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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6.16~6.28 성조기와 성접대

by 이성근 2019. 6. 29.

수구 세력의 부활, '개혁 대 반개혁'으로 깨야 프레시안 2019.6.28.

폭염도 재난이다 경향 2019.6.27.

도시 공원과 마주한 당신, 그리고 나의 의무

사람들이 손혜원 사건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 프레시안 2019.6.26.

조선일보의 '막가파'식 북한 보도 프레시안 2019.6.26.

김원봉과 황장엽에 대한 불공평한 시선 경향 2019.06.26.

지역분열 조장하는 부울경 단체장 한국 2019.6.26.

왜 재벌개혁인가? 프레시안 2019.06.24.

한국 경제 거덜 낼 재정긴축시사IN 209.6.21

청년들은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미디어오늘 2019.06.19.

북유럽 68일과 문재인의 영감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한 단상 충청타임즈 2019-06-18

성조기 한겨레 :2019-06-18

노동을 왜곡하는 언론이어서야 한겨레 :2019-06-18

성접대경향 2019.06.18.

무감각 구조의 고착화 경향 2019.06.18.

노무현의 꿈, 김훈의 노래 경향 2019.06.18.

방언의 보존과 확산이야말로 정부의 할 일 경향 2019.06.16.


수구 세력의 부활, '개혁 대 반개혁'으로 깨야

'촛불연대' 복원을 위하여

박근혜 탄핵을 전후한 시기의 이념 분포를 보면 보수보다 진보가 많았다. 중도층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정권교체 후 적폐수사가 이어지고, 지난 정권의 탈법적이고 불법적인 각종 농단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친박은 사실상의 '폐족'이었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않은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시민일반의 인식이 개혁 지향의 이념으로 기운 결과다.

 

그러나 집권 2년 말·3년 초, 전통 보수는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했고, 중도는 여권에 대한 지지에서 한 발 물러서 있다. 20대의 지지도 촛불 때와는 달라졌다. 상층과 하층의 간극을 조금이나마 줄여보려는 정책은 성장 논리에 부딪쳐서 좌초 직전이고, 갈등 조정 능력을 상실한 정치를 바로잡을 제도화 가능성도 밝지 않다. 사회의 근본 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동력을 가동할 리더십도 찾기 어려운 상태다.

 

정치는 거대양당에 의한 전통적 대결 구도의 양상을 띠면서 수구세력은 전열을 재정비하고, 이의 상징인 태극기 세력의 집회는 눈에 띄게 세력이 확장되고 있다. 범진보 진영은 경제침체, 집권세력의 잦은 실수, 북미 비핵화 교착으로 인한 남북관계의 지체 등으로 보수에 대한 상대적 우위를 상실해 가고 있다.      대한애국당에서 우리공화당으로 개명한 수구세력의 본진은 한국당 내의 친박을 끌어들여 본격적인 세 확장에 나서려 한다. 박근혜의 옥중정치란 말이 낯설지 않은 정치상황, 정치는 다시 진영정치의 대립 국면으로 회귀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5년 정권의 임기 동안 이루어질 수 있다면 애당초 불의와 부정의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 개혁 담론을 이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진지와 거점이 형성되지 않으면 불평등이 심화되는 구조를 혁파할 수 없다. 보수로 위장한 수구는 '안보''성장'을 무기로 개혁을 방해하고 정치실종을 방치한다. 국회가 80일 이상 공전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계속돼도 한국당은 국회 파업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

 

태극기 부대도 촛불 국면에서는 나설 명분이 없었기에 침잠했다. 그들 세력이 갖는 불가역적인 시대착오와 폭력적 사고는 '악의 평범성'을 얘기했던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H. Arendt)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 나오는 또 다른 '아이히만'들일 수 있다.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봤던 아렌트는 유대인 집단학살의 책임자 아이히만이 역사적 소명감을 가지고 유대인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게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악마''괴물'도 아니었으며, 상부로부터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에 내재하는 '평범한 악'이 대량학살을 가져 온 주범이었다.

 

태극기 세력의 반역사적·비민주적 주장들은 집단최면에 걸린 '평범한' 무의식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동등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는 시민 유권자들이기에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보수와 진보가 뒤얽혀 대립과 적대를 연출하는 모습은 내년 총선이 여타의 선거처럼 보수와 진보의 팽팽한 싸움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여당심판론과 수구야당 심판론 중 어느 프레임의 구도가 설정되느냐가 전투의 분수령이 될 것이지만, 이대론 여권의 압승을 장담할 수 없다. 20-30%에 달하는 중도세력이 어느 진영을 지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통해 실질적 거대 양당제의 독점적 카르텔을 깨자는 선거법은 패스트트랙에 올랐으나 새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의식적으로 대치와 적대를 강화함으로써 상대적 이득을 취하려는 수구야당의 정치적 셈법을 깨기 위해서는 중도 유권자가 다시 범여권에 관심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러나 난공불락의 반공주의에 입각한 왜곡된 안보의식과 '닥치고 성장'을 외치는 '보수의 선동'에 중도는 속수무책이다합의의 덫에 걸린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등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경제 침체와 일자리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내년 총선은 여당 심판론이 작동할 수 있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회고적 투표의 성격을 띠기 때문이다. 특히 총선은 그렇다. 집권세력은 정권 초기의 높은 지지율을 믿고 정당체제 내에서의 개혁연대에 소극적이었다. 결국 진보진영 세력화의 부진이 지금의 개혁동력의 약화를 초래한 하나의 요인이다. 그러나 야권발 정계개편으로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진보 담론에 동의하는 의원들을 세력화해서 개혁지향의 제3당을 엮어낼 수 있다면 민주당과 제3정당, 정의당 사이에 진보 의제를 둘러 싼 건강한 긴장이 형성될 수 있다

 

정당체제 내에서 보수 대 진보의 구도를 깨고 개혁 대 반개혁의 프레임이 형성된다면 이는 진보진영에 유리하다. 이러한 구도가 짜인다면 적대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군은 촛불 국면의 이념 분포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범진보 진영 내의 정책 담론이 선거 이슈로 부상한다면 어느 정당이 제1당이 되느냐의 선거공학을 뛰어넘는 사회변혁의 모멘텀을 주도할 수 있다

 

거대 양당에 의한 적대적 공생 구도는 수구세력이 생존할 수 있는 치명적 흠결을 가지고 있는 구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의 원천적 차단을 위한 제도다. 진보 의제에 동의하는 시민을 조직화하는 세력이 다시 개혁을 추동할 수 있다. 진보정당들이 다양하게 병렬적으로 존재한다면 블록화한 기득권 동맹은 무력화될 수 있으며, 개혁 동력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 프레시안 2019.6.28


폭염도 재난이다

불지옥(inferno).

 

스페인 공영방송(RTVE)의 기상캐스터는 단테의 신곡’, 지옥편의 이름으로 유럽의 때 이른 6월 폭염 소식을 트윗으로 전했다. 독일·프랑스·네덜란드 등에서 연일 40도를 오르내리며 폭염경보가 발령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번 주말에는 스페인 북동부와 프랑스 남부 지역의 낮 최고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고되었다. 만일 이 온도가 현실이 된다면 프랑스에서 역대 최고 기록인 200381244.1도를 경신하는 것이다. 알다시피 그해에 프랑스인 15000명을 포함, 유럽에서 7만명이 사망하였다. 대부분 대책 없이 더위를 견뎌야 했던 노약자와 빈곤층들이었다.

 

유럽이 이 정도인데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지난 617일 인도 동부의 비하르주에서는 섭씨 45도의 폭염으로 184명이 사망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인도 첸나이주에서는 폭염으로 36명이 사망하였고, 가뭄으로 물이 없어 호텔과 식당이 문을 닫기까지 하였다. 죽은 사람도 애통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도 견디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사이언스 어드밴스지에 실린 영국 브리스틀대학의 기상학자 유니스 로 팀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온난화로 평균기온이 섭씨 3도 이상 상승하면 LA에서만 2500여명이, 뉴욕에서는 6000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폭염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예측되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폭염은 주로 노약자와 야외 노동자, 빈곤층에 큰 위협이 되며 특히 포장도로와 고층 빌딩들이 밀집된 대도시는 도심 열섬이 형성되는 탓에 폭염에 더욱 취약하다고 보고하였다.

 

지난 25일 유엔에서 필립 알스턴 유엔 빈곤·인권 관련 특별보고관은 부자들은 더위, 기아, 갈등을 피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고 나머지 세계는 극심한 고통을 받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시나리오의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예컨대 2012년 뉴욕시에 허리케인 샌디가 몰아쳤을 때 수천명의 저소득층이 며칠 동안 전기와 의료서비스 없이 방치되는 동안 뉴욕 맨해튼 골드만삭스 본사에서는 수만개의 모래주머니가 준비되고 사설 발전기로 전기를 공급했던 사례를 들었다.

 

폭염은 주차장의 자동차도 불붙게 하고, 타이어에도 펑크를 내며 열사병으로 즉각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데 어째서 미세먼지만큼 관심을 두지 않는 걸까? 우리나라도 벌써부터 연일 기록을 경신하며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있는데 폭염을 미세먼지만큼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에 살면 집, 자동차, 지하철, 백화점, 찻집, 서점 등등에서 즉각 더위를 날려줄 에어컨이 가동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00년간 탄소연료에 과잉 의존한 탓에 지구가 뜨거워졌고 그 여파로 미세먼지도, 폭염도 심해지고 있는데 전기를 더 써서 더위를 막는 게 잘하는 일일까. 안 그래도 너무 값싼 전기요금을 여름에 한시적으로 내린다는데 옳은 결정일까.

