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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의 박비어천가 심상치 않다 928 미디어오늘
대선 노린 포석일까…재벌중심 경제성장론의 망령, 박 대통령 새마을운동 타령은 한풀이일 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6일 유엔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을 언급하면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관심을 받을만하다.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언급에 대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산불처럼 새마을 운동 번져’라고 극찬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서 집권 전반기를 넘긴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경제문제 해결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해외에 나가, 국내에서 아직 그 공과를 놓고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아버지의 치적 가운데 새마을운동을 칭송하는 이벤트를 벌인 것이다.
국내 경제는 수출입이 동반추락하고 가계부채의 급증 속에 중장기적 성장 모멘텀을 상실해 장기적 저성장 기조에 빠지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독재자의 개발독재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새마을운동 칭송가가 해외무대에서 터져 나온 것은 예사롭지 않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가 개발독재시절 도시와 경제적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던 농촌문제를 해결하려고 제기한 관제 사회운동이다. 60년대 초 이후 박정희는 재벌을 중심으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시도하면서 농촌 인구를 도시의 저임금 노동자로 유출시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밀집한 기형적 경제 구조를 만들었다.
정부가 주도한 새마을운동은 70년대까지 농촌의 주택개량, 기반시설 개선 등에 기여하면서 소득 증대에 기여했지만 80년대 들어 한국 정치, 경제 구조가 급변하면서 동력을 상실했었다. 이 운동은 한국 사회가 급속히 산업화되면서 농촌 인구의 도시유입과 소득격차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 개선에 기여하지 못했고 특히 이 운동을 둘러싼 부정부패 등의 부작용도 속출했다. 이후 정부는 이 운동을 중앙 집중 형식에서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개도국 지원 등과 같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다.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국가간 순위에서 12~13위권의 경제적 기적을 이룬 외형적 발전은 확실히 평가할만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소수 재벌의 경제적 비중이 과대해지면서 양극화 심화 속에서 자살률이 OECD 평균의 두 배가 넘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를 기록하는 살인적인 기형사회의 모습이 되었다. 박정희식 경제발전 모델의 막장이 아니냐 하는 평가가 나오는 속에 그 딸이 설거지로 나선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2년여 동안 그 실체가 모호한 창조경제를 앞세우고 전국 여러 지역에 재벌이 중심이 된 발전 기지를 만들고 있으나 아직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권이래의 기업 프랜드리 정책을 지속하면서 기업 증세 등 대자본의 사회적 비용 지출 증대에 한사코 반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부족한 세수를 담배값 인상이나 벌과금 인상 등으로 메우는 희한한 정책이 남발하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고 있다.
박 정권의 경제 정책은 아버지 박정희의 재벌중심 경제 성장론과 유사해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국가 경제의 핵이고 정부가 그것을 최대한 뒷받침한다는 개념 하에 추진되고 있다. 대신 노동자들의 해고를 쉽게 하거나 고 연령층의 실질적인 임금을 줄이고 대신 청년 일자리를 마련한다는 식의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비정규직의 양산 가능성을 방치하는 식의 경제정책을 강행하려 시도 중이다.
박 정권이 추진하는 노동정책이 지닌 불합리성은 유럽연합의 노동자 권익 보호 정책과 비춰보면 경제민주화에 심각하게 역행한다. 유럽연합은 노동자와 기업과의 관계에서 노동자가 약자라는 시각에서 노동자를 모든 경우에 보호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고 최근 유럽으로 이민자들이 몰리는 이유는 유럽이 노동자 복지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대기업 등의 탈세나 불법영업 등과 같은 문제가 속출하지만 그 개혁에 눈을 감고 기업에 비해 상대적인 약자인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한 취업정책 등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노동자들의 법적 평등을 보장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동일 직장에서 동일노동을 할 경우 동일 급여를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그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취업 계약 기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권의 노동정책은 노동 현장의 불평등을 법제화한다는 측면에서 인권보호라는 원칙에 역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새마을운동 성공을 해외에서 소리높이 외친 것은 향후 국내에서 추진할 경제정책의 방향이 반노동자적으로 갈 것을 시사한다. 즉 60년대 새마을운동이 도시 산업화를 위해 농촌의 희생을 강제한 정부 경제 정책의 보조기구로 활용된 것처럼 오늘날의 경제문제도 노동자들의 사회적 위상을 기업에 비해 약화시키는 쪽으로 몰고 가 해소하려는 함의가 담겨 있다고 보여 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에서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으로 신뢰에 기반을 둔 지도자의 리더십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국민의 참여 등을 꼽으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킨 것은 국내에서 하지 못한 말을 해외에 나가 외치는, 어떤 면에서 한 풀이의 의미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개발독재가 낳은 긍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사회적 경제 구조를 오늘날처럼 심각하게 악화시킨 그 어두운 면은 외면하는 자세를 박 대통령이 나머지 임기 동안 지속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유엔수장으로써 덕담을 넘어 ‘박비어천가’를 부른 것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낳는 것은 향후 대선 등을 포함한 정치 문화 발전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다.
반기문은 갑자기 왜 새마을운동 ‘홍보대사’가 됐나 930 미디어오늘
[김종철 칼럼] 유엔사무총장의 닭살 돋는 ‘박비어천가’… 반기문은 박기문이 될 것인가
추석 연휴에 대통령 박근혜와 유엔사무총장 반기문이 미국 뉴욕에서 ‘찰떡 궁합’을 과시했다. 박근혜는 3박6일의 뉴욕 체류기간에 반기문을 7번이나 만났다. 두 사람은 비공식으로도 몇 차례나 만났다.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와 똑같은 국적을 가진 유엔사무총장이 빠듯한 일정에서 시간을 여투어 그를 자주 만나는 것이야 목적이 정당하다면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 유엔총회에 참석해서 기조연설을 하는 것이 박근혜의 가장 큰 공식 업무였는데 반기문과의 잦은 만남이 더 ‘중대한 일’처럼 보였다.
박근혜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반기문과 20분 동안 ‘독대’를 한 뒤 유엔의 주요 인사들과 만찬을 가졌다. 가뜩이나 집권세력 안에서 차기 대선후보를 둘러싼 논란이 어지러운 마당에 박근혜가 세계의 안보와 평화에 집중해야 하는 유엔사무총장을 하루에 두서너 번이나 만나 무슨 대화를 했는지에 대해 국민들은 당연히 깊은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박근혜는 9월 26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한국 정부와 유엔개발계획(UNDP),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공동주최한 ‘새마을운동 고위급 특별행사’에서 개회사를 통해 “대통령이시던 선친께서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떠한 성공 요인들이 어떻게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놓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기문은 그 행사에서 “새마을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 나는 공무원으로서 그 운동을 실행으로 옮기는 노력을 했다”며 “내가 살던 나라가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자부심을 느꼈다. 가난했던 마을과 주민의식의 급진적인 변화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박정희 정권이 1971년에 시작한 새마을운동에 대한 박근혜의 평가는 역사적 사실과는 전혀 다른 미사여구와 자화자찬에 지나지 않는다. 새마을운동의 본질과 결과에 대해서는 오유석이 2003년에 발표한 ‘농촌근대화전략과 새마을운동’이라는 논문이 정곡을 찌르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3대 정신 중 하나로 ‘협동’을 내세웠지만 사실 그것은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칠 뿐 실제로는 주민들의 자유권 행사가 거부되고 창조적인 진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군대에서나 볼 수 있는 강요된 협동이었다. 집단적인 노력동원에 기초한 생산과 소득증대를 추동하기는 하였으나, 이 과정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 부락공동체의 배타적인 정신풍토 내지 집단심리를 이용하고 마을 간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농민들 간, 마을 간의 횡적 유대관계와 상호 대등한 관계에 기초한 협동은 끊어졌다. 그 자리를 국가와 농민(또는 국민)이라는 수직적 관계가 대신하게 되었고, 횡적 관계를 잃은 수직관계는 모든 농민을 ‘국가와 조국 근대화를 향해 나란히’ 정렬하도록 집체화(集體化)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체화 과정에서 반드시 생기게 마련인 중간 매개의 통제집단으로 새마을지도자와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것을 구성하여 새롭게 재편된 수직관계의 체계화를 이어주고 지탱해주는 말단 ‘끄나풀’로 이용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군대식 ‘집체형’ 동원이라고 부를 수 있다.”
박근혜의 주장대로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들’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서 국민과 나라를 바꿔 놓았다면, 박정희는 왜 그 운동을 시작한지 한 해만에 ‘10월 유신’이라는 헌정 쿠데타를 일으켜 온 나라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어야 했을까? 그리고 왜 농촌의 젊은이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하는 대도시로 몰려들어 마침내 농촌에서 중장년과 노인들이 농사를 도맡다시피 하게 되었을까?
반기문은 앞의 유엔 행사에서 “새마을운동 성공의 핵심 요소는 교육이다. 주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사회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그 핵심에 교육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새마을운동의 개발도상국 전수를 통해 개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데 대해 박근혜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도대체 새마을운동이 현재 한국에서 어떤 교육적 성과를 거두고 있기에 그것을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겠다는 것인가? 한국사회의 교육 자체가 ‘승자 독식’ ‘기득권 강화’의 도구가 되어 있는 세계 최악의 상황인데 유독 ‘새마을운동 교육’만은 생산적이고 진취적이라는 뜻인가?
박근혜는 유엔 행사에서 “지금도 한국의 새마을운동은 현재진행형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주장한 뒤 “새마을운동이 각국의 특수성과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글로벌 농촌개발전략과 국가발전 전략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1970년대의 박정희 식 ‘한국적 파시즘’을 독재국가들에 수출하겠다는 것이라면 몰라도 참으로 어이없는 ‘포부’이다.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자격으로 ‘새마을운동 국제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서 새마을운동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면서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향해 ‘박비어천가’를 불렀다. 노무현 정권이 음양으로 도와 어렵사리 유엔사무총장이 된 그의 변신에 대해 외교관 사회에서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한다. 그 사회에서 나도는 반기문의 여러 별명 가운데는 ‘반반(反潘)’이라는 것이 있다. “반기문 따라 하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하니, 아예 따라 할 생각을 말라”는 뜻이다(<경향신문> 인터넷판 9월 27일자).
반기문은 대통령후보가 될 자유와 권리를 가지고 있다. 2016년에 유엔사무총장 임기를 마치는 그는 결심만 한다면 2017년의 대선 출마 준비를 할 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그가 이른바 ‘친박’의 도움으로 대선에 나서건 야당과 손을 잡건, 그것은 그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반기문이 만약 대선에 출마한다면, 현재 박근혜의 ‘새마을운동 홍보대사’ 역할에 충실한 그가 그때는 어떤 정책과 이념을 내세우며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할지가 궁금하다.
KBS 드라마인물 36편 남녀직업 분석해보니… 927 미디어오늘
남자는 사장, 여자는 주부…드라마서 남녀직업 고정된 이유는
KBS 2TV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의 여주인공 이진애(유진 분)는 패션회사에서 일한다. 남편은 건축가다. 같은 채널에서 지난해 방영한 주말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여주인공 차강심(김현주 분)은 비서다. 남편은 그룹 서열 2위 후계자다.
'왕가네 식구들'(2013년 방영, KBS2) 홈페이지의 등장인물 소개에 따르면 주인공 왕수박(오현경 분)은 "그저 돈 많은 남자 만나 내 몸 하나 예쁘게 건사하면서 사는 게 결혼이라 생각"하고 "명품 옷에 명품 백에,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데, 남편 사업이 쫄딱 망하여" 불륜남의 소개로 직업을 얻게 된다.
KBS 2TV의 주말드라마는 가족드라마의 전형적 문법 안에서 만들어진다. 이에 따른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된 성역할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형적 가족극의 틀이 현대사회를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KBS 2TV '왕가네 식구들' 화면 갈무리. 사진=KBS
가족드라마의 전형성에 대해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3대에 걸친 가족들이 등장해 손자나 손녀들이 말썽을 피우고, 어른들이 균형을 잡아주는 식의 스토리라인과 디귿자 형태의 집에서 모두가 모여 살며 응접실에서 끼니마다 다함께 식사하는 장면 등 1980년대 이전 가족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가족형태나 가족 내의 성역할이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다양하게 담아내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고정된 가정의 형태와 성역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남녀주인공과 주변 등장인물의 직업이다. 미디어오늘이 1997년 10월11일 방영된 KBS 2TV 주말드라마 ‘아씨’부터 현재 방영되고 있는 ‘부탁해요, 엄마’까지 총 36편의 연속극 주인공을 포함한 주요 주변인물 175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남성 등장인물의 직업 가운데 사장(CEO)이 가장 많았고 여성 등장인물의 직업 중에는 주부가 가장 많았다.
▲ KBS 2TV 주말드라마 36편의 등장인물 175명의 직업을 조사한 결과. 남성 등장인물의 직업은 △사장 △의사 △회사원 △언론인 △자영업 순으로 많았고 여성 등장인물의 직업은 △주부 △회사원 △패션 관련 직종 △학생 혹은 취업준비생 △자영업 순으로 많았다. 인포그래픽=이우림 편집기자.
주변인물을 뺀 주인공의 직업만 조사한 결과로 남자주인공은 △의사 △언론인 △사장(CEO) 순으로 많았고, 여자주인공은 △일반 회사원 △학생 혹은 취업준비생 △패션 관련 직종 순이었다. 남성주인공은 상층 엘리트, 고학력 소유자로 드라마의 인물이 구성되고 여성주인공은 남성을 보조하거나 평범한 능력치의 소유자로 묘사된다.
▲ KBS 2TV 주말드라마 총 36편의 주인공 직업을 조사한 결과. 남자주인공은 의사, 여자주인공은 회사원이 가장 많았다. 인포그래픽=이우림 편집기자
가족드라마에서 남녀의 직업이 고정되는 이유는 우선 KBS라는 ‘공영방송’의 ‘가족드라마’라는 형식 때문이다. 이강현 KBS PD는 “가족드라마에 성별에 따라 직업이 어느 정도 고정돼있다는 것은 인정한다”며 그 이유로 “실험적이고 과감한 사회상 반영이 용이한 장르와 달리 전통가족극인 공영방송의 주말 연속극은 조금 더 보편적이고 관습적 역할들로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이강현 PD는 “전체적으로 보면 직업군이 성별에 따라 고정된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에는 성역할이 역전된 모습도 나오고 있다”며 “최근의 ‘부탁해요 엄마’와 같은 경우 주인공의 어머니가 여성 CEO로 나오고, 자영업을 하는 부부의 모습에도 고정된 성역할과는 역전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이유는 KBS 2TV의 주말 가족극의 주시청층이 중장년이기 때문이다. 이는 중장년층의 TV시청 습관과도 관련이 있다. KBS 2TV의 주말연속극은 1987년 3월7일부터 현재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7시55분에 시작한다. 주말 저녁 가족과 앉아 주말드라마를 보는 시청습관이 거의 30년째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가족드라마의 전통적 구도에서 드러내는 선입견에 대해 김교석 평론가는 “드라마를 만드는 조직내부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 KBS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온가족이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지향한다고 말한다”라며 “하지만 KBS가 말하는 ‘온가족’은 가족 모두라기보다 가족 안의 장년층에 맞춰져 있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 가족 안의 어르신에 맞춰진 것이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말드라마의 직업선정이 고정관념 때문이라기보다 PPL(제품 간접 광고)에 따라 정해진다는 의견도 있다. 유선주 TV평론가는 “드라마 속 직업들이 당대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많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드라마를 제작 지원하는 곳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며 “여성의 직업군에 패션관련업이 많고 남녀를 떠나 자영업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PPL로 의류업체가나 프랜차이즈 업체가 많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유선주 평론가는 “이는 어느 정도 드라마가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증거다”라며 “PPL업체로 몇가지 업체가 몰린다는 것은 실제로 특정 업체에 돈이 몰리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KBS 2TV의 가족극이 전통적 가족의 모습과 전형적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틀 안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대표적인 작품이 박지은 작가의 ‘넝쿨째 굴러온 당신’(넝쿨당)이다.
▲ KBS 2TV에서 2012년 방영된 '넝쿨째 굴러온 당신' 화면 갈무리. 사진=KBS
‘넝쿨당’은 드라마 PD인 여주인공 차윤희(김남주 분)과 외과 의사인 남주인공 방귀남(유준상 분)이 만나며 며느리와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중점으로 펼쳐지는 드라마다. ‘넝쿨당’은 갈등관계로만 그려지던 며느리와 시집과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묘사하고 평등한 부부관계를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드라마는 한국여성민우회의 ‘2012년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에서 성평등적 시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드라마로 꼽히기도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KBS 주말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지금까지 다뤘던 가족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드라마인 것은 사실이다”며 “틀을 유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똑같이 반복한 것은 아니고 시대상을 반영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틀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부모의 입장에 자식이 따라주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내 딸 서영이’와 같은 작품은 자식의 입장을 집중해서 보여줬고, ‘넝쿨당’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에서 며느리가 관계를 주도적으로 가져가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같은 틀 안에서도 의미 있는 변주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중일 3국, 선진국이 될 수 없는 이유 924 프레시안
[원광대 '한중관계 브리핑'] 민족주의에 갇힌 동북아
최근 지구 반대편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들려오는 난민 소식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역사책을 통해서 느꼈을 전쟁의 고통과 아픔이 동시대를 사는 다른 민족에겐 오늘 당장의 현실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매일같이 보도되는 시리아 난민들의 죽음 소식과 유럽 각국이 난민 수용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들이 남일 같이만 느껴진다. 터키 해안에서 발견된 세 살배기 아일란의 희생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환기시켰을 진 모르나, 동북아까진 그 영향력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인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난민 문제, 강 건너 불구경하는 동북아 3국
시리아 난민 사태가 불거지고 있지만 한국, 중국, 일본 정부는 서로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하다. 세계적인 이슈거리에 '경제 대국' 이라는 수식어를 붙여가며 고개를 내밀던 중국도 어찌된 일인지 이번만큼은 반응이 없다. 오히려 난민 사태가 "서구 민주주의 국가들이 스스로 저지른 죗값을 받는 격"이라며 책임을 추궁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일본은 시리아 등 분쟁 지역에 무기 사용이 가능한 자위대 파병을 검토한다는 어이없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안보법 통과에 힘입어 내전 지역을 이용해 자위대의 전투력을 상승시키겠다는 의도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한국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시리아 난민이 세계적인 문제로 번지기 전 이들에 대한 원조 금액은 다음과 같다. 일본은 경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3억1000만 파운드(한화 약 5600억 원)를 원조했다. 세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8번째로 금전적 원조를 많이 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단 한 명의 난민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국은 20만 파운드(한화 약 3억6000만 원), 한국은 2012년부터 지금까지 1526만 파운드(한화 약 278억 원)의 금전적 원조를 제공했다. 액수와는 상관없이 난민을 몇 명이나 받아들였는지에 대해서는 한국과 중국도 할 말은 없다.
▲ 지난 2일 (현지 시각) 터키의 휴양지 보드룸 해변에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가 죽은 채 발견됐다. ⓒAP=연합뉴스
물론 단순한 원조 금액이나 난민 수용 수치만 가지고 각 국가들의 난민 정책을 비판할 수는 없다. 국가마다 경제적 이유, 국민의 정서 등이 달라 정부로써도 어찌할 수 없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 전쟁을 치르면서 국가가 없는 민족이 겪는 아픔과 서러움 그리고 고통을 겪었다. 또한 중국 국민들은 천안문 사태를 통해 자신의 국가로부터 인권을 보호받기 힘든 시기를 스스로 경험했다. 오늘날에는 북한의 탈북 난민 문제가 있다. 그래서 이들 난민들의 절실함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때문에 경제적,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우리 민족도 난민이었을 때가 있었고, 낯선 그들의 도움으로 그 어려웠던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다.
난민 보호는 우리의 국제적 의무
난민에 대한 보호는 인도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세계 각국이 함께 약속한 국제법적 의무이기도 하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1951) 및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Protocol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1967)가 현재까지도 난민 보호에 있어서 국제법 및 국내법의 근간이 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본 협약 및 의정서에 각각 1992년, 1982년에 가입 및 서명하였다. 이에 따라 이들 국가에서 난민의 자격이 부여된 외국인은 의료 및 교육 등 개인적 기본권을 비롯하여 외국인 체류자에게 주어지는 것과 똑같은 합법적 권리와 사회보장 혜택이 지원된다.
중국은 본 의정서에 서명한 후 1982년 헌법에 난민 보호에 관한 의무를 명시했다(32조). 이후 2012년 통과된 '출입경관리법'(出入境管理法)에 난민 문제를 직접적으로 규정한 조항이 최초로 제정됐다(제46조). 46조의 내용은 공안 기관이 중국에서 체류할 수 있는 임시 신분증을 발급해주면, 난민 인정을 받은 외국인은 이를 가지고 중국 경내에서 체류 및 거류를 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핵심 내용 이외에 별도의 이행법률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막상 난민을 받아들이려 할 때 어떤 기준과 절차로 난민을 인정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또 난민 신청자와 난민 인정자가 중국 경내에 체류 및 거류할 때 어떠한 권리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근거 법률도 전혀 없는 상태이다. 이런 상황에서 난민을 위한 진정한 난민 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중국과 비슷하게 일본도 '출입경관리법'에 난민 지위의 심사 및 절차, 그리고 표준 관련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국 내에서 이에 대한 공정성과 효율성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자구책으로 2003년에는 '난민 등 보호에 관한 법안'을 발의하여 독자적인 난민법을 제정할 것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3국 중에서는 그나마 한국이 제일 나아 보인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보다 늦게 의정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미 난민에 관한 독자법인 '난민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는 아시아에서는 최초이다.
난민 발목 잡는 아시아 최초 한국 '난민법'
한국은 1994년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면서 난민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3년 난민법이 시행되었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난민법을 시행하고 있는 국가인 우리나라의 난민 인정률은 현재 4%(522명)대다. 그나마 인도적 체류 허가는 이보다 많은 7%(876명)대를 기록하고 있다. 난민 협약국의 난민 인정률이 38%인 것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수치다. 실제 50% 이상의 난민이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난민법이 시행되고 약 2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수치상 나타나지 않았을 수 있지만, 이 정도라면 난민법을 제정한 목적부터가 의심스러운 수준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 난민법에 따른 난민 인정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난민법은 상기 의정서상 난민에 대한 정의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본국에서 '국적, 인종, 종교,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정치적 의견으로 인한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는 사람만을 난민으로 인정한다. 그 외 시리아와 같은 내전으로 인한 난민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해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강제 출국을 시키진 않는다. 하지만 따로 사회보장 및 기초생활 보장 등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함정이 있다.
난민 인정을 받기도 매우 어렵지만, 난민이 된다 해도 이들이 한국, 중국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 타 민족에 대한 국민의 배타성 때문이다. 이는 시리아 난민 사태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서 잘 보여 준다. 외국인 이주자, 난민에 대해서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과 이웃으로 지내며 공간을 나눠 쓰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시리아 난민들에게 선뜻 자기가 사는 집까지 내주겠다고 하는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민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고 있다는 말은 경제 영역에서나 해당되는 것인가 싶다. 이제는 동북아 3국이 민족주의의 틀을 깨고 세계와 소통하는 국가와 국민으로 거듭 나야 하지 않을까? 포용력을 가진 진정한 대국으로서 말이다.
올해의 국제풍경사진(The International Landscape Photographer of the Year)'의 수상작-Luke Austin (호주)
나와 가족이 살해협박 받았다"...안보법 반대 日대학생 밝혀928 경향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안보법 성립 과정에서 대학생 등 젊은층의 반대 운동을 이끌어온 일본 대학생 단체 ‘실즈(SEALDs)’의 핵심 멤버가 살해 협박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실즈의 활동을 이끌어온 오쿠다 아키(奧田愛基·23·메이지가쿠인대 4학년)가 지난 28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자신과 가족에 대한 살해 협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혔다고 29일 산케이신문 등이 보도했다.
