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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5.1.27~

by 이성근 2025. 1. 26.

탄핵 침묵하던 2030 남성왜 뒤늦게 거리로 몰려나오나

침묵하던 젊은 남성들, 왜 시위 나서나

지난달 14일 오후 3시, 여의도 국회 앞은 형형색색 응원봉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윤석열 OUT’ ‘윤석열 탄핵’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젊은 여성들은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응원봉을 흔들었다. 이날 시위 분위기를 주도한 것은 20·30 여성들이었다. 촛불 대신 응원봉을 들고 거리로 나온 20·30 여성들이 K팝을 부르며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모습은 해외 언론에서도 큰 화제가 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20·30 여성들의 시위 주도는 통계로도 확인됐다. 서울시는 KT와 협업해 매일 1시간 단위로 각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연령별·성별로 추정한 생활인구 데이터를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에 따르면 14일 오후 3시 여의도에 모인 인파는 44만5900여 명, 한 달 전 같은 시간대(11월 14일 오후 3시)의 19만700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그중 20대 여성의 비율이 15.6%로 가장 높았다. 뒤를 이은 것은 30대 여성(11.5%)이었다. 집회 참가자 4명 중 1명(27.1%)은 20·30 여성이었다는 이야기다. 반면 20대 남성은 3.9%, 30대 남성은 6%에 그쳤다. 20·30대 남성들의 ‘정치적 침묵’을 놓고 ‘강남역 10번 출구 여성 살인 사건’과 미투 운동 등 ‘연대할 의제나 공간이 적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탄핵 국면 2030 남성, 여당 지지율 상승
그럴까. 1개월 뒤 상황은 달랐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집행됐던 지난 15일 오전 서울 한남동에는 응원봉이 아닌 태극기와 성조기를 쥔 20·30 남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나 있었다. 20·30 남성들에 대한 주목도가 고조된 것은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였다. 이날 유튜브를 통해 중계된 법원 내 폭력 행위는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이와 관련해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66명 중 20·30대는 43.9%를 차지했다.



그래픽=이현민 기자 dcdcdc@joongang.co.kr

데이터는 어땠을까.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에 따르면 15일 오전 10시 윤 대통령의 관저가 있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는 4만8300여 명이 모여들었다. 한 달 전(2만5600명)보다 2배 가량 많은 숫자였다. 탄핵 시위 때와 달랐던 것은 20대 남성의 비율이 6.5%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30대 남성(10.7%)도 마찬가지. 이들의 합(17.2%)은 탄핵 때(9.9%)보다 2배 정도 늘었다. 이런 경향성은 19일 새벽 ‘서울서부지법 난입’ 사태에서도 이어졌다. 시위대가 법원으로 난입하기 직전인 18일 오후 11시 같은 데이터 분석 결과에서 20대 남성과 30대 남성은 각각 6.1%, 9.4%를 기록했다. 역시 여의도 탄핵 시위보다 늘어난 수치였다. 국회 앞 탄핵 찬성 시위에서 드러난 20·30 여성의 결집보다 강도는 약했지만, 당시 반대 시위 대신 ‘침묵’을 택했던 것과는 확연히 대비되는 움직임이었다. 20·30 남성들은 왜 ‘뒤늦게’ 거리로 나왔을까.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 세 번째 변론 기일에 출석한 21일 오후 2시쯤 서울 종로구 안국동 헌법재판소 인근 집회엔 20·30 청년들이 하나같이 “탄핵 반대”라 외치고 있었다. 인근에서 이를 지켜보며 합류를 망설이던 최모(26)씨는 “처음 계엄 뉴스를 봤을 때는 ‘너무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윤 대통령 욕을 했다”며 “하지만, 유튜브 채널들을 통해 알아보니 야당의 과도한 탄핵 몰이와 헌법질서 파괴에 맞서기 위해 부득이한 비상조치였다는 걸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정모(22)씨는 “지난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세운 윤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 철회했다”면서도 “하지만, 윤 대통령이 탄핵당하자 페미니스트들이 ‘이때다’ 싶어 뛰쳐나오는 걸 보고 그냥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계엄 환영’이라고 인스타그램에 올려 논란이 됐던 뮤지컬 배우 차강석(35)씨도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진행한 그는 “이번 일로 일자리(강사)도 잃었지만, 나라가 공산화되면 내가 예술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대 남성(국민의힘 22%, 더불어민주당 25%)과 30대 남성(국민의힘 23%, 민주당 34%)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민주당보다 낮았다. 하지만 1월에는 20대 남성(국민의힘 37%, 민주당 18%)과 30대 남성(국민의힘 35%, 민주당 28%)의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폭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이 기간 ‘신남성연대’ ‘신의한수’ 등 우파 스피커 역할을 하는 유튜브 채널이 적잖게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본다. 이중 계엄 사태 이후 급부상한 것은 ‘그라운드씨(Ground C)’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나온 것으로 알려진 운영자 김성원씨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의 부정선거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민주당이 내란을 조장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계엄사태 당일인 12월 3일 기준 28만 명이었던 그라운드씨의 구독자는 24일 현재 72만5000명으로 늘었다.

14일과 21일 만난 시위대는 “보수 신문은 다 절독했다” “미국 유학파 출신이 운영하는 그라운드씨가 믿음이 간다”며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차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는 촛불시위에 참여했는데, 지나고보니 언론에서 제대로 말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지금은 유튜브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들은 “18~19일 서부지법 사태 때도 현장에 있었다”면서 폭력 사태에 대해 일부 인정했지만, “외부 세력이 조장했다”며 선을 긋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헌법재판소 인근 재동초 사거리서 ‘탄핵 반대’ 손피켓을 들고 있던 조모(33)씨는 “당시 시위대 안에서 선동하는 ‘프락치’들이 진짜 많았다. 집회를 말아먹으려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차씨는 “당시 시위대가 감정이 격앙되기도 했다”면서도 “분명히 앞에서 (과격 행동을) 주도한 세력들이 있었고 굳게 닫혀있던 (법원의) 철문(후문)이 너무 쉽게 열린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태령에 트랙터를 몰고 오는 등 이전부터 무력시위를 했던 극좌파들이 많았다. 적어도 우파는 서부지법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집회해왔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는데, 직무도 정지된 대통령을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한 게 납득이 안 된다. 법원이 국민의 분노를 유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원 난입 구속영장 44%가 2030 남성

반면 서울시 데이터에 따르면 20·30 남성들은 여권 성향의 시위 참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21일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남성들이 윤 대통령 지지 집회를 갖는 모습. [연합뉴스]

전문가들은 20·30 남성들이 거리로 나온 데 대해 다양한 요인을 꼽고 있다. 젠더 이슈 외에도 민주당 발 카카오톡 검열 논란이나 이재명 대표의 차기 대선 승리 가능성 등이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지지했던 20·30 남성들을 다시 결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탄핵 국면과 조기 대선 국면이 함께 열리면서 지지율 1위인 이 대표와 과반 의석의 민주당이 강자로 비치게 됐다”며 “20·30 남성은 탄핵을 반대한다기보다 진보·보수 구도 효과가 작동해서 집회에 나간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대표도 “계엄 사태로 윤 대통령이 몰락하면서 무게 추가 급격히 야권으로 기울자 반페미니즘, 반중국 정서 등이 강한 20·30대 남성의 위기의식이 폭발했다”고 분석했다.

동양철학자이자 작가인 임건순씨는 “20·30 남성들은 군 복무 등으로 인해 같은 나잇대 여성들보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면서 “이런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민주당에는 없다고 보기 때문에 윤 대통령이나 국민의힘 쪽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치권의 책임을 꼬집는 목소리도 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서부지법 사태와 관련해 “극우 유튜버 뿐 아니라 정치인들이 시위에 나와 이들을 지지하고 인정해준 것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 줬다”고 비판했다.

중앙 유성운, 장서윤, 신수민 2025. 1. 25

 

폭동이 사법부 탓? 조선일보 '내란 물타기' 노림수는

내란사태 50, 조선일보 프레임


▲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다룬 조선일보 1면 기사와 사설 제목. 자료=조선일보, 그래픽=이우림 기자

초유의 내란사태에 보수신문도 등을 돌린 것 같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3분 미디어비평’ 영상을 통해 조선일보의 프레임을 파헤칩니다.

내란죄와 탄핵 여부 등에 ‘모호성’을 유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여권은 질서있는 퇴진과 ‘한동훈-한덕수 국정공동운영안’을 제시합니다. 동아·중앙도 비판하고 나섰지만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을 통해 적극 소개합니다.

‘민주당탓’ 프레임의 기사는 쏟아지다시피 했습니다. 지난 1일~7일 조선일보 사설 중 민주당·이재명 대표 비판이 주인 사설은 6건인 반면 윤 대통령 비판이 주인 사설은 3건에 그쳤습니다. 나훈아씨의 “왼쪽 니는 잘했나” 발언은 9대 일간지 중 조선일보만 1면에 보도했습니다.

‘불법시위’ 프레임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윤 대통령 체포 다음 날인 지난 6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는<법이 무너졌다>였습니다. 양쪽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쪽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프레임은 ‘원인제공’의 화살을 돌려 피해자 탓하기 입니다. 지난 20일 사설을 통해 편향적인 법원의 판결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사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그간 폭력시위를 다룬 조선일보의 태도와는 상반된 논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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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튀는 1면, 나훈아 “왼쪽, 니는 잘했나” 부각
조선일보, 내란죄 입장 모호하고 尹 체포 거부엔 “극단 정치” 양비론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표가 대선모드에 돌입했다고 비판합니다만 조선일보도 대선모드에 돌입한 건 아닐까요? 

“양비론은 언뜻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책임 소재를 흐려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12일 박영환 경향신문 정치부장의 칼럼입니다. 조선일보 선임기자 출신인 최보식 최보식의언론 편집인은 지난 2일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과 나라의 실패에 대한 책임은 조선일보도 상당한 몫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영상] 폭동이 사법부 탓? 조선일보 ‘내란 물타기’ 노림수는 < 사회 < 금준경, 윤수현 기자 - 미디어오늘

 

[영상] 폭동이 사법부 탓? 조선일보 ‘내란 물타기’ 노림수는 - 미디어오늘

내란 사태 후 50일이 지났습니다. 초유의 사태에 보수신문도 등을 돌린 것 같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3분 미디어비평’ 영상을 통해 조선일보의 프레임을 파헤칩니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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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다룬 조선일보 1면 기사와 사설 제목. 자료=조선일보, 그래픽=이우림 기자

초유의 내란사태에 보수신문도 등을 돌린 것 같았지만 조선일보의 보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3분 미디어비평' 영상을 통해 조선일보의 프레임을 파헤칩니다.

내란죄와 탄핵 여부 등에 '모호성'을 유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자 여권은 질서있는 퇴진과 '한동훈-한덕수 국정공동운영안'을 제시합니다. 동아·중앙도 비판하고 나섰지만 조선일보는 1면과 사설을 통해 적극 소개합니다.

'민주당탓' 프레임의 기사는 쏟아지다시피 했습니다. 지난 1~7일 조선일보 사설 중 민주당·이재명 대표 비판이 주인 사설은 6건인 반면 윤 대통령 비판이 주인 사설은 3건에 그쳤습니다. 나훈아씨의 "왼쪽 니는 잘했나" 발언은 9대 일간지 중 조선일보만 1면에 보도했습니다.

'불법시위' 프레임도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윤 대통령 체포 다음 날인 지난 6일 조선일보 1면 톱기사는<법이 무너졌다>였습니다. 양쪽을 비판하는 것 같지만 윤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쪽에 대한 비판이 많습니다.

이어지는 프레임은 '원인제공'의 화살을 돌려 피해자 탓하기 입니다. 지난 20일 사설을 통해 편향적인 법원의 판결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사태의 원인일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습니다. 그간 폭력시위를 다룬 조선일보의 태도와는 상반된 논조입니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표가 대선모드에 돌입했다고 비판합니다만 조선일보도 대선모드에 돌입한 건 아닐까요?

"양비론은 언뜻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책임 소재를 흐려 내란 세력을 비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난 12일 박영환 경향신문 정치부장의 칼럼입니다. 조선일보 선임기자 출신인 최보식 최보식의언론 편집인은 지난 2일 칼럼을 통해 "윤 대통령과 나라의 실패에 대한 책임은 조선일보도 상당한 몫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미디어오늘

트럼프가 윤석열 탄핵을 반대한다고?

미국 내 일부 교회 커뮤니티와 카톡방을 중심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탄핵을 반대한다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트럼프가 한국의 부정선거도 밝혀낼 것이라 주장한다.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최고 실세로 떠오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가 지난 1월9일 한국의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 사진을 공유하면서 “놀랍다(Wow)”라고 표현했다. 사진 속 집회 참가자가 들고 있던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라는 손팻말은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선거 결과에 불복하며 외친 구호였다.

