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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9.6~8.31 지구상에서 아직 이런 나라가 있다.

by 이성근 2013. 9. 7.

 

 9.6  한겨레                                                                                                       중앙

 

교육·성직자들을 못 나오게 하라 김경집 인문학자  9.6  한국일보

아마 이 제목을 보고 '거 봐라' 하는 이들 많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런 이들, 조용히 세상 바라보며 성찰하라고 뽑은 제목이다. 쌍용차 문제로, 국정원 선거부정 사건으로 촛불 들고 사람들이 모였지만 여전히 신문이건 방송이건 그들을 불순한 사람이거나 불만 세력쯤으로 호도한다. 아니 그 정도면 고맙고 황송하다. 걸핏하면, 제 맘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종북세력이란다. 21세기에 이 무슨 해괴한 매카시즘이며 촌스러운 작태인가. 그런데도 그게 통한다. 참 희한한 세상이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눈앞이 캄캄할 뿐이다.

 

교사들이,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더니 급기야 성직자들이 나섰다. 천주교 성직자와 수도자 5,038명이 "쌍용차, 약속은 목숨"이라며 선언에 동참했다. 촛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략 4분의 1쯤으로 후려칠 수 있지만, 이들의 머릿수는 깎아내리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 사람들을 도무지 마뜩치 않게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교육자와 성직자는 제 본분에나 충실하라며 그들이 세상일에 관여하거나 간섭하면 안 된다고 점잖게 타이르거나 댓글 다는 알바들 깔아서 험한 말을 마구 지껄이게 만든다. 그들의 속내로는 그 사제들과 수도자들이 모두 빨갱이로만 여겨질 뿐이다. 혹은 짐짓 점잔 빼면서 정교분리니 신성한 교육이니 하며 나설 데를 가려야 한다고 훈계하거나 경고하고 싶을 것이다.

 

맞다. 그들의 말이 맞다. 교육자들과 성직자들은 나오면 안 된다. 그들은 학교와 교회 혹은 수도회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하나만 맞고 나머지는 전부 틀렸다. 우리가 교육자와 성직자에게 유독 높은 도덕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 신성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들을 존경하거나 대우하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들에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면서 정치나 사회적 문제에 '먼저' 나서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까닭을 먼저 제대로 짚어야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마지막 도덕적 보루이다. 결코 가볍게 처신해서는 안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리 분하고 억울하고 한심해도 그들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나서는 건 바로 임계점을 코앞에 두고 있을 때만 허용된다. 그들마저 침묵하면 세상은 완전히 암흑이 된다.

 

그러니 먼저 그들이 나서게 된 상황을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누가 그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는가? 어떤 불의가 그들로 하여금 비장한 선언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는가? 그들이 무슨 권력과 이익을 탐해서 그럴 것인가. 그들이 나서는 시간은 바로 마지막 순간이라는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다짜고짜 제 입맛에 맞지 않으면 빨갱이니 종북이니 몰아세우기 전에 자신이 저지른 불의와 거짓을 돌아봐야 한다. 그런 고백과 성찰이 진정한 보수의 힘이다. 참된 보수는 없고 사이비 수구와 이익집단들만 설치며 모든 권력이 마치 자신들의 것인 양 안하무인이고 모든 이익이 자신들 자자손손 이어져야 하는 권리인 양 착각하며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이 거짓과 불의를 일삼고 있는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나의 학창시절은 내내 유신과 독재의 시대였다. 늘 두렵고 분했다. 그래도 당시의 권력자들 상당수는 최소한 부끄러움은 알았다. 유신과 시국선언, 정의구현사제단의 성명 등이 어쩌면 이렇게 40년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데자뷰를 일으키는가. 도대체 우리의 역량과 양심은 고작 이 정도에 불과하더란 말인가? 그래서 나는 여전히 두렵고 분하고 부끄럽다. 내 새끼들이 바로 그런 세상에 살면서도 이제는 분노할 힘조차 스스로 아끼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된 세상이고 바른 역사인가?

 

거리와 광장은 교육자나 성직자가 나설 곳이 아니다. 그들을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그들이 나설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정의와 진리가,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가 옹골차게 설 수 있게 하면 된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는 서로 지키며 나와 다르다고 틀렸다고 윽박지르거나 입을 틀어막지는 말아야 한다. 그게 세금을 내는 나의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다. 고작 그것뿐이다. 어쩌다 이리 되고 말았다.

   9.6  내일                                                                                                       경향

 

      9.6 국민                                                                                                      9.5 한겨레

 

    9.5 내일                                                                                                        국민

 

 

 9.7 한겨레

 9.6  중앙

 9.7 조선

 

골방의 혁명가, 혹은 돈키호테 [한겨레 21 2013.09.09 제977호]

시계를 잠시 되돌려보자. 박근혜 정부 출범 이래 지난 8월 중순 남북 간에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 전까지, 남북관계는 경색 일로로 치달아왔다. 2월에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고, 3월엔 정전협정 무효화를, 4월엔 영변 핵시설 재가동을 선언했다. 뒤이어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한-미 합동훈련과 그에 반발하는 북한의 전쟁 위협이 반복됐고, 한반도엔 전쟁 위기가 엄습했다.

 

 

경색 일로를 달리던 와중의 강연회

누군가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낙관하며 평소 같은 삶을 살았고, 누군가는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대비’에 나섰다. 외국의 저명한 종군기자들이 한국에 속속 입국한다며 전쟁이 임박했다는 보도도 있었고, 한국인들은 전쟁 위기에도 이상하리만치 평온을 유지하고 있다는 외신 기사도 있었다. 다른 한편엔, 한 연예인이 방송에 나와 전쟁 공포에 ‘벙커 부지’를 보러 다닌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상반기는 그런 시절이었다.

 

4월 중순까지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위기 지수가 잠시 소강상태를 맞은 5월12일 일요일 저녁 서울 마포구 마리스타교육수사회 강당에 13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도시-농촌 직거래 행사’인 줄 알고 장소만 빌려줬다는 수사회가 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대관료가 저렴한데다 서울에 위치했음에도 숙박이 가능하다는 등의 이유로 진보 진영 정당 및 단체의 전국 규모 행사가 종종 열리는 곳이다. 모임에서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강연이 있었다.

 

모임의 성격과 이날 행사 내용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엇갈린다. 통합진보당 쪽에선 김홍렬 경기도당 위원장이 도당 임원들과 혐의해 소집한 당원모임이었다고 주장한다. 이석기 의원을 강사로 초빙해 전쟁 반대와 평화 실현을 위한 목적으로 정세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서울을 둘러싼 경기도 모임을 서울에서 연 게 이상할 건 없다. 외려 편하다. 이때가 전쟁 위기로 치닫는 것으로 인식되던 시점이라는 걸 고려하면, 주제도 시의적절해 보인다. 이 의원은 8월30일 기자회견에서 “(강연에서) 모든 전쟁을 막으려고 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민족의 공멸이 있기 전에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이었다”고 했다.

