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멈춘 세상, 고요해지고 하늘은 맑아졌네
코로나19가 ‘지진 소음’ 50% 줄였다
전 세계적 ‘지진파 잡음’ 감소 현상 실측
인도선 일사량 늘어 태양광발전량 증가
스페인 남부 무르시아 지역의 스카이라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령이 발효되기 며칠 전이었던 2월 29일(현지시각)과 40일 뒤인 23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연합뉴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기가 깨끗해지고 도시 소음이 줄어든 사실을 체험했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위해 상당 기간에 걸쳐 이동 제한 조처를 취한 데 따른 결과다. 과연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는지, 실측 자료를 통해 과학적으로 확인해주는 연구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자동차 운행 등 인간이 유발하는 ‘지진 소음’(지진파 잡음)은 50%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벨기에왕립천문대를 비롯한 6개 기관 27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해 지난 3~5월 전 세계 117개국 268개 지진관측소에서 수집한 지진계 자료를 분석한 결과, 185곳에서 뚜렷한 지진 소음 감소가 나타났다. 조사 대상 국가 중 77개국에서 감소율은 평균 50%나 됐다. 이동제한에 따른 여행 중단, 학교와 가게, 공장 폐쇄 등이 어우러져 지진계의 움직임을 크게 떨어뜨렸다. 연구진은 평상시 한밤중이나 연휴 기간에 측정된 수준으로 소음도가 낮아졌다고 밝혔다.
각국의 봉쇄 정책을 전후로 인간 유발 지진 소음이 크게 달라졌다.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봉쇄 정책 전과 후의 전 세계 지진 소음도 변화. 색갈이 짙을수록 지진계 진동 폭이 적은 걸 뜻한다. 흰색 동그라미가 봉쇄정책 시행일이다. ‘사이언스’에서 인용
인구밀도 높은 도심·휴양지 감소 폭 커
높은 지역의 지진 소음 감소 폭이 가장 컸다. 그러나 독일의 슈바르츠발트(검은 숲), 나미비아의 룬두 같은 외딴 곳에서도 지진계 진동 폭은 작아졌다. 측정 범위가 좁은 민간 지진계에서는 영국의 콘월, 미국의 보스턴 일대 학교와 대학 주변의 소음이 크게 줄었다. 평소 휴일의 학교보다도 20%가 더 조용했다. 때마침 여행 성수기를 맞았던 중남미의 바베이도스는 45%, 남아시아의 스리랑카 같은 나라에선 소음이 50% 감소했다.
연구진은 “도시 지역의 경우 이전에 인간 유발 소음 때문에 포착되지 않았던 지진 신호가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이는 앞으로 자연재해 소음과 인간유발 소음을 구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구진은 2020년의 지진 소음 감소는 역대 가장 길고 뚜렷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도 델리의 상징 조형물 ‘인디아 게이트’ 앞 거리. 3월25일 전국 이동제한 조처 이전(왼쪽)과 이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뉴델리/AP 신화 연합뉴스
미세먼지 50% 줄자 태양광 전기 생산량 8% 증가
코로나19가 바꾼 세상 풍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깨끗해진 공기다. 대기 질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곳은 인도의 대도시들이다. 인도 북부 도시 델리에선 자동차 배기가스 오염으로 항상 안개 속에 휩싸인 것처럼 보였던 인디아게이트가 선명하게 드러났고, 인도 펀잡주 잘란다르에선 200km 떨어져 있는 히말라야 다울라다르산맥을 맨눈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됐다.
공기가 깨끗해지다 보니 지상에 당도하는 햇빛이 더 늘어났다. 햇빛을 반사시키는 미세 입자들이 줄어든 덕분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한 싱가포르, 독일 3개국 공동연구진이 국제 학술지 ‘줄’(Joule)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델리의 태양광 전지판에서 생산되는 전력이 8% 이상 증가했다.
2020년 2~4월의 인도 델리 일사량 변화(왼쪽)와 대기중 미세입자 농도(오른쪽). 미세입자 감소와 일사량 증가가 궤를 같이한다. ‘줄’에서 인용
연구진은 델리에 있는 미국 대사관이 이전부터 측정해온 미세먼지 데이터를 토대로, 인도 정부가 3월24일 봉쇄 정책을 펴기 전과 후로 나눠 분석해봤다. 그 결과 봉쇄 정책 이후 대기오염 수치는 약 50% 감소한 반면 태양광 패널의 전기생산량은 3월 말 8.3% , 4월 5.9%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는 미국 남부 도시 휴스턴과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태양광 패널의 성능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만약 태양광 발전 업체의 이익률이 전기생산량의 2%였다면, 8% 증가는 이익률을 2%에서 10%로 다섯배나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온실가스 배출이 감소할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모습을 예상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용산공원이 온다
용산공원 조성계획안 조감도. 국토교통부 제공
질곡의 역사가 두껍게 쌓인 금단의 땅, 용산 미군기지의 빗장이 풀렸다. 지난 21일, 서빙고역 건너편 용산기지 동남쪽의 미군 장교숙소 5단지(약 5만㎡)를 개방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미 두 나라가 기지 이전에 합의한 지 30년, 정부가 국가 주도의 공원화를 발표한 지 15년 만이다. 막막하기만 하던 용산공원 조성의 긴 과정이 이제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셈이다. 8월1일부터는 개방된 부지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116년간 지도에서 삭제된 장소를 자유롭게 산책할 수 있고 여유로운 소풍을 즐길 수도 있다.
소박한 잔디 광장에 발 뻗고 앉아 개방 행사와 공연을 보니, 미지의 영토가 드디어 우리 품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실감이 절로 났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2006년의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다. “서울 한복판에 새로 열릴 80만평의 녹지공원은 생각만 해도 가슴을 부풀게 만듭니다. 시민 누구나 차표 한장 들고 부담 없이 찾아와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시민의 마당이 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용산기지 공원화 선포식’(2006년 8월24일) 축사, 다시 읽어도 언제나 가슴이 뛴다.
평택 캠프 험프리스로의 이전이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면서 용산기지 반환과 공원 조성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다. 기지 이전이 완료된 뒤에도 한·미 행정협정(SOFA)에 따라 장기간의 반환 절차를 거치게 된다. 토양 오염 조사와 정화, 시설 조사와 실측, 문화재 조사가 끝나야 공원 조성을 시작할 수 있다. 빨라도 2030년대 초반에나 공원의 1단계 구역이 개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 만큼 용산공원은 다음 세대의 공간이고 미래 세대의 자산이다. 앞으로 남은 10년 이상의 시간은 무력한 공백기가 아니라 충실한 준비를 위한 소중한 과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부분 개방은 의미를 지닌다. 기지 이전이 끝나기 전에, 공원 조성이 시작되기 전에, 미지의 땅을 미리 경험하며 공원의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계획 과정에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밑판이 마련된 셈이다. 담을 허물고 문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를 넘어, 이 부지가 용산공원을 함께 그리고 만드는 실험실로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우선 2018년에 완성된 기본설계안을 두고 시민들과 토론하는 참여의 플랫폼으로 쓸 수 있을 것이다. 부지의 역사와 이야기를 모으는 저장소로, 젊은 예술가들의 문화 발전소로, 공원 조성의 과정을 디자인하는 ‘리빙랩’으로, 미래 세대의 신나는 공원 학교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개방 못지않게 반가운 또 하나의 성과는 공원의 경계가 확장됐다는 점이다. 부지에 맞붙어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용산가족공원, 전쟁기념관이 용산공원으로 편입됐고, 공원 북쪽의 군인아파트와 경찰청 시설 예정지도 공원 구역에 추가되어 남산 쪽 연결성이 개선됐다. 옛 방위사업청 부지도 곧 편입될 계획이다. 약 50만㎡가 넓어져 이제 용산공원의 면적은 299만6천㎡(90만6천평)이다. 공원 한가운데 섬처럼 남게 될 미군의 드래곤힐 호텔과 방호 부지가 큰 골칫덩이지만, 정부의 지혜로운 협상 능력을 기대해본다.
감염병과 기후 변화에 움츠러든 위기의 도시 한복판에 축구장 400개 크기의 공터가 생긴다는 것, 여의도만한 면적의 대형 공원을 가지게 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가슴 설레는 일인가. 2006년 선포식 때 심은 희망의 나무에는 ‘용산공원, 2045년’이 새겨져 있다. 소통과 참여의 과정 중심의 계획을 통해 용산공원의 여백을 채워갈 긴 여정은 우리 사회와 도시 문화의 성숙을 증명해줄 것이다.
배정한 l 서울대 조경학과 교수·‘환경과조경’ 편집주간
조기 폐쇄 월성 1호기’에 감사원, 결과 보류 등 10개월째 감사
월성1호기 감사 논란
30년 설계수명 10년간 연장했지만
“절차 위법” 판결 뒤 작년 영구정지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원전 1호기. 경주/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월성1호기는 1983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가 지난해 12월24일 영구정지가 결정된 국내 최초의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이 원전은 2012년에 30년 설계 수명이 다했지만 2022년 11월까지 수명이 10년 연장됐다.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내준 이 수명연장 허가는 이후 시민사회단체가 제기한 소송에서 절차적 위법행위가 드러나 2017년 2월 취소됐다. 이 법원 판결은 월성1호기가 연장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지난해 영구정지되는 계기가 됐다.
최근 감사원에서 감사를 벌이고 있는 것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이사회가 영구정지에 앞서 2018년 6월 조기 폐쇄 결정을 내린 것의 타당성 여부다. 감사는 한수원이 7000억원 가까이 들여 개보수해 아무 문제 없는 원전을 ‘경제성이 없다’고 경제성 평가를 왜곡해 폐쇄 결정을 내렸다는 야당의 주장에서 출발했다. 감사원이 지난해 10월부터 감사에 나서면서 월성1호기 계속 가동의 경제성에 집중한 이유다.
월성 원전 1호기 관련 감사원 행보 정리
하지만 한수원의 폐쇄 결정에 경제성은 고려 대상의 일부였을 뿐이다. 당시 이사회의 안건자료와 회의록에는 이사회의 결정이 경제성만이 아니라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과 안전성,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려졌다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안전과 지역 주민들의 수용성을 고려한 추가 시설 설치까지 반영하면 경제성은 이사회에 보고된 회계적 기준에 의한 평가보다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원전 폐쇄 결정에 경제성이 절대적 기준이 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 6월의 고리1호기 영구정지 결정은 당시 계속 가동하는 것이 폐쇄하는 것보다 1600억가량의 경제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 상태에서 이뤄진 바 있다.
야당과 일부 보수 언론에서는 월성1호기를 재가동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재가동을 준비하는 데 걸리는 비용과 시간만 고려하더라도 이미 영구정지된 월성1호기가 재가동되기는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점에서 이런 주장은 정치 공세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대선서 41% 지지받은 정부가…” 감사원장, 탈원전 정책 폄훼
최재형 감사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을 언급하며 정부 국정과제 추진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는 증언이 나왔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감사원의 수장이, 야당조차 공격 수단으로 삼지 않는 3년 전 대선 득표율을 근거로 자신이 참여한 정부의 정책을 깎아내린 것이어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 관련 기사 : [단독] “최재형, 친원전쪽 논리로 직권심리 회의 발언 70~80% 주도” )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6일 <한겨레>와 만나 “송갑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2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월성원전 1호기 감사 직권심리 중 최재형 감사원장이 한 발언이라고 소개한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인가
한국판 그린뉴딜이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정부는 7월 14일, 코로나 19 시대 이후 등장한 뉴 노멀과 저성장·양극화에 대응하는 경제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겠다며 한국판 뉴딜 정책을 펼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판 뉴딜은 그린뉴딜, 디지털 뉴딜, 사회안전망 강화라는 삼두 마차가 끌게 된다. 정부와 여당, 민간기업, 광역지차체를 망라해 범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겠다며 내놓은 사업계획은 휘황찬란했다. 하지만 아둔한 탓에 한국판 뉴딜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기억을 더듬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창조경제 실현계획이란 문서를 찾아 보았다.
"지난 40년간 우리 경제의 성장을 이끈 추격형 전략은 글로벌 경제위기와 신흥 산업국가의 추격 등에 따라 한계에 봉착했으며....경제운영의 패러다임을 그간의 모방·응용을 통한 추격형 성장에서 벗어나 국민의 창의성에 기반한 선도형 성장으로 전환하기 위하여...(창조경제 실현계획, 2013)"
VS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 의존 경제에서 저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 사회로 도약(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2020)"
"우리의 강점인 과학기술·ICT 역량 등을 활용한 한국형 창조경제 추진 전략(창조경제 실현계획,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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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강점인 ICT 기반으로 디지털 초격차 확대하여 경제 전반의 디지털 혁신과 역동성을 촉진·확산(한국판 뉴딜 종합계획, 2020)"
창조경제나 한국판 뉴딜이나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의 강점을 살려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 같은데 화려한 수식과 도표 속에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보이지 않는다. 창조경제 추진과제가 24개였다면 한국판 뉴딜은 28개로 수행해야할 과제가 늘어난 것이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린뉴딜은 말그대로 "딜"을 전제로 한다. 패러다임의 전환 과정에서는 영향을 받는 여러 당사자들의 참여와 합의가 필수적이다. "한국판 그린 뉴딜 계획"에서도 지적했듯이 경제·사회구조 대전환과 노동시장 재편은 양극화 심화 요인이다. 하지만 그린뉴딜은 플랫폼 노동수요 증가 전망을 밝히면서도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겠다는 제도적 전망은 없다. 최소한 "딜"이 되려면 중요한 이해 당사자인 비정규직이나 플랫폼 노동자 등 불완전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의 사회적 합의가 먼저다.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은 1933년의 1차 뉴딜 때 재벌 타파와 금융개혁, 1935년의 2차 뉴딜 때 노동관계와 근로기준 및 사회보장 관련 개혁이 핵심 요소였다. 루즈벨트의 뉴딜이 천문학적 재정을 투입해 거대 토목공사로 위기를 극복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대공황의 어려움 속에서 기업 체질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 실업을 줄이려는 노력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 냈고 위기를 극복하는 동력이 되었다.
