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은 시쓰는 마음으로…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야죠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를 찾아서…
식물이 숨 안쉬면 북극이 녹는다
선물로 주어지는 그린뉴딜은 없다-결국 사회운동이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실개천 다시 힘차게 흐른다
1만년 전 멸종한 '동굴사자'가 자손을 남기지 못한 이유는..."갈기가 없어서"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1 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2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3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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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도시·건축 설계를 바꾸고 있다
살아있는 나무에 쇠봉 박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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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 전문가 100% 활용하는 법-전북 익산시 장점마을
성장 대신 선택한 ‘삶의 질’
코로나19, 환경위기,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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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은 시쓰는 마음으로…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야죠
조경가 정영선씨의 집 정원에는 쉽게 보기 어려운 한국의 토종 풀꽃이 많다. 조경설계일을 하며 현장에 맞는 풀꽃을 구하기 어려울 때는 정씨의 정원에서 공수할 때도 많다. 정씨는 매일 새벽 3시간씩 직접 정원을 관리한다. 장은교 기자.
■자연과 공존하는 삶 생각…조경은 시·그림 같은 것
‘땅 위의 시인’ 조경가 정영선
정영선은 일을 맡으면 먼저 땅을 본다. 보고 또 본다. 보고 또 보고 또 본다. 그 땅과 함께할 사람을 생각한다. 그 땅과 함께할 사람의 일상을 그린다. 그 땅과 함께할 사람의 자손의 미래를 그려본다. 다시 땅을 본다. 흙을 만지고 냄새를 맡는다. 그 땅과 사람과 어울리는 시와 그림을 떠올린다. 땅과 사람과 어울리는 시와 그림과 풀과 꽃과 나무를 생각한다. 그 풀과 꽃과 나무는 한국적인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땅도 살고 사람도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올해 나이 여든. 조경가 정영선(사진)은 50년 가까운 시간을 이렇게 일해왔다. 한국전쟁 이후 공사 먼지가 끊이지 않았던 ‘개발공화국’의 한가운데서 정영선은 ‘사람’과 ‘자연’을 끊임없이 얘기하고 관철시켜왔다. 예술의전당, 86아시안게임 기념공원, 88올림픽공원, 93대전 EXPO, 인천국제공항, 선유도공원, 여의도 샛강공원, 노무현 전 대통령 자택과 묘역, 호암미술관 희원, 아모레퍼시픽 사옥, 서울식물원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정영선의 손길이 담겼다.
지난달 29일 서울식물원에서 만난 그는 호미를 들고 땅에 쭈그려 앉았다. 탁탁탁. 호미질 세 번에 노란 미나리아재비꽃이 잔뿌리 하나 다치지 않고 땅 위로 올라왔다. “예쁘죠. 참 예뻐. <빨강머리 앤>에서 ‘버터컵’이라고 나오는 꽃이에요. ‘빠다’ 색깔 닮았다고. 옛날엔 흔했는데 매연에 약해서 이제 보기가 힘들어. 참 마음이 아파. 구하기가 어려워서 우리집에서 뽑아온 거예요.”
서울대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1975년)이자, 최초의 여성 기술사(국토개발기술사 1호, 1980년)인 그는 현역이다. 삽과 호미와 설계도를 들고 전국을 누빈다. 환갑만 지나면 일을 그만두고 앉아서 글을 써야지 먹었던 마음이 벌써 20년 전 일이 됐다. 종이 대신 땅 위에 시를 쓴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일상을 보며 정영선은 자신의 고집이 틀리지 않았음에 안도하면서도 안타까워한다.
‘조경의 대가’로 불리지만 ‘조경(造景)’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경치는 일부러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사는 삶을 고민하는 것이 조경가의 일이자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달 29일과 30일 손끝마다 까만 흙 때가 묻은 정영선을 만나 그의 마지막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조경가 정영선씨는 경기 양평에 작은 집을 짓고 정원을 가꾸며 산다. 첩첩산중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던 습지를 오랫동안 가꾸고 다듬어 풀꽃이 자랄 수 있는 땅으로 만들었다. 현장에선 강단 있는 조경가인 그는 개인적인 삶을 풀어놓을 때는 부끄러운 듯 자주 웃었다. 장은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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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을 주차장 만든다는 말에 앞이 캄캄…김수영의 시 ‘풀’을 읽어줬죠”
선조들은 담을 낮게 두르고 주변 풍경을 내 정원으로 생각했는데
우린 높은 담을 둘러쌓고 햇볕 한 점 안 들어오는 캄캄한 데 살면서
비싼 소나무 심으면 아파트 등급이 올라갈 거란 착각 속에 살아
- 지금 작업 중인 곳은 어디인가요.
“남양성모성지(천주교 남양순교지), 식물원 일이 있고요. 도산공원, 목동 파리공원 (리뉴얼)작업도 해야 돼요. 개인주택 정원 일이 대여섯곳 정도 될 거예요. 승효상 선생(건축가)과 함께 장미희 선생(배우)의 작은 정원을 만들고 있어요. 요즘 나를 제일 괴롭히는 건 ‘사후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거예요. 삶도 중요하지만, 죽음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되도록 봉분 없이 돌아가신 분을 편하게 모시고 추억할 수 있는 정원으로 만들려고 해요. (사후정원이라고 보면 될까요?) 네. 큰 산을 마구 잘라서 포개듯이 묘를 쓰거나, 상업적인 납골당은 우리 전통과도 거리가 멀다고 봐요. 서울부터 제주, 경북(경주), 강원까지 하루에 세 곳도 다니고 정신이 없네요.(웃음)”
- 삽과 호미를 들고 일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장을 직접 다 다니시는군요.
“조경이라는 게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도면만 그리고 이야기하는 걸로는 될 수가 없어요. 조경은 계속 바뀌어요. 설계하고 중간에 공사할 때 보고…우리 직원들이 다 잘하지만, 직접 보면서 마무리해야 하는 일도 있어요. 나랑 같이 현장에서 꽃 심고 풀 뽑고 일하시는 분들 중에 80세, 90세 다 된 분들이 있어요. 오래 전국을 같이 다녔죠. 식물을 다루는 일인데, 모르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일 맡기고 그렇게 못해요. (자택의 정원 일도 직접 다 하시죠.) 아침에 다섯 시쯤 일어나서 세 시간 동안 물 주고 돌봐요. 겨울은 겨울대로 할 일이 있고, 봄은 봄대로 할 일이 있어요. 요즘은 원예종을 많이 수입하고 우리 풀꽃재배를 잘 안 해서, 우리 산천의 풀꽃으로 설계를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땐 내가 사는 곳 정원에서 캐서 가죠.”
- 선생님만의 작업루틴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을 받으면 먼저 그 땅을 여러 번 가 봐요. 나는 작은 정원일수록 더 신경을 써요. 거기서 주변환경이라든가, 그 땅에서 어떤 자연변화를 느낄 수 있는가.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가. 그 가족들이 꿈꾸는 세계는 무엇인가. 그 집과 땅과 사람에 어떤 시가 어울릴까. 어떤 그림이 어울릴까. 몇 천만원짜리 소나무로 과시한다든가, 유행을 따라간다든가 그런 것은 절대 안 해요. 한번은 어느 집 정원을 맡았는데 유치원과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셋 있더라고요. (정원에서) 하고 싶은 걸 다 적어보라고 했어요. 어떤 아이는 환경오염 때문에 뭘 심어야겠다, 누구는 채소를 심고 싶다, 누구는 벌레를 키우고 싶다고 고사리손으로 다 써주더라고요. 어른들 말은 안 들어도 아이들 말은 다 들었어요. 그 아이들은 지금도 자기들이 꽃 심고 텃밭 가꾸고 해요. 나는 그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 땅 공부, 사람 공부에 땅과 사람이 만나서 만드는 일상까지 다 염두에 두시는군요.
“나는 일종의 ‘연결사’라고 보면 돼요. 땅이 갖고 있는 역사나 문화를 이해하고 우리 자연과 이웃과 잘 조화되는 걸 생각하죠. 우리 조상들은 담을 낮게 두르고 주변의 풍경을 내 정원으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난 ‘차폐(가림)’라는 개념을 잘 안 써요. 요즘 서울에선 보기 싫은 걸 다 가려버리잖아요. 높은 담으로 둘러쌓고 햇볕 한 점 안 들어오는 캄캄한 데 살면서 비싼 나무 썼다는 걸로 아파트 등급이 올라가는 착각 속에 살죠.”
-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조경을 예쁜 꽃과 나무를 심는 작업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조경은 무엇인가요.
“조경은 예쁜 화장이 아니에요. 조경은 그저 예쁘다는 것을 넘어서야 해요. 그 공간, 자연과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를 해야 하는 작업이에요. 나는 작업을 맡으면 시 쓰듯이 생각을 해요. 사람들이 그곳에서 위로를 받고 편안하게 거닐면서 영감을 얻고 건강도 되찾을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조경의 업무라고 생각해요. 그 땅을 그 땅답게, 그 사람을 그 사람답게 해야 하는데 어떤 외국꽃이 유행하고 사진찍기에 좋다고 그 땅의 역사나 맥락과 상관없이 죽 심었다가 다시 갈아엎고 그런 일이 반복되고 있어요. ‘조경’이라는 게 참 난처한 말이에요. 1970년대 큰 국책사업을 하면서 고속도로도 만들고 문화재도 복원하고, 국제적인 행사도 유치하고 그러다 보니까 나무 심고 건설현장에 뒤처리하는 게 필요했죠. 그땐 워낙 개발드라이브가 강할 때였으니까요. 미국에 ‘landscape architecture’이 있는데 직역하면 경관건축이죠. 그것도 좀 이상한데, (197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조경’이라고 만든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조경이라고 하면 자꾸 뭘 인위적으로 만드는 걸로 생각해요. 조경학회에서 이름을 바꾸자는 얘기까지 나왔는데 지금도 잘 안 되고 있어요. 좋은 공간을 만들려면 조경과 건축이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고 협력해야 돼요. 조경이 건축의 뒤처리만 해서는 절대 좋은 작업이 나올 수가 없어요.”
관 공사는 윗사람 바뀔 때마다 ‘빼라’ ‘넣어라’ 주문 달라져
선유도공원에 죽으려고 갔던 분이 기도하고 싶었단 말에 같이 눈물
아산병원엔 서로 조금 숨어서 안 보이게…‘울 수 있는 곳’ 만들어
- ‘개발공화국’ 분위기에서 많이 싸우며 일하셨을 것 같습니다.
“싸웠다기보다 별별 일이 다 있었죠. 관 공사에는 무슨 자문위원회도 많고 윗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자꾸 달라지는 거예요. 예술의전당 작업할 때는 문화부 장관이 세 번 바뀌었어요.(웃음)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아시아공원 할 때는 서울시가 정식으로 조경설계사무실과 계약을 맺고 일을 한 게 처음이었대요. 그땐 녹지과 공무원들이 우리 사무실에 와서 앉아있었죠. ‘나무 언제 심느냐, (위에서) 이 나무, 이 돌 쓰라고 했어요.’ 하고요. 지금도 관 공사가 더 어려워요. 설계해놓고 가보면 원안이랑 영 딴판으로 바뀐 경우가 너무 많아요. 속상하죠. 한국·프랑스 수교 100주년 기념으로 목동에 파리공원을 만들었는데, 구청장, 구의원 바뀔 때마다 달라졌어요. 수영장이 필요하다며 갑자기 어린이수영장을 만들더니 또 어떤 구의원이 ‘귀한 손님 모시고 왔는데 애들이 벌거벗고 물놀이하는 거 못 봐주겠다’고 또 바꾸라고 하고요. 광화문광장은 내 설계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원형을 보존하려고 엄청난 마음고생을 해요. 그래도 나는 늘 좋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내 신념을 많이 관철시켰어요. 내 지도교수이기도 했고 청와대에서 조경담당비서관으로 일하셨던 오휘영 박사가 그랬어요. ‘정 선생은 대답은 참 시원하게 하는데 나중에 보면 개발드라이브가 하나도 안 들어가 있다’고요. ‘말씀하신 거 요렇게 표현했습니다’ 했죠. 내가 그렇게 또 피해가는 데 뭐가 있어요.(웃음)”
- 기억에 남는 현장이 많으시죠.
“말로 다 어떻게 하겠어요. 여의도 샛강을 주차장으로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막 눈앞이 캄캄한 거예요. 초기에 한강을 인위적으로 개발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샛강까지 그렇게 한다니까요. 그래서 ‘제가 (한강관리사업소) 자문위원이니까 샛강을 큰돈 안 들이고 물고기도 살고 풀도 사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겠습니다’ 하면서 한강관리사업소 소장님에게 김수영 시인의 ‘풀’을 읽어줬어요. 그다음에 물고기, 곤충, 새, 풀, 물 등 모든 생태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어떻게 생태적으로 샛강을 복원시킬 것인가 연구를 했어요. 그때 하천관리 기준에는 (치수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샛강 변에 나무를 못 키우게 했어요. 버드나무와 억새가 너무 예쁘게 자라고 있는데 그걸 다 베라는 거예요. 이건 죽어도 살려야겠다고 했는데 안 된대요. 그래서 캐나다의 아주 유명한 생태학자를 모셔다가 버드나무와 홍수는 상관없다고 브리핑을 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오라고 해서 갔더니, 서울시 감사위원 30여명이 쭉 앉아서 내가 들어갈 때부터 삿대질을 하는 거예요. 화장실도, 관리사무실도, 주차장도 없는데 이게 무슨 공원이냐면서요. ‘이런 공원도 있고 저런 공원도 있습니다’ 했어요. 그랬더니 물 위에 데크가 있는데 홍수가 나면 더 부서질 거래요. ‘다 확인했고 실험했습니다. 혹시나 문제 생기면 내 돈으로 다 고치겠습니다’ 했더니 ‘당신 그렇게 돈이 많아. 얼마나 돈이 많은지 두고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곤욕을 치른 적도 있어요.”
- 조경의 힘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곳으로 선유도공원이 꼽힙니다.
“서울시 현상설계공모가 나왔길래 가봤는데, 보니까 딱 울고 싶더라고요. 너무 좋아서요. 정수장이었던 곳을 공원으로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한 바퀴를 죽 둘러본 다음에 풀밭에 앉았어요. 여기가 겸재 정선이 한강의 풍경을 그리던 일부인데 이걸 살려야겠다 싶었어요. 절대로 다 때려 부순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정수시설을 그대로 살려보자고 했지요. 선유도라는 곳이 멀리서 보면 정수공장의 시설 때문에 하나의 거대한 함대 같은 느낌도 들었어요. 그러니 배로 오르락 내리락 여행하는 느낌이 들게 하면 어떨까 했고요, 환경교육(물교육)하는 장소로도 만들자 했어요. 한국의 풍경을 보여주는 겸재의 이미지, 정수장이라는 현대산업의 산물, 이런 것들을 어떻게 결합시킬 것인가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하면서 조성룡 선생(건축가)도 많이 울고 우리 사무실(서안조경)에 있던 정우건 소장(현 감이디자인랩)도 많이 울고 참 고생 많았어요. 포플러 나무를 못 구한다고 해서 전국을 뒤져서 구했어요. ‘시간의 정원’은 우리가 직접 가서 삽질까지 다 했어요. 그때 부시장이었던 강홍빈 선생이 정말 우리 뜻을 잘 이해해주고 도와주셨죠. 그분이 은인이에요. 어느 날은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어떤 여성분이 죽으려고 선유도공원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이상하게 기도를 하고 싶더래요. 전화기 붙들고 같이 울었죠. 공간이라는 게 참 묘한 거예요. 죽을 마음을 먹었다가 어떻게 살 생각을 하게 했을까요.”
- 서울아산병원 조경도 하셨죠.
“신관을 짓는데 정몽준 회장이 조경도면을 보여주더라고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닌 거예요. 병원에는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울 곳’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넓은 잔디밭 같은 것은 안 돼요. 서로 조금 숨어서 안 보이게 울 수 있는 정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병원에는 기왕이면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나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병원에는 병원에 맞는 조경이 필요한 거죠.”
- 서울대 환경대학원 조경학과 1호 졸업생(1975년)이십니다. 어떻게 조경가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내가 자란 배경이 조금 독특해요.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는데 할아버지가 성암산에서 과수원을 하셨어요. 야트막한 산이었는데 검은빛의 일곱바위가 있다고 칠암농원이었죠. 그 바위틈에 피어있던 백합꽃이 지금도 꿈에 왔다갔다해요. 사과꽃이 온 마당에 떨어지는 걸 보면서 컸지요. 가까이 있던 외가댁은 초가집이었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대구에서 살았는데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셔서 사택에 살았거든요. 외국인 선교사들이 짓고 가꿔서 아주 이국적이었어요. 그때 선교사들이 심은 튤립이며 장미를 봤죠. 자동적으로 그렇게 학습이 됐던 것 같아요. 아버님 친구분 중에 시인 박목월 선생, 화가 정점식 선생도 계셨고요. 원래 집에서는 내가 시인이 될 줄 아셨어요. (그는 학생 때 다수의 백일장에서 수상했다. 서라벌예대와 서울대 신춘문예에도 당선됐다.) 문학적인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적인 풍경과 이국적인 건물, 꽃과 풀, 그림을 어린시절부터 많이 보고 자란 거죠. 물지게도 지고 삽질도 하고 많은 식구가 좁은 데서 사느라 어려웠지만 그래서 더 재밌게 살았던 것 같아요.”
조경가 정영선씨의 일상. 틈나는 대로 풀과 꽃, 나무를 돌보고 시를 읽는다. 장은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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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은 예쁘게 화장하는 게 아니라 위로와 영감 주는 공간 만드는 것”
‘땅은 땅답게, 사람은 사람답게’
자연과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
‘벌자, 달려라’ 하는 것 멈추게 해
한숨 돌리고 다시 생각하도록
코로나가 중요한 역할을 한 셈
- 기자로도 일하셨죠.
“우리 풀꽃 가꾸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마땅히 그 쪽의 일이 없었어요. 대학 졸업(서울대 농학과)하고 ‘주부생활’이라는 잡지에서 일했어요 주택을 담당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놀랐지요.(웃음) 건축가 김중업 선생, 김수근 선생, 나상기 선생 작품 찍으러 문화주택에 갔는데 그때부터 꽃도 꺾어가고 꽃병, 방석, 커피잔도 가져가서 꾸미고 주택화보를 찍었지요. 앙드레김 선생이 패션화보를 찍는데 내가 실내 말고 한강에 포플러 있는 데서 찍고 싶다고 했더니 좋대요. 그래서 김밥 싸가지고 가서 찍었어요. 화가 천경자 선생 도움도 많이 받았지요. 여러 가지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어떤 분이 환경대학원에 조경학과가 생긴다고 알려줘서 마감 직전에 급하게 원서를 냈어요. 내가 나이가 워낙 많아서 이광로 선생이 출석을 부를 때 ‘언니’라고 하기도 했어요. 그때부터 환경대학원의 언니 역할 하다가, 그다음엔 조경계의 엄마 역할을 하고 그렇게 됐네요. 즐겁게 공부했어요.”
- 최초의 여성기술사(국토개발기술사, 1980년)이자 1세대 ‘일하는 여성’입니다. ‘조경설계 서안(주)’의 대표이기도 하시죠.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직업을 갖고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긴 세월을 일하실 수 있었나요.
“내가 5남매 중 맏딸인데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이렇게 키우고 딸이라고 저렇게 키우고 그러지 않으셨어요. 할아버지도 참 예뻐해주셨고요. 나도 일하면서 내 성별을 생각하며 일한 적 없어요. 생일이 4월인데, (조경은 4월에 일이 많잖아요) 환갑날도 그렇고 얼마 전에 팔순이었는데 그날도 나가서 일했어요. 참 말 못할 고통들이 많이 있죠. 초기에 참 좋은 여성 건축가, 여성 조경가들도 많이 있었어요. 근데, 여성들은 가사일하고 육아하고 회사일까지 하면서 정말로 어렵죠. 중간에 과로로 병나고 중도하차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결혼생활이 파탄난 사람도 많아요. 아픈 후배들 보면 나는 막 가슴이 저럿저릿해요. 사는 게 참 애처로워요. 자기 분야의 일을 좀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데 그게 또 참 쉽지 않은 모양이에요. 아이 낳고 나면 아이 보는 게 우선이다 나중에 일하자 하지만은 그 나중이라는 텀이 굉장히 애매해지잖아요. 나도 아들이 어렸을 때 대구 친정에 맡겨놓고 일주일에 한번씩 보러 갔어요. 남편이 쓰러져서 요양병원에 6년인가 있었는데 그때도 매일 울면서 일하러 다녔지요. 그 세월을 어떻게 다 말로 하겠어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농경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한국적인 경관 만들고 싶어
- 코로나19 사태로 삶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예전부터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을 강조해오셨죠.
“우리가 그동안 사람을 위해서 있는 자연으로만 알지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생각은 하지 않은 거예요. 그저 개발 개발, 돈 벌자 돈 벌자, 달려라 달려라 하는 것을 일단 멈추고 한숨 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데 코로나19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자연을 회복시키고 겸손하게, 자연을 존중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을 훼손해가면서 행사를 하려고 하지 말고 명상도 하고 산책하고 아파트에서라도 꽃을 가꿔보고 이런 식으로 생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축제를 기획할 때도 꼭 100만명씩 와야 하고, 그 100만명을 위한 주차장과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런 생각을 좀 바꿔야 해요. 관광객을 끌어 모으겠다고 제주 서귀포밭에 유채꽃을 심었다가, 꽃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인다고 코로나19 때문에 또 다 갈아엎고… 자연을 이렇게 대해서는 안 되잖아요. 4대강사업만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스님들이 오체투지하실 때 같이 못한 게 한이 될 정도지만…이번에 보세요. 사람들이 조금 활동을 자제하니까 인도에서 히말라야가 보이고, 멸종위기의 동물들이 돌아왔잖아요. 자연은 생각보다 힘이 세요. 자연이 회복할 수 있도록 이제 사람이 도와야죠.”
- 5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혹시 아직 못다 이룬 꿈이 있으신가요.
“할아버지가 하신 과수원이 있던 산이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어요.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삼촌들이 과수원을 팔았는데 대학으로 넘어갔다가 아파트가 들어서버렸죠. 박완서 선생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처럼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대학 다닐 때 그 소식을 듣고 한 달을 앓아 누웠어요. 그런데 한국에는 아직도 그런 일이 많아요. 자고 나면 산이 없어지고, 자고 나면 논이 없어지고. 나는 가장 아름다운 정원은 농경지라고 생각해요. 농촌이 그 나라의 경관을 좌우하죠. 그런데 지금 농촌은 너무나 무분별하게 개발돼있어요.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소박하면서도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은 거라고 생각해요. 난개발된 각양각색의 주택, 산사태가 날 정도로 깎아버린 산…이런 걸 좀 정리하고 싶어요. 가장 한국적인 농촌마을, 사람과 자연이 조화로운 경관을 만드는 게 내 마지막 꿈이에요.”
서울 여의도샛강생태공원과 선유도공원의 모습. 조경설계 서안(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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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지 속 아파트·국내 첫 생태공원…무분별한 개발에 제동
정영선 조경으로 본 한국 현대사
조경가 정영선의 작품들은 한국 현대사와 맥을 함께한다. 한국의 조경은 역설적으로 1970~1980년대 개발공화국 속에서 피어났다. 2000년대 들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주의, 재생건축 등을 고민하게 되기까지도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삶을 고민한 조경의 역할이 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선수촌아파트
한국에서 열리는 최초의 국제종합스포츠대회였다.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경기장 주변 정비사업이 국가주도로 진행되며 서울 송파구 잠실에 아시안게임기념공원,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이 만들어졌다. 정영선은 공원과 아파트 설계에 모두 참여했다. 조성룡 건축가와 함께 작업한 아시아선수촌아파트는 한국 아파트건축사에도 기념비적인 곳으로 꼽힌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만들어진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대신 지상에 녹지공간을 넓게 확보했다. 서울시가 조경설계사무실과 정식 계약을 맺고 일한 것도 이때가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는 녹지담당 공무원들이 조경을 담당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와 기념공원
대전에서 개최된 국제세계박람회. 군사정권에서 치러졌던 1988년 서울 올림픽과 달리 한국이 문민정부를 세우고 경제적·과학기술적으로도 이만큼 발전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엑스포기념공원을 맡은 정영선은 한국의 역사적인 연못인 ‘안압지’의 형태를 차용한 수공원을 만들었다.
1997년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서울 여의도에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생태공원이다. 1997년 처음 만들어졌고, 2010년 수변 생태공간을 확장했다. 원래 샛강 인근의 버드나무를 자르고 물을 막아 인근 아파트 주차공간으로 만들려고 했으나, 여러 희귀식물과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공원으로 회생했다.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산책로와 수변데크를 만들되, 자연을 해치지 않는 차원에서 이용시간과 공간을 제한했다. 여의도샛강생태공원 조성을 전후로 사회적으로도 무분별한 개발, 자연파괴에 대한 반성 속에 ‘지속 가능한 발전’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2002년 선유도공원
서울 양화대교와 연결된 선유도에 조성된 공원. 원래 정수장이었으나 정수처리기능이 사라지면서 공원으로 조성됐다. 기능을 다한 산업시설을 폐기하지 않으면서 선유도라는 공간이 가진 역사적 의미와 겸재 정선의 이미지 등을 담아 가장 한국적이며 현대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생태공원이자 환경학습공간, 다양한 문화 이벤트가 열리는 예술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영선은 선유도공원으로 미국조경가협회(ASLA)상, 세계조경가협회(IFLA) 동부지역 조경작품상, 김수근문화상, 한국건축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2008~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 자택과 묘역
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여생을 보내고 싶어 했다. 자신의 집이 마을 공동체의 베이스캠프가 되길 바랐다. 정기용 건축가와 함께 작업한 봉하 자택에는 이런 뜻이 반영됐다. 소박한 한옥을 모티브로 한 자택은 ‘지붕 낮은 집’으로도 불렸다. 노 전 대통령의 자택은 7주기인 2016년 5월 일반에 처음 공개됐다. 정영선은 승효상 건축가와 함께 노 전 대통령의 묘역 조성도 함께했다. 봉분 없이 큰 돌 하나가 놓여 있고 주위의 자연 전체를 그대로 둔 당시로서도, 지금도 보기 드문 묘역이다. 정영선은 인위적인 묘역 대신 사람이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는 ‘평장(平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2~2016년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공장(원료식물원)
서울 용산에 건설된 본사 사옥은 조선의 달항아리 백자에서 영감을 받은 ㅁ자형의 중정 형태로 설계됐다. 사옥 내부 공간 곳곳을 자연과 도시, 지역사회(용산역, 용산공원)와 기업이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오산공장은 여러 곳에 나뉘어 있던 공장을 한곳에 합치면서 각 지역에서 직원들과 함께했던 나무들, 화장품 원료가 되는 식물들로 공원을 만들었다. 공장이지만 공원으로 더 유명하다. 2019년에는 ‘원료식물원’으로 보다 확장됐다.
자문 | 박승진 조경가·디자인 스튜디오 LOCI 소장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를 찾아서…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명소 중 한 곳인 충북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이곳은 500년 넘은 긴 세월 마을의 수호신으로 남아있는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하늘에 은하수가 피어 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밝게 빛나는 은하수는 천체의 아름다움을 대표한다. 어린 시절 기억을 되돌려보면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라도 수많은 별과 은하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별을 보려면 천문대를 가야 한다는 사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 연휴 첫날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명소 중 한 곳인 충북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를 찾았다. 이곳은 수령이 500년 넘은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하늘에 은하수가 피어오르는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은하수를 찾아다니는 별바라기들에게는 잘 알려진 명소 중 하나다.
은하수를 볼 수 있는 명소 중 한 곳인 충북 옥천군 청선면에 있는 상춘정을 찾으면 보성천에 반영된 상춘정 야경과 은하수를 볼수 있다.
나는 기대를 안고 깜깜한 발길을 달려 조심스럽게 도착해보니 예상과는 달리 다른 곳보다 조금 많은 별들만 보일 뿐 은하수를 찾을 수가 없었다. 초조함에 당황해하니 암흑 속에서 카메라를 조작하고 있던 내 옆의 별바라기가 “달이 지고 나면 선명하게 보이니 기다려보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달이 뒷산으로 넘어가고 밤하늘에 별들이 한층 선명해지자 드디어 은하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은하수는 지금부터 8월까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우리와 가까워지고 더 선명해진다. 그믐달이 뜨는 날 한적한 길을 걷게 되면 하늘을 한번 바라보자. 견우와 직녀의 사랑을 맺어주었던 오작교가 은하수 속에 숨어있을 지도 모르니까.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식물이 숨 안쉬면 북극이 녹는다
이산화탄소 증가하면 식물 기공 조금만 열어
수증기양 감소하면서 육지 온도 더 쉽게 상승
대기 순환에 영향 줘 북극 온난화도 가속
이산화탄소 증가 시 식생의 기공 닫힘 효과가 대기 온도에 미치는 영향. 대륙의 온도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식생이 살고 있지 않은 북극 지역의 온도도 크게 증가한다./포스텍
이산화탄소 증가로 대륙에 있는 식물이 숨을 못 쉬면, 식물이 없는 북극까지 녹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온난화를 늦추는 것으로 알려진 식물이 오히려 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 것이다.
