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바다얼음’ 15년 뒤엔 지구에서 사라진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
기후·에너지·식량…‘지금 이대로’ 물려주기엔 미안한 대한민국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지구온난화 방지 효과 ‘새 발의 피’
기후위기 ‘비상사태’…위험하고 긴급하다
기후변화 더해 들쥐도 지리산 구상나무 위협
환경부 "4대강 보 홍수예방 효과없다"
금정산 사송 신도시 멸종위기종 발견에도 공사 강행, 왜?
기후위기 기사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야 한다
제주의 자연경관은 누구의 것인가?
기후변화 이대로면 190년 뒤 해운대.인천공항 잠긴다
"부산 용두산 공원을 백산 안희제 기념공원으로 바꾸자"
환경부 대대적 조직개편…‘녹색전환정책관’ 신설
‘CO₂ 저장소’ 열대 토양, 기후변화의 또 다른 걱정거리
콘돔, 생리컵…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토끼의 희생’
꿀벌은 두 가지 방식으로 꿀을 섭취한다
뒤영벌 ‘붕붕’ 진동이 블루베리 꽃밥 열어
북극 바다얼음’ 15년 뒤엔 지구에서 사라진다
국제연구팀 2035년 추정
CO₂ 1톤마다 3㎡씩 줄어
기존 예측서 15년 당겨져
북극 바다 위 얼음은 9월께면 1년중 가장 많이 녹는다. 2035년께면 북극 바다에서 9월에 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북극 바다얼음(해빙)이 15년 뒤인 2035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남극자연환경연구소(BAS·바스) 연구진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10일(현지시각)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에 게재한 논문에서 “현재의 지구온난화와 비슷한 환경의 간빙기 상황을 참고해 미래를 예측해보니 2035년께면 9월 북극 바다에서 얼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기존 연구에서 북극 바다얼음의 실종 시기가 2050년께로 추정돼오던 것에 비하면 15년이나 앞당겨지는 셈이다. 최근 환경부와 기상청이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보면, 이산화탄소가 1톤 배출될 때마다 북극 바다얼음 면적은 3㎡ 줄어든다. 앞으로 1000기가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면 북극 바다얼음이 거의 사라지며, 그 시기는 현재 연간 35기가톤 배출이 유지될 경우 2050년께가 될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팀은 영국 기상청 해들리센터의 최첨단 기후모델을 활용해 11만6천~13만년 전 온난화 시기인 마지막 간빙기 당시 북극의 고온을 추정해냈다. 간빙기 때 북극의 온도는 여름철 고위도 지방의 강렬한 햇빛으로 인해 산업혁명 이전보다 4~5도 높았던 것으로 계산됐다. 당시 해수면 높이는 지금보다 6~9m 높았다. 연구 책임자인 바스의 마리아 비토리아 과리노는 “북극의 온도는 과학자들한테 오랜 수수께끼로 기술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어려운 도전 과제였다”며 “연구팀은 지난 간빙기에 북극 바다얼음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해들리센터 모델로 봄철 강력한 햇빛에 얼음이 녹아 만들어진 ‘해빙호수’들이 바다얼음이 녹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결론 내렸다. 또 같은 모델을 사용해 미래를 예측한 결과 북극에서 2035년께면 바다얼음이 모두 사라지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연구팀은 밝혔다. ‘해빙호수’들은 얼마나 많은 햇빛이 얼음에 흡수되는지, 또 얼마나 많은 햇빛을 반사해 우주로 돌려보내는지 알아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
기록적이란 말로는 부족하다. 쉴 새 없는 비는, 기상청 전망대로 16일까지 이어지면 54일째 내리게 된다. 직전 기록은 2013년의 49일이었다. 기록은 계속 새로 쓰일 것이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지난 100여년간 한반도의 연 강수량은 해마다 1.63㎜씩 늘어왔다. 증가폭도 늘고 강수강도도 늘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금세기 말 상위 5% 안에 드는 극한강수일이 동아시아에서 지금의 1.5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환경단체들은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벌인다.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온도 상승폭 1.5도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2010년의 절반 수준으로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기후·에너지·식량…‘지금 이대로’ 물려주기엔 미안한 대한민국
국회미래연구원, 한국인 선호미래 공론조사
자원 절약해 물려주는 ‘보존분배’ 첫손에
기후변화 등 환경 ‘가장 중요한 문제’ 인식
“가장 싫은 건 지금 사회 계속되는 미래”
국회미래연구원이 실시한 선호미래 공론조사 현장.
2020년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바라고 있을까? 안정과 변화, 개인과 공동체, 성장과 분배 가치 사이에서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한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사회 가치와, 선호하는 미래상을 종합 분석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11월 전국에 거주하는 성인 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50년 선호미래 숙의토론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은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환경 문제를 가장 중요한 미래사회 이슈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반영하듯, 가장 선호하는 미래상도 성장 중심에서 벗어나 현재의 자원을 잘 보존해 미래세대가 쓸 수 있게 하는 `보존분배' 사회로 조사됐다.
국민들은 그러나 실제로는 지금과 같은 성장·경쟁 중심 사회(안정성장)가 미래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런 미래를 가장 피하고 싶은 미래 1위로 꼽았다.
권역별, 연령별 인구 분포에 맞춰 선별한 표본집단을 대상으로 한국인의 선호미래를 공론조사 방식으로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공론조사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알려준 뒤 의견을 수렴해 공론을 형성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래 이슈.
인공지능·노동 등 일자리 문제, 근소한 차이로 2위
연구원은 참가자들의 대표성을 보완하기 위해 사전에 3000명을 대상으로 한국사회를 대표할 수 있는 선호 가치들을 확인하고, 이 가치들의 분포에 맞춰 조사 참여단을 구성했다. 연구원이 확인한 한국인의 선호 가치는 급진성장, 안정성장, 보존분배, 현존분배 네 가지로 나뉜다. 급진성장은 기술 혁신과 개인, 성장, 도전, 변화, 미래 가치를 중심에 둔다. 안정성장은 현재를 중심으로 좀 더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반면 보존분배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기술 혁신과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공동체, 분배, 형평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존분배는 이 가치를 미래가 아닌 현재 세대 중심으로 접근하는 사회다.
조사 참가자들은 미래 이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기후, 에너지, 오염, 식량 등 자연환경(59.6%)을 꼽았다. 20대가 일자리 문제를 첫손에 꼽은 것 말고는 나머지 연령대 모두 자연환경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선택했다. 이어 근소한 차이로 인공지능, 빅데이터, 복지, 노동과 관련한 일자리 문제(51.4%)가 2위를 차지했다. 나머지 주거(24.3%), 건강(22.3%), 가족(20.3%), 정치(12.2%), 안보(9.4) 등은 큰 차이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더 나은 미래 위해 현재 욕망 억제하는 사회
국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미래는 보존분배(43%) 사회였다. 현존분배(25.9%) 급진성장(20.7%), 안정성장(9.4%) 세 가지 미래상은 선호도에서 보존분배 사회와 큰 차이를 보였다.
보존분배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일까? 개인보다 공동체, 성장보다 분배와 형평을 중시하고, 고부담·고복지, 신재생에너지, 유연한 가족 개념, 도전과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다. 국민들은 도시와 농촌,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빈자가 공존하고 노동시장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사회를 원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래세대에게 좀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현재 세대의 욕망을 억제하는 사회다. 20대에서 이 미래를 선호하는 비율(53.2%)이 가장 높았다. 박성원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은 기후변화 적극 대응, 느슨한 가족 관계, 다양한 가치가 보존분배 사회의 3가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보존분배 사회를 선호하는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자연환경이었다. 격차 완화도 중요한 이슈로 꼽았다. 연구원은 "주목할 점은 이 미래 지지자들에게 격차는 도시-농촌, 대기업-중소기업, 고소득층-저소득층 같은 현실 격차뿐 아니라 미래세대와 현재세대의 격차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미래가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었다. 4가지 미래 중 3위(17.7%)에 그쳤다. 국민들이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는 미래는 안정성장 사회다(43.4%). 대도시 중심, 중단없는 성장 목표, 효율 중시, 미온적인 기후변화 대응 등 지금의 사회 흐름이 그대로 이어지는 미래다. 하지만 셋 중 하나는 이런 미래사회를 가장 피하고 싶다고 답변했다(34.9%). 네 가지 미래 중 회피미래 1위다. 지역간, 계층간 격차와 사회적 갈등이 확대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생각에서다.
연구원이 별도로 실시한 65명의 전문가 집단 조사에서도 일반 국민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전문가들의 보존분배 선호비율(63.1%)은 일반 국민보다 훨씬 높았다. 지금의 사회 기조가 이어지는 안정성장 미래를 ‘가장 가능성이 높지만(38/5%) 가장 피하고 싶은(43.1%) 미래’로 꼽은 것도 일반 국민과 같았다.
