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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3.16~3.21 딱한 대한민국

by 이성근 2015. 3. 21.

 

  3.16 한겨레-3.15 내일

 

 

  3.16 경향-국민

 

 

  3.16 내일-한국

 

 

 3.17 경향-시사인

 

 

 3.17 국민-내일

 

 

  317 한겨레-한국

 

 

 318 시사저널 -경향

 

 

  318 국민-내일

 

 

    319 오마이뉴스 -한겨레

 

 

 318 한국- 오마이뉴스

 

 

  319 경향-국민

 

 

 320 오마이뉴스-319 한겨레

 

 

 319 한국-320 경향

 

 

 320 국민-한겨레

 

 

 3.20 한국-324 주간경향

 

 

   3.16~3.20 경향 장도리

 

분에 겨운 , 또다른 에게 '처럼' 앙갚음-모멸의 악순환 3.20 한국

 

서울시내의 한 면세점에서 근무하는 이소은(가명27)씨는 올해 초 한 여성 고객에게 실수로 화장품을 판매했다 봉변을 당했다. 이씨는 뒤늦게 이 고객이 면세품 구매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을 알아 채고 판매를 취소하려 했으나 당신이 팔았으니 책임지라는 폭언을 들었다. 밤잠을 설쳐가며 열흘 가까이 구매를 취소해달라고 사정했지만 고객의 남편은 오히려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누군 줄 아느냐. 경찰청 고위직에 있는 나에게 잘못하면 더 큰 걸 되돌려주겠다고 협박했다. 부부는 남편이 근무하는 경찰서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도 4시간 넘게 나타나지 않는 등 이씨를 골탕 먹였다. 결국 이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백화점에서 30만원 상당의 동일 화장품을 구매해 고객에게 선물할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고객의 하대와 폭언으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꼈다며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모멸 겪고 약한 상대에게 분풀이

지난해 감정노동을 생각하는 기업 및 소비문화 조성 전국협의회가 소비자 1,000명과 감정노동자 69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고객 응대를 하는 노동자의 82.9%고객으로부터 불쾌감(인격무시, 욕설, 폭력, 성희롱, 무리한 요구 등)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소비자들 역시 내가 직원이라면 이런 불쾌감이 스트레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답했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60.2%는 자신이 고객 대면 노동자일 경우 고객의 무시(반말)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피해자가 되는 감정노동자와 가해자인 소비자의 응답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상대방이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서비스업 종사자를 무시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느낀 모멸감을 담아뒀다가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만나면 똑같이 모멸감을 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놀이시설에서 티켓 판매 일을 하는 김은정(25)씨는 아이 나이를 속이고 무료입장 하려다 적발된 손님에게 입장료를 내라고 하면 이까짓 거 가지고 사람 피곤하게 한다며 막말을 듣는 건 예사라며 손님들 기분을 맞춰주다 보면 스스로 비참해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퇴근 후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집 근처 네일관리숍을 찾는다는 김씨는 평소에는 같은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고충을 털어놓으며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갑질을 하면서 불만을 맘껏 쏟아내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지잡대편입충을 아시나요

한국 사회는 특히 학벌에 민감하다. 출신 학교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의 4년제 공립대에 다니는 김영주(21)씨는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선택했을 뿐인데, 서울 소재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은근히 내가 다니는 학교를 무시해 종종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 역시 같은 지역에 있는 사립대 학생들을 깔보는 편이다. 그는 이 지역에서는 우리 학교가 가장 성적이 높은 편이라며 봉사활동 모임에서 다른 학교 학생을 만나게 되면 수준이 떨어져 말이 안 통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은 지방대학을 낮게 칭하는 지잡대’, 여성을 비하하는 김치녀’, 편입한 학생을 이르는 편입충등 인터넷 상에서 모멸감을 주는 단어들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일상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사회

사회 전반적으로 모멸감을 주는 것은 일상이 되고 있다. 특별한 의도 없이 모멸감을 주고 받는 일이 늘면서 사회는 더욱 강퍅해지고 있다. 지난해 중앙대학교 학보사 중대신문이 재학생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79.4%의 학생이 타인의 언행에 모욕모멸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모멸감을 느낀 이유에 대해서는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라는 대답이 50%였고,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29.8%),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12.5%),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7.7%)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모멸감을 느낀 분야 역시 지극히 일상적이었다. 응답자의 42.3%(복수응답)외모에 대한 발언에서 특히 모멸감을 느낀다고 답했고, 스펙(35.6%), 경제적 능력(31.7%), 학벌(21.2%) 등 다양한 이유들이 나왔다. 모멸감을 느꼈을 때 어떤 생각을 하느냐는 질문에는 내가 더 잘해서 찍소리 못하게 만들어야겠다’, ‘앞으로 무시하지 못하게 내가 더 나아져야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자신이 우월한 입장이 되면 모멸감을 갚아주겠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의 발현이 우려된다가정, 직장, 사회에서 타인의 인격과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적 문화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헝그리'에서 '앵그리' 사회로사회 불평등이 기름 붓다-모멸 사회 원인과 해법은

우월감 = 행복감 그릇된 세태

경제 성장에도 분배 불공평

조롱비하하는 관성 고착화

차이 인정하는 가치 체계를

부당한 횡포에 함께 연대해야

 

 

# 상대방이 나를 얕잡아 보는 것 같다. 뭐라고 딱 집어낼 만한 말이나 행동을 한 건 아니다. 눈동자가 굴러가는 속도와 방향, 얼굴 잔 근육들의 미세한 움직임, 부정확한 발음과 말 끝을 길게 늘리는 말투. 이 사소한 것들이 만들어내는 무거운 공기에 괜히 어깨가 쪼그라들고 자꾸 눈치가 보인다. 한 마디로, 기분이 나쁘다.

 

마트에서 진상고객이 점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욕설을 퍼붓는 것만이 모욕이 아니다. 표정이나 말투를 통한 무시와 경멸, 비하, 조롱, 차별 등이 사실은 더 넓고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은 타인으로부터 불쾌한 모멸감을 느껴봤을 것이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모욕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방식은 다양하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지 않더라도 말투와 눈빛 등으로 교묘하게 상대를 모욕할 수 있다. 때문에 모멸감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된다. 물리적인 폭력처럼 눈에 보이지도 않고 지극히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고착화된 사회적 감정 모멸

하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가 아무렇지 않게 타인을 멸시하고 조롱하는 분위기에 젖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모멸감의 저자 김찬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우리사회가 자기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멸시하고 조롱하는 심성이 관성으로 고착화 된 것은 아닐까라며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우리 안에 자리잡은 모멸이라는 감정 덩어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결실이 공평하게 분배되지 못한 기형적인 사회에서 자라났다. 불안한 생존기반에서 비롯된 결핍과 공허를 타인의 인정으로 채우고 싶은 욕구가 크지만 서로를 인정하는 너그러움이 부족해지면서 우리는 결국 누군가를 모욕하고 경멸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 산물인 모멸감은 우리 일상과 사회문화에 직결돼 있어 개인의 자존감 회복, 너그러운 사회분위기 조성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구조적인 노력이 수반돼야 극복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노동 시장 등 삶의 기반 안정이 우선

우리사회는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던 헝그리 사회에서 벗어났으나 사람들이 증오 에너지를 분출하는 앵그리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자신의 책 정치와 삶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권력과 부, 지위만 쫓는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가 오만과 모멸의 구조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남을 깎아내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으려는 사회 분위기를 바꾸려면 인간 존엄의 근본 토대가 되는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의식주가 풍족해졌지만 그것을 얻는 방법은 빈궁한 시대 보다 더 가혹해졌다삶의 기반이 빈약해 사람들이 늘 불안해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지난 수십년간 가장 높은 성장률을 이룬 국가 중 하나지만 개개인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졌다. 근로자 4명 중 1명이 저임금 근로자(25.1%2012년 기준)이며, 임금불평등은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높다.

 

오찬호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하청회사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도 큰 돈은 못 벌더라도 가장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키며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하는 데 현실은 너무도 열악하다노동시장의 불평등부터 해소해야 사회의 가치체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비교 대신 있는 그대로의 존중 필요

모멸은 주로 나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을 향한다. 학력 경제력 외모 나이 집안환경으로 타인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습성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과 저것의 차이를 인정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서열화하는 습관이 마음 속 깊이 박혀있다. 차이를 인정하는 가치체계를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과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등급을 매기고, 남보다 앞서야 안심하며 우월감=행복감이라고 느끼는 우리의 내면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타인을 향한 모멸과 모욕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에서 모멸감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 응원 카페가 생긴 것은 사람들도 언젠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공감과 함께 뭉치면 재벌에도 맞설 힘이 생긴다는 연대감 때문이다. 김찬호 교수는 갑을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되고 땅콩 회항사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 것은 새로운 변화이고, 앞으로 부당한 횡포가 견제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모멸감에 대한 감수성부터 키우자고 했다. 인권감수성 장애감수성이라는 말이 사회적 인식을 바꾼 것처럼, 상대가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는 모욕 감수성을 도입하자는 것이다. 김찬호 교수는 며칠 전 외부 강의를 갔을 때 딸 또래의 대학생이 강의 준비를 도왔지만 고맙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돌이켜보니 그 학생을 나와 같은 인격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이런 부분부터 섬세해질 필요가 있다고 고백했다.

 

 

재앙 참사 4년 만에 방사능이 안전하다고? 3.20 함께사는 길

 

사고 발생 4년이 지났지만 녹아버린 노심에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부터 사용후핵연료를 꺼내는 등의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사용후핵연료를 수조로부터 용기에 담아 끄집어내는 데만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IAEA

 

- 일본 내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 피해 상황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나.

원전 사고는 아직도 수습이 되지 않았다. 한때는 20만 명을 넘는 사람들이 고향에서 쫓겨나 피난이나 이주를 했다. 원전 사고 후 4년이 지난 지금도 피난을 하고 있는 사람이 10만 명 이상 된다.

옛 원자력 안전·보안원에 따르면 201110월까지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방출된 요오드131160PBq(페타베크렐, 1PBq=1000조 베크렐), 크세논은 11000PBq, 세슘13418PBq, 세슘13715PBq이다. 피난 구역(토양 오염의 수준이 18.5만 베크렐 이상)은 후쿠시마 현을 넘어 미야기 현, 도치기 현 북부, 군마 현, 이바라키 현 남부, 지바 현 북서부까지 퍼졌다.

 

-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4년째다. 사고 당시 인근 지역의 방사능 수치가 높았다. 지금은 어떤가.

장소에 따라 다르다. 일본 정부가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후쿠시마 시는 올해 2월 시점에서 시간당 0.2μSv(마이크로시버트), 이다테마을(飯館村)에서는 시간당 0.6~2.9μSv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소적으로 더 높은 수치를 보여 주는 곳도 있다.

 

- 방사능 오염제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많은 세금을 들여 제염(방사능오염 제거)을 진행하고 있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광대한 삼림, 농지 등을 제염하는 등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제염토를 농지 등에 무방비로 쌓아놓기도 하는데 일부 주민들이 가져와 집 앞 정원 토양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제염토를 채운 자루가 낡아 흙이 새어 나와 주변을 오염시키기도 하는데 공기 중에 떠다니는 제염토의 흡입으로 인한 피폭 위험도 높다.

(정부가) 2011년 당시 후쿠시마 시나 다테 시(伊達市) 등의 주민을 대피시키지 않은 이유는 (마을을) 제염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지역의 제염을 우선시해야 하며 제염뿐만 아니라 대피 등 종합적인 피폭 방호 조치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 사고 직후 정부는 연간 1mSv를 목표로 방사능오염 제거를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1mSv는 비현실적이며 연간 20mSv를 밑돌면 귀환을 촉진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리고 있다. 사고 후 일본 정부의 대응을 평가해 달라.

정부는 연간 20mSv를 기준으로 피난 구역을 설정했다. 많은 반대에도 이 기준은 지금까지도 바뀌지 않고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준도 연간 20mSv로 알려졌다. 정부의 계산식에 의하면, 연간 20mSv를 시간당으로 환산하면 3.8μSv(1μSv=0.001mSv). 방사선 관리 구역은 시간당 0.6μSv. 결국 방사선 관리 구역의 6배 이상이라는 얘기가 된다. 일단 대피령이 중단되면 배상도 중단된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은 대피하고 싶어도 배상이 중단되기 때문에 귀환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 실제로 고향으로 돌아가는 주민들도 있다고 들었다. 방사능 노출에 대한 우려는 없는가.

정부는 주민들에게 실상과 오염 현상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귀환을 주도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피난을 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하는 사람도 많다. 고향에 돌아가기를 택하는 사람도 있는데 대부분 고령자가 많아 돌아가더라도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난 후쿠시마 다이이치 발전소. 20149IAEA

 

- 방사능 오염에 따른 주민들의 건강이 염려되고 있다. 후쿠시마 18세 이하 어린이의 갑상선암 발생확률이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212일 개최된 후쿠시마 현 현민 건강 조사 위원회에서 지금까지 갑상선암이 악성이라고 진단된 아이는 의심 포함 117명이다. 이 중 수술을 통해 갑상선암으로 확정된 아이는 86명이다. 지난해 4월부터 2번째 검사가 시작되었는데 검사 결과가 확정된 75311명 가운데 세포 검사로 문제가 없다고 진단된 8명이 갑상선암으로 의심된다고 진단됐고 이 중 한 명은 수술 결과 갑상선암인 것으로 확정했다. 갑상선암 뿐만 아니라 다른 질병에 대한 우려도 많다. 갑상선 질환, 백혈병, 심근경색 등의 보고가 있지만 모두 단발적인 보고로 총체적인 데이터는 없다.

 

- 한국 시민들은 원전에서 발생한 오염수가 바다로 버려질까 걱정이 크다. 현재 오염수 상황은 어떤가. 일본 정부의 오염수 처리 대책이 현실 가능하다고 보는가.

오염수 문제는 20136월에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그 이전부터 대량의 오염수가 새어 나왔다. 오염수는 하루 400톤의 비율로 증가해 발전소에 설치된 1000개 이상의 탱크에는 현재 총 335000톤의 오염수가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탱크의 일부에서 오염수가 지상으로 누출되고 있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내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 고농도 오염수에 대해 당초 예정됐던 2014년 내 정화 처리를 포기했다. 한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탱크 속의 오염수를 해양으로 방출할 방침을 세웠다. 사실 도쿄전력은 아직 방출을 결정하지 않았다. 도쿄전력이 방출을 결정하지 못한 것은 지금의 처리로는 트리튬을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 어업협동조합 연합회는 127일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방침에 반발해 트리튬이 남은 오염수를 바다에 흘리는 것에 반대한다는 뜻을 경제 산업성에 전했다.

 

- 한국 국민들은 일본산 먹을거리, 특히 후쿠시마 인근 지역의 수산물 등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이 크다. 일본 분위기는 어떤가.

일본에도 방사능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은 많지만 정부는 '방사능을 걱정하는 게 몸에 더 나쁘다'는 취지의 홍보와 선전을 하고 있다. 심지어 지역 NPO(민간비영리단체) 등을 이용해 시민들에게 "방사능은 안전하다"라는 인식을 심고 있다. 정부 또는 민간이 하는 이러한 활동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이란 명목으로 거액의 세금이 사용되고 있다. 이런 선전에 의해 방사능 걱정을 하는 사람은 그 우려를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풍조가 생기고 있다. "먹고 응원하기"와 같은 캐치프레이즈 아래에 후쿠시마 현의 먹을거리를 먹음으로써, 후쿠시마의 부흥을 지원한다는 캠페인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식품안전위원회는 201110'식품 중에 포함되는 방사성 물질의 식품 건강 영향 평가'에서 "생애 누적 방사선량은 100mSv를 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후생 노동성은 사고 후의 '잠정 규제치'를 고쳐 일반 식품에서 방사성 세슘 100베크렐/kg 등으로 기준을 바꾸기도 했다.

 

국민들은 먹을거리의 방사능 오염을 걱정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오히려 후쿠시마 현에서 생산한 먹을거리를 소비해 후쿠시마를 살리자는 먹고 응원하기캠페인을 지원하고 있다 후쿠시마현

 

- 사고 이후 일본은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 전력수급에 문제는 없었는가.

