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허파가 사라진다]③지자체와 토지주의 상생…서울 불암산에 길이 있다
도시공원 일몰의 해법
16년 동안 사유지 사들인 서울시, 녹지활용계약으로 공원 8곳 보호
시민단체, 20년 분할상환 등 제안…도로·철도처럼 중앙정부가 나서야
지난 9일 서울 노원구 불암산도시자연공원의 숲길을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공원의 일부 땅은 사유지이지만, 서울시는 땅 소유자들과 ‘녹지활용계약’을 체결해 재산세 면세 혜택을 주며 이 공간을 계속 공원으로 빌려 쓰고 있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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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불암산도시자연공원에는 ‘치유의 숲길’이 있다. 내년 7월1일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돼도 시민들은 여전히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가 건국대와 삼육대가 갖고 있는 공원 내 일부 사유지를 공원으로 빌려 쓰기로 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일몰제 시행을 3년 앞둔 2016년 9월 이 땅을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이용한다는 내용의 ‘녹지활용계약’을 대학들과 체결했다. 토지주는 계약기간 동안 재산세 면세 혜택을 받는다. 지자체와 토지주가 ‘상생’할 돌파구를 찾아낸 것이다. 현재까지 공원 8곳이 서울에서 이런 방식으로 보호받고 있다.
서울시는 1999년 헌법재판소 결정 이래 2002년부터 꾸준히 도시공원의 사유지를 사들이는 작업을 계속해왔다. 현재까지 1조9674억원(연평균 1157억원)을 투입해 여의도 1.77배 면적에 해당하는 5.14㎢ 땅을 사들였다. ‘숲세권 아파트’ 특혜 논란을 부르는 민간특례사업이 전국 96곳에서 추진되고 있지만 서울에는 한 건도 없다. 1년여 앞으로 다가온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도 지자체별 편차가 큰 셈이다.
지난 3월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평가와 대안 로드맵’ 국회 토론회에서 기조발제를 한 박문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도시공원을 지킬 의지만 있다면 창의적인 해법은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 길이 없다고 아무것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공원을 포기하는 ‘공포 도시’ ‘공포 정부’의 행태”라고 비판했다.
내년 일몰 대상인 도시계획시설엔 도시공원뿐 아니라 도로와 학교 주차장, 철도 등 모두 54종류가 있다. 강석점 경성대 교수(법학)는 “공원과 비슷한 도시계획시설인 광역도로나 광역철도는 지자체의 사업인데도 국비가 50~70% 지원되고 있다”며 “공원도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행복추구권, 환경권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20년짜리 장기채권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지자체와 정부가 연간 3500억원씩 7000억원(국민 1인당 1만3537원)을 투입해 토지를 매입한다면 도시공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국장은 “미세먼지 특별대책까지 내놓는 정부가 미세먼지 저감 효과가 뚜렷한 도시공원의 해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 투자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 “100년 걸려도 공원 사들이겠다” 서울시의 확고한 로드맵
기존 공원을 모두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해 지속 매입 계획
토지주에 인센티브 부여할 최소한의 법적 근거 마련 ‘과제’
재개발 수익 활용 역발상도…결국 국고 지원 없이는 어려워
“100년이 걸리더라도 공원은 사들인다.”
도시공원에 대한 서울시의 입장이다.
일몰 시점인 내년 7월1일까지 서울시가 매입을 계획하고 있는 면적은 전체 사유지의 약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서울시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필요한 땅은 모두 사들인다는 정공법을 펴고 있다.
장기적으로 땅을 사들이는 동안 공원이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는 도시계획을 바꿔 기존에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지정됐던 곳은 모두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용도구역)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서울시민 1인당 공원 면적이 현재의 11㎡에서 일몰 후 3.8㎡로 급감하는 사태를 막는 게 가능하다. 국토계획법에 따라 시·도지사는 환경을 보호하고 시민에게 여가·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식생이 양호한 산지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는 구역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
우선보상 대상지를 제외하고 남은 곳을 모두 사들이면 지난해 공시지가 기준으로 약 14조2177억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021년부터 3년간 전체 보상 대상지의 7%를, 2025년부터 3년간 또다시 7%를 매입하고 남은 81%는 2028년 이후 지속적으로 사들인다는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원으로 지정됐던 곳은 100년이 걸리더라도 전부 사들이겠다는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는 중앙정부가 매입 보상비의 50%를 지원할 것을 전제로 하는 방안이다.
■ ‘쉽지 않은 길’ 선택한 서울시
시민·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을 도시공원 일몰을 앞두고 지자체가 우선 사용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으로 꼽아왔다. 법적으로 이미 시행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발이 제한되기 때문에 토지주들이 반발하면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야 해 지자체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다.
실제로 도시자연공원구역 지정이 시민 반발로 취소된 적이 있다. 부산시는 2011년 공원 5곳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변경을 추진했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을 지정하려면 주민 열람공고와 공청회, 의회 의견 청취 등을 거쳐야 하는데, 도시관리계획 변경을 열람한 후 주민 반대 여론이 높았다. 의회도 지역 주민이 반대하니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공원으로 남아 있으면 일몰되거나 언젠가는 보상을 받게 되는데, 공원구역에 대해서는 보상할 필요가 없는 데다 재산세 감면도 받을 수 없어 토지 소유주 가운데 공원으로 남아 있는 것이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는 서울시도 직면한 문제다. 도시계획시설공원으로 지정된 곳에 대해서는 재산세가 50% 감면되는데 도시자연공원구역에 대해서는 이 같은 혜택을 줄 근거가 현행법에 없다.
이에 서울시와 성북구·서대문구는 관련 시·구 조례 개정을 마친 상태다. 적어도 재산세를 이전처럼 50%는 감면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서울시 관계자는 “토지 소유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올해 말까지는 도시계획을 변경하고 내년 하반기에는 시행해야 일몰로 인한 공백을 막을 수 있다. 결국 현행법에 토지주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할 최소한의 근거가 마련돼야 각 지자체도 이 같은 방안을 따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본다.
■ 재개발 수익 공원에 투자 역발상
재개발·재건축 사업자로부터 현금을 기부채납받아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같은 방법은 많은 지자체가 선택하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이 도시공원을 개발하게끔 독려하는 것과 정반대의 접근방식이다.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이익금을 도시공원 부지를 사들이는 데 내놓으라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기존에 공원으로 지정됐던 면적은 전부 공원으로 존치한다는 방침이 확고하다”고 밝혔다. 녹지활용계약 같은 다양한 방편도 동시에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재정자립도 1위인 서울시마저 국고 지원 없이는 지금 세워둔 보상계획을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시는 중앙정부에 보상비의 50%를 지원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다. 재정자립도가 현저히 낮은 지자체들이 민간특례사업으로 기울게 되는 이유도 재정 문제가 크다.
국유지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국공유지는 사유재산권 침해와 관련이 없지만 모두 일몰 대상에 포함된다. 시와 구가 가지고 있는 공유지를 제외하면 서울시의 일몰 대상 공원에서 국방부, 문화재청, 교육부 등이 소유한 토지 비율은 33%나 된다. 현재까지 서울시의 예산과 계획에는 반영되지 않은 부분이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은 “일몰 시점이 1년2개월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중앙정부의 국고 지원과 실효기간 연장 없이는 아무리 서울시의 사례가 훌륭하다 해도 다른 지자체들이 따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앙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조속히 관련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최미랑 기자 rang@kyunghyang.com
②부지 매입 모금에 서명운동까지…도시공원 지키려는 ‘시민들’
청주 구룡공원·대전 매봉산
시민단체들, 개발 저지 운동
“대국민 홍보 캠페인 하겠다”
지난 6일 충북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 인근 산책로에서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가운데)이 시민들에게서 민간공원특례사업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이삭 기자
“2300억원을 들여 신청사를 짓겠다는 청주시가 구룡공원(도시공원) 토지 매입비 100억원은 없다고 합니다.”
내년 7월 도시공원 지정 해제 위기에 놓인 충북 청주시 구룡공원 등을 지키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신경아 청주 도시공원 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청주시가 토지 매입을 못하는 이유는 예산이 없다기보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을 시민 모금 등을 통해 매입한 뒤 영구보존하는 것이다. 그는 “이번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목표는 시민이 직접 도시공원을 공유재산화해 미래세대에게 전달하는 것”이라며 “도로 포장 등 개발에만 우선순위를 두고 예산을 편성하는 청주시의 인식을 변화시키자는 취지도 있다”고 말했다.