오쿠다는 트위터 글에서 “학교 쪽으로 나와 내 가족에 대한 살해 예고가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뭔가 의견을 말했다는 것만으로 살해당하긴 싫기 때문에 일단 주변을 조심해가면서 학교에 가곤 한다”고 덧붙였다.
‘오쿠다 아키와 그 가족을 살해하겠다’는 취지의 협박문을 손으로 쓴 종이가 봉투에 담긴 채 지난 24일 오쿠다가 재학 중인 도쿄(東京)의 메이지가쿠인(明治學院) 대학에 송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쿠다는 지난 6월 이후 안보법안 반대 시위에 참가해 실즈의 활동을 이끌어왔다. 지난 15일 국회에서 열린 안보법안 관련 공청회에서는 안보법안의 부당성 등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거침없이 밝혀 언론 등의 주목을 받았다.
오쿠다는 네트우요(ネトウヨ)등 일본 극우세력에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어야 한다”며 “가만히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어 아들을 “이해하고 응원한다”고 밝혔다. 오쿠다는 가족들에게 전달된 협박장과 지난달 아베신조(安倍 晋三) 내각이 성립한 안보법 제ㆍ개정안이 유사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쟁은 헌법이 지켜줘야 할 우리들의 권리를 제한한다”며 “마찬가지로 협박장은 대화를 시도하고 있지 않다. 이유를 밝히지 않고 아들이 법안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우리를 죽이겠다고만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이 경시되고 있는 현 상황을 상징하는 것 같아 무섭다”고 안타까워했다.
오쿠다는 아들의 반대시위를 저지하지 않겠다고표명했다. 그는 “가족의 생명이 걱정되지만 이대로라면 여러 사람이 침묵할 것이다”며 “이것이 ‘특정비밀보호법’의 시대인가. 왜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정부는) 전쟁가능국가를 만들려는 이유가 ‘특정비밀’이라고 못박아 생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유를 물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쉴즈는 일본 대학생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의 의미와 안보법안의 위헌성을 알리기 위해 구성된 시민단체다. 이들은 헌법학자를 섭외해 안보법안의 위헌성을 주장하고 국회 앞에서 안보법안 반대 시위를 주최했다.
일본 보수매체인 산케이(産經)신문은 “반(反) 아베 정치색이 짙을 뿐, 논리는 약하다”고 쉴즈를 비판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무토 다카야((武藤貴也)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전쟁에 가기 싫다는 이기적 개인주의다”는 글을 올려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실즈(SEALDs)’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 행동(Students Emergency Action for Liberal Democracy-s)’의 영문 약자다.
미군은 왜 한국에 주둔하고 있을까 929 오마이뉴스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북한 남침 억지 vs. 동아시아 미국 국익 보호 몇대몇?
"한국은 막대한 돈을 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군대를 (한국에) 보내고 그곳에 들어가 그들을 방어한다. 그들은 아무런 돈도 내지 않는다. 우리는 얻는 게 하나도 없는데,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우리가 공짜로 보호하고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가 최근 주한미군에 대해 한 발언들이다. 트럼프뿐 아니라 미국의 일반인들 중에서도 이런 인식을 하는 이들이 꽤 많다. 한국에서도 극우·보수세력을 중심으로 미국이 '선의'로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는 생각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들(한국)은 아무런 돈도 내지 않는다"는 말은, 지난해 한국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9200억 원을 냈고, 이 분담금은 계속 증가해왔다는 '사실'로 간단하게 무너진다.
"우리(미국)는 (주한미군 주둔으로) 얻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어떨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에 대해 29일 방송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한반도 통일이야기, 속시원하게 풀어드립니다)에서 "6.25때와 그 직후에는 북한의 남침 억지가 주한미군의 존재의 명분이자 그 실질적 이유였다"면서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남한의 국력이 북한의 국력을 압도하면서부터는, 그보다는 다른 역할이 더 크다"고 말했다.
"미국 전작권 전환 동의, 주한미군을 중국 견제 최전방 사령부로 규정했기 때문"
▲ 한미연합사령관 업어주는 여당 대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당 소속 국방위 위원들과 함께 지난 7월 2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령부를 찾았다. 김 대표가 "한국에서는 존경과 감사의 표시로 업어주는 관례가 있다"면서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을 업어주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 전 장관은 "미국으로서는 제일 서쪽에, 중국에 대한 최전방에 주한미군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주일미군, 그리고 괌과 하와이에 있는 미군이 안전한 것이고, 결국 태평양 전체가 미국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때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동의한 것도,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을 견제하는 최전방사령부로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러면서 "주한미군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기 위한 역할과 북한의 남침 억지 역할의 비율이 몇 대 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각종 시뮬레이션에 강한 미국이지만, '불편한 진실'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런 연구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또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흡수통일'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미군의 한국주둔을 인정하고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1992년 김용순 당 국제비서를 뉴욕에 보내 아놀드 캔터 미 국무차관에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우리와 수교하자, 통일 뒤에도 주한미군 위상·역할 바뀌면 남아 있어도 좋다"는 제안을 했다.
"북, 주한미군 동북아 안정자 역할 주목"
당시 통일연구원 부원장으로서 이 제안에 대해 검토했던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주한미군에 대해 남침 억지를 위한 무장력일 뿐 아니라 동북아의 균형자, 안정자 역할(stabilizing role)을 하면서 남한의 북한 흡수도 막아줄 수 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인식 전환을 한 것이었다"면서 "미국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읽고 이런 제안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그러나 미국도, 우리 정부도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무시했다"고 회고했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서도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했고, 김 위원장은 같은 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최근까지도 계속 공개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있을까. 정 전 장관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때 이 같은 질문이 나왔는데, 김정일 위원장은 '아직까지 우리 인민들은 거기까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고 답했다"면서 "북한은 줄곧 반제국주의, 반미투쟁을 통해 남한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체제를 유지해온 사회이기 때문에, 특별한 상황 변동이 없는 가운데 이런 내부 선전을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러면서 "미북 수교와 이에 따른 평화협정을 곧바로 미군철수와 남한공산화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른 것"이라며 "지금은 미군 보고 나가라고 해도 안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군에 당하느니 차라리..."학살 증언 듣기 정말 괴로웠다 928 오마이뉴스
[명진 스님의 미안합니다, 베트남 ③] 밀라이 전쟁박물관·빈호아 마을
여기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나는 처음 밀라이 전쟁박물관에서 이 사진을 보면서 ‘왜 이 사진을 여기에 전시해 놨는지’ 의문스러웠다. 다른 전시물은 온통 학살 피해가 명백한 사진인데 이 사진 속 사람중에는 별다른 피해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 고상만
'명진 스님과 함께 떠나는 베트남 평화기행' 6일 차. 일행은 전쟁 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 학살 피해 마을을 찾았다. 그때 나는 한 장의 사진과 마주한다. 바로 밀라이 마을에 있는 '밀라이 전쟁박물관'에서였다.
사진 속에는 두어 명의 중년 여인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옆에는 자녀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도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울먹이는 슬픔은 보였지만 왜 슬퍼하는지를 단박에 알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다. 그리고 알게 된 끔찍한 진실. 이곳을 방문하기 전 6일간 베트남 전쟁의 야만성을 이미 듣고 봤다고 생각했던 나는 다시 한 번 이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무너졌다. 너무 괴로웠다. 지옥이 있다면 1968년 3월 16일, 베트남 밀라이 마을이 바로 그 '지옥'이었다.
▲ 미군들은 밀라이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민간인 5백여 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아이들의 주검에 베트남 여성이 오열을 하고 있다. 밀라이박물관에서 촬영. ⓒ 김성헌
피해자 최소 504명, 미군에 의한 '밀라이 학살 사건'
베트남 전쟁은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든 전쟁이 다 그렇지만 베트남 전쟁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그런 베트남 전쟁 중에서도 '가장 추악하고 잔혹한 사건' 중 하나는 <밀라이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이었다.
1968년 3월 16일. 미 찰리중대 소속 병사 150명이 남베트남 밀라이 마을로 들어왔다. 이어 윌리엄 캘리(William Calley) 중위의 명령에 따라 미군은 베트콩이 아닌 이 마을 민간인 500여 명을 무참히 학살한다. 아무런 저항도 없었다. 하지만 미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장난처럼 사람을 죽였고 도망가는 이들을 쫓아가 또 난사했다.
찰리 부대원들은 사람을 죽이는 짓만 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가슴에 '찰리 중대'라는 영문을 군용 대검으로 새겼다. 자신들의 부대 이름이었다. 그렇게 죄도 없는 민간인을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인 찰리 부대원들은 마지막 순간, 마을 전체를 화염 방사기로 불태웠다. 도대체 미군은 왜 이처럼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 미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죽였다. 장난처럼 사람을 죽였고 도망가는 이들을 쫒아가 또 난사했다. ⓒ 고상만
놀랍게도 이유는 없었다. 그저 '베트콩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의심이 전부였다. 뒷날 이 학살 행위를 주도한 캘리 중위는 회고에서 "우리는 전쟁 동안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냥 민간인이었을 뿐이다.
그러한 참혹한 학살 현장에서 촬영된 한 장의 사진.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던 그 사진 속 여인들은 바로 이 학살을 자행하던 미군들에 의해 집단 윤간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사진 속 여인의 얼굴에 흐르는 두려움과 절망, 공포와 흐느낌. 옷의 단추를 채우는 한 여인의 팔에 안긴 어린 자식과 또 다른 여인의 등 뒤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한 남자가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가 피해 여인의 남편인지, 아니면 이미 장성한 그의 아들인지 알 수 없으나 그 표정과 분위기 속에서 지극한 고통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이것이 정말 아비규환의 지옥이 아니라면 무엇을 지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 일행을 인솔하여 밀라이 전쟁박물관을 안내해 준 베트남 평화운동가 구수정 박사의 다음 설명은 충격이었다. "이 사진 속의 사람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라고 물었다. 사람들은 차마 상상하는 그 말을 입에서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이어진 구수정 박사의 말이었다.
"미군은 그들이 강간한 여인을 비롯하여 이 사진 속의 모든 사람을 전부 학살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베트남에서 벌어진 미군에 의한 밀라이 마을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민간인 504명 죽인 캘리 중위, 그의 처벌은?
이러한 극악 반인륜 범죄에 대한 책임은 처음부터 드러나지 않았다. 미군 역시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밀라이 마을에서 죄 없는 민간인을 무참히 살해하고, 강간했으며, 불태운 이들에게 미국 정부는 처음엔 처벌이 아니라 상을 내렸다.
이 끔찍한 학살극은 '베트콩 요새를 격파한 빛나는 승리'로 둔갑하여 미국 정부에 보고되었다. 그리고 이처럼 전과를 세운 찰리 중대에 미군 사령관은 직접 축전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이날 현장에 있었던 미국인 종군 사진기자 덕분이었다.
나는 이 끔찍한 사진을 찍은 자가 도대체 누구인지 궁금했다. 특히 학살된 시신뿐만 아니라 곧 학살될 사람의 눈망울을 보면서도 그 사람 앞에서 카메라 셔터만 눌렀을 그 종군 사진 기자에 대해 나는 분노가 일었다. 이 끔찍한 학살극 앞에서 '추악한' 작품 욕심만 냈을 그 사진 기자 역시 '또 하나의 살인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증오한 그 기자가 아니었다면 밀라이 마을에서의 학살 행위는 진실을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이날 학살 현장에는 두 명의 사진 기자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차마 이 끔찍한 만행을 촬영할 수 없어 카메라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단 한 장의 사진도 남기지 않았다. 반면 이 지독한 비극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른 사람이 있었다. 미국의 사진 기자 로널드 해벌(Ronald Haeberle)이었다. 해벌은 이후 만년필 속 안에 이날의 필름을 몰래 숨겨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9년, 해벌은 학살의 진실이 담긴 이 사진을 자신이 속한 신문사와 잡지 <라이프>지에 실었다.
▲ 학살되기 직전의 한 여인. 너무도 끔찍한 범죄에 대한 처벌은 사실상 없었다. 베트남 전쟁은 너무도 추악한 범죄였다. ⓒ 고상만
진실을 접한 미국 국민은 경악에 빠졌다. 베트남에서 벌어진 밀라이 학살 사건을 보도한 프리랜서 기자 시모어 허시(Seymore Hersh)의 폭로 이후 공개된 해벌의 사진으로 미국 내의 분위기는 반전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이 같은 분노가 얼마나 컸는지는 베트남에 파병된 한 사병 어머니의 항변에도 잘 담겨 있다.
"나는 미국 정부에 착한 아들을 보내 주었는데, 정권은 그 아들을 살인자로 만들어 돌려주었다."
이러한 반전 여론과 항의가 빗발치자 미군 당국은 밀라이 마을 학살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민간인 학살 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어 14명의 장교가 체포된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최종적으로 처벌받은 책임자는 단 한 명이었다. 바로 윌리엄 캘리 중위였다.
캘리 중위는 사건 당시 군에 입대한 지 고작 4개월 2주밖에 안된 신참이었다. 그런 캘리에게 미국 정부와 미군이 모든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게다가 캘리에게 내려진 처벌은 고작 3년간의 가택 연금이었다. 504명을 학살한 책임으로는 가당치도 않은 처벌이었다. 이마저도 당시 미국의 닉슨 정부는 사면 처분을 내린다. 이것이 학살 사건으로 인한 처벌 전부였다.
무려 504명을 학살했다. 그런데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학살 당시 우연히 이 현장을 목격한 미군 헬기 대원은 훗날 "미군들이 마을의 여자를 강간하고 어린 아기까지 전부 죽였다. 사람을 요리해서 먹는 것만 빼고 전부 다 했다"며 격분했던 사건이었다. 그런데 처벌이 고작 이렇다니 말이 되는가.
진실을 알고 난 후 우리는 분노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다 식기도 전에 우리는 놀라운 또 하나의 사실을 들었다. 민간인 학살 피해를 본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도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너무도 부끄러운 우리들의 자화상이었다.
한국군에게 당하느니 차라리 미군에게...
같은 인류로서, 같은 사람으로서 나는 미군의 잔혹한 만행에 대해 분노했다. 일행들 모두가 그러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구수정 박사의 다음 말에 우리는 분노 대신 고개를 떨궈야 했다. 이전에 가졌던 미군에 대한 분노조차 부끄러웠다. 구수정 박사의 말이었다.
"여러분. 그런데 아세요? 이 일을 당한 베트남 피해자분들의 후손이나 당사자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지? '어차피 이런 학살을 피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당할 걸, 왜 우리는 한국군에게 죽임을 당해 아무런 사과도 받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정말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랬다. 밀라이에서의 미군 학살이 있었다면 이에 못지않은 또 다른 학살 행위가 있었다. 바로 우리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이었다. 그러한 지역 중 한 곳이 평화기행 6일 차에 방문한 빈호아 마을이었다.
▲ 베트남전 당시 가장 많은 군인을 파병한 맹호부대 장병들의 베트남 상륙 장면이다. 사진은 밀라이 박물관에서 촬영. ⓒ 김성헌
때는 1966년 12월 5일 새벽 5시, 밀라이 학살이 있었던 1968년 3월로부터 2년이나 앞선 때의 일이었다. 이때 출라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던 해병대 청룡여단 1개 대대가 꽝아이성 빈선현 빈호아 마을로 행군했다. 그리고 이날, 청룡여단은 빈호아 마을에서 '베트콩과 상관없는' 민간인 36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학살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전날보다 더 큰 규모였다. 청룡여단은 다시 꺼우안푹 마을로 가서 273명의 민간인을 한자리에 모이라고 했다. 영문을 모른 채 마을 주민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이내 청룡 여단의 총기가 난사되었다. 이유도 없었다. 베트콩의 공격도 없었고, 누군가가 대항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비무장 상태인 민간인 273명이 죽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간 이들은 모두 '교전 중 우리 군이 사살한 베트콩'으로 보고되었다. 참으로 괴로운 진실이다.
유감스러운 일은 이런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더 있었던 것인지 여전히 자세하게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의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1993년 베트남으로 유학을 갔다가 우연한 계기로 이 진실을 알게 된 베트남 평화 운동가 구수정 박사의 노력으로 일부가 밝혀진 것이 지금까지의 전부다.
구 박사가 직접 피해 마을을 찾아가 그들의 증언을 통해 확인한 사례는 최소한 80여 건. 학살된 민간인 피해자는 약 9천여 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는 베트남 전쟁 중 우리가 사살했다는 전체 베트콩 숫자인 약 4만1천여 명중 1/4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그렇게 죽은 이들이 추후 베트콩으로 보고된 것이다.
한편 이날 자행된 학살 과정에서 살아남은 마을 주민은 14명이었다. 이를 증언하는 사람이 있었다. 1999년 당시, 구수정 박사가 <한겨레 21>에 기고한 글에서 빈호아 마을 부주석이 증언한 요지다.
"1966년 12월 청룡부대 1개 대대가 이곳 빈호아 등 9개 마을에서 모두 430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응옥흥 마을에서는 80살 노인의 목을 잘라서 논에 걸어 놓았다. 희생자들 중에는 임산부도 7명이 있었고, 2명의 여성은 강간당했다. 또 2명이 산 채로 불구덩이에 던져졌고, 1명은 배가 갈라져 창자가 꺼내졌다."
당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이후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전투원이 된다. 우리가 적으로 여기는 '베트콩'은 바로 그 조직의 전투원을 일컬은 단어였다. '원래 베트콩이 없었던' 마을에서 우리가 적이라고 불렀던 진짜 베트콩이 만들어진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군 때문이었다. 그 계기는 미군과 한국군에 복수하겠다는 그들의 분노였다.
전쟁이 끝난 후 세워진 '한국군 증오비'
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은 종전된다. 지독한 부패로 베트남 국민에게 외면받은 남베트남 정권이 끝내 무너진 것이다. 그렇게 전쟁이 끝난 후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쌀을 한 주먹씩 모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쌀로 그들은 한국군에 의한 학살 행위가 벌어진 마을에 '한국군 증오비'를 세우기 시작한다. 적어도 60여 군데 이상 이러한 증오비가 세워졌다. 그중 한곳이 바로 우리가 방문했던 빈호아 마을의 '한국군 증오비'였다.
▲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베트남 빈호아 마을의 한국군 증오비 내용 중 일부다. ⓒ 김성헌
우리 일행은 간간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국군 증오비'에 적힌 문구를 읽으며 망연히 서 있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우산을 받쳐 쏟아지는 비를 피할 자신이 없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넘쳤다. 그렇게 읽어간 증오비의 비문이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들을 깨끗이 불태웠다. (중략) 모두가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고 겨우 14명만이 살아남았다. 미 제국주의와 남한 군대가 저지른 죄악을 우리는 영원토록 뼛속 깊이 새기고 인민들의 마음을 진동토록 할 것이다. 그들은 비단 양민 학살뿐만 아니라 온갖 야만적인 수단들을 사용했다. 그들은 불도저를 갖고 들어와 모든 생태계를 말살했고, 모든 집을 깨끗이 불태웠고, 우리 조상들의 묘지까지 갈아엎었다. 건강 불굴의 이 땅을 그들은 폭탄과 고엽제로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불모지로 만들었다."
▲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한국군들은 이 작은 땅에 첫 발을 내딛자마자 참혹하고 고통스런 일들을 저질렀다. 수천 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가옥과 무덤과 마을을 모두 불태웠다. ⓒ 고상만
베트남인들의 분노가 표현된 것은 이 같은 '증오비'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군이 자행한 그 날의 만행을 영원히 잊지 말라고 자신들의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그래서 그 내용을 담은 자장가를 만들어 잠자는 아기에게 불러줬다고 한다.
"...아가야, 이 말을 기억하거라. 적(한국군)들이 우리를 폭탄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 쏘아 죽였단다.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오늘날 남은 증오비는 3개, 이제 우리가 철거할 수 있어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일부' 미군과 '일부' 한국군의 야만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군가가 조국을 침략한다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하지만 내 조국이라고 해서 명백한 잘못까지도 마냥 옹호할 수 없다. 베트남 전쟁에서 자행된 그 날의 만행은 결코 그냥 묻을 수 없는 잘못이다.
더 부끄러운 일은 그다음이었다. 미군은 전쟁 중이었던 그때, 밀라이 마을에서 벌인 자신들의 범죄를 조사했다. 비록 그 결과가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미약한 처벌이었다 해도 미군은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한 장교를 체포했고 그중 가해자를 처벌했다. 또한 이에 대한 잘못도 인정했고 사과하기도 했다. 미국의 시민단체들도 사죄하며 밀라이 마을에 병원과 학교를 지어줬다. 미군들의 학살 만행을 전시한 '밀라이 전쟁박물관'에 대해서도 재정적인 지원을 해줬다. 자신들의 학살 범죄를 잊지 말라고 오히려 지원해 준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미국인의 사과·반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달랐다. 그때도 부인했고, 지금도 부인하고 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사과도 없고, 그에 합당한 배상도 없다. '물밑으로는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묘한 논리가 계속되는 것. 바로 베트남 전쟁 과정의 잘못을 대하는 우리나라의 태도다.
그러니 그런 말이 있었다. "학살을 피할 수 없었다면 차라리 미군에게 죽었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이 그 어떤 심한 욕설보다 더 우리나라에 항의하는 베트남의 심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평화기행을 함께 한 모든 일행이 깊은 탄식을 터뜨린 이유였다.
▲ 그날, 쏟아지는 비 속에서 명진 스님은 향을 피웠다. 그리고 학살된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퐁니 위령비 앞에서 한참을 엎드려 사죄했다. ⓒ 고상만
그날, 쏟아지는 빗속에서 명진 스님은 향을 피웠다. 그리고 학살된 피해자들의 이름이 적힌 퐁니 위령비 앞에서 한참을 엎드려 사죄했다. 나머지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향을 피워 우리나라 일부 군인에 의해 숨져간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빌었다.
과연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랬다. 전쟁 후 베트남 사람들이 세운 한국군 증오비는 이제 약 3곳만 남았다고 한다. 60여 개가 세워졌던 증오비가 세월이 흐르면서 도시가 개발되며 하나둘 자연스럽게 철거되면서 남은 숫자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남은 나머지 3곳의 '한국군 증오비'만은 우리의 노력으로 철거하자고 말하고 싶다.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사과하며, 또 용서를 구해 베트남 국민들이 "이제 우리가 당신네 나라의 잘못을 용서하겠다. 그 증거로 남은 이 증오비를 철거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다.
과연 그런 날은 올까. 지금은 어둡지만 '명진 스님과 함께 떠나는 평화기행'의 글을 통해 단 한사람이라도 우리 국민에게 알리고 싶었다. 용기있게 말하고 싶었다. 그날, 우리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자고. 그렇게 해서 용서를 구하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또 말한다. 미안해요, 베트남.
▲ 36명이 한꺼번에 몰살된 웅덩이 앞에서 스님은 한참을 엎드려 사죄했다. 미안해요, 베트남
김경락의 초딩 이코노미 가계빚빚 1130조원은 시한폭탄일까 암세포일까 925 한겨레
(5) 가계부채
지난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되는데, 가계빚은 1130조원에 이른다. 2012년 9월6일엔 가계빚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닌 시민단체들이 가계부채 탕감 운동본부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금융소비자협회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 들머리에서 본부 출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이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얼마 전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스탠더드앤푸어스·S&P) 한 곳이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어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높은 신용등급이며 웬만한 다른 나라에 견줘도 전혀 손색없는 등급이에요. 우리나라와 같은 등급인 나라가 미국, 독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8개국으로 손에 꼽지요. 일본보다도 한 수 위랍니다.