2013915일부터 칸사이전력 오사카원전이 정기점검으로 멈추면서 일본에서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한 기도 없다. 그리고 1년 반이 지났다. 일본의 전력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전력 회사는 재생가능에너지에서 생산한 전력을 구입하는 것을 억제하고 있다.(일본은 재생가능에너지특별조치법에 따라 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에너지를 발전회사가 고정가격으로 전략 매입해 전기요금에 할증료 형태로 추가하는 고정가격매입제도를 실시하고 있다.-편집자)

 

- 일본 시민들이 바라는 것은?

시민의 대부분은 원전 철폐를 원한다. 2012년에 열린 '에너지에 관한 국민적 논의'에서는 약 80퍼센트의 사람이 원전 철폐를 선택했다. 문제는 이런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 한국에 전할 말이 있다면.

일본 정부의 의향이야 어떻든 일본은 1년 반 동안 원전 제로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아직도 수습 목표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괴로워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시민의 뜻에 따라 원전이 아니라 재생가능에너지를 촉진한다는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한일 양국의 뜻있는 시민이 연계해 양국 정부가 탈핵으로 갈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한다.

 

 

핵발전소 멈춰도 블랙아웃 없었다-과연 핵발전소가 멈추면 세상이 멈출까

20136, 핵발전소 10기가 멈췄다

2013528. 핵발전소 부품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으로 신고리 2호기, 신월성 1호기 가동이 중단됐다. 그해 6, 시험성적서 위조 사건 여파로 정비 기간이 연장된 신고리 1호기를 포함해 예방정비와 고장, 재운전 심사를 이유로 멈춰 있던 기존 8개 핵발전소에 두 기가 추가로 중지되며 전체 23기 핵발전소 가운데 10기가 가동을 멈췄다. 전체 핵발전소 설비용량 2716000킬로와트(kw)37%7716000kw에 해당되는 규모였다.

 

<원자력발전백서>

 

블랙아웃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에서 핵발전소 비율은 평균 36퍼센트(2001~2012) 정도. 20136, 핵발전소 10기가 멈췄을 때 12차례 전력 경보가 발생했고 그 지난해인 20126월에 비해 전력판매량이 2.1% 증가했지만 '블랙아웃'은 없었다. 공장과 대형건물 전력 소비를 줄이고 수력, 대체, 민간 자가발전기를 가동하는 수요관리 대책으로 큰 위기 없이 넘겼다. 그 뒤 핵발전소 폐쇄에 대한 시민사회 요구가 더 강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 노후와 잦은 고장으로 핵발전소 이용률과 발전량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

 

<전력통계속보> 한국전력공사

 

<발전설비현황> 전력거래소, <에너지통계연보> 에너지경제연구원

 

발전소, 얼마나 예비해야 적정할까?

적정 설비예비율은 국가별 전원 구성과 지리 특성에 따라 목표치가 다를 수 있다. 보통 적정 설비예비율은 15%. 이를 유지하면 지나친 설비비용을 줄일 수 있다. 6차 전력계획에는 모든 구간에서 적정 예비율을 넘었다. '7차 전력계획 수립 시에는 높은 설비예비율로 기회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 전력수급 안전성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설비용량보다 공급예비율이 필요하다. 한국전력공사는 설비예비율이 높은 나라를 예로 들어 국내 설비예비율이 낮다며 발전소를 계속 지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공급예비율로 보면, 수치는 매우 낮아진다.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이 지닌 허점들

이론으로 100% 이용 가능한 핵발전과 화력발전에 비해 신재생에너지는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신재생에너지 설비비중이 높은 국가 설비예비율은 이용률을 고려한 피크부하 기준의 설비예비율을 고려해야 한다, 설비용량에 대해 피크기여도 10~20%만 적용한 전력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은 노후 발전설비가 많고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도 많다. 신재생에너지 특성 때문에 전력수요가 발생한 시점에서 이용 가능한 설비용량은 그것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 국회 예산정책처 2015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 국회 예산정책처 2015

 

월성·고리 1호기, 지금 폐쇄해도 전력난 없다

 

200730년의 설계수명을 끝났지만 2017년까지 10년의 수명연장을 승인받은 고리1호기, 201230년의 설계수명이 끝났지만 2022년까지 가동연장 승인이 결정 난 월성1호기. 지금 이 두 핵발전소를 폐쇄에 따른 설비예비율을 검토한 결과, 2015년부터 적정예비율이 15%를 넘어 2027년까지 전력 수급 문제가 없는 것으로 예측됐다. 그동안 정부가 전력수급문제로 노후원전 가동연장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은 거짓임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용 가능한 설비용량을 반영한 공급예비율로 하면, 수치는 매우 낮아진다.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사전평가 보고서> 국회 예산정책처 2015

 

4년 전, 일본에선 무슨 일이?

2011311일 도쿄전력이 운영하던 후쿠시마 다이이치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다. 도쿄전력은 지진과 해일로 인해 핵발전소에 전력공급이 끊겼다며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음날인 12일 가장 낡은 1호기가 폭발하고 이어 3호기, 2호기, 4호기가 차례대로 폭발했다. 위험한 방사성 물질들이 어마하게 공기와 해양으로 퍼져 나갔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사고는 수습되지 않았다.

 

'핵발전소 사고 확률은 100만분의 1도 안 된다', '지진과 해일 등 자연재해에 대비해 안전 기술을 갖췄다'고 자신하던 일본이었다. 하지만 사고를 막지 못했고 수습 또한 하지 못하고 있다. 311일 그날의 사고로 일본의 핵발전소 안전 신화는 무너졌다.

 

그날의 기록은 일본의 비극으로만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설계수명을 끝내고도 10년의 수명연장을 받아 가동 중인 핵발전소를 비롯해 22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에 있다. 또 최근 수명 연장을 허가받은 노후 핵발전소 1기가 재가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고 확률 제로는 없다. 2011311일 그날의 일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했다. 핵발전소가 가동되는 이상 100퍼센트 안전대책이란 것은 세울 수 없으며 사고가 발생하면 인간의 힘으로 수습이 불가능한 일임을 말해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안전한가

 

귀농인 늘었다고? 여의도 574배 농지가 사라졌다! 3.20 프레시안

농부가 줄고 있다. 농부들이 나이가 들어가는 데 이어서 농사지을 사람이 없다. 농사짓는 것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농사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농지가 줄고 있다. 농사를 짓는 것보다 땅을 파는 이득이 더 낫기 때문이다. 현 농지법에 한계가 있어 농지 전용으로 많은 농지가 없어지고 있다.

 

'농사지으려는 농부에게 농사지을 땅을!' 이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당연한 현실이 되기 위해서 어떤 시도들을 해야 할까? 현재 농부와 농지의 현실, 그리고 현 농지법의 한계, 외국의 사례, 생활협동조합의 움직임 등을 살펴본다.

 

 

농촌인구가 급속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서 경제활동인구를 조사할 때 16~64살을 생산가능인구로 분류하는데 2001년부터 201312년 동안 생산가능인구가 8.5% 줄어들었다.

 

식량을 생산하는 경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20011876000ha에서 20131711000ha12년 만에 무려 165000ha(8.8%)나 줄었다. 이는 여의도 면적의 약 574배 크기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놀랍게도 브라질과 영국은 2011년 기준 경지면적이 10년 전과 비교하여 각각 18.9%, 7.1%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경지면적 변화율이 10.1%인데, 이는 칠레(-17.5%) 다음으로 감소폭이 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경작지이지만 이용하지 않는 경작지, 즉 휴경지도 계속 증가할 추세다.

 

한반도 남쪽에 '국가'가 존재하는가?320 프레시안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광복'은 아직도 우리의 과제

 

아무리 훌륭한 국가도 완벽할 수는 없다.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모자라는 점도 있고 지나치는 점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20144월 이후 대한민국이 보여준 국가 기능의 총체적 실종 앞에서는 국가의 존재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014416일 국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 사실이 드러났을 때 문제를 인식하고 개선을 위한 노력이라도 기울인다면 변변찮은 대로 국가가 존재는 한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는 진상 규명 등 국가의 역할 수행을 요구하는 유가족을 적으로 대했다. 대통령은 면담을 거부했고, 여당 인사들이 유가족을 모욕하는 언사를 내뱉었고, 경찰 등 행정 기관은 유가족의 단식을 조롱하는 극우 세력을 방치하거나 감쌌다. 반년 넘어 지나 겨우 만들어진 조사위원회는 정부-여당의 사보타주로 작동이 어렵다.

 

상징적인 문제가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방이다. 국가의 역할이 절박하게 요청되던 7시간(근무 시간 포함) 동안 행정부의 수장이요 국가 원수라는 자가 어디서 뭘 하고 자빠졌는지 깜깜하니 온갖 기괴한 소문이 나돌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그런 소문의 존재를 보도한 일본인 기자에게 죄를 묻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청와대 안에 있었다"는 주장 외에 아무것도 밝히지를 않고 있으니, 뭔가 밝히지 못할 사정이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달라는 이야기 아닌가.

 

현대 세계의 국가 중에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국가가 없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의 피해를 더 늘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해주고 싶어도 후속 조치라는 것을 보면 뭔가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걱정을 억누를 수 없다. 해가 저물기도 전에 대한민국의 국가 자격을 의심할 만한 일 또 하나를 국가 기관이 터뜨렸다. 이건 우연한 사고로 볼 여지도 없이 그냥 저지른 짓이다. '통합진보당(통진당) 해산'까지는 따지지 않겠다. 설령 해산 판결이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통진당 소속 의원들 배지를 떼겠다고 어떻게 사법부가 나설 수 있나? 의원 자격 박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소속 의회에 권유를 할 일이지, 어떻게 헌법재판소가 손수 배지를 떼러 나설 수가 있나? 8인의 재판관은 '3권 분립'이 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란 말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관습 헌법' 들고 나왔을 때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는가?" 따진 일이 있다. (관련 기사 : "이완용이 그대들보다 더 나쁜 짓을 했는가?") 지금 생각하면 이완용에게 미안하다. 이완용은 고종이 맡겨놓은 총리대신으로서의 권한을 팔아먹은 것이지만 8인의 헌법재판관은 누가 맡겨주지도 않은 권한을 팔아먹었으니 훨씬 더 질 나쁜 범죄자들이다. 이완용이 '국가 절도범'이라면 이것들은 '국가파괴범'이다. 국가의 파괴란 어떻게 해서 벌어지는 일인가? 권력의 사유화가 문제다. 국가 권력이 공변된 성격을 지키더라도 현실 조건 때문에 국민을 보호하는 역할이 충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공변된 성격을 아예 포기한다면?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을 해치는 흉기가 된다.

 

나는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돌베개 펴냄)에서 조선 말기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국가 기능의 저하를 불러온 끝에 망국 중에도 아주 추잡한 꼴의 망국에 이르는 과정을 더듬어봤다. 1910년의 한일 합방 설명으로 그 작업을 끝낼 때, 망국 이야기를 아직 끝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35년 후의 '광복(光復)'을 맞고도 한국인은 국가를 되찾지 못했다. 3년 후 '건국(建國)'을 했지만 온전한 국가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19458월부터 19488월까지 이른바 '해방 공간'을 세밀히 살펴보는 '해방 일기' 작업을 했다. 그 성과가 이제 책으로 완간되는 시점에 이르러, 한국인이 지금 이 시점까지도 온전한 국가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확인한다.

 

'국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나는 '국가주의'를 몹시 싫어한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아무리 국가주의가 싫더라도 내 국가를 아끼는 생각은 버려서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민족의 전통이 빈약한 유럽인들은 민족과 국가를 분별하지 못했다. 그래서 둘 다 'nation'이란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반면 한국처럼 민족 전통이 뚜렷한 사회에서는 그 차이가 분명하다. 20세기 전반기의 참극을 겪은 유럽에서는 'nationalism'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치열한데, 그 대상은 엄밀히 따져볼 때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가주의다.

 

선진국의 사조라 하여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거름통 지고 장에 가는 격이다. 번역을 잘못해서 국가주의의 잘못을 애꿎은 민족주의에 덮어씌우는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거니와, 국가주의의 반성도 초점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국가의 이름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원래의 임무를 등지는 짓이기 때문이다. 국가라는 것이 원래 나쁜 것이니까 국가의 역할을 무조건 축소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 자본의 전횡을 도와주는 매판 세력의 상투적 주장이다.

 

문명 세계에는 제도화된 질서가 필요하다. 문명 발생 이전, 지구상에 인류의 개체수가 500만 명이 되지 않을 때는 사람들 사이의 어떤 문제라도 개별적으로 처리하면 됐지, 굳이 제도적 질서를 따로 세울 필요가 없었다. 문명이 발생하고 인구 밀도가 높아지면서 제도적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문명 발전에 따라 제도적 질서를 공유하는 사회의 규모가 커져 어느 단계에서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제도적 질서를 통해서만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관계를 가지는 상태에 이른다. 이것을 '국가'라 할 수 있다. 국가의 규모는 계속 커지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구성원을 품고 있으면서 외부적으로는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가지는 기본 구조는 지금까지 그대로다.

 

근대 이전에는 국가의 외부 관계가 몇 개 인접국에 제한되어 있고 교류의 분량이 적었기 때문에 내부적 기능이 압도적으로 중요했다. 내부적 기능의 핵심이 질서 유지에 있었고 폭력의 억제가 국가의 기본 역할이었다. 국가 제도가 일찍 발달한 중국에서 '왕토(王土)'의 이념으로 토지 소유권을 제한한 것은 민간의 무기 소지를 금지한 것과 같은 뜻이었다. 무력(武力)과 함께 재력(財力)이 또한 질서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 것이다.

 

국가의 질서 유지 기능은 "강자를 억누르고 약자를 세워주는(抑强扶弱)" 원리에 따른다. 도덕적으로 고매한 원리라서가 아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뤄야 질서가 유지된다. 강자의 전횡을 방치하고 정글의 법칙에 맡기면 약자가 설 땅을 잃고 극한적 저항으로 나오기 때문에 질서 유지가 불가능하게 된다. 강자의 입장에서도 거시적-장기적으로 질서 유지가 필요하다. 사회가 지속 가능성을 가져야 자신의 유리한 입장도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의 욕심을 참고 국가 질서에 순응할 동기를 가진다. 그러나 국가 질서에 신뢰를 가질 수 없을 때는 자신의 힘밖에 믿을 데가 없다는 전제 아래 생존을 위한 각개약진으로 나서게 된다. 강자들이 절제 없는 경쟁을 벌이면 약자들이 견딜 수 없게 되고, 그 결과 사회구조가 붕괴되면 강자들도 피해를 면할 수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에 대한 구성원들의 믿음이 매우 약하다. 전에는 정치인의 선의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국가의 능력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독재 정치에 시달리면서도 국가의 운영권을 원래의 주인인 국민이 되찾기만 하면 국가가 국가 역할을 잘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87년의 '민주화' 이후에도 다수 국민이 집권 세력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국가 자체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 있다. 정치 혐오증 확산의 이유다.

 

어느 대통령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했다. 솔직한 말씀이긴 한데,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시장이 아니라 재벌에게 넘어간 것이다. '재벌'로 지칭되는 자들이 그 이름을 몹시 싫어하지만, 너무나 정확한 표현이다. 무력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독립적 권력이 되는 것을 '군벌'이라 하는 것처럼, 재력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 바로 '재벌' 아닌가지금의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기능이 온전치 못하다. 안으로는 국민을 재벌의 권력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못하고(법인세를 놓고 '성역' 운운 하는 사실 자체가 얼마나 우스운가!), 밖으로는 미국에 종속되어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민족 문제에 관한 정책조차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있다.(나는 '해방 일기'에 이어 '냉전 이후' 작업으로 이 문제를 검토했다.)

 

밖으로는 외세 의존성, 안으로는 무정부 상태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의 '지나친 힘'에 시달리는 일이 많았다. 1948년 정부 수립부터 1987년까지 경찰-군사 독재 기간에 집권 세력은 독점한 폭력을 절제 없이 휘둘렀고, 그 폭력의 형태는 물리적 폭력, 즉 무력(武力)이었다. 그 폭력에는 재력(財力)의 주체인 재벌조차 대항하지 못했다. 정권의 미움을 받아 무너진 재벌도 있고 재산을 빼앗긴 재벌도 있다.

