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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외부 칼럼

19.5.5.~17

by 이성근 2019. 5. 17.

미 육군 정보요원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 경향 2019 5.17

촛불정부와 재벌의 밀월, 상투적 비판? 한겨레 2019.5.16.

문 대통령이 군 개혁 고삐 좨야 할 이유 경향 2019. 5 16

독일의 68세대와 한국의 86세대 한겨레 2019 5.15

서민의 삶이 고달프지 않으려면 한겨레 2019 5.15

어버이날에 돌아보다 한겨레 2019 5.14

 

황교안이 꿈꾸는 나라는 한국 2019 5.13

황교안적, 너무도 황교안적경향 2019.5.13.

굶주린 배는 비핵화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프레시안 2019.5.9.

극우는 망령이 아니다 한국 2019.5.7.

바보야, 문제는 독점이야 한겨레 2019. 5.6

조선일보의 끔찍한 '황교안 사랑' 프레시안 2019.5.6.

가족을 다시 상상하기 경향 2019 5.5


미 육군 정보요원김용장이 답해야 할 의문들



김용장씨가 소속됐던 미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1980년도 연례보고서 원문(201810월 기밀 해제). INSCOM의 부대배치 현황이 표로 정리되어 있다.

 

최근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둘러싼 정보요원 두 명의 주장이 파장을 낳고 있다. 19805월 미 육군 501 정보그룹 소속 군사정보 전문가로 광주 공군기지에서 근무했다는 김용장과 광주 주재 501 보안사 상사였던 허장환이 논란의 중심이다.

 

김용장은 꿈같은 증인이었다. 헬기사격부터 사살명령까지 5월의 모든 의문에 완전한 답변을 내놨다. 그 답변은 허장환의 주장과 일치한다. 다만 보안사 요원 신분이 확인된 허장환과 달리 김용장의 신분은 자신의 주장 외엔 증거가 없다.

 

김용장이 501그룹 시절 받은 포상은 그가 501그룹 종사자였음을 증명할 뿐 광주에서 군사정보 전문가로 일했다는 증거는 아니다. 보안상 직책을 명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501부대의 두 상급기관, 육군 정보보안사령부(INSCOM)와 국방정보국(DIA) 문건에서 광주 근무 한국인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찾기 힘들다.

 

증언의 정확성도 문제다. 김용장은 지난 13일 국회에서 1980년 광주에 CIA나 국무부 직원이 없었다고 했다. CIA 요원 상주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광주에는 국무부 소속 미 문화원이 있었다. 미국의 5·18 초기 정보는 문화원 직원들의 작품이었다. 20년 넘게 광주의 미 육군정보 요원이 이들의 존재를 모를 수 없다.

 

김용장은 지난 14일 광주 회견에서 1980521일자 DIA 문건 중 3개 문항이 자신의 보고에 기반했고, 그중 하나는 사살명령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그것은 사살명령이 아니라 자위권 허가였다. 사살명령의 존재 여부를 떠나 이 보고서에 대한 김용장의 증언은 보고서와 천양지차인 것이다.

 

김용장은 이 회견에서 80년 당시 501의 기능이 여단에서 그룹으로 축소됐다고 말했다. 사실이 아니다. 대북 감청이 주임무인 501부대는 1986년 여단으로 승격돼 지금도 평택에 주둔하는 등 축소된 적이 거의 없다. INSCOM1980년 연례보고를 보면 그의 증언과는 반대로 휴민트 구조는 계통이 강화되고 인원도 늘었다.

 

연례보고에서 한국인 전문가의 흔적도 찾기 힘들다. 당시 501그룹에는 미군 194, 직접고용한 민간인은 고작 두 명이었다. 그중 하나가 김용장이었을까. 그러한 특기자가 굳이 광주 공군기지에 20년간 배치됐을까? 게다가 당시 501부대 배치는 광주를 제외한 5개 기지에 한정됐다.

 

5·18 관련 DIA의 최초 보고서는 519일에 나왔다. 그날 광주시내에서 시위를 목격한 2명의 미 공군장교의 목격담으로 구성됐다. 정보장교가 아니었던 이들이 기지 귀환 후 심상치 않은 시내 상황을 미 공군 정보체계에 보고했고, DIA가 이를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보고는 520, 광주 관광호텔 외국인 투숙객들과 선교사로 보이는 미국인들을 면담한 뒤 작성한 것이다. 이 초기 문건들에서 한국어에 능통한 정보전문가의 흔적은 없다.

 

김용장은 지난 3JTBC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그는 취재진에게 1980년 당시 미대사관 무관 제임스 영과 교류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달 같은 취재진을 만난 영은 김용장을 모른다고 했다.

 

그즈음 나는 INSCOM에 당시 김용장과 4명으로 구성된 그의 팀이 작성한 보고서의 정보공개를 요청했고,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으나 DIA나 태평양사령부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 후 두 기관에 정보공개 요청을 했으나, 한 곳에선 기록이 없다는 답을 받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답신이 아직 오지 않고 있다.

 

김용장과 허장환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5·18 역사를 민주화항쟁이 아닌, 사전 각본에 따라 연출된 학살극으로 재평가해야 할 것이다. 광주시민들이 한 무리의 나약한 피해자로 전락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엄중함에 비춰 김용장은 1980년 당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공식 기록을 통해 밝히지 않고 있다.

 

항쟁과 학살이 뒤얽힌 광주는 민주주의의 큰 성과이지만 민초들에겐 깊은 상처다. 온갖 혼란과 몽니 속에 진상규명은 요원한 채, 5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있다.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번역자 경향 2019 5.17

 

촛불정부와 재벌의 밀월, 상투적 비판?

대한민국 역대 정부 중 후대 정부에 본보기가 되는 정부, 하루하루 고단하게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민초들에게 민주공화국 시민의 푯대를 제시하는 정부, 재벌에 포획된 채 정경유착을 일삼는 것이 아니라 재벌을 길들여 공화국의 시민기업으로 마땅한 사회적 책임을 수행케 하는 강력한 민주정부, 그렇게 나라다운 나라를 이끄는 정부가 있는가?

나는 늘 책임있게 응답하고 확실한 줏대를 보여주는 시민의 정부를 원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서 그런 정부가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내 기억에는 재벌의 고삐를 잡기보다 무력하게 재벌에 포획된 채 규제완화 나팔수가 되고 정경유착 놀이에 정신 팔린 정부가 많았다. 서민 대중에 등돌리며 재벌의 낙수효과나 구걸하라고 떠벌린 정부가 많았다. 그러는 사이 낙수효과마저 말라붙었다.