2021년 1월6일 벌어진 의사당 점거 폭동은 선거 결과에 대한 폭력적 불복이라는 점에서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자국민에 의해 발생한 점거 폭동은 미국 민주주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됐고, “죽기 살기로 싸워라”라며 폭력 시위를 독려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도 그 책임을 벗어날 수 없어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1월21일 화요일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국가 기도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AP Photo

하지만 4년 만에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1561명이 기소되고, 645명이 구속된 사건 관련자를 취임과 동시에 사면하겠다고 공언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해 “잊혀져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그에 동의하는 강도는 점점 약해지고 있다. 여론분석업체인 유고브(YouGov)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사당 폭동이 불법적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66%로 여전히 높았지만, 4년전 80%가 넘었던 수치보다 현저히 줄었다. 뿐만 아니라 트럼프가 폭력행사를 독려한 사실을 인정하는 여부에 대해서 39%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미국에서는 지금 민주주의를 부정한 세력이 어떻게 4년 만에 다시 집권하게 됐는가에 대해 질문이 한창이다. 그 질문의 첫 번째 답은 트럼프의 강력한 지지층인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운동에 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기존의 공화당과 구분해 마가 공화당원은 “헌법을 존중하지 않고, 선거 결과를 거부한다”라고 규정했지만, 마가 운동은 훨씬 더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마가 공화당원을 규정하는 여러 연구와 설문조사에 따르면 “선거 결과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은 전체 유권자의 30% 수준이다. 정도는 약하지만, 민주당 지지층 일부 또한 2024년 트럼프의 당선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적지 않다.

트럼프 당선시킨 마가 운동의 두가지 축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층의 선거 결과에 대한 거부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다수의 정서를 대표한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지난 대선 기간 만난 한 마가 운동원은 “난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폭력을 좋아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다만 “에너지 가격이 너무 올랐고, 일자리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마가운동을 선거를 부정하는 세력과 인종차별주의로만 설명할 수 없는 지점이다.

마가 운동은 공화당의 ‘백인-남부-복음주의 교회 중심’을 전략의 한 축으로 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후, 남부 중심의 백인중심주의가 위기감을 느껴 결집했고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전국적으로 퍼졌다. 하지만 다른 한 축에 러스트 벨트(쇠락한 산업단지)로 대표되는 무너진 중산층이 있었다. 중산층 일부는 민주당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추진 때문에 미국의 제조업과 일자리가 몰락했다고 믿었다. 세계화가 민주당만의 방향이 아니었지만, 중산층의 몰락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 이후 단단한 지지기반이 됐던 노동자 계층의 이탈을 불러왔다. 마가 운동의 이 두 축은 2021년에 패배한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공화당도 반헌법적인 세력의 재집권에 동조했다. 공화당 정치인 대다수는 첫 대통령 당선 때까지만 해도 트럼프에게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의사당 폭동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트럼프의 편을 들었다. 트럼프를 반대하는 공화당원의 주도로 시작한 ‘공화당 책임성 프로젝트’의 분석에 따르면 공화당 의원 261명 중 일관되게 민주적인 태도를 보인 의원은 전체의 6%인 16명에 불과했다. 2020년 대선 결과에 대한 수용, 의사당 폭동 사건의 책임으로 트럼프 탄핵, 폭동 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에 대한 의견 등 6가지 질문으로 이뤄진 평가에서 80% 이상의 의원이 선거부정과 의사당 폭동에 동조하거나 묵인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의사당 폭동에 반대하고, 트럼프에 책임을 묻고자 한 공화당 의원들은 대부분 다음 선거에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대표적으로 조지 부시 대통령 재임 8년간 부통령을 역임한 딕 체니의 딸인 리즈 체니 연방 하원의원은 트럼프를 비판하고, 의사당 폭동 조사위원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공화당에서 제명됐다. 그리고 2022년 당내 경선에서 친 트럼프 인사에게 패배해 의원직을 잃었다.

공화당에서 압도적 지지세력을 구축한 트럼프는 2024년 대선에서 적극적인 확장 전략을 펼쳤다. 인종차별 발언을 줄이고 ‘불법’ 이민자를 강조하면서, 인권의 문제를 법치의 문제로 전환했다. 또한 흑인과 라틴계 유권자를 포섭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이어갔다. 이에 민주당은 트럼프가 민주주의를 훼손했고, 반인권적이라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하며 전통적으로 지지층이 많은 도심 중심의 선거를 진행했다. 대표적 경합주였던 펜실베이니아의 가장 큰 도시인 필라델피아에서 교외로 조금만 벗어나도 민주당의 홍보 문구를 보기는 어려울 만큼, 도심 중심의 선거 전략은 교외 다수 유권자들을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트럼프 후보가 충분한 대의원단 수를 확보했고, 전국단위 득표에서도 1.5% 앞서 승리했다.

“윤 지지자들 트럼프에게서 영감 얻다”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 도로에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STOP THE STEAL” 손팻말과 성조기를 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미국 언론은 트럼프 지지자의 구호가 한국에서 다시 울려 퍼지는 현상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다. NBC 뉴스는 “탄핵 당한 한국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트럼프에게서 영감을 얻다”라는 기사에서 지지자들은 윤석열을 트럼프와 유사한 정신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비슷하게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대다수의 미국 내 한인 사회는 계엄령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일부는 계엄반대 집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정치적 토론을 잘 하지 않는 축구 동호회나 소모임 등에서도 활발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일부 교회 커뮤니티와 카톡방을 중심으로 일론 머스크의 탄핵반대 집회 공유 사실을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윤석열 탄핵을 반대한다”라는 근거 없는 이야기가 퍼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각국의 부정선거 배후에 중국 공산당이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 세계적 수사를 통해서 한국의 부정선거도 밝혀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2021년 의사당 폭동 사건과 대한민국의 반헌법적 쿠데타가 만나는 지점이다. 미국의 의사당 폭동 이후 4년의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의 성숙과 발전은 법적인 처벌과 다른 또 문제라는 점이 분명해진다. 내란 처벌 이후를 우리 공동체가 고민해야 할 이유이다.

시사인 뉴욕·양호경 통신원

 

뉴스 인플루언서뜨는 세상, 허위정보 문제도 높아진다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 언론산업 성장 추세와 주요 이슈 전망

뉴스 유통 플랫폼페이스북·X 지고 오픈AI AI 기반 부상 예상

AI, 기자의 정보 발굴, 인간관계 형성, 지역 트렌드역할 집중하게 할 것

전 세계적으로 소위 ‘뉴스 인플루언서’ 부상이 새로운 위기를 부르고 있다. 뉴스 콘텐츠가 아주 짧거나 길게 극단하면서 ‘어중간한’ 콘텐츠는 외면 당하고, 뉴스 유통·협력 대상으로는 X·페이스북이 지고 AI 기반 플랫폼이 부상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24일 ‘미디어 이슈 리포트-2025 언론산업 성장 추세와 주요 이슈 전망’(이현우·전창영 선임연구위원)을 발간했다.

리포트에 따르면 올해 뉴스 산업의 주요 이슈로 ‘뉴스 인플루언서 부상과 허위 정보 우려’가 꼽힌다. 미국 대선 이후 인플루언서들이 정치와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의가 세계적 추세로 나타났다. 2024년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 성인 21%, 그중에서도 30세 이하의 37%가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를 통해 뉴스를 접한다. 리포트는 “퓨리서치센터 연구에 따르면 뉴스 인플루언서의 77%가 언론 경력이 없고, UNESCO 조사에서는 62%가 콘텐츠의 정확성을 검증하지 않는다고 응답해 신뢰성과 정보 정확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고 했다.

전통적 의미의 언론사 기자 출신들이 인플루언서로 전환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브스택과 팟캐스트를 시작한 워싱턴포스트의 테일러 로렌즈, X(구 트위터)에서 대안 뉴스 브랜드를 만든 폭스뉴스 출신 터커 칼슨 등이다. 또한 올해에는 레거시 언론사와 인플루언서 협업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리포트는 ‘창작자 중심의 크리에이터화’가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독립적이고 사실 기반인 저널리즘 원칙을 약화시키고 더 큰 허위정보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의견이 있다고 전했다.

뉴스 제작 분야에선 ‘비주얼 포렌식(visual forensic) 저널리즘’이 부상하고, 길이가 아주 짧은 ‘밈’이나 짧은 동영상 또는 심층적이고 권위 있는 긴 콘텐츠로 양극화할 거라 전망됐다. 이에 ‘바벨 전략’(barbell maturity·다양한 선택이 가능할 때 중간은 버리고 극단적 선택만 취함)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리포트는 “언론사가 모든 것을 시도하려는 노력은 중간 수준의 콘텐츠를 양산하며 이러한 콘텐츠는 신뢰도가 낮은 소스로 쉽게 대체되고 소비자에게 외면”당할 거라며 “이용자 기반이 클수록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외부 압력에 저항할 수 있는 힘도 커진다. 따라서 언론사는 이용자 중심적 전략을 통해 신뢰와 참여를 확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긴 콘텐츠’ 사례로는 ‘#MeToo’ 보도나 복잡한 외교 정책에 대한 상세 해설, 심도 있는 뉴스레터 등이 제시됐다.

뉴스 플랫폼으로는 AI 기반 검색 기능이 뉴스 링크 노출을 줄이고 검색 트래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2년간 SNS 트래픽은 페이스북 67% 감소, X 50% 감소로 나타났다. 51개국 326명의 미디어 리더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더 적은 노력을 기울일 플랫폼은 X가 압도적이고, 페이스북, 스레드, 스냅챗, 애플뉴스로 이어졌다.

반면 언론사가 올해 협력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플랫폼은 오픈AI·퍼플렉시티,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왓츠앱, 블루스카이, 구글 디스커버, 구글(검색) 순으로 나타났다. 리포트는 유튜브·틱톡·인스타그램 등 동영상 플랫폼에 대해 “인쇄 기반 뉴스룸에서는 비디오 제작이 익숙하지 않으며 특히 짧은 형식의 비디오는 수익화가 어렵고 웹사이트 트래픽으로 연결하기 힘든 점이 과제”라 짚었다.

‘AI를 통한 저널리즘의 과거 전략 재발견’도 전망된다.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의 <카말라 해리스 뉴스 어시스턴트(Kamala Harris News Assistant)>, 워싱턴<포스트 AI에 묻다(Ask the Post AI)>, 비즈니스인사이더의 등 AI를 활용한 특화된 검색 엔진이 부활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AI 기술로 콘텐츠 제작 비용이 크게 줄면 ‘기자’의 역할 중 정보를 수집하는 ‘리포터’(reporter) 역할이 다시 강화될 거란 전망도 있다. 리포트는 “리포터는 정보 발굴, 인간관계 형성, 지역 사회 트렌드 파악 등 본질적 역할에 집중하게 될 것”이라며 “저널리스트는 더 이상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정보를 찾아내는 탐구자로서의 역량을 요구받을 전망”이라고 했다.

수익성 부족으로 실패했던 ‘지역 밀착형 저널리즘의 부활’도 기대되고 있다. AI로 운영 비용이 절감되면 소규모 인원이 지역을 효율적으로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거란 전망이다. 이는 인간 노동의 대체, 일자리의 양과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인데 리포트는 “중앙집중식 언론사에서 일부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지만 분산된 지역 언론사들이 성장하면서 결과적으로 긍정적인 순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 이슈 리포트’ 2025년 1월호 중 한국 신문유형별 및 수익구조별 규모 및 증감률

신문산업의 경우 전 세계적인 감소 추세 속에 한국은 디지털 뉴스 수익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글로벌 신문산업 규모는 전년(801억 달러) 대비 2.0% 감소한 785억 달러로 전망된다. 매출 중에선 독자 구독 수익이 60%(470억 달러), 광고 수익은 30%(314억 달러) 비중으로 예측됐다. 매체 유형별 수익은 지면 73.1%(573억 달러), 디지털 26.9%(210억 달러)로 전망된다.

신문산업 조사 대상 53개국 중에서 상위 10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한국, 인도, 스페인, 캐나다 등이다. 10개국 평균 신문산업 매출 규모는 전년 대비 -2.0%로 전망됐고, 한국은 그보다 적은 -0.8%로 예측됐다. 인도는 유일하게 3.4% 증가할 거란 전망이다.

한국의 올해 신문산업 규모는 27억1000만 달러(전 세계의 약 3.5%)로 예측됐다. 지면 광고 수익이 42.2%로 가장 높고, 지면 구독 수익(35.1%), 디지털 광고수익(17.2%), 디지털 구독수익(5.4%)이 뒤를 이을 전망이다. 특히 한국의 디지털 신문 매출액이 전년 대비 6.6% 성장한 6억10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아울러 리포트는 올해 한국 언론을 위한 시사점으로 △시장 침체 장기화에 대비한 적극적인 비즈니스·콘텐츠 전략 모색 △다양한 번들링 전략 기반 비즈니스 모델 탐색 △AI·비주얼포렌식·데이터저널리즘 등 디지털 기술 도입 가속화 △짧거나 길게, 독자 선호 기반 콘텐츠 다각화 △AI 기반 지역 밀착형 저널리즘 재정립 △이용자 피드백, 실시간 트렌드 수집 및 분석: 뉴스룸 프로세스에 반영 △ ‘긍정적 뉴스, 희망과 해결책 제시’를 통한 이용자 연대 강화 등을 제시했다.
노지민 기자jmnoh@mediatoday.co.kr

진짜 전범은 미치광이 히틀러가 아니라 나치 기업인들이다

[김재명의 전쟁범죄 이야기 103] 독일의 전쟁범죄-홀로코스트 31

'내란 수괴' 윤석열에게 구속영장이 나온 날 밤 서부지법을 습격해 난장판으로 만든 1.19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언론 매체들은 그 사건을 가리켜 '서부지법 폭동사태' 또는 '서부지법 난동' 등으로 부르고 있다. 그렇다면 폭동(난동)을 부린 사람들을 뭐라고 불러야 마땅할까. 서부지법 안으로 들어가 기물을 부순 자들은 서로를 '영웅'이라 치켜세웠다. 민주적 헌정 질서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들을 '폭도'라 부르기 마련이다.