경기가 ‘안 좋다’ ‘나쁘다’는 말은 많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신용도는 괜찮다고 국제사회가 봤다는 거지요. 사실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시선은 나라 안보다 밖이 좀더 후한 것 같아요. 신용평가회사뿐만 아니라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우리나라 경제에 큰 우려를 드러내지 않지요.
전반적인 호평 속에서도 언제나 빠지지 않고 지목되는 우리나라의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어요. 바로 ‘가계빚’이지요. 가계란 사람들이 꾸린 집안살림의 수입과 지출 상태를 말하는 거잖아요. 주요 국제기구나 신용평가사들이 우리나라 경제를 평가한 보고서를 보면, 언제나 가계빚에 대한 경고가 빠지지 않아요. 여러분도 가계빚이 시한폭탄이라는 뉴스를 제법 들어봤을 거예요. 이번 회에는 가계빚에 대해 알아보려 해요. 특히 가계빚이 왜 시한폭탄으로 불리는지, 현재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집값이 빛의 속도로 오르던 시절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되어요. 가계가 은행이나 카드회사 같은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이 이만큼 된다는 뜻이에요. 여기엔 친척이나 이웃집에서 꾼 돈이나 대부업체 등에서 빌린 돈은 빠져 있어요. 1130조원, 선뜻 감이 안 오죠? 이렇게 한 번 따져보지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체 가계가 번 돈은 789조원쯤 돼요. 빌린 돈이 한 해 동안 번 돈보다 더 많지요? 한 해 번 돈을 모두 빚 갚는 데 써도 다 갚지 못해요. 물론 한 해 번 돈이 빚보다 적은 나라는 제법 있어요. 선진국들이 가입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절반 정도나 여기에 해당하지요.
하지만 그 수준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랍니다. 201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소득에 견준 빚의 비율이 더 높은 나라는 선진국 중에서는 덴마크와 노르웨이,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이 손에 꼽히죠. 미국이나 일본, 독일은 물론 경제 불안에 신음하고 있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도 더 심각하지요. 더구나 2012년 이후 우리나라 가계빚이 200조원 가까이 더 불어났으니, 소득에 견준 빚 비율 순위가 몇 단계 더 올라갔을 거예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왜 이렇게나 많을까요? 답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거예요. 맞아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가계빚 중 주택을 사기 위해서이거나 주택을 은행에 맡기고 다른 용도로 빌린 돈이 절반에 이릅니다. 집 때문에 가계가 돈을 빌리려 하거나 빌릴 수 있었던 배경은 집값이 계속 올라서입니다. 가계는 돈을 빌려서라도 집을 산 뒤에 나중에 값이 오른 뒤 판다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어요. 집투기라고요? 뭐라고 부르든 간에 이런 생각은 정말 틀리지 않았죠. 집값이 가장 비싸다는 서울 강남권을 살펴볼게요.
강남 아파트는 많이 오를 땐 1년 만에 22%(2007년 1월) 올랐어요. 1억짜리 집을 산 사람은 가만히 앉아서 1년 만에 2200만원을, 5억원짜리 집을 산 사람은 1억1000만원을 번 거죠. 이렇게 2000년대 초반부터 2008년까지 7~8년간 집값이 빠르게 올랐어요. 빚을 빨리 그리고 많이 내어 비싼 집을 살수록 가장 빨리 부자가 될 수 있던 시기였지요.
돈을 빌려준 은행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가계가 앞다퉈 돈을 빌리려 한 만큼 은행들도 너나 할 것 없이 돈을 빌려주려 경쟁했지요. 돈을 빌리러 온 사람의 신용도도 따지지 않을 정도였어요. 집값만 오른다면 얼마든지 빌려준 돈을 되돌려받을 수 있다고 믿었던 거예요. 돈을 많이 빌려준 은행이 더 많은 돈을 벌었고, 돈을 많이 빌려준 직원은 두둑한 보너스를 받았지요.
가계는 돈을 빌리기 위해 경쟁을, 은행은 돈을 빌려주려 경쟁을 했으니 가계빚이 빠르게 불어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나라 경제 규모는 1.9배 커졌는데, 이 기간 동안 가계빚 규모는 2.4배나 불어났지요.
환영받던 빚내기와 빚내어주기가 우리 경제에 불안 요소로 모습을 드러낸 건 2008년 미국에서 출발한 금융위기 때였어요. 집값이 계속 오를 거라는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때지요. 큰 폭의 하락은 없었으나 일부 지역이나 아파트 값이 조금씩 내리면서 빚을 내서 집을 산 사람들이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또 집값이 올라도 그 이전과 같은 초고속 상승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어요.
물론 가계빚 불안이 고개를 쳐든 지 5년 남짓 흘렀지만, 가계빚 폭탄이 터지지는 않고 있어요.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지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앞으로도 집값이 조금씩은 오를 거라는 주장과 곧 폭락할 거라는 주장이 엇갈려요. 아직까지는 집값의 미래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지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1130조원쯤 은행과 카드회사에서 빌린 건데
그 수준이 세계 최고라고 해요 경제 불안한 그리스보다 많아요
왜 이럴까요, 바로 집 때문이죠 갑자기 집값이 내리면 어떨까요
집 팔아도 빚 못 갚는 사람 늘고 은행은 돈을 떼이며 부실해져요
그럼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실업자들로 가득 차는데…
은행에 뛰어가면 안되겠죠?
가계빚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혹시라도 집값이 크게 내리는 상황을 바탕에 깔고 있어요. 만에 하나라도 집값이 내리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 불어닥칠 후폭풍이 감당하기 힘들 거라는 데는 많은 전문가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차근차근 생각해보죠. 집값이 내리면 당장 빚을 낸 사람들은 빚을 갚으라는 요구를 받게 될 수 있습니다. 집값이 30% 정도 떨어질 때 본격적으로 은행들이 이런 요구를 할 것으로 보지요. 지금껏 은행들이 집값의 70%까지 돈을 빌려준 경우가 많았거든요. 빌려준 돈보다 집값이 더 낮으면 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은행들이 빚 갚으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벌어 놓은 돈이 부족할 때 빚을 갚을 수 있는 뾰족한 다른 방법은 없어요. 그렇지요, 집을 팔아 빚 갚아야 해요. 여기서부터 첫번째 소용돌이가 일어요. 빚을 갚으려고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수록 집값이 더 빨리 떨어지게 되고, 집값이 더 떨어지니 빚 갚으라는 독촉은 더 강해지고, 그래서 다시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지요.
집을 사려는 사람이 그간 많아서 집값이 수직상승했듯이, 그 반대의 경우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거예요. 이런 현상은 한번 일어나면 소용돌이가 일어나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기 마련이에요. 이런 집값 하락 소용돌이가 한차례 지나가고 나면 집을 팔아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사람이 여기저기 넘쳐나게 됩니다.
“무리하게 돈을 빌려 집을 산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당연하죠. 하지만 돈을 빌린 개별 가계 선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는 데 가계빚 공포가 자리잡고 있어요.
빚을 다 갚지 못한 사람이 늘어난다는 의미는 달리 말하면 빌려준 돈을 떼인 은행도 많다는 걸 뜻합니다. 가계뿐만 아니라 은행도 부실해지는 거지요. 은행이 부실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이 앞다퉈 돈을 빼가려 할 거예요. 언제든지 맡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은행에 돈을 맡겼는데, 은행이 부실해지면 맡긴 돈을 되찾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죠. 되찾지 못하는 때가 오기 전에 다른 사람보다 한발 빨리 돈을 찾으려고 은행 문을 두드리는 거지요.
이런 현상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뱅크런’(Bank Run)이라고 불러요. 은행(Bank)에 돈 찾으러 사람들이 달려간다(Run)는 걸 표현하는 말이에요. 뱅크런은 전염성도 높아서 튼튼한 은행도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요. 모든 은행이 부실해지거나 부실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돼요. 집값 하락이 불러온 두번째 소용돌이예요.
은행이 부실에 빠져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면 경제 전체가 마비가 됩니다. 피가 제대로 돌지 않으면 우리 몸이 견뎌낼 수 없는 것처럼, 경제의 피라고 할 수 있는 돈을 맡고 빌려주는 은행이 고장 나면 경제도 멈추게 되어요. 기업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거리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겁니다.
정리를 하면 가계빚이 과도하게 많은 상황에서는 집값 하락이 연쇄 소용돌이를 일으켜 경제 전체를 망가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실제 이런 일은 드물지 않습니다. 가까이는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가 이러한 과정을 거쳤고, 1990년대 초에는 일본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지요. 모두 가계빚이 넘치게 많았고, 집값이 갑자기 폭락했으며, 은행은 부실화됐고, 경제 전체가 망가지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 한 가지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이런 소용돌이가 본격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또 가까운 장래에 이런 일이 나타난다고 장담할 수도 없지요. 앞서 말했듯이 집값이 언제 떨어질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가계빚은 ‘현재’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걸까요?
우리 경제는 2~3년 동안 꾸준히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위기는 아니지만 호황도 아니라는 거고, 조금씩 조금씩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이야기예요.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가계의 소비 부진이 꼽힙니다. 가계의 씀씀이가 준다는 뜻이죠. 예전보다 물건도 덜 사고 여행도 덜 가요. 그러다 보니 기업도 돈을 잘 벌지 못하고, 기업이 돈을 못 버니 일자리도 안 늘고, 노동자들 봉급도 안 오르고 있어요. 장사하시는 분들 형편도 나아지지 않지요.
가계가 씀씀이를 줄인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풀이가 있어요. 그중 가장 유력한 풀이가 바로 넘치는 가계빚이죠. 빚 갚을 걱정이 한가득인데 어떻게 돈을 마음껏 쓸 수 있겠느냐는 거지요. 허리띠를 졸라매는 건 당연한 선택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경기가 좋다면야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미리 돈을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상황도 아니에요.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빚은 현재로선 한번에 빵 하고 터지는 폭탄은 아닌 거 같아요. 또 집값 하락 시점이 언제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터질 때가 정해진 시한폭탄이라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아요. 오히려 가계빚은 암세포에 비유하는 게 더 적절한 것 아닌가 싶어요. 서서히 숨통을 죄어오는 암세포 말이에요. 가계빚이 경제의 활력을 서서히 떨어뜨려 가고 있으니까요. 지금껏 우울한 이야기만 했나요? 그럼 우리나라 가계빚이 그나마 다행인 점을 소개하는 걸로 이 글을 마칠게요.
우리나라 가계빚은 부유한 계층에 쏠려 있어요. 소득이 적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좀더 정확히 살펴보면,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가구가 전체 가계빚의 절반쯤(46.5%) 안고 있어요. 아무래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 비싼 집을 사려 했을 테니, 이 계층에 빚이 많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빚이 많아도 소득도 함께 많다면 가계빚 불안은 다소간 줄어들지요. 빚 갚을 능력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거니까요.
사실 2008년 미국에 금융위기가 온 이유도 소득 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빚을 많이 안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미국에선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손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거든요. 집값이 조금 떨어지자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가 발생한 배경이지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보다 가계빚이 더 많은 나라 중 하나인 덴마크는 이와 정반대 경우예요. 이 나라가 여태껏 가계빚 폭탄이 폭발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처럼 부유층이 주로 가계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런 점에 비춰보면 가계빚을 많이 안고 있는 고소득층이 앞으로 빚을 더 내지 않고 서서히 갚아 나가도록 유도한다면 가계빚 공포는 얼마간 줄어들 수가 있겠지요.
또 집값이 빚을 낼 당시보다 20~30% 떨어지기 전까지는 본격적인 소용돌이가 일지 않을 거라는 점도 그나마 다행인 대목이에요. 집값이 20~30% 이상 떨어지지 않는다면 전반적인 가계부실이나 은행부실로 확산되어 경제가 마비가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죠. 왜냐고요? 2003년에 집값 대비 70%까지만 빚을 낼 수 있도록 정부가 규제를 만들어놓았기 때문이죠. 당시에는 이 규제에 많은 반발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계빚 공포를 줄인 안전판이라고들 모두 생각한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엔 가계빚 폭탄을 처리할 시간이 어느 정도 남아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명문대 아닐바에야 대학 왜 다니나?”…대졸자간 임금격차 날로 심화 929 헤럴드경제
#. 서울의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김모(27ㆍ여) 씨는 지난달 한 소규모 무역회사에 입사했지만 턱없이 적은 액수의 연봉 때문에 퇴사를 고민 중이다.
회사 내규상 신입사원 초봉은 2000만~2200만원. 김 씨는 “취업했다는 얘기에 기뻐하던 부모님이 연봉 얘기를 듣곤 ‘실컷 공부시켜 서울에 있는 대학 보내놓은 결과가 이것’이냐며 실망하셨다”며, “더 늦기 전에 대기업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도 27살 여자에 SKY 출신도 아니라 서류 통과가 될지조차 미지수”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천만원의 학비를 들여 대학 졸업장을 거머쥔 수십만의 대졸자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졸업 후 ‘경제적 수확’은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에도 빠듯한 실정이다. 이런 가운데 ‘상위권’과 ‘하위권’ 대학간 임금 격차까지 상당한 수준으로 벌어지며 일부 취업준비생 사이에서는 “대학을 다닐 이유가 없다”는 자조섞인 목소리까지 들리고 있다.
지난 7월,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 오모(26ㆍ여) 씨도 첫 월급을 받고 한숨만 내쉬긴 마찬가지다. 회사 월급이 적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통장에 찍힌 130여만원을 보니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오 씨는 “아르바이트비 수준의 급여를 받으려고 대학 4년동안 아등바등 공부한 건가 갑갑함이 밀려왔다”면서 “주변 SKY(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출신 친구들은 이 월급의 두 배를 받는다던데, 나 자신이 초라하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2014년 대졸 신입사원 월평균 초임은 278만4000원이지만, 체감은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특히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대졸자들에게는 외려 고졸 사무직 월급 204만 2000원이 더 ‘현실감 있는’ 액수다.
지난 4월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국내기업 40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서도 중소기업 신입직 월급이 207만원 수준으로 나타난 바 있다.
경제위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이중화된 노동시장구조와 악화된 임금 불평등 속에서 대졸자의 임금 프리미엄 구조도 양극화되는 실정이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교육거품의 형성과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졸자의금 프리미엄 상승은 상위 10%에서만 뚜렷이 관측됐다.
이에 반해 하위 20%의 대학졸업자의 경우엔 성별과 경력 등 다른 변수를 통제하고서도 고졸자의 평균 임금보다도 낮은 임금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현실은 최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간한 ‘대학교육의 만족도와 임금과의 관계’ 보고서에서도 엿볼 수 있다.
상위 1~30위 대졸자들의 월급은 교육의 질이나 만족도와 별개로 61위 이하 하위권 대졸자들의 월급보다 적게는 25만원, 많게는 67만원 가량 더 높았다. 능력과 무관하게 어느 대학을 졸업했냐에 따라 급여에서 적잖은 차이가 나는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졸자들의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 박모(27) 씨는 “고졸자들보다 4년을 더 투자했다고 해서 이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고, 외려 어정쩡한 대학 졸업장 한 장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만 더 느끼고 있다”며 “이럴 바에는 차라리 대학을 안 가는 게 나았을 지경”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략공천, 친박의 당내 세 불리기에 ‘필수’ 101 경향
국민공천 왜 반대하나
“전략공천은 내가 있는 한 없다.”(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구식 따발총으로 전쟁 준비하자는 거냐.”(친박계 홍문종 의원)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내전을 치르고 있는 여권이 이제는 ‘전략공천’ 전선에서 정면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지난달 30일 ‘전략공천 제로’ 방침을 재차 공언하기 무섭게, 친박계는 집중적으로 전략공천 필요성을 제기하고 나섰다.결국 안심번호 국민공천제를 둘러싼 ‘청와대·친박 대 김무성·비박’의 ‘공천권력 다툼’ 핵심 내용은 전략공천 문제로 좁혀지는 것이다. 전략공천이 과거 ‘공천 학살’의 통로였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뇌관이기도 하다.
홍문종 의원은 1일 KBS 라디오에서 “전략전술 없이 인기투표로 후보를 결정할 경우, 저쪽은 신식 무기로 전쟁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구식 따발총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서청원 최고위원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야당은 전략공천을 20%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해당 지역(여당 공천)은 어떻게 할 것이냐”며 김 대표를 압박했다.
김태흠 의원 역시 MBC 라디오인터뷰에서 “전략공천할 수 있는 여지를 둬야 한다. 상대당 후보에 맞대응도 필요하다”고 공세 수위를 높였다.
친박계가 이처럼 ‘전략공천’ 포문을 열고 나선 이면에는 자파의 이해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 청와대를 등에 업은 친박계는 힘에서는 우위를 보일지 몰라도 여당 내 세력 분포상으로는 ‘소수파’에 해당한다. 지난해 5월 국회의장 후보 경선(정의화 승, 황우여 패), 7월 전당대회(김무성 1위, 서청원 2위), 올해 2월 원내대표 경선(유승민 승, 이주영 패) 등 표 대결에서 판판이 깨진 그룹은 친박이었다.
‘공천 학살’의 아픔을 두 차례 겪은 김 대표는 특정인·계파의 공천개입을 원천봉쇄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오픈프라이머리와 ‘전략공천 제로’가 같은 맥락이다.
어디 갔어?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이 1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회의에 불참한 김무성 대표의 빈자리를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강윤중 기자
문제는 이 같은 김 대표 뜻이 관철될 경우 당내 역학관계가 지금 이대로 쭉 유지될 것이라는 점이다. 나아가 친박은 아예 와해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이 경우 박근혜 정부 4~5년차 국정동력은 사실상 상실된다. 친박으로선 이런 시나리오를 원천봉쇄해야 한다. 전략공천이 가능해야 ‘박심’(박근혜 대통령 의중)이 공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대구·경북(TK) 물갈이설’은 이 같은 친박의 구상을 뒷받침한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전·현직 대표들에게 ‘험지 출마’를 요구했듯 전략공천은 통상 당 전체 승리를 위한 전략적 판단이 우선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지지세가 강한 TK에서 전략공천 이야기가 먼저 나오고 있다. 친박이 세 확보를 위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략공천은 전략적으로 특정인을 공천하는 것이지만 달리 말하면 특정인을 공천 배제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다수파인 여권 비주류를 몰아내는 ‘공천 학살’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살아 있는 권력’의 힘은 더 강해진다. 친박이 전략공천에 매달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야당 자극 발언에 국감 세차례 중단 10.2 경향
민중의 소리 사설] 극우파 고영주는 방문진 이사장 자격 없다 10.3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선임될 때부터 논란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극우적 인식을 감추지 않고 분란을 일으켜 온 사람이 공영방송인 MBC의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장이 되는 게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고 이사장은 2일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자신의 극단적 인식을 숨기지 않았고 또다시 파문을 일으켰다.
고 이사장은 진보세력에 대한 이념 공세는 물론이고 제1야당의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공산주의자로 확신’한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고 이사장은 판단의 근거를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의에 대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했고, 한미 연합사 해체에 관여했는가 하면, 연방제 통일을 지지하지 않았느냐”고 답했다. 대법원에서 재심을 거쳐 무죄로 판결이 난 ‘부림사건’에서 문 대표가 무료 변론을 맡았던 것도 근거라고 했다. 이 쯤 되면 그의 인식이 어떠한 사실적 근거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 진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전교조와 한총련에 대한 이념 공세, 통합진보당의 해산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나같이 우리 사회의 후진성을 드러내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했던 일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데서 앞장선 것이 그에게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문 대표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인 계기라고 밝혔던 부림사건에서 그는 담당 검사를 맡아 피의자에 대한 고문 조작을 비호하기도 했다. 그는 대법의 재심 판결 이후에도 반성은 커녕 사법부가 좌경화되었다고 우기기도 했다. 부끄러움도 미안함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인 셈이다.
고 이사장이 자연인으로서 극우적 견해를 드러내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정신 나간 자의 넋두리쯤으로 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고 이사장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과학적 근거를 갖고 논리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이런 부적격 인사가 공영방송의 최후 책임자로 있는 현실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유독 극우적 인식을 갖고, 사회에서 파문을 일으키는 행위를 즐겨온 인사들이 중용되는 것은 이 정부 자체가 제정신이 아닐 수 있다는 의구심을 만들어 낸다.
친박좌장 → 탈박 → 복박 →비박…박근혜·김무성의 ‘애증 10년’ 경향
▲세종시 수정안 갈등 결정적‘공천 학살’ 겪으며 더 멀어져
‘김무성 대권주자 불가론’이 여권 공천룰 싸움의 밑바탕
내년 총선 공천룰을 둘러싼 여권 내전의 밑바닥에는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의 ‘김무성 불가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겉으로는 ‘안심번호 국민공천제’ 문제를 제기했지만, 속내는 박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대권주자론’에 제동을 건 것이라는 해석이다.
박 대통령이 유엔 방문 일정 동안 반기문 사무총장과 집중 동행하며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지핀 것이나, 정무특보 윤상현 의원의 ‘김무성 불가론’, 친박계 좌장 서청원 최고위원의 ‘김무성 참모 책임론’까지 같은 흐름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김무성 불가론’ 뿌리에는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10년의 애증사’가 자리잡고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부침을 거듭하는 동안 김 대표의 수식어는 ‘친박좌장→탈박(脫朴)→복박(復朴)→비박(非朴)’으로 수차례 바뀌었다.
첫 인연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였던 2005년 1월이다. 스스로도 ‘측근이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인연이 없던 김 대표가 사무총장으로 깜짝 발탁됐다. 함께 기용된 유승민 전 원내대표(비서실장), 전여옥 전 의원(대변인)과 ‘측근 3인방’으로 불렸다. 자연스레 ‘친박 좌장’ 꼬리표도 따라왔다. 대선 경선 캠프 구성 과정에서 마찰이 있었지만, 2007년 박근혜 후보 대선캠프 조직총괄본부장으로 선거전을 지휘했다. 일명 ‘친박 학살’로 불리는 2008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한 뒤엔, 친박무소속연대를 이끌며 당선돼 복당했다. ‘친박 좌장’ 입지를 굳힌 때다.
2009년부터 두 사람은 미묘하게 갈라졌다. 그해 2월 김 대표가 “이제 (이명박 정부에) 할 말을 하겠다”고 하자, 박 대통령이 “개인 의견일 뿐”이라며 잘랐다. 5월쯤 대세를 형성한 원내대표 추대는 박 대통령 반대로 무산됐다. 친박 ‘수장’과 ‘좌장’의 갈등설이 떠돌았다.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갈등은 결정적이었다. 김 대표가 “세종시는 엉터리 법”이라며 절충안을 내놓자, 박 대통령이 “가치 없는 얘기”라고 단칼에 잘랐다.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며 사실상 ‘퇴출’을 선언하기도 했다. 2010년 김 대표가 친이계 지원으로 원내대표가 되며 결별은 굳어졌다. 이즈음 김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근혜 전 대표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하다”고 한 것이 감정의 골을 깊게 했다.
‘과거 친박’, ‘친이계 양자’로까지 불린 김 대표는 2012년 친박계가 주도한 19대 총선 공천에서 또 고배를 마셨다. 양 계파에서 한 번씩 공천 탈락을 경험한 김 대표의 ‘트라우마’가 현재 오픈프라이머리 주장의 씨앗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김 대표는 2012년 대선에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백의종군하며 ‘원조 친박의 귀환’을 예고하는 듯했지만, 감정적 거리를 좁히지는 못했다. 결국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친박 좌장’ 서청원 의원을 누르고 ‘비박 지도부’로 출범했다. 이후 ‘상하이 개헌 발언’ 사과, ‘유승민 파동’ 당시 청와대 지원, 공무원연금개혁 주도 등 ‘청와대 코드 맞추기’에 나섰지만, ‘최종 복박’에는 실패했다.