내년 7월 지정 해제를 앞둔 도시공원 지키기에 시민들이 나서고 있다.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지정 해제가 20년 전부터 예고됐던 문제임에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안이하게 대처하자 보다 못한 시민들이 직접 나선 것이다.
청주의 경우 시민이 도시공원 부지 매입 운동에 나섰다. 청주 도시공원 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사단법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 충북사회적기업협의회 등과 함께 일몰을 앞둔 도시공원에 대한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을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시민 모금 등을 통해 100억원을 모아 민간특례사업으로 아파트 건립이 예정된 청주시 서원구 산남동·성화동 일대 구룡공원(128만9369㎡) 중 생태적 가치가 높은 땅 8만6523㎡를 구입할 계획이다. 이들이 구입하려는 땅에는 멸종위기종 Ⅱ급인 맹꽁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대전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주민들로 구성된 ‘월평공원 대규모 아파트 건설저지 시민대책위원회’가 2017년 11월 민간특례사업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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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도시공원 개발 저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2017년 대덕연구개발특구 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옆 매봉근린공원(35만4906㎡)에 대한 민간특례사업으로 아파트 개발계획(6만4864㎡·436가구)이 세워졌다. 하지만 지난달 12일 대전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생태환경의 보존 필요성이 있고, 아파트 단지 건설 시 대덕특구 연구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관련 개발안을 부결시켰다. 개발안 백지화에는 지역주민과 대덕특구 과학자 등으로 구성된 매봉산 환경지킴이 시민행동의 영향이 컸다. 이들은 매주 매봉산을 오르내리며 개발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대덕특구의 허파로 불리는 매봉산을 온전히 보전해야 한다는 점과 공원 주변에 국가보안목표 가·나급인 연구원들이 많은 점 등을 알리며 개발 반대 여론을 확산시켰다. 이들의 활동은 16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직접 나서는 개발 반대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전국적으로는 전국 275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2020 도시공원 일몰제 대응 전국시민행동’은 2017년 출범 이후 대통령선거·지방선거 공약 제안, 토론회, 국회 간담회, 세미나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권순재 기자 sjkwon@kyunghyang.com
③국공유지는 일몰 대상 제외하도록 법 바꿔야…정부와 장기적 재정 분담 필요
법안 마련·재원확보는
많은 사람들은 내년 7월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를 사유지를 매입해야 하는 문제로만 생각하지만, 도시공원 일몰제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소유 땅에도 적용된다.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지자체가 중앙정부가 소유한 국공유지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국공유지는 도시공원 일몰제의 불씨가 된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인 ‘사유재산권 침해’와는 관련이 없는 만큼, 지금이라도 법을 바꿔 적어도 국공유지는 우선 일몰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부터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앙정부가 손을 놓은 새 일몰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장 일몰제를 유예하는 법안이라도 만들어 대책을 마련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자체들이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상태로 도시계획시설이 한번에 해제돼버리면 되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일몰제 문제를 오래전부터 연구한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도시공원을 지속시킬 법안과 재원 확보 방안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국가 땅인데 공원이 없어진다고?
국공유지에 대지 비율 높아
정부에 돈 주고 사야 할 상황
법적 근거 마련 시간 벌려면
당장 일몰제 유예 법안 시급
앞으로 도시공원 일몰제로 해제되는 공원 가운데 국공유지는 약 113㎢로 전체의 26%에 해당한다. 10년 이상 장기 미집행 공원 면적으로 따져보면 부산은 국공유지가 전체 부지의 45.3%에 달하고, 인천 40.1%, 경기 32.3%, 서울 32.2%나 된다. 정부와 지자체는 특히 공원 부지 가운데 임야보다 개발 가능성이 높은 대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실효 대상인 도시공원 부지는 대부분 1970년대 정부가 도시공원으로 지정한 뒤 오랜 시간 방치한 곳들이다.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되면서 관련 사무가 지자체로 이양됐다. 소유권은 그대로인데 관리만 지자체가 맡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보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앙정부는 “지자체의 일”이라고 회피하지만 지자체 입장에선 “그렇다면 최소한 국유지라도 넘겨줬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맞설 만하다. 도로나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에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하면서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공원·녹지는 나몰라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 방안처럼 해제 대상 도시공원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개발이 제한되는 데 따른 보상을 토지주들에게 해줄 방법이 현행법에 없기 때문이다. 도시공원 토지주들은 시·군이 걷는 재산세를 50% 감면받는다. 하지만 공원이 해제되고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되면 개발은 제한되는데 혜택은 받지 못한다. 김예성 국회입법조사관은 지난 4월 내놓은 현안 보고서에서 “토지 소유주의 사적 이용권에 대한 보상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원의 사회적 기여도가 큰 만큼 정부와 지자체도 개인에게 일방적 희생을 강요할 게 아니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취지다. 도시자연공원구역은 지방세인 재산세 50% 감면에 더해 국세인 상속세도 40%를 감면해 정부와 지자체가 골고루 부담을 져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여러 가지 법률적 준비가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법안은 일몰시한부터 미루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적 근거를 만드는 데 사회적 합의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20 도시공원일몰제대응 전국시민행동은 “국유지는 일몰제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관련 입법 등 종합대책 실행을 위해 우선 공원 일몰을 3년간 유예하도록 법 개정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입법 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보조금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중앙정부가 사유지 매입 비용의 이자가 아닌 원금을 50%까지 지원할 근거를 만드는 것도 주요 요구 사항이다. 도시자연공원구역 토지주도 재산세 감면을 받을 수 있도록 ‘지방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하고, 지자체가 최장 20년까지 장기 지방채를 발행해 토지 매입 비용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토계획법’을 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 “정부가 연 3500억원만 낸다면”
우선관리지역만 매입해도
14조원 필요할 것으로 추산
20년간 정부·지자체 분담 땐
연 3500억원이면 해결 가능
일몰을 막으려면 비용이 대체 얼마나 들까. 12일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내년 7월 실효를 맞는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공원(도시공원) 부지는 전국적으로 367.7㎢에 이른다. 이후 일몰 시점이 다가올 부지까지 합하면 실효 대상 면적은 437.2㎢(추산)로 늘어난다.
지자체가 사유지를 매입해 공원을 조성하는 비용까지 합하면 약 40조원이 필요한데, 당장 조치를 해야 한다고 판단되는 우선관리지역만 쳐도 118㎢, 14조원이 필요한 것으로 국토부는 본다. 이 비용은 국공유지는 제외하고 산출한 것으로, 국공유지까지 합치면 매입에 필요한 금액은 훨씬 늘어나게 된다.