'영웅'이냐, 폭민(暴民)이냐

나치 독일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거쳐 1941년 어렵사리 미국으로 건너가 목숨을 건졌던 유대인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1906-1975)는 '폭도'를 뭐라 불렀을까. 아렌트는 역작(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에서 'mob'라는 용어를 썼다. 우리말 번역본은 mob를 '폭민'(暴民)이라 옮겼다.

[폭민은 일차적으로 각 계급의 낙오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이다. 국민이 모든 혁명에서 진정한 대의제를 위해 투쟁했다면, 폭민은 항상 '강한 자', '위대한 지도자'를 소리 높여 외친다.폭민은 자신을 소외시킨 사회를 증오하며,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 의회 역시 증오하기 때문이다](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1>, 한길사, 2006, 249쪽).

아렌트의 분석에 따르면, '폭민'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국민'과 다르다(아렌트의 원서에는 'people'로 돼 있으니, '국민'보다는 '인민' 또는 이즈음 용어로 '시민'이 더 적절한 번역이 아닐까 싶다).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스스로를 낙오자라 여기는 '폭민'은 자신이 놓인 현실에 불만을 지니기 마련이다.

아렌트는 폭민을 '낙오자'라 불렀지만, 다 그렇진 않을 테고 (이를테면, 서부지법 난동자들 가운데는) 나름의 안정된 직업을 지닌 이른바 '확신범'도 섞여 있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강한 자'(이를테면 히틀러, 트럼프, 윤석열)가 그럴듯한 선동 발언으로 공격 목표를 가리키면, '폭민'은 앞뒤 가리지 않고 거친 행동에 나선다고 봤다.

역사상 그런 사례는 차고 넘친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그랬고, 19세기 말 프랑스에선 '독일 첩자'로 몰린 유대인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가, 20세기 중반엔 (1938년 11월9일 밤 독일 곳곳에서 파괴와 약탈이 일어났던 '수정의 밤'처럼) 유대인들이, 21세기엔 미 국회의사당(2021년 1월6일)과 한국 법원(2025년 1월19일)이 폭도들의 공격 목표가 됐다.

선동을 주제로 한 지난 글(연재 101)에서 살펴봤듯이, 히틀러는 일찍이 '선전은 지적 수준이 낮은 이들의 감정에 맞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치 선동가들은 거리의 군중에게 "유대인에게 죽음을!"이라 외치면, 그들은 거친 행동으로 화답하면서 '폭민'이 됐다. 대선에서 진 트럼프 후보는 흥분한 상태에서 이성적 판단 능력이 떨어진 극렬 지지자들에게 "내 표가 도둑맞았다"는 거짓말을 쏟아내면서 선동을 부추겼다. 안타깝게도 부정선거 음모론이 나도는 지금의 한국 상황이 딱 그렇다. '계엄이 아니라 계몽'이라는 궤변이 '아스팔트 지지자들' 사이에 힘을 얻는 모습을 훗날 역사가들은 어떻게 기록할까.

▲ IG 파르벤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독가스 치클론 B를 공급했던 전범기업이다. 1942년 7월 IG 파르벤 공장 건설 현장을 돌아보는 친위대 사령관 힘러, IG 파르벤 임원 막스 파우스트,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앞줄 왼쪽부터). ⓒ위키미디어

독일 기업의 아리안화

히틀러가 '폭민'들을 부추겨 유대인들을 탄압할 때 뒤에서 뒷짐을 지고 느긋이 바라본 독일인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 이들 가운데 기업가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나치 정권은 유대인의 기업 소유를 막는 이른바 '독일 기업의 아리안화(Arisierung)'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는 독일의 오랜 금융재벌인 로스차일드(Rothschild, 독일 발음으론 '로트쉴트')를 비롯한 유대인 자본가들의 파산을 뜻했다.

히틀러의 전쟁으로 재산상의 이득을 챙긴 자들은 한둘 아니다. 초점은 누가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느냐다. 유대인들이 트렁크 하나만 든 채 게토나 수용소로 떠나자 그들이 비운 집과 가구들을 차지하고 기뻐한 독일의 보통사람들도 있고, 유대인들에게서 빼앗은 모피 코트나 보석이 경매로 나올 때 "싸게 건졌다"고 좋아했던 숙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보다 훨씬 큰 이득을 챙긴 자들은 독일 기업인들과 은행가들이었다.

유대계 자본가들은 자신의 기업들을 매각하도록 강요받았다. 이에 맞서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마지못해 '시장'에 나온 유대계 기업들을 독일인 자본가들은 헐값에 사들여 큰 이득을 챙겼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라울 힐베르크가 그의 역작(The Destruction of European Jews, 초판 1961, 개정판 2003)에서 정리한 글을 보자.

[아리안화 과정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독일 경제계가 수많은 유대기업들을 삼켰을 뿐 아니라 유대기업의 강제퇴출에서도 이득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거둔 이득의 규모를 보여주는 전체적인 통계 자료는 없다. 우리는 다만 유대기업의 인수자가 기업 가치의 75% 이상을 지불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50% 이하를 지불하는 인수자는 꽤 많았다는 사실만을 안다. 우리는 또한 유대기업의 퇴출에서 이득을 본 독일 기업이 (신규)투자를 거의 혹은 아예 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안다. 따라서 독일 경제계의 이득은 수십 억 마르크에 이르렀을 것이다](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1>, 개마고원, 2008, 195-196쪽).

1939년 폴란드 침공으로 점령지역이 넓어지자, 나치와의 '더러운 거래'를 통해 떼돈을 벌었다. 강제수용소 가까이에 공장을 세워, 수감자들을 노예노동으로 부려먹었다. 캐나다 출신의 역사학자 자크 파월은 독일 대기업․은행과 나치 정권의 유착을 비판적으로 따져본 연구자다. 우리말로 번역된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The Myth of Good War, 2002)의 필자이기도 하다. 파월의 문제작(Big Business and Hitler, 2017)에서 노예노동의 통계를 보자.

[독일 안에서만 1,200만에서 1,300만, 많게는 1,400만 명쯤의 (독일 점령지에서 데려온) 강제노동자가 전쟁 기간 동안 나치 정권에 착취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점령국까지 모두 합치면 적어도 3,600만 명이 어떠한 형태로든 강제노역에 시달려야 했다](자크 파월, <자본은 전쟁을 원한다>, 오월의봄, 2019, 127쪽).

히틀러 돈줄이 된 거액의 '기부금'

나치 히틀러의 제3제국은 출발부터 정경유착이 뿌리를 내렸다. 1933년 히틀러가 권력을 잡자말자 돈벼락을 맞았다. 독일의 주요기업들과 은행이 모여 만든 독일제국산업협회, 독일기업가협회 회원 기업들은 기꺼이 돈을 모아 히틀러와 나치당에 바쳤다. '기부'를 받은 히틀러는 반대급부로 이런저런 특혜를 주었다. 독일 언론인 귀도 크놉이 히틀러의 충견(忠犬)들을 다룬 책(Hitlers Helfer, 1998)에서 관련 대목을 보자.

[(글 아래에서 살펴보듯이, 독일 패전 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기소되었으나 몸이 아파 풀려난 뒤 사망한) 구스타프 크루프의 발의로 '독일경제 아돌프 히틀러 기부금'이 조성되었고, 히틀러는 용도를 밝힐 필요가 없이 단번에 1억 라이히마르크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독일제국산업협회는 이런 거액의 선물을 제공함으로써 신임 제국수상에게 계속해서 기부금을 받고자 한다면, 경제단체에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암시를 주려 했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의 예금 계좌로 적어도 3억 500만 라이히르크가 흘러들어갔다. 권력을 탈취한 뒤 히틀러는 부유한 사람이 됐다](귀도 크놉, <나는 히틀러를 믿었다: 히틀러의 조력자들>, 울력, 2011, 226-227쪽).

예나 지금이나 비자금 관리자는 권력자의 최측근이 맡기 마련이다. '히틀러 비자금 관리인'은 그의 충직한 비서실장 마르틴 보어만이었다(1945년 패전 뒤 도망치다 사망 추정.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당시엔 사망 사실이 확인 안 돼 궐석으로 교수형 선고). 보어만 말고 어느 누구도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었다. 히틀러가 어떤 일로 돈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보어만은 곧바로 돈을 건넸다. 그 가운데 일부는 히틀러의 애인 에바 브라운에게 줄 선물을 마련하는 데 쓰였다.

정경유착은 여러 경로로 이뤄졌다. 독일 기업인들은 나치당과의 관계를 두텁게 하려고 만든 '경제의 친교모임'(Freundeskreis der Wirtschaft)의 주요 회원들이었다. 히틀러의 경제 고문인 빌헬름 케플러가 모임을 이끌어나갔기에 '케플러 서클'(Keppler Circle)'이라고도 불렸다. 모임의 다른 이름이 '친위대 국가지도자 친교모임'이라고도 알려졌듯이, 나치 당과 친위대 사령관 하인리히 힘러의 돈줄이 됐다.

[쾰른에 근거를 둔 은행가 폰 슈뢰더는 자신의 은행에 '특별계좌 S'라 불린 계좌를 관리했는데, 이 계좌로 친교모임 회원들이 각각 해마다 100만 라이히마르크를 예치했다. 힘러는 이 기금을 자신과 친위대, 그리고 나치당이 관심을 갖는 사업을 진행하는 데 사용했다. 몇몇 추산에 따르면, 1933년에서 1945년 사이 독일 재계가 나치당에 후원한 금액은 7억 라이히마르크에 이른다](자크 파월, 104쪽).

히틀러와 힘러를 비롯한 나치 지도자들은 '기부금'을 비자금으로 관리하면서 필요에 따라 나치 정당, 돌격대, 친위대 등에게 나눠줬다. 독일 기업인들의 통 큰 후원 덕에 재정문제에 대해 히틀러가 품었던 초기의 우려는 말 그대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 죽음의 독가스 치클론 B. ⓒ위키미디어

"진정한 전범은 나치가 아니라 독일 기업들"

우리가 흔히 '나치'라 부르는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약칭 NSDAP) 이름 안에는 민족, 사회주의, 노동자가 섞여 있지만 그야말로 겉치레였다. 히틀러가 말하는 '사회주의'는 정치학 교과서에서 말하는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반(反)사회주의적이고 반노동자 쪽이다. 히틀러는 권력을 잡은 3개월 뒤인 1933년 5월2일, 노동조합들을 강제 해산하고 많은 노동운동가들을 감옥에 잡아넣었다. 그리곤 어용 단체로 '독일노동전선'을 만들어 '파업 없는 독일'을 선언했다. 독일 대기업인과 은행가들이 히틀러에게 재정적인 지원을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어디선가 전쟁이 일어나길 바라고, 한번 터진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길 해달라"고 기도하는 목사가 바로 '전쟁상인'들이다. 이른바 '전쟁 특수(特需)'는 어느 나라에서든 탐욕스런 기업인들이 바라는 바다. 나치 독일의 경우도 그랬다. 자크 파월에 따르면, 독일 기업인들이 히틀러를 지지한 또 다른 이유는 '히틀러가 주전론자(主戰論者)여서 언젠가는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라 했다. 파월은 자본의 잣대로 독일의 침략전쟁을 바라본다.

[독일 기업인들은 히틀러가 전쟁을 준비하고 일으키도록 도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상당한 이득을 보았다. 히틀러의 전쟁은 그들의 전쟁이기도 했다. 그의 승리와 정복은 그들의 승리와 정복이기도 했다](자크 파월, 124-125쪽).

파월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미국인 검사 텔퍼드 테일러가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진정한 전범은 미치광이 집단 나치가 아니라 기업들'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자크 파월, 136쪽). 다른 나치 독일 연구자들도 같은 맥락의 분석을 내놓았다.

[독일 역사학자 울리케 히르스터-필립스도 거의 비슷한 주장을 펼친다. "나치의 전쟁이 목표로 했던 것은 독일 대자본가들의 이익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제3제국 전시경제 분야의 전문가인 디트리히 아이이홀츠도 같은 견해를 드러냈다. "히틀러의 전쟁계획에는 전체적으로나 부분적으로나 이미 수십 년 동안 알려져 있던 독일 거대자본의 목표와 꿈이 반영되었다"](자크 파월, 126쪽).

위 옮긴 글 끝에 나오는 '독일 거대자본의 목표와 꿈'은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대경제권을 가리킨다. 독일이 이끄는 유럽 대경제권에서 독일 기업과 은행들은 나치의 특혜 지원을 받아 경쟁자들을 없애고 높은 수익성을 올릴 수 있게 되길 바랐다(실제로 전쟁 초기 독일이 잇단 승리를 거둘 때 독일 기업들은 오스트리아나 체코 등지에서 광산, 제철소, 은행 등을 재빨리 가로챘다). 그 목표를 이루려면 침략전쟁과 약탈, 그리고 노예노동이 받쳐줘야 했다.

노예노동자 착취한 나치 기업인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의 12개 후속재판 가운데 침략전쟁에 관련된 기업인 재판은 3개였다. △프리드리히 플리크와 그의 기업 임원 5인을 단죄한 '플리크 재판'(후속재판 5), △유대인과 포로 등 수감자들을 집단 학살했던 독가스 치클론 B를 생산한 화공 복합기업 IG 파르벤 이사진을 단죄한 'IG 파르벤 재판'(후속재판 6), △크루프 사주와 이사진 12인을 단죄한 '크루프 재판'(후속재판 10) 등이다.