 

희대의 국정농단을 자행한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탄생해 촛불정부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을 때, 나는 이 정부가 드디어 시작과 끝이 모두 좋은 시민정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얼마나 좋은 기회였나. 수구보수 대통령이 탄핵되었을뿐더러 냉전반공 분단체제에 기생해왔던 수구보수 정당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게다가 삼성 이재용을 비롯한 비리 재벌 총수들이 기소되는 등 코너로 몰렸다. 반면 새 정부의 각오에 믿음직한 구석이 엿보였다. 그런데 집권 2년 동안 사회·경제개혁에서 이 정부는 무엇을 보여주었나. 집권 2년이면 보여줄 건 거의 다 보여준 셈이다. 결과는 큰 실망이다. 촛불정부에서 촛불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이 정부는 촛불정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 경제정책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가계소득을 새로운 성장 원천으로 활용하는 소득주도성장, 일자리-분배-성장의 선순환을 복원하는 일자리중심경제, 경제주체 간 합리적 보상체계를 정립하고 대-중소기업이 동반성장하는 공정경제, 그리고 3% 성장능력을 갖춘 경제를 유지한다는 혁신성장의 네바퀴 경제정책, 분배와 성장이 선순환을 이루는 사람중심경제 정책을 제이(J)노믹스의 핵심기조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인천공항 비정규직을 찾아가 손잡으며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외쳤다.

 

제이노믹스 2년의 현실은 어떤가. 그 실상인즉,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최저임금 인상으로 옹색하게 가져가 약자들끼리 다투게 했을뿐더러 노동존중사회 약속에서 뒷걸음치기(ILO 핵심협약 비준 건을 경사노위에 넘기기를 포함해서), 공정경제개혁의 핵심에 해당하는 재벌개혁 및 경제력 집중 해소 과제를 재벌 자율에 맡겨 재벌 비위 거슬리지 않기, 공정경제?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의 길 모두에 필수 관문인 부동산 개혁(가장 준비가 부족했다), 자산불평등 개선 및 주거권 보장 과제를 부채주도성장 및 건물주 이해를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기, 조세 및 재정 정책의 경우 감세 및 재정보수주의 기조를 유지하는 선에서 안정적으로 조정하기 등으로 크게 변질되었다. 그러면서 중심기조가 박근혜 때 줄푸세-창조경제를 연상케 하는 규제완화-혁신성장으로 바뀌었다. 이는 네바퀴 정책이 가져올 높은 길에서 탈선하면서 찾은 상투적 선택지일 수 있다. 마침내 대통령이 손잡은 상대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아니라 국정농단사건과 관련해 뇌물죄 혐의로 대법원 선고를 앞둔 삼성 이재용으로 뒤바뀌었다. 제이노믹스의 변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 장면이다.

 

역대 정부를 돌아보면 대개 1년이 못 돼 궤도를 갈아탔었다. 박근혜 정부의 경우 경제민주화 약속이 대선 승리에 큰 몫을 했지만 집권 후 창조경제를 제1조로 내세우고 원칙이 바로 선 시장경제 확립을 하위전략으로 삼았다. 집권 6개월 시점 ‘8·28 청와대 재벌총수 회동을 분기점으로 줄푸세 정책을 전면화하고 재벌과 밀월에 빠졌다. 여기서 세월호 참사 및 국정농단 사태로 가는 비극의 씨가 뿌려졌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출범 6개월이 되지 않은 시점, 방미를 분기점으로 기조 변화를 보였다. 8·15 경축사를 통해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구호를 내걸며 보수적 정책 선회를 분명히 했다. 원래 삼성이 제시한 구호였다. 나중에 노무현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더 오래 버텼다고 할까. 그게 위로가 될까?

 

네바퀴로 가는 사람중심경제를 세워 촛불정부 소임을 다하겠다던 개혁정부에서 국정농단 삼각축의 하나인 삼성 이재용과의 밀월로 안착하고, 단기성장률 관리에 급급한 관리정부 모습으로 주저앉기까지 세차례 변곡점이 있었던 듯하다. 첫번째, 집권 1년이 되는 20187월 무렵이다. 6·13 지방선거 후 뭔가 담대한 개혁이 나올 거라는 기대에 응답은커녕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협소해진 상태에서 거센 공격에 직면했다. 홍장표 경제수석이 물러나고 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손잡았다. 두번째, 같은 해 12월 경제수장이 홍남기 부총리로 교체되고 2019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때다. 출범 때와 전혀 다르게 공식정책기조에서 규제완화를 앞세운 재벌주도 성장, 혁신성장을 선언한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 기념 특별대담을 세번째 변곡점으로 꼽을 만하다. 대통령은 삼성 이재용과의 만남에 대한 시민사회 비판을 일축했다. ‘상투적비판을 하지 말라고,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재판은 재판, 경영은 경영, 경제는 경제라는 것이다. 적폐청산 수사는 앞선 정부가 시작한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 경제가 거시적으로 크게 성공을 거뒀다는 말도 했다. 내 눈에는 분명히 삼성 이재용과의 밀월로 보이는데 대통령은 상투적 비판, 이분법적 시각이라고 반박한다. 글쎄, 대통령의 말씀이야말로 상투적언사는 아닌지. 대통령의 일정은 그 자체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모를까. 알면서 그럴까. 상투적 언사는 경제패러다임 전환의 성과가 나타났다다만 (이런저런) 미흡한 측면이 있다고 쓰고 있는 정부의 평가문서에서도, 문재인-이재용 회동이 개혁 의지의 후퇴가 아니라 혁신성장을 위해 산업정책적 노력의 일환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강변한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에서도 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사회·경제개혁 평가에서 집중적 비판을 받은 대목이 공정경제개혁의 심각한 결핍이었고 이것이 네바퀴 경제 전반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었는데, 김상조 위원장은 이걸 모르는 걸까.

 

문 대통령은 재판은 재판, 경제는 경제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 정부에는 아직 3년이 더 남아 있다. 이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정부에 시급한 것은 레토릭으로 끝날 수도 있는 거창한 포용적미래 비전보다 상투적 치장을 벗고 초심을, 진정성을 되찾는 일이 아닐까.

이병천 지식인선언네트워크 공동대표·강원대 명예교수 한겨레 2019.5.16

 

 

문 대통령이 군 개혁 고삐 좨야 할 이유

문재인 정부 2주년을 맞아 국방부를 출입한 이래 20년 이상 알고 지내는 예비역 장성들에게 현 정부의 군 정책에 대한 평가를 요청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노무현 대통령 임기 동안 영관급과 장성으로 복무한 터라 역대 정부와 비교해보고자 한 것이다. 반응은 비슷했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군 정책과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군의 목소리가 없다고 했다. 원인 분석도 거의 같았다. “인재를 넓게 뽑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면 하나회를 척결한 YS 때보다 덜 개혁적이고, 호남인맥에 편중됐다던 DJ 때보다도 유능하지 못하다고 했다.

 

지난 2년 문재인 정부는 군 개혁을 힘있게 끌고 오지 못했다.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 때는 그나마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정경두 장관 들어서는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는 평이 파다하다. 국방부는 물론 합동참모본부와 각군을 통틀어도 정부의 군 정책을 소신 있게 펴는 사람은 몇 명 없다. 차라리 “9·19 남북군사합의를 검토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요즘 일부 예비역 장성들로부터 빨갱이소리를 듣는 김진호 재향군인회장(전 합참의장)이 돋보인다. 심지어 일선 부대에서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정부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에게 안보강연을 맡기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군 수뇌부의 무감각과 안이함이 이 정도라면 문재인 대통령의 튼튼한 안보 위에 평화 정착다짐은 공허해질 수밖에 없다.

