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다시 불러들인 ‘플라스틱 만능 세상’
겨울 평균 10℃’ 임박…열대 풍토병 뎅기열 한반도 덮치나
야생동물을 평생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늬만 '그린뉴딜' 구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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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다시 불러들인 ‘플라스틱 만능 세상’
감염 우려에 투명 가림막과 1회용 플라스틱 제품 수요 폭증
플라스틱 산업계는 ‘반환경 딱지’ 뗄 기회로 여기고 홍보전
‘편리하고 위생적’…이면엔 지구 온실가스 배출 가중 우려
코로나19 유행으로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 사용이 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울의 고교 급식실에서 학생들이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을 앞에 두고 점심을 먹는 모습,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기업에서 투명 아크릴 가림막을 설치하는 모습, 일본 도쿄의 한 주점에 설치된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다량 진열된 태국의 한 상점. 연합·AFP·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일 수차례 연기 끝에 개학을 맞은 고등학교 3학년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해 부쩍 달라진 학교 풍경을 체험했다. 현관을 통과하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대신 긴장된 자세로 열화상 카메라 앞에 섰고, 교내에 머무는 동안에는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마스크를 늘 착용해야 했다. 책상 배치도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다른 학생과 간격을 두고 앉는 시험 대형으로 바뀌었다. ‘짝’이 사라진 것이다. 이 가운데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시대’를 가장 확실히 느끼게 한 건 상당수 학교의 급식실에 설치된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다. 점심시간은 마스크를 장시간 벗는 유일한 때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섞여 있을지 모를 비말(침방울)이 입을 떠나 멀리 튀는 일을 방지하는 대책이다.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은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비말을 효과적으로 막으면서도 주변 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앞에 있는 상대와 대화도 가능하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 됐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위해 만든 전화부스 형태의 ‘워크 스루’나 전국 많은 구청과 행정복지센터의 민원인 응대 창구에도 이런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이 설치됐다.
플라스틱 가림막의 인기는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24일(현지시간) 기준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25만여명의 코로나19 감염자가 확인된 영국에서도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은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품이다. BBC에 따르면 영국에선 상점과 기업에서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을 구하려는 주문이 폭증하고 있는데 공급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영국의 대표적 플라스틱 제조사인 ‘플라스틱 맨’은 “전 세계적으로 투명 플라스틱이 부족하다”며 “오는 6월 중순까지는 재고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라고 밝혔다. 투명 플라스틱 가림막은 대개 아크릴이나 폴리카보네이트를 재료로 사용한다. 유리보다 가볍고 가격이 싸며 무엇보다 빛이 잘 통한다. 자동차 전조등이나 보안경 등에 널리 이용돼왔다.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전에는 생각지 못한 시장이 열린 셈이다.
사실 코로나19는 투명 가림막보다 훨씬 넓고 깊은 플라스틱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최근 미국 내 많은 지역에선 1회용 플라스틱에 대한 사용제한 조치가 보류되거나 철회됐다. 위생상의 문제 때문이다. 특히 뉴햄프셔주에선 지난 3월부터 재활용 장바구니 사용이 아예 금지됐다. 한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재질의 비닐봉지를 쓰도록 하는 정책이 시행된 것이다.
일반인들이 매일 쓰는 합성수지로 만든 마스크는 물론 의료진이 주로 사용하는 장갑, 주사기, 안면 보호용 고글 역시 모두 플라스틱이다. 게다가 거리 두기로 인해 집 안에 머무는 인구가 세계적으로 크게 늘면서 식료품 포장재를 중심으로 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늘었다.
커피숍에선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시는 고객에게도 머그잔 대신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제공하는 일이 늘고 있다. 현재 인간이 만드는 플라스틱의 40%는 포장재로 소비되고 있는데 이런 추세에 가속도가 붙은 것이다.
지난해 4월 미국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난 40년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4배 늘었다. 2050년에는 지구 온실가스의 무려 15%가 플라스틱 생산 과정에서 나올 것이라는 분석도 내놨다. 15%는 현재 기준으로 세계 교통수단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비중과 같다.
플라스틱 산업계는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대규모 플라스틱 수요를 반환경적인 물건을 만든다는 멍에를 벗어던질 호기로 보고 있다. CNN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플라스틱산업협회(PIA)는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세에 한창 불이 붙기 시작한 지난 3월 미국 보건부에 “일회용 플라스틱이 건강과 안전에서 혜택을 준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알리라”고 요청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 따르면 유럽 플라스틱 업계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플라스틱의 위생적인 특징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주장이 터져 나왔다. 그린피스 미국 지부의 존 호세버 활동가는 CNN을 통해 “일부 플라스틱 업계가 코로나19로 인해 나타난 사람들의 두려움을 이용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플라스틱의 부활’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까. 일회용 제품이 아니어도 소비자에게 ‘깨끗하다’는 신뢰를 줄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코로나19 국면에서 위생에 관한 소비자의 요구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예를 들어 커피숍에서 머그잔이 손님 앞으로 나가기까지 세척은 어떻게 하고 자외선 소독기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식의 매뉴얼이 마련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품에만 기댈 게 아니라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위생 수준을 높이고 소비자의 신뢰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겨울 평균 10℃’ 임박…열대 풍토병 뎅기열 한반도 덮치나
기후변화와 감염병 ‘자연의 반격’
환경변화 따른 감염병 국경없는 확산 2040년 겨울 제주 평균기온 10도 예상
지금까지는 해외서 모기 물려 감염
성충 월동할 수 있는 기후되면 국내 풍토병으로 바뀔 우려
온난화 탓 감염병 폭발 경고에도 한국 정부 백신 개발 논의에 초점
기후변화 대책 세워야 근본 해결
지난 8일 조세훈 고신대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이 부산시 강서구의 한 돼지농가에 설치된 모기트랩에서 모기를 채집하고 있다.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돼 부산으로 들어온 철새를 모기가 물고, 그 모기가 다시 사람을 문다면 사람도 감염될 수 있죠.”
지난 8일 오후 낙동강 하구인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생태공원. 조세훈 고신대학교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은 철새보호구역에 모기 트랩을 설치한 이유를 설명했다. 작은 모기 한 마리가 동물과 사람 사이를,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 사이를 감염병으로 연결할 수 있다.
철새보호구역 출입금지 표지판을 두 번 지나 닿은 풀숲에는 둥글고 하얀 플라스틱 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조 연구원이 연결된 전기 스위치를 끄자 통 내부의 회전날개가 멈췄다. 날개가 일으키는 바람에 주변 모기가 빨려 들어가도록 설계된 트랩(함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흡혈 대상을 찾는 암컷 모기를 유인하기 위해 전날 통 위에 드라이아이스를 설치해놨다. 모기가 잡힌, 통 안에 든 망을 꺼내든 조 연구원은 “흰줄숲모기는 다른 모기와 비교해 낮에 주로 활동하고 낮은 높이로 비행하기 때문에 트랩을 바닥에 설치한다. 주로 숲에서 많이 보이지만 도시나 농촌 어디서든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8일 고신대학교 보건환경학부 이동규 교수가 학교 실험실에서 채집한 모기의 몸 속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실험 방식을 설명하고 있다.
조 연구원이 속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이동규 석좌교수 연구팀은 올해 3월부터 부산 일대에서 흰줄숲모기 등 다양한 모기를 채집해 바이러스 검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질본)가 전국을 16개 권역으로 나눠 매년 3~11월 동안 실시 중인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 사업’의 부산·경남(거제·밀양·울산) 권역 조사 작업이다. 연구팀은 질본에서 정한 장소(돼지농가, 상가, 철새도래지, 숲 등)에 각각의 트랩을 설치한 뒤 2주에 한 번씩 모기를 채집한다. 채집한 모기를 급속 냉동한 뒤 파쇄기로 갈아 원심분리기를 돌려 알엔에이(RNA·리보헥산)를 추출하고, 코로나19 바이러스 검사와 같은 방식의 유전자 증폭(PCR) 검사로 바이러스 유무를 확인 후 결과를 질본에 보고한다. 생태계는 인간이 미처 깨닫지 못한 미세한 기후변화를 제일 먼저 알아채는데, 이곳이 그런 생태계의 변화를 감시하는 ‘기후변화와의 최전선’인 셈이다.
8일 고신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동규 교수는 “바이러스를 가진 흰줄숲모기 성충은 알이나 유충과 달리 겨울을 나지 못하고 죽지만, 기후가 바뀌어 성충이 월동할 수 있게 되면 이들이 옮기는 감염병이 토착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흰줄숲모기는 뎅기열·황열·지카바이러스·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을 옮기는 모기로 주로 아열대 지역에 서식한다. 질본 통계를 보면 지난해 제주 지역에서 채집된 흰줄숲모기 성충은 1015마리(전체 모기 중 21.4%), 부산·경남 지역은 952마리(6.4%)였다. 2014년 제주, 2017년 경남에서 채집된 모기도 약 30%가 흰줄숲모기였다.
기후변화로 우리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하는 감염병은 모기나 진드기 등 매개체를 통한 감염병이다. 모기나 진드기는 몸속 체온 조절 기능이 없기 때문에 기온이 오르면 몸속 화학반응이 빨라져 성장 속도도 빨라진다. 이 경우 각 개체의 생존 기간은 짧아지지만, 전체 개체 수가 늘기 때문에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도 커진다. 기후변화로 홍수, 태풍 등이 발생하면 설치류의 배설물에 포함된 바이러스가 오염된 물을 통해 장거리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 바다의 온도와 염분의 변화로 비브리오균 등 독소가 증가할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년 말 펴낸 ‘기후변화에 따라 수요증가가 예상되는 의약품 및 대응체계 조사 연구’ 보고서를 보면 매개체 감염병은 2010년 시·군·구 평균 17명에서 2030년 131명, 2050년에는 293명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예측됐다. 수인성 및 식품매개 감염병은 2010년 시·군·구 평균 1604명에서 2030년 1838명, 2050년 4070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인구밀집도가 높은 도시지역에서 매개체 감염병의 증가율이 높았다.
기후변화가 지속되면 온대기후인 한국도 남부 지방부터 열대 감염병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흰줄숲모기 등이 옮기는 뎅기열은 이 바이러스를 가진 모기에 물릴 때 감염되는 대표적인 열대병으로, 동남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등 아열대·열대 기후 지역에서 주로 발생한다. 근육통·관절통 등 통증과 함께 고열과 발진이 일어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은 겨울철 평균 기온이 10℃ 이상인 지역의 뎅기열 감염을 우려하는데, 올해 부산의 1월 평균 기온이 6.4℃, 제주 8.9℃였지만, 기상청 기후정보포털 미래 기후전망 분석 결과 2040년 제주 남부 해안의 겨울철 평균 기온은 10℃에 닿는다. 국내 뎅기열 환자들(지난해 274명)은 아직까지 모두 외국에서 모기에 물려 감염됐지만, 조만간 국내 발병 사례가 나올지 모른다. 지난해 7월 인천 영종도 을왕산에선 뎅기열 바이러스가 확인된 반점날개집모기 2마리가 발견됐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인구보건학부의 이정석 박사(현 국제백신연구소 소속)는 지난해 한국의 부산광역시 동래·연제·부산진·수영·해운대구와 울산광역시 서부, 전라북도 군산, 전라남도 무안 남부, 제주도 북부와 남부를 뎅기열 위험 지역으로 꼽았다. 과학·의학 저널과 데이터베이스를 제공하는 바이오메드센트럴(BMC Public Health)에 발표한 ‘뎅기열 비위험국에 대한 기후변화의 위협―기후학적, 비기후학적 데이터를 이용한 뎅기열 고위험지역 분석’ 논문에서다. 한반도보다 기온이 높고 습한 일본 도쿄에서 2014년 여름 161명이 뎅기열에 걸린 이유로 이 박사는 “따뜻하고 습한 겨울과 비가 적게 내린 봄철 날씨가 모기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분석하면서, 유사한 기후인 한국도 주의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박사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정확히 언제 확산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한국 역시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뎅기열 같은 모기 매개체 감염병은 꾸준히 일어났던 이상기후 변동이 축적돼 폭발하는 것으로, 매개체 관리에 철저한 싱가포르 같은 국가에서도 통제가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엘니뇨(적도 부근 중앙·동태평양 해수 온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와 라니냐(중앙·동태평양의 해수 온도가 낮은 상태로 유지되는 것)가 지카바이러스와 웨스트나일열 등 모기 매개 감염병에 미치는 영향도 확인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5~2016년 슈퍼 엘니뇨 발생이 예보되자 남아메리카를 중심으로 지카바이러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을 우려한 바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말라리아 환자가 밀집한 서울·경기·인천·강원 지역에서 기온이 1℃ 오르면 말라리아 발생 위험이 10~20% 증가한다고 2014년 예측했다. 또 같은 기관은 2009년 기온이 1℃ 오르면 쯔쯔가무시병(5.9%), 렙토스피로스증(4%), 말라리아(3.4%), 장염 비브리오(3.3%), 세균성 이질(1.8%) 등 진드기·모기 매개 감염병과 수인성 감염병이 증가한다고 예측했다.
지난 8일 조세훈 고신대학교 기후변화 매개체 감시거점센터 연구원이 부산 을숙도 생태공원에 설치된 흰줄숲모기 트랩에서 모기를 채집하고 있다.
말라리아의 경우 살충제 등 강력한 방역작업으로 2000년대 초반보다 감염자 수가 줄어, 최근 수년째 연간 500여명 수준으로 유지 중.
국내외 보건기구가 기후변화로 인한 매개체 감염병의 폭발적 증가를 수차례 경고해왔지만,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 대책보다는 백신 개발 논의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는 한 감염병으로 인한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환경부·기상청이 올해 발표할 ‘2020 기후변화보고서’ 보건 부문 작성에 참여한 이근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매개체 감염병 중 황열과 일본뇌염 외에는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다. 바이러스 유형이 복잡해 백신 개발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모기·진드기 같은 매개체 수를 줄이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 질병이기에 결국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산/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야생동물을 평생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의 한 장면.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곳곳의 안녕하지 못한 동물들이 입을 열었다. A4용지 크기 배터리 케이지에 갇힌 닭, 진흙 목욕은 꿈도 못 꾸고 새끼만 낳는 공장식 농장의 돼지, 팜유 때문에 열대우림 집을 빼앗긴 오랑우탄, 사람들의 호기심 탓에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갇힌 야생동물, ‘강아지 공장’에서 태어나 결국 유기동물 보호소로 간 반려동물까지. 새 책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는 입히고, 먹히고, 착취 당하는 동물들의 아픔이 곧 인간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다. 동물들은 안녕하지 않다. 물론 그 동물에는 인간들도 포함된다. 좁은 빙하 위 아기 북극곰이 두려움에 떨면서 말한다. “엄마. 빙하가 다 녹으면 우린 어떻게 되는 거죠?” 엄마 곰의 현명한 대답은 인간의 처지를 깨닫게 한다. “글쎄. 그 전에 사람들이 해결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도 우리처럼 갈 곳 없는 신세가 될 거니까.”
이렇게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심스레 “동물, 지구, 그리고 나를 이어보라”고 말을 건네는 ‘동물의 통역자’들은 다름 아닌 동물복지 활동가 이형주와 수의사·질병생태학자 황주선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그 어느 때보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의 해야 한다는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다. 비인간동물 뿐 아니라 인간까지 안녕하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예견한 황주선 박사와 서면으로 만나봤다.
2014년 대학원 시절 길고양이 밀도조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황주선 박사. 황주선 제공
-반려동물에서부터 농장, 야생, 실험동물, 동물원과 채식까지 아주 광범위한 내용을 담았지만 어렵지 않고 술술 읽혔다. 주요 독자인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힘들었을텐데?
“아무래도 어린 독자들과 소통한 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에 말투나 표현은 어떻게 써야할지 고민이 됐다. 그러나 책 기획 단계부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독자를 계몽하려 들지 말자’는 거였다. 그보다는 아무도 알려주거나 생각해보지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부분을 어린 독자들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자 생각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전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셨다면?
“2016년 서울어린이대공원의 ‘교육 중심 동물원 발전계획’ 연구를 진행하며 독일 뉘른베르크 동물원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동물원 학교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동물원에서도 가축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가축으로부터 무엇을 제공받는지 알려야 하고, 그 교육을 가장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곳 중 하나가 동물원이라고.
신선하고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하든, 개인이 하든, 기관이 하든 왜 철학이 필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마찬가지로 저도 아이들이 자신이 먹는 것, 입는 것, 사용한 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주고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관련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선택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동물이라서 안녕하지 않습니다’. 생각하는아이지 제공
-‘동물이 색으로 말해요’, ‘동물의 행동’ 등 어린이를 위한 동물책을 많이 번역 집필한 것 같은데, 그런 이유인가?
“우리 세대는 이런 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했지만, 지금 어린 친구들도 그럴 순 없으니까. 아직 무게감 있는 책을 집필할 능력이 안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웃음) 다만, 어렸을 때부터 동물에 대한 생각이 정립될 때까지 시각의 다양성을 열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카라, 어웨어 등 국내 동물단체들이 학교로 찾아가는 동물복지, 동물권 교육활동을 하시는 것을 정말 응원한다.”
-공저자인 어웨어 이형주 대표와의 인연도 궁금하다.
“이 대표님과는 대학원 시절 길고양이 관련 연구를 기획할 때 처음 뵈었다. 일하시는 것을 보면 늘 놀랍고 존경스럽다. 특히 ‘시골개 1미터의 삶’과 국내 실내 체험 동물원, 야생동물 카페 위험성 등을 그동안 절박하지만 사각지대였던 부분을 잘 짚어내시는 것 같다.”
-최근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하 ASF),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더 바쁘셨을 것 같다. 어웨어와 마찬가지로 오래전부터 동물카페 등을 통한 인수공통 전염병의 위험에 대해 말씀해오신 걸로 아는데?
“ASF 발생 뒤에는 야생멧돼지 관련 업무를 약간 거들고 있다. 야생동물질병 전문가도, 야생동물생태 전문가도 극도로 부족한 국내 상황에서, 해야할 일은 너무나 많을 것 같다. 어웨어와는 주로 도심에서 사람과 야생동물간의 부자연스러운 접촉기회를 제공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시설(체험동물원, 이동식 동물원, 야생동물카페 등)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야생동물을 가까이서 보고 가두고 만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뿐이다. 인간에게 그럴 힘이 있다는 것. 그래도 괜찮아서가 아니다. 우리가 야생동물에게 거리를 둔다면, 메르스·코로나19 등 야생동물유래 질병의 위협의 발생 속도는 상당히 많이 늦출 수 있다.”
-동물과 인간과의 거리를 재정립해야 할 시기라고들 한다. 얼마나 멀어야 하나?
“아마 대부분의 동물들은 인간과 상당히 먼 거리를 유지하길 바랄 것 같다. 간혹 갈대밭이나 산에서 인기척을 느낀 고라니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지 경험해본 분들은 아실 거다. 기본적으로 야생동물과 인간의 건강한 거리는, 해당 야생동물에게 이동과 움직임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 그 동물이 허용하는 만큼의 거리라고 생각한다.”
-만일 동물과의 거리두기를 무시한다면?
“신종질병은 머지 않아 또 나타날 것이다. 야생동물은 그들의 서식지에서, 인간은 이미 개발된 인간 서식지에서 충분한 거리를 유지할 때만 서로 ‘안녕’할 수 있다. 때문에 저는 야생동물학자로 살고 있지만, 야생동물을 직접 보고 가까이서 접하는 것보다는 일평생 제 눈으로 볼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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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그린뉴딜'에 '정의로운 전환'이 포함되어야 한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그린뉴딜'
기후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 문제가 제기된 것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인류의 온실가스 배출은 줄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생태계가 파멸적 상황에 빠질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졌고, 국제사회는 2015년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1.5도 목표'를 설정한 '파리 협정'이 체결된 것이다. '1.5도 목표'는 인류와 지구 생태계를 위한 마지막 방어선 같은 의미이다. 이 목표를 지키더라도 산호초의 70~90%가 감소하고, 100년에 한 번꼴로 북극 얼음이 녹아 없어질 것으로 과학자들은 예측했다. '1.5도 목표'도 안전한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지구 평균온도가 2도 상승 때보다 전 세계 피해자를 1천만 명 정도 줄일 수 있다. 만약 2도 상승이 이뤄진다면, 북극의 모든 얼음은 10년마다 한 번씩 모두 녹을 것이다. 작은 차이에도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1.5도 목표'는 최악을 막기 위한 인류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1.5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감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2050년까지는 탄소 순 배출량이 '0'이 되어야 한다. 향후 10년간 온실가스 45%를 감축하려면, 매년 6% 정도의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 이는 매우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지난 4월,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 감소량이 6% 정도 될 것으로 추정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공장이 멈추자 생긴 변화였다. 우리가 모두 겪은 것처럼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는 인류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겪지 못한 엄청난 것이었다. 이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와 경기 침체 등 혼란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정도의 변화를 매년 10년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인류에게 닥친 장래가 어둡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기후위기라는 더 큰 재난이 닥쳐온다는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다행히 희망은 있다. 현재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다. 에너지 소비와 산업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재생에너지와 에너지 효율 향상, 산업공정 개선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은 경제적이지 않다거나 기존 화석연료 사용에 비해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외면받아왔다. 대표적인 것이 주택 난방 문제이다. 신축 주택보다 오래된 주택의 난방비가 더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요즘은 '패시브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에너지 소비가 거의 없는 주택도 많이 건설되고 있다. 기존 주택도 창틀과 단열 공사만 진행해도 적은 연료비로 더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 기술이 없어 춥게 사는 것이 아니다. 집수리 비용이 없거나 집주인이 수선을 해주지 않는 등 이유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춥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증가시켜왔다.