이들 3개의 후속재판에서 피고인들은 △군수산업을 운영하면서 독일군을 재무장시켰고, △나치의 침략전쟁을 거들었을 뿐만 아니라,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소련군 포로, 정치범, 유대인)을 노예노동으로 혹사시켜 이득을 챙겼다는 혐의를 받았다.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한결같이 '무죄'를 주장했다. 한밤중에 감방에 누워 지난날 자신들이 저질렀던 반인도적 범죄를 떠올린다면, 스스로도 민망해서 얼굴이나 귓불이 붉어졌을 법하다. 이들 나치 기업인들에겐 교수형이나 종신형은 내려지지 않았다. 죗값에 견주어 싸다는 지적을 받았는데도, 이들 나치 기업인들은 모두 얼마 안가 풀려났다.

흔히 '플리크 재판'으로 알려진 '후속재판 5'는 '플리크 KG'의 고위직 이사 5명을 피고인으로 세운 재판이다. 프리드리히 플리크(1883–1972)는 히틀러는 물론 친위대사령관 힘러에게 '기부'를 하고 그 대가로 배를 불린 전형적인 정경유착 기업인이다. 플리크 KG의 주력 업종은 탄광, 제철소, 군수 공장이었다. 나치 독일의 재무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수 부문에서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받쳐줬다. 이 과정에서 플리크 KG는 광산과 군수공장에서 48,000명의 노예 노동자를 부려먹었다. 그들은 점령지 민간인(유대인 포함)과 소련군 전쟁포로였다. 힘든 노동에 부실한 식사와 비위생적 환경은 80% 넘는 높은 사망률을 낳았다고 알려진다.

1947년 4월부터 12월 말까지 이어졌던 재판에서 플리크 KG의 소유주 프리드리히 플리크에겐 7년 징역형이 내려졌다. 고위직 이사인 오토 슈타인브린크는 징역 5년(수감 중이던 1949년 8월 병으로 사망), 베른하르트 바이스는 징역 2년 6개월, 나머지 3명은 무죄로 풀려났다. 플리크를 비롯해 유기징역형을 받은 이들은 1950년 8월까지 모두 풀려났다. 죄는 무거웠지만 처벌은 가벼웠다. 풀려난 플리크는 그의 산업제국을 빠르게 넓혀 나갔다. 1950년대의 서독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재산가로 꼽혔다. 1972년 그가 숨질 무렵 플리크 KG는 330개의 회사와 30만 명의 직원을 거느렸다(1985년 자본 분산과 매각으로 해체).

죽음의 독가스 치클론 B 공급

독가스 치클론 B(Zyklon B)가 나치의 대량학살 수단으로 쓰인 것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시안화수소를 주성분으로 한 치클론 B는 작은 알갱이 분말 형태로 깡통에 밀폐 보관돼 있다가 뚜껑을 열면 곧 공기 속으로 퍼지는 화학제품이다. 체중 60kg인 인간이 60mg(1kg에 1mg)을 들이키면 숨지는 강력한 독성을 지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등에 치클론 B를 대량 공급한 독일 대기업 IG 파르벤(연합화학) 경영자들을 단죄한 것이 뉘른베르크 후속재판 가운데 6번째 재판이다. IG 파르벤이 나치에 제공한 치클론 B 독가스 때문에 수백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포함한 민간인, 소련군 포로, 사회주의자, 집시(로마족, 샨티족), 동성애자, 반나치 저항운동가가 치클론 B 가스를 들이키고 고통스레 죽어갔다.

지난 글에서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기동학살부대)가 유대인 130만을 포함한 200만 명을 집단학살했다는 사실을 짚어봤다(연재 94). 살아 숨 쉬는 사람을 마주보고 총을 쏜다는 것은 제아무리 살인에 익숙해진 대원이라 하더라도 정신적 피로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치클론 B는 깡통을 따서 분말을 가스관에 쏟아 부으면 그걸로 끝이었다. 학살자들에게 치클론 B는 손쉬운 대안이었다. 하지만 죽은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차라리 총을 한방 맞고 죽는 게 덜 고통스러웠다. 치클론 B 가스를 마신 사람이 곧바로 죽지 않았다. 15분 정도 걸렸다. 그동안 희생자들은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했다. 벽을 손톱에서 피가 나도록 긁은 흔적들이 고통의 정도를 말해준다.

집단학살의 지휘한 나치 친위대(SS)는 치클론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않았다. '해충 박멸'에 쓰이는 독극물 생산으로 특화된 독일 IG 파르벤(연합화학)과 데구사(Degussa), 골트슈미트 3개 회사가 카르텔을 이룬 데게슈(이사회 의장은 IG 파르벤 소속인 빌헬름 만)를 거쳐 치클론을 구입했다.

IG 파르벤(연합화학)의 전쟁범죄 목록을 길다. 스탈린그라드 공방전에서의 패배(1943년 2월) 뒤 전쟁 후반기에 독일이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원이 부족해지자, 석탄에서 가솔린과 고무를 합성해 빼내는 공정을 개발해 히틀러의 침략전쟁을 도왔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에 부나베르크라는 이름의 거대한 공장을 세운 뒤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합성고무를 만들어내라'며 노예노동을 강요하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1947년 8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이어진 IG 파르벤 재판은 24명의 피고 가운데 13명이 8년에서 1년 6개월 사이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10명은 무죄, IG 파르벤의 수석 법률고문은 병으로 재판 중 풀려남). 이들이 지은 무거운 죄에 견주어 가벼운 유기징역을 받았고 그마저도 형기를 다 채우지 않았다. '악마의 화학기술자'로 징역 8년형을 받은 IG 파르벤 중역 오토 암브로스(1901-1990)마저 1951년에 풀려났다. 그는 미 육군 화학단, 다우케미칼과 같은 화학 관련 조직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90세까지 살았다.

▲ 나치 전범기업 크루프를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피고석에 앉은 임원들(1947년 12월22일). ⓒ위키미디어

'유대인은 기생충'이라 한 히틀러, 살충제로 죽였다

치클론 B는 애당초 살충제로 개발됐으나 나치는 사람을 죽이는 '악마의 무기'로 바꾸었다. 집단학살의 주역 히틀러는 <나의 투쟁>에서나 연설문에서 걸핏하면 유대인을 '해충' 또는 숙주(宿主)인 독일인에 기대어 사는 '기생충'으로 낙인찍곤 했다.

[유대인은 언제나 다른 민족의 체내에 사는 기생충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자기번식은 모든 기생충의 전형적인 현상이며, 그들은 언제나 자기 인종을 위해서 새로운 숙주를 찾고 있다. 그들이 나타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머잖아 숙주 민족은 없어져 버린다](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동서문화사, 2014, 436-437쪽).

히틀러의 비뚤어진 인종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위 옮긴 글에서 '머잖아 숙주 민족은 없어져 버린다'는 히틀러의 지적만큼은 틀리지 않는다. 팔레스타인 땅에서 20세기 초만 해도 소수자였던 유대인들이 20세기 중반 아랍 원주민들을 몰아내 난민으로 만든 것을 보면 그렇다. 이 글의 초점은 나치가 유대인 학살에 살충제인 치클론을 이용함으로써 그들의 인종차별적 망상을 이뤘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연구자 라울 힐베르크의 글을 보자.

[그들(IG 파르벤)이 수십만 명의 유대인을 죽이는 작전에 연루되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에서 만든 선전물에서 유대인은 빈번히 해충으로 묘사되었다. 한스 프랑크(독일점령지인 폴란드 총독)와 하인리히 힘러(친위대사령관)는 '유대인이 해충처럼 박멸되어야 하는 기생충'이라고 거듭해서 강조했다. 아우슈비츠에 치클론이 투입됨으로써 그런 발상이 현실이 됐다](라울 힐베르크, <홀로코스트: 유럽유대인의 파괴 2>, 개마고원, 2008, 1246쪽).

크루프(Krupp) 재판, "나는 기업인일뿐 정치는 몰라"

크루프(Krupp)는 19세기 중반 세계 최초로 강철제 대포를 만든 독일의 주요 군수업체였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제1회 만국박람회(엑스포, 1851)에 대포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1930년대 히틀러가 독일군의 재무장과 침략전쟁을 준비하면서 크루프는 매출을 크게 올렸다. 전쟁 중에도 각종 탱크와 대공포, 열차포, 유보트 등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2만 3,000명의 전쟁 포로를 포함한 10만 명 이상을 노예 노동으로 부려먹었다.

히틀러 시대의 크루프는 전형적인 정경유착의 모습을 보였다. 그 기업의 소유주 구스타프 크루프는 1933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독일기업가협회장 자격으로 편지를 보냈다. "독일 기업인들은 제국 정부의 어려운 임무를 돕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뒤 거액의 정치헌금으로 내놓았다. 크루프를 비롯한 독일 기업들은 반대급부로 나치의 주요 국책사업에서 특혜를 누렸다.

패전 뒤 구스타프 크루프는 헤르만 괴링을 비롯한 주요전범들을 단죄한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되었다. 하지만 몸이 좋이 않아 풀려난 뒤 곧 죽었다. 1947년 12월부터 1948년 7월까지 이어진 나치 기업인 재판(후속재판 10)에선 구스타프의 아들 알프리드 크루프가 피고석에 섰다. 알프리드는 "나는 기업인일뿐 정치는 모른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징역 12년형에 재산 몰수형이 매겨졌다. 함께 기소된 크루프 이사진 10명도 3년에서 12년 사이의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실제로 감옥에서 보낸 기간은 짧았다. 3년 뒤인 1951년 사면령이 내려져 풀려났고, 압류됐던 크루프 기업마저 알프리드에게 되돌아갔다. 이렇듯 나치 기업인 처벌은 솜방망이로 마무리됐다.

"한국 문제로 바빠서 훨씬 친절해졌다"

전쟁연구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가리켜 '히틀러의 전쟁'이라 일컫는다. 전쟁을 일으킨 것도 히틀러가 맞다. 많은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만든 장본인도 히틀러였다. 하지만 여기엔 묘한 논리가 스며있다. 히틀러와 그의 악당들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죽었으니 그걸로 끝이라는 논리다. 나머지 독일인들은 히틀러 때문에 전쟁에 마지못해 끼어들었으니 면죄부가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이 패망한 뒤 염치없는 독일 기업인들도 그런 생각을 했다.

여기에 미국이 거들었다. 든든한 동맹국 서독의 경제를 부흥시키고 독일군을 재조직해서 소련을 견제하려 했던 미국은 나치 기업인들에겐 '자유'라는 선물을 안겼다. 동서 대결구도 아래 터진 1950년 한국전쟁도 영향을 끼쳤다. 7년형을 선고받았던 프리츠 메어(IG 파르벤 임원)은 1950년 여름 감옥을 나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이 요즘 한국 문제로 바빠서 훨씬 친절한 거야'(라울 힐베르크, 1513쪽).

글을 매듭짓자면, 나치 기업들이 저질렀던 죄의 무게에 견주어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쟁이 히틀러의 패배로 끝나자, 독일 기업인들은 그 패배가 자신들의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을 피해갔다. 처벌을 받은 것은 극히 일부 기업인들뿐이었다. 그나마 솜방망이였다. 동서 냉전의 흐름을 타고 전범 기업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돈벌이에 나섰다. 히틀러와 힘러를 비롯한 '골수 나치'들은 죽었지만, '히틀러의 자본가들'은 살아남았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 프레시안

종북’ ‘친중외치는 내란범들의 의식구조

ⓒ이지영 그림

한번 만들어진 용어는 없어지지 않는다. 이럴 때는 그 용어를 없애려고 하기보다, 그 뜻을 바꾸려고 애쓰는 게 더 낫다. 12·3 내란을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과 하수인들이 방패로 삼고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용어가 그렇다. 이들은 실체도 없는 (대통령의) 고도의 통치행위를 ①사법심사로부터 면제된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헌법에 그런 용어는 없다. 헌법에 명시된 계엄이나 사면권 조항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해봤자 고작 ②대통령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뜻할 뿐이다. 그러나 계엄에도 엄격한 조건이 있으며, 거기서 벗어나면 헌법 위반으로 탄핵되거나 소추된다. 또 대통령만의 권한이라는 사면권조차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이의를 언제까지 견뎌낼지 의문이다. 차병직·윤재왕·윤지영의 〈안녕 헌법〉(지안, 2009)의 한 대목을 보자.

“대통령이 사면, 감형, 복권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형식적으로 사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명분은 사회적 분위기를 파악하여 적절한 때에 대통령이 사면권을 단행하여 국민 대화합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를 본 적이 없다. 당사자만 좋았을 것이다. 사면, 감형, 복권은 사법부가 고유의 권한을 발동하여 행한 결과를 대통령이 행정권으로 뒤집는 것이다. 이런 권한이 초권력적 대통령제, 다른 말로 제왕적 대통령제의 단면이다. 과거 절대군주제 시절에 행사하던 권한으로 유물관에나 전시되어 있어야 할 텐데, 여전히 대통령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 있다.”

현재로서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용법을 ①에서 ②로 바꾸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언젠가는 ①도 ②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헌법에도 나오지 않는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용어는 어디서 기원했을까. 저 용어의 기원이나 이론적 맥락을 찾아야 할 때 즉각 떠오르는 인물은 나치의 어용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였던 칼 슈미트다.

