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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오염시킨 환경적폐, 이렇게 해결하자 513 미디어오늘
[2017 새 민주공화국 제안] 7. 생태안전사회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성장주의의 정책기조에서 환경 규제를 대폭 이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진행했고 그 결과 환경보호로부터 계속 멀어져 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은 2008년 발효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일반 법률로 격하시키고, 그 대신에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으로 노골적인 시장주의와 친재벌, 반민중 지향을 강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관료와 전문가 위주 정책에 의한 거듭된 제도의 실패는 예상된 것이었다. 4대강 토목사업과 녹색성장 정책이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과 녹색성장의 부조화를 야기하면서 만들어낸 엄청난 예산낭비와 4대강 오염 등의 환경훼손을 보라.
낡은 성장모델을 넘어 녹색 기술 혁신으로
이에 대한 반향으로 국내적으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쾌적한 환경권과 행복추구권의 향유를 제약하고 있는 낡은 성장모델의 한계와 적폐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환경개혁과 새로운 공존모델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다. 국제적으도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에 따른 지구온난화 유발기체의 발생 저감과 기후변화 적응을 위한 새로운 환경체제가 구성되고 있다. 2015년에는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 2020년 이후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파리협정이 195개 협약 당사국의 합의로 채택된 바 있다. 따라서 2020년 이후에는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도 국가별 기여방안을 스스로 결정하되, 전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ing)을 실시하게 된다.
한국은 10년 이내에 세계 5대 환경기술 보유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투자와 기술축적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맑은 물과 공기, 안전한 먹거리와 주거의 안정적 확보와 조달, 공급을 위한 공공 환경기술의 혁신과 연구개발, 사업화를 위한 획기적이고 과감한 투입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품질경쟁력을 갖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기술의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유기성 폐기물의 에너지화 사업, 2050년까지의 저배출발전전략(LEDS) 수립과 시행, 실현을 위한 녹색기술혁신을 달성해야 한다.
국가 환경 체제 재정립과 다자 협력 체제 구축
이를 위해 첫째, 온실가스 배출 저감 등 기후변화협약에 전담 대응하고 에너지 확보문제, 원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기후관련, 에너지관련, 환경관련 부서를 통합한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신설해야만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성장일변도의 환경파괴국가에서 생태민주주의 국가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환경기술 혁신의 활성화와 가속화, 산업화, 세계화를 통해 높은 에너지 소비와 높은 이산화탄소 배출을 특징으로 하는 중후장대형 중화학공업(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강력한 기술혁신 드라이브를 시행해야 할 것이다. 정부 출범 초기에 에너지 세제와 전기요금체계에 대한 전면적 검토와 근본적 변화를 위한 민관협치를 구축해 에너지 가격을 현실화하고, 성장과 개발지상주의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과 생태를 최우선시하는 명실상부한 온생명 평등과 공공성의 원리에 입각한 생태민주주의로의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
둘째, 국가의 정책기조를 “지속가능한 발전” 개념의 재정립과 법체계의 복원,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의 강화를 통해 새로운 생태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규제프리존 지정・운영에 관한 특별법(가칭)’은 사회적 안전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으로 즉각 입법이 중단되어야 하며, 그 대신에 환경규제 강화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 현행 ‘녹색성장기본법’을 폐지하고,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은 기본법 지위를 회복해 행정 전반에 지속가능성 평가지표를 적용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토록 개정한다. 지속가능한 발전국가로서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위원회(NCSD)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부활시키고 협치를 구축한다. 또한 3차 지속가능발전 이행계획(2016~2020)은 부처 간 협의와 조정을 통해 재작성한다. 입법부와 행정부 등의 각 부처의 공통 및 분야별 접근, 국회 차원의 국가지속가능발전정책 평가체제를 구축・적용하고, 그 결과를 환류토록 한다. 국제연합(UN) 차원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병합 추진해 국제 수준의 환경개혁체제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모든 국정과정에 사전예방의 원칙, 정보공개의 원칙, 국민 참여의 원칙을 전면 적용토록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동아시아 역내 남북한 및 중국・미국・일본・러시아 6개국 환경협력체계를 구축해 대기오염 대책을 공동 수립하고 시행한다. 중국 대륙 동해안의 공업단지 벨트에서 배출되고 있는 대기오염물질의 비산과 확산에 따른 유입경로를 중국 정부와 공동으로 조사, 그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동아시아 역내 국가 간 지역내 다양한 환경문제에 대한 공조활동과 균형자, 조정자, 새로운 생태민주주의의 설계자로서 다양한 국가 간 공동협력 사업을 구상, 집행하는 데 일정한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 훼손 중단과 위험관리 체계 정비
넷째, 석탄발전소 증설 정책을 폐기하고 그 부족분을 모두 재생가능에너지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에너지정책 전환은 생태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 2017년 말 4조33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의 여유자금 등을 활용해 발전차액지원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
다섯째, 가습기 살균제 및 화학물질 관련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화학안전 및 위험조사위원회를 설치, 라돈 통합노출 평가를 실시하고, 환경오염 피해자 구제를 활성화하며, 환경보건과 환경복지의 협치를 구축하도록 한다.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 ‘화학물질관리법’, ‘살생물제법’, ‘실내공기질관리법’, ‘환경보건법’, ‘환경오염피해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 등의 화학물질 및 위험물관련 법제를 개정해 실수요자의 관점에서 예방 및 수습의 위험관리체계를 재정비한다. 이 때 단기적・기술적 보완을 위한 조직개편보다는 장기적이고 범정부 차원에서 화학물질의 위험관리가 우선시 되어야만 한다. 가습기 살균제, 구미 불산 사고, 삼성 백혈병 사태 등은 피상적인 원인 분석과 대책 마련에 머물러 온 문제점을 기저에 공유하고 있다. 또한 위험 요인들에 대한 성역 없는 정보공개를 즉각 실시하고, 독성평가가 없는 화학물질의 사용과 유통을 전면금지해야만 할 것이다.
여섯째, 케이블카 사업 및 평창 올림픽 개최에 따른 환경훼손 금지 등 난개발을 원천봉쇄하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도록 한다. 국토교통부, 농림부, 해양수산부 등 자연자원관리 부처를 난개발을 원천 차단하고 온전한 국토보전과 경관보호, 국민휴양공간으로서 녹색생태공간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재편성한다. 이미 허가했거나 공사 진행 중인 난개발에 대해서는 환경영향평가 등 엄격한 법규 적용을 통해 원상회복 조치에 준하는 제재를 가해야 한다.
재(在)자연화와 환경 복원을 위한 제도 마련
일곱째, 해마다 녹조발생을 반복하는 4대강 사업의 결과문제에 대한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처벌과 재자연화 대책을 수립한다. 4대강 토목공사 사업의 실패에 대한 공정하고 투명한 과학적 검증과 국회 청문회를 통한 책임자 문책이 필요하다. 4대강은 16개 보 수문을 제거하고 재자연화해야 하며, 복원사업 시행에 국민 참여를 보장해야만 한다.
여덟째, 맑은 물 확보와 공급을 위해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물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물관리기본법’을 제정한다. 수질오염총량관리 및 비점오염원관리 등 하천 유역관리정책들이 왜 실효성이 낮은 것인지 그 근본원인을 찾아내어 물관리 체계를 전반적으로 재조정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원순환기본법’, ‘폐기물관리법’ 등을 개정, 환경산업분야, 자원순환관련시설 및 근린생활시설 등에 대기업 참여를 적극 제한하고,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적합업종으로 지정, 실시해야 한다. 특히 재활용품 유통 특성을 감안한 세제 개편을 단행하고, 재활용품 의무 구매 강화, 재활용 육성자금 지원 확대, 재활용 수집인들의 후생복지 지원책 등을 강구한다.
지난 정권에 의해 망가진 환경 및 위험 요소 관리 체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환경 적폐 철폐와 생태민주주의에 기반한 새로운 환경체제를 구축하는 첫 걸음임을 새 정부는 명심해야만 할 것이다. /허상수 지속가능한사회연구소 소장
조선일보 “정윤회 사건 재조사가 그렇게 화급한 사안인가”
조선, 국정교과서 폐지에도 반발…
조선일보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약속에 “국정교과서 내용 무엇이 잘못돼 폐지하느냐”고 반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사흘째인 지난 12일 국정 역사 교과서 관련 고시 수정을 지시하면서 국정 교과서 폐지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역사 교과서를 국정과 검정, 두 가지 체제로 구분한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국·검·인정 구분 수정 고시’에서 ‘국정’ 부분을 삭제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또한 2018년부터 국정과 검정 교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검정만 사용하도록 수정하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 13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국정교과서 내용 무엇이 잘못돼 폐지하나’란 제목의 사설에서 “지금 교단을 장악하고 있는 검정 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 과정, 북한의 실상에 대한 국민적 상식을 외면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국정교과서에) 깔려 있는” 것이라면서 “우리 현대사는 세계 최빈국에서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한 기적의 역사다. 이것이 국정교과서의 내용이다. 우리는 후손을 어떤 교과서로 가르쳐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조선은 이어 “새 교과서 폐지는 좌편향 교과서들의 기득권을 지켜주는 일이 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은 새 교과서가 다른 교과서들과의 건전한 경쟁을 통해 국민의 판단을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향신문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교육정책으로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를 선택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적폐’를 청산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다“면서 “거센 여론의 반대에도 최소 44억원 이상의 혈세를 들여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는 최종본(사진)을 내놓은 지 넉 달도 지나지 않아 쓰레기 신세가 됐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또한 관련 기사 제목을 통해 “상식과 정의 세우기가 시작됐다”고 평가했다.
▲ 13일 한겨레 9면
보수언론 “정윤회 문건 재수사, 과거지향적… 분열 우려”
조선일보는 또한 같은 날 사설을 통해 “정윤회 사건 재조사가 그렇게 화급한 사안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조국 민정수석이 지난 12일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정윤회 사건에 대한 이전 민정수석실 조사와 검찰 수사는 제대로 진실이 규명되지 않은 최고의 악례”라면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재조사 의지를 밝힌 데 따른 반발이다.
▲ 13일 조선일보 사설
조 수석은 12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민정수석실과 검찰이 이 문건의 실체적 내용을 덮고 적반하장 격으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경정만 문제 삼았다”면서 “현재 국회에 ‘우병우 직권남용 특별검사법’이 계류 중이지만 통과 여부를 확신할 수 없어 민정수석실에서 먼저 조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조 수석에게 “국정농단 사건의 특검 수사 기간이 연장되지 못한 채 검찰로 넘어간 것에 대해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재조사를 주문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지금은 새 정부가 제대로 출범하는 데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상황”이라며 “민정수석실은 아직 사무실 정리도 끝나지 않았다는데 이렇게 대통령, 수석이 나서야 할 정도로 정윤회 문건 사건 재조사가 화급한가”라고 주장했다.
조선은 이어 “결국 검찰이 재수사를 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대통령이 또 검찰에 정치보복 수사를 지시하는 것이 된다”며 “새 검찰총장에게 일임하는 것이 정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13일 동아일보 3면
동아일보는 ‘과거보다 미래 향한 통합·복지 대한민국으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새로 출범한 정부가 국민대통합을 외치면서 ‘과거’에 눈을 고정한 채 내부 분열을 자극하는 행보를 이어간다면 갈등 치유를 염원하는 국민의 기대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겨레는 “‘국정농단 사건’ 수사의 미진한 부분 등을 점검하라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사건 시발점인 정윤회 문건 사건부터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라며 “2014년 당시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이 사건을 처리했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까지 조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청와대 전자시스템 '껍데기 자료'만 남아…업무 난항 514 JTBC
[앵커]
앞서 리포트 내용을 보면 현황보고서 몇 장 준 게 전부다, 인수인계 절차가 아예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지난 정부의 각종 보고서라도 들여다봐야 할 텐데, 박근혜 정부 청와대 시스템에는 회의실 예약 내역 같은, 실제 업무에는 도움이 안되는 것들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자]
지난 3월 대통령기록관이 청와대로 보낸 문서입니다. 청와대 전자시스템에 등록된 자료를 정리해 넘기라는 내용입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전자기록물 934만 건을 대통령기록관으로 넘겼고, 이 가운데 10만여 건을 최대 30년 동안 볼 수 없는 지정기록물로 봉인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지난 정부의 업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전자시스템에 접속해본 결과, 남아있는 자료는 단순 공지사항이나 회의실 예약 내역 등 기초적인 자료가 대부분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에서 쓰던 전자시스템 '이지원'에 있던, 각 실별 연간업무 계획이나 과제관리, 업무성과 평가, 회의관리 등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또 지난 정부가 "많은 자료들을 종이로 인쇄해 보고한 뒤 폐기할 건 폐기하고 지정기록물로 묶어버린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인수인계 자료는커녕 당장 처리해야 할 각종 현안들이 그동안 어떻게 진행돼왔는지 찾아볼 방법조차 없는 겁니다.지정기록물은 목록이 공개되지 않아 지난 정부에서 어떤 자료를 폐기하고 어떤 기록물을 봉인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조선일보가 갑자기 비정규직 파업요구를 주목한 이유 515미디어오늘
[비평]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행보에 딴지 걸며 노동자들 ‘떼 쓰기’로 묘사…당사자들 “분노”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정책 행보와 관련해 조선일보가 ‘딴지걸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이후 노동계 곳곳에서 정규직화 요구가 “터져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맥락이 생략돼 악의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사자들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15일 “‘우리도 정규직으로’ ‘안해주면 파업’…봇물 터진 비정규직”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천공항공사가 문 대통령에게 “비정규직 1만명 전원을 연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우리도 정규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대 비학생조교는 “15일에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 밝혔고 한국노총은 “우정사업본부 소속 8500명 계약직을 정규직화 해달라”고 요구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도 “다음 달 민주노총 총파업에 동참해 정규직 쟁취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거짓은 아니다.
▲ 5월15일 조선일보 6면 기사
하지만 맥락이 생략됐다. 해당 노동자들이 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이후 갑작스레 정규직화를 요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첫 단락에 인천공항공사 사례를 쓴 다음 “정규직화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보도해 마치 노동자들이 ‘떼를 쓰는’ 인상을 준다.
서울대 비학생조교들이 서울대에 고용보장을 요구한 건 2016년 1월이다. 이들 중 127명은 지난해 4월부터 대학노조 서울대지부에 가입했고 지난해 12월22일 서울대로부터 정년 보장을 확인받았다. 하지만 이후 교섭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파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홍성민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지부장은 15일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투쟁을 해왔고 올해 3월에는 연좌농성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바뀌어서 갑자기 파업에 돌입하는 게 아니”라며 “조선일보 기사는 짜깁기다. 조합원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입된 민주노총 산하의 학비노조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이들이 갑자기 6월 총파업에 동참하는 것처럼 등장하지만 이윤재 학비노조 정책국장은 15일 “이번 파업은 조기대선이 있을 줄 몰랐던 지난해부터 준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학비노조 파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2012년과 2014년에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총파업을 벌였고 그 사이사이에도 부분 파업을 벌였다. 학교 현장에는 급식노동자, 행정실무사, 청소노동자, 방과 후 학교 강사 등 80여개 직종 15만 여명의 비정규직이 있으며 노조가 설립된 건 2011년이다.
2013년 학비노조의 부분 파업 당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교원, 공무원과 동종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정규직의 반도 안 되는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으며 복지혜택도 차별을 받고 있다”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차별을 가르칠 수 없다”며 이들의 파업을 지지했다.
또 다른 사례로 등장한 우정사업본부는 정부기관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정사업본부는 노동자 4만2000명 가운데 8000여명이 비정규직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32.8%(2010~14년 기준)에 불과해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과중한 업무 때문에 과로사 논란도 끊이질 않았다. 2016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9명의 집배원이 근무 중 사망했다. 7명은 과로로 인한 돌연사였고 2명은 이륜차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우정사업본부는 ‘2016년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에 선정됐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에는 이런 맥락이 생략돼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이 마치 정권이 바뀌자마자 '떼를 쓰는 것'처럼 읽힐 소지가 있다. 이윤재 학비노조 정책국장은 “그런 분위기가 아님에도 새정부와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갈라치기 하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역할 미디어오늘
[기고] 민주당 '비판적 지지'와 함께 원외 진보정당들에게도 손 내밀어야
진보 활동가들 속에서는 이번 대선 결과에 실망하고 불만족을 드러내는 여러 반응들이 있었다. ‘홍준표 같은 인간이 2등이라니’, ‘저 거대한 촛불의 결과가 도로 민주당이라니’, ‘심상정이 10%도 못 넘고 고작 4등이라니’, ‘김선동이 1% 근처도 못 가다니’…
전부 다 일리있고 이해할만한 반응이었다. 특히 ‘차별금지법은 나중에’, ‘동성애 반대’를 말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맞이한 성소수자들의 씁쓸하고 복잡한 마음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큰 그림도 봐야 한다.
5월 9일 밤에 광화문 광장을 찾은 문재인을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세월호 가족들이었다. 가족들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가슴에 커다란 노란 리본을 달아주었다. 대선의 결과가 ‘촛불의 승리’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겨울 내내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사드 배치 반대 투쟁중인 주민들이 기뻐하는 장면들이 방송에 등장했다. 곧 있을 5.18 기념식에서는 정부의 방해 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질 것이고, 광주 시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은 취임 초기부터 세월호 재조사, 국정교과서 폐기, 원전 건설 중단 등 속 시원한 개혁 추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명박근혜 시대가 워낙 역사를 거꾸로 돌려놓아서, 자기 옷을 자기가 벗는 아주 상식적 행동만 해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있다.
지금 ‘기뻐서 눈물이 난건 3년만에 처음’이라는 세월호 가족들에게, ‘희망이 보여서 설레고 눈물이 난다’는 인청공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옳지도 현명하지도 않을 것이다. 급진적 사회변화를 지향해 온 활동가들은 촛불을 들면서 ‘죽써서 *줄 수 없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런데 촛불혁명 참가자 대부분은 ‘*’를 홍준표와 구여권 세력이라 봤다. 반면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에서 촛불 참가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 지지율은 갈수록 높아져 왔다.
촛불집회를 돌아보면, 그 대열 속에서 수많은 민주당 깃발과 지지자들을 볼 수 있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지금 촛불의 주역들이 느낄 승리감에 공감하고 대선 결과에 반영된 촛불의 성과를 인정하는 게 출발점으로 보인다. 촛불이 없었다면 야당들과 진보정당이 얻은 표가 구여권 우파 정당들이 얻은 표의 두 배가 넘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정치적 관심을 모은 대선 TV토론도 촛불의 바탕 위에서 나타났다.
온갖 악랄한 혐오선동을 총동원해 가까스로 2등을 했지만, 홍준표와 자유당은 박사모 부흥회 수준에 머물렀다. 철저히 대구경북과 고령층에 가둬지면서 지지기반은 확 줄었다. “이대로 간다면 앞으로도 집권의 희망 없이 국회의원 몇 석만 보장되는 지역당 외에 아무런 다른 길이 없다.”(조선일보)
안철수는 촛불과 선을 긋고 부패우파에 다가서려 한 치명적 실수로 늪에 빠져 버렸다. 우파는 싫고 민주당은 못미더운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며 제3세력으로 급부상했던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허물어버린 것이다.
반면 문재인은 ‘정권교체와 적폐청산’을 내걸고 촛불의 등에 올라탔다.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문재인 정권이 촛불의 정신과 요구를 실현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문재인 당선을 기뻐하고 개혁과 적폐청산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잘못이 없고 탓할 수도 없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보여주는 과감한 개혁 추진을 어느 순간 중단하고,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판받아 마땅한 일이다. 촛불혁명이 찬란했던만큼 그것이 낳을 실망은 매우 아프고 쓰라릴 것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이 정치권력을 교체했지만, 사회경제적 토대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여전하다는 게 새 정부 앞에 다가올 어려움이다. 언론권력, 재벌권력, 검찰권력 등은 여전히 같은 세력이 움켜쥐고 있다.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아직 소수파다. 추락하던 경제 지표들이 나아지고 있지만, 반도체 호황 등에 힘입은 일시적 반등이라는 지적들이 많다. 더구나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에서 트럼프의 ‘전략적 충동’으로의 변화는 새 정부를 어둠 속에서 헤매게 할 수 있다.
재벌, 우파와 기득권 세력은 당장은 숨을 고르며 눈치를 살필 것이다. 하지만 새 정부가 삐걱거리며 빈틈을 보여주면 곧바로 그것을 파고들며 흔들어 댈 것이다. 촛불의 요구를 실현하려는 움직임을 힘을 모아서 망치려 할 것이다. ‘트럼프에 거역하고, 기업들을 괴롭히는 친북좌파’라고 새 정부를 공격할 것이다.
물론 이번에 홍준표의 ‘문재인 찍으면 김정은 된다’는 먹히지 않았다. 그러나 젊은(남성)층으로 확장 가능성을 보여 준 신보수 유승민을 주목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지난 ‘종북몰이와 여성혐오의 10년’ 동안 형성된 ‘신보수 안보 지지층’에 대해 말한다. TV토론에서 유승민이 ‘주적론’을 꺼내고 홍준표가 키우고 안철수가 거들던 불길한 조짐은, 특정 상황에서 더 거센 불길로 되살아날지 모른다.
이것은 참여정부의 쓰디쓴 교훈이기도 하다. 결국 참여정부는 우파에 굴복하며 개혁을 포기했고, 오히려 잘못된 정책들을 추진해 환멸을 자아냈다. 그 결과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이런 앞선 경험 때문인지, 문재인은 자서전 <운명>에서 “참여정부 5년에 대한 복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 이뤄진 것 같지 않다.
군장성 출신 보수 인사들을 대거 영입해 종북몰이에 대응한 것부터 그렇다. ‘뉴스타파’ 분석을 보면 문재인 캠프는 주요 5개 캠프중 군인 출신이 가장 많았다. 보수적 군장성들이 문재인의 색깔을 보증해 줄 거란 계산이다. 하지만 막상 남북관계가 꼬이면서 종북몰이가 본격화할 때 그들은 정권의 방패가 될까, 내부총질을 할까? 문재인 캠프에 줄줄이 들어왔던 이명박근혜 부역자들, 중앙일보 홍석현과 갑을노조 파괴자 박형철 등은 과연 개혁 추진의 디딤돌이 될까, 걸림돌이 될까?
최근 참여정부 출신 저명인사들이 내놓는 주장들도 위험해 보인다. ‘우리는 초반부터 전교조, 언론노조, 궤도연대, 부안핵폐기장 반대 시위대 등 좌파에게 얻어맞아 6개월만에 만신창이가 됐다. 그 악몽이 되풀이되면 100% 망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는 자기 성찰이 빠져 있다. 왜 임기 초부터 네이스(전자학생기록부), 낙하산 사장, 철도 민영화를 추진해 진보진영과 민주노조의 반발을 샀는지, 왜 부안 주민들에게 힘을 받아서 핵마피아들에 도전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지 않고 있다. 기대를 져버린 참여정부가 진정한 문제였다는 것은 노무현 자신도 인정한 바다.
“확실하게 저한테 속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이라크 파병할 때 그렇게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하면 이를 가는데, 김대중·노무현이는 수용해 버렸다 이겁니다”, “중요한 벽이 무너진 것은 노동의 유연성을, 우리가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것이에요.”(노무현, ‘진보의 미래’)
강대국이나 우파, 재벌들의 압력에 굴복해 보수언론의 지지를 얻으며 추진한 이런 정책 때문에 많은 기층 민중들이 고통받았다. 물론 참여정부는 언론, 재벌 등 기득권 세력의 위로부터 압력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럴수록 아래로부터 힘을 불러냈어야 했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그 반대의 길을 갔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구속된 노동자 숫자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때보다 훨씬 늘어나 1천여 명에 달했다. 개혁을 원하는 아래로부터 힘에 의존하기보다, 그것을 억누르고 막아선 것이다.
노무현은 나중에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며 이렇게 물었다. “정말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 다른 데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노무현, ‘운명이다’)
그래서 지금 ‘적폐세력에 맞서는 새정권을 돕기 위해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당분간 가만히 있으라’는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적폐 청산과 개혁 추진을 위한 가장 중요한 힘을 가로막는 게 아닌지 말이다. 촛불 속에서 힘을 모았던 사람들을 갈라놓기 위해 이간질하는 세력을 돕는 게 아닌지 말이다. 지난번 차별금지법에 대한 답변을 요구했던 성소수자 활동가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준 것은 답변을 회피한 문재인보다 옆에서 ‘나중에’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이었다.
물론 진보진영과 노동운동도 돌아 볼 점이 많다. 민주당 집권 10년의 실패와 이명박근혜 9년의 역주행 끝에도 진보정치는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지 못했다. 갈등과 분열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촛불혁명 속에서도 이재명이나 민주당에게 기회를 빼앗겼다. 다행히 대선국면에 들어서면서 진보정당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TV토론에서 진보의 존재 가치를 보여주면서 진보정당 후보로서 역대 최다 득표를 이뤄냈다. 특히 소수자들의 편에서 혐오 선동에 맞선 장면은 별처럼 빛났다. 독립적 진보정치의 기반 확대 가능성을 보여 준 이 결과는 오롯이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만의 성과는 아닐 것이다. 20년 가까이 힘겹게 바닥을 다지며 씨앗을 뿌려 온 수많은 진보정치 활동가들의 땀과 눈물이 거기에 담겨있다.
하지만 비판적 지지 압력이 크게 줄어든, 다시 오기 힘든 조건 속에서 얻은 이 정도 득표율에 만족하긴 어렵다. 이를 위해 ‘헌법 내 진보’로 뒷걸음질 치며 그 생채기들을 남겨야 했던가? 오히려 그것이 낳은 상처, 불신, 갈등, 분열이 더 큰 전진을 가로막은 것 아닐까?
사라지지 않은 종북몰이의 저주와 갈라진 진보정치의 쓰라린 뒷면을 보여 준 것은 민중연합당 김선동 후보가 얻은 초라한 결과다. 그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종북몰이로 무너진 집은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그럴수록 고슴도치처럼 웅크리며 밖으로 날카로운 가시를 드러내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배제가 아닌 연대의 손길만이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정치 재건의 길에서 제일 앞줄에 서 있는 정의당부터 먼저 원외 진보정당들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자주, 평등, 노동, 생태의 목소리가 잘 어우러졌던 15년 전에 진보정당 지지율이 사상 최고였던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 정부에 입각하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진보진영이 팔짱끼고 민주당 정부 실패만 기다리다가 이삭줍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개혁의 동력을 마련하는 게 진정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추진할 때는 그 성공을 뒷받침하고 우파의 방해를 물리치기 위해서 필요하다. 민주당 정부가 길을 벗어나면 그것을 막아서기 위해서 필요하다.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포기할 때는 독립적 힘으로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 동력의 핵심은 위로부터 똑똑하고 능력있는 진보적 정치인, 장관에게서 나올 수 없다. 취임 초부터 문재인이 보이는 속 시원한 발걸음도 문재인, 조국, 임종석 등의 개인적 의지와 능력이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10년에 가까운 지난한 투쟁이 없었다면, 국정교과서 채택율을 0.06%로 만든 학생·학부모·교사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세월호 가족들의 그 눈물겨웠던 3년이 없었다면 지금의 변화가 가능했을까?
무엇보다 이 나라 역사상 최대 규모, 최장 기간의 촛불혁명을 만들어낸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을 만들어낸 주인공이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의 실패를 단순반복하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핵심적 차이점으로 보인다.
누가 일곱 개의 성문이 있는 테베를 세웠는가?
책에서 그대는 왕들의 이름을 발견한다네.
왕들이 바위 덩어리를 끌어 날랐는가?
그리고 몇 번이고 파괴된 바빌론,
누가 바빌론을 몇 번이고 일으켜 세웠는가?
...쪽을 넘길 때마다 등장하는 승리.
누가 승리자들의 연희를 위해 요리를 만들었는가?
10년마다 등장하는 위인.
누가 그들을 위해 대가를 치렀는가?
너무나 많은 이야기.
그만큼 많은 의문.
- 브레히트 <독서하는 노동자의 질문>
이런 아래로부터 동력이 없다면, 진보적 장관과 정치인은 지친 사람들에게 더 큰 짐을 지우거나 그것을 설득하는 구실을 맡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핵심적 과제는 갈등과 반목을 벗어나 아래로부터 투쟁과 연대를 건설하는 것에 있다.