포스텍(포항공대) 환경공학과의 국종성 교수, 박소원 박사, 스위스 취리히대 김진수 박사 공동연구진은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식물의 기공(氣孔)이 닫히고, 내뿜는 수분량이 줄어들어 북극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것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번 연구성과는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게재됐다.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고, 산소를 내뿜는다. 식물의 잎 표면에 있는 기공을 통해 공기와 물이 식물의 안팎을 드나든다. 기공을 열어 대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면서 수분도 함께 내보낸다. 그런데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식물은 기공을 조금만 열어도 충분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할 수 있다. 기공을 적게 열면 내보내는 수증기의 양도 감소한다.
식물이 기공을 열고 닫으면서 호흡을 하는 모습. 붉은색으로 염색된 부분이 엽록체이다./Rothamsted Research
수분을 내보내는 이런 증산작용이 감소하면 육지의 온도는 더 쉽게 상승한다. 수증기는 더운 날 마당에 물을 뿌리는 것과 같이 지면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생(植生)의 반응은 지표면과 대기와 에너지 교환을 조절함으로써 전 지구적 기후변화를 초래하는데 이를 ‘생리학적 강제력’이라 한다.
공동연구진은 시뮬레이션 결과를 분석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면 육지 식생의 기공 닫힘 현상이 육지의 온난화를 일으키고, 이는 다시 대기 순환에 영향을 줘 식생이 살고 있지 않은 북극에서의 온난화도 가속시킨다는 것을 확인했다. 식물이 있는 대륙에서 기온이 오르고 이 에너지가 북극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렇게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태양빛을 덜 반사시켜 더 빨리 녹게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 시 온실효과에 의한 기온상승과 비교하여 육지 지역에서 20% 북극 지역에서 10% 온도상승에 기여함을 알 수 있다./포스텍
연구진은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기공 닫힘 효과가 북극 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평가한 결과, 대기 중 이산화탄소 증가로 인한 온실효과의 약 10% 정도가 ‘생리학적 강제력’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국종성 교수는 “식물이 없고 대륙으로부터 수천㎞ 떨어진 북극에도 식물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며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기존의 알려진 온실효과뿐만 아니라, 식물의 생리작용을 바꿔서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키고 있다”고 말했다./유지한 기자 chosun
선물로 주어지는 그린뉴딜은 없다
[초록發光] 결국 사회운동이 정부를 이끌어야 한다
그린뉴딜을 희망하던 이들 사이에서 정부에 대한 원성이 자자하다. 코로나19 사태와 대응 경험을 새로운 사회경제 체제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좌절된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우리 사회에 큰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맑은 공기와 자연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고, 불필요하게 과도한 생산과 소비를 줄여도 큰 지장이 없음을 깨우쳐 주기도 했다. 환경운동가들이 위축된 경기와 줄어든 항공여행 수요가 제주 제2공항과 흑산도 공항 같은 논란 많은 토건사업을 잠재우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며칠 새 정부의 발표들은 한국형 그린뉴딜이 과거의 경기부양 방식과 다를 바 없는 경제 정책의 되풀이 임을 예고하고 있다. 새로운 과감한 사회 '계약(deal)'도 없고 그럴싸한 '새로운(new)' 사업도 없다는 비난이 속출한다.
지난 7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제2차 비상경제중대본 회의에서 그려 보인 이른바 '한국판 뉴딜'을 살펴보면 확실히 그렇다. 그는 경제 디지털화 가속과 비대면화 촉진 등에 중점을 둔 디지털 기반 일자리 창출, 경제혁신 가속화 프로젝트 집중 추진 등에 방점을 뒀다. 이는 기존 토목사업 위주의 경기 부양성 뉴딜 개념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 디지털화는 뭔가 새로운 게 아니라 주요 대기업들이 펼치는 사업들에 대한 지원을 더 하겠다는 것이다. 일자리 추가 창출이 가능할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오히려 규제 완화와 재벌들의 요구 수용이 더 구체적인 결과일 것 같다. 부총리는 "전례 없는 위기의 극복은 물론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한발 더 앞서고 한 치 더 내다보는 선제대응이 매우 긴요하다"고 말했지만, 반발자국 디디는 것에 안주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대통령의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도 다른 내용은 없었다.
그린뉴딜 개념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 처음 등장했다가 최근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사이에서, 그리고 유럽연합(EU)의 '그린 딜'과 같은 형태로 보다 급진화하는 정책 구상 패키지다. 용어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 더욱 크게 다가올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제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고 에너지 전환과 일자리 전환을 함께 추진하자는 제안들이다. 겨우 한 달 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정책공약에도 포함되어 있던 게 그린뉴딜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의 포스트 코로나 뉴딜에서 '그린'은 실종되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에 대해 반발하거나 토를 달지 않는다. 물론 코로나19 대응과 회복이 너무 급박하여 '그린'은 뒤로 미뤄야 한다고 할 수도 있고, 그린뉴딜 같은 심도 있고 총체적인 기획을 배제한 경기부양은 더 큰 위기를 초래하는 근시안적 대책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청와대와 집권여당에서 그런 논쟁과 숙의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린뉴딜 논자들의 불만과 분노를 십분 공감하더라도, 필자는 고약하게 되묻고 싶다. 기존의 경제 틀거리와 산업 구조의 큰 변화를 전제하며 국민에게 상당히 다른 삶을 요구하게 될 정책 패키지를 집권여당과 청와대가 꺼내들 수 있었을까? 지난 2년 동안 또는 총선 전후로 집권 세력 내에서 기후위기와 뉴 노멀에 대한 어떤 심각한 논의나 준비도 없었는데 그럴 수 있었을까? 그린뉴딜을 지지하고 전환에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사회 세력이나 운동이 일반 국민과 정치인 및 관료들한테 어떤 압박감을 주지 못하는 데도 그럴 수 있었을까? 177석의 절대 숫자와 71퍼센트의 3년차 대통령 지지율은 그런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조건일까, 아니면 오히려 제약 조건일까?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에너지전환' 정책이라는 멀지 않은 참고 사례가 있다. 문 대통령의 당선 한 달여 만에 고리 1호기 영구정지가 대통령 연설을 통해 발표되는 등 기정사실화된 탈핵 정책에 많은 이들이 호응했다. 하지만 집권여당은 고사하고 대통령을 제외한 청와대 인사들 사이에서도 탈핵의 의지는 미미했고 지금도 그렇다. 2080년대까지 이어지는 핵발전 가동, 그리고 다가올 몇 년 사이에 오히려 늘어나는 핵발전소 숫자, 그러면서 각종 가짜뉴스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생각이 별로 없는 산자부와 여당, 탈핵을 준비하고 뒷받침할 정책 연구와 입법 노력의 부재. 이런 상황들이 21대 국회에서 달라질 조짐은 아직 없다. 대통령의 관심과 의지로 선물처럼 주어진 탈핵은 뒷심을 갖지 못하고 내실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신울진 3, 4호기나 맥스터 증설 같은 사안에 대한 집권여당의 당론은 무엇인지조차 의심스러운 형편이다. 물론 청와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을 압박할 만한 전국적 탈핵 대중운동도 전개되지 못했다.
여당이 총선 정책공약마저 방기하고 있다고 비난한다고만 해결될 일이 아니다. 누군지 알기도 어렵고 국민이 선출한 적도 없는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기재부 관료들이 핵심 정책과 계획을 실제로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 정치제도의 맹점도 돌아봐야 한다. 지금 같아선 집권여당도 자신의 정책에 대한 효능감과 책임감을 갖기 어렵고, 이른바 '민의'를 등에 업고 큰 개혁을 준비하기도 어렵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몇십 년을 의지해온 개발주의와 성장 이데올로기는 코로나19만을 계기로 극복할 게 아니다. 바이러스만큼 변이를 일으키는 유사 논리와 핑계거리는 지금도 쏟아지고 있다.
선물로 주어지는 그린뉴딜은 없다. 선물의 목록과 구성까지 챙기는 사회운동이 분출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담론을 채우지 않고는, 결국 우리는 엉뚱한 내용물이 담긴 녹색 포장을 받고 오히려 당황하며 손발이 묶이게 될지 모른다. 미국과 유럽에서 그나마 녹색 전환의 사회계획에 내용과 긴장감을 불어 넣은 것도 그런 운동과 담론이었다. 대통령과 여야의 주요 정치인들도 겁을 내고 어떻게 수를 낼지 고민하게 만들 만한 상황을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론 버니 샌더스나 몇몇 유럽 국가 총리들의 사례처럼 정치인이 나서면 더 큰 변화가 더 효과적으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유명 정치인들과, 제도와, 조건의 가능성을 냉정하게 불신하는 게 먼저다. 지금 '그린' 뉴딜의 실종 사태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프레시안
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실개천 다시 힘차게 흐른다
태화강 국가정원 실개천. 최근 유지수 확보사업을 준공하고 시험가동을 했다. 울산시 제공
태화강 국가정원 오산못과 실개천이 풍부하고 맑은 유입수를 확보해 다시 힘차게 흐르게 됐다. 울산시는 11일 그동안 유입 수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태화강 국가정원 오산못과 실개천의 수량 유지를 위해 중구 다운동 척과천 취수장에서 오산못까지 2.5㎞ 길이의 송수관로(지름 400~500㎜)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14억원의 사업비를 들인 이 ‘국가정원 실개천 유지수 확보사업’은 지난해 9월 착공해 지난달 15일 준공했다.
태화강 국가정원 실개천은 태화강 국가정원 안 오산못에서 시작해 하류로 가로지르는 1.1㎞ 길이의 샛강이다. 그동안 오산못과 실개천의 유입 수량은 태화강 십리대숲 취수장을 통했는데, 유입 수량도 적은 데다 염분과 철분 등으로 인해 탁도가 높아 수변정원으로서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다.
이에 울산시는 척과천의 새로운 유입수를 확보해 하루 1만톤의 맑고 깨끗한 물이 송수관로를 통해 직접 오산못과 실개천을 흐르게 했다. 이에 따라 실개천의 수질도 크게 개선되고 오산못의 분수와 벽천도 재가동하게 됐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지난해 7월12일 전남 순천만 국가정원에 이은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울산시 태화강 국가정원과 관계자는 “십리대숲과 함께 태화강 국가정원의 가장 중요한 시설인 실개천이 수변정원으로 거듭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1만년 전 멸종한 '동굴사자'가 자손을 남기지 못한 이유는..."갈기가 없어서"
빙하기 동굴사자와 매머드 등의 상상도. 위키미디어커먼즈, 마우리시오 안톤.
매머드, 검치호 등과 함께 선사시대에 사라져버린 동굴사자가 다른 사자들과의 사이에서 자손을 남기지 못한 이유에 대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스페인 진화생물학연구소, 덴마크 코펜하겐대, 노르웨이 과학기술대학 등 국제공동연구진은 지난 4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아프리카를 떠난 사자의 조상들과 현생 사자 등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를 담은 논문을 게재했다. 연구진은 현재 남아있는 사자들을 보호하는 동시에 과거에 존재했던 다양한 사자들의 관계, 즉 공통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계통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사자 20마리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이 가운데 14마리는 이미 멸종한 사자들이다. 여기에는 캐나다와 러시아 등의 영구동토에 보존돼 있던 3만년 전의 동굴사자 사체도 2구 포함됐다.
연구진에 따르면 사자의 조상은 인류의 조상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에 걸쳐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다른 대륙으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약 50만년 전에는 동굴사자가 아프리카의 선조들로부터 분화했고, 독자적으로 진화했다. 약 7만년 전에는 인도 사자가 아프리카 대륙을 떠나 분화했다.
약 3만년 전에는 지구상의 4개 대륙에 사자의 다양한 아종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특히 동굴사자는 스페인부터 유라시아대륙, 북아메리카 알래스카까지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동굴사자의 모습은 세계 곳곳의 선사시대 동굴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북아메리카 사자는 현재의 아프리카 사자나 이미 멸종한 검치호보다 더 큰 체격을 지녔으며 북미 대륙 전역과 남미 일부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럽의 동굴벽화에 나타난 동굴사자 수컷은 다른 사자와 달리 갈기털이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동굴사자와 다른 사자 아종 간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사자는 약 1만년 전 멸종한 사자의 아종으로 영구동토에서 냉동상태로 발견된 사체들만 존재하는 상태다.
내셔널지오그래픽은 9일 이번 연구 결과를 인용해 동굴사자는 현재 아프리카 사자의 조상들과 서식시기, 지역이 겹쳤음에도 교잡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과거 동굴사자와 현생 사자 조상은 서남아시아에서 같은 시기에 존재했었다. 대형 고양이과 동물은 사자와 호랑이처럼 종이 다른 경우에도 교미하는 경우가 있음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과거 동굴사자와 현생 사자 조상의 교잡을 막은 요인 중 하나로 연구진은 동굴사자에게 갈기가 없었던 것을 꼽고 있다. 암컷 사자들은 수컷 사자의 갈기털을 건강과 생식능력 등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동굴사자의 수컷은 다른 아종의 사자들에게 있어 번식 상대로 여겨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과거와 현재 사자의 서식지. 네모는 선사시대, 마름모는 역사적으로 사자가 서식했던 곳, 동그라미는 현재 사자가 서식하는 곳을 의미함.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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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지오그래픽에 따르면 북아메리카 사자 외에도 중동, 인도 등 세계 곳곳에 다양한 외양의 사자들이 서식했지만 이들 중 다수는 멸종한 상태다. 아프리카 사자의 개체 수는 과거 150년 동안 20분의 1 이하로 줄어 현재는 채 2만5000마리도 안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된 감소 원인은 밀렵과 서식지 파괴 등이다. 인도 사자는 불과 600마리만이 남아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거 인도 사자는 사우디아라비아부터 인도에 걸쳐 분포했었으나 현재는 인도 서부 밀림의 국립공원 지역에만 작은 개체군이 유지되고 있다. 급감하던 인도 사자의 수는 보호활동 덕분에 1990년대 이후 3배 가까이 회복됐지만 근친교배 등으로 인해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은 상태다. 이로 인해 인도 사자 수컷의 정자 중에는 기형인 경우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도 아프리카 사자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려면 외부에서 새로운 유전자가 도입되어야 하지만 이는 매우 논쟁적인 문제여서 쉽게 추진하기 어려운 상태다.
연구진은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는 동시에 밀렵꾼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복수의 사자 서식지를 잇는 큰 규모의 보호구역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생 사자가 기존에 멸종한 사자들과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한 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놨다. 연구진에 따르면 버버리사자는 멸종하기 전 비교적 높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들이 멸종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연구진은 현생 사자 역시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버버리사자와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1
전북 익산 장점마을 주민은 3분의 1이 암을 겪었다. 발암물질을 내뿜던 비료공장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17년 싸움 끝에 역학적 관련성을 인정받았다.
ⓒ시사IN 이명익
피해자가 아닌 삶의 주인공으로
늙고 병드는 일은 자연의 몫이었다. 세월만이 사람을 시들게 했다. 그런 줄만 알았다. 어떤 죽음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았다. 작은 시골 마을은 언제부턴가 장례를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이웃의 죽음은 예고편이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에 암환자가 발생했다. 암에 대한 공포가 아니어도 질병은 노인들의 가장 중요한 상태이자 문제였다. 늙음에 대한 ‘벌’이거나 ‘잘못 살아온 삶’의 대가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던 병이 내 탓이 아니라고 알려준 것 역시 시간이었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2001년 들어선 비료공장 금강농산에서 비롯된 악취와 오염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지 17년 만이었다. 2019년 11월 환경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금강농산과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정부가 환경오염 피해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인정한 첫 번째 사례였다.
금강농산은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이용해 유기질비료를 생산했고 이 과정에서 제1군 발암물질이 발생해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 비료관리법은 연초박을 퇴비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정해두고 있지만, 금강농산은 이를 불법적으로 유기질비료 생산에 사용했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익산시는 주민들의 지속된 민원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금강농산에 연초박을 제공한 KT&G는 ‘서류에 따랐을 뿐’이고, 금강농산에서 비료를 납품받고 공장 시설 증축에도 관여한 풍농은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시사IN〉 취재팀은 지난 2월10일~3월1일 20일간 전북 익산시 함라면 신등리 장점마을에 머물렀다. 취재진을 그곳으로 이끈 건 궁금증이었다. 이 작은 마을에 왜 비극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는지, 그 긴 세월 정부기관과 지방정부는 왜 주민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는지, 막을 수 있는 죽음은 아니었는지…. 장점마을 역학조사 결과의 의미를 짚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살펴봤다. 4월30일 현재 장점마을 주민 88명 중 18명이 암으로 숨졌고, 12명이 암으로 투병 중이다. 마을 주민 3분의 1이다.
마을에서 생긴 일이 알려지며 ‘집단 암 발병 마을’이라는 낙인을 짊어졌다. 주민들은 뭉뚱그려 ‘피해자’로만 호명됐다. 그들은 피해자이기 이전에 오래전부터 그 땅에 기대 살아온 사람들이었고 제 삶의 주인공이었다. ‘암 환자 아무개’가 아닌 마땅한 이름과 얼굴을 찾아주고 싶었다. 이들이 경험한 질병과 소외의 역사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21세기 현대사다.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장점마을의 17년’ 웹페이지(jangjeom.sisai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시사IN 이명익 2001년 7월 가동을 시작해 2017년 4월 문을 닫은 비료공장 금강농산 건물 내부 벽. 발암물질을 내뿜던 공장 내부는 먼지와 검댕을 덮어쓰고 있었다.
ⓒ시사IN 이명익
집안 대소사가 있는 날이면 마당이 주차장으로 변했다. 품에서 키워 전국 각지로 떠나보낸 자식들은 때 되면 돌아와 고향집에서 ‘엄마표’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 돌아가곤 했다. 어느 날부터 자녀들은 하루도 채 머물려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기에 붙잡지도 못했다. 차라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신등리 장점마을에는 너른 평야를 좌우에 두고 길게 뻗은 길을 중심으로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 입구 표지석에서 신호등도 없는 폭이 좁은 도로를 건너 작은 터널 하나를 지나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온다. 약 500m를 오르면 오른편으로 파란색 슬레이트 건물이 눈에 띈다. 비료공장인 금강농산이다. 2001년 7월 가동을 시작해 2017년 4월 문을 닫았다. 금강농산은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이용해 유기질비료를 생산했다. 이 과정에서 제1군 발암물질이 발생했다. 금강농산에 연초박을 제공한 KT&G나 금강농산에서 비료를 납품받은 풍농, 그리고 익산시가 모두 손 놓고 있는 사이 주민들은 발암물질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었다.
손평숙(74)은 장점마을에서 태어났다. 동네에 살던 문병준(75)과 결혼해 3남1녀를 두었다. 막무가내로 애정공세를 퍼붓는 문병준이 싫지 않았다. 때로는 담을 넘는 일도 불사하며 쫓아다니더니 결혼하고 17일 만에 군대를 가버렸다. 손평숙은 일곱 살짜리 시동생을 돌보는 와중에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모셨다. 아궁이 세 개를 쉴 새 없이 돌리며 3대 살림을 해냈다. “그때는 다 그러고 살았어. 그러니 지금이 얼마나 살 만하겠어(웃음).”
하지만 금강농산이 들어선 2001년 이후 또 다른 근심이 생겼다. 자식과 손주들이 집에 올 일이 생기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오늘은 저놈의 공장이 또 무슨 냄새를 피울라나.”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악취였다. 공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집이지만 냄새가 닿기에는 충분한 거리였다. 잠시 머물다 떠나는 아이들에게 서운했다가도 건강이 염려되기에 자신이 먼저 아이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럴수록 땅에 의지했다. 작은 땅 하나 그냥 놀리지 않았다. 흙을 만지는 동안은 잡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텃밭에 부추, 쪽파, 배추 따위를 촘촘히 심었다. 손평숙이 심는 시금치와 배추는 토종 씨앗이다. “이제는 토종 씨가 드물어. 국보가 별거 있나. 이게 국보지.”
매년 봄이면 씨를 받는다. 올봄에도 어김없었다. 씨받을 배추는 겨우내 베어 먹지 않고 한 줄 길게 남겨둔다. 아이 키만큼 꽃대가 올라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꽃대마다 씨가 맺혔다. 배추꽃은 꼭 유채꽃처럼 생겼다. 노란 꽃이 다 지면 종자가 남는다. 마른 꽃대를 베어 털면 씨가 떨어진다. 잘 보관했다가 늦가을에 심는다. 지난해에도 그렇게 심은 토종 배추인 경종으로 1000포기 넘는 김치를 담갔다. “어찌나 팔라는 사람이 많은지 몰라. 알음알음 한번 먹어본 사람은 계속 찾아.”
문병준과 손평숙도 나고 자란 마을을 떠난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 작은 공장을 열었다. 전기배선 기구 연결장치를 제조하는 공장은 한때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거래하지 않는 매장이 없을 정도였다. 문병준은 단가를 낮춰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미수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1988년 크게 망했다.
서울에서만 공장을 하란 법은 없었다. 고향으로 내려와 1990년 9월 집 마당에 별채를 짓고 ‘세모전자’ 간판을 걸었다. “하도 크게 망해서 앞으로는 자빠지지 말라고 이름을 ‘세모’로 지었지.” 이번에는 사업을 확장하지 않았다. 인근 마을 사람만 채용해 고정적으로 납품하는 물량만 소화한다. 한때 20명 가까이 뒀던 직원은 현재 4명이 남았다. 마을과 함께 세모전자도 늙었다. 나이를 이기는 ‘업’은 없었다.
24시간 가동됐던 금강농산은 여러 의미로 빠르게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악취나 오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작은 마을이 공장 문제 해결 방법을 놓고 반으로 쪼개졌다. 그사이 문병준은 금강농산 바로 아래 밭주인이 누군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밭과 밭 사이에 난 좁은 포장도로는 농기계가 올라가기 위해 임시변통한 길로 사유재산이었다. 시내로 이사 간 밭주인을 찾아가 3년 치 세를 줬다. 포클레인을 불러 공장 들어가는 입구를 파버렸다. 담배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인 연초박을 비롯한 온갖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차량 통행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일로 금강농산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검찰 조사도 받았다. “내가 오죽하면 공장 굴뚝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을라고 했을까.” 2002년 당시만 해도 참 젊었다. 문병준을 비롯해 50~60대를 중심으로 한 마을 청년들은 이후에도 ‘간헐적 데모’를 열곤 했다.
목숨을 증거 삼아 얻은 역학조사 결과
이제는 대부분 돌아가셨지만, 당시 마을 어르신 일부와의 다툼은 필연이었다. 금강농산 이갑찬 대표는 적절히 돈을 풀어 민심을 달래곤 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두에게 주지는 않았다. 마을 대소사며 애경사를 챙기는 ‘바지사장’도 따로 있었다. 주민들은 아직도 그 바지사장의 이름과 그가 타고 다녔던 흰색 다이너스티 차량 번호를 똑똑히 기억한다. 돈을 받은 일부 ‘어르신’은 데모하는 ‘젊은 것’들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용한 마을에 괜한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며 단속하기 일쑤였다.
온 마을이 똘똘 뭉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일이 가능한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다. 생각은 모두 같지 않았다. 공장을 적으로 둔 싸움은 오랜 시간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고, 금강농산은 그 틈을 적절히 비집고 들어오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이갑찬은 마을 주민 중 몇몇을 채용하는 ‘아량’을 베풀기도 했다. 비료공장이 들어선다고 했을 때 마을 일부가 반긴 것도 내심 이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농사짓는 일 말고는 일자리가 없다고 해도 무방한 농촌에서 공장은 드문 직업 ‘선택지’였다. 학령기 자녀를 키우는 젊은 농민일수록 농사와 공장 일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근 군산농공단지로 나가는 것보다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까운 공장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농업은 하늘의 뜻을 살펴야 했지만, 공장 일은 사장의 뜻을 살피면 되었다.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했다.
가끔 주민과 공장 간 다툼이 벌어졌지만 큰 소동은 드물었다. 그사이 문병준은 2012년 위암을 얻었고, 손평숙은 2017년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그리고 마을의 수많은 사람이 아프거나 죽었다. 2020년 4월30일 기준 마을 주민 88명 중 18명이 암으로 숨졌고 12명은 암으로 투병 중이다. 절반 가까이가 암을 겪은 셈이다. 이미 마을을 떠난 사람 중에도 죽거나 투병 중인 사람의 소식이 건너오곤 했다. 금강농산 노동자 중에도 암 환자가 있었다. 이갑찬 금강농산 대표도 피해 가지 못했다. 그는 2018년 폐암으로 숨졌다. 마을 주민들이 걸린 암의 종류도 다양했다. 금강농산발 발암물질은 암만 일으킨 게 아니었다. 암은 마을을 덮친 대표 질병일 뿐 각종 피부질환과 우울증 등은 일일이 집계하기도 어려웠다.
2019년 11월 환경부는 690쪽에 달하는 ‘장점마을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 실태조사’ 보고서를 내놓았다.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의 원인이 금강농산이라고 정부가 공식적으로 확인했다. 목숨을 증거 삼아 얻은 결과였다. 농업용수로 쓰는 소류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밭과 논에서 나는 농작물이 형편없이 망가졌을 때도 꿈쩍 않던 지자체가 보고서 앞에 고개를 숙였다. 익산시장과 전북 도지사, 지역구 국회의원,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까지 사과가 이어졌다. 복잡한 심사였지만 손평숙은 일단 안도했다. “역학조사 결과를 받고 마음이 참 복잡하데. 이래서 사람들이 아팠구나. 이래서 남편이, 내가 아팠구나. 우리 몸땡이가 증거인데 어째서 이걸 이렇게 오래 방치했을까. 왜 외면했을까.”
최재철(59)은 2016년 주민대책위원회(주민대책위)를 만들고 2019년 역학조사 결과를 이끌어낸 주역이다. 나고 자란 집을 떠나 살다가 ‘돌아온 아들’이었다. 아내와는 오래전 이별했고, 성장한 아이들은 결혼을 하거나 유학길에 올랐다. 혼자 몸만 책임지면 되는 가뿐한 상황에서 고향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주민대책위 조직이었다. 사망자와 투병자를 자체적으로 조사해 금강농산으로 인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고, 기자회견을 여는 등 언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지역 공무원들을 움직이려면 언론을 잘 활용해야 했다. 매체를 가리지 않았다. “거짓말 아니고 인터뷰를 한 1000번은 한 거 같아.”
고향으로 돌아온 건 2012년 피부암과 폐암을 진단받고 와병 중인 아버지 최옥엽을 돌볼 사람이 마땅치 않은 점도 한몫했다. 가려움 때문에 피가 날 때까지 긁고서야 겨우 쪽잠을 주무시던 아버지는 큰아들이 마을 문제에 앞장서자 긍긍했다. “내가 해코지당할까 봐. 어른들이 뭘 아나. 저놈의 공장 때문에 죽는다고는 생각 안 했다고. 나이 먹어서 아픈가 보다, 나이 먹어서 죽는가 보다 했지.”
2019년 1월 최옥엽은 84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장례를 치르고 한참 지나 보니 그때 받은 조의금이 주민대책위 활동비가 됐다. 집에 찾아온 손님이 한라봉 상자를 건네자 최재철은 잠시 말없이 눈으로 훑었다. 하나를 골라 껍질 일부를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제일 좋아 보이는 과육이었다. 대화 중이라는 것도 잠시 잊은 듯했다. 최재철이 한라봉을 들고 아버지 영정과 위패를 모신 방으로 들어갔다.
장점마을은 인근 30여 부락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촌이었다. 부촌임을 짐작하게 하는 조명 전등갓과 천장에 그려넣은 화려한 무늬는, 그러나 촌스럽고 오래전 것이었다. 한때 대가족이 살았던 최재철의 집에는 냉장고가 두 개, 김치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그 안의 물건들은 어딘가 풀죽어 있거나 상해 있었다. 주민대책위 위원장을 맡은 이후 “화를 추스르기 어려웠다”라는 그의 속내가 냉장고 속 음식으로도 드러나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마당을 드나드는 길고양이 밥을 챙기고 유난히 많은 식물 화분에 물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모두 아버지가 해오던 일이다. 생명이 있으나 말없는 것을 돌보고 가꾸는 동안 최재철은 아버지가 지녔을 내면의 풍경을 떠올렸다. 불같은 성격의 최재철과 달리 최옥엽은 장점마을에서 유순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어른이었다. “아, 내 성격은 어머니 쪽이지.” 어머니 안병심은 요양원에서도 ‘대장’을 하고 있다고, 최재철이 웃었다.
악취와 매연은 고스란히 마을로 고였다
텔레비전 볼륨은 둘러앉은 사람들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컸다. KBS1 〈뉴스 9〉를 보는 와중에 코로나19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73세 노인이었다. 하영순(78)이 혀를 찼다. “일흔셋이면 한창 땐디….” 김영환(82)은 콜라 반 잔을 마시더니 거실 소파에 잠시 앉아 졸았다.