이번 조사는 코로나19 발생 이전에 이뤄졌지만, 조사 결과는 지금의 팬데믹 상황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 확산의 근본원인이 환경파괴와 도시확대로 지적되는 상황에서, 자연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해 적극 대응하는 보존분배 사회가 최고의 선호미래로 꼽힌 것은 의미있는 결과라고 연구원은 평가했다. 박성원 그룹장은 "국민은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할수록 국민들은 보존분배 사회의 등장을 더욱 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선호미래 공론조사 분임토의 현장. 국회미래연구원 제공
전체 2위인 현존분배, 붕괴 후의 새출발과 비슷
선호미래 2위인 현존분배 사회가 60대에선 1위(39.7%)를 차지한 것도 눈길을 끈다. 현존분배는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경제 위기를 맞아 지역별, 공동체별로 자생력을 추구하는 사회다. 사회 시스템 붕괴 후에 새로운 출발을 모색하는 방식이다.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현재 인구 분포에선 20~30대보다 40~60대가 더 많다”며 “인구 구성 비율을 고려해 투표로 선호미래를 결정한다면 보존분배 미래를 기본으로 현존분배 미래의 특징을 담는 제3의 미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자연환경 보존사회를 기반으로 분배와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다.
한국인의 선호미래 공론조사는 서울권, 대전권, 부산권 3개 권역별로 나눠 사전 온라인 숙의, 사전 설문 조사, 7개 미래 이슈 토론, 4가지 선호미래상 논의, 전문가 질의 응답, 사후 설문 조사 순으로 진행했다.
전문가 그룹이 제안한 보존분배 사회 정책 5가지
국회미래연구원의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 집단은 보존분배 실현을 위한 정책으로 다섯가지를 제안했다.
첫째는 국민청원제 개선, 국민소환제 도입 등 직접민주주의 강화다. 둘째는 소득 재분배를 위한 세제 정책 강화와 고부담 고복지 사회로의 전환이다. 셋째는 의식주 생활에서 공용 주거 주택 공급 확대, 지방 대중교통망 강화와 교육·의료 서비스의 지방 연계, 에너지 자급 마을 확대 등이다. 넷째는 사회 변화를 반영한 가족 개념의 재구성과 새로운 유형의 가족에 대한 지원 제도, 개인의 고립 방지를 위한 사회 프로그램 도입이다. 다섯째는 성 정체성, 맞춤형 아기, 트랜스 휴먼 등 새로운 가치관과 기술을 반영한 규제 기준 마련이다./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코로나19 봉쇄로 인한 지구온난화 방지 효과 ‘새 발의 피’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10종 10∼30% 감소
경제활동·교통량 위축 내년말까지 계속돼도
2030년까지 지구 온도 상승 0.01도만 저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각국의 경제활동이 휴면상태에 들어가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급감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올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세계 경기가 휴면 상태에 들어가고 온실가스 배출이 급감했음에도,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는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19 확산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 4월 세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지난해 대비 17%까지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나 영국 리즈대 연구팀이 지난 2∼6월 세계 123개국의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 배출 추이를 분석한 결과, 배출량 감소가 지구의 평균기온을 낮추는 효과는 2030년까지 0.005∼0.01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분석을 담은 연구팀의 논문은 과학저널 <네이처 기후변화>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팀은 구글의 전화위치 데이터와 애플의 운전지도 이용 데이터를 활용해 교통량과 산업활동 등의 변화를 조사했다. 그 결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가 가장 컸던 지난 4월 125개 국가 중 한 국가만 빼고 모두 10% 이상 교통량이 감소했다. 스페인·인도·뉴질랜드 등은 80%까지 줄었다. 세계 인구 절반 이상이 이동량을 절반 이상 줄였다. 이동을 절반 이상 줄인 사람들은 114개 국가 인구 40억명 가운데 80% 이상이었다. 연구팀은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99%를 차지하고 있는 123개 국가의 지상교통, 주거, 발전, 산업, 공공, 항공 등 6개 부문별로 국가별 일일 배출량 추이를 분석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이산화탄소·블랙카본 등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의 배출량 변화 추이. ‘네이처 기후변화’ 제공
산업이 위축되고 교통량이 줄어듦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이산화황, 질소산화물 등 온실가스와 오염물질이 한해 전보다 10~30% 각각 감소했다. 이는 특히 지상 교통 수단의 사용량 감소에 기인한다.
하지만 일부 온실가스의 감소는 온난화를 부추기는 효과를 낳아 전반적인 온난화 개선 효과를 줄이는 역효과를 낳았다. 가령 석탄 연소 과정에서 주로 발생하는 이산화황은 에어로졸을 생성하는데, 에어로졸은 햇빛을 반사해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는다. 이산화황의 감소는 거꾸로 온난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피어스 포스터 리즈대 교수는 “온실가스 상호 간의 상쇄 효과를 고려해 계산해보니 온실가스 감소의 온난화 억제 효과는 극히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많은 국가들은 현재도 도로 교통량이 감소한 상태다. 구글 데이터는 영국의 모든 차종 운행이 25% 줄었음을 보여준다. 영국 정부의 공식 데이터로도 자동차는 12%, 버스와 열차 운행은 50% 이상 감소했다. 하지만 이런 코로나19 봉쇄와 경기 위축이 2021년 말까지 계속된다 해도 2030년까지 뜨거워지는 지구를 식히는 효과는 많아야 0.01도밖에 안된다.
포스터 교수는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을 위해 녹색산업을 육성하고 화석연료 산업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치면, 2050년까지 현재 정책이 그대로 유지됐을 때 올라갈 것으로 추정되는 온도의 절반 수준인 0.3도 상승으로 막을 수 있다”고 대학이 발간한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기후위기 ‘비상사태’…위험하고 긴급하다
우리에게는 이미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기후위기 증가가 자연재난 관리 압도
코로나19처럼 시행착오로 배울 수 없어
최근 100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날 수 있는, 또는 특정한 연도에 발생할 확률이 1퍼센트인 극단적인 날씨 빈도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지구는 인간이 가하는 온실가스라는 충격을 받아 오늘날 인간에게 기후위기로 되돌려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과학은 열역학과 복사전달 법칙 같은 기본적인 과학 원리에 기초하고 있지만, 기후위기는 발생 가능성(확률)으로 드러난다. 현실 세계에서 절대적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산을 가지고 나가야 할지와 혼잡한 도로를 언제 건너야 할지 등 다양한 위험을 고민하며 살아간다. 비가 올 가능성이 10퍼센트라면 굳이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설사 비가 오더라도 약간 젖는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로를 건널 때 사고 날 가능성이 1퍼센트라고 해도 그 위험은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고가 났을 때 그 피해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험을 고려한 예상 결과에 맞춰 행동을 조절한다. 예컨대 길을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핀다. 그런 행동에 드는 비용이 자동차에 치이는 손해에 비하여 낮기 때문이다. 위험을 피하는 비용과 위험으로 인한 손해를 따져 허용 가능한 수준의 위험을 정해야 한다.
합리적인 사회라 해도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위험을 우연에 맡기지 않으려면 ‘예측하기 힘든 위험’을 ‘계산할 수 있는 위험’으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사건 발생 가능성(likelihood, 확률)과 사고시 발생하는 영향(damage impact, 비용)의 곱으로 위험(Risk)은 표현된다.
위험 = 발생 가능성 × 영향
기후변화의 위험, (a) 발생 가능성(likelihood), (b) 영향(Impact), (c) 위험(Risk). 높은 기온 상승은 발생 확률이 낮아도 영향력이 커서 위험이 크다. 출처: Existential climate-related security risk
자연현상의 발생 빈도는 평균값을 중심으로 종 모양의 정규분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평균에서 멀어지는 꼬리 쪽으로 갈수록 그 발생 빈도가 점점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정규분포에서 좌우 양극단 사건은 워낙 적게 발생해 무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후위기 측면에서 꼬리에서 일어나는 어떤 특정 사건은 발생 가능성이 작지만 일단 발생하면 그 피해가 매우 크므로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100년 만의 홍수가 10년 만의 홍수보다 피해가 더 심각한 것처럼 발생 빈도가 낮은 사건일수록 그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지기 때문이다. 온실가스라는 외부 충격에 기후계는 자기 증폭적인 되먹임으로 극단적인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정규분포의 양 끝 부분이 예상하지 못하게 두꺼워지는 ‘살찐-꼬리 위험’(fat-tail risk)이 나타난다.
정규분포의 꼬리가 얇아야 평균에서 발생 빈도가 뚜렷해지고 예측 범위가 좁아져 예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반면 꼬리가 두꺼워지면 평균에서 발생 빈도가 모호해져 예측 능력이 낮아진다. 우리는 예상하기 어렵고 과거에는 일어날 법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앞으로는 불가능하지는 않은 위험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일어날 법하지 않은’과 ‘불가능’ 사이의 작은 차이로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기후위기에서는 꼬리가 점점 더 두꺼워지므로 과거 관측에 기반한 발생 확률(probabilities)보다 경험한 바 없는 위험의 미래 가능성(possibilities)으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계산할 수 있는 위험이라면 이를 줄이기 위한 통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긴급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을 넘게 되어 통제 불능 상황에 빠지는 비상사태(Emergency)가 된다. 비상사태는 위험과 긴급도(Urgency)의 곱으로 정해진다.