지금이야말로 촛불혁명의 정신을 되새기고 그것으로 돌아가야 할 때다.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의 불씨를 더욱 살리고, 그것을 우리의 일터와 삶터로 옮겨 붙여야 할 때다. 소속과 부문과 정파를 넘어서 공동의 과제를 위해 협력하고, 수많은 열린 토론을 벌이고, 경험 속에서 서로 배우며 하나씩 오류를 고쳐 나가던 장면을 기억하자. 강간모의 공범 홍준표가 2등을 하고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한 유승민이 20대 남성들에게서 큰 지지를 얻었다는 결과 앞에서, 여성 혐오적 표현과 발언들을 경계하며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 한 광장의 기억을 되살리자.
노조도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떼거지로 죽어가고, 노조가 있어도 힘이 없으면 고공으로 올라가고, 힘 있는 노조는 그 손을 잡아주지 않는 일이 더 반복되지 않게 하자. 종북의 올가미에 걸려서 허우적대는 활동가들과, 종북의 낙인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리는 활동가들과, 그것을 지켜보는 활동가들이 모두 서운함과 불신을 쌓아가던 상황을 끝내자. 지난날 촛불의 기억과 꿈이 우리를 밀고나가게 하자.
"나무 심으니 주위 10배에서 모래폭풍 잠잠해졌다" 515 중앙
몽골에서 관찰되는 모래먼지 폭풍[사진 푸른아시아]
“한반도는 황사가 과거보다 다소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몽골에선 여전히 심각합니다. 바람 기류가 바뀌면 언제든지 2002년이나 2006년 같은 강한 황사가 한반도로 들이닥칠 수 있어요."
2000년부터 황사 방지를 위해 몽골에 나무를 심는 시민단체 ‘푸른아시아’의 오기출(56) 사무총장은 지난 1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최근 몽골과 중국 북부에서 황사가 불어오면서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중국발 스모그로 인한 피해까지 겹치면서 시민들은 정부에 확실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다른 후보들도 미세먼지 대책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이 가운데 오 사무총장이 최근 『한 그루 나무를 심으면 천 개의 복이 온다』는 제목의 책을 냈다. 몽골 조림사업의 경험과 환경 운동에 몸담으며 느낀 것들을 정리한 책이다. 책 제목 『한 그루…』는 몽골의 오래된 속담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몽골의 사막화가 심각해지자 지난 2006년 몽골의 큰스님이 새해 메시지로 이 속담을 꺼내어 사람들에게 나무 심기를 강조하기도 했다.
푸른아시아가 18년째 몽골에서 나무를 심고 있지만 몽골에선 여전히 모래폭풍이 심각하다고 한다. 올해에만 벌써 15~16회 정도 모래폭풍이 발생했다. 지표면에서 300m 높이까지 이르는 거센 모래 폭풍이 발생한다. 모래 폭풍 속에서 유목민이나 가축이 길을 잃고 헤매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몽골의 사막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1990년에만 해도 사막 또는 사막화 진행 지역이 국토의 40%였다. 이제는 80%로 늘었다. 1990~2010년 사이 20년 동안 몽골에서 호수 1166개, 강 887개, 우물 2900개가 사라졌다. 이제는 모래 폭풍도 연간 50일 이상 발생한다. 이런 추세를 되돌리기 위해 푸른아시아는 한 그루 한 그루 나무를 꾸준히 심었다. 그에 따르면 몽골은 공장도 없고, 인구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사막화를 겪는 것은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탓이다. 한국 등이 몽골의 사막화 방지에 힘을 보태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푸른아시아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서울·인천·수원·고양 등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의 후원으로 몽골에 나무를 심었다. 이뿐 아니라 나무를 주민 소득사업과 연결시켰다. 푸른아시아는 처음엔 나무를 심고 물을 주는 현지 주민에게 임금을 지불했다. 이제는 주미들이 스스로 감자와 채소·비타민나무(차차르칸) 등 농사도 같이 지어 자립하도록 돕고 있다. 오 사무총장은 “초기에는 심은 나무가 말라죽기도 했지만, 이제는 몽골 7개 지역의 580㏊에 약 58만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게 됐다”고 말했다. 580㏊는 축구장 795개에 해당하는 면적이다.
푸른 아시아는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200㎞ 떨어진 바양노르 지역에서 120㏊에 걸쳐 나무를 심었다. 그런데 이의 10배 면적인 1200㏊에 이르는 지역에서는 모래먼지 폭풍이 사라졌다고 한다.
몽골 바양노르에 위치한 푸른아시아 조림지에서 주민들이 차차르칸 나무에 열린 주황색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 2007년 조림을 시작하기 전 이곳은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중앙포토]
.푸른아시아가 만든 주민 자립모델은 국제적으로도 인정 받아 2014년에는 유엔 사막화방지협약(UNCCD)으로부터 ‘생명의 토지상’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오 사무총장은 “나무를 심는 것은 온실가스를 줄이고 사막화를 방지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파괴’에서 ‘살림’으로의 인간 의식을 진화시키는 출발”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세먼지 문제 해결에도 관심이 많다. 황사나 스모그 둘 다 결국은 미세먼지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는 “중국발 스모그를 해결하려면 우리부터 미세먼지 문제를 첫 번째 국정과제로 삼고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2014년부터 이미 이 문제를 제1의 국정과제로 삼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한국이 제대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건강을 우려한 시민들이 반발해 정권이 붕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산업화 전략의 하나로 석탄 사용을 줄이고 있다. 2020년까지 2조5000억 위안(450조 원)을 투자해 석탄 소비를 8억t 줄일 계획이다. 대기오염을 줄이고 청정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130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오 사무총장은 “우리 정부가 한·중 정상회담 때 미세먼지 문제를 주요 의제로 제기하려면 우리 스스로도 미세먼지 문제를 제1의 국정과제로 삼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패하면 공개하고 성공하면 비공개하는 ‘북한 미사일 정보’...국방부 ‘맘대로’515민중
북한 미사일 고도가 비밀? 북한·일본 공개하는데도 ‘묵묵부답’
북한은 지난 14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이 '성공'이라고 발표했지만, 정작 국방부는 발사된 미사일의 고도도 공개하지 않는 등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하는 처사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실패'한 경우에는 고도 등 관련 정보를 즉각 공개한 바 있어, 선전하고 싶은 것은 밝히고, 불리한 것은 감추는 '이중적 잣대'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북한이 14일, 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일본은 즉각 고도가 2천km가 넘었다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한국 국방부나 합동참모본부(합참)는 "세부 사항을 분석 중"이라는 이유로 일절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15일, 북한은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로켓은 예정된 비행궤도를 따라 최대정점고도 2천111.5㎞까지 상승비행하여 거리 787㎞ 공해상의 설정된 목표수역을 정확히 타격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시험발사장에 직접 나와 시험발사를 지켜본 뒤 '성공'으로 결론냈다고 전했다.
이에 관해 국방부 문상균 대변인은 15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 당국은 어제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발사 고도와 비행거리 등 북한이 발표한 내용 대해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면서도 미사일의 고도 등 중요한 내용은 일절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변인은 "최대 고도가 그 정도 올라갔고 사거리가 그렇게 날아갔는데, 일본 배타적경계수역(EEZ)을 피해서 떨어졌다는 것은 사실상 대기권 재진입기술 확보했다고 봐야 하지 않느냐"의 질의에는 "현재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 "북한이 주장하는 기술적 특성, 엔진 신뢰성 확보 주장 등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대변인은 이어 "한일 군사정보보호 교류 협정에 의해서 어저께 일본으로부터 정보를 받았느냐"의 질문에는 "실무 차원에서 정보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또 "최고 고도 정보도 받았느냐"의 질의에 "정보 공유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 언론에 공개를 안 했느냐는 질문에는 "전체적인 것을 한미일이 다 분석을 해서 종합적인 판단을 내려야 되기 때문에, 그래서 종합적인 판단이 나올 때까지 관련 내용에 대해서는 유보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국방부, 북한 미사일 실패 때는 고도 등 즉각 공개
국방부 관계자, '국민 알권리' 지적에 '묵묵부답' 일관
하지만 국방부의 이러한 답변은 매우 궁색하며 '국민의 알권리'마저 무시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합참은 지난 4월 4일, 북한이 '북극성 2형' 계열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때는 "오늘 발사된 미사일 종류는 초기 분석 결과 KN-15, 북극성 2형 계열로 추정되며, 발사 각도는 방위각 93도, 최대 고도 189km, 비행 거리 60여km로 파악됐다"고 즉각 발표했다.
합참은 이번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전인 지난 4월 28일, 실패한 미사일 발사에 관해서도 "(북한) 북창에서 북동쪽 방향 방위각 49도로 비행했다"면서 "비행 시간은 수분이고, 최대 고도는 71㎞에 달했다"고 즉각 발표했다. 북한이 실패한 탄도미사일이나 실패한 가까운 경우에는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한 셈이다.
국방부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오히려 우리 국방 자산에 대한 억측만 난무하게 하고 있다. 국방부는 15일 정례 브리핑에서도 "일본은 인공위성이 있는 반면에 우리는 아직 없어서 우리 이지스함으로 그 정도 고도를 확인하는 것 어렵다고 하던데, 그게 맞느냐"는 질문에 "거기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답변을 피했다.
합참 공보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해서 이에 관해 "관련 부서에서 이지스함이나, 그린파인 레이더 등의 제원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면, 고도 2천km 정도의 탐지가 가능한지 여부도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닌가"라는 되물음에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나 합참이 북한의 미사일이 실패에 가까운 경우에는 고도 등 모든 정보를 다 밝혔는데, 유독 성공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보를 밝히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는 "뭐라고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방부 공보실 관계자도 기자와의 통화에서 "탐지 자산의 제원이 군사 비밀인 관계로 어제 북한 미사일의 고도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느냐"의 반문에 "답변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국방부는 밝히지도 않다가 북한이 발표하니, "북한이 발표한 내용 대해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뒤늦게 말하는 것도 '국민의 알권리'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양정철·최재성 2선 후퇴선언…"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웠다" 516 노컷
"우리는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다"
(사진=문재인 선대위 관계자 제공)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선거대책위 출신 최재성 전 의원이 잇따라 2선 후퇴를 선언했다.
김경수 의원은 16일 "양 전 비서관이 어젯밤 늦게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라며 양 전 비서관의 메시지를 공개했다. 양 전 비서관은 문자메시지에서 "참 멀리 왔습니다.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며 "새 정부가 원활하게 출범할 수 있는 틀이 짜일 때까지만 소임을 다 하면 제발 면탈시켜 달라는 청을 처음부터 드렸습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 분(문재인 대통령)과의 눈물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합니다"라면서 "저에게 갖고 계신 과분한 관심을 거둬달라는 뜻에서, 언론인들에게 주제 넘는 이별 인사를 드립니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또 "머나먼 항해는 끝났습니다. 비워야 채워지고, 곁을 내줘야 새 사람이 오는 세상 이치에 순응하고자 합니다"라며 "그분이 정권교체를 이뤄주신 것으로 제 꿈은 달성도니 것이기에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양 전 비서관은 당부의 말도 전했다. 그는 "우리는 저들과 다릅니다"라며 "정권교체를 갈구했지 권력을 탐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맸지 자리를 탐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선이 아니라 묵묵히 도왔을 뿐입니다. 나서면 '패권', 빠지면 '비선' 괴로운 공격이었습니다"라며 "저의 퇴장을 끝으로, 패권이니 친문·친노 프레임이니, '삼철'이니 하는 낡은 언어도 거둬주시기 바랍니다. 비선도 없습니다"고 당부했다.
양 전 비서관은 전날 이같은 문자를 지인들에게 남기기 전 청와대 관저에서 문 대통령과 만찬을 함께 했다. 이 자리에서도 그는 거듭 '2선 후퇴' 의지를 내비치며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정권의 성공을 기원하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양 전 비서관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자신이 자리를 맡게되면 지위 고하에 상관없이 문 대통령을 공격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뜻을 여러차례 밝혀왔다"며 "청와대 요직인 총무비서관 인선 전에도 그런 뜻을 밝혔는데 새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물러나겠다는 충정을 대통령께서 고심 끝에 받아들인 것"이라고 전했다
민주당 선대위 종합상황본부 1실장을 맡았던 최재성 전 의원도 한발 뒤로 물러나 있겠다고 선언했다. 최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아무래 생각해도 저는 권력을 만들 때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인재가 넘치니 비켜 있어도 무리가 없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어 "적어도 정치인에게 있어서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일은 대통령의 배려보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 옳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라며 "대통령에게 신세 지는 것은 국민께 신세를 지는 것인데, 정권교체 과정에서 국민께 진 신세를 조금이라도 갚는 일을 택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재가 넘치니 원래 있던 한 명쯤은 빈손으로 있는 것도 괜찮다고 제 마음을 드렸습니다. 국민께 신세 갚는 작은 시작을 그렇게라도 해야겠습니다"고 했다.
최 전 의원은 "정권교체를 위해 열심이셨던 분들과 지리산 아랫자락 모습을 나눕니다"라고 글을 맺으며 아내와 함께 지리산을 찾아 찍은 풍경사진을 공유했다. 양 전 비서관의 이같은 입장은 문 대통령의 또다른 최측근인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10일 "제 할 일을 다 했다"며 출국한 것에 이은 두 번째 '백의종군' 선언이다. 최 전 의원도 2015년 민주당의 사무총장과 총무본부장을 역임하면서 당시 문재인 대표와 함께 당을 이끌었던 인물로, 지난해 총선에서는 불출마를 선언하고 인재영입 작업을 총괄하는 등의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시론] “골목이 뭐예요?” 514 시사저널
40대 이후 세대에겐 이런저런 골목의 추억이 있을 것 같다. 학교 끝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책가방을 툇마루에 던져놓고 골목을 향해 뛰어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골목에는 한동네 사는 친구들에,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한데 모여 온갖 놀이를 즐기곤 했다. 술래잡기부터 시작해서 고무줄놀이에 공기에 땅따먹기에 오자미에 줄넘기까지 놀이 종류는 차고도 넘쳤다.
나는 키가 작았음에도 불구하고 고무줄을 곧잘 했다. 여자들 중 제일 나이 많은 언니 둘을 대장으로 뽑고 가위바위보로 편을 짜곤 했는데, 나는 출중한 실력(?) 탓에 첫 번째로 선택되는 행운을 누리곤 했다. 양 갈래로 땋은 머리를 펄럭이며 깡충깡충 고무줄을 넘기도 했고, 양손을 땅에 짚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포즈로 다리를 높이 들어 고무줄을 넘는 ‘사까닥질’(아마도 일본말이었을 텐데 뜻도 모른 채 우리끼리 그렇게 불렀다)도 무리 없이 해냈다
골목은 학교에선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 거리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싸우지 않고 신나게 놀려면, 동생들은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야 했고 언니·오빠들은 솔선수범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규칙은 예외 없이 공평하게 적용돼야 한다는 사실을 골목에서 배웠고, 때론 이보(二步) 전진을 위해 일보(一步) 후퇴하는 것이 현명한 전략임도 깨달았다. 양보가 미덕이란 의미도 친구들과 놀면서 온몸으로 알게 됐고, 최선이 통하지 않으면 차선을 선택할 줄 아는 유연함도 깨우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놀다 보면, “얘들아 저녁 먹을 시간이다” 엄마들 부르는 소리에 내일을 기약하며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던 기억도 난다. 그땐 밥 안 먹어도 배고픈 줄 모른 채 놀이에 흠뻑 빠져 지냈었는데….
2주 전 대학원 세미나 수업에 미국의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의 최근작 《나를 빌려드립니다》를 읽고 토론을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책의 핵심 주제인즉, 과거엔 마을 공동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었던 삶의 과제들이 이제는 빠르게 아웃소싱되면서, 연애 코치도 생겨나고 웨딩 플래너, 파티 플래너를 거쳐 심지어 대리모(母)에다 장례 대행사에 이르기까지 일체를 상품으로 구입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시장에 대비되는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겨보던 중 우리에겐 골목의 추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자, 한 학생이 “선생님! 골목이 뭐예요?” 묻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세대 차이’의 실체가 선명하게 다가오면서 무척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골목 자체를 경험해 보지 못한 세대에게 골목이 무언지 어찌 설명할 수 있으리오. 골목이란 단순한 공간의 의미를 넘어 언니·오빠·누나·동생들이 함께 어울려 추억을 쌓았던 기억의 보고(寶庫)라 이야기해 준들, 그 풍성한 의미가 전달될 리 만무할 것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올해도 어김없이 다가온 어린이날에 새삼 잃어버린 골목을 떠올리는 건 이유가 있다. 1년 365일이 어린이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린이날을 폐지해도 좋을 것이란 농담에 선뜻 웃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권을 맴도는 우리 어린이들에게 ‘골목’의 시끌벅적함과 순수한 재미를 다시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 온다. 물론 안심하고 안전하게 뛰어놀 수 있는 환경까지 어른들의 사려 깊은 선물로 얹어서 말이다.
20-49 시청률 KBS>JTBC>SBS>MBC>MBN>채널A>TV조선 516 미디어오늘
[분석] 박근혜 파면 이후 개표방송까지 방송7사 메인뉴스 시청률 추이…종편3사 20-49 시청률 합계 1% 미만 ‘암담’
시청률조사기관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5월9일자 TV조선 프로그램 가운데 20-49시청률이 가장 높았던 프로그램은 새벽 2시~2시39분까지 방영된 ‘모란봉클럽’ 재방송으로 0.34%였다. 오후 6시부터 특집 편성된 개표방송의 20-49시청률은 0.1%~0.2% 수준이었다. 9시8분부터 10시51분까지 편성된 TV조선 ‘뉴스판’ 3부 20-49시청률은 0.2%였던 반면 9시37분부터 12시6분까지 편성된 JTBC ‘뉴스룸’ 3부 20-49시청률은 6.31%였다. 이날 오전 8시31분~9시45분 편성된 TV조선 ‘김광일의 신통방통’ 20-49시청률은 0.03%였다. 처참하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지표다.
다른 종편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채널A는 이날 교양·드라마·예능 프로그램 없이 하루 종일 뉴스만 편성했는데 오후 5시41분부터 7시9분까지 편성한 ‘뉴스TOP10’의 20-49시청률이 0.4%로 가장 높았다. MBN은 이날 자정 특집다큐 ‘문재인 새 시대의 문을 열다’를 편성해 20-49시청률 0.64%를 기록했다. 이날 누리꾼들은 MBN 편성을 두고 “종편이 하루 만에 박비어천가에서 문비어천가로 돌아섰다”고 비꼬았다. 18대 대선에서 공격적으로 시사토크프로그램을 편성하며 시청률 상승세를 보였던 종편은 이번 19대 대선에서 어떠한 의제설정도 못했다.
▲ 20-49시청률. 출처=닐슨코리아
▲ 출처=닐슨코리아.
미디어오늘은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3월10일부터 19대 대통령선거일 다음날인 5월10일까지 두 달 간 방송7사 메인뉴스 시청률(닐슨코리아 수도권 유료방송가구기준, 주말 포함)을 분석했다. 이 시기는 조기대선국면으로 그 어느 때보다 뉴스에 관심이 높았다. 그러나 뉴스소비는 JTBC 쏠림현상으로 나타났다. JTBC는 이 시기 지상파와 유사한 시청률 곡선을 그리며 ‘방송4사’ 구도를 형성·안착시켰다. 62일간 메인뉴스 20-49시청률은 KBS 3.18%, JTBC 2.31%, SBS 2.18%, MBC 1.53%, MBN 0.54%, 채널A 0.28%, TV조선 0.16% 순이었다.
KBS1TV ‘뉴스9’는 방송7사 중 15.14%로 두 달간 평균 시청률이 가장 높았지만 평일 16~18%를 유지하다 주말만 되면 1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일일연속극 없이는 시청률 반 토막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은 연속극을 애청하는 고령층으로의 뉴스수용자 쏠림현상을 의미한다. ‘뉴스9’의 경우 평균 시청률과 20-49시청률간의 그래프 상 간격도 크게 나타났는데, 간격이 클수록 주시청자가 50대 이상이다고 볼 수 있다. ‘뉴스9’는 조기대선국면에서 정치적 논란을 기계적 중립으로 보도하는 한편 내부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유리한 보도에 나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 출처=닐슨코리아.
JTBC는 같은 기간 평균시청률 6.06%를 기록했다. 최순실 태블릿PC보도나 정유라 체포 보도 당시처럼 높은 시청률은 아니지만 박근혜 파면 이후에도 평일 동시간대 지상파 메인뉴스를 앞서며 이슈를 주도했다. 손석희 JTBC보도담당 사장이 없는 주말 편성에서 시청률 하락이 반복되고 있는 점은 여전히 숙제거리다. JTBC는 방송사 가운데 20-49시청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5월9일 오후6시~12시 개표방송에선 KBS1TV를 시청자수에서 앞서며 업계에 충격을 줬다. 손석희가 있는 JTBC는 높은 뉴스신뢰도를 바탕으로 ‘롱 런’할 가능성이 높다.
SBS는 주말뉴스만큼은 KBS를 넘보는 강자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말 메인뉴스 시청률이 높게 나오고 있다. SBS ‘8뉴스’는 3월12일 13%, 3월26일 11.75%를 기록했는데 모두 일요일이었다. SBS는 지상파 3사 가운데 20-49시청층의 비율도 가장 높다. 젊은 시청자들이 손석희가 있는 날은 JTBC를, 손석희가 없는 날은 SBS를 보고 있다고 추정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문재인-해수부 세월호 거래설’ 보도만 없었더라면 지난 두 달간 SBS의 보도는 드라마틱한 변화로 부르기에 충분할 만큼 호평을 받았다. 이 기간 SBS 평균 시청률은 6.13%다.
두 달 간 평균 6.05%를 기록한 MBC는 박근혜 탄핵당시 탄핵 반대세력의 ‘MBC시청’ 운동으로 시청률 상승세를 보이는 듯 했으나 선거 국면에서는 이렇다 할 상승세를 보이지 않았다. 안팎에서는 지속적으로 TV조선과 함께 특정후보에 편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보도논조의 변화는 없었다. 종합하면 방송4사는 박근혜 탄핵국면에서의 뉴스시청층 볼륨이 조기대선까지 그대로 이어졌고, 이 국면에서 JTBC는 방송4사 구도에 완전히 포함됐다. JTBC와 SBS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뉴스를 통해 KBS·MBC와 달리 젊은 시청층 비율을 높이는데 성공했다.
▲ 출처=닐슨코리아.
암담한 곳은 종편3사다. TV조선은 문재인 정부 들어 김민배·방정오 공동대표이사 체제를 시작했다. 김민배 대표이사는 박근혜정부 편향보도를 주도한 보도본부장 출신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방정오 대표이사는 최근까지 지난해 제작본부를 총지휘하며 채널시청률 참패의 책임자이지만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차남이라 오히려 면죄부를 받고 승진한 것으로 비춰진다. 채널A는 드라마제작을 비롯해 다시 콘텐츠투자에 나설 계획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보도 분야의 가시적인 변화가 없는 한 당장의 시청률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겨레21 문재인 커버로 불거진 진보언론 혐오 논란 515 미디어오늘
文 대통령 표지 사진에 수백개 누리꾼 댓글 “사진 졸렬”, “그냥 내지 마라”… “이게 문재인 나라인가” 지적도
진보 언론 혐오 논란이 시사주간지 ‘한겨레21’로 옮겨 붙었다. 한겨레21이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얼굴 사진이 단독으로 실린 1162호(5월22일자 “새 시대의 문”) 표지를 페이스북에 공개하자 누리꾼들이 수백 개의 악성 댓글을 통해 비난을 퍼붓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누리꾼들은 “아무리 보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됐다고 해도 이런 사진을 쓴다는 건 너무 속이 들여다보이는 졸렬한 짓”, “머리 검은 짐승이라는 게 딱 이 언론사의 케이스”, “문재인 대통령이 얼마나 권위주의적으로 보이길 원했으면 위로 올려다보는 구도로 찍은 사진을 썼나 싶네요”, “언론사인지 양아치인지 진짜 그렇게 문재인이 싫으면 걍 쓰지마세요”, “좋은 사진들 많더구만, 특히 문 대통령님은 눈이 생명인데, 쩝. 옛다-던져주듯이, 기분 그렇네요”, “타임지 팔리는 거 보니깐 돈은 벌고 싶고. 사진 이따구로 할꺼면 그냥 내지마세요. 어처구니가 없네” 등의 댓글을 달았다.
누리꾼 반응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한겨레21은 대선 기간 동안 이재명·안희정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와 남경필 바른정당 경선 후보, 같은 당 유승민 대선 후보,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 등을 단독 표지 모델로 실었으나 문재인 대통령 사진은 단독으로 실은 적 없고 두 번째 대통령 당선이 있던 주인 1161호 표지(“촛불이 대통령에게”)에도 문 대통령 사진이 실리지 않았으며, 세 번째 1162호 표지 역시 못마땅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은 1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 표지 사진은 사진 부장과 함께 선택한 것인데 강인한 사진이라는 생각에 선택했다”며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 사진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지도자의 결의와 고뇌가 느껴지는 것 같아 표지로 골랐다”고 말했다.
▲ 한겨레21 1162호 표지(왼쪽)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 표지.
한겨레21측 설명에 따르면 1162호 표지 전까지 문 대통령 단독 사진이 없었던 까닭은 한겨레21 선거 보도 기획이 군소 후보에서 시작해 유력 후보로 올라가는 순서로 기획됐다는 데 있다. 시의성 측면에서 경선이 끝난 이후 경선 후보를 다루기 어렵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누가 대통령에 당선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서로를 응시하는 그래픽 사진 표지(1160호)가 선거 직전에 실린 것이라는 설명이다.
세월호 3주기 특집(1157호)과 국정원의 민간여론조작팀 ‘알파팀’ 특종(1158호)과 같은 이슈는 한겨레21만의 특종과 세월호 기획이었기 때문에 대선 기간 중에도 표지로 실렸다. 선거가 있던 주에 가판에서 팔렸던 1161호의 경우는 제작 시점이 대선 전이었다. 이 때문에 특정 후보 사진을 싣기보다 대선 이후 상황을 전망하고 촛불대선 의미를 되짚는 기획이 실렸다.
길 편집장은 “(1161호의 경우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처럼 한국의 대선을 코앞에 두고 외신이 특정 후보를 표지에 싣는 것은 가능할 수 있으나 국내 주간지가 (선거 직전) 결과를 예측하고 특정 후보를 싣는 것은 아무래도 조심스럽다”고 말한 뒤 비난 여론에 대해선 “저희 입장에서는 더욱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겨레21 페이스북에는 누리꾼의 맹목적 비난을 비판하는 댓글도 있었다. 한 페이스북 유저는 “지금까지 한겨레 논조가 맘에 안 드시면 그걸 제대로 비판하시거나 아니면 명백한 오보가 났을 경우 그걸 비판하셔야 정당한 비판이죠”라며 “사진이 못 나왔다는 이유로 이렇게 달려들어서 용안이 어쩌고, 애정이 안 담긴 사진을 쓰면 어쩌고, 거기에다 혐오 발언, 차별 발언이 가득 섞인 비아냥들. 이것이 님들이 바라는 문재인의 나라입니까”라고 비판했다. 다른 유저들도 “문재인 아이돌이냐 뭐냐. 적당히들 해요”, “니들이 박사모랑 다른 게 뭐냐” 등의 댓글을 남겼다.
205개의 의견이 있습니다.
놀고있네 - 김도연씨? 진보언론?누가 그렇게 지칭을 해주던가요? ㅋㅋ 한겨레21이 진보? 그냥 잡지 아닌가?그마저 독자들이 사주지 않으면 재활용품?
개떼 파시즘 -김도연씨 기사썼네? ㅋㅋㅋㅋ 미디어 오늘 사과글 잘 봤어요 ㅋㅋㅋㅋ 이기사도 뒤끝 쩔고 ㅋㅋㅋㅋㅋ 미디어오늘의 유명기자님~ 그나저나 잘해보세요 ㅋㅋㅋ
지하철 -기사 제목 자체가 기자의 인식 자체를 보여준다. '진보언론 혐오 논란'이라... 여기에는 진보 언론은 피해자고, 그걸 혐오하는 집단은 파렴치범으로 모는 프레임이다. 한겨레21 표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문빠인가? 그건 현재 한겨레21 편집장에 판단하고 결정할 문제이지, 이전 편집장이 독자들과 물고 뜯고 싸울 일이냐? 그걸 진보 언론 혐오라고 몰고 가는 김도연은 또 뭐하는 건가? '개떼'와 '주인'으로 매도된 지지자들에 대해 모욕하는 건 언론이 할 짓인가? 내가 지지하는 자들에 대해 의견을 표시하는게 어떠한가? 나도 한겨레21 정기구독자다. 잘한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것을 니편내편 나눠서 가르는게 진보 언론이 할 짓인가? 웃긴 노릇이다.
