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 경향-내일
309 한겨레-한국
3.10 시사인-경향
3.10 내일-한겨레
3.10 한국-311경향
3.11내일-한겨레
3.11한국-시사저널
312 경향-국민
312내일-한겨레
312한국-313한국
313 경향-국민
313한겨레-주간경향
3.9~3.12 경향 장도리
고이즈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전혀 통제 안돼…10년마다 총리 담화 낼 필요 없다"312 한국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일본 총리가 원전문제와 전후 70주년 담화와 관련, 자신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향해 쓴소리를 했다.
12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고이즈미 전 총리는 11일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 4주년을 맞아 후쿠시마현 기타카타(喜多方)시에서 가진 강연회에서 “오염수가 통제되고 있다고 누군가가 말했지만,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다”며 “잘도 저런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2013년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오염수 상황은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는 발언에 대한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아베 정권이 원전 재가동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도 “원자력규제위원장도 원전이 새로운 심사기준에 합격한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며 탈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않고, 비용도 싸지 않고, 클린에너지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역시 원전제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아베 총리에 대해 “어이가 없다”고 비난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자민당도 다수가 협력하고 있고, 민주당도 협력하고 있으니, 총리는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일본 패전 70주년인 8월 15일을 전후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아베 담화에 대해서도 “굳이 10년마다 (담화를) 낼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담화 내용을 둘러싼 최근 논란을 “지나친 소동”으로 치부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005년 전후 60주년 담화에서 식민지배와 침략을 반성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은 무라야마담화(1995년)의 주요 내용을 그대로 이어받은 담화를 발표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발언은 아베 총리가 새 담화에 이런 내용을 담지 않아 발생할 국제적 반발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도 11일 무라카미 마사쿠니(村上正邦) 전 노동장관, 야마사키 다쿠(山崎拓) 전 자민당 부총재, 냐노 준야(矢野絢也) 전 공명당 위원장 등 원로 정치인 10여명과 함께 모임을 발족,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할 것을 촉구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아베 총리가 새 담화에 사죄와 반성을 담지 않으려는 우려에 대해 “다시 과거의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는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켜 일본은 고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아베에 호된 역사교육"...中, 환호 3.11 ytn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일본 아베 총리에 역사를 직시하라며 충고한 데 대해 중국사회가 환호하며 전폭적인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역사교육을 제대로 시켰다는 반응입니다.
베이징 서봉국 특파원이 보도합니다.[기자]
아베 총리가 메르켈 총리의 발언을 들으며 난처한 듯 이마를 만지는 사진입니다.B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가 1면에 실었습니다. 베이징 일간 신경보도 환구시보처럼 '메르켈이 아베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충고했다'는 제목을 달아 국제면 톱기사로 보도했습니다. 중국 매체들의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네티즌들도 메르켈의 발언에 환호하고 있습니다.환구시보가 메르켈 발언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97%가 지지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한 정치평론가는 메르켈의 호된 역사강의를 아베는 알아들었냐며 일침을 가했습니다. 앞서 전쟁에서 졌던 일본이 양심까지 잃어서는 안된다고 밝혔던 중국 정부는 다시한번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인터뷰:훙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
"2차대전 종전 70주년인 올해 일본 지도자가 정확한 선택을 하기를 희망합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해 7월 중국 방문시 강연에서 독일이 역사를 직시한 방법은 옳았고, 이는 후손들이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게 만들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중국 언론과 중국인들은 메르켈 총리의 이번 행보가 2차 세계대전 70주년을 기념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메르켈 파워… 동북아 역사분쟁까지 목소리 ‘새 글로벌 리더십 중심’ 311 경향
단호한 원칙주의자면서 ‘철저한 실리’ 외교주의
집권 10년차 지지율 70%… 국민 56% “다음 총리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일본 방문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그가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피해 당사자인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일본을 방문한 국가 정상이 과거사 문제를 끄집어낸 전례는 거의 없었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후 자신들의 원죄를 의식해 최대한 국제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려 몸을 사렸다. 그랬던 독일이 이제는 자신들의 과거를 거울삼아 오히려 다른 나라에 쓴소리를 마다않는 위치에 선 것이다.
2005년 독일 역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된 메르켈은 우둔해 보일 만큼 신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스타일에 비춰볼 때 일본에 쓴소리를 한 것 역시 철저히 계산된 언행으로 보인다. 독일 언론들은 메르켈이 노련한 화법으로 이 문제를 다뤘다고 평가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메르켈이 일본을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독일의 선택이 왜 옳았는지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전했다.
메르켈은 과거사 문제에서는 단호한 원칙주의자다.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지치지 않고 독일의 과거를 반성한다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와 주권을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2003년), “과거에 대한 반성은 고통스러웠지만, 옳았다”(2014년)는 그의 발언들은 어록으로 남았다.
역사관에서는 원칙주의자이지만 외교에서 메르켈은 누구보다 철저한 실리주의자다. 2007년 달라이 라마와 만난 뒤 중국 정부와의 관계가 냉각되자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틈날 때마다 무역사절을 이끌고 중국에 갔다. 이번 일본 방문은 7년 만이지만, 중국은 그새 7번이나 찾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메르켈의 쓴소리를 두고 “독일이 동아시아에서 일본 대신 중국을 선택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뉴요커는 메르켈이 유로존의 좌장 역할을 하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는 것 역시 “유로존을 통합하려는 이상적인 시도라기보다는 철저히 독일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서 “메르켈은 부드러운 겉모습을 한 민족주의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마키아벨리에 빗대 메르켈에게 ‘메르키아벨리’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메르켈이 국제 외교무대의 중심축으로 떠오른 것은 유럽에서 ‘나홀로’ 성장하고 있는 경제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통일 이후 첫 동독 출신 총리라는 이점을 살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와 서방 간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휴전 논의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불러내 16시간 마라톤 협상을 성사시킨 것도 그였다. 전임자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2002년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을 히틀러에 비유하는 등 돌출발언을 거듭해 국제정치에서 밀려났지만, 지금 메르켈은 우유부단하다는 평을 듣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글로벌 리더십을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독일인들은 이런 메르켈에게 70% 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답하고 있다. 가디언은 집권 3기에 접어든 총리가 아직까지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는 것은 전후 잿더미가 된 서독을 재건한 콘라드 아데나워 이래로 메르켈이 처음이라고 보도했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에서 독일인의 56%는 “다음 총리도 메르켈이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기준금리 ‘1%대 시대’]“디플레 대책도 안돼…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312 경향
무슨 생각으로 금리를 내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잘해봐라’ 하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54·사진)은 12일 기준금리 인하에 대해 “금리를 내린다고 소비나 투자가 늘어날 것 같지 않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대책이 될 수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금융연구원은 민간기관이지만 정부 연구용역을 도맡아 하고 있어 준정부 기관에 가깝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디플레이션 진단 토론회’에서 “금리를 인하해도 2~3년 뒤의 장기 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번 인하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의미있게 줄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1년엔 저금리 정책으로 부채를 늘려가며 소비가 늘어났지만 2009년 이후 거의 상관관계가 없어졌다. 저축을 줄이거나 부채를 늘려 소비할 여력이 소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이 2017년까지 3.75%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고, 미국과 한국의 장기금리가 거의 같이 움직여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소비자들의 이자 상환 부담이 지금보다 2.5배 정도 커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가계부채를 통제할 대책을 동시에 시행한다면 금리를 낮출 수 있다고 보지만 정부가 이제야 가계부채관리협의회를 구성하겠다는 건 그동안 대책이 없었다는 뜻”이라며 “그동안은 ‘이러면 안된다’는 열정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냥 ‘잘해봐라’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고 덧붙였다.
최저임금은 생명줄이다]“가장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 구매력 유지돼야 성장 선순환 가능해져” 312 경향
세계적 화두가 된 최저임금·소득주도성장
▲ 국제노동기구(ILO) 소득주도성장론 주도 이상헌 박사
“한국 최저임금 수준 세계적으로 낮은 편… 중위임금의 45~60% 돼야
노동소득 증가해도 일자리는 줄어들지 않아”
국제노동기구(ILO)에서 소득주도 성장론 입안을 주도한 이상헌 박사(48·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는 12일 “최저임금의 목표는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을 인상해야 소비 수요가 늘어 내수가 커지고 투자도 뒤따르는 선순환 성장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스위스 제네바 ILO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 박사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임금을 비용으로만 보는 기업 중심의 시각이 최근 전 세계적 내수 부진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45~60%가량이면 고용 감소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는 일면이 있지만, 퇴출되는 한계기업의 빈자리에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들어오는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한번에 1만원까지 가자고 얘기하는 것도 노동시장에 충격이 클 수 있어 어떻게 도달할지 목표를 잡고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장정훈 독립PD 제공
-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말하면서 국내에서 최저임금 논의가 불붙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지금 전 세계적 현상이다. 한국에선 되레 늦게 시작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부터 임금이 오르는 속도가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에 비해 많이 떨어졌고, 위기가 닥치자 임금 저하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이렇게 되자 가계 가처분소득에 문제가 생기면서 내수 부진이 찾아왔다. 이 때문에 주요 20개국(G20) 회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도 임금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 여야와 정부의 초점은 현재 인상 폭에 맞춰지고 있다.
“임금이 올라야 한다는 데엔 대부분 동의하는데 수단이 문제가 된다. 임금이 오르면 노동소득이 증가해 소비가 늘고 투자 확실성도 생겨 전체적인 선순환이 가능하다. 하지만 노조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임·단협에서 임금을 많이 올릴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결국 기대게 되는 것이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만 오른다 해서 내수가 회복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올리고 다른 정책 분야에서 손을 떼면 효과가 크지 않다.”
- 이 박사는 대표적인 소득주도 성장론자다. 최저임금 인상은 어느 정도 효과를 주게 되나.
“소득주도 성장론은 간단히 말해 소득 분배 개선이 사회적 통합, 정치적 안정을 위해 필요할 뿐 아니라 경제성장률 제고와 경제안정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임금을 노동비용으로 보고 기업 이윤율 측면에서만 바라본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임금을 비용 문제로만 보는 게 아니라 소비의 원천으로 보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내수가 줄다 보니 수출을 늘리게 됐다. 임금과 노동생산성의 격차가 1 대 1로 맞춰져 성장하다 IMF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그 패턴이 깨진 것이다. 일본·독일도 그렇게 줄어든 내수를 수출로 메꾸고 있다. 미국은 수출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구조라 가계 빚을 인위적으로 일으켰고 이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번졌다. 임금의 중요성과 수요 측면에 대한 고려 없이 운영한 경제가 위기를 불러온 것이다. 이런 경제를 조금 더 안정적으로 성장시키려면 균형 잡힌 전략이 필요하고 그중 하나가 최저임금이다.”
- 최저임금 인상이 전체 노동자에겐 어떤 영향을 주나.
“한국에서도 노동자가 최소한의 소득은 어떤 식으로든 누릴 수 있게 하는 소득흐름(income flow)이 무너진 상태다. 그렇게 되면 중간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협상력도 떨어진다. 더 열악한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사용자가 협상에서 우월해진다는 것이다. 소득흐름을 복원하기 위해선 최저임금을 올려 밑바닥을 떠받쳐주고, 임금 피라미드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들에겐 임금상한제를 적용해야 한다. 임금상한제 같은 직접적 규제가 어려우면 세제상 조치를 통한 소득 재분배로 임금 밑바닥과 꼭대기의 간극을 좁힐 필요가 있다.”
- 현재 한국 최저임금 결정 구조는 어떻게 평가하나.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은 괜찮다. 다만 원칙이 없는 게 문제다.
경총이 2%를 주장하고 민주노총이 20%를 주장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와 20%라는 인상률을 두고 논의를 하면 간극을 좁혀봐야 서로의 차이가 5%포인트 이내로 되기 어렵다. 각자 주장하다 공익위원들이 중간선에서 정리하는 방식이 되면 원칙이 없어지는 것이다.”
- 최저임금 인상 문제는 어떤 원칙과 방향을 갖고 풀어가야 하나.
“첫째 원칙은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노동자의 구매력을 유지하는 게 최저임금의 목표가 돼야 한다. 최소한 물가상승률만큼은 올려줘야 구매력이 유지된다. 둘째는 지난해보다 올해 경제가 좋아졌으면 이 부분도 반영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은 경제 상황이 3% 이상 좋아졌는데 최저임금은 물가상승률만큼만 먹고 떨어지라는 건 안된다. 세 번째는 형평성이다. 예를 들어 평균임금의 50% 이하로 떨어질 수 없다는 원칙에 합의를 해야 한다. 다만 공격적으로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는 건 좋은데 내년에 바로 1만원으로 할 순 없다. 갑자기 올리면 노동시장이 혼돈 상태에 빠진다. 중소기업 중에 감당하지 못하는 기업이 많아진다. 최저임금 중 가장 나쁜 것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다.”
-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을 두고 ‘높다, 낮다’ 의견이 갈린다.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자영업자도 통계에 들어가는 국민소득 기준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안된다. 자영업자들이 어려우니 국민소득이 낮게 나오고 최저임금이 높아 보이게 된다. (이런 비교는) 정부가 우겨보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려면 중위임금(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맨 중앙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 이 기준으로 보면 한국은 낮은 편이다.”
-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세계은행이 2013년에 내놓은 보고서에도 실증 연구를 해보니 최저임금이 고용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이 부작용 없이 운영되려면 중위임금의 45~60% 정도면 된다. 이 범위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최저임금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나라들은 이 정도 수준인데 일자리가 감소한 나라가 별로 없다. 그 밑으로 가면 최저임금 의미가 없고, 더 높아도 의미가 없다. 너무 높을 경우 실제로 그 임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 최저임금이 오르면 중소기업이 어려워진다는 주장도 있다.
“중소기업이 어려워지는 측면이 있지만 일면적 접근이다. 항상 한계기업은 있고 최저임금이 아니더라도 다른 이유로 퇴출될 수 있다. 그 자리에 최저임금도 줄 수 있고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들어온다. 최저임금이 퇴출과 진입의 다이내믹(역동성)을 빠르게 하는 것이다.”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초, 집값 고꾸라진다 312 미디어오늘
[선대인 칼럼] 지금 빚 내서 집 사는 사람들 특히 위험… 물량폭탄 덮을 부채폭탄 임박
수도권 2차 부동산 폭등이 일어난 2006년부터 분양가상한제 시행 앞둔 2007년까지 건설업체들 앞다퉈 분양물량 쏟아냈죠. 2008년 봄 "뉴타운광풍"이 불었죠. 그 때 아무도 "부동산 불패"를 의심하지 않았을 때 제가 부동산 폭락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실제로 2008년 하반기 집값이 급락했고, 2006~2007년 분양됐던 아파트들의 물량 폭탄이 쏟아지면서 부동산시장을 더욱 내리눌렀죠.
2008년 말 수도권 중심으로 집값이 단기 급락했다가 2009년초부터 이명박정부의 대대적 부양책으로 집값이 다시 급반등할 때 많은 이들이 인천 청라 등지의 분양 물량과 강남 재건축에 뛰어들었죠. 그때 저는 "부동산 막차에 올라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2009년 10월이 고점이었고, 수도권 집값은 그 때부터 2012년 말까지 내리막길 걸었습니다. 하우스푸어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자, 다시 정부와 언론에서 "집값 바닥"이라고 소리칩니다. 2006년 이후 1,2월 거래량이 사상 최대라고 떠들죠. 여기에는 분양권 전매제한 풀린 물량도 상당량 있고, 2000년대 초반 거래량이 파악되지 않아 비교대상에 들지 않아 사실 사상 최대는 아닙니다.