한국판 그린뉴딜이 그 이름값을 하려면 최소한 확산되는 플랫폼 노동자를 비롯해 비정규 불완전 노동자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입법 목표가 존재해야 한다.
한국판 그린뉴딜은 녹색과 환경이라는 수사를 동원하지만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있다. 그래서 언제까지 얼마나 탄소 배출을 줄일 것인가? 또 이를 수행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화석연료체제를 탈출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가 완전히 생략되어있다. 전기차와 수소차로의 전환이 시대를 선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 간선도로를 경유나 휘발유차 대신 전기차와 수소차로 가득 메우는 것이 그린 뉴딜의 목표인가?
최소한 국토부와 환경부는 머리를 맞대고 탄소배출 감소를 위해 친환경 교통수단인 자전거와 철도의 수송분담률 목표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 계획, 자동차 억제 프로그램 정도는 제시해야 그린뉴딜이란 이름값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린 뉴딜이 지향하는 바는 과거의 방식을 절대 훼손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주도 정부 지원의 큰그림이 바탕이다. 이 과정에서 민자사업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그린뉴딜 사업의 총재원은 73.4조원이고 이중 국비는 58%인 42.7조원이다. 디지털 뉴딜의 경우 58.2조원이고 이중 77%인 44.8조원에 국가 재정이 투입된다. 나머지는 민간 투자로 채운다는 것이다. 1호 민자 인프라 사업으로 수소충전소 계획이 발표 됐다. 그동안 민자사업은 대기업의 현금인출기 역할을 해왔다. 정부가 공적으로 책임져야 할 일이 기업의 수익을 보장하는 장치가 되었다. 수익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기업이 손을 떼고 빠져 나감으로서 사회에 손실을 전가하는 일도 일어났다. 그린뉴딜 민자사업 추진을 두고 벌써부터 민간의 수익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하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민간투자사업은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다하는 측면에서도 공적인 규제와 제한이 필요하다. 기업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과도한 정부지원과 높은 이용료가 마치 민자사업의 표준인 것처럼 자리 잡았다. 현재까지 드러난 민자사업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는 사업추진은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더 촉진할 뿐이다.
코로나 팬더믹과 기후변화는 지금까지 자리잡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방식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많은 전문가들은 공공부분의 확대와 기능 강화로 사회의 공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라고 말한다. 또한 자원의 무분별한 채취와 사용, 환경파괴, 성장우선주의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생태·환경·녹색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우상을 절대적으로 신봉한 나머지 이 틀을 벗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다.
지금 전 세계에 몰아닦친 기아와 난민, 전쟁, 민족분쟁, 불완전 노동, 양극화, 환경파괴, 온실가스 같은 문제는 바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라는 굴뚝의 연돌을 통해서 나온 것들이다. 이 사회의 모든 것에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적용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는 사고를 뛰어넘지 않는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이 남을 뿐이다. 시장경쟁체제가 포괄하지 못하는 생태, 환경, 교육, 의료, 공공부분을 비롯한 인간 삶의 많은 영역에서 대안 경제체제가 실험되고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 19는 지금 인류가 수행하는 생존 방식에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코로나 19보다 더 본질적이고 치명적인 문제인 기후변화 위기가 코앞에 닥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해야할 과제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내는 일이 아닐까? 한국판 그린 뉴딜에서도 패러다임 변화를 이야기 하지만 기업과 성장을 위한 변화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사고방식과 집합적 습관을 전환하지 않으면, 단지 문제가 되는 물리적 환경에 대한 대증요법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금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다.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경제적 경쟁을 권장하는 집단적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위기는 심화될 것이다.
한국판 그린뉴딜이 도달하려는 목적지는 어디인가? 대전환기,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의 지속가능한 삶을 다지는 터전인가? 관료들이 붙여넣기로 만든 화려한 파워포인트 프리젠테이션속 미로인가?/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정책객원연구위원/프레시안
사막 메뚜기떼의 역습…기후변화가 만든 ‘재앙’
하루 만에 3만5000명분 식량 ‘순삭’ 세계 식량안보 위협
동아프리카 25년 만의 최악 피해, 서아프리카로 확산
높아진 수온 탓 잦아진 사이클론, ‘사막호수’ 만들며 이상 번식
최근 아프리카 케냐에서 촬영된 사막 메뚜기 떼. 기후 변화로 인한 이상 번식으로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제공
어른 검지만 한 곤충이 태양을 가릴 정도로 새카맣게 떼 지어 날아다닌다. 등짐펌프를 짊어진 사람들이 살충제를 여기저기 뿌리고, 항공 방제도 해보지만 곤충 떼의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다. 최근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이 동영상과 사진으로 공개한 ‘사막 메뚜기(Desert Locust) 떼’의 섬뜩한 모습이다.
지구촌이 코로나19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때 사막 메뚜기 떼까지 기승을 부리며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사막 메뚜기 떼는 올해 초 케냐 등 동아프리카 일대를 휩쓸더니 이달부터 서아프리카 등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FAO는 지난 5월 사막 메뚜기 떼가 잠재적으로 지구 인구의 10분의 1에게 식량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미 동아프리카에서는 2500만명이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이들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이달까지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에선 축구장 10만개 면적인 7만㏊의 농경지를 사막 메뚜기 떼가 파괴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건 옥수수다. 동아프리카 일대에선 이번 사막 메뚜기 떼에 의한 피해를 25년 만의 최악으로 평가한다.
■ 하루 만에 3만5000명분 식량 ‘꿀꺽’
사막 메뚜기 떼가 무서운 이유는 가공할 만한 숫자 때문이다. 1㎢ 면적에 대략 8000만마리의 성체 메뚜기가 날아다닌다. 이만한 규모의 사막 메뚜기 떼는 먹성도 엄청나다. 하루를 기준으로 3만5000명이 먹을 작물을 한입에 털어 넣는다. FAO는 사막 메뚜기를 “세계에서 가장 파괴적인 이동성 해충”이라고 규정한다.
사막 메뚜기 떼의 출몰은 성서에도 언급될 정도로 오래됐다. 주로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 서아시아, 남아시아에 서식한다. 그런데 올해는 개체 수가 지나치게 늘어나며 피해 지역이 확대되고 있다. 사막 메뚜기는 대략 3개월마다 숫자가 20배 증가하는데, 올해는 자연계와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넘은 것이다. FAO는 올해 1월 이후 이달 초까지 아프리카와 예멘 등에서 5000억마리의 사막 메뚜기 떼를 방제했지만, 피해가 여전하다고 설명했다. 최세웅 목포대 환경교육과 교수는 “사막 메뚜기가 세대를 빠르게 거듭하며 이동이 더 쉽도록 날개가 길어지는 형태로 몸체가 변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으로선 메뚜기 떼 규모가 언제 줄어들지 예측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 기후변화가 만든 ‘사막 호수’ 원인
과학계는 사막 메뚜기 떼의 이상번식 원인을 기후변화로 보고 있다. 아프리카 정부 간 개발기구(IGAD) 산하 기후예측응용센터(ICPAC) 연구진이 지난달 말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아라비아반도 일대에 최근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왔다. 2018년 5월 인도양에서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이 발생해 아라비아반도로 올라왔는데, 당시 오만을 비롯한 사우디아라비아 일대에 폭우를 뿌리면서 ‘사막 호수’를 만든 것이다. 더운 데다 다량의 모래가 있으며 습기까지 머금은 환경이 일시적으로 조성되면서 사막 메뚜기에겐 서식을 위한 최적의 여건을 제공했다. 같은 해 10월에도 이 지역으로 사이클론이 또 올라오면서 수분을 추가 공급했다. 게다가 지난해 말 발생한 또 다른 사이클론은 강력한 바람을 일으켜 사막 메뚜기 떼를 동아프리카로 날려 보내는 선풍기 역할을 했다. 지난해에만 모두 8개의 사이클론이 인도양에서 생겨 아시아와 동아프리카에 상륙했는데 연구진은 이를 기록적으로 많은 발생 건수로 규정했다. 연구진은 지구에서 인공적으로 발생한 열의 90%는 바다로 흡수되는데 현재 인도양 서쪽이 열대 해양 중 가장 빠르게 따뜻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높은 수온은 사이클론을 만드는 ‘연료’가 된다. 기후변화가 사막 메뚜기 떼의 습격을 일으켰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정치 불안과 같은 사회적 요인도 메뚜기 떼 피해를 키우고 있다”며 “선진국들은 재정이 부족한 국가들이 자연재해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감시와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멸종한 통가의 거대 비둘기는 ‘제2의 도도'였다
대형 오리 크기로 테니스공만 한 열매 삼켜…사람 도착한 뒤 멸종
멸종한 통가의 거대 비둘기 상상도(오른쪽). 열대림 숲 지붕에 살면서 큰 열매를 삼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니엘 바이엘리 제공
남태평양의 섬들은 세계 야생 비둘기의 보고이다. 크고 작은 섬의 열대림에 50g이 안 되는 미니 비둘기부터 칠면조 크기의 거대 비둘기까지 92종이 산다.
그러나 사람이 출현하기 전 이 섬에는 훨씬 다양한 비둘기가 살았다. 최근 통가 제도에서 발견된 거대 비둘기의 뼈도 원주민 도착 이후 짧은 시일 안에 멸종한 또 다른 ‘도도’가 살았음을 보여준다. 데이비드 스테드먼 미국 플로리다 자연사박물관 학예사 등은 통가에서 발굴한 뼈를 바탕으로 새로운 속의 거대 비둘기(통고에나스 브를레이)가 이 제도에 살았다고 과학저널 ‘주택사’ 최근호에 밝혔다. 집비둘기보다 5배 큰 이 비둘기는 나무 위에 살면서 테니스공만 한 열매를 삼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열대림의 숲 지붕(수관)에 살던 이 비둘기는 망고, 과바, 멀구슬나무 등과 함께 공진화하면서 이들 나무의 씨앗을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중요한 ‘숲의 경작자’ 구실을 했을 것이다.
통가 제도의 위치. 뉴기니와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의 작은 섬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야생 비둘기가 분포하는 곳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스테드먼은 “섬의 일부 나무는 이 거대 비둘기가 삼켜 씨앗을 퍼뜨리도록 더 크고 먹음직한 쪽으로 진화했음이 분명하다”며 “열매를 먹는 비둘기 가운데 최대인 이 새는 다른 비둘기보다 큰 열매를 삼켰기 때문에 (열매와 새의 크기가 함께 커지는) 공진화가 극단으로 일어났을 것”이라고 이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뼈의 크기를 바탕으로 이 비둘기의 크기를 꼬리를 뺀 길이 약 50㎝, 무게는 집비둘기의 5배 이상으로 큰 오리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거대 비둘기는 같은 비둘기의 일종인 도도처럼 사람이 섬에 들어오자 오래지 않아 멸종했다.
통가에서 발견된 거대 비둘기의 다리뼈(오른쪽 끝). 나무 위에 사는 다른 비둘기의 다리뼈와 크기가 비교된다. 로즈 로버츠, 플로리다 박물관 제공
남태평양에 비둘기가 퍼져 다양한 종으로 분화한 것은 3000만∼4000만년 전이다. 통가에서 이 거대 비둘기는 적어도 6만년 전까지 살았다. 이곳엔 애초 원숭이 등 영장류와 개, 고양이, 족제비, 매, 올빼미 등 포식자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비둘기 종은 새 환경에 적응해 몸집을 불렸다. 멸종의 상징이 된 모리셔스 섬의 도도도 포식자 없는 환경에서 키 1m, 무게 18㎏까지 몸집을 키웠지만 1698년 네덜란드 선원에 의해 처음 알려진 뒤 반세기 만에 멸종했다
영국 옥스포드대 자연사박물관의 도도 표본. 비둘기목의 날지 못하는 새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도도가 육상 생활에 적응해 비행을 포기했지만 통가의 거대 비둘기는 숲 지붕에서 먹이를 찾으면서 비행 능력은 유지했다. 그러나 약 2850년 전 사람이 처음 이 섬에 도착한 뒤 1∼2세기 안에 통가의 거대 비둘기는 남획으로 사라졌다.
거대 비둘기의 뼈는 통가 제도의 크고 작은 섬에서 두루 발견돼 인근 피지와 사모아에도 분포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비행 능력을 보유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씨앗 전파자가 사라지면서 비둘기에 적응해 진화한 토종 나무들의 장기적 생존도 불투명해졌다.
통가 제도의 누쿠 섬. 거대 비둘기가 열매를 삼켜 씨앗을 퍼뜨리던 나무의 장기적 생존이 위태롭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우나 타카노 미국 뉴멕시코대 박사과정생은 “이 비둘기는 씨앗을 다른 섬에 나르는 중요한 생태계 서비스를 했다”며 “이제 살아남은 다른 비둘기는 나무의 큰 열매를 삼키기엔 너무 작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큰 열매를 맺는 나무는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이 도착한 직후 멸종한 대형 비둘기 사례로는 도도 이외에도 2001년 피지에서 발견된 도도보다 큰 날지 못하는 비둘기가 있다. 고기를 얻기 위해 대형 비둘기를 사냥한 사람의 영향은 통가에 처음 사람이 왔을 때 9종이던 비둘기가 현재 4종으로 줄어든 데서도 알 수 있다.
뉴기니 북서부에 서식하는 세계 최대의 열매 먹는 비둘기인 서부왕관비둘기. 몸무게가 2∼3㎏이고 깃털이 화려하다. 통가의 거대 비둘기도 숲 지붕에 살았기 때문에 이 비둘기처럼 화려한 깃털이 났을지 모른다. 구나와 카르타프라나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인용 저널: Zootaxa, DOI: 10.11646/zootaxa.4810.3.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대양 섬에는 왜 거대 새가 살게 됐나
뉴질랜드 거대 앵무새 발견 계기로 살펴본 진화와 멸종 이야기
비둘기목인 도도는 대양 섬의 거대화를 잘 보여준다. 영국 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의 도도 표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뉴질랜드에 어린애만 한 앵무새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외딴 섬나라에서는 무게 230㎏인 날개 없는 새 모아를 비롯해 14종의 거대 새 화석이 이미 발견됐다.
