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성장과 통합 담론이 은폐하는 것 2. 세계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 중 하나... 한국서 사라지면 지구상 멸종 3. 가덕도신공항 ‘안전 논란’에 2029년 개항 물건너가나 4. 산불 추경 3.2조, 어디 쓰나 봤더니> 5. 신공항 건설, ‘안전’은 뒷전이고 ‘속도’만 그렇게 중요한가 6. 가덕도신공항 표류, 예타 없는 ‘엑스포 속도전’이 예고한 것 7. 스페인 정전에 재생에너지 탓하는 어리석음 8. 오거돈 일가, 약속과 달리 가덕도 땅 안 팔았다… 시세 20배 뛰어
9. 1개 지역 전국케이블카건설중단-녹색전환연대 출범... "대선후보들에게 백지화 공약 요구 10. ‘역대 최악’ 영남 산불, 온실가스 무려 764만t 뿜어냈다 11. 기후정책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중요한 까닭 12. 부산시정 민관 협치 ‘낙제점’… “시장의 의지 부족 가장 문제”
13. 이재명 직속 ‘기후위기대응위’ 출범…“압도적 정권 교체가 탄소중립 방법” 14. '정치SOC' 가덕도신공항 결국 무산…“예견된 표퓰리즘 역풍” 15. 가덕도신공항, 결국 재입찰할 듯… 현대건설 “108개월 필요” 설명서 제출 16. 장밋빛 SOC 공약 내기 전에 가덕도 신공항 교훈 되새겨야 17. 위기의 한국 도시정책, 정치가 만든 성장신화와 그늘 18. 지반침하’ 땅 위에 서서 묻는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대선주자들이 말하는 성장과 통합 담론이 은폐하는 것
민주주의와 정치의 상상력을 넓히자
조기 대선을 한 달 가량 앞두고 정치권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소식으로 요동치고 있다. 각 사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비판이 쏠리는 과정에서 사법부와 검찰 등 기존 국가 권력 기관의 통상적이지 않은 권력 행사에 대한 불만, 비판, 개혁 요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러한 권력 기관 개혁은 단지 정치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삶과도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집권 이후의 국정 비전과 방향, 그리고 사람들의 삶에 직결되는 정책들에 대한 관심과 검토 역시 절실하다.
이재명 후보는 국정 비전으로 '성장'과 '통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 방향의 옳고 그름이나 구체적인 실현 과정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 키워드들이 여전히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덕수 전 총리도 '통합'을 언급하고, 김문수 후보 역시 '성장'을 강조한다. 정당이나 후보들 간 뚜렷한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공약이나 비전이 예술작품처럼 창의성이나 신선함으로 평가되기보다는, 대중이 원하는 것, 그리고 대중이 원하게 만들고 싶은 것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지금의 유사성은 사람들의 인식과 담론의 지형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특정 후보의 국정 방향으로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적 담론 지형에서 '상식'이 되어버린 '성장'과 '통합'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먼저 경제 성장은 수십 년 간 한국에서 통치 정당성의 핵심적 논리였다. 이는 한국 사회의 물적 토대를 구성하는 데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민주주의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불평등의 핵심이기도 하다. 국가 경제 성장은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든 뭉뚱그려 이야기되며 오랫동안 불평등과 착취를 가려왔다. 예컨대 국가 경제 성장을 위한 중공업 중심의 자본집약적 성장 전략은 비수도권 농민들이 저곡가정책의 희생을 감수하도록 강요했다. 좌우 가리지 않고 이념 없는 '실용주의'를 내세워 경제 성장을 도모하자고 하지만 그것 자체가 이념이며 현재 구조가 감추고 있는 문제들을 외면하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경제 성장 담론과 밀접한 것이 기술 혁신 담론이다. 한국이 글로벌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으며 이것이 국가 경제를 위협한다는 위기 담론은 '기술 혁신'을 요구하는 배경이 된다. 이런 위기감이 강조되는 맥락에서 추진된 반도체특별법은 장시간 노동 문제뿐 아니라 재벌 대기업에 과도한 특혜를 부여하고 책임을 면제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관련자료 바로가기). 추상적으로 언급되는 성장이 누구를 벼랑끝으로 내모는지, 누가 그 혜택을 독점하게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기술 혁신이 곧 경제 성장을 견인한다는 전제는 타당한가. 이때 말하는 기술 혁신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비자본가의 삶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반적으로 기술 혁신은 자본 성장에 기여하는 기술만을 의미한다. 자본이 이윤을 뽑아낼 수만 있다면 노동자를 착취하거나 대체하는 기술도 '혁신'으로 인정받지만 삶의 질이나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어도 시장성이 낮은 기술은 주변화된다. 공공성, 돌봄, 문화 등의 영역에서 혁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신의료기술은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안전성 검증도 미비한 채 시장에 진입하지만 말라리아나 결핵처럼 글로벌 사우스에서 절실히 필요한 신약 개발은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외면 받는다. 이처럼 현재 기술 혁신의 목적은 자본 성장이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지 않다.
'국민 통합'은 발전국가 모델의 주요 수사였다. 모두가 힘을 합쳐 경제 성장을 이루자는 목표 아래 강조되어온 개념이다. 친위 쿠데타와 극우 세력의 부상 이후 내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통합'은 또 다른 의미로 호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통합의 작동 방식은 우려스럽다. 통합을 내세운 유력 후보가 독재자를 참배하고, 선거대책위원회에 용산참사를 모욕한 인물을 포함시키며 반대 정당 출신 인사 일부 기용하는 것이 실질적 통합의 전부일 수 있다. 즉, 통치를 위한 기득권 간 통합일 가능성이 크다.
그밖에는 '통합'이 수사로서만 작동할 것이라 짐작한다. 통합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가 없다면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통합의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건강하고 생산적이라고 여겨지는 국민 뿐이었다. 아프거나 가난한 사람, 장애를 가진 몸, 필수노동을 맡은 이주노동자는 통합의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사정이 이러하니 통합은 대립을 끝내자는 명목으로 비판적 목소리와 주변화된 계층을 다시 주변으로 몰아내고, 갈등을 조정하는 척하며 문제 제기를 무력화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를 은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마치 합리적이고 공정한 중재자인것마냥 노동자가 자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을 이유 없는 불신으로 취급하고 갈등을 덮어버리자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유력 정당들이 내세우는 개헌이나 개혁이 그럴듯한 수사를 덧입고 있더라도, 그 핵심은 기득권 내부의 재편 이외에는 권력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것이 많은 사람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이 상식에 균열을 내는 것이 사회를 좀 더 평등하게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복지국가 담론이 지금보다 힘을 발휘했던 시절, 보수 정당조차 무상급식과 맞춤형 복지를 말할 수 밖에 없었듯이 평등, 차별금지, 생태, 일터 민주주의 등이 상식으로 자리잡게 만들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조기 대선을 기존의 상식에 작은 균열을 만들고 담론 지형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계기로 전환해야 한다.
거대 정당들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지난 4월 30일 '사회대전환 연대회의' 대선 후보로 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선출됐다. 지난 겨울 광장의 외침을 정치로 옮기기 위해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등 진보 정당들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통합 후보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란을 옹호하는 세력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서게 되면서 '좌든 우든 뒤로만 가지 말자'는, 이미 뒤로 간 담론이 더욱 부각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상황이 양극화와 불평등, 분배, 복지, 기후위기, 차별금지법 등을 말하는 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있다. 차별성이 큰 이들의 가치와 비전, 정책은 단순히 선택지를 하나 추가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정치의 상상력을 넓히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당선 여부를 떠나 많은 관심이 뒷받침 된다면, 점차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흐름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세계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 중 하나... 한국서 사라지면 지구상 멸종
지구상에서 가장 희귀한 민물고기가 한국에 살고 있다. 좀수수치. 이 특이한 이름의 민물고기는 전남 고흥의 작은 하천에서 고군분투한다. 한반도 고유종인 좀수수치는 한국의 남해안, 특히 고흥반도와 거금도, 금오도의 얕은 자갈 하천에만 제한적으로 서식한다. 몸길이 5cm 남짓한 이 물고기는 잉어목 미꾸리과에 속하며, 담황색 몸에 갈색 V자 무늬가 선명하게 박힌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귀여운 외모의 좀수수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으로 지정돼 있다. 하천 개발과 수질 오염, 그리고 서식지 파괴로 인해 점점 더 생존이 위태로워지고 있다
좀수수치 / 국립생물자원관
좀수수치는 한국 고유종이다. 전 세계에서 오직 전남 고흥반도와 그 주변 섬들의 소하천에서만 발견된다. 이 물고기는 유속이 빠르고 수심이 20~80cm로 얕으며 자갈과 모래가 깔린 하천 바닥을 선호한다. 주로 수서곤충과 부착조류를 먹으며 살아가며, 6~7월경 산란기를 맞는다. 성체 한 마리가 낳는 알은 약 54개다. 알의 지름은 1.3~1.45mm에 불과하다. 몸은 길고 납작하며, 머리는 작고 눈은 작다. 입 주위에는 3쌍의 수염이 나 있고, 눈 밑에는 두 갈래로 갈라진 작은 가시가 있다. 측선은 불완전해 가슴지느러미 기부를 넘지 않으며, 다른 미꾸리과 물고기 수컷에게 있는 골질반은 없다. 이런 특징들은 좀수수치를 독특한 종으로 만든다.
1994년 금오도에서 어류 조사를 하던 중 처음으로 좀수수치가 발견됐다. 미기록종으로 확인된 이 물고기는 1995년 일본어류학회에 신종으로 등록됐다. 수수미꾸리와 비슷하지만 몸길이가 절반 정도에 불과해 ‘좀수수치’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고흥과 여수 일대 소하천에는 꽤 많은 개체가 서식했지만, 2010년대 하천정비사업으로 자갈 바닥이 파괴되면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현재는 고흥반도 일부와 거금도, 금오도에서만 소수가 확인된다.
좀수수치 / 국립생물자원관
좀수수치의 서식지는 극히 제한적이다. 고흥군 풍양면과 포두면, 여수시 남면, 금오도 등 과거 분포지였던 곳들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0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생태조사에 따르면, 이들 지역에서 좀수수치가 자취를 감췄다. 반면 023년 고흥 팔영산 인근에서 새로운 서식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적 환경 변화로 서식지가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새로 생기는 서식지보다 사라지는 서식지가 더 많다는 우려가 나온다.
좀수수치가 고흥 일대에서만 사는 이유는 지질학적 역사와 관련이 깊다. 학계는 빙하기 때 한반도와 중국 대륙이 연결돼 있을 때 미꾸리과 민물고기의 조상이 물길을 따라 남해안까지 이동했다고 본다. 이후 해수면 상승으로 물길이 차단되며 고흥반도와 주변 섬들에서 고립된 채 지역 고유종으로 진화했다고 본다. 고흥 수계는 섬진강이나 영산강과 연결되지 않아 좀수수치가 독특한 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2013년 학술지 ‘보전유전학’에 발표된 연구는 고흥 내 좀수수치의 유전적 차이를 분석해, 서쪽과 동쪽 개체군이 약 279만 년 전 갈라졌음을 밝혔다. 이는 고흥 내에서도 지역별로 다른 족보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좀수수치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Ⅰ급 어류 11종 중 하나다. 2012년 2급으로 지정됐다가 2018년 1급으로 격상되며 보호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됐다. 하천정비사업과 골재 채취는 좀수수치에게 치명적이다. 자갈 틈에 숨어 사는 이 물고기에게 자갈 바닥을 파괴하는 공사는 생존을 위협하는 직격탄이다. 과거 고흥에서 서식지 보존을 위해 하천 개발에 항의하며 공사를 막은 사례도 있었다.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는 좀수수치의 생존을 위협한다.