이해영의 〈칼 슈미트, 정치신학에서 지정학까지〉(진인진, 2024)는 한국어로 나온 슈미트에 대한 최초이자 본격적인 연구서다. 대중적인 교양서나 입문서가 아닌 전문적인 학술서여서 독자의 뇌에 ‘쥐’를 선사할 수도 있으나, 지은이가 제1장에 자세하게 밑그림을 그려놓은 바이마르 공화국(1918~1933) 시기의 정치·사회상과 지식계의 동향을 충분히 파악하고 나면, 제2장에 배치된 슈미트 정치신학의 핵심인 ‘정치적인 것의 개념’을 곧바로 파고들 수 있다. 지은이도 쓴 것처럼 ‘철학은 시대의 아들’이며, 슈미트의 정치철학에는 독일 근세사 가운데 최대의 변환기였던 바이마르 시대에 대응하고자 했던 순응적 보수주의자의 노력이 응축되어 있다.

슈미트 이론의 출발점은 1927년에 초간된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란 다름 아닌 ‘우적(友敵·친구와 적)’의 구별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구별을 도덕적인 것에서 ‘선악’ 구별, 미학적인 것에서 ‘미추(美醜)’ 구별과 동일한 지위에 올려놓았다. 초간본이 나올 때는 국제정치를 대상으로 했던 저 개념이 1932년에 나온 두 번째 판본에서 국내 정치에까지 적용됨으로써 우적은 외교와 내치 모두 포괄하게 되었다.

우적이 국제정치에 적용될 때, 적은 구별하기 어렵지 않다. 나치를 수권 정당으로 만들어준 바이마르 시기의 독일 이데올로기였던 인종민족적(문화·전통·언어 등으로 구성된 ‘민족’이 아닌, 오로지 생물학적 ‘인종’만으로 구성된 민족) 분위기 속에서 적은 외부인·타자, 즉 이민족이었다. 그런데 같은 기준을 국내 정치에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 히틀러는 국내 정치에서 특히 유대인과 볼셰비키(좌파)를 적으로 보았는데, 볼셰비키 가운데는 인종민족적으로 히틀러와 같은 독일 시민이 많았다. 그러나 “진짜 독일인은 볼셰비키가 될 리 없다. 유대인과 러시아인만이 볼셰비키가 된다”라고 생각했을 히틀러에게는 간단한 문제였다.

이처럼 슈미트의 우적 개념이 국내에 적용될 때는 계급적 범주인 볼셰비키가 인종의 범주나 외부인(침입자)으로 바뀌고 만다. 예컨대 윤석열 일당은 반대자를 ‘좌파’로 색칠한 다음, 그들을 ‘종북’이나 ‘친중’에 연관시킴으로써 정치적 반대자를 대한민국의 외부인(또는 간첩)으로 만들거나 한국인이 아닌 이민족으로 만들어버린다(슈미트 이론 속의 계급 문제는 170쪽, 179~180쪽 등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12·3 내란 주범의 의식구조

슈미트의 우적 개념에서는 친구가 아니라 적이 언제나 문제이며, 적이 영원한 이상 전쟁은 계속된다. “전쟁이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연장”이라고 말한 군사 철학자 클라우제비츠에게 전쟁은 정치적 타결을 위한 수단이다. 그와 반대로 슈미트는 “전쟁은 정치의 전제”라고 말한다. 전쟁을 중단하면 정치가 사라지는 것이다. ‘정치적인 것(우적 구별)-적-전쟁의 보존’은 슈미트의 삼위일체인데, 이런 사고는 그가 청년 시절에 접했던 가톨릭의 영향이라고 한다. 즉 ‘카인과 아벨’의 일화로부터 적대성이 인간 실존의 전제조건이라고 믿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정치철학을 신학과 과도하게 연관짓는 것은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전체를 희화화한다. 신약을 중심으로 개창한 기독교가 구약뿐인 유대교와 결별하게 된 것은 예수가 있어서다. 예수가 뭐라고 가르쳤지?

정치는 전쟁이 아니다. 현대 정치의 기반인 의회제도는 죽이지 말라고 만들어진 정치제도다. 더욱이 국민의힘의 전신이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의 3당 합당이었듯이 정치에서 합종연횡은 밥 먹듯 이루어진다. 돌이켜 생각하면,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의 범주를 설정하면서 도덕적인 것과 미학적인 것이 선악과 미추에 의해 범주화된다고 한 주장 역시 케케묵은 시절의 이야기다.

이 책 제3장에 나오는 ‘예외’ ‘결단’ ‘독재’와 같은 슈미트의 또 다른 개념은 12·3 내란 주범의 의식구조를 100퍼센트 설명해준다. 슈미트는, 통치자는 ‘예외를 선포하는 권한’을 갖기에 통치자라고 말한다. 통치자는 헌법 위에 있다는 것, 그 스스로 헌법제정권력이라는 것, 국민의 대리자(의원) 없이 저 홀로 법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머저리들이 방패이자 무기로 꺼내든 ‘고도의 통치행위’라는 용어의 실체다. 깡패는 왜 깡패인가? 법 없이 살기 때문에 깡패다. 대통령은 그렇게도 깡패가 되고 싶었나 보다. 슈미트와 동시대에 살았던 발터 베냐민은 지배자들의 신화적 폭력(법 보존적 폭력)과 피지배자들의 신적 폭력(법 파괴적 폭력)을 비교하면서, 법에 예외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주체는 통치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시민이라고 말한다.

장정일 (소설가) /시사인 

 

2016년부터 계속 어긋나는 여론조사...그냥 믿어야 할까

[주장] 여론조사업체와 언론, 급변하는 여론조사 배경 분석·설명할 의무 있다

지난 선거와 여론조사들을 간단히 복기해보자.

2016년 총선부터 여론조사가 이상하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당시 대다수의 여론조사는 새누리당의 과반을 예측했지만 결과는 민주당에 한 석 모자랐고, 원내 1당은 민주당이 되었다. 국민의당의 약진이라는 변수가 있긴했으나 호남을 석권하고 비례대표를 다수 점유했을 뿐이었다. 가장 큰 승부처인 수도권에서는 민주당이 압승했다. 기세를 몰아 그 해 국회는 박근혜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2017년 여론조사에서 대선 주자로 반기문이 급부상했다. 대선에 생각보다 품이 많이 들자 반기문은 주자가 되기를 포기했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것이 안철수였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을 이기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문재인 당선에, 안철수의 득표는 홍준표에 못 미쳤다.

어긋나고 어긋나고 어긋난 여론조사

2020년은 여론조사와 총선 결과가 동기화된 해였다. 코로나 극복이라는 거대 명제 앞에 야당이 맥을 추지 못했다. 여당의 총선 압승이었다.

2022년 대선은 출렁였다. 대선 레이스 초기에는 이재명이 앞서나가다 각종 이슈들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회자되며 윤석열이 추월했다. 공표금지기간 전에 공개된 여론조사들은 윤석열의 압승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 때 나는 총괄선대본부장인 우상호 의원을 따라 이재명 캠프에 합류한 상태였다. 곁다리에서 귀동냥으로 이런저런 정보들을 접했고, 캠프 핵심의 기류를 알 수 있었다. 공개된 여론조사와 현장의 공기는 달랐다. 안철수의 단일화에 맞서는 우리의 카드는 2030여성들의 맹렬한 지지였다.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설 만한 근거가 있었다. 결과는 0.73%p 차이의 석패였다. 대다수의 여론조사가 크게 어긋났다.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확실히 흔들린 건 이때부터였다.

2023년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이긴다는 여론조사가 속속 나왔다. 민주당이 이긴다는 여론조사도 압승까지 예측하진 않았다. 결과는 압승이었고, 대다수의 여론조사가 다시 크게 어긋났다.

2024년 총선에서 여론조사는 계속 여당의 우위를 기록했고, 결과 역시 여당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었다. 언론도 그 기류를 따랐다. 민주당 내부의 사람들도 동요했다. 친명 세력의 독선과 공천학살로 실망한 여론이 민주당을 심판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여의도를 휩쓸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야권은 192석을 석권했고 여당은 참패했다. 여론조사는 또 크게 어긋났다.

선거 결과에 근접할 때만 가치 있는 정치 여론조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해찬·김부겸 상임공동선거대책위원장, 홍익표 원내대표가 지난해 4월 10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제22대 국회의원선거(총선) 민주당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손을 잡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여론조사는 결과보다는 트렌드를 참고해야한다고 하지만 지난 총선에서부터는 그조차도 가치가 없다고 느끼게 됐다. 냉정하지만, 정치 여론조사는 선거 결과에 근접할 때만이 가치가 있다.

지금은 정치적 격변기다. 큰 이슈가 없는 평시와는 다르다. 2~3주 사이에 보수 지지층이 폭증하고 뭐하는지 눈에 띄지도 않던 인물이 갑자기 대선주자로 급부상한다면 이 결과를 수치 그대로 의미를 부여해 발표할 것이 아니라 비판 의식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여론조사 업체 스스로 그런 역할을 외면하고, 어떤 여론조사 업체는 왜곡된 결과 그 자체를 활용해 스스로 '선수'로 뛰어들기도 한다.

여론조사는 오염에 매우 취약하다. 여론조사는 통상 인구 비율에 따라 성별, 연령, 지역 할당을 맞추게 되어있다. 이 중 가장 결과를 뽑아내기 힘든 계층이 바로 2030대 청년층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오염시킬 때는 청년층의 할당을 가장 먼저 채운다. 그 중에서도 ARS 방식은 매우 채우기가 쉽다.

이런 일에 특화된 정치조직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가령 경선룰에 일반 국민 여론조사 같은 것이 포함되면 조직 차원에서 일제히 지령을 내리고 전화기 앞에서 대기를 시킨다. 자기들끼리 여론조사 응답 내용을 공유하고, 특정 할당 계층이 차면 다른 계층 할당을 채우도록 지시를 내린다. 명태균은 한 발 더 나아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응답층을 추리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 문제 없나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가 지난해 4월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상현 의원 주최 '총선 참패와 보수 재건의 길' 세미나에서 발제하고 있다. ⓒ 남소연관련사진보기


우리나라 여론조사 응답률은 5%를 넘기기 힘들다. 그런데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ARS임에도 7%를 넘기는 결과가 많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이미 여론조사 응답과 관련한 노하우들이 극우세력이나 노인들 단톡방에 돌고 있다는 정황은 많이 포착되고 있다. 이런 기저의 흐름을 아는 사람들은 알기 때문에 <서울의소리>와 같은 곳은 20대라고 응답한 이들에게 뉴진스를 아는지 체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20대에서 뉴진스보다 김문수를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그때 그때 이슈에 따라 진보층 응답자가 많을 때도 있고, 보수층 응답자가 많을 때도 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응답자 중 보수가 진보의 두 배를 넘을 정도로 트렌드가 급변하고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기 시작한다면 여론을 읽는 주체들은 그 배경을 함께 설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보수세력이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것 자체가 여론의 흐름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늘어놓는 이른바 전문가들까지 등장한다. 그런 사람들은 투표할 때 표가 두 개라도 되는 건가.

상식을 벗어나는 미심쩍은 결과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치 그대로 받아쓰는 언론들 역시 문제다. 윤석열이 총 든 군인들로 국회를 유린하고 국헌을 파괴한 마당에 이재명의 사법리스크나 카톡 검열 논란 따위가 야당 지지율 하락의 핵심 원인이라고 짚는 건 너무 상투적이고 게으른 분석이 아닌가.

내란동조세력이 이런 식으로 장난을 치는 이유는 뻔하다. 야권 지지자들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우리가 밤새 길바닥에서 야광봉을 들어봐야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포기하라는 것이다. 그 야비하고도 졸렬한 시도는 수십 년간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승만의 부정선거부터 박정희, 전두환의 군사반란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 시도까지 이어지는 동안 국민들을 속이고 저항의 의지를 꺾기 위한 갖가지 시도가 행해졌다. 이런 시도에 여론조사 업체나 언론들이 미필적 고의로 더 이상 부역하지 않기를 바란다.

김동균(valdnans)오마이뉴스

야당 지지율이 여당의 2대선 가를 중도층은 달랐다

뉴스분석 - 여론조사 깊이 보기

NBS·갤럽, 모두 유사한 결과
“윤, 헌재 대응 잘못” 70% 넘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등 여야 지지율 구도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으로 돌아간 여론조사 결과가 거듭 나오고 있다. 여권에서는 극우 성향의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차기 대선 주자 1위에 올랐다. 전문가들은 강성 보수층이 적극 응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 여론조사에서 중도층 응답 내용을 분석한 결과는 전체 조사 결과와 달랐다. 중도라고 답한 이들 중 차기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답변이 여당 후보보다 2배 더 많았다. 70% 이상이 국민의힘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성인 1000명에게 진행한 여론조사(응답률 16.4%)에서는 정당 지지도에서 국민의힘이 38%, 더불어민주당이 40%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였다. 차기 대선에서 정권 유지를 기대한다는 응답은 40%, 정권 교체를 기대한다는 응답은 50%였다.

하지만 중도라고 응답한 284명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4%, 민주당 지지율은 44%로 2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중도에서 여당 후보 당선을 기대한다는 응답은 27%에 머물렀고, 야당 후보 당선은 60%에 달했다. 중도에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30%로 지지율이 가장 높았다. 여권 주자 중 지지율 5%를 넘는 인사는 없었다.

중도층에서 민주당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44%, 신뢰하지 않는다는 45%로 백중세였다. 반면 국민의힘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22%에 머물렀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1%로 압도적이었다.

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가 지난 20~22일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응답률 22.2%)에서도 중도라고 응답한 304명 중에서는 국민의힘이 24%, 민주당이 41%였다.