ㄴㅅㄱㅇㄷ -니들 가족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냐? 똑같은것들이라 떳떳한가? 니부모들은 내 아들딸 기자됐다고 좋아라했겠지.. 이딴기사꺼리나 끄적거리는데 불쌍하다
dldndn -여기서 화낼필요 뭐 있습니까? 그냥 절독하면 되지요. 이 글을 마지막으로 후원금은 물론이고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도 미디어오늘 지웁니다. 수고하세요
한경오미쓰레기죠 -진짜 혐오스러워 옳고 그름도 못배워쳐먹은 것들이 기자씩이나 하는 이 세태가 진짜 드럽고 구역질난다. 모두 까기를 하라 배웠겠지. 도덕도 정의도 없는 '선배'에게. 그래서 니네의 현실은 쓰레기고 미래의 너는 니 옆에서 졸렬하게 썩어가는 네 '선배'다. 세상에 나와서 똑똑히 느끼고 봐라 니네 스펙따위로 하는 짓이 그 대단한 펜질이라면 너희보다 대단한 스펙으로 현실에 몸굴리며 사는 사람들이 뭘 하는지 제발 좀 보라고. 미친.
가르치지마 -요새 자칭 언론이란 것들은 기득권중의 기득권인듯. 자기들이 쓴 글로 사람들을 맘대로 조종할 수있다고 착각하는 엘리트의식에 쩔어있다고 생각함 . 근데 요새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많은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고 판단할 능력은 갖춘 시대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과거의 사고에 머무르고 있는 기레기들아 반성 좀 해라 .
사냥개 -난 사냥개라서 한번 물면 안 놓는다! 으르르렁 컹컹컹!
기레기 - 그 개떼가 모여서 국민이 되는거지. 당신들 눈엔 개돼지로 보일지 모르지만. 수준 떨어지는 국민하고 놀지말구 그냥 고고한 당신들끼리 글쓰고 돌려보고 노세요.^^/
시민 -그리고 한겨레21의 표지 건으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게, 사진 하나 잘못 골랐다고 그러는 것 같습니까? 그동안 한결같이 부정적이고 비꼬는 자세로 대선정국을 흔들어 왔던 잘못이 여기에서 터진 거라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한겨레와 진보 언론들은 '진보어용지식인'이라는 말이 등장했을 때부터 긴장했겠죠. 지난날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자기들을 향한 화살이라는 걸 알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되어 달라 누가 요구한 적도 없는데, 지레 '어용언론? 말도 안 돼!' 하며 미리 작성 된 날조 기사, 급 떨어지는 사설로 시민을 '문빠'로 내 몬 게 그들이에요. 차라리 제대로 된 기사로 정부 비판을 했다면 나았을 겁니다. 근데 정말 급 떨어지는 꼬투리로 먹물 투척을 한 건 진보언론들이에요. 거기엔 당신도 포함됩니다.
이슬비 -기레기야. 니들같은 것들도 언론이라고 ㅉㅉ 부끄러운 줄 좀 아세요. 아직도 국민들이 개돼지인줄 아냐? 쓰레기같은 기사. 쓰레기 기자들 ㅉㅉ
호빵매니아 - 지지자들이 투정 한마디 한게 그리도 아니꼬왔냐..
시민 -김도연 기자님. 페북 대응 실수하셨어요. 미디어 오늘 지지하고 응원해 왔는데.. 정말 실망 했습니다. 이번 사태를 잘못 해석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지금 사람들이 말하고 싶은 건 '우리가 만든 대통령과 허니문 즐기고 있는데 늬들이 왜 초쳐? '가 아니라.. 언론으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보여주고 싶다면.. 적어도 ~씨로 여론몰이 하거나.. 페북에 술 먹고 '문빠들아 덤벼라'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는 거거든요. 사람들의 댓글 캡쳐해서 '일베가 따로 없네'라고 일갈하기 전에, 오마이뉴스와 한겨레의 대응이 얼마나 감정적이고 저열했는 지는 혹시 알아 보셨나요? 동료 기자들이 자기들 페북에서 '국정원' '부엉위 바위'등을 운운하며 대통령 지지자 전부를 싸그리 깎아 내리는데.. 이걸 정상적인 언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Sum -이럴거면 사과는 왜했는지.. 졸렬하고 극성스러운 지지자 만들고 싶은모양인데, 국민이고 독자입니다. 주인이 말해서 사과는 하고 기사는 이따구로 쓴다? 기자 왜 하세요?
개와돼지 -보수언론=보수에게 무조건 충성충성 자칭 진보언론 =모두까기, 이유없음 왜냐면 남을 각아 내리면 내가 괜히 잘난 것 같음 ㅜ
대너리스 -독자를 개라고 표현한 어느 졸렬한 기레기 양반의 기사를 보고 계십니다
짱돌 -때로는 사진 한장이 10페이지 논설 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한겨레의 문제인 사진 선택 편집은 누가 봐도 부정적 안티 이미지화 전략이다. 논설은 논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 하지만 이미지 왜곡은 직접적인 이미지 왜곡화 공격 수단이다. 콧구멍 찍은 사진이 뭔 전문가 보도사진이냐!!
김병석 -미디어오늘 기자가 기자냐? 어차피 조중동안되거 한경오까지 못간 떨거지집단 주제에 어디서 선민의식을 가지고 국민을 가르치려드냐. 개떼들이랑 싸울 시간에 니 목줄관리나 잘하고 본업에 충실하자
왈왈 -타임지가 부러웠으면 부러웠다고 말을 하시고요 사람들이 바보입니까 이전 행적들과 비교해서 비교가 될만 하니까 말하는거죠 여튼 국가의 주인인 나에게 개떼라고 친히 부르시니 더 짖으란 뜻으로 알겠습니다. 왈왈.
김동균 -정말 문재인 지지자들을 적으로 돌리려고 하는 겁니까? 물론 강성 지지세력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엔 이간계를 쓰는 알바세력도 분명 존재합니다. 노무현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한다면 그저 적이 될뿐입니다. 서로 한걸음 뒤로 물러납시다.
문재인 대통령 화이팅!
개떼중하나 -입진보들이 슬슬 입이 간지러운가 봅니다. 지난 노무현때 처럼 되지는 않을겁니다. 국민을 개떼로 편가르기하는 그런 오기로 후원 구걸하지말고 하던데로 계속하길 바랍니다. 어차피 큰 기대는 없으니까요.
Lee -김도연기자가 독자를 개떼라했으니.. 개는 후원금을 끊겠습니다. 저와같은 생각 갖은사람 많은것같습니다 절독할테니 후원금 끊는방법 공지띄우시기바랍니다
Why -좀 그렇다! 세상만사를 빼닥하게 보면 모든게 빼닥하게 보인다. 김대중부터 문재인까지 일관되게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를 보면서 좀 어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한겨레가 유독 문재인에 대해 부정적 시각으로 기사를 써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겨레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을 이유가 있을까? 언론에서 문빠 문빠 하는데 문빠가 진짜 얼마나 될까? 한겨레도 문빠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니 비판 받는것은 당연 하겠지만 나는 부정적인 의미의 문빠는 극소수라고 생각한다. 긍정적 의미의 문빠는 아주 많다고 생각하며 나도 그런 문빠라고 자부한다. 기사 하나 하나에 너무 과잉 대처 하지말자! 그리고 한겨레에 진짜 반문재인 정서가 있다면 그것대로 존중해 주자! 단 조중동 같은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해지자!
미디어오물- 미디어 오물 글 잘 봤습니다 카악 퉤!
교란 -휴...애잔하네요...열등감으로 완전 똘똘 뭉쳐서는 ㅠㅠ한때는 메이저 언론인을 꿈꿨을텐데....꿈을 못 이뤄서 그런가..뭔가 뒤틀린 느낌...힘내세요!!홧팅!!
미친개떼 -아~이런 득보잡 기러기까지 신경써야하다니 피곤하다
개떼 -여기가 유명한 김도연 기자새끼님 계신 곳입니까? 하이쿠... 참언론 기자새끼님을 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졸지에 개가 되다니.... 정체성을 갖게 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기자새끼님!! 개떼도 읽을 수 있게 기사에 개소리를 써주신 아량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참언론 미디어오늘과 김도연 기자새끼님의 개소리를 계속 기대합니다.
ㅉㅉ -무조건 지들이 옳다는 교만함으로 독자들의 이해를 강제하는 행위야말로 파시즘인데 그걸 또 독자들한테 전가시키고 자빠졌네. 니들 주인은 대체 뭐길래 독자들과 싸우라고 시키든?
ㅇㅇ - 문베나치들 또 ㅈㄹ해댔네 아무 문제도 없는 사진이구만
정신차려라 -이게 다 언론이 제기능을 못해서 개같이 달려든다는 생각은 안하는가??? 너희들이 쓰는 한글자, 한글자로 인해 사람이 죽을수도 있다고!!!
아티라 -진보언론 지난 9년동아 정부비판 얼마나 했냐.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 해라.
정부와 대기업에서 광고받아 어용언론 역할이나 하던것들, 노골적으로 안철수를 밀던 것들이 하찮은 걸로 트집잡고 발목잡는거 다 보인다. 스스로 진보언론이라 말하지 말라. 그 썩어버리 머리와 손가락으로 쓴 글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다시는 노무현처럼 문재인을 보내지 않겠다ㅑ.
진보언론들아 -지금껏 어이없는 당신들 기사에 조목 조목 비판할땐 딴청이더니ㅜ 이번 사진도 단지 사진의 문제가 아니고 이전의 행태와 맞물린일. 비판받아 억지로 내는 사진이라 하기 싫은데 고른 사진티가 나서 비판하는데 저런식의 언플. 아이돌? 네들이 지금껏 문재인에 대해 한번이라도 제대로 알린적이 잇어?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이 어떤 사람인지 철저히 가리고 패권의 틀에 가둔 행적을 너무 잘 기억해.
그래서 지지자들이 정권 초부터 하는짓에 태클거는거고 (또 그럴가봐) 그런지지자를 일베급으로 몰아 ? 몇몇의 과격성을 논하기 전에 당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란말이 안들리냐고 ..진보 언론은 잘못을 인정하면 자존심에 스크레치나냐? 어디서 우릴 박사모 일베에 갖다 부쳐. 한겨레편집장이 문재인 싫어한건 팩트쟎아
83793- 여기있는 애들은 어디 딴 세상에서 살다왔나봐 그게 아니면 피해망상에 쩔어서 저러는 건지. 한경오를 비롯한 진보언론들이 이명박 박근혜때 입을 닥치고 있었다고??? ㅋㅋㅋㅋㅋㅋ 그냥 까고싶으면 까고싶다고하지 거기다가 이유를 붙이기는 니들 덕에 문재인은 혼자 쓸쓸히 망할거야 사실 니들은 별로 도움이 안되거든. 노무현때도 니들은 도움이 안됬어. 이젠 자각할때도 된거 아니냐? 그렇게 도움을 주고 싶으면 민주당에 입당해서 먼저 민주당을 당으로 만들던지. 가벼운 손가락 쳐 놀리면서 욕라믄 꼬라지들이라니 쯧쯧
이렐린 -기사가지고 까면 쌩까고, 표지사진가지고 까면 기사로 까라 그러고. 앞뒤가 하나도 안 맞아 니들은.
진보언론?반성해라 -언론도 비판받아야 한다 .특히 진보언론이 노무현에게 보였던 행태에 더 가슴이 아팠다고 하셨듯 문재인에게도 같은 행태를 보였다 문재인 정치중에 온갖 패권패권 친노친문 욕하고 이건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노통깠던걸 합리화하는걸로 보이고 절대 이성적이지 않앗어 . 우린 그기자들 이름까지 기억해 .그런데도 자기들 지적 받으면 다 악성댓글이래 .우리가 그냥 욕만햇어 분명히 잘못된 부분 지적하는데 언론은 무슨 권력이라서 견제를 안받아 ..수준 좀 높이라는건데 우릴 박사모,일베급에 비유하다니
헐 -이게 단순히 사진의 문제로 보이나요? 자기성찰 수준이 고작 그 정도니 어직도 이러고 있는거겠죠
정환 -MB, ㄹ혜 때는 찍소리 못하고 질답대본만 읽은 주제에 민주정부 들어오니 만만하죠?
경향 : 대통령 밥퍼먹어
오마이 : 김정숙씨는 내부방침
한겨레 : 덤벼라 문빠들아
미디어오늘 : 진보언론 혐오 "논란"
우리는 노짱 등에 칼 꽂히는걸 봤어요. 이젠 안당합니다.
미디어오늘도 한경오 기레기에 편승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SM -좀 물어봅시다. 보수언론은 그렇다치고 왜 진보 언론이 문재인대통령에게는 왜 그리 야박한 거죠? 더 잘해달란 소리도 아니고 그냥 똑같이만 대해달라는 것입니다. 팔거면 다른쪽도 같은 양과 강도로 파고 비판할거면 다른 쪽도 같이 그리하세요.
삼다수 -왜 문재인 지지자들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위하고 나서는지 언론사들은 모르는걸까? 그들의 절박한 마음을 정말 모르는걸까? 그저 박사모, 문빠 같은 단어를 갖다붙이며 지지자들을 폄훼하는 언론인들이 너무 안타깝다.
자바라 -마지막 문단에 댓글 끄집어 와서 본인이 하고싶은말 하는 방식...이거 종편에서 졸라 써먹는 수법인데....진보언론이라는게 국민들 바보로 알고 하는 짓거리 보면 거시기하다...이러니 욕을 먹는겁니다....노무현때도 조.중.동의 논리를 가지고 와서 비판하더니 그 버릇 아직도 그대로네....
한겨레21 편집장의 행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앞으로 어용시민되서 조.중.동 뿐만 아니라
가난한 조.중.동까지 상대해야 할거 생각하니 답답합니다...
"덤벼라. 문빠들" 한겨레 기자, '증오와 거짓 사과' 논란 516국민
안수찬 한겨레신문 기자의 소위 ‘문빠(문재인 대통령 열성 지지자)’ 저격 글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모양새다. 안 기자는 자신의 발언에 비난이 쏟아지자 사과하고 글을 남긴 페이스북 계정을 닫았지만 SNS에서는 안 기자의 발언을 두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안 기자는 지난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신문에 옮긴 뒤로 시간이 좀 남는다. 붙어보자. 늬들 삶이 힘든 건 나와 다르지 않으니 그 대목은 이해하겠다마는, 우리가 살아낸 지난 시절을 온통 똥칠하겠다고 굳이 달려드니 어쩔 수 없이 대응해줄게. 덤벼라. 문빠들”이라는 글을 남겼다.
안 기자는 이 글로 소위 ‘문빠’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그의 페북에는 “언론인이 독자들에게 싸움을 걸었다”는 식의 댓글이 이어졌고, 게시물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안 기자의 선전포고는 ‘한겨레21’ 1162호(5월22일자 “새 시대의 문”)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 표지를 놓고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한겨레21’에 대통령에게 악의적이라며 비난하고 불매·절독 등을 압박한 것과 관련이다. 안 기자는 최근 ‘한겨레21’ 편집장을 지내고 신문으로 복귀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당시 안 기자는 이들을 겨냥해 “시민 누구나 절독 또는 절독 캠페인을 통해 언론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면서도 “저널리즘의 기본을 진지하게 논하지 않고, 감정·감상·편견 등에 기초해 욕설과 협박을 일삼는 집단에 굴복한다면, 그것 역시 언론의 기본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앙금은 가시지 않았는지 안 기자는 “덤벼라. 문빠들”이라며 지지자들을 자극했다. 안 기자의 페북글이 퍼지면서 비난 댓글이 쏟아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안 전 편집장은 사과했다. 그는 “죄송합니다. 술 마시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밑바닥을 드러냈습니다”라며 “문제가 된 글은 지웠습니다. 한겨레에는 저보다 훌륭한 기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자숙하겠습니다.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십시오. 거듭 깊이 사과드립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 기자는 페이스북 댓글에 “문빠들 솎아서 차단하는 기능을 제공한 페북에게 새삼 감사하다”라는 글을 남겼고 네티즌들로부터 ‘거짓 사과’라는 비난을 샀다. 1만개 넘는 댓글에 결국 안 기자는 페이스북 계정을 폐쇄했다. 하지만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점점 확산됐다. 네티즌들이 편집하는 나무위키 안수찬 편은 부정적인 내용으로 도배됐고, 문 지지자들 중 오피니언리더들은 안 기자에 대해 비판을 쏟아냈다.
이정렬 전 판사는 16일 SNS를 통해 “극렬 문빠 중 한 사람이자, 한겨레에 칼럼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중히 여쭙겠습니다.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관계자분들. 도대체 가만히 있는 문빠들한테 자꾸 왜 이러십니까?답변 부탁드립니다”라고 썼다.
고일석 전 문화일보·중앙일보 기자도 SNS를 통해 “문빠라는 속성을 가진 사람들, 그 무리의 가장 큰 특징이 통일된 지도부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게 있을 수도 없다는 것. 그래서 한 마디로 누구도 못 말린다는 것”이라며 “이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일 것 같은데 문빠들은 먼저 안 건드리면 안 싸운다. 문빠를 건드리고 싶은 욕구에 불타오르는 사람들은 이 점을 꼭 유념하는 게 좋겠다”고 적었다.
반면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니꼽다고 좌표 찍은 뒤 개떼처럼 몰려가 일점사해서 굴복시키는 시대면, 언론이 왜 필요한가. 그게 파시즘인데”라고 지적하면서 “기자 사냥꾼들, 그거 당신들 주인에게 부끄러운 짓이오”라는 의견을 밝혔다.
5.18 가산점 "유공자 예우 당연" vs. "다른 혜택으로.." 파이낸셜뉴스 5.16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공시족 40만 시대, 5.18 가산점 논란
해당자 공무원 취업은 3만여명 중 1.2% 수준
가산점 찬성측 "민주화운동 저평가.부정.. 혜택 더 늘려줘도 부족해"
가산점 반대측 "1%로 당락 갈리는 상황.. 공정경쟁이 아닌 차별"
지난 4월 초 서울 노량진과 부산의 주택가에서 '가짜뉴스' 스티커가 대거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A4용지 크기의 스티커로 만들어진 이 가짜뉴스는 5.18 민주유공자 공무원시험 가산점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빽빽했다. '5.18 유공자 자녀들 국가고시 과목당 10% 가산점' '해마다 늘어나는 5·18 유공자 입양자녀들' '공무원 싹쓸이' '공부해봐야 소용없다!' 등의 원색적인 문구로 가득했던 스티커는 결국 극우 세력이 만들어낸 가짜뉴스로 판명났다. 하지만 5.18 가산점 논란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공시족' 40만 시대와 이 시기 전국에서 치러진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과 맞물려 찬반 논쟁으로 번졌다. 급기야 19대 대선에서 후보 간 이견을 확인하면서 첨예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가짜뉴스가 쏘아올린 5.18 가산점 논란
16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가짜뉴스가 주장한 5.18 유공자 자녀의 공무원시험 가산점은 10%가 아닌 5%다. 유공자 본인이나 배우자만이 10%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그것도 유공자 본인이 생존해 있으면 배우자의 가산점도 5%로 제한된다. 또 유공자에게 자녀가 없으면 입양자녀 1명에게만 5% 가산점 혜택이 있다.
2006년 이전에는 국가유공자 가족에게 10%의 가산점을 줬다. 그러나 2006년 헌법 불합치 결정 뒤 5~10%만 주는 것으로 변경됐다.
현재 공무원시험에서 10%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는 '순국선열' '전몰군경' '순직군경' '재일학도의용군인' '4.19혁명 사망자' '순직공무원' '특별공로순직자' '지원순직군경' '지원순직공무원' '재해사망군경' '재해사망공무원', '5.18 사망자 또는 행불자' '특수임무사망자 또는 행불자'의 배우자다. 10% 가산점을 받더라도 과다합격 문제 때문에 합격률은 전체 합격자의 30% 이내로 제한된다.
올 1월 기준 현재 보훈처에 등록된 보훈대상별 현황을 살펴보면 10%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유공자는 적과 싸우다 숨진 군인이나 경찰을 뜻하는 전몰군경의 유가족이 3만6553명으로 가장 많다. 이어 순직군경 1만7128명, 순직공무원 8736명, 순국선열 789명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 매년 공무원 1만명을 채용한 것을 감안하면 5.18 가산점 10%를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적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동안 유공자 본인과 유가족이 공무원 등 국가기관에 가산점 등의 혜택을 보고 실제 취업한 것은 391명에 그친다. 6·25전쟁 참전 유공자 등 모든 국가유공자 및 유가족들이 가점대상으로 취업한 인원은 3만2751명으로 전체 유공자의 1.2% 수준에 불과하다. '5.18 유공자들이 공무원 자리 80~90%를 싹쓸이한다'는 스티커의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공무원 합격증" vs. "공시생 역사의식이 이래서야"
그럼에도 5.18 가산점 논란은 여전히 찬반 씨름 중이다. 청년 취업시장이 최악의 지표를 보이면서 공무원 지원 쏠림현상이 나타났고,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서 피해의식도 커졌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8일 전국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는 총 4910명 선발에 22만8000여명이 지원했다. 약 46.5대 1의 경쟁률이다. 5급, 7급 공무원시험과 지방공무원 채용시험 등 각종 공무원시험에 매달리는 인원을 모두 합한 이른바 공시족 수는 4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5.18 가산점 반대 측은 공정한 경쟁이 아닌 차별이라는 입장이다. 처음부터 가산점을 줘 다른 출발선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보다는 합격 이후 다른 방식의 보상이 낫다는 주장이다.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A씨는 "군 가산점 등 다른 가산점들이 폐지되거나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5.18 유공자들만 혜택을 그대로 받는 것은 차별"이라며 "1%로 당락이 나뉘는 공시생 입장에서는 5~10% 가산점은 태어날 때부터 공무원 합격증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페널티를 받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시생 B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대선 TV토론에서 군 가산점보다는 호봉 가산이나 국민연금 크레딧으로 보상하는 게 좋겠다고 했는데 5.18 가산점도 그런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군 가산점은 반대하지만 5.18 가산점은 동의한다는 입장을 대선 TV토론에서 밝힌 바 있다.
반면 5.18 가산점 찬성 측은 민주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부산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C씨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당연한 것들이 민주유공자의 희생에서 비롯됐다"며 "오히려 혜택을 늘려줘도 부족할 판에 축소하자는 움직임은 이 나라 국민으로서 몰염치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공시생 D씨도 "국가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저평가하고 부정하는 것 자체가 역사의식에 큰 문제를 드러내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아이 키울 때보다 버리면 돈 더 주는 정부 517 국민
미혼부모 양육 지원금 보육원의 15∼40% 수준… “버리도록 장려하는 꼴”
미혼모나 미혼부가 만 0세 아이를 키울 때 정부에서 받을 수 있는 양육 지원금이 아동 양육시설(보육원)이 받는 아동 1인당 보조금의 약 15∼4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원은 과거에 고아원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이 등을 보호하는 곳이다. 전문가들은 “아이를 직접 키우기보다 내다 버리도록 장려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16일 서울시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서울시 보육원에 지원되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총액은 한 달 기준으로 아동 1인당 약 247만원이다. 우선 서울시 내 34개 보육원에 연간 지원되는 인건비, 시설관리운영비, 생활아동 지원비 655억5960만원을 보육원 아동 수 2440명으로 나누면 1인당 월 224만원 정도다. 여기에 식비 등을 포함한 아동 1인당 생계급여비 지원액이 약 23만원이다. 보육원 지원금은 서울시가 높은 편이긴 하지만 다른 지자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0세 아동을 가진 미혼 부·모가 정부로부터 받는 양육 지원금 총액은 37만원이다.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 지원금은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만 24세 이하이거나 아이가 만 5세 이하라면 17만원이다. 그 외 경우엔 12만원이다.
이 액수에 모든 양육가정이 받을 수 있는 양육수당이 만 0세는 월 20만원, 만 1세는 월 15만원, 만 2∼6세는 월 10만원이 추가된다.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만 9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어머니가 아동 1인당 육아비용으로 매달 평균 107만원을 쓴다고 답한 것과 비교할 때 턱없이 부족한 지원금이다.
미혼 부모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지원금은 다소 높아진다.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 보육에 따라 보육료 명목으로 종일반은 월 82만5000원(만 0세), 월 56만9000원(만 1세), 월 43만8000원(만 2세)을 지원받는다. 대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 아동수당은 지원받지 못하고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만 받을 수 있다. 부모가 모두 있는 양육 가정은 한부모가족 아동양육비를 제외하고는 미혼 부모가 받는 것과 같은 지원금을 받는다.
지원금만 놓고 따지면 정부의 양육·보육 정책은 아이를 직접 키울 때보다 버릴 경우 더 많은 지원을 하는 셈이다. 권오용 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은 “경제력과 양육능력이 불가분의 관계인데, 현재 정부 정책은 부모가 아이를 스스로 키우고자 하는 의지를 약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해준다면 아이를 버리는 일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새정부, 노동정책 '참여정부 악몽' 되풀이하나 516 내일신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1만원" 등 기대감 높여 … 민주노총, '파업·대화' 양면전략으로 압박 들어가 / 오늘 일자리위 설치안 통과
문재인정부가 취임초 노동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자칫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밟았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비정규직 건의 듣는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 참석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건의하며 눈물을 닦는 참석자를 보고 있다. 뉴시스 전신 기자
특히 상대적으로 '친노동' 정부를 자임하는 정권이 들어서 노동현장의 기대감이 커지면서 임기초부터 국정운영의 부담이 커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사흘만인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중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고 한 발언의 파장이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를 중심으로 정부는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규모와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따른 효과적인 정규직 전환 방법을 찾느라 분주하다.
노동계도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인천공항공사는 물론 주요 공기업의 하청·용역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요구도 본격적으로 나올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정부와의 이른바 '노정교섭'을 요구하면서 압박을 강화할 태세다. 민주노총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어느 정부에서나 개혁의 최적기는 출범 초기"라며 "저임금 노동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불평등과 양극화를 해결하는 핵심 열쇠"라고 했다. 여기에 다음달 말까지 결정하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수준도 관심이다. 문 대통령은 선거기간중 공약으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려면 올해부터 매년 16% 가까운 최저임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의 노동 관련 핵심역할을 했던 한 관계자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 해법은 공기업의 정원과 예산 등 복잡한 현안과 연관돼 있어 만만치않은 문제다"라며 "새정부가 보다 주도면밀한 계획을 갖고 접근하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노동계와 정치권에서는 노무현정부 초기의 모습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03년 5월 화물연대와 철도노조의 파업이 연쇄적으로 벌어지고, 이 과정에서 정부가 효과적으로 수습하지 못하면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을 했던 문 대통령은 철도노조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노동계 출신의 한 정치권 인사는 "노 전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경제계보다 양대노총을 먼저 방문하는 등 노동계에 대한 애정을 보였고, 이에 대한 노동현장의 기대가 높았다"며 "하지만 화물연대와 철도노조 파업, 두산중공업 노조원의 사망 등 계속되는 대형 노사분규로 지지층이 등을 돌리는 등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따라서 새정부와 노동계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신규 일자리 창출 △노동권 강화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정부와 노동계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면 자칫 '친노동'을 지향하는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결과적으로 노동계 입장에서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도 지난 12일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과의 간담회에서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고 하지는 말라"며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해 나가야 한다"고 말해 지나친 기대감에 대한 경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최영기 전 한국 노동연구원장은 16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예전에는 공약과 정책을 인수위 단계에서 조율하거나 톤다운했는데, 이번 정부는 이런 기간이 없어서 걱정이 된다"며 "대통령이 정책의 전면에 나서서 진두지휘하는 방식은 이후 정부정책 운용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차분하게 준비된 정책을 현장에서 관철하는 방식으로 해야한다"고 말했다.
묻지마 핵무기 개발사 516 시사인
핵 문제를 이해하려면 무기 개발사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핵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지금 세계가 얼마나 위태로운지,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생각에 잠기게 만든다. 핵 개발은 순서에 따라 이루어진다. 핵분열폭탄(원자폭탄·원폭)의 연구와 실험에 이은 실전 배치, 핵융합폭탄(수소폭탄·수폭)의 연구와 실험에 이은 실전 배치라는 단계를 밟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를 실어 나를 효과적인 운반체를 만들면 무기체계가 완성된다. 운반체로는 전폭기, 잠수함, 탄도미사일 등을 들 수 있다. 운반체에 얹어 장거리를 실어 나르려면 핵폭탄의 무게와 부피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 지금 북한은 수소폭탄을 잠수함과 탄도미사일에 장착해 대륙을 넘어 날려 보낼 수준에 도달했다고 주장한다.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1945년 7월 뉴멕시코 사막에서 영국과 공동으로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해 세계 최초로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핵 개발은 철저히 국익만을 위한 벌거벗은 레이스였다. 옛 소련은 맨해튼 계획에 첩자를 심어 정보를 수집한 뒤 미국보다 4년 늦은 1949년 실험에 성공했다. 적어도 10~20년은 핵 기술을 독점할 수 있으리라 믿었던 미국은 충격을 받고 수소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해 7년 만인 1952년 실험에 성공했다. 하지만 기술 격차는 더욱 좁혀져 소련은 그로부터 1년 뒤인 1953년 수폭 실험 성공 사실을 세계에 알렸다.