 

사회를 아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1987년까지 '민주화'에 쏠린 것은 그런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민주화'의 의미는 물리적 폭력의 통제, '문민'의 원리에 집중되었다. 박종철과 이한열의 억울한 죽음이 상상 밖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데서 물리적 폭력에 대한 시민들의 반감이 얼마나 강렬한 것이었는지 알아볼 수 있다.

1987년에 한국 사회는 '문민'의 원리를 확보했다. 국가의 물리적 폭력이 '정상적'인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당시 시민의 의식이 물리적 폭력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에, 덜 물리적인 폭력, 즉 재력에 대한 통제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 결과 총칼의 힘을 대신해 돈의 힘이 정부에 대한 장악력을 지금까지 키워왔고, 이제 그 장악력을 발판으로 물리적 폭력까지 다시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단계에 와 있다.

 

1987년 이후 한국의 정권은 새누리당(민정당 이래)과 민주당을 두 축으로 운용되어 왔다. 비교적 민권을 중시한다는 민주당이 10년간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을 때도 재벌의 '경제 권력'은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두 당이 경쟁적으로 '경제 민주화'를 외친 것은 그 폐단이 너무나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구호에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히 확인되고 있고, 민주당의 진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제 권력의 통제를 진심으로 주장하는 것이 분명한 정치 세력은 정권에 접근할 꿈도 꾸지 못하고 있다.

 

기득권층의 이익을 내놓고 대변하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1년 되었을 때 일어난 '용산 참사'는 국가의 물리적 폭력이 정상적 수준을 다시 벗어나는 신호탄이었다. 유시민이 <국가란 무엇인가>(돌베개 펴냄)를 쓴 것은 이 사태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는데, 그는 바람직한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로 생각한다고 서문에 썼다.

 

2011년 봄 이 책이 나왔을 때는 이런 말을 대단히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해방 일기> 작업을 진행하면서 불만스러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더 좋은 국가'를 생각하기 전에 '최소한의 국가'를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환자에게 건강 관리법을 설명해 주는 격이 아닐까? 1910년에 한반도에서 국가가 사라졌다. 통치 기구로서 정부는 총독부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그러나 통치의 목적이 주민 아닌 외세의 이익에 있었기 때문에 국가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다. 1945년 일본의 패망으로 국가가 회복될 조건 일부가 이뤄졌지만 충분한 조건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1948년 만들어진 두 개의 정부가 모두 국가의 회복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1948년 이후 두 개 정부를 중심으로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국가 비슷한 조직 두 개가 한반도에 존재하게 되었다. 북한 사정은 내가 잘 모르거니와, 내가 살아온 남한은 정부 수립 당시부터 갖고 있던 국가로서의 결함을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함이 밖으로는 외세 의존성으로 나타나고 안으로는 무정부 상태로 나타난다. 두 문제는 동전의 양면처럼 짝을 이루며 식민지 시절에 빚어진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미국이나 (한국 출신을 포함한) 국제 자본의 총독부 역할에 그치게 하려는 세력과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국가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뒤얽혀 맞서는 상태에 있다.

정의를 세우는 국가, 시민을 보호하는 국가,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말이 쉽지, 꾸준한 노력과 많은 의논이 필요한 일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한, 더 기본적인 응급조치다. 우리 정부가 총독부 아닌 주권 국가 정부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패러다임 이론에 맞춰 본다면 국가의 성격을 정량적으로 조절하는 정상 상태가 아니라 국가의 개념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패러다임 전환기에 우리가 서있다고 나는 본다.

 

"내 탓이오!" 외치기 전에 생각할 것들

어렸을 때(1950~60년대) 많이 듣던 "엽전은 안 돼!" 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식민지 시대 일본인이 조선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과 조선인을 비하한 관념이 내면화되어 해방 후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은 일본인이 물러간 뒤에도 분단과 전쟁, 독재의 참혹한 상황이 이어진 때문이었다. 고통과 치욕의 역사에 대한 책임을 놓고 내인(內因)론과 외인(外因)론이 엇갈린다. 개인이든 사회든 어떤 일에나 내인과 외인은 어울려 작용한다. 개인의 일을 놓고는 내 잘못을 중시하는 쪽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태도일 뿐 아니라 문제 극복에도 효과적인 길이 되기 쉽다. 그러나 한 사회를 놓고는 도덕성보다 현실 조건의 정확한 파악이 더 중요하다.

 

예컨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5'의 행태를 내부 원인으로 보아 "엽전은 안 돼!" 하는 생각에 보태서는 안 된다. 을사5적이 당시 대한제국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당시 지식인의 전형도 아니었다. 고종의 권력 독점욕과 일본의 압력이 어울려 빚어낸 '괴물 내각'이었다. 그런 소인배는 어느 사회에나 상당수 있게 마련인데, 그런 자들이 조정을 장악하게 한 상황이 문제지, 5인의 행동이 문제가 아니었다. 굳이 내부 원인을 따지자면 임금 노릇이 뭔지도 모르는 고종 같은 자가 임금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건데, 그것은 문제가 된 장면에 국한되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을사5적이 아니라도 조선의 식민지화는 진행되었을 것이다. 당시의 서세동점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일본 식민 통치자들이 을사5적의 행태를 권장해서 친일파를 크게 육성했고, 그 세력이 해방 후에도 외세를 받들어 민족 국가 수립을 가로막고 나섰다. 국가 권력을 그들이 장악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커 보이지만, 그들은 역사의 주체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서세동점 상황 속에 식민지 체제가 냉전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외세에 붙어먹은 기생충이었다. 그들의 잘못을 놓고 일반 한국인이 "내 탓이오!" 하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반성을 한다면 '보통 사람'들의 행적을 되돌아봐야 한다. 해방 공간에서 좌우 합작을 거부한 김구의 오류는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가 좌우 합작을 통해 10년의 신탁 통치를 감수하고 온전한 독립에 이른 것을 보면 신탁 통치 반대를 빌미로 좌우 합작을 거부한 것은 세계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였다. 김구의 오류로 인해 민족주의 세력이 제 몫을 못한 것은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미국과 소련의 이해관계에 있었다. 해방 공간의 민족주의자들이 오스트리아 수준의 좌우 합작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민족 국가 건설의 길이 오스트리아처럼 순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에는 갈등의 확대에 대한 주변의 억지력이 있었던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의 국공 내전이 주변의 갈등을 부추기는 형세였기 때문이다.

 

조선의 식민지화를 초래한 제국주의 체제와 한반도의 분단을 가져온 냉전 체제의 공통 분모는 서세동점 현상이다. 일본의 침략 정책도 서세동점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피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고, 미국의 패권 정책도 서세 동점의 세계 체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 근년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남한의 경제 발전도 이 세계 체제 전개 과정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들어 중국의 굴기 앞에서 서세동점의 형세가 끝나고 있다는 시각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국의 발전만이 아니라 서세동점의 동력이었던 자본주의 체제가 한계점에 도달했다는 견해도 1970년대부터 '세계 체제론'의 형태로 확장되어 왔다. 이 시각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세계 질서가 근 2세기 만에 큰 전환기를 맞고 있는 것이며, 한민족의 주권에 대한 외부의 억압이 100여 년 만에 크게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망국과 분단의 조건이 해소되고 있다

<해방 일기> 집필을 끝낼 무렵 나는 이 전환기의 인식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재 완료 기념 대담에서 '21세기에도 민족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란 제목으로 문명사의 흐름 속에서 지금의 상황에 대한 내 관점을 발표했던 것이다. (10권에 수록되었다.) 19세기 중엽 이래의 서세동점 현상이 끝나고 있으며, 근대적 관념들로부터 풀려난 새로운 생각의 방향이 필요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 그 발표의 골자였다.

 

최근 '자본주의 이후'란 제목으로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다음 단계에 대비할 필요를 논하고 있는 것은 이 문명사 관점의 연장선 위에서 이 사회의 당면 과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이 사회의 '가치관의 혼란'을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게 되었다가치관의 혼란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진보'의 이름이다. 근대 사상의 '진보주의'와 관계없이, 이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에 '진보'의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바꾸는 것을 거부하는 '수구' 세력이 '보수'를 표방하기 때문에 그에 대칭되는 이름을 내걸게 된 것인데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이른바 '진보' 진영에 속하는 사람 중에 진짜 진보주의자는 많지 않다. 내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진보의 믿음이 인간의 근대적 오만에서 나온 것으로 보며 경계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7년간 그런 입장을 꾸준히 밝혀 왔는데도 나를 '진보' 진영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은 것이 이 사회의 현실이다.

 

"이름이 발라야 말이 통하고 말이 통해야 일이 이뤄진다(名不正 言不順 言不順 事不成)"는 공자 말씀을 생각한다. 청와대를 놓고 '불통'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이름을 거짓되게 하니까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이 이뤄지지 않는 결과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비슷한 문제가 진보 진영에도 있다. 진보 진영의 집권 10년 동안 일어난 많은 오해와 혼란이 '진보'의 바르지 못한 이름에 얽혀 있었다. 이 나라에는 잘못된 문제가 많이 있다. 그 문제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사람들이 '진보' 진영으로 지칭되어 왔다. 그런데 그 문제들이 정상적 국가에서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수준의 문제들이고 그 문제들을 극복함으로써 더 나은 체제를 새로 만들자는 입장이면 '진보'가 맞다. 하지만 그 문제들이 정상적 국가의 기준을 형편없이 벗어나는 것이라면, 제대로 된 나라를 일단 만들고 봐야겠다는 보수주의자들도 '진보' 진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의 순조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적어도 지금 단계에서는, '개혁적 보수'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우선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들어놓아야 '더 좋은 세상'을 빚어 갈 발판이 마련될 것이기 때문이다. 해방 공간의 조선 사회의 과제도 이와 비슷한 것이었고, '최소한의 민족 국가'를 추구한 중간파의 입장이 이 과제에 부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간파의 노력은 외세를 등에 업은 매판세력의 무력과 재력 앞에 좌절되고 말았다. 지금 이 사회에서 전환기의 인식이 중요하다고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중간파 선인들이 좋은 뜻을 갖고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절대적 이유가 불리한 국제 정세에 있었다. 일본이 패전했다는 사실 외에는 망국을 겪던 시절의 국제 정세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비슷한 정세를 무릅쓰고 민족 국가를 성취한 예로 베트남이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민이 겪은 30년 전쟁의 고통을 생각하면 꼭 부러워할 일만도 아니다.

 

국제 정세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2차 세계 대전이나 냉전 종식과도 차원이 다른 심대한 변화다. 19세기 중엽에 시작된 '서세동점(西勢東漸)'의 형세가 끝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망국과 분단을 강요한 국제 정세가 근 200년 만에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나는 본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에도 '근대적 가치관'의 안경이 씌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 안경 때문에 우리가 본질적 의미가 없는 가치에 얽매여 불필요한 갈등을 겪기도 하고, 정작 중요한 가치를 간과하기도 한다. 이 안경에 현혹되지 않고 세상을 다시 보는 눈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도, 아무리 좋은 가치라도 절대화하는 관점을 우선 억제해야 할 것이다.

 

'국가'도 다시 볼 필요가 있는 대상이다. 한민족이 1000년간 민족 국가를 생존과 번영의 틀로 삼아온 경험은 서양인들과 다른 것이다. 서양인들에 비해 우리에게는 민족과 국가가 정체성의 발판으로, 사회 운용의 기본 제도로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진 것이다. '세계화'의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민족과 국가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지 않는 세계화라야 진정한 세계화가 될 것으로 나는 본다. 그래서 '국가'의 회복이 아직도 이 사회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

 

 

보도 그 뒤 개판 쳐도 살아남으니 갈 데까지 간다한겨레21 3.17

1051호 표지이야기 종편이 낳은 괴물들 막장 배틀을 읽고 한 종합편성채널(종편) 패널이 가슴속 깊이 찔리는 바가 있다며 전자우편을 보내왔다. 그는 지난해 종편과 뉴스 전문 채널의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전문가 패널로 많게는 하루에 3차례씩 출연했다고 했다. 하지만 문득 엄청난 괴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고 이후 가급적 출연을 자제한다고 했다. 현재는 자신의 전문 분야에 관해서만 논평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일주일에 2~3차례 출연자로 나간다. “기사를 읽으며 지난 1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부끄러운 기억이 많다. 기사에 전적으로 동감하며 깊이 반성한다.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 그에게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다. 다른 평론가·패널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그가 경험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310일 그는 비실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종편 패널이 말하는 종편 패널의 세계는 더 깊은 암흑이었다.

전자우편에서 기사 내용보다 현실이 더하다고 지적했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 패널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종편) 경영진이 원하는 대로 답변한다. 사전에 방송의 방향이 다 정해져 있다. 방송 대본을 보면 질문뿐 아니라 답변도 나온다. 작가들이 작성한 것이다. 또 방송 전에 작가 3~4명이 오늘 무슨 사건이 있는데 이런 쪽으로 간다라고 설명한다. 구구절절 얘기하지 않아도 패널들이 눈치가 빤해서 다 알아듣는다. 엉뚱한 소리를 하는 패널이 있으면 한 번 경고하고 그다음부터는 부르지 않는다.

 

재벌·야당 까는 것처럼보이게

경영진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장성민 전 국회의원, 고성국 정치평론가, 강용석 전 국회의원(왼쪽부터)은 종합편성 채널을 대표하는 사회자들이다. 그들을 벤치마킹하며 제2, 3기 패널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겨레, 한겨레 윤운식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JTBC 시사토크쇼 썰전-독한 혀들의 전쟁 제공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을 얘기할 때, 마치 재벌을 까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재벌을 밀어줘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도록 한다. 정부 정책이나 여당을 비판하다가도 무능한 야당 지도자보다 낫다고 끝내야 한다. 잘 들어보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누군가를 띄워주는 것으로 토크가 귀결된다. 이걸 기가 막히게 잘하는 패널 20여 명이 살아남아서 종편을 장악했다. 종편 패널 1기로서 검증이 끝난 그들에게 경영진이 믿고 맡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보통 하루 3~4곳에 출연하는데 방송 분장도 지우지 않고 돌아다닌다. 방송사 앞에는 자동차가 대기해 있고 매니저를 고용한 경우도 있다. 예전엔 같은 방송사의 오전·오후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는데 요즘은 중복 출연을 자제시키는 분위기다. 보통 첫 방송은 아침 8시다. 방송 1시간 전에 모이는데 이때는 공부하는 분위기다. 대본을 주면 읽느라 정신이 없다. 작가나 다른 패널에게 묻기도 하고. 패널은 기본 4~5명인데 변호사·평론가·정치인·범죄전문가 등으로 꾸려진다. 아침 방송을 1시간 하면서 무차별로 씹다보면 패널이 여유가 생긴다. 이후 이곳저곳을 돌며 똑같은 내용을 방송하니까 나중엔 졸면서도 할 수 있다. 발언 수위만 자꾸 높아진다. 저녁 방송에 나갈 때쯤 패널들이 다 전문가가 돼 있다. 하루 종일 들은 풍월을 자기가 아는 것처럼 주고받으면서.

 

막말이나 감정적 언어가 많던데.

초기엔 조근조근 논리적으로 말하는 패널도 꽤 있었다. 그들이 잘려나가고 목소리 톤이 높고 거친 표현을 쓰는 이들만 살아남았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가끔 제재를 하는데 현장에서 보면 훨씬 심하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자기주장을 감정적으로 쏟아낸다. 북한 <조선중앙TV>와 비슷하다. 눈까지 충혈돼서 잡아먹을 듯이 말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이건 아니다라고 저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하지만 패널 대부분은 그들을 벤치마킹하려 든다. 논리적·합리적이던 사람들도 감정적으로 표현을 바꿨다. 그게 살아남는 길, 성공하는 길이 됐으니까.

 

롤모델이 된 패널·사회자들

고정 출연자나 사회자로 발탁되려고 그러나.