부부의 발밑으로 셋째 딸이 보낸 신발 상자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영순 앞으로 두 개, 김영환 앞으로는 하나였다. 그중 두 켤레는 모양은 같고 색만 다른 커플 운동화였다. 250㎜, 키 차이가 제법 나는 두 사람이지만 발 크기는 똑같았다. “병원 갈 때 신고 다니라고 보내준 거여.” 하영순의 설명에 부스스 눈을 뜬 김영환은 무심한 얼굴로 상자에서 신발을 꺼내 끈을 뀄다. 신발을 신고 거실을 걷는 걸음은 신중했다. 2013년 위암 수술 후 67㎏ 나가던 김영환의 몸무게는 51㎏으로 줄었다.
“주민들을 돌라먹은(속인) 거야.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꼼짝 못하고 당했어.” 금강농산이 처음 장점마을에 들어온 2001년, 김영환은 이장을 맡고 있었다. 이갑찬 대표를 만났다. 비료공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민들 걱정이 많으니 마을회관에 와서 설명회를 하라고 요청했다. 늦게나마 오긴 왔다. 이갑찬은 당당했다. “마을 주민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거야. 대답이 간단하더라고. 나중에 냄새가 하도 나서 쫓아 올라갔더니 그래. ‘빵 냄새, 땀 냄새처럼 사람마다 좋아하는 냄새가 다 다르다. 공장에서 나는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걸 다 어떻게 맞추나.’ 참 뻔뻔하지.”
금강농산에서 나온 유해물질은 암 외에도 각종 질병을 유발했다. 대표적으로 피부질환이다. 하영순은 피부 가려움증과 우울증으로 이틀 걸러 하루꼴로 병원에 간다. “수면제 없이는 잠을 통 못 자. 우리야 이제 둘 다 밥보다 약이 더 많아. 하이고, 폭폭하니 못 살아, 아주.” 하영순이 매일 먹는 약을 한보따리 들고 나왔다. 자녀들은 장점마을을 떠나라고 몇 번씩이나 권유했다. 말이 쉬웠다. 평생 살던 땅을 두고 떠난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하영순이 지금도 아프게 기억하는 ‘사건’이 있다. 2015년 정부 부처 공무원인 셋째 딸이 군산에 출장 온 길에 동료들과 함께 집에 들렀다. 음료라도 좀 준비해달라는 말에 하영순의 마음이 바빴다. 한창 음식을 마련하고 있는데 딸과 동료들이 탄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이 ‘어, 이게 무슨 냄새야?’ 하면서 손으로 숨을 못 쉬겠다고 코를 잡고 뛰어 들어오는 거야. 나보고 그래. 어머니, 이 냄새 맡고 살면 안 된다고. 얼마나 미안했는지 몰라. 속도 상하고…. 직원들이 나가면서 마스크 있으면 좀 달라고 해. 있는 거 다 집어줬지.” 딸과 동료들은 그동안 맡아본 적 없는 악취였다. 함라산이 둘러싸고 있는 분지 형태의 마을은 기류 확산이 잘 되지 않았다. 공장에서 시작된 악취와 매연은 고스란히 마을에 고였다.
현재 생존한 장점마을 주민 대부분은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20대 초반 결혼과 함께 인근 지역에서 이주해 마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40가구 중 2000년대 이후 장점마을로 이주해온 집은 여섯 가구이며, 이들 중 속초에서 온 한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익산 인근 마을 출신이다. 1940~ 1950년대생이 제일 많고, 평균연령은 59세다.
이미은(57)은 장점마을에서 드문 ‘외지인’이다. 1998년 추석 때 시댁에 내려왔다가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눌러앉았다. ‘1년만 몸조리하고 가라’는 시어머니의 말이 20년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농사를 짓고 마을 이장도 하면서 마을 주민들과 부대끼는 동안 세월도 속절없이 흘렀다. 이미은은 이웃 마을에서 장점마을에 보내는 ‘호기심’이 불편하다.
“정말 장점마을 꼬리표를 떼고 싶어요. 보상 얼마 받느냐고 물어봐요. 이 마을 사람들이 무슨 보상받으려고 아픈 사람들도 아닌데. 저도 텔레비전에서 철거민 같은 사람들 보면 ‘왜 이사를 안 갈까’ 생각했는데, 이번에 제가 정말 잘 알게 됐어요. 이사를 쉽게 갈 수 있는 게 아니구나. 내가 어딘가로 이사 갈 때 그곳에서 뭘 먹고 살지, 그런 계획이 다 세워져야 가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천주교 신자인데 지금은 냉담자예요. 하느님은 아시겠죠. 제가 왜 성당에 안 나가는지.”
장점마을은 종교적 동질성이 매우 높다. 마을 주민 90%는 천주교를 믿는다. 익산은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 가운데 한 곳이다. 장점마을에서 17㎞ 떨어진 곳에 나바위성당(1907년 건립)과 성지가 있다.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사제로서 첫발을 내디딘 곳에 세워졌다. 전북 지역에는 지금도 약 100여 곳에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사는 교우촌이 있다. 곳곳에서 공소를 찾을 수 있다. 공소는 사제가 없는 교회를 말한다.
장점마을에도 세워진 지 60년 넘은 공소가 있다. 공소는 한 달에 한 번 열린다. 미사는 오후 7시에 시작되지만 9년째 공소회장을 맡고 있는 최석환(65)은 공소가 열리는 날이면 오후 일을 뺀다. “신부님 의자 싹 닦고 그랄라믄 일찍 와야제.” 최석환은 일일이 전화를 돌리면서 출석 여부를 확인하더니, 미사 시간이 가까워오자 자신의 트럭을 몰고 각 집 앞을 돌며 픽업 서비스에 나섰다. 공소 뒤로 금강농산이 보였다. 금강농산 건물은 마을 어디에서나 잘 보였다. “저 공장이 멈추고 나서는 공기가 아주 싱겁더라고요. 제가 아들한테 이 말 했더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난리야(웃음).”
할머니들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복장을 하고 공소 방향으로 난 언덕길을 올랐다. 가장 깨끗한 옷과 구두를 갖춰 입고 화장도 했다. 김광석 요아킴 주임신부는 단상 아래에서 주민들과 눈을 맞췄다. 강론은 설교라기보다 대화에 가까웠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 사람만의 이야기, 그걸 우리는 다른 말로 표현해서 역사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고통스럽게 경험했던 금강농산 문제도 여러분만의 역사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나 기록을 남겨두지 않으면, 흐지부지 날아가버리는 거예요. 남기지 않으면 평가를 할 수 없어요. 이 문제를 기억하고 있는 여러분이 죽어버리면 다 끝나버려요.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정리가 돼야만 앞으로를 설계할 수 있는 거예요.”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2
한 지역에 생애 전반을 단단히 뿌리내린 사람들은 웬만한 일로는 쉽게 이주하지 않는다. 교우촌은 더 그렇다. 그들이 살았던 터 자체가 삶일 수 있다. 드물게 떠난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금강농산으로 인한 집단 암 발병도 이주를 추동하지 못했다. 삶의 기반이 이곳에 있고, 다른 지역에서의 삶을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가까이 학교도 없어서 일찍이 익산 시내로 ‘유학길’에 올랐던 자녀들만이 부모 세대의 미련함을 타박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보낸 세월은 단순하게 또 쉽게 정리할 수 있는 역사가 아니었다. 이곳의 많은 물건에는 세월이 묻어 있었다. 가늠하기 어려운 세월은 찐득거리거나 어딘가 상한 얼굴로 나타나서 당황시킨다. 이주는커녕 이사할 일도 없이 정주한 사람들의 살림에는 모두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오래된 살림은 그들이 말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끄집어냈다. 지난 2월17일부터 장점마을 40가구 모두 순차적으로 도배·장판 교체가 시작됐다. 역학조사 이후 익산시가 시행하는 장점마을 지원사업 중 하나다. 금강농산 운영 중에 배출된 1군 발암물질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 등 각종 유해물질은 먼지나 검댕의 형태로 벽이나 문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때문에 지원사업 예산 중에서도 가장 빨리 편성됐다.
이원애(82)는 도배·장판 교체를 앞두고 1960년 시집올 때 누벼서 가져온 최고급 솜이불을 2020년 장롱 안에서 꺼냈다. 그 이불 속에서 자란 아이들과 무뚝뚝한 남편과 고된 시집살이는 당신 20대 전부이기도 했다. 창고를 열자 쏟아진 책과 흙 묻은 신발은 2004년 급성위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뜬 둘째 아들 김주엽(당시 35세)의 것이었다. 이원애는 그 물건들 앞에 그저 망연히 앉아 있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짐을 정리한다는 건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다. 이원애는 그 짐에 묻어 있는 이야기를 ‘감히’ 정리할 수 없었다. 미래에 가지고 갈 것과 버릴 것을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은 이원애처럼 아직 남아 있는 사람이다. 그것은 평생 끝나지 않을 애도의 한 모습이었다.
“내가 아들 둘, 딸 둘을 낳았어. 2남2녀라고, 딱 좋다고 했는데. 1남2녀가 돼부렀어.” 주엽을 떠올릴 때면 지금도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물을 끓여 말아 먹으려고 했는데 전기포트가 말을 듣지 않았다. 불은 들어오는데 작동이 안 되었다. 이원애는 밥그릇을 밀어놓고 두유 하나를 꺼내 마셨다. 빈속은 아니니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어지럼증, 혈압, 당뇨, 관절약 따위를 털어 넣었다. 고된 농사는 흔적을 남겼다. 이원애의 손가락 마디는 모두 뒤틀려 있었다.
악취가 심한 날이면 남편 김순길은 이원애에게 바닥으로 몸을 최대한 낮춰서 누워보라고 권했다. 그 말에 의지해 장판에 얼굴을 붙여도 악취로 인한 두통은 잦아들지 않았다. 2017년 공장이 문을 닫고 악취가 사라졌다. 그리고 바닥에 얼굴을 붙여보라던 남편 김순길도 이제는 없다. 김순길은 담낭암을 앓다가 2009년 71세의 나이로 숨졌다.
이원애는 김순길이 유명을 달리한 건 주엽을 잃고 화병이 난 것도 한몫했다고 여긴다. 그럴 때면 ‘왜 자신은 아직 죽지 않았느냐’고 신에게 물었다. 미국 조지아 공대에서 유학한 주엽은 당시 취업에 연이어 실패하고 상심한 채 집에 내려와 있었다. 주엽은 끝내 취업에 성공하지 못했다. 부모는 2억여 원을 들여 전주에 실내 인라인스케이트장을 차려줬다. 몇 달 운영도 못해보고 급성위암이 발병했다.
‘그날’에 붙들려 있는 사람이 이원애만은 아니다. 박명숙(54)은 2013년 어머니 황임순(당시 74세)을, 2014년 아버지 박노섭(당시 76세)을 연달아 여의었다. 모두 폐암이었다. 5남매 중 둘째 딸인 박명숙은 부모와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떠맡듯 병구완을 시작했다. 익산 시내에서 장점마을까지 차로 30분 거리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두 분 다 투병 기간은 짧았다. 어머니가 1년, 아버지가 9개월을 앓다 돌아가셨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바쁜 형제들은 드물게 병원에 왔다. “엄마가, 아빠가 진짜 아플 때 어떤 모습인지 형제들은 끝내 모르겠죠.” 그래도 ‘편히’ 돌아가셨다는 형제들의 위로를 박명숙은 이해했고, 또 이해하지 못했다.
황임순은 2012년 자꾸만 쿡쿡 쑤시는 옆구리가 불편했다. 의사는 보호자인 박명숙을 불러 물었다. “엄마가 ‘담배 피우느냐’라고 물어요. 안 피운다, 음식도 태운 건 질색하는 분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주변에 공장이 있느냐’고 묻더라고요. 있긴 있다고 했죠. 그때만 해도 설마 했어요.” 익산병원에서는 대학병원으로 가 조직검사를 해보라는 내용으로 소견서를 써줬다. 검사 결과는 나빴다. 암 발병 부위가 좋지 않아 수술도 할 수 없었다. 1년 동안 3차에 걸쳐 항암치료가 진행됐다.
그사이 박명숙은 20년 가까이 끌고 다니던 자동차를 당시 최신형이었던 쉐보레 크루즈로 바꿨다. 어머니를 태워 병원과 집을 오가는 동안 오래된 자동차를 불안해하던 모습이 기억나서였다. 안심시켜드리고 싶었다. 새 차를 뽑은 날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2013년 5월7일이었다. “차 뽑자마자 급하게 몰고 엄마 있던 요양병원으로 갔어요. 엄마 병실 창문에서 제일 잘 보이는 데 차를 댔어요. 올라가서 엄마한테 새 차를 가리키며 그랬어요. ‘엄마, 저거 봐봐. 저기 흰 차가 내 차야. 이제 저거 타고 집에 가자.’ 그랬더니 엄마가 ‘내가 이제 마음이 놓인다’고 좋아하더라고요.” 황임순은 결국 둘째 딸의 새 차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 병세가 악화돼 한 달 뒤인 6월3일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 박노섭은 내내 진통제를 달고 살았다. 처음에는 ‘장례 치르느라 힘드신가’ 생각했다. 장례를 마친 후 어깨가 결린다는 말에 정형외과 전문병원으로 모셨다. 진찰을 마친 의사는 “과를 잘못 찾아왔다”라고 말했다. 혹시 암이냐고 묻는 말에 의사는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검사 결과 폐암이었다. 박노섭은 아내가 투병하는 동안 ‘네 엄마 죽으면 1년 안에 따라간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편찮으신데 숨긴 거 같아요. 엄마부터 살리자고, 그것만 생각하자고 매번 말하셨어요.” 박노섭은 명숙의 새 차 뒷자리에서 병원을 오가며 혼잣말을 하곤 했다. “내가 당신(엄마) 몫까지 새 차 실컷 타고 간다.”
ⓒ시사IN 이명익 장점마을은 함라산에 둘러싸인 분지 형태다. 사진 정면 가운데 보이는 파란색 슬레이트 건물이 금강농산이다. 마을 입구에서 약 5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하늘나라에서는 농사 안 지어서 편하죠?
박노섭이 황임순을 묻고 집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수를 상수도로 바꾼 일이었다. 대여섯 발자국 남짓한 땅을 파서 상수도관을 묻는 데 100만원이었다. 2013년 상수도 통계에 따르면 장점마을이 속해 있는 함라면의 상수도 보급률은 16.9%에 불과했다. 그만큼 지하수 이용률이 높았다. 2008년부터 마을에 상수도가 보급되기 시작했지만 설치비용 일부를 주민이 부담해야 해서 대부분은 지하수를 이용했다.
장점마을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면서 익산시는 상수도 비용을 전액 지원해줬지만, 박노섭은 이미 들인 비용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박노섭은 금강농산이 배출한 폐수 때문에 황임순이 병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금강농산은 2010년 9월까지 대기배출시설이나 폐수배출시설을 따로 갖추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박노섭은 장기들이 정신보다 먼저 무너졌다. 식사하는 와중에도 소변 조절을 못해 받아내야 했다. 박명숙은 아버지를 씻기면서 매일 울었다. “작은딸이랑 아버지 팔을 하나씩 나눠 드는데 이 양반이 양쪽에서 들어도 꼼짝을 안 해.” 생은 무겁고, 생을 포기하는 마음 역시 무거웠다.
병구완을 하는 동안 가출을 감행했던 중학교 2학년 때 생각이 자주 났다. 5남매 중 둘째 딸은 깍두기 같은 존재였다. 언니 옷을 물려받아 입으며 막내 여동생이 새 옷 지어 입는 걸 부러워하기만 했다. 어쩐지 집안의 궂은일도 박명숙의 몫이었다. “자식이 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다섯이나 있는데 일을 그렇게 나만 시키더라고. 일이 너무 지겨워서 중2 때 수업료 준 거 들고 서울로 가출했어. 큰집에 일주일쯤 가 있었어요. 엄마랑 아버지가 데리러 왔길래 내가 그랬어. ‘공부를 시켜야지 일을 시킨다’고 울었어요. 아버지가 그래. ‘명숙아, 일 이제 안 시킬게 가자’고. 그 약속을 결국 못 지켰지(웃음).”
결혼해 서울에서 딸 둘을 키우는 동안 유년의 기억은 불쑥불쑥 치고 올라왔다. 박명숙은 서울을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는 도시’로 기억한다. 어느 날에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밑도 끝도 없이 소리를 질렀다. 나만 일을 많이 시켜서, 내가 어려서부터 일만 많이 해서 되는 일이 없다고 양껏 화풀이를 했다. 그러고는 잊었다. 엄마는 기억하고 있었다. 돌아가시기 보름 전 황임순은 딸에게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그 말을 더는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하고 갔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박명숙은 그 말을 붙잡고 산다. “진짜 아들밖에 몰랐던 양반들이거든. 딸은 필요 없다고 그랬어. 그런데 편찮으시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딸이 필요하더라는 거야.”
부모가 없는 집은 박명숙이 지킨다. 부모 영정사진을 안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텔레비전 위에 걸었다. 사진을 보며 때로 혼잣말도 한다. “텔레비전 보면서도 한 번씩 쳐다볼 수 있어서 좋더라고. 내가 나고 자란 집이니까, 사진을 보고 있으면 엄마가 이맘때 무슨 일을 했지, 내가 뭣 때문에 혼났지, 그런 생각을 떠올릴 수 있어. ‘거기서는 편하시냐. 농사 안 짓고 사니까 재밌냐’라고 묻기도 하고.”
장점마을의 2013년은 여러모로 잔인한 해였다. 손창영(당시 75세)을 시작으로 줄줄이 사망자가 나왔다. 정경례(77)는 남편 손창영이 숨진 날짜와 요일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2013년 3월25일이 월요일이었어.” 경로당에서 라면 끓여 먹고 멀쩡하게 걸어서 병원에 간 손창영은 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못했다. 익산병원에 입원한 지 보름 만이었다. ‘대학병원으로 전원시키라’는 결정을 받았다. 아무래도 더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담당 의사의 말에 정경례와 큰딸은 원무과로 병원비를 치르러 내려갔다. “그 짧은 새 아들한테 전화가 왔어. 어머니, 빨리 병실에 올라오라고. 올라갔더니 남편이 아래위로 구멍마다 피를 흘리면서 고함을 치고 있는 거야. 내가 의사 멱통(멱살)을 잡고 흔들었어. 살린다더니 어떻게 된 일이냐고.” 느닷없는 죽음이었다. 입원 기간이 짧고 내내 상태가 좋지 않아 병명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쇼크다발성 장기부전, 그리고 피부 관련 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았다.
“우리 집이 그때 화목보일러를 땠어. 공장 올라가는 언덕에 아카시나무가 많거든. 남편이랑 나무 주우러 올라가는데 큰 트럭이 줄줄이 공장으로 올라가데. 그러더니 곰방 공장 아들(이수영)이 와서 나무를 못하게 하는 거야. 뭘 알아야지. 나중에 보니까 그 트럭에 태우면 안 되는 ‘나쁜 거’를 잔뜩 실었는가 싶지.”
정경례의 집은 마을 첫 집이다. 언덕 위 공장에서 태우며 생기는 ‘나쁜 거’는 악취와 매연의 모습으로 나타나 바닥까지 낮게 내려앉곤 했다. 손창영을 보낸 후 정경례는 공장 앞에서, 익산시청에서 “눕고 뒹굴고” 난리를 여러 번 쳤다. 연이은 부고에 농민회와 인근 마을 주민까지 300명이 금강농산 앞 좁은 길을 막고 집회를 열었다. 천막도 쳐봤다. 소용없었다. “못 배운 시골 사람이라 그런가. 우리 얘기는 아무도 안 들어주는갑다 했지.”
배움은 ‘국민학교(초등학교)’ 문턱에서 멈췄다. 1학년 1학기를 다니며 ‘가나다’를 겨우 뗄 무렵 부모가 등교를 막았다. 아래로 남동생이 다섯이었다. 해수 기침 때문에 바깥 거동을 못하는 아버지를 대신해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를 돕는 건 첫딸인 정경례의 몫이었다. “지금 같으면 두들겨 맞아가면서도 학교 가겠다고 싸웠을 것인데….” 일찍 부모를 여읜 손창영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손창영은 예초기며 트랙터며 못 고치는 농기계가 없었다. 손재주가 좋기로 소문이 나 먼 마을에서도 고장 난 기계를 들고 정경례의 집으로 왔다. “그짝으로 공부를 더 했으면 우리 아저씨는 참 좋았을 것인데….” 정경례가 다시 한번 말을 줄였다.
그해 6월10일, 김형구(54)는 부모를 한날에 잃었다. 함열장례식장이 문을 열고 3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다. 김형구는 원두커피가 담긴 잔을 한참 내려다봤다. “꼭 이랬어, 공장에서 나오는 연기 색깔이. 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코가 뻥 뚫린다고 해야 하나. 부모님 묻고 공장 올라가서 얼마나 싸웠나 몰라. 내가 쌍욕을 아주 잘하거든. 좀 해도 될랑가(웃음). 이 X같은 새끼들아, 니들이라고 괜찮을 거 같냐!”
암 확진을 먼저 받은 건 어머니 박원례였다. 2008년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 아버지 김수정은 5년 뒤인 2013년 간암과 담낭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길어야 3개월을 살 수 있다고 했다. 손쓸 방법이 없었다. 6월10일 새벽에 어머니를 모셔둔 요양원에서 급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형제 한 명을 제외하고 온 가족이 임종을 지키러 갔다. 아침 일찍 숨을 거둔 어머니를 함열장례식장에 모시는 사이 또 다른 부고를 들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시간 만에 숨을 거뒀다. “그때부터 내 목표는 하나였어. 저 공장 무조건 문 닫게 만든다. 이를 악물었지. 저걸 없애야 우리가 산다. 애들도 살고, 새로 이사 오는 사람도 산다.”
김형구의 집은 장점마을에서 가장 북적이는 집이다. 3대가 함께 산다. 김형구와 아내 배유경(52), 그리고 5년 전 식을 올리기도 전에 ‘혼수’를 준비해온 큰아들 민진(30)과 며느리 정지영(24)이 낳은 손주 윤후(5)와 시후(4)가 있다. 김형구와 배유경의 둘째 아들 민석(28)은 회사가 있는 군산에서 자취한다. 2007년 김형구가 ‘늦둥이’로 얻은 셋째 아들 민영(13)은 윤후·시후와 함께 자랐다. 딸을 낳고 싶었는데 또 아들이었다. 민영은 그런 부모의 바람을 잘 아는 아이였다. 곰살궂고 다정했다.
김형구도 젊은 시절 고향을 떠난 적이 있다. 서울 생활은 낯설고 고되고 짧았다. 1989년부터 을지로 인쇄공장에서 제판실 ‘고바리’ 일을 했다. 포토숍이 없던 당시 사진을 수작업으로 고치는 일이었다. 사진을 어둡게 혹은 밝게 고쳤으며 때로 신체 일부를 조정하기도 했다. 1997년 IMF(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공장이 망했다. 김형구는 미련 없이 짐을 쌌다. “고향 내려오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 서울이 어찌나 답답했던지. 내가 뼈를 묻을 데는 여기밖에 없다 했지.”
가끔 그 결정을 후회한다. 금강농산은 부모의 목숨만 앗아가지 않았다. 두 아들 민진과 민석의 피부도 망가뜨렸다. 둘째 민석은 아직까지도 피부과에 다닌다. 여름에도 반팔과 반바지를 입지 못한다. 큰아이 민진은 반팔을 포기하지 않았다. 흉터가 남은 피부를 문신으로 덮었다. 어깨부터 왼쪽 팔까지, 커다란 잉어를 그려 넣었다.
정지영은 그런 민진을 무서워하지 않은 한 사람이었다. 지영은 원광보건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며 함라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가족을 돕던 중 김민진을 만났다. 식당에 밥 먹으러 우르르 들어온 ‘남자 떼’ 중 한 명이 민진이었다. 무리 중 한 명이 지영에게 농을 걸었다. “민진이가 너 관심 있대.” 민진은 “시끄러워, 조용히 해”라고 답하며 밥그릇에 얼굴을 묻었다. 오기가 생겼다. 지영은 그날 밤 집에 가서 페이스북으로 김민진을 검색했다. 먼저 쪽지를 보냈다. 3개월 연애했다. 첫째 윤후도 그때 생겼다. 집을 마련할 돈을 벌 때까지 시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익산시의원을 꿈꾸는 ‘장점 며느리’
포도즙을 컵에 따라 내오며 지영이 덧붙였다. “이 마을에서 난 거 아니니까 안심하고 드세요.” 외지인인 취재팀을 대접하며 새침하게 말했지만 지영이 이 마을에서 난 식재료를 안 먹는 건 아니었다. 마트는커녕 구멍가게 하나 없는 마을에서 배추나 파, 마늘은 어디에나 흔했고 다른 곳보다 품질이 좋았다. 아직 어린 윤후와 시후에게 ‘먹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흙에서 바로 뽑아낸 것들은 어찌나 싱싱한지 자꾸만 마음을 뺏기곤 했다.
사춘기를 통과 중인 민영은 맞벌이로 바쁜 아빠(김형구)와 엄마(배유경)보다 형수인 정지영을 따랐다. 정지영은 민영의 학교 행사에 부모보다 더 자주 참석했다. 민영이가 눈에 띄게 밝아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스물넷 나이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어린’ 시동생 뒷바라지를 도맡고, 3대가 복작거리는 집이 정지영에게는 벅차고 사는 것 같다.
지영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었다. 함께 타고 가던 차가 사고가 났다. 지영이 혼수상태에서 한 달 만에 깨어났을 때 엄마는 이미 장례를 치른 뒤였다. “제가 결혼하고 대학을 마쳤거든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있어요. 지금은 애 키우고 살림하지만 나중에 익산시의원 해보고 싶어요. 잘할 거 같지 않아요?”
정지영처럼 장점마을 외부와 접촉이 많은 젊은 사람들은 마을 밖을 잘 나서지 않는 노인들과는 다른 차원의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중학교에 다니는 김민영도 마찬가지다. ‘장점마을에서 집단 암이 발병했다는 데 (너희 집은) 괜찮니?’라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듣는다. 선생님 한 명이 시작한 질문이 전교생 65명뿐인 작은 학교 전체가 던지는 질문이 되어 민영에게 꽂히기도 한다. 정지영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여기서 버스를 타잖아요? 기사님이 물어봐요. ‘여기 암 마을인데 사는 거 괜찮으냐’라고요.” 그런 질문은 아무리 반복돼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3
신옥희(75)는 경로당에서 벌어진 거나한 술판에 끼었다가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해장이나 해야겠다.” 함라마트에서 콩나물을 집어 들었다. ‘옥희 죽었는가’라는 문자 안부에 ‘죽었는지도 모르지’라고 답하며 웃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넓은 집이 스산해 문뜩 외로웠다.
5남1녀 자식에 손주까지 모두 모이면 26명이다. 큰집은 그 모든 식구를 다 품었다. 온 식구가 여행이라도 한번 가려면 큰일이었다. 가족행사로 어디 한번 놀러갈 때면 아예 전세버스를 한 대 빌리곤 했다. 누구 하나 운전하느라 술을 마시지 못할까 봐 그랬다. 신옥희는 잠시 후 숫자를 정정했다. “25명이네, 이제. 영감이 없으니까.”
신옥희는 스물두 살에 전북 김제 용동에서 익산 장점마을로 시집왔다. 7남매 중 막내로 예쁨받고 자랐다. 부족한 것 없이 자랐지만 중학교까지만 마친 이유는 하나였다. “다른 친구들도 안 가니까 나도 고만둬버렸지. 그 시절에 누가 여자애들 공부시켰는가.” 대신 편물학원과 타자학원을 다녔다. 털실로 치마와 바지 따위를 떠서 입었다.
남편 김성환은 오빠 친구였다. 서울 중앙대학을 나왔다. 서울에 자리를 잡으려 했던 김성환을 설득한 건 신옥희였다. “농촌에서는 정직하게 몸을 놀리면 먹고사는 걱정 안 해도 된다”라는 이유였다. 믿는 구석이 없진 않았다. 김성환의 집은 일꾼 둘에 꼬마일꾼 하나까지, 일하는 사람을 셋이나 부리는 만석꾼 집안이었다. 1970년대에 아들을 서울로 유학 보낸 집다웠다.
장점마을을 통틀어 차가 네 대인 시절에 그랜저를 뽑았다. 면허를 땄지만 쓸 일은 별로 없었다. “남편이 내가 어디 가면 데려다주고, 끝나면 데리러 오는데 차를 몰 일이 있어야지.” 읍내로 수영도 배우러 다니고 남편과 같이 공부도 하러 다녔다. 방 한쪽에 자리한 유리 진열장 안에서 신옥희가 꺼낸 것은 1993년 원광대 최고경영자과정 수료패였다. 신옥희의 수료패에는 ‘명예’가 붙어 있었다. 사유는 ‘내조의 공’이었다.
남편 김성환(당시 73세)은 2014년 담낭암과 췌장암으로 숨졌다. 그 뒤로는 시내에 있는 병원 한번 가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네다섯 번, 한두 시간 간격으로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신옥희가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남편이었다. 그런 날은 컴컴한 집에 돌아와 목 놓아 울었다. 갑상선 이상이 의심된다는 결과가 너무 무서웠다. 마치 암을 선고받기 위해 기다리는 삶 같아 막막했다.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빈 종이를 꺼내 ‘나랏님’에게 편지를 썼다. “그냥 막 써지더라고. 토하는 심정으로 썼지.” 신옥희는 그 편지를 역학조사 발표하는 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했다.