 

작년 여름 배달 노동자 박정훈씨(35)폭염수당 100원을 달라1인 시위를 했다. 한여름에 서 있기도 어려운 가운데 일하는 사람을 배려해 달라는 작은 요청이다. 서울 서초구청이 작년 서리풀 원두막이라는 이름으로 한여름 보행자를 위해 그늘막을 만들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폭염 발생 이후에 대해 실용적인 대책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폭염을 방지하기 위한 예비책에 대해 논의하는 곳은 잘 안 보인다. 아마도 정부와 국회에서 탄소에너지를 자연에너지로 대전환할 에너지기본계획과, 폭염도 재난으로 간주하여 폭염방지법 제정을 통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더위의 기세가 등등한데 국회는 아직도 개점휴업 중이다. 없는 사람은 기후재난 앞에서도 차별받는다. 열받은 유권자들이 폭염보다 더 뜨겁게 응징할 날, 얼마 안 남았다. /이미경 환경재단 상임이사 /경향 2019.6.27

 

도시 공원과 마주한 당신, 그리고 나의 의무

경기도 화성시에 자리하고 있는 발안 1호 근린공원에 가끔 가는 편이다. 마을 주민들은 이 공원을 옴뿌리산공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무들이 우거진 야트막한 언덕 주변으로 산책로가 있어, 주민이 즐겨 찾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도심 속에 이 같은 휴식공간이 있어 숨을 쉬고 길을 걷는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공원 일부는 내년 7월이 되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도시의 허파, 공원이 사라진다는 제목의 뉴스를 접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다. 공원일몰제 때문이다. 공원일몰제란 무엇이고, 왜 최근 들어 뉴스에 자주 나오는 걸까?

 

도로, 학교, 공원과 같은 기반시설을 도시계획시설이라고 한다. ·도지사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한 부지에서는 건축물을 지을 수 없다. 지자체가 그 부지를 매입해 시설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자체가 결정만 해놓고 시설을 만들지 않는다면? 토지 소유자 입장에서는 언제 내 땅을 사갈지도 알 수 없고 하염없이 재산권을 침해받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1999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20007월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한 대로 20년 동안 시설을 만들지 않으면 그 결정이 효력을 잃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었다. 즉 지자체가 공원으로 결정하고 20년간 공원을 만들지 않으면 그 효력이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원일몰제다. 내년 7월이면 20년 넘게 집행 못한 공원 부지의 효력이 상실되는데, 전국적으로 그 면적이 축구장 5만개에 해당하는 340에 달한다.

 

실제 동네 뒷동산이나 산책로도 알고 보면 미집행 공원 부지인 경우가 많다. 발안 공원도 이런 경우다. 공원 부지는 집행을 하지 않더라도 주민들이 사실상 공원처럼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공원 결정 효력이 사라지면 문제가 생길 우려가 크다. 토지 소유자가 더 이상 주민들을 출입할 수 없게 막을 수도 있고, 난개발로 인해 한여름 도시의 온도를 낮춰주고 소중한 산소를 제공해주는 녹지가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공원일몰제에 대응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와 함께 지난달 장기 미집행 공원 해소방안을 발표했다. 대책의 목표는 내년 7월 이후에도 340의 공원 부지를 최대한 지금처럼 공원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다. 우선 반드시 공원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 부지 130를 우선관리지역으로 선별했다. 지자체는 내년 7월까지 남은 1년 안에 우선관리지역의 토지 소유자에게 보상을 통해 제값을 치르고 부지를 매입할 계획이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지자체가 공원 조성 목적으로 지방채를 발행하는 경우 그 이자를 최대 70%까지 지원하고, 지자체가 토지은행을 활용해 공원 조성에 소요되는 비용을 조달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공원 조성을 위해 노력하는 지자체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공원을 만드는 방안도 마련했다. 90에 달하는 국공유지는 내년 7월이 지나도 그대로 공원 부지로서 효력을 유지해 중장기적으로 공원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으며 남은 120는 공원의 효력을 상실하지만 다양한 관리수단을 통해 최대한 공원의 기능을 유지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다.

 

이번 대책은 우리 당과 정부, 지자체 그리고 환경단체가 의견을 모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본다. 대책 내용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고, 이번 대책만으로 장기 미집행 공원 문제가 모두 해소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기 미집행 공원은 개인의 사적재산권 보호와 공원 조성을 통한 공익 달성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다. 신중한 접근과 공론이 필요한 문제다. 이번 대책을 내오는 데 머리를 맞댄 국회와 정부는 물론 지자체, 공공기관, 시민·환경사회는 언제든 또 만나 논의해야 한다. 테이블에 도시 공원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삶을 올려 놓고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 도시의 허파를 지켜 나가기 위한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방안 마련을 위해 계속 논의해야 한다.

 

한 자락 넓혀 나가지는 못할지라도 지금 있는 도시 공원을 지켜 나가는 일,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작고 단단한의무다. 사람이 도시 공원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공원이 우리를 지킨다. 우리를 살게 한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사람들이 손혜원 사건에서 '잘못 알고 있는 것'

법원 판결과 별개로 도덕적 비판을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른바 '손혜원 의원 사건'에 관하여 '헷갈려하는 것', '잘못 알고 있는 것', '오해하는 것'을 정리한다.

 

헷갈려하는 것

먼저 '헷갈려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 두 가지 명제를 혼동한다.

하나. "손혜원 의원이 투기를 했다."

. "손혜원 의원이 '위법하게' 투기를 했다."

 

전자가 '도덕적 차원의 문제'라면, 후자는 '도덕적 차원의 문제 더하기 위법적 차원의 문제'. 따라서 후자의 명제 중 위법적 차원의 문제가 부정당해도, 전자의 명제는 독립해서 생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손혜원 의원이 한 행위가 위법이 아니라도 그가 한 행동은 투기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후자의 명제 중 위법적 차원의 문제가 부정당하면 전자의 명제마저도 무너진다고 여긴다. 그리하여 손혜원 의원의 행위를 투기라고 규정하는 이들은 검찰 조사 결과의 논리적 빈틈을 꼬집는 칼럼을 쓴 나에게 '손혜원 의원의 투기를 옹호하는 녀석'이라는 비난을 한다. 그러나 방금 살핀 것처럼 해당 비난은 번지수가 틀렸다. 두 명제는 따로 다루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잘못 알고 있는 것

이번에는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 두 개의 '가짜 뉴스'를 믿는다.

하나. "손혜원 의원은 '일반인에게 단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자료를 취득'했다."

. "손혜원 의원은 '그 자료로 목포시가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될 걸 미리 알게 되어' 투기를 했다.

 

진실은 이렇다.

하나. 검찰이 "보안 자료"라고 부르는 것은 '도시재생 전략계획()'인데, 그 자료는 손혜원 의원이 목포시로부터 건네받기 일주일 전인 2017511일에 이미 주민들에게 공개가 된 자료이다.

 

.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안다고 해도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선정 여부를 알 수는 없다. 왜냐하면 도시재생 뉴딜 사업은 지방정부가 신청을 하면 중앙정부가 뽑아줄까 말까를 결정하는 '중앙정부 공모사업'이기 때문이다. , '손혜원 의원이 목포시의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손혜원 의원이 목포시가 도시재생 뉴딜 사업에 선정될 걸 미리 알았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오해하는 것

마지막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손혜원 의원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그 후로는 그의 행동을 비판할 수 없다고 여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해당 사건에 관한 법원의 무죄 판결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다만 '손혜원 의원이 위법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손혜원 의원의 행동은 잘한 것이다!'로 해석될 수 없다(왜 그런지는 이미 '헷갈려하는 것'에서 설명했다). 따라서 사람들은 법원 판결과 별개로 언제든지 손혜원 의원의 행위에 대해 도덕적 차원의 비판을 할 수 있다. /구본기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 프레시안 2019.6.26.

 

조선일보의 '막가파'식 북한 보도

언론자유와 '오보·왜곡'은 명백히 다르다

192035일에 창간된 <조선일보>는 한국사회에 현존하는 언론매체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그 신문은 판매부수와 영향력에서도 '1'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조선일보>가 그런 '자산'을 생산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극우·수구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동의하겠지만 자신이 진취적이거나 합리적 사고를 한다고 믿는 이들은 고개를 가로 저을 것이다. 왜 그럴까? 간략히 말하면 <조선일보>는 진실, 공정, 객관성, 균형 같은 언론자유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관련 보도와 논설에서 <조선일보>는 막가파 식 행태를 서슴지 않아 왔다. 그 고질병이 최근에 또 도졌다. 이 신문은 지난 531일자 1면에 올린 '김영철은 노역형, 김혁철은 총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익명의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근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남한 정부 관계자가 "하노이 회담 이후 김여정의 행적이 포착되지 않는다. 김정은이 근신시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선일보>'국책 연구소 관계자'의 말이라며 "하노이 회담 관련자들에 대한 대규모 숙청이 진행 중이라는 의미"라고 '해석'을 달았다.

 

그런 <조선일보>가 그로부터 채 한 달도 안 된 626일자 5면에 '김여정 위상, 최룡해 급으로 격상'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는 '국정원'을 인용해 "김여정에 대한 역할 조정이 있어서 무게가 올라간 것 같다""사진을 보면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나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과 같은 반열에 있다"'해설'을 했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이 왜 '근신 처분'을 받았는지도 밝히지 못한 <조선일보>가 느닷없이 김여정이 김정은에 이어 북한의 '2인자 군()'에 들어갔다고 보도한 근거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야말로 그 신문의 막가파 식 행태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북한의 실상에 관해 <조선일보>가 오보나 왜곡된 기사를 내보낸 역사는 뿌리가 오래고 깊다.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19861116일자 <조선일보> 1면 머리에 대서특필된 '김일성 총 맞아 피살'이다. 부제목은 이렇다. "휴전선 방송, '열차 타고 가다 총격 받았다' / '전방 북괴군 영내에 일제히 반기(半旗) 올려' / '군부 중심 심각한 권력투쟁 진행 중인 듯'"

 

주석 김일성의 1인 지배체제가 절대적이던 북한에서 최전방 휴전선의 '인민군 방송'이 어떻게 그런 내용을 남쪽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조선일보>가 순진해서 그런 내용을 보도했을까, 아니면 있지도 않은 사실을 악의적으로 조작했던 것일까?