재원을 어디서 마련할까. 부지 매입을 서두르지 않고 장기간에 걸쳐 진행한다면 정부 부담은 크게 줄어든다. 공원 조성 비용을 세대 간에 분담하는 셈이다. 예컨대 우선관리지역의 사유지를 모두 매입하는 데 드는 14조원을 20년에 걸쳐 상환하도록 하면 매년 7000억원이 든다. 지자체와 정부가 반반 부담한다고 가정하면 정부 예산은 연 3500억원이면 된다. 물론 이렇게 하려면 도시공원 매입을 위해 지자체가 20년간 장기 상환 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게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 공약 사항인 자연자원총량제를 도입해 생태계를 훼손한 만큼 복원에 드는 생태보전협력금을 내도록 하고, 이를 토지 구입의 재원으로 쓰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정부가 올해 도시공원 보전을 위한 토지 매입에 배정한 예산은 지방채 이자 비용의 일부인 단 79억원뿐이다. 토지 매입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면 5년간 이자의 50%(서울은 25%)를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공원 유지와는 거리가 먼 ‘비현실적인’ 금액이다. 박문호 전 서울시립대 교수는 “중앙정부가 우선 국유지를 일몰 대상에서 제외하는 모범을 보이면서 공원 보전 의지를 보여줘야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들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미랑·이종섭 기자 rang@kyunghyang.com
탈원전 가짜뉴스, 그냥 넘길 문제 아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촛불집회,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을 거치면서 새 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이는 에너지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가 탈핵·탈석탄·에너지전환 정책을 공약을 내세웠다. 국민들의 기대감 또한 높았다. 탈석탄·탈핵·에너지전환 정책은 ‘좋아요’ 클릭 수 1위와 3위를 차지할 만큼 인기가 높았다. 동해안 지진과 미세먼지 문제로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고통의 크기가 그만큼 컸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당과의 협조를 통해 에너지 정책이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은 ‘공론화위원회 설치’로 내용이 바뀌더니 결국 건설공사가 재개되었다. 영덕과 삼척에 건설 예정 중이던 핵발전소 계획은 취소되었지만, 후속 조치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삼척에서는 지금도 매주 촛불 집회가 열리고 있다. 정당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탈핵·에너지전환 공약을 내세웠던 보수 야당들은 입장을 바꿨다. 그들은 자유한국당과 함께 ‘기-승-전-탈원전 반대’ 기조를 유지하고 잊을만 하면 한 번씩 탈원전 정책 비판을 하고 있다. 공당(公黨)의 공약과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모습. ⓒ 연합뉴스
지난 2년간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을 둘러싼 문제 중 가장 큰 문제는 ‘가짜뉴스’의 확산이다. 가짜뉴스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에너지 분야뿐만 아니라, 최근 우리 사회 고질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다른 가짜뉴스들이 유튜브 등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면, 탈핵·에너지정책을 둘러싼 가짜뉴스는 정치권과 일부 보수 언론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탈원전 정책이 너무 급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외국에서 수십 년 동안 이뤄질 탈핵 정책이 우리나라는 순식간에 진행되어 핵산업 생태계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탈핵이 이뤄지려면 핵발전소 폐쇄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2년 동안 우리나라는 탈핵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2017년 6월 가동을 멈춘 고리 1호기는 박근혜 정부 시절이던 2015년 영구폐쇄가 결정되었다.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 가동을 멈춘 핵발전소는 작년 영구 폐쇄 결정이 이뤄진 월성 1호기가 유일하다. 하지만 올해 2월, 신고리 4호기 운영허가가 승인됨에 따라 문재인 정부 임기 동안 핵발전소 개수는 줄지 않았다. 신고리 4호기의 설비용량이 월성 1호기 설비용량의 2배가 넘기 때문에 설비용량을 기준으로 본다면 탈핵이 아니라, ‘증핵’이 이뤄졌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증핵’ 상태는 계속 진행될 것이다. 신울진(신한울) 1·2호기가 건설공사를 마치고 운영허가 심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2022년까지 추가로 핵발전소를 폐쇄할 계획이 없다. 현 상태대로라면 2024년 공사가 끝나는 신고리 6호기가 마지막 신규 핵발전소가 되겠지만, 독일처럼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금지하거나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금하는 내용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신고리 6호기가 ‘마지막 핵발전소’가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탈핵 정책이라면, 미국이나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탈핵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가 될 것이다. 미국은 2017년 99기였던 핵발전소 기수가 98기로 줄었고, 같은 기간동안 일본은 42기에서 39기로 운영 중인 핵발전소가 줄었다. 미국과 일본 모두 각각 2기씩 신규 핵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지만, 신규 핵발전소 건설 속도보다 노후 핵발전소를 폐쇄하는 속도가 더 빨라서 생긴 일이다. 반면 우리는 신울진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 등 4기의 핵발전소를 현재 건설하고 있다. 건설 상황만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 훨씬 좋은 것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미국에서 핵발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거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도 일본은 탈원전하지 않는다’는 일부 보수언론의 기사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온다. 이런 가짜뉴스는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을 통해 다시 확대 재생산되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가짜뉴스를 일괄적으로 통제하거나 규제를 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침묵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은 더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학계와 언론은 자정 작용을 통해 반복적으로 가짜뉴스를 유포시키는 이들에게 제재를 가해야 할 것이다. 출처 불명의 ‘따옴표 기사’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지금 상태로 간다면 문재인 정부 5년은 ‘가짜뉴스만 창궐했던 시절’로 기억될 것이다. 피나는 노력 없이 가짜뉴스 퇴출은 불가능하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2년보다 앞으로의 3년이 더 나아야 하지 않겠냐는 절박한 각오가 없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수렁에 빠질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media@mediatoday.co.kr
봄의 침묵
인간의 활동으로 많은 생명들이 전에 없는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동물과 식물의 25%가 그런 위협에 놓여 있다. 이미 100만종이 멸종했으며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지난 1,000만년 평균보다 최대 수백 배의 속도로 전지구적 규모에서 멸종이 가속될 것이다.” 지난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7차 생명다양성과학기구(IPBES) 총회에서 채택된 보고서는 800만종에 이르는 전체 동식물 중 “양서류의 40% 이상, 산호와 상어류의 33%, 해양포유류의 33% 이상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유엔 3대 환경 협약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협약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는 정부 간 협의체인 IPBES가 종합적인 관련 평가 보고서를 내놓은 것은 출범 7년 만에 처음이다. 생물다양성 위기가 새삼 제기된 건 물론 아니다. 190여개국이 가입한 유엔 생물다양성협약이 이미 1992년 채택돼 2년마다 당사국 총회를 열고 있다.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 회의에서는 2010년까지 “생물다양성 손실 속도를 현저하게 감소시키자”는 목표를 정했고, 2010년 일본 나고야회의에서는 이를 발전시켜 2020년까지 행동 목표를 설정한 ‘아이치 목표’를 만들었다.
□하지만 헤이그 목표는 생물다양성의 현상 파악도 전제하지 않은 선언적인 것이었고, 한 걸음 나아갔다고는 해도 아이치 목표 역시 성과 없기는 마찬가지다. IPBES 보고서는 달성 시한을 1년여 앞둔 아이치 목표에 대해 “육지와 해상 보호구역 설정 등의 성공적인 정책 대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목표가 미달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목표만 세워놓고 20년 가까이 허송세월한 가입국들이 다시 2020년 이후를 논의 중이라고 하니 헛웃음마저 나온다.
□“마을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새들은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많은 사람이 갸우뚱거리고 불안해하며 사라진 새들을 이야기했다. 뒷마당의 새 모이를 놓아둔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가끔 눈에 띄는 새는 죽기 직전이다. 몸을 심하게 떨었고 날지 못했다. 봄이 와도 새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전에는 아침이면 울새, 검정지빠귀, 비둘기, 어치, 굴뚝새의 합창이 울려 퍼지곤 했는데 지금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들판과 숲과 습지에 오직 침묵만이 감돌았다.” 반세기도 더 전 레이철 카슨의 묘사가 눈에 띄지 않은 형태로 전지구적 규모에서 벌어지고 있다면 과장일까.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용호부두와 주변 지역 모두 친수공간 된다
러시아 화물선 광안대교 충돌 사고로 부두기능 폐쇄가 결정된 부산 남구 용호부두와 주변 지역 전체가 친수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등이 용호부두를 비롯한 용호만 해안 전역을 종합 재개발하기로 합의한 까닭이다.
부산시와 부산해양수산청, 남구청, 부산항만공사(BPA), 부산도시공사는 13일 부산시청 7층 영상회의실에서 ‘용호부두 일원 종합개발 성공적 추진을 위한 기본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내달께 마스터플랜 수립용역
섶자리·이기대 연계 종합개발
하반기 중 부두 우선 개방
이날 협약에 따라 시와 부산해수청 등은 용호부두와 주변 지역을 연계해 총체적인 재개발계획을 수립한다. 이를 위해 시와 부산도시공사는 다음 달께 이 지역 종합개발 마스터플랜 수립용역에 들어갈 예정이다. 종합개발 마스터플랜 수립 대상 지역은 용호부두를 비롯해 용호만 매립부두, 섶자리, 이기대공원, 용호만매립지 하수종말처리시설 예정지, 용호만 공유수면 등이다.
"도시공원 일몰제 특별법 제정해야"
이시종 지사 "해제와 동시에
보상 불가… 대책 마련 시급"
매입비 50% 국비 지원
기재부·국토부에 건의도
이시종 지사는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와 관련해 13일 "대책과 신산업 핵심시설 구축을 추진하라"고 주문했다. 이 지사는 이날 청주시 문화동 도청 소회의실에서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고 "헌법불합치결정으로 인해 내년 7월 시행되는 장기미집행 도시계획시설 일몰제에 대해 헌재 결정의 정신은 존중하지만, 해제와 동시에 보상이 불가능해 국가적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도시공원 일몰제가 문제"라며 "국공유지는 보상하지 않고 공원으로서 기능을 유지시키고, 사유지는 즉시 보상이나 10년 상환, 20년 상환 등 분할상환 등 그룹을 나눠 단계별로 보상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보상기간 중에는 개발행위를 제한하고, 보상비는 국가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 건의하라"고 지시했다.
