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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8.15~8.31 조국 논란이 길이 되려면

by 이성근 2019. 9. 1.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적들 서울신문 2019-08-15

韓美 '북한점령 훈련'까지...강경파 득세하게 할 건가 프레시안 2019.08.16.

KBS의 밀정 폭로와 반일, 그리고 그 이후 프레시안 2019.08.16

조선·동아일보 100살을 축하할 수 없는 까닭 프레시안 2019.08.19

조국이 두려워지는 이유 경향 2019.08.20

한일 간 혐한뉴스 거래 유감 한겨레

엘리트 집단의 두 얼굴, 법원뿐이랴 경향 820

보수의 이데올로그가 안 보인다 2019-08-22

조국 정국독해법 경향 2019-08-23

조국 사태와 기후 위기 경향 2019-08-23

 

탈서울의 가치 경향 2019-08-23

조국논란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경향 2019-08-25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소리 경향 2019-08-25

 

소국주의와 평화 주간경향 2019.08.26.

사교육에 치이는 강남 아이들마음의 병 깊어간다 한겨레 2019.08.26

 

조국, ‘계급이라는 판도라 상자 열다 경향 2019.08.26

한국은 미국이 실망스럽다 경향 2019.08.27

서울대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 한겨레 :2019-08-27



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경향 2019.08.28.

합법적인 불평등 한겨레 2019-08-28

   

계급적대입 제도, 이젠 바꾸자 한겨레 2019-08-28

 아마존 산불, 남의 일 아니다 경향 2019.08.29.

조국 논란을 마주한 진보, 몰락이냐 새로운 비상이냐 경향 2019.08.29.

‘497’‘386’에게 국제 2019.8.29

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매일신문 2019-08-29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진영을 지킬 수 있다 경향 2019.08.30


조국 논란이 길이 되려면 mediatoday 2019.08.31




열린 사회와 그 내부의적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세대 간의 갈등, 이념 간의 대립이 제어할 수 없이 커 갔다. 소련과 좌우 체제 경쟁을 비롯해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 패배, 흑인 민권운동과 같은 사회문제는 미국의 대문호 필립 로스(1933~2018)의 장편소설 미국의 목가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인 성공한 중산층 가정은 반전운동과 극단적 생태주의에 빠진 딸과의 갈등 속에서 송두리째 파괴되고 만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사회로 가기에 당대 미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현실의 모순은 컸고, 희망을 찾는 몸부림에는 좌충우돌의 시행착오가 컸다.

 

칼 포퍼(1902~1994)열린 사회 이론은 헤겔, 마르크스 등의 역사주의, 사회주의를 철저히 부정하며 논쟁의 복판에 섰다. 포퍼는 그의 대표적 저서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을 통해 전체주의와 독재가 인류에 끼치는 해악을 낱낱이 지적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열린 사회로 규정했다. 이는 포퍼가 삶으로 깨달으며 이론화한 내용이기도 하다. 청년 포퍼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즈음 평화와 인도주의를 위해 전쟁을 거부한다는 트로츠키의 연설에 감명받아 사회주의자가 됐지만, 현실 사회주의 속 개인의 자유와 생명에 대한 존중 결여를 접한 뒤 돌아섰다. 한때 운동권 학생들을 점잖게 꾸짖는 내용으로 흔히 언급되던 젊어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면 바보, 나이 들어서도 마르크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라는 얘기도 포퍼가 남긴 말이다.

 

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포퍼는 철저히 왜곡됐다. 그가 그토록 부정했던 독재정권은 그의 이론을 체제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다. 반면 그의 지향과 같이 자유와 민주를 위해 몸부림쳤던 대학생, 노동자, 농민들은 오히려 포퍼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반감을 가졌다. 물론 열린 사회와 그 적들마르크스가 언급됐다는 이유로 1982년 이전까지 금서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말이다. 5·18 학살과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씨가 외신 인터뷰에서 자신이 가까이 두고 읽는 책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라고 소개하던 시절이었고, 독립군 때려 잡던 일본군 장교 박정희가 대통령이 돼 사후까지 추앙받는 세상이니 더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모순이 정상의 껍데기를 쓰고 행세하던 때였다. 독재에만 열린 사회일 뿐이었다.

 

2019년 한국 사회는 달라졌다. 전 대통령 이명박씨, 전 대법원장 양승태씨 등은 자신들이 유린했던 민주주의 질서와 제도에 의해 비교적 자유로운 몸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광복절에 버젓이 성조기를 흔들어 대거나 안티 반일깃발을 흔드는 이들이 서울 한복판을 자유로이 휩쓸고 있다. 시민단체를 자임하는 극우 인사는 평화의 소녀상옆에서 아베 수상님, 죄송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사과하라고 부르짖고 있고, 어떤 목사는 교단에서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범국가이며, 일본이 한국을 독립국으로 인정해 줬다는 희한한 주장을 펴고 있다.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관되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도, 성노예화도 없었고 반인권적 반인륜적 만행 또한 없었다고 역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다. 한 일베 회원은 대통령을 암살하겠다며 불법으로 총까지 구매했다는 글을 버젓이 인터넷에 올리고 있다. 공동체의 가치를 부정하고, 생명과 인권, 민주를 경시할 뿐 아니라 극우적 가치로 헌법을 부정하는 이들이다.

 

모두 형식과 절차를 뛰어넘는 실질적 민주주의를 만끽하는,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의 수혜자들이다. 대통령 비판 포스터 하나 붙였다고 저인망식으로 경찰력 동원해서 체포하던 몇 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참으로 활짝 열린사회다.

민주와 정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공고히 하는 열린 사회는 바깥에서 교류할 뿐 결코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하지만 내부의 적들이 발밑을 야금야금 갉아 먹을 때 그들과 교감하는 외부의 적은 이를 공격의 기회로 삼는다. 일본의 경제보복이 본격화하는 이 즈음 누가 한국 사회 내부의 적들인지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이들을 제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그들이 추앙하는 과거 정권처럼 붙잡아 고문하고 재판을 조작해 감옥에 집어넣으면 끝일 게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철저히 사법정의 차원에서, 정의로운 공공사회의 지속 차원에서, 열린 시민사회의 힘, 이성과 합리의 가치를 믿으면서 대응해야 한다. ‘내부의 적없는 진짜 열린 사회를 만드는 기본이다. 박록삼 논설위원 서울신문 2019-08-15

 

韓美 '북한점령 훈련'까지...강경파 득세하게 할 건가

악화하는 남북관계, '내탓'은 없는가

최근 북한의 대남 막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다음날에 나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대변인 담화에도 "보기 드물게 뻔뻔스러운 사람", "웃겨도 세게 웃기는 사람",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 등 차마 옮기기에도 민망한 표현들이 가득 담겼다. 그러면서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앉을 생각도 없다"고 못 박았다.

 

북한은 이런 막말과 남북대화 차단 방침은 대단히 유감스럽고 또한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이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내 탓'은 없는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품격과 수위의 차이는 분명 있지만, 남북한이 관계 악화를 서로 '넷 탓'으로 돌리는 상황이 지속되면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미군사훈련과 한국의 대규모 군비증강이 남북관계의 악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단을 약속한 한미군사훈련을 가능한 중단하고 "단계적 군축"이 어렵다면 국방비 동결이라도 해야 한다고 주문해왔다.

 

하지만 최근 눈과 귀를 의심케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811일 시작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에는 '수복지역에 대한 치안·질서 유지''안정화 작전'까지 언급되고 있다. 이는 사실상 '북한 점령'을 의미한다.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을 위해 불가피한 훈련이라고 했지만, 이 훈련에 이들 내용까지 포함시킨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 작년에 남북한 정상들이 부전(不戰)과 불가침을 약속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더 큰 문제는 814일 국방부로부터 나왔다. 2020-2014년 국방중기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간 무려 291조 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부와 언론에선 북한의 막말과 잇따른 단거리 발사체 발사 배경을 두고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반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나는 문재인 정부의 대규모 군비증강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남북한에는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한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없었다. 반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선 "단계적 군축"을 추진키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런데 합의의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보다 훨씬 많은 국방비를 쓰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해도 실효를 거둘 수는 없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직시해야 할 '내 탓'이다. 언행불일치가 심해질수록 남북관계의 회복과 발전은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만의 문제도 아니다.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군비 질주가 계속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국방비를 수수방관하면 땅으로 꺼지고 있는 남북관계를 다시 본궤도에 올려놓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역설한 "국민을 위한 평화"에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재원의 낭비도 뒤따라오게 된다.

 

한미군사훈련과 남한의 군비증강을 비판하는 것은 결코 북한을 두둔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군사훈련과 군비증강에 편승해 북한 내에서 강경론이 득세하는 것이다. 비핵화를 하면 한미연합전력에 비해 군사력이 더욱 뒤처지게 된다며 비핵화를 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론 말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2019.08.16.

 

 

KBS의 밀정 폭로와 반일, 그리고 그 이후

촛불의 반아베 운동, '나라다운 나라'에 대한 요구

74주년 광복절을 맞은 지금, 한국은 어디로 가고 있나. 친일세력 척결을 포함한 적폐청산과 함께 통일 미래를 향한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이 명확하지 않은 가운데, 최근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는 반일(반아베)운동이 주목된다. '박근혜 퇴진'에 앞장선 촛불이 반일에 앞장서고, 각계각층의 시민사회가 불매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하다.

 

2차 대전 당시의 전쟁범죄를 부인하거나 외면하는 일본 아베 정권에 대한 분노의 강도와 참여 폭이 나날이 폭발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이는 해방 74년 이후 최초의 본격적인 반일 및 친일청산 운동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KBS 1TV가 지난 13<시사기획 창> '밀정' 편에서 일제하의 밀정에 대한 특집을 방영한 것은 매우 뜻깊다.

 

김좌진 장군과 안중근 의사의 측근이 밀정이었지만, 해방 후 독립유공자가 된 사실과 함께 자료를 통해 확인된 밀정 800여 명의 이름을 폭로한 KBS 보도는 충격적이었다. 정부는 이런 역사적 과오가 방치된 것에 대해 즉각 국민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 보훈처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현행 상훈 제도가 얼마나 지독하게 왜곡되고 있고, 그동안 '이게 나라냐'라는 원성이 왜 높았는지 이번 KBS 보도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다. 현 정권은 시민사회 일각에서 왜 군 출신의 새 보훈처장 후보 교체 요구가 나오는지 정확히 파악해 현명하게 조치해야 할 것이다.

 

민족반역자들이 국가유공자로 둔갑한 것은 미군이 점령군으로 남한에 진주한 뒤 친일세력을 지배세력으로 편입시키고, 이승만이 반민특위 강제 해산 등을 통해 일제 잔재들을 옹호하면서 자행된 공공연한 범죄행위였다. 오늘날 국내 일부 지배층이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한반도 근대화에 기여했다거나 아베가 전쟁범죄를 부인하는 폭거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일본보다도 친일파가 더 문제'라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절규가 가슴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KBS의 밀정에 대한 탐사보도는 국내 친일파의 실체를 드러내면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들이 지난 수십 년간 왜 고통을 받았는지를 구조적으로 파헤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기대가 크다. 아베 총리가 촉발한 이번 한일 갈등은 해방 이후 미뤄져 온 친일잔재 청산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개연성이 충분하다. KBS의 밀정 폭로는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반일 운동이 뜨거워질수록 또한 주목되는 것이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의 친일세력과 일본의 전쟁범죄를 청산하지 못하게 하는 과오를 저질렀다. 미국의 이 같은 행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미국, 친일세력 청산 막은 역사적 과오 커

미국은 중국이 G2로 부상하자, 이를 노골적으로 견제하면서 동북아를 냉전시대로 되돌리고 있다. 한국이 대외정책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국면이다. 수십 년간 굳어진 한미동맹에만 매달릴 경우, 중국의 경제 보복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의 군사적 압박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현상 유지가 가장 손쉬운 정책이라는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구태의연해서는 변화된 국제 질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미국은 오늘날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세이다. 미국이 한국을 제치고 한반도 주요 사안의 주인공 역할을 하는 것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미상호방위조약 때문이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군의 한국 배치를 '권리'로 규정하면서 미국은 슈퍼갑의 위치에, 한국은 뒤치다꺼리하는 심각한 불평등 관계가 고착되었다. 이 조약 때문에 한국은 주한미군에 시설과 기지를 제공하면서 주둔비 일부까지 부담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기이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미 간 군사동맹의 문제점은 필리핀과 미국의 방위협정만을 비교해도 훤히 드러난다.

 

미국이 한반도의 군사주권을 가진 듯 행동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이를 적극 수용할 뿐 비판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미국의 일방통행식 행태가 일상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주한미군 주둔비와 관련해 한국 정부나 국가수반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발언을 남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 사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목소리까지 흉내 내 공개적인 우스갯거리로 만든 것은 일반 상식과는 거리가 먼 삼류 정치 행각이다. 21세기에 걸맞지 않은 한미관계는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기에 정상화가 시급하다. 반일에 대한 사회적 호응이 높은 것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국격 회복 열망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 북미 관계 등을 고려한 탓인지 미국의 대북 정책이나 한반도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부작용도 커지고 있다. 현 정권이 최근 일본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처럼 미국에 대해서도 줏대 있는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한다. 이런 수치스러운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국정 능력 부족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촛불의 반일 운동은 나라다운 나라를 세우는 요구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거대 여야, 구태 청산 못 하면 제3의 정치 세력 부상 가능

북한이 남한에 대해 막말 비슷한 소리를 내놓는 것에 대해 현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 자체 군비 확충 외의 근본적 대책을 강구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미동맹의 틀과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남북 관계 증진은 한계가 분명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필요한 때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특히 건전하고 생산적인 남북관계와 그 미래를 공개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국보법이 시급히 없어져야 한다. 국보법은 북한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주고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상상도 하지 말라는 악법 중의 악법이다. 국보법이 존재하고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가능한 상황에서 남북한 경제공동체 모색과 같은 발상은 신기루를 좇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권이 처한 상황은, 여러 변수가 동시다발적으로 충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향후 국내정세 전망이 어려운 상태다. 그러나 그 변수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보면 지향해야 할 방향이 드러나고 그에 적절히 대처할 경우 크게 위태롭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일 문제는 친일파에 대한 비판, 일부 지도층의 역사의식 결여 등을 볼 때 앞으로 상당 기간 주요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반일 운동의 동력이 소진된 이후 상황은 매우 유동적이다. 거대여야 정치권은 친일세력 청산과 반일이 일단락된 뒤를 의식해야 한다. 시민사회가 반일의 성과를 거두는데 기여할 경우, 정치권에 대한 개혁 요구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 집권여당이 이에 대한 대비 능력이 있을까? 지난 2년간의 상황을 보면 낙관적이지 않다. 개혁에 대한 의욕과 능력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역사 발전이나 사회 변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지만, 21세기 한국 사회에서는 촛불로 상징되는 '시민 파워'가 가장 강력한 방아쇠가 되고 있다. 이는 독재정치를 시민혁명으로 청산한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대중화로 전국적 조직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을 성공시킨 촛불이 반일에 앞장선 것은 촛불이 문재인 정권 2년 동안 긴장을 늦추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촛불의 요구가 실천되지 못한 불만이 '반일'이라는 분출구로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은 자력에 의한 참신한 정치가 아닌 상대의 실수와 헛발질에 기대는 비생산적인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시민사회 역량이 증대된 상황에서 정치권이 당리당략적 시각으로 '내로남불'을 지속한다면 오히려 청산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또 우크라이나 경우처럼 부정부패 척결과 유권자를 위한 정치를 내세운 무명의 정치인이 혜성처럼 등장하는 정치적 이변이 생길지도 모른다. 고승우 언론사회학 박사 프레시안 2019.08.16

 

조선·동아일보 100살을 축하할 수 없는 까닭

[기고] 빛은 짧고 암흑은 기나긴 오욕의 역사

조선일보는 192035, 동아일보는 같은 해 41일에 창간되었으니 '쇠는 나이'로 치면 올해로 꼭 100살이 된다. 두 신문은 진즉부터 '100돌 기념잔치'를 성대하게 치를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조선·동아일보가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족공동체를 위해 이바지한 공적에 비해 파괴적 작용을 한 죄업이 훨씬 크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이들은 그런 잔치를 마뜩찮게 여길 것이 틀림없다.