그렇다. 고성국(시사평론가장성민(전 의원강용석(전 의원엄성섭(TV조선 기자) 등이 각각 모델이다. 그들을 따라하며 커가는 제2, 3기 패널이 재생산되고 있다. (방송사 입장에선) 막말하는 사회자, 패널이 나와야 시청률도 잘 나온다. 근데 시사토크 프로그램의 시청률이라는 게 0.2~0.3%포인트 차이다. 1.2%면 못 나오고 1.5%면 잘 나온다고 한다. 그래도 종편·보도채널끼리 치열하게 경쟁한다. 아무리 개판을 쳐도 승인 취소가 되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니까 갈 데까지 간다. 외부에서 실질적 규제를 하지 않는 한 날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다. 스스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다.

 

사회자는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나.

사회자가 되레 몰아쳐서 패널과 갈등을 빚기도 한다. 한 달 전쯤 한 종편에서 유명한 패널이 여성 앵커에게 대본을 집어던졌다. 아무리 같은 편이라도 결이 다를 수 있는데 앵커가 자꾸 자기 방향으로만 유도하니까 패널이 폭발해버린 거지. 카메라가 다른 쪽을 잡고 있어서 방송에는 노출되지 않았지만 대형 방송사고가 날 뻔했다. 그래도 그 패널을 빼긴 힘들 거다. 그만큼 단련된 사람을 찾아낼 수 없으니까.

 

패널들이 종편에 출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생계형이 있다. 하루 4건 방송하면 60~100만원을 번다. 한 달이면 1천만원을 훌쩍 넘는다. 경력이 없는 풋내기 변호사, 퇴직한 공무원들이 어디 가서 그렇게 벌겠나. 선임이 떠나면서 후임을 추천한다. 둘째, 정치 등용문이다. 전직 국회의원이거나 공천받고 싶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다음 총선에서 종편 패널이 당선이라도 되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다. 셋째, 신입생을 더 유치하려고 대학이 지원한다. 교수들이 수업을 해야 하는데 학교 허락 없이 방송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겠나. 일부 패널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주고 출연한다는 얘기도 돌고. 실제로 방송 출연료를 작가들 회식비로 다 내놓는 패널도 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확인은 어떻게 하나.

적어도 언론이라고 하면 사건의 객관적 실체를 취재해야 한다. 하지만 시사토크 프로그램에서는 그렇지 않다. 수사기관이 발표한 내용을 무조건 팩트’(사실)로 고정해버리고 누군가를 결딴내는 게 목표다. 패널은 나쁜 놈을 신속하게 찾아내 욕을 잘해줘야 한다. 실체적 진실을 보도하는 게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것을 먼저 내질러야 한다. 무서운 일이다. 진실이라고 믿는 것이 거짓일 수도 있으니까. 그것을 파헤치는 게 언론 본연의 역할인데 종편은 진실이라고 믿는 것을 진실로 만드는 역할만 한다.

 

 

목표는 누군가를 결딴내는 것

그런 사례가 있나.

김형식(서울시의원) 살인교사 사건이 그렇다.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편이 김형식을 범인으로 몰아갔다. 경찰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근거로 패널들은 팽아무개씨의 진술이 일관성이 있다그러면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살인교사의 동기가 없고 경찰 수사에 허점이 많다는 점은 전혀 지적되지 않았다. 게다가 1심이 국민참여재판이라서 배심원들이 여론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언론에서 김형식을 범인으로 확증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무죄를 선고할 수 있었겠는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아연실색했다.

 

민형사 소송에 걸릴 수 있는데.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무고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인생을 망쳤더라도 사과 방송을 하는 일은 없다. 물어줄 것 있으면 나중에 하면 그만이지 그런다. 패널들은 언론의 자유를 맘껏, 충분히 누린다. 시사토크 프로그램에 기자들이 나와서 팩트를 설명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1시간의 방송 분량을 채울 수 없다. 또 팩트 자체는 재미가 없다. 거기에 추정이 들어가고 가정이 더해져야 재밌어진다. 그걸 일일이 다 확인하고 방송하면 늦어진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그냥 털어줘야 한다. 틀린 내용이라도 말이다. 사실관계는 작가가 써준 대로 보고 읽고 거기에 양념을 치는 것, 그게 패널의 역할이다.

 

공중파에도 영향을 미치나.

엄청나다. 우선 종편이 패널을 키워서 공중파로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경력이 미천하고 전문성도 없는데 종편에서 방송 경력을 쌓은 덕분에 지상파로 영역을 확장한 패널이 생겼다. 둘째, 사건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간다. 종편과 보도채널의 사회부 기자들이 뛰어다니다 재밌는 인물을 발굴할 때가 있다. 사건의 본질과는 전혀 동떨어져 있지만 수다를 떨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세월호 사건 때 유병언(전 세모그룹 회장)처럼 말이다. 종편이 하루 종일 떠들어대니까 포털에도 기사가 뜨고 시청자의 관심도 생긴다. 그러면 공중파가 저녁 뉴스에 보도해야 한다. 종편이 이슈를 선점하고 선명하게 치고 나가면 공중파가 따라가는 식이다. 때로는 종편 패널이 새로운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어떻게?

일부 패널은 자체 정보원을 고용하고 있다. 하루에 방송 4~5개를 하려면 자기만의 정보가 있어야 하니까. 방송을 잘 들어보면 정보원에 의하면이라고 떠들어대는 패널이 있다. 일반인이 알 수 없는 내용을 분명히 말한다. 그 정보원이라는 게 대부분 수사관일 텐데, 공무원이 사건 정보를 유출했다면 형사처벌이나 징계를 받을 일이다. 그런데도 저렇게 대놓고 얘기해도 되나 싶다. 나는 절반 이상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수사 영역은 기자들도 접근하지 못하니까 지어내도 확인이 안 된다. 거짓으로 드러나더라도 당시 정보원이 틀렸다고 둘러대면 그만이고.

 

무시무시한 건 사건 조작 가능성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사건 조작 가능성이다. 예를 들면 유병언 사건의 경우 느닷없이 어떤 패널이 새로운 팩트를 들고나와 방송했다. 수사기관이 공식 발표하거나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내용인데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정보를 공개해버렸다. 그 내용을 언론이 보도하고 검경이 확인해보겠다며 나서고, 그러다 (검경에서 관련된) 증거가 나오고. 그렇게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본질과 먼 방향으로, 정부와 여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꾸 흘러갔다. 유병언의 사체가 나왔을 때도 근본 문제로 접근하려 하면 자꾸 다른 쪽으로 틀고, 종편이 그랬다. 그때 스피커 역할을 했던 이들이 지금 잘나가는 패널들이다. 당시 (수사기관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흘렸을까? 그랬다면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 종편이 사건의 실체를 왜곡하며 흐름을 몰아갔던 것은 분명한데 증거가 없을 뿐이다.

 

 

과학적 진실 이미 밝혀졌다정치적 진실 억지쓰고 있을뿐321 미디어오늘

[천안함 5주기 인터뷰] 서재정 일 국제기독교대 교수 합조단, 흡착물 결론낸 경위 조사해야할 때

5년 전 천안함 사고초기부터 어뢰 폭발론의 모순과 충돌 가능성 등을 제기했던 대표적인 해외학파인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가 천안함 5주기를 맞아 정부의 어뢰설에 대해 파탄났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지난 11일 미디어오늘과 이메일 인터뷰에서 천안함 5년 간 의혹이 계속되는 것과 관련해 “5년이 지나면서 합동조사단의 북한 어뢰설은 파탄났다고 평가했다. 그는 합조단이 바다 밑에서 수거한 어뢰와 천안함을 연결하는 유일한 물적 증거로 제시한 흡착물의 과학성에 대해서는 미국측 조사단도 의심을 가졌다는 것이 밝혀졌다안수명 박사의 노력 덕분에 일부나마 미국의 문서가 공개됐으며, 그 소수의 문서 조차도 5년전 저와 이승헌 교수가 주장한 것이 옳았음을 입증하고 있다고 역설했다.

 

대표적인 합조단 발표의 모순으로 지목되고 있는 흡착물질에 대해 서 교수는 이제는 흡착물이 폭발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제시된 그래프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인지 조사해야 할 단계라고 밝혔다.

 

 

지난 2010611일 국회 천안함 특위 3차회의에서 이기봉 당시 합조단 폭발분과장이 "최초에 발견하지 못했던 알루미늄 산화물을 추가조사를 실시한 결과 함수와 어뢰 흡착물질에서 발견됐다"고 번복했다. 사진=국회방송

 

서 교수는 과학자로서 지난 5년을 되돌아 보면서 미 국무부 고위관료와 만난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천안함 사건 직후 워싱턴에서 국무부 고위관료와 만난 적이 있다“‘과학적 진실’ (forensic truth)정치적 진실’ (political truth)를 구분해서 말하며, 전자와는 상관없이 후자는 이미 확정되었다고 역설하던 것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고 전했다. 그는 과학적 진실은 이미 밝혀져 있으며 학술논문도 여러 편 미국 학술지에 게재됐다이와 상반되는 정치적 진실을 억지쓰는 소수가 있을 뿐이라고 역설했다.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이러한 정치적 진실로 누가 이득을 보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서 교수는 전했다. 그는 천안함 사건은 국내정치를 보수화하는 결정적 전기가 됐다남북관계도 대화와 교류에서 단절과 냉각으로 돌아섰으며, 동북아시아에서도 협력을 기조로 하는 동아시아공동체론이 대결을 중심으로 하는 신냉전적 대결로 전환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국내 및 국제정치의 변화가 천안함 사건과 맞물려 있다역으로 천안함 진실규명이 국내 및 국제정치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서 교수는 사고당시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로 재직하다 우드로윌슨 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일본의 국제기독교대로 자리를 옮겼다.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학교 교수가 지난 20113월 천안함 1주기 토론회에서 합조단과 천안함 보고서의 모순을 지적했다. 사진=언론노조 이기범 기자

 

 

법원이 인정한 천안함의 진실, “합조단 보고서 사실 아닐 수도319 미디어오늘

합리적 의심으로 인정된 KBS '추적60' 보도"연평해전 때 공개했던 팩트, 비공개 이유가 뭔가

 

지난 201011월 천안함 의혹을 제기했다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중징계(경고)를 받아 4년 여의 불복소송을 벌이며 1심에 이어 최근 항소심에서도 승소한 당시 KBS 추적 60분 제작진이 천안함 5주기를 맞아 정부 뿐 아니라 천안함 보고서 작성자들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흡착물질 분석 등 사실과 다르게 작성한 보고서 책임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합동조사단이 쉽게 입증할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어려운 방법을 택했다가 되레 의혹을 증폭시키게 한 이유도 의문이라고 제작진은 밝혔다.

 

강윤기 전 KBS <추적60>(‘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PD(<명견만리> 제작진)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서울고법 행정1(재판장 곽종훈 부장판사)의 방통위 제재처분 취소 판결에 대해 탐사프로그램 제작자이자 천안함 의혹을 추적하는 언론인으로서 뿌듯하게 한 판결이었다고 평가했다.PD판결문을 받아보고 몇 번을 읽었을 만큼 감동적인 내용의 판결이라며 재판부가 제작진의 제작의도와 과정을 이해했을 뿐 아니라 언론자유의 환경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판결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히 탐사프로그램 공정성과 객관성의 기준이 선거보도와 같이 양적 균형을 지켜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재판부 판단에 대해 강 PD굉장히 의미있는 판결이자, 향후 비슷한 많은 사건에 적용될 수 있는 판결이라며 권력에 대한 감시견제라는 언론으로서 당연한 역할을 했다는 표현은 뿌듯하고 고마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나긴 기간 동안 소송을 벌인데 대한 명예회복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너무나 중요한 판단이라고 말했다.

 

KBS <추적60> 천안함 편을 제작했던 강윤기 PD. 사진=조현호 기자

 

이번 판결의 의미를 두고 강 PD현행 방통심의제도가 얼마나 문제가 많은지, 정치편향 심의로 언론자유 얼마나 침해하는지를 드러냈다는 것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로는 천안함 정부 발표에 합리적 의심이 유효하다는 것이 법원에서도 확인이 됐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흡착물질의 성분 분석을 통해 폭발재라고 작성한 합조단 보고서에 대해 강 PD비결정질 알루미늄 산화물(폭발재)이었다는 합조단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아니다라는 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재판부가 판단한 것이라며 이는 과학적 근거라고 가장 강하게 밀어붙였던 합조단 논리의 큰 틀이 무너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초병들의 진술 역시 폭발원점과 크게 다른 방향에서 섬광을 봤다는 것과, 그 초소 남쪽에 있는 다른 인접 초소에서는 섬광을 보지도, 진동을 듣지도 못했다는 사실에 비춰 재판부가 합조단 발표 폭발원점의 위치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의문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판단한 점도 큰 의미를 지닌 판단이라고 강 PD는 평했다.

 

휘어진 스크루를 스웨덴 조사팀이 실제로 분석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스웨덴 조사팀이 조사한 것처럼 주장한 합조단과 방통위측과 관련해 강 PD왜 사실을 과장 왜곡하면서까지 스웨덴 조사팀이 이를 조사한 것이라고 억지주장을 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라며 실제로 이를 조사(시뮬레이션)한 노인식 충남대 교수도 우리와 인터뷰에서 스웨덴 조사팀에 맡기라고 제안했으나 결국 자신이 하게 돼 의문이었다고 밝혔을 정도라고 전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흡착물질이 침전물일 가능성이 높은 비결정질 알루미늄 수산화수화물인 것으로 밝혀낸 정기영 안동대 교수와 합조단 연구책임자와 동시에 증인신문을 하려 했으나 재판 당일 합조단(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이 출석을 거부했던 일도 있었다고 강 PD는 전했다. 그는 당시 정 교수는 증인 출석을 위해 연차까지 내면서 수업을 휴강하고 출석했으나 군 측에서는 사전 통보없이 아예 불출석했다양측을 불러놓고 동시에 증인신문을 하려한 것은 재판부가 제안해 이뤄졌던 것이나 반쪽 신문밖에 안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강 PD보고서에 대한 합리적 설명을 하는데 논리가 부족하고 토론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불리할 것 같으면 빠지고, 문제제기 하면 이상한 식으로 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강 PD는 천안함 사건과 의혹규명의 필요성에 대한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사건이 전쟁을 유발할 뻔한 사건이며, 여전히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5·24 제재가 유효한 상태라며 정부가 발표한 북한 어뢰 피격설이 맞다면 적어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클리어해야 하며 오류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취지의 의견서였다고 전했다.

 

PD오류가 없어야할 대한민국의 정부 천안함 보고서에 오류가 나타났다면 계속 수정보완을 통해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하지만 정부는 과학적 이론을 담은 보고서에 오류와 의혹이 끊이지 않는데도 왜 재조사 및 검증을 거부하고 열린 자세를 보이지 않는지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또한 천안함 사건의 의혹을 쉽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도 합조단이 어려운 길을 택했다는 점도 지적됐다. 그는 합조단이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있었다객관적 정보인 KNTDS와 교신기록, 항적 등 당시 벌어진 모든 자료를 제시했다면 의혹을 일거에 종결시킬 수 있었으나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가 더 비과학적이었다고 비판했다. PD는 흡착물질 분석을 비롯해 보고서가 잘못 작성된 것에 대해 왜 이렇게 당시 사실과 다르게 작성했는지는 그 책임자들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01117일 방송된 KBS <추적60>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

 

방통위가 항소심 판결에도 불복하고 최근 상고해 다시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간 것을 두고 강 PD상고 안하기를 기대했으나 유감스럽다국가기관이 하는 소송은 모두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 1·2심에서 모두 패소했으면 왜 이렇게 패소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되돌아보지는 않고 끝까지 법적으로만 해결하려 드는 것이야말로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안함 5주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강 PD여전히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의혹은 현재 진행형이라며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 등의) 소송이 진행중이기도 하며, 동북아 평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5·24 조치도 남아있다고 말했다. PD큰 오류가 증명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 문제를 받아들였으면 좋겠다정말 어뢰 피격이 맞다면 5주기 맞아 모든 자료를 오픈하고 재조사를 통해 의혹을 해소하거나 의문이 더 크게 나온다면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 5주기 뿐 아니라 10주기까지도 계속 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5주기를 맞은 천안함 진실 규명의 문제가 더 이상 의문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공개돼야 할 정보의 영역이 됐다는 점도 지목됐다. PD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정보를 오픈해 이를 모아보면 쉽게 끝낼 수 있다“KNTDS(해군전술지휘시스템)과 교신기록, 항적, 보고내역 일체, 당시 한미합동군사훈련 일지 및 현황 등 좌초설이나 잠수함 충돌설을 제기하는 이들의 요구사항만 보면, 굳이 과학적 분석 등을 하지 않아도 답이 나올 수 있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그는 군이 연평해전 때는 모든 기밀을 스스로 다 공개해놓고 천안함 때는 공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천안함 함미

 

 

인턴은 노동자가 아닌가거대한 최저임금 사각지대 318 미디어오늘

수습·감단직·특수고용·인턴, 전체 노동자 12%가 최저임금 못 받아형사처벌도 전무

 

최저임금이 오르는 것과 함께 해결돼야 할 문제들이 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이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5210)을 못 받는 노동자는 227만 명이었다. 이는 전체 노동자의 12%에 해당한다. 게다가 이 수치는 2009년 이후부터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최저임금은 인상됐지만 사각지대는 오히려 더 넓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227만 명에 포함되는 노동자는 두 부류다. 최저임금 감액을 적용받는 수습, 그리고 사용자가 아예 법을 어기고 최저임금을 주는 경우다. 최저임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수습 노동자를 사용하려면 세 가지를 지켜야 한다. 1년 이상 근로계약을 할 것, 최저임금의 90% 이상을 지급할 것, 그 기간을 3개월 이내로 할 것 이다. 하지만 이런 구체적인 사항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최저임금도 못 받는 피해가 발생한다.