도는 이날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을 지방자치단체가 매입할 수 있도록 보상비의 50%를 국비로 지원해 달라고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건의했다. 도에 따르면 10년 이상 미집행된 충북 내 도시공원 면적은 34.9㎢에 달한다. 이 가운데 내년 도시계획시설에서 해제되는 도시공원은 22.6%(7.9㎢)로, 이를 모두 매입할 경우 1조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충북도는 분석했다. 도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의 일몰 시한이 도래한다면 난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충북도는 양 기관에 전달한 건의문에서 "지방재정 형편상 도시공원 보상비 확보가 어렵다"며 "도심지 녹지공간 보전을 위해 국비 지원이 반드시 성사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도는 장기 미집행 도시공원 부지를 사들이려면 지방채를 발행해야 하는데 자칫 재정 위기 지자체로 지정돼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도시공원 일몰제와 관련한 별도의 지방채 발행 한도를 인정해 달라고 했다. 국토부에는 장기 미집행 공원에 포함된 국·공유지는 일몰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단서 조항을 신설해 달라고도 했다.
도는 "보전가치가 높은 공원을 국가 도시공원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개정, 현행 300만㎡인 지정 면적을 20만㎡ 이상으로 낮춰 달라"고 덧붙였다./ 충북일보
1만928m 가장 깊은 바닷속…인류를 맞아준 건 쓰레기였다
미국의 탐험가 베스코보, 챌린저 해연 탐사 ‘신기록’
비닐·사탕봉지 등 포착
플라스틱 해양 오염 빨간불
미국의 탐험가인 빅터 베스코보가 지난 1일(현지시간) 1인용 잠수정 ‘리미팅 팩터’를 타고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을 탐사하면서 불빛으로 비닐봉지로 보이는 쓰레기(선 안)를 비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 밑바닥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 오염의 심각성을 보여줬다. 전직 미국 해군 장교로 심해 탐험가인 빅터 베스코보(53)가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으로 알려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의 챌린저 해연(해구 중에서 특히 깊이 들어간 부분)을 탐사하던 중 플라스틱 쓰레기를 발견했다고 외신들이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베스코보는 지난 1일 잠수정 ‘리미팅 팩터’를 타고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 수심 1만928m 바닥에 도달했다. 베스코보는 챌린저 해연에 4시간 동안 머물며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생물종 4종을 발견하는 등 성과를 올렸다. 뜻밖의 발견도 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에서 비닐봉지와 사탕 포장지 등 플라스틱 쓰레기를 포착한 것이다. 그는 로이터통신에 “인간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까지 오염시킨 확실한 증거를 발견해 매우 실망스러웠다”면서 “바다가 쓰레기 하치장처럼 취급되고 있지만 바다는 그런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쓰레기 해양 투기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는 총 1억t에 달한다. 지난 3월에는 필리핀에서 죽은 채 발견된 새끼 고래의 배 속에서 비닐봉지 40㎏이 나와 충격을 줬다. 같은 달 이탈리아 해안에서는 사체로 발견된 암컷 고래 위장에서도 플라스틱 쓰레기가 20㎏ 나왔다. 세계자연기금(WWF)은 매년 플라스틱 쓰레기로 폐사하는 고래, 바다사자 등 해양 포유동물이 10만마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류의 챌린저 해연 탐험은 이번이 세번째였다. 미국 해군은 1960년 1만912m까지 내려갔고, 영화감독 제임스 캐머런은 2012년 1만908m까지 내려가는 데 성공했다. 베스코보의 이번 탐사는 종전 최고기록보다 16m 더 내려간 것이다. 미국 텍사스주 출신으로 사모펀드 회사 경영자이기도 한 베스코보는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지구에서 가장 깊은 해연 5곳을 탐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서울 면적 3분의2 공원부지 사라진다는데…야속한 일몰제"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 시점이 다가오면서, 전국 지자체들이 지역 도시공원의 토지 용도를 변경하고, 사유지를 사들이면서 공원 부지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에 따라 내년 7월부터 도시공원으로 용도를 지정해둔 채 개발하지 않으면 땅의 효력이 사라지게 돼 도시공원 부지로 지정됐던 땅들을 공원 이외의 용도로 개발할 수 있게 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일몰제 적용으로 내년 7월 공원 효력이 사라지는 전국 도시공원 면적은 2017년 말 기준 367.7㎢이다. 서울 면적의 3분의 2쯤 되는 공원 부지의 효력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를 앞두고 각 지자체가 용도 변경 등의 방책을 마련해 녹지를 지키고 공원 확충에 애를 쓰고 있다.
도시공원 일몰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지난 2월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도시공원 우선보상 대상 부지를 매입할 수 있게 긴급 예산을 수립하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각 지자체들에 따르면, 지역마다 도시공원 용도와 관리에 관한 결정 변경안을 공개하고 주민 의견 수렴을 진행 중이거나 계획에 대한 주민의견 청취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의 경우 일몰제 적용으로 116개 공원의 95.6㎢ 땅이 해제될 예정이다. 이에 서울시는 내년 6월까지 우선 보상대상지 2.33㎢를 사들이고, 나머지 부지를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변경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도시자연공원구역 제도는 국토계획법에 따라 자연을 보호하고 도시민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지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 경우 건축·용도 변경이 금지되고, 일몰 기한도 없다. 노원구는 중계동 산30-20번지 일대 토지 보상 대상 면적 2만1207㎡를 ‘불암산 도시자연공원’으로 조성하려는 계획을 마련했다. 노원구는 이런 내용을 담은 안을 9일 열람 공고하고 주민 의견 청취에 나섰다. 용산구는 올해 237억원을 들여 현재 꿈나무소공원(1412.6㎡)과 이촌소공원(1736.9㎡)이 있는 이촌동 땅 3149.5㎡를 매입할 계획이다. 이 공원 부지는 고승덕 변호사 측 회사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일몰제로 풀리는 토지의 녹지를 지키고 공원 개발을 계속 추진하려는 취지가 깔려 있다.
창원시는 성산구 가음정공원(86만4917㎡), 진해구 웅천공원(45만3295㎡), 의창구 용동공원(28만6788㎡) 등 9개 공원을 보전녹지 또는 준주거 지역으로 토지용도를 변경할 예정이다.
창원시는 지난 8일 창원·마산 지역 공원 용도를 바꾸는 내용을 담은 ‘창원 도시관리계획 결정 변경안’을 공고하고 주민 의견 청취에 들어갔다. 기존에 ‘자연녹지’로 구분했던 용지를 ‘보전녹지’ 또는 ‘준주거지역’으로 바꾸는 게 핵심 내용이다. 즉, 땅이 자연녹지에서 해제됐을 때 사유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으나, 지역 훼손을 최소화하고 녹지를 보전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려는 것이다.
경주시도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황성동 황성공원 안에 있는 사유지 9만9000㎡를 올해 하반기부터 사들일 계획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최근 이곳을 토지은행 공공토지비축 대상으로 선정했다. 황성공원은 신라시대 왕의 사냥터였고, 현재 산책로와 시민운동장 등으로 사용돼 왔다. 경주시는 이를 지키기 위해 공원 안에 있는 사유지를 사들이고 공원을 확대 조성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LH가 자체 예산으로 황성공원 사유지를 먼저 사들이고, 경주시가 5년 동안 나눠서 상환하게 된다.