대선이 치러진다면 어느 정당에 투표할지 묻는 질문에도 전체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35%, 민주당 후보가 38%로 비슷했지만 중도층에서는 국민의힘 후보가 23%, 민주당 후보가 44%로 격차가 벌어졌다. 중도층 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20%에 그쳤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74%였다. 윤 대통령 구속이 잘한 결정이라는 응답도 69%로 잘못한 결정이란 응답(28%)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여당 내에서 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인터뷰에서 이런 여론조사가 당을 변모시키는 데는 “독약”이라고 지적했다.

갤럽 조사와 NBS 조사 모두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 면접으로 이뤄졌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경향 

일베 탄생 15...‘극우를 분석할 때


▲ 지난 2014년 9월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폭식 집회’를 벌인 일베 회원들. 사진=금준경 기자

“슬기야, 일베 걔넨 대체 왜 그러는지 궁금하지 않니?” “…”

실은 안 궁금했다. 때는 바야흐로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인 2014년 9월쯤이었다. 당시 나는 수습을 뗀 지 얼마 안 돼 아이템을 찾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일간지 사회부의 사건팀 기자였고, 아이템 회의를 앞둔 나에게 선배는 이같이 말했다. 사실 나는 그네들에 관심이 없고, 또 모르고 싶었다. 굳이 똥을 꼭 ‘찍먹’해봐야 똥인 줄 아나,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고 이듬해 1월 내 ‘나와바리’(당시 나는 서울의 관악-방배-금천-동작경찰서를 잇는 ‘관악라인’ 출입이었다)의 한 남성 청소년은 “페미니스트가 싫다”는 말을 남기고 수니파 무장단체인 IS(이슬람국가)로 갔다. 그의 행적을 좇으며 생각했다. ‘페미가 얼마나 싫으면 전쟁통으로 가겠다는 거야?’ 정말로 관심이 없지만, 가만 있는 나를 그들이 자꾸 ‘긁었고’ 그에 꾸준히 답해야 했던 것이 지난 11년 내 기자 생활의 역사가 됐다. 참사 유가족들 앞에서 피자를 먹어 치우던 일베서부터 ‘남성 혐오를 나타내는 손동작’이라며 IT‧게임 업계의 여성 노동자들에 공격을 감행한 게임 유저들, 최근 서울서부지법을 때려부수고 경찰들에 폭행을 감행한 일련의 사람들까지.

‘폭식 투쟁’ 직후 결국 나는 선배와 함께 일베를 보다 깊숙이 취재했다. 데이터분석업체 ‘뉴스젤리’와 함께 일베의 2014년 한 해 게시물을 분석하고, 일베 유저를 만나 인터뷰하고, 전문가들에 의견을 물었다. 그렇게 내놓은 기사의 야마는 ‘일베는 우리 안에 있다’였다. (서울신문 <‘일베’ 넌, 누구냐>, 2014년 10월25일)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일베’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는 평범한 자취생, 스포츠와 게임을 좋아하며 대학 입학과 취업을 걱정하는 청년 남성이었다. 기사를 본 어느 선배가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 뭐 그런 거냐”는 코멘트를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확 찜찜해졌다. ‘그래, 생각해 보면 일베도 평범하겠지. 한국에 사는 게임하고 취업 걱정하는 젊은 남자겠지. 근데, 그게 그래서 뭐?’


▲ 2015년 9월1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일베 저장소’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나는 일베를 악마화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대항해 ‘사실은 그들도 평범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기사는 일베를 향한 타자화를 의식하다보니 어딘가 맥이 빠지는 지나친 일반화로 끝나버린 감이 없잖아 있다. ‘악마처럼 보이는 그들도 사실은 평범해’에서 한 끗 더 나아가 왜 평범한 그들이 ‘악마’가 되는지, 왜 일베는 그걸 가능케 하는 공간인지를 규명했어야 했다. 내가 만난 일베 유저들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능욕’이나 일베 내의 여성혐오, 지역혐오적 발언에 “조금 과한 감은 있지만 거긴 원래 그런 곳”, “웃겨서 하는 것” 등의 대답을 내놨다. 요즘 말로 옮기면 그것은 일종의 ‘밈’이며 일베는 ‘그런 밈이 유머로 통용되는 공간’이라는 뜻일 테다. 그들이 온라인에서 밈으로 소비하던 여성혐오 등은 결국 다 오프라인으로 비어져 나왔다. 그들은 ‘폭식 투쟁’처럼 꾸준히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는 위력 행사를 고민했고 ‘실천’했다.

극우 세력이 법원 담을 넘어 공권력에 대한 테러를 자행한 오늘에 이르러 그들의 생성과 준동, 그것을 가능케 한 토양을 조명하는 일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언론을 위시한 우리 사회의 자신들을 향한 지나친 악마화나 타자화, 일반화를 넘어서. 지금껏 언론은 이들 목소리를 팩트체크없이 퍼나르며 선정성에 기대 기사의 페이지뷰 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또 어떨 때는 ‘일부 의견’이라며 무시하다가도 어떨 때는 ‘다수 의견’으로 격상해 ‘페미 논란’이라는 이름의 여성을 향한 괴롭힘을 ‘젠더 갈등’으로 프레이밍했다. 극우 커뮤니티나 유튜브에 대해 언론은 그때 그때 입맛에 맞게 꺼내 썼을 뿐 이렇다 할 ‘관점’이랄 게 없었다는 게 옳은 지적이다.

뒤늦게나마 면밀한 진단과 정치한 분석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취사선택’이다. 게시물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 분석, 당사자 인터뷰, 전문가 멘트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갖 ‘노이즈’들을 적절히 걸러내는 것이 곧 기자와 데스크의 실력이다. 데이터 분석을 하다보면 의미값이 불분명한 것들이 자주 수집되는데, 실은 그게 커뮤니티 내에서는 중요하게 다뤄지는 그네들만의 은어일 수도 있고, 혹은 정반대일 수도 있다. 이를 기사에서 살리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기자의 역량에 달렸다. 전문가 멘트를 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국을 분석할 역량이 안 되는 이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기사에 담는 일은, 시간이 부족한 기자가 자주 저지르는 실수이자 알면서도 넘어가는 ‘습관’이다. 이러한 참사를 막는 ‘눈’이 취재 기자와 데스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1월19일 오전 3시경 서울서부지법에서 유리창을 깨고 진입하는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 사진=유튜브 갈무리
‘극우의 요람’이라는 일베가 탄생한 지 올해로 15년 째, 그들을 단순히 사갈시한 대가를 우리는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냥 싫어하는 것은 제일 쉬운 길이다. 이제라도 어려운 작업에, 전면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서부지법 폭동’을 사흘 전부터 조직적으로 모의한 정황을 디시인사이드의 몇몇 갤러리를 분석해 보도한 연합뉴스의 최근 기사(<尹지지자 커뮤니티, ‘난동’ 사흘 전 서부지법 답사 정황>, 2025년 1월26일) 같은 것들이 전초 작업이 될 것이다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미디어오늘

 

"20대남 열패감? 이런 기사 때문에 더 똘똘 뭉칠 것... 기름 붓나"

[20대에게 묻다] 탄핵집회 22번 나간 심규원씨 "언론의 '20대 남성 갈라치기' 너무 심해"

2025년 1월 16일 서울서부지방법원 맞은편 인도에서 '윤석열 구속 촉구! 대학생 철야농성 돌입'을 하고 있는 심규원씨의 모습이다. ⓒ 심규원"기사 제목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에요. 언론이 이렇게 자극적인 워딩을 쓰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들을 더 똘똘 뭉치게 하는데 기름 붓는 격 아닌가요."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 집회에 총 22차례 참석했다는 20대 남성 심규원(23)씨. 그는 지난 21일자 <한겨레> '밀려났다' 믿는 이들의 열패감이 '새 극우 연합' 동력 [긴급진단] 기사를 읽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언론의 역할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언론은 (20대 남성을 대상으로 한) 갈라치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며 "언론이 그렇게 할수록 오히려 '왜 자꾸 우리를 이렇게 몰아가?'라면서 그들끼리 더 뭉치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퇴진너머차별없는세상 전국대학인권단체연대(아래 퇴진너머 대학연대)'에서 활동 중인 심씨를 지난 22일 만났다.

"서부지법 20명이 20대 남성 전체를 대변할 수 있나"

심씨는 <한겨레>기사에 대해 "특히 '열패감'이라는 단어가 자극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앞서 <한겨레>는 한승훈 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보도하며 "2030 남성들은 최근 페미니즘의 대중화·제도화에 강력한 저항감을 갖고 있다. 이들 모두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좌절감과 열패감이 커져 있고 그것이 윤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묘하게 결합했다"고 전한 바 있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질문을 통해 "밀려났다고 '믿는' 이들의 악다구니가 이번 '1·19 폭동'의 원인이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심씨는 "기본적으로 2030 남성이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건 명확한 현실이다. 윤석열 탄핵 찬성집회에 젊은 남성이 많이 없는 것도, 이번 서부지법 폭동 과정에서 2030 남성이 연루된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19일) 현장에서 붙잡힌 20대가 20대 남성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 않나. 언론이 20대 남성의 극우화된 지점을 계속 프레임으로 잡는 것이 문제"라고 짚었다.

그는 이번 서부지법 폭동 사태에 대해 "단순히 '이 사람들 상식 없고, 멍청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보면 안 된다"며 "내 주변을 보면 윤석열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민주당도 아닌 것 같아서 윤석열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고 전했다.

심씨는 이어 "살기 힘든 이들의 이야기가 전혀 정치에 반영되지 않았고, 정치적 의사 표현을 이런 행위로밖에 할 수 없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발생해 증폭된 거라고 생각한다"며 "그럴수록 언론의 역할이 되게 중요한데 지금 언론은 (20대 남성) 갈라치기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밝혔다.

"핫팩 위에 은박지 위에 담요 위에 침낭... 그래도 춥다"

심규원씨가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집회에 참석한 날짜를 세고 있는 모습이다. ⓒ 김예진관련사진보기


심씨는 '서부지법 폭동사태'로 체포된 20대 남성들의 정반대편에 서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윤석열 탄핵 집회에 참석한 횟수만 해도 22회에 달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세어 볼 생각 못 했는데, 진짜 스물 두 번이나 갔네요."

그는 '퇴진너머 대학연대' 소속 대학생들과 함께 지난 16일 서울서부지방법원 맞은편 인도에서 '윤석열 구속 촉구! 대학생 철야농성'에도 참여했다. 심씨는 그날 오후 2시부터 자정까지, 17일 오전 7시부터 오후 8시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했다.

"'퇴진너머 대학연대'는 철야농성을 대규모로 하지 않고, 3~4명 정도만 있었어요. 그러자 경찰이 '더 있으면 위험할 것 같다'고 해서 17일에 자리를 정리했거든요. 만약 19일 서부지법 폭동 사태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다면 큰일이 날 수도 있었겠다는 싸한 기분이 들었어요."

지난 16일과 17일 모두 영하 5도까지 떨어지며 한파가 계속되던 때였다.

"패딩 주머니와 바지 양쪽에 핫팩을 넣으면 몸의 온기가 어느 정도 유지돼요. 앉는 방석에 핫팩을 넣고 발바닥에도 핫팩을 붙인 뒤, 은박지로 몸을 감싸고 담요로 다시 감싸고 그 위에 침낭을 덮으면 춥긴 해도 죽을 정도는 아니더라고요. (집회) 하다 보면 추위에 익숙해지긴 하는데 지난 4일 한남동 관저 앞에서 '윤석열 체포 촉구' 시위할 때는 진짜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현타(현실 자각 타임)도 좀 오더라고요."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는 "사실 제가 거리에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정말 이 문제에 분노하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지금 이 과정은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함이고, '내가 그 역사의 한순간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하나 하나씩 얘기를 풀어가야 해요"

심씨는 일종의 제언을 했다.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한' 그만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는 "나도 20대 남성이다. 물론 진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 주변 친구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며 "그 친구들에게 하나하나씩 얘기를 풀어가면 그들이 이해를 못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서만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냥 일상을 살아가는 제 주변의 20대 남성들은 다 이해해요. 페미니즘이라든가 국민의힘이 뭘 잘못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설명하면 못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거죠. '계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런 얘기를 한 친구도 있었는데 커뮤니티 정보가 아니라 차근차근 일반론적인 설명을 했죠 . 그러니까 제 말을 이해하던데요."

심씨는 현재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언론이 '저들은 갈등을 만들어내고 있어'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갈라치기를 부추긴다고 생각한다"며 "갈등 자체가 아니라, '20대 남성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가 언론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자꾸 갈라치기 하잖아요?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어도 탄핵하자고 할 거고, 사회 공동체의 근간이 무너질 것 같아요. 서부지법 사태만 봐도 법치주의의 근간이 무너진거잖아요. 이런 갈라치기가 계속되면 (서부지법 사태가) 최고치를 찍은 게 아니라 (그 이상이) 계속 발생할 것 같아요."

 

극우의 기독교, 과연 우리는 같은 신을 믿고 있을까

신앙인의 고뇌, 극우와 기독교와 불편한 동행, 종교의 순수성을 잃어가는 한국 기독교

한국 기독교계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45년 이상 크리스천으로 살아온 필자 역시 이로 인해 종교에 대한 실망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실망감은 작년 말 한 여당 국회의원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이 계기가 되었다. 그 의원은 이른 새벽, 윤석열 대통령 체포 반대 시위 현장에서 방언기도를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한국 기독교에서 중요한 영적 현상으로 여기는 '방언기도'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고 내란 혐의를 받는 대통령을 위해 이러한 기도가 행해진다는 사실에 내 신앙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했다.

