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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5.2.24~

by 이성근 2025. 2. 24.

악재에 악재 겹친 한국 경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오로지

계엄령 선포로 인한 정국 혼란은 구조적 위기에 빠져 있던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다. 경기침체 극복을 위해 재정확장·성장 모델 개혁 등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2024년 12월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한 시민이 비상계엄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선포 이후 한국 정치는 대혼란에 빠졌다. 미증유의 정치적 사태는 안 그래도 어렵던 한국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계엄에서 탄핵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혼란은 한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비상계엄 발표 직후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쳤다. 이미 2024년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약세를 보인 한국의 주식시장과 원화 가치를 다시 타격한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이 가결되자 주식시장은 빠르게 회복되었으나 환율은 여전히 높게 유지되었다. 환율은 지난해 12월2일 1달러당 1406원에서 12월31일엔 1477원으로 급등했다. 이후 약간 하락했다가 다시 올라 2월4일 현재 1455원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1월16일 환율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약 30원의 환율상승이 정치적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엔 외국자본도 한국을 빠져나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그 한 달 동안 외국인 증권투자는 주식에선 25억8000만 달러, 채권에선 12억8000만 달러 규모의 순유출이 나타났다. 코로나19의 충격이 컸던 202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다. 같은 시기 외국인들의 한국 국채 보유액도 약 3조원 감소했다.

글로벌 신용평가회사들도 한국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계엄 직후인 지난해 12월4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정치적 위기가 투자자들의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향후 1~2년 동안 한국의 신용등급이 변화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지난 1월9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화상 면담을 마친 뒤 신용평가사들은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 또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치적 위기는 국내 경제에 여러 경로를 통해 악영향을 미쳤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것은 민간소비였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100.7에서 12월 88.4로 급락했고 올 1월에도 91.2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매판매지수도 1년 전에 비해 3.3% 하락했다. 세상이 불안하니 연말연초 모임 취소 등 소비가 위축되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당시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2016년 10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2.7이었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스캔들이 터진 뒤인 11월엔 96으로 하락했다. 소비자심리지수는 같은 해 12월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2017년 1월엔 93.3까지 떨어졌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2017년 3월) 다음 달인 4월에 들어서야 101.8로 회복되었고 정권교체 뒤인 6월에 112.3까지 올라갔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박근혜의 국정농단 스캔들보다 더 큰 정치적 충격을 한국 경제에 가한 것 같다. 최근의 소비자심리지수 하락 폭이 박근혜 탄핵 당시보다 더 크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소비가 위축될 공산이 크다.

정치의 혼란은 기업경영과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은행 기업경기조사에 따르면 전 산업 기업심리지수가 지난해 11월 91.8에서 12월 87.3, 올 1월 85.9로 낮아졌다. 기업들의 업황 등을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도 지난해 12월부터 하락했다. 기업경기와 소비자심리를 통합한 경제심리지수는 지난해 11월 93에서 12월 83.3, 올 1월 86.7을 기록했다.

계엄 선포는 ‘기업대출 잔액’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과 12월 사이에 11조5000억원이나 줄었다. 기업대출 잔액은 주요 은행들이 기업에 빌려준 상태인 돈의 총액을 의미하는데, 기업들의 사업 의욕이 줄거나 은행 측이 대출을 꺼리면 기업대출 잔액이 감소한다. 이는 은행과 기업의 재무관리 때문에 보통 12월에 줄어드는 경향이 있지만 지난 12월에는 유독 감소 폭이 컸다. 글로벌 경제와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경제학의 여러 실증연구들은 쿠데타나 내전 같은 정치 불안이 장기적으로도 투자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고한다.

내수와 수출 모두 취약해진 한국 경제

소비와 기업활동이 위축된 결과 지난해 12월 노동시장도 크게 악화되었다. 통계청 고용동향에 따르면 2024년 12월 취업자 수는 건설업과 도소매업 등을 중심으로 전년(2023년) 같은 달 대비 5만2000명 감소했다.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2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실업자는 111만5000명으로 증가하여 지난해 12월의 계절조정실업률이 3.7%를 기록했다. 11월의 2.7%에 비해 1%포인트 높아졌고, 2023년 12월의 3.2%에 비해서도 0.5%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2024년 10~12월)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2024년 3분기) 대비 0.1%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의 기존 전망치인 0.4%보다 매우 낮은 수치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 202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의 2.5%에서 2.2%로 낮추었지만 최종 결과는 더 낮은 2%에 그쳤다. 이 역시 정치적 위기에 따른 12월 거시경제의 둔화와 관련이 크다.

문제는 계엄 이전부터 한국 경제가 이미 취약한 상태였고 성장의 둔화 조짐도 뚜렷했다는 점이다. 2023년 경제성장률이 1.4%로 매우 낮은 편이었는데, 2024년에도 1분기의 반짝 성장을 제외하면 경기가 부진했다. 지난해 1분기 성장률은 1.3%로 높았지만, 2분기는 민간소비와 GDP가 각각 –0.2% 성장률(역성장)을 나타냈다. 3분기는 수출이 –0.2%, 건설투자가 –3.6%로 역성장하면서 성장률을 끌어내려 0.1%에 그쳤다.

특히 실질임금이 2022년부터 2024년 1분기까지 줄어들어 민간소비를 둔화시켰다. 소매판매지수는 2022년 2분기 이후 2024년 4분기까지 11분기째 전년도 같은 시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러한 내수 위축의 직격탄을 받은 이들이 바로 자영업자들이다. 이미 2023년에 폐업한 개인, 법인 사업자 규모가 98만6000명으로 전년도(2022년)에 비해 크게 증가한 상태였다. 개인채무조정 및 회생 신청자 수도 2023년에 크게 늘어났는데 지난해엔 더 증가했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안 그래도 좋지 않던 한국 경제에 정치적 위기가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경기도 시흥시 배곧신도시 빈 상가의 유리창에 임대 모집을 알리는 전단들이 가득 붙어 있다. ⓒ시사IN 조남진

구조적으로 봐도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뚜렷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중국에 대한 부품 등 중간재 수출을 급속히 증가시키며 성장세를 구가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경제성장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역할이 더 커졌다. 수출과 수입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엔 95%까지 높아졌다. 결국 한국엔 다시 한번 ‘수출주도적 성장 모델’이 정착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같은 내수 중시 모델을 추진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경제 질서의 전환과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이러한 성장 모델의 지속가능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선진 각국은 이제 경제 안보를 중시하며 적극적으로 산업정책을 추진 중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계경제 패권 갈등을 필두로 지경학적(Geo-economic) 분열이 심화될 전망이다.

특히 관세 인상을 내세우는 트럼프의 재집권은 세계화 후퇴와 보호무역 흐름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자국 산업을 급속히 발전시키면서 한국으로부터 중간재(특히 정보통신산업 부문)를 수입할 필요성을 크게 줄였다. 이에 더해 중국 경제 전반이 둔화되면서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 여건을 더욱 악화시켰다. 이런 흐름에 따라 한국의 2023년 대중 수출은 전년도(2022년)에 비해 19.9%나 줄었다. 대중 무역수지도 180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엔 대중 수출 규모 자체는 약간 증가했으나 대중 무역수지는 6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한국 경제는 ‘내수 정체’라는 내부적 문제와 세계경제 질서의 변화라는 외부적 충격에 동시에 직면하고 있었다. 한국은행은 이미 지난해 11월, 2025년 경제성장률을 1.9%로 하향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란 사태가 터지며 성장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든 것이다. 실제로 1월 한국은행은 2025년 성장률 전망치가 1.6~1.7%로 하향 조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JP모건 1.2% 등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대(對)한국 성장률 전망치는 1% 초중반대로 더욱 낮았다. 더 멀리 보면 세계에서 최고로 빠른 고령화와 최저 출산율로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2040년경에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면 기댈 곳은 정부밖에 없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경우 정부가 곳간 문을 열어 재정확장으로 경제를 부양하고 시민들의 소득과 일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가라앉는 경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기는커녕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이른바 ‘민간주도 경제’를 강조하며 정부의 역할을 방기했다. 정부부채 증가가 우려된다며 재정건전성만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정부예산에서 총지출의 증가율(전년 대비) 명목경제성장률보다 낮은 긴축 기조가 지속되었다.

게다가 경기가 부진한데도 부자와 기업에 대한 감세를 강행하면서 세수결손이 2023년엔 56조원에 달했다. 같은 해 관리재정수지(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수치)는 GDP의 3.9%에 이르는 87조원 적자를 기록했다. 세수결손은 2024년에도 약 3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윤석열 정부는 낡은 ‘낙수효과 경제학’에 기초하여 감세로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서 경제성장을 촉진하겠다고 주장했다. 낙수효과는 실증적 근거가 희박한 논리이고, 이는 한국에서 입증되었다. 경제관리의 방기로 인한 경기둔화는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을 떨어뜨린 중요한 요인이었을 것이다.

‘이력 효과’ 극복하려면

윤석열 정부의 실정, 그리고 계엄 이후의 경험이 한국 경제에 주는 교훈은 아마도 정치가 경제에 정말로 중요하다는 점일 터이다. 잘못된 정치는 경제를 엉망으로 만든다. 현재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필수 조건은 대통령 탄핵의 신속한 최종 결정과 대선을 통한 정국 안정이다.

정치적 충격으로 인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막으려면 재정확장 같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꼭 필요하다. 1월16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정치적 위기로 인한 경기둔화에 대응하여 15조~20조원 규모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권한대행도 1월21일, 민생과 산업지원을 위한 추경에 관해 국회와 논의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1월31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추경에 걸림돌이 된다면 민생회복지원금도 양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재정확장은 ‘위기의 상흔’으로 표현되는 ‘이력 효과(한번 발생한 경제적 충격이 이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오랫동안 부정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치는 현상)’를 극복하는 데 필수적이다. 최근의 거시경제학 연구들은 심각한 불황이 장기 실업자 증가와 기업의 신기술 투자 정체를 낳아 장기적으로도 경제의 생산성 상승 및 경제성장률을 하락시킨다고 보고한다. 총수요 측의 충격이 총공급과 경제성장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각국이 코로나 팬데믹 당시 대규모 재정지출을 시행한 것은 이 같은 연구에 기반했다. 한국 정부 역시 신속하게 대규모 추경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 국민 지원보다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나 자영업자에 대한 선별 지원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나아가 한국의 경제구조와 성장 모델 자체를 균형 잡힌 방향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세계경제 질서의 급변이라는 조건하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려면 과도한 수출 의존보다는 내수 촉진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위해 취약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고 임금을 인상하며, 증세와 사회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재분배 확충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전략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적극적인 공공투자와 산업정책이 요구된다. 정부는 경제를 시장에 맡기는 것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신재생에너지나 환경친화 산업, 그리고 인공지능 같은 미래산업 발전을 위해 산업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정권교체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역할과 경제 프로그램이 중요하다. 하지만 민주당은 증세에 소극적이고, 최근 당대표가 실용주의와 기업주도 성장을 강조하는 등 다소 혼란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진보적인 경제구조 개혁과 새로운 성장전략을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급히 발전시켜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위기가 민주주의 회복만이 아니라 성장 모델의 전환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힘은 결국 정치를 바꾸는 시민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 대학 경제학부 교수)/시사인

여론조사로 확인됐다, 극우 유튜브에 갇힌 자들 [시사IN·한국리서치 공동조사]

보수 극우 유튜브 시청자일수록 12·3 쿠데타를 정당하게 여기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할 것이라는 추측이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의 정치·사회 인식은 시민 대다수와 멀리 동떨어져 있었다.

〈시사IN〉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55개 문항으로 이뤄진 웹조사를 통해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 30%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문항 설계와 분석에는 한국리서치 이동한 수석연구원과 이소연 연구원, 국승민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정치학)가 함께했다. 조사는 2월3일부터 2월5일까지 실시했다.

가설이 맞아떨어졌다. 보수 극우 유튜브 시청자일수록 12·3 쿠데타를 정당하게 여기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할 것이라는 추측이 ‘〈시사IN〉-한국리서치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났다. 이들은 법원 폭동 사태를 국민 저항권 행사라고 인식했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응답하는 경향을 뚜렷이 보였다. 윤석열 탄핵 국면에서 보수 극우 유튜브에 몰입하는 세력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지만, 이들의 정치·사회 인식이 시민 대다수의 상식과는 동떨어졌다는 점이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

우선 평소 정치·사회 관련 소식을 어느 매체를 통해 많이 접하는지 물었다(1순위 응답). 텔레비전 33%, 유튜브 18%, 포털사이트 13% 순이었다. 그 뒤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6%), 언론사 홈페이지(6%), 신문(4%)이 차지했다(〈그림 1〉 참조). 연령·세대별로 보면 18~29세 남성의 23%, 70세 이상 여성의 24%가 유튜브를 통해 정치·사회 관련 소식을 많이 접한다고 응답해 가장 높은 편이나, 연령 세대별 차이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진보층(16%)보다는 보수층(22%), 더불어민주당(18%)보다는 국민의힘(22%) 지지층에서 유튜브로 정치·사회 소식을 접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이 차이는 12·3 쿠데타와 윤석열 탄핵 찬반 여부를 놓고 더 벌어졌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는 이들 중 15%가 유튜브를 통해 정치·사회 소식을 접한다고 응답한 반면, 비상계엄이 정당했다는 이들은 29%가 유튜브를 정치·사회 뉴스의 통로로 답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 23%가 유튜브를 1순위로 꼽은 반면 찬성하는 이들은 16%였다. 유튜브를 통해 정치·사회 소식을 접하는 횟수가 많은 이들 사이에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하고 탄핵에 반대한다는 응답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보수 유튜브 과몰입층 ‘폭동 옹호’ 63%

본격적으로 보수 극우 유튜브 시청자층의 응답을 들여다보자. 보수 유튜브 시청자 중에서도 하루 1시간 이상 시청하는 과몰입층과 1시간 미만 시청층, 그리고 보수 유튜브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미시청층 사이 견해가 확연히 갈렸다.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묻는 질문에 보수 유튜브 미시청층 응답자의 85%가 잘못됐다고 답한 반면, 하루 1시간 미만 시청층은 60%가 잘못됐다고 답했다. 극단적으로 튀는 건 하루 1시간 이상 시청층이다. 응답자의 27%만이 잘못됐다고 답했고, 68%는 정당했다고 답했다(〈그림 2〉 참조).

탄핵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보수 유튜브 미시청층의 76%, 1시간 미만 시청층의 49%가 윤석열의 탄핵에 찬성했지만 1시간 이상 과몰입층에서는 완전히 달랐다. 응답자의 23%만 탄핵에 찬성했고 반대가 74%에 달했다. 전체 응답자의 64%가 탄핵에 찬성한 것과는 크게 동떨어진 결과였다(〈그림 3〉 참조).

비상계엄만큼이나 우리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1·19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인식도 전체 여론과 거리가 매우 멀었다. 전체 응답자의 70%가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라고 답했으나 보수 유튜브 1시간 이상 시청층에서는 63%가 ‘불법·무효인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 1시간 미만 시청층에서는 34%가, 미시청층에서는 8%만이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그림 4〉 참조).

오는 3월 안에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이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달랐다. 전체 응답자의 50%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답했고 39%는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라고 답했다. 반면 보수 유튜브 1시간 이상 시청층은 27%만이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고 답했고, 68%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기대하는 결과가 아니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응답은 진보 유튜브 시청층에서도 제법 나왔다. 진보 유튜브를 하루 1시간 이상 시청하는 층에서는 57%가 어떤 결과든 받아들이겠다고 답했고, 38%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그림 5〉 참조).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이후에도 적잖은 사회적 갈등이 불가피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져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경우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번 질문에서는 일부 극우 세력의 주장에 대한 여론을 확인하기 위해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한국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한국은 홍콩처럼 중국의 속국이 될 위험이 있다”는 진술에 대해 전체 응답자에서는 각각 30%, 28%만 ‘동의한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보수 유튜브 1시간 이상 시청층에서는 각각 78%, 73%가 위 질문에 동의했다. 보수 유튜브 탐닉자 가운데 3분의 2 넘는 이들이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할 경우 한국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거나, 중국의 속국이 될 수 있다고 답한 것이다(〈그림 6〉 참조).

부정선거 중국 개입설처럼 ‘가짜뉴스’임이 명백한 이슈에 대해서도 보수 유튜브 이용자 다수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0%는 중국 개입설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고, ‘동의한다’와 ‘모르겠다’는 각각 20%였다. 그러나 보수 유튜브 1시간 이상 시청층에서는 66%가 중국 개입설에 동의했다. 동의하지 않는다는 24%에 머물렀다(〈그림 7〉 참조). 2월11일 탄핵심판 7차 변론에서도 윤석열 측은 “중국이 여론전 사이버전 등을 통해 타국 선거에 개입하는 사례가 있다”라는 등 ‘중국의 선거 개입설’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부 보수 극우 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대법원은 2022년 7월 이미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민경욱 전 미래통합당 후보가 제기한 부정선거 의혹을 기각하며 “부정선거를 실행한 주체가 존재하였다는 점에 관하여 증명을 하지 못했다”라며 민 전 의원이 제시한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과몰입층도 전광훈에 대해 “매우 부정적”

보수 유튜브 시청층에서는 이런 대법원의 판결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다수였다. 1시간 이상 시청층의 75%가 대법원 판결을 신뢰하지 못한다고 답했고, 1시간 미만 시청층의 52%도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전체 응답에서는 신뢰한다는 답변이 49%, 신뢰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34%였다(〈그림 8〉 참조). 근거 없는 부정선거 논란이 사회적으로 계속 증폭되면서 전체 응답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에서는 윤석열,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주요 인물 12명에 대한 감정 온도(높을수록 긍정적)도 측정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감정 온도가 37도로 가장 높았고, 제시한 인물 중 보수 극우 세력의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전광훈 목사에 대한 감정 온도가 15도로 가장 낮았다. 전광훈 목사에 대한 감정 온도 역시 보수 유튜브 시청 정도에 따라 갈렸다. 하루 1시간 이상 보수 유튜브를 시청하는 층에서 전 목사에 대한 감정 온도는 46도로, 하루 1시간 미만 시청층(24도)에 비해 높았다. 이 수치는 국민의힘 지지층 전체의 전광훈 목사에 대한 감정 온도(35도)보다 높다. 다만 세부적으로 보면 다른 결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 유튜브 1시간 이상 시청층에서 전 목사를 매우 긍정적(76~100도)로 보는 이들은 28%인 데 비해, 매우 부정적(0~24도)으로 보는 이들은 39%였다. 보수 유튜브 열성 시청층에서도 전 목사를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을 하루에 1시간 이상 본다고 응답한 이들은 전체의 9%였다. 보지 않는다는 응답은 63%였다. 응답자들이 한 번이라도 시청한 적이 있는 보수 유튜브 채널로는 ‘신의 한 수’가 25%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신인균의 국방TV(20%)’ ‘배승희 변호사(18%)’ ‘고성국TV(17%)’ ‘진성호방송(16%)’ 순이었다. 젊은 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신남성연대’와 ‘그라운드씨’의 경우 시청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각각 16%, 12%였지만,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전체의 6%) 가운데 해당 채널을 한 번이라도 시청했다고 응답한 이들이 각각 58%, 56%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내란주요임무 종사자 검찰 신문조서에 따르면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그라운드씨’를 윤석열이 즐겨 보는 채널이라고 증언했다./시사인 이오성 기자

 

함께 끌어안을 세력, 단호히 결별할 세력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세력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는다. 전선을 새로 긋는 데에 공동체의 운명이 달렸다.

