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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8.1~8.15 트럼프와 아베, 비틀대는 세계화

by 이성근 2019. 8. 15.

우리는 강대국이 될 수 없을까? 경향 2019.08.01.

중국 시골마을의 화이터하이강의 경향 2019.08.02.

걷기 좋은 도시 매일경제 2019 8.3

검찰 인사 유감 경향 2019.08.04.

 

일본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한겨레 :2019-08-05

기업을 대변하지 않는 경제단체들 경향 2019.08.05.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경향 2019.08.05.

엄마부대와 아베 경향 2019.08.05.

법의 렌즈로 본 자사고 문제 경향 2019.08.05.

 

다차원 갈등 시대의 강한 외교한겨레 :2019-08-07

북한에는 과거로,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는 일본 경향 2019.08.07


보이콧 자팬에 대한 단상 시사인 2019.08.07.

 

트럼프와 아베, 비틀대는 세계화 시사인

지천으로 전염된 4대강 공사 경향 2019.08.08.

현대차 노동자와 여유로울 권리경향 2019.08.08.

아베가 꿈에서도 몰랐던 대답, 평화경제 경향 2019.08.09.

황교안, '박정희'는 되고 조국은 안된다 CBS노컷뉴스 2019.8.12.

 

우울한 현대사, 광복절의 우수 미디어오늘 2019.08.13 11:12

양비론을 경계해야 할 시간 경향 2019.08.13.

, 다시 맞는 8·15 해방의 그날경향 2019.08.13.

일본 본색 경향 : 2019.08.14





우리는 강대국이 될 수 없을까?

한 나라가 근대 국제정치에 정통성을 가지고 참여하기 위해선 근대국가라는 국가를 성립시켜야 한다. 테러단체나 과거의 전근대적 왕조국가를 지금 국제정치의 합법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국제정치를 힘이 좌지우지하는 무정부상태로 인식하지만, 일단 국제정치에서 한 국가가 근대국가를 만들어내면 최소한의 대접은 받게 된다. 또 일반인이 동경하는 힘 있는 국가, 즉 강대국도 꿈꿔볼 수 있다. 현재 국제정치에서 근대국가보다 더 힘이 센 국제정치의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만큼 근대국가라는 체제가 다른 어떤 체제에 비해 정당성뿐만 아니라 힘을 동원하는 능력이 크다. 북한이 아무리 미워도 최소한의 대접을 받는 이유는 유엔이라는 국제기구에서 근대국가로서의 정당성을 획득했고, 또 상호 수교를 한 국가들도 꽤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북한에 힘의 동원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근대국가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면 국가자원을 동원하여 핵무력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만큼 근대국가체제는 근대 이전의 다른 국가형태에 비해 우월한 체제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근대 이후 어느 국가이든 자신의 근대국가체제를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앞서고, 강하고, 바람직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 왔다. 우리는 구한말 이러한 추세를 지도층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에 일본이라는 근대국가 안으로 강압적으로 빨려들어가는 불행을 겪었다. 반면 일본은 그 국제정치 추세를 정확히 읽어내어 근대국가체제를 신속히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메이지 유신이라는 미래 구상을 통하여 국가적 힘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강력한 국가, 즉 강대국을 만들었다. 당시 전근대의 최강국이었던 청나라를 격파하였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할 힘을 갖추었다. 국토의 크기 및 백성의 숫자와 상관없이 근대국가체제와 그렇지 못한 체제의 능력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도 유럽의 끝자락에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였지만, 일찍이 근대국가체제를 만들어 세계 최강의 지위를 누렸을 만큼 근대국가체제를 언제 어떻게 만드느냐가 국제정치에서 국가의 위치를 정해주었다.

 

그래서 근대 국제정치의 세계는 근대국가의 설계가 매우 중요한 국가적 책무였다. 흔히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근대국가의 설계가 백년대계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 말의 강대국이 지금도 강대국인 것을 보면 그 백년대계를 실감할 수 있다. 백년대계가 반드시 100년 후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미래를 염두에 두는 지도층이 있느냐 없느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눈앞의 이익만을 좇는 지도층이 있는 나라는 구한말 대한제국과 같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나라도 지키기 어렵다.

 

우리 대한민국도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전 국민의 노력과, 세계사의 운을 함께 타면서 이제 세계굴지의 근대국가로 발전하였다. 세계질서를 주도하는 G20이라는 그룹에도 들어가 있고, 선진국의 모임인 OECD에도 가입했다. 세계에 7개국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3050클럽, 즉 인구 5000만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는 국가클럽에도 들어갔다. 우리 군사력은 세계 7위 안에 들어가고, 인적자원과 기술수준을 포함한 경제력도 세계 10위권에 들 정도다. 동계 및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그리고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를 모두 유치한 몇 안되는 조직력을 가진 국가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의 한류를 대표하는 K팝은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수준의 실력을 가질 만큼 뛰어난 문화적 역량도 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우리는 한 번도 강대국의 비전을 가진 적이 없고 아직도 중견국에 만족하고 있다. 국가의 외교에는 적응의 외교와 극복의 외교가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이라는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 있어서 적응의 외교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고 균형을 잡아 생존을 모색하는 약소국 혹은 중견국 외교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지정학적 현실을 극복하는 외교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같이 강대국을 지향하는 외교와 비전이다.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강대국이 되고픈 열망이 있다. 하지만 정작 강대국 비전과 백년대계를 제시하고 끌고 가려는 지도층은 보이지 않는다. 일본에 대해서도 의병정신과 이순신정신만을 얘기하고 있다.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한다. 물론 일본과의 관계에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진정한 극일은 일본이 우리를 무시하지 못할 만큼의 역량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선 지정학을 극복하는 강대국의 꿈이 있어야 한다. 지도층은 국민들에게 금모으기 정신을 강요할 게 아니라, 힘과 도덕적인 면에서 모두 인정받는 강한 국가 만들기 비전을 제시하고 이에 힘을 모아달라 해야 한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경향 2019.08.01.

 

중국 시골마을의 화이터하이강의

중국 푸젠성 푸안시의 시골마을인 칭양촌()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푸젠성은 타이완과 마주 보는 남쪽 지역이며 푸안은 인근 저장성 출신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젊었을 때 근무했던 곳이다. 푸안은 한국식으로 하면 도농복합지역인데, 도심은 조금 지저분하고 별다른 특색이 없지만 작은 강을 건너 30여분 차를 타고 가면 한적한 시골풍경이 펼쳐진다.

 

불과 수십가구인 마을 주민들은 이 고장 특산물인 차와 벼 농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리 높지 않은 마을 뒷산에는 계단식 차밭이 있고, 넉넉한 강수량 덕분에 제법 웅장한 폭포의 물이 계곡과 수로를 지나 마을을 관통한다. 주거지에서 걸어서 20분쯤 떨어진 산 중턱에 나무로 지은 강의실과 야외식당, 부엌으로 이뤄진 소박한 연수원인 칭양식부(食府)가 있다.

 

이곳에서 과정철학, 중국 전통 생태지혜와 교육지혜 국제토론회가 열렸다. 하얼빈 사범대학 교육대학원생을 주축으로 각지에서 모인 여러 전공의 대학원생과 교수, 교사, 몇몇 해외 참가자 등 40여명이 함께 지내면서 공부하는 모임이었다. 과정철학은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1861~1947)의 철학인데, 존재를 사건과 생성으로 설명해 불교나 도교의 존재론과 통하는 부분이 많다. 2000년대 초반 화이트헤드 철학이 중국에 번역, 소개된 이후 전국 대학에 40개가 넘는 연구소가 생겼으며 관련 학문도 철학, 법학, 농학, 교육학 등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교육학은 <교육의 목적>이라는 저서도 있는 만큼 주요 응용 분야다. 그는 교육의 원리로 상호성, 관계성, 리듬, 조화를 제시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과정철학이 중국에서는 생태철학으로 통한다는 점이다. 정작 화이트헤드는 자연이나 생태에 대해 말한 적이 없지만, 존재 간의 연결을 말하는 그의 사상은 당연히 생태적이다.

 

그래서인지 주자의 생태적 지혜’ ‘노자의 무위가 생태문명에 주는 시사점’ ‘전통문화로부터 배우는 아름다운 향촌 건설에서부터 생태적 엔지니어링’ ‘과정적 사고를 응용한 쓰레기 분리배출 교육용 카드게임까지 다양한 발표가 이어졌다. 화이터하이(懷特海), 줄여서 화이씨(懷氏)로 불리는 화이트헤드는 토론회의 주빈일 뿐 그의 철학이 갖는 무게에 짓눌린 발표자는 거의 없어 보였다.

 

하루는 강의실에서 푸안시 공무원과 전문가, 마을주민들이 모여 칭양을 어떻게 생태적으로 발전시킬 것인지 토론하는 향촌진흥회가 열렸다. 그러자 생태지혜와 교육지혜를 말하던 발표자들이 향촌진흥에 대해 발언하고 행사 자체가 수업이 됐다. 여기에 베이징대가 조직한 공익강좌를 통해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사람들이 철학토론회와 향촌진흥회를 지원하기 위해 각지로부터 찾아와 식사 수발부터 사진 촬영까지 도맡았다. 봉사자들은 몇 년 전부터 주민들을 도와 칭양이 송대(宋代)부터 이어진 문화유산을 재발견하고 이를 발전의 계기로 삼도록 지원했다. 이들의 활동을 소개하는 강의도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숙소는 몇몇 주민들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첫날 이불과 수건을 가져다준 다음에는 절대 방에 들어오지 않았다. 직접 방 청소를 해야 했다. 대신 주인은 응접실에서 차를 끓여 손님이 지나갈 때마다 권했다. 공부하는 장소까지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전기차를 타고 다녔지만, 하루이틀 지나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걷는 사람들이 늘었고, 대학원생들은 저녁식사 이후 강의가 이어진 날이면 별을 보겠다면서 자기들끼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길을 내려왔다. 수업을 하는 동안 계속 교실을 들락날락하던 마을 꼬마와 대낮에도 목청껏 울어대던 수탉도 주요 참가자였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중국 농촌을 낭만화할 생각은 없다. 이곳 아이들도 자라면서 가까운 상하이 아니면 베이징으로 나가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도시생활의 대안으로 돌아올 만한 농촌이 돼야 하며, 중국 정부는 이런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촌장은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다가 귀향했고, 두 명의 대학졸업생이 마을을 일으키기 위해 돌아왔다. 중국 정부의 생태문명 논리는 간단하다. 첫째, 개혁·개방 이후 세계자본주의에 편입된 중국이 경기순환이나 금융실패에 따른 경제위기에 부딪쳤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계속 발전하는 농촌지역이 유효수요를 창출해 위기를 완화해 왔다. 둘째,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두꺼워진 중산층은 더 이상 공해로 얼룩진 땅에서 살고 싶지 않다. 공산당은 그 해결책을 내놓아야 했다.