"과연, 그들이 믿는 하나님과 내가 믿는 하나님은 동일할까?"


​​거기다 <중앙일보> 28일자 신년 뉴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옥중에서 성경책을 읽으며 재판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나는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시험'에 들었다. 여기서 "시험에 들다"란 주로 유혹(Temptation)을 의미하는 기독교 용어로, 믿음이 흔들리는 상황을 뜻한다.

이에 대해 황철민 목사(전주 옛길교회)는 다음과 같이 현 상황을 해석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악용하는 사기꾼들, 도둑들, 탐욕스러운 자들이 있기 마련이며, 이런 악한 무리에게 속는 눈먼 민중들도 항상 존재한다." 그는 이런 상황에 낙담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러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필자처럼 자신의 신앙과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신앙 차원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란 생각도 드는데 그 이유는 과거 역사적으로도 신앙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는 고린도전서 14장 33절의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혼란 속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 현실에 비추자면 신앙인으로서 우리는 정치적 현실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또한, 성경에서 하나님은 혼란을 야기하는 신(God)이 아니며 오직 화평을 추구하시기에, 현재 우리 사회에서 무질서를 조장하고 부추기는 종교 지도자들을 선별해야 함은 우리 신앙인의 몫임이 틀림없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들은 종교 지도자의 말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성경을 기준으로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한 타당성을 평가, 토론하며 올바른 신앙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래야 오늘날 발생되고 있는 몇몇 편파적인 성향의 종교 지도자의 주장으로 인해 발생되는 혼란과 이에 따른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권력에 순종하는 공직사회 '악의 평범함'

[기고] 대통령 탄핵, 무능한 정치정부공공기관 개혁 출발점 삼아야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위기의 대한민국

2024년 12월 3일 10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국정은 마비되었고 정치와 사회는 양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큰 교역대상 국가인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국정의 최고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러나 2024년 대한민국 수출액 중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8%에 달했는데 삼성전자가 위기이고 한국경제도 위기라고 합니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시장환경에서 조금이라도 기업 혁신에서 뒤쳐지면 잘나갔던 대기업도 하루아침에 시장에서 낙오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고로 와닿습니다. 설 명절 연휴 기간 시끌벅적해야 하는 전통시장이나 대도시 중산층이 들르는 대형 할인점도 쌓여있는 상품보다도 손님이 더 적어 보입니다. 소규모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시내 음식점은 오히려 한산하기까지 합니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1.6∼1.7%에 머물 거라는 한국은행 전망이 나왔습니다. 2015년부터 계속 떨어지던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 반등을 기대한다는 소식도 있지만, 여전히 선 진국에 비하면 턱없이 낮습니다. 그 반대로 고령 인구비율은 19.2%라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적은 수의 젊은 세대가 고령화된 더 많은 부모세대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7.3명으로 OECD 국가 중에 최하위권이고, 소득 5분위 배율은 2011년 이후 개선되고 있다지만 5.72배로 소득 격차는 여전히 큽니다. 한국 사회는 저성장, 저출산과 고령화, 자산과 소득 격차의 심각함을 숫자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장과 거리에서 초점을 잃은 눈동자와 표정 없는 얼굴에서 일반 시민들의 삶의 역정에 지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광화문과 용산의 거리에서, 그리고 서울 종로구 계동 거리에서 대통령 탄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울부짖는 시민들만 가득합니다.

왜 이렇게 경제,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해서 분열을 가속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야당의 정치적 횡포와 부정선거의 의혹 때문에 경고성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는 논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지만,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해서 옹호하고 거리로 뛰어든 정당이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없는 의혹과 가짜 뉴스를 확산하는 유튜버들의 혹세무민만 볼 수 있습니다.

무능과 무책임한 중앙정부의 관료제

서울 광화문과 과천, 정부세종청사의 불빛은 점점 빛을 잃고 있습니다. 앞으로 현 정권의 명운이 어떻게 될 것인지 몰라 정책에는 손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장·차관이나 실·국장과 같은 고위직 공무원은 얼마 남지 않은 임기 동안 무엇을 해야 하고, 또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판단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느 곳에 줄을 서야 하는지 고민이 될 것입니다.

노한동 전 문화체육부 서기관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10년 간의 공직 경험을 용기를 내어 아래와 같이 일갈하고 있습니다.

"공직사회는 보고서를 잘 쓰고, 호치키스를 잘 찍어야 출세하고, 대부분 공무원을 낙오 없이 끌고 가려는 온정주의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집단주의가 지배한다." 공직을 사직한 젊은 공무원이 글로서 공직사회의 무능과 무책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지금과 같이 정치적 위기 시에는 무책임과 무능이 더 돋보이고 평소 공직사회와 민간사회에서 호세와 권력을 자랑하던 장·차관이나 고위 공무원들은 최근 국정감사나 방송에서 보듯이 무기력하고 상투적인 기계적 균형 뒤에 숨어 있습니다.

여의도 국회가 대통령 탄핵으로 싸우고 시민들은 국회를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고 있지만 불 꺼진 정부청사만 보게 되면 치열한 국내외 경쟁 사회에서 우리나라 일반 시민들은 부모 없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깜깜한 길에서 목자(牧者)도 없는 고아가 된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미래는 불확실하고 암울하며, 이러다간 50년, 100년 후 지구상에서 소멸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습니다. 대통령 탄핵 소추와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시간은 재깍재깍 지나갈 것이고, 우리의 경제는 더디지만 반등과 성장의 길을 가야하며, 갈기갈기 찌어진 정치와 사회는 시민의 힘으로 조금씩 통합과 연대의 길로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000만 명이 넘는 인구와 국민소득 3만 불을 넘어서는 선진국에서 기원전 그리스 도시국가와 같은 플라톤의 철인통치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이후 4.19, 5.18, 6.10 민주항쟁과 시민들의 핏값으로 이룩한 정치적인 민주주의는 지금 지체되고 있고 오히려 후퇴하였다고 합니다. 여전히 동서 지역 갈등, 세대와 남녀, 이익집단 간 이해 갈등으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헌정이 중단되었고 10년도 안 돼서 윤석열 대통령은 탄핵 심판과 구속기소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87년 헌법과 정치구조는 더 미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누가 집권하느냐보다 국민이나 시민의 이익을 더 잘 대변하고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치, 선거 시스템으로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헌정질서가 중단되는 정치를 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무작정 헌정질서를 파괴한 세력을 두둔하는 기득권 정당도 한국 정치에서 발을 붙여서는 안 됩니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지금 여야 정치세력은 수없이 많이 정당 명칭을 바꾸고 연명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권을 잡은 다음 무슨 정치적, 행정적, 정책적 개혁을 추진했고 성과를 냈으며, 우리나라의 경제적, 사회적인 발전에 무슨 이바지를 했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고작해야 집권 후에 정부부처의 장·차관, 공공기관의 기관장, 상임감사를 보냈다는 것 밖에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인 연고로 선임된 정부부처의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의 기관장, 상임감사가 더 높은 자리로 진출하려고 집권자에게만 충성했던 기억은 많으나, 국민에게 충성하고 공익을 위해 헌신한 정무직 공직자를 저의 지난 30년간 공직과 사회 경험에서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 심판이 한국 정치는 더 이상 국가발전과 사회통합의 적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갈라진 민심을 통합하고 공익을 대표하도록 선거법 개정을 통해서 국민의 대표성이 강화되도록 정치를 개혁해야 합니다. 지금 정치개혁을 하지 못하게 되면 한국의 대의민주주의는 곧 조종을 울릴 것이 뻔합니다.

▲정부서울청사 ⓒ정부청사관리본부

행정의 민주성과 전문성 강화 필요

2025년도 정부지출예산 673조 원, 공무원 1백7만 명으로 구성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이고 혁신적인 정책집행과 행정을 통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희망의 미래로 바꿀 수 있고 공무원은 유능한 혁신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 부처 간 칸막이 행정과 폐쇄적인 공무원 조직, 특정 대학과 고시 출신 등으로 역인 엘리트주의 속에서 오직 개인적인 승진과 유학과 같은 출세 동기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하위직 공무원은 밤낮없이 일하고 있으나,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는 두루뭉술한 내용으로 가득 채워 장·차관이나 국장만 보는 보고서를 만들어내느라 뼈를 갈아 넣고 있는 공직사회는 전면적인 변화와 혁신이 필요합니다.

대부분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고시를 통해서 입직해 수십 년 후에는 고위 공무원으로 풍부한 국정 경험이 쌓이겠지만,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 시에는 무엇도 결정하지 못하는 무능력, 무소신, 무책임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상시 중앙행정기관의 사무관이나 과장급 공무원은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높은 존재입니다. 민원인이나 기업과 같은 이해관계자들에게는 각종 규제권과 예산 배분권을 가진 권력자의 모습입니다.

대통령 비상계엄과 같은 불합리한 지시에 저항하고 이를 따를 수 없는 경우에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는 장·차관 등 정무직 공무원도 보지 못했습니다. 불합리한 정책 지시를 막아내고 부하 직원들을 지키면서 모든 책임을 자신이 지는 실·국장과 같은 고위공무원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독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집권자에게 저항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오히려 히틀러의 광기를 죄의식이 없이 묵묵히 집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의 '악(惡)의 평범함'을 우리나라 공직사회도 내재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앙 및 지방 110만 공무원이 대한민국호를 잘 운전하려면 행정의 민주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구조와 절차 개편이 필요합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의 피터스 가이(Peters Guy) 교수는 행정의 구조와 절차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고 행정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민주적인 거버넌스나 지배구조 개혁이 무엇보다도 더 절실하다고 지적한 것에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중앙정부 예산의 1.38배 많은 3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관리정책 개편 필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공기업, 준정부기관이라고 하면 신의 직장이나 철밥통, 비효율과 성과급 잔치만 하는 집단으로 인식되었고, 같은 대리인이지만 주인 행세를 하는 정치나 정부로부터 항상 개혁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공기관은 구조조정, 혁신, 선진화, 정상화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공공기관의 지출예산 907조, 자산 1072조 원, 정원 42만 명으로 정부 규모보다 더 큰 규모와 SOC, 에너지, 금융, 산업진흥, 사회복지, 보건, R&D, 국립대병원까지 거의 모든 공공서비스를 생산하고 전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공공성이나 효율성 강화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한민국호에서 정책 결정을 하는 공무원보다 더 중요한 배의 기관사요, 노를 젓는 뱃사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원리는 주권재민입니다. 주권은 국민에게서 나오고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고 정당정치에 따라 집권한 정치세력은 국정철학과 공약을 바탕으로 책임정치와 행정부를 이끌어 갑니다. 또한, 집권한 정부는 다시 정부 정책과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 2025년도 현재 3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을 통해서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생산해 국민에게 전달합니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집권한 보수, 진보 정부를 막론하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늘 개혁과 혁신의 대상이었지만, 정치권과 관료집단은 여전히 공공기관을 기관장, 상임감사, 비상임이사 자리를 나눠 갖는 엽관제와 공직 퇴직 후 재취업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연고에 따른 무자격자를 기관장 등 낙하산 인사 방지

OECD 선진국들은 오랜 기간 정치, 사회적인 민주화 과정과 경제적 위기를 거치면서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에 대한 정치적인 선임 관행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이제는 경력과 실적에 의한 전문가가 공공기관 경영자가 되어 책임경영을 하는 제도와 문화가 정착되어 가고 있습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마저 미국 인사관리처(OPM)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정무직의 자격과 경력, 임기, 임명절차, 보수 등을 정한 풀럼 북(plum book) 기준에 따라서 임명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21세기 현재 우리나라에서 민간기업과 경쟁하고 있는 전기, 가스 등 30여 개 공기업은 당연히 시장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전문경영인을 기관장으로 선임해야 하나, 정치인 출신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주무부처로부터 팔길이만큼 떨어져서 정부 정책을 집행하고 있어서 영국에서는 일명 'Arm’s Length Bodies(팔길이만큼 떨어져 있는 집행기관)'로 불리면서 정부 정책이나 사업을 자율적으로 집행하는 준정부기관에서도 기관장이나 상임이사는 대부분 전문가나 경영인이 선임되기보다는 정치인이나 주무부처로부터 정치적, 엽관제적인 낙하산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공공기관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들은 정치적인 낙하산 인사를 비판해 왔고 공무원 퇴직 후 취업 제한을 하는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낙하산 인사에 대하여 야당 시절에 그렇게 비판과 반대를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 여당이 되면 무자격 낙하산 인사를 하곤 합니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루크 베르니에(Luc Bernier) 교수는 21세기 경제위기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국가경제발전을 위해서 다시 공기업의 시대가 왔고 적극적인 공공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음 정부부터는 경력도 자격도 없는 이를 정치적 연고를 통해 공기업의 기관

 

장, 상임감사, 비상임이사에 앉히지 않겠다는 정치적로 약속을 하고 선임기준과 절차에 대한 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서로 비교하기 어려운 공공기관을 상대 비교하는 현행 경영평가제도 개편

1984년 전두환 권위주의 정부에서 군인 등 정치적으로 선임된 정부투자기관 기관장의 경영성과를 높이고 책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도입된 기획재정부의 경영평가제도가 40년을 거쳤습니다.