2월13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대통령 국민변호인단’ 출범식에 참여한 윤석열 지지자들이 태극기와 손피켓을 들고 있다.ⓒ시사IN 이명익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여론이 30% 안팎을 기록 중이다. 2017년 3월 박근혜 탄핵 직전의 탄핵 반대 여론(18%, 한국갤럽)보다 공고하다. 이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3명은 12·3 비상계엄에 동조한다는 뜻인가? 1·19 서부지법 폭동을 옹호한다는 말인가? 이들 중 다수가 2030 남성이며 이들이 한국 사회 분열의 씨앗이 될 것을 의미하는가? 탄핵 반대 집회는 날로 규모를 키우는 듯하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윤석열이 있는 서울구치소에 릴레이 면회를 가고, 윤석열은 “국민, 특히 청년들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다행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탄핵 반대 여론 30%’의 실체는 무엇일까?

공화국의 현주소를 입체적으로 진단하려면 일반적인 여론조사로는 부족했다. 탄핵 찬반이나 지지 정당을 넘어 동료 시민들의 ‘세계관’을 분석해야 했다. 〈시사IN〉은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질문 개수가 255개에 이르는 초대형 여론조사를 기획했다. 이런 조사는 전화로는 불가능하다. 질문 255개를 듣기 전에 응답자들의 인내심이 고갈될 것이다. 대안은 온라인에서 응답자들이 답변을 클릭하는 방식의 웹조사다. 문항이 방대해지더라도 응답률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한국리서치는 웹조사용 응답자 풀 96만명을 확보하고 있다.

2월3일부터 2월5일까지 사흘 동안,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2025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요청을 받은 사람은 9812명,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7941명이다. 이 중 2000명이 마지막 문항까지 응답했다. 응답률은 25.2%다. 문항 설계와 분석에는 한국리서치 이동한 수석연구원과 이소연 연구원, 국승민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정치학)가 함께했다. 이동한 수석연구원은 “다른 여론조사보다 정치 고관여층이 적게 잡혔다. 전화면접 조사와 웹조사의 차이일 수도 있고, 실제 여론이 그러할 수도 있다. 이 점을 감안하고 해석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여론은 일차적으로 탄핵 찬반으로 분열되어 있다.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물었다. 찬성 64%, 반대 29%다. 최근 여론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여기에 더해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의견’을 따로 물었다. 이번 비상계엄이 ‘잘못되었다’는 응답이 73%, ‘정당했다’는 응답이 18%다. 탄핵 반대 응답자는 29%인데, 그들이 모두 비상계엄이 정당했다고 답하지는 않는 것이다. 비상계엄은 잘못이라 생각하지만 윤석열 탄핵에는 반대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 두 축으로 전체 여론을 나눠보면 계엄 정국의 지형도가 보다 선명하게 그려진다. ‘계엄이 잘못되었고 (아마도 그래서) 탄핵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62%로 가장 많다. ‘계엄은 정당했고 (아마도 그래서)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17%로 뒤를 잇는다. 그런데 그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계엄은 잘못이라면서도 윤석열 탄핵에는 반대한다. 우리 조사에서는 9%이다(계엄은 정당하지만 탄핵에 찬성한다는 이들은 1%로, 교차분석을 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별도로 다루지 않는다).

비상계엄과 탄핵 두 가지 모두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이념 성향으로 갈라서 살펴보자. 주관적 본인의 이념 성향상 진보층은 91%가, 중도층에서는 67%가 ‘계엄 비판·탄핵 찬성’으로 비교적 단일 대오를 형성하고 있다(진보층은 계엄 비판·탄핵 반대 4%, 계엄 옹호·탄핵 반대 2%, 중도층은 계엄 비판·탄핵 반대 7%, 계엄 옹호·탄핵 반대 9%). 그런데 자신의 이념 성향을 ‘보수’라 답한 이들의 선택은 한쪽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나지 않는다. 전체 보수를 100%로 볼 때, ‘계엄의 정당성을 지지하고 탄핵에 반대하는 보수(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40%, ‘계엄은 잘못이라 생각하지만 탄핵에는 반대하는 보수(반계엄 반탄핵 보수)’가 16%, ‘계엄이 잘못되었다 생각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는 보수(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31%다. 이 세 갈래 보수가 이번 기사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모두 분명 스스로를 ‘보수’라고 답했지만, 사실은 서로 꽤 다른 사람들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19일 새벽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 후문에 윤석열 지지자들이 부순 현판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지난 1월19일 새벽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직후,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에 난입해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 이번 조사에서 참여자들에게 두 문장을 제시하고 어느 주장에 더 공감하는지 물었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87%가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한다고 답했다. ‘불법·무효인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이다’라는 주장에 공감한 이는 9%에 그쳤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어떨까.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이 27%로 좀 더 높긴 하지만, ‘용납할 수 없다’는 응답이 65%로 절반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달랐다. 80%가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서부지법 폭력 사태는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의 전체 평균은 20%다).

“충격적이다.” 숫자를 본 국승민 교수가 말했다. “미국 공화당에서 (트럼프 지지자들이 2020년 대선 결과에 불복해 의사당에 난입한) 1·6 사태를 옹호할 때도, 폭동이 아니라 평화롭게 행진했다거나, 트럼프가 의도한 건 아니라는 식으로 ‘해석’을 달리할 뿐 대놓고 그런 행동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반면 저항권 행사라는 주장은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가장 강력한 형태의 옹호다. 전체 탄핵 반대 세력으로 넓혀도 57%가 ‘저항권’이라 답했다. 너무 높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두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어떤 정치지도자가 독재자인지 진단하는 네 가지 리트머스 테스트를 제안했다. 이 네 가지 중 하나가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이다. 정확히 서부지법 폭동 옹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포함된다. 우리는 앞서의 서부지법 문항을 비롯해서 이 테스트를 반영한 질문을 조사 참여자들에게 여럿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동상이몽

‘강력한 정치지도자는 업무를 완수하기 위해 때때로 규칙을 어겨야 할 때도 있다’는 문장을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민주주의 규범을 따를 의지가 있는지 묻는 질문이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77%가 반대하고 16%가 동의했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도 74%가 반대하고 22%가 동의했다. 반면 ‘찬계엄 반탄핵 보수’에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앞서의 ‘반계엄 반탄핵 보수’ 그룹보다 20%포인트 더 높았다. 55%가 반대하고 42%는 동의했다.

보수 성향 응답자들에게 ‘진보 성향 판사들이 논쟁적인 판결을 내리면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문장을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진보층에게는 ‘보수 성향’ 판사, 중도층에게는 ‘진보 혹은 보수 성향이 강한’ 판사의 판결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지 물었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13%만 동의하고 76%가 반대했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27%가 동의했지만 역시 대다수인 67%가 반대했다. 그런데 ‘찬계엄 반탄핵 보수’에서는 동의한다는 응답이 65%로 반대한다는 응답(30%)의 두 배 이상이었다. ‘매우 동의한다’라는 강한 응답만 따로 봐도 29%나 됐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를 구하기 위해 무력을 사용해야 할 수도 있다’라는 문장을 제시하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15%가 동의하고 77%가 반대했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도 23%가 동의하고 73%가 반대해, 탄핵 찬성 세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도 ‘찬계엄 반탄핵 보수’에서는 이 비율이 역전된다. 절반 이상인 55%가 동의하고 42%가 반대했다. “규칙을 어기고, 법원을 무시하고,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건, 사실상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계엄을 옹호하는 확신형 탄핵 반대 보수일수록, 당파적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기꺼이 버릴 의향이 있어 보인다(국승민 교수).”

향후 있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을 고려하면, 이는 매우 우려스러운 결과다. 윤석열 탄핵심판 결과 수용 여부를 물었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66%가 ‘어떤 결과가 나오든 헌법재판소의 심판 결과를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답했다.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응답은 27%에 그쳤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의 응답도 63% 대 29%로 비슷했다. 반면 무력 사용 의향이 높은 ‘찬계엄 반탄핵 보수’ 집단에서는 헌재 심판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응답이 15%에 불과했다. 78%가 ‘내가 기대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대로라면 서부지법 사태가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데 계엄을 옹호하며 탄핵에 반대하는 이른바 ‘확신형 반탄핵 보수’ 집회에서 흔히 터져나오는 구호 중 하나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자!”이다. 이들이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일까? 사실, 학계에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한 ‘정답’이 있지는 않다. 그만큼 논쟁적이고 열려 있는 개념이다.

조사 참여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의 특성 8개를 제시하고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특성 두 가지를 골라달라고 했다(복수 응답). 전체 평균은 ‘법에 의한 시민 권리 보호(38%)’ ‘권력의 견제와 균형(33%)’ ‘법치주의(31%)’ 순으로 나타났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와 ‘반계엄 반탄핵 보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법에 의한 시민 권리 보호’ ‘법치주의’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번 비상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포고령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 집회, 시위 등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한다’고 했다.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는다’고도 했다. 포고령을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었다. 자유민주주의의 위 가치들을 중시하는 보수로서는 이번 비상계엄을 비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찬계엄 반탄핵 보수’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중시하는 특성은 다른 그룹과 확연히 달랐다. ‘자유시장경제(43%)’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배격(42%)’ ‘법치주의(39%)’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법에 의한 시민 권리 보호(24%)’ ‘권력의 견제와 균형(23%)’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물론 ‘반계엄 반탄핵 보수’도 ‘자유시장경제’와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배격’을 중시한다는 응답률이 탄핵 찬성파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찬계엄 반탄핵 보수’보다는 각각 11%포인트, 21%포인트 낮다. 즉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반공주의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련의 민주주의적 규범들을 희생하면서까지 ‘멸공’을 실천하려 하지는 않는 사람들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전체 시민 가운데 64%는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고, 29%는 반대한다. 보수로 좁혀 보면 35%는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고 59%가 반대한다. 그런데 우리가 확인한 결과, 이 가운데 계엄을 비판하면서도 탄핵에 반대하는 ‘상대적 반탄핵 보수’는, 계엄을 옹호하며 탄핵에 반대하는 ‘확신형 반탄핵 보수’보다는 오히려 ‘계엄을 비판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확신형 찬탄핵 보수’, 혹은 더 나아가 계엄을 비판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중도·진보층과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에서 더 가깝다. 그러니까 전선은 탄핵 찬반 혹은 진보·보수에 있지 않다. 진짜 전선은 이번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옹호하느냐, 비판하느냐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11일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해 배보윤 변호사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사진공동취재단

질문을 이렇게 바꾸면 세계관의 단층선이 더 잘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부정선거에 중국이 개입했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25%만 동의하고 51%는 동의하지 않았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80%가 동의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하면 한국은 홍콩처럼 중국의 속국이 될 위험이 있다’는 주장을 제시했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46%가 동의하고 48%가 동의하지 않았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88%가 동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에 도움을 줄 것이다’라는 문항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26%만이 동의하고 70%가 반대했다. 반면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65%가 동의했다. 반중 문구와 ‘스톱 더 스틸(Stop The Steal)’ 피켓,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휘날리는, 탄핵 반대 집회에서 흔히 목격되는 ‘서사’는 전체 탄핵 반대 여론을 대표하지 않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보수라고 모두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는다.

2030 남성은 정말 극우화되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이 계엄과 탄핵에 대한 보수의 인식을 가르는가? 첫 번째 유력한 변수로 뉴스 소비(습득) 경로와 방식이 지목된다. 대표적으로 유튜브다. 비상계엄 및 윤석열 탄핵과 관련해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과 기존 언론(TV, 신문, 라디오, 잡지 등) 중 어디에서 정보를 더 많이 얻는지 물었다.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는다’는 응답은, 반계엄 찬탄핵 보수에서는 21%, 반계엄 반탄핵 보수에서는 18%에 그쳤다. 반면 찬계엄 반탄핵 보수에서는 52%에 달했다. 유튜브에 대한 신뢰도도 차이가 컸다. 반계엄 찬탄핵 보수는 54%,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64%가 ‘기존 언론에서 얻은 정보를 더 신뢰한다’고 답한 반면,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49%가 ‘유튜브 채널에서 얻은 정보를 더 신뢰한다’고 답했다. 기존 언론에서 얻은 정보를 더 신뢰한다’는 응답은 21%에 그쳤다.

특히 보수층 내 ‘보수 유튜브 헤비 시청자’의 응답이 선명하게 구분돼 나타났다. 보수층 내에서 지난 12월 이후 보수 성향 유튜브 채널을 하루 1시간 이상 시청한 이들의 83%가 ‘이번 12·3 비상계엄은 정당했다’고 답했다. 하루 1시간 미만 시청한 보수층의 50%, 시청하지 않은 보수층의 18%만 ‘정당했다’고 답한 것과 대비된다. 정치 성향이 먼저인지, 보수 유튜브를 시청하며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인지 단언하긴 어렵지만 확신형 반탄핵 보수가 유튜브를 찾고, 그것이 다시 그 집단의 세계관을 강화시키는 경향은 분명해 보인다.

두 번째 변수로는 세대와 성별이 꼽힌다. 이른바 ‘2030 남성 극우화’에 대한 가설이다. 하지만 우리의 조사 결과는 통념과 달랐다. 60대 이하에서는 성별에 관계없이 계엄을 비판하고 탄핵에 찬성하는 ‘확신형 찬탄핵 세력’이 50% 이상으로 주류 의견이다. 20대 남자의 60%, 30대 남자의 57%가 ‘반계엄 찬탄핵’이다. 물론 20대 여자와 40대 남녀, 50대 여자의 ‘반계엄 찬탄핵’ 비율이 70% 이상으로 특히 높긴 하다. 하지만 ‘찬계엄 반탄핵’ 비율이 가장 높은 집단은 2030 세대가 아닌 70세 이상이다. 전체에서 ‘찬계엄 반탄핵’이 17%인 반면, 70세 이상은 37%가 계엄을 옹호하며 탄핵에 반대한다. 이 집단에서도 39%는 계엄을 비판하며 탄핵에 찬성하고, 14%는 탄핵은 반대하지만 계엄에는 비판적이다.

민주주의 규범과 관련한 여러 문항에서 2030 남성은 전체 평균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또래 여성들과의 차이도 그리 크지 않다. 물론 한국갤럽 조사를 보면 20대 남성은 보수, 20대 여성은 진보 성향이 높게 나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와 극우는 다르다. ‘2030 남성 극우화’ 담론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집단에 존재하는 소수의 ‘계엄 옹호·탄핵 반대’ 세력이 과대 대표된 측면이 없지 않다.

다만 2030 남성들의 버튼을 누르는 요인이 있다. 페미니즘이다. ‘지나친 페미니즘의 영향을 막기 위해서라면 법규칙을 어기거나 무력을 사용하는 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문장을 제시했다. 전체에서 14%가 동의한 반면, 20대 남자의 32%, 30대 남자의 25%가 동의했다. 이는 동세대 여자들과 16%포인트에서 27%포인트 차이 날 뿐 아니라 여타 세대 남자들에 비해서도 튀는 수치다. 즉 2030 남성 대부분은 민주주의적 규범을 대체로 존중하지만, 적어도 이 집단의 네 명 중 한 명은 페미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과 불신을 이유로 무력도 불사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앞으로 우리 공동체의 운명은, 가장 큰 전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것은 진보 보수의 싸움이 아니다. 탄핵 찬반 세력 간 대결도 넘어서는 문제다. ‘계엄 옹호 대 계엄 비판’으로 전선을 재구성하고, 윤석열 탄핵 반대 진영에서 계엄 비판 세력과 계엄 옹호 세력을 분리시켜야 공화국이 안전해진다. 그러므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계엄 옹호와 계엄 비판이라는 전혀 다른 세계관의 소유자들이 어째서 탄핵 반대 단일 구호 아래 묶여 있을 수 있는가? 이 결집을 깰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일까?

우리는 응답자들이 주요 정치인에 대해 느끼는 감정온도를 측정했다. 0도는 매우 차갑고 부정적인 감정, 100도는 매우 뜨겁고 긍정적인 감정이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윤석열에 대한 감정온도가 82도나 된다.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49도로 뚝 떨어진다. 그런데 이 두 집단이 동시에 매우 차갑게 느끼는 정치인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이들이 이 대표에 대해 느끼는 감정온도는 각각 7도와 11도로 별반 다르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진술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49%가 동의하고 48%는 반대한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91%가 동의한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탄핵은 기각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의 78%, 찬계엄 반탄핵 보수의 94%가 동의한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가 윤석열을 좋아하고 이재명을 싫어한다면,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윤석열이 딱히 좋진 않지만 이재명은 꽤나 싫어한다. ‘만일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재명 대표가 아닌 다른 인물이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그 후보를 지지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의 33%가 동의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셈법 바꾸려면

이재명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지 않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 계엄군을 보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한 대통령 윤석열과 야당 대표로서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을 이끈 이재명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다만 분명한 건, 계엄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거의 모든 보수층에게 이재명 대표에 대한 강한 반감과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의 사당(私黨)이다’라는 문장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의 90%가 동의했다.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이 크다’는 문장에 90%가, ‘당내 다양한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장에도 89%가 동의했다. 이 문장들에는 중도층에서도 각각 54%, 58%, 47%가 동의했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현재 진행 중인 재판은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의 88%가 동의했고, 전체 중도층의 61%뿐 아니라 진보층의 57%도 동의했다. 민주당이 당내 이견에 대한 포용성을 높이고, 예상되는 조기 대선에서 쟁점이 될 문제에 대한 답을 준비한다면, 탄핵 반대 내지는 잠재적 불복 세력의 파이는 지금보다 쪼그라들 수 있을 것이다.