비상사태 = 위험 × 긴급도
긴급도 = 위험에 대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 ÷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시간
기후위기 비상사태는 자연 재난을 관리하는 능력이 기후위기 증가에 압도당하는 상황이다. 식량 부족, 물 부족, 생물 다양성 파괴와 해수면 상승 등에 대응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2018년 정부 간 기후변화협의체(IPCC)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평균기온이 1~2도 상승할 경우 그 위험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재난 대응체계를 초과하는 비상사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현재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속하면 2040년께 1.5도를 넘고 2060년께 2도를 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각각 20년과 40년 동안의 위험을 피할 시간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원인과 결과 사이에 지연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온실가스가 흡수한 열 대부분이 해양에 흡수되므로 바로 기후위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온실가스 배출 후 기후위기는 수십년 지연돼 나타난다. 우리는 이미 1.5도를 넘을 수 있는 온실가스를 거의 다 배출했다. 우리에게는 이미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코로나19(COVID-19)와 같은 감염병 위기는 간헐적으로 일어나며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위험이다.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새롭고, 불확실하고, 통제할 수 없는 위험에 즉각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19 경험으로 다음 번 또다른 감염병에 더 잘 대응을 할 수도 있다.
1880년 이후 육지, 해양 온도 변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반면 기후위기는 점진적이고, 누적되며, 불확실성을 포함한 위험이다. 기후위기는 천천히 드러나겠지만 임계 수준을 넘게 되면 그 재난 결과는 파멸적이다.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한다는 건 단순히 더워서 살기 힘들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지구 조절 시스템이 붕괴하는 위기다. 가뭄으로 식량과 물이 부족해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거주지가 물에 잠기면서 우리 생존 근거가 무너진다. 미세먼지, 금융위기, 코로나19에서도 먹고 살 수 있고 재난을 막는 여러 조치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마트에 갔더니 먹을 게 없고 이 상황이 더 심각하게 진행되는 것이다.
기후위기는 일단 우리 눈앞에 드러나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 지구는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기후위기를 증폭시키는 되먹임에 빠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산이 불가능한 대응할 수 없는 위험이다. 미세먼지, 금융위기, 코로나19처럼 이 또한 지나가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기후위기에서는 인류에게 두 번째 기회는 없다. 지금까지 인류는 시행착오를 통해서 환경에 적응해 왔지만, 기후위기가 일어나면 시행착오로부터 배울 수 없다.
우리는 코로나19가 발생할지에 대해서는 몰랐지만, 기후위기가 우리에게 닥칠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30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기후위기에서는 우리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가 너무 늦게 확인된다. 확실함은 위기가 드러난 다음에야 알 수 있다. 마침내 기후위기가 닥쳐와 우리가 그 재앙을 피할 방법을 알고 싶어졌을 때,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 그 답은 기후위기 비상사태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David Spratt, Ian Dunlop, Existential climate-related security risk: A scenario approach, Break Through (2019).
Lenton, T. M. et al. Climate tipping points — too risky to bet against, Nature ISSN 1476-4687(online) (2019). Dunlop
조천호 경희사이버대학 기후변화 특임교수 cch0704@gmail.com 한겨레
기후변화 더해 들쥐도 지리산 구상나무 위협
세석평전 52그루 줄기 갉아 일부 고사…“재현 막기 위한 후속연구 필요”
구상나무 밑동을 대륙밭쥐가 갉아먹은 모습. 어린나무일수록 고사율이 높았다. 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제공
한반도 고유종인 구상나무가 기후변화로 인한 생육환경 변화에 더해 설치류가 갉아먹어 말라 죽는 사례가 발견됐다. 다행히 구상나무에 대한 새로운 위협은 지리산 세석평전 등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지만 환경변화에 따라 재현될 우려가 커 후속연구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한반도의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가야산, 속리산 등의 아고산대에만 분포하는 상록침엽수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로 분류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증·발산 증가와 봄 가뭄, 잦은 태풍 등으로 고사현상과 개체군 쇠퇴현상이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다.
구상나무 밑동을 대륙밭쥐가 갉아먹은 모습. 어린나무일수록 고사율이 높았다. 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제공
한반도 고유종인 구상나무가 기후변화로 인한 생육환경 변화에 더해 설치류가 갉아먹어 말라 죽는 사례가 발견됐다. 다행히 구상나무에 대한 새로운 위협은 지리산 세석평전 등 일부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진 현상이지만 환경변화에 따라 재현될 우려가 커 후속연구가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상나무는 세계적으로 한반도의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가야산, 속리산 등의 아고산대에만 분포하는 상록침엽수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로 분류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증·발산 증가와 봄 가뭄, 잦은 태풍 등으로 고사현상과 개체군 쇠퇴현상이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 고유종인 대륙밭쥐. 눈 덮인 겨울 먹을 것이 부족하면 구상나무 줄기를 갉을지 모른다. 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제공
박 박사는 “피해 지역에는 구상나무 말고도 잣나무, 소나무, 사스래나무, 철쭉, 조릿대 등 다양한 식물이 있었는데도 구상나무에만 해를 끼쳤다”며 “아마도 구상나무에 쥐가 선호하는 성분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피해 구상나무 근처에서 확보한 설치류 배설물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대륙밭쥐로 확인됐다. 피해목에 난 이빨 자국과 대륙밭쥐의 이빨 크기가 일치하는 것도 이런 결론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대륙밭쥐가 구상나무를 갉아먹는 모습을 직접 관찰하거나 촬영하지는 못했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눈 밖으로 드러난 구상나무 줄기를 대륙밭쥐가 갉은 자국. 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제공
기후변화에 더해 새로운 위협요인이 등장하자 국립공원 당국은 지리산은 물론 전국 국립공원의 아고산지대를 모두 조사했지만 이런 현상은 발견하지 못했다. 또 지난해와 올해 세석평전 일대를 다시 조사했을 때도 대륙밭쥐로 인한 추가 피해는 나타나지 않았다.
박 박사는 “피해가 발생한 2018년 봄은 짧고 추운 편이었고 눈도 많아 쥐 피해가 난 것으로 보인다”며 “다행히 일시적 현상으로 그쳤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륙밭쥐의 개체수가 갑자기 늘거나 기상이변으로 주 먹이원이 부족하면 대체 먹이원으로 구상나무의 줄기를 갉을 수 있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구상나무에 남은 이빨 자국의 크기와 실제 대륙밭쥐의 이빨 크기를 비교했더니 일치했다. 박홍철, 국립공원연구원 박사 제공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는 “가해가 나타난 시기에 구상나무의 결실이 부족했거나 세석평전 대피소의 음식물 찌꺼기에 의존한 설치류가 비정상적으로 늘어 먹이가 부족해진 대륙밭쥐가 구상나무를 갉았을 가능성도 있다”며 “구상나무 쇠퇴와 종 보전을 막을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륙밭쥐는 등줄쥐, 흰넓적다리붉은쥐와 함께 우리나라 산림에서 가장 흔한 설치류로 한반도 고유종이다. 한반도 고유종이 다른 고유종에 손해를 끼친 셈이다. 박 박사는 “대륙밭쥐는 구상나무에 해를 끼쳤지만 기후변화 등에 의한 피해자일 수 있다”며 “퇴치와 조절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찰과 연구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인용 저널: 한국환경생태학회지, DOI: 10.13047/KJEE.2020.34.3.19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환경부 "4대강 보 홍수예방 효과없다"
폭우로 인해 섬진강 제방이 유실된 전북 남원시 금지면 귀석리 금곡교 인근 마을이 9일 오전 물에 잠겨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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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이명박 정부 때 추진된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사업’의 홍수조절 효과에 대해 “4대강 보는 홍수 예방 효과가 없다”고 밝혔다. 섬진강 유역에 대규모 홍수 피해가 난 이유가 ‘4대강사업을 섬진강에 하지 않아서’라는 미래통합당의 주장에 대해 반박한 것이다.
역대 가장 긴 장마가 이어지는 동안 댐 관리를 잘못해 수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국수자원공사는 기상청 예보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려 피해가 커졌다고 해명했다.
환경부는 12일 브리핑을 열고 4대강사업과 관련한 과거 조사자료들을 근거로 “4대강 보는 오히려 홍수위(홍수 때의 수위)를 일부 상승시켜 홍수 소통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4대강사업조사평가위원회(이하 조사위) 조사결과와 현 정부 때인 2018년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모두 4대강에 설치된 보로 인해 오히려 홍수위가 일부 상승한다는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다만 당시의 결론은 ‘가상 홍수’ 모델을 분석한 결과여서, 환경부는 대통령 지시에 따라 올해 발생한 홍수의 실측 자료를 토대로 실증 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번 홍수 피해 데이터들이 다 있기 때문에 보가 있을 때와 없을 때를 비교 평가하는 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환경부는 통합당 측의 ‘섬진강에 4대강사업을 안 해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섬진강에 유독 큰 폭우가 집중됐고, 특히 하류의 경우 500년에 한 번 있는 강우가 발생해 피해가 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4대강의 본류 구간은 4대강 사업 이전에도 홍수 피해가 거의 없었고, 많은 홍수피해는 주로 지류에서 일어난다. 과거에도 지류에 대한 정비가 필요하다는 말이 많았다”고 말했다.
■ ‘댐 수위 조절 실패’ 비판에…수자원공사 “기상청 예보보다 더 많은 비 내려” 해명
섬진강댐과 용담댐 유역에서 수해를 당한 지자체와 주민들은 한국수자원공사에 피해보상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유례없이 긴 장마와 집중호우가 예보됐는데도 수자원공사가 댐 수위 조절에 실패해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수자원공사는 이날 이에 대해 “기상청 예보에 절대적으로 기댈 수밖에 없는데, 예보보다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고 해명했다.