이처럼 지자체가 용도 변경에 나선 것은 일몰제 시행으로 풀린 녹지 등이 무분별하게 개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다. 도시계획시설은 공원과 도로, 학교 등 도시 기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시설을 짓기 위해 지자체가 예정지를 지정하는 제도다. 하지만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땅을 매입하지 못해 장기간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1999년 헌법재판소가 ‘사유지에 공원 등을 지정해 놓고 보상 없이 장기 방치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7월부터 공원 등 20년 이상 장기 미집행 도시계획시설에 대한 일몰제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국토부는 지난해 공원 부지의 3분의 1인 115.9㎢를 ‘우선관리지역’으로 지정하고 지자체의 부지 매입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지자체가 공원 부지 매입을 위해 지방채를 발행하면 국토부가 5년간 이자의 최대 50%를 지원하는 식이다. 지방채 이자율을 2.4%로 가정했을 때 최대 지원액은 7200억원이고, 지자체 여건 상 실제 지원액은 약 3300억원 규모로 추정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부지 매입을 위한 예산과 보상책 마련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지역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자체의 예산 부담이 커지는 문제도 있지만, 공원에서 해제된 지역의 경우 공원으로서 기능이 안 되거나 여건 상 개발이 힘든 토지들도 많다"며 "이런 땅들을 지자체가 매입할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토지 소유주들도 사정마다 의견이 분분하다"며 "오히려 지자체가 땅을 사주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개발할 수 있도록 용도 제한을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마다 갈등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토지 소유주들은 수십년간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시민단체 등은 도시에 중요한 자연 녹지가 파괴될 상황에 직면했다고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각 지자체 실무 담당자들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설득해 난개발을 막고 녹지를 보전할 수 있게 힘을 쓰겠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허지윤 기자
도시공원일몰제에 숨겨진 전 정권의 개발 정책
공원일몰제 관련 법을 짚어보다가 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도시공원일몰제란 1999년 도시계획시설로 결정되고 장기간 재산권 행사가 금지되는 것이 사유재산권의 침해라는 헌번불합치 판정 이후, 2000년 7월 기준으로 도시계획시설로 지정된 공원은 2020년 7월까지 부지를 매입하지 않을 경우 공원 지정이 일괄적으로 해제되는 것을 말한다. 외견상 공원으로 조성된 경우에도 지자체가 부지를 매입하지 않으면 해제 대상으로 취급되며, 아직 조성되지 않은 공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에 노무현정부는 2005년 도시공원 및 녹지등에 관한 법 개정 시 도시공원일몰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시자연공원구역’ 제도를 만들었다. 이는 일몰제가 시행되면 자동적으로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전환되는 제도였다.
그러나 2009년 이명박정부는 일몰제에 해당하는 공원을 모두 강제적으로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전환하게 만든 조항을 지방정부 재량에 맡기는 임의전환으로 바꾼다. 그리고 2009년 한축에 ‘민간공원 조성 특례’ 제도를 만든다.
도시자연공원구역제는 일몰제를 대비해 도시공원을 지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입된 것이라면 민간공원 조성 특례 사업은 민간사업자가 5만㎡ 이상 공원을 매입(민간개발업자는 공탁금만 걸고 실제 매입은 지방정부가 함)하여 공원 면적의 70% 이상을 공원으로 조성한 후 기부채납하면 30% 미만은 주거, 상업지역으로 조성할 수 있도록 하여 도시공원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5년 도시자연공원구역제가 2020년 시행될 도시공원일몰제에 대비해 도시공원을 지키고자 만들어진 제도였다면 2009년 민간공원 특례 사업은 ‘개발’을 전제하는 제도다. 도시공원일몰제에 대비해 도시자연공원구역제는 언급되지 않고 일몰제 대책이 민간공원 특례 사업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대구시가 공원을 지키는 것보다 개발에 역점을 두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대구시는 도시공원일몰제에 대비해 20년간 제대로된 계획을 수립하지 않았다. 지주들이 소유한 토지를 대지와 임야 또는 논밭인 경우로 나눠 분류하고 보상을 위한 예산을 수립하고 예산 확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민간개발 특례 사업을 한다고 해도 땅을 매입해야 하는 것은 대구시다. 서울시는 장기미집행 도시공원을 도시자연공원구역으로 지정, 공원기능을 유지하면서 단계별 보상계획 수립 후 전체 토지에 대해 보상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대구시와 수성구청도 범어공원을 62%(696.145㎡)의 사유지가 있다. 대구시와 수성구청은 단계별 사유지 매입계획을 수립하고 예산확보와 지방채 발행을 하기 바란다. 정부는 토지매입을 위한 지방채 발행 시 50%의 이자를 지원한다고 했다. 그리고 국공유지 38%(436.313㎡)를 일몰제에서 제외시켜야 한다./ 대구신문 / 육정미 수성구의원 (범어1·4동, 황금1·2동)
‘땅에 물이 많아서…’ 말라죽는 구상나무
한라산 일대 경사 작고 일사량 낮은 곳 고사율 높아…
기후변화에 강수량 증가·증발량 감소 ‘토양 수분 과다’ 원인 추정
빠르게 고사하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국내에만 자생하는 침엽수인 구상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선정한 멸종위기종이다. 이 구상나무가 제주도 한라산 등지에서 최근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이유를 밝힌 연구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로 인해 나무들이 뿌리를 내린 토양에 지나치게 물기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라산 일부 지역에서는 구상나무가 열 그루 가운데 아홉 그루꼴로 고사한 상태인 사실도 확인됐다.
12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의 ‘한라산 구상나무 공간적 고사 패턴 분석을 통한 고사 원인 추정’ 논문에 따르면 최근 급속하게 진행 중인 한라산 구상나무 고사의 원인은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량 증가, 증발량 감소 등으로 인한 토양의 수분 과다로 추정된다. 이 논문은 지난달 한국농림기상학회지에 실렸다.
구상나무가 왜 죽는지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주로 기후변화에 따른 전 지구적 온난화와 그에 따른 건조, 가뭄으로 인한 수분 스트레스에 주목해왔다. 반면 이번 연구는 강수량 증가와 이에 따른 토양 수분 과다로 발생할 수 있는 식생 변화를 확인한 것이다. 토양 수분 과다에 대한 연구 필요성과 시급성도 시사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구상나무의 밀도는 한라산에서 고도가 올라갈수록 증가했지만, 그만큼 고사하는 비율 또한 높았다. 또 경사가 클수록 구상나무가 죽는 비율은 낮은 반면 경사가 작을수록 고사율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평균 일사량이 높은 지역에서 구상나무의 고사율이 낮다는 점도 새롭게 확인됐다. 즉 경사가 작아서 토양이 물을 머금는 양이 상대적으로 많고, 햇빛이 상대적으로 덜 들어서 수분이 공기 중으로 증발하는 양이 적은 곳에서 구상나무가 고사할 확률이 높은 것이다.
이번 연구는 한라산 각 사면에서 구상나무가 비교적 넓은 면적에 균질하게 분포된 지역을 대상으로 9개의 조사구역을 선정해 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9개 조사구역의 구상나무 고사율은 한라산 남동부 백록담 일대에서 17.1%로 가장 낮았으며, 북동부 1300~1400m 고도에서 87.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백록담 북동쪽 왕관릉 일대의 조사구역에서도 구상나무 고사율이 78%로 높게 나타났다.
기후변화로 인해 고산지대, 아고산지대의 침엽수가 빠르게 고사하고 있는 것은 한라산만의 일이 아니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지난 8일 발표한 전국 고산지역 멸종위기 침엽수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주요 상록침엽수림의 28.7%가 사라져 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에 따르면 한라산 구상나무는 39%가 고사 중이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멸종위기종’ 구상나무 등 고산 침엽수림 28% ‘고사’
고유 수종인 구상나무를 비롯해 고산지대에 사는 주요 상록침엽수림의 28.7%가 기후변화 때문에 사라져 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내놓은 ‘전국 고산지역 멸종위기 침엽수종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에는 전국 31개 산지에 1만2094㏊의 멸종위기 침엽수림이 분포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지리산에 가장 넓은 면적(5198㏊)의 고산 침엽수림이 있고 한라산 1956㏊, 설악산 1632㏊, 오대산 969㏊ 등이다. 조사는 해발 1200m 이상에 주로 서식하는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 7종의 침엽수를 대상으로 했다.