 

<조선일보>2013년에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현송월이 '음란물 제작'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했다고 보도했는데, 순전한 오보 아니면 '작문'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북한에 관한 한, <조선일보>의 오보와 왜곡을 막거나 응징할 수 있는 법률적 수단이 거의 없다. 국가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에 시정권고소위원회가 있지만, 누군가가 <조선일보>의 기사에 관한 심의를 요청해도 딱 부러지게 결론을 내려 제재를 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조선일보>는 내년 35일 창간 100주년을 맞는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지' 구실을 한 짧은 역사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 겨레를 착취하고 억압한 일제의 왕(이른바 '천황')에게 최상의 찬사를 열심히 바친 <조선일보>가 얼마나 요란하게 '백돌 잔치'를 벌일지는 훤히 보이는 일이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이명박·박근혜 정권의 기관지나 다름없는 기사와 논설을 마구잡이로 내보낸 '흑역사'에 관해서는 단 한 마디 사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진보적 언론인들과 시민단체에서는 조선·동아일보가 한 세기 동안 보인 반민족·반역사적 행태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프레시안 2019.6.26.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원봉과 황장엽에 대한 불공평한 시선

한국 보수의 특징은 대북강경정책이다. 하지만 실제 대북관 운용은 자의적이다. 2005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박 대표는 편지에서 북한의 연호인 주체북남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어투 역시 위원장님께 드립니다로 시작해 시종 최고의 경어체로 일관했다. 편지 내용만 봐서는 종북 빨갱이그대로다. 그런데 누군가 이를 문재인이 청와대 비서실장일 때 김정일에게 간 편지라는 제목으로 박사모 카페에 올렸다. 박사모 회원들은 북한 추종자가 아니고서야 어찌 북남이란 표현을” “마치 신하가 조아리는 듯하지 않습니까?” 등 거친 비난과 욕설을 쏟아냈다. 그러나 편지 쓴 사람이 박 대표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반응은 크게 달라졌다. “업무상 편지 좀 주고받은 것 갖고 뭐 이리 난리냐는 식이었다.

 

북 지도자 찬양이라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 수 위다. 그는 1985년 김일성에게 보낸 친서에 주석님께서 40여년 동안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신 데 경의를 표한다고 썼다. 정상외교라 해도 수백만명이 희생당한 6·25를 일으킨 북한 수괴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더구나 친서를 쓴 것은 아웅산테러 발생 후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럼에도 이 편지가 공개돼 논란이 일었던 2013년 새누리당은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이중 잣대는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서도 작동한다. 보수세력은 김원봉의 목숨 건 30여년 독립운동보다 월북 후 행보에 더 주목한다.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노동상까지 지낸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 속에 의열단 단장, 광복군 부사령, 임시정부 군무부장 등을 역임하며 쌓은 혁혁한 독립운동 공적은 빛을 잃는다. 그러니 서훈은커녕 문재인 대통령이 그를 언급한 것만으로 펄펄 뛴다. “북의 전쟁 공로자에게 헌사를 보낸 대통령, 귀를 의심케 한다.”(전희경 대변인)

 

이해가 안되는 것은 자유한국당 일각에 김원봉 찬양분위기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당 소속 박일호 밀양시장은 김원봉 생가터를 매입해 의열기념관을 세웠다. “약산은 밀양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2015년 영화 <암살> 상영회를 국회에서 열었고, 당시 김무성 대표는 만세삼창을 했다. 2015년 새누리당 기관지 새누리비전은 김원봉의 활약상을 다루면서 독립투사들의 뜻과 정신을 기리자고 썼다. 정점은 박근혜 역사교과서. 김원봉을 12번이나 언급하면서 상찬하고 있다. 황교안 당시 국무총리는 정상화 교과서라고 평가했다. 혼란스럽다.

 

보수의 대북관은 황장엽 앞에서 또다시 변신한다. 이명박 정부가 1급 훈장인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한 인물이다. “북한의 잔혹상을 알려 안보 태세 확립에 기여하고, 북한 민주화 발전과 개혁개방에 헌신했다”(맹형규 행안부 장관)는 이유였다. 황장엽은 남한 망명 후 13년간 북한 실상 폭로와 북한 정권 비난에 앞장섰다. 노동당 비서 등 요직을 지낸 그의 남한행은 그 자체로 북 정권에 큰 타격을 준 것은 맞다.

 

그러나 황장엽의 삶을 톺아보면 보수가 찬양할 수 없는 사실들이 드러난다. 북한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정립해 수령국가체제의 기틀을 세우고 세습독재의 명분을 제공한 것만으로도 서훈의 부당성은 충분하다. 이로 인해 북한 인권은 참담한 수준으로 악화됐고, 분단체제가 더욱 심화됐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의 나팔수 역할도 잦았다. 1988년 구주의회 사회당 의장 면담에서 “6·25는 북침전쟁이라고 말하고, 115명이 희생된 대한항공 858기 폭파테러 사건에 대해 생명보험금을 타내기 위한 남한의 조작이라고 모략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남한에서의 언행도 문제였다. 그는 인간중심철학연구와 강연활동을 계속해 주체사상을 버리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일성을 비난했지만 한편으로는 호의적인 발언도 자주 해 내심 김일성을 존경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았다. 실제로 그의 책과 강연에서는 김일성을 식견 높고 지혜롭고 너그럽고 포용력 있는 지도자로 묘사한 경우가 많다. “역사는 6·25전쟁을 일으킨 전범자로 김일성을 평가하지만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보면 지도자로서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일부 역사 속 인물에 대한 한국당의 평가 잣대는 불공평하다. 황장엽의 경우 ‘74년간의 북한 행적은 배척하고 ‘13년간의 남한 행적만 평가한다. 김원봉은 ‘30여년 독립운동은 외면한 채 ‘11년간의 북한 행적에만 집착한다. 이 때문에 항일무장투쟁의 대부는 민족반역자로 전락하고 주체사상의 대부는 북한민주화위원장으로 변신했다. 모두들 동의하는가./조호연 논설주간 경향 2019.06.26

 

지역분열 조장하는 부울경 단체장

정부가 추진중인 김해신공항으로는 동남권 관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며 건설 백지화를 줄곧 주장해온 부산울산경남 단체장들이 기어이 총리실 재검토 합의라는 과실을 따냈다.

 

결코 재검토는 없다며 요지부동하던 국토교통부의 방침을 무력화한 이들의 행보를 보면 역시 실세 단체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일단 총리실로 공이 넘어갔지만 정치권에서는 사실상 가덕도신공항으로 변경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들 단체장이 보여준 행보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민주주의의 미덕이 돼야 할 원칙과 절차를 외면하고 밀어붙이기 식으로 진행한 부분이 너무 많다.

 

우선 신공항 결정을 뒤집는 과정부터 되짚어보자. 주지하다시피 현재 진행중인 김해신공항 확장공사는 2016년 정부의 연구용역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영남권 5(부산 울산 경남 대구 경북) 지자체 단체장의 합의하에 진행됐다. 당시 이들 지자체는 가덕도와 밀양 중 한 곳에 동남권 신공항을 유치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연구용역을 맡은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은 기존 김해공항에 활주로 1개를 추가하는 김해신공항 확장안을 제시했다. 국토부는 이 안을 최종 확정했고, 5개 단체장들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부울경 단체장을 중심으로 ADPi가 제시한 신공항을 건설할 경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백지화를 요구했다. 사실상 이 회사의 결정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미다.

 

ADPi가 어떤 회사인가.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과 오를리 공항을 운영하는 파리공항공사(ADP)의 자회사로, 공항 컨설팅 분야에서 세계 수위를 다투는 전문가집단이다. 이런 회사가 내린 결론을 반박하려면 최소한 먼저 이 회사와 토론을 하거나 자문 정도는 구하는 게 상식이다. 단체장들은 그런 절차도 빠뜨린 채 나홀로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안전성 문제를 운운해봤자 설득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당초 영남권 주민들의 공항 이용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작된 신공항에서 대구경북이 빠진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5개 단체장이 합의한 사항을 백지화하는 과정에서 대구경북 단체장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은 누가 봐도 공정하지 않다. 오히려 이번 재검토를 계기로 부울경 단체장은 동남권 신공항이 아닌 부울경 신공항을 지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오거돈 부산시장이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긴 도민 500만명에 달하는 대구경북에도 마땅히 제대로 된 공항이 있어야 한다는 글을 보면 단순한 의심을 뛰어 넘는다. 정부가 차기 총선에서 PK를 잡기 위해 TK를 버렸다는 지역 여권인사들의 하소연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오 시장이 굳이 김해신공항을 버리고 가덕도 신공항에 집착하는 이유도 따져봐야 한다. 2016ADPi는 가덕도 신공항이 부적합한 이유 중 하나로 높은 건설비용을 들었다. 김해신공항을 확장하는 비용은 43,000억 가량이지만 가덕도는 10조원에 달해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측 입장이다. 지자체로서는 4조원짜리보다 10조원짜리 사업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부울경 세 단체장의 속내도 변수가 될 수 있다. 2016년 당시 가덕도 신공항은 부산에서만 주장했을 뿐 나머지 단체장들은 밀양을 적격지로 꼽았다. 경남은 밀양의 관할 행정구역이라는 이유로, 울산은 가덕도에 비해 밀양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등의 이유였다. 정권과 단체장이 교체됐다고 해서 그런 상황이 바뀔 리 없다. 만일 김해신공항 백지화가 되더라도 가덕도신공항으로 이어지기에는 너무도 변수가 많다. 어렵게 봉합된 지역 갈등이 또 다시 재현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한창만 지역사회부장 한국 2019.6.26

