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7.6~7.11 언젠가는 몰락한다

by 이성근 2015. 7. 10.

 

  7.6 경향-민중

 

 

  7.6 한겨레-국민

 

 

7.6 내일-시사인

 

 

  7.6 한국-7.7 경향

 

 

  7.7 민중의 소리-한겨레

 

 

  7.7 국민-내일

 

 

 7.7 한국-7.8 시사저널

 

 

  7.8 경향-국민

 

 

   7.8 내일-7.9 민중의 소리

 

 

 7.8 한겨레-한국

 

 

  7.9 경향-국민

 

 

   7.9 내일-민중의 소리

 

 

  7.9 한겨레-한국

 

 

   7.10 경향-국민

 

 

  7.10 내일-한국

 

 

 7.14 주간경향-7.10 한겨레

 

"계급장 떼고 붙자", 박 대통령에게 이 말 했다면 7.6 오마이뉴스

[분석] 박근혜와 노무현의 다른 대응, 유승민의 운명은?

 

"계급장 떼고 붙자"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발언했다. <조선일보> 2004615일자. 조선일보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

이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논쟁 상대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이 말은 2004'올해의 말'로 선정될 정도로 회자되기도 했다.

 

김 전 대표가 보도자료를 낸 때는 2004614. 며칠 전 노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만찬 자리에서 "(아파트 분양 원가 관련)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원가공개를 공약했는데 다시 상의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이는 결론이 어디로 나더라도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에 격렬한 반박을 제기한 것이다.

 

김 전 원내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급장 떼고'라는 표현은 모든 것을 열어놓고 본격적으로 토론하자는 뜻"이라면서 "그 표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청와대가 누르는 모양이 되면 토론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그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사과'나 발언취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친노'로 알려진 유시민 의원이 청와대를 대신해 김 전 원내대표 발언을 비판했다. 유 의원은 "뭐 계급장 떼고 하자 말자 하느냐. 김근태 의원은 차기 주자고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분들이 김근태 정동영처럼 별 세 개씩 단 분들 아니냐"고 반문한 뒤 "그분들이 계급장 떼고 나처럼 밑에 있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말로 들리던데"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아닌 자신과 논쟁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김 전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자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을 뿐, 유감표명이나 대통령의 심기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보수언론에서는 신이 났다. <조선일보>'열린우리, 치고받고 계급장 떼고'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 대통령이 '권위 파괴형' 정치 행태로 성공을 거두고 여당 내 대선주자들이 윗사람을 치받으며 성장한 사실과, 초선 의원들의 강한 개성 등이 계급장 없는 분위기를 여권 내의 문화로 굳혀 가는 양상이다"라고 보도했다.

 

'계급장 떼라'는 여당 지도부에 대한 노무현 대응방식

김 전 대표 발언이 있은 뒤 5일의 시간이 흐른 2004619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김 전 대표를 만났다. 두 사람은 반주를 곁들이며 저녁을 함께했다. '계급장' 발언 이후 불편한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 전 대표측은 "계급장 발언 등 민감한 사안은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4630. 노무현 대통령은 개각을 단행한다. 신임 복지부 장관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계급장'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근태. 그는 복지부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장관으로서) 대통령과 대등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급'이 다른 장관임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당시 이해찬 총리가 운동권 후배란 점 때문에 두 사람의 상-하 관계에 언론의 질문이 나왔다. "이해찬 총리가 운동권 후배인데"라는 질문에 대한 김근태 복지부장관 내정자의 답변은 이러했다.

 

"사적으로야 노 대통령도 후배지. 노 대통령은 운동권 주변이었고 나는 중심이고."

김근태의 '계급장 발언'이 당시 노 대통령에게 굉장한 충격을 줬다는 사실은, 2년 세월이 지나서 확인된다. 20068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노 대통령이 오찬회동을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김근태였다.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지지율이 낮았고, 인사와 관련된 문제로 오찬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파문(논문 표절과 중복게재 의혹 등으로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던 일)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 비판 여론에 대해 인사권이 고유권한임을 강조하며 "밖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그러지 말고 (대통령과) 협상하자"고 제안한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2년 전) 김 의장은 나에게 계급장 떼고 맞붙자고 했지요"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계급장 발언'으로 김근태는 손해보지 않았다. 2년 후 대통령이 그 발언으로 섭섭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발언 직후 복지부장관으로 입각했고, 그 발언에 따라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이 이야기는 참여정부에서 있었던 이야기였다.

 

운명의 76, 유승민은 물러날까?

 

여론은 유승민편 국민들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 74일자 한겨레

 

현직 대통령에 대한 김근태 전 장관의 '계급장 발언'은 지난 2004년에 있었다.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고, 지금은 박근혜 정부 3년차다. 현직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박 대통령이 격정적인 분노를 쏟아낸 지 2주가 지났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몇 번이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할 마음이 있음을 밝혔다. 유 대표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대통령이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625일 박 대통령은 너무나 유명해진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에 대한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날 이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었고, 사실상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입장을 확인했지만 '친박' 지도부는 '책임을 지라'며 거세게 유 대표를 몰아세웠다. 그의 거취문제로 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욕설'이 오가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6"(오늘 거취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른쪽부터) 서청원 최고위원,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이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남소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유승민 대표가 누구처럼 '계급장 떼자'라는 말이라도 했던가. 박 대통령의 격한 반응을 보면 그 이상의 참기 어려운 공격이 있었던가.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런데 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유투표로 결정한 사안이었다. 유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국회법 개정안'은 박 대통령의 '유승민 제거'의 명분이었을 뿐, 실제 대통령의 분노는 '유승민의 자기정치'에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청와대 비서관들을 일컬어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주간 당-청 관계는 올 스톱됐다. 국무회의에서 '유승민 아웃' 발언 이후 박 대통령은 침묵했고, 여당은 '유승민 거취' 얘기 외 다른 주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76일 국회로 반송된 '국회법 개정안'은 재상정될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표결불참'을 확정했다. 야당에서는 "표결불참은 헌법기관 포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분노를 확인한 여당이 표결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불참으로 '국회법 개정안'이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친박'은 이날을 '유승민 사퇴'의 디데이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유 대표가 이날 사퇴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유승민 대표 본인뿐 아니라, 새누리당 다수인 '비박' 국회의원, 야당, 심지어 유승민의 지역구 주민들까지 그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외면한 채 '대통령 뜻 관철'을 반복하는 '친박의 주장에서는 이성과 논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하시마섬', 그곳은 지옥이었다 7.7 CBS노컷뉴스 임기상 선임기자

 

'군함도'라는 불리는 일본 하시마섬은 가장 적은 조선인 징용자들이 동원된 곳이지만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했다.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825일부터 일본의 최북단에 있는 사할린의 탄광에서 일하던 조선인 노무자 3천여 명은 영문도 모른 채 차례차례 배에 실렸다. 이들은 일본군의 삼엄한 감시 속에 후쿠시마, 이바라키, 큐슈 등지에 있는 탄광으로 끌려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중노동에 시달린다. 이 사건을 가리켜 '이중징용'이라고 부른다. 많은 조선인들이 한번은 사할린으로, 또 한번은 일본 본토로 두 번이나 강제 징용당했기 때문이다.

일제는 왜 사할린에서 멀쩡하게 일하고 있는 조선인들을 본토로 끌고 갔을까?

 

이는 패전을 거듭하던 일본이 최후 방어선을 좁히면서 사할린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미군의 공습이 강화되자 일제는 사할린에서 생산한 석탄을 본토로 가져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급기야는 19448월 사할린과 본토간의 선박 운항이 중단되었다. 결국 일제가 선택한 것은 사할린의 탄광 문을 닫고 여기서 일하던 일본인 6천명과 조선인 3천여 명을 본토로 끌고 간 것이다. 가족과 강제로 헤어져 본토로 들어간 조선인 가운데 이른바 '지옥섬'으로 불리는 하시마섬으로 간 이들의 상황이 가장 처참했다.

 

하시마섬의 탄광 안에서 일하고 있는 광부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수없이 죽어갔다.

 

하시마섬은 나가사키현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이다. 초목이 거의 없이 회색 성벽으로 둘러싸인 이 섬에서 침략전쟁에 쓸 석탄을 캐기 위해 조선인 노무자 122명이 사망했다.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사할린과는 달리 대량 채탄과 수송을 위한 기계설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설도 낡고 모든 작업은 대부분 인력에 의존해야 했다. 섭씨 40도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해저 1,000m의 갱도에서 하루 12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비참한 생활이 이어졌다. 일부 생존자들은 "그당시 너무 힘들어 섬을 나가려고 신체 절단까지 생각했다"고 전했다. 많은 노무자들은 구타에 시달렸다. 철사줄로 맞아 살 속까지 상처가 생겼다고 한다.

 

 

경남 의령 출신인 서정우 씨는 "하시마섬 생활은 좁고, 덥고, 졸리고, 고달팠다. 몸이 아파 작업이라도 빠지면 심하게 매질을 당했다. 외길뿐인 제방에 올라가 고향 땅을 바라보며 죽을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살아서 돌아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 섬에서 일했던 김영길 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채굴 현장에 들어가면, 그 속의 온도는 40도 이상으로 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셔츠는 벗어버리고 훈도시(성기만 가리는 좁고 기다란 끈) 뿐입니다. 그마저도 덥고 훈도시 안에 석탄이 들어가거나 소금물이 스며들면 아파서 그것조차 필요없었습니다. 채탄은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시간이 되어도 못 올라오게 했기 때문에 10~12시간, 때로는 15시간도 일했습니다. 탄광에는 음료수가 없어서 섬까지 배로 싣고 와서 배급했지요. 밥 먹기 전에 한 컵뿐, 더 마시고 싶어도 주지 않았어요. 미국 비행기가 날아와서 공습경보가 울리면 며칠 동안 물이 없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일본인을 포함해 총 9천여 명의 노무자들이 사할린을 떠났을 때 함께 동반한 가족은 단지 918명이었다. 이 가운데 130명 정도만 조선인 가족이었다. 사할린에 남은 조선인 가족은 1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가족과의 이별이 길어지자 한때 가족을 보내달라고 파업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그러면 가장을 잃고 사할린에 남은 아내와 아이들은 어떻게 지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생활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재 한국으로 영주귀국한 안명복 씨는 이렇게 회고했다.

 

"전쟁이 끝나고 19464월 당시에는 사할린의 식량난이 극심했어요. 일제가 실어온 예비쌀은 동이 났는데 소련은 제대로 보급을 하지 않아 배가 고파도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생각해보세요. 피난 갔다가 나가야(숙소)에 돌아왔는데 아무 것도 먹을 게 없는 거에요. ~ 정말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누가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그래도 아버지가 있는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와서 먹이고 했으니까. 우리는 공부도 못하고 겨우 소학교 과정을 끝내고 노동판에 뛰어들어야 했어요. 이런 고된 생활 속에서 당시 14살짜리 여동생과 7살 되는 여동생은 결국 먹지 못해서 한 많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어요. 죽었다고요"

조선인 노무자 가족들이 이처럼 양쪽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던 중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다.

 

운명의 194589원폭투하, 소련군 침공 그리고 영원한 이별

 

194589일 원자폭탄을 싣고 이륙한 B-29폭격기 '복스카(Bockscar)' 는 폭탄 투하를 위해 후쿠오카현 고쿠라로 날아갔지만 짙은 구름이 깔려 폭격을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두 번째 목표인 나가사키로 향했다. 여기도 짙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30초 정도의 짧은 시간 동안 구름의 틈 사이로 나가사키 시가지가 보일 정도로 큰 맑은 구역이 나타났다. 그것이 운명을 갈랐다. 폭격기는 가차없이 원자폭탄을 발사했다.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도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하시마섬 맞은 편에 있는 나가사키라는 도시의 당시 인구 24만 명 가운데 73,884명이 숨졌다. 이 가운데 1만 여명이 한국인으로 추정된다. 하시마섬에 있던 조선인 노무자들은 불지옥으로 변하는 나가사키의 모습을 생생히 목격했다.

"폐허가 된 나가사키의 모습이 바다에 비춰지자 바다가 불에 타는 것 같았다."

 

이 원폭이 투하된 직후 일본 정부는 패전을 인정하고 무조건 항복한다고 발표했다. 이때서야 비로소 조선인 노무자들은 탄광에서 빠져나와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가려고 했던 사할린은 또다른 전쟁터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의 쿠릴열도에 상륙한 소련군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자 다급해진 소련군은 같은 날 일본에 선전포고를 내리고 비행기와 탱크를 앞세워 남사할린을 침공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일본군이 항복하고 철수하자 사할린에 남은 조선인들은 소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소련군은 해안을 봉쇄하고 일본인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당시 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갖고 있었기에 당연히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다음해 말 체결된 미소협정에 따라 약 30만 명의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협정에서 귀환 대상자는 '일본군 포로''일반 일본인'으로 규정해 조선인은 일본이나 한반도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막혔다. 이 사건에 대해 소련 적십자사 총재는 이렇게 언급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 당국이 조선인들을 일본 공민으로 간주하지 말 것을 공식 요청했다. 그래서 조선인들은 무국적자로 소련에 영주하게 되었다."

일본 정부는 사할린의 조선인들을 철저히 배제시키면서 본토에 거주하는 조선인들을 신속하게 한반도로 돌려보냈다. 귀찮은 존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식민지 시절 일본에 강제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 노무자들은 해방되던 해 12월 이전에 대부분 송환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할린에 남은 처자와 그들의 가장은 오랜 세월 재회하지 못한 채 이산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일제는 전쟁에 쓸 일이 있다고 조선인와 그 가족들을 끌고 와서 전쟁이 끝나자 내버렸다. 그리고는 그 공장이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라고 갑자기 선전하기 시작했다.

