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한국 보수 정당의 사상적 폐허 2.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 3.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4. 빛의 혁명’이 지켜볼 7공화국 5. 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6. 뉴미디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7. 한국 경제, 0% 성장에 갇히나 8. 검찰개혁 실패하자 내란이 왔다 9. '조선공산당'이라는 금기어에서 '과거 속 미래'를 만나다 10.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
11. 국민연금, 소득 중심 사회보험으로 전환해야 12. 무수한 별들의 빛 13. 혐중’이란 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14.헌법에 도전하는 대법원의 오판 15. 불교는 자본주의 폭주 막아야 한다 16. 애순이, 금명이, 그다음을 위하여 17. ‘무기수출’ 국가폭력 통제 입법이 필요한 이유 18.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19. 지워짐에 저항하는 방법 20. 그래서, 돌고 돌아 ‘윤석열 시즌2’
21. '빚 내서 집 사라' 시즌 n번째, 언제까지 봐야 하나? 22. 트럼프가 만든 캐나다 총선의 대반전 23. 조희대 대법원장님, 30년 경력 판사도 납득 못한답니다 24. 책상물림들의 시대착오적 중국 망상 25. '내란이라도 괜찮아'?…'엘리트 카르텔'의 최종 병기 한덕수
한국 보수 정당의 사상적 폐허
한국 보수 정당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경험한 주체가 됐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국정농단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이어졌고, 2024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친위쿠데타를 기도한 내란 행위로 두 번째 탄핵을 당했다. 헌법재판소는 두 사건 모두 헌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중대한 위법 행위로 판단했고, 각각 만장일치로 탄핵을 인용했다.
왜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반복해서 국정농단과 내란의 주역이 되었는가.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한국 현대사의 중심 세력이었다. 1948년 정부 수립을 주도하며 분단국가를 세웠고, 박정희 정권 시기 한국형 산업화 모델의 기초를 놓았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는 삼당합당을 통해 민주화운동 세력 일부를 끌어들여 자신을 스스로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교’로 규정해왔다.
국민의힘 정강·정책에도 이러한 자기 인식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정강은 “전쟁의 폐허에서 가난을 극복하고 선진 경제를 이루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로 민주화를 성취했다”고 자평하고, 산업화 세대의 ‘조국 근대화 정신’과 2·28 대구 민주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 등 현대사의 민주화 정신을 계승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 서사는 두 번에 걸친 헌정 질서 파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근본적인 자기 부정에 직면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중심 세력으로 자처해온 한국의 보수 정당이 왜 헌법을 유린하고 권력을 사유화하는 과오를 반복하게 되었는가. 한국 보수 정당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두 번의 대통령 탄핵을 거치면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보수(補修)’했는가.
더욱 놀라운 것은, 내란의 주역이 된 한국 보수 정당이 자당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깊은 성찰이나 반성, 변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거의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역설적 장면은 오늘날 한국 보수 정당의 사상적 폐허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분단국가 수립과 산업화 주역을 스스로 자부해온 한국 보수 정당은 그 역사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사무엘 루벨이 제시한 ‘해 정당(Sun Party)과 달 정당(Moon Party)’의 은유는 이 상황을 이해하는 데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The Future of American Politics>, 1951).
루벨은 미국 정치 체제를 두 유형으로 설명했다. 하나는 시대의 중심 갈등을 내면화하고 이를 대표하며 스스로 정치적 에너지를 생성하는 ‘해 정당’이고 다른 하나는 해 정당이 만들어내는 열기와 반사광에 의존해 빛나는 ‘달 정당’이다. 해 정당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 세력들을 포괄하고, 이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며 시대를 관통하는 통합적 비전을 제시할 힘을 지닌다. 루벨이 주목한 대표적 해 정당은 1930~1940년대 대공황 속 뉴딜 체제를 주도한 미국 민주당이었다. 당시 민주당은 사회적 계층과 지역 세력을 결집하고 조정하면서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정치적 태양’ 역할을 했다.