수자원공사는 섬진강댐을 지난 7~8일 집중호우가 내리기 전 홍수기제한수위보다 3m 낮게 댐 수위를 유지해 1억1600만㎥의 홍수조절량의 미리 확보했으나, 실제 강우량이 기상청이 예보했던 100~200㎜ (많은 곳 300㎜이상) 보다 많은 유역 평균 341㎜, 최대 411㎜ 까지 왔다고 설명했다. 이한구 수자원 본부장은 “댐이 계획홍수위(댐에서 감당할 수 있는 최대 홍수량)를 약 20㎝ 초과함에도 불구하고 하류 상황을 고려해 계획방류량 수준으로 방류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이미 장기 비 예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비가 제대로 안 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선 “1차 호우 때 홍수조절용량을 거의 다 활용해서 2차 호우 때만큼의 홍수조절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목적댐인 섬진강댐의 경우 댐이 관리 주체가 분산돼 있는 것도 개선돼야 할 점으로 지적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다목적댐은 수자원공사, 발전용수는 한수원, 농업용수는 농어촌공사가 관리를 하는데, 더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위해서는 효율적인 운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담댐에 대해서도 예년 평균(534㎜)에 비해 2.3배 많은 비(1216㎜)가 내린 것이 큰 피해 원인이라고 해명했다. 댐 관리규정대로 댐을 운영했음에도 불구하고 ‘극한 강우’ 탓에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용담댐도 계획홍수위의 5㎝가 못 미치는 수준으로 수위를 운영하면서 하류의 홍수피해를 줄이는 노력을 했다”며 “1000톤 이상 방류는 댐 안전을 고려해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향후 기후변화에 맞춘 댐 설계 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본부장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댐 설계할 당시에 계획했던 것과 운영단계에서의 실적이 많은 차이가 난다”며 “불확실성을 피할 수 없지만, 댐과 하천 등이 종합적으로 홍수방어를 할 수 있는 국가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금정산 사송 신도시 멸종위기종 발견에도 공사 강행, 왜?
부실 환경평가로 재조사에 들어갔던 양산 사송 지구에 법정 보호종이 6종이나 추가로 발견됐다는 소식 전해드렸습니다. 그런데도 공사는 강행됐는데, 용역보고서의 결론 때문이었습니다.
멸종위기종들은 발견됐지만 큰 영향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조사에 참여했던 위원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리포트}여의도 면적의 신도시가 들어서는 양산 사송 택지개발지구입니다. 10년 넘게 해왔다는 환경영향평가와 사후영향조사 모두 엉터리였습니다.
지난 5월 KNN 취재진이 하루만에 담비 등 멸종위기 동식물들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 뒤 시공사인 LH가 환경단체 측과 합동 정밀조사를 약속했고 지난 6월 단 하루만의 조사에서 6종의 멸종위기종들이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LH는 이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중단됐던 공사를 재개했습니다. 조사 용역보고서 결론 담긴 한 줄의 결론 때문입니다. 발견된 멸종위기종들이 이동성이 강해 공사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결론! 홍수로 침수됐지만 피해가 없다는 주장과 다를바 없는 논리인 것입니다. 당연히 조사에 참여했던 위원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김경철/한국환경연구소 이사/”우리가 조사를 하고 평가를 하는 것은 원서식지를
어떻게 보존하고 영향을 최소화할 것인지를 평가하기 위해 조사를 하는 것인데,
지금과 같이 평가를 하면 조류와 관련해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보고서 용역을 맡은 업체는 보고서 발표 전 한차례 의견서만 받았을 뿐입니다. 종합 결론은 아예 사전 협의나 통보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이곳 이름모를 계곡에서 도롱뇽들을 무더기로 발견했듯이 장마가 끝나는 8월 다시 정밀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합수/정밀조사 참여위원/”짧은 시간 조사했는데 불구하고 멸종위기종들이 6종이나 나왔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봤을 때 조금더 조사한다면 법정보호종들이 충분히 더 나올 여지가 많습니다.”}
은밀한 결론이 난 보고서는 결국 공사 강행에 면죄부를 줬습니다. 따라서 보고서 결론에 대한 은밀한 작성이 의도적이었는지, 왜곡의 정도는 어느 수준인지 등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필요한 사안이 되고 있습니다. KNN 최한솔입니다.
기후위기 기사는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야 한다
[이주의 미오픽] 한겨레 ‘기후변화팀’ 일간지 중 유일, 사안 무게 전달·쉬운 접근 노력 과제 “사회 관심뿐 아니라 언론사 내 주목 필요”
지난 1일부터 폭우가 한국을 덮쳤다. 기후위기가 심화할수록 장마철 집중호우는 앞당겨지고 길어진다. 신종 인수공통 감염병의 세계 대유행이 기후변화에서 비롯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쪽에선 시베리아가 한 달째 불타고 있다. 사람 탓이 아니면 설명 불가능한 8만년 만의 폭염이란다. 코로나19와 이상 기변 소식이 뉴스를 뒤덮고 있다.
불과 2년 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총회가 인천 송도에서 열렸다. 이후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적응주간 행사도 지난해와 올해 연속 송도에서 열렸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결정이 이뤄진 행사였지만 정작 한국엔 이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보고서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도 찾기 힘들다.
한겨레는 지난 4월 종합일간지 중 처음으로 기후위기와 에너지 이슈를 담당하는 기후변화팀을 세웠다. “기후위기 상황이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판단”이다. 1만호 특집 기획 ‘기후변화와 감염병, 자연의 반격’은 조선시대 기록과 연구결과를 종합해 기후변화와 감염병의 상관관계를 보도했다. 한국형 뉴딜 정책을 분석하며 그린뉴딜은 왜 없는지 지적하고, 한국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준비하는 선진국 가운데 바닥권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말부턴 지구 대기의 온실가스 수치를 매주 보도한다. 박기용 한겨레 기후변화팀장은 5월 초 팀 신설을 알리는 칼럼에서 “인류는 이미 실기한 듯 싶다”고 했다. 기후변화팀 박기용 팀장과 최우리 기자를 전화 인터뷰로 만났다.
- 어떻게 기후변화팀을 신설하게 됐나?
“직접적으로는 사장과 편집국장의 올 초 공약이었다. 선거 때 한겨레 조직에 필요한 과제를 놓고 정책 제안이 나왔다. 하지만 그전부터 전 사회적으로 기후위기가 부를 대재앙에 대한 관심이 커져왔던 터다. 언론이 민감하게 그 흐름을 포착해 대응해야 한다는 고민이 쌓여왔기에 제안이 받아들여졌고 팀이 탄생했다.”
- 기후변화팀장이 5월 초 기후변화팀 소개 칼럼에서 “최근에야 기후변화 관련 사안을 가까이 들여다본 인상을 말하자면 인류는 이미 실기한 듯 싶다”고 했는데.
“현 상황을 보면 코로나19에 폭우가 겹치면서 기후위기를 언급하는 보도가 막 나오기 시작했다. 기후위기 문제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찾아온 문제임이 알려지는 과정이라고 본다. 코로나19 확산에 기후위기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두고 중요한 과학적 사실이 새로 전파되고 있다. 문제가 코앞에 닥친 지는 오래다. IPCC는 2018년 인천에서 총회를 열어,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제한해야 하고 203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줄여야 한다는 권고를 승인했다. 반면 한국의 탄소예산(Carbon Budget·이산화탄소 배출허용 총량) 고갈 예상 시점은 지금 이대로 간다면 2018년 기준 10년 정도 남은 상황이다.”
▲한겨레 기후변화팀 ‘기후변화와 감염병, 자연의 반격’ 기획보도(5월19일) 갈무리
- 취재는 어떻게 이뤄지나?
“기존 환경·에너지·기상·과학 담당 기자들을 한팀으로 묶었다. 팀장이 있고, 김정수‧이근영‧최우리 기자가 산업부(에너지)와 기상청, 환경부를 각각 맡고 있다. 기후위기가 사회 전역에 영향을 미치는 특성 탓에 출입처가 크게 의미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기후위기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심각할 경우 이는 농림부 소관이고, 바다 생태계 변화는 해수부 담당이다.”
- ‘최우리의 비도 오고 그래서’, ‘이근영의 기상천외한 기후이야기’ ‘김정수의 에너지와 지구’ 등 기자 칼럼도 눈에 띈다.
“기후위기 문제가 전문용어도 많고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언론사들이 기후위기 문제를 기사로 다루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전담 팀이 만들어진 만큼 적극 새롭고 쉬운 콘텐츠를 개발해야겠다는 뜻에서 만들었다. 문제의식을 지니면서도 쉬운 콘텐츠를 디지털 형태로 연재하면 새 창구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기자 한 사람당 기명 칼럼을 맡아 달마다 연재하기로 했다. 바람, 햇빛, 습기, 비 주제 가운데 일부는 외부 전문가 필진에 고정 칼럼을 맡겼다. 예컨대 ‘비도 오고 그래서’는 비가 일상의 감정을 포함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작은 주제로 메시지를 풀어보려 한다.”
