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25 경향 장도리
노동개혁은 박근혜식 신정경유착? 9.22 오마이뉴스
[청와대 일기 29] 노동개혁은 박근혜식 신정경유착?... 이명박 때보다 더 친기업적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주 월요일, 현대자동차가 사내 하도급 6천 명을 2년 내에 정규직으로 채용하기로 했고, CJ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에서도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하는 등 경제계가 속속 청년일자리 창출에 동참하고 있어서 마음이 든든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재계의 '지원사격'에 대한 만족감을 표했습니다. 왜 특정 기업의 인사계획이 정부에 대한 '지원사격'이냐구요? 바로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추진하면서 '청년실업 해소'를 그 명분으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용노동부의 '노동개혁' 공익광고도 "노사정 대타협, 우리 아들과 딸이 애타게 기다립니다"라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재계가 자발적으로 이 선전을 현실화 시켜 준다는데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겁니다. 실제로 삼성·한화·현대차·SK 등 주요그룹들은 하반기 대졸 공채를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7일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KT·두산·GS·현대중공업·동부·다음카카오·한국전력 등 12개사는 정부의 일자리창출사업인 '청년고용디딤돌사업'에도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누군가는 정부의 공언대로 일자리를 늘린 셈이니 잘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사실 정부와 재계의 '거래'일 뿐입니다.
기업 이익만 신경 쓴 노사정 합의... 청년 고용 약속은 믿을 수 있나?
지난 15일 도출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부터 살펴봅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합의는 정부가 앞장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해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일단, 노사정위원회는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라면서 저성과자와 근무불량자를 대상으로 한 '일반해고' 도입 가능성을 열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전제로 하는 정리해고와 '정당한 이유'를 전제로 하는 '징계해고'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노사정위원회는 업무성과나 근무태도 등 사용자의 자의적 판단을 전제로 하는 '일반해고'를 더한 것입니다. 지극히 기업에 치우친 결정입니다.
임금피크제(일정 연령이 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제도)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합의 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 취업규칙 변경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다고 간주될 땐 노조나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완화'하기로 결정한 건 사용자보다 상대적인 약자인 노동자의 힘을 더욱 축소 시킨 겁니다.
이뿐입니까. 재계에서 계속 요구한 ▲ 기간제 근로자 사용기간 연장 ▲ 파견근로 대상 업무의 확대 역시 이번 합의문에 포함됐습니다. 결국, 재계의 채용 확대 방침은 이같은 선물에 대한 보답 성격이 짙습니다. 이 보답을 신뢰할 수 있는지도 관건입니다.
일례로 삼성·현대차·SK 등 12개사가 참여하기로 한 '청년고용디딤돌사업'은 쉽게 표현하자면 '인턴사원 교육'에 가깝습니다. 기업들이 청년구직자를 대상으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실시한 후 협력사 등으로의 취업을 돕는 것이 사업 골자입니다. 즉, 청년들에게 해당 교육을 담당한 대기업의 일자리를 주는 게 아닌 거죠.
각 주요그룹이 밝힌 채용 확대 계획 역시 '즉시 실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삼성그룹은 향후 2년간 1만7000개의 청년일자리를 신규 창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GS는 2017년까지 9700명 청년 인재 채용, 한화그룹도 2017년까지 청년 1만7569명 채용 방침을 밝혔습니다. 공교롭게도 대부분 박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2017년을 마지노선으로 삼은 셈입니다. 과연 2년 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계속 유지될까요?
논란이 된 한화투자증권 사례를 생각해 봅시다. 지난 2012년 한화투자증권은 59명의 고졸 공채 사원을 뽑았습니다. 당시 고졸 채용 1명 당 1500만 원의 세제 감면 혜택을 안긴 이명박 정부의 고졸 취업 활성화 정책에 적극 부응한 것입니다. 그러나 1년 뒤 한화투자증권은 경영난을 이유로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입사 1년 차 고졸 신입 직원들을 대상에 포함 시켰습니다. 결국 입사했던 고졸 공채 사원 중 절반이 회사를 떠났습니다.
창조경제 '도우미' 역할에도 법인세·사면... "MB 때보다 친기업적"
▲ 청년에게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부산·울산·경남지역 청년 20만+ 창조 일자리박람회'가 지난 16일 벡스코 제2전시장에서 열렸다. ⓒ 연합뉴스
즉, 기업의 달콤한 약속은 온전히 신뢰하기 어려운 '공수표'인 셈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더 요구합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5단체는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노사정 합의가 많은 어려움 속에 타결됐으나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데 노동개혁이라고 평가하기에 매우 부족하다"라면서 국회에 입법 청원 의사를 밝혔습니다.
정부와 여당도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습니다. 새누리당은 하루 뒤인 16일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은 이른 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박 대통령도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위기를 인식 못해 추락한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라면서 국회에 후속 입법조치를 당부했습니다.
이쯤하면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 할 만합니다. 물론 기업이 정치인에게 정치자금 등을 제공하고 정치인은 그 반대급부로 해당 기업에 각종 특혜를 베푸는 전통적인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나 '고용·투자'라는 자원을 가진 기업가와 '입법·정책'이란 자원을 가진 정부 사이의 신(新) 정경유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이미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때부터 가시화된 흐름입니다. 현재 전국 17개 광역시·도에 세워진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실상 대기업이 그 건립과 운영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삼성(대구·경북), SK(대전·세종), 현대·기아차(광주), LG(충북), 롯데(부산), KT(경기), 두산(경남), 네이버(강원), 한화(충남), GS(전남). 다음카카오(제주), 현대중공업(울산), CJ(서울), 한진(인천)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대기업이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구현할 실무자 위치에 있다 보니 당연히 '거래'가 오갑니다. 정부는 여권 일각의 법인세 인상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고, 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던 기업인 사면 제한 방침도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을 통해 뒤집었습니다.
실제로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4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는 창조 경제를 한다면서, 혁신 센터를 만들어 열심히 하는 척하는 기업들한테 총수를 사면해 준다든지, 불공정한 기업 간 합병을 눈감아준다든지…. 이런 것 자체가 신종 정경유착이라고 본다"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물론 '정경유착'이란 표현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최근 행태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친기업적 태도를 취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권력형 비리 등 반대급부를 통해 사적이익을 얻는 경우는 없는 만큼 정경유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김 교수는 "시장을 내세우면서 대기업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고 그런 정책을 권위적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에서 보수적이고 권위주의적이란 표현은 할 수 있겠다"라면서 "(대기업 투자를 촉진하는) 경기부양책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대선 당시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던 낡은 방식의 경기부양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박 대통령이 한턱 쏜다는 특식, 밥값 계산은 군 예산으로 922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28일 오후 경기도 포천 육군승진과학화훈련장에서 열린 통합화력훈련을 참관에 앞서 북한 도발로 전역을 연기한 장병들을 격려하고 있다. 포천/청와대사진기자단
‘소음피해 주민 배상금’ 책정 예산 12억 빼내
국방부 “미사용 예산 전용 기재부 승인 받아”
기재부 “지금 불용처리 안되지만 남았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을 맞아 부사관 이하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전달한다는 격려카드와 특별간식(특식)에 들어가는 돈이 청와대 예산이 아니라 애초 ‘군 소음 피해 배상금’으로 책정돼 있는 예산을 전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방부에 확인한 결과, 전날 청와대가 “대통령이 하사한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카드·특식 관련 예산은 모두 12억원으로, 그 대부분이 군 소음 피해 배상금으로 책정돼 있는 예산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방부는 진 의원실에 “명절마다 국방부가 지급해온 특식과는 별도로 올해 국방부 불용예산(사용하지 않은 예산) 12억원을 전용해 대통령 특식과 격려카드를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해 예산 집행일은 회계연도가 끝나는 12월31일까지다. 때문에 특정 예산의 불용 처리는 연말에야 가능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불용예산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사업이 이미 끝났는데 일부 돈이 남았다면 사전에 전용이 가능하다”고 했다.이 기준에 따르면 국방부가 아직 주민들에게 집행할 가능성이 있는 예산의 일부를 앞당겨 불용 처리로 돌린 뒤 대통령 특식 예산으로 밀어준 셈이 된다. 올해 군 소음 피해 배상금으로 편성된 예산은 모두 1308억여원이다.
국방부는 이러한 예산 전용에 대해 기획재정부의 승인을 받았다고 했다. 국방부는 소송이 모두 끝난 다음에 지급되는 소음 피해 배상금은 연례적으로 불용 사례가 발생하며, 올해도 수백억원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왕이 백성에게 나눠주듯…박 대통령 ‘특별’ 남발 922한겨레
특별 사면·특별 공휴일·특별 휴가증·특별 간식 등 잇따라
새정치 최재천 “민주공화국의 정책은 시혜적이어선 안돼
최재천 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의장은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추석을 앞두고 모든 국군 장병들에게 ‘특별 휴가증’과 ‘특별 간식’를 제공하고 청년펀드 기금 조성에 나선 것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국민이 주인인 민주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정책과 제도가 왕이 백성에게 나눠주는 듯 시혜적이어선 안 된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 관련기사 : 대통령이 임금? 청와대, 군장병 특별간식에 ‘하사’ 표현 논란)
최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지난 8월에도 청와대는 ‘특별 사면’을 한 이후 광복절 연휴를 ‘특별 공휴일’로 지정한 바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정부가 유독 ‘특별’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최 정책위의장은 “특별 휴가증 대신 한반도 평화를 조성해 징집제도를 고치는 데 열정을 쏟아야 하고, 특별 간식 대신 장병 급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예산 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특별 공휴일보다는 노동시간을 줄여 삶의 질을 보장하고, 청년펀드 대신에 법과 세금을 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며 제안했다.
최 정책위의장은 “정치는 헌법에 기반한 시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종합적이고 매크로한 영역”이라며 “일시적인 조치로 시행될 일이 아니다”라고도 지적했다.
최 정책위의장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노동시장 개편 5개 법안’ 입법과 관련해 국회 안에 별도의 특별위원회 구성을 촉구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 등 노동 개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면서 “진짜 노동 개혁을 위해서는 재벌 중심, 세습 중심, 수출 지향적 구조를 혁파하고 사회경제적 기본권을 보장 받도록 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원·검찰 ‘집회’를 ‘부패·비리’ 취급…“손실 국고 환수” 922 한겨레
ㆍ법무부, 경비 비용 배상·정책 지연 책임 묻기로
ㆍ집회 자유 억압하려고 미국 ‘링컨법’까지 거론
법무부가 국고 손실 환수소송을 적극 추진하기 위해 전담팀을 설치하면서 불법집회로 인한 국고 손실까지 소송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집회로 인한 정책지연 등의 책임도 주최 측에 포괄적으로 묻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명백한 헌법상의 기본권 억압이며 집회를 하지 말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22일 법무실 국가송무과에 국고 손실 환수송무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돈을 타내는 등 부패·비리로 국고 손실이 발생하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겠다는 취지다. 법무부는 방산비리, 입찰담합 등을 국고 손실 환수소송의 주요 대상으로 열거했다. 법무부는 “미국 사례를 주로 참고했다”면서 “미국에서는 링컨 대통령이 ‘부정청구법’(일명 링컨법)을 만들어 미 연방법무부 송무국 전담부서에서 소송 및 조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으며, 부정청구로 얻은 이익의 3배를 환수조치한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부패·비리뿐 아니라 ‘불법 집단행동’에 따른 국고 손실도 환수소송 대상에 포함시켰다. 집회로 인한 경찰장비 파손과 경찰관 부상 등에 대한 배상은 물론 정책지연 등으로 인한 국고 손실의 책임도 집회 측에 묻겠다는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제주 강정마을 시위와 관련한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2013년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집회 때문에 정부가 건설업체에 물어준 지연 비용 273억원 중 일부라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방폐장 건설이나 미군기지 이전, 간척·터널공사 같은 토목사업 등 국책사업에 반대하면 자칫 거액의 배상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법무부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법무부 전담팀이 집회 관련 국고 손실 관련 소송을 담당하느냐’는 질문에 “미국 전담부서는 집회 관련한 업무는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 사례는 검토해보지 않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침을 일제히 비판했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집회 측에 소송을 제기하면 집회 주최자와 참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면서 “집회는 국민의 기본권 행사의 일환으로, (정부 측에) 어느 정도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찰청이 진행해온 기존 민사상 손해배상도 집회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인데, 법무부에 컨트롤타워까지 두겠다는 것은 집회·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봉쇄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법무부 내에서도 부패·비리로 인한 국고 손실 환수 방침에 집회 부분을 추가하는 방안을 두고 논란이 벌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 측은 “기존 경찰청이 해오던 업무에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면서 “명백한 불법 집회나 정부 피해와의 인과관계가 명확한 집회에만 대응, 기본권 침해 가능성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거꾸로 가는 ‘국민행복시대’ 922 경향
‘박근혜 정부 2년차’ 인 작년 정신·육체적 행복감 떨어져 17개 시·도 중 16곳 “더 우울”
박근혜 정부 2년차인 지난해 ‘정신적·육체적 행복감’이 전년보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와 비교해볼 때 전국 17개 시·도 중 12곳 주민들은 스트레스가 더 늘어났다고 느끼고 있었다. 또 대전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는 우울감을 경험한 주민들이 늘었다.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 주민들은 자신의 건강이 예전보다 나빠졌다고 생각했다. 박근혜 정부의 출범 모토였던 ‘국민행복시대’가 더 멀어졌다는 의미다.
21일 통계청과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지역정책과 주민생활과 관련된 9개 분야·22개 지표를 보면, 지난해 스트레스 인지율은 12개 시·도에서 전년보다 높아졌다. 스트레스 인지율이란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정도를 말한다.
피감 공무원들에겐 ‘헬국감’ 국회에서 21일 실시된 산업통상자원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회의실 밖에서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신문지를 깔고 앉아 있다. 이날 산자위 국정감사는 한국가스공사 등 8개 기관을 상대로 진행됐다. 권호욱 선임기자 biggun@kyunghyang.com
울산이 전년보다 4.7%포인트 높아져 가장 많이 뛰었고 경북, 경남, 부산·인천·전남 순으로 전년보다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통상 경기가 나빠지면 주민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는 공동체에서 느끼는 유대감, 가족에게서 받는 친밀감이 떨어질 때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간다.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은 주민 10명 중 3명이 일상에서 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비싼 집값, 높은 물가, 과도한 경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주민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세종시였다. 2012년 입주가 시작된 행복도시의 도시기반시설이 차츰 갖춰지면서 주민들의 스트레스도 해소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우울감 경험률은 대전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모두 올랐다. 전년에 비해 강원(2.3%포인트)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다. 충북·충남, 광주, 제주·울산 등도 우울감을 느낀 주민들이 1년 사이 많이 늘어났다. 우울감 경험률이란 지난 1년간 연속적으로 2주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을 말한다.
스트레스 인지율과 우울감 경험률은 대표적인 정신건강 지수로 이 비율이 높아질수록 행복감은 떨어진다. 흡연을 멀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흡연율은 떨어진 곳이 많았지만 음주율은 높아진 곳이 많았다. 13개 시·도에서 음주율이 증가했고 전년보다 하락한 곳은 4곳에 불과했다. 충남(4.1%포인트), 인천(3.5%포인트)에서 음주율이 전년보다 많이 올랐다.
