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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0개 촛불 세월호…기네스북 등재되면 어떻게 될까 417 미디어 오늘
17일 오후 6시 촛불 세월호 형상 기네스북 등재 접수 예정 성공 주목돼
세월호 참사일을 기려 4160개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드는 행사가 기네스북에 등재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행사 주최인 민주주의국민행동은 지난 5일부터 17일까지 접수비 만원을 받고 참가자를 모집해왔다. 참가자들은 17일 휴대폰으로 받은 큐알코드를 접수처에서 확인한 뒤 저녁 6시부터 서울광장에 입장해 세월호 형상에 맞춰 정렬한 뒤 촛불을 켜게 된다.
현재까지 기네스북에 등재된 기록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한 광장에 3777명이 모여 횃불로 이미지를 만든 것이다.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행사 주최 측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12시 기준으로 참가자 목표인 4160명을 넘어서 8859명이 신청했고 접수비를 내고 행사 참가 자격을 얻은 사람만 5946명으로 집계됐다. 참석 의사를 밝힌 참가자들이 이날 행사 장소인 서울광장에 모이면 기네스북 등재가 가능하다.
주최 측은 "후원만 하고 당일 참석은 못하신다는 분, 갑자기 사정이 생겨 참석이 어렵다는 분들이 적지 않다"며 "기네스북 도전 공식 기록은 선착순 4999명까지 입장이 가능하다. 당일 참가자를 정확히 추산하기 어려운 점과 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 하에 계속 신청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주최 측은 참가 접수비 전액을 행사비와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 쓸 계획이다.
기네스북 등재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저녁 6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참가 접수 확인을 받고 광장에 입장하는데 한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기네스북 등재 규칙에 따르면 참여자 수는 승인 가능한 방법으로 정확히 집계돼야 하고 행사장 입장 이후 모든 참가자들은 불을 켤 수 있는 형태의 물건을 행사가 끝날 때까지 들고 로고나 이미지로 정렬돼 있어야 한다.
이미지의 크기는 공식적으로 측정돼 기록된다. 2명의 목격자 증인과 진술도 필요하다. 촛불로 세월호 형상 이미지를 만들게 되면 상공에서 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진을 찍어 기네스북에 제출해야 한다. 주최 측은 이번 행사의 취지에 대해 국민의 자발적 참여를 위한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 여론 형성이라고 밝혔다. 주최 측은 17일 행사가 마무리되면 기네스북 증빙 자료를 만들어 오는 20일 제출하고 2주 이후 최종 인증 여부를 회신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의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이며 “Largest torchlight image formed by people(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에 접수할 예정이다.
▲ 4160개 촛불 세월호 형상 기네스북 등재 계획 이미지
서울광장을 수놓을 세월호 촛불 형상은 화가 임옥상과 국악인 임진택 등이 기획 자문을 맡아 김운성, 김서경 작가 등 민족미술협의회 소속 작가들이 제작했다. 주최 측은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기네스북에 등재되면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의 시행령 제정 촉구의 뜻을 국제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최 측 함세웅 상임대표는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정부와 여당은 다시금 유가족과 국민들에게 그날의 잘못을 백배 사죄해도 모자란 데도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시행령을 입법예고하는 등 반인류적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기네스북 등재를 통해 온전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자고 호소했다.
세월호 형상 기네스북 홈페이지에도 행사 성공을 바라는 성원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김재홍씨는 "몇 사람이 모이는지는 관심이 없다. 그냥 내가 그 자리에 서 있고 싶다"며 참가 의사를 밝혔다. 임영진씨는 "기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이라며 이날 행사 성공을 기원했다.
Yeoby Yeo는 "가장 작은 행동으로 가장 큰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는 도전이 되어 슬픈 현실의 규명이 있었으면 하네요"라고 밝혔다. 김현주씨는 "엄마의 마음으로 희생자 유가족의 애타고 분한 마음 입니다. 절대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올려 전 세계에 알려지길 기원 합니다"라고 전했다.
지구촌 향한 거대한 촛불... 미국인 응답 "한국 정부 잘못" 417 오마이뉴스
[현장]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성공
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최종인원은 주최측 공식집계로 4475명이 참가했다. ⓒ 공동취재사진
▲ 세월호 만든 촛불 시민들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4월 17일 오후 8시 13분. 전광판의 숫자는 4160명을 넘어섰다. 서울광장에 '4160개의 촛불'을 밝힐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이로써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함께 추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퍼포먼스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Largest torchlight image formed by people(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 기록에 등재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기자들, 점점 보수화된다? 418 미디어오늘
2009년 ‘중도 진보’에서 2013년 ‘중도 보수’로… 배경은
기자 집단이 점점 보수화하고 있다. 기자 집단의 보수화는 언론의 보수화, 주류담론의 보수화를 뜻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3년 실시한 이념척도조사(가장 진보 0점, 중도 5점, 가장 보수 10점 기준)에서 기자들은 평균 5.54점을 기록했다. 2007년과 2009년 같은 조사에서 기자들의 이념점수는 4.58점으로 중도 진보 성향이었다. 4년 만에 중도 보수로 이동한 것이다.
매체 유형별로 보면 경제지가 5.65점이었고 지상파3사는 5.39점을 나타냈다. 종합일간지가 5.54점이었고 언론사닷컴(닷컴신문)의 경우 6.12점을 나타냈지만 인터넷신문사는 5.18점을 나타냈다. 뉴스통신사는 5.40점이었다. 2007년의 경우 인터넷신문사는 3.87점, 지상파3사는 4.55점, 경제지는 4.91점, 종합일간지는 4.42점이었다. 눈에 띄는 변화라 할 만하다.
2009년에서 2013년 사이,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했고, 신문의 위기는 가속화하는 가운데 광고를 노린 경제매체들이 우후죽순 창간됐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기성언론이 위축된 시기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언론사 자체의 이념척도 역시 2009년에는 5.64점으로 중도보수 성향이었으나 지금은 7.04점으로 더욱 보수화됐다. 기자도, 언론사도 보수화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물론 언론재단의 이념성향 조사가 현실의 기자성향을 정확히 반영하는데 적합한 조사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조사과정에서 질문 자체의 한계로 기자들 스스로 방어적 답변 또는 과잉 답변을 했을 가능도 있다. 진보성향의 기자들은 여전히 진보적인데 보수성향의 매체와 기자들이 양적으로 증가하며 이념 성향이 보수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번 수치가 제대로 조사된 결과라고 전제했을 경우 유의미한 해석도 가능하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의 기본은 10점 만점에 3.5~4.5점이 바람직하다”며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은 진보적인 사람에게 본래 맞는 직업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분방하고 평균보다는 진보적이어야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춰보면 2009년까지는 기자집단이 이상적인 평균 이념점수를 보였으나 2013년 급격히 보수화됐다. 이유가 뭘까.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논조는 진보적이지만 전통적인 객관저널리즘 규범에는 위배되는 정파적 보도에 대한 직업적 반발이 내재되어 있다가 드러난 것일 수 있다”고 전한 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일어나는 진보의 과잉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남재일 교수는 “뉴스산업에서 비판적 논조가 더 이상 상업성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탈정치적인 연예뉴스 등이 많이 등장하고 뉴스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기자들이 의기소침해지고 직업적인 의미로서 기자에 대한 체념 내지는 위축 등이 반영된 수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정부 및 지자체 광고를 순조롭게 받기 위해 언론사와 기자 스스로 보수적 담론에 동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학생운동세대가 1990년대 기자가 되었던 과거와 달리 학생운동의 종말 이후 취업경쟁에 매달리던 세대가 2000년대 기자가 되는 현재의 사회적 추세가 기자들의 보수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기자집단의 보수화는 언론의 비판적사고가 전반적으로 위축됨을 의미하고, 진보적 담론의 축소를 의미한다. 기자집단의 미래가 보수화의 연속이라면, 사회적 정체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조선·동아, '괴담'과 '억지' 탓하면서 추모하는 시늉만 416 미디어오늘
[아침신문 솎아보기] 정부 책임·진상규명 요구 외면… 유가족 호소 뭉개는 반쪽짜리 추모
1년이 지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이 돌아왔다. 신문들은 일제히 1면에 세월호참사 유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이들 신문은 다양한 기획기사를 내놓았다. 그간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배·보상금, 인양비용을 부각시켰던 조중동 역시 ‘추모’를 했다.
조중동의 1주기 보도, 엎드려 ‘추모’ 받기?
조중동의 ‘추모’기사는 반쪽짜리에 가까웠다. 그간 유가족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 안산, 그리고 팽목항에서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세월호 인양’과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 그리고 이를 통한 참사 진상규명에 관한 내용은 찾기 힘들었다. 구조실패에 따른 정부의 책임을 직접적으로 묻는 기사 역시 없었다. ‘슬픈 사연’과 ‘안전사회 진단’이 빈 지면을 채웠다.
조선일보는 추모기사에서도 유가족들의 목소리를 뭉개는 악의적인 시도를 했다. 이 신문은 세월호 참사 1주기 기획기사로 ‘일반인 생존자’의 이야기를 가장 크게 보도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그간 단원고 유가족을 비롯한 희생자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피해자 중 소수자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지면을 ‘일반인 생존자’에 집중한 반면 단원고 유가족에 집중한 기사는 두 문단 짜리 단신으로 처리됐다는 점이다. 일반인 생존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의제설정은 관심을 단원고 유가족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세상의 관심도 희생자와 단원고에 쏠려 있었다.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일반인 생존자 강병기씨는 ‘안산에 살지 않는 생존자는 사람들 관심에서 빠르게 멀어졌다’고 말했다.”
▲ 16일자 전국 종합일간지 1면.
이들 신문은 ‘안전문제’에 집중하기도 했다. 참사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안전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한민국 안전수준이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면서 “결국 우리는 지난 1년을 허송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말처럼 안전문제 개선은 중요하다. 같은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필요한 상황이다. 진상규명을 위해 시행령안을 폐지하고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는 게 유가족의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조선일보 지면에 반영되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인물 인터뷰 기사로 세월호 참사 1주기 지면을 채웠다. 구조어민, 의료진, 장례식장 관계자 등에 대한 인터뷰였다. 유가족의 목소리는 단원고 2학년 윤솔 양의 아버지 윤종기씨의 팽목항 방문을 르포형식으로 다루는 방식으로 반영했다. 이 기사에는 윤종기씨가 집이 가난해 딸에게 제대로 된 학업지원을 못해준 사실. 경찰이 꿈이었던 윤솔 양의 이야기. 아직도 일상이 두려운 윤종기씨의 모습이 담겼다. 이 역시 유가족들이 가장 우선시하는 진상규명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 16일자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조에 실패한 정부의 책임은 묻지 않았다.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모습 그 자체였다. 동아일보는 “세월호 침몰은 탐욕스럽고 무책임한 누군가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고”라며 “우리사회가 아직도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잘못이 있음을 아프게 절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의혹제기를 ‘괴담’과 ‘억지’로 묘사하기도 했다. “국민 대부분은 건전한 상식으로 괴담과 억지를 물리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신문은 “세월호 1주년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는 통합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대적으로 중앙일보는 나은 편이었다. 정치권을 향한 비판이 지면에 담겼기 때문이다. 이 신문은 “집권 세력은 이미 ‘세월호 망각’의 늪으로 빠지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남미 순방을 떠나고,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이미 미국으로 떠났다. 다른 관계부처 장관들도 해외 출장이나 국회 일정 등으로 대부분 추모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또 “유족들에게 ‘언제든 찾아오라’던 대통령의 말은 빈말이 됐다”면서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치인들의 경박함이 릴레이하듯 이어졌다”고 밝혔다. 중앙일보는 세월호 유가족의 시행령안 폐기 주장을 기사에 담기도 했다.
“누가 그걸 숨기려 하는지 끝까지 밝혀줄게”
한겨레와 경향신문, 한국일보의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지면은 조중동과 대조적이었다. 안전문제에 대한 지적이나 슬픈 사연을 담은 기사가 없다는 게 아니다. 이들 기사와 동시에 유가족들의 목소리가 반영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다.