신옥희 집 옥상에서는 금강농산의 시퍼런 슬레이트가 마주 보였다. 공장이 문을 닫았어도 울렁거림과 어지러움까지 멎은 건 아니었다. “저거 때문에 아주 마을이 쏘되버렸어(쑥대밭이 되었다). 그래도 이제는 옥상에 빨래를 널 수 있어. 공장 돌아갈 때는 검댕 때문에 엄두를 못 냈어.”
남편 장례를 마치고 신옥희는 자녀 여섯을 모두 데리고 황등장에 갔다. 원하는 나무를 두 그루씩 고르라고 했다. 감나무, 대추나무, 석류나무 등 자녀들이 12그루를 겹치지 않게 고른 덕분에 마당은 ‘나무 박물관’이 되었다. 집에 없는 영감과 매일 볼 수 없는 자식을 대신해 세운 나무들로 외로움을 달랜다.
ⓒ시사IN 이명익 주민들은 암 외에도 각종 질환에 시달린다. 집집마다 수북한 약봉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죽은 영감 이야기는 마을 할매들의 단골 대화 소재다. 김성숙(75)은 길 위에서 신옥희를 만나자마자 전날 꿈에서 본 죽은 영감 이야기를 꺼냈다. “웬 신사 멋쟁이가 오더니 내 손을 딱 잡는 거야. 영감이더라고. 손잡고 한참을 걸었당께. 죽은 사람은 꿈에서 말이 없다고 하더니 딱 그 짝이여. 얼마나 서운한지….”
열일곱 살에 만난 ‘옆 동네 오빠’ 양선근은 살림에 전혀 보탬이 안 되는 남자였다. 김성숙은 부모 말을 듣지 않은 걸 자주 후회했다. 아버지는 딸이 양선근과 연애를 못하게 하려고 군산으로, 서울로 빼돌렸다. “그때는 나도 눈이 뒤집혀서(웃음).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잖아. 그리고 참 잘생겼어. 키도 크고 예뻤어.” 허우대 멀쩡한 남편은 알고 보니 ‘방거칭이’였다. 백수란 의미다. 지게 지는 일 한번 하고 돌아오면 그다음 날은 방구석 네 모퉁이를 기어다면서 죽는다고 앓았다. “일을 안 해. 혼 나간 사람처럼. 어떻게 살았는가 몰라. 솥에 작대기 넣고 저을래야 저을 것도 없어.”
먹고살 길이 없어 김성숙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화장품을 떼서 팔다가 벽돌공장에 나갔고 식당에서 설거지도 했다. 부업으로 익산 ‘태창’ 공장에서 팬티 실밥 따는 일도 했다. 머슴처럼 사는 게 억울했다. 1988년 당시 돈으로 3만5000원 주고 춤을 배우러 다녔다. “내가 춤을 겁나게 잘 췄어. 20m 홀이 여기서부터 쩌그까지 춤추고 가면 여기저기서 나 데려갈라고 잡아댕겨. 참말로 옷이 찢어졌다니께.” 김성숙의 춤바람과 함께 ‘술고래’였던 남편의 의처증도 깊어갔다. “볶아 먹고 때리는” 통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양선근은 2019년 9월 치매를 앓다 숨졌다. 공장이 들어온 이래 시작된 양선근의 기침은 죽기 직전까지 멈추지 않았다. 역학조사 보고서는 장점마을 주민들의 치매와 인지기능 저하가 대조 지역 주민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많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금강농산이 담배 폐기물인 연초박을 불법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밝혀진 1급 발암물질(담배특이니트로사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등) 외에도 확인되지 않은 담배 내 각종 발암물질이 추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적었다.
집 안의 신제품은 정수기와 공기청정기
역학조사가 최종 결론이 나기까지 김성숙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의 근심은 깊었다. 주민대책위 구성 이후 안 싸워본 방법이 없는 주민들에게 역학조사는 마지막 비빌 언덕이었다. 2017년 12월 착수한 역학조사는 지지부진했다. 몇 번이나 미뤄진 중간발표는 2018년 7월19일 익산시청에서 열렸다. 그날 김성숙은 ‘뚜렷한 증거가 없다’라고 얼버무리는 연구팀을 향해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장점부락 주민인디, 생체실험은 내가 혔다. 내가 증인이라고 소리쳤지. 답답해 죽겠는데 말이라도 하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 김성숙도 치매 약과 위궤양 약을 장복 중이다. 출입문에는 딸이 손글씨로 크게 적어둔 종이가 붙어 있었다. ‘밥 드시고 바로 약 드세요.’ 벽에는 자식들 번호도 큼지막한 글씨로 적혀있었다.
2018년 12월8일 약속된 연구 기간이 끝나고도 결과를 최종 발표하기까지 또 1년이 걸렸다. 연구팀 안에서도 ‘역학적 인과관계가 있다’라는 결론을 내릴 경우 정치적 파장이 큰 만큼 부담스러워했다. 그 과정에서 민관협의회 오경재 교수(원광대 예방의학과)가 큰 역할을 했다. 역학회에 연구 결과를 보내 조언을 받아보자고 요청했다. 전문가 집단의 조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 마을에 ‘방거칭이’가 어디 한둘이었간. 한마디로 백수가 널린겨. 농사꾼이 농사는 안 짓고 만날 술을 처먹어쌌는 거지.” 죽은 남편 이야기를 하다 말고 김양녀(80)가 호탕하게 웃었다. 김양녀의 남편은 금강농산과 상관없이 많이 마신 술 때문에 20여 년 전 숨졌다. 술 좀 끊게 해보려고 병원에 데려가 입원도 시켜봤지만 소용없었다. 병원복을 입고도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어디선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음주 메이트’는 주로 이정수(73)였다. 이정수는 어디 있는지 모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목청이 떼까우(거위) 같이 크다니께. 이 동네 어디 있어도 이정수는 찾아.”
이정수는 큰 목소리 탓에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를 모를 수 없는 사람이었다. 2018년 8월 전립선암을 진단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이 배가 다 호르몬주사 때문이여. 웬만하면 수술 안 허고 약으로 치료한다고 하는디, 그거만 맞으면 아무리 운동을 해싸도 배가 안 꺼져.” 몸의 이상을 처음 느꼈던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경로당에서 윷을 놀고 술을 마셨다. 소변이 통 나오질 않았다. 이틀 뒤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큰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했다.
아내 최영자(65)에게 말하면 말 안 듣고 술 먹어서 생긴 병이라고 할까 봐 입을 닫았다. 거실 탁자 위에 슬쩍 올려둔 병원 서류를 본 건 전주에 사는 큰아들이었다. “아버지, 이게 뭐요?” 병의 원인을 내 탓이라고 생각하면 편했다. 늙음의 결과라고, 막 살아서 받는 벌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다만 이정수 역시 늦게 설치한 상수도가 마음에 걸렸다. 별 생각없이 기름띠가 뜨는 지하수를 벌컥벌컥 마셨던 게 내내 찜찜했다.
최영자는 남편 이정수가 아픈 건 안타깝지만, 술을 ‘똑’ 끊어서 그건 좋다. 익산 시내에서 차로 쉼 없이 30분은 달려 들어와야 하는 마을에는 작은 슈퍼마켓 하나 없다. 먹고사는 모든 일은 마트가 아닌 땅에서부터 왔다. 이정수가 ‘고향으로 내려가자’라고 했을 때, ‘거기 내려가면 먹을 거라도 많으니까’라는 이정수의 말을 믿었다. 농사가 가진 노동의 무게를 그때는 몰랐다. 최영자와 이정수는 1979년 인천의 한 석재공장에서 만났다. 공장 동료가 다리를 놨다. 서울에 신접살림을 차렸는데 시아버지가 몸이 아프면서 아예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내려왔다. 설상가상 시부모 모두 중풍을 맞았다. “내 청춘을 거기 다 바쳐버렸지.”
‘삐약이’ 같은 아들 둘과 시부모를 집에 두고 아침 7시면 군산 합판공장으로 향하는 통근버스가 오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농사만으로는 여섯 식구 입에 풀칠하기가 어려웠다. 오전 8시에 시작한 일은 밤 8시나 돼야 끝났다. 일요일은 유일하게 공장이 쉬는 날이었지만 최씨는 쉬지 못했다. “지금 사람들은 말해도 못 믿지. 아궁이에 불 때서 물 데워 시부모 씻기고, 애기들 씻기고, 손으로 빨래하고. 그러고도 살았어. 머리로는 만날 보따리 쌌지(웃음).”
배움이 짧아 생긴 아쉬움은 한평생이다. 결혼 전 인천에서 일하던 시절, 집으로 가는 대신 야학으로 향했다. 새롭게 알아가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일하다 다쳤는데도 아픈 줄 몰랐다. 지팡이를 짚고 야학 교실을 다녔다. 40년 전 ‘스승’이 한 말을 최영자는 아직도 기억한다. “나보고 성실하대. 뭘 해도 하겠다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도전했다가 세 번을 미끄러졌다. ‘나는 안 되나 봐’라는 좌절이 밀려올 때면 스승의 말을 떠올렸다.
몇 년 전부터 장애인 활동보조 일을 하고 있다. ‘중풍 든 시부모를 20년 모시고도 몸이 불편한 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느냐’는 아들의 걱정에 최영자는 웃었다. “앉아 있으면 돈이 나오나. 움직여야 돈이 나오지.” 때마침 큰며느리에게 전화가 왔다. 영상통화 받는 법은 매번 배워도 매번 헷갈린다. 최영자는 두 번 만에야 영상통화를 연결했다. 화면 속 며느리가 곧 돌이 되는 아이에게 “할머니한테 새로 배운 거 해보자. ‘주세요’ 해봐”라고 말했다. 최영자가 웃었다. “‘주세요’ 하지 마. 할머니 줄 거 없어.”
‘물을 못 쓰게 됐다’라는 말을 증명하듯 집집마다 정수기와 공기청정기가 흔했다. 오래된 낡은 집마다 새로 들인 가전제품만이 낯설게 반짝였다. 박순옥(71)의 집도 마찬가지였다. 남편 문창섭(당시 61세)은 2004년 간암으로 숨졌다. 발병한 지 1년 만이었다. 이미 온몸에 퍼진 암은 수술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거실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은 남편이 죽기 일주일 전 부랴부랴 찍었다. 간병하느라 머리도, 화장도 못한 박순옥의 얼굴이 젊었다. 도배를 앞두고 묵은 짐을 정리하다 박순옥은 울었다. “영감이랑 둘이 찍은 사진이 그날 찍은 가족사진밖에 없더라고. 애들 키우고 공부시키느라 바빠서 그랬지. 고생 끝났다, 이제 좀 재밌을랑가 싶으니까 영감이 가버렸어.” 박순옥은 완주 고산에서 스무 살에 시집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혼자된 어머니가 사위라도 일찍 보자고 서둘렀다.
금강농산이 가동되는 동안 박순옥이 가꾸던 고추밭도 몇 번이나 싹 죽어버렸다. 부아가 났다. 까맣게 말라버린 고추를 볼 때면 남편도 그 때문일까 생각하다가, 그냥 운이 없었다고 생각하다가, 또 그 때문일까 생각했다. 금강농산 올라가는 길 입구에 주민대책위가 천막을 쳤을 때, 박순옥도 몇 번이나 지키러 올라갔다. ‘투쟁’은 농사일 같았다. 사람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았다. 가까이는 익산으로, 멀리는 서울로 몇 번을 오가는 동안 박순옥은 자신이 한 중요한 역할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밥심’으로 싸운다
토론회다, 집회다 해서 서울로 향하는 투쟁 버스는 경로당 앞에서 오전 6시면 출발하곤 했다. “싸우는 거야 똑똑한 양반들이 싸웠다고 한다만, 서울을 몇 번을 가고 또 가도 우리가 다 쌀 씻고, 닭 잡아 삶고, 반찬해서 먹을 거 해다 날랐다고. 그거 없었으면 어떻게 싸웠겠어. 아무도 안 알아줘도 큰일이야. 밥 해먹이니까 싸우는 거지.”
누구도 기록하지 않아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박순옥은 알았다. 사람들은 ‘밥심’으로 싸운다는 걸. 그리고 박순옥을 비롯한 장점마을 할매들이 묵묵히 밥을 날랐다는 걸. 장점마을의 긴 투쟁에서 이들이 수십 명에게 먹인 수십 끼의 밥이야말로 투쟁 그 자체였다.
장점마을 주민들은 환경오염 구제신청을 포기했다. ‘환경오염 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은 환경오염 피해를 본 주민에게 정부가 금전적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다. 하지만 피해구제는 대상이 선별적이고 배상액이 적은 데다 추후 소송에서 이기면 반납해야 한다. 주민들은 선별적으로 나오는 보상이 작은 공동체를 깰까 봐 우려했다. 보상 액수와 관계없는 상징적인 ‘승리’를 원했다. 전북도와 익산시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으로 ‘직행’한 까닭이다.
소송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전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전북 민변)에서 소송은 맡아줬지만 준비 서류를 떼는 건 각자의 몫이었다.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에게는 고역이었다. 멀리 사는 자식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열일을 제쳐두고 관공서와 병원으로 뛰어다녀야 했다. 임증자(79)도 서류를 떼다가 부아가 치밀곤 했다. “서류 몇 장으로 내가 당한 일을 어떻게 다 아느냐”라는 말에서 뼈가 만져졌다. 임증자는 2017년 한동네에 살며 모셨던 시어머니 김양례(당시 90세)를 피부암으로 잃었다. 2013년 발병해 5년을 병수발 들었다. 그 세월은 몇 푼 보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사IN 이명익 임증자가 곡식 창고에서 익산시가 수매하기로 한 팥 10㎏을 챙기고 있다.
거실 협탁 위에는 메모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고추 10근, 팥 10㎏, 콩 서리태 10㎏, 쥐눈이 5㎏, 메주콩 20㎏, 마늘 5접.’ 익산시청에서 수매해주겠다고 적어두고 간 종이였다. 말이 수매지 폐기처분이었다. 임증자가 가장 성질나는 건 ‘집단 암 마을’이라는 낙인이다. 평생 해온 것, 할 줄 아는 것을 간단히 짓밟혔다. 몇 년 전부터 장점마을에서 나는 농산물이 팔리지 않기 시작했다. 익산 백제병원 앞에서 알음알음 거래했던 농산물 판로도 막혔다. “장점마을 꺼는 안 산다는 거야.”
금강농산은 문을 닫았지만, 한번 난 소문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게 폿(팥)이여. 봐봐, 여기 나는 게 얼마나 좋은지 몰라. 이렇게 큰 폿 봤나. 팥죽을 쑤면 또 얼마나 맛있는디. 우리가 먹을라고 우리가 직접 길렀응게 맛이 없을 수가 없제.” 광에 들어선 임증자가 굽은 허리를 달래며 농산물 푸대를 풀었다.
2월20일 경로당 앞마당에서 간이 수매장터가 열렸다. 익산시청 미래농정국 농산유통과에서 화물트럭 한 대와 봉고트럭 두 대가 들어왔다. 마을 방송이 나가고 얼마 뒤, 임증자를 비롯해 모두 8가구에서 각종 작물을 이고지고 나타났다. 이날 익산시청이 수매한 작물은 총 2519t이었다. 무가 개당 200~300원으로 ‘똥값’이었다. 일단 창고로 옮긴 뒤 환경정책과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이병학 환경오염대응계장은 곤란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장 수매는 하지만 장점마을 작물을 사주는 게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인식돼면 안 좋은 이미지만 고착화될까 봐 좀 걱정이 돼요.”
많은 자식들이 부모의 수고 덕분에 집을 떠났다. 가까이는 익산으로 멀리는 서울과 경기도로. 때로는 임증자의 딸처럼 미국으로 향하기도 했다. 그들은 수십 년 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미래의 얼굴’이었다. 문봉학(79)은 파리채 여러 개를 고무줄로 묶어둔 더미에서 하나를 빼내더니 거실 제일 중앙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에서 한 명 한 명을 가리켰다. ‘잘된’ 자식을 파리채 끝으로 하나하나 짚을 때 그의 얼굴은 자부로 가득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가난 때문에 배를 곯았던 생각밖에 없다. 아래로 동생 다섯이 줄줄이였다. 동네 사람 주선으로 만난 최정녀(74)와 함께 집을 벗어나기 위해 애썼다. ‘분가하겠다’라는 신혼부부의 말에 아버지는 쌀 한 톨도 보태줄 수 없다고 노발대발했다. 문봉학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쌀을 팔러 나갈 때마다 한두 말씩 쌀을 빼돌렸다. 허름한 집이나마 한 채 마련할 만큼까지 ‘훔쳤다’. 장점마을로 이사 온 건 1970년대였다. 농사만으로 살림살이가 늘어나지 않아 ‘막노동’을 다녔다. 원광대병원은 문봉학이 지은 건물 중 가장 번듯한 곳이다. 이제는 아버지가 지은 건물에서 큰딸이 일하고 있다.
화장지로 코를 막고 자도 금강농산에서부터 흘러온 냄새는 막아지지 않았다. 습관처럼 코를 풀었다. 냄새가 좀 떨어질까 싶어서였다. “귀가 먹었는가 싶어. 코를 하도 풀어가지고. 송장 썩는 냄새가 그럴란가. 진짜 냄새가 그럴 수는 없거든.” 문봉학은 갑상선암을, 아내 최정녀는 금강농산에서 4년을 일하고 피부암을 얻었다. 기침이 잦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문봉학은 일을 그만두라고 만류했다. 아내는 “그럼 애들은 무슨 돈으로 가르치느냐”라고 답했다.
가까이 산부인과가 없어 5남1녀 모두 홀로 집에서 낳았다. 출산을 위해 아랫목에 불을 넣는 일도, 진통 끝에 태를 끊고 젖을 먹이는 것도 오롯이 홀로 감당했다. 그렇게 낳은 자식들이 줄줄이 부모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문대학일망정 모두 대학 공부를 시켰다.
농사로 메워지지 않는 생활을 최정녀는 가욋일로 메웠다. 금강농산에 다니기 전에는 군산 서수 농공단지에 있는 과자 공장에 나갔다. 문봉학과의 싸움은 도돌이표처럼 계속됐다. “애들 아부지(문봉학)가 말본이 없어서 그렇지 잔정이 많아. 내가 만날 힘들어 죽는다고 하니까 걱정돼서 한 말을 그때는 참 예민하게 받았지.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애들 한창 학교 다녔던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가 기억이 안 나. 그 긴 세월이 없는 거 같애.”
여러 공장을 전전했지만 금강농산이 마을과 가깝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오고 가는 시간만 줄여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비료를 만든다길래 뭘 하나 싶어서 올라가봤지. 이갑찬이가 ‘여기 사냐’고 묻더라고. 안 그래도 여자 하나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날로 다녔지.” 비료 원료를 버무리는 일을 했다. 원료 포대가 쏟아지지 않게 잘 자르는 게 관건이었다. 쓰레기를 돈 받고 갖고 와서 비료를 만들어 파는 과정을 보고 세상에 이렇게 땅 짚고 헤엄치는 일도 있구나 생각했다. “이갑찬이가 초기에는 재산세 낼 돈도 없어서 나한테 꾸고 그랬어. 그러다 부자가 된 거야. 쓰레기로 재미를 본 거지.”
금강농산 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자욱했다. 일을 마치고 나오면 사람 꼴이 아니었다. 건강한 몸 하나 믿고 돈만 보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이 데모하러 공장에 올라오면 최정녀는 믹스커피를 내다주곤 했다. 하루는 이갑찬 대표가 사무실로 최정녀를 불렀다. “공장이 지금 마을 주민들 때문에 피해가 얼만데 왜 협조해주냐는 거야. 그래서 내가 ‘나는 부락 사는 사람인데 어떻게 모른 척하느냐’고 했지.”
그때는 몸만큼 마음이 아팠다.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말랐는지 온 동네에 최정녀 죽는다고 소문이 다 났어.” 오죽하면 제 발로 정신병원을 찾아갔다. 군산개정정신병원 의사 이름이 김성수라는 것까지 지금도 기억한다. 신경성 우울증이라고 했다. 우울증 약은 지금도 먹고 있다. 2014년에는 미간에 도돌도돌 피부가 올라왔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피부암이었다.
공장 때문에 암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일었지만 그래도 최정녀는 이갑찬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했다. 이갑찬 대표의 아들로 2016년부터 공장이 문닫을 때까지 운영한 이수영도 착했다고 덧붙였다. “자기들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거야. 모진 사람은 아니었어. 김제에서 쬐깐한 비료공장을 했는데 그때는 원료만 만들어서 풍농(군산 공장)에 갖다 줬다더라고. 여기 와서 돈을 좀 벌다 보니까 기계도 싹 바꾸고 그러면 더 벌고 싶잖아. 그걸 시랑 도에서 관리를 잘했어야지.”
가족 중 세 명이 위암, 한 명은 대장암
이소현(57)·김상호(58) 부부는 2011년 익산 시내에서 장점마을로 이주했다. 자녀를 일찍 낳아 기른 덕분에 이른 ‘노후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큰딸은 결혼시키고, 아들도 독립했다. 때마침 김상호와 익산 시내 한 택시회사에서 함께 일하며 호형호제했던 김형구가 장점마을 내 빈집을 소개했다. 형태만 겨우 남은 초가집이 덜렁 있던 터를 닦아 잔디가 깔린 전원주택을 마련했다.
원주민이 아니었던 부부에게 흉흉한 소문은 뒤늦게 도착했다. 이소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이 집터에 살았던 할아버지도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암이라는 게 워낙 흔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죠.” 누긋해진 날씨와 함께 푸른 잔디가 뾰족 고개를 내밀 때면 인생의 낙이 이런 거구나 생각했다. 집 밖을 잘 나서지 않는 아내와 화물트럭을 운전하며 새벽에 나가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은 악취에 다소 무덤덤했다. 2013년 김형구 부모의 장례를 겪으며 두 사람의 무딘 신경줄도 굵어졌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소현은 2014년 자궁암을, 김상호는 2017년 위암을 얻었다. 운이 좋아 둘 다 초기에 발견했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했다. “아무리 흔한 암이어도 한마을에서 이렇게 자주 암이, 부부가 동시에 암으로 투병하는 집이 이렇게 여럿일 수는 없는 거잖아요.” 김상호가 투병을 시작했을 때, 이소현은 금강농산 방면으로 뚫린 다용도실 창문을 의심했다. 환기를 이유로 365일 열어두던 창문이었다.
이소현은 ‘공부’에 매달렸다. 동생의 의료 사고로 한 대학병원과 지난한 소송전을 벌인 경험이 있었던 이소현은 컴퓨터를 켜고 법부터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악취가 심해요’ ‘냄새가 나요’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컴퓨터를 뒤지고 도서관에 환경문제 관련 서적을 빌리러 다니면서도 설마 했다. “우리 같은 사람은 공장을 관리할 책임이 있는 행정을 믿을 수밖에 없잖아요. 다 허가받고 하는 걸 텐데, 안전하지 않을까….” 혼자서 찾아볼 수 있는 자료는 한계가 있었다. 마을 어른들도 패배감이 완연했다. “우리도 옛날에 공장이랑 안 싸워본 거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거지.”
부부는 요즘 집을 비우는 시간이 더 길다. 이소현은 때마침 둘째를 낳고 ‘구조요청’을 해온 경기 평택 딸네 집에서 머문다. 김상호도 일을 늘렸다. 집에서는 잠만 겨우 잔다. “친구들이 집 팔고 나오라는데 이런 상황에서 집이 팔리겠어요? 여기 정리되면 산으로 가야 하나 싶어. 공기 좋고 물 맑겠지 싶어서 시골로 왔는데 ‘자연인’ 되기 되게 힘드네, 그쵸?”
‘환경 재난’ 마을의 해바라기 꽃 필 무렵 4
점심시간은 경로당이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고봉으로 퍼 담은 밥그릇이 밥상에 오르자 김낙길(65)은 제몫의 밥을 절반 넘게 옆 사람에게 덜어냈다. “내가 위를 3분의 1이나 잘라냈거든.” 김낙길은 스스럼없이 옷을 걷어 개복 수술한 자리를 보여줬다. 2012년 위암 판정을 받았다. 세로로 길게 난 칼자국이 8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했다.
장점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낙길은 현재 익산 시내에 살지만 2010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매일 장점마을로 온다. 어머니 이점례(89)가 오전 8시 ‘할머니 유치원’(노인요양시설 사랑방)에 간 사이 집안일을 해둔다. 이점례는 사랑방에서 노래도 배우고 종이접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집에 홀로 계신 어머니가 마음 쓰여 김낙길이 하는 ‘효도’다. 김낙길은 “내가 불효자야”라며 화분의 마른 잎사귀를 뜯어냈다.
이점례는 녹내장 수술로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터지던 해에 장점마을로 시집왔다. 이점례보다 일곱 살 많은 남편은 징집을 피하기 위해 산을 옮겨 다니며 잠을 자느라 집에 들어오지 못했다. 결혼은 했는데 남편은 통 볼 수 없는 이상한 결혼 생활이었다. 첫아들 김낙길을 얻은 건 5년 만인 1955년이었다.
김낙길은 고령에 눈이 불편한 노모가 혹시나 집안에서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있을까 싶어 벽마다 길게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크고 작은 일을 대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낸다. 집 뒤뜰의 ‘놀이터’를 가꾸는 일도 열심이다. 한때는 먹을 것을 길렀던 땅에 지금은 눈으로 보기 좋은 것을 기른다. 참빛살나무, 명자나무, 남천 같은 관상식물이 밭고랑마다 자라고 있었다. 마당 입구에 심은 흑광은 참빗살나무 중에서도 귀한 품종이다. “꽃이 솔찮이 크게 펴. 귀한 나무야.”
2011년 어머니 이점례가 대장암으로 왼쪽 배 45㎝를 갈랐을 때, 2012년 자신이 위암 판정을 받고 위 3분의 1을 잘라냈을 때야 금강농산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수술 후 5년이 지나고 재발하지 않아 사실상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밥을 먹을 때면 꽉 막힌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밥 씹는 일을 멈추고 잠시 기다린다. 느닷없이 눈앞이 빙글빙글 돌거나 반짝일 때도 있다. 의사는 큰 수술을 하고 나면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작은아버지 김영환(82)도 위암 수술을, 바로 옆 왈인마을에 사는 매형 역시 위암 수술을 받았다.
ⓒ시사IN 이명익 2001년 문을 연 금강농산은 2010년까지 대기 및 폐수 처리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위는 금강농산에서 농업용수가 모여 있는 소류지로 흐르는 물.
떼죽음당한 물고기를 백로가 먹을까 봐…
장점마을 주민들이 익산시에 넣은 민원은 번번이 무시됐다. 공무원은 ‘아무 때나 전화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 일쑤였고, 시의원은 ‘아이고 이렇게 냄새가 나서 어떻게 사십니까’ 하고 떠나면 답이 없었다. “말이나 하지 말지. 아이고 나는 그동안 하도 말을 해서 싫증 나.”
마을 이장 김인수(70)는 1992년 축사를 하기 위해 현재 터에 집을 지었다. 농업용수로 쓰는 소류지과 금강농산 사이에 위치했다.
2016년 금강농산 아래 소류지에서 물고기 집단 폐사가 일어났다. 2010년에 이어 두 번째였다. 허연 배를 까고 둥둥 떠오른 물고기 떼를 처음 본 이도 그였다. 소류지 물은 마치 하얀색으로 보였다. 물가에는 백로가 죽은 물고기를 먹겠다고 진을 치고 있었다. 첫 번째 떼죽음을 목격했을 때 김인수는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공장에서 흘려보낸 오염된 물 때문에 죽은 물고기를 백로가 먹어도 되겠는가, 걱정이 되더라고. 그래서 동물보호단체에 전화를 했지. ‘뭐 어쩔 수 없다’고 그러데.”
악취와 매연은 공장 바로 아래 위치한 김인수의 집에는 ‘직격탄’이었다. 2010년 추석 명절을 앞두고 금강농산에서 뿜은 매연 탓에 아내 김순덕(68)이 구급차에 실려 간 적도 있었다. 온 가족이 공장으로 쫓아 올라갔다. 이갑찬 대표는 집을 사주겠다고 장담했다. 김순덕은 그날을 떠올리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말뿐이지. 늘 그런 식이었어. 우리 어매가 내 이름을 잘못 지었줬는갑지. 순하게 살라고 순덕이랬는데. 저짝(금강농산)이랑 싸우다 보니까 호랭이가 됐네.” 싸우다 지쳐 집을 내놓기도 여러 번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김인수는 마지막까지 금강농산에 재직했던 직원 중 한 사람이다. 14년을 일했다. 금강농산에서 일하게 된 건 이갑찬 대표 제안이었다. 공장 때문에 집이 피해가 많다고 하니 ‘보상’해주는 셈 치고 들어와서 일하라고 했다. 원재료를 분쇄하는 공정에 있었다. 김인수는 주민대책위가 세워진 후 공장 내부 정보를 톡톡히 제공했다. 폐기물을 어디에 묻었는지, 문제가 된 연초박은 어디에 쌓았는지 따위 정보는 금강농산에서 오래 일한 김인수가 아니었으면 주민대책위에서는 알 수 없을 정보였다. 김인수의 축사에는 당시 금강농산에서 사용했던 연초박이 지금도 쌓여 있다. 나중을 대비해 김인수가 옮겨둔 것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한 민관협의회가 구성되고 역학조사가 시작되면서 김인수의 증언은 중요한 퍼즐 조각이 됐다.