 

군 개혁의 핵심인 능력 위주의 탕평 인사, ··공군의 고른 기용도 무위에 그치고 있다. 개혁적인 인사는커녕 육군 중심의, 관행적 인사가 여전하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9·19 남북군사합의서를 설명하면서 합참 장교들이 2주일 동안 밤을 새워가며 합의 문건을 검토했다. 그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데 경악했다. 게다가 남북군사 대화에 수십년간 이를 전담해온 예비역 장성들의 경험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인력의 적재적소 활용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과도한 대응도 있었다.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안보지원사령부)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지만, 그 이후 계엄령 문건 사건처리 과정은 적절하다고 볼 수 없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아 조사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지만 검찰 조사에서 속시원히 드러난 게 없다. 문민 통제에 대한 군의 거부 위험성을 지나치게 부풀림으로써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인상을 남겼다. 군이 일반 정부 부처의 관료들에 앞서 진작에 집권 4년차 모드로 들어간 것은 이런 결과이다. 공관병에게 갑질한 4성 장군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현 정부에 의해 핍박받았다고 나선 것은 그 일례일 뿐이다.

 

외교안보에서는 정책이 70%, 사람은 30%’라는 말이 있다. 정책이 정해지면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기량 차이는 부차적이라는 의미도 된다. 하지만 군은 다른 조직과 다르다. 생도 때부터 수십년간 서로를 비교 평가하는 독특한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YS가 하나회 숙군에 성공한 것은 과감하게 밀어붙인 결과이지만, 하나회를 대체한 세력이 능력을 크게 의심받지 않은 덕분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문재인 정부는 실패하고 있다. 군처럼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들어맞는 조직은 없다. 군 내부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지휘부를 세우지 않는 한 군 개혁은 불가능하다.

 

청와대와 여권 유력자들에게 줄을 대려는 군인들은 어느 정권에나 있었다. 보수파들은 지난해 육군 참모총장이 청와대 행정관을 단독으로 만났다고 비판했지만, YS 때는 별판을 단 차량들이 청와대 인근 한정식집 골목에 수시로 출몰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정도를 걷는 장성들이 없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은 직접 군 원로들을 만나 그들의 견해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 DJ가 군축전문가인 임동원 예비역 소장을 호텔에서 만나 밤새워 토론한 끝에 설득한 것을 문 대통령도 적극 본받아야 한다.

 

·미 협상이 조정기에 접어든 만큼 군 정책도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김대중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장면은 20026월 제2차 연평해전 때 윤영하 소령 등 장병 6명이 전사했는데 청와대가 사흘간 입장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대통령은 물론 국방부 장관마저 전사자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것이 햇볕정책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켰다. 문 대통령은 군의 합리적인 목소리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군 개혁에 대한 비전과 평화 정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군인들에게는 국가와 통수권자에 대한 충성의 유전자가 있다. 그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는 것은 통수권자의 몫이다. 문 대통령은 그런 일을 하기에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이상적인 조건을 갖췄다./ 이중근 논설위원 경향 2019. 5 16

 

독일의 68세대와 한국의 86세대

 

독일 68세대의 중심에 있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오늘의 독일은 68세대의 작품이다. 부조리한 세계, 억압적인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자 했던 68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한 세대가 오늘의 독일을 만든 것이다.

68세대는 나치 전력을 가진 자가 수상이 되는 파렴치한 나라를 철저한 과거청산의 나라로 바꾸어놓았고, ‘라인강의 기적속에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던 나라를 모범적인 복지국가로 변화시켰으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감행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를 정착시켰고, 동서독의 오랜 적대를 허물고 평화의 시대를 열어젖힌 동방정책을 발전시켰다. 한마디로, 68세대는 새로운 독일을 탄생시켰다.

 

68세대의 지지에 힘입어 전후 최초로 정권교체에 성공한 브란트 정부는 68세대의 꿈을 현실로 옮겼다. ‘경쟁은 야만이라는 철학 아래 경쟁을 금하고 아이들에게 자유와 행복감을 만끽하게 하는 학교, 학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연구보수라는 명목으로 생활비까지 주는 대학,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검소하고 유능한 의원들로 채워진 연방의회, 노동자들이 이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기업, 100만 난민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시민사회. 이것이 68세대가 만들어낸 독일이다.

 

한국에서 독일의 68세대에 조응하는 세대는 86세대(386세대)이다. 86세대는 폭압적인 군사독재에 용감하게 맞서 싸웠고, 민주적인 국가, 정의로운 사회, 평화로운 한반도를 꿈꿨다. 이들의 용기와 사명감은 독일의 68세대보다 뜨거웠다.

 

독일의 68세대가 브란트 정부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루고 사회 개혁의 중심세력이 됐던 것처럼, 한국의 86세대도 김대중 정부로 최초의 정권교체를 이루었고, 노무현·문재인 정부로 이어지는 민주개혁정부에서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오늘도 상당 부분 86세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68혁명의 시위대가 대로를 가르며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독일의 68세대처럼 한국의 86세대도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는가. 학생은 살인적인 경쟁에서, 대학생은 경제적인 압박에서, 청년은 실업의 고통에서, 노동자는 해고의 불안에서, 실업자는 생존의 공포에서, 여성은 성적 억압에서 해방되었는가. 사회는 더 평등해지고, 국가는 더 정의로워졌는가. 국민은 더 행복해졌는가. 알다시피, 한국 사회는 점점 더 헬조선’, 즉 시대착오적인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다. 86세대는 정치 민주화에는 기여했으나, 사회를 질적으로 변혁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왜 실패한 것인가.

 

첫째, 정치적 비전이 빈한했다. 독일의 68세대가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던 반면, 한국의 86세대는 군사독재 타도가 일차적인 목표였다. 68이 사회의 전면적 해방을 모색했다면, 86은 정치 민주화라는 특수한 해방에 집중했다. 한국 사회가 정치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화, 경제민주화, 문화민주화는 여전히 요원한 현실은 해방적 상상력의 빈곤에 기인한다.

 

둘째, 도덕적 우월감의 덫에 갇혔다. 86세대의 적수는 언제나 자유롭고 평등한 이상사회를 꿈꾸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라기득권을 고수하려 온갖 편법을 서슴지 않는 기회주의적 수구세력이었기에, 이들은 늘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느낌을 가졌다. 이것이 이들을 무능하게 했다. 이미 사라졌어야 할 역사의 유령과 싸우다가 그들 자신도 역사의 퇴물이 되어갔다.

 

셋째, 파시즘의 역설 때문이다. 86세대는 젊은 시절 목숨을 걸고 파시즘의 야만과 싸운 세대이다. 이 위대함이 일상에서 이들의 한계가 되었다. “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라는 브레히트의 예리한 통찰처럼, 86세대는 밖으로는 파시즘과 싸우면서 안으로는 파시즘을 키웠다. 이것이 오늘날 회자되는 꼰대론의 연원이다.