- 기후위기 의제에 대한 과소평가에 아쉬움은 없나?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는 ‘기후변화와 감염병, 자연의 반격’ 등 기획 보도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야 할 기사”라며 비교적 노출이 크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공약으로 기후변화팀이 만들어졌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현장에서 기사를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편집국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단독’ 여부를 떠나 기후위기 주제를 1면에 싣고 의제 설정할지 여부는 편집국 의지와 판단에 달렸다. 그 외에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통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면에 올린 기사를 온라인에 나눠서 풀어서 연재하는 등 여러 방도를 고민 중이다.”
- 보도에 반응은 어떤가? 20대 전후로는 기후위기 이슈에 특히 관심이 많은데, 젊은 독자층은 얼마나 호응하나?
“주로 독자 메일을 통해 반응이 오는데, 환경 전문가뿐 아니라 예상 외로 대중 독자가 많다. 특히 주 한겨레 독자 연령층이 아닌 학생과 청소년이 호응이 크다. 기성세대는 환경 문제를 진보와 보수 프레임 위에서 정부의 정책을 보고 동의 여부를 밝혔다면, 젊은 세대 독자는 ‘문재인이 뭐 했어, 이명박이 뭐 했어’보다는 현 상황이나 정책이 생태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묻는 점이 다르다고 느낀다.”
- 앞으로 취재하고 싶은 관심 분야는?
“환경 이야기를 쓸 수 있는 팀이 처음 만들어졌기에 다양한 분야를 취재하려 한다. 현안이 터지면 그게 기후위기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현안이 폭우다. 장마가 끝나면 통상 폭염, 곧 에어컨을 트는 시기가 오는데, 전력 문제를 재생에너지와 함께 다루려고 한다.”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제주의 자연경관은 누구의 것인가?
ⓒ시사IN 이명익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의 해안 풍경. 대규모 리조트의 공사 현장과 카페, 개인 별장들이 해안에 위치해 있다.
제주국제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한다. 관광객들은 들뜬 마음으로 창문 밖을 두리번댄다. 활주로 너머로 제주시의 야트막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이면 그 위로 한라산의 능선이 부드러운 선을 그린다. 비로소 제주도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제주도 어디에서나 한라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제주 도민들의 오래된 자랑거리였다. 제주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동네에서 보는 한라산의 모습이 가장 멋지다고 입씨름을 벌이곤 한다.
그런데 제주도에 도착해 제일 처음 마주하는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고층 빌딩 하나가 한라산의 능선을 자르며 툭 튀어나와 있다. 제주시 노형동에 건설된 제주드림타워다. 롯데관광개발과 중국 부동산 개발업체인 녹지그룹이 투자해 객실 1600개 규모의 호텔·리조트를 짓는 사업인데, 8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38층짜리 두 개 동으로 이루어진 이 건물은 제주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다. 높이 169m로 이전의 최고층 건물이던 롯데시티호텔(89m)보다 2배가량 높다. 투자 기업은
제주드림타워에서 제주 시내의 전경과 바다, 한라산을 막힘없이 조망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반면 호텔 밖의 사정은 전혀 딴판이 되었다. 뛰어난 경치를 보장하기 위해 초고층 빌딩을 지으면서 오랫동안 지켜왔던 제주의 스카이라인이 크게 훼손됐다. 한라산의 능선이 마을을 살포시 덮던 경관이 제주시 노형동 일대에서는 사라져버렸다.
ⓒ시사IN 이명익 제주국제공항에서 본 제주드림타워 모습. 한라산 능선 아래에 자리한 다른 건물들과 달리 홀로 삐죽 튀어나와 능선을 가리고 있다.
경치가 수려하다고 알려진 제주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이미 일어났거나,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경관 사유화’다. 비싼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 가장 좋은 풍경을 누리고 그 덕분에 기업은 큰돈을 벌지만 제주도가 가진 고유한 풍경을 잃게 되는 현상이다. 불법은 아니지만 지속 가능한 관광, 지역을 풍요롭게 하는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물음표가 찍힌다. 김태일 교수(제주대 건축학 전공)는 제주도에서 발생하는 경관 사유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주를 아름다운 섬이라고 한다. 그 아름다움의 근원은 제주의 땅과 지형, 지세가 만들어내는 풍경이다. 이 풍경이 제주가 가진 자원이다. 자연경관이라는 자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자본이 그곳을 점유하고 압도적인 이익을 본다면 문제가 있다. 경관은 ‘공공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의 ㄱ 리조트는 과거 어촌 마을이었던 ‘배릿내’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어촌의 전통가옥을 그대로 살려 만든 5성급 호텔이다. 은하수가 내리는 천이라는 뜻의 ‘성천포’ 해안을 리조트 내 산책로로 끼고 있다. 성천포 해안가를 거닐기 위해서는 이 리조트에 숙박하거나, 리조트 내 커피숍에서 음료를 주문해야 한다. 오랜 세월 해녀들이 물질을 하던 성천포뿐만 아니라 그 바다의 풍광까지 ㄱ 리조트의 소유물이 된 셈이다. 본래 올레 7코스는 이 해안가를 따라 ㄱ 리조트를 관통했다. ㄱ 리조트는 올해 초부터 이 길을 막고 있다. 이제 올레꾼들은 리조트를 빙 돌아서 이 구간을 지나간다. 올레 코스가 제주도의 옛길을 이어 만들었다는 점에서 제주의 본모습이 또 한번 희미해졌다.
ⓒ시사IN 이명익 제주도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 ㄱ 리조트. 투숙객과 카페 이용객에 한해 조망을 허락한다.
ㄱ 리조트와 달리 제주도의 리조트는 대부분 일반인들에게 산책로를 열어두고 있다. 그렇다고 경관 사유화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고 제주를 오랫동안 가꾸어왔던 이들은 말한다. 윤봉택 한국예총 서귀포지회장은 1992년부터 20년 가까이 서귀포시 문화재 담당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제주의 문화와 자연 보존에 힘써왔다. 그는 부영이 호텔 건설을 추진하며 경관 사유화 논쟁을 겪고 있는 서귀포시 대포 주상절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주상절리 위에 호텔을 짓는 것도 아니고, 일반인 접근을 막는 것도 아닌데 무슨 문제냐고 말한다. 그러나 문화재나 자연경관을 지킨다는 건 딱 그 부분만 보호한다고 되지 않는다. 그곳을 둘러싼 자연적 경관, 문화적 경관, 역사적 경관이 모두 연관돼 있는 것이다.”
대포 주상절리는 25만 년에서 14만 년 전 사이에 흘러내려온 용암이 식으면서 형성된 해안 지형이다. 뜨거운 용암이 식으면서 육각형이나 오각형 모양으로 쪼개져 지금의 독특한 경관을 빚어냈다. 리조트와 위락시설이 들어찬 중문관광단지 내에서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곳은 개발 바람에서 비껴나 있었다. 주상절리 부근에 호텔 건설이 예정된 것은 2016년이다.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인근 땅을 산 부영은 주상절리를 내다볼 수 있는 호텔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계획대로라면 지하 5층, 지상 9층 규모에 객실 1380실짜리 호텔이 해안에서 약 150m 떨어진 거리에 들어서게 된다. 해당 공사는 환경영향평가에서 허점이 발견돼 아직 첫 삽을 뜨지 못한 상황이다.
ⓒ시사IN 이명익 중문동에 부영 호텔이 주상절리 위 녹색 공터에 예정돼 있다.
서귀포시 서쪽에 위치한 송악산도 유사한 문제를 겪고 있다. 바다로 튀어나온 지형이기에 송악산에서는 바다를 끼고 한라산을 바라볼 수 있다. 제주에서도 보기 드문 경관이다. 동시에 송악산은 질곡의 현대사가 스며 있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군이 파놓은 진지동굴이 해안가에 있고, 제주 도민들이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던 제주4·3의 기억이 남아 있다. ‘절울’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송악산에 올라 파도를 보면 일렁일렁 이는 파도가 가슴을 때린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바다와 한라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절경을 가졌기에 송악산을 개발하려는 계획은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세워졌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대, 투자회사의 부도 등으로 번번이 계획이 무산되었지만 2013년 중국 자본인 신해원유한회사가 이곳을 사들이면서 관광단지 조성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리조트와 호텔이 들어선다면 송악산의 이름은 남겠지만 아픈 역사와 맞물려 가슴을 때리던 ‘절울’은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질 것이다.
경치 좋은 곳에 편의시설을 만들고 관광객을 받는 것, 우리가 익히 아는 여행지의 모습이다. 오늘날 제주는 이 낡은 관행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서쪽의 애월한담 해변은 카페촌으로 뒤바뀌어 고유의 장소성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서귀포시 남쪽 예레휴양단지는 사업 절차가 어그러지면서 폐허처럼 빈 건물이 남아 있다. 동쪽의 섭지코지는 대규모 리조트가 들어서 그곳의 정원이 됐다는 소리를 듣는다. 경관 사유화는 제주도 전역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되돌리기 어려운 흔적 말이다.
ⓒ시사IN 이명익 제주도 서귀포시 상예동에 있는 제주 예레휴양단지. 하늘에서 본 휴양단지 바다 쪽 모습.