일제가 조선인 노무자들의 한을 외면하고 강제 노역의 현장을 자랑스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고, 그것도 모자라 강제 징용을 부인하는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할린의 남단 코르사코프 항구에 있는 '망향의 언덕'

 

사할린 코르사코플 항구에는 망향의 언덕이라는 곳이 있다. 객지에서 쓸쓸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다 생을 마감한 한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배 모양의 위령탑이다. 바닥에 쓰여진 시를 읽어보자.

"짧은 여름이 지나 몰아치는 추위 속에서 / 이 분들은 굶주림을 견디며 / 고국으로 갈 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 이윽고 / 혹은 굶어 죽고 / 혹은 얼어 죽고 /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 배는 오지 않아 / 하릴없이 빈손 들고 / 민들레 꽃씨마냥 흩날려 / 그 후손들은 오늘까지 이 땅에서 /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 위령탑에 쓰인 시(김문환 씀)

 

 

 

강제노역 세계가 인정했다? 우리 희망사항일 뿐 7.7 미디어오늘

[뉴스분석] 일본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논란"문구 한 줄 넣었다고 과대 포장", "굴종외교" 비판도

 

일본이 메이지시대 산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한 데 한국 정부가 들러리만 서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은 이에 대한 외교부의 자화자찬을 비판 없이 보도하는 데 그쳤다.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5(현지시간) 독일 본에서 제39차 회의를 열고 메이지 일본의 산업 혁명 유산(규슈·야마구치와 관련 지역)’의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했다. 유네스코는 과거 일부 시설에서 많은 한국인과 외국인이 자신들 의사에 반해 끌려와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했다는 일본 입장 발표문을 주석 형식으로 등재 결정문에 명시했다.

 

6일자 언론은 1면 등에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인 강제노역을 인정했다는 내용의 제목으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조선인 강제노동일 세계유산 등재 결정문 명기 합의>(경향신문 1), <, 한국인 강제징용 국제사회서 첫 인정>(국민일보 1), <정부 조선인 강제노역첫 공식 인정>(동아일보 1), <, 징용시설 강제노동첫 인정>(서울신면 1), <‘강제징용 근대산업시설세계유산 등재>(세계일보 1), <日帝 강제노역 동원, 국제무대 첫 인정>(조선일보 1), <일본 한국인들 자신의 의사 반해 강제노동한 사실 있다”>(중앙일보, 10), <일 군함도 등 산업 유산도 등재조선인 강제 동원사실 인정>(한겨레 2), <조선인 강제노역국제회의서 첫 인정>(한국일보 1) 등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외교부에서 연 브리핑에서 우리의 정당한 우려가 충실하게 반영되는 형태로 결정됐다고 평가했다 

당초 이 결정은 4(현지시간) 이뤄질 예정이었다. ·일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하루 연기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일본은 최종등재결정문에 포함된 발표문에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 노역했던 일이 있었으며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취한다고 밝히고 나서야 등재를 인정받았다. 일본은 해당 문구를 결정문 주석에 포함시켰다.

 

한국 정부의 외교에 대해서도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왔다. 한국일보는 <‘강제 동원명기 담판끝 극적 타결전방위 외교전 통했다>고 했고 중앙일보는 <한국, 일본 선공에 허둥대다 막판 역전 판정승’>고 평가했다.

 

한국일보 3.

언론은 다만 강제 동원표기를 결정문이 아닌 주석에 반영한 데 대해 한국은 강제 동원표기를 관철시키는 실리를 얻었고 일본은 결정문에 포함시키지 않는 명분를 얻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의 대응은 늦었다. 일본 정부는 올해 18개 현 총 23개 시설을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으로 세계유산 등재 신청을 했다.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산하 민간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지난 54일 일본의 23곳이 세계 유산으로 적합하다고 밝힌 이후에야 이를 인지하고 대응을 시작해 늑장 대응논란이 일었다.

 

또 일본의 발표문에 포함된 “forced to work”에 대한 해석이 갈리면서 한일 양국 사이에 또 다른 논쟁이 촉발됐다. 당초 한국 정부는 이 문구를 강제 노동 의미를 명확히 한 “force labour”라는 표현을 쓰려고 했으나 협상 과정에서 “forced to work”로 절충해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세계유산 등재가 끝나자 자국 언론을 상대로 “forced to work”을 단순히 일하게 됐다고 번역해 제공하면서 물타기에 나섰다. 6일 현재 산케이신문·요미우리 등 일본 언론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일 양국의 번역 문제를 다룬 공동 기사에서 “forced to work”라는 표현에 대해 일본은 일하게 됐다고 번역하면서 기시다 후미오 외무 장관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은 국내용으로 강제 노역으로 번역해 강제성 있는 노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는 해당 문구 해석이 논란이 되자 6영문이 정본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비열한 되치기에 당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일본의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며 지난달 28일부터 본 현지에서 전시회와 세미나 등을 진행한 민족문제연구소는 6일 긴급성명을 내고 일본의 의도대로 찬란한 세계유산의 하나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2.

 

민족문제연구소는 이어 “21개 위원국 만장일치 합의 원칙을 한번도 깬 적 없던 유네스코가 결국 한국과 일본의 의견 표명만으로 등재 심의를 끝내고 말았다. 세계유산위원회 스스로가 이 사안을 정치적 문제로 치부해 갈등을 회피하고 야합을 방조한 것이라며 돈과 힘의 논리에 지배당하는 세계유산위원회의 현실과 역사인식의 저급함에 비애를 느낀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족문제 연구소는 또 한국 정부가 겨우 강제 노동이라는 문구 하나를 얻었다고 해서 이를 과대 포장해 외교적 성과로 자화자찬 하고 있다범정부적으로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온 일본과 달리 뒤늦은 대응에 급급해온 한국 정부와 외교 당국의 무능함에 대해서는 두말이 필요 없다고 비판했다.

 

산케이신문은 6일자 보도에서 강제 노동에 대해 외무성 소식통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위원회의 일본 측 발언을 재판에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한국 정부에 몇 번이나 확인했다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역사적 평가라는 점을 명시했다.

 

한국 정부가 세계유산위원회의 유리한 지위를 이용하지 못한 것도 외교적 실수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의장국인 독일을 비롯해 세계유산위원회 위원국은 한-일 간 합의가 없을 경우 표결이 아니라 내년으로 심의를 넘기자는 입장이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논의가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일본은 위원국에서 빠지고 한국만 위원국 지위를 유지하게 돼 한국 정부에 더욱 유리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국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6일 성명을 통해 이런 점을 빌미로 일본의 그릇된 역사인식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실한 입장 표명을 지속적으로 요구할 수 있었음에도 그 중요한 지렛대를 우리 스스로 포기한 것이라며 의도적인 굴종 외교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무능이라고 비판했다.

 

 

98년산 500원 동전 있나요?"최고 1천만원 가치" 7.7 노컷뉴스

IMF 구제금융으로 8천개만 한정 생산, 희소가치 매년 커져

 

최근 희소가치로 수집광풍이 불고 있는 19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이 최고등급의 미사용분일 경우 1천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왔다.

온라인 화폐 수집상인 김정식 씨는 7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혀 사용하지 않은 미사용분 등급인 70등급은 1천만원까지 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나 "동전 제조과정에서 흠집이 날 수 있기 때문에 70등급 받기는 행운에 가깝다""98년산 500원 동전은 헌 동전의 경우도 5,60만원 정도에 팔린다"고 전했다. 김 씨는 또 "가장 최근에 비싸게 팔린 500원 동전은 135만원까지 받았다""준 미사용 등급은 895천원에 팔렸다"고 밝혔다.

 

이처럼 98년산 500원 동전이 '금보다 비싸게' 팔리는 것에 대해 그는 "IMF 구제금융 당시 한국은행에서 5백원 동전을 8천개밖에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것도 동전세트용이었지 유통목적의 발행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98년산 500원짜리 동전은 매년 (가치가)10~20%씩 오르는 추세"라며 "2백만원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씨는 "이 동전 얘기가 하도 많이 나오니까 발행연도를 확인하는게 일상화됐다""커피숍 아르바이트생이 500원 동전을 발견해 40만원을 받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 제작된 10원짜리 적동화 역시 미사용분이면 1백만원까지 간다""하지만 헌 동전은 그다지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동전은 닦으면 식물성 코팅이 벗겨져 고유의 광택을 잃게 된다""미사용분과 사용감이 있는 동전은 (닦아도) 금방 구분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탈핵을 당론으로 하자 7.7 경향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사진)7탈핵을 당론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이날 당 부설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열린 경제정책심화과정 세미나에서 탈핵운동가인 김익중 동국대 교수의 강연을 들은 후 지금까진 당 차원으로 (탈핵 활동을) 하지 않고 특위나 이런 것을 만들어 피했는데 이젠 정면으로 맞닥뜨려야 하지 않은가라면서 우리당 의원들이 반대는 안할 것 같은데 정식으로 (탈핵을) 당론으로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은 당론화할 근거를 연구해 제출하겠다고 답했다.

문 대표는 탈핵의원모임이 만들어져 활동하고 있고, 당내에 원전대책특위도 만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탈원전이 우리 당 당론인지 애매해서 원전대책특위와 우리 당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쪽의 온도가 많이 다르다면서 그래서 당론 정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정부가 법적 용어로 원전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우리는 실상을 제대로 듣는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핵발전소라는 표현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원자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줄여 2060년에 탈원전(탈핵)을 한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정윤수의 오프사이드]인천AG 주경기장서 개발의 광기를 보다 7.6 경향

인천에 일이 있어 가다가 뜻밖에도 시간이 남아서 자주 다니던 경인고속도로 대신 인천공항 가는 길로 달려 청라 쪽에서 빠졌다.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을 보러 일부러 우회했다. 거대한 경기장이 서해로 기우는 햇살을 받으며 장엄하게 서 있었다.

 

반면 그 널찍한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는 나른하고 한가로웠다. 경기장의 열기는? 없었다. 길게 뻗는 도로를 질주하는 차륜의 맹속만이 쉼없이 들려온다. 주말에도 그런가, 하고 관리하는 분에게 문의하니, 용도에 맞게 쓰이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인근 주민들이 자전거도 타고 산책도 많이들 한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데 설마 이 거대한 경기장을 주말의 산책 용도로 지은 것은 아닐 터.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이 있다. 개발 일변도의 도시 팽창이 낳은 폐해를 진단하는 용어다. 특히 예술가들이 문화적 상상력과 새로운 삶에 대한 모색으로 도심의 어느 한 구역에 정성을 쏟게 되고 이에 따라 관광객들이 몰려들면 어김없이 건물주가 임대료를 무기 삼아 고생해 온 사람들을 내쫓고 지극히 상업적인 거리로 바꿔버리는 현상을 가리킬 때,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을 쓴다. 홍대 앞, 연남동, 이태원, 서촌 등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결국 건물주의 이익으로 귀결되는 쓸쓸한 풍경을 낳았다.

그런데 내 생각에 이 용어, 즉 젠트리피케이션이 건물주의 임대료 문제로 지나치게 축소된 듯하다. 그 같은 악순환이 서울 곳곳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쓰지 않을 수 없지만 내 생각에 진짜 젠트리피케이션, 즉 막대한 개발 이익을 위해 국가의 재정과 국토와 인력을 유감없이 쓰고 있는 영역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곳, 아시아드경기장이 특히 그렇다.

 

어떤 점에서 인천은 젠트리피케이션의 광기 어린 현장이다. 물질적 부를 천박하게 자랑하고 누군가의 가난한 삶을 낭만화하여 구경거리로 삼는 도시가 바로 인천 풍경이다. 송도의 마천루에서 송월동 동화마을까지 인천 자체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백화점이다.

 

경제자유구역 지정 10주년을 맞은 인천 송도·청라·영종지구 부동산시장에 훈풍이 불고 있다. 요즘 아파트값이 꿈틀대고 있는 송도신도시 전경 출처: 이데일리|정수영

 

아라뱃길을 따라가 보자. 물류 중심의 뱃길이라지만 화물선은 눈에 띄지 않고 관광 유발효과가 있다고 했지만 나른하게 오가는 유람선에는 몇 사람 보이지도 않는다. 해마다 여름이면 녹조 현상에 악취가 나는 등 수질 문제가 거론된다. 뱃길 양편으로 자전거도로가 생겨서 문화 불모지였던 서구 검암동 일대의 주민들이 산책과 운동을 하는 효과가 있지 않으냐 하면 일단 긍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을 위하여 2조원 넘게 공사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리고 지난 3년간 유지·관리비용만 무려 700억원이 넘게 들었는데, 이 뒤집힌 효과를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국가와 지방정부는 또다시 개발의 카드를 꺼내든다. ‘활성화 방안’ ‘사후 활용 대책같은 제목 아래 갖가지 개발 수단을 제기한다. 수자원공사는 아라뱃길 활성화 방안으로 영국 런던이나 독일 함부르크 같은 복합관광형 해양단지로 조성하겠다고 한다. 아라뱃길 일대를 세계적인 레저명소로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대체 런던의 역사나 함부르크의 문화를 제대로 알고 이런 제안을 던지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상상력의 빈곤이다.