기획재정부, 주무부처와 공공기관 간 경영계약을 체결하고, 자율적인 책임경영체제에 따라 사후적으로 경영성과를 확인해 상대적 등급을 부여하는 평정 절차를 경영평가제도라고 합니다. 대의민주주의와 책임 행정에서 주인인 국민을 대신해서 기획재정부나 주무부처는 국민의 예산이 투입된 공공기관의 성과를 확인하고 경영비효율을 통제하는 제도로서 경영평가제도는 지난 40년간 경영효율성과 경영성과를 높이는 선진적인 장치로서 소명을 다했습니다.

최근 공공기관의 역할과 기능이 전문화되고 경영시스템이 고도화되면서 87개 기관에 대하여 140여 명 교수, 회계사, 변호사, 노무사 등으로 구성된 경영평가단으로 2달여 간 공공기관의 경영실적보고서를 바탕으로 서면평가와 하루 4시간 정도의 실사평가만을 통해서 S부터 E까지 6등급의 평가등급을 부여하는 평가방식은 더 이상 공공기관의 혁신과 제도개선을 유도하는 컨설팅이 가능할지는 의문이 듭니다.

오히려 과도한 공공기관 간 경쟁에 따른 부작용과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단의 이해 부족과 전문성 한계 등으로 인해 지금의 평가단 구조로는 한 해 동안 추진한 공공기관 업무의 가치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평가는 어렵고 점수만 내는 평정만 남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공기관 경영평가의 순기능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단기적 평가등급경쟁으로 인해 평가를 받기 위한 공공기관별 평가실적보고서를 잘 만들기 위하여 해마다 수천만 원에서 억대의 용역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말연초 공공기관의 전략과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명에 달하는 핵심 인력들이 평가실적보고서 작성 작업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24년 우리나라 한국전력과 발전사의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경영실적보고서와 참고자료, 평가보고서를 보게 되면 프랑스 전력(EDF)이 파워포인트로 작성한 66쪽 짜리 연례실적보고서가 국민이나 이해관계자 측면에서 보게 되면 더 쉽고 경영성과 결과를 판단할 수 있는 가독성 있는 경영실적보고서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현재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로 인하여 경영평가의 순기능보다 거래비용이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언론기사를 보면 경영성과급을 나누어 주기 위한 복잡한 방법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공기업이나 준정부기관으로 존재하는 한 주인인 국민이나 정부에 경영실적으로 보고하고 공개하기 위하여 정기적으로 경영실적을 측정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다만 지금의 공공기관 경영평가제도는 평가모형, 평가지표, 평가주기, 평가방법을 모두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할 시기가 지난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40여 년 전 권위주의 시대 대통령이 경력과 전문성과는 관계없는 군인을 정치적 낙하산을 태워 정부투자기관의 기관장으로 보내고도 이를 믿지 못해 경영실적평가로 사후적인 통제하였다면, 정부의 정책환경과 공공기관의 경영환경이 변화했고, 공공기관 임직원과 역량 또한 향상되었으며, 이사회 등 기업지배구조가 도입된 현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통제 중심의 경영평가제도는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게 되면 대통령의 국정과제와 정부업무, 재정사업도 각종 정책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정책평가도 개별평가라는 이름으로 몇 백가지가 있습니다. 정부업무평가나 개별평가 또한 공공기관 경영평가보다도 낮은 수준의 평가실적보고서 작성과 기관 간 등급만 만드는 평정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게 되면 대한민국은 평가 공화국인 것은 분명해 보이고 평가를 통해서 정책과 사업에 혁신과 정책개선이 되고 있다고 자평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권력기관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행정구조 및 절차 개혁 필요

2025년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국내외적인 정치, 사회, 경제 환경은 불확실하고 사회적 갈등은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지난 1960년대 권위주의 시대에서 고도 경제발전 시기에 유능했던 대한민국의 관료제와 행정체제, 공공기관 제도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국제적 경쟁 시대에서는 그렇게 유능한 체제도 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경제적 위기나 코로나 위기, 지금과 같은 정치적 위기에는 민간기업이나 시민사회보다 공공기관이 무능하고 낡은 구체제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2025년 봄날에 있을 것 같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인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다음 정부에서는 검찰,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와 같은 큰 정부부처는 민주적인 통제와 분권이 작동하도록 정부의 구조와 기능 개혁이 필요합니다.

또한, 정부 예산보다 1.38배나 더 쓰고 있는 33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에 대한 국가소유권 기능의 전문성이 강화되고 이사회 중심의 기업지배구조 개편을 통해서 공공기관이 특정 정권이나 정부부처의 특수 이익만을 대변하는 산하기관이 아니고 국민의 이익과 공익을 충실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공적인 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등 국가소유권 기능과 관리정책을 정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2025년 푸른 뱀의 해, 을사년에는 지난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을 완전하게 극복하고 새롭게 도약하기 위한 대한민국의 정치, 정부, 공공기관 개혁의 원년이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라영재 건국대학교 교수, 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소장 |

아파트에 올인하는 한국, AI 지각변동 일으킨 중국

서울 아파트 전고점 회복을 대서특필하는 언론

주택담보대출이 억지로 밀어올린 아파트 가격

중국은 딥시크로 AI시장에 파란을 일으키는 중

아파트에만 골몰하는 한 대한민국 미래는 없어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가격이 역사상 최고점이었던 2021년을 거의 따라잡았다는 민간 부동산 리서치 업체의 발표가 거의 모든 레거시 미디어에 실렸다. 무슨 경축할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보도한 언론들이 많았다. 그러나 작년 서울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증가에 힘입은 결과다. 빚으로 밀어올린 가격이라는 뜻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이 서울 아파트 가격에만 주목하는 사이 중국의 딥시크(DeepSeek)라는 스타트업 기업은 전세계 인공지능(AI)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난공불락으로 여겼던 AI의 선두주자 미국이 바짝 긴장할 지경이다. 만약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아파트 가격에만 골몰한다면,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 패배할 것이고 대한민국의 앞날에는 먹구름만 가득할 것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 역사적 전고점 근접이 낭보?  

29일 부동산 전문 리서치업체 리얼투데이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3.3㎡당 평균 3861만 3000원으로, 2021년(3885만 5000원)의 99.4% 수준이다. 서울 집값은 2021년 고점을 찍은 이후 2022년(3738만 2000원)과 2023년(3613만 5000원) 연속으로 하락했으나, 지난해는 전년 대비 6.9% 상승하며 전고점 수준을 회복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3월부터 꾸준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해 3월 넷째 주 전주 대비로 상승 전환한 후 12월 넷째 주까지 40주 연속 올랐다.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도 전년 대비 4.5% 오르며 지난해 3.3㎡당 평균 2319만 9000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1년(2515만 4000원)의 92.2% 수준이다.

다만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집값은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지방 아파트 매매가격은 2021년 3.3㎡당 1030만 1000원에서 2022년 959만 8000원으로 6.8% 떨어졌다. 2023년(945만 1000원)은 전년 대비 2.6%, 지난해(932만 6000원)는 0.3% 하락했다. 전국 아파트의 지난해 평균 매매가는 3.3㎡당 1619만 5000원으로, 2021년(1765만 2000원)의 91.7%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전혀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득을 포함한 경제 관련 모든 거시지표들이 최악을 거듭 중인 상황에서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만 상승한다는 건 시장에 있는 자금을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가 전부 빨아들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아파트는 수출할 수 없고, 내수에도 오히려 마이너스다. 아파트가 사회적 자원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한다는 건 일종의 사회적 자해행위에 다름 아니다.

빚내서 아파트 사는데 올인하는 대한민국

그나마 자기 돈으로 아파트를 사면 사회적 피해가 덜하겠지만 빚을 내지 않고 그 비싼 아파트를 사는 건 극히 어려운 일이다. 빚을 내 집을 사는 건 이제 흔한 풍경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중 가계대출 동향(잠정)’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은 41조 6000억 원 증가해 2023년 말 대비 잔액이 2.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23년 가계대출이 연간 10조 1000억 원 늘어났던 것과 비교해 증가 폭이 4배 이상 확대된 수치다.

이러한 가계대출 증가에는 단연 주담대의 폭증이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기타대출이 15조 5000억 원 줄어든 반면 주담대는 57조 1000억 원 증가하며 2023년(45조 1000억 원) 대비 오름폭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집값 급등으로 주담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20년(67조 원), 2021년(69조 2000억 원)과 비교하면 변동폭이 작았지만 60조원에 근접한 막대한 규모다.

결국 서울 아파트를 비롯한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주택담보대출의 폭증에서 연유한 바 크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무리하게 빚을 내고, 부채로 집을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하고, 상승하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또 빚을 내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한민국은 완전히 갇혔다.

 

올해 서울 아파트 10채 중 6채는 전고점 대비 80% 이상 회복된 가격에 매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직방은 지난 1∼5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아파트 매매거래를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 1만4천810건 중 전고점의 80% 이상 가격에 거래된 건수는 8천939건(60.4%)으로 집계됐다고 10일 밝혔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정보 모습. 2024.6.10 연합뉴스

전 세계 AI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중국의 딥시크 

전 세계 인공지능(AI)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킨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중국의 젊은 기술 인재들을 모아 AI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작은 기업이 미국 거대 기업들의 아성을 뛰어넘는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정보기술매체 테크놀로지 리뷰 등에 따르면 딥시크는 2023년 5월 중국 항저우에서 설립됐다. 딥시크 설립자는 1985년생 량원펑이라는 인물로, 중국 광둥성 출신인 그는 공학 분야에서 특히 손꼽히는 명문대인 저장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인 2015년 대학 친구 2명과 함께 '하이-플라이어'(High-Flyer)라는 헤지펀드를 설립하고 컴퓨터 트레이딩에 딥러닝 기법을 선구적으로 적용해 자금을 끌어모았다. 이 펀드의 자산은 80억 달러(약 11조 5000억 원) 수준으로 불어났고, 량원펑은 소규모 AI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다 독립적인 회사로 분리해 딥시크를 창업했다. 량원펑은 스스로 펀드 트레이더보다는 엔지니어로 인식되는 것을 선호한다고 WSJ은 그와 가까운 사람들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중국 오성홍기를 배경으로 딥시크를 그림. 중국 발 '딥시크 충격'이 AI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자신하던 미국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2025.1.28. 로이터 연합뉴스 

CNN 방송은 그를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에 빗대 "AI 기술 전도사로 중국의 샘 올트먼이 됐다"고 표현했다. 량원펑의 펀드 하이-플라이어는 2019년부터 AI 개발을 위한 칩을 비축하기 시작해 거대언어모델(LLM)을 훈련할 수 있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약 1만개를 확보해 AI 칩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이후 2023년 11월 딥시크는 첫 번째 오픈소스 AI 모델 '딥시크 코더'를 공개했고, 지난해 5월에는 한층 더 진전된 '딥시크-V2'를 출시했다. 이 모델은 강력한 성능과 저렴한 비용으로 크게 주목받으며 중국 내 AI 모델 시장에 가격 전쟁을 촉발했다. 이어 차례로 내놓은 딥시크-V3과 딥시크-R1은 이 회사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딥시크는 V3와 R1이 모두 미국의 주요 AI 모델보다 성능이 더 낫거나 비슷한 수준이라고 자신했다.

특히 미국 수학경시대회인 AIME 2024 벤치마크 테스트에서 R1은 79.8%를 얻어 오픈AI 'o1'의 79.2%보다 앞섰다고 딥시크는 밝혔다. 지난 25일 기준으로 이 두 모델은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UC버클리) 연구원들이 챗봇 성능을 평가하는 플랫폼인 '챗봇 아레나'에서 상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특히 최신 추론 모델 R1의 경우 기존 모델의 미세 조정(fine-tuning) 단계를 건너뛰고 강화 학습(reinforcement learning)에 초점을 맞춘 창의적인 설계 등으로 주목받았다.

딥시크가 전 세계 AI시장을 경악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는 이 회사가 그동안 미국 주요 기업들이 AI 모델 개발에 들인 비용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자사 모델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이다. 회사 측은 딥시크-V3 개발에 들인 비용이 557만 6000달러(약 78억 8000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는데, 이는 메타가 최신 AI 모델인 라마(Llama) 3 모델을 엔비디아의 고가 칩 'H100'으로 훈련한 비용 대비 10분의 1 수준이다. 물론 여전히 딥시크에 대해서 여러 의구심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딥시크가 보여주듯 중국은 이미 4차 산업혁명의 첨병이라 할 AI부문에서 미국을 위협할 경쟁자로 자리매김한 건 분명하다.

새 정부는 아파트가 아닌 4차 산업혁명에 올인해야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부 들어 토건국가 경향이 한결 심해졌다. 이제는 아파트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지경이다. 모든 정부 역량과 사회적 자원이 아파트 가격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을 유지하거나 상승시키는데 탕진됐다. 그 대신 AI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투자에는 극히 인색했다.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이 사회의 모든 자원을 진공청소기처럼 흡수하는 사이 대한민국의 미래먹거리 산업은 지리멸렬해졌다. 반면 중국은 고속성장을 견인했던 부동산이 붕괴하는데도 별다른 부양 없이 경착륙을 견디며 4차 산업에 올인 중이다. 딥시크는 그 결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이 사는 길은 자명하다. 전통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제조업을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하고 4차 산업혁명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 빈사상태인 내수를 획기적으로 부양하는 것이 그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파트를 비롯한 부동산에 대해 신경을 꺼야 한다. 내란수괴 윤석열 파면 이후 치러질 조기대선에서 승리해 새로 구성될 정부는 윤석열 정부와는 정 반대로 해야 한다.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이태경 편집위원(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시민언론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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