금강농산은 계속 크기를 늘려갔다. 24시간 돌아가는 공장의 소음과 악취도 그만큼 늘었다. 공장 외벽을 감싼 슬레이트는 채 3년을 가지 못하고 부식했다. 김인수는 갈려나가는 슬레이트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공장이 문을 닫았지만 두려움마저 끝난 건 아니다. “우리는 일종의 ‘보균자’여. 몸 안에 쌓인 유해물질이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까. 요 작은 마을에서 벌써 몇 번 초상을 치렀나 몰라. 내 차례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게 무서운 거지.” 김인수의 집에는 얼마 전 칠순 잔치를 마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세 딸이 케이크에 촛불과 함께 꽂았던 토퍼의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인생은 70부터. 아빠 사랑해요.’
금강농산에서 대각선에 위치한 장영수(57)의 축사도 피해가 만만찮았다. 특히 2008~2012년에 죽어나간 젖소가 스물다섯 마리였다. 소 한 마리가 죽을 때마다 25만원을 주고 포클레인을 불러서 묻었다. 장영수는 공장에 올라가서 몇 번이나 난동을 부렸다.
“스트레스 좀 풀고 왔지. 내가 몇 번을 쫓아 올라가니까 이갑찬이 나중에는 축사로 찾아왔어. 한 번만 살려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내가 당신을 살릴 게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살려줘야 한다. 당신은 군산에 있는 집으로 가면 그만이고, 나도 냄새 피해서 문 꼭 닫고 집에 들어가 앉아 있으면 그만이지만 우리 소들은 어떻게 할 거냐.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공장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야 되는 거야.”
이갑찬 대표는 장영수에게 소 면역력을 높이는 약을 200만원어치 사서 보냈다. 매연을 줄여보겠다는 약속도 받았다. 그때뿐이었다. 경찰이며 면사무소, 시청을 쫓아다니며 신고를 하고 민원을 넣었지만 소용없었다. 나중에는 자포자기했다. “내가 이갑찬이한테 장점마을에 집 구해준다고 여기서 살으라고 했어. 콧등으로도 안 듣지. 지 목숨은 귀한가 보다 했지. 하여간 저 위에서 별거 다 태웠어. 간장 찌끄래기도 태우고. 공기 간을 맞출라고 그랬는가(웃음).”
해바라기의 꽃말을 떠올리다
익산시는 2019년 11월1일 환경친화도시 추진단을 발족하고 2020년 2월20일 장점마을을 제1호 환경시범마을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전북도와 함께 206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2023년까지 환경개선 사업을 추진한다. 익산시가 사들인 금강농산 부지도 활용 방안에 대한 용역을 맡긴 상태다. 환경교육 장소로 조성하자는 방향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장점마을은 지난 17년간 환경문제의 대표 마을이었다. 최재철 주민대책위 위원장은 마을 곳곳에 해바라기를 심고 싶다. 어디선가 해바라기가 땅의 독성을 빨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해바라기의 꽃말이 마음에 들었다. ‘프라이드(pride)’, 긍지와 자부심을 뜻했다. 지금은 집단 암 마을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언젠간 그 낙인이 마을을 바꾸는 전환의 힘이 되리라 믿는다.
ⓒ시사IN 이명익 김형구(54·사진 맨 왼쪽)는 금강농산이 없어져야 아이들이 숨 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점마을 내 유일한 3대 가족. 사진 앞줄 왼쪽부터 정지영(24), 김윤후(5), 배유경(52), 김시후(4), 뒷줄 맨 왼쪽부터 김형구, 김민진(30), 김민영(13), 김민석(28).
시사인 익산/장일호·나경희 기자
어른님들, 고기를 줄이고 미래를 주세요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니고, 장래 꿈 또한 그것과 거리가 있음을 알린다. 진심으로 나의 미래가 걱정되기 시작해 이 글을 썼다.)
5월의 첫날. 내가 사는 강릉의 날씨가 31도까지 올랐다. 그 덥다는 ‘대프리카’를 꺾었고, 한반도 남단 제주를 이겼다.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 일이던가. 이러한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이 지구온난화라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제는 단순하게 ‘지구온난화’가 아닌 ‘기후위기’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산업혁명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지구 평균기온이 약 1도 상승했다. 1도가 뭐 대수냐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빙하기와 간빙기 간의 변화 속도와 비교해 보았을 때 25배가량이나 빠른 속도이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 등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 지구 평균기온이 2도 오르게 된다면 인류는 곧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세계가 아이피시시(IPCC,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의 수차례 회담을 통해 1.5도 상승을 한계치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대책을 세우고 노력한다지만,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구 평균기온 상승의 원인인 온실가스의 원천을 보호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모순적인 일이다. 온실가스를 줄이려고 노력한다면서, 온실가스를 보호한다니!
온실가스 배출의 가장 큰 원인은 축산업이다. 그러나 세계 각 국가는 축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한다. 사람들의 육류 소비를 장려하며 각종 광고와 캠페인을 벌이고, 이를 통해 경제가 잘 돌아가길 바란다. 하지만 축산업의 환경영향을 파헤친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Cowspiracy, 2014) 등을 보면,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은 지구상의 모든 교통수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양의 총합보다 많고, 가축이 소화 시 배출하는 메탄은 자동차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보다 86배나 유해하다. 전세계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대중교통 사용과 자전거, 걷기 등을 실천한다고 해도 동시에 비교조차 힘든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어찌 허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축산업은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자원의 낭비, 환경 문제에까지 심각하게 관여한다. 햄버거 100g을 만드는 데 물이 2500리터가 필요하며, 고기 1㎏을 얻기 위해 곡물 12㎏이 필요하다고 한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데, 지구의 식량 절반이 가축에게 가는 상황이라니. 게다가 가축을 기르기 위해 지구 육지의 45%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도 부족해 계속 땅을 찾고 일구느라 온 자원을 쏟아붓는다. 브라질 아마존 파괴의 경우도 91%가 축산업 때문에 이루어진다. 환경단체에서 펄프, 즉 종이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캠페인 하는 동안 그것의 100배가 넘는 땅과 숲이 ‘고기’를 위해 황폐해지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는 지구가 전체적으로 달궈져서 제 기능을 못 하게 한다. 생명체의 서식지 파괴는 물론이고, 바람이 불지 않아 공기 순환이 안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우 미세먼지가 계속해서 한반도에 머물게 된다. 미세먼지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여름이 더 더워지는 것은 당연하고, 북극의 한랭한 기후를 막아주는 제트기류까지 느슨해지면서 겨울은 더 추워질 것이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민국 국민도 기후난민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 지구를 되돌리기에는 늦었다고, 어차피 돌이킬 수 없으니 다른 행성을 찾자고 말한다. 그러나 절대로 늦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로 인도에서 2주 동안 공장 운영을 중단하자 히말라야에서 230㎞ 떨어진 곳에서 100년 만에 맨눈으로 산맥을 볼 수 있게 되었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운하에 물고기와 철새가 돌아왔음을 눈으로 보았다. 아직 희망이 있다.
내가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공부를 열심히 해서” 환경과학자가 되라거나, 대학에 가서 이런 이야기를 접해도 충분하다고, 그러니 본분에 맞게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만 한다. 대학 진학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뭐 하겠나. 내 꿈을 이룰 터전이 없어질 상황인데. 지구에 사는 한 청소년으로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들께 호소한다. 제발 육식을 멈춰달라고. 제발 우리가 꿈을 이룰 수 있는 미래를 물려달라고./ 김하눌ㅣ 강원도 강릉 문성고 2년/ 한겨레
‘개발 제한’ 서생 도시자연공원에 불법경작 적발
▲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된 울산 울주군 서생면의 한 목장 내에서 불법 경작 행위가 적발돼 울주군이 행정조치를 이행하기로 했다.
도시의 자연환경 및 경관 보전을 위해 개발을 엄격히 제한한 도시자연공원구역 내 불법 경작 행위가 적발됐다. 울산 울주군은 현장을 확인한 뒤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는 등 행정조치를 이행키로 했다.
11일 찾은 울주군 서생면의 한 목장. 빙 둘러처진 철책 사이로 산지를 개간해 경작 중인 밭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지난 2003년 진하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2010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도시계획시설이 변경된 곳이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도시 내 식생이 양호한 산지 중 경관을 보호하고 시민들에게 건전한 여가·휴식공간을 제공할 필요가 있는 토지를 대상으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개발을 제한하는 곳이다. 개발제한구역보다 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지역으로 알려졌다. 도시자연공원구역에서는 건축물의 건축 및 용도 변경, 공작물 설치, 토지 형질변경, 물건 적치 등이 모두 금지된다. 다만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기존 건축물을 개축하거나 지자체장의 허가를 받을 경우 간단한 경작은 가능하다.
불법 경작이 적발된 곳은 울산시가 진하공원을 지정하기 직전인 2003년 1월부터 지주가 가축사육 허가를 얻어 축산업을 영위하고 있다. 문제는 지주가 가축사육 허가만 얻은 채 개간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경작을 했다는 점이다. 지주는 지난 2010년 소나무재선충병 발병 이후 소나무를 벌목한 지역을 중심으로 수 년에 걸쳐 경작 면적을 넓힌 것으로 알려졌다. 군에 개간 허가를 신청했지만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 이후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허가를 얻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지주는 또 도시자연공원구역 내에서는 물건 적치나 공작물 설치가 불가함에도 곳곳에 가설 건축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가축사육 허가 당시 인정받은 가설건축물은 2동뿐이지만 이를 웃도는 가설 건축물이 발견됐다.
울주군 관계자는 “현장을 방문하고 과거 허가 사항을 검토한 결과 불법 경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지주에게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는 등 행정절차를 밟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상일보 이춘봉기자 bong@ksilbo.co.kr
코로나, 도시·건축 설계를 바꾸고 있다
세계 각국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이행 위해
대중교통 대안으로 자전거·보행자 도로 확충
가림막친 벤치·안전선 표시 테이블 속속 등장
프랑스 파리 가르드노르 지하철역 바닥에 다른 승객과 적정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동그란 선이 그려져 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세계 각국에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안된 다양한 도시 디자인이 등장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화장실 문화’에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다리 아래쪽 먼지와 고인 물을 닦기 힘든 이동식 욕조 대신 붙박이 욕조를 들이고, 손님에게 바이러스가 옮을세라 손님용 작은 화장실을 따로 두기 시작했다. 생명윤리학자 엘리자베스 유코는 지난달 <시티랩> 기고글에서 “앞으로 주택 구매자들은 방마다 화장실이 있는 집을 원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족이 병에 걸려 자가격리를 해야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이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건축 디자인은 물론 도시 지형 자체를 크게 바꿔놓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면서 전세계 도시들이 자전거 도로를 확충하는 한편, 밀접 접촉을 피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 시설물을 늘리고 있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10일 이런 변화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지만, 팬데믹 이후 우리의 도시들은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도로’에서 감지된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 이행 편의를 위해 각국 정부가 대중교통의 대안으로 자전거 및 보행 도로 확충에 속속 나서고 있어서다. 대표적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가 보행자·자전거 이용자들의 이동 편의를 위해 전체 도로 10%에서 차량 이동을 금지하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가 47마일(75㎞)의 임시 자전거 도로를 개설했다. 친환경 운동가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염원해왔던 ‘차 없는 도시’의 꿈에 한발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각종 시설물에서도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디자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선 감염을 우려해 공원들이 폐쇄되자, 칸막이 구실을 하는 90㎝ 수목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각각의 입구로 한 사람씩 들어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왔다. 밀라노에선 특수 아크릴수지로 가림막을 설치해 옆 사람과 거리두기를 할 수 있도록 한 벤치가 설치됐다. 체코에선 식사용 야외 테이블 주변에 노란색 동그라미 선을 친 ‘미식 안전 존’이 등장했다.
도시 환경 전문가인 세라 젠슨 카 노스이스턴대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공공 시설물의 설계·배치를 재정립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시엔엔>은 코로나19 사태는 촉매제 역할을 할 뿐, 도시 계획 자체를 하루아침에 뒤바꾸긴 쉽지 않으리라 내다봤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살아있는 나무에 쇠봉 박는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부산 남구 숲체험장에 엇갈리는 반응... "나무가 불쌍해요" vs "과학적인 방법"
▲ 숲 놀이터 밧줄 놀이 시설 부산 남구 용호동 장자산 숲 체험장의 일부 시설물. 지난해 부산 남구청이 해군작전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조성한 곳이다. 체험장 일부에는 나무에 녹이 슬지 않는 볼트와 봉을 박은 밧줄 놀이터가 꾸며져 있다. ⓒ 김보성
커다란 나무에 쇠말뚝을 박듯이 특수한 볼트를 넣고 봉과 밧줄을 연결해 숲 놀이터를 만든다? 여러분 생각은 어떤가요? 일부 주민들은 나무의 생장을 걱정하며 눈살을 찌푸립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방법이 오히려 나무를 보호하고 숲과 친근한 놀이터를 만들 수 있는 과학적 공법이라고 말합니다.
부산 남구, 커다란 나무 관통한 쇠봉에 민원 잇따라
지난해 1억3천만 원의 예산이 투입된 부산 남구 이기대 인근 장자산 숲 체험장. 해군작전사령부의 부산 동원훈련장이었지만, 남구청이 협약을 맺고 입구 쪽 2500㎡ 공간을 주민 숲체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이곳은 오륙도와 이기대를 끼고 있는 천혜의 공간이 장점입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통나무의자와 밧줄 벽, 숲 그네, 출렁다리 등 눈길을 끌 만한 시설이 곳곳에 보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처음 보는 나무의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합니다. 규격화된 쇠봉이 소나무 등 큰 나무의 몸통을 관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나무에는 양쪽으로 8개의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 봉으로 견고한 밧줄이 연결돼 다른 나무와 이어집니다. 그렇게 해서 수 미터 길이로 출렁다리 등을 만들었습니다. 주민들은 나무와 나무 사이를 이은 출렁다리를 건너며 숲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나무에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할 수 있나요. 나뭇가지만 꺾어도 잘못됐다고 하는데, 이렇게 구멍을 뚫어 놓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요. 만약 뭔가 맞다고 해도 전문가가 말해주기 전엔 알기 어렵죠."
<오마이뉴스>에 제보한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취재진 역시 처음 이 모습을 봤을 때 의아했을 정도였습니다. 심리적으로나 시각적으로 매우 불편한 광경임에 틀림없습니다. 숲 체험장을 만든 업체에 물었습니다. 지난해 이곳을 만든 업체 관계자는 "나무에 구멍을 뚫어 조성하다 보니 심리적인 불편감이 있지만, 분명 나무의 피해를 줄이고 보호하는 공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숲 체험장을 만드는 데는 현재 이 방법이 가장 친나무적 공법이라는 겁니다. 보통 나무와 나무 사이에 숲 시설물을 만들 때는 쇠줄이나 밧줄을 매야 하는데 그 방법이 나무에 더 해롭다는 겁니다. 최근 숲 친화 시설이나 트리하우스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나온 공법으로 유럽과 미국에서도 적극 활용한다고 했습니다.
나무에는 물과 영양분이 통하는 수관이 있습니다. 기존 방식대로 쇠줄이나 밧줄을 매면 이 통로를 가로막게 됩니다. 나무 둘레에 뭔가를 둘러싸 압력을 가하는 것이 오히려 생장을 방해하고, 이 통로를 죄어 나무를 고사하게 만든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 숲 놀이터 밧줄 놀이 시설 부산 남구 용호동 장자산 숲 체험장의 일부 시설물. 지난해 부산 남구청이 해군작전사령부와 협의를 거쳐 조성한 곳이다. 체험장 일부에는 나무에 녹이 슬지 않는 볼트와 봉을 박은 밧줄 놀이터가 꾸며져 있다. ⓒ 김보성
나무는 자기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침입한 세균을 막을 수 있는 자기방어벽을 형성해 치료하는 겁니다. 그래서 주변부 상처가 아닌 정확히 구멍을 뚫고 거기에 녹슬지 않는 특수한 볼트를 결착하면 시간이 지난 뒤 마치 인공 보철물을 이식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나무에는 지름 24mm의 볼트를 사용하지만 그 구멍으로 물이나 세균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밖에는 그보다 훨씬 큰 어른 팔뚝 정도 굵기의 볼트를 씁니다.
일부 천연기념물 나무에도 이 방법을 씁니다. 나무가 쓰러질 상황이거나 보호 조처가 필요할 때 구멍을 뚫어 봉을 박고 다른 가지를 당깁니다. 이런 걸 이른바 케이블링(줄당김) 공법이라고 부릅니다.
'피해 최소화' 유럽 등에서 시공, 국립유명산자연휴양림에도 도입
실제 국립유명산자연휴양림은 7~8년 전 이같은 공법으로 시공한 숲 체험장을 도입했습니다. 산림청 산하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북부지역팀의 담당 주무관은 "우리나라에서 활성화된 공법은 아니지만, 쇠나 밧줄을 묶기보단 이런 방법이 피해를 덜 준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다른 방식은 오히려 나무를 기형화한다"고 했습니다. 시공 이후 수년이 지났지만, 나무가 고사는커녕 잘 자라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유명산휴양림 역시 초반에 이런 문제로 많은 민원에 시달렸습니다. 매년 40만 명 가까이 이용 중인데, 안내판을 세운 데다 하나하나 해명한 노력 덕분에 지금은 거의 항의가 없다고 합니다.
"숲 활용 차원에서 살아있는 나무를 이용하는 상황이면 둘레를 묶는 방법보다는 이런 방식이 낫습니다."
전문가의 의견도 비슷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식물병원 이규화 농학박사는 "나무 구멍에 공기가 들어오지 않도록 쇠막대를 제대로 고정하는 등 올바르게 설치한다면 식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물론 과학적 방법이라고 하나 숲은 인공적으로 꾸미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결국, 이런 논란에 부산 남구청은 시설 정비를 검토 중입니다. 현재 민원이 있고 항의가 이어질 기미가 보이자 가만히 놔둘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곳을 철거할지, 아니면 자문을 거쳐 다른 결정을 할지는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어렵사리 논의를 거쳐 군부대 부지를 주민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게 된 곳입니다. 그렇게 세금까지 들여 숲 체험장을 조성했다면 이를 '잘', '제대로' 설명할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유명산의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봅니다. 남구는 과연 어떤 방법을 택할까요?
국립 유명산자연휴양림에 조성된 부산 남구 용호동 장자산 숲 체험장과 같은 시설. 초반에 민원이 많았지만, 7~8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산림청 소속인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측은 안내판을 세우고,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이 문제에 대처했다.
▲ 국립 유명산자연휴양림에 조성된 부산 남구 용호동 장자산 숲 체험장과 같은 시설. 초반에 민원이 많았지만, 7~8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산림청 소속인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측은 안내판을 세우고, 적극적인 해명을 통해 이 문제에 대처했다. ⓒ 국립자연휴양림관리소 /김보성(kimbsv1) 오마이뉴스
文대통령 '한국판 뉴딜' 속도전...그런데 규제 완화가 거기서 왜 나와?
靑, 전국민 고용보험 특고 빠졌단 비판에 "의욕만 갖고 정책 집행 안 해"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에 규제 완화 속도전을 지시했다. '포스트 코로나' 주요 경제정책으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 추진을 위해선 무엇보다 규제 완화가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규제 자유특구, 규제 샌드박스 등을 통해 규제 혁파의 속도를 내고 있으나, 더욱 속도감 있는 업무 추진이 필요하다"고 당부하며, "개선된 내용이 업계 등 현장에 잘 활용될 수 있도록 홍보 등 소통을 강화해 달라"고 말했다고 윤재관 청와대 부대변인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도중 중소벤처기업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 보건의료기본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 등 두 건을 심의·의결하면서 이처럼 말했다. 중소벤처부 관련 직제안은 신기술을 활용한 신제품·서비스에 대한 규제특례 업무를 추진하기 위해 한시조직으로 설치한 '규제자유특구기획단'의 존속기한을 2년 연장하는 내용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개인정보 보호 전제 하에 축적된 데이터가 국민을 위해 활용될 수 있도록 데이터 활용 부문에 더욱 많은 노력을 해 달라"고 말하며 거듭 규제 완화 의지를 드러냈다.
윤 부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지금까지 정부가 3년 간 했던 규제 혁신의 노력이 현장에서 잘 반영되고, 현장에서 잘 알고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소통하고 강화하라는 특별한 당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단순히 중소벤처기업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부처가 경제 위기 극복에 더욱더 매진하라는 당부"라고 덧붙였다.
정부가 연일 규제 혁신을 추진하고 있지만 개인 정보 활용 활성화 방안 등 일부 사안의 경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비판도 예상된다. 특히 문 대통령의 10일 특별 연설과 관련해 '한국판 뉴딜'을 환영하며 규제 완화를 강하게 제기한 재계의 요구에 호응하는 모양새가 됐다.
반면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는 지난 6일 정부의 규제 완화 움직임에 대해 "경제위기 극복을 명분으로 기업들의 기존 민원을 해결해주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특히 정부가 규제 혁신 1번 과제로 제시한 개인 정보 활용 활성화 방안에 대해 "'규제혁파'라는 포장과 달리 오히려 인권보호와 공공성을 위한 제도적 안전망을 해체하고 있다"고 밝혔다./프레시안 서어리 기자
여의도 23배 ‘새 땅’ 생긴 인천, 또 갯골 메워 관광단지 개발
인천경제청, 저어새 등 멸종위기종 서식 ‘영종갯골’ 매립
환경단체 “땅장사 위한 매립 철회…생태보호지역 지정을”
인천 중구 영종도 영종2지구 매립계획지 위치도. 인천경제청 제공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인천 영종도와 현재 공사 중인 영종드림아일랜드 터(영종 준설토투기장) 사이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이 있다. 영종 준설토투기장은 인천항의 항로 수심을 유지하기 위해 바다에서 퍼올린 개흙을 매립해 국제 관광·여가복합단지로 조성하는 곳으로, 일종의 ‘인공섬’(1·2단계 합산 면적 732만㎡)이다. 영종도와 인공섬 사이에 있는 이 갯골이 여의도 면적(2.9㎢)의 1.35배에 이르는 ‘영종2(중산·3.38㎢)지구’ 매립개발계획지이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1조981억원을 들여 이 갯골을 메우고, 그 자리에 2031년까지 해양 관련 산업과 리조트, 주택 및 상업복합단지로 조성하는 영종2지구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인천경제청은 2018년 4월 전략환경영향평가서 초안 작성에 이어 본안 검토에 들어가는 등 영종2지구 매립을 위한 행정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영종 준설투기장 2단계 매립이 완료될 때에 대비해 추가 준설토매립지 조성을 위한 포석이다. 인천경제청은 전략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되면, 해양수산부의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갯골 매립 추진에 환경단체인 인천녹색연합은 12일 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땅장사’를 위한 영종2지구 개발사업을 철회하고, 갯골 일대를 ‘해양생태 보호지역’으로 지정하라고 촉구했다. 영종2지구 갯골은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인 저어새, 알락꼬리마도요를 비롯해 2만 마리 이상의 도요새 물떼새의 번식지로 알려져 있다. 또 2018년 9월, 인하대 해양과학과 해양동물학실험실과 생명다양성재단, 인천녹색연합이 조사한 결과,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이자 보호대상해양생물인 ‘흰발농게’의 대규모 서식지로 확인됐다. 전체 매립면적의 0.15% 규모인 5950㎡ 일대 조사에서만 최소 5만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종2지구에 서식하는 멸종위기종 흰발농게. 인천녹색연합 제공
인천녹색연합은 “인천경제청이 친환경 단지 조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이 매립사업의 필요성을 ‘경제청의 토지매각 재원 확보’로 명시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영종 준설토투기장 매립을 완료한 뒤 민간사업자에게 넘겨 땅장사했듯이 인천경제청 또한 땅투기개발사업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지역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인 공유수면 매립 등으로 68.26㎢의 새 땅이 생겼다. 반대로, 송도·영종·청라경제자유구역 조성,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조성 등을 위해 여의도 면적의 23배에 이르는 갯벌이 사라진 셈이다. 이예은 인천녹색연합 생태보전팀장은 “준설토매립장 조성이 계속 진행되는 만큼, 갯벌 면적도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전세계적으로 갯벌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인천은 뒷걸음질 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천녹색연합은 영종2지구 매립계획 철회를 요구하며 12일부터 무기한 1인 시위에 돌입했다.
권승안 인천경제청 영종계획담당은 “영종2지구 매립면적의 절반가량을 줄여 생태공원으로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환경문제 전문가 100% 활용하는 법
익산시는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도시지만 종합대학과 의과대학이 있다. 지역사회를 돕고 이해하려는 전문가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장점마을의 ‘행운’이었다.
ⓒ시사IN 이명익 김세훈 박사는 2017년 금강농산에 처음 방문했다. ‘공장이 잘못 운영되고 있구나’를 직감했다.
바람이나 쐴 겸 나섰다. 김세훈 박사(전북대 환경공학과)는 2017년 2월 강공언 교수(원광보건대 보건의료학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환경문제가 발생한 지역에 같이 가보겠느냐는 제안이었다. ‘그런 일’이 일상인 사람들이었다. 대수롭지 않게 수락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과 손문선 전 익산시의원(시민단체 좋은정치시민넷 대표)이 동행했다. 문제가 발생한 곳이 사유재산이라 무단침입으로 고소당하지 않으려면 ‘배지’가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함라3길 3-76. 도착한 곳은 금강농산이라는 비료공장이었다. 김 박사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공장
에 잠시 들어갔는데 재료 분진이 온몸에 묻어요. ‘공장이 잘못 운영되고 있구나’를 직감했죠. 그래서 그다음 주에 또 가봤어요.” 강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공장 가동 중에 들어가 봤으면 심각성을 느꼈을 거예요.” 외부 전문가들과 장점마을의 질긴 인연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익산시는 인구 30만명에 불과한 도시지만 종합대학과 의과대학이 있었다. 지역사회를 돕고 이해하는 전문가가 가까이 있었다. 장점마을의 ‘행운’이었다.
두 달 뒤 주민대책위원회가 김세훈 박사와 강공언 교수에게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민관협의회)’에 참여해줄 수 있는지 물어왔다. 현장을 이미 확인한 터라 거절하기 어려웠다. 민관협의회는 위원을 구성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마을 추천으로 합류한 두 사람을 익산시에서 마뜩잖아했다.
짚이는 점은 있었다. 강 교수는 익산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왔고, 김 박사는 당시 전북녹색환경지원센터 연구원으로 지자체 처지에서는 싫어할 만한 연구 결과만 내놓고 있었다. 강 교수는 자신이 어디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환경문제 관리는 기본적으로 돈을 까먹는 일이에요. 지방일수록 지자체가 지역 일자리를 만들고 세수도 되는 사업장 유치에 사활을 걸다 보니 환경정책은 계속 퇴보하고 있죠.”
행정의 구멍과 싼 땅값, 지방이라는 폐쇄성을 이용한 소규모 공장은 이제 ‘시골’의 풍경이다. 김 박사는 지역에서 환경문제를 연구하며 그런 공장이 일으키는 문제를 수도 없이 목격했다. “지자체가 관리해야 할 면적이 넓다 보니 관리·감독은 산업단지 위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요. 환경문제는 지자체의 주요 관심사도 아니다 보니 행정력이 떨어지는 거죠.”
환경부가 역학조사 청원을 검토하는 동안 두 사람은 기존 자료부터 검토했다. 2009년과 2010년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이 오염 시료를 채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전북보건환경연구원은 ‘질병 연관성이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박사는 두 차례 연구가 공장의 특이성을 간과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경험으로 아는 일이었다. “암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은 너무 많은데 유해 분석 항목은 정해져 있거든요. 법 영역에 없는 항목을 조사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해요. 연구 사업을 해봐서 알지만 이게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을 찾기보다는 수치가 넘었느냐, 안 넘었느냐를 더 중요하게 따져요.”
ⓒ임형택 익산시의원 제공 2017년 3월2일 금강농산 내 대형 회전 건조시설인 로터리 킬른이 돌아가고 있다.
역학조사 전에 예비조사를 한 이유
금강농산이 2017년 4월 폐쇄되면서 민관협의회 전문가 위원들의 마음도 바빠졌다. 공장이 가동 중일 때도 쉽지 않은 역학조사를 문 닫은 상태에서 해야 했다. 이러면 실측이 쉽지 않고 속된 표현으로 ‘뭉개고’ 갈까 봐 걱정됐다. 그해 7월 환경부가 역학조사를 수용했지만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18년 1월까지는 아직 반년이나 남은 때였다. 강공언 교수, 김세훈 박사, 임형택 시의원, 손문선 대표가 긴급 토론회를 마련했다. 두 전문가가 기초조사를 하고, 임형택 시의원이 정보공개청구로 받은 자료로 논의를 거듭 진행했다.