▲ 부동산 열풍이 한창이던 2000년대 후반, 한 아파트 청약 현장에 몰려든 인파. ⓒ 연합뉴스
그런데 확실한 사상 최대는 두 가지 더 있죠. 이 기간 동안 늘어난 주택담보대출은 사상 최대입니다. 이건 대한민국 역사상 사상 최대입니다. 주택 거래건당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이 사상 최대입니다. 부동산 폭등기였던 2006년 하반기에 비해서도 두 배입니다. 그런데 2006년엔 14% 이상 뛰었던 집값이 지난해엔 겨우 2.5%였습니다. 이 난리를 치고도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상 최대는 2000년대 이후 사상 최대 분양 물량이 올해 쏟아진다는 겁니다. 집 살 수요가 많이 있어서요? 글쎄요. 한 언론 보도에 인용된 건설업계 관계자 말입니다. "이런 장세가 짧게는 6개월, 길어도 1년 이상 가기 힘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경쟁적으로 서둘러 물량을 쏟아내는 것" 건설업체 관계자가 이렇게 말하면, 잠재 수요자들은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요?
자 지금 말씀드리는 이런 것들이 모두 뭘 의미하느냐고요? 일부 언론에서 지금부터 2,3년 후에는 "물량 폭탄" 때문에 집값이 다시 가라앉을 거라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그렇게 길게 잡지 않습니다. 집값이 하락할 주원인도 물량폭탄이 아니라 부채 부담 때문일 거고요. 제가 2013년 말 출간한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에서 2~3년이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1~2년 정도 안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아직까지는 그 전망을 수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올해 말~내년 초 정도까지는 집값이 다시 가라앉는 걸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또 하나의 데자뷰가 있습니다. 1991년 일본에서 부동산 거품이 붕괴했고 이후 3~4년 동안 일본 정부는 대규모 토건 부양책을 펼쳤습니다. 그래도 안 되자 1994~1996년부터는 제로금리와 각종 세제혜택, 가계부채를 동원해 일본 가계들로 하여금 집을 사게 부추겼습니다. 많은 일본 국민들도 집값이 고점에 비해 상당히 빠진 것 같고, 이자 부담도 낮으니 분양대열에 뛰어들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그 뒤는 일본의 길을 따라갈지 아닐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일본의 결론의 말씀드리면, 1997년 부동산 2차 버블이 붕괴했고, 1994~1996년에 분양대열에 뛰어들었던 많은 일본 국민이들이 하우스푸어로 전락했습니다. 한국이 일본의 양상을 똑같이 따라갈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최근에는 그 속도가 훨씬 더 빨라지고 있습니다. 연내 미국발 금리 인상 가능성은 갈수록 가능성이 높아지는군요. 미국 금리 인상 가능성이 살짝 높아지기만 해도 환율이 급등하는 나라에서 언제까지 금리를 낮은 상태로 묶어둘 수 있는지 의문이군요. 다만 이것 하나는 확실합니다. 지금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는 것 말이죠.
“그녀를 사랑하시나요? 벤츠로 표현하세요” 313 미디어오늘
[오늘의 소셜쟁점] 벤츠 여검사에 ‘그린라이트’ 누른 대법원… “역시나, 사랑은 무죄”
지난 2007년 한 여성 검사가 남성 변호사를 만나 사랑에 빠졌습니다. 아름다운 사랑드라마는 두 사람이 각자 배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랑과 전쟁'이 돼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변호사가 검사에게 사건 관련 청탁을 하며 벤츠 승용차, 샤넬 핸드백, 신용카드 등을 선물로 준 사실이 드러나, 막장드라마가 됐지요.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은, 최근 국회를 통과한 ‘김영란법’을 제정하는 단초가 됐습니다. 이전까지는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으면 뇌물을 받아도 공직자를 처벌할 수 없었는데, 김영란법 제정으로 대가성과 관계없이 위와 같은 뇌물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생긴 겁니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발효되지 않았습니다. 여야가 1년 6개월 간 유예했죠, 그 사이 위에서 언급한 ‘벤츠 여검사’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12일 대법원은 “(이 모 검사가 최 모 변호사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건 청탁과는 무관했고, 벤츠 등은 ‘사랑의 징표’였다”고 판결했습니다.
최 변호사가 이 검사에게 사건관련 청탁을 한 정황이 있음에도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는 점에서 벤츠, 샤넬 핸드백, 신용카드 제공을 ‘뇌물’로 보지 않은 것이죠, 하지만 사랑의 징표가 벤츠라니, 속된 말로 ‘후덜덜’합니다.
연인들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벤츠가 사랑의 정표이니 무죄라는 대법원의 판결 덕분에, 화이트데이가 이틀 남은 지금 미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트위터 이용자들도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벤츠를 줘야 하는 것인가”, “화이트데이, 사랑한다면 벤츠를”이라고 말했습니다.
▲ 벤츠 차량. 사진=메르세데스 벤츠 홈페이지
“2015년 벤츠의 캐치 프라이즈는 결정 되었군, ‘사랑하면 벤츠로 표현 하세요’”, “풀꽃 반지로 여자를 꼬드길 수 있었는데, 너무 오래 살았나 보다. 손가락에 채워줄 수도 없는 벤츠가 사랑의 징표라니”, “사랑으로 이루어진 범죄는 무죄라는 것인가?”, “뭐든 받아야 할 때 미리 카톡이나 문자로 ‘사귀는 사이’라 남겨 놓으면 벤츠까지 상납가능하십니다” 등의 풍자가 쏟아집니다.
연인관계이니 공직자인 검사가 받은 벤츠가 사랑의 징표일 뿐이다. 이렇게 따지면 친구 간에는 ‘우정의 징표’, 모르는 사람끼리 뇌물을 주고받은 것은 ‘신의의 징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최근 얼마 전 한 소방관이 환자를 응급이송한 후 병원에서 커피 한 잔 얻어먹은 것도 ‘뇌물’이 됐다는 보도를 보면 법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은 듯 합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예전에 노무현이나 그 주변 사람들에게 포괄적 뇌물죄 적용하겠다고 난리치던 생각난다”고 말했고 또 다른 트위터 이용자는 “소방관에게 따듯한 커피 한 잔 대접하는 것이 뇌물이고 배고파 라면 훔쳤다고 실형내리는 사회다. 그런데 벤츠 여검사에게는 사랑의 증표였다며 무죄판결이 내려졌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그나저나, 이번 판결을 내린 김소영 대법관은 벤츠가 어떻게 사랑의 징표임을 눈치 챘을까요? 불륜관계였던 두 사람의 ‘그린라이트’ 때문이었을까요?
경총의 최저임금 통계와 언론의 영혼없는 받아쓰기312 미디어오늘
[뉴스분석] 법정 노동시간 40시간으로 줄어든 게 언젠데… 최저임금 이미 높다고? 물가 수준도 감안해야
지난 9일 2013년 기준 한국의 연간 최저임금액이 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14위라는 보도가 쏟아졌다. 언론은 이를 두고 노사정위원회 임금보고서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분석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해 계산됐다. 언론들이 원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경총의 분석만 믿은 탓이다. 법정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연간 최저임금액을 계산할 경우 한국의 순위는 더 떨어진다.
지난 9일 주요 신문들은 노사정위원회와 경총의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연간 환산 최저임금액이 1만 2038달러로 세계협력기구(OECD) 25개 회원국 가운데 14위로 ‘중위권’ 이라고 보도했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한국보다 연간 최저임금액이 높은 나라는 호주(3만 839달러), 프랑스(2만 2788달러), 일본(1만 6043달러) 등이고 스페인(1만 1995달러), 터키(6304달러) 등의 연간 최저임금액은 한국보다 낮다.
몇몇 경제지는 사설에서도 이를 인용했다. 사설의 논조는 지금도 한국의 최저임금이 낮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국경제는 지난 11일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궁지에 모는 최저임금 인상론’ 사설에서 “최저임금 수준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것도 아니다”라며 해당 수치들을 인용했다. 머니투데이 역시 지난 12일 ‘최저임금 인상 논의, 중소기업 현실을 고려해라’ 라는 제목의 이슈칼럼에서 비슷한 내용을 전했다.
하지만 이 수치들은 잘못됐다. 연간 최저임금액 1만 2038달러는 법정 노동시간을 초과해 계산된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법정 노동시간은 주 40시간이며 유급주휴 8시간을 합쳐 소정근로시간은 월 209시간[(40시간 + 8시간) ×365일 ÷ 12개월 ÷ 7일)]이다. 하지만 해당 연간 최저임금액은 주 44시간, 월 226시간으로 계산돼 나온 수치다. 2007년 이전 근로기준법의 법정 노동시간을 적용한 것이다.
▲ 영화 <카트>의 한장면.
제대로 된 최저임금을 계산하려면 2013년 당시 최저임금인 4860원에 월 209시간을 곱한 다음 12개월을 곱해야 한다. 이렇게 했을 때 연간 최저임금액은 1218만원 수준이다. 월 226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최저임금액은 1318만원이다. 100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OECD 순위 역시 14위가 아닌 15위로 바뀐다. 기존 15위였던 스페인이 14위가 되고 한국은 15위가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언론이 원자료를 확인하지 않고 경총의 자료만 '받아썼기' 때문이다. 원자료인 노사정위원회 임금보고서는 해당 연간 최저임금액이 법정 노동시간이 아닌 226시간으로 계산됐다는 한계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경총은 이 같은 사실을 언급하지 않은 채 수치와 순위만 계산해 언론에 전했다. 그리고 언론들은 이를 인용 보도했다.
경총 관계자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 자료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OECD 하위권이라는 거는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이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게 아니라 꼼수 자료로 인식을 전환시키려는 발상이 문제가 있다”라며 “나아가 독일 등을 제외한 일부 국가와만 비교한 미흡한 자료”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최저 임금액을 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난 1월 한국의 ‘빅맥지수’는 56개국 중 25위를 차지했다. 지난 1월 기준으로 한국에서 맥도날드 빅맥 햄버거 1개 가격(4100원)을 달러로 환산하면 3.78달러였다. 빅맥 지수는 동일한 물건의 가치는 어디서나 같다는 ‘일물일가의 법칙’에 입각해 환율이 각 통화의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구매력평가설’(PPP)에 바탕을 둔 것이다.
딸이 비정규직인 게 내가 비정규직이어서는 아닐까 312 한겨레21
비정규직과 가난은 사실상 동의어,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에
비정규직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포기가 빠르다
1. 엄마는 ‘급식조리사’, 딸은 ‘댓글 알바’
나쁨. 황사주의보는 해제됐지만 미세먼지 농도는 여전히 ‘나쁨’이다. 눈앞이 뿌옇다. 지난 2월24일 아침 8시,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정문 앞도 여전히 ‘나쁨’이다. 엄마는 이날도 커다란 팻말을 들고 30분 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대화를 거부하는 교장님 때문에 급기야 조희연 교육감과 잠실초교를 노동부에 고소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또박또박 글자를 읽어본다. 유정(22·가명)씨 눈에 비치는 글자는 흐릿하다. 미세먼지 탓이 아니다. 콘택트렌즈를 오래 껴서 각막이 상했다며 의사는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숭실대 청소용역 노동자로 일하는 임성숙(위)씨가 건물을 청소하고 있다. 노조 사무국장인 장보아(아래 사진 가운데)씨는 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이다. 월 112만원의 저임금 비정규직인 두 사람 모두 자녀들도 비정규직이다.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파업하던 날 집회에 나간다 했다가…
엄마 장미숙(49)씨는 두 달째 잠실초등학교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 중이다. 엄마는 잠실초등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하다가 해고됐다. 해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계약 종료다. 2012년 12월, 병가를 낸 급식조리사의 ‘대타’로 일을 시작한 뒤 6개월, 6개월, 1년 단위로 세 차례 계약을 맺었다. 지난 2월28일이 마지막 계약 종료일. 엄마는 2년이 됐으니 당연히 무기계약직이 될 거라 굳게 믿었다. 엄마랑 같이 일했던 다른 급식조리사 5명은 모두 무기계약직이다.
그런데 나쁜 일이 일어났다. 영양사 선생님은 “일하는 시간에 누워 있어서 근무평가 점수를 나쁘게 줬다”고 엄마에게 통보했다. 재계약을 맺지 않는다고 했다. 급식조리사 6명이 각각 음식을 한 가지씩 맡았다. 1200명이 먹을 밥과 반찬을 만들기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점심밥도 잠깐 욱여넣고 나와 일했는데 억울했다. 엄마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사람 하나 살려주는 셈 치고 도와주세요.” 교장선생님은 고개를 돌렸다.
“막내딸 출산 때 셋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친척 의료보험증을 몰래 내고는 들킬까 싶어 분만실에서 바로 퇴원했다.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옛날엔 열심히 살면 벗어날 길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니까.”
어렴풋이 짐작은 갔다. 지난해 11월 급식노동자들이 파업하던 날이었다. 집회에 간다고 하니 영양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근평 점수를 나쁘게 받을 수 있으니 가지 말라”고 했단다. 노조는 엄마가 ‘괘씸죄’로 해고됐다고 본다. 부당노동행위로 학교를 고소한 까닭이다.
억울해서라도, 절박해서라도 엄마는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의 130만원 월급은 다섯 식구의 밥줄이다. 그 돈으로 빌라 월세 45만원도 내야 하고, 중학교 2학년 여동생의 학비도 대야 한다. 치매를 앓는 할머니는 자꾸 길을 잃는다. 급식조리사는 엄마가 얻은 첫 일자리다운 일자리다. 전에는 이삿짐센터나 가사도우미로 간간이 일했다. 다행히 엄마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해 낳은 오빠(28)가 최근 취업했다. 하지만 월 100만원에 4대 보험 적용도 안 되는 임시직이다. 오빠의 대학교 학자금 대출을 갚기에도 빠듯하다.
잠실초등학교 급식조리사로 일하다가 해고된 비정규직 장미숙씨가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 중이다. 이날 1인시위에는 22살 된 장씨의 딸도 함께 나왔다.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온 가족이 비정규직의 설움을 겪었다면, 그중 으뜸은 유정씨다. 엄마의 지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6개월간 일했다. 아침 9시에 나가 오후 6시까지 닭강정 포장 등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월 60만원을 준다던 약속은 첫 두 달간만 유효했다. 그 뒤로는 30만원으로 월급이 반토막 났다. 근로계약서는 구경도 못했다. “돈 올려주세요” 울먹였다가, “회사 어려운 거 안 보이냐”는 으름장만 들었다. 지난해 10월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는 잠시 ‘댓글 알바’도 했다. ‘저 오늘 양악 수술했어요.’ 성형외과에서 시키는 문구대로 광고글을 올리고 인터넷 카페를 돌아다니며 댓글을 단다. 월 100만원이 보장된다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전화를 걸어와 꼬치꼬치 따져대는 통에 알바는 두어 달 만에 그만뒀다.
다른 대학은 생활임금 받는다는데
<한겨레21>의 ‘2015년 비정규직 1070명 심층 실태조사’ 응답자가 함께 거주하는 가족 수는 평균 3.21명. 이 중 소득이 있는 가족이 1.76명,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가족은 1.41명으로 조사됐다. 즉 가족 구성원의 43.9%가 비정규직, 소득 있는 가족 구성원의 79.9%가 비정규직이라는 뜻이다.
장미숙씨 가족처럼 소득 있는 가족들이 몽땅 비정규직인 경우도 68.8%(704명)나 됐다(표1·2 참조). 심층 인터뷰 과정에서 ‘아빠도, 엄마도, 아들도, 딸도 비정규직’인 가족의 이야기는 너무나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저임금, 고용불안, 빈곤 등 비정규직의 위태로움이 이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더 넓게는 사회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비정규직 엄마들은 근심이 많다. 자신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아들과 딸도 걱정이다.
2. 엄마는 ‘걸레’ 들고, 딸은 ‘휴대전화’ 들고
지난 2월25일 찾은 서울 숭실대 학생회관 앞 천막농성장에서도 ‘비정규직’ 엄마 두 사람이 ‘비정규직’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를 두런두런 꺼냈다.