반면 이들에게 내란 음모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 국가정보원은 이들이 반국가 성격의 지하단체인 ‘RO’라는 조직으로, 이날 모임의 성격은 “남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비밀 회합이었다고 보고 있다. RO는 ‘혁명 조직’(Revolutionary Organization)을 줄인 거란 설이 유력하지만, 고유명사인지 보통명사인지는 불분명하다. 국정원은 RO가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1992~97)의 잔존 인원들이 조직 재건을 위해 만든 모임으로 본다고 한다. 평소엔 ‘산악회’라는 이름을 썼다는 얘기도 있지만, 실제 등산을 다니는 모임인지는 알 수 없다.

 

체제에 불만이 가득한 청년 몽상가들?

8월30일 <한국일보> 등 일부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날 모임의 녹취록은 국정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상황 인식은 마찬가지다. 이 모임을 주도하는 것으로 지목되는 이 의원의 발언 몇 대목을 녹취록에서 그대로 옮기면, ①“전쟁이 구체화되고 살인과 살의와 모략과 민족적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침략의 마수와 침략의 노골적인 생각이 적나라하게 논의되고 있는데” ②“우리가 총보다 꽃이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나, 때에 따라서는 꽃보다 총이라는 현실 문제 앞에” ③“남녘의 혁명가는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과연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게 뼈대다. 쉬운 말로 옮기면, ①전쟁이 발발할 수 있는 시기에 ②평화가 아닌 무력 수단도 동원될 수 있는 현실에서 ③우리는 무엇을 할 거냐는 인식이다.

 

 

다만,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 발발시 ‘어디로 피신할 것인가, 어떻게 피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반 시민들과 달리, 이들은 ‘혁명가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물음을 부여잡고 논했다는 것이다. 곧 전쟁 시기 사회 혼란을 계기 삼아 혁명을 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이 의원의 발언 곳곳에서도 전시를 틈타 사회 변혁을 꾀하려는 의지는 뚜렷해 보인다.

 

“군사적인 위협 국면이 더 조성되면 뭐든 이룰 수 있는 거야.”

“지배세력이 60여 년 동안 형성했던 현 정세를 무너뜨려야 돼요.”

“우리가 자주된 사상, 통일된 사상, 미국놈을 몰아내고 새로운 단계의 자주적 사회, 착취와 허위 없는 그야말로 조선민족의 시대의 꿈을 만들 수 있다.”

“그야말로 끝장을 내보자. 그래서 이 끝장내는 역사의 진행에 새로운 전환기를 우리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전투를 준비하는….”

 

체제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추상적으로 혁명을 논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 아니다. ‘골방에서 혁명을 논하던 식민지 청년들’이란 상투적 표현엔 ‘탁상공론’에 가깝다는 비아냥마저 섞여 있다. 심지어 전쟁 위기로 일컫는 상황에서, 전쟁 탓에 강제 징집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불만이 가득한 청년들의 몽상이었다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과연 그랬을까?

 

다시 5월12일 모임으로 돌아가보자. 이석기 의원은 “물질·기술적 준비 체계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말한 뒤, “나중에 동료들과 토론에서 한번 고민해보세요”라고 한다. 녹취록을 보면, 이날 모임은 이석기 의원의 강연 뒤 질의응답이 있었고, 자유토론과 권역별 토론, 그리고 권역별 토론 내용 발표가 이어졌다. 이석기 의원은 강연 이후 토론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고 8월30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끝에선 이 의원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여느 조직이 실시하는 워크숍과 형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

 

녹취록의 권역별 토론에선 경기 남부 권역의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의 발언 분량이 가장 많다. 이 고문의 주요 발언은 크게 주요 시설 파괴 방안과 무기 마련 두 갈래로 나뉜다.

 

① 주요 시설 파괴 방안

“위장을 하고, 우리가 전시에 차단해야 하는 활동에 대해서는 타격을 주자. 통신을 얘기한 거고, 그다음에 이제 유류고….”

“평택에 있는 유조창, 이게 세계에서 가장 큰 (유류) 저장소예요. …탱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니켈합금이에요. 총알로 뚫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거든요.”

“(가장 중요한 통신시설은) 혜화동하고 분당에 있는데, 거기에는 쥐새끼 한 마리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진공상태가 돼야 되기 때문에 몇 개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 문제가 있고….”

“안에 있는 사람하고 협조관계가 있으면 안에 있는 사람한테 안내를 받거나 그 사람하고 같이….”

 

② 무기 마련

“외국에서 수입해 오는 장난감총 있잖아요. 그게 80만~90만원짜리(급으로) 들어가게 되면 가스 쇼바(완충기)가 있는데 개조가 가능하며….”

“인터넷에서 무기를 만드는 것들에 대한 기초는 나와 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중학생들도 인터넷에 들어가가지고 폭탄을 만들어가지고 사람을 살상시킬 만큼….”

 

내란 음모, 목적성·계획성·실행능력 갖춰야

그의 발언을 요약하자면, ‘주요 시설에 타격을 줘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진입이 어려우니 내부 동조자를 찾아야 한다’ ‘장난감총을 개조하거나 인터넷 정보를 활용해 무기를 만들자’는 얘기다.

 

이 고문은 토론이 끝난 뒤, 각 권역 대표자들과 더불어 결과 발표에 나선다. 그는 “항일의 시기에 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기에도 (총기를) 만들어 썼는데, 손재주가 있고 결의가 있으면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를) 이야기했다”고 했다. 다른 권역 대표들은 “연락 체계, 후방 교란, 무장과 파괴는 어떻게 할 거냐에 대해서 팀을 구성하고 대응책을 준비해가야 한다” “자기의 하나뿐인 목숨도 걸어야 되고, 동지들과 함께 생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등의 발언을 내놨다.

 

국정원은 이같은 발언을 주요한 근거로 RO 관계자들에게 내란 혐의를 적용했다. 이상호 고문의 발언은 그의 혐의로 옮겨졌다. 그는 “경기도 남부 소재 유류저장시설 및 통신망 등 주요 국가기간시설의 방호 현황과 구체적 파괴 방안 등에 대해 협의·통모 후 이를 전 조직원 앞에서 발표하는 등 내란을 예비·음모”한 혐의로 지난 8월28일 국정원에 체포됐다.

 

형법 제87조는 “국토를 참절(영토 전부 또는 일부를 점거해 자의적으로 자기 것으로 삼는 일)하거나 국헌(헌법과 헌법질서)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킨 것을 ‘내란’으로 보고, 실제 내란에 이르지 않았다 해도 이를 위해 예비(물자 준비 등) 또는 음모(계획 및 공모)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내란의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 형을 받게 된다. 헌법은 대통령도 내란죄를 범하면 재직 중이라도 형사상 소추를 받도록 규정한다.