 

아시아드주경기장도 똑같은 양상이다. 아시아드주경기장 등 16개 경기장을 짓는 데 국비 4677억원을 포함해 무려 17000억원이 투입됐다. 4700억원이 들어간 주경기장은 운영비로만 한 해 30억원을 넘게 쓴다. 그 사후 활용 방안으로 아시안게임 테마 관광단지를 조성한단다. 도대체 지난해 아시안게임이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잘 아는 사람들 머리에서 테마 관광단지라니, 철학의 빈곤이다.

 

서울과 부산을 제외하면 각지의 월드컵경기장이 대부분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으며 전남 영암의 포뮬러원(F1) 경기장은 빚더미에 허덕이다 못해 지역 정치인들에 의해 경마나 경륜과 같은 자동차 경주용으로 계획 중이다. 요컨대 온 나라의 경기장 시설들이 원래 용도나 계획대로 쓰이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공공성의 빈곤이다.

 

그러나 진짜 폭탄은 아직 터지지도 않았다. 바로 2018 동계올림픽을 위한 평창, 정선, 강릉 일대가 기다리고 있다. 경제효과 60조원 같은 전망에 대해 한국은행이나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과장된 수치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럼에도 온갖 형태의 사후 활용 방안이 제출되고 있다. 사후 방안이 있느냐 하는 비판에 다급히 준비한 듯 보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정교한 수순을 밟고 있다. 일단 공사를 벌이고 그 다음에는 무슨 관광이나 레저단지로 개발하고 또 그 다음에는 동북아의 거점센터로 한다는 식인데, 무서운 것은 이러한 무모한 수순이 대체로 관철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9월 강원도청은 ‘500년 천연림 가리왕산을 보호하자는 주장에 대해 이 일대는 과거에 화전민이 살던 곳이며 수목도 평균 수령 최대 70년이라고 반박한 적 있다. 어차피 일정하게 훼손된 곳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사나흘 대회 치른 후 복원하겠다고 했지만, 실은 완전 복원이 어려운 상태에서 몇 그루 심어 조경하느니 복합 레저관광타운을 건설하는 게 더 낫지 않으냐는, 그런 개발 계획을 던지려는 수순처럼 보인다.

 

4년마다 다가오는 지방선거의 과도한 개발 열기, 이런 기회에 편승하는 중앙이나 지방의 관료 개발주의, 그리고 멀쩡한 산림이나 자기 동네에 위락시설이 들어오면 살림살이 나아지는 것처럼 왜곡된 중산층을 향한 욕망. 이렇게 나라를 통째로 구워삶는 거대한 젠트리피케이션은, 특히 스포츠 인프라 분야에서 브레이크 없는 폭주 기관차가 되고 말았다.

 

 

피라니아 잡아라저수지 물 모두 빼 7.6 경향

원주지방환경청은 남미산 육식어종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피라니아와 레드파쿠가 발견된(경향신문 74일자 9면 보도) 강원 횡성군 마옥저수지의 물을 모두 빼내 어종을 제거하기로 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국립생태원, 강원도내수면연구센터, 횡성군, 강원대 어류연구센터 등과 함께 6일 저수지 출입을 금지시키고 물빼기 작업을 시작했다.

 

 

강원 횡성군 마옥저수지에서 육식어종인 피라니아와 레드파쿠가 발견된 가운데 6일 횡성군청 관계자들이 이들 물고기 퇴치를 위해 양수기로 저수지 물을 빼내고 있다. | 연합뉴스

 

마옥저수지에서는 지난 3~4일 피라니아 3마리와 레드파쿠 1마리가 잡혔다. 1961년 만들어진 마옥저수지는 올해 초 완전히 물을 빼낸 뒤 4월 중순 증축 공사를 한 이후 다시 담수를 했기 때문에 그사이 누군가가 피라니아 등을 관상용으로 키우다 이곳에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지방환경청과 횡성군은 이날부터 양수기를 24시간 가동해 담수된 3000t가량의 물을 7일 오후까지 모두 빼낼 계획이다.

국내에서는 이들 물고기에 대한 반입 규제가 없어 수족관 관상용으로 인터넷 등에서 버젓이 팔리고 있는 상태다. 피라니아가 국내 자연환경에서 생존 확률이 거의 없다는 판단에서 규제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처럼 수족관에서 키우던 피라니아를 저수지나 하천 등에 버리는 일이 또다시 발생하면 물놀이를 하다가 공격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국내 반입을 적극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원주지방환경청은 인근 저수지 등의 외래어종 서식 여부 조사와 퇴치 작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배우자 선택 기준은 인성공무원 선호 7.7 한겨레

 

미혼남녀 10명 중 7명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인성을 가장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은 공무원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20대 이상 미혼남녀 1336명을 대상으로 결혼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7일 밝혔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을 묻자 남성의 64.4%, 여성의 71.1%인성·성품을 꼽았다. 남성의 경우 사랑(30.8%), 외모(17.1%), 건강(16.5%) 순으로 뒤를 이었다. 여성은 경제력(44.3%)2, 사랑(19.2%)과 가치관(13.0%)이 각각 3위와 4위를 차지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은 공무원(22.1%)이다.

 

이어 회사원(20.9%), 교사(9.4%), 의사·한의사(5.4%), 자영업(4.4%) 순이었다. 배우자 직장의 선호하는 기업 형태에 관한 질문에서는 관계없다’(38.3%)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공기업은 27.5%, 대기업 13.3%, 외국계 기업 11.5%의 응답률을 보였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는 62.9%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답했다. ‘반드시 해야한다는 답변은 27.8%였다.

 

 

개천에서 용 나던 그런 시절은 끝났어 7.7 시사인

여론은 사법시험을 눈에 띄게 선호한다.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불공정한 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현실은 어떨까. 계층이동성이 떨어진 건 로스쿨 제도 때문이 아니었다. 로스쿨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618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 새누리당 국회의원 다섯 명이 주최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국회 대토론회가 열렸다. 국회 토론회 치고는 이례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100석 넘는 자리가 가득 차고, 간이 의자를 펴고도 자리가 모자라 서서 듣는 청중도 꽤 있었다. 청중 중에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 일대의 자영업자들이 많았다. 2017년 사법시험 폐지가 확정된 이후 신림동 고시촌은 신규 유입이 끊겨 쇠퇴 징후를 보이고 있다.

 

축사를 하러 나선 정치인과 법조인은 앞다투어 사법시험 존치론을 주장했다. 여러 축사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있었다. 이른바 개천용(개천에서 나는 용)’ 코드다. 검사 출신인 새누리당 김용남 의원은 나는 불도저 기사의 아들이었다. 공정한 사법시험이 없었다면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새누리당 법사위 간사인 이한성 의원은 농부의 아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가천대 출신”, 발제를 맡은 이호선 국민대 법대 교수는 검정고시 출신이라고 자기소개부터 한 후에 사법시험이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했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라기보다는 개천용 경연대회같았다.

 

시사IN 조남진 사법시험 폐지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지난 4월 재보선을 거치며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위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

.

사법시험은 2017년을 끝으로 폐지가 예정되어 있다. 이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4월 국회의원 재보선 때부터다. 신림동 고시촌이 속한 서울 관악을이 보궐선거 지역구가 되었고, 야당 텃밭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가 지역 자영업자들의 현안이기도 한 사시 존치 공약을 내세워 승리했다. 528일자 <동아일보>는 법조인 양성제도를 주제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1면에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응답자의 74.6%가 사법시험 폐지에 반대했다. 사법시험과 로스쿨 중 하나로 제도를 단일화한다면 사법시험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67.9%였다(로스쿨 선호 23%). 여론은 사법시험을 눈에 띄게 선호하는데, 핵심 이유는 로스쿨이 사법시험보다 불공정한 제도라고 보기 때문이다. 같은 보도에서 로스쿨 졸업자가 취업할 때 집안 배경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은 87.8%에 달했다.

 

공정한 제도라야 개천용이 탄생할 수 있다는 믿음. 로스쿨은 기회의 공정성을 무너뜨려 개천용을 차단한다는 믿음. 법률가 양성제도를 바라보는 여론의 밑바탕에는 이런 정서가 강력하게 깔려 있다. ‘공정사회’ ‘기회 균등’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등의 주장이 건드리는 대목이 여기다.

 

왜 사법시험에서 개천용이 나와야 할까?

현실은 어떨까. 서울대 이재협(로스쿨 교수이준웅(언론정보학과 교수황현정(언론정보학과 박사과정) 연구팀은 622로스쿨 출신 법률가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로스쿨 출신(1~3), 이들과 동시대의 사법연수원 출신(40~43), 그리고 이전 시대의 사법연수원 출신(39기 이전)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출신 대학, 가정환경, 교육만족도, 직무평가 등을 비교했다.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양 집단(로스쿨과 동시대 사법연수원) 간 가구소득, 부모의 직업과 교육 수준에는 차이가 없었다. 반면 양 집단 법률가의 사회적 배경이 사법연수원 39기 이전 법률가의 그것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세대 차이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이런 얘기다.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부잣집 아들딸이 법률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로스쿨 제도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사시에 합격한 사법연수원 법률가의 사회적 배경도 마찬가지로 올라갔다.

 

시사IN 조남진 사법시험 폐지를 재검토하자는 주장이 지난 4월 재보선을 거치며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32<1>은 로스쿨 법률가와 사법연수원 법률가의 가구소득을 비교한 자료다. 둘 다 1000만원이 넘는다. 이는 상위 10%에 해당하는 가구소득 10분위 그룹의 월평균 소득과 비슷하다. 이 외에도 연구팀은 특히 법률가 부모의 직업과 교육 수준에서 뚜렷한 세대 차이를 발견했다. 로스쿨 출신이든 사법시험 출신이든 젊은 세대로 올수록 법률가 부모의 학력이 높고 고소득 전문직 비율도 높아진다. 법률가의 계층이동성은 확실히 나빠졌다. 하지만 로스쿨 때문인 것은 아니다.

 

연구 논문 제2저자인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는 한 발짝 더 나가서, 논문에 쓰지 않았지만 결국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질문을 기자에게 들려줬다. “우리는 왜 법률가 시험에서 개천용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할까요? 토론회에서 마치 신앙 간증을 하듯 개천용 성공신화를 고백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 사법시험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이 시험으로 이 될 수 있었다는 대목이야말로 존치론의 핵심이었다.

 

한국의 법률시장은 일종의 국가 면허 시스템이다. 면허를 발급받지 못하면 시장 진입 자체가 막힌다. 공급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면허 발급 숫자를 틀어쥐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단 면허를 획득한 다음에는 신규 진입자를 최소화하는 것이 법률가들의 중요한 생존전략이 된다. 방법도 간단했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만 제한하면 되었다.

 

그 결과가 <2>. 한국은 변호사의 절대 숫자는 물론이고 인구 10만명당 변호사 비율로 봐도 미국·영국·독일에 한참 못 미친다. 일본만이 한국과 비슷한 강력한 면허제도로 법률가 공급을 통제해왔다. 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GDP 대비로 따져도 사정은 비슷하다. GDP 10억 달러 대비 변호사 수를 계산해보면, 미국은 75, 영국은 54, 독일은 44명인 반면 한국은 14명이다. 역시 일본만 우리보다 아래다. 7명이다.

 

강력한 공급 통제가 작동하다 보니 법률가는 만성적 공급 부족 시장에서 면허 프리미엄을 누려왔다. 사법시험만 통과하면 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이런 공급 통제의 한계가 지적되면서 사법시험 합격자 숫자가 점차 늘어나 한때 합격자 1000명 시대를 열었다. 로스쿨 시대가 열린 후로는 한 해에 변호사 시험(로스쿨 졸업자가 치르는 법률가 자격시험) 합격자 1500명이 배출되고 있다. 여전히 면허 총량을 제한하는 시장이기는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유례가 없던 공급 증가가 이루어졌다.

 

그 결과가 <3>이다. 실제 등록 변호사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는 반면 변호사업계의 순수익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여서, 변호사 1인당 순수익을 계산해보면 감소세가 두드러진다고 서울변협은 분석했다. 법률가 면허의 가치가 빠르게 내려가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4>와 같은 일도 일어난다.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변호사가 붙지 않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런데 한 자릿수에 머무르던 소액 사건 수임률이 2006년 들어 난데없이 31.1%까지 뛰어오르더니, 이후로도 20% 안팎의 수임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면허 소지자의 관점에서 보면 예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사건에까지 진출해야 하는 서글픈 처지다. 하지만 법률 서비스 소비자의 관점에서 보면, 면허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소액 사건에서도 법률 서비스를 받을 길이 열린 것이다.

 

장년층 법률가들이 앞다투어 간증하는 개천용 신화는 큰 기둥 두 개에 기대고 있다. 첫째는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었다. 50대 이상의 법률가들은 저개발 시대나 고도성장기 초입에 사법시험을 통과했다. 이들 세대에서 가난한 부모 아래서 자란 경험은 차라리 당연한 얘기였고, 법률가 면허를 획득했을 때 체감할 수 있는 계층 상승의 폭도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고도성장기가 끝나고 사회 전체의 계층이동성이 떨어진 현재는 로스쿨이든 사법시험이든 개천에서 용 되는 이동은 훨씬 더 좁은 문이 되었다.