전기차, LED 조명 보급이나 오래된 가전기기, 산업용 전동기 교체 등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진행됐으나, 그 속도는 너무나 더디다. 농작물 생산에서 포장재에 이르기까지 더 적은 에너지와 자원을 사용하는 방안은 끊임없이 제안되고 있으나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
대규모 공적 투자를 통해 기후위기 문제를 해결하자는 '그린뉴딜'의 기본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했다. 장기간의 경기 침체와 실업률 증가, 사회적 불평등 증가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대규모 공적 투자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대규모 공적 투자는 단순히 기기 교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과 산업 전환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시스템 변화를 통해 인류의 생활 방식과 사회제도까지 바꾸는 노력이 이어진다면, 기후위기로 인한 암울한 인류의 미래는 개선될 수 있다. '그린뉴딜'은 그중 가장 강력한 해결책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경기 활성화 목적까지 덧붙여지면서 바야흐로 '그린뉴딜'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
동상이몽 속에 진짜 '그린 뉴딜' 찾기
우리나라에서 '그린뉴딜'이란 말이 확산된 것은 작년이다. 21대 총선에서 정의당과 녹색당에서 먼저 제안된 그린뉴딜 정책은 더불어민주당 공약에도 포함되었다. 이후 코로나19 대책으로 나온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검토하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업무지시 이후 정부 부처들은 너도, 나도 '그린 뉴딜' 사업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 등이 공개되지 않아 상세 내용을 알기 힘들지만, 환경부와 국토부, 산업부 등이 중심이 되어 재생에너지 보급과 건물 리모델링, 전기차 보급 사업 등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기후 악당'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우리나라가 '그린뉴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OECD 꼴찌 수준인 재생에너지 보급률과 에너지 효율, 엄청난 미세먼지에도 계속 가동 중인 석탄화력발전소 등을 극복할 방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그린뉴딜'이라 불리는 사업들은 과거에도 모두 진행되던 사업이다. 따라서 사업명만 갖고 '그린 뉴딜' 정책을 평가해서는 원래 목적했던 바를 이룰 수 없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히 '그린뉴딜' 정책이란 말에 환호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그린뉴딜 정책을 구분해내고 제대로 된 그린뉴딜 정책을 끌어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 먼저 그린 뉴딜 정책을 제안한 애초 취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그린 뉴딜의 다양한 사업은 모두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방안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을 위해 혹은 경기 부양이나 다른 목적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여하는 것은 그린 뉴딜이 아니다. 목표가 제시되지 않은 사업은 표류하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국제사회가 권고하고 있는 '탄소 순배출 제로'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그린 뉴딜은 단순한 경기 부양 사업 정도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이 그린 뉴딜 사업을 주도한다는 기본 원칙이 명확해야 한다. '뉴딜'은 기본적으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사업을 의미한다. 공적 자금 투입을 통해 민간부문 활성화를 꾀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공적 자금 투입 이후의 이야기이다. 최근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그린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의 규제를 완화하거나 전력시장 일부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재생에너지 보급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간 재생에너지 활성화에 있어 공기업과 지자체 등 공공부문의 역할은 축소되어왔다. 이를 정립하는 과정이 그린뉴딜 정책 추진과정에서 함께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할 재정과 기금 계획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린뉴딜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겠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기존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사라진다면, 그곳의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최근 두산중공업 사태에서 보듯 석탄화력발전 설비를 만드는 기업과 그 하청기업, 지역사회가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사회적 안전망이 약한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매우 세밀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유럽 집행위원회의 그린 딜 계획에서도 '정의로운 전환 메커니즘'을 함께 설계하고 전체 예산의 10% 정도를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설정하고 있다. 우리의 그린 뉴딜 계획은 이보다 폭넓은 고민과 계획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현재 언급되고 있는 환경부, 산업부, 국토부, 중소기업부만 갖고 그린뉴딜을 완성할 수 없다. 당장 재원을 마련할 기재부는 물론이고, 농업 분야를 담당할 농림부, 지자체의 계획을 담당하고 지원할 행안부가 포함되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이뤄짐을 고려할 때 그 외 부처들도 아우르는 범부처적인 형태로 그린뉴딜이 설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특별법이 마련되고 범부처 차원의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그린뉴딜 계획은 한두 해의 계획으로 완성될 수 없다. 지난 100여 년 동안 뿌리 깊게 만들어진 화석연료 중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 10년 계획으로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추진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함께 작성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대응은 우리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보다 더 큰 위기, 이번이 마지막 기회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놓고 볼 때,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측면에서 볼 때도 기후위기 문제는 단순히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기존 대기업이나 산업도 살아남을 수 없다. 과거 엄청난 영광을 누리던 석탄산업이 무너졌던 것처럼 이제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이 점차 무너지고 있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신산업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린뉴딜 계획을 단순히 '환경'을 지키는 정책 정도로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언제나 상처를 입는 것은 사회적 약자였다. 거대 자본이 선도하는 변화의 흐름에서 노동자, 중소상공인, 지역사회의 충격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50~60년 전에 활동했던 마부와 타자수, 활자공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기후위기를 막고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는 일에 이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이것이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노력이 될 것이다.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 프레시안
中서 오는 '바다판 미세먼지'..괭생이모자반 비상 걸린 제주
中 남부해역서 발생해 해류타고 와
매해 제주·전남 해역에 1~2만t 유입
해안가 밀려와 선박 항해에도 방해
22일까지 해안·해상에서 735t 수거
못먹고 염분 처리 어려워 퇴비로
지난 22일 오전 제주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 괭생이모자반이 가득 밀려와 관광객들이 이를 피해 걷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2일 오전 11시 제주시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 검고 지저분한 모습의 물체가 50m 넘게 이어져있다. 얇은 부분까지 포함하면 100m가 넘었다. 밀려든 것 중 두터운 부분은 높이가 50㎝이상, 너비도 5m가 넘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해조류인 ‘괭생이모자반’이 서로 뒤엉켜 큰 덩어리를 이룬 것이다. 파리가 들끓고 해조류가 썩을 때 나는 악취도 진동했다.
지난 22일 오전 제주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 괭생이모자반이 가득 밀려와 있다. 최충일 기자
이호해수욕장은 제주공항과 차로 10분 거리인데다 인근 방파제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유명한 ‘말등대’가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아름다운 제주 해안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이들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미간을 찌푸렸다. 해안을 걷던 관광객 임모(41·부산시)씨는 “깨끗하고 이국적인 제주바다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해안에 지저분하게 널린 괭생이모자반 때문에 이리저리 피해 걷고 있다”며 “해충도 있는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근처에 가지 못하게 이야기를 해뒀다”고 말했다.
이런 괭생이모자반이 제주도 연안으로 본격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괭생이모자반의 발생지는 ‘중국’이다. 수온이 상승한 봄철 동중국 해안에서 발생해 대규모 띠 형태로 쿠로시오 난류를 따라 북상한다. 이후 대마난류를 타고 한국 남서부 해역과 제주도로 유입된다.
제주도는 24일 “지난 13일부터 제주해안에 유입되기 시작한 괭생이모자반이 당분간 제주해안에 밀려들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연일 수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밝혔다. 대규모 띠 형태로 최대 5m까지 자라 이동하는 괭생이모자반은 해안가로 밀려와 경관을 해친다. 또 양식장 그물이나 시설물에 달라붙어 어업활동에 지장을 주며, 선박 스크루에 감겨 어업인과 배를 이용하는 관광객의 안전까지 위협한다.
참모자반은 억센 괭생이모자반에 비해 여리고 부드러워 제주도에서 식재료로 널리 사용된다. 사진은 말린 참모자반의 모습. 중앙일보 자료사진
제주의 전통음식 몸국에 들어가는 참모자반을 수저로 떠 들어올린 모습. 참모자반은 억센 괭생이모자반에 비해 여리고 부드러워 제주도에서 식재료로 널리 사용된다. 중앙일보 자료사진
괭생이 모자반은 잎이 가늘고 긴 모자반과의 해조류다. 제주 토속음식인 '몸국'을 만드는 참모자반과는 달리 먹을 수 없다. 먹을 수 있는 모자반 보다 억세기 때문이다. 삶아도 부드러워지지 않는다. 염분 때문에 파묻어 처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제주도에선 이를 수거해 농가에 퇴비로 지원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제주 이호해수욕장 백사장에 괭생이모자반이 가득 밀려와 있다. 최충일 기자
제주도는 올해 들어 지난 22일까지 735t을 수거했다. 이 가운데 446t은 이미 제주시 한림읍·한경면 8개 농가에 퇴비로 제공됐다. 수거는 해안과 해상 두 곳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수거한 735t 중 249t은 해상에 떠돌아다니는 것을 건져냈다. 해양환경공단과 한국어촌어항공단의 선박 3척이 우선 동원됐다. 유류오염작업을 주로 하는 ‘청항선’도 투입됐다.
제주지방해양경찰청 항공단은 항공예찰을 지원하면서 모니터링을 강화했다. 상황에 따라 어장정화 사설업체 선박도 동원할 계획이다. 해안가에서는 486t을 수거했다.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는 청정제주바다지킴이와 읍면동 자생단체 회원 500여명, 굴삭기 등 장비 22대를 투입했다.
괭생이모자반은 매년 제주를 비롯해 전남 해역 등에 약 1~2만t이 유입된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이 괭생이모자반이 중국 남부 해역에서 발생한 괭생이모자반이 흘러온 것으로 분석했다. 2015년 당시 유입된 괭생이모자반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동중국해 연안에서 발생한 것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최근 3년간 제주 연안에서 수거된 괭생이모자반은 2017년 4407t, 2018년 2150t, 2019년 860t에 이른다. 조동근 제주도 해양수산국장은 “운항 중인 선박에 괭생이모자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주운항관리센터와 제주어선안전조업국을 통해 상황을 전파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배고픈 벌이 꽃을 피운다?
뒤영벌이 잎에 5∼10개 상처내자 개화 일러져…‘원예가 꿈’ 이뤄지나
서양뒤영벌 일벌이 꽃이 피지 않은 식물의 잎에 상처를 내고 있다. 손상을 입은 식물은 개화 시기를 앞당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니에르 풀리도, 드모라에스 앤 메셔 연구실 제공.
벌과 꽃을 피우는 식물이 가루받이를 통해 이룩한 공생관계는 든든한 것 같지만, 자칫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한순간에 허물어진다. 이른봄 뒤영벌이 겨울잠에서 깨어났는데 꽃이 피지 않아 먹을 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뒤영벌은 이런 사태를 능동적으로 극복하는 이제껏 알려지지 않는 행동을 한다. 꽃이 피지 않은 식물 잎에 상처를 내 개화 시기를 최고 한 달까지 앞당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꽃가루를 얻지 못한 뒤영벌이 가지 잎에 남긴 손상 모습. 파살리두 외 (2020) ‘사이언스’ 제공.
연구자들은 이런 불일치가 굶주린 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꽃이 피지 않은 양배추, 흑겨자, 토마토, 가지를 심은 곳에 풀어놓았더니 벌들이 잎에 앉아 뾰족한 입으로 구멍을 뚫은 뒤 가위 같은 턱으로 잘라냈다. 몇 초 만에 잎에는 쐐기 모양의 상처가 났지만, 벌이 수액을 핥거나 자른 잎 조각을 둥지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이어 실험실에서 정밀하게 이뤄진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굶주린 뒤영벌이 잎에 5∼10개의 상처를 낸 토마토는 손상을 입지 않은 토마토보다 30일이나 일찍 꽃이 피웠다. 흑겨자도 개화가 16일 당겨졌다.
혹시 좁은 실험실이어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알아보기 위해 연구자들은 야외실험을 했지만, 꽃가루가 부족할수록 벌이 식물에 상처를 많이 내고 주변에 꽃이 늘어나면 상처를 덜 내는 현상이 그대로 나타났다. 3일만 꽃가루를 주지 않아도 꽃이 안 핀 식물에 내는 상처가 늘었고, 연구에 쓰이지 않은 다른 야생 뒤영벌 2종도 상처 내는 일에 가담했다.
식물에 상처를 내는 서양뒤영벌들. 뒤영벌은 공간 감각과 인지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만 이런 행동이 개화를 앞당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개별적인 벌의 능력이 아니라 오랜 진화적 적응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한니에르 풀리도, 드모라에스 앤 메셔 연구실 제공.
식물은 초식동물의 공격이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을 일찍 피우기도 한다. 죽기 전에 번식을 서두르는 전략이다. 뒤영벌이 낸 상처도 이런 자극을 주었을까. 연구자들은 면도칼 등을 이용해 뒤영벌이 낸 것과 비슷한 상처를 식물에 내고 개화가 일러지는지 보았다. 개화 시기가 흑겨자는 8일 토마토는 25일 당겨졌다. 효과는 나타났지만, 벌이 낸 것에는 못 미쳤다.
연구자들은 “벌이 낸 상처가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식물의 개화를 촉진하는지는 이번 연구로 알 수 없었다”며 “인위적인 상처만으로는 벌과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벌이 (화학물질 주입 같은) 추가 단서를 식물에 제공하는 것 같다”고 논문에 적었다.
뒤영벌은 안쪽으로 접근하기 힘든 형태의 꽃 중간에 구멍을 뚫고 꽃꿀을 ’훔치는’ 습성이 있다. 식물에 상처는 내는 행동은 이런 습성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이번 연구는 기후변화로 인해 개화와 가루받이 매개곤충의 활동 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를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겨울잠을 자는 뒤영벌은 활동을 개시하는 데 온도가 중요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꽃은 주로 낮의 길이에 따라 개화 시기를 정해 기후변화 영향을 덜 받는다. 기후변화가 진전하면서 불일치가 심해질 수 있다.
라르스 치트카 영국 런던 퀸메리대 생물학자는 ‘사이언스’에 실린 이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 “뒤영벌은 저비용 고효율의 속임수로 개화기를 앞당기는 데 성공했다”며 “이런 행동은 앞으로 닥칠 기후변화 대응에 유연성과 회복 탄력성을 늘려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뒤영벌이 식물체에 화학물질을 주입하고 또 그 물질이 무언지 밝혀진다면 화훼식물의 개화기를 한 달이나 앞당기는 원예가의 꿈이 이뤄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인용 저널: Science, DOI: 10.1126/science.aay049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디지털 뉴딜 ‘토끼’만 좇지 말고…기후위기 ‘사슴’을 잡아라
포스트 코로나 경제 과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 3년 대국민 특별연설을 했다. 연설에 담긴 전 국민 고용보험 단계적 추진에 주목한다. 고용보험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일자리를 잃거나 위협받는 임시직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에게 최소한의 보호망이 될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배송 업무가 폭주하면서 배송기사들은 노동현장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지난 3월 분초 단위로 뛰어다니던 쿠팡 소속 40대 배송기사의 죽음을 뉴스로 접했다. 이들은 건강이 자산이다. 건강 문제로 노동에서 배제되면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다. 이렇게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삶을 나라가 구제한다는 면에서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은 획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원청직원과 같은 업무를 해도 하청직원이라 임금을 덜 받고, 4대 보험에 가입할 수 없고, 위험한 일은 도맡아야 하는 불공정한 노동환경을 고용보험 확대로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다.
디지털화는 이미 세계적인 흐름
굳이 ‘뉴딜’이라고 할 필요 없어
정부 경기 부양은 파편화된 정책
재생에너지 전환도 진척 안 돼
문 대통령 “그린뉴딜 포함” 지시
‘새 딜’에 걸맞는 경제 뼈대 세워야
195개 국가,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서명
혁신은 이래야 한다. 경제가 고도성장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자리 잡은 불공정, 왜곡,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한국판 뉴딜로 내세운 ‘디지털 뉴딜’은 토끼 잡겠다고 사슴사냥 대오에서 이탈하는 행위와 다를 게 없다. 다만 문 대통령은 20일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하라고 지시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사슴사냥은 게임이론과 비슷하다.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사슴사냥에 나선 마을 주민들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마을의 주요 식량 공급원은 사슴과 토끼다. 주민들은 산자락부터 대오를 형성해 사슴을 정상으로 몰아가 포위해 잡는다. 사슴을 잡으면 주민들은 열흘간 고기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사냥 도중 주민 하나가 옆으로 지나가는 토끼를 잡겠다고 대열에서 이탈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주민들은 사슴을 놓치고 만다. 한 주민이 토끼를 잡겠다고 대열에서 벗어나면서 생긴 틈으로 사슴이 빠져나간 탓이다. 마을 주민들은 사슴은 놓쳤지만, 대열에서 이탈한 주민은 토끼를 잡아 하루 치 식량을 구한다. 그가 토끼를 잡은 게 이득일까 이웃과 협력해 사슴을 잡는 게 이득일까? 이웃 주민들은 토끼를 잡겠다고 대오를 이탈한 주민을 가만히 놔둘까? 과연 그 주민은 토끼를 무사히 집으로 가져갈 수 있을까?
기후위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초래한 위기와 차원이 다르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했으므로 어떤 재난인지 가늠할 수 없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어떻게 대처할 방법도 없다. 세계 과학자 90% 이상이 기후위기 원인으로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이산화탄소 배출을 꼽는다. 가늠조차 되지 않는 위기를 막기 위해 195개 국가가 2015년 파리기후변화 협약에 서명했다.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배출하는 국가부터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피해국까지 기후위기라는 사슴을 잡겠다고 대오를 형성한 것이다. 태평양에 산재한 작은 나라들까지 포위망에 합류했다.
디지털에는 굳이 뉴딜을 붙일 필요가 없다. 세계가 이미 디지털화로 나아가고 있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같은 개인용 전자기기가 대량 보급되면서 디지털화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유럽 27개국 정상이 지난 3월 27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포괄적 경제 회복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디지털화를 통한 비대면 서비스 증가와 업무의 디지털화가 중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럽의 디지털화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수단을 담았다는 점에서 한국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의 디지털 뉴딜은 뉴딜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좁고 파편화된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하라고 지시했지만, 다음 달 발표할 세부 내용이 관건이다. 기존 사회·경제적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딜은 뉴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1932년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가 뉴딜이다. 미국 정부는 사회보험과 노동조합 육성 정책으로 당시 가장 고통받던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뉴딜은 말 그대로 국가와 개인이 맺고 있던 기존 계약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계약을 뜻한다. 불합리하고 불평등을 심화시키던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딜(Deal·협약)’인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 뉴딜로는 한국 경제가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원청과 하청의 차별, 불공평한 임금 차이,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한 해 1만4000명에 이르는 대기오염 조기 사망자와 2000명이 넘는 산재사망자(2019년 기준)를 구제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후위기 해결 방안이 없다. 세계가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지속가능한 성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에릭 마머 유럽의회 수석대변인은 “유럽의 그린 딜은 유럽 경제 성장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유럽 그린딜, 기후위기 막는 수단 담아
한국에서는 석탄화력발전소가 전력의 46%를 만들어낸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가능에너지로는 전력 3%만 생산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국의 디지털화는 기후위기를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230개 이상 기업이 재생가능에너지 100%로 전환을 선언했다. 국내 기업 중 재생가능에너지로 100% 전환을 실행한 곳은 없다. 삼성전자가 2017년 해외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선언했지만, 국내 공장은 대상에서 빠졌다. 네이버는 2015년 이를 선언했지만, 진척도는 언급하기 부끄러울 정도다.
세계가 석탄 사용을 줄이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2022년까지 석탄발전소 7기(7기가와트 규모)를 새로 건설할 예정이다. 세계가 공적 금융을 통한 해외 석탄 투자를 중단했지만, 한국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공적 금융기관을 내세워 동남아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다. 한국이 기후위기를 잡기 위한 사슴몰이 대열에서 이탈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면 사슴을 잡아야 하는 이유조차 한국 정부는 모르는 듯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민에게 지속 가능하고 더 나은 삶을 제공해야 할 정부의 역할이 훨씬 중요해졌다. 정부는 ‘새로운 딜’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사회·경제 구조의 뼈대를 구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토끼 대신 사슴을 사냥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위기가 바꾼 경제지형…테슬라 시총, 폴크스바겐의 2배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10일 이산화탄소 환산 t당 75달러까지 탄소세를 올리도록 권고했다. 세계 탄소세는 평균 2달러에 불과하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는 “기후변화를 막지 못하면 경제가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은 지난 1월 “기후위기가 금융시스템을 완저히 바꿔놓을 것”이라며 “앞으로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블랙록은 5조6000억 달러(약 7000조원)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50주년을 맞아 “기후위기 포함 환경 문제가 가장 실현 가능성 큰 리스크”라고 평가했다.
테슬라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기후위기는 세계 산업지형을 파괴적으로 바꾸고 있다. 전력 산업부터 보면 태양광·풍력의 발전 단가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석탄발전소가 줄지어 문을 닫고 있다. 재생에너지 발전설비는 지난해 176 기가와트(GW) 늘어나 지난해 완공한 신규 발전설비의 72%를 차지했다. 2000년대 초반 이 수치는 20%가량이었다. 그마저 수력발전댐이 대부분이었다. 지난해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시설 중 90%는 태양광과 풍력이다.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세계 자동차 판매대수는 7750만대다. 독일 폴크스바겐은 총 1097만대를 팔아 판매량 기준 세계 1위에 올랐다. 그러나 폴크스바겐 시가총액은 710억 달러로 3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시가총액 2위는 전기차·태양광·전기저장장치를 개발해 판매하는 테슬라(사진)가 차지했다. 지난해 전기차 40만대 남짓 판매한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1481억 달러로 폴크스바겐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는 324억 달러, 포드는 195억 달러에 불과하다.
한국 경제도 선택의 여지는 별로 없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환경 변화에 맞춰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을 만들려면 파괴적 혁신을 감행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경제 문제이기도 하다. 기후위기가 국민과 경제에 가장 큰 위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화석연료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 전략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 경기부양책으로 꼽는, 5세대 이동통신,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디지털화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도록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두고 추진해야 한다.
이현숙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프로그램 국장 /중앙선데이
평생 환경학습권 통해 '환경 시민' 양성…환경교육 강화
환경교육자료 개발·폐교 종합환경교육시설로 전환
22일 오전 열린 제6차 사회관계장관회의
국민의 평생 환경학습권을 보장하고 '환경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환경교육 등 여러 관련 조치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이 시행된다. 환경부는 22일 열린 제6차 사회관계장관회의에서 환경교육 활성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녹색전환 촉진을 위한 국민 환경역량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은 '환경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비전 아래 환경교육을 강화하고 문제 해결형 교육으로 전환하는 데 중점을 뒀다. 특히 환경교육의 수혜자를 지난해 19.2%에서 2023년까지 40%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구체적으로 ▲ 학교 환경교육 강화 ▲ 사회 환경교육 확대 ▲ 환경학습권 구현을 위한 제도 및 기반 강화 ▲ 환경교육 분야의 사회적 경제 활성화 등이 추진된다.
환경부는 먼저 교육과정과 연계한 환경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물리적, 인적 기반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초·중·고등학교 학년별, 과목별 수업에 활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기법 및 첨단 기술을 접목한 환경교육 자료를 1천500개 이상 개발해 보급하고, 전국의 폐교를 환경테마관이나 생태놀이터 등 종합환경교육시설로 탈바꿈시킬 방침이다. 또 교원의 전문성 향상을 위해 교원연수를 확대하고, 환경교육 성과가 우수한 사범대학을 '환경교육 선도대학'으로 선정할 계획이다.