‘나는 건강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건강수준 인지율은 지난해 서울을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전년보다 떨어졌다. 자신이 건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강원, 전남, 경북 등에서 전년 대비 많이 하락했다.
최광현 한세대 가족상담학과 교수는 “서민경제가 좋지 못해 생존 위기에 몰린 가정들이 많은 데다 끝이 없는 경쟁에 노출되다 보니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늘어나고 있다”며 “사회안전망이 갖춰지지 못하면 성장만으로 행복감을 높일 수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명예훼손, 우리가 용납 못한다? 924 미디어오늘
방통심의위 심의규정 개정안 입안예고… 공인 제외 명시하지 않고 “믿어달라”며 공수표 남발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개인의 명예훼손에 대해 제3자 신고만으로 직접 심의를 하게 된다. 정치인, 경제인 등 권력자를 위한 제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박효종 심의위원장은 “공인에 대해서는 제3자 신청을 제한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점을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4일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안을 보고받았다. 개정안은 인터넷상 명예훼손성 글에 대한 심의요청 범위를 당사자에서 제3자까지 확대하는 내용으로 오는 22일까지 입안예고를 거친 후 11월 전체회의에서 최종의결해 확정할 계획이다. 야당 위원들은 정치인, 고위공직자 등에 대해서는 예외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어쩔 수 없이 보고는 받지만 입안예고 기간 때 법적 판단을 하는 과정에서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대안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노컷뉴스 자료사진
심의규정 개정은 소수의 계층만 혜택을 볼 수 있으며 악용될 소지가 있어 비판을 받아왔다. 예를 들어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 ‘7시간 의혹’을 다룬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보수시민단체가 이의를 제기하면 심의위가 자발적으로 심의를 해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합당한 권력 비판까지 차단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크다며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해왔다.
논란이 되자 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에 한해서는 제3자 신고만으로 심의할 수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공인’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관련 내용을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았다. 여당 추천 하남신 위원은 “공인의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면서 “개정안에 명시하지 않더라도 공인의 명예훼손에 대한 경우 심의에서 예외로 하겠다는 것을 심의위원들의 소신과 양심을 걸고 속기록에 남긴다면 이보다 뚜렷하고 정확한 보장장치가 어디있겠나”라고 말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 유죄판결이 내려진 경우 심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방청인 신분으로 전체회의를 지켜본 박경신 전 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은 발언권을 요구하며 “심의규정 개정안이 언급된 이래 지금까지 한 글자도 변함없이 입안예고가 됐다”면서 “당초 약속과 달리 ‘공인은 제외한다’는 점을 명시하지 않은 데 대해 위원장이 아무런 발언 없이 넘어가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말했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체회의에 방청인으로 참석한 박경신 전 심의위원(고려대 교수)이 발언권을 요구하자 심의위 직권들이 저지하고 있다. 사진=미디어기독연대 제공
박경신 교수가 발언권을 요구하자 심의위 직원들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이 퇴장을 명하지 않았음에도 조광휘 통신심의국장은 박경신 전 위원에게 반말로 “당신 뭐하는거야. 나가”라고 소리쳤으며 권혁성 운영지원팀 차장은 박경신 전 위원을 붙잡아 퇴장시키려 하는 등 물리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끝내 “발언권 요청을 거부하겠다”고 밝히며 정회를 선언했다.
‘공인은 예외’라는 점을 명시하더라도 언제든지 ‘꼼수’를 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낙인 상임위원은 “공인의 가족, 보좌진 등 공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면서 “이에 대해 확실히 짚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인물을 공인이라고 규정하더라도 주변 인물들은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편법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김무성 대표 자녀의 특혜임용 의혹, 사위의 마약사건의 경우 당사자가 공인이 아니기 때문에 제3자 신고로 명예훼손 심의가 가능하다.
회의에 앞서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오후 2시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정부가 공영방송을 국영방송화하고 작은 매체들을 사이비언론으로 몰고, 포털이 편향됐다며 비난하고 이제는 심의규정 개정을 통해 권력을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까지 쫓아내려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3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공동논평을 내고 “통신심의규정 개정은 대통령과 고위공직자,권력자와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될 우려를 낳고 있는 권력을 위한 특혜성 보호규정인 동시에,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용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 언론노조,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진보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24일 오후 2시 방송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의규정 개정안 ‘폐기’를 요구했다.사진=언론노조 제공
방송 이어 인터넷도 통제, 보수의 치밀한 기획 924 오마이뉴스
'인터넷신문 등록기준 강화'의 쟁점과 본질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지난 8월 21일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핵심내용은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신문법 시행령에 의하면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은 '취재 인력 2명을 포함하여 취재 및 편집인력 3명을 상시적으로 고용할 것'이다. 이를 '취재 인력 3명을 포함하여 취재 및 편집 인력 5명을 상시적으로 고용할 것'으로 개정하여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이를 소급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이비언론 행위와 어뷰징 방지라는 명분
이를 위해 문체부는 두 가지 이유를 내세웠다. 첫째는 인터넷신문의 독자적 기사생산 요건인 취재 및 편집관련 상시고용인력 강화를 통해 기사내용의 정확성 제고 및 언론매체로서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터넷신문의 폭발적 증가로 과도한 경쟁과 유사언론 행위 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특히 군소 인터넷신문이 뉴스콘텐츠 생산・유통보다 수익창출을 위한 클릭 경쟁에 집중하면서 기사 어뷰징(abusing) 등의 폐해가 발생하고 있기에 이를 방지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문체부의 논리는 '언론매체의 사회적 책임 강화'와 '유사언론 행위 및 어뷰징 방지'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수사적으로만 이해하자면 이는 물론 필요한 일이다. 협박과 공갈 등이 매개된 사이비언론 행위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고, 클릭 경쟁을 위한 어뷰징으로 인터넷 공간에 쓰레기 같은 기사들이 넘쳐나는 것이 우리 저널리즘의 현실이다.
그러기에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고 유사언론 행위 및 어뷰징 방지에 대한 대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이는 정부 당국뿐만 아니라 언론계, 시민사회, 그리고 일반 국민들까지 적극 나서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 속에서 그 책임을 군소 인터넷신문에 전가하는 잘못된 처방이다. 실효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언론자유를 침해하고 시민의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군소 매체에 책임 전가하는 왜곡된 전제
▲ 어뷰징. 수분 간격으로 같은 주제의 기사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먼저 짚어보자. 문체부가 내세우는 명분인 유사언론 행위와 어뷰징 기사의 양산을 누가 주도적으로 시행하고 있는가. 지난 7월 한국광고주협회가 내놓은 유사언론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종합일간지, 경제지, 방송사, 인터넷 매체 등 매체 규모에 상관없이 다수의 매체들이 유사언론 행위자로 지목되어 있다.
또한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대형 주류 언론이 광고주의 이해에 따라 프로그램과 기사를 거래했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어뷰징 문제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주류 언론사의 인터넷신문이 보다 대담하게 어뷰징을 시행하고 있다. '어뷰징 기사쓰기 매뉴얼'까지 만들어 놓고 있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저널리즘이 혼탁해진 것은 매체의 규모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군소 인터넷신문=사이비언론, 유사언론'이라는 왜곡된 전제 속에서 그 책임을 '군소 인터넷신문'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매체 규모가 영세하기에 운영을 위해 어뷰징을 남발하고 '샹타주'(chantage; 협박, 공갈이 매개된 언론행위)를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주변에는 소규모 인력으로도 훌륭하게 저널리즘의 기능을 수행하는 인터넷신문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주류 언론들이 외면하는 노동, 인권, 소수자, 공동체 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며 건강한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다. 형태도 다양하다. 소수의 실무자가 책임감과 헌신으로 지역공동체 및 가치 공동체를 위해 노력하는 인터넷신문이 있기도 하고, 협동조합신문, 시민저널리즘 같이 소수의 실무자와 공동체 일원이 협력하는 인터넷신문들도 있다. 등록요건 강화는 결국 잘못된 전제 속에서 작은 언론을 통한 시민들의 자유로운 언론활동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실효성 없고 시대에 역행, 언론자유 침해라는 근본적 문제까지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자유에 대한 문제이다. 신문법의 입법 취지는 자유로운 언론활동의 보장에 있다. 그런데 등록기준 강화를 통한 매체 설립 진입장벽의 강화는 언론자유, 언론매체 설립의 자유를 침해한다. 더구나 이는 시대적 추세에도 맞지 않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미디어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의 진화와 대중화 속에서 1인 미디어까지 등장하고 있으며 시민 참여형 저널리즘의 확대되고 있는 시대이다.
작은 규모의 언론들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소통을 강화하고 있으며, 언론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그러기에 오히려 매체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등록기준 강화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언론자유라는 근본 문제까지 위협하는 편협한 언론관을 내재하고 있다.
실효성도 문제이다. 상시 인원 5명으로 등록 요건이 강화되면 현재 운영 중인 인터넷신문의 85%가 퇴출된다고 한다. 이들은 법적으로 인터넷신문의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인터넷과 모바일 시대에 그 기능과 역할마저 퇴출된다고 보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정치적 의도가 농후한 판결에 의해 '법외 노조'가 탄생하였듯이 '법외 인터넷 신문'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매체를 탄생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인터넷신문이 아닐 것인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하는,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홍길동이 탄생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핵심은 정부당국과 주류 언론이 만들어 놓은 공식적 정보 접근 과정에서 이들이 배제될 것이라는 점이다. 결국, 등록 요건 강화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운운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공공 정보에 대해 접근권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규제하겠다는 발상으로 언론자유에 대한 심각한 역행인 것이다.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까지 통제하겠다는 일련의 기획들
한걸음 더 나아가 짚어보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최근 인터넷 공간의 문제를 이슈화하고 이를 공략하는 정부여당의 행보를 보면, 인터넷 여론까지 통제하겠다는 거대 기획이 진행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이버 명예훼손 심의규정 개정안을 내놓았다. 명예훼손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해 또는 방송통신심위위원회가 직접 심의에 착수해 명예훼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게시물을 차단, 삭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높으신 분이나 가지신 분'들을 언짢게 하는 못마땅한 게시물들은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요청으로도 심의하고 삭제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지난 9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부여당의 포털 다잡기도 그렇다. 새누리당 싱크탱크가 발주한 관제 보고서를 바탕으로 여당 대표가 포문을 열고 보수언론이 뒷받침하는 가운데 국정감사를 통해 연일 포털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보수진영의 정치적 이해와 보수언론의 시장적 이해가 팀워크를 이뤄 포털 손보기를 하고 있음이다. 여기에 한편으로 등록요건을 강화해 인터넷신문을 규제하겠다는 것이다. 각각의 각론을 합치면 결국 인터넷 공간의 여론마저 통제하겠다는 보수진영의 거대 기획이 드러난다.
방송은 이미 장악되어 있는 상태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통해 그리고 2008년 미디어법 개악을 바탕으로 탄생한 종편들을 통해 방송을 통제하고 있는 보수진영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소통 공간인 인터넷은 어찌 할 수 없었던 것이 그들의 안타까움이었다.
그러기에 인터넷 여론마저 통제하고 싶은 것이 보수정권과 보수 언론의 바람이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과 행정력을 동원해 이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 최근 보이는 일련의 움직임이다. 방송장악에 이어 인터넷 여론까지 통제하겠다는 기획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설악산·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논란 831경향
케이블카 설치 후 초록의 권금성은‘민둥 암벽’ 됐다
ㆍ토사 유출돼 바위틈서 자라던 나무·풀 사라져
ㆍ44년간 박근혜 대통령 형부 일가가 사업 독점
ㆍ연 40억대 수익에도 환경보전기금 부담 ‘0원’
강원 속초시 설악산 해발 860m에 위치한 고려시대 산성인 권금성 터. 성벽은 사라졌지만 한때 이 일대에는 크고 작은 수풀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까지 케이블카가 40여년간 운행되면서 일대는 민둥산으로 변했다. 케이블카 운영업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척이다.
설악산 권금성의 1960년대 모습. 바위틈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로 일대가 초록빛을 띤다. 사진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제공
설악녹색연합 등이 확보한 1960년대 권금성 일대의 사진과 최근 모습을 비교해 보면 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 바위틈에서 자라던 각종 나무와 초본류들이 사라져 민둥 암벽으로 변해 버린 사실이 쉽게 확인된다. 환경단체들은 이를 근거로 10여년 전부터 권금성 일대에 대한 생태훼손 문제를 제기하며 관계기관에 복원작업을 서둘러줄 것을 촉구해 왔다. 이후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은 2011년 서울시립대 연구팀에 의뢰해 권금성 일대의 생태복원을 위한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당시 권금성 일대 과거 사진을 검토하고, 인근 바위의 식생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한 자료를 모델화해 군락복원에 필요한 식물의 종 등을 정리해 복원계획을 수립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말했다.
설악산 권금성의 케이블카
하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 같은 보고서가 나온 지 4년이 지나도록 아직까지 구체적인 복원작업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부 관계자는 “훼손 원인자 부담 원칙으로 권금성 생태복원 작업을 진행하는 방향으로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올해 말까지 구체적인 설계작업을 마치고, 내년부터 복원작업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설악산 권금성까지 들어선 총 길이 1128m의 케이블카가 처음 운행된 것은 1971년 8월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위인 한병기씨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인 1969년 허가를 받아 1971년 7월 공화당 소속 국회의원이 된 지 한 달 만에 운행을 시작해 특혜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현재 설악산케이블카(주)의 대표는 한씨의 둘째 아들이자 박근혜 대통령의 조카가 맡고 있다. 한씨 일가는 44년간 설악산케이블카를 운행해 오면서 수백억원대의 돈을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용객은 연평균 60여만명에 이른다. 이용료는 어른이 왕복 1만원이다.
설악산 권금성 최근 모습. 1971년부터 케이블카가 운행되면서 이곳은 민둥 암벽으로 변했다. 사진 박그림 설악녹색연합 대표 제공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이 회사는 지난해 43억1264만여원, 2013년 43억9597억원의 당기수익을 올린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회사는 설악산환경보전기금 등을 부담한 적이 없다. 국립공원위원회가 지난 28일 운영수익 15% 또는 매출액의 5%를 설악산환경보전기금으로 조성토록 하는 등 7개 조건을 붙여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승인한 것과 대조적이다.
설악케이블카(주) 윤기순 부사장은 “수년 전 대표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 권금성 생태복원 사업비를 부담할 의사가 있다는 제안을 먼저 했다”며 “협의를 통해 비용부담 비율을 정해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설악녹색연합 박그림 대표는 “권금성은 험난한 지형으로 사실상 케이블카를 이용하지 않고 올라가지 못하는 만큼 생태복원 사업비를 회사 측이 모두 부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이 하루빨리 이해당사자들과 의견을 조율해 복원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명산 ‘설악’ 국가가 망칠 건가 923 경향
홍석환 | 부산대 교수, 세계자연보존연맹 보호지역(IUCN WCPA) 위원
우리나라 자연환경에서 중요한 보호가치가 있는 지역은 단연 설악산이다. 설악산은 1965년 우리나라 최초로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됐으며, 1982년에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2005년에는 한국 최초로 보전의 강도가 매우 높은 소위 ‘국제적 국립공원’이라 하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카테고리Ⅱ로 변경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 핵심지역인 천연보호구역은 IUCN 보호지역 유형 중 가장 엄격히 보호해야 하는 카테고리Ⅰa, Ⅳ로 중복 지정됐다. 또한 2014년에는 체계적 관리 여부의 인증서 격인 IUCN의 ‘그린 리스트(Green list)’ 목록에 전 세계 22개 보호지역과 함께 등록됐다.