ⓒ시사IN 이명익 육지 쪽 모습. 안과 밖의 풍경이 너무 다르다.
ⓒ시사IN 이명익 제주도 애월읍 애월한담 해변에 있는 한 카페. 카페에서 바라본 바다 모습.
ⓒ시사IN 이명익 바다에서 바라본 육지 모습. 바다 쪽에서는 더 이상 육지를 조망할 수 없다.
ⓒ시사IN 이명익 육지 쪽에서 본 모습. 이제 더 이상 육지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다.
시사인 제주/사진 이명익 기자·글 김연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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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이대로면 10년 뒤 해운대·인천공항 잠긴다
장마가 오늘(12일)로 50일째입니다. 역대 가장 긴 장마 기록을 새로 쓰고 있습니다. 역대 가장 긴 이번 장마를 놓고 '기후 위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 기후 위기를 더 방치하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영상을 JTBC가 입수했습니다. 10년 뒤, 강한 태풍이 왔을 때를 예측한 영상입니다.
[정상훈/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 저희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은 2030년에 10년마다 한 번씩 일어날 수 있는 피해고요. 그리고 2050년이되면, 130만명 정도가 매해 이런 피해를 입게 되는 거예요. 이미 과학자들은 답을 내고 있습니다. 2050년까지 지금 우리가 배출하고 있는 탄소를 순배출을 0으로 만들어야 됩니다.]
[앵커]김 기자, 10년 뒤에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기자]지난해 10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엔 이런 논문이 실렸습니다. 전 세계 해수면 상승과 그로 인해 발생할 침수 취약성을 다뤘는데요. 이 논문 자료를 바탕으로 그린피스에선 시뮬레이션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2030년을 기준으로 잡고 10년에 한 번 발생할 더 강력한 태풍을 가정했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현 추세와 같이 계속 증가하게 되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보시는 것처럼 해운대는 물론, 부산 일대가 침수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요. 인천국제공항까지도 저렇게 물에 잠길 수 있는 겁니다.
침수 피해는 내륙보다는 해안 지역에, 또 동해와 남해보다는 서해안에 더 크게 일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서해안 지역의 고도가 상대적으로 더 낮기 때문인데요. 서해나 남해 쪽이 태풍으로 발생하는 해일의 크기가 더 큰 것도 이유가 됩니다.
예상피해면적이 가장 큰 도시는 이번 장마 때도 피해가 컸던 지역이죠, 전남이 약 1500제곱키로미터로 가장 클 것으로 예측이 됐습니다. 피해 인구는 경기도가 약 130만 명으로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앵커]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 이번 장마보다도 위험하다는 거잖아요,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 겁니까?
[기자] 기본적으로 해수면의 높이와 만조 때의 높이는 모두 도랑을 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만조 때의 높이 역시 높아지는데요. 이 상태에서 폭풍, 비바람이 발생하면 바닷물이 도랑을 넘어서 육지로 넘어오게 되는 겁니다. 해안가에 최악의 폭풍이 발생할 확률은 기본적으로 100년에 한 번입니다.
하지만 해수면이 약 30cm 올라가면 10년에 한 번, 61cm 정도 상승하면 1년에 한 번으로 점점 빈번해지는데요. 지난해 발표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세기 들어 해수면은 15cm나 높아졌고 현재는 이보다 2배 빠른 속도로 높아진단 분석입니다.
이런 기상이변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정부 차원에서 구체적인 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자료 : 그린피스)
"부산 용두산 공원을 백산 안희제 기념공원으로 바꾸자"
부산생명의숲·부산시민연대 등 9개 단체, 부산시 등에 청원서 제출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일제강점기(대일항쟁기) 시기 독립운동가인 백산 안희제 선생을 기념하는 공원을 조성하자는 운동에 나섰다. 부산의 대표적 명소인 '용두산 공원'의 이름을 '백산 안희제 선생 기념공원'으로 개칭하자는 주장이다.
시민단체 "도심녹지, 항일운동의 역사성 되살려야"
13일 부산생명의숲에 따르면 부산지역 9개 시민단체는 지난 11일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 신상해 부산광역시의회 의장에게 '백산 안희제 선생 기념공원 조성' 관련 청원서를 전달했다.
청원서에는 "용두산 공원 공영주차장을 없앤 뒤 녹지공간을 확장하고, 안희제 선생 기념공원으로 개칭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청원에는 부산생명의숲,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 부산환경회의,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산그린트러스트, 부산하천살리기시민운동본부, 대천천네트워크 등이 참여했다.
이들 단체는 "극도심의 초등학교 폐교 부지를 주차장으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도심 숲을 채우게 해야 한다"면서 "1914년 백산 안희제 선생이 백산상회라는 미곡상을 설립해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던 역사성까지 부여하면 우리 도시의 자존과 자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시민의 쉼터이자 관광명소인 용두산 공원은 우리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용두산'은 바다에서 육지를 치고 올라오는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일본인들이 불렀던 이름으로 추정한다. 일제강점기 당시엔 신사까지 세워졌다.
동시에 용두산 공원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대동청년당을 조직한 백산 안희제 선생은 용두산공원 인근 자리에 민족자본으로 '백산상회'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식회사를 설립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부산을 중심으로 서울과 전국에 지점을 두고 독립운동 후원의 거점 역할을 했다. 언론사업에도 관심이 많았던 안희제 선생은 동아일보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했고, 중외일보(현 중앙일보)를 인수해 항일언론 투쟁을 지원했다.
한국전쟁 시기 용두산은 전쟁통을 피해 몰려든 피난민의 판자촌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후 큰 불이 나면서 현재와 같은 공원으로 꾸며졌다. 이름이 바뀐 적도 있었다. 1957년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공원'으로 불렸다.
그러다 19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옛 백산상회 자리에 안희제 선생의 유품과 독립운동 자료를 전시한 기념관을 개관했지만, 관심은 용두산 타워 등 관광시설에 집중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 부산지역 시민단체가 부산시 중구에 있는 용두산 공원의 이름을 "백산 안희제 선생 기념공원"으로 바꾸자는 청원을 부산시, 부산시의회에 제안했다.
인근 공영주차장을 녹지로, 용두산을 안희제 기념공원으로
이번 청원에서 시민단체가 언급하고 있는 공간은 용두산 공원 바로 뒤쪽에 있는 옛 동광초등학교 부지다. 학교는 1921년 설립됐으나, 원도심 인구 감소로 1998년 폐교했다. 이후 부산시가 이 부지를 매입해 용두산 공영주차장으로 사용해왔다. 최근엔 새 중구청사, 영화관련 박물관 부지 등으로 언급되는 등 활용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생명의숲 등은 이 부지가 용두산 공원과 바로 맞닿아 있어 부족한 녹지를 채우고, 3.1운동 101주년을 맞아 역사성을 복원해야한다고 주장한다.
13일에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산 안희제 선생 기념공원 조성' 운동을 본격화한 이들 단체는 공공성과 역사성을 거듭 강조했다. 구자상 부산생명의숲 대표는 "뉴욕이나 파리 등에서는 도심 주차장을 없애고, 대중교통 이용을 유도하는 것이 추세"라며 "녹지공간을 넓히는 차원에서 용두산 공용주차장을 생태숲, 녹지로 시민에게 돌려줄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산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발자취가 용두산 일대에 있어 이 참에 시민의식을 살려서 백산 안희제 기념공원'으로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김보성(kimbsv1) 오마이뉴스
환경부 대대적 조직개편…‘녹색전환정책관’ 신설
환경부가 자연환경정책실에 ‘녹색전환정책관’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 조직개편에 나선다. 지난해 5월 물통합정책국이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의 조직개편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서 ‘그린뉴딜’을 총괄하는 주무 부처라는 인식을 확고히 하기 위한 체질 개선으로 풀이된다.
13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이르면 이달 중 조직개편 단행을 계획 중이다.
환경부는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의 지속가능전략담당관을 환경경제정책관으로 이관한다. 또 환경경제정책관은 녹색전환정책관으로 명칭을 바뀔 예정이다. 녹색전환정책관 총괄국장은 현재 환경경제정책관인 김동구 국장이 그대로 맡고, 주무과장으로는 정은해 지속가능전략담당관이 녹색전환정책과장으로 올 예정이다.
이와 함께 환경부는 환경산업경제과를 녹색산업혁신과로, 환경연구개발과를 녹색기술개발과로 각각 명칭을 바꾼다. 그린뉴딜의 핵심이 ‘녹색 사회로의 전환’이라는 점을 적극 고려한 결정이다. 이에 따라 새로 신설하는 녹색전환정책관은 녹색전환정책과, 녹색산업혁신과, 녹색기술개발과, 통합허가제도과, 환경교육팀 등 4개 과·1개 팀으로 구성된다. 인력 규모는 50~60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는 녹색전환정책과의 업무를 강화하기 위해 기존(지속가능전략담당관)보다 최대 10명 많은 인원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교육팀 역시 현재 6명보다 많게는 3명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녹색환경정책과는 그린뉴딜을 성공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국가환경종합계획 수립 등을 이끌게 된다. 녹색기술개발과는 환경기술 개선에 필요한 연구개발(R&D) 계획을 수립하고 차질없이 수행하는 임무다. 또 환경교육팀은 환경 관련 교육정책 등을 책임진다.