 

86세대의 실패는 이 세대의 비극을 넘어 한국 사회의 비극이다. 한때 정의를 외치며 자신을 희생했던 세대의 정치적 실패는 사회 전반에 더 큰 실망감과 좌절감, 냉소주의와 패배주의를 퍼뜨린다. 지금 한국 사회를 휘감고 있는 거대한 무력감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이 86세대에게는 어쩌면 마지막 기회다. 재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결연히 감행하여 100년 대한민국을 새로운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후세대에게 지옥을 넘겨주지 않는 것, 이것이 86세대에게 남겨진 마지막 시대적 소명이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한겨레 2019 5.15

 

서민의 삶이 고달프지 않으려면

서민의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서민’(庶民)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또는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소득 하위 50%를 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소득 최하위 20%는 노인 빈곤층이 많다. 소득 하위 2050% 계층의 월 가계소득은 약 150250만원이고 가구주 연령대는 3564살로, 영세한 사업체의 취약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 그리고 비전통적 방식으로 불안하고 불규칙하게 일하는 사람들을 포함한다.

 

소득 상위 110%의 소득·자산 집중 문제나 소득 상위 20%와 소득 상위 2050% 간 격차와 차별 문제도 존재하지만, 지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하위 50%의 서민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서민이란 용어조차 사라져버린 듯하다.

 

서민의 고단한 생활고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두가지 사실에 대해 생각해보자. 첫째, 노동시장 내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상승이 소득 하위 가구의 소득 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는 필자 분석에 따르면 적어도 2013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임금 노동자 임금은 분명하게 늘었다. 그러나 하위 가구는 고령화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줄어 소득이 늘지 않았다.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이 늦은 것은 서민의 삶과 생활이 작동하는 구체적 모습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 공적이전소득의 재분배 기능이 취약하다. 최근 공적이전소득이 상층으로 갈수록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하위 20%는 기초연금, 하위 2050%는 사회수혜금(사회보험과 기초생활보장 급여), 상위 50%는 공적연금(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이 상대적으로 비중이 크다. 공적이전소득에서 공적연금의 비중은 현재 60%를 넘고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현재의 구조와 규모하에서는 공적이전의 재분배 기능이 강화될 여지가 크지 않다.

 

이 두가지가 사실이라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첫째, 서민 대상의 노동시장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공공부문 고용 확대, 기간제와 하청노동자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차별 시정 등으로 상위 50% 안에서의 격차 축소는 진행되고 있다. 이제 하위 50%에 대해 더 관심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진보가 선호하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속도 조절 압력을 받고 있고 보수가 선호하는 근로장려금(EITC)이 강화되는 국면이다. 이념에 따라서 정책을 펼치기보다는 유효한 정책 발굴과 최적의 정책 조합을 위한 정교한 정책 설계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둘째, 고용 기반의 사회보험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소득과 조세 기반 보호 방안을 강화하는 것이다. 사회보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20년 가까이 정책 노력을 기울였지만, 시장에서의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보험은 사회의 연대 원리에 기초한 위험공유를 주된 기능으로 한다. 이는 소득이 증가하면 수요가 증가하는 가치재이기 때문에 서민이 당장 선뜻 구매하기에는 비쌀 수도 있다. 조세 기반 재분배는 국가 주도성이 강하지만 더 보편적인 사회적 연대일 수 있으며, 충분히 긴 기간으로 생각하면 위험공유 기능도 가진다.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 걷히기 전에 판단하고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 비중이 1% 증가하면 민간보험 비중은 0.15% 정도 감소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조세 기반의 기본소득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중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불확실하고 전례가 없는 새로운 프로그램보다는 기존 프로그램들을 잘 다듬어갈 필요가 있다. 사회보험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일정 부분 기여하고 정부가 재정으로 보조하는 일하는 사람을 위한 사회적 보호 기금형태로 운영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세 기반 보호 강화를 위한 증세 공론화에 정권 차원에서 승부를 걸어볼 시점이다.

 

한국에서 포퓰리즘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제조업 토대가 여전히 강하며, 포퓰리스트 선동가도 없고 이들이 득세할 만한 정치 지형도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고, 기회 부재와 비전 결핍에 절망하는 청년층이 누적된다면 서민의 분노와 불만을 자극하고 선동하는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배제할 수 없다. 정책의 하방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는 정책 엘리트들의 가슴으로부터의 하방이라도 먼저 전제되어야 한다.

전병유 한신대 교수·경제학 한겨레 2019 5.15

 

어버이날에 돌아보다

마크 트웨인은 100명 남짓 사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탄생으로 마을 인구가 1% 늘었는데, 이게 자기 아버지가 해낸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만큼 긴 자서전에서 이런 진상발언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의 전부다. 자신의 눈앞에서 노예를 무자비하게 때리는 것을 보고, 그는 아버지를 지우고 어머니에게 기대었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없었다. 어머니와 결혼하고 서둘러 군대에 가 있었다. 영어 한마디도 못 했던 아버지는 어찌어찌하여 카투사 부대에 배치되었다. 내가 시커먼 아궁이 속으로 기어들고 갑자기 불어난 도랑물에 떠내려갈 때, 아버지는 빵과 빠다와 외롭게 싸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비 없는아들을 때깔 좋은 옷을 입혀 사진관을 찾았다. 사진만 보면 어엿한 부잣집 아들이었다. 어머니의 고집과 수완이 대단했다.

 

군대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다시 떠났다. 이번에는 외항선원이 되어 바다로 떠났다. 조금이라도 자주 보려고, 가족은 항구 옆으로 이사했다. 아버지는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쯤 돌아와서는 곧 가버렸다. 내가 학교 시화전에 처음 출품한 시는 수출역군아버지가 땡그랑문소리를 내며 집에 들어오는 장면을 그린 것이었다. 대문 위에는 조그만 싸구려 종 하나가 걸려 있었다.

 

아버지가 손님이 된 집에는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시골 친척들이 불쑥 찾아와 기약 없이 머물던 숙소였고, 도시 진출의 베이스캠프였다. 어머니는 외롭게 큰 살림을 꾸렸다. 내 도시락에는 늘 달걀 프라이가 있었다. 어차피 주판셈으로는 불가능한 살림이었다. 아버지의 월급은 안정적이었지만 뻔했다. 어머니의 서러운 노력이 보태져야 굴러가는 살림이었다. 대책 없이 살림은 어머니가 처한 궁박한 역경이자 당신의 자부심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은 내가 방학 때마다 호기 좋게 그려대던 생활계획표일 수는 없었다. 나는 방학 때마다 계획하고 실패했지만, 당신들은 계획조차 불가능했다. 어쭙잖게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따지는 일은 로마 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의 위선스러운 여유 같았다. 그는 온갖 부와 권력을 다 누린 뒤에 금욕과 금기의 삶에 대해 설파했다. 나의 어린 눈에 비친 세상은 그저 발각되고 처벌되느냐의 문제만 있었다. 항구를 통해 실려온 크고 작은 가방들이 집을 거쳐서 부산 깡통시장으로 팔려나갔다. 사람들은 아들이 법관이 되길 바란다는 부모의 바람을 살짝 전해주고 갔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평생 일했던 아버지는 바다에서 아슬한 사고를 겪고 나서야 돌아왔다. 가족으로의 복귀였으나 그때 아들은 이미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 뒤였다. 살가운 정이라고는 없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본론> 영문판을 일본에서 구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라도 말의 길을 터준 아들이 고마워서 아버지는 천신만고 끝에 책을 구해서 전했다. 아들은 책만 챙겨 들고 서울로 떠났다. 어머니는 말없이 차비만 챙겨주었다.