아울러 우수 환경 교육도시를 선정해 행정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등 지역사회 기반의 사회환경교육을 확대하고 관련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국민이 환경학습권을 평생 누릴 수 있도록 '환경교육정보 통합시스템'을 구축하고, 환경학습계좌제를 도입하는 등 제도와 기반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환경부는 환경교육사를 국가 자격체계로 전환해 사회환경교육 분야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환경교육 인턴십 과정도 2021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환경부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환경교육진흥법' 개정안을 21대 국회에 제출해 입법화하는 등 행정적, 재정적 기반도 견고하게 다져 나가기로 했다.
주대영 환경부 정책기획관은 "이번 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해 국민의 평생 환경학습권을 보장하고, 기후 위기 등 환경 현안의 해결과 우리 사회의 녹색 전환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bookmania@yna.co.kr
국가숲길 6월 시행 <1> 국가숲길이란?] 생태·역사·문화적 가치 높은 숲길, 국가 차원서 관리
체계적으로 조성·운영해서 전국 네트워크化 추진… 올 하반기쯤 첫 지정
국가숲길이 마침내 6월 4일부터 시행된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최종 통과한 뒤 6개월간의 시행유예기간을 거쳐 6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 지정된 국가숲길은 없다. 산림청은 산림복지진흥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라 산림복지심의위원회를 두게 돼 있다. 여기에서 지자체나 지방산림청에서 신청한 전국의 숲길을 대상으로 심의를 거쳐 지정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면 올 4분기쯤 한두 개의 숲길이 국가숲길로 첫 지정될 전망이다. 현재 가장 유력한 국가숲길 후보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와 지리산둘레길.
국가숲길 후보를 살펴보기 전에 국가숲길의 개념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숲길은 등산로와 트레킹길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다. ‘산림문화 휴양에 관한 법률’ 제22조의2에 따르면 숲길의 유형구분은 5개로 나뉜다. ▲등산로는 산을 오르면서 심신을 단련하는 활동(등산)을 하는 길 ▲트레킹길은 길을 걸으면서 지역의 역사·문화를 체험하고 경관을 즐기며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트레킹)을 하는 길. 이 길은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도록 산의 둘레를 따라 조성한 둘레길과 산줄기나 산자락을 길게 조성해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트레일로 나뉜다. ▲레저스포츠길은 산림에서 하는 레저·스포츠 활동(산악레저스포츠)을 하는 길 ▲탐방로는 산림생태를 체험·학습 또는 관찰하는 활동(탐방)을 하는 길 ▲휴양·치유숲길은 산림에서 휴양·치유 등 건강증진이나 여가활동을 하는 길을 말한다. 법률로 정한 다섯 가지의 숲길 유형은 모두 국가숲길 대상 후보들이다.
이러한 숲길 중에 가치면에서 산림생태적 가치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숲길이거나, 규모면에서 숲길의 거리·행정구역 등 국가차원 관리가 필요한 숲길이거나, 품질면에서 다양한 산림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숲길, 지역면에서는 지역 활성화에 기여도가 높거나 가능성 있는 숲길이 지정기준이 된다. (그림1 참조)
국가숲길 지정신청은 지방산림청이나 지자체에서 산림청으로 하면, 산림청은 적정성 및 지정기준 부합여부 등을 따져서 현장조사를 한다. 이어 숲길 소재지 지자체장과 지정 협의를 갖고 산림복지심의위원회의 국가숲길 지정심의를 거친 뒤 심의 결과에 따라 지정 고시된다.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23조의3에 따르면 ‘산림생태적,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아 체계적인 운영 관리가 필요한 숲길에 대해서 산림청장은 국가숲길로 지정 고시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숲길은 그동안 지자체에서 중구난방식으로 조성해 온 숲길을 정리하고 체계적으로 관리 운영할 필요성에 의해 법률로 지정돼 이번에 시행에 들어간 것이다. 따라서 전국 숲길 네트워크의 구축 관리를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하고, 국가숲길을 네트워크화해서 한반도 산림생태벨트를 구축하고, 무분별한 산행으로부터 중요산림지역의 산림생태계를 보호하고, 산림자원과 야생동·식물, 지역주민, 이용자가 공존하는 가치를 발굴하고, 주요 등산로에 집중되는 이용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또 타 부처 및 지자체의 걷는 길을 포괄하고 지역숲길 조성 및 운영·관리방안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제시할 방침이다.
현재 운영 중인 주요 숲길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420km(총 681km 중 국립공원공단 관리인 261km는 제외), 서울둘레길 8개 노선 157km, DMZ펀치볼둘레길 4개 노선 73km, 백두대간 트레일(인제·홍천 구간) 11개 노선 158km, 대관령숲길 8개 노선 88km, 금강소나무숲길 7개 노선 79km, 속리산둘레길 4개 노선 182km, 내포문화숲길 26개 노선 319km, 지리산둘레길 22개 노선 295km, 한라산둘레길 7개 노선 66km 총 10개 노선이다. (그림2 참조)
이 중 올 하반기 국가숲길 최초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7개 권역으로 나뉜다. 구룡령~진부령에 이르는 설악산권, 백봉령~구룡령까지 오대산권, 도래기재~백봉령까지 태백산권, 하늘재~도래기재까지 소백산권, 개머리재~하늘재까지 속리산권, 중재~개머리재까지 덕유산권, 지리산~중재까지 지리산권으로 나뉘어 총 681km에 이른다.
그런데 문제는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관리하는 261km를 산림청의 국가숲길에 포함시킬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른다. 물론 환경부와 공단의 협의를 통해 충분한 의견을 반영하겠지만 혹시 환경부나 공단에서 부정적 의견을 밝히면 매우 곤란한 상황에 봉착한다. 왜냐하면 이용자, 즉 국민의 입장에서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가숲길은 예약이든 인솔자와 함께이든 언제든 탐방할 수 있는 반면 공단이 관리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는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든지, 아니면 아예 탐방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국민들의 불만과 원성이 쏟아질 게 뻔하기 때문이다.
산림청 입장은 백두대간 마루금의 모든 등산로를 포함시키고 싶지만 부처 입장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협의해야 할 상황이다. 산림청은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는 대로 생태보존과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간부터 우선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이어 지리산둘레길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못지않게 지정대상이다. 지리산은 남한 최고의 명산으로 고대부터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다. 정맥 9개 권역도 중장기적으로 지정대상 후보들이다. 나아가 산림청은 5대 트레일과 5대 명산둘레길도 국가숲길 후보로 올려놓고 있다. 이 국가숲길 후보들의 트레일 조성과 등산로는 2021년까지 1단계 사업을 완성하고, 2022년부터 2단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총 7,614km의 트레일과 1만3,505km에 이르는 등산로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국가숲길이 완성되면 이용자들은 한반도 어디든 유기적으로 연결된 길을 통해 걸어서 여행하고, 힐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 트레일의 네트워크화는 국민들에게 더욱 각광받는 여행수단이 될 것이라 전망된다.
월간 산 글 박정원 선임기자
<2> 어느 숲길 지정되나?]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가 국가숲길 첫 후보
단군신화와 숱한 전설 지닌 한민족 상징이자
핵심 생태축… 인문지리·자연생태적 가치 지녀
백두대간 야생화로 유명한 대덕산 구간을 지나고 있다.
국가숲길 관련 법률이 시행령을 거쳐 6월 4일부터 발효되는 가운데 첫 국가숲길로 올 하반기쯤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지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지정 기준을 충족하는 동시에 한반도에서 백두대간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국가숲길 지정 첫 번째 기준이 산림생태적 가치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숲길이 우선 대상이다. 이 기준에 부합하는 숲길은 단연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뿐이다.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제11조6 제1항에 나오는 국가숲길 기준은 ▲지역을 대표하는 숲길로서 산림·생태적 가치가 높을 것 ▲숲길과 연계된 그 주변의 산림·생태적 가치가 높아 국가차원에서 관리할 필요성이 있을 것 ▲지역을 대표하는 숲길로서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높을 것 ▲지역의 역사·문화자원과의 연계성이 높을 것 등에 해당하는 기준을 하나라도 갖춘 경우에 지정한다고 적시돼 있다.
2항에는 숲길이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규모를 갖출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 첫째 기준은 둘 이상의 시·도에 걸쳐 있는 숲길일 것, 둘째, 셋 이상의 시·군·구에 걸쳐 있는 숲길일 것, 셋째, 숲길의 거리가 50km 이상 될 것, 넷째, 3년간 평균 숲길 탐방객이 30만 명 이상으로서 국가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성이 있을 것 등이다. 이에 따르면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가 모든 항목을 충족하고 있다.
백두대간 함백산 구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가운데 마치 물결치듯이 넘실거리는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백두대간은 위의 기준을 모두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그 가치와 상징성, 규모면에 있어서도 최우선 지정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중심 산줄기이다. 우리 민족 고유의 성산인 백두산의 신성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군신화는 여러 설이 분분하나 우리 민족의 시원지로서 백두산과 직접 연결되는 상징성은 한반도의 어느 산이 대체할 수 없다. 역사·문화적 가치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백두라는 개념이 최초로 나타난 문헌은 10세기 초의 고려 승려 도선이 지은 <옥룡기>다. 여기에 ‘우리나라는 백두에서 일어나 지리에서 끝났으며, 물의 근원, 나무줄기의 땅이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백두에 대간大幹을 덧붙인 개념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보인다. ‘대간은 끊어지지 않고 옆으로 뻗었으며, 남쪽으로 수천 리를 내려가 경상도 태백까지 통하여 하나의 맥령을 이루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백두대간과 백두정간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문헌은 이익이 1760년에 쓴 <성호사설>이다. ‘백두산은 우리나라의 조종산이며, 대간의 시작 산이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체계화한 학자는 <산경표>의 저자 여암 신경준이다. <산경표>는 백두대간의 개념뿐만 아니라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연결의 상태·관계·순서를 알기 쉽도록 일목요연하게 표로 제시한 최초의 책이다.
백두대간 소백산 권역에 있는 늦은목이재 낙엽송과 덩굴숲 사이로 걷고 있다.
연속된 산줄기, 전통 산지체계가 백두대간
이와 같이 백두대간은 신화와 함께 우리 민족의 설화나 전설, 역사와 문화 등 인문지리적인 토대가 되어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근간이 된다. 또한 우리 국토에 지리적 일체감을 갖도록 하며, 유역을 가르는 분수계로서 국토 공간구조의 골격이자 생활영역과 문화양식의 기반이 되는 민족의 인문학적 바탕이다.
나아가 한반도의 중심 골격으로서 자연생태계의 핵심축을 이루는 생물다양성의 보고寶庫이다. 천연기념물이나 여러 보호 동식물과 멸종위기 생물 등 다양한 종들이 서식할 뿐만 아니라 대륙의 야생 동·식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이동통로이자 서식지이기도 하다. 또한 주요 산들이 자리 잡은 한반도의 지붕인 백두대간은 한강·금강·낙동강·영산강의 4대강을 포함한 하천의 발원지로서 생명력이 시작되고 이어지는 중심지로 기능한다.
종합적으로 백두대간은 국토를 산계의 연속으로 인식해 지리적으로 일체감을 부여하며, 유역을 가르는 분수계로서 국토 공간구조의 골격이자 생활영역과 문화양식의 기반이 되는 민족의 인문학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민족정기의 상징으로 귀중한 유무형문화재와 구비문학, 산간신앙 등이 산재하고 있어 산림의 인문학적 가치가 더욱 돋보이는 공간으로 작용한다.
백두대간 연칠성령 부근 전망바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자연생태적으로는 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고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으로 대륙의 야생동식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이동통로이자 서식지가 된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천연림이 많아 산림자원의 비축기지 입지와 농림업, 광업 및 휴양관광 등 산업적인 이용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우리 민족의 애환이 서린 곳이며, 자연환경과 동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복합 공간으로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징성으로 인해 한때 백두대간 종주 붐이 일기도 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지만 종주는 대부분 지리산에서 출발한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리산 천왕봉 비석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현하다’는 문구 때문이다. 지리산 천왕봉의 기운을 받아 종주를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는 메시지의 무언의 영향이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둘째, 설악산 위쪽 향로봉 바로 아래 백두대간 종주 기념탑이 있다. 여기서 많은 종주꾼들이 종주를 마친 기념사진과 행사를 가지기 때문이다. 종주 기념탑 주변엔 매주 종주꾼들과 행사로 인해 사람들이 끊이질 않는다. 항상 꽃과 막걸리가 가득하다. 최근엔 코로나로 인해 단체보다 개인이나 삼삼오오 종주를 출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지만 한창 종주 붐이 계속될 때는 단체로 출발하는 종주 지원 버스들이 주로 시작지점을 지리산으로 잡았던 이유도 있다. 지금은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등산객 수송 버스가 줄었다. 등산 트렌드의 반영이기도 하다.
대개 종주는 24구간으로 구분하지만 48구간으로 나누기도 한다. 24구간으로 나눌 경우, 1구간이 거의 30km에 가깝다. 하루 만에 걸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24구간으로 나눌 경우 보통 1박2일이나 2박3일간 강행군해야 한다. 하지만 48구간으로 나눴을 땐 보통 무박 산행으로 48회에 걸쳐 종주를 마친다.
대간 종주는 대개 지리산에서 출발
산림청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첫 국가숲길 지정대상으로 올려놓고 상당한 고민에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상거리 총 681km 중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이하 공단)이 관리하는 261km 때문이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420km는 당연히 지정되겠지만 263km는 관리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논의와 협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263km 중에는 일반인들에게 통제된 구간이 상당수 있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7개 권역은 천왕봉~중고개재까지 지리산권 77.9km, 중고개재~개머리재까지 덕유산권 142.4km, 개머리재~하늘재까지 속리산권 105.8km, 하늘재~도래기재까지 소백산권 97.4km, 도래기재~백봉령까지 태백산권 96.1km, 백봉령~구룡령까지 오대산권 88.3km, 구룡령~진부령까지 설악산권 75.3km 등 총 683km. 여기서 공단이 관리하는 코스 중 설악산 23.6km, 오대산 13.8km, 월악산 18.7km, 속리산 20.7km 등 총 76.8km는 이른바 통제구간이다. 산림생태보호구역이나 자연휴식년기간 등 여러 이유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구역이다. 이곳을 국가숲길로 지정하면 누구든지 당연히 출입하려 할 것이다.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 충분히 예상된다. 국가숲길로 지정되지 않은 지금도 수시로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들어가려는 종주꾼과 통제하는 공단 직원 간의 실랑이를 쉽게 볼 수 있다.
산림청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가 국가숲길로 지정되면 당연히 포함시킨다는 기본입장을 지키고 있다. 또한 환경부와 공단과 언제든 협상과 논의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전체가 국가숲길로 지정되면 관리 주체가 누구로 할 것인가도 논의대상이다.
현재 유사한 사례로 자주 껄끄러운 관계를 빚는 상황이 바로 점봉산 구역이다. 원래 산림청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관리하고 있었지만 환경부와 공단이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소속은 공단이지만 관리는 산림청에서 하는 애매한 입장이 수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점봉산 곰배령을 출입하려면 산림청에 예약해야 한다. 서로 불편한 상황이 수년째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나 공단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가 국가숲길로 지정된다 하더라도 관리주체를 절대 산림청에 내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공단이 관리하는 일부 구간은 지금도 일반 등산객 출입금지인데, 국가숲길로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개방여부는 국민적 합의에 따르겠지만 산림청의 일방적 개방요구는 절대 응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산림청이 공단 관리 261km를 제외하고 국가숲길로 지정한다면 420km라는 불완전하고 연속적이지 않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라는 여론의 질타도 감수해야 할 상황이다. 나아가 부처 간의 협업과 소통이 안 된다는 지적도 받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부담스러운 현실이다.
5월 하순 현재 산림청은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 전체구간을 한꺼번에 국가숲길로 지정하기보다는 협의가 원활히 진행되는 대로 생태보존과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구간부터 우선 지정한다는 방침이다. 지역에 구애되지 않고 강원도나 경상도부터 지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림청이 백두대간 마루금 등산로를 7개 권역으로 나눈 이유는 국가숲길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이다. 노선거리·이동시간·지역특성 등을 감안, 권역별로 묶은 것이다. 정맥도 한북·한남·한남금북·금북·금남·금남호남·호남·낙동·낙남정맥의 9개 권역으로 구분해 관리할 예정이다. 정맥 9개 권역도 중장기적으로 국가숲길 지정 대상이다.
국가숲길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편의와 자연생태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서 지정된다. 전국의 숲길을 네트워크화해서 국민들이 최대한 연속성 있게 이용할 수 있도록 숲길을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여기에는 부처 간 협업이나 여론 등 몇 가지 넘어야 할 장애물이 존재한다. 수년에 걸쳐 공들인 국가숲길제도가 이제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2030 젊은 세대들 중심으로 다시 등산붐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지금, 이들이 국가숲길제도를 어떻게 인식하며, 어떻게 이용할 것이며, 그리고 산림청이 얼마나 원활하게 운영할지 지켜볼 일이다.
환경단체들 오는 30일 이기대에서 부산 생물다양성 탐사 나선다
올해 부산 생물다양성 탐사가 이기대공원 일원에서 펼쳐진다. 그동안 산, 강 등에서 이뤄졌던 행사가 이기대공원에서 진행되면서 향후 이 지역의 각종 난개발을 막는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오는 30일부터 이틀간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 일원에서 ‘제9회 부산 생물다양성 탐사’를 주최한다. 주최 측은 지난 18일 이번 탐사에 참여할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사전 교육을 진행하고 올해 부산생물다양성탐사조직위원회의 발대식을 했다. 올해 행사에는 부산환경회의, 부산환경교육네트워크 등 지역 환경단체 30여 곳의 전문가 60여 명이 참여한다. 매년 행사마다 300여 명의 일반 참가자도 함께했지만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여파로 별도 모집하지 않았다.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는 그동안 낙동강, 수영강, 대천천, 장산, 금정산 등 주로 부산 내 산과 강에서 생물다양성 탐사를 진행해왔다. 올해는 바다를 끼고 있는 이기대공원에서 행사가 진행되면서 갈맷길을 중심으로 한 식생과 부산 앞바다의 조간대 생태, 저서생물 등에 관해 조사가 이뤄진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보고서는 이 지역의 난개발 움직임을 막는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 달 16일에는 이번 탐사 활동 전반에 대한 평가와 관찰 기록 정리, 결과보고서 제작 논의가 이어진다. 최종 결과보고서는 오는 11월 발간된다. 부산지속가능발전협의회 관계자는 “그동안 활동해온 지역과 다른 해안 지역이라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예방 수칙을 철저하게 잘 지켜 행사를 잘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가마우지 떼 떠나니 섬이 살아났다..푸르름 되찾은 속초 조도
가마우지 떼가 떠나니 섬이 살아났다. 가마우지 배설물에 초토화가 됐던 강원 속초시 조도(鳥島)가 새 떼가 떠난 후 되살아나고 있다.
살아나는 속초 조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26일 속초시에 따르면 속초해변 앞에 있는 조도 식생이 2년여 전부터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볼 수 있었던 밀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던 모습은 이제는 찾아볼 수 없고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던 소나무에도 푸르름이 역력하다. 섬을 점령했던 가마우지들이 사라진 후 나타난 변화다.
속초해수욕장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인 조도는 속초 8경 가운데 하나로, 수백 그루의 해송이 자생하는 아름다운 섬이었으나 2000년대 초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가마우지 떼에 점거당한 후 죽음의 섬으로 변했다.
독성이 강한 배설물에 울창했던 해송들이 대부분 고사하고 섬의 토양도 강한 산성으로 변해 식물이 자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속초시는 가마우지 배설물을 씻어내고자 산불진화 헬기를 동원해 물을 뿌리고 1천300여 그루의 해송 묘목을 다시 심는 등 섬을 살리기 위한 사업을 펼쳤으나 섬을 뒤덮은 가마우지 배설물의 독성이 워낙 심해 묘목이 대부분 고사하는 등 실패를 거듭했다.
가마우지 떼에 황폐해진 속초 조도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폐허가 되다시피 한 섬에서 살 수 없게 된 가마우지들이 다른 서식처를 찾아 떠나기 시작한 4∼5년 전부터 섬이 살아나기 시작해 가마우지가 사라진 2년여 전부터는 회복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고사한 소나무들이 워낙 많아 섬이 울창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지난 2018년 속초시 조사 결과 조도에는 고사하지 않고 살아남은 해송 80여 그루와 그동안 심은 묘목 가운데 묘목 590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활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속초시 관계자는 "갯바위와 소나무를 점거했던 가마우지가 떠난 후 그동안 심었던 묘목이 1m 이상으로 자라나는 등 섬이 되살아나고 있다"며 "섬이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지속해서 관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정부, 해운대 지역 대상으로 신종 재난 빌딩풍 연구
정부가 전국 최초로 해운대 지역을 대상으로 첫 빌딩풍 연구에 나섰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초고층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김성효 기자kimsh@
부산시에 따르면 26일 행정안전부 주관으로 ‘빌딩풍 위험도 분석 및 예방·대응기술 개발 구축계획 사업’이 내달부터 시작된다. 행안부 ‘지역 맞춤형 재난 안전 문제해결 지원을 위한 R&D사업’ 공모사업에 시가 제안한 빌딩풍 연구가 선정됐다.
국비, 시비, 민자 비용까지 합쳐 모두 18억 6천만원이 투입되며, 향후 3년간 심층연구로 이뤄질 예정이다.
해운대구는 전국에서 초고층 건물이 가장 밀집한 지역이다. 200m, 50층 이상 초고층 빌딩만 28동이 있다. 매년 태풍에 따른 해안가 초고층 빌딩 유리창 파손, 고층 구조물 파편 피해가 잇따라 시민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올해 용역은 ‘기반기술 구축’ 단계로 공간·기상 데이터베이스 수립, 빌딩풍 위험 분석 시스템 설계 등의 절차가 진행된다. 내년은 기술분석 단계로 빌딩풍에 의한 비산물 피해 위험도 분석기술 개발, 빌딩풍 실측데이터 환경 구축 등이 진행된다.
