깻잎따고 장어 키우는 '그들' 없는 한국을 상상해본 적 있나요?
[인력 아닌 인간입니다 ①] '그들'을 부른 것은 '우리'였다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푸릇한 채소와 소‧돼지를 키우는 농촌 마을, 바닷배 띄우는 어촌 마을, 공장이 즐비한 산업 단지, 철 부딪히는 소리 요란한 조선소와 건설 현장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깻잎을 따고 광어를 키운다.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타는 자동차와 배 모두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는 기피하지만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그들의 이름은 '이주노동자'다.
한번 상상해보자. 우리가 기피하던 곳에 있던 이주노동자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 경기 파주 한 비닐하우스 농가에서 이주노동자가 물에 잠긴 비닐하우스 사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도 한때는 이주노동자였다
우리는 오해한다. 우리가 그들을 '받아준'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온' 것이었다. 한국인 기피 사업장에 불러올 이주노동자 인력 규모를 올해 16만5000명으로 늘린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한국 정부였다. 그런데도 한국의 사장님들은 여전히 '일할 사람을 찾기 힘들다'며 더 많은 이주노동자가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 1월 중소제조업체 1200곳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3만5000명의 이주노동자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내가 할 일을 남이 하면 고마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인간 이하 취급하기 일쑤다. 농장에서 가축의 분뇨를 치우다 질식사한 이주노동자, 공장에서 기계를 다루다 손가락이 잘린 이주노동자, 임금 몇 개월 치를 떼먹힌 이주노동자 이야기가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 대부분에 그들의 설움이 녹아있다.
그런데 우리가 잊은 게 하나 있다. 그들의 지금이 우리의 과거였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도 타지에서 설움을 견디며 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산업화 영웅'으로 칭송받는 파독 광부들은 과거 기온이 35도에 달하는 지하 1000미터(m) 깊이 갱도에서 사람 무게만 한 작업 도구를 다루며 피땀을 흘렸다. 파독 간호사들은 시체를 닦는 일을 맡거나, 고되기로 유명한 호스피스 병동에 배정되곤 했다. 그런데도 보통 독일인보다 적은 임금을 받았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당했다. 책 <파독광부생애사>에 따르면, 파독 광부 이문삼 씨는 독일인에게서 "둠(dumm; 바보), 너는 코리아로 가야 돼"라는 말을 들은 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베갯잇을 적셨다고 회상했다. 정승식 씨는 외국인으로서 주택을 임대하기도 힘들었다고 했다. <나는 파독간호사입니다> 책에는 병원에서 근무 중 의사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는 타박을 들어 울며 기숙사로 돌아간 은숙 씨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목숨도 지키지 못했다. 작업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광부가 27명,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간호사가 19명이었다. 죽음마저 감수해야 할 열악한 작업 환경을 견디다 못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작업장 이동을 요구하고, 부당한 임금 체불에 맞서 집단행동을 벌이기도 했다.
▲ 2013년 5월 서울 서초에 문을 연 파독근로자기념관에서 파독 노동자들이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의 삶은 위태롭다
국내총생산(GDP) 100달러 시절에서 3만 달러 시대로 너무 급하게 훌쩍 지나온 탓일까. 파독 노동자들이 만리타향에서 겪은 아픔은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성찰로 이어지지 못한 듯하다. 파독 한국인 노동자들이 겪은 부당한 대우는 마치 대물림하듯 한국 내 이주노동자들에게 옮아갔다. 이주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대한 많은 통계와 조사가 이를 보여준다.
먼저 임금체불. 고용노동부의 올해 1~7월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액은 699억3900만 원으로 전체 임금체불액의 5.7%였다. 이주노동자가 국내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등록자를 기준으로 약 3%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인에 비해 2배가량 임금체불 피해를 더 많이 겪고 있다는 뜻이다.
다음 산업재해. 노동부의 지난해 통계를 보면, 이주노동자 산재사고 사망자는 85명으로 전체 산재사고 사망자의 10.5%였다. 이 역시 이주노동자가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고려해 계산하면, 한국인에 비해 이주노동자가 3배가량 더 많이 죽는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본국에 돌아가 잠복기가 지난 뒤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리고 언어 장벽, 고립된 처지 등 이유로 이주노동자의 체불임금이나 산재 대응이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주노동자의 산재 수치는 이마저도 과소추계된 것일 수 있다.
차별과 갑질, 성희롱은 그들에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국가인권위원회의 2020년 조사를 보면, 이주민 10명 중 7명이 '한국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차별 사유로는 '한국어 능력'(62.3%), '한국인이 아니어서'(56.8%), '출신 국가'(56.8%) 등이 꼽혔다. 한국외국인력지원센터의 2019년 조사를 보면, 여성 이주노동자 10.7%는 '성폭행·성희롱 피해를 당했다'고 했는데, 그 중 '성폭행' 응답이 47.4%였다.
온라인상에는 이주노동자를 향한 혐오가 넘쳐난다. 심지어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중대재해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셀참사피해가족협의회·아리셀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법원이 박순관 아리셀 대표를 구속했을 때 낸 성명에서 "이번 결정은 참사 발생 후 66일을 살아내는 동안 받아온 차별, 혐오, 배제의 말과 시선, 감정의 폭력에 무릎 꿇지 않고 버텨온 시간에 대한 아주 작은 보상"이라고 했다. 아리셀 참사 유족들이 참사 발생 뒤 겪은 일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2019년 12월 서울 동대문구에서 열린 '12.15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 이주노동자 문화제 '우리는 죽으러 오지 않았다'에서 한 방글라데시 여성이 전통 무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노동자 없는 한국은 위태롭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차별과 갑질, 성희롱을 그들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만약 버티지 못하고 그들이 한국을 등진다면, 우리가 기피해왔던 그 자리에 있던 그들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과연 한국 사회에는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매일 식탁에 오르던 깻잎, 맛 좋은 광어와 장어를 우리는 지금처럼 손쉽게 먹을 수 있을까. 가뜩이나 비싸다고 난리인 새 아파트와 새 자동차를 우리는 제 가격에 구매할 수 있을까. 지금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세상이 우리가 꿈꾸던 미래인가.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 나라가 이주노동자 없이는 결코 돌아갈 수 없음을. 그들도 결국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그러니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최용락 기자/이명선 기자/서어리 기자 | 프레시안
尹 "반대한민국 세력" 발언, 배후는 뉴라이트?