이들은 민관협의회를 통해 역학조사 전 예비조사를 제안했다. 금강농산은 공장 폐쇄 이후 폐기물 및 설비를 계속 빼가고 있었다. 모두 ‘증거’인데 막을 방법이 없었다. 시료 확보가 급했다. 문제는 발암물질이 있다면 얼마나 노출됐는지, 정말 마을 주민들에게 영향을 줬는지 예비조사로 얼마만큼 확인할 수 있는가였다. “역학조사 개시일까지 손 놓고 기다릴 수가 없었어요. 마음은 급했는데 예비조사에서 원인자를 못 찾으면 역학조사에 면죄부를 줄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정말 부담됐죠.”
익산시에서 예비조사 명목으로 예산 2000만원을 어렵게 땄다. 강공언 교수가 대기를, 김세훈 박사가 폐기물을 맡았다. 토양과 지하수 전문가 김강주 교수(군산대 환경공학과)가 합류했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료를 채취하고 각 샘플을 조사기관에 보내는 절차마다 제3자를 끼웠다. 결과는 연구자들이 받아보지 않고 익산시로 바로 보내도록 했다.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전문가 위원들을 ‘주민들을 선동해서 용역 따는 연구자’로 매도했다.
예비조사 결과 지하수, 저수지, 토양 등에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TSNAs)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 16종이 확인됐다. 역학조사는 예비조사에 근거해 두 물질을 중점적으로 검증했다. 담배특이니트로사민에서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NNN(Nicotine-nitrosamine nitrosonornicotine)과 NNK (N-nitrosamine ketone)가 나왔다. 다양한 동물실험에서 폐·비강·구강·기관·식도·위·췌장·간·피부에 조직특이적인 발암성이 보고된 물질이었다.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16종 중 확인된 벤조피렌 역시 1군 발암물질이었다.
건강영향평가 결과도 이를 뒷받침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의 암 발병률은 모든 암에서 전국 표준인구집단 대비 약 2~25배 높은 범위에 있었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높았다. 담낭 및 담도암은 2008년, 피부암은 2012년부터 발생하기 시작해 집단적 발병으로 파악됐다. 1인당 의료비용 지출 역시 인접 지역의 123.2%로 높게 나타났다.
ⓒ시사IN 이명익 강공언 교수는 지역사회에서 환경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목소리를 내왔다.
환경부는 역학조사 결과를 소극적으로 해석하기 바빴다. 2018년 12월 역학조사를 마치고도 최종 결과를 발표하기까지는 1년 가까이 시간이 더 필요했다. 환경부와 전문가 위원들 사이에 반박과 재반박이 오가며 힘겨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역학자인 오경재 교수(원광대 예방의학교실)가 합류하면서 겨우 역학적 인과관계를 인정받았다.
예비조사에서 지하수와 토양을 담당한 김강주 교수는 결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외국의 경우 형사상 문제는 직접적 증거를 요구하지만 환경문제는 사회문제로 인식해 증거의 우세성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면 의심받는 쪽(기업)에서 아니라고 증명해야 해요. 장점마을 역학조사가 그런 결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진짜 획기적인 사건이에요.” 김강주 교수는 역학조사 이후 ‘익산 장점마을 환경오염 사후관리’ 용역을 맡았다. 정화작업을 위한 조사로 앞으로 어떤 식으로 토지를 이용할 수 있을지 알아본다. 연구기간은 2020년 12월까지다.
‘사전예방의 원칙’ 사실상 처음 적용
장점마을은 환경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자가 아니라 수용자의 관점으로 문제를 해석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다리를 놓았다. 김 교수는 그동안 환경학자들이 끊임없이 요구해왔던 ‘사전예방의 원칙’이 사실상 처음으로 작동했다고 말했다. “그동안은 사전예방의 원칙이 굉장히 사치스러운 개념이었어요. ‘문제도 안 터졌잖아? 법도 없잖아? 그냥 법대로 해.’ 그렇게 하면 대부분 업체가 이깁니다. 법이 완벽하지 않거든요. 최소한의 요건이 법이에요. 그 빈곳을 행정이 못 메웠어요. 마을 주민들보다는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요.”
불행에는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불행을 경험한 사람들은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하려 노력한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금강농산과 싸운 17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다. 김세훈 박사는 장점마을이 이 과정을 통해 동네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기를 기대했다. “장점마을은 ‘집단 암’이라는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기 마을의 가치를 봤어요. 암의 대명사가 됐지만 공동체가 힘을 합쳐서 문제를 해결했죠.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나중에는 암을 치료하러 사람들이 들어와서 살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장점마을 주민들이 자신들의 암을 치료하기 위해 먹거리와 생활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면 새로운 사람들이 와요.”
성장 대신 선택한 ‘삶의 질’
2019년 12월10일 정헌율 익산시장은 서울 강남구 KT&G 서울사옥 앞에 있었다(사진). ‘익산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태 KT&G 책임 촉구’ 집회의 앞줄을 지켰다. 2시간 가까이 이어지던 그날 집회에서 정 시장은 잠시 언급됐을 뿐이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익산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를 지낸 정헌율 시장은 전임 시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나며 열린 2016년 4월 재선거로 임기를 시작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 시장이 임기를 시작할 무렵 장점마을도 주민대책위원회 구성을 논의하고 있었다. 시기가 잘 맞았다. 정 시장은 장점마을 문제를 이전 시장들처럼 외면하기 어려웠다. 2016년은 장점마을이 ‘집단 암 발병’으로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해이기도 하다. 지역 이슈를 넘어 전국 이슈가 되면서 익산시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속된 민원에도 꿈쩍 않던 익산시가 악취와 폐기물 단속에 나선 것도 2016년부터였다. 2017년 4월에는 금강농산을 폐쇄 조치했다. 금강농산은 폐쇄 중지 가처분신청으로 맞섰지만 그해 11월 결국 파산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폐쇄하기에는 애매한 위반이라고 기억했다. “니켈(중금속) 배출 기준치 위반인데, 산업단지 같은 데서 그 수치가 나왔으면 위반이 아닌 숫자였다. 그동안 더 심한 위반 사항에도 폐쇄 조치를 안 했던 시가 마을 주민들이 역학조사를 청원한 지 일주일 만에 결정한 일이라 우리끼리는 정치적 의도가 있을 거라고 추측했다.” 이 조치로 공장 문을 닫은 상태에서 역학조사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겉으로는 마을을 위해 공장을 폐쇄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학조사 결과를 왜곡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이후 실제로 역학조사가 험난한 길을 걸었던 것도 공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금강농산 폐쇄와 더불어 원인 규명과 환경오염 기초조사를 위한 공식기구인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민관협의회)’도 2017년 4월 출범했다. 장점마을 문제 해결을 위해 관과 민간 전문가, 주민이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 김세훈 민간위원(전북대학교 환경공학박사)은 거버넌스가 작동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성취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멱살부터 잡고 욕설과 고소·고발이 오가다 흐지부지되기 십상이다. 민관협의회는 달랐다. 양측 모두 요구사항을 조정하면서 테이블을 유지했다. 30차 회의까지 열렸는데, 앞으로 남은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만큼 회의가 더 필요할 거다.”
지자체 최초로 환경특별사법경찰관 도입
정헌율 시장은 3월6일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행정의 총체적 부실을 인정했다. “내가 오기 전의 일이지만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준비 중인 소송도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겠다.” 책임자에 대한 징계나 처벌은 쉽지 않아 보인다. 지방공무원법에 의한 일반 업무의 징계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정 시장은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부실이나 불법에 관여했던 공무원들은 이미 다 떠난 상태다. 남아 있다 하더라도 징계시효가 지나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 감사원이 두 차례나 감사를 하고도 결과를 아직 못 내는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대도시와 수도권에서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악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폐기물 처리업과 같은 영세 사업장은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지방에 모였다. 익산시도 예외는 아니다. 정 시장은 “지역 성장이 멈추더라도 삶의 질을 챙겨야 한다는 걸 장점마을을 통해 배웠다”라고 말했다.
2019년 11월 익산은 환경친화도시를 선포했다. 환경안전국을 신설하고 환경직 공무원도 현재 42명에서 2022년까지 62명으로 증원할 계획이다. 올해 3월에는 기초자치단체 최초로 환경특별사법경찰관을 도입해 현재 3명이 활동 중이다. 특별사법경찰관은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의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주는 제도다. 오염이 가져온 낙인이 장점마을 것만은 아니었다. 익산시 역시 지역 이미지 실추라는 ‘보이지 않는 손실’을 메우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장점마을이 환경문제 해결의 ‘선례’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다./ 시사인 장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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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경위기, 자본주의
두 개의 길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하나 있다. 코로나19(COVID19)라는 병은 언제까지 갈 것인가, 라는 질문. 몇 개월이면 끝날까? 아니면 1년이면 끝날까? 아니면 그보다도 더 갈까?
대답은 조금 시시할 정도로 뻔하다. 그 대답은 “인구 집단이 집단면역을 가질 때까지”이다. ‘집단면역’이라고 하면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준비를 하라”는 역사에 남을 망언을 하면서 이제는 다들 꺼리는 악명 높은 어구가 됐지만 사실은 감염병을 다룰 때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다. 다만 한 사회가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는 보리스 존슨이 말했던 길, 즉 질병에 걸려 집단면역을 가지게 되는 길이다. 그러나 그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백신으로 사람들이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이 있다.
첫 번째 길, 즉 사람들이 역병에 감염되어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은 코로나19의 경우 이론상으로는 인구의 약 60%가 감염되어 면역이 생기면 집단면역 문턱치(역치)에 도달한다. 그러고 나서야 감염이 서서히 줄어든다. 그런데 이 길은 코로나19의 사망률을 최소 2~3%로 잡더라도 우리나라 인구로 따지면 인구의 60%, 즉 3,000만 명이 코로나19에 걸려야 하고, 그중 2~3%인 최소 60~90만 명이 사망하는 길이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길이다.
따라서 두 번째 길이 남는다. 그 길은 백신으로 사람들이 면역을 획득하는 길이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의 경우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지금 50대 중반의 연령대만 해도 학교 다닐 때 60명 한 반에 한 명꼴로 소아마비로 인한 장애인이 있었다. 지금 형태의 소아마비 백신이 나온 것은 1961년이었다. 홍역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백신으로 별문제가 안되는 병이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주요 사망원인 중의 하나다. 백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신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백신으로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길이 바로 두 번째 길이고 이 길이 우리가 선택할 길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인류가 백신이 없는 상태에서 치명률 3% 정도의 새로운 질병에 맞닥뜨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치료제도 아직 없고, 백신은 빨라야 1년 내지 1년 반 만에 나오고, 아니 몇 년이 걸릴지 모르고, 그때까지 사람들이 2m 이상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면? 이 사회의 지배자가 자본가의 이익을 수호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감염을 통한 집단면역의 길인가, 아니면 백신을 기다리면서 하염없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것인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속하면 생산이 멈추고 이 자본주의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데?
따라서 보리스 존슨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한 것은 실수가 아니다.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페인독감 때처럼 전 세계 인구가 18억일 때 5,000만에서 1억 명 정도를 죽이고 1년에서 1년 반 내에 역병을 끝내는 것이 오히려 싸게 먹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 질병에 취약한 사람들은 60대 이상의 고령자와 원래 고혈압이나 당뇨, 심장질환 등이 있거나 장애가 있는 이들이다. 즉 생산활동 인구가 아니다. 또 의료체계가 마비되어 사람들이 죽는다 할지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죽는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언제 나올지 모를 백신을 기다리느니 그냥 사회를 질병에 노출시켜 집단면역을 획득하는 편이 빠르고 싸다. 스페인독감을 대입하면 75억 인구 중 2억 명에서 4억 명이 죽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인류 앞에는 코로나를 끝내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하나는 야만의 길이고 하나는 우리가 모두 사는 길이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기
백신이 나올 때까지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면서 버티는 길만이 우리가 선택해야 할 길이다. 다른 길은 수억 명을 죽이는 길이다. 그러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는 길이 쉬운 것은 아니다.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방법으로는 치료약제이다. 예를 들어 신종플루 시기에는 타미플루와 같은 약이 있었다. 이러한 잘 듣고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약이 있으면 이 약으로 백신이 나올 때까지 버티면 된다. 이것이 우리가 신종플루를 극복한 길이었다. 신종플루는 다행히도 치명률이 1,000명이 병에 걸리면 1명 이하가 사망하는 정도의 위험성 정도밖에 안되었고 또 다행히 예방접종이 9개월 만에 나오면서 쉽게 넘어간 셈이지만 문제는 코로나바이러스엔 알려진 치료제가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감염의 확산을 억제하는 방법은 이른바 ‘확진자 추적’과 밀접 접촉자 자가격리로 잘 알려진 역학적 방법의 ‘봉쇄와 완화’, 즉 사회역학적 환자 억제 방법이다. 감염자와 감염 의심자의 추적, 격리 그리고 조기 진단과 조기 치료 등을 말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감염병과의 속도경쟁인데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감염병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 번째로 나오는 것이 전통적 방역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거리두기 또는 물리적 거리두기, 손씻기, 마스크 등이다. 여기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소한 1m 외국에서는 2m를 이야기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기본적으로 비말(침방울, 콧물 등) 감염이고 접촉감염이므로 서로 팔을 뻗어 닿지 않는 거리로 떨어져야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첫 번째 치료제는 개발되거나 임상시험을 거치려면 시간이 걸리고 또 지금 떠오르는 약물로는 100% 치료가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치료제에 대한 여러 보도들은 주식시장에서의 이윤을 노린 ‘과장 광고’일 가능성이 대부분이다.
둘째 역학적 봉쇄와 완화 방법은 감염병의 전파 속도를 줄이지 못하면 효과가 없다. 이는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시작해서 미국 등 방역에 실패한 나라들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세 번째 방법, 그리고 가장 유력한 방법은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손씻기 등인데 이 사회적 거리두기 혹은 물리적 거리두기야말로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실천되지 않으면 실효가 없는 일이다. 이것은 단순히 교회나 체육관, 클럽이나 스포츠 관람 등을 당분간 그만두거나 그 형태를 2m의 거리를 두는 것으로 바꾸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만을 바꾸는 것도 엄청난 일이겠지만 말이다.
가장 중요하게는 생산 현장에서 과연 2m의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가, 또한 유통과 대중교통에서의 사회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돌봄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개인 간의 거리를 2m로 유지할 수 있는가가 또하나의 중요한 지표다. 공장과 사무실에서, 물류 현장, 지하철과 버스, 기차에서 2m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 요양원, 요양병원,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에서 2m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가
여기까지 오면 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러면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즉 코로나19는 언제까지 갈까라는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답은 백신이 나올 때까지이다. 그럼 언제 백신이 나올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개월 운운하자 미국의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 앤서니 파우치가 최소 1년 내지 18개월이라고 이야기한 사실은 이제는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수석과학자문 패트릭 발란스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막상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1년 내지 1년 반조차도 ‘천운이 따르면’이라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RNA 바이러스는 변이가 많아 예를 들어 “에이즈는 30년간 개발했지만 백신이 개발되지 못했고, C형간염 역시 백신이 없다.” “인플루엔자는 1940년대 첫 백신 등장 이후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백신 개발까지 무려 70년 걸렸다. 개발은 됐지만,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하고 예방 효과가 제일 높아 봤자 70% 수준”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백신이 나올 때까지 천운이 따라야 1년 내지 1년 반이고 몇 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냉정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몇년 동안 아니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면 세계가 코로나 이전(BC:Before Corona)과코로나 이후(AC:After Corona)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는 더이상 재담이 아니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시대는 이제 ‘코로나 시대’다.
대구, 신천지, 공공의료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유럽 의료시스템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은 공공의료의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잘 견딜 줄 알았는데 결과를 보니 우리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보다는 현재 성적상 낫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75명의 사망자가 나왔던 3월 16일까지의 사망자 중 23%가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한때 2,000명이 넘는 환자가 진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병원이나 치료시설에도 입소하지 못했다. 즉 한국에서도 의료용량 이상으로 의료수요가 폭발하는 환자폭발이 일어났고 그에 대처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사실 우리도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나라들이 30점도 안될 만큼 너무 못해서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했다고 평가받는 것이다.” 이는 결코 잘못했다고 우리나라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이 상대적 점수로 한국은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정한 평가 없이는 우리가 잘했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래서 대구의 코로나 사태를 냉정히 되돌아보아야 한다.
흔히 이른바 ‘31번째 환자’가 대규모 감염의 시발점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또 여러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정치적 이유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2월 18일 진단된 그 환자도 추정키로는 4차나 5차 전파자의 하나였을 뿐이다. 즉 문재인 대통령이 “국내에서의 방역관리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단계로 들어선 것 같다”며 “방역 당국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발언했을 당시 즉 2월 8일 당시에 이미 한국에서는 지역감염이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우한(武漢)에 대한 중국 자체의 봉쇄가 1월 23일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는 우한을 포함한 후베이성(湖北省)을 거친 입국자들을 2월 4일부터 입국금지 조치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의 입국자들도 특별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사실상 단기 관광 입국자들을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조치는 초기의 입국자들을 방지하지 못했다. 대구에서의 지역감염은 1월 중순이나 그 이전일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따라서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한 대한의사협회(의사협회의 첫 번째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은 1월 26일)나 또 미래통합당의 주장(중국 내에서의 우한 봉쇄 이후의)은 실제로는 대구·경북 지역사회에서 감염이 진행된 이후의 이야기였다.
이 글은 대구 경북에서의 코로나 발생 과정을 되짚어보는 글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 하겠다.
‘신천지’의 감염은 지금까지의 환자 발생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그 규모가 컸다. 약 5,600명에 해당하는 환자가 신천지 관련 대구·경북 환자라고 추정된다. 따라서 신천지 때문에 우리나라가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일면적 파악이다.
신천지교회의 신도는 약 25만 명으로 한국 전체 인구의 0.5%에 해당할 정도로 큰 집단이었다. 첫 환자가 1월 20일 처음 진단된 이후부터 2월 26일까지 30명 환자가 진단되는 것에 그친 반면, 2월 28일 처음으로 진단된 대구의 31번째 환자부터 진단된 환자는 대구시와 대구지역 인근 경북지역의 지역감염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신천지 교인들이 매우 폐쇄적이어서 지역감염이 대구와 대구시 주변 지역에 그쳤고 더 퍼져 나가지 않았다는 점, 또한 신도 명단을 통해 추적과 진단이 상대적으로 용이했다는 점이다(또 한편으로는 신천지교회가 마치 범죄집단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낙인이 찍혀, 추적에 경찰력을 동원하더라도 사회적 저항이 약했다). 또 젊은 신도가 많아 상대적으로 치명률도 낮았다. 심지어 호남 신천지 교도 사이에서는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을 정도로 폐쇄적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신천지교회의 집단감염으로 인해, 초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효과를 얻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2015년의 메르스 집단 발병 경험은 이번에 초기부터 광범위한 검사와 확진자 사회격리와 접촉자 추적 및 격리와 같은 대응을 가능하게 했고, 여기에 비교적 초기에 발생한 신천지교회 집단감염은 사회적으로 거리두기 실행을 가능하게 하는 데 큰 효과를 냈다. 그 때문에 상당수 전문가는 ‘신천지 착시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인구의 약 50%를 차지하는 수도권 지역(서울·인천·경기)에서 지역사회 감염이 진행되고 있고, 완만하지만 그 발생자 수가 늘어나는 추세거나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경기도지사 이재명이 4월 4일 “감당 못할 코비드19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 이유다.
또하나 짚어야 할 것은, 한국의 민간 중심의 의료공급체계가 코로나19를 잘 막아냈다고 하는 주장이다. 실제로 “대구·경북은 종합병원과 병원 27곳에 약 4만 개의 병상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5,000명 정도(경증 환자 제외)의 코로나19 환자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분석 결과 전체 병상의 10%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코로나19 환자 4명 중 3명을 진료한 반면, 전체 병상 중 90%를 보유한 민간병원은 나머지 1명만 진료하는 데 그쳤다.” 또 “평소 질이 떨어지고 적자를 낸다고 찬밥 취급을 받던 공공병원이 위기상황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다. 전국적으로 살펴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코로나19 환자의 치명률이 계속 높아져가는데도 서울대병원을 제외한 이른바 ‘빅5’ 병원에서 진료받은 환자는 채 10명이 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대구에서는 대구의료원 450병상, 국군대구병원 303병상, 대구 산재병원 200병상, 대구보훈병원 90병상, 경북대병원 70병상 등 국공립 병원이 1,100병상을 마련했고 여기에 포항의료원 등까지 나섰다, 반면 민간병원은 마침 계명대 동산병원이 이사 가고 남은 공간을 빌려서 200병상을 썼고, 대구가톨릭대병원과 영남대병원 200병상을 쓴 것이 전부다.
경제위기와 기후위기
2008년 경제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는 “대공황보다 훨씬 더 나쁘다. 경기침체는 V자도, U자도, L자도 아닌 I자로 올 것이다”라고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미 “1930년 이후 유례없는 경제위기”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미 경제위기는 필연적이다. 그리고 이를 어떻게 벗어날지 알 수도 없다.
이러한 경제위기 시기에 자본주의체제가 무슨 일을 강요할지를 우리는 이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우리 사회만 해도 1997년의 경제위기, 2008년의 경제위기의 경험을 통해 자본가계급이 경제위기의 고통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하리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벌써부터 타격을 입은 항공업, 호텔업계에서는 정리해고가 진행되고 있다. 서민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아 생계가 걱정인데 정부는 기업에는 100조 원을 푼 반면 서민들의 생계 지원에는 5조 원을 쓰느니 마느니 하고 있다.
다른 한편 기후위기는 이제 8년 정도만 지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불가역적인 지점을 통과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류는 1930년대 이래 전례 없는 경제위기와 인류 생명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고, 한편으로는 인류 자체의 존망이 걸린 기후위기도 맞닥뜨리고 있다.
코로나19가 왜 발생했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인류는 전례 없는 전세계적 신종 감염병의 위기를 겪고 있다. 이미 사스, 신종플루, 지카, 에볼라 등 떠오르는 것만 세어도 몇년 만에 한번씩 전세계적 감염병을 겪고 있다. 이 역병들은 자본주의적 농·축산업과 더불어 자본주의적 토지이용이 환경을 파괴하여 인류가 이전에 접하지 못하던, 자연에 남아 있어야 할 동물들의 바이러스를 직접 접촉함으로써 생기는 역병들이다. 예를 들어 이번 코로나바이러스는 박쥐가 가지고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천산갑 등의 포유류를 매개로 인간에게 퍼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종플루 바이러스나 조류독감 바이러스처럼 이렇게 새로운 바이러스는 멕시코의 축산농장과 같은 자본주의적 공장식 축산업에 의해 마련된 최적의 배지를 통해 인간에게 전파될 수 있는 바이러스로 변모하고 증식된다. 그리고 이는 전례 없는 세계화로 인해 빠른 속도로 전세계적으로 전파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불평등을 악화시킨 지 40년째이다. 이 예가 유럽의 공공의료체계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였지만, 속으로는 민영화되고 만성적인 인력부족과 재정부족으로 고통을 받은 지 오래다. 유럽이 이 정도인데 미국은 더 말할 것도 없으며 아프리카나 남미, 아시아의 제3세계는 신종 감염병의 의료적 대비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 인도의 예가 그 모습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코로나19로 인한 인류의 보건위기와 경제위기를 동시에 극복하는 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그 과정은 생산 현장인 공장과 유통, 대중교통에서부터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로 인해 생길 사회적 부담은 노동자와 서민들이 지는 게 아니라 최대한 사회적으로 정의롭게 부담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 코로나 기간 동안 해고를 금지하거나 해고되었을 경우 국가가 실업급여로 90%까지 급여를 지급하는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노숙자를 주차장 같은 곳에 금을 긋고 수용하지만, 반면 프랑스는 정부가 호텔과 계약을 해서 노숙자를 재운다. 스페인의 경우 의료시설이 부족하자 민간병원을 국유화했다. ‘샤넬’이 향수 대신 손세정제를 만들고, 심지어 미국에서도 자동차회사나 ‘록히드마틴’이 인공호흡기를 만든다. 자동차회사들이 탱크를 만들고 비행기회사들이 전투기를 만들던 2차대전 시기의 전시경제 ‘뉴딜’이 지금 코로나 시기에 형태를 바꾸어 다시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딜’이다.
일단 우리가 시작할 것은 이 경제위기 시기의 경제적 부담을 노동자와 서민에게 떠넘기지 않고 불평등을 역전시키는 ‘코로나 뉴딜’이다. 예를 들어 당장 할 일은 기업의 해고 금지이다. 그리고 결국 문을 닫는 기업이 생기면 국유화를 통해 국가가 나서서 고용유지를 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하에서의 ‘공간이 곧 이윤’이 되는 일을 중단시켜야 한다. 즉 토지와 공간의 이용을 공공화하는 일이다. 당장 임대료를 못 내도 퇴거를 중지시켜야 한다. 공장의 사람 사이의 공간을 1m 이상 유지시켜야 한다. 대중교통을 대폭 확대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사회복지시설에 수용되어 있는 노인들과 장애인들에게 공간을 확보해주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돌봄노동자들을 대폭 확대 고용해야 한다. 이러한 공간의 사회적 이용이 ‘코로나 뉴딜’의 핵심 중 하나이다. 또한 생계가 곤란한 사람들에게는 재난수당 등의 생활비가 지급되어야 한다.
보건·의료 부문에서도 앞서 이야기했듯이 공공의료가 대폭 확충되고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기관은 공공화해야 하며 필수적인 인공호흡기나 의료장비, 마스크 등의 생산과 유통은 정부가 관리해야만 한다.
이러한 내용들이 ‘코로나 뉴딜’의 기본적인 얼개에 해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코로나 뉴딜’의 출발로 그쳐서는 안된다. 이 ‘코로나 뉴딜’은 ‘녹색뉴딜’의 첫 번째 단계여야 한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1930년의 위기에서 2차대전으로 이어진 야만으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이 야만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한 세기 전에 던진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야만인가, 자본주의의 극복인가? 인류의 생존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녹색평론 통권 제172호 | 우석균
가지산서 국내 최고 굵기 ‘진달래 나무’ 발견…키 3.5m·밑둘레 62㎝
울산·경남 경계지역 가지선 중봉 서식
“논의 거쳐 천연기념물 지정 가치 충분”
울산·경남 경계지역인 가지산 중봉 부근에서 발견된 국내 최고 굵기의 진달래 나무. 정우규 한국습지학회 부산울산지회장 제공
울산과 경남의 경계지역인 가지산 중봉 부근에서 국내 최고 굵기의 진달래 노거수(크고 오래된 나무) 군락이 발견됐다 정우규 한국습지학회 부산울산지회장(이학박사)은 최근 울산과 경남의 경계지역인 가지산 중봉 부근 해발 1100m 고지에서 전국에서 가장 큰 진달래(털진달래) 나무를 발견했다고 13일 밝혔다. 가지산 철쭉나무 노거수 군락지(천연기념물 제462호) 안에서 발견된 이 진달래 나무는 키가 3.5m, 땅에 접한 부위의 둘레가 91㎝, 6개의 가지 줄기 가운데 가장 굵은 원줄기(주간)의 밑 둘레가 62㎝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가장 굵은 진달래 나무로 알려진 재약산 사자봉의 진달래 나무의 밑동 둘레 86㎝보다 더 크다.
정 지회장은 “남한에서 가장 유명한 진달래 군락지인 인천시 강화군의 고려산 진달래 나무, 전남 여수시의 영취산 진달래 나무, 충남 당진시의 아미산 진달래 나무 등보다도 뿌리목 둘레나 키 모두 훨씬 크다. 이 지역에는 이 나무를 비롯해 진달래 노거수가 10그루 넘게 분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진달래와 철쭉 노거수들이 같이 자라고, 나무의 크기나 그루 수 등으로 볼 때 진달래와 철쭉 노거수 군락을 정밀 조사해 이를 기초로 관계 전문가·기관들의 논의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고 보호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신동명 기자 tms13@hani.co.kr
“어린 물고기 보호해요” ‘치어럽’ 뉴욕페스티벌 동상
WWF 치어보호 캠페인 국제광고제서 수상
세계자연기금(WWF)의 어린 물고기 보호 캠페인 ‘치어럽’이 국제광고제인 뉴욕페스티벌에서 동상을 받았다. 제일기획 영상 갈무리
“대한민국 1000만 낚시꾼을 1000만 치어 사랑꾼으로!”
세계자연기금(이하 WWF)의 어린 물고기 보호 캠페인 ‘치어럽’이 뉴욕페스티벌 ‘사회적 기여/환경보전 및 지속가능성’ 부문에서 동상을 받았다. 매년 50여 개국이 참여하는 뉴욕페스티벌은 칸 국제광고제, 클리오 어워드와 함께 세계 3대 광고제 중 하나로 꼽힌다.
