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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4.27~5.2 새누리 돈 먹고 표 먹고

by 이성근 2015. 5. 1.

 

  주간경향 -426내일

 

 

   4.27 경향-국민

 

 

  4.27 내일-한국

 

 

     4.28 경향-국민

 

 

 4.28 내일-시사인

 4.28 한국-4.29 경향

  4.29 국민-내일

 

 

4.29 시사저널-한겨레

 4.29 한국-4.30 경향

 4.30 국민-내일

 4.30 한겨레-한국

 

   5.1  경향 -한겨레

5.1 국민-한국

 

    5.1 ~4.27  경향 장도리

 

 

 

 

 

 

 

불편한 진실, 새누리당 지지자들은 평일에도 투표한다 430 미디어오늘

[뉴스분석] 다시 확인된 콘크리트 지지층야권은 분열 보다 투표 포기가 변수

429 재보궐선거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참패일까? 결과만 놓고 보면 참패가 맞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했다. 4곳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결과 새누리당이 3,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1석을 챙겼다. 문재인 대표가 취임한 이후 첫 선거에서 받은 성적표가 낙제점이니, 새정치연합 내부는 격랑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럼 새정치민주연합은 왜 졌을까? 이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새정치연합의 실력이 부족해서 국민들이 새정치연합을 대안세력으로 선택하지 않았다”, “야권이 분열해 여당이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대체로 갈래는 이 두 가지다. 물론 두 가지 다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관악을의 경우, 27년 간 여권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다. 그런 곳에서 패배했으니, 1야당 실력이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아울러 정태호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와 정동영 무소속 후보의 표를 덧셈한다면, 오신환 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표보다 많으니, 패배의 원인을 야권분열로 돌릴 수도 있다.

 

성남중원도 비슷하다. 이 지역은 19대 총선 때 야권단일후보 김미희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당선됐다. 18대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당선되긴 했지만, 16, 17대 총선에서 모두 현 야권이 이겼다. 그럼에도 이번에 야권이 졌다. 다만 이 지역은 야권분열 때문에 패하진 않았다. 신상진 후보가 과반이 넘게 득표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의 경우 상황이 다르다. 인천서구강화의 경우 전통적인 새누리당 강세지역이다. 광주서구을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텃밭이나, 천정배 무소속 후보 역시 호남 출신의 구야권 인사다. 영호남의 경우 정당 간 경쟁이 덜해, 인물이 선거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천정배 후보의 당선은 놀라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즉 승패를 가른 곳은 서울관악을과 성남중원이다. 이 지역에서 야권이 패배한 원인을 찾기 위해, 주목할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재보궐선거 결과. 당선자 그래프 가운데 원은 총 유권자 대비 득표율이다.디자인 = 이우림

 

관악을에서 새누리당 오신환 후보는 총 33,913표를 얻었다. 관악을 전체 선거인수가 210,381명이니 전체의 16.1% 지지를 받고 당선된 셈이다. 그런데, 오신환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37,559표를 얻은 바 있다. 18대 총선의 경우 한나라당 김철수 후보는 38,618, 17대 총선의 경우 김철수 후보는 40,255표를 얻었다. 표 차가 사실상 일정하다.

 

1. 새누리당 표는 일정하다

성남중원의 경우,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는 36,859표를 얻었다. 그런데 그는 19대 총선에서 45,408표를 얻었다. 그가 얻은 표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그런데 신 후보는 17대 총선에서 27,032, 18대 총선에서 34,546표를 받았다. 19대 까지 꾸준히 증가하다가 이번 재보궐선거에서는 표가 다소 감소했다. 인천서구강화을의 경우, 새누리당 안상수 후보는 33,256표를 얻었다. 그러나 19대 총선 때 새누리당 안덕수 후보는 43,970표를 얻었고, 새누리당 후보가 분산된 18대 총선의 경우 무소속 이경재 후보가 21,723표를 얻었으나, 여권 표를 종합하면 역시 4만여표에 이른다. 즉 새누리당이 얻은 표는 기존과 비슷하거나 감소했어도 그 차는 크지 않다.

 

반면 야권은 기존 선거의 절반정도 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관악을의 경우 19대 총선에서 통합진보당 이상규 후보가 43,158, 민주당 계열의 무소속 김희철 후보가 32,127표를 얻었다. 75,285표인데, 이번 재보선에서 정태호 후보는 26,427, 정동영 후보는 15,569표를 얻었다. 41,996표로 무려 55% 가량이 감소했다. 성남중원도 마찬가지다. 19대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김미희 후보가 46,062표를 얻었다. 하지만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정환석 후보는 23,490, 김미희 후보는 5,581표를 얻었다. 29,071표로 63%가 감소했다. 다시 말해 새누리당이 얻은 표는 사실상 일정하다. 투표율이 낮아졌어도, 새누리당 지지자 대부분은 투표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투표율이 낮아진 주원인은 야권 지지자들이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낼 수 있는 결론은 이렇다. 새누리당의 조직표가 상당히 견고하다. 그리고 새누리당 후보들은 전체 유권자의 20% 정도의 지지를 받는다.(물론 두 지역구의 경우에 한해) 20%가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 반면 야권 후보들은 총선과 재보궐선거에서 얻은 표의 편차가 컸다. 재보궐선거가 휴일이 아니라는 점까지 감안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다. 야권 지지층 대부분이 젊은 학생, 직장인이라 이들이 투표하지 못하거나, 굳이 찾아가 야당을 찍을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다.

 

 

18대 총선부터 재보궐선거 득표율을 나타낸 그래프. 디자인 = 이우림

 

2. 야권 분열은 큰 변수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MB연대라는 담론이 등장했다. 야당이 힘을 합쳐야 여당을 꺾을 수 있다는 주장으로, 몇몇 선거에서는 실제로 성과를 낸 적도 있고, 실패한 적도 많다. 이번 재보궐선거는 어떨까? 성남 중원의 경우 신상진 후보가 36,859표를 얻었다. 이는 정환석 후보의 23,490, 김미희 후보의 5,581표를 합친 수보다 많다. 서구강화을 역시 안상수 후보의 득표수가 새정치민주연합 신동근, 정의당 박종현 후보의 득표수보다 많다. 단일화는 변수가 아니다.

 

반면 관악을의 경우 정태호 후보의 표와 정동영 후보의 표를 합치면 오신환 후보의 표보다 많다. 그런데, 정동영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20.15%를 얻은 반면 19대 총선 당시 무소속으로 출마한 민주당계 김희철 후보는 28.74%를 얻었다. 그럼에도 당선자는 이상규 통합진보당 후보였다. 야권 패배 원인을 오롯이 정동영 후보에게 돌리긴 어렵다.

 

물론 단일화 시너지효과라는 변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역대 선거를 돌아보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2011년 재보궐선거 당시 무소속 박원순 후보로의 단일화 정도가 시너지를 발휘했다. 2010년 지방선거는 전국적 단일화로 야권이 승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그 때도 광역단체장의 경우 새누리당은 6, 민주당은 7곳을 차지했다.

 

4.29 재보궐 선거를 하루 앞둔 28일 저녁,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최고위원과 주요당직자 그리고 당 소속 의원들이 경기 성남 단대오거리에서 경기 성남중원구 신상진 후보의 마지막 집중유세를 펼쳤다. 사진=새누리당 홈페이지

 

3. 결론

이를 바탕으로 선거 결과를 다시 돌아보면, 새누리당은 탄탄한 조직표를 통해 승리했다. 늘 일정수의 국민들이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그 수는 이번 재보궐선거 지역구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20%를 넘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해석하기 민망한 이유다. 표가 확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정책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그동안의 상황도 계속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지난 총선에서 야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대폭 빠졌다. 이들이 새누리당 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투표를 자의 혹은 타의로 포기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야권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새정치민주연합의 정태호 후보, 정환석 후보 등은 이번 선거에서 처음 공천을 받았다. ‘조직표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여건이다. 재보궐선거의 고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직장인들의 경우 아침 바쁜 출근길에 투표소 들릴 시간적 여유가 보장된 것이 아니며, 퇴근 후 8시에 맞춰 투표를 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럼 야권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새누리당 지지층 수가 일정하기 때문에 야권에서 새누리당과 야당을 오가는 중도층을 공략하는 것은 합리적 해법이라 보기 어렵다. 그것보다는 기존 야권지지층 기반을 다지는 것이 더욱 중요해 보인다. 그동안 새정치민주연합은 선거에서 패배하면 늘 우클릭얘기가 나왔다.적은 득표로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선거제도 개혁 역시, 고민해야 할 순간일 것이다. 물론 이 분석은 이번 재보궐선거에 한해서다

 

선거 뒤 광주 민심은대파 뽑아낸 듯 속이 다 후련430 한겨레

 

 

30일 오후 광주 서구 운천로 천정배 광주 서구을 당선자의 선거사무실 앞으로 광주 시민이 지나고 있다. 광주/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4·29 재보선 새정치 심판한 광주 르뽀

무능한 데다 계파 싸움이나 하고 있어 이대론 안돼

문재인이 크게 잘못한 건 없지만 친노들이 설쳐대

천정배가 딱히 좋다기보다 호남 새판 짜기에 공감

 

그동안 새정치를 많이 찍었제라. 근디 이번에는 그 아저씨(천정배 후보)가 돼야 바꿀 것을 바꾸지요.”