[기자의 눈] 친일·뉴라이트 논란 이어 나온 대통령의 '반대세' 언급, 우연일까
광복절 전후부터 한 달간, 정치권의 주요 이슈 중 하나는 '친일 논란'이었다. 8월초 임명된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인사가 불씨가 됐다. 김 관장 임명을 옹호하는 취지에서, 또는 그로 인해 촉발된 '친일 프레임' 논란 속에서 정부·여권 관계자들로부터 "일본 제국주의 시절 조선인 국적은 일본", "1945년 광복을 인정할지 '노 코멘트'하겠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음" 등 유권자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발언이 줄줄이 나왔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모인 공법단체 광복회는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에 선명하게 각을 세웠다. 윤 대통령 죽마고우의 부친이라는 개인적 인연에도 불구하고, 이종찬 광복회장은 "용산 어느 곳에 일제 때 밀정과 같은 존재의 그림자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 광복회장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한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 회장은 특히 '뉴라이트'를 정조준했다. 그는 "뉴라이트들이 주장한 첫 번째가 1948년도에 나라를 세웠고 건국을 했고 그 이전에는 나라가 없었다는 얘기"라며 "뉴라이트라는 것은 현대판 밀정", "신판 친일족"(8.7 MBC 라디오 인터뷰)이라고 했다. 결국 뉴라이트, 친일 논란 속에 광복절 경축식에 국회의장, 야당 대표, 광복회장이 사상 최초로 불참하며 '반쪽 경축식'이 됐다.
'반쪽 광복절'과 김형석·김태효·김문수 등 윤석열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논란성 발언 여파는 '한일관계 회복'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대일정책 기조와 맞물려 '친일·뉴라이트 정권'이라는 야권의 비난 공세로 이어졌다.
물론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여권은 펄쩍 뛰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대국민 국정 브리핑 및 기자회견에서 "나는 솔직히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당시 "뉴라이트를 언급하는 분마다 서로 좀 정의가 다른 것 같다"며 "처음에 '진보적 우파'라는 식으로 들었는데 요새 그동안 제가 본 것과 다른 정의가 이뤄져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덕수 총리도 "미몽에서 깨어나라", "제발 색깔 칠하지 마시라", ""뉴레프트도 있나", "가치가 없는 (논쟁)", "이념이라고 포장하시는 분들의 문제"(9.2 예결위 종합정책질의)라고 하는 등 격하게 부인했다. 한 총리는 뉴라이트를 친일 성향으로 정의하는 데 대해서는 "엉터리 같은 데피니션(definition. 정의)"이라며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 한오섭 전 정무수석, 장제원 전 의원 등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뉴라이트 이력을 지적하는 야당의 질의에 "그 분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그걸 뉴라이트인지 아니지를 왜 알아야 하나"라고까지 했다.
즉 1인자인 대통령은 "뭔지 잘 모르"고, 2인자인 국무총리는 "왜 알아야 하느냐"고 하는데, 정작 바로 그 뉴라이트적 역사 인식을 가진 이들이 국무위원 등 고위직에 줄줄이 임명되고 있는 기묘한 상황인 셈이다. 김형석 관장과 김문수 노동장관에 앞서 지난 6월 임명된 김영호 통일장관도 뉴라이트 활동 이력이 있다.
심지어 대통령 연설문에도 뉴라이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윤 대통령은 논란의 8.15 경축사에서 "자유 사회를 무너뜨리기 위한 허위 선동과 사이비 논리"를 경계하며 "사이비 지식인들은 가짜 뉴스를 상품으로 포장해 유통하며 기득권 이익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중략) 이들이 바로 우리의 앞날을 가로막는 반자유 세력, 반통일 세력"이라고 했다.
광복절 나흘 후 을지국무회의에서는 "우리 사회 내부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반국가세력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고 했다. 재작년 10월의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 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는 말, 지난해 6월 자유총연맹 창립기념식에서 나온 "반국가 세력들은 종전선언을 노래부르고 다녔다"는 말 이후 약 1년2개월 만에 나온 '반국가세력' 언급이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추석연휴 직전인 이달 10일 민주평통 행사에서 나온 대통령 연설이다.
"북한 정권은 아직도 무력에 의한 적화 통일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자유주의의 가치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해 가짜뉴스를 살포하며 거짓 선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는 이러한 선전 선동에 동조하는 반(反)대한민국 세력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력에 맞서 우리가 똘똘 뭉쳐야 되고, 하나된 자유의 힘으로 나라의 미래를 지켜내야 합니다."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는 윤 대통령의 말이 진실이라면, 윤 대통령은 자신의 연설문에 '반대한민국 세력'이라는 표현을 집어넣거나 주변에서 이런 용어를 사용했던 참모들을 우선 의심해봐야 할 듯 하다. '반자유·반통일 세력'이라는 말이 평화적 통일에 대한 철학이라는 측면에서, '반국가세력'이란 말이 민주주의 원리의 측면에서 문제적인 표현이라면, '반대한민국 세력'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문맥, 즉 '레퍼런스'가 있는 용어다.
뉴라이트 운동이 가장 발호했던 때는 2008년 출범한 이명박 정부 시기다. 이때 '현대사상연구회'라는 단체는 <반대세의 비밀>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 발간을 주도한 이가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즉 현직 국정원 직원이었다(국가정보대학원은 국정원 내부 교육기관). 실제로 <반대세의 비밀>은 국정원 정신교육 교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 책은 국방부 장병 정신교육 교재로도 지정됐다. 책 제목인 '반대세'는 바로 '반 대한민국 세력'을 저자가 임의로 줄인 말이다.
<반대세의 비밀>을 국정원 직원 정신교육 교재로 썼던 당시 국정원장은 원세훈 원장이었고, 그는 올해 8.15 특사에 포함돼 사면됐다. 이 정부 들어 국정원장 물망에도 올랐던(작년 11월 김규현 원장 퇴임 당시) 김승연 국정원장 특보는 원세훈 원장 비서실장을 지냈던 이다. 그는 육사 38기로 김용현 국방장관(전 대통령 경호처장)과 동기이기도 하다. 김 장관은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다.
윤석열 정부 고위직, 특히 외교안보라인의 상당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활동했던 이력이 있고 이념적으로는 뉴라이트 계열에 속하거나 그와 가깝게 분류된다. 김영호 통일장관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통일비서관이었고, 김태효 1차장은 대외전략기획관(수석급)이었다.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냈던 김성한 전 실장은 MB정부 외교통상부 2차관을 지냈다.