       

왜 재벌개혁인가?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구체적 정책 대안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2년이 지났지만, 대선 때 공약한 재벌개혁은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집권 1년차에 적폐청산과 한반도를 둘러싼 급박했던 외교적 과제에 정부의 역량이 집중되었을 거라는 이해 하에서, 작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는 본격적인 재벌개혁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도 높았다. 정부 역시 이런 평가와 기대를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공정거래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는 범정부 경제민주화TF를 꾸려서, 작년 9월 정기국회 때 재벌개혁과 관련된 입법 패키지를 내놓았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핵심인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은 공정거래위원회가 스스로 밝힌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편취, 지주회사제도의 오남용, 공익법인을 통한 지배력 확대와 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또한 작년 말까지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가칭)'을 입법 발의하기로 했으나, 이 약속 역시 지키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을 작년 7월부터 시범 운영하고 있는데, 모범규준은 금융그룹의 건전성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 자본적정성, 내부거래 및 위험집중 등 그룹위험의 유형 및 평가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모범규준은 집중위험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사실상 무용지물로 전락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가칭)'의 제정을 계기로 오히려 삼성재벌의 염원인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의 도입을 추진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황제경영을 방지하기 위한 상법개정안에서 제시된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의 실효성도 여전히 의문이다. 예를 들어, 포스코는 이미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고 있으나, 독립적인 사외이사 선출에 별 도움이 못되고 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이 심각한 현 상황에서 감사위원이 분리 선출된다고 하더라도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에는 역부족일 수 있다. 실효성에 의문이 있는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포함된 반면에, '자사주의 마법'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은 정부의 상법 개정안에 아예 빠져 있는 실정이다.

 

작년 730일에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의결했다. 그러나 의결권 행사 위임장 대결과 주주제안이라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할 경우에만 시행하고, 의결권행사 결정 내용에 대한 공시 내용과 범위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하는 제한적 도입이었다. 더욱이 올해 3월 하순에 이른바 주총시즌에서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무색할 만큼 예년과 다름없이 의결권을 행사함으로써 주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방기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결국 이대로라면 국민연금운용의 투명성과 독립성 그리고 수탁자의무 준수를 기대하기 어렵다.

 

재벌개혁에 뚜렷한 진척이 없는 가운데, 오히려 작년 8월에 들어와 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제정을 통해 은산분리를 완화하는 물꼬를 텄고, 차등의결권 주식 도입과 상속증여세법 개정 등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가 과연 재벌개혁의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함께, 노골적인 친재벌정책으로 방향을 튼 것은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문재인 정부의 갈지자 행보는 재벌개혁이 현 시점에서 왜 필요한지에 대한 이해의 부족과 개혁추진에 대한 정치적 부담이라는 이해타산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이하에서는 재벌개혁의 필요성과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재벌개혁 없이는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재벌이 왜 문제인가?

재벌문제는 황제경영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라는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 그리고 경제력집중의 폐해로 대별할 수 있다. 황제경영의 폐해는 무자격한 총수일가의 경영참여나 갑질 문제로 불거지고 있으며,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 계열사 간 인수합병, 총수일가인 임원의 과도한 겸임과 보수 등을 이용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는 기업집단의 규모와 상관없이 발생한다. 이에 반해 경제력집중의 폐해는 대규모기업집단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력집중을 달리 표현하자면,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이 경제적 가용자원의 상당부분을 실질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경제권력이 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력집중의 문제를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적 운동(Progressive Movement)이었는데, 진보적 운동은 경제력집중(보다 엄밀히 표현하자면, 경제력의 존재(existence of economic power))을 한마디로 게이트 기퍼(gatekeeper)가 존재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경제력집중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원주의에 기초한 정치적 민주주의도 경제적 시장경제도 작동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런 진보적 운동의 생각은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금권트러스트(Money Trust)의 해체와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거처 미국 재벌의 해체로 구체화되었다.

 

그런데 진보적 운동이 우려했던 경제력집중의 문제가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극명하게 발생하고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사장이었던 장충기의 문자들이 국정농단사건 수사 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졌는데, 이 들 문자는 삼성재벌이 실제로 우리사회의 경제권력이 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경제력집중의 폐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형해화라는 근본적인 문제점 외에도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첫째, 경제력집중이 우려되는 기업집단의 도산은 경제위기로 전이되는 이른바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경제력집중은 결국 시장의 경쟁을 말살하게 되어 경제의 혁신과 역동성을 앗아간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 경제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핵심은 제조업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재벌대기업 중심의 전속거래 하청구조는 제조업 중간재 부문에서 공정한 경쟁의 실종과 이로 인해 제조업의 고도화를 가로막아 제조업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면 장치산업 중심의 제조업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된다. 물적 자본 중심의 장치산업에서 경쟁력의 원천은 궁극적으로 숙련노동력의 임금경쟁력에 있는데, 경제가 성장해가면서 임금이 인상되고 후발 개도국이 추격해 오면 숙련노동력의 임금경쟁력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 등의 신흥 제조업 강국의 도전에 직면해, 1990년대 이후에 일본, 독일, 북유럽의 국내 산업구조는 기술경쟁력이 있는 인적자본 중심의 부품 소재 산업과 특수재 산업 위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러나 중국 등의 신흥국의 도전에 직면한 현재 한국 제조업은 장치산업 중심구조에서 고부가가치 중간재나 특수재 산업으로의 진화가 단절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의 기회가 없을 때 생산성 향상과 혁신이 일어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과거 미국에서도 있었다. 1960년대까지 미국의 자동차산업은 GM, 포드, 크라이슬러 3사가 담합 구조를 유지했는데, 이런 담합 구조 하에서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기업들도 전속 계약관계를 유지했다. 이런 담합과 전속계약 체제로 인해 1960년대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혁신이 사라지게 되었고, 1970년대 일본의 자동차가 미국에 들어오면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재벌대기업 중심의 하청 구조에서 기술탈취가 만연한 것은 이미 상식이 되었다. 하청구조에서 기술탈취가 만연하며, 중간재 산업에서 혁신의 유인이 제거된다. 경쟁의 기회가 봉쇄되기 어렵고 또 동시에 기술탈취가 어려운 B2C (Business to Consumer) 분야에서는 우리 경우에도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잘 나가는 신생 혁신기업들로 인터넷 관련업체와 화장품업체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B2C 업종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대표적인 내부거래와 하청 산업인 B2B (Business to Business) 분야에서는 혁신이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단가 후려치기는 최종재를 생산하는 재벌 대기업에게도 결국은 독이 되고 있다. 기술탈취와 더불어 재벌대기업은 하청기업들에게 단가 후려치기로 자신의 가격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게 되고, 따라서 스스로 혁신할 유인을 잃고 있다. 기술탈취와 단가후려치기는 나아가 중소기업의 저생산성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양극화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제조업 혁신과 역동성의 상실은 취약한 재벌의 도산과 경제위기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경제위기는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살아남는 재벌 중심으로 경제력집중을 심화시키는 악순화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사실 1997년 경제위기의 경험이 이런 추론을 뒷받침하는 실증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력집중 심화경제위기 발생사회양극화와 경제력집중의 심화라는 악순환이 반복되면 한국은 이른바 중남미형 싸이클에 빠질 수 있다.

 

재벌개혁을 위한 제언

그렇다면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했듯이, 재벌문제는 황제경영과 총수일가의 사익편취라는 기업 거버넌스의 문제 그리고 경제력집중의 폐해로 대별할 수 있다.

 

먼저, 총수일가의 황제경영이나 사익편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비지배주주의 주주권을 강화해 비지배주주가 직접적으로 총수일가를 견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총수일가인 이사와 임원의 보수 및 겸직, 계열사 간의 M&A, 일정규모 이상의 내부거래에 대해 비지배주주의 다수의 동의(MoM Majority of Minority)를 받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MoM 규칙은 상법에 도입하거나 거래소 상장규칙에 반영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일정규모 이상의 내부거래에 대해 상장규칙과 상법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총수일가로서 임원의 보수에 대해 상법에서 MoM 규칙을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거래소 상장규칙 제정을 통해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실효적으로 규제할 수 있다.

 

재벌의 경제력집중 해소를 위해서는, 계열사(출자계열사)에게서 출자 받은 계열사(피출자계열사)는 다른 계열사에 출자를 금지(출자를 2층 구조로 제한)하되 100% 출자는 적용 제외하는 출자규제를 도입해 볼만 하다. 이 경우에 지주회사규제, 순환출자 규제를 별도로 둘 필요도 없고, 따라서 규제 회피도 불가능하고 비대칭 규제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한편 출자계열사에게는, 현행 지주회사 규제에서처럼, 부채비율 규제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

 

또한 3층 구조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경우에, 손자회사(피출자회사의 피출자회사)의 사업 영역을 제한하고 이사의 1/2 이상을 MoM 규칙으로 선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출자규제는 5대 재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공시대상기업집단 순으로 순차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정책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은산분리 원칙은 확고히 지키되, 주요 금융회사(그룹)와 주요 실물회사(그룹)를 동시에 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구조적 금산분리와 그 외의 복합금융그룹에게는 통합감독 체계를 적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주요 회사(그룹)에 대한 정의는 이스라엘의 개혁 사례를 참고해 국내 실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한편 공익법인과 금융보험사의 보유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순차적으로 제한해 3년 안에 예외 없이 전면 금지해야 한다. 또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처분할 경우에 신주발행절차를 준용하고, 회사가 분할이나 분할 합병할 경우에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

 

재벌개혁은 시행령과 지침, 그리고 규정의 개정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온전한 개혁은 입법 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내년 총선 이전에 제2의 촛불시민운동과 같은 개혁연대를 통해 구체적인 재벌개혁 방안을 제시하고, 이 개혁방안에 대해 국회의원 후보자 개개인의 지지 여부를 묻고 유권자들에게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유권자 운동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칙적인 개혁 연대가 형성될 수 있고, 이런 정치세력이 재벌개혁의 입법화를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 프레시안 2019.06.24

 

한국 경제 거덜 낼 재정긴축

경제위기 때 오히려 긴축을 강요해서 경제성장률 저하와 적자 확대의 악순환을 일으킨 사례가 많았다. 케인스도 이 재정균형론에 부정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

65일 문재인 대통령은 환경의 날을 맞아 “2022년까지 미세먼지 배출량을 2016년 대비 30% 이상 줄이겠다라고 약속하면서 국회에 계류 중인 추가경정예산을 신속히 처리해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하지만 67000억원에 불과한 추경예산이 언제, 어떤 조건으로 통과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국회 정상화의 조건으로 선거제, 사법제도 개편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문제 삼고 있다. 최근 암울한 경제지표가 잇따르자 자유한국당은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추경예산을 볼모로 대통령과의 담판을 요구하고 있다.