뉴질랜드가 예외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다른 대양 섬에서도 거대 새가 살았음이 잇달아 밝혀지고 있다. 왜 육지와 연결된 적이 없는 대양 섬에서 새들은 몸집을 키우고 비행을 포기하는 걸까
거대 새의 천국인 뉴질랜드에서 새로 발견된 거대 앵무새의 복원도. 키가 3∼4살 어린아이에 해당하는 1m에 이른다. 브라이언 추 박사, 플린더스 대 제공.
먼저, 뉴질랜드에서 새로 발견된 거대 새를 보자. 트레버 워시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대 교수 등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바이올로지 레터’ 7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뉴질랜드 남섬 세인트 배턴스 포너에서 발굴된 화석을 분석한 결과 1900만년 전 무게 7㎏, 키 1m로 추정되는 새로운 속의 거대한 앵무새가 이 지역에 살았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그는 “뉴질랜드는 거대 새로 유명해, 숲 바닥에서 모아와 거대 거위가 풀을 뜯었다면 하늘 위는 거대한 수리가 지배했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멸종한 거대 앵무새를 발견한 적은 없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뉴질랜드는 2300만년 전 바닷속에 완전히 잠겼던 마이크로 대륙의 일부여서 포유류가 없다. 새들은 이 섬 생태계의 빈 곳을 차지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사람과 4가지 종의 모아 크기 비교. 가장 큰 모아는 키 3.6m, 무게 230㎏에 이르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뉴질랜드에서 9종의 화석이 발견된 모아의 옛 조상은 날개를 버리고 몸을 키워 생태계에서 영양이나 들소와 같은 대형 초식동물의 자리를 차지했다. 가장 큰 모아 종은 키 3.6m, 무게 230㎏에 이르렀지만, 새로운 포식자인 마오리 족이 출현해 남획하자 1300∼1400년께 멸종했다. 당시 최상위 포식자는 하스트수리였다. 모아를 사냥한 이 수리는 무게 10∼15㎏에 날개폭 2.6m로 지구에 존재했던 가장 큰 수리였지만, 주요 먹이인 모아가 사라지자 자취를 감췄다.
지상 최대의 수리 하스트수리가 모아를 사냥하는 상상도. 존 메가한,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거대 비둘기 ‘도도’
조류는 현재 약 1만 종이 있을 정도로 번성한 동물이다. 그 핵심 비결은 비행 능력이다. 비행 덕분에 포식자를 재빨리 피할 수 있고, 먹이와 물을 찾아 먼 거리를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행은 큰 대가를 요구한다.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뼛속이 비어 충격에 취약하다. 무거운 이는 간편한 부리로 바뀌었고, 무거운 오줌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어 대·소변을 한꺼번에 배설한다. 무엇보다 체중의 15%를 차지하는 거대한 가슴근육을 유지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든다.
포식자인 포유류가 없는 대양 섬에서 대부분의 새가 가장 먼저 비행 능력을 잃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날 필요가 없다면 무게를 줄이기 위한 각종 제약에서 해방돼 몸집을 키울 수 있다. 몸이 커지면, 자원에 한계가 있는 섬에서 역경을 이기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기에 유리하다.
도도의 두개골 표본. 비둘기에서 진화했다고 상상하기 힘들다. 코펜하겐 과학박물관 소장 표본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섬 거대화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도도이다. 멸종의 상징이 된 이 새는 비둘기목에 속하지만, 키 1m, 무게 11∼18㎏에 이르렀다.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과 마다가스카르 동부에 적응해 거대화한 이 새는 1598년 네덜란드 선원에 의해 처음 알려진 뒤 반세기 만에 멸종했다. 벗어진 머리와 두툼한 부리가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주지만, 천적이 없는 외딴 섬 환경에 완전히 적응한 동물이었다. 해안의 건조한 숲에서 나무 열매를 먹고 작은 돌조각을 삼켜 소화를 도왔다.
신선한 고기에 주린 선원의 손에 순순히 잡힌 것은 포식자를 한 번도 겪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선원들의 남획과 벌목, 이들이 들여온 쥐, 돼지, 원숭이 등이 알을 하나만 낳던 이 거대한 비둘기를 멸종으로 몰아넣었다. 태평양 피지 섬에서도 도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날지 못하는 거대 비둘기 화석이 1998년 발견됐다.
거대 황새는 ‘호빗’을 잡아먹었나
플로레스 섬에 함께 살던 거대 황새와 호빗의 비교. I. 반 누르트비에크 제공.
대양섬의 동물이 진화하는 모습은 거대화와 왜소화 두 가지 양상을 띤다. 섬의 한정된 자원에 적응해 본토에서 크던 동물은 작아지고, 작던 동물은 커진다. 이른바 ‘섬의 규칙’이다.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섬은 두 가지 양상이 모두 나타나는 곳이다. 작아진 동물로는 피그미 코끼리와 멸종한 사람 속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일명 호빗이 있다. 반대로 거대화의 길을 걸은 동물에는 세계 최대 도마뱀인 코모도왕도마뱀, 거대 쥐, 그리고 거대 황새가 있다. 2004년 호빗의 발견으로 유명해진 이 섬의 리앙부아 동굴에서는 이들 독특한 동물들의 화석이 발굴되고 있다.
사람 속의 고생인류 호빗과 함께 거대 황새 등 다양한 화석이 발굴되고 있는 플로레스 섬의 리앙부아 동굴의 모습. 로시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하네케 메이어 네덜란드 고생물학자 등은 2010년 ‘동물학 저널’에 이 동굴에서 발견한 새의 골격을 연구한 결과 현생 아프리카대머리황새와 닮은, 그러나 이보다 훨씬 큰 황새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황새는 키가 1.8m로 성인 키가 1.1m에 불과한 호빗보다 훨씬 컸다. 이 거대 새는 과연 사람의 가까운 친척을 먹잇감으로 삼았을까.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본토에서 청소동물인 아프리카대머리황새는 사자, 하이에나와 같은 육식 포유류와 먹이를 놓고 경쟁하지만 섬에서는 경쟁자가 없고 중·대형 쥐와 어린 코모도왕도마뱀 등 먹이가 풍부하다”며 황새가 비행 능력을 잃고 거대화한 이유를 설명했다.
리앙부아 동굴에서 호빗과 거대 황새의 골격은 같은 층에서 발견됐다. 동시대에 살았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린 호빗은 대형 쥐나 왕도마뱀보다 크지도 않다. 호빗이 거대 황새의 먹잇감이 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메이어 박사는 “추정일 뿐 직접 증거는 없다”며 “그러나 그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다”고 ‘비비시’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와이 염소는 거대 오리
하와이 거대 오리의 상상도. 부리가 잎사귀를 뜯기에 적합하도록 적응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하와이에서는 거대 오리가 염소나 사슴 구실을 했음이 밝혀졌다. 데이비드 버니 미국 포드햄대 생물학자는 1997년 ‘린네학회 생물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마우이 섬 동굴 퇴적물의 배설물 화석을 분석한 결과 멸종한 하와이의 날지 못하는 오리 5종이 이 섬의 주요한 초식동물로 주로 양치식물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거대 오리들은 무게가 4∼7.5㎏에 이르렀으며 잎을 뜯어먹기 편리하도록 부리가 거북 주둥이처럼 바뀌거나 부리에 톱니가 달린 형태로 진화하기도 했다. 마이클 소렌슨 미국 스미스소니언 연구소 연구원 등은 2015년 과학저널 ‘왕립학회보’에 실린 논문에서 거대 오리들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거위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이들이 고대 오리 계통에서 진화했으며, 애초 날 수 있는 상태로 고대 하와이제도에 왔다가 날개를 잃었기 때문에 가장 나중에 생긴 하와이 본섬으로는 이동하지 못해 서식 흔적이 없다고 밝혔다.
거대 오리가 뜯어먹지 못하도록 가시가 돋아나는 쪽으로 적응한 하와이 고유식물 키아니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들 거대 오리가 초식동물 구실을 한 생태적 영향은 현재도 남아 있다. 하와이 고유식물인 키아니아가 어릴 때 가시가 돋는 이유는 이 오리로부터 먹히지 않도록 하는 방비 수단으로 추정된다. 보통 대양 섬의 식물은 초식동물이 없어 가시 등 기존의 방어수단도 잃는 것과 대조적이다. 하와이의 거대 오리는 캡틴 쿡이 1778년 이 섬에 처음 왔을 때 이미 사라져, 원주민이 거주하면서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뉴칼레도니아에서는 닭과 비슷한 실비오르니스 속의 키 1.7m 무게 30㎏인 거대 새가 발견됐고, 쿠바에서는 키 1.1m 무게 9㎏의 지금껏 지상에 존재한 가장 큰 날지 않는 올빼미가 살았던 것으로 밝혀지는 등 거대 새의 발견이 이어지고 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Worthy TH, Hand SJ, Archer M, Scofield RP, De Pietri VL. 2019 Evidence for a giant parrot from the Early Miocene of New
Zealand. Biol. Lett. 15: 20190467. http://dx.doi.org/10.1098/rsbl.2019.046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19.8.8
에버랜드 자이언트 판다 부부, 2세 낳다
세계 희귀 동물 '판다' 국내 첫 자연번식 성공
비밀주의에 피폭당한 고준위핵폐기물 정책
재검토위 공전 속 울산 주민 95% 반대 불구 주민 배제 ‘강행’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 탈핵자연에너지팀 소속 수도자들이 경북 경주시 양남면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핵쓰레기장 추가 건설을 반대하는 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정부가 ‘사용후핵연료’라 부르는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 결정을 앞두고 핵발전소 주변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커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해 논의를 시작했지만, 지역주민을 배제한 비민주적 구성과 운영 끝에 일방적인 권고안을 내놓고 활동을 종료했다.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국정과제 60번’에 올려 재공론화를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켰다. 하지만 1년 넘게 재검토위를 이끌었던 정정화 위원장도 2020년 6월26일 “이번 재공론화가 숙의성·대표성·공정성·수용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으며, 박근혜 정부에 이어 두 번째 공론화도 실패했다”고 선언한 뒤 중도 사퇴했다.
잘못된 재공론화에 대한 진단과 반성·사과를 해야 할 산업통상자원부는 위원장 사퇴 닷새 만에 화상 임시회의를 열어 새로운 위원장을 선출했다. 또 전국공론화와 지역공론화를 동시에 추진한다. 전국공론화에 참가한 시민참여단 501명은 수십 명씩 나뉘어 토론한다. 이들은 공론화를 한다면서도 참여자들에게서 비밀을 준수하겠다는 ‘윤리·보안 서약서’를 받았다. 반대 집회를 원천 봉쇄하려는 듯 토론회 일정과 장소도 여러 차례 바꾸고 화상회의 형식으로 진행한다. ‘비밀주의’ ‘게릴라식’ 등을 고집하면서 토론회는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공론화 과정에는 월성핵발전소에서 7㎞ 거리에 있는 울산 주민들이 배제됐다. 울산 북구에서 시민사회가 주관한 주민투표에 5만 명 이상 참여해,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맥스터) 건설에 94.8%가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외면당했다. 7월18일 경북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기로 했던 지역공론화 150명 시민참여단 토론회도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화상회의로 바꿔 진행했다. 이를 위해 산업부는 시민참여단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노트북을 설치하기까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를 치르면서 “이윤보다는 생명” “나라다운 나라”를 말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제대로 된 공론화’가 이런 방식이었는지 지역주민들은 묻는다. 산업부가 대통령의 뜻을 잘 수행하고 있는지도 묻는다. 미래 세대를 위한 ‘10만 년의 책임’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답하고 결단하기를 기대한다.
울산북구주민투표관리위원회가 6월5~6일 이틀간 실시한 투표 결과를 집계하고 있다. 5만479명이 투표해 4만7829명이 맥스터 증설에 반대 했다.
경주시 양남면 청년회장이던 한 주민이 시민참여단이 서명해야 하는 ‘윤리·보안 서약서’를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21 경주·울산=사진·글 장영식 사진가
“수돗물 신뢰 회복하려면 수도정책 패러다임 바꿔야”
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장
인천 서구를 시작으로 전국 7개 수돗물 정수장에서 유충이 나왔다. 1908년 국내에 상수도가 보급된 이후 초유의 사건이다. 백명수 시민환경연구소장은 “지난해 적수(붉은 수돗물) 사태의 교훈은 어디 갔나?”라고 묻는다. 백 소장은 ‘수돗물 박사’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연구자이자 활동가다. 수돗물시민네트워크에서 정책위원장도 맡고 있다. “적수 사태 이후 인천시가 혁신안을 발표하고 굉장히 많은 예산을 투자했어요. 유충 사건은 그것이 내실 없는 보여주기식 대책이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아무리 좋은 시설을 들여도 현장에서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는 붉은 수돗물 사태 이후인 지난해 8월 인천 서구 공촌정수장에 고도정수처리시설을 설치했다. 예산 390억원을 들였다. 하지만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시설인 ‘활성탄 여과지’에 날벌레인 깔따구가 알을 낳는데도 까맣게 몰랐다. 유충 및 붉은 수돗물 사태는 직접적 원인이 다르지만 모두 ‘관리체계 부실’로 발생했다. 백 소장은 “수도사업의 최종 책임은 지자체장에게 있다. 인천시장이 중점적으로 관리·점검했어야 한다”며 “고도정수처리시설 확대를 추진하면서도 정확한 매뉴얼을 내리지 않은 환경부도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고 말했다.