반면 반사광에 기대는 달 정당은 시대 변화에 뒤처지고, 결국 주변으로 밀려난다. 산업화 시기,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은 수많은 저항과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가난으로부터 탈피라는 시대정신을 나름대로 선도했다. 이 시기조차도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의 중심 가치는 반공주의였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민주화 이후 삼당합당을 통해 정치적 헤게모니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시대정신을 대표하지 못했고, 새로운 사회 집단을 포용하는 데 실패했다.
기득권 수호에 안주한 다수당은 필연적으로 시대 변화를 흡수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회의 중심 갈등과 괴리되면서 주도권을 잃고, 과거의 영광을 반사하는 달 정당으로 쇠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민주화 이후 한때 헤게모니 지위를 가졌던 한국 보수 정치의 역사는 이 퇴행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의 보수 정당은 주기적으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으며 선거철마다 어김없이 박정희 생가를 찾아 박정희 노스탤지어를 호명했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의 보수 정당은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국정농단의 주역과도 손을 잡고, 심지어는 내란의 주범과도 단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핵심 가치를 잃어버린 권력 보수의 민낯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국정농단과 내란의 주역이 된 한국 보수 정당 앞에 놓인 질문은 엄중하다.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 한국의 보수 정당은 사상적 폐허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강우진 경북대 정치학과 교수 경향 2025.04.28.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
대선, 성의 없는어릴 적 내게 큰 영향을 준 한 록밴드는 ‘지금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질문하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곡을 쓴다고 했다. 이 지면에 글을 쓰는 나도 그런 고민을 한다. 지면이라는 공적인 발언권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다. 지난 4개월간 광장에서 자유발언을 한 시민들도 그러했다.
주어진 시간은 3분, 그 짧은 시간 안에 청중을 사로잡는 이야기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 발언자 다수는 공적인 자리에서 익명의 청중을 향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경험이 처음이었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인 발언자가 많았다. 그들의 사연에 사회가 귀를 기울여주는 일 자체가 드물다. 그렇기에 자유발언은 더더욱 소중한 기회였을 것이고, 그만큼 시민들은 문장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며 발언을 준비했다. 평범한 시민들의 발언이 감동적이고 무엇보다 재밌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의 결과였다. 청중도 떨리는 목소리에 담긴 절실함을 즉각 알아차리고 진지하게 들었다. 그렇게 시민들은 타인의 말을 통해 배우며 자신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광장은 민주주의의 학교였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의 발언은 신기하리만치 재미가 없었다. 훈련된 발성으로 말해도 상투적인 언어로 가득해서 발언에 집중력이 금방 떨어졌다. 청중을 사로잡을 매력적인 이야기도, 공적인 자리에서 처음 꺼내는 개인의 사연도 아니었다. 쉽게 말해, 그들이 준비한 발언에는 성의가 없었다. 그들은 시민들과 달리 5분의 발언 시간을 가졌지만 시간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 마치 시민들과 달리 제약받지 않고 말할 특권이 주어진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은 발언의 수준과 상관없이 정치인들에게 열렬히 호응해 주었다.
광장이 평등한 시민들이 만든 민주주의의 장이라면, 무대에 올라 발언할 권리 역시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그런 조건이라면 발언자는 청중이 자신에게 집중하도록 발언에 정성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정치인들은 광장 바깥의 이력이나 지위가 광장 안에서도 통하는 것처럼 굴었고, 지지자들 역시 그 권력에 반응했다. 광장 바깥의 권력을 광장 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그들은 과연 힘없는 무명의 일반 시민의 발언을 진지하게 듣긴 했을까?
같은 광장에 있었지만, 실은 두 개의 광장이 병존했다. 이 구도는 조기 대선으로 진입한 지금도 똑같다. 지난해 12월3일 이전에도 위태로운 일상을 견뎌냈고 광장에서 정체성을 드러냈던 시민들의 요구와 의제는 대선 국면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광장의 열망과 정치 사이의 간극은 크게 벌어져 있다. 정권이 바뀌면 시민들의 삶도 과연 바뀔 수 있을까?