국립생태원은 2019년부터 좀수수치 복원 연구를 시작해 2020년 국내 최초로 인공증식에 성공했다. 2023년 5월 23일 고흥군 고읍천에 인공증식한 2000마리를 방류했다. 이들 개체는 2022년 거금도 신평천에서 채집한 40마리에서 증식된 것으로 몸길이 3~4cm의 준성체였다. 방류에는 봉래초등학교 학생들과 주민, 고흥군청 관계자 등 약 30명이 참여해 지역 사회의 관심을 보여줬다. 장기적인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함께 서식지 개선과 보전 방안 마련에 힘쓰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좀수수치는 식용 가치가 없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왔다. 미꾸라지와 비슷한 외모와 작은 몸집 때문에 흔한 물고기로 오해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물고기는 수백만 년 동안 한국의 독특한 환경에 적응해온 자연유산이다. 국내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도 영원히 사라질 국보급 가치를 지닌 민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절실하다.
가덕도신공항 ‘안전 논란’에 2029년 개항 물건너가나
정부가 공언한 부산 가덕도신공항의 2029년 12월 개항에 적신호가 켜졌다. 신공항 건설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최근 공사 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국토교통부에 제안하면서 논란이 촉발됐다. 국토부는 ‘납득할 수 없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고, 건설사들은 안전한 해상 공항을 짓기 위한 적정 공사기간이 필요하다면서 맞서는 모양새다.
5일 업계와 국토교통부 말을 종합하면,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달 28일 가덕도신공항 기본설계안을 작성해 국토부에 제출했다. 이 제출안에서 컨소시엄은 총 9년(108개월)의 공사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국토부가 입찰공고에서 제시한 공사 기간인 7년(84개월)보다 2년(24개월) 더 길다. 국토부의 로드맵은 올해 말 착공해 2029년 말 개항하고 2032년 준공하는 일정인데 반해, 컨소시엄은 준공 시점을 2034년으로 늦추자는 것이다. 이 경우 개항은 2031년 말께 가능해진다.
컨소시엄에 속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말에 착공하면 2029년까지 약 4년 남았는데, 섬을 깎아 바다를 매립하는 터미널 부지에 이어 바다에 띄우는 부유식 활주로까지 4년 안에 짓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계획”이며 “가덕도신공항을 안전하고 튼튼한 공항으로 지으려면 착공일 기준 최소 9년이 소요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대 20m에 이르는 가덕도 앞바다의 깊은 수심 역시 매립 공사의 난도를 높여 기간을 늘리는 요인이다.
국토부는 강경한 입장이다. 국토부는 현대건설 쪽에 기본설계를 보완할 것과 입찰 공고와 다른 공사 기간을 제시한 구체적 사유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국토부는 현대건설이 설계를 보완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분야별 전문가를 포함한 자문회의를 포함한 합동 태스크포스(TF)도 가동했다. 현대건설이 설계 보완을 포함해 공사 기간 연장에 대해 타당한 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박탈한 뒤 재입찰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업계 안팎에선 애초 가덕도신공항의 2029년 말 개항 목표는 무리수였다는 평가가 많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22년 4월 가덕도신공항을 지역균형 발전 사업으로 분류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 그 직전 국토부의 의뢰로 항공대학교 컨소시엄이 진행한 ‘가덕도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 연구용역’에 제시된 개항 목표 시기는 2035년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2023년 12월 고시한 ‘가덕도신공항 건설 기본계획’에서는 공항 개항 시기가 2029년 말로 5년이나 앞당겨졌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 전략에 맞춰 개항 시기를 앞당긴 것인데, 엑스포 유치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지역 표심을 의식해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을 그대로 밀고 나간 것이다.
국토부의 신공항 사업 속도전은 지난해 본격화됐다. 공항 건설을 총괄하는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이 지난해 5월 출범했다. 핵심사업인 부지조성공사 경쟁 입찰이 4차례 유찰되자, 9월 수의계약으로 전환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개항 논란에 지난해 말 ‘제주항공 참사’를 상기해야 한다는 환경단체 지적도 가세하는 양상이다. 가덕도 인근에 낙동강 철새도래지가 자리잡고 있어 빈번한 조류충돌이 우려된다는 게 부산지역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안전한 공항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경우, 6월 대통령 선거 이후 새 정부에서 개항 시기를 비롯한 사업 일정에 대한 재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종훈 선임기자 cjhoon@hani.co.kr
산불 추경 3.2조, 어디 쓰나 봤더니>
산불난 숲에 1조, 불탄 집엔 900만원
포르투갈 ‘굴참나무의 기적’에서 배우자
도로 마을 주변 소나무 단순림 제거해야
66명이 숨지고 50만ha가 불탄 2017년 포르투갈 산불은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로 빽빽하게 들어찬 단순림이 배경이었다. 그런데 페라리아 데 상주앙(Ferraria de Sao Joao)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산불이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따라 번지면서 모든 지역이 불탔는데 이 마을만 고스란히 살아남았다. 마을 바로 뒤 유칼립투스 숲은 불에 탔지만 마을은 전혀 피해를 입지 않았다. 조상들이 마을 둘레에 빼곡히 심어놓은 유럽굴참나무 숲 덕분이었다. ‘굴참나무의 기적’이었다.
산불은 인간문명 이전에도 종종 발생했다. 산불이 나서 숲이 불타면 그 자리를 초원이 차지했다. 반대로 산불이 줄어들면 숲이 자기 영역을 넓혀나갔다. 초원의 무기가 ‘산불’이라면 숲의 무기는 ‘굴참나무’다.
굴참나무 껍질은 코르크마개를 만들 만큼 두껍다. 방화복으로 무장한 소방관과 같다. 굴참나무는 산불이 나도 타지 않고 숲을 지킨다. 그래서 초원과 숲의 전쟁에서 ‘숲의 전위대’로 비유된다.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의 전통마을 주변에는 굴참나무 숲이 많았다. 200년 이상 수령의 아름드리 굴참나무들이 마을의 수호신이자 방화벽이었다. 참나무 숲 아래에는 이베리코 흑돼지를 방목했다. 이런 전통 축산 ‘데헤사(Dehesa)’ 시스템은 이베리아반도에서 4500년 넘게 이어져왔다.
굴참나무의 기적은 유칼립투스가 얼마나 위험한 나무인지, 예전의 농촌 풍경을 대표하던 참나무 숲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산불에서 마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지 의논했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마을보호구역(VPZ)’을 만들기로 했다. 마을 100m 반경 안에 산불에 강한 토종 참나무를 심기로 한 것이다.
개인소유 토지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간 끝에 마을 주민들은 마을보호구역을 ‘공유지’로 만들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왔다. 그 공유지에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서였다.
추경 3조, 피해주민에겐 4000억원
사상 최악의 경북산불 이후 기획재정부가 ‘재해ㆍ재난 대응 추가경정예산(안)’ 3.2조원을 편성했다. △재해대책비 보강 △이재민 주거안정 지원 △재난 대응 장비 고도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산불 피해 복구 지원’에 1.4조원, ‘재난 대응력 강화’에 1.7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이 투입된다.
‘피해복구’는 주로 산불 피해지 복구 사업이다. 불에 탄 숲을 예산을 투입해 복구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산불 피해지 복구’에 1조원이 추가 투입된다. 각 부처 재해·재난대책비를 5000억원에서 1.5조원으로 늘린다.
피해주민 지원금은 ‘일상회복’이라는 항목으로 따로 편성했다. 복구 지원금 1조원이 숲에 들어갔으니 남는 돈은 4000억원이다. △피해주민 주택복구 저리대출(400호) △피해지역 인근 임시주택 1000호 공급(2000억원) △피해지역 지방채 인수(2000억원) 등이다. 지방채 인수를 빼면 주민지원금은 2000억이다. 3.2조원의 1%도 안된다.
현행 정부 재난지원금 지원기준은 주택 완파(전소)시 3000만원이다. 이마저도 전액 보조가 아니라 보조 900만원, 융자 1800만원, 자부담 300만원이다. 주택 피해를 입은 이재민이 주택을 복구할 때 특별재난지역의 경우 최대 1억2400만원을 1.5%로 융자해준다. 산불 피해지 복구는 전액 정부 예산으로 하면서 산불로 집을 잃은 피해주민에게는 ‘집을 다시 짓고 싶으면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피해복구비보다 더 많은 1.7조원의 추경예산은 △AI 감시카메라, 고성능 드론 등(68억원) △산림헬기 6대 신규 도입(2027년까지 2640억원) △중·대형 물버킷 확충(30개, 1077억원) △다목적 산불진화차 확충(48대) △산림인접마을 비상소화장치 설치(1199개소, 232억원) △임도 2배 수준 투자 확대(1008억원) 등에 들어간다. 대부분 산림청 소관 예산이다.
피해지 복원예산을 피해주민에게
2000년 이후 거듭된 대형산불에도 불구하고 정부 산림정책은 요지부동이다. 큰 산불이 나면 많은 예산과 인력을 지원한다. 더 큰 산불이 나면 예산지원 규모를 더 늘린다. 그런데도 산불은 점점 더 커지고 인명피해도 늘어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산림청은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숲에서 소나무 비중을 1.5배 가까이 늘렸다. 대형산불이 자주 일어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는 다른 지역보다 소나무가 더 많다.
산림청은 우리가 심은 소나무가 아니라고 하지만 우리나라 소나무 숲은 대부분 ‘선택적 벌목’의 결과다. 식생천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활엽수림으로 변해가는 숲에서 숲가꾸기란 이름으로 활엽수만 잘라냈기 때문이다.
‘산불 피해지 복원사업’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복원’이란 이름으로 피해지의 나무들을 벌채한다. 벌채한 나무들을 ‘미이용 바이오매스’란 이름으로 잘게 쪼개 우드칩을 만든다. 그 우드칩을 ‘탄소중립’이란 이름으로 석탄발전소에 혼합소각용으로 공급한다. 산주들에게는 멀쩡한 나무보다 더 많은 돈을 준다.
이 모든 일은 숲가꾸기와 임도건설로 산불을 키운 산림조합이 주관한다. 1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특정 단체가 독식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산불 피해지의 토양과 식물이 고정한 탄소 80% 이상이 배출된다. 산불은 소나무만 태우고 지나갔는데 벌채와 펠릿 가공, 우드칩 운반, 재조림 과정에서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포르투갈 굴참나무의 기적에서 배워야 한다. 마을 주변 일정 구역을 정해 참나무나 버드나무, 오동나무 등 내화수림대를 조성하자. 철도노선과 주요 도로, 마을 주변 1km 안에 있는 소나무 단순림은 제거하자. 그래야 산불 확산과 주거지역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도로망이 격자형으로 촘촘한 나라가 도로를 산불방어선으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산불은 절대 끄지 못한다. 이번 의성산불도 남북축선인 경북대로와 중앙고속도로에 방어망을 치고 진화했어야 했다.
우선 고속도로 주변에 빽빽하게 심은 스트로보잣나무부터 제거해야 한다. 경북산불은 동서축선인 당진-영덕 고속도로를 타고 더 빨리 동해안까지 번졌다. 임도 확충? 차량 교행도 안되는 좁은 임도로 산불진화차 투입하면 인명피해만 커진다.
산불피해지는 벌채와 중장비 투입으로 간섭하지 말고 자연에 맡기자. 스스로 활엽수림으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자. 산불 피해지는 자연복원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는 차고도 넘친다. 1조원이 넘는 복원예산을 벌채와 조림에 쓰지 말고 피해지역 주민들 지원에 쓰자.