 

1분기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친 것은 무엇보다도 설비투자 축소 때문이다. 더욱이 6개월째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수출 증가율도 쉽사리 회복될 것 같지 않다. 현재진행형인 미·중 무역 통상마찰도 6G20 회의에서 극적으로 타결되지 않는다면 금년을 훌쩍 넘길 태세다.

 

완전고용 유지하기 위한 투자의 사회화

유일한 활로인 정부투자는 재정균형이라는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국가채무 비율 40%’ 논쟁은 그 서막에 불과하다. 재정건전성이라는 금과옥조의 원조는 리카도의 동등성 원리. 200년 묵은 경제학의 이 논쟁은 네오케인스주의라는 어설픈 타협을 거쳐 지금은 재정균형론이 완전히 승리한 듯 보인다. 하지만 경제위기 때 오히려 긴축을 강요해서 경제성장률 저하와 적자 확대의 악순환을 일으킨 사례는 IMF 구제금융의 역사를 따라 라틴아메리카, 구사회주의권, 동아시아에서 30년 동안 잇따라 벌어졌고 지금도 유럽에서 목하 진행 중이다(오직 미국만 예외였다).

 

1930년대 대공황 때부터 제2차 대전의 전시경제, 그리고 브레턴우즈 체제의 설계까지 영국 재무부의 정책에 줄곧 개입했고, 결국 토드 벅홀츠로부터 잘 먹고 잘 산 구원자(Bon vivant as savior)”라는 칭송을 들은 케인스에게도 이 재정균형론은 짜증나는 상대였다. 현재의 포스트케인지언들은 케인스의 해답이 현대화폐 이론(Modern Monetary Theory, MMT)과 이에 입각한 기능재정론(Functional finance)이라고 주장한다. 즉 화폐는 기업과 가계의 대출 수요에 따라 창조되는 것이며(화폐의 내생성), 따라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나아가 국가채무는 오로지 그 정책이 경제에 미칠 결과에 비춰서 판단되어야지 전통적인 건전성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물론 지출 확대의 상한은 인플레이션이다).

 

케인스는 이론적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정치권과 경제학자들을 설득(‘설득의 경제학’)해서 어떻게든 정책을 실행하는 쪽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케인스의 아이디어가 자본예산(Capital budget)’이라는 범주다. 전후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효수요의 관리였다. 특히 기업가들의 동물적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투자의 변덕스러움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자율은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며 금리생활자의 안락사를 유도할 만큼 항상 낮은 수준에 머무르면 그만이다. 필요한 것은 저축과 투자의 괴리를 메워서 완전고용을 유지하기 위한 투자의 사회화이며 자본예산은 바로 여기에 쓰인다. 정부의 통상적인 업무에 사용되는 예산, 즉 경상예산(Current budget)은 오직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단기적으로 적자 편성할 수 있다.

 

애초 2017년의 천운은 반도체 주기에 따라 단명할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처음부터 가상의 자본예산, 즉 장기적인 대규모 정부투자 계획을 짜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 대책으로 생태 인프라의 일부인 전기 및 수소 충전소 설치를 약속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탈탄소화를 위한 대대적인 생태 인프라 투자 계획을 세워서 내년부터 시행해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여야 거대 정당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재무건전성과 국가채무에 관련된 법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금본위제라는 황금구속복이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었듯이 긴축이라는 잿빛구속복은 한국 경제를 거덜 낼 것이 틀림없다. 청와대가 환골탈태할 때다.

정태인 (독립연구자·경제학) 시사IN 209.6.21

 

  

북유럽 68일과 문재인의 영감

대통령이 북유럽 3개국을 돌아보고 귀국했다. 68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대변인은 피오르드 관광이라 언죽번죽 빈정댔지만,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꼴이다.

 

현직 대통령이 북유럽 순방을 떠나는 날, 나는 정치인 문재인이 무엇보다 많이 둘러보고 오기를 기원했다. 순방에 호의적인 언론들은 문 대통령이 국민을 위한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오슬로 구상평화는 핵이 아닌 대화로 이룰 수 있다스톡홀름 제안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보도했다.

 

내가 더 눈여겨본 대목은 문 대통령이 스웨덴 살트셰바덴에서 언급한 한국의 경제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다. 대통령은 성숙한 정치문화, 안정된 노사관계, 세계적 수준의 혁신 경쟁력과 복지제도를 갖춘 스웨덴은 모든 면에서 귀감이 되는 선진국이라며 한국은 스웨덴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스웨덴 노사관계와 교육 현장을 두 차례 들여다보고 온 나로서는 문 대통령이 말한 많은 영감이 단순한 외교적 언사가 아니라고 믿는다. 문제는 그 영감의 구현이다. 새로운 구상을 하기엔 68일은 짧을 수 있다. 하지만 정치인에게 소중한 미덕은 언제나 결단이다.

 

대통령이 강조했듯이 살트셰바덴은 오늘의 스웨덴이 있게 한 곳이다. 그곳에서 노동과 자본은 대타협을 시작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노사대타협 정책은 스웨덴과 사뭇 다르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노총에 대한 과도한 압박이다. 만일 그것이 대통령의 의도가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 큰 그림으로 현실을 짚어야 옳다.

 

나는 촛불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한 박근혜의 만행을 왜 되돌리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법적 판단을 기다리라는 말이 아예 그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권 2년이 더 지났다. 대통령이 순방을 떠나기 전에 민주화에 앞장서온 원로 300여명과 사회단체 1600여 곳이 전교조 창립 30돌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법외노조라는 해괴망측한 전교조 탄압을 바로잡지 않으면 타도 운동에 앞장 서겠다는 재야원로 백기완의 시퍼런 다짐도 있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참모의 반응은 한없이 가벼웠다. ‘법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단다. 한국당이 몽니부리는 국회를 몰라서 하는 말인가? 물론, 법 개정 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북유럽에선 초고 학교에서 노동 3권을 비롯해 노동교육을 한다. 한국에서 어느 교사가 그런 교육의 절반이라도 시도할라치면, 전국기간제교사 노조를 만든 박혜성 교사가 우리도 교사입니다책에서 낱낱이 증언하듯이 계약 해지를 당한다. 그게 날 선 교육현실이자 노동현장이다.

 

작금의 언론과 교육을 그대로 두곤 북유럽의 영감은 영글기조차 어렵다. 한국인 대다수가 노동의 권리를 자신과 무관하게 여긴다. 그 상황에서 전교조의 간절한 요구엔 모르쇠를 놓고 민주노총에만 양보를 강요하는 모양새로는 대타협을 이룰 수 없다.

 

북유럽 영감을 구현하려면 언론개혁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육개혁과 노동개혁은 다르다. 그 접점에 전교조가 있다. 허물없는 정치인 없듯이 흠결없는 단체는 없다. 교육과 언론을 통해 줄곧 마녀사냥 당해온 민주노총과 전교조를 촛불정부의 우군으로 삼아야 옳다.

 

나는 대한민국의 이상이 북유럽이라고 믿지 않는다. 우리와 조건도 다르다. 하지만 북유럽이 대한민국보다 더 나은 체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북유럽이 노사대타협을 통해 오늘의 복지국가를 이룬 과정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노사 사이에 힘의 균형이다.

 

지금은 기회다. 방안도 있다. 전교조의 법외노조 통보 취소가 새 출발일 수 있다. 정치인 문재인의 대통령임기가 북유럽 순방을 전환점으로 달라지기를 이 땅의 민중과 더불어 기대한다/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미디어오늘 2019.06.19.

 

 

도시공원 일몰제에 대한 단상

한국의 도시들이 도시공원일몰제를 앞두고 도시의 허파인 장기 공원의 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 국민의 90% 이상이 도시화된 공간에 사는 것을 감안하면 도시의 녹지가 사라지는 것은 심각한 생활환경의 파괴이다.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64% 정도 된다. 그리고 도시의 산림은 16% 정도이다. 이러한 도시지역의 산림은 대부분이 공원으로 지정되어 시민들의 쉼터로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서계보건기구(WHO)는 쾌적한 환경과 시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1인당 공원면적을 9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시 안에서 공원으로 확보해야 하는 면적을 1인당 6로 정하고 있다. 청주시는 2015년을 기준으로 주민 1인당 공원결정면적은 18, 실제조성면적은 4.5로 나타나고 있다.