국민의힘이 과거 탄핵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것처럼, 민주당도 과거 정권의 경험에서 그릇된 학습을 했다. 사회적 갈등에 적극 개입하기보다 뒷짐 지고 물러서서 국민 통합을 외치며 먹사니즘만 얘기하는 걸 선거전략이라 믿는다. 하지만 내란 종식과 국민 통합은 대립하는 것이다. 내란 종식은 정권교체로 완성되지 않으며, 먹고사는 게 어려워 윤석열이 쿠데타를 벌인 것도 아니다. 시대적 과제에 대한 진단과 정치인의 철학이 없으니 모순된 말들이 난무한다. 이러면 다음 정권 역시 새 시대의 맏이가 아닌 구시대의 막내가 될 뿐이다.
대선이라는 정치의 장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여러 비전과 가치가 경합하고, 우리 삶의 온갖 문제들을 공적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다. 하지만 광장에서 그랬듯 정치인들은 상투적이고 내용 없는 말을 반복한다. 광장이 만든 대선임에도, 정치는 광장의 시민들에 대한 응답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왜 이번 대선은 다양한 의제와 상상력의 잔치가 아니라, 오히려 언어를 제약하는 시간이 되고 있는가? 왜 정치인의 언어는 시민들의 자유발언보다 재미가 없는가? 왜 그토록 성의가 없는 것일까? 말들의 잔치
최성용 청년연구자 경향 2025.04.28.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국민의힘의 ‘사과 코스프레’가 본격화했다. 이미 사과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사람, 때가 되면 사과하겠다는 사람, 사과의 공감대는 있다는 사람 등이 난립한다. 12·3 불법계엄 사태에 ‘정당으로서’ 사과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저걸 사과로 봐야 할지 아닐지 의미 없는 논쟁이 이어진다.
결론적으로 국민의힘은 사과한 적이 없다. 정당의 사과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해당 정당의 책임 범위에 있던 정치행위의 과오를 반성하고 정치집단으로서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일일 것이다. 정해진 형식, 꼭 따라야 할 공식은 없다. 다만 선언과 행위가 동반되는 복합적인 형태임은 분명하다.
정당의 사과에는 당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을 거쳐 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대표성을 갖춰 밝히는 최소한의 형식이 필요하다. 내용에는 구체적 반성과 성찰, 향후 조치에 대한 약속이 담겨야 한다. 여기에 희생을 감수하는 정치적 결단과 쇄신 등 행위가 뒤따라야 사과가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을 한다 해도 진정성을 인정받기가 매우 어려워서, 정당 전체로서 사과할 일은 애초에 안 만드는 게 상책이다.
불법계엄으로 사과를 피할 수 없는 일은 발생했고, 이후 146일간 당 구성원들의 행위로 문제가 더 커졌다. 몇 차례 ‘사과 호소’ 같은 것은 나왔다. 윤희숙 여의도연구원장이 지난 24일 대선 첫 정강·정책 연설에서 “국민의힘은 지금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지만, 이는 윤희숙의 사과다. 사전에 당내 논의 절차는 없었다. 내부에서도 개인의 결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동훈·안철수 대선 경선 후보의 사과 역시 한동훈·안철수의 사과다. 한 후보는 정당 대표일 때도 사과하고 이행에 착수했다가 직에서 쫓겨났다. 안 후보의 사과는 당내 극소수의 일탈행위 취급을 받았다.