최근 기후변화가 계속되면서 고산 침엽수림에서 광범위한 고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인 구상나무림은 전국적으로 6939㏊가 분포하는데, 이 중 33%(2290㏊)에서 나무가 고사됐거나 고사가 진행되고 있다. 또 분비나무림은 전체 3690㏊ 중 28%(1033㏊)가 고사 중이고, 가문비나무림도 418㏊ 중 25%(104.5㏊) 정도에서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산림과학원은 “고산 침엽수의 대규모 고사·쇠퇴의 주요 원인은 기온 상승과 폭염, 적설량 감소 등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생리적 스트레스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이종섭 기자 nomad@kyunghyang.com
땅 모자라면 물 위로…‘재생에너지 틈새전략’ 띄우는 대만
ㆍ(상) ‘재생에너지 20% 확보’ 분투기
‘전기 나오는’ 저수지·바다 2025년까지 원자력발전소 가동을 멈추겠다고 선언한 대만은 전국에 태양광·풍력 발전시설을 늘려가고 있다. 타오위안현의 한 저수지 수면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 모습(위 사진)과 먀오리현 해안에서 바라본 해상 시범 풍력단지. 대만 에너지기업 타퉁(Tatung)·대만 총통부 제공
대만의 제1관문인 타오위안 국제공항이 있는 도시 타오위안에는 ‘천 개의 연못이 있는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별명이 있다. 평지가 많아 농업이 발달했고 그러다보니 저수지도 많이 생긴 때문에 붙은 말이다. 인구 200만의 이 도시 안에 등록된 저수지만 2800여개다. 최근 들어서는 공업도시로도 급성장하며 인구가 크게 늘었고 2014년 대만의 6대 직할시 중 하나로 승격했다.
논밭의 젖줄이던 저수지들은 이제 도시의 거대한 에너지원이 됐다. 지난 10일 찾은 타오위안 북부의 한 저수지에는 태양광 패널이 수면 위에 떠서 햇빛을 받고 있었다. 이 저수지의 설비용량은 500㎾ 규모로 연간 전력판매 매출은 1억원가량이다. 동행한 타오위안 현청(시청) 관계자는 “저수지는 태양광발전을 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장소”라고 말했다. 태양광발전 효율은 기온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모듈 온도가 25도 안팎일 때 효율이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는데, 아열대 기후인 대만에서는 패널 온도 관리가 까다로운 과제다. 수면 위에 패널을 올리면 온도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 수면 위에서는 그림자가 잘 생기지 않아 일조량도 풍부하다.
■ 한국보다 반발짝 먼저 “에너지전환”
“한국은 국토가 좁고 산지가 많은 데다 일조량과 바람이 적어 재생에너지 수급에 어려움이 크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올리는 에너지전환 정책에 쏟아지는 단골 반박이다.
대만은 국토 면적이 한국의 3분의 1 수준, 인구는 2355만명으로 한국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친다.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은 섬나라로 전력수급 측면에서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다. 아열대에서 열대에 이르는 기후로 일조량이 적은 날이 많다. 전체 면적의 64%는 평균고도 3000m가 넘는 산지이며, 얼마 안되는 평지에 사람들이 몰려 살아 인구밀도도 높다. 모두 한국에서는 재생에너지 비중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는 근거다.
그런데도 대만의 에너지전환 계획은 한국보다 빨랐고 급진적이었다. 대만은 국민당 마잉주 정부 시절이던 2011년 일찌감치 전체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2016년에는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건 민주진보당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해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을 폐쇄하기로 했다.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2025년까지 20%로 끌어올리고 석탄발전 비중은 30%로 낮춘다는 계획도 세웠다. 2017년부터 에너지전환을 시작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20%로 높아지는 시점은 이보다 5년 늦은 2030년이다. ‘원전 제로’ 시점은 2082년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늦다.
■ 저수지에는 태양광, 바다에는 풍력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 같은 태생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대만은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태양광발전용 패널을 옥상과 빈 땅뿐 아니라 물 위에도, 길에도 설치해 효율을 높이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타오위안 현청은 지금까지 저수지 8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설치 과정이 쉬웠던 것만은 아니다. 현청 관계자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경치가 망가지거나 농업용수가 오염될까 염려한 주민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현청은 태양광 기업과 주민들이 만나는 자리를 주선하는 등 양측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며 오랜 설득 기간을 거쳤다.
태양광 패널이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거나 생태계를 어지럽히지 않도록 하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플라스틱 받침대를 이용해 패널과 수면의 거리를 30㎝ 이상으로 유지시키는 방법으로 수질오염 가능성을 차단했고, 패널 청소는 화학약품을 일절 쓰지 않고 물로만 한다. 저수지의 PH와 산소부존량, 중금속 농도, 엽록소 농도 등은 24시간 측정하고 데이터를 주민들에게 공개한다. 태양광 패널이 덮는 면적은 저수지 면적의 50%를 넘길 수 없도록 돼 있고, 특히 수중생물이 많이 살고 물속 생태계가 만들어져 있는 저수지에는 수면의 15%까지만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저수지 반경 600m의 곤충과 식물, 새 등 생물종들에 대한 모니터링도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현청 관계자는 “1년 이상 관찰한 결과 태양광 패널이 주변 환경과 생물종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결론났다”고 말했다. 현청은 현재 저수지 8곳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더 설치하기 위해 주민들과 협의 중이다.
타오위안 현청은 수상태양광과 함께 공공기관 태양광 패널 설치를 확대하고 일반 주택에도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최대 3만대만달러(약 114만원)까지 지원금을 주는 등 소규모 발전시설을 늘리는 데 예산을 쏟고 있다. 이 도시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2018년 기준 35.4㎿로 전국에서 5번째로 높다. 태양광발전 설비용량은 2014년보다 22배나 늘었다.
바다에서는 해안이 아니라 바닷속에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지난 9일 타이베이 남쪽의 해안도시인 먀오리현의 한 해변가에 도착하자 바다 멀리 희미하게 풍력발전기 두 대가 돌아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해안에서 4㎞가량 떨어진 대만의 첫 번째 해상풍력 시범단지다. 대만 정부는 2015년부터 이 지역에 관측탑을 세워 기후와 생태 조건을 살핀 뒤 4㎿ 규모의 풍력발전기 2기를 세웠다. 해상풍력발전은 해안가에 주로 세우는 육상풍력보다 훨씬 효율이 좋고 소음 등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대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만 정부는 이 지역에 올해 말까지 8㎿ 규모의 해상풍력 20기를 더 건설할 계획이다.
풍력발전에서도 가장 큰 고려사항은 주변 생태계와 어민들의 반발이다. 특히 이 지역에는 대만에서도 보호종인 돌고래가 산다. 사전 관측 때도 주변 생태계 정보를 모으는 데 가장 집중했고, 건설 과정에서는 발전사가 지역 어민들에게 3억5000만대만달러(약 134억원)를 배상했다. 현장에 함께 간 대만 그린에너지랩 관계자는 “아직은 2기밖에 설치되지 않아 어업에 끼치는 영향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이 지역에서 저인망 방식의 어업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탈원전 중단’의 진실은
대만의 에너지전환도 부침을 겪었다. 2017년 대만에서 발전소 직원 실수로 LNG발전소 6기가 가동 중단되면서 대정전이 발생하자 원전 지지자들이 탈원전을 그만둬야 한다며 국민투표를 청원했다. 지난해 11월 국민투표 결과 총유권자 대비 찬성률 29.8%로 ‘2025년까지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한다’는 전기사업법 95조 1항이 폐지됐다. 한국에서 “대만에서 탈원전 정책이 끝났다”고 알려진 이유다.
하지만 법령에서 관련 조항이 삭제됐을 뿐 탈원전 시점이 이보다 늦어질 가능성은 낮다. 대만 내 모든 원전 설계수명이 2025년 전에 끝날 예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만 원전 6기 중 진산 1·2호기는 폐쇄 절차를 밟고 있으며 궈성 1·2호기는 2023년, 마안산 1·2호기는 2025년 설계수명이 모두 끝난다. 설계수명이 5년 이상 남아 있어야 가동허가 연장신청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궈성원전의 경우 수명연장도 불가능하다.
다만 제3원전인 마안산 1·2호기는 수명연장이 법적으로 불가능하지는 않기 때문에 올해 말 총선, 내년 총통 선거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일단 현시점에서 민진당 정부는 수명연장 계획이 전혀 없다. 지난 9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대만 그린에너지랩의 업무협약식에 참석한 리춘리 대만 경제에너지국 부국장은 “2025년까지 원전 6기 전체를 완전 정지하는 게 정부의 계획”이라고 재확인했다.