핵 개발에 협력하고도 기술을 공유하지 못한 영국은 배신감에 떨며 독자 개발을 선택했다. 협력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을 바탕으로 1952년 원폭 실험, 5년 뒤인 1957년에는 수폭 실험까지 마쳤다. 미국은 유럽 각국에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으면 안전하다며 핵 개발에 나서지 말라고 종용했으나 프랑스는 독자 노선을 걸었다. 프랑스는 정보조직을 풀가동해 1960년 원폭, 1968년 수폭 실험을 마쳤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핵 기술을 넘겨받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나 국익은 이념보다 진하다는 걸 실감해야 했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커나갈까 두려워한 소련이 1959년 핵 협정을 파기했다. 중국은 ‘바지는 못 입더라도 핵폭탄은 만들라’는 마오쩌둥 국가주석의 명령에 따라 미국과 소련에 첩자를 보내 닥치는 대로 핵 기술을 빼내기 시작한다. 미국과 소련은 손을 맞잡고 중국을 응징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중국은 1964년 원폭 실험에 성공한 뒤 앞서가던 프랑스를 추월해 1967년 수폭 실험까지 마쳤다. 앵글로색슨, 백인, 기독교 국가의 핵 독점 공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한 일본 정치인 가운데는 공포에 떨기는커녕 황색인종도 핵을 가지게 됐다며 환호작약하는 이들이 많았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할 때마다 중동의 여러 도시에서 환영 모임이 벌어지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핵은 요상한 물건이다.
1965년부터 국제사회는 핵 확산 금지를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1968년 세계 각국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서명했다. 하지만 기왕에 핵을 가진 5개국 이상으로 핵이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다짐은 금세 빛이 바랬다. 1974년 인도가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인도와 세 차례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던 파키스탄은 사활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1979년 전투기 수출을 중단한 데 이어 통상 자체를 금지하겠다는 압력까지 넣었지만 파키스탄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의 온갖 협박과 방해를 뿌리치고 파키스탄은 1998년 원폭 실험에 성공했다. 핵 기술은 결국 이슬람 세계로까지 넘어갔다. 파키스탄은 작고 휴대하기 간편한 전술핵무기를 대량 보유 중인데, 이 나라에서 극단주의자들의 세력이 날로 커가고 있어 국제사회의 근심은 깊어간다. 기술의 연원을 추적해보면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려고 인도에 핵 기술을 흘렸고, 중국이 이에 발끈해 파키스탄에 핵 기술을 전수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파키스탄의 기술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되므로 미국과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흥분하는 데는 다분히 희극적인 요소가 있다.
북한 핵기술은 6개월마다 ‘신상’을 내놓는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이어 이스라엘과 북한,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시대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란, 리비아 등이 은밀히 핵 개발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과 북한은 이미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올랐고, 이란은 미국과 협상에 따라 잠정 중단,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리비아는 핵 개발 계획을 사실상 폐기한 상태이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란의 핵에서 다시 연기가 나기 시작해 핵은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뜨거운 현안이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 것은 옛 소련의 몰락이었다. 핵무기를 중앙아시아 위성국가 여러 곳에 흩어놓았던 소련은 해체하면서 많은 무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국제사회에는 핵무기 암시장이 열렸다. 북한은 이 암시장에서 일부 핵탄두와 잠수함 발사 기술(SLBM)을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라진 핵탄두 가운데는 일본의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것과는 비교하기 힘들 만큼 파괴력이 강한 것들도 있다.
핵탄두뿐만 아니라 원전이나 연구소, 병원 등에서 사용하던 핵물질도 함께 사라졌다. 이런 고위험 방사성 물질과 재래식 폭탄을 결합하면 이른바 ‘더러운 폭탄’을 만들 수 있다. 여행 가방만 한 크기의 이런 폭탄은 대도시의 여러 블록을 순식간에 오염시킬 수 있다. 사상자를 도우려고 뛰어드는 시민이나 의료진까지 위협하므로 말 그대로 더러운 폭탄이다. 이런 공격을 받은 도시는 여러 달 동안 공항·지하철·병원 같은 공공시설까지 폐쇄해야 한다. 테러리스트에게는 매력적인 수단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더러운 폭탄이 지상에서 터진 일은 없지만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 뿐 시간문제’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유럽에서 체포된 IS 전사들이 핵물질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다는 증거가 여러 차례 수집되었다. IS는 2015년 5월 ‘핵물질을 구입하기에 충분한 자금을 확보했고 곧 영웅적인 결과를 끌어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힘의 외교를 내세운 사람도 많지만 핵 확산 방지와 핵 추방을 위해 애쓴 이도 있다. 오늘날 세계를 위태롭게 만든 데에 미국 책임이 크다고 인정한 미국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버락 오바마다. 그는 지난해 5월 지구상에서 핵무기 공격을 받은 두 곳 중 한 곳인 일본 히로시마를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방문했다. 오바마는 재임 중 내내 핵무기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2010년 러시아와 전술무기통제조약(New START)을 맺었다. 일련의 핵 안보 정상회담을 열어 핵물질이 ‘나쁜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에서 코카서스 산맥(캅카스 산맥)을 넘어 이란에 이르는 밀리터리 루트를 통해 핵물질이 이동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금과 장비를 제공해왔다.
하지만 그 같은 오바마도 한 군데서만은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오바마의 감시와 경고 아래서도 북한은 핵 능력을 쉼 없이 키워왔다. 북한의 미사일은 한국이나 일본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위협하는 중이다. 북한의 핵 기술이 6개월마다 ‘신상’을 내놓을 정도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어서 미국 군사 전문가들은 트럼프 다음대의 미국 대통령은 정말로 미국 본토 방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북한 핵문제가 이렇게 커진 것은 오바마 대통령조차 이 문제가 워낙 다루기 까다로워 ‘구석에 처박아놓기(back burner)’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북한보다 이란 쪽에 주력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란은 오일과 가스를 수출해 먹고산다. 수출 금지와 국제 결제 시스템에서의 제외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이란은 최소한 북한보다는 국민의 눈치를 더 보는 편이다. 국제 제재가 강화돼 경기가 나빠지고 국내에서 불평의 소리가 나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핵 개발 동결 협상을 벌여 성과를 올리기에는 북한보다 이란이 훨씬 좋은 상대다. 북한은 이란에게는 먹히는 위협이 전혀 통하지 않는 나라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불행한 일이다. 그는 북한 핵이 문제라면 한국이나 일본도 핵을 개발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는 이란과의 핵 협상 역시 폐기할 수 있다는 뜻을 비쳤다. 중앙아시아의 핵물질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편성된 예산마저 삭감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유지하면서도 그에 따른 대가는 지불하지 않으려고 한다. 예사로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를 마구 뒤섞는 잘못을 범한다. 그의 장단에 맞추자면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과 사드 배치 비용, 그리고 한·미 FTA에 소파(SOFA) 협정까지 모두 한꺼번에 탁상 위에 올려놓고 일괄 협상을 해야 할 지경이다.
워낙 말이 왔다 갔다 해서 개별 사안에 대한 트럼프의 진의는 알 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체감하는 핵 위협이 커졌는데도 우리가 한·미 동맹이나 국제법에 기댈 수 있는 여지가 좁아졌다는 점이다. 지금 상황만 보면 한국은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핵 개발에 착수해야 정상이다. 프랑스처럼 과연 미국의 핵우산이 안전한지 의심해야 마땅하다. 미국이란 억지력이 약해져 북한 핵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된 일본이나 타이완, 그리고 아시아 여러 나라와 연대할 필요성도 커졌다. 모르긴 해도 일본의 아베 정권 내부에서는 미소 짓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트럼프가 북한 핵까지 비즈니스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한국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여지가 커지는 이점은 있다. 빈사 상태인 한국 정부의 외교력을 살려낼 기회이다.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북한 지도자 김정은과의 직접 접촉 창구를 열어야만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동안 북한을 적대해 우리는 북한의 김정은 정권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다.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이 모두 핵 경쟁에 나서더라도 핵 보유국 지위를 우선 굳건히 하는 게 김정은의 확고한 뜻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그다음이어야 한다. 기막히게도 우리는 김정은에 대해 일본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나 미국의 전직 프로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먼이 전해준 이상을 알지 못한다.
칼 빼든 문재인 대통령, 사정 기관을 사정하다 515시사저널
검찰 개혁, 신호탄에 불과…“경찰·국정원·국세청도 손본다” 문재인 대통령 책과 인터뷰 통해 들여다본 ‘사정기관 개혁 청사진’
“청와대에 혁명군이 들어왔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근무한 정부부처 파견 공무원이 5월12일 기자에게 한 말이다. 이 공무원은 이날까지 청와대에 근무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를 임명한 5월11일 다음 날의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혁명군 100명이 청와대에 들어온 것 같다. 들어와서 새롭게 (청와대 직원을) 세팅하고 있다. 혁명군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표찰로 달고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청와대와 정부부처 모두 술렁술렁하다. ‘정권교체’로 인한 ‘인적 교체’ 작업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역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다. 또 재현되는 모습이 있다. 바로 고강도 사정(司正) 한파다. 이전 정권과 재벌 등의 비리 의혹을 사정기관들이 새로운 정권에 충성 경쟁하듯 파헤쳤다. 총사령부는 청와대, 야전사령부는 검찰을 비롯한 사정기관들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첫’ 사정 대상이 바뀌었다. 이전 정권과 재벌이 아니다. 바로 사정기관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한 고강도 개혁 의지를 이미 오래전부터 피력해 왔다. 실제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개혁 성향으로 비(非)검찰 출신인 조국 민정수석에게 검찰 개혁 지휘봉을 맡겼다.
검사와의 대화’에 감정 앙금 남아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2003년, 2005년), 시민사회수석(2004년), 비서실장(2007년) 등을 거치면서 사법 개혁과 검찰 개혁에 깊이 관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검찰과 국세청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2014년 정윤회 문건 사건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했다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까지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보고 있다. 한마디로 사정기관들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해 왔다는 것이다.
사정기관에 대한 사정은 검찰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경찰과 국정원, 국세청 등 유력 사정기관이 그 타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정기관 사정 정국’이 도래한 것이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까지 일단락 짓겠다는 마지노선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이 심중에 품었던 ‘사정기관 개혁 청사진’은 무엇일까. 이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했던 말과 썼던 글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가 했던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자서전 등 저서들을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개혁 밑그림’을 들여다보기 위해 시계를 참여정부 시절로 되돌려본다.
참여정부 초기인 2003년 3월6일 법무부는 고검장 인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검찰은 인사에 불만을 갖고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비(非)검찰 출신이었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 대한 거부감도 작용했다. 검사들의 반발이 계속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3월9일 평검사들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 전국에 TV로 생중계됐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아직도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 대한 ‘감정적 앙금’이 짙게 남아 있다. 2011년 6월 출간된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 나오는 대목이다.
“(검사와의 대화) 행사가 시작됐는데 이건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젊은 검사들은 끊임없이 인사 문제만 되풀이해 따지고 물었다. 인사 불만 외에, 검찰 개혁을 준비해 와 말한 검사는 없었다. 오죽했으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입맛이 씁쓸했다. 선배 법조인(문 대통령)으로서 젊은 검사들이 그렇게 바보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때 대통령과 우리는 검찰 개혁의 출발선을, 검찰의 정치적 중립으로 봤다. 즉 ‘정치검찰’로부터 벗어나는 게 개혁의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그들은 순식간에 과거로 되돌아가 버렸다. 검찰을 장악하려 하지 않고 정치적 중립과 독립을 보장해 주려 애썼던 노 대통령이 바로 그 검찰에 의해 정치적 목적의 수사를 당했으니 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정부종합청사에서 열린 전국평검사들과의 대화에서 서울지검 허상구 검사의 질문을 메모하고 있다. © 연합뉴스
文 “검찰, 거만하고 기득권적인 사고”
문 대통령의 분노와 원망은 자서전이 나온 지 5년이 지나서도 가시지 않았다. 지난 1월 발간된 그의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검사와의 대화는 노무현 대통령의 진정성에서 비롯됐다. 노 대통령은 사회의 공정성을 바로잡기 위해선 무엇보다 검사들의 책임과 청렴함이 소중하다고 판단했고 그들을 존중하는 기본적인 사고에서 검사와의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는 세력들이 고졸 출신 변호사였던 대통령에게 ‘학번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 식으로 거만했다. 기득권적 사고를 버리지 않았던 거다.” 문 대통령은 ‘거만’과 ‘기득권적 사고’란 표현을 썼다. 문 대통령의 검찰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 함축한 표현이다.
2011년 11월 출간된 문재인·김인회 공저인 《검찰을 생각한다》에선 검사와의 대화에 대해 “완전히 대한민국 검사들의 수준만 국민들에게 보여준 꼴이 됐다. 검찰의 문제점, 검사들의 수준, 검찰 개혁의 핵심 등 검찰의 본질이 정확히 드러났다. 검찰의 막무가내식 저항이 검사와의 대화가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였다”고 평했다. 또한 “참여정부가 미흡했던 점은 검찰 개혁에서 정치적 중립을 넘어서서 더 많은 개혁 과제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 법무부의 문민화, 과거사 정리 등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방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의 검찰을 포함한 법조계에 대한 불신은 강한 편이다.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선 “영혼 없는 관료라고 얘기하는데, 나는 관료나 공직자뿐 아니라 검찰이나 법조계 등 모든 분야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검사의 경우 처음 검사가 됐을 때는 정의를 구현하고 우리 사회 불의를 타파하는 데 큰 역할을 해야겠다, 그런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 검사가 직업화된다. 일단 자신이 수사한 사건은 어쨌든 죄로 만들어야 한다. 판사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처음의 마음을 버린 사람들 때문에 국민들이 검찰과 법조계에 대해 불신이 큰 거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유전무죄 병폐를 낳는 전관예우에 관해선 소극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전관예우를 막기 힘들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고위직 판사와 검사는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는 게 관행이자 문화”라면서 “우리나라도 그렇게 가야 한다는 반성이 있어서, 요새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출신 가운데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고 대학에서 강의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것이 정착되면 적어도 부장급 이상 판·검사 출신이라면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는 어떤 룰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법적, 제도적으로 칸막이를 쳐버리는 건 어렵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미국처럼 각 지방검찰청 단위의 검사장 직선제 실시를 주장한다. 이른바 검찰 분권화다. 이에 대해 과거 문 대통령은 “지방 분권이 확실히 되고 나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방 분권화가 제대로 되면 검찰뿐 아니라 경찰 역시 분권화해야 한다는 게 문 대통령 생각이다. 그는 “언젠가는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훨씬 더 지방 분권화가 돼야 하고 동시에 경찰도 분권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10일 서울 국회 로텐더홀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文 후보 시절 “공수처, 한시기구”
그렇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검찰 개혁은 뭘까. 바로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집중된 권한 때문에 ‘무소불위의 검찰’이 됐고 권력의 눈치를 보는 정치검찰이 등장했다. 현재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서 수사권은 경찰에게, 기소권은 검찰에게 분리 조정하는 것이 가장 빠르게 개혁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못 박았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에선 해결하지 못했다. 검·경 간 자율적인 조정으로 맡겨놨기 때문이었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도 이를 반성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강하게 수사권 조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수사권이 경찰에게 간 다음에도 경찰이 검찰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본다. 그게 완전히 제대로 되기 전까지는 고위공직자들이 수사를 받는 기구가 한시적으로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그 기구가 고위공직자뿐 아니라 대통령과 대통령 측근까지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공수처다. 다만 문 대통령은 공수처를 ‘한시적 기구’라고 했다. 언젠가는 사라질 임시 조직이라는 얘기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두 번의 민정수석을 지냈다. 그 시절 아쉬움으로 남은 게 몇 가지 있었다는 소회를 밝힌 바 있다. 공수처 설치 불발과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일이 여기에 포함된다. 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에서 “(공수처 설치는) 국민들의 지지 여론이 높고 (2002년 대선 때) 양대 후보(노무현·이회창)가 함께 제시했던 공약인데도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장애가 생겼다. 공수처의 수사 대상 때문이었다. 대통령 주변 측근과 친인척, 청와대 주변 권력형 비리 위험인물이 기본 대상이다. 그 외 고위공직자들도 모두 망라된다. 국회의원도 당연히 포함됐다. 국회에서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면서 “형평성 문제가 있지만 국회의원을 빼고서라도 추진했어야 할 법안이다. 법안 통과를 목표로 했다면 국회의원을 수사 대상에서 빼는 것을 고려했어야 했다”고 못내 아쉬워했다.
그렇다면 현 정부에선 공수처를 만들 수 있을까. 국회의원을 수사 대상에 포함시킬 경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정계 원로인 박찬종 변호사는 5월3일 본지와 만나 “공수처는 신설되기 힘들다. 당장 국회에서 법률이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공수처 수사 대상에 국회의원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그 법률이 국회에서 통과되겠나”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대선 과정에서 공수처 설치에 대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 바른정당 의원들 가운데 반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따라서 공수처가 설치된다 해도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사정 당국의 큰 축을 담당해 온 국가정보원을 향한 개혁 의지도 강하다. 국정원 개혁안의 밑그림은 국내 정보 기능을 없애는 것이다. 그 대신 대(對)북한, 해외 정보와 국가 안보, 테러, 산업비밀 외국 유출 감시 등의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국정원 개혁에 대해 “국정원은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 정치 사찰에 악용됐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하고 대북한 및 해외, 안보와 테러, 국제범죄를 전담하는 최고의 전문기관, 이른바 한국형 CIA(미 중앙정보국)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인권유린의 빌미가 됐던 국정원의 수사 기능을 폐지하고 국가경찰 산하에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대공수사를 담당하게 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한국형 CIA·FBI 나오나
참여정부가 가장 역점을 뒀던 국정원 개혁은 탈(脫)정치와 탈권력화였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정보활동 탈정치를 위해 국정원 직원의 관공서와 언론기관 상시출입도 아예 금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다시 국정원 직원의 관공서와 언론기관 관리가 부활했다. 기관을 직접 출입하진 않았으나 외부에서 내부 직원들과 접촉하며 동향을 파악했다. 국회도 수시로 드나들며 국회의원 보좌진과 당직자 등을 접촉하며 정치 동향과 소문 등을 수집했다.
경찰 개혁도 예외는 아니다. 지방경찰청 분권화도 핵심 과제다. 《대한민국이 묻는다》에 따르면, 경찰 분권화는 2단계를 거친다. 1단계로 범죄수사와 민생을 구분해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로 나누는 방법이다. 2단계는 수사권까지 다 갖는 지방경찰로 완전히 분권화한다. 다만 미국 FBI(연방수사국)처럼 연방경찰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문 대통령은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지방 분권화가 제대로 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따라서 이는 장기적인 과제다.
이런 이유로 문 대통령은 지방 분권 강화를 강조한다. 그는 “우리 사회가 해야 하는 권력구조 개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지방 분권을 강화하는 것이다”고 역설한다. 중앙정부에 집중된 많은 권한과 재정을 지방으로 분산시키자는 주장이다. 그 분권이 이뤄지고 나면 그 토대 위에서 검찰과 경찰 분권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방 분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숙원이기도 했다. 세종시 신설과 대연정을 통한 지역구도 타파를 시도했던 게 그 예다. 그 바통을 문 대통령이 이어받는 셈이다.
개혁의 범주에서 국세청도 예외는 아니다. 문 대통령은 국세청에도 메스를 들이댈 공산이 크다. 참여정부 시절 국세청을 ‘보복성 세무조사’ ‘표적성 세무조사’나 하는 정권 운용 수단으로 삼지 않았다고 문 대통령은 회고했다. 국세청을 조세정의를 세우는 본연의 위치로 돌렸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다시 과거 행태로 국세청을 ‘정권유지 수단’으로 돌린 것이 유감스럽다”고 술회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영향을 끼친 국세청의 태광실업(회장 박연차) 세무조사를 대표적인 ‘표적 조사’로 강하게 의심했다.
정권이 교체되자마자 모든 분야에 개혁 드라이브가 강하게 걸렸다. 그런데 총대를 메고 나서야 할 사정 당국은 되레 잔뜩 긴장하며 웅크리고 있다. 개혁의 칼날을 가장 먼저 맞닥뜨려야 하는 형국이 됐다. 사정기관 개혁 과정에서 내부 반발도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된 ‘새 정권과 사정 당국의 일합(一合)’. ‘와신상담’한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참여정부를 반면교사 삼아 임기 내에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전적으로 문 대통령 의지와 추진력에 달렸다.
문 대통령 가슴에서 사라진 '세월호 배지'…517 노컷
가족협의회 "대통령이 세월호에만 매달리는 것 바라지 않아. 괜찮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내 왼쪽 가슴에 달고 있던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 배지'가 사라진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의 세월호 리본은 취임 첫날인 지난 10일부터 찾아볼 수 없었다.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지난 9일 밤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았을 때가 세월호 리본을 달고 나온 마지막 모습이었다.
물론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15일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김초원·이지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 절차를 지시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2일에는 미수습자 유골이 발견됐다는 기사에 달린 한 희생자 부모의 가슴 아린 댓글에 직접 댓글을 얹으며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어지게 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표를 얻으려는 심산'이라는 비판을 받을 때도 세월호 리본을 떼지 않았다.
이처럼 애착이 깃든 세월호 배지였지만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계속 달고 있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었다. 나라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서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자아낼 수 있다는 판단에 결국 배지를 떼어낸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 신분으로 세월호 배지를 단 것은 세월호 참사를 포함한 국가적 재난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대응을 다짐하는 차원이었다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실행 쪽에 초점을 맞추는 게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로 목숨을 잃었지만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받은 기간제 교사의 순직 인정 업무지시와 세월호 특조위 재조사 의사 천명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별로 괘념치 않는 분위기다. 세월호 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문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국정운영을 모두 총괄하시는 분"이라며 "세월호 일에만 매달리는 것은 유가족들도 바라지 않고, 리본을 떼어낸 것도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김초원·이지혜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절차를 지시했고, 민정수석실에서도 세월호 특조위 방해 정황 등에 대한 조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문 대통령이 우리들과 약속한 바를 하나씩 지켜가는 것 같아 (오히려)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고 덧붙였다.
독자 행동주의와 언론 개혁 [미디어오늘 1100호 사설] 517
“밥도 혼자 퍼서 먹었다.” 경향신문 트위터의 기사 소개 글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직접 식판을 들고 밥을 덜어먹는 사진을 소개한 글을 두고 온갖 악플이 쏟아진 것이다. 일부 독자들에게는 ‘퍼서 먹었다’가 ‘퍼먹었다’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오마이뉴스가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를 김정숙씨라고 부른 걸 두고도 예의가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영부인을 어떻게 씨라고 부르느냐”는 댓글도 눈에 띈다.
한겨레21도 문 대통령 표지 사진 때문에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대선 기간에 한 번도 문재인 후보를 단독으로 실은 적이 없는 데다 정작 당선 이후에 실린 사진이 밝은 표정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길윤형 한겨레21 편집장이 “결의와 고뇌가 느껴지는 것 같아 표지로 골랐다”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안수찬 한겨레 미래라이프에디터가 페이스북에 “덤벼라 문빠들”이란 글을 써서 논란에 불을 지른 듯한 모양새다.
대선 때는 “한경오는 가난한 조중동, 몽둥이가 답이다”라는 등의 아찔한 문구의 ‘짤방’이 나돌기도 했다. 한겨레가 문재인 후보 사진을 다른 후보들보다 작은 크기로 실었다며 비난이 속출했는데 알고 보니 총탄이 박힌 전남도청의 하얀 벽면이 잘려 나간 것처럼 착시를 불러 일으킨 것이었다. “이런 식이라면 ‘박사모’와 다를 게 뭐냐”는 우려와 함께 “청와대 변기를 ‘매화틀’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을 정도다.
문재인 팬덤 현상은 3기 민주 정부에 대한 넘치는 기대와 열망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얼마나 시달렸으면 대통령이 밥 먹고 커피만 마셔도 국민들이 행복해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불과 반년 전 최순실 게이트로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됐던 한국이 민주주의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1000만 촛불의 힘이 부패한 권력을 끌어내리고 민주 정부를 다시 세웠다. 우리는 민주주의 축제를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엄혹한 선거판에서 애써 객관과 중립을 유지하는 신문들이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답답해 보였을 수도 있다. 어떻게 잡은 정권인데, 언론과 전쟁을 벌이다 뜻을 펴지 못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를 만들고 정권의 호위무사로 나서는 게 아니라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언론의 본령이고 책무이다.
노무현의 좌절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이에나 같은 언론으로부터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문 대통령도 앞으로 5년 내내 언론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오죽하면 노 전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던 유시민 작가는 ‘진보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의 언론 지형이 왜곡돼 있고 공정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조중동에 맞서’ ‘우리 편이 돼 주는 언론’ 따위를 경향신문이나 한겨레에 기대하는 것은 이 신문들을 죽이는 길이다. 언론이 늘 옳을 수는 없고 언론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당연히 잘못하면 욕을 먹어야 하고 합당한 비판이라면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언론에 요구할 수 있는 건 최선의 진실을 말하라는 것,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가난한 조중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우리들의 조중동’이 되라고 강요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언론 개혁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부당하게 해직당하고 취재 현장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애초에 권력의 외압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아울러 종합편성채널에 대한 특혜를 중단하고 권력과 언론의 유착을 뿌리부터 끊어야 한다. 방송과 통신을 쥐락펴락하면서 여론 장악의 첨병으로 활동해 왔던 방송통신위원회 등 조직 개편도 필요하다
언론 개혁은 우리 편 언론을 키우는 게 아니고 나쁜 언론을 찍어 누르는 것도 아니다. 언론이 어떤 외부의 압력이나 이해관계에 영향 받지 않고 권력에 맞서고 언론 역시 열린 태도로 독자들로부터 비판을 감수하는 것, 공론의 장에서 주장과 주장이 부딪히고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과정, 그런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언론 개혁의 출발이라고 믿는다. 좋은 권력이냐 나쁜 권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바로 서야 권력이 바로 서고 사회가 바로 선다.
오늘은 미디어오늘 창간 22주년을 맞는 날이다. 정치·경제 권력 뿐만 아니라 언론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을, 지속가능한 저널리즘 생태계를 위한 고민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독자 여러분에게 약속드린다. 미디어 소비자들(수용자들)의 행동주의는 우려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고무적이다. 독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이상 언론의 횡포가 과거처럼 위력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미디어오늘도 겸허하게 귀를 기울이고 계속해서 저널리즘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고민할 것을 약속 드린다.
조중동의 위력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514 미디어오늘
[김창룡 칼럼] 새정부에 날 세우는 보수언론, 언론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좀 더 절제가 필요하다
한국의 소위 진보언론은 ‘진보 정권’이 출범하면 본래의 권력에 대한 감시, 견제 역할을 유지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언론은 ‘진보정권’으로 교체되면 견디지못하고 첫날부터 비난과 흠집잡기로 혈안이 된다. 반대로 보수언론은 ‘보수정권’이 들어서게 되면 정치권력과 동일체가 돼 ‘한복외교’ ‘빛의 정치’ ‘형광등 100개의 아우라‘ ’외국어 능통‘ 등으로 온갖 찬사와 미화로 국민에게 눈속임을 한다.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보수언론의 현란한 변신은 ’신뢰의 언론‘이 아닌 정치집단으로 보일 정도다.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언론은 ‘문재인 정부’가 아직 인선도 마치지않았고 본격 출범도 하지않았지만 벌써부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비난과 공격의 칼’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 사건’부터 불거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종료 등에 대한 진상 조사여부를 조국 신임 민정수석에게 지시한 것을 두고 보수언론은 비난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특조위는 그동안 왜 조사를 제대로 하지못했는지, 우병우의 민정수석실에서 어떤 식으로 검찰수사에 개입했는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출발점이 정윤회 사건인데, 진실은 밝히지못하고 거꾸로 문건유출 사건으로 둔갑한 내용 등에 대해 진실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왜 벌어졌는지 그 진실에 대한 내용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조사여부를 민정수석에게 당부한 일을 두고 야당과 보수언론이 반발했다. 야당이야 이해당사자들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언론이 관련진실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야당과 보조를 맞추며 반발하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조선일보는 “민정수석 ‘검찰 지휘 안한다’ 3시간 뒤… 文대통령 ‘제대로 수사’”, “‘국정농단’ 추가 수사, 우병우와 대기업 겨냥한 듯”, “盧 前대통령 수사 그리고 비극… 文대통령·검찰의 악연”, “국회·검찰·감사원·해수부·특조위 조사 끝난 ‘세월호’ 다시 꺼냈다” 등의 보도를 쏟아내며 비판적 논조를 보였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회사의 입장을 잘 나타내는 조선일보의 사설에서도 “세월호 사고 조사는 특별조사위원회 조사를 마치고 선체 조사 단계까지 가 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도 검찰→특검→검찰로 이어지며 수사할 만큼 했다. 관련자들도 다 기소됐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더 수사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조 수석의 ‘재수사나 재조사 지시는 아니다’는 해명에도 “민정수석 임명 첫날부터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지시하고 개입한다는 논란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은 마치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서는 새정부가 더 이상 손을 대지말라고 선을 긋는 모습이다.