 

조선일보는 태생부터 친일신문이었다. '조일동화주의(朝日同化主義)'를 표방한 친일단체인 대정친목회 대표 예종석을 앞세워 조선총독부의 발행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1933년에 극도의 경영난에 빠진 조선일보를 인수한 방응모는 평안도에서 '노다지'를 발견해 부자가 된 인물로, 태평양전쟁(일제는 '대동아전쟁'이라고 부름) 시기에 일본군에 고가의 고사포를 '기증'한 바 있는 대표적 부일파(附日派)였다. 그의 후손인 방일영, 방우영, 방상훈으로 이어지는 조선일보 발행인들이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어떻게 '친위언론' 구실을 했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요즈음 조선일보는 촛불혁명의 소산인 문재인 정부를 감정적으로 헐뜯는 기사와 논설을 며칠이 멀다하고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10,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신일철제철(현 신일철주금)이 합당한 배상을 하라고 대법원이 판결한 이후 일본 총리 아베 신조가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노골적으로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는데도 조선일보는 편파적 기사와 교묘한 논설로 일본을 두둔함으로써 많은 주권자들과 전문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동아일보는 '국민주주' 형식으로 창간되었는데, '창간 사주'를 자칭한 호남 출신 자본가 김성수는 교묘한 방법으로 그 신문을 사유화한 뒤 일제강점기에 '천황 폐하'에게 거액을 '국방헌금'으로 바치는 등 부일 매국·매족 행위를 일삼았다. 그의 장남 김상만은 1975317일 박정희 정권과 야합해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열심히 하던 동아일보사 기자, 동아방송 기자, 피디, 아나운서, 기술인 등 113명을 강제 해직했다. 그날 오후에 결성된 이래 오늘날까지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고 있는 단체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이다.

 

 

1920년대 말, 진보적 민간단체인 신간회가 결성될 때 조선일보 기자 다수가 열성적으로 참여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신문 구성원들이 민족사에 이바지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주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동아일보는 근래에도 창간 기념일만 되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경주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해 시상대에 오른 사진에서 가슴의 일장기를 지운 채 보도한 것을 엄청난 업적인 듯이 자랑하지만 그보다 12일 전에, 몽양 여운형 선생이 발행하던 조선중앙일보에 이미 그 사진이 실린 사실은 밝히지 않고 있다.

 

동아투위는 지난해 317, 결성 43주년을 맞아 '한 세기 동안 민족을 속여온 동아일보 차라리 폐간하라'는 경고장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구호는 조선일보에도 해당된다. 특히 조선일보 사주와 간부들의 오만과 후안무치는 도를 넘어선 지 오래이다. 그들이 어떤 불법행위나 부도덕한 짓을 저질러도 '치외법권'을 벗어난 적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빛은 짧고 암흑은 기나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민족공동체의 화합과 우애보다는 분열과 대립을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행태를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덧붙이자면 중앙일보도 예외가 아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프레시안 2019.08.19

 

조국이 두려워지는 이유

2014427, 정홍원 당시 총리는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대통령도 거기에 동의해 후임 총리가 정해질 때까지만 총리직을 수행하라고 한다. 하지만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총리 후보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이 5개월의 변호사 생활 동안 16억원의 수임료를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낙마해 버렸다. 정홍원은 계속 총리직에 있어야 했다. 그 후 지명된 문창극 전 기자는 온누리교회 강연에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헛소리하는 바람에 낙마했다. 정홍원은 여전히 총리였다. 다행히 국회의원이던 이완구가 총리가 되면서 정홍원은 사의 표명 후 거의 10개월 만에 총리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었는데, 그 이완구가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두 달 만에 사퇴하는 일이 벌어진다. 새 총리는 당시 법무장관이던 황교안으로 결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자 황교안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고, 그는 특검팀의 청와대 조사를 거부하고 특검 연장을 거부하는 등 맹활약한다. 그 황교안은 지금 당 대표에 차기 대선주자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안대희 전 대법관이 총리가 됐다면 어땠을까? 당시 야당은 그를 전관예우의 적폐로 몰아 낙마시켰지만, 업계 사람들은 그 정도 수입이 전관예우치고는 적은 거라고 했으니 말이다.

5년여가 흐른 20198, 법무장관 후보자 조국 교수가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 생활만 해서 별것 없을 줄 알았건만, 웬걸, 해명해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지난 정권 때 총리 후보자들에게 추상같은 잣대를 적용했던 야당은 집권당이 된 지금 조국을 감싸기에 여념이 없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조국에 대한 의혹 제기가 가족에 대한 인권침해라 하고, 안민석은 한국당이 최순실의 은닉재산을 밝혀내는 게 두려워 조국을 반대한다고 말한다. 여론을 살피려고 대형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탐독했다. 하필 그곳이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주를 이루는 곳이어서 그런지, 조국이 받는 의혹에 대해 눈물겨운 방어가 이뤄지고 있었다. 그중 가장 빈번한 논리가 이것이었다. “적폐세력들이 조국 반대하는 걸 보니 조국이 무섭긴 무서운가 봐. 반드시 법무장관 시켜야겠네.” 이 말에 좀 움찔했다. 내가 적폐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도 조국이 법무장관이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두려운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이 횡행한다. 일전에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 친일파라 한 데서 보듯, 조국은 정부와 의견이 다른 이들을 불순세력으로 규정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가 아무 직함이 없다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이 하는 말은 무게가 다르지 않겠는가? 내가 앞으로 2년여를 법무장관이 지정한 친일파로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두렵다.

 

둘째, 며느리가 짊어질 부담이 커진다.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모시는 게 점점 드물어지는 세상이다. 하지만 조국 남동생의 아내는 이혼했음에도 시어머니에게 자기 집을 기꺼이 내줘가며 헌신적인 봉양을 한다. 물론 그녀가 시어머니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벌인 적이 있지만, 그거야 모시는 게 어려운 나머지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한 것일 뿐, 실제로 돈을 받으려는 의도는 없었던 모양이다. 21세기에 보기 드문 효부인데, 조국이 일반인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법무장관네 집안이 그런 모범을 보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게 우리 미풍양속으로 뿌리를 내려, 앞으로 며느리들은 설령 이혼을 한다 해도 시어머니 봉양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게 될 것 같다.

 

셋째, 가족 간 돈거래가 사라진다. 조국의 신고재산은 56억원, 이 가운데 예금이 34억원이나 된다. 이쯤 되면 빚에 허덕이는 다른 가족들도 신경 써줄 만하지만, 그는 차라리 사모펀드에 전 재산을 내던질지언정 가족들에겐 냉정했다. 특히 2013년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 재산은 21원에 불과해 충격을 줬는데, 이 액수는 웬만한 노숙자보다도 적고,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던 전두환이 재벌 같다. 조국이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족 간에 돈을 빌리려고 하면 법무장관을 봐!”라며 거절하는 일이 속출하지 않을까?

 

넷째,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대세가 된다. 과거 조국은 폴리페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학생들 수업에 지장을 초래하니 정치를 하려거든 교수직을 그만두라는 게 그의 말이었지만, 자신이 민정수석에 이어 법무장관 후보에까지 오르자 임명직은 괜찮다며 사표 제출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조국은 대학에서 강의 한 번 안 하고 8월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조국이 장삼이사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가 법무장관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어쩌면 내로남불이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 돼 사회가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이 밖에도 외모지상주의가 강화된다든지, 성적이나 가정형편보다는 권력이 대학 장학금의 척도가 된다든지, 국가에 진 빚은 안 갚아도 되는 풍조가 생긴다든지 하는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길 것만 같으니, 내가 조국의 법무장관 임명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난 그가 장관에 연연하기보다는 교수로 돌아가길 바라는데, 글을 맺기 전에 정신승리를 해본다. 이 글을 욕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건 내가 두려워서 그러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서민 | 단국대 의대 교수 경향 2019.08.20

 

한일 간 혐한뉴스 거래 유감

일본 미디어의 혐한 기류가 심상치 않다. 일본의 지상파 방송을 비롯해 유튜브에서도 혐한 콘텐츠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 조선인은 끈기 있게 추진하지 못한다고 조롱하고, 위안부 소녀상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망언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일본 사회에서 혐한이 가시적으로 돌출한 사건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모임인 재특회활동일 것이다. 재특회는 재일 한국인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담긴 연설,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선동을 일삼고 2013년 이후 일본 전역에서 혐한 시위를 주도했다. <거리로 나온 넷우익>의 작가 야스다 고이치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컴퓨터를 붙들고 조선인은 죽어버려라고 필사적으로 글을 올리는,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애국·반조선 등을 호소하는 이들이 넷우익이며 재특회의 모체라고 설명한다. 넷우익은 익명 게시판 커뮤니티인 ‘2채널’(2ch·현재 5ch)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혐한 뉴스와 콘텐츠를 공유해 악의적 댓글을 쏟아낸다. 우리나라 일베와 비슷한 커뮤니티로 혐오 발언과 조롱 글이 여과 없이 게시된다.

 

넷우익은 우리 네티즌에게 빈번하게 시비를 걸어온 것으로도 악명 높다. 양국에서 인터넷 문화가 자리잡아가던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2채널에서는 한국 선수와 응원 문화를 트집 잡는 의견이 폭발했고, 이후 양국 네티즌은 한일전이슈 때마다 사이버 공방전을 펼치곤 했다. 대표적인 사건은 20102월 김연아 선수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확정했을 때였다. 2채널 게시판에는 심판 매수설을 비롯해 우리 선수에 대한 혐오의 글과 낭설이 끝없이 이어졌다. 한국 네티즌들이 가만있지 않고 설전에 가세하자 넷우익은 한국 사이트를 공격하는 광역 도발까지 했다. 이에 우리나라 사이트와 커뮤니티 네티즌들이 연합해 3·1절에 2채널을 집중 공격해 서버를 마비시켜 사이버 교전에서 승리한 일은 유명하다. 사이버 한일전을 인터넷 놀이문화로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건 방송과 유튜브의 혐한 정서가 2채널 극우성향과 닮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일본 우익은 생트집을 잡는 일을 반복하는 것일까? 일본 넷우익들의 댓글에서 그 정서를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다. “언제까지 조선에 사과해야 하는지, 다 보상해주었는데 조선인은 왜 약속을 자꾸 어기고 떼를 쓰는지, 일본은 얼마나 더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지분하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반도 침략에 대한 배상은커녕 전범국가로서 불법 만행을 인정하고 청산한 일이 없다.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언론마저 넷우익의 입맛에 맞게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를 퍼 나르며 진실을 은폐하기 바쁘다. 이러니 분할 수밖에.

 

일본의 경제보복 이후 2채널 동아시아 뉴스 속보게시판에는 연일 한국 관련 뉴스가 올라온다. 실시간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게시물을 클릭해보았다. 한국 관련 주제가 인터넷에서 고조되는 양상을 분석한 일본 <뉴스포스트 세븐>의 기사였다. 이 기사는 그동안 한국은 인터넷 오락거리이자 야유 대상으로 혐한으로 소비되어왔으나 혐한의 양상은 거한’(拒韓·한국 거부)에서 애한’(哀韓·불쌍한 한국)으로, 이제는 치한’(嗤韓·한국 조롱)으로 변모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경제보복 이후 진정한 승자는 높은 페이뷰를 기록한 웹 미디어였다고 꼬집는다. 특히 <중앙일보><조선일보> 일본어판은 야후 재팬 등 뉴스 사이트에서 큰 수혜를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을 조롱거리로 만드는 혐한 뉴스 거래, 정말 웃프다.

최선영 이화여대 에코크리에이티브협동과정 특임교수 /한겨레

 

엘리트 집단의 두 얼굴, 법원뿐이랴

모처럼 흥미진진한 책을 읽었다. 저녁 무렵 집에 도착한 책을 식사 후 읽기 시작해서 열두시가 넘게 읽었으니 말이다. <두 얼굴의 법원>은 중앙일보의 권석천씨가 양승태 코트의 사법농단 사건을 최초로 알린 이탄희씨와 한 일련의 인터뷰를 기초로 쓴 책이다. 그동안 수많은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과 사건이 얽히고설켜서 전체적인 경위와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이탄희씨 사표 제출에서 검찰 기소까지 거의 2년 동안 사건 추이를 내내 들여다본 사람이라도 머리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이탄희씨의 증언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담담하게 전해준다. 사건의 의미에 비해 감정을 절제한 문체가 돋보이는 책이다.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울한 책이기도 했다. 일개 판사인 이탄희씨의 사표에 당황한 고위 판사들이 사건을 덮기 위해 허우적대는 모습 때문에 우울한 것이 아니었다. 세 차례에 걸친 내부 조사와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블랙리스트와 재판개입과 은폐 음모의 내막을 알게 되어서도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김명수 코트가 부적절한 행위를 한 판사들의 실명과 잘못을 공개하지 않은 채 뒤로 숨는 모습 때문도 아니었다.