생태학을 전공한 백 소장은 1998년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0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의 전문연구기관인 시민환경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수돗물과 인연을 맺은 건 2000년대 초 농어촌 상수도 문제가 터지면서다. 1970~198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설치된 마을상수도는 정수장치 없이 원수를 물탱크에서 소독만 한 채 식수로 공급하고 있었다. 농경지와 축사 인근이라 수질오염은 심각했다. 4대강 사업 이후에는 상수원 수질 문제가 떠올랐다. 생수를 사먹는 이들이 늘면서 플라스틱은 쌓여갔다. 2014년 시민사회가 수돗물시민네트워크를 출범했다. 마음 놓고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사회를 위해서다. 중요한 건 ‘시민의 관점’이다.
“전문가들은 과학적 사실에 기반을 둬 위험하다, 아니다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시민 인식은 과학적이면서 사회적이에요. 전문가들이 수돗물을 테스트한 뒤 안전하니 마셔도 된다고 해도 시민은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시민 눈높이에 맞춰 소통해야죠.”
수돗물을 마셔도 건강에 해롭지 않다. 법으로 정한 먹는 수질 기준에 맞게 공급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는 비율은 5%에 불과하다. 백 소장은 수돗물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수도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잊을 만하면 사건·사고가 터지고, 이후에도 소통으로 오해를 풀고 신뢰를 얻는 과정이 없었어요. 지금까지는 경제개발·도시화 때문에 ‘공급’ 위주 정책을 펴왔다면 이제는 시민에게 밀착해 소통 정책을 확대해야 합니다.”
정부나 지자체 내에서 수도사업의 중요도가 낮고,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매번 되풀이되고 있다. 백 소장은 “수도사업을 담당하는 전담기구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돗물을 잘 관리하고,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는 책임성 강한 주체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아마존의 보물 비단풀, 마당에도 있었네
야생초 지혜: 비단풀
그 약초를 만난 건 전혀 뜻밖이었다. 나는 그날 원주의 깊은 골짜기에 있는 고산호수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평소에도 물을 좋아해 이따금 찾아가던 호수. 그냥 호숫가에 퍼질러 앉아 잔잔한 물 위로 날아다니는 두루미들을 보고, 시간을 엿가락처럼 줄였다 늘였다 하는 뻐꾸기 소리를 듣기만 해도 온갖 마음의 시름을 덜어낼 수 있는 곳. 낚싯대도 챙겨 갔지만 몇 마리 잡은 물고기마저 그냥 놓아주고 오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가에는 농가들이 드문드문한 송곡이란 마을이 있는데, 나는 그 마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마을 앞 길목에는 내가 흠모하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피체비(被逮碑)가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밥 한 그릇에 무한한 감사를 느꼈던 해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하는 바닥 인생들조차 하느님으로 공경하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일생을 살아 온 해월은 바로 이곳 송곡 마을에서 은거하던 중 체포되었던 것이다. 이 피체비는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살아계실 때 손수 글을 써서 세운 것인데, 나는 피체비에 새겨진 해월의 글귀를 매우 좋아한다.
“천지는 부모요, 부모는 천지니, 천지부모는 한 몸이라.”
무위당의 힘찬 글씨를 가슴에 새기며 돌아서는데, 동행한 아내가 갑자기 소리쳤다.
“저길 좀 봐요. 우리가 찾던 풀이 쫙 깔렸네요.”
아내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개울 옆 둔덕에 비단풀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우리는 비단풀을 두고 걸음을 뗄 수 없었다. 비단풀의 본디 이름은 ‘애기땅빈대’. 땅 위를 빈대처럼 기어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 이 풀이 비단풀이란 이름을 갖게 된 건 땅을 비단처럼 곱게 덮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귀화식물로 우리나라 들이나 길가에서도 많이 자라는데, 윤기가 흐르는 푸른 잎에 붉은빛이 감도는 갈색 반점이 찍혀 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날씨지만 우리는 비단풀을 뜯기 시작했다. 이런 군락지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비단풀을 뜯던 아내가 줄기에서 나오는 흰 즙을 꾹 짜서 보여주며 말했다.
”이 즙 색깔이 꼭 젖 같아 보이지 않아요?“
“오호, 그렇네. 이 젖 같은 성분이 사포닌이라죠?”
“맞아요. 산삼이나 더덕, 도라지에도 많이 포함된 성분이죠.”
나는 아내가 비단풀의 줄기에서 나오는 흰 즙을 보고 젖 같다는 말에 문득 평생을 애기땅빈대처럼 삶의 바닥을 치며 살았던 해월 선생이 말한 그 유명한 젖 얘기가 떠올랐다. 나중에 ‘밥 사상’으로 불린 대목이다.
“젖은 사람 몸에서 나오는 곡식이요, 곡식은 천지에서 나는 젖이라네. 그러니 사람이 어려서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도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이고, 자라서 곡식을 먹는 것 또한 천지의 젖을 먹는 것일세. 그래서 밥 한 그릇의 이치를 알면 만사를 아는 것이라네.”
우리는 젖 같은 생명의 즙을 지닌 비단풀을, ‘조선의 위대한 혼’ 해월에 대한 아픔의 기억이 서린 마을 앞에서 채취한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약으로 쓸 만큼만 비단풀을 뜯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 풀은 그리 흔하진 않지만 우리나라 전역에 돋아나는 풀이다. 우리 집 마당에도 자라는 이 비단풀은 봄풀이 다 스러진 뒤 돋아나기 시작하는 여름풀. 뜯어먹을 만큼 양이 많진 않지만, 나는 자주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이 소중한 풀의 생태와 습성을 관찰하곤 했다. 꽃 핀 모습을 보면 꽃이 작아도 너무 작다. 저 작디작은 꽃은 무엇이 수정해주려나. 나비나 벌들이 할까.
어느 날 가만히 엎드려 꽃을 들여다보는 내 눈앞에 꼬물꼬물 나타난 잔 개미들. 아, 바로 너희구나.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비단풀 꽃의 환한 미소가 개미 형제들을 꼬득인 것일까. 옆으로 옆으로 줄기를 뻗어 자라는 폭신폭신한 비단풀을 밟고 다니며 작디작은 붉은 꽃에 붙어 꿀을 빠는 잔 개미들. 그걸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 돋보기까지 동원했는데, 그때 나는 보았다. 비단풀이 꿀을 내줄 때 개미는 꿀을 얻는 대신 수정을 해주며 서로 공생하는 아름다운 몸짓들을. 쬐끄만 것들이 쬐끄만 것들과 어울려 땅별을 살리고 땅별의 착취자인 인간들마저 외면하지 않고 사랑으로 보듬는다는 것을. 그렇다. 만일 조물주께서 비단풀과 개미의 아름다운 공생을 보고 계신다면 “기쁘게 입 맞추고 포옹하기 위해 연인으로 가장한 채”(숀 맥도나휴) 이 피조물들에게 다가서시지 않았을까.
이름은 비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천덕꾸러기 잡초 취급을 당하는 비단풀. 일찍이 이 하찮은 풀이 뛰어난 암 치료제라는 소문을 들은 한 약초학자는 이 풀을 구하기 위해 아마존 정글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숱한 고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아마존에 도착한 그는 약초에 대한 지식이 많은 인디오 주술사의 안내를 받아 그 신비의 약초를 구할 수 있었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는 많은 양의 그 풀을 말려 비행기 화물로 싣고 한국 땅으로 돌아왔다.
며칠 후 그는 자기가 살던 집 앞 공터에 무심코 나갔다가 비단풀이 공터 여기저기에 돋아나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가 공터에서 본 풀은 아마존 정글에 가서 죽을 고생을 해서 가져온 약초와 꼭 같이 생긴 풀이었다. 푸른 잎의 모양도 같았고, 잎 가운데 갈색 점이 있는 것도 같았고, 줄기를 끊으면 흰 즙이 나오는 것도 같았으며, 쓴맛이 나는 것도 꼭 같았다. 그 약초는 아마존 정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흔하게 자라는 잡초였던 것. 신비의 영약을 발밑에 두고 그는 그 머나먼 지구 반대편까지 가서 찾아 헤매고 다녔던 것이다. 인도의 시인 까비르는 사람이 자기 존재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머나먼 곳을 헤매다니는 인간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사향노루에 빗대어 노래했다.
사향은 사향노루 속에 있지만,
사향노루는 그것을 찾을 수 없네.
그래서 그것을 찾아 초원을 헤매다닌다네.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배꼽 부근에 있는 향낭에서 풍기는 향이다. 이 향으로 암컷을 유인하는데, 사향노루는 그 향이 제 몸에 있음을 모르고 초원을 헤매다닌다는 것. 지구 반대편 아마존 정글을 헤매다녔던 약초학자 역시 약초는 늘 자기가 사는 곳에 있건만 눈이 어두워 보지 못했다며 ‘눈뜬 장님이었다’고 고백한다.(최진규)
약초학자는 이처럼 겸허한 고백을 하지만, 그의 지극한 열정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환자들의 아픔을 자기 몸의 아픔처럼 여기지 않았다면 그런 무모한 모험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자기가 겪어보기 전에는 불치에 가까운 질병으로 괴로워하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 어렵다.
비단풀은 애기땅빈대라는 이름처럼 바닥을 기어다니는 식물이지만, 그 약성은 어떤 다른 식물보다도 뛰어나다. 비단풀은 항암작용이 가장 뛰어난 식물 가운데 하나로, 특히 뇌종양, 골수암, 위암 등에 효과가 크다. 암세포만을 골라서 죽이거나 억제하고 암으로 인한 여러 가지 증상을 없애며 새살이 빨리 돋아나게 하고 기력을 늘린다고 한다. 비단풀은 플라보노이드와 사포닌이 들어 있어, 치매 예방 및 감기 예방에도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 지금초(地錦草)라 불리는 이 풀의 놀라운 효능은 세간에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걸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모르는 이들이 많다. 비단풀은 일단 여름이나 가을에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린다. 비단풀은 아주 가늘고 부드러워서 많은 양을 채취하여 말려도 얼마 되지 않는다. 잘 마른 비단풀은 서늘한 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달여서 먹는다. 비단풀은 맛이 맵고 쓴데 대추를 넣고 달여서 먹으면 매운맛과 쓴맛을 완화시킬 수 있다.
며칠 전이었다. 저녁 무렵 아내가 특별한 죽을 끓였다며 식사를 하자고 했다. 평소 엉뚱한 요리 실험을 많이 하는 아내의 식사 초대를 궁금해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엔 허여멀건 죽 두 사발이 놓여 있었다.
”무슨 죽인데 특별한 죽이라 하는 거요“”
“알아맞춰 보세요.”
멀건 빛깔의 죽 속에 거친 식물 줄기가 보이는데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아내가 입을 뗐다.
“항암죽이에요.”
그제야 나는 알 듯싶었다. 해월의 피체비가 있는 곳에서 뜯어온 비단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하하… 비단풀항암죽이로군요!”
숟가락으로 떠먹어보니, 약간 쌉싸름하고 매운맛이 나는 데 먹을 만했다. 죽에 넣은 대추의 단맛이 쓴맛과 매운맛을 잡고 맛의 균형을 맞춰준 것 같았다. 나는 혀에 미뢰(味蕾)가 발달하지 않아 미감이 다른 사람보다 떨어지는데, 맛의 감각은 학습되는 것인지 아내가 끓여낸 비단풀항암죽에 거부감이 없었다.
죽 한 그릇을 비웠을 뿐인데 포만감이 밀려왔다. 약성이 뛰어난 신비로운 비단풀이 들어 있는 죽이기 때문이리. 어떤 식물학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 내면의 빈자리, 식물만이 채워줄 수 있는 빈자리를 비단풀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리. 우리는 이 빈자리를 채우지 않으면 반쪽짜리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비단풀을 뜯으면서도 연실 ‘고마워’, ‘미안해’라고 중얼거렸지만, 우리는 다 먹고 난 빈 죽그릇을 앞에 두고도 감사의 비나리를 바쳤다. ‘그대가 있어 내가 있다’는 인도의 속담처럼 땅별의 동반자인 그대가 없으면 인간이 치유될 수도, 부족한 부분을 채워 온전해질 수도,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도 없으므로!/ 글 고진하 목사시인/ 한겨레
한국 기후변화 보고서 2020…한반도, 이젠 핫반도
온실가스 배출 지금처럼 지속 땐
폭염일수 3배 ‘취약층 사망’ 증가
여름엔 홍수·겨울엔 가뭄 ‘심화’
사과 재배 적합지 거의 사라질 듯
CO2·메탄 농도 지구 평균 상회
현재 연간 10.1일인 폭염일수가 35.5일로 3배 이상 늘어난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노인과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의 사망이 증가한다. 기온 상승으로 인한 동물 매개 감염병이 더 자주 발생한다. 해수온도와 해수면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 집중 호우로 인한 홍수 위험이 늘어나지만, 동시에 가뭄 피해도 심화된다. 벼의 생산성이 25% 줄어든다. 사과를 재배하기 적합한 조건의 땅은 거의 사라진다.
이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처럼 지속될 경우, 21세기 중반 이후부터 한국이 겪게 될 상황이다. 환경부와 기상청은 28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발간했다. 2014년 이후 6년 만에 발간된 이번 보고서는 연구진 120명이 최근 6년간 발표한 1900여편의 국내외 논문과 보고서를 분석해 한국의 기후변화 상황과 향후 전망을 정리한 것이다.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기후변화 상황은 이미 좋지 않다. 한국의 기온은 전 지구 평균보다 높아지고 있다. 전 지구 평균 지표온도가 1880~2012년 동안 0.85도 높아진 반면, 한국은 1912~2017년에 약 1.8도 상승했다. 보고서는 “전 지구 평균에 비해 한국이 더 높은 기온 증가율을 보이는 것은 명확”하다며 “기온 상승 추세가 최근 강해지는 특성이 나타난다”고 밝혔다. 지금 같은 추세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면 한국의 연평균 기온은 21세기 말 최대 4.7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엔 봄철 이상고온도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5월 평균 기온은 2014~2017년 매해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연평균 강수량은 늘고 있는데, 여름철에 특히 집중되면서 오히려 봄과 겨울에는 가뭄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도 돌발 호우 등으로 인한 홍수 위험성은 높아지고, 가뭄의 빈도가 늘어나는 다소 모순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는 전 지구 평균 농도보다 각각 5~8ppm, 100ppb 높고, 이에 따른 복사강제력(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힘)도 전 지구 평균보다 다소 높게 나타났다.