이들 가운데 '중일마' 발언 당사자인 김태효 차장은 2007년 대선 당시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김 차장은 지난달 국회 운영위에서 이같은 이력을 인정하며 "구태의연한 우파 보수를 벗어나 신선하고 참신한 젊은 우파, 보수 지식인이 되자는 그 말을 듣고 이름을 쓰라고 그랬던 것"이라며 "이후에는 활동한 적이 없다"고 했다.
김영호 장관은 뉴라이트 학자 모임 '뉴라이트 싱크넷' 운영위원장이었고, 일제 식민통치를 "근대문명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근대 국민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두텁게 축적되는 시기"로 묘사한 대안교과서 포럼에도 참여했다.
자신의 참모와 국무위원들의 이같은 이력에도 "뉴라이트가 뭔지 잘 모른다"면, 설마 윤 대통령은 속고 있는 걸까, 아니면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역량 두 가지를 보고 인사를 한" 것뿐인데 우연히 이렇게 된 걸까. 대통령 연설문에 '반대세'를 집어넣은 이는 과연 누구일까.곽재훈 기자 | 프레시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유예론자의 3대 거짓말
내년 1월 시행을 앞둔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를 폐지 또는 유예하려고 온갖 궤변이 난무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와 여당, 금융투자업계와 이들의 선동에 부화뇌동하는 일부 투자자는 금투세 폐지 또는 유예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도 이들에 동조하고 있다. 민주당은 오는 24일 토론회를 열어 내년 금투세 관련 당내 이견을 듣고 당론을 모으기로 했다. 그러나 금투세를 제정하고 시행하기로 한 과정을 보면 왜 이런 토론회가 열려야 하는지 의아할 뿐이다. 금투세 폐지 또는 유예 주장 자체가 억지이기 때문이다.
금투세 폐지론의 근거들 대부분 거짓 또는 침소봉대
금투세 폐지론의 근거는 큰손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를 떠나며 주가지수가 급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폐지론자들은 금융소득이 5000만 원 이상인 과세 대상 투자자는 전체 개인투자자의 1% 정도지만 이들의 투자금 비중은 50%가 넘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주식 양도 차익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면 증시에서 자금을 빼 부동산 등 다른 곳으로 투자처를 옮길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투세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요인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폐지론자들은 또 주식 투자자의 1%에만 과세하는데도 언젠가는 일반 투자자들도 세금을 내야 하는 것처럼 선동하기도 한다. 미래에 주식 투자로 큰 이익을 얻으면 세금을 내야 한다는 점에서 중산층 세금이 될 것이라는 논리다. 서울 일부 지역 아파트 가격이 크게 올랐으니 상속세와 종합부동산세 기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금투세에 ‘이재명세’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작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금투세 시행을 유예하거나 과세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는데도 말이다. 그 속셈과 의도는 명백하다. 금투세는 주식과 채권, 파생상품 투자 등으로 발생한 일정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소득세의 일종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라는 조세원칙에 충실한 세금이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이재명세'라며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금투세=이재명세’는 악질적 정치 선동
금투세 폐지 또는 유예론자들은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하거나 완전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증시 폭락, 이재명세, 중산층 세금이라는 궤변이 대표적이다. 이중 가장 근거가 없는 100% 거짓말은 ‘이재명세’라는 주장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기어이 금투세 폐지라는 국민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금투세의 또 다른 이름은 ‘이재명세’가 될 수밖에 없다”고 썼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거짓 선동일 뿐이다. 자본시장 선진국 중에 한국처럼 주식 매매차익에 비과세하는 곳은 거의 없다. 국내에서 주식 양도 차익에 세금을 물리지 않았던 이유는 주식시장이 처음 생겼을 때 주식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양도세를 부과하지 않는 대신 주식을 팔 때 내는 증권거래세를 도입했다. 주식 투자로 손실을 봐도 내야 하는 세금이 증권거래세다. 통행세 성격의 후진적 세금이다. 자본시장 선진화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지난 2020년 금투세를 제정할 때 당시 여당인 민주당은 물론 야당인 국민의힘도 국내 자본시장의 이런 불합리한 점을 개선할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래서 증권거래세를 점진적으로 낮춰 궁극적으로 폐지하고, 자본시장 선진국들처럼 금투세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며 국민의힘이 말을 바꿨다. 코로나19 펜데믹 여파로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하고 주식 투자자의 반발을 의식해 2023년 1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던 금투세를 2년 유예하자고 했다. 여기에 민주당이 동의하며 시행이 2025년으로 연기된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 개요. 연합뉴스
국민의힘 2년 전 금투세 2025년 1월 시행 합의
지난 2022년 12월 22일 당시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금투세를 꼭 시행하기로 합의문까지 발표했다. 여야는 금투세 시행을 2년만 유예하되 그때까지 대주주에 대한 주식 양도소득세는 현행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코스피 상장사 지분을 1% 이상 혹은 코스닥 상장사 지분을 2% 이상 보유하거나 보유금액이 10억 원이 넘으면 대주주로 분류해 20~25%의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데 이 제도에 손을 대지 않기로 한 조건으로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금투세 시행 연기 요구를 수용했다. 이때 금융투자업계는 여야 합의를 환영했다. 그 이유로 '불확실성 해소'를 꼽았다. 이런 과거 이야기를 깡그리 무시하고 금투세를 ’이재명세‘라고 하는 것은 악질적 정치 선동일 뿐이다.
증시가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하고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부풀리는 방식의 거짓말로 볼 수 있다.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와 인공지능(AI) 거품론, 중동 정세 등 지정학적 불안으로 국내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금투세를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게 증시 폭락설의 근거다. 그렇지 않아도 증시가 침체할 요인이 많은데 금투세까지 시행하면 투자금이 주식시장에서 부동산 등 다른 쪽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논거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경제 분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금투세 폐지를 주장하며 이런 논리를 펼쳤다. “대학생 중에서 주식시장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던데 전부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는 것이 금투세 같은 게 시행되면 해외로 가겠다, 국내에 투자하고 있는 것을 빼겠다고 한다. 조금 더 돈 많은 분들은 부동산 시장이나 다른 자산 투자를 확대할 것이라고 한다. 과세 대상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분들에 대한 부작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금융시장 1400만 투자자들에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2022년 12월 22일 오후 당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금투세 시행 2년 유예를 포함한 내년 예산안·세법 일괄 합의 발표 기자회견에서 합의문을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홍근, 주호영,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2022.12.22. 연합뉴스
금투세 과세 대상 개인투자자는 14만 명 뿐
정말 그럴까? 주식시장에서 투자금을 빼는 이유는 대내외 경기가 좋지 않아 기업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고용률과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소비자물가 상승률 같은 경제 지표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때 국내 증시도 미국, 유럽, 다른 아시아 국가와 함께 동반 급락했다. 반도체 등 주력 수출 업종의 경기도 주가 폭락의 원인이 된다. 하지만 세금 문제로 증시가 폭락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금투세 시행을 확실하게 못 박아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 국내 증시 불안을 차단하는 방법이다. 증시는 악재보다 불확실성을 더 싫어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금투세가 중산층 세금이라는 말도 무리한 주장이다.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실이 한국예탁결제원으로부터 받은 지난해 말 기준 상장주식 소유자 현황 자료를 보면 금투세 부과 대상 후보자인 5억 원 이상 주식 보유 개인투자자는 약 14만 명으로 전체 개인투자자의 1% 수준이다.