2022년 연구 용역 마무리 단계에는 빌딩풍 예·경보 시스템 구축, 부산시 스마트 빅보드와 연계한 기술 개발 등이 진행된다. 이영실 기자 inews@kookje.co.kr
폐기물 녹여만든 '쓰레기 시멘트'...전국 아파트 도배해
국내 시멘트 업계에서 제조 하고 있는 시멘트가 석회석과 대량의 폐기물을 혼합해 원료로 만들어져 아파트, 빌딩 등의 건설현장에 공급돼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최빛나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국내 시멘트 업계에서 제조 하고 있는 시멘트가 석회석과 대량의 폐기물을 혼합해 원료로 만들어져 아파트, 빌딩 등의 건설현장에 공급돼 국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소비자시민단체인 소비자주권시민회의(이하 소비자주권)의 ‘쓰레기 시멘트 제조에 따른 성분표시 실태 결과’에 따르면 시멘트 소성로에 보조연료로 사용되는 폐기물은 폐타이어, 폐합성수지, 고무류, 폐목재 등이 있고, 부원료로 사용되는 폐기물은 석탄재, 유기성·무기성 오니, 폐주물사 등이 있다.
시멘트 제조는 여러 원료를 소성로에서 굽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때 열원 공급을 위해 시멘트업체는 대량의 가연성 폐기물을 소각하는 한편, 가연성 폐기물을 소각 후 발생된 소각재는 다시 시멘트 석회석과 혼합해 원료로 사용된다.
최근 논란이 된 일본산 석탄재와 도시하수처리장, 식품공장 등에서 배출되는 폐기물인 유기성 오니와 산업체 생산공정이나 가공 공정에서 발생되는 폐기물인 무기성 오니 등을 혼합해 소성로에서 굽는 과정을 거쳐 이들 물질도 시멘트와 버무려서 생산해 내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관계자는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폐기물이 투입된 시멘트(일명 쓰레기시멘트)가 국민들의 생활터전인 주택 건설에 많이 사용되고 있으므로, 인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시멘트 제조사는 각종 쓰레기로 제조한 시멘트 포대에 투입된 폐기물 사용량의 명확한 표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시민들이 생활하는 아파트 및 건물, 빌딩 등은 쓰레기 시멘트로 신축되고 있고,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 등 건축물에서 생활하는 국민들은 뚜렷한 원인 없이 아토피 등 피부질환과 호흡기 질환 등 각종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이는 각종 폐기물로 생산된 쓰레기 시멘트에서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과 중금속 성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강조했다.
시멘트를 생산하는 업체들은 생산과정에서 위해 성분을 제거했다고 하지만 관련 기준을 초과하지 않을 뿐 방사능과 발암물질, 각종 중금속은 제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게 그들의 주장.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각종 시멘트에는 인체에 해로운 유해물질인 카드뮴(Cd), 비소(As), 망간(Mn), 수은(Hg), 납(Pb), 크롬(Cr), 구리(Cu), 세레늄(Se),안티몬(Sb), 6가크롬(Cr+6) 등이 검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6가 크롬 이외에 납, 카드뮴, 수은, 구리, 비소 항목이 폐기물 관리기준에 적합하다고 하고 있으나 이는 기준을 초과하지 않은 것일 뿐 이런 물질들이 검출됐다.
국립환경과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런 유해물질들은 급성독성과 만성독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런 중금속이 함유된 시멘트로 지어진 아파트나 주택 건물에 입주해 몇 년씩 생활하는 경우 아토피성 피부염, 가려움증, 알레르기, 두통, 신경증상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각종 폐기물을 사용한 쓰레기 시멘트의 문제점들이 일부 제기돼 왔으나 그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각종 폐기물의 사용량은 증가됐다.
그래픽 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일반 건축토목공사에 사용하는 1종 포틀랜드 시멘트(1포대 중량 40kg) 포대에는 위해성, 폐기물 종류, 폐기물 사용량에 대해 표시하고 있는 시멘트 제조사는 한 업체도 없었다. 다만 시멘트를 사용하는 작업자들을 위해, 폐기물의 각종 중금속 성분으로 인한 독성물질에 대한 위험경고와 예방조치 요령만 표시 있었다. 즉 시멘트 포대에는 일체의 성분표시 없이 주의사항만 언급돼 있다.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같이 사람이 죽어야 상황의 심각성을 아는가. 시멘트 유해물질 문제는 현재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며 "이에 소비자주권은 인체에 유해한 발암물질과 중금속 성분이 검출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더 나아가 주 시멘트를 생산하는 업체의 포대를 확인해 이번 결과를 발표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관련 부처에서는 이 부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며 "시멘트 관련 기업들은 경각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시멘트 성분표시를 통해 부원료로 사용되는 폐기물 소각재와 슬러지, 석탄재 등의 유해물질 함량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하고, 사용 시 이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등급제도입이 시급하다. 일반 첨가제로 생산한 친환경 주거용 시멘트와 각종 폐기물을 사용해 생산한 시멘트를 분리 생산 판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폐기물을 사용해 생산한 시멘트는 댐, 터널, 도로포장 및 교량 공사 등의 사용으로 제한하고, 주택용은 폐기물을 사용하지 않고 생산한 시멘트로 구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멘트 포대를 그린포스트코리아 기자가 직접 확인해 봤다. 시멘트 제조업체들은 포대를 통해 폐기물을 사용해 생산한 시멘트가 매우 위험하고 인체에 해로운 독성물질이 포함돼 있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시멘트 포대의 위험경고에 따르면 “삼켜서 기도로 유입되면 치명적인 수 있고, 피부에 자극을 일으키며, 눈에 심한 손상을 일으키고, 호흡기계에 자극을 일으키므로 분진을 흡입하지 말고, 눈, 피부(머리카락), 의복에 묻지 않도록 하고, 피부에 묻으면 다량의 비누와 물로 씻고, 옥외 또는 환기가 잘 되는 곳에서만 취급하는 등”이라고 적혀 있었다.
소비자주권은 그린포스트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민들의 안전과 건강은 무시한 채 각종 폐기물로 만들어진 시멘트의 인체에 해로운 유해성분과 독성물질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고 왜곡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시멘트의 위해성, 사용한 폐기물 종류, 폐기물의 사용량 등에 대해 국민들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 보장 차원에서 시멘트포대 표기사항에 사실을 은폐하거나 왜곡하지 말고 진실을 명확하게 표기해야 할 것 ▲등급제를 도입해 석회석에 점토와 규석 그리고 철광석 등 일반 첨가제를 사용해 생산한 친환경(Eco) 주거용 시멘트와 각종 폐기물을 사용해 생산한 시멘트를 분리 생산, 판매토록 해야 하는 점을 개선 방향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은 없다"며 "사안을 검토한 후 추후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최빛나 기자
출처 : 그린포스트코리아(http://www.greenpostkorea.co.kr)
청소노동자 위협하는 '100리터 종량제봉투'
100리터 봉투 없애기 시작한 지자체
“안전 문제 고려한 조치, 합리적으로 실천해야”
청소노동자 작업환경 개선을 위해 종량제봉투 최대용량을 기존 100리터에서 더 가벼운 용량으로 낮추는 방안이 꾸준히 추진되고 있다. 수거 과정이 안전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늘어나는 가운데 상가나 업소 등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곳에서의 불만이 함께 제기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청소노동자(환경미화원) 안전사고 재해자는 1,822명이다. 그 중 15%가 쓰레기를 차량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어깨나 허리를 다쳤다. 교통사고(12%)로 다치는 경우보다 더 많은 사례다.
쓰레기를 차에 싣는 과정에서 다치는 경우는 작업량이 많거나 무거운 쓰레기를 들어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종량제봉투 중 가장 큰 사이즈는 100리터다. 해당 봉투에는 약 20~25Kg정도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봉투를 아끼기 위해 쓰레기를 압축해 담거나 묶기 위한 부분 윗 부분 이상 무리하게 담으면 무게가 30~40Kg을 넘는 경우도 있다.
종량제봉투를 수거해 차에 싣는 것은 결국 사람이므로, 용량이 크거나 무거운 것은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폐기물 수거업체 한 관계자는 “100리터 봉투에 내용물까지 무거운 것이 담겨 있으면 혼자 옮기기 어려운데, 빠른 시간안에 처리하느라 급하게 움직이다 보면 다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쓰레기 배출량이 많은 곳에서는 대용량 봉투가 필수라는 의견도 있다. 상가 입주민 등이 100리터 종량제 봉투를 유지해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건축 인테리어와 도배, 장판 일을 하는 한 관계자는 “업무 특성상 한 번에 많은 쓰레기가 생겨 대용량 봉투가 2개 정도씩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100리터 봉투 없애기 시작한 지자체
환경부는 2019년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전국 지자체에 통보하면서 종량제봉투나 대형폐기물 등 1명이 들기 어려운 작업은 3인 1조(운전원 1, 상차원 2)를 원칙으로 하게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100리터 봉투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제기됐다.
일부 지자체에서 이에 따른 대안을 내놨다. 종량제봉투 최대용량을 기존 100리터에서 75리터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이다.
부산 해운대구는 올해 1월부터 일반용 100리터 종량제봉투 제작을 중단했다. 100리터를 많이 사용하는 사업장용 봉투도 제작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홍순헌 해운대구청장은 "환경미화원의 고충을 배려해 무거운 100리터 종량제봉투 대신 75리터 이하 봉투를 사용해 달라"고 주민들에게 당부했다.
부천시와 밀양시 등에서도 100리터 종량제봉투 제작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들 지자체도 각각 청소노동자 부상 방지, 작업 환경 개선 등을 이유로 들었다. 박일호 밀양시장은 "우리 이웃인 환경미화원의 고충을 배려해 이제는 무거운 100리터 종량제봉투 대신 75리터 이하 종량제봉투를 사용해달라" 고 당부했다. 부천시 우종선 자원순환과장은 “100리터 종량제봉투 수거과정에서 부상을 입는 환경미화원 및 청소업체 근로자들의 작업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히면서 “종량제봉투 배출 시 과도한 무게를 담지 않도록 100리터 대신 75리터 이하 봉투를 사용해 달라”고 밝혔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간 청소노동자(환경미화원) 안전사고 재해자는 1,822명이다. 그 중 15%가 쓰레기를 차량으로 올리는 과정에서 어깨나 허리를 다쳤다. (그래픽:최진모 기자)/그린포스트코리아
◇ “안전 문제 고려한 조치이므로 합리적으로 실천해야”
최근에는 경기도가 종량제봉투 최대용량을 75L로 하향 조정하는 방안을 놓고 시·군과 협의에 나섰다. 경기도는 지난 5월 12일 경기 남부권을 시작으로 4개 권역 시·군 청소부서 담당 과장과 권역별 환경미화원 등이 참여하는 ‘도-시·군 간담회’를 열었다.
경기도는 간담회가 “청소노동자들의 부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100리터 종량제봉투는 압축해 버려질 경우 최대 45Kg까지 무게가 늘어나 지속적으로 환경미화원의 신체 손상, 안전사고 위험이 제기되어 왔다”고 밝혔다.
12일 진행된 남부권 간담회에는 수원, 성남, 안양, 군포, 의왕, 오산, 안성, 과천시가 참가했다. 간담회에서는 이미 종량제봉투 최대용량을 100L에서 75L로 하향 조정한 용인, 성남, 부천, 의정부 등 4개 시의 사례를 공유하고, 환경미화원의 안전 문제와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방안을 협의했다.
임양선 경기도 자원순환과장은 “그 동안 환경미화원들의 부상 방지를 위해 종량제봉투 최대용량 하향 조정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라며 “가능한 도내 많은 시·군에서 종량제봉투 용량을 조정해 환경미화원들의 근로 환경 개선과 안전사고 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구와 시 단위 지자체에 이어 경기도까지 관련 논의에 나서면서 100리터 용량 종량제봉투 사용은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꺼번에 대용량 봉투를 없애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줄여나가는 방법도 함\고려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국폐기물협회 성낙근 실장은 “상가 또는 일부 업종의 불편이 예상된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안전 문제를 고려한 조치이기 때문에 100리터 봉투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폐기물 사이즈가 너무 커서 100리터 봉투 없이는 버리지 못하는 상태라면, 종량제 봉투가 아니라 대형폐기물로 배출하면 된다. 만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100리터 용량 봉투가 꼭 필요한 경우가 있다면, 그때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사람에게만 판매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출처 : 그린포스트코리아(http://www.greenpostkorea.co.kr)
울산 북구 산하동 농지 ‘불법 성토’ 논란
법적 기준 2m보다 높은 7~8m
공사업체 내부서도 문제 제기
비산먼지 억제 세륜기도 없어
북구청, 5월말까지 복구 명령
▲ 울산 북구 산하동 854 지역의 성토공사 현장 입구. 북구청은 최근 사진 속 부지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간 곳에서 허가를 받지 않은 불법 성토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울산 북구 산하동의 한 농지에서 불법 성토작업이 이뤄지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특히 작업 참가업체 내부에서도 불법 성토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시정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5일 산하동의 한 성토공사 현장. 입구를 따라 들어가자 높게 쌓인 흙 위에서 작업을 하는 포크레인 한 대가 보였다. 성토작업 현장에는 상당한 양의 흙이 쌓여있었고 성토현장 한쪽에 세워진 커다란 덤프트럭도 2대가량 보였다.
북구청에 따르면 산하동 851에서 854까지 약 3000㎡ 면적에서 지난해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아 성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관련법상 2m 이상 성토 작업을 하려면 관할 지자체로부터 개발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북구청의 확인 결과 산하동 851에서 854 부지 외에 약 1만㎡ 정도 면적의 부지에서 불법 성토작업이 진행됐다. 허가를 받은 3000㎡의 3배가 넘는 규모다. 다만 북구청은 1만㎡ 전체에 걸쳐 불법성토가 이뤄진 건 아니라고 밝혔다.
북구 관계자는 “여러 필지에 걸쳐 광범위하게 불법성토가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약 1만㎡ 규모로 파악중인데 다만 불법성토가 이뤄진 곳과 법적 기준을 지킨 곳이 뒤섞여 있어 정확한 규모를 측정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불법 성토작업을 두고 이미 관계 업체 사이에서도 문제제기가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내부 제보자는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지역 외에 인근 부지에서 법적 허가 기준인 2m 보다 훨씬 높은 약 7~8m 가량의 불법 성토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불법 성토는 현장을 총책임하고 있는 장비업자의 지시로 이뤄지고 있는데 내부에서 불법 성토와 관련해 문제제기가 이뤄졌으나 아직까지 개선이 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제보자는 현장에 비산먼지 발생 억제를 위해 설치돼야 할 세륜기 설치 등도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행정이 관리·감독을 소홀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관련법상 1000㎡ 이상 면적에서 성토·절토 작업이 이뤄질 경우 세륜기를 꼭 설치해야 한다.
이에 북구청 관계자는 “비산먼지가 날리는 현장에서는 자동식 또는 수조식 세륜기 설치가 필수이다. 다만 해당 현장의 경우 세륜기 설치가 어렵다고 시설변경을 신청해 이동식 살수시설로 대체 허가를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
북구는 지난 4월말 개발행위자 A씨에게 불법 성토가 이뤄진 부지에 대해 5월 중순까지 복구를 명령했지만 아직까지 복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구는 신종코로나 등의 상황을 감안해 5월 말까지로 복구 기간을 연장하고 기간 내 복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행정 절차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김현주기자 khj11@ksilbo.co.kr
상수도본부 “물금취수장 다이옥산, 특정업체가 계획적으로 대량 방류한 듯”
공장폐수·생활하수 섞여 희석된 하수처리수에서 8000㎍/ℓ 검출
양산천 유입땐 농도 더 높았을 듯
- 다이옥산 공정 도입 업체 조사 중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는 최근 경남 양산시 물금취수장 원수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국제신문 지난 21일 자 1면 등 보도)을 일부 업체가 계획적으로 양산천에 흘려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여기에 업체가 다이옥산을 배출할 때의 농도는 지난 7일 검출된 8000㎍/ℓ(먹는 물 수질 기준 50㎍/ℓ)보다 훨씬 높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양산천의 다이옥산 오염이 하수처리 전부터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계획적 방류에 무게
양산시는 동면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는 공장폐수의 양이 하루 2500~3000t수준이라고 25일 밝혔다. 양산시에 따르면 이 하수처리장의 하루 처리용량은 9만2000t가량이다. 대부분(9만t)이 생활하수이며, 극히 일부분의 공장폐수가 동면하수처리장으로 들어온다. 동면하수처리장 유입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활하수에서 다이옥산이 검출될 가능성은 사실상 없다. 다이옥산은 섬유·피혁·전자업체 등에서 주로 사용하는 물질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 7일 동면하수처리장의 방류수에서 8000㎍/ℓ의 다이옥산이 검출됐다는 점이다. 동면하수처리장에서는 미생물을 이용한 일부 수질 정화작업만 진행되기 때문에, 다이옥산은 걸러지지 않지만 공장폐수는 생활하수와 섞여 희석된다. 희석된 물에서 8000㎍/ℓ에 달하는 다이옥산이 검출됐기 때문에 공장폐수에서는 이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다이옥산이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부산경남생태도시연구소 최인화 실장은 “8000㎍/ℓ는 이미 공장폐수가 생활하수와 희석된 뒤에 나온 수치다. 공장폐수에는 이보다 훨씬 더 높은 농도의 다이옥산이 포함돼 있었을 것”이라며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된 물의 다이옥산 농도가 얼마인지 아직 알 수 없는데, 이 부분을 우선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린포스트코리아 이한 기자
현재 조사를 진행 중인 양산시 역시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다. 양산시 관계자는 “하수처리장 방류수보다 유입수의 다이옥산 농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라며 “정확한 내용은 현재 낙동강유역환경청 등과 진행하는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업체가 배출 가능성 작아
전문가는 양산천 인근의 여러 업체가 다이옥산을 조금씩 흘려보냈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 양산천 인근 업체 중 다이옥산을 이용한다고 신고한 업체가 없을뿐더러, 여러 업체가 동시에 다이옥산을 미량으로 방류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여러 업체가 서로 짠 듯이 오염물질을 조금씩 배출할 가능성은 없다”며 “특정업체가 집중적으로 배출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인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최근 새로 다이옥산을 사용하는 공정을 도입한 업체가 있는지 조사를 진행 중이다.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
전수조사 중에도 낙동강 다이옥산 계속 검출
양산하수처리장 방류수, 호포대교 인근서 계속 나와
- 산막산단 전 업체 폐수 검사
- 상황따라 대상 확대 논의 중
- 환경단체 “근본대책 세워야”
경남 양산 물금취수장 인근에서 발암물질인 1,4-다이옥산이 처음 나온 지(국제신문 지난 21일 자 1면 등 보도) 20여 일이 지났지만 계속 다이옥산이 검출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낙동강유역환경청(이하 낙동강유역청)과 양산시 등이 양산천 인근 산막산단 등을 대상으로 배출원을 집중적으로 찾아내고 있는데도 다이옥산이 양산천을 통해 낙동강으로 계속 흘러들어온다는 의미여서 충격을 더한다.
26일 부산시상수도사업본부에 따르면 지난 25일 양산하수처리장 방류수에서 3487㎍/ℓ(먹는 물 기준 50㎍/ℓ)의 다이옥산이 검출됐다. 시상수도사업본부 조사 결과 양산하수처리장 방류수에서는 지난 20일에도 5860㎍/ℓ의 다이옥산이 나왔으며, 22일(5091㎍/ℓ) 23일(6237㎍/ℓ) 24일(2732㎍/ℓ)에도 연이어 검출됐다. 지난 7일 검출량(8000㎍/ℓ)에는 못 미치지만 대량의 유해물질의 계속 나온다는 게 문제다. 양산하수처리장 하류의 호포대교 인근에서도 지난 20일(337㎍/ℓ) 22일(2673㎍/ℓ) 23일(1988㎍/ℓ) 24일(1640㎍/ℓ) 25일(1788㎍/ℓ) 등 꾸준히 나왔다.
물금취수장에서 미량의 다이옥산이 처음 검출된 시점은 지난 2일이다. 시상수도본부는 다이옥산을 포함한 양산천 물이 낙동강 합류지점보다 상류에 있는 물금취수장으로 역류해 이같이 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분석한다. 다행히 물금취수장에서는 다이옥산이 지난 5일 이후 나오지 않고 있지만, 역류 현상이 다시 발생한다면 현재도 양산천을 중심으로 다이옥산이 계속 검출되는 만큼 물금취수장으로 다이옥산이 포함된 물이 흘러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부산시민의 식수원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자 낙동강유역청은 지난 22일부터 양산천 인근 산막산단 일대 업체를 대상으로 다이옥산 방류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양산시 역시 산막산단 내 업체를 전수조사했다. 이처럼 관계 기관이 다이옥산 검출 업체를 찾기 위해 현미경 조사를 진행하는 와중에도 다이옥산이 계속 양산천으로 흘러나오고 있다는 뜻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환경운동연합 민은주 사무처장은 “정부 조사가 진행되는데도 계속 다이옥산이 검출된다는 점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며 “최대한 빨리 다이옥산 배출원을 찾아 부산시민이 안심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낙동강유역청 관계자는 “26일 기준 산막산단 27개 업체의 폐수 시료를 채취했고, 본격적인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조사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경남지역 환경단체는 재발 방지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부산·김해양산·마창진·경남환경운동연합은 26일 공동 성명을 통해 “2009년 대구 다이옥산 파동, 2018년 과불화합물 사건을 겪으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은 여전히 없다”며 “유해물질이 검출됐을 때 시민에게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공유하는 절차를 만들고, 하수처리장 방류수에 다이옥산 기준을 마련하는 등 낙동강 원수를 깨끗하고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부산맑은물범시민대책위원회는 27일 낙동강유역청 앞에서 ‘낙동강 하류 발암물질 1,4-다이옥산 검출 사태 원인규명 및 근본적 대책 수립’ 기자회견을 연다. 김성룡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
일본 호주 공동연구팀 "기후변화 충격, 해수면보다 심해에서 더 크다"
기후변화가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이 해수면보다 심해에서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일본 훗카이도대학과 호주 퀸즈랜드대학 공동연구팀은 25일(현지시간) 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심해가 해수면보다 온난화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1955~2005년 사이에 ‘기후변화 속도’(climate velocity)가 해수면보다 수심 1000m 이상 심해에서 2~4배 더 빨랐다고 밝혔다. 기후변화 속도는 생물종이 서식에 필요한 최적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이동하는 속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속도가 빠를수록 생물 다양성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는 뜻이다.