엄마들의 직장은 숭실대 청소용역을 맡고 있는 미환개발이다. 미환개발은 청소·경비 노동자 209명을 고용한 대형 용역업체다. 숭실대 용역은 18년째 수의계약으로 독점하고 있다. 엄마들이 받는 월급은 고작 112만8600만원. 그것도 세전 금액이다. 다른 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생활임금’에 맞춰 평균 143만원을 받는 걸 생각하면, 엄마들은 울화통이 터진다.
‘아리랑~ 아리랑~ 노조 아리랑. 미환개발 고개를 넘어가보자. 손잡고 가보자~.’ 엄마 임성숙(57)씨가 천막 앞에서 북을 치며 구슬픈 목소리로 <홀로 아리랑> 개사곡을 부른다. 2011년 미환개발에 입사한 임씨의 첫 월급은 87만원. 노동조합이 없어 최저시급도 못 챙겨받던 시절이다. 임씨는 21살에 결혼하기 전까지 서울 구로동에 있는 스웨터 공장에서 일했다. 결혼한 다음에는 가내근로자로 손뜨개질, 리본 만들기, 구슬·단추 달기 등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목욕탕 청소, 가사도우미, 복지관 사무보조, 주스 배달·영업사원, 간병인, 슈퍼 등등 몸이 아픈 남편을 대신해 더 부지런히, 닥치는 대로 일했다.
“파견직이랑 같이 다니거나 밥 먹지 말라”
악착같이 일했던 걸로 따지면 엄마 장보아(60)씨도 뒤지지 않는다. 포장마차, 식당, 호프집, 슈퍼 등등 1995년 남편을 일찍 여읜 뒤 딸 셋을 홀로 키우며 가난과 싸웠다. “막내딸 출산 때 셋째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서 친척 의료보험증을 몰래 내고는 들킬까 싶어 분만실에서 바로 퇴원했다.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다. 옛날엔 열심히 살면 벗어날 길이라도 있었는데, 지금은 부모의 가난이 자식에게 대물림되니까.”
소득 격차는 기회의 불평등을 가져오고, 이는 결과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단, 부모에게서 자산·인맥 등을 상속받은 사람들이 더 성공한다. 비정규직과 가난은 사실상 동의어다. 비정규직 자녀들은 본능적으로 포기가 빠르다. 발버둥쳐도 소용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임씨와 함께 사는 두 아들은 건설 일용직 노동자로 일한다. 하청을 받아 아파트 단지 등에 유리를 시공한다. 대학을 포기한 큰아들(35)은 유리 시공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작은아들(31)은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자격증이 없어서인지 일감이 큰아들보다 적다. “얼마 전 작은아들이 일이 없어 집에서 15일가량 쉬었다. 며칠씩 일이 없으면 저도 불안하고, 나도 불안하고.” 임씨는 큰아들이 음악을 하고 싶어 했는데 악기 하나 가르쳐주지 못한 게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 “아들들이 정규직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그건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잖아요.”
장씨도 딸 둘을 대학에 보내지 못했다. 막내딸(26)은 학원비를 스스로 벌어 미대에 갔지만, 편의점과 카페 등에서 알바하며 등록금을 버느라 휴학 중이다. 지난 1월 결혼한 둘째딸 은주(27·가명)씨는 서울의 한 대형 전자제품 전문매장에서 휴대전화 개통 업무를 담당하는 파견노동자다. 은주씨는 6년째 해온 일을 이번달에 그만둘 작정이다. “주말 휴대전화 개통이 가능해지면서 주말근무를 하라고 해놓고 휴일근무수당은 안 준대요. 그렇게 안 하면 파견업체를 바꿔버리겠다고 협박하고.” 파견업체는 월급에서 매달 20만원씩 수수료만 떼어갈 뿐 ‘갑’인 원청 앞에서 무기력하다.
은주씨는 엄마와 함께 비정규직의 설움을 종종 이야기한다. 은주씨가 일하는 매장 관리자는 정규직들에게 “파견직들이랑 같이 다니거나 밥을 먹지 말라”고 지시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달리 지각 세 번이면 월급 10만원이 깎인다. 엄마는 때가 덕지덕지 묻은 작업복 티셔츠를 물려받았을 때 가장 서러웠다. 엄마와 딸은 각기 다른 장소에 있지만, 설움은 통한다. 은주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편의점 알바나 할까 생각 중이다.
<한겨레21>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미래의 희망’과 관련한 2가지 질문을 던졌다. 본인이 정규직 일자리에 취업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없다’는 응답(84.4%)이 ‘있다’(15.6%)를 압도적으로 눌렀다. 반면 자녀의 일자리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비정규직에 종사할 것 같다’는 응답이 65.9%로 많았으나, ‘나와는 달리 안정된 정규직에 종사할 것 같다’는 응답도 34.1%가 나왔다(표3 참조).
현장소장에서 꼬박꼬박 월급 받는 일로
자녀에 대한 기대 심리와 희망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비정규직들의 ‘희망’은 우리나라 평균적인 기대치보다는 낮은 것으로 보인다. 2013년 통계청의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일생 동안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본인 세대는 28.2%가 ‘높다’고, 자식 세대의 가능성에 대해선 39.9%가 ‘높다’고 응답했다. 스스로 자신의 계층이 하층이라고 생각할수록 긍정적인 응답률은 낮아진다.
3. 아빠, 엄마, 딸 ‘우리는 학교 비정규직’
소연(25·가명)씨와 아빠, 엄마는 ‘학교 비정규직’(학비) 가족이다. 집 근처인 경기도 양평에 있는 학교에서 가족 셋이 차례차례 비정규직으로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지난 2월28일 소연씨 가족을 만났다.
‘학비’ 1호는 엄마(53)였다. 엄마는 소연씨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 2004년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했다. 1년 단위 계약직이었고, 급여는 40만원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는 사회복지사 자격증 공부를 하겠다며 석 달 만에 일을 그만뒀다. 두 번째로 아빠 이태의(53)씨가 중학교 시설관리직으로 취업했다. 기계·전기 비품 관리를 맡았다. 건축회사 현장소장을 전전하느라 돈벌이가 일정치 않았던 아빠에게 “꼬박꼬박 월급 받는 일을 하라”고 등 떠민 건 엄마였다. 아빠는 2011년부터 잠시 학교를 떠나, 학교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원직본부장으로 일한다. 전문대 음향제작과를 나온 소연씨는 2011년 인턴 교사로 처음 학교에 발을 디뎠다. 지금은 초등학교 행정실무사로 회계·민원 업무를 맡고 있다. 아빠와 딸은 그래도 운이 좋은 경우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돼, 적어도 고용불안을 느끼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급 144만원에 몇 가지 수당이 붙는 급여 체계는 계약직이나 무기계약직이나 매한가지다.
아빠는 “학교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의 준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기계약직은 학교 직제표상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승진이나 상여금 같은 혜택도 전혀 없다. 소연씨가 일하는 학교는 이번에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지만, 성과급은 정규직만 챙겨갔다. 소연씨는 5년 뒤쯤이면 자기보다 어린 행정실장님을 모셔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비정규직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업무능력에 따른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구조다. 엄마는 딸이 비정규직이 된 게 혹시 내 탓은 아닐까 싶다. “내가 고졸이 아니라 좀더 나은 조건의 부모였다면 좀더 괜찮은 직업의 세계로 딸을 안내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면 속상해요. 내가 배운 게 없고, 내가 가진 게 없어 부모로서 부족한 건 아닐까 싶어서요.”
알바하는 대학생? 공부하는 노동자
아빠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10년 일해도 학교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임금 수준이 47%밖에 안 된다. 자녀 교육비를 대주는 부모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도 딸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전혀 기여를 못했다.” 여기까지는 현실이다. 아빠는 딸에게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학교 비정규직 일자리를 조금이라도 안정적으로 만들고 임금을 높이고 차별을 없애는 게, 결국 딸내미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만들고 그동안 못했던 부모 노릇도 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비정규직 부모에게 미안해하는 자녀도 있다. 박민지(23·가명)씨는 이른바 ‘알바하는 대학생’이 아니라 ‘공부하는 노동자’에 가깝다. 대학 입학 뒤 커피숍 알바, 학교 인턴 등으로 월 80만원씩을 부지런히 벌었다. 많이 번다고 생각하지만 월세 40만원, 각종 공과금 20만원 등을 내고 나면 생활비 20만원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점심은 주먹밥으로 때우거나 친구한테 얻어먹기 일쑤다. 취업 유예 상태인 민지씨는 엄마(49)의 비정규 노동에 빚지고 있다. 엄마는 1년간 돈 걱정하지 말고 취업 준비만 하라며 지난해부터 월 76만원을 민지씨에게 보내준다. 엄마가 대형마트 아동복 매장에서 하루 6시간씩 일해 번 돈이다. 일용직 운수노동자인 아빠(52)가 버는 돈은 사업 실패로 인한 대출금 이자를 갚는 데 고스란히 들어간다.
아빠는 “학교 무기계약직은 ‘무기한 비정규직’의 준말”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기계약직은 학교 직제표상에도 없다. 그러다보니 승진이나 상여금 같은 혜택도 전혀 없다. 소연씨가 일하는 학교는 이번에 우수학교 표창을 받았지만, 성과급은 정규직만 챙겨갔다.
‘학교 비정규직’ 가족인 이태의(왼쪽)씨와 아내, 딸이 주말 밤거리에 데이트를 나왔다. 이씨는 학교 시설관리직으로, 딸은 학교 행정실무사로 근무 중이다. 사진 류우종 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이른바 서울 명문대에 다니는 민지씨는 “물에 빠진 엄마·아빠가 나만 살라고 물 위로 있는 힘껏 밀어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서글프다. 2011년 교양수업 조발표 시간에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라서다. 같이 수업을 듣는 선배가 ‘인턴제도의 허와 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했다. ‘아빠가 대형 로펌 고위직이라서 다른 로펌 인턴으로 방학 동안 일했다. 나처럼 소개로 들어온 인턴이 많았다. 우리는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토익 공부하고, 하는 일 없이 인턴 월급을 받았다. 인턴제도를 이렇게 운영해도 되는 건가?’ 민지씨는 “부모 ‘빽’ 없는 내가 아무리 비정규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소용없겠구나” 생각했다. 요즘은 대학 입학까지의 교육과정은 물론 대학 시절 사교육을 통해서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들에게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낸다. 이런 불평등 구조 아래서 비정규직의 자녀들이 더 많은 임금을 받거나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에 올라설 만한 ‘인적 자본’, 이른바 ‘스펙’을 쌓기란 쉽지 않다.
아빠 직장 로펌에서 인턴 하는 친구
그래도 장미숙씨의 딸 유정씨는 민지 언니의 상대적 박탈감조차 부러울 것이다. 유정씨도 실은 오빠처럼 대학에 가고 싶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은 땄지만, 대학은 자신이 없다. “오빠는 학원도 안 다니고 대학에 갔어요. 오빠랑 달라서 저는 머리가 나빠 독학이 안 돼요. 학원 갈 돈은 없고. 근데 스물두 살에 대학은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내내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말하던 유정씨의 눈이 처음으로 반짝 빛났다.
'가난 증명하라'는 가정통신문 부모 마음 안다면 이럴 순 없다 312 오마이뉴스
[아이들은 나의 스승 33] 경남 '무상급식' 중단... 밥값 빼서 사교육비 지원?
"제 밥값 빼서, 얘 문제집 사주겠다는 거잖아요?"
아침 신문에 난 '경상남도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 광고를 본 한 아이의 뜨끔한 비유다. 지난 11일의 일이었다. 홍준표 경상남도지사는 어느덧 당연한 권리로 여겨졌던 '무상급식'에 몽니를 부리더니 '전국 최초'로 아이들 밥그릇을 뒤엎을 모양이다. 부자들의 밥값으로 가난한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사주고 학원비를 대주겠다며 되레 생색을 내고 있다.
"홍준표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은 무상급식 중단 명분" 기사에 따르면, 경남도는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총 643억 원)을 들여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지원 대상사업은 서민자녀의 학력향상과 교육경비 지원을 위한 바우처사업, 맞춤형 교육지원사업, 교육여건 개선사업 등이다. 지원대상자 범위는 소득인정액 기준 최저생계비 250% 이하(4인 가구 기준, 월 실제 소득이 250만 원 정도) 가정의 초중고생 자녀라고 경남도는 밝혔다.
물론, 지원을 받으려면 자신의 가난을 증명해야 한다. 소득, 재산, 금융재산, 심지어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의 가액을 증빙하는 서류를 들고 3주 이내에 거주지 읍면동 사무소를 찾아가야 한다. 말이 좋아 '교육지원'이고 '동등한 교육기회 제공'이지 '사교육비 구걸'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그렇게 하면 그들의 호언대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밥그릇 뒤엎은 홍준표, 이럴 순 없다
▲ 경남도는 도비 257억 원과 시군비 386억 원(총 643억 원)을 들여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 진주시청
짝퉁 브랜드 패딩 입었다고 친구들이 놀릴까 봐 추운 날 얇디얇은 점퍼 차림으로 등교해 본 경험이 있다면 알 텐데... 브랜드 운동화 신고 싶어서 멀쩡한 운동화를 칼로 찢으며 투정부려봤다면 다 알 수 있을 텐데... 급식비를 지원받으려고 '가난을 증명해 달라'는 가정통신문 항목을 빠짐없이 기록해 아이 손에 들려 보내야 했던 부모 마음을 헤아렸다면 이럴 순 없다.
무상급식이 없어지면 급식 지원을 받기 위해 학교에서 한 번, 사교육비를 지원 받기 위해 읍면동 사무소에 또 한 번,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설움을 아이들과 그 부모들더러 감수하라고 떠미는 형국이다. 그것도 '교육복지'라는 이름으로. 정작 가난한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배려도, 사회적 합의도 없이 추진되고 있는 '서민자녀 교육지원'은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일까.
미리 염두에 둘 게 있다. '무상급식'이 중단되면 가장 고통 받을 사람이 누굴까. 밥값을 내야 하는 부자들일까. 그들에게 밥값 정도는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이다. 혹여 '줬다 뺏어' 불쾌할지언정 사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작 느닷없는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건, '공짜 밥을 먹고 있다'는 걸 친구와 선생님들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내야 하는 가난한 아이들과 그들의 '무능한' 부모들이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눈칫밥' 먹이지 않는 게 최고의 교육복지라는 걸 정녕 모르는 걸까. 그들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교 성적, 직업, 건강, 나아가 수명까지 좌지우지하는 뒤틀린 현실에는 눈을 감은 채 교육의 본령을 외면하고 있다. 명색이 의무교육이라면 수업료나 교과서 대금보다 밥부터 무상으로 제공해야 옳다. 그것이야말로 '경제적 제약 없이' 균등하게 교육 받을 권리 아니겠는가.
아이의 말마따나, 가난을 '증명한' 아이들이 부자 친구들이 낸 밥값으로 내준 책값과 학원비를 고마워하며 과연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될까.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는 소리다. 외려 생채기 난 자존심에 반감만 커질 뿐이다. 부모의 경제력은 사교육비를 매개로 자녀의 학교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다. 그보단 가난으로 상처받은 자존감이 학교 성적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열등반 아이들에게 문제집 잔뜩 사주고 무료로 학원 뺑뺑이 돌리게 한다고 우등반이 될 것 같아요? 열등반 아이로 낙인 찍히는 순간, 그것으로 그들의 '운명'은 끝이에요. 성적 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거죠. 친구들은 이렇게 말해요. 우등반 내에서는 '성골'과 '진골'을 오갈지언정, 열등반에 속하는 순간 영원한 '6두품'이라고."
사교육비 지원을 교육 기회의 균등이라고 보는 인식 자체가 우스꽝스럽다며 그는 이렇게 교실 분위기를 전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그가 정의한 교육이란, 아이들의 자존감을 키워주는 일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라면, 교과서 하나만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학교생활도 원만하단다. 가난한 아이들을 보란 듯 낙인찍어놓고, 선심 쓰듯 학원비 몇 푼 쥐어주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부자들에게 세금 더 내라는 말은 못하면서..."