동아일보도 “문 대통령도 조 수석도 검찰 개혁은 강력히 추진하되 검찰 수사는 놓아두라.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것이 근본적인 검찰 개혁”이라고 강조하며 문 대통령의 발언을 검찰 수사 개입으로 비판했다.
‘검찰수사를 놓아두라’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민정수석실이 검찰수사에 어떻게 개입했는지여부와 그런 개입이 검찰수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진실이 어떻게 왜곡됐는지 여부는 당연히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재수사나 재조사 지시가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면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수는 없을까.
보수언론은 과거 참여정부 출범때 어떤 식으로 보도했는지 한번 되돌아보기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첫날부터 조중동은 일제히 공격의 포문을 열었다. 대통령이란 호칭도 달지않고 “노무현식 언론개혁‘ ’이름만 바꾼 대북정책‘ ’취임식날 이 아침에‘ 등의 사설과 칼럼으로 정당한 견제 감시가 아닌 부당한 비난, 비아냥으로 일관했다.
보수언론이 언론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좀 더 절제가 필요하다. 말 한마디를 확대해석하거나 비약하여 공격하는 방식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새정부 출범 1년 밀월관계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새정부가 출범하면 그때부터 견제, 감시해도 늦지않다.
새정부는 보수언론때문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라도 정확하고 투명한 브리핑제를 활용하여 공적정보를 신속하게 제공하기 바란다. 또한 진실을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보수언론에 대해서도 인내심을 갖고 좀 더 자세하게 정확한 정보와 배경설명까지 해주기를 기대한다. 문제는 이런 상호존중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악의적으로 왜곡을 일삼을 때는 민주주의에서 보장된 법과 제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법과 제도의 테두리에서 조정, 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지만 언론의 영역을 벗어나 보수언론이 언론권력으로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할 때는 비상한 대책이 요구된다.
조중동이 ‘국정파탄의 주범’ 야당의 대변자 노릇을 하며 태극기부대를 선동하고 안보를 내세워 반문재인 여론몰이에 나서게 되면 국정운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모바일 시대, SNS 시대’라고 하지만 신문과 방송까지 장악한 조중동의 위력을 과소평가하고 무대책으로 나서게 되면 새정부의 위기는 빨리 올 수도 있다.
해직언론인 복직과 공영방송의 정상화, 언론부역자에 대한 정리 등은 빠를수록 좋다. 이명박근혜시대 ‘당근과 채찍’의 이중언론정책이 아닌 ‘공정, 공평, 투명’한 언론정책을 기대한다. 보수언론이나 진보언론으로부터 당장의 찬사는 기대하지않는 것이 좋다. 국민과 역사를 보고 당당한 언론정책으로 보수언론의 조급증에 대응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석방되면 병이 낫는 기적의 CJ 이재현, 재벌들이 벌인 꾀병 쇼의 역사 517 민중의 소리
우리는 지금 기적을 보았다. 분명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CJ그룹이 배포한 이재현 회장의 사진은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이 회장이 광복절 특사로 풀려난 지 9개월 만에 이름도 생소한 불치병 ‘샤르코 마리투스(CMT․근육이 위축되는 희귀 유전병)’를 기적적으로 극복하고 17일 경영 일선에 복귀한단다.
신이시여, 여기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9개월 만에 불치병을 극복한 당신의 피조물이 있나이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여쭙는 건데, 왜 신께서는 돈 많은 재벌들의 병만 그렇게 빨리 치료해 주시나이까? 당연한 말이지만, 이재현 회장의 불치병 극복은 신의 가호가 아니다. 신은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 지난해 7월 CJ그룹이 이 회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우리 회장님은 정말 아프다”라고 생쇼를 했을 때부터, 그의 병은 꾀병이었다. 꾀병이 아니었다면, CJ그룹은 설명해야 한다. 이 회장이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 병을 치료했는지를 말이다.
설마 “감옥에 있을 때에는 치료를 잘 못 받았는데 석방돼서 제대로 치료를 받았다”고 둘러댈 참인가? 웃기는 소리다. 이재현 회장은 1600억 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돼 1·2심에서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구속된 때는 2013년 7월이었다.
이재현 회장ⓒJTBC 방송 캡처
그런데 이 회장은 형이 확정되자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이유로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형 집행정지를 받은 것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이 회장은 3년여의 수감 기간 동안 고작 4개월만 옥살이를 했다는 뜻이다. 나머지 날들은 옥살이를 한 게 아니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무려 2년 8개월 동안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라는 서울대 병원에서 말이다. 그런데도 안 낫던 병이 사면돼서 나오니까 9개월 만에 다 나았다는 이 코미디를 정녕 우리보고 믿으라는 것인가?
정태수의 실어증, 이건희의 셔츠 위 복대
그동안 재벌들이 벌인 꾀병의 역사는 지면에 옮겨 적기가 버거울 정도로 양이 방대하다. 꾀병의 원조는 1997년도 한보 비리로 수감됐던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당시 74세)이었다. 정 회장은 이 분야의 선각자답게 아주 정교하게 꾀병을 기획했다. 단순히 휠체어만 이용한 것이 아니고, 마스크를 쓰고 링거 주삿바늘을 팔에 꽂은 채 법정에 들어선 것이다. 정 회장의 이 퍼포먼스 이후 마스크와 링거 주사는 휠체어와 함께 재벌 꾀병의 필수품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정 회장이 보여준 퍼포먼스의 압권은 다른 데에 있었다. 정 회장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갑자기 “실어증이 왔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말을 못한다는데 검찰이 무슨 명분으로 그를 부르나? 검찰은 결국 실어증을 주장하는 정 회장을 소환하지 못하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정 회장은 당시 정말 실어증을 앓았을까? 그를 진료했던 서울대 의대 노재규 교수는 “마비증세란 것이 정상과 가까울 정도로 경미하며 실어증을 설명할만한 신경학적 원인이 확실치 않아 정신과 교수의 자문을 의뢰할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꾀병이라는 이야기다.
4월에 실어증을 앓았던 정 회장의 병은 8월에 영문도 모른 채 회복이 된다. 정 회장은 8월 2심 공판에 모습을 드러낸 뒤 “검사님은 사업에 대해 모른다. 명동 사채시장에 한번 가보라”거나 “등촌동 가양동 땅 죄다 팔아 회사 돈 갚는데 쓰고 숟가락 하나까지 회사에 집어넣었는데 어째서 횡령이냐”며 검사를 훈계하기까지 했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안기부 X파일’ 논란이 한창이던 2006년 도쿄에서 귀국했다. 그런데 이 회장은 귀국 장면부터 화려한 쇼를 펼쳤다. 다리에 깁스를 한 뒤 휠체어에 앉아서 입국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 회장이 이 쇼에서 사용한 특이한 소품이 하나 있었다. 바로 복대였다. 상식적으로 복대를 와이셔츠 위에 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복대를 안에 하고 그 위에 셔츠를 입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셔츠 위에 복대를 둘렀고, 일부로 양복을 풀어헤쳐 그 복대가 선명하게 보이도록 연출을 했다. “나 많이 아파요”를 주장하기 위해 ‘셔츠 위 복대’라는 기발한 발상을 현실화 한 것이다.
없던 우울증도 생기는 검찰 수사, 구급차 동원되기도…
같은 해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비자금을 1000억 원 조성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그런데 정 회장의 변호인들은 병원 진단서를 첨부하면서 “정 회장이 구속 이후 폐 결절과 심낭 이상, 고혈압, 동맥경화 증상을 겪고 있다. 뇌경색 발병 확률이 정상인보다 20배 이상 높다. 즉시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의 주장대로라면 정 회장은 당시 살아 숨 쉬는 종합병원이었다. 정 회장은 이 꾀병 진단서를 통해 보석을 얻어냈고, 지금도 아주 건강하게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갑자기 아픈’ 경험을 했다. 김 회장은 당시 차남이 술집에서 폭행을 당하자, 경호원들과 조폭들을 이끌고 도심 한 복판에서 폭행 느와르 영화를 찍은 경험이 있다. 김 회장은 심지어 아들을 폭행한 청년들을 무릎 꿇린 뒤 스스로 장갑을 끼고 상대의 눈만 집중적으로 구타하기도 했다. 이렇게 주먹질을 하고 다닌 사람이 “갑자기 몸이 아프다”고 주장을 하면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서 김 회장 측이 들고 나온 ‘신의 한수’가 바로 우울증이었다. 변호인은 “김 회장의 우울증이 악화되고 당뇨로 체중이 25㎏ 증가하는 등 건강이 악화돼 수감생활이 어렵다”고 주장했고 결국 구속집행정지를 얻어냈다.
2016년 7월 CJ그룹이 공개한 이재현 회장의 손발 모습. CJ그룹은 이 사진을 공개하며 "이 회장이 더 이상 수감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사진제공 CJ그룹
2011년 태광그룹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이선애(당시 83세) 태광산업 상무가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이선애 상무는 태광그룹 총수인 이호진 회장의 어머니다. 그런데 검찰 수사를 받을 당시만 해도 꼿꼿이 잘 앉아 있던 이 상무는 서울 서부지검에 출두할 때 갑자기 병원 침대를 동원했다. ‘꾀병 소품은 휠체어’라는 공식을 뒤집고 구급차와 침대가 등장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2007년 영국의 경제 전문지 ≪파이낸셜 타임스(FT)≫는 한국 재벌들의 이 같은 꾀병 행태에 대해 ‘한국 재벌 총수들은 곤란할 때마다 휠체어를 탄다’는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그 기사에는 한국 재벌 총수들의 다양한 꾀병 쇼의 사례와 함께 이런 따끔한 지적이 적혀 있었다.
“한국 법원은 재벌들이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일을 하건 경영을 계속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재벌들이 제대로 행동하고,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사법체계를 갖추는 게 국가 이익에 더 부합하지 않겠느냐?”
구구절절 옳은 말이고 너무나 큰 국제망신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17일 경영에 복귀하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자신의 복귀를 통해 “‘그레이트 CJ’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레이트 CJ’라고? 감옥에서 풀려난 이재현 회장은 정녕 염치도 모르고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자가 지금 한국 문화권력 정점에 있다는 CJ그룹의 총수를 맡고 있다.
1㎡당 650만원' 아파트값 따라 갈린 19대 대선 518 중앙
아파트 값과 나이. 19대 대통령선거 결과를 가른 두 키워드다. 본지와 서울대 공유도시랩이 대선 득표율과 전국 시·군·구, 읍·면·동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서울에서는 아파트 값(‘부동산 114’ 3월 실거래가 기준), 그 외 지역에선 거주자 연령이 각 후보 득표율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과거 총선·대선 때 지역주의가 결과를 갈랐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서울은 아파트 가격과 후보별 득표율의 상관관계가 뚜렷했다. 아파트 가격이 높은 지역에서는 자유한국당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의 득표율이, 반대 지역에선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았다
홍준표, 부자동네 득표율 높고 문재인 대통령의 경우는 반대
2030 많은 동네선 문 대통령, 고령층 많은 동네선 홍 다득표
특히 도드라진 지역은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였다. 문 대통령과 홍 전 지사는 이들 지역에서 각각 38%, 25%를 득표했다.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서울 평균(42%)보다 낮았고, 홍 전 지사는 그보다(21%) 높았다. 특히 강남구에선 문 대통령은 서울 내 가장 낮은 득표율(25%)을, 홍 전 지사는 가장 높은 득표율(27%)을 기록했다.
아파트 가격 낮은 일부 지역, 반(反) 계층 투표
동별로 쪼개보면 U자형과 역(逆) U자형 곡선이 나타났다. 동별 1㎡당 아파트 평균값을 이어 그린 그래프(추세선)는 문 대통령의 경우 역(逆) U자형, 홍 전 지사는 U자형을 그렸다.
일반적으로 보수 정당은 낮은 세율, 낮은 수준의 복지를, 진보 정당은 높은 세율, 높은 수준의 복지를 주장한다. 때문에 부유한 지역에선 보수 정당이, 그렇지 않은 지역에선 진보 정당의 인기가 높을 것으로 흔히 추정한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진보 후보였던 문 대통령의 득표율은 ㎡당 약 650만원을 기준으로 상반된 양상을 보였다. 아파트값 ㎡당 650만 원 이하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으로 갈수록 득표율이 높았다. 반면 ㎡당 650만 원 이상 지역에서 아파트값이 비싼 곳으로 갈수록 오히려 득표율이 떨어졌다.
홍 전 지사의 경우는 반대였다. 전반적으로 아파트값이 비싼 지역에서 표를 더 많이 받았다. 하지만 예외 지역도 있었다. 1㎡당 아파트값이 300만~400만원이 지역에선 추세선 위쪽에 분포하는(평균값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한) 곳이 꽤 있었다. 아파트값이 싼 지역에서 자신들의 경제적 이해 관계에 반해 홍 전 지사를 지지하는 ‘반(反) 계층 투표’가 이뤄진 셈이다.
서울대 공유도시랩의 김경민(환경대학원) 교수는 “미국에서도 저소득층이 낙태나 총기 규제 등 문화적인 이유로 민주당보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안보·종교 등 비 경제적인 이유가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反) 계층 투표가 일어난 대표적인 동네 중 하나가 서울 구로구 수궁동이다. 수궁동은 서울에서 홍 전 지사의 득표율이 높은 지역 12위에 올랐다. 상위 12위 내 들어간 동의 1㎡당 아파트값은 평균 840만원으로, 수궁동(39만원)의 2배가 넘는다. 데이터 분석 전문가인 김승범 VW 랩 대표는 “수궁동은 지난해 치러진 20대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서 소수정당인 기독자유당이 15%의 득표율을 기록한 지역”이라며 “이번 대선에서 기독자유당이 홍 전 지사 지지선언을 한 게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값과 득표율 사이의 상관 관계는 그 분석 대상을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대해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김경민 교수는 “지역 투표 성향이 강한 영·호남을 제외하면 전국 단위에서도 문 대통령은 기울기가 완만한 역U자형, 홍 전 지사는 U자형 득표 곡선을 보였다”며 “아파트가 농촌보다 도시에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전국의 대도시에선 ‘계층 투표’가 나타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도시는 계층투표, 그 외 지역은 세대투표
수도권 시·군·구 가운데 60대 이상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선 홍 전 지사, 20~30대 인구 비율이 높은 지역에선 문 대통령의 득표율이 높았다. 수도권 시·군·구를 대상으로 60대 이상 인구 대비 홍 전 지사 득표율, 20~30대 인구 대비 문 대통령의 득표율 그래프를 겹쳐 그려보면, 두 그래프는 정확히 정반대 기울기를 보임을 알 수 있다. 가령 60대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인천광역시 강화군(37%)에서 홍 전 지사는 39%의 표를 얻었다. 반면 문 대통령은 28% 득표에 그쳤다. 반대로 60대 이상 인구 비율이 가장 낮은 경기도 수원시(8%)에선 문 대통령은 48%, 홍 전 지사는 15%를 득표했다.
언론사 공동 팩트체크, 홍준표 거짓말 가장 많았다 517 미디어오늘
거짓말 판정 횟수 홍준표 후보 66%에 달해… “언론이 왜 특정 사안 검증하는지도 설명해야”
신문·방송이 공동으로 팩트체크를 실시한 결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가장 거짓말을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세미나를 열고 지난 대선 기간 서울대가 12개 언론사와 함께 실시한 SNU팩트체크 결과를 공개했다. SNU팩트체크 서비스는 팩트체크 플랫폼으로 개별 언론사가 실시한 팩트체크 기사를 올리면 서울대에서 종류별로 모아 정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가장 많은 팩트체크를 받은 대상은 홍준표 후보(47건)다. 이어 문재인 후보(33건), 안철수 후보(20건), 유승민 후보(14건), 심상정 후보(6건) 순으로 나타났다. 유력 후보에 대한 팩트체크 빈도가 높았으며 홍준표 후보의 경우 논란이 되는 발언이 많다보니 팩트체크 횟수가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 지난 대선 'SNU 팩트체크 서비스' 검증 결과.
홍준표 후보는 팩트체크 대상이 된 47개 발언 중 31개 발언이 ‘거짓’ 또는 ‘대체로 거짓’으로 나타났다. 논란이 된 발언의 66%가 거짓이었다. 대표적인 거짓발언은 “하천의 녹조 현상은 (4대강 사업 때문이 아니라) 하수유입과 기후 변화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재벌로부터) 8000억 원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코미디언 2명이 방송에서 배제됐다” 등이다.
다음으로 거짓 판정 비율이 높은 대상은 안철수 후보다. 안철수 후보는 팩트체트 대상이 된 20개의 발언 중 13개가 ‘거짓’ 또는 ‘대체로 거짓’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후보 아들, 5급 공무원에 특채” 발언이 대표적인 거짓 발언이다.
이어 심상정, 문재인, 유승민 후보 순으로 팩트체크 결과 ‘거짓’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상정 후보와 유승민 후보의 경우 전체 팩트체크 유력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토론과 팩트체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팩트체크에도 맹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사가 어느 후보에 대한 팩트체크를 하느냐부터 주관이 깊숙이 개입된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조선일보의 팩트체크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문재인 후보 ‘팩트체크’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검증을 하는 언론이 왜 이 후보의 이 주장을 검증을 하는지, 이 검증 행위가 정당한지 설명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론과 달리 현실에서는 명확하게 ‘사실’이나 ‘거짓’으로 판단하기 모호한 때가 많다. SNU팩트체크 결과 같은 사안에 대해 완전히 다른 판단을 내린 경우도 있다. 이준웅 교수는 “TV를 보면 (시청자가) 멍청해진다는 주장을 언론학자들이 20년 동안 연구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사실확인이라는 것 자체가 일목요연하게, 쉽게 이뤄지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 SNU 팩트체크 서비스 화면 갈무리.
서울대는 팩트체크 서비스를 고도화할 계획이다.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은 “처음 언론사 공동의 팩트체크 서비스를 실시한 것이며, 참여 언론사의 실무자 대표협의체가 구성돼 있다. 이번 기간 동안 물리적 결합을 했다면 앞으로는 화학적인 결합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개별 언론사의 팩트체크 결과를 나열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여러 언론사가 팩트체크 과정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프랑스 언론과 구글이 함께하는 팩트체크 서비스인 ‘크로스체크’는 여러 언론이 함께 검증을 실시하며 합의가 되지 않은 사안은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SNU팩트체크 서비스에는 KBS, MBC, SBS, JTBC, YTN, MBN,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서울신문, 매일경제 등 12개 언론사가 참여했다.
세계가 그린 트럼프 대통령… 베스트 만평 20선 517 국민
세계는 ‘예측 불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37개 국가, 46개 출판물, 71명의 만화가가 참여한 ‘트럼프 대통령 만평 프로젝트’에서 그 답을 확인하자.
덴마크 언론 ‘폴리티켄’과 비영리단체 뉴스디자인학회(Society for News Design, SND)는 지난 3월 28일(현지시간) 세계의 만화가·삽화가들에게 같은 주제를 던졌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의 첫 100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프로젝트 마감 날짜는 4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 연설이 있는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을 맞아 각국의 트럼프 대통령 만평을 수집·배포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이다.
참가자들은 이미 출판물에 실렸든 새롭게 그린 작품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작품을 이메일로 제출할 수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유럽, 아시아는 물론 아랍에미리트, 시리아 등 중동 국가들까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이렇게 모인 만평들은 SND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됐으며 한 권의 책으로도 제작됐다.
아일랜드 일간지 아이리쉬 타임스(IT)는 이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0일 취임한 후 지구상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계의 뉴스 어젠다를 지배했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 지도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의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만화가들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트럼프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보도는 ‘가짜 뉴스’ 딱지를 붙이고 공격했다. 이 프로젝트는 트럼프가 만든 새로운 언론 상황에 대한 공통된 대답”이라고 평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에서 지지자들과 만나 “취임 첫 100일간의 기록은 매우 흥분되고 또 매우 생산적이었다”고 자화자찬했다. 반면 미국 뉴욕타임스는 ‘도널드 트럼프에게서 나온 100일간의 잡음’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지난 100일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정책에 대한 무지로 점철됐다고 비판했다.
Jao Maio Pinto / Express / Portugal
Roberto Santos / El Diario de Hoy / El Salvador
RUZ, El Diario de Hoy, El Salvado
Martyn Turner, The Irish Times, Ireland
Ary Moraes, EBA, Brazil
Marec, Het Nieuwsblad, Belgium
Omar Abdallat, FreePen, Jordan
금남로 가득 메운 전야제제37주년 5ㆍ18민중항쟁 전야제가 17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와 5ㆍ18민주광장에서 열려 광주지역 풍물패 회원들과 대학생, 시민들이 오월풍물굿과 민주대행진을 펼치며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배현태 기자 htbae@jnilbo.com
4분짜리 박근혜 기념사가 4년 만에 13분 '감동 기념사'로 518 오마이뉴스
[현장] 문재인 정부 준비 돋보인 37주년 5.18 기념식, 유족 "이제 좀 마음이 놓여“
'81세의 아버지'는 굽은 허리에 양손을 포갠 채 묘역을 빠져나가던 참이었다. 37년 전 초등학교 1학년 아들을 잃은 이귀복씨였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전신) 1학년짜린디, (사망원인이) 에무십육(M16) 총상이라고 나옵디다. 이창현이, 내 아들 이창현이…. 내가 아들놈 찾을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소. 저 욱에(위에) 파주 용미리 묘지까지 갔다 왔제. 글다가 5.18 끝나고 한참 뒤에, 여그 망월동에서 겨우 찾았소."
아버지는 기자를 만나기 적전에 끝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 기념식을 떠올리며 "대통령까지 와블고, 와서도 참 좋은 말만 합디다"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인자 좀 설움이 풀릴라 하요. 지난 9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내가 여기 매달려갖고 살았는디, 인자 좀 마음을 놔야 쓰겄소.“
항의 쏟아졌던 지난해 기념식, 올해는 1시간 알차게 구성
9년 동안 추락한 위상을 되돌리려는 듯,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취임 9일 만에 맞은 5.18 기념식에 온 힘을 쏟은 모양새였다. 문 대통령의 강렬한 기념사에 참석자들은 박수로 화답했고, 대통령을 비롯한 모두가 손을 잡은 채 '임을위한행진곡'을 목청껏 불렀다. 문 대통령은 의전에 구애받지 않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고, 눈물을 참지 못하던 유족을 껴안았다. 유족은 대통령 품에 안겨 맘껏 울었고, 객석에 있던 참석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다.
18일 오전 10시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제 37주년 5.18 기념식은 약 1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지난해 20여 분 만에 끝난 초라했던 기념식과는 완전히 달랐다.
지난해 기념식이 끝난 직후에는 "이게 무슨 기념식이야!", "박근혜는 어딨냐!" 등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반면 이날 참석자들은 묘역 참배를 위해 이동하는 문 대통령을 향해 박수를 보냈고, 휴대폰을 꺼내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일부에선 "대통령 잘 뽑았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등의 환호성도 나왔다.
5.18 당시 남편을 잃은 유정님(80)씨는 기념식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나 펑펑 울어브렀소"라며 안경에 맺힌 눈물을 닦아 냈다.
"맘이란 게 항상 그렇제라. 이자(잊어)브렀다가도 5월 돌아오면, 그때 당시 거시기 한 것이 생생허니 떠올르고…. 근디 오늘 같은 기념식을 본께 맘이 다 편안허요. 말 그대로 대통령이 새로 나온께, 진짜로 역사가 바뀔란가?“
문 대통령의 기념사도 극찬을 받았다. 그는 총 13분 동안 기념사를 낭독했고, 참석자들은 총 25번의 박수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5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5.18 기념식에 참석해 4분짜리 기념사를 읽었다. 문 대통령은 그보다 세 배 이상의 시간을 기념사 낭독을 위해 쓴 것이다.
박관현·표정두·조성만·박래전, 그리고 세월호와 촛불혁명
특히 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이었던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을 재차 약속할 때, 객석에선 가장 큰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이날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적기도 했다.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담겠다는 저의 공약도 지키겠습니다. 광주정신을 헌법으로 계승하는 진정한 민주공화국 시대를 열겠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은 비로소 온 국민이 기억하고 배우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자리매김 될 것입니다.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빌어서 국회의 협력과 국민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립니다."
5.18 당시 총상으로 척추를 다친 이세영씨는 "5.18 문제 해결의 5대 원칙 가운데 첫 번째가 정신계승이고, 그것에서 가장 중요한 게 5.18 정신을 헌법전문에 넣는 것이다"라며 "가히 감동적이었다. 오늘 기념사에서 평생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다 들었다"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이날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 매우 감격한 듯,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을 이어갔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저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한 대통령은 없었다.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 심지어 노무현 전 대통령도 문 대통령만큼 이렇게 기분 좋은 과격한 발언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문 대통령의 기념사에는 1980년 5월 18일 뿐만 아니라, 이후 5.18 진상규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이름도 꼼꼼히 담겼다(관련기사 : 5.18 열사 이름 외친 문 대통령... "큰 감동, 위로받았다").
"1982년 광주교도소에서 광주진상규명을 위해 40일 간의 단식으로 옥사한 스물아홉 살, 전남대생 박관현. 1987년 '광주사태 책임자 처벌'을 외치며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노동자 표정두. 1988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외치며 명동성당 교육관 4층에서 투신 사망한 스물네 살, 서울대생 조성만. 1988년 '광주는 살아있다' 외치며 숭실대 학생회관 옥상에서 분신 사망한 스물다섯 살, 숭실대생 박래전. (중략) 저는 오월의 영령들과 함께 이들의 희생과 헌신을 헛되이 하지 않고 더 이상 서러운 죽음과 고난이 없는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기념식 직후 만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관현, 표정두, 조성만, 박래전의 이름을 거론할 때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라며 울먹였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페이스북에 "이런 적이 있었나. 이게 뭐라고 또 목이 메이나. 왜 겨우 이런 일이 눈물이 나나. 우리는 그 동안 어떤 세상을 살았길래 이렇게 울어야 하나"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지난 겨울의 촛불혁명도 빼놓지 않고 거론했다.
"2년 전, 진도 팽목항에 5.18의 엄마가 4.16의 엄마에게 보낸 펼침막이 있었습니다.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국민의 생명을 짓밟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국가를 통렬히 꾸짖는 외침이었습니다. 다시는 그런 원통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사람의 존엄함을 하늘처럼 존중하겠습니다. 저는 그것이 국가의 존재가치라고 믿습니다."
"오월 광주의 시민들이 나눈 '주먹밥과 헌혈'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의 역사입니다. 민주주의의 참 모습입니다. 목숨이 오가는 극한 상황에서도 절제력을 잃지 않고 민주주의를 지켜낸 광주정신은 그대로 촛불광장에서 부활했습니다. 촛불은 5.18민주화운동의 정신 위에서 국민주권시대를 열었습니다.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임을 선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부가 될 것임을 광주 영령들 앞에 천명합니다."
2015년부터 5.18 기념식을 찾은 세월호 유족 김연실(고 정차웅군 어머니)씨는 "전과는 많이 다르더라.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게 바뀌어 굳었던 마음이 많이 풀리는 것 같다"라며 "특히 문 대통령이 5.18 기념사를 통해 직접 우리의 이야기를 꺼내줘서 '지난 3년의 시간이 헛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1만여 명 함께 부른 임을위한행진곡
이날 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의자를 떠나며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2013년 5.18 기념식에서 당시 강운태 광주시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불쑥 태극기를 건네 논란이 된 적이 있을 만큼, 대통령의 움직임은 하나하나 경호실 계획에 맞춰져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헌화 및 분향, 기념사 낭독, 폐식 후 묘역 참배 등 총 세 차례 자리를 떠나도록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경과보고를 마치고 내려온 김후식 5.18부상자회장을 향해 걸어 나가 인사를 청했다.