전체 여론 지형에서 ‘계엄 비판·탄핵 찬성’ 62%와 ‘계엄 비판·탄핵 반대’ 9%가 연대하면 약 70%가 된다. 그래도 ‘계엄 옹호·탄핵 반대’ 세력 17%는 여전히 남는다. 지금의 구도를 무너뜨려 전선을 새로 긋는 일에 의미가 있을까? 의미가 있다. 일단 보수세력 내에서 계엄 비판 세력이 절반에 가까워진다(31%+16%=47%). 계엄 옹호 세력(40%)을 추월한다. 이러면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셈법도 달라진다. 법원의 판결이나 선거 결과를 존중하지 않고, 당파적 이익을 위해 기꺼이 폭력도 사용하려는 이들이 점점 소수파로 고립된다. “헌정질서를 공격한 계엄 세력을 어떤 형태로든 끌어내려야 한다는 ‘계엄 반대 그룹’의 목소리가 전체의 90%는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대로 선거 국면에 진입해서 민주당 대 국민의힘이라는 5대 5 싸움으로 가면, 공동체가 정말로 쪼개질 수 있다. 말 그대로 ‘헌정질서의 위기’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의 말이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이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 했다고 생각하느냐, 못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반계엄 반탄핵 보수는 41%가 ‘잘했다’, 56%가 ‘못했다’고 했다, 찬계엄 반탄핵 보수는 73%가 ‘잘했다’고 답했다. ‘매우 잘했다’는 강한 응답만 따로 봐도 23%에 이른다. 같은 보수 내에서도 2030 보수는 69%가 전두환이 일을 ‘못했다’고 했다. 6070 보수는 64%가 ‘잘했다’고 한다. 윤석열이 아군으로 추켜세우는 2030 보수의 55%는,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대한민국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라는 진술에 동의하지 않는다. 6070 보수는 68%가 동의한다. 2030 보수의 28%만이 부정선거 중국 개입설에 동의하고 47%는 동의하지 않는다. 25%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6070 보수의 53%가 동의하는 것과 차이가 크다.

공동체에서 최소한의 합의 기준이라고 세워놓았던 가치들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누구와 합의를 이루고, 누구와는 단호히 결별해야 할 것인가? 어떤 ‘보수’를 공화국의 동지로 데려올 것인가? 다가올 탄핵심판 결과 이후에도 남을 질문이다. 다음 호(제911호) 〈시사IN〉은 통계 숫자 뒤 여론의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이번 조사 참여자 가운데 여러 갈래의 ‘탄핵 반대 응답자’들을 모아 집단심층면접(FGI)을 진행하고 그 내용을 싣는다. 가시화되는 조기 대선을 앞두고, 지난 대선 이후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이탈한 유권자들의 마음도 들여다볼 예정이다.

시사인 전혜원 기자

 

“7층 살면서 2층서 치매 케어요양원 대신 집에서 통합돌봄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내 집에서 늙어갈 순 없을까 ()

노인 비중 40% 청양군의 실험

전국 첫 통합돌봄 고령주택 탐방기

손아무개(82)씨가 지난달 10일 청양교월 고령자복지주택 2층의 통합재가센터에서 인지활동용 학습지를 풀고 있다. 그는 7층 자기 집에서 2층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요양보호사를 만날 수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노인들은 대부분 살던 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한다. 2023년 노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체의 87.2%가 건강을 유지하면서 현재 거주지에서 계속 살고 싶어 했다. 또 건강이 나빠져 독립적 생활이 어려워지더라도 그렇다는 이들도 48.9%에 달했다. 노인 인구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면서 이른바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지역사회 계속거주)가 화두로 떠올랐다. 자기 집이나 공동주택에 머무르며 의료와 돌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전국 최초로 주거공간과 통합돌봄을 연계한 충남 청양군의 청양교월 고령자복지주택을 찾아가봤다.

“좀 전에 집에 내려드렸는데 저기서 서성이고 계시네요.”

지난달 10일 충남 청양의 고령자복지주택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창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4차선 도로 한복판에 백발의 어르신이 서 있는 모습이 아찔했다. 기자가 창문을 내려 “위험한데 왜 거기 계시냐”고 물었더니, 그는 “방금 산 약을 두고 왔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택시 기사는 어르신이 92살이고 치매 증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내 도착한 목적지에 기자를 내려준 기사는 “다시 노인을 모시러 가야 한다”며 황급히 차를 돌렸다. 그에겐 익숙한 일인 듯싶었다. 이 택시는 청양군 노인의 이동을 돕는 일명 ‘케어 택시’다. 한달에 1만원을 내면 택시로 병원과 약국을 4차례 오갈 수 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경우엔 기사가 병원 입구까지 모셔간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병원이나 약국을 갈 때 이용할 수 있는 청양군의 케어택시. 청양군청 제공

청양군에선 노인 비중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올해 1월 기준 주민등록 통계를 보면, 청양군의 65살 이상 비중은 전체 인구(2만9551명)의 41%에 이른다. 청양군민 10명 중 4명은 노인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온 마을이 노인 돌봄에 인색하지 않다. 케어 택시뿐 아니라 고령자 지원 정책도 다른 지역보다 앞서는 것들이 많다.

이날 기자가 찾아간 청양읍 교월리의 고령자복지주택이 대표적이다. 2023년 9월 문을 연 이곳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내 집 안의 통합 돌봄’을 구현하는 실험에 나섰다. 노인을 위한 고령친화적 주거공간에 통합돌봄 시설을 두루 갖춘 것이 특징이다. 본청 대신 이곳에 상주하는 한진희 청양군 통합돌봄팀장은 “청양에는 양철집 등 노후화된 농가 주택에 살면서 개보수에도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이 많다”며 “고령자를 위한 임대 아파트를 새로 짓고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연결시킨 융복합 주택이 필요했다”고 설명한다.

10층 아파트 1~4층은 돌봄시설, 퇴원 뒤 머무르는 중간집도

현재 고령자복지주택에는 100가구가량이 입주해 있다. 65살 이상의 무주택자에게 입주 자격을 줬다. 원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관리하는 고령자복지주택은 저소득 가구를 위한 영구임대 주택이지만 별도로 소득 기준을 두진 않았다. 그래도 입주민 절반쯤은 기초생활 수급자다. 농가 주택을 자녀에게 증여했거나 등기가 안 된 무허가 주택에 살던 독거노인들이 터전을 옮긴 경우가 많다. 주거 면적은 26㎡와 36㎡ 평형으로 나뉘어 있고 임대료는 보증금과 수급자격 요건 등에 따라 월 3만~12만원 정도를 낸다.

2층 작업치료실의 모습. 청양군청 제공

여느 고령자복지주택과 다른 점은 10층으로 된 아파트 1~4층에 촘촘히 설치된 돌봄 시설들이다. 2층에는 방문형 요양·목욕·간호, 주야간 보호 등을 한군데서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통합재가센터와 재택의료센터, 작업치료·재활운동실 등이 있고, 3~4층엔 병원 퇴원 뒤 곧바로 자기 집에서 일상생활에 복귀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중간집(셰어형 주택)이 마련돼 있다. 고령친화적 설계로 각 시설 입구의 문턱을 없앴고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를 위한 논슬립 타일을 깔았다. 화장실의 안전바 설치는 물론이고 휠체어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계단 난간 손잡이의 각도 조절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퇴원 환자가 머무르는 중간집에선 누운 상태에서 씻을 수 있는 특수침대가 설치돼 있고 식사 배달이나 세탁 서비스도 신청할 수 있다.

이날 오전 통합재가센터에서 만난 손아무개(82)씨는 막 치매 예방을 위한 ‘힘뇌’ 체조를 마치고 인지활동용 색칠놀이를 하려던 참이었다. 지난해 3월 이곳으로 이사 온 그는 치매 초기 단계인 인지지원등급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조무사 2명이 그를 돌보는 중이었다. 인지기능을 유지하고 증상 악화 속도를 늦추기 위한 프로그램이 시간대별로 잡혀 있었다.

2층 식당에서 입주민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한끼 식사가 3천원에 제공된다. 청양군청 제공

만일 손 노인이 이곳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흔히 ‘노치원’으로 불리는 주간보호센터의 치매전담실을 찾아가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7층 자기 집에서 2층으로 내려오기만 하면 된다. 한달에 최대 12번 이용할 수 있고 보건소에 약을 타러 갈 때도 보호자 대신 재가센터 직원들이 동행한다. 그는 “집에 혼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많았는데 여기 오니까 운동도 가르쳐주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손 노인은 오전 활동을 마친 뒤 같은 층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무료 제공이 되는 수급자가 아닌 경우엔 한끼에 3천원을 낸다. 그는 재가센터를 찾지 않는 날엔 1층 쉼터에서 입주민들과 어울려 지낸다고 했다.

고령자주택 입주민 양아무개(70)씨가 체력단련실에서 시설 안전을 확인하고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상대적으로 젊고 건강한 입주민들은 앞으로 돌봄이 필요할 때를 미리 대비한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드러냈다. 체력단련실과 식당, 편의점 등에선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입주민이 여럿 보였다. 양아무개(70)씨는 얼마 전까지 체력단련실에서 하루 3시간씩 안전관리와 청소 업무를 맡아 일했다. 노인일자리는 1년 연속으로 일을 할 수 없어 잠시 쉬고 있지만 조만간 다시 동일 업무에 지원할 계획이다. 그는 “청양군 읍내의 평균 원룸 임대료가 월 30만원 정도 한다. 당장은 주거비 부담을 줄이려고 이곳으로 왔는데, 나중에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 도움받을 수 있는 팀이 상주한다는 점이 든든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3~4층에 있는 중간집. 퇴원한 뒤 바로 자기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남성 5호실, 여성 5호실이 마련돼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중간집의 개별 호실 내부 모습. 침대와 화장실은 퇴원 환자를 배려한 장치들을 갖추고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만연한 ‘사회적 입원’, 병원·시설 중심에서 벗어나야

전문가들은 요양병원·시설 중심의 노인 돌봄 고착화 경향이 살던 곳에서 노후를 맞기 어렵도록 만든다는 데 주목한다. 2023년 기준 요양병원 병상 수(32만3천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만5천개)의 9.2배에 달한다. 치료 효과가 크지 않은데도 거주할 곳이 마땅치 않아 요양병원으로 가는 ‘사회적 입원’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약 30%가 그런 경우라고 추정한다. 또 요양시설에도 재가 돌봄이 더 적합한 경증 입소자가 높은 비중(전체의 78%가 장기요양 3~4등급)을 차지한다.

이정규 서울시 중앙주거복지센터장은 “시설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지역사회와 괴리되고 신체·정신적 기능이 더 떨어져 증상이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의료계에서도 ‘걸어 들어와서 병은 잘 치료됐지만 누워서 요양병원으로 퇴원하는 환자’의 비중이 늘어나는 ‘회전문 현상’이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자기 집에서 적절한 돌봄과 의료 서비스를 받도록 한다는 청양군의 실험이 주목받는 이유다.

다른 나라들도 유사한 고민을 안고 있다. 병원·시설 중심으로 갈수록 고비용 구조를 초래하는 탓이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2015년 고령자의 독립적 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가정지원 프로그램’(CHSP)을 도입했다. 청소나 세탁, 쇼핑, 공과금 납부, 목욕, 의복 착용, 작업치료 및 물리치료, 식사 배달, 정원 관리, 화장실 수리, 간호 돌봄 등 서비스 내용이 매우 세분화돼 있다. 그 결과 2012년만 해도 시설돌봄 이용자가 가정돌봄보다 약 3배 이상 많았지만 2023년에는 가정돌봄이 시설돌봄의 6배나 많을 정도로 선호도가 역전됐다. 시설돌봄은 가정돌봄보다 1인당 연간 비용이 4.3배 더 든다.(국토연구원, ‘고령자의 지역사회 계속거주,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2층 체력단련실에서 어르신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전담 인력 확충과 재원 확보 없인 한계 뚜렷

국토연구원의 정소양 연구팀은 정부가 한가지 이상 돌봄이 필요한 노인층(전체 노인의 약 60%)과 장기요양 등급을 인정받은 노인(약 10%, 2023년 기준 109만8천명) 중 ‘지역사회 계속거주’ 의향이 있는 이들을 주된 정책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원 대상의 규모가 방대하지만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

정부는 2018년부터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추진해왔다.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주거와 의료, 돌봄 등을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청양군의 실험도 이를 위한 선도사업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3월에는 국회에서 ‘의료·요양 등 지역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져, 내년 3월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법적 근거가 마련된 것은 의미가 크지만 인력 확충과 재원 확보는 과제로 남아 있다. 돌봄 연구자인 양난주 대구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상담에서 서비스 연계까지 책임지는 돌봄 매니저 역할이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자체별로 통합돌봄 창구를 만들더라도, 이를 실행에 옮길 전담 인력이 부족하면 통합체계 운영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229곳 가운데 시범사업을 벌이는 곳은 47곳에 불과하며 예산 지원은 12곳에 그친다.

고령자주택 전경. 청양/황보연 기자

이런 고민은 청양군도 마찬가지로 안고 있다. 3년간의 선도사업에는 국비 지원이 뒷받침됐지만 앞으로는 자립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양한 시설이 갖춰져 있는 데 견줘 입주민이 이를 적극 활용하도록 맞춤 설계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애초 주거취약층이 대거 이주했고 돌봄 수요가 높은 장기요양 등급자는 10%를 밑돈다는 한계도 있다. 통합돌봄 시설은 지자체가 관장하지만 입주민 관리는 엘에이치가 맡고 있는 탓이다.

양 교수는 “입주 단계부터 건강상태 관리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이 필요로 하는 돌봄을 지속적으로 파악하고 한 공간에서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돌봄이 제공되지 않으면 공급 기관별 칸막이를 피하기 어렵다. 이에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지원정책개발센터장은 “궁극적으로 일본의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주택과 같이 통합돌봄을 주된 기능으로 삼는 새로운 주택 유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령자주택 1층 편의점의 계산 업무는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양/황보연 기자

 

캐나다고창읍 실버타운 역이민100만원 노년의 집

[황보연의 초고령사회의 질문들]내 집에서 늙어갈 순 없을까 ()

전북 고창 노인복지주택 가보니

간호사 연결 응급벨·동작 감지기

고창타워 내 휴게공간에서 입주민이 신문을 보고 있다. 황보연 기자

노년기의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연령이 높아질수록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생활의 대부분이 이뤄지기도 한다. 취미·관심사가 비슷한 이들과 교류를 하는 곳이자, 돌봄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 2023년 기준 고령인구 대비 시니어 레지던스 세대 비중이 미국과 일본은 각각 4.8%와 2.0%이지만 우리는 0.12%로 저조하다. 우리는 아직 노후를 보낼 주거 선택지가 많지 않은 것이다. 소득 수준과 돌봄 필요도에 따라, 다양한 유형의 집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응급벨을 누르면 24시간 상주하는 간호팀과 연결이 된다는 점이 든든했어요.”

박은애(가명·71)씨는 캐나다에서 30년간 살다가 지난해 1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로 ‘역이민’을 왔다. 고창타워는 흔히 ‘실버타운’으로 불리는 노인복지주택이다. 지난달 14일 오후, 고창타워에서 만난 그는 또래보다 건강한 모습이었다. 인근 요양병원에서 자원봉사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가 응급벨부터 거론한 점이 의아했다. 은애씨는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우문현답이었다.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자리한 고창타워는 2017년 10월에 문을 열었다. 현재 517세대(47~109㎡)가 입주해 있다. 인근에 온천과 자연휴양림, 골프장, 찜질방, 황톳길, 병원 등이 한데 모여 있다. 단기 임대로 미리 실버타운을 체험하는 ‘은퇴자 마을’도 조성되는 중이었다.

고창타워 인근에는 은퇴자 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단기간 머무르며 실버타운을 체험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황보연 기자

은애씨의 집 내부를 함께 둘러봤다. 그가 말한 응급벨은 화장실과 안방 벽면에 부착돼 있었다. 간단한 처치로 안 될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간호팀이 병원 이송을 돕는다. 준종합병원이 아파트 정문에서 차도만 건너면 되는 거리에 있었다. 천장에 달린 동작 감지 센서도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집 안에 들어와 카드키를 꽂아둔 상태에서 3시간 이상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관리팀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집 안에는 휠체어 사용이 가능하도록 단차(높낮이)를 없앴다. 화장실엔 미끄럼 방지 바닥재가 사용됐다. 변기 옆에는 안전손잡이가 설치돼 있었고 샤워부스 안에는 안전의자가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집에서 다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고려된 설계였다.

지난 1월14일 박은애씨가 고창타워 내 입주민 전용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실버타운 입주 자격은 60살 이상 건강한 고령자

실버타운은 민간 사업자가 공급하는 주택이지만 노인복지법상 주거시설이다. 그래서 입주 자격 요건을 따진다. 부부 중 한명이 60살 이상이고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주로 식사와 가사 지원, 운동 및 건강 관리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고령자복지주택(공공임대)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저소득층 중심인 데 비해, 실버타운은 비교적 건강 상태가 양호한 중산층 이상 가구가 대상이다.

재가요양서비스는 노인복지법에 의거해 설치된 재가노인복지시설 기준임. 2023 노인장기요양보험통계 연보에 따르면 2만2097곳.

간호사·간호조무사 5~6명이 교대근무를 한다는 간호팀 사무실로 가봤다. 벽면 한쪽의 책장에는 입주민 이름과 동·호수가 적힌 건강 관리 파일이 빼곡히 꽂혀 있다. 간호사는 좀 전에 다녀간 입주민에 대한 간호일지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그는 “하루 최소 10여건 응급벨이 울린다”고 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띄워져 있는 내부 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별 기록을 볼 수 있었다. 혈압과 체온 측정부터 각종 예방접종, 골절 부상에 따른 진료 안내 등으로 다양했다. 수술을 위해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거나 치매 인지검사를 실시했다는 등 입주민과 나눈 대화 내용도 정리돼 있었다. 김은미 고창타워 본부장은 “입주민의 병력이나 건강 상태를 사전에 파악하고 있으면 응급 시에도 대처가 용이하다”고 했다.

박은애씨와 함께 둘러본 집안 내부 구조.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화장실의 안전손잡이, 현관 부근의 카드키 꽂는 곳, 안방의 응급벨, 부엌 천장의 동작감지 센서. 황보연 기자

입주민들은 동호회 활동과 재능기부 등을 통해 서로 교류하는 시간이 많다. 커뮤니티센터 게시판에는 바둑과 포켓볼, 라인댄스 등 32개 동호회의 활동 시간표와 각종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공지문이 걸려 있었다. 서예교실에서 만난 김아무개(63)씨는 경북 구미에 살다가 지난해 10월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은퇴한 지 7년 정도 됐는데 삶에 변화를 주고 싶어” 실버타운을 찾았다. 이웃과의 교류는 그에게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지난 1월14일 김아무개(63)씨 부부가 고창타워 커뮤니티센터 내 서예교실에서 붓글씨를 써내려가고 있다. 황보연 기자

지역과 시설에 따라 실버타운 생활비는 천차만별이다. 고창타워는 얼마나 들까? 은애씨 부부가 사는 전용면적 92㎡(27평. 임대형 전세보증금 2억원대)의 경우, 기본 관리비는 월 32만원이다. 여기에다 부부가 하루 한끼 의무식(30식)을 먹는 비용(2인 54만원)과 전기·가스 등 공과금을 더하면 매달 100만원 정도가 든다. 다른 지역 실버타운 거주 경험이 있는 김아무개(83)씨 부부는 이곳으로 온 이유를 “가성비 때문”이라고 했다. 수도권 고가 실버타운에 견주면 3분의 1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 본부장은 “선호도가 낮은 ‘하루 세끼 의무식’(90식)을 책정하지 않았고 수영장처럼 입주민 모두가 이용하는 것은 아닌데 운영비가 많이 드는 시설을 줄여 관리비 단가를 낮췄다”고 했다.