 

도시공원일몰제가 도입되게 된 계기는 경기도 성남시의 학교부지로 예정된 땅주인들이 도시계획법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한 끝에 1999년에 헌법재판소가 내린 헌법 불합치 판결에 기인한다. 이에 판결에 맞추어 2000년 도시계획법이 개정되었고 매수청구권 등 보상제도와 도시계획 결정 후 20년이 지나도록 집행되지 않은 도시계획시설은 공원에서 자동해제되는 일몰제가 도입되었다. 일몰 시한은 202071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입법부와 행정부가 이를 준비하고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하여 해결하여야 함에도 문제를 키우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는 것이 문제이다. 2009년 국토부는 공원일몰제 관련 대비책으로 민간공원특례제도를 만들고 5이상의 공원에 대하여 민간공원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토지소유자가 직접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건설회사 주축으로 토지를 강제수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부지의 30%를 아파트 등으로 개발하고 나머지 70%는 공원으로 조성하여 기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장기미집행공원을 지켜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 지역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한번 정리하고 생각해보고자 한다.

 

장기미집행공원에서 국공유림도 함께 포함되어 있어서 공원면적이 5이상인 공원도 많은 것을 감안하면 국공유지를 도시계획결정 실효대상에서 제외하고 공원면적을 계산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도심의 공원을 지켜낼 기회가 더 많아지게 된다.

 

도시공원의 개발에 따른 국고의 보조가 필요하다. 지방채를 발행하여 매입하라고 하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도시공원 등의 공익적인 자연환경을 지켜내는 공공재로 인식하고 지원의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정자립도가 낮은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해결을 위한 정책추진이 필요하다.

 

공원의 토지소유주들에게는 세제 혜택이나 공원을 임차하는 방안 등을 적극 검토하여 소유주들의 재산상의 손해를 보상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재산세나 상속세를 감면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또 하나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트러스트운동을 통하여 일부 기금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시민과 기업 등 다양한 그룹의 참여가 필요하다.

 

이제 1년 후로 다가온 장기미집행공원이 일몰제로 인하여 개발위기에 놓여 있는데 이 도시공원들을 지켜내고 유지하는 것은 그 도시의 삶의 질과 환경복지의 척도가 될 것이다. 30% 개발이 능사가 아닌 이를 해결할 방안들을 국가와 지자체 그리고 토지소유자, 시민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도시의 녹지부족은 더 많은 도시의 공공재로서의 역할이 무너지고 생활권 환경의 질은 급속도로 낮아질 것이다. 우리 지역도 도시의 녹지를 최대한 유지하고 시민들의 생활공간이 더 많은 녹색공간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함께 지켜지길 기대한다

반기민 충북대 산림학과 겸임교수 충청타임즈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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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

나는 청년들이 왜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지 궁금해. 너희들 국민연금 내기만 하고 못 받잖아. 40년 뒤에 기금 고갈된다잖아. ? 적립식을 부과식으로 바꾸면 된다고? 그러니까 세금으로 노인세대를 부양하면 된다고? 2020년엔 청장년 100명이 40명을 부양해. 2060년엔 청장년 100명이 100명을 부양해.(15~64세 인구 대비 14세 이하+65세 이상 인구비율) 세금으로 국민연금 주려면 세율 엄청 높아져. 그때의 젊은 세대가 제정신이라면, 부과식을 거부하고 국민연금 파산시킬걸. 그러니까 지금 청년들은 국민연금 못 받을 거야.

 

40년이나 남지 않았냐고? 아냐, 25년밖에 안 남았어. 그때까지는 기금을 쌓아가는데, 그때부터는 기금을 팔아야 하거든. 국민연금을 주식시장에서 빼내야 하거든. 저성장만 예약된 게 아닌 거지. 금융공황도 예약되어 있는 거지. 그런데도 소득대체율 높이자는 사람이 있더라고. 국민연금 혜택 늘리자는 얘기지. 주장이야 제 맘대로지. 그런데 그러려면 적어도 진보라는 간판은 떼고 말해야지. 염치가 없잖아.

 

2015년에 민주당, 정의당이 임금피크제 반대했잖아. 2013년에 정년연장을 법제화하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 정년 전 몇년간 임금을 깎기로 했었거든. 이게 임금피크제거든. 그런데 민주당은 임금피크제 법제화에 반대하면서 노사 자율로 맡기자며 우물쭈물했고, 정의당은 거세게 반발했지. 심상정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사자후를 토했고. 그런데 그때 청년 대상 여론조사를 해보니 임금피크제 찬성률이 얼마였는지 알아? 70%(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조사)였어. 계산이 뻔하거든. 정년이 연장되면 임금피크제라도 해야 청년고용을 조금이라도 늘릴 여지가 생기거든.

 

요새 다시 정년연장하자는 주장이 나오더라고. 그런데 어차피 사오정 오륙도 인생인데, 누가 혜택 보겠냐고? 정년이 보장된 분들 있잖아. 은퇴를 앞둔 586세대들, 아니, 그중에서도 운 좋은 사람들. 이미 보호받지만, 더 보호받고 싶은 분들. 정년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이 커지겠지. 신규고용 줄이겠지. 청년들 일자리가 줄어들겠지. 주장이야 제 맘대로지. 그런데 그러려면 적어도 진보라는 간판은 떼고 말해야지. 염치가 없잖아.

 

요새 추경을 앞두고 정부 재정을 조이자, 풀자 말이 많더라고. 조이자는 분들, 더 조여서 저출산 더 심해지면 어떡하시려고요. 그대들이 몇십년 뒤에 제 인생 대신 살아줄 건가요? 풀자는 분들, 아동수당 찔끔 주는 식으로 뭐가 달라지나요. 신혼부부한테 집 한 채씩 팍팍 안겨주시죠? 몇 년 전에 법안도 냈으면서 왜 이리 졸보처럼 구시나. 국공립 어린이집·유치원 팍팍 늘리고, 도시 과밀지역 학교 더 짓고, 대학 평준화도 하세요. 서울·수도권 사립대는 통째로 사기 어려우니까, 재정지원하는 대가로 입학권을 사세요. 그리고 말로만 찔끔거리는 호봉제 개혁 빨리 하시고. 공무원연금 개혁 빨리 하시고. 이쯤 되어야 진보라는 간판을 달 만한 거 아닌가요. 염치도 없으셔라.

 

현충일에 대통령이 한 말씀 하셨더라고요.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가 없다.” 와 정말 좋아요. ‘애국보수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애국진보도 있나 보네요. 그런데 제가 바로 미래의 대한민국이걸랑요. 애국하는 셈치고 저희를 위해 양보 좀 해주세요. 싫다고요? 애국의 이름으로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어떤 가치와 명분 앞에서 양보할 건가요?

 

결국 저출산이 문제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은행,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가 이구동성이더라고. 저출산 지속되면 2030년대 경제성장률 1%,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 국민연금 유지 어려움, 심지어 건강보험도 유지 어려움.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국가의 기능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움. 북한? 개방돼서 북한 투자 늘어나면, 남한 출산율은 더 낮아질 수도 있어. 방법은 한 가지. 단기적으로는 대규모 사회투자를 통해 저출산을 역전시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인구구조의 보릿고개를 견딜 준비를 해야지. 이를 위해서 사회 곳곳의 양보를 조직해야지. 뭘 가치로? ‘애국을 가치로. 이런 플랜에 반대하는 사람은 둘 중 하나일 거야. 미래 생각 안 하는 사람이거나, 나라 생각 안 하는 사람. 아니면 둘 다이거나.

 

무엇보다 외치고 싶어. 한국의 청년들이여, 단결하라! 일베도 워마드도 탈조선 이외에는 이 방법밖에 없다! 사회를 갈아엎어라  

싫어요. 우리는 결혼 같은 거 먼 나라 얘기고요. 그리고 여자는 아기 낳는 도구가 아니에요. ‘저출산이 아니라 저출생이라니깐요  

, 잠깐. 당신 자꾸 나라찾는 걸 보니 꼰대 아니면 국뽕 아냐?                이범 | 교육평론가 경향 :2019-06-18

 

성조기

 

서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기각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1908814일은 대한제국의 국경일인 개국기원절이었다. 이날 각 관청과 상점 정문에는 태극기가 게양됐는데, 유독 농상공부 청사에는 일장기가 걸렸다. 제 나라 국경일에 남의 나라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매국노 짓이라는 비난이 빗발쳤으나 문책받은 사람은 없었다. 일본을 제 나라처럼 여기는 관리가 많았기 때문이다.

1909년 초, 한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순종 황제와 함께 전국 순행(巡幸)에 나섰다. 한국이 일본의 보호국이라는 사실을 전국 백성에게 알리려는 의도였다. 연도에는 친일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들고 도열했다. 이들 대다수는 일본이 한국을 병합하자 미련 없이 태극기를 버렸다.

 

을사늑약 이후 이 땅에서 일장기는 태극기를 능가하는 특권을 누렸으나, 다른 나라 국기들은 그냥 그림 그려진 깃발일 뿐이었다. 미국 국기 스타 스팽글드 배너’(The Star-Spangled Banner)성조기’(星條旗)로 번역한 것이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한국인들도 1914년께부터는 이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뒤, 성조기는 한국인 절대다수에게도 적대국 국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인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미군을 맞았고, 미군정 중앙청사로 이름이 바뀐 구 조선총독부 청사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함께 걸렸다

 

1948815일 성조기는 중앙청 국기게양대에서 내려왔으나, 뒤이은 6·25전쟁과 원조 경제 체제 아래에서 계속 특별한 지위를 유지했다. 전쟁 후 미군이 지어준 건물 외벽이나 미국이 지원한 원조 물자 포대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그려지곤 했다. 일장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일본의 보호에 감사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그림은 낯설지 않았다.