무릇 한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밥값 빼서 사교육비 대주는' 이런 좀스럽고 황당한 대책 말고, 사교육비가 창궐한 교육 현실을 바로잡을 공교육 정상화 방안을 보란 듯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하물며 한 교실에서 밥값 가지고 있는 집 아이와 없는 집 아이를 갈라 서로 눈치 보게 해서야 되겠는가.
끊임없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건 정치인으로서 본능에 가깝다. '무명'보다 '악명'이 낫다는 말은, 흔히 정치판의 불문율이라고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오랜 진통 끝에 사회적 합의를 이룬 '무상급식'을 흠집 내려는 건 번지수가 틀렸다. 가난한 이들의 가슴을 후벼 놓고는 교육지원 운운하며 당위성을 주장하는 건, 정치인으로서 대중의 관심 한 번 끌어보려는 '서민 코스프레'에 다름 아니다.
아이는 '무상급식'을 두고 '무차별적 부자 무상급식'으로 '번역'해 놓은 광고를 보고, 다분히 악의적이고 선동적이라고 분석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G20'에 속한 나라라고 으스대더니만,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아이들 밥값 빼서 지원 사업을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가 됐냐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그러면서 하루아침에 '무상급식' 중단 결정을 내린 홍준표 도지사와 경상남도 도민에게 건네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부자들 밥값 내라며, 애꿎게 가난한 아이들 '쪽팔리게' 하지 말고, 차라리 그들의 밥값만큼 세금을 더 내게 하면 되잖아요. 부자들에게 세금 더 내라는 이야기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아이들 밥값 가지고 복지네 뭐네 하며 호들갑 떠는 모습이 너무 '찌질하게' 느껴져요. 우리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저런 사람에게 한 표도 안 줄 텐데. 어른들이란 참 이상해요.“
독일 15세 소녀의 일침... 한국 중학생이 보면 열받겠죠? 310 오마이뉴스
[창간 15주년 기획-세계 속 15세④] 평범한 열다섯 살 독일소녀 프라피아의 일주일
▲ 부의 불평등, 배움의 불평등 -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오랜 시간 동안 학교를 다니고 끝내 졸업한 후에 돌아오는 것은 빚더미인 사회. 대한민국에서 가장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꼽으라면 바로 교육문제일 것입니다. 대체 해답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 권은비
누군가 저에게 '인생에서 가장 혼돈스러웠던 시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중2 때"라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이른바 '중2병'에 혹독하게 시달렸던 때,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옷은 교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때, 더 이상 어린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참 애매했던 때, 어른들의 사회를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때, 그래서 때론 정체모를 우울감에 허우적거렸던 나이 열다섯 살.
제가 열다섯 살이었을 때 그랬듯 지금 한국의 열다섯 살들도 그럴까요? 그렇다면 독일의 청소년은 어떨까요? 일단 독일의 복잡한 학제 시스템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복잡해서 이해를 위해 표를 그려보았습니다. 복잡해 보이는 표만 봐도 알 수 있듯, 독일 교육과정은 다양한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게다가 독일의 각 연방주별로 교육시스템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모두 설명하려면 적어도 30분 이상은 필요할 듯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독일의 그룬트슐레의 4년 동안 담임교사가 학생들의 학업능력과 적성을 바탕으로 어느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지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학업수행능력이 높은 약 30~40%정도가 김나지움에 진학할 수 있고 그 외에 레알슐레-하웁트슐레 순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 독일의 학제 ⓒ 권은비
한국으로 따지면 10살, 즉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향후 진로가 결정된다는 것이지요. 레알슐레 또는 하웁트슐레에 진학하게 될 경우 학생의 적성별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직업학교에 가게 된다면 은행이나 공무원이 될 수도 있고 이른바 마이스터(Meister, 장인)가 되기 위한 길을 걷게 됩니다.
한편 레알슐레, 하웁트슐레에 진학하더라도 학생의 능력에 따라 김나지움으로 옮기거나 아비투어(Abitur 김나지움졸업시험)를 응시할 수 있습니다. 아비투어는 한국으로 따지면 수능시험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각 연방주별로 시험유형이 다를 수도 있고 학교별로 교장과 교사에게 시험에 대한 권한을 주기 때문에 한국의 수능과는 많이 다릅니다.
또 아비투어는 객관식보다는 학교에서 기존에 정기적으로 치르는 시험과 비슷한 형태인 주관식과 구술시험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시험 결과에 따라 상응하는 대학에 진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독일 학생들의 대학진학률은 40%대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학진학률이 높은 한국과 비교해봤을 때 좀 다른 모습입니다.
교육시스템은 복잡하지만, 학교생활은 '평온'
▲ 프라피아는 학교에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라면서 나를 학생식당으로 안내했다. ⓒ 권은비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복잡한 독일 학교 시스템에서 공부하고 있는 독일 학생들의 일상은 어떨까요? 10살 때부터 진로가 정해지는 시스템이니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 노출돼 더욱 치열하게 살고 있지는 않을까요?
베를린에서 태어나,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열다섯 살 평범한 독일 소녀처럼 보이는 프라피아(Flavia Dittrich)를 그녀의 학교에서 만났습니다.
- 간단하게 자기소개 해줄래요?
"제 이름은 프라피아 디트리히이고요. 베를린에서 태어났고 엄마, 아빠, 여동생, 그리고 앵무새 두 마리랑 살고 있어요. 엄마는 독일 사람이고 아빠는 스위스 사람이에요. 현재 하인리히 슐리만 김나지움(Heinrich-Schliemann-Gymnasium)에 다니고 있어요."
- 지금 다니고 있는 김나지움 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하하, 우리 학교 처음 와보시죠? 비록 우리 학교가 보기에는 좀 삭막하지만 저는 이 학교가 마음에 들어요.(실제로 하인리히 슐리만 김나지움은 다소 투박한 빨간 벽돌 건물에 실내는 어두컴컴하고 여기저기에 노후의 흔적이 보여 당황스러웠다. - 기자 말)
우리 학교 이름이기도 한 '하인리히 슐리만'은 탐험가였어요. 그는 다양한 언어를 섭렵했는데 그래서인지 우리 학교는 외국어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학교에서 고대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 라틴어, 러시아어, 스페인어를 배워요. 물론 학생마다 배우고 싶은 언어를 선택할 수 있어요. 저는 고대그리스어가 특히 재밌어요. 아, 참고로 재작년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와서 역사수업을 했어요. 그때 메르켈 총리는 독일 분단에서부터 통일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가르쳐줬어요."
"학원이 뭐죠? 학교 끝난 뒤 왜 같은 과목을 배우죠?"
-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나 싫어하는 과목이 있나요?
"외국어수업은 늘 재밌어요. 다양한 언어의 어휘와 문법을 배우는 것도 재밌어요. 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수업은 미술이에요. 무언가를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멋지지 않아요?
또 싫기보단 재미가 없는 수업은 자연과학수업들이에요. 화학, 생물, 물리를 일주일에 총 6교시(1교시 : 45분 수업)나 배우거든요. 그 외에 역사, 지리, 윤리, 체육, 국어, 수학, 음악을 배워요. 그중에 중요한 수업은 국어, 수학, 영어, 라틴어고요. 하지만 역사수업도 중요하죠. 독일 학교는 늘 역사, 역사하잖아요."
- 학원을 다닌다거나 과외를 받진 않나요?
"학원이 뭐죠?(독일어에는 '학원'의 뜻을 가진 명사가 없다. 오직 '학교'라는 뜻의 슐레(Schule)만 존재한다. - 기자말) 학교가 끝난 뒤에 왜 또 같은 과목을 배우러 다른 학교를 가죠? (실제로 프라피아에게 '학원'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 기자 말)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자유 시간을 가져야죠. 뇌도 좀 쉬고 자유롭게 해줘야 다시 공부할 때 좋지 않을까요. 우리 반에 학생이 총 25명인데 과외를 받는 애들은 한두 명밖에 되지 않아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돼 독일어가 서툴러서 과외를 받는 경우예요."
▲ 생각보다 낡은 분위기의 학교 모습에 내심 놀랐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수다소리가 들려왔다. ⓒ 권은비
- 예습을 하기도 하나요?
"예습이요?(이 질문을 하고 난 후에 '아차' 싶었다. 말하고 난 뒤에야 어리석은 질문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습은 또 뭐예요? 하하~ 수업이 끝난 후에 선생님께서 다음시간까지 읽어오라고 하거나 조사를 해오라고 하는 경우는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숙제의 개념이죠."
- 학교성적으로 인한 부담이나 스트레스는 없나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스트레스라고 할 것은 거의 없어요. 하루 종일 공부하는 것도 아닌 걸요. 학년이 올라가면 모르겠지만요. 물론 아비투어(김나지움 졸업시험)를 치를 땐 스트레스를 받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배워오고 시험 봐온 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크게 부담으로 느끼진 않아요. 주로 주관식으로 쓰거나 말하기 시험이니까요. 갑자기 공부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언론기사를 통해 가끔 한국 교육에 대해 들었어요. 학교가 끝난 후에도 계속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한국학생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나요?"
매주 한 번 토론모임... 테러, 인종차별 등에 대해 토론
- 학교 수업이 끝난 뒤에는 보통 뭘 하나요?
"요일마다 달라요. 요일마다 숙제와 끝나는 시간이 다르거든요. 월요일에는 오후 2시 30분에 수업이 끝나요. 학교 끝나자마자 하는 일 중 제일 중요한 건 밥 먹는 거예요. 하하하. 그 다음엔 대부분 1시간 동안 컴퓨터를 해요. 메일과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확인하죠. 음악도 듣고요.
그 다음에 숙제를 해요. 아무리 길어도 오후 5시 전에는 끝내요.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토론 모임이 있거든요. 교회에서 모이는데 예배를 보거나 종교적 행사를 하는 건 아니고 같이 밥을 먹고 공유하고 싶은 음악을 듣거나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을 해요. 이 시간은 늘 재밌어요."
- 그 모임에서는 어떤 주제로 토론하나요.
"다양한 것이요. 얼마 전에 있었던 프랑스 파리 테러 사건이라든지, 인종차별이라든지, 환경문제라든지요. 아, 전 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작년에 교환학생으로 이스라엘에 다녀왔었거든요. 그저 남의 나라의 민족 간 분쟁이 아니라 당장 나와도 관계될 수 있는 문제라는 걸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안 생각하게 됐어요."
- 다른 요일에는 방과 후에 뭘 하나요?
"화요일에는 학교가 끝난 후에 테니스를 치러 가요. 겨울에는 실내에서, 여름에는 야외에서. 저 테니스 잘 치거든요(수줍어하며 웃는다). 테니스 치는 건 정말 중요해요.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건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수요일에는 대부분 여가를 즐겨요. 친구들을 만나서 밥도 먹고, 요리도 하고 빵도 구워요. 하지만 모두 채식으로요. 전 채식주의자예요. 공장식 축산업은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해요.
또 수요일에는 가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사진촬영을 하러 가요. 사진들을 모아서 직접 앨범을 만들기도 하고요. 목요일에는 작은 오케스트라 모임에 나가요. 저는 플루트를 연주하죠. 또 금요일에는 춤추러 가요. 어른들처럼 클럽에 가는 건 아니고요. 모던댄스에 관심이 많아서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또 금요일에는 친구들과 도서관에 가서 영화나 책을 빌려서 보곤 해요. 또 커피숍에 가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요. 가끔 영화관도 가요. 그래도 금요일에는 친구들과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를 놓고 파티를 하는 게 제일 재밌죠."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수업했던 학교로 유명한 하인리히 슐리만 김나지움(Heinrich-Schliemann-Gymnasium)의 홈페이지에서는 다양한 학교 행사들과 수업내용들을 볼 수 있다. ⓒ 하인리히 슐리만 김나지움
- 주말에는 뭘 하나요?
"주말에는 가족들과 지내요. 그게 중요해요. 부모님도 항상 그렇게 이야기 하세요. 주말에는 베를린에서 열리는 여러 문화행사를 보러 가거나 친척집에 놀러가곤 해요. 제일 좋아하는 것은 프리마켓에 가는 거예요. 또 가끔 연극을 보러 가거나 전시를 보러 가요.
한 달에 한 번쯤 혹은 두 달에 한 번쯤은 친구들과 쇼핑을 가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것들은 반드시 가장 싼 물건들이어야 해요. 돈이 많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물건을 사기 전에 생산지나 생산과정을 알려고 노력해요. 부당한 임금과 노동환경에서 만들어진 물건들은 사고 싶지 않거든요."
- 부모님과는 주로 어떤 이야기를 하나요.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요. 아빠는 아빠의 회사생활과 일이 어떤지 자주 설명해줘요. 그리고 각자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곤 해요. 또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많이 이야기하고요. 엄마는 독일 사람이지만 아빠는 스위스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스위스에 대한 문화나 정치, 사회 이야기도 많이 해요. 독일과 스위스에 대해 비교를 많이 하곤 해요.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아요."
"제 꿈이 뭐냐고요? 평화로운 세상이요"
▲ 등하교길은 항상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프라피아가 인터뷰를 마치고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 권은비
- 꿈이 뭔가요?
"음... 평화로운 세상이요."
- 뭐라고요?(나는 장래희망을 물어보기 위해 이 질문을 했으나, 역시 예상치 못한 대답이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세계가 좀 더 평화로웠으면 좋겠어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전쟁을 일으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에요. 인종차별과 성차별도 마찬가지이고요. 우리는 이미 많은 차별을 일상 속에서 발견할 수 있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아요."
- 그럼 10년 뒤에는 무엇을 하고 싶나요.
"10년 뒤요? 모르겠어요.(웃음) 하지만 반드시 외국에 가보고 싶어요. 꽤 오랜 시간 동안요. 아직 어느 나라가 좋을지는 결정을 못했지만요.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게 재밌거든요. 그 외에는 모르겠어요. 공부가 재밌으면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을 수도 있겠죠."
'10년 뒤에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하는 프라피아의 얼굴에선 불안이나 걱정 따위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대학에 가고 싶다거나,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 이것이 프라피아가 저에게 준 대답이었습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대답일지 모릅니다.
사실 프라피아가 공장형 축산에 반대해서 채식을 하고, 물건을 사기 전에는 생산과정을 알아보려 하고, 자신의 꿈은 이른바 '세계평화'라고 말할 때, 저는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예상했던 대답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대답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가 15세가 맞나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프라피아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말투, 수줍은 미소는 영락없는 열다섯 살 소녀 그 자체였습니다.
한국에선 모범적인 교육시스템 중 하나로 독일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독일교육에서 무엇이 가장 좋으냐고 묻는다면... 저는 한 독일친구가 제게 한 이야기를 그 대답 대신 말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중요해. 머리가 똑똑한 것이 나무로 의자를 잘 만든다거나 기계를 잘 고친다는 것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다른 것뿐이잖아. 모든 아이들이 공부를 잘한다면 그만큼 따분한 세상이 어디 있겠어."
독일 청소년들 앞에 열린 다양한 진로
물론 독일 매스컴들도 독일학교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많이 합니다. 독일의 교육제도도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많이 변해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날이 갈수록 학교 내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하고, 이주 2세들의 학업성취도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켠에서는 직업학교와 마이스터제도에 대한 회의적인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독일학교 시스템도 시대가 지남에 따라 변화되고 있고 이러한 흐름으로 인해 김나지움과 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추세기도 합니다.
독일이 한국만큼 대학입시경쟁에 대해 민감해 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대학 진학'이라는 단일하고 획일적인 길이 아닌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적어도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그리고 직업학교 혹은 대학을 다니는 동안만큼은 누구나 차별 없이 마음껏 공부를 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해볼 수 있도록 국가가 보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만났던 프라피아처럼 학교가 끝나면 운동을 하거나, 춤을 추거나, 친구들과 노는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 대한민국의 열다섯 살에게도 허락될 수 있을까요? 희망대학이나 희망직업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아이들에게도 가능할까요?