 

경기도에 사는 대학생 백아무개씨(22)가 그런 경우다. 백씨는 지난해 학교 근처에 있는 초록마을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했다. 원래 시급이 6000원인데 첫 달은 수습이라는 이유로 임금의 80%(4800)만 받았다. 지난해 최저임금이 5210원이었기 때문에 이는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게다가 백씨는 초록마을1년 이상 계약하지도 않았다. 백씨는 해당 업체에서 5개월만 일했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최저임금법 위반이다.

 

노동법 사각지대에는 감단직(감시직·단속직)노동자들도 있다. 사용자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승인을 받으면 감단직 노동자들에게 연장근무수당이나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야당근무수당과 8시간의 휴식시간이 보장해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감단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의 90%까지만 적용받았지만 올해부터는 100%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하지만 실제 최저임금을 적용받을지는 두고 봐야 한다.

 

청년유니온 회원들이 지난 해 9월 홍대 인근의 커피전문점, 편의점, 옷가게 등지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송편을 나누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사진=연합뉴스

 

실제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이지만 최저임금을 적용하기 위해 근로계약상 근무시간을 줄이고 휴게시간을 늘이는 꼼수가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최저임금 위반이 된다. 서울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이 속해있는 민주노총 서울대 시설분회 최분조 부분회장은 올해부터 감단직도 최저임금을 100%로 적용받게 되면서 근로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는데 근무시간이 확정되지 않았다실제 근무시간은 270시간 정도 되는데 얼마나 근로시간으로 인정받을지는 단체협상을 해봐야 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법 제28조는 최저임금 미지급 등에 대해 3년 이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형사처벌을 받는 사용자는 거의 없다. 적발되더라도 차액만 지급하면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탓이다. 실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지난해 3월 공개한 최저임금 단속 및 신고현황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2013년 적발한 최저임금 위반 사업자의 0.2%(12)만 처벌했다. 2013년 최저임금 위반은 6081건이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고용노동부의 감시·감독 강화와 더불어 강력한 처벌 규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최저임금만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이 지방노동청마다 한두 명은 있어야 한다실제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 방문하는 것만큼 체불임금 위반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센터 소장도 인력이나 예산을 확충해야 하고 특별근로감독 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징벌적 배상제도의 도입도 주문했다. 지금은 최저임금을 위반하더라도 과태료조차 물지 않는 실정이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체불된 임금(지불되지 않은 최저임금)10배를 즉시 벌금으로 물게 하는 징벌적배 배상제도가 필요하다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위반과 관련해 2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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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렇게 해도 사각지대는 남는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을 받는지 안 받는지 집계조차 안 되는 이들이다. 먼저 특수고용 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니라 위임계약 또는 도급계약을 맺고 일을 하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다.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님인 셈이다. 따라서 노동관련법의 보호를 받지 못 해 가장 열악한 노동 형태로 꼽히기도 한다. 학습지 교사, 화물차 운전자, 퀵서비스 기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이 이에 속하며 노동계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대략 300만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열정 노동논란을 낳고 있는 인턴 역시 마찬가지다. 현행법은 임금을 대가로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만을 노동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인턴의 경우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 민주노총 서울일반노조의 최강연 노무사는 인턴은 경험 혹은 교육 명목으로 일하지만 실제로는 노동력을 착취당해 기업 인건비 절감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인턴은 주변에서 상당히 많이 볼 수 있지만 완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어 그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턴의 노동력 착취를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송호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10명은 인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이 법에서는 인턴을 유급이든 무급이든 지식과 기술 향상을 위한 교육과 실습을 받는 자로 좁게 규정하고, 1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턴계약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한 산재보험 혜택을 적용하고 인턴계약서를 교부 하는 등 인턴임금으로 계속 일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이 법안도 ‘1년 미만으로 인턴계약을 하는 경우엔 해당이 없는 반쪽짜리 대안이다.

 

따라서 특수고용노동자들과 인턴까지 계산하면 최저임금의 사각지대에 있는 저임금 노동자는 통계청의 227만 명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최저임금 인상 논의에 이 같은 내용은 부족하다. 이남신 소장은 이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 논의가 사각지대 해소 논의와 같이 가지 않으면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사각지대는 더 넓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MBC의 흑역사MB에 맞선 대가는 참혹했다 319 미디어오늘

[해설] 무너진 공영방송의 무기력한 기자·PD새 선장 조능희가 풀어야 할 과제

 

어느덧 MBC 없는 세상이 익숙해졌다. 뉴스데스크를 안 보는 건 물론이고 PD수첩이나 백분토론에 대한 갈증도 사라졌다. 이명박근혜 정권 7년을 지나오면서 생긴 변화다. ‘MBC가 어떻게 망가졌나라는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단어 몇 개로 역사가 요약된다. MBPD수첩, 그리고 김재철.

 

광우병, MB의 트라우

“MBC <PD수첩>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광우병 편)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중략) 그 프로그램만 본다면 3억 미국인들과 우리 국민들은 식품이 아니라 독극물에 가까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셈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최근 발간한 회고록의 한 부분이다. 그가 MBC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08PD수첩은 쇠고기 수입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광우병 편을 방송했고,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사정기관을 쥐고 MBC를 흔들었다.

 

검찰은 1년여 수사 끝에 20096월 조능희·송일준·김보슬·이춘근 등 PD수첩 제작진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윤상현 한나라당 대변인이 이런 허위조작 방송 프로그램을 언론 스스로 퇴출시키고 정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유 언론의 힘라고 비난했을 정도로 무자비하게 MBC를 몰아세웠다.

 

2011년 대법원은 명예훼손 혐의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며 왜곡 보도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조능희 PD 같은 경우 아직까지 광우병 편과 관련한 징계로 회사와 송사를 치르고 있다. ‘PD수첩은 MB의 트라우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PD수첩 제작진들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MBC와 이명박 정부는 미디어법 국면에서도 충돌했다. 이명박 정부는 신문의 방송 겸영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이에 맞서 2008년 말 총파업을 강행했다. 실세였던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은 이를 명백히 정치투쟁이라고 규정하며 노조 때리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MB정권과 MBC는 불화했다.

 

왼쪽부터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명박 전 대통령, 김재철 전 MBC 사장. (사진=청와대, 이치열 기자)

 

청와대 불러 조인트 까고 좌파 척결

20097월 방문진 이사들이 교체됐다. 김우룡 이사장을 비롯한 뉴라이트 계열 인사들이 자리를 꿰찼다. 이들은 줄곧 엄기영 사장을 압박했다. 엄 사장은 20102월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방문진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고 임원 인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은 김재철 사장.

 

김우룡 이사장은 신동아 인터뷰를 통해 엄 사장이 나가면서 이제 공영방송을 위한 8부 능선은 넘어섰다“MBC 내의 좌빨’ 80%는 척결했다고 밝혔다. 정권의 이해가 공영방송 인사에 반영된 것이라는 뜻인데, “큰집에서 김재철 MBC 사장을 불러 조인트를 깠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 인터뷰가 알려진 뒤 MBC본부는 20104김재철 퇴진‘MBC장악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다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김 사장 취임 후 MBC의 독립성은 크게 흔들렸다. 20108월 김 사장의 ‘4대강 수심 6m의 비밀편 사전 시사는 본격 탄압사()’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그는 2011년 연임에 성공했고 PD수첩 최승호, 한학수, 이우환 PD 등을 제작 일선에서 배제했다. PD수첩의 소망교회’ ‘무릎기도 논란편 등 MB 비판 아이템은 방송을 타지 못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지적하는 방영분은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MBC는 개그우먼 김미화씨와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를 라디오에서 하차시켜 제작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2012년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총파업을 결행했다. 파업 과정에서 MBC는 박성호 기자회장을 비롯해 정영하 MBC본부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박성제 기자, 최승호 PD 등을 해고했다. 정권의 방송 장악 상흔은 여태 아물지 못하고 있다. (사진=언론노조 MBC본부)

 

 

사상 초유 ‘170일 파업과 그 이후

2012MBC기자회는 4.27 재보궐 선거 편파 PD수첩 대법원 판결 왜곡 내곡동 사저 편파 10.26 재보선 불공정 등 지난 1년간의 편파 보도를 이유로 보도본부장과 보도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MBC는 이들에 대한 불신임투표를 주도한 박성호 기자회장을 뉴스투데이 앵커에서 내리고 인사위에 회부했다. 기자들은 제작 거부로 대응했다. 언론노조 MBC본부도 1월 말 공정방송 사수를 위한 총파업을 결행했다.

 

파업 과정에서 MBC는 박성호 기자회장을 비롯해 정영하 MBC본부장, 강지웅 사무처장, 이용마 홍보국장, 박성제 기자, 최승호 PD 등을 해고했다. 최일구 앵커 등 보직간부도 파업에 동참하고 시민들의 ‘100만인 서명운동도 들끓었지만 결과적으로 방문진은 김재철 사장을 지켰다. MBC본부는 7월 파업을 접고 넉 달 뒤 새누리당 이상돈 정치쇄신특위 위원이 박근혜 대선 후보의 메신저로 나서 선 파업 철회, 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약속하고 추진했으나 끝내 새누리당이 김재철 사장의 해임안 가결을 무산시켰다고 폭로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파업으로 빚어진 인력 공백은 대체인력으로 채워졌다. 지난해 10월 기준, 파업 기간과 이후 채용된 시용 및 경력 기자는 60(기자협회보 2014. 10. 22일자)을 상회한다. 반면, 파업 복귀 후에도 노조원 다수는 교육발령을 받거나 비제작부서로 좌천됐다. 법원은 지난해 1월 해고자를 포함한 조합원 44명에 대한 징계가 무효라고 판결을 내렸다. 내달 초 항소심 판결이 예정돼 있다. 정권의 방송 장악 상흔이 여태 아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MBC가 보수 정권 이래 가장 퇴보한 언론사라는 지탄을 받는 까닭은 앞서 살펴봤듯 권력비판이라는 언론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 한 방송사였다는 데 있다.

 

시청자와 국민의 실망이 큰 이유 역시 영광의 시대가 빛났기 때문일 터. 김재철 사장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측근으로 불리는 인사들이 경영권을 쥐고 있다. 조능희호()가 출범한 2015, MBC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질까.

 

언론노조 MBC본부는 지난 16일 오후 6시 서울 상암동 MBC 미디어센터에서 이취임식을 열고 11기 집행부의 출범을 공식 선포했다. 신임 조능희 본부장이 전임 이성주 본부장으로부터 받은 MBC본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321 오마이뉴스

내가 만난 '세월호 파란바지 아저씨'

[] '살아온 죄' 자책하는 생존자들... 세상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만

 

지난 10일 이준석 선장 등 세월호 선원들의 항소심 3차 공판을 취재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이라 고속버스 안에서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이내 잠에서 깨어버렸다. 뚜렷한 형상도, 줄거리도 없는 짧은 꿈이었지만 찝찝했다. 꿈에서 본 것은 분명 세월호 희생자였기 때문이었다.

 

당혹스러웠다. 선원들의 1심 공판을 보러 다닐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리긴 했다. 감각은 힘이 셌다. 생존자의 증언이나 현장 동영상, 사진 등 법정에 나오는 자료들을 눈과 귀로 접하며 수시로 2014416일을 거듭 복기하는 상황은 예상보다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참사 관련 이미지가 꿈속으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한동안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파란바지 아저씨' 김동수씨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19,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이 경험이었다. 이날 그는 제주도 자택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했다. 김씨의 딸은 의식을 잃고 화장실에 쓰려져있던 그를 발견한 뒤 병원으로 옮겼다. 상태가 나아진 김씨는 20일 세월호 피해자들을 돕는 경기도 안산시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떠났다.

 

'그날 그 배'의 영웅은 스스로 죄인이라 말했다

 

침몰한 '세월호' 2014416일 오후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한 인천발 제주도행 여객선 '세월호' 주위에서 수색 및 구조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해양경찰청 제공

 

그의 고통이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사진과 증언 등으로 참사를 간접 체험했을 뿐인 나와 달리 김씨는 '그날 그 배'에서 살아 돌아왔다. 애타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기울어진 세월호의 3~4층 갑판을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배가 완전히 뒤집히던 때까지 다른 승객들을 도왔다. 그럼에도 김씨는 괴로워했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채 살아 돌아온 죄인이라며.

 

참사 당일부터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렀지만 김씨는 늘 자책하고 있다. 지난해 513,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부터 변함없었다. 1시간 가까이 진행한 인터뷰에서 김씨는 해경의 무능을 질타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중간 중간 목소리가 잦아지던 순간이 있었다. '죄책감'을 털어놓을 때였다. 김씨는 참사 당일 기억에 드문드문 빈 곳이 존재한다고, 죄책감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관련 기사 : "해경은 살릴 마음이 없었다").

 

"(구조된 다음) 진도체육관에 가보니까 부모들이 와서 통곡하는데살아온 게 죄인이라고그때 그 감정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도 그 죄책감에(416) 오후 7시 넘어서 체육관에서 나왔다. 미안하니까 우리(화물기사들)는 광주라도 보내달라고. 빨리 제주도로 가야겠다고. 학생들은 계속 시신으로 올라오고, 학부모들은 계속 울고, 찾고 난리인데 (우리가) 어떻게 계속 거기 있을 수 있겠나."

 

끝내 구조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거듭 미안해하던 그의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말이 위로가 되진 않겠지만너무 괴로워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병실을 나선 게 전부였다.

 

그와 가족의 생계수단인 4.5톤짜리 화물트럭도 세월호와 함께 검푸른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3개월 정도 나오는 정부의 생활비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김씨는 세월호를 잊지 않았다. 자신을 줄곧 괴롭히고 있는 죄책감도 외면하지 않았다. 그는 20141021일 세월호 선원들의 128차 공판에서 여전히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 "아침마다 바다에서 학생들 헛것을 봅니다").

 

"어제 자살을 하려고 했다. 한라산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다. 아침마다 바다에 나가 학생들 헛것을 본다. (중략)해경이 저한테 와서 뭐라고 한 줄 아십니까? "선장이 살인자죠?" 이랬다. 선장이 살인자면, 해경도 살인자다. 나도 살인자다."