한겨레는 배·보상금 관련 비판에 대한 유가족의 입장을 기사에 담았다. 유가족 이은숙씨는 “누가 자식 팔아 돈을 챙기려 한다고 말해 크게 싸운 적이 있다. 슬퍼해달라고는 안 할테니 제발 잊지라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경근 4.16유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선체 인양을 반대하는 세력이 있더라도 실종자들을 반드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주겠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또 단원고 학생인 고 남지현양의 언니의 편지를 지면에 게재했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언니가 지현이한테 해줄 수 있는 약속은, 지현이가 왜 그렇게 아프게 떠나야 했는지. 누가 그걸 숨기려 하는지 끝까지 밝혀준다는 거야.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절대 잊지 않을게.”
경향신문은 이석태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외 순방에 나서기 전 세월호 인양을 결정하고 조속히 시행해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서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은 특위가 정식으로 출범하기 전이라도 직접 자료조사에 나설 뜻을 밝히기도 했다.
▲ 16일자 한겨레 기사.
경향신문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핵심어를 추츨하기도 했다. 참사 이후 1년 동안 SNS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참사 관련 단어는 ‘유가족’과 ‘박 대통령’이다. 조사를 진행한 스토리닷은 “정치인 언급량이 많았던 것은 검찰이 이준석 선장을 비롯한 세월호 선원과 유병언 전 회장일가의 참사 책임을 부각시키며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정치권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일보는 정부의 특별법 시행령안에 대한 갈등을 다뤘으며 세월호 참사 추모식에 불참하기로 했던 장관들이 비난이 일자 다시 추모식에 참석하기로 했다는 사실도 보도했다. 이 신문은 당초 국민안전처 주관 행사인 국민안전 다짐대회에만 참석하기로 했던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이 급작스럽게 16일 오후 인천가족공원 추모일정을 잡았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국토부 대변인실의 번복된 입장을 언급하며 “앞뒤가 맞지 않는 해명을 늘어 놓았다”고 비판했다.
이들 신문은 참사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사설에서 강조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침몰하고 무너진 건 국가 정체성과 시스템만이 아니었다”면서 “진실을 덮고 책임을 모면하고 잇속을 지키려는 집권세력의 계산 속에 세월호의 비극은 정략으로 덧칠됐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오랫동안 폭 넓게 고착돼 왔을 업체와의 정관유착 구조와 ‘대통령의 7시간’으로 상징되는 국가시스템의 붕괴 등 근원적 진실에는 아직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족과 국민이 염두에 두는 진상규명은 이 진실규명”이라고 밝혔다.
"사람을 버리는 국가, 필요 없다"…세월호 추모제 416 프레시안
가수 이승환·방송인 김제동 등 시청광장 가득 메운 인파…경찰, 채증 경고
"사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미안하단 말을 많이 했습니다. 세상이 이래서 미안하다고, 어른이어서 미안하다고, 함께하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미안하단 말을 듣고 싶은 사람에게는 못 들었습니다. 왜 잘못한 사람은 사과하지 않을까요?"
1년 전, "동생이 죽어가는 걸 생방송으로 지켜봐야만 했다"던 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단원고 2학년 3반 고(故)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의 목소리는 떨림에서 울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4.16 세월호가족협의회'와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6일 오후 7시 서울 시청광장에서 '4.16 약속의 밤' 추모제를 열고, 세월호 인양과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시행령) 폐기를 촉구했다. 시민의 손에는 촛불 대신 추모의 의미가 담긴 흰 국화가 들렸다. 이날 시청광장에는 시민 6만 5000명이 모였고, 광화문에 설치된 분향소에는 시민 5000명이 국화를 헌화했다.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16일 서울 시청광장에 시민 6만5000명이 모였다. ⓒ프레시안(손문상)
단원고 2학년 7반 전찬호 학생의 아버지 전명선 씨는 "국가에 유가족이 바란 것은 단 두 가지였다.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것, 세월호를 인양해서 끝까지 실종자를 찾겠다는 약속을 지키라는 것이었다"면서 "우리는 위패와 영정 앞에서 수차례 요청하며 어제까지 국가의 답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전 씨는 "하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오늘 박 대통령은 우리 가족들을 피해 팽목항에 잠시 머물렀다가 혼자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해외로 떠났다"며 "국민의 어버이로서 국민의 수장으로서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생명과 목숨을 한낱 돈 취급하는 대한민국 정부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 인간의 존엄성을 국민과 함께 찾겠다. 국가의 답이 나올 때까지 청와대 문을 두드리고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단원고 2학년 2반 실종 학생인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는 "저는 오늘 광화문에서 304명의 눈물과 국민의 눈물을 똑똑히 봤다"며 "1년이 다 되도록 정부는 아무 말이 없고, 저희 가슴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찢어졌다"고 울먹였다. 일부 시민이 "힘내세요", "다윤이가 너무 예뻐"라고 외치자 허 씨는 "너무 예쁘죠? 전 미칠 듯이 보고 싶습니다. 근데 저들은…"이라고 말한 뒤 말을 잇지 못했다. 허 씨는 "저 차디 차고 어둑한 세월호에 누운 9명의 실종자가 있다"며 "저들은 벌레 보듯 하고 있지만, 이 9명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다. 국가가 사람을 버린다면 이 국가는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실종자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 ⓒ프레시안(최형락)
최윤아 씨는 단상에 올라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최 씨는 "높으신 사람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세월호 좀 인양해주세요. 저는 실종된 다윤이 언니를 볼 때마다 너무 죄책감이 들어서 미칠 것 같습니다. 희생당한 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라고 말했다.
최 씨는 "(광장에 계신)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살려 주세요.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우리가 내민 손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대통령님께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이 나라는 병들어 있습니다. 아프고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금 당장 가정에서 아이가 죽어 가는데, 밖에 일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주세요"라고 말했다.
가수 안치환 씨와 이승환 씨도 추모 공연에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힘을 보탰다. 안치환 씨는 "1년이 지났지만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이렇게 엉망인지 몰랐다. 이 나라가 이렇게 저주스러울지 몰랐다"고 말했다. 이승환 씨는 "세월호 100일 문화제 때 제가 '우리는 불쌍한 국민이다. 정부의 무능함과 무심함을 알아챈 불쌍한 국민'이라고 말했다"면서 "그런데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 이제는 무능함, 무심함을 넘어 우리는 무시당하는 더 불쌍한 국민이 돼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광장 한편에서는 방송인 김제동 씨가 조용히 유가족과 일일이 포옹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대통령령 즉각 폐기와 온전한 세월호 선체 인양을 촉구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선체가 인양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만 했다"며 "시신 유실 방지 대책을 제시한 선체 인양을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9시 20분께 추모 행사를 끝마치고, 국화를 든 시민들은 광화문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 헌화하고자 발길을 돌렸다. 경찰은 차벽을 설치하고, 헌화하러 가는 시민을 "개별적으로 채증하겠다"고 경고한 상태라 충돌이 예상된다.
ⓒ프레시안(최형락)
▲ 단원고 희생자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가 발언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16일 서울 시청 광장에서 세월호 인양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 단원고 학생들의 사진. ⓒ프레시안(최형락)
▲ 16일 광화문 분향소에 헌화하려는 시민의 줄이 길게 늘어져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성완종 단독 인터뷰 녹음파일 전문](1) “목숨 걸고서 정권 창출 하는데 신뢰 지키는 게 정도 아닙니까?” 415 경향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9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한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 녹음파일을 전문 형태로 공개한다. 고인이 된 성 전 회장의 점퍼 주머니에서 발견된 메모지에 기록된 8명의 정치인 가운데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터뷰에 언급되지 않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2013년 4·24 재선거 출마와 관련해 ‘(새누리당) 서병수 사무총장’으로만 등장했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금품 관련 언급이 없었다. 녹음된 통화 전체 분량은 48분14초, 글로 풀어 쓰면 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이었다. 다음은 경향신문 이기수 정책사회부장과 고 성 전 회장의 생애 마지막 인터뷰.
(1) “목숨 걸고서 정권 창출 하는데 신뢰 지키는 게 정도 아닙니까?”
(2) “2012년 인수위원회 참여 안 해… 다른 희생 없도록 철저 조사를”
(3) “이완구가 자기 원래 꿈이 컸다… 정치적으로 크는 게 배아픈 거죠”
(4) “청와대·이완구, 짝짜꿍해서… 반기문 의식해 그렇게 나와”
(5) “의리 없이 배신하는 사람들 많아… 박 대통령, 깨끗한 사람 앞세워야”
(6) “25년 장학사업 해온 나를 하루 아침에 잡범 만들어… 그게 제일 가슴 아파요”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해 7월18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국가정보원장 임명장을 받은 뒤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과 악수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가를 살리려면 ‘공공 의식’을 구출하라4.17 시사인
온라인의 세월호 담론 추이는 국가에 대한 불신과 구성원 간 갈등으로 환원되는 궤적을 보여준다.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는 정부·야권·유가족 모두 자신의 권력과 가족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게임을 하는 것으로 비친다.
살기 위해 망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나간 아우성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은 힘겨웠다. 분석을 진행하면서, 잊었던 기억 두 가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첫째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였다. 백화점의 갑작스러운 붕괴도 충격적이었지만, 사고 후 재난 대처 시스템이 부재했던 것도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래서 우리는 여전히 후진국이다” “이건 국가가 아니다.” 이구동성의 목소리는 정치 노선을 가리지 않았다. 분노의 저변에 더 나은 국가를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둘째는 2002년 월드컵 때다. 언론과 국민은 외국인 눈에 부끄럽지 않은 질서의식을 보여주고자 했다. 선진 국가의 시민성이 질서로만 규정되지는 않겠지만, 더 나은 국민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충만했던 것은 분명하다. 국가적 자부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에너지와 연대감이 분출했다.
외환위기 이후 공포와 불안이 ‘더 나아지는 국가’라는 믿음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물질은 윤택해져도 일상은 더 힘들어졌다. 사람을 힘들게 하는 구조는 따로 있는데, 엉뚱하게도 눈앞에서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특히 시스템이 스스로의 작동 원리에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길 거부할 때, 그 안에서 사람들이 숙명처럼 삐걱거리며 살 수밖에 없을 때 구성원끼리의 폭력성은 배가된다.
ⓒ연합뉴스 1995년 6월29일 발생한 서울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
1월에 타계한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국가의 ‘조직화된 무책임(organized irres-ponsibility)’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지적한다. 새로 나온 과학기술과 지식의 복잡성이 판단을 어렵게 하고, 권력은 자기에게 유리한 지식을 입맛대로 골라 연결해 책임을 비켜 간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에서 관찰되는 무책임은 서구의 그것과 또 다르다. 감히 정부를 비판하는 ‘선동’을 하지 말라고 겁주면서, 상징적 차원에서마저 국가의 책임을 거부한다.
온라인의 세월호 담론 추이는, 하나의 불행한 해상사고가 국가에 대한 불신과 구성원 간의 갈등으로 환원되는 궤적을 보여준다. ‘확대’가 아닌 ‘환원’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과거와 달리 시스템 비판을 통해 활성화되는 발전적인 담론이 관찰되지 않아서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의 역할에 대한 의문이 급증했지만, 그런 국가의 ‘국민’으로 공론장에서 어떤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져 있다. 대다수 국민은 유가족이 겪게 된 고통에 대해 단지 ‘가족’이라는 경험적 공통분모로부터 우울한 동병상련을 느낄 뿐이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게 뭐 있어?”라는 질문은 “내 돈이나 건드리지 마!”라는 외마디로 퇴행한다.
‘구출’해야 할 공공 의식의 개념과 원칙
일부 세력의 정치 공세와 정부의 고압적 대응이 여론 변화 궤적에 한몫을 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사회적 불행에 대한 공적인 문제 제기를 온전히 공적인 이슈(public issue)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누적된 불신이 바탕에 깔렸다. 보통 사람의 관점에서는 정부도 야권도 유가족도 모두 공동체의 불행한 사건으로부터 자신의 권력과 가족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게임을 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래서 정부의 대응은 책임 회피로, 야권의 추궁은 정치 공세로, 유가족의 항변은 특혜의 극대화 노력으로 받아들여버린다. 이런 왜곡된 소통 환경에서 공적인 문제 제기의 내용과 함의 자체에 대해 숙고하는 사람은 갈수록 드물어진다.