‘요섹남’은 뜨는데 요리사는 전업해요 3.13 시사인
‘요리하는 남자’는 요즘 대중문화계의 핫 트렌드다. ‘요리 잘하는 연예인’과 잘생기고 말 잘하는 요리사’가 인기다. 요리가 대세가 된 시대, 현직 요리사들은 이를 어떻게 볼까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의 시대에서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의 시대로 대세가 바뀌었다. 탁월한 요리 실력으로 ‘차줌마’라 불리는 차승원이 출연하는 tvN <삼시세끼-어촌편>의 시청률은 13% 안팎을 기록하며 케이블TV 시청률 상위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여성 시청자들에게 인기다.
‘요리 잘하는 연예인’뿐 아니라 ‘말 잘하는 요리사’도 인기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와 올리브TV <오늘 뭐 먹지?> 등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최현석·오세득 셰프 등이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유명 셰프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광고에 나오면서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니 ‘셰프돌(셰프+아이돌)’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정우·윤후·이국주 등 음식을 맛있게 먹는 ‘먹방 스타’가 인기 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쿡방 스타’가 인기 있는 시대다. 요리 대결로 우승자를 가리는 <마스터 셰프 코리아>와 전통 식당이 대결하는 <한식대전>이 시즌제로 제작되는 등 요리 프로그램은 예능의 대세 장르가 되었다. <누들로드>와 <요리인류>를 제작한 KBS 이욱정 PD는 4월부터 방영하는 <요리인류 키친>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진행할 예정이다.
ⓒTvN <삼시세끼> 화면 갈무리 -배우 차승원은 <삼시세끼-어촌편>에서 탁월한 요리 실력을 선보여 ‘차줌마’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요리가 대세가 된 시대에 대해 현직 요리사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요리사 2000명 이상이 속한 국내 최대의 요리사 커뮤니티 ‘븟’의 운영자 배세훈 셰프와 오스트레일리아 아들레이드 대학에서 미식학을 전공하고 뉴욕과 런던 등지의 레스토랑에서 일한 김진경 셰프, 그리고 ‘김치버스’를 끌고 전 세계 40여 나라를 돌며 ‘음식 한류’를 전파한 류시형 셰프가 이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시세끼-어촌편>에 출연하는 차승원의 요리 솜씨를 어떻게 보는가?
-배세훈(배):촬영 전에 공부를 하고 오는 것 같다. 하지만 기본기도 탄탄하다. 정말 ‘쓸데없이’ 요리를 잘한다. 특히 빵 만드는 걸 보고 놀랐다. 빵은 반죽의 숙성과 발효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오븐의 특성과 역할도 알아야 한다. 그걸 대충 눈대중으로 만들어내는 걸 보고 놀랐다.
-류시형(류):<삼시세끼>가 요리 프로그램이란 말도 나온다. 요리를 제대로 한다. 빵은 정말 놀라웠다. 나라면 과연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과제빵은 계량의 세계다. 정확한 계량이 중요하다. 요리는 대충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제과제빵은 조금만 틀려도 망치게 된다. 그런데 완성물이 정말 예쁘게 나왔다.
-김진경(김):평소에도 요리를 했지만 특별히 더 준비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준비만으로 풀 수 있는 숙제가 아니다. 척척 풀어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요리를 그만둬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차승원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리사로서 특별히 주목한 대목이 있다면.
-류:일반인은 ‘칼질을 잘하나’ 이런 걸 보는데 우리는 칼을 쓰고 난 뒤 어디에 놓는가를 본다. 칼을 놓을 때 사람들이 움직이면서 건드리지 않게 놓는지, 설거지통에 넣을 때 다치지 않게 따로 넣는지 따위를 본다. 그런 기본적인 부분까지 잘 숙지하고 있었다.
-김:맘에 안 드는 건 설거지 양이 엄청나게 나온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음식을 만들 때 설거지 양도 고려하면서 만든다. 셰프가 설거지 걱정 없이 편하게 만드는 건 보조 요리사가 치워주기 때문인데, 그런 모습이 연상되었다.
-배:가끔 저기에 저걸 넣으면 안 되는데, 저럴 때는 이런 걸 넣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했지만 대체로 결과물을 잘 만들어냈다. 결과를 컨트롤하는 것은 타고난 것이지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웠거나 아니면 평생 요리를 한 사람이나 가능한 일이다. 준비를 했겠지만 완성도가 있으니 돋보인다. <삼시세끼-정선편>과 비교해서 준비한 티가 많이 났다.
ⓒ시사IN 조남진-일반인들이 차승원을 볼 때, 요리사는 차승원이 칼을 쓰고 나서 어디에 놓는가를 본다. ‘요리남 열풍’ 대담을 위해 모인 배세훈·김진경·류시형 셰프(왼쪽부터).
정선편이 ‘자연산’이라면 어촌편은 ‘양식’이라는 말인가? 사실 제작진은 차승원의 요리 솜씨가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전작을 통해서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이 격려해준다’는 흥행 공식이 만들어졌는데 이에 어긋나서 난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역으로 이번에는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이 흥행 공식이 되었다.
-류:어떤 요리사라도 차승원보다는 잘한다. 최소한 자기의 전공 요리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어떤 요리사도 차승원만큼 열악한 상황에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요즘처럼 요리사가 전문화·세분화된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것은 요리사가 아니라 어머니의 몫이다.
-배:요리사라면 재료를 던져주면 뭐든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요리사의 기본 덕목은 재료를 손질해서 음식을 만들기까지 그 과정을 두루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식이든 양식이든 서로 다른 음식을 하더라도 최고의 단계에 이르면 결국 만나게 된다. 재료를 사람이 먹기 좋게 가공한다는 요리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MBC <결혼할까요?>에서 알렉스가 보여준 요리와 차승원의 요리는 다른 것 같다. 알렉스의 요리는 한 끼를 근사하게 대접하는 연애형 요리인 데 비해 차승원의 요리는 무리의 삼시세끼를 책임지는 생존형 요리다.
-김:알렉스한테는 밥 한 끼 얻어먹고 끝날 것 같지만, 차승원에게는 계속 얻어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차승원식 요리가 더 맘에 든다. 알렉스 이후 연예인들이 너무 보여주기 위한 요리를 했다. 방송에서 하는 요리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는 것이 티가 났다. 차승원은 반대다. 일상에서 뚝딱뚝딱 만들 수 있는 음식을 몸에 밴 방식대로 만들었다.
-류:‘차줌마’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그램에서 ‘안사람’ 노릇을 해서 아주머니들이 감정이입과 몰입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끼 밥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 처지에서 공감의 여지가 컸을 것이다.
집에서는 여성이 주로 요리를 하는데 레스토랑에는 여성 셰프가 상대적으로 드물다.
-김:이상하게 요리 프로그램에 여성이 나오면 자막에 ‘요리사’가 아니라 ‘요리 연구가’라고 나온다. 왜 여성이 요리를 하면 요리가 아니라 요리 연구가 되는지 모르겠다. 사실 여성이 요리사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체력과 체격의 문제다. 지구력이 좋고 힘도 세야 한다. 주방에서는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천장에 올려두는 것이 많다. 키가 작으면 꺼내 쓰는 것도 힘들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여성 셰프가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다. 남자는 욱하는 성질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많아 조화를 잘 이루는 여성을 선호하기도 한다. 베지테리언(채식주의자), 비건(육류는 물론 유제품도 안 먹는 사람), 마크로 바이오틱(음식을 뿌리나 껍질까지 통째로 먹는 것)으로 섬세하게 나눠서 요리하는 것도 여성 셰프가 잘하는 부분이다.
요리사들이 집에서는 요리를 잘 안 한다고 하는데 실제 그런가? 그렇다면 이유도 궁금하다.
-배:집안 행사가 있을 때만 좀 한다. 셰프들이 그런 말을 한다. 집에서는 음식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간 보는 것도 싫다고. 업장에서 하루 종일 간을 보는데 집에 들어가자마자 입에 들이대고 간을 봐달라고 하면 정말 싫다는 거다.
-류:업장에서 요리하는 것이랑 집에서 하는 것이 많이 다르다. 팬도 다르고 화력도 다르고 공간도 다르다. 하던 곳이 아니라서 불편하다. 쓰고 싶은 조리도구나 재료가 없으니 내가 원하는 맛도 안 나온다. 결과물이 실망스러울 수 있기 때문에 안 하기도 한다.
ⓒ올리브TV 제공<마스터 셰프 코리아>(위)는 요리 경연으로 우승자를 가리는 ‘대결 구도’가 강한 요리 프로그램이다.
차승원뿐 아니라 현직 요리사들도 방송에서 각광받는다. 요리사로서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보나?
-류:조리학과를 졸업했는데 동기생끼리 그런 얘기를 한다. 요리하는 남자가 멋있는 것이지 요리사가 멋있는 게 아니다. 차승원이 요리를 하니까 사람들이 멋있게 봐주는 것이지, 요리사가 요리를 했다면 그냥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변호사가 요리를 하고 연예인이 요리를 하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요리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요리사를 좋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김:요리사도 ‘요리하는 남자’로 승격하는 경우가 있다. 잘생겼을 때다. 주변에 방송하는 요리사가 많은데 대부분 외모가 좋다. 음식은 잘 모르겠지만.
MBC <라디오 스타>에 요리사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연예인 아닌 사람이 나오는 경우가 드문 프로그램이다. 요리사의 대중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배:외국에서는 10년 정도 된 현상이다. 똑같이 따라가고 있다. 음식 문화 수준은 따라가지 못하는데 이런 것은 빨리 따라간다. 몇 년 전부터 방송에서 요리사들이 메인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이제는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도 요리사를 초대해 요리를 만든다.
-김: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 한 유명 셰프가 그런 말을 하더라. 어린 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스타 셰프’가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 요리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명해지는 방법을 물어본 것이었다. 요리를 유명해지기 위한 도구로 보는 것 같다.
-류:연예인이나 방송사 PD가 요리사가 되거나 ‘요리하는 남자’가 요리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작 요리사들은 요리사가 아닌 다른 직종으로 전업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식품 유통 관련 기업에 취직한다. 자기 레스토랑을 차릴 정도의 여유가 없으면 박봉과 열악한 근무 환경에 시달리다 전업한다.
요즘은 연예인들마저 더 유명해지는 길로 요리를 택하는 것 같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요리사들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 같고. 일반 음식점이나 주점에서도 주방을 노출해 요리를 퍼포먼스화하는 추세다.
-배:요리사는 기본적으로 허세를 가지고 있다. 우리 레스토랑이 다른 레스토랑보다 맛있다고 생각하며, 내가 다른 요리사보다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을 통해 항상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처지라 음식 안에 허세가 깔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드러내고 안 드러내고는 성향의 차이다.
-김:음식에도 허세가 있다. 보여주는 부분이 너무 과장된다. 백화점에 가서 보면 80%는 디저트와 관련된 제과제빵류다.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찍어서 인증하는 행위가 일반화되었는데 디저트는 스타일링이 각양각색이라 찍어 올리기 좋은 음식이다. 전반적으로 외국 디저트 가게에 비해 국내 제품의 가격이 너무 높다. 뉴욕의 일반 스트리트 브랜드가 한국에서는 고급 브랜드로 둔갑한다.
음식 프로그램이 많아지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아쉬움이 많다. <한국인의 밥상> <한식대첩>을 관심 있게 봤는데 처음에 의도했던 바가 변질됐다. <한국인의 밥상>은 방영 주기가 너무 빨라서 충실한 내용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식대첩>은 단순 예능에 지나지 않는다. <수요미식회>는 이보다 더 단순하고 1차원적일 수 없겠다 싶을 만큼 조악하게 만든다. 밑도 끝도 없이 맛있다는 말만 나온다. 패널들이 얼마나 맛집을 두루 다녔는지 나열할 뿐이다. 맛있는 집이면 멀리 있어도 찾아가는 것은 미식이 아니라 ‘탐식’이다.
ⓒJTBC 제공-JTBC <냉장고를 부탁해>(위)는 여러 요리 전문가들이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을 선보인다.
외국 음식 프로그램도 많이 볼 텐데, 우리와 다른 점이 뭔가?
-김:우리는 연예인이 나오고 그다음에 요리사가 나온다. 예능이 주이고 요리는 부속이다. 외국은 요리사들이 주가 되어 음식에 대해 얘기하는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류:외국 음식 프로그램은 호흡이 상당히 빠르다. 한국은 그 안에서 구구절절 스토리를 펼치려고 하는데,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
-배:외국에서 잘된 프로그램을 들여오긴 하는데, 우리 색깔을 잘 입히지 못하고 베끼기 바쁜 것 같다. 외국에는 텔레비전용 스타 셰프가 있고 TV에 출연하지 않는 일류 셰프가 있다. 자기들만의 리그가 있다.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철학이 있는 셰프, 재료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셰프, 건강을 중요시하는 셰프 등 다양한 셰프를 볼 수 있다.
요리사들은 어떤 음식 프로그램을 좋아하나?
-김:대중은 <한식대첩>과 같은 대립 구도의 프로그램을 재미있어 하지만 요리사들은 더 좋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강레오가 봉고차를 타고 전국을 돌면서 그 지역 재료를 사다가 요리하는 프로그램이 좋았다. 한국의 음식 재료와 외국의 조리법을 접목하는 시도가 흥미로웠다.
-류:한국의 식재료를 찾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나도 1박2일 여행 가서 현지 식재료로 요리하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재미도 있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는 셰프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류:같은 요리사라서 그런지 사실 좀 부정적으로 보게 된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는 심정으로. 왜 말이 저렇게 많지? 주방에서는 음식으로 얘기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고. 요리사가 TV에 많이 나올수록 요리사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는다. 샘이 많은 직업인 것 같다.
김:셰프가 심사위원으로 나와서 요리를 심사하며 마음에 안 든다고 음식을 뱉는 행위를 하는 건 좀 심하다. 서로 지켜야 할 선이 있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누가 누구를 심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한다.
-배:정말 중요한 얘기들은 해주지 않는다. 요리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주방에서 이런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해주거나 재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거나 그런 기본 사항을 말해줘야 하는데 재미있는 말만 하려고 한다. 방송 욕심에 다른 셰프의 음식을 자기가 개발한 음식인 것처럼 방송에서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요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정하게 된 셰프가 있다면?
-김:임지호씨를 <식사하셨어요?>에서 보았는데 인상적이었다. 요리사로서 진짜 중요한 것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배:한국 자연주의 요리의 최고봉이다.
나는 네가 오늘 인터넷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3.10 시사인
웹에서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가르는 새로운 척도로 떠올랐다.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가 전 세계 27억명에 이르면서 사이버 사찰 역시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 아파트에 사는 금융 전문가 데이비드 리버슨 씨(31)의 아침은 스마트폰으로 밤새 들어온 이메일을 체크하면서 시작된다. 뉴스를 확인하고 페이스북 지인의 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여자친구와 메신저로 비밀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가족에게 보낼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마존에서 쇼핑한다. 이집트에 사는 대학생 이브라힘 라메즈 씨(20)도 마찬가지다. 휴대전화를 항상 끼고 살면서 친구들과 채팅하고 구글로 검색하다가 잠자리에 들어서야 비로소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는다.