200212,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두명을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열렸다. 이듬해 삼일절, ‘애국세력을 자처한 사람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거리에 나와 미군한테 책임을 묻는 것은 이적행위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후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드는 것은 자칭 애국세력의 관행이 되었다. 저들의 진짜 애국심은 성조기와 태극기 중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전우용 역사학자 한겨레 :2019-06-18

 

노동을 왜곡하는 언론이어서야

강의가 끝난 뒤 한 사람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주총회 장소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잖아요. 의자를 집어 던지고 소화기를 난사하는 등 폭력행위를 해서 실명 위기에 놓인 직원까지 생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뭇 자신이 매우 정의롭다는 자부심이 서려 있는 표정이었다.

 

정작 의자를 집어 던지고 소화기를 난사한 사람들은 조합원들이 아니라 회사가 동원한 용역 직원이었고, 실명 위기에 빠진 직원이 있다는 것은 회사의 주장을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서 쓴 기사일 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으며, 언론에 사용된 사진들은 대부분 회사가 제공한 것들로 최대한 폭력적으로 보이게 찍은 장면들이었다는 설명을 한 뒤, 그 질문자에게 반문했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주총회 장소를 점거한 이유는 혹시 아시나요? 지금 여기 계신 분들께 간단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당연히 설명하지 못했다.

 

언론을 취재하는 언론’ <미디어오늘>의 기사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7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1명은 실명 위기라고 주장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한 언론 매체는 22개에 이르렀다. 실제로는 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고 실명 위기처럼 심각한 상태는 없었으며 모두 치료를 마치고 귀가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실명 위기라는 거짓 보도를 했던 언론사들 중 단 한곳만 기사를 수정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매체의 독자들도 실명 위기에 빠진 직원이 있었다는 큰 기사만 기억할 뿐 그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작은 정정 기사까지 봤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언론이 노동문제를 보도할 때 이런 일은 언제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반복된다.

 

최근 한 경제신문이 법 위의 권력 민노총 대해부라는 기획으로 10여개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번 칼럼에서 썼듯 굳이 민노총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가 민주노총에 대한 일종의 비아냥일 수 있다. 그 기획의 첫번째 기사 제목은 대한민국 1권력’ ‘무소불위민노총53개 정부위서 국정에 입김이었다. “정치·경제·복지 등 전 분야서 기득권 지키려고 실력행사’” 등의 부제가 붙었다. 기사 제목만으로도 마치 민주노총이 사회 모든 분야에 참여해 일일이 간섭함으로써 사회 발전의 저해 요소로 기능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53개의 각종 정부 위원회에 참석하는 것이 어떻게 문제가 될 수 있나? 행여 530개라고 해도 문제가 될 수는 없다. 각종 위원회에는 노사정이 각 3분의 1 비율로 참여하고 노동자 대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절반씩 참여하니 민주노총을 대표하는 구성원은 전체의 6분의 1 비율이다. 저해 요소가 되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가장 강력한 의사 표현 수단이 불참정도이지 실력으로 회의 개최를 저지하거나 무산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노총이 참여하는 위원회는 그보다 훨씬 많은 80여개에 이르고 한국경영자총협회나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영자 대표가 참여하는 정부 기구 수는 훨씬 더 많다.

 

경제신문의 이런 행태는 오래전부터 반복돼온 일종의 관행으로 자리 잡혀 있다. 다른 경제신문이 2002한국은 노조공화국인가라는 제목으로 비슷한 내용의 기획 기사를 연재한 적이 있다. 큰 활자로 전면을 장식한 기사 제목은 노조 하나에 계파만 9였다. 제목만으로도 독자들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더니9개로 분열된 상태로 뭘 할 수 있겠나라고 한심하게 느낄 수 있다. 이 기사 내용은 현대자동차 노조를 이르는 말이다. 조합원 수가 대략 5만명에 이르고 영호남과 수도권 등 전국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역 조직을 갖고 있는 노동조합에 노조 활동을 잘해 보자고 모인 조직이 9개 정도 있는 것이 과연 지나치게 많은 것일까?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 때가 되면 그 노선이 서너개 정도로 정비된다. 훌륭한 민주주의일 수도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운동을 기득권자들의 이기적 투쟁으로 보는 시각이 형성된 것도 보수 언론의 책임이 크다. 이 문제를 올바로 설명하기에는 대학에서 한학기 정도 걸리는 학습 내용이 필요하다. 어제, 울산 지역 노동자가 문자를 보내왔다. “평소 대기업 노조 분들 거리감이 있었는데, 오늘 회의에서 몇분들 발언을 들으니 연륜이 그냥 있는 게 아니구나, 참 멋지시다, 느꼈어요. 세상은 저런 분들 때문에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나 봐요.” 내가 볼 때에는 비정규직 노조 활동을 20년 넘게 해온 그 사람이 그렇게 보였다./ 하종강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한겨레 :2019-06-18

 

성접대

오늘은 오랫동안 미뤄왔던 주제에 대해 도전해 보려 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6월 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은 뇌물과 성접대를 받은 혐의로, 건설업자 윤중천은 강간치상과 사기 등 혐의로 각각 구속 기소되었다. 유력 검사와 건설업자 간의 불법 커넥션, 김학의 이외 고위층 남성들의 리스트를 거머쥔 윤중천 리스트’, 호화 별장과 성접대, 2013년 검찰수사와 재수사에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논란, 마약류를 먹인 후 성폭력을 했고 불법촬영으로 협박했다는 증언까지, 이른바 별장 성접대 사건에는 한국 사회의 비리와 음험한 권력의 결탁이 파노라마처럼 담겨 있다.

김학의, 윤중천의 구속 기소는 사건을 공개하고 증언한 피해여성들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두 차례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검찰이 김씨가 여성들을 성폭행한 것이 아니라 성접대를 받았다고 판단했다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폭행·협박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데,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성폭력이란 폭행·협박을 사용했을 때 성립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행해지는 것일 때임을 입법부, 사법부, 경찰이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본권으로 선언한 나라에서 마땅한 법의 해석이다. 최근 미투 운동은 폭행·협박이 행사되지 않은 강요된 성폭력이 만연했음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입법부는 성폭력 법제를 대대적으로 구조 개혁해야 한다.

 

둘째, 성접대를 사람은 피해여성이 아니라 윤씨이다. 굳이 여성을 주어로 쓰고자 하면 여성이 성접대의 매개 혹은 대상이 되었다고 해야 한다. 이렇게 성접대라는 용어 자체가 남성과 남성 간의 교류·결탁·형제애 등을 나타내고 여성은 철저히 소외·배제·타자(他者)가 된다. 3자가 성접대를 했다면그 매개가 된 여성은 무엇을 했던 것인가. 이 사건의 피해여성이나 다른 피해여성들이 이후 어떤 대가를 받았건, 그렇지 않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지속적으로 해야 했고, 이에 대해 거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면 그것은 폭행과 협박을 동반한 일회성 성폭력보다 훨씬 더 중대한 성적 유린이자 인권 침해이다. 이것을 성접대라고 이름 붙인다면 피해여성들은 피해자가 아니게 되어 그녀들에게 자행된 폭력·마약·불법촬영·협박 등 행위의 불법성을 따질 수 없게 된다. 법원과 검찰은 이 사건을 다시 보라.

 

셋째, 이런 사건의 지독함은 그 체계적 성격에도 있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2자관계를 상정하는 우리 형법의 성폭력 범죄와 달리 현실의 많은 성폭력은 제3자가 계획하고 조정하고 촉진하는 양상을 띤다. 김학의 사건이나 버닝썬’, 장자연 사건에서처럼 말이다. 예컨대 독일형법 제177조 제2항에는 타인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그로 하여금 실행하도록 하거나 그로 하여금 제3자에 대해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제3자의 성적 행위를 수인하도록 만드는 자는, 범죄행위자가 타인이 반대의사를 형성하거나 표시할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이용하는 경우, 범죄행위자가 타인으로 하여금 성적 행위를 실행하거나 수인하도록 느낄 수 있을 만한 해악으로 위협함으로써 강요한 경우에도 처벌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독일형법의 성폭력에 대한 정의는 우리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피해자는 어떤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매우 취약하여 문제된 성적 행위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할 수 없거나 그 성적 요구에 순응하지 않았을 때 받을 해악으로 위협받는 경우 등을 상정한다. 또 제3자에게 성적 행위를 실행하게 하거나 그의 행위를 수인하도록 하는 입체적 관계를 상정한다. 이는 전시(戰時) 성폭력을 통해 본 법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윤중천과 김학의 간의 결탁, 이것이 다시 김학의와 다른 동료 검사 간의 유착관계로 확대된다면 이 성폭력의 발생과 지속, 은폐는 매우 체계적인 성질을 가진다.

 

넷째, 성접대라는 표현은 적어도 법의 언어로 쓰여서는 안된다. ‘위안부라는 표현처럼 가공할 폭력을 위안으로 덧씌우고 피해여성들의 위엄을 우롱하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언급하면서 국민의 인권보호에 흠결이 생길 수 있다하였다. 검찰과 경찰이 범죄 증거를 가지고도 그저 성접대쯤으로 호도함으로써 이 사건들을 남성들의 리그로 만든다면 여성국민의 인권이야말로 흠결 속에 남을 것이다. 존엄한 여성들을 기껏 교환대상으로 삼은 최근의 성폭력 사건들을 검경 수사권 문제로 몰고 가거나 이용하지 마라. 국민의 세금으로 먹고사는 공권력은 여성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니며, 여성들이 당한 피해는 법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양현아 |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2019.06.18.

 

무감각 구조의 고착화

이제 아예 손타쿠를 넘어서네요.”