반기문 현상’… 가장 신뢰하는 차기 대선주자 1위 10.2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신뢰하는 차기 대선주자’ 1위(27.6%)를 차지했다. 여야 모두 뚜렷한 강자가 없는 상태에서 그의 존재감만 도드라졌다. 반기문 현상은 실체일까 허상일까.
반기문이라는 이름 앞에 여야 정치권은 무기력했다. 문재인과 안철수, 제1야당의 간판 주자들이 추락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적수가 되지 못했다. 나머지 여야 대권 주자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절반을 넘긴 2015년 하반기. ‘대안 부재’에 빠진 정치권의 현주소다.
<시사IN>이 2007년 창간호부터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하는 신뢰도 조사 결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가장 신뢰하는 차기 대선주자’ 1위(27.6%)를 차지했다. 2위 그룹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13.7%), 박원순 서울시장(13.3%)과는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8.2%), 안철수 의원(5.7%)은 10% 아래를 맴돌았다. <시사IN>이 반기문 총장을 대선주자 후보군에 넣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사 결과를 두고 <시사IN>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아직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반기문 총장에 대한 신뢰도가 압도적 1위로 나타난 결과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였다. 자칫 ‘거품’일 수 있는 반기문 대망론에 의미 없는 데이터 하나를 더 얹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었다. 반기문 현상은 실체인가 허상인가. 결국 이것이 이번 신뢰도 조사 결과의 핵심 주제였다.
ⓒ연합뉴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19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유엔글로벌콤팩트(UNGC) 코리아 지도자 정상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15.5.19
반기문 총장, 거의 모든 지역에서 신뢰도 1위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반 총장은 거의 모든 영역에서 명실상부한 1위였다. 연령별·지역별·지지 정당별·직업별로 응답자를 나누어 분석해도 마찬가지였다. 지역별로는 광주·전남·전북에서 33%로 가장 놓은 신뢰도를 기록했다. 그다음이 대구·경북(32.1%)이었다. 반 총장의 고향인 충청권 지지율(29.9%)보다 더 높았다. 호남과 대구·경북은 유력한 차기 주자가 없는 지역이기도 하다.
주목해야 할 곳은 부산·울산·경남이다. 이 지역은 김무성·문재인·박원순·안철수 등 여야 유력 대선주자의 출신지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돼도 PK가 된다”라는 지역 정서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도 반기문 총장이 28.4%로 신뢰도 1위를 차지했다. 비영남권 인사가 이 지역에서 대선주자로 가장 높은 인기를 끈 것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전 총리 이후로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
지지 정당도 뛰어넘었다. 오차범위 안쪽이기는 하지만 새누리당 지지층에서 1위(31.1%)를 기록한 것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도 반기문 총장을 가장 높게 신뢰했다(25%). 반 총장 다음으로 새누리당 지지층은 김무성 대표(27.1%)를,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은 박원순 서울시장(24.8%)을 선택했다
대선주자가 넘쳐나는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이 반기문 총장을 신뢰한다는 것은 제1야당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현재 야권 정치인으로는 다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지지층 사이에 넓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다. 야권 지지층에서 반기문 총장과 대등하게 맞서고 있는 정치인은 박원순 서울시장뿐이다. 그런데 지난해 <시사IN> 조사에서 박 시장은 신뢰도 25.8%를 기록하며 차기 대선주자를 통틀어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올해 결과는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으로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문재인 대표는 이번 조사에서 신뢰도가 8.2%로 폭락했다. 비록 신뢰도와 지지율은 다르지만, 지난해 말 당 대표 출마 선언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표에 대한 긍정적 선호가 10%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자신에 대한 재신임 투표를 선언하면서 지지율이 올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있지만, 문 대표가 ‘내상’을 입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신뢰도를 지지도의 선행 지표로 본다. 신뢰도가 먼저 오르고 그 후에 지지도가 오른다는 것이다.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앞으로 반 총장의 지지율이 더욱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동안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총장을 차기 대선주자 후보군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은 상황에서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히지 않은 인물을 후보군에 포함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반 총장의 인기는 인지도와 선호도에 가까울 뿐, 실제 지지도와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상황이 변했다. 박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8월25일)을 돌면서 차기 대권에 대한 논의가 달아오르고 있다. 여야 모두 뚜렷한 강자가 없는 상태에서 반기문 총장의 존재감은 외면하기 어려운 정치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8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친박계 주변에서는 ‘반기문 대안론’이 끊임없이 나돌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신당’이라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몇몇 정치·종교·교육계 인사들이 6개월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을 앞두고 반 총장의 의사와 무관하게 반기문 신당을 추진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의 이름을 앞세워 세를 규합한 다음, 여건이 충족되면 반 총장을 ‘옹립’하는 게 목표다. 물론 이는 반기문 대망론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려는 일부 세력의 자가발전일 공산이 크지만, 그만큼 반기문 카드의 파괴력을 크게 본다는 의미다.
더 주목되는 건 여권이다. 김무성 대표가 사위 문제로 곤욕을 치르면서 그동안 친박계 주변에서 끊임없이 나돌던 ‘반기문 대안론’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윤상현 의원(청와대 정무특보)이 9월15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김무성으로는 차기 대선이 어렵다. 새누리당의 후보를 다원화할 필요가 있다”라는 폭탄 발언을 내놓으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승민에 이은 ‘김무성 찍어내기’가 사위 마약 사건을 기점으로 시작됐다는 관측이 터져 나온다. 새누리당의 총선 승리가 유력해진 마당에 청와대가 김무성 체제로 총선을 치를 필요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돈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귀국하지 마라?
이와 동시에 최근 여권 핵심 관계자가 반기문 총장에게 서신을 보내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해외에서 국제 재단을 만들어 체류하라고 제안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정가에서는 이 제안이 야권의 공격으로부터 반 총장을 보호하려는 ‘선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 총장의 임기는 대선을 꼭 1년 앞둔 2016년 12월까지다. 사무총장 퇴임 이후 해외에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결정적 국면’ 때 등판하리라는 관측이다. 이런 관측의 배경에는 마땅한 대선주자를 찾지 못하는 새누리당 친박계가 있다.
이 모든 시나리오에는 대전제가 있다. 반기문 총장이 언젠가 정계 진출을 선언하리라는 가정이다. 갑론을박이 계속되지만, 분명한 것은 반 총장의 정치 참여를 점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 여당의 당내 갈등이 격해지면서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반기문 총장은 여러 경로로 정치할 뜻이 없음을 밝혀왔다. 그러나 반 총장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들은 거꾸로 본인이 ‘직접’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지난 5월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한 데 이어, 9월3일 중국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참석하는 등 국내 언론이 집중 조명할 만한 행보를 보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세간에는 반기문 현상을 보며 ‘안철수 현상’을 떠올리는 이들이 여럿 있다. 현실 정치에 뛰어든 이후 안철수 현상의 거품이 꺼졌듯 반 총장도 그와 비슷한 궤적을 따라가리라는 예측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시각도 있다. IT 전문가 출신인 안철수 의원과 달리 반기문 총장은 외교부 장관 출신의, ‘사실상 정치인’이라는 주장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외교보좌관을 지낼 때는 기자들의 곤란한 질문을 잘 빠져나가 ‘기름 뱀장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노련한 정치인이었다는 평도 있다. 안철수 현상 때와 달리 여야 지지층 모두에게 고른 인기를 얻는 것도 강점이다.
반기문 총장의 정치 참여 가능성을 높게 보는 정치권의 한 인사는 “안철수는 정계 진출 전 ‘한나라당을 응징해야 한다’라며 정치적 입지를 스스로 줄였지만 반기문은 훨씬 넓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여든 야든 ‘꽃가마’가 준비된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반 총장의 정치 참여에 두 가지 정도의 조건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 본인이 기존 정치권의 꼭두각시로 보이지 않을 것. 둘째, ‘동북아 평화’ 같은 자신의 미래 비전을 실현할 정치적 구심점이 마련될 것. 이 정도 조건이 맞춰지면 반 총장도 ‘결단’을 내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반면 반기문 현상이 결국 거품처럼 꺼지리라고 보는 이들은 현실 정치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기존의 유력 대선주자든 제3의 인물이든, 여야 정치권이 체제를 정비해 강력한 주자를 옹립할 경우 반 총장의 인기가 수그러들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주로 야권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다.
ⓒ시사IN 신선영 문재인(8.2%)·안희정(3.1%)·박원순(13.3%) 등 야권 대선주자의 신뢰도는 반 총장에 미치지 못했다.
“반기문이 무적이란 건 정치권의 착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전략통은 “정치권이 한 가지 착시에 빠져 있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현상은 이미 한 차례 무너진 적이 있기 때문에, 반기문 카드가 ‘무적’이라는 것은 착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었다. 지난 2월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당시 당 대표 당선이 유력했던 문재인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반기문 총장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문 대표는 24.8%, 반 총장은 21.4%였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계속된 반기문 총장의 1위 행진이 막을 내린 순간이었다.
이 전략통은 “박근혜 대통령과 달리 반기문 총장의 인기는 콘크리트가 아니다. 정치권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반기문 현상은 순식간에 꺼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반기문 현상은 실체인가 허상인가. 답은 결국 정치권에 달렸다.
한편 국가기관별 신뢰도 조사(10점 만점)에서는 경찰이 5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5점을 넘은 기관이 한 곳도 없었다. 경찰의 뒤를 국세청(4.95점)-청와대(4.85점)-감사원(4.78점)이 이었다.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4년 연속으로 국회가 차지했다(3.23점). 국정원(4.16점)은 꼴찌에서 두 번째였다
대권주자 리더십 손학규 1위·안희정 2위 주간경향 1145호 10.6
전문가 5인 통해 점수 분석… 김무성 3위·박원순 4위·유승민 5위
2017년 대통령 선거의 주자 경쟁이 일찌감치 불붙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을 둘러싼 공방에서 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각을 세우면서 대선주자 간 경쟁구도는 첨예화됐다.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하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사위와 부친 등 가족사에 얽힌 의혹, 오픈 프라이머리 내분 등으로 불안한 1위 자리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선주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주간경향>은 대선주자 10인(김무성 대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문재인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안희정 충남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나다 순)의 리더십을 분석했다. 최근 정치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하고 있는 관련 전문가 5인이 대선주자 10인의 리더십 성적을 매겼다. <주간경향>은 한국 정치에서 대선주자가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을 열 가지로 분류한 후 전문가들로부터 각 덕목당 점수를 받았다. 리더십 분석에 참여한 5인의 전문가는 신율 명지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황태순 정치평론가다. <주간경향>은 이들이 평가한 기초자료를 통해 대권주자 10인의 리더십이 가진 장점과 약점을 분석했다.
권력의지·시대정신 등 열 가지 항목
<주간경향>이 대권주자 리더십의 중요 항목으로 본 열 가지 덕목은 권력의지, 시대정신, 도덕성, 비전 제시, 추진력, 인사능력, 민주적 정책 결정, 커뮤니케이션(소통), 위기관리, 갈등조정(사회통합)이었다. 5명의 전문가는 각 덕목당 0~10에 이르는 점수로 대권주자를 평가했다. 이 점수를 합산한 결과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대권주자는 손학규 전 통합민주당 대표였다. 손 전 대표는 총점 500점에서 379점을 받았다. 열 가지 덕목에서 33~42점(만점 50점)에 이르는 점수를 골고루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의지’나 ‘시대정신’ ‘도덕성’에서 40점대의 높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위기관리’라든지 ‘갈등조정’ 같은 덕목에서 다른 대권주자들이 낮은 점수를 받은 데 비해 손 전 대표는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지난해 7월 재·보궐선거에서 떨어진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한 손 전 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체제가 흔들릴 때마다 구원투수감으로 지목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비노 측은 노골적으로 정치무대에 복귀하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전문가들의 높은 평가는 이 같은 손짓을 더욱 바쁘게 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손 전 대표에 이어 총점에서 두 번째로 높은 평가를 받은 대권주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로 342점이었다. 이번 리더십 분석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결과다. 안 지사 역시 손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10가지 덕목에서 비교적 고른 점수를 받았다.
리더십 총평가에서 1·2위를 차지한 두 대권주자는 2017년 대선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표명하지 않으면서 대권주자 레이스에서 사실상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손 전 대표는 전남 강진에서 칩거 중이며, 안 지사는 충남도지사로서 직무를 수행하며 중앙정치 무대에는 거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평가에 참여한 윤희웅 여론분석센터장은 “김무성·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처럼 중앙정치에서 두드러진 인물은 평가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많지만 이들 두 정치인은 부정적으로 평가할 요인이 별로 없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대권주자 지지도 1위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326점을 받아 3등을 차지했다. 대권주자 지지도에서 2위인 박원순 서울시장이 317점으로 리더십 4등의 평가를 받았다. 리더십 5등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로 308점을 받았다. 최근 대표직 재신임 논란으로 화제의 대상인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다소 박한 점수인 295점을 받아 6등을 차지했다. 대선주자 지지율 여론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포함시킬 경우 1위를 차지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함께 293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282점이었고, 안철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5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정치 현안마다 등장해 화제가 된 김무성·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다소 ‘엄격한’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대선주자 무대 뒤에 서 있는 손 전 대표와 안 지사가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은 것과 대비된다.
정치무대 활동 중인 인사는 박한 점수
마찬가지로 중앙정치 무대 뒤의 대권주자는 각 리더십 덕목별로 고른 점수를 받은 반면, 무대 위의 대권주자들은 평가 덕목마다 점수가 엇갈렸다. 어떤 리더십 덕목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어떤 덕목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권력의지’(43점)를 비롯해 ‘커뮤니케이션’ ‘인사능력’ ‘위기관리’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도덕성’과 ‘비전 제시’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최근 가족들에 얽힌 의혹과 그동안 당대표로서 뚜렷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 감점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사무총장 높은 평가 못 받아
유승민 전 원내대표 역시 지난 7월 초 박근혜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리더십 덕목별로 굴곡이 뚜렷했다. 국회 원내대표 연설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철학을 표방했던 유 원내대표는 ‘시대정신’에서 3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권력의지’와 ‘위기관리’ 덕목에서는 ‘7월 사퇴파동’에서 드러낸 개인적 역량의 한계를 반영하듯 박한 평가를 받았다.
‘무대 뒤 최고 지지율’의 대권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반기문 사무총장의 리더십 평가에서도 굴곡이 드러났다. 35점 이상의 높은 평가를 받은 리더십 덕목은 하나도 없었다. 리더십 덕목 중 ‘도덕성’과 ‘비전 제시’ ‘추진력’ ‘위기관리’ 점수가 비교적 낮았다.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시장 재직 시 논란을 불러일으킨 ‘무상급식 논쟁’이 리더십 평가의 기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지’나 ‘위기관리’ ‘인사능력’은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비전 제시’ ‘갈등조정’ 같은 리더십 영역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았다.
동일한 덕목에서 5인의 전문가마다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대권주자가 있는 반면, 낮은 점수든 높은 점수든 5인의 전문가에게서 비슷한 점수를 받은 대권주자들이 있었다. 극과 극의 평가는 리더십 해석에 대한 여지가 남아 있음을 말해준다. 반대로 특정 덕목에서 전문가로부터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는 것은 그 평가가 매우 보편적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5인의 전문가로부터 덕목마다 극과 극의 평가를 받은 대권주자는 문재인 대표다. ‘권력의지’ ‘도덕성’ 덕목에서는 높고 고른 점수를 받았지만 나머지 리더십 덕목에서는 칭찬과 혹평이 엇갈렸다. 문 대표 다음으로는 안철수 전 대표에게서 들쭉날쭉한 평가가 많았다. 안 전 대표는 ‘민주적 정책결정’ ‘커뮤니케이션’ ‘위기관리’ ‘갈등조정’에서 전문가별로 5점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그만큼 전문가마다 평가가 엇갈린다는 뜻이다.
김무성 대표는 ‘시대정신’ ‘도덕성’ ‘갈등조정’에서 평가가 엇갈렸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비전 제시’ ‘갈등조정’에서 굴곡이 심했다. 반기문 총장은 ‘시대정신’에 대한 리더십 평가에서 극과 극을 오갔다. 리더십 총점에서 1등을 차지한 손학규 전 대표는 전문가로부터 모두 고른 평가를 받았지만 ‘비전 제시’ 덕목에서는 전문가별로 점수차가 컸다. 2등을 차지한 안희정 지사는 ‘비전 제시’ ‘추진력’ ‘인사능력’ ‘커뮤니케이션’에서 전문가별 점수 차이가 많이 났다.
<주간경향>이 대권주자 10인의 리더십 평가를 위해 설정한 열 가지 덕목은 기존의 우리나라 정치지도자의 리더십 연구에서 제시된 항목들을 최근 정치적 상황에 맞게 틀로 맞춘 것이다. 열 가지 리더십 덕목 중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한 덕목은 서로 엇갈렸다.황태순 정치평론가는 ‘권력의지’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평가했다. 황 평론가는 “우리나라 정치상황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위한 대권주자의 조건으로 ‘권력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대권주자 본인이 강력한 권력의지를 갖고 있어야 정치적 구심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황 평론가는 “대권주자가 권력의지에 대해 왔다갔다 하는 입장을 보인다면 어떤 국민이 그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면서 “권력의지가 있어야 강력한 추진력이 생긴다”고 말했다.
‘권력의지’ 덕목에서는 문재인 대표가 45점(만점 50점), 박원순 시장이 44점, 김무성 대표가 43점, 안철수 전 대표가 41점, 손학규 전 대표가 40점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2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대권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은 대권주자들이 대부분 ‘권력의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리더십 중요 덕목’ 전문가마다 달라
일부 전문가들은 ‘권력의지’ 덕목을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통령 리더십 분야를 연구해온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미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대권주자들은 비전 제시 능력은 부족한데 권력의지만 높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리더십 덕목 중 ‘권력의지’는 대통령에 당선되기까지의 요건이며,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권력의지가 권위주의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면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최진 연구소장은 가장 중요한 리더십 덕목으로 ‘위기관리’를 손꼽았다. 최 소장은 “최근 사회가 다변화되면서 돌발적인 사태가 벌어지는 불확실성의 시대가 됐다”면서 “대권주자들은 이런 위기를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리더십 덕목에서 비교적 낮게 평가됐던 ‘위기관리’는 최근 세월호 사고와 메르스 확산으로 우리나라 지도자에게 중요한 덕목으로 떠올랐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위기에다 늘 우리 사회에서 잠재적 위기로 분류되는 한반도 안보위기,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도 대권주자들이 갖춰야 할 숙제다.
위기관리 능력은 대권주자 자신에게 닥친 정치적 위기를 어떻게 돌파하느냐와 같은 개인적 능력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위기관리’ 덕목에서는 김무성 대표가 36점으로 가장 높았고, 손학규 전 대표가 35점, 안희정 지사가 33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는 20점, 유승민 전 원내대표는 24점, 문재인 대표는 25점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상돈 교수는 ‘시대정신’의 덕목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되려면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로 대권주자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밝혔다. 이번 리더십 분석에서 ‘시대정신’에 대한 평가는 손학규 전 대표가 40점으로 가장 높았고,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39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야권 주자 3인방(박원순·문재인·안철수)은 각각 35점, 29점, 31점으로 예상보다 낮았다. 김무성 대표는 28점, 오세훈 전 시장은 24점에 그쳤다.
2017년 대선에서 국민의 요구에 걸맞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전문가의 답은 ‘사회 양극화 해소’에 맞춰졌다. 황태순 평론가는 “계층 간·노사 간 격차가 커지고 부의 대물림과 가난의 대물림이 이뤄지면서 사회 양극화 해소가 대선의 화두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여기에 대해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대권주자에게 유권자들의 표가 쏠릴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상돈 교수 역시 “2017년 대선의 시대정신은 박근혜 정부에서 더 심화된 사회갈등과 양극화를 치유하는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교수는 또 “양극화 해소와 더불어 악화된 국가재정의 건전성 회복이 시대정신으로 대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 소장은 글로벌 리더십을 꼽았다. 최 소장은 “최근 박 대통령의 외교적 행보가 지지율 회복에 크게 도움이 됐듯이 남북통일과 외교·경제가 결합된 글로벌 리더십이 시대정신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 1위는 노무현
신뢰의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2015년 <시사IN>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 결과 노무현과 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1·2위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 중 37.5%가 노 전 대통령을, 34.3%가 박 전 대통령을 꼽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뢰도는 오름세가 뚜렷하다. 2013년 28%였던 것이 2014년 33%에 이어 올해 37.5%로 높아졌다. 2년 새 10%포인트 가까이 올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신뢰도는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다. 2013년 37.3%에서 2014년 32.8%로 하락하더니, 올해는 전년 대비 1.5%포인트가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단순 수치로만 따지면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에 근접한 결과다.
노무현·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으로 신뢰도가 쏠리는 가운데, 가장 크게 하락세를 보인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지난해 응답자 중 19.2%가 김 전 대통령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올해는 그보다 6.4%포인트 줄어든 12.8%에 그쳤다. 김 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전직 대통령은 채 3%도 확보하지 못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세대·계층별로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의 차이가 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40대 이하(20대 48.2%, 30대 59.6%, 40대 52.3%)와 블루칼라(40.7%)·화이트칼라(55.6%)·학생(42.4%) 직군에서 높은 신뢰도를 보였다. 반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50대 이상(50대 51.9%, 60대 이상 66.2%)과 농·임·어업(76.1%)·자영업(43%)·주부(45.5%)·무직/기타(58.7%) 직군에서 강세를 보였다.
세대나 직군과 달리, 전직 대통령 신뢰도 조사에서 지역 변수는 두드러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 전 대통령은 모든 지역에서 30%가 넘는 고른 지지를 받았고, 박 전 대통령도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30% 이상을 확보했다.
한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명예 회복을 노리는 이승만 전 대통령은 1.8%에 그쳤다. 지난해 결과(2.7%)와 비교해도 3분의 1이 떨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부다”라는 김 대표의 말이 무색해지는 결과다.
2030 세대, ‘신뢰하는 언론 1위는 JTBC’
이번 언론 분야 신뢰도 조사에서는 JTBC의 선전이 눈에 띈다. 특히 20대와 30대의 신뢰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신뢰도·불신도가 함께 높은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JTBC는 신뢰는 높고 불신은 낮은 매체로 꼽힌 것이 강점이다.