남준기 namu@naeil.com
논평] 정부는 편향된 피해산림 복구가 아닌 산불피해 주민 보상과 피해원인 조사에 나서라!
౦ 지리산사람들, 불교환경연대, 경남환경운동연합, 대구환경운동연합, 서울환경연합 등 62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은 4월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괴물산불'을 불러온 산림청을 규탄한 바 있다. 시민모임은 △산림청이 대형산불 피해 책임을 지고 피해 주민과 국민에게 사죄할 것 △피해림 긴급벌채 계획을 중단하고 숲 가꾸기, 임도 쟁점 현장검증 토론에 응할 것 △정부와 국회가 긴급벌채·조림 예산 지원을 중단하고 피해 주민 지원에 우선 집중할 것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진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할 것 △대선 후보와 국회의원들이 산불 쟁점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라는 다섯 개의 요구를 촉구했다.
౦ 시민모임은 산림청의 왜곡된 설명과 은폐된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산불 피해 지역을 순회하며 두 차례 현장검증 설명회를 진행하였고 여러 언론을 통해 심층적으로 보도되었다. 전문가와 언론은 산림청의 소나무 단순림 숲가꾸기와 무분별한 임도 정책이 산불을 키웠고, 산불위험예보시스템과 산불진화 지휘체계의 한계가 드러났고, 피해주민 보상에는 인색하면서 긴급벌채와 임도조성, 조림복구 등 산림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퍼주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౦ 정부와 국회는 논란이 되는 쟁점에 관해서 사실에 근거한 검증과 공개된 숙의 과정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데, 산림청의 주장과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여 추경안을 통과시켰다. 산불 피해지를 복구한다며 긴급벌채와 조림사업에만 1조원이 넘는 정부예산을 편성했다. 긴급벌채 예정지 1977ha에 ㏊당 벌채비용만 3170만원이 투입되고, 복구 후 정비비와 조림비가 각각 1500만원 추가로 투입된다. 이와 더불어 재난을 예방한다며 산림헬기 등 진화장비에 약 4천억, 임도 추가 조성에 천억이 넘게 들어간다. 이에 반해 피해주민 주택복구와 재난지원금은 4천억 수준에 머물렀다. 산불로 집을 잃은 피해주민에게 주택 반파시 최대 1800만원, 전파시 최대 3600만원이 지원될 뿐이고, 나머지는 돈을 빌려줄테니 주택을 복구하라고 한다. 산불 피해를 입은 농업시설이나 농기계, 농작물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없는 실정이다. 피해주민들은 빚더미에 오르고 피해지역은 인구소멸 위기에 놓였는데, 산림청 곳간은 돈이 넘쳐나고 있다.
౦ 31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4천여 채의 주택을 전소하고 서울 면적의 두 배 가까운 산림을 불태운 대형산불의 원인으로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과 미흡한 대응이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산림청장은 사과 표명조차 없고, 국회와 정치권은 그 책임을 묻지 않고 있다. 책임자 문책은커녕 오히려 산림청은 공적을 과시하며 더 많은 예산을 가져가고 있다. 대형산불이 나면 산에 돈다발이 떨어진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진 것이다. 피해 주민 지원을 우선하지 않고 재난을 빌미로 대규모 산림사업을 키우는 산림청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국회를 규탄한다.
౦ 산림청은 지난 29일, ‘영남지역 산불피해 복구 추진단(이하 추진단)’을 운영하겠다고 보도했다. 52명의 민·관·학 전문가들을 모아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구성하여 추진단을 운영하겠다는데, 산림청 관료가 절반에 가까운 24명이고 산림학자와 산림기술자, 임업관련 협회 등 임업 이해관계자 위주로 구성된 편향된 거버넌스 구조이다. 환경단체의 참여의사 확인을 거치지 않고 보도자료에 환경단체명을 특정하여 배포하는 저열함을 드러내었고, 산림청의 정책을 비판하고 생태적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는 단 한 명도 포함하지 않았다. 이 추진단은 긴급벌채, 조림복구, 사방사업을 맹목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임업 결사체이자 산림청 서포터즈일 뿐이다.
౦ 지금 당장 산림청 주도로 산불복구를 논할 때가 아니다. 대형산불 발생과 확산의 원인을 진단하고 책임을 규명하여 피해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부는 시민모임이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을 통해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자고 한 주장을 다시 새겨들어야 한다. 그리고 산불대책 관련 정부 거버넌스는 산림청 입맛에 맞는 관계자들을 불러 모으는 게 아니라, 산림청 정책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내놓는 기관과 전문가, 단체를 임업 이해관계자와 동수로 포함하는 것이 마땅하다.
౦ 매번 대형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산림식생 구조와 진화책임 문제 제기가 반복되었지만, 사회적 공론화가 부족했고 정부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산불에서는 발생 초기부터 사회 전반적으로 문제제기가 광범위하게 공감을 얻고 확산되었다. 문제해결을 위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고 행동하는 시민단체로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시민모임이 처음으로 활동에 나서고 있다.
౦ 시민모임은 산불발생 원인분석과 진단을 배제하며 임업 이해관계자로 기울어진 산림청 주도의 복구 논의를 반대한다. 산불 재난을 통해 산림 카르텔의 이권을 챙기는 행태가 반복될 것으로 우려된다. 산림 카르텔의 이권이 우선되는 피해복구 사업이 아닌 산불재난 대응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막대한 예산으로 편향된 피해산림 복구가 아닌 산불피해 주민에게 충분히 보상하고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여 산불피해 확산 원인 조사와 책임규명에 나서야 한다.
౦ 시민모임은 공동성명서에 밝힌 것처럼 요구사항에 대한 합리적 논의, 그리고 최선의 대안이 수립될 때까지 비판과 행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5. 5. 1.
산불피해 회복과 산림관리 전환을 위한 시민모임
신공항 건설, ‘안전’은 뒷전이고 ‘속도’만 그렇게 중요한가
이미 예견된 7년내 불가 결론
정치권 몰랐다는듯 시공사 탓
무안공항 충돌참사 본 후에도
공사 속도만 그렇게 중요한가
“×자식들,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 해.”
2020년 늦가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실에서 당시 김태년 원내대표가 전화를 붙든 채 격앙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국토교통부가 가덕도 신공항 용역비 예산 선반영에 미적대자, 민주당은 강하게 밀어붙였고, 같은 당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법 절차에 어긋난다”고 주저했지만 소용없었다. 170석 거대 여당의 힘 앞에 절차는 뒷순위였다. 불호령을 맞은 손명수 2차관은 결국 이듬해 봄 짐을 싸고 떠났다.(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같은 당 국회의원이 됐다.)
이렇듯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중요한 것은 늘상 절차가 아니라 속도였다. 출발점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검토해보라”는 한마디였다. 이후 20년간 신공항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단골 공약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을 추진했고, 영남권 단체장들도 합의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다시 뒤집혔다. 문재인 정부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해 확장을 백지화했고, 가덕도 특별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며 신공항을 밀어붙였다. 사업을 둘러싼 치열한 숙의는 없었고, 정치적 필요는 늘 속도만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무려 5년 이상 앞당겼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힘을 싣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엑스포는 무산됐고 10조원이 넘는 초대형 공사에도 불구하고 무려 네 번이나 입찰이 유찰됐다. 결국 수의계약으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을 맡게 됐지만, 며칠 전 결국 기본설계안을 내면서 “7년 내 준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부산시는 즉각 현대건설을 질타하고 나섰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작년 12월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했을 때 부산시장 머리 속엔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 공항 59%는 바다를 매립하고, 나머지는 산봉우리 등을 깎은 뒤 메우는 고난도 공사에 철새충돌 위험도 무안공항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설마 시민 안전보다 내년 지방선거가 더 급하단 말은 아닐거라 믿는다.
애초에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건설사 팔을 비튼 국토부 책임도 크다. 현대건설은 입찰 이후 줄곧 “공기는 9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최근 일어난 신안산선 공사현장 붕괴도 빡빡한 공기 추진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7년은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윤석열 정부에선 앞서 예든 손명수 전 차관처럼 자리걸고 바른소리 할 공무원도 없었다.
가덕도 연대봉에서 바라본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 [연합뉴스]
해외를 보자.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신공항(BER) 프로젝트는 정치적 결정과 졸속 추진의 교훈을 보여준다. 2006년 착공했지만 빡빡한 공기에 쫓겼던 부실 공사, 잦은 안전사고, 책임 회피가 이어지면서 2020년 개항했을 때 당초 예산의 세 배를 넘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국민 조롱과 불신을 샀다.
반면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 확장 사례는 다르다. 프랑스는 1990년대부터 단계별로 확장을 계획하고, 주변 지역과 지속적 협의를 거쳤다. 정치권이 조급증을 부리지 않고, 전문가 의견과 지역사회 목소리를 조화롭게 반영한 결과, 오래 걸렸지만 최종적으로는 안전하고 효율적 확장이 가능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부산에 가면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또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될게 뻔하다. 후보자들이 “더 빨리”라는 속도를 약속하기 보다 어떻게 안전을 책임질 것인지를 먼저 말했으면 좋겠다. 무안공항 참사이후 무안은 ‘참사현장’이라는 오명 속에 관광객이 끊어져 지역경제가 엉망이라고 한다. 부산 시민도 그런 위험천만한 폭탄돌리기 실험대에 앉는 건 절대 사양하지 않겠나.
이지용 부동산 부장/ 매일경제
가덕도신공항 표류, 예타 없는 ‘엑스포 속도전’이 예고한 것
전직 대통령 윤석열이 지난해 12월6일 부산 중구 깡통시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기업 총수들과 떡볶이 등을 시식하고 있다.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후 민심을 달래기 위한 행사로, 이날 윤석열은 “가덕도 신공항은 반드시 계획대로, 제대로 개항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부산 가덕도신공항의 ‘2029년 개항’이 사실상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총사업비가 13조5000억원에 달하는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지만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이로 인한 안전 우려에도 밀어붙이기로 일관하다 덜컥 브레이크가 걸린 것이다. 무리수와 졸속보다는 공항 개항의 큰 그림을 다시 짤 필요가 커졌다.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수의계약 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28일 국토교통부에 공사기간이 108개월 필요하다는 내용 등을 담은 기본설계안을 제출했다. 국토부가 입찰공고에서 제시한 공사기간 84개월보다 2년이 늘었다. 정부는 활주로·터미널 등을 먼저 지어 2029년 12월 우선 개항하고 완공은 착공 뒤 7년 내 하겠다고 밝혔지만, 컨소시엄 측은 이를 추진하기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이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사를 포기하면 사업도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공사 경쟁입찰이 4차례 유찰되자 정부가 수의계약으로 이 업체를 선정한 것부터 정부 요구를 맞출 건설사를 찾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사업성이 없다고 결론 난 가덕도신공항 사업은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선거공약으로 부상했고, 국회에서 특별법까지 만들어 500억원 이상 국책사업이 거쳐야 할 예비타당성조사도 면제됐다. 윤석열 정부가 벌인 ‘엑스포 속도전’은 무리수의 절정이었다. 처음 기본계획을 세울 당시 2035년 개항을 목표로 했지만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전략에 맞춰 공기를 5년6개월이나 앞당겼다. 안전 우려에도, 공기를 줄이려 공항 시설물 배치와 건설 공법마저 바꿨다. 당초 해상에 건설키로 한 공항을 공항터미널이 설치될 육지와 활주로로 이어질 바다를 메워 육상과 해상에 걸쳐 짓기로 한 것이다. 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부등침하 우려 때문에 사전 검토 때 배제한 방식이었다. 엑스포 유치 실패 후에도 윤석열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처럼 2029년 개항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효율적인 공항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는 사회적 합의와 법리적 절차 등 원칙에 입각한 공항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제주항공의 무안공항 참사에서 보듯 공항 시설물 하나가 재난의 불씨가 된다. 항공기와 승객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고 환경파괴를 최대한 막아야 한다. 타당성조사 등을 거쳐 경제성을 높일 방안을 찾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경향 사설
스페인 정전에 재생에너지 탓하는 어리석음
4월28일 대정전 사고로 암흑이 내려앉은 스페인 남부 론다 시가. AFP 연합뉴스
스페인·포르투갈 대정전이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전체 전력공급의 60%가 순식간에 사라지면서, 교통·통신·금융·공장·병원 등이 마비됐다. 19시간 만에 대부분 복구됐지만, 6천만명에 가까운 피해자와 7조원이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유럽 역사상 최악의 정전사태이다.