지난 1월14일, 전북 고창군 고창읍에 있는 서울시니어스 고창타워 입주민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고창/황보연 기자

공급 부족·비싼 관리비로 중산층 접근 제약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노인 가운데 ‘거주 환경이 더 좋은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비중은 8.1%, ‘식사, 생활 편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노인전용주택’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이들은 4.7%였다. 조사 시점의 전체 노인 973만명 중 약 125만명(12.8%)이 노후를 보내기 적합한 곳으로 이사할 의향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공급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다. 실버타운은 전국적으로 40곳(9006세대, 2023년 말 기준)뿐이다. 일반적으로 주택은 수요와 공급 간 시차가 5~7년 이상 걸린다. 정부는 최근에야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2015년 불법 전매에 따른 투기 논란으로 분양형이 폐지되면서 공급이 정체된 측면도 있다. 고창타워 내 상담실에는 이날도 멀리서 찾아온 부부가 보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왔다는 60대 부부는 “당장은 빈집이 없어 일단 체험용 주거 시설(힐링카운티)에 머무를 생각”이라고 했다.

중산층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한계다. 정부는 실버타운 보증금은 2억~10억원, 월 관리비는 230만~460만원 수준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창타워의 경우, 의료기관을 모기업으로 하는 본사가 1998년부터 실버타운을 운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관리비를 어느 정도 낮췄지만 보편적인 사례로 보긴 어렵다. 종전까지는 민간에만 맡겨두면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나 관리비 책정 근거 등에 대한 관리·감독도 없었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지원정책개발센터장은 “아직 고소득층 중심이고 중산층으로 확장되고 있지 않다”며 “연금으로 생활비를 부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선택이 가능해야 한다”고 했다. 향후 노인 가구의 국민연금 수령액 등을 고려해, 불필요한 건축 비용을 줄이고 적정한 가격대를 맞춰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산층 대상의 ‘실버스테이’ 도입으로 돌파구를 찾을 방침이다. 민간 건설사에 공공택지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해 관리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다만 아직은 경기도 구리 갈매역세권 한곳(300세대 이상)만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는 또 인구감소지역(89곳)에 한정해 분양형을 다시 허용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주서령 경희대 교수(주거환경학)는 “노인들이 살던 곳에 계속 머무르고 싶어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수도권 수요가 많을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도심 내 적정 부지를 확보하도록 지원하고 재건축이나 신도시 공급에서도 고령자 주택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만일 관리비가 합리적인 수준으로 조정되더라도 연금소득이 넉넉지 않은 노인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주 교수는 “일본에선 노인이 ‘이주·주거 지원기구’(JTI)에 집을 위탁하면 임차 수익을 돌려주고, 그 돈으로 노인전용주택 생활비를 충당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며 “이 경우 우리의 주택연금과 달리 주택을 자녀에게 상속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집을 처분하고 싶어 하지 않는 노인들까지 고려해 다각도로 자산 유동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버타운 거주→웰다잉으로 연결돼야

은애씨 부부는 고창타워를 ‘생의 마지막 터전’으로 최종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20년 이상 살 곳을 정하는 것이어서 신중하고 싶다는 것이다. 고창타워 입주민의 평균 연령은 약 75살이다. 입주할 때는 건강한 상태로 들어왔지만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돌봄 수요가 많아질 수 있다. 실버타운은 거동이 불편해지는 때가 오더라도 살기 적합한 곳일까?

고창타워 바로 건너편에는 준종합병원과 요양병원이 있다. 황보연 기자

관련법상 실버타운 입주 뒤 장기요양 등급을 받으면 퇴소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다만 업체에 따라 제각각이라 계속 거주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주기적으로 입주민에 대한 건강 평가를 해서 ‘부적격 판정’이 나면 재계약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곳들이 있다. 또 건강한 노인만 받으려고 입주 상한 연령을 종전보다 낮추기도 한다.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타워동’과 24시간 전문 간호를 받아야 하는 ‘요양센터’, 그리고 중간 단계인 ‘프리미엄 세대’를 두루 갖춘 곳(삼성노블카운티)도 있지만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

김정근 강남대 교수(실버산업학)는 “우리는 실버타운에서 임종을 맞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거주하던 실버타운에서 웰다잉으로까지 연결되려면 지역사회 의료·돌봄 서비스가 적극 연계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의 실버타운과 유사한 점이 많은 일본의 서비스 제공형 고령자주택은 입주자의 돌봄 필요도에 따라 일반형과 개호형으로 구분돼 있다. 개호형은 상대적으로 돌봄이 좀더 필요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하며, 치매노인도 입주가 가능하다. 실버타운이 노년기의 집으로 매력적 선택지가 되려면 ‘계속거주’가 신규 물량 공급 이상으로 중요한 과제인 셈이다.

김아무개(83)씨 부부가 지난 1월14일 점심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황보연 기자

관리비만 500만원” 10억에도 줄서는 실버타운, 어디

초고령사회의 역습-시니어주택 공급 해법은

건국대서 설립한 자양동 '더 클래식 500' 최고가 자랑

무료 식사는 월 20회이나 건물내 병원·금융 업무 가능

건대입구역 3분 거리"1~2년은 대기해야 입주

나이가 들면 도심 외곽이나 시골에 살 것이라는 틀을 깨고 최고급 실버타운이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새로운 노년층에게 먹히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한국디자인진흥원에 따르면 액티브 시니어는 실제 나이보다 5~10년 가량 젊다고 느끼고 노년을 인생의 새로운 시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기존 시니어들은 자산을 자녀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노후 준비를 위해 쓰고 싶어한다. 또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일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더 클래식 500 입주자들은 전문직 등으로 아직도 출퇴근하며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더 클래식 500은 지하 6~지상 50층 건물에 380가구가 입주해 있다. A8~20층은 호텔로 운영되고 나머지 21~50층과 B동은 실버타운으로 운영된다. 주거 공간은 단일평형으로 공급면적 55평으로 공급된다. 1인 거주시 월 관리비는 488만원, 2인 거주시엔 식사비가 추가돼 518만원이다. 간호인력이 24시간 상주하는 건강생활센터를 운영하고 제휴된 건국대 병원의 외래 진료를 동행해주기도 한다. 그 외에 주 2회 청소서비스가 진행되고 있고 도서관 노래방, 게임룸 등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수영장, 헬스장 등 이용은 유료다. 매달 의무식은 20(1)로 다른 실버타운에 비해 극히 적은 편이지만 뷔페, 내부 레스토랑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평가다.

보증금과 매달 내는 관리비가 비싼 실버타운일수록 도심과 가까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올해 준공 예정인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위치한 오시리아 라우어는 보증금 27000만원에 매달 기본 관리비 173만원으로 책정됐다. 오시리아역에서 550m 거리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해운대 인제대학교 백병원 등이 있다. 2회 세대 청소와 24시간 간호인력 상주 등의 서비스가 제공된다. 1인 의무식이 30식이다. 다만 면적은 32~67로 더 클래식 500보다는 작다. 그 외 경기도 안성시 미리내 실버타운, 여주시 골든밸리와 파티마성모의집, 경남 일붕실버랜드 등은 도심과 떨어져 있다.

이러한 실버타운 대부분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해야 해 나이 제한이 있기도 하다. 더 클래식 50080세 이상은 받지 않고 있다. 이 관계자는 “80세 전에 입주했다가 계속 살고 싶다면 80세가 넘어도 연장은 가능하다“90세 이상인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희림종합건축사무소와 부동산 투자자문 알투코리아가 작년 3~4월 서울, 경기에 살고있는 55~79세 총 30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시니어 주택 입주시 주요 고려 사항으로 입지를 꼽았고 청소 및 세탁 등 생활지원 서비스를 중요하게 봤다. 뷔폐형 의무식으로 월 60(1인당)을 무료로 지원받길 원했다. 희림과 알투코리아는 보고서에서 노년층은 실버타운에 대해 의식주 생활이 편리하고 편의시설, 병원 인접, 지역사회 연계가 가능한 주변 지역의 생활 인프라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전공의 이탈 1, 초과사망 3136어디까지 이기적일 것인가?

진료받을 기회·양질의 의료서비스 박탈, 건강할 권리는 어디에?

작년 2월 정부가 일방적으로 2000명 의대증원을 '선포'하고,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병원을 집단 이탈한지 꼬박 1년이 지났다. 의정갈등이 촉발한 환자들의 피해, 병원 노동자들의 고충, 비수도권지역 의사수급 난항, 의대교육의 파행 등 여러 사회적 문제들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무엇보다 분노할 일은 시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야 할 국가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의료개혁'을 강행하며 사람들을 사망과 질환의 고통에 몰아넣고 있는 끔찍한 현실이다. 의료공백 초기 6개월 간 초과사망자 3136명은 말 그대로 의정갈등이 없었으면 살아남았을 사람들이다. 지금 이 순간도 환자들은 이 상황이 아니었다면 맞지 않을 죽음에 이르거나 진단을 받고도 필요한 수술을 제때 받지 못할까봐 마음 졸이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정부는 스스로 초래한 이 엄중한 공중보건의 위기를 수습할 의지도 역량도 보여주지 못했고, 정책이 초래한 혼란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모든 진료영역에 적정한 숫자의, 잘 훈련된 의사인력을 공급하고, 시민들이 거주지나 다른 사회경제적 조건을 이유로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은 정부의 중요한 책무이다. 1년이 지나도록 온갖 문제를 키우다가 급기야 2026학년도 의대 증원 규모를 각 대학이 '100% 자율' 로 결정하라는 발표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스스로 인정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고한 수많은 죽음과 아픔에 대하여 상징적이나마 사과하고 물러나는 이도 한 명 없는 것인가.

보건의료체계에서 의료인력이 중요함은 당연하지만, 예비 의사인력부터 현직에 있는 의사들까지 '의대증원 논의는 오로지 의사집단이 주도해야 한다'며 '전면 백지화' 만을 내세우는 것에도 우리는 동의할 수 없다. 논평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듯이, 사회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한 자원 수급정책으로서 의료정책의 결정권한은 의료전문가와 관료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더 넓은 당사자 시민들과 진보적 연구자들에게도 있다. 지금처럼 의료계가 일체의 사회적 논의를 배척하고 사회적 특권과 경제적 보상을 독식하는 권력집단으로 자신들의 주장만을 고집할 경우, 의사증원의 필요에 공감하는 많은 시민들로부터 고립될 수 밖에 없다.

환자와 병원 노동자들의 피해

의정갈등의 두 축인 의료계와 정부의 발언과 행위에만 관심이 쏠리는 사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환자들과 병원노동자들의 피해, 그리고 지역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는 덜 조명되고 있다. 최근 시민건강연구소가 전공의 이탈 후 병원 현장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환자들의 초과사망과 진료지연의 원인 그리고 병원 간호노동자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이 잘 드러났다.

갑작스런 사고를 당한 환자의 응급수술과 진료가 어려워졌고, 중증환자의 예정된 수술이 취소되거나 입원 대기기간이 길어지고, 수개월에서 1년 가까이 외래예약도 연기되고 있다. 응급상황에서도 먼 지역의 병원을 찾아 헤매야 하고, 운 좋게 입원한 환자들이라도 검사나 처치가 지연되어 재원 일수가 증가했다. 환자들은 병원들이 수익을 늘리기 위해 처방한 비급여항목 진료를 받았지만, 막상 교수의 회진이 줄어들면서 본인 상태에 대해 상담도 어려워 제대로 된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의료현장에서 환자안전사고도 증가하였다. 간호사들은 체계적 교육이나 명확한 업무범위에 대한 지침도 없이 전공의 업무에 투입되었다. 또한 이들은 환자에 대한 담당의사와의 직접적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서 구두처방과 대리처방을 하고 있다. 간호사들의 1인당 담당 환자수와 환자 중증도는 증가했지만, 동료 근무자와 지원인력은 줄어들어 업무 과중과 고강도 노동에 내몰려있다. 이와 함께 진료지원 간호사와 일반간호사 간, 의사와 간호사 직군간의 이해와 신뢰가 낮은 조직 내 문제도 겹쳐 있다.

“대리처방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 너무 무서워요"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요.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는 범위인가?"

“명확한 업무 경계가 없어 병동내 근무인원끼리 충돌이 잦습니다"

“전공의 업무, 애매한 업무 모두 간호사에게 떠맡겨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짧은 대답 속에 병원 현장의 위급함이 담겨 있다. 이로 인한 의료사고나 병세 악화는 누구의 책임인가? 게다가 병원에 남은 펠로우와 담당교수들의 예민한 상태를 신경쓰고, 병동 환자나 보호자들의 불만과 고충을 받아줘야 하는 추가적인 감정노동 역시 간호사들의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급휴가나 임금동결로 사실상 실질임금이 감소했지만 고용불안이 겹쳐 악화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보건의료체계의 침식

서울은 타 지역에서 유입되는 환자 비중이 높고, 특히 빅5로 불리는 병원들로 환자와 진료비가 집중되는 문제는 거듭 지적되어 왔다. 빅5 병원을 찾는 비수도권지역의 환자(진료실인원)는 2013년 50만 245명에서 2022년 71만 3284명으로 꾸준히 늘었고, 2024년 상반기에만도 99만 4401명에 달했다(같은 기간 진료비는 각각 9103억 원, 2조 1822억 원, 1조 5602억 원).

병원들의 진료가 축소되었다고 한 2024년 상반기에도 서울로 원정진료를 오는 환자 숫자와 진료비 규모가 이 정도라는 것은 전공의 이탈의 피해가 비수도권 보건의료기관에는 더욱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뜻한다. 비수도권 대학병원의 경우 전공의 이탈 사태 이전부터 의사인력의 수도권 쏠림현상 속에서 전공의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사직 전공의들을 대체하기 위해 수도권 대학병원들이 채용공고를 내면서 지역에서는 의사를 구하기 더욱 어려워졌다. 심지어 지방 국립대병원의 교수와 전문의들도 사직하고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국립대병원 교수 223명이 사직하였다.

의정갈등이 시간을 끌수록 지역의 보건의료체계가 약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폭적인 인력과 자원이 조속히 투입되지 않는다면, 지역보건의료체계의 대응력과 이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는 의대증원논의에서 지역의사제, 공공의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고 있다. 공식통계에 나타난 진료비 외에도 비급여 고가진료, 상경 진료에 따른 추가적인 지출을 고려하면 지역의료의 부실화와 격차는 지역사회의 자원을 고갈시키고, 삶을 지속하는 근간을 침식시켜 공동체의 소멸을 앞당기는 큰 원인이 된다.

“어디까지 이기적일 것인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을 대신하고 있는 현장에서 묻고 있다. 정부 당국과 의료계는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는 증원 계획과 전면 백지화 주장으로 언제까지 이 파국을 밀고 나갈 것인가. 환자들의 위태로운 삶, 진료 현장에 남아 있는 의료인력들이 감당하고 있는 고된 책임들, 점점 부실해져 가는 지역보건의료체계,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된 이 사태에 대해 정부와 의료계 뿐만 아니라, 더 넓은 공동체가 대책을 찾는 일을 미룰 수 없다.

시민건강연구소 | 프레시안

 

 

기본소득에 관한 '잘못된 상식' 세 가지를 타파한다

탄핵 이후 사회개혁 구상] 기본소득, 상식의 파괴

게을러진다?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꺾지 않아

세계 각국 실험서 오히려 고용 늘고 불평등 감소

일부에게 주나 모두에게 주나 마찬가지 재분배

'세금 폭탄론''재정 환상'이 빚은 착각에 불과

국고 축날 일 없고 중산층도 순수혜자로 만들어

중소상인, 자영업자, 시민단체들이 22일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가계부담 긴급대책 촉구 회견 후 난방비 등에 힘든 서민을 표현하고 있다. 2023.2.22. 연합뉴스


상식이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우리는 흔히 말한다. 그러나 그 상식이 '지배하는 상식',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 사회학자 노명우(아주대 교수)는 "사람들이 각자 상식적 판단을 하지만 각자의 상식적인 판단이 모였을 때 무시무시한 몰상식이 생겨난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초래한 엄혹한 시기에 유행했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에서 비롯된 '부자 되기'라는 상식이 "유일한 상식이 되는 순간 몰상식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겠다고 부동산 투기에 나서고, 이과생들이 모두 의사만 되려고 하는 상황은 상식에서 분명 벗어나 있다고 노교수는 말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사계절, 2014, 25~26쪽)

상식과 양식의 대결 : 상식의 허구와 양식의 공허함

모든 상식이 올바르지는 않다. 따라서 상식과 상식이 서로 견제할 때 몰상식의 발호를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상식은 힘이 세다. 그 힘이 정치인에 의해 악용된다면? (이때 상식은 지배 이데올로기와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다.) 노명우 교수는 이 대목에서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라는 이탈리아 혁명가가 '옥중수고'에서 성찰한 상식의 역설을 소개한다.

"자신의 생각을 시대의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장악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만든 생각을 세상의 보편적 상식으로 만들 수 있는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다면, 시중에 떠도는 상식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둔한 사람은 힘으로 지배하지만, 교묘한 사람은 상식을 이용해 사람들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같은 책, 27쪽)

상식이 바람직함을 갖추면 양식(良識)이 된다. 하지만 양식은 상식 앞에서 무력하다고 노명우 교수는 말한다. "상식을 자극하는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내세운 보수정당은 '서민'의 표를 얻고, 경제정의를 외치는 진보정당은 빈민층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같은 책, 29쪽) 정치인들이 더 정확한 표현인 '빈민'이나 '저소득층'보다 '서민'과 그들의 '살림살이'나 '민생'을 더 많이 들먹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기본소득의 상식과 양식

기본소득의 사전적 정의는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 정기적으로 재산 유무와 노동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 소득'이다. 여기에서 세 가지 핵심은 소득과 재산조사(자격심사)가 필요 없다는 보편성, 노동 여부나 일할 의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무조건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주어지는 개별성 등이다. 이런 특징들 덕분에 기본소득은 지금 시대의 새로운 복지 모델로 부각되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취업 준비, 실업, 질병으로 인한 장기요양 등 인생의 빈칸, 또는 과도기에 처한 사람에게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을 안전판을 제공한다. 특히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어야 하는 약자들에게 계약 당사자로서의 교섭력을 제공한다.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므로 형편없는 일자리를 거부할 자유가 생기는 한편, 소득은 적지만 적성에 맞아 하고픈 일을 선택할 용기도 준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의 이런 장점보다는 부정적 측면이 훨씬 더 자주 부각되는 게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우선 기본소득에 대한 부정적 상식 세 가지에 대해서 반론을 제시해 볼 것이다.