손석희 앵커가 펜으로 큐시트를 체크했다. 곧바로 부조정실과 연결된 마이크로 기사 두세 개를 빼겠다고 알렸다. <뉴스룸> 2부 생방송 도중에 속보를 내보낸 탓이다. 9월15일 저녁 8시40분. 새정치민주연합 중앙위원회를 하루 앞두고 진행된 문재인·안철수 회담 결과를 현장 중계로 처리했다. 미리 짜놓은 큐시트가 어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손 앵커는 현장 기자의 리포트가 나가는 도중에 뉴스를 재배치했고 즉석에서 안철수 의원의 측근으로 통하는 송호창 의원을 전화 연결하라고 지시했다. <뉴스룸>의 인기 꼭지인 ‘팩트 체크’를 담당하는 김필규 기자에게는 시간을 줄이자고 했다. 손 앵커와 김 기자는 현장에서 방송 분량을 결정했다. 순발력이 돋보였다. 7~8명밖에 없는 조용한 스튜디오에서 손석희 앵커는 진행하고, 판단하고, 지시했다. 그가 늘 클로징 멘트로 삼는 말을 몸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이날도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뉴스룸>을 끝냈다. <뉴스룸> 진행을 지켜보면, JTBC 안에서 손석희 앵커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사IN> 신뢰도 조사에서 ‘손석희 효과’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올해도 그는 가장 신뢰받는 언론인 1위에 올랐다. 2007년 첫 조사 때부터 1위를 지키고 있는데, 2013년 17.3%였던 신뢰도는 그가 뉴스 앵커로 복귀한 지난해 31.9%로 껑충 뛰었다. 올해는 첫 조사 이래 34.2%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신뢰하는 언론인 2위 그룹이 1%대인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손석희 독주체제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이명익 JTBC <뉴스룸>이 ‘가장 신뢰하는 프로그램’으로 꼽혔다. 위는 <뉴스룸>의 ‘팩트 체크’ 코너.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언론 분야 신뢰도를 묻는 조사는 모두 주관식으로 진행했다. 인터넷 언론 등 매체 수가 증가해, 보기를 불러주는 방식은 자칫 조사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석희 앵커는 <뉴스룸>까지 신뢰하는 프로그램 1위로 끌어올리며 쌍끌이 효과를 냈다. 지난해 조사에선 JTBC <뉴스9>(<뉴스룸> 개편 전 이름)가 KBS <뉴스9>와 공동 1위였는데, 이번에는 오차범위 이내이지만 단독 1위(15.3%)로 올라섰다. KBS <뉴스9>는 14.7%로 신뢰하는 프로그램 2위에 꼽혔고, 이어 MBC <뉴스데스크> 5%, SBS <그것이 알고 싶다> 4.7%, SBS <뉴스8> 2.9%로, 1·2위와 큰 차이를 보이며 뒤를 이었다.
가장 신뢰하는 매체를 주관식으로 두 가지만 꼽아달라고 물었더니, JTBC(11.3%)가 KBS(21.5%)에 이어 2위에 올랐다(1순위 응답 기준). 네이버(8.6%), <조선일보>(7.3%), <한겨레>(7%), MBC(6.5%), YTN(4.7%), <경향신문>(4.2%), 다음(3.7%), SBS(3%) 순서로 뒤를 이었다. 지난해 조사와 비교하면, 네이버가 신뢰도 5위에서 3위로 올라섰고, 대신 <한겨레>가 3위에서 5위로 밀려났다. JTBC는 지난해와 똑같이 2위지만 도약을 예고했다. 2030 세대에서 JTBC 신뢰도가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20대와 30대만 비교해보면, JTBC는 신뢰도 33%로 KBS(22.9%)를 10%포인트 이상 따돌렸다. KBS는 상대적으로 5060 세대에서 높은 신뢰를 받아 종합 1위를 수성했다.
‘손석희 효과’는 불신도 조사에서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가장 불신하는 매체를 두 가지 꼽아달라고 물었더니, <조선일보>(16.1%)가 1위에 올랐다. MBC(5%), <한겨레>(4.9%), KBS(4%), TV조선(3.9%) 순서로 꼽혔다. JTBC는 1.1%에 그쳤다. 신뢰도와 불신도를 종합해보면 JTBC는 신뢰는 높고 불신은 낮은 대표 매체로 꼽혔다. 평소 ‘건강하고 합리적인 시민사회 편에 속하겠다’는 손석희 앵커의 보도 철학이 제 평가를 받은 셈이다. JTBC와 정반대 경우가 TV조선으로, 신뢰는 낮고 불신은 높은 매체로 분류되었다. 신뢰를 받지만 그만큼 불신도 높은 매체로는 KBS, MBC 그리고 <조선일보>와 <한겨레> 등이 꼽혔다. 지지자는 신뢰하고 반대자는 불신하는, 진영 언론의 지형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내부에서조차 쓴소리 듣는 KBS·MBC의 보도
언론의 신뢰는 공정성이 담보되어야 빛을 발하는데, KBS와 MBC 보도는 내부에서조차 쓴소리를 듣는다. 최근 KBS는 탐사보도팀이 제작한 ‘훈장’ 프로그램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 취재팀은 정부 수립 뒤 훈장을 받은 전체 70여만 명의 명단을 최초로 입수해 <간첩과 훈장> <친일과 훈장> 시리즈를 제작했다. 이승만·박정희 정부 시절 친일파에게 가장 많은 훈장을 수여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는데, 뚜렷한 이유 없이 방송이 미뤄지고 있다. ‘훈장’ 제작진과 탐사보도팀이 불방을 비판하는 사내 성명을 발표하자, 제작에 관여한 핵심 기자 두 명을 다른 부서로 인사 이동시켰다. KBS 4대 협회(기자·PD·방송기술인·경영 협회)는 “‘훈장 2부작’이 방송일도 정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사장 선임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뉴라이트 학자 이인호 (KBS) 이사장의 눈 밖에 날 방송은 내보내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연합뉴스 2014년 9월1일 ‘MBC 상암시대 개막 기념식’에 참가한 박근혜 대통령. 왼쪽은 최성준 방통위원장, 오른쪽은 안광한 MBC 사장. 이명박 정부 이후 MBC의 신뢰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MBC도 최근 박원순 서울시장 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을 보도했다가 내부에서 비판을 받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이 보도에 대해 “기사의 ABC도 사라졌다”라며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MBC의 한 기자는 “파업 참가자 낙인이 지금도 유효하다. 국회 출입기자 10명 가운데 9명이, 법조팀은 5명 전원이 시용 경력직이다”라고 말했다. MBC와 JTBC를 출입했던 한 미디어 비평지 기자는 “한창 잘나갈 때 MBC 보도국에 가면 뭔가 해보자는 에너지가 엿보였는데, 그 분위기를 요즘 JTBC 보도국에 가면 느낀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번 조사에서 네이버와 다음은 JTBC와 함께 신뢰는 높고 불신은 낮은 매체로 꼽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포털이 악마의 편집을 통해 진실을 호도하거나 왜곡되고 과장된 기사를 확대 재생산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응답자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한반도 분단, 히로시마 핵폭탄 때문이다! 10.2 프레시안
[정욱식 칼럼] 박근혜 대통령의 놀라운 아집
핵 시대 개막과 한반도 분단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이런 질문은 던져본다. 만약 미국이 원폭 투하 대신에 소련과의 연합 작전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했다면 한반도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만약 미국이 핵무기를 손에 넣은 시점이 1945년 7월 중순이 아니라 8월 중순이었다면, 혹은 미국이 패망이 임박한 일본에 원폭 투하를 강행하지 않았다면, 당시 미국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그건 바로 소련의 대(對)일본 전쟁 참전과 미-소 연합 작전이었다. 당초 소련의 참전을 독촉한 당사자도 미국이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8월 15일 소련이 참전한다면, 일본은 끝장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7월 중순 '마스터 카드'(헨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이 핵무기를 일컬은 표현)를 손에 쥐면서 소련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핵무기로 소련의 참전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고, 또한 그 핵무기로 소련에 대한 무력시위를 선택한 것이었다. 미국이 핵을 갖기 전에는 '동지'로 여겼던 소련을 핵을 가진 이후에는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8월 6일 아침 히로시마(広島)에서 피어오른 '거대한 버섯구름'은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장송곡이었다. 히로시마 피폭 직후 스탈린은 이를 미국의 협박으로 간주하고는 "우리가 협박에 굴복하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며 "빨리 핵무기를 만들라"고 소련 과학자들을 다그쳤다. 또한 예정보다 6일 빠른 8월 9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참전을 감행했다.
한편 미국의 기대와는 달리 히로시마 피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다. 3일간 버티던 일본은 8월 9일 새벽 날벼락을 맞게 된다. 바로 소련의 참전 소식을 접한 것이다. 히로히토(裕仁)의 지시로 항복을 준비하던 일본은 또 한 차례 핵폭탄을 맞았다. 조급해진 미국이 또 다시 나가사키(長崎)에 원폭을 투하한 것이다.
소련의 참전 소식에 긴장한 나라는 일본만이 아니었다. 미국 역시 긴장했다. 그리고 국무장관의 지시로 2명의 젊은 장교 딘 러스크(Dean Rusk)와 찰스 보네스틸(Charles Bonesteel)은 서둘러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펼쳤다. 눈짐작으로 38선이 한반도의 중간선으로 여기고 지도 위에 줄을 그었다. 이를 받아든 트루먼은 스탈린에게 38선을 기준으로 한반도를 분할 점령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한반도 북쪽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즉각 수용했다.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8월 10일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 장면 ⓒ프레시안(자료)
흔히 우리는 한반도가 미국의 원폭 투하 덕분에 해방을 맞이했다고 여기곤 한다. 그러나 시간적 선후관계를 인과관계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결정적 사유는 소련의 참전에 있었다. 오히려 미국의 원폭 투하는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만약 당시 미국이 원폭 투하를 선택하는 대신에 소련과 연합 작전을 통해 일본의 항복을 유도했다면? 독일과 비교해보면 한반도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이 설득력을 얻게 된다.독일의 항복은 연합국의 연합 작전 결과였다. 이에 따라 전후 처리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4개 승전국의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 만약 대일본 전쟁 역시 흡사하게 전개되었다면, 일본의 전후 처리는 미국, 소련, 중화민국 등 승전국의 협상에 따라 이뤄졌을 것이다. 그 결과는 한반도가 아니라 일본의 분단 내지 공동 관리로 이어졌을 공산이 컸다. 여운형을 중심으로 해방 전부터 완전한 독립 국가를 만들려는 자생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패망을 예상한 조선총독부도 여운형과 협력하고 있었다.그러나 절대무기를 손에 쥔 미국은 일본을 독점하려고 했다. 그리고 소련의 영향력이 일본으로 뻗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반도를 분할해 완충지대로 삼고자 했다.
핵시대 폐막과 한반도 통일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그리고 6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정전체제는 핵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분석이 타당하다면, 한반도의 통일 역시 핵무기와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떤 체제를 극복하고자 한다면 그 체제를 만드는데 가해진 힘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분단과 정전체제를 만들어낸 핵심적인 힘 가운데 하나는 바로 핵이다. 이에 따라 정전체제와 분단체제를 해소하고 통일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탈핵'의 관점이 반드시 필요하다. 핵 시대의 개막이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면, 통일은 핵 시대 폐막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곧 '핵무기 없는 세계'가 한반도 통일의 선행 조건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체제를 관통해온 '제1의 핵 시대'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핵우산'이라는 이름하에 드리워진 미국 핵 문제를 적어도 한반도 차원에서는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당연히 북핵 해결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평화적인 융합을 통해 완전한 한반도 비핵지대로 귀결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반도 비핵지대는 동북아 비핵지대로 퍼져나가야 한다. 핵 시대의 개막은 한반도 분단의 중요한 배경이 되었고, 그 분단은 한국전쟁의 원인(遠因)이 되고 말았다. 또한 한국전쟁은 핵의 위력을 과신한 트루먼과 스탈린의 오판이 만나면서 발발했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은 강대국들의 핵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 핵시대의 세계화에 결정적 계기가 되고 말았다.(1)
이러한 역사를 복기해본다면,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세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도 자명해진다. '과정으로서의 통일'을 남-북-미 모두 핵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것과 결합해 세계 비핵화에 기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 출발점은 핵의 세계화를 야기한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결함으로써 '탈핵의 세계화'의 문을 여는 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김정은 위원장의 선택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도 한숨을 자아내게 한다.
"한명숙, 나로 인해 옥살이... 애통할 따름" 오마이뉴스 10.1
'돈 줬다'던 검찰 진술 번복한 한만호 "고법에서 꼬여...너무 기가 막히다“
"한마디로 애통하죠."
1일 오전, 법정 밖으로 나가던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기자들에게 말했다. 자신에게서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을 받았다는 이유로 실형을 살고 있는 한명숙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이야기였다.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9단독 강성훈 판사는 한 전 대표의 위증죄사건 심리를 재개했다. 2013년 10월 1일 5차 공판 이후 정확히 2년 만이었다. 지난 2010년 검찰은 한명숙 전 의원이 한만호 전 대표에게서 3번에 걸쳐 현금 4억8000만 원, 미화 32만7500달러, 1억 원권 자기앞 수표를 받았다며 불구속 기소했다. 그런데 이 사건에는 확실한 물증은 없었다. 다만 '내가 돈을 줬다'는 한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이 공소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한 전 의원 사건 1심 증인으로 나온 한만호 전 대표는 말을 바꿨다. '불법정치자금 9억 원'은 검찰의 회유와 자신의 회사자금을 되찾을 욕심 때문에 꾸며냈다는 얘기였다. 핵심 증거가 무너진 만큼 1심 재판부는 한 전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한 전 대표가 법정에서 거짓말을 했다며 그를 위증죄로 기소한다.
☞ "겁박하는 바람에...'한명숙 9억' 허위 진술"
☞ "나는 '무죄'... 정치검찰에 유죄 선고한 것"
▲ 한명숙 마지막 인사 "죽은 사법정의 살려달라"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확정 받은 한명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8월 24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하던 중 배웅 나온 지지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려 쳐다보고 있다. ⓒ 유성호
이후 한 전 의원의 유무죄는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과 법정 증언 중 검찰에서 한 이야기를 더 믿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의 결론 역시 같았다. 1일 검찰은 이 점을 언급하며 "피고인의 한명숙 사건 1심 법정 증언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허위임이 증명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거듭 한명숙 전 의원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재판을 마친 뒤 그는 "(한 전 의원 사건) 2심 재판부가 저를 한 번이라도 불렀다면 그런 판결(9억 원 수수 혐의 전부 유죄)은 나올 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고법에서 (일이) 꼬였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자신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 바람에 한 전 의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한만호 전 대표는 "돌아가는 일이 너무 기가 막히다"며 "저로 인해 70세가 넘은 분이 다시 또 옥살이를 하고, 명예에 치명타를 입어 정말 애통할 따름"이라고도 했다.
그의 변호인 최강욱 변호사 역시 대법원의 한명숙 전 의원 유죄 확정 판결은 "오판"이라고 했다. 최 변호사는 "검찰은 한 전 의원 다른 사건 무죄 선고가 나오기 하루 전, 통영에서 수감 중인 한만호 전 대표를 불러서 '우리한테 협조해달라'며 수사를 시작했다"며 "뭔가 맞춰달라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검찰에서 한 거짓말은 얼마든지 번복할 수 있지만 법정 증언은 그러면 위증"이라며 "그럼에도 진술을 바꿨다면, 이 일로 얻을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위증 동기도 제대로 입증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수사기록 아닌 재판기록 던져버린 대법원
'한명숙 전 의원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며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만큼 한 전 대표 쪽은 남은 공판에서 검찰과 치열한 공방을 벌일 계획이다. 최강욱 변호사는 "피고인 신문 때 이 사건 수사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한 전 대표가 70여 차례 검찰에 불려가서 무엇을 했는지, 그럼에도 왜 조서는 진술서까지 포함해 6개뿐인지를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공판은 11월 12일 오후 2시 20분에 열린다.
법 위에 돈… "이 바닥선 늘 교도소 담장 걷는 기분“ 10.3 한국
탈세·범죄 얼룩진 사채업계
이자율 상한은 남 얘기 업자가 부르는 게 곧 이자율
年 2900억 수백%에 빌려주고 수입의 5%만 축소 신고도 대형사건 전엔 실소득 '깜깜'
피도 눈물도 없다
"한번 봐주면 돈 떼이기 십상" 그 어떤 절박함도 안 통해
돈냄새 맡은 협잡꾼들 득실 비정함·음모가 판을 치는 세계
탈세가 의심된다며 국세청에 고발된 사채업자의 2007~2008년 거래기업 목록. 한국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보면 구체적으로 기재된 대부금액만 2,900억원이다.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소득을 신고하지 않았다면 탈세액만 1,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1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 직원 수십 명이 ‘명동 사채왕’ 최진호(61)씨의 서울 여의도 자택과 사무실, 친인척 집 등 10여 곳에 들이닥쳤다. 국세청은 최씨의 비밀금고를 확인해서 업체 100여 곳과 금전거래를 했던 장부와 통장 등을 확보했다. 최씨는 급전이 필요한 업체에 며칠만 빌려주는 조건으로 수십억~수백억 원을 융통해주고 수억 원씩 이자로 챙겼지만 세무당국에 제대로 신고하지 않았다. 당시 명동 사채업자들 사이에서는 “남 일 같지 않다”며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고 한다. 최씨는 조세범처벌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최씨 사례는 불법과 탈세의 담장 위를 걷고 있는 사채업계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차가운 시선과 손가락질에도 사채업자들이 섣불리 양지로 못 나오는 이유도 털면 ‘걸릴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무신고는 고무줄
‘러시앤캐시’ 같은 제도권 대형 대부업체가 아니더라도 음지에서 움직이는 사채업자들도 당국에 사업자 신고는 한다. 문제는 얼마나 성실하게 이자 등 소득 신고를 하느냐다. 명동에서 만난 50대 전주(錢主)는 “내가 얼마를 신고하는지는 특급비밀이다. 다른 전주들은 보통 소득의 20~30% 정도만 신고한다”고 귀띔했다. 명동 사채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대부중개업자는 “10억 빌려주고 한 달에 2% 이자로 받는다고 치자. 그럼 0.5~1% 정도만 신고한다. 그게 이 바닥의 룰”이라고 전했다.
한때 명동 사채시장에서 세무신고 업무를 맡았던 한 인사는 “세무신고는 고무줄이라고 보면 된다. 신고금액이 너무 오르락내리락 하면 모양새가 좋지 않기 때문에 수익규모와 향후 신고금액까지 고려해 마음대로 조절한다”고 전했다. 서류조작을 통한 축소신고 방법에 대해 함구했지만 “이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터득되는데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니다”고 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한 사채업자의 2007~2008년 거래기업 목록을 살펴보면 일반 제조업체부터 정보통신기업, 엔터테인먼트, 건설회사, 저축은행, 벤처업체 등 거의 모든 업종의 46개 기업(사진에는 28개 기업만 표시)이 사채자금을 썼다. 기업들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한 달 동안 유상증자 및 회계감사에 대비한 분식회계 용도로 돈을 빌렸다. 구체적으로 기재된 금액(23개 기업에서 빌린 돈)만 2,902억원에 달했다. 사채업자들은 보통 100억원을 빌려 주면 1일 기준으로 2,000만원을 이자(연 72%)로 받지만, 많게는 5,000만(180%)~7,000만원(252%)까지 받을 때도 있었다. 이 사채업자는 벌어들인 수입의 5% 정도만 신고했다는 게 지인들의 설명이다.
2002년 이자율 상한을 규정한 대부업법이 제정된 후 연 66%에 달하던 최고 이자율이 계속 내려가 지난해에는 34.9%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사채업자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자율 상한이 실제 거래에서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10%대로 내려도 손해를 보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온다. 특히 급전이 필요한 기업이나 사업가들에게 사채업자가 부르는 게 이자라는 것이다. 명동의 한 대부중개업자는 “이자율 상한보다도 제도권 대부업의 성업과 정부 정책자금 등으로 일감 자체가 줄어드는 게 더 걱정거리”라고 말했다.
쫓고 쫓기는 탈세조사
그렇다면 세무당국은 어떻게 사채업자의 탈세를 적발할까. 사채를 빌려 쓴 기업의 재무제표 등에는 출처불명의 거금이 기재돼 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노하우가 축적돼 웬만한 속임수는 잡아낼 수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을 통해 이루어지는 2,000만원 이상 금융거래 감시도 탈세적발에 도움이 된다. 전직 국세청 관계자는 “유상증자나 인수합병 과정에서 사채업자 돈이 흘러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수상한 거래는 모두 감시한다”며 “사채를 빌려 쓴 기업을 압박하면 돈의 출처를 밝히는 경우가 종종 있고, 대부중개업자가 숨겨진 거래를 실토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채업자가 소득신고 때 누락시킨 금전거래를 당국이 자세히 알 방법은 거의 없다. 벌어들인 총액을 세무당국에 신고토록 돼 있고, 돈을 빌린 쪽에서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어 내밀하게 사채업자 돈을 융통한 것이라 사채업자 탈세를 신고할 가능성은 없다. 명동의 한 사채업자는 “전주로 불리는 큰 손들은 대리인을 내세우거나 차명거래를 하기 때문에 서류상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아 대형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탈세를 적발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사채업자들의 움직임도 재빠르다. 서울 신사동의 한 대부업자는 “대부업체들이 몰려 있는 명동이나 을지로, 신사동 부근 은행에서 개설한 통장은 세무당국의 타깃이 되기 쉽기 때문에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동네에서 통장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비정함과 음모로 얼룩
음성적 거래가 판치는 탓에 사채시장에서는 황당한 사기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예기치 않은 소송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있다. 전주(錢主)와 짜고 구권화폐를 수백억 원 이상 가지고 있다며 돈이 입금된 통장을 보여주며 유력인사와의 교제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가는 사기꾼들도 있다. 매정한 인간관계가 유지되는 사채시장의 특징에 대해 은퇴한 한 70대 사채업자는 “어쩔 수 없는 속성”이라고 설명했다. “5,000만원을 빌려간 의뢰인이 네 살짜리 딸이 아파서 한 달 뒤에 갚겠다고 사정했지만 단칼에 ‘안 된다’고 내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지만 그게 이 바닥 생리다. 한번 봐주기 시작하면 돈 떼이기 십상이고 의뢰인도 사채업자를 만만하게 보게 된다."
20년간 명동에서 일하다 최근 신용정보업을 하고 있는 사업가도 “비정함과 음모가 판을 치지만 이 바닥도 결국 신뢰가 자산이다. 욕심을 부리면 꼭 사고가 터진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채시장에서 오래 머물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는 게 업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암흑장막 속의 수천억 주무르는 큰손
사채시장 불문율 "돈엔 이름 없다“
거리에 사채 대출 스티커가 빽빽하게 붙어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개인 소액대출보다는 기업이나 사업가를 상대로 제법 큰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는 돈 놀이마당인 사채시장은 서울 명동과 을지로, 신사동, 테헤란로, 여의도 등지에 형성돼 있지만 그 실체나 내막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그만큼 은밀하다. 이들이 당국에 대부업이나 대부중개업 신고를 했지만 간판 없이 사무실을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따가운 시선 못지 않게 드러내서 좋을 게 없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간판을 달아도 ‘캐피털’ ‘인베스트먼트’ ‘상사’ ‘부동산’ ‘컨설팅’ 등을 더 선호한다. 전ㆍ현직 대부업자 7명을 만나 사채시장의 현 주소를 짚어봤다.
사채를 하는 사람
짧게는 하루, 아무리 길어도 3개월 내에 고수익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큰 돈을 만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뛰어든다. 수억 원대 소액으로 사채업에 뛰어든 사람들도 있지만 사채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손들은 따로 있다. 이들은 인수합병과 유상증자 등 기업투자부터 부동산, 잔고증명 대출 등 돈 되는 일이면 뭐든지 몰려간다.
명동 사채시장에 20~30년 몸 담았던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집안 대대로 돈이 많았던 현금 부자들과 일찌감치 명동에 터를 잡고 자수성가한 사채업자의 영향력이 크다고 한다. 이들은 수천억 원을 주무르며 아들이나 사위에게 사업을 물려줄 정도로 사업에 애착이 크지만 법인이나 대리인을 내세워 철저히 신분을 감춘다. 업계 관계자는 “주식담보대출을 주로 하는 B회장이나 연말 잔고증명으로 돈을 버는 C회장 같은 전국구 큰 손은 검찰 수사 등으로 드러나기 전까진 바깥에서 정체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재벌가의 개인자금이 돈놀이나 자금세탁을 위해 대리인을 끼고 사채시장으로 흘러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돈들은 단기간에 ‘치고 빠지는’ 성격이 강해 투기성이 강한 특징이 있다고 한다.법적으로 자금운용에 제약이 많은 종교단체나 사학재단 자금이 사채시장 전주(錢主)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올해 초 중견기업 C사가 운용자금을 사채시장을 통해 조달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개신교 계통 종교단체가 자금줄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근엔 개미들의 자금을 모아서 전문적으로 운용해주는 업자들도 생겼다.