사고원인으로 재생에너지의 수급 불안정, 이상기후로 인한 유도 대기 진동 발생으로 스페인~프랑스 간 송전망 단절, 송전망 투자 미흡, 전력시스템 오류, 사이버공격 등 온갖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직 미궁이다. 4월28일 오후 12시33분 이후 5초간 모든 일이 벌어졌다. 스페인 남서부의 태양광 발전소들에서 동시에 전력망 접속이 끊기는 1차 탈락 발생→전력망 접속 회복→2차 태양광 발전소 탈락 발생→스페인~프랑스를 잇는 초고압직류송전(HVDC) 전력망 차단→대정전 사태가 이어졌다.
다른 나라도 유사사고 발생 가능성을 배제 못해 불안감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보수언론은 재생에너지 탓으로 돌리는 기사들을 쏟아낸다. “재생에너지 탓?” “재생에너지 한계 보여준 것?”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재생에너지는 연관이 없다”고 강조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보수언론 중 그 어느 곳도 스페인 정부가 틀렸다는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국민 불안, 에너지 정책에 미칠 파장 등을 고려할 때 최대한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할 책임있는 언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보수언론들은 평소 ‘원전 확대’에 앞장서 왔다. 이참에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포감을 키워 원전에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제 일부 보수언론은 “이번 사태로 일부 국가들의 탈원전 기조가 바뀔 수 있다”(한국경제)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제논에 물대기’이다. 스페인 총리는 “이 사건을 원전 부족과 연결짓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전 세계적으로 대정전은 재생에너지가 비중 있는 전원으로 부상하기 이전에도 끊이지 않았다. 유럽만 봐도 2003년 이탈리아·스위스 대정전으로 5천만명 이상이 피해를 봤고, 2006년에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 대정전으로 4천만명 이상이 타격을 입었다. 사고원인은 전력선이 인근 나무와 부딪혀 차단되거나, 갑작스런 한파로 전력수요가 급증한 것이었다. 정전은 특정전원의 문제라기 보다 전력망 운영 및 관리의 문제라고 봐야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스페인보다 훨씬 높은 나라들이 많지만, 큰 사고 없이 관리하고 있다. 스페인의 재생에너지 비중(2023년 기준)은 풍력, 태양광, 수력을 모두 합쳐 50% 정도다. 노르웨이는 90%, 브라질과 뉴질랜드는 80%를 넘는다. 제조업 강국으로 ‘탈원전’을 한 독일은 60%를 상회한다. 반면 우리는 이제 겨우 10%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다. 기업들이 선진국의 탄소무역장벽에 무방비이고, 아르이(RE)100 이행에도 중대한 차질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재생에너지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가난뱅이가 부자 걱정하는 꼴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대정전이 주는 교훈을 놓치지 않고, 우리가 할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태양광과 풍력은 시간·계절·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 때문에 다른 전원에 비해 전력계통 관리가 까다롭다. 또 유럽이나 북미는 국가 간 전력망이 서로 연결돼 있어 전력이 남으면 이웃나라로 보내고 모자라면 받는 ‘품앗이’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고립된 ‘에너지 섬’과 같아 불리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확대는 탄소중립과 RE100 이행을 위해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이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사전 대비와 관리를 잘하면 재생에너지 중심의 전력망과 시스템의 안정적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우선 전력 수급의 갑작스런 변동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공급과 수요 양쪽에서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급 쪽은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양수발전 확대, 관성자원 부족에 대응한 동기조상기 확보 등이 필요하다. 낮에 태양광의 전기공급이 갑자기 늘어나면 ESS에 저장했다가, 밤에 충전한 전기를 사용해 수급균형을 맞추는 식이다.
수요 쪽에서는 인공지능(AI)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해서 전력수급 상황과 연계한 혁신적이고 유연한 요금제 도입이 요구된다. 영국 전기판매회사인 ‘옥토퍼스에너지’는 밤시간대 전기요금을 낮시간대보다 올려, 밤시간대의 전기수요를 재생에너지 공급이 많은 낮시간대로 이동시키는 방식으로 수급 불균형을 완화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용도별로 전국 단일 전기요금제이다. 재생에너지 시대를 맞아 시간·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 나아가 전기판매시장 경쟁체제 도입 등의 혁신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충돌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과제다. 재생에너지가 늘어날수록 다른 전원에서 전기수급 변동에 따라 발전량을 조절해줘야 하는데, ‘경직성’ 전원인 원전은 그 역할이 어렵다. 조절기능을 해주던 석탄·가스(LNG) 발전소가 줄어드는데,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시에 늘어나면 전력계통의 구조적 취약성이 커진다.
우리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발전 비중 합계가 40% 정도로 유럽 주요국에 비해 낮다. 하지만 이미 지방에서 둘 간의 충돌로 출력감발과 송전망 접속제한이 빈발하는 만큼 손놓고 있을 상황도 아니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비중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원전도 현재의 26기에 더해 4기를 건설 중이고, 정부는 대형 원전 2기를 추가 건설할 계획이다. 당장은 재생에너지와 원전 모두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최적의 배분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의 에너지 전환 정책은 지난 8년 간 ‘탈원전’과 ‘원전올인’이라는 극과극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큰 혼선을 겪었다. 기후에너지 정책이 진영과 이념을 앞세운 과도한 정치논리로 오염됐다. 스페인 사태 이후 재생에너지 공포 조장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제는 미래와 후손을 생각해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고, 현실조건을 고려해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경로를 찾아야 한다. 조기대선 이후 새 정부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 기후에너지 정책의 정상화이다.
곽정수 |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오거돈 일가, 약속과 달리 가덕도 땅 안 팔았다… 시세 20배 뛰어
오거돈 전 부산시장 일가가 당초 약속과 달리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일대에 있는 대항동 토지(1440㎡)를 여전히 보유 중인 것으로 5일 확인됐다. 오 전 시장 일가는 지난 2021년 가덕도 신공항 추진과 토지 보유 사이의 이해 충돌 논란이 일자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것 같다”며 땅을 매도하겠다고 밝혔는데 실제론 팔지 않은 것이다.
문제의 땅은 가덕도 신공항이 들어서는 지역에 바로 인접한 곳으로 정부의 토지 보상 계획에도 포함됐다. 소유주는 오 전 시장의 조카인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이다. 그는 지난 2005년 6월 평(3.3㎡)당 50만원에 토지를 샀다. 현재 시세는 평당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졌다. 매입 당시보다 가격이 20배가량으로 오른 것이다.
오 전 시장은 오 회장이 이 토지를 사들이기 한 해 전인 2004년 6월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선거 낙선 후 노무현 정부 해양수산부 장관 등을 거쳐 2018년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부산 시장에 당선됐으나 2020년 성추행 혐의로 사퇴했다. 오 회장 측은 “땅을 팔려고 내놨지만 팔리지 않아 보유 중”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가덕도에 공항” 공약 후 조카가 2억 땅 매입… 지금 45억
오거돈 전 부산시장 일가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최대 수혜자로 불렸다. 2020년 말부터 오 전 시장 일가의 가덕도 토지 소유 논란이 커지자 공항 부지 인근의 일부 땅을 팔겠다고 했던 것도 이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토지 소유주로 오 전 시장의 조카인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 측은 2021년 초 본지에 “낚시가 취미여서 별장을 짓기 위해 토지를 샀는데, 불필요한 오해가 있어 땅을 팔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시 시가의 절반 가격인 평당 350만원에 토지를 내놨다고 했다.
그런데 4년여 만에 실제로는 팔지 않고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게 드러난 것이다. 오 회장 측은 “초반에 한 차례 정도 문의가 있었지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이후에는 거래 문의가 없었다”고 했다.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이 일대는 당시 내놨던 가격에서 3배가량 높은 평당 1000만원이 됐다. 오 회장이 2005년 6월 토지를 사들인 가격(평당 50만원)에 비하면 현재 약 20배로 뛰었다.
그래픽=김현국
이와 별도로 오 전 시장의 가족 회사로 오 전 시장도 지분을 보유했던 대한제강은 가덕도 신공항 부지 인근에 있는 송정동 일대 7만291㎡(약 2만1263평)의 땅을 1994~2004년 순차적으로 사들였다. 이곳은 가덕도 신공항 부지에서 차로 18분 거리다. 대한제강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대한네트웍스도 2017년 같은 지역에 6596㎡(약 1995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대한제강과 대한네트웍스가 보유한 이 토지들도 5일 현재 매각하지 않고 계속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오 전 시장은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앞세웠다. 당초 가덕도 신공항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부권 신공항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2004년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부산시 행정사무관 출신으로 행정부시장에 오른 오 전 시장은 2004년 2월 뇌물 수수 사건에 연루돼 자살한 전임 시장을 대신해 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다. 이어 그해 6월 치러진 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나왔다. 당시 가덕도 신공항 추진은 그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다.
이 선거에서 낙선 후 해수부 장관에 발탁된 오 전 시장은 2006년 동시지방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부산 시장에 출마했지만 당선되지 못했다.
이후 꺼질 뻔했던 가덕도 신공항 추진 불길을 다시 살린 것 역시 오 전 시장과 민주당이었다. 2016년 박근혜 정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 검증 기관 중 하나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에 용역을 맡긴 뒤 가덕도 신공항이 경제성과 안전성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최종 판단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폐지하고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2018년 부산 시장 선거에 재도전한 오 전 시장은 또다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웠고 결국 당선됐다. 오 전 시장 사퇴 이후에도 가덕도 신공항 바람은 이어졌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김해공항 확장 계획을 철회했고, 이듬해 가덕도 신공항 건설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현재 가덕도 신공항은 바다를 메우는 난공사 계획으로 인해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당초 예정됐던 2029년 개항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상태다.
실제 가덕도 내 사유지 중 대부분은 섬 밖 외지인이 소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21년 국민의힘 조사에 따르면 가덕도 사유지 858만6163㎡(약 260만평) 중 79%인 677만782㎡(약 205만평)를 섬 밖 외지인이 갖고 있었다. 외지인들이 신공항 후보지, 공항 연결로, 시가지, 해안선 일대의 노른자위 땅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토지 보상 작업의 대상자 중엔 절반을 약간 넘는 수가 외지인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
전국 16곳 케이블카 추진 예산 1조5천억, 혈세 낭비"
11개 지역 전국케이블카건설중단-녹색전환연대 출범... "대선후보들에게 백지화 공약 요구“
▲ 5월 7일 국회 소통관, 전국케이블카건설중단-녹색전환연대 출범 선언.ⓒ 정정환
"전국 16곳 케이블카 건설 추정예산 1조 5000억 원은 혈세 낭비로 이어질 것이다. 환경파괴와 예산낭비하는 케이블카 사업이 좀비처럼 되살아나 갈등만 증폭시키고 있다. 대통령선거 후보는 케이블카 건설 백지화를 공약해야 한다."