“2025년 재생에너지 비중 20%, 허무맹랑한 목표? 과학적으로 달성 가능” 후야오쭈 대만 그린에너지랩 소장 “대만의 재생에너지 목표를 2025년까지 20%로 선정한 데는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충분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라고 보고 있습니다.” 후야오쭈(胡耀祖) 대만 그린에너지랩 소장(사진)은 지난 9일 대만 신주현에 있는 사무실에서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대만 공업기술연구원 소속인 그린에너지랩은 에너지정책과 재생에너지, 수요관리 등을 연구하며 에너지전환 정책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핵폐기물 처리 등 비용 등 따지면원자력, 저렴한 에너지 절대 아냐” 후 소장은 “에너지 수요를 만족시키면서도 지속가능한 환경보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설정한 게 2025년 석탄발전을 30%로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20%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라며 “재생에너지 목표치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국토가 작고 산지가 많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발전을 위한 부지 등을 확보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 소장은 “태양광발전이 가능한 부지를 3만1000㏊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정도면 충분히 2025년까지 목표치인 지상 17GW를 채울 수 있다”며 “주민 의견수렴과 소통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긴 한데 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풍력발전의 경우 이미 육상에서는 2025년까지 목표인 1.2GW 중 800~900㎾를 확보한 상태다. 후 소장은 “국토가 좁은 대만에서 육상풍력보다 더 경쟁력 있는 해상풍력의 경우 목표치를 초과달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후 소장은 “현재 대만에서 원자력발전은 확실히 선택지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후 소장은 “핵발전에 대한 국민 여론은 양극화돼 있지만 현 정부의 2025년 탈원전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며 “또 노후 석탄발전소를 줄이고 신규 석탄발전소를 건설하지 않는 방식으로 석탄발전을 줄이고 있고,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이를 대체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값싼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면 비용부담이 커지지 않느냐는 질문에 후 소장은 “석탄발전과 원자력발전 비용은 환경비용을 고려하면 싸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도 가스를 대부분 수입하기 때문에 발전비용이 석탄보다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하지만 석탄발전소도 공기오염 정화 설비에 투자하고 나면 원가가 훨씬 비싸질 수 있는데 이 비용이 원가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에 대해서도 “보통 원자력발전을 저렴한 에너지라고 생각하지만 추후 핵폐기물 처리에 투입되는 비용을 계산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린에너지랩은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과 에너지정보 공유 및 시민 소통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앞으로 공동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협력사업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타오위안·먀오리(대만) | 남지원 기자 somnia@kyunghyang.com
부산을 적정도시로 <11> 전문가 좌담회
“부산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인구 수정해 과잉개발 피해야”
부산이 ‘과잉 개발 계획으로 점철된 도시가 아니라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맞춤형 도시’인 적정도시로 가기 위한 해법을 모색하려고 정책 담당자와 학계, 전문가 등이 좌담회를 열었다. 참석자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 인구를 수정해 과잉 개발을 지양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으며, 계획인구가 단지 ‘계획’에만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시민이 체감하는 ‘적정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 계획 수립 과정 등에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24일 부산시의회 이음홀에서 열린 ‘부산을 적정도시로’ 전문가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서정빈 기자
-현재 부산 미래의 밑그림인 도시기본계획상 계획 인구는 410만 명이다. 적절한 것인가.
▶박민성=부산의 도시기본계획상 계획 인구는 최대 480만 명이었다. 인구수가 중앙정부의 예산 확보로 이어져 이렇게 책정한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과하지 않나 싶다. 부산은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할 도시라는 오명을 쓸 정도로 인구는 계속 줄어들지만 계획 인구는 여전히 400만 명이 넘는다. 시가 담을 수 있는 인구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주철=토지이용계획은 도시계획 수립과정에서 인구를 바탕으로 결정된다. 현재 인구는 줄어드는데 계획인구는 400만 명이 넘는 건 말이 안 된다. 개발사업을 하면 사회적 인구가 늘어난다고 하지만 결국 지역 내 이동이 대부분이다. 강서에서 개발하면 부산 내 다른 지역 인구가 그쪽으로 옮겨간다는 말이다. 지금 부산은 잘못된 인구 추계 때문에 과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성장관리정책을 도입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고, 부산도 2030도시기본계획에서 이를 도입하겠다고 해놓고 실천하지 않는다. 일본에선 주·야간 인구를 구분해 추산한다. 부산도 유동인구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인구 추계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 시도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김경수=이미 부산은 작년부터 자연인구 감소가 시작됐고, 한 해 평균 16만 명이 나가고 13만 명이 들어오니 사회적 인구도 마이너스다. 부산은 죽었다 깨어나도 인구가 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부산은 1991년부터 인구가 줄었다. 그런데도 인구예측 보고서를 다 취합하면 미래 인구가 8000만 명이 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거짓말인가. 그러나 어디에서도 이를 제어하는 시스템이 없다. 지금은 350만 명 선을 지키는 데 올인해도 될까 말까다.
▶최치국=계획인구를 단순히 주민등록인구로만 잡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계획인구에는 통계인구와 유·출입 인구가 포함되어 있다. 주간 시설인구도 포함된다. 예를 들어 중구는 인구가 급격히 줄었지만 비프거리는 한 시간에 유동인구가 20만 명이다. 상하수도, 쓰레기 청소 등 실제 인구보다 쓰는 게 많은 거다. 계획에는 유입인구를 창출하는 개념을 담아야 한다는 대전제 때문에 높게 잡는 것이다.
▶심성태= 전국 지자체 중 계획인구를 수립하면서 현재보다 줄어든다고 하는 곳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인구가 모두 줄고 있다. 이전의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2030도시기본계획만큼 늘기 위해선 인근 도시에서 유입인구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부산 내 사람끼리 이동한다. 이것은 시도 냉철하게 인정해야 한다. 자연인구는 이미 줄고 있고, 사회적 인구도 유출이 큰 게 맞다. 일자리 때문이고, 유출인구의 30%가 35세 이하의 청년층이다.
그러나 인구가 감소한다고 기반시설을 무작정 줄일 수는 없다. 부산은 여름 관광 수요가 크다. 2040부산도시기본계획을 수립할 때는 인구 감소를 인정하고 소폭 늘리는 청사진을 제시하는 방안에서 절충점을 찾겠다. 2022년이 되면 주택보급률이 115%나 된다. 15%는 빈집이라는 거다. 이에 따른 문제 역시 시에서 대응해야 한다.
-부산이 지향해야 할 적정 인구는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박민성=통계청 자료를 보면 2030년 부산 인구는 310만 명 내외이고 2040년은 최대로 보아도 280만 명 이하다. 인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달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2040년 도시계획 인구는 310만 명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김경수=개인적 바람으로는 계획인구가 400만 명 선을 지켰으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370만~380만 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여름철 부산에 있는 인구가 500만 명이라고 500만 명이 살 수 있는 도시로 만드는 건 안 된다.
▶최치국=지금까지 기본계획상 계획인구와 실제 인구의 차이는 매번 60만~70만 명을 넘지 않았다. 일관성이 있다. 이를 축소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인구는 도시 관리에 필요하므로 이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 대신 주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정주철=계획인구를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410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인구와의 격차가 큰 것이 걱정이다. 통계적 수치를 받아들이고 현재 상황을 반격할 수 있을 정도로 계획 인구를 잡아야 한다고 본다. 사실 현재 수준을 방어하는 것만해도 대단하다. 인구 감소를 멈추게 하겠다고 목표를 정해 놓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격할 것인지를 계획에 명시해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
-부산을 삶의 질을 우선으로 하는 ‘적정도시’로 만들기 위한 해법은.
▶박민성=부산에 관광 인구가 많은 건 사실이지만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관광객이 주거지에 와서 관광을 하지는 않는다. 남포동 해운대는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인프라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고령화는 지금부터라도 위기 요소로 보지 않고 장점으로 발상의 전환을 한다면 바꿀 수 있는 게 많다. 예를 들어 부산이 ‘나이 들면 꼭 한 번 와봐야 할 도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주철=도시계획을 수립할 때 지역별 맞춤형 인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생활권 계획을 전담하는 부서도 필요하다. 현행 계획인구를 수정하려면 정부에서도 인구를 바탕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행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부산시에선 도시계획실이 적극적인 역할을 맡아 혁신안을 만들어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이미 서울에서는 지난 3월 혁신안을 발표했는데, 지자체가 관리를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지하에 사는 하층민을 지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고층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금의 재개발은 도시 공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이제는 무엇을 목적으로 개발 사업을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다.