30일 오후 120분께 광주시 서구 금호지구 네거리 빛고을국악전수관 신호등 옆에서 야채 노점을 하는 박향자(54)씨는 대파를 손질하다가 변화라는 말을 툭 던졌다. 식당 주인 이아무개(55)씨는 새정치연합에 본때를 보여줘야제. 속이 시원해라고 했다. 인근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던 장원호(40·건설업)씨는 “‘민주당이 정신차려야지요. 시민들 인식은 변하는데, 당만 보고 찍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라고 꼬집었다. 4·29 재보궐선거 광주 서을에서 천정배(61) 무소속 후보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것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광주시민들의 옐로우 카드였다.

 

전통적으로 새정치연합의 안방으로 여겨졌던 광주에서 유권자들이 천 당선자를 통해 새정치연합에 항의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금호지구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조상훈(57)씨는 성완종 리스트라는 그렇게 큰 거시기(사건)가 터졌는데도 민주당이 한 석도 못얻었잖아요? 유서에 친박 측근이 8명이나 들어 있었어요. 실착한 것이지요. 깡다구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새정치연합의 공천 행태에도 따끔하게 일침을 놨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 광주 서갑 경선에 참여하려다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나와 떨어진 사람을 여그다가 공천해야 쓰겄어요?”라고 반문했다. 전문가들은 친노와 동교동계 등으로 나뉜 내부 계파 갈등과 당의 우클릭 논란이 정치적 확장도 가져오지 못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정치학)광주 분들이 권력 교체에 민감하다. 이번 선거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대표와 새정치연합이 밀어달라고 했지만, 시민들은 지금의 새정치연합으로는 힘들다는 메시지를 보낸 항의 투표였다. 하지만 문 대표에 책임을 물으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른 사람이 대표를 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 대표가 호남의 지지를 받으려면 표의 확장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한 번 믿어보자고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렸지만, 계파 이익만을 추구하는 행태에 대해선 반감이 컸다. 문우근(65·광주 서구)씨는 문 대표가 그렇게 잘못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사람들이 친노들이 설치는 것에 대해서는 반감이 있다라고 말했다. 상무지구에서 만난 한 50대 남자는 노무현만큼은 못해. 어쩐지 친근감이 없고, 거리감이 좀 느껴지고. 친노가 좌지우지하고 자기 측근 세워선 안되지요. 관악을도 친노 후보 세울 일이 아니지라고 비판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새정치연합이 새정치연합으론 정권교체가 안 된다는 시민들의 요구를 읽지 못했다. 시민들은 새정치연합에 대해 절대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고, 옐로우 카드를 꺼낸 것이다. 당 정책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다가도 방향이 정해지면 서로 공유하는게 정당인데, 새정치연합은 당권싸움과 자리에만 관심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 결과는 광주지역 새정치연합 의원들에게도 강력한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무원 임아무개(53)씨는 뱃지에만 관심있는 광주 국회의원들 정신차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정영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는 세월호 문제나 특검법 등 이슈 때마다 새정치연합은 무능하게 대응했다. 천정배를 좋아서 선택한 것이 아니고, 시민들은 최악보다 차악을 선택했을 뿐이다. 특히 광주지역 새정치연합 의원들이 뱃지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앞으로 천 당선자의 행보를 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박구용 교수는 새정치연합을 완전히 부정한 것이 아니다. 호남 정치의 새판짜기에 나서달라는 시민들의 요구를 천 당선자가 외면하고 대권 후보로 착각해 사심을 챙기기에 급급하면 냉혹하게 심판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병근 교수는 천 당선자는 이념적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다. 신당 관련해 의지가 강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친노와 비노의 갈등이 심해져 안철수 새정치연합 의원이 독자정당을 추구하면 연대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비상식의 사회]한국은 왜 떠나고 싶은 나라가 됐을까 주간경향 1124

아이삭브록소사이어티는 우리나라 해외 이민자들의 국적 포기가 공식적으로 집계가 가능한 아시아 선진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가까운 일본(89)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수치다.

 

지난해 428, 미국 시민권 문제를 다루는 공개 포럼 사이트인 아이삭브록소사이어티(IsaacBrockSociety)’는 우리나라 해외 이민자들의 국적 포기가 공식적으로 집계가 가능한 아시아 선진국과 유럽의 일부 국가들 중에서 가장 많았다고 발표했다. 뉴질랜드는 인구 10만명당 4.5, 홍콩은 25, 대만은 152, 싱가포르는 431명인 데 비해 한국은 1680명으로 비교 대상 국가 중에서 압도적으로 많았다. 가까운 일본(89)과 비교하면 20배가 넘는 수치다. 스웨덴은 1.66, 그리스 3, 폴란드 17.7, 크로아티아 200, 미국은 28명이었다. 이 사이트는 한국은 국적을 상실하는 사람이 연간 25000명으로, 귀화자보다 많은 유일한 아시아의 선진국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대형사건, 사고 발생한 해 대폭 늘어

사실 충격적인 수치이기는 하나 그 이면에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적법과 병역의무로 인한 재외동포의 국적 포기를 감안해야 하므로 숫자만으로 단순 비교할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추세를 분석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이에 대해 해럴드경제에서는 해외 이민자 수의 증가에 대해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해에 그 수가 증가한다는 분석을 해 주목을 받았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70~80년대 한해 3~4만명에 이르던 해외 이민자 수가 경제가 발전하면서 수백명까지 떨어졌었지만 서해 훼리호 침몰사고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있었던 1993~19953년 동안 이민자 수는 14477명에서 15917명으로 증가했고, IMF 금융위기 당시 12484명에서 98년에는 13974명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2015 춘계 해외 유학·이민 박람회 및 해외 이민·투자 박람회가 329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렸다. 박람회장을 찾은 사람들이 유학 및 해외 이민·투자 전문가와 상담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아울러 세월호 침몰사고로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전망이 사실로 확인되었다. 법무부의 2014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월보’ 11월호에 따르면 지난해 국적 포기자가 국적 취득 신청자보다 2800명이나 많았다는 것이다.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는 결혼으로 인한 귀화자의 증가와 해외 이민의 감소로 매년 국적 취득 신청자가 국적 이탈자보다 많았으나 지난해부터 국적 포기자가 많아지면서 역전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결혼이민 심사 강화로 인해 동남아 여성들의 국적 취득 신청이 줄어든 데 비해 미국·캐나다·호주 등의 선진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이민 2·3세들이 취업을 위해 국내에 들어올 경우 병역을 면하기 위해 자진해서 국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에는 명문대 출신의 20~30대들이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기 위해 계를 들어 외국어 공부와 현지 취업정보를 모으고 자금도 마련하고 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치열한 입시전쟁과 취업전쟁에서 승리하여 또래 중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민업계에 따르면 북유럽 이민을 알아보고 떠나는 사람들의 전 직장을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가장 많고, LG전자가 그 다음이라고 한다. 모두 국내에서는 최고의 직장들 중 하나다.

 

지금까지의 이민 대상국들은 경제적인 기회가 많은 미국·일본·중국이나 쾌적한 자연환경과 자녀교육에 좋은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이었다. 주요 이민수요도 4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가족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북유럽은 까다로운 이민 절차와 조건으로 인해 선호하던 곳이 아니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니는 성공적인 30대들이 북유럽으로 짐을 싸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문대 졸업 엘리트 직장인들도 짐 싸

첫 번째는 경쟁에 지쳤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통과하여 최고의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시 직장 내에서의 살아남기 위한 경쟁, 그리고 자녀를 갖게 되면 자녀교육전쟁,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경쟁 사회에 신물이 난 것이다. 한국에서는 경쟁에서 낙오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회가 더 이상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늘 삶이 긴장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사회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 북유럽 국가들은 강력한 사회복지망을 구축해 실직과 병으로 소득이 없더라도 본인이 낸 세금으로 국가가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에 삶 자체에 대한 불안이 크지 않다.