지리산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케이블카 건설이 추진되는 가운데, 이에 반대하는 지역주민·시민사회·정당들이 전국케이블카건설중단·녹색전환연대(아래 전국연대)를 결성하고 이같이 밝혔다.
전국연대는 7일 국회 소통관에서 진보당 정혜경 국회의원, 정의당 권영국 대표, 사회민주당 임명희 부대표와 환경활동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출범을 선언했다. 또 이들은 국회 앞에서도 관련 활동을 벌였다.
양양 설악산, 울산 신불산, 구례·산청·남원 지리산, 광주 무등산, 원주 치악산, 부산 황령산, 대전 보문산, 서울 남산, 문경 주흘산의 케이블카 건설 추진에 반대하는 11개 지역대책위가 모였다.
전국연대는 국립공원무등산지키기시민연대, 기후정의원주행동, 남산의친구들, 문경시민희망연대, 보문산난개발반대시민대책위원회, 부산황령산지키기범시민운동본부,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신불산케이블카반대범시민대책위, 지리산지키기연석회의, 지리산케이블카반대산청주민대책위가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지리산은 5차례, 설악산은 5차례, 신불산은 3차례, 황령산은 2차례, 보문산은 4차례, 남산은 2차례 케이블카 사업이 살아나고 있다. 이에 전국연대는 대통령 후보들이 전국 케이블 건설 백지화와 제도개선을 공약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국연대는 "전국에 설치된 케이블카는 41개소 중 1~2곳을 제외한 대다수가 적자 경영의 늪에 빠지고 있다"며 "케이블카의 경쟁적 유치로 이미 설치된 케이블카조차 운영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임에도 전국의 지자체에서 여전히 경쟁적으로 케이블카 사업이 추진 중"이라고 꼬집었다.
관련 예산도 어마어마하다. 전국연대는 11개 지역 중 10곳의 케이블카 예산만 합해도 약 1조 420억 원에 달하고, 아직 사업비가 확인되지 않은 강원도 5곳 등의 예산까지 합하면 1조 5000억 원(물가상승률 반영)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전국연대는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는 자연공원과 도시 숲을 파괴 하는 사업을 '지역 경제 활성화'로 포장하기 위해서 경제성 분석을 과대 추정하여 적자 사업을 흑자 사업으로 둔갑(설악산, 지리산 등)시켰다"고 주장했다.
"고의적으로 국유림의 생태등급 떨어뜨려"
환경영향평가 통과를 위해 멸종위기종 및 식생 조사를 허위로 작성하거나 숲가꾸기 사업 등을 통해 고의적으로 국유림의 생태등급을 떨어뜨리는 등의 행태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환경파괴, 예산낭비를 감추기 위해서 타당성보고서 등을 공개하지 않는 행태를 보인다며 자료 공개를 촉구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이 벌어질 예정이다. 전국연대는 22대 대통령선거후보와 정당에 '케이블카 건설 백지화의 대선공약'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로 했다.이들은 "대선공약에서 모든 케이블카 건설을 포함시키지 않으며, 케이블카 백지화를 공약해야 한다", "전국 케이블카 건설 중단 및 검증위원회 구성과 환경영향평가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라고 했다.
또 이들은 "지방재정투자심사 부실하게 운영한 행정안전부 감사원 감사와 심사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행정의 비밀주의 극복을 위한 사업관련 타당성보고서, 환경영향평가서 및 전문기관 검토의견서 등 공개를 의무화해야 한다"라고 제시했다.
전국연대는 "대선 이후에 새 정부 수립할 100대 과제 등 주요과제에서 케이블카 건설중단이 포함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내년에 지방선거 공약 등으로 제안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 케이블카 대신 지역특성에 맞는 녹색전환 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고 했다.
또 이들은 "케이블카 사업이 적자사업이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 경제성 분석을 엉터리로 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례(지리산)와 국립·군립공원의 환경성파괴를 감추기 위해서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허위작성 한 사례(신불산 등)를 종합해서 알려갈 것"이라고 했다.
전국연대는 "시민의 세금 1조 5000억 원을 낭비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작성해야하는 타당성보고서와 환경영향평가서 검토의견서 등을 공개하도록 할 것"이라며 "내란 잔불을 끌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 사회대개혁세력들과 연대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오마이뉴스 윤성효 기자]
‘역대 최악’ 영남 산불, 온실가스 무려 764만t 뿜어냈다
산림과학원, 피해면적 10만4000ha 기준 추산
중형차 7175만대 서울·부산 왕복 배출량 맞먹어
경북 의성군 고운사 내일신문 남준기
지난 3월 영남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던 산불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700만t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확정한 영남지역 산불 피해면적(10만4000㏊)을 기준으로 산정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약 764만t으로 추산됐다고 7일 밝혔다.
앞서 산림과학원은 지난 3월 영남지역 산불 진화 이후 잠정 집계된 산불영향구역 면적(4만8239㏊)을 토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366만t으로 추정했었다. 그러나 실제 집계된 산불 피해면적이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이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 추정치도 크게 늘어났다.
산불이 발생하면 나무가 불에 타면서 이산화탄소 등 각종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은 피해 면적과 산림의 양을 기준으로 산정하게 된다. 여기에는 임상비율과 목재기본밀도, 바이오매스 확장계수, 연소효율 등이 기초 자료로 활용된다.
이를 기반으로 산림과학원이 추산한 영남 산불 피해지역 온실가스 배출량은 이산화탄소 677만6000t, 메탄 56만8000t, 이산화질소 29만8000t 등이다. 산림과학원은 이 같은 온실가스 배출량은 중형차 7175만대가 서울∼부산을 왕복할 때 배출되는 양과 같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김래현 산림과학원 산림탄소연구센터장은 “산불은 수세기 동안 저장된 탄소를 한순간에 베출시키고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까지 약화시킨다”며 “산불이 나면 산림이 탄소 흡수원이 아니라 배출원이 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인 산불 예방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앞서 영남지역 대형산불로 산림 10만4000㏊가 소실돼 1987년 산불 피해 통계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 산불로 27명이 사망하는 등 모두 18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전체 피해액이 1조818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겨레 이종섭 기자
기후정책이 이번 조기 대선에서 중요한 까닭
조기 대선이 시작되면서 기후환경 단체들이 정책 제안을 발표하고 나섰다. 윤석열 시대의 역주행을 되돌리고, 기후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다. 기후경제부 신설 등이 눈에 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치바람이 4월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후 단일 의제 대선 TV 토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잃어버린 시간이었고, 역주행의 시간이었다. 허송세월이었고 복지부동이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윤석열 정부 아래서 특히 기후환경 분야 정책은 심각하게 퇴행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정책의 갑작스러운 보류, 석유 부국을 만들 수 있다며 팡파르를 울렸지만 결국 ‘경제성 없음’으로 결론 나고 만 동해 석유시추 사업(대왕고래 프로젝트), 세계적으로 ‘좌초 산업’으로 여겨지는 원전 산업 생태계의 부활 추진 등 온 나라를 요란하게 만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전 정부의 4대강 재자연화 계획을 없던 일로 되돌리고,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오히려 신규 댐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일부 태양광 사업 부실 사례를 이유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재생에너지 산업 전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한 결과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10.5%(2024년 기준)에 머무르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 따르면 자신의 정부에서는 국가 온실가스를 ‘찔끔’ 감축하고 차기 정부에서 ‘대폭’ 감축하게끔 설계했다.
피해는 경제활동 주체들에게 돌아갔다. 종이 빨대 생산업자, 재생에너지 사업자 등은 정부 정책으로 인한 피해자가 되어 직격탄을 맞았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 유럽과 미국의 무역규제 정책에 발을 맞추며 탄소감축 이행 계획을 준비하던 산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3월31일 탄소중립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 “우리의 생활을 하던 대로 유지할 것인지, 혹은 한 번도 못해본 에너지 독립을 향해 세상을 바꿀 것인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탄소중립을 논하려면 이를 정치와 법제에 반영할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탄핵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마이웨이’였다. 탄핵 한 달 전인 2024년 11월14일 환경부는 시민사회로부터 커다란 비판을 받은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 수립을 윤석열 정부 2년 반의 성과로 자화자찬하며 환경규제에 대해서도 “획일적 규제가 아닌 맞춤형 규제를 확대하겠다”라고 발표했다. 파면이 되지 않았더라면 윤석열 정부의 기후환경 정책 역주행은 가속도가 붙었을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의 쿠데타와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기후환경 단체는 일제히 윤석열 정부의 반기후·반환경 정책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녹색연합은 올해 1월 ‘윤석열과 함께 탄핵되어야 할 정책’을 발표했다. 차기 정부에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떠넘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신규 원전 건설 추진과 노후 원전 수명 연장, 설악산 케이블카 등 보호지역 훼손, 신공항과 댐 건설, 4대강 재자연화 중단, 플라스틱 및 일회용품 규제 포기 등이었다.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6월3일로 확정되면서 ‘미래’를 이야기할 공간이 열렸다. 기후환경 단체들은 긴급히 관련 토론회를 개최하고, 차기 정부가 이행해야 할 정책 과제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플랜 1.5 등 국내 민간 기후 싱크탱크들은 지난 2월 ‘10대 기후정책 제안서’를 공개한 데 이어 4월10일 ‘다음 정부에 제안하는 30대 기후정책’을 공동발표했다.
30대 기후정책 제안에서 주목할 대목은 ‘민주주의 분야’를 맨 앞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먼저 기후정책을 헌법에 명시할 것을 주장했다. 탄소중립과 생태적 전환을 새로운 시대의 헌법적 가치로 채택하고, 생태국가로의 전환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한 수단으로 ‘기후시민의회’의 제도화, 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됐던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중위)를 미래세대·노동자·농민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전면 개편, 기후경제부 신설 등이 제시됐다.
“산업부와 환경부 업무 통합하자”
4월22일 ‘H-ESG 포럼’에서 기후에너지 싱크탱크 관계자들이 정책 제안을 발표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특히 기후경제부 신설 주장에 힘을 싣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환경부의 기후탄소실 업무를 통합해 기후·에너지·산업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그간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설정 등 기후정책 추진 과정에서 산업부 주장에 밀려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독일의 ‘경제기후보호부’처럼 산업과 기후위기 행정을 일원화해야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게 제안자들의 생각이다. 또한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의 협조 없이는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탄중위가 기후예산 편성 및 협의 권한을 가지게끔 했다.
민간 싱크탱크만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2022년 대선과 2024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은 규모와 기능에는 차이가 있지만 ‘기후에너지부’ 설치를 공약했고, 지난해 국민의힘도 환경부를 ‘기후환경부’로 바꾸자는 법안을 만들었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기후에너지부를 신설하는 ‘정부조직법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고, 박정 민주당 의원은 환경부 명칭을 ‘기후환경부’로 바꾸고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기후환경부 설치를 제안했던 김소희 국민의힘 의원 역시 기후환경부 장관을 부총리로 격상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30대 기후정책에서는 인공지능 시대를 겨냥한 ‘그린 AI’ 전략이 눈에 띈다.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AI 개발·활용 전 과정의 에너지 소비를 통제하고, 데이터센터 신설 시 재생에너지 조달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OECD 최하위인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30%(OECD 평균 수준)로 끌어올리자는 재생에너지 ‘중진국’ 도약 방안도 제시했다. 기업이 정부가 정한 양 이상으로 탄소를 배출했을 때 배출권을 구매해서 이를 상쇄하는 제도인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손보자고 제안한다. 전체 90% 기업에 정부가 배출권을 공짜로 나눠주면서(무상 할당) 현행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2030년까지 발전 업종에 대한 유상 할당 비율을 현행 10%에서 100%로 점진적으로 끌어올려 최대 13조원 정도 추가 재원을 확보하자는 구상이다.