일상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27억명에 이른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이 우리 손바닥 안에 들어온 지도 오래다. 사람들은 삶의 소소한 이야기부터 가족의 대소사, 지인과의 교류, 비즈니스는 물론 때로는 아주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인터넷에서 나누곤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지난해 말 박근혜 대통령의 ‘대통령 모독’ 발언 이후 검찰이 온라인상 명예훼손에 대해 엄벌 방침을 내세우자 메신저 사찰 논란이 불같이 일었던 것도 ‘누군가 나를 지켜보지 않을까’ 하는 공포 탓이다. 이런 논란은 비단 한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전 세계 사이버 공간에서 비슷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시사IN 윤무영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 출신의 에드워드 스노든이 안보 당국의 무차별 개인정보 수집·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의 실태를 폭로하면서 논란은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됐다. 이 사건은 사이버 사찰이 독재 국가나 후진국이 아니라 선진 민주국가를 자임하는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웨이롄 빈니 전 미국 국가안보국 기술 주관은 독일 연방의원 감청사건 조사위원회에서 “미국 정보기구의 감청은 지구상에 있는 거의 모든 인터넷을 대상으로 한다”라고 증언해 충격을 주었다. 세계 인터넷 사용자 10명 가운데 9명이 미국 국가안보국의 감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표현의 자유’를 가장 많이 보장한다는 미국이 사실은 가장 감시를 많이 하는 나라였던 셈이다.
미국은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전화도 무차별 감청했다. 스노든의 폭로를 최초로 보도한 글렌 그린워드 전 <가디언> 기자가 만든 탐사보도 전문 매체 <인터셉트>는 최근 “NSA가 2012년 세계 통신사 가운데 70%를 감시했다”라고 보도했다. 985개 통신사 가운데 701곳이 NSA의 눈길 아래 있었다는 얘기다. 리비아나 중국, 이란 같은 적성국은 물론이고 우방국인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독일, 프랑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만 그럴까? 사이버 검열을 사회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대표 국가는 중국이다. 만리장성을 빗댄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광범위한 사이버 감시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문 뉴스 사이트 <보쉰(博訊)>에 따르면 ‘대정보(大情報·다칭바오)’라 불리는 감시 프로그램이다. 중국 공안부가 10년 전부터 예산만 1조 위안(약 178조원)가량을 투입해 극비리에 구축해왔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인터넷 데이터는 거의 모두 저장할 능력을 갖췄다. 중국 경찰은 공공장소에 설치된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경찰서 내 비디오 감시 통제 센터를 연결해 시민을 감시한다.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범위가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공안(경찰)은 영장 없이 언제든지 원하는 휴대전화를 감청할 수 있다.
테러가 빈발하는 신장위구르 지역은 물론이고 홍콩 ‘우산 시위’ 때도 중국 당국은 대정보 시스템을 십분 활용했다. 중국은 시위가 벌어지자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웨이보(중국판 트위터)·웨이신(중국판 카카오톡) 등을 모조리 검열했고, <뉴욕 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블룸버그> 등 중국 밖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주요 외신의 인터넷 사이트도 차단했다.
ⓒ시사IN 이명익-중국은 홍콩 ‘우산 시위’(위) 당시 ‘대정보’를 활용해 주요 SNS를 검열하고 외신 사이트도 차단했다.
블로그 방문객 3000명 넘어? 정부에 등록해!
러시아도 인터넷 통제와 감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의 사이버 검열은 옛 소련의 발칸 통제에 빗대 ‘인터넷의 발칸화(balkaniza-tion)’라고 불린다. 러시아의 사이버 감시 통제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서방과 갈등을 빚으며 더욱 심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외국 인터넷 기업들이 러시아인들의 개인정보를 러시아 내에만 저장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에 따르면 현재 러시아에서 영업하는 트위터·페이스북·부킹닷컴 같은 외국 기업은 러시아인의 개인정보 저장을 위한 별도의 서버를 반드시 러시아 안에 구축해야 한다.
원래 이 법은 2016년 9월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지만 일부 의원들이 시행 일자를 2015년 1월부터로 당기려 하면서 상황이 급박해졌다. 이 때문에 러시아 내 외국 인터넷 기업들이 초비상이다. 외국 기업들이 당장 러시아에 별도의 서버를 구축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러시아 회사의 서버를 빌리면 문제 될 게 없다며 이 법을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정부는 이 법이 미국의 감시 등 외부 위협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실은 자국 시민들의 인터넷 활동을 감시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서버가 국내에 있어야 러시아 당국이 이들 정보에 접근하고 통제하기 쉬워서다.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유명 블로그의 정부 기관 등록을 의무화하는 ‘블로그법’을 시행 중이다. 이 법에 따르면 하루 3000명 이상이 드나드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는 정부 산하 ‘통신·정보기술·매스컴 감독청’에 자신의 블로그를 등록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의 무료 인터넷 서비스 접속을 제한하는 조치도 총리령으로 발효했다. 무료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인터넷 사용자의 신원을 확인한 뒤 접속을 허용하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인터넷 감시에 열을 올리는 나라들은 하나같이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다. 미국에서 국가안보국이 광범위한 시민 감시를 시도한 것은 9·11 이후다. 중국은 신장위구르 독립 세력의 테러 계획을 적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영국·프랑스·독일 등은 최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이 되기 위해 시리아로 향하는 젊은이들을 막아야 한다며 SNS나 이메일을 뒤진다.
ⓒAP Photo-스노든의 폭로 이후 도·감청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2013년 10월 워싱턴 DC에서 시위 중인 시민들.
그러나 이들 국가의 감시 대상은 테러 요주의 인물이 아닌 불특정 다수임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워싱턴 포스트>는 “에드워드 스노든이 제공한 ‘NSA 수집 이메일 및 온라인 기록’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90%가 당초 도청 대상자가 아닌 점이 확인됐다”라고 보도했다.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에 한해서만 정보를 수집했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발표와 상반되는 내용이다. 중국의 대정보 시스템은 관련 법규가 없는 상태에서 단지 ‘업무상 필요’라는 모호한 이유로 활용된다. 주로 재개발에 항의하는 철거민 같은 불만 세력이나 언론이 감시 대상이다. 러시아는 군사적 대치 상황이나 대규모 시위 같은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외부 인터넷을 차단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인권단체인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의 히나 샴시 국장은 “미국 정부는 증거도 없이 미래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린 뒤, 여기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에게는 스스로 위험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주었다”라고 성토했다. 사이버 공간에 국가 권력이 개입하면 할수록 인터넷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이 될 수 없다. 국가 권력이 사이버 공간을 감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에 맞서는 누리꾼의 반격 또한 거세지고 있다.
검열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줄다리기
지난해 국내 IT업계는 검열 논란이 확대될 경우 모바일 메신저 시장의 주도권을 아예 해외 업체에 내줄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정부 당국의 카카오톡 사찰 사례가 알려진 직후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이 한때 봇물을 이뤘기 때문이다. “검열하면 대안을 찾을 수도 있다”는 의지를 누리꾼들이 보여준 셈이다.
ⓒ연합뉴스-한국에서도 검열 논란이 불거지면서 보안이 강화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 열풍’이 불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VK를 설립한 니콜라이·파벨 두로프 형제가 2013년 개발했다. 2011년 러시아에서 부정선거 의혹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을 때 이들 형제는 당국의 감시를 받지 않는 어떤 소통 수단도 없음을 깨달았다. 두로프 형제는 유럽으로 건너가 러시아 정보 당국과 미국 국가안보국 등으로부터 감시당하지 않는 메신저를 만들었고 그것이 바로 보안에 최우선 가치를 둔 텔레그램이다. 지난해 20만 달러(약 2억원)의 상금을 걸고 해킹 콘테스트를 진행했는데, 우승자가 없었다.
중국에서도 누리꾼의 반격은 이어졌다. 2014년 9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마련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에 중국 당국은 대대적인 인터넷 검열을 통해 SNS인 ‘시나 웨이보’, 검색 엔진 ‘바이두’에서 시위 관련 내용을 일제히 삭제했다. 사진 공유 SNS인 인스타그램의 접속도 차단되었으며 인터넷 업체 텐센츠의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위챗(웨이신)의 메시지도 지워졌다.
그러자 홍콩 시위대 사이에서 당국이 차단하거나 검열할 수 없는 채팅 프로그램이 유행했다. 하루 만에 10만명이 오프라인 채팅 앱 ‘파이어챗’에 가입했다. 시위 첫날 밤 파이어챗 동시 접속자 수는 3만3000명에 달했다. 파이어챗은 인터넷에 연결돼 있지 않아도 이용자가 반경 70m 안에만 있으면 블루투스를 이용해 메시지를 주고받도록 한 채팅 앱이다. 시민들은 파이어챗을 이용해 중국 정부의 엄격한 인터넷 검열체제를 우회했고, 홍콩 시위 소식은 중국 본토로도 퍼져나갔다.
이처럼 파이어챗과 텔레그램을 만든 작지만 보안에 특화된 기업들은 인터넷 감시 시대에 승승장구한다. 하지만 구글·애플·페이스북 등 기존 글로벌 IT기업은 인터넷 감시 논란이 커지면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이용자 13억5000만명을 보유한 페이스북은 미국 10대들에게 점점 외면받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프랭크엔매지드 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13~17세 가운데 2014년 페이스북을 사용한 비율은 88%로, 2013년 조사 결과인 94%보다 줄었다. 또한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청소년 가운데 단 9%만이 페이스북을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사는 고교생 미셸 디이츠(17)는 “정부가 인터넷을 감시한다는 뉴스를 접하고 페이스북에 있는 내 정보를 모두 지웠다. 그들의 감시 목적은 테러 방지라지만, 내가 숨기고픈 남자친구를 정부가 알게 되는 것은 절대 반대다”라고 말했다. 프라이버시에 예민한 청소년 사이에 감시 불안은 특히 팽배하다.
ⓒAP Photo-NSA(위)의 개인정보 수집·감시 프로그램 ‘프리즘’의 실태가 폭로되면서 검열 논란이 확장됐다.
트위터는 미국 당국의 정보 제공 요청을 받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의 정보 제공 요청 사항을 트위터가 공개하는 걸 법무부가 제한하자,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미국 정부에 맞선 것이다. 미국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에 따르면, NSA가 해외에서 도청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미국 기업들의 매출이 2016년까지 350억 달러가량 줄 것으로 전망됐다. 감시 공포를 느낀 누리꾼 고객이 이탈할 기미를 보이면서 기업들도 미국 정부에 맞서는 형국이다.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과 프라이버시인터내셔널(PI) 등 국제단체들은 PC를 도·감청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찾아내 알려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무료로 공개했다(resistsur- veillance.org). 이 소프트웨어의 이름은 ‘디텍트(Detekt)’다. 앰네스티의 군·보안·경찰 책임자 마렉 마르친스키는 “많은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첨단 감시장치로 인권운동가와 언론인의 PC를 감시하고 있다. 디텍트는 주요 스파이웨어를 적발할 수 있는 첫 공개 소프트웨어다”라고 말했다.
국제단체 ‘불법 감시장치 수출반대 연합’은 감시 기술과 장치의 국제 교역량이 연간 50억 달러에 이르며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마르친스키는 “현재 감시장치 기술 시장은 통제 불능 상태다. 위험성과 부정적 결과가 엄청난 만큼 강력한 법적 규제가 시급하다”라고 주장했다.
정부의 인터넷 감시 통제의 진원지인 미국에서는 법으로 감시를 통제하려는 노력도 활발하다. 우선 미국 연방 하원에서 국가안보국(NSA)의 전화 통화 감시활동을 제한하는 법안(‘미국 자유법’)을 찬성 303 대 반대 121로 통과시켰다. 스노든의 폭로가 나온 지 약 1년 만으로, 2014년 1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발표한 NSA 개혁안을 일정 부분 법제화한 것이다. 통신회사가 18개월간 보관하는 전화통화 메타데이터(통화한 상대방 번호와 시간)에 NSA가 접근하려면 해외정보감시법원(FISC)의 의견 또는 주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 마련 과정에 참여했던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 로라 머피 변호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의회가 고삐 풀린 망아지 같던 NSA를 제어할 의사를 분명히 담아낸 법이다”라고 평가했다.
웹에서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가르는 새로운 척도로 떠올랐다. 세계 곳곳에서 감시하는 자와 감시당하는 자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웰다잉] 죽음이란 꽃이 피었다 지는 것 312 시사저널
고령화 사회 접어들며 ‘웰다잉’ 관심…새로운 임종 문화 만들어야
“일만 하다가 갈라고 허니 못 가겠소. 참말 원통해 못 가겠소.” 전남 완도 지역의 상엿소리 일부분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현실주의적인 한국인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외국인보다 죽음을 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 죽음학 전문가인 정현채 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종교학자 최준식 교수에 따르면, 유교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세관이 없어서 현세에 집착한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1400명의 사상자를 남긴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일로 가보자. 1995년 6월 그날 오후 6시를 몇 분 남기지 않은 시각, 30대 여성 이승연씨는 빵을 사기 위해 그 백화점 지하에 있는 제과점에 들렀다. 사고 싶은 빵이 없어서 빈손으로 백화점을 빠져나온 순간 건물이 굉음을 내며 주저앉았다. 이씨는 “5분만 지체했다면 큰 변을 당했을지 모른다”며 “우리는 보통 70~80세까지 살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지만, 사실 죽음은 불현듯 내게 닥칠 수 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그 경험은 이씨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짐 정리였다. 마치 여행 왔다 가는 것처럼 남은 삶은 단출하게 살기로 했다. 사고 이후 그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했다. 사소한 것에 욕심내지 않고 중요한 것에만 힘을 쏟다 보니 하루하루가 소중해졌다. 사회복지법인 ‘삶과죽음을생각하는회’에서 일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20년 전 일이라서 지금은 그때의 결심이 조금 무뎌졌지만,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둬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 시사저널 포토
길모퉁이를 돌아서면 죽음이 있지만, 우리는 평소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 죽음을 입에 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느낀다. 20세기 이전 사람들은 성(性)과 성행위를 동물적인 욕망으로 보고 불경하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섹시하다는 말이 칭찬일 정도로 인식이 바뀌었다. 죽음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일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이 퍼지고 있다. 특히 고령화 사회에서 죽음은 일상사가 될 전망이다. 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는 “한국인은 평소 죽음에 관해 완전히 방치된 상태로 있다가 자신이나 가족의 죽음이 닥치면 속수무책”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옛날에는 천둥과 번개를 하늘의 노여움으로 여겨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그 실체를 파악한 뒤부터는 공포심을 덜 느꼈듯이, 죽음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철학을 전공한 유호종 박사는 <죽음에게 삶을 묻다>라는 책에서 ‘죽음을 똥으로 볼 것인가, 된장으로 여길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임종 직전과 직후에 얼굴에 평화로운 표정이 깃드는 것을 보면 죽음은 똥보다는 된장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국에서 발간된 죽음학 책 <생의 마지막 춤>도 죽음을 벽으로 볼 것인지 문으로 볼 것인지를 묻는다.
자신이 태어난 집에서 임종을 맞는 일이 과거에는 다반사였다. 객사는 부정하다고 해서 임종을 앞둔 가족을 굳이 병원에서 집으로 옮겼다. 가족과의 눈맞춤은 삶을 마무리하는 의식이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임종을 지켜본 손자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겼다.
“한국은 가장 비참한 임종을 맞는 나라”
언제부터인가 역전 현상이 생겼다. 집보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으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병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실낱같은 삶을 부여잡느라 고통스럽고, 오랜 병치레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도 힘들다. 기적적으로 회복하는 사례가 극히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중환자실에서 온갖 고통을 받은 채 가족의 따뜻한 배웅도 없이 눈을 감는다. 윤영호 서울대의대 연구부학장은 “가장 비참한 임종을 맞는 나라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한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20년 동안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을 연구한 결과”라며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한 병실은 늘 부족하고 응급실에서도 천대받으며 삶의 마지막을 맞는다. 환자는 생을 마감한 후에야 비로소 병원의 환영을 받는다. 수익성 좋은 장례식장으로 옮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5년 전쯤 40대 중반 남성이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으로 들어왔다. 지방에서 십이지장암 수술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온몸으로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도 가족은 숨을 헐떡이는 환자를 살리고자 서울까지 왔던 것이다. 서울대병원에서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 가족은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환자는 곧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엔 간암 말기로 의식이 없는 남편을 위해 연명치료를 고집하던 아내가 있었다. 그러나 현대 의학으로는 회복시킬 수 없다는 의사의 설명을 듣고 아내는 연명치료 중단을 결심했다. 의식이 없어도 청각과 촉각은 끝까지 남는다. 아내는 남편의 손을 잡고 귀엣말로 사랑을 속삭였다. 그제야 남편은 고통으로 찡그린 얼굴을 펴고 편안한 표정으로 생을 마무리했다.