 

두 번째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무한경쟁 사회인 한국에선 경쟁의 룰이 공정하지 않다. 최근 갑질 논란으로 대변되는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약자에 대한 배려나 존중이 없는 것이다. 비타500 박스 안의 현금으로 나타나는 지배층의 온갖 비리와 추문은 사회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다. 새누리당의 김진태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조선시대 황희 정승이 간통도 하고 온갖 부정 청탁과 뇌물 같은 추문이 많았지만 세종대왕이 감싸서 명재상을 만들었다며 사소한 과오를 덮고 큰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자고 주장했다. 그런 사람들이 국정을 운영하고 기업을 경영하고 대학을 운영한다. 힘 있는 사람들, 가진 자들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세 번째는 국가에 대한 믿음이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나타난 총체적인 국가의 안전망 부재는 언제 어디서 그러한 사고가 우리에게 닥칠지 예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거듭된 사고들 속에서도 책임지는 사람은 없고 개선되는 것은 없어 보인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부족하니 인적 자원이 중요한 경쟁력이라며 늘 교육을 중시해 왔다. 한국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 아시아의 선진국으로 불리며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것은 무한경쟁 속에서 가족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

누구나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살고 싶어한다. 굳이 낯선 언어와 환경, 사람들 속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이민자가 늘어나고 있다면,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면 이는 그만큼 그런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떠나고 싶을 만큼 한국 사회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김규항의 동병상련 부모공부]대안교육 20, 그 이름을 다시 생각해본다 주간경향 1124

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 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한국 대안학교의 역사가 20년을 넘기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대안교육 쪽의 뜻있는 사람들이 정명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꾸려왔다. 정명(正名)은 알다시피 이름이 바로 서야 세상이 바로 선다는 공자의 이야기다. 대안교육이라는 이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그 이름에 값하는 본디 뜻을 살피고 바로 세워 제대로 된 대안교육을 해보자는 취지다. 그런 모임이 꾸려진다는 것은 대안교육이 많이 흐트러졌다는 뜻일 게다.

 

수많은 대안학교가 다 같진 않고 최초의 대안학교라는 간디학교만 해도 여러 개로 분화되어서 여전히 미인가 상태이면서 대학입시 공부에 집중하지 않는 학교도 있고 인가학교인 경우도 있다. 한 대안학교에서는 진보진영 인사의 아이와 재벌가의 아이가 함께 다니는 풍경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적인 큰 흐름으로 본다면 대안학교는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학교보다는 대안적 입시를 모색하는 학교로 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의식 있는 중산층 인텔리 부모들이 제 아이를 야만적인 공교육 현장을 우회시키되 결국 대학입시로 가는 경향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주민센터 앞 문래텃밭에서 한 대안학교 학생들이 홍익대 학생들로 구성된 사회적기업 동아리 회원들과 작물을 심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평균 학비 620만원 귀족학교비판

귀족학교라는 비판도 실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귀족학교라는 말은 대안학교의 비싼 학비와 관련된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교육부의 조사에 의하면 2014년 기준으로 전국 170여곳의 미인가 대안학교의 연간 학비(입학금·수업료·숙식비)는 평균 6207000원으로 조사되었다. 평균이 그렇다는 것이니 실제 체감 학비는 그보다 많다는 것이고, 입학 때 내야 하는 목돈까지 생각하면 한 아이에게 한 달 100만원이라는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대도시 중산층 부모들이 보기에는 일반학교에 다녀도 사교육비나 식비까지 생각하면 감당할 만한 돈일 수 있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학입시를 통한 인력 상품화라는 현재의 교육시스템을 벗어나 대학에 가지 않고도(대학을 가는 게 잘못이거나 못 가게 하는 게 옳다는 게 아니라) 제 삶을 꾸려가는 교육을 해왔다면, 그래서 20년쯤 되고 보니 그런 삶을 꾸려가는 대안학교 졸업생들이 사회 전반에 제법 나타났다면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귀족학교라는 비판에는 서민 부모들의 울분이 담겨 있다. 아이가 동네 학교에 다니는 것도 빡빡한 부모가 대안학교를 생각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학비도 학비지만 입학전형에서 대안학교 부모의 그룹에 끼는 것도 쉽진 않다. 미인가 대안학교는 재정이나 운영 면에서 부모의 참여 몫이 매우 크다. 그래서 학교의 운영방식이나 취지에 교감하는 부모들이 다수를 점하지 않으면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게 된다. 자연스레 아이를 뽑을 때 부모의 교육관이나 성향을 살피게 된다.

 

결국 대안학교 부모들은 유유상종의 그룹을 짓게 되고, 학력이 낮거나 먹고사는 일에 쫓겨 교육문제나 인문사회적인 식견을 가질 기회가 적은 서민 부모들이 그 그룹에 끼기는 어렵다. 그것도 마음 상하는 일인데, 가만 보니 대안학교라는 데가 결국은 입시로 흘러간다면 서민 부모들로서는 위화감이 들고 마음이 언짢을 수밖에 없다. 만일 대안학교들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데 힘써왔다면, 그런 모델을 많이 만들어내진 못했더라도 힘닿는 데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귀족학교라는 비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배운 사람들이 다르긴 다르다. 입시로 승부할 형편이 충분히 되는데도 저렇게 뜻있는 교육을 해보려 하니 참 훌륭하다라는 칭송이 나오지 않았을까.

 

사회적 맥락에서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은 교육의 전위의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의 교육 현실에 많은 문제가 있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하고, 그래서 아이의 미래도 사회의 미래도 어둡기에 대안학교라는 게 출현한 것이다. 전체 교육을 당장 바꿀 수 없다면 일부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해나감으로써 전체 교육에 영향을 주고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게 대안교육의 사회적 위상이다. 그런데 대안학교의 주된 흐름이 일부 부모들이 전체 교육의 현실로부터 제 아이를 빼돌리는 상황이 된다면 그건 귀족학교라는 이야기가 아예 그른 건 아닐 것이다.

 

유유상종 그룹을 짓게 되는 학부모들

그러나 그런 비판이 대안학교 자체를 겨냥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다. 어느 대안학교도 설립할 때부터 그런 교육을 지향하지는 않는다.(아예 처음부터 골프와 승마까지 교과에 넣고 대놓고 귀족교육을 표방하는 일부 대안학교는 제외한다) 다 저마다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려고 학교를 만든다. 귀족학교라 불리지만 교사의 임금수준은 매우 열악한 편이다. 일반 학교 교사생활을 하다 제대로 된 교육을 해보고 싶어 대안학교로 옮긴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왜 대안학교들이 그렇게 흘러갔는가. 전적으로 부모들 때문이다.

 

부모들의 욕망과 불안이 대안학교를 그렇게 몰아간다. 대안학교 부모 대상 강연에서 이따금 부모들에게 묻곤 한다. ‘아이가 대학에 꼭 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주시겠어요?’ 초등 대안학교는 거의 모든 부모들이 손을 든다. 중등에서는 절반 정도가 들고 고등학교에선 일부만 든다. 고등학교도 학년에 따라 다르고 학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다.

 

그렇다 보니 신입생을 채우기 쉽지 않은 신생 대안학교는 아예 두 가지 경향을 함께 포용하려는 모습도 있다. 몇 해 전에 생긴 인문학 공부 위주의 중·고등 과정 대안학교는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를 하면 대학입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 학교는 두 경향의 부모들이 늘상 갈등했고 결국 두 목표 다 좋은 성과를 얻지 못했다. 사실 제대로 된 인문학 공부가 대학입시를 해결한다는 건 기만이거나 지나치게 순진한 이야기다. 대학입시가 정말로 그런 상태라면 현재 교육에 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닌 공부를 하고 그걸로 입시 결과가 나오니 현재 교육이 문제인 것 아닌가.