발전하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이 해체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공적인 이슈는 단지 가족적이고 개인적인 이해관계로 파편화되어간다. 사회적 행위에 전제되어야 할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공공 의식)의 개념과 원칙을 구출해내지 않으면, 한국 사회가 이대로 더 깊이 가라앉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오준호 (<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 4.17 시사인
세월호 참사 이후 1년, 누가 어떤 책임을 졌을까.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지고 실형을 받은 사람 중에 고위 공직자는 없었다. 정치적·도덕적 책임조차 지지 않았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이들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나는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에 참여했고, 5개월 이상 세월호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했다. 선원 재판이 처음 열린 6월10일 광주법원에는 기자들이 엄청나게 취재 경쟁을 벌였다. 당시의 국민적 관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이 길어지면서 국민의 관심도, 법정을 찾는 기자도 줄었다. 재판 내내 단편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사실들을 모아 사고의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책임을 따지기란 대다수 국민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되었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렇다면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는 시점에 누가 어떠한 책임을 졌을까?
검찰은 세월호 사고에 직간접으로 연루된 399명을 입건하고 그 가운데 154명을 구속기소했다. 광주법원에서는 재판 7건이 잇달아 열렸다. 각 재판의 피고인들은 △세월호 갑판부·기관부 선원 등 15인 △청해진해운·화물 하역업체·운항관리자 등 11인 △해경 123정 정장 △진도관제센터(VTS) 센터장·관제사 등 13인 △세월호 구명뗏목 점검업체 임직원 4인 △세월호 증개축 시 점검을 담당한 한국선급 연구원 △민간 구난업체 언딘 특혜 의혹과 연루된 해경 고위 간부 3인 등이다. 그 밖에 목포지원에서는 세월호 증선·인가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항만청·해경 공무원 등 8인이 재판을 받았고, 인천지법에서는 유병언 일가의 비리에 관한 재판이 열렸으며, 제주지법에서는 세월호 화물 과적과 관련해 청해진해운·해운조합·항만노조 간부들이 법정에 섰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1일 오후 광주지방법원에서 이준석 선장 등 선원 15명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이 중에서 국민들은 선원 재판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재판부는 “가만히 대기하라”라는 선내 방송을 내보낸 채 자신들만 탈출한 갑판부·기관부 선원에게 유기치사상 유죄를 선고했다. 기관장 박기호에게는 다친 동료를 고의로 남겨놓고 나온 것으로 보아 살인죄를 적용했다. 이준석에게 36년형이, 박기호에게 30년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 선원들에게도 5~20년형이 내려졌다. 하지만 재판부는 선원들의 승객에 대한 살인 혐의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선원들이 승객 퇴선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하지 않았다며 살인의 고의성을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로 3층 로비의 여객부 직원에게 퇴선 지시를 한 점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현재 2심 재판에서 다시 ‘퇴선 지시의 유무’를 놓고 다투는 중이다.
청해진해운 임직원, 화물 하역업체 우련통운 간부, 인천항 운항관리실 직원의 업무상 과실치사상 사건에서는, 사고 원인이 배의 복원성 불량 및 화물 과적인가 아니면 화물의 고박 불량인가를 놓고 청해진해운 측과 우련통운 측이 다퉜다. 그러다가도 이들은 과적이나 고박 불량의 잘못이 있다 해도 사고는 결국 선원들의 과실 때문이지 자기들 과실과 사고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이들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상의 유죄를 선고했다. 양형 기준 자체가 낮아, 청해진해운 김한식 대표에게는 배임·횡령죄를 합해 10년형이 선고되었고 나머지는 2~6년형 또는 집행유예에 머물렀다. 이들의 항소심도 진행 중이다.
세월호가 부실한 상태로 출항하는 데 관여한 다른 피고인들도 일부 실형을 받았다. 세월호의 증선·인가 과정에서 청해진해운에 뇌물을 받은 인천항만청 선원해사안전과장 등 공무원, 뇌물을 건넨 회사 간부들이 2~5년형을 받았다. 또 세월호가 기울었을 때 자동으로 펼쳐져야 할 구명뗏목이 펼쳐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는 이를 부실하게 점검한 한국해양안전설비 대표에게 1년6월형이 선고되었다. 구명뗏목이 빠르게 펼쳐졌다면 그것을 보고 승객들이 빨리 배 밖으로 나왔을 수도 있다. 반면 세월호 증개축 시 일부 공사가 법정 기준과 다르게 진행되었는데도 이를 지적하지 않은 한국선급 연구원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사고와 관계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무시된 감사원의 중징계 요구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야 할 해경과 관련해 검찰은 123정 김경일 정장과 진도관제센터 센터장 및 관제사를 기소했다. 김경일 정장은 자신이 OSC(현장 지휘관)로 지정되었음에도 세월호와 통신도 하지 않고 매우 소극적인 구조만 한 점이 기소 사유가 되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김 정장의 행위와 승객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전체 승객 가운데 56명에게만 국한해 인정했다. 김 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상과 함정일지 조작의 잘못을 합해 4년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진도관제센터 직원들은 CCTV에 찍힌 대로 평소 업무 시간에 잠을 자거나 신문을 보는 등 직무유기를 한 점은 인정되었으나(집행유예 선고), 사고 당시에 관한 직무유기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18일 김석균 해양경찰청장(맨 오른쪽)이 퇴임했다. 그는 따로 징계를 받지 않았다.
검찰은 최상환 해경 차장 등 해경 고위급 3인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최 차장은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특혜를 주려고 더 빨리 동원 가능한 바지선 대신 언딘의 바지선 리베로호를 투입하게 해 약 30시간 동안 구조를 지연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주소지가 인천이므로 광주지법에서 재판을 받는 것은 관할 위반이라고 주장했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으나 광주지검이 항소하면서 아직 재판이 열리지 않고 있다. 관할 재판부가 변경되면 수사 자료도 넘어가고 기소를 새로 해야 한다. 아무래도 피고인에게 유리해진다.
해경 지휘부는 사고 시각에 출동할 수 있는 함정이 소형 함정인 123정 한 척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출동 명령만 내렸을 뿐 효율적인 구조 계획을 세우거나 지시하지 않았다. 평소 여객선 사고의 대응 훈련도 제대로 시행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해경 지휘부 가운데 직무유기나 업무상 과실로 기소된 이는 없다. 사고 구역의 관할 책임자인 김문홍 목포해경 서장은 해임되었다가 서해지방청으로 옮겼고, 김수현 서해지방청장은 정년퇴임했다. 김석균 해경청장은 지난해 11월에 퇴임했으나 이는 징계가 아니라 해경이 국민안전처로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감사원은 세월호 사고의 책임을 물어 정부 각 부서에 해임을 포함한 중징계를 요구했으나, 대부분 경징계로 그치거나 무시되었다.
정부 고위 공직자들은 어떨까. 정홍원 국무총리는 두 번이나 유임되었고,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도 유임되었다가 지난해 12월에야 퇴임했다. 국회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와, 사고 당일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지 모른다고 답변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도 대통령을 잘못 보좌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았다(그는 올해 2월에 퇴임했다). 지난해 5월 대국민 담화에서 눈물을 흘린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세월호 사고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결국 재판에서 법적 책임을 지고 실형을 받은 사람들은 선원, 관련 기업의 임직원, 항만청 공무원 그리고 해경의 하급 지휘관 한 명뿐이다. 국민이 납득할 정치적·도덕적 책임을 진 고위 공직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실형을 받은 이들도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고 있고, 성역 없는 책임을 묻기 위해 만들어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대해 정부는 조직과 예산을 대폭 축소시킨 시행령을 입법 예고 중이다.
유족들이 시신에 매달리는 이유 –4.17 시사인 김은남 기자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일본 최악의 항공 참사인 JAL기 추락 사고 이후를 다룬다. 슬픔의 문제에 사회가 왜, 어떻게 개입해야 할까. 저자는 납득할 수 없었던 죽음이 사회적 의미를 획득할 때 극복도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1985년 8월12일, 일본항공(JAL) 소속 보잉기가 군마 현의 한 산등성이에 내리꽂혔다. 사망자 520명. 일본 최악의 항공 참사로 기록된 JAL기 추락 사고다.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였던 노다 마사아키 씨(71)의 삶도 이 사고를 계기로 흔들렸다. 사고 유가족을 만나며 대형 참사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물로 나온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는 슬픔의 문제에 사회가 왜 개입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를 밝힌 기념비적 저작으로 주목받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펜타그램 펴냄)이 출간된 것을 계기로 노다 마사아키 씨와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은 책을 번역한 서혜영씨가 맡았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한국 사회는 다시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만하면 됐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슬픔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은 각자 다르다. 특히 세월호처럼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슬픔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사고 후 1년쯤 지나면 ‘언제까지 계속 죽음을 얘기할 거냐’ ‘너만 슬픈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겨나기 마련이다. 개중에는 유족들이 받는 사회적 관심이나 배상금에 대해 시기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걸 정부나 외부 세력이 이용하려 들기도 한다. 유족들이 이런 데 흔들리지 말고 자기가 생각하는 바나 하려는 말을 끝까지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유족 모임이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유족 혼자 이런 분위기와 싸우기는 매우 힘들다. 유족회 내부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며 크고 작은 문제에 함께 대처할 필요가 있다. 배상 문제도 함께 얘기해 나가야 한다. 배상금에 죄책감을 느낄 것이 아니라 이는 이 사회를 더 나아지게 만들기 위한 ‘징벌적 배상금’이란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상(喪)의 과정을 잘 치렀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될 때가 온다(대형 참사 유족들의 경우 ‘쇼크-부정-분노-우울-용서와 수용’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단계를 넘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슬픔의 사회화 과정을 겪음으로써 비로소 새 출발을 위한 동력을 얻게 된다고 노다 씨는 설명한다. 이것이 그가 말하는 ‘상(喪)의 과정’이다).
노다 마사아키 씨(위)는 전쟁, 대형 참사 등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조사에 기반해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한국에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쟁과 인간> 등이 번역돼 있다.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실종자 가족도 있다. 이들은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달라고 호소한다. 반면 기술적인 문제나 비용 문제를 들어 인양에 회의적인 여론도 있다.
유족들로서는 당연한 요구다. 시신은 유족이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매개체다(노다 씨의 통찰에 따르면 ‘현대의 대형 참사에서 유족의 절망과 슬픔은 시신을 찾는 투쟁에서 시작된다’. 돌연한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에게 죄의식을 남긴다. 유족들은 ‘나는 시신을 찾아 품에 안고 최선을 다해 장례를 치렀나’를 자문하며 자기 비난에 빠져든다. 그런 만큼 시신을 확인하는 일은 남은 가족들이 죽음의 과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만드는 슬픔의 치유 과정이기도 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사고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도 인양은 이뤄져야 한다. 일본에서는 달리던 열차가 아파트에 충돌해 수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2005년 4월25일 JR 서일본이 운행하던 간사이 후쿠치야마 선 쾌속열차가 궤도를 탈선해 아파트에 충돌하면서 107명이 사망한 사건을 일컫는다). 이 사고 유족회와 JR 서일본은 최근 사고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합의했다.
아파트와 열차가 충돌한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단 말인가?
200여 명에 이르는 유족 중에는 보기가 고통스러울 것 같다며 이를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현장을 있는 그대로 남겨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게끔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 조만간 사고 현장에 기념관이 들어서게 될 것이다. JR 서일본 신입사원들이 입사 때 반드시 이곳 기념관을 견학해야 한다는 조항도 합의서에 넣었다. 자기 회사가 무슨 일을 했는지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이런 합의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가해자가 확실한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배상을 먼저 얘기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가해자들은 통상 책임을 발뺌하려 든다. ‘자신도 피해자라고 굳게 믿는 것’과 ‘사고를 잊자고 하는 것’이야말로 가해자의 일반적 전략이라고 지적하신 바 있다. 일본도 1985년 JAL기 추락 사고 이전까지는 가해자인 기업이 나서 유족들을 분열시키려 시도하곤 했다. 프라이버시를 이유로 유족들에게 다른 희생자의 이름이나 주소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그러나 JAL기 유족회가 결성돼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선 것을 계기로, 더는 이런 식으로 나오는 기업이 없다.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유족들의 노력으로 좀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해졌다는 생각도 든다. 30년 전만 해도 누군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면 ‘그래 봤자 죽은 사람이 돌아오겠느냐’며 포기하라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유족의 한을 푸는 차원을 넘어 개개인의 억울한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사회 전반에 형성돼 있다.