특히 기념공연에 참여한 유족 김소형(1980년 5월 18일에 태어나 사흘 만에 아버지 사망)씨가 퇴장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하자,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김씨를 향해 걸어 나갔다. 이어 문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는 김씨를 껴안으며 위로했다(관련기사 : 5.18 유족 '사부곡'에 문 대통령도 울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의전에 구애받지 않은 모습에) 나도 놀랐다. 솔직히 조마조마했다"라며 문 대통령과 경호실 사이의 뒷이야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이 오늘 점심을 광주에서 5월단체 관계자들과 먹었다.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주영훈 경호실장에게 미안했는지 '실장님, 오늘 경호하느라 많이 힘들었나. 그래도 시민 분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라고 말을 건넸다. 그러자 주 실장은 '대통령과 국민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안전 경호를 충분히 하고 있다. 오늘도 그렇게 했다'라고 답했다.“
한편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권한대행은 입을 다물고 있다. 행사를 마친 뒤 정 대표는 ‘5·18 민주 영령에 대한 추념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은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사항’이라며 노래를 부르지 않은 이유를 밝혔다. 이날 기념식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으로 마무리됐다. 가수 전인권씨가 상록수를 부르고 난 뒤, 참석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 목소리로 임을위한행진곡을 불렀다. 특히 이날 기념식이 시민 개방형으로 열린 덕분에, 현장을 찾은 1만 여 명의 목소리가 묘역을 메울 수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신분 확인만 되면 누구나 이날 기념식에 참석하도록 조치했다.
5.18 당시 구속됐던 강아무개(53)씨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은 우리에게 5.18을 기억하지 말라며 온갖 수모를 주고 탄압했다"라며 "하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 전격적으로 임을위한행진곡 제창을 지시했다. 특히 오늘 기념식을 시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게 해 의미가 깊었다. 감동적인 날이다"라고 말했다. 생애 처음 5.18 기념식을 찾았다는 강진고등학교 3학년 박홍은·이연경·위보배·이수연양은 "아직도 포털사이트에서 5.18을 쳐보면 폭동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걸 보면서 무척 안타까웠다"라며 "이번에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된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세월호든 5.18이든 모두 다 진실을 낱낱이 밝혀졌으면 한다"라며 "그래서 이제 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안 싸웠으면 좋겠다. 또 잘못한 사람들이 모두 죗값을 치렀으면 한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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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재인대통령이 이런 대통령이 될거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왜 볼때마다 자꾸 눈물이 날까 오늘도 기념식 중계 보면서 울고 또 기사보면서 눈물 훔치고 지난 9년 감동 한번 없었고 웃을 일조차 없어 메마르고 화만 가득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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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식 현장에는 문 대통령이 이야기한 열사들의 유족들도 함께했다. 박래전 열사의 친형인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오마이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감동적이었다. 희망을 본 것 같다"라며 "세월호와 5.18 희생자 유가족들이 문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게 있었지만, 그걸 훨씬 넘어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다들 많이 울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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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추모에 재 뿌린 한국당 "북한군 개입 의혹 밝혀야" 518 프레시안
공식 대변인 논평에서 주장…美 기밀문서 등에서 이미 '사실무근' 밝혀져
5.18 광주민주화운동 37년을 맞아 모처럼 정치권에서 '통합'의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가운데, 자유한국당이 대변인 논평에서 '북한군 개입 의혹'을 또다시 언급하고 나섰다. 일부 극우 인사들의 근거 없는 주장을, 제1야당이자 100석 이상의 의석 수를 가진 원내 정당 대변인이 공식 논평에서 언급한 것이다.
정준길 새누리당 대변인은 18일 오후 논평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헬기 사격 등 발포 진상 규명' 발언을 언급하며 "자유한국당은 헬기 사격을 포함한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밝히는 등 5.18 진상 규명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면서도 "아울러 그 과정에서 5.18 유공자 선정 절차 및 대상자의 문제점,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의혹 등 5.18 진상 규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부분까지도 함께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 유공자 선정 절차와 대상자의 문제'라는 것은, 현재 유공자로 지정된 5.18 희생자들 가운데 일부의 공적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더구나 '북한군 개입 의혹'이란 지모 씨 등 일부 극우 인사들이 5.18 당시 촬영된 희생자·민간인 사진을 놓고 '북한 정부 인사 가운데 닮은 사람 찾기' 수준의 행동을 벌인 차원에서 제기된 것이다.
지난 1월 미 중앙정보국(CIA)이 공개한 기밀 해제 문서에서는 "북한은 한국의 정치 불안 상황을 빌미로 한 어떤 군사행동도 취하는 기미가 없다", "(북한은) 1979년 10월 26일과 12월 12일 사건에 무척 놀라고는 있다"(1980년 5월 9일자 미 NSC 비밀문건) 등의 내용이 나온다. (☞관련 기사 : '5.18 북한군 개입설' CIA 기밀문서가 박살냈다)
팩트체크] 점점 교묘해지는 '5·18 가짜뉴스' 총정리 jtbc 517
[앵커]"5.18 당시에 북한군이 내려왔다. 이들이 먼저 발포했고, 계엄군은 방어를 한 것이다…" 이게 가짜뉴스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죠. 그런데 왜 가짜인지,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지 번뜩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빈틈을 노린 가짜 뉴스가 더 교묘하게 나름의 진화까지 하고 있습니다. 5·18을 앞두고 팩트체크팀이 아예 총정리를 했습니다.
오대영 기자는, 오늘(17일)을 기점으로 현혹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하더군요. 그렇죠?
[기자]네. 꼭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이 주장부터 보겠습니다. 시민이 무장을 먼저 해서 진압군이 방어 차원에서 발포를 했다는 건데. 2007년에 국방부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입니다.
최초에 누가 발포했느냐. 5월 19일 16시 50분. 11공수여단 차 모 대위 M16 발포. 조대부고 3학년 김 모 학생 총상을 입었습니다. 21일에 13시입니다. 11공수여단의 시위대 향해 발포. 최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후에 시위대는 무장했습니다. 이후입니다. 공수부대 대항. 진압군의 발포로 시민이 무장한 겁니다. 1997년의 대법원 판결도 같은 내용입니다. 전두환 씨도 최근의 회고록에 결정적인 원인은 시위대 무장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거짓입니다.
[앵커]그러니까 1997년 그리고 2007년 두 차례나 이미 명백하게 결론이 났는데도 이런 가짜뉴스들이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는 게 오히려 뉴스 아니겠습니까?
[기자]그렇습니다. 만드는 사람도 문제인데 왜 퍼지느냐.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죠.
5.18 기념재단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성인 13.3%, 청소년 12.0%가 '5.18은 불순세력이 주도한 폭력사태'라는 데 동의했습니다. 특히 성인 11.9%, 청소년 8.4%는 '북한과 연결되어 있다'고 동의했습니다.
[앵커]10명 중에 1명이 넘는 수준이네요?
[기자]그렇습니다. 두 번째는 이겁니다. 한번 띄워주시죠. 인민군의 투입입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의 근거가 등장하는데 첫 번째 북한이 쓰는 AK소총이 다량 발견이 됐다. 이 총은 특이한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군사전문가들은 사용을 했다면 쉽게 파악을 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공식 조사 자료의 어디에도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인민군 특수요원이 투입이 됐다. 당시의 영상과 사진에 이 KM900이라는 장갑차에 탄 시민의 모습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운전을 할 수 있다고 이들이 인민군이라는 것은 비약입니다. 거짓입니다.
[양욱/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 : KM-900이라는 장갑차는 일반 트럭이라든가 일반 차량을 장갑차화 한 거라고 보시면 돼요. 운전 조작 방식이 일반 차량과 비슷합니다. 대형차량을 몰아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누구나 몰 수 있습니다.]
[앵커]그런데 저희가 앞서 '진화한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즘 들어 얼마나 더 교묘해지는 추세죠?
[기자]요새는 아예 특정인을 지목해서 '이 사람이 당시 내려온 인민군 누구다'라는 가짜뉴스까지 퍼집니다.
대표적 사례가 이건데요, 고 황장엽 씨가 1980년 광주에 '특수군 조장'으로 내려왔다, 그 증거가 사진 속 바로 이 인물이다…라는 겁니다.
[앵커]그러니까 1980년 사진과 한참 뒤의 사진을 함께 비교해 놓은 거죠?
[기자]그렇습니다. 사진을 보면 외모가 일치한다, 비슷하다라는 거짓말까지 아주 그럴듯하게 꾸며놨는데요. 저희가 오늘 이 사진 보고 나서 취재 과정에서 사진 속의 실제 인물과 연락이 닿았습니다. 광주에 살고 있는 박남선 씨였습니다.
[박남선/5·18 민주화운동 참가자 : 날조죠, 날조. 황당하고 터무니없죠. 계엄 공수부대원들의 만행에 맞서 싸웠던 저희들을 갖다가 북한에서 파견한 특수군이라고 지칭을 하고, 그중의 한 명으로 저를 지목을 했을 때 정말 황당했습니다.] 박 씨 외에도 현재까지 가짜뉴스 속에서 인민군으로 몰린 시민은 15명으로 확인됐습니다.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앵커]가짜를 진짜로 둔갑시키는 것도 모자라, 멀쩡한 시민을 인민군으로 만들어버렸군요.
[기자]그렇습니다. 이 밖에도 가짜뉴스는 넘쳐납니다.
지금 들으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찬양 노래다? 현재 북한에서 오히려 '금지곡'입니다. 저항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북한공사가 증언한 내용입니다.
5.18 유족이 공무원 시험을 싹쓸이했다?이건 저희가 보도한 바 있죠. 전체 수혜 대상자 중 5.18 유족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그마저도 최근 법이 바뀌어 요건이 더 까다로워졌다는 게 관계 기관 설명이었습니다. 1997년에 대법원 판결이 있었고요. 2007년에 과거사위 조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5.18에 대해서 기존의 사실을 뒤집는 또 다른 사실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앵커]오늘을 끝으로 이런 가짜뉴스를 팩트체크할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팩트체크 오대영 기자였습니다.
팩트체크] 전두환 "발포명령 없었다"?…검증해보니 17. 4.3 jtbc
[앵커]"씻김굿의 제물이다", "십자가를 지게 됐다" 전두환 씨가 이런 주장을 했습니다. 회고록이라는 이름으로 낸 책에서 말이죠. 자신이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팩트체크는 이를 역사왜곡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판결문과 주요 자료들을 수집해 다시 분석했습니다.
오대영 기자!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사실과 정반대 주장이군요?
[기자]오늘은 전 씨가 책에 쓴 이 한 문장에 대해 사실검증하겠습니다.
"발포 명령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0년 5월 광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의도적으로 발포를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그게 사실로 밝혀졌다는 주장입니다.
[앵커]이거 이미 20년 전에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온 내용 아닙니까?
[기자]맞습니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 판결문입니다.
"시위대에 대한 사격을 전제하지 아니하고는 수행할 수 없는 성질의 것…작전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살해하여도 좋다는 발포 명령이 들어 있었음이 분명"
대법원은 당시 '발포 명령'이 있었다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이 때문에 전 씨의 '내란목적살인죄'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죄) 혐의도 유죄로 확정됐죠.
[앵커]이렇게 판결문으로 곧바로 확인이 되는데, 왜곡된 주장을 하는 이유가 뭘까요?
[기자]그런데 당시 대법원은 '발포 명령'은 존재한다고 인정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이 전 씨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습니다. 대신 '내란목적살인죄'를 인정함으로써 발포 명령에 대한 포괄적 책임을 물었습니다. 당시 수사 총책임자의 증언도 판결문과 같은 취지였습니다. 들어보시죠.
[최환/변호사 (당시 서울지검장) : 그 당시 발포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발포가 됐고, 시민들이 그 총에 맞아서 죽은 것도 사실 아닙니까? "진압하라" 라든가, 이렇게 (지시가) 나오면 거기에 부수되는 여러 가지 총기 사용이라든가 하는 것은 그게 함축되어 있는 얘기거든요. "발포하라" 이런 것은 저 밑에 소대장들이나 할 얘기죠.]
발포의 책임은 있다, 그런데 판결문에 '발포 명령자는 전두환이다' 라고 적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앵커]그러면 이렇게 포괄적으로 책임을 묻지 말고, 아예 당시 대법원이 구체적으로 '당신이 발포 명령자다'라고 못박을 수는 없었던 것인가요?
[기자]그랬다면 이런 논란이 없었을텐데요. 당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무력진압을 최종적으로 지시한 것은 전두환을 수괴로 한 내란세력인 것은 분명하지만, 하지만 언제, 누구에게, 어떻게 발포를 지시했는지를 입증하기까진 자료가 부족해 포괄적으로 공범으로 판단한 겁니다. 실제로 저희가 국방부의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를 확인해본 결과, 주요 증거들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① 육참총장 지시사항 자료철(1980.5.3~6.29)
② 80년 정기군사보고(1980.4.24~6.22)
③ 신군부 시국수습방안
이런 문건들이 은폐, 혹은 실종됐습니다.
[앵커]1980년 5월 전후의 자료들이 당시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문건들일텐데 이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거군요.
[기자]그렇습니다. 이런 이유 등으로 당시 법원도 발포 명령자를 특정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확인한 또 다른 자료에서는 발포 명령의 정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1982년 보안사령부에서 발간한 '제5공화국 전사(前史)'라는 문건입니다. 1980년 5월 21일 새벽 4시30분의 상황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 씨를 비롯해 군 주요 지휘부가 참석한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료는 "계엄군의 자위권 행사 문제는 그 회의에서 자동적으로 결정됐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씨가 최종 의사결정을 한 겁니다. 그 이후에 법원은 이런 자위권 행사는 그 목적과 다르게 내란 목적의 살인이라는 취지로 판결했습니다. 따라서 '발포 명령 없었다. 자위권 차원이었다'는 주장은 역사적인 사실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법원은 발포의 책임을 이미 물었습니다. 유죄라고요.
[앵커]법원 판결문이나 당시 자료들은 발포의 책임자로 전 씨를 명확히 가리키고 있군요. 팩트체크 오대영 기자였습니다.
'화려한 1주일'에 가려진 냉혹한 현실 518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⑤ 협치 정치의 방향과 과제
1. 아직 시작되지 않은 '통치의 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 불리던 인천공항공사에 가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했다. 구체적인 정규직화의 과정은 복잡하고 지난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와 영향은 그 무엇보다 클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고 세월호에서 숨진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인정을 지시한 것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렇다. 지난 보수정권 10년에 대한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의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각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청와대 인사도 일조하며 시민들의 개혁에 대한 기대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통치의 시간'은 도래하지 않았다. 신정부 출범 1주일. 대통령의 업무지시, 행보 하나하나에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으나 본격적인 갈등의 순간을 맞이하지는 않았다. 미디어의 화려한 포장을 걷어내고 조금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면 신정부가 위치한 상황은 녹녹치만은 않다.
과반을 점하지 못한 120석의 의회 의석, 기존에는 상대에 대한 적대를 동원하는 것만으로 일정지분이 보장되던 양당제가 아닌 복잡한 정치공학적 계산과 연합이 난무할 불안정한 다당제 구조, 진보개혁적 시민들의 높아진 기대감만큼이나 잠재되어있는 보수층의 박탈감과 불만. 어쩌면 신정부는 그 어떤 역대 정부보다 더 어려운 매듭을 풀어가야 하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고난의 시간은 신정부가 재구성해내야 하는 민주주의 정치공동체안에서 살아가야 할 시민들 역시 함께 지혜를 모아 헤쳐나가야 하는 시간이다.
2. 유능한 통치에 대한 요구와 기대
본격적인 통치의 시간이 도래했을 때 신정부가 맞이하게 되는 사회 갈등구조의 기본은 아마도 좌우 양날개로부터의 압박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한때 '선거의 여왕', 그리고 '콘크리트 지지율'로 이야기될 만큼 강력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사태는 10년만의 정권교체를 가져왔지만 정권이 교체된 다음부터는 오히려 신정부에게 큰 도전과제로 돌변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선거를 통해 지난시기 통치의 어리석음에 대한 평가가 한번 이루어진 후에는 전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새로운 통치의 주체로 등극한 신정부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정치적 갈등상황을 맞이하게 될 경우 신정부에 대한 보수층의 반발은 더욱 거세게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진보 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의 개혁 요구와 기대치 역시 그 어느 때 보다도 높다. 진보개혁적 성향의 시민들이 자주 언급하는 그리고 신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적폐청산'이라는 용어는 사실 한때 보수층에서 말했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용어와 정확하게 같은 갈등구조를 의미한다.
지난 시기 우리는 서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하는 그 정치 갈등 구조 속에서 정작 우리 사회가 나가야할 개혁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상호간 증오만을 표출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불만들의 표출이 의회에서 다양한 정당 간의 경쟁과 타협으로 잘 정리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 새롭게 출현한 다당제는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이런 상황에서 신정부는 정작 의회에서 과반수를 점하지 못한 소수파 정부로서 권력기반은 취약하고 복잡하고 날카로운 사회갈등들을 관리하고 통합시켜낼 통치의 수단은 많지 않은 '딜레마적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한국정치 갈등의 기본 축은 박근혜 처벌 및 친박 척결 요구 세력과, 이에 저항하는 친박 및 반공보수 세력 간의 갈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양 세력은 모두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라는 풍경에서 알 수 있듯이 적극적으로 '운동'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불만을 극대화하고자 하고 있다.
갈등의 축은 여기에만 있지 않다. 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그간 지속적으로 누적되어 온 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불만이 인내의 한계선을 넘어선 상황이다.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빈곤 자살은 불평등 심화에 대한 사회가 보내는 위험신호다. 노동시장 역시 비정규직의 일반화, 극빈층 자영업자들의 등장으로 종래와는 다른 불만이 폭발하고 있으며 노인 빈곤,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저출산 문제는 이제 시민들이 아니라 '사회' 바로 그 자체가 자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정치행위의 본질이 한 사회에 누적된 다양한 '불만의 조직화'라 불릴 수 있다면 이렇게 켜켜이 쌓인 큰 '불만'들은 역으로 신정부의 강력한 '개혁 추진 모멘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다종다기한 불만들 간의 충돌과 적대의 갈등구조는 '개혁' 아니 나아가 '통치' 그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결국 좌우 양날개로부터의 압박과 취약한 권력기반이 초래하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신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유능한 '통치'의 능력을 요구받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 기존의 한국정치에서는 다소 익숙하지 않았던 통치의 방법 그리고 모멘텀을 과감하게 동원해서 기존의 통치 기반을 유지하는 소극적인 전략을 넘어 개혁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면서도 안정적인 통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적극적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이 갈등들을 소극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을 넘어 적극적인 개혁전략으로 선회할 수 있다면 신정부가 새로운 '갈등'을 동원하고 이를 통해 역으로 취약한 권력기반을 확장하는 새로운 통치 전략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 이를 달리 말하면 신정부가 어떤 '갈등'을 동원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는 이를 통해 어떤 '정치연합'을 구성해낼 것이냐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리고 반대로 정치연합의 구조에 따라 신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갈등의 종류도 매우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3. 정당의 시간
2017년 현재 한국의 정당체계를 말하자면 서로에 대한 적대와 반감에 기초를 둔 양극화 정치. 그리고 여-야, 진보-보수보다 같은 블록 내, 즉 자유한국당—바른정당, 더민주당과—국민의당이 서로를 적대하는 경향이 더 강한 독특한 정당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어느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의회에서 과반을 획득하기 어려우며 무엇보다도 이러한 적대구조에서는 문제해결을 위해 경쟁정당 또는 상대의 인사를 포괄하는 탕평책과 같은 인사정책만으로는 '불안정한 다당제'의 출현이라는 구조적 변화로 발생한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는 매우 어렵다. 때문에 결국은 변화된 구조(다당제)를 인정하는 위에서 문제해결의 솔루션으로 연합정치를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아가 이것은 통치를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오히려 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드는 적극성과 과감성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한국정치의 정당체계가 다당제이긴 하지만 정당들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내용은 여전히 매우 빈약하다. 정당들 간의 차이를 구분하는 사회적 내용이 불분명한 채 서로간의 다소 감정적인 적대에 기초한 정당체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4당 체계는 지속될 가능성보다 변화의 가능성이 더 큰 '불안정한 다당제'라 불리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신정부가 등장하고 선택할 연합정치의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라 현재의 '불안정한 다당제'는 ① 양당 체계로 회귀할 수도 있고, 혹은 ② 거대 집권연합을 통해 일당 우위체계를 모색해볼 수도 있다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서 ③ 신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역으로 포위되는 소수파 정부로 전락하는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4. 누구와의 '연합', 누구와의 '협치'인가?
1) '협치'는 촛불과의 '대연정'이다
2016년에서 201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촛불집회와 대통령 탄핵/파면이라는 사건은 민주주의에서 시민과 정부 간에 형성되는 '수직적 책임성'과 행정부/입법부 그리고 헌법재판소를 포함한 사법부 간에 형성되는 '수평적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극적인 국면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나면 결국 지난 촛불집회와 대통령에 대한 파면이 신정부에게 던져주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신정부가 추진해야 할 연합정치는 행정부, 입법부 그리고 사법부 간에 형성되어야 하는 수평적 책임성의 문제를 안정적으로 제도화하고 해결하기 위함이다. 한편 촛불집회로 표현된 정부(국가)-시민 간에 형성된 수직적 책임성의 문제를 대면하는 것이 바로 '협치'의 원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를 '민주주의의 민주화'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조금 더 익숙한 현실정치의 언어들로 말한다면 '연합정치'가 다당제 그리고 친박/반문 따위의 단어로 대표되는 양극화된 정치 갈등구조에서 안정적 개혁과 통치의 기반을 관리하는 문제라면, '협치'는 정당 간 구조에서 작동하는 원리에 앞서 신정부와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 간의 관계에서 작동되어야 할 원리라고 할 수 있다.
2) 협치는 사회 갈등에 대한 통합이다
표면적으로 촛불집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대한 책임을 물었지만 한편 지난 10여 년간 진행되어 온 보수 성향 정권이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무능력에 대한 심판 정서도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 하나만으로 전대미문의 대통령 탄핵과 파면, 그리고 연인원 천 만 명의 시위참여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당장의 선거 시기 유권자의 투표결과와는 달리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불만은 누적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라는 사건은 정부가 사회경제적 불만을 해결해주지 못한 채 무능을 반복하는 이유를 찾게 해준 것이다. 그것은 87년 직선제 쟁취이후 만들어 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깨달음이었을 것이다.
누적된 사회경제적 불만이 지난 촛불집회와 정권교체의 주요한 원인중 하나라고 본다면 신정부가 처해질 상황은 만만치 않다. 자칫하다가는 양 극단에서 높아진 개혁요구와 반개혁 저항 사이에서 교착상태에 빠져, 정작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돌입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신정부는 급격하게 '불만의 겨울'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그간 누적되어온 불만들과 시민사회 및 이해집단들의 요구를 단순히 고충이나 민원성으로 고려하며 '리스크' 관리의 측면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정부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민사회, 그리고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해집단들과의 '협치'라는 공동의 원리를 활용해 신정부의 개혁 아젠다들을 수행해갈 수 있는 통치영역의 실질적 파트너십을 형성하는 것을 고려해봄직 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촛불집회로 표출된 정부와 시민 사이의 수직적 책임성에 대한 깊이 있는 응답이며 다양한 사회경제적 개혁요구 집단들과의 일종의 '사회적 대연정'이라 말 할 수 있다.
3) 사회적 대연정+협치 정치 연합
16년 총선이후 등장한 다당제 구조에서 치러진 대선이기 때문에 연합정치, 대연정 등의 단어가 많이 사용되어진다. 그러나 현재 한국정치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조금 더 냉정하게 짚어본다면 정당 사이의 연합 문제에만 한정한 기존의 대연정론에 대한 대안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형성되어진 불안정한 다당제 안에서 각 정당들은 정작 독자적인 사회적 기반이 약하고 이념적 차이에 따른 경쟁/협력관계보다 정당들 간의 반감과 적대가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당장의 불평등 해소나 경제적 분배문제가 큰 효과를 보기 어려운 대내외적 조건을 고려한다면 다양한 사회집단, 개혁적 요구들과의 관계에서 협치의 원리를 더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성도 있다. '협치'라는 원리를 '커뮤니케이션'이나 '협력' 등의 소극적 해석의 수준을 넘어 정부와 시민사회가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고 이를 통해 공동의 결정, 공동의 책임을 지고 개혁을 모색해가는 새로운 통치모델로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이는 달리 말하면 정부와 시민들 간에 '협치'의 원리를 활용한 일종의 분권형 통치체제라 말 할 수 있는데 개혁의 주체와 책임의 다자화를 통해 과반미달 의석수로 대표되는 약한 개혁 모멘텀을 보완하고 양 극단의 급진적 요구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적극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존의 진보-보수 간의 대연정론을 넘어 사회적 대연정 + 정치 연합을 통해 더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신정부가 취할 수 있는 연합정치에 대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야권연정 → 신정부에서는 더 이상 야권연정은 없어. 집권당으로서 민주당 정부가 어떻게 할 것이냐가 핵심일 뿐. ② 친박을 제외한 진보-보수 대연정 → 사회적 대연정 없는 정치 대연정이 결국 권력분배의 문제에 그칠 가능성이 높음 ③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 대연정 위에 선 개혁 연정이다.
개혁 연정의 범위는 정당간 이념적 거리나 적대를 넘나들며 얼마든지 넓을 수 있다. 이를 굳이 진보 보수의 연합으로서 대연정으로 한정지어 말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불안정한 다당제'가 초래한 다양한 '가능성의 공간'이라는 역설을 활용하여 개혁의 모멘텀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5. 통치의 시간
이처럼 현재의 불안정한 다당제를 통치/개혁의 불안요소로만 바라볼 이유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정치연합과 갈등구조의 변화를 통해 기존 양당제 및 양극화된 보-혁갈등 구조에서 불가능했던 폭넓은 개혁을 시도할 수 도 있다.
한편 정당간 연정 및 사회와의 협치 역시 '시기' 또는 '의제의 성격'을 두고 다양하게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집권초기에는 '합의쟁점'을 중심으로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정운영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문제', '2018 평창올림픽', 그리고 '남북관계와 외교문제' 등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과 연합정치를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2018년 6월 지방선거 이후에는 노사관계 또는 사회경제적 의제와 같은 '갈등쟁점'들을 두고 경쟁 또는 협력하며 왼쪽으로의 정치연합 또는 시민사회와 협치를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하는 방법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국정운영에 있어서 과도한 중앙집권주의를 해소하기 위해 시도지사협의회를 제2의 국무회의처럼 운영하여 지방정부들을 국정운영의 실질적인 파트너로 끌어들여 지방분권을 촉진하고 개혁의 모멘텀을 확보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정부에게는 개혁의 주체와 책임을 다자화하고 위기의 시기마다 다양한 국정운영의 모델을 운용해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다당제를 오히려 기회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2) 정책 연합의 종류
● 1단계 : 기존 정당들 간의 공통의 정책, 합의의 정도가 높은 이슈
개혁적인 정책은 과감하게 합의.
일자리 창출, 저출산 대책(육아 휴직 장려, 어린이집 확대), 교육의 공공성 강화, 교육비 부담 완화, 실효 세율 인상, 미세 먼지 등 환경 개선 문제 등
● 2단계: 국가적으로 시급하고 중요한 정책, 외교안보, 복지 사회 정책 → 외교안보 동맹, 복지 동맹
사드 배치와 중일 관계 악화 문제 해결 및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 구축 등.
복지 체제 구축을 통해 불평등을 완화하는 문제 등.
● 3단계: 이견을 조정하는 단계, 정치가 진짜로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접근
스웨덴의 수요미팅(매주 4당 지도자를 만나 외교 현안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는 모임)과 목요클럽(노사정회의), 그리고 하르프순드 회의는 엘란데르 총리가 직접 다른 정당 지도자나 이해 당사자 대표를 만나 진짜로 문제를 다루는 실천적 접근을 보여 줌.