 

중국 생태문명 정책에 힘입어 서양철학사에서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화이트헤드가 중국의 인기철학자가 됐다. 사건과 생성의 철학에 걸맞은 상황이기도 하다. 옛날 서당처럼 돌아가면서 한 문단씩 읽고 의미를 토론하는 게 중국식 공부법이었다.

 

중국어를 통역한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한적한 시골에서 종횡무진 다양한 공부를 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다.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한윤정 전환연구자 경향 2019.08.02.

 

걷기 좋은 도시

젊은 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베르시 지구라든가 영국 런던의 캠던 마켓, 미국 뉴욕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 서울 홍대의 골목길과 종로의 광장시장 등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동차가 발달하기 전,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조금씩 녹아들며 천천히 만들어진 곳이라는 점이다. 베르시 지구는 원래 흰 벽돌로 만든 와인창고가 모여 있던 곳이고, 캠던 마켓과 홍대 골목길은 오래된 동네가 상권으로 바뀐 사례다. 광장시장의 역사도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작은 건물들의 집합체이다. 사람들이 많이 걸어다니며 상권이 형성된 길이 자연스럽게 시장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건물과 건물 사이 골목길에 지붕을 얹어 일체감을 부여했다. 터키 이스탄불의 유명한 시장인 그랜드 바자르 역시 전통시장과 비슷한 물리적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생활이 조금씩 녹아들며 형성된 도시는 인간에 최적화된 규모와 사람들의 행동방식, 무의식적인 선호에 맞게 서서히 진화해 왔다.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역사적으로 검증된 동네에 사람들이 끌리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런 동네가 모두 `휴먼 스케일`(인간적인 규모)이라는 것이다. 휴먼 스케일이란 무엇인가.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이런 식이다. 다른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볼 수 있는 거리는 `7m` 정도다(인지건축학). 사람의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서로의 즐거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른바 `핫 플레이스` 거리의 폭은 7~8m를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양방향 1차선 도로를 넘는 거리는 양쪽의 건물과 그 건물을 이용하는 이들 간의 상호작용이 적어 성공하기 쉽지 않다. 가족들과 함께 걸어다니며 즐기기 좋게 계획된 디즈니랜드 메인스트리트의 거리 폭 역시 8m이다.

 

아울러 거리의 양쪽에는 한눈에 전체 형상이 보이는 3~4층 높이의 건물이 늘어서 있는 경우가 많다. 고개를 홱 젖히지 않아도 꼭대기를 볼 수 있는 건물이 한쪽을 적절하게 둘러싸 마치 포근하게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쭉 뻗어나가는 거리는 개방감을 부여하며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느끼게 해준다. 반대로 시속 60로 자동차가 달리는 4차로 도로변에서는 편히 앉아 브런치를 즐길 수 없다.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이 내어놓는 이유는 사실 규모 그 자체를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런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결국 걸어다닐 만한 휴먼 스케일의 규모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집에서 나와 걸어갈 수 있는 장소에 직장이 있고, 도서관과 커다란 운동장이 있으며, 맛있는 식당과 트렌디한 카페가 있다면 그 도시에서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그래서 앞서 언급한 물리적 특성 외에도 주거와 업무, 엔터테인먼트 등 용도의 혼합도 중요하다. 복합용도의 걸어다닐 수 있는 규모의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다. 걸어다닐 만한 동네에서는 우연한 만남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우연한 만남과 교류는 혁신과 커뮤니티의 자양분이다.

 

이런 동네가 얼마나 행복한 삶을 가져다 주는지 대중에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도시계획가 제프 스펙은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Walkable city)`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놨다. `걷기 좋은 도시``보행친화도시`라는 말도 있다. 사람이 휴먼 스케일의 공간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행동양식인 `걷기`에 주목한 표현이다. 이런 용어는 추상성을 배제해 대중의 이해를 돕고 그 개념을 확산시킬 수 있게 돕는다.

           

반면 `걷기`라는 행위 그 자체에 갇히게 만들기도 한다. 산책로 같은 시설 조성에 집중한다거나 휴먼 스케일을 뛰어넘는 규모를 `걷기`로 연결하려는 시도가 그런 것이다. 최근 `보행친화도시`라는 명분으로 나오는 정책들을 볼 때 가끔씩 갸우뚱하게 되기도 한다. 걷기 좋은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고민보다는 걷기 그 자체에 매몰돼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그렇다. [음성원 도시건축전문작가] 매일경제 2019 8.3

 

검찰 인사 유감

청문회에서도 말이 나왔고, 내부에서 검사장님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특수통 전성시대가 더욱 확고히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몇몇 검사들이 솎아지긴 했지만, 정치검사들이 여전히 잘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잘나갈 거라는 걸 검찰 내부에서는 모두 알고 있지요. 잘나가는 간부들은 대개 정치검사라 다 솎아내면 남은 사람들이 있을까싶은 게 검찰의 현실입니다만, 너무나 도드라졌던 자들에게는 그래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는 특수통의 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 검찰을 이끄는 검찰총장입니다. 검사장님에게 보내는 국민들의 환호와 응원이 차디찬 실망으로 돌아서는 것은 한순간이지요.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되찾을 마지막 기회를 헛되이 날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간부들이 대개 그 모양이라 다 버리라고 차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만, 너무나 도드라졌던 정치검사들은 버려야 합니다. 검사장님이 정치검사들의 방패막이로 소모되면, 국민들이 대한민국 검찰에 기대를 품을 수 있겠습니까?”

 

지난 712, 윤석열 내정자에게 축하메일을 보내며, 아울러 조의를 표했습니다. 검찰 안팎으로 질책과 비판, 비난과 조롱받을 일이 한가득일 테니 애도의 뜻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 검찰총장을 향해 목청을 높여 쓴소리를 하겠다는 각오를 밝히며, 첫 고언을 그렇게 띄웠습니다. 인사 발표 후 비판하는 것보다 미리 충고드리는 것이 도리입니다.

 

인사 발표 후 중간간부들의 줄 사표, 내외의 날선 논평들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수사로 종래 검찰 인사가 얼마나 자의적, 불공정하였는지가 드러났지요. 별장 성접대 논란의 김학의, 넥슨 주식 대박의 진경준 등 검사로서의 자격조차 없는 자들이 검사장으로 질주할 수 있는 허술한 인사시스템을 모두 목도하였기에, 검찰 인사의 불합리성과 심각성을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만, 수사와 판결로 공식 확인한 것은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불공정한 인사를 처음 보았다는 듯 경악하는 투의 기사들이 더러 보입니다. 검찰에서 종래 공정한 인사가 이루어져 왔다면, 부적격자들이 어떻게 검사장이 되고 검찰총장이 되었겠으며, 검찰개혁이 왜 시대의 요구가 되었겠습니까? 지금껏 불공정하였지만, 이제는 시대 변화에 발맞추어 투명한 인사 원칙과 기준으로 신상필벌이 공정하게 이루어지기를 모든 국민들처럼 저를 비롯한 검찰 구성원 모두 고대했습니다. 우려했던 대로 속칭 특수통들이 점령군마냥 요직을 쓸어가니 형사통 검사들의 실망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또한, 정치검사들이 대윤 라인인지, 아닌지에 따라 승진 여부가 갈린다면 축출된 정치검사들이 인사에 승복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총장 취임 직후 인사를 실시하는 것이라 투명한 인사 원칙과 기준을 마련하여 공론화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종래 검찰의 불합리한 인사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는 인사라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한나라 효무제가 신공에게 치란(治亂)에 대해 묻자, 신공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힘써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간언하였지요. 검찰총장 취임사에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인사권 또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되겠지요. 내년 인사에서는 좀 더 투명한 인사 원칙과 공정한 신상필벌로 국민들과 내부 구성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인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안태근 검찰국장 시절, 항명검사였던 저는 검사 부적격자로 몰려 쫓겨날 뻔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인사 불이익 정도가 아니라 생존 여부를 걱정해야만 했었지요. 조여오는 공기가 하도 살벌하여 일하면 할수록 적격심사에서 트집만 더 잡힐 걸 직감하고, 도망치듯 반년을 쉬었습니다. 적격심사 파고를 힘겹게 넘기고 20161월 검찰에 복귀하며 복귀인사로 검찰 내부망에 제가 생각하는 검사의 자세와 검사로서의 각오를 밝혔습니다.

 

습착치는 촉한 명재상 제갈량을 칭송하며 법은 부득이할 때에 집행되었고, 형벌은 스스로 범한 죄에만 더해졌으며, 작위와 상을 줌에 사사로움이 없었고, 벌을 가함에 노여움이 없었으니 천하에 과연 복종하지 않을 자가 있겠는가라고 평했습니다. 수감(水鑑). 사사로움 없는 고요한 물과 맑은 거울이 공직자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자세가 아닐는지요. 그때 내부망에 올렸던 제 다짐을 다시금 되새기며, 검찰총장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들에게 함께 되새기기를 부탁드립니다./임은정 청주지검 충주지청 부장검사 경향 2019.08.04.

 

일본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일본의 수출 규제는 경제 침략이다. 전쟁을 시작한 일본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의도를 정확히 알아야 제대로 맞설 수 있다. 세 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 보복론이다. 일본은 처음에 우리나라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경제산업성은 징용 문제 해결책 미제시로 양국 간 신뢰가 훼손됐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모든 언론이 일본의 보복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속은 것이다.