 

4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버티고 있는 사람들

 

아들 사진 매만지는 엄마 '영인아 빨리 돌아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한 달 앞둔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인근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촉구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에서 실종자 단원고 박영인 학생의 어머니 김선화씨가 아들의 사진을 만지고 있다.유성호

 

2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그와 마주쳤다. '부실구조' 책임으로 기소된 해경 123정 김경일 정장의 1심 선고 공판이 끝난 직후였다. 마른 편이지만, 오랜 마라톤 경력으로 다부진 느낌을 줬던 사람은 온데간데 없었다. 누가 봐도 김씨는 수척한 모습이었다. 얼굴빛도 눈에 띄게 나빠져 있었다. '얼굴이 안 좋다, 어떻게 지냈냐'는 질문에 김씨는 "그냥 뭐"라며 멋쩍어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말자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320일 그는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비행기를 탔다. 제주공항으로 찾아온 취재진에게 김씨는 호소했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은 다 끊긴 데다 마음 놓고 치료받기도 어렵다며 국가는 생색만 내고 있다고 했다. '왜 세월호를 못 잊냐'는 주변 사람들의 말도 정말 괴롭다고 털어놨다.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살아남은 자들마저 2014416일 세월호에 갇힌 채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묵묵부답이고, 어렵게 꾸려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출범조차 못했다. 희생자 9명은 아직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진도 앞바다에 남겨져 있는 상태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은 도처에서 나오고 있다. 참사 1주년이 다가오는 지금도.

 

삐라 전성시대? 박 대통령 비판 전단 신드롬 누가 일으켰나 321 경향

일요일, 집에서 쉬고 있던 기자는 무심코 튼 공중파 뉴스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제목은 이랬다. “비방전단 또 살포다리 묶인 채 숨져.” 뭔가 흉측한 뉴스인 듯했지만 주말 새벽에 홍익대 인근에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이 살포되었다는 것과 경북 예천에서 80대 할머니가 살해당했다는 단신이 묶인 기사였다. 뉴스에는 경찰이 전단 살포처 인근에서 확보한 것으로 보이는 CCTV 화면이 얼굴이 모자이크된 채 나왔다. 중년의 남성이 어깨에 멘 가방에서 전단을 꺼내 공중에 살포하며 걸어가는 모습이다. 이 남성의 행적이 담긴 다른 CCTV 영상도 같이 편집됐다. 인상적인 대목은 새벽 3시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엔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나가고 있었고, 그들 중 누구도 이 남성의 행동을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잇따라 의문이 떠올랐다. 왜 저 남성은 새벽 3시에 저 삐라를 살포한 것일까. “위법성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경찰은 왜 방송에 저 CCTV 영상을 공개했을까.

 

지난 228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했던 이들이 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가운데 인근 건물에서 전단이 살포되고 있다. / 연합뉴스

 

통진당 해산 직후부터당국 배후 의심?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난을 담은 전단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 무렵부터다. 거리에 뿌려진 전단 내용은 박 대통령의 과거 방북 행적, 구체적으로 2002년 평양 방북 때 한 발언 등을 예시하며 박 대통령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철저히 수사하라는 것이다. 당시 뿌려진 전단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다. “자기들이 하면 평화활동, 남들이 하면 종북/반국가행위?” 전단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겨냥한 비판으로 보였다. 그 후 전단은 전국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12월과 1, 부산과 광주, 강원도에서도 잇따라 발견되었다.

 

뿌려진 전단들은 크게 두 종류다. 위의 박 대통령 국가보안법 위반 주장 전단에는 전단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전단의 초기 버전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카페 주소도 나와 있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명의로 뿌려지는 전단이다. 이 단체는 익명활동을 고수하고 있다. 2월 하순 서울 명동과 청와대 앞에서 발견된 전단지는 이들이 만들었다. 311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이들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이름은 SNS를 통해 알게 된 몇몇 소시민들이 전단지를 배포해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임시로 지은 이름이라며 앞으로도 공개적으로 활동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215, 부산에 뿌려진 수백 장의 전단지도 화제를 모았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한자어를 담은 이 컬러판 전단에는 기모노를 입은 박근혜 대통령 얼굴이 그려져 있다. 밑에는 나라꼴 자~알 돌아간다라는 촌평(?)을 붙여 놨다.

 

부산 일대에서 지난 2월 중순 뿌려진 경국지색전단지. 윤철면씨가 팝아트 작가 등에게 자료를 받아 제작한 전단이다. / 윤철면 페이스북

 

그리고 311. 한 장의 사진이 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압수수색 현장에서 손가락으로 ‘V를 그리고 있는 남자. 박성수씨(전북 군산시·42). 12월부터 배포된 박근혜 국가보안법 전단 제작자다. 압수수색 이후 박씨의 행보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박씨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활동을 담은 책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를 펴냈다. “보관하고 있던 책을 이적표현물로 압수당해 유명세를 떨치기를 바랐지만경찰은 그의 책을 압수수색하지 않았다. 그에 좌절하는 사진을 SNS에 올렸다. 압수수색당한 이는 박씨만이 아니었다. 박씨의 전단을 받아 인쇄한 대구의 변홍철씨(출판인)도 자택을 압수수색당했다. 공교롭게도 변씨 역시 최근 자신의 책 <와 공화국>을 펴냈다. 역시 압수당하지 않았다. 변씨도 그에 항의하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 박씨는 출석을 요구한 대구 수성경찰서에 개 사료를 보냈다. 개 사료를 보내면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열심히 꼬리 흔드세요~”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는 인증사진을 올렸다. 반송된 개 사료는 군산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뿌렸다.

 

화제를 모은 전단 제작·배포자들 반응

215일 부산에 뿌려진 경국지색 전단 제작자도 밝혀졌다. 부산시 연제구에 거주하는 윤철면씨(46). 223일 오전, 그의 집에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12명이었다. 윤철면씨의 말. “생각해보세요. 연제경찰서 정보과 지능수사팀이 총 9명입니다. 팀장까지 다 포함해서요. 제가 얼굴 모르는 사람이 3~4명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부산시경 사이버팀이라고 하고,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누구고 어디 소속이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운전지원 나왔대요. 왜 이렇게 많이 왔냐고 하니 통진당 이석기 체포 때 방해를 받은 경험이 있어 그런 상황에 대비한 거랍니다. 아이고 나 참. 전단 뿌린 게 뭐라고. 자기네들 스스로 심각한 상황으로 봤다는 거죠.”

 

면밀히 조사하겠다는 경찰이 윤씨에게 적용한 법조항은 셋이다. 첫째는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둘째는 자동차 관리법 위반. 세 번째가 경범죄(쓰레기 무단투기). 윤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라고 그쪽에서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하지 않는 한 수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 딴에는 개인의 의사표현이고 정치표현인데. 자동차관리법은 내가 오토바이 번호판을 범법행위를 위해 고의로 가렸다는 것인데, CCTV 에서 전단을 붙이는 퍼포먼스를 하고 난 다음에 떼고 운행하는 것 봤을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퍼포먼스로 전단을 뿌린 뒤 치우려 했더니 다 없어졌다고 진술했죠.” 윤씨는 수급자다. 인쇄에 들어간 돈 10만원은 두 달 동안 모은 것이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문제 삼으면 사과할 테고, 고소해서 합의 안 되면 벌금형이겠죠. 개인적으로 봐주라 할 생각 없으니 징역은 얼마든지 살겠다고 했는데, 그건 조서에 기록을 하지 않더군요.”

 

전북 군산의 박성수씨의 경우 전단 배포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4 지방선거 당시 그가 가상으로 만들어 배포한 출마 전단지도 인터넷상에서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지역에서 경찰들은 다 압니다. 그 전단지를 만든 사람이 저라는 것과 어떤 배후도 없다는 걸요. 1월 중순에 사실상 수사종결한 사안이거든요. 그런데 대구·부산에서 수사에 나서니 뭔가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것이고.” 박씨가 말하는 311일 압수수색 이유다.

 

313, 서울경찰청이 일선 경찰서에 배포한 ‘VIP(대통령을 지칭)나 정부를 비난·희화화하는 전단지 살포 행위자 발견 시 경찰의 대응요령과 처벌 법규가 담긴 내부문건이 공개되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316일 기자간담회에서 하달한 공문이 아니라 회의 때 돌린 대응요령이라며 현행범으로 처분을 거부하면 체포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박성수씨가 경찰의 압수수색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퍼포먼스 사진.

 

자신의 의견을 쉽게 유포할 수 있는 첨단 SNS 시대에 왜 80년대식 투쟁방식인 전단 살포가 주목받을까. 흔한 분석은 이것이다. 사이버 검열 논란, 정당 해산 등으로 정권이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자 이에 대한 반발도 복고적인 형태로 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표피적 분석에 가깝다. 박씨의 전단 배포 활동은 꾸준히 이뤄져 왔다. 70~80년대 식으로 비밀도 아니었다. 지역에서 박씨의 전단 배포 활동은 널리 알려진 일이었다. 박씨나 윤씨는 자신이 배포하는 전단의 내용, 배포 일시까지 다 자신의 SNS로 공개했다. 전단에 들어갈 문구, 사진 하나하나 자신의 페친과 논의해 결정했다. 박씨는 말한다. “직접 작업하면 인쇄비용은 의외로 싸집니다. 대충 몇천 장에 10만원이면 떡을 쳐요. 포토샵도 직접 하니지방선거 당시 군산시장 후보의 병역비리 의혹을 전단을 통해 제기했는데, 그 양반은 그걸 믿을 수 없다는 겁니다. 10만원으로 할 수 없으니 배후세력이 있다는 거예요. 그분 경험에선 그러겠죠. 직접 만들어본 적이 없을 테니.” 낡은 관점으론 자신의 배후가 없다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2008년 촛불시위 때 연행자 수사를 담당한 경찰들은 아고라를 보고 왔다는 촛불시위 참가자들 수사를 하며 곤혹스러워했다. 가입한 조직이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이렇게 역정을 냈다. “초를 들고 나왔다면 초를 구입한 자금의 출처가 있지 않겠느냐.” 이건 박 대통령 전단수사를 하는 사법당국도 마찬가지다. 대통령 전단은 또 하나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환기시켜냈다. 2008년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조직에 소속된 운동가들을 당황케 만들었던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다.

 

“1인 시위가 개인적 사회운동으로 진화

사회운동 연구자들은 어떻게 볼까. 이창언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기존 조직운동의 특성을 노래 단결투쟁가의 가사를 인용해 정리했다. “‘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라는 노래가사가 있지 않나. 기존 운동권의 방법을 요약한다면 집단적인 힘을 모아 뭔가 한방에 해결하겠다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분들의 활동은 뭔가 장난스러우면서도 여론 주도층에게 자각 내지는 분발을 촉구하는 퍼포먼스에 가까운 것 같다.” 과거 <경기동부> 등 한국 사회운동 연구서적을 펴낸 임미리 박사는 전단배포 사건 자체보다도 SNS 등을 통해 중계되는 이후 활동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어느 순간 길들여진 면이 있었다. 그건 사소한 행위에 대해서도 제도적 억압이 행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월호 시위 참여자들도 태반이 벌금을 맞고 있다. 박씨 등의 활동에 주목하는 것은 그렇게 길들여지는 것에 대한 거부이기 때문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얼핏 봐서는 일종의 퍼포먼스로 과거의 투쟁방식으로 단순회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새로운 운동양식이 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당장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몇 년 전 한국 사회의 새로운 운동양식으로 주목받았던 1인 시위의 진화된 형태로 개인적 사회운동정도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에 대처하는 정권과 사법당국의 시각이다. 김호기 교수는 결국 전단 살포가 하나의 신드롬처럼 되어버린 건 수사당국이나 보수적 시각이 여전히 과거 방식에 사로잡혀 혹시 배후세력이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부터 사건의 주목도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택광 경희대 영문과 교수는 리퍼트 주한 미대사에 대한 김기종씨의 테러도 돌발적으로 벌어진 일이고, 정권비판 전단도 사실 일종의 문화적 퍼포먼스에 가까운 것이라며 김씨의 경우 침소봉대하여 이용하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고, 지금 전단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대응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결국 정권과 우리 사회 일각의 문화지체가 전단 살포 신드롬을 키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세대가 보여주는 사회 321 시사인

<조선일보>가 달관 세대라는 신상을 들고 나왔다. 세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되고, 세대를 규정하는 방식은 그 세대의 특징과 시대의 과제를 보여준다. 그러나 세대론 자체가 지닌 함정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등 신문’ <조선일보>는 달랐다. 다른 신문들이 IMF 세대, 삼포 세대, 잉여 세대 등 이름만 다르고 의미는 비슷한 단어로 회전문식 세대론을 펼칠 때 달관 세대라는 신상을 들고 나왔다.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행복하다는 달관 세대는 일본 사토리 세대(득도 세대)’를 베낀 것이었지만 반향은 컸다. 여세를 몰아 <조선일보>달관 세대 안에 스티브 잡스가 있다며 치켜세우기까지 했다. ‘아프니까 희망이라는 것이다. 기사 반향의 방향은 부정적이었다. 비난이 쇄도했다. <조선일보>의 주장을 현실에 순응하고 달관해야 한다는 당위론의 설파로 받아들인 청년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세대론의 역사는 길다.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고대의 점토판 글귀에서도 나타나듯 앞선 세대가 이후 세대를 훈계하는 행위는 역사를 이어왔다. 대체로 다음 세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편향성이 드러나곤 했다. 세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규정된다. 해방 전후 세대와 한국전쟁 전후 세대는 역사적 사건이 기준점이다. 1·2차 베이비붐 세대는 세대의 규모에 의해 분류되었고, 긴급조치 세대와 386세대는 정치 성향에 의해 구분지어졌다. X세대와 N세대는 소비 성향에 따라, IMF 세대, 88만원 세대, 잉여 세대, 삼포 세대 등은 경제 상황에 따라 범주화되었다.

 

한국전쟁 사진집 세대론의 역사는 길다. 한국전쟁 전후 세대.

 

세대를 규정하는 방식은 그 세대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불가항력적인 역사의 파고를 넘어야 했던 해방 전후 세대와 한국전쟁 전후 세대는 보수성을 얘기할 때 주로 호출된다.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내려는 자신감보다 역사에 순응하고 적응하기 위한 생존욕이 앞선 것으로 평가받아서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인 산업화 세대가 바로 이 세대다.

 

이와 반대되는 세대가 긴급조치 세대와 386세대다. 역사에 맞서고 스스로 역사를 만들어가려 했던 이 세대는 서구의 68혁명 세대와 비슷하다. 68혁명이라는, 기성 정치에 저항하는 큰 움직임이 인 후 기득권 세력에 맞서고 정치·사회·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인 경향을 보이는 세대가 서구에 광범위하게 퍼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386세대와의 차이라면, 68혁명 세대가 문화에 있어 보편주의적 양상을 띤 데 비해 386세대는 민족주의적 양상을 보인 점이라고나 할까.

 

386세대는 스스로 자기 세대를 규정한 대표 사례로도 꼽힌다. 이 세대에 속하는 한창민씨가 ‘30, 80년대에 대학을 다니고, 60년대생인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 용어를 만든 후 그 세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스스로 만들고 퍼뜨린 말이기 때문에 세대 정체성도 강하고 유효기간도 길다. 이들이 40대가 되자 486세대라는 말로 바뀌었다.

 

세대가 규정되는 방식은 그 시대의 과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대체로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뒤에 민주화 등 정치적인 욕구가 나타나고, 그것이 어느 정도 충족된 후 문화적 소비 욕구가 뒤따른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베이비붐 세대다. 386세대 직전 세대인 1차 베이비붐 세대(1950년대 중·후반 출생)는 경제적 생존이 우선인 산업화 세대인 데 비해, 386세대 이후 태어난 2차 베이비붐 세대(1970년대 초반 출생)X세대라 불리며 문화적 소비를 주도했다.

 

1·2차 베이비붐 세대.

 

연합뉴스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386세대.

 

1차 베이비붐 세대와 2차 베이비붐 세대에 가장 먼저 주목한 쪽은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과 광고업계였다. 대체로 1차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서는 소비의 양에 주목했고, 2차 베이비붐 세대에 대해서는 소비의 질에 주목했다. 이들을 겨냥한 마케팅과 광고가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특히 2차 베이비붐 세대를 겨냥한 광고가 정교했다. 일본 광고회사에서 만든 X세대 개념을 수입한 한국 기업들은 이 세대를 X세대·신세대·신인류 혹은 오렌지족이라 부르며 소비성을 부추겼다.

 

문화적 소비를 주도한 X세대.