나머지는 차마 사과인지 논하기가 민망하다. ‘국민의힘 의원 일동’ 입장문과 그간 당 지도부 발언 등에도 ‘사과’ 표현은 있었다. 그러나 불법계엄의 위헌·위법성을 짚지도, 계엄해제결의·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을 반성하지도, ‘계몽령’ 동조 움직임을 막지도 않은 채 “혼란과 충격” “불안과 걱정”을 거론하며 머리를 숙인다고 사과한 정당이 되지 않는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사과 코스프레는 심해질 것이다. 김문수·홍준표 대선 경선 후보는 “때가 되면” “최종후보가 되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본선 진출 시 사과를 예고했다. 이는 대선 국면에서 사과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사과 포기’ 선언과 마찬가지다. 탄핵찬성파 후보가 뽑힌 대도 그의 입장이 곧 국민의힘의 것으로 퉁쳐질 수 없다. 개인의 사과를 정당의 사과로 변환하는 과정이 생략돼도 문제이고, 그 변환에 ‘이재명은 안 되니까’라는 조건이 작동해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국민의힘이 제대로 사과할 시간은 이미 지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지난 4개월의 과오를 뭉개고 대선 직전에 사과를 내놓는 것은 중도 표심을 얻으려는 전략으로 해석될 뿐이다. ‘이제 윤석열은 과거’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를 옹호했던 당의 행태가 과거가 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과인 듯, 사과 아닌, 사과 같은’ 것을 내놓으려면 그냥 하지 않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편이 낫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시라.
유정인 기자 경향 2025.04.28.
‘빛의 혁명’이 지켜볼 7공화국
‘내란 수괴의 탈옥’ 사건 직후, 내가 재직하는 대학에서는 윤석열 구속 취소 규탄 학내집회가 열렸다. 초조하게 탄핵을 기다리던 시기였다. 내란의 밤이 그토록 깊은 분노와 좌절을 안겨준 것은 바로 다음날, 마주한 학생들의 얼굴에 남아있던 공포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에 더 나은 세상을 남기길 원한다. 점점 더 나빠지는 사회를 물려주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국가 폭력이 난무하던 그런 참담한 시대는 우리만 겪어서 다행이었다는, 그런 시대는 우리 세대에서 끝냈다는, 작은 안도감마저 무너져 내렸었다.
연대 발언 요청을 받고 무거운 마음으로 함께했던 그 집회에서 나는 크게 위로받았다. 내가 보호에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이미 자신들이 살아갈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차별과 착취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함께 만들자는 대학 청소 노동자인 산별노조 분회장의 따뜻한 발언을 차가운 계단에 앉아 들으며, 나는 확신했다. 우리가 물려줄 세상은 불완전하겠지만, 이들은 완전하다. 여의도에서, 남태령에서, 이 대강당 계단 앞에서 밝혀진 희망의 불빛들이, 혐오와 폭력으로 뒤덮인 대한민국을 구하겠구나.
그러나 모든 혁명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이다. 이제 다시 행정부와 국회의 시간이 도래하여 이전처럼 광장의 목소리가 먼지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라는, 밝은 빛 뒤에 숨은 어두운 의구심에 주목할 시간이다.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가족을 둔 학생이 가족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시위는) 아무도 안 들어주는 말 하려고 가는 거야. 백번쯤 말하면 한번은 들어줄 거야.”
윤석열은 단지 무능하거나 시대착오적인 범죄자가 아니다. 파농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국제자본에 종속되어 스스로 헤게모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존재의 불안정성을 과시적 소비로 보상하며, 민주주의 국가를 1인 독재국가로 만들려 한, 미완으로 끝난 민족 해방운동의 불행한 부산물 같은 존재이다. 일상의 파시즘을 실천하며 그를 둘러쌌던 세력은 아직도 건재하며, 자성은커녕 대선에까지 출마하고 있다. 제6공화국 헌법이 부과하는 정언적 명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완전히 청산되어야 한다. 헌정 파괴 세력 덕에 얻은 유일한 개인적 성과는 현행 헌법의 장엄한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었다.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이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11조 1항,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무뢰한 검찰과 지귀연들의 사법부가 개혁되지 않는 한, 무의미한 조항이 되었다. 32조 3항,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한다. 우리 법률은 이미 한참 전부터 정규직 외의 노동 인구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 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그간 일말의 존재감조차 느낄 수 없었던 조항이다.
이런 상황이니, 우리 사회의 윤석열들은 계엄과 관련된 헌법 77조만 위반한 것이 아니었다. 내란 동조 세력으로 의심되는 후보들이 개헌을 가장 크게 외치는 게 역겹게 들리는 이유다. 국정이 장난인가? 왜 억지로 선거 시기를 맞추어 국회의 견제 권한을 뺏으려 하는가? 3년으로 줄여 대통령 자리를 많이 만들고 싶은 것인가?