이 밖에도 환경부는 소통·협력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대변인실의 미디어협력팀을 정책홍보팀으로 새롭게 개편하고, 홍보기획팀은 디지털소통팀으로 변경을 추진 중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대국민 디지털 정책 홍보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미로 읽힌다./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CO₂ 저장소’ 열대 토양, 기후변화의 또 다른 걱정거리
온대지방 배출 증가율 35%보다 훨씬 커
세기말 토양 탄소 배출량 인간 유래 6배
영국 에딘버러대 연구팀이 파나마 섬에서 기후변화에 따른 열대지방 토양 탄소의 배출 증가를 측정하기 위한 실험 장치를 설치하고 있다. 영국 에딘버러대 제공
이번 세기말 열대지방의 토양이 4도 따뜻해지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5% 증가해 지구온난화가 훨씬 가속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영국 에딘버러대와 미국 스미소니언열대연구소 공동연구팀은 <네이처> 13일(한국시각)치에 게재한 논문에서, “열대지방의 토양을 인위적으로 2년 동안 4도가량 데웠더니 주변보다 이산화탄소를 55% 더 많이 배출했다”고 보고했다. 한 과학자는 이를 두고 ‘기후변화 분야의 또 하나의 걱정거리’라고 표현했다.
전지구 지표면을 살짝 덮고 있는 땅 속에는 수목이나 대기에 들어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의 탄소가 함유돼 있다. 특히 열대지방의 토양은 전지구 토양이 함유한 탄소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지구 토양은 탄소 배출과 흡수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죽은 나무나 잎, 뿌리 등 수목 폐기물에서 땅으로 흡수되는 탄소 양은 그 폐기물을 먹고사는 땅속 미생물들의 호흡을 통해 대기로 방출되는 탄소 양과 거의 비슷하다. 토양의 탄소 흡수-배출 유동량은 인간 활동에서 유래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6∼10배에 이른다. 이 균형이 깨져 토양의 탄소 배출이 흡수보다 1% 많아지면 인간 유래의 이산화탄소 배출 10%에 해당하는 이산화탄소가 대기에 방출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열대지방 토양은 상대적으로 온대 등 고위도 지역 토양보다 탄소를 적게 방출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실험을 통해 비교된 적은 없었다
영국 에딘버러대 연구팀이 열대 밀림에 전선을 매립해 땅을 데우면서 열화상 카메라로 토양의 열을 측정하고 있다. 전선에 전기를 가동하기 시작해(왼쪽)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일대의 땅이 전체적으로 따뜻하게 데워졌다. <네이처> 제공
일부 생태학자들은 1990년대 초부터 토양을 인공적으로 데우는 장치를 만들어 중위도와 고위도 숲에서 실험을 했다. 탄소를 많이 함유한 토양이 온난화됐을 때 이산화탄소 순배출이 증가했다. 2016년 한 연구팀은 2050년까지 토양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이 미국 만한 크기의 국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과 맞먹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상시 온난하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열대지방은 포함되지 않았다.
<네이처> 논문 제1저자이자 연구를 주도한 에딘버러대의 생태학자 앤드류 노팅엄은 2014년 스미소니언열대연구소가 자리한, 파나마운하 인근의 인공섬인 바로콜로라도섬에서 1.2m 깊이의 구덩이 5개를 만들어 전선을 묻었다. 비바람과 허기진 곤충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전선은 철구조물로 씌웠다. 모양은 마치 거대한 거미처럼 생겼다. 측정장치들은 혹독한 날씨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든 내후성 상자 안에 설치했다. 그럼에도 연구팀은 하마떼의 공격을 받아 끊어진 전선을 다시 잇느라 일년치 예산과 시간을 낭비해야 했다.
2016년 11월에 시작한 실험은 땅을 4도 가량 데우기 시작했다. 이 온도는 현재 기후 모델로 21세기말 열대지방에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온이다. 다른 장비로는 실험 지점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을 측정했다. 또 인위적으로 데우지 않은 자연 그대로인 인근 지점의 이산화탄소 양도 측정했다.
2년 동안 주변보다 4도 높은 온도를 유지하자 땅속 유기물질 분해에서 기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이 1㏊당 8.2±4.2톤에 이르렀다. 대조군 땅의 이산화탄소와 비교해 55%가 많은 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로런스버클리연구소의 생태학자 마가렛 톤은 “캘리포니아 숲에서 같은 실험을 했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35%였다”며 “연구팀 연구 결과는 놀라운 것”이라고 말했다.
노팅엄은 “전체 열대지방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2100년까지 대기에 방출되는 탄소 양은 650억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는 인간 유래 발생원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연간 배출량의 6배에 이르는 규모”라고 말했다.
이근영 기자 kylee@hani.co.kr
콘돔, 생리컵…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토끼의 희생’
동물실험의 사각지대’ 생리용품들
토끼는 크기가 작고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각종 생리용품 동물실험에 이용된다. 콘돔의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토끼는 5일 동안 질 내에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생활한다. 동물권단체 어나니머스 오브 보이스리스(AV) 제공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상당수의 제품은 동물의 희생으로 만들어진다. 내 몸, 그중에서도 ‘소중한 부위’에 사용하는 제품은 인간의 몸과 직결된다는 이유로 더 가혹한 동물실험을 거치게 된다.
탐폰, 콘돔, 생리컵, 윤활제, 데오도란트 등 생리용품이 대표적이다. 2017년 화장품법 개정 이후 화장품에서 동물실험은 금지됐지만, 이 제품들은 의료기기 및 의약외품에 해당해 여전히 동물실험이 이뤄진다. 생리용품이 ‘윤리적 소비에 가려진 사각지대’라고 불리는 이유다.
균 번식한 탐폰 견디는 토끼들
특히 토끼는 여러 생리용품 실험에 광범위하게 희생되고 있었다. 수십 마리의 토끼들이 실험대에 묶여 있다. 실험은 14~16시간가량 이뤄진다. 토끼들은 박테리아 균을 묻힌 탐폰과 멸균 탐폰을 번갈아 질 내에 삽입 당한다. 밤새 반복되는 삽입과 제거 과정에서 토끼들은 치명적인 쇼크 증상을 보인다. 1989년 하와이대학 의대에서 공개한 탐폰 독소반응 실험 과정이다.
미국 제약회사 ‘존슨앤드존슨’이 미국 특허국에 제출한 서류에도 이와 비슷한 동물실험이 기술되어 있다. 토끼뿐 아니라 기니피그, 개코원숭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생리혈이 묻은 탐폰을 장시간 삽입한 채 견디는 실험에 동원됐다. 실험 결과가 불충분할 경우, 아예 토끼 목 뒤쪽 피하지방에 탐폰을 삽입하기도 한다.
인간의 피부에 직접 사용하는 윤활제 또한 토끼의 생식기에 먼저 실험된다. 제프 브라운 국제동물권단체 페타(PETA) 과학 고문은 “윤활제 실험은 토끼의 질에 윤활유를 주입하는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5일 연속 질에 윤활유를 주입한 뒤 어떤 자극을 주었는지 보기 위해 실험 대상을 해부하는 것으로 실험을 마친다”고 설명했다.
눈물샘이 없는 토끼는 구속된 상태에서 눈에 화학물질을 투입하는 ‘드레이즈 테스트’에 자주 이용된다. 애니멀 오스트레일리아 제공
콘돔 실험도 예외가 아니다. ‘질 자극성 검사’를 위해 토끼는 5일 동안 질 내에 콘돔 조각을 삽입한 채 생활한다. 2014년 미국의 한 언론사가 폭로한 콘돔 실험에서 토끼들은 5일간의 실험을 마치고 모두 안락사당했다. 질 조직 또한 제거된 상태였다.
토끼는 눈물샘이 없기 때문에 자극성 실험에도 자주 이용된다. 토끼는 ‘드레이즈 테스트’(전신 구속 상태에서 눈에 화학물질을 떨어뜨리는 실험)에 자주 이용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데오도란트(땀 냄새 제거제) 또한 이 실험을 거쳐 생산된다.
토끼가 실험에 동원되는 이유
일회용 생리대의 대체품으로 선호되고 있는 생리컵의 경우, 완제품이 동물실험을 하지 않더라도 재료가 동물실험을 진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생리컵은 주로 열가소성 엘라스토머(TPE)라는 친환경 소재나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생리컵 원재료 제조사 크라이버그(Kraiberg)는 “실험 물질을 토끼나 실험용 쥐의 척추 근육에 7일 동안 이식해서 출혈, 괴사, 변색, 감염 등의 징후를 관찰한다”고 밝히고 있다. 토끼가 실험에 많이 이용되는 이유는 명확지 않다. 국제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HSI)은 “토끼가 작고 온화하며 다루기 쉽고, 번식력이 좋아 새로운 실험체 공급이 쉽다는 점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토끼의 희생 없는 생리용품을 사용할 수는 없을까. 최근에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가 윤리적 소비의 선택지로 등장했다. 크루얼티 프리는 완제품, 원재료 모두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에 부여되는 인증이다. 국제동물권단체 페타, 영국채식협회(Vegetarian Society), 비영리 국제기구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Cruelty Free International) 등이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각 단체는 모두 ‘성분, 구성물, 완제품 모두 동물실험을 진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공통 기준으로 내세운다. 크루얼티 프리 인터내셔널의 ‘리핑 버니’(leaping bunny·깡충 뛰는 건강한 토끼 상징)라는 어느덧 세계적인 동물실험 원료 무첨가 인증마크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동물권단체 카라가 2017년 화장품법 개정을 계기로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착한 회사 리스트’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국내 생리용품 업체 인스팅터스는 비동물성 실험 원재료를 이용한 제품으로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았다. 이브 제공
하지만 여전히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의료기기, 의약외품은 필수적으로 동물실험을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거치지 않은 제품을 허가받으려면 △기존 동물실험으로 안전성이 입증된 재료를 이용하고 △해당 재료와 동일한 제조과정을 거쳤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식약처, ‘의료기기 생물학적 안전성 통합 가이드라인’)
국내 생리용품 업체 인스팅터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콘돔·생리컵 등을 생산하는 이 업체의 ‘이브’(EVE) 브랜드는 국내 콘돔 제조업체 중 최초로 페타의 크루얼티 프리 인증을 받았다.