해양의 기후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논문에 따르면, 지금 당장 탄소 배출량이 급감하더라도 2050년 수심 200m~1000m 구간의 기후변화 속도는 현재의 10년당 6㎞에서 10년당 50㎞로 7배 이상 빨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해수면에서의 기후변화 속도는 현재보다 절반가량 느려질 것으로 예측됐다.
공동연구팀의 호르헤 가르시아 몰리노스 훗카이도대학 교수(기후생태학)는 “우리 연구는 심해의 생물다양성이 훨씬 더 큰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굴뚝산업, 녹색 옷을 입다
ㆍ정유·화학업계 ‘친환경 바람’
SK종합화학, 친환경 제품 확대
효성, 온실가스 배출 20.5% 감축
한화솔루션은 ‘탈화학’ 업종 전환
SKC, 플라스틱 재활용 적극 나서
“인류와 환경에 동시에 필요한 산업이 되지 않으면 화학산업은 미래에 생존하기 어렵다.”
지난 20일 나경수 SK종합화학 사장이 구성원들과의 온라인 간담회에서 “화학산업이 미래에도 생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내놓은 말이다.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문제가 전 세계적 화두가 되고, 친환경 투자 수요가 늘어나는 시대에 폐플라스틱 이슈 등 환경문제와 밀접한 화학산업은 완전히 탈바꿈하지 않으면 존속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SK종합화학은 현재 20% 수준인 친환경 제품 비중을 2025년까지 70%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수립하고 이를 위해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일 수 있는 고기능성 소재, 재활용을 쉽게 하는 단일포장 소재 등을 개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플라스틱 소재와 제품을 생산하고, 생산 과정에서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주범으로 여겨졌던 대표적 굴뚝산업인 정유·화학업계에 친환경 바람이 불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친환경 경영을 주요 경영목표 중 하나로 내세우는 회사가 늘고 있다. 화학섬유, 중공업 등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효성그룹은 올 초 친환경 경영전략인 ‘그린경영 비전 2030’을 내놓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20.5% 감축하기로 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와 배출사업권 관리, 화학물질 규제 대응 등 ‘그린경영’ 업무만 담당하는 그린경영팀도 계열사마다 마련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허세홍 사장 취임 후 ‘업계 최고의 경쟁력을 기반으로 가장 존경받는 에너지·화학 기업이 되겠다’는 비전과 함께 친환경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도 2030년까지 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그린밸런스 2030’ 전략을 추진 중이다.
아예 화학에서 탈피해 친환경 가치를 전면에 내세운 신사업으로 주력업종을 전환하는 화학기업도 생겼다. 한화케미칼과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가 합병해 지난 1월 출범한 한화솔루션은 회사명에서 ‘화학’을 빼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했다. 회사의 주력사업도 화학에서 태양광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화솔루션의 지난 1분기 태양광 부문 매출은 9057억원으로 케미칼 부문 매출(8304억원)을 넘어섰다. 영업이익도 태양광 사업 호조의 영향으로 전년 동기 대비 62% 증가한 1590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화학업계 실적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상태에서 거둔 깜짝 실적이다.
바스프 등 글로벌 화학사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글로벌 화학업계에서 시장 주도권 경쟁이 시작된 플라스틱 리사이클링(재활용)에도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SKC는 한국화학연구원, 울산시 등과 양해각서(MOU)를 맺고 잘 찢어지거나 늘어지는 일반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약점을 극복한 고강도 바이오플라스틱 제품화 및 실증산업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이날 밝혔다. LG화학은 지난 7일 ‘화학을 뛰어넘는 뉴 비전’을 선포하고 석유화학부문에서 이산화탄소 저감과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롯데케미칼도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재생 폴리에스터(rPET)를 생산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이 만든 rPET는 롯데그룹 계열사와 글로벌 기업에 공급돼 의류나 신발 소재로 쓰이고, 수명이 다한 옷과 신발은 rPET 원료로 재활용하는 순환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③마사 누스바움 “코로나가 드러낸 편견과 혐오? 그 둘은 한 번도 숨겨진 적이 없다”
우리의 감정은 온전히 사적이지 않다. 사회의 가치가 반영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에 박혀 있던 혐오 또한 세분화되어 분출되고 있다. 그리고 연민과 보살핌, 성찰도 자리를 비집고 들어섰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성찰의 출현이 편견과 혐오를 넘어 사랑의 정치로 가는 발판임을 강조한다. 이번 회에는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어떤 가치를 가져가야 할지, 안전과 자유, 그리고 정의에 대해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시카고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4월23일 보내온 e메일 답변이다.
세계적인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교수는 ‘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 속 혐오와 차별의 문제를 지적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정의를 이야기한다. 2017년 5월 미국 시카고대 로스쿨의 연구실에서 ‘세계 여성 지성과의 대화’ 기획 당시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누스바움. ⓒ 아담 싱스인더마운틴
인간의 ‘동물과 다르다’는 인식
약자들에게 ‘동물적 특성’ 투사 코로나 위기는 혐오 강화시켜
안희경(이하 안) = 코로나19 위기는 경제위기, 정치위기, 그리고 윤리위기로까지 번졌습니다. 이 위기 속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다가온 장면은 무엇인가요. 삶 속에서 마주했던 역사적 사건들에 견주어 현재의 위기가 당신에게 다가오는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마사 누스바움(이하 누스바움) = 그동안 꽤나 평온한 삶을 살아왔구나 하고 여깁니다. 그 순탄한 시간 속에서 일상의 모든 것이 가장 거대하게 뒤틀어졌던 시간은 베트남전쟁 기간이었어요. 그 속에서 일어난 문화적 붕괴는 사회에 대한 믿음과 타인에 대한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그때의 위기는 지금의 위기와 매우 다릅니다. 베트남전쟁은 명백히 잘못된 참사였고 어쩌면 피할 수 있던 재난이었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종결될 수도 있었을 거고요. 이 모든 이유로 당시 우리 세대는 명확한 역사적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군대 징집을 거부하고 항의했어요. 그 전쟁에서 실제 벌어진 최악의 상황 중 하나는 중산층 남성 대부분이 징집에서 제외됐다는 겁니다. 그들은 쉽게 열외로 빠졌습니다. 전쟁의 짐은 오로지 노동계급과 비주류 남성들에게만 지워졌죠. 제 주위에서 실제 징집된 사람은 단 둘뿐이었습니다. 여성인 저 또한 그 징집에서 면제됐고요. 그러니까 개인에게 부과된 위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당시 우리들은 계급별로 격리되었죠. 그 부조리만큼 위험에서 비켜난 이들이 져야 하는 항의의 의무는 더 컸습니다. 문화 전체를 가로질러 격변이 일었습니다. 청년들은 전쟁을 지속시키는 ‘군사·산업 복합체’에 맞섰습니다. 나이 든 세대는 저항하는 청년들을 힐난했고요.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자식들은 부모들의 사고를 경멸했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인도차이나반도에서는 베트남인들과 미국인들이 아무런 당위성 없이 죽어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베트남전쟁이 실수였다는 것과 국민의 군대가 국민을 속였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현재의 위기는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맞닥트린 코로나19 위기는 거짓과 게으름에서 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누구나 쉽게 진실한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지만 여전히 그렇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 위기는 우리 사회를 50년 전만큼이나 양 갈래로 찢어놓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위기 속에서 함께합니다. 저는 우리를 에워싸는 공동체 정신을 보며 놀라움을 느끼고 있어요. 여러 서로 다른 사회단체들이 연대하며 서로의 요구를 해결하고자 애씁니다. 제가 살고 있는 시카고시의 슬로건이 매우 상징적이죠. ‘Together Apart(따로 함께하자).’ 텔레비전 공익광고에 각각 작은 상자 속에 들어 있는 100여명의 시카고 시민들 얼굴이 나옵니다. 나이도 다르고 인종도 다르지만 함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요. 그러니까 정확히 분리된 상자 안에 각자가 떨어져 있는 상황을 동의하며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또 하나의 상징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호숫가 정경입니다. 시카고 시내에 있는 제 아파트에서는 아름다운 미시간호수가 내려다보입니다. 물가를 따라 자전거길과 조깅 트랙이 둘러져 있고 공원이 있죠. 시카고 시민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장소입니다. 지금 그곳엔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장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거죠. 제가 증언합니다. 베트남전쟁 기간에는 이러한 화합된 모습은 없었습니다.
미국 내의 불평등한 조건 인한
인종별 불균등한 사망률 주목
대중들, 의문 갖고 비판하게 돼
안 = 팬데믹은 우리의 숨겨진 편견과 혐오를 드러냈습니다. 서구에서는 아시아 이민자들에 대한 증오가 물리적인 폭력으로 나타나고,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막 퍼지기 시작한 아프리카에서 온 방문객들을 노골적으로 차별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뉴스는 점점 더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왜곡하여 이득을 취합니다. 혐오, 어떻게 작동하나요.
누스바움 = 당신은 나와는 매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편견과 혐오가 숨겨져 있다고 말하니까요. 제 인생을 통틀어 편견과 혐오가 숨겨져 있던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습니다. 특히 이 미국에서는 더더욱요. 제가 소녀였을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살해당했어요. 그들은 동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도 투표할 권리도 누릴 수 없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받는 이들은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유대인은 로펌에서 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요. 대부분의 여성들은 대학으로부터 입학을 거부당했고, 대부분의 직장에서 경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게이와 레즈비언은 정체성을 숨겨야 했으며, 악의적인 핍박을 받았죠. 이 중 어떤 부분은 조금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이런 형태의 편견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은 매우 다른가요? 제가 한국을 방문했던 2008년에 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여성 교수들이 제게 매우 불평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향한 편견이 결코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그 후에도 성적지향과 법에 대한 책이 한국에서 번역될 때 서문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발행인이 한국에서 일어나는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다룬 기사들을 제게 보내줬습니다. 기사를 읽으며 저는 한국 상황이 매우 나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고 당사자들 또한 자신들을 향한 혐오가 결코 숨겨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제가 제2의 조국이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인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슬림에 대한 편견은 대놓고 자행됩니다. 2002년 대량학살을 유발했던 혐오 방식은 지금도 떳떳이 살인을 자행하는 명분으로 더욱 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겠죠. 만약 이 세상에 어느 나라라도 편견과 혐오가 완벽히 숨겨져 있는 곳이 있다면 저는 정말이지 놀라움 그 자체로 잠식되고 말 거라고요.
‘사랑의 정치’ 향한 선결 과제
자기 비판·성찰 정치의 촉발
안 = 2002년 인도 구자라트주에서 벌어진 대학살은 성지순례를 다녀오던 힌두교도들이 열차 화재로 숨지며 일어났습니다. 이슬람교도가 불을 낸 것이라고 힌두교도들이 선동했고, 이들은 3개월 동안 1000명 넘는 이슬람교도를 살해하는 무차별 보복을 자행했습니다. 이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분노를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리는 정치 방식은 대중정치에서 점점 더 교묘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민주주의마저 왜곡하는 집단 혐오가 대중의 마음속에서 위력을 발휘할까요.
누스바움 = 두 가지 차원의 혐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는 몸에서 배출되는 분비물, 노폐물에 대해 느끼는 혐오입니다. 대소변, 피, 콧물 등 우리의 동물성에 대한 거부 표현으로 모든 사회에서 작동하죠. 시체는 확실히 혐오스럽습니다. 이 혐오에는 일종의 원시적인 두려움이 있어요. 거기에 ‘나는 동물과 다르다’는 차별의식을 갖고 동물적 본성을 혐오하는 겁니다. 이런 사고 속으로 또 다른 종류의 혐오가 자리합니다. 문화 차원의 혐오로 저는 ‘투사 혐오(projective disgust)’라고 불러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부패, 냄새, 분비물 같은 역겨운 특성을 우리 사회의 특정 집단에 투사하여 그들을 종속시킬 전략으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혐오는 대체로 약한 집단을 향합니다. 그들을 동물적이라고 묘사하죠. “동물적인 성적 취향은 그들에게나 있지 나한테는 없다. 고약한 냄새는 그들에게서만 난다!”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죠. 미국 백인들은 흑인들에게 고약한 냄새가 난다며 동물로 취급했지만 사실 모든 인간은 다 비슷비슷한 냄새를 풍깁니다. 이렇게 타인을 종속시키려는 전략으로 작동하는 혐오는 흑인, 여성, 성소수자 등을 동물적인 존재로 만들면서 모든 인간이 갖는 동물성을 부정해왔습니다. 코로나19 위기는 몇 가지 혐오들을 다시금 강화시켰어요. 당신이 언급했듯이 미국에 있는 동아시아계 사람들은 편견과 낙인의 대상이 되었죠. 이는 지난 20여년 동안 두드러지지 않았던 혐오입니다. 전에는 이렇게까지 편견과 낙인이 심각하지 않았어요. 미국의 대통령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지금의 위기 속에서 어떤 편견은 오히려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편견과 혐오가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대중들이 의문을 갖고 비판하도록 작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시카고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매우 불균형적으로 바이러스에 취약한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흑백 분리 거주가 뚜렷이 자리 잡은 시카고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더 많이 죽어가는 사실이 드러났죠. 불평등한 조건이 만들어내는 현상에 대해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미국 전역에 걸쳐 매우 의미 있는 대화를 촉발시켰습니다. 주거지와 주거 상태, 건강보험 가입 여부, 그리고 영양가 있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접근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얼마나 건강에 근본적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고, 이에 대한 비판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시카고와 일리노이주에서 보는 것은 혐오 정치의 이면입니다. 이는 자기비판 정치라고 불릴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의 정치를 위해 반드시 선결되어야 하는 자아성찰 정치라고 할 수 있어요.
다른 위기 때와 코로나의 차이
취약함 나누며 공감하는 몸짓
‘모두가 하나의 세계 속의 일부
다같이 이겨나가자’는 메시지
안 = 우리 모두가 바이러스 앞에서 취약해졌듯이 인간은 모두가 연약함을 갖고 있다는 깨침이 확산된다면, 이 코로나19 위기에서 혐오 정치에 대한 성찰이 일어나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현재 벌어지는 세대 간의 골은 안타깝습니다. 미국 젊은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베이비부머 제거제)’라고 부릅니다. 이는 노년 세대에 대한 내재된 혐오 아닐까요. 노인 혐오에서 읽히는 사회적 심리는 무엇일까요.
누스바움 = 저는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긴 누가 제 앞에서 그 말을 쓰겠어요! 확실히 제 얼굴을 맞대고는 그런 용어를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 노인,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 질색하는 그런 종류의 혐오는 있습니다. 이 또한 결코 숨겨져 있지 않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낙인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과 동물성에 연결돼 있습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실제로 죽음에 가까이 있죠. 그리고 이 죽음을 직접적으로 대표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혐오에 비해 문화적인 요인이 적게 작용합니다. 그냥 그 주름진 몸이 나의 미래와도 연결된 죽음의 그림자이기에 나와 분리시키는 직접적인 반응으로 표현됩니다. 반면에 소수자 그룹이 동물성과 죽음을 상징하고, 그로 인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들은 동물일 뿐이다’라는 서사를 품은 일종의 문화적 판타지를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편견을 거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이 든 몸에 대한 낙인이 모두 사실인 것도 아닙니다. 노년 세대의 몸 역시 꽤 괜찮게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대통령 후보인 조 바이든은 78세입니다. 그와 경쟁했던 샌더스는 79세이고, 하원의장인 낸시 펠로시는 80세입니다. 그나저나 만약에 그 끔찍한 표현인 ‘부머 리무버’가 실제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에요. 미국에서는 고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을 80세 이상으로 보는데, 이들은 베이비부머가 아닙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기에 73세인 트럼프, 그리고 5월6일에 73세가 된 저야말로 베이비부머라고 불릴 수 있는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이죠.
안 = 코로나19로 많은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가 인간으로서 취약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감염병 재난 겪으며 현실 속 ‘차별’ 부각…사회적 성찰의 계기 될 것”
마사 누스바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드러낸 혐오와 편견이 이 세계에서 한순간도 숨겨져 있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종교적 혐오가 대량학살로 번졌던 2002년 3월 인도 구자라트주의 힌두교도들이 아마다바드의 거리에서 이슬람교도들과 대치한 채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태원 클럽 관련 코로나19 확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하던 지난 1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코로나19인권대응네트워크 등 전국 시민사회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코로나19와 관련한 혐오 조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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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첨예해진 ‘자유와 안전’ 문제…안전 위한 개인 사생활 희생,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 논의해야
향후 사회 위해 지금 구현해야 할 정의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역량 개발하도록 존중하는 것 모든 이가 삶의 기본 보장받는다면 두려움과 혐오 줄어…사회안전망 강화 중요
누스바움 = 저는 저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자비로움을 봅니다. 오늘의 위기에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은 확실히 베트남전쟁 때와는 다릅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자비로움이 없었어요. 심지어 미국 군인들이 죽어나가고 있어도요. 목숨을 잃은 베트남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자비도 베풀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기념관에는 단 한 명의 미군 전사자 이름도 쓰여 있지 않고, 얼마나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죽었는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저는 매일매일 텔레비전과 신문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이들에게 전하는 따스한 말과 마주합니다. 가족들이 전하는 감동 어린 기억들과 함께요. 바로 이 자비로움 속에 모두가 취약한 존재라는 인식이 함께 있습니다. 좋은 예 중 하나는 CNN 방송인 크리스 쿠오모의 모습입니다. 그는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말 심각한 상태였어요. 거의 3주 동안 앓았는데, 매일 밤 자기 집 지하실에서 방송을 했습니다. 가족들과는 격리된 상태였죠. 오한이 나서 몸을 떨고 땀을 줄줄 흘려도 사회적 거리를 지키며 혼자 있었어요. 크리스는 방송을 통해 모두에게 자기가 얼마나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지 고백했습니다. 이는 연민과 포용의 몸짓이었습니다. 취약함을 함께 나누며 공감하고자 하는 몸짓은 요양원에서도 보이고 있습니다. 매일 밤 텔레비전 뉴스에는 요양원에 있는 85세 이상 노인들 사이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그 속에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일부로 살아가며 다 같이 이겨나가야 한다는 메시지가 함께합니다. 저는 이 바이러스가 평소에 싫어하던 사람들에게도 동정심을 갖게 만드는 그 어려운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특히나 싫어하는 정치인 중 한 사람이 보리스 존슨인데요. 저는 제가 그에게 어마어마한 자비심을 보내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예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심지어 침대에서 나오기도 전에 구글 검색창에 적습니다. ‘보리스 존슨 건강.’ 이런 일이 생겼습니다. 어쩌면 제가 그를 어릿광대일지언정 뼛속 깊이 악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서였겠죠.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힘에 타격을 입은 사람들에게 공감하지 않을 방법이란 없습니다. 연민의 마음을 거부하기란 여전히, 정말로 힘이 듭니다.
안 = 우리는 종종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라는 위험스러운 이분법으로 혼란을 겪습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성공적인 코로나19 위기 대응에 관해 서구 언론들은 유교적 전통에서 나온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국가의 성격이기보다 ‘국가와 시민들이 어떠한 관계를 맺어나가야 하는가’ 아닐까요.
누스바움 = 저는 서구 언론에는 멍청한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봅니다. 이 문제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유교적 가치”라고 단정하지 못합니다. 전통을 공유하며 산다고 해서 그 사회 속에 어떤 하나의 사상만 있다고 치부할 수 없는 것처럼요. 꽤 분명하게 공자는 소크라테스만큼 난해합니다. 두 분 모두 직접 쓴 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전통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풍부해서 아주 많은 종류의 정치적인 사상을 담고 있어요. 아시아 사람들의 지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에 대해 무엇이다라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분야인 철학에서 아시아의 전통에 대해 무지하다는 점을 느끼며 자주 고통받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교토상을 수상할 때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고요. 저는 아시아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빈약한 인식을 2021~2022년 열리는 ‘비서구 철학과 법’에 관한 워크숍에서 바로잡고자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의 관계라는 주제는 엄청난 정치철학적 질문입니다. 이곳에 풀어놓기 시작할 수도 없을 만큼 아주 많은 풍부하고 흥미로운 답들이 비서구와 서구 전통에 있습니다. 저는 독자들이 차분히 비서구와 서구의 전통, 그리고 그 전통에서 나온 수많은 위대한 저작들을 공부하시기를 권합니다. 서구와 비서구를 모두 공부하고 그런 다음 스스로의 생각을 찾아가는 길로 나서기를 바랍니다. 저는 제 책도, 제 수업도 저만의 생각으로 채워내지 않습니다.
안 = 현재의 위기에서 자유와 안전은 충돌합니다. 안전을 위해 개인정보가 공개되고 있고요. 사회학자들은 사태가 진정되더라도 국가의 통제 관행은 퇴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지난 40년간 시장 주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시장의 힘은 우리의 소비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일상생활이 빅데이터가 되어 정부와 기업으로 흘러가죠. 자유와 안전의 균형,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누스바움 = 사람들이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알아차리고 있나요? 이것은 지금까지 약 20년 동안 법학계에서 가장 많이 논의되고 있는 문제 중 하나입니다. 법원도 디지털 시대에 개인정보를 보호할 권리를 정의하기 위해 애씁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영장 없는 스마트폰 조사를 헌법으로 금지했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투항하고 있는 개인정보에 대해 세심하게 인지해야만 합니다. 그나마 개인 의료정보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 중에서 가장 덜 심각한 부분인데요. 왜냐하면 이 분야의 움직임은 꽤 잘 파악되고 있고, 우리들도 잘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법이 이 분야의 우리들 권리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독감 예방주사를 놓을 때도 접종자의 권리를 상세히 설명하는 양식에 서명하지 않으면 주사를 놓지 못합니다. 반면에 마케팅 부문에서 소비자들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여 축적하는 방식은 더욱 교활하여 방심할 수 없습니다. 온라인 구매 정보부터 소셜미디어 기록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속 정보까지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죠. 우리는 이를 걱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저는 이런 우려 때문에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소셜미디어도 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죠.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요. 우리는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세심하고 더 나은 권리를 보장하는 법률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각 나라는 안전을 위해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어느 정도까지 희생할지에 대해 논의해야만 합니다. 보안 카메라는 있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이 카메라들이 꽤 많은 범죄를 감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사생활 보호를 기대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안전과 자유의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밟아나가야 할 과정이 많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안 = 만약에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고자 기존의 이윤 중심 질서를 고쳐나가겠다고 여론을 모은다면, 지금의 위기는 되레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사회적 정의는 무엇일까요.