 

흔들리는 대안학교 부모들은 현실이 어쩔 수 없지 않으냐고 항변한다. 수긍이 가는 이야기지만 그럴 거면 굳이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낼 이유가 있는가. 굳이 대안학교를 고집한다면 결국 대안학교와 대안교육의 정체성을 일반 학교와 다름없이 만들어놓는 데 기여하겠다는 것밖엔 안 된다. 내 아이부터 생각하는 건 부모의 인지상정이고, 한 부모가 교육문제에서 사회적 책임을 떠맡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내 아이만 생각하고 대안교육의 사회적 의미에 눈감는다면 성숙한 태도라고 하긴 어렵다. 사실 그런 모습은 교육에서 주체적 태도보다는 교육상품을 골라 아이를 내맡기려는 한국 부모 전반의 태도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다음 회에 계속)-<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정청래 측근은 증거인멸 긴급체포, 이완구·홍준표는 대서특필돼도 소환도 안해재보선 위한 템포 조절?” 427 경향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파문'에 휩싸여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 만인 27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이임사를 하기 전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최고위원은 27일 검찰의 성완종 리스트의혹 수사와 관련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측근들은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있는데, 리스트에 거론된 인물인 이완구 국무총리와 홍준표 경남지사는 측근들이 증거인멸을 했다고 언론에 대서특필됐는데도 소환조사 조차도 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 최고위원은 ·보궐선거를 위한 검찰의 수사 템포 조절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정 최고위원은 이날 광주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영어 속담으로 햇빛이 났을 때 건초를 말려라’ ‘쇠도 달궈졌을 때 두드려라라고 했다수사에 있어서 초동 수사가 중요한데, 검찰 수사는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총리나 홍 지사 등 이 두 사람에 대해 증거인멸 시도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모두 긴급체포할 사람들이라며 오늘, 내일 검찰수사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이 총리와 홍 지사의 보좌진 일부가 성 전 회장이 제기한 의혹과 관련해 주요 인사들에게 접근해 진술을 짜맞추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정 최고위원은 이 정권은 도대체 후안무치하다헌정 사상 최악의 부패 스캔들 터졌음에도, 이후 3주가 지났어도, 새누리당에서 누구도 국민에게 미안하다고 말 한 마디 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귀국한 만큼 본인의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부패 스캔들이기 때문에 남에게 미루지 말고 본인이 나사서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네팔 대지진 참사, 진짜 원인은?

[분석]"헌법도 못 만든 정치 분열, 제조업 붕괴" 427 프레시안

 

 

네팔 카트만두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네팔의 저명 유적 중의 하나인 바산타푸르 두르바르 광장이 파손돼 26(현지시간) 경찰들이 잔해를 치우고 있다. 바산타푸르 광장은 19세기까지 네팔 왕가가 살았던 곳으로 왕궁을 비롯해 왕가와 관련된 유적들이 몰려있다. 연합뉴스

 

 

26일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지진으로 희생된 사망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가운데 가족들이 서로를 붙들며 오열하고 있다. 카트만두=AP 연합뉴스

 

26(현지시간) 유니세프는 전날 발생한 네팔 대지진과 관련해, 수천 명의 사망자와 66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면서 100만 명에 달하는 어린이들이 '긴급 구호'가 필요한 인도주의적 재난 상태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네팔의 대지진이 참사를 빚은 더 근본 원인을 네팔의 낙후된 현실에서 찾은 분석기사를 내보냈다신문은 "인구 2700만 명의 이 나라는 대지진 훨씬 전부터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면서 "대지진은 수십년간 전쟁과 정치적 기능이 마비된 이 나라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2006년 마오이스트 반군의 10년 투쟁이 종식된 후 두 번의 선거가 치러졌지만, 네팔은 아직까지 헌법조차 만들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극심한 분열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신문은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수실 코이랄라 네팔 총리는 지병인 암의 경과를 점검하기 위해 국외로 나가 있었다는 것은 네팔 정부의 무기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꼬집기도 했다.

 

"네팔 인구 4분의 1이 국외 노동자"

대지진으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수백 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이유도 사실 대지진보다는 부실한 건물 탓이 크다. 건설업에 종사하는 사업가로 지진으로 큰 부상을 당한 아추트라이 수베디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네팔의 주택과 건물은 기둥도 없고, 철근도 쓰지 않은 콘크리트, 그것도 매우 묽은 콘크리트로 지어졌다"고 말했다.

 

그가 지진이 날 때 있었던 호텔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호텔 지하 1층에서 6명의 사업가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호텔이 무너져내렸다고 한다. 그나마 그는 다른 3명과 함께 목숨을 건진 쪽에 속했다. 2명은 죽고, 한 명은 지금도 무너진 건물 속에서 실종된 상태다네팔은 수력발전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지만, 수도 카트만두조차 하루에 14시간까지 정전 상태일 때가 보통이다. 그러니 이번 대지진으로 상당수의 지역들은 전기 공급 자체가 끊긴 것은 당연하다. 네팔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 정도에 불과하다. 빈곤이 만연하고 대기오염은 숨이 막힐 지경이고, 보건 통계는 끔찍한 수준이다.

 

신문은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네팔의 젊은이들은 현대판 엑소더스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개발 경제학자들은 네팔의 국외 이주 규모가 충격적일 정도이지만, 계속 증가세에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네팔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4년에만 일평균 1500명의 네팔인들이 일자리를 찾아 국외로 나가고 있다. 1996년에는 일평균 6명과 비교하면 충격적이다. 하지만 인도처럼 국경 검문이 허술한 곳을 통해 빠져나가는 네팔 주민들도 많아, 정확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경제학자와 노동당국의 추산으로는 많을 때는 네팔 인구의 4분의 1 정도가 국외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네팔 대지진현지 르포마을이 순식간에 무너졌다426 한겨레

 

네팔 수도인 카트만두 인근에서 25(현지 시작)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지진으로 붕괴된 건물. 2015.4.25 카트만두 / 신화=연합뉴스

 

나라가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것만이 아니다. 모든 환경, 특히 사회간접자본으로 통칭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게 가난하기로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네팔에 최악의 지진이 강타했다. 지진이 강타한 25일 토요일은 마침 네팔의 공화국 선포일(Loktantra Diwas)로 연휴였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점심을 막 먹었거나 식사 준비를 하던 오전 1157, 진도 7.9의 강진이 이 땅을 흔들었다.

 

땅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림이 거세어졌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 역시 밥을 먹는 중이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숟가락을 놓고 지진이다라고 외치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웃들이 겁에 질려 있었다. 우선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정보가 필요했다. 간신히 연결돼 있던 통신망 3GSNS를 통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계속 여진이 들이닥쳤다. 사람들은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음성 통화는 안 되고, 데이터 통신망만 간신히 작동했다

 

지진으로 도시에선 전봇대가 넘어지고 지방에선 송전탑이 무너졌다. 대규모 정전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요일인 26일 인도 전기 기술자들이 파견됐다. 네팔은 대부분의 전기를 소수력발전소로부터 얻는데 그 소수력발전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고산지대다. 전기가 카트만두까지 오기 위해 필요한 송전탑 상당수가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배터리도 언제 꺼질지 모른다. 전기가 수리되지 않으면, 이 글은 ‘1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지진이 들이닥쳤을 때, 네팔의 실질적인 정치권력 1인자인 수실 코일랄라 수상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 가 있었다. 의전상 국가의 대표자인 람 바란 야다브 대통령도 부재중이었다. 정부의 공식적인 대응은 그래서 조금 늦었다. 네팔은 2006년 왕정 타도 이후 공화국 선포만 하고 제헌헌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국가기구가 제대로 가동된다고 할 수 없는 나라에서 최고책임자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잠깐의 혼란 후 네팔 정부는 내무부를 책임 부처로 내세워 재난의 피해 상황 조사와 구조에 나서기 시작했다. 구조를 위해 동원할 자원이 없는 네팔이기에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교육부는 모든 학교에 일주일간 휴교령을 내렸다. 내무부는 방송을 통해 긴급 전화번호와 병상이 충분한 병원이 어디인지 파악했고, 헌혈을 하려 경우에는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를 계속 알렸다.

   

네팔은 정말 가난한 나라다. 한국인의 상식으로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히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거기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네팔의 한 가운데로 지진파가미치지 않은 네팔의 영토는 없었다. 산악 지역에서 지진은 반드시 산사태가 따라온다. 산사태에 쓸려간 사람들이 살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 네팔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은 사망 뒤 24시간 안에 화장을 해야 한다. 실종자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주검을 빨리 찾지 못해 제 시간에 사망자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지 못한다는 것은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두 배의 슬픔이다. 이걸 막을 방법은 사실 없다. 네팔은 장비도 없고, 무엇보다 해발 4000m 이하는 산이라 부르지 않고 언덕이라 부를 정도로 지형이 험한 나라다. 이런 지역에서 벌어진 참사를 맨손으로 수습할 방법은 없다.

 

그런 이유로 외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그 요청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취임 이후 첫 번째 방문지로 네팔을 선택할 만큼 네팔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온 나렌드라 모디 수상의 인도였다. 지진이 일어나고 여섯 시간 반 뒤, 인도 특별기는 구조팀과 응급의료팀을 싣고 지진 직후 폐쇄됐던 카트만두의 국제공항, 트리듀번공항에 착륙했다. 델리에서 카트만두까지의 비행 시간은 한 시간. 델리 도심에서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까지 역시 차로 한 시간 걸린다. 그러니까 자카르타에 있던 모디 수상에게 네팔 지진이 보고되자마자 즉시 구조팀을 투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그 명령에 따라 바로 날아온 것이었다. 또 고르카와 같이 원래 도로 사정이 극악한 지역에는 접근이 어렵자 인도 공군은 6대의 MI17 헬기를 투입했다. 인도군은 이 구조작전명을 미륵불 작전’(Operation Maitri)이라 명명하고 유례 없는 속도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네팔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의 이런 태도에 자극받았는지 중국도 신속하게 지원을 하고 있다. 접근하기 힘든 고르카 지역엔 아예 구조대와 식량을 같이 투입했다. 