가이 스탠딩 영국 SOAS 교수가 23일 서울 이화여대에서 열린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8.23.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제공


기본소득은 노동 의욕을 꺾지 않는다

첫째, "기본소득이 주어지면 사람들이 노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즉 기본소득이 게으름을 부추길 것이라는 상식이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진부한 격언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기본소득이 시행되고 있는 곳을 보면 고용이 늘어나고 불평등이 감소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현재 국가 단위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하는 나라는 없지만,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기본소득 제도를 실시하거나 일부 집단에서 실험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노동시간은 줄어도 고용이 줄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난 경우가 많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가이 스탠딩 영국 런던 아시아·아프리카 대학(SOAS) 연구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해보니 고용이 오히려 늘었다"며 "기본소득을 지급하면 사람들이 게을러져서 일을 안 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2023년 8월 23일 시민언론 민들레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인도 마디아 프레디시주에서 6000명을 대상으로 실험했고, 나미비아, 핀란드, 캐나다 등지에서도 실험이 진행됐다"면서 "많은 실험 결과 영양 상태와 건강이 개선되고 의료 서비스 접근권이 향상됐으며 여성의 지위도 상승했다"고 전했다.

무조건적 현금 지급이 게으름을 부추길 것이라는 강제노동 시대의 인간관은 시대착오적이다. 먼 나라의 실험 결과보다는 기득권층의 시각에서 나온 상식에서 벗어날 필요를 부각시키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금 노동능력을 지닌 평균적인 한국인이 예컨대 월 50만 원의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도 하던 일을 포기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노동을 하는 게 아니라 재미와 보람을 위해서도 노동을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본관 대강당에서 열린 '서울시-서울시교육청-자치구 유치원 친환경 무상급식 업무협약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2021.12.8. 연합뉴스


일부에게 주나 모두에게 주나 마찬가지다

"재벌 자녀에게도 기본소득을 주다니. 가난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기초생활 보장제도, 고용보험의 구직수당, 기초연금 등이 모두 선별적 소득보장에 속한다. 선별적 복지 제도는 그만큼 친숙하고 당연하게 여겨진다.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보편적 복지 제도보다 외견상 더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상식으로 통용된다.

그러나 이는 내는 세금을 불변으로 여기고, 받는 보조금만 생각하니까 생기는 착각이다. 기본소득 지급에 필요한 세금을 거둘 때 소득계층별 세율을 비례적, 혹은 누진적으로 설계할 것이다. 이때 세율 배분에 따라 기본소득 제도는 어떠한 선별소득보장 제도에 대해서도 그와 똑같은 재분배 효과를 낼 수 있다. 즉 과세 유예자와 납세자를 포함한 구성원 모두가 보편적 소득보장 제도(기본소득) 하에서 선별적 제도와 똑같은 순(純) 수혜를 누리거나 순(純) 부담을 지게 된다는 말이다. 순수혜는 내는 세금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는 경우를 말한다.

조금 더 쉽게 말하면 다음과 같다. "한편으로는 선별소득보장과 동일한 금액을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선별소득보장 대상자에게는 세금을 걷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선별소득보장 하에서 내야 할 세금에다가 (그들도 받을) 기본소득을 더한 금액만큼을 세금으로 걷으면 된다." (강남훈, 기본소득의 경제학, 박종철출판사, 2020, 14~16쪽)

우리나라에서 선별적 복지가 주축이라고는 하지만, 보편적 복지도 부지불식간에 이미 시행되고 있다. 0~5세 보육료를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던 선별적 지원이 논란 끝에 2013년부터 보편 무상으로 변경됐다. 초중고교 보편 무상급식도 꾸준히 늘어서 이제는 대세가 됐다.

2020년 6월 25일 한국지방세연구원이 발간한 '기본소득제도 쟁점과 시사점' 연구보고서를 보면 전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경우 203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비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세금 폭탄론은 '재정 환상'일뿐, 중산층도 순수혜자로

"기본소득 시행에 필요한 막대한 세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마련한다고 하면 나라 곳간이 텅텅 빌 것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세금폭탄으로 돌아올 것이다." 정치권에서 증세나 복지 확대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주류언론이 꺼내 드는 전가의 보도가 '세금 폭탄론'이다. 시민들의 머릿속에 복지 확대와 짝을 이뤄 연상되는 '세금 폭탄'이라는 '상식'의 위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정부는 원칙적으로 돈을 쓸 곳을 먼저 정하고 그에 필요한 만큼 세금을 걷는다. 이 같은 균형재정의 원칙을 한국 정부만큼 근사하게 잘 지키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드물다. 그러니 세금을 많이 내면 그만큼 더 많은 보조금과 정부 서비스를 받게 된다. 세금과 보조금을 종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그 중 어느 하나만 고려해서 판단을 내리는 현상을 '재정 환상'이라고 한다. '텅 빈 곳간'과 '세금 폭탄론'은 재정 환상이 빚어내는 착각에 불과하다.

기본소득은 물론 막대한 예산이 드는 정책이다.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하는 데다 가구가 아닌 개인을 대상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위해 거둔 세금은 많든 적든 딱 그만큼 구성원 모두에게 균등하게 보조금으로 도로 지급된다. 재정 중립적 정책이니 국고가 축날 일은 없다. 다만 기본소득의 지급 규모가 클수록 순(純)부담층 (상위 5~10% 안팎의 고소득층)의 세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제도가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하기 위해서도 국민의 절대 다수인 소득하위층과 중산층이 순수혜자가 돼야 한다. 기본소득을 다수가 지지해야 이를 공약으로 내건 정당이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하의 소득을 상대적으로 더 늘려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신자유주의 이래 세계적으로, 한국에서는 더욱,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및 자산 격차가 커졌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중에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정규직 비중은 계속 줄어들어 전체의 10%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강남훈 사단법인 기본사회 이사장은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을 순수혜자로 만드는 기본소득은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의 책, 23쪽)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기본소득' 제대로 도입할 때가 왔다올해 대선이 기회

[탄핵 이후 사회개혁 구상] 이제 보편적 복지로

저부담-저복지 국가? 실제로는 중부담-저복지

복지 수준 목표에 관한 국민적 합의 없는 가운데

윤 정부는 무분별 감세로 조세부담률 대폭 낮춰

다음 정부는 조세제도와 사회복지 판 새로 짜야

축소 지향의 선별적 복지, 시대에 뒤처진 지 오래

기본소득·기본주거 대들보 위에 보편 복지 구축

수십조 대 비과세 및 세금 감면 정비해 재원 마련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인가. 정부가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데 복지국가라고 한다면 어느 정도의 사회복지 수준을 목표로 삼는가. 이 문제는 우리나라 사회에서 전체적으로 공론화된 적이 아직 거의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정부의 암묵적 전제는 경제성장 우선주의였다. 복지 수준을 크게 높이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데 큰 정부는 자유로운 기업활동과 국리민복에 해롭다는 논리다. 또한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부가 늘어나면 그 혜택이 소득 하위계층에까지 돌아가는 이른바 낙수(落水)효과 이론도 있다. 대체로 성급한 일반론이지만 국민 대부분은 알게 모르게 그런 보수적 경제학의 영향권 안에 있다.

 

OECD 회원국 국민부담률. 그래픽 김성진 기자
OECD 회원국 사회복지지출. 그래픽 김성진 기자

합의되지 않은 저(低)부담-저(低)복지 국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대체로 '저부담-저복지' 국가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질문은 과연 우리나라가 국내총생산의 몇 %까지 복지에 할당할 수 있고, 그렇게 하는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에게 증세의 여력이 있다고 보지만, 꼭 선진국이나 OECD 평균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 중에서도 미국과 스위스는 2022년 국민부담률(세금+사회보장 기여금)이 GDP의 27.66%와 27.23%를 각각 차지해 우리나라(31.98%)보다 낮았다. 또한 복지예산을 늘리기 위해 세금이나 사회보장 기여금을 반드시 당장 올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효능을 다한 세금 감면제도를 없애거나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복지예산을 더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우리의 복지와 국민부담 체계에서 저(低), 중(中), 고(高)수준 가운데 어떤 모델을 선택할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범사회적 합의를 추구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적정부담과 적정지출’ 같은 현상 유지 원칙이나 ‘작은 정부’와 같은 구호가 주류였다. 국민적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윤석열 정부는 무분별한 감세정책을 남발해서 조세부담률을 낮추면서도 국가부채를 늘리고 있다.

행정자치부 등 3개 부처 장관급 직책과 국세청장 등을 맡았던 이용섭 전 장관은 지난 12월 6일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윤 정부가 지향하는 저부담 저지출의 작은 정부는 정치적 구호로는 매력적일 수 있다”면서 “그러나 재정이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기후위기, 성장잠재력 저하 등의 당면한 복합위기와 구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국가재정운용계획(2024~2028)에 따르면 2024년에는 조세부담률이 19.1%(2028년 19.1%), 국민부담률은 26.8%(2028년 27.2%)로 과도하고 급격한 인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OECD 회원국 정부 총수입. 그래픽 김성진 기자
OECD 회원국 정부 총지출. 그래픽 김성진 기자

한국은 이미 중(中)부담-저(低)복지 국가

그러나 정부 총수입과 총지출, 사회복지지출 등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는 저부담이 아니라 중부담 국가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OECD 홈페이지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정부 총지출은 GDP의 37.75%로 32개 OECD 회원국 가운데 끝에서 5번째였다. 반면 정부 총수입은 GDP의 37.4%로 밑에서 10위였다. 2020년에도 한국의 정부 총지출은 GDP대비 38.13%로 밑에서 3위, 총수입은 35.4%로 밑에서 9위였다. 우리나라 국민의 조세부담률은 2022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23.8%로 OECD 평균 25.2%에 거의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다. (OECD 홈페이지/data/indicators/ 2024년 12월 23일 업데이트)

정부 총수입 가운데 사회복지지출의 비율을 보면 우리나라 국민은 저복지에 비해 특히 상대적으로 중(中)부담을 지고 있다는 점이 확연하다. 2022년 기준 한국 정부의 총수입은 GDP의 39%로 스위스(34.2%), 미국(35%)보다 높고, 일본(39.1%), 영국(42.1%)에 비해 조금 낮았다. 노르웨이(63.9%), 프랑스(54%), 독일(47%)보다는 비율이 크게 낮았다. 같은 해 한국 정부의 사회복지지출은 GDP 대비 14.8%로, 프랑스(31.6%), 독일(26.7%), 일본(24.9%, 2020년), 미국 22.7%(2021년)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이 비율, 즉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율을 GDP 대비 정부 총수입 비율로 나눠 보면 한국은 37.9%, 프랑스 58.5%, 독일 56.8%, 일본 67.3%, 미국 68.2%가 나온다. (2024년 12월 23일 업데이트). 이런 수치는 한국이 저부담-저복지 국가가 아니라 중부담-저복지 국가임을 보여준다.

 

지난 8월 23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ECC에서 열린 제22차 기본소득 지구 네트워크 대회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3.8.23. 연합뉴스

부당한 감세 조치 철회와 기본소득제도의 도입

중부담이라고 해서 국민부담률(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을 지금보다 더 줄여서는 곤란하다. 복지지출을 더 늘려서 중부담-중복지 체제로 가야 한다. 그렇지만 당장 증세는 정치인 가운데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선 윤석열 정부가 단행한 법인세 등의 감세 조치 가운데 일부를 철회하고 기존의 비과세 및 세금 감면제도를 정비해서 23% 대의 조세부담률은 유지하거나 더 높이도록 해야 한다. 특히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가상자산 과세 유예 철회는 소득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세금을 부과한다는 과세 원칙에도 맞지 않고, 혜택도 주로 상위계층에 집중된다.

이참에 사회복지지출을 늘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조세제도와 사회복지의 판을 새로 짜야 한다. 어차피 올해 대선에서는 적어도 민주당과 기본소득당 등에서 기본소득을 포함한 기본사회 공약을 들고나올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당 강령에 ‘기본사회’를 명시했다. 이재명 대표의 ‘기본사회 스승’으로 불린 강남훈 사단법인 기본사회 이사장은 지난 1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사회는 더 미룰 수 없는 논의이자 양극화와 저출생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해법”이라며 “(다가올 대선에서는 기본사회가) 이재명 대표 개인의 관심이나 정책이 아닌, 더 미룰 수 없는 당·국회 차원의 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대선은 축소 지향의 기존 선별적 복지제도를 버리고 기본소득, 기본주거 등의 대들보 위에 새로운 보편적 복지체계를 구축할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기본소득은 '자격심사 없이 모든 사람(특정 국가, 지역 등의 구성원)에게, 개인단위로, 노동 요구 없이 무조건 전달되는 정기적 현금 지급'이다. 사회 구성원이 소득 공백기나 부채의 나락에 떨어졌을 때, 전직을 위한 재충천이나 교육(훈련)을 모색할 때 든든한 받침대가 될 수 있는 게 기본소득이다.

 

청년기본소득. 연합뉴스 일러스트

보편적 복지가 선별적 복지를 대체해야

지금까지 정부가 금과옥조처럼 여겨 온 선별적 복지는 이제 시대에 뒤처진 나머지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다. 현행 사회 복지제도의 근간인 기초생활보장 제도에 대해서는 까다로운 선별 조건, 노동 유인의 박탈, 적지 않은 행정비용, 차상위층과의 형평성 등 숱한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 송파 세 모녀, 방배동 모자, 창신동 80대 노모와 50대 아들 등의 비극은 모두 이런 모순에서 파생됐다. 65세 이상 노인의 하위 70%에게만 지급하는 기초연금이 갖고 있는 치명적 단점도 선별 복지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수혜 대상을 늘리지 않으려는 축소 지향의 복지제도는 전략산업 지원을 위한 각종 세금 감면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복지지출에서 아낀 재원(세수)은 전략산업과 농업지원을 위한 각종 보조금과 세금 감면에 집중됐다. 따라서 기본소득 등 기본사회를 위한 재원 마련은 우선 수십조 원에 이르는 이런 비과세 및 세금 감면 제도, 즉 조세지출을 정비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본소득과 같은 현금복지의 신설과 확산은 어차피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저성장 추세가 고착화되고, 인공지능을 비롯한 제4차 산업혁명이 기존 일자리를 대폭 줄일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시장과 사회의 이중구조와 격차가 날로 심화되면서 적어도 구빈(求貧)을 위해서는 보편복지로 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기본소득제도 도입의 걸림돌은 기득권층과 정부만이 아니다. 기존의 선별적 복지 관념에 익숙한 국민들도 기본소득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이건희 손자에게도 웬 기본소득?’, ‘막대한 재원 마련이 가능할까?’, ‘나라 곳간이 텅텅 빈다’, ‘세금폭탄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이는 타당하지 않거나 입증되지 않은 생각들이지만, 미디어의 힘을 등에 업고, 이 시대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활개 치고 있다. 대부분 정치인도 이런 상식에 기대 유권자의 표를 쫓는다. 개혁의 핵심 수단은 이런 때 묻은 상식, 또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균열을 내는 일이다. 모든 유권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그들과 대화하는 작업에 정치인과 언론인이 나서야 한다/임항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운영위원, 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시민언론민들레 

 

 

삶의 만족도 4년 만에 하락자살률 9년 만에 최고

국민 삶의 질통계연령 높을수록 가족관계 만족도 떨어져

코로나19 이후 증가했던 한국인 삶의 만족도와 가족관계 만족도 모두 지난해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하위권이었으며, 자살률도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통계청이 24일 발표한 보고서 국민 삶의 질 2024’를 보면 삶의 만족도는 2023년 기준, 6.4점으로 2022(6.5)보다 감소했다.

삶의 만족도는 객관적 삶의 조건에 대한 주관적인 만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0~10점으로 측정한다. 2017년에 6.0이었던 삶의 만족도는 코로나19 이후인 2022년에 6.5점까지 올랐지만 20234년 만에 하락 전환했다.

삶의 만족도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2021~20236.06점으로 OECD 평균(6.69)보다 0.63점 낮다. 38개국 중 만족도 순위는 33위로 하위권이었다. 한국보다 만족도가 낮은 나라는 튀르키예, 콜롬비아, 그리스, 헝가리, 포르투갈이었다.

지난해 가족관계 만족도는 63.5%, 직전 조사인 2022(64.5%) 대비 소폭 감소했다. 가족관계 만족도는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2020년에는 58.8%, 2022년에는 64.5%로 증가했으나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가족관계 만족도는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았다. 13~19세의 80.8%가 가족관계에 만족한다고 응답한 반면, 50~59세는 58.1%, 60세 이상에서는 55.0%만 만족한다고 답했다.

자살률은 9년 만에 가장 높았다. 2023년 전체 자살자 수는 13978명으로 인구 10만명당 27.3명이었다. 전년(25.2)과 비교하면 2.1명 늘었다. 2014(27.3) 이후 9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OECD에서 작성하는 국제비교 자료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202110만명당 24.3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는 리투아니아(18.5), 일본(15.6) 등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보다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2000년 이후 OECD 국가의 자살률은 대부분 하락 추세다. 2000년 자살률이 높았던 라트비아, 헝가리, 에스토니아, 핀란드 등의 국가는 이후 지속해서 하락해 현재 15명 미만을 기록하고 있다.

기대수명은 2023년 기준, 83.5세로 전년 대비 0.8년 증가했다. 2000년 이후 매년 0.2~0.6세 정도의 증가 폭을 보였던 기대수명은 코로나19로 인해 주춤했지만, 최근 들어 다시 증가추세에 있다. 다만 건강의 질적인 측면을 보여주는 건강수명202172.5세로 2020년과 같았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2023년 기준 4235만원으로 2022(4147만원)보다 2.1% 늘었다. 반면 소비자물가지수를 고려한 월평균 임금은 감소했다. 2023년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실질금액)3554000원으로, 전년 대비 38000원 줄었다.

 

사라지는 3%대 예금은행 배만 불러간다

대출금리는 높게 유지하며 예금금리만 낮추는 이자 장사여전

예대금리차 4개월째 증가세에도은행 가계대출 총량 규제 탓

5대 시중은행이 예금금리를 빠르게 내리면서 기준금리보다 낮은 2%대 정기예금이 등장했다.반면 대출금리는 여전히 4%를 웃돌고 있다. 예대금리차(대출금리-예금금리)가 벌어지면서 은행들만 이익을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KB국민은행은 24일부터 대표 수신(예금) 상품인 ‘KB스타 정기예금의 최고금리(만기 1년 기준·우대금리 포함)를 기존 연 3%에서 2.95%로 낮췄다. 이 상품 최고금리가 2%대에 진입한 건 2022710일 이후 28개월 만이다. 신한은행도 지난 205대 은행 중 처음으로 정기예금(쏠편한 정기예금) 금리를 2%대로 하향 조정(3%2.95%)했다.

우리·하나·NH농협은행 정기예금 금리는 아직 기준금리(3.0%)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날 하나은행 하나의정기예금과 우리은행 ‘WON플러스 예금최고금리는 3.0%, NH농협은행 ‘NH올원e예금3.1%로 집계됐다.