 

죄목이 무거운 만큼, 실제 적용은 엄격해야 한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내란죄가 구성되려면 △국헌 문란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겠다는 목적성 △폭동을 일으키기 위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세우는 계획성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실행 능력 등을 갖춰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 교수는 8월29일 인터뷰에서, “농담 삼아 ‘이 세상을 바꿔보자, 엎어보자’ 이렇게 한다고 내란 음모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구체적인 계획과 능력이 있을 것이 요구된다. (이번 사건은) 조건이 전쟁이 발발할 경우라고 돼 있는 걸로 봐서는 시기적으로 명확하게 특정돼 있지 않아서, 구체적인 수준에서 (계획이) 수립돼 있는 단계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우리나라가 불법적인 무기류에 대한 유통 규제가 상당히 엄격한 편이다. 그래서 실행 능력이 현재 확보돼 있는 상태인가 하는 것도 상당히 의문이 있는 상태다. 그런 걸로 보면, (내란 목적이 있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내란음모죄에 해당한다고 이야기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내란 실행 능력, 즉 국정원이 지목한 이른바 RO가 동원할 수 있는 조직력 및 무장력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충분한 증거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 5월12일 모임에서 나온 발언과 관련해, “장난감총, 비비탄총 개조하여 무장하고, 손재주로 총기를 깎아 만들고, 중학생들도 만든다는 사제 폭탄 제조법을 익히고… 딱 소설 속 돈키호테의 무장 수준”(진중권 동양대 교수)이란 비아냥이 나온다.

 

“딱 소설 속 돈키호테의 무장 수준”

국정원은 ‘감청 영장’을 발부받아 2010년부터 RO 조직원들의 휴대전화 및 전자우편을 감시하는 등 3년 간 내사를 진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간 얼마나 수사에 진전이 있었는지 이목이 집중된다. 또 녹취록 작성 주체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내용에서 동영상 파일 확장자(mp4)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동영상이 있을 거란 추측도 나온다. 추가 녹취록이 나올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그러나 국정원이 구체적인 증거물을 더 이상 제시하지 못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8월29일 자신의 블로그에 “만약에, 녹음 파일 하나와 익명의 정보원 진술, ‘종북 성향이 의심되는 문건 몇 개’ 정도가 다라면, 그래서 결국 ‘내란음모죄’에 대한 유죄판결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이번 사건 3년간의 활동은 불법적인 ‘표적 사찰’ ‘정치 탄압’ ‘공작정치’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 책임은 대통령 사퇴와 정권 퇴진 및 국정원 해체 후 정보기관 재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더해, 국정원이 수사 결과를 밝히지 않으면서 사실상 언론을 통해 피의사실을 잇따라 공표한 데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이뤄질 수 있다. 이석기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사법절차가 진행되면 이같은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당당히 임하겠다. 그러나 내란 음모나 반국가 단체 동조라느니 하는 날조 모략과는 한 치 타협 없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내란 음모냐 아니냐가 어땋게 판가름나느냐와는 무관하게, 통합진보당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진보당은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합쳐 만든 정당이었다. 이름에 ‘통합’이 들어간 이유다. 이듬해 4월 총선에서 13석(지역 7석, 비례 6석)을 얻어 원내 3당으로 성공적인 원내 진출을 했지만,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 속에 극심한 당권 투쟁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의원 절반가량이 탈당해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의 전신)을 만들면서, 의석수는 6석으로 줄었다.

 

당시 선거 부정 의혹을 한 몸에 받았던 이석기 의원은 해당 사건 관련 검찰 기소 명단에선 제외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이 의원은 민혁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재조명을 받고 자주파(NL) 내 이른바 ‘경기동부연합’의 실세로 지목되는 등 극심한 ‘종북’ 논란을 겪었다. 국회의원으로서 정상적인 의정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가 의문시될 정도였다.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이번 ‘내란 모의 의혹’은 이 의원 개인이 아닌 통합진보당 전체의 문제가 됐다.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 그리고 재판 과정 및 결과와는 무관하게, 진보당은 당장 내란을 획책했다는 의혹만으로 막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됐다. 설령 국정원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하더라도 진보당이 오롯이 ‘공안 탄압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종북’ 프레임(틀)의 힘은 강력하고 사회 전반의 보수화 경향 속에 이 프레임은 날로 막강해져서, 유권자의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1년 전 ‘이석기 의원은 앞으로 정상적인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을까’라고 했던 질문에 대해, 국정원은 오늘 ‘내란 사건’이란 답변을 내놓고 있다. ‘진보당은 앞으로 온전한 정당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라는 오늘의 질문에는 언제 누구로부터 어떤 답변이 돌아올까? 김외현 기자

    9.5 한국                                                                                          9.4 한겨레

 

   9.4 내일                                                                                                      국민

 

   9.3 한국                                                                                                        한겨레

 

    9.3 내일                                                                                                       국민

 

   9.2 한국                                                                                                    한겨레

 

 

KBS·MBC·조중동, ‘국정원사건’ 숨긴 ‘공식’ 찾았다 9.4 미디어오늘

[분석] 방송3사 ‘37→83건’·조중동 ‘83→177건’… ‘원세훈 지시말씀·경찰분석관 CCTV’ 보도 인색했던 언론, ‘이석기’에 돌변

KBS·MBC·SBS 방송3사와 조중동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를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보다 2배 이상 많이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디어오늘이 방송3사와 조중동의 관련 보도량을 집계한 결과, 국정원 의혹에 대해서는 총 120건 보도했고,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260건 보도했다.

 

방송3사는 국정원 의혹에 대해 KBS 12건, MBC 10건(단신 1건 포함), SBS 15건 등 총 37건을 보도했다. 반면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는 KBS 31건, MBC 26건, SBS 26건 등 총 83건을 보도했다. 내란음모 혐의를 국정원 의혹에 비해 두 배 이상 더 많이 다룬 것이다.

 

방송3사 하루 평균 보도량을 구해보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방송3사는 국정원 의혹을 하루 평균 3.7건 보도했지만 내란음모 혐의는 13.8건을 보도, 무려 3.7배 더 많이 다뤘다. 방송사별로 따져보면 KBS와 MBC가 2.6배로 편차가 가장 컸고, SBS가 1.6배였다.

 

미디어오늘은 방송3사와 조중동의 보도량을 집계하면서 국정원 의혹의 경우 상당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사건임을 감안해 ‘특정 시점’으로 제한했다. 당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이 국정원 직원의 불법 선거 운동 의혹을 제기한 지난해 12월 11일(방송·신문 12일자), 원세훈 전 국정원 원장의 ‘지시·강조말씀’ 문건이 나온 지난 3월 18일(방송 18일·신문 19일자),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사외압을 폭로한 4월 19일(방송 19일자·신문 20일자),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된 6월 14일(방송 14일·신문 15일자)을 비롯해 국회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8월 16~21일) 등 총 10일치 기사를 살펴봤다. 내란음모죄 혐의에 대해서는 국정원이 통합진보당을 압수수색한 8월 28일부터 9월2일까지 총 6일간(신문은 5일)을 집계 시점을 잡았다.

 

 

 

 

 

▷ ‘125 VS 260’ 국정원 의혹 보도 적은 이유= 언론사들의 국정원 의혹 관련 보도량이 내란음모 혐의보다 현저하게 적은 까닭은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는 주요 분기점에서도 상당히 소극적으로 보도하거나 관련 사안을 누락했기 때문이다.