 

최근 노후자금 2000만엔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대응을 두고 도쿄의 외교 소식통이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손타쿠‘(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촌탁(忖度)’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 말은 아베 정권 들어선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정부 관료나 공무원들이 알아서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점을 비꼰 것이다. 이런 손타쿠를 넘어선다고 평가받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발단은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보고서다.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부부는 30년간 약 2000만엔(21900만원)의 여분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정부가 연금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금융담당상은 11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겠다고 했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한술 더 떠 “(재무성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 보고서 자체가 없어졌다며 야당이 요구하는 예산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융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 있는 보고서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보고서를 작성한 워킹그룹은 대학교수, 변호사, 민간싱크탱크 대표 등으로 구성됐다. 재무성과 후생노동성 등 관계부처도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다. 이 워킹그룹은 아소 부총리의 자문을 받아 설치됐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정작 답은 듣지 않겠다고 하는 셈이다. “전대미문의 부조리극”(마이니치신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권은 그간 은폐 본질을 누누이 비판받아 왔다.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육상자위대의 일일보고 은폐, 모리토모(森友)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한 재무성 문서조작 등 불리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숨기거나 발뺌해 왔다.

 

아베 1체제의 장기화로 정권 내 손타쿠구조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노후자금 2000만엔논란도 아베 정권의 은폐 본질이나 손타쿠구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정권의 중추들이 아예 대놓고 은폐나 손타쿠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사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다. ‘30년간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추계의 근거자료는 후생노동성이 제공했다. 금융청이 독자적으로 ‘30년간 1500~3000만엔 필요라는 추계를 내 워킹그룹에 제시한 것도 드러났다. 정부로선 보고서의 문제 제기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 다음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에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곤란하니까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정권 눈치를 보는 보고서만 내라는 격이다.

 

이런 아베 정권의 막무가내식 태도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국민이다. 문제가 생겨도 발뺌을 하거나 거짓말로 강변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아베 정권에 심어준 것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는 최근 도쿄신문에 관료의 손타쿠나 불상사, 정치가의 폭언·실언이 빈발해도 내각 지지율은 잠깐 내려갈 뿐 곧 회복된다. 국민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고, 지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흔히들 아베 정권의 장기화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느끼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7월 참의원 선거가 그 잣대가 될 것이다./도쿄 | 김진우 특파원 경향 2019.06.18.

 

노무현의 꿈, 김훈의 노래

유족이신가요?”(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 “아니요, 취재 나온 기자입니다.”(김훈 한겨레신문 기자)

 

신문과 방송에서만 보던 두 유명인사를 실제 처음 봤던 곳은 무수한 죽음의 참사 현장이었다. 월드컵 분위기가 무르익던 2002415. 승객과 승무원 166명을 싣고 베이징에서 이륙한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 인근 돗대산에 추락했다. 당시 사건·사고를 주로 취재하는 사회부 사건팀 기자였던 필자는 현장에 급파됐다. 이곳에 소설 <칼의 노래>의 김훈 작가도 사회부 기자로 왔다. 그해 1, 화려한 언론 경력의 54세 베스트셀러 작가는 사건기자로 변신해 화제가 됐다. 한 일간지는 그의 <칼의 노래> 주인공 이순신 장군처럼 백의종군한 셈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무현 후보도 이회창, 이부영, 정동영 등 다른 유력 정치인들처럼 현장을 찾아 사고수습 지원을 약속했다. 유족들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뜻을 전하는 중 머리 희끗한 중년의 기자를 유족으로 알고 말을 건넨 것이었다.

 

짧고 어색한 만남 이후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갔다.

김훈 기자는 다음날 정치인들의 위로방문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유족들이 방문한 정치인들을 향해 격렬하게 항의하면서도 한결같이 도와 달라며 절규하는 현장을 담았다. 글은 유족들은 18일부터 제가끔 시신의 신원을 확인하러 병원을 뒤지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믿기 어려운 국민들처럼 보였다로 끝맺었다. 부연하자면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나도록 신원이 확인되는 사망자는 3명에 불과할 정도로 당국의 대처는 더뎠다.

 

노무현 후보는 시민들의 열정과 참여 속에 민주당 경선을 통과했고 겨울 본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꿈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한 개혁은 기득권의 저항에 시달리고 가로막혔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세상,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친구 문재인 대통령의 과제이기도 하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고, 우리 생활 곳곳에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치고 있다. 하지만 돈 없고, ‘없는 사람들의 힘들고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일터에서 삶을 마치는 이 어이없음은 매년 반복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밝힌 지난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일하다 병든 경우를 빼고도) 971명으로, 전년보다 7명 늘었다. 2001년부터 따지면 일터에서 숨진 노동자는 연평균 2200명을 넘는다.

 

주로 건설 일용직, 하청업체 직원, 비정규직, 현장실습생들이었다. 발전소 하청 노동자로 새벽에 홀로 일하던 스물네 살의 김용균씨는 기계에 끼여 죽임을 당했다. 이민호군은 특성화고 3학년 현장실습 중 장비에 깔려 사망했다. 지난달에는 서른다섯 살의 비정규직 집배노동자 이은장씨가 돌연사했다. 스물다섯 살의 건설 노동자 김태규씨는 화물용 승강기에서 추락해 숨졌다.

 

나라를 믿지 못하는 국민처럼유족들의 몸부림도 여전하다. 사고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고, 비슷한 사고의 재발을 막을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너무나 기본적인 요구들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오랜 아우성 끝에 산업재해를 막기 위한 산업안전보건법(김용균법)이 마련됐지만 정부의 하위 법령에 그 위력은 떨어졌다. ‘김용균법에 김용균이 없다는 탄식에도 재계는 물론 정부와 국회는 너무나 무덤덤하다. 산재 발생 사업장의 업주 처벌을 규정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실현은 기약이 없다.

 

그래서일까, 김훈 작가가 생명안전 시민넷의 공동대표로 지난 14일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그의 17년 전 칼럼과 비교해 시간적·공간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무수한 죽음들은 다만 통계 숫자로만 인식되었을 뿐, 아무런 대책도 반성도 없이 방치되어 왔습니다. 어째서 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와 행정부는 날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무수한 죽음을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까. 살려 달라는 것입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 차별 없이 단결권을 보장하고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이 지체 없이 비준되길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욕심일까. 국제사회의 눈총과 압박이 높지만, 한국적 특수성이나 경제성장을 위해 고려할 게 많다는 논리는 강고하다.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파이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앞서 말한 (수은중독으로 사망한 열다섯 살 노동자) 문송면군 사건, 이만하면 중대한 과실이 될 만도 합니다. 왜 구속하지 않습니까? 저는 이렇게 묻겠습니다.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파이를 크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니네들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이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 때인 19887월 첫 대정부질문에서 쏟아낸 울림 역시 세월의 공백을 느낄 수 없다./ 박재현 정책사회부장 경향 2019.06.18.

 

방언의 보존과 확산이야말로 정부의 할 일

전라도에서는 솔전을 부쳐 먹고, 경상도에서는 정구지찌짐을 구워 먹고, 제주에서는 세우리적을 지져 먹는다. 음식 재료도, 조리 방법도 다른 것 같은데, 실상은 모두 부추전을 부쳐 먹는 일이다. 이처럼 우리말 방언은 다양한 형태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방언의 지역적 분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지도에 옮긴 게 언어지도(言語地圖)이다. 그런데 한 어휘의 언어지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국의 방언을 모두 알아야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다니며, 지역 고유의 방언을 잘 사용하는 제보자를 찾아 방언을 녹음하고, 음성을 글로 옮기는 일이 선행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언어지도를 만드는 일에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달 27일자 이지누 칼럼오롯하게 우리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워지는 지금, 정부 차원에서 나랏말의 다양성과 분포를 정리해 우리말에 대한 언어지도를 발표할 시기가 되었다는 주장은 매우 공감되는 내용이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사라져 가는 방언을 보존하기 위해 2004년부터 지역어 조사를 실시하여 약 20만 항목의 방언 자료를 모으고, 이를 기반으로 100장의 언어지도를 작성 중이다. 지역 방언을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80대 이상의 어르신을 대상으로 방언 음성을 채록하고, 이를 전사하여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고 있다. 현재 전국 162개 시·군 중에서 111개 시·군의 방언을 조사하였고, 올해에 20개 시·군의 방언을 추가 조사하고 있다.

 

이 사업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1980년대에 시작한 한국 방언 조사의 계보를 이었다. 한국 방언 조사의 질문지를 확대하여 조사함으로써 1980년대의 방언과 2000년대의 방언을 비교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지역어 조사 결과는 사회적으로는 도시화가, 언어적으로는 표준어화가 급속히 진행된 2000년대의 방언을 기록한 것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방언조사자료집>과 비교하면 20년 동안의 언어 변화를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국립국어원의 지역어 조사 결과와 언어지도는 201912월 말 지역어 종합 정보 시스템을 통해 일반 국민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방언 정보를 쉽게 검색하여 활용할 수 있도록 약 14만 항목의 방언과 대응 표준어, 뜻풀이, 음성 자료 등을 제공한다. 그리고 방언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100개 어휘의 언어지도와 전문가 해설을 싣고, 국민들도 자신만의 언어지도를 작성할 수 있도록 언어지도 작성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할 계획이다.

 

일반적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방언이라 하면 제주 방언이나 전라 방언, 경상 방언, 강원 방언을 떠올린다. 정작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은 경기 방언과 충청 방언이야말로 진정 소멸 위기에 처해 있는데 말이다. 경기 방언과 충청 방언에는 방언사전조차 없다. 지역어 보존을 위한 노력은 지역별로 차이를 보인다.

 

문화적 다양성은 언어 다양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언어 다양성은 점점 사라져가는 방언을 보존하여 활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방언에는 지역 고유의 언어문화가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 방언을 전국적으로 균형 있게 보존하고, 그것을 확산시킬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야말로 정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다

위진 |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경향 2019.06.16.

He Touched Me, Am I Blue - Lillian Bou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