나는 제7공화국이, 표류했던 제6공화국이 국민과 함께 광장을 지켰던 정권에 의해 완성된 이후에, 국민의 염원을 담아 시작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의 핵심은 급변하는 기술 및 노동시장 환경을 반영한 사회권의 보완과 확대이다. 빛의 혁명 이후에도, 광장의 목소리가 새 정권을 감시하고 독려해야 한다. 이번만은, 백번이나 되풀이해 소리칠 필요가 없으리라 기대한다.
이주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겨레 2025.04.28.
탄핵 이후, 정치 혁명을 바란다
탄핵이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위기에 빠뜨렸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지만, 계엄 사태를 유발한 정치 구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거의 예외 없이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사회의 갈등은 봉합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국민이 가장 심각한 갈등으로 꼽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대립은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염불처럼 외우는 사회통합은커녕 갈등을 오히려 부추긴다. 대립하면 할수록 유리하다는 기괴한 공식에 감염된 도착적 정치 문화가 지속되는 한 헌정 위기는 끝나지 않는다.
1987년 체제는 끝났다. 오랜 독재를 경험한 국민의 염원이었던 대통령 직선과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한 임기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한 현행 헌법은 38년이 지난 지금 역사적 수명을 다했다. 세 번의 탄핵과 전임 대통령들의 불행한 감옥행은 ‘87 체제’의 한계와 폐해를 분명히 말해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유할 수 없는 사회 분열과 그로 인한 정치적 신뢰의 붕괴이다. 이렇게 심각한 병리적 현상에도 우리가 유일하게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정권이 선거를 통해 평화적으로 교체되었다는 사실이다. ‘87 체제’가 남긴 유일한 민주적 요소는 오직 형식적 선거뿐이다.
합법적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은 처음에는 한결같이 협치와 사회통합을 외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국정 안정의 명분을 내세워 오히려 대립과 갈등으로 내몰리는 것은 모두 왜곡된 정치 구조와 문화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고 헌정 질서를 공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헌법 개정을 통해 미래사회의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정권을 위해 경쟁하는 모든 정치적 세력들이 당파적 이익을 뛰어넘어 어떤 헌법적 질서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지를 성찰하고 검토한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한때 정치권 일부에서 거론되었던 개헌 논의는 대선 정국에 묻혀 완전히 증발한 것처럼 보인다. 선거 때마다 언급되고 오랫동안 논의된 헌법 개정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언제나 미래의 공동이익보다는 현재의 특수이익이, 그리고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는 파당을 위한 정권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선과 동시 투표 개헌을 제안했다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반대하면서 결국 사흘 만에 철회했다는 것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할 권력 구조 개편에 소극적인 것은 권력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새 정치 만들어낼 정치 혁명 필요
그러나 우리의 정치 구조를 혁명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우리에겐 헌정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 질서를 만들어낼 ‘정치 혁명’이 필요하다. 왜 정치 개혁이 혁명적이어야 하는가는 ‘탄핵 이후의 정치’에 관한 사고 실험을 해보면 선명하게 드러난다. 현재의 정치 구조가 지속되는 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치 무대에서 제거한다고 해서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지 않는다. 대화와 협치를 거부하고, 아집과 독선으로 무장한 제2의 윤석열은 이미 어디에선가 자라나고 있다. ‘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지금의 분위기처럼 이재명 후보가 합법적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면, 그가 내세우는 ‘진짜 대한민국’이 실현될까? 나는 여기서 논의의 초점을 인물에 맞추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조건 좋아하고, 그를 싫어하는 사람은 무조건 싫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상황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은 어떤 말과 논거로도 설득되지 않는다. 문제는 대통령이라는 인물이 아니라 그가 통치하고 직무를 수행할 조건과 구조이다.