누스바움 = 저는 시장경제를 내던져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는 경제성장의 큰 동력이고 빈곤과 불행으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냈습니다. 우리의 평균수명도 1900년보다 두 배 길어졌고요. (저는 경제학자 앵거스 디턴이 쓴 <위대한 탈출>을 매우 좋아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잘 규제할 필요가 있죠. 확실히 미국은 건강보험 문제에 있어서 잘못해오고 있어요. 그리고 앞서 흑인에 대한 편견이 낳은 결과가 차별에 대한 성찰을 촉발했듯 사회 여러 분야에 걸쳐 정의에 대한 논쟁이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구현해야 할 정의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역량을 개발하도록 존중하는 것입니다. 정의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은 제가 주장하는 역량 순위에 있습니다. 인간의 역량을 창조하는 조건을 10대 핵심 역량으로 정리했지요. 평균수명을 누릴 수 있는 조건, 건강을 보호할 권리,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신체 보전, 자존감을 지키며 타인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조건 등입니다. 모든 항목에서 최저 기준을 채운다면, 그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로 불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는 질 낮은 교육을 받아도 되고, 일할 기회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동안, 평등을 추구하는 일은 어떤 분야에서건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인간의 역량을 개발하기란 참으로 복잡한 일이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매우 품위 있을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서는 자못 끔찍할 수 있거든요. 저는 노동계급의 삶이 반드시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틈에서 자랐어요. 하지만 그들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하면서도 엄청나게 성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이었답니다.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품격을 누리는 삶의 기본을 보장받는다면 세상의 두려움은 줄어들 겁니다. 두려움이 줄면 혐오도 줄어들죠. 우리 자신이 취약할 때 다른 집단에게 그 탓을 돌리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거든요.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고,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저임금을 보장하고, 모두가 교육받을 기회를 누리는 안전망이 갖추어진다면 불안은 훨씬 줄어들 겁니다. 요컨대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또한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각 분야 활동가들을 뒷받침하는 용감한 지지자가 됩시다.
안희경 재미저널리스트
바다 가린 초고층 빌딩·숙박시설… 부산 북항 재개발 몸살
2008년 국내항 1호 재개발 착공하면서
원도심 고려 않고 항구 재개발만 고집
도로따라 80∼280m 가로형 건물 빼곡
200~280m 높이 아파트 4천 가구 입주
부산시 “2단계는 원도심 재생 고려”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부산 북항 1단계 구간 조감도. 1단계 기반시설은 2022년 완공 예정이다. 부산시 제공
국내 최초 근대 무역항인 부산 북항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부산 영도·중·동·남구로 둘러싸인 이곳에 지역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고층 건물 건축이 허가되면서 막개발이 우려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 침략 거점으로 부산만에 조성된 북항은 한때 부산 해상무역의 중심이었지만 부산신항 개항 뒤 쇠락해 항만 재생이 추진돼왔다. 그러나 고층 건물에 더해 사실상 아파트인 레지던스 3천여가구 건설도 기정사실화되면서 부산 옛도심과 항구가 단절되고 옛도심 쪽 조망권을 심각하게 해칠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 북항 막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모임이 꾸려지는 등 반대 운동도 본격화하고 있다.
■ 1.8㎞ 구간에 고층빌딩
스카이라인 부산시와 부산항만공사의 말을 종합하면, 부산 중·동구의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 구간 안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앞 상업·업무지구 4만5855㎡에 3210실 규모, 200~280m 이하 높이 숙박시설 3개가 주 진입도로인 충장대로를 따라 나란히 들어선다.
부산 협성종합건업의 계열사인 협성르네상스가 첫 테이프를 끊었다. 2017년 1월 1028실 규모에 높이 200m, 61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허가를 받아, 현재 공정률이 50%를 넘었다. 내년 3월 완공 계획으로 최근 ‘협성마리나 지(G)7’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2차 분양을 했다.
이어 한국투자증권 컨소시엄인 부산오션파크가 지난달 23일 1221실 규모에 높이 213m, 59층 생활형 숙박시설 건축허가를 받았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여성 직원 성추행을 인정하고 사퇴한 날이다. 동원개발 컨소시엄도 생활형 숙박시설 645실과 관광숙박시설 316실 등 961실 규모 72층짜리 숙박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 옛도심~항구 조망권 막는 아파트·레지던스 숲
건축허가를 받은 ‘생활형 숙박시설’은 흔히 레지던스로 불린다. 모텔·여관 등과 달리 취사시설을 둘 수 있고 분양을 받을 수 있어 집주인이 거주하거나 세를 줄 수 있다. 아파트와 별 차이가 없다. 부산시 관계자는 “레지던스는 건축법상 아파트가 아니며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시설이다. 완공되면 소유자가 숙박업 영업신고를 하고 영업을 해야 한다. 아파트로 사용하면 불법인데 사실상 단속이 힘들다”고 털어놨다. 최형욱 부산 동구청장은 “상업·업무지구에 아파트를 불허한 것은 상권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도모하고 공공재인 항구가 부동산 투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레지던스가 허가되면서 북항이 부자들의 주거공간이자 부동산 기획상품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부산세관 옆 부산 북항 복합도심지구 2만7천㎡에는 아예 일반 아파트가 들어선다. 높이는 최고 200m다. 그나마 7만4천㎡ 규모였던 북항 복합도심지구가 지난해 12월 기본계획 변경을 거쳐 크게 줄면서 입주 아파트 규모도 3천여가구에서 1천여가구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최소 10개 이상 고층 건축물이 충장대로 부산세관 옆 부산 북항 복합도심지구~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1800m 구간에 80~280m 높이의 오목한 브이자 모양으로 나란히 들어서면서, 조망권을 크게 해칠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조망권을 확보한다며 1800m 구간 가운데 560m를 바다와 옛도심이 서로 보이는 통경축(조망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시각적으로 열린 공간)으로 설정했다지만, 통경축의 높이도 80m 수준으로 옛도심 쪽 구봉산(해발 405m) 중턱에 있는 산복도로인 망양로까지 올라가야 북항을 볼 수 있다. 통경축을 뺀 1240m 구간은 최대 높이가 140~280m여서, 구봉산 정상에서도 북항이 잘 보이지 않는다. 바닷가에 들어선 고층 건물들이 수많은 옛도심 쪽 거주자들의 조망권을 완전히 빼앗는 셈이다.
■ 옛도심 재생을 고려하지 않은 재개발
역사적·문화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초고층 건축물들의 북항 점령은 12년 전으로 올라간다. 2008년 10월 도시관리계획 변경 결정 고시를 통해 국토해양부는 부산시와 협의를 거쳐 부산 북항의 건축물 높이를 지금처럼 정했고, 복합도심·상업·업무지구를 북항 안에 배치했다. 상업·업무지구에는 단독·공동주택은 불허하되 호텔 등 숙박시설은 허용했다.
논란이 되는 레지던스는 2012년 1월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숙박시설에 편입되며 상업·업무지구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 법령 개정에 따른 변화였다지만, 해양수산부는 부산시와 협의를 거쳐 여러차례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통해 항구 모습을 조정하면서도 충장대로 앞 건축물 높이를 조정하지 않았다. 특히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개정 이후라도 2018년 11월 이전에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통해 불허 건축물에 레지던스를 넣었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협성르네상스와 동원개발 컨소시엄, 부산오션파크는 각각 2012년 12월, 2018년 12월에 상업·업무지구 땅을 매입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레지던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바로잡을 시기를 놓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 10월 해운대해수욕장 앞에 최고 101층 규모 레지던스와 85층 아파트가 함께 들어서는 ‘엘시티’ 공사가 시작됐고, 이후 엘시티의 실소유주 이영복씨가 정·관계 로비 혐의로 구속되면서 엘시티는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레지던스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는 항변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김태만 한국해양대 교수는 “부산 북항을 재개발이 아니라 재생 관점에서 보존하기 위해 민관이 2012~2013년 30여차례 라운드테이블을 열었고 나름 성과는 있었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바로잡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부와 부산 북항 1단계 사업 시행자인 부산항만공사는 투자비용 회수를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도 항변한다. 2008년 착공해 1~4부두와 중앙·여객부두 119만㎡와 해면부(바다) 34만㎡ 등 153만㎡에 공원·도로·공공시설 등 기반시설을 2022년까지 완공하는 북항 1단계 사업비는 2조388억원으로, 국비 3811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비는 부산항만공사가 부담한다.
■ 부산시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어”
시민단체들은 레지던스와 아파트 허가를 취소하거나 스카이라인을 낮추라고 주장한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회의는 성명을 내어 “부산역 주변에 아파트들이 우후죽순 솟아나 도시 경관을 독점하려 한다. 부산 북항에 또다시 주거시설을 배치하는 것은 시민을 향한 배신 행위”라고 비판했다. 부산참여연대는 “부산시가 북항 재개발을 통해 어떻게 부산의 미래 100년을 먹여 살리겠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확정된 토지용도와 지구단위계획에 맞게 적법한 절차를 밟아서 건축허가를 신청하면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김광회 부산시 도시균형재생국장은 “투자비 회수라는 불가피성이 있더라도 북항 1단계 사업은 항구 재개발에만 집중해서 옛도심과 북항이 단절되는 모양새가 됐다. 12년 전 당시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2단계 사업은 옛도심 재생과 연결해 1단계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022~2030년 사이 진행되는 2단계 사업은 자성대 부두, 부산역, 부산진역, 좌천·범일동 일대 220만㎡를 금융·비즈니스·연구개발 중심의 혁신 성장 거점으로 만드는 내용이다.
부산 북항 1단계 재개발 구간에 들어서고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협성마리나 지(G)7’은 1021실 규모 61층이다. 2020년 5월 공정률은 50%다. 내년 3월 완공 예정. 김광수 기자
부산/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이것은 별똥별이 아니다…가공할 우주쓰레기
러시아서 쏜 우주로켓 잔해, 호주 하늘로
목격자들 `유성이다' SNS에 앞다퉈 공유
빅토리안 스톰 체이서(Victorian Storm Chasers) 페이스북 갈무리.
최근 호주의 밤 하늘에 흔치 않은 우주쇼가 펼쳐졌다. 밝게 빛나는 물체가 밤하늘에 갑작스레 나타나 별똥별(유성)처럼 지상으로 낙하하는 광경이 목격된 것.
지난 22일 저녁 해가 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 빅토리아와 태즈매니아 주민들의 시야에 들어온 이 불빛의 정체는 그러나 별똥별이 아니었다. 이날 쏘아올린 러시아 로켓이 대기에 재진입하면서 공기 입자들과 부딪혀 내는 불꽃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즉석에서 이 장면을 찍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했다. 많은 이들이 유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장 많이 공유된 영상 가운데 하나인 ‘빅토리안 스톰 체이서’(Victorian Storm Chasers)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진 영상의 제목이 `유성 목격'(meteor sighting)이라고 돼 있다.
트위터에 공유된 영상.
추적중인 우주쓰레기 2만2천여개
빅토리아천문학회의 페리 블라호스 부대표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낙하 속도가 느리고 각도도 가파르지 않았으며 상당한 양이 낙하 도중에 타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날 오전 10시30분(모스크바 시각 기준, 현지 시각 오후 5시30분) 모스크바 북쪽 플레세츠크 코스모드롬(Plesetsk cosmodrome) 기지에서 `툰드라 넘버4' 위성을 실은 소유즈 로켓을 발사했다. 적외선 망원경을 탑재한 이 위성은 러시아가 미사일 조기경보 시스템의 하나로 발사한 것이다.
블라호스는 이 우주쓰레기는 대기 중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따라서 지상 충돌 위험은 없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반면 존티 호너 서던퀸즈랜드대 천체물리학 교수는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 "로켓 몸체는 대부분 타버렸겠지만 일부 작은 조각들은 지상에 떨어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로켓 잔해의 지상 충돌에 대한 소식은 없지만, 우주 쓰레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장면이다. 현재 미 공군이 추적하는 우주쓰레기(지름 10cm 이상)는 2만2300여개에 이른다./ 한겨레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지구를 보다] 코로나19서 회복되니..中 다시 시작된 미세먼지 공습
사진 왼쪽은 지난 2월 10~25일 중국 우한 지역의 대기, 오른쪽은 지난 4월 20일~5월 12일 같은 지역의 대기. 주황색 부분은 2월 보다 5월의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가 짙은 지역을 의미한다
중국이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가장 먼저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대기 중 오염물질이 점차 예년 수준을 회복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소(Earth Observatory)가 현지 시간으로 26일 공개한 위성 사진은 코로나19가 시작된 중국 우한 지역의 2월 대기의 상태와 4월 말~5월 초의 대기 상태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에서 푸른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5월의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가 2월보다 낮아진 곳이고, 주황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반대로 대기중 이산화질소 농도가 2월보다 높아진 곳을 의미한다.
가장 먼저 코로나19 회복세를 보이는 우한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주황색이 늘어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코로나19로 주춤했던 대기오염이 다시 시작됐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NASA 지구관측소 측은 설명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앞서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도시를 봉쇄하는 등 경제활동을 제한하면서 중국 내 초미세먼지(PM2.5) 농도가 18% 넘게 감소하는 등 대기 질이 크게 개선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코로나19 사태 시작 이전과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 3월의 대기를 비교한 것이며, 봉쇄령이 풀리기 시작한 3월 이후에는 대기 질이 다시 예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NASA 지구관측소는 “아직 격리와 봉쇄가 엄격하게 유지되고 있는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지는 2월보다 5월의 대기 중 이산화질소 농도가 더 줄어들었지만, 이미 봉쇄가 완화되고 경제 회복 단계에 들어선 중국은 대기 오염물질의 농도가 평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산화질소의 농도는 겨울에 높다가 봄과 여름에 조금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 왔는데, 2020년은 설 연휴 직후부터 농도가 낮게 유지되다가 봄이 되면서 다시 높아졌다”면서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면서 이산화질소 농도 수준이 높아지는 시기가 조금 늦춰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산화질소는 석유나 석탄 등을 연료로 쓰는 차량이나 공업단지의 산업시설 등에서 주로 배출된다. 자극성 냄새가 나는 갈색의 유해한 기체로서 과산화질소라 불리기도 하며,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에서 배출된 뒤 빛을 받으면 분리되는 산소원자가 또 다른 산소분자와 결합해 오존을 생성한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한국의 그린뉴딜에 '그린'이 있는가?"
27일 토론회서 "석탄 발전, 제주공항 전면 중단해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약 34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결합한 연대체인 기후위기 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이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을 전면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한 7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정부가 기존에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분보다 훨씬 강한 감축 목표 제시와 더불어 대규모 재정투자, 탄소배출 산업 규제 강화, 민주적인 전환 등이 제시안에 담겼다. 비상행동은 아울러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삭턴발전소 건설을 중단하고, 제주 제2공항을 비롯한 신규 공항 건설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산중공업 등 재정 투자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는 강력한 고용 유지 조건을 부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7일 서울 중구 유네스코회관에서 열린 비상행동의 토론회 '코로나와 기후재난시대, 어떤 '그린뉴딜'이 필요한가'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선철 비상행동 집행위원은 정부가 발표한 그린뉴딜은 애초에 정의로운 전환과 관련 없는 경기부양책에 불과하다고 혹평했다.
한국판 그린뉴딜, 내용 없다
정부와 여당이 그린뉴딜 개념을 처음 공개적으로 제시한 때는 총선 이전인 지난 3월 16일이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탄소제로사회 그린뉴딜을 위한 약속'이라는 이름의 총선 공약을 제시했다. 공약에서 여당은 '2050년 탄소제로 사회'를 목표로 내세웠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안은 전하지 않았다. 이미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해당 내용을 목표로 제시한 상황에서, 정작 중요한 해당 목표 달성 방법은 전혀 내놓지 않았다.
이후 지난달 말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비상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 안정기금 40조 원과 50만 개 일자리 창출을 핵심으로 한 '한국판 뉴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빠졌다는 비판이 일자,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비공개 각료 토론에서 일자리 창출과 외교적 접근 필요성을 근거로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에 그린뉴딜 관련 보고서 제출을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각료들의 격론 끝에 정부는 같은 달 20일 한국판 뉴딜에 '그린뉴딜'을 포함한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그린뉴딜 채택 과정에서 정부는 전환의 비전도, 제대로 된 실행 방안도 마련하지 못했다고 김 집행위원은 주장했다. 국제 사회와 국내 환경단체의 여론에 등 떠밀려, 마지못해 그린뉴딜을 성장 동력의 하나로 집어넣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김 집행위원은 "올해까지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 탄소저감 대책 제출 의무"가 이미 있는 한국이 "더는 녹색전환 과제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점이 그린뉴딜 채택의 배경"이라며 "이런 문제의식이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동기와 맞물려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그린뉴딜 목표가 포함된 한국판 뉴딜의 핵심 방점은 경제성장에 찍혔다는 지적이다.
그린뉴딜=녹색성장?
김 집행위원은 "여전히 정부는 탄소배출 제로의 구체적 목표와 경로도 제시하지 못했다"며 "정부의 그린뉴딜이 일관성 있게 진행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결국 정부의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대응과 사회 불평등 해소를 위한 구조적 개혁과 거리가 먼 경기부양책"일 가능성이 크다며 "기후정의의 가치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2018년경 미국의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당 하원의원, 영국 노동당 그린뉴딜 그룹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 쟁점화한 그린뉴딜은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을 핵심 원칙으로 삼는다.
선진국, 대기업 등 기후위기 책임이 큰 집단이 전환 과정에서 큰 부담을 안아야 한다는 원칙이 기후정의다.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정의로운 전환 원칙이다. 이 같은 철학적 고민에서 출발한 영미권 그린뉴딜 개념과 정부가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이 같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 개념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한 지난 20일,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과 무엇이 다르냐'는 언론 질문에 "녹색성장을 갈아엎자는 게 아니"라며 "지금 시대에 맞게 (녹색성장을) 강화한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답했다. 애초 한국 정부가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은 전환과 거리가 멀다고 추론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린뉴딜을 국제적, 정치적 과제로 제시한 오카시오 코르테스 미국 민주당 하원의원. ⓒwikimedia
"정의로운 전환 위해 기후에너지부 신설해야"
대안으로 김 집행위원은 지난 총선 당시 정의당과 녹색당이 제시한 그린뉴딜 개념을 포괄해 '정의로운 그린뉴딜을 위한 7대 핵심과제'를 제시했다.
이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지난 총선 시기 제시한 그린뉴딜을 위한 26대 세부정책안의 일부다.
해당 과제는 △지구기온 상승 1.5도 제한 목표를 제시한 IPCC 권고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 설정 △재생에너지, 에너지효율화, 친환경 대중교통, 친환경 농업, 생태계 보존을 위한 대규모 재정투자 △재난구호체제 및 공공의료체제 강화 △온실가스 다배출 산업 규제 강화 및 전환 △모든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기여를 보장하는 민주적 전환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노동자와 영세 자영업자 우선 구제 △신규 석탄발전소와 신규 공항 건설 중단 및 고용 유지와 기후보호 조건을 전제로 두산중공업 지원 등이다.
이와 관련해 가장 시급한 과제가 탄소배출 규제다.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지난 2월 5일 환경부에 제시한 한국의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에 따르면, 현재 한국 정부의 탄소배출량 감축 목표는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 7억910만 톤의 75%(최대안)~40%(최소안) 감축이다.
이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5% 감축, 2050년 넷제로'를 제시한 IPCC 목표안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방안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사실상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 배경이다. 한국은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함께 경제 규모 대비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비상행동은 "세계 7위 규모인 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모와 기후정의 원칙을 고려하면, 한국은 더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세워야 한다"며 "2030년에 2010년 대비 50% 이상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2050년 이전에 탄소배출제로를 목표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상행동은 아울러 그린뉴딜이 국정 철학이 되게끔 하기 위해 앞으로 모든 정부 정책과 예산 수립에 기후영향평가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사전 예방조치로 "한국이 이용할 수 있는 총 탄소예산을 설정하고, 기간·연도별 탄소예산을 할당해 매년 관리하는 탄소예산제도"를 마련해야 그린뉴딜이 국정 철학이 될 수 있다고 비상행동은 주장했다. 그린뉴딜이 전환 시대 경제성장의 도구인지, 목표인지를 명확히 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비상행동은 또 산자부, 환경부 등 여러 부서에 흩어진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문을 통합한 '기후에너지부(가칭)'를 신설해 대응 위상을 높여야 한다고 전했다. 또 전 정부부처를 포괄하는 기후위기대응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설치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아울러 노동자와 농민 등 전환 과정에서 소외되기 쉬운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이들의 참여 권리를 보장하고 구체적인 피해 구제책을 마련해야 한다고도 비상행동은 강조했다. 실제 녹색전환을 두고 특히 노동계는 재계 못잖게 우려할 가능성이 크다. 그린뉴딜에 따른 전면적인 전환은 결국 일자리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대희 기자 프레시안
북항 2단계 재개발, 원도심 품는다
부산시 컨소시엄, 사업계획 발표
사진은 부산항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 조감도.부산일보DB
부산 북항 2단계 재개발 사업이 부산시 숙원사업인 원도심 대개조와 연계해 추진된다. 항만재개발에 치중했던 북항 1단계 재개발과 달리 철도, 항만, 낙후된 원도심을 총망라하는 매머드급 공공 개발로 부산 100년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내겠다는 취지다.
부산시, 부산항만공사(BPA),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산도시공사(BMC),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구성된 ‘부산시 컨소시엄’은 27일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 시행 공동협약식을 갖고 향후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수정·초량동 일대 14만㎡ 포함
‘원도심 대개조’와 연계해 추진
국비 확보 등 행정 절차 ‘속도’
사업 예산 1조 3000억 원 증가
市 자성대부두 일원 존치 결정
2030 등록엑스포 유치 ‘총력’
부산시 컨소시엄은 발표 이후 사업계획서를 해양수산부에 제출했다. 이후 7월께 사업시행자로 선정되면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실시계획 수립 등을 거쳐 2022년 북항재개발 2단계의 본격적인 착공을 진행할 계획이다.
3월 사업의향서 제출 과정에서 사실상의 단독 입찰을 한 만큼 사업계획서는 일부 수정을 거쳐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계획으로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부산시 컨소시엄은 당초 원도심 대개조 사업 부지인 수정동, 초량동 일부 부지 14만㎡를 사업계획지에 추가 반영했다. 당초 북항재개발 지역 사업부지는 좌천동, 범일동 일부였으나, 부산시 컨소시엄이 중앙대로를 중심으로 한 수정동, 초량동 일부 지역을 사업지에 추가한 것이다.