이번 평가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금보다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 폭염일수다. 보고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지금 같은 추세로 지속될 경우, 현재 연간 10.1일인 폭염일수가 21세기 후반 35.5일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여름에 33도 이상인 날이 한 달 이상 지속되는 것이다.
폭염일수의 증가는 건강 피해로 이어진다.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사망 위험은 5% 증가한다. 보고서는 미래 폭염으로 인한 하절기 사망률이 2011년 인구 10만명당 100.6명에서 2040년 230.4명으로 약 2배 증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건강 피해는 고령층과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보고서는 “여성과 65세 이상 노인, 교육수준이 낮은 인구 집단, 심뇌혈관이나 호흡기계 질환 등 만성질환자가 폭염 위험에 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생태계도 바뀐다. 벚꽃의 개화시기는 2090년에 지금보다 11.2일 빨라진다. 소나무의 고사율은 겨울철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1.01% 높아져서, 2080년대에는 소나무숲이 현재보다 15% 줄어든다. 벼 생산성은 21세기 말 25% 이상 줄고, 사과의 재배 적지는 없어진다. 반면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감귤은 강원도에서도 재배가 가능해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산업 부문의 피해도 클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에너지 소비가 많은 경제구조인 한국은 기후재난이 일어났을 때 재산상 피해가 심각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산림청, 선별진료소 운영 인력에게 ‘숲 치유’ 제공
보건복지부와 산림청은 현재 양 부처 간 협력으로 추진 중인 코로나19 대응 ‘숲 치유’의 지원 대상과 기간을 확대한다. 사진은 산림속에서 숲 치유를 하는 모습. 산림청 제공
보건복지부와 산림청은 현재 양 부처 간 협력으로 추진 중인 코로나19 대응 ‘숲 치유’의 지원 대상과 기간을 확대한다고 28일 밝혔다. 산림청은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감염병 전담병원 소속 의료진 및 가족 2600여명에게 산림치유를 제공하는 ‘코로나19 대응 숲 치유’를 추진해왔다.
이번에 추가되는 지원대상은 선별진료소 대응 인력이며 운영 기간도 기존 8월까지에서 9월까지로 한 달 연장됐다. 지원 규모도 약 3100명이 추가된 570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와 같은 조치는 하반기 재유행을 대비하기 위해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대응 인력에게 휴식과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산림청은 국립산림교육치유시설 13개소를 활용해 기존 감염병 전담병원 소속 의료진에 더해 선별진료소 대응인력에게도 숲 치유를 지원할 준비를 마쳤다.
이번 숲 치유 참여자는 산림치유 공간에서 가족과 함께 당일 또는 숙박형(1박 2일 또는 2박 3일)으로 휴식 위주의 산림치유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하게 된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피톤치드 등 숲 속 치유 인자를 활용한 복식호흡이나 해먹 명상과 같이 심신피로를 회복하기 위한 숲속 활동에 참여하며 심리안정 교육도 진행된다.
숲 치유 참여를 희망하는 선별진료소 또는 감염병 전담병원은 한국산림복지진흥원을 통해 유선 예약 후 안내에 따라 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박종호 산림청장은 “국민의 힘으로 녹화에 성공한 우리 산림을 통해 선별진료소와 병원에서 힘써주신 대응 인력 여러분이 가족과 함께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가덕신공항 무산되면 선거·세금 등 정책 불복종”
가덕신공항유치국민행동본부 등 시민단체들이 지난 11일 국회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kimjh@
정부가 김해신공항을 동남권 관문공항으로 결정한다면, 부산·울산·경남 시민사회단체들은 투표에 참여하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는 ‘정책 불복종운동’을 펼치기로 했다. 동남권 관문공항추진 부·울·경 범시민운동본부, 가덕신공항유치 거제시민운동본부, 김해신공항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등 부·울·경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30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들 단체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28일 발표한 성명서에서 “정부는 800만 부·울·경 지역민들을 그만 농락하고 가덕신공항 추진운동을 펼친 지 20년이 지난, 이제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면서 “억지 논리, 모순에 빠진 국토교통부의 김해신공항 집착을 즉각 멈추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부울경 범시민운동본부 30일 기자회견
국가 손해배상 청구·국토부 고발 검토
또 성명서에서 “가덕신공항이 조속 결정되지 않는다면, 행정의 억지 논리로 부·울·경 800만 지역민이 정신적 고통·물질적 손해 등을 겪고 있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는 물론 국토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고발할 예정이다. 특히 검증 지연 등 국무총리실의 무능을 규탄하고 정권퇴진 운동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은 “만에 하나 검증과정에서 국토부의 엉터리 주장이 관철돼 김해신공항 기본계획이 고시된다면 불법으로 인한 무효 소송과 국토부 책임자에 대한 형사고발및 소음피해 지역주민들의 생존권 확보 차원의 저항은 물론 동남권 전체 주민들의 선거, 세금 등 정책 불복종운동의 거센 저항과 같은 엄청난 후폭풍이 따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 단체는 또 “총리실 검증결과의 발표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김해신공항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안전성, 환경 파괴, 소음 등은 제쳐 두고라도 심야운행 불가, 짧은 활주로, 용량의 추가확장 불가라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만으로도 동남권 관문공항으로서의 요건을 결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인호 동남권 관문공항추진 부·울·경범시민운동본부 공동 의장은 “총리실 검증위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한 ‘인천공항 재난 시 대체가능한 관문공항’이라는 기준을 토대로 김해신공항이 이 같은 요건에 부합되는지 여부를 조속한 시일 내에 판정해야 한다”면서 “총리실을 비롯한 정부 관련 부처에서는 검증결과를 토대로 신속하게 동남권 지역민들이 염원하는 가덕신공항을 지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
잘라도 금새 자란 메타세쿼이아…“나무 바꾸자” 민원 빗발
연산교차로 교통섬 14그루, 간판 안 보여 가지치기했으나 몇달 새 또 건물 5층까지 가려
- 시 “교체 어려워… 관리 강화”
부산지역 교통 중심지인 연제구 연산교차로에 심어진 메타세쿼이아가 또다시 훌쩍 자라면서 민원을 유발한다. 상가 입주자들은 행정력 낭비를 막고자 가로수의 전면 교체를 요구하지만 부산시는 가지치기로 민원을 해소하겠다고 맞선다
28일 부산 연제구 연산교차로에 있는 메타세쿼이아가 상가 5층 높이까지 울창하게 자라난 모습. 이원준 프리랜서
28일 연산교차로 부산교대 방면 좌측과 우측 교통섬에 각각 심어진 6, 8그루의 메타세쿼이아 잎이 풍성하게 자라 뒤편에 위치한 건물의 4, 5층까지 가렸다. 지난겨울 가로수가 간판을 가린다는 민원(국제신문 지난 1월 3일 자 12면 보도) 탓에 이를 관리하는 시가 가지치기를 진행했지만, 여름철 또 잎이 무성하게 자랐다.
상가 입주자들은 매번 가지치기하면서 행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아예 다른 나무로 교체할 것을 요구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는 “초행길에 이곳으로 진료를 보러 오시는 분들이 병원을 못 찾고 다른 병원으로 가거나 아예 돌아가시기도 한다”면서 “매출은 둘째 문제다. 심장 관련 질환이 있는 환자인 경우 제때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가로수 탓에 병원을 못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시는 나무 교체가 사실상 힘들어 연산교차로 일대 가로수 가지치기를 강화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시 관계자는 “민원이 자주 제기되지만 가지치기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나무 자체를 자르거나 교체하기는 힘들다. 인근 상가 입주자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지속해서 가로수를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에 따르면 이 나무는 2008년과 2009년 교통섬 조성을 위한 현상 공모 사업으로 조성됐다. 연제구가 2017년까지 관리했고 시가 중앙대로 등 주요 도로의 가로수를 맡기로 하면서 현재 시 산하 푸른도시가꾸기사업소가 관리한다.
메타세쿼이아는 최대 높이 35m, 지름 2m까지 자라며 주로 공원수로 식재된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11년간 침수된 곳 또 침수…알고도 대비 안했
국제신문, 부산 데이터 분석
동래·금정·연제 저지대와 해안·강 주변 잦은 물난리
피해 지역 예측가능한데도 대응시스템 부재로 화 키워
태풍과 집중호우 때마다 속출하는 부산지역 침수 피해가 지난 10여 년간 일부 구역에서 계속 반복돼 온 사실이 확인됐다. 금정산 아래 주택가, 해안 매립지, 하천과 바다가 합류하는 지점 등이 그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시간당 90㎜가 넘는 폭우 때는 동래·금정·연제구 일원 저지대를 중심으로 부산 시가지 대부분이 침수 피해를 보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형급 이상 태풍이 불면 시간당 20~30㎜ 비에도 해안가는 물바다로 변했다. 기상·토목 분야 전문가들은 게릴라성 폭우의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는 만큼 위기관리 매뉴얼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신문은 2009~2019년 11년간 부산에서 침수 사고(침수 깊이 0.3m 이상)가 일어난 구역을 전수 조사해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분석했다. 한국국토정보공사가 제공하는 ‘침수 흔적 정보’ 공공데이터를 활용했다.
분석 결과 지난 11년간 부산에서 침수 피해를 본 구역은 모두 145곳이었다. 이 구역들은 대부분 태풍이나 폭우가 들이닥칠 때마다 반복적인 피해를 봤다. 연제구 거제·연산동 일원은 2009년 7월 국지성 호우와 2017년 9월 폭우 때 하수가 넘치거나 빗물이 단시간에 저지대로 유입돼 최고 1m 깊이로 물에 잠겼다. 수영구 광안·민락·망미·수영·남천동 일원 역시 2009·2014·2016·2017년 잇따라 물난리를 겪었다.
동래구 온천·명륜·사직·안락동과 북구 화명·덕천·구포동 등 온천천과 낙동강 주변 저지대는 2014년 8월 기록적 폭우 때 광범위한 피해를 봤다. 2016년 10월 태풍 ‘차바’ 내습 때를 비롯해 강한 바람과 함께 시간당 30㎜ 안팎의 비만 내려도 해운대·수영·서구 일원 바닷가 주민은 공포에 떨어야 했다.
이처럼 침수 피해 구역을 재해 유형에 따라 충분히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지만, 부산시가 제대로 된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매번 화를 키운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3일 동구 초량1지하차도에서 시민 3명이 물에 잠겨 목숨을 잃은 사고가 대표적이다.
박수완 부산대 건설융합학부(토목공학 전공) 교수는 “온천천 일원 저지대처럼 침수가 넓게 이뤄지는 곳은 도시계획과 맞물려 정비하는 식으로 재난 대응 시스템을 빠르게 개선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우수관 준설에 신경 쓰는 등 평소 관리 주체가 경각심만 가져도 인재를 상당 부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 권혁범 신심범 기자
천만그루 정원도시 전주…시민이 가꾸는 정원문화 유도
금상을 받은 꿈꾸는 마당.
천만그루 정원도시를 만드는 전북 전주시가 시민 스스로 정원을 만들어 아름답게 가꾸는 정원문화 확산을 추진하고있다.
전주시와 천만그루정원도시추진위원회는 생활 속 정원문화 확산을 위해 올해 처음으로 실시한 ‘2020년 아름다운 정원 공모전’에서 최고상에 해당하는 금상을 이종숙(용복동)씨의 ‘꿈꾸는 마당’(개인정원)과 전연숙(효자동)씨의 ‘엄마의 정원’(카페정원)이 받는 등 9개 정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전주시가 추진하는 천만그루 정원도시 사업계획의 하나로 지난 4~5월 진행했으며, 모두 22점이 응모했다.
꿈꾸는 마당은 자연스럽게 섞여서 핀 꽃과 나무가 어우러져 정겹고 소박하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지형에 따른 선과 균형, 강조, 변화 등이 골고루 고려된 정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종숙씨는 식물과 상생하는 공간을 가꾸겠다는 일념으로 터를 매입해 14년간 정원을 가꿨다고 한다. 이씨는 “정원 대신 농사를 짓거나 건물을 세웠다면 이렇게 상을 받을 수 있었겠느냐. 제가 가꾼 정원을 보고 행복감을 느낀 시민들이 동네와 정원을 가꾸기 시작하면 전주가 더 아름답고 푸른 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상을 받은 엄마의 정원.
금상을 받은 엄마의 정원은 물이 있는 친수공간이 있고, 일반 정원에서 잘 활용하지 않는 사초류(갈대와 비슷한 종류)가 다양하게 심어져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은상은 △진북동 ‘세런디피티’(‘우연한 행운’이라는 뜻·학원정원) △중화산2동 ‘일일우일신 햇빛찬 꽃피아’(아파트공동체 정원)가 차지했다. 동상은 △원당동 ‘행복을 주는 공간’(개인정원)이 수상했다. 장려상에는 △산정동 ‘철길 옆 푸른정원’(개인정원) △산정동 ‘달빛 든 솔’(카페정원) △송천1동 ‘백만송이 꽃밭정원’(공동체정원) △평화2동 ‘도시에 자연을 입히다’(카페정원) 등이 차지했다.
은상을 받은 세런디피티(우연한 행운).
새로운 아름다운 정원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힌 시는 앞으로 공모전 선정작을 중심으로 시민대상 정원산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정원을 조성한 경험을 시민들과 공유하는 시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성례 천만그루정원도시추진위 사무국장은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체가 아직 정원의 시작단계여서 올해에는 부문별로 나누지 못했다. 내년에는 부문도 나누고 상이름도 바꿔보는 등 공모전을 새롭게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시는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위해 천만그루 정원도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까지 전주시 곳곳에 천만그루의 꽃과 나무를 심어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미세먼지나 열섬현상을 줄이는 목적도 있지만, 시민들이 꽃과 나무를 통해 치유를 받기 위한 것으로 정원조성, 정원문화, 정원산업 등 3가지 분야로 접근하고 있다.