설악산은 표면적으로 그 위상에 걸맞게 대내외적으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엄정한 생태계 보전관리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보전노력에 대한 가시적 성과를 거둔 지 1년이 되지 않아 핵심지구를 파괴하는 케이블카 건설사업이 공원위원회를 통과했다. 케이블카는 생물권보전지역의 핵심지구에서 취할 시설이 아니며, IUCN 보호지역 카테고리Ⅰa와 Ⅱ, Ⅳ의 정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제기구가 새롭게 도입한 ‘그린 리스트’에도 위배된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은 ‘보전 목적을 충족할 만큼의 충분한 규모를 갖춘 법적 핵심지역’과 ‘보전 목적을 저해하지 않는 활동만을 요구하는 전이지역’을 포함해야 한다. 설악산은 자연공원법의 자연보전지구, 자연환경지구가 이에 부합되는 것으로 보았으나, 케이블카 설치를 단순히 표결에 의해 승인하는 허술한 관리체계는 유네스코의 생물권보전지역에서는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IUCN 카테고리Ⅰa는 ‘아주 작은 인간의 영향으로도 그 가치가 퇴화될 수 있는 지역’으로 인간의 방문과 이용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학술조사 등 관리기관에서 승인된 최소 인원만이 방문할 수 있는 지역이다. Ⅱ는 ‘생물다양성을 보호하고 생태계 구조와 자연환경의 영속’을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카테고리 Ⅳ는 ‘종 및 서식지의 보호’를 최우선 목적으로 한다. 우리나라 대표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희소한 서식처를 교란하면서 조성되는 소비관광을 위한 영구적 인공구조물은 해당 정의와 목적에 위배된다.
그동안 지정만 해놓고 관리는 뒷전인 페이퍼 보호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IUCN의 ‘그린 리스트’ 제도는 보호지역의 핵심가치에 기반을 두고 평가한다. 이는 설악산이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과 ‘IUCN의 보호지역 카테고리Ⅰa 및 Ⅱ, Ⅳ’로서의 위상에 맞게 실제 관리되는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설악산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해당 유형의 가치기준에 미달하는 정책을 국가가 주도하여 진행하고 있다. 보전 중심으로 중재 역할을 해야 할 국가가 나서서 그 가치를 훼손하고 있으니 ‘그린 리스트’와는 관계가 먼 것이다.
이러한 설악산의 관리는 IUCN 카테고리 Ⅴ에서도 핵심 목적보다는 부가적 목적인 ‘휴양과 관광, 복지, 사회경제활동의 기회 제공’이라는 부분에 근접하게나마 적용할 수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과거 국제적 인증을 위해 노력한 바와 같이 현재의 설악산 관리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생물권보전지역의 유지적정성 재검토와 IUCN 카테고리 Ⅴ로의 전환 또는 목록 제외 요청을 유네스코와 IUCN에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국제사회의 보호지역 관리에 대한 신의가 생기는 것이다.
특히 문화재청과 산림청은 본인들이 스스로 엄정한 관리를 하겠다고 채택한 IUCN 카테고리Ⅰa와 Ⅳ의 위상을 떨어뜨린 환경부의 행태를 보고만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국제사회의 약속에 대해 관련 부처 스스로가 재조정 또는 취소요청을 취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민간에서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제적 신의를 위해 관리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이 현재의 관리실태를 가감없이 해당기관에 제출하기를 바란다. 아울러 환경부의 우를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관은 1억2천만원, 양심 있어라" 심상정의 '호통'923 오마이뉴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심 대표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아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이기권 노동부 장관을 질타한 내용이다. 정부는 이날 국감에 앞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를 잡은 심 대표는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있나? 여기 있는 국회의원들은 (포함)되나 안 되나?"라며 "왜 고액 연봉자는 포함 안 시키나. 왜 장관 (연봉) 1억2천만 원을 다 가져가고 국회의원은 1억4천만 원을 다 받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이나 국회의원, 기업 고위 임원들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연봉) 5000만~6000만 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에게 3천만 원짜리 청년 일자리 만들라고 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 임금 다 받아가나, 양심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며 "(월) 200만 원도 못 받는 940만 명의 노동자들은 졸라 맬 허리띠도 없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게 아니라 목을 조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는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다, 살찐 고양이들의 살을 들어내는 게 고통 분담인 것"이라며 "정부가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5% 수준으로만 실천해도 23만 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졸라 맬 허리띠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고통을 분담하나, 노동자의 목을 조르는 노동부장관은 자격 없다"라고 비판했다.
한겨레사설] 귀담아들어야 할 기후변화에 대한 교황의 발언 924
프란치스코 교황이 20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악수하고 있다. 교황은 이날 카스트로의 자택을 비공식으로 방문해, 서로 책을 교환하는 등 4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바나/AP 연합뉴스
쿠바에 이어 미국을 방문한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계의 심장부에서도 소신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교황은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민감한 정치적 사안인 이민자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특히 교황은 공화당과 다국적기업들이 가장 강력히 반대하는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구상을 ‘용기 있는 일’이라고 칭찬하면서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하는 데 있어 우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의 집’은 지난 6월 교황 자신이 발표한 ‘찬미를 받으소서’란 환경회칙에서 언급한 ‘어머니 지구’를 말한다.
교황은 2013년 즉위 직후부터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비판한 데 이어 ‘환경보호는 비용과 이익을 따지며 다룰 수 없는 것’이라고 사실상 더 강력한 환경규제를 요구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교황은 미국에서 인디언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학대한 스페인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1713~1784)를 성인으로 선포해 미 대륙의 최대 약자인 인디언들로부터 아전인수라는 비난을 사기는 했다. 그러나 이민자 포용과 기후변화에 대한 그의 사회적 발언은 개인적 이익에 민감한 미국인들로부터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성인들의 70% 이상이 교황의 발언에 공감한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적당한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대부분의 지도자들과 달리, 지구 공동선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는 그의 발언이 양심을 깨우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하자’는 교황의 환경회칙과 발언이 가톨릭이나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인가. 물 부족을 일거에 해소하겠다는 4대강 공사가 끝난 지 3년이 넘었지만, 녹조 낀 강물이 현재의 이상 가뭄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우리나라에서 더욱 절실한 얘기다.
더구나 콜롬비아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 51년의 내전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상이 교황의 막후조정으로 급진척될 것이란 관측은 정전협정 6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 공동의 집’이 벼랑 끝을 오가는 우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서 매연 배출량을 속인 폴크스바겐 디젤차의 판매가 금지된 것에 대해 국내 기업이 상대적 이익을 누릴 것이란 점에만 환호할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눈을 뜨게 하는 교황의 물음에도 답해야 할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물려줄 테냐”고 묻고 있다.
교황님, 죄송합니다 / 이용인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년1개월여 전 한국을 방문해 광화문에서 미사를 집전했을 때도 지척에 있던 외교부 기자실에서 텔레비전 생중계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존경하지만, 엄청난 인파 속에 묻혔을 때 발생하는 크고 작은 불편함을 감수할 만큼 열정적이지는 않았다. 종교 담당 기자도 아니어서 편한 마음으로 근처 식당 주인과 ‘오늘 손님 많았냐’며 가벼운 화젯거리로 삼았을 뿐이다.
지난주 일주일 동안 취재차 쿠바에 다녀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 방문 기간과 일부 겹쳐, 환영행사와 아바나 혁명광장 미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차량통제로 아바나의 작열하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30~40분씩 걸어 행사장까지 가야 한 탓에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래도 쿠바의 도로가 좁아 교황을 코앞에서 뵐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행운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쿠바 방문을 취재하면서 교황의 한국 방문이 떠올랐다.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를 격려하는 교황의 쿠바 도착 인사말을 들으며 부러움과 아쉬움이 커졌다. 1년여 전 한국에 도착해 “한반도 평화를 마음속에 담아왔다”는 교황의 귀한 말씀을 우리는 진정으로 마음속에 담지 못했다. 교황의 한국 방문 이후 대결적 남북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한 것이 없었고, 변동성은 되레 커져 있다. 교황이 북한까지 방문했다면, 아니 개성공단이라도 방문했다면, 최소한 판문점이라도 방문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마저 떠올랐다.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념적 대립과 가난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르헨티나의 빈민가에서 사역하던 그가 중남미 가난의 구조적·이념적 측면에 눈을 뜬 것은 1998년 1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쿠바 방문이었다고 한다. 그는 피델 카스트로 정권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 체제를 비판했지만, 반미 사회주의 정권이라는 이유로 유례없이 강도 높은 제재를 쿠바에 가한 미국 정부에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사실, 적대국가에 대한 제재는 이론적으로는 사치품 등의 수입을 막아 정권의 핵심 엘리트들을 옥죄기 위한 수단이지만, 현실은 제재를 당하는 국가 주민들의 극심한 생활고로 이어진다. 내전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던 수단을 5년 전 방문했을 때 하루 150달러짜리 호텔에서 모닝빵과 계란프라이, 생토마토, 우유 1잔 등만 있던 ‘1식3찬’의 아침 뷔페를 보면서 든 생각이었다. 지금 쿠바는 수단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아 보였지만, 90년대 초에는 ‘평화시의 특별기간’을 선포하며 처절한 생존투쟁을 벌였다.
교황은 이념적 대립이 할퀴고 간 가난한 중남미의 현실과 그 정점에 있던 쿠바 문제를 자신이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로 여겼던 듯하다. 그가 ‘정치적 행보’라는 일부 보수세력의 비판을 받으면서도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에 정성을 기울인 이유이다. 그가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열린 미사에서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설파한 것은 ‘우회적으로 쿠바 정부를 비판한 것’이라는 서구 언론의 얄팍한 해석을 뛰어넘는, 훨씬 더 깊고 깊은 오랜 고민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이라는 소중한 기회를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디딤돌로 삼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교황 방문기간이었던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 하천과 산림 공동관리, 환경공동체 형성, 민생인프라 협력, 북한 지하자원 개발 등 숱한 제안들을 쏟아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시작이라도 한 게 있는가. 다분히 교황의 방문을 의식한 말잔치였음이 지난 1년간의 남북관계 성적표는 보여주고 있다. 교황님께 죄송하다.
교황 애마의 조건, 작거나 낡았거나 924한국
美서 방탄용 벤츠 거절, 피아트 선택
방한 땐 "한국서 가장 작은 차 원해"
빈부격차·기후변화 관심
지난해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아 쏘울 승용차를 타고 이동했다. 홍인기기자 hongik@hk.co.kr
미국 방문을 시작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22일 메릴랜드주 앤드류 공군기지에 도착해 오바마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후 소형차인 피아트 500L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메릴랜드 AP=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대형 승용차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도 역시 소형차를 선택했다. 22일 워싱턴D.C. 인근 메릴랜드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교황은 오바마 대통령 가족의 영접을 받은 뒤 이탈리아산 소형차 검은색 ‘피아트 500L’에 탑승해 이동했다. 피아트 500L은 배기량 1,400㏄로 미국에서 2,000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다.
미국 쪽에서 교황을 위해 당초 준비하려던 차량은 방탄 기능을 갖춘 메르세데스 벤츠였다. 교황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방탄차는 유리로 만든 정어리 통조림 같은데다 사람들과 섞이는 걸 방해한다”고 말했다. 암살 위험에 대해서도 “내 나이면 잃을 것도 없다”며 “결국 하느님의 손에 달린 일”이라고 태연해했다.
교황은 지난해 한국 방문 때도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며 기아차 ‘쏘울’(1,600㏄)을 선택했다. 바티칸에선 배기량 1,600㏄의 파란색 포드 ‘포커스’를 직접 운전해 이동한다. 검소한 생활을 해온 그는 아르헨티나 대주교 시절에도 운전기사를 따로 두지 않고 직접 운전했다. 최측근인 신부가 극빈층 거주지역을 방문할 때 쓰던 1984년식 중고차 르노4를 선물 받아 타기도 했다.
교황이 사랑한 소형차들
여러 소형차 중에서도 교황이 해외 방문 때 가장 즐겨 타는 건 피아트다. 2013년 7월 브라질 방문 때는 피아트의 1,600㏄ ‘아이디어’를 탔고, 지난 6월 남미 순방 때 에콰도르에서도 이 차를 이용했다. 지난해 11월 터키 방문 때는 르노의 소형 은색 세단 ‘클리오’를 탔다. 올 1월 필리핀 마닐라에 갔을 때는 현지의 대표적인 서민 교통수단인 ‘지프니’와 폭스바겐 ‘투란’을 이용했다. 미국으로 향하기 전 쿠바에선 푸조의 픽업트럭 ‘호가’를 개조한 차를 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소형차를 고집하는 걸까. 역대 다른 교황과 구별되는 서민적인 행보에다 빈부격차, 기후변화 등의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다. 교황은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내가 전하는 경제적 평등과 기후 변화에 관한 대응 방안은 모두 교회의 가르침 안에 있는 것”이라고 자신의 신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가족이 모이면 갈등도 모이기 마련이다. 평소 부모 부양, 재산분할, 대소사에 대한 의견 충돌 등으로 불편한 감정을 참아오다가 명절을 계기로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감정이 폭발하는 일은 흔하다. 게다가 최근 명절 중 가족간 사소한 다툼이 강력범죄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은 이번 추석부터 ‘특별관리’를 예고하기도 했다(▶관련기사). 얼굴을 붉히는 ‘참사’를 막으려면, 묵은 갈등은 꺼내지 않는 것이 좋다. 김 소장은 “많은 사람이 모인 만큼 가족간 갈등 문제를 꺼내놓는 경우가 많은데, 경우에 따라 갈등 당사자끼리 대화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여러 사람의 간섭과 훈수가 더해져 오히려 사태 악화를 부를 수 있다”면서 “과거의 섭섭함을 토로하기 보다 ‘앞으로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4. 잔소리 대신 덕담을
평소 관계가 소원했던 친척끼리 덕담을 나누고 싶을 때는 외모를 칭찬하자. “의젓해졌구나” “멋있어졌구나” “예뻐졌구나” “건강해 보인다” 등 외모를 칭찬하는 말은 ‘그 동안 잘 지냈구나’라는 칭찬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김 소장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으로부터 ‘연봉은 얼마나 올랐니’ ‘아이는 언제 낳니’ ‘결혼은 언제 하니’ 등의 질문을 받으면 은밀한 사생활의 영역을 침범 당했다고 느끼게 된다”며 “관심이 지나치면 간섭이 되는데 심리적 통제 효과로 오히려 가족간 거리가 더 멀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5. 때로는 ‘모르는 척’이 답
가족이어서 감추고 싶은 비밀도 있는 법이다. 때로는 ‘무관심’이 답일 수 있다. 예컨대 취업 준비에 한창인 조카에게 “어느 곳에 지원했느냐”고 묻기 보다 “열심히 하는 모양인데 쉬어 가면서 하라”고 격려하거나, 불편한 대화 주제는 아예 꺼내지 않는 게 좋다. 김 소장은 “윗사람은 안타까운 마음에서 꺼낸 얘기가 오히려 ‘너 왜 아직도 취업 못하니? 너 참 못났다’는 비난의 말로 들려 아랫사람은 상처를 받을 수 있다”며 “인생의 난관에 부딪힌 가족에게는 실패한 원인을 캐묻고 추궁하기 보다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 예능이 정부의 광고였어? 923시사인
지난해 11월21일 방송된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 카페 밖으로 보이는 부산 광안대교를 배경으로 탤런트 김용건씨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다. 그는 탤런트 김광규씨, 가수 육중완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자세, 반말 투의 자연스러운 대사…. 아무리 봐도 연예인 선후배들이 모여앉아 수다를 떠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육중완·김광규씨는 요즘 부쩍 인기를 얻으면서 감당하게 된 ‘고된 노동’에 대해 토로한다. 육씨에게 그 소파는 “계속 일하다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는 자리다(사실 그는 한창 ‘노동’하는 중이다). 김씨는 “일은 많아서 행복한데 매일 새벽에 들어가니… 내가 일하는 기계인가~”라고 한탄한다. 김용건씨는 대안을 제시한다.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오히려 비능률적이래. 열 몇 시간씩 야근하면 뭐하냐고. 피로가 누적되면 더 비능률적이라는 거지. ‘일가양득’이라는 말이 있잖아. 일과 가정을 둘 다 취한다는 뜻이지. 일할 때는 스마트하게~ 생활은 또 스마일하게 미소 지으면서~.”