노다 마사아키 씨(위)는 전쟁, 대형 참사 등을 겪은 사람들에 대한 정신병리학적 조사에 기반해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한국에는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전쟁과 인간> 등이 번역돼 있다.
대형 참사에 대처하는 사회 시스템이 한 단계 성숙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물론 일본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다. 1988년 도쿄 만에서 일본 자위대 잠수함인 나다시오호와 대형 낚싯배인 제2후지마루호가 충돌해 3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자위대는 진상 규명은커녕 책임에서 도망치는 데 급급했다. 반면 2001년에는 하와이 앞바다에서 일본 수산고등학교 실습선인 에히메마루호와 미국 잠수함이 부딪쳐 교사·학생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미국의 사고조사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채택한 조사 보고서를 보면 충돌 상황뿐 아니라 소프트한 측면의 문제점까지 규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방에 수상한 물체가 목격돼도 함장에게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못하게 만든 잠수함 내부의 비민주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대형 참사로 이어졌음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의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유족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죽은 자녀나 배우자, 가족에게 ‘너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가 이만큼이나마 나아질 수 있었다’라고 보고할 수 있게 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인명 구조에 실패한 정부 또한 가해자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정부가 진상 규명에도 소극적인 모습이다.
정부가 좀 더 유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상 규명이나 배상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해주는’ 식이어서는 안 된다. 슬픔의 과정을 겪으면서 ‘함께 해나가야’ 하는데 아직 한국 사회에는 그런 인식이 부족한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가 전쟁을 겪었고 남북이 분단돼 있다 보니 슬픔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겪어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 대통령의 경우 본인도 성장기에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은 만큼 유족들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클 것이다. 대통령이 함께 슬픔을 겪어낸다면 한국 사회 또한 훨씬 풍요해질 텐데, 그럴 생각도 없고 그에 대한 관점조차 없는 듯 보여 안타깝다. 그럼에도 지난해 9월 한국에 들렀다가 서울시청 앞에 거대한 분향소가 차려져 있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본에서는 사회 전체가 이렇게 슬퍼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람은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인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불행한 경험이 사회적 연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슬픔을 억압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이다. 함께 슬퍼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깨달음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해경이 TRS 조작하고 감사원·검찰은 묵인했다 한겨레21 4.15
검찰 수사기록 511호기 첫 현장 보고 삭제, ‘제주 상황실’ 대응 ‘목포 상황실’로 둔갑 감사원도 보고 안 한 것으로 결론 내려, 헬기 기장, 검찰에서 보고하지 않았다 진술 목포해경서장 40분간 지휘 전혀 없어, 서해청 수뇌부 안이한 대응으로 비상탈출 ‘방해’
2014년 4월16일 오전 10시께 전남 진도군 병풍도 부근에서 세월호가 침몰하자 인근 섬의 어선들이 출동해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다. 당시 해경의 구조 세력은 100t 급 경비정 1대와 헬기 3대뿐이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 과정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에서 조사받던 해양경찰이 ‘최초의 사고 현장 보고’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21>이 감사원과 검찰에 해경이 각각 제출한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해경은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교신 내용을 삭제하거나 교신자를 뒤바꿨으며, 이를 토대로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해경 수뇌부의 초동 대응 실패를 감추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조작 또는 거짓 진술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그 결과, 조작된 기록과 거짓 진술을 근거로 감사원은 해경 수뇌부에 솜방망이 징계를,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해경이 조작한 기록은 현장 수뇌부와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 세력이 교신한TRS 내용이다. TRS는 경찰, 소방, 응급의료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다중 무선통신이다. 해경 수뇌부(본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는 침몰 사고를 접수한 직후인 오전 9시2분부터 TRS로 현장 구조 세력(경비정 123정, 헬기 511·512·513호기)을 지휘했다. TRS 교신 내용은 해경 수뇌부의 구조 지휘가 적절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자료다.
새누리당, 이번에도 노무현 팔아 위기 넘을까 415 미디어오늘
친박게이트부터 자원외교까지, “노무현도 다르지 않아”… 결국 “‘우리는 모두 더럽다’ 전략”
성완종 리스트가 ‘친박 게이트’와 ‘박근혜 대통령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으로 번지면서 정부여당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목숨을 내놓겠다”는 섬뜩한 발언까지 등장했다. 다양한 대응 가운데 가장 고전적인 전략은 ‘노무현 끌어들이기’다.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줬다는 성 전 회장의 증언이 등장한 14일, 김영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돌이켜보면 성완종 전 회장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부정부패의 씨앗은 과연 언제부터 움트기 시작했나. 이것은 참여정부”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에서 특별 사면됐고, 2004년 대통령 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대통령의 거부로 발효되지 못했다며 한 말이다.
새누리당은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응하고, 정권 실세와 의원들의 이름이 거론되자 참여정부 시절 특별사면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13일 “그 짧은 시간에 두 번이나 특별사면을 받은 게 의혹 아닌가”라며 “검찰이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 지난 2월 14일 봉하마을에 방문해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사진=CBS 노컷뉴스
새누리당이 불리한 국면에 처할 때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없었으면 정치를 어떻게 할까’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자원외교 비리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를 이용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자원외교 했다는 것”이다.
자원외교 국정조사 특위 새누리당 간사를 맡은 권성동 의원은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내내 “해외자원개발 정책은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된 정책으로 이명박 정부가 노무현 정부에서 수립된 정책 중에 유일하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거나 “(문제가 된) 볼레오, 암바토비 사업 모두 노무현 정부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이었던 이한호씨가 다 의사결정을 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야당 간사인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권성동 의원에게 “새누리당은 문제가 생기면 참여정부를 물고 들어가 자신들의 실책을 호도하려 한다. 새누리당의 병”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공사가 2003년 이후 해외자원개발에 투자한 31조 4000억 원 중 27조원이 이명박 정부 시절 투자한 돈이라는 감사원의 발표로 민망해졌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 지지율을 20%까지 떨어뜨렸던 정윤회 문건 논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비선실세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15일 국회 긴급현안질의 자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노무현 정부의)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최도술 총무비서관처럼 대선자금 수수로 사법 처리되는 상황이 국정농단”(이장우) “노무현 정부의 이광재·노건평처럼 돈을 받고 인사에 개입한 것이 국정 농단”(김태흠)이라며 노무현 정부를 끌어들였다.
▲ 지난 1월 9일자 국민TV 뉴스k 갈무리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출석한 국회 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엉뚱하게도 통합진보당 이야기를 꺼냈다. 김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민정수석이 형기 2분의1도 못 채운 사람(이석기)을 가석방 시켰던 이런 것이 농단이고 국기 문란 행위다. 통진당이 해산되는 이 마당에 한 마디의 말도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말에 야당 의원들이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어” “박근혜 정부의 비서실장 불러놓고 과거 정부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뭐하자는 거냐”고 항의해 소란이 일었다.
NLL 대화록을 둘러싼 논란도 노무현 정부를 이용한 물타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에 대한 국정조사를 두고 여야가 대립하던 2013년 6월 20일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일부 발췌록을 열람한 뒤 노 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국정원은 한기범 1차장을 국회로 보내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시켰다. 당시 야당 정보위 간사였던 정청래 의원은 “국정원이 보여준 문건은 대화록 원본이 아니라 왜곡‧훼손한 내용”이라며 “국정원의 대선개입을 물타기 하려는 새누리당과 국정원의 야합”이라고 반박했다.
▲ 2013년 6월 국정원이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표지. 사진=CBS 노컷뉴스
새누리당의 이러한 전략은 정부여당의 잘못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해결해야할 문제를 ‘정쟁’으로 만드는 효과를 지닌다. 최영일 시사평론가는 15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문제 해결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더럽다’고 이야기함으로써 국민들 입장에서 ‘정치는 원래 더럽다’고 느끼게 만드는 네거티브 전략”이라며 “이런 논의에 어떤 생산성이 있고 미래를 향한 전망이 있겠느냐”고 밝혔다.
최영일 평론가는 “여당이 일단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부터 수사하고, 야당도 연관이 되어 있으니 여야를 막론하고 털고 가자, 나아가 이런 시스템을 고쳐보자고 야당에 제안할 수 있다”며 “그런데 지금 여당이 던지는 이야기는 그렇지 않다. 국민들 입장에서 개혁으로 비출지 정쟁으로 비출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상식의 사회]새마을운동 덕에 농촌이 잘살게 되었다? 414 주간경향
“아이로니컬하게도 새마을운동 또한 농민들의 큰 짐이 됐다. 저곡가로 농촌은 몰락해 갔고 환경 개선 등 외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 10년간 농가 부채는 21배나 늘었다”
불당골이라는 시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새벽에 누군가 문을 부서져라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 잠이 깼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부역을 나오라고 소리쳤다. 부역이 뭐냐는 말에 아주머니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알고 보니, 부역이라는 것이 추석을 앞두고 마을 길가의 풀을 베는 공동작업이었다. 그 뒤로도 부역은 몇 차례 더 있었고, 사정이 있어 빠지는 바람에 벌금으로 5만원을 내기도 했다. 마을 일을 공동으로 하는 두레야 오래된 미풍양속이라고 배웠지만, 막상 세금을 꼬박꼬박 받아먹는 관청은 뒤로 물러나 있고, 삯은커녕 벌금만 있는 ‘부역’에 새벽부터 불려나가는 게 마뜩잖았다. 문제는 그런 불만을 가진 이들이 별반 없다는 것이다. 말 많으면 공산당, 불평하면 빨갱이라는 소리나 듣기 십상인 촌에서 별쭝맞게 따지고 나설 입장도 못 되었다.
근면·자조·협동을 모토로 진행된 ‘새마을운동’. 제2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후진국·개발도상국에 모델을 수출할 만큼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성공모델일까. 사진은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와 새마을운동중앙회가 진행한 ‘아프리카 우간다와 탄자니아 새마을운동시범사업 성과관리를 위한 현장 모니터링’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아버지 박정희 이어 제2 새마을운동
부역에 나가면서 알게 된 일이 아직도 ‘새마을 지도자’가 생존해 있으며, 그런 부역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었다. 왕년에 국민교육헌장을 외우고, 새마을운동에 삽 들고 나선 사람들에게는, 임은 갔어도 새마을운동은 살아남아 있었다. 그 새마을운동이 아버지 박정희에 이어 영애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 제2의 대약진을 맞이할 태세라 한다. 그 좋은 운동을 이 나라에서만 지니고 있기 안타까워 미얀마나 라오스, 멀리 아프리카의 르완다까지 전파하기에 힘쓴다 하니 가히 세계적인 공업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해 인류사에 길이 남길 위업이 아닐 수 없겠다.
얼마 전에는 세네갈에서 주민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한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본받아 보급하기로 했단다. 다른 건 밀어두고, 주민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한 새마을운동이라는 대목에서 실소를 금치 않을 수 없었다. 1971년 근면·자조·협동의 거룩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3만3267개 마을의 주민들에게 정부가 시멘트 335부대씩을 지원하여 시작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이 과연 주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진 것일까.