남성 육아휴직 비율 첫 30% 넘었지만갈길 먼 함께 육아

지난해 육아휴직자는 132535명으로 전년 대비 5.2%(6527) 증가했다. 육아휴직을 쓴 남성은 41829명으로 전체 육아휴직 급여 수급자의 31.6%를 차지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20154872(5.6%)에 비해 9배가량 늘어 제도 시행 이래 처음으로 30%를 돌파했다. 그러나 남성 육아휴직자는 여전히 여성 육아휴직자 수(9706)의 절반에 못 미친다.

육아휴직 평균 사용 기간은 8.8개월로 여성은 9.4개월, 남성은 7.6개월을 썼다. 여성의 80%, 남성의 46.5%는 자녀가 생후 12개월 이내(0)일 때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노동부는 지난해 부모 함께 육아휴직제대상이 확대된 것이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 제도는 부모 모두 자녀 생후 18개월 내에 6개월 육아휴직을 쓰면 월 최대 450만원(부부 합산 최대 900만원)까지 육아휴직 급여를 받도록 한 것이다. 지난해 51761명이 사용해 전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플랫]여전히 큰 대기업-중소기업 육아휴직 격차

https://www.khan.co.kr/article/202501081016001

[플랫]세계 최고 수준의 성별 임금격차 줄이고 출산·육아비용 낮춰야OECD의 권고 https://www.khan.co.kr/article/202407120957001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제도를 사용한 노동자 수도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급여를 받은 사람은 26627명으로 전년 대비 14.8% 늘었다. 300인 이상 기업(9358·35.1%) 다음으로 10인 미만 소규모 기업(6380·24%)에서 이 제도를 사용한 비율이 높았다.

한편 여성 노동자가 출산 전 직업교육이나 훈련을 받으면 출산 후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비율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 2월호에 실린 여성 취업자의 인적자본 투자와 경제활동 지속성보고서를 보면, 여성들은 첫째 자녀를 출산하면 취업 가능성이 37.2%포인트 감소했다. 출산이 여성의 경력단절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해석된다.

그러나 출산 전 직업교육·훈련을 받은 여성은 받지 않은 여성보다 출산 후 취업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이 17.3%포인트 높았다. 자녀 출산은 여성의 주당 근로시간을 15.8시간 감소시켰지만 출산 전 교육·훈련을 받은 여성들은 주당 근로시간이 8.4시간 줄었다.

보고서는 출산 전 직업교육·훈련 참여가 경력단절 위험을 크게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여성들이 취업 역량을 강화하고 본인의 인적자본 수준보다 하향 취업하지 않도록 컨설팅을 포함한 선제적 고용 서비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탁지영 기자 g0g0@khan.kr

📌[플랫]직장동료의 육아휴직 오히려 좋아육아휴직자 동료에 수당주는 일본 기업들 https://www.khan.co.kr/article/202407231508001

📌[플랫]육아휴직 쓴다니 권고사직한 회사신고해도 처벌받는 경우 고작 6.8%

https://www.khan.co.kr/article/202402081428001

서부지법 폭동 누가 옹호하나

윤석열 구속영장이 발부된 1월19일 새벽,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법 청사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켰다.ⓒ락TV 화면 갈무리

〈시사IN〉은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255개 문항으로 이뤄진 웹조사를 통해 ‘윤석열 탄핵 반대 여론 30%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문항 설계와 분석에는 한국리서치 이동한 수석연구원과 이소연 연구원, 국승민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 교수(정치학)가 함께했다. 조사는 2월3일부터 2월5일까지 실시했다.

‘극우’는 보수(우파)와는 다른 개념이다. 보수주의는 사회체제의 안정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정치 이념이다. 보수주의자는 법과 질서, 전통과 관습을 중시한다. 기존 법과 질서에 의문을 던지는 진보주의자와 구분된다. 하지만 극우과 같은 극단주의는 정치 이념이나 사상이라고 볼 수 없다. 강경하고 격렬한 보수주의자가 곧 극우주의자는 아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극단주의자들은 민주주의나 평등, 법치 등 사회가 합의한 보편적 가치를 부정한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는 ‘민주주의는 제도화된 불확실성’이라고 정의한다. 예컨대 이번 선거에서 지더라도, 다음에 이길 수도 있는 불확실성을 감내하는 게 민주주의다. 극단주의자들은 이러한 불확실성을 거부한다”라고 말했다. 극우는 극단주의의 한 종류다. “극단주의 중에서도 특히 극우의 본질은 평등의 가치를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기본권 보장과 평등을 추구하는 쪽이 집권할 가능성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위와 같은 이론적 설명에 따르면, 지금 한국에선 극우 세력이 분명 존재하고 가시화되어 나라를 흔들고 있다. 1월19일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반발한 윤석열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행사했다. 법과 질서를 중시하는 보수와 분명히 구분되는, 위법적·폭력적 수단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질서를 세우려는 극우적 행태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또 규모는 얼마나 될까?

〈시사IN〉이 한국리서치와 공동으로 실시한 ‘2025년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에서 참여자들에게 ‘서부지법 폭력 사태(〈시사IN〉은 이 사건을 ‘서부지법 폭동’으로 명명하지만, 이번 기사에서는 조사 문항에 적힌 문구를 따른다)’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서로 다른 두 주장을 제시하고, 어느 쪽에 더 공감하는지 물었다. 하나는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으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다른 하나는 ‘불법·무효인 구속영장 발부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이다. 결과는 어땠을까? 응답자 중 70%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저항권 행사’라는 답은 20%였다. 10%는 ‘모르겠다’고 답했다(〈그림 1〉 참조).

서부지법 폭력 사태 당시 현행범으로 체포된 피의자 90명 중 절반 이상(46명)이 2030 세대였고, 그 가운데 절대다수가 남성이었다. 2030 세대 윤석열 지지자들의 온라인 집결지로 알려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서부지법에 대한 폭력을 선동하는 글이 반복해 올라왔다. 2030 남성이 확실히, 특별히 극우화된 걸까? 대다수의 2030 남성이 서부지법 폭력 사태 가담자들과 같은 생각일까? 성과 연령을 나눠 서부지법 폭동에 대한 생각을 살펴봤다(〈그림 2〉 참조).

전체 남성·여성 응답자 각각 20%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해 ‘저항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20대(18~29세) 남성, 30대 남성의 답변 비율도 전체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대 남성 응답자 중 19%, 30대 남성 응답자 중 21%만이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 ‘용납할 수 없다’는 데에는 20대 남성 응답자 중 65%, 30대 남성 응답자 중 67%가 동의했다.

성별 아닌 세대별 인식 차 두드러져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옹호하는 답변은 70세 이상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세대별 인식 차가 분명하게 나타났다. 70세 이상 응답자 중 37%가 ‘서부지법에 난입해 유리창을 깨고 기물을 파손하는 등’의 행동이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 60대 28%, 50대 16%, 40대 11%, 30대 16%, 20대 13%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저항권 행사’라고 판단했다. 최근 2030 남성 전체를 하나로 묶어 ‘극우 세력’으로 규정하거나 이들이 기존 ‘태극기 부대’와 세대 연합을 꾸렸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이번 웹조사를 통해서는 확인할 수 없었다. 오히려 서부지법 폭력 사태 가담자들이나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일부 2030 남성의 목소리가 과대 대표된 것에 가까웠다.

지지 정당별로 살펴보자. 응답자 중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저항권 행사’라고 답한 국민의힘 지지층은 55%였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3%, 조국혁신당 지지층 5%, 개혁신당 지지층 13%, 진보당 지지층 5%가 ‘저항권 행사’라고 응답한 것과 확연히 구분됐다.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응답은 더불어민주당 지지층 94%, 국민의힘 35%, 조국혁신당 94%, 개혁신당 84%, 진보당 87%였다.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 찬반 여부에 따라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보는 시각도 갈렸다. 윤석열 탄핵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사람(전체 응답자 중 64%) 중 92%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응답자(전체 응답자 중 29%) 중에선 33%만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57%는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저항권 행사’라고 봤다. 절반을 넘는 규모다.

12·3 비상계엄을 ‘정당하다’고 평가하는 이들(전체 응답자 중 18%)은 더 적극적으로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옹호했다. 이들 중 76%가 ‘저항권 행사’, 17%가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12·3 비상계엄이 ‘잘못됐다’고 답한 응답자(전체 응답자 중 73%) 중에선 6%가 ‘저항권 행사’, 89%가 ‘용납할 수 없다’고 응답했다.

탄핵 반대 세력 사이 분화도 포착됐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한다는 공통점이 있더라도, 12·3 비상계엄 평가에 따라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한 인식이 선명하게 나뉘었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동시에 비상계엄이 정당하다고 응답한 이들 중,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자는 77%였다. 반면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더라도 비상계엄은 잘못됐다는 응답자 중 ‘저항권 행사’라는 응답은 25%에 그쳤다. 이들 중 67%는 서부지법 폭력 사태가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자 중대한 도전’이고 ‘용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보수 유튜브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에 대한 인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성향 유튜브를 3개 이상을 시청한다는 응답자 중 61%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를 ‘저항권 행사’라고 답한 반면 1~2개 시청한다는 응답자 중 38%, 시청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중 13%만이 그 주장에 동의했다. 하루 1시간 이상 시청 응답자 중에선 65%, 1시간 미만 시청 응답자 중에선 34%가 그랬다. 종교별로 나눠보면 개신교(신자) 27%, 천주교 19%, 불교 33%, 다른 종교 24%가 서부지법 폭력 사태는 ‘저항권 행사’라고 답했다.

시사인 이은기 기자

 

적폐 공무원 몰아내자폭주트럼프, 헌정 흔드나

머스크와 함께 해고 칼춤수습 등 공무원 1만여명 일자리 잃어

찍힌 기관들 사실상 폐쇄 절차사법부 일시 중단명령도 무시

지난 25(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의회의사당 인근 노동부 청사 밖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정부효율부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시위 참석자들은 머스크 대통령을 멈춰야 한다”, “아무도 억만장자를 선출하지 않았다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정부에 해고 칼바람이 불어 닥쳤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연방공무원 인력 감축과 채용 제한을 명령했다. 근무 기간이 1년 미만인 수습사원부터 모조리 해고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지 며칠 만에 공무원 1만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쓸모없는 조직으로 찍힌 기관들은 간판을 내리고 사실상 폐쇄 절차를 밟고 있다.

야당의 협조도, 의회 입법 절차도 생략한 일방통행식 개혁이었다. 사법부가 절차적 정당성을 등을 지적하며 일시 중단을 명령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독주는 멈추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DOGE)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는 정부기관의 인력과 예산을 주무르며 권한을 늘려가고 있다. 의회와 사법부를 패싱한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은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세계 최고 부자의 연방정부 대수술’, 명분도 절차도 논란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연방정부 대수술을 예고해왔다. 그는 연방 공무원을 “swamp”(고인 물 또는 적폐라는 의미)라고 부르며 적폐 몰아내기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세계 최고 부자인 머스크에 정부 구조조정을 맡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머스크가 기업가적 접근방식을 정부기관들에 적용해 대대적인 개혁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다. 기업 운영 경험이 풍부한 머스크가 연방정부 운영도 더 효율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정부 개혁은 전격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해외 원조 부처인 국제개발처를 시작으로 교육부, 국방부, 소비자금융보호국 등에 잇따라 업무 중단을 지시했다. 직원들은 하루아침에 e메일로 강제 휴직 처분을 받았다. 지난 211(현지시간)에는 연방정부 기관마다 인력을 줄이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하고 아직 법적 지위가 불안정한 수습 직원들부터 해고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식 구조조정이 연방법 위반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매슈 카바나흐 조지타운대학 글로벌 보건정책연구소 소장은 CNN미국 헌법은 삼권분립을 명시한 제1·2조에서 정부기관 설립과 폐지를 결정하는 게 의회 권한이라고 명시하고 있다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정부 기관을 폐지하는 건 명백히 위헌이라고 말했다.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 공무원들을 충분한 사전 설명 없이 해고하거나 임기가 보장된 기관장들을 돌연 면직한 사례들 역시 헌법에 명시된 권력 분립 원칙을 묵살한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구조조정의 명분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는 구조조정이 미국인들이 선거를 통해 요구한 사항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난 1AP통신이 NORC 공공업무연구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무원 대량해고를 지지한다는 응답(29%)보다 반대한다고 답한 비율(40%)11%포인트 높게 나타났다.

불필요한 예산 지출을 줄이기 위한 개혁이라는 설명과 앞뒤가 맞지 않는 행보도 계속되고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가 확산하는데도 관련 부처 공무원을 무더기로 해고하거나, 핵무기를 감독하는 국가핵안전청(NNSA) 직원들을 충분한 검토 없이 해고했다가 뒤늦게 복직을 요구한 일 등이다. 겉으로는 개혁을 표방하지만 사실상 눈엣가시였던 기관들에 찍어내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선출직이 아닌 머스크가 정부 개혁을 주도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민주당 측은 최근 아무도 머스크를 선출하지 않았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연방공무원과 시민단체들도 머스크를 축출하라”, “미국에는 왕이 없다고 외치며 연일 구조조정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머스크가 기업 운영 경험은 많아도 정부기관을 다룰 전문성은 부족하다는 점, 구성원과 역할조차 불분명한 DOGE가 각종 정부 기밀에 접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여러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머스크가 정부 예산을 손보는 건 이해충돌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스페이스X, 뉴럴링크 등 머스크 소유 회사들이 구조조정 작업으로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기관들의 고위직이 교체되거나 권한이 축소되면서 머스크의 기업들이 연방정부 조사나 규제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는 지적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머스크의 방대한 사업 제국은 이미 혜택을 보고 있거나,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짚었다.

헌법마저 무시하는 대통령 처음헌정 위기 우려

이런 상황에서 미 사법부는 트럼프 대통령과 머스크의 독주에 일시적으로나마 견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연방정부는 대규모 퇴직 프로그램 시행, 연방정부 부처 폐쇄 등 트럼프 행정부가 밀어붙인 개혁 작업에 줄줄이 제동을 걸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 측이 법원 판결마저 무시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런 조짐은 여러 번 포착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친환경 정책 등에 정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가 의회 예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가로막히자 정치 판사들이라며 반발했다. J. D. 밴스 부통령은 판사가 행정부의 합법적 권한을 통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머스크도 부패한 판사가 부패를 옹호하고 있다. 당장 탄핵당해야 한다며 사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에 재판부가 직접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명령을 제대로 이행하라고 공개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뉴욕타임스 등 미 언론은 권력을 상호 견제해야 할 행정부와 사법부가 정면으로 충돌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헌법학자 등 전문가 사이에선 사법부와 헌법마저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폭주가 헌정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패멀라 칼란 스탠퍼드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이 뭐라고 하건 대통령이 아랑곳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헌정 위기라며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개별적으로 위헌적 행위를 한 적은 있었지만, 헌법이 사실상 무의미한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어윈 체메린스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전문대학원 원장도 우리는 헌정 위기의 한복판에 있다트럼프 2기 행정부는 아직 한 달도 되지 않는 임기 동안 너무나 많은 위헌적·위법적 행위를 저질렀다. 이건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저 지경이었는데윤석열과 김건희를 둘러싼 의문들

윤석열은 어떻게 최고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되짚은 과거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0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10차 변론에 출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현직 대통령으론 사상 최초다. 형사재판 법정에 선 윤석열 대통령. 2월 2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사건 1차 공판 준비기일 및 구속취소 심문은 약 13분 만에 끝났다. 법정에 선 윤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에게 뭔가 귓속말을 하는 등의 모습만 보여줬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헌법재판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탄핵소추 심판을 통해서다. 헌재에서 그가 거론한 말을 듣고 많은 사람은 탄식했다. 계엄 선포의 정당성이나 잘잘못 여부를 떠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자신의 명령을 듣고 수행한 부하들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보며 “어찌 저런 사람에게 2년 7개월 동안 나라의 운명을 맡겼던가” 하는 물음이다. 의문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통 사람들이 그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언론과 같은 미디어를 통해서다. 그러나 적어도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자질 부족’을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저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을 ‘공정과 상식’의 화신(化身)인 양 포장해 내놓은 사람들의 책임은 없을까. 기자가 ‘윤석열’을 가까이서 보고, 그의 말과 행적을 추적한 사람들을 취재에 나선 까닭이다.

현직 중 최초 형사 법정에 선 대통령

“처음 만날 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인수위원장을 하던 시절이다.” 최근 기자는 사적인 자리에서 윤석열 정권 출범 당시 인수위원장을 맡았던 안철수 의원을 만나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대선 직전 안 의원은 2시간 30분에 걸친 단독면담을 통해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했다. 당시 뭔가 이상한 것을 느끼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인수위에는 많은 사람이 일한다. 그중 유독 일을 잘하는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물어보니 당선인과 잘 알고, 처음 캠프를 만든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또 나에게 부탁했다. 당선인과 만날 기회가 있으면 저 열심히 잘한다고 말해 달라고. 그 뒤 대통령과 독대할 기회가 있어 그 사람이 참 일을 잘하더라고 칭찬했다. 그랬더니 바로 다음 날 잘렸다.” 안 의원에 따르면 당시 저런 일이 일어난 사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이 사람이 자신을 배신하고 안철수 쪽에 붙었다’고 판단한 듯하다는 것이 안 의원의 설명이다. 그게 ‘사람을 보는 검사 마인드’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장사에서는 일단 사람을 믿고 시작하는 것이 기본자세인데 ‘검사 마인드’는 다르다는 것이다. 매번 만나는 것이 범죄자, 피의자이니 사람을 만날 때 기본 생각이 ‘저 사람은 범죄자일 가능성을 배제 못 한다’는 의심이라는 것이다. 안 의원은 “이걸 이해하는 데 한참 걸렸다”라고 덧붙였다. 몇몇 단서를 근거로 ‘안철수와의 관계를 의심받아 인수위에서 쫓겨났던’ 이 인사를 접촉할 수 있었다. 2월 18일 기자와 통화한 이 인사는 “안 의원은 좋은 뜻으로 이야기했겠지만 이제 와 다 지난 이야기인데 뭐하러 언급하겠느냐”며 말을 아꼈다.

캠프나 인수위에서 일찌감치 떠난 인사들은 더 있다. 대선 당시 강남일 전 대전고검장(현 법무법인 화우 대표 변호사)은 캠프 법률고문으로 위촉됐다. 윤석열·김건희 부부 주위의 건진법사 같은 무속인의 전횡에 항의하다 뜻이 통하지 않자 그만뒀던 것으로 소문났었다. 독실한 신자였던 강 변호사의 입장에서 ‘무속 라인’의 일방통행을 참을 수 없었다는 후문이다. 이 소문은 사실일까. 법조계 설명에 따르면 강 변호사가 무속 관련으로 마찰을 빚었다는 것은 과장이다. 처가 문제에 대한 대응이나 주요 의사결정에서 여사가 나서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였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그만뒀다는 것이다.