 

둘째는 법률가 면허의 과소 공급이었다. 이 조건에서 면허 획득은 으로 가는 자유이용권을 뜻했지만, 높은 면허 가격은 법률 소비자의 고비용과 접근성 차단이라는 희생 위에 유지되었다. 로스쿨 도입 이전부터,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정도의 가벼운 충격만으로도 이 초과이득은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명지대학교 김두얼 교수(경제학)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내놓은 연구보고서에서 사법정의 구현과 한국 경제 규모에 맞는 법조 전문인력을 공급하려면, 보수적으로 추정하더라도 연 4000명이 신규 공급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럴 경우 법률가들은 면허로 신분 상승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 경쟁에서 생존과 탈락이 갈리게 된다. 이런 직업군을 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2000년대 이후 이어져온 사법개혁 논의의 핵심에도 이 아이디어가 있다. ‘면허=이 되는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었다. ‘개천용 신화가 기대는 두 기둥, 계층이동성과 면허 통제는 흘러간 옛 노래가 되어가고 있다.

 

신뢰 확보에 실패한 로스쿨 시대 사법체계

문제는 남는다. ‘로스쿨 입학-변호사 시험-판사·검사 임용으로 이어지는 법률 공직자 만들기의 고리가 투명하지 않다. 입학시험은 로스쿨의 자율권에 속하고, 변호사 시험 결과는 법으로 공개가 금지되어 있었다. 사법연수원 성적과 같은 기존 잣대가 사라진 상황에서 판검사 임용은 끊임없이 음서제 논란에 시달렸다. 이 대목은 사시존치론의 핵심 논거라기보다는 로스쿨 비판의 핵심 논거로 제시된다.

 

 

연합뉴스 413일 부산고등법원이 부산 동아대 로스쿨에서 처음으로 정식 재판을 열었다.

 

로스쿨 도입 취지를 보면, 지나친 줄 세우기 경쟁을 지양하고 법률가의 다양한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련의 과정에 여러 재량권을 부여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법률가 선발 과정에서 이런 자율성을 용인할 만큼 신뢰 수준이 높지 않다. 625일 헌법재판소는 변호사 시험 점수를 공개하지 않도록 한 법률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이른바 3’로 불리는 대형 로펌의 사법시험 출신 중견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의 자율성·불투명성을 두고 결과적으로 로스쿨 교수들만 편하라고 만든 제도 설계다라고 혹평했다. “사법시험 시절에는 대학 법대 교수들은 사교육 강사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현장도 시험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로스쿨로 오면서 투명성이 떨어지니까 교수의 권한만 세졌다. 가장 행복해진 사람들이다.”

 

실제 현장의 사정이야 어쨌든, 로스쿨 시스템의 불투명성을 한국 사회가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여론의 압력으로 드러나고 있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과)는 자신의 블로그에 필기시험 선발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걸 해체하는 데에만 온 힘을 기울이고, 그에 상응하는 공정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은 문제다라고 썼다. 홍 교수는 줄세우기식 사법시험 시스템을 답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로스쿨이 대안으로 자리 잡으려면 줄세우기식 시험 못지않은 신뢰와 투명성을 로스쿨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재학생 중 저소득자 비율·타교생 비율·출신 대학·성별·나이·성적 평균(최저 합격점수) 등을 스스로 공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판사와 검사 임용 과정에서 벌어지는 음서제 논쟁도 로스쿨 시스템에서 되풀이해 등장하는 문제 제기다. 사법시험과 달리 로스쿨은 기본적으로 선발기관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다. 법원과 검찰은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판사와 검사를 선발해야 하는데, 이 과정 역시 사법시험만큼의 여론 신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특히 로스쿨을 졸업해 변호사가 되어야만 판검사와 같은 공직 진출 자격을 갖게 되는 현 제도는 기회 균등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하므로, 예비시험과 같은 최소한의 대안 경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다.

 

로스쿨이 개천용 신화를 무너뜨렸다는 평가는 철지난 신화에 기대고 있다. 하지만 로스쿨이 사법시험을 대체할 만한 신뢰성 확보에 실패하고 있다는 현실은 앞으로 로스쿨 시대의 사법체계가 답을 찾아야 할 핵심 질문이 될 전망이다

 

X에 담긴 깊고 오묘한 뜻 7.6 시사인

<X파일>이 돌아온다. 폭스TV는 내년 1월 방영을 목표로 <X파일> ‘시즌10’ 제작에 들어갔다. 이보다 앞서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X파일이 열렸다.

 

수수께끼는 다음과 같다. “새누리당 김학용 의원이 김태호 최고위원(사진)X새끼라고 불렀다. X는 무엇일까?” 멀더와 스컬리는 새 시즌 촬영에 바쁘다. 대신 누리꾼들이 추리에 나섰다.

 

연합뉴스 72일 새누리당 최고위원 회의,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듭 요구하며 회의가 파토 났다. 김학용 대표 비서실장이 회의장을 나가면서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X새끼라고 외쳤다.

 

인터넷 커뮤니티 MLB파크에 ‘X파일문제가 올라왔다. “다음 중 X에 들어갈 것은? 1-‘’ 2-‘10’ 3-‘’ 4-‘’ 5-‘’ 6-기타.” 누리꾼들은 신중하게 보기를 문제에 대입했다. 무엇이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 회의에서 나올 발언으로 가장 적절한지 추리했다. 누리꾼들은 주어진 보기에서만 답을 찾지 않고 보기를 추가했다. 7’, 8삼시등등. 누리꾼들은 7번과 8번에 높은 점수를 줬다.

 

누리꾼들의 추리대로라면 김학용 의원은 김태호 최고위원에게 내 새끼라며 친근감을 표시했거나, “삼시세끼라며 끼니를 챙겨준 셈이 된다. 선거 때만 되면 찹쌀가루로 뭉치는 집권 여당의 최고위원 회의에서 나올 법한 자상하고 배려 넘치는 발언이다. 알쏭달쏭했던 ‘X새끼의 베일이 벗겨지며 그럴듯하게 느껴진다. 멀더와 스컬리 뺨치는 누리꾼 수사대의 추리 역량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만약 1번 보기가 정답이라고 하더라도, 김태호 최고위원에게는 욕설이 아닌 칭찬일 것이다. 김 최고위원은 라는 접두사를 남다르게 사용했다. 지난 629일 연평해전 13주년 관련 언급을 하던 중 그는 다시는 우리 아들딸들이 이런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비난이 일자, 김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너무나도 안타까운 고귀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표현이었다라고 해명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의 해명대로라면 ‘X새끼X라고 하더라도, 그는 너무나도 안타깝고 고귀한 아이라는 덕담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진실은 저 너머에.

 

빛바랜 민주화의 초상 6.26 시사인

1야당은 호남 기득권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합을 통해 최소한 2등은 하는 비주류 기득권을 누려왔다. ‘486 책임론도 여기서 비롯된다. 한때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이들이 이제는 혁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처지가 됐다.

 

예측한 대로다. 610일 공식 출범한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발걸음을 떼자마자 곳곳에서 지뢰가 터지고 있다. “혁신위원 구성이 친노·486·운동권으로 이뤄졌다”(박주선 의원)라는 발언이 나오자, 다른 쪽에서는 새누리당 세작(비노)들이 당을 붕괴시키려 하고 있다”(김경협 의원)라고 맞받았다. 혁신위 출범과 함께 당이 쑥대밭이 됐다.

 

거꾸로 말해, 이것은 엄청난 위기감이다. 혁신위가 어떤 의제와 해법을 내놓을 것인가에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음을 방증한다. 2008년 총선 당시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이 공천 혁신을 주도했을 때보다 긴장감은 더욱 크다.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 정치혁신위원장을 맡았던 정해구 교수의 말처럼 이번이 마지막 혁신 기회라는 위기감이 퍼져 있다.

615일 문재인 대표가 혁신안 실천에 당대표직을 걸겠다라고 밝히면서 혁신위의 무게감은 한층 커졌다. 따져보면 혁신위를 공격하는 현역 의원은 실제로 손에 꼽을 정도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핵심 당직자는 혁신위에 반대하는 것으로 비치는 의원조차 비공개적으로는 타협안을 이야기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612일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 1차 회의 참석자들이 당권재민 혁신위원회 실천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키는 혁신위가 쥐었다. 혁신위의 핵심 관계자는 한꺼번에 혁신안을 발표하지 않고, 하나씩 차례차례 내놓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어차피 맞닥뜨릴 저항이라면, 사안별로 논쟁하면서 주도권을 가져가겠다는 뜻이다. 혁신위 활동 기한(100)9월 말까지, 혁신위가 당의 중심에 설 수밖에 없다.

 

6월 셋째 주까지 혁신위가 내놓은 의제는 당내 기득권 구조 타파, 기강 확립 등 원론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당의 최대 관심사는 이미 혁신위가 누구를 칠 것이냐로 모아진다. ‘호남 현역 의원 40% 이상 물갈이를 주장해온 조국 교수가 혁신위원으로 합류하면서 호남 물갈이 논란은 이미 뜨거워졌다.

 

그런데 호남 물갈이 논란에 가려 아직 분출되지 않은 쟁점이 있다. ‘486(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 책임론이다. 4·29 재보선 참패 이후 ‘486 정치인들은 그동안 뭘 했느냐는 비판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친노-비노 갈등이 극심할 때도 이들은 침묵했다. 이번에야말로 486혁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당 안팎에서 제기됐다. 4·29 재보선 이후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486 세대가 민주화운동의 보상 차원으로 국회의원직을 얻은 것에 만족할 뿐 복지·평화 시대를 여는 신세력으로서의 소명감과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486 책임론은 김상곤 혁신위원장 등장 이후에도 나왔다. 김상곤 혁신위원장과 이종걸 원내대표 간에 호남 다선과 486을 물갈이해야 한다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둘은 오보라며 강력 부인했지만, 오히려 논란은 확대됐다. 63일 새정치민주연합 워크숍에서는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이 재야-486을 잇는 새 주류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내년 총선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불씨는 더욱 커졌다.

 

486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비판 여론이 높았던 것은 2012년 대선이었다. 486 대표주자인 이인영·우상호 의원이 각각 공동선대본부장과 전략홍보본부장을 맡아 치른 선거에서 패했다. 그해 4월 임종석 의원이 사무총장을 맡아 치른 총선에서는 공천 잡음이 크게 불거졌다. 486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적잖게 나왔지만, 대놓고 물갈이 대상까지는 아니었다.

 

지난해 7·30 재보선 때 동작을 공천사태는 하나의 변곡점이었다. 기동민과 허동준,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인 두 486 정치인의 공천 다툼 앞에 여론은 싸늘했다. ‘486은 권력에 대한 욕망만 남은 구악들이라는 비판이 고개를 들었다. 이 일을 계기로 진보 진영 안에서도 486 회의론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7·30 재보선 이후 열린 한 토론회에서는 “30년째 학생회장을 하고 있다(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운동권 선후배로 묶여진 인연을 매개로 패거리·권력화됐다(고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486을 비판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무능력이다. 정치권의 젊은 피로서 3김 시대 이후 정치판을 바꾸지 못했고, 새로운 진보적 의제를 제시하지도 못했다는 평가다. 의정 활동에서 역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정책통은 공무원연금, 무상급식, 증세 논란 등 최근 정치권을 달군 이슈와 관련해 떠오르는 486 정치인이 없다. 오건호 박사(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한 명만도 못하다라고 잘라 말했다.

 

28일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는 여론을 그대로 보여줬다.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인 이인영 의원이 당 대표 선거에서 12.92%에 그치며 맥없이 떨어졌고, 전대협 2기 의장을 지낸 오영식 의원은 최고위원 선거에서 4위로 턱걸이하며 간신히 지도부에 입성했다. 예상보다 훨씬 저조한 성적표였다. 당시 여의도에서는 두 정치인의 정계 은퇴까지 거론되었다.

 

‘486 퇴진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하나의 담론이 있다. ‘야권 내 87년 체제의 붕괴다. 그동안 제1야당의 중심은 호남과 민주화 세력, 두 축이었다. 민주화 세력은 1980~1990년대 재야 세력으로부터 수혈되기 시작해 2000년대 486이 대거 진출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지역적으로는 호남, 정치적으로는 민주 대 반민주구도를 기반으로 제1야당의 지위를 유지한 것이 야권의 87년 체제였다.

 

시사IN 이명익 7·30 재보궐 선거 당시 허동준(왼쪽기동민 사이 벌어진 동작을 공천 사태에 여론은 싸늘했다.

 

문제는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흔들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점이다. 진보 대 보수 구도 역시 철지난 담론 취급을 받는 시대다. 그럼에도 제1야당의 권력 기반은 87년 체제에서 달라지지 않고 있다. ‘호남 기득권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합을 통해 최소한 2등은 하는 비주류 기득권을 누려왔다. 4·29 재보선 참패는 이런 비주류 기득권이 붕괴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곡성 의석을 가져간 데 이어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광주에서 승리한 것은 호남 민심이 제1야당의 기득권을 유지시켜줄 의사가 없음을 보여줬다.

 

그다음 타깃이 486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 세력이다. 2·8 전당대회 결과에서 보듯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 이들 세력은 대안 세력으로서 존재감을 잃었다. 이런 평가가 야권 지지층 전체로 퍼지는 것이 시간문제인 만큼 새로운 세력·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는 것이 486 책임론의 요체다. 넓게 보면 노무현 정부 때 한 자리를 차지했던 친노 그룹 상당수도 486 세력에 포함된다.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한 정치권 인사는 혁신의 대상인 민주화운동 세력과 호남 기득권 세력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는 것이 지금 새정치민주연합 내홍의 실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중 23.8%‘486’

실제로 486 정치인이 여의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새정치민주연합 안에 486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되는지 따져봤다(33쪽 표 참조).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 1980년대 학생운동·사회운동 경험이 있는가. 둘째, 본인이 각종 이력에 학생운동·사회운동 경력을 명시하고 있는가. 486 세대에 속하지만, 본인이 운동 경력을 명시하지 않은 이는 제외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축이지만, 1950년대에 태어난 인물도 제외했다.