김용건씨가 언급한 ‘일가(家)양득’은 ‘일과 가정이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의미다. 그런데 이 일가양득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다른 방송에도 등장한다. 지난해 12월1일 방영된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직장인 고민 특집’. 개그맨 신동엽씨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방송을 시작한다. “일과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그래서 일가양득, 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뤄야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는 말도 있어요. 직장인들의 고민 사연을 받았죠.” 신동엽씨의 상체 밑으로 ‘일가양득-일과 가정이 균형을 이루어야 우리 모두 행복해진다’ 따위 자막이 흘러간다. 그리고 ‘일만 하는 아빠를 말려달라’는 딸의 메시지 등 일반 국민의 관련 고민과 사연이 뒤를 잇는다.
서로 다른 방송사의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일가양득’을 외쳤다. 일家양득은 고용노동부의 캠페인이다. 방송뿐 아니라 신문도 고용노동부 협찬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기사들이다.
일가양득은 사자성어인 일거양득(一擧兩得)을 조금 비틀어 조립한 신조어다. 이 말을 누가 만들고, 누가 퍼뜨렸을까? 방송사들이 제작자가 표시된 ‘일가양득 광고’를 정식 프로그램 사이에 끼워 송출했다면, 시청자들은 누가 어떤 의도로 그 용어를 전파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방송사의 서로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모아 ‘일가양득’을 부르짖었다.
KBS가 2014년 12월15일 ㄱ홍보대행사에 보낸 공문 <대한민국 토크쇼 안녕하세요-‘직장인 특집 일가양득’ 편 협찬금 4000만원 지급 요청>에 따르면, ㄱ대행사는 KBS의 정규 편성 프로그램에 ‘일가양득’의 내용을 녹여 송출해달라고 요청했다. KBS는 요청을 수행한 뒤 그 대가인 4000만원을 지급하라고 ㄱ대행사에 공문을 보냈다.
그런데 ㄱ업체는 홍보‘대행사’일 뿐이다. 다른 누군가의 의지를 ‘대행’했다는 의미다. 바로 고용노동부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2월부터 ‘일가양득’ 캠페인을 전개해왔다. 인기 탤런트·가수·개그맨 등이 자신의 개인 의견인 양 편하게 내놓은 발언 뒤에 고용노동부가 숨어 있었다. 광고가 아닌 것처럼 꾸몄지만 사실상 광고다.
지난해 2월17일 고용노동부와 ㄱ대행사는 총 19억원짜리 계약인 ‘(20)14년 고용노동부 일하는 방식·문화개선 등 주요 정책 통합홍보’를 체결했다. 고용노동부가 ㄱ대행사에 보낸 ‘지시서’에 따르면, 이 홍보대행사의 과업은 ‘고용률 70% 달성 및 창조경제 확산’ ‘장시간 근로 개선 및 비정규직 차별 개선’ ‘일가양득 공감하는 비전·메시지 개발 및 전파’ 등이다. 국민들이 고용노동부의 정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과업의 핵심 목표다.
만약 고용노동부가 ㄱ대행사에 지시한 것이 ‘방송이나 신문용 광고의 제작’과 이 광고들을 게재하기 위한 언론 섭외라면 별 문제가 없다. 광고란, 광고주(기업이나 정부)의 의지를 대중에게 관철시키기 위한 ‘홍보물’이고 이 사실을 시청자(독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지시’는 ‘뉴스 보도를 통한 문제 제기, 예능·교양(프로그램)을 통한 메시지 확산’을 겨냥하고 있다. 인쇄매체의 기사나 방송 프로그램을 돈(세금이다) 주고 산다는 의미에서, 사실상 ‘청부 기사·방송’이다.
<시사IN>은 새정치민주연합 한정애 의원실을 통해 2014년 고용노동부가 언론사 기사와 프로그램에 ‘협찬’한 내역을 확보했다. 고용노동부와 홍보대행사 간 계약서(2014∼2015년), 홍보 용역 결과 보고서, 해당 기사 리스트, 언론사 내부 공문, 언론사가 대행사에 발행한 세금계산서 등의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2014년 고용노동부는 홍보대행사 10곳과 용역 계약을 맺었다. ‘일가양득 캠페인-고용총괄(11억5000만원)’ ‘노사협력(2억원)’ ‘임금 근로시간(2억5000만원)’ ‘차별 개선(3억원)’ 등 지난해에만 총 61억8700만원을 정책 홍보에 썼다.
정부와 기업은, 이런 기사·방송의 예산을 광고비와 별도인 ‘협찬비’라는 항목으로 기록한다. 사실 협찬은 언론계의 오래된 관행이다. 협찬은 광고와 달리 ‘협찬주’를 위한 내용이 해당 매체의 보도나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종의 ‘선의의 기부’에 가깝다. 다만 협찬을 받은 언론사는 보도와 프로그램에 ‘공동기획’이라는 문구나 협찬주의 로고를 넣어 그 사실을 명시해왔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이번 ‘협찬’은 ‘일가양득’ 캠페인의 내용을 방송 프로그램에 포함시켰으며 로고도 ‘생략’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은밀한 광고에 가깝다. 아래 <표>는 2014년 고용노동부의 기획보도 및 방송 집행 내역을 주요 언론사별로 정리한 것이다.
고용노동부의 여론전에 참여한 언론사는 지상파 3사(KBS·MBC·SBS)를 비롯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같은 종합지, <한국경제> 등 경제지, 인터넷 신문 등 다양했다. 채널A를 제외한 종편은 캠페인 광고에 참여했지만 프로그램에 직접 협찬을 받지는 않았다. 이른바 진보 성향의 매체는 포함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기획기사 28건에 대해 3억757만원, <중앙일보>는 14건에 대해 1억881만원(자매지 포함), <한국경제>는 25건에 대해 1억7550만원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국민 생활과 밀접하거나 관심이 높은 정책 현안에 대해 국민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홍보기획사를 통해 언론사의 취재 보도를 지원했다. 턴키 방식으로 계약하기 때문에 홍보대행사와 언론사 간에 기사가 설계된다. 고용노동부는 전체 방향만 설정하고 기사 내용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정해고’ 정책 알리는 세련된 수법?
고용노동부의 광고를 홍보해온 대행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정책을 홍보할 목적으로 2000년대부터 언론사를 대상으로 기획보도 및 방송 제작을 ‘지원’했다. 매체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언론 환경이 열악해지면서 돈과 기사 또는 방송 ‘바꾸기’가 본격화했다. 돈을 받고 쓴 기사는 대부분 고용노동부 정책 홍보기사다. ‘말로만 듣던 근로시간 저축제 실제로 써보니 너무 좋네요(<헤럴드경제> 2014년 11월13일자)’ ‘시간제 일자리의 힘, 고급 여성 인력이 돌아온다(<중앙일보> 2014년 3월28일자)’ 따위다. SBS <인기가요>는 가수 악동뮤지션과 위너(WINNER)가 부른 ‘일가양득’ 캠페인송을 송출하면서 2200만원을 받았다. MBC <나 혼자 산다>는 출연진들이 ‘일가양득’에 관해 대화를 나눈 2분30초를 방영한 대가로 2200만원을 받았다.
그나마 ‘일가양득’은 일과 가정의 공존을 겨냥하는 나름 보편적 이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사회적으로 이견이 첨예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동시장 유연화’ 의제에서도 공공자금을 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언론에 관철시켰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관련해 노동계와 마찰을 빚어왔다. 일반해고(공정해고) 요건,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등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저성과자, 업무 부적응자를 해고함으로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겠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정책 방향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경제>는 ‘노동 양극화 풀려면 고용 유연성 높이고 대기업 노조 과보호 깨야(2014년 12월2일)’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 논조의 기획기사 7건에 대해 고용노동부와 계약을 맺은 ㅁ대행사는 <한국경제>에 2200만원을 지급했다. 대행사 내부 자료를 보면, 이 기사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점 진단 및 개선 필요성에 대해 알리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대국민 공감대 형성’이라는 취지로 작성되었다.
2014년 12월8일자 <중앙일보> 기사가 나온 과정을 보자(협찬비 5500만원). 먼저 고용노동부와 홍보대행사가 용역 계약을 맺는다(➊). 이후 홍보대행사는 해당 언론사와 약정서(➋)를 쓰고, 언론사는 기획기사(➌)를 내보낸다. 마지막으로 세금계산서가 발행된다(➍).
2014년 12월8일자 <중앙일보> 기사가 나온 과정을 보자(협찬비 5500만원). 먼저 고용노동부와 홍보대행사가 용역 계약을 맺는다(➊). 이후 홍보대행사는 해당 언론사와 약정서(➋)를 쓰고, 언론사는 기획기사(➌)를 내보낸다. 마지막으로 세금계산서가 발행된다(➍).
<중앙일보>는 ‘정규직 일 못하면 해고 쉽게…비정규직 퇴직금 설움 없게(2014년 12월8일)’ ‘차별 키운 파견근로법 16년…비정규직 600만 넘어(2014년 12월10일)’ 등의 제목으로 임금체계와 관련된 내용을 보도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업무 성과가 부진한 정규직 해고에 대한 규정이 모호해서 부당해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정부가 업무 성과 부진자 해고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해외 사례를 보탠 이 같은 내용의 기획기사 6건에 대해 <중앙일보>는 5500만원을 받았다. 2014년 11월2일 방송된 채널A <일요 기획(35회)>은 3300만원을 받은 대가로 제작된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해당 기획기사를 ‘관리’한 ㅁ대행사는 결과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노사 현안인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부각했다.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등 노사 현안에 대한 적극적인 상호 논의가 필요한 상황에서 전문가 대담 및 칼럼, 우수 해외 사례, 기획보도 등 언론 홍보를 강화했다. 중앙 일간지, 경제지, 경제 주간지 등 타깃을 고려한 다양한 매체의 활용으로 노사 현안에 대한 이해도 제고 및 긍정적인 분위기 확산에 기여했다.”
“사실상 정부가 언론사를 매수하는 꼴”
이 같은 방식의 기사 작성에 참여한 한 언론사 기자는 “임금체계 개편, 노동시장 구조 개선 이슈가 한창이던 때라 취재했다. 우리 매체가 이 같은 논조를 유지해온 터라 그런 차원(광고에 대한 의심 없이)에서 썼다. 기사가 광고비와 연계되어 있는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특별히 언론사에 기사 논조를 언급하지 않는다. 최종적으로 기사 논조에 대한 결정은 해당 매체에서 하는 편이다. 고용노동부에서는 참고 자료를 주는 정도다”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실과 대행사 관계자, 해당 기사를 쓴 기자의 말을 종합하면, 협찬이나 광고 매체를 선별하는 건 대행사의 몫이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먼저 광고를 받고 기사를 주겠다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고용노동부의 돈을 받은 언론사의 경우, 이미지 광고를 ‘서비스’하기도 한다. <동아일보>는 20회에 걸친 기획기사를 내보내면서 2억3000만원을 받았다. 그 대신 550만원짜리 하단 이미지 광고를 7차례 ‘무료 서비스’했다.
심영섭 한국외대 강사(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언론사는 편집과 경영을 분리하는 게 원칙인데 광고성 기사를 거부하기 힘들면 결국 언론의 자유를 침해당하는 일이 생겨도 눈감을 수밖에 없다. 사실상 정부가 언론사를 매수하는 꼴이다”라고 말했다. 한국기자협회 실천요강에는 ‘(기사 작성에서) 광고 강요 행위를 하지 않으며 취재 보도와 연계하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복수의 관계자 증언에 따르면, 기획보도와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할당된 정부의 ‘협찬비’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일반적인 정책 홍보 방식으로 정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기획기사와 방송 제작 지원으로 정책을 홍보하는 건 고용노동부뿐 아니라 모든 부처에서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거라서…. 지적된 부분에 대해 더 이상 문제가 불거지지 않도록 조치하겠다”라고 말했다.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이해 당사자 간 갈등이 첨예한 노동 분야에서 정부 부처가 설득이나 조정 절차를 무시하고 기업 등 한쪽에 치우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 혈세를 집행해왔다. 국민들이 정부 정책과 언론 보도를 믿을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시사IN>은 고용노동부의 방송·기사 협찬 내역이 담긴 자료를 입수했다. 협찬이나 광고임을 밝히지 않고 눈속임한 ‘청부’ 방송과 기사다. 고용노동부의 정책 홍보를 위해 2014년 집행한 금액만 해도 61억원이 넘는다.
아버지는 ‘하늘감옥’에 계셔서 이번 한가위에는 못 오십니다 주간경향
ㆍ고공농성 100일 넘은 세 곳을 가다… 가족 모이는 명절에도 못 내려오는 5인
비가 내려 미끄러웠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70m 상공에 있는 타워크레인 기계실 위에 올라간 강병재 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의장(52)은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경남 거제에 있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진행 중인 강씨는 지난 12일 자신을 찾아온 희망버스 대열을 두 팔을 들어 맞이했다. “춤은 혼자 있을 때도 춥니다. 혼잣말을 중얼중얼거리는 것도 늘었고요. 고공에 혼자 있으니까 아무래도 우울증이 오긴 오는데, 그걸 견뎌내려고 버티는 방법 중 하나지요.” 지난 150여일 동안 강씨에게 춤은 다가오는 외로움과 우울을 떨쳐내려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날의 춤은 달랐다.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작은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띄게 하려는 몸짓이었다.