 

원세훈 전 원장이 국정원 직원들에게 국내정치 개입을 직접 지시한 정황이 담긴 ‘지시·강조 말씀’ 문건을 메인뉴스 리포트로 전한 방송사는 SBS(18일자 4번째)가 유일했다. MBC는 <뉴스데스크>에서 18일 22번째 단신으로 처리했고 KBS는 이날 ‘국정원 여직원 댓글 의혹 사건…국조 쟁점은?’란 리포트를 21번째 꼭지로 전했으나 국정원 문건 관련 내용은 누락시켰다.

 

검찰이 원세훈 전 원장의 국내 정치개입 지시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수사 무마 의혹 등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결과를 발표한 6월14일, KBS와 SBS가 3건, MBC가 2건을 보도했다. 이 보도량은 내란음모 혐의가 아직 수사 중인 사건임에도 KBS가 하루 평균 5.2건, MBC와 SBS가 각각 4.3건을 보도하고 있는 모습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9.2 미디어오늘

 9.2 한겨레

  9.2 중앙                                                                                                       내일

 

 

  9.2 국민                                                                                                       경남매일

 

 

    9.1 국제                                                                                                        8.31 영남

 

 

[단독]댓글논객 '좌익효수'도 국정원 직원좌파ㆍ호남ㆍ여성 비하 글 3500여건 게재 한국9.2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등 좌파, 호남, 여성을 비하한 글 3,500건 가량을 인터넷에 올려 물의를 일으킨 아이디(ID) '좌익효수'의 사용자가 검찰 수사 결과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확인됐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1일 "좌익효수가 댓글 작성을 담당한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은 아니지만 국정원 직원은 맞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아이디 좌익효수는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특별수사팀이 파악한 국정원 의심 아이디 목록에 포함돼 있었지만, 국정원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좌익효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며, 국정원 직원이라고 유포한 사람은 수사의뢰 하겠다"고 반박해 신원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이 아이디를 사용한 국정원 직원은 인터넷에서 개인적으로 활동했으며, 국정원의 지시를 받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번 수사는 통합진보당 광주시당이 지난 7월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받는 아이디 좌익효수 사용자를 국정원법 위반 및 명예훼손, 모욕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좌익효수는 디시인사이드 등 커뮤니티 사이트에 '절라디언들 전부 씨족을 멸해야 한다' '홍어종자들' 등의 표현으로 광주시민과 호남 출신 인사를 비하하고, '북한의 심리전에 넘어간 광주인들' 등의 표현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게시 글을 다수 올려 거센 비판을 받았다. 좌익효수 사용자는 2011년 1월 15일부터 지난해 11월 28일까지 인터넷 게시판에 16개의 글과 3,451개의 댓글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으며, 문제가 불거지자 글을 모두 삭제했다.

 

검찰은 조만간 좌익효수 사용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정확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9.6 경향 장도리                                  9.5                                                    9.3                                               9.2

 

 

한겨레 프리즘] ‘내란음모’로 보낸 하루 / 권혁철 9.1

“그 사람들 정말 전쟁이 나면 전화국을 파괴하려고 했나요?”“총을 준비해 내란을 음모했다는 보도가 정말인가요?”

지난 토요일 한 등산 모임에 갔다 받았던 질문들이다. 모임 참석자는 40·50대 중소기업체 사장, 대기업 간부들이다. 정치 성향을 굳이 따지자면 중도나 보수 쪽이다. 이들은 “당신은 기자이니 알 거 아니냐”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이 참석한 ‘5월 모임’에 대해 물어왔다. 이들의 기대와 달리 나는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모른다. 게다가 내 개인 생각을 한겨레신문사의 의견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말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국정원은 ‘체제 전복 내란음모’라고 주장하는데 진보당은 ‘허위 사실 왜곡 날조’라고 주장하니 좀더 지켜봐야 할 듯합니다.”

알맹이 없는 내 답변이 답답했던지 50대 중반 중소기업체 사장이 나섰다. “그런데 좀 웃기지 않아요. 백명 좀 넘는 사람들이 장난감총 개조해 들고나와서 내란을 하겠다니….” 나는 “무장폭동을 하겠다는 보도가 있는데 무섭지 않나요?”라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40대 후반 대기업 간부가 “무섭긴요. 황당했어요. 보도가 사실이라면 그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죠. 불쌍한 사람들이니, 형사처벌이 아니라 정신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뜻밖이었다. 국정원이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의 처단’을 목적으로 하는 무시무시한 내란죄를 걸어 수사중인데, 이 사회의 기득권층에 속한 사람들은 전혀 체제전복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이들에겐 이른바 지하혁명조직이란 아르오(RO)가 꾸몄다는 ‘내란음모’가 공포가 아니라 조롱의 대상이었다.

등산을 마치고 오후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대학교수로 일하는 후배가 전화를 했다. 대뜸 “형, 이석기 사건 진실이 뭡니까”라고 물었다. 꼬치꼬치 따지는 것을 좋아하는 후배라 길게 이야기하면 토요일 오후가 피곤할 것 같아 “지금까지 나온 언론 보도 빼면 나도 아는 게 없어”라고 서둘러 말을 잘랐다. 그랬더니 “팩트가 없으면 형 의견이라도 말해봐요”라고 후배가 따라붙었다.

나는 “기자는 대답하는 게 아니라 묻는 게 직업이다. 네 생각부터 먼저 말해봐”라고 공을 넘겼다.

후배는 “녹취록을 보고 새롭거나 놀라지 않았어요. 80년대 후반 대학 다닐 때 엠티 때나 세미나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가끔 들었던 이야기니까요. 제가 대학 졸업한 지 2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80년대 후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안타깝기도 하고 신기했어요”라고 말했다.

후배는 “진보개혁 세력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나는 “우선 국정원의 속 보이는 국면 전환 드라이브를 비판 저지해야겠지.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진상 규명과 국정원 개혁은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진행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나는 “통합진보당은‘종북 프레임에 맞서 진보개혁 세력이 대동단결 대동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라고 물었다.

후배는 “국정원의 물타기 수사가 분명하지만, 국정원과 민족해방(NL) 세력은 종북 프레임을 매개로 각자가 처한 위기를 돌파한다는 측면에선 적대적 공존 관계라고 생각해요. 두 집단은 북한에 대한 박멸과 추종이란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있잖아요.”

나는 “그동안 엔엘이 진보개혁 세력을 과잉 대표해온 데는 진보개혁 세력의 방관도 한몫했다고 본다. 일단 사태가 진정되면 이 부분에 대한 진보개혁 세력의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석기 5월 모임’을 이야기하다 토요일이 다 갔다. 일요일에 출근해야 하는데, 피곤한 하루였다.