대도시와 농촌 간 전력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별·시간대별 전력요금 차등제를 도입해서 장기적으로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자는 제안도 나왔다. 지역별 차등요금제의 경우 분산에너지 특별법에 따라 법적 토대는 마련됐으나 시행령 미비, 산업부의 이견 표시 등으로 제도 시행이 늦춰진 상태다.
시민의 일상 속 기후 실천을 촉진하기 위해 건물 난방의 탈탄소 지원, 녹색교통 이용 정산제 등을 제안했다. 농어촌공사가 관리하는 공공비축 농지에 태양광시설을 설치해 소득을 창출하는 ‘햇빛복지마을’ ‘태양광 히트펌프 목욕탕 3000개 설치’ 등 지역을 위한 기후 대응 정책도 마련됐다. 산림·갯벌·습지 등을 관리하는 지자체에 온실가스 흡수량에 상응하는 생태보호지원금을 도입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환경운동연합도 4월22일 ‘차기 정부에 제안하는 30대 환경정책 과제’를 제안했다. 앞서 기후 싱크탱크의 정책 제안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탈원전 문제를 강조했다.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 금지와 안전한 폐로 로드맵 수립을 맨 앞에 내세웠다. 반복되는 원전 사고에 대한 규제 강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방사능 노출 피해 주민의 이주 및 보상제도 정비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고, 유류세 개편 및 재원 재설계를 통해 연료 소비를 줄이는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았다.
4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4대강 자연성 회복과 국민 건강을 위한 요구사항을 담은 대통령 선거 환경 공약 제안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4대강 등 하천 생태계 복원을 위해 불필요한 콘크리트 구조물을 철거하는 한편 정부가 추진하는 신규 기후대응댐 사업을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낙동강을 중심으로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녹조 독소 대응체계를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주·새만금·흑산도·가덕도 등 생태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추진 중인 신공항 건설 계획을 철회할 것도 요구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플라스틱 사용량 감축 로드맵 수립과 모든 플라스틱 포장재에 재생 원료를 최소 30% 이상 의무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제주특별자치도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1회용 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 사용 제한 정책 등을 제시했다.
지역이 몸살을 앓고 있는 산업폐기물 문제에 대한 정책도 눈에 띈다. 산업폐기물의 ‘발생지 책임 원칙’을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타 권역 폐기물의 반입을 제한하는 등 공공관리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폐기물 처리시설에 대한 주민감시권·정보접근권·건강조사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유권자’ 중도층에 많아
기후환경 단체의 정책 제안이 발표되는 가운데 유력 대선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가 기후정책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고 나섰다. 이재명 후보는 4월22일 지구의날을 맞아 SNS에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폐쇄하고 전기차 보급 확대로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라고 밝혔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 2028년 제33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3) 유치 등도 약속했다. 이 후보는 “(포장재 없이) 알맹이만 팔아서 쓰레기를 줄이는 ‘알맹상점’처럼 자발적으로 만드는 순환경제 인프라를 지원하겠다”라며 국가 차원의 탈플라스틱 로드맵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4월23~24일에도 제주와 호남을 각각 탄소중립 선도 도시, 재생에너지 산업 중심지로 만들겠다며 지역 및 기후정책을 잇따라 발표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기후 정치를 의제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사회 연합체 ‘기후정치바람’은 1만7000명 대규모 여론조사를 통해 기후위기 대응 정치인에게 투표할 의향이 있는 ‘기후 유권자’가 전체의 약 33%에 달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정치 성향별로 봤을 때 기후 유권자가 가장 많은 층이 중도층이었다는 점이다. 이념 양극화 시대에 중도층의 선택이 선거 당락을 가른다는 점에서 기후 유권자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당시 기후정치바람은 분석했다.
물론 평상시의 이런 ‘의향’이 실제 투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막상 선거 레이스에 돌입하면 경제·일자리 문제 등 전통적 이슈에 밀려 기후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다. 기후위기 대응이 산업전환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 이슈임을 기후환경 진영은 계속 강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치바람 등 시민사회 단체는 새로운 방식의 대선후보 토론회를 제안했다. 후보들이 기후위기를 단일 의제로 놓고 TV 토론회를 열자는 것이다. 이들 단체는 “대선후보들이 탄소중립 목표와 에너지와 산업 전환, 기후 불평등 해소 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야 한다. 선거방송토론위원회와 언론사 역시 기후 단일 의제 토론회가 열릴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요구했다. 별안간에 치르게 된 이번 대선에서 기후 의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는 이들의 분투가 시작됐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3uXae-yLaT4
가덕도 신공항 건설 눈앞…사라질 멸종위기 동·식물 / 연합뉴스TV 2024. 2. 14.
https://www.youtube.com/watch?v=qrZLCGYzkWI
가덕신공항 유치 염원 '범시민 촛불 문화제' 개최 2016. 6. 3
https://www.youtube.com/watch?v=4FuDmYEcXEA
https://www.youtube.com/watch?v=aVqGouuZ0rU
가덕도신공항 건설공사 공정 설명영상
부산시정 민관 협치 ‘낙제점’… “시장의 의지 부족 가장 문제”
부산연구원 협치 활성화 보고서
조례 등 제도적 기반 이미 구비
반면 조직·인력·예산은 뒷걸음
“시장이 민간의 다른 의견 배척”
시는 이런 한계 인식조차 못 해
대저대교 등 곳곳 파열음 초래
대저대교 건설과 퐁피두 분관 유치 등 부산시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관 협치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돼 실질적인 민간 참여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부산연구원의 진단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대저대교 건설 기공식(위)과 지난해 9월 열린 ‘세계적 미술관 부산유치 기대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 부산일보 DB
대저대교 건설과 퐁피두 분관 유치 등 부산시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민관 협치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돼 실질적인 민간 참여와 소통이 부족하다는 부산연구원의 진단이 나왔다. 지난해 10월 대저대교 건설 기공식(위)과 지난해 9월 열린 ‘세계적 미술관 부산유치 기대효과 및 활성화 전략 토론회’. 부산일보 DB
“실종 상태”, “60점 이하 과락”, “동원형, 형식형”. 민간 활동가와 학계 전문가들이 매긴 부산시의 협치 성적표다.
부산시정의 민관 협치가 행정의 일방적인 주도로 진행되고 실질적인 민간 참여와 소통이 부족한 상태라는 부산시 산하 연구기관의 진단이 나왔다. 글로벌 허브도시와 같은 시의 핵심 과제가 성공하려면 민관의 수평적인 파트너십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뒤따랐다.
부산연구원은 최근 이와 같은 내용의 연구보고서 ‘시민행복도시 부산을 위한 민관 협치 활성화 방안’을 발간했다고 7일 밝혔다
부산시가 제안한 현안 과제로 진행된 연구에 따르면 부산에는 ‘부산시 민관 협치 활성화를 위한 조례’ 등 민관 협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은 있지만, 협치 담당 조직과 인력은 크게 축소됐고 예산도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조례에 따라 수립된 제1차 민관 협치 활성화 기본계획(2022~2024년)의 과제 다수는 축소되거나 중단됐다. 협치추진단은 2022년 운영을 종료했고, 시정협치형 주민참여예산제 등 대표사업은 중단됐다. 협치백서도 발행조차 되지 못했다.
특히 지역 민간 활동가와 학계 전문가 20명이 참여한 심층 인식 조사에서 대부분 참가자들은 부산시정이 행정 주도로 진행되고, 2030월드엑스포 유치 과정 정도를 제외하면 민간 참여는 제한적이거나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봤다. 일부 위원회는 유명무실하거나 아예 열리지 않고, 시장의 협치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참가자는 “시장이 다른 의견을 내는 민간영역을 배척하고, 각종 현안에 대해 공청회나 토론회를 하지 않고, 각종 위원회 구성 또한 시 입맛대로 구성하거나 공무원이 시장의 심기를 살펴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또다른 참가자는 “부산시가 이런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자신감으로 정책 부족함을 덮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민간 영역에 대해서도 협치를 제대로 할 만한 조직이나 인력, 예산을 갖춘 단체가 적고, 일부는 강압적이거나 일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등 협치에 대한 역량이 부족하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이들은 민관 협치를 활성화하려면 무엇보다 시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와 함께 행정 시스템과 제도 정비, 재정적 지원과 인프라 확충, 정보 공개와 투명성 확보, 시민사회와 민간영역의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고 꼽았다.
보고서는 이러한 진단을 토대로 부산시정에서 민관 파트너십이 정책 추진을 실질적으로 주도해 민관 협치 기반을 회복하고 시민 체감도가 높은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 위원회 제도 혁신과 개방형 온라인 협치 플랫폼 구축·운영, 민관 공동 정책결정·평가제도 운영, 협치 아카데미 운영, 협치 참여 민간주체 정보 공개 등 세부 과제도 내놓았다.
연구책임자인 박충훈 부산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대저대교 건설, 퐁피두 분관 유치 등 부산의 주요 현안에서 민관 갈등이 크게 불거졌던 것은 협치 환경에 문제가 있다는 징후”라며 “협치 기반 조성과 활성화를 위해 민과 관 모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일보 최혜규 기자
이재명 직속 ‘기후위기대응위’ 출범…“압도적 정권 교체가 탄소중립 방법”
7일 오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직속 기후위기대응위원회 소속 위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민주당 제공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직속 ‘기후위기대응위원회(기후위)’가 7일 오후 공식 출범했다. 기후위는 “탄소중립 달성과 탈탄소 기후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선 이 후보로의 압도적 정권 교체가 유일한 방법”이라며 기후위기 관련 대선 공약을 준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기후위는 이날 오후 국회에서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열어 ‘탄소중립, 미래 세대와의 약속’이라는 슬로건을 발표하고 위원회 명단을 공개했다. 기후위는 상임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된 위성곤 의원과 위진 전 지에스(GS)풍력 사업본부장을 중심으로, 정치인·기후운동가·교수·기업인 등 400여명 규모로 꾸려졌다.