세금 탓에 증시서 투자금 뺀다는 건 어불성설
금투세 시행에 반발해 이들 큰손이 주식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뺄 것인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 의견이다. 주식에 투자한 돈을 부동산으로 옮긴다는 것은 망상에 가까운 가정일 뿐이다. 외국 증시로 이탈할 것이라는 예상도 근거가 빈약하다. 미국 등 주요국은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국내 금투세를 피해 외국 주식시장으로 이동한다고 해도 주식 양도소득세를 피할 수는 없다.
주식 투자로 막대한 소득을 얻는 큰손 중에는 기업 경영에 관여하거나 기업을 감시하려는 목적으로 투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럴 경우 일반 소득세율보다도 낮은 금투세 때문에 투자금을 거둬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만약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이재명세’가 될 금투세를 시행하면 주가가 폭락할 것이고, 중산층도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에 몰릴 것”이라는 윤 대통령과 정부, 국민의힘, 일부 투자업계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한 가짜뉴스로 판명될 소지가 매우 높다./시민언론 민들레
대통령과 뉴라이트 그리고 아스팔트 보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2021년, 독립운동가인 우당 이회영 선생의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하면서 첫 정치행보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2021년 6월 이회영 기념관 개관식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출처:중앙일보 유튜브 채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장소 역시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입니다.
출마 선언식장의 뒷배경에는 그를 상징했던 ‘공정과 상식’이란 큼직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불과 3년이 지난 2024년 현재 시점에서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등을 감안하면 적어도 윤석열 대통령의 이미지가 우당 이회영이나 매헌 윤봉길과 썩 어울린다고 보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대통령 윤석열을 상징하는 단어 역시 더 이상 ‘공정과 상식’은 아닌 듯 합니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을 상징하는 단어는 누가 뭐래도 ‘자유’, ‘자유민주주의’같은 것들일 것입니다.
대통령의 공식 연설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꼽히는 취임사와 3·1절 기념사, 8·15 광복절 기념사를 워드클라우드 프로그램을 이용해 분석해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연설문에서는 예외없이 ‘자유’란 단어가 압도적인 빈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최근 3년 간 8·15 광복절 기념사를 취합해 상위 20개 단어로 만든 워드클라우드(TF-IDF 분석)
이같은 현상은 기념사마다 핵심 키워드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던 이전의 대통령들과 확연히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대통령 연설문 업무를 담당했던 신동호 전 비서관은 “연설문에는 대통령의 생각이 온전하게 100% 담길 수밖에 없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념적인 의미로 ‘자유’란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구시대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란 단어를 사용해 연설에서 되풀이하는 논리와 거의 싱크로율 100%인 논리를 자주 설파하는 집단이 있습니다. 바로 뉴라이트 인사들과 이른바 ‘아스팔트 보수’ 집단입니다.
지난해 광복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대한민국은 성장과 번영을 이루었고 전체주의 체제를 이어온 북한은 가난과 궁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활개치고 있다’는 요지로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연설은 자유통일당의 다음과 같은 홍보영상(2024년 8월 21일 영상) 문구와 맥락이 거의 똑같았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했고 북한은 공산주의를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똑같은 70년을 살아보니 북한은 거지 나라가 되고 우리는 세계 10대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민노총, 전교조, 좌파시민단체, 주사파, 야당을 총동원하여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체제를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유통일당은 ‘광화문 태극기 부대’로 유명한 전광훈 목사가 만든 정당입입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로 위장’해서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보장하는 자유를 이용해 체제를 타도하려한다’는 식의 윤 대통령 발언도 뉴라이트 인사들의 발언과 거의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이관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는 “대통령의 말은 뉴라이트의 가장 퇴화된 버전 아니면 가장 저열한 수준의 아스팔트 보수 수준”이라고 지적합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면, 윤석열 대통령이 자신과 같은 철학과 인식을 공유하는 인사들을 공직에 등용한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김문수-이영훈(반일종족주의 저자), 김문수-전광훈 목사, 윤석열 대통령-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교과서포럼 같은 뉴라이트 단체 출신인 김영호 통일부장관과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 등용에 이어 '아스팔트 보수'의 대부로 불리는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와 함께 광화문 태극기 집회에 나섰던 김문수 씨를 고용노동부 장관에 임명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념적 지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https://newstapa.org/article/iA5QS
시민과 '싸우는' 의사들... 의사들은 왜 그랬을까
[다섯 번째 질문 - 의사가 '의사'되는 과정의 비밀]
2024년 의료대란에서 반복되는 질문이 있다. 의사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거냐는,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황당함이 묻어나는 의문이다. 반면 의사들은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비판하며 언론과 시민들이 의사를 ‘악마화’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의사들은 도대체 왜 의대 정원 증원을 수용하느니 의료를 멈추겠다고 말하는가. ‘미래’를 말하기 위해, 우리는 의사가 탄생하는 과정과 그 내부정치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기자말]
"조선인이 응급실 돌다 죽어도 아무 감흥이 없음," "죽음에 대한 공포로 온몸이 마비되고, 의사에게 진료받지 못해서 생을 마감할 뻔한 경험들이 여럿 쌓이고 쌓여야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심을 갖게 된다." (2024년 9월 11일 자 연합뉴스 보도)
2024년 2월,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공식 발표한 이후 의사 집단의 언행은 언제나 화제가 됐다. '죽어도 감흥이 없다'는 윤리의식이 결여된 표현부터 집단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의사는 '총살감'이라는 극단적 집단의식까지, 혐오문화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가 화제 되던 당시처럼, 의사 집단의 동질성과 문화는 그 자체로 사회와 혐오, 계급에 대한 사회적 경보를 울렸다.