고공의 가을은 더 빠르다. 비슷한 높이라도 이중·삼중창에 단열재로 마감된 타워팰리스와 타워크레인의 저녁 공기는 천지 차이다. 남쪽 바다 거제라 해서 더 따뜻하지도 않다. 좁은 공간에 몰아치는 바람을 막아주는 것은 차가운 철판뿐이다. 고공의 사정은 어디나 비슷하다. 강씨가 있는 옥포조선소뿐만 아니라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최정명씨(45)와 한규협씨(41),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 올라가 있는 부산합동양조 현장위원회 송복남씨(54)와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조합원 심정보씨(52) 역시 지상보다 앞서서 가을을 맞고 있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강병재씨가 지난 12일 자신을 찾아온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집안 어른들에겐 아직 사실 알리지 않아
9월 18일로 기아차 사내하청 고공농성장이 고공농성 100일째를 맞으며 세 곳의 농성장이 모두 세 자릿수의 농성일자를 기록했다. 거제 옥포조선소 크레인 농성장이 163일, 부산시청 앞 농성장이 156일째다. 각각 4월과 6월 시작했던 농성이 뜨거웠던 여름 내내 이어졌지만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말도 마소. 한여름에는 (기온이) 최고로 올라간 게 48도까지 찍더라니깐.” 송복남씨는 지독했던 여름을 떠올렸다. 고공생활의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져 대상포진으로 고생한 것도 모자라 해결할 길 없는 더위 탓에 열사병으로 보름 가까이를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한 채 버텨야 했다. 심정보씨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더우니까 거의 발가벗고 있었지. 누구한테 보이지는 않으니까. 열사병 걸려 있는 동안 밑에서 올려보내준 각얼음을 머리에 대고 겨우 버텼다 아입니까.” 사방이 막혀 바람 한 자락이 아쉬운 찜통 같은 공간에서 여름 내내 두 사람은 익어갔다.
반대로 사방이 훤히 뚫려 있다고 사정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서울 인권위 건물 옥상 광고탑의 기아차 농성장은 대소변을 가릴 공간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온통 개방돼 있다. 지상에서는 안 보이지만 서울시청·을지로 일대의 빽빽한 고층건물 사무실에선 여과 없이 농성자의 하루를 지켜볼 수 있는 것이다. “대변은 겨우 한쪽 구석을 가려놓고 해결하고, 소변은 페트병에 담아서 모았다가 한 번씩 내려보냅니다.” 최정명씨와 한규협씨 역시 피하기 어려운 뙤약볕에 맞서며 여름을 났다. 하나 있는 그늘막은 그나마 햇볕은 막아 주지만 비라도 내리면 속수무책이다. 밤새 내리는 비를 피하려면 이불 대신 비닐을 머리 위까지 덮어쓰고 자야 하는 실정이다.
어느새 추석 명절이 가까워 오는 무렵까지 농성은 이어지고 있지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답답한 것은 가족이다. 심정보씨는 고공농성을 시작하러 광고탑에 오를 때 아내와 딸에게 묻지도 않고 장기투쟁을 결심한 ‘상남자’였다. 그것도 미안하지만 아직 농성 사실을 알리지 않은 집안 어르신들과 친척 앞에서 아내와 딸이 아버지의 부재를 어떤 핑계를 대며 설명해야 할지 몰라 더욱 난처해진다. “내 처지를 이해하면서도 아직은 섭섭한 마음이 있을 낍니더. ‘왜 아빠여야 하는지’, ‘그걸 왜 말도 안 하고 시작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해는 하지만 차마 계속하라고 말은 못하겠다고 하데요.” 심씨의 부인은 멀리 인천에서 가게를 하느라 부산의 농성장까지 자주 들르기도 어렵다. 그나마 온 식구가 얼굴을 마주할 날인 명절마저 올해는 이렇게 보내고 말 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옥상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한규협씨(왼쪽)와 최정명씨. / 기아차노조 화성사내하청분회 제공
양친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에게 고공농성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농성자들 모두 같았다. 장손이라 추석 차례를 올려야 할 송복남씨도 이만저만 고민이 되는 게 아니다. 여든을 넘은 양친께는 그저 파업이 길어지고 있다고 변명했지만 언제 들통날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그나마 서울에 있는 두 자녀를 먼 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게 명절의 위안이다.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송씨의 아들 송창원씨(25)는 “사진으로만 아버지 농성 모습을 보다가 처음 직접 뵈러 갔을 때는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이번 추석에는 집안에서 아버지의 빈 자리를 제가 대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강병재씨 역시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딸뿐이다. 강씨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을 두고 두 차례나 집을 비웠다. 처음으로 올랐던 곳은 15만 볼트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이었다. 딸이 중학교 2학년이던 2011년 88일 동안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로부터 2012년 말까지 협력사 임용을 약속받았다. 2007년부터 대우조선 내의 하청노동자들을 모아 조직위원회를 꾸렸다는 이유로 2009년 해고된 지 3년 만에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사내협력사협의회 대표가 바뀌자 약속은 없었던 일인 것처럼 무시당했다. 원래 다니던 하청업체가 폐업한 것도,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도 ‘원청’인 대우조선이 책임질 일이라고 외쳤지만 반응은 없었다. 강씨는 딸을 혼자 두고서라도 다시 크레인으로 올라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명절이 아니더라도 강씨는 늘 딸이 걱정이고, 또 미안하다. “우리 부모님도 비정규직이었고, 나도 비정규직으로 살아왔고, 이제 앞으로 우리 자식도 똑같이 비정규직을 대물림받을 게 뻔한 세상은 잘못된 것 아닙니까.” 아침 일찍부터 밤 10시가 넘어서까지 수업에, 야간 자율학습에 시달리면서 자기가 바라는 꿈과 삶으로부터 멀어지는 딸과 또래들을 보면 강씨는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우조선 노조와 하청조직위에서 한 번씩 집에 들러 딸이 먹을 것을 챙겨주곤 한다. 하지만 부모가 없는 텅빈 집에서 혼자 힘든 고3 시절을 보내는 딸을 챙겨주지 못한 강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화로 마음을 전하는 것뿐이다.
“가족이 걱정되고 늘 미안합니다”
다른 농성장과 달리 혼자서 진행하고 있는 농성이라 강씨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관리할 방법을 찾고 있다. 크레인 주변을 오가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도 자기관리이자 조직관리의 일부다. 작은 핸드마이크로 외치는 구호는 하늘에서 흩어져 땅 아래에선 명확하게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강씨의 목소리를 듣고 손을 흔드는 동료들을 볼 때 완전히 고립된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낀다. “아래에선 뭐라고 소릴 질러도 여기까지 안 들리지요. 결국 나 혼자 말하는 거지만 그렇게 혼잣말이라도 해야겠더라고요.” 강씨는 아직 하청노동자들로 구성된 노조를 세울 만한 조직은 갖춰지지 못했지만 이렇게 고공에라도 올라와야 복직 여부를 떠나 조직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쉽게 내려갈 수 없다고 말했다.
농성 기간 중의 자기관리가 본인의 건강은 물론 교섭과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도 운동은 필수적이다. 기아차 사내하청 고공농성장은 한밤중에 찬 바람이 불어도 두 사람이 붙어서 서로의 체온으로 버티기도 힘들 정도로 폭이 좁은 구조다. 할 수 있는 운동도 앉았다 일어나기, 팔 굽혀펴기 같은 맨몸운동 몇 가지뿐이다. “처음 올라와선 까딱하면 떨어질 것 같은 고공 멀미 때문에 아찔아찔하고 어지러워서 잘 움직이지도 못 했죠. 먼저 고공농성을 경험한 선배들이 몸관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충고해 줘서 지금은 정해진 시간 잘 지키면서 운동하고 있어요.” 최정명씨는 지난 100일 동안 고공생활에는 적응했지만 어린 두 자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은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 힘들다.
일찍 결혼해 큰애가 벌써 21살이나 됐지만 5살짜리 막내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은 한규협씨도 같다. 세 자녀 중 이미 장성한 첫째와 둘째는 아버지의 농성을 응원하고 바쁜 어머니를 도와 집안일도 대신할 정도지만, 막내는 비정규직과 해고 같은 말들을 설명하기에 아직 어리다. 주말마다 한씨와 최씨의 부인과 가족들이 음식을 사들고 농성장을 찾곤 하지만 두 가정 다 어린 자녀들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다. 한씨의 부인 김소희씨는 “시부모님은 두 분 다 돌아가셔서 이번 추석에는 처음으로 애들 아빠 없이 산소에 성묘하러 가게 될 것 같다”며 “추석이 지나면 바로 애들 아빠 생일도 다가오는데, 고공에서 생일까지 맞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은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자동차공장 내 사내하청은 불법”이므로 “비정규직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판결했다. 2011년 소송을 제기한 지 3년 만에 나온 결과였다. 그러나 기아차는 올해 3월까지 교섭을 미루다 지난 5월 열린 특별교섭에서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 3400여명 가운데 465명만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겠다는 안을 냈다. 이마저도 소하공장 내 사내하청만을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을 진행해 전면적인 정규직 전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6월부터 두 사람이 고공농성을 시작하자 하청업체는 일방적으로 해고를 결정했다. 광고탑 운영업체가 식사 공급을 방해하면서 두 차례나 일주일간 식사 공급이 끊기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부산시청 앞 광고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택시 노동자 심정보씨(왼쪽)와 탁주 양조 노동자 송복남씨. / 민주노총 부산본부 제공
집에서 아빠를 찾고 있을 5살짜리 막내
기아차 사내하청 농성장의 한규협씨와 최정명씨가 하청업체는 달랐지만 함께 화성공장에서 일했던 데 비해 부산시청 앞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송복남씨와 심정보씨는 일하던 곳도, 가입한 노조도 전혀 달랐다. 송씨는 부산지역에서 ‘생탁’ 막걸리를 제조하는 부산합동양조에서, 심씨는 택시회사인 한남교통에서 일했다. 직장은 달랐지만 복수노조 탓에 교섭권을 얻지 못하는 등의 문제는 두 사람이 일하는 사업장에서 공통된 문제였다. 연차나 휴가를 쓰는 것은 고사하고 식사 대신 고구마를 제공하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생탁 노동자들이 장기간 파업을 진행해 왔지만 사측은 부산일반노조 소속인 생탁 노조원들과는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한남택시 역시 노조원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사납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월급제와 부가세경감분의 현금지급 등을 요구하면서 사측과 맞서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집회를 통해 만난 심씨와 송씨는 함께 고공농성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최정명씨의 표현대로 ‘하늘감옥’에 갇힌 이들은 다가올 명절도 명절이지만 계절이 바뀌면서 더욱 추워질 날씨가 당면한 최대과제다. 세 곳의 농성장 중 두 번의 고공농성을 겪으며 가장 경험이 많은 강병재씨도 고공에서 겨울을 보낸 적은 없다. 2011년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 88일의 농성에 이어 올해 4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농성과정에서 뜨거운 햇볕 때문에 화상까지 입었던 강씨는 또 한 번 혹독한 계절을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인권위 건물과 부산시청 앞 농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바람이 엄청 강해서 들고 왔던 얇은 침낭이 그새 다 낡아 버렸는데, 새 침낭을 올려 보내는 건 시위용품 반입이라고 막고 있어요. 가지고 온 옷을 다 껴입어도 밤이 되면 추운데, 겨울까지 어떻게 버틸지 걱정입니다.” 최정명씨의 말처럼 그나마 여름철에는 더위라도 식혀주던 바람이 추위와 함께 난간도 없는 고공농성장 위 농성자들을 흔드는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강병재씨는 열십자 모양의 타워크레인 가로축인 붐대를 빙빙 돌릴 정도의 강한 바람을 맞으면 심한 두통에 시달릴 정도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긴 고공생활에 몸도 마음도 건강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고공농성자 5인과 가족은 그래도 희망 때문에 버틴다는 말을 전했다. 한규협씨는 농성장에서 발을 다치는 부상으로 치료를 받은 데다 지병인 고혈압 때문에 들고 온 약도 거의 동나가고 있다. 심정보씨와 송복남씨도 각각 심한 습진과 대상포진으로 고생하면서 늦은 밤까지 차도에서 전달되는 진동과 소음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고혈압 증세를 보이고 있다. 심씨는 “그래도 한여름에 비해 요즘 날씨 같으면 농성 잘만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며 “해결될 거란 믿음이 있으니 견디고 버텨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규협씨의 부인인 김소희씨도 “고공에 올라간 뒤로 정규직 지부와 함께 새롭게 교섭도 시작되고 있으니 기아차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해서 불법파견과 비정규직 문제가 하나씩 해결돼 나갔으면 한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해결될 거란 믿음으로 견디고 버텨”
희망버스와 함께 부산시청 앞 농성장을 방문한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과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최광호씨 등 과거 전국 곳곳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던 노동자 12명도 현재 진행 중인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들은 “고공농성을 할 때 우리가 마지막일 것이라 생각하며 농성을 했지만, 그 뒤로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고공으로 올라가고 있다”며 “땅 위에서 싸우지 못해 하늘 위까지 내몰리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농성을 지원하는 지상의 조합원들 생각도 고공의 농성자들을 향한 걱정과 빠른 해결을 바라는 기대뿐이다. 인권위 농성장 건너편인 서울시청 앞에서 자리를 떠나지 않고 농성자들을 지키고 있는 기아차 노조의 최종원 상황실장은 “사실 저도 쉬는 내내 여기 있으니 죽겠어요. 그래도 저 위에 저 사람들도 버티는데 제가 어디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라며 웃었다. 반대로 고공농성자들은 지상에서 농성장을 지키느라 명절을 길거리에서 보내야 할 형편인 노조 동료 조합원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송복남씨는 “비가 쏟아지면 비닐을 덮고 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광고탑 아래에서 홀딱 비를 맞으며 농성장 주변을 지키고 있는 동지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든든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송씨는 4년 전인 2011년 그 역시 부산의 영도 바닷가 크레인 고공농성을 진행했던 김진숙 위원의 말을 그대로 받아 동료들에게 전했다. “버티기 힘들지만 투쟁은 웃으면서 해야지요, 웃으면서!”
모래시계 중산층 희미해지는 희망, 뚜렷해지는 절망 한겨레21 925
중간계급으로 향하는 사다리에 생긴 균열… 박근혜 대통령은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를 공약집 제목으로 내걸었지만 정책에서는 사라진 단어 ‘중산층’, 중산층이 두꺼운 사회로의 전환은 어떻게 이뤄질 수 있을까?
① 중간계급이 사라진다
희망이 있었다. 공부하면 누구나 기회를 얻었다. 노력하면 누구나 잘살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중산층’이라는 이상화된 계층을 통해 희망을 말했다. 노력하면 안정된 수입을 얻고, 아파트를 살 수 있고, 자녀 교육을 위한 투자가 가능한 삶 말이다. 이를 위해 4년제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했고,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한때 이 경쟁이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두꺼운 중산층은 경제성장의 결과물이었고, 중산층의 여유로운 삶이 다시 민주주의와 사회 변화를 일구는 선순환이 이뤄졌다.
그런데 희망으로 가는 길에 균열이 생겼다. 청년들은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 힘들고, 취직해도 안정된 직장을 갖기 힘들다. 40~50대 직장인들은 언제 중산층에서 이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산다. 자녀에게 막대한 교육비를 지출하지만, 자녀들이 자신처럼 중산층이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오르는 집값은 노후를 위해 채워둬야 할 지갑을 털어갔다. 균열은 점점 커져 싱크홀이 됐다.
이제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박근혜 대통령이 3년 전 내놓은 대선 공약집의 제목은 ‘중산층 70% 재건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정부 정책에서 ‘중산층’이란 단어는 사라졌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쉬운 해고’를 도입해 중산층의 핵심인 사무·관리직을 위협하고 있다.