아는 시인이 강원도 산골짝에서도 한참 들어간 곳에 집을 지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농가의 지붕도 슬레이트로 덮여 있었다. 차도 들어서지 못하는 그 후미진 농가가 어떻게 지붕 개량사업에 참여했을까. 장날마다 산을 몇 개나 넘어 슬레이트를 지게로 져 날랐다고 한다. 새마을운동은 두메의 초가삼간도 예외가 아니었다. 면사무소 벽마다 통계표를 매달아놓고, 새벽부터 면 서기들이 자전거를 몰고 달려와 이장을 들볶는 통에 6·25 때도 전쟁이 났는지를 몰랐다는 두메산골의 삶도 온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새마을운동은 농민들의 자발성과 능동성, 자조 정신이 무엇보다 강조되었지만, 그러한 표방과는 달리 국가의 정책은 효율성과 가시적인 성과를 중심으로 강압적으로 시행된 측면이 있다. 농민들은 잘살기 위해 참여했지만, 그들의 잘사는 내용과 방향을 결정해 준 것은 국가로, 농민이 운동의 자율적 주체라고 보기 힘든 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내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실려 있는 말이다.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뒤 가장 먼저 한 일이, 굴욕적인 한일협정의 지원금으로 구로 등지에 공단을 지어 농촌의 젊은이들을 헐값 노동력으로 끌어낸 일이다. 지금의 농촌 공동화는 그로부터 배태된 셈이다. 도시 발전을 위해 곡가를 붙들어 매 농촌 살림이 어려워지자, 농민들의 불만이 높아졌다. 그러자 똥 싼 놈이 눈 부라린다는 격으로, 농촌이 가난한 건 겨울에 나이롱뽕만 치고 게으른 탓이라고 버럭 화를 낸 게 누굴까. 마을마다 확성기 하나 매달아주고, 새벽부터 자신이 작곡한 ‘새벽종이 울렸네’란 노래로 단잠을 깨워 품삯도 안 주는 부역으로 촌사람들의 허리를 휘게 한 것이 누구일까.
빚까지 내서 할 만한 운동이었는가
이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 농민을 위해 한 일이라곤, 모내기 때 ‘대한뉘우스’ 카메라 앞에서 발목 걷고 논에 들어가 모를 몇 포기 심고선 촌로와 막걸리를 마시고, 저녁이면 안가에서 여대생 끼고 시바스리갈을 마신 것이요, 이 가난한 농민의 자식이 농촌의 발전을 위해 기껏 했다는 게 초가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꾼 것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촌이 보릿고개를 면하고 잘살게 된 것이 새마을운동 덕이라는 말이 사실일까. 긴말 말고 통계를 들여다보자. 정길환의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란 책에 따르면 “수출을 위해선 저임금 정책이 필요했고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이 강행됐던 시절. 저곡가로 농촌은 몰락해 갔고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중화학 우선 정책은 결국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놓았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새마을운동 또한 농민들의 큰 짐이 됐다. 환경 개선 등 외형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새마을운동 10년간 농가 부채는 21배나 늘었다.”
고향 집 앞에는 개울이 있었다. 봄이면 복사꽃이 떠내려오고, 여름밤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멱을 감던 개울이었다. 부지깽이까지 일손을 거든다는 농번기에도 질통을 짊어지고 품삯도 없는 일에 동원된 새마을운동 덕에 개울은 시멘트 도랑이 되었다. 깔끔해 보였는진 몰라도 시멘트 도랑은 장마만 걷히면 이내 말라붙었다. 빨랫돌 밑에 엎드려 있던 구구리도, 은화처럼 비늘을 번쩍이던 피라미도, 여름밤에 아련히 날아다니던 반딧불이도 사라지고, 지금은 오물만 질금거리는 하수구가 되어 버렸다.
유일하고, 가시적인 성과라 일컬어지는 초가 지붕개량은 급조한 대체물인 슬레이트가 1급 발암물질로 밝혀지면서, 이제는 걷어내려고 해도 골칫덩이가 되었다. 시멘트로 바른 개울은 걷어내어 생태하천으로 만드느라 턱없는 돈이 들어가고, 곧게 포장한 도로는 산촌마을 만드느라 벗겨내어 구부리기 바쁘다.
새마을운동이 아니면 지금의 농촌이 있었겠느냐는 물음에 되묻는다. 그것은 새마을운동 덕도 아니오,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능력보다 범국민, 범국가라는 말에 억눌려 끌려나오고, 불평 한 마디 찍소리도 못한 민초들의 삯도 없는 땀과 눈물의 결과일 뿐이다.
대표적인 농촌 현실을 다룬 이문구의 소설을 되읽어 본다.
“그건 워디까장이나 긔네 사정여, 그 새마을운동이 한참일 적에 내가 땅을 얼마나 뺏겼는지는 한동네서 살었던 자네가 더 잘알껴…. 마을 안길 넓힌다구 한 구텡이 비여갔지, 공동 축사 맹근다구 한 모서리 도려갔지, 마을회관 앞마당 닦으면서 멀쩡한 밭 오려갔지, 고샅길 포장헐 때 자가웃씩이나 먹어들었지…… 마을 꽃동산 가꾸기 헐 때 그랬지, 사에치 표석이라나 지랄이라나 해 박으면서 그랬지, 올림픽 때 호돌이상인지 얼룩괭이상인지 세울 때 세멘 공구리 비벼서 논 한 배미 절딴내 놨지…. 그때는 심으루 누르던 무단시대라 찍 소리두 못 허구 당해버렸지만 이제는 어림두 없으니, 암.”<이시백(소설가)>
"재벌·부동산으로 경기부양? 박정희를 지워라" 417 오마이뉴스
[기획-초저금리시대③] '금융계 쓴 소리' 이동걸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
"박근혜 대통령 머리에서 재벌과 부동산, 박정희를 지워야 한다."
'금융계 쓴 소리'가 돌아왔다. 3년 전 "박정희 시대 산업화 논리로 미래를 설계하는 건 국가적 재앙"이라고 '박근혜 시대'를 우려했던 이동걸(62) 동국대 경영대 초빙교수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관련기사: "박정희 프레임으로 미래운용? 국가적 재앙").
참여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금융연구원장을 지낸 이 교수는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금융통'이다. 한동안 대학 강단과 연구실을 벗어나지 않던 그를 속세로 끌어낸 건 잇따른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와 최근 '성완종 리스트'와 같은 사회·정치의 퇴행과 더불어 부동산과 가계 부채 발 '경제 참사'도 우려되고 있다.
이달 초 언론에서 집중 조명했던 '안심전환대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7일 서울 장충동 동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안심전환대출은 가계부채 대책도, 정책도 아니다"라면서 "혜택 받은 사람들이야 좋겠지만 다른 시급한 문제를 제쳐놓고 할 만큼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이날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국회에 출석해 안심전환대출로 가계부채 위험을 줄였다고 자화자찬했다.
"안심전환대출이 만병통치약? 우선순위 뒤바꾼 전시 행정"
"우선순위가 뒤바뀌었다. 안심전환대출에 비용이 안 드는 게 아니다. 금리를 낮춰주면 그만큼 정부든 금융회사든, 주택금융공사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그 돈으로 시급한 일을 하지 않고 딴 짓 하는 게 문제다. 주택담보대출 460조 원에서 갑자기 34조 원(고정금리로) 바꿔 준다고 가계부채 문제가 해결되겠나.
가계부채 위험의 핵심은 소득이 없는 노년층, 베이비부머 자영업자들, 저소득층 같은 취약 계층이고, 기관 쪽으로는 비은행, 비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이다. 변동금리에 치중된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분할상환으로 바꾸자는 취지는 좋지만 중장기적으로 서서히 바꾸면 된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은 그래도 안전한 편인데 시급하지 않은 걸 비용 들여 먼저 하는 건 전시 행정일 뿐이다."
안심전환대출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원금 일시상환 변동금리 대출을 연 2.6%대 원리금분할상환 고정금리 대출로 바꿔주는 상품으로 1차 한도 20조 원이 며칠 만에 소진되고 1, 2차 합쳐 34만5천 명(대출 금액 33조9천억 원)이 신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정작 제2금융권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았거나 원금을 상환할 형편이 안 되는 저소득층 가계에겐 '그림에 떡'이었다.
"안심전환대출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금리가 언젠가 오르면 가계 대출을 고정금리로 바꾼 사람은 안심되겠지만 그 위험을 떠안은 은행이 부실화될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 460조 원을 모두 고정금리로 바꾸고 시중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은행이 한 해에 4조6천억 원씩 더 부담해야 한다. 1%포인트 정도 금리 인하하면 이자 비용이 3600억 원 정도 줄어드는데 그 돈으로 핵심 취약 계층을 도와주는 게 훨씬 효과가 있다. 가계부채 위험성을 해소하는 게 가계 부채 대책인데, 위험은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안심전환대출로 은행이 매년 수천억 원씩 손실이 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관치 금융' 논란까지 나오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관치다. 은행에서 금리를 결정하는데 정부에서 그 이하로 낮추라고 하면 부담이다. (안심전환대출처럼 중산층 대출금리를 낮춰 은행 이익을 줄일 게 아니라) 은행이 돈을 벌게 하고 번 돈을 부실 처리에 쓰도록 정부가 '푸시'하는 것이다. (부실 처리에 돈을 많이 써) 은행이 적자 상태가 되면 그때 가서 정부가 부실을 조정해주면 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거꾸로 은행 수익은 가만 놔두고 부실 가계부채 부담만 덜어줘 은행만 더 좋게 만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은행행복기금'인 거다."
- 목표 계층을 잘못 겨냥한 것인가.
"안심전환대출 목표가 빚 갚을 능력 있는 사람을 분할상환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것이었다면 금리 혜택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 은행감독규정을 바꿔 은행 건전성을 평가할 때 한쪽(일시상환이나 변동금리)에 너무 쏠리면 감점 준다고 하면 은행들이 만기된 주택담보대출 재연장할 때 알아서 (분할상환이나 고정금리) 전환할 거다. 갚을 능력 있는 사람에게 비용까지 들여가며 2%대 저금리 혜택을 줄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에게 혜택을 줘야 했다. 목적이 잘못된 게 아니라 우선순위와 방법이 잘못됐다."
"창조금융 180조 원은 '사기'... 재벌에게 창조경제 맡기기?"
▲ "재벌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작은 기업이 재벌과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인데, 대기업 중심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크라고 하면 되겠나. 접근 방법이 벌써 1970년대식이다." ⓒ 권우성
화제는 자연스럽게 박근혜 정부를 상징하는 '창조경제'로 옮겨갔다. 미래창조과학부와 금융위 등은 지난 1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올해 정책자금 180조 원을 창조경제 지원에 쓰겠다고 발표했다. 이동걸 교수는 이 같은 '창조금융'도 안심전환대출 못지않은 전시 행정으로 꼽았다.
"창조금융으로 180조 원을 지원한다는 건 사기다. 산업은행이 63조 원, 기업은행이 56조 원, 신용보증기금(신보)이 41조 원, 기술보증기금(기보)이 19조 원 공급한다는데 전체 정책금융 규모가 그 정도다. 이걸 모두 회수해서 창조금융으로 돌리면 기존 정책금융 대출받은 중소기업들은 다 망하란 얘기냐. 전에 하던 것을 '창조경제'로 딱지만 바꾸겠다는, 명백한 거짓말이다. 딱지만 바꿨으니까 그쪽(창조기업)으로 갈 돈 없다. 기술 평가든 해서 돈이 가야하는데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정책금융 액수를 창조금융으로 돌린다는 건 안하겠다는 얘기다."
올해 전국 17개 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만들면서 주도권을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에 넘긴 것도 1970년대식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지역별로 사단 병력 주둔시키듯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재벌들에게 맡기면 재벌들이 키워줄까? 안 키워준다. 삼성이 주도하면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맛있는 건 빼앗아 먹겠지만 자신들에게 도움 안 되는 중소기업을 키워줄 의사도, 능력도 없다. 결국 삼성 혁신센터는 삼성 지원부대가 될 것이고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만 더 고착화시키게 된다.
박 대통령도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한 번도 안 가본 길'을 간다면서 옛날 지도를 꺼내놓고 옛날 패러다임대로 가고 있다. 재벌을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작은 기업이 재벌과 싸울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게 창조경제인데, 대기업 중심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크라고 하면 되겠나. 접근 방법이 벌써 1970년대식이다."
이 교수는 지난 2월 자신의 블로그에서 박근혜 경제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재벌, 부동산, 박정희 등 세 가지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문했다(관련 글: 박근혜 경제의 허구성 5편-허구의 탈을 벗기고 새판을 짜자). 높은 전세가와 저금리 기조를 앞세워 '빚내서 집사기'를 부추기는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 역시 박정희 시대와 다르지 않다.