은상을 받은 일일우일신(매일 새로와짐).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사진 수상자 제공
안산, 세계정원경기가든 예정 부지 외래 식물 번식...대책마련 시급
26일 안산시 상록구 갈대습지 인근 '세계정원경기가든' 부지에 외래종 식물인 단풍잎돼지풀 그리고 덩굴식물인 한삼덩굴 등이 2~3m 가량 높이로 군락을 이뤄 토종 식물들의 생육을 위협하고 있다. 환경단에 관계자는 "단풍잎돼지풀의 개화는 7~9월로 씨앗이 습지공원 등 주변으로 이동이 우려된다"며 지금이 제거의 적기라고 강조했다. 윤원규기자
"번식력이 강한 외래종 식물로 우리 토종 식물이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합니다”
26일 오전 10시께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해안로에 조성된 갈대습지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세계정원경기가든’ 부지. 49만㎡ 부지 곳곳에 외래종 식물인 단풍잎돼지풀과 돼지풀, 덩굴식물인 한삼덩굴 등이 가장 자리를 중심으로 빽빽히 자리를 잡은 채 토종 식물들의 생육을 위협하고 있었다.
경기도 소유인 정원 부지는 지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수원, 안양, 과천 등 수도권 8개 지자체에서 발생하는 생활쓰레기를 매립한 뒤 2016년 1월 20여년 동안 진행된 환경안정화 작업이 마무리됨에 따라 부지 활용방안을 검토해 왔다. 이에 도는 생활 속 정원문화와 시민들에게 체험공간 등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직접 조성ㆍ관리하는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정원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 부지 가장자리를 중심으로 북아메리카산 한해살이 외래종 식물인 단풍잎돼지풀과 돼지풀이 등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토종 식물들의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한삼덩굴도 가세하면서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외래종 식물이 정원 부지를 잠식하면서 가을이면 이곳에서 피어나던 코스모스는 물론 갈대, 쑥, 수생식물 등 토종 식물들이 자리를 빼앗긴 채 고사되고 있다.
안산 환경단체 관계자는 “외국산 곡물이 지역으로 반입되면서 외래 유해 식물이 함께 들어온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왕성한 번식력으로 토종 식물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고 설명했다. 이어 “단풍잎돼지풀 개화는 7~9월로 이 시기에 씨앗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서 “또다른 군락을 이뤄 토종 식물을 잠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막기 위해서는 당장 제거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안산시 관계자는 “정원을 조성할 경우 부지를 새롭게 정비를 하겠지만 외래 식물들의 번식을 대비해 현장을 확인한 뒤 대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구재원 기자 kjwoon@kyeonggi.com
그린벨트 해제 논란 정치권 막전막후
“사실 우리(서울시)는 서울 원도심의 부동산 공급정책을 이번 주 월요일(7월 13일)에 발표하기로 했어요. 지난주 목요일(7월 9일) 정책패키지를 마무리했고, 금요일에 보도자료를 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사흘을 앞두고 사달이 벌어지면서 이 정책은 박 시장의 마지막 유작이 되어버렸습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공룡시대 미생물 깨우자 왕성한 식욕, 수만 배 증식
심해저 암반서 1억년 잠자던 미생물 되살려…화석 아닌 생명체로 지질학적 시간 버텨
1억150만년 전 해저 퇴적층에 갇힌 채 생존하다 되살아난 미생물의 모습.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 제공.
700년 전 고려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한 연 씨앗에서 꽃핀 경남 함안군 ‘아라홍련’은 고등생물도 휴면 상태에서 오랜 기간 생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생물의 휴면기간은 더 길다. 공룡이 활보하던 1억년 전 지층에 묻힌 미생물이 발굴된 뒤 깨어나 번식한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JAMSTEC) 등 국제 연구진은 남극 해류∼호주∼남미∼적도로 둘러싸여 해류가 빙빙 도는 ‘남태평양 환류’(South Pacific Gyre) 해역에서 해저 심층 굴착 조사 결과 이런 사실이 드러났다고 29일 과학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퇴적층 침투한 산소가 비결
연구자들은 수심 6000m 가까운 바다 밑 지층을 100m 깊이로 시추해 430만∼1억150만년 전 사이 해저 퇴적층 시료를 확보했다. 실험실에서 영양물질을 공급하면서 배양했더니 평균 77%, 특히 가장 오랜 1억150만년 전 암석에 들어있던 미생물의 99.1%가 되살아났다.
이번 연구에 동원된 국제심해과학굴착계획(IODP)의 조사선 조이데스 레졸루션 호. 바다 표면에서 8300m까지 해저 시추할 수 있다. IODP 제공.
1억년 전은 중생대 백악기로 당시 살았던 다양한 공룡은 화석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그때 해저 퇴적층에 갇혔던 세균 등 미생물은 배양한 지 68일 만에 대부분 왕성한 식욕을 되찾아 닷새에 한 번꼴로 분열해 개체수가 수만 배로 증식했다. 연구 책임자인 모로노 해양연구개발기구 선임연구원은 “처음엔 미생물이 살아날까 회의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1억년 전 퇴적층에 들어있던 미생물 대부분이 아직 살아있었고 먹이를 잘 받아먹었다”고 이 기구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공룡시대 미생물이 ‘부활’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연구자들은 산소를 꼽았다. 기반암인 현무암 위에 쌓인 모든 시기의 시추 코어에서 산소가 검출됐다. 실험에서도 산소를 공급하지 않은 미생물은 증식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대양 해저에 퇴적물이 100만년에 1∼2m의 극도로 느린 속도로 쌓인다면 산소는 모든 지층에 침투할 것”이라며 “이런 조건에서 살아가는 데 산소가 필요한 호기성 미생물이 수백만 년의 지질학적인 시간 동안 생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선사시대 퇴적층 속에서 많이 발견된 델타프로테오박테리아. 현생 세균의 사진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시추에서 발견된 옛 미생물은 방선균, 의간균, 후벽균 등이 많았고 1350만년 전 퇴적층 시추 코어에서는 뜨거운 온천에 사는 고세균도 발견됐다. 또 세균은 흔히 아포를 형성해 역경을 이기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그런 미생물은 거의 없었다.
방대한 ‘지하 생태계’
대양 해저에는 플랑크톤의 배설물과 사체 등이 눈처럼 떨어지는 바다눈과 먼지 등이 쌓인다. 퇴적물 입자는 미생물 크기로 작아 퇴적층 속 미생물은 돌아다니지 못하고 갇힌다. 극도로 영양분이 없는 상태에서도 산소가 공급되기만 한다면 이들 퇴적층에 갇힌 미생물은 지질학적인 시간 동안 휴면하면서 부활을 기다린다.
이 조사는 이제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규모가 방대한 ‘지하 생태계’의 생명체를 탐구하기 위한 국제협력사업의 일환이다. 지하 깊숙한 암반은 캄캄하고 뜨거운 데다 압력이 높고 먹을 것이 거의 없어 생물이 살기엔 부적절하지만 다양하고 특별한 미생물이 다수 발견됐다.
지하 미생물은 양도 많아 지구 표면의 70%를 차지하는 전 세계 해양 바닥의 퇴적층 속 미생물을 합치면 지구 전체 미생물량의 12∼45%에 이르고 75억 인류를 합친 무게의 4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연구가 이뤄진 심해저 시추 지점(붉은색). 남태평양 환류 안이다. 일본 해양연구개발기구 제공.
이번에 조사가 이뤄진 남태평양 소용돌이 해역은 지구 어떤 대륙에서도 가장 먼데다 바닷물이 빙빙 돌고 외부에서 유기물이 유입되지 않아 ‘바다 사막’으로 불리는 곳이다. 육지로부터 바람과 해류 등을 통해 공급되는 유기물이 거의 없어 퇴적층은 영양 부족 상태다. 따라서 이곳의 해저 지층을 조사하면 생명의 한계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스티븐 돈트 미국 로드아일랜드대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밝혀낸 가장 놀라운 사실은 지구 대양의 오랜 퇴적층에 생물이 못 살 한계는 없다는 것”이라며 “시추한 가장 오랜 퇴적층에서도 먹이는 최소였지만 아직도 생물이 살았고 우리가 깨우자 자라고 증식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이번에 깨운 미생물이 과연 지상의 생물과 다른 시간 척도로 진화하는지가 후속 연구과제라고 밝혔다.
노르웨이, 중국, 일본 등의 연구자들이 심해저에서 채취한 시추 코어를 살펴보고 있다. IODP, JRDSO 제공.
인용 저널: Nature Communications, DOI: 10.1038/s41467-020-17330-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희한하게 꼬였네’ 타래난초의 특별한 생존 비밀
권혁재 핸드폰사진관/타래난초
실타래처럼 꼬여서 이름이 타래난초입니다. 왜 이처럼 꽃이 꼬였을까요? 조영학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꽃을 보면 한쪽으로만 주르륵 나 있습니다. 그러면 아래 꽃들이 광합성을 못합니다.
아래에 있는 친구들이 빛을 받게끔 자기 몸을 꼰 겁니다.”
골고루 햇빛을 받게 하려는 놀라운 생존 전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친구들은 유독 무덤가에 많습니다.
그래서 전설처럼 무덤에 얽힌 이야기도 있습니다. 조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 ‘망자의 꽃’, ‘번뇌의 꽃’ 이라고도 합니다. 무덤에 묻힌 분이 승천하지 못하고
타래처럼 꼬인 한과 108번뇌를 다 풀어낸 다음에 간다는 그런 얘기가 있어요. 보시면 알겠지만 보통 꽃이 30~40개 정도 핍니다. 30~40개 꽃이 108타래를 풀려면 3년 정도 걸립니다. 얘네가 딱 3년밖에 못 삽니다.타래처럼 꼬인 번뇌를 하나씩 하나씩 풀어내면서 연을 끊는 데 3년이 걸리는 거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중앙일보
※타래난초가 특별히 무덤가를 좋아해서 그곳에 피어있다기보다 다른 난초와 달리 햇빛이 잘 드는 양지를 선호하는 식물이라
혼획돼 숨진 고래류 60%는 상괭이…‘탈출구 있는 그물’로 보호해야
ㆍ‘웃는 돌고래’ 상괭이
상괭이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제공
연평균 1223마리 숨져 개체 급감
전국 11곳에 구조·치료기관 운영
‘웃는 돌고래’라는 별명이 붙은 상괭이는 한국 서·남해와 동해 남부 연안에 서식하고 있다. 쇠돌고래과에 속하는 소형 돌고래로 주둥이가 짧고 앞머리가 둥글며 등지느러미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늘 웃는 듯한 상냥한 표정이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다. 상괭이는 한국·홍콩·일본 등 아시아 동부 연안에만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서해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조선시대 <자산어보>에는 ‘상광(尙光)어’라고 나와 있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접해오던 토종 돌고래인 셈이다.
■자꾸만 그물에 갇히는 상괭이
최근 들어 상괭이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연안 개발로 서식지가 훼손된 데다, 어민들이 어패류를 잡으려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 매년 평균 1223마리의 상괭이가 혼획돼 죽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영향으로 2004년 3만6000여마리에 이르던 국내 상괭이 수는 2016년 1만7000여마리로 급감했다. 한국은 1986년 고래류의 사냥을 전면 금지했지만, 상괭이를 포함한 고래류가 혼획에 의해 죽는 일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어업활동 중에 혼획된 고래류는 모두 9372마리(연평균 1874마리)에 이른다. 이는 국제포경위원회(IWC)에 가입한 다른 10개 나라의 평균 19마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준이다. 이 중 상괭이의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해양수산부는 2016년 상괭이를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했다.
지난해 10월24일 전북 군산 새만금 해안에서 드론 1대가 옅은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서해를 향해 날아올랐다. 드론은 바다 위 30m 상공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영상을 담아 육지로 보냈다.
“저기 보여. 저기. 상괭이가 있어.”
육상에 있는 모니터로 영상을 살펴보던 해양환경공단의 한 연구원이 수면 위에서 회백색의 매끈한 몸매를 지닌 상괭이 여러 마리를 찾아냈다. 이날 작업은 해수부가 해양환경공단과 함께 진행한 상괭이 서식실태 조사의 하나였다. 해양환경공단 관계자는 “상괭이는 수줍음이 많아 배가 다가가면 피해버리기 때문에 드론을 이용한 조사가 아주 유용하다”고 말했다. 조사자료는 상괭이 보호대책을 마련하는 데 활용된다.
■미소천사 상괭이를 지켜라
해수부는 2018년 10월부터 실시한 조사에서 경남 고성군 하이면 앞바다에 다수의 상괭이가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해 말 이 일대 해역 2.1㎢를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상괭이 서식지가 해양생물보호구역으로 처음 지정된 것이다. 해수부는 상괭이가 그물에 걸려 죽는 것을 막기 위한 대책도 마련하고 있다. 어민들이 던지거나 설치한 그물에서 상괭이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생괭이 탈출구가 있는 그물을 개발해 어업인들에게 보급하기로 했다.