“추가 동물실험 없이 안전성 입증”
박진아 인스팅터스 대표는 “이브 콘돔은 기존에 확보된 안전성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의료기기 허가를 받았다. 이브는 과거 연구를 활용하거나 비동물성 실험 방식의 독성평가, 임상시험을 통해 추가적인 동물실험 없이 제품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브가 생각하는 크루얼티 프리의 본질은 동물실험 원료를 금지하는 것이 아닌, 추가적인 동물실험의 중단”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식약처(FDA)는 약물, 의료기기, 의약외품에 대한 동물실험 대체 방안인 비동물성 실험을 활발히 연구 중이다. FDA는 공식 누리집에 “기업은 잘 확립된 과학 문헌, 원료 안전 검사 또는 임상시험을 통해서 동물실험보다 더 안전한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주연 교육연수생 102557@naver.com
꿀벌은 두 가지 방식으로 꿀을 섭취한다
끈적끈적한 과즙은 국자처럼 떠 먹고
묽은 과즙은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여
꿀벌은 과즙의 점성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꿀을 섭취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픽사베이
꿀벌의 혀에는 약 1만개의 미세한 강모(억센털)가 나 있다. 꿀을 먹을 땐 이 혀의 털들을 곧추 세운 채 꿀에 넣었다 뺀다. 털 사이에 꿀을 담아 입속으로 집어넣는 방식이다. 혀가 일종의 국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과학자들은 그동안 꿀벌이 이 방식으로만 꿀을 섭취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중국 광저우 중산대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국제연구진이 초고속 카메라로 꿀벌을 촬영한 결과, 어떤 때는 혀를 꿀 속에 밀어넣은 뒤 진공청소기처럼 꿀을 빨아들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관찰 결과 점성이 낮은 과즙을 마실 때 이런 방법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꿀벌은 과즙의 점성에 따라 이 두 가지 방법을 번갈아 사용했다.
위 사진은 당도 10%인 과즙을 먹을 때로 혀를 과즙 속에 박은 채 빨아들이는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당도 30% 과즙을 먹을 때로 털을 세운 채 혀를 과즙 속에 넣었다 빼는 모습이다. 바이올로지 레터스
당도 30% 기준으로 섭취 방법 달라져
미국 조지아공대의 데이비드 후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곤충의 입이 빨대, 포크, 숟가락 같은 주방 서랍 속의 도구처럼 한 가지 용도만 갖고 있는 걸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이번 연구는 꿀벌의 혀가 스위스의 군용 칼처럼 과즙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과즙을 마신다는 걸 보여줬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인공과즙으로 실험한 결과, 당도가 30% 미만일 땐 빨아들이기(석션)을 더 사용했고 30% 이상일 땐 떠먹기 방법을 주로 사용했다. 예컨대 당도가 50%인 과즙은 떠먹는 비율이 87.5%였던 반면, 당도가 10%인 과즙은 빨아들이는 비율이 70%였다. 당도가 10%인 것과 50%인 것을 번갈아 준 결과, 당도가 달라지면 그에 맞춰 흡입 방식도 바꾸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결과는 영국왕립학회가 발행하는 국제 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Biology Letters) 8월호에 실렸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뒤영벌 ‘붕붕’ 진동이 블루베리 꽃밥 열어
튜브 속 숨긴 꽃가루 열려면 강력한 진동 필요…감자, 토마토, 철쭉 등 2만 종 수분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야생 벌. 꽃밥을 입으로 물고 몸을 수술 쪽으로 굽힌 뒤 전속력을 날개를 쳐 진동을 낸다. 꽃가루가 흩어져 튀어나오는 모습이 보인다. 보브 피터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벌들은 날 때만 붕붕 소리를 내지 않는다. 꽃에서 꽃가루를 딸 때 더욱 큰 소리를 낸다. 진동의 힘으로 꽃밥 속 꽃가루를 떼어내는 동작이다. 벌들의 ‘진동 가루받이’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꽃밥에 매달린 호박벌은 전투기 조종사가 경험하는 것보다 5배나 큰 힘을 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널리 알려진 매개곤충인 꿀벌은 가루받이를 위해 진동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벌은 호박벌 등 뒤영벌을 포함해 전체 벌 종 수의 58%에 이른다. 작물의 가루받이에 야생 벌이 중요한 이유이다.
이들이 매개하는 식물은 2만 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는 토마토, 감자, 가지 등 가짓과 식물을 포함해 블루베리, 철쭉, 진달래 등 중요한 원예종이 다수 포함돼 있다.
뒤영벌이 토마토의 원뿔형 꽃밥에 앉아 진동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스털링대 제공
꽃가루는 단백질이 풍부해 벌이 애벌레를 기르는 소중한 먹이이다. 벌은 이 꽃 저 꽃에서 꽃가루를 모으는 과정에서 가루받이도 해준다. 그러나 식물로서도 꽃가루는 가루받이에 쓸 소중한 존재여서 먹이로 모두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이 때문에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의 꽃밥은 독특한 구조로 진화했다. 튜브 모양의 꽃밥에 작은 구멍 하나와 길쭉한 틈이 하나 있을 뿐이다. 꽃가루도 단단히 붙어있다. 곤충이 안으로 들어와 꽃가루를 꺼내 가지 못하는 구조이다.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식물의 꽃밥에는 위의 작은 구멍과 옆의 가는 틈밖에 없어 꽃가루를 꺼내려면 후춧병을 흔들 듯 진동을 줘야 한다. 베아트리스 모아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여기서 꽃가루를 꺼내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꽃밥에 강력한 진동을 주어야 마치 후춧병을 적당히 흔들 때 후춧가루가 쏟아져 나오듯 꽃가루가 나온다. 뒤영벌 등은 주둥이로 꽃밥을 꼭 물고 몸을 꽃밥 쪽으로 활처럼 굽힌 뒤 사람 귀에 들릴 정도로 주파수가 높은 진동을 몇 번이고 낸다.
마리오 바예호-마린 영국 스털링대 교수팀은 벌이 비행과 방어를 위해서도 진동을 내지만 꽃가루를 확보하기 위한 진동이 이보다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혔다. 연구자들은 ‘실험생물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진동 가루받이 때 벌이 내는 힘은 전투기 조종사가 겪는 중력가속도의 5배인 50G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밀한 레이저 진동측정계로 진동을 일으키는 벌의 가슴과 근육 진동을 쟀는데, 비행 때보다는 방어 때가, 방어보다는 꽃가루를 얻기 위한 진동이 강했다.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철쭉에 앉은 야생 벌. 베아트리스 모아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진동 가루받이 행동은 45차례나 독립적으로 진화했을 정도로 벌에게 중요하다. 그러나 왜 꿀벌에서는 이런 행동이 진화하지 않았는지 등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중요한 작물 생산에 꼭 필요하지만, 진동 가루받이는 농약에 취약하다. 바예호-마린 교수팀은 농토에 일상적으로 쓰이는 농도의 네오니코티노이드 살충제에 노출된 벌이 진동 가루받이로 획득하는 꽃가루 양이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벌의 절반에 그친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2017년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살충제에 노출되지 않은 벌들은 경험이 쌓이면서 꽃에 진동을 줘 더 많은 꽃가루를 얻는 방법을 습득했다. 그러나 살충제에 노출된 벌은 그런 학습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꽃가루 확보량은 비노출 벌의 47∼56%에 그쳤다”고 설명했다.
블루베리의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뒤영벌. 이런 방식의 가루받이는 블루베리 생산의 양과 질 모두를 향상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대로, 미국에선 진동 가루받이를 하는 야생 벌이 블루베리 생산량과 품질을 크게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버몬트대 연구자들은 2018년 과학저널 ‘농업, 생태계 및 환경’에 실린 논문에서 전동 칫솔로 뒤영벌의 진동 가루받이를 흉내 내 블루베리의 꽃가루를 확보해 일일이 솔로 가루받이를 한 결과 그렇지 않은 농장에 견줘 수확량이 12% 늘었을뿐더러 열매 크기도 12% 커졌고 열매 크기의 고르기도 11% 향상됐으며 수확 시기도 2.5일 일러졌다고 밝혔다.
인용 저널: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DOI: 10.1242/jeb.22054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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