 

X세대 이후 다양한 알파벳 세대론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N세대(네트워크 세대)’. 아직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도 전에 생긴 이 개념은 네트워크와 공유를 중시하는 세대로, ‘카피레프트개념이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미국에서 수입한 ‘Y세대(밀레니엄 세대)’도 등장했다. 나이키나 리바이스와 같은 고전적 브랜드가 아니라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브랜드에 충성하는 이 세대를 겨냥해 관련 업계도 빠르게 대응했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 압도한 시대의 이름 짓기

그러나 소비 성향을 중심으로 세대를 구분하는 흐름은 2000년대 이후 힘을 잃는다. 대신 어려운 경제 상황을 상징하는 세대명이 두루 등장한다. 나라의 곳간이 거덜나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시대에 청년기를 보낸 IMF 세대로 시작해 평균 월급이 88만원밖에 되지 않는 비정규직을 상징하는 88만원 세대,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의 삼포 세대,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사회제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부만 맴돈다는 뜻의 잉여 세대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이 세대를 긍정적으로 읽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밀레니엄 세대, 월드컵 세대, 촛불 세대, 광장 세대 등으로 호명하던 기억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말은 대부분 잊힌 채 우울한 말만 살아남았다. 어려운 경제 상황이 이 세대를 압도하는 절대 과제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제 상황을 반영한 88만원 세대.

 

이처럼 세대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일정 부분 의도가 개입되기도 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공생 관계에서 탄생하고 진화하는 개념이 세대론이다. 진보는 젊은 세대를 동정하고 변호하면서 세대론을 확장하고, 보수는 젊은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공고히 하는 쪽으로 세대론을 만들거나 증폭시킨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론이 환영받지 못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라는 얘기다.

 

세대론 자체가 지닌 함정도 있다. <88만원 세대>의 공저자인 칼럼니스트 박권일씨는 세대론에 집중하다 보니 세대 내부의 양극화, 20대와 50대에서 쌍봉형으로 나타나는 불안정 노동과 같은 주요 문제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됐다. 불안정 노동의 전면화라는 계급적 문제에 세대론의 당의(糖衣)’를 입힌 꼴이다라고 나중에 정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세대론은 그 세대에 속한 사람들로부터는 오히려 부정되는 경우가 많다. 평균적인 X세대의 모습을 묘사하면 그 세대에 속한 사람들은 나와 다른데?’라고 반문하는 식이다. 어찌 보면 X세대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이들은 당시의 젊은이들이 X세대처럼 보이기 위해 소비해주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고통받는 20대를 달관 세대로 부른 이들의 계산도 그리 다르지 않을 수 있고.

 

종북몰이의 품위 321 시사인

종북몰이세력만 보면 심각한 짜증을 느껴왔다. 이른바 종북만 척결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함, 모든 정적을 종북으로 몰아 일거에 무찌르겠다는 뻔뻔함, 일베 같은 반인륜 집단과의 친화성. 그러나 반성하고 생각을 고치기로 했다. ‘우리마당대표 김기종씨의 리퍼트 미국 대사 테러 때문이다.

 

솔직히 내겐 범여권이 이번 테러 사건을 화들짝 반기는 것으로 보였다. 검경은 무려 100여 명으로 이뤄진 대규모 특별수사팀을 꾸려 김기종씨의 배후 세력이나 대공 용의점을 밝혀내겠다고 기염을 토했다. 조직 원리상 이 정도로 투자하면 반드시 소기의 성과가 있어야 한다. ‘정답을 정해놓고 시작하는 수사인 만큼, 검경은 김기종씨의 이런저런 책과 지인들을 샅샅이 뒤져 시시콜콜한 종북관련성들을 입증할 것이다. 기대한다!

 

이런 흐름을 구경하다 보니, 보수 단체들이 미국 대사관 부근 등에서 펼친 부채춤과 석고대죄가 예사롭지 않았다. 솔직히 자축연처럼 보인다. 축하할 만했다. 실제로 이 사건을 거치며 30% 초반대에 머물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50% 선에 육박할 정도로 올라갔으니까. 정치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율 상승이다. 이를 위해 정책 개발이나 복잡한 계층 간 이해 조정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취임 이전에는 한국형 복지라는 정책 패키지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런데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경우, 신기할 정도로 쉽고 화끈하게 지지율을 높여주는 종북몰이라는 수단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도 그 효율성이 다시 입증되었다. 3자가 어떻게 그런 좋은 수단을 포기하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그냥 계속하시라. 비록 잘하는 것은 종북몰이뿐이란 말이 나오겠지만, 어쩔 수 없다. 할 줄 아는 다른 게 없잖은가.

 

다만 종북몰이를 하더라도 최소한의 품위는 갖추길 바란다. 아무리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한 종북몰이라 해도 적어도 겉으로는 전 국민을 위한 것인 양 잘 포장하자. 원래 민주정치는 적당히 다른 세력의 눈치도 봐야 하는, 좀 위선적인 정체다. 이번처럼 품위가 없을 정도로 좋아하면서 이마에 종북몰이로 정국 해결이라는 목표를 공공연하게 붙이고 칼을 휘두르면, 옆에서 보기에 민망하고 안쓰럽다. 민주주의가 좀 위선적인 맛도 있어야지.

 

 

'종북', 바람아 불어다오 319 시사저널

4·29 ·보선 자신감 갖는 새누리당야당 후보 난립도 호재

한 곳만 이겨도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 39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4·29 ·보궐 선거 목표를 이렇게 정리했다. 서울 관악 을과 광주 서 을, 경기 성남 중원 등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의원직 상실로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치러지는 3곳 모두를 열세 지역으로 보던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기류다. 최소한 한 곳은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래 야당 의석이었던 곳 아니냐4월 재·보선의 의미를 애써 축소하던 새누리당이 이처럼 자신감을 갖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은 3124월 재·보선 지역에 인천 서·강화 을이 포함되자 반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당 소속 안덕수 의원이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는데도 어차피 선거 구도로 보면 우리에게 훨씬 유리해진 것 아니냐”(한 핵심 당직자)는 얘기가 나왔다. 이곳이 전통적으로 여당 우위 지역이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인천 서·강화 을은 옛 통진당 의원 지역구 3곳보다 훨씬 수월한 게 사실이다. 여기에 기존 3곳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은 경기 성남 중원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곳”(함진규 경기도당위원장)으로 분류했다.

 

36일 주한 미국대사관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쾌유 및 종북 세력 척결 촉구기자회견을 하던 중 인공기 등이 그려진 그림을 불태우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다가 4곳 다 이기는 것 아닌가

새누리당은 여당 후보로는 이례적으로 이곳에서 재선(17, 18) 고지에 올랐던 신상진 전 의원을 일찌감치 공천했고, 신 전 의원은 진작부터 바닥을 누비고 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대한의사협회장 출신으로 지역 내 조직 기반이 탄탄한 신 전 의원이라면 야당에서 어느 누가 나오더라도 승산이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새누리당이 승리를 점치는 직접적인 이유는 야권 표 분열 가능성이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옛 통진당은 물론 정의당과 국민모임까지 독자 후보를 추진하고 있다. 막바지 야권 연대가 될 수는 있지만, 현재로선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경기도당 핵심 관계자는 19대 총선 때 신 전 의원이 야권 단일 후보였던 김미희 옛 통진당 의원에게 불과 654표 차이로 분패했던 점을 언급하며 ·보선에선 젊은 층의 투표 참여가 적고 조직표의 위력이 크게 작용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야권 표가 조금이라도 나뉜다면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서울 관악 을도 지금껏 새누리당엔 난공불락이었지만, 이번엔 다른 분위기가 읽힌다. 이곳 역시 야권 지지층 표가 나뉠 경우를 상정한 기대감이다. 성남 중원과 마찬가지로 새정치연합과 옛 통진당, 정의당, 국민모임이 모두 후보를 내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 때 이상규 옛 통진당 의원에게 4.9%포인트 차이로 패했던 오신환 당협위원장을 진작에 후보로 확정했다. 당시엔 무소속으로 출마한 야당 성향의 김희철 전 의원이 28.5%나 득표해 야당 표가 양분된 특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번 재·보선도 비슷한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광주 서 을 선거와 관련해서도 어게인 이정현을 꿈꾸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여권엔 불모지이지만 천정배 전 장관의 새정치연합 탈당 및 무소속 출마 선언으로 야권 전체가 술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광주 출신의 정통 관료이자 박근혜 대통령 호남 인맥의 핵심인 정승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을 영입해 정면대결을 펼치겠다는 방침이다. 야권 분열에 대한 비판 여론을 등에 업고 실력자를 내세워 지역 발전론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뜻이다. 여당의 한 핵심 당직자는 솔직히 애초에는 4월 재·보선이 힘든 싸움이 될 거라 예상했지만, 전반적인 상황이 우리에게 상당히 유리하게 형성돼가고 있다광주야 워낙 특수한 곳이니까 큰 기대를 하기 어렵다지만, 혹시 이러다가 4곳 모두 이기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4·29 보궐 선거 경기 성남 중원에 공천을 신청한 신상진 전 의원(오른쪽)에게 추천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가의 보도 종북다시 고개역풍 우려도

새누리당의 재·보선 기대감은 비단 야권 분열이라는 외부 요인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선거 때마다 위력을 발휘해온 종북 프레임을 적극 활용할 수 있는 호기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박완주 새정치연합 원내대변인은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의 피습 사건을 계기로 새누리당이 우리에게 또다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 새누리당은 이번 피습 사건 이후 범인 김기종씨와 새정치연합 의원들을 다소 억지스럽게묶어내려 애쓰고 있다. 이군현 사무총장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에게 김기종과 연루된 의원들을 솎아내고 이들을 내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압박했고, 심재철 최고위원은 아예 테러범 김기종은 바로 얼마 전까지 이종걸·우상호·문병호·김경협 의원 등의 도움으로 국회를 드나들었다며 야당 의원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 같은 흐름은 여권 전체의 큰 방향이기도 하다. 김씨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 있자마자 검찰과 경찰이 무려 100명이 넘는 매머드급 수사팀을 꾸린 게 단적인 예다. 게다가 수사의 한 축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에 맞춰져 있다. 미국 정부는 오히려 이번 사건을 극단주의자의 독자 범행으로 여기는 듯한 기류인데도, 우리 내부에서 이를 큰 판으로 만들어가는 듯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34쪽 기사 참조).

 

새누리당의 대응은 다분히 정치적 목적을 띠고 있다. 김무성 대표와 가까운 한 최고위원은 “4월 재·보선을 앞둔 때라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은 우리에게 분명 호재라며 선거를 치러야 하는 만큼 아무래도 정치적인 효과를 높이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이 사무총장과 심 최고위원 등을 검찰에 고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은 것은 이 같은 흐름을 단호히 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정반대 효과를 낳을 것이라며 오히려 반기는 분위기도 많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새정치연합이 발끈할수록 논란이 커질 테니 우리로선 나쁠 게 없다고 밝혔다.

 

무리한 종북 논란이 여당에 역풍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없지는 않다. 새누리당의 한 재선 의원은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얼마나 높은데, 선거 때만 되면 종북이니 빨갱이니 한다고 표가 모이겠느냐면서 자칫 다수의 말 없는 중도층을 돌아서게 만드는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의원 나리들만 쏙 빼고 넣어야지, 다 넣어310 시사저널

국회 속기록과 증언 통해본 김영란법졸속 처리 전말 김영란 이런 법에 왜 내 이름 붙여가지고

앞으론 우리 과자 먹을 때 한 개에 얼마 꼴인지 계산해가며 먹읍시다.” 최근 한 정치권 인사가 기자에게 과자를 건네며 이런 농담을 던졌다.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통과를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었다. 지금은 비록 우스갯소리지만 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더 이상 장난으로만 여기지 못할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직무와 관련성이 없더라도 언론인이 식사를 할 때 상대방이 밥값을 계산해버릴 경우, 김영란법 처벌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100만원 이하면 과태료, 이상이면 형사 처벌이다.

 

김영란법 통과 이후 여의도에 후폭풍이 거세다. 처음엔 법을 통과시켜야 되느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더니, 통과된 이후에는 벌써부터 개정론이 불거지고 있다. 위헌 논란은 이미 진행형이다. 법이 통과된 지 이틀 만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 위헌 청구 소송을 냈다. 예상된 결과였다. 모두 통과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들이다. 그런 와중에 정작 법을 논의한 의원 자신들은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애초에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만들어놓은 안에는 없던 내용이다. 오죽했으면 국회 공청회에 참석했던 한 법학 교수가 “(향후 재논의 과정에서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서 정부와 국회의원들은 빠져라고 일침을 가할 정도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공직사회에 만연돼 있던 ()피아비리를 척결해줄 것으로 국민적 기대를 모았던 법이 어떻게 이처럼 제정되자마자 위헌 및 개정 논란에 휩싸이는 누더기법신세로 전락했을까. 시사저널은 그동안 국회에서 이뤄진 회의석상의 회의록 자료와 관련 상임위 인사 및 전문가들의 증언을 통해 김영란법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 곳곳에서 졸속 처리된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3,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이 재석 247인 중 찬성 226, 반대 4, 기권 17인으로 가결됐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영란 전 위원장 지금 법, 내가 낸 것과 달라

기자는 김영란법 통과 여부를 놓고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114일 김영란 전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때부터 이미 김 전 위원장은 “(김영란법) 논의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법안 통과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김영란법 논란에 대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법은 내가 입법할 당시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어 왜 거기 내 이름을 붙여가지고···.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자신이 냈던 안과 달라진 법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김 전 위원장의 말처럼 해당 법은 김영란법이란 이름이 무색할 만큼 변질됐다. 가장 크게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적용 대상이 민간 영역까지 넓어져 공직자 부패 척결이라는 당초의 선명성이 퇴색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에 언론인이 들어가게 된 배경을 보면 거의 코미디에 가깝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한 안에 공직유관단체가 법 적용 대상으로 돼 있었는데, 여기에 공영방송사인 KBSEBS가 포함돼 있었다. 이 내용이 국회 정무위원회를 거치며 몇몇 의원들의 즉흥적 돌출 발언이 튀어나오면서 갑자기 언론사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된 것이다. 사실상 언론을 공직자에 넣어야 하느냐의 당위성 등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 없이 KBS·EBS가 포함되면 다른 방송사도 넣어야 하고, 방송사를 넣으려면 신문, 잡지, 인터넷 언론까지 다 포함해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억지스러운 논리가 그냥 적용된 것으로, 국회의원들의 상식이 의심될 정도다.

다음은 시사저널이 입수한, 김영란법에 대해 논의했던 국회 정무위원회 소위 제324회 회의록 내용이다. 당초 정무위원들은 권익위가 민간 언론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하자 문제를 지적하며 꾸짖기도 했다. 논리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김용태 소위원장: 우리가 이 법안을 심사해서 언론에 공개되기 시작했을 때 거기 왜 들어갔느냐라고 했을 때 우리가 (권익위 측 말처럼) ‘공직자윤리법에는 들어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가 있겠어요? 그게 아니잖아요. 여러분들이 정부 안을 내놨을 때 그것에 대해 분명한 논리·철학을 갖고 있으셔야 된다 이 말이에요.

곽진영 권익위 부위원장: 법률적으로 열거를 하다 보니까 누락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빠져 있는 기관들을 별도로 다시 넣는 안을 저희가 검토할 계획으로 있었던 것이고요. 또 지금 위원님들이 제기해주신, 특히 MBC라든지 SBS 같은 언론사라든지 사립학교 같은 문제는 분명히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논의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기식 위원: 지금 이게 속기록에 다 남는 거여서, 지금 권익위가 굉장히 위험한 말씀을 하고 계신 거예요. 그 민간, 민영화된 방송사 문제를 겁 없이 말씀하시면 안 돼요. (중략) 그 문제에 대해서 일관된 원칙을 갖고 답변하지 않으시면 이것이 굉장히, 이 입법 문제와는 다른 논란을 일으킵니다.

이처럼 처음엔 정무위 일부 위원들은 민간 영역 포함 부분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런데 약 한 달 후 열린 제325회 회의에서는 갑자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강석훈 위원: 단순히 KBS·EBS뿐만 아니라 관련 언론기관은 다 포함이 돼야 하는 게 논리적으로는 일관성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데요?

강기정 의원: 그럴 것 같은데요. 길게 논의하지 맙시다.

이상직 의원: 그래요

김용태 소위원장: 길게 논의하지 말자니 무슨 소리야?

강기정 의원: 다 넣자. 종편이고 뭐고 전부. (중략)

이상직 의원: 다 넣어야지요.