불문율은 전주가 누구든 절대로 밝히지 않는 것이다. 자금출처가 밝혀질 경우 세무조사나 검찰수사로 이어지는 탓에 대개 금전거래 자체를 기록에 남기지 않는다.
일부 사채업자들은 제도권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전직 국세청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저축은행이나 캐피털 회사 오너 중에 사채업자 출신이 적지 않다”며 “큰 손들은 돈 버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중소 대부업자들은 보통 5,6년 바짝 벌고 이 바닥을 뜨는 게 목표다. 대부업 3년째인 40대 남성은 “사채시장은 비정하기도 하거니와 태생적으로 어두운 면이 많다. 아버지 직업이 사채업자라고 하면 자식들한테 부담되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고금리에도 끊이지 않는 손님
돈줄 막혀 급전 필요한 사장
잔고증명 위해 문 두드리기도
고수익·고위험 시장 주 고객
사채를 찾는 자
사채시장은 초단기자금의 공급처다. 고리(高利)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자금융통이 일시적으로 막혀 급전이 필요한 회사나 신용이 좋지 않은 사업가들이 자주 찾는다. 회사가 건실해도 담보가 없거나 부적절해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회사들도 단골이다.
그러나 큰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회사를 상장시키거나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고 싶은 회사, 인수합병 계획을 세웠는데 돈이 부족한 회사들도 주식을 담보로 사채시장을 찾는다. 기업 입장에서 주식담보 대출은 간편하다. 시중은행과 거래하면 공시를 해야 하지만 사채시장의 주식담보 대출을 통하면 인수합병 등을 은밀하게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리의 사채업자 돈으로 이익을 남기려다 보니 인수한 상장회사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우거나 회사 돈을 빼돌려 껍데기 회사로 만드는 등 무리한 행위로 종종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특히 잔고증명을 위해 사채업체 문을 두드리는 건설업체는 가장 확실한 수입원이다. 건설업관리규정에 따르면 건설업체들은 연말에 재무상태와 거래실적을 보여주기 위한 통장 잔고를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정부는 부실업체를 솎아내기 위해 건설업체 통장에 60일 동안 일정 금액 이상의 평균잔액이 예치됐는지 확인하고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에는 입찰제한이나 영업정지 등 불이익을 준다. 재무상태가 양호하지 못하거나 거래실적이 부진한 업체는 12월 잔고증명에 대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사채업자들은 이자를 먼저 받고 의뢰인 통장에 돈을 넣어 주는 대신 통장에 질권(일종의 근저당) 설정을 하기 때문에 떼일 염려 없이 수입을 확실하게 챙길 수 있다. 문제는 질권이 통장에 찍혀 나오면 잔고증명 효과가 사라질 수밖에 없어 은행이 개입된다. 을지로에서 만난 40대 여성 대부중개업자는 “통장에 질권 설정 표시가 안 되게 편의를 봐주는 은행이 몇 군데 있다. 거래를 많이 해서 믿음이 생긴 대부업자에게만 눈감아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지경 같은 사채시장의 일면이다
'한탕' 꿈꾸는 사채시장, 여전히 성업중
제도권 흡수·단속 강화에도
의뢰인들 문의 전화 빗발 쳐
업자 "기복 있지만 불황 없는 사업"
“예전만 못하지만 잘 하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습니다.”
서울 명동에서 20년 이상 대부중개업자로 일해온 50대 여성 A씨는 지난달 말 기자를 만나 사채 예찬론을 폈다. 고금리와 협박 등 섬뜩한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사채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고 설명했다. ‘요새 어렵지 않냐’고 묻자 “기복은 있지만 불황이 없는 사업”이라는 대답이다. A씨는 “제도권으로 많이 흡수되고 단속도 심해졌지만 사채를 찾는 수요가 크게 줄어든 건 아니다”고 말했다. 대화 도중에도 A씨는 돈을 빌리려는 의뢰인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박근혜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과 세무당국의 단속강화, 이자율 상한 규제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사채시장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명동에서 12년 동안 일했던 전직 사채업자 B씨는 명동 한복판의 K빌딩과 U빌딩을 가리키며 “명동엔 중국 관광객만 넘치는 게 아니다. 빌딩 안으로 들어가면 돈 놀이하는 사무실이 넘친다”고 전했다. 명동 사채시장의 주무대는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소액 사채놀이가 아니라 기업 대출과 부동산 투자다. 한 사채업자는 “연말 잔고증명 등으로 안전하게 돈 벌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기업 사채에 비하면 용돈벌이 수준”이라고 말했다.
B씨에 따르면 명동 사채업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철칙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많이 버는 것보다 빌린 돈을 제대로 받는 게 중요하다. 상환기간은 짧을수록 좋고 아무리 길어도 3개월 넘으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취직 못한 대학생·조기 퇴직자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 일확천금 욕심에 취업 발길도
젊은 층의 취업난과 조기퇴직에 따라 기현상도 보인다. 서울 강북지역에서 ‘인베스트먼트’라는 간판을 달고 사채업을 하고 있는 C씨는 지난해 사무실을 찾아온 대학생들을 돌려 보내느라 진땀을 뺐다. “큰 돈을 벌고 싶다는 거예요. 취업도 힘든데 휴학하고 밑바닥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거에요.” 최근에는 금융업에 종사했던 퇴직자들이 알음알음으로 사채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C씨는 귀띔했다.
단기간에 거액을 벌어들이고 갑부가 된 자산가들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일확천금을 꿈 꾸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수천억 원을 주무르며 큰 손 역할을 해온 거물 사채업자 5, 6명의 이름은 이 바닥에서 자주 회자된다. 최근엔 5억 원으로 시작해 4년 만에 100억 원을 벌어 들인 중소 사채업자가 명동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계 대부업체의 약진으로 지난해 대부업체의 전체 대부액은 5년 전보다 2배 증가한 11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신고되지 않았거나 축소 신고된 거래까지 포함하면 거래금액은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B씨는 “지하 사채시장 규모는 공식적으로 통계에 잡힌 것보다 5배 정도 많다고 보면 된다. 적게 잡아도 50조원은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반기문 연대설, 당·청 갈등 숨은 화약고 10.3 중앙
일러스트 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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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주식으로 치면 비상장 장외 종목이다. 아직은 상장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그런 ‘반기문 주’가 요즘 정치시장에서 소리 없이 상승 국면을 타고 있다. 국정감사차 지난달 뉴욕을 방문해 반 총장을 만나고 돌아온 여야 국회의원들이 “반기문이 달라졌다”는 말을 앞다퉈 전하고 있어서다.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뉴욕 총영사관에 대한 국정감사를 마친 나경원(새누리당) 위원장 등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의원 9명은 반 총장과 30분간 티타임을 가졌다. “한국의 국제사회 기여도를 높여야 한다”는 반 총장의 메시지는 평이했지만 태도는 전과 달랐다고 한다. 익명을 요청한 새누리당 의원은 “과거엔 소탈한 모습뿐이었는데 이젠 자신감이 많이 붙었고 권력의지까지 읽히더라”고 말했다.
‘달라진 반기문’과 더불어 주가를 올리는 또 하나의 호재가 ‘박근혜(Park)-반기문(Ban)의 PB 연대’설이다.
지난달 25~28일, 3박4일간의 유엔 일정 중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은 7번이나 만났다. 하루 두 번꼴로 만난 두 사람의 동선, 새마을운동과 북핵에 한목소리를 낸 두 사람의 2인3각 행보 때문이다. 특히 “(뉴욕) 맨해튼 중심에서 새마을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반 총장의 연설에 박 대통령이 뜨겁게 박수를 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였다.
두 사람은 지난달 2일 중국 베이징(北京)의 천안문 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서도 나란히 섰다. 천안문 성루에서 박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오른쪽 둘째에, 반 총장은 오른쪽 다섯째에 섰다. 유엔을 대표하는 반 총장이 특정 국가의 열병식 참석을 강행한 데 대해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혼자 천안문 성루에 서기보다 유엔 수장인 반 총장과 함께 서기를 원했다”며 “청와대가 반 총장 측에 열병식 참석을 간곡하게 부탁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는 시선도 점점 진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우호관계’에서 ‘연대설’로, 거기서 다시 ‘친박 진영이 결국 반 총장을 김무성 대표의 대항마로 내세울 것’이라는 정치가설로 번지는 중이다. 지난해 10월 “반 총장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친박계 의원들의 발언 등 ‘반기문 대망론’이 정치권을 달군 적이 있다. 그 대망론은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를 꿈꿨던 성완종 전 의원의 죽음으로 힘이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반 총장은 지난달 23~24일 실시된 SBS의 여론조사에서 21.1%의 지지율로 김 대표(14.1%)와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11.2%)를 앞섰다.
박근혜·반기문 연대설은 청와대와 김 대표 간의 공천룰 전쟁과 맞물려 더욱 주목받고 있다. 새누리당의 한 당직자는 “김 대표가 청와대의 공세에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박 대통령과 반 총장의 연대설을 의식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선지 김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은 반 총장 얘기만 나오면 “한국 사회의 복잡한 갈등을 조율해야 하는 대통령직과 유엔 총장 자리는 다르다”며 평가절하한다. 반면 친박계 의원들은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다. 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후보가 없을 경우 반 총장이 친박계의 대표 주자가 될 수도 있다”고 여운을 둔다. 박·반 연대설은 그래서 김 대표와 청와대 사이에 놓인 숨어 있는 화약고다.
푸드 패디즘의 선동 아직도 믿나요 10.6 주간경향
ㆍ먹거리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과대평가… 음식에 대한 잘못된 상식 많아
“대충 2005년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질 중국산 천일염이 들어오니까, 국산 천일염이 좋다는 논리가 만들어지고, 그 좋다는 것을 과장해서 말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요. 청정 갯벌에서 만든다, 저염나트륨이다, 미네랄이 풍부하다는 말이 만들어지는데, 일부 학자들이 주도해 엉터리 자료를 만들어 강조한 것을 정부도 받아다 쓰기 시작한 겁니다. 의심을 하게 된 것이 2008년 무렵부터로 생각하는데, ‘질 좋은 천일염을 구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염전에 가서 취재를 해봤습니다. 청정갯벌이라고 하는데 시궁창 냄새가 나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염전 장판을 들춰서 밑의 갯벌을 보니 썩어 있는 거예요. 청정갯벌이라는 말이 거짓말이라면, 다른 자료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말이다. 국산 천일염 유해성 논란. 황씨의 문제제기에서 시작한 논란은 지상파 방송에까지 번졌다. 논란의 공개검증은 국산 천일염 옹호 쪽의 완패로 잠정 결론이 나는 것으로 보인다. 국산 천일염은 ‘미네랄이 풍부해 건강에 좋은 것’도 아니었고, 전통방식도 아니었다. 일제강점기 시기 대량의 소금 생산을 위해 대만으로부터 들여온 방식이었고, 현재는 대만이나 일본에서도 배척받는 생산방식이다.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왜 우리는 ‘천일염은 정제염에 비해 미네랄도 풍부하고 건강에 좋다’고 별 생각 없이 믿었던 것일까.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의 문제제기가 발단이 돼 벌어진 천일염 유해성 논란의 결론은 황씨의 문제제기가 대부분으 사실로 인정되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사진은 충남 서산의 한 염전에서 이뤄지고 있는 천일염 제조작업. / 김창길 기자
검증되지 않았던 천일염 ‘상식’
천일염뿐 아니다. 올해 초 <주간경향>이 다룬 MSG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MSG 즉, 글루탐산나트륨이 유해하다는 속설은 1960년대 이른바 ‘중국음식점 증후군’이라는 가설로부터 시작했는데, 현재는 기각된 가설이다. 중국음식점 증후군 이후 등장한 이른바 ‘흥분독소’ 가설 역시 현재 학계에서 통용되는 가설이 아니다. (<주간경향> 1115호 관련 보도 참조) 기자는 이 기사를 쓴 이후 한 모임에서 “혹시 대상 같은 기업에서 광고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특정 대기업의 ‘로비’에 의해 쓴 기사가 아니냐는 불신이었다.
푸드 패디즘(food faddism)이라는 말이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은 개념이다. 오늘날 회의주의(skepticism)의 출발점으로 평가되는 과학저술가 마틴 가드너의 책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변덕과 궤변(Fad & Fallacies in the Name of Science)>의 한 장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에 붙인 이름이다. 푸드 패디즘은 ‘먹거리가 건강과 병에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가드너는 책에서 하나의 예로 당시까지 상식처럼 언급되던 플레처의 건강법을 들었다. ‘많이 씹어 먹어야 한다’는 것이 플레처 건강법의 핵심이다. 심지어 물이나 우유조차 침과 골고루 섞이기 위해서는 “씹어 마셔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당대 유명인사들의 지지도 많이 얻었다. 업튼 싱클레어, 헨리 제임스, 록펠러와 같은 당대의 명사들이 그의 건강법을 지지하고 실천했다. 플레처는 입속에 든 음식물을 많이 씹으면 씹을수록 음식물 속에 있는 비타민이나 영양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음식물을 효율적으로 먹는다면 국가적인 부의 낭비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위 ‘플레처리즘’으로 불리는 이 건강이론은 오늘날은 거의 기각됐다. 저작운동은 소화를 도울지언정 비타민이나 영양분을 늘리지는 않는다. 푸드 패디즘은 일본 군마대학의 다카하시 구니코 교수가 마틴 가드너의 개념을 빌려와 발전시킨 이론이다. 푸드 패디즘의 전형은 이것이다. 먹거리를 나쁜 음식과 좋은 음식으로 나눠 그 효과를 과장시키는 것이다. 천일염 또는 ‘자연소금’은 다카하시 교수가 푸드 패디즘이 과장하고 있는 ‘좋은 음식 목록’에 유정란, 올리브오일, 각종 보충제(비타민, 클로렐라, 키토산), 은행나무 추출물, 프로폴리스 등과 함께 거론돼 있다.
그렇다면 푸드 패디즘으로 분류돼 과장되고 있는 나쁜 음식은? 약 2년 전부터 SNS 상에 인기리에 공유되고 있는 동영상이 있다.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동영상이다. 동영상에서는 1998년부터 1993년까지 2700개의 의학논문을 검토해보면 우유를 훌륭한 음식으로 다루는 것보다 장출혈, 소백혈병, 천식, 소아당뇨, 심장병, 빈혈, 관절염, 알레르기, 암과 상관성을 연구한 논문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도 SNS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는 다큐멘터리의 포스터. 우유가 심장질환, 뇌졸중, 유방암, 알레르기 등의 원인이라는 등의 주장을 담아 논란을 일으켰다.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
영상에서는 몇몇 충격적인 주장들이 나온다. 이를테면 영상에 출연한 한 전문가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우유를 분석해보면 1㏄당 35만개에서 45만개의 고름세포와 2만5000여개의 박테리아가 발견된다”고 말한다. 미국 정부는 이 정도의 수치는 “괜찮다”고 허용하고 있다며 영상은 자막으로 “여러분이 마시는 1잔의 우유에는 1억800만개의 고름세포가 들어 있는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게 미국 정부의 주장”이라고 전하고 있다.
영상에는 실제로 우유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람들의 ‘증언’도 나온다. 영상에 출연한 나바조 인디언 원주민은 “정부가 제공하는 바우처 제도로는 달걀이나 우유와 같은 제품만 구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어 출연한 전문가는 채소나 과일과 같은 다른 괜찮은 먹거리 대신 ‘쓰레기 같은 유제품’이 강제로 배급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영상의 주장은 사실일까. 고름우유 논란은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95년 당시 파스퇴르유업의 ‘우리는 고름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광고로 촉발된 논란은 다른 우유업체들과 이전투구 싸움으로 번졌다. 논란 직후 당시 보건복지가족부가 우유 잔류 항생물질 기준치를 마련했지만 한 번 각인된 ‘고름우유’ 이미지의 여파는 상당 기간 지속됐다.
지난 6월 발매된 <코리아 스켑틱> 2호는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커버스토리로 ‘먹거리에 대한 12가지 오해’를 다루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기사는 우유나 유제품이 해롭다는 주장과 반대로 유제품 섭취량이 늘어나는 것이 뇌졸중, 당뇨병 발병 위험의 감소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실제 조상들의 경우 아기들이 모유를 소화할 수 있도록 락타아제를 만드는 능력을 성인이 되면 잃어버리기 때문에 젖당을 소화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인류가 젖소에서 얻는 ‘우유’를 새로운 영양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진화하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인구가 평생 동안 락타아제라는 효소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 응용노년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시바타 히로시 교수는 장수하는 사람들의 생활습관을 다룬 책 <고기 먹는 사람이 오래 산다>라는 책에서 “일부에서는 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이 락타아제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젖당 불내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지적을 하지만, 실제 일본 사회의 평균수명이 높은 지역과 우유 섭취량 사이의 상관관계가 뚜렷이 나타난다”고 적고 있다. 다시 말해 특이체질로 젖당 분해효소가 없는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우유는 긍정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조상은 무엇을 먹었을까. 확실한 것은 지금과 먹거리는 많이 달랐다는 점이다. 영양학적 관점에서 높은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에 주된 열량은 밥에 의존했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추론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식약동원(食藥同源), 음식이 곧 약이라는 말이 있다. 이와 관련, 흔히 “조상은 그렇게 먹지 않았다. 당뇨나 비만, 암 등은 현대병이다. 조상이 먹는 음식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옛날로 돌아가 옛날 방식으로 먹으면 무병장수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주장은 사실일까.
옛 조상은 얼마나 살았을까. 우리의 경우 그나마 확실한 것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돼 있는 임금의 기록이다. 조선시대 임금의 평균수명은 47.5세다. 일반 백성들의 평균수명은 30살 내외였던 것으로 추론된다. 한국의 평균수명은 최근래에 이르러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해방 전 45세 미만이었던 평균수명은 1960년 52.4세로, 2003년에는 77.44세가 됐다가 2013년 81.94세로 늘었다.(같은 자료에서 일본은 83.1세이고, 북한은 69.5세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 동양사학자 W E 그리피스가 1882년에 쓴 책 <은자의 나라 한국>에는 현재와 많이 다른 한국 사람들의 식습관을 묘사하고 있다. 일단 대식(大食)이다. 많은 사람들이 2~3인분은 거뜬히 먹어치우며, 복숭아 50개와 참외 30개를 먹어치우는 사람들에 대한 목격담이 게재돼 있다. 조선시대 후기의 밥상을 찍은 사진도 돌아다닌다. 밥그릇이나 국그릇이 지금보다 2~3배는 큰 사진이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실제 우리나라가 먹을거리가 풍부한 나라는 아니었기 때문에 영양섭취의 대부분을 밥에서 취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른바 ‘대식’은 평소 습관이었다기보다 잔칫날과 같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 행해졌을 확률이 많다는 것이 주 교수의 추정이다.
발효식품은 건강식이었나
“돌이켜 생각해보라.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걸핏하면 상한 음식을 먹거나 과식을 해 아픈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해 탈이 나 설사를 하게 되면 면역력이 떨어져 다시 감기나 폐렴으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것이 줄어든 것이 아닌가.”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식품상식의 허와 실을 다룬 책 <음식의 발견>을 펴냈다. 하 교수는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워낙 잘못된 음식정보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잘못된 정보는 이른바 ‘음식전문가’ 내지는 ‘의사’라는 타이틀을 걸고 TV 등에 출연해 잘못된 정보를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파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쇼닥터’라는 말을 쓴다. 음식의 위험성을 과장해 공포를 조장하는 데 적극 나서는 이유는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의 선정주의도 한몫을 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을 팔기 위해 선전하는 약장수들도 역할을 하지 않는가.” 하 교수는 특히 식품첨가물에 대한 잘못된 오해가 마치 진실인 양 널리 퍼져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에서 현재 허용된 식품첨가물은 605종이다. 허용하는 절차는 상당히 엄격하다. 식품 안전성을 검증하고 연구하는 절차는 거의 약에 준해서 까다롭게 한다. 그러다 보니 식품첨가물에 대한 동물실험에서 주사기로 직접 투여하거나 고용량 투여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게 이뤄진 실험을 왜곡해 잘못된 건강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글루텐 프리’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밀가루가 안전하지 않고 인체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상식처럼 돌지만 이 역시 잘못된 정보라고 하 교수는 밝혔다. “밀가루와 그 주성분인 글루텐이 셀리악 병이라고 일부 특이체질인 사람들에게 설사나 영양장애, 장염증 질환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셀리악 병은 밀을 주식으로 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발병률이 1% 미만인 희귀질병이다. 밀은 인류가 1만년 가까이 검증해온 식재료인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쌀도 문제가 많다. 비소와 같은 중금속이 비축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쌀의 문제는 지적하지 않나. 그건 우리나라에서 주로 먹는 식품이기 때문이다.”
서점의 건강 관련 코너에 꽂힌 책들. 각종 민간요법 들이 책으로 출간돼 있지만 엄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된 주장이 아닌 내용을 담은 책들도 많다. ※ 기사 중 특정 언급 내용과 사진은 무관합니다. / 정용인 기자
발효식품이 건강에 좋은 식품이라는 것도 역시 미신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발효가 조상의 지혜라고 말을 하지만 그래서 발효식품을 먹고 건강해졌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조상이) 발효식품을 만들어 먹은 기본적인 이유는 부패를 막기 위한 것이다. 발효과정에서 ‘맛’은 정확히 말하면 덤으로 주어진 것이다. 몸에 좋으라고 발효식품을 만든 것은 아니다.” <주간경향>은 이 발효식품의 딜레마를 1년 전 한식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은 발효든 부패든 그 과정에서 ‘바이오제닉아민’이라는 부산물이 만들어진다. 바이오제닉아민은 식품 알레르기의 원인이 될 수도 있고, 체내대사를 통해 발암물질로 전환될 위험까지 보고되고 있다. 젓갈류의 발효과정에서 생기는 식중독 유발물질 히스타민 역시 학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발효식품의 어두운 면이다.(<주간경향> 1062호 ‘한식, 정말 최고의 건강식일까’ 기사 참조)
미국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 경고 폐지 조치도 종전의 음식과 관련한 ‘상식’과는 배치되는 결정이다. 당시 폐지 방침을 발표한 식생활지침자문위원회는 발간한 보고서에서 “계란 노른자나 새우, 가재 등 콜레스테롤이 많이 든 음식을 먹는 것이 혈관 내 콜레스테롤 수치를 올리거나 심장질환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과 상관관계는 그리 높지 않다”고 발표했다.
얼핏 보면 비상식적인 발표처럼 보이지만 천일염 논란처럼 하나씩 따지고 들어가 보면 이 역시 ‘상식’에 부합한다.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먹는다고 그것이 그대로 혈중 콜레스테롤로 전환되는 것이 아니다. 혈중 콜레스테롤을 만들어내는 것은 간이다. 같은 원리가 다른 먹거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콜라겐을 많이 먹는다고 피부 노화를 막는 콜라겐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과학적 회의주의에서는 이런 사고를 ‘동종요법’이라고 부른다. 이를테면 해구신이나 뱀을 먹는다고 정력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게이트키핑’ 역할 방기한 언론
“이 표를 보라. 1910년대부터 쭉 이어져온 미국의 설탕 소비량이다. 1980년대 이후 설탕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지만 비만율은 폭발하고 있다. 여러 원인이 그동안 지적돼 왔다. 동물성 마가린이 나쁘다고 하니 마가린 섭취 비율이 대폭 줄었다.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의 문제가 지적되니 콜라 소비량 역시 줄어들었다. 다이어트의 역사를 다뤘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나오지 않은 해법이 없었다. 모두 다 과거에 시도됐던 것이다. 비만율을 높이는 데 유일하게 늘어난 것은 무엇일까. 총칼로리 섭취량이다. 문제의 해법은 간단했다. 적게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음식과 식품첨가물에 대한 ‘오해’를 다룬 책을 펴낸 최낙언 시아스 이사의 말이다. 그는 무엇을 먹어서, 또는 안 먹어서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비법은 없다고 단언했다. “흔히 식품첨가물을 적게 먹고 친환경적으로 살면 장수한다고 하는데, 단적으로 북한을 보라. 그렇게 살고 있는 북한 사람들이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살고 있나를 보면 답은 명확하지 않는가.”