이처럼 사업부지를 확장한 것은 부산시의 원도심 대개조와 북항재개발을 연계해 향후 국비 확보 등의 행정 절차를 용이하게 해 북항재개발과 원도심 대개조에 속도를 붙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철도재정비 등을 통해 원도심과 연계하겠다는 추상적인 계획은 있었으나 구체적인 행정구역상으로 연계 계획이 세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자연스레 사업부지는 해양수산부가 당초 지정한 219만 8000㎡에서 234만여㎡로 14만㎡가량이 증가했다.
사업구역이 늘어나면서 사업 예산도 재조정됐다. 당초 해양수산부가 예상한 사업예산은 2조 5000억 원대의 개발사업이었으나 부산시 컨소시엄은 총사업비로 3조 8000억 원을 책정했다. 북항 2단계 부지에 포함된 철도시설 재배치, 2030 등록엑스포 개최 등을 고려했을 때 사업성 측면에서 기존 고려된 산정액이다.
시는 2030 등록엑스포 유치를 위해 엑스포 유치 부지인 자성대부두 일원은 영구시설물 존치부지로 결정됐다. 엑스포 유치 부지로 북항2단계 부지 일부를 확정시켜 놓겠다는 의미다. 내년 5월 엑스포 유치신청서가 제출되면 국제박람회기구에서 2022년 6월 실사를 오게 되는데, ‘부지가 확정돼 있고 준비가 잘돼 있다’는 인식을 통해 재개발과 엑스포 유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공공부지 확보를 위해 동구 좌천동 남해지방해양경찰청 인근 5물량장 해수공간을 수변공원으로 만드는 계획도 사업계획서에 포함됐다. 또한 향후 개발 계획으로 관심을 끌었던 부산역 조차장은 원도심과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조차기능을 일부 유지하고 조차시설 제외부지는 공공 철도광장을 조성하는 안이 담겼다. 부산시 컨소시엄에 따르면 전체 부지 중 공공용지 비중은 50%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변성완 부산시장 권한대행은 “북항재개발 2단계는 1단계 사업을 보완하고 북항재개발의 완성인 만큼 동북아수도 부산의 위상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다”며 “북항을 시민에 품에 돌려준다는 북항재개발의 취지 완성을 위해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말했다./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김해에 국립 체험교육나눔숲 조성… 100㏊ 규모
산림 교육·레포츠·치유·숙박 가능한
동남권대표 체류형 관광지 부상 기대
김해시 상동면 대감리 금동산(463m) 자락에 산림분야 교육휴양시설인 국립 체험교육나눔숲이 조성된다. 시는 산림청 산하 한국산림복지진흥원에서 녹색자금 200억원을 투입해 상동면 대감리 산138번지 일원 국유림 100㏊에 국립체험교육나눔숲을 조성한다고 26일 밝혔다.
국립 김해 체험교육나눔숲 대상지 전경
시는 지난 15일 경남·부산권 체험교육나눔숲 대상지 선정 평가를 거쳐 유치에 성공했다. 다음 달부터 기본구상 용역이 실시되며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조성작업이 진행된다. 전국에서도 5곳(횡성, 칠곡, 대전, 나주, 춘천) 밖에 없으며 경남·부산권에서는 유일하게 김해에 조성된다.체험교육나눔숲은 전 세대가 산림교육·치유·체험·숙박·산림레포츠 같은 맞춤형 활동을 통해 건강과 행복을 증진할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시설과 프로그램이 있는 교육휴양시설이다.
국립 김해 체험교육나눔숲은 산림교육센터, 산림치유센터, 숙박동, 숲속야영장, 유아숲체험원, 탐방로, 치유의숲, 산림레포츠시설 등 종합 산림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산림복지단지로 건립될 예정이어서 동남권 지역민들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대표적 체류형 관광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 지역균형발전 효과와 함께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경남신문 이종구 기자
투명’ 개구리가 감쪽같이 숨는 비결은 ‘윤곽 흐리기’
중남미 열대림 유리개구리서 새로운 위장법 발견
배를 통해 골격과 내장, 심장까지 고스란히 드려다 보이는 유리개구리의 일종. 반투명한 등과 다리의 밝기 조절로 새로운 위장술을 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중남미 열대림에는 뼈와 내장, 그리고 펄떡이는 심장까지 피부를 통해 보이는 개구리가 산다. 속이 들여다보인다고 해서 ‘유리개구리’로 불리는 이 개구리는 포식자를 피하기 위해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특한 위장 전략을 펴는 것으로 밝혀졌다.
제임스 바넷 캐나다 맥마스터대 박사후연구원 등은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유리개구리는 반투명한 피부를 이용해 윤곽을 흐리는 방식으로 주변 환경에 녹아드는 새로운 형태의 위장술을 쓴다”고 밝혔다.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가장 흔한 위장법은 청개구리나 문어처럼 주변 환경에 맞추어 몸 빛깔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배경이 수시로 달라지기도 하고 빛깔을 바꾸는 데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다.
투명한 몸이라면 배경과 같은 무늬와 색깔로 즉각 바뀌는 효과가 난다. 바넷 박사는 “투명한 몸은 완벽한 위장술”이라고 영국 브리스톨대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러나 그는 “몸이 투명한 동물이 물속에는 비교적 흔하지만 육상 동물 가운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투명한 육상 동물로는 유리개구리와 함께 남미에 서식하는 투명 날개 나비가 유명하다(“날개가 투명한 나비 보셨나요?”). 생물의 몸은 수분이 주성분이어서 물속에서 자연스럽게 위장이 되지만 육상에서는 수분에 빛이 굴절되어 이미지 왜곡이 심하다. 또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색소가 필요하기도 하다.
날개가 투명한 남미의 유리나비 일종. 육상에서 투명한 몸으로 위장하는 동물은 매우 드물다. 데이비드 틸러,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유리개구리도 엄밀히 말해 투명하지는 않다. 연구자들은 “유리개구리의 내장이 들여다보이는 건 배 쪽이고, 등에는 옅은 초록색 색소가 퍼져 있어 반투명 개구리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투명하지도 않은 몸이 위장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연구자들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몇 가지 실험을 했다. 연구자들은 먼저 55마리의 유리개구리를 신선한 나뭇잎 배경과 흰 배경에 각각 놓고 사진을 찍어 컴퓨터 모델로 분석했다.
그 결과 배경 색깔이 달라질 때 개구리의 몸 색깔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지만, 다리의 밝기는 배경에 맞추어 현저히 달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유리개구리 다리가 유독 배경에 따라 밝기를 변화하는 것이 이 개구리 위장법의 핵심이다.
바넷 박사는 “유리개구리는 낮 동안 초록색 나뭇잎 위에서 네 발 위에 몸을 얹고 움직이지 않은 채 쉰다”며 “다리가 몸보다 더 투명해 주변 환경과 비슷해지면서 개구리의 윤곽이 흐려지는 효과가 난다”고 말했다. 반투명한 개구리의 등이 골격과 내장 등 불투명한 내부구조를 가리는 한편 자외선을 차단해 주고, 이보다 투명성이 큰 네 다리가 주변 환경과 몸의 중간 밝기를 띠면서 몸의 가장자리 윤곽을 흐릿하게 한다.
유리개구리는 반투명한 등으로 몸 안쪽의 불투명한 내장 등을 가리고 몸 외곽의 다리 밝기를 조절해 윤곽을 흐릿하게 해 포식자의 눈을 피하는 전략을 편다. 마우리시오 리베라 코레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포식자들의 시각체계는 두 가지 색깔이 만나는 경계 부위에 특히 민감하고, 그 부분이 날카로운 대조를 이룰 때 손쉽게 감지한다”며 유리개구리의 ‘윤곽 흐리기’ 효과를 설명했다.
실제로 젤라틴으로 만든 불투명 개구리와 반투명 개구리 각 180개를 에콰도르 열대우림에 두고 새들이 쪼는 빈도를 실험한 결과 불투명 개구리가 공격받은 빈도는 반투명 개구리의 곱절이 넘었다.
연구에 참여한 인네스 커트힐 브리스톨대 교수는 “동물의 위장술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이 적용되는 오랜 교과서적 예”라며 “그러나 여러 형태의 위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제 겨우 연구를 시작한 단계였는데, 유리개구리가 여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메커니즘의 위장술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인용 저널: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PNAS), DOI: 10.1073/pnas.1919417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새 녹색허파, 민간공원] 4. 온천공원
‘테이크아웃 커피잔’ 속에서 책 한 권을 읽어 볼까
부산 동래구 쇠미산 아래 온천공원은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딱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부산 초읍어린이대공원에서 만덕고개 쪽으로 숲길을 걷다 보면 쇠미산(399m)이 나온다. 그 아래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자리 잡은 공원이 있다. 금정산, 백양산으로 가는 초입이다. 그동안 이 공원은 지정 취지를 살리지 못한 채 소극적 역할에 머물렀다. 주위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개발 압력도 거세다. 적극적인 보존이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온천공원 이야기다.
초읍·금정산쪽 산행로 통과 지점
작지만 ‘민간공원’ 콘셉트 충족
지하2·지상1층 도서관 랜드마크
‘책과 함께 차 한잔 여유’ 모티브
문화 향유·건강 회복 공간 기대
이 사업을 통해 들어설 행복도서관 상상도.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은 책, 오른쪽은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형상화했다. 온천공원개발(주)
■개발의 저지선
부산 동래구 온천동 만덕2터널 위쪽으로 펼쳐진 온천공원(11만 8617㎡)은 1995년 5월 16일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됐다. 민간공원 사업 대상지 중에서 유일하게 1990년대에 지정됐다. 나머지 4곳은 1970년대다. 부산시 이동흡 그린부산지원관은 “쇠미로 위쪽으로 계속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보존 필요성이 대두돼 1995년 지정됐다”며 “크지는 않지만 민간공원 사업에 가장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온천공원은 민간공원 사업을 통해 면적 기준 87.7%가 공원, 12.3%가 비공원시설로 조성된다. 총 사업비는 1668억 원이다. 민간시행사는 온천공원개발(주)이다. 핍스웨이브개발, 동부토건, 케이엔건설, 예빛이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온천공원개발(주) 측은 “주민의 다양한 문화 수요를 충족하고 건강, 휴식, 정서 함양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온천공원은 환경·재해·교통영향평가 등의 행정절차를 마무리하고 다음 달 말까지 실시계획인가를 마칠 예정이다. 사업지 동·남쪽으로 주거지가 밀집하고, 북쪽으로 만덕터널과 도시철도가 지나간다. 동쪽으로 500m 떨어진 곳에 부산도시철도 3·4호선 미남역이 있다. 주변으로 자연과 인문 조건을 고루 갖춘 곳이 온천공원이다. 주민대표로 라운드테이블에 참여한 백남도 화신동영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전 회장은 “이 공원은 초읍이나 금정산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와 숲이 아주 좋다”며 “자연은 최대한 살리고, 나대지나 무단경작지는 정비하는 쪽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책과 커피잔 모양 도서관
“주변으로 이미 개발이 많이 돼서 그런지 주민 요구 사항도 많았습니다. 주민에게 보답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공원을 만드는 데 더 주력했습니다.” 민간공원 라운드테이블 위원장인 부산대 조경학과 김동필 교수는 온천공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주민숙원시설로 들어서는 것이 도서관이다. 주민대표인 백남도 전 회장도 “도서관에 가려면 초읍까지 가야 하는데, 공원에 도서관이 생기게 돼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1571㎡ 부지에 70억 원을 들여 짓는다. 연면적 1706㎡에 지하 2층, 지상 1층 규모다. ‘책과 함께하는 차 한 잔의 여유’를 모티브로 삼았다. 도서관을 설계한 도건건축사사무소 박용덕 소장은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은 책이 놓인 모양, 오른쪽은 테이크아웃 커피잔 모양을 형상화했다”며 “시민들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도서관도 공원이 준공될 2024년에 문을 열 예정이다.
시행사는 도서관을 주변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지하 1층에는 다양한 형식의 서가, 열람공간, 미디어테크 등을 배치한다. 지하 2층 다목적실은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 공간으로 활용된다. RFID(무선 주파수 인식) 시스템을 구축해 책 반납, 회원관리, 장서 점검도 효율적으로 한다. 자료실에는 자동대출 반납기를 설치해 사서 없이 자유롭게 대출·반납할 수 있게 하고, 건물 밖에는 무인자동반납기를 둬 편리함을 높인다.
■녹색 힐링 공간
부산시는 훼손지를 복원하고 자연가치를 살려 온천공원을 녹색 여가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콘셉트는 ‘도심 감성 치유, 행복공원 Healing Flow(녹색 치유의 물결)’다. 지형과 식생을 활용한 건강테마산책로, 자연과 사람이 소통하는 문화활동 공간을 갖춘다. 가족·자연 친화공원도 지향한다.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등이 자연을 벗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 아이들을 키우기 쉽고, 부모들은 문화를 향유하고, 어르신들은 건강을 살리는 공간이다. 이동흡 그린부산지원관은 “개방성과 창의성이 기본 가치”라며 “접근하기 가장 좋은 곳에 도서관과 어린이놀이터를 배치한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 아름다운 경관과 휴게 기능을 두루 갖춘 ‘잔디마당’, 산책로가 있는 ‘콤플렉스존’, 기존 산책로를 정비한 테마산책로와 쌈지 쉼터가 있는 ‘포레스트워크존’, 어린이가 노는 ‘야외학습체험의 장’, 놀이터가 있는 ‘에듀플레이존’, 공공성 확보와 소통의 장인 ‘진입광장’, 행복도서관이 들어설 ‘커뮤니티존’, 기존 마을체육시설을 활용한 ‘건강마당존’, 공원 훼손지를 되살린 ‘조림지 생태복원존’이 있다.
손창옥 ㈜동부토건 회장 “공익성 우선 사업 참여, 회사 이미지·브랜드 가치 높일 기회”
부산 지역 5개 민간공원 사업에 참여한 민간 시행사들은 총 5248억 원을 들여 공원을 조성한다. 이를 통해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된 면적의 89%가 공원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하면서 왜 이 사업에 참여할까. 비공원시설을 지을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공익성이 계속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인력·노하우 없으면 엄두 못 내
공익적 역할, 기업 자산 될 것
앞으로 보상 문제 등 민원 ‘숙제’
온천공원 컨소시엄에 참여한 (주)동부토건 손창옥(68) 회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서면에 본사가 있는 중견 향토 건설사인 동부토건은 5개 민간 시행사의 주간사다. “민간공원은 공익성을 우선하기 때문에 많은 제약이 따르고, 사업성을 확보하기가 엄청 어려운 구조입니다. 민간공원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참여하기 힘들지요. 그래도 회사 이미지를 높이고, 브랜드를 업그레이드할 절호의 기회가 민간공원 사업입니다.”
손 회장은 민간공원 사업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또 다른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그동안 민자사업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인력, 노하우, 정보가 없다면 솔직히 이 사업에 참여하기 힘듭니다.”
민간공원은 조성을 하는 데 어떤 특징이 있을까. “민간공원은 산과 연결돼 있습니다. 우수한 자연식생을 최대한 보존하고 주변 훼손지를 복구하는 것이 포함되지요. 솔직히 소나무 한 그루도 마음대로 베기 어렵습니다. 녹지축도 고려해야 하고요. 대개 공원 시작 지점에 앵커 시설을 배치하고 자연과 주거의 공존에 신경 써 설계를 하지요.”
사업 협상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뭘까. 손 회장은 ‘민원’을 꼽았다. “솔직히 오래전에 국가와 지자체가 해야 할 일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공익적인 사업을 하는 데도 민원이 너무 많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숙제이지요.” 올 하반기엔 보상이라는 힘든 과정도 기다린다.
공원을 지어 부산시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비공원시설이 일부 들어간다. 5개 공원 전체로 보면 면적의 10%, 사업비의 70%가 해당된다. 비공원시설 설계 때는 무엇을 중시했을까. “기존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연 훼손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혹시나 공원과 도시를 차단하는 일이 없도록 특히 신경쓰고요.”
물론 이 같은 공원 조성 방향은 전문가, 주민, 환경단체 등이 참여한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지난 3년간 다듬고, 이해를 절충한 결과다. 협의 틀로써 라운드테이블을 구성한 것은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김마선 기자 msk@busan.com
코로나19보다 더한 돼지들의 ‘팬데믹’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의 확산 기세가 무섭다. 주요 시장에서 청정 지역은 서유럽과 미국, 오스트레일리아만 남았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올해 전 세계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인한 살처분으로 희생된 동물의 수가 벌써 지난해 수준을 넘어섰다는 추정이 나왔다.
28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인한 살처분 개체 수가 지난 4월을 기점으로 2019년 한해 총 살처분 개체 수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훨씬 생존력이 강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바이러스는 가공육에서도 수개월 생존하며, 감염된 돼지의 폐사율은 100%에 육박한다. 유행한 지 거의 100년이 되지만, 예방백신은 나오지 않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행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곳은 한국을 포함해 중국, 베트남, 필리핀과 동유럽의 일부 지역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안드리 로츠탈리니 동물보건담당관은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보고된 수치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수치 그리고 우리 긴급예방시스템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영향을 받는 동물의 수는 사상 최대이고, 지금도 거침없는 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질환 감염과 관련한 폐사 개체 수는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인 10만 마리이고, 공식적으로 살처분된 수는 540만 마리로 지난해 690만 마리의 3분의 2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의 개체수를 포함하면 이보다 몇 배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2018년 가을 중국에서 유행하면서 파괴력을 키웠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에 공식 보고된 바에 따르면, 중국에서 돼지 110만 마리가 그해 살처분됐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2억 마리 이상의 돼지가 살처분 당했다는 주장이 있다. 네덜란드 최대 은행인 ‘라보뱅크’는 중국에서 사육 중인 돼지 3억6000만 마리 중 최소 40%가 살처분 됐을 거라고 지난해 7월 추정하기도 했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 아프리카돼지열병 보고서에서 2016~18년 발병 지역을 표시한 지도.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지역이 추가 확산된 곳이다.
올해 들어서도 바이러스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인도 북부와 바다 건너 필리핀을 거쳐 파푸아뉴기니까지 바이러스가 퍼졌다. 벨기에는 야생 멧돼지를 대상으로 방역 작업을 벌이는 가운데 서유럽 국가들은 바이러스 확산 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프랑스 툴루즈 국립수의건강학교 교수인 티모시 버그는 “지난해만 해도 발병 사례가 유의미하게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져 놀랐다. 지금은 팬데믹(대유행)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바이러스 안고 간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돼지고기를 많이 먹는 나라다. 전체 육류 소비에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다. 더불어 전 세계 돼지고기의 절반 가까이가 중국에서 소비된다. 이런 중국인들의 돼지고기 선호 성향을 고려하면, 중국 정부가 청정국을 유지하는 방식의 ‘차단 방역’(감염 농장 살처분과 주변 지역 예방적 살처분)을 고집하기 쉽지 않음을 시사한다. 막대한 돼지고기 수요량을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중국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을 ‘토착 질병’으로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치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11일 돼지고깃값 폭등 속에 중국의 대형 양돈업체의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터진 육류대란 사태가 중국의 양돈업체에게 기회로 작용하는 측면도 있다.
국내에서는 지난해부터 민간인통제선 남쪽인 경기 파주, 강원 고성 등의 야생 멧돼지에서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바이러스는 북한을 통해서 건너온 것으로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사육 돼지는 지난해 9월 농장에서 처음 발생하고 10월9일 이후 추가 발생은 없는 상태다.
2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를 살처분한 261개 농가에 대해서 여름철까지 재입식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워낙 높아서 야생 멧돼지를 통한 전파 위험성이 크다는 게 농축산부의 판단이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코로나19 안 걸렸는데, 왜 돼지들이 살처분 됩니까?
미국 육류대란의 원인, 공장식 축산
코로나19 사태로 도축장 생산 재개 안 돼
출하시기 놓친 농장들, 멀쩡한 돼지 살처분
동물을 ‘상품’으로 보는 현대 축산의 역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정육공장에서 노동자들이 고기를 해체, 가공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미국의 공장식 축산 농장에서 크는 돼지들이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대규모 살처분 될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록다운'(도시 봉쇄) 조처가 시행하면서, 대규모 정육공장(도축장)의 운영이 중단되거나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상원의원 13명은 농장주들이 인도적인 방법으로 돼지를 살처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을 농무부(USDA)에 요청했다고 19일 인터넷 언론 ‘더힐’이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일주일에 약 200만 마리의 돼지가 출하되어야 하는데, 정육공장이 이를 다 처리하지 못해 약 20%인 40만 마리가 살처분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축 그라슬리 의원 등은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을 위하여 돼지들의 인도적인 안락사와 폐기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들
돼지들은 왜 골칫덩이가 되었을까? 돼지를 물건처럼 다루는 현대식 공장식 축산의 시스템적 문제 때문이다. 종돈과 모돈에서 태어난 돼지(비육돈)는 농장에서 일반적으로 3개월 성장하고 정육공장으로 팔려간다. 동물의 번식, 비육, 도살이 일종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흘러가야 하는데, 최종 관문인 정육공장이 막혀 버렸기 때문에 적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돼지가 출하되지 않고 농장에서 머물면, 농장주에게는 사육 비용과 환경 비용이 든다. 사료를 줘야 하고, 분뇨를 처리해야 한다. 따라서 농장주 입장에서는 지원을 받고 살처분하는 게 이득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닭도 상황은 마찬가지여서, ‘가디언’은 20일 1천만 마리의 닭이 미국에서 살처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국돈육생산협회(NPPC)는 이 매체와 인터뷰에서 “4월25일부터 9월19일 사이 생산되는 최대 1천만 마리의 돼지가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돼지, 닭과 달리 소는 밀집 사육 방식을 택하지 않고 있어서, 당장에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미 일부 농장에서는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다. ‘가디언’은 시민단체와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각각 약 200만 마리의 돼지와 닭이 농장에서 자체 살처분 됐을 거라고 추정했다. 도살 방식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인도적 도살을 위해서 안락사 주사나 가스 등을 이용해야 하지만, 농장을 폐쇄하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는 식의 저렴한 방식이 통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동물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줄 가능성이 있다.