보복은 핑계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를 치러 갈 테니 길을 빌려달라’(征明假道)고 했던 것처럼 거짓이었다. 일본은 수출 규제의 명분을 북한에 대한 제재를 지켜야 한다”, “캐치올 규제가 미흡하다로 이리저리 바꾸었다. 전형적인 기만전술이다. 보복론의 결말은 적당한 타협이나 굴종일 수밖에 없다. 보복론을 믿은 국내 기득권 세력은 일본보다 문재인 정부와 대법원을 더 가혹하게 비판했다.

 

둘째, 축출론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한··3국 협력 체제에서 몰아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화이트리스트 배제 이후 급속히 나도는 가설이다. 축출론자들은 미국이 갈등 중재에 심드렁한 이유를 일본이 미국을 미리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나라가 한··일 협력 체제에서 쫓겨나 국제사회의 미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축출론의 종착지도 굴복이다. 냉엄한 국제 질서에서 살아남으려면 아니꼬워도 일단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아니다. 축출론은 요설이다. 일본은 그렇게 위대한 나라가 아니다. -미 동맹은 튼튼하다.

 

셋째, 타격론이다. 일본이 우리나라 경제에 실질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일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배경이다.

 

일본은 왜 우리에게 타격을 가하려는 것일까? 일본은 경제 강대국이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우리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머지않아 우리가 따라잡을 수도 있다. 철강·조선·휴대전화·반도체 등은 우리가 일본을 따돌린 지 오래다. 석유화학·자동차도 밀리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우리나라를 대등한 경쟁 상대로 인정하고 공존공영을 꾀하는 길,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찍어 누르는 길이다. 일본은 후자를 선택했다.

 

일본의 의도는 덤프트럭으로 경차를 밀어버리겠다는 폭주족 심보일 것이다. 그러나 계산이 틀렸다. 패권국과 도전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상대를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를 너무 우습게 봤다. 일본과 우리나라가 충돌하면 양쪽 다 치명상을 입는다. 공멸하지 않으려면 일본이 침략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본이 걸어온 싸움을 피할 길은 없다. 타협안을 제시하며 물러서도 일본이 공격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일본은 언젠가 넘어서야 할 경쟁 상대다. 물러서면 안 된다.

 

일본과의 전쟁에 유난히 자신감을 갖고 임하는 사람들이 있다. ‘늘공들이다. 특히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열정적이다. 연일 계속되는 당··청 회의에서 늘공들의 자신감은 청와대나 민주당의 불안감을 압도한다.

 

여야 의원들이 집중 관리가 필요한 소재·부품·장비 리스트와 기업별 현황 등 세부 자료를 요구했다. 늘공들은 의원들에게 세부 자료를 주면 언론에 공개될 수 있고 그것은 일본에 우리 패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 수준이 이 정도로 높다.

 

경제 전쟁은 고도의 심리전이다. 자신감을 가지면 이길 수 있다. 가장 경계할 일은 내부 분열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이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전열이 무너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지금은 일본과의 싸움에 치중해야 한다. 야당 및 이른바 보수 세력과 각을 세울 때가 아니다.

 

야당과 이른바 보수 세력은 정부·여당이 일본과의 전쟁을 내년 총선에 이용할 것이라고 의심하는 것 같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 국민은 그렇게 아둔하지 않다. 한일전은 한일전이고, 선거는 선거다. /성한용 정치팀 선임기자 한겨레 :2019-08-05

 

기업을 대변하지 않는 경제단체들

20168월즈음의 일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는 청문회를 개최했다. 청문회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에 특위 위원장이었던 우원식 의원은 청문회를 마무리하면서 기업의 대표들에게 국민을 상대로 말할 기회를 제공했다. 대형 마트의 부대표였던 증인 한 명이 발언하는데 하마터면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소비자와의 접점에 있는 기업이 신중한 처사를 하지 못하여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을 사과하며, 그는 앞으로 안전을 확인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내겐 그야말로 놀라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까지 나는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이 만드는 제품의 원료조차 다 파악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다. 제품의 원료도 모르면서 소비자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가습기살균제 참사란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청문회 이후 나는 제품 원료를 파악하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기업을 만난 적이 없다. 제품 원료를 파악하는 것이 공급망 협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쉽지 않다는 호소는 듣지만, 그래도 열심히 파악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를 기업으로부터 듣고 있다.

 

실제로 20172월부터 20192월까지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를 위한 자발적 협약이 추진되었고, 20개 가까운 기업이 전 성분을 확인하여 공개했다. 현재 환경부 초록누리 사이트에는 1125건의 생활화학제품 전 성분 정보가 공개되고 있다. 나는 기업이 달라지는 것을 지켜보았고 저절로 응원하게 되었다. 20196, 이번에는 정부와 기업만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까지 함께하는 2차 자발적 협약이 추진되었다. 제품의 전 성분이 확인되었으니, 그 원료 성분의 유해성을 일일이 따져서 유해성이 낮은 원료를 더 많이 사용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기로 한 것이다. 내가 만난 한국 사회의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단체는 가습기살균제 참사로 인한 극도의 불신 상태로부터 벗어나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이렇게 협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화평법에 대한 기대는 점점 커지고 있다. 2018년 화평법이 개정되어 1t 이상 모든 화학물질의 등록이 추진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평법이 정착되면, 생활화학제품 제조사가 자신이 사용하는 원료 성분이 가진 위험을 평가할 양질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소비자 안전이 한층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너무도 속상한 상황을 마주한다. 2013년 국정농단 시기에 기업이 화평법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는 주장이 있었는데, 경제단체들이 다시 이 주장을 펴기 시작한 것이다. 나와 함께 일해 온 기업들은 경제단체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쌓아온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변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까지 들린다. 국민과 기업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란 좋은 법률이 있고 그 법률을 기업이 지키는 사회이다. 화평법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선택한 신뢰의 수단이다.

 

경제단체의 몰지각한 주장은 일선 기업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반성하고 노력하고 있는 일선 기업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과거 국정농단을 주도한 경제단체들이 특정 기업과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발언하는 것 때문에 선량한 기업들이 비난받지 않기를 바란다.

김신범 |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경향 2019.08.05.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

인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를 말합니다. 인권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와 정부는 이런 권리를 보장하고 보호할 책무를 가집니다. 나라 밖으로 잠시 나가보겠습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국제법이 작용합니다. 전 지구를 아울러 국제법이라고 부를 만한 실체는 1차 세계대전 후에 생겨납니다. 끔찍한 전쟁을 겪고 나서야 국제법 관념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때까지는 인권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국가 간 연맹이 느슨했고, 여전히 식민지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상황이 달라집니다. 2차 세계대전 때에는 전후방 구분도 없이 도시 전체가 격전지가 되어 버렸고, 무기 성능 향상으로 민간인 피해가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국가의 이름을 걸고 홀로코스트를 자행합니다. 그 끔찍한 상황을 보고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국제법이 개인의 인권 보장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을 보호하자는 소극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누구든 인간으로서 국가와 국제사회의 부당한 간섭 없이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고, 그런 권리가 침해되면 개인이 인권을 걸고 자기의 이름으로 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유엔은 2005년 그 확인을 위한 결의를 합니다. ‘Basic Principles and Guidelines on the Right to a Remedy and Reparation for Victims of Gros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 Rights Law and Seriou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Humanitarian Law(약칭: 피해자 구제권리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라는 결의입니다. 국제인권법이나 국제인도법의 중대한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개인은 국가나 법인, 개인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결의는 그때까지 확립된 국제법상 개인 권리에 관한 법리를 집대성한 문서로 피해자 권리장전으로 불립니다.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으니까 독일과 일본도 당연히 찬성했습니다. 독일은 이런 흐름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은 정당 성향에 상관없이 누가 총리가 되어도 희생자 앞에 무릎을 꿇고 헌화하면서 사과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인권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그 흐름을 말씀 드렸습니다. 국제기구 근무 경험을 가진 동료 판사가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잠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권리를 대신 포기할 수 있나요? 질문을 약간 바꿔서, 인권에 부당한 침해를 받은 국민이 배상청구를 하면 국가가 그 청구를 못하게 막을 수 있나요? 법률 관계는 개인과 기업, 개인과 국가, 국가와 국가 간에 모두 성립할 수 있고, 이들 법률 관계는 서로 간섭하지 않습니다. 서로 간섭할 수 있다고 하면, 특히나 국가가 개인의 권리 행사를 대신할 수 있다거나 포기시킬 수 있다고 하면, 그런 체제는 전체주의입니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국가의 3요소 가운데 국민이 사라진 체제입니다. 국가와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지금 우리가 걷는 길은 뼈아픈 경험과 지극히 당연한 논리에서 비롯한 인권을 향한 발걸음이자, 세계가 공감하고 격려하는 옳은 방향입니다. 이웃나라에서 강제징용 판결 때문이라고 대놓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흐름, 무엇보다 인권에 기초해서 2012, 그 후로 6년이나 지난 2018년에야 대법원은 강제징용자들의 권리를 최종 확인해 주었습니다.

 

이웃나라 사정은 당파적 이익을 위한 정권의 선택이지 나라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안쓰럽습니다. 언제 의자를 돌려 앉아 자국 국민에게도 같은 요구를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저는 일본 국민이 정부보다 현명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시간은 연속하고 과거, 현재, 미래는 서로 작용하며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성하는 미래는 소중합니다./함석천 |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경향 2019.08.05.

 

엄마부대와 아베

엄마. 극한 슬픔이나 위기, 기쁨의 순간 부르는 이름이다. 만들어진 모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엄마라는 이름에 원초적이고 절대적인 힘이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엄마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자칭 애국보수 시민단체 엄마부대2013년 발족 이후 여러 모습으로 활동해왔다. 세월호 참사, 통진당 해산, 전교조 법외노조화, ·일 위안부 합의 등 굵직한 이슈들이 불거질 때마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어버이연합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손과 발이 되어 활동했다. 이 단체 주옥순 대표는 2016년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내 딸이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했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다라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여학생을 폭행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2018년에는 허위사실을 담은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20179월에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로부터 당 디지털정당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돼 활동하기도 한 그의 현재 직함은 유튜브 엄마방송채널 진행자다. 구독자 수가 15만명이 넘는다.