위성곤 위원장은 기자회견문에서 “세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대와 녹색산업 전환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부에서 대한민국은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을 넘어 ‘기후 악당 국가’로까지 전락하고 말았다”면서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탄소중립 달성과 탈탄소 기후경제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서는 ‘준비된 기후 대통령’인 이재명 후보로의 압도적 정권 교체가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기후위는 이어 대한민국을 기후경제 선도 국가로 도약시키겠다고 약속했다. 기후위는 “기후 변화는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라며 ‘햇빛·바람 연금’ 등 효능감 있는 정책을 통해 대한민국 산업의 신성장동력과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고, 중소기업·전통산업·지역 등이 소외 없이 함께 도약하는 공정한 전환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이재명 후보 직속 위원회
△사람사는세상 국민화합위원회(위원장 오상택) △국가인재위원회 위원장 정성호 의원 △K-문화강국위원회 위원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기본사회위원회 위원장 박주민 의원 △모두의나라위원회 위원장 고영인 전 의원 △사람사는세상 국민화합위원회 위원장 박용진 전 의원 △글로벌책임강국위원회 위원장 조정식 의원,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스마트국방위원회 위원장 김병주 의원
△기후위기대응위원회 위원장 위성곤 의원 △AI강국위원회 위원장 이재성 부산시당위원장 △지방분권혁신위원회 위원장 김두관 전 의원 △국토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김정호 의원, 손명수 의원 △인구위원회 위원장 서영교 의원 △K-이니셔티브위원회 위원장 민형배 의원 △미래교육자치위원회 위원장 안민석 의원
'정치SOC' 가덕도신공항 결국 무산…“예견된 표퓰리즘 역풍”
현대건설 '공기 2년 연장'하자
국토부 "수의계약 중단할 방침"
전문가 "예견된 票퓰리즘 역풍"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를 방문해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1viewer
부산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이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공사를 맡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항 부지 조성 공사에만 최소 108개월이 필요하다는 최종 입장을 정부에 전달하면서다. 이는 당초 정부가 제시한 공사 기간인 84개월보다 24개월 더 늘어난 것이다. 공기가 늘어나면 사업비도 증가하기 때문에 사업성도 원점에서 다시 따져봐야 한다는 게 건설 업계의 평가다. 선거 때마다 사업성도 없는 초대형 국책 공사를 앞세워 일단 표를 따낸 뒤 국가 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떠안기는 우리 정치권의 관행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8일 건설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이날 국토교통부에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 기간 연장의 필요성 등을 담은 설명 자료를 제출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 관계자는 “남산의 세 배에 달하는 산봉우리를 발파하고 파도가 최대 12m에 달하는 해상을 매립해야 하는 난도 높은 공사”라며 “안전과 품질을 고려한 적정 공기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예상됐던 수순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번 사업은 처음부터 경제성이나 실현 가능성보다는 선거철 지역 표심을 의식해 추진된 선심성 정치 사회간접자본(SOC) 공사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가덕도신공항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남부권 신공항 추진’ 공약에서 시작돼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경제성과 안전성 등의 문제로 무산됐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특별법 제정과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로 부활한 데 이어 부산 엑스포 유치와 맞물려 재추진됐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기회에 정확한 소요 비용을 다시 계산해 국민들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현대건설과의 수의계약을 중단할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대건설의 기본 설계를 토대로 사업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사의 난도와 경제성 부족으로 과거 네 차례 유찰됐던 전례를 감안하면 다시 경쟁이 성립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경제 서민우 기자
가덕도신공항, 결국 재입찰할 듯… 현대건설 “108개월 필요” 설명서 제출
정부, 현대 측 입장 관련 외부전문가 검토 뒤 결정
국가계약법 상 공사기간 어겨 우협 지위 상실할 듯
부산시는 재입찰 재촉… 국토부 "빨라도 이달 중하순"
재입찰해도 유효경쟁 성립 가능성↓…조기개항 어려워
부산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사진 제공=국토교통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부산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와 관련 108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최종 입장을 정부에 제시했다. 국토교통부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기본설계안과 입장에 대해 외부 전문가 평가 등을 통해 검증한 뒤 재입찰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국가계약법 상 명시된 공기를 연장해달라는 입장인 만큼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는 박탈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재입찰을 하게 되더라도 2029년 조기 개항과 2031년 12월 준공이라는 대원칙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이날 국토부에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 기간 연장의 필요성 등을 담은 설명자료를 제출했다. 설명자료에는 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에서 6개월 동안 하루 평균 250여 명의 공항·항만·설계 전문인력이 참여한 시뮬레이션 결과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바닷속 연약지반을 견고하게 개량하는 동시에 산을 옮겨 바다를 매립하는 공사의 복잡성 △높은 파랑에 대비한 안전 시공법 적용 필요성 △활주로 구간의 해저 지층의 지반 침하 방지를 위한 안정성 추가 확보 등을 이유로 공사 기간이 당초 정부가 제시한 84개월이 아닌 108개월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 관계자는 “남산의 3배에 달하는 산봉우리를 발파하고 파도가 최대 12m에 달하는 해상을 매립해야 하는 난도 높은 공사”라며 “안전과 품질을 고려한 적정 공기를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 외부 전문가와 함께 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의 입장을 검토한 뒤 재입찰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정부는 앞서 지난달 28일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사기간을 108개월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기본설계도를 제출하자 사업지연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토부·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문회의를 꾸린 바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당초 입찰공고에 공사 기간 84개월을 제시한 것도 연구용역을 거쳐 도출한 것이며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이를 받아들여 입찰에 응한 것”이라며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기 연장을 주장하는 이유를 세밀하게 검토한 뒤 추가 대응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국가계약법 상 명시된 공사기간을 준수하지 못한다고 밝힌 만큼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박탈되고 재입찰을 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사기간이 2년 늘어나면 사업비도 증액될 수밖에 없는 만큼 현재의 입찰계약은 유효성을 상실한다는 이유에서다. 부산시에서 재입찰을 재촉하고 나선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준다. 김광회 부산시 미래부시장은 전날 “현대건설이 지금 공기를 줄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데 국토부가 개선안을 내라고 요구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며 “그렇다면 바로 재입찰해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재입찰 공고를 하게 된다면 빨라야 이달 중하순이 될 전망이다. 이 경우 당초 입찰공고와 동일하게 공사기간 84개월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와의 검토 등을 고려하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 상황에서 재입찰을 공고하게 되면 공기는 그대로 유지되고 공사비는 물가 상승률을 추가로 반영하는 정도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부산시의 가덕도신공항 조기개항 의지가 크지만 2029년 우선개항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달 중하순 재입찰 공고가 나더라도 유효경쟁이 성립되지 않을 경우 유찰된다.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는 앞서 4차례 유찰 끝에 지난해 9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수의계약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바 있다. 현재와 같이 공사기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2곳 이상의 건설사가 경쟁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공사의 난도와 공사 기간, 사업비 등을 모두 고려했을 때 큰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4차례나 유찰됐던 것”이라며 “현재의 분위기에서 2곳 이상의 건설사가 경쟁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언급했다.
시공사를 어렵게 선정하더라도 기본설계 기간 6개월 등의 작업이 다시 진행돼야 한다는 점도 조기개항을 어렵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국토부 관계자는 “새로운 시공사가 선정되면 기본 설계 6개월을 다시 해야 하는 건 불가피하다”며 “정부로서는 지연이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부산시가 안전한 공항 조성을 위해 준공 시점을 2033년 이후로 늦추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무안공항 참사에서 보듯이 공항 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며 “2030 부산엑스포가 무산된 만큼 가덕도신공항의 조기개항에 집착하지 않고 지반침하 가능성이 없도록 공항을 정교하게 잘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한국경제
장밋빛 SOC 공약 내기 전에 가덕도 신공항 교훈 되새겨야
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2029년 12월 개항이 사실상 무산됐다.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공사 기간을 입찰 공고(7년)보다 2년 더 늘려야 한다는 기본설계서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하면서다. 국토부가 보완을 지시했지만, 공사 기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컨소시엄 입장은 확고한 상황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개항 연기는 예견된 사태였다고 입을 모은다. 가덕도 신공항 사업은 시작부터 정치 논리에 휘둘리며 무리하게 추진됐기 때문이다. 가덕도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 중 한 곳이었다. 이명박 정부 때 사업 자체가 백지화됐다. 신공항 건립을 재추진한 박근혜 정부는 유치전이 극심한 지역 갈등으로 번지자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 사전 타당성 연구용역을 맡겼다. 그 결과에 따라 신공항을 짓지 않고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론지었다.
가덕도 신공항이 부활한 건 문재인 정부 때였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해공항 확장안을 백지화하고 가덕도 신공항 건립을 밀어붙였다. 야당인 국민의힘도 동조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가덕도 신공항법’ 제정안도 여야가 합심해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시켰다.
윤석열 정부는 2030년 부산 엑스포 유치 일정에 맞춰 원래 2035년 6월이던 개항 시기를 2029년 12월로 5년 넘게 앞당겼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는 고난도 공사라 공사 기간이 촉박하다”는 전문가 우려에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무리수를 둔 것이다. 엑스포 유치 실패로 서두를 이유가 사라졌는데도 무리수 우려를 극복할 방안을 찾지 않고 그대로 일정을 밀어붙였다.
사업비 10조 원이 넘는 가덕도 신공항 입찰이 네 번 유찰된 것도 무리한 공사 기간 탓이 크다. 결국 수의계약으로 전환하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서 가까스로 첫발을 뗐지만 공사 기간에 발목이 잡힌 상황이다. 국토부는 재입찰까지 검토하겠다고 하지만 새로 사업을 맡으려는 건설사가 있을지 의문이다. 자칫하면 사업이 표류할 수도 있다.
이번 대선 후보의 공약을 보면 가덕도 신공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4기 신도시 조성을 수도권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는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전국 확대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수도권 주택난과 출퇴근 지옥을 해결하겠다는 취지겠지만, 기존 국책 사업들도 지지부진한데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3기 신도시는 토지 보상 등 문제로 분양 시기가 애초 목표보다 1, 2년 밀렸다. 택지 입찰, 반납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건설 경기 침체와 공사비 인상 여파로 팔리지 않는 빈 땅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2019년 개통한다던 GTX는 A 노선만 부분 개통했다. B 노선은 이달 착공할 예정이다. C 노선 착공은 아직 기약조차 없다.
신도시 조성과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다. 가덕도 신공항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경제성, 실현 가능성 등을 꼼꼼히 검증하는 게 필수다. 그러려면 대선 후보들의 공약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약 없는 장밋빛 미래로 어물쩍 검증을 피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동아 김호경 산업2부 차장
위기의 한국 도시정책, 정치가 만든 성장신화와 그늘
[도시를 바꾸는 정치와 정치인, 그리고 시민]①
‘더 빨리 더 많이’…아직도 개발 중심의 정책 유지
산업화 흐름에 따라 도시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교육용 훈련기가 비행 훈련을 마치고 착륙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도시를 관통하는 도로의 위치, 하늘을 채우는 빌딩의 높이와 배치, 시민들이 숨 쉬는 공원과 공공시설의 형태, 심지어는 도시의 복지수준까지 모두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다. 이처럼 정치권력과 정책은 도시의 공간 구조를 바꾸고 시민들의 삶의 방식을 형성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급속한 발전을 경험한 국가에서는 개발 중심의 정책 결정이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정치와 도시 간의 밀착 관계는 긍정적 성과만 낳은 것은 아니다. 크고 작은 부작용과 한계 역시 적지 않았다. 인구감소와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지금 고도성장과 개발중심의 도시계획을 가능하게 했던 정책과 정치의 변화가 가장 절실하다. 마침 우리는 도시정책과 정치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조기 대선(2025년)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2026년)를 앞두고 있다.
한국의 도시계획은 오랫동안 성장과 개발의 신화를 구축해 왔다. 인구와 경제가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는 새로운 신도시 건설과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도시경제와 시민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인구는 정점을 찍고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지방도시나 농어촌만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도시 정책은 여전히 과거의 성장 논리에 갇혀 있다. 인구가 줄어드는데도 곳곳에서 신규 택지 개발과 거대 쇼핑몰을 유치하고, 랜드마크 건설 계획이 추진된다.
도시 복지분야도 마찬가지다. 보여주기식 성과에 급급해 미래를 담보로 잡는 포퓰리즘 정책이 곳곳에서 도시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단기 성과에 집착한 프로젝트로 인해 전국 각지에는 애물단지가 된 시설들이 적지 않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대형 체육관이나 문화회관은 텅 비어 운영비만 축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공항, 철도 등 SOC 투자도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남발되면서 실제 수요와 무관한 ‘하얀 코끼리’(white elephant)들이 양산됐다. 하얀 코끼리란 겉은 화려하지만 활용 가치가 적고 관리 비용이 많이 들어 처치 곤란한 대상을 일컫는 말이다. 경제 분야에서는 투자 규모에 비해 유지·운영에 비용이 많이 들어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된다.
도시계획은 원래 도시의 장기적 비전과 공공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청사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시장(市長)이나 정치인의 임기 내 성과를 뒷받침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선거철마다 대형 개발 공약이 쏟아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임자의 도시 프로젝트가 백지화돼 예산과 시간이 낭비된다. 정권에 따라 춤을 추니 일관된 장기 전략은 실종되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 된다.