▲ 의사와 의대생들이 모여 활동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집단행동에 참여하지 않은 의사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조롱하는 글이 게시되고 있다. 2024년 3월 7일 YTN 보도. https://youtu.be/OHVHnGeYc8Q?si=L4L7IhDiWcYLpgmSⓒ YTN
이와 같은 일탈행위가 널리 알려지자, 일부 의사들은 '익명 발언의 출처가 어디냐,' '소수의 일탈로 한 집단을 악마화하지 말라'며 대응에 나섰다. 그러나 '소수의 일탈'이라고 해도, 이러한 말들이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고, 여론을 빠르게 악화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미 의사 집단은 여러 차례 시민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발언을 해 왔을뿐더러, 대표성을 가진 이들조차 '막말'에 가까운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일례로 의사 직역의 공식 법정단체, 대한의사협회의 전·현직 회장들은 번번이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등을 통해 공인의 말이라고 보기 어려운 발언을 해왔다(관련기사: "겁주면 지릴 줄" "김일성 믿겠다"…'막말' 의사들, 다른 의도 있다?, 의협 회장 출마자 막말 논란...女의원에 "이 X친 여자가 의사를...").
강경 발언, 배신감···의사들은 어디로 가나
이러한 상황에서, 의사들의 과격한 '여론'이 전체 의사들을 대표하는지 혹은 공식 의견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매파"로 분류되는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이 전체 여론을 끌고 가는 탓이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고, 파국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없지는 않았다. 2020년 의사 파업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냈던 "다른 생각을 가진" 의사와 의대생 단체는 지금도 시민을 설득하고 함께 나아가자고 호소하고 있다(관련기사: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의대생의 호소문, 집단행동 반대하는 전공의·의대생들 "의사 수 충분치 않아…공공의료 대안 논의해야"). 서울대 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 역시 시민의 의견을 듣고, 시민이 어떤 의료를 원하는지 함께 이야기하자는 의견을 표명했다(관련기사: 서울대 의대에서 열린 의료개혁 관련 토론회).
하지만 의사들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조직들은 여전히 공적 대화에 응하지 않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와의 대화와 관련, 지난 13일 오후 '시기상조'라고 못 박았다. 이에 정부는 또다시 추가적인 대화의 자리를 요청하고 있다(관련기사: 의료계 공동선언 "정부 변화 없는데 협의체 참여 시기상조", 추경호 "의료계 발표 아쉬워…아직 대화의 문 열려 있다"). 정부와 대화에 나서는 일과 관련, 구성원을 배신하는 행위로 여기기까지 하는 모양새도 여전하다(관련기사: 경기도의사회 "의대생·전공의 빠진 의료계 입장 발표는 월권").
사회적 논의를 거부하며 의료를 멈추고 정부의 '백기투항'을 기다리는 완고한 태도는 2020년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면, 구성원의 뜻을 모아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할 대표의 존재감은 한층 옅어졌다. 시민들이 응급실을 찾다 사망하는 등, '의료 대란'으로 인한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치권은 여·야·의·정 4자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그야말로 '초당적 협력'에 나섰으나 여기에 보조를 맞출 대표자조차 없었다.
▲ 국민의힘은 지난 12일 한덕수 총리,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과 함께 ‘지역·필수의료 체계 개선을 위한 당정협의회’를 개최했다. 사진=국민의힘 TV 유튜브 화면 캡쳐ⓒ 국민의힘
▲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2일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진 등과 함께 ‘더불어민주당 의료대란대책특위-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대위 간담회’를 개최했다. 사진=오마이TV 유튜브 화면 캡쳐ⓒ 오마이TV
다른 위치, 같은 생각
이렇게 똘똘 뭉쳐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의사들의 이해관계는 과연 단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꼭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금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진료 축소 그리고 경영난을 호소하는 주된 곳은 상급종합병원이다. 의사 인력 중 다수를 전공의로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비수도권 병원들은 애초에 전공의를 다 채우지 못했고, 전공의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어려움은 애초부터 모든 병원에서 동등하지 않았다.
전공의 수련과 무관하게 운영되던 병원들은 큰 병원을 찾던 환자들이 오게 되면서 오히려 특수를 누리는 중이다. 사직한 의대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분주한가 하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갈 수 없게 된 환자들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응급실 의사에게 대대적인 인센티브를 약속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결국 의사 개인이 의대 증원에 결사반대하는 정치적 주장에 동의한다고 해도, 수익 차원에서는 반사 이익을 누려 온 셈이다. 전체 의사 중 약 43%가 종사하는 의원급 의료기관 역시 비슷하다. 의사협회의 집단휴진 설문조사에는 적극 찬성하면서도 정부 조사에 따르면 실제로 휴업을 한 의료기관은 15%도 되지 않는다(관련기사: 휴진율 14.9%, 2020년 절반… 의협 "27일부터는 무기한" vs 정부 "의협 해산도 가능"). 의사 수를 늘리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지만, 이를 위해 지금 당장 오늘의 수익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의문도 제기해 볼 수 있다. 치료의 여정에서 만나게 된 훌륭한 의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증 환자를 치료하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시달릴 뿐만 아니라 의료 소송의 위험에 위협당하고 있다고 호소하면서도 여전히 중증 환자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감내하는 의사들도 많다. 차별과 혐오에 반대하며 시민들과 연대하고 대화할 만한 교양과 덕성을 소유한 의사 역시 분명히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소속된 단체는 일관되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과 집단행동을 거듭하고 있나? 서로 다른 주장과 위치, 이해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들이 오로지 하나의 주장, 그러니까 정부 정책에 대한 '원점 재검토'만을 요구하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대생 때부터 시작되는, 동질성에 대한 압력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정부 한국 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에 참석해 의료 정상화를 요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24.5.30ⓒ 연합뉴스
의사정체성은 어떻게 형성되나
최근 많은 관심을 받았던 한국은행의 '입시 불평등' 보고서(관련기사: "상위 대학 진학률 격차 좌우하는 75%는 '부모 경제력'")에서 확인되듯 한국에서 입시는 수험생과 그 가족이 온 힘을 합쳐 치르는 계급 전쟁과 유사하다. 수험과 수련 과정이 암만 고달프다고 해도 의사가 되면 얻을 수 있는 기대 수익, 사회적 지위가 그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안정적인 보상을 제공한다는 판단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급 전쟁'을 뚫고 의과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매우 동질적인 '의사'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의학계에서는 의료 행위가 생명과 직결되기에 모든 의료인에게 높은 수준의 윤리적 책임이 요구되며 높은 수준의 판단력과 책임감이 필수적이라고 가르쳐 왔다.