또 해양동물 전문 구조·치료기관을 전국 11곳에 지정해 그물에 걸린 상괭이를 신속하게 구조·치료한 뒤 자연으로 복귀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양환경공단 관계자는 “2010년 이후 91차례에 걸쳐 해양동물을 구조·치료했는데 이 중 상괭이 등 해양포유류가 3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해수부와 해양환경공단의 상괭이 살리기 프로젝트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도 상괭이 등 고래류 지키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해양포유류보호법(MMPA)을 통해 해양포유류의 사망이나 부상을 유발하는 어업을 통해 생산한 수산물과 그 가공품의 수입을 2022년부터 금지할 예정이다. 수산물을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고래류 등 해양포유류의 혼획방지대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인증을 받아야만 한다. 박승기 해양환경공단 이사장은 “앞으로 상괭이가 그물에 걸려드는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우리 바다를 누빌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자연재해 취약한 부산
부산 서구 동대신동에 있던 구덕수원지는 1902년 준공된 부산 최초의 현대식 저수지다. 1972년 9월 14일 이 수원지 둑이 터졌다. 하루 사이 무려 224.7㎜의 폭우가 내려친 것이다. 연 강수량의 5분의 1이 넘는 양이다. 수원지에서 쏟아진 물은 대신동 일대를 쓸어버렸다. 사망 60명, 실종 14명, 이재민은 수천명에 달했다. 세월이 50년 가까이 흘렀지만 부산에 큰 비만 오면 이 동네 어르신들은 혀를 차며 옛일을 떠올린다. 수원지는 이후 복구됐다가 구덕터널이 뚫리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부산이 집중호우나 폭설같은 자연재해에 취약한 건 상당 부분 독특한 지형과 관련이 깊다. 부산은 태백산맥 줄기인 금정산맥과 동해안 쪽 금련산맥을 따라 북에서 남으로 길다랗게 발달했다. 낙동강과 수영강이라는 큰 하천은 도시를 세로로 분할하고 있다. 따라서 도로망이 산 강 바다를 피해 남북 방향의 직선형으로 발달할 수밖에 없다. 그게 중앙대로다. 구릉성 산지와 하천 주변 저지대가 많은 지형은 비가 오면 빗물이 순식간에 한곳으로 모이기 쉽도록 만든다.
부산 최초의 지하차도는 1965년 건설된 동구 초량제2지하차도다. 이번에 폭우로 인명 사고가 난 초량1지하차도는 이듬해 두번째로 생겼다. 1990년대까지는 부산에 지하차도가 3군데 밖에 없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늘어나 현재 47곳(2018년 기준)에 이른다. 지하차도의 탄생 역시 부산의 지형 및 도로 여건과 관련이 있다. 해안선을 따라 놓인 철길을 가로질러 건널 방법은 고가나 지하 뿐이다. 도시 미관과 안전상의 이유로 고가도로보다 지하 터널 형식의 도로가 많이 뚫렸다. 지금도 도심 교통난 해소를 위해 대심도 지하도로 5개 노선이 건설 중이거나 건설 예정이다. 예상치 못한 재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국립환경과학원이 몇년전 전국 단위 기후변화 취약성 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는데 부산은 하위다. 32개 평가항목 중 태풍 홍수 등 6개에서 취약성이 심각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행정안전부 통계를 보면 2018년 자연재해 피해액은 전국 합계가 1413억 원이었다. 광역시 이상 6대 도시 전체 피해액은 135억 원인데 그중 부산이 73억 원을 차지한다. 54%나 된다. 자연재해는 해마다 편차가 크기 때문에 이 수치가 일상적이고 고정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부산이 태생적으로 재해에 취약한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후변화에 더 많은 경각심이 필요한 도시다.
국제신문 강필희 논설위원 flute@kookje.co.kr
그린벨트 해제 논란 정치권 막전막후
“사실 우리(서울시)는 서울 원도심의 부동산 공급정책을 이번 주 월요일(7월 13일)에 발표하기로 했어요. 지난주 목요일(7월 9일) 정책패키지를 마무리했고, 금요일에 보도자료를 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발표 사흘을 앞두고 사달이 벌어지면서 이 정책은 박 시장의 마지막 유작이 되어버렸습니다.”
7월 22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그린벨트 보전 발표에 대한 시민사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그린벨트를 두고 오락가락한 홍남기 기재부 장관,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상조 청와대 실장 등 정책 담당자를 즉각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김창길 기자
최근 기자가 접촉한 서울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되는 현안(박 시장 성추행 고소건)을 제외하고 이 내용에 관심이 있으면 따로 이야기하자”고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 사후, 청와대·집권당 발 ‘그린벨트 해제’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7월 15일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할 수 있다”며 운을 뗐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부동산 공급 확대 방안 대여섯 가지를 검토 중”이라며 “이달 말이면 (주택) 공급대책을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부동산 비공개 당·정협의에 참석한 국회 국토교통위 민주당 간사인 조응천 의원은 ‘서울시 그린벨트 해제 방안’에 대한 질문에 “그런 것까지 포함해 주택공급방안에 대해서 범정부적으로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청 입장 정리” 뒤 들썩인 강남 집값
이틀 뒤인 17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발언도 홍 부총리의 발언과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그린벨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진행자의 질문에 김 실장은 “그건 당·청 사이에서 정리가 끝난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이날 발언에서 “모든 정책수단을 메뉴판 위에 올려놓고 있다”며 “(그린벨트 해제를) 하느냐 마느냐는 또 다른 판단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전날 홍 부총리의 발언과 이어 놓고 보면 정리가 끝났다는 것은 해제로 기울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해제와 관련한 구체적 방안이 채 나오기도 전에 시장부터 들썩였다. 서울시 그린벨트 지역인 서초구 내곡동과 강남구 세곡동의 아파트 거래 호가는 15일 홍남기 발언과 17일 김상조 발언 사이에 1억~2억원이 급등했다. 기존에 나왔던 집들도 집값 상승 호재를 노린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가면서 거래가 뚝 끊겼다.
논란이 확대되자 정치권 인사들이 해제 반대 목소리를 보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돈 없는 사람도 빚을 내서라도 부동산을 쫓아가지 않으면 불안한 사회가 됐다. 한정된 자원인 땅에 더 이상 돈이 몰리게 해서는 국가의 비전도 경쟁력도 다 놓칠 것”이라며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과 수도권에 전국의 돈이 몰리는 투기판으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7월 19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분양가 탓에 ‘로또’가 될 가능성이 커 너도나도 투기에 열을 올려 전국에 부동산 광풍을 불러올 것”이라며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정세균 총리도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그린벨트는 한번 훼손하면 복원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며 “당정이 검토하기로는 했지만 합의되거나 결정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이튿날(7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과 총리의 주례회동에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하면서 해제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다. 매체들은 이 결정을 속보로 정했다. 홍남기 부총리의 발언부터 시작된 그린벨트 해제 검토 소동은 5일 만에 막을 내렸다.
이건 표면으로 드러난 일부일 뿐이다. 그린벨트 해제를 추진하는 국토부와 청와대 그리고 서울시의 물밑 긴장 관계는 이미 그전부터 고조돼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절정에서 박 시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기자는 서울시 고위관계자를 다시 취재했다. 그는 현재 박 시장 성추행 고소건과 관련한 핵심인사다. 그는 서울시 측과 논의과정에서 “그린벨트 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국토부의 입장”이었다고 회고했다. 서울시의 복안은 앞서 그가 언급한 것처럼 원도심고밀도재개발이었다. 그는 “서울시 주택공급정책에서 우선 고려했던 것은 새로 공급된 주택 때문에 주변 시세가 올라가는 등 가격 급등이 번지는 걸 막는다는 원칙이었다”라며 “세곡동 등 강남권 그린벨트 지역은 가급적 제외하고, 설사 강남을 개발하더라도 분양보다는 공공임대방식을 통해 주변시세가 오르는 것을 차단하려 했다”고 말했다.
사망 하루 전, 당 대표 회동서 오간 말들
박 시장은 이를 위해 이해찬 민주당 당대표를 7월 8일 만나 설득했다. 박 시장이 ‘비극적 선택’을 하기 하루 전 이뤄진 이 회동에서 오간 이야기는 일부 매체의 보도로 알려지긴 했다. 이해찬 대표가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당의 분위기를 전달한 걸로 보도되었지만, 당일 배석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날 이해찬 대표는 부동산 규제정책만 언급하고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서는 스치듯 가볍게 언급하며 당내 여론도 강하지 않다는 투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사망하지 않았더라면’ 2~3일 간격으로 이낙연·김부겸 등 당내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들을 만나 그린벨트 해제를 대신하는 서울시의 대안을 설명할 계획이었다는 것 역시 그동안 일부 언론의 보도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7월 5일 일요일, 박 시장이 개발이익 광역화 이슈를 페이스북으로 제기하고 나서 다음 날 바로 김현미 장관 측에 문제해결을 위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돌아온 답은 차주 목요일, 즉 16일에 만나자는 것이었는데 특이하게도 김상조 실장이 동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직감적으로 그 회동에서 그린벨트 해제 압력이 세게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서울시 측은 일단 이 회동을 수락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계획대로라면 당 대표-주요 당내 대권주자 면담 이후 원도심고밀도개발공급정책이라는 ‘그린벨트 보존정책대안’을 7월 13일 발표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주장대로 김상조 정책실장은 박 시장 측을 만나 그린벨트 해제 ‘압력’을 넣을 계획이었을까.
“개인적으로 월요일 주례회동과 관련해 청와대 보도자료에서 그린벨트와 관련한 박 시장의 말(‘그린벨트는 미래세대를 위해 해제하지 않고 계속 보존’)이 그대로 나오는 걸 보고 ‘박원순 시장은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뜻은 떠나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구나’라는 걸 느꼈다.” 7월 22일 ‘박원순계’ 또는 ‘친문’으로 분류되지 않는 여권 인사의 말이다. 그는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된 날(7월 10일) 기자에게 전화해 그린벨트와 관련한 최근 서울시의 움직임을 취재해보면 박 시장의 죽음과 관련한 ‘다른 단서’를 얻을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죽음에 성추행 고소를 제외한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건 현재까지 나온 정보만으로는 음모론의 영역에 해당하는 주장이다. 그에게 그날 왜 그렇게 봤는지에 관해 물었다.
“박 시장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사망 전날 당 대표 면담에서 서울시의 그린벨트 사수 입장에 대한 당내 분위기를 전달받고 그가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사실 그린벨트나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뉴타운은 소수의 이익으로 돌아갈 뿐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 소수의 눈으로 보면 강남 그린벨트는 지금쯤이면 두 번은 풀렸어야 하는데 자치단체장이 버티고 있어서 풀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정부·여당은 작업이 거의 되었는데 10년 동안 서울시장이 버틴다. 그렇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저앉히려 하지 않았을까.” 그 ‘소수의 세력’이 누군지 그는 특정하지 않았다. 그는 “복잡하게 소설을 쓸 것 없이 팩트만 보면 된다. 박 시장이 죽기 전까지 가장 고민했던 것이 뭔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은 그린벨트 문제다. 그렇다면 그걸 빼놓고 그의 죽음을 해석할 수 있을까”라고 덧붙였다.
박 시장이 그린벨트 해제의 대안으로 추진하던 원도심고밀도재개발정책은 서울시의 일부 라인을 통해서만 추진된 것이 확인된다. 박 시장의 ‘복심’으로 불리며 1기와 2기 서울시 정책 청년수당 정책이나 3기 민주주의위원회 정책을 주도한 시민사회측 측근들은 ‘부동산국민공유제’를 주장하며 원도심고밀도개발안에 반대 의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에도 그린벨트 해제 문제를 두고 국토부와 서울시는 대립한 적이 있다.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당시 처음 원도심고밀도개발을 제안해 박 시장은 수용했는데, 시민사회측근들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며 “시민사회는 공급, 즉 개발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이고 규제만 이야기하기 때문에 논의해봐야 소용이 없어서, 현 원도심고밀도개발안은 지난 6월부터 서울시 주택본부와 지속적으로 준비해왔던 것”이라고 밝혔다.
원도심고밀도재개발, 박원순 대선공약?
정리하면 지난 4월 정무비서라인을 종전의 시민사회에서 정치권 정책전문가로 교체하면서 ‘전국민고용보험’에 이은 2호 박원순표 정책대안으로 내놓을 복안이 ‘그린벨트 해제 대신 원도심고밀도재개발정책’이었고, 이런 정책적 차별성을 바탕으로 ‘대권주자 박원순’을 띄울 계획이었던 셈이다.
“잘 아시지 않나. 국토부는 전반적으로 여의도와 당·청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자기 스탠스를 주장할 수 있는 부처가 아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정무적으로 보좌하던 전 국토부 고위인사의 말이다. “현직이 아니라 최근 벌어진 논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면서도 이 인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국토부는 그린벨트 해제를 못 해 안달하는 악마 같은 부처가 아니다. 박선호 차관은 참여정부에서 주택정책과장을 역임한 최고의 주택 전문가다. 국토부 공무원들이라고 영혼 없는 테크노크라트가 아니다. 그린벨트를 푼다고 부동산 안정화 효과가 얼마나 있을까. 실제 그럴 것으로 믿는 국토부 공무원들은 거의 없다. 당과 청, 정치권의 요구를 기술적으로 검토하면서 시민사회 등의 저항이나 반발을 신중하게 고려해 검토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동산 대책으로 3기 신도시 건설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의 신중함이 있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7월 16일 면담일정을 결정하고 청와대 정책실장 배석을 통보한 김현미 장관 측은 관련한 기자의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김상조 정책실장도 휴대폰으로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문자를 보냈으나 답하지 않았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지구온난화 막을 탄소저장고가 사라진다
산림연간흡수량 급감 우려
기후변화평가보고서 2020
기후위기가 심화하는 가운데 미래 산림의 연간 탄소흡수량이 감소한다는 경고가 나왔다. 산림은 육상생태계의 주요 탄소저장고로 이산화탄소 배출감소와 기후위기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가 지속될 경우(RCP 8.5) 2100년 지구 이산화탄소 농도는 940ppm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 온도가 4.7℃ 상승한다.
환경부와 기상청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을 28일 공동으로 발간했다. 우리나라 기후변화와 관련한 과학적 근거, 영향 및 적응 등의 연구 결과를 총망라한 기후변화 백서다. 한반도를 대상으로 2014년부터 2020년까지 발표된 국내외 논문 1900여편과 각종 보고서의 연구결과를 분석·평가했다. 올해 하반기에 수립하는 '제3차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21∼2025)'의 과학적인 근거로 활용될 전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지구 평균 지표온도가 1880~2012년 동안 0.85℃ 상승한 반면, 우리나라는 1912~2017년 동안 약 1.8℃ 올랐다. 온실가스 감축 노력 정도에 따라 21세기말(2071∼2100) 지구 온도가 2.9~4.7 ℃ 상승할 전망이다.