사실, 음식과 건강 관련 정보는 지금도 매일매일 쏟아져나오고 있다. 포털뉴스에서 ‘콜레스테롤’을 검색하면 지금도 ‘콜레스테롤 충격, 뱃살 만드는 식품’과 같은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황교익 칼럼니스트는 “일반인들이 과학공부를 해 올바른 지식과 틀린 지식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라며 “검증되지 않은 지식을 일차적으로 걸러내고 확인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언론인데, 오히려 거꾸로 공포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덧붙였다.
먹거리에 대한 대표적 오해와 ‘진실’
먹거리에 대한 12가지 오해를 다루고 있는 코리아스켑틱 2호 표지.
먹거리에 대한 오해는 지금도 재생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소식을 한다든지 채식을 하면 장수한다는 주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 잡지를 표방하는 <코리아 스켑틱> 2호는 이 주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있다. 다음은 이 잡지가 소개한 먹거리에 대해 ‘아직’ 검증되지 않은 12가지 사실들을 요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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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습관으로 모든 병을 예방할 수 있다? 불가능하다. 미국 암협회에 따르면 건강식으로 예방할 수 있는 암은 모든 암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유전성 암의 5~10%, 흡연으로 인한 암의 25~30%, 감염에 의한 암의 15~20%, 발암물질 등 환경적 요인에 따른 암의 10~15%는 식습관으로 예방할 수 없는 것으로 결론나고 있다. 영양가 높은 음식은 건강 유지에 꼭 필요하지만 식이성 영양결핍증을 치료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음식은 약이 아니다.
2. 수렵채집기의 식생활이 가장 건강하다? 이른바 구석기시대 조상의 음식이 우리 몸에도 가장 좋다는 주장이지만 구석기 시대의 식생활은 여러 방식이었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인간은 매우 다양한 식생활을 하면서도 잘살 수 있었다.
3. 우리 몸은 농경시대의 식품을 소화시키지 못한다? 구석기 시대에도 이미 곡물을 먹고 있었다. 인간의 적응력은 매우 강했다. 구석기 시대 이후에도 계속 진화해 왔다. 여행자들은 새로운 음식과 미생물에 접하면서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지만, 새로운 지역에 오래 거주하면 장내 세균이 변하면서 그 지역에 적응한다.
4. 요리는 영양소를 파괴한다? 어떤 사람들은 요리를 하면 영양분과 천연효소가 파괴되거나 독소가 생긴다고 주장하나 근거 없다. 생식이 건강에 더 좋다는 증거는 없다. 요리를 발명한 덕분에 인간은 날로 소화하기 힘든 먹거리를 이용할 수 있게 됐고, 음식을 씹는 데 에너지를 덜 쓰게 됐다. 식품 가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5. 윤리적으로 ‘옳은’ 식단이 있다? 식문화는 처음에는 안전한 음식에 대한 시행착오로 얻은 지식을 기호화하는 실용적인 방법으로 시작됐다가 집단 결속에 대한 차이점 때문에 인간의 행동양식으로 굳어졌다. 채식이든, 할랄(이슬람 율법으로 허용된 음식. 알라의 이름으로 도살된 고기는 허용되지만 돼지고기나 동물의 피, 알코올성 음료는 금지된다)이든 스스로는 이런 식생활을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택했다고 믿을 수 있지만, 실은 사회적·감정적 이유로 선택한 후 사후 정당화하는 것일 수 있다.
6. 효과적인 다이어트는 따로 있다? 체중감량 다이어트는 대부분 단기적으로 성공하지만 감량된 상태를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모든 다이어트는 본질적으로 열량을 더 적게 섭취하면서 견딜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살은 빼는 데 특정 다이어트가 다른 다이어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다. 식단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기부여다.
7. 탄수화물은 다이어트의 적이다? 고탄수화물 식단은 비만이 만연하게 된 원인으로 지탄을 받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다고 해서 과체중이 될 가능성이 큰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총섭취열량의 제한이지 주된 열량원이 무엇인가가 아니다.
8. 건강에 좋은 음식은 따로 있다? 어떤 음식은 다른 음식보다 특정 영양소를 더 많이 함유하고 있지만 ‘슈퍼푸드(superfood)’라는 개념은 허황된 통념이다. 모든 영양소를 완벽하게 공급하는 음식은 없다.
9. 유기농 식품은 건강에 이롭고 맛도 좋다? 흔히 유기농식품은 건강에 이롭고 유전자변형식품(GMO)은 건강에 해롭다고 믿지만 증거는 그런 믿음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유기농식품을 먹으면 잔류농약이나 항생제 내성균에 덜 노출될 수 있지만, 이것이 인간의 건강에 어떤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10. 물은 많이 마실수록 좋다? 물은 생명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너무 많으면 너무 적은 것만큼이나 해롭다. 사람은 물 중독으로 죽을 수 있다. 날마다 물을 8~10잔씩 마셔야 한다는 통념도 잘못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갈증이 느껴질 때만 물을 마셔도 충분하며, 어떤 경로로 물을 섭취하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커피나 수분 함량이 많은 고형식에서도 물을 얻을 수 있다.
11. 식이보충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식이보충제 산업은 비합리적 공포를 이용하는 대규모 사업이다. 의료적인 이유로 식이보충제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일반대중이 건강관리를 위해 여분의 비타민을 복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2. 단식하면 장수한다? 동물의 수명을 늘리는 한 가지 요인으로 엄격한 열량 제한은 보고된 적이 있지만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는 수명연장 효과가 입증된 적이 없다. 여러 종교들에 의해 시행해온 ‘간헐적 단식’은 전반적으로 섭취 열량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단식이 끝난 후 갑자기 많은 음식을 먹게 되면 체중감량에 아무런 효과가 없다. 단식이 특정 질병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사실상 단식은 영양결핍을 초래하며 면역체계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식민사관 비판하다 법정에 선 역사학자 이덕일“현 검찰은 조선총독부 검찰인가”10.6 주간경향
신문과 방송에는 광복 70주년의 감격과 특집이 넘쳐난다. 김구와 김원봉의 의혈단이 친일파를 처단하는 영화 <암살>에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몰리는 현실 한편에서 ‘참담한’ 재판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9월 16일 오전 10시30분 서울지방법원 서부지원 형사3단독(나상훈 재판장). 304호 법정이 이례적으로 방청객들로 꽉찼다. 먼저 여검사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집필 발간해…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사건”이라고 기소내용을 설명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일제의 식민사관 청산을 위해 싸워 온 피고인은 광복 70주년에 법정에 서 있다”면서 “이 재판은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매국인지 역사적으로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디어액트 제공
이어 76세의 박찬종 변호사가 일어섰다. 박 변호사는 이 재판의 무료변론을 자청했다. 5선 국회의원, 서울시장 출마 및 대통령 후보에 오른 경력에 걸맞게 그의 변론은 노련했다. 그는 “이 재판은 헌법에 규정된 학문과 예술의 자유 한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를 가르는 중요한 재판”이라며 “지검에서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고검에서 기소한 사례는 제 경험, 제 기억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건은 우리 학계에 엄존하는 임나일본부설 식민사관을 논박한 것으로 피고인의 고의성을 인정할 수 없고, 따라서 이 사건은 ‘감히’ 사건이 안 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의 피고인은 역사학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다. 이 소장은 1988년 <사도세자의 고백>이라는 책에서 똑똑한 사도세자가 노론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해 학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이어 <송시열의 나라>라는 책에서 ‘노론이 조선을 사대주의로 전락시켰으며, 이들은 나중에 나라를 판 주범’이라고 규정했다. 이 소장은 지난해 3월 ‘친일사학의 뿌리는 노론 출신’이라며 ‘식민사학해체 국민운동본부’를 만들어 뉴라이트계열 역사학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이 소장은 2014년 쓴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고려대 김현구 명예교수의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자 김 교수가 이 소장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고 출판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것이다.
서울서부지검 이지윤 검사는 “학문과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라며 불기소 처분했으나 서울고검 임무영 검사가 이 사건을 뒤집고 이 소장을 형사기소했다. 앞서 박 변호사가 지검에서 무혐의 처분한 사건을 고검에서 기소한 ‘첫 번째 사례’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이유이다. 임 검사는 2013년 10월 국정원 의혹사건을 가열차게 수사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당시 여주지청장)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으며, 동북아역사재단에 파견돼 김 명예교수와 함께 근무하기도 했다.
방청석에서 변론과 피고인 진술이 이어질 때마다 “친일파, 매국노” 등으로 웅성거렸다. 마지막으로 피고인석에 선 이 소장의 진술이 시작됐다. 이 소장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우리는 3·1운동의 법통을 이어받은 나라입니다. 지금 검찰이 조선총독부 시절의 검찰이 아니라면 피고인석에 세워야 할 사람은 김현구입니다”라고 말했다. 방청객에서 박수가 터졌다.재판이 진행되는 서부지검·지원 자리는 1912년 일제가 공덕동 경성형무소를 지어 독립운동가를 고문·단죄하던 곳으로, 1908년 현저동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독립운동가의 ‘한’이 서려 있는 곳이다.
디자인으로 읽는 한국인의 삶](1)식기‘그릇의 기술’서 ‘식탁 문화’로 10.2 경향
한국인은 도자기에 유별난 사랑을 보인다.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실과 관에 그릇을 납품하던 300여개의 관요가 1882년 왕실 직속의 광주분요를 마지막으로 폐지되면서 전통 도자기는 일정 부분 더 발전하지 못한다. 기술을 발전시킬 기반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인의 밥상에는 유기·목기·옹기 등이 쓰였고, 일본 ‘왜사기’가 확산됐지만 잘 만들어진 사기그릇은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상류층용으로 서구의 수입 도자기가 들어왔고, 서민들의 밥상에는 값싼 양은 식기가 올랐다. 1970년대 스테인리스 그릇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요식업체가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영업정지 등을 받기도 했다. 이 와중에 멜라민과 법랑 등이 선보였고, 1990년대 초반 보온밥솥 유행으로 도자기 그릇이 확산돼 오늘날 도자기 식기가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의 식기류 산업과 제품 생산은 토종 장수기업으로 불리는 행남자기부터 시작됐다. 고 김창훈 회장이 1942년 목포에서 ‘행남사’를 창업, 1970년대까지는 수출 위주로 만들고, 1980년대 이후 내수를 시작하며 식기류 산업을 주도했다.
한국인의 식문화 변천을 한 눈에 보여주는 시대별 밥 공기 크기와 문양. 행남자기 제공
■심벌과 명칭에서 보이는 취향의 변화
회사명 ‘행남’에서 ‘행’은 ‘살구나무(杏)’로 행남은 남쪽에서 잘 자라는 살구나무를 뜻한다. 심벌 마크는 5개의 화판에 7개의 술을 달고 있는 살구꽃이 그릇 위에 받쳐진 형상이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새는 일제강점기에 보편적으로 쓰이던 기하학적 심벌 디자인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 사명은‘행남자기’로, 심벌은 금빛의 영문 이니셜 H로 바뀐다. 수출이 강조되던 1970년대 살구꽃 문양으로 ‘Made in Korea’를 달고 해외로 나가다 수출 퇴조, 국내 시장 확대 시점에 심벌이 오히려 영어로 바뀐 것이다.
식기 세트의 이름 변천은 한국인들의 친서구적으로의 취향 변화를 잘 보여준다. 1970년대 ‘백조’ ‘늘봄’ ‘풍차’ ‘가송’ ‘가화’ ‘은파’ 등의 명칭이 1980년대 중반에는 ‘킹’ ‘부루’ ‘솔로몬’ ‘보스톤’ 등으로 변했다. 1990년대에는 ‘뺑띠미어’ ‘루블레르’ ‘베어나도’ 등 프랑스어도 등장한다. 이러한 심벌이나 브랜드명의 변화는 서구, 특히 유서 깊은 유럽 것들에 대한 ‘묻지마식’ 선호가 작용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 이 같은 취향의 쏠림 현상은 식민지배를 당한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기도 하다.
■크기도 갈수록 줄고 무늬도 점차 서구화
식기 크기에서는 밥의 양이 줄어드는 한국인의 식문화 변화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밥공기의 경우 1940~1960년대에는 500㏄ 이상의 크기였으나, 이후 계속 줄어들어 1970년대는 450㏄, 2013년에는 260㏄로 크게 작아진다. 밥 소비량이 줄어드는 대신 빵, 고기 등의 소비가 많이 늘어나고 있음을 식기 크기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인의 현재 하루 쌀 소비량은 1인당 184g이다. 밥 한 공기를 100g으로 볼 때 한 사람이 하루 두 공기도 채 먹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밥의 양이 줄어든 사이 고기 소비량은 1950년대에 비해 6배 늘어나고, 외식산업과 일회용 식품 시장도 대규모로 확장됐다.
1940년대의 공기와 대접
그릇에 새겨진 무늬에서는 한국인의 정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1940년대 그릇에는 복을 빌고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며 ‘壽(수)’ ‘福(복)’ 자를 길상문양과 함께 단순하게 새겨 넣었다. 일상적 기원이 담긴 민화처럼, 일종의 기복적 디자인이다. 1950년대에는 작고 소박한 꽃들이 배치되고, 한식 특유의 국물을 담기 위해 주로 오목한 형태를 띠었다. 하지만 서양 음식이 보편화되면서 평평한 서양식 접시가 등장하고, 금박의 단순한 기하학 무늬, 짙고 큰 꽃들이 새겨진다. 이는 우리 공간의 조경화 변천과도 일치한다. 1970년대 주택 담벼락 밑에서 피어나던 봉숭아, 분꽃, 과꽃 등은 아파트와 서양식 조경에 밀려났고, 가로나 정원이 서양 꽃으로 장식되는 흐름이 식기류 무늬에서도 그대로 엿보이는 것이다.
1950년대 식기
한국 최초의 커피잔 세트(1953년)도 언급할 만하다. 특히 ‘홍장미 셋트’는 큰 인기를 누렸다. 영화감독 김태용과 결혼한 탕웨이 주연의 영화 <색계>에도 장미문양 세트 식기가 등장한다. 노회한 부일 장교를 유혹하는 덫의 하나인데, 금박 테두리를 두른 식기의 가장자리에 짙은 핑크색의 작은 장미가 섬세하게 배열된 것으로 영국 로열 알버트 제품이다. 이 식기는 1938년 당시 이미 전 세계 상류층 여성의 ‘it 브랜드’였고, 해방 후 1980년대 초반까지 서울 남대문의 수입잡화점 ‘도깨비 시장’에서 고가 수입 혼수품 1위였다.
정교하고 화려한 로열 알버트의 문양과 행남자기의 홍장미 문양은 분명 정감이 다르다. 섬세하게 계산된 조형성과는 대조되게 짙은 장미 옆에 자연스럽게 휘어진 잔가지의 꽃을 두르고 수묵의 농담을 넣은 것이다. 이 때문에 똑 떨어진다기보다는 수굿한, 미학자 고유섭의 한국의 미에 대한 표현을 빌리면 ‘구수한 숭늉의 맛’이 전해진다. 같은 장미를 보더라도 재현 방식과 표현의지의 지향점이 다르기에 나타난 결과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은 점차 바로 이 맛에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는 “애매하게 촌스러운 찻잔. 한참 유럽 앤틱에 빠져 있다가 요즘은 코리아 빈티지가 참 예뻐 보인다”는 감상이 달렸다.
한국 최초의 커피잔 세트인 ‘홍장미 세트’(1953년).
■만드는 기술에서 향유하는 문화로
식기류 광고를 보면 1970~1980년대까지는 기술이 주로 부각돼 ‘기술 수출 1위’ ‘50년의 전통과 첨단의 기술이 탄생시킨’ 등의 카피와 ‘민족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자주 등장한다. 행남자기는 실제 자기 기술의 최고라 하는 본차이나 기술을 1957년 자체 개발했다고 한다. 본차이나란 흙에 소의 뼛가루를 섞어 투명도와 재질감을 높이는 것이다. 이 기술은 영국의 웨지우드사가 1720년대에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것으로 당시 유럽에서는 기술은 물론 산업화 시대의 장식과 디자인을 위해 <장식문법> 등의 책이 발간되고, 기업과 디자인계의 연합단체 등도 출범했다.
현재 한국의 산업도자기는 전통이 주는 미적 쾌감도, 빼어난 스타 디자이너의 감각도, 유럽의 긴 역사에도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해방 이후 50여년을 ‘기술보국’의 길로 달리면서 디자인 교육에서 인재를 길러내지 못했고, 기업은 디자인보다 기술·마케팅 위주의 경영을 한 결과 최근의 ‘문화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이제 한국의 식기 시장은 그야말로 해외상품들의 각축장이다.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남대문시장이 자랑하던 그릇 도매상가는 영락하고, 백화점에서는 1년 내내 우아한 수입 식기 할인 페스티벌이 열린다. 또 다이소, 이케아의 저가·실용성 공략, 웨지우드·로열 코펜하겐·포트 멜리온 등의 명품 전략이 활개를 친다.
한국에서 ‘산업화’는 성공적으로 실현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취향과 차별화로 귀결되는 ‘문화’가 관건이다. 인터넷 발달, 세계화 등으로 세계 문화의 획일화, 취향의 동일화까지 이뤄지는 이 시대에 더 요구되는 것은 그 지역만의 미감이다. 한국의 독특한 미감을 더 살려내는 디자인을 중심으로 기술력이 접목될 때 비로소 한국 식기는 산업을 넘어 문화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선물과 뇌물의 차이를 아십니까? 916 시사저널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 선물, 아래에서 위로 흐르면 뇌물-‘뇌물 뇌(賂)’와 얽힌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점심은? 이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답하겠는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26억원짜리 점심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자들은 안다. 26억원짜리 점심보다 더 비싼 점심은 공짜 점심이란 것을. 세상의 진리를 한 줄로 모아 정리하면 ‘공짜는 없다’라고 하지 않는가. 부자들치고 자신의 돈을 설렁설렁 여기는 법은 없다. 만일 대단찮게 여겼다면 부자가 될 수 없다. 피 같은 돈이란 말은 있어도 물 같은 돈이란 말은 없지 않은가. 부자들은 “목숨 바쳐도 될까 말까 해도, 될까 말까 한 게 돈을 버는 것”이라고 말한다.
ⓒ 일러스트 윤세호
“발 뻗고 자면 선물, 그렇지 않으면 뇌물”
‘주는 사람의 마음’과 받는 사람들의 말은 정반대다. 뇌물 관련으로 법정에 서게 된 사람들은 “대가성이 없다” “평소 형님 아우로 지내 그냥 (공짜로) 줬다”고 말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최근 롯데 사태를 보라. 피가 섞인 형제도 진흙탕에서 싸우는 판이다. 하물며 물로 엮인 타인들이야 어떻겠는가. 목숨 바쳐 번 돈을 공짜로, 아무 대가 없이 주는 부자는 세상에 없다. 그것이 빠른 시일 내에 돌아올지, 좀 더 기일을 두고 지켜볼지, 직접적으로 이용할지, 호가호위 세력 과시용으로 활용할지, 공격용인지 방어용인지는 모르지만 뇌물을 받는 순간, 주도권의 공은 상대에게로 넘어간다.
역사에서 뇌물에 대한 경계는 반복적으로 강조됐다. 나라의 성패, 인재의 판별이 다르지 않았다. 중국 제(齊)나라 시조였던 강태공의 ‘사람 보는 법’엔 ‘미리 재물을 주는 시험을 해봐서 그 사람이 돈에 깨끗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미리 살펴보라’는 것이 끼어 있다. 반대로 상대가 나라이든 개인이든 넘어뜨리고 싶으면 전력 증강보다 서두르는 게 과도한 예물, 즉 뇌물 제공이었다. 오(吳)나라 부차를 패망의 나락에 떨어뜨린 것은 예리한 무기와 군사가 아닌 월왕 구천이 뇌물로 바친 미인 서시였다. 뇌물은 상대를 망하게 하는 ‘트로이의 목마’인 셈이다. 철학자 프란시스 베이컨을 런던탑에 갇히게 한 것은 그의 올곧은 사상이 아니라 대법관으로서 뇌물을 받은 ‘순간의 판단 실수’였다.
동서고금 이 같은 뇌물 망신담이 반복됨에도 늘 약발(주는 사람들 입장에서 본)은 나름으로 컸다. 오늘날의 ‘유전무죄 무전유죄’와 마찬가지로 예전에도 ‘천금은 죽지 않고 백금은 벌 받지 않는다’ ‘천금을 가진 부잣집 아들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는 식으로 뇌물에 관한 ‘야담과 진실’이 존재했다.
뇌물의 뇌(賂)는 조개 패(貝)+낱낱의 각(各)자로 구성돼 있다. 조개 패는 일반적으로 재물을 상징하고 각(各)은 이르는 것으로 ‘재화가 이른다’는 해석, 각각 개별적으로 은밀하게 유통되는 화폐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는 설 등이 있다. 그 밖에 貝+路(길 로)가 합쳐진 글자로 보아 자신의 길(路)을 터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산적 등에게 통행세처럼 내는(주는) 돈(貝)이나 물건을 뜻한다고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분양 대행업체로부터 금품을 챙긴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기춘 의원은 8월19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 연합뉴스
뇌물은 자신을 망하게 하는 ‘트로이의 목마’
영어로 뇌물을 뜻하는 ‘bribe’는 중세 프랑스어에서 기원한 것으로, 거지에게 주는 빵 한 조각, 구호물자라는 뜻이다. 15세기에 이르러 해를 입지 않으려고 도둑에게 주는 선물을 빙자한 통행세, 여기서 선심을 베푸는 조건으로 강탈자가 요구하는 선물이란 더 적극적인 뜻으로 진화(?)했다. 또 영어 속어로 야자유(palm oil)가 뇌물이란 것 역시 의미심장하다. 아마도 관계에 기름을 쳐준다는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동서고금 할 것 없이 뇌물에는 ‘강탈과 보호’라는 얽히고설킨 상호 거래 관계가 잠복해 있다.
흔히 선물과 뇌물을 구별하기 힘들다고 한다. 노회한 뇌물일수록 떡밥은 크게 할망정 부채의식과 대가성이란 갈고리는 최대한 숨겨져 있어서다. 표면적 부담은 주지 않는 게 뇌물의 기본 매너이기도 하다. 혹자는 “받거나 주고 나서 발 뻗고 자면 선물, 그렇지 않으면 뇌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가 들은 제일 확실한 구분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면 선물, 아래에서 위로 흐르면 뇌물’이란 것이었다.
