탄 등 일부 국가는 온나라가 2도 이상 올랐다고 전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생태계 위협하는 '붉은귀거북의 난'…예산 없어 방치
괴물 쥐 뉴트리아를 많이 퇴치했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붉은귀거북이 또 문제입니다. 요즘 낙동강변에서 무섭게 번식하고 있는데요. 곳곳에 무더기로 알을 다 까놨습니다. 지금은 예산도 사람도 없어서 손 놓고 있지만 그사이 토종 물고기 씨가 다 마를까 걱정입니다.
[기자] 낙동강 지류의 비닐하우스입니다.하천에서 올라온 거북이 있던 자리를 조심스레 파 봅니다.
[전홍용/생태조사원 : 거북이 알을 낳았는데 소복이 이렇게 많이 낳았다고요.]
강둑, 논밭, 산책로 등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눈 뒤에 빨간 줄이 있는 붉은귀거북 알입니다. 주로 애완용으로 수입됐다 버려진 생태계 교란종입니다. 수시로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김해공항 옆 부산 맥도생태공원입니다.
이렇게 습지가 많은 곳인데요. 여기도 생태계 교란종이 점령하다시피했습니다. 괴물쥐로 불리는 뉴트리아가 갉아먹은 수초들이 말라 비틀어졌습니다. 그나마 뉴트리아는 대대적인 포획작업으로 최근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를 붉은귀거북이 채우고 있습니다.
[전홍용/생태조사원 : 여러 마리가 같이 나와서 일광욕을 하고 물에 퐁퐁 다 빠지죠.]
그런데 환경부가 지정하는 확산추세종에서는 빠져 있습니다. 이러는 사이 먹이인 토종물고기들은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환경부 관계자 : 예산이 다 그렇듯 아직까지 인력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이죠.]
환경부는 실태조사를 벌여 확산추세종 선정을 다시하고 퇴치작업도 벌이기로 했습니다.
(화면제공 : 생태조사원 전홍용 씨) jtbc 부산총국 구석찬 기자입니다
시장규모 14조원 일본 반려동물 산업의 그늘, '반려동물 경매장'
오늘은 일본 반려동물 문화의 어두운 그늘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얼마 전, 책을 한 권 읽었는데 그 내용이 한국의 반려인들과도 함께 고민해볼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생명을 사시겠습니까?’라는 제목의 책은 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공익재단법인 동물환경 복지협회 Eva’(Every animal on Earth has a right to live)의 이사장인 스기모토 아야 씨가 쓴 책입니다. 책에는 어린 강아지와 고양이를 박스에 넣어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시키면 펫샵 관계자가 원하는 동물을 골라 낙찰받는 ‘반려동물 경매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담겨 있어요.
일본의 '펫 옥션'에서는 생후 1개월 미만의 강아지들이 상자에 담겨 경매 시장에 오른다.
사실 책을 보고 아주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미 한국에 거주할 때도 반려동물 경매장에 대해서 어느 정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살던 동네에 무료로 어린 강아지를 분양하는 동물병원이 있었어요. 왜 무료로 강아지를 분양하냐고 여쭤봤더니 경매에서 안 팔리고 남은 강아지는 안락사를 시키니까 데려와서 분양을 하는 거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땐 강아지가 ‘경매된다’는 사실에도 놀랐지만 낙찰되지 않으면 안락사를 시킨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게다가 동물병원 원장님이 말씀해 주신 안락사되는 이유도 단지 ‘못생겨서’, ‘견종에 맞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아서’ 등등 납득하기 어려웠던 말들이었죠.
비록 놀라운 일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고 나니 반려동물 산업 규모가 한국보다 큰 일본의 반려동물 경매 실태는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일본의 야노경제연구소가 조사한 반려동물 시장 규모는 1조 4,000억엔(약 14조원, 2016년 기준)이고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도시 거리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 반려동물 미용실, 반려동물 용품 가게 등을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중 규모가 유독 큰 곳이 바로 ‘펫샵’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품종견, 어린 강아지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반려견을 펫샵에서 데려오는 경우가 많죠.