WWF는 지난해 10월 해양수산부, 국립과학수산원, 제일기획이 함께한 ‘치어럽(치어+love) 밴드 캠페인’이 국내 연근해 수산원 고갈을 막고, 지속가능한 수산물 소비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기획됐다고 13일 밝혔다.
치어럽 밴드는 어린 물고기를 ‘잡지도 사지도 먹지도 말자’는 취지로 제작되었다. 평소에는 손목에 말아서 팔찌로 착용이 가능하며, 낚시를 하거나 장을 보는 동안에는 줄자처럼 펴서 물고기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제일기획은 “어획물의 포획금지 체장(몸길이)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을 만드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WWF 해양보전프로그램 이영란 팀장은 “치어럽 캠페인은 환경단체가 정부와 민간기업과 함께 수산자원 보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협업한 최초의 프로젝트”라며 “자원고갈로 위험에 처한 바다를 되돌리는 일이 어민과 정부, 기업 등 특정 직업군의 몫이 아니라 국민 한명 한명이 할 수 있는 일임을 깨닫는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WWF에 따르면, 국내 연근해 어획량은 1970년대 약 70만톤에 불과했지만 어업기술의 발전과 함께 1996년 162만톤까지 증가했다. 이후 치어와 성어를 가리지 않는 무분별한 남획과 불법어업이 만연하게 되면서 2016~2017년에는 100만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영란 팀장은 “국내 수산업의 괄목할 발전에도 어업 생산량이 70년대 수준까지 감소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연근해 수산자원 고갈이 매우 심각한 실정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국립산림과학원, 신개념 나무 DNA 추출 키트 개발
국립산림과학원(원장 전범권)은 숲속 현장에서 고가 장비 없이 나무 DNA나 RNA를 쉽고 빠르게 추출할 수 있는 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개발한 키트는 기존 고속 원심분리기 등이 필요한 DNA·RNA 추출법과 달리 야외에서 간단히 특수 제작된 주사기로 추출이 가능하다. 특수 제작 주사기는 3방향 밸브(3-way cock)에 컬럼(Column)을 설치해 추출용액과 불순물, 순수 DNA·RNA를 따로 분리한다.
기존 추출 방법은 높은 숙련도가 필요했지만, 이 키트를 사용하면 별도 전문 장비가 필요 없어 누구나 쉽게 고순도 DNA·RNA를 추출할 수 있다. 실제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연회도 진행한 결과 참가자들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쉽고 빠르게 고순도의 DNA·RNA를 추출했다. 이 기술은 2020년 4월 특허출원을 마쳤으며, 올해 하반기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석우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자원개량연구과장은 “아무 장비 없이 현장에서 깨끗한 DNA·RNA를 바로 추출할 수 있는 매우 혁신적인 기술”이라면서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나무의 품종개량이나 수목 병충해 진단 등에서 사용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농업이나 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확대적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동·식물 세포에서 DNA나 RNA를 추출하는 것은 생명체 유전변이를 파악하거나,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를 구명하기 위한 실시간 유전자 증폭검사(RT-PCR)를 위해 꼭 필요하다. 대전=양승민기자 sm104y@etnews.com
“이 계곡의 주인은 나야 나?”…올 여름 계곡이 달라진다!
무허가 계곡 하천 점유 수십 년째
경기도, 11개월 동안 96% 업소 철거
친수공간 등 친환경 공간으로 재탄생
“이 계곡의 주인은 나야 나?”…올 여름 계곡이 달라진다!
경기도 가평의 한 계곡. 특별사법경찰과 펜션 업주 간에 언성이 높아집니다. 국가 소유의 하천에 펜션을 설치하고 영업을 해온 업주와의 실랑이입니다. 원상회복 명령을 내렸지만, 오히려 행정소송을 낼 거라며 큰소리칩니다. 급기야 계고장을 찢어버리기까지 합니다.
계고장을 찢으며 반발하는 업주계고장을 찢으며 반발하는 업주
계곡 불법 점유, 경기도에만 1,400여 곳
여름철 계곡에 놀러 가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보기 마련인 이러한 위락시설들. 사실은 많은 시설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소유의 하천을 불법 무단 점유한 채 영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식당과 펜션 등은 물론이고 평상까지 설치해놓고 영리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공공의 자산인 계곡 하천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 이른바 '봉이 김선달식' 영업인 셈입니다.
철거 명령했지만 업주들 강력 반발
사실 이러한 불법 점유는 지자체가 장기간 용인한 측면도 있습니다. 길게는 수십 년간 영업을 해왔는데 왜 갑자기 다 철거하라고 하느냐란 업주들의 반발도 거셌습니다.
문제의식을 가진 건 이재명 경기지사였습니다. 이재명 지사는 "계곡 불법 시설물 철거는 당연히 해야 하고 법대로 하면 어렵지 않은 일이었는데 그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제는 잘못된 관행을 끊어내 질서가 잘 지켜지고 공정한 환경이 되도록 공공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력한 철거 의지를 밝혔습니다.
불법 시설물이 철거된 포천 백운계곡불법 시설물이 철거된 포천 백운계곡
강제 철거되는 불법 시설물강제 철거되는 불법 시설물
11개월 사이 불법 시설 96% 철거
지난해 6월부터 경기도는 청정 하천 계곡 복원사업을 추진했습니다. 25개 기초 지자체의 187개 하천에 산재한 불법 시설물 1,436곳이 철거 대상이 됐습니다. 현장 계도와 계고장 발송, 고발, 행정대집행 등 모든 행정력이 동원됐습니다. 특별사법경찰단도 투입돼 불법 점유자들을 적발해 무더기 형사 입건하기도 했습니다. 11달 동안 계속된 강력한 조치에 결국 불법 시설물의 96%가 모두 철거됐습니다.
자연형 계곡으로 변신...올 여름 계곡이 달라진다!
불법 시설물이 철거된 계곡은 친환경 공간으로 변신할 전망입니다. 경기도는 254억 원을 투입해 이들 계곡에 주차장과 화장실, 녹지, 친수공간을 조성할 계획입니다.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공동체 제안공모 사업을 실시해 시민들의 문화예술 활동과 협동경제 사업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몇 달 뒤면 여름입니다. 한때 성업했던 불법 시설물은 사라지고 올해 여름에는 달라진 계곡의 모습을 시민들이 볼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박희봉 기자thankyou@kbs.co.kr
장점마을 비극의 매 순간 기업은 이익을 거뒀다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의 직접적인 책임에서 비켜나 있는 업체들이 있다. 금강농산에 연초박을 제공한 KT&G와 금강농산으로부터 비료를 납품받은 풍농이다.
ⓒ시사IN 신선영2019년 12월10일 KT&G 서울사옥 앞에서 장점마을 주민들이 비료를 뿌리며 항의하고 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 지역구(영등2동·삼성동·부송동)는 산업단지 옆에 붙어 있는 아파트 단지가 많아 악취 민원이 빈번했다. 의정 활동을 하는 동안 악취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임 의원은 2013년 ‘익산 악취해결 시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장점마을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가 될 무렵 임 의원은 장점마을 민관협의회 위원들과 여러 차례 마을과 금강농산을 찾아갔다. 그의 지역구는 아니었지만 익산 지역 내 환경문제를 모른 척 외면할 수 없었다. 민관협의회 위원들이 각자 분야에서 문제 원인을 찾는 동안 그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자료를 모았다. 수백 장에 달하는 서류 더미 속에서 17년 동안 장점마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다.
물론 금강농산의 무지와 익산시의 무능이 주원인이었지만, 한 줄 한 줄 서류에 밑줄을 그어가던 임 의원의 눈에 들어온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풍농’이었다. 풍농은 업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비료 제조업체다. 국내를 넘어 일본과 동남아시아에 비료를 수출하기도 한다. 비료공장과 연구실뿐만 아니라 화물 운송업체와 골프장도 운영하고 있고, 장학재단도 가지고 있다.
2009년 6월1일 풍농은 금강농산과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임대차 계약서에 등장하는 ‘갑’은 뜻밖에도 금강농산이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산기슭에 위치한 영세 업체가 비료업계 대기업인 풍농에게 생산 공장을 빌려준 것이다. ‘을’이 된 풍농이 금강농산으로부터 빌린 시설은 건조기, 열풍기, 냉각기 등 유기질비료 생산과 관련된 설비다. ‘퇴비 제조시설’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특별히 따로 명시돼 있다. 즉 유기질비료 생산 라인은 풍농이 빌려 담당하고, 연초박이 들어가는 퇴비 생산 라인은 기존대로 금강농산이 운영한다는 의미다.
퇴비는 발효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수분이 많고, 영양분 요소에 대한 규정이 거의 없다. 반면 유기질비료는 발효 과정이 없기 때문에 수분이 적고 모든 제품 성분이 최소한의 공정 규격에 맞춰져 있다. 당연히 유기질비료가 퇴비보다 더 비싸다.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재료와 유기질비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는 다르다. 비료관리법 행정규칙에 따르면 ‘담배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동식물성 잔재물’로는 퇴비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금강농산은 2009년 풍농과의 계약 이전부터 연초박을 썩혀서 퇴비를 만드는 대신 300℃가 넘는 고열에 건조시켜 유기질비료를 제조했다. 전국 어느 비료업체에서도 쓰지 않는 기상천외한 공정이었다. 이 불법적인 생산 과정에서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정한 제1군 발암물질이 발생했다. 연기는 굴뚝을 통해 가까운 장점마을로 퍼졌고, 이는 장점마을 주민들이 각종 암을 겪게 된 원인이 됐다.
2009년 6월1일 임대차 계약을 맺은 풍농은 나흘 뒤 익산시에 제조공정 시설을 확장하겠다는 신고서를 제출했다. 열흘 뒤 익산시는 풍농에 설치를 허가하는 문서를 발급해줬다. 금강농산은 풍농의 후광을 등에 업고 수월하게 공장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임형택 익산시의원 제공 금강농산 공장 내 퇴비 제조 시설. 회사의 신고서류와는 달리 퇴비 제조 기계도 없고, 제조한 흔적도 없다.
수상한 임대차 계약을 맺은 풍농
시의 허가가 나온 지 약 한 달 만인 7월20일 두 회사는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고, 위탁생산(OEM) 관계로 전환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동안에 금강농산은 대규모로 유기질비료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얻었고, 풍농은 직접적인 운영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유기질비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후 금강농산은 풍농이 운영하던 임대 시설을 직접 가동하며 풍농에 비료를 납품했다. 두 업체 간 임대차 계약이 ‘치고 빠지기’ 전략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풍농 관계자는 “당시 계약을 맺은 대표가 사망했기 때문에 왜 계약이 2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해지됐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계약과 관련된 직원은 모두 퇴사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에서 근무했던 한 직원은 “우리가 비료를 만들면 군산에 있는 풍농 장항공장에서 큰 화물트럭이 와서 싣고 갔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풍농 관계자는 “금강농산에 위탁생산을 준 건 맞지만 다른 큰 업체도 금강농산에 위탁을 많이 줬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렇게 덧붙였다. “금강농산에서 만들어진 비료가 농촌진흥청의 안전검사를 모두 통과했다. 검사에서 연초박을 감지하지 못한 건 당연하다. 연초박이 들어간 걸 감지하려면 니코틴 검사를 해야 하는데, 애초에 유기질비료엔 연초박을 넣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니코틴 검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도 최근에 금강농산 문제가 불거지며 연초박 사용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도 피해자다.”
금강농산으로 수년간 이익을 벌어들인 업체는 풍농만이 아니다. KT&G는 금강농산에 연초박을 팔았다. 담배를 만들고 난 뒤 남은 연초박은 비료업체의 원료가 됐다. 폐기물 처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환경부 ‘올바로’ 시스템이 도입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KT&G가 전국 12개 비료업체에 판매한 연초박은 약 5369t에 달한다. 이 중 약 42%를 차지하는 2242t이 장점마을에 위치한 금강농산으로 갔다.
올바로 시스템 기록이 시작된 2009년 이전에도 금강농산은 연초박을 사용하고 있었다. 2006년 전라북도 비료 등록 서류에도 연초박이 등장한다. 퇴비를 만드는 데 쓰이는 연료 중 20%가 연초박이라는 내용이었다. 다만 연초박의 출처는 기록돼 있지 않다. 즉 KT&G에서 배출된 연초박임을 확인할 수 있는 2242t은 올바로 시스템이 시작된 2009년부터 누적된 최소량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KT&G에서 연초박을 사들인 12개 업체 중 금강농산을 제외한 11개 업체는 모두 연초박을 부숙(썩힘)시켜 ‘퇴비’를 만들었다. 금강농산은 연초박을 연소(태움)시켜 ‘유기질비료’를 제조했다. KT&G 홍보팀 관계자는 “우리는 법적인 기준(퇴비 시설)을 갖춘 비료공장에 연초박을 매각했다. 금강농산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는 않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서류상으로는 연초박으로 퇴비를 만들 수 있는 시설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믿고 판매했고, 그 이후의 처리 과정은 금강농산 몫이라는 뜻이다. 실제 금강농산은 ‘퇴비화 시설’을 신고한 상태였고, 공장 설계도에도 퇴비 생산 라인을 표시해놓았다.
현실에서 퇴비는 생산되지 않았다. 임형택 익산시의원은 “금강농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이후 수차례 공장을 방문했지만 공장 내부에 퇴비 시설이 없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문을 닫기 전까지 8년 동안 공장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공장에서 퇴비를 만든 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2009년 6월 체결된 금강농산과 풍농 간 계약서를 보더라도 금강농산이 퇴비를 제조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임차 항목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임차 명세표에 따르면, 풍농이 유기질비료 생산 시설만 빌리는 동시에 ‘생산 인원 전원’을 빌린다고도 쓰여 있다. 풍농의 유기질비료 공정에 ‘생산 인원 전원’이 투입되면, 금강농산의 퇴비 공정을 운영할 인력은 없다. 앞뒤가 맞지 않는 임대차 계약서는 최소한 해당 기간에 금강농산에서는 퇴비를 생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KT&G는 연초박 위험성 몰랐나
장점마을 환경비상대책 민관협의회 위원 중 한 사람인 김세훈 박사(전북대 환경공학과)는 “어마어마한 담배 소송을 해본 KT&G가 연초박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사실을 정말 몰랐을까. 만약 KT&G가 연초박을 자체적으로 처리하기 어려웠다면 외부 업체에 돈을 주고 안전하게 폐기했어야 했다. 그런데 오히려 처리능력도 확인되지 않은 업체에다 돈을 받고 팔았다”라고 지적했다.
법이 놓친 사각지대를 잡아내는 건 행정의 몫이다. 그러나 익산시는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다. 임형택 의원은 “주민이 민원을 제기했을 때, 현장에 나온 공무원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서류와 현장을 대조하는 것이다. 업체에서 신고한 설비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그중 어디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현장 관리·감독의 기본이다. 결국 공장이 가동되는 17년 동안 시는 기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금강농산이 문을 닫은 후에야 전라북도는 소속 시군에 앞으로 연초박 반입을 전면 금지하라는 공문을 보내고, 이미 들어와 있는 폐기물에 대해서는 전수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또 전라북도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연초박을 재활용할 수 없게 폐기하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은 관련 법 개정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죽어가는 사이 비료 원료를 제공하고, 비료를 생산하고, 생산된 비료를 전국으로 판매하는 단계마다 각 기업들은 이윤을 거뒀다.
시사인 나경희 기자
미 내부고발자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겨울 온다”
트럼프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문제를 제기했던 백신 개발 책임자가 코로나19에 조율된 대응을 하지 못한다면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겨울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산하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ARDA) 국장에서 쫓겨난 릭 브라이트는 현지시간 14일 예정된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 보건소위원회 증언에 앞서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브라이트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치료제 후보로 극찬했던 말라리아 치료제 하이드록시클로로퀸과 클로로퀸의 효능에 의문을 제기했다가 지난달 직무에서 배제된 뒤 국립보건원으로 전보됐습니다.
그는 "우리의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며 "만약 우리가 과학에 기반을 둔 국가적으로 조율된 대응책을 개발하지 못한다면 전염병이 훨씬 더 악화하고 장기화해 전례 없는 질병과 사망자가 발생할 것을 우려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이번 가을에 코로나19가 부활해 계절성 인플루엔자 문제를 가중하고 우리의 건강 관리 시스템에 전례 없는 부담을 주리라는 것"이라며 자신과 다른 전문가가 제시한 조치들을 명확히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브라이트 전 국장은 "이번 발병의 지난 몇 달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했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명백하다. 우리는 조기 경보 신호를 놓쳤다"며 초기 대응 부실을 지적했습니다. / 이호을 기자 (helee@kbs.co.kr)
코로나 시대, 뉴욕·파리·밀라노가 자전거 이용을 권하는 이유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대중교통에도 비동력·비대면 '뉴노멀'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면서 40억 명의 인구가 도시 봉쇄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사람과 물자가 이동하지 못하면서 경제적 위기가 심화되고 항공을 비롯한 교통산업도 큰 타격에 허덕이고 있다. 코로나19는 다양한 분야에서 '뉴노멀'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앞당기고 있는데 교통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승객감소로 인한 운송기관의 경영악화 지속
현재 미국은 코로나19 사망자가 8만 명이 넘으면서 전 세계에서 인명피해가 가장 많다.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는 올해 초와 비교해보면 평균적으로 80% 정도 대중교통 승객이 감소했다. 영국 런던도 작년과 비교하면 튜브(런던 지하철)와 버스 승객이 각각 95%, 85%나 줄었다. 유럽에서 코로나19 피해가 가장 심한 이탈리아는 전국적으로는 3월 초까지 대중교통 이용객이 평균적으로 50%나 감소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 전국버스운송조합 자료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작년 2~3월 대비 동기간에 승객수가 시내농어촌버스는 33.3%가 줄었고, 시외와 고속버스도 각각 55.1%와 55.5% 줄었다고 한다. KTX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1.28~3.12) 이용객이 70% 이상 급감했다.
문제는 이러한 승객감소가 요금수입 손실로 직결되면서 운송기관의 급격한 경영악화를 야기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도시가 봉쇄되더라도 방역 인원의 이동과 병원 등의 필수서비스는 유지되어야 하므로 대중교통을 완전히 멈출 수도 없다. 운영비용은 계속 소요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교통센터(Transit Center)는 미국의 대중교통 운송기관들이 코로나19로 인해서 총 264억~380억 달러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 영국 런던의 교통을 책임지고 있는 런던교통본부도 코로나19로 기존 요금수입의 90%가 감소했지만 운영을 멈출 수 없어서 심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외국만큼은 아니지만 한국도 상황이 심각하다. 코레일에 따르면 올해 1월 28일 감염병 대응 경보 '경계' 발령 이후 3월 12일까지 승객감소로 인한 손실이 1624억 원에 달했다. 전국버스운송조합 자료에 의하면 버스운수업체들도 지난해 2∼3월 대비 요금수입이 총 3600억 원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서울 지하철의 요금수입도 작년 동기간보다(1~2월) 244억 원이나 감소했으며, 3월과 4월은 이보다 더 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렇듯 코로나19는 요금수입 급감과 필수서비스 운영을 위한 고정비 부담 등을 강제하면서 운송기관의 경영악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다소 진정되더라도 이러한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이후의 비대면 확대, 온라인 산업 활성화, 재택근무 확산, 다중이용 시설 기피 등으로 대중교통 이용수요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밀집 이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운행 빈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해야 하고, 방역도 계속해야 하므로 고정비는 늘어날 수 있다. 세계 각 도시정부와 대중교통 운송기관들은 요금수입은 줄어들고 고정 운영비는 오히려 더 늘어나는 이중고에 직면하는 것이다.
자전거와 도보 등의 비동력 교통 확대
코로나19는 의도치 않게 친환경 교통의 확대를 이끌고 있다. 도시가 봉쇄되고 대중교통 이용에 제약이 따르자 자연스럽게 코로나19 피해가 심각한 도시들에서는 자전거와 도보 등의 비동력 교통 이용이 급격하게 늘었다. 중국, 독일, 아일랜드, 영국, 미국을 포함한 많은 도시에서 자전거 교통량이 급증했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이용수요가 급증하자 각 도시들은 도시봉쇄로 이용하지 못하는 도로를 아예 적극적으로 자전거와 도보 등에 재할당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는 지난 11일 파리 광역 지역에 무려 650킬로미터(㎞)의 자전거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탈리아 밀라노도 자동차 도로를 자전거와 보행을 위해 최대 22마일의 공간을 재할당한다고 발표했다. 뉴욕시의회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도로를 개방하는 법안을 도입할 계획에 있다. 벨기에 브뤼셀은 차량의 최대 속도를 시속 20km 제한하면서 보행과 자전거 이용을 편리하게 했다.
ITDP(Institute for Transportation and Development Policy, 국제교통개발정책연구원)라는 기관에서는 아예 코로나19 시대에는 마이크로모빌리티(도시에서 25km/h 미만의 속도로 개인이 소유하거나 공유하고 인력 또는 전기장치로 작동하는 자전거, 스케이드보드, 전기스쿠터 등을 말함)가 크게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코로나19는 자동차와 대중교통의 이용은 줄였지만 역설적으로 친환경 비동력 교통수단 이용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각국은 선제적으로 이러한 친환경 교통수단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 교통의 '뉴노멀'
코로나19는 대중교통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더라도 비대면 확산, 온라인 생활과 재택근무 확산, 대중교통 이용 기피 등으로 이용 수요가 이전만큼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그만큼 수요가 줄어들어도 승객 분산을 위한 비탄력적인 운영과 방역 등으로 오히려 운영비용 부담은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요금의존도가 높은 도시 대중교통 시스템은 어려움이 가중될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한편 코로나19는 대중교통이 도시에서 필수 서비스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켰다는 측면에서는 교통 혁신의 기회도 제공했다. 도시가 봉쇄되더라도 방역과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서 대중교통은 운영되어야 했다. 미국에서는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정도가 재택근무를 하지 못하는 저소득 서비스 직종에 종사한다고 하는데 이들에게는 대중교통이 생명줄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집중될 이들에게 대중교통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이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은 코로나19 시대에 보다 더 저렴하고 편리하고 안전한 공공서비스로 거듭나야 한다. 지속가능한 대중교통이 되기 위한 재정 지원과 운영체계 개선 노력이 중요해진 것이다. 특히 재정지원이 적고 요금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대중교통체계에서는 더욱 시급한 과제이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는 우리가 살기 위해서 친환경 교통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연간 700만 명이나 대기오염 등으로 조기사망을 해도 눈을 감던 세계가 실제로 도시가 영화처럼 봉쇄되고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 나가자 생활 패턴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교통은 인류의 생존을 보장하는 도구로 격상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방역에만 머무르지 말고 친환경 교통이라는 '뉴노멀'로 적극 전환해 가야 한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pressian
“코로나는 기후변화가 낳은 팬데믹…함께 해결 안 하면 같이 무너져”
7인의 석학에게 미래를 묻다]②제러미 리프킨
정부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한국판 뉴딜을 발표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위기의 원인에 대한 성찰은 빠져 있다. 그래서 ‘4차산업 혁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규제 해제를 주장하는 시장의 묵은 요구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것인가?’라는 의심의 눈길을 받는다. 경제위기 속에서 실직 위기에 놓인 하위 기술직의 문제, 2차산업 인프라 위에 올려질 4차산업 뉴딜의 효용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시민단체와 지역사회는 그동안 그린뉴딜을 요구해왔다. 그린뉴딜은 유럽연합(EU)을 비롯해 중국과 캘리포니아, 미국 하원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연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경제전문가 제러미 리프킨과 코로나19 위기의 본질과 그린뉴딜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난 4월20일 미국 워싱턴DC 자택에서 이동제한령을 따르고 있는 그와 전화인터뷰를 했다.
미국 경제전문가 제러미 리프킨은 ‘7인의 석학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묻다…오늘부터의 세계’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위기의 본질과 그린뉴딜에 대해 이야기했다. 2014년 1월6일 미국 워싱턴DC 자신의 사무실에서 ‘문명, 그 길을 묻다’기획 당시 재미저널리스트 안희경씨와 인터뷰하는 리프킨. ⓒ오소영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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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경(이하 안) = 코로나19 위기의 주요 원인을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러미 리프킨(이하 리프킨) = 기후변화입니다.
안 =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자마자 서구 언론에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식용하기 때문에 감염병이 발생했다고 비난했습니다.
리프킨 = 아니에요. 기후변화로 생긴 모든 결과가 이 팬데믹을 만든 겁니다.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 순환 교란으로 인한 생태계 붕괴입니다. 우리는 물로 가득 찬 행성에 살고 있어요.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물 순환이 바뀌고 있습니다. 지구가 1도씩 뜨거워질 때마다 대기는 7%씩 더 많은 강수량을 빨아들입니다. 열은 구름이 지표에서 강수를 더 빨리 취하도록 몰아칩니다. 그래서 통제가 어려운 물난리를 겪는 겁니다. 그 거칠고 극단적인 현상 속에 가뭄과 산불도 일어납니다. 미국은 작년에 캘리포니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이 산불에 휩싸였어요. 호주는 그 두 배였고요.
안 = 한국이 캘리포니아의 3분의 1 크기이니 남한 영토만큼 불에 타버렸고, 호주는 한반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규모입니다.
리프킨 = 생태계가 변화하는 물 순환을 따라잡지 못하고 붕괴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인간이 지구에 남은 마지막 야생의 터를 침범하고 있어서예요. 1900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14% 정도였어요. 지금은 거의 77%입니다. 인간은 야생을 개발해 단일 경작지로 사용하고, 숲을 밀어버리고 소를 키워 소고기를 생산합니다. 이것도 기후변화를 유발합니다. 셋째, 야생 생명들의 이주가 시작됐습니다. 인간들이 재난을 피해 이주하듯 동물뿐 아니라 식물, 바이러스까지 기후재난을 피해 탈출하고 있어요. 서식지가 파괴됐기 때문에 인간 곁으로 왔고, 바이러스는 동물의 몸에 올라타서 이동했죠. 최근 몇 년 동안 에볼라, 사스, 메르스, 지카와 같은 팬데믹이 발생한 이유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미국의 질병통제센터, 세계은행 등에서 오랜 연구를 통해 지구의 공공보건이 위기임을 알고 있어요.
안 = 기후변화로 인해 야생동물이 바이러스의 중간 매개체가 된 것인데, 미개한 민족문화가 바이러스를 끌어들였다는 혐오가 오히려 본질을 호도하고 있군요.
리프킨 = 앞으로 더 많은 전염병이 창궐할 겁니다. 이제는 팬데믹이 올 때마다 1년반 정도 록다운될 것을 예상해야 해요. 초기 단계에서 록다운을 해도 약 6개월 뒤에는 두 번째 파고가 찾아옵니다. 초반에 완전히 봉쇄하지 않으면 두 번째 파고는 훨씬 심각합니다. 그다음에 백신이나 항체가 나오길 기다려야 하죠. 우리는 경제를 새로 조직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사회생활 그리고 통치 방식까지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염병에 세계 경제 멈춘 까닭은
효율성에만 의존한 ‘세계화’ 때문
단기 이익에 의존한 산업혁명 이후
장기 탄력성 잃어 새 길 모색 필요
안 = 사스나 에볼라, 메르스는 세계 경제를 멈추는 단계로 번지지는 않았습니다. 왜 지금은 다를까요.
리프킨 = 이는 세계화에 답이 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우리에게 국가적인 시장과 국가라는 개념을 갖게 했고, 2차 산업혁명은 세계화를 가져왔습니다. 이 인프라는 적시 생산 절감 방식(JIT)으로 재고를 남기지 않습니다. 탄력성보다는 오로지 효율성에만 의존하죠. 지금의 신자유주의 경제는 단기이익만 추구합니다. 주식시장에서 분기별 보고서로 이익 현황을 보여줘야 하죠. 이익을 못 내면 주주의 주식이 평가절하되니 CEO에게 문제가 생깁니다. 분기마다 수익을 내려면 장기투자, 장기계획, 중복장치를 구비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지금처럼 팬데믹이 오면 전체가 타격받고 세계화된 인프라가 붕괴합니다. 전염병이 발생하는 순간 전 세계 인프라가 무너졌습니다. 마스크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인공호흡기는 어디에 있었나요? 우리의 음식을 실은 배는요?
안 = 작년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무역마찰을 일으킬 때 의료용품까지 관세를 매기는 바람에 미국의 의료 물량이 어이없을 정도로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리프킨 = 그래서 우리는 전염병으로부터 몇 가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의 망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 우리가 한 가족이라는 것,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안 = 함께하지 않으면 다 같이 무너진다는 의미는 무엇이죠.