 

엄마부대가 최근 지향하는 가치와 정반대의 친일 정체성을 드러냈다. 주 대표는 지난 1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수상님, 저희의 지도자가 무력해서, 무지해서 한·일관계의 그 모든 것을 파기한 것에 대해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일본 파이팅을 외쳤다고 한다. MBC 탐사보도 프로 <스트레이트>의 보도다. 그는 지난 6엄마방송에서 일본은 우리를 도와주는 나라라며 과거 식민지배는 있었지만 우리에게 해준 게 많다고 주장했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그동안 애국보수를 참칭한 세력이 사랑한 나라가 일본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폭염 속에서 여론은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무엇보다 모성과는 동떨어진 활동을 해온 이들이 엄마라는 이름을 단체명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분노하는 목소리가 많다. ‘국민 모욕죄’ ‘엄마 사칭죄로 소송이라도 하고 싶다. 엄마부대는 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며 누구의 엄마란 말인가.

송현숙 논설위원 song@kyunghyang.com 경향 2019.08.05.

 

법의 렌즈로 본 자사고 문제

교육 관련 굵직한 행정소송들이 이어지고 있다. 자사고 지정 취소와 관련한 소송 기사들이 수십건씩 포털을 채운다. 갈등과 분쟁이 가득한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학생들과 학부모이지 다른 누구가 아니다.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교육정책 하나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교육을 흔들고 있다.

 

자사고 제도가 애초에 실현되지 말았어야 할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큰 이유는 우리 헌법정신에 반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 제31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함으로써 매우 분명하게 교육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교육의 기회균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교육의 기회균등이란 국민 누구나가 교육에 대한 접근 기회, 즉 취학의 기회가 균등하게 보장되어야 함을 뜻하므로, 교육을 받을 권리는 국가로 하여금 능력이 있는 국민이 여러 가지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국가의 재정능력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든 국민에게 취학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지게끔 그에 필요한 교육시설 및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부과한다.”(99헌바63, 2001·1·18)

 

이에 비추어 볼 때 자사고 제도는 어떠한가. 학교교육을 통해 다양한 교육과정을 제공받기 위해서는 일반고의 3,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의 경우엔 연간 학비가 2500만원으로 일반고의 9배에 달하는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일반 국민들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수준이다. 교육과정의 다양성은 재력 있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되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다. 각자의 적성과 흥미, 진로에 따라 다양한 교육과정의 경험을 제공하여 그 잠재력이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학교교육의 목적이 있다. 사회통합전형이 있다고 하지만 서열의 정점에 있는 일부 전국단위 자사고들은 법령상 의무규정이 아니라는 등의 이유로 사회통합전형 학생들을 거의 받지 않고 있다. 자사고 제도는 헌법 제31조 제1항의 교육기회의 균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헌법재판소도 인정하듯 우수 학생 선점에 기반하여 대학입시에 치중한 결과 고교서열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다(2018헌마221, 2019·4·11). 혹자는 자사고를 폐지할 것이 아니라 일반고와 자사고가 경쟁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교육생태계가 파괴된 현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내뱉는 말이다.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다. 출발선 등의 조건을 유사하게 맞추어야 한다. 자사고와 일반고의 조건은 이미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다. 입학생들의 내신 성적만 보더라도 단번에 확인할 수 있다.

 

양보할 수 없는 우리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교육을 정상화하며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선 법령 개정을 통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유일한 길이다. 지정 취소를 통한 폐지는 소송을 전제하고 있어 법적 혼란이 더 크고 갈등과 분쟁이 심화될 소지가 높다. 이미 지정 취소가 예정된 학교들 거의 모두가 행정소송을 예정하고 있고 전북교육청은 교육부에 대한 권한쟁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방안이 아니다. 법령에 따르면 평가결과가 우수할 경우 자사고로 재지정되어야 한다. 자사고 제도 자체의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다.

 

법령 개정을 통하여 일괄적으로 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할 경우 자사고 측에서는 신뢰보호이익의 원칙, 학교선택권 침해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다양성이라는 자사고 제도 신설의 목적 자체가 형해화된 지금, 자사고 제도에 대한 신뢰보호가치가 높지 않으며 교육기회의 균등 및 고교서열화 해소 등의 공익적 가치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뢰보호의 이익이 더 크다고 볼 여지도 적다. 또한 선 지원 후 추첨제, 일반고 안에서 학생 중심 선택의 교육과정 다양화 제도가 마련되고 있는 만큼 과도하게 학교선택권을 침해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헌법재판소가 밝힌 것처럼 학교 제도는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국가가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하여 교육정책을 탄력적·합리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크다. 또한 교육과 학교 제도에 관하여 어떠한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하여 왔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의 예상치 못한 부작용 등이 발견될 경우 이를 시정하여야 하는 것은 교육정책을 수립하는 국가의 의무이다(2018헌마221, 2019·4·11). 국가는 헌법의 교육기회 균등의 가치를 수호하고 아이들의 잠재력이 발현할 수 있는 학교교육을 실현하기 위하여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내용으로 초·중등교육법 및 그 시행령을 개정하라. 그것이 국가의 의무이다.

홍민정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상임변호사 경향 2019.08.05.

 

다차원 갈등 시대의 강한 외교

일본이 경제전쟁을 계속 밀어붙인다.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부정하고,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나라에 배치하려고 한다.

미국이 방위비(주한미군 주둔비) 분담금을 큰 폭으로 늘리라고 한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에 우리나라의 동참을 요구한다.

북한이 한-미 훈련 등에 항의하며 단거리 미사일을 잇달아 쏜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서 합동훈련을 벌이고,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나라 영공을 침범한다.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무역·기술전쟁에 이어 통화전쟁에 돌입한다. 금융시장이 출렁인다.

 

지금 우리가 한꺼번에 겪고 있는 외교·안보 사안이다. 어느 하나 만만치가 않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깊은 늪에 빠질 수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의 세계사적 전환기(냉전종식기)를 연상시키는 상황이다.

 

관련국들이 우리나라에만 앙심을 품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모두 우리 못잖은 문제를 안고,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 자산인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는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남쿠릴열도(북방영토) 4개 섬의 영유권 문제도 러시아와 얘기가 잘 통하지 않는다. 대미 관계도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미국은 강한 통상 압박과 더불어 주일미군 주둔비의 대폭 증액을 요구한다. 동북아 현안에서 일본의 발언권이 줄어드는 양상도 뚜렷하다. 아베가 섣부르게 한국 때리기에 나선 배경에는 공세적 측면과 더불어 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초조감이 있다.

 

복잡해 보이는 다차원 갈등 시대지만, 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크게 두가지 뿌리에 닿는다. -중 대결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그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 우선주의가 만들어내는 강한 마찰은 동아시아 전체의 모습을 재규정하며 여러 난제를 만들어낸다. 냉전 종식 시기와 달리 우열과 승패가 분명하지 않아 더 그렇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그 속에서 핵 문제 해결과 평화구조 정착을 꾀한다. 이 힘이 세지면 동북아 전역에서 대결을 상쇄하는 새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원칙이 중요하다. 유연한 접근도 확고한 원칙이 전제돼야 효과가 있다. 원칙은 크게 둘이다. 평화와 역량 강화가 그것이다. 동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며 우리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그 정도의 힘과 자율성은 우리에게 있다.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을 우리 땅에 배치해선 안 된다. -중 대결을 심화하고 우리나라가 분쟁지역이 될 것이 분명해서다. 동북아 대결 구조에 한-미 동맹을 활용하는 것은 동맹 정신의 이탈이다. --일 삼각 안보협력 역시 미-중 대결의 수단이 아니라 평화의 주춧돌이 돼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파병도 신중해야 한다. 호르무즈해협 대치는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핵협정 탈퇴의 결과다. 미국과 이란 사이 긴장 고조는 전쟁의 전주곡이다. 미국 주도 호위 연합체에 대한 참여는 핵협정 탈퇴와 전쟁에 찬성하는 것과 같다. 꼭 필요하다면 우리 병력으로 우리 선박을 지키면 된다.

 

영공 침범에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터키는 201511월 시리아 접경 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자국으로 들어온 러시아 전폭기를 격추한 바 있다. 미국·일본과 중국·러시아의 대결이 아무리 확장되더라도 우리 영토가 무대가 돼선 안 된다. 한반도는 대결 구조의 약한 고리가 아니라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임을 각인시켜야 한다.

 

북한과 관련해선 평화프로세스의 실질적 이행 방안을 찾고 실천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있게 북한과 미국의 결단을 끌어내려면 남다른 창의성과 결단이 필요하다. 내년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향적 태도는 필수다.

 

최대 현안인 일본과의 경제전쟁에선 차분하게 큰 흐름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기본이다. 국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면서 우리 역량을 내실 있게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체로 잘하고 있지만, 좀 더 집중력 있고 탄력성 강한 경제구조 구축이 요구된다.

 

강한 외교가 필요한 때다. 평화와 공동번영의 길이 넓어지고 우리 역량이 커지는 게 강한 외교다. 우리가 먼저 중심을 잡으면 다른 나라도 그에 맞춰간다. 거꾸로 우리가 눈치를 보면 다른 나라는 더 심하게 흔들려고 할 것이다. /김지석 대기자 한겨레 :2019-08-07

 

북한에는 과거로,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는 일본

일본의 한반도 외교는 이율배반적이다. 한국에는 미래로 가자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를 추궁한다. 일본과 북한은 2002년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를 서로 인정하고 청산한 다음 국교수립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이 취지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본인 납치사실을 시인했고, 피해자 13명 중 8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를 딛고 미래로 가자는 북·일 평양선언의 취지가 무색하게 납치문제에 집착했고,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생존자 5명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납치문제가 복잡하게 꼬인 이유는 가해자일본이 피해자의 처지에 설 모처럼의 기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후나바시 요이치의 표현을 빌면 이런 처지의 바뀜에서 일본인들은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 듯 하다. ‘우리도 한국이나 중국만큼 당하고 살았다. 납치문제가 그 증거다.’