 

직접 이해당사자로 자신들이 뭔가 할 말이 있으면 항상 직접 하지 않고 네팔을 이용해온 양국은 대규모 재난이 벌어지자 역시 경쟁적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이런 고지대에서의 구조·수색 업무는 자주 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가 극소수다. 무엇보다 네팔은 지진이 일어나기 전부터 워낙 모든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구조에 필요한 것을 리스트로 만드는 일에도 시간이 꽤 걸리고 있다.

 

   

25(현지시각) 규모 7.8 강진으로 큰 피해를 본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를 맨손으로 들어 올리며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정부의 재난대책본부가 정상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바로 그때부터 네팔 내무부는 주민들에게 건물 밖으로 나와 있으라고 권고하기 시작했다. 진도 7.9의 강진이 지나간 건물의 안전을 확인할 방법이 네팔에는 없기 때문이다. 최초의 지진이 있었던 25일 오후 1157분부터 26일 오전 6시까지 진도 4.2~5.7사이의 여진이 32차례나 있었다. 여진의 공포 때문에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은 내무부의 권고에 따라 밖에서 천막을 치고 가벼운 비를 맞으며 노숙을 했다. 매트를 깐 간이천막의 가운데엔 여자와 아이들을, 그 가에는 남자들이 누워서 간신히 잠을 청하며 라디오를 들었다. 인기 있는 라디오 진행자 꼬몰 홀리가 밤새 진행하던 라디오 네팔에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어떤 장비가 있으니, 내 도움이 필요한 이재민들은 이 번호로 연락해 달라는 시청자 통화가 이어졌다. 불안정한 네트워크 사정 때문에 전화가 수시로 끊겼고 통화중에도 여진 탓에 방송이 중단되는 혼란이 있었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카트만두의 지진은 꽤 수습되었다. 18세기까지 독립된 국가들이었던 파탄, 박타푸르, 그리고 카트만두의 공동 광장이었던 덜발광장(Durbar Square)이 모두 무너져내린 데 반해 최근 건설된 건물들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하지만 네팔에는 건물의 안전진단을 할 인력도 장비도 없다. 실제로 그 건물들이 안전한지 아닌지 판단할 방법이 없다. 네팔 정부는 지진 발생 이후 72시간 동안 비슷한 규모의 여진이 언제든 올 수 있다고,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건물 밖에서 대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또다른 문제들이 터졌다. 26일 오전 9시부터 인터넷과 3G 네트워크가 먹통이 되어버렸다. 정오까지 정상화시키겠다고 했지만 시간을 정확하게 지키는 기계 수리공은 아주 드물다. 또 장비를 제대로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소박한 사회간접시설을 가지고 있던 나라에 재앙이 닥쳤다. 그 시설의 수준이 워낙 소박했기 때문에 작은 충격만으로도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는데, 회복불능의 재앙은 이 사람들에겐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맨몸인 이들이 최악의 참사에 맞서고 있다.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장비와 그 장비에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 인력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재앙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데 얼마가 걸릴지 아무도 모른다- 네팔 교민 성상원. <거의 모든 재난으로부터 살아남는 법> 공저자.

 

 

25일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요구하며 홍대에서 광화문까지 행진하는 시민. 프레시안(최형락)

 

 

박정희-기시 '검은 유착', 오늘날 혐한론에도 영향 427 한국

[광복 70·한일수교 50년의 재인식] (14) ‘반공으로 다시 뭉친 만주 인맥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31115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협력위원회 제50회 총회에서 인사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나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한일협력위원회의 초대 회장을 맡은 이후 반세기에 걸쳐 한일관계 증진을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고 말했다. 출처 일본 총리관저 홈페이지

 

한일관계는 올해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지만,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한 채 휘청거리고 있다. 인적 물적 왕래는 거침이 없는데도 한국인도 일본인도 서로를 잘 모를 뿐 아니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 일본에서 기승을 부리는 혐한론(嫌韓論)’은 단순한 반한론(反韓論)과는 차원이 달라 근거 없이 한국 및 한국인을 멸시·매도하며 온갖 저주를 퍼붓는다. 한국인 또한 이런 일본을 불신하며 강하게 경계한다. 한일관계가 이렇게 꼬인 것은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인식에 기인하지만, 1965년 수교 후 한국의 친일파와 일본의 이른바 친한파가 엮어낸 특수한 관계에 말미암은 바도 적지 않다. 국교정상화의 이면에 어슬렁거렸던 한일 간의 검은 유착이 이후 제도권으로 당당히 들어와 한일관계를 더욱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일본 총리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만주 인맥의 재결합은 한일관계의 진정한 정상화를 막는 주요 요인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새로운 형태의 대동아공영권을 모색해온 기시 측 인사들을 한국을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도와주는 친한파로 포장하며 환대해 왔다.

 

전범들이 주축인 한일국회의원간담회

박정희 정권과 기시 라인의 유착은 19686한일국회의원간담회라는 조직을 통해 역사의 전면에 처음 등장하게 된다. 이 간담회를 주도한 일본측 대표는 가야 오키노리(賀屋興宣)였다. 그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조 히데키(東條英樹) 내각의 대장대신으로서 전시경제를 총괄했고, 당시 상공대신을 지낸 기시와 더불어 전후 A급 전범으로 종신형 선고를 받았다. 한마디로 일본이 말하는 대동아전쟁의 주역이었다. 기시와는 전범 수용소인 스가모(巢鴨)형무소의 감방 동기이기도 했던 그는 1955년에 운 좋게 석방된 후 정계에 복귀, 기시 등과 함께 자민당 내에서 이른바 반() 중공, () 대만파 의원 모임을 주도했다.

여기에 이 간담회의 창설멤버였던 후지오 마사유키(藤尾正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1986역사교과서 파동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면 살인죄에 해당되지 않는다” “1910년 한일병합은 합의하에 이뤄졌으므로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 이른바 후지오 망언의 장본인이다. 당시 그는 이 망언으로 문부대신에서 파면됐으나 끝내 자신의 생각을 접지 않았다. 후지오 또한 자민당 내 반중공, 친대만파의 핵심 멤버로서 기시 라인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세이와카이(淸和會)나 세이란카이(靑嵐會)에서 활약했고, 요즘 일본을 대표하는 극우 정치가로 알려진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와 함께 자주헌법의 제정을 주창해왔다. 가야, 후지오 등 기시 라인의 우익인사들이 한 축을 형성한 한일국회의원간담회는 1975한일의원연맹으로 개칭, 지금도 한일관계의 우호, 발전을 위한 정치적 보루임을 자임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현재 이 조직의 일본측 부간사장을 맡고 있다.

 

일본 국회의원들이 1975년 청와대에서 기시 노부스케 전 일본 총리가 기증한 잉어를 연못에 방류하고 있다. 출처 국가기록원

 

같은 민족대동아공영권 부활인가

비록 정세에 따라 그 성격을 조금씩 달리했으나 박정희 정권과 기시를 필두로 한 일본의 우익 인사들 간의 검은관계를 상징하는 것이 지금도 왕성하게 활약 중인 한일협력위원회이다. 이 위원회는 원래 1957년 일본의 우파 정치세력과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손을 잡아 만든 일화(日華)협력위원회를 모델로 삼은 것이다. 한일협력위원회는 반공, 특히 그 중에도 반중공·친대만파였던 기시 및 그 계열 인사들의 정치철학과 이에 사실상 동조해온 박정희 정권의 국가정체성이 결합한 합작품이었다. 이 모임은 한일각료회의와 같은 공식채널과는 달리 박정희 정권의 주요 인사들과 만주 시절부터 이야기가 잘 통해온일본 자민당의 우리 그룹만이 만나 한일 간의 각종 중대사를 논의하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모임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한국 정부관계자조차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다. “한국은 국론을 하나로 모았는데 일본은 자민당의 일부 사람들만이 나온다. 다시 말하면 원래 이야기가 잘 되는 일부 일본측 인사들과만 논의하기 때문에 말은 잘 통하지만 그로 인해 한국은 일부의 의견을 일본의 국론으로 받아들여 귀국한 후 선전한다. 요컨대 일본과 한국이 다른 평면에 서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같은 평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엄민영 주일대사는 1969년 우시바 노부히코(牛場信彦) 일본 외무차관에게 이렇게 균형이 맞지 않고 뭔가 비정상인 이 조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원래 말이 통하는 사람들만 모인 만큼 한일협력위원회는 활기가 넘쳤다. “자유진영 제국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면 합니다. 아시아의 자유를 수호하고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한일 양국 국민에게 부가된 역사적인 임무입니다.” 초대회장을 맡은 기시는 1969년 창설 총회에서 이렇게 반공을 기치로 다시 뭉치자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은 과거 황국(皇國)의 확산을 위해 아시아의 자유를 짓밟고 평화를 파괴했던 침략 전쟁 주도자들과 자유진영 제국의 유대를 위해 경제는 물론, 정치 문화 분야에 이르는 포괄적인 유대 관계를 구축하고자 한 것이다.