▶최치국=계획인구를 없앨 수 없다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산뿐만 아니라 부울경의 상황을 한 표에 그려야 한다. 광역권이 아니라 초국경까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인구 구조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다. 당장 주택의 형태와 구조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적정도시 규모는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시민에게 관리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김경수=도시 계획은 철학과 연관된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부산은 지금의 도시형태가 고착화된 것이 피란민 때문이라는데, 죽을 때까지 피란민 이야기만 할 순 없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할 때만해도 문현동 일대에 녹지가 많았다. 지금은 다 상업지역으로 바뀌어 고층건물이 올라간 것 보고 사람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는 게 중요하다 싶었다. 한 사람의 의지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부산사람이 부산 도시계획을 수립한 적이 없다. 이것 역시 해결해야 한다.
▶심성태=지금까지 부산 도시계획은 정부 계획에 따랐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역별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토지이용계획을 수립하는 데도 주민과의 공감대 속에서 용도를 변경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교외 지역은 환원하고, 교통이 집중돼 사람이 모이는 곳은 고밀도로 개발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 콤팩트시티 같은 개념이다. 건물 높이 기준도 2040부산도시기본계획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시민 재산권과 연계되는 만큼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서 준비하겠다. 정리=국제 하송이 박호걸 기자
독일이 ‘탈원전’ 후회? 보수언론의 ‘슈피겔 보도’ 왜곡 이유는?
국내외 에너지정책 공방 따져보니
슈피겔 보도 왜곡해석 논란
“독일 전부문 에너지전환” 촉구를
국내 언론들 ‘탈원전 위기’로 전달
3차 에너지기본계획
재생에너지 확대에 비난 쏠려
에너지소비 절감 대책은 외면
일부 엇나간 비판 왜?
비효율적 ‘에너지 과소비’ 관성 탓
과잉소비 지속 가능한지 고민해야
그래픽_김지야
“독일은 필요 에너지의 35%를 풍력·태양력·바이오매스·수력에서 얻고 있다. 이것은 출발점일 뿐이다. 친환경 전기를 더 생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에너지전환 버전 2.0은 더 광범위하게 새로 고안되어야 한다. 모든 부문과 기술과 시장을 통합해야 한다.”
독일 유력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4일 ‘녹색 정전’(Gruener Blackout)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최종 에너지(최종 소비자에게 공급된 에너지) 가운데 일부에 불과한 전력을 친환경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그쳐선 안 되며, 건물·수송·산업 등 모든 부문에서 정부가 적극적·체계적으로 에너지전환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독일과 달리 한국에서 에너지전환 논의는 ‘탈원전 찬반’ 논쟁에 갇혀 있다. 최종 에너지의 25%에 불과한 전력 생산 방법을 두고 각종 공방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발표된 3차 에너지기본계획 정부안과 관련해 다수언론들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일정에만 관심을 가졌다. 에너지기본계획은 5년 주기로 수립되는 에너지 분야 최상위 법정계획으로 고질적인 ‘에너지 과소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송·건물산업 부문에서의 수요관리 방법 등도 종합적으로 담긴다. 그러나 에너지다소비사업장의 에너지원단위 절감 협약 추진이나 건물 에너지효율평가 의무화 추진 등 소비구조 혁신 대책은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슈피겔> 보도도 한국에서는 ‘탈원전 찬반’의 틀에 갇혔다. <조선일보>는 지난 8일 <슈피겔>의 ‘녹색 정전’ 기사를 인용해 ‘“200조원 쓴 탈원전, 값비싼 실패” 독일의 후회’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기사는 독일이 원전의 대체에너지원을 확보하지 못했고, 재생에너지 비효율로 전력 부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독일이 탈원전을 달성하려면 2050년까지 2조∼3조4천억유로가 소요될 것이라며 ‘실패’로 규정했다.
그러나 <슈피겔>은 에너지전환 필요 비용, 송전선로·풍력발전 건설 등에 대한 지역 주민 반발 등에 독일 정치권이 소극적으로 대처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녹색발전 인프라가 제대로 계속 건설되지 않는다면 공급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슈피겔>의 송전 인프라 구축 주문을 국내 한 신문은 “재생에너지 비효율 문제가 심각해졌다”고 옮겼다.
전문가들은 국내외 에너지 정책을 두고 일부 언론이 엇나간 비판을 반복하는 이유를 ‘에너지 과소비 관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통계를 보면, 한국의 2017년 1인당 에너지소비량은 5.73toe(석유환산톤)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4.10toe에 견줘 40%나 많았다. 미국·일본·영국 등은 그마저도 계속 줄어드는데 한국만 증가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1천달러어치 부가가치 생산에 투입되는 에너지량(원단위)도 한국(0.16)은 오이시디 평균(0.08)의 두배다. 그만큼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쓴다는 것이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에너지전환이 정책이 아니라 정쟁이 되는 것은, 에너지 전환으로 인해 지금까지처럼 에너지를 대량으로 싸게 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인 것 같다”며 “그러나 지금처럼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많이 쓰는 것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감사원, ‘대기업 특혜’ 산업용 전기요금 개편 권고
소수 대기업에 값싼 전기료 집중”
심야 전기요금제 문제점 지적
한국전력이 대기업에 싸게 전기를 공급해 입은 손실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에 전기를 팔아 얻은 수익으로 보전해왔다며, 감사원이 산업용 전기요금 체계 개편을 권고했다. 감사원은 또 여름철 에어컨 전력사용량이 주택용 누진제 요금의 ‘1단계 구간’(가장 사용량이 적은 단계) 용량 산정의 기준인 ‘필수 사용량’에 적절히 반영돼 있지 않다며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대규모 사업자에게 싸게 주고 중소사업장에서 벌충
감사원은 18일 공개한 ‘전기요금제도 운영실태에 대한 감사보고서’에서 “전기를 많이 쓰는 고압B·C 사용자 때문에 발생하는 전기 판매손실(2017년 기준 3845억원)을 중소규모 전기사용자인 고압A 사용자에 대한 판매수익(2017년 기준 4707억원)으로 보전하고 있어 형평성이 저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압A보다 더 높은 전압으로 전기를 공급받는 고압B·C는 공장 규모가 더 큰 대기업 소비자들이다.
감사원은 특히 심야 전기요금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산업용 전력 사용자 가운데 1.5%에 불과한 고압B·C 사용자가 경부하 시간대(밤 11시~오전 9시) 산업용 전력의 63%를 사용”한다며 값싼 요금 혜택이 소수 초대형 공장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 비중이 98.5%인 고압A 사용자(4만1162곳)가 경부하 시간대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경부하 요금제는 24시간 발전을 해야 하는 원자력발전소 특성상 한밤에 전기가 남아돌자 산업계에 원가 이하로 전기를 공급하면서 만들어졌는데, 대기업들이 설비자동화를 통해 심야에 조업활동을 집중하는 등의 방식으로 제도를 이용하면서 대-중소기업 간 전기요금 불균형이 커진 셈이다. 감사원은 발전원가가 가장 높은 시간대(오전 11~12시)와 가장 낮은 시간대(새벽 4~5시)의 격차가 2001년 2.8배에서 2017년 1.1배로 좁혀졌는데, 요금 격차는 같은 기간 4배에서 3.4배로 줄어드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 ‘누진제 구간 설정에 에어컨 사용 포함’ 지적에 반대론도
감사원은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 1단계 용량 산정의 기준이 되는 ‘필수사용량’ 설정도 부적정하다고 지적했다. 가구당 에어컨 보유 대수가 2016년 기준 0.93대(2018년 에너지 총조사)로 가구별 필수사용량 포함 기준점인 0.8대를 초과했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사원이 에어컨 사용량을 포함해 필수 전력사용량을 재산정했는데, 여름철이 330.5㎾h로 겨울철(170.1㎾h)의 2배에 육박했다.
감사원의 지적은 계절별 특성을 반영한 적절한 누진 체계를 짜라는 취지지만, 자칫하면 1단계 구간을 현행(200㎾h)보다 늘리는 누진제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월말~8월초에 잠깐 급증하는 전력수요 때문에 1구간 기준을 늘려 잡으면, 전 기간 기준으로는 에너지 과소비를 조장하는 결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지난해 12월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 ‘전기요금 누진제 티에프’를 꾸려 논의를 진행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2016년 개편된 현행 3단계 주택용 누진제를 보완하는 최종안이 올여름 전에는 확정될 전망이다.
이완 최하얀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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