 

그 결과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130명 중 486으로 분류할 수 있는 정치인은 31(지역구 25, 비례대표 6)이었다. 전체의 23.8%를 차지한다. 광주·전남·전북을 모두 합친 호남 지역구 의석이 30석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전체 국민에 대비해 과다 대표됐다라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다만 눈에 띄는 건 486 국회의원 중 초선 국회의원의 비율이다. 31명 중 19명이나 된다. 2012년 총선에서 처음 배지를 단 정치 신인이 전체의 61%라는 이야기다. 486 의원을 싸잡아 구태 기득권 세력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무리가 있다. 물론 신진이라고 해서 면죄부를 얻을 수는 없다. 어쨌든 486비중 있는 정치적 실체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시사IN 자료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했던 김영춘(왼쪽송영길은 2000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비판에 맞닥뜨린 486 정치인의 해명은 대략 이렇다. 486이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실제로 정치권에 진입했을 때 486의 입지는 크지 않았다. 486 수혈로 시끌벅적했던 2000년 총선 때 배지를 단 건 김영춘·송영길·임종석 정도에 불과했다. 2004년 총선 때 대거 들어갔지만, 2008년에 또 대거 떨어졌다.

 

이러다 보니 당에서 책임 있는 요직을 맡을 기회가 적었다. 이인영 의원의 경우 실제 정규 선수로 뛰지 못하고 벤치에서 물주전자만 날랐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각성 끝에 19대 국회에서 당 대표 선거에 도전하고, 생활정치 이슈에 집중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주장이다(36~37쪽 우상호 의원 인터뷰 기사 참조).

 

이런 해명이 흔쾌하지는 않다. 표에서 보듯 486 정치인 중에는 사무총장, 최고위원, 대변인 등 요직이라고 할 만한 자리를 거친 인물이 적지 않다. 당의 기초 조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광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이도 꽤 된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만 빼면 핵심 요직을 두루 경험한 셈이다. ‘기회는 이미 주어졌다고 볼 수 있다.

 

출판사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결국 문제는 재선, 3선을 하는 동안에 그들이 아무런 리더십도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지금부터라도 사람을 모아서 행동해야 한다. 당의 변화가 필요할 때 에너지원이 되어라고 주문했다.

 

과거 386 세대라는 이름은 영광의 훈장이었다. 진보의 상징이었고,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청춘을 바쳐 독재 권력에 항거했던 이들이 의회 권력의 한가운데로 진출한 것 자체를 역사의 진보라고 믿었다. 새천년이 시작된 2000, 이들은 대중의 관심 속에 호랑이굴로 들어갔다.세월이 흘렀다.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간 386486이 되고 586이 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이들이 혁신의 도마 위에 오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486의 도전은 이대로 끝날까. 기다림의 시간이 많이 남지는 않은 것 같다.

 

 

 

대통령이 찍어도 넘어가지 않았다 7.6 한겨레21

 

박근혜 대통령 6·25 연설에서 배신자낙인에 오히려 유승민 방어 여론 일어나삼권분립 지키려는 시민들의 균형감 발휘된 것” “강자가 약자 누르니 억울해 보이게 됐다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여권의 내분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625일 정치권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비난하고, 이어 친박근혜계가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조만간 대중은 현 사태를 정치권의 지겨운 추태로 연결짓고 정치 혐오에 다다를지 모른다. 청와대가 기대했던 것이 바로 이 대목이었을까? 냉소적 결론에 이르기 전에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이 있다. 여야가 국회에서 합의 처리한 과정과 절차를 심판받아야 할 배신의 정치로 보는 것은 온당한 일인가? 진노한 대통령의 말씀에 일부 의원들이 자기들 손으로 뽑은 수장을 갈아치우겠다고 내달리는 돌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 의회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은 안전한가? 대통령이 정치권의 혼돈을 촉발할 만큼 우리 사회는 여유로운가?

 

유 원내대표는 지난 4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제가 꿈꾸는 보수는 정의롭고 공정하며 진실되고 책임지며, 따뜻한 공동체의 건설을 위해 땀 흘려 노력하는 보수라고 말했다. 지금 그의 위기는 그가 꿈꾼 이 말의 가치를 더욱 되새기게 만든다.

 

살다 살다 내가 유승민을 응원하긴 처음이다.”

최근 여당 관련 기사에 이런 인터넷 댓글이 종종 눈에 띈다. 그 밑엔 당신도?” “나도!” 따위의 호응이 겹겹이 붙는다. 온라인 여론에선 정의, 용기, 희생자, 신념과 같은 단어들이 유승민이란 이름과 달라붙어 유통되기도 한다.

 

나라 걱정으로 우국의 밤을 보낸다는 대통령의 생각과 엇나간 흐름이다. 대통령의 ‘625일 격노 발언의 의중대로 하면 지금 친박근혜계(친박)유승민을 원내대표직에서 몰아낸 기쁨의 몸이 되었어야 마땅하다. 이런 당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대통령이었어야 한다. 그리하여 청와대를 향한 충성심이 무르익은 친박은 대통령의 목소리 속으로 더 풍요롭고 기름지게 스며들었다는 환희의 격렬함을 누리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흙먼지투성이의 얼굴조차 씻지 않고 덤볐던 자신들의 다급한 성미가 대통령의 청일한 향기 속에서 안락한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메르스대신 유승민

625,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수정을 염두에 둔 국회법 개정안을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함께 합의 처리한 정치권과 새누리당의 원내사령탑을 질타했다. ‘배신의 정치국민들이 심판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노여움 속에 유승민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공격적 언어를 야당 대신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쏟은 친박계의 행동에서야 비로소 배신의 유승민 심판이란 표현의 조합이 드러났다. 국회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따지는 듯했던 대통령의 애초 의도가 증발된 자리엔 친박계의 처연한 생존 욕구와 청와대의 비박 배제의 욕망이 끓어오르는 듯하다. 대통령은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한 청와대 대응 미숙을 거론할 언론 보도 공간의 상당 영역을 유승민 사태로 치환시켰다. 하지만 일단 새누리당의 다수 의원들은 의원총회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재신임을 결정했다. ‘유승민 사퇴 반대여론도 사퇴 요구 의견에 밀리지 않는 분위기다. 그의 이름이 언론에 집중 거론되면서 도리어 그는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배신자 낙인의 역설유승민 찍어내기의 역효과란 말이 자연스레 등장했다.

 

배신자는 인간적 신뢰와 도의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 철새란 말과 함께 정치인을 쓰러뜨리는 유용한 도구다. 더구나 대통령이 배신의 대상으로 정치권과 국회를 낙인찍은 것은 이 둘에 대한 불신이 깊은 여론 지형을 효과적으로 건드린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시도한 배신의 낙인은 지지의 확장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유승민 방어흐름을 불러왔다. 5년 임기의 중반을 앞두고 30%대로 떨어진 대통령의 지지율에 담긴 여론의 실망감, 대통령의 일부 대선 공약 파기의 배반이 배신이란 단어 사용에 설득력을 더해주지 못한 탓이다.

 

대통령의 의중이 통하지 않은 이유는?

  보통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이 국회와 싸우면 이길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많은 유권자가) 직접 뽑았고, 국회는 각 지역구에서 뽑힌 의원들의 집합이다. 자기가 지지한 사람과의 유대감은 대통령이 더 크다. 그런데 (여론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이번 건이) 별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성난 모습을 보이니까 거부감이 들면서, 저렇게 몰아세울 게 뭐가 있느냐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누르는 것으로 보여 유승민 원내대표가 억울해 보이게 됐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지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조진만 덕성여대 교수)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유승민 캐릭터가 배신 낙인의 파급력을 막은 측면이 있다고 보았다. “유승민 의원이 기회주의 처신을 해왔다면 대통령의 배신이란 말이 실감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지역구가 있는 대구에서도 소신이 일관된 사람, 강직한 사람이란 이미지가 형성돼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질이다.” 유 원내대표가 2005년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적어도 정치적 주종 관계의 틀에 묶이지 않고 쓴소리를 해왔다는 평가 때문이다. 이는 잘못된 것을 보면 잘 참지 못한다는 성격에서도 기인하겠지만 그의 정치 입문 통로가 박근혜가 아닌 이유도 작용한다.

 

경제학 박사(미국 위스콘신대)인 그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1998년 들어선 김대중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다 대외활동 금지와 감봉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즈음 이회창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의 권유로 2000년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맡아 정치권에 들어왔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선거 기획 참모로서 패배를 경험했다. 지금까지 그는 15개 남짓의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두 번의 대선 패배(2002년 이회창 패배, 2007년 박근혜 후보의 당내 경선 패배)로 이가 녹아내렸기 때문이라 표현할 정도로 이회창 후보의 패배를 쓰린 기억으로 갖고 있다. 2004년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 된 그가 비례대표직을 내놓고 2005년 지역구 보궐선거(대구 동구)에 나섰을 땐 당시 박근혜 대표뿐 아니라 대선 패배로 정계를 떠난 이회창 전 총재가 현장 지원 유세를 나오기도 했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로 당선된 지난 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함께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있다. 세 사람은 2005년 당대표(박근혜), 사무총장(김무성), 대표 비서실장(유승민)으로 만난 인연이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 패배로 이가 녹아내린 남자

이회창 측근이던 그가 2005년 박근혜 당시 대표의 비서실장직을 수락하며 내건 조건은 청와대가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현 사태의 전조였는지 모른다. 그때 그는 박 대표의 비서실장직 제안을 두 번 거절하다 수용하면서 , 조건이 있다. 내가 2002년 대선에서 지고 후회하는 게 있다. 결정적 순간에 제대로 (이회창 후보에게) 건의를 못한 것이다. 비서실장을 해도 할 말은 다 해도 되겠느냐고 요구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그는 2012<매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 전 대표의 비서실장을 할 때도 주군을 모신다는 생각은 없었다. ·, 고용주와 피고용주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동지란 말은 뜻을 같이한다는 것인데 그런 동지적 관계라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원조 친박이라 불리면서도 친박 의원들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청와대 하수인을 하면 여당까지 망한다” “민주정치에서 기본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훌륭한 지도자는 반대되는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이 청와대를 향하곤 했다. 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엔 “5·16이 쿠데타라는 것은 상식이고 유신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것에 많은 분이 동의한다. 대선 후보로서 (과거사를) 평가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게 맞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현 정부의 방침과 달리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이를 두고 박근혜 정권 성공을 위한 충언이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예민한 부분을 건드리는 그를 곁에서 밀어냈다.

 

이제 그는 배반의 존재로 몰아가는 친박계의 사퇴 공세를 받는다. 정치학자들은 그런 그를 방어하는 여론의 흐름을 의회 민주주의 훼손과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를 막으려는 여론의 대응으로 읽고 있다. 국회 제정 법률에 대한 대통령의 재의 요구(거부권)는 헌법 제53조가 보장한 권리다. 하지만 여야가 합의한 절차적 노력까지 심판받아야 할 배신의 정치라고 대통령이 지적하면서 삼권분립 균열에 대한 우려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유승민은 그 가치를 지키는 최전선에 선 인물로 주목받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됐다. 73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정례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불가 의견(36%)이 사퇴해야 한다는 찬성 비율(31%), 의견 유보(33%)보다 높았다.

 

삼권분립가치 수호의 최전선?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김태일 교수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여야가 합의한 의회의 자율성에 대해 국무회의에서 저주에 가깝게 말한 것이 여론의 반감을 불렀다고 보았다. 채진원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정치에서 마지막 보스에 해당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보스 계파 정당 구조가 의회 민주주의를 공격하는 것에 대한 여론의 방어라고 짚었다.

 

대통령의 자의적 국정 운영이 누적되면서 이번에 반감이 커진 것 같다. 우리 시민들이 정치적 경험을 통해 어느 한쪽에 힘이 쏠리지 않게 하려는 삼권분립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다. 시민들의 역동성과 균형감이 이번 사태에서도 보이는 것이다라고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말했다.

 

박 대통령의 ‘6·25 발언직후 유 원내대표가 즉각적인 사퇴로 응답하지 않은 것도 민주적 절차를 지키려는 데 있다는 게 새누리당 원내 핵심 인사의 얘기다. “유 원내대표는 절차를 중시한다. 원내대표는 의원들이 선출한 자리다. 자신을 뽑은 의원들이 (의총에서) 원내대표직을 유지하라고 했으니 그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 지금 그(유승민)는 당위성, 즉 무엇이 바른 길이냐를 놓고 판단하고 있다.”

 

친박계 의원, 김태호 최고위원 등은 당청 관계를 갈등으로 몰고 간 책임을 들어 사퇴를 요구한다. 집권당 원내대표가 대통령을 적극 보좌하지 않았다는 조직규율도 사퇴 근거로 등장한다. 이에 대해 안병진 교수는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무시한 위험한 얘기라고 우려했다. 새누리당 원내대표단의 한 의원은 그럼 대통령의 말을 잘 따르는 사람을 임명하면 되지 의원들이 왜 원내대표를 직접 뽑느냐고 반문했다.