 

이 조직은 반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걸었지만 툭하면 이와는 전혀 무관하게 한일 간의 정신적인 유대를 강조했다. 가령 1969년 제1차 총회의 문화분회에서는 한일 양국이 특별한 문화권에 있음을 확인하고 정신적 협력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듬해 서울서 열린 회의에서는 한일 간의 () 민족,’ ‘동 문화족이라는 황당한 개념이 언급됐다. 한일 간의 특수한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강제병합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한 과거의 논리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기시는 1971년 열린 총회에서 한일관계를 역사상 선례가 없는 청신(淸新)한 관계라고 부르고 싶다면서 양국이 서양적인 물질문명을 초월하는 문명의 융합을 이뤄낼 것을 희망했다. ‘대동아공영을 부르짖으며 침략을 미화했던 과거를 연상시키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국을 일본의 하청 국가로

한일협력위원회의 일본측 주축은 물론 기시를 중심으로 한 만주 인맥이었다. 이 위원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온 시이나 에츠사부로(椎名悅三郞)는 기시가 만주국 산업부 차장, 총무처 차장일 때 그 밑에서 일했고, 1941년 도조 내각에서 기시가 군수차관을 거쳐 상공대신이었을 때는 차관이었다.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당시 외상이었던 그는 이에 앞서 1963대만을 경영하고 조선을 합방하고 만주에 오족협화(五族協和)의 이상을 기탁한 것이 일본 제국주의라면 그것은 영광의 제국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족협화란 일본이 괴뢰만주국을 건국할 때 내세운 이념으로, 오족은 일본인, 한인(漢人), 조선인, 만주인, 몽고인을 가리킨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시가 만주산업개발5개년계획 등을 통해 만주국을 설계해가는 과정을 만주국 군인으로서 지켜봤고, 이데올로기 조작과 통제경제 운영 등 만주국 체제를 한국에 적용했다.

 

여기에 이 조직의 상임위원을 맡은 야쓰기 가즈오(矢次一夫)는 일제의 만주침략 때부터 군부의 배후에서 암약한 인물로서 아무런 직책도 없는 낭인’(浪人)이면서도 기시가 총리이던 1958년에는 특사 자격으로 방한, 이승만 대통령과 만났다. 일본에서 쇼와(昭和) 최대의 괴물로 불리며 정치거물인 기시에게 당신이라고 부를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한일협력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창설하고 그 방향성을 제시했다. 야쓰기의 존재가 한국에 알려진 것은 아마 1970년 한일협력위원회 제2차 총회에서 공개된 한일 장기경제협력 시안(試案),’ 이른바 야쓰기 시안때문일 것이다.

 

야쓰기 시안은 향후 10년간 철강 등 일본에서 이미 노후화한 산업을 한국으로 이양하는 등 한일 경제협력을 가속화하고, 구체적으로 한국의 포항 이남지역과 일본의 서부지역을 협력경제권으로 묶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 시안 자체는 양국 간 산업발전 단계의 격차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기술 및 자본과 한국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수직적인 국제분업체제를 구축하자는, 사실상 일본의 청구권 자금 도입 이후 심화하고 있던 경제의존 현상을 풀어 쓴 것에 불과하다. 다만 그의 발상은 냉혹한 자본의 논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시 등이 구상했던 일본 주도의 동 민족론에 입각해 있었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이러한 일본측 우리 그룹친한파라면서 환대했다. 기시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우리 그룹은 한일관계 곳곳에 굵직한 족적과 상흔을 남겼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0년 한일협력위원회 참석차 방한한 기시에게 측면에서 도와준 덕분에 포항제철 건설의 전망이 섰다면서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처럼 고마워했던 일본의 친한파와의 동거(同居)가 사실은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왜곡하고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우병우식 역사 반복노무현의 비극이명박의 희극426 한겨레

 

박근혜 대통령이 316일 우병우 민정수석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의겸의 우충좌돌 18] 과거가 있는 남자들 우병우

대검 중수1과장 시절 박연차 게이트수사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직접 신문

이젠 민정수석으로 성완종 리스트수사 최윤수-임관혁라인 구성에 입김

 

홍준표, 우병우, 문무일. ‘성완종 리스트수사로 얽혀있는 세 사람이다. 모두 검사 출신이거나 현직 검사지만 처지가 확연히 다르다. 홍준표 경남도지사(사시 24)20년 넘게 쌓아올린 영광이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 놓여있다. 목숨을 건 방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사시 29)은 제 발등을 찍은 기획 사정의 기안자로 지목받고 있다. 그래도 더이상 정권이 흔들리지 않도록 수사를 조율해야 하는 고역스러운 위치다. 문무일 검사장(사시 28)은 망자의 유언을 집행해야 하는 운명을 떠안았다. 검찰을 살리기 위해 칼날은 멈칫거릴 수 없다.

세 남자에게는 모두 과거가 있다. 성완종 사건에서 이들이 맡은 배역은 묘하게도 과거의 역할과 겹친다. 기시감이 이들의 발목을 잡거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지만, 과거를 극복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다 알다시피 우병우(48) 민정수석은 2009년 봄 대검 중수부 중수1과장으로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했다. 그리고 노무현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박연차 게이트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6년 전의 박연차 게이트는 여러모로 성완종 사건과 많이 닮았다.

 

박연차와 성완종 둘 다 초등학교 학력밖에 없는데도 자수성가한 기업인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마당발이기도 하다. 두 사건 모두 일정표가 검찰 수사의 중요한 실마리다. 박연차 회장의 일정표는 비서실 여직원 이아무개씨가 3~4년 동안 거의 날마다 기록한 것으로, 박 회장의 전화 통화, 약속, 면담 내용 등 구체적인 행적은 물론 정·관계 인사에게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돈의 액수까지 자세히 적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성완종 회장의 일정표에도 이완구 총리, 이병기 비서실장 등 성완종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들과 만난 기록이 담겨있어 앞으로 검찰 수사에서 중요한 증거가 될 것이다.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이나 성완종 회장의 경남기업이 검찰의 집중 포화를 받기에는 규모가 작다는 점도 비슷하다. 태광실업은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의 신발 주문생산(OEM) 업체로 재계 순위 600위권에 불과했다. 경남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원외교와 관련해 성공불융자를 받은 기업이 모두 46개인데, 경남기업은 금액 기준으로 46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꼴찌다. 그러니 둘 다 왜 하필이면 나냐?”고 억울해 했지만 그 대답은 전직 대통령을 잡아 넣기 위해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직전 정부의 대통령을 상대로 한 승부수

박연차·성완종 모두 가족 별건 수사로 압박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왼쪽)과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

 

결정적으로는 수사 기법이 닮은 꼴이다. 특히 별건 수사가 그렇다. 성완종 회장은 북한산에 오르기 전 새벽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검찰이) 자원 쪽을 뒤지다 없으면 그만둬야지, 제 마누라와 아들, 오만 것까지 다 뒤져서 가지치기 해봐도 또 없으니까 또 1조원 분식 얘기를 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6년 전 검찰이 박연차 회장의 입을 열게 한 가장 주요한 수단도 그의 세 딸과 외아들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박 회장이 아들 명의로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해외 법인을 통해 편법증여하려 한 정황을 포착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었으며 회사 경영권을 맡고 있던 첫째 딸을 소환해 조사하는 등으로 압박의 강도를 높여갔다. 결국 박연차 회장이 잘못하면 자식이 다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무너졌다는 것이다.