 

내가 속한 이 사회의 실상이 보여서 우울했다. 위선이 일상화된 우리의 모습 말이다. 사회적으로 유용한 분야에서 뛰어남을 나타내어 우대를 받는 사람을 우리는 엘리트라고 부른다. 모든 사회에는 엘리트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엘리트에게 명예나 권력이나 부를 주어 자원배분과 상벌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기며, 그 결정의 질에 따라 그 사회의 생존과 발전이 결정된다. 엘리트가 되기 위한 경쟁 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열려 있는가에 따라 사회의 유대감과 활력이 결정되기도 한다.

 

예로부터 판사는 엘리트였다. 심지어 법치국가가 아닌 경우에도 그랬다. 하지만 법치국가에서의 판사는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에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한국과 달리 계층의식이 강하지 않은 사회에서도 그렇다. 그 대우란 바로 존경이다. 다른 분야의 엘리트는 세속적인 우대를 누리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사회적 존경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판사는 세속적인 대우를 받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왜 그런가. 그들이 수행하는 일이 그만큼 윤리적 품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윤리적 품성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모두가 판사의 독립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것은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국가는 그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한다. 우리는 그 독립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이 나와도 받아들이고 각자 갈 길을 떠난다. 하지만 독립성만으론 부족하다. 독립을 보장했는데 그가 편파적이거나 비윤리적이라면 사회는 혼란에 빠진다. 우리가 판사에게 독립성을 부여하는 전제조건은 그들이 판결에 있어 단지 형식적인 법에 저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양심에 의한 윤리적 판단을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지는 어떻게 아나? 모른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을 규제할 수 있지만 각자의 양심은 아무도 들여다볼 수 없다. 궁극적으론 그들 내면의 윤리의식과 엄격한 절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법치국가에서 판사는 종교의 사제와 같다. 그런데 그 판사들이 독립적이고 윤리적이긴커녕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도 한명이 그런 게 아니라 여럿이 작당해서 거짓말을 했다면? 자기들 안에서 그 거짓 여부를 조사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마저 알고 보니 거짓말을 했다면? 그리고 그걸 알고 나서도 자기들 힘으로 정화를 하지 못한다면?

 

그런데 말이다. 나는 분노하지 않았다. 개탄하는 마음도 안 생겼다. 언제는 안 그랬나? 사실 나는 한국의 법원이 독립적이고 법과 양심에 의한 판결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들이 승진과 보직에 연연하는 관료에 불과한 것을 알고 있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하라는 대로 할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의 지시에 순종해서 사람을 죽이고 탄압하는 데 동참하다가 입을 싹 씻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을 믿으면 얼마나 믿을 수 있겠는가? 이번에 안 드러났으면 그냥 그대로 가고도 남았을 사람들이 아닌가? 어떻게 아냐고? 내가 바로 그들과 같은 천으로 만든 옷이기 때문이다.

악취를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때까지 일단 가고 보는 한국 엘리트층의 두 얼굴은 법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너무도 흔하게 널려 있다.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경향 820

 

보수의 이데올로그가 안 보인다

이른바 보수는 지금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박세일 교수가 제시한 세계화,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화, 선진통일은 보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박세일 교수의 뒤를 이을 보수의 이데올로그는 누구일까?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는 대한민국 보수의 이데올로그였다. 1995년부터 김영삼 정부 청와대에서 정책기획수석과 사회복지수석을 지내며 세계화를 주도했다. 2000년부터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소중히 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했다. 2006년부터는 대한민국 선진화를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고, 2010년부터는 선진통일21세기 한반도 비전으로 제시했다.

 

현실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박세일 교수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맡겼다. 박세일 교수는 윤건영 연세대 교수(4),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10), 이주호 교육개혁연구소장(12) 등 정책 전문가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훗날 이명박 정부에서 중용됐다.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박세일 교수는 여의도연구소장, 정책위의장을 맡아 한나라당을 정책 정당으로 변모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05년 세종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2006년 선진화와 통일을 연구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 뒤 2012년 국민생각을 창당해 서초갑에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다. 그는 20171월 별세했다.

이른바 보수의 선동가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이라고 욕할 때, 그는 금융개혁, 공공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등 시장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복지 확충, 균형발전, 부동산 세제 개혁 등 평등을 위한 정책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좌우 정책의 혼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그는 “21세기는 성장도 복지도’, ‘개방도 보호도함께 해야 하는 시대라며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탁견이다.

 

박세일 교수의 주장이나 행보가 다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보수의 가치와 비전, 대한민국 국가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한 경세가(經世家)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최근 정가의 화두는 야권통합이다. 국회 곳곳에 펼침막과 포스터가 나붙고, 기자들 휴대폰에 야권통합 단체 결성이나 토론회 안내 문자가 쏟아진다.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통합과 혁신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가 열렸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공동의장 박형준 전 의원, 박인제 변호사가 주도했다.

주제는 위기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성찰이었다. 박형준 전 의원은 대한민국 주류가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올 하반기부터 대안적 주도세력을 구성해나가자고 제안했다.

 

통합과 혁신 준비위원회는 오는 272차 토론회를 열고 통합과 혁신을 위한 우리의 결의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내용이 뭘까? 결국 반문연대를 2020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자는 결론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공허하다. ‘’(why)가 빠졌기 때문이다.

사실 야권통합은 이른바 보수와는 거리가 먼 정치 의제다. 야권통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이었다. 1990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민자당의 폭주에 맞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1야당이었던 신민주연합당의 김대중, 꼬마 민주당의 이기택·노무현·이부영 등이 손을 잡았다. 그 이후에도 1997년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합, 2008년 통합민주당(손학규), 2011년 민주통합당(한명숙·이해찬) 등 야권통합 사례가 있다.

 

야권통합의 명분과 목표는 정권교체다. 1997년 디제이피 연합에서 정권교체 절박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유신 본당과의 제휴도 용인했다. 야권통합 중에서 1997년 야권 연대가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이유다.

 

최근 야권통합, 보수통합의 명분은 뭘까? 정권교체? 약하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죄를 짓고 재판을 받고 있다. 이른바 보수는 지금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광복 이후 이른바 보수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반공이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박세일 교수가 제시한 세계화,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화, 선진통일은 보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박세일 교수의 뒤를 이을 보수의 이데올로그는 누구일까? 이데올로그가 없으면 이데올로기가 없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정당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치팀 선임기자 2019-08-22

 

조국 정국독해법

조국 정국이 심상치 않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의혹이 태풍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촛불혁명과 문재인 정부 출범 과정에서 조 후보자가 지니는 상징성이 큰 탓에 핵심 지지층의 충격도 큰 듯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정국 주도권을 잡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도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우익 진영의 위기감은 상당했다. -일 갈등으로 빚어진 애국주의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은 친일 프레임의 덫에 갇혔고 지지도는 하락했다. 반일 애국주의 흐름에 진보는 물론 보수유권자들도 동조하면서 자유한국당은 존재감을 상실해갔다.

 

역대 정부에서도 독도 문제 등 한-일 갈등이 부각될 때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통합의 흐름이 형성되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원이 달랐다. 한국리서치가 816일 발표한 조사에서 올해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기대감(44%)이 부정 여론(42%)을 앞질렀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일제히 상승했다.

 

이 와중에 역시나 자유한국당에서는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는 정부의 자작극등의 막말이 잇달았고 친일 프레임을 자초했다. 국가적 단합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본보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운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반아베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의 고립은 깊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터져 나온 조 후보자 의혹은 자유한국당의 입장에선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호재다. 조국 낙마는 문재인 정부에 타격을 주고 사법개혁의 흐름도 끊어낼 카드다. 친일 프레임을 좌파 폭정 프레임으로 전환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내친김에 내년 총선 승리도 노려볼 수 있다. 임기 후반기 레임덕을 틈타 차기 집권도 기대해볼 수 있다.

 

조국이라는 인물이 지닌 상징성이 큰 탓에 사태의 파장도 크다. 그는 진보적이면서 도덕적인 86세대, 세련되면서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강남 좌파를 상징한다. 셀럽이자 문화권력의 핵심으로서 청년세대에게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권위적이고 고집불통인 보수의 꼰대성과 대척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자유한국당과 보수우익진영에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 중에서도 딸 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의 뇌관을 건드렸다. 장학금 의혹, 2주 고교생 인턴으로 의학 논문에 제1저자로 등재된 것, 무시험으로 대학과 의전원에 입학한 것 등을 접한 서민들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크다. 불법이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재력과 네트워크라는 합법적 틀 위에 이루어졌기에 더욱 그렇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가치인 공정성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경쟁 속에서 나고 자란 청년세대에게 공정함의 요체는 경쟁 규칙의 공정함이다. 이들이 대학 입학, 채용 과정에서 유독 시험을 중시하는 이유다. 여론조사 기관들에 따르면 조 후보자 지명에 대해 60대와 함께 20대에서 부정적 여론이 유독 높다. 딸 의혹이 확산되면서 20대의 반감은 더 커질 공산이 높다.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의 저자 앨버트 허시먼은 허무주의가 보수의 지배전략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바꾸려고 노력해봐야 소용없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똑같다는 걸 강조하는 전략이다. 공정성에 민감하고 변화를 갈망해온 청년세대, 그리고 시민들에게서 허무주의가 커질수록 정치불신은 높아지고 보수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도 확장된다.

 

사안의 성격상 이번 사태의 파장은 정치를 넘어 사회·문화 등 여러 영역으로 퍼질 가능성이 크다.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은 일제히 진보의 이중성과 위선을 비판하고 나섰다. 86세대의 기득권화를 공격하면서 청년세대의 반감을 부추기고 있다. 보수우익세력에게 이번 사태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 한명을 낙마시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이 광기에 가까운 집착을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진퇴양난에 처한 문재인 정부의 탈출구는 무엇일까? 상식에 비춰보면 된다. 학위 논문도 지도교수가 공저자로 이름을 얹으면 대중의 비판을 받는 세상이다. 하물며 2주 고교생 인턴이 제1저자라면 납득할 사람이 몇일까? 보수우익의 허물을 들어 진영논리를 들이댈 사안이 아니다. 우리 편을 지켜야 한다는 진영논리는 당장은 솔깃해도 미래를 위협하는 독이 될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타격은 불가피하다. 청문회에서 밝히되 뼈아픈 성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디 가래가 아니라 호미로 막길 바란다./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장 경향 2019-08-23

 

조국 사태와 기후 위기

1960년대 초 환경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했으며 사회생태주의의 아버지가 된 머레이 북친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지배가 곧 인간의 자연에 대한 지배의 원인이라고 보았으며, 생태 위기에서 벗어나는 근본적인 방법은 인간 사회를 우애가 넘치는 더욱 평등한 사회로 만드는 것뿐이라고 갈파하였다. 언뜻 들으면 급진적 이상주의자가 내뱉은 몽롱한 말일 뿐, 지금 10년 앞으로 숨가쁘게 닥쳐오는 기후 위기를 막을 구체적인 해법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지난 1주간 펼쳐진 진풍경은 내게는 그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였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그 속에서만 생존할 수 있으며, 또한 인간은 다른 동료 인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자연과 관계를 맺을 수가 없다. 이 자명한 사실을 모르거나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지구의 생명권 자체가 무너질 상황이 되었건만 어째서 사람들은 이렇다할 만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는가? 인간-사회-자연으로 이어지는 연쇄의 끈이 너무 길다 보니 이를 유지하는 데에 자기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쉽게 망각할 뿐만 아니라, 한걸음 나아가서 그 끈을 통해 자기에게 전달되는 자연과 타인들의 사랑과 은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되며, 나중에는 이를 아예 자신의 자연권으로 여겨 그 특권을 정당화하는 데에만 온갖 관심을 쏟게 된다. 일단 이렇게 되면 이들은 자신들의 특권으로 구성된 생활 세계바깥에 대해서는 완전히 관심을 끊는 폐색이 벌어진다. 이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타인과 자연에 대한 지배가 일상화되는 과정이다.

 

며칠 전 태안발전소 참사를 조사한 특조위의 발표가 있었다. 고 김용균씨는 모든 규칙을 준수했음에도 비용 절감과 죽음의 외주화라는 터무니없는 우리 사회의 차별 구조, 아니 사실상의 신분제에 의해 희생되었음이 분명히 밝혀졌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가 사방에서 엄존하고 있어서 김용균씨와 같은 비극적인 죽음이 무수히 반복될 수 있다는 것도 밝혀졌으며, 얼마 전 양천구 빗물처리장에서 비명에 스러져 간 세 분의 노동자들은 이를 너무나 생생하게 일깨워주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차별이 아예 점수 체계로 확립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특조위에서 활동했던 권영국 변호사는 산재로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을 때 정규직은 11, 비정규직은 4점으로 계산된다는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고발했던 노동자의 고통은 잉여노동의 착취였지만, 현재 한국 노동 시장의 아랫부분에서는 이를 훌쩍 넘어선 신분제가 이미 고착화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1주간 권력 중심에 포진한 상위 10퍼센트의 이른바 진보 엘리트들에게 가장 뜨거운 관심사는 어떻게 조국 교수를 방어할 것인가였다. 그 과정에서 이 상위 10퍼센트의 생활 세계와 그 내용이 그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얼마나 철저히 유리되어 있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전에도 그 예고편은 충분히 본 바 있었다. 청와대 대변인을 맡았던 사람에게 노후 준비24억원 정도는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고, 부부 모두가 판사직에 있는 가정을 두고 경제적 궁핍으로 쪼들렸을 것이니 거액의 주식 투자는 당연하다는 희한한 견해도 선보였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정말로 기상천외의 것들이 양산되었다. 어느 교육감은 고교생들이 쓰는 과제도 에세이이며 등재 학술지에 게재되는 논문도 에세이라 똑같은 것이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아마추어 역사 작가로 필명을 날리던 어떤 이는 스카이캐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들의 고통이 어찌 그들만의 책임이냐면서 이러한 잘못된 교육 시스템을 낳은 사회 전체가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주당 의원들은 아예 조국 교수가 모두에게 허락된 기회를 활용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카프카는 21세기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산업사회의 외피를 둘러썼을 뿐 조선시대의 신분제가 온존되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기후 위기가 어떻게 우리를 파멸시킬 것인지의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기괴할 정도의 궤변을 만들면서 이웃들이 처해 있는 그보다 몇백 배 기괴한 현실을 외면하는 이들이 기후 위기로 2050년까지 절멸할 것으로 추산되는 10억인의 생존에 무슨 관심이 있을 것이며, 하물며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들의 존재는 의식이라도 할까. 맨해튼 섬의 해안선의 경우처럼 고작 그 캐슬의 방벽이나 더 높게 올리려 들겠지. 이게 다시 시스템의 악화를 가속시키는 되먹임이 되겠지. 북친이 옳다. 기후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탄소가 아니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경향 2019-08-23