6. 새로운 미래를 향해
신정부는 박정희 발전모델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말미암아 '새로운 모델 형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위기 상황이기도 한 '새로운 모델 형성기'에 정치의 방법으로,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실천했던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절대 빈곤과 사회적 갈등을 극복하고 복지국가의 초석을 다진 스웨덴 엘란데르 수상의 사민당 정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경제 공황을 극복했던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 역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버리지 보고서'를 바탕으로 복지동맹을 이끌었던 영국 애틀리 수상의 노동당 정부 등을 들 수 있다. 신정부 역시 앞서 언급한 정부들처럼 새로운 도전과 실험에 직면해 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개혁의 주체가 대통령과 청와대이고 시민들은 이를 5년에 한번 있는 선거에서 평가하거나 때로 거리에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역할 외에는 별다른 민주주의적 역할이 주어지지 않았었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정부는 현재 닥친 복합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한편 새로운 국가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만큼 국정운영과 통치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내고 또 실험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만이 개혁의 주체여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방식이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들의 참여와 개혁요구를 올바르게 반영한 것이라 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 정당 간 연합정치와 시민사회/이해집단들과의 협치는 위기 극복의 수단만이 아니라 정부와 시민의 새로운 관계 수립 및 각 분야의 역할 재정립이라는 국가통치시스템의 총체적이고 새로운 변화를 지향해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경제 및 외교안보적 불안, 저출산 고령화와 복지국가로의 이행 등 많은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는 정교하게 설계된 정책꾸러미가 아니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개혁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통치/개혁 모멘텀을 어떻게 만들 것 인가의 문제이며 그것은 지난겨울과 봄을 거치며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발전소 민주적 통치모델 연구회
훈장과 권력 1부 ‘‘민주’ 훈장이 없는 나라’ 16.7.28 뉴스타파
뉴스타파는 지난 4개월 동안 대한민국의 서훈 내역을 분석했다. 건수로는 모두 72만 건이었다. 훈장 수여자와 사유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훈장은 독재세력에게는 관대했고 민주인사들에게는 인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헌정 질서를 파괴한 반민주 행위자들에게는 다수의 무공훈장, 보국훈장, 근정훈장 등이 수여됐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들을 진압한 군인과 경찰들에게 수여된 무공훈장과 5.16, 12.12 군사쿠데타에 공을 세웠다며 수여된 훈장들도 아직 치탈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3.15의거,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등 대한민국 민주화에 기여한 사유로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부수립후 지금까지 훈장과 포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 모두 14개의 훈포장을 받았다. 그 중 8개는 육이오 참전유공이 사유였다. 취재팀은 어떤 무공을 세워 그렇게 많은 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었는지 추적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지금까지 10개의 민주화운동을 지정·기념하고 있다. 이 10개 민주화운동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에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운동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지만 독재로 흐른 이승만에 저항했던 시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28 대구민주화운동, 3.8 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 혁명
쿠데타 직후 민정이양을 약속했지만 역시 독재의 길을 간 박정희에 저항했던 시민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6·3 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부마항쟁, 유신헌법 반대운동
군사반란에 이어 무고한 시민들을 짓밟고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에 저항했던 시민들.
.10항쟁(왼쪽), 광주민주화운동(오른쪽)
대한민국의 현대사는 독재 권력의 폭압 통치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민중의 처절한 저항으로 점철돼 있다.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사람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가 훈장이지만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훈장은 주로 독재자의 수중에 있었다.독재 권력은 틈만 나면 자기들끼리 훈장 잔치를 벌이면서도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국민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독재에 바쳐진 훈장
대한민국 국민 중 최다 수훈자는 ‘박정희’ … 훈포장 14개
대다수 국민들은 평생 훈장 받을 일이 없지만 권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훈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얼마나 많은 훈장을 받을까?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또는 임기 중에 대통령에게 수여되는 무궁화대훈장을 받는다. 따라서 모든 대통령은 훈장을 한 개 이상 받게 된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이승만부터 박근혜까지 11명의 전,현직 대통령의 서훈 내역을 확인한 결과 최다 수훈자는 박정희로 나타났다. 박정희는 일생 동안 모두 14개(훈장 13개, 포장 1개)의 서훈을 받아 대통령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많은 훈포장을 받은 사람으로 확인됐다.
박정희 서훈의 첫 번째 특징은 무공훈장이 많다는 점이다. 모두 7개의 무공훈장과 1개의 무공포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무공훈장은 다섯 등급으로 태극부터 을지, 충무, 화랑, 인헌 순이고, 그 아래 무공포장이 있다. 박정희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1957년까지 거의 매년 무공훈장을 받았다. 모두 7개다. 등급별로 보면 화랑 1개, 충무 4개, 그리고 을지가 2개였다. 여기에 1956년에는 무공포장을 하나 더 받았다.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1963년 12월 17일 대통령 취임식 당일 대통령에게만 수여되는 무궁화대훈장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자격으로 보국훈장 통일장을 동시에 받았다. 보국훈장을 받은 사유는 다음과 같았다.
““5·16 군사혁명을 영도하여 사회 각 분야의 구악을 일소하고 제반 시책을 수행하는 등 복지국가 건설과 백년대계를 위한 재건사업에 공헌”(1963.12.17. 보국훈장 통일장)”
그런데 박정희는 취임 1년 후인 1964년 12월 17일 태극무공훈장을 자기 자신에게 수여했다. 훈장의 사유는 1년 전 보국훈장의 사유와 사실상 같았다.
““군사혁명을 영도하여 국가안전보장에 공헌”(1964.12.17, 태극무공훈장)”
이미 대통령이 된 그가 왜 또 무공훈장을 받으려고 했을까? 공식 기록 상으로는 그 이유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태극무공훈장은 무공훈장 중에서 최고 등급으로, 무공훈장 중 당시까지 박정희가 유일하게 받지 못했던 훈장이라는 점에서 그가 ‘셀프’ 서훈을 한 의중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박정희에게는 훈장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1964년 독일을 방문하여 국위를 선양했다며, 1975년에는 정상외교를 잘했다며 수교훈장 광화장을 자신에게 줬다. 이것이 12번째와 13번째 서훈이었다. 그에게 수여된 마지막 14번째 서훈은 10·26 이후 사후에 수여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다.
박정희 다음으로 많은 서훈을 받은 사람은 노태우와 전두환이었다. 노태우는 12개, 전두환은 10개였다. 전두환의 훈장 내역과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훈장에 대한 집착은 박정희를 연상케 한다.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을 통해 정국을 장악한 전두환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태극무공훈장을 받는 일이었다.
““제 3땅굴 발견과 충정작전에 공헌 10월 26일 사태 후 국가안보 및 사회안정 질서에 기여”(1980.8.22. 태극무공훈장)”
특히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한 후 1983년에 스스로에게 두 건의 훈장을 ‘셀프’ 수여했다. 하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고 다른 하나는 수교훈장 광화대장이었다.
“
“10·26사태 이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극복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출 제 5공화국 출범으로 국가의 기틀을 더욱 공고히 함”(1983.3.11.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국정 각 분야의 선진화와 우리나라 국제적 지위 향상에 기여”(1983.3.11. 수교훈장 광화대장)”
대통령 재직 중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람은 이승만 외에는 전두환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승만이 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독립운동이 공적 사유였다. 특히 대한민국장은 건국훈장 중 최고 등급으로 이승만, 이시영, 윤봉길, 이준, 손병희, 김좌진, 안중근, 강우규, 김구, 최익현 같은 분들에게 수여된 훈장이다. 전두환은 자기 자신을 이들과 동격으로 생각한 것이었을까? 그러나 전두환이 대한민국장을 받은 사유는 군사반란이고 내란이었다. 지난 2006년 정부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람들에 한해서 서훈을 모두 취소했다. 그러나 노태우, 전두환이 대통령으로서 받은 무궁화대훈장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노태우, 전두환 훈장
최규하와 이명박은 각각 다섯 개의 훈장을 받았다. 외무 관료 출신이었던 최규하는 수교훈장을 두 개 받았고 대통령 퇴임 후에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대통령 재임 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기를 공고히 하는데 기여”(1980.9.29.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최규하가 과연 이승만, 김구, 안중근 등과 같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을 만한 공적을 세웠는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것에 대해 전두환이 선물용으로 준 훈장으로 추정된다.
이명박이 받은 5개의 훈장에서 특이한 점은 무궁화대훈장을 뺀 나머지 네 개 훈장을 모두 전두환으로부터 받았다는 것이었다. 경제인이었던 그가 체육훈장을 두 개나 받은 것도 이색적이다. 훈장이 하나 뿐인 경우는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였다.
박정희는 어떤 무공을 세웠나
박정희가 한국전쟁에서 어떤 전공을 세웠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취재팀은 박정희가 어떤 무공을 세워 그렇게 많은 무공훈장을 받을 수 있었는지 추적했다.
1950년부터 1957년까지 8년 동안 박정희는 총 7개의 무공훈장과 1개의 무공포장을 받았다. 박정희가 받은 포상의 등급을 살펴보면, 무공훈장 중 훈격이 두 번째로 높은 을지무공훈장이 2개였고 그 다음 등급인 충무무공훈장도 4개나 된다. 훈격이 네 번째인 화랑무공훈장이 1개, 그리고 무공포장도 1개 있었다. 전쟁 중인 1953년 7월까지 받은 훈장이 3개였고, 휴전 이후에 받은 훈장과 포장은 5개였다.
그런데 박정희가 받은 무공훈장 7개의 서훈 사유를 보면 ‘육이오참전유공’이라고만 나와있을 뿐 세부 내용은 없다. 무공 내역이 간단하게나마 언급된 것은 1956년 수여된 무공포장이 유일하다. 박정희는 ‘1953년 5월 1일부터 7월 30일까지 강원도 김화지구에서 적군을 섬멸’한 공적으로 이 무공포장을 받았다.
박정희 김화지구 전투 참전 기록, 증인도 없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출판한 <6·25전쟁사> 제11권에서는 휴전회담 타결을 눈앞에 둔 1953년 1월부터 7월까지의 전투 상황을 다루고 있다. <6·25전쟁사>에 따르면 휴전 직전 중공군의 공격은 김화의 금성돌출부 등에 집중돼 치열한 고지 전투가 벌어졌다. 현재 철원군 일부와 북한의 김화군에 해당하는 이 지역이 바로 박정희의 무공포장 공적 사유에 언급되는 김화지구다. 3사단, 6사단 등으로 편성된 국군 제2군단이 이 지역 방어를 담당하고 있었다.
구미시에서 운영하는 박정희대통령 민족중흥관에 따르면 박정희는 1953년 2월 16일부터 같은 해 5월 8일까지 2군단 포병단장이었다. 그러나 2군단 포병단장 박정희의 공적은 <6·25전쟁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군사편찬연구소가 1976년 펴낸 <한국전쟁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주요 전투를 설명하면서 해당 전투 부분의 맨 앞에서 참전한 부대와 지휘관을 소개하고 있다. 한 예로 1953년 7월 13일부터 18일까지 금성동남지구 전투에서는 제8사단과 제12포병단 등 참전 부대들이 나오며, 각 부대의 부대장들도 함께 소개된다. 그런데 1953년 김화지구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기록 어디에도 2군단 포병단이나 ‘적군을 섬멸’했다는 박정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부대의 전우회를 찾아가 박정희의 참전에 대해 물어봤다. 그러나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6사단 청성전우회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참전한 건 잘 모르겠고 옛날에 5사단장을 했다”고 대답했다. 이 지역에서 삼십 년 이상 군생활을 하고 제대했다는 다른 전우회원들도 박정희가 6·25 전쟁 말기 김화에서 참전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유명 인사의 참전이니 누군가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재차 질문했지만,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박정희 대령 광주에서 머물다가 양구로 이동, 김화지구와는 무관
포병단장 박정희 대령의 행방은 의외의 기록에서 찾을 수 있었다. 박정희를 오랫동안 취재한 조갑제 기자는 <박정희> 전집에서 1953년 박정희가 전라도 광주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
“박정희는 광주 포병학교에서 넉달간 교육을 받았다.”
“박정희는 1953년 2월에 포병학교를 졸업한 뒤 2군 포병단장으로 임명되어 광주에 머물면서 신설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5월 9일엔 3군단 포병단장으로 전보되어 조직과 인원 편성을 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령은 1953년 7월 휴전 직전에 광주에서 창설한 3군단 포병단 요원들을 데리고 강원도 양구로 이동했다.””
공적서 상 박정희가 ‘김화지구에서 적군을 섬멸’한 것으로 돼 있는 1953년 5월부터 7월까지 박정희는 김화지구의 2군단이 아니라 3군단에 소속돼 있었다. 1951년 해체됐다가 1953년 5월 재창설된 국군 3군단은 강원도 양구지구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M1고지, 1090고지 등 작전지역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 기간 대부분을 전라도 광주에서 머물다가 휴전을 코앞에 둔 7월 양구로 이동했다. 양구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는 1953년을 다룬 <6·25전쟁사> 11권 제4장 ‘중공군의 6월 공세’ 부분에 실려 있다. 이곳에서도 3군단 포병단이나 박정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박정희가 무공포장을 받은 것은 1956년 10월 29일이다. 같은 해 7월 5일에는 을지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다. 불과 3개월만에 왜 다시 무공포장이 수여됐는지 의문이다. 특히 박정희가 받은 7개의 무공훈장은 공적이 모두 ‘육이오참전유공’으로만 돼 있는데 무공포장 사유는 ‘적군 섬멸’이다. 적군을 섬멸했는데 왜 훈장보다 등급이 낮은 포장이 수여됐는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군사반란과 내란 주역들의 훈장 잔치
79년 12·12에서 80년 5·18에 이르는 전 과정은 군사반란이고 내란의 과정이었다. 지난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에는 12·12에서 5·18에 이르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했던 사람들의 실명이 언급돼 있다. 이들은 대부분 훈장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은 12·12 직후 보안사 앞뜰에서 군사반란의 주역임을 자처하며 기념 촬영을 한 34명의 군인들의 서훈을 추적했다. 이 중에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12명의 서훈은 취소된 상태였다. 나머지 22명의 서훈을 추적한 결과 모두 102건의 훈·포장이 확인됐다. 국방부 군수차관보(중장)였던 유학성의 경우 12·12의 주역으로 2심 재판에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지만 대법원 판결 전에 사망했다는 이유로 그의 13개의 훈·포장이 모두 유효한 상태였다.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은 군부에 대규모 훈장을 수여하기 시작했다. 1980년 12월 31일 국가안전보장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62명이 훈장이나 포장을 받았다. 전두환은 다음 해인 1981년 4월 2일에도 계엄업무와 국가안보에 기여했다며 101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했다. 특히 이 가운데는 5·18 당시 광주에 진압군으로 투입됐던 부대들에 대해서 다수 포상이 이루어졌는데 무자비한 시위 진압을 주도했던 7공수여단의 신우식 여단장과 전교사 사령관으로 봉쇄작전을 지휘한 소준열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이 받은 훈장은 무공훈장으로 적의 공격에 대응해 전공을 세웠다는 것인데 광주 시민들을 적으로 간주한 것이다.
“12·12, 5·18 가담자, 5·18 진압 서훈 모두 취소해야”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 가담자 중 서훈이 취소된 16명의 경우는 그들이 재판에서 유죄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훈법은 다른 경우에도 서훈을 취소하도록 하고 있다. 서훈을 받을 당시의 공적이 나중에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다.
상훈법 제 8조 서훈의 최소 등
1.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
대표적인 사례가 과거 간첩을 조작해 발표한 뒤 간첩검거를 공적으로 훈장을 받은 국정원, 보안사, 경찰 수사관들이다. 독재 정권 시절 불법 감금이나 고문 등으로 간첩을 조작한 수사관들은 후일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재조사와 재심을 통해 당시 각종 불법 행위 등을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공소시효가 끝났다는 이유로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받은 훈장은 간첩 조작으로 밝혀진 만큼 ‘공적이 거짓인 경우’에 해당돼 현재 취소가 추진되고 있다. 때문에 “국가안보에 대한 기여”가 재판에서 “반란이나 내란”으로 밝혀졌다면 훈장을 취소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
또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군인이나 경찰에게 수여됐던 서훈은 진압 중 사망한 경우라도 취소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정부는 공적에 광주 진압작전을 뜻하는 ‘충정작전’이 명시된 서훈만 취소했다. 취재 결과 전남도청 앞에서 “시위 진압 중 사망”한 경찰관 4명에게 수여된 훈장은 취소되지 않았다. 또 5·18 진압군에게 수여된 서훈은 더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홀대 받은 민주 - 6·10항쟁 주역들의 초라한 오늘
지난 6월 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6·10민주항쟁 29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이 대독한 기념사를 통해 “정부는 그간 민주화운동을 기리기 위해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조성과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성공회성당에서 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와 대한성공회 주최로 열린 6월 민주항쟁 29주년 기념식에서는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6·10항쟁은 1987년 1월 14일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이 계기가 돼 같은 해 6월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주화운동이다. 6월 10일 ‘고문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지면서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다.
6·10항쟁은 헌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됐다. 헌법 전문에는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해 4·19 혁명 정신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6·10항쟁의 주역이었던 이한열, 박종철은 현재 국가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까?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150여 명 이상의 민주화운동 관련자 또는 참여자들이 안장돼 있다. 박종철도 이 곳에 잠들어 있다.
마석 모란공원은 정부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묘지다. 국립묘지는 국가가 관리를 해주지만 모란공원은 사립묘지이기 때문에 관리비를 내지 않으면 방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태일, 계훈제, 문익환, 최종길, 박종철, 이소선, 조영래 등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대거 안장되면서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가 됐다. 오래 전부터 민족민주열사묘역을 국립묘지로 승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뉴스타파는 이곳에 잠들어 있는 분들이 어떤 서훈을 받았는지 확인해 봤다. 지금까지 확인된 서훈자는 2명에 불과했다. 김근태는 복지부 장관을 지낸 공로로 근정훈장을 받았고, 문익환은 통일운동과 목회자 활동으로 국민훈장을 받았다. 민주화운동 그 자체로 훈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마석 모란공원에는 1970년 분신한 전태일이 묻히면서 민주화 인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전태일의 묘비에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죽음”이라고 적혀 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다녀갔을 이 곳에는 ‘단결, 투쟁’이라고 써 있는 빨간 머리 띠가 곳곳에 묶여 있다.
어머니 이소선의 묘비에는 생전 발언이 신영복의 글씨로 써 있다.
““옷도 세상도 건물도 자동차도 이 세상 모든 것을 노동자가 만들었습니다. 노동자가 세상의 주인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는 하나가 안 되어서 천대받고 멸시받고 항상 뺏기고 살잖아요. 이제부터는 하나가 되어 싸우세요. 하나가 되세요. 하나가 되면 못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태일이 엄마의 간절한 부탁입니다. 여러분이 꼭 이루어 주세요.””
“노동자가 하나 되어 싸워야 한다"는 말은 이소선이 생전에 늘 강조했던 말이다.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는 전태일과 이소선의 묘가 함께 있다. 근로기준법전을 움켜쥔 전태일 동상 뒤로 이소선의 영정 사진이 보인다.
전태일이 분신해 사망한 후 이소선은 40년을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았다. 1970년 직접 청계피복노조를 결성했고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는 수배 중인 장기표의 장기간 도피를 도왔다. 1977년 장기표 공판과 관련해 법정모독죄로 구속돼 징역 1년을 살았고, 1980년 계엄당국에 구속됐다. 1981년 계엄 포고령, 집시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살고, 1985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를 결성했다. 1986년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를 창립해 1993년까지 회장을 지냈다.
1988년엔 민주화운동 유가족들과 함께 기독교 회관에서 135일 동안 의문사 진상 규명 농성투쟁을 전개했고, 1998년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회 앞 천막농성을 422일간 전개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11년 9월,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이 작고하자 당시 행정안전부에 훈장 수여를 건의했다. 그런데 당시 자치행정과는 훈장 추서 여부를 담당하는 상훈담당관실에 보고도 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논의한 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건의를 묵살했다. 공적심사위원회를 열지도 않고 훈장 추서 여부를 결정해 버린 것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민주화 인사에 대해 훈장 추서를 건의한 것은 이소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 기념사업회는 더 이상 정부에 훈장 추서를 건의하지 않았다.
4·19혁명 유공자는 건국포장 받아
뉴스타파는 서훈 데이터를 바탕으로 국가가 지정한 10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이 어떤 훈장을 받았는지 추적했다. 그 결과 4·19혁명 유공자 1천79명에게 건국포장이 수여된 사실을 확인했다.
박정희는 군사쿠데타 이듬해인 1962년 4월 19일에는 3·15의거를 포함한 4·19혁명 희생자 184명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했다. 이후 1963년 350명, 1970년 60명, 1971년 7명,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93명, 2007년 71명,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273명, 2012년 40명 등 1천79여 명이 건국포장을 받는다.
김주열 시신이 떠오른 마산 앞바다에는 김주열 추모의 벽이 세워져 있다. 추모의 벽에는 3·15의거, 4·19혁명으로 희생된 186명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과 2012년에는 3·8대전민주의거와 2·28대구민주화운동 참가자들에게까지 서훈의 범위가 넓어졌다. 하지만 서훈자는 3·8대전민주의거 3명(2010년 1명, 2012년 2명), 2·28대구민주화운동 4명(2012년)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따라 민주화운동으로 지정된 운동은 2·28대구민주화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6·3한일회담 반대운동, 3선개헌 반대운동, 유신헌법 반대운동,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 6·10항쟁이다. 10개의 민주화운동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기에 일어난 것인데, 서훈은 이승만 정권에 항거한 3개 민주화운동 관련자들에게만 이뤄진 것이다.
왜 김주열은 되고 이한열은 안 될까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은 1962년 4월 19일 건국포장을 받았다. 하지만 6·10항쟁의 이한열에 대한 서훈은 없다. 김주열의 시신을 처음 보도한 부산일보의 허종 기자는 2012년 건국포장을 받았지만, 이한열의 피격 사진을 찍은 로이터의 정태원 기자는 서훈을 받지 않았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2010년과 2012년, 김천길 AP통신 서울특파원(2010년), 박용윤 동아일보 사진기자(2010년), 전응덕 부산MBC기자(2010년), 이명동 동아일보 사진기자(2012년) 등 4·19혁명을 보도했던 일선 기자들의 공로를 인정해 건국포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모두 국가보훈처가 추천한 것이다. 4·19혁명 관련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공적을 발굴해 서훈을 했지만 다른 민주화운동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7월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승춘 국가보훈처 처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국가가 지정한 민주화운동인 6월항쟁과 관련해서 이한열 열사도 당연히 건국포장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는데 보훈처가 추천할 의향은 혹시 있으십니까?””
박승춘 처장은 “확인해 보겠다”는 애매한 답변만 남겼다.
이틀 뒤인 7월 1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현재의 헌법이 있게 말들었던 6·10 항쟁의 불을 지폈고 또 6·29 선언의 도화선 역할을 했던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다수의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은 현재까지 포장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이유에 대해서 혹시 알고 계신 바가 있습니까.””
홍윤식 장관은 “아직까지 상세한 파악은 못했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관계부처와 협의해보겠다”는 다소 진전된 답변을 내놨다. 하지만 정작 보훈처와 행정자치부는 이와 관련된 뉴스타파의 공식 질의에는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박정희 동상 앞에서 그들이 통곡하는 이유 517 시사인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을 집요하게 쫓는다.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즈음에 개봉될 예정이다. 영화 포스터가 찢겨나갔다. 처음 걱정은 박근혜 지지자였다. 포스터를 만들 때 그들 중 누가 봐도 괜찮도록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퍼스트 레이디’ 시절 박근혜의 모습에 꽃 장식까지 갖춘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죽을 만큼 사랑합니다’라는 문구도 들어갔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영화가 처음 공개된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에서 포스터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 영화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짐작 이상으로 갈리겠구나 싶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를 만든 김재환 감독은 성역과 싸워왔다. 방송사에게 영원한 ‘을’인 외주제작사 대표 처지에 <트루맛쇼>(2011년)를 통해 텔레비전 맛집 프로그램이 어떻게 조작되는지 폭로해 미디어 업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MB의 추억>(2012년)은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통렬하게 풍자한 작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목사에게 “예수 믿는 사람 맞습니까?”라며 돌직구를 날리는 영화 <쿼바디스> (2014년)를 보고 나면, 그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는 점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작품마다 개봉은 쉽지 않았고, 흥행은 더더욱 난망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 센 자를 건드리고, 만들고 나면 꼭 고생하는” 작업을 되풀이해왔다.
김재환 감독이 이번에 마주한 성역은 ‘박근혜’다. 정확히 말하면 박정희·육영수와 박근혜를 따르는 뜨거운 지지자들이다. 지난해 8월15일 육영수 서거일부터 올 3월 박근혜 탄핵 심판 때까지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는 10월26일 박정희 38주기에 맞춰 정식 개봉을 앞두고 최근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다.
전주국제영화제 현장에서 만난 김 감독은 긴장이 역력해 보였다. 밥줄이었던 공중파 방송이나 대형 교회를 비판할 때 느낄 수 없었던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박근혜 지지자 미화라며 비판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자신을 조롱했다며 반발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영화는 인간극장처럼 흘러간다. 매년 10월26일이면 새벽같이 일어나 머리 감고 로션 바른 뒤 의관 정제하고 박정희기념관으로 떠나는 노인,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그렁거리는 국숫집 부부 이야기에 밀착했다. 박근혜 지지자들이 탄 전세버스에 동행하기도 했다. 전작에서 보였던 재기발랄한 풍자는 보이지 않는다. 대신 적잖은 상징과 은유가 숨어 있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처음 접하는 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속 등장인물은 탄핵 반대 집회에서 연단에 올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이들과는 결이 다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하고 순박한 어른들이다. 어쩌면 가장 비정치적인 삶을 살아오다 어느 순간 정치적 상징이 되어버린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왜 과거에 사로잡혀 있을까?
‘그들’이 가장 빛났던 시절에 대한 자부심
김재환 감독은 박정희 시대야말로 그들이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공장 미싱 앞과 아랍의 사막에서 자신의 청춘을 다 보냈지만, 적어도 그때는 자신들이 사회의 주인공이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의 청춘을 부정하는 일이다. 이들에게 박정희 시대에 관한 실질적인 팩트를 들이대는 건 무의미하다. 그들 내면에는 자신을 ‘산업역군’으로 불러준 지도자와 함께 고도성장 시대를 이끌었다는 자부심, 혹은 판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왜 이 영화 제목이 <미스 프레지던트>인지 알게 된다. ‘미스’는 ‘myth(신화)’일 수도 있고, ‘miss(놓치다, 그리워하다)’일 수도 있다.
“영화에서 10·26을 이야기하면서 등장인물이 울어요. 그때 그가 우는 건 박정희의 죽음이 슬퍼서만은 아닙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이키면서 ‘나 정말 고생 많았다’라며 울먹여요. 자신을 박정희와 동일시하는 거예요. 그 시대에 가장 고생한 사람들이 박정희의 죽음을 애도하고 박근혜의 탄핵을 못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퍼요.”
영화에는 미국 남북전쟁 때 많이 불렸던 음악 ‘즐거운 나의 집’이 세 번 흐른다. 영화 시작할 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때, 그리고 탄핵 심판 이후 박근혜가 삼성동 집으로 돌아갈 때다. 그의 문제의식은 처음부터 그것이었다. 과거를 붙잡으며 지금껏 박근혜를 지지하는 그들에게 ‘즐거운 나의 집’은 어디인가?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거대한 빙하예요. 수면 아래 무엇이 잠복해 있는지 알 수 없는. 촬영하면서 저도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이분들은 결국 안 변할 것 같더라고요. 그렇다고 이분들을 버리고 가야 하나. 어쩌면 우리가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대화의 기술을 익혀서라도 그들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원래 영화는 박 전 대통령의 정신분석을 중요한 축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영화 촬영 중에 탄핵 국면이 펼쳐졌다. 국정 농단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굳이 정신분석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관련 전문가 인터뷰 대목을 다 들어내니, 온전히 박근혜 지지자 이야기가 남았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2004년부터였다. 김 감독은 당시 총선 관련 다큐를 찍기 위해 한 달 동안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를 따라다녔다. 놀랍게도 그때 이미 박근혜를 신격화하며 절하는 사람을 목격했다고 한다. 2004년은 박근혜와 그 지지자에게 중요한 해였다. ‘차떼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망가진 보수 정당을 일으켜세운 박근혜의 모습은, 그 아버지 서사와 일치했다.