왜 정치 혁명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탄핵 이후 벌어질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2025년 6월3일 이재명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0.73%포인트보다는 많은 차이로 승리할 것이다. 민주당은 2028년 제23대 총선까지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함으로써 의회 권력과 행정 권력이 일치하는 여대야소의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정책 실현의 필수적인 조건인 입법 권력은 엄청난 재량권을 보장할 것이다. 사법부는 형식적으로 독립성을 유지하겠지만,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사법부의 정치화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하다. 헌정 질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몫의 추천권을 사용함으로써 이념적으로 유리한 구도로 구성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합법적으로 쟁취한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는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도 돼’의 절대권력을 보유할 것이 분명하다.
왜 이것이 최악의 시나리오인가? 합법적으로 정권을 장악한 정권이 비로소 대통합의 정신으로 무너진 민생, 평화, 경제, 민주주의를 회복하여 ‘진짜 대한민국’을 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정치에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통치자의 너그러운 아량과 관용에만 의지하는 정치이다. 계몽 군주가 설령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더라도, 그가 절대권력을 가진 군주인 한 여전히 자의적이다. 절대권력을 획득한 통치자는 법 자체를 통치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통치는 겉으로는 ‘법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안정한 ‘인치’이다. 헌정 파괴의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정치를 개혁하겠다는 말은 헌법 개정을 하지 않는 한 정치적 선동과 미사여구에 불과하다.
차기 대통령, 개헌 통해 이뤄내야
우리는 사회통합과 정치 개혁을 약속하는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의 말을 정말 믿고 싶다. 나라가 두 진영으로 갈라진 현재 상황에서 분명한 것은 그를 신뢰하지 않는 국민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점이다. 사람과 진영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신뢰를 구축할 수 있는 권력 구조이다. 국가적 분열이나 대립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진정한 사회통합은 오직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재건할 때만 가능하다. 윤석열 탄핵 심판에 대한 선고를 내리면서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헌법 제1조를 인용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하였다”는 것이다. 이재명 후보도 진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한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사태를 국민의 힘으로 평화롭게 저지하고 헌재의 판결에 순응하는 것만으로 민주주의를 극적으로 부활시켰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촛불 혁명에 이은 빛의 혁명은 더더구나 아니다. 진짜 대한민국인 민주공화국을 실현하려면, 헌정 위기를 예방하고 민주주의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헌재가 판결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모든 민주적 통치자는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뜻이 공정하게 반영되고 견제와 균형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 체제가 바로 민주공화국이다.
견제와 균형이 없는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신권위주의로 알려진 정치 현상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지도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제도적 견제와 균형을 해체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과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처럼 신권위주의 정권은 헌법적 합법성의 외관을 유지하면서도 민주주의 제도를 체계적으로 약화시키고, 사법부를 종속시키고, 언론을 통제한다. 이들 나라에서는 한때 국민 권리와 시민 자유의 든든한 수호자였던 헌법재판소가 충성파들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사법부의 정치화는 결국 새로운 합법적 독재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회복력을 약화하였다.
우리가 탄핵 이후 진짜 대한민국인 민주공화국을 원한다면, 견제와 균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정치 혁명이다. 승자독식의 선거 제도를 개편해 정당에 대한 지지 비율이 정확히 의석수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헌법 개정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국민 전체보다 진영의 당파적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확실한 징표이다. 다음 대통령은 헌법 개정을 통한 정치 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 경향 2025.04.29.