 

납치 피해자들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연행을 입증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기록만큼이나 찾기 어렵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연행은 부인하려 들면서 납치문제에는 집요하게 매달렸다. 일본은 자신의 이율배반을 이렇게 변명할지 모른다. 한국이 제기하는 과거사는 전전(戰前)이고 일본인 납치는 최근(1970~1980년대)의 일이니 엄연히 다르다고. 하지만 미수교 상태의 북·일 간에 전전’ ‘전후구분은 의미가 없다.

 

패전 이후 일본은 참회할 겨를도 없이 미국이 짜놓은 전후 질서에 몸을 맡겼다. 패전 직후 ‘1억 총참회구호는 흐지부지됐고, 일본은 ‘1억 총망각상태로 매진했다. 이국의 전장에서 돌아온 동네 아저씨와 형들은 입을 꾹 다문 채 가해자 일본의 기억을 봉인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방사능이 금기어가 된 걸 보면, 당시 일본의 공기가 허용하지 않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매년 종전기념일로 불리는 815일을 전후로 일본 방송들은 대체로 원폭 피해와 오키나와 지상전의 참상, 도쿄대공습의 기억 등을 극화한 드라마들을 방영한다. 일본 학교에서 역사수업의 진도는 러일전쟁에서 멈춘다. ‘피해자 일본은 극적으로 기억되지만 가해자 일본사실이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다는 수준에서 공유된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처럼 가해자 일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사건들은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가해자로서의 성찰이 부족한 겉핥기역사교육을 받아왔으니 일본인들이 한국의 주장에 놀라거나 저항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일본은 미국이 부여한 전후 평화체제에 안주하며 동아시아 냉전체제를 남의 일로 여겨왔다. 목소리를 내야 할 진보세력은 냉전체제라는 온실에 갇혀 야성(野性)을 잃었다. 일본의 부조리와 위선이 도마에 오른 것은 한국의 민주화 이후다. 군사정권에 의해 봉인된 가해자 일본의 민낯은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계기로 벗겨졌다. 물론 고노담화무라야마담화같은 반성이 있었고, 아시아여성기금을 통한 보상 노력도 있었지만 가해자 의식이 희박한 일본인들에게 육화(肉化)’되지 못했다. 그 기간 보수우익은 일본군 위안부와 난징대학살을 축소·부인하면서 아름다운 일본론()’으로 일본인들을 파고들었다. ‘아름다운 일본론은 우리 일본인들이 그런 잔인한 짓을 했을 리 없다는 부인(否認)심리를 부풀렸다.

 

그렇다면 납치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일본이 스스로의 잘못을 충분히 성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서 무수한 타 국민을 유린한 전쟁범죄의 천근 같은 무게감을 헤아려 보지 못했으니 수십명 납치에도 그토록 놀라 버리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최근 납치문제 진전이 없더라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말을 바꿨지만, 일본 국민들이 피해자지위를 순순히 내놓을지도 의문이다. 과거사에 대한 교육과 반성을 생략한 대가가 일본 외교의 발목을 죄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갈등의 주된 전장은 경제분야지만 역사전쟁도 격화될 것이다. 우리가 싸울 대상은 아베 정권이지 일본인이 아니다. 이 와중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의 소녀상전시에 나선 일본인들이 있지 않은가. 그들을 적으로 돌리지 않으려면 보다 치밀해질 필요가 있다. 영화 <주전장>에서 위안부 20만명문제를 추적한 미키 데자키 감독은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의 입을 빌려 한국에 주의를 당부한다. ‘입증할 수 없다면, 숫자를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과거사 문제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제기하다 한국에 호의를 품은 일본인들까지 등을 돌린 사례를 종종 봐왔다. 일본이 꼼짝 못하도록 주장을 벼리고 거품도 빼야 한다. 무딘 칼로 전장에 나가는 건 곤란하다. 서의동 논설위원 경향 2019.08.07

 

 

보이콧 자팬에 대한 단상

일본의 무역 보복이 세계화 시대의 국제사회에서 일종의 경제 침략의 성격을 띠고 있긴 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국민의 자발적인 일본 상품 불매 운동, 일본 여행 안 가기 캠페인, 일명 '보이콧 자팬'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언제까지나 상호주의나 호혜주의의 원칙에 따른 전략적 대응이어야 하지 일제 식민치하 독립운동과 동일시 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진출한 일본 자본의 기업이나 국외 진출한 한국 자본의 기업이나 따지고 보면 다 초국적, 다국적 기업의 성격이 강하고 소비자의 관점에서는 품질과 가격의 경쟁력에 따라 구매를 결정해왔다. 또 거기에 일하는 노동자나 종업원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 역시 경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외 자본 유치에 얼마나 열을 올렸는가.

 

지금은 양국이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또 이를 기회로 일본에 다소 의존적이었던 일부 제조업의 홀로서기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제에 있어서 두 나라가 상호 호혜주의를 바탕으로 경쟁과 협력을 통한 상생의 길로 나가야 한다. 따라서 불매운동이나 캠페인은 어디까지나 일본의 무역 보복에 대한 대응의 성격 차원으로 진행돼야 하지 이를 마치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장악에 대응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일제 자동차에는 주유를 거부하겠다고 선언하는 주유소나 일본 자본의 기업 노동자나 업무 종사원에게 판매를 거부하는 상점, 일본식 주점을 이용하는 사람을 매국노 취급하는 태도 등과 같은 과잉 행동은 옳지 못하다. 불매운동 역시 어디까지나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지 이를 따르지 않는다고 백안시하거나 비난해서도 안될 것이다.

 

특히 시민사회의 자발적 행동으로 이뤄져야 할 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안 가기 캠페인 등을 지자체나 행정부가 주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정략적으로 이용해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지나친 민족주의의 강조는 특히 경제의 경우 세계화 시대에 자기모순에 빠질 가능성이 높으며 국수주의나 극우 파시즘으로 그 성격이 변질될 위험도 크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 보수우파라고 자처하는 사회정치 세력은 극우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친미친일 사대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바람에 작금의 상황에서 오히려 친일세력으로 지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우리 공동체는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고 다양성에 기반한 다원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열린 사회(open society)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전 동의대 외래교수 천지일보 2019.08.07.

 

전함 야마토는 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최근 일본 해상자위대 군악대의 대민 행사 영상을 보게 되었다. 시민을 상대로 하는 행사이니만큼, 영화음악이나 애니메이션 주제가 등 익숙한 곡들로 리스트를 채우는 것은 당연했을 터이다. 기왕이면 바다나 함선을 주제로 하는 작품의 OST를 연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노래를 연주하면 안 되었다.

                 

1980년대에 MBC에서 방영한 일본 원작 애니메이션 중 <날으는 전함 V>라는 작품이 있었다. 거대한 전함이 하늘로 떠올라 우주를 항해하는 이미지가 퍽 낭만적이었기에, 꽤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지나 <마징가 Z>의 파일럿 쇠돌이의 본명이 카부토 코우지임을 알게 되듯, 이 작품의 원래 이름도 알게 되었다. <우주전함 야마토(宇宙戰艦ヤマト)>.

             

해상자위대 군악대가 연주한 것은 바로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였다. 스토리 자체는 외려 반전과 평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편이다. 2199, 지구가 외계인의 공격으로 환경 위기에 처하자 바닷속에 가라앉은 구 일본제국 해군의 배를 우주전함으로 개조해, 지구를 정화할 수 있는 장치를 찾으러 우주 먼 곳으로 떠난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 등장하는 함선이다. ‘야마토가 어떤 배인가.

      

 Wikipedia1941년 일본 해군이 진수한 야마토 전함



2차 세계대전의 불길이 맹렬히 번져가던 1941, 일본제국 해군은 미국에 비해 열세로 평가되던 해상 전력을 획기적으로 만회하려는 목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인 야마토무사시를 진수한다. 전장 263m, 전폭 39m. 지금 기준으로 보아도 중형 항공모함에 필적하는 덩치였다. 그리고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더 큰 전함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함의 시대가 야마토의 침몰과 함께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야마토가 바다로 나설 때는 전함의 시대가 이미 저물어가던 황혼기였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대구경 포를 장착한 거대한 전함은 지금의 핵무기와 맞먹는 존재였다. 이런 배를 몰고 가서 포탄을 퍼부어대는 것만큼 상대방을 확실하게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자연히 열강들은 너도나도 대형 전함 건조에 열을 올렸다. 이른바 거함거포주의시대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 접어들며, 거함거포주의의 문제점이 드러난다. 한 척을 건조하는 데 나라의 재정이 휘청거릴 정도의 돈을 들여야 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전함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전투기들이 바다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장갑이 두꺼운 전함이라 해도, 위로부터의 공격에는 취약하기 마련이다. 전투기들을 갑판에 싣고 다니다가, 먼 거리에서 그들을 출격시켜 전함에 폭격을 가할 수 있는 항공모함이 태평양의 새로운 주인공이 되었다. 제국의 위용을 온 바다에 떨치려던 야마토는 결국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 채 19452월 미국 전투기들의 어뢰에 격침당하고 만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미국 전투기에 격침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지금 우리를 향해 들이대고 있는 무역 보복의 칼날이 거함거포주의의 황혼기에 바다로 향했던 야마토함에 겹쳐 보이는 것은 너무 나아간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했다는 점에서 그들의 시도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들이 쥐여주는 돈 몇 푼에 입을 닥치던 이웃 꼬마가 아니다. 자신들이 길목 하나를 통제함으로써, 전 세계적 무역의 그물망을 어지럽혀보겠다는 심사는 매우 시대착오적이다.

 

지금도 야마토의 잔해는 북태평양 해저에 말없이 누워 있다. 지나간 시대의 영광에 연연해 무모한 짓을 벌이는 이들이 권력을 가졌을 때 일어나는 일을 온몸으로 웅변하며. 탁재형 (팟캐스트 <PD의 여행수다> 진행자 / 시사인 2019.08.07.