얼마 전 본 영화 <베테랑>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야,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체면)가 없냐?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 돈도 ‘가오’도 다 가지려 하는 것은 과욕이다. 돈이 없을망정 가오마저 포기하지는 말자. 이른바 우리 시대의 리더층에게 말해주고 싶다. 백주대낮에 길을 가로막아 통행세를 받는 산적은 되지 말라. 군자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빨리빨리’ 한국, ‘30km 느린 삶’ 안되겠니? 9.28 경향
도로의 제한속도가 30㎞/h임을 알리는 도로 표지. 출처 : 유럽교통안전위원회(http://etsc.eu/)
도심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움직임이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밀라노 시는 올해 3월부터 차량 속도를 30㎞/h로 제한한 도로인 ‘30구역’을 도입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도 시내 중심부 도로 전체를 포함해 도심 도로의 80%에 시속 20mph(약 32㎞/h)의 속도 제한을 뒀습니다.
스페인은 올해 안으로 전국 도시의 대다수 거리에 30㎞/h의 속도 제한을 두는 새 도로법을 시행할 계획입니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의 38%는 30㎞/h의 속도 제한 구역에 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통행 속도 제한 운동을 벌이는 ‘20이면 충분하다’(20’s Plenty for Us)에 따르면 현재 영국에서 20mph의 속도제한을 시행하거나 도입하려는 도시에 살고 있는 인구는 1300만명에 달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인구 10만명 이상의 도시로는 처음으로 그르노블이 지난 15일 도시 대부분의 도로에 2016년 중반부터 30㎞/h의 속도 제한을 두기로 했습니다. 시의 교통중심축에 해당하는 일부 도로에만 예외적으로 시속 50㎞의 속도제한이 유지됩니다. 그르노블 시와 그 주변 41개 자치지역(Grenoble-Alpes Metropole)의 44만명의 주민들이 이 조치의 적용을 받습니다.
파리 시 역시 전체 도로의 3분의 1에서 시속 30㎞로 속도를 제한하고 있고 이를 더 늘릴 계획입니다. 독일 연방은 최고속도를 30㎞로 제한한 도로인 ‘템포 30’을 지역 당국이 더 쉽게 설치할 수 있도록 지난 4월 관련 법을 개정했습니다.
■인간 안전이 최고의 가치
유럽 각국은 지금까지 주거지역에만 시행하던 30㎞/h 속도제한을 도시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도심지역을 대수술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이 도로 통행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동차 규제 없이는 생활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유럽교통안전위원회(http://etsc.eu/)
프랑스 그르노블 지역 단체장들의 협의체인 ‘라 메트로’(La Metro)의 부회장 얀 몽가부르는 지난 15일 르몽드에 “마을에서처럼 도시에서도 어린이나 노인과 같은 교통 약자들을 보호하고 걷기와 자전거 타기를 더 편하게 만드는 것이 속도 제한의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프랑스 교통사고방지협회에 따르면 1990년 프랑스가 도시 차량 속도를 시속 60㎞에서 50㎞로 낮췄을 때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15% 줄어들고, 보행자와의 충돌 사고 역시 14% 감소했습니다.
통행 제한 속도를 50㎞에서 30㎞로 낮추는 곳이 늘어날수록 사망자수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도로에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가정할 경우 차량 속도가 50㎞일 때 사람을 발견하고 차를 멈출 때까지 26m를 이동하지만 시속 30㎞의 경우 13m로 줄어듭니다. 차량과 충돌했을 때의 충격도 크게 줄어든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습니다.
결국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에 사람이 치었을 경우 사망률은 45%에 달하지만 30㎞일 경우 사망률은 5%로 떨어집니다.
차량 앞 13m 거리에 사람이 있을 경우 30㎞의 속도로 달릴 경우 브레이크를 밟기까지 8m, 브레이크를 밟고 멈출 때까지 5m를 이동해 사고를 피할 수 있다. 반면 50㎞의 속도로 달릴 경우 브레이크를 밟기까지 14m, 밟고 나서도 12m를 더 이동하게 된다. 중간에 사람은 차량에 치이게 된다.
시속 50㎞로 달리는 차량에 사람이 치었을 경우 사망률은 45%에 달하지만 30㎞일 경우 사망률은 5%로 떨어진다.
서울의 승용차 평균 주행 속도는 2013년 기준으로 도심에서 18.7㎞/h, 외곽지역에서 26.6㎞/h입니다. 평균 속도가 이미 30㎞ 이하인데 굳이 속도 제한이 필요할까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통사고에서 중요한 것은 평균 속도가 아닌 순간속도입니다. 제한 속도를 낮춰 가속시에도 최고 속도가 시속 30㎞에 이르지 않아야 합니다.
■속도 제한은 환경에도 이득
차량 속도를 제한하면 깨끗한 이동 수단인 도보와 자전거 타기가 더 안전해집니다. 더불어 에너비 소비를 줄이고, 환경 오염도 줄일 수 있습니다.
현재 도심의 승용차 통행속도는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에서 정한 일반도로에서의 제한속도인 시속 60㎞에 크게 미치지 못합니다. 제한속도와 주행속도의 차이가 커서 운전자들은 교차로를 중심으로 큰 폭의 가속과 감속을 되풀이합니다.
자연히 연료 소비가 많아지고 타이어 마모로 인한 미세먼지 배출이 증가합니다. 도심 미세먼지의 50%가 급작스런 가감속으로 인한 타이어 마모, 도로 마모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속도를 낮추면 소음도 줄어듭니다. 국립환경과학원 조사에 따르면, 승용차가 50㎞/h의 속도로 달릴 경우 차량 중심선에서 7.5m 떨어진 거리에서 소음도는 평균 66.3㏈A이지만 30㎞/h의 속도로 달릴 경우 58㏈A로 낮아집니다. 한편 속도를 줄이더라도 전체 주행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도심의 교통 중심축에서 차량 속도를 50㎞/h로 유지할 경우에는 더욱 그렇겠죠.
실제 프랑스의 경우 도심 도로의 제한속도가 50㎞/h일 경우 1㎞를 주행할 때의 평균속도는 18.9㎞/h로 제한속도가 30㎞/h일 경우의 평균 속도 17.3㎞/h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습니다. 이동시간도 18초 차이 밖에는 나지 않았습니다. 이동 중간에 달리다 멈추기를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속도제한의 시작 네덜란드 ‘본에르프’
골목길을 다니는 차들이 앞을 지나는 행인을 향해 경적을 울리고, 깜짝 놀란 보행자가 운전자에게 눈을 흘기는 일은 우리에게 예삿일입니다. 차량 운전자는 보행자를 앞질러가길 원하고, 사람은 골목길에서 안전하게 통행하길 원합니다. 골목길에서 누구에게 우선권을 줘야할까요? 우리나라와 네덜란드의 교통법은 이 문제에서 큰 시각차를 보입니다.
우리나라의 도로교통법 8조를 보면 “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된 도로에서는 언제나 보도로 통행하여야 한다.…보행자는 보도와 차도가 구분되지 아니한 도로에서는 차마와 마주보는 방향의 길가장자리 또는 길가장자리구역으로 통행하여야 한다”고 나와있습니다.
네덜란드 교통법 44조, 45조는 “보행자는 길 가장자리가 아닌 도로의 모든 공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다. 운전자는 보행속도보다 더 높은 속력으로 달리면 안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차도와 보도의 구분이 없는 골목길에서는 사람이 먼저 알아서 조심하도록 길가장자리로 통행해야 한다는 게 우리의 법이 의도하는 바겠죠. 반면 네덜란드 교통법은 이 구역에서 보행자는 완전한 우선권을 누린다고 규정합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규정을 적용받는 주거지역의 도로를 ‘본에르프’(Woonerf)로 부릅니다. ‘거주자들의’라는 뜻의 ‘woon’과 마당이라는 뜻의 ‘erf’가 합해진 말입니다. 도로가 차를 위한 공간이 아니라 주민이 안전하게 걸어다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입니다.
네덜란드에서는 1960년대 자동차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도로 정책이 차량을 중심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 도로를 넓히기 위해 보도를 줄이는 일이 흔해졌습니다. 골목길이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주거지의 학부모들은 이런 움직임에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이들은 아이들의 안전한 놀이 공간을 운전자의 편의를 위해 희생시켜선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도로에 벽화를 그리거나 나무를 심으면서 도로를 ‘놀이의 공간’으로 바꾸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이는 본에르프의 설치로 이어졌습니다.
네덜란드 델프트시가 최초로 본에르프를 도입했고, 네덜란드 교통법은 이곳에서의 최대 속도를 ‘보행속도’로 지정했습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닌 보행자보다 빨라서는 안된다는 상대속도의 개념입니다. 이 정도로 느린 속도에서야 그나마 아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죠.
본에르프로 지정되지 않은 주거지 도로의 차량 속도를 시속 30㎞로 낮추는 조치도 1983년 처음으로 이뤄졌습니다. 2001년까지 전 주거지의 50%가 30㎞ 속도제한 구역으로 지정됐고 이로인해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0% 정도가 감소했습니다.
제한속도 시속 30㎞임을 알리는 독일어 표지판. 출처 : 유럽교통안전위원회(http://etsc.eu/)
■‘만남의 공간’된 도로, ‘공동체 삶’을 복원하다
본에르프에서 시작한 속도 제한 운동은 독일의 ‘템포30’(Tempo 30)으로 이어졌고, ‘존30’(Zone 30) 등의 이름으로 유럽 각지로 퍼졌습니다. 속도제한이 확산된 데는 안전과 환경의 이유도 있지만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고 도시의 활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2011년 5월 4일 발표된 프랑스의 ‘30㎞/h 도시를 위한 선언’을 보면 “안전과 삶의 질, 공생을 위해 차의 속도를 줄이면 삶과 교환의 장소라는 도시의 본질을 더 강화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09년부터 ‘지속가능한 도시 이동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도보와 자전거 타기, 대중 교통을 촉진해 다양한 도시 이동 수단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이루고 도시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차량의 속도가 빠를수록 교환 활동은 줄어듭니다. 반면 차량의 속도를 줄이면 지역의 삶은 더욱 생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더 잘 놀 수 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이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해 동네를 더 쉽게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소규모 상거래 활동이 활동해집니다.
자연스럽게 사람들간의 만남이 늘어납니다. 속도 제한 운동을 위한 표어에 담긴 ‘사람을 사귀는 도시’라는 표현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프랑스 교통법은 2008년 7월 ‘만남의 구역’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사람과 자전거, 자동차가 한데 엉켜 다닐 수 있는 곳인데 우선권은 사람에게 있어서 보행자는 꼭 인도로만 다닐 필요가 없고, 자동차 속도는 20㎞/h로 제한됩니다.
이곳에서 모든 통행자들은 느린 속도로 마주치면서 전통 시대 마을에서와 같은 공생을 꾀할 수 있습니다. 공간과 흐름(도로)의 개념을 한데 모은 것이죠.
■교통정책은 민주주의의 문제
2013년 한국의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10.1명으로 10.6명의 미국에 이어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많았고,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2명으로 2.4명인 터키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 5.1명인 유럽에 비하면 갈 길이 멀지만 아직 도로의 제한 속도를 30㎞로 낮춘다는 발상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지난 11일 일부 이면도로를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간의 제한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생활권 이면도로 정비지침’을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사고 위험이 높고 통학 어린이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구간으로 한정해 유럽과 같이 주거지 일반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속도 제한 조치를 시행하더라도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단속하는 데 비용이 들고 실효성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르노블 시도 법적 제제보다는 시민의 자발적인 참여에 방점을 뒀습니다.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에 인도를 확장하거나 심지어 골목길에서 농작물 재배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도로의 주인은 차가 아니라 그 지역에 사는 주민이라는 것이죠.
시민정신에만 기대지는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속도를 줄이도록 차도의 폭을 좁히는 대신 인도의 폭을 넒히고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습니다. 직선형 도로를 줄이고 지그재그 형태의 굴곡진 도로나 원형 교차로를 늘렸고, 스피드험프나 분리대와 같은 장애물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차량 중심으로 설계된 도로 기능을 사람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법입니다.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김남석 교수는 “본에르프는 편리와 효율과 사람의 생명을 바꿀 수 없다는 철학에 기반했다”며 “거창하게 말할 것 없이 내 집 앞에서 아이들이 편하게 놀 권리를 찾기 위한 시민들의 자발적 운동의 결실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 종로에 ‘존30’을 도입하자고 제안한 한국건설기술연구원 ICT융합연구소의 백남철 연구위원은 당장 유럽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란 어렵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많은 토의를 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백 연구위원은 “도시에서 국가 경제의 힘이 나오는데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경쟁력은 교통이다”며 “시속 60㎞의 차량 속도로 도시를 관리하면서 어떻게 창조적이고 사람중심적인 정책이 나오겠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독일의 퇴직공무원으로 자전거클럽ADFC 대표로 있는 한 시민단체의 장을 만났을 때의 일화를 들었습니다. 독일은 자전거 교통량이 없는데도 어떻게 몇십년간 꾸준하게 자전거 도로를 만들 수 있었느냐, 자동차 운전자의 반발은 없었느냐는 물음에 그 사람이 한 마디로 “민주주의”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도시·산업 정책을 만드는 관건은 민주주의라는 결론에 닿은 것이죠.
한국건설기술연구원 ICT융합연구소의 백남철 연구위원
-자동차만 다니는 도심은 활력 잃어
“도심의 차량 평균속도는 시속 20~30㎞밖에 안됩니다. 제가 저속 전기차를 타고 실험을 해봤습니다. 보통 차량들은 최고 속도가 시속 60㎞이니까 가속했다가 감속해서 교차로에 섰는데 제가 탄 전기차는 최고 속도가 시속 40㎞라 35㎞ 정도로 밟고 갔는데 똑같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가속하고 감속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됩니다. 소음과 대기오염도 심해지면서 도심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기 힘든 곳이 됩니다. 도심에는 자동차만이 다니고 보행자들이 사라진 도심은 활력을 잃습니다. 도심은 도시의 심장입니다. 도심의 활력이 떨어지면 도시도 노화됩니다. 사람들이 만남의 활동을 할 수 있어야 도시가 살아나기 때문이죠.”
-속도 제한 시 보행안전 크게 높아져
“얼마 전 뉴욕은 도시 전체적으로 속도제한을 40㎞/h 이하로 정했습니다. 런던, 파리 등은 보다 강력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죠. 이웃나라 일본은 도시 가로를 50-40-30㎞/h로 구분해 속도를 규제합니다. 주정차가 완전히 금지된 간선도로에서만 제한속도가 50㎞/h이고 대다수 도심은 속도 40㎞/h 이하라고 보면 됩니다. 연구결과 치사율은 20mph(32㎞/h)에 비해 30mph(48㎞/h)은 7배, 40mph(64㎞/h)은 31배 높아집니다. 특히, 60세이상 노인의 치사율을 보면 20mph(32㎞/h)에서 5% 사망, 30mph(48㎞/h)에서 50%사망, 40mph(64㎞/h)이상으로 자동차와 충동하면 98% 사망할 수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서는 고령자들의 활동성을 높여야 건강보험료를 비롯한 사회보장비용을 줄이고 사회의 활력도 높일 수 있습니다. 제한 속도를 낮춰 얻을 수 있는 안전과 건강 상의 이점이 매우 크다는 뜻입니다.”
-속도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우리는 아직도 속도에 환상을 가지고 있지만 도심 최고속도가 30㎞/h 이상이면 곤란합니다. 새로운 도로를 건설해도 새로운 수요로 채워집니다. 적당한 수준이라면 교통정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평상속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속도제한은 나쁜 정체만 양산합니다. 나쁜 정체는 교통체계의 신뢰를 떨어 뜨립니다. 사람들은 약속시간을 놓치게 되고 불규칙적인 교통 상황은 사고를 증가시킵니다. 이로 인한 차량의 가감속은 미세먼지를 증가시킵니다.”
-‘자동차 방임주의’ 버려야
“기존의 자동차 방임적인 교통체계를 벗어나자는 의식이 중요합니다. 특히, 도심의 활력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를 규제해야 합니다. 단, 무조건적인 자동차 통행제한이나 성급한 도로다이어트는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보행자와 자동차를 안전하게 공유시키면서 자동차 문화의 수준을 고양해야 합니다. 그 핵심 요소는 ‘속도감소’와 ‘오염규제’ ‘불법주정차규제’이지 ‘교통량 감소’가 아닙니다. 우리는 시민들의 ‘좋은’ 접근성을 높여야 합니다. 단, 위협적으로 가감속하는 차량의 접근성(car accessibility)과는 양립할 수는 없습니다.”
-도시 관리의 경쟁력 높여야
“유럽은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차량의 출입을 제한하는 ‘저 배출 구역’(Low Emission Zones·LEZs)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배기 가스를 많이 내는 차량의 통행을 막거나 비용을 내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유럽의 배기가스 배출 기준으로 차량을 수출하지만 도시 관리에서는 아직 유럽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도시 관리의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다른 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경제 논리로만 따지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렇게 도시 관리를 강화되면서 발전한 나라가 독일입니다. 오염이 심한 차량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면서 기준에 미달하는 차를 보유한 사람은 기준에 부합하는 차량을 한 대 더 사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자동차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에서 국가 경제의 힘이 나오는데 도시의 가장 기본적인 경쟁력은 교통입니다. 시속 60㎞의 차량 속도로 도시를 관리하면서 어떻게 창조적이고 사람중심적인 정책이 나오겠습니까.”
-영국의 실패를 교훈 삼아야
“당장 우리나라에서 유럽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기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단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서로 많은 토의를 해야합니다. 결국 교통도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1963년 영국에서 ‘부캐넌 보고서’(The Buchanan Report:Traffic in Towns)가 나왔습니다. 당시 보고서는 런던의 교통 혼잡이 매우 절박한 수준으로 통행 규제가 없다면, 환경 악화는 물론 통행시간 단축이나 쾌적함과 같은 자동차로 누리던 효용 마저도 급속히 쇠퇴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알고 있으면서도 신속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안전과 건강을 위해 속도 제한을 꼭 추진해야하지만 일부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해 무산되면 결국 우리도 영국처럼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잃고 국가 경제력도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교통의 경쟁력은 민주주의에서 나온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무엇이 민주주의이고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한계를 극복할 방안은 무엇인지 대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이야기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 해야합니다. 퇴직공무원으로 독일 아헨주 자전거클럽 ‘ADFC’의 대표로 있는 분을 만나 어떻게 독일은 자전거 교통량이 없는데도 몇십년간 꾸준하게 자전거도로를 만들수 있었는지 물었습니다. 자동차 운전자의 반대가 없었느냐는 것이죠. 그는 대답을 민주주의라고 일갈했습니다. 시민들의 토론이 시민단체 거버넌스를 통해 마을, 도시, 주, 연방까지 올라가 의회에서 한번 의결되면 그 정책은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된다고 했습니다.”
“독일도 한 때 한국처럼 정책의 일관성이 불안한 적이 있었는데 도시공간의 시민주도적인 활동을 국가에서 지원해 시민들의 자발성이 높아지고 정책일관성을 가지게 되면서 극복했다고 합니다. 근대국가의 발전은 르네상스 도시의 혁신에 근거했고 독일 등 선진국들의 발전도 도시 공간의 경쟁력(공간 복지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에서 나온것 같습니다ㆍ
한양대 교통물류공학과 김남석 교수
-네덜란드 본에르프 도입 과정에서의 문제점이나 반발은?
“네덜란드 본에르프의 시작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골목길의 불법점유’ 였습니다. 주민들이 골목길에 차를 막은 것이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공권력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입니다. 불법이라고 무조건 ‘법대로’ 주민들을 처벌하거나 하지 않고, 주민들의 요구를 차근차근 들어본 겁니다. 그랬더니, 주민들의 요구가 어느정도는 합리적인 구석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시정에 적극반영한 겁니다. 주민들의 (안전하고자 하는) 자발적 요구에 구청이나 시청이 귀를 기울인 것이 바로 본에르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차의 문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덜란드에서도 첨예한 갈등의 소재입니다. 네덜란드 교통법 46조 1항은 운전자는 이 공간에 ‘특정 주차공간 표시가 없다면’ 일반적으로 주차를 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거센 반발이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요구도 ‘거주자들의 안전’이라는 가치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궁극적으로 ‘상대속도’의 개념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를 위한 과제라면? 결국 제도보다는 의식 개선이 중요하다는 뜻일까요?
“상대속도의 개념을 일반적으로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20㎞/h 구역이나 30㎞/h 구역은 차량과 보행자(거주민)과 ‘함께 공존하기’를 위해 도입하되, 정말 ‘아이들의 안전, 거주지에서 편안할 권리’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이를 주민들의 합의에 따라 차량의 편의를 포기 할 수 있는 지역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본에르프’를 도입할 수 있을 것이고, 이 본에르프에서는 차량의 절대속도 제한이 없고, ‘무조건’ 차량은 보행자보다 느리게 가야한다는 것을 법규화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의식개선’이라기 보다 ‘주민합의’의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교통안전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문제를 ‘시민의식 부족’으로 귀결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속도’ 규제를 법제화 한다고 해도 이를 ‘일반적으로 규제’할 효과적인 방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생활도로에 속도위반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러한 카메라를 이곳저곳에 무분별하게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속도는 누구나 ‘나보다 빠른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실효성을 높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속도제한 조치를 적용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기 보다 이미 현행법상 시행중인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이나 노인 보호 구역 등에 대한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할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본에르프니, 30㎞/h 구역이니 새롭게 도입해야 하겠지요.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잘 못하면서 매번 새로운 것을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설물’ 중심으로만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무조건 시설물, 표지판 확충에 예산을 다 써왔는데, 표지판 달고 페인트 칠해도 사고가 줄지 않아요. 또한 법개정을 만병통치약처럼 제시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법만 개정하면 모두가 그 법에 따라줄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또한 큰 오산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순응성이 높은 수준의 법을 만들어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내야 합니다.”
-시설물을 추가 설비하는것도 해결책이 아니라고 하시고, 법개정을 하거나 시민의식을 높이는 것도 제1처방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시급하게 적용할 수 있는 조치는 무엇이 있을까요?
“제 주장은 속도를 줄여야 하는 곳에, 아이들이 위험이 노출되어 있는 곳에, ‘차로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쿨존에 과감한 ‘로드 다이어트’를 시행해야 하고, 이미 차로수가 넓지 않은 구간의 경우, 강력한 불법 주정차 단속을 해야 합니다. 스쿨존에서의 불법 주정차는 다른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키가 작은 아이들을 보이지 않게 해 사고를 유발하는 큰 요인이 됩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 학교 앞 차량 전면 진입 금지를 취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도 차로 학교에 출퇴근하는 편의를 포기할 각오가 되어야 하고, 지역 주민들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우회’의 불편함을 감당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언젠가 회의 때 서울 간선도로의 차로를 줄이자고 제안했더니 인구 10만 델프트에서 보고 들은 것을 인구 천만인 서울에 적용하려 한다는 비아냥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델프트가 본에르프가 생기면 소방차 진입이 어려워서 큰일 날 것이라는 비아냥을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소방차를 작게 만들었습니다. 정책의 방향이 옳다고 생각되면 해결방안을 찾아야지 ‘시행하지 말아야 할’ 논리를 찾으면 안 됩니다.”
-서울 도심의 경우 차량 평균 속도가 30㎞/h 미만인데 속도제한이 필요할까요? 미세먼지, 배기가스 증가 등의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일반인이 느끼기에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큰 건 아닌지요?
“서울 도심의 ‘평균통행’속도가 시속 30㎞ 미만인 것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스쿨존이나 교통안전에서 말하는 속도는 ‘순간속도’입니다. 평균속도가 아닙니다. 제한속도와 실제속도와의 차이로 인한 급가속의 문제는 아직 ‘실제문제’로 얼마나 심각한지 산정조차 되지 않은 이슈입니다. 제 견해로는 큰 이슈가 아니라고 봅니다. 굳이 우선순위를 말하자면 교통환경 등의 미세먼지 이슈도 사람의 생명과 관련된 ‘교통안전’ 이슈보다 앞설 수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
Starstruck -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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