의료 전문가주의(medical professionalism)의 규범에는 이타주의, 헌신, 책무성, 명예, 탁월함, 정직, 본분에 대한 책임, 인간 존중같이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특징들이 포함된다. 다소 과도해 보이는 이런 규범적 특질들을 강조하며 모든 의사가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데는 생명과 고통을 다루는 의업의 고유한 특성뿐만 아니라, 이런 역할을 해내는 의사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국가의 승인이 놓여있다. 그러니까, 모든 의사가 성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위와 같은 특질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일이 의사와 시민, 국가 모두에게 바람직하다는 이상향(ideal type)으로의 의사상이 존재하는 셈이다.
▲ 미국의사회 의료 윤리 강령. 1847년 발행본 표지. 출처: https://www.ama-assn.org/sites/ama-assn.org/files/corp/media-browser/public/ethics/1847code_0.pdfⓒ 미국의사협회
엄격하고 집중적인 의학 교육이 진행되는 동시에 의과대학에서는 소위 "숨겨진 교육과정(hidden curriculum)"이 작동한다. 여기에서 전수되는 지식에는 병원 내 위계질서에 대한 이해, 의사-환자 관계에 대한 비공식적 규범, 의사 업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켜야 할 윤리적, 관습적 원칙 등이 포함된다.
교육 과정을 통해 의사들은 교과서에는 명시적으로 적혀있지 않지만, 의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기 위해 필요한 준거를 형성한다. 예컨대 의사가 환자에게 반말하는 일이 허용되는지, 병원 외래와 당직실을 드나드는 제약회사 직원이 건네는 선물을 어디까지 받을지, 응급실에 내원한 경증 환자가 정치인의 가족이라고 주장하며 무리한 요구를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밤 11시에 전화를 해 내일 오전까지 우리가 쓸 축구화 22켤레를 구해 놓으라는 선배의 전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에 대한 판단을 익히게 된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기묘할 정도로 선후배 사이의 결속이 강하고 아직 의사가 되지 않은 의대생들도 단일한 주장을 하려 애쓰는 것 역시 의사 공동체에서 학습된 정체성의 한 단면이다.
동질성은 있어도, 리더십은 없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의사 집단은 광범위하게 정체성을 학습하고, 이후의 수련 과정을 통해서도 이를 강화한다. 사생결단으로 집단적 이익을 수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핵심에 권력이 만들어 내는 '주입된 정체성'이 있다. 앞서 언급한, 정부의 대화에 나서는 행위를 '배신'으로 여기거나, 의사의 집단적 의견과는 다른 행동에 대한 폭력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
▲ 2020년 전공의협의회에서 작성한 홍보 자료. 젊은의사 단체행동 인스타그램@youngmd_do.right 2020 캡쳐 https://www.instagram.com/youngmd_do.right/ⓒ 대한전공의협의회
그러나 2024년, 이 '학습된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1만 5000명 전공의의 사직은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일이 되었고, 1만 8000명 의대생은 한 학기가 넘어가는 시간 동안 학업을 포기하고 흩어졌다.
전공의는 수련을 포기했을지언정 어디서든 의사 면허를 걸고 일을 하고 있을 테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의대생들의 향후 행방은 의학교육의 중대한 문제가 됐다. 24학번 학생들은 25년에 입학할 4500여 명의 후배들과 함께 1학년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교육에 물리적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예상이 많다. 이보다 더 중요한, 하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이들은 성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사회적 책임과 권리를 배우고 시민 되기를 학습해야 할 시기를,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적인 정치적 정동을 공유한 채 수업을 거부하며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의료계가 정부가 그토록 요구해 온 "합리적인, 통일된 안"을 제시하며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가한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의료대란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의사 파업을 비롯해 지금까지 의사 단체의 정치적 행보를 지켜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이들이 사회적 협상을 통해 집단행동을 멈출 만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판단한다(관련기사: "수시 접수 시작하는데 "25년 증원 백지화"...의-정 협의 '막막'").
누군가 의사들을 대표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들과 합의를 이끌어 낸다고 하더라도 흩어진 의대생들을 2학기에는 돌아오도록 설득하거나, 이미 그만둔 전공의들을 수련병원으로 복귀시킬 수 없을 거란 소리다.
이런 판단이 사실이라면, 2024년 한국의 의사들은 시민적 대화와 공론장 형성에 참여할 역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협상에 임할 만한 조직적 구심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거버넌스에 참여해 의견을 조정하고 구성원을 규율하는 일이 집단으로서 의사 전문직의 사회적 책무임을 고려하면, 이 역시 한국 의사의 전문가주의적 자율규제가 실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원점재검토"라는 요구는, 원하는 정책을 관철할 수는 없지만, 원하지 않는 정책에는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의사 집단의 마지막 자존심인지도 모르겠다.
'의사정치' 실패 비용 청산하고 미래 여는 길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력 부재는 단지 그들의 사회적 명성과 권위가 실추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의사들은 정책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실패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더 좋은 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짧은 안목에서 의사들의 정치적 조직화 실패는 정부의 일방적 정책 추진을 용이하게 할 것 같지만, 의료의 생산이 의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고스란히 사회의 비용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와 시민들은 의사들을 공론장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강력한 자기규율과 자율성을 주장하는 전문가 집단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일까지 정부와 사회의 책임이라고 보기는 도저히 어려워 보인다.
다만, 가능하고 또 필요해 보이는 건 최소한의 공적 가치에 대한 합의를 토대로 대화에 임하고자 하는 의료인들을 보호하고, 또 이들과 연대하는 일이다. 전공의 노동조합을 대신 만들어 주지는 못하더라도 병원이라는 일터에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노동권을 존중하며 협력을 제안할 수 있다. 여전히 환자 곁을 지키는 의사들, 의료의 공공성을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들릴 수 있도록 공간을 열고 대화를 제안할 수도 있겠다.
▲ 동질적으로 집단의 이익을 수호하는 듯 보이지만, 이미 한국 의사 중에는 환자와 시민의 편에 서서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인물이 적지 않다. 사진은 2012년 서울 중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해결을 촉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선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사진=리영희재단. 연합뉴스 2016년 11월 16일자 보도ⓒ 리영희재단
동시에 의사집단의 시민적 역량을 요구하며 이들의 권한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이전 글에서 논의했듯 의료에 대한 의사의 독점적, 배타적 권한은 이들이 수행하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전제로 부여된다. 당뇨나 고혈압 환자를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는 업무가 의사에게만 맡겨지는 편이 시민들에게도 가장 좋다는 사회적 합의가 있기에 의료가 지금처럼 유지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제 의사들의 독점권은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는 대신 부당한 특권이 되어 시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심지어 이 권한이 의료체계 전반의 비효율을 야기한다면, 지금의 상태가 적절한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가 누리는 자율성은 신이 내려준 권리가 아니다. 2024년 한국이 겪고 있는 의료대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릴 수 있지만, 의사와 사회가 맺고 있는 관계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기 어렵다. 외국에서는 고유의 역사적 맥락 아래 의료 전문직이 형성됐으나, 한국은 전문가주의가 그저 수입되어 이식되었기 때문에 이 모양이라는 냉소 역시 무책임하다.