 

트럼프와 아베, 비틀대는 세계화

- 트럼프의 보호주의 포퓰리즘과 한국을 때리는 아베의 극우 정치는 개방된 세계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패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 정치가 세계화를 쓰러뜨릴 것인가.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아베가 한국 경제에 수출규제라는 칼을 들이댔다. 이를 바라보는 전 세계의 눈은 우려 일색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뜩이나 국제무역의 증가가 둔화되어 세계경제의 앞날이 어두운데, 이러한 흐름은 세계화를 비틀거리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국제무역과 직접투자 증가로 세계화의 행진이 계속되어왔다.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효율적으로 부품을 조달하며 국제분업체제를 확립했고, 이는 국제무역을 크게 증가시켰다. 이른바 글로벌 공급망에 기초한 글로벌 가치사슬이 발전된 것이다. 각국은 이 사슬을 통해 기꺼이 서로 묶이며 성장해왔다. 중국과 같은 신흥 경제와 개도국들은 세계화의 물결에 올라타서 성장을 이룩했고, 세계의 빈곤도 매우 줄어들었다.

 

세계화는 선진국에도 생산성 상승과 소비자들의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세계화는, 중국 노동자에게 일자리를 잃은 미국 노동자들의 분노로 대표되는 새로운 불만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클린턴과 영국의 블레어 등 진보 정부들은 개방과 세계화를 촉진했지만, 감세와 규제완화와 함께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세계화의 패자들을 끌어안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의 분노가 포퓰리즘의 득세로 이어졌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이제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다.

            

무엇보다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의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려 세계경제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존재한다. 트럼프의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 무역전쟁의 본질은 글로벌 가치사슬을 중국에서 미국으로 옮겨 경제적·기술적 패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세 부과는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으로부터 다른 국가로 생산기지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세계무역에 큰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도 있다. <블룸버그>도 지적하듯, 더욱 큰 위협은 직접적인 수출규제다. 트럼프가 안보 문제를 들어 중국의 화웨이와 ZTE에 대한 미국 기업들의 부품 수출을 규제하는 것이 대표적 조치다. 유럽연합(EU)도 군사 기술에 사용될 수도 있는 원자력 기술 등과 관련 있는 제품의 수출제한을 강화했다

 

아베 정부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도 마찬가지다. 이는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의 성격이 크지만, 일본 정부는 그 핑계로 안보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8월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다면 한국의 제조업체들이 큰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문제는 한국이 전 세계 D램의 70% 이상을 공급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규제가 글로벌 공급망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후 2주 만에 D램 가격이 25%나 높아졌고, 전 세계 언론이 이 조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 추구해야                 

아베의 수출규제는 일본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 자국의 소재기업과 산업이 피해를 볼 수 있고, 수출 둔화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이미 미국의 무역전쟁으로 미국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예일 대학의 골드버그 교수 등은 2018년 무역전쟁으로 미국 경제가 오히려 78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보고한다. 아직은 그 충격이 크지 않지만 무역전쟁이 확대되면 경제에 주는 악영향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보호무역에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으며,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은 트럼프의 무역전쟁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뿌리는 다르지만, 트럼프의 보호주의 포퓰리즘과 한국을 때리는 아베의 극우 정치는 개방된 세계경제에 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매한가지다. 과연 패권을 추구하는 국수주의 정치가 세계화를 쓰러뜨릴 것인가. 분명한 것은 보호무역과 수출규제로 세계화가 비틀대는 것은 자본만이 아니라 세계시민 모두에게 나쁜 소식이라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포용적인 세계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아베와 트럼프가 지난 4월 합의한 대로 자유롭고 공정하며 호혜적인 무역을 추구하는 것이다.

20190808() 620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 시사인

 

지천으로 전염된 4대강 공사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기름을 부은 유니클로 임원의 말은 아마도 그가 장기간 우리 국민을 면밀히 관찰한 데에서 나온 말이리라. 그 임원은 냄비근성을 부드럽게 표현해 줬는데 우리 국민은 왜 분노한 것일까. 아마도 수많은 사회문제들에 쉽게 끓다가 아무런 해결 없이 잊히고 반복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면이기에, 정곡을 찔린 아픔에 더 분노한 것인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폭염과 기후재난, 겨울에는 미세먼지, 연중 플라스틱쓰레기와 핵문제, 자연파괴로 이어지는 반복되는 환경뉴스는 더 이상 새로울 것 없이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 권리가 오염되어 모두가 피해를 받는 상황이 뚜렷해짐에도 점점 관심 밖으로 밀리는 모양새다. 폭염은 에어컨, 녹조는 페트병의 생수, 미세먼지는 공기청정기가 해결해주고 쓰레기와 방사능은 나와 관계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외면하지만, 더 이상 진부한 재난영화의 클리셰가 아닌 내 눈앞의 현실임을 주시해야만 한다. 언론을 만들어가는 일부는 외면이 가능하겠지만 많은 서민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역사상 최대 혈세낭비와 환경파괴 행위인 4대강사업으로 촉발된 녹조라떼는 한때나마 국민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지금은 마치 강물이 깨끗해지기라도 한 양 관심 밖으로 밀렸지만, 연어도 아닌 것이 물을 거슬러 오르며 확산되고 고도정수에도 식수로 사용할 수 없을 만큼 갈수록 오염이 심해지는 게 현실이다. 4대강 재자연화 촉구는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하루라도 빠른 보의 철거와 강둑의 복원이 국민의 생활환경 개선과 건강 위협을 줄이는 일임은 자명하다. 여기에 더해 경제부흥을 빙자한 환경파괴 행위인 하천 토건사업이 허상이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로도 반드시 빠르게 추진되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도 보 해체는 지리멸렬하기만 하다. 그런데 복원이 더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파괴적 보 조성이 현재진행형이라는 데 있다. 단물을 다 빼먹은 4대강이 아닌 그 지천으로 옮겨갔을 뿐, 지금 이 시간에도 4대강을 포함해 국토의 모든 강에는 무수히 많은 보가 촘촘히 건설되고 있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는 단순 진리의 검증을 위해 천문학적 돈을 썼는데, 이제 또 다른 만고의 진리인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검증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고 있다. 4대강을 막은 16개 보 해체에만 관심을 갖는 사이 국토의 실핏줄이라 할 수 있는 지천에서는 각 지천 하나당 4대강사업 모든 보의 개수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보가 지금도 계속 건설되고 있다. 그럴싸한 생태하천 복원’ ‘고향의 강이라는 이름을 붙여서다. ‘강 살리기라는 이름으로 강을 죽이고, 지금은 생태하천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위대함이 만들어낸 생태기능과 아름다움을 망가뜨리고 있다. 말장난 사업으로 멀쩡한 멸종위기어류의 서식처가 없어지고, 둔치의 자연정화기능이 상실되고 있다. 더불어 상류의 물길까지 막아 물은 4대강에 채 도달하기도 전에 오염된다. 윗물에서 썩은 물이 흘러들어오는데 4대강 보가 해체된들 강물이 깨끗해질 리 만무하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천의 수많은 보 조성사업이 중단되지 않는다면 하류의 4대강에 있는 모든 보를 해체해도 절대 물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4대강 재자연화는 늘 그랬듯 논란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소모적 논쟁으로 이어지고 그사이 지천의 보는 셀 수 없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루한 논란 끝에 시범적으로 철거한 몇몇 보는 궤변으로 일삼은 4대강 찬성론자들을 다시 수면 위로 불러낼 것이다.

 

불탄 잿더미 복원을 위한 논쟁보다는 지금 확산되는 불을 끄는 것이 우선이다. 이미 벌어진 폭력인 4대강사업보다 현재진행형인 지천에서 자행되는 각종 하천파괴사업 중단이 훨씬 시급하다. ‘녹조라떼는 후손의 생명을 위해 식지 않는 가마솥이 되어야 한다.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 경향 2019.08.08.

 

현대차 노동자와 여유로울 권리

울산의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은 대한민국 제조업을 대표하는 기업이자 대한민국 전체의 노사관계를 평가하는 시금석이다. 하지만 두 기업의 대립적 노사관계는 노동자 개개인의 자존감과 기업 경쟁력 모두를 저해하는 것은 물론, 울산시민과 대한민국 국민을 암울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대립적 노사관계의 원인은 노동조합과 사용자 모두 이미 생산된 금전적 파이를 나누는 분배적 측면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현대적 인간에게 금전은 인간적 가치를 실현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지만, 이러한 금전적 수단이 목적이 되거나 금전 이외의 다른 유용한 행복을 구현할 수 있는 수단들이 도외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노동은 결코 인간의 본성이거나 신성한 덕목도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 1883년 폴 라파르그는 여유로울 권리(The Right to be Lazy)’라는 논문에서, 인간은 원래 일하기보다는 놀기 위한 존재인데, 산업화와 함께 노동은 인간생활의 너무나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신성하기까지 한 노동은 인간이 가진 다른 본래의 가치를 훼손해도 되는 제1의 미덕이 되었다고 풍자한 바 있다. 우리 한국인, 특히 북구 유럽에 버금가는 1인당 국민소득을 자랑하는 울산의 노동자들도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일 중독, 금전 중독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삶의 방편도 있다. 가족, 여가, 나만의 시간 같은 일 이외의 삶의 영역을 즐기고 개척하는 것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울산에서만 매년 2000명 이상 정년퇴직하고 있다. 이 산업전사들은 퇴직 후의 행복한 삶을 꾸릴 준비가 되어 있을까?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지금은 주간 2교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2013년까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 교대제와 장시간 노동을 통해 오로지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만을 위한 목적으로 회사생활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1998년 외환위기 시 대규모 인력조정의 쓰라린 경험은 회사에 대한 애착심도 시들게 하여 현장 노동자들의 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자발적인 생산성 향상 노력은 요원한 일이 되어 버렸다. 장시간 노동으로 소홀했던 가족관계, 직장 동아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취미활동, 생산성 향상 노력을 통해 형성할 수 있는 숙련기술과 자존감의 결여는 퇴직 후의 삶을 어둡게 하고 있다.

 

그럼 퇴직을 한참 앞둔 현대차 노동자들은 현재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을까?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공정 자동화, 친환경차 생산에 따른 공정 축소 등의 여파로 신규 입사자가 많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세대인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 9000여명이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현대차에 활력을 불어 넣어주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의 가치는 워라밸이다. 워라밸은 직장과 나의 삶을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내 개인적 삶에서도 균형을 이루면서 각각의 삶의 영역에서 모두 행복 실현을 이루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을 돈벌이 수단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일은 나를 인간적으로 성숙시키고 공동체적 삶에 기여하는 자아실현의 장인 것이다.