문제는 주요 탄소 흡수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산림 1ha(100×100미터)는 매년 이산화탄소 10.8톤을 흡수한다. 1999~2008년 우리나라의 식생 생태계는 연평균 3.51 Tg C yr-1의 탄소를 흡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산림이 다른 생태계에 비해 탄소흡수량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산림은 순생장량이 많은 21~40년생이 59.3%를 차지해 탄소 흡수에 유리하다.
하지만 이후가 문제다. 향후 노령화로 인해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급격히 감소할 전망이다. 우리나라 산림의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은 2010년 59.67백만 t CO2에서 2050년에는 0.15백만 t CO2로 급격하게 줄어들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임령증가에 따른 순생장량 감소가 반영된 결과다.
이우균 고려대학교 기후환경학과 교수(환경 GIS/RS센터장)는 "일정부분 벌채나 신규·재조림 등을 통해 산림의 탄소 흡수 기능을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벌채된 산림은 재조성될 때까지 공익적 기능을 상실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인 시공간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용산공원, 부유층의 거대한 정원 되나?
용산 미군기지 이미 아름다운 녹지
‘공원화’란 이미 낡은 관념
150년 전 서양 낭만주의의 산물
뉴욕 센트럴파크는 본래 수돗물 땜에 건설
용산공원 미래상 논의 매우 안일해
지난 21일 열린 서울 용산공원부지 내 장교숙소 개방 행사. 사진공동취재
20년 전쯤이다. 미군 장교로 일하던 친구를 따라 당시만 해도 비교적 출입이 쉽게 허용되었던 용산 미군기지를 들락거린 적이 있다. 목적지는 네이비클럽과 기지 내 식당이나 주점이다. 한남동 어디쯤에서 1차를 하고 거나한 기분으로 기지 안의 사우스포스트에 들어가면, 술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미국의 한적한 근교 도시로 순간 이동한 느낌이었다. 미사일이나 철책, 방공포나 지뢰밭 등을 떠올렸던 나의 피상적 짐작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래, 여기도 그저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2만명 이상의 인구 중 군인보다 훨씬 더 많은 수가 엔지니어 등 지원 인력과 가족들이라고 했다. 초·중·고가 다 있는 그야말로 작은 자족 도시다. 그들이 기지를 자신들의 고향과 비슷하게 꾸며놓았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재작년 말부터 용산 미군기지 내 버스투어가 시행됐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멈춰 있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반응과 영상을 살펴보니 20년 전 느꼈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보다 자연이 너무 잘 보존되어 있다” “건물의 보존 상태도 좋아 보인다” 등의 탄성 섞인 얘기들이 들린다. 주변의 높은 건물에서 바라봐도, 남산 아래 녹지는 대부분 용산 미군기지에 속한다. 생태적 보고가 되어버린 비무장지대(DMZ)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용산 미군기지는 서울 도심에서 가장 짙은 녹음 지역이 되어버렸다. 키가 큰 아름드리나무도 많다. 건폐율은 1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서 밀도는 낮다. 게다가 저층이다. 하늘과 풍경을 막는 지장물이 거의 없다.
계획대로라면 용산공원은 내후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2027년께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00여동의 건물 대부분을 없애고, 지형을 만들고, 물을 만들고, 나무를 심으려니 꽤 오래 걸릴 것이다. 기지를 공원으로 만들기 위함인데, 용산 미군기지를 실제로 살펴보면 이미 공원이다. 정확한 자료가 없지만 대략 추정해 보니, 건폐율이 14~5%밖에 안 된다. 애써 공원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 이미 용산 미군기지 내의 오픈 스페이스는 양적으로 충분하다. 초·중·고교에 딸린 운동장과 야구장, 축구장, 각종 스포츠 시설과 주차장도 그냥 쓰면 된다. 다만 손을 대지 못하고 오래 방치될 경우, 점점 허물어져서 나중에는 비싼 돈을 들여 철거하거나 다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많은 숲과 나무는 또 어떤가? 건물 사이 널찍한 공간과 일부 과도한 포장면을 산책로와 휴식공간으로 정비하면 그대로 공원이다. 이촌동에 사는 사람이 자전거길로 서울역까지 출퇴근한다거나, 한남동에서 용산역까지 공원을 가로지르는 조깅 코스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숲과 잔디로 둘러싸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공원이란 꽤 낡은 개념이다. 150년 전쯤에 서양의 도시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를 악으로, 자연은 선으로 규정하는 19세기 낭만주의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다. 사회적 환경이 그랬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당시 사람들의 욕구와 필요를 충실히 반영하는 걸작이었다. 설계자인 프레데릭 로 옴스테드는 급성장하는 맨해튼섬의 한복판에 그의 고향 코네티컷의 들판을 옮겨왔다. 하느님이 주신 그대로의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복제하려는 시도였다. 왜? 자동차와 아스팔트 도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런던, 뉴욕과 같이 매연과 공해로 찌든 도시를 벗어나 쾌적한 자연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시만 해도 극소수 부유층에 불과했다. 육로로 50마일을 가는 비용이 대서양을 건너는 범선의 티켓보다 비싸던 시절이었다. 사람들은 도시에 갇혀버렸고, 옴스테드는 그들의 정신적 피폐함과 자연에 대한 갈구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센트럴파크에 자연에 대한 환상을 심었다. 그가 공원 내에 메트로폴리탄미술관과 같은 인공적 시설물을 극히 꺼렸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쭉쭉 뻗은 고속도로는 서울에서 양양 해변, 혹은 태백산맥의 국립공원들을 2시간 권으로 묶는다. 고속철을 타면 목포나 부산까지도 금세다. 무엇보다 석탄에 의존하던 19세기 산업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청정한 수준이다. 옴스테드가 살아있다면, 21세기 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센트럴파크, 즉 순수한 자연을 모방하려 애쓰는 모습을 비웃을 것이다.
동작대교 북단에서 바라본 용산 미군기지. 장철규 선임기자
“용산은 공원이다”라고 누군가 답을 정해버렸을 때, 우리는 그 언어에 갇혀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거개의 관료를 포함해서, 일반인들의 상식 속에 들어있는 공원이란 기껏해야 센트럴파크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잔디밭과 호수와 숲이 일렁거리는 지형 사이로 드러나는 목가적 풍경은 용산공원의 예상 조감도에도 명확히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150년 전의 대형 공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현실과 맞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쓰레기장이었던 센트럴파크의 부지를 구입하는 데 쓴 비용은 지금 돈으로 환산해도 맨해튼에 있는 고급 아파트 한 채 값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국민이 용산 미군기지를 이전하기 위해 지불해야 했던 어마어마한 비용을 생각해 보라. 지금 용산 땅의 가치를 생각해 보라. 잔디밭과 호수와 나무가 만드는 그늘은 좋다. 그러나 거대한 기회비용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센트럴파크처럼 연간 4천만명의 방문객 수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관광도시에서도, 이용자의 80% 이상은 주변의 최고급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다. 조금만 멀어져도, 이용자 수는 급락한다. 용산공원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주변에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 부유층으로 국한된다. 용산공원은 이들을 위한 거대한 정원이 된다. 나쁘다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현상이 그러하다는 말이다. 숭고한 안식처와 같은 공원은 21세기 어바니즘(도시주의)에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서울 용산미군기지. 김태형 기자
다시 센트럴파크로 돌아와 보자. 대규모 도시공원의 시작이자, 조경이라는 분야의 시작이 되었던 이 공원의 애당초 목표는 목가적 유유자적함이 결코 아니었다. 옴스테드와 뉴욕의 지도자들은 그 정도로 안이하게 사고하지 않았다. 생존의 문제였고, 도시의 존망이 걸려있다는 시급한 자각이 센트럴파크의 조성에 깔려있다. 바로 수돗물이다.
대부분의 인류가 우물물이나 빗물, 개울물에 의존하고 있던 1800년대 초반, 뉴욕시는 항만에서 벌어들이는 엄청난 관세 수입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광역 상수도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당시 지구 상의 그 어떤 도시도 감히 시도할 수 없었던 대역사다. 세계적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선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은 무엇보다 시급한 인프라였고, 센트럴파크는 수십마일 거리의 시골에서 끌어온 물을 저장하여 시가지로 공급하는 중차대한 역할을 맡았다. 지금도 거의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재클린 오나시스 저수지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반해 용산공원의 미래상을 그리는 논의들을 듣고 있자면, 그 안일함에 개탄을 넘어 분노가 치민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공짜 땅”을 전제한 논의라는 느낌이 든다. 천문학적 규모의 이전사업비, 환경정화비용, 평택기지 조성과 그에 따른 마찰, 공원 조성비 등 국민의 피땀 어린 혈세가 소요됨을 아는지 모르는지, 센트럴파크에 맞먹는 크기라느니, 파리시 공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라느니, 남산과 한강을 잇는 “생태축”과 “지형 복원” 운운하며 관념적인 레토릭(수사학)만을 늘어놓고 있다. 생태적 도시공원이란 건물과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다. 환경을 이미지로 이해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자연의 모습과 생태를 일치시키지만, 새들과 곤충과 풀꽃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생태공원이란 애당초 모순어법이며, 개념적 사기에 가깝다. 자연을 신성화하는 19세기적 고정 관념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이규(계명대학교 도시학부 생태조경학전공 교수)/ 한겨레
양쯔강 물이 제주 바다를 위협한다...중국발 '저염분수' 초비상
제주도의 ‘고수온 저염분수 해양예보시스템’ 화면.
“제주지역 수산물을 지켜라.”
중국 양쯔강(長江·창장)이 물을 계속 바다로 쏟아내면서, 제주 연안으로 대량의 저염분수가 유입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저염분수’는 염분농도가 30psu 이하로 낮은 바닷물을 말한다. 바다 생물이 저염분수에 노출되면 폐사에 이를 수 있다.
30일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중국 남부지역의 폭우로 양쯔강의 초당 물 유출량이 8만3200t(지난 12일)까지 늘어났다. 양쯔강의 평년 유출량은 초당 4만4000t수준이다. 최근에도 7만1000t(26일)에서 7만5000t(21일)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저염분수가 제주 바다로 유입되면 이 일대 어류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미래통합당 안병길 의원에 따르면 19~25psu 수준의 저염분수가 유입됐던 1996년의 경우 제주 서부지역 어장에서 소라·전복 등 약 184t이 폐사하면서 59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해수부와 제주도 등 당국은 양쯔강의 초당 물 유출량이 사상 최대 수준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양쯔강 발 저염분수가 제주 일대 어장에 큰 피해를 입힐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우리나라 바다로 저염분수가 유입됐을 당시 양쯔강의 초당 물 유출량은 6만8000t 수준이었다.
제주도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되는 경우 8월 중·하순쯤 저염분수가 제주해역으로 유입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해수부와 국립수산과학원은 천리안위성과 해양환경어장정보시스템 등을 이용해 저염분수의 이동경로와 유입현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해수부는 수산과학조사선 2척을 동중국해 북부해역과 제주도 주변해역 및 연안 등으로 보내 현장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저염분수는 표층에서 약 10m 두께로 이동한다”면서 “저염분수가 바람과 해류에 따라 이동경로가 달라지기 때문에 모니터링을 통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산과학원은 저염분수에 대한 모니터링 결과를 제주특별자치도와 어업인 등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홈페이지(www.nifs.go.kr)에 게재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저염분수의 유입 가능성이 높아지는 경우 전복·소라 등을 조기에 채취, 출하할 것을 당부했다. 이수호 해양수산부 어촌양식정책관은 “인공위성·선박·실시간관측시스템 등을 이용해 저염분수의 유입 여부를 조기에 확인하고 대응책을 마련함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백두대간 관통하는 전기선?…금강송 군락지에 송전탑
수도권에 원활한 전기 공급을 위해 한국전력이 대규모 송전선로를 만드는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발전소가 있는 경북 울진에서 경기 가평까지 구간만 200㎞를 넘고 송전탑이 440기 설치됩니다. 그런데 송전선로 구간이 백두대간 일대를 관통하도록 설계돼 생태계 파괴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자>쭉쭉 뻗은 소나무들이 산 능선과 비탈에 우뚝 서 있습니다. 수백 년 자란 금강 소나무 군락지로 토목공사는 물론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는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입니다. 높이 70여m의 송전탑 설치가 추진 중인 산림 유전자 보호구역 중 한 곳입니다. 만약 송전탑 설치가 현실이 된다면 초고압 송전선로가 이 일대를 관통하게 되면서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 금강송을 비롯해 산림 훼손이 불가피합니다. 또 다른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인 강원 삼척시 가곡면 일대, 산양과 담비 등 다양한 멸종위기 동식물이 살고 있습니다. 마을 안쪽 산림지대에서는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의 배설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서재철/녹색연합 전문위원 : 지리산과 설악산 국립공원과 함께 남한의 3대 생태 축으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지나가고 있고 우리나라의 마지막 야생지대입니다.]
한국전력은 이번 송전탑 설치 사업은 수도권에 원활한 전기 공급을 위한 국책사업으로, 백두대간 관통은 불가피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정대로 추진될 경우 산림 유전자원 보호구역 3곳에만 송전탑 23기가 들어섭니다.
대규모 산사태 같은 재해도 우려됩니다.
[임상준/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 자연 사면이 인위적으로 형질이 변경됐기 때문에 강우 시 집중적으로 물이 한쪽으로 모여서 하류에 피해나 혹은 붕괴와 같은 것이 발생하지 않도록…]
전체 송전탑 구간의 20%를 차지하는 경북 봉화군 주민은 주민 협의 과정이 불충분했다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송동헌/봉화군 춘양면 애당2리 이장 : (올해 들어) 설명 한 번 없이 한다는 게 도대체 마을에 와서 설명을 한 일이 한 번도 없습니다.]
한전 측은 전문가와 전체 11개 시군의 주민으로 구성된 입지 선정위원회를 통해 송전탑 설치 구간을 논의했다며, 앞으로 1년간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을 평가해 산림 훼손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박찬범 기자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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