리프킨 = 1차와 2차 산업혁명은 3억1500만년 전에 살았던 식물과 동물을 채굴하며 자리 잡았습니다. 바로 화석연료 문명입니다. 이 문명은 비료, 살충제, 건축자재, 식품첨가물, 합성섬유, 포장재, 전력, 운송, 열, 빛 모두를 화석연료에 의존합니다. 지구온난화와 지금 벌어지는 대규모 전염병, 생태계 파괴를 초래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구가 여섯 번째 멸종에 들어섰다고 본다고 유엔에서 발표했습니다. 인간이 출현하기 전 4억5000만년 동안 다섯 번의 멸종이 있었습니다. 때마다 빠르게 대규모로 진행됐어요. 새 생명들이 생기기까지 1000만년이 걸렸고요. 인간은 머지않아 멸종할 것이고, 10년 안에 지구의 생명종 반이 사라진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프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종류와 통치 모델을 상당히 많이 결정합니다. 1차와 2차 산업혁명 인프라를 보면 중앙집중식과 하향식에다 지식재산권 보호로 설계됐어요. 화석연료 문명은 채굴하고 추출하여 정제해서 제품으로 생산하는 역사상 가장 비싼 에너지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전체를 관리할 투자자본을 가진 수직적으로 통합된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35억명의 노동자들 중 550만명만을 고용하고도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500대 글로벌 기업들이 나오게 됐죠. 그 결과로 우리는 불평등과 마주합니다. 산업화 때문에 인류의 반이 잘살게 되는 동안 나머지 반은 5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버텨갑니다. 우리들이 창조해놓은 이 인프라 때문에 우리 모두와 미래세대까지 고통받아요.
안 = 그런 점에서 최근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들의 외침이 주목을 받고 있기도 합니다.
리프킨 = 그들은 1년반 전에 미래를 위한 대규모 행동을 했습니다. 140여개 나라에서 수백만의 밀레니얼과 Z세대들이 기후비상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린뉴딜을 요구했어요. 이들은 스스로를 하나의 종으로 봅니다. 인간과 동물, 식물이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대기권까지 뻗어 있는 생물권 전체를 멸종위기에 놓인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해요. 생물권 안에서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이 모든 생명체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살아남아야 하니까요. 지금 우리는 팬데믹으로 개인과 가족, 지역 공동체의 안녕이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 함께하는 길에 달려 있음을 배웁니다. 지난 산업혁명과 세계화가 단기이익에 의존하여 장기적 탄력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배워요. 이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이 우리를 3차 산업혁명으로 이끌고 있습니다.(리프킨은 최근의 급격한 자동화 등도 ‘4차 산업혁명’이 아닌 ‘3차 산업혁명’의 폭발적 진행으로 본다.)
글로컬 위한 인프라 ‘3차 산업혁명’
모두 참여하는 재생에너지·인터넷
공공재로서 지역사회가 규제해야
안 = 3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요.
리프킨 = 3차 산업혁명은 글로컬(Glocal)을 위한 인프라예요. 세계화가 아닙니다. 글로컬화(지역중심 세계화), 생물지역(bio-regional) 거버넌스(인간만이 아니라 지역 생태계 전체를 책임지는 통치)입니다. 3차 산업혁명 인프라는 분산되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고 수천만명에게 확장되는 인프라입니다. 여기서는 500개 기업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주역으로 활동합니다.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인터넷입니다. 45억 인구가 참여하고 있죠. 그중 많은 곳이 디지털화된 재생에너지 인터넷으로 통합되고 있어요. 수백만명이 협동조합을 이뤄 태양과 바람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자신들이 사용하지 않는 여분의 에너지를 디지털화된 에너지 인터넷으로 대륙을 가로질러 다른 이들에게 보냅니다. 인터넷으로 같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 뉴스와 지식, 엔터테인먼트를 공유하듯 바람과 태양을 함께 누리는 겁니다. 여기에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으로 움직이는 디지털 이동 물류 인터넷이 통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차량은 자율적이 되고 있고요.
안 =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세 가지 결정적 기술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과 에너지 원천, 물류 이동성이 나타나야 하는데, 3차 산업혁명에서 커뮤니케이션 혁명은 인터넷이고, 에너지 혁명은 재생에너지, 이동 혁명은 전기 및 연료전지 차량이라는 거죠? 이 모두는 인터넷으로 다시 연결되고요.
리프킨 = 네, 그 모두를 아우르는 장치가 바로 사물인터넷(IoT)입니다. 건물마다 센서가 장착되는데, 공장, 창고, 집, 스마트 차량에도 장착돼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앞으로 10년 안에 글로벌 사회는 센서를 장착한 사물인터넷과 연결될 겁니다. 3차 산업혁명은 세계를 수십억, 수조개의 센서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럽과 중국에서 이와 관련한 건설을 도왔어요. 20년 동안 유럽 계획의 핵심 설계자와 이를 배치했고, 중국의 3차 산업혁명 지도부와 함께 차이나 인터넷 플러스를 배치했습니다. 이 모두는 허구가 아닙니다. 한국으로도 확장할 필요가 있어요.
안 = 사물인터넷으로 취합할 정보는 엄청난데요. 지금도 정보가 기업 이윤을 만들고 있습니다. 고객이 쓰는 카드 정보만으로도 시장점유율을 높일 수 있고요. 정부가 정보를 안전하게 관리한다고 마냥 믿기도 어렵습니다.
리프킨 = 어떻게 정부가 사물인터넷을 지배하지 않고 사람들을 감시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요?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데이터 보안을 어떻게 보장할까요? 다크넷도 존재합니다. 규제를 통해 해결하는 겁니다. 인프라는 공공재입니다. 지역사회가 규제하고 통제해야 합니다. 기업도, 중앙정부도 아닙니다.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 속에서 우리는 규제 해제와 민영화를 강요받았어요. 레이건부터 오바마까지 줄곧 시도했습니다. 기업들은 정부가 너무 관료적이라고 말합니다. 경쟁이 없으면 게을러져 혁신을 못 하니 민영화해야 한다고요. 저는 반드시 이 말을 해야겠어요. 45년 동안 경제 분야에서 일해왔는데 정부가 철도를 정시에 운행하지 못하거나 우편 서비스를 제시간에 관리하지 못한 적은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제시간에 송출할 수 없거나 상하수도 시스템을 관리할 수 없던 적이 없어요. 단지 자본가들이 시장에서 돈 벌 기회가 부족한 걸 깨닫고 정부 인프라를 수익성 좋은 다음 단계 목표로 설정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세계 도처에서 민영화된 교량, 상하수도, 전기 등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공공인프라가 민영화될 때, 인프라 자산은 뜯겨져 나갔습니다. 민영 교도소는 어떻게 하면 개선을 덜 할까 골몰합니다. 개인이 수도시설을 운영해도 그래요. 도로 시스템을 운영해도 그들은 보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익 손실을 의미하니까요. 인프라는 반드시 지역 의회, 지역 시민사회,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공공재로 통제되고 공공의 뜻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안 = 당신이 강조하는 지역 공동체의 자치는 어떤 형식인가요. 이미 지방정부가 존재합니다.
리프킨 = 우리는 앞으로 더욱 우리의 일상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지역적이어야 합니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문제가 닥쳤기 때문입니다. 그로 인한 전염병과 홍수, 가뭄, 산불, 태풍 같은 기후재난이 올 때,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혼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체 공동체가 협력하는 더 수평적으로 분산된 새로운 통치가 요구됩니다. 저는 피어어셈블리(peer assembly·참여자가 동일한 자격을 갖는 동배(同輩)의회)를 꼽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서 그 지역에 있는 모든 사회 기관과 단체들이 정부와 손잡고 모이는 피어어셈블리가 표준화되어가고 있어요. 특히 유럽 그린뉴딜의 중심에 있습니다. 피어민주주의, 우리 모두의 의회입니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처럼 모든 성인이 일정 기간 잠깐씩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정부가 관리하지만 정부의 확장이므로 전체 커뮤니티가 자신들의 미래에 관여할 수 있습니다.
안 = 한국도 기후변화에 대응할 방안으로 그린뉴딜이 지역에서부터 화두로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국가 정책으로는 논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 상황은 어떻게 파악하고 있습니까.
제러미 리프킨은 코로나19 위기의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지목하면서 인류의 ‘탈화석연료 문명’과 ‘그린뉴딜’을 강하게 제안했다. 지난해 11월28일 중국 중부 산시성 허진의 한 석탄 가공공장에서 연기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풍력발전기와 바이오매스 공장, 태양광 발전 등으로 100% 에너지 자립을 하는 독일 브란덴부르크주 트로이엔브리첸시에 있는 펠트하임 마을 전경. 지난달 24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 도중 연방의회 건물 앞에 기후위기에 항의하는 수천개의 플래카드가 놓여 있다(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AP연합뉴스·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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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연금기금 재투자 통한 그린뉴딜로 ‘탈화석연료’ 동참해야”
한국, 2차 산업혁명 성공했지만
전력의 68%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재생에너지 차지 비율은 7.6%뿐
리프킨 = 한국은 2차 산업혁명의 성공 사례로 떠올랐지만 바로 그 부분에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쓰는 전력의 68%는 화석연료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 42%의 전력이 석탄과 천연가스로 돌아갑니다.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7.6%뿐입니다. 산업화 국가 중에서 매우 낮은 비율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98%의 화석연료를 수입합니다. 한국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두 개의 OECD 국가 중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예요. 에너지산업 싱크탱크인 카본트래커(Carbon Tracker Initiative)의 2019년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의 화석연료 자산은 좌초 상태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다섯 번째로 큰 원자력발전 국가입니다. 다행히 한국의 주요 선도 산업들은 제로탄소배출, 그린뉴딜, 3차 산업혁명으로 전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전자제품, 가전제품, 전자통신제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죠. 여기에 한국은 최고의 이동성 물류를 갖고 있고, 세계적 수준의 건설회사들이 인프라 부문, 부동산 분야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들은 모든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를 방해하는 것은 전력뿐입니다. 바로 한국전력공사입니다. 구시대적인 생각과 이를 고수하는 이들이 기후변화로 데려가고 있어요. 화석연료를 유지하려 하기에 한국이 기후변화와 이로 인한 팬데믹 전염병에 책임을 가지려는 전환을 훼방 놓고 있습니다. 이제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째, 한국전력공사가 재생에너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한국 전역에 고전압직류(HVDC) 에너지 인터넷 규모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를 발표한 두 번째 나라입니다. 독일이 먼저 했는데,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 재생에너지 전력을 인터넷과 결합시켜 독일 전역에서 사용하도록 이끕니다. 둘째,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린채권의 원천이 될 겁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역설적인데요. 작년에 세계 녹색채권 투자의 60%가 한국에서 나왔어요.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집 안팎에서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석탄화력발전소를 유지하는 데 반해 한국의 은행들은 세계 그린채권에 투자하는 가장 큰 단일 투자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사들의 연금기금과 공무원 연금기금이 세계에서 가장 큰 투자자입니다. 그들은 석탄 투자를 금지했어요. 매우 반가운 소식이죠. 한국은 하이브리드전력 모델 도시계획이라고 해서 태양과 바람으로 생산한 전력을 수소연료를 통해 가정과 사무실에 공급하기로 발표했습니다. 수소경제로의 전환에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진행 속도는 매우 느려요.
안 = 문제는 재생에너지만으로 현재의 한국 내 전력 소비를 감당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리프킨 = 스탠퍼드대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모든 나라의 재생에너지 잠재력을 연구했습니다. 한국은 내일 아침 한국 전역에서 사용할 에너지의 85%를 햇빛으로 충당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람으로 14%를 생산하고, 나머지 1%는 바이오매스로 메울 수 있어요. 게다가 바람과 태양은 공짜입니다. 2018년 10월 한국 대통령이 전환을 선언했어요. 새천년 재생에너지 역사를 선포하며 해상풍력단지, 태양광단지를 세워 재생에너지를 생산한다고 했고, 실제로 생산합니다. 목표를 설정했죠. 그러나 신속하게 움직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한국이 코로나19 위기에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대처했듯 새천년 재생에너지 역사를 빠르게 구비해가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안 = ILO는 이 위기 속에서 30% 넘는 노동자들이 실직할 것을 예상합니다. 당장 닥친 실업 위기 때문에라도 시장을 먼저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국에 필요한 건 정치적 의지
그린은행 마련·그린공채 발행하면
그린뉴딜 인프라 구축 어렵지 않아
리프킨 = 글로벌 시장은 무너졌습니다. 우리가 알던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2차 산업혁명은 끝났어요. 재작년에 태양광과 바람으로 생산하는 균등화 발전 원가가 천연가스보다 크게 떨어졌습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천연가스 산업이 작년에 파산했어요. 지금 우리는 역사상 가장 큰 거품인 화석연료 좌초자산 위에 앉아 있습니다. 시티뱅크그룹이 계산하길 이 좌초자산이 적어도 40조달러라고 합니다. 다른 연구에 따르면 60조달러라고도 하고요. 석유화학공장을 비롯하여 모든 복잡한 화석연료 관련 산업은 버려질 겁니다. 좌초자산으로 인해 한국이 무너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모든 새로운 일자리는 3차 산업혁명 과정 속에 있습니다. 정보통신기술, 가전, 전력, 물류, 운송, 선진 제조업, 관광, 농업 모두가 포함됩니다. 모든 산업이 국가 인프라 구축에 관여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됩니다. 로봇은 분산된 국가전력망을 만드는 지하 케이블을 설치하지 못합니다. 로봇은 풍력 터빈과 태양광 패널을 조립하지 못합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은 기후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도록 건물을 개조하지 못합니다. 빌딩 인프라에 사물인터넷과 센서도 설치하지 못해요. 이 모든 것은 바로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변화입니다.
안 = 미래 산업 주도권을 놓고 미국과 중국 등이 각축전을 벌이는데요. 차세대 산업 지형에 변동이 있을까요.
리프킨 = 두 거대 집단이 이를 이끌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럽연합은 스마트 유럽, 디지털 그린뉴딜이라고 부르는 국가계획을 했고, 중국은 차이나 인터넷 플러스라고 부르는 국가계획을 했습니다. 유럽은 그린뉴딜이라고 통칭하고 중국은 생태문명이라고 합니다. 둘은 거의 같은 계획이에요. 지금 유럽연합과 중국이 이 분야를 주도합니다. 둘은 함께하기 시작했어요. 비록 그들이 무역이나 다른 부분에서 갈등이 있을지라도 유럽이 중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중국은 유럽의 두 번째 큰 무역 파트너인데, 곧 첫 번째가 될 거예요. 곧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상하이에서 노트르담까지 거대한 땅덩어리를 공유합니다. 유라시아라고 하죠. 하나의 대륙입니다. 단기적인 문제와 상관없이 이들은 매우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유럽연합과 중국이라는 두 슈퍼 파워를 맞이했고, 중국과 유럽연합은 장기적으로 함께 움직입니다.
안 = 지금 우리는 금융자본주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자본이 곧 열쇠입니다. 세계가 새로운 인프라로 바뀌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드는데 재원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을까요.
리프킨 = 우리에게 돈은 충분합니다. 돈 있어요! 저는 한국이 이 말을 들었으면 좋겠는데요. 한국의 국민연금기금이 왜 석탄과 결별했을까요? 칼 마르크스도 연금기금에 대해서는 결코 이해 할 수 없을 거예요(웃음). 연금기금의 자본가들은 다름 아닌 전 세계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입니다. 우리 노동자들은 세계적으로 41조달러의 연금기금을 보유하고 있어요. 세계에서 가장 큰 자본 덩어리인 41조달러입니다. 바로 지금 일하고 있는 수억의 공무원들과 기업 노동자들의 돈입니다.
안 = 한국의 교직원 연금과 공무원 연금만으로도 모두 220억달러에 달하는 자산입니다.
‘좌초자산’ 화석연료 위의 우리는
기후 비상 대비한 새 로드맵 짜야
리프킨 = 모든 나라에서 추진할 그린뉴딜의 핵심은 연금기금입니다. 저는 이를 재투자하길 바랍니다. 한국이 한국 노동자들 기금의 투자처가 되어야 합니다. 당신네 은행들도 세계 그린채권에 투자하고 있어요. 한국 정부는 이 자금이 국내로 오도록 그린은행을 마련하고 그린공채를 발행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린뉴딜 인프라를 만드는 데 막대한 정부 자금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전 세계 화석연료에 있는 한국 노동자들의 자금이 휴지가 되기 전에 어서 나오세요. 노동자들은 새로운 인프라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인프라에 투자된 자신들의 자금에서 나오는 수익을 자녀와 함께 누리도록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 자금은 그냥 돈이 아닙니다. 정치적인 의지입니다. 새로운 로드맵 작성을 거부하는 것은 정부입니다.
안 = 코로나19 위기는 오늘 우리의 문명이 갖는 취약점을 드러냈습니다.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리프킨 = 세계의 청소년들이 시청을 찾아가고 정부를 찾아가 말했습니다. “기후비상이다. 우리는 멸종을 마주하고 있다.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자 정부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우리도 여러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글로벌 기후비상이에요. 우리가 멸종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합니다. 정부가 마주하는 주요 쟁점 중 하나이니까요.” 주요 쟁점 중 하나라는 말을 듣자마자 청소년과 청년들은 외칩니다. “멸종과 균형을 맞출 다른 쟁점들은 무엇인가? 무엇이 중요한데? 그 어떤 의제도 기후변화를 넘어 최우선을 차지할 수 없다.” 한국 청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구세대 정치를 쓸어내야 합니다. 그들은 이 일을 하지 않을 거예요. 오래된 정당들은 동기부여를 받지도 못하고, 나태합니다. 우리는 젊은 세대로 정치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시의회를 차지하세요. 교육위를 맡고 지역사업을 책임지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이 일을 해낸 예가 있어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28세에 미국 하원의원이 됐습니다. 핀란드 총리 산나 마린도 34세 여성입니다. 우리에겐 이런 인물이 수백만명 필요합니다.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1945년생)은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경영대학원 교수이다. 비영리 조직인 ‘경제동향연구재단(Economic Trends)’을 설립하여 새로운 기술에 의한 경제, 환경,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공공의 이익 수호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 문명이 맞닥뜨린 지구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방정부 혹은 국가적인 산업구조 재편을 이끄는 작업이다. 리프킨은 지난 15년간 유럽연합의 자문으로 활동해왔으며 중국의 생태문명 자문과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등의 공식 자문 역할을 했다. 영향력 있는 미래학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러피언 드림> <노동의 종말> <한계비용 제로 사회> <글로벌 그린뉴딜> 등 저서가 있다.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경향사설]그린뉴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그린뉴딜’ 사업을 통한 일자리 창출 방안을 마련하라고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 4개 부처에 지시했다. 그린뉴딜은 기후변화 대응·에너지 전환 등에 대한 투자로 경기부양과 고용촉진을 달성하는 정책이다. 그린뉴딜을 ‘포스트 코로나’의 주요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7일 내놓은 한국형 뉴딜이 디지털 인프라 구축과 비대면산업 육성, 생활SOC 디지털화 등에 머물러 환경적 비전이 결여됐던 점에 비추면 긍정적인 방향전환이다. 다만 문 대통령 발언을 보면 그린뉴딜의 개념이 모호하고, 의지도 강해 보이지 않는다. 그린뉴딜을 교통·건축 분야 등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편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그린뉴딜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 과제이다. 온 세계가 합심해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재앙이 인류를 덮칠 것이다. 유럽과 미국 등은 이미 그린뉴딜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GDP의 1.5%에 해당하는 330조원을 기후위기 대응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지난해 하원에서 그린뉴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한국은 ‘기후악당’ 국가로 꼽힐 정도로 기후대응에 미온적이었다. 유럽의 기후분석 전문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는 지난 13일 보고서에서 한국은 지금보다 온실가스 감축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탄소배출을 줄이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린뉴딜로 경제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은 시대적 책무다. 이 분야에 투자를 집중해 에너지 전환과 자원순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늦어질수록 그에 따른 비용이 늘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연설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더욱 ‘기후악당’ 국가의 오명을 씻고 ‘탈탄소 사회’를 만드는 데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그에 부합한다.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 추진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현재의 정책기조로 미뤄볼 때 추진의지를 미심쩍어하는 시각이 많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14일 한국의 경제·산업 부처에서 그린뉴딜에 역행하는 정책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그린뉴딜’ 추진의지를 밝힌 이상 개념을 분명히 하고 그에 따른 설계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4개 부처의 합동 서면보고를 받는 데서 그칠 게 아니다. 범정부 추진기구를 구성하고 민간도 참여시켜 제대로 된 그린뉴딜을 해야 한다.
文대통령 '그린뉴딜' 두고 환경단체들 입장 갈라져
기후위기비상행동 "핵심 없다"...환경운동연합은 "환영"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 뉴딜 주문을 두고 국내 대표적 환경운동단체인 환경운동연합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연합 시민사회단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정반대의 평가를 내렸다.
14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논평을 내 "대통령이 요청한 그린뉴딜이 무엇을 위한 어떤 '그린뉴딜'인지 짐작하기 어렵고, 오히려 우려된다"며 "(문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해결을 이야기하면서도, 그보다 더 심각한 '기후위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진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뜻이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문 대통령이 그린뉴딜을 언급한 지난 10일의 취임3주년 특별 연설이 "한국 'K-방역'의 우수성을 자랑하고 한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기회였을 뿐"이었다며 "왜 코로나19과 같은 인수공통감염증이 이렇게 자주 나타나 전 세계를 더욱 크게 강타하는지를 성찰하는 기회"는 아니었다고 혹평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현 정부가 제안한 그린뉴딜은 '그린'이 빠진 '한국판 뉴딜'이라고 평가절하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그린뉴딜을 주문한 대통령이나 이를 옹호하는 국무위원들도 기후위기와 배출제로의 시급성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국제사회의 요청에 더 큰 설득력을 느끼고 있다"며 "청와대와 국무위원들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무심하다"고 질타했다. 이어 문 대통령이 주문한 그린뉴딜에는 "사회적 불평등의 해결이라는 그린뉴딜의 또 하나의 목표가 아예 빠져 있다"고도 지적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정부의 이 같은 인식이 "코로나19 위기 여파로 타격을 입은 항공산업 등 기간산업 기업들에 대한 40조 원의 대규모 지원은 신속히 하는 반면, 그 지원에 따른 기업의 고용 유지와 이익 공유 조건을 후퇴시키고 있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고도 평가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코로나19 위기와 기후위기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두 위기 모두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경제성장 중심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의 심각성을 드러낸다"며 진정한 그린뉴딜은 "경제성장 중심주의를 넘어서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며 국민 삶에 필수적인 안전한 식량을 확보하는 등 다양한 사회 정책 등과 함께 연결된 정책 패키지"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날 환경운동연합은 " 문재인 대통령의 그린뉴딜 정책 추진을 환영"한다고 선언했다. 이어 "보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생태민주적 전환을 이루어나갈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기후위기 대응 활동 전면에 있는 두 단체의 논평 주제가 전혀 달랐다.
다만 환경운동연합 역시 문 대통령의 그린뉴딜 주문이 가진 한계는 명확하다고 부연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대통령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린뉴딜이 넘어야할 벽은 너무나 높다"며 "특히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참모들이 여전히 기후위기의 심각성이나 대책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낮은 인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통령 공약에 포함된 에너지전환이나 자연자원총량제, 4대강 복원 등은 큰 틀에서 그린뉴딜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들 공약의 집행이 왜 이렇듯 지지부진"하냐고도 질타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취임 3주년 특별 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은 그린 뉴딜이어야 한다며 국정 후반기 정책 구상의 핵심으로 그린 뉴딜을 거론했다. 아울러 전국민고용보험제 도입, 국민 취업지원제도 등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예산 황새는 왜 제 새끼를 먹었나
장기 생존 위한 ‘선택’, 가장 약하고 늦된 새끼 도태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 둥지를 튼 A10 황새와 B10 황새 사이에 6마리의 황새가 부화했으나, 맨 마지막에 깨어난 어린 새끼를 어미가 제거하고 있다. 김용재 제공.
야생동물을 즐겨 관찰하는 자연 애호가도 자연의 논리가 냉혹하게 관철되는 모습 앞에서는 흠칫 놀라게 된다. 지난달 11일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에서 자연 번식하던 황새 둥지에서 벌어진 일이 그랬다.
“망원렌즈로 촬영해 어미 황새가 먹이로 준 병아리를 먹는 줄 알았다. 나중에 돌아와 컴퓨터로 보니 새끼를 삼키고 있어 깜짝 놀랐다”고 이 모습을 촬영한 김용재 서울시 녹색서울시민위원회 간사는 14일 말했다. 둥지에는 올해 부화한 새끼 황새 6마리가 있었다. 먹힌 황새는 이 가운데 가장 작은 새끼였다. 촬영한 영상을 보면, 수컷 황새는 다른 새끼보다 훨씬 작은 새끼를 입에 물고 마치 다른 먹이를 다루듯 몇 차례 다듬어 꿀꺽 삼켰다.
새끼들은 이 모습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았다. 죽은 새끼를 막 삼키려는 순간 암컷 황새가 둥지로 돌아왔다. 수컷은 몸을 돌려 먹기를 마무리했고, 암컷은 이 모습과 둥지를 둘러보았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황새 부부는 왜 힘들게 키운 새끼를 먹었을까
먼저, 수컷이 삼킨 새끼가 살아있었는지 아니면 애초 죽은 상태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새끼를 먹는 사진을 본 김수경 황새생태연구원 박사는 “새끼의 얼굴빛이 회색으로 변해 있어 죽은 지 하루 정도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생에서 황새가 살아있는 새끼를 잡아먹는 사례도 종종 보고된다.
분명한 건 이 둥지의 새끼 6마리는 보통 4마리인 둥지보다 수가 많으며, 죽은 새끼가 다른 새끼보다 몸 크기가 절반 정도일 정도로 발육이 늦은 상태였다.
수컷(왼쪽)이 새끼를 삼키는 모습을 나중에 돌아온 암컷이 지켜보고 있다. 김용재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김 박사는 “사육장 안에서도 마지막에 깨어난 작은 새끼를 먹거나 던져버리는 일이 벌어진다”며 “늦게 낳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는 나이 차가 5일만 돼도 먹이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기 쉽다”고 말했다. 황새는 보통 1∼4일 간격으로 알을 낳는데, 알을 많이 낳을 경우 늦둥이는 처음 깨어난 새끼보다 훨씬 발육이 늦어진다.
처음 번식에 나선 어미 황새가 새끼를 먹이로 먹던 야생오리 새끼로 착각해 먹는 이상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새끼를 먹은 수컷 A10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번식에 나선 개체이다.
황새의 새끼 포식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이번 예산 사례와 매우 비슷한 조사결과가 있다. 토르토사 스페인 코르도바대 조류학자 등은 1992년 스페인 남부에서 3년 동안 황새 둥지 63곳을 조사한 결과 9곳에서 어미가 새끼를 잡아먹는 일을 목격했다. 새끼 수가 많은 둥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희생된 새끼는 대부분 가장 작고 발육이 느린 개체였다. 새끼를 먹은 황새 9마리 가운데 8마리가 수컷이었다.
피오토르 지에린스키 폴란드 과학아카데미 조류학자는 황새의 자식 살해를 분석한 2002년 ‘악타 오르니솔로지카’ 논문에서 “황새는 산란과 부화 기간이 보통 32일간으로 길고, 이후 2달 동안 새끼들의 높은 먹이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며 “먹이가 충분할 때에만 마지막에 깨어나는 약한 새끼까지 생존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알을 버리거나 새끼를 포식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어미가 먹이를 하나씩 물어오는 새의 경우 새끼들끼리 경쟁을 벌여 도태하는 개체가 나오지만, 황새는 어미가 다량의 먹이를 둥지에 토해 주기 때문에 새끼 사이의 경쟁 강도는 비교적 약하다”며 “장기적 생존을 위해 형제끼리 죽이지 않고 대신 어미가 그 일을 한다”고 밝혔다.
자식 살해가 벌어지는 동물은 포유류부터 곤충까지 다양하며, 특히 어류에서 흔하다. 김 박사는 “대부분의 황새는 막내까지 더우면 날개로 그늘을 드리워주고 석 달 동안 사냥법을 일일이 가르쳐 주는 등 새끼를 극진하게 기른다”고 말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온실가스 의도적 감축 첫해…업체들 배출량 2% 줄었다
환경부 “지난해 1209만t 감소”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적용 대상 업체들의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제도 시행 이후 처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배출의 약 70%를 차지하는 이들의 배출량 감소폭이 2%나 돼, 국가 배출량도 상당폭 감소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환경부가 14일 발표한 배출권거래제 대상 611개 업체의 배출량 명세서 분석 결과를 보면, 이들의 지난해 배출량은 5억8941만t으로 전년도 6억150만t보다 1209만t(2%) 줄었다. 배출권거래제 적용 대상 배출량이 감소한 것은 2015년 제도 시행 이후 처음이다. 배출권거래제란 기업이 정부로부터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할당받아 그 범위 내에서만 배출할 수 있게 한 제도다. 할당량이 부족하거나 남는 경우 배출권 거래도 가능하다.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발전소 가동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리면서 발전에너지 업종의 배출량이 전년보다 2169만t(8.6%)이나 줄어든 것이 감소의 주요인으로 분석됐다. 철강, 정유 등의 업종 배출량 증가를 상쇄해 전체 배출량까지 끌어내린 것이다.
한국의 온실가스 국가 배출량은 공식 집계를 시작한 1990년 이후 1998년과 2014년에 한해 전보다 줄었다. 하지만 1998년은 외환위기 사태의 여파였고 2014년은 감소폭이 0.8%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2019년은 의도적인 감축 노력을 통해 의미 있는 감축을 이룬 첫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Lisa Ekdahl-Nature Boy (1998)
Heaven, Earth & Beyond (Alb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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