이 두 사례는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이를 부정하고 의료의 힘으로 버티면서 비극이 시작된다. 가족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달라고 의사에게 요구하고, 의사도 인공호흡기로 대표되는 최신 의료 기기를 이용해 죽음의 시간을 늦추려고 애쓴다. 이런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자칫 환자에게 고통만 안겨줄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목소리다. 서울대의대 윤영호 연구부학장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존엄사를 안락사처럼 죽게 한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존엄하다. 살았을 때의 인간적인 모습을 깨면서까지 고통 속에 처참하고 비참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주는 것은 존엄이 아니다.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고통 없이 영면에 드는 것이 존엄사다. 그런데 우리는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하느냐 마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생명 경시 논란이 생긴다. 의학의 힘으로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도움을 받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도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진정한 삶이고 그렇지 않다면 삶이 아니라 또 다른 의미의 죽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연명치료 중단에는 소극적인 게 현실이다. 의사 출신인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18대 국회에서 연명치료 중단을 골자로 한 존엄사법이 상정됐지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며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진 후 법적인 지원이 마련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모파상·보들레르 등 유명 문학인과 일반인이 함께 묻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는 프랑스 파리 도심에 있어 시민들이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공간이자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무의미한 연명치료, 환자에게 고통만
4년 전 위암이 온몸으로 퍼져 수술 등 어떤 치료로도 회복되기 어려운 환자가 있었다. 1년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문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작한 항암 치료였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으로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환자가 너무 고통스러워해서 막바지에는 항암 치료를 중단했고 고통을 줄이는 약을 사용했다. 환자는 가족에게 유머를 남길 정도로 편안하게 삶을 마감했다. 서울대병원 정현채 교수는 “당시 통증이 심해 마약성 진통제를 썼다. 연명치료 대신 고통을 덜어줘 생의 마무리를 편안하게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며 “그런데도 마약이라고 하면 중독 우려 때문에 거부하는 가족이 많아 안타깝다”고 전했다.
전 아무개씨(45)는 몇 년 전부터 매 연말이면 유서를 쓴다. 그는 “형식도 없이 내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이지만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지 선명해진다”며 “유산이 많지 않지만 남은 물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글로 남긴다”고 말했다. 평소 죽음에 관심을 두고 준비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사전의료의향서를 써두기도 한다. 말기 암이나 불치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불필요한 심폐소생술 등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이다.
죽음을 준비한 사람은 삶을 보는 눈이 다르다. 문체부장관을 지낸 연극배우 유인촌씨가 그렇다. 그는 드라마나 연극을 통해 죽음을 숱하게 경험했다. 가까운 지인이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나는 모습도 지켜봤다. 그는 “가족들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수명을 연장하려고 했지만 정작 본인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더 보내야 했을지 모른다”며 “나도 평소 가족에게 현대 의학으로 완치되지 않을 상태라면 차분하게 남은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부터 국립암센터 암퇴치백만인클럽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공직을 떠난 후 연극계로 돌아온 그는 되도록 따뜻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선택하는 편이라고 했다. 유씨는 “죽음을 피하거나 젊음을 되돌리는 것에 매달리기보다는 어떻게 품위 있게 늙을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며 “세속적인 생활보다 타인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하고자 해서 앞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 활동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삶을 보람 있게 사는 것은 웰빙(well being)이다. 웰빙은 웰다잉(well dying)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노성훈 연세의료원 암병원장은 “며칠 여행을 갈 때도 이것저것 준비할 것이 많고, 가족에게 문단속 잘하라는 등의 당부도 한다. 하물며 다시 돌아오지 못할 여행을 떠나면서도 전혀 준비하지 않는다. 잘 준비하는 것이 웰빙이고 이는 웰다잉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도심에 공동묘지가 필요한 이유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공동묘지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각각 노트북을 떨어뜨렸는데, 묘지 안의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보다 40%나 더 많이 도와줬다. 묘지를 산책하면 배려심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프랑스·미국 등 서양의 경우, 도심에 있는 크고 작은 공동묘지가 시민들의 휴식처 노릇을 한다. 한국에서 공동묘지는 혐오시설로 퇴출당한 지 오래다. 자신의 미래를 멀리 내쫓는 셈이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몇 해 전 강연에서 “우리나라 도시들은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다르게 시내에 묘지가 없다”며 “죽은 자와 공존해야 도시가 경건해진다”고 말했다.
2011년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엔딩노트>에서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죽음을 ‘꽃이 피었다가 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가 사고나 늙어서 죽을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식으로 죽음을 접하도록 교육한다. 죽음에 대한 교육은 어릴 때부터 해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게 죽음학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유은실 서울아산병원 병리과 교수는 “10대 이후부터는 나이 들어 병들고 죽는 것이 자연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도록 교육해야 한다”며 “자동차 안전벨트 착용이 짧은 시간에 정착된 것처럼, 죽음 교육도 한 번 불이 붙으면 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곳이어서 늘 번잡스럽다. 조용히 삶을 마무리하는 장소로 적합하지 않다. 호스피스 병동이 따로 필요한 이유다. 병원은 존엄사 운운하지만, 이들을 위한 병동을 준비하는 데는 인색하다. 돈이 안 된다는 상업적 논리 때문이다.
정부는 2005년 암 정복 계획을 세우면서 2015년까지 호스피스 병상을 2500개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현재는 1000개 남짓이다. 병상이 부족하니 일부 호스피스 병원은 ‘최장 한 달’ 하는 식으로 입원 기간에 제한을 둔다. 앙상하게 마른 말기 암 환자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구급차에 올라 병원 찾아다니는 일이 일어난다. 7월부터 호스피스 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길 뿐이다.
웰다잉 체크 리스트
평소 죽음을 생각하고 준비하기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닥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고 품위 있게 마무리할 시간을 벌 수 있다.
사랑·감사·용서
완화치료 전문가인 아이라 바이오크는 아름다운 죽음의 조건으로 사랑, 감사, 용서를 들었다. 평소 생활에서 실천하면 임종 때에도 아름답고 인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질환에 걸린 사실 환자와 가족이 공유해야
심각한 질환에 걸렸다면 환자와 가족이 그 사실을 공유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환자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삐뚤어진 관행이 있다. 국립암센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암 말기 환자 90% 이상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 싶어 한다.
의료진과 환자의 신뢰는 필수
의료진과 환자. 가족은 신뢰를 바탕으로 소통하며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무의미한 항암치료를 고집함으로써 환자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것도 신뢰가 없어서 생긴 일이다.
시한부 삶 이해하기
시한부 삶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의사가 3개월이라고 했다면 1개월부터 1년 이상까지 그 범위가 넓다. 몇 개월이라는 말에 함몰되기보다 남은 시간에 어떤 마무리를 할 것인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품위 있는 죽음’ 누가 가로막는가 312 시사저널
호스피스·간병인 지원 외면…후진적 연명치료 집착
매년 우리나라에서는 약 26만명이 사망한다. 이 중 사고나 급성질환 등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제외한 20여 만명은 대부분 만성질환으로 투병하다 임종을 맞이하는데,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두 가지 상황을 떠올려볼 수 있다.
첫째는 부산한 대형 병원 중환자실이나 병실에서 의식을 잃고 생명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수많은 튜브와 약제에 의존한 채 누워 있는 모습이다. 둘째는 안락한 분위기의 침실이나 호스피스 시설에서 편안하게 돌봐주는 전문 간병인이 옆에 있고, 마지막 가는 길이 외롭지 않게 손을 잡아주는 가족이 모여 있는 풍경이다. 이 중에 자신이 원하는 삶의 마지막 모습을 고를 수 있다면, 대부분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내 호스피스 병동에서 가족이 환자를 보살피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실제 상황은 정반대다. 말기 암 환자의 경우, 1991년 19.1%에 불과했던 병원 임종 비율이 2010년에는 무려 86.6%로 증가했다. 특히 사망 한 달 전에 중환자실에서 진료받은 환자의 비율은 2.7%에서 19.9%로 7배 이상 늘어났다. 다른 중증 질환 환자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며, 임종 기간 동안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 의료 기기에 의존하는 비율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말기 암 환자들이 호스피스 시설이나 자택보다 대형 병원을 선호하고, 임종 직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거나 응급실·중환자실을 이용하는 비율이 현저히 상승한 데는 정부의 건강보험급여 정책도 한몫을 했다.
호스피스보다 장례식장에 더 투자
그동안 정부가 추진해왔던 4대 중증 질환에 대한 건강보험급여 보장성 강화 정책 자체는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지만, 중증 질환자의 투약과 시술·검사 비용을 줄여주는 방향 위주로 추진되다 보니,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혜택을 받게끔 의료 전달 체계를 왜곡시키는 부작용을 낳았다. 현대 국가의 의료복지는 출생부터 사망까지 국민들의 삶과 함께해야 하는데, 과거 후진국 시절처럼 일부에게 시혜적으로 베푸는 방식은 전체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의료 자원을 일부가 남용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4대 중증 질환 보장 확대 정책으로 암과 같은 중증 질환자들의 본인 부담금 비율이 2005년 9월부터 20%에서 10%로 낮아진 데 이어, 2009년 7월에는 다시 5%로 하락했다. 암 환자들이 병원에서 고가의 검사를 받거나 항암제를 투여받고 연명의료를 위해 중환자실을 이용하는 게 본인 부담 5%의 비용만으로 항상 가능해진 셈이다. 한 대학병원 조사에 따르면, 중증 질환 보장 확대 정책 이후 말기 암 환자 중 사망하기 4주 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의 비율은 2002년 16.4%에서 2012년 42.7%로, 사망 2주 전까지 항암제를 투여받은 환자 비율도 10년 사이 5.7%에서 23.8%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사망하기 4주 전에 사용하는 항암제는 환자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부작용으로 고통을 가중시키고 오히려 생명을 단축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임종이 가까운 환자에게는 항암제를 투여하지 않는 것을 적정 진료로 평가하고 있으며, 환자가 편안하게 임종을 준비할 수 있도록 호스피스 진료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한 완화의료와 간병을 주로 수행하는 호스피스 진료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대학병원들은 호스피스 병상 확보보다는 수익성이 높은 장례식장과 같은 부대사업 투자에 더 집중하는 형편이다. 현재 호스피스 진료를 하고 있는 의료기관들은 재정 상태가 나빠 시설이 낙후되어 있으며, 환자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하고, 자원봉사자 등의 인력에 의존하고 있다.
호스피스 병원, 지방에 있고 시설 낙후
말기 암과 같은 중증 질환자와 그 가족들은 경제적 이유와 편의를 위해 진료를 받던 대형 병원에서 임종 기간을 보내고 장례식장까지 이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와 연명의료 결정 과정에 대한 제도적 장치 미비, 이로 인한 의사들의 방어 진료가 겹쳐 매년 3만명 이상의 말기 암 환자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와 같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수단에 의지한 채 고통스럽게 임종하고 있다. 투약과 시술, 검사 위주로만 건강보험급여를 확대할 뿐, 주변 선진국에서 당연히 실시하고 있는 호스피스와 간병인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하지 않는 지금의 보험급여 정책은 품위 있는 죽음을 원하는 국민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암 보장성 강화 정책 이후 암 환자의 건강보험급여비 총액은 2004년 9915억원에서 2012년 3조8970억원으로 4배 증가했으나, 우리나라에서 암으로 인한 환자 사망률은 낮아지지 않았다. 말기 암 환자에게 고가의 항암제와 중환자실에서의 연명의료 비용을 95% 지원하기 위해 투입되었던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호스피스 진료에 썼더라면, 그들은 평소에 원했던 삶의 마지막 모습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올 2월초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중기 보장성 강화 계획에 호스피스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계획을 처음으로 포함시킨 것은,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결정이다. 문제는 암 환자와 같은 중증 질환자 중 대다수가 수도권에 위치한 대형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있는 반면, 호스피스 진료를 전문으로 하는 의료기관들은 영세한 데다 전국에 분산되어 있어, 환자 연계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는 점이다. 왜곡된 의료 전달 체계로 인해 대형 병원에서 의료 집착적인 진료를 받는 데 익숙해진 환자 및 그 가족들이 시설 수준이나 편의성이 떨어지는 호스피스 의료기관으로 옮겨갈 수 있게 하는 일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최근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이 현재의 임종 문화를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미 1~2인 가구가 50%를 넘고,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본인이든 가족이든 언젠가는 부딪쳐야 할 문제이기에 간병과 임종 문제에서 자유로운 국민은 없다. 대다수 국민이 원하는 편안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맞이할 수 있게 호스피스 제도의 정착과 함께 정부의 전체적인 의료정책의 틀도 다시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죽음도 삶의 일부…얘기를 나눕시다” 312 시사저널
독일 공영방송 ARD, ‘죽음’ 테마 일주일 내내 다뤄 담론 확산
죽음을 이야기하길 꺼리는 것은 독일인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어린이는 죽음에 대한 담론에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의식적으로 배제되고 있다. 초등학생 자녀와 성(性)에 대해 자유로이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도 ‘죽음’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얼버무리기 일쑤고, 소아·청소년 호스피스 사업은 성인 호스피스 사업에 비해 대중적인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어린 생명과 죽음을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심리적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독일에서는 이러한 금기를 깨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3년 2월10일 후베르트 휘페 연방 장애인이해(利害)대리인은 ‘소아 호스피스 사업의 날’을 맞아 초등학교 교과과정에 ‘죽음’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다. ‘학교야말로 죽음과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 대한 금기를 깰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에서다. 오늘날 독일 사회와 학교는 죽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까.
독일 사회에 죽음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켰던 프로그램 <당신은 죽게 됩니다>에서 베를린 의학협회 관계자와 환자가 얘기하고 있다. ⓒ ARD
“죽음을 더 어린 나이에 가르쳐야”
2012년 가을, ‘죽음’이 독일의 광고판을 뒤덮었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 신문과 가판대 등 시민들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큼지막한 글씨로 ‘당신은 죽게 됩니다(Sie werden sterben)’라는 문구가 내걸렸다. 충격적인 문구 밑에는 작고 연한 글씨로 ‘그것에 대해 얘기를 나눕시다’라는 문구와 독일 공영방송사 ARD의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ARD는 매년 11월 한 주간 하나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테마 주간 방송을 한다. 독일 전국에 내걸린 도발적인 슬로건은 바로 2012년의 주제인 ‘죽음과 함께하는 삶’을 홍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ARD의 테마 주간은 한동안 독일 사회에 죽음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방송을 통해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토크쇼, 영화가 방영되었고 온라인에서도 토론이 이어졌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그렇잖아도 우울한 계절에 일주일 내내 죽음에 대해 방송하는 것은 지나치다”라는 불만부터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삶을 바꿀 계기를 마련해줘서 고맙다”는 인사까지, ARD의 시청자 게시판 역시 온통 ‘죽음’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다. 그동안 쉬쉬해온 죽음에 대한 담론을 공영방송사가 공적 영역으로 끌고 나온 것이다.
독일 방송사의 파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ARD 산하의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방송(RBB)은 홈페이지를 통해 죽음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인터뷰,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수업 자료를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음, 그 이후 등 세 단계로 구성된 이 수업 자료의 대상은 초등학생이었다. 독일의 방송사가 깨고자 한 것은 이렇게 죽음에 대한 담론에서 어린이들을 배제해온 관습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크리스토프 슈투덴트는 RBB와의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죽음에서 떼어놓는 것은 곧 삶에서 떼어놓는 것이며, 아이가 죽음에 대해 물어오면 제대로 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보다 아이에게 죽음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아이의 상상을 존중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만나는 교사들은 이러한 주장에 지지를 보낸다. 본에 소재한 한 김나지움의 종교 교사인 크리스티네 슈테핀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을 더 어린 나이에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막는 사회적 분위기가 죽음을 더욱더 금기시하게 만든다고 보기 때문이다. 슈테핀은 “6, 7학년 때 수업에서 처음 죽음을 다루지만 피상적으로 언급하는 수준에 그칠 뿐이다. 고학년에 올라가면 입시 준비 때문에 죽음에 대한 학생들의 진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밝혔다.