"지금 집 사면 망한다는 선대인(선대인경제연구소장)씨 주장에 상당 부분 동의한다. 5~10년을 내다봤을 때 인구 구조 변화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서서히 떨어지는 추세라고 본다면 지금 가격을 올리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떨어질 때 그만큼 더 아프다. 장기 추세나 주거 문제에 대한 판단 없이 부동산이 부양돼야 경기가 부양된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빚내서 집을 샀는데 다시 가격이 떨어지면 늘어난 가계 부채가 그대로 부실화된다. 이럴 때 대통령이 '부동산 경기 부양'이 선결 과제라니, 경제를 알고 하는 얘긴지, 너무 가볍다."
이 교수는 '금융 전문가'지만 금융 정책만으로는 부동산이나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부동산 문제는 금융만 아니라 임대주택 등 안정적인 주거 공급이 같이 접근해야 한다. 가계부채도 비금융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 금융에서는 시급한 핵심 위험계층부터 금리 부담을 낮춰주고 구조 조정해서 일부 탕감해주고 워크아웃해주고 자금이 필요한 사람하게 원활하게 순환되도록 해야 한다. 가계 부채를 진 사람들의 원리금 지급 부담을 낮춰주면서 소득을 높여 갚을 능력도 높여주고, 싸고 안전한 장기임대주택 공급까지 3박자가 맞아야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금융만으로 안 된다."
문제는 정부도 이 같은 해법을 뻔히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나마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위험을 들어 DTI(총부채상환율)나 LTV(담보인정비율) 완화 등에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부의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작은 놈 잘 돼야 창조경제... '큰 놈' 재벌 개혁해야"
"이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원칙과 신뢰가 없다는 거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서 약속한 대로 복지를 늘리고 경제민주화, 반값등록금 진솔하게 했으면 사회가 변했을 텐데 재벌 '갑질'은 더 심해지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더 커졌다. 당선하려는 집념에 여기저기서 끌어다 붙이기만 한 거다. 창조경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과거에 집착한 70년대 방식이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큰 놈이 작은 놈 억압 못하게 하는 것이고 작은 놈이 잘돼야 창조경제도 되는 것이다. 그런 약속도 제대로 안 지키면서 재벌 3세들 편법 상속은 놔두니 되는 일이 없는 거다."
결국 이야기는 다시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로 돌아왔다. 이 교수는 정책의 초점을 청년과 미래세대, 서민·중산층, 중소기업에 맞추라고 주문하면서도 현 정부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새로운 대기업이 등장해 기존 대기업들을 계속 밀어내는 미국 시장처럼 재벌 중심 구조의 '판'을 바꿀 만한 경제 충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현 정부에선 기대하기 어려운가.
"다음 정부도 힘들 거다. (위기가) 한 번 더 터져야지."
- 충격이 더 필요하다는 것인가?
"경제 민주화, 재벌 개혁으로 벤처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가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 구조가 바뀌면서 새로운 소득이 창출되고 일자리도 생긴다. 내가 주장한 경제 민주화도 그런 맥락이다. 똑같은 말로 백 년을 뛸 수 없으니 말을 자꾸 바꿔야 한다."
세월호 참사 1년, ‘기레기’ 언론의 끝을 보여줬다 414미디어오늘
‘전원 구조’ 오보 후 ‘유병언 괴물’ 만들고 단식하는 유가족 ‘좌빨’로 매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4월 16일 사람보다는 돈을 싣고 항해하다가 바닷속으로 침몰해 버린 건 비단 세월호만이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우리 언론의 무책임·선정성·편파·반인권 등 총체적 문제와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언론의 ‘양심’은 여전히 가라앉은 채 ‘보도 참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세월호가 더 이상 언론의 ‘감성팔이’ 대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지난 1년간 언론이 만들어낸 상처와 추악(醜惡)을 다시 떠올렸다. 되새긴 기록으로 우리가 잊은 기억을 펼친다. <편집자 주>
① 저널리즘의 바닥, “탑승객 전원 구조” 오보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던 지난해 한국 언론의 최악의 보도는 세월호 ‘전원 구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난해 4월 16일 사고 발생 2시간여 후인 오전 11시부터 11시 반까지 모든 언론이 속보 경쟁을 하며 “학생 338명 전원 구조” 오보를 쏟아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받아 공개한 ‘학생 전원 구조 오보 경위’에 대한 자료에 따르면 사고 당일 경기 안산단원고등학교 강당에서 누군가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고 말한 것을 MBC(11:01)에서 사실 확인 없이 보도했고, YTN과 채널A(11:03)는 이를 그대로 여과 없이 받아 보도했다. 이어 뉴스Y·TV조선(11:06), SBS(11:07), MBN(11:08), KBS(11:26)가 자막과 앵커멘트 등을 통해 연달아 오보를 냈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난해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언론 오보 사례
감사원 감사 자료를 보면 경기도교육청이 YTN 보도를 근거로 11시 9분과 25분 두 차례에 걸쳐 38개 언론사에 ‘학생 전원구조’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고 언론사에서 이를 재차 보도해 오보가 확산·재생산됐다.
게다가 이날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이 이를 그대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중대본은 이후에도 수차례 수정 끝에 탑승 인원 476명, 생존자 174명으로 잠정 집계했다. 최종적으로 세월호는 476명이 탑승해 172명이 구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탑승객 295명이 사망했고 9명은 실종됐다.
방송기자연합회 저널리즘 특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펴낸 보고서 <세월호 보도…저널리즘의 침몰>에서 “결론적으로 속보 경쟁에 휘말린 언론사들이 팩트 확인 과정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경쟁에 나섰다”며 “역으로 관계부처 또한 언론의 잘못된 보도를 또 다시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를 만들면서 온 국민을 혼란 속에 빠뜨렸다”고 지적했다.
② 실종된 윤리, 어뷰징 경쟁에 보험금 계산까지
탑승객 가족들이 애가 타는 상황에서 언론은 속보 경쟁에 더해 검색어 장사를 노린 어뷰징(동일 기사 반복 전송) 기사를 대량으로 내보내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세월호 관련 검색어가 계속 검색어 상위권에 오르자 일부 언론사들은 자신들의 인터넷 기사가 검색어에 걸리게 하기 위해 세월호 침몰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죽하면 포털 사업자 네이버가 뉴스스탠드에 뉴스를 제휴하는 언론사들에 협조요청 메일을 보내 “국가적 재난사고에 대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편집에 대한 항의 및 피해 학생들과 가족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자극적인 편집을 자제해 달라”고 주문했을 정도였다.
특히 사고 발생 당일 오후 이투데이는 <타이타닉·포세이돈 등 선박사고 다룬 영화는?>라는 제목의 기사와 <[진도 여객선 침몰] SKT, 긴급 구호품 제공·임시 기지국 증설 “잘생겼다~잘 생겼다”> 등 이번 사고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전형적인 어뷰징 기사를 내보내 누리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방송사 중에선 MBC의 보험금 보도가 한 극단을 보여줬다. MBC는 16일 <특집 이브닝뉴스> 리포트 ‘“두 달 전 안전검사 이상 없었다”… 추후 보상 계획은?’에서 “인명피해가 났을 경우 한 사람당 최고 3억5000만 원, 총 1억 달러 한도로 배상할 수 있도록 한국해운조합의 해운공제회에 가입된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300여 명의 실종자에 대한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실종자 생환과 현장소식에 집중해야 할 공영방송이 사고 피해자들이 받을 보험금을 소개하는 건 ‘일반적인 정서와 상식에 어긋난다’는 질타를 받았다.
③ 부끄러운 민낯, 현장취재 대신 정부발표 받아쓰기
사고 발생 후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투입돼 구조·수색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도 언론의 필수적인 검증 부실은 오보로 이어졌다.
YTN은 17일 “오늘 낮 12시 반쯤부터 공기주입이 시도되고 있지만 아직 성공하지는 못했다”고 밝혔고 SBS는 “해경은 아침 7시 정도부터 전문업체가 세월호 선체에 산소공급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배 안의 생존자를 기대하고 있던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간절히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그러나 이날 오후 해양수산부는 산소공급장치가 아직 현장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산소 공급장치도 아예 없던 시점에 언론은 이미 산소공급이 시작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국가재난주관방송 KBS도 오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KBS는 18일 오후 4시30분 자막을 통해 ‘구조당국 “선내 엉켜있는 시신 다수 확인”’이라는 속보를 내보냈다. 그러나 해경은 즉각 “시체를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수정했다. 이날 오전 YTN을 포함한 대다수 언론은 잠수부들이 선내 진입에 성공했다는 보도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러나 중대본이 ‘선내 진입 성공’에서 ‘실패’로 정정하자 언론은 허겁지겁 ‘실패’라는 자막을 올렸다. 아울러 연합뉴스는 24일 ‘물살 거세지기 전에… 사상 최대 규모 수색 총력’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가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로부터 욕설을 듣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④ 1분1초 아쉬운데 다이빙벨 ‘괴담’ 공방
조류나 유속과 관계없이 20시간 이상 연속 잠수 작업이 가능하다고 알려졌던 ‘다이빙벨’ 장비도 사고 초기 투입되지 못하고 뒤늦게 여론에 떠밀려 투입된 후 교대 인력 부족으로 작업이 중단됐다.
이에 대부분의 언론이 다이빙벨 투입을 ‘실패’로 단정하며 다이빙벨 조기 투입을 주장한 민간업체 대표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였고,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는 이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박효종 위원장)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자비를 들여 사고 현장에 장비를 가져온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를 종편 방송사들은 ‘괴담의 주인공’으로 폄하했고 MBC와 한겨레까지도 다이빙벨 논란을 루머로 규정지었다.
하지만 사고 초기 해경도 다이빙벨의 유용성을 인정해 또 다른 민간 다이빙벨 장비 투입을 준비했다는 사실과 구조당국이 에어포켓의 존재 유무도 확인하지 않은 채 ‘공기주입 쇼’를 벌인 점, 무인 잠수로봇 투입 실패 등 정부의 총체적 구조 실패 문제를 언론은 ‘다이빙벨 논란’으로 축소하는 방향으로 보도했다. 이은정 KBS 과학전문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초기에 논쟁만 하다가 시간을 보내고 다른 다이빙벨을 가지고 오면서 결국 시간만 끌었다”며 “과학적으로 빨리 결정할 수 있는 걸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유대균 ‘호위무사’ 박수경 유병언씨의 장남 유대균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를 받은 ‘신엄마’ 신명희씨의 딸 박수경씨가 검거되자 종편 등 많은 언론은 박수경씨의 ‘미모’와 사생활에 주목했다. 사진은 박씨가 지난해 7월 25일 오후 인천시 남구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압송되는 모습. @연합뉴스
⑤ 본질 호도, ‘유병언 괴물’ 만들기에 검찰 따라 ‘호들갑’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 언론 보도는 유병언으로 시작해 유병언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호를 운영하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유 전 세모그룹 회장의 추격전이 방송과 지면을 통해 펼쳐졌고, 언론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유병언으로 모았다.
언론이 유병언을 본격적으로 주목한 것은 지난해 4월 21일, 검찰이 유병언 수사에 착수하면서부터다. 이후 언론의 유병언 관련 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정작 사건 초기 검찰은 유병언 신병확보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언론은 ‘유병언 괴물’ 만들기에 시선을 모았을 뿐, 검찰의 수사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 특히 방송은 사건의 본질적 문제를 거론하거나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유병언 보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등이 지난 13일 발표한 ‘세월호 참사 보도 내용분석을 통해 본 문제적 재난보도의 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특히 TV조선의 ‘유병언과 구원파 수사’ 보도는 214건에 달했다. ‘유병언과 청해진해운 수사’ 보도는 34건이고 ‘사고 후 결과 및 조치 보도’ 항목에 해당하는 방송기사 중 유병언 관련 보도는 총 1296건 중 534건(41.2%)이나 됐다.
연구팀은 “참사 발생 후 사회구조의 대규모 변화가 논의됐지만 언론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제공하거나 확산시키기보다는 유병언 또는 이와 관련한 내용에만 집중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⑥ 의문의 박근혜 7시간, 질문을 잃은 언론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까지 받고 있지만,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행적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고 이를 추적하는 청와대 출입기자도 없다.