 

기업 국가와 재벌 공화국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프레시안 9.6

[이정전 칼럼]<86> 경제 민주화 포기한 '기업 국가'

선거에 관한 정치학 이론 중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이론은 이른바 '중위투표자이론'일 것이다. 여기에서 '중위투표자'란 중간에 위치한 유권자를 말한다. 예컨대 보수성향의 강도에 따라 차례로 줄을 세운다고 하면 한쪽 끝에는 극좌, 다른 한쪽 끝에는 극보수가 서게 되는데, 이 양 극단의 중간에 위치한 투표자가 중위투표자가 된다. 중위투표자이론은 과반수 의사 결정 방법을 택할 경우 바로 이 중위투표자가 투표의 결과를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서, 보수적 정책, 진보적 정책, 중도적 정책의 세 가지 정책대안이 있으며, 중위투표자는 이중 중도적 정책을 지지한다고 하자. 중도적 정책과 진보적 정책을 놓고 투표한다면, 보수진영은 진보적 정책보다는 차라리 중도적 정책을 더 선호할 것이므로 결국 중위투표자가 지지하는 정책이 과반수의 표를 얻어 채택된다. 중도적 정책과 보수적 정책을 놓고 투표를 한다면, 진보진영은 보수적 정책보다는 차라리 중도적 정책에 표를 던질 것이므로 결국 중위투표자가 지지하는 정책이 과반수의 표를 얻는다. 보수적 정책과 진보적 정책이 맞붙는다면, 중위투표자가 그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투표결과가 결정된다. 그 어느 경우든 중위투표자가 선호하는 대안이 채택된다.

 

이와 같이 중위투표자가 선거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양당 제도를 택하는 민주주의에서는 각 정당이 서로 중위투표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되도록 자신의 선거공약을 이들의 구미에 맞추려고 애를 쓰게 된다. 이렇게 두 정당이 중위투표자를 놓고 경쟁하다 보면 이들의 선거 공약이 서로 비슷해진다는 것이 중위투표자이론의 중요한 시사점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선거 때마다 나타난다. 지난해 대선 때에도 새누리당이나 민주당 모두 똑같이 재벌 규제와 경제 민주화를 외쳤고, 검찰 개혁, 일자리 창출, 사회복지 증대, 중산층 살리기 등을 약속하였다. 이 공약들 모두 중위투표자들이 지지하던 것들이다. 결국, 양당의 선거 공약이 각론만 약간 다를 뿐 총론으로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래서 선거 공약만 보면 어느 것이 새누리당 것이고 어느 것이 민주당 것인지 알 수 없다는 푸념이 나왔다. 보수층은 새누리당을 얄미워했고, 진보진영은 민주당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중위투표자이론에 의하면 이들은 소수인 탓에 선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중위투표자는 대체로 중산층이다. 그리고 대체로 중산층이 국민의 과반수를 차지한다. 대수 법칙에 의하면, 소수 견해보다는 다수 견해가 옳을 가능성이 더 높다. 따라서 중산층의 견해가 보수 진영이나 진보 진영의 견해보다 더 옳을 가능성이 높다. 중위투표자이론이 옳다면, 양당 체제의 민주주의는 결국 국민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중산층의 뜻을 받들어 올바른 정치를 하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양당 체제의 민주주의 정치가 그런대로 바람직하게 작동하는 정치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가 보면, 중위투표자이론은 왠지 '탁상공론'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가 끝난 후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 보자.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태도는 선거 때와는 딴판이다. 특히 여권은 돌변하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재벌 개혁은 입 밖에도 내지 못하고 있고 경제 민주화도 흐지부지되고 있다. 중산층을 70퍼센트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공약은 아예 쑥 들어가 버렸다. 검찰 개혁은커녕,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던 내란 음모 카드를 꺼내 들고 있다. 여권은 중산층이 그토록 염원하던 희망들을 하루아침에 내동댕이친 것처럼 보인다. 여권이 이렇게 돌변하다 보니 야당은 선거 기간 중 잠시 내려놓았던 선명성의 깃발을 다시 높이 쳐들고 장외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부자 감세, 사회복지 지출 삭감, 무모한 전쟁, 등 과거 부시 정부가 강행했던 정책들이 미국 국민 대다수의 뜻에 어긋나는 것들이었다고 미국의 많은 석학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진보와 개혁의 이미지를 업고 변화를 바라는 중산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스티그리츠 교수와 삭스 교수는 오바마 정부가 부시 정부의 연속 선상에 있는 정부라고 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던 뉴욕 거대 금융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자신의 경제팀으로 발탁하였다. 현재 차기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ㆍ미국 중앙은행❩의장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로렌스 서머스 교수도 그런 인사 중의 한 사람이다. 그러니 오바마 대통령이 약속했던 금융 개혁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가 공약으로 내걸었던 건강의료서비스 개혁도 용두사미가 될 처지에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신세대의 희망이었지만, 또한 이들의 첫 번째 정치적 절망이기도 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미국 정부가 왜 이렇게 대다수 미국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책들을 마구 밀어붙이는가? 미국의 많은 석학이 대기업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기업들이 엄청난 자금력을 바탕으로 여론을 관리하고 정치가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벌이며 선거 때마다 막대한 선거 자금을 제공함으로써 정부의 정책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양당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양당이 추진하는 정책에는 큰 차이가 없는 한 가지 이유는 양당의 주된 선거 자금이 업계 한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삭스 교수는 말한다. 그러면서 미국은 "기업국가(corporacracy)"가 되었다고 단언하였다. 이것이 어디 미국만의 얘기이겠는가? 우리나라에는 "재벌 공화국"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달 28일 열렸던 재벌 총수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 내용을 들으면서 경제 민주화를 열망하였던 많은 사람이 재벌 공화국이라는 단어를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다.

 

대기업들은 어쩌다 이렇게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었을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이다. 국민들이 대기업과 정부를 똑바로 감시하고, 이들이 하는 행동을 낱낱이 잘 기억해두었다가, 선거 때에 공약 이행 여부를 엄밀히 평가해서 투표로 응징한다면, 아마도 기업국가라는 말이나 재벌 공화국이라는 말도 없어질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 한 눈 팔면 대기업은 정치권을 장악하고 이를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밀어붙인다는 주장이 미국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강성률의 씨네포커스] 분명 ‘바람이 분다’는 우리에게 불편하다 9.5 미디어오늘

지난 7월말, 나는 이 지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적은 적([관련 칼럼]: 아베 정권에 일침 날리는 지브리 할아버지지만…)이 있다. 당시 그의 발언이 국내에 소개돼 이슈가 되었는데, 나는 순간적 발언보다는 그의 애니메이션에 녹아있는 사상을 봐야한다고 생각했다. 애니메이션의 아름다운 이미지 속에 평소 그가 생각하던 사상이 녹아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발언보다는 애니메이션을 깊이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발언보다 애니메이션이 더 강한 영향력을 가진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난 번, 파장을 일으킨 미야자키 하야오의 발언은 확실히 강도가 센 것이었다. 일본 우익의 헌법 수정 시도와 과거 제국주의에 대한 통쾌한 발언, 신자유주의의 착취 체제를 비판하는 그의 인식은 좋지만, 그의 애니메이션 속에는 일본의 근원적인 사상인 신도 사상과 정령 사상이 녹아있고, 그 사상이 군국주의 미의식과 결합돼 제국주의 사상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고 했다.