죽음에 대한 ‘조기 교육’을 실시하자는 데 찬성하는 학부모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베를린에 사는 세 아이의 엄마이자 늦깎이 의대생인 요한나 클라인은 “탄생과 죽음은 모두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일찍부터 배울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전했다. 첫째 딸인 마리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마리는 세 살 때 증조할머니가 사망해 처음으로 장례식에 갔다. 그리고 불과 한 달 후 클라인의 친구가 한 살 된 아들을 잃었다. 클라인은 딸 마리에게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나이가 많아서 돌아가셨다’고 설명해줬는데 바로 얼마 뒤에 친구의 아기가 죽자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난감했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장례식에 참석한 다른 친구들도 아이와 함께 왔고 관에 페인트로 손바닥 무늬를 찍고 하늘로 풍선을 날려 보내는 등 ‘아이를 위한 장례식’으로 진행돼 도움이 됐다. 그는 “둘째는 여덟 살이라 아직 좀 이르지만 큰애 정도 나이의 초등학교 교과 과정에서 죽음을 다루는 것에는 대찬성이다”고 밝혔다.
독일에서는 소아·청소년 호스피스 사업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1990년 최초로 아동 호스피스 단체가 생긴 이래 전국 각지에 11개의 소아·청소년 호스피스 병동과 20개의 외래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센터가 문을 열었다. 독일에서는 매년 400여 가족이 소아·청소년 호스피스의 도움을 받고 있으며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소아·청소년 호스피스 사업 꾸준히 확대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지는 한나 자바스와 다니엘 게레케 부부의 사례를 소개했다. 자바스 부부의 늦둥이 안누카는 생후 30개월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아이를 살릴 길이 어디에도 없음을 받아들인 부모는 아이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누카의 죽음에 동행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의학의 도움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는 “소아암 전문의는 암에 맞서 싸우고 생명을 유지하는 것에는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망연자실한 부부를 도운 사람은 두 명의 완화의료 전문 간호사였다. 이 가족은 소아 호스피스 시설에 입주한 후 세 살배기 안누카의 죽음을 차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 아이는 2주 후 가족의 곁을 떠났다. 부부는 “고통스럽지 않거나 평온한 죽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정한 시간에 죽음이 일어났고 곁에는 엄마·아빠와 언니가 있었으며 우리는 마지막으로 자장가를 불러주고 ‘이제 가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초등학교에서의 죽음 교육과 소아 호스피스 사업은 죽음을 대하는 독일 사회의 태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죽음은 예외나 사적인 일이 아니라 모든 삶의 일부이고 때문에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서, 어떤 부모들은 자녀의 병상 앞에서 배운다. 그리고 이들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라진 러브호텔 번호판 가리개 312 시사저널
62년 만에 간통죄가 폐지되자 모텔 주차장의 자동차 번호판 가리개도 사라졌다. 3월6일 오후 7시 서울 노원구 모텔촌에 주차된 차량들이 보란 듯이 번호판을 드러냈다. 간통죄 폐지가 불륜에 대한 죄의식을 덜어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조선시대 간통을 저지른 자는 장형(杖刑) 80대로 다스렸다. 이 같은 신체적 형벌은 사라졌지만 민사·가사 소송과 같은 정신적 처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것은 윤리다.
처세술 위한 TV 가이드 310 한겨레21
<시간여행자 K> <속사정 쌀롱> 등 방송의 새 트렌드 지식 예능… 다른 관점의 성찰 주지만 결국 처세술 조언에 가까워
일요일 밤, TV를 트니 한 채널에서 진보 논객으로 잘 알려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인간 심리 현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 중이다. 옆에는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강용석 변호사가 그의 말을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다. MBC 시사프로그램 <100분 토론>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을 법한 이 모습은 JTBC 토크쇼 <속사정 쌀롱> 2회의 한 풍경이었다. 수요일 밤의 한 음식프로그램에서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한국인 입맛의 변화에 대한 지식과 식재료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설파한다. KBS 교양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나 어울릴 만한 장면인데 정작 이 음식프로그램의 장르는 예능이다. tvN의 음식토크쇼 <수요미식회> 얘기다. 바야흐로 지식을 품은 예능이 주목받고 있다.
종편의 제작비 절감 욕구
올해 초, KBS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으로 단행한 신년 개편에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지적 호기심’을 내세운 것도 이러한 예능 트렌드 안에 위치한다. 예컨대 개편과 함께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 <미래예측 버라이어티 나비효과>는 연예인 패널들이 일상의 작은 현상을 두고 과학·의학·사회·경제·법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더불어 다양한 파급효과를 예측하는 지식 게임쇼였고, 정규 편성된 <시간여행자 K>는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의 사회문화사를 되돌아보는 지식토크쇼다.
후광효과, 군중심리 등 다양한 심리 현상을 소재로 패널들이 진지하면서도 얕은 대화를 나누는 지식예능 프로그램 〈속사정 쌀롱〉. JTBC 제공
방송가의 중요한 트렌드로 떠오른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요즘 들어 갑자기 나타난 형식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인포테인먼트 장르에 속한다. 교양지식과 정보를 예능에 접목한 이 장르는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서며 방송가 내부에서는 제작비 감소의 필요성, 외부적으로는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 기술과 실용적 정보 습득 욕구의 증대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그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인포테인먼트 장르다. 이 장르의 시초가 된 SBS <호기심 천국>과 <솔로몬의 선택>, MBC <21세기 위원회>, KBS <스펀지> <비타민>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당시 인기를 끈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그 뒤 리얼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오디션 등 예능의 주류 장르가 계속 바뀌는 동안 명맥만을 유지해오던 이 장르가 근래 다시금 인기를 모으는 것에도 유사한 배경이 작용한다. 장기 불황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생활경제 정보에 대한 대중의 욕구와, 2011년 개국하며 적은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해야 했던 종합편성채널의 내부적 요인이 결합해,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주력 콘텐츠로 내세운 것이 이 장르의 부흥을 불러온 것이다. 실제 MBN <황금알> <알토란> <엄지의 제왕>이나 TV조선 <살림 9단의 만물상> <내 몸 사용설명서> 등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두 건강관리와 생활경영 정보를 주요 소재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불황 시대에 필요한 직접적인 생존기술 안내서로 ‘먹고사니즘’만이 최고의 관심사가 된 대중을 TV 앞으로 불러모은다.
정보에 관점을 더하니
그런데 최근 주목받는 또 다른 경향의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들은 건강·생활 정보 위주의 천편일률적 소재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내용으로 눈길을 끈다. JTBC <마녀사냥> <비정상회담> <속사정 쌀롱>, tvN <수요미식회> 등이 그것이다. <마녀사냥>은 연애심리와 성담론을 ‘19금’ 토크로 풀어냈고, <비정상회담>은 다문화를 소재로 한다. <속사정 쌀롱>은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고품격 심리토크쇼를 지향하며, <수요미식회>는 음식에 대한 문화적인 설명이 곁들여진 토크쇼다. 이들은 하나같이 교양지식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의 흥미로운 특징은 기존의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다른 관점의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령 연애지식 토크쇼로서 <마녀사냥>의 남다른 의미는 여성이 성적 욕망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지점에 있다.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심리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고, 여성 게스트들도 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비정상회담>은 각각 다른 문화권 출신의 외국인 출연자들을 통해 국내의 관습적 가치관을 낯설게 바라볼 기회를 준다.
<속사정 쌀롱>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이 후광효과, 군중심리 등 다양한 심리 현상을 소재로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수요미식회> 또한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고 음식의 재료를 대하는 요리사의 윤리까지 비평 대상에 올려놓으며 맛 평가를 중심으로 한 음식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다.
하지만 크게 볼 때 이러한 지식 예능 역시 결국 최소한의 생존이 화두인 불황 시대의 처세법, 그 실용주의적 성격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들 프로그램 대부분이 의뢰인의 사연에 대한 상담과 문제 해결 형식을 띠는 것은 그래서다. 이를테면 <마녀사냥>은 연애시장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한 판단의 기술, <비정상회담>은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이 ‘비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의 기술, <속사정 쌀롱>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관계의 기술을 가르친다.
이 또한 지식의 처세법
이들 프로그램의 색다른 관점이란 결과적으로 처세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언에 가깝다. <수요미식회>도 최적의 취향을 발견해 소비의 실패를 줄이는 안내 프로그램이지 않은가. 요컨대 최근의 지식 예능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나열하고 전달하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분석과 해설을 더해 한층 꼼꼼하고 친절해진 처세 가이드에 가깝다. 갈수록 선택의 기회와 자유가 줄어드는 시대에 어쩌면 이 또한 지식이 찾은 최소한의 처세법일지도 모르겠다. -김선영 TV평론가
비상식의 사회]‘짖지 않는’ 언론을 그냥 길러야 하나 317 주간경향
여론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여론을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언론의 방종은 이미 ‘기레기’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얼마 전 작지만 중요한 행사가 있었다. 언론노조의 집행부 이·취임식이었다. 일정이 겹쳐 참석은 하지 못했지만, 이런 내용의 말을 전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유감스럽게도 언론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그 말은 역설적으로 언론이 얼마나 중요한 책무를 지녔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라는 권력집단은 언제든 괴물로 변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를 견제하기 위해 국민들은 언론이라는 민감한 후각을 지닌 감시견을 두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은 태생부터가 국민의 편인 셈이다. 민주체제가 뿌리를 내릴수록 언론의 권한은 커지며, 그에 비례하여 언론도 또 다른 권력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 언론의 힘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편에 설 때만 지속가능한 것이다. 만약 언론이 자신에게 부여된 감시와 견제의 힘을 권력의 편에 서서 행사한다면, 그 언론은 그 어느 것보다 위험한 존재가 된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기레기’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언론 불신이 극대화된 현실을 자성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한 1심 선고공판이 열린 2월 12일 서울 서부지법 구치감에 조 전 부사장을 태울 호송버스가 서자 취재진이 창을 통해 이를 촬영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더욱 교묘해진 알아서 기는 행태
그동안 언론이 제 몫을 해왔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독재권력을 견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그 권력을 옹호하는 나팔수 노릇을 하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제 주인인 국민을 기만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도둑을 지키라고 기른 개가 도둑이 던져주는 고깃덩이에 꼬리를 흔든 꼴이다. 과연 이런 개를 더 길러야 하는지 주인의 입장에서는 심히 고민된다.
제때에 짖지 않는 언론, 힘 없는 노동자와 시민, 소외계층을 향해 이를 드러내는 언론은 급기야 ‘기레기’라는 험담까지 듣기에 이르렀다. 더욱 참담한 점은 기자와 쓰레기를 합쳐 만든 이 ‘기레기’란 말에 대해서도 우리 언론들이 별반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는 면을 보이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이미 그런 험담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을 만큼 우리 언론들의 안면이 두꺼워졌으며, 그런 조롱 섞인 지적에도 꿈쩍도 않을 만큼 고깃덩이의 맛에 길들여졌다는 것일까.이런 무감각이 불러올 결과는 자명하다. 짖지 않는 개는 복날에 그슬려질 뿐이다. 이승만 독재에 빌붙어 지내던 신문사의 윤전기에 모래가 끼얹어지고, 전두환 군부독재의 광주 민중학살에 대해 왜곡하던 방송국이 불에 탄 일을 우리 언론들은 늘 목에 방울처럼 매달고 다녀야 한다. 여론을 보도하는 것을 넘어, 여론을 제 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언론의 방종은 이미 ‘기레기’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언론 통제와 보도 검열이 있던 과거 독재정권 시절도 아닌 요즘의 현실에서 일부 언론들의 권력을 향해 ‘알아서 기는’ 행태는 더욱 정교하고 교묘해졌다.
‘기레기’ 오명 벗고 언론의 소명 회복을
언론의 왜곡이 심해질수록 작은 일까지 의심의 눈길이 가게 된다. 탐사보도가 위축되고, 민감한 사회적 쟁점과 정치적 사안에 대한 편향성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 예능 프로그램들도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늘어가는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에 대해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당연히 그 현실적 원인이 되는 청년실업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정책적인 대안을 촉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기 있는 아이돌이나 연예인을 동원해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가상 부부 프로그램을 통해 결혼이 얼마나 달달하고 행복한지만 부추기는 게 아닌지 자못 우려스럽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알바로 전전하는 불안한 ‘88만원 세대’의 미래를 조명하기보다는, 화려한 스펙을 지닌 선남선녀들을 출연시켜 로맨스의 환상을 부추기기 급급했던 ‘짝’이라는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도 지금 생각하면 의심스럽다. 누구는 그런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지 않겠는가. 행여 사랑에 빠졌다가 이내 직면할 취업과 결혼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춘들이 오죽하면 사랑마저 마음대로 못하고 ‘썸’을 타야 하는지에 대해 어떤 고민과 대안을 마련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급감하는 출산율의 문제도 육아 부담이나 맞벌이 부부를 위한 열악한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유명 연예인의 귀여운 아이들을 동원해 국민들에게 아이 낳기를 부추기는 짓이라면 참으로 뻔뻔스럽고 무책임한 짓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는 걸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자 등장한 ‘군대 예능 프로그램’의 의도는 더욱 걱정스럽다. 과연 군대가 서바이벌 게임이나 예능 프로그램처럼 재미있는 공간인가.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대체복무제나 남북 평화를 위한 군축문제에 대한 사회적인 대안과 전망을 제시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런 의심들이 기우이길 바라지만, 언론들은 이런 지적에 대해 발끈하거나 변명하기 전에 오죽하면 이런 의심의 눈길까지 받게 되었는지 자신들을 돌아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석에서 만나는 일선 기자들은 자신들의 고충도 이해해달라는 변명을 한다. 데스크와 경영진의 입장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를 내보이는 고충이다. 그런 현실적 한계를 모르는 바도 아니고, 기자 한 사람을 비난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바른 말을 하던 기자나 피디들이 무참히 직장에서 쫓겨나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현실에서 ‘기레기’들의 책임만 추궁하는 것도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언론이 사주나 그 측근들의 손에서 놀아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언론을 견제하는 힘을 언론 스스로가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언론노조의 역할은 참으로 중대하다. 언론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자율성을 얻어내는 싸움이 언론 내부에서 일어날 때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와 힘을 되찾게 될 것이다.
어찌 그 싸움이 쉬울 수 있으랴. 강고한 권력을 지닌 언론과 시장주의에 편승한 사주에 맞선 싸움은 어느 독재권력이나 재벌권력과 싸우는 것보다 훨씬 지난하고 외로운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언론이 ‘기레기’라는 오명을 벗고 제대로 된 언론의 소명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니 물러설 수 없는 선택이다.
이제 새롭게 출발하는 언론노조 집행부에게 뜨거운 지지와 성원을 보내며, “언론은 민주주의라는 침대를 떠받치고 있는 얇고 허약한 널빤지가 되어버렸다”는 A J 리블링의 말을 넘어서 언론노조가 민주주의의 튼튼한 널빤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이시백(소설가)>
Tears on My Pillow / Roger Ridley
'세상과 어울리기 > 시사만평-주간 쟁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3.21~29 문의 변신을 어떻게 볼 것인가 (0) | 2015.03.29 |
---|---|
3.16~3.21 딱한 대한민국 (0) | 2015.03.21 |
3.2~3.7 그래도 꽃 피는 봄인데 (0) | 2015.03.07 |
2.23~2..28 (0) | 2015.02.27 |
2015. 2.16~17 (0) | 2015.0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