 

울산에는 자동차(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와 조선산업(1972년 현대중공업 설립)에 앞서 1962년부터 석유화학 분야에서 대한민국의 초기 산업화를 선도한 글로벌 에너지 회사 SK이노베이션도 있다. 이 기업도 근 20년간 대립적 노사관계를 경험했지만, 2017년부터 물가연동형 임금 인상 시스템을 도입하고, 남성 근로자의 가정에서의 적극적 역할을 중시하고 원청과 협력업체의 상생발전에 노동조합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금전적 보상만을 노사협상의 주된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워라밸의 가치를 직장, 가족, 공동체라는 삶의 모든 영역에 골고루 반영함으로써 노동자의 자존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함께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모쪼록 울산의 노사관계가 이러한 방향으로 한층 더 성숙되기를 간절히 기대해본다. /김종철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 경향 2019.08.08.

 

아베가 꿈에서도 몰랐던 대답, 평화경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때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이 함께 평화경제를 실현함으로써 일본 경제를 앞지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베와 일본을 동일시하고 일본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어 국민적 통합을 부추기는, 민족주의적인 선동의 말이 아니어서, 대국민 메시지로서 괜찮아 보였다. 게다가 평화경제라는 말이 썩 맘에 들었다. 상대에게 치명적 타격을 날림으로써, 복종관계를 강화하려는 정복주의적인 상상력이 아베에게 엿보인다면, 이웃이 아니었던 대상을 새로운 이웃으로 만듦으로써 새로운 경제동력을 통해 일본을 앞지르는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는 창의적인 발상은 매우 신선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숙고할 만한 것도 있었지만, 일부 전문가라는 이들의 비판은 비평이라기엔 너무 조야했다. 아베는 급소를 정밀하게 조준하여 우리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자 하는데, 대통령의 해법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평화경제라는 도그마에 사로잡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배척하고 허황된 정책을 드리이브할 것이 우려된다고도 했다.

 

왜 이렇게 말할까. 이게 비판으로서 적절한가. 대통령이 세밀한 대응 전술을 대국민 메시지로 말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는 발상은 너무 순진한 지적이다. 또 대통령이 제시한 평화경제가 전문적 식견이 부족한 허황된 도그마라는 예단은,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자명한가. 평화경제를 과학과 대립된 것이라는 이분법을 미리 전제하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하지 않은 채 수행하는 비판은 차라리 비난에 가깝다.

 

여러 국제적 언론매체들은 아베 정권이 무리한 경제보복을 시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의 일부 언론이 정밀타격이라고 평한 그것이 자국의 피해를 우회하려는 노력이 빈약한 우둔한 타격이라는 얘기다. 강상중 교수에 의하면 그것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전범기업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문제제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아베 일파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회의의 정체>를 쓴 아오키 오사무 교수는 아베가 속한 일본 최대의 극우 로비단체인 일본회의의 핵심 의제가 쇼와 시대로의 원점회귀에 있다고 비판한다. 이 단체 멤버들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다니구치 마사하루라는 극우적 소종파 교주는 황실이 이끄는 일본은 세계의 지도국이며, 일본인은 세계의 지도자로서 신에게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라고 주장했는데, 한국 대법원 판결이 일본 극우의 이런 도그마적 교리에 시비를 건 사건이라는 얘기겠다.

 

이런 추론은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이 과연 정밀한 타격인가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한다. 도그마에 대한 집착이 강한 탓에 전문가들의 조언을 무시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무튼 아베 정권은 최근 동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탈냉전 기류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갖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런 이들은 한국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다. 아마 북한, 중국, 러시아에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면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급성장하여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경제권을 만들어냈다. 이에 대해 아베나 한국의 극우 세력들은 냉전적 동아시아라는 국제적 규범체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믿는다.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런 믿음이 불가능한 상상의 산물은 아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엄청난 인적·물적 자본들이 국경을 넘나든다. 보수든 진보든 국경을 넘어 네트워크되기도 하고, 그렇게 복잡해진 지구사회에서 보수니 진보니 하는 한때 견고한 듯 보였던 이데올로기들의 색깔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종교도 어느 종단 소속인지가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미 여러 종교들이 혼합된 신심으로 살고 있다. 트랜스내셔널처럼 트랜스릴리지어시티(trans-religiocity)가 새로운 주류 현상이 되고 있다. 심지어 종교적인 것은 너무 세속적이고, 세속적인 것은 너무 숭고하기까지 하다. 한 연구자는 BTS 현상을 포스트근대적 종교성으로 읽었다.

 

냉전적 질서가 근대 동아시아를 구축했다 하더라도, 탈냉전적 포스트근대적 동아시아에 대한 상상은 더 이상 너무 앞서간 생각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고민거리다. 대통령의 평화경제라는 거대 어젠다는, ‘통일대박운운하는 경박한 논점보다, 훨씬 진일보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아베가 상상하지 못한 것을 우리는 꿈꾸고 달려갈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 대통령은 그것을 향한 상상의 열차에 시동을 걸었다. 단 그 열차 안에서 우리는 대통령이 말했던 경제적 성공 못지않게 더 빛나는 생명권의 신장에 관한 꿈을 꾼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장 경향 2019.08.09.

 

 

황교안, '박정희'는 되고 조국은 안된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국가를 전복하려 했던 운동권 출신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거쳐 법무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것이다. 세상을 좌우로 나누고 폭탄주도 오른쪽으로만 돌린다는 '미스터 국가보안법'의 눈으로 보자면 이것은 국기를 뒤흔드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황 대표는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 전복을 꿈꾸었던 사람이 법무장관이 될 수 있냐"며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전력을 끄집어냈다. 황 대표는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국가 전복을 꿈꾸는 조직에 몸 담았던 사람을 법무부장관에 앉히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라고 일갈했다.

 

조 후보자가 울산대에서 전임강사로 재직하던 1993년 사노맹 산하 사회주의과학원에서 활동했다는 혐의(국가보안법 이적단체 가입 등)로 징역 1, 집행유예 16월을 선고받은 전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당시 사노맹 중앙위원장이었던 백태웅 교수와 박노해 시인은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15년과 무기징역형이 확정됐다 19988·15특별사면 때 풀려났다. 은수미 성남시장도 이 사건으로 구속돼 6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사노맹 총책이었던 백태웅 교수는 사면 뒤 유학을 떠나 지금은 하와이대학교 로스쿨에 재직 중이다.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실무그룹 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국제 인권 분야에서 전문가의 입지를 다졌다. 한국전쟁 때 납북자는 물론이고 북한 인권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 교수는 안식년이었던 2017SBS와 인터뷰에서 "80년대는 민주주의와 자유, 평등, 통일 문제까지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던져지고 그 답을 요구하는 질풍노도의 시대였다""그런 의미에서 사노맹을 함께 했던 분들은 큰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의 민주화운동에서 아주 치열하게 자신을 던진 그룹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주의라는 무시무시한 이름 뒤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었다는 의미로 읽힌다.

 

백 교수는 "다만 미숙한 점들이 여러 가지 저의 20대의 한국 사회의 인식 수준에서 미래에 대한 종합적인 대안을 갖지 못한 부분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하고 어쩌면 그런 고민들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복잡다단하게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과 연결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앞만 보고 달렸던 20대 청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당시의 문제의식과 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한 지금의 역량이 결합하면 좀 더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황 대표는 또 조 후보자의 사노맹 전력을 거론하면서 "조국 전 수석이 이 일들에 대해 자기반성을 한 일이 있냐"고 물었다. 서울대 출신에 열혈 노동운동가였던 김문수 전 경기기자처럼 개과천선하기를 주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26년 전의 일을 들추어내며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조금 지나쳐보인다. 혹시 공안검사의 시각으로 전향 비슷한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여담으로 덧붙이자면 황 대표가 "미래를 볼 줄 아는 지도자, 경제 발전과 부국강병의 일념으로 나라를 이끈 분"이라며 존경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생전에 자신의 좌익 전력을 반성한 적이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남로당 군사총책으로 활동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이 때문에 1963년 대선에서 '빨갱이'라는 색깔론에 시달리기도 했다. 조근호 기자 CBS노컷뉴스 2019.8.12.

       

우울한 현대사, 광복절의 우수

한여름과 우수는 잘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이 경제전쟁을 선전포고한 상황에서 맞는 광복절은 착잡하다.

 

31혁명 100돌에 맞춰 낸 소설을 놓고 지상파방송에서 대담을 나눌 때였다. “이래서 현대사를 들여다보기 싫어요. 우울해지거든요.” 진행자가 녹화 중간에 쓸쓸한 미소로 건넨 말이다. 의열단 김상옥이 일제와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10발을 맞고도 싸우다가 마지막 한발로 자결한 이야기를 나눈 뒤였다. 언론계 후배이전에 젊은 세대가 우리 역사에서 느낄 비애가 새삼 사무쳤다.

 

모든 우울이 병적인 것은 아니다. 철학자 김동규는 <멜랑콜리 미학>에서 서양 철학과 예술을 관통하는 우울을 포착했다. 슬픈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우울은 삶을 새롭게 창조하는 힘이 될 수 있다. 멜랑콜리에는 우울과 우수, 비애가 두루 담겨 있다.

 

나는 젊은 세대가 현대사를 톺아보며 충분히 우울해지기를 소망한다. 기실 지상파 시사방송마저 재미를 좇는 세태야말로 우리를 우울증에 내몬다. 우울증은 우울에서 매력이 빠진 것이라는 수전 손택의 말을 빌리자면, ‘매력 있는 우울또는 우수에 잠겨보길 권하고 싶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내빈들이 지난 31일 오전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만세삼창을 했다. 사진=청와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에 조국은 31혁명을 ‘100년 전 촛불혁명이라 주장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이 단순한 은유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법학자 조국은 물론 역사학자들도 지나쳤지만, 31혁명은 실제로 촛불혁명이었다. 191915일부터 222일까지 천도교의 동학인들이 날마다 저녁 9시에 촛불을 밝혔다. ‘49일 특별기도를 봉행한 소설 100년 촛불의 장면은 실화다. 31혁명에 앞선 49일 촛불기도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다. 흔히 동학혁명과 31혁명 사이가 까마득하다고 여기기 십상이지만, 겨우 25년이다. 19876월대항쟁과 2016년 촛불혁명 사이보다 가깝다. 실제로 동학혁명에 나선 20대들이 40대 후반이 되어 31혁명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 또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33인의 대표 손병희는 동학혁명 시기에 녹두 전봉준의 아우로 의형제를 맺었다.