뉴미디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세상이 미쳐가는 것 같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유튜브를 보고 망상에 빠져 내란을 획책한 대통령까지 기어코 등장했다. 이렇게까지 막장일 줄 몰랐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이 확산하면서 전 세계에서 PC(정치적 올바름주의), 트럼피즘(트럼프와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현상), 브렉시트(사실은 원하지 않던 유럽연합 탈퇴를 국민투표로 선택해버린 일), 노플랫포밍(다른 사람의 표현 기회를 차단하는 현상), 취소 문화(저명인 등을 표적으로 정해 공격하는 행위) 등이 등장했고, 극우세력이 준동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벌어지는가. 새로운 미디어 특성에 대한 대중의 적응, 즉 뉴미디어에 대한 문해력(리터러시)이 너무 빠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뉴미디어는 첨단 기술을 반영한다. 그 발전 방향은 진실 그 자체와는 상관없이 ‘신뢰’를 극대화하고자 한다. 모스 부호보다는 실제 목소리가 들리는 라디오 방송이, 라디오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는 텔레비전 방송이, 텔레비전의 편집된 방송보다는 인터넷 댓글에 쓰인 날것으로의 사람들의 생각이 더 그럴듯한 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1938년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외계인이 쳐들어온다는 <우주전쟁> 드라마를 방송했을 때 정말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하는 줄 알고 패닉에 빠진 시민들이 피란에 나서기도 했다. TV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초기 TV 드라마에 악역으로 출연한 배우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폭행을 당할까 봐 목욕탕에도 가지 못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그런 것이 가짜이고 꾸며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대중이 뉴미디어의 문법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인터넷은 30년이나 되었는데 왜 아직도 사람들은 현혹되는 경우가 많을까? 그것은 인터넷이 지금까지의 신문, 라디오, TV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우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한다. 하지만 그들의 연결은 직접적인 연결이 아니라 알고리즘에 의해 재구성된 연결이다. 따라서 인터넷 대중은 개인이지만 전체의 눈치를 보고, 연결되어 있지만 개인주의적인 ‘연결된 개인’ 특성을 보인다. 또 인터넷은 ‘에코 체임버’(반향실 효과·생각과 신념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소통해 확증편향이 심해지는 현상)나 ‘필터 버블’로 소수의 주장을 증폭하고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은 사람들이 그 속성에 적응하기도 전에 매우 빠르게 광장을 이동시킨다. PC통신의 자유게시판에서 포털의 아고라 광장으로, 뉴스 댓글로, 다시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그리고 다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광장이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성별·연령별로 대중을 구분해 표적화한다. 따라서 뉴미디어 리터러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은 전통 미디어와 다르게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발언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결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을 심화시킨다. 앞으로 인공지능 때문에 더 많은 그럴듯한 영상과 사진, 그리고 핍진성 가득한 음모론이 활개를 칠 것이다.
뉴미디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언론사는 매체명, 기자명, 보도 시점을 더 뚜렷이 표시해야 한다. 관련된 다양한 정보의 링크를 제공해야 한다. 소비자는 뉴스 제목에 낚이지 말고 뉴스매체가 어디인지를 봐야 한다. 내용에 빠지지 말고 누가 한 말인지 찾아봐야 한다. 명성에 끌리지 말고 그 사람이 과거에 한 말도 돌아봐야 한다. 보이스피싱에 속지 않는 방법을 가르치듯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보이는 그대로 믿지 말라고. 진실을 판단할 수 있는 너의 생각을 키우라고.
임문영 미래전환 대표 경향 2025.04.29.
한국 경제, 0% 성장에 갇히나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4월23일, 한국의 2025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0%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하루 뒤 발표된 한국은행의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는 전기 대비 -0.2%를 기록했다. 수출 감소가 본격화되기도 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연간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가능성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한국은행의 최근 경제 진단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경제심리는 얼어붙었고, 트럼프 정부의 본격 출범과 함께 통상환경 악화까지 겹치면서 내수와 수출이 동시에 식고 있다. 1분기 민간소비는 0.1% 줄었고, 음식·숙박·소매업 매출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는 각각 2.1%, 3.2% 줄었으며, 수출도 1.1% 감소했다. 특히 2분기 이후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부과 여파로 수출 부진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성장률 1% 선마저 무너질 위험이 커질 것이다. 문제는 단순히 성장률이 낮아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득 정체와 소비 둔화는 서민경제를 직접 겨냥한다. 음식·숙박업 매출은 3~5%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며, 거리마다 빈 상점과 음식점이 늘어날 것이다. 자영업 폐업 건수는 연간 90만건을 넘어설 수 있는데, 이는 하루 평균 2500곳 이상이 문을 닫는 셈이다. 가계부채 연체율도 1%를 돌파할 가능성이 높아, 20만가구 이상이 원리금 상환에 실패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수 있다. 소비심리 위축과 자산가격 하락이 맞물리면서 경제 하강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고용시장도 충격을 피하기 어렵다.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약 40만~45만명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 있다. 가장 먼저 단기 계약직, 서비스업 종사자, 제조업 하청 근로자 등 고용이 취약한 계층부터 무너질 것이다. 청년층과 중장년층은 채용 축소와 계약 해지라는 이중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가 얼어붙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고용의 문은 더 좁아지고 일자리의 질도 빠르게 악화될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생존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설비투자는 반도체 경기 회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한적이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투자 위축이 재개될 위험이 크다. 지방공장 투자나 신규 고용도 신중하게 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개발(R&D) 투자 위축은 신제품 개발을 늦추고, 미래 성장동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단기 침체를 넘어 한국 경제의 체질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커지고 있다.