우리는 이 무기력을 넘어 의료의 의미를 되묻고, 시민들과 사회적 협약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어떤 일이 발생한다 해도 의료의 지속과 역할은 시민들의 온존에 필수적이기에 그렇다. 만시지탄이나 의료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의사는 어떤 역할을 하고, 어디까지 자율성을 보장받아야 하는지 얘기해야 한다. 의료를 둘러싼 사회적 협약의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리며, 이제라도 동료 시민이 되어 미래로 나아갈 때다.
▲ 영국 의사들은 2022년 동료들과 함께 시위대를 조직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대응을 촉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사진=BMJⓒ BMJ
* 필자 소개: Health Socialist Club은 사회 정의와 형평의 관점에서 인구 집단 건강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와 내용을 일반 시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게끔 글을 쓰고 자료를 만드는 연구모임입니다. Manager 김새롬/ Member 김진환·문다슬·문주현·박서화·이한빈. HSC의 블로그(https://www.notion.so/healthsocialist/Health-Socialist-Club-4f293bb8aab34b3c91dfed0ddd7f7ba3)에서 더 많은 글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전공의 없는 한국의료 6개월, 남겨진 질문들> 연재 순서
(1) 지역에서 던지는 질문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55630
(2) 미디어에 던지는 질문들
(3) 의료체계에 던지는 질문들
(4) 노동에 던지는 질문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062333
(5) 의사에 던지는 질문들
(6) 7개월, 질문 위에 서서
당신은 경제 상황을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감세와 재정긴축은 윤석열 대통령이 절대 입장을 바꾸지 않는 경제정책이다. 그러한 신념은 낮은 신뢰도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24년에도 수십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예측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29일 국정 브리핑에서 “경제의 활력이 살아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다수 시민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사IN〉은 한국갤럽과 함께 진행한 ‘2024년 신뢰도 조사’에서 시민들에게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70.2%가 ‘신뢰하지 않는다(불신)’라고 답했다. ‘신뢰한다(신뢰)’는 28.6%에 불과했다. ‘신뢰’의 강도도 약하다. ‘신뢰(28.6%)’ 가운데서 ‘어느 정도 신뢰(21.1%)’의 비율이 ‘매우 신뢰(7.6%)’보다 훨씬 높았다. 불신의 심도는 깊다. 신뢰하지 않는 70.2% 중에서,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46.6%)’가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23.6%)’의 거의 2배다. 시민들 중 거의 절반이 윤 정부의 경제정책에 매우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2023년) 추석 직전 시행된 〈시사IN〉 신뢰도 조사의 같은 문항에선 ‘신뢰’가 33.9%, ‘불신’이 63.4%였다. 1년 동안 신뢰는 5.3%포인트 떨어지고 불신은 6.8%포인트 높아졌다.
연령대별로 보면, 40대(13.9%)와 18~29세(18.9%)의 경제정책 신뢰도가 가장 낮았다. 30대와 50대도 각각 20.9%, 20.6%였다. 60대는 43.5%가 신뢰를 표명했지만 절반을 넘기지 못했다. 70세 이상이 불신(40.9%)보다 신뢰(58.0%)가 높은 유일한 연령대였다(〈그림 1〉 참조). 지역별로는, 대구·경북(신뢰 52.9%)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불신이 신뢰를 압도했다
심지어 제20대 대선 직전 연도인 2021년(사실상 집권 마지막 해)의 ‘문재인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39.7%로, 윤석열 정부 3년 차(28.6%)보다 훨씬 높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며 민주당 정권의 재집권이 위태로워진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이는 2021년의 경제성장률이 4.3%로 보기 드물게 높았던 사실(직전 연도인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 0.9% 경제성장률을 기록)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경제정책’에 대한 질문은 ‘당신이 현 경제 상황을 어떻게 느끼느냐’와 다르지 않다. 응답자들이 경제정책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답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낮은 신뢰도는, 시민들이 심각한 경제난 및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겪고 있다는 의미다. 통계수치만으로 볼 때, 올해의 경제 상황은 지난해(경제성장률이 경제개발 시기 이후 최악인 1.4%)보다 한결 나은 편이다. 그러나 시민들의 ‘불신’엔 이유가 있다.
우선, 경제성장의 패턴이 매우 불안정하다.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지난해 같은 시기 대비)은 1.3%였다. 지난해 연간 성장률이 1.4%(한국 경제사에서 최악의 성장률)였던 상황에서 간만의 쾌거였다. 글로벌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면서 수출이 크게 증가한 데다 건설투자, 민간소비 등 내수 확대도 1분기의 성장률에 크게 기여했다. 정부도 올해 사회간접자본 예산의 35%를 1분기로 당겨 지출하는 등 경기부양을 시도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환호’는 오래가지 못했다. 2분기 성장률이 – 0.2%로 급락했다.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것은 내수(국내 수요) 부진이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인플레이션의 하락 속도가 지체되어 체감물가가 현저하게 높다. 한국은행이 8월 말 발표한 ‘최근 민간소비 흐름 평가’에 따르면, 지난 7월의 소비자물가는 2020년 말보다 13.8% 높은 상태다. 특히 시민들의 일상과 밀접한 생활물가(쌀, 라면, 우유, 도시가스, 전기료 등 구입 빈도가 잦고 소비지출이 큰 품목)는 16.3%나 올랐다. 그러나 (명목)임금은 물가만큼 오르지 않았다. 임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실질임금)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임금억제 정책을 강행해왔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엔 실질임금이 0.2%, 지난해엔 1.1% 줄었다. 고용노동부 사업체 노동력조사(2024년 7월)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354만3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0.4% 감소했다.
실질소득이 낮아지면 씀씀이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 소매판매액 지수(각종 판매량을 총집계해서 소비자들의 씀씀이를 나타내는 지표, 계절조정지수 기준)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서너 달을 제외하고 줄곧 내렸다. 지난 7월의 소매판매액 지수는 100.6으로, 2020년 7월의 98.9 이후 최저 수치다(〈그림 3〉 참조). 2020년 7월은 팬데믹으로 인해 극도로 소비가 억제되던 시기다.