인수위원장 칭찬 다음 날 쫓겨난 까닭

“인간적인 면은 있었기 때문에 당선은 된 것이었다.” 2월 17일 기자를 만난 신용한 전 서원대 석좌교수의 설명이다. 캠프 정책 총괄실장을 역임한 그는 선거가 끝나고 인수위에 참여하지 않았다. (주간경향 1603호, ‘명태균 관련 거짓말에 캠프에서 있었던 일 공개하기로 결심’ 신용한 인터뷰 참조) “인터뷰 때도 말했지만 ‘형이 알아서 할게’와 같은 형님리더십 같은 것이 있다. 사인간의 관계라면 분명히 장점은 있지만, 이번 내란 쿠데타 사건을 보면 그 장점이 엉뚱하게 발현된 것이다. 충암고 라인과 군 내 충청도 인맥을 동원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그래도 왜 쿠데타를 일으켰을까 하는 의문은 남는다. 윤석열의 인생을 보면 순탄하게 살아온 것이 아니다. 검사 시절에도 좌천을 당해 한직으로 떠돈 적이 여러 번이다. 심지어는 사표를 내고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도 ‘짜장면 냄새가 그리웠다’라며 다시 돌아온 것이 아닌가. 그때마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몇 배 이상 가는 식이었다. 그런 경험에서 이상한 신념 내지는 환상이 생겼던 것 아닌가 싶다.”

“윤석열에게 인간적 매력이 있다고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윤석열에게서 술이나 밥을 얻어먹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대일로 만나는 자리에서 윤석열은 격의 없이 자기 말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술값이나 밥값을 아끼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탄핵 이후 나온 책 <망처시하 윤석열>를 쓴 최종희 언어와생각연구소 공동대표의 말이다. ‘망처시하’란 아내에게 쥐여사는 남편의 처지를 빗댄 ‘엄처시하(嚴妻侍下)’의 ‘엄’을 망(亡) 자로 바꾼 것이다. ‘망처’는 원래 죽은 부인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남편을 망치는 아내라는 뜻으로 사용했다고 그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나는 ‘언어가 그 사람이다’고 생각하고 있다. 언어는 어떤 사람의 사고방식, 심리, 선택의 총합이다. 윤석열이 쓰는 말과 부인 김건희가 쓰는 말을 보면 원래 대통령에 당선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런데 막판에 안철수가 단일화해주는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결국 계엄령이라는 최대의 악수를 두게 된 것은 재직기간 내내 그를 억누른 역대 평균 최저 지지율이나 총선 참패 등도 있었지만, 명태균 사건이 결정적인 뇌관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그전까지는 김건희 여사 리스크만 상습적이고 만성적인 문제의 창고였지만, 명태균과 윤석열 본인의 통화까지 고스란히 까발려져서는 더 이상 도망칠 구멍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책에서 그는 “윤석열·김건희 부부에 대한 무속의 영향력이 지대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한다. 2월 19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는 “건진이나 천공 등 무속인이 100일만 버티면 돌아올 수 있다고 말한 것을 윤·김 부부는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책과 비교적 거리가 먼 ‘유튜브 탐닉파’다 보니 천공과 같은 무속인과 일대일 대면도 잦고 윤석열까지도 무속의 의존도가 높은 부부다 보니 안팎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명태균이 말했다는 ‘장님무사, 앉은뱅이 주술사’라는 압축은 참으로 절묘한 요약인 듯싶다. 윤석열이 현실에 대한 오판으로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망언을 일삼는 것이나 탄핵소추 후 관저에의 반강제 유폐 때도 김건희 여사가 한가하게 개들을 끌고서 산책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두 사람은 ‘100일만 버티면’이라는 무속인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있는 듯하다.”

여전히 계속되는 윤석열·김건희 무속 논란

2022년 6월 18일경 한 시민이 용산 대통령 집무실 근처 미군기지 담벼락 주변에 수십장 뿌려져 있었다고 제보한 용(龍) 자가 적힌 부적 / bada.us

올해 1월 14일 새벽, 한 유튜브채널 카메라에 포착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 탄핵반대 시위 현장의 ‘용자’ 부적. /JBC뉴스 캡처

대통령 부부 주변 무속 논란은 건진법사, 천공 등에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수면에 드러나지 않은 논란이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 당시 대검 감찰부장을 지낸 한동수 변호사는 지난 2022년 10월 19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대검은 구름 속에 있는 기관처럼 국민이 그 실정을 알기 어렵다. 지난해 대검 청사 뒤편 웅덩이 근처에 용(龍) 자 부적이 뿌려져 있던 것도 기괴하다.” 한 변호사가 지난해 1월에 펴낸 책 <검찰의 심장부에서>에는 자신이 목격한 ‘부적’에 대해 자세한 부연설명이 실려 있다. “어느 날 점심때 산책하다가 웅덩이 뒤 대나무숲에서 여러 장의 부적을 봤다. 네모난 흰 종이에 검은색 붓글씨체로 용 자 형상이 적혀 있었다. 그때는 경찰서에서 조사받거나 형사 문제로 조사를 받은 사람이 미신적인 의도로 군데군데 뿌려놓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할 때 용산 담벼락에 뿌려졌다는 용 자 부적 크기와 색상, 글 자체가 같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한 우연일까. 묘한 일치다.” 부적은 윤 대통령 탄핵소추가 결정된 뒤인 올해 1월 중순, 한남동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도 등장한다. 관저 부근 육교 옆에 주차돼 있던 트럭의 벽면에 누군가 사방을 두른 용 자 글씨를 붙여놓은 것이다. 필적 등을 비교해보면 한 시민이 대통령관저 주변을 산책하다 발견해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려진 사진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은 어떤 사람들일까. 한동수 변호사는 윤석열 총장 시절 자신이 목격했던 용 자 부적과 2022년 6월 18일경 시민이 찍은 용 자 부적 사진, 그리고 올해 1월 14일 새벽 한 유튜브 채널 영상에 포착된 한남동 부적 사진이 같은 쪽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냐는 기자 질문에 “비슷한 것 같다”라는 대답을 내놨다. “처음 봤을 때 한 7~8개쯤 됐을까. 이렇게 흩어진 것을 보면 이것은 무당이나 무속인의 솜씨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두 번째 용산 대통령실 주변에 뿌려졌다는 부적 사진을 보니 완전히 대조해서 100% 일치하는 것까지 검증한 건 아니지만 동일한 인물의 동일한 글씨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12·3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난 뒤 한 변호사가 책에서 언급한 ‘만일 육사를 갔으면 쿠데타를 했을 것’이라는 과거 윤석열의 발언도 화제를 모았다. 책에서 한 변호사는 윤석열로부터 그 말을 들은 것은 2020년 3월 19일 회식자리였다고 언급했다. “자리에 참석한 다른 사람은 흘려듣는 분위기였다. 당시 총선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총선에 누가 다수당이 될까가 그날 회식의 중심 화제였다. 사람들이 만취하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때는 채널A 사건이 약간 ‘밀당’처럼 되면서 잘 처리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고, 총선도 자기예측대로 흘러갈 것처럼 보이니 (윤석열 당시 총장의) 기분도 좋은 상태였다. 저도 그때는 특별히 충돌하는 것도 없었으니 그냥 믿고 부하들 앞에서 막 이야기한 거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아무튼 대통령이 되자는 생각은 중앙지검 시절부터 자리 잡았다고 본다. 총장이 되는 목표를 세운 뒤 그걸 이룬 뒤엔 대통령이 되는 목표를 세웠고,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영구집권을 꿈꾸는 그런 욕망이 끊임없이 계속 커져 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에너지와 힘은 윤석열의 힘이 아니라 김건희의 힘이라고 본다. 윤석열은 사법시험 하나 보려고 9년 동안 공부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주체적인 욕망의 덩어리를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그건 김건희의 욕망이었다고 본다.”

“사실 윤석열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김건희 여사도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의 시각에서 두 사람을 처음 본 것은 청와대에서 검찰총장 임명할 때 아닌가.” 김성순 시사평론가의 말이다. “지난 대선을 복기해보면 극과 극이 대치한 상황에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복수를 확실히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수 유권자들이 칼잡이 윤석열을 고른 것이었다. 그 사람의 문제가 뭔지는 대선 과정에서는 다 드러나지 않았다. 검증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그는 문제는 탄핵 인용 이후 더 심각해지리라 전망했다. “지금 상황으로 봐서 인용은 불가피하다. 부정선거론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보수 지지자들이 순순히 승복할까 의문이다. 보수 쪽에서 국면은 이미 팩트가 아니라 종교적 신념으로 넘어갔다. 설혹 조기 대선이 치러져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주말마다 보수 지지자들이 거리에 나올 것이다.” 탄핵이 인용되고 형사처벌이 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이 남긴 부정적인 정치적 유산은 오래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황금폰속 윤석열-명태균 전체 통화 육성 공개

20226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윤석열과 명태균씨의 전화통화 녹음 원본 파일

59일 오전 101, 윤석열 당시 대통령 당선자가 명태균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은 대통령 취임식 전날이자 국민의힘 보궐선거 공천 발표 전날이었다. 232초 동안 이뤄진 통화에서 윤석열과 명태균씨는 김영선 전 의원의 공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명태균 : . 명태균입니다.

윤석열 : .. .. 그 공관위에서 나한테 그.. 들고 왔길래, ?

명태균 : .

윤석열 : 내가 김영선이 경선때부터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 그랬는데, ? 뭐 그렇게 말이 많네. 당에서 중진들이 제발 이거는 좀 자기들한테 맡겨달라고, ?

명태균 : 대통령님 그 원래.. .. 하여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윤석열 : 하여튼 내가, 아니 내가 뭐 말은 내가 응? 좀 세게 했는데, ? 이게 뭐.. 누가 뭐 권한이 딱 누구한테 있는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하여튼 그.. 처음에 딱 들고 왔을 때부터 여기는 김영선이 해줘라, 이랬다고. ?

명태균 : 대단히 고맙습니다.

윤석열 : 근데 뭐 난리도 아니야. 지금. ?

명태균 : 그 저.. 박완수 의원하고요, 이준석하고요, 윤상현도 다 전화해 보시면 다 하려고 하는데, 해주려고 하거든요. 김영선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 거의 뭐 만 명을..

윤석열 : 아니 내가 저. 저기다 얘기했잖아. 상현이한테, 윤상현한테도 하고.

명태균 : , 근데..

윤석열 : .

명태균 : 아무래도 윤한홍 의원이 조금 불편한가봐요.

윤석열 : 윤한홍이가?

명태균 : . 왜냐면.. .. 본인이 좀 많이 불편해해요. 그래서 윤한홍 의원이 권성동 의원한테 얘기한거고, 다른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요.

윤석열 :으음.. 아니, 뭐 권성동이는 나한테 뭐라 얘기는 안 하고, ? 윤한홍이도 나한테 특별히 뭐라 얘기 안 하던데?

명태균 : 그 뒤로 해서 다 이..

윤석열 : 근데 뭐 당내에서, ? 하여튼 뭐, ? 이거 가지고 뭐, ? 김영선이 4선 의원에다가 뭐, ?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는데 좀 해주지 뭘 그러냐, ?

명태균 : 대통령님 저 한 말씀 드릴게요. 경남에는 왜 18개 지자체가 있는데 (2018년 지방선거에서) 7개나 뺐겼냐면요. 여성 표하고 근로자 표를 (민주당에) 줬습니다. 근데 70년 동안 경남에 여성 국회의원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여태까지 여성 국회의원이 없었고요. 부산이고 경북이고 대구는 항상 2~3명이 나왔는데 경남에는 그런 카르텔이 좀 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 : 알았어요. 내가 하여튼 저, 상현이한테 내가 한 번 더 얘기할게. 걔가 공관위원장이니까.

명태균 : 제가..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대통령님.

윤성열 : 그래, 그래 오케이.

명태균 : 건강하시고 하여튼. 내일 취임식에 꼭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윤석열 : 그래.

더불어민주당은 20241031일 이 통화의 일부를 공개했다. 당시 공개된 통화 내용은 두 마디로, 윤석열의 공관위에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 줘라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는 말과 명태균씨의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였다.

논란이 커지자 윤석열은 202411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명태균씨와 통화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당시 윤석열은 누구에게 공천을 주라고 얘기한 적도 없다. 솔직하게 다 말씀드리는 거다라고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보궐선거 공천관리위원장이 정진석 비서실장인 줄 알고 있었다당시 국민힘 공관위원장이 윤상현 의원인지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도 윤석열이 대선 경선 과정에서 명씨와 연락을 끊었고, 취임식 전날 윤 대통령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걸려온 축하 전화를 받던 중에 명씨 전화도 받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시사인 주진우기자

 

이재명 사진 기괴하게 올린 국힘..."일베에서나 하는 역겨운 짓

날뛰는 극우세력... 윤석열 파면으로 끝날 문제 아니다

[주장] 대한민국 사회의 극우화를 부추기는 세 가지 원인

지방 고등학교의 평범한 교사일 뿐인데, 자고 일어났더니 하루아침에 유명 인사가 된 느낌이다. 언론과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최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읽었다며,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거다. '믿을 만한' 한두 곳을 제외하곤 모두 거절하고 있다.

"선생님은 최근 극우 세력이 우리 사회에 준동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인터뷰의 시작은 남자 고등학교 교실이 극우화하는 현실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화가 무르익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상이 사회로 넓어졌고, 일개 교사 주제에 사회 비평까지 하는 모양새가 됐다. 하긴 극우화한 교실의 머지않은 미래 모습이 사회의 극우화일 테니 못 할 것도 없다.

참고로, 앞선 기고에서도 썼지만, 요즘 교실이 빠르게 극우화하는 이유 세 가지를 들었다. 이른바 '시험 능력주의'에 길들어 무한경쟁과 차별을 당연시하는 문화와 휴식, 놀이는 물론, 공부조차 유튜브로 하는 세태, 그리고 옳고 그름보다는 재미있고 없음에 경도된 '예능화'가 원인이라고 짚었다. 이는 20~30대 청년 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교사로서 교실의 극우화가 심각하다고 우려하면서도 학교 울타리 너머까지 관심을 쏟진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청산유수로 답변이 튀어나왔다. 역사 교사이자, 시민기자, 그리고 광장의 촛불 시민이라는 나의 '정체성'이 가르쳐준 건지도 모른다.

무너진 역사 교육, 유튜브만도 못한 언론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현장조사가 예정된 5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입구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탄핵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관련사진보기


첫째, 극우화는 역사교육의 형해화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다. 역사교육의 본령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곧, 학창 시절에 제대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극우적 사고에 결코 빠져들 수 없다.

역사가 수능의 필수 영역이자 공무원과 공기업 취업을 위한 필수 과목으로만 여겨져 온 뼈아픈 결과다. 이게 어디 역사 과목만의 문제일까마는 절체절명의 시험을 앞두고 당락의 기준으로 쓰이는 순간 '본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비교를 위한 '점수'만 남게 된다. 여전히 강의실에서 '밑줄 쫙, 별표 땡' 수업이 계속되는 이유다.

사교육 강사는 물론, 학교 교사들조차 아이들의 내신 등급 올리는 걸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지금껏 아이들에게 '역사'가 아닌 '시험 기술'을 가르쳐 온 것이다.

사교육 강사와 학교 교사의 무책임 속에 역사교육의 형해화를 부추기는 요인이 더 있다. 예컨대,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와 내용은 시험에 출제하지도 않을뿐더러 애써 가르치지도 않고, 사사건건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 규정을 들이대 스스로 움츠러들도록 하는 것이다.

껍데기뿐인 역사교육을 받고 성인이 된 아이들의 올곧은 역사의식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김구를 공산주의자로 낙인찍고, 유신 독재로 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를 찬양하며, 광주 학살을 저지른 전두환조차 영웅시하는 '젊은 괴물'들을 우리 교육이 키웠다면 과연 억측일까.

둘째, 사회적 공기(公器)이기는커녕 오로지 자사의 이익을 위해 진실마저 외면하는 '기레기' 언론들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일선 기자들조차 더는 '기자 정신'을 입에 올리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그들은 '유튜브만도 못한 언론'으로 전락시킨 장본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정론직필'과 '불편부당'을 외쳐댄다. 정치적, 경제적 권력에 휘둘리거나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기사를 작성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한낱 미사여구에 불과하다는 건 온 국민이 다 아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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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데일리 보도와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하고 극우 활동을 하는 A씨 ⓒ 스카이데일리, 유튜브 갈무리관련사진보기


'할 말을 하는 1등 신문'을 제치고 극우 세력의 '정론지'로 우뚝 선 <스카이데일리>의 인기몰이는 '기레기' 언론들이 자초한 슬픈 자화상이다. 명백한 가짜 뉴스조차 먼 산 불구경하듯 나 몰라라 하는 언론이 태반이다. '동업자 정신'이 '기자 정신'이라는 조롱마저 쏟아지고 있다.

'기계적 중립'도 도를 넘어섰다. 믿기 힘들겠지만,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사람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도라고 소개하면서 근거랍시고 이렇게 말했다. <스카이데일리> 같은 보수 신문보다 중도에 가까운 <조선일보>를 계속 구독하고 있다고.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극우 언론이 활개를 치면서 <조선일보>가 중도적 언론으로 인식되는 '웃픈' 현실이다. 윤 대통령 탄핵 관련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지금 우리 언론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는 건 가당찮다. '상식적인' 언론과 '몰상식한' 언론만이 있을 뿐이다.

셋째, 사법적 단죄의 '허약함'도 우리 사회 극우화를 부추기는 핵심 요인이다. 추상 같은 법질서를 순식간에 종이호랑이로 만드는 게 '표현의 자유'다. 언제부턴가 '표현의 자유'는 극우 세력의 '도깨비방망이'가 되어 공동체 존속을 위한 헌법의 가치와 정신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5.18 당시 계엄군의 총칼에 시민들이 학살된 광주 시내 곳곳에 '5.18은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렸다. '5.18 유공자는 가짜'라는 주장도 대문짝만하게 적어놓았다. 더욱 황당한 건, 현수막을 훼손하면 정당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된다는 글귀다.

역사적 평가는 물론, 사법적 판단마저 오래전에 끝난 사안이다. 이를 부정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건 괜찮고, 해당 현수막을 훼손하면 처벌한다는 게 대체 말이 되는가. 그들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배경엔 사법부가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5.18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건,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반국가적 망동'이다. 또, '가짜 유공자' 운운하는 건, 국가보훈부의 권능을 노골적으로 폄훼하는 행태다. 그들이야말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로 든 '반드시 척결해야 할 반국가 세력'인 셈이다.