<한겨레21>은 잊혀진 존재가 된 중산층을 다시 살펴봤다. 절벽으로 내몰리는 중산층만 그 지위를 유지하도록 돕자는 게 아니다. 건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의 질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지 길을 찾고자 한다
층이 무너진다
점심시간에 거리로 쏟아져나온 직장인들의 뒷모습. 열심히 회사생활을 해도 ‘중산층’으로 버티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한겨레 강봉규 선임기자
한국 사회의 허리가 흔들리고 있다. ‘계층 상승의 디딤돌’로 여겨지던 중간계급에서 탈락하는 사람이 최근 급속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중간계급의 이탈률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을 겪은 2000년대 초반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 <한겨레21>에 공개한 결과를 보면, 2009년 중간계급이었던 100명 가운데 72명가량만 5년 뒤인 2014년에도 중간계급을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09~2014년 중간계급 유지율 71.81%).
중간계급에는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의사·회계사·교사 등 전문직으로 일하는 사람이나 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임원 등이 포함된다. 중간계급에서 이탈한 28명 가운데 9명은 실업 상태인 비경제활동인구로, 9명은 노동자계급, 7명은 자영업자로 옮겨갔다.
2004~2009년만 해도 중간계급 유지율은 78.72%였고, IMF 위기 직후였던 2000~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79.1%였다. 2009년 이후 갑자기 중간계급 유지율이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셈이다(그래프1 참조).
중간계급’이란 중산층’이 누구인지를 따질 때는 일반적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른다. 전체 가구소득의 한가운데에 있는 소득(중위소득)에 50~150%를 곱한 구간에 있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100가구를 소득별로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인 50번째 가구가 중위소득이며, 50번째 가구의 절반만큼 버는 가구부터 50번째 가구의 1.5배를 버는 가구까지를 중산층이라 할 수 있다. 자산이나 부채, 가구주의 학력이나 직업 등과 상관없이 오로지 소득만을 따지는 방식이다.
<한겨레21>은 기존 중산층 구분 방식 대신에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쓰는 ‘중간계급’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안정적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 학력, 경제적 소득수준 등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이들을 가리켜 ‘중간계급’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직업으로 보면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이나 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임원 등이 중간계급에 해당한다. 이들은 4년제 대학교를 졸업했고 안정적 소득을 올리고 있다. 신 교수는 이번 2000~2014년 노동패널조사 연구에서는 중간계급 이외에도 △자본가(5명 이상 직원 고용) △자영업자(5명 이내 직원 고용) △노동자계급 △실업 상태 △비경제활동인구 등으로 계층을 나눠 분석했다.
|
2009~2014년 중간계급 유지율 크게 하락
반면 노동자의 계급 유지율은 같은 기간 큰 변동이 없었다. 2000~2004년 75.16%가 노동자계급을 유지했고, 2004~2009년 73.6%로 조금 떨어졌다. 2009~2014년엔 76.07%로 다시 반등했다. 유지율 하락이 모든 계급에서 보이는 현상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 분석 결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통계청이 발표하는 공식 중산층 비중은 2014년 70%로 전년(69.7%)보다 늘어났다. 이 비중은 1997년 외환위기 뒤 급락해 2008년 66.3%까지 홀쭉해졌다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중산층이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인 ‘소득수준이 중위소득의 50~150%인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OECD 기준은 중산층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이 많다. 중산층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기 때문이다. 중위소득의 50%는 빈곤율을 따지는 기준선이라서 중산층이라기보다는 잠재적 빈곤층에 가깝다.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으로 삼는 올해 중위소득은 1인 가구 월 156만원, 4인 가구 월 422만원이다. 이는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체감하는 비율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통계청의 계층 의식조사 결과와도 상반된다(그래프2 참조). 통계와 현실 사이에 간극이 크다.
신광영 교수는 조금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 직업을 중심으로 중간계급을 추출했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계급이란 관리직·전문직 등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고학력 △안정된 일자리 △소득 등 3박자를 모두 갖추고 있는 ‘핵심 중산층’으로 볼 수 있다.
신 교수의 연구 결과를 보면, 이 ‘핵심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다. 2000년 이후 서서히 무너졌고, 2009년 이후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앞서 2000~2004년, 2004~2009년, 2009~2014년 등 크게 5년 단위로 끊어서 살펴봤던 분석이 말해주는 바다.
15년 전체를 통틀어 각 계급별 변동을 살펴봐도 중간계급의 이탈률이 가장 컸다. 2000년 중간계급이던 사람(30~59살)이 2014년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추적해봤더니, 중간계급 유지율이 53.38%에 머물렀다. 나머지 16.01%는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고, 자영업(13.1%)을 하거나 노동자계급(13.08%)으로 옮겨간 이도 많았다. 자본가(5명 이상을 고용한 고용주)로 옮겨간 비율은 3.08%에 불과했다. 100명 가운데 53명만이 중간계급 일자리를 유지했다는 이야기다(그래프1 참조).
다른 계급은 중간계급보다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는 비율이 높았다. 자영업자의 55.8%는 15년 뒤에도 자영업을 하고 있었고, 노동자는 58%가 그대로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다. 2000∼2014년 그사이 한국 경제는 격변했다. IMF 구제금융 뒤 신용카드 부채 위기를 거쳐 서브프라임 사태, 유럽의 재정 불안에 따른 불황을 겪었다. 그 15년 동안 중간계급이 가장 많은 변화를 몸으로 겪은 셈이다.
이석균(45·가명)씨도 그랬다. 1994년 보험회사에 입사한 그는 성공한 직장인이었다.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연봉 1억원 가까이를 받았다. 보험회사에서 중간관리자로 일하다가 2011년 명예퇴직한 그는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퇴직금 등을 털어 1억5천만원을 투자해 편의점 사장님이 됐다. 2000년 중간계급으로 있다가 2014년 자영업자가 된 13.1% 가운데 한 명이다.
1968년생 이후, 중산층 진입할 기회 적어
“뉴스테이가 중산층 주거 혁신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지난 9월17일 인천 도화동에서 열린 첫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 착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다. 뉴스테이 임대료는 84m² 기준 보증금 6500만원에 월세 55만원으로, 주변 시세만큼 비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뉴시스
이씨는 1970년생이다. 중간계급에서의 이탈은 ‘나이’에서도 확인된다. 2000년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34살이었다. 15년이 흐른 뒤인 2014년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39살로 조사됐다. 노동패널 표본이 중간에 바뀌거나 보강되는 등 들고 나감이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평균나이가 40살을 넘지 못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신광영 교수는 말한다.
“2000년 중간계급이었던 사람들(평균 34살)이 그대로 중간계급을 유지하면 15년 뒤 중간계급의 평균나이는 49살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39살이 평균이라는 건, 나이가 들수록 상당히 많은 이들이 중간계급에서 탈락했다는 이야기다. 흔히 생각하는 중산층의 이미지는 40대의 안정적인 가장을 생각하지만, 중산층은 30대가 주축이며 40대를 넘어서면 중간계급에 진입하기도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4년 말에 펴낸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1970년생 이후 세대의 중산층 진입 확률이 이전보다 감소했다고 지적한다. 중산층 진입 확률이 세대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았던 이전에는 취업자가 많아 중산층에 잔류하거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많았지만, 이런 취업 효과는 최근 세대로 내려올수록 악화되고 있다. 보고서는 1968년생 이후 세대는 맞벌이를 해도 부부 각각의 소득수준이 낮아 중산층에 진입할 기회가 박탈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2000~2014년 노동패널 가구주의 이동을 추적한 결과를 보면, 중간계급은 15년 동안 다른 계급에 견줘 더 많이 이탈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기준 중간계급이었던 사람(30~59살)이 15년 뒤 중간계급을 유지한 비율은 53.38%였다.
한국 경제와 사회를 떠받치는 ‘허리’가 홀쭉해지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개개인의 삶으로 들어가 살펴봐도 그렇다. 과거 한국 경제 성장의 과실은 자본가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에게도 일부 나눠졌다. 중간계급은 정년을 보장받았고, 10년 이상 일하면 월급을 모아 집도 사고, 자녀를 낳아 교육하는 등 안정된 중산층을 꿈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꿈을 보장받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무너지는 중간계급’은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하나는 중간계급 규모의 축소 또는 이탈, 다른 하나는 중간계급 소득의 저하 또는 양극화다.
1999년 중견 건설업체에 사무직으로 입사한 김정민(44·가명)씨의 첫 연봉은 1800만원이었다. 13년 동안 직장생활을 한 뒤 2012년 퇴사한 그가 받은 마지막 연봉은 5600만원. 그러나 급여가 늘어난 만큼 물가도 올랐고, 외벌이로 가족 넷을 건사해야 하는 만큼 씀씀이도 커졌다.
통계청이 매년 집계하는 생활물가지수(전·월세 포함)는 1999년 68.85에서 2012년 106.46(2010년을 100으로 놓고 계산)으로 올랐다. 10여 년 새 김씨가 소득계층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달라졌다. 대리운전 기사를 거쳐 통신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는 그의 연봉은 현재 3천만원이 채 안 된다.
중간계급인 김씨의 첫 소득은 상위 30%(소득을 10개 분위로 나눴을 때 8분위에 해당)의 평균소득인 1811만원(2000년 기준)과 비슷했다. 그러나 2014년 그의 소득은 겨우 ‘중간’ 수준을 넘는 상위 40~50%(소득 6분위 평균 2851만원~소득 7분위 평균 3485만원)에 위치해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계급을 따진다면, 1부터 10까지 열 개의 계단 중에서 1.5계단 아래로 내려온 셈이다. 1차 원인은 회사 퇴직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지난 15년 동안 김씨뿐만 아니라 중간계급의 소득수준이 전반적으로 하락한 탓이다.
신광영 교수가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중간계급의 평균 연간소득은 2000년 1697만원에서 2014년 3452만원으로 올랐다. 단순 숫자로만 보면 2배가량 늘어난 셈이지만,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중간계급의 처지는 15년 새 뒷걸음쳤다.
점점 줄어드는 중간계급의 평균소득
우선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이 소득 10분위상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살펴보자(그래프3 참조). 2000년에는 1697만원으로 상위 30~40%(소득 7~8분위)에 해당했다. IMF 외환위기 직후라서,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사무직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이 많던 시기였다. 2004년(2458만원)과 세계 금융위기가 덮친 2009년(2966만원)에도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은 상위 30~40% 수준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 단계 아래로 내려앉았다. 2014년 중간계급의 평균소득은 3452만원으로 소득 7분위(3485만원)에 미치지 못한다. 상위 30~40% 수준에서 상위 40~50% 수준으로 중간계급 소득이 하향 이동한 것이다.
반면 중간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격차는 더 커졌다. ‘5명 이상 직원을 둔 회사를 운영한다’고 답해 자본가로 분류된 노동패널의 평균소득은 2000년 3782만원에서 2014년 7728만원으로 늘었다. 이는 2004년에는 상위 10% 이내(소득 10분위), 2009년과 2014년에는 상위 10~20%(소득 9~10분위)에 해당한다. 15년 새 일어난 중간계급의 하향 이동과는 대조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제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중간계급의 상대적 지위는 자본가와는 멀어지고, 노동자계급과는 가까워졌다.
“중위소득 아래쪽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이탈하는 정도가 위쪽 중산층이 고소득층 쪽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양극화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
실제 격차는 더 벌어졌을 수 있다. 노동패널에서 응답한 소득수준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만 따지고 자산소득과 금융소득은 빠져 있어서 건물 임대료나 예금 이자 등을 받는 자산가 또는 부유한 중간계급의 정확한 소득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다른 여러 연구 결과는 중간계급 소득 저하를 뒷받침한다. 흔히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40~50대층의 실질소득이 줄어들었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지난 9월10일 발표한 ‘한국 베이비부머(1995~1963년생) 패널 연구 3차년도 보고서’를 보면, 월평균 실질소득(소비자물가지수를 감안한 실질 근로소득)이 2010년 255만여원에서 2014년 249만원으로 줄었다. 연구소는 베이비부머 4천여 명을 2년마다 추적 조사하고 있다.
신광영 교수의 분석에서 주목할 대목은 중간계급 내에서의 양극화도 심해졌다는 점이다. 같은 중간계급이라고 해도 ‘빈곤한’ 중간계급과 ‘부유한’ 중간계급 사이의 격차가 커졌다. 노동패널 5천 가구의 소득을 10개 구간으로 쪼개서 그 분포를 살펴보면 ‘중간층’의 쇠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중간계급 평균소득이 위치한 소득 6분위와 7분위 내에서 소득수준이 얼마나 고르게 퍼져 있는지를 봤더니, 2000년에는 표준편차가 63 안팎이었으나 2014년에는 170 안팎으로 나타났다.
‘사교육 1번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중산층은 자신의 벌이 가운데 상당액을 교육비로 쓴다. 자녀가 중산층을 유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국노동연구원의 ‘중산층 형성과 재생산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중위소득 아래쪽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이탈하는 정도가 위쪽 중산층이 고소득층 쪽으로 옮겨가는 것보다 양극화에 더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 최근 들어 중산층의 경계 가까이에서 양극단 쪽으로 이동하는 소득분포의 변화가 활발하게 진전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고소득자인 소득 9~10분위에 속하는 중간계급의 비중이 2000년 32.5%였다가 2014년 23.7%로 크게 감소했다. 2000년 중간계급 3명 중 2명이 소득으로 볼 때 상위 20%에 들어갔다면, 2014년에는 상위 20%에 해당하는 중간계급이 4명 중 1명꼴로 줄어든 셈이다. 신광영 교수는 “중간계급이 누렸던 상대적인 지위와 전체적인 프리미엄이 15년 새 상당히 사라졌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부유한’ 중간계급이 가져가는 몫은 더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최상위 1%가 임금 총액의 몇%를 가져가는지를 분석한 연구(홍민기 ‘임금 불평등의 장기 추세(1958~2012): 최상위 분포를 중심으로’)를 보면, 1998년 5%에서 2012년 8%로 최상위 임금노동자의 몫은 점점 커지는 추세다. 국세청 통계를 이용해 분석한 이 자료에서 분류하는 최상위 1% 임금노동자 집단에는 경영·금융 전문가, 의사, 약사, 회계사, 펀드매니저 등의 직업이 속해 있다.
흔들리는 사다리의 꼭대기에 서서
박기준(50·가명)씨는 대표적인 최상위 1%다. 지난해 대기업 계열사 임원이 된 그의 연봉은 세전 1억8천만원에 이른다. 1990년 입사했던 회사에서 그가 받은 연봉은 1천만원이 안 됐다. 지난해 임원이 되면서 급여가 6천만~7천만원가량 순식간에 뛰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여긴다. 상류층은 아니라고 답했다. 왜일까?
‘흔들리는 사다리(중간계급)’의 꼭대기에 서 있기 때문이다. 고용불안과 소득불안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언제까지 이 지위를 지킬지 장담할 수 없는 탓이다. 신광영 교수는 “중산층은 사회 안정과 정치적 진로를 결정하는 집단이다. 중산층을 보면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중산층 혹은 중간계급이라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 자체가 현실적으로 깨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될 거야 아마, 이번 생애는…
계층 상승 관련 설문조사… 젊을수록 노력해도 계층 상승 가능성 낮다고 응답. 자녀의 성공이 어려울 것이라 대답한 비율 중국에 견줘 2배 가까워
추락하는 중산층에 날개는 없다
계층 이동에 성공한 줄 알았지만 어느새 빠르게 밀려난 중산층 3인 인터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주저앉아 다시 일어서기 힘든 한국의 현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분석한 2000~2014년 노동패널 자료는 한국 중산층이 붕괴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진행된 ‘소리 없는 붕괴’는 이석균(45·가명)씨의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겉보기에 그는 어엿한 중산층이지만, 그 속에선 가족 전체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씨는 자영업자다. 서울에서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꼽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문제는 교육비다. 자녀는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이다. 영어·수학 과외를 받는 등 한창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갈 시기다. 한 달에 사교육비로만 150만원을 쓰고 있지만 “아들이 국어도 과외를 받고 싶다는데 형편이 안 돼 못 들어준 게 미안하다”고 이씨는 말했다.