일본 '펫 옥션'에서 펫샵 관계자들이 앉아서 '상품'으로 나온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고 있다. 일본 TBS 뉴스 화면 캡처
이 펫샵에 가기 전 반려견들이 거쳐가는 곳이 바로 일본에서 ‘펫 옥션’(Pet Auction)이라고 부르는 반려동물 경매장입니다. 경매장은 팔고자 하는 번식업자와 사고 싶은 펫샵을 중개하는 곳이죠. 대부분 번식업자들은 번식장에서 태어난 지 20일~1개월 사이의 강아지들을 경매로 내놓습니다. 경매장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될 만큼 폐쇄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책을 쓴 스기모토 씨는 이 모습이 일본만의 독특한 시스템이라고 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스템으로 시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요.
시장경제 안에서 사고 팔리는 ‘물건’은 반드시 ‘재고’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생산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결함 상품’도 있죠. 이런 상품들이 끝내 팔리지 않는다면 폐기할 수 있지만, 살아 있는 반려동물이 팔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끔찍한 이야기이지만 과거 일본에서는 번식업자가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보호센터에 이러한 ‘재고 동물’ 들을 떠넘기면서, 끝내 살처분(안락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니면 펫샵에서 직접 처분하고, 죽은 동물을 쓰레기와 함께 버리기도 하죠. 일본의 번식업자는 태어난 동물의 20%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하고, 5%는 번식용으로 남겨둡니다. 70%는 펫 옥션에 내놓고 남은 5% 정도를 재고 동물로 여기고 처분합니다. 일부 업자들은 병에 걸렸거나 외모가 예쁘지 않은 강아지들을 결함 상품으로 보고 방치한 다음 몸이 약해지면 살처분해 쓰레기로 버린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일본 전국 각지에서는 살처분하는 동물을 줄이자는 캠페인이 열렸고, 결국 2013년, 동물보호법이 개정돼 지자체에서는 재고 동물의 인수를 거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어요. 간단히 처분할 곳이 없어진 것이죠.
업자가 만든 열악한 케이지 안에 갇혀 있는 강아지. 유통 과정에서 ‘팔리지 않은’ 강아지가 ‘인수업자’에게 싸게 넘겨져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고 동물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이 재고 동물을 싼값에 인수하는 또 다른 업자들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펫샵에서 인수한 동물을 싸게 재판매하거나 번식이 가능한 경우 번식견으로 활용합니다. 그마저도 활용할 수 없으면 열악한 환경 속에 그냥 방치해둡니다. 2016년, 일본 토치키 현의 한 업자가 한꺼번에 강아지 80마리를 인수한 뒤 방치해 죽게 내버려 둔 사건이 있었어요. 이 업자는 강아지가 죽자 강변에 대량으로 유기해 더욱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죠. 인수업자에게 팔려가지 않는 재고 동물들은 수의대에서 외과 수술의 연습용 동물이 되기도 하고, 다른 동물들을 위한 헌혈용 동물(공혈견)이 되기도 합니다.
2016년, 일본 토치키 현의 기누강 하천 부지에 방치됐던 강아지들의 사체가 발견됐다. 인수업자가 번식업자로부터 인수한 강아지들이었다. 일본동물복지협회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이 인수업자를 형사고발했다.
반려동물 시장 확대로 인해 반려동물이 대량 생산, 대량 소비되고 있는 시대예요.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구조가 생명이 있는 동물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아 보여요. 돈만 생각해 이 구조를 유지한다면 반드시 재고, 잉여 동물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고 잉여물 취급을 받게 된 작은 생명은 간단히 짓밟히죠.
한번 법이 바뀐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일본 사회도 느끼고 있습니다. 일본 환경부는 동물보호법을 재차 개정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고, 동물 학대가 의심되는 생산업자들을 향한 단속도 강화할 수 있도록 번식업자가 사육하는 환경에 대해서도 기준을 명확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요. 번식 횟수를 제한하거나, 사육장의 넓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는 게 대표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악순환의 고리를 단번에 끊는 것은 어려워 보입니다. 이미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생계를 놓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14조원 규모의 산업 구조를 아예 재편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거죠.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한국 사회는 반려동물 시장을 키우는데만 치중하다 일본의 실패를 답습하지 말고 생명을 소중하게 대하는 방향으로 이 산업을 바꿔나갈 대책을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오사카 = 한국일보 김인애 동그람이 일본 통신원
28.Scorpions - Hurricane 2001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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