 

의회주의를 방어하려는 대중의 심리가 유승민이란 이름에 투영된 현상에 대해선 좀더 설명이 필요하다. 정치권에선 그가 개혁적 보수를 지향하고, 진영 논리의 포로가 되지 말자는 진영 극복주의자란 점에 주목한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그에 대해 뻣뻣하고 권위적인 보수가 아니라 유연한 성찰적 보수란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가 보수적인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를 내세울 때 참모였다. 하지만 나중에 “2008년 금융위기 뒤 재정 적자가 치솟는 걸 보고 (··세에서) 감세 주장을 접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넓어진 중도여론에 부합하는 인물

 

100점 만점 기준. 자료: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그는 정치권 안팎의 화제를 몰고 온 자신의 국회 연설(4)에서 사회적 양극화 해결을 위한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 진영 대립을 넘은 합의의 정치, 공정한 고통 분담과 공정한 시장경제(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재벌 개혁, ‘()부담-()복지를 위한 증세 논의 등을 제시했다. 특히 성장과 복지를 모두 중시하면서도 안보에선 정통 보수란 그의 주장은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혼합해 추구하는 중도 영역이 넓어진 흐름과 맞닿는다.

 

<1>복지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찬성한 의견이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62점으로 절반을 웃도는 여론의 흐름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소득 분배의 공정성에 대해선 33.8점으로 박하게 평가해 분배의 정의의 필요성도 요구한다. <2>에선 경제성장을 원하는 여론을 읽을 수 있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항목을 묻는 조사인데도, ‘경제적 번영을 답한 비율이 100점 만점에 80.5점을 차지한다. <1><2>는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이 지난해 1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발표한 ‘2014년 국민의식조사에 담긴 결과다.

 

<3>2012년 대선 이후 조사해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대선평가 보고서에 실린 내용 중 안보 성향 항목이다. ‘한반도 평화 선호 지수대북한 체제 비판 지수가 동시에 높게 나타난다. 대화를 통한 한반도 평화 관리 못지않게 튼튼한 안보를 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무성 대표(오른쪽 두 번째)72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거듭 주장하는 김태호 최고위원(왼쪽)의 발언이 나오자 회의 중단을 선언하며 일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사퇴 반대 여론 새누리새정치

이런 여론의 흐름은 새누리당이 꼴보수를 버려야 한다며 용감한 개혁을 주장하는 유 원내대표의 지향과 겹친다. 이번 사태에서 여론이 그에게 비교적 호의적으로 움직인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한 여론을 새누리당에서 합리적 보수의 좌절을 막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김태일 교수는 유승민 방어 여론개혁적인 그의 가치와 노선에 대한 지지와 격려도 담겨 있다고 보았다.

 

정치인의 성장엔 어떤 계기가 필요한데 유 원내대표에겐 이번이 대선을 향한 TK(대구·경북)의 대표주자를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에 대한 여론의 관심은 일시적이며 지지세도 견고하지 않다는 반론이 있다. 장덕현 한국갤럽 부장은 새누리당 지지자보다 새정치연합 지지자 사이에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하는 여론이 더 높다. (현재 그를 향한 여론의) 지지 기반과 충성도가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박 대통령의 625일 발언 직후 대통령에게 사과한 유 원내대표의 모습이 그를 잠재적 차기 권력으로 보이게 하는 데 한계로 작용할 수 있다고 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와 만나 사태를 직접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지만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를 둘러싼 친박계의 저항이 계속돼 당의 혼돈 양상이 길어지면 유 원내대표의 결단을 압박하는 새누리당 지지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다.

 

유 원내대표의 정치적 미래는 지금 이후의 행보에 달렸다. “탄압받는 자체로는 (국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자신이 내건 개혁적 가치를 이후에도 일관되게 가져가고, 실현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하는 민심의 테스트가 그에게 남아 있다고 김태일 교수는 말했다. ‘합리적 보수로 불리는 그가 새누리당의 용감한 개혁 앞에서 주춤할 경우 그를 주목했던 여론이 오히려 배신의 정치란 낙인을 그의 이름 앞에 호출할지도 모른다

 

백두대간 코앞까지 호텔·골프장 지으라는 정부 7.9 경향

관광·건축 투자활성화 대책 확정

재건축 때 인접 용적률 매입 가능

앞으로는 국유림과 산림보호구역, 백두대간 완충지역의 산 정상에 골프장과 호텔 등 대규모 숙박위락시설을 지을 수 있다. 투자활성화를 위해 국내 대부분의 산 정상에 대형 관광시설을 세울 수 있게 된 것이다. 대기업들이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와 함께 알프스처럼 만들자며 꾸준히 요구해 온 규제완화를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 산림파괴와 경관훼손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또 역세권 등에서 재건축을 할 때 옆건물과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는 제도가 도입된다.

정부는 9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8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관광·벤처·건축 분야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확정했다.

 

대책을 보면 산악관광진흥구역 제도를 도입해 전체 산지의 70%에 해당하는 지역에 관광휴양시설 조성을 허용하기로 했다. 보전산지, 요존국유림(생태계 보전, 상수원 보호를 위해 보존할 필요가 있는 국유림), 산림보호구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내 완충구역에 골프장과 호텔, 온천, 레스토랑 등을 지을 수 있다. 특히 표고 50% 이상인 산중턱 위로는 관광시설을 지을 수 없도록 한 제한도 철폐돼 산 정상에도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허용대상이 축구장 크기 4배인 3이상의 대규모 사업이어서 자금력있는 대기업만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산과 함께 강도 파헤친다. 정부는 하천점용허가 기준에 편의시설 설치근거를 확대하고, 하천 점용료를 탄력적으로 부과해 한강 등 5대강 인근 개발을 서두르기로 했다.   

건축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중심업무지역에서 재건축할 때 인접한 대지의 용적률을 사들여 건물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결합건축제도가 도입된다. 30년 이상 된 건축물 248만동이 대상이다. 서울 명동과 인사동 등 건폐율이 100%에 근접한 옛 시가지는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현행 건축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특별가로구역 제도도 신설된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기업인들이 마음껏 투자할 수 있도록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정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너의 이름은 소주가 아니더냐 7.2 시사저널

순하고 단맛 나는 소주 열풍반짝하다 사그라질 거란 지적도

달콤한 소주가 전국을 휩쓸고 있다. 롯데주류는 지난 320일 유자과즙과 유자향이 첨가된 칵테일 소주 순하리 처음처럼을 출시했다. 기존의 17.5도 처음처럼 제품보다 알코올 도수를 3.5도 낮춘 이 소주는 낮은 도수와 달콤한 맛 덕분에 젊은 층과 여성층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순하리 처음처럼은 출시 초기엔 저도주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은 부산·경남 지역에서만 판매됐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타면서 521일부터 전국적으로 판매망을 넓혔다. 출시 후 70일 만인 5월 말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 2200만병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지방 소주의 매서운 반격

순하리 처음처럼이 주류업계의 허니버터칩이라 불리며 인기몰이를 하자 경쟁사들도 과즙·과일향을 첨가한 제품을 선보이며 따라잡기에 나섰다. 특히 지방 소주업체들이 매서운 공세를 펼치고 있다. 경남 창원에 본사를 둔 주류업체 무학은 지난 5월 순하리 처음처럼의 대항마로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13.5)를 선보였다. 옐로우(유자레드(석류블루(블루베리) 3종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68일에는 스칼렛(자몽)을 출시해 총 4종으로 전선을 강화했다. 이 시리즈 제품은 출시 일주일 만에 200만병을 판매한 데 이어, 한 달 만인 지난 612일 기준으로 누적판매량 1000만병을 기록했다. 무학은 622일부터 주력 제품인 좋은데이와 신제품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를 전국 편의점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롯데주류가 지난 3월 출시한 순하리 처음처럼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소주업계에 저도주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부산 향토 소주업체인 대선주조 또한 순한 소주 열풍에 가세해 6915.8도의 시원블루 로즈14도 리큐르 제품인 시원블루 자몽을 출시했다. 이번에 출시한 시원블루 로즈는 대선주조가 지난 2월 일식당 등에 한정판으로 출시해 호평을 받은 16.9도 시원블루 로즈를 더 낮은 도수로 개발해 새롭게 내놓은 제품이다. 시원블루 자몽은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해 자몽에 대한 20대 젊은 층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점을 확인한 후 그 결과를 반영해 만들었다. 현재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 판매되고 있는데, 앞으로 순하리 처음처럼’ ‘좋은데이 컬러 시리즈와 같이 지역 호응을 기반으로 수도권으로 치고 올라오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소주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도 반격에 나섰다. 하이트진로는 61913도의 과일 리큐르 제품인 자몽에이슬을 선보였다. 하이트진로 또한 기존 주력 상품인 참이슬 소주(17.8)보다 알코올 도수가 4.8도나 낮은 제품을 출시하며, 저도수 트렌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몽에이슬은 출시 하루 만에 115만병이 팔릴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소주의 저도화 바람은 오래전부터 불고 있었다. 1965년 처음 출시된 희석식 소주는 30도였는데 이후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계속 낮아졌다.

 

1990년대 말부터 저도주 경쟁 본격화

소주 시장 선두 주자인 진로는 197325도짜리 참이슬을 출시하면서 30도가 대세이던 소주 시장에 저도화 바람을 일으켰다. 1990년대 말부터 주류업계의 저도주 경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진로는 순한 술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1998년에는 23, 2001년에는 22, 2004년에는 21도로 꾸준히 알코올 도수를 낮추다가 2006년에는 19.8도짜리 참이슬 후레쉬(fresh)’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2위 업체인 두산주류(현 롯데주류)도 같은 해 20도짜리 처음처럼을 출시하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팽팽한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무학은 2006좋은데이도수를 16.9도까지 낮췄다. 이 무렵 출시된 소주들의 도수는 대체로 16~18도 정도였다.

 

다시 저도주 열풍을 일으킨 곳은 롯데주류다. 올해 14도짜리 순하리 처음처럼을 선보이면서 그동안 소주의 마지노선으로 봤던 16도의 벽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다. 과일향과 단맛을 더한 것 또한 신의 한 수였다. 순하리 처음처럼은 기존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을 치밀하게 분석해 나온 결과물이다. 롯데주류는 201310월부터 1년 동안 4400여 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분석에 나섰다. 조사 결과 소비자들은 기존 소주의 향과 맛에 대해 느끼는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를 토대로 가격이 저렴한 소주를 베이스로 과실주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게 됐다.

 

14도는 와인류와 비슷한 도수라서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롯데주류는 신중하게 움직였다. 초기에는 순하리 처음처럼의 출시 지역을 저도주를 선호하는 부산·경남 지역으로 한정했고, 소비자 반응을 살핀 후 판매망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폈다.

 

과일향 소주 열풍 언제까지 갈까

지금은 순하리 처음처럼이 이끈 저도의 과일향 소주열풍에 업계가 우르르 따라가는 모양새지만, 얼마나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주류업계에서는 과일향 소주가 과거 매실주나 복분자주, 백세주 열풍이 일었을 때와 같이 트렌드 마켓으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할지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소주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치맥(치킨·맥주)’과 같이 술을 안주와 함께 먹는 문화가 있는데 과일향 소주는 음식과 함께 먹기엔 단맛 때문에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일향 소주가 앞으로 시장을 어떤 규모로 구축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시장이 형성되려면 재구매자 비율이 어느 정도 형성돼야 하는데, 과일향 소주 유행 초기엔 호기심에 사 먹는 사람이 많지만 이것이 재구매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 같다. 실제 재구매자 비율이 계속 떨어지는 현상이 포착돼 앞으로 특정 시장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저도주 흥행에 주정업체 주가 쑥쑥

 

시사저널 이종현

 

통상적으로 여름철은 소주 시장의 비수기로 꼽힌다. 올해 국내 주류업계에 때 아닌소주 전쟁이 벌어지면서 소주 원료인 주정을 공급하는 업체들의 주가가 연일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 낮은 도수의 과일향 소주열풍에 한동안 정체된 소주 판매량이 증가세로 돌아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소주 매출은 2012-7.1%, 2013-2.3%, 2014-6.4% 등으로 3년째 감소세를 보였으나 올해 1~5월에는 전년에 비해 2.8% 증가했다. 이마트가 올 1~5월 집계한 주류 판매량 조사 결과에서도 소주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8% 늘어났다. 순하리 처음처럼 등 저도 소주 매출이 33%나 급증해 전체 소주 매출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재미를 본 곳은 주정업체다. 현재 국내 증시에 상장된 주정업체는 MH에탄올·창해에탄올·한국알콜·풍국주정·진로발효 등 5개사다. 이 가운데 진로발효는 저도주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꼽힌다. 진로발효의 주가는 순하리 처음처럼이 출시되기 전인 지난 3월 초까지만 해도 3만원 선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3개월이 지난 현재 50% 넘게 올라 43850(625일 종가 기준)을 기록하고 있다.

 

MH에탄올과 창해에탄올 등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MH에탄올의 주가는 지난 577160원에서 625일 종가 기준으로 13800원으로 뛰어올랐다. 코스닥에선 창해에탄올의 주가가 6224만원대를 돌파하면서 최근 1년 사이에 가장 높은 가격을 보였다. 창해에탄올 주가는 지난 5727250원에서 625일 종가 기준으로 41600원을 기록했다.

 

김윤오 신영증권 연구원은 주정 사업은 업계 내 경쟁이 제한적이고 소주 사업과 밀접히 연관돼 있어 안전성과 수익성을 두루 갖췄다순하리 등 저도 소주 인기로 소주 수요의 저변이 확대된 것도 긍정적이다고 진단했다

 

가방끈 늘여도 답 없는 대학원생 7.14 주간경향

등록금 매년 오르고 취업은 어렵고돈값도 못한다식구들 푸념

개미지옥이죠. , 시간, 에너지 전부 다 빨려들어간다는 걸 알면서도 학위마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중간에 나올 수가 없어요.”