“대기업에서도 주로 비정규직 위주로 뽑아요. 자식이 공부를 못하면 비정규직이 될 확률이 높아지니까 시키는 건데, 글쎄요. 이제는 교육받는다고 저처럼 살 수 있을까요. 요즘 신문에도 나오는 이야기지만 있는 집 자식들만 유리하니까.”
계층 상승의 사다리는 과연 존재하는가
기업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는 회사원, 임원이나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을 일컬어 ‘중간계급’이라고 부른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그가 말하는 ‘있는 집’이란 초상류층을 말한다. 이씨는 어렵게 성장했다. 학비를 마련하려고 고등학교 때부터 중국집 배달, 신문 배달 등을 했다. 어렵게 공부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달동네에 살며 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1994년 마침내 보험회사에 입사했다.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았지만 그는 연봉 1억원 가까이 받는 월급쟁이가 됐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성공한 직장인으로 통했다. 빈곤층에서 중산층으로 진입한 셈이다.
이씨의 삶의 경로는 교육이 계층 상승의 사다리 역할을 했던 시절을 웅변한다. 자녀를 위해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한 것은 이씨 자신의 성장 과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생활자의 지위를 잃어버린 뒤부터 그는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지금도 존재하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지난 9월6일 이씨를 만난 곳은 서울의 한 테니스장 옆 매점이었다. 컨테이너에 들어선 매점 한쪽엔 테니스 용품이, 다른 한쪽엔 음료수 등이 진열돼 있었다. 보험회사에서 중간관리자까지 했던 이씨는 계산기가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이날 이씨는 1200원짜리 물 2통을 배달하기 위해 아침 6시에 출근했다. 2011년 명예퇴직을 결심할 때만 해도 이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 “어차피 일반 대학 출신은 임원 달기가 어려우니까 일찍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회사엔 끌어주는 인맥이 없었죠. 능력대로 되는 거지 그런 게 어디 있느냐 하겠지만 그런 게 많아요.”
그는 17년간 일하던 직장을 떠났다. 명예퇴직을 신청하지 않고 악착같이 버티려는 선배들도 있었지만 그가 회사를 떠난 뒤 얼마 안 돼 거의 정리됐다. 이씨는 퇴직 뒤 편의점 사업에 뛰어들었다. 음식점을 할 만한 요리 기술도 없고, 인테리어 등 초기 비용이 1억원 넘게 드는 프랜차이즈 빵집은 부담이 너무 컸다. 퇴직금 등을 털어 편의점에 1억5천만원을 투자했다.
편의점은 이씨 같은 중간계급 이탈자들이 대거 뛰어든 ‘레드오션’이었다. 이씨는 다른 자영업자와 경쟁해야 했고, 이른바 ‘갑’인 프랜차이즈 본사와도 싸워야 했다. 65(편의점주) 대 35(본사)로 이익을 나누다보니 그가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한 달 200만원 정도였다. 그나마도 음료수 판매량만 전국 편의점 가운데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편의점은 이씨 같은 중간계급 이탈자들이 대거 뛰어든 ‘레드오션’이었다. 이씨는 다른 자영업자와 경쟁해야 했고, 이른바 ‘갑’인 프랜차이즈 본사와도 싸워야 했다. 65(편의점주) 대 35(본사)로 이익을 나누다보니 그가 집에 가져갈 수 있는 수익은 한 달 200만원 정도였다.
그러나 아이들 교육비에, 생활비에 오히려 빚만 늘었다. 아파트는 전세금을 까먹고 보증금 8천만원에 월세 75만원인 반전세로 바꿨다. 이를 악문 이씨는 또 다른 편의점 하나를 확장하려다 실패했다. 빚만 늘린 이씨는 2년 전 테니스숍 운영권을 얻었다. 테니스장 옆 독점사업권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든 것은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많을 때는 월 700만~800만원을 집에 가져간다. 그러나 테니스장이 썰렁해지는 겨울철엔 수입이 뚝 떨어진다. 수입이 많은 것은 한철이고, 그 소득이 많다 해도 갚아야 할 빚이 더 많다. 이미 퇴직금 전부를 사업자금에 쏟아부은 상태다. 내년엔 절벽으로 몰릴 상황이다. 편의점이 있는 건물의 주인은 빌딩으로 재개발하겠다며 내년 4월까지 나가라고 통보했다. 4년 전에 낸 보증금 4천만원은 휴지 조각이 됐다. “편의점 계약 5년이 내년에 종료되거든요. 갱신하면 보통 점주가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니까 억지로 버텼어요. 그런 희망도 사라졌죠.” 이씨는 “법이 그렇다니까 어쩔 수 없는데 제가 운이 정말 없나봐요”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었다. 테니스숍도 내년에 다시 운영권을 받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나도 산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명예퇴직, 구조조정 등으로 중간계급에서 밀려난 이들은 자영업자로 뛰어들거나 케이블TV AS 기사 같은 노동계급으로 옮겨가 살길을 찾는다. 박승화 기자
불과 4년 전 희망퇴직을 택했던 결심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이씨는 이제 와선 헷갈린다. 당시에는 현명한 결심이라 여겼지만, 이제 그는 가정이 해체될까 걱정한다. “빚이 점점 늘어나니까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이야기를 부부끼리 잘 안 해요. 스트레스 받는 걸 서로 피하려 하니까. 이러다 가정이 파탄 나면 (비싼 주거비를 감당해가며 자녀 교육 환경이 좋은) 이곳으로 안 오느니만 못한 거죠.”
그는 노후 준비를 하는 것은 없다고 했다. “불안하죠. 예전에 들었던 연금저축, 주식 같은 거 전부 깼고, 지금 버는 돈도 빚 갚는 데 쓰고 있으니까.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50대들이 산속에서 생활하는 프로그램이 많잖아요. 그걸 보면서 ‘나도 산에 가야 하는 거 아냐’라고 가끔 불안해져요.” 그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자꾸 꺼냈다.
한국의 많은 40대가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나마 편의점과 매점을 운영하는 이씨의 형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다. 김정민(44·가명)씨에겐 그런 유의 자산이 아예 없다. 김씨는 2012년 대기업 관리직의 삶을 끝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3년 만이었다. 다니던 건설회사가 구조조정을 하면서 그도 사표를 썼다. 지금은 케이블TV 애프터서비스(AS) 기사로 일한다. 중간계급에서 노동자계급으로 옮겨간 셈이다.
김씨는 대학 동기들 사이에서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지방 사립대 출신인 그는 외환위기 뒤 채용시장이 얼어붙은 1999년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입사했다.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다가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는데 당시 면접을 보던 건설회사 임원이 ‘따기 힘든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며 좋게 봐줬다”고 김씨는 웃었다. 함께 입사한 동기들은 김씨를 빼고는 모두 서울에 있는 대학 출신이었다.
그는 중견 건설업체에 입사한 뒤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일을 했던 아내와 돈을 모아 2003년에 허름하지만 서울에 있는 아파트도 샀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그는 “결혼할 당시 아내가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해서 샀다”고 했다. 김씨는 한 차례 회사를 옮겼고, 옮긴 회사가 큰 건설업체에 인수되면서 연봉이 뛰었다. 아내는 결혼 뒤 아이가 생기자 직장을 그만두었다. 아들·딸 둘을 낳았고 휴가는 제주도에 있는 고급 호텔로 향했다. 김씨는 중산층을 눈앞에 두었던 전형적인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10대 재벌을 향해 도약하던 회사가 무너지자, 중산층으로 향하던 그도 돌부리에 걸렸다. 그는 3차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를 그만뒀다. 여러 군데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팀장급이 된 김씨가 옮겨갈 만한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규직에서 낙오한 그가 다시 정규직으로 돌아갈 기회는 생기지 않았다. 김씨는 대리운전 기사가 됐다. 대리운전을 하던 중 우연히 만난 손님의 소개로 그는 옷을 갈아입었다. 2013년 1월 김씨는 케이블TV AS 기사가 됐다.
임금 문제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교육비
그래도 그의 수입은 반토막이 난 상태다. 사무관리직으로서 그의 마지막 연봉은 5600만원이었다. 지금은 3천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생활비는 예전에 비하면 아껴쓰죠. 주말에 외식하던 것도 하지 않고, 올해는 휴가 때 어디 가지 않았어요. 아껴쓰다보니 거기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김씨의 생활이 빠듯한 이유는 주거비와 교육비 때문이다. 아파트를 살 때 받은 대출은 김씨가 부모님을 돕는 과정에서 더 늘어났다. 김씨는 월 55만원씩 갚고 있다고 했다. 그나마 “안심전환대출로 바꿔서 55만원은 그대로인데 원금까지 갚아나가고 있다”고 김씨는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4학년인 아들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월 70만~80만원이다. 아이들은 태권도장과 드럼학원, 미술학원을 다니고 학습지를 풀고 있다. 아들은 드럼을 배우고 싶어 했고, 딸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어 하는 것은 학교 등 공교육에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팍팍한 살림에도 김씨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됐다. 주거비와 교육비만 합쳐도 김씨 수입의 대부분을 써야 한다.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내는 일을 시작했다. 약사 보조로 일하는 아내가 월 110만원 정도를 벌자, 수입은 지출과 비슷해졌다.
신광영 교수는 한국 사회의 임금 문제를 논할 때 빠뜨리기 쉬운 게 교육비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안 쓰는 지출이 있다는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게 교육비다. OECD 통계를 보면 한국의 사교육비 비율이 가장 높다. 공적 방식으로 교육을 해결하면 중산층이 누리는 안정된 삶, 높은 삶의 질을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그런 교육비까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박기준(50·가명)씨도 “불안하다”고 했다. 박씨는 서울 강남의 한 고층 빌딩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박씨는 중간계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직장인의 꽃’이라는 임원 직함도 지난해에 달았다. 그에겐 연봉 1억8천만원과 자동차가 따랐다.
3년 전까지 맞벌이를 한 아내와 함께 2009년 서울 시내에 있는 아파트를 장만했다. 단칸방에서 시작해 42평 아파트로 늘렸다. 집을 살 때 받은 대출은 다 갚았다. 두 아이에게 드는 사교육비 170만원은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아이들은 영어와 수학뿐만 아니라,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게끔 동기를 부여하는 프로그램도 듣고 있다. 박씨의 삶은 대한민국 중산층의 꿈일지 모른다. 물려받은 재산이 특별히 없더라도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대학 졸업 뒤 열심히 일해 임원까지 됐다. 그는 출근하기 전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며 건강도 다진다.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매달 250만원을 저축한다. 그런 그는 왜 불안할까.
연봉 1억8천만원 임원, 그도 불안하다
“주위 친구 10명 가운데 두세 명만 지금 직장을 다녀요. 그들도 언제 그만둬야 할지 항상 불안해하죠. 저도 언젠가 퇴사를 하면 아이들을 대학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돈을 벌면서 부담하는 것과 돈을 벌지 않으면서 부담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만 아이들이 나중에 자신을 부양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박씨 자신은 20여 년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그에게 스스로 중산층으로 여기냐고 물었다.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해요.” 상류층은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상류층? 나는 중산층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장 정도 돼야 상류층이죠.”
모두가 몸부림이다. 중산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무너지고 있는데, 중산층에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길은 도처에 있다
[KDI '빈곤취약성' 실증분석] 여성 가구주 빈곤위험 남성의 4배 9.24 내일
비정규직도 자력탈출 힘들어 … "정부지원 교육 직업훈련 위주로 개편해야"
여성이 가구주인 가구 10곳 중 4곳은 빈곤하거나 앞으로 빈곤가구로 전락할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나왔다. 이는 남성이 가구주인 가구에 비해 4배 가량 높은 비율이다. 또 70세 이상 노령가구의 60%는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비정규직의 빈곤위험은 정규직 보다 10배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빈곤 기준은 월평균 최저생계비 이하로 잡았다.
24일 KDI가 내놓은 '한국의 빈곤문제의 동태적 분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여성 가구주 가구의 빈곤취약성은 37.8%로 남성 가구주 가구(9.9%)보다 3.8배 높았다. 남성 가구주 가구보다 여성 가구주 가구가 빈곤으로 전락하거나 빈곤상태에 머무를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빈곤율은 여성 가구주 가구가 39.8%, 남성 가구주 가구가 15.5%로 빈곤취약성 격차가 더 컸다. 남성 가구주 가구의 빈곤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지만 여성 가구주 가구의 빈곤은 구조화됐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보고서는 "여성 가구주의 경우 자력에 의한 빈곤탈출은 기대하기 어려우며 대폭적인 정책개입 없이는 탈빈곤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빈곤취약성이란 미래 한 시점에 빈곤에 빠지거나 머무를 확률을 의미하는 것으로 빈곤보다 더 동태적인 개념이다. KDI는 통계청 등이 실시한 2012년과 201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자료를 활용해 가구주 성별과 연령, 학력, 종사상 지위 등에 따른 미래 소비지출액 수준 등을 계산하는 방식으로 빈곤취약성을 추산했다.
분석결과 여성 가구 외에도 70세 이상 노령가구가 빈곤위험에 매우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층 중에서도 60~69세 가구의 빈곤율은 24.3%, 빈곤취약성은 이보다 낮은 14.4%에 그쳤다. 반면 70세 이상 가구의 빈곤율은 60.2%, 빈곤취약성도 59.8%에 달했다. 70세 이상 가구 10곳 중 6곳은 현재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을 겪고 있고, 앞으로도 빈곤 탈출은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교육수준별로 보면 중졸 이하 가구주 가구에 빈곤이 집중돼 있고, 빈곤위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학계층은 빈곤율이 73.2%, 빈곤취약성은 77.1%에 달했다. 초등학교 학력 계층의 빈곤율과 빈곤취약성은 각각 46.1%와 42.2%였다. 반면 대졸과 대학원 졸업 계층의 빈곤율은 각각 6.1%와 3.6%, 빈곤취약성은 각각 1.7%와 0.7%로 매우 낮았다.
종사상 지위별로는 비정규직의 빈곤율이 29.1%, 빈곤취약성은 24.5%로 빈곤 위험이 컸다. 정규직 빈곤율(7.0%)보다 4배 이상, 빈곤취약성(2.5%)보다 10배 가까이 높았다. 특히 비정규직 중에서도 빈곤가구의 빈곤취약성은 42.4%로 빈곤탈출이 어려운 상태였다. 또 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 중 빈곤가구의 빈곤취약성도 32.4%에 달해 자력으로 빈곤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우진 KDI 연구위원은 "빈곤취약성은 현재 빈곤이 일시적인 것인지, 구조적인 것인지 구분해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일시적 빈곤에 대해선 자금 등을 융자해주고, 구조적인 빈곤계층에게는 교육이나 직업훈련 등을 지원하는 등 정책대응을 달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체 가구의 평균 빈곤취약성도 2012년 14.3%에서 2013년에는 16.3%로 2%p 증가한 것으로 추정됐다.