 

바다를 떠난 아버지는 육상의 파도와 싸워야 했다. 이젠 혼자가 아닌데도 어머니의 생활전선도 쉽지 않았다. 경계가 애매했던 일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이어 고초를 겪기도 했다. 나는 법대를 가지 않은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이 내게는 고귀한 환상이었다면, 부모의 살림 투쟁은 손쓸 수 없는 무거운 현실이었다. 지금은 누구도 그때를 얘기하지 않는다. “가벼운 슬픔은 말이 많고 큰 슬픔은 말이 없다.” 탐탁지 않지만, 세네카의 이 말만은 진실하다.

 

땅에 살면서 멀미를 달고 살았던 두분은 타락한 정치인에게 관대하다. 천하의 파렴치한 자들이 국익을 명분으로 벌인 일에 세상이 분노할 때, 두분은 짧게 화낸다. 그러면서 그럴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말을 꼭 보태고야 만다. 내 부모 속에서 어버이 연합의 그림자를 보고 나는 언성을 높이면서도 늘 마음 한쪽은 짠하다. 아들은 서둘러 티브이 화면만 바라본다.

 

얼마 전 어버이날이었다. 동생들은 오만원짜리 지폐가 선명하게 꽂힌 선물을 두분께 안겼다. 더 이상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삶이 싫으신지 노골적으로 선명한 용돈박스를 받고 함박 웃으신다. 얼굴이 카네이션처럼 붉고 환하다. 바쁘다는 전매특허 핑계로 아들은 이번에도 시간 맞춰 전화하지 못했다. 그리고 마크 트웨인도 아닌 나는 찌질한 마음만 이렇게 적어둔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 한겨레 2019 5.14

 

황교안이 꿈꾸는 나라는

관료 이미지 벗고 거리의 투사로 변신

극우 정치의식에 종교적 독선, 우려 커

적폐청산비난하며 좌파청산외쳐서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19일 오전 민생탐방 '국민과 함께'를 위해 찾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학교 삼거리에서 지역 상인으로부터 경기현황을 전해 듣고 음식을 직접 사서 먹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변신이 놀랍다. 장외 집회에서 그가 보인 연설 솜씨는 기성 정치인 뺨칠 만큼 일취월장이다. 지방에선 지지자들을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고 잠자리로 마을회관과 경로당을 마다하지 않는다. 몇 달 전까지 그에게서 풍기던 차가운 관료적 이미지는 사라지고 거리의 투사분위기가 물씬 난다. 한국당내에서도 정치 신동이 나왔다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황 대표의 변모는 그의 권력 의지를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권력을 지향하고 쟁취하려는 강한 의지가 잠재돼 있다 정치적 기회가 찾아오자 발산됐다는 분석이다. 주변 인사들에 따르면 황 대표의 권력 의지는 국무총리 시절 뚜렷해졌고, 탄핵 후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면서 단단해졌다고 한다. 퇴임 후 페이스북 활동을 시작으로 출판기념회 개최, 한국당 의원들과의 회동, 한국당 입당, 당 대표 출마로 이어진 일련의 행보는 권력 의지대권 의지를 다지고 표출하는 과정이었던 셈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은 공교롭게도 황 대표의 대권 도전 의지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장외 투쟁을 빌미로 전국을 누비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지지자들과 접촉을 늘리고 있다. 야당 대표로서의 민생 탐방이라기보다는 큰 그림을 염두에 둔 대선 주자 행보라는 게 어울린다. 현장에서는 황교안을 청와대로” “황교안 대통령등의 구호가 거침없이 나온다.

 

하지만 황 대표가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혀 갈수록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황 대표는 정치 입문 이후 줄곧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에 올라있다. 적어도 가장 강력한 야당 지도자라는 인식을 많은 국민에게 심어준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에 그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다.

 

황 대표를 규정짓는 핵심 정체성은 공안 검사. 권위주의 시기의 공안 검사는 시민을 체제와 반체제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은 경우가 많았다. 그의 모든 주장이 기승전 좌파독재인 것은 그런 연유다. ‘80년대 운동권 출신을 문재인 정권의 핵심으로 보는 황 대표에게 문재인 정부의 국가 정책은 좌파 포퓰리즘으로 치부된다. 같은 맥락에서 선거법과 검찰 개혁 등 패스트트랙은 운동권 좌파의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그 모든 게 타협이나 협상이 아닌 타도와 척결의 대상일 뿐이다. “죽을 각오로 좌파 독재에 맞서 피를 흘리겠다는 섬뜩한 발언은 그래서 나온다. 3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공안 검사 황교안이 고스란히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든다.

 

황 대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축은 보수 개신교. 개인의 신앙을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종교를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인다는 게 우려스러운 것이다. 유독 그의 화법에는 선과 악, 천사와 악마 등의 종교적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김학의 성폭력 사건연관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은 악한 세력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천사로 규정한다. 황 대표 주변에 근본주의성향의 개신교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걱정을 더한다. 오죽하면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그의 독선적 신앙심이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겠는가.

 

극우적 정치 의식에 종교적 독선이 결합되면 국가의 운명은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달을 수 있다. 미국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극우 포퓰리즘과 보수 개신교 세력 득세로 민주주의 퇴행을 겪는 것을 남의 일로만 볼 수는 없다. 새로운 시대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발상을 요구한다. 철 지난 색깔론을 보수의 새 길인 양 외치는 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황 대표에게 진정 대권 의지가 있다면 적대적공격적 인식에서 벗어나 포용과 타협을 추구해야 한다.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을 비난하면서 좌파 청산을 꿈꾸는 것은 모순이다. 황 대표에겐 정치의 책임 윤리신념 윤리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한국 2019 5.13

 

황교안적, 너무도 황교안적

지금 좌파는 돈 벌어본 일 없는 사람들이다. 임종석씨(전 대통령비서실장)가 무슨 돈 벌어본 사람인가? 제가 그 주임검사였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민생투쟁 대장정첫날인 7일 부산의 아파트 부녀회에서 한 말이다. 1989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였던 황 대표는 임종석 당시 전대협 의장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한 이력이 있다. 타깃은 임 전 실장에 머물지 않았다.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들이 잘산다. 어려운 사람 도와준다며 소송 걸라고 해서 소송비 받는다.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하는데.” 일련의 발언이 검증 욕구를 자극했다. 한국당 웹사이트와 언론 보도를 토대로 황 대표의 장외투쟁을 짚어봤다.

 

# 시대착오

제가 임종석씨 주임검사였다.” 황 대표는 공안통이다. 지난해 펴낸 책 <황교안의 답>에서도 인생의 전환점으로 공안부와의 만남을 꼽았다. 그러나 1980년대 공안검사 경력은 자랑이 아니다. 당시 그들 중 상당수가 경찰이나 안기부의 고문을 묵인하거나 은폐했다. 지난해 검찰과거사위원회는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찰이 치안본부에 사건을 축소 조작할 기회를 줬다고 발표했다. 고 김근태 의원 고문 은폐 사건과 관련해서도 검찰이 대공분실의 고문 사실을 인지했으나 안기부와 공모해 이를 은폐했다고 결론내렸다.