정육공장의 노동자들도 위험
스미스필드, 타이슨푸드 등 미국의 정육업체가 운영하는 도축장은 대규모 시설이다. 마취와 도살, 해체, 가공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뤄지는 공정에 노동자들이 밀집해 일한다. 험한 노동 환경 때문에 비교적 저임금을 받는 이주노동자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미국의 육류대란은 공장식 축산의 사육과 유통의 흐름이 막히자, 적체된 동물들이 살처분 되는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돼지들이 차량으로 운송되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지난달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정육공장을 록다운 조처의 예외로 하고 생산을 지속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렸다. 산업안전보건청(OSHA)은 정육공장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노출을 감소시키는 매뉴얼을 보급했다. 소니 퍼듀 농무부 장관은 이달 초 정육 공장들이 7~10일 안에 문을 열 것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생산 재개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 복귀를 꺼리는 노동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물단체와 노동조합은 생산 재개에 반대하고 있다. 이미 많은 정육공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핫스팟’으로 지목되었기 때문이다. ‘탐사보도를 위한 미드웨스트 센터’는 18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 중 1만4900명이 정육공장에서 일하거나 연관된 사람이라고 밝혔다. 최소 191곳의 정육공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습격을 받았고, 사망자는 확인된 수만 62명이다. 정육가공업계의 최대 노조인 식품산업노동총연합(UFCW)은 트럼프 대통령의 긴급명령 이후 생산을 재개한 14곳을 비난하면서, 노동자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말라고 밝혔다.
‘동물을 윤리적으로 대하는 사람들’(PETA)은 8일 뉴욕과 시애틀 등의 봉쇄 완화 조처에 맞춰 광고를 실어 “정육공장을 다시 열면 수백만 마리의 동물들이 죽고, 노동자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주장헸다. 이들은 미국의 정육공장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지목된 중국의 야생동물 시장(wet markets)처럼 비위생적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채식을 주장하는 캠페인을 개시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그린뉴딜 핵심은 ‘공공시설·임대아파트 리모델링’, 추경에 3천억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가 프로젝트, 그린뉴딜 사업이 그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그린뉴딜의 일환으로 공공임대아파트 8만 호와 어린이집 등 공공시설 등에 대해 그린 리모델링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당장 3차 추경에 3천억 원이 반영될 예정입니다.
[리포트]지어진 지 30년 된 보건소. 외벽과 창호를 바꿔 단열 성능을 높이고, 첨단 환기 시스템을 도입했더니 에너지 소비량이 86%나 줄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이른바 '그린 리모델링'입니다. 청와대는 그린 리모델링을 그린뉴딜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우선 3차 추경에 3천억 원을 반영하기로 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에서 추경이 통과되는 즉시 사업에 착수할 수 있고, 단기간에 일자리 창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채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상은 공공임대아파트와 취약계층이 이용하는 공공시설입니다.
공공임대아파트는 올해 만 호, 2022년까지 8만 호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어린이집과 복지관 등 취약계층 이용 시설은 전국 5만 5천 동 가운데 15년 이상된 건물이 해당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전국의 공립 학교 건물도 포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권 관계자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만큼 학교 건물이 우선 순위가 돼야 한다"며 "정부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건설업은 서비스업 다음으로 고용 효과가 큰 업종으로, 정부는 지역의 중소업체 중심으로 일자리가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명주/교수/명지대 건축학과 : "일자리 창출, 온실가스 감축은 당연하고요, 더 나아가 폭염과 혹한 시엔 쉼터로써 그리고 미세먼지와 황사, 실내 공기질까지 제어가 가능한 그런 건물이 됩니다."]
정부는 TF를 구성해 그린 리모델링 사업 표준 매뉴얼 마련하고 있습니다. 건축 연한 등 일정 요건을 갖춘 건물에 대해 신청을 받아 컨설팅과 시공비를 지원할 예정입니다./KBS 뉴스 홍성희입니다.
5월28일 ‘4대강 고발 영상 금지’ 선관위의 편파행정
구담습지는 낙동강 중·상류 지역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기산리 구담교와 광덕교 사이 4㎞에 걸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희귀 동식물이 대거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 피라미·납자루 등 토종어류가 수초와 수변식물, 유속이 빠른 여울과 느린 웅덩이 사이를 오가며 살던 곳이다. 황조롱이·수달·수리부엉이 등 천연기념물도 이곳에 둥지를 틀고 생활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곤 했다. 하지만 구담습지의 그런 모습(위·2009년 7월 촬영)은 더 이상 보기 어렵게 됐다. 4대강 사업이 진행되면서 습지 주변은 공사장 트럭과 중장비들이 다니는 황톳길로 변했다(아래·2010년 5월 촬영). 김세구 선임기자
4대강사업으로 파괴된 구담습지의 모습. 김세구 선임기자
“4대강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영상은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포클레인으로 파헤쳐진 모습을 트는 것은 선거의 쟁점이 되는 사항이기 때문에 상영해선 안된다.”
2010년 4대강사업으로 전국 곳곳의 하천이 파괴되고 있을 당시 위와 같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친 곳은 바로 선거에 있어 어느 기관보다 더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였습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사회면에 시민단체의 4대강 관련 콘서트에 대한, 선관위의 이상한 잣대에 대해 지적하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같은날 1면에는 경향신문이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과 공동으로 기획한 ‘4대강에 무슨 일이···’ 연속보도 중 두번째인 ‘파괴되는 안동 구담습지’의 모습도 실렸습니다. 전국의 수좌 스님들이 전날인 27일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기사도 1면에 함께 보도됐습니다. 수좌 스님은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 즉, 수도승들을 말합니다.
중앙선관위의 행태를 경향신문이 편파적이라고 지적한 이유는 시민단체가 4대강사업에 대해 고발하는 영상은 금지했지만 반대로 정부가 만든 4대강사업 홍보책자는 버젓이 공공기관에 배포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2010유권자희망연대에 따르면 선관위는 그해 5월 29일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열릴 예정인 ‘생명과 평화를 위한 콘서트-강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4대강이 파헤쳐진 모습을 담은 영상을 상영하는 것은 선거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며 중지하도록 통보했다. 글의 처음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콘서트’는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학자·종교인·시민단체들의 제안으로 시작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후원하는 행사였습니다.
선관위의 통보에 대해 콘서트 시민추진위원회는 “선관위가 4대강 영상 상영을 막는 것은 불공정하고 비상식적인 잣대를 들이대 시민이 주체가 되는 문화행사의 추진을 위축시키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게다가 선관위는 추진위 홈페이지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콘서트 준비 소식을 따로 모니터링해 확인한 것으로 드러나 시민단체의 4대강 관련 활동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선거법을 빌미로 사실상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감시한 것이라는 비판도 받았습니다. 선관위가 정상적인 업무 범위를 넘어서 정권에 충성하는 행태를 보인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이유입니다.
게다가 선관위는 정부에 대해 4대강 홍보를 자제하라는 권고만 했을뿐 정부의 4대강 홍보책자가 배포, 비치되는 것은 방치했다는 의혹도 받았습니다. 정부가 제작한 4대강 홍보책자가 충북의 우체국에 비치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던 것입니다. 우체국에 비치된 책자들은 환경부가 제작한 ‘행복 4대강 Q&A’와 4대강살리기추진본부가 발간한 ‘4대강 특별호(2010.05.) 공감’ 등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진보연대는 “거리에서 홍보물을 나눠주면서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탄압하는 선관위가 우체국에 정부 책자가 쌓여 배포되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며 4대강 홍보잡지를 버젓이 내놓는 정부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활동을 억누르고, 4대강 홍보는 사실상 허용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선관위는 1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안타깝게도 과거와 같은 정치적 편파행정은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시민들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KBS가 지난 5일 보도한 ‘비엔나 커피 아니고 멜랑쥐 커피…패키지 여행이 선관위 국외연수?’ 기사에 따르면 선관위는 해외 출장을 다녀온 뒤 직원들이 제출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공개할 수가 없었던 것이 출장이라기보다는 외유나 다름없었기 때문입니다. KBS가 정보공개청구로 선관위 출장 보고서를 받아봤더니 일부 출장은 사실상 해외 관광 수준이었는데 아예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유럽 여행을 한 경우도 확인된 것입니다. 아예 기관 방문을 안 한 경우도 많았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 표절한 보고서도 많았습니다.
이처럼 KBS 보도를 통해 다시 조명을 받긴 했지만 선관위 직원들이 세금으로 국외 출장을 가서 실제 출장 목적에 부합하는 일정은 거의 없이 관광만 하다오는 행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국정감사 때마다 선관위의 직원 해외연수가 외유성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채 같은 행태를 반복해온 것입니다.
선관위 직원들의 무책임한 모습은 세계 각국의 선관위 직원들과 취재진이 몰렸었던 2012년 미얀마에서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당시 오랫동안 가택연금 상태였던 아웅산 수지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참여하고, 미얀마 군부가 민주적인 선거를 보장한다고 밝히면서 세계 주요 언론이 미얀마에 취재진을 파견했고, 경향신문도 국내 언론 중 유일하게 현장을 취재한 바 있습니다. 당시 미얀마 정부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주요국가들에 선거 참관단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한국에서도 2명의 선관위 직원이 파견됐습니다.
그런데 미얀마가 수십년 만에 민주주의의 길을 다시 개척하려는 중요한 선거를 치르고 있음에도 현장에 파견된 미얀마 직원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통역조차도 구해놓지 않아 경향신문 취재진의 통역을 맡은 이에게 의존하면서 사실상 취재를 방해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나중에 경향신문에 기사를 보고 출장 보고서를 써야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숱한 지적에도 꿈쩍하지 않고, 직원들이 해외연수를 외유성으로 다녀오도록 허용한 조직 문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시민들의 눈높이가 올라가도 달라지지 않았던 선관위는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요. 스스로 자정할 능력이 없다면 외부 감사 등의 적절한 개입과 시민들의 적극적인 감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곧 임기가 시작되는 21대 국회가 선관위의 무책임한 행태를 바로잡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기대해 봅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해양수산부- ‘해양오염 주범’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 2025년까지 제로화
- 국내 양식장 부표 5502만 개 추산
- 75%가 스티로폼 재질… 수명 3~5년
- 연안 플라스틱 쓰레기의 55% 차지
- 폐 스티로폼, 미세플라스틱 유발도
- 해수부 ‘친환경 부표’ 보급 사업
- 2022년까지 절반가량 교체 목표
- 비용 지원에도 보급률 23.6% 저조
- 올해 예산 70억 확보… 공급 박차
부표는 여러 가지 목적으로 활용된다.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한 항로 표시 기능에서부터 암초나 침몰선 등 운항에 지장을 주는 위험물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한다. 가까운 바닷가에서 마주치는 부표는 대부분 양식장에서 사용하는 것이다.
양식장에서 널리 사용되는 스티로폼 부표는 최근 해양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거론되고 있다. 한 바닷가에 양식장에서 떨어져 나온 스티로폼 부표가 가득 쌓여 있다. 해양수산부 제공
하지만 부표가 해양환경 오염의 원인으로 거론된 지 오래다. 대부분이 스티로폼 재질이어서 햇빛이나 바람·파도에 쉽게 부서진다. 때로는 해양생물들이 기생하면서 아주 작은 조각을 만든다. 부표에서 떨어져 나온 입자는 미세플라스틱이 된다. 태풍과 높은 파도 등으로 인해 끊어진 부표는 바다에 떠다니거나 해안으로 밀려와 해양쓰레기가 된다. 폐그물 등과 얽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사례도 적지 않다.
해양수산부는 현재 국내 양식장에 5502만 개의 부표가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이 중 75%인 4100만 개는 스티로폼이다. 우리나라 연안을 덮은 전체 플라스틱 쓰레기의 55% 수준이라는 통계도 있다. 스티로폼 부표의 사용 기간은 3~5년 정도다. 기상 조건 때문에 알갱이가 평소보다 많이 떨어져 나가면 교체 시기가 빨라진다. 스티로폼 부표 사용량은 보통 1㏊ 당 1500~1700개다. 양식장 면적이 넓다면 1만 개가 넘기도 한다. 양식장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스티로폼 부표가 해양환경 오염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 미루어 짐작된다.
스티로폼 부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해수부는 지난 2015년부터 ‘친환경 부표’ 보급 사업을 진행했다. 친환경 부표란 스티로폼을 사용하지 않거나 알갱이 발생 가능성이 아주 낮은 제품을 의미한다. 2022년까지 스티로품 부표의 절반가량을 친환경 제품으로 교체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신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구입비의 75%를 정부가 지원한다는 ‘당근책’까지 내놨다.
양식업계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친환경 부표가 기존 스티로폼보다 무겁고 딱딱한 데다 무엇보다 값이 비쌌다. 이런 까닭에 보급률은 23.6%(2018년 기준)에 머물렀다. 앞으로 이 비율이 더 높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해양수산부가 최근 개발한 친환경 부표. 해수부 제공
해수부는 ‘양식장 스티로폼 부표 제로화’라는 더욱 강화된 정책을 들고 나왔다. 2025년까지 스티로폼 부표를 친환경 부표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올해 예산으로는 70억 원을 확보했다. 연간 35억 원이 투입되는 예년보다 100% 늘어난 수치다. 필요 예산이 제때 확보되도록 재정 당국과 긴밀한 협의도 병행한다.
앞서 해수부는 지난해 어업인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한 친환경 부표 품질 개선에 들어갔다. 어업인, 환경단체, 소비자단체와 세 차례 회의를 열어 스티로폼 부표의 문제점과 개선 사항 등을 수렴했다. 이어 폴리에틸렌에 발포제를 가했기 때문에 알갱이 발생이 없고 재활용이 쉬운 부표 개발에 성공했다. 이 제품은 자체 부력이 확보되고 내구성도 높다. 작년 11월부터 지난 4월까지 4개월간 양식장에서 성능점검도 마쳤다.
해수부는 앞으로 빠른 시일 내 관련 지침을 개정해 하반기에는 전국 양식장에 친환경 부표를 공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2022년까지 친환경 부표를 2800만 개로 늘린 뒤 2025년에는 5000만 개로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상길 해수부 양식산업과장은 “2025년에는 국내 양식장에서 스티로폼 부표가 완전히 사라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친환경 부표 정착 계획·과제
- 항·포구에 폐스티로폼 수거 집하장 설치, 2021년부터 ‘어구·부표 보증금제’ 시행
- 제품 성능·가격 등 어업인 불신 해소
-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책과 병행해야
해수부가 ‘스티로폼 부표에 대한 전쟁’을 선언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다.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선 어업인의 깊은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해수부가 2015년을 기점으로 보급했던 친환경 부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최대 5~6배 비싼 데다 스티로폼에 플라스틱 외관을 덮어 씌운 것도 많아 ‘말로만 친환경’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또 수산물 종류마다 양식장 환경이 달라 친환경 부표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례도 많았다. 수압이 센 곳에서는 부표가 망가지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까닭에 어업인 사이에서는 정부가 환경오염 방지를 이유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다는 불만도 적지 않았다.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친환경 부표 보급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이에 대해 해수부는 이번 만큼은 친환경 부표 사용 정책이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제품이 개발된 데다 어업인의 의견 수렴과 검증 절차도 거쳤기 때문에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바라는 목표 달성이 가능하리라는 예상에서다. 여러 차례 제기된 가격 문제는 정부 지원을 늘리는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해수부는 또 해양오염을 막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부표 이용을 줄이는 것이라는 환경단체의 주장도 적극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새로운 양식방법 도입을 어민에게 권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개체굴’ 양식이다. 통상 굴 양식은 하나의 다발에 많은 종자를 함께 키우는 식으로 이뤄진다. 반면 개체굴은 하나씩 양식하는 방법이다. 이런 까닭에 개체굴을 키우면 설치해야 하는 부표 숫자가 그전에 비해 1㏊ 당 절반으로 감축된다.
■해양 쓰레기도 함께 줄여야
해수부는 친환경 부표 보급 사업을 지난해 5월 시작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저감책과 병행해 추진할 계획이다. 우선 해수부는 집하장을 설치해 폐스티로폼 부표를 원활하게 수거하기로 했다. 올해 중 주요 항·포구에 집하장 40곳을 세운 뒤 2030년까지는 숫자를 400개로 늘린다. 또 폐어구나 폐부표를 가져오면 보증금을 되돌려 주는 ‘어구·부표 보증금 제도’를 2021년부터 시행한다.
폐스티로폼 부표 재활용도 적극 독려한다. 이는 쓰고 난 뒤 버려지는 부표의 처리가 어려운 어업인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이를 위해 해수부는 부표 생산업체의 사후 관리와 수거·재활용 책임을 강화해 자원순환 비율을 높이기로 했다. 관련 근거인 ‘부표업체 생산·판매·설치 단계별 공장심사 및 사후관리 기준’은 지난해 12월 이미 마련됐다.
해수부는 아울러 중장기적으로는 스티로폼 소재를 완전히 대체하는 제품 개발에 매진할 방침이다. 해수부와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가 참여하는 이 계획에 대해서는 현재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또 해수부는 연안 미세플라스틱 분포 현황도 정기적으로 조사하는 한편 인체에 미치는 위해성도 연구하기로 했다.
해수부는 이 같은 일련의 방안들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2030년에는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를 현재의 50%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이 없는 바다를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며 “모든 역량과 자원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전염병 대유행 때마다 식량체계 변화 … 코로나로 유통망 급변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곡물농업 무너지고 축산업 발달
코로나19로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 온라인 유통 촉진
역사적으로 전염병 대유행은 식량체계를 변화시켜왔다. 전염병으로 인구 변화가 발생하면 농산물 생산량과 가격이 급변하고 위기와 기회가 반복된다. 대표적 사건이 14세기 흑사병 대유행이다.
1348년 발생한 흑사병 대유행으로 인구가 감소하고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자 유럽 농업은 침체기에 빠졌다. 농산물 가격이 하락했는데 수요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반대로 가격이 하락했는데 농산물 생산도 줄지 않았다. 농업 공황이다. 경작지는 황폐화되고 농촌은 무너졌다.
코로나19 여파로 텍사스 푸드뱅크에 늘어선 차량│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긴급 식량 원조량이 급증한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의 푸드뱅크에서 9일(현지시간) 사람들이 차량에 탄 채 배식을 기다리고 있다. 미 노동부는 이날 지난주(3월 29일~4월 4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661만 건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샌안토니오 AP=연합뉴스
이로 인해 당시 작물을 포기하고 축산으로 전환하는 농민이 증가했다. 유럽 축산업 발달의 시작이다. 영국에서는 14~15세기 곡물가격이 하락하고 양모가격이 오르자 농지에 울타리를 쳐 목초지로 전환하는 현상(인클로져)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육류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향신료와 비단 등을 만드는 값비싼 농산물 소비도 빠르게 증가했다. 향신료에 대한 욕망은 대단했다. 유럽인들은 동양의 값비싼 향신료를 효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대항해시대는 농업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식민지를 늘리면서 소규모 농업은 거대한 단일작물 농장으로 바뀐다. 땅값이 저렴한 식민지에서 재배하는 플랜테이션 농업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런 농업은 노예노동을 이용해 비참한 결과를 야기했다.
◆농식품 저장과 수송과정 관찰 = 코로나19 대유행은 세계 식량시장에 어떤 변화를 남길까. 현재 시점에서 보면 코로나19로 인해 세계 곡물시장이 요동치지는 않는다. 그동안 농업기술 발달로 생산 효율이 높아졌고, 가공식품 영향으로 생산과 소비가 연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흑사병 대유행 시대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태호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식탁안보'라는 여시재 보고서에서 "흑사병 사례나 세계식량농업기구 통계를 보면 전체적으로 식량의 총량은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며 "전염병은 식량의 공급보다 수요를 더 많이 감소시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대유행 장기화는 식량시장을 위협하기 충분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식량안보 위기를 우려한 일부 국가에서는 정부 차원의 전략 곡물 재고 비축분을 확보하고 있다. 식품과 필수품을 한시적으로 수출 제한조치하는 국가도 있다. 이미 러시아 우크라이나 캄보디아 카자흐스탄은 주요 곡물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등은 국경폐쇄나 이동중지 명령을 발동했다.
곡물 등은 통상 국내 도착 기준 4~6개월 전 선 구매계약을 체결하는데 봉쇄 조치를 염두에 두고 기존 계약을 파기하거나 다른 구매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주요 곡물 수출국이 수출 제한 조치를 확산하고 항구 봉쇄 조치를 발령할 경우 대안은 마땅치 않다.
이 교수는 "국제무역기구 출범 이후 자유무역의 틀 안에서 작동해 온 세계 농식품 체제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일시적, 지역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농식품의 세계적 저장과 수송 과정을 주의깊게 관찰해 전염병 영향을 덜 받을 확실하고 안전한 농산물 수입경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내 상황만 보면 아직은 코로나19로 인한 식량안보는 위협적이지 않다. 쌀은 정부와 민간 재고 물량으로 수확기까지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다. 주요 수입 곡물의 경우 2분기까지 사용 가능한 물량을 비축했다. 식용 곡물은 8~10월까지, 사료용 곡물은 최대 11월까지 버틸 수 있다.
◆자국 농산물 소비 늘어, 새로운 유통체계가 승부수 = 흑사병 유행으로 플랜테이션 농업의 성장이 시작됐다면, 코로나19는 농산물 유통망의 변화와 자국내 농산물 소비 문화를 안착시킬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발생 이후 78.2%가 건강기능식품을 더 자주 섭취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신체 면역력을 강화시키려는 행동으로 건강식품 소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타민 및 무기질(55.0%), 인삼류(31.7%)를 중심으로 섭취가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비타민C가 코로나19를 예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건강기능식품시장을 확대시켰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마스크와 식료품 등의 수급 불안을 겪게 되면서 농식품 국내 생산의 중요성이나 식량 안보에 대한 소비자의 중요성 인식이 크게 증가했다. 전체 응답자의 84.2%가 농식품 국내 생산 및 자급의 중요성에 공감했고, 식료품과 같은 필수재에 대해서는 'made in Korea'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농산물시장은 자국내 식량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유통하는 지에 따라 승부가 갈릴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농협은 농축산물 유통 역사 500년을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경매시장에서 시작되는 농산물 유통의 기반을 바꾸는 온라인 경매 시스템이 도입되고 있다. 이같은 시도가 성공할 경우 전염병 대유행에 따른 식량시장 변화에 긍정적 결과가 기대된다. 세계 농식품 시장이 한국의 코로나19 이후 농산물 유통망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다.
반면 식량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는 코로나19 이후 식량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아이티 콜롬비아 수단 짐바브웨 타일랜드 등이 코로나19 사태가 초래한 식량 유통체계 혼란으로 가격 상승 압박에 시달리고 있고, 이 또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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