 

탈서울의 가치

여수 돌산대교를 건너는 차 안에서 라디오를 틀었다. <정오의 희망곡>이 송출될 시간인데 진행자 목소리가 낯설었다. 여수MBC 지역방송 <박성언의 음악식당>이었다. 방송을 듣다가 놀랐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진행에 선곡도 좋고, 게스트와 주고받는 이야기도 재밌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수준의 라디오 프로그램은 서울에서도 듣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라디오에 매료된 김에 여수MBC TV도 시청했다. 박성언 아나운서는 생활정보 프로그램 <어바웃 우리동네> MC도 맡고 있었다. 함께 진행하는 한보선 아나운서와 주고받는 개그가 찰떡처럼 죽이 맞았다. 동시간대 서울 지상파 채널의 유사 콘셉트 방송들과 비교해 구성도 알차고 더 유익했다. 숙소에 있는 동안 채널을 내내 고정했다. 한보선 아나운서는 뉴스 진행도 잘했다. 지방방송이라 해서, 지방이라 해서, 서울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나는 서울사람이다. 지옥 같을 때도 많지만, 그럼에도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중심과 주류와 다수의 특권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여수MBC 라디오를 들으며 나는 서울에 사는 것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자각을 했다. 더 많은 자본,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인적교류가 제공되는 서울에서 교육, 의료, 교통, 치안, 문화생활, 쇼핑까지 덤으로 누린다. 그 혜택을 위해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더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므로 서울살이는 특권이 아니라 합당한 권리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것은 능력이고, 지방에 사는 것은 무능함이나 게으름이라고 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서울 주류사회에 편입할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지역의 가치와 비주류의 존재이유를 지키고자 지방에 남아 파수꾼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치를 위해 기꺼이 기회를 희생한다. 그들 덕분에 누군가가 떠나온 고향이 폐허가 되지 않고 고향으로 남는다. 그들이 지켜낸 지방 덕분에 서울이라는 심장비대증을 앓는 이 나라가 획일화와 몰개성의 합병증을 겨우 피한다.

 

산업화시대에 기를 쓰고 서울로 갔다면 이제는 기를 쓰고 서울을 벗어나야 할 때다. 기회의 땅에는 욕망만큼의 결핍이 반드시 생겨나는 법이라서, 나는 서울에서 몸을 망치고 마음을 다치고 꿈을 버리고 사랑을 놓쳤다. 내 혈관엔 술과 담배연기와 미세먼지와 네온사인 불빛이 나쁜 피로 흐른다. ‘탈서울은 서울사람과 지방사람 모두에게 유의미하다. 다만 욕망의 분산이 아닌 기회의 분산, 인프라의 분산만이 아닌 사람의 분산이 되어야 한다. ‘지방을 서울처럼이 아니라, 지방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유지하면서 서울 못지않은 무언가가 자꾸 이뤄져야 한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이 10년 넘게 참여하고 있는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좋은 모델이다. 올해 음악제에서 클라라 주미강은 강원도 양구 박수근미술관에 가 바흐를 연주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비주류인 지방의 의미 있는 시도에 주류인 서울이, 서울 너머의 세계가 손을 잡아 화답한 경우다. 그 자신들도 비주류인 홍대 인디뮤지션들이 통영, 순천, 영주 등에서 더 비주류인 지역 인디뮤지션들과 함께 버스킹 공연을 하는 것도 탈서울의 아름다운 실천이다.

 

나는 내 나름의 탈서울을 위해 두 번째 산문집을 부산의 지역출판사인 산지니에서 냈다. 산지니의 강수걸 대표와 편집자들은 <지역에서 행복하게 출판하기>라는 책에서 단지 지방이라는 이유만으로 묻혀버리고 마는 가치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일, 지역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행복을 심어줄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책을 펴내는 일의 보람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산지니 출판사와 여수MBC 직원들, 평창대관령음악제 관계자들, 묵묵히 지방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청명한 가을 하늘을 엽서 삼아 인사하고 싶다. “아름다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당신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이병철 시인 경향 2019-08-23

 

조국논란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논란이 뜨겁다. 이미 과도할 정도의 논란이 있으니 여기에 가부간 의견을 더할 생각은 없다. 법률적 절차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임명이든 낙마든 결정될 것이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이 논란 끝에 우리 사회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이다. 심청이(조국 후보자를 심청에 비유하는 게 적절한지는 접어두고) 인당수에 뛰어들었다면 무언가 얻는 게 있어야 한다.

대중이 분노한 지점은 뿌리 깊은 불공정일 것이다. 그동안 보수층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불공정에서 진보진영도 자유롭지 못함을 확인하고 더 분노하는 것일 수 있다. 불공정이 교육 영역에서 확인되면 대중의 분노와 절망은 더 커지게 된다. 교육은 그나마 흙수저 미꾸라지가 용이 되는 꿈을 꾸어볼 수 있는 디딤돌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보자면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몽상에 가깝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입시제도는 그 시스템을 잘 알고 이용할 줄 아는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 있다. 지금이야 비판을 받지만, 인턴십이나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스펙을 쌓아 수시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얼마 전까지 대대적으로 장려되었다. 그때 기준으로 보면 이번에 논란이 된 사례는 오히려 크게 칭찬받을 일일 수도 있다. 대학에 입학한 뒤는 또 어떤가? SKY로 대표되는 명문대 카르텔을 부정할 사람이 있는가? 본인은 대학에 들어와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 후 사회적으로 성공한 신분이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자리는 명문대 배경이 없는 이들에게는 죽어라고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는 자리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을 해결하자면 말이 달라진다. 현실의 한계를 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거기에 보수·진보의 입장 차이까지 개입되면 해결은 난망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해결을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왔다. 과거 진보와 보수가 이런 문제를 놓고 입장이 달랐지만, 지금은 입을 모아 불공정한 입시를 비판한다. 이렇게 예민한 문제를 두고 국민 여론이 지금처럼 일사불란하게 모인 적이 없다.

 

그러니 지금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모처럼 통합된 여론에 힘입어 자사고, 외고 등 특목고, 수시 등 불공정한 입시의 온상으로 지목된 것이나 족벌사학의 전횡을 도와준 사립학교법 등에 칼을 들이대야 한다. 국립대 통합안과 지역균형선발 확대 등 흙수저에게 더 넓은 기회를 주고 공정성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도 적극 모색해야 한다. SKY 등 명문대 카르텔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서울대와 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 학생들의 분노가 크다고 한다. 이들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이 훼손된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은 분명 칭찬할 만한 일이다. 그런 비판이 진정한 것이라면, 앞으로 공정한 사회를 위해 자신이 가진 기득권을 내려놓는 결단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사자들이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는데, 명문대 카르텔을 깨고 우리 사회의 진정한 경쟁력을 만드는 조치를 늦출 이유가 없다.

 

논란 끝에 사회가 더욱 건강해질 길을 찾는다면, 논란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는 입시와 교육 문제의 해묵은 폐단을 청산하고 개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심청이 인당수에 뛰어들었으니, 이제 우리는 풍랑 속에서 무엇을 얻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강재 | 서울대 중문과 교수 경향 2019-08-25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소리

소위 조국 사태를 논할 생각이 없습니다. 정치평론가도 아니고 전공자도 아닙니다.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 수도 없거니와 이미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지나칠 정도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셀 수도 없는 가짜뉴스 생산 공장장들과 평생을 사익 추구에만 혈안이 되었던 자들이 보여주는 새롭지 않은 패악질은 도를 넘었습니다. 정책 검증, 능력 검증은 뒷전이고 주요 지면 대부분을 할애해 가족과 관련된 온갖 설들을 만들어내는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무조건 감싸기혹은 무조건 공격하기로 일관성을 유지하는 분들의 고집스러움과 구태의연한 흑백논리, 진영논리 또한 지겨움을 넘어선 지 오랩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정권의 초심을 환기하고자 합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말은 쉽지만 어렵습니다. 어느 시기의 어떤 마음을 지칭하는 걸까요? 개인적으론 대학입학 전 기도했던 그 마음인가요, 취업 직후 회사에 감사하던 마음일까요. 저는 초심이 강조하는 바는 과거 회귀적 반성이 아니라 미래지향적 성찰에의 요청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자리가 달라졌을 때 달라진 시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거만함이 되지 않게 스스로 경계하라는 의미겠지요. 개별적 회고나 참회에 대한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성장한 개인이 어떻게 더 나은 공동체의 미래를 만들 것인지 책임을 함께 고민하자는 적극적 제안이라 생각합니다.

 

문재인 정권의 초심은 촛불혁명이겠지요.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들었던 촛불의 의미를 복기해 봅시다. 개인적으로 겪은 부당한 피해를 호소하기 위해, 혹은 개별적인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나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어떤 분들은 추상적인 거대 가치보다는 명백히 보이는 부조리함이나 특정 세력에 대한 울분으로 광장에 나오셨을지 모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정치권력이 특정 집단의 이익을 정당화하고 재생산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음을 비판하고 시정하기 위해 나오셨을 겁니다. 젊은 시절 못다 이룬 민주주의의 완성, 완벽한 정의, 혹은 온전히 공정한 제도를 상상하며 촛불을 드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촛불광장은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경멸과 무자비한 무관심으로 인해 마음이 부서진 자들이 엮어낸 분노와 슬픔의 연대체였습니다. 차별과 배제, 낙인찍기 때문에 고통받고 아파하고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감의 연대체였습니다. 빈곤과 탐욕이 개별적 불운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임을 깨달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공동체의 붕괴를 막아낸 책임의 연대체였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켜켜이 쌓인 부정의한 구조를 직시하고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물려주지 않기 위해 고민하는 변혁의 연대체였습니다.

 

이 정권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 아픔과 고통, 다른 삶을 위한 책임까지 받아 안고 태어났습니다. 기억하고 이어가겠다는 약속, 변화에 대한 희망으로 시작했습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파커 파머는 이 시대의 정치는 비통한 자들의 정치라고 지적합니다. 마음의 언어로 정치를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공감, 책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인간적 연결은 끊어질 것이며, 공공선에 기여할 정치는 창출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지요. 시민의 마음 안에, 마음과 마음의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국가와 민주주의, 시민의 의미를 되새길 의무가 문재인 정권의 초심인 이유입니다.

 

지금 사태가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는 마음이 부서진 자들의 연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부서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소리를 듣고 원인을 살피고, 다독이고 끌어안고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해야 할 정치권이 무너진 사람들의 마음을 밟고 넘어서려 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도 단단한 고정관념, 특정 이념 중심의 이분법, 추구하는 가치와 실천 간 분열적 불일치 등을 기꺼이 깨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치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지요?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관용적인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불평등한 구조를 기꺼이 바꿀 용기를 가진 자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지요? 운에 의해 연줄에 의해, 성별과 계층, 학벌에 의해 크게 기대어 누리며 살아 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책임을 느끼며, 기득권 재생산 구조를 거침없이 개혁할 사람들을 널리 찾아 두루 중용하고 계신지요? 시민들은 성인군자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그 물음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절망하는 것입니다.

 

부서진 마음은 각성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임계점을 넘어선 시민들은 다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될 겁니다. 그때가 조만간 도래하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나영 |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19-08-25

 

소국주의와 평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대응이 분분한 가운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 민족주의다.

 

우선 현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에 집착하느라 민족주의 자체를 불온시하고 부정하는 입장이 있다. 식민지배 시기의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우리 대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에 사과를 해야 하며, 친일을 해야 경제와 안보를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토착왜구라 불린다.

 

한편 민족주의에도 여러 갈래가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처럼 시민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소박한 민족주의도 있고, 최근 진보적 인사가 비판한 것처럼 정부의 관제 민족주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제재에 대한 대안으로 남북한 간의 평화경제를 언급한 것으로 봐서, ‘관제이고 내용이 없다는 비판을 하는 것은 과도해 보인다. 소수지만 세계적 민족주의’, ‘열린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이들은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가 연대해 아베로 대표되는 군국주의적 시도를 좌절시켜서 평화를 가져오자고 주장한다.

 

김종철(<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녹색평론사, 2019)에 의하면 이웃과 더불어 소박하고 평화롭게 살자고 주장하는 이른바 소국주의’(小國主義)는 한·일 두 나라에서 소수였지만 계속 존재했던 사상이다.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의 원리를 강조한 동학운동이나, 아름답고 문화의 높은 힘을 가지며 모든 사람들이 성숙한 나라를 원했던 김구 선생의 사상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경우 식민지를 갖지 말자고 주장했던 이시바시 단잔(石橋湛山)이나 국가보다는 마을과 산천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중시해야 하며 인간을 죽이지 않는 문명이 필요하다고 한 다나카 쇼조(田中正造)의 사상이 대표적이다. 전후 미 군정청에 의해 강제되었다고 알려져 있는 평화헌법도 실제로는 일본의 이러한 소국주의 전통하에 있던 법학자들에 의해 초안이 작성됐고, 군정청이 시민들에게 의견을 물어 다수의 지지를 얻은 다음 발표를 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 내에 군국주의 우파세력도 있긴 하지만, 평화와 새로운 문명에 대한 갈구도 계속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일 모두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 전환을 이루려면 부국강병과 패권경쟁의 노선에서 이탈해야 한다. 패권경쟁의 끝은 이기든 지든 소수 기득권층의 승리와 대다수 시민들의 절망과 고통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우선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지금까지 추구해오던 경제성장과 패권주의 경쟁에서 벗어나서 소국주의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한 평화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서 산천과 마을이 아름답게 보존되고 문화가 융성하며 성숙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작은 나라들 간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이상헌 녹색전환연구소장·한신대 교수> 주간경향 2019.08.26.