늦었다. 석사과정 세 번째 학기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대학원 진학은 영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대학원생 최형우씨(29·가명)의 여름방학은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으며 시작됐다. 다음 학기부터는 연구·수업조교 일을 후배들에게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내야 할 등록금을 모으려면 본업인 학업도 잠시 미루고 방학 동안 돈을 벌어야 한다. 방학 중 세미나를 빠지겠다고 알리면 화를 냈을 박사과정 선배들도 예전같지 않다. 다들 자기 먹고 살기 바쁜 처지에 남 신경 쓸 새가 없다.

 

 

무엇보다 슬금슬금 올라가는 등록금을 보면 대학본부가 야속하기만 하다. 최씨가 다니는 대학 학부는 올해 등록금을 동결했다. 그러나 대학원 등록금은 소폭이나마 올랐다. “한 학기에 10만원 정도 올랐는데, 오른 폭만 보면 그리 크지 않을지는 몰라도 총액수로 따지면 이제 1년 등록금이 거의 1000만원 가까이 돼요. 학부보다 수업 수도 적고, 인문사회계열이라 실험도 없는데도요.” 반면 조교 일을 해서 받는 장학금은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학부 졸업 후 취업이 안 돼 차선책으로 대학원에 몰린 후배들 때문에 조교 일자리 잡기도 하늘에 별 따기다.

 

취업난과 등록금 부담에 대한 따가운 시선 탓에 학부 등록금을 동결했던 사립대학들은 눈을 대학원으로 돌렸다. 전체 사립대학의 평균 연간 학부 등록금은 2010754만원에서 2014734만원으로 2.6% 낮아진 반면, 대학원의 평균 연간 등록금은 일반대학원 석사과정 기준 2010945만원에서 20141043만원으로 10.3% 올랐다. 대학원 가운데서도 등록금 액수가 큰 전문대학원은 인상폭도 훨씬 컸다. 전문대학원 석사과정의 평균 연간 등록금은 지난해 1478만원에 달해 4년 동안 37.8%나 올랐다.

1인당 등록금이 오르는 것과 함께 대학원 학생 수도 함께 늘면서 대학의 재정만 배를 불렸다. 2010년 이후 최근 5년 동안 전국의 대학 학부생은 3787명이 줄며 감소세로 돌아선 데 비해 대학원생은 같은 기간에 14239명 늘어났다. 이에 따라 전체 학생 수에서 대학원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10.1%에 달했다. 전체 사립대학 등록금 수입의 18% 이상이 대학원생 등록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학원생이 대학의 새로운 이 되고 있는 셈이다.

 

사립대 등록금 수입의 18% 이상 차지

등록금은 올랐지만 대학원생의 취업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일반대학원 졸업자의 취업률은 201172.1%에서 지난해 67.2%까지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특히 인문계열 대학원 졸업자의 취업률은 42.9%, 예체능계열은 34.6%에 불과했다. 이공계 대학원생이라 해서 사정이 썩 좋은 것도 아니었다. 공학·의약계열을 제외한 자연계열 대학원생의 취업률도 63.5%로 평균을 밑돌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생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들인 노력과 돈을 단순히 매몰비용으로 생각하고 발을 빼기가 쉽지 않다. 애초에 학업을 계속하고 싶어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이상에야, 학부 졸업 후 마땅한 일자리를 잡지 못해 어떻게든 석사학위라도 따서 석사 이상을 요구하는 일자리를 잡는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여전히 대졸 무직자로 남게 되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대학원생 최형우씨는 졸업 후 시장·여론조사 업체에 취직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누구나처럼 처음 석사(과정) 시작할 때는 열심히 해서 유학도 가고 교수 되는 그런 꿈을 꾸기도 했는데, 현실에선 돈 없으면 공부만 하면서 버티기 힘들죠. 요 몇년 동안 취직이 안 돼서 제가 취업하려는 쪽도 경쟁이 심하던데, 빨리 학교를 뜨는 게 장땡이라고 다들 얘기해요.”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소속 대학원생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대학원 등록금 인상 중단 및 교육비 경감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김정근 기자

 

대학원생 늘면서 대학의 새로운

그나마 대학원 졸업 후 진출할 분야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교원 임용시험 준비를 위해 입학하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교육대학원은 졸업을 해도 일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대학원 재학시절 빌린 학자금대출금을 갚으라는 독촉이 졸업과 함께 시작되는 데 있다. 학부 졸업자들에게는 제공되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의 혜택을 대학원 졸업자들은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초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조유리씨(28)도 졸업 이후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의 기간에는 수입이 없기 때문에 대출금 상환을 유예시키도록 하는 이 제도의 혜택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용(시험) 준비하니까 버는 돈이 없잖아요. 차라리 대학원 다닐 때는 수업이 저녁에 있으니까 낮에 계약직으로 일해서 돈을 벌었거든요. 그마저도 등록금 내기에는 부족해서 대출 받았고, 그걸 이제 갚아 나가야죠. 전에 모은 돈 까먹어 나가면서 갚고 있지만 얼마 못 가서 바닥나면 이후가 걱정이죠.” 조씨가 다닌 대학원의 학비는 한 학기에 600만원을 넘었다. 다섯 학기 동안 낸 3000만원에 처음 들어갈 당시 입학금과 졸업 전 내야 했던 논문심사 관련 비용까지, 돈이 들어갈 구멍은 많았다. 하지만 조씨는 졸업 이후 지원한 기간제 교사 모집에서도 번번이 떨어질 때마다 가방끈 길어봤자 돈값도 못한다는 식구들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학자금대출 규모 증가세를 보면 대학원생들이 대출에 의존해 등록금을 내고 있는 형편이 드러난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분석한 학자금대출 현황에 따르면 정부 보증 학자금대출금은 지난해 107000억원으로, 2010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학부 대학생들에게 지원되는 든든학자금대출금은 액수로는 7, 대출자 수로는 5배 증가했다. 학부생 학자금대출이 새로 도입된 든든학자금대출로 몰림에 따라 일반 학자금대출자 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상 외로 일반 학자금대출자 수는 26%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난으로 이 기간에 대학원생들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일반 학자금대출 규모도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일반기업이나 관련 분야 기관에 취업하는 대신 박사학위까지 따서 전공을 계속 연구하는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도 험난한 앞길은 계속된다. 특히 인문·사회계열 박사과정 기간 중 연구에만 전념한 학업 전념자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도 인문계열 77.7%, 사회계열 66.5%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이른바 보따리 장사로 불리는 전업 시간강사로 생계를 해결하는 비율이 인문계열 84.4%, 사회계열 77.8%에 달해 절대다수를 차지한 셈이다. 인문·사회계열 신규 박사학위 취득자의 고용실태를 분석한 송창용 직업능력개발원 연구위원은 인문·사회계열 학업전념자의 고용률은 전체에 비해 낮은데, 그나마 고용률이 증가한 원인도 대학의 임시직 증가 때문이어서 학업전념자가 학위 취득 후 대학 이외의 직장에 취업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일자리 발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대학원생들이 등록금 인상과 취업률 저하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지만 교육당국은 대학원 등록금 문제는 각 대학의 자율적 결정사항이라며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올해 등록금 인상이 가능한 법정 한도는 2.4%. 그러나 대학알리미 자료에 따르면 계명대 예술대학원이 31.5%, 울산과기대 기술경영대학원은 30% 등록금을 인상하는 등 법정 한도의 인상폭 이상으로 올리는 개별 대학원이 속출했음에도 교육부는 각 대학 내 전체 대학원 평균 등록금이 2.4% 이하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은 바 있다.

 

고학력 백수양산하는 교육정책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 등 대학원생 단체는 국가장학금을 대학원생에게도 확대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연구중심 대학을 육성하겠다는 방침과는 달리 대학원생을 위한 국가장학금은 인문계열에만 제한해 지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 국가장학금과 비슷한 장학금으로 한국장학재단의 국가연구장학금이 있지만 인문계열 대학원생이더라도 전문·특수대학원 소속이면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데다, 이공계열 장학생 모집은 2010년 이후 신규 모집이 중단돼 추가 장학생 선발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본부나 교육당국에 전달되기에는 대학원생의 목소리가 규합되기 힘든 현실적인 제약이 크다. 대학원 재학시절 대학원총학생회에서 활동했던 이경수씨(35)등록금 문제에 민감한 대학원생일수록 조교 같은 대학 내의 일자리에서 일하면서 일종의 고용관계에 묶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형편이라며 원총(대학원총학생회) 활동도 장학금이 나오니까 지원할 정도로 개인의 실리를 우선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규합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송혜윤 대학내일20대연구소 책임연구원도 대학원은 학부 대비 규모가 작아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힘든 구조여서 사회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매년 등록금이 오른다면 이에 맞게 등록금 인상 법정 한도를 초과한 대학을 규제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학원의 양적 팽창 이면에 자리잡은 대학원생의 등록금 부담과 취업난에 대해 정부 차원의 거시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고학력 백수를 양산하는 교육정책은 결국 인적자원 활용에 실패해 사회적 비용까지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황희란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고급 연구인력들이 가장 많이 취업하는 대학에서는 입학 인원 감소에 따라 대학교수로 취업할 수 있는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기업 상황도 여의치 않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수립한 석·박사인력 관리정책을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교육부 답변은 그런 정책이 없다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 각 분야에서 전문인력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국가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1000만 고졸 노동자의 서글픈 현실 714 주간경향

특성화고 전공과 무관한 저임금 단순노동직직업만족도 낮아 이직 반복

올해 3월 특성화고(공고)를 졸업한 정진수씨(19)고졸 노동자.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나 가던 지난해 12, 교사의 소개로 경기도 서부의 한 회사에 취직해 6개월째 일하고 있다. 정씨는 애초에 대학보다는 취직을 생각하고 있었고 이젠 일도 익숙해졌다. 군대에 갈 때까지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

이명박 정부 이후 고졸 취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시행됐다.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마이스터고가 2010년부터 신입생을 받았고, 공공기관과 대기업에서도 고졸자 채용을 늘렸다. 교육부는 고등학교의 취업률을 평가지표에 넣었다. 그 때문인지 대학 진학률은 70% 초반으로 떨어졌고, 고졸 취업률은 40%를 넘겼다. 고졸 취업자가 10여년 만에 10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겉으로 보이는 수치는 좋아 보이지만 구체적인 현실은 조금 달랐다. 고등학생 시절 정씨는 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캐드를 활용해 건축도면을 그리고, 그 도면을 바탕으로 실제 건물 모형도 만들었다. 학생 때 배운 것을 살리려면 건축사, 건설사, 인테리어 업체 등에 취직해야 한다. 허나 실제 정씨가 다니는 곳은 간판회사다. 회사에 주문이 들어오면 정씨는 정해진 절차에 따라 부품을 조립하고 마무리한다. 그는 굳이 디자인을 배우지 않아도 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세 차례 야근을 하고 100만원을 조금 넘기는 월급을 받는다. 용접기, 드릴, 그라인더를 매일 다루는 위험한 일이지만 정씨는 지금 직장이 좋다. “할 수만 있다면 군대를 다녀와서도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20144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고졸 인재 잡 콘서트’ | 강윤중 기자

 

간판 만드는 게 꼭 좋아서는 아니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과 가끔 월급이 너무 적지 않으냐는 이야기는 나눈다. 하지만 학생 때 소개받은 다른 일자리도 많아야 월급이 120~130만원이었다. 게다가 건축과 관련한 일자리는 대부분 전문대는 나와야 받아준다. 군대 갔다 와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면 또 작업에 익숙해지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하는 일을 하는 게 낫다.”

 

많은 고졸 노동자들이 불만족스러운 직장에서 저임금 노동을 한다. 정씨처럼 현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지만 이직을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2년 연구에 따르면, 고졸 노동자는 평균 졸업 후 5년 반 동안 3.9개의 직장을 경험한다. 임금 면에서도 대졸자와 큰 차이를 보인다. 박상현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이 2015고용패널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대졸자의 경우 평균 첫 월급이 성별과 전공을 불문하고 200만원 안팎이었다. 반면 2013년 기준으로 고졸자들의 첫 월급은 약 140만원이었다. 고졸 중에서 가장 수입이 높은 마이스터고 졸업자들은 약 170만원 선이었다. 또한 40% 이상의 고졸 노동자들이 30인 미만의 영세업체에서 첫 직장을 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졸 취업자들은 주로 어떤 경로로 일자리를 얻게 될까. 인천의 한 특성화고 졸업자인 이진욱씨(19)는 전산학과를 나왔다. 이씨가 고등학생이 되던 2011년은 반값 등록금 문제가 폭발하는 한편, MB 정부에서 고졸 취업 활성화를 강조하던 때였다. 덕분에 이씨도 일찌감치 마음을 먹었다. 엑셀과 워드 등의 프로그램은 기본이고, 프로그램밍 언어와 출판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도구 사용법을 배웠다. 국가 공인 그래픽기술 자격증도 땄다.