 

6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담당 검사가 다른 데도 왜 이리 비슷할까? 직전 정부의 대통령을 상대로 한 승부수이기 때문에 비슷한 속성을 띌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시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병우 민정수석의 영향력과 과거의 경험 등 개인적 특성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대검 중수부가 폐지됐으니 대형 특별수사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그가 지휘하는 특수부가 맡는 구조다. 이 팀을 구성하는 인사에 우병우 민정수석의 입김이 적잖이 미쳤다. 최윤수 3차장(48·22)은 우 수석과 서울법대 84학번 동기다. 우병우 수석이 사법연수원 3기수 위지만 둘은 사석에서 말을 트고 지낼 만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임관혁 특수1부장(49·26)2005년 우 수석과 법무부 법조인력정책과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데 우병우 수석이 그의 능력을 높이 샀다고 한다. 임관혁 부장은 직전에 특수2부장을 지냈다. 서울중앙지검에서 부장검사로 재직하면 다음 인사 때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것이 김진태 검찰총장의 하방인사원칙이지만 임 부장검사는 예외가 됐다. 그리고 이런 예외는 우병우 민정수석의 요청때문에 발생했다는 게 한 검찰 고위층의 설명이다. 성완종의 비극은 바로 그 최윤수-임관혁 수사선 상에서 발생했다.

<한겨레> 사회부의 법조팀장을 맡고 있는 이순혁 기자가 쓴 책 <검사님의 속사정>을 보면 2009년 우병우 중수1과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문하는 내용이 나온다. 충격적인 것은 당시 대검 간부들과 수사팀 검사들이 CCTV를 통해 조사 광경을 라이브로 지켜보고 있었다는 점이다. 노 전 대통령의 답변이 있을 때마다 담당분야 수사검사들이 우병우 과장에게 메신저를 통해 그러면 ~을 물어봐라는 등의 이야기를 건넸다고 한다.

 

6년 전 우병우 중수1과장이 대검 간부들의 아바타였다면 이번에는 그가 최윤수-임관혁을 아바타로 사용한 게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CCTV를 통해 조사 광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지는 않았겠지만,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수사 방향을 지시했을 가능성 말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두 사건이 어찌 이리도 비슷하게 반복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그렇다면 우병우 민정수석은 과거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았듯이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타깃으로 삼은 셈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쯤되면 누가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도 분간하기 힘들어진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반복된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프랑스 혁명기 삼촌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비극적인 몰락을 의미한다면 조카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는 어처구니 없는 웃음을 자아냈다는 의미이다. 이 말의 본뜻을 조금 비틀어서 우리 상황에 대입해보면 우병우의 기획 수사는 반복된다. 첫번째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으로, 두번째는 이명박 대통령의 희극으로쯤 될 것이다. 성완종의 죽음이 일어난 지 며칠 만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측근들을 거느리고 유유자적 4대강을 구경하는 모습을 보니 드는 생각이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천연덕스럽게도 방명록에 “21C 인류에 가장 주요한 것이 물입니다라고 썼다고 하니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다.

 

성찰과 반성이 없는 경험은 비극적 상황을 받아들이는 감각을 무디게 만들어 같은 역사를 반복해서 만들 뿐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과연 6년 전의 경험에서 무슨 교훈을 얻은 것일까. 혹시 그 비극적 상황을 성취로 받아들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혼란스럽다. 그가 선사한 희극을 보면서 고마워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도 헷갈릴 뿐이다.

 

김무성 새정치, 부정부패 비판 자격 없다성완종 리스트또 물타기 발언 427한겨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7일 오전 인천 강화군 갑곶리 고려인삼센터에서 안상수 후보를 등에 업은 채 유권자들에게 걸어가고 있다. 강화/이정우 선임기자

 

송광호 법정구속 VS 한명숙 2심 유죄에도 의정활동거론

성 회장-야당 연루설, 참여정부 특별사면 공격 이어 세번째

 

성완종 리스트파문 이후, 끊임없이 새정치민주연합 쪽도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해 온 새누리당이 이번에는 원조 부패정당공방을 제기하고 나섰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야당과의 연루설, 참여정부 특별사면 공격에 이은 세번째 물타기작전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7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우리를 부정부패 정당으로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다시 한번 문제를 제기한다며 갑작스레 한명숙 전 총리를 거론했다. 김 대표는 우리 당의 송광호 의원은 6500만원인가를 수뢰했다고 1심 판결도 전에 법정구속 됐는데 한명숙 전 총리를 9억원을 받았다고 2심 판결이 났는데도 현재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대법원장에게 묻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답변해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 의원은 2007년 건설업자 한아무개씨에게서 정치자금 9억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뒤 ‘1심 무죄, 항소심 유죄라는 엇갈린 판결을 받고 상고심에서 최종적으로 사실 여부를 다투고 있다. 새정치연합이 부패정당이라는 근거를 만들기위해, 여당 대표가 이번엔 삼권분립 원칙까지 거슬러 법원 판결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한 셈이다. 김 대표는 이어 우리 새누리당은 (의원들이) 기소만 되면 당원권을 정지시키는데 새정치연합은 징역 2년형을 받은 한명숙 의원의 당원권을 정지하고 있는지 밝혀주길 바란다며 비판했다.

 

김 대표의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 새누리당이 성완종 리스트파문 정국에서 집요하게 시도해온 물타기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노무현 정부 말기와 이명박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두 차례 특별사면 명단에 포함된 것을 두고 새정치연합을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특히 김 대표는 성 전 회장 특별사면에 대해 알고 있는 (당시 비서실장인)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가 밝히면 되지 않느냐며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대표를 직접 겨냥해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27일 오전 인천 강화군 갑곶리 고려인삼센터에서 안상수 후보와 함께 상인이 깎아준 인삼을 먹어보고 있다. 강화/이정우 선임기자

 

김 대표의 발언 직후 새누리당은 야당과 문 대표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다. 박대출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노무현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도대체 몇 명이나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는지 기억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문재인 대표는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새누리당을 향해 부정부패 문제를 거론하려면 자신들의 허물부터 깨끗하게 정리한 뒤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박 대변인은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받았다는 1억원짜리 시계 두 개만 해도 새정치민주연합의 적반하장은 국민이 보기에 민망할 정도라며 이 사건은 대통령 부인이 1억원짜리 시계를 받은 것이 본질일 것이다. 논두렁에 버렸든, 어디에 버렸든, 버린 위치가 중요한가라고 비꼬기도 했다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조중동의 대국민 사기극 427 미디어오늘

[이완기 칼럼] 성완종 리스트 본질 외면하고 정치 불신으로 물타기701건 가운데 대선개입 제목은 2.3%

성완종 리스트로 드러난 박근혜 정권의 불법대선자금 이슈가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지만, 4.29 재보선을 앞두고 보수언론의 물타기가 또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 땅의 말길의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언론의 여론왜곡 방식은 종전의 그것과 똑같다.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다, 여든 야든 모두 똑같다, 소위 양시양비론이다. 이런 언론보도는 국민들의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그것은 다시 정치적 무관심을 불러 선거는 냉각된다. 이득을 보는 집단이 어디인지는 이미 계산에 나와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318일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수사 시작부터 421일 이완구 총리직 사임까지 약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5개 신문의 관련보도를 집중 모니터한 결과, 보수신문의 시각과 의제설정이 심각하게 편향되었음이 드러났다. 관련 보도 701건 가운데 대선자금을 제목으로 사용한 것은 고작 16건으로 2.3퍼센트에 그쳤고 그 중에서도 조선일보는 2건으로 1.5퍼센트인데 그것도 여와 야 각 1건이었다. 특히 보수신문들은 여야 책임론과 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성완종 특사문제를 집중 부각시켰다.

 

보수라는 노선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보수언론이 같은 보수의 길을 걷는 새누리당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것도 나무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로 드러난 불법대선자금이라는 경천동지할 부정선거 사건을 물타기로 돌파하려는 보수언론의 작태는 가장 더럽고 치졸한 대국민 사기 행각이지 결코 언론의 길이 아니다.

 

이 땅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갈등과 마찰이 보수와 진보의 차이 때문이 아님은 분명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 정의조차도 불분명한 사회다. ‘보수라는 옷을 입고 보수언론이 보여주는 행태 또한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언론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민주적이지도 않고 자유롭지도 않으며 제대로 된 이념의 뿌리도 없다. 오로지 족보에도 없고 입증되지도 않는 종북 딱지 붙이기에 여념이 없고 끊임없이 정치 불신을 조장하여 기득권세력의 영구집권을 돕는 보수언론의 행태는 이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 걸림돌이다.