지난해 7월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한 당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어디 있었는데 서면보고를 하느냐’는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질문에 “위치는 알지 못한다”고 답하자 박 대통령 ‘행방불명 미스터리’ 의혹은 더욱 커졌다.
그러다 일본 산케이신문이 지난해 8월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누구와 만났을까>라는 기사를 통해 대통령의 사생활에 대한 국내 일각의 소문을 여과 없이 보도하면서 ‘7시간의 진실’에 대한 국내외의 궁금증은 국가 원수 모독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사실 산케이 기사의 주된 내용은 앞서 최보식 조선일보 선임기자가 쓴 <대통령을 둘러싼 風聞(풍문)> 칼럼에 관한 것이었다. 최 기자는 가토 전 지국장의 박 대통령 명예훼손 소송과 관련해 “어떤 정치적 의도로 내 칼럼을 산케이 보도와 같은 걸로 몰아가는 상황이 진행됐다”며 “대통령 7시간에 대한 질문은 언론으로서 당연히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국경없는 기자회’까지도 성명서를 통해 “국가재난 시 대통령 일정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분명히 공공의 이익에 관한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도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에 대해 질문한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⑦ 김영오씨 아빠 자격 논란에 색깔론까지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46일 동안 단식을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에 대한 보수언론의 ‘흠집 내기’ 보도도 유가족들의 인권을 짓밟았다.
이들 언론은 김씨가 ‘고(故) 유민양의 아빠로서 자격이 있는지 논란이 일고 있다’며 음해성 보도를 했지만 일부를 제외한 다수 언론은 이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MBC 등 방송은 되레 논란을 확산시키는 리포트를 내보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8월 25일 기사 <유민 外家 “저 사람 지금 이러는 거 이해 안돼”>에서 “(김씨가) 이제 와서 이러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 (어렸을 적) 그때는 애들을 돌보지 않더니 왜 지금 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익명의 유민양 외가 인사 발언을 제목으로 뽑았다. 동아일보도 이날 관련 내용을 5면 <유민아빠 ‘아빠의 자격’ 논란>에서 다뤘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27일 <김영오, 농성장서 가까운 강북삼성병원 대신 시립동부병원으로 간 이유는>과 28일 <김영오 주치의(서울동부병원 이보라 과장)는 전 통합진보당 대의원>이라는 기사에서 김씨의 주치의인 이보라 의사의 정당 활동 등을 근거로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유가족에 대한 사생활 논란을 사실 보도로 정리해야 할 공영방송 MBC 역시 25일 <뉴스데스크> 리포트 <“이혼 뒤 외면” “사랑 각별했다”>를 통해 외려 논란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대해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보수언론이 유민아빠의 사생활까지 파헤치면서 논란을 확산하는 데에는 세월호가 정부에 미치는 악영향을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며 “국민이 원하는 진상 요구를 외면한 채 보수정권 확성기를 자처한 셈”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해 8월 김영오씨가 광화문 단식농성장에서 누워있던 모습. 사진=김도연 기자
⑧ 유가족 폭행사건 빌미,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투쟁으로 매도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수십 일을 단식하면서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특별법 요구를 외면하던 언론은 지난해 9월 유가족과 대리운전 기사 간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유족들을 비난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을 ‘사생활’ 취급하던 언론이 유가족들과 이들을 돕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집요하게 캐는가 하면 일부 잘못을 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며 세월호 관련 부정적인 여론 확산에 혈안이 된 것이다.
KBS는 지난 9월 21일 유가족들의 폭행 관련 소식과 조직폭력배 소식을 한 리포트로 묶어서 내보냈고, 세월호 광화문 농성장 불법 보도를 제외하고 유가족들의 소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MBC는 사건이 발생한 9월 17일부터 22일까지, 21일을 제외하고 4일간 일부 유가족들의 폭행 소식을 잇달아 전했다.
보수신문들은 한 발 더 나갔다. 이 사건과 세월호 특별법을 엮어 정당성을 훼손하고 나선 것이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실장은 22일 칼럼에서 “세월호 특별법이 진상 규명이라는 ‘초심’에서 벗어나 수사권·기소권과 ‘대통령의 7시간’을 놓고 정치적 투쟁의 도구로 변질된 데는 김현 의원 같은 세력이 강경파 유족들을 떠받들며 좌파 매체-단체들과 상승작용을 일으켰다는 것이 새삼 확인된 셈”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날 이철호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도 자신의 칼럼에서 “세월호는 야당과 손잡고 정치화되면서 우리 사회와 멀어지기 시작했다”며 “선장·선원·청해진해운 대신 대통령과 정부 책임에만 집중한 것도 자충수”라고 주장했다. 두 언론 모두 유족들의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투쟁’으로 바꿔놓은 것이다.
⑨ “세월호 피로감, 경제에 악영향… 이젠 그만 잊자”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특별법에 수사·기소권을 보장하는 내용의 세월호 특별법을 입법청원했지만, 새누리당은 ‘법질서를 흔든다’는 말만 반복하며 이를 거부해왔다. 대통령은 유가족을 외면했고, 유가족들의 유일한 국회 창구였던 야당은 지리멸렬했으며, 유가족 일부가 폭행사건에 휘말리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은 점점 고립됐다.
지난해 7월 재보궐 선거 다음 날인 31일 조선일보는 <여 아닌 야 심판한 재·보선, 야 행태에 대한 염증이다>라는 사설을 실었고, 중앙일보는 <7·30 민심, 세월호를 넘어 민생을 선택했다>는 사설을 게재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은 <7·30 국민의 명령, ‘세월호 정쟁’ 그치고 경제 살려라>였다.
이후 ‘세월호를 끝내라’는 이들 언론의 주문은 지속해서 이어졌다.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때문에 다른 법안 처리가 늦어진다는 식의 보도를 이어갔다. 보수언론의 유족들에 대한 공세가 본격화된 것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1차 합의가 나오고, 유족들이 이를 거부한 8월 7일 이후부터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성역 없는 진상조사라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구를 거부하고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 도를 넘었다”며 자신에 대한 비판에 경고장을 보냈던 지난해 9월 16일 MBC는 “끝없이 표류하는 정기국회, 공전을 거듭하는 여야 협상, 그사이 91개 민생·경제살리기 법안은 처리되지 않고 있다”며 “박 대통령의 오늘 발언은 경제활성화 조치들이 국회에 묶여 있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라고 전했다.
⑩ 무관심과 외면, 만신창이가 된 세월호 특위와 시행령
지난해 11월 참사 200여 일 만에 세월호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12월 말 ‘세월호 특별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이 완료됐지만, 아직까지 특위는 출범도 못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 세월호는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고 세월호를 인양해 달라는 유가족들의 절박한 호소는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세월호 참사 특위 설립을 위한 설립준비단이 출범 사전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사무처 구성과 예산안의 규모를 두고 여야는 물론 특별조사위 내부에서도 이견이 불거졌다. 야당은 특위가 진상규명을 하려면 사무처 및 예산의 규모를 적어도 원안 수준(125명, 241억 원)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당은 특위의 예산이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는 만큼 축소해야 한다고 어깃장을 놔 결국 사무처 인력은 원안대로, 예산은 198억 원으로 삭감됐다.
김재원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세월호 특위를 “세금 도둑”이라고 힐난했고, 새누리당 추천 특위 위원은 개인 기자회견까지 열어 특위가 예산 낭비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특위는 공전을 거듭했고 결국 야당 추천 위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정부의 시행령이 통과됐다.
참사 이후 1년이 다 돼 가도록 진상 규명은커녕 특위 출범조차 못 하고 있는데도 언론은 비판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정부와 새누리당의 훼방은 공방이나 논쟁으로 보도됐고 언론의 무관심과 외면 속에 세월호는 다시 한번 망각의 바다 밑으로 깊숙이 가라앉았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과 진도 팽목항에서 단체 삭발을 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⑪ 보상금 과장, 돈만 밝히는 유족들? ‘세금 낭비’ 비난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2일, 정부와 보수언론이 내놓은 이슈는 희생자 304명에 대한 배상금이었다.
서울신문과 세계일보·조선일보는 이날 1면 제목에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이 1인당 8억2000만 원을 보상금으로 받는다고 강조했고, 조선과 동아의 경우 천안함 사건 희생자 보상금보다 세월호 희생자가 보상금이 더 많다고 보도했다.
당장 세월호 가족과 돈 문제를 연계시켜 진상규명이란 사안의 본질을 희석하고 시민의 시선을 지엽 말단으로 돌리려는 시도이자, 유족을 고립시키려는 타자화 전략(경향신문 4월 3일자 사설)이란 비판이 나왔다. JTBC <뉴스룸>은 1일 “배상은 정부의 고의와 과실의 범위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데 진상규명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결론을 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인양” 발언에 이어 정부의 배보상 안까지 나오자 보수신문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7일자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세월호 인양에 최대 2000억 원이 국민세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세월호 수습에는 총 6000억 원이 넘는 비용이 들 수 있다. 이 돈은 대부분 국민 세금으로 충당된다”고 했고, 중앙일보도 “무엇보다 막대한 인양 비용을 국민 세금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신중론을 폈다.
반면 지난 2일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배상 및 보상 문제로 사건을 덮으려 하지 말고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며 삭발에 나섰다. 3일자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은 이 같은 세월호 유가족의 삭발식 현장을 1면에 담았으나 조선·중앙·동아일보 1면에는 삭발식과 관련한 기사를 찾을 수 없었다.
이완구에 이어 쫓겨난 김무성 “세월호 배지나 떼” 416 미디어 오늘
[현장] 대통령 담화 이후 뿔난 세월호 유가족, 1주년 합동추모식도 취소
“지금 애들(영정) 앞에서 뭐하는거에요! 나가시라고요. 나가”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가증스러운 놈. (세월호) 배지나 떼!”
“언제까지 너네가 정권 잡을 거 같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위치한 합동분향소를 찾았지만 조문은커녕 유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받고 돌아갔다. 김 대표와 함께 합동분향소를 방문했던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10여명도 결국 조문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16일 오후 1시 40분께 합동 분향소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던 세월호안산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시행령을 폐기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고 외쳤다. 누군가 분향소를 방문했다는 뜻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지도부였다. 이 날 오후 갑작스레 비가 쏟아진 탓에 유가족들은 분향소 오른쪽에 위치한 유가족 대기실에 있어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김 대표는 분향소에 들어가 입구 왼쪽에 놓인 방명록에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라고 쓴 다음 국화꽃을 들고 영정이 놓인 방향으로 향했다. 그때 새누리당 지도부의 방문 사실을 알게 된 유가족들이 뛰어 들어왔다. “조문 안 받습니다. 나가세요” 유가족들이 새누리당 지도부에게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조문까지 막는 건 아니지 않느냐”며 “조문은 하게 해달라”고 답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경기 안산시 희생자합동분향소를 찾아 들어갔으나 뒤늦게 알고 따라온 유가족들의 항의에 분향은 하지 못하고 떠나고 있다. 사진=민중의 소리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김 대표에게 “세월호 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 결정 이전에는 조문할 수 없다”며 “돌아가시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에 김 대표는 “여당인 저희들도 인양해야 한다는 입장을 이미 밝혔다”며 “시행령에 대해서는 정부에 수정을 언급한 상태이다. 내일 찾아오시면 다시 협의해보자”라고 답했다. 그러나 전 운영위원장은 “지난 1년간 협의했지만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가족들의 반발도 그치지 않았다. 단원고 희생학생 어머니는 김 대표에게 소리를 지르며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오냐”며 “당장 내 새끼 살려내라”고 소리를 지르며 오열했다. 또 가족들은 김 대표에게 “그렇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냐. 대통령이 오늘 한 말을 보면 아무것도 없다”며 “당장 나가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대표 등은 결국 조문을 하지 못한 채 분향소를 떠났다.