 

3학년 1학기가 끝난 이후 학교와 연결된 회사들이 취업공고를 보내 온다. 그러면 각 반 담임이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중 원하는 회사에 지원서를 낸다. 이씨는 내가 배운 전산이나 디자인과 관련한 업체에선 고졸자 채용을 많이 하지 않는다. 대신 단순작업 인력이 급히 필요한 곳에서 연락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8, 이씨는 한 전자제품 제조회사에 취직(현장실습)한다. 서류상으로 이씨는 제품 검수와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조립 등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장 라인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 회사가 납땜작업도 많고 환각을 일으킬 수 있는 공업용 접착제를 매일 사용하던 곳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고등학생은 정확히 최저임금에 맞게 월급을 받았다.

 

이씨는 학교에선 무엇보다 취업률을 중요하게 여긴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자리보다는 당장 사람이 필요한 업체를 소개시켜 주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소개받은 회사가 불만족스러웠던 이씨는 한 달 만에 그만둘 생각을 했다.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담임선생님과 상담하기 위해 학교에 나왔다. 선생님과 고민을 나누고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말을 듣고 싶었는데 돌아온 대답은 다른 데 다녀도 똑같이 힘들다’ ‘졸업 때까지만 참아라였다. 학생의 어려움보다는 취업률이라는 실적에 목매는 모습에 큰 실망을 했다.”

 

 

학력 차별절감, 대학진학 다시 시도

취업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도 일자리를 소개해주는 특성화고가 일반계 고등학교보다 나을 수도 있다. 일반계고를 졸업한 박경민씨(21)는 졸업 이후 단기 일자리만 전전하다가 현재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일하고 있다. 팔린 물건에 대한 데이터를 입력하고, 포장 및 배송을 하다 보면 하루 10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대입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애초에 바로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특별히 학교에서 기술을 배울 기회도 없었고, 어떤 직업을 가지려면 어떤 자격증이 필요한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결국 장시간 일하고 겨우 최저임금을 받는 밑바닥 노동 말고는 내게 남은 자리가 없었다.”

 

밑바닥 노동을 견디다 못한 고졸 노동자들 중 일부는 다시 대학 진학을 시도한다. 박상현 연구위원의 위 발표자료에 따르면, 2013년 기준으로 고졸 노동자의 52%가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그 중 35%전문지식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응답했지만, 학력 차별과 사회적 인식 때문에 대학생이 되겠다는 응답도 21%나 됐다. 학력 경쟁에 비판적이었던 박씨도 현재 진학을 준비 중이다. 대학입시 경쟁에서 이탈한 이후 박씨는 이러다 인생 망친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는 대학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생각과 꿈을 왜 무시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박씨는 밑바닥 노동을 벗어나기 위해서도 대학이 필요했다. 평소 비정규직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던 박씨는 노동문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편의점 일을 하며 유통기한이 갓 지난 음식과 라면으로 배를 채워도 한 달에 겨우 10만원이 모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인터넷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지친 상태에서 강의가 제대로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대학생이 된다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체계적으로 노동법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학력 차별과 이로 인한 편견은 개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더 높은 학력 취득을 강요한다. 오지영씨(22)는 집안사정 때문에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자퇴했다. 성인이 되기 이전에는 카페와 음식점 알바를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1년 반 정도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했다. 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던 오씨는 경남 창원의 공단으로 내려가 1년가량 공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오씨는 지난 4년간 장애인 활동보조인을 제외하면 한 직장에 6개월 이상 일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알바 모집공고에도 고졸자 이상을 명시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고졸이라고 속이고 일을 한 적도 있지만 양심의 가책 때문에 길게 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냥 검정고시를 봐서 고졸신분을 획득했다.”

박경민씨는 대졸자가 아닌 대부분의 청년 노동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회의 밑바닥을 담당하고 있다. 고졸 취업을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저임금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킨다면 청년 빈곤의 사각지대도 자연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관변단체 수백억 혈세 언제까지 줄 건가요 7.14 주간경향

일반적인 동원조직에 가까운 새마을중앙회, 바르게살기협의회, 자유총연맹

 

지난 10년 동안 좌파정권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나. 간첩이 그렇게 많이 침투하는 데도 공안·안보계통의 많은 사람들을 해고하고, 지금 15%도 남지 않았다.”

올해 312일 열린 반국가 종북세력 대척결 28차 국민대회에서 한 보수단체 인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북한 정권의 위험성과 종북세력에 대한 특징을 한참 이야기하던 그는 햇볕정책 탓에 종북세력이 자라나고, 이들이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공격했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후에도 50여분간 비슷한 느낌의 보수인사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20138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한국자유총연맹 회원들이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규탄 집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새마을중앙회, 박정희 시절의 유산

이 집회를 주최한 단체는 재향경우회다. 구재태 회장(전 충남경찰청장)도 집회에 참석한 애국동지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퇴직 경찰관들의 모임인 경우회는 신문 의견광고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도 한다. 617일 경우회는 조선, 동아, 문화일보에 발표한 의견광고에서 국회법 개정안을 여전히 위헌일 뿐만 아니라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경우회는 대통령은 이런 국회법 개정안을 즉각,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고 밝혔다.

 

28차 종북척결 대회가 끝난 이후인 지난 318,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종북세력 청산 범국민협의회’(이하 종북청산협)가 출범했다. 이영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 국무총리가 될 뻔했던 문창극 전 중앙일보 대기자 등이 공동 상임의장을 맡고, 박세환 재향군인회장, 구재태 재향경우회장, 허준영 자유총연맹회장, 윤홍근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장 등이 공동의장을 맡았다.

 

내용이 어떻든 민주사회의 시민단체는 자유롭게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 문제는 종북청산협 상임의장단의 상당수가 소위 관변단체의 대표라는 점이다. 관변단체는 다른 민간단체와 다른 기준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으며, 대체로 정부의 입장에 선 활동을 해온 단체들이다.

관변단체는 어버이연합, 엄마부대봉사단 등 여타 보수단체와 달리 법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법정민간단체라 불릴 때도 있다. 소위 3’라 불리는 새마을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 자유총연맹은 각각 근거가 되는 법(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 바르게살기운동조직 육성법, 한국자유총연맹 육성에 관한 법률) 위에 서 있다. 기타 관변단체(재향군인회, 재향경우회, 고엽제전우회, 특수임무수행자회 등)도 마찬가지다.

 

서울 서대문구 신촌오거리에 세워진 바르게살자 표지석. / 백철 기자

 

바르게살기협, 전두환의 사회정화위

각 관변단체 특별법은 이들 단체의 지위뿐만 아니라 세금 지원에서도 특혜를 보장한다. 대부분의 민간단체는 비영리민간단체 지원법을 통해 정부 지원을 받는다. 법에 따라 국고 지원을 받는 민간단체는 구성원 상호간 이익분배를 하지 않아야하며, 오로지 활동비만 지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3대 단체를 비롯한 관변단체의 특별법에는 활동비뿐만 아니라 운영비도 지원받을 수 있다고 명시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지금까지도 3대 관변단체에 매년 수천만원의 운영비를 지원한다.

관변단체는 예산상 특혜를 받는 만큼 법적인 제약도 있다. 대부분의 관변단체는 법적으로 정치활동이 금지돼 있다. 맨 앞에서 언급한 경우회는 대한민국 재향경우회법 54항에 따라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좌세준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 당시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을 벌인 단체는 민간단체 보조급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사실상 보수단체처럼 활동해온 관변단체들이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고 말했다.

 

관변단체가 받아가는 세금의 규모는 구체적으로 얼마일까. 논의의 편의를 위해 3대 관변단체를 중심으로 살펴봤다.

올해 행정자치부의 민간보조사업 집행실적에 따르면, 3대 단체에 올해 지급 예정인 보조금은 총 216700만원이다. 지원 명목은 밝고 건강한 국가사회 건설’, ‘성숙한 자유민주 가치 함양이다. 지난해 새마을, 바르게, 자유총연맹은 당시 비영리 민간사업 주관 부처인 안전행정부로부터 각각 65000만원, 42700만원, 59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여타 민간단체의 지원금과 비교해봤다. 올해 행자부는 223가지 민간단체 사업에 총 90억원가량을 지원할 예정이다. 1개당 사업비는 약 4035만원 꼴이다. 가장 많은 지원금을 받는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도 24000만원에 그쳤다.

 

 

16개 광역 지자체의 올해 예산안(본예산)에서 3대 관변단체 지원액을 살펴봤다. 각 단체의 이름이 명시된 것만 따져도 3대 단체에 대한 지방정부의 지원은 최소한 194억원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새마을 관련 사업은 총 1695100여만원, 바르게살기 94500여만원, 자유총연맹 5600여만원이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구체적인 단체 이름을 표기하지 않았지만 국민운동단체 지원’ ‘법정단체 지원등의 명목으로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다.

 

관변단체 지원액수가 가장 많은 곳은 경상북도로, ‘새마을운동 역량 강화사업에 국비 55억원을 포함해 총 1391740만원을 책정했다. 온전히 새마을중앙회 경북본부에 지원된 예산만 따져도 219850만원이다. 기본적인 단체 운영뿐만 아니라 업무추진비, 세미나 참석자 급식비, 전국 새마을지도자대회 참가 등 사실상 단체의 모든 비용을 도에서 처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기도의 경우 경기 바르게살기협의회의 활동뿐만 아니라 회원대회, 지부의 차량 구입비에도 각각 2000만원과 3000만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좌 변호사는 일선 시민단체가 제일 힘든 게 바로 운영비 부분이다.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은 사업비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충분한 회원을 모으지 못한 단체는 상근자 한두 명을 두고 활동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관변단체는 너무 쉽게 모든 것을 지원받는다고 말했다.

 

3대 단체의 하나인 자유총연맹의 경우, 국고 보조금이 연맹 전체 예산의 5%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유총연맹의 국고 보조금을 영세한 민간단체에 양보할 수 없겠느냐는 질문에 연맹 측은 국고나 지자체 보조 사업은 그 자체만으로 정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을 의미하고, 회원들의 자부심과 사기진작을 위해 중요한 요소라고 답했다.

 

자유총연맹은 반공연맹이 뿌리

물론 3대 단체 외에도 정치 편향과 과도한 예산 지원을 지적받는 법정민간단체는 많다. 국가보훈처와 관련된 보훈단체들이 대표적이다. 2015년 국가보훈처 예산 개요에 따르면, 올해 11개 보훈단체(국가유공자단체법 등에 규정된 단체)에 지원될 예산은 총 223400만원이다. 별도의 예산을 받는 고엽제전우회는 인건비와 운영비만으로 861400만원이 책정돼 있다. 이들 역시 ‘3대 단체와 마찬가지로 법적으로 정치활동이 모두 금지된 곳들이다.

 

2005년 시민단체 활동가로 3대 관변단체 특별법 폐지 운동에 나섰던 하승수 녹색당 공동위원장은 예나 지금이나 3대 관변단체가 핵심이라며 이들은 다른 곳에 비해 단체 규모나 지원금 액수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들이 지금 존재할 명분이 없다고 밝혔다. 새마을중앙회는 박정희 시절의 유산이고, 바르게살기위원회는 전두환의 사회정화위원회, 자유총연맹은 반공연맹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 위원장은 3대 단체를 지원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도 했다. 그는 사람마다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재향군인회나 고엽제전우회 등은 나름의 활동 목적이 있는 반면, 3대 단체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일반적인 동원조직에 가깝다면서 이젠 관변단체도 특혜를 포기하고 자립적인 재정 기반 위에서 원하는 정치활동을 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17대 국회인 2005년에는 당시 열린우리당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과 민주노동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관변단체 관련 특별법 폐지안이 국회에 올랐다. 그러나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많아 결국은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그대로 폐기됐다. 당시 논의에 참여했던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역 토호세력과 관계가 없는 비례대표 의원들과 논의할 수밖에 없었는데, 비례 의원들이 소수니까 실제로 법이 통과될 수가 없었다면서 이후 지금까지 논의가 없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10년 전 시민단체 활동가였던 한 새정치민주연합 인사는 이후 10년간 국회에서 관변단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역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들이 바로 관변단체 회원들이다. 아직 선거철이 아니라 실감은 못하고 있지만, 지역구 의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침에 청소를 해도 그분들이 와서 하고, 지역의 대소사에서 다들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더라. 지금처럼 3대 단체에 특혜를 주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떤 방법이 적합할지 적절한 검토를 하지 못했다.”

 

좌세준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특별법 폐지보다는 가칭 시민사회발전기본법을 만드는 방안을 제시했다. 좌 변호사는 현실적으로 단시간 내에 법정단체 국고보조를 끊을 순 없다. 하지만 법정단체를 포함한 모든 민간단체가 하나의 기준으로 국고 지원을 받는 기본법이 통과되면 법정단체가 우회적인 방법으로 지원을 받는 일이 점차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좌 변호사는 현재는 민간단체의 보조금을 나눠줄 때 형식적인 심사는 하지만 사실상 국가와 지자체가 알아서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심사단계에서부터 시민 참여가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법을 어겨가며 활동하는 관변 정치단체에 대한 부적절한 예산 지원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Toni Childs - The Dead Are Dancing

출처다음 블로그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I see a graveyard's past
The revolution's taken back
whatever happened to the sons
No more sunshine here
Only darkness here

혁명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
이 묘지들의 과거를 본다네
많은 아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더이상 이곳에는 포근한 햇님이 찾질 않으며,
오직 이곳에는 짙은 어둠만이 함께 한다네


There's no-one living in this town
Cause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The dead are dancing in the town

아무도 이 마을에는 살지 않는다네
그 이유는, 죽은자들이 춤을추기 때문이라네
죽은자들이 춤을 춘다네
이 마을엔 죽은 자들이 춤을 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