 

보수란 무엇인가. 진보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여 사회발전을 꾀하려 한다면, 변화를 일정하게 견제하면서 안정을 통한 점진적인 사회발전을 일구어내는 것이 보수의 길이 아닌가. 전통을 옹호하고 지킴으로써 변화에서 오는 진통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완충역할이 보수의 미덕 아니던가. 진보가 종종 급진적 변화의 욕구로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듯이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보수의 본능적 욕구 또한 수구의 사회악으로 비판 받는다. 진보와 보수 어느 한 쪽이 절대적 선이 아니라 조화의 담론을 지속적으로 창출해 내는 것이 민주사회를 지탱하는 보약이다.

 

하지만 불법대선자금은 보수와 진보가 갈등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고질적 병폐인 정치부패의 문제요, 부정하고 불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선거부정의 문제이다. 그럴 진데 보수언론이 물타기로 국민의 판단을 헷갈리게 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정한 새누리당의 선거승리인가 지금까지 누려왔던 기득권의 재확인인가.

   

정치권력의 이너서클에 있던 한 기업인의 자살로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정치부패의 뿌리가 만천하에 드러나려는 지금, 보수인론이 보이고 있는 물타기의 작태는 보수정권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부패정권을 비호하는 일이며, 선거를 앞두고 여론을 비틀어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도대체 이 상황에서 이미 고인이 되어 이 세상에 없는 전임 대통령을 지하에서 끌고 나와 대통령 특사라는 이슈를 만들어내는 까닭이 무엇이며 그것이 정치부패를 척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백번 양보해 보수인론이 보수정당인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것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치자. 하지만 부정과 부패와 비리는 건강한 민주사회의 공적이 아닌가. 박근혜 주변의 권력 실세들이 어떤 불법자금을 받았으며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가려내는 것이 이번 사건의 본질일진데, 왜 이 시점에서 언론이 밝혀낼 수도 없고 법적으로 규명되기도 어려운 대통령의 정당한 권한 행사가 느닷없이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등장해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언론은 의제설정을 통해 사회의 현상을 규정하고 여론을 만들어내며 향후 사회가 조금이나마 더 좋은 세상으로 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언론이 해야 할 일은 성완종 리스트의 진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하고 정치검찰이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희석시킬 수 없도록 핵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것이 현 시점에서 언론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으로 새누리당을 돕는 길이요 새누리당이 보수정당답게 거듭나는 길이며 나아가 우리 사회를 건강하고 맑게 하는 길이다.

 

그런데 지금 보수언론의 작태는 정치권의 편을 갈라 부패를 덮으려는 것이며 정치판에 뛰어들어 함께 드잡이를 하면서 정치판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다.

보수언론의 언론인들에게 묻고 싶다. ‘보수언론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떠나 그 안에 종사하고 있는 언론인들의 생각은 무엇인가. 불법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하여 보수언론의 의제설정과 제목과 내용과 논조가 정녕 당신들이 추구하는 보수언론의 모습인가. 높은 임금과 사회적으로 특별한 혜택을 받고 있는 당신들이 이처럼 언론이라는 이름으로 저널리즘을 능욕하고 있는 현실에 불만은 없는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토록 부패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언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한 민주사회를 원한다면 제도와 법에 앞서 언론의 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드러난 혐의마저도 징치하지 못하고 물타기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이 땅의 정치부패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힘과 힘의 대항만이 남을 것이며 결국 그 속에서 약자들의 희생만 강제될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보수언론은 또 선거결과를 놓고 무엇이 잘못되었느니, 전략이 어떠했느니, 성공과 실패의 원인이 무엇이니 하는 등의 의제로 지면을 장식할 것이다. 언제까지 대한민국은 이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 한미원자력협정 427 미디어오늘

핵주권 문제? 핵연료 농축·재처리 가능 한계 명확협상 연기 2년 비판도

한미원자력협정이 41년 만에 개정된다. 언론은 1974년 국내 원전 산업 초창기 때 발효된 원자력협정에 현재 수준을 반영해 개정했다는 데 의미를 뒀다. 하지만 협정 만료 시한을 2년이나 연장했음에도 그 시간만큼 진전된 내용을 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한미원자력협정 체결 시점이 정국 물타기용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협상 전담 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는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에 가서명했다. 새 협정은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원전 수출 경쟁력 강화 등과 원자력 연구·개발 분야에서의 자율성 확대 등이 담겼다. 협정 유효기간은 20년이다.

 

언론은 23일 지면에서 각각 이 문제를 다뤘다.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3일 한미원자력협정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대부분 원전용 연료 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1단계 연구·개발이 허용됐다는 내용에 초점을 맞췄다.

 

동아일보 3.

 

언론은 이번 한미원자력 협정을 미국과 주권을 건 싸움인 듯 다루고 있다.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조항을 제외한 데 따른 분석이다. 미국은 타국과의 원자력 협정에 농축·재처리 포기를 명시하도록 하는 골드 스탠더드를 관철시켜 왔다. 핵연료주기를 미국의 통제하에서 결정하느냐 아니면 각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느냐 여부를 두고 핵주권론이 불거지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23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협정에는 핵심 쟁점이던 핵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해 주권 침해 논란이 됐던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한국이 핵 연료 농축과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에 첫발을 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사설에서는 일본 수준의 농축·재처리시설을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번 협상팀을 질타했다.

 

동아일보는 불평등 협정이라고 지적받던 한미원자력협정이라고 표현하며 이번 재협정 협상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는 일본은 (우라늄을) 20% 이상을 농축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5위 원전 강국이자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해 왔음에도 일본만큼 신뢰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지적했다.

 

원자력협정 문제를 두고 미국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특히 국민적 감정이 민감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일본은 했는데 한국은 못했다는 식으로 단편적으로 비교했다. 동아일보 이런 사설은 자사 기사와도 배치된다.

 

 

조선일보 1.

 

동아일보는 앞선 기사에서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전폭적인 농축 및 재처리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냉전 시대 상황과 기술 선진국이라는 일본의 특성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며 다만 지금처럼 핵무기 없는 세상을 표방하는 미행정부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평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단편적인 비교가 한미원자력협정의 중요 쟁점에 대한 본말을 전도시킨다는 데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사실상 미국의 원전 기술을 이용할 경우 미국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내용이다. 언론은 40여년 만에 협상이 재개정되면서 한국의 발전된 원전 산업 기술을 반영했다고 치켜세우면서 미국이 협상에 임한 이유에 대해서는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이번 협정에서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또 사용 후 핵연료 기술 재처리 기술 파이로 프로세싱을 연구할 수 있는 물꼬를 텃다는 데 의미가 있다하지만 우라늄 농축은 때때로 양국이 합의하도록 했다.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은 연구 실패 확률도 큰데다 비용도 많이 들어 사실상 현실가능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녹색연합은 지난 22일 논평을 통해 파이로 프로세싱은 고속증식로를 전제로 하는데 사실상 천문학적 비용과 소듐(나트륨)의 폭발성이 갖는 위험 때문에 프랑스에서도 일본에서도 상용화하지 못하고 있는 시설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6.

 

이 때문에 한미행정협정이 원자력 학계의 미래 먹거리용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단적으로 파이로 프로세싱 도입 문제를 보면 1단계 수준 연구를 허락한 것으로 기존 진행하던 듀픽 모델보다 못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막대한 자금을 들여 새로운 연구 과제를 원자력 학계에 주고 그들을 먹여살리겠다는 의도 밖에 안된다고 비판했다.

 

2년 질질 끈 합의 왜 지금?

당초 한미원자력협정은 20134월이 만료였다. 하지만 양국은 협정 만료 시점을 2년 연장했다. 하지만 2년 전 내용과 지금 내용에 크게 차이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23일자 신문에서 이번 합의 결과가 종전 협정의 만료 시한을 2년 이나 연장해 가면서 협상을 끌 만큼 소득이 있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특히 지난해 말 사실상의 합의가 다 끝났다면서도 4개월이 넘도록 막판까지 최선을 다하는모양새를 보이기 위해 발표 시점을 조절한 게 아닌지 의심하는 목소리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협정 만료 시점 즈음 농축·재처리 문제가 불거지면서 미국이 한국 핵주권을 제약하고 있다는 이른바 핵주권론이 퍼지면서 재협정이 난항을 겪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경향신문은 협상팀은 2013년 현행 협정을 2년 연장하는 시간연장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일각에서는 2년이나 미뤄진 시점에서 4월 말 협정을 체결한 타이밍에 대한 의문도 품고 있다 

양이원영 처장은 이번 협정 내용은 2년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일부는 오히려 당시보다 후퇴한 안도 있다이걸 두고 대단한 협정이라도 이뤄낸 것 마냥 호들갑을 떠는 정부나 언론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 중인데 반해 국내는 여전히 성완종 리스트로 시끄럽고 4·29 재보선도 남아있다비우호적인 국내 정치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기획된 아이템이라는 의혹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Cielito Lindo - Giovanni Marra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