 

                                                                                                                                                  출처: 네이브 영화 매메거진

 

 

지난 글에서는 <모노노케 히메>를 논했지만, 그가 만든 제작사인 지브리 스튜디오의 <반딧불의 묘지>도 우리에겐 불편하기 그지 없는 영화이다. 태평양전쟁의 피해자가 일본인이라는 등식이 영화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항공 공격을 했던 미국이 적대자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당연히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군부와, 그 정책을 지지한 일본인들이 가해자지만, 피해자라고 하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바람이 분다>를 보기 전 무척이나 불안했다. 그가 제국주의 시절을 미화시킨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대부분 그렇지만, 동심이 가득하던 시절, 미야자키의 영화를 보지 않고 자란 이는 거의 없다. 그 시절 꿈과 희망을 안겨준 이에게서 절망을 확인했을 때 그 고통은 배가되게 마련이다. 때문에 조심스럽게 <바람을 분다>를 보았고, 극장을 나서면서 절망감을 강하게 느꼈다.

 

 

영화의 배경은 일본의 제국주의 시절과 거의 일치한다. 어린 소년 지로는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꿈인데, 그 꿈은 가난한 일본이 부유한 서양을 따라가는 방편이었다. 당시 가장 발달된 기술인 비행기 제작을 통해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실현하는 방법이었던 것. 미야자키의 아버지가 비행기 기술자이고, 또 비행기라는 것이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것이라 동경의 대상이기 때문에 그의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지만, 이처럼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은 없었다.

 

제국주의 팽창이 아주 극단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던 그 시절, 지로가 일한 비행기 회사는 전범회사인 비쯔비씨이다. 그 회사에서 오로지 좋은 비행기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삶, 즉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삶에 미야자키는 존경의 자세를 보이지만, 그가 하는 일이 태평양전쟁 당시 주력기인 제로센을 만드는 것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 비행기는 카미가제 특공대의 공격에 사용된 자살비행기였다. 실존 인물인 호리코시 지로가 정말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한 사람인지 아닌지 우리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가 전범 기업에서 일했으며 그가 발명한 비행기로 꽃다운 청춘들이 군국주의 미의식 속에서 죽어갔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 미의식을 애니메이션 속에 미야자키가 녹이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비행기를 발명해 실험을 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일장기가 그려진 전투비행기가 하늘을 나는 모습을 수없이 봐야 한다. 심지어 실험이 실패하고 난 뒤, 돌아오는 배에서 펄럭이는 욱일승천기마저 봐야 한다. 펄럭이는 그 깃발처럼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결국 제로센을 만든 지로의 의지를 반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로와 나호코가 만나는 장면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기차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만난 두 사람. 그런데 마침 그 시간에 관동대지진이 일어난다. 그 불바다의 한가운데서 지로는 나호코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둘은 연이 시작된다. 지로는 그녀가 궁금해 폐허가 되다시피한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에게 관동대지진은 청춘남녀의 로맨스 배경이 되기에는 너무나 깊은 상처와 아픔이 있다. 9월 1일, 그러니까 지난 주 일요일에 90주년이 된 바로 그 사건,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 정부가 퍼뜨린 유언비어 때문에 집단 학살을 당해야 했고, 지금도 일본 정부는 이 문제를 사과하지 않고 있으며, 이번 교과서에서는 내용마저 왜곡했다. 이런 엄청난 사건이 단지 청춘남녀의 로맨스 배경으로 등장하고 있으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게다가 관동대지진의 재현을 마치 미군의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도쿄의 모습과 겹치게 그려 놓아 다시 한번 일본인의 피해 의식을 드러내 놓았다.

 

내가 보기에, 그는 태평양전쟁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아니면 관심이 없는 것처럼 위자을 하고 있거나. 그는 그 시절 일본이 얼마나 잔혹한 방법으로 식민주의를 실행했는지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니면 (정말 이것이 아니길 바라지만) 동양을 대표해서 서구와 나란히 발전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일본을 이 불황의 시대에 그리워하는지도 모른다. 또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일본인들의 욕망을 정확히 파악해 스크린에 재현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미야자키는 영화에서 일본과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다는 이야기도 하고, 지로의 순수한 마음을 증명하려는 듯 애절한 로맨스로 포장도 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의심이 간다. 심지어 그가 은퇴를 선언한 것을 보면 답답할 지경이다. 차라리 내 생각이 오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나마 진보적인 지식인인 미야자키가 이렇다면 일본의 진보 세력에게 무엇을 바랄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반면교사. 우리의 역사 서술과 인식은 어떠한가? 일본의 우익 역사 교과서에서 말하는 조선의 근대화와, 우리 우익의 역사 교과서에 실린, 일제에 의한 근대화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가! 일본 우익의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서술과, 우리 우익이 저술한 역사 교과서에 실린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서술은 또 얼마나 비슷한가? 쿠데타를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고, 광주의 학살을 학살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과연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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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음..글세 글쓴이의 편견아닐까?..미야자키는 시각이 좀 색다르게 3인칭이다...즉, 전쟁부분을 다뤄도 단지 전쟁은 나쁘다를 알리지 왜 전쟁을 하는지 왜 전쟁이 나쁜지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는 다루지않는다...그냥 전쟁은 아픔이고 승자없다는것만 전달한다...만약 미야자키가 태평양정쟁의 실상을 다루고 위안부 다루면 그건 우리의 필요이상의 바램이지 그걸 논평할 수는없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전에서 우리나라군인의 잔혹 했던것을 그리면 상영이나될까?

그냥 편견...그리고 진보적 인사같으니 또는 우파에게 큰소리 치니 우리가 원하는것도 해주길 바라는것뿐...차라리 우리나라 허영만이나 이현세 같은 작가들이 왜 그런 작품을 하지않는가를 탓해야지 왜 엄하게 일본 작가를 탓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Dark eheh**** 2013.09.09 08:40 신고

영화를 제대로 봤다면 호리코시 지로가 미화되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호리코시 지로의 꿈과 사랑에 대한 욕망이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끝내 파멸로 향하는 비극의 한 인물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곰탱이 cosa**** 2013.09.08 23:30 신고

아무리 주인공의 순수한 사랑을 반영 하더라도. 하필이면 살인병기 제로센 전투기 설계자의 러브스토리를 영상으로 담은 게. 팬으로서 심히 불편해 보이네요. 일본의 우경화에 심히 일침을 놓고 싶으면. 일본인 반전주의자와 한국인 독립투사의 우정이나 애정을 통해. 반전메시지를 내놓을 수도 있었는데. 왜 군국주의의 상징인 제로센을 설계한 이를 다루는 건지. 이번 작품을 보며.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에 실망했습니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은근히 화가 나네요.