 

#자승자박

민변 변호사들이 잘산다. 우파 변호사들은 수임을 잘 못하는데.” 황 대표는 고검장 퇴임 후 우파 변호사로 변신했다. 17개월 동안 대형 로펌에서 일하며 약 17억원의 자문·수임료를 챙겼다. 전관예우 논란은 2015년 국무총리 청문회 당시 최대 쟁점이 됐다.

 

# 견강부회

사고 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 정말 필요한 에너지원을 포기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얘기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이 지난해 3800여명이었다. ‘많은 분이 돌아가셨으니 자동차를 폐기해버려라그럴 수 없는 것 아닌가.”(9일 원전 정책간담회) 교통사고는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만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원전 사고는 단 한 번에 대도시를 폐허로 만들 수 있다. 고선량의 방사능에 피폭되면 생존한다 해도 유전자 이상이나 암 등의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

 

# 가짜 뉴스

“(패스트트랙에) 우리는 무저항으로 저항했다.”(2일 대전역 집회) “우리 자유한국당 비폭력 저항하고 있는.”(2일 부산 서면 집회) 바른미래당 오신환 의원 대신 국회 사법개혁특위 위원으로 보임된 채이배 의원은 한국당 의원들에게 감금당했다. 이은재 한국당 의원은 국회 의안과 팩스로 전송되는 법안 서류를 가로챘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이 문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다. 헌법 개정할 때도, 또 중요한 사건 결정할 때 6명이면 다 결정할 수 있다.”(3일 전주역 집회) 헌법 개정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 발의로 제안된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되며, 국민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확정된다. 헌재의 기능은 헌법소원·위헌법률·탄핵·정당해산·권한쟁의 사건 심판이다. 개헌과 관련해선 역할이 없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필요한가. 여론조사를 해봐도 필요 없다는 것이 절대 다수다.”(3일 전주)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공수처 설치법안 찬성이 절대 다수에 가깝다. MBC 조사에선 찬성이 70.1%로 반대(24.4%)를 압도했다. MBN의 경우 찬성 57.3%, 반대 29.6%로 나타났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79월 리얼미터 조사에서도 찬성 68.7%, 반대 21.5%였다. 공수처 찬성 여론이 오래전부터 높았다는 의미다.

 

민노총은 뭘 요구해도 다 들어주는데 농민들 말씀은 안 들어주는 정부.”(10일 경북 영천 농업인 간담회)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최근 문재인 정부 2, 노동정책 평가를 공개했다. 핵심 정책과제 이행은 제자리걸음이고, 노동행정은 보수적이었으며, 최저임금·노동시간 정책은 취지를 뒤흔드는 수준까지 개악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자기애

지난 11일 오후 대구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집회에 가봤다. 황 대표의 연설 도입부가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 목소리가 제일 좋은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데 지금 목소리가 다 망가졌다. 며칠 전 하루에 다섯 번을 센 연설을 했더니 목소리가 이렇게 됐다.” 앞서 전주와 부산에서도 목소리 자랑을 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습관적으로 두르는 겸손이란 외피도 없다. ‘황교안적정치다.

김민아 논설위원 경향 2019.5.13.

 

굶주린 배는 비핵화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식량 지원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보상'?

보수 언론이 한미관계를 이간질하는 전형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는 청와대와 백악관의 발표 내용을 비교해서 아전인수식으로 보도하는 것이다.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 대한 보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에서 한국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반면 백악관은 "두 정상이 북한의 최근 동향과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달성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은 백악관은 "식량 지원을 언급하지 않았다", 대북 식량 지원을 둘러싸고 한미간에 심각한 이견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과연 그럴까? 전화 통화 내용과 관련해 청와대와 백악관의 강조점은 다를 수 있지만, 대북 식량 지원과 관련해서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그 필요성에 공감한 바 있다. 4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말이다. 당시 트럼프는 "우리는 인도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있고, 솔직히 말해 나는 좋다"고 본다며, "한국이 식량을 비롯해 다양한 지원을 하려고 한다"고 소개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57일 전화 통화는 4주 전 한미정상회담에서 논의한 사항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 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반대나 불만에도 불구하고 대북 식량 지원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여념이 없다. 인도적 문제마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는 셈이다.

 

식량 지원이 미사일 도발에 대한 보상?

보수 언론은 또한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식량 지원으로 보상하려 한다'는 논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식량 지원 방침 및 한미간의 논의는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있었던 54일보다 훨씬 앞선 시점부터 추진되어온 것이다. 그리고 한미 양국은 북한의 발사 훈련에도 불구하고 식량 지원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고 이는 매우 적절한 판단이다.

 

우선 북한의 발사체 '위협'은 한미동맹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에 따라 충분히 억제 가능하고 또한 외교적으로도 관리 가능하다. 반면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위험'은 지금 당장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대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북한 인구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약 1천만 명이 식량 부족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조금이라도 연민의 정을 갖고 있다면, 북한의 발사체 발사를 대북 지원의 반대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동의해야 한다"

혹자들은 북한의 식량난 소식을 접하곤, 대북 제재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기대감도 숨기지 않는다. 실제로 작년부터 북한의 식량 생산량이 크게 떨어진 데에는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제재로 인한 원유 및 비료 수입의 급감도 큰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식량을 비롯한 생필품의 부족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통의 크기가 커질수록 비핵화도 앞당길 수 있다고 믿고 있는 탓인지, 보수 언론은 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위험에 너무나도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굶주린 배는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제재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더욱 강하게 다지고 있다.

 

이처럼 제재의 역효과가 커지고 있다면, 적어도 인도적 지원은 제재와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민생에 영향을 미치는 제재는 풀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이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북한을 상대로 "최대의 압박"을 가하고 있는, 그리고 인권 의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트럼프조차도 대북 식량 지원에 대해서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는 411일 한미정상회담에서 기자들을 향해 "당신들도 대북 지원에 동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 땅의 보수 언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2019.5.9.

 

 

극우는 망령이 아니다

 

스페인 극우정당 '복스'의 산티아고 아바스칼 대표가 28일 치러진 총선 직후 지지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복스는 이번 총선에서 득표율 10.3%의 성적을 거둬 24석을 확보했다. 스페인에서 극우정당이 의회에 진입하는 것은 1975년 프랑코 군사독재 정권 종식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다. 마드리드=AP 연합뉴스

 

○○○는 보수(保守), 우파(右派)도 아니야. 그냥 수구(守舊), 극우(極右)일 뿐이지.”