투박하고 느린 삶, 마트엔 없는 믿음 있죠
경쟁사회 숨통 틔우는 도시부족 926 한국
자금자족 장터·벼룩시장 인기 도시농부 88만명… 3년새 6배로, 자립자족 학교까지 등장
유대와 신뢰가 바탕
급변하는 세태에 지친 현대인, 직접 만들고 교환하며 이웃과 공동체의 행복 느껴
19일 '마르쉐@양재'에서 권지연(오른쪽)씨가 시아버지와 함께 추석용 장아찌 선물세트를 팔고 있다. 도시 장터 마르쉐 소비자였던 권씨는 시어머니 손맛을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판매자로 변신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ookilbo.com
1980년대 후반 서구에서 가치와 취향을 함께 하는 소규모 공동체라는 의미로 태동한 도시부족(Urban Tribe)이란 말은 역설적이다. 경쟁과 소비, 향락 이미지와 원시적 노동, 부조와 협력 이미지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그런데 근래 우리사회에 그런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팍팍한 도시적 삶에 대한 대안문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흐름이 도시농업이다.
경기도 용인의 396.69㎡ 규모 텃밭에서 바질, 열무, 비트 등 각종 채소를 기르는 미국인 그렉 마무네스(44)씨와 한국인 부인은 이웃과 함께 종종 피자, 샌드위치 파티를 연다. 수확물을 나누기 위해서다. 마무네스씨는 이렇게 하고도 남는 유기농 채소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지난 19일 서울 양재동 시민의숲에서 열린 장터 ‘마르쉐@양재’에 나왔다. 그는 “귀한 무공해 채소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 마르쉐와 인연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교류하는 도시 장터인 마르쉐(marche)는 여성환경연대가 기획해 2012년 10월 시작됐다. 마르쉐는 시장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다. 마르쉐에 전치사 at(@)을 붙인 ‘마르쉐@혜화’가 월 1회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서 열리고 있고, 최근에는 명동, 양재 등으로 확장했다. 장이 열릴 때마다 농부와 요리사, 수공예가 등 50여명의 생산자가 판매자로 나선다. 이들 중에는 좁은 경작지에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도시농부들도 많다.
마침 충북 청주시의 농가 대표 30명이 마르쉐를 방문했다. 시장을 둘러본 현명해(50)씨는 “상업농가가 아닌 소규모 자급자족형 농가가 참여하는 직거래 장터는 흔치 않다”며 “농사 규모를 키우지 않아도 무공해로 지은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들과 나눌 수 있는 장터라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마르쉐@양재’가 열린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시간 동안 수백 명이 다녀갔다. 추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이날 마르쉐는 농산물 판매가 활발했다. 상당수 농부들은 준비한 상품을 판매 종료 시간보다 일찍 모두 팔아 치웠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깔린 신뢰와 유대가 엿보였다. 지난해 10월부터 꾸준히 마르쉐를 찾고 있다는 주부 김미경(36)씨는 장터에 들어서면서부터 판매자들과 익숙하다는 듯 눈인사를 건넸다. 그는 “이곳에서 알게 된 농부들로부터 제철 농산물 패키지 상품인 ‘꾸러미’를 배달 받아 써 보니 만족스러웠다”며 “마르쉐 일정이 공지되면 여기서 파는 농산물을 구입하기 위해 대형마트를 들르는 일도 한동안 미룬다”고 말했다.
도시농부의 급증은 예사롭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13년 기준 88만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10년 15만 3,000명과 비교해 6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생계형이기보다 힐링, 자연주의 등 다른 목적이 많다. 서울 생활 12년째로 결혼한 지 4개월 된 회사원 최성희(31)씨는 텃밭이 있는 양옥집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하면서 부추, 상추와 토마토, 바질, 라벤더, 로즈마리 등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는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자급자족의 충족감과 함께 역시 도시 텃밭을 꾸리시는 시부모님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었다”며 “텃밭을 통해 쉴 틈 없이 빠르게 움직이는 도시 생활 속에 지친 심신이 치유되는 경험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은평구에서 내달 여는 ‘자립자족학교’의 등장도 이런 흐름의 한 반영이다. 도시에서의 전원 마을살이를 꿈꾸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대학으로, ‘자연 재료를 이용한 바구니 짜기’, ‘숲과 들의 재료로 차린 밥상’, ‘짚풀로 만드는 공예’ 등의 커리큘럼으로 짜여 있다.
공동체 삶을 추구하는 도시부족이 도시농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고 장터 정도로 여겨졌던 벼룩시장이 취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공동체 공간으로 주목 받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2013년부터 서울 세종문화회관 뒤뜰에서 시작된 ‘세종예술시장 소소’, 2011년부터 서울 영등포 지역 사회적기업의 상품과 서비스 유통 판로를 지원하는 마을 장터로 출발한 ‘달시장’, 서울 이태원 우사단로 계단에서 열리는 ‘계단장’ 등은 대표적인 벼룩시장으로 꼽힌다. 회사원 김선경(39)씨는 아이를 낳고부터 소비과시적 생활방식을 바꿨다. 주변에서 아이 옷을 물려 주는 사람이 많다 보니 소비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해 벼룩시장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에는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벼룩시장에 나가 사회과학 서적 7권을 팔고 아이에게 줄 영어동화책 10권을 구입했다. 김씨는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지만 취향이 비슷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벼룩시장에 나간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에는 얼마 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에코백을 팔아 볼 생각”이라며 “누구나 손쉽게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소비자가 되기도 하는 벼룩시장 같은 도시 장터가 좀 더 많아지고 세분화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정기 벼룩시장만 활성화하고 있는 게 아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는 자신의 소장품 위주로 개별적으로 여는 벼룩시장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주로 외국 출장 길에 구입한 물품이 풍부한 패션 스타일리스트 등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일정을 공지하고 여는 경우가 많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준비 과정이 번거로운 벼룩시장을 여는 주된 이유는 작은 공간에서 취향을 공유하는 매력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 도시부족 간의 거래는 유대와 신뢰가 중요한 바탕이 되는 것도 큰 특징이다. 회사원 황규란(39)씨는 흠집이 난 ‘못난이 사과’를 종종 구입한다. 지인의 SNS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한 과일농원의 상품을 철철이 구입하는 황씨는 “무농약 인증뿐 아니라 농약을 쓰지 않고 농사 짓는 모습을 꾸준히 봐 왔기 때문에 작황이 좋지 않은 해의 과일이나 흠 있는 사과도 무조건 믿고 구입한다”고 말했다. 일련의 도시부족적 경향성은 경쟁사회 피로감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다. 이호 풀뿌리자치연구소 연구위원은 “개인적인 필요나 단순 호기심 등 도시농업이나 직거래 장터를 찾는 구체적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상호부조적 관계망 속에서 대안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파편화하고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는 도시적 삶의 스트레스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말했다.
외곽 주말농장에서 도심 상자텃밭으로-한국의 도시농업
서울 강동구가 분양하는 '둔촌텃밭'
한국 도시농업의 역사는 1992년 주말농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시농업기술센터가 기획하고 서초구에서 시작한 주말농장은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시내 농지 부족 때문에 경기도 양평에 대규모 농장을 조성하면서 접근성 문제 등 한계를 곧 드러냈다. 주말이면 관광객 차량으로 일대가 심각한 교통체증을 겪었고 자연히 주말농장을 찾는 이들의 발길도 뜸해졌다.
2000년대 들어 도시농업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예비 귀농인들의 실습 목적 때문이었다. 2005년 귀농운동단체인 전국귀농운동본부는 제1기 도시농부학교를 열고 경기 안산과 군포, 고양에 실습농장을 마련했는데 귀농자 못지않게 도시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도시농업의 대중적 관심은 쿠바 도시농업의 상징인 ‘오가노포니코(폐자재를 활용한 큰 화분)’를 본뜬 상자텃밭이 보급되면서부터다. 노는 땅이 없는 도시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도시농업의 본격적인 확산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일어난 촛불시위, 가을 배추 한 포기 값이 1만 5,000원까지 급등한 2010년의 배추파동 등 먹을거리에 대한 위기의식 고조가 계기가 됐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자급 욕구를 품게 된 이들이 늘어났다. 여기에 2011년 도시농업육성법이 제정되면서 도시농업은 제도화 흐름을 타게 됐다.
이후 텃밭보급소, 그린플러스연합, 에코11 등 사회적 기업과 청년들로 구성된 파절이(파릇한절믄이)협동조합, 씨앗들협동조합 등이 결성되면서 민간 영역도 탄력을 받고 있다. 안호철 도시농업시민협의회 상임대표는 “식량 자급과 공동체 문화 복원 등 도시농업의 긍정적 가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면서 “하지만 현재 도시농업에 적극적인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주도하는 관의 역할 없이는 일시적인 바람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런던부터 뉴욕까지 마천루마다 녹색 옥상-세계의 도시농업
유행 아닌 시대 흐름
英 토드모든 100년의 역사 자랑
2018년 식량 100% 자급 목표
美선 영부인까지 나서 '경작 중'
파리에도 100여개 텃밭 공동체
지역사회 구심점 역할
환경·도시 생태계 복원 이어져
정보·노동 나누며 유대감 부쩍
개도국선 일자리 창출도
미국 시카고 시청의 옥상 위 정원.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 사이로 조성된 푸른 정원이 삭막함을 덜어낸다. 2000년 조성된 이 녹색지붕은 약 2000㎡ 규모로 150여종의 식물이 재배되고 있다. 지역 명소로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공기정화는 물론 열섬현상 완화 효과도 톡톡하다. 게티 이미지
저명한 프랑스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는 개인주의 시대를 넘어 타인과 관계를 새롭게 맺으며 자연의 신비를 되찾아가는 탈근대 도시인을 ‘도시부족’이라고 명명했다. 그 바탕에는 ‘도시농업’의 세계적인 부상이 있다. 1980년대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먹거리를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에 반대해 직접 텃밭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보편화된 도시농업은 화두가 돼 있다.
지난해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한 캐나다 도시농부 제니퍼 코크럴킹은 “대규모로 식량을 생산해 다른 지역으로 운송 후 소비하는 현 시스템이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을 초래하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공장식 축산을 예로 들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항생제의 70%가 가축에 사용되는 등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설파했다. 더 안전한 농축산물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식량공급 사슬을 줄이기 위해 손에 흙을 묻히길 주저하지 않는다. 거창한 농사는 아니어도 직접 먹거리를 생산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
도시농업이 가장 활성화된 곳은 영국이다.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영국 북부 작은 도시 토드모든은 마을 곳곳에 허브와 채소 등을 가꿀 수 있는 화단을 마련해 놓을 정도로 주민 참여가 적극적이다. 씨앗을 교환하고 관련 정보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 유대감도 끈끈해졌다는 게 현지 언론의 평가다. 토드모든은 가축까지 직접 기르고, 달걀 등 산물을 나누는 등 2018년까지 식량 100% 자급 목표를 세울 정도로 도시농업에 올인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진 런던 지하방공호에 LED 조명을 설치해 샐러리나 파슬리, 겨자잎 등을 수경 재배하는 ‘그로잉 언더그라운드’도 영국의 자랑거리다. 런던에서는 전체 가구의 14%가 정원에 농작물을 기르고 있다. 공공기관의 임대 텃밭을 얻는데 1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다.
도시농업을 발달시킨 쿠바 한 도시 텃밭. 미국의 경제 봉쇄로 식량 부족에 시달리면서 자투리 땅을 이용한 유기농법을 접목해 식량 자급자족을 이뤄냈다. 최근 '유기농 농업 메카'로 세계가 배우고 있다. 캐나다 '도시농부' 홈페이지 캡쳐
산업화에 따라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던 파리의 도시농부들도 최근 소규모 도시농업 활성화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세계의 도시농부들’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파리에는 100여 개의 공동체 텃밭이 꾸려지는 등 기근 등이 몰아친 17세기 후반 도시농부들에 의해 식량 안보가 지켜졌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프랑스 농촌진흥청은 2011년부터 파리 시민이 식량을 자급하기 위한 기술을 연구 중이며, 파리 시립 유기농 농장에서는 민관 협동으로 소 염소 돼지 닭 토끼 등을 함께 키우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정부 지원 하에 도시텃밭 가꾸기가 활발하다. 뉴욕에만 옥상 텃밭을 가진 빌딩이 600개 이상이다.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도 수년째 백악관에 텃밭을 가꾸며 그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미국민들이 건강한 먹거리를 먹도록 독려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미 전역에 큰 파급효과를 냈다. 전미정원협회에 따르면 현재 4,200만 가구(전체의 35% 정도)가 직접 정원 가꾸기를 하고 있다. 시카고에서는 빈민층 청소년들이 농산물 재배부터 판매까지 참여하고, 도시 빈민들이 스스로 농산물을 길러 먹을 수 있도록 버려진 땅을 이용한 농사운동도 한창이다.
독일은 방치된 공용지를 적극 활용한다. 베를린 주민들은 도심의 버려진 땅을 2009년부터 임대해 훌륭한 텃밭으로 만들었는데, 지금은 베를린 대표농장 ‘공주님들의 정원’으로 변신했다. 이곳은 농작물 수확뿐 아니라 녹지공간으로 기능해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도시 속의 작은 정원으로 우리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한 ‘클라인가르텐’은 독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근원이기도 하다. 스트레스에 절은 도시인들이 피로를 씻을 수 있는 주말농장으로 독일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곳곳에서 클라인가르텐을 볼 수 있다. 주정부가 지역협회에 임대하고, 이것을 다시 소속 단지협회나 개인 회원에게 재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정원의 3분의 1 이상 작물로 재배하도록 하고 관리 소홀 시 강제 퇴출되는 등 규정도 엄격하다.
소규모 집약 농업(스핀)이 일반화한 캐나다나 유기농 농업의 메카로 떠오르며 20만명 가까운 도시농부를 배출한 쿠바 등 친환경 도시농업은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가고 있다. 개발도상국은 농산물 저장과 운송이 발달하지 않아 자구책으로 도시농업을 지원 중이다. 볼리비아는 수도 라파스의 빈곤층 1,5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소형 온실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키우는 기술을 전수하는 식으로 도시농부를 양성하고 있다. 아프리카 콩고는 5개 도시에 1,600헥타르의 정원을 조성해 2만명에게 분양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세계 도시농부 숫자는 8억명을 넘어섰다. 도시농업은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발전할 분야라는 게 도시농업 전문가들의 얘기다. 단순히 작물 재배에 그치지 않고 환경, 도시 생태계 복원 등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농촌진흥청 도시농업연구팀 유은하 박사는 “국가별로 도시농업에 대한 접근은 각각의 사정에 따라 전개되고 있으나 농업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공동체회복이나 환경복원 같은 도시화가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상과 어울리기 > 시사만평-주간 쟁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 10.5~10 뻔뻔한 공안의 역습 (0) | 2015.10.06 |
---|---|
9.30~10.3 반기문이 존경받는 리더로 남기위해서 해야 할일 (0) | 2015.10.03 |
9.14~9.19 주류언론의 몰락과 호들갑 정부여당의 ‘포털 개혁’ (0) | 2015.09.18 |
9.7~9.12 금수저 흙수저 그리고 낀세대의 나라 (0) | 2015.09.11 |
8.31~9.5 월 107만원의 생계비…지속가능한 사회운동은 가능한가 (0) | 201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