 

동학혁명과 31혁명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고, 더 나아가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웅숭깊은 사상으로 이어져있다. 20대에 동학혁명에 나섰고 40대에 31혁명에 나선 천도교 고위간부들의 촛불 기도에 담긴 그 사상은 단재 신채호를 거쳐 21세기의 촛불혁명으로 연면히 이어져왔다.

31혁명의 촛불은 단순히 일제로부터 독립을 주장하지 않았다. 독립해서 어떤 나라를 이룰 것인가를 성찰했다. 우리가 독립해 세울 나라는 일본제국의 행태와 달라야 했다.

 

그런데 100년이 흐른 2019, 청와대나 국회에서 일본과 경제전쟁을 다짐하는 정치인들의 언행에선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을 이기자고 한다. 그 심경은 이해하지만 이기고 질 문제가 아니다. 앞선 칼럼 조용한 일본인 귀하’(715)에서 제안했듯이 두 나라의 내일을 열어갈 민중 사이에 연대를 염두에 둔 언행이 아쉽다. 협량한 아베 따위와는 품격이 다른 도덕적 우월성을 지녀야 한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는 모쪼록 그런 내용이 담기길 기대한다.

 

바로 그렇기에 일본과의 경제전쟁을 내세워 노동정책이 더 후퇴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저들에 지는 꼴이다. 일본의 부품 기술이 강한 까닭은 현장 노동을 중시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노동인들의 창의성이 자유롭게 구현되는 일터는 일본과의 경제전쟁에 대처는 물론 소득주도성장의 구현을 위해서라도 절실한 과제이다. 노동과의 지지부진한 대화를 더 미루기보다 촛불정신에 걸맞은 새로운 다짐으로 진솔하게 다가서야 옳다.

 

무릇 국민의 힘을 모을 때 고갱이는 언제나 민주적 내실이다. 우리는 이미 100년에 걸쳐 촛불혁명을 다듬어왔다. 그 역사적 성취를 국가 간 승패나 총선의 유불리 따위로 축소한다면 참으로 속상한 일이다. 광복절의 우수에 잠겨 촛불을 밝히고 쓴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19.08.13 11:12

 

양비론을 경계해야 할 시간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대선 유세에서 러스트벨트로 상징되는 자신의 지지층을 겨냥해 계산된 혐오의 레토릭을 전략적으로 활용했고 이러한 논법은 지금도 종종 등장한다. 가령 과거에 비해 경쟁력을 잃은 미국 경제, 특히 중국의 거센 추격 등 외생변수를 여성과 무슬림, 이민자 등 사회적 소수자들의 탓으로 전가하고 이들을 위험한 타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이 그중 하나이다. 이런 극우 포퓰리즘적 정서는 이번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한국 수출규제에서도 유사하게 발견된다.

문제는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아베 총리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에 대해 한국 내 여론 분열을 계산했다는 정황들도 발견된다. 최근 국내의 정치적 갈등이 더욱 소모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논쟁과 비평에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 싸움의 언어 역시 최소한의 공유지를 벗어나선 곤란하다. 상대방의 존재를 근원부터 부정하는 치킨게임의 언어는 윤리적 차원을 넘어 그 언어가 도달하길 원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도 어렵다.

 

한 예로 여당의 야당에 대한 친일 프레임이 현 상황을 타개할 최상의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 과정에서 동원되는 감정적 민족주의의 언어들이 지지자를 염두에 둔 전략적 화용론의 일부일지라도, 책임 있는 정당의 언어로 여겨지기 어렵다. 이에 대한 야당의 대응 담론이나 언술들은 더욱 문제적이다. 일례로 국가적으로 공감과 연대를 확장해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지혜와 힘을 모으고 신중한 해법을 모색하는 대신, 외교안보라인을 포함해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추경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던 야당 대표의 말은 정치의 패권이나 권력 지향적 속성을 십분 고려하더라도 대다수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결과 시민사회의 자발적 일본 상품 불매운동과 여행 보이콧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보다 큰 문제는 언론의 양비론이다. 한때 세계적 경제대국이자 문명화된 국가의 전범으로 여겨지던 일본과 그 정부의 일방적 조치에 대해 냉엄한 국제질서 속에서 엄정한 힘의 논리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식의 말이 그중 하나이다. 아베 정부의 내셔널리즘과 문재인 정부의 극일모두 비이성적이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논조는 또 다른 예이다. 평화헌법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 제9조를 수정해 전쟁이 가능한 이른바 정상국가로 되돌리려는 역사수정주의자 아베의 경제보복 조치라는 변수와 동북아 질서의 변화에 대한 고려 없이 이를 현 정부의 외교실패로 규정하는 보수언론의 양비론은 위험하다.

 

특히 관련 사태에 대한 정부 인사들의 대응 담론을 신중치 못한 행위라 문제 삼는 것은 표면적으론 언론의 권력에 대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첨예한 국제질서 속에서 내부의 위기를 외부의 갈등으로 전가해 전쟁 같은 위기상황을 조장하는 아베의 위험천만한 정치공학을 용인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 인사들의 말에 대해 전시동원체제 아래의 애국이냐 이적이냐의 양자대립적 논의로 치환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그럴듯해 보이는 지적 또한 계산된 양비론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작은 차이를 봉합하고 큰 뜻에 힘을 모아야 하는 준엄한 시점이다.

류웅재 |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경향

2019.08.13.

He5 .흑점 1969

 

 

, 다시 맞는 8·15 해방의 그날

붓을 들었으나 눈앞이 뽀얘 한참을 머뭇대다가 겨우 긁적거려본다. 8·15, 그때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애들과 들에서 멱자구(개구리)를 구워 먹고 있는데 마을에 라디오가 하나밖에 없는 집에서 갑자기 와~ 우리가 마침내 일본 제국주의를 때려 부수었구나, 이제는 왜놈 경찰서와 집을 부수러 간다기에 쫓아가 보고는 눈깔이 떼굴떼굴. 흰쌀이 넘쳐나고 날고기와 갖은 마른반찬, 과자와 과일들이 넘쳐났다. 네놈들만 실컷 처먹었구나. 배알이 뒤틀려 돌아와 엄마이, 나 밥 줘그랬는데 내놓는다는 게 겨우 강냉이 한 자루와 콩국 한 바가지가 아닌가. “야 엄마이, 우리가 왜놈들을 쳐부수었는데 겨우 강냉이 한 자루가 뭐이가? 흰쌀밥 좀 먹자구나.” “얘야, 쌀밥은 있는 놈만 먹는 거다, 네 애비가 쌀 말을 지고 온다면 몰라도.”

 

나는 그때 퍼뜩 깨우친 것 같았다. 제아무리 민족 해방을 이룩해도 내 것이 없으면 주림은 한이 없다는 거. 그리고 얼마 후였다. 엄마가 네 애비가 축구선수가 소원인 너를 데불고 서울엘 가신단다. 어서 가서 축구선수가 돼서 돌아오거라.”

 

그리하여 맨발로 따라온 아, 서울. 와서 보니 그야말로 아득하기만 했다. 중학교를 못 다니니 공을 만져볼 기회가 있어야지. 그리하여 길거리를 헤매며 나는 생각했다. 참된 축구선수란 재주가 있고 뜻이 있어도 돈이 없으면 그걸 살릴 수가 없는 이눔의 세상을 발로 차버리는 거, 그게 진짜 축구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길거리의 쓰레기, 깡통, 돌멩이를 걸리는 대로 내지르다 보니 어느덧 아흔이 다 되었다.

 

이따금 젊은이들이 선생님, 젊은 날 꿈은 뭐였나요물으면 나는 한마디로 자른다. “나는 젊은 날도 없었거니와 꿈도 없었다며 씁쓸히 고개를 돌린다. “왜 없었어요, ‘젊은 날이라는 시도 있으신데요.” 이때 나는 멋쩍어 긴 한숨만 들이쉴 뿐 티 나게 내뱉질 못하는 사람이다.

 

8·15 해방을 이룩한 지 어느덧 일흔넷 해인 오늘, 우리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던가. 38

선으로 우리네 허리가 동강났지만 이에 우리들은 어떻게 했느냐 이 말이다

. “네 이놈들, 얻다 대고 우리네 허리를 잘랐드냐하고 들이대고 싸웠던가, 못했다. 도리어 38선을 국경선으로 받아들이며 오늘에 이르렀다. 여러 해의 실존 경험으로 보면 손바닥만 한 이 땅이 둘로 갈라진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것은 침략이다. 그렇다, 38선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 땅에 대한 침략인데도 왜 우리들은 전면적 도전을 못했던가 이 말이다. 둘째, 8·15 이후 남쪽에서 왜놈들이 뺏어갖고 있던 재산을 다시 뺏어보니 자그마치 남쪽 재산의 95%, 그야말로 해방의 실질이요, 따라서 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물질적 기초였는데 그때 미국은 그 많은 재산을 미국의 분단을 받아들이고 분단의 국가화에 동조하는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에게만 나누어주었다. 이로써 해방의 실체는 없어지고 나아가 부정부패, 악덕 지배계층이 조작된 것이다. 셋째, 우리 겨레의 중심인 이 땅의 니나(민중)’들은 어정쩡한 지배계층의 정치의식, 윤리, 도덕에 물들지 않고 늘 제 넋을 가지고 살아왔다. 왜 나만 땀을 흘려야 하나,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 같이 흘려 다 같이 잘살자는 보편적 인간 정신이 니나들의 역사의식이었는데 그것마저 불순 사상이라며 때려잡았던 것이 이른바 분단국가의 정신적 망발이라. 이 분단시대는 그야말로 인간 정신의 전면적 황폐화를 강요해왔지만 이에 항거하여 니나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이어 발전시키는 계기는 못 잡고 있는 이때 다시 맞는 아, 8·15 해방.

 

He5 흑점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