사법부는 이태 전 일제강점기 '위안부'가 '매춘의 일종'이라는 망언을 쏟아내고, '자발적 매춘부'로 규정한 대학교수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상식에 반할지언정 '표현의 자유'는 폭넓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버젓이 5.18에 대해 왜곡과 폄훼를 일삼는 저들의 '용기'도 여기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날 뛰는 극우,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24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국민의힘 김상욱 의원이 유영봉안소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관련사진보기


며칠 전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이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참배했다. 지난 15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대규모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해 광주 시민들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그는 "5.18 희생자와 유가족, 광주 시민들에게 송구한 마음"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45년 전 신군부의 비상계엄과 학살의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광주에서 '계몽령' 운운하며 비상계엄 선포를 옹호하는 집회를 여는 건 희생된 영령들을 욕보이는 짓이라는 거다.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야말로 보수의 가치라고 강조했다. 보태고 덜 것 없는 당연한 역사 인식이다.

그런데도 그는 소속 정당과 일부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당위조차 극우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손바닥 뒤집듯 내팽개치고, 공론의 장을 마련하기는커녕 '경마식 보도'로 갈등을 부추기는 언론이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고 있다. 아예 당에서 내쫓을 기세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극우 세력이 물 만난 고기 마냥 미쳐 날뛰고 있다. 그들이 공격하는 대상은 여야와 지역,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종교와 돈, 혐오로 무장한 그들에 의해 진실이 조롱당하고 상식이 무너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파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극우 세력의 준동에 대한민국이 백척간두에 섰다.

서부원(ernesto) 오마이뉴스

 

삶에는 여러 도전이 있다. 돈은 기회를 만들고 인생의 난이도를 낮춘다. 돈이 없는 아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에 도전하지만 녹록치 않다. 누군가는 쉽게 오를 수 있는 계단이지만, 스스로의 노력밖에 믿을 구석이 없는 아이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겨우 몇 단계를 넘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잔인한 사실은 도전의 실패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실패가 치명적일 수도 있다. 뒷받침이 되는 재력이 있는 아이는 수능을 망쳐도, 사업에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일 뿐이지만, 재기 불가능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은 대개 가난한 자의 몫이다. 시간과 기회마저 돈으로 살 수 있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라는 웃지 못할 말들이 떠돈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은 값비싼 비용이 든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지 못하고 좌절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도 가장 가엽고 슬픈 대상은 노숙인이라고 생각한다.

노숙인은 집이 없고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가난할 권리>, 13페이지)

 

김새론 죽음에 악플탓하는 언론언론은 문제 없나

▲ 25세의 나이에 고인이 된 배우 김새론씨와 관련한 사망 전 보도와 사망 후 보도.위부터 김새론 배우 사망 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과 김새론 배후 사망 후 파이낸셜뉴스, 조선일보, OSEN 기사 제목. 정리=금준경 기자. 디자인=안혜나 기자.  ⓒ연합뉴스

<열애설→빛삭, SOS 신호였을까>. 지난 17일 OSEN 기사입니다. 이 신문은 한 달 전인 지난달 19일 <김새론 음주운전 후 3년…이젠 얼굴로 무력 시위, 반성 없는 자숙> 기사를 썼습니다.

<25세 배우 김새론의 비극… 다시 불거진 악플의 폐해> 조선일보의 지난 18일 기사입니다. 조선일보는 지난해 3월27일 <‘김수현과 밀착샷’ 김새론, 입장 밝힌다더니 “노코멘트”> 기사를 썼습니다.

김새론 배우가 세상을 떠나고, 많은 보도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언론은 ‘유체이탈’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악플러 탓’을 하는 언론이 많습니다. 조선일보는 지난 17일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합니다. “생활고를 겪어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모습이 공개되자 일부 악플러는 ‘벌어 놓은 돈이 얼만데 생활고’냐고 손가락질했다.” “생전 김씨는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활동을 활발히 했다. 그럴 때마다 악플러들은 ‘SNS병 말기 환자’ ‘정신 연령이 너무 낮은 듯’ 같은 비난을 했다.”

맞습니다. 악플러의 문제 심각합니다. 하지만 언론이 악플러 탓만 하면 되는 걸까요? 김새론씨는 끊임없이 악성 보도와 댓글, 유튜버들의 먹잇감이 돼왔습니다. 2023년 그는 기자들 앞에서 언론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들도 기사가 너무 많이 나왔다. 무서워서 뭐라고 해명을 못 할 것 같다”고 말이죠.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네이버 주요 언론사 49곳과 스포츠연예 24개 언론을 분석한 결과 2022년 5월18일부터 2025월 2월19일까지 ‘김새론’ 기사는 5082건에 달했습니다. OSEN이 302건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엑스포츠뉴스 265건, 스포츠조선 215건, 스타뉴스 183건, Newsen 162건, 스포츠투데이 159건 순입니다. SNS활동 일거수일투족을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가 적지 않았고요. 유튜버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기사화한 곳도 많았습니다. 김새론씨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을 찾아간 언론도 있습니다.

악플을 기사 제목에 담고, 악플을 유도하는 기사를 낸 건 언론이었습니다. 김새론씨가 SNS에 사진을 올리기만 해도 댓글에는 “못 고치는 SNS병” 등 각종 비난이 쇄도했고, 이 댓글을 언론이 고스란히 보도한 것이죠. 악성 보도와 댓글의 악순환은 점점 더 커졌고,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특정 가수의 SNS 게시글에 ‘좋아요’를 누르기만 해도 기사로 이어졌고, 김수현 배우와 과거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 “셀프 열애설”, 셀카 사진을 올리면 “얼빡샷”, 셀카를 삭제하면 “빛삭”(빛의 속도로 삭제) 했다고 기사화를 했습니다.

악플러 탓뿐 아니라 언론의 자성도 필요한 시점입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번 일을 계기로 ‘악플’을 지적하는 기사를 냈습니다만 이들 언론은 과거 김새론씨의 SNS 게시물을 논란처럼 다루는 기사를 썼습니다. 반면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언론 문제도 조명해 차이를 보였습니다. 

관련기사-25세 김새론 배우의 죽음, 언론의 자성 그 이상이 필요하다
심지어 고인이 된 이후에도 문제적 기사가 나왔습니다. 연예매체뿐 아니라 주요 뉴스통신사에서 <김새론 사망일, ‘셀프 열애설 상대’ 김수현 생일>(뉴스1), <김새론, 김수현 생일에 사망…열애설 재조명>(뉴시스) 등 기사를 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연예인을 향한 같은 보도 행태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s://www.mediatoday.co.kr)

 

한국 민주주의 지수, 윤석열 친위쿠데타로 하락

'이코노미스트' EIU 조사 세계 민주주의 지수

일본 대만보다 한 단계 낮은 범주로 전락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대체로 8점 이상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 7.9, 지난해 7.8

민중봉기로 독재자 몰아낸 방글라 올해의 나라


'이코노미스트' 조사분석 전문 자매회사 EIU 발표 '세계 민주주의 지수'. 청색 쪽이 민주주의 지수 점수가 높고 붉은 색일수록 점수가 낮다. 한국은 2023년까지 대체로 청색이었으나 지난해 윤석열 친위쿠데타로 청색보다 한단계 낮은 옅은 회청색('결함이 있는 민주주의')으로 바뀌었다. 일본 대만 호주 뉴질랜드는 청색('완전한 민주주의')    이코노미스트 2월 27일

“한국은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고 서둘러 취소하면서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 범주에서 탈락했다.”

27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조사분석 전문 자매회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세계 최신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이 전년도(2023년)까지의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국가범주에서 한 단계 아래인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로 떨어졌다.

국가들의 연도별 순위와 점수 중에서 한국 것만 표시한 것. 2006-2007년의 7.9점 이후 8점 이상을 받다가 박근혜 정권 때인 2016년에 7.9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8점대로 올라간 뒤 2021년 문재인 정권 때 8.2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지난해 윤석열 친위쿠데타로 가장 낮은 7.8점을 받았다.   이코노미스트 2월 27일

 

대륙/지역별 각 국가 민주주의 범주별 분포. 아시아/호주지역에서 한국은 청색인 일본 대만 호주 뉴질랜드보다 옅은 회청색 점으로 표시돼 있다.    이코노미스트 2월 27일

한국, 일본보다 한 단계 낮은 범주로 전락

이에따라 이를 색깔별로 표시하는 세계지도에서 한국의 색은 짙은 청색에서 그보다 옅은 회청색으로 바뀌었다. 아시아에서는 뉴질랜드, 호주, 대만, 일본만 짙은 청색이며, 한국은 윤석열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들 나라와 같은 범주에 속해 있었다.

세계 평균점수도 지난해가 최하

EIU는 선거 과정, 다원주의, 정부 기능, 정치 참여, 정치문화, 시민적 자유 등 5가지 기준을 토대로 해마다 세계 167개 국가/지역별로 0점에서 10점까지의 점수를 매겨 발표해 왔다. EIU는 이 점수에 따라 167개 국가/지역들을 완전한 민주주의(Full democracy),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Flawed democracy), 혼합체제(Hybrid regime), 권위주의 체제(Authoritarian regime)의 4가지 범주로 나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지난해에는 70개가 넘는 나라에서 선거가 치러져, 연간 가장 많은 선거가 치러졌지만, 2006년부터 연도별 세계 민주주의 지수를 발표해 온 지 20년만에 전반적으로 가장 점수가 나쁜 해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때 7.9, 지난해 7.8

한국은 EIU의 민주주의 지수 조사가 시작된 2006년부터 이명박 정권 첫해인 2007년에 7.9점(도표는 이때까지를 2년 단위로 묶어 발표)을 받은 뒤 2008년부터 줄곧 8점 이상을 받다가 박근혜 정권 때인 2.16년에 7.9점을 받은 뒤 다시 8점 이상을 받았다. 조사 시작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 민주주의 지수의 국가별 순위는 32위를 유지했으나 연도별 점수는 이처럼 조금씩 바뀌었다. 문재인 정권 때인 2021년에 가장 높은 8.2점을 받았고, 윤석열 정권이 출범한 2023년에도 8.0점을 받는 등 8점 이상을 받다가 윤석열 친위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해에는 7.8점으로, 조사가 시작된 이후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일본은 8.5점으로 16위였다.

 

윤석열 친위쿠데타로 분열된 대한민국.  이코노미스트 1월 7일

대통령이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

12.3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2주일째인 지난 1월 7일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관련 기사 제목은 “대한민국 대통령, 체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에 도전”이었다. 그 기사는 윤석열의 계엄령 시도와 실패 뒤 한국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면서, 하나는 민주주의의 '취약성'에 관한 것이고, 다른 또 하나는 민주주의의 '회복력'에 관한 것이라며, 쿠데타에 맞선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이 쿠데타를 무산시키고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며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도 회복력이 취약성보다 우세해 보인다고 썼다.

쿠데타를 온몸으로 막아낸 시민과 국회가 만들어낸 이 '회복력' 덕에, 점수가 그나마 그 정도로 떨어지는데 그쳤고, 민주주의 지수 순위는 유지됐다.

하지만 그럼에도 12.3 이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이 표면화됐고, 1월 3일에는 윤씨를 반란혐의로 체포하러 간 경찰과 대통령 경호원의 대치상황이 심각한 수위로 치달았다.

그 1월 7일 기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윤 씨는 법의 수호자로서 먼저 이름을 알렸고, 정치 경력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 검찰청에서 승진했다. 그는 계엄령 선언에 대한 ‘법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는 정확하게 그렇게 했고(책임을 회피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과 나라에 더 큰 수치를 안겨 주었다. 대통령의 거주지는 치외법권적 주권지역인 외국 대사관이 아니다. 자신의 거처가 놓인 땅의 법률를 따라야 한다. 윤 씨는 분명 그 원칙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50여 일이 지난, 헌재의 탄핵심판 변론 일정까지 끝난 지금까지도 윤 씨는 치외법권 지역에 사는 사람처럼 행동하며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연장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표현에 따르자면, 수치스럽게도 그는 헌재 변론 최후진술에서 “법적 또는 정치적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1월 7일 기사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초기 공격에서 살아 남았을지 모르지만 미래를 위한 싸움의 끝은 아직 멀다”로 끝맺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1위 노르웨이, 2위 뉴질랜드 빼고 10위까지 유럽국

올해 EIU 조사에서 점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로 9.81점을 받았고, 이는 16년 연속 1위 기록이다. 그 다음이 9.6점 뉴질랜드이며, 3위는 9.4점을 받은 스웨덴이고 이하 10위까지가 모두 유럽국가들이다.

가장 점수가 낮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0.25점)으로, 2021년 이후 연속 4년째 최저 점수를 받았다.

‘올해의 나라’는 독재자 몰아낸 방글라데시

점수 변화가 가장 큰 나라는 방글라데시인데, 4.4점으로 100위였다. 순위가 25단계나 떨어진 이 나라는 지난해 장기집권자였던 셰이크 하시나가 민중봉기로 권좌에서 쫓겨난 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경제학자 무함마드 유누스가 임시정부를 이끌며 민주주의를 재건하려 애쓰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빈민들에게 무담보 소액대출 운동을 하며 그라민 은행을 운영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누스의 과도정부가 질서를 회복하고 경제를 안정시켰다며 방글라데시의 장래를 낙관했다. 그런 이유로 이 나라를 2024년 ‘올해의 나라’로 선정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계속 하향 추세를 보여 온 세계 민주주의 지수.. 167개국 대상 조사. 10점 만점.   이코노미스트 2월 27일

세계평균 5.17점, 세계인구 6.6%만 완전 민주주의

세계 평균은 2015년 5.55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지난해는 5.17점으로 최저치를 기록했다. EIU의 기준에 따르면, 지금 전 세계 인구의 6.6%만이 완전한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다. 이는 10년 전 12.5%였던 것에 비하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한국도 지난해 윤석열 쿠데타 탓에 이 완전한 민주주의를 누린 세계 인구수를 줄이는데 가세했다.

지수 상위 10개국 중 9개국이 있는 유럽조차도 눈에 띄는 하락세를 보였다. 프랑스는 8.0점, 26위로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로 격하됐다. 이는 주로 지난해 6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행한 조기 선거에서 어떤 단일 정당이나 블록에도 의회 다수당을 확보하지 못해 정부의 신뢰성이 떨어진 상황을 반영한다.

미국 또한 7.8점, 28위로 결함이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남았고, 트럼프 2.0이 시작된 2025년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

세계 40% 인구가 권위주의체제 주민

인구의 약 40%(5명 중 2명)는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살아가고 있다. 선거 폭력으로 얼룩진 파키스탄은 2023년엔 3.25점이었으나 지난해엔 2.84점으로 떨어졌으며, 5번째 임기 중인 블라디미르 푸틴의 장기 독재가 이어지고 있는 러시아는 2점으로 150위, 중국은 2.1점으로 145위였다./ 시민언론민들레 

"진화위서 방치된 민간인 학살 최소 345, 이옥남에 의해 보류된 것"

공무원노조 진화위지부 자체 조사 결과 발표... "추세대로면 2천 건 이상 미처리" 우려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 조사 기한이 오는 5월 만료되는 가운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사건 중 최소 345건이 방치되고 있다는 노조 자체 조사 결과가 나왔다.

조사를 실시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진화위지부(아래 노조)는 "조사관이 사건 조사를 완료하였지만 이옥남 진화위 상임위원의 검토 과정에서 민간인 학살 사건 수백 건이 보류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임위원은 지난해 11월 '충남 남부지역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의 희생자 백락정씨에 대한 '종전 진실규명 결정 취소' 안건을 제1소위 논의도 없이 곧바로 전체위원회에 상정하려 했다가 운영 규칙을 위반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노조는 "보류된 사건 상당수가 최소한의 심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상정되지 못하고 있으며, 다른 위원들의 심의 의결권마저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전수 조사하면 보류 건수 더 많을 것"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지난해 7월 2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진화위의 파행 운영을 문제삼으며 농성하는 모습. ⓒ 이정민관련사진보기


노조는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6일까지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담당하는 조사관 1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21개 검토 사건 중) 345개 사건이 이 상임위원에 의해 보류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노조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류된 미처리 사건 중 국군·경찰 등에 의한 학살 사건은 331건이었으며 적대세력(인민군, 좌익 등)에 의한 학살 사건은 14건이다. 사건 발생 지역 간 보류 비율의 차이는 더 크다. 전남·전북 지역 학살 사건 중 총 319건이 보류됐고, 경남·경북 지역은 15건이 보류됐다.

보류 사유 중 가장 많은 사례(50.9%)는 '제적등본, 족보 등 사망 기록의 부재 혹은 불일치'였다. 이에 대해 노조는 "좌익으로 낙인찍힐 우려 때문에 일부러 사망신고를 안 하거나 늦게 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는 법원이 제적등본 사망일이 다른 경우에도 희생 사실을 인정하는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노조는 또 "조사에 응답한 일부 조사관의 사례"라며 "전수조사를 한다면 실제 보류 건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노조는 지난 11일 조사관 토론회를 열어 실태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이어 지난 21일에는 진화위 내부망 자유게시판에 '조사1국 미처리 사건에 대한 제언'을 게시하기도 했다.

제언에는 ▲ 조사1국 간부 및 조사관들에게 보고서에 대한 지시 사항과 의견은 전자문서시스템을 통해 전달돼야 한다 ▲ 심의 과정에서 담당 조사관 의견이 반영될 방안 마련을 촉구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진화위의 조사 기한은 오는 5월 26일까지다. 오는 4월 23일엔 5명 위원의 임기가 만료된다.

노조는 "국회 추천과 선출, 대통령의 임명이 제때 이뤄지기 힘든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마지막 한 달은 사건 심의도 못하는 상황이 예견된다"면서 "1월 말 현재 조사 진행 중인 민간인 학살 사건은 3775건이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2000건 이상이 미처리 될 것으로 추산된다"고 덧붙였다./ 오마이뉴스

그러나 실상은 아래와 같다. 

부도 쓰나미에 건설업계 휘청유동성 확보 비상

신동아건설·삼부토건 이어 안강건설도 도산

시평 100위 내 부채비율 200%넘는 기업

롯데건설 본사 부지 매각 등으로 현금 확

고통 따르더라도 건설업계 구조조정 시급

 

 

세금보다 감면액 더 많은 기업 5년 새 3이래도 감세?

20192.8만 개20238.4만 개

대기업도 886개에서 1322개로 껑충

법인세 공제 더 늘려봐야 효과 없어

그런데도 국민의힘·민주당은 감세 경쟁

지금도 조세부담률 낮아감세 자제해야

 

극우의 물결 일으킨 더 깊은 뿌리

급작스럽게 몰아닥친 극우의 물결을 보면서, 많은 지식인들은 반()중국, ()소수자 정서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그 정서가 폭발하도록 해준 더 깊은 뿌리가 존재한다.

천관율 (언론인) 시사인

 

내란동조' 보도 가장 많은 언론은 YTNTV조선

언론정보학회 세미나, 주류 언론 기사 분석 결과

건수로 YTN이 최다, 비중은 TV조선이 최고

채널매경·조선·중앙도 '내란동조' 비중 높아

'내란비판' 최고는 경향·MBC·JTBC·한겨레 순

공영언론 KBS·연합뉴스 어정쩡한 중간 순위

내란 완전종식하려면 내란동조 언론 가려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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