 

사교육에 치이는 강남 아이들마음의 병 깊어간다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

 

중고생 43% 스트레스에 시달려

학업이 주원인주말에도 학원

자해 또는 자살 등 극단 생각도

도움·심리상담 받는 학생 적어

대치동 학원가에 상담센터 추진

뜻밖의 암초 부딪쳐 무산 위기

 

서울 강남의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은 사교육을 받는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다. 2017810일 오후 비가 오는 가운데 서울 대치동 학원 거리에서 학생들이 바삐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는 과거에는 ‘8학군이라는, 대부분의 학부모가 부러워하는 지역이었고, 현재는 교육 특구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강남 개발과 함께 주요 고등학교들이 강북에서 이전해 왔고, 학원들도 가세하면서 상승작용을 한 것이다. 집값도 덩달아 올랐다. 강남·서초 교육지원청의 통계를 보면, 강남구에 약 2천개의 입시와 관련된 학원·교습소가 몰려 있다. 그중에서도 절반이 훨씬 넘는 1300여개가 대치동에 포진해 있다. ‘사교육 1번지라는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명 학원들이 빼곡한 은마아파트 앞 도곡로는 도로명보다는 학원 거리라는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도로변 상가건물은 학원들이 꽉 들어차 있어 학원건물이라고 하는 게 더 잘 어울린다. ‘좋은 대학 가려면 먼저 대치동으로 가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여러 사회·경제적 여건들이 상호작용을 한 결과였을 터이다. 그 속에는 학생들의 눈물과 고통이 숨어 있다.

 

과도한 사교육에 고통 커져

강남구보건소가 지난 5~7월 관내 중 2·3학년과 고 2학년 1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강남구 청소년 사교육·정신건강 현황조사결과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조사 대상 중고생 중 43.1%가 스트레스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상시 스트레스를 항상 느낀다또는 느낀다고 답했다. 성별로는 여학생(51.0%)이 남학생(35.4%)보다 훨씬 높았고, 고교생(46.0%)이 중학생(39.5%)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교육부·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와 비교해볼 때, 서울시 전체 중고생의 스트레스 인지율 40.4%보다 강남구에서 약간 더 높은 수치다.

 

학생들의 스트레스 원인은 주로 학업 때문이었다. 스트레스 원인 중 학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9%로 절반이 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61.6%)이 중학생(55.0%)보다 높았고, 여학생(60.5%)이 남학생(56.9%)보다 높았다. 다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한 학생 가운데서는 남학생(71.4%)이 여학생(68.7%)보다 조금 높게 나왔다.

 

지난 1년간 사교육을 경험한 비율은 93.7%로 통계청의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와 비교해볼 때, 전국(72.8%), 서울시(79.9%)보다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을 받는 학생 중 97%가 학원에 다니고 있으며, 85%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학원에 다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한 주일 동안 학원에 가는 시간은 19.5시간으로, 주중 12.9시간, 주말 6.6시간에 이르렀다. ‘2018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결과인 2017년 서울시 중고생의 사교육 참여 시간 7.7시간의 2.5배에 해당한다. 공부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데도 주말조차 쉬지 못하는 학생들이 정신적 고통을 당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최근 1년 동안 2주 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로 슬프거나 절망감을 느낀 적이 있는 학생이 17.1%에 이르렀다. 고등학생(19.2%)이 중학생(14.5%)보다 우울감 경험 비율이 더 높았고, 성별로는 여학생(20.5%)이 남학생(13.8%)보다 높았다. 성별과 학년을 모두 고려하면, 여고생이 가장 우울감을 높게 경험하는 것으로 나왔는데, 4명 중 1명꼴인 24.1%가 최근 1년간 2주 내내 슬픔·절망감을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스트레스·우울감에 극단행동 벌여

학생들의 높은 스트레스와 우울감은 극단적인 행동을 불러온다. 죽고자 하는 의도 없이 고의로 자신의 신체에 자해를 하는 학생이 4.7%로 나타났다. 여학생이 5.1%로 남학생(4.3%)보다 약간 높았고, 중학생의 비율은 5.6%(5.4%, 5.8%), 고등학생(3.9%)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 청소년들의 자해에 대한 실태조사는 많지 않은데, 한 연구에서는 중고생의 경우 22.8%, 여중생의 경우 20%가 자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됐다. 처음 자해를 한 나이는 14(25.4%), 13(22.4%) 순으로 나타나, 자해 행동이 보통 14~15살에 처음 발생한다는 국외 연구 결과와 유사했다. 자해를 시도한 학생 중 자해 행동과 관련해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상담을 받은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12개월 동안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는 학생의 비율도 8.7%에 달했다. 여학생은 10.1%, 남학생은 7.3%로 여학생이 남학생에 비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 학생의 비율도 2.5%, 자살을 시도해본 적이 있는 학생은 1.1%로 나타났다.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로는 학업 및 진로 문제가 40.6%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다음으로 가족 갈등(24.7%), 친구 및 대인관계 문제(18.7%) 등의 순이었다.

 

심리상담을 원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평소 정신건강 문제로 심리상담을 받고 싶었던 적이 있었던 학생은 현재 혹은 과거 심리상담 경험자를 포함해 16.2%, 여학생(20.4%)이 남학생(12.3%)보다 정신건강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크게 높았다.

 

상담 원하는 학생들 늘어나

강남보건소는 올해 초부터 스트레스와 우울 경험 학생들에 대한 상담과 힐링을 위해 준비에 나섰다. 학생들은 학원 등 사교육 스케줄이 많기 때문에 학원가로 청소년들을 찾아가는 사업에 목표를 두고,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약 3만명에 육박하는 대치동 학원 거리의 한가운데에 있는 은마치안센터에 쉼터 및 심리상담센터 조성을 추진해왔다. 수서경찰서에 현재 비어 있는 치안센터가 철거될 때까지 무상 사용을 요청하는 한편 추경에 시설 예산을 확보하는 등 착착 준비를 마쳤다. 긍정 반응을 보였던 경찰은 최근 건물은 경찰 소유이지만 토지는 개인 소유여서 토지주의 허락을 받기 어렵다는 이유로 협의 중단을 알려왔다. 8월 중순부터 시작하려던 공사 추진도 중단된 상태다.

 

양오승 강남보건소장은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 청소년들이 무거운 대학입시 등의 스트레스로 정신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하루빨리 스트레스 관리 등 종합 안전망을 구축해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학준 선임기자 kimhj@hani.co.kr 한겨레 2019.08.26

 

 

조국, ‘계급이라는 판도라 상자 열다

노래를 잘 못한다. 그럼에도 고교 시절 음악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피아노를 전공하던 언니 덕이다. 가창 시험 전날이면 원포인트 레슨을 받았다. 집에는 클래식 음반이 많았다. 고전음악 감상 시험도 무난히 치를 수 있었다. 서울 강북의 일반고에 다니던 내게도 문화자본은 작동했다. 운이 좋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딸 문제에 대해 뒤늦게 사과했다.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상처를 줬다고 밝혔다. 조 후보자의 최대 과오는 딸의 드문 행운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데 있다. 조 후보자의 딸은 한영외국어고 재학 중 단국대 의대에서 2주가량 인턴을 한 뒤 소아병리학 관련 영어 논문의 1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책임저자인 단국대 장모 교수는 한영외고 학부모였다. 조 후보자 딸은 이후 고려대 생명과학대학에 합격했다. 당시 자기소개서에 인턴십 성과로 이름이 논문에 올랐다는 사실을 밝혔다.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진학 후엔 유급하는 등 성적이 저조했음에도 지도교수로부터 6학기 연속 면학 장학금을 받았다. 조 후보자는 당초 이 모든 과정을 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로 여겼다.

 

조 후보자와 시민의 시선은 엇갈렸다. 그는 모든 과정이 합법·적법임을 강조했다. 현 단계에서 조 후보자가 불법적으로 개입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은 건 사실이다. 시민은 그러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그 과정이 합법적일 수 있다는 데 더 좌절했다. 과거 부와 명예, 권력의 대물림이 불법적 통로를 거쳐 이뤄졌다면, 그래서 사후에라도 제재가 가능했다면, 이제는 자본·지위·네트워크 등 합법적 역량과 자원을 총동원해 이뤄진다는 점에서 박탈감이 깊어졌다. ‘조국 구하기에 나선 일부 여권 인사들은 기름을 부었다. 대중, 특히 청년층 분노의 근원을 들여다보기는커녕 궤변을 늘어놨다. 논문 제1저자 등재를 두고 보편적 기회”(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현장실습 하고 에세이를 쓴 게 뭐가 문제냐”(이재정 경기도교육감)고 했다.

 

높은 담장 안쪽에 그들만의 성채가 솟아 있음을 짐작 못한 이는 거의 없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를 목격한 이는 많지 않았다. 조 후보자로 인해 다수 시민이 담장 안쪽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영화 <기생충>냄새를 통해 계급 문제를 은유했다. ‘조국 사태는 은유를 넘어섰다. 조 후보자는 계급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활짝 열어젖혔다.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 여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주권자의 여론을 반영해 결정될 일이다. 나는 그의 거취보다 한국 사회에 계급문제를 직시할 용기가 있는지가 더 궁금하다. 김해영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공개한 한국장학재단의 대학생 소득분위 분석자료(20181학기)를 보자. 재단은 신청자를 대상으로 부모의 수입과 재산을 월소득으로 환산해 국가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 신청자를 대상으로 소득분위를 나눴더니 장학금을 못 받는 최상위층(9·10분위)이 절반에 육박하는 46%에 달했다. 9분위의 월소득 인정액 하한선은 약 904만원, 10분위는 약 1356만원이다. 연소득으로 환산하면 1억원 이상이다. 반면 3개 대학을 제외한 다른 대학 재학생 중 9·10분위 비율은 25%에 그쳤다. SKY대학의 고소득층 비율이 다른 대학의 2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SKY대와 비SKY대 학생 간 격차가 이 정도라면, 대학생과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청년들의 격차는 어느 정도일까?

 

누군가 특정 사회계층에 속했다는 이유만으로 갖가지 혜택을 누릴 때, 더 많은 누군가는 그런 혜택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 로버트 D 퍼트넘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계급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진 현실을 다룬 <우리 아이들>에서 어떤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아이들 또한, 부자 아이들만큼이나 신이 그들에게 부여한 재능을 충분히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한다. 외고·국제고·자사고 체제를 뜯어고치고, 일반고에 대한 획기적 지원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학입시에서 지역균형선발·기회균형선발을 확대하고,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더 많은 장학금을 줘야 한다. 국공립대 공동학위제와 공영형 사립대 도입을 추진하고, 출신학교 차별금지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집권세력은 계급적 박탈감이 사안의 본질임을 인정하는가? 격차를 완화하려는 구체적 실천을 할 각오가 돼 있는가? ‘조국 사태가 특정 부처 장관의 임명 문제를 넘어, 시민의 삶을 좌우할 핵심적 질문의 계기로 작용하길 바란다. 다시 말하건대, 문제는 계급이다. 해답은 정치적 상상력이다./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경향 2019.08.26

 

 

한국은 미국이 실망스럽다

주변국과의 긴장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실망스럽다.” 2013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한 미국의 논평이다. ‘실망은 불만을 나타내는 4가지 외교 표현 가운데 두번째로 수위가 높다. ‘규탄보다 낮지만 유감이나 우려보다 높다. 그래서 동맹국에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이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결정하자 강한 우려와 실망이라고 밝혔다. 심지어는 한국의 조치가 미군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입장문도 냈다. 주한미군 문제에 민감한 한국인들의 정서를 겨냥한 압박 공세다. 이 정도로 GSOMIA가 미국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지 의문이 든다.

 

미국은 GSOMIA 종료로 한··3각 안보 공조의 균열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압박 대상이 잘못됐다. ·일 간 역사문제를 안보문제, 경제문제로 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도발했을 때는 양국이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며 중립적 입장을 보였다. 선제공격한 일본은 내버려두고 공격당한 한국에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애초 미국은 일본을 압박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한국이 실망스러울지 몰라도 한국은 미국이 실망스럽다.

 

더구나 미국은 이번 사태의 거의 전 과정을 한국과 공유했다고 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에 따르면 하우스(청와대)와 하우스(백악관) 간 실시간 소통했다”. 그러니 한국이 고위급 특사를 2차례 일본에 파견하고, 국장급·장관급 등 각급 실무회담도 여러번 제의했지만 일본이 모두 문전박대한 저간의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화의 손길을 내밀고, 사전에 이런 내용을 통보까지 했지만 모욕적 무시만 당한 것도 목도했을 터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할 말이 없다. 한국은 최선을 다했고, 주권국가로서 절제 있는 대응을 했다. 김 차장은 “GSOMIA 연장을 희망해온 미국이 실망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런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 언제까지 미국의 심기를 고려해 고분고분 처신해야 한단 말인가.

 

물론 미국이 GSOMIA를 한··3각 공조의 중요한 고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는 GSOMIA가 애물단지나 다름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안보적 효용성은 낮으면서 한·중관계와 충돌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GSOMIA를 통한 한·일 간 군사정보 교환은 매우 적다. 상황은 분명하다. 동맹으로서 이익의 공통분모를 확대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일방적으로 희생할 수는 없다. 그것이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와 우경화를 묵인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냉전 이후 미국은 오랫동안 한·일 갈등에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공산권의 위협이 사라진 상황에서 한··일 안보공조 필요성이 약화된 것이다. 한국의 국력신장으로 의존적 한·일관계가 수평적 경쟁관계로 전환되면서 갈등 조정이 한층 힘들어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터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 한·일 역사 및 영토 갈등은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본질적 해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국을 다시 무대로 불러낸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의 굴기에 맞서기 위한 한··일 공조의 절박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돌아온 조정자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여전했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동북아 정세의 새로운 갈등요소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이다. GSOMIA 사태가 그것을 입증한다. 한국이 종료를 결정했지만 사실상 먼저 걷어찬 것은 일본이다. 한국을 안보상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낙인찍고,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하는 국가와 군사정보를 교류할 수 없는 일 아닌가. 일본은 두 달이 다 되도록 안보 불신 주장을 입증하거나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이 같은 일탈은 미국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의 일본 편들기는 또한 우경화를 부추기고 주변국을 자극하게 된다. 북핵 문제 해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은 성찰해야 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우리는 한국이 한·일관계를 정확히 올바른 곳으로 되돌리길 희망한다고 요구했다. 폼페이오 장관에게 묻는다. 그것은 일본에 할 말 아닌가. 또한 미국 스스로에게 할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두고두고 미국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오늘부터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의 시행에 들어간다. GSOMIA 종료 조치 발효는 3개월 뒤다. 상황은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 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다. 조호연 논설주간 경향 2019.08.27


서울대가 없어져야 하는 이유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입학 관련 의혹으로 정국이 시끄럽다. 명문대입학 그 자체야 법률적 의미에서 불법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문제는, 이젠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그 입학 준비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 귀족과 현대판 평민사이의 명백한 격차다. 입학에 결정적 역할을 했든 안 했든 위험한 일을 하다가 불시에 죽음을 맞이한 김용균과 같이 한국 경제를 실질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노동자, 영세민의 자녀는, 아무리 재능이 좋아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학술논문의 제1저자가 되는 경력을 쌓는다는 것을 상식적으로 상상할 수 있겠는가?