2004년 김 감독이 처음 만난 그들은 생기가 넘쳤다. 메시아가 재림했다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적 맹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2017년 그들은 쇠약해졌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니다. 영화에서 박정희 동상에 절을 올리던 노인은 탄핵 직후 “내 미약한 몸이나마 (던져서) 대항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약자의 언어를 쓰고 있었다.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의 한 장면. 박정희 동상에 절을 올리던 노인은 탄핵 직후 “내 미약한 몸이나마 대항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일방적이다. 일당 몇만원을 받는 동원 대상으로 보거나,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이라 여긴다. 우리 사회의 노인 혐오 정서와 맞물려 이런 분위기는 점점 더해간다. “우리가 어떻게 이 역사를 청산할 수 있을까요? 이분들이 돌아가시고 나면 정리될까요? 1979년 10월27일 새벽에 박정희의 사망 소식을 듣고 환호한 대학생 가운데 정규재씨도 있었어요. 정규재TV의 그 사람 말이에요. 과거 박정희라면 치를 떨던 어떤 사람은 나중에 박정희가 우리 사회 발전의 밑거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 사람이 전원책 변호사예요.”
영화에는 박정희 동상이 자주 등장한다. 전국 각지의 모든 박정희 동상을 다 찍겠다는 각오로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은 물에 비친 박정희 동상이다. 영화 속에서 어떤 동상은 바로, 어떤 동상은 거꾸로 비친다. 김재환 감독은 물에 비친 박정희 동상을 보고 또 봤다. 눈이 아플 지경으로 이 장면을 보다 문득 박정희 동상이 말을 걸어온다고 느꼈다. “다 끝난 것 같지? 과연 그럴까?”
5월2일 밤 영화제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그는 ‘불길한 예언’을 하나 내놓았다. 지금처럼 모욕감을 주는 방식으로 그들을 대할 경우, 어떤 정치세력이 이를 악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보라, 저들이 당신들을 모욕하고 있다며 표를 모을 겁니다. 촛불집회로 세상이 다 바뀐 것 같지만, 과연 그럴까요?”
실제로 김 감독은 이번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박사모’가 가장 큰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김 감독이 접한 박근혜 지지자 중에는 온건·합리적 보수에 속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 탄핵 과정에서 극우 세력이 이들을 다 빨아들였다는 것이다. 바른정당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본다.
<미스 프레지던트>가 개봉되는 10월26일 무렵 우리 사회는 또 한 번 요동칠 것이다. 20일 뒤인 11월14일이 박정희 탄생 100주년이기 때문이다. 바뀐 정권 아래서 퇴행과 반격, 또는 ‘한풀이’가 시작될 공산이 크다. 김 감독은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개봉 시점을 잡았다. 어지럽게 펼쳐질 공론의 장에서 이 영화가 작은 구실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김 감독은 출연진을 포함한 박근혜 지지자를 불러 영화 개봉 전 시사회를 열 생각이다. 감독으로서는 이들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가장 궁금하다. 5·16 쿠데타가 거론되는 첫 장면부터 극장 문을 박차고 나갈지도 모른다.
“그분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한 번이라도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되면 좋겠어요. 나의 믿음은 과연 믿을 만한가. 그리고 이건 그분들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2의 워터게이트, 트럼프의 ‘러시아 게이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100일은 ‘러시아 게이트’로 얼룩져 있다. FBI의 공식 수사는 물론 이와 관련해 상·하원에서 진행 중인 조사만 4건이다.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무엇보다 대선 최대 공약이던 건강보험 개혁, 일명 ‘오바마케어 폐기 작업’이 우군 공화당의 반발로 실패했다. 또 다른 우선순위인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역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강행하려 했지만 법원의 거부로 좌초됐다. 트럼프는 취임 100일 연설에서 “우리 행정부의 첫 100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다”라며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국민과 주류 언론의 평가는 싸늘하다.
트럼프의 100일을 초라하게 만든 요인은 또 있다. 선거운동 때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러시아 게이트’ 의혹이다. 러시아가 지난 대선 때 트럼프에게 유리하도록 영향을 미치려 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현재 상·하원에서 진행 중인 조사만 4개다. 설상가상으로 연방수사국(FBI)까지 공식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트럼프 정부 초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됐다가 러시아 게이트 의혹으로 재임 24일 만에 낙마한 마이클 플린은 쇠고랑을 찰지도 모를 위기에 빠졌다. 플린을 포함해 트럼프 선대본부장을 지낸 폴 매너포트, 전 외교참모 카터 페이지, 측근 로저 스톤 등 4명이 현재 FBI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트럼프가 지난 2월 플린을 경질한 직접적 이유는, 그가 주미 러시아 대사인 세르게이 키슬라크와 한 회동을 감췄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플린과 러시아 측 간의 수상쩍은 커넥션이 잇달아 폭로되었다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3성 장군 출신이다. 그는 2015년 12월 러시아 국영방송 RT의 10주년 행사에 참석해서 인터뷰 및 강연료 등 4만5000달러를 받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 연방 헌법에 따르면, 플린 같은 공무원·군인 출신은 사전 승인 없이 외국 정부나 유관기관에서 금품을 받을 수 없다. RT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매년 2억 달러 정도의 보조금을 받는 국영 홍보기관이다. 2012~2014년 국방정보국(DIA) 국장을 지낸 플린은 퇴역 직후 국방부 감찰관실로부터 ‘외국 정부나 유관기관의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경고를 듣고도 이를 무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 아니다. 플린은 퇴역 후 자신의 이름을 딴 정보 컨설팅 회사를 설립한 뒤 터키계 회사를 위해 로비스트로 일했다. 2015년 가을부터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직전인 2016년 11월까지 이 회사에서 세 차례에 걸쳐 53만 달러를 받았다. 2016년 2월에는 트럼프 선대위에 안보 참모로 합류했다. 그런데 플린이 연방 법무부에 로비스트로 정식 등록한 것은 지난 3월 초였다. 1년6개월 동안이나 터키 로비스트로 활동하면서도 이를 신고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외 국가를 위한 로비스트로 일하면 반드시 연방 법무부가 규정한 관련 신고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 같은 플린의 비위와 관련, 미국 상원과 하원에서는 복수의 조사위원회가 조사를 벌이고 있다. FBI는 플린 등 트럼프의 전·현직 측근이 러시아 인사들과 어떤 성격의 접촉을 했는지 수사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국방부도 플린을 ‘사전 승인 없이 해외 정부 관련 기관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별도의 혐의를 잡고 조사에 들어갔다. 국방부 감찰실이 추가 혐의점을 밝혀낼 경우, 플린은 범법자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다.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으면 최대 5년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하원 정부감독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의 제이슨 차페스 의원은 “전직 장교는 러시아든 터키든 해외 국가로부터 금품을 받을 수 없다. 플린이 돈을 받았다면 위법행위를 한 것이고 이에 따른 결과도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소속 게리 코널리 의원은 CNN에 출연해 “플린이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라고 확언했다.
임기 내내 ‘러시아 수렁’에서 허우적댈까
사면초가에 몰린 플린 측은 적극 소명에 나섰다. 러시아 국영방송 RT 방문에 대해서는, ‘국방정보국에 방문 전후 활동을 이미 상세히 브리핑했고 추가 질문에도 성실하게 응했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플린은 RT로부터 4만5000달러를 받고도 신고하지 않은 이유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다. 또 그는 지난 3월 하순, 검찰의 불기소를 전제로 의회 조사 및 FBI 수사에 협력하겠다며 ‘거래’를 제안했다. 미국에선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혐의자가 수사 협조의 대가로 불기소를 요청할 경우 사실상 스스로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간주된다. 의회 조사관들은 플린의 요청을 거부한 상태다. 아직 조사가 초기 단계인 데다 불기소를 대가로 플린한테 충분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플린을 전적으로 신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움직임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플린의 ‘수사 협조 대신 불기소’ 요청 건이 알려진 직후, 트럼프는 “플린이 당연한 요구를 했다”라고 강변했다. 심지어 플린에 대한 여러 조사들을 “언론과 민주당이 대선 참패 이후 개시한 역대급 마녀사냥”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안보 참모로 플린을 기용했다는 비난에 대해 트럼프는 “이미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최고 수준의 신원조회를 거쳤다”라며 엉뚱하게 오바마 전 대통령을 탓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플린을 엄호하면서, 워싱턴 정가에선 벌써부터 ‘사면론’이 거론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시 딕 체니 부통령의 최측근인 루이스 ‘스쿠터’ 리비가 기밀 누설 혐의로 2년6개월 징역을 선고받자 사면령을 발동한 바 있다. 트럼프 역시 플린이 유죄판결을 받아도 사면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은 사실상 무제한적 사면권을 갖고 있다. 유죄가 확정된 뒤 사면하는 게 보통이지만, 수사 중인 피의자에게도 사면령을 발동할 수 있다. 트럼프가 사면 카드를 꺼낼 경우 FBI 등 수사기관은 플린의 금품 수수 문제는 물론이고 지난 대선 당시 러시아 선거 개입 의혹 관련 혐의까지 일체의 수사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
다만 실제로 플린을 기소 전에 사면할 경우, 민주당과 국민의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 명백하다. 아무리 독불장군인 트럼프이지만 정치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 부시 전 대통령도 공화당 인사들에게서 ‘리비를 기소 전에 사면하라’는 요청이 빗발쳤지만 정치적 부담 때문에 거부한 바 있다. 플린이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은 뒤에 트럼프가 사면령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사면 카드까지 현실화할 경우 법적 일단락과는 무관하게 러시아 게이트 의혹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가 재임 기간 내내 ‘러시아 수렁’에서 허우적거릴 가능성도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신문·잡지 5.20
[미디어오늘 창간기획]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들
서 기자는 국가정보원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만들어 문화체육관광부에 내려 보냈다는 진술을 확보해 보도하는 등 ‘블랙리스트 보도’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서 기자는 “무엇보다 다양성이 보장돼야 할 문화·예술 분야에서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정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지원을 배제했다는 건 지금 이 시대에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취재도 열심히 하려고 했고 특검이 워낙 수사를 잘하기도 했다”며 소회를 밝혔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보수단체를 동원해 관제데모를 지시한 사실을 보도하고 청와대가 재벌 기업 돈을 받아 아스팔트 우파 단체들을 지원했다는 보도 역시 서 기자의 특종이다.
특히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해 7월부터 10월 사이에 법무부 검찰국장과 1000차례 이상 통화했다는 보도는 우 전 수석에 대한 재수사의 필요성을 상기시키는 특종이었다.
서 기자는 “청와대와 검찰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보도”라며 “우 전 수석은 자신이 수사 대상에 오른 시기에 법무부 고위 간부와 수차례 통화했다. 당시 보도가 청와대가 법무부를 통해 검찰 수사에 개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그간 의혹에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관심이 컸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서 기자는 그간의 보도에 대해 “국정농단에 가담했다는 사람을 만나 당시 상황을 끌어내는 게 가장 힘들었던 같다”며 “최순실과 관련된 게 알려지면 피해를 받을까 염려한 사람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하기 꺼려했고, 그런 분들에게 최대한 얘기를 듣는 게 어려웠다. 마감이 끝남과 동시에 뻗치기를 해야 했기에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아직 문을 닫지 않은 만큼 이목은 새 정부의 재조사에 집중되고 있다. 서 기자는 “검찰에 출입하면서 당분간은 계속 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하게 될 것”이라며 “‘정윤회 문건 재수사’가 이뤄지는 만큼 당시 검찰 수사 상황 등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5. 청와대발 관제데모를 집요하게 파헤치다 (안성모 시사저널 기자)
시사저널은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드러나기 전인 지난해 4월20일 “경우회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이 어버이연합에 자금을 지원해 준 정황이 밝혀진 가운데 집회를 지시한 최고 윗선으로 청와대가 지목됐다”고 보도했다. 시사저널은 청와대와 보수단체 사이의 ‘커넥션’을 집요하게 파헤쳤고, 중심에는 안성모 기자가 있었다.
시사저널은 해당 기사가 나간 직후 허현준 당시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어버이연합에 “시사저널이 기사를 내려고 한다. (추선희) 사무총장님이 나서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한 내용을 다시 보도했다. 허 행정관이 JTBC앞 집회를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했으며, 청와대가 보수단체를 이용해 언론탄압에 나섰다는 비판 또한 제기했다.
허 행정관은 해당 기사가 실린 시사저널 1384호의 출판금지와 인터넷판 기사 삭제를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허 행정관이 시사저널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도 시사저널의 손을 들어줬다.
안 기자에 따르면 시사저널은 세월호 참사 2주기 기사를 준비하면서 탈북자들이 세월호 반대집회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안 기자는 “장부를 입수해서 추적해가다보니 청와대가 있었다”면서 “정황에 불과하지만 허 행정관이 어버이연합을 통해 보도를 무마하려는 시도도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관제데모를 조직하고, 언론이 관제데모를 여론으로 보도하는 식의 행태는 또 하나의 박근혜 탄핵 사유로 충분했다.
안 기자는 살아있는 권력 청와대를 겨냥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소송은 당연히 예상했던 것이고 청와대의 외압 같은 것에 대한 부담은 없었다”며 “오히려 청와대에서 어떤 부분은 사실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해주지 않아 답답했다. 묵묵부답이었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시사저널 기자들의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허 행정관과의 민사소송은 오는 6월6일 2심 선고를 앞두고 있고 명예훼손 형사소송 건으로 시사저널 기자들은 검찰 조사를 받았다. 안 기자는 “관제데모 지시가 허 행정관 개인의 의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윗선 확인에 한계가 있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명진 조선일보 기자는 지난해 7월18일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처가 땅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 우 전 수석 처가의 땅을 넥슨이 사줬다, 즉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었다. 이미 비리혐의가 드러난 진경준 검사장과도 ‘연결고리’가 있다는 보도로, 1면 머리기사로 배치되며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언론계에선 조선일보가 박근혜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조선일보의 의혹보도에도 청와대는 우병우 민정수석을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검찰 특별수사팀은 그 해 8월29일 해당 기사를 쓴 이명진 기자의 자택으로 찾아가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이석수 당시 특별감찰관이 이 기자와 한 통화 내용이 특별감찰관법 위반이라는 혐의에서였다. 역린을 건드린 결과는 ‘국가폭력’이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권력이 싫어하는 보도를 한다고 취재기자를 압수 수색한 것은 언론을 적대시했던 좌파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라며 “이 사건은 권력과 언론의 관계에서 중요한 악례(惡例)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논조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전국언론노동조합과 언론관련 시민단체에서도 잇따라 비판성명이 나왔다. 언론노조는 “언론자유에 대한 부패 권력의 도발에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고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후의 수개월이 흘러 사태는 박근혜 탄핵으로 귀결됐다.
이명진 조선일보 기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 크게 할 말은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이렇게 파장이 커지거나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쓴 것이 아니다. 진경준 검사 논란 때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팩트가 확인됐으니 쓴 것”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 기자는 보도 이후 이뤄진 압수수색과 관련해선 “우리가 죄 지은 것도 없고 부끄러운 것도 없기 때문에 (압수수색에) 응했다”면서 “지금은 지나간 일이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해 여름은 참 더웠다”라는 말로 소회를 전했다. 현재 이 기자는 법조팀 데스크를 맡고 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13명의 기자들-방송
[미디어오늘 창간기획] 한국 명예혁명을 이끈 기자들
1. 박근혜-최순실 가문에 집중, ‘국정농단 뿌리’ 조명 (김수진 YTN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은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태민-최순실 일가의 대를 이은 국정농단이 뿌리다.
지난 1월3일 김수진 YTN기자는 ‘최순실-박근혜 일가 공동 재산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언을 단독 보도했다. 2007년 8월 폐암 말기였던 조순제씨(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가 간병하던 아들에게 박근혜와 최태민 일가에 얽힌 이야기를 한 것을 아들 조아무개씨가 증언했다. 당시 떠돌던 ‘조순제 녹취록’의 맥락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보도였다.
조순제씨의 아들 조아무개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직후 그가 갖고 있던 상당한 규모의 재산이 최태민 목사에게 넘어갔으며, 이 과정에 조순제씨가 개입했다고 밝혔다. 조아무개씨에 따르면 최태민의 5번째 아내인 임선이씨가 재산의 대부분을 관리해왔다. 임선이씨는 최순실의 어머니로 두 일가의 재산이 공동관리 됐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조아무개씨 역시 “따로 떼어서 어느 부분은 최태민의 돈, 박근혜의 돈으로 분리할 수 없다는 것. 그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YTN의 지난 1월4일 후속보도 역시 이 같은 정황에 힘을 실었다. 조순제씨가 2007년 당시 한나라당(자유한국당) 대표에게 보낸 진정서에 따르면 구국봉사단, 여성봉사단, 새마음병원 등의 단체가 최태민과 당시 박근혜 영애, 자신의 3인 협의 운영체제였다고 밝혔다. 이는 YTN의 진정서 입수로 드러났다.
김수진 YTN기자는 “조아무개씨는 최순실 게이트 특별취재팀에 합류해 우연히 만난 취재원”이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아 설득에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취재팀이 해체되고 난 다음 나온 기사다. 굵직굵직한 보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른 보도가 ‘현재’를 다뤘다면 이 보도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번 사태가 역사 속에 뿌리가 깊다는 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진 기자는 “취재원도 역사가 반복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면서 “두 일가의 문제는 특검에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목하고 밝혀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2. 그가 최순실 태블릿 PC를 입수하지 못했다면 (김필준 JTBC 기자)
김필준 JTBC 기자는 지난해 10월 최순실 게이트의 스모킹 건이었던 ‘최순실 태블릿 PC’를 최초 입수해 보도했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리는 데 핵심 물증을 확보하며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대국민 사과를 받아낸 보도로 주목을 받았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자가 한겨레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 게이트의 빗장이 열렸지만 박씨가 해당 사실을 시인할 만한 물증이 없었다. 김 기자와 JTBC는 태블릿PC를 입수·보도해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 외교·안보 자료 등 청와대 문건을 미리 받아봤다고 보도했고, 이는 시민과 부패 권력 간의 대결에서 시민으로 무게의 중심을 옮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김 기자는 “당시 보도만 잘해달라며 용기를 내줬던 건물 관리인 노광일씨의 도움이 있었고 함께 힘을 내준 선배들이 기억에 남는다”며 “태블릿PC 보도 이후에도 소심한 목소리로 걸려오는 최씨 관련한 제보들, 또 특검 사무실에서 최순실씨에게 소리를 친 청소미화원 임애순씨도 기억에 남는다 ”고 말했다. 또한 “이외에도 촛불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 그런 수많은 시민들의 용기를 보고 힘을 냈다”고 말했다.
태블릿PC가 놓여있던 더블루K 건물관리인 노씨는 “JTBC는 손석희 사장이 있어 진실에 입각해 보도한다고 판단해 협조했다”고 밝힌 바 있다.
. 국정농단 보도과정에서 빛났던 PD저널리즘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기자들의 기사뿐 아니라 탐사보도프로그램의 활약도 뛰어났다. 방송에서 직접 “제보자를 기다립니다”라는 알림을 띄우고, PD들이 제보자들을 직접 만나는 취재현장을 보여주며 PD저널리즘은 시청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가 진실을 추구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1054회에서 수십 년에 걸친 최태민 일가의 행적을 추적해 최태민에서 최순실까지 이어진 국정농단의 기원을 취재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정면으로 다룬 1059회와 1060회에선 청와대 비밀노트를 단독입수해 보도했다.
1053회에선 ‘세월호 7시간’ 당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했던 노력도 돋보였다. 이외에도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의혹을 보도’(1057회)하는 등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 시대의 종언을 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당 보도에서 ‘그것이 알고싶다’는 박근혜씨의 5촌 사촌인 박용수씨가 사촌동생인 박용철씨를 살해한 후 자살했다는 경찰 수사결과의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당 방송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박용철씨의 최측근이라는 제보자를 만나 두바이에서 3박4일간 인터뷰를 하고, 실제 살해현장을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을 만나는 등 육영재단을 둘러싼 갈등의 전말을 드러내고자 했다.
배정훈 SBS ‘그것이 알고싶다’ PD는 “박근혜씨와 최순실씨 집안,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갈등의 시작이 육영재단을 둘러싼 측면이 있다”라며 “좁게 본다면 국정농단과는 무관한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보일수 있으나 그런 일을 벌이고 또 계획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보다보면 이 인물들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기 때문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 PD는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취재를 계속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배PD는 “관련해 제보를 계속 받고 확인하는 중”이라며 “아직 끝난 사건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배PD는 “다음 방송편은 추정이 아니라 확정적 방송이 될 것, 그에 준하는 제보자들이 나타났다”며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살해했는지 연결고리를 찾아서 방송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4. 문화계까지 뻗친 ‘블랙리스트’ 단독입수 (온누리 JTBC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더욱 충격적인 이유 중 하나는 대통령의 임무를 어떤 권한도 위임받지 않은 민간인이 수행했다는 점도 외에도 그 수행분야가 거의 모든 분야에 퍼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치나 외교, 인사뿐 아니라 문화와 체육계에도 그 세력이 넓게 뻗쳐있었다.
특히 이른바 ‘문화체육계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지 않았어도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거나 사회에 비판적인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충격을 안겼다. 이 같은 블랙리스트를 가장 먼저 단독 입수 한 기자가 온누리 JTBC 기자였다. 온누리 기자는 “단독 입수했다고 알려졌지만 스포츠 문화팀 팀원들과 함께 취재한 것”이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2016년 12월29일자 단독보도에서 JTBC는 문화체육관광부 김종 전 차관의 주도로 비협조적인 경기단체명단, 이른바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만들고, 해당 단체는 예산 지원을 끊으라는 공문을 국민체육진흥공단 등에 보냈다고 폭로했다. 문체부는 단체들이 문체부의 요구에 제대로 따랐는지를 O, X로 표시했다. 개인별 블랙리스트가 따로 있다는 증언도 확인할 수 있었다.
체육계 블랙리스트를 확인한 단독보도 이후에도 온누리 기자는 “해외 문화원서도 블랙리스트… 외교라인도 개입 증언” 후속 리포트를 통해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청와대, 문체부를 넘어 한국문화원, 총영사 등 외교라인까지 관여됐다고 보도했다. 또한 온 기자는 블랙리스트부터 시작해 어버이연합을 동원한 관제데모 등 정부가 개입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분야로 취재영역을 확장했다.
이 같은 보도는 대통령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던 반 헌법적 행위를 드러냄으로서 박근혜씨의 탄핵소추 사유 가운데 하나인 직권남용의 증거로 충분했다.
5. 김영한 靑 민정수석의 210일치 비망록을 쏘아 올리다 (하누리 TV조선 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사태에서 TV조선 보도를 떠올리면 지난해 7월 중순 미르·K스포츠재단 최초 보도나 10월25일 최순실의 의상실 영상보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TV조선의 ‘임팩트’는 고인이 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단독보도였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청와대에서 생활했던 210일간의 업무일지격인 비망록은 청와대의 문제를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로 가득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김영한 비망록 보도를 주도했다. 2016년 11월13일자 “‘세월호 7시간’ 김기춘, 수석들 입과 귀 막았다” 리포트를 통해 “이 7시간에 대해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은 수석들에게 모르쇠 방침을 지시했다”며 그 증거로 2014년 7월18일자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하누리 기자는 이밖에도 “정윤회 수사 축소, 청와대 검찰 협의 정황 나왔다”(11월11일), “청와대 ‘비판언론 불이익 가도록’”(11월15일) 등 단독보도를 쏟아내며 민정수석의 업무일지로 국정농단의 실체를 가리켰다.
이 무렵 국정농단보도는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보도와 TV조선의 김영한 비망록 보도 두 날개로 날았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는 박근혜정부에서의 언론탄압과 여론조작, 사찰 등의 반 헌법적 행위들을 추적해 최순실 개인의 국정개입으로 그칠 뻔 한 사태를 국정농단으로 키워낸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 김영한 비망록을 발굴해낸 TV조선으로 인해 타사에서도 수많은 관련 보도를 쏟아낼 수 있었으며, 당시 보도는 한국판 명예시민혁명 국면에서 진보·보수언론간의 ‘합작’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누리 TV조선 기자는 “탄핵 선고가 나고 타사 선후배들과 모여앉아 ‘누가 이기고 지는 일도 아니었고, 기쁠 일도 아니었다’는 데 공감했다. 기뻤던 적 없는 취재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니, 하며 매번 무거웠고 반성했다”며 그간 소회를 밝혔다.
하누리 기자는 “재판도 취재도 무엇 하나 끝나지 않았고 아직 풀어내야 할 진실이 남아있다”며 “앞으로도 차분히 책임 있는 기사를 쓰기 위해 선후배들과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영한 비망록 보도와 관련해선 “김 전 수석 어머님과 가족 분들께 감사하고 존경한다고 꼭 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편 하누리 기자는 비선실세 정윤회가 안광한 전 MBC사장과 여러 차례 만났고, 우호적인 보도를 요구했다는 리포트를 내며 MBC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6. 덴마크로 날아간 추적자, 정유라를 체포하다 (이가혁 JTBC기자)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국면에서 모든 언론의 목표는 정유라를 찾는 것이었다. 많은 기자들이 유럽의 곳곳을 누볐다. 그리고 기어코 찾아냈다. 이가혁 JTBC기자였다. 그는 지난 1월2일 덴마크 현지에서 정유라 체포과정을 단독 보도했다. 취재진은 덴마크 올보르 한 주택가에서 정씨가 타고 다닌 폭스바겐 차량을 발견해 정씨를 찾아냈다.
이 기자는 “꾸준하게 제보가 있어서 현지로 가게 된 것인데 ‘못 만나면 어떻게 하나’가 아니라 못 만날 거라고 생각했다”면서 “그럼에도 정유라가 지나간 흔적이나 교민들의 제보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취재 과정을 꾸준하게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현지에 25일 정도 머물렀다.
당시 JTBC ‘뉴스룸’에서 이 기자는 “외출하는 정씨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지만 전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며 “저희가 은신처를 잠시라도 벗어난 사실을 정씨 측이 파악한다면 새로운 장소로 도주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고 한국 경찰이 정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을 한 만큼 덴마크 수사 당국에 해당 사실을 알리고 현지 기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정유라 체포는 국정농단 관련 보도가 사그라지던 시점에서 다시금 사태에 관심을 갖게 만든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으며 ‘기자는 관찰자인가 참여자인가’ 라는 논쟁을 촉발시켰다. 먼저 행동하는 시민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는 주장이다. 반면 한쪽에서는 직업윤리의 추구는 사회의 안녕과 보편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이 기자는 정유라 신고 직전 상황을 두고 “저희가 수일동안 해당 은신처 앞에서 기다렸고 이를 수상하게 여긴 현지 주민들이 저희를 경찰에 신고한 상황이었다”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사라지면 정유라씨가 도주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기자의 행동은 언론계에서의 논란과 달리 일반 뉴스수용자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이 기자는 “전체 언론이 열심히 취재하는 상황에서 ‘기자하기 잘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껴 본 취재였다”면서 “단순히 거대 권력에 대항해 싸운다기보다는 잘못된 과정을 하나하나 보도해주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목포인데 세월호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어서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7. “세월호 7시간 朴 머리 연출” 결정적 ‘팩트 폭격’ (이세영 SBS 기자)
“박근혜는 그날(2014년 4월16일) 저녁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집무실에 출근하지도 않고 관저에 머물렀다. 그 결과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형 재난이 발생하였는데도 그 심각성을 아주 뒤늦게 알았고 이를 안 뒤에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였다.”
지난 3월10일 박근혜의 대통령직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일부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대통령의 불성실한 직책 수행이 탄핵 소추 사유로 인정되진 않았지만,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줬고 아직 사법적 판단도 끝나지 않았다.
헌재가 지적한 박근혜씨의 ‘무성의한 태도’에는 4월16일 오후 3시 박씨가 세월호 사고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 준비를 지시한 후 지척 거리인 중대본을 방문하기까지 2시간15분이나 걸렸다는 것도 포함된다.
세월호 7시간 대통령의 미용 시술 의혹 등 행적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시점에서 결정적 ‘팩트 폭격’을 한 언론은 SBS였다. 이세영 SBS 기자는 4월16일에도 박씨의 머리 손질을 위해 청와대를 출입한 전담 미용사를 만나 “박씨가 중대본 방문을 앞두고 일부러 부스스한 모양으로 머리를 연출했다”는 증언을 받아냈다.
온 국민과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탑승자가 무사히 구조돼 돌아오기를 간절히 염원하던 시간에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한가롭게 머리 연출이나 하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보도였다.
이세영 기자는 “베일에 싸여있던 세월호 7시간 중 처음으로 드러난 90분이 ‘올림머리’ 손질 시간이란 사실에 국민의 분노가 번지면서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참사를 포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본다”고 술회했다.
이 기자는 “탄핵 심판 당시 윤전추 행정관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대통령의 머리가 단정했다고 진술했는데 그럼 오후에 일부러 흐트러진 머리를 연출한 건지, 구체적인 대통령의 행적을 밝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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