강기정 의원: 그렇지.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언론이 큰데 다 넣는 거지요.

박대동 의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다 넣어야지.

한마디로 언론은 이렇게 영향력이 있으니 다 넣자는 얘기다. 이후 법리적 문제를 보완하는 법사위로 해당 안이 넘어갔고, 법사위조차 김영란법 대상을 축소시키면 비판에 휩싸일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손을 대지 못했다. 결국 해당 법은 통과되자마자 위헌 소송에 휩싸이게 됐다.

 

1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위원들이 '김영란법' 등을 심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원과 청탁을 어떻게 구분해? 사실상 불가능

그런데 이처럼 민간 영역이 포함되는 과정 속에 정작 공직 성격이 명확한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예외규정을 늘려 사실상 적용 대상에서 빠져나간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영란법 부정 청탁 금지와 관련된 조항을 보면, ‘선출직 공직자의 경우에 대해 예외를 규정해놓았다. 표현만 선출직 공직자일 뿐, 사실상 국회의원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원래 정부가 제출한 안의 예외 조항은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공직자에게 법령·조례·규칙 등의 제정·개정·폐지 등을 요구하는 행위를 예외 조항으로 뒀다. 그런데 해당 안이 국회 정무위를 거치며 지역 민원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의원들의 요구에 의해 다음과 같은 예외 규정이 추가됐다.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 기준의 제정·개정·폐지 또는 정책 사업 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해 제안 건의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즉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이 지역 유권자 등의 민원을 전달했을 때 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부정 청탁 유형에 속해도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민원과 청탁을 구분하는 것 자체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법학자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정상적인 입법 활동과 청탁을 구분하는 것은 애매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노영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역시 민원을 이유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법을 개선해달라는 행위 자체가 어떤 것은 허용되고 어떤 것은 예외인 것으로 명확하게 경계가 나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기자가 접촉한 전직 법무부장관, 검찰 관계자들도 모두 같은 의견이었다. 이 교수는 국회가 정작 국민들이 원했던 합헌인 어린이집 CCTV법은 로비 논란 속에 부결시키고, 위헌 논란이 있는 김영란법은 통과시킨 꼴이 됐다고 비판했다.

 

직무 연관성이 없어도 100만원 이상을 받으면 처벌받는 규정에서도 의원들은 빠져나갔다. 법을 똑같이 적용받긴 하지만, 현재 법 테두리 안에서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 없는 해에는 1500만원까지 신고한 계좌로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의원들에게 전해지는 후원금과 김영란법상 건네지는 100만원 이상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서는 여전히 문제없이 받을 수 있다. 출판기념회 축하금 역시 김영란법에서 규정하는 100만원 이상의 성격과 구분하기 힘들다.

 

언론인도 이번 기회에 자성해야의견도

이번 기회에 언론인들도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 사건으로 기레기(기자+쓰레기)’ 논란의 중심에 서며 언론사도 여론의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실 언론인을 빼면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상황 자체가 언론인들이 그동안 스스로 신뢰를 쌓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아마 보좌관들은 겉으론 말은 못해도 내심 언론인이 포함되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크게 반대했다면,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에게 의견을 강하게 전달했을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쉽게 언론인이 포함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에 떠밀려 눈감을 순 없었다김영란법 반대·기권한 의원들의 입장

 

김영란법 논의 과정에서 국회 법사위는 지금 지적되고 있는 여러 법리적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당시 법사위 회의록에 따르면,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위원장은 넣으려면 어떤 원칙과 기준에 의해서 넣고, 안 넣으려면 왜 안 넣었는지가 분명해야 되는데, 공적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에 넣는다, 예산 투입 때문에 넣는다, 그러면 그 외의 기구들은 뭐냐. 자의적으로 비쳐지는 이런 원칙과 기준이 없는 것이 나는 법사위원으로서 영 그렇다고 말했다. 사실상 이런 후폭풍을 빤히 예상하고서도 여론 때문에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김영란법 통과에 반대표를 던진 4명이 있었다. 시사저널은 이들을 한 명 한 명 접촉해 왜 반대를 했는지에 대해 들어봤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위헌 소지 문제부터 다른 법과의 상충 문제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은 법률안이었다. 법률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면 역작용을 최대한 제거했어야 했다. 여론에 떠밀려 졸속으로 의결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후에라도 수정을 하게 되면 국민은 본래의 입법 취지를 훼손하고 후퇴한 법률이 됐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국민이 기대한 법 취지는 기본적으로 공직자들이 부정한 돈을 받지 말라는 것인데 부정 청탁이라는 항목을 붙이면서 법안의 포커스가 많이 흐려졌다. 청탁을 받는 사람은 공직자지만 청탁을 하는 쪽은 국민이다. 민원을 제기하는 국민들의 기본권을 상당히 훼손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위헌 요소가 있는데도 여론에 밀려 일단 통과시키자는 국회의원들의 안일함이 문제라고 지적했고, 같은 당의 김용남 의원 역시 공직과 민간 분야의 경계가 애매모호해 누구는 빠지고 누구는 들어가는 데 대한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반대 이유를 설명했다.

 

기권을 한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공영방송인 KBS, MBC, EBS와 연합뉴스는 당연히 적용 대상에 포함돼야 하지만 민간 언론사가 거기에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당 지도부에 계속 주장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민간 언론사가 포함되면서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될 수 있고 입법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토론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시세끼? 삼시두끼로 산다! 3.24 주간경향

오늘 아침밥 먹고 나오셨나요?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가장 활발하게 생활하는 10대와 20대의 아침 결식률이 높은 것도 우려되는 점이다. 아침을 거르다 보니 한 끼 먹을 때 아무래도 과식을 하게 돼, 식생활 건강에 불균형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꼬르륵.” , 오늘따라 유난히 소리가 크다. “미영씨, 오늘 밥 안 먹었어?” 아니나 다를까, 오지랖 넓은 부장님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한국사람은 밥심이라는 둥, 살 빼려고 하다가 몸 버린다는 둥, 줄기차게 나왔던 레퍼토리들이 반복된다. 혼자 사는 직장인 황미영씨(29·가명)에게 아침밥은 계륵과도 같다. 부장님 잔소리처럼 딱히 살을 빼겠다는 일념으로 아침을 거르는 건 아니다. 먹고는 싶지만, 촉박한 출근시간에 맞추려면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여러 번 아침을 먹어보자고 시도했을 때마다 꿀잠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대용식도 먹어 봤다. 미숫가루처럼 물에 타서 먹기만 하면 적잖이 허기를 가시게 해주니 좋았다. 밥 차리고 먹는 시간에 비하면 들어가는 시간도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다 마시고 나서 출근버스를 탄 이후가 문제였다. “꼭 버스를 타면 그때부터 뱃속이 시끄러워져요. 나오기 전 집에서는 아무리 힘을 줘도 안 나오던 게 차만 타면 갑자기 요동치거든요.” 소화기관이 예민한 황씨는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내려 공중화장실을 찾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말했다. 화장실 찾고, 볼일 보고, 다시 택시 잡아타고 오면 지각이 아슬아슬해진다. 겨우 아낀 시간이 도로아미타불이 됐다. 결국 대용식은 찬장 깊숙이 처박혔다.

 

식생활교육서울네트워크 회원들이 서울 을지로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현미밥을 나눠주며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김영민 기자

 

4명 중 1명은 아침밥 못 먹어

아침을 거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1세 이상 국민의 22.5%는 아침밥을 거르고 생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24.1%, 여성은 20.9%가 아침을 굶었다. 아침 결식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19~29세로 40.1%, 그 다음으로 청소년기인 12~18세의 결식률이 33.1%, 30~49세는 27.7%로 나타났다. 가장 바쁘고 활발하게 생활하는 세대일수록 아침 식사시간을 제때 못 챙기는 형편이다.

 

문제는 최근 들어 아침 결식률이 높아지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침 결식률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후로 차츰 낮아지는 양상을 보이던 추이가 가파른 상승세로 돌변했다. 201120.5%였던 아침 결식률은 201222%, 201322.5%로 높아졌다.

이에 비해 아침을 가족과 함께 먹는 비율은 지속적으로 낮아졌다. 아침식사 가족동반 식사율은 200562.9%에서 201153.1%, 2013년에는 46.5%까지 떨어졌다. 아침을 거르지 않고 먹더라도 밖에서 혼자 사 먹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아침을 거르면 힘이 빠진다. 그런데 속이 비어서 오는 이 무기력증은 오전에만 그치지 않고 점심을 먹은 오후까지도 이어진다. 관련 전문가들과 직장인들 모두가 한목소리로 지적하는 내용이다. “아침을 못 먹고 나오면 전날 먹은 술도 안 깨고 일에도 집중 못하죠. 술을 안 먹은 날이라도 배고파서 점심 뭐 먹지이런 생각만 오전 내내 드는 거예요. 그렇다고 점심 먹고 오후 되면 기운이 나냐? 아무래도 배고파서 점심을 과하게 먹고 나면 오후는 더 나른하게 늘어지는 거, 나뿐 아니라 다들 그렇다더라고.” 직장인 염성혁씨(42)의 말은 아침 결식이 능률 저하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침을 거른 만큼의 모자란 영양 섭취량은 다른 식사에서 보충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보충되는 정도가 영양섭취 권장량을 넘어설 때가 많다. 비만으로 이어질 소지가 생기는 것이다. 건강영양조사의 통계수치도 같은 결과를 가리키고 있다. 2011년 이래 3년간 아침 결식률은 늘었음에도 같은 기간 1일 에너지 섭취량은 2029.9에서 2074로 늘었다. 에너지·지방 과잉섭취자의 비율 역시 같은 기간에 7.1%에서 9.3%로 늘었다. 국민 전체로 봤을 때 아침은 걸렀지만 하루 내내 섭취하는 음식과 에너지는 오히려 늘어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아침 결식이 외식 증가 및 영양 과잉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주세영 단국대 교수(식품영양학)1998년부터 2012년까지의 영양조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성인의 아침 결식률이 199811.8%에서 201222.3%로 높아지는 동안 아침식사의 외식 비율도 19987.3%에서 201213.7%로 함께 높아지면서 식생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분석 기간 동안 지방 섭취량이 26%, 나트륨 섭취량이 24% 늘어난 것은 외식이 늘어났기 때문인데, 아침 결식이 증가하는 추세가 외식비율 증가와 상관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서울의 한 노점에 들러 아침 식사 대용으로 토스트를 사 먹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기력한 오전, 나른한 오후로 이어져

직장인인 황미영씨와 염성혁씨 모두 아침을 거르거나 간단하게 때우는 이유로 바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황씨는 혼자 살고, 염씨는 아내와 같이 살지만 맞벌이라 부부 모두 아침을 차려 먹을 시간이 없다. 집에서 식사를 전담하는 가족이 없어지자 그 자리엔 공복만이 남았다. 주세영 교수는 아침 결식이 늘어난 사회적 요인으로 1인 가구 및 맞벌이 가구 증가현상을 꼽았다. 특히 부모를 떠나 혼자 살게 된 청년층 1인 가구는 상대적으로 조리 기술·도구 부족과 식료품비 부담 같은 문제까지 안고 있다. 그 결과 결식률 및 외식 의존율이 높아진다는 분석이다.

 

염씨의 가정 역시 아내 한씨가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아침밥이 자취를 감췄다. 출산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한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이전까지 한씨가 아침밥을 차려도 남편 염씨가 바빠 못 먹고 나간 적은 많았다. 하지만 한씨가 직장 출근 준비에 자녀 등교 준비까지 하게 되면서 한씨와 아이까지 아침밥을 한 술 뜰 시간적·심리적 여유가 사라졌다. 아침 식탁에는 차린 밥 대신 아이가 먹을 샌드위치가 놓여 있을 때가 많다. 부부는 그마저도 먹을 여유가 없다. 염씨의 걱정은 배고픔보다는 서먹함 때문이다. “딸이 아침은 빵 싸들고 가고, 점심은 급식 먹고, 저녁 한 끼 집에서 먹잖아요. 근데 난 저녁마저도 밖에서 먹고 올 때가 더 많단 말이지. 이제 초등학생인데 밥상에서 밥도 같이 못 먹으면 (아이가) 더 커서는 얼마나 서먹서먹해질까, 그게 걱정돼요.”

 

아침 결식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득계층 간 양극화 현상까지 나타난다.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소득수준을 상·중상·중하·4등급으로 나눠 아침 결식률을 조사한 결과 2011년에는 소득 의 결식률이 19.8%로 소득 20.8%와 비교해 1%포인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3년 조사에서는 소득 의 결식률은 18.3%로 낮아진 반면 소득 의 결식률은 25.8%로 높아져 격차가 7.5%포인트로 크게 벌어졌다. 가난할수록 아침도 못 먹고 다닐 비율이 높아진다는 점은 단순히 바빠서아침을 못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충분히 영양을 섭취해야 할 청소년기에 아침식사를 거르는 문제의 심각성 역시 크다. 국민건강영양조사의 결식률이 2일 연속 결식할 때를 집계한 결과인 데 비해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조사의 결식률은 주중 5일 이상 결식했다는 응답을 집계한 것이다. 결과는 더 비관적이다. 2011년까지 감소하던 아침 결식률이 2012년부터 높아지기 시작한 추이는 여기에서도 똑같이 확인된다. 지난해의 조사 결과까지 포함된 이 통계에서 2014년의 중·고교생 주 5일 이상 아침 결식률은 28.5%에 달해 조사 시작 이래 최고치를 경신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박모 교사(38)가 전하는 학급의 풍경 중 하나는 한창 배고플 나이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먹을거리 쟁탈전이다. “옛날처럼 1교시 마치고 까먹을 도시락이 요즘 급식세대에게는 없거든요. 아침에 빈 속으로 온 애들이 갈 곳이 매점 말고 있나요. 매점 음식이나마 사 먹을 돈이 넉넉지 않은 애들이 다른 애들 걸 빼앗아 먹다가 싸워요. 매일 그런 전쟁이죠.”

 

모두 같은 급식을 먹는 점심 무렵에는 잠잠해졌던 이 전쟁이 다시 불붙는 것은 방과후부터다. 피시방에 함께 게임하러 가서도 컵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간의 다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게임 하다가 옆에서 라면 냄새 나면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먹을 것 때문에 서로 치사해지는 상황이에요.” 박 교사의 말처럼 18세 이하의 청소년 시기는 가정에 따라 식사 빈도, 특히 아침식사 빈도 차이가 가장 큰 시기이다. 먹을 것이 떨어지거나 식사를 거르는 등 식품 안정성이 낮은 가구의 청소년들 중 40.4%만이 주 5회 이상 아침을 먹은 데 비해 식품 안정성 확보 가구의 청소년들은 77.2%가 아침밥을 주 5회 이상 먹었다. 부모와 가정의 소득 차이가 가장 여실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자녀의 아침밥인 셈이다.

 

아침 결식 늘어도 1일 섭취량은 늘어

어른들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배고픔을 동반하는 식품 불안정 가구의 19~64세 성인 중 일주일에 아침을 한 번도 먹지 않는다는 비율이 35.7%에 달해 주 5회 이상 먹는다는 비율 36.7%와 별 차이가 없었다. 식품 안정 가구에서 아침을 한 번도 먹지 않는 비율은 15.2%에 불과했다.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서 아침밥을 거르는 것은 시간이 없어서뿐만 아니라 돈이 없어서이기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도 아침 거르는 세태에 대한 정책 목표는 가지고 있다. 1세 이상 전체 아침 결식률을 올해에는 17.7%, 2020년엔 15%까지 낮추는 것이 목표다. 하지만 목표치를 제시한 제3차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에도 구체적 추진방안은 전혀 제시돼 있지 않은 상태다. 청년층 1인 가구 증가나 맞벌이 가구 증가와 같은 근본적 원인에 대한 대처도 미흡한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숙 연구위원은 “20대에서 아침 결식률이 가장 높고, 그에 따라 영양섭취 부족 비율이 높은 데에는 근본적으로 빈곤 및 실업 같은 구조적 문제도 자리잡고 있다장기적인 결식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사회보건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와 민간이 끼니 해결을 위한 대책을 세우는 것과 함께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책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in`t No Sunshine When She`s Gone / Freddie 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