 

편법이 작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회학에서 흔히 말하는 부모의 문화 자본사회 자본이 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자명하다. 고소득자·고학력자 자녀 아니면 정보의 한계 때문에라도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대학 실험실 인턴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같은 나라의 시민이지만, 중상층 이상의 자녀가 밟는 인생의 궤도와 현대판 평민자녀가 통과해야 할 여정이 태생적으로 다르다는 것만큼 대다수의 한국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도 없다.

 

구미권에서는 지금 사회적 불만, 나아가서 급진화의 중심에 신자유주의의 몰락이 가시화된 2008년 이후에 사회에 진출하는 밀레니얼들이 서 있다. 그들은 근현대 역사상 부모보다 훨씬 더 어렵게 살아야 할 최초의 박탈당한 세대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육체노동자들의 평균 실질임금이야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지만, 그나마 고학력 피고용자들의 실질임금은 2008년 이전까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실질임금의 인상이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부동산 투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규모의 잉여 자금으로 인해 주거비용만 계속해서 오를 뿐이다. 거기에다가 대학교육 비용들도 지속적으로 늘어나 이미 학자금 융자로 인해 채무자가 된 채로 졸업을 해야 하는 밀레니얼들은 주택 구매 융자(모기지론)까지 받아 상환할 능력이 대개는 결여되어 있다. 밀레니얼들의 궁핍이 급진화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한국의 밀레니얼이라고 할 10대 후반과 20대들은 정치적으로는 평균보다 약간 왼쪽에 서 있긴 하다. 지난 대선 때에 20대 유권자들의 12.7%나 주요 후보 중에서 가장 좌파적이라고 할 심상정 후보에게 투표했는데, 이는 격랑의 80년대를 겪은 50대들의 투표율(4.5%)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한데 구미권과 비교하자면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여전히 온건하고 비정치적이다. 심상정은 미국의 버니 샌더스나 영국의 제러미 코빈처럼 비교적 급진성이 높은 민주적 사회주의담론을 제시하는 것도 아니지만, 샌더스나 코빈처럼 상당수 밀레니얼들의 정치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정치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에는 한국의 밀레니얼들은 살인적 학습 노동과 생업으로 너무 바쁘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저항에 나선다기보다는 3포세대’ ‘5포세대와 같은 자조 섞인 자칭들을 통해 그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구미권 청년들보다 덜 급진적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한국에서는 아직도 생존 메커니즘으로서의 가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노르웨이에서는 이르면 성년이 되는 18살부터, 아니면 대학 입학 시점부터는 청년이 부모와 분가하면서 더 이상 부모세대의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반대로 자녀에게 직장과 아파트가 생길 때까지 그 자녀는 부모에게는 챙겨야 할 아이. 가정의 존재는 한국 밀레니얼들의 불안감을 덜어주고 그 급진화를 더디게 만드는 동시에 부모 세대에게 자녀의 입학, 취업 등 진로 문제에 매우 뜨거운 관심을 갖게끔 만든다. 이 뜨거운 관심은, 조국 딸 의혹에서 드러난 특수 계층 자녀의 매우 특수한(?) 사회 진입 궤도에 대한 심한 상대적 박탈감으로 이어진 것이다.

 

사실 비교가 가능한 대부분의 산업화된 국가와 굳이 비교하자면, 기성세대 한국인의 삶이란 고생 그 자체다. 한국인의 삶 전체가 보통 회사에 의해서 철저하게 식민화되어 있으며, 거기에다가 외환위기 이후로는 그때까지 유일한 사회 보장 장치였던 회사도 언제 잘릴지 모를 불안한 곳으로 전락해 만성적 불안이야말로 삶을 관통하는 코드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도 한국인들은 같은 제조업 대국인 독일·일본 등에 비해 훨씬 덜 잤으며, 지금도 일에 쫓겨 잠잘 시간을 갖지 못하는 풍토는 여전하다. 재작년 한국갤럽의 수면 관련 설문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24분인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2시간이나 짧은 것이었다. 잠잘 시간도 못 갖지만, 휴가도 그다지 즐기지 못한다. 한국인의 평균 휴가 일수는 8일로, 산업화된 세계에서 최저. 신자유주의 이전에도 대부분의 직장에서 엄청나게 고생을 해야 생존하고 진급할 수 있었다는데, 이제 고생을 해도 언제 잘릴지 모르는 세상이다. 공무원(평균 근속기간은 약 15)이나 대기업(평균 근속기간은 약 10) 종사자처럼 한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는 사람은 직장인 사회에서 2할도 안 되고, 직장인의 평균 근속 연수는 불과 4.5, 오이시디 평균의 절반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고 잠도 덜 자고 휴식도 거의 취하지 못하는 한국인 기성세대의 유일한 위안은 무엇인가? 맞다. 그나마 내 아이라도 대학을 잘 나와서 이런 고생을 면할 수 있도록 내가 좀 고생해야지와 같은 생각이다. 문제는, 조국 서울대 교수 딸의 사회 진입 궤도를 최근 며칠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이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위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상사의 폭언을 들어가면서 직장에서 과로사한다 해도 그들의 자녀가 고등학교 시절에 학술논문의 제1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아는 것이다. 그들의 좌절감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중도 우파의 문재인이 아닌 온건 사민주의자 심상정이 대통령이 되어도 한국 사회의 엄청난 재산 격차 등을 5년 동안 큰 폭으로 감소시키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부모세대의 재산과 사회 네트워크, 그리고 문화 자본이 차세대의 명문대 학력과 사실상의 신분 세습으로 이어지게 하는 핵심적 메커니즘인 명문대 학벌은 조금이라도 타파할 수 있지 않겠는가? 법적으로 사유재산인 고려대나 연세대 등 명문 사립대는 몰라도, 적어도 국립대인 서울대와 여타의 국립대학들을 평준화해 통합네트워크로 운영하는 것은 현존의 법률 체계상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는가?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 학력을 부모의 힘으로 얻는 2세 사회 귀족들이 부모의 사회적 지분을 그대로 세습하는 광경을,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다수의 한국인들이 계속 봐야 하는 한, 이 사회에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 구축도 불가능할 것이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도 박탈당한 현대판 평민들의 분노, 좌절, 절망 속에서 무슨 진보 개혁이 가능하겠는가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19-08-27



 

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최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여러 가지 의혹 중 하나가 후보자 딸의 대학 및 대학원 입학과 관련한 것이다. 이 의혹들의 사실관계나 불법성 여부는 조만간 검찰수사와 청문회를 통해 밝혀지리라 믿는다. 사실 여부나 불법성 여부를 떠나 그 폭발력은 엄청났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가 힘든 청년세대들과 그들의 못난부모세대들은 분노하였고 급기야 고려대와 서울대 등 관련 대학 학생들이 조국 후보자를 규탄하며 정의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개최하였다. 나는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표출하고 의견을 개진한 청년학생들에게 격려와 지지의 박수를 보낸다. 고려대와 서울대의 선배들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시기마다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이번 학생들의 촛불집회도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받아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혁을 추동하는 집회로 발전시키길 기대해 본다.

 

학생들은 무엇에 분노하였고 그들의 촛불이 요구하는 정의는 무엇인가? 일차적으로 그것은 조 후보자의 딸이 다른 사람보다 손쉽게스펙을 쌓았고 그를 이용해대학 및 의전원에 입학했으며 자격이 없음에도장학금을 받았다는 의혹들에 대한 박탈감과 분노의 표출이다. 이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공정성의 심각한 훼손이며 이로 인한 부정의는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촛불이 여기에 멈춰서는 안된다. 학생들이 요구하는 정의 속에는 그들과 다른 세상에서 살며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정말 어렵고 힘든 청년들에 대한 정의와 그들에 대한 사회적 보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에서 사회의 최소수혜자에 대한 배려와 정의를 강조한 바 있다. 고려대 학생들과 서울대 학생들은 대한민국 청년들 중 상위 1%이고 누구보다 특혜를 누려왔다. 이들이 드는 촛불은 자신들의 SKY 캐슬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촛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촛불이어야 한다. 24세 청년 김용균은 화력발전소에서 힘든 노동을 하다 죽었고, 19세의 청년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낀 채로 사망하였다. 오늘도 많은 청년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며 택배와 배달 노동을 하면서 부상당하고 죽는다. 그들의 부상과 죽음에 대해선 외면하던 정치세력과 언론들은 이번 촛불집회를 두고는 청년들의 분노라며 곰비임비 변죽을 울리고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정의의 관점은 기회의 평등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나 선택을 통해 적극적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요인들,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에 의해 발생한 불평등은 공정하지 않다. 사회는 이렇게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에 의해 발생한 부정의를 적극적으로 시정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대표사례가 부모의 영향이다. 부모의 영향은 재력, 학력, 인맥, 가정교육, 유전자 등 매우 다양한 매개를 통해 자식들의 학업이나 경제적 성취에 심대한 영향을 준다. 성별이나 인종, 출신 지역도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이다.

 

최근의 사태를 둘러싸고 인터넷에서는 수능이나 정시를 통한 선발과 학종이나 수시를 통한 선발 중 어느 방식이 더 공정한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부모의 영향이 어느 전형방식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지 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이 논쟁은 공허하다.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예컨대 정원의 3~5배 인원을 수능이나 학종을 이용해 일차 선발한 후 최종합격자는 이들 중 추첨을 통해 선발하는 방식이다. 추첨은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은 전적으로 무력화하는 방법 중 하나이고 그래서 일부 국가에서 징병에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 자식만은 꼭 SKY 대학에 진학하기를 희망하는 우리 사회에서 이 방법으로 선발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부모를 선사할 수 있다면 이 역시 도덕적으로 자의적인 요소들의 영향을 없애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많은 경우 기회는 사전적으로 불평등하고 이의 시정은 광범위한 사후적 보상에 의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임금체계의 개편, 조세제도의 개혁, 복지지출의 확대 등 사회적 보상구조의 개혁과 변혁이 기회평등의 실현에 중요한 이유이다.

 

학생들은 정치적 공방과정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단순한 분노를 넘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그리고 그 구조개혁을 저지하려는 기득권세력들에 맞서는 횃불로 승화시켜주길 바란다. 여러분들의 선배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청년들의 어깨에 무거운 짐을 지워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미안하다이우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경향 2019.08.28.

 

합법적인 불평등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논란을 두고 한 민주당 의원은 누구나 노력하면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며 보편적 기회라고 했다. 어쩌면 그가 아는 세계에서는 보편적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딱히 불법적 요소도 없으며 입시 제도를 잘 활용했을 뿐이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법은 최대치의 도덕으로 여겨진다.

 

사법개혁의 상징이라는 조 후보자가 내놓은 정책안을 보면 우려스러운 점이 많다. 그가 왜 개혁의 상징인지 의아할 정도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가장 개혁적으로 바라볼 면이 있다면, 그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담론화되는 현상이다. 이 사안은 조 후보자를 통해 드러난 이 사회의 합법적인 불평등시스템을 점검하게 만든다.

 

공식 프로그램은 아니었다지만 특목고의 전문직 학부형 인턴십은 의미심장하다. 조 후보자의 딸이 고등학생일 때는 아버지가 유명인이 아니었기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조 후보자가 유명하지 않던 시절이라 오히려 더욱 문제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한 개인이 유명하냐 아니냐와 무관하게 어떤 계층에서 공유하는 관행이라는 뜻이다. 특권층끼리 비공식적으로 자식 입시를 도와주는 구조다.

 

부모 재산이 50억원이 넘는데도 낙제를 하면 격려 차원의 장학금을 주는 교수, 성실히 2주간 인턴십에 참여하면 논문의 제1저자로 만들어주는 교수는 모두 불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한 마음으로 학생을 도와주고 싶었을 것이다. 불법이 아닌 특혜를 공유하며 계층의 장벽을 쌓아 올리는 데 이바지한다. 장관 임명과 무관하게 우리 사회가 이 순수한특별 공동체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

 

서울대에서는 폭염을 견디며 노동하던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숨졌다. 대학 내 불평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작업 수칙을 다 지킨 노동자도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는다. 정규직의 죽음은 12점 감점이고 하청노동자의 죽음은 4점 감점인 공기업의 경영평가 시스템이 하청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한다. 비정규직의 목숨값은 정규직의 3분의 1이다. 끔찍하고 충격적인 현실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고 세습하기 위해 불법은 아닌 관행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이 불법은 아닌 목숨값의 불공정함은 얼마나 이해할지 의문이다.

 

한쪽에 부모의 학력과 자본을 세습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다른 한쪽에는 위험천만한 실습현장에서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논문 쓰고 학회에 참석하는 인턴십을 하며 스펙을 늘리는 특목고 학생들과 노동 현장으로 실습을 나가 산재 피해자가 되는 특성화고 학생들 사이에 놓인 인생의 기회는 과연 평등한가. 이 기회의 차이가 정말 개인 노력의 차이인가. 특성화고에는 특목고보다 저소득층이 10배 정도 많다. 특성화고와 특목고의 세계는 전혀 다르다. 이들은 살면서 점점 더 만날 일이 없어진다. 저소득층은 상위 계층이 얼마나 특혜를 누리는지 상상하기 힘들고, 상위 계층은 저소득층이 얼마나 불공정한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주로 상대적 특혜를 누린 이들의 억울한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명문대라 불리는 몇몇 대학에서 벌어진 집회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 주상복합 아파트는 같은 건물에서 임대 세대와 자가 세대의 엘리베이터 사용을 분리했다. 서로 다른 통로를 사용하여 마주치지 않도록 설계했다. 임대 세대는 비상시 옥상으로 갈 수 없는 구조다. 위기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적다. 이 건물 구조는 현재 한국 사회를 도식적으로 설명하기 좋은 예다.