 

사람향기 grac**** 2013.09.08 22:30 신고

개인의 순수한 행위와 꿈을 타인이 비난할 자격은 없지요. 하지만 개인의 순수함과 열정이 사회와 역사에 해악을 끼친다면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외부효과 external effect라고 하지요. 그래서 역사의식이 중요한 것입니다. 과연 주인공은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수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할 전투기임을 과연 인지하지 못했을까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퇴장길에 불편한 바람이 붑니다.

 

밀노 mirn**** 2013.09.08 21:30 신고

일본인으로써 이런 영화를 한번쯤 만들어 보고 싶었을 것으로 안다... 물론 역사를 왜곡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받아야 하겠지만, 이 영화 자체의 영상미나 감동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wbcb**** 2013.09.07 16:47 신고

일본만화라고 그리 트집만 잡을것 아니지. 영상미는 있구만 내용도 그들 입장에서 만드거고 그들은 그당시에도 항공모함비행기탱크만들고 미국소련에도 대들고 했구만 한국은 종이호랑이 중국궁댕이에도 머리숙이고 조공바치고 했는데 만약일본애덜이 이겼으면 그 비판비난들이 어떻게 180도 바껴있을까? 일제말에 지원사관경쟁율 40대1 넘은거 어찌 해명할려구?

 

wooh**** 2013.09.07 15:44 신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님이 단순히 일본인이라고 해서 반대하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건 흑백 논리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가 아닌것 같습니다. 미야자키 감독님의 작품 어디를 보아도 환경 파괴의 위험성. 평화, 미래를 끌고 나갈 젊은이들에 대한 격려가 있지, 전쟁의 미화는 없었습니다. 대가의 작품으로써 인정해주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해가되고픈달 vonj**** 2013.09.06 22:49 신고

어이가 없네.. 주인공으로 나온 지로라는 놈이 실제로는 해군의 의뢰를 받아 제로센 전투기를 직접 제작까지한 전범이다 계발해놓은걸 일본해군이 가져간게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예고편과 실제 예고편은 틀리다 '신화가 된 제로센의 탄생','호리코시 지로에게 경의를 표한다'라는 내용이 빠졌다. 좀 알기나 하고 '보 고 판 단 해'라고 지껄일수 있나??

 

해가되고픈달 vonj**** 2013.09.06 22:45 신고

ㅅㅂ 너거집 털고 강간까지한 강도새끼들이 있는데 그중에 한 강도놈의 꿈과 사랑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미화 시켰다고 치자.. 그걸 '보 고 판 단 해','애니는 애니일뿐' 라고 지껄일수 있나?

 

코큰 문어 hsrk**** 2013.09.06 22:30 신고

모르고 보면 잔잔한 감동을 주는 감동 러브스토리로 보겠지만 알고보면 전쟁 미화를 적란하게 보여주는 선전용 영화..... 이렇게 겨냥한 의도가 꿈을 위해 무수한 사람을 죽였을뿐 잘못은 없다는 변명을 하려는 계기를 만드려는 거였을까....거장도 역시 일본인 이였다

 

‘황금의 제국’…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9.4 미디어오늘

[리뷰] SBS ‘황금의 제국’의 서사는 한 편의 자본주의 다큐멘터리

|총 24부작|15세이상 관람가|2013.07.01~

시청률 10.6% (2013.09.03 닐슨코리아 제공)
줄거리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격동기 제왕자제왕자리를 두고 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쟁탈전을 그린 가족 정치극
 

 

SBS <황금의 제국> 시청자는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긴박감이 넘쳐 집중하거나, 너무 어렵고 무겁다며 채널을 돌린다. 그 흔한 멜로도, 액션도 없다. 오직 성진그룹 회장이 되는 것만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유일한 욕망이다. 회장이 되기 위해 또는 회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굳은 얼굴로 상대를 노려보며 밥상머리에서 던지는 숱한 독설과 냉소, 그러다 눈치 보며 아첨하고 편 가르는 게 이 드라마의 유일한 서사다.

 

<황금의 제국>은 집요하게 재벌가를 지옥으로 묘사한다. 욕망의 지옥이다. 지옥에서 아무도 벗어나지 못한다. 상위 1%, 태어날 때부터 서민이 평생 벌어도 못 벌 수준의 주식을 보유한 이들도 지옥에 남아있는 건 마찬가지다. 명색이 ‘제국’이라고 하지만 최서윤(이요원 분) 일가가 사는 집과 성진그룹 본사가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제국의 전부다. 제작진은 답답할 정도로 집과 사무실만 보여준다. 최서윤도 우리처럼 쳇바퀴 인생은 매한가지다.

 

장태주(고수 분)는 성진그룹 회장으로 상징되는 ‘자본 욕망의 끝’을 향해 행복을 유예한다. 하지만 그가 설령 회장이 되어도 욕망을 버리기 전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끝없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재벌도 살기 힘들다’가 이 드라마의 메시지일까.

 

치매로 경영권 경쟁에서 탈락한 한정희(김미숙 분)는 19회에서 증오의 대상이었던 최동성 일가 자식들에게 본인의 성진시멘트 주식을 나눠주는 것만이 ‘진정한 복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본주의사회는 ‘욕망의 자기증식’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욕망의 노예가 된 인간은 끝없는 불만족에 고통스러워하다 생을 마감한다. 한정희는 욕망을 포기함으로써 이 같은 ‘진실’을 마주한다.

<황금의 제국>은 ‘자본의 디스토피아’를 인물 간 갈등으로 정교하게 그려낸다. 말 몇 마디가 오고가면 수백억짜리 계열사 지분이 오고가고 10억 달러가 인출되는 제국에선 신문·방송과 검찰을 쥐락펴락하고 국회의원이 선물을 받고 머리를 조아린다. 하지만 제국을 이끄는 주인공들은 유아적이다. 밥상에서 밥알을 겨우 넘기며 감정적인 멘트를 쉼 없이 날리며 자신의 위치를 상대에게 각인시키는 유치함을 반복한다. 이런 자들이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결국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차이다.

 

제작진은 여기서 주인공들의 위치를 쉼 없이 바꾸며 인간성이 말살된 자본의 경쟁을 비춘다. 최근 몇 회만 봐도 최서윤 부회장 체제에서 장태주·최민재(손현주 분) 연합→한정희·최민재 연합→최서윤·장태주 연합→최민재 회장→최원재·장태주 연합→최서윤·최민재 연합 등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시청자도 정신없게 만드는 연합과 배신이 반복되고 있다. 각각 자본의 대리인인 이들은 사람을 마주하지 않고 다른 자본을 마주할 뿐이다.

 

인물간의 냉정한 경쟁관계는 자본주의의 ‘소외’를 드러낸다. 독일의 정치경제학자 칼 마르크스는 1844년 쓴 <경제학-철학 수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간을 상품으로 생산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비인간화된 존재로 생산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로 뒤덮인 세상은 점점 구조적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우리는 사람들 틈 속에서 살지만, 고독감을 느끼고, 재산수준으로 인생을 평가받는데 익숙해진다. <황금의 제국>에 등장하는 사장님 회장님들에게도 ‘소외’는 어김없이 찾아온다.