살다 보면 가끔 이런 말을 접한다. 전자와 후자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고자 굳이 국어사전을 뒤적이는 수고를 감수할 필요까진 없겠다. ‘보수, 우파의 앞에는 건전한, 합리적이란 수식어가, ‘수구, 극우의 뒤에는 꼴통이라는 말이 각각 생략돼 있다고 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 말에는 ○○○말이 통하는상대방으로 인정하고 존중한다기보단, ‘대화할 필요조차 없는또는 절대로 용인해선 안될존재로 여기는 경멸의 뉘앙스가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스스로를 극우라고 일컫는 개인이나 단체를 본 적은 지금껏 없는 것 같다. 타인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든 말든,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보수주의자정도로만 표현한다. ‘극우라는 시니피앙(significant기호 이론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소리를 가리키는 개념)이 내뿜는 위험하고 음습한 아우라 탓일 것이다. 단어 자체만 놓고 보면, 그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게 바로 극우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지난달 28(현지시간) 치러진 스페인 총선 결과를 전한 주요 외신들의 헤드라인은 대략 이랬다. “사회당이 선거에서 이겼고, 극우(far-right)는 플레이어로 등장했다”(AP통신), “극우의 약진... 스페인 사회당, 총선 승리”(BBC방송), “스페인 총선, 좌파를 띄우고 극우 경고음을 울리다”(뉴욕타임스). 중도좌파 소수 정부를 이끄는 페드로 산체스 총리의 사회노동당(POSE)이 제1(전체 350석 중 123)으로 올라섰다는 점과 함께, 2013년 창당한 극우 정당 복스(Vox)24석을 얻어 원내 진출에 성공한 사실을 핵심 키워드로 꼽은 것이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중도좌파 정당이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 스페인 사회당의 이번 승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럼에도 극우의 돌풍이 같은 비중으로 다뤄진 데엔 이유가 있다. 일단 스페인에서 극우 정당이 의회에 발을 들이는 건 1975년 프랑코 군사독재 종식 이후, 44년 만에 처음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좀 더 범위를 넓히자면 보다 근본적인 배경이 존재한다. 서구 사회에 퍼져 있는 극우에 대한 뿌리 깊은 경계심이다. 이는 주로 국가주의국수주의 형태를 취하는 극우 이데올로기가 정치 체제로 현실화했던, 그 결과 인류사에 크나큰 불행을 안긴 부끄러운 과거에 기인한다. 다름아닌 독일 나치 정권,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얘기다.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준 극우의 속성은 이런 것들이다. 그들은 개인보다 집단, 곧 국가를 앞세우고(전체주의), ‘우리의 결속을 위해 특별한 근거 없이 을 만들어 내며(배제억압의 정치), 이를 통해 절대권력을 추구한다(힘의 숭배).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증오와 혐오의 정서가 깔려 있다. 그러니까 2015년쯤부터 반()난민 기류 등에 힘입어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극우의 물결에 이제는 무뎌졌을 법한데도 서방의 주류 정치권과 언론이 계속해서 우려를 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역사적 반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쨌든 유럽 극우 정당의 급부상은 결국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기성 우파 정당들에게서 등을 돌린 탓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정치 환멸만큼은 어느 나라 못지 않은 한국에선 왜 극우 정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걸까.

 

궁금증은 패스트트랙 정국에 대처한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보면 이내 풀린다. 그들의 현실 인식, 투쟁 구호 등을 봤을 때 이른바 태극기 부대와의 차이점을 알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극우의 목소리를 한국당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중도 우파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극우와는 절대로 손을 잡지 않겠다독일을 위한 대안(AfD)’과의 연정은 한사코 거부했던 그 모습을 한국의 자칭 정통 보수정당엔 기대해선 안될 듯하다. 한국 정치판에서도 극우는 망령(亡靈)이 아니다./김정우 국제부 차장 wookim@hankookilbo.com 2019.5.7.

 

바보야, 문제는 독점이야

미국 자본주의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불평등은 심화되었고 기업부문의 역동성은 둔화되었으며 투자와 생산성 상승은 정체되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제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본주의보다 사회주의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요즘에는 월가의 최고경영자들도 망가진 자본주의를 고치기 위해 부자 증세와 같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시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보수에게 발등의 불이 떨어진 셈이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11월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자본주의의 다음 혁명은 경쟁이라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독점으로 인한 여러 경제 문제들을 자세히 살펴본 기사였다. 미국과 유럽에서 산업집중도가 높아졌고 신생 기업 비중은 줄어들었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 기업들의 잉여현금흐름이 50년 평균치에 비해 76%나 높아서 독점의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진입장벽들을 해체하고 현대적이고 강력한 반독점법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년 전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으로 대표되듯 진보가 불평등을 소리 높여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합리적인 보수파와 주류 경제학자들은 독점을 비판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여러 문제가 독점 때문이라 주장하여 주목받은 조너선 테퍼의 <자본주의의 신화>라는 책은 이런 관점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미국 라이스대의 구스타보 그루욘 교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약 75%의 미국 산업들에서 시장 집중이 심화됐다. 이들의 연구는 집중이 심화된 산업에서 이윤과 주가가 높아졌지만 기업의 효율성은 높아지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다른 실증연구에 따르면 시장 집중의 심화가 기업의 투자와 생산성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독점은 불평등도 악화시킨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오터 교수 등의 연구는 플랫폼을 장악한 기술기업 등 독점도가 높은 산업에서 기업의 이윤이 높고 노동자가 임금으로 가져가는 몫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보고한다. 독점은 기업 간의 문제만이 아니다. 현실에서 지역적으로 지배적인 기업이 노동시장도 장악하여 수요독점을 낳을 수 있다. 게다가 기업들 사이의 담합이나 노동자들이 경쟁업체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경쟁금지 조항 등도 기업의 힘을 강화시킨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독점기업들이 정치적 권력을 강화하여 정부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은 잠재적 경쟁기업들을 인수했고 반경쟁적인 행위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엄청난 로비와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에 기초하여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와 달리 규제는 별로 받지 않았다. 레이건 이후에는 정부의 반독점 정책도 크게 약화되었고, 부와 권력의 집중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쯤 되면 독점을 만악의 근원이라 할 만하다. 테퍼에 따르면 경쟁이 없는 자본주의는 자본주의가 아니다. 20세기 초 그랬던 것처럼 정부가 독점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자본주의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 자본주의의 모든 문제가 독점 때문은 아니며 경쟁의 촉진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자본주의에 깊이 내재한 갈등과 모순 그리고 불안정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자 간의 균형과 경제를 관리하는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외면하는 것은 이들의 한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점에 대한 비판은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재벌의 갑질과 불공정 행위가 독점력 없이 어찌 가능할 것인가. 중소기업들의 협상력과 취약한 노동자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기득권을 타파하는 것은 진보도 예외는 아니며 대기업 노조나 공공부문도 마찬가지다. 과도한 연공급 임금체계를 개혁하자는 목소리가 전부터 높지만 정부는 공공부문에도 이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경쟁의 촉진을 위해 독점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되, 경쟁을 가로막고 기득권을 옹호하는 규제는 완화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경쟁혁명이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회복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과연 그럴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한국의 보수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기득권을 비판하고 공정한 시장경쟁을 지지하는 것은 보수의 품격 아닌가. 우리의 보수는 혹시 공정한 경쟁을 촉진하려는 노력을 반기업이라 주장하지는 않는지, 그리고 친시장 혹은 친경쟁이 아니라 단지 친재벌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경제학부 교수 한겨레 2019. 5.6

 

조선일보의 끔찍한 '황교안 사랑'

()대한민국 세력이 백주에 야당 대표에 물벼락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이 지난 3일 광주광역시에서 시민들에게 '물벼락'을 맞는 등 봉변을 당했다. 황교안을 비롯한 당 지도부는 그날 오전 1030분 광주 송정역 광장에서 '문재인 STOP 광주시민이 심판합니다'라는 제목으로 규탄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일행은 여야 4당의 선거제·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지정에 반대하기 위한 첫 목적지로 광주를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행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광주진보연대, 광주대학생진보연합 등 10여개 시민단체와 일반인 등 100여명이 반대집회에 나섰다. 시민단체 회원들은 확성기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내보내며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황교안은 광주를 떠나라", "세월호 7시간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황교안을 처벌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가까스로 연설을 시작한 황교안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광주 전남의 애국시민 여러분들께서 피 흘려 헌신하셨는데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우리 당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잘못된 입법부 장악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장외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황교안이 발언을 끝내고 역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시민들이 그에게 물을 뿌렸다. 그는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역 안 고객접견실로 피신했다. 그것이 사건의 전부였다.