김 대표가 분향소를 벗어나자 가족들과 취재진이 따라 붙으며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가족들은 비가 오는 와중에도 우산조차 쓰지 않고 김 대표를 따라가며 “뭐가 어렵냐. 국민들이 원하는 말 한 마디만 해주면 되지 않냐”며 “실종자 가족은 뼛조각이라도 보고싶다”고 시행령 폐기와 세월호 인양 등을 촉구했다. 또 다른 가족은 “뭐가 무서워서 몰래 조문왔다 가냐”며 비판했다.
김 대표가 차에 탑승한 이후에도 계속 항의가 이어져 김 대표 차량은 20분 가까이 움직이지 못했다. 결국 경찰 20여 명이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나서야 김 대표는 합동분향소를 떠날 수 있었다. 유승민 원내대표와 김문수 전 도지사 등도 각각 차량을 타고 안산분향소를 떠났다. 같은 시간 합동분향소를 방문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1시간 정도 분향소 앞에 있다가 돌아간다”며 “조문은 하지 못했다.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가족들의 분노는 1년이 된 이날까지도 정확한 인양 시점과 시행령 폐기 결정에 대해 박 대통령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가족들은 취재진을 향해서도 “쓰레기들”이라며 취재를 거부했다. 유가족은 분향소 내에서 취재하던 기자의 수첩을 빼앗아 바닥에 던졌고 사진을 찍던 또 다른 기자와는 취재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기자가 코피를 흘리는 일이 벌어졌다.
애초 가족들은 이날 오전까지 시행령 폐기와 인양 결정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결국 대통령이 이 날 오전 팽목항은 방문했지만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자 이 날 오후 2시로 예정됐던 1주년 합동추모식을 취소했다. 애초 추모식에는 희생자 가족과 시민단체, 종교계 등 500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정부가 현재까지 어떠한 답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 참사 1주기 한국은 무정부 상태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 특별기고]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유족과 실종자가족의 통곡 소리가 온 나라에 울려 퍼지고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 박근혜와 정부가 어떻게 했기에 그들의 아픔이 아물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을까? 그가 이끄는 정부는 그동안 무능과 무책임, 도덕적 불감증으로 일관하면서 자녀와 형제를 잃은 유족과 실종자 가족의 피맺힌 호소를 외면했다.
지난 4월 2일 유족을 비롯한 52명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삭발을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거나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을 격분시킨 것은 바로 전날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사고 피해자에 대한 배·보상 절차, 배상금 규모와 산정기준’이었다. 얼핏 보면 그것은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에 거액의 ‘돈벼락’을 안기는 특혜처럼 보였지만, 상당한 액수를 국민성금으로 채우겠다는 염치없는 대책이었다. 삭발을 하던 사람들 가운데서 특히 단원고 2학년 6반 ‘호성이 엄마’의 절규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 던지는 비수 같았다. “진실을 밝혀달라는데 그 돈 한 푼 주면서 옜다 먹어라라고 하는가. 니나 처먹어라. 나는 내 새끼 어떻게 갔는지 똑바로 알고 죽어야겠다.”
세월호 피해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과 진도 팽목항에서 단체 삭발을 했다. 사진=이하늬 기자
특히 유족들이 분노한 것은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별조사위)’가 지난 2월 17일 보낸 시행령안(대통령령)을 정부가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바꿔서 발표한 일이었다. 참사에 책임을 져야할 해양수산부 관리들에게 조사를 맡기는가 하면 특별조사위 인원을 극도로 축소한 정부의 시행령안은 참사의 원인을 밝히기는커녕 당일 ‘의문의 행방불명 7시간’이라는 의혹에 휩싸였던 박근혜에 대한 조사조차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국회를 통과한 시행령을 무력화하는 위헌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유족들은 참사 이후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아이들이 배 유리창으로 보이는데도 왜 해경이 못 본척했는지, 선원들만 허겁지겁 탈출한 까닭은 무엇인지를 밝혀달라고 정부에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그 참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복잡한 원인이 결부된 ‘간접적 살인행위’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그러나 지난 한 해 동안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유족들에 대해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했고, 보수언론과 극우단체들은 그들이 “혈육의 죽음을 미끼로 거액의 돈을 받아내려고 날뛴다”는 투로 매도하기를 일삼았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직후 생중계되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뒤 그가 농성과 단식을 하는 세월호 유족들을 외면하면서 면담 요구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은 것은 그것이 ‘악어의 눈물’이었음을 입증했다. 적어도 세월호 참사에 관한 한 한국에는 ‘책임지는 정부’가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최근에 터진 ‘성완종 리스트’로 무정부 상태는 그 실체를 더욱 확연히 드러내게 되었다. 죽음의 길로 가기 직전 성완종이 경향신문 기자와 나눈 대화에서 총리 이완구에게 3천만원을 준 적이 있다고 증언한 것이 뜨거운 정치적 쟁점이 된 이래 무정부 상태는 극으로 치달았다. 대통령 박근혜는 ‘부정과 비리의 백화점’이라고 비난받던 그를 총리에 임명한 당사자인데도 그 엄청난 추문에 대해 단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다가 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날, 곧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바로 그날 뜬구름 잡는 듯한 이야기를 했다.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의 ‘단호한 언명’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현직 총리 이완구를 포함해서 청와대 비서실장이던 김기춘과 허태열, 현직 비서실장인 이병기까지 의혹이 진실로 확인되면 모두 처벌하겠다는 뜻인가? 그리고 그렇게 될 경우 그들을 요직에 앉힌 자신은 국민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겠다는 것인가?
세월호 참사 유족들을 더욱 분개시킨 것은 박근혜가 16일 오전에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바로 남미 4개국을 향해 무려 9박12일의 순방을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장관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은 애초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가 비판이 거세게 일자 허겁지겁 그 결정을 뒤엎었다. 그야말로 누가 이끌어가는 정부인지 알 수 없다.
박근혜가 남미 방문외교를 강행하는 것이 확실해지자 현 정권에 지극히 우호적인 중앙일보 4월 14일자에 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칼럼이 실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9월 22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존에프케네디 공항에 도착, 전용기에서 내리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정상외교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외국에 자주 나가는 것은 박수칠 일이지 시비 걸 일이 아니다. 문제는 명분이고 실적이다. 뚜렷한 명분도 없이 부은 곗돈 찾아먹듯이 악착같이 나가는 느낌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 숫자놀음으로 성과를 과대포장해서도 안된다. (···) 공교롭게도 박 대통령이 이번에 만나게 되는 남미 4개국 정상 모두 국내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려 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서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 오만타 우말라 페루 대통령에서 산토스 대통령까지 한결같이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지지율이 추락 중이다. 한국도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는 날, 콜롬비아로 떠나는 박 대통령의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다. 9박12일은 긴 시간이다.”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성완종 리스트’가 터지자마자 당정청 협의를 거부했다. 4·29 재보선 참패를 부를 수도 있는 악재에서 벗어나자는 의도로 보인다. 총리 이완구는 국회에 불려가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온갖 변명을 했는데 대부분이 거짓으로 밝혀졌다. 명백한 ‘식물총리’가 된 그가 대통령의 방문외교 기간에 실질적으로 ‘직무대행’을 할 수 있을까? 만약 그가 검찰에 소환되기라도 하면 박근혜 자신이 머나먼 나라에서 ‘국사’에 대해 일일이 방침과 지시를 내려야 할까? 제일야당 대표의 주장대로 ‘성완종 리스트’에 들어 있는 의혹의 당사자들이 직무에서 손을 뗀다면 박근혜 정부는 ‘뇌사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박근혜는 4월 16일 오전 참사 현장인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한 뒤 오후에 남미행 비행기에 올랐다. 차라리 그의 가슴에 세월호 참사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라도 달려 있다면 국민들이 그의 외유를 ‘궁지에서 탈출하려는 행동’이라고 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구촌 향한 거대한 촛불... 미국인 응답 "한국 정부 잘못" 417 오마이뉴스
[현장] 4160개 촛불로 만든 세월호, 기네스북 등재 성공
세월호 들어 올린 4160개 촛불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촛불로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최종인원은 주최측 공식집계로 4475명이 참가했다. ⓒ 공동취재사진
▲ 세월호 만든 촛불 시민들 17일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1주기를 맞아 4160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세월호 형상을 만들어 기네스북 등재를 도전하고 있다. ⓒ 이희훈
4월 17일 오후 8시 13분. 전광판의 숫자는 4160명을 넘어섰다. 서울광장에 '4160개의 촛불'을 밝힐 사람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이로써 민주주의국민행동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가 함께 추진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도전' 퍼포먼스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고, "Largest torchlight image formed by people(사람이 만든 가장 큰 불꽃 이미지)"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 기록에 등재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기자들, 점점 보수화된다? 418 미디어오늘
2009년 ‘중도 진보’에서 2013년 ‘중도 보수’로… 배경은
기자 집단이 점점 보수화하고 있다. 기자 집단의 보수화는 언론의 보수화, 주류담론의 보수화를 뜻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3년 실시한 이념척도조사(가장 진보 0점, 중도 5점, 가장 보수 10점 기준)에서 기자들은 평균 5.54점을 기록했다. 2007년과 2009년 같은 조사에서 기자들의 이념점수는 4.58점으로 중도 진보 성향이었다. 4년 만에 중도 보수로 이동한 것이다.
매체 유형별로 보면 경제지가 5.65점이었고 지상파3사는 5.39점을 나타냈다. 종합일간지가 5.54점이었고 언론사닷컴(닷컴신문)의 경우 6.12점을 나타냈지만 인터넷신문사는 5.18점을 나타냈다. 뉴스통신사는 5.40점이었다. 2007년의 경우 인터넷신문사는 3.87점, 지상파3사는 4.55점, 경제지는 4.91점, 종합일간지는 4.42점이었다. 눈에 띄는 변화라 할 만하다.
2009년에서 2013년 사이, 종합편성채널이 등장했고, 신문의 위기는 가속화하는 가운데 광고를 노린 경제매체들이 우후죽순 창간됐다. 네이버 뉴스캐스트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기성언론이 위축된 시기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언론사 자체의 이념척도 역시 2009년에는 5.64점으로 중도보수 성향이었으나 지금은 7.04점으로 더욱 보수화됐다. 기자도, 언론사도 보수화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물론 언론재단의 이념성향 조사가 현실의 기자성향을 정확히 반영하는데 적합한 조사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조사과정에서 질문 자체의 한계로 기자들 스스로 방어적 답변 또는 과잉 답변을 했을 가능도 있다. 진보성향의 기자들은 여전히 진보적인데 보수성향의 매체와 기자들이 양적으로 증가하며 이념 성향이 보수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번 수치가 제대로 조사된 결과라고 전제했을 경우 유의미한 해석도 가능하다. 중앙일보 기자 출신인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의 기본은 10점 만점에 3.5~4.5점이 바람직하다”며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언론인은 진보적인 사람에게 본래 맞는 직업이다. 체질적으로, 문화적으로 자유분방하고 평균보다는 진보적이어야 비판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비춰보면 2009년까지는 기자집단이 이상적인 평균 이념점수를 보였으나 2013년 급격히 보수화됐다. 이유가 뭘까. 남재일 경북대 교수는 “논조는 진보적이지만 전통적인 객관저널리즘 규범에는 위배되는 정파적 보도에 대한 직업적 반발이 내재되어 있다가 드러난 것일 수 있다”고 전한 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일어나는 진보의 과잉에 대한 반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있다. 남재일 교수는 “뉴스산업에서 비판적 논조가 더 이상 상업성이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탈정치적인 연예뉴스 등이 많이 등장하고 뉴스의 중심이 되는 상황을 지켜보며 기자들이 의기소침해지고 직업적인 의미로서 기자에 대한 체념 내지는 위축 등이 반영된 수치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과 정부 및 지자체 광고를 순조롭게 받기 위해 언론사와 기자 스스로 보수적 담론에 동화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1987년 민주화이후 학생운동세대가 1990년대 기자가 되었던 과거와 달리 학생운동의 종말 이후 취업경쟁에 매달리던 세대가 2000년대 기자가 되는 현재의 사회적 추세가 기자들의 보수화를 더욱 부추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기자집단의 보수화는 언론의 비판적사고가 전반적으로 위축됨을 의미하고, 진보적 담론의 축소를 의미한다. 기자집단의 미래가 보수화의 연속이라면, 사회적 정체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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