 

죽음과 세습의 시스템은 이렇게 굴러간다. 불법은 아니다. 다만 합법적인 신분사회다. 이 합법적인 불평등 시스템이 더 무섭다. 나의 특권도 너의 도태도 모두 공정한 노력의 결과일 뿐 불평등의 증거가 아니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회의 진보를 고민한다면 합법적 특혜를 옹호할 게 아니라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한겨레 2019-08-28


계급적대입 제도, 이젠 바꾸자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둘러싼 논란 가운데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딸의 외국어고와 대학, 의학전문대학원 재학, 입학 관련이다. 이것이 이번 논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계급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자녀 교육에 가장 관심이 많고,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는 부모들은 대한민국에 있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가장 열심히, 가장 긴 시간 공부하고,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내는 아이들도 대한민국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성실한 대한민국의 부모들과 아이들을 조 후보와 딸이 물먹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그들을 물먹인 것은 조 후보와 딸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반민주적이고 계급적인 대학 입학 제도다.

 

대학 입학을 준비하는 아이들 가운데 극소수에게만 사실상의 시민 계급을 허락하는 이 바늘귀 같은 제도가 대한민국 부모와 아이들 모두를 물먹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열심히, 가장 긴 시간 공부하고, 가장 우수한 성적을 내는 아이들 대다수를 바보, 천치, 멍청이, 낙오자, 실패자, 패배자, 루저로 만들기 때문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위주로 한 현재의 대입 제도가 대학 입학생을 다양화했다거나, 학생들 간의 경쟁을 완화했다거나, 빈부 학생 간의 격차를 개선했다거나, 지방 학생을 우대했다는 헛소리는 이제 집어치우자. 이제껏 대한민국에 존재한 모든 대입 제도는 실패했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한, 우수한 아이들 대다수를 실패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아이들은 전혀 실패한 것이 아닌데, 사회가, 정부가, 교육부가, 대입 제도가 그들을 실패자로 낙인찍고, 탈락시키고, 차별하고, 무시해왔다.

 

이제 이런 반민주적이고 계급적인 대입 제도를 없애야 한다. 일등부터 꼴등까지 한 줄로 등수를 매기는, 극단적으로 경쟁적인 대입 제도를 없애야 한다. 스무살도 안 된 아이들의 이마에 계급낙인을 찍는 대입 제도를 없애야 한다. 한번 정해진 이 계급의 변동을 사실상 허용하지 않는 대입 제도를 없애야 한다. 이게 바로 1968년 혁명 때 프랑스에서 한 일이다.

 

그래서 제안한다. 대입 전형을 합격-불합격만을 가리는 대학입학자격시험으로 단순화하자. 내신도 학교 수업 참여도만을 평가하는 내용으로 바꾸자. 그러면 모든 아이들이 책을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정치·사회 활동에 참여하고, 스포츠·여행을 즐기고, 친구를 사귀고, 쉴 수 있다. 학원에 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대학이 아니라, 아이들을 으로 만들어주자. 대학이 아이들을 골라 뽑는 것이 아니라, 대입자격시험을 통과한 모든 아이들이 자유롭게 전국의 대학을 골라 지원할 수 있게 하자. 지원자가 정원의 100% 이상이면 추첨으로 선발하자. 성적과 배경 좋은 아이들을 뽑는 데만 혈안이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일은 우습게 생각하는, 엉터리 명문 대학들의 기득권을 기득권을 무너뜨리자. 그래서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간 뒤에 경쟁하게 하고, 전국의 대학이 서로 경쟁하게 하자.

 

이렇게 하려면 전국의 40여개 국공립 대학을 통합해 운영하고, 좋은 사립 대학까지 포함하는 대학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한다. 또 최고 국립대인 서울대의 15개 단과대와 11개 전문대학원도 모두 개별 대학으로 독립시켜 전국으로 분산해야 한다. 애초 서울대는 서울의 10개 대학을 미 군정이 강제로 통합해 만든 억지춘향국립 대학이다.

 

이렇게 대입 제도를 바꾸면 가장 걱정해야 할 일은 대입자격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아이들이다. 이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 이 제도 도입 뒤의 가장 중대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들을 위해선 전문적인 직업 교육과 대학 졸업자와 차이가 없는 임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공약한 자율형사립고 폐지조차 못하는 문재인 정부에 이런 근본적인 대입 제도 개혁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계급문제이고, 이를 개혁하는 일이 오늘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과제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다. 오늘, 이런 제안이라도 해야, 내일, 이 미친 사회가 조금이라도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전국 에디터이젠 바꾸자 한겨레 2019-08-28

  

아마존 산불, 남의 일 아니다

아마존에서 산불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구 산소의 20% 이상을 생산하는 지구의 허파인데 우리 관심이 너무 인색하다. 무려 한 달 가까이 산불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언론재단의 기사 검색 사이트인 빅 카인즈로 검색해보니 한 달간 보도 기사량이 59건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도 3주째로 접어든 822일에나 기사로 등장했다. 지난 415일 노트르담 성당 화재 때는 그날부터 한 달간 총 기사량이 1081건이었다. 프랑스를 넘어 인류 문화자산의 파괴문제라 그 정도 보도량이 많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견줘 아마존 산불에 대해선 너무 무심하다. 노트르담 화재 기사량의 0.1%에도 못 미친다.

 

지금 우리는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발 빠른 대응이 없다면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2014년 제5차 종합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산림파괴를 포함한 토지 이용 변화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총 온실가스의 11%에 달한다. 탄소 흡수원을 더 늘려야 하는 상황임에도 오히려 서울시 면적의 15, 아마존 열대우림의 15%가량이 한꺼번에 잿더미가 되었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을까? 아마존 우림은 산소를 만들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만 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생물 다양성이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브라질은 쇠고기와 닭고기, 대두 생산 세계 2, 옥수수 생산 세계 3위 국가이자 대두와 육류 제품 세계 최대 수출국이다. 우림의 나무를 없앤 후 소를 방목하거나 가축 사료로 쓸 콩과 옥수수를 생산한다. 식용동물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은 전체 온실가스의 14%에 달한다. 더 많은 식용동물과 사료 생산을 위해 더 많은 숲들이 불태워진다. 나무를 베어 없애는 건 힘들고 시간이 걸리기에 불을 내서 한꺼번에 태워버린다.

 

그래서 아마존 우림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고? 지구 산소 공급이나 이산화탄소 흡수 차원을 넘어서더라도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식품 수입국 중 하나로 브라질 농축산물의 주요 수출 대상국이다. 아직 브라질로부터 쇠고기는 수입하지 않지만 지난해부터 돼지고기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닭고기 수입량 중 브라질산이 최고로 많다. 브라질로부터의 수입이 한국 전체 농산품 수입의 5% 정도이지만 옥수수와 콩 자급률이 2016년에 각각 0.8%, 7.0%였으니 갈수록 수입이 늘 것이다.

 

302만마리, 11273000마리, 170551000마리. 무슨 숫자일까?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키웠던 식용 소와 돼지, 닭의 마릿수다. 우리는 한 사람당 고기를 얼마나 먹을까? 2018년 농림축산식품 주요 통계에 따르면 2017년의 경우 소 11.3, 돼지 24.5, 13.3으로 총 49.1이었다. 2000년에는 각각 8.5, 16.5, 6.9으로 총 31.9이었으니, 그사이 53.9%나 증가한 것이다. 2017년 이 세 육류의 자급률이 66.7%였고 쇠고기는 41.0%로 더 낮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로 2017년 한국인 1인당 총 육류 소비는 58.0, OECD 평균(69.4)보다 낮지만 세계 평균(34.7)보다 월등히 높다. OECD 평균이 기준이 될 수 없다. 육류 수입은 갈수록 느는데, 사육에서만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처럼 멀리서 수입해올수록 냉동에도 이동에도 더 많은 에너지가 쓰여서 온실가스 배출이 더 늘어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유럽에선 육류세 도입이 늘고 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서는 2016년부터 도입되었고 영국은 도입을 준비 중이다. 독일에서는 육류 제품 판매세 인상 법안이 발의되었다.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국민 건강과 가축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서란다. 우린? 당장은 육류세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지구 환경문제와 우리 삶의 연결성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모두가, 매 끼니, 채식할 필요는 없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육식을 피하는 건 어떨까?/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2019.08.29.

 

조국 논란을 마주한 진보, 몰락이냐 새로운 비상이냐

조국 후보자는 법무부 장관이 되어서는 안된다. 제기된 의혹과 관련 증거들이 보여주는 심각한 도덕적, 법적 흠결 때문이고, 이러한 흠결을 지닌 장관은 검찰개혁의 기수가 아닌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많은 국민들의 눈에는 명확한데 여권 및 진보 진영 주류의 시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거대한 혼돈에 빠져 있는 듯 보이거나, 진영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에 마지못해 발언하고 움직이는 듯한 이들도 있는 것 같다. 물론 진심으로 적극적인 옹호를 펼치는 이들도 있다. 거악에 맞서기 위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판단이 그 배경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국 후보자의 흠결이 정도를 넘어섰다고 보는 이들의 시선에선, 국민의 눈높이를 따라가기에 한참 모자란 억지 논리로, 그간 자신들이 내세운 가치들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은 진보의 역사에 있어 거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사태의 역사적 의미를 겸허하게 돌아보며 과감하게 구습을 넘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지금처럼 정치 및 진영 논리에 따라 대충 넘어가느냐에 따라 진보의 미래는 비상할 수도, 몰락할 수도 있다.

 

조국 논란은 한국 진보의 역사에서 세 번째 단계의 출발을 예고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진보는 첫 단계에서 한국사회의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고 이로써 민주, 자유, 평등, 정의, 인권의 보편 가치를 일깨웠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민주화 운동 외에는 무능하다는 비판을 딛고 경제를 비롯한 국가 경영의 모든 일에서도 유능할 수 있는 진보임을 확인시켰다.

 

그렇다면 다가올 세 번째 단계에서 진보는 어떤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낼까? 진보 세력에 잠재됐던 문제가 응축돼 표출된 이번 사태를 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은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개개인에게 내재된 욕망의 섬세한 이해 및 관리 문제다.

 

앞의 두 단계에서 진보는 보편 가치를 구현하는 역사를 주로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만들어가는 데 관심을 갖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기에 방점을 두다 보니 개인의 내면 및 의식의 문제는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방치했다. 외부로 주창하는 보편적 가치와 개인의 내밀한 욕망이 서로 충돌할 경우 그 충돌을 인지하는 감각도 약할 뿐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후자 편에 서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내면의 욕망을 철저히 이해하고 관리하는 일은 자기 수행의 문제이기도 하다.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 중 일부는 이런 얘기를 접하면 문제는 사회 구조에 있을 뿐이고 개인 의식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그런 도학적 군자 같은 얘기는 그만하라며 내치곤 한다. 그러는 사이 갈등과 모순이 쌓이고, 위선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위선은 진보를 향한 보수 세력의 비판적 구호이기도 한데, 이를 단지 반대 진영의 비난이라고 가볍게 치부할 일이 아니다. 진보가 두 번째 발전 단계에서 무능하다는 보수의 비판을 딛고 일어섰듯이, 세 번째 단계의 진보는 위선이라는 비판을 뼈저리게 돌아보며 이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진보를 자처하는 개개인의 내면 세계를 존재적 차원에서, 보편 가치의 차원에서 돌아보고 관리하는 힘을 기르는 일에 달려 있다. 이제 정치적 삶의 중심에 구도적인 수행을 놓는 진보가 필요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진보가 이 세 번째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국민의 신뢰 밖으로 밀려나며 급격히 힘을 잃을 것이다. 이 단계로 나아가는 첫 관문이 조국 논란, 진보의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구도에서 냉철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나라가 잘되려면 건강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가 양 날개로 서야 한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보수 세력의 안착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은 현 상황에서, 진보에 대한 희망마저 꺾일까 두렵다   황금중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경향 2019.08.29.

 

‘497’‘386’에게

대의에 헌신했다는 자부심, 어느새 반칙·특권에 무뎌져

자신들이 큰 혜택 누리면서 사회개혁 외치는 이중행태

1970년대 태어나 90년대 대학을 다닌 지금 40대 중에는 ‘386’ 선배들에 부채감을 가진 사람이 많다. 기자가 대학에 입학했을 땐 학생운동이 거의 끝물이었다. 대학 내 광장에선 여전히 집회가 열리고 교문 앞에선 간간이 최루탄도 터졌지만 부마, 광주, 6월 항쟁의 격랑이 물결친 80년대와 비교하면 분위기는 확연히 꺾였다. 사회과학서적 대신 토플책이, ‘임을 위한 행진곡대신 서태지와 아이들노래가 인기였던 캠퍼스는 이념이 아니라 현실 쪽으로 분명히 기울어져 있었다. 한번은 학생회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남포동 가두시위에 함께 나가자는 복학생 선배를 만났는데 그 손을 끝내 뿌리치고 나오는 내 모습이 두고 두고 부끄러웠다. 국가와 민족이라는 대의에 헌신하는 그들에 비해 학업이나 취업같은 소아적 이기심의 끈을 놓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작게 여겨졌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일기 몇 달 전 노무현재단의 유시민 이사장과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 간에 공방이 있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에 끌려가 누가 먼저, 더 자세히 당시 동지들에 대해 진술했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퉜다. 유 이사장이 한 지상파 방송에서 자신의 진술서 내용을 농담하듯 떠벌리자 심 의원이 정색하고 반박했다. 한때 동지였다가 이제는 양 극단의 진영에서 서로를 배신자라 손가락질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짠한 심정도 들었다. 험한 시대가 순수한 청년들에게 남긴 생채기라 여겼다.

 

조 후보자에 대한 실망이 처음부터 컸던 건 아니다. 90년대 초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 연루 경력으로 자격 시비가 일자 자랑스러워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고 말할 때까지는 차라리 좋았다. 젊은 날 특정 이념에 경도됐던 자신을 합리화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모습이 조국답다고 생각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가치관이 달라졌다고 해서 그걸 변절이라고도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웅동학원 채무와 관련된 가족 간의 사기 소송 의혹, 내부정보를 이용한 사모펀드 투자 의혹에 이어 급기야 고교부터 대학 의학전문대학원까지 딸의 입시비리 의혹마저 불거졌다. 공정하지 못한 방법으로 취득한 스펙이 또 다른 스펙의 사다리가 된 딸의 학력 관리는 조국 자신이 그토록 매도하던 특권과 반칙그 자체 아닌가. 그를 강남좌파라 한다지만 이쯤이면 강남 주민도 좌파도 모두 그를 부끄러워해야 할 판이다.