 

그 날자 언론매체의 보도와 논설은 수구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체로 공정성을 띠고 있었다. "광주 간 황교안에 시민들 물세례 '5·18 망언 석고대죄하라'"(경향신문 기사), "물세례 받은 황교안 '광주시민은 제발 살려달라' 외쳤다"(중앙일보 기사), '황교안 물세례, 김진태 쓰레기봉투···한국당에 뿔난 광주 민심 왜?"(동아일보 기사), "광주의 분노''지역감정'으로 호도한 황교안 대표"(한겨레 사설) .

 

그러나 유독 조선일보만은 달랐다. 06(정치)"한국당 '호남선 투쟁' 첫발 광주에서 물벼락"이라는 기사를 대서특필한 뒤 31면에 '()대한민국세력이 백주에 야당 대표에 물벼락'이라는 제목으로 사설을 실은 것이다. 사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3일 광주에서 옛 통합진보당 후신단체 관계자들로부터 물세례를 맞는 봉변을 당했다. 현장에는 민주화운동 유족들도 있었지만 옛 통진당 관련 단체가 황 대표를 비난하고 분위기를 이끌었다고 한다. 이들은 '이석기 내란음모는 조작', '통진당 해산 황교안은 감옥으로' 등의 피켓을 들고 와 황 대표의 연설을 방해하고 물을 뿌렸다. 황 대표는 통진당 해산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다."

 

황교안에게 물을 뿌린 시민단체 회원과 일반 시민은 100여명인데 조선일보 사설은 '반대한민국 세력(통진당 후신 단체들)'이 그 일을 '주도'한 것처럼 왜곡했다. 사설의 결론은 '활자 폭력'이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던 세력이 이제는 백주에 야당 대표에게 봉변을 가할 정도로 활개를 치고 있다. 조만간 이들이 민노총처럼 폭력 면허를 받은 듯이 폭력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민노총(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언제 '폭력 면허를 받은 듯이 폭력을 휘두른' 적이 있었던가? 조선일보 사설은 마땅히 그 증거를 제시했어야 한다.

 

황교안은 근자에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 가운데 한 명으로 떠올랐다. 조선일보가 촛불혁명에 힘입어 태어난 문재인 정부를 극렬하게 비판하는 기사와 논설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조선일보의 '끔찍한 황교안 사랑'은 다음 대통령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려는 기도라고 해석될 소지가 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 /프레시안 2019.5.6.

 

가족을 다시 상상하기

명희의 아버지는 성실한 가장이자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직장인이다. 전업주부인 어머니는 평생 알뜰히 살림을 하고 아파트 평수를 늘려갔으며 아이들 교육에 헌신했다. 명희는 덕분에 소위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겉보기에 구김살 하나 없이 학교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 자살을 시도하고 우울증 진단을 받기까지 명희는 문제없는젊은이였다. 알고 보니 명희의 아버지는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가족을 통치했고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으며, 간혹 여자 문제로 어머니의 속을 썩이기도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교회 봉사 이외 모든 시간을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과 학업을 강력히 통제·관리하는 데 몰두했다. 어린 시절 사촌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명희에게 딸의 행동거지를 꾸지람하며 입막음을 강요한 사람도 어머니였다. 명희는 부모를 기쁘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고, 갈등적 상황에는 최대한 침묵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학습했다. 한 번도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심지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부모의 위선을 지켜보며 공부하는 기계로 키워졌다.

 

질문되거나 해석되지 않은 채 봉합된 경험은 성인이 되자 비로소 균열을 일으키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학교에서 인권 수업을 수강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동아리 활동을 통해 어렴풋이 문제를 깨닫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명희는 스스로 가족의 희생자라 여기며 부모에 대한 복수의 방안으로 자살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명희의 부모도 다른 결의 가족 문제를 겪고 있었다.

 

가난한 시골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버지는 명석한 두뇌와 남다른 성실함으로 서울의 명문대학에 합격했고 밤낮없이 일한 덕분에 대기업의 이사로 승승장구하며 온 가족의 자랑이자 대들보가 되었다. 돈 버는 기계로 살아가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폭음과 폭력적 행동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5남매의 둘째이자 장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별로 똑똑하지 못한 남자 형제들의 학비를 대느라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고, 성실하고 능력 있는 남자가 최고라는 생각에 아버지와 결혼했다. 낮은 자존감은 물질적인 보상 심리로 더욱더 강화되고 못다 한 공부에의 한은 자식들에게 투사되었다. 개인적 원망과 울분은 교회를 통해 해소해 왔다. 두 사람은 모두 가족을 위해 진심으로 헌신했고 가족의 성공을 위해 개인의 삶을 포기했다고 여긴다.

 

사실 명희네 가족은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가족과 가족 간 거래이자 이성애 남녀의 법적 계약이며, 성별 고정관념이 가족통치의 핵심 가치로 작동하고, 물질적 기준으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편견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일면 희생자가 되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이상적가족과 사회의 모습을 구현시키는 도구로 충실할 때 칭찬을 받았고 남다른 질문을 하거나 튀는 행동을 하면 꾸지람을 들으며 성장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어서 좋을 말,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는 행동을 체득하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연습을 하지 못했다. 행복한 삶이라 여겨지는 행동과 물건을 갖추는 일이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배웠다. 남 보기에 그럴싸한 모습 이면에 긴장과 갈등, 모순과 위선이 가득한 상황을 지켜보면서 거짓 자아와 진정한 자아 사이의 균열을 체득했다. 자신의 참모습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회에서 고립감을 경험하지만 정작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알지 못하고, 억눌린 감정은 때때로 폭력적인 행동으로 폭발하기도 했다.

 

5월은 가정의달이다. 껍질만 남은 허망한 구호가 아니라 이상적 가족의 신화를 성찰하고 허물어뜨리는 일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각자 어떤 가족에서 자랐으며 어떤 가족을 상상하고 가꾸어 왔는가. ‘이상적 남편’ ‘이상적 아내’ ‘이상적 자녀라는 명분에 매달려 정작 개인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지는 않았는가. 남의 눈을 의식해 겉모습을 꾸미고 위장하며 가면이 벗겨질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나의 자아는 파괴되고 있지 않았는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자녀였지만 누군가의 아내나 남편, 부모가 되는 일은 선택일 수 있음부터 인정하자. 독립된 개인과 개인의 관계 안에 사랑을 위치 짓고, 함께 살아가고 성장하는 친밀성의 잠정적 결사체로 가족을 다시 상상하자. 비로소 영롱히 빛나는 자아들이 연결된 평등한 가족들의 세상이 시작될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경향 2019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