예컨대 서울의 뉴타운 개발 사업이나 문재인 정부의 전국적 도시재생사업추진은 초기에는 표심을 얻는 데 활용됐지만, 정권 교체를 거치며 계획이 뒤엉켜 주민들과 참여자들에게 혼란과 손실을 안겼다. 도시정책이 정치 논리에 휘둘릴 때 도시는 거대한 실험장이 돼버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은 더 멀어질 뿐이다.
지난 3월 서울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싱크홀(땅 꺼짐) 사고 발생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사진 연합뉴스]
성장에서 공존으로: 도시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제는 도시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꿀 때다. 더 이상 숫자로 표현되는 성장 지표가 아닌, 시민들의 삶과 도시공동체를 중심으로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아이부터 장애인, 노인까지 보행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 ▲젊은 세대가 주거 부담 없이 정착할 수 있는 주택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공동체가 있는 도시 ▲모두에게 개방된 녹지와 여가 공간이 충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목표가 돼야 한다.
개발과 보존이 서로 상반된 목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유산을 존중하는 개발이 도시 정책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시민 참여의 폭과 방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도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전문가와 공무원, 정치인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좀 더 도시를 위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도시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고도성장시대의 빠른 의사결정 방식을 그대로 유지한 채 시민 참여만을 확대한다면, 오히려 갈등이 커질 수 있다. 도시 문제는 복잡하고 정답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지혜와 경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근본적인 속도조절 없이, 형식적인 시민 공청회나 목소리 큰 일부만을 대변하는 협의체, 형식적인 주민참여예산과 같은 절차만 늘린다면 문제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
최근 벌어지는 잦은 산불과 도심의 싱크홀 사태는 4~5년 단위 임기 계산을 뛰어넘는 초당적 장기 플랜과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정책에는 내일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과 정치인을 선택하는 주민들 역시 미래를 위한 고민보다는 당장의 이익에 흔들린다. 정치인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시민의 선택이 먼저 바뀌어야 할까. 어쩌면 도시의 미래는 이 물음의 답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를 돌아보면 도시의 흥망은 늘 변화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나뉘었다. 산업화 흐름에 발맞춰 도시를 유연하게 재편한 곳은 번영을 이어갔지만, 과거의 방식에 안주한 도시는 쇠퇴를 면치 못했다. 한국의 도시들도 예외가 아니다.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조하며 고도성장기를 견인했던 개발 중심의 정책은 당시에는 효과적이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만능 해법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직면한 인구 구조 변화와 기후위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방향을 바꾼다면, 충분히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다. 과거에는 정책이나 제도가 미흡해도 정치력이 뒷받침된다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제도나 정책적으로 가능한 일조차 정치적 대립과 갈등 때문에 추진되지 못하는 일이 많아졌다. 오늘날 정치는 힘을 잃고 무력해진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도대체 망가진 정치를 어떻게 회복시켜야 하는가, 정치를 살리는 시민의 선택은 어떤 것인가, 도시를 살릴 정치인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까./ 김현아 사회정책대학원 초빙교수 도시계획학 박사 /이코노미스트
‘지반침하’ 땅 위에 서서 묻는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지난해 겨울, 눈앞에서 정치적 지반이 내려앉았다. 한국은 곳곳에서 지반침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싱크홀의 나라가 됐다.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3월24일 대형 땅꺼짐 현상이 발생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 도로의 모습. 이 사고로 희생된 이를 기리는 국화꽃이 인근에 놓여 있다.ⓒ시사IN 박미소
지난해 겨울 한국의 위기는 싱크홀(땅꺼짐)처럼 왔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한국의 정치적 지반이 내려앉았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땅이 꺼졌고, 갑자기 뚫린 검은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빨려 들어간 구멍 속에서 흉한 것들을 목격했고, 수개월에 걸친 분투를 통해 사람들은 간신히 지상으로 기어 올라오는 중이다. 아직도 여진이 계속되는 이 난리법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헌정의 위기였을까. 현직 대통령이 위헌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헌정의 위기였지만, 법적 절차에 따라 탄핵을 했다는 점에서 헌정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였을까. 대통령이 국민 다수의 열망을 배반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위기였지만, 탄핵을 통해 민의를 관철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런가? 정말로 승리했나? 한국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만신창이가 된 나라에서 지반침하는 계속되고 싱크홀은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가 한 칼럼에서 묘사한 대로 싱크홀은 단순한 도시 재난이 아니다. 2018년부터 2660일 동안 싱크홀이 1349건 발생했는데,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관련 당국은 지반침하 안전 지도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칠 줄 모르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싱크홀이 발생한 끝에 불법 계엄이라는 대형 정치 싱크홀이 발생했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자기 목전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태의 미봉에 급급할 뿐. 한국이란 나라의 근본적인 지반침하에 대해서는 논의를 회피한다. 대신, 한국의 위기를 몇몇 개인의 문제나, 특정 정당의 문제나, 여야 대립의 문제나, 헌법 조항의 문제로 환원한다. 그러나 싱크홀은 원인이 발생한 장소와 실제로 붕괴가 일어난 장소가 다른 법. 한국은 지반침하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싱크홀의 나라다.
그러니 물을 수밖에. 한국이란 대체 무엇이냐고. 한국의 위기를 몇몇 개인의 문제나, 특정 정당의 문제나, 여야 대립의 문제나, 헌법 조항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문제가 보이는 지상에만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지하에도 있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목전의 위기가 뿌리 깊다는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문제임을 강조하기 위해 물어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그렇게 물어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계엄군의 난입으로 부서진 국회 내부 출입문. ⓒ시사IN 박미소
물론 궁금하다. 왜 계엄이 시도되어야 했는지. 그런 시도를 감행한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그런 시도를 가능하게 한 조건은 무엇인지. 뚜렷해진 우경화의 원인이 무엇인지.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어야 하는지, 대통령 임기는 몇 년이 되어야 하는지. 대통령 집무실은 어디여야 하는지. 이 많은 사회적·정치적 질문에 지식인들은 답할 것이다. 정답을 알든 모르든 답할 것이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발언한다는 것은 그 문제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고, 발언을 작심한 이상 아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론 궁금하다. 이 위기를 넘어설 방법이 무엇인지, 미래를 위한 청사진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경제적 쇠락을 막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인구를 늘릴 수 있는지, 증세를 얼마나 해야 하는지. 지방 소멸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대학입시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대학 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연금은 누가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와 한·일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이 많은 정책적 질문에 대해 난립한 대통령 후보들은 답할 것이다. 정답을 알든 모르든 답할 것이다.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것은 그 문제들의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고, 출마한 이상 아는 척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섣부른 정답을 내놓기 전에 물어야 한다, 한국이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통해 우리가 한국을 모른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
한·미 관계와 한·중 관계와 한·일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기 전에, 아니 묻는 동시에, 우리와 한국과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한국을 한국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한국이란 공동체를 지탱해주는 규범은 무엇인지, 고통을 감수해가며 지킬 가치는 무엇인지, 한국이란 가건물을 지탱할 지반은 어떤 상태인지 물어야 한다. 그렇게 계속 물어서 한국이라는 정치 공동체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한국이 무엇인지 계속 물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모른다는 인식에 도달해야 한다.
우리는 실로 모른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양질의 역사 서술이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과거에 대해 잘 모른다. 식민지 역사학으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과도한 민족주의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사이비 역사학으로 인해 과거가 왜곡되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 교과서가 바뀌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분절된 사실에만 집착할 뿐 정교한 서사를 소홀히 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거대 서사에만 집착할 뿐 세세한 사실을 충분히 정리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우리의 과거를 잘 모른다. 우리는 한국의 역사를 잘 모르기에 한국을 잘 모른다.
우리는 실로 모른다. 모두가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권위가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현재에 대해 잘 모른다. 전통과 권위라는 이름의 아버지는 죽었기에,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버지는 죽었지만, 아버지 없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다. 서로 지킬 규범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에, 우리는 현재를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함께 지킬 도덕이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변질되었기에, 우리는 환멸 없이 현재를 살아갈 자신이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법원을 때려 부수었기에, 우리는 법원의 권위를 누릴 자신이 없다. 헌법 조문이 어떻게 바뀌든, 헌법이라는 근본 규범이 흔들리고 있기에, 우리는 질서를 유지할 자신이 없다. 우리는 스스로를 인도할 규범을 잘 모르기에 한국을 잘 모른다.
말하고 듣고 쓰는 일에도
우리는 실로 모른다.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에, 우리는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 “하면 된다”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불균질한 것이었지만,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군부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완전한 것이었지만, 민주주의를 쟁취하겠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구호를 통해 모두가 통일을 이루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통일에 대한 각론은 달랐지만, 남북통일을 원한다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부정부패 척결”이라는 구호 속에 모두가 도덕적이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한국의 도덕은 위선적인 것이었지만, 도덕의 가치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없다. 우리는 함께 실현해나갈 가치가 없기에, 한국의 미래에 대해 잘 모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고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를 때, 성숙한 사회라면 그래도 할 일을 알고 있다. 성숙한 사회는 가치와 정체성을 창출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성숙한 사회는 잘 말하고 잘 듣고 잘 쓰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가치와 정체성을 창출하고 갱신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말하고 듣고 쓰는 일에도 지반침하가 진행 중이다. 모두가 민주주의와 자유와 정의를 외치지만, 모두가 다른 것을 상상한다. 민주주의를 통해 독재를 추구하고, 선거를 통해 구세주를 뽑으려 하고, 정의를 통해 특권을 누리려 든다. 보수를 자처하면서 갈아엎기를 원하고, 진보를 외치면서 퇴행을 꿈꾸고, 패배를 자인해야 할 순간에 승리를 선언한다.
모두가 뜻 모를 고성을 질러대지만, 아무도 경청하지 않는다. 제대로 말하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쓰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치를 창출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가치 창출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과거를 정리하고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할 언어가 학대당했으므로 우리는 생각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기에 대화할 수 없고, 대화할 수 없기에 합의할 수도 없다.
이처럼 합의할 수 있는 청사진도, 지향해야 할 가치도, 대화를 가능케 할 언어도 부재한 오늘의 상태를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고 부르자. 늘어나지 않는 자원을 두고 아귀다툼이 격화되는 상태, 질서가 있는 듯하지만 질서가 무너지는 상태, 사회가 있는 듯하지만 사회가 붕괴하는 상태, 같은 것을 보는 듯하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는 상태, 같은 것을 듣는 듯하지만 다른 것을 듣고 있는 상태, 모두가 말하지만 아무도 소통하지 않는 상태. 이 암울한 상태를 자연상태라고 부르자. 이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성숙한 사회를 이루려면, 정책에 대한 논의를 넘어 가치와 정체성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1주기를 맞은 올해 4월16일 선체가 거치된 목포신항에서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이 열렸다. ⓒ시사IN 신선영
광명 신안산선 지하터널 붕괴 사고 소식과 함께하는 세월호 참사 11주년에, 이 글을 쓴다. 11년 동안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때도 원인을 한곳에서 찾다가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한국 전체가 세월호라는 사실에 직면하지 않아서 또다시 위기를 맞지 않았나. 한국 전체를 문제 삼지 않는 한, 위기는 싱크홀처럼 오는 법.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반이 내려앉는 법. 갑자기 뚫린 검은 구멍 속으로 사람들이 빨려 들어가는 법. 이 끔찍한 일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한국 전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자연상태를 벗어나 성숙한 사회를 이루려면 한국 전체를 문제 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이란 무엇인가.
김영민 (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시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