 

17회에서 최민재의 아버지 최동진은 아들에게 욕망을 버리고 함평 농장으로 가자고 말한다. 형님이자 창업주인 최동성 성진그룹 회장의 죽음을 보며 최동진이 느낀 것은 ‘욕망의 덧없음’이다. 아무리 많은 자본을 갖고 있어도 욕망은 해소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고통스럽다. 최동진의 말처럼 “고구마 한 번 배부르게 먹어보자”며 시작한 일이었지만 ‘황금의 제국’을 이룬 황제(최동성)는 병실에서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다.

 

자본주의는 ‘욕망의 자기증식’을 기반으로 움직이고, 인간은 체제 속에서 상품으로 이끌려 다닌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절제되지 않는 욕망이고, 주어진 욕망이다. <황금의 제국>은 매회가 끝날 때마다 우리에게 욕망의 제국에서 탈출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장태주·최서윤·최민재의 삶을 바라보는 시청자 역시 함평농장으로 내려갈 생각은 별로 없다. 우리는 모두 제국을 유지하는 제국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드라마가 아니다.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체제의 굴레를 드러내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간토 조선인 대학살’ 알리는 일 양심세력도쿄 | 서의동 phil21@kyunghyang.com 13.9.2

ㆍ한·일 정부 역사 외면 속 1일 90주년 추도식 행사 열어

ㆍ증언조사·유해발굴·진상규명 서명운동 등 헌신적 노력

 

한·일 두 정부의 외면으로 묻혀질 뻔했던 간토(關東)대지진 조선인 대학살이 오늘날 조명을 받게 된 데는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세력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이들은 증언조사를 통해 실체 규명에 나서고 추모비를 건립하는가 하면 일본의 국가 책임을 묻는 서명운동을 하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벌이고 있다. 90주년을 맞은 1일을 전후해 일본 각지에선 시민세력들의 주도로 다양한 행사가 열려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도쿄에서 가장 조선인 학살이 집중됐던 스미다(墨田)구의 초등학교 교사였던 기누타 유키에(絹田幸惠·1930~2008)는 1975년 학교 수업 차원에서 아라카와(荒川) 하천의 역사를 조사하다 우연히 마을 노인들로부터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하천 둔치에서 대량학살됐고, 시신들을 그 자리에 묻었다는 증언을 우연히 듣고 충격을 받았다. 기누타는 학살의 진상을 캐기 위해 1982년 ‘조선인의 유골을 발굴해 위령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해 9월 추도식을 갖고 유골 발굴 조사에 착수했으나 유골은 전혀 찾지 못했다.

 

이후 일본 경찰이 대학살 이후 이곳에 묻힌 유골을 전부 파내 옮긴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하천 둔치에 추모비 설치를 추진하고 봉선화를 심었다. 일제강점기에 홍난파가 조선인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지은 ‘울밑에 선 봉선화’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하천법 위반이라며 철거를 요구했고, 하천 둔치 추모비 설치 요구도 당국이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2009년 스미다구 야히로(八廣)역 부근의 아라카와천 부근 주택가에 “식민지하 고향을 떠나 일본에 온 이들이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채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 이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희생자를 추모해 인권의 회복과 양 민족의 화해를 염원한다”는 추모비를 세웠다.

 

 

 

간토대지진 90년을 맞아 일본에선 외면당한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려는 행사들이 펼쳐졌다. 지난달 31일에는 도쿄 지요다구 메이지(明治)대학에서 학자,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가한 ‘간토대지진 90주년 집회’가 개최됐다. 도쿄 다치카와(立川)시 여성종합센터에서는 재일동포 오충공 감독의 간토대지진 기록 다큐영화 <숨겨진 손톱자국> 상영회와 사진전이 열렸다. 1일에도 도쿄 스미다구에서 일조협회도쿄도연합회가 중심이 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이 거행되는 등 10건의 행사가 열렸다.

 

 

 

90주년을 맞아 일본 시민단체들은 학살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 실태조사를 실시할 것 등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지난 6월부터 시작해 연말까지 전개할 계획이다. 이들은 서명 명단을 국회 중·참의원 의장에게 전달하고 조선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청원을 할 예정이다.

 

재일민단은 1일 도쿄 미나토구 민단본부에서 이병기 주일대사와 오공태 민단 단장 등 약 150명이 참석한 ‘90주년 관동대지진 희생동포 추념식’을 열고 희생된 동포들의 넋을 기렸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증언 “둔치에 몰아놓고 기관총 난사… 죽창 끝에 머리 매달아”

ㆍ“경찰 ‘조선인 습격’ 방송, 신문도 유언비어 유포 가담”

 

“기관차 밑에 숨어 있던 조선인이 발각돼 하천 제방에서 참수됐다. 조선인의 머리가 죽창 끝에 높이 매달려 있는 것이 보였다.”(5일 피난온 이재민 대학생, (홋카이도) 하코다테신문 1923년 9월6일)

 

“9월2일인가 3일에 군인들이 조선인 22~23명을 아라카와천 하류둔치로 밀어넣은 뒤 1정인가 2정의 기관총으로 눈깜짝할 새에 총살했다. 그중에는 알몸의 여자도 있었다. 강간을 당한 것 같았다. 시체들은 석유와 장작으로 불태웠다.”

 

1923년 9월1일 오전 11시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 등 일본 간토(關東)지방을 강타해 10만5000명 이상(행방불명자 포함)이 사망했다. 혼란 상황에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퍼지면서 간토지방 일원에서 조선인 수천명이 군대·경찰과 유언비어를 믿은 민중들에 의해 대거 학살됐다. 시민단체 ‘봉선화’ 대표 니시자키 마사오(53)가 만든 3권의 증언자료집은 일본 군대와 경찰이 유언비어 유포와 학살을 주도했음을 보여준다. “조선인들이 대거 습격한다는 상부 정보가 있어 밤 10시를 기해 전투를 개시한다는 중대 명령이 떨어졌다.” “경찰이 확성기로 ‘방금 조선인 습격이 있었다’고 방송하고 다녔다.” 특히 군대의 학살 목격담은 지진 다음날인 9월2~4일 사이가 많아 대지진 발생 직후부터 군대가 계엄령을 이유로 신속하게 투입돼 조선인 학살을 주도했음을 뒷받침했다.

 

일본 언론들도 유언비어 유포에 가담했다. 도쿄일일신문은 지진 직후 ‘불령선인(不逞鮮人·일본에 불복종하는 조선인)들, 곳곳에 방화’라는 제목의 호외를 발간했다. 또 ‘시민들은 군인, 경찰과 협력해 조선인을 경계하라. 우물에 독을 푸는 사람이 있으니 우물물에 주의하라’ 등 내용을 담은 포스터와 전단이 신문사 이름으로 유포됐다는 증언들이 담겼다.

 

 

 

출처ㅣ 다음 브로그 홍이 아뜨리에

As tears go by / The Rolling Ston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