5월30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서울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금투세 폐지 집회를 열었다.ⓒ연합뉴스
이와 함께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다시 불안감이 싹트는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주택담보대출이 매월 5조~7조원대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는 26조5000억원으로 2021년 상반기(저금리로 투기 붐이 일었던) 이후 최대 수준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주택 거래가 크게 늘어나며 일부 지역에선 집값이 다시 올랐다. 집값 수준에 대한 회의감의 확산이나 외부 충격이 가계들의 잇따른 부도와 시장 붕괴로 이어질 리스크를 무시할 수 없다. 금융 당국은 8월 들어서야 은행들에 대출 자제를 압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대규모 정책자금을 제공하는가 하면 예정됐던 규제(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까지 미뤄버린 윤석열 정부의 책임이 크다.
2023년 세수 결손 규모 56조4000억원
윤석열 대통령은 ‘신념의 강자’다. 대일 관계, 의대 정원 등은 물론 개인적 친분과 가정사에 이르기까지 일단 한번 믿으면 절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제정책에도 그가 절대 믿음을 철회하지 않는 대상이 있다. 감세와 재정긴축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조세정책에 대한 평가는, 경제정책의 극도로 낮은 신뢰도에 비해, 비교적 높았다.
2022년 5월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이 가장 서두른 일 중 하나는, 주택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등의 시행령 개정으로 주택 매매자들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이었다. 2023년엔 법인세율을 모든 구간에서 1%포인트씩 내렸다(더 내리려 했는데 민주당에 밀렸다). 또한 종합부동산세의 기본공제금액을 올리고(올린 금액은 세금 계산에서 제외하므로 그만큼 납부세액이 줄어든다), 주식양도세를 부과받는 ‘대주주’ 기준을 크게 완화(종목당 10억원 이상에서 50억원 이상으로)했다. 주식양도세 납부자가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또한 지난 7월에 나온 세법 개정안에 따르면, 상속세의 자녀공제액을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나 올리려 한다. 예컨대 자녀 두 명이 10억원을 상속받는 경우(배우자 없이 자녀만 상속받는 경우), 현행 상속세제에서는 ‘일괄공제 5억원’이 적용되어 나머지 5억원에 대한 납부세액을 계산한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자녀 공제’만으로도 10억원(5억원×2)이 넘기 때문에 상속세를 낼 필요가 없게 된다. 2025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도 개정안에 포함되었다. 주주에게 많은 돈을 돌려주는 기업과 그 주주들에 대한 세제 혜택도 준비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기업가치를 올린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윤 대통령에게 감세는 성장 정책일 뿐 아니라 민생 대책이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세법개정안은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취소, 상속세 공제 확대 등 세수 감소가 예상됩니다. ○○님께서는 윤석열 정부의 조세정책을 얼마나 찬성, 혹은 반대하십니까?”
‘반대’가 54.9%로 ‘찬성’(36.9%)보다 18%포인트 높았다. 그러나 경제정책에서 ‘불신’과 ‘신뢰’의 격차(41.6%포인트)보다는 훨씬 완만한 수치다. 연령대별 찬성률은 70세 이상(53.8%), 60대(44.6%), 18~29세(40.4%) 순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60대 이상인 두 연령층과 18~29세의 ‘찬성 이유’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인다. 60대와 70대 이상의 찬성률은 그들의 경제정책 신뢰도와 비슷하다. 그런데 18~29세의 경제정책 신뢰도는 18.9%로 조세정책 찬성률(40.4%)과 격차가 크다. 다른 세대들(30, 40, 50대)은 조세정책에서도 반대율이 찬성률의 두 배가량까지 나올 정도로 반발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 연령대들 역시 경제정책보다는 조세정책에 훨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예컨대 30대의 경우,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20.9%이지만 조세정책엔 32.1%의 찬성률(반대율은 57.6%)을 나타냈다(〈그림 1〉참조).
직업별로 보면, 무직·기타의 조세정책 찬성률이, 절반을 넘긴 51.6%(경제정책 신뢰도 37.6%)로 가장 높았다. 다른 직종들은 모두 반대율이 찬성률을 웃돌았지만 그 차이는 경제정책 신뢰도보다 낮았다. 임금노동자의 찬성률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각각 28.0%, 31.8%로, 학생(37.7%)보다 낮았다(〈그림 2〉참조). 또한 자신을 경제적 상위 계층으로 인식할수록 조세정책에 대한 찬성률이 높은 경향이 보였다. 상위는 48.9%, 중위는 36.3%, 하위는 30.6%다.
다만 금투세 폐지, 상속세 공제 확대 등 감세정책은 당장은 달지만 장기적으론 해로울 수 있다. 부자들의 감세 폭이 훨씬 클 뿐 아니라 세수 기반을 크게 줄여 국가재정의 건전성을 타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23회계연도 결산 총괄 분석’에 따르면, 2023년의 세수 결손 규모가 무려 56조4000억원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는 당초 지난해 국세수입을 400조5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예산을 편성했다. 그러나 344조1000억원밖에 걷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세수입이 줄어든 만큼 정부지출을 축소하기는 어렵다. 그 결과가 지난해 관리재정수지(실질적 나라살림을 의미)의 적자 87조원이다.
이 추세는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세수입현황’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걷힌 국세수입은 208조8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보다 8조8000억원 줄었다. 올해도 수십조 원 규모의 세수 결손이 예측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감세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신념과 열정은 거침없이 전진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하반기 시나리오는 인플레이션율의 안정적 하향 및 실질임금 상승으로 내수가 회복되는 한편 수출 호조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 경우, 한국 경제의 올해 성장률은 2.5%를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수도 늘어날 것이다.
실제로 지난 4월부터 월별 데이터를 보면 물가와 실질임금은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 흐름이 장기화된 내수 부진을 반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할지는 미지수다. 윤석열 정부는 경기상승을 원하겠지만, 특유의 ‘신념’과 지출 여력의 부족 때문에 경기부양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가 유력한 가운데 한국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의 리스크가 어느 방향으로 치달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반도체 등 IT 부문의 수출은 원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나, 한국이 통제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원래 변동성이 큰 데다 올 하반기엔 인공지능 기술의 전망에 대한 시장의 판단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극단적으로 갈릴 수 있다.
- 조사 의뢰: 〈시사IN〉
- 조사 기관: 한국갤럽조사연구소
- 조사 일시: 2024년 8월25~27일
시사인 이종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