 

환멸을 더 부추긴 건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2주간의 의대연구소 인턴 경험만으로 병리학 영어논문 제1 저자가 된 것을 놓고 실습보고서가 에세이고, 에세이가 논문이다. 뭐가 문제냐라고 강변한 사람은 현직 경기도교육감 이재정 씨였다. 후보자 동생 부부가 채무 면탈을 위해 위장이혼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자 우리 형도 이혼했다며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엉뚱하게 자기 가족사를 까발렸다. 조국 딸의 입시비리 의혹을 규탄하는 대학생들을 두고 귀퉁배기를 때려주고 싶다는 성직자도 있었다. 386 정치인의 대표주자쯤으로 인식돼온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언론이 가짜뉴스를 독가스처럼 피우고 슬그머니 이슈를 바꿔 의혹만 부풀린다며 한술 더 떴다.

 

특정 세대는 특정 경험으로 인해 더 강고하고 효율적으로 조직화된 세대의 자원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모든 세대를 압도하는 세대 네트워크와 위계체제의 조직자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민주화를 위해 만들어 낸 조직자원과 경험이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정치권력의 배분과 불평등한 자산 소득 분배구조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386세대를 비판적으로 분석한 불평등의 세대라는 책으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서강대 이철승(사회학) 교수의 논문 구절이다.

 

이 사회 정치와 경제권력의 불평등을 모두 386의 탓으로 돌리는 건 옳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숨 쉬는 이 자유로운 공기를 그들에게 일부 빚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사람도 변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 대단한 의지와 결단의 산물이었든, 그저 시대적 유행에 편승한 결과였든, 그들 자신이 이제는 기득권임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들이 만들고,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사회구조에 올라타서 그걸 개혁하겠다고 외치는 건 기묘하기까지 하다.

 

조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다음 달 2~3일로 잡혔다. 검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장외 비평자가 아니라 장내 행위자로 섰을 때야 비로소 누군가의 실체와 실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차라리 기득권 386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여전히 좀 더 나은 사회를 꿈꾸며 각자의 자리에서 헌신하는 진짜 386 선배들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국제 2019.8.29

 

무엇이 정의고 공정인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던진 충격과 파문은 크게 세 가지 차원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첫째,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정신을 계승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촛불 정신이 지향하는 가치는 공정, 정의, 평등이다. 조 후보자와 관련된 각종 의혹들은 이런 촛불 정신을 정면 부정한다. 조 후보자의 위선과 탐욕으로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도로 아미타불 물거품이 됐다. 조 후보자의 가장 큰 과오는 현 정부의 정통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교수 OUT"을 외치며 촛불을 든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장관 되면 공정·정의 배반이다"고 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결과(23, 24), 조국 후보자 임명에 대해 국민의 60.2%가 반대했다. 20대 젊은 세대에서는 68.6%가 반대했다. 반대 이유로는 '여러 의혹 때문에 공정·정의 등을 내세울 자격이 없어서'(51.2%)가 가장 많았다. 여론이 이런데도 대통령이 조 후보자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것은 아집이고 오기다.

 

조 후보자는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는 이유로 지명됐다. 그런데 도덕적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법 개혁을 완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 개혁을 하려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한 도덕성과 언행일치, 그리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어야 한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조국 캐슬', '조적조'(조국의 적은 조국) 등의 신조어가 등장했다. 단언컨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개혁은 설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제라도 '읍참조국'(泣斬曺國)을 통해 정의와 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것만이 이 정권의 촛불 정통성을 지키는 것이다.

 

둘째, 집권 여당의 비뚤어진 '조국 지키기'.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이 관계 기관과 협의 없이 조 후보자 주변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선 것을 "적폐" "개혁에 저항" "기관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는 표리부동의 전형이고 검찰에 대한 정치적 외압이다.

 

문 대통령은 7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살아 있는 권력에 엄정한 법 집행"을 당부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윤 총장 인사 청문회 당시만 해도 "검찰을 이끌 적임자" "권력 눈치를 보지 않는 검사"라고 두둔했다. 압수수색을 사전에 알려주지 않은 검찰이 적폐가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하는 검찰을 향해 외압을 가하는 집권당이 적폐다. 집권당은 검찰이 아니라 인사 검증 실패에 대해 청와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집권 여당이 청와대 눈치만 보며 맹목적으로 충성하면 결국 정부를 죽이게 된다.

 

셋째, '비도덕적 가족주의'(amoral familism)와 법치와의 관계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애드워드 밴필드(Edward Banfield)'비도덕적 가족주의'"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아무리 비도덕적이어도 용인될 수 있다"'가족에 대한 무한 충성 감정'이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것은 법치 훼손의 주범이고 사회 불신의 근원이다. 부끄러움 없이 가족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에 빠져 있는 조 후보자는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해 법치를 완수할 수 없다.

 

청와대에 묻는다. "각종 의혹으로 본인이 수사 대상이고 가족이 출국 금지당한 사람이 아직도 사법 개혁의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집권당에 묻는다. "누가 적폐 대상이고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가? 검찰인가 조국인가?" 조국 후보에게 묻는다. "당신이 부르짖었던 정의와 공정은 무언인가?" 친구 원희룡 지사의 충고처럼 '386 세대를 욕보이지 말고 부끄러운 줄 알고 이쯤에서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행동은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되면 그것이 위선이고 기만이다.

 

통상, 대통령이 오기를 부리고 특정 인물에 집착하며 집권당이 낯 뜨거운 용비어천가를 불러 대면 정부는 실패한다. 박근혜의 실패에서 보듯이 이것이 한국 정치에서 입증된 철칙이다. 조 후보자는 이제 허황된 권력에 대한 집착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에게 불철저하고 안이했던 것을 성찰할 때다.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다던 사르트르처럼 자기 안에 있는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해야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매일신문 2019-08-29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진영을 지킬 수 있다

유시민 작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비판을 그리스 고전 비극에 빗대 설명했다. 좋은 학벌에 잘생기고 키도 크고 게다가 머리숱까지 많은, 완벽해 보일 정도로 잘난 인물이 겪는 비극이라는 것이다. 천박한 시각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패배자라는 것인가? 설사 부러움과 시기심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적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주로 라이벌 관계에서다. 조국 후보는 지지자들이 일류니 최고니 떠들어대는 것처럼 너무 잘나라이벌로 여기기엔 무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욱이 민정수석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조국 후보가 가진 가장 큰 자산은 도덕성이라는 상징자본이었다. 학벌과 용모는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에 불과했다.

 

조국 후보를 옹호하는 측의 가장 큰 논리는 정치와 도덕의 분리에 있는 것 같다. 과도한 도덕주의보다는 정책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도덕적이다. 평등의 가치가 내재돼 있기 때문이다. 존재론적 이해를 떠나 평등을 지향할 때 민주주의의 진전에 복무할 수 있다. 또 공적 삶과 사적 삶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지만 그것의 불일치를 사람들은 위선이라고 부른다. 더욱이 자기부정과 내적 성찰 없는 가치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 조국과 자연인 조국을 분리하자고 하는데 완전히 일치하지는 못하더라도 근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조국 후보는 바로 그 수기치인에 기반을 둔 도덕군자 이미지를 자신의 가장 큰 상징자본으로 만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대중은 그의 도덕성보다 위선에 분노하고 있다. 평등의 가치를 줄기차게 옹호해온 인물이 불평등한 기회를 극단적으로 활용해 공정성조차 의심받는 과정을 통해 계급의 대물림을 시도했다. 이것이 위선이 아니라면 무엇인가?

 

후보 당사자는 그렇다 쳐도 고려대와 서울대 집회에 대한 의견도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한쪽은 배후에 자유한국당 세력이 있다고 보고 다른 한쪽은 청년들의 정당한 분노라고 한다. 조국 후보를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 정치와 도덕에 대한 인식 차를 넘어서는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론적으로는 계급성, 인식론적으로는 진영논리가 논란을 관통하고 있다. 이미 여러 사람이 주장했듯 비판 여론에는 계급 분노가 내재돼 있다. 거기에 더해 진영논리의 유무나 강약도 찬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계급성과 진영논리가 결합해 최종적으로 조국 후보에 대한 옹호 또는 반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 참가 대학생들의 분노가 과연 정당한가도 논하고 있다. 인간의 여러 감정 중 분노는 에 따라 달라진다. 부당한 일을 겪었을 때 알기 때문에 슬픔에 빠지는 대신 분노를 느끼고 저항할 수 있다. 물론 앎의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더 가진 자도 덜 가진 자에 대해 분노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고려대와 서울대 집회가 그것에 해당하는 것인가? 또한 위에서 아래로 향한 분노는 대체로 혐오와 조롱을 수반한다. 집회 참가 학생들에 대한 비난은 오히려 더 큰 권력을 가진 기성세대가 아래세대에 보내는 혐오와 조롱 아닌가? 마스크는 왜 했으며 더 큰 불의에는 왜 침묵하냐고? 86세대는 학생운동을 했어도 취업을 할 수 있고 취업을 하지 않아도 과외와 학원으로 먹고살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았다. 심지어 학생운동 경력을 훈장 삼아 정치적 기득권을 누리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소위 SKY 대학의 학생들도 예외 없이 학점과 스펙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세상을 겪게 해 미안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따름이지 혐오하고 조롱할 일은 아니다.

 

자유한국당이라는 거악에 맞서 민주진영을 지키기 위해 조국 후보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오판이다. 여론조사에서 20대와 여성이 조국 후보에 대해 좀 더 반대하는 것으로 나왔다. 두 집단 모두 상대적으로 진영논리와 거리가 있다. 진영보다는 실질이, 명분보다는 구체적 삶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야 최소한의 진영이라도 지킬 수 있다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 정치학 박사 경향 2019.08.30

 

 

조국 논란이 길이 되려면

개인적으로 딸 입시 논란이 있기 전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보도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평소 조국 후보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에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국 후보자의 말과 글뿐 아니라 논문까지도 상당히 찾아서 읽은 편이었다. 진보적 법학자인 그를 법이 가진 자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법을 통한 정의실현을 위해 싸운 지식인이라고 본다. 이렇게 볼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례로 한국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비폭력적 쟁의를 한 노동자들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유일한 사회다. 이 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으나 노조를 귀족과 동일시해 혐오하는 이 사회에선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 자체가 희귀했다. 반면 그는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이란 논문으로 전문가로서 기존 법리에 도전했다. 삼성 X파일의 통신비밀보호법 적용, 소비자불매운동의 법적인 지위 등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쓰며 정의에 부합하는 법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나름 감사해하기도 했다.

 

그가 주도하는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을 응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한계가 있어 보였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이든, 수사권 조정이든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든다 해도, 사정 권력을 악용할 마음을 먹은 집권자에겐 무력할 것 같았다. 사법개혁 완성은 지속적 견제와 권력을 남용하지 않을 지도자 선출 아닐까 짧은 생각도 품었다. 조국 후보자 논란이 사모펀드, 웅동학원 등에 그칠 때 그 사안들은 이해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비판을 위한 비판도 있어 보였다. 이 논란에 당초 관심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였다.

 

그런데 조국 후보자 딸이 고2 때 의학논문 제1저자가 되고, 대학원과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나서 새로운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정서적으로 조국 후보자에게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함마저 느끼게 됐다. 날선 언어로 무조건적 비토나 비호가 판을 치며 오히려 진짜 상처 받은 이들을 정치 혐오에 빠지게 하는 현실이 절망스럽고, 공론장에서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사장되고, 모든 관심이 블랙홀처럼 조국 논란으로 빨려드는 현실도 우려스럽기 때문이었다.

 

우선 정부와 여당의 핵심부를 비롯해 평소 번듯한 원로 언론인마저 이 논란에 상처 받은 이들을 반대 진영에 선 사람으로 보는 시각에 아연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집회 주최 측 일부는 자유한국당 등 특정 정당의 이해를 대변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저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전체가 모두 그런 취지를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은 광우병 촛불집회가 괴담에 의해 선동됐다는 식으로 비판세력 전체를 극단으로 모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박근혜 정권 시절 이른바 보수라는 정치인 중에선 왜 간첩조작을, 국정원 댓글조작을, 세월호 유가족 모욕을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지 의문스러웠다. 아마도 그들은 그저 진영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흉내내기 어려운 조국 후보자 딸의 스펙 관리와 장학금 수령을 문제 삼고, 이 사회 기득권의 계급 재생산 방식을 비판하는 이들을 자유한국당 편이냐고 묻는 시각은 과거 보수 정치인 언행과 무엇이 다른가. 어쩌면 이런 지긋지긋한 진영주의가 386세대의 종특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저널리즘에도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분명 일부 보수 언론은 지나치게 의혹 제기에 몰두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의심과 의혹 제기도 적지 않았다. 보수 언론의 무리한 보도와 언론 혐오를 상기시키며 반격하는 모습은 전혀 새롭지 않다. 오히려 새롭게 제기할 만한 언론의 문제는 왜 교육 불평등, 계급 불평등이란 우리 사회의 핵심 문제를 드러내는 데 그동안 이토록 무기력했느냐였다. 이런 입시 사례가 왜 장관 청문회에서 드러나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언론인들이 제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조국 논란이 문재인 정부에 좋은 기회를 제공한 면도 있다. 한국 사회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고, 격차를 좁히거나 따라잡는 기회를 잡긴 점점 어렵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 25일 밝혔듯, 소득 5분위 배율(고소득자인 5분위 소득이 저소득자인 1분위 소득에 몇 배를 차지하는지 나타내는 수치)20185.23에서 20195.30으로 증가했다. 고용노동통계를 봐도 대기업(300인 이상)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는 이 정부 임기 내내 유의미한 변화가 없다. 심각한 청년실업률도 그대로다. 정부 공약집을 보면 더 답답해진다. 공약집에서 제시된 체불 임금 제로, 알바존중법 제정,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 위험의 외주화 금지, 소비자 주권을 취한 집단소송제 도입, 교육비 감축, 청년 주거비 절감 등 약속은 지켜지고 있는가. 지금 이 논란이 한탄으로 그치지 않고 새 길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부가 정말 심각히 생각했으면 한다. 그 시작은 이번 논란에 상처 받은 이들이 입을 열게 하는 것이다 윤형중 LAB2050 연구원 mediatoday 2019.08.31

 


밤비야 (산이슬)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