정부 재정 여건도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세수탄성치를 감안할 때 명목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국세수입은 4조~5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성장률 둔화만이 아니다. 애초에 과도하게 잡은 국세수입 전망이 이미 흔들리고 있는데, 여기에 성장률 악화까지 겹치면서 세수 결손은 한층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경기침체가 깊어질수록 실업급여, 복지 지출 등 민생 지원 수요는 오히려 늘어난다. 세입은 줄고 지출 수요는 커지면서, 재정 압박은 한층 심화될 것이다. 이는 결국 파면된 윤석열 정부가 남긴 초라한 재정 성적표를 그대로 드러낸다. 경기 하강 조짐이 뚜렷했던 올해 초부터 추경 편성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고, 소극적 대응 끝에 성장 둔화와 세수 결손이라는 악순환을 자초했다. 그 결과, 국민 부담은 가중되고 차기 정부의 재정운용 여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정부 재정운용에 대한 신뢰성 역시 심각하게 흔들릴 위험에 직면해 있다.
다가오는 6·3 대통령 선거는 단순한 정권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선거는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를 거친 뒤,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담은 선거이자, 침체 경로에 들어선 한국 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울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내수경기 회복이 절박한 지금, 서민경제를 살리고 소비심리를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책이 대선 직후 즉시 추진되어야 한다. 또한 이번 대선은 트럼프 행정부의 고율 관세 압박과 글로벌 통상질서 재편이라는 외부 충격에 맞서기 위한 유능한 정부를 세우는 선거이기도 하다. 통상 전략을 새롭게 짜고, 산업구조를 다변화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0% 성장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유능한 정부가 절실하다. 인구구조 변화, 기술 혁신, 산업 대전환이라는 도전 앞에서 방향을 바로잡고, 과감한 개혁으로 한국 경제를 새로운 성장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올해의 선택에 한국 경제의 생존과 재도약이 달려 있다.
류덕현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경향 2025.04.29.
검찰개혁 실패하자 내란이 왔다
검찰개혁을 처음 시도했던 대통령의 죽음으로 끝난 시즌1, 두번째 검찰개혁을 좌절시킨 검찰총장의 대통령 당선으로 대미를 장식한 시즌2에 이어, 검찰개혁의 세번째 이야기는 시즌2의 주인공이 내란을 일으켜 파면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극적인 반전과 비열한 속임수가 난무하는 이 기나긴 막장 드라마는 시즌3으로 종영할 수 있을 것인가.
시즌2 주인공 윤석열이 마치 검찰개혁에 협조할 것처럼 청와대를 속여 검찰총장에 임명된 뒤, ‘합법적으로’ 권력을 차지한 수법은 단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자금을 수사해 검찰개혁 시도를 무력화했던 시즌1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 수사’(살권수) 프레임이 작동하자, ‘검수완박’을 포함한 일체의 검찰개혁 시도가 정권을 향한 검찰의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는 탄압으로 바뀌어 버렸다. 시즌1의 교훈을 상기하자는 주장이 없지 않았지만, ‘추-윤 갈등’으로 부풀려진 정권과 검찰의 격돌에 압도되어 속절없이 진압됐고, 대다수 언론은 윤석열과 검찰 편에서 싸움을 부추겼다.
가장 치명적인 결정타는 개혁 세력 내부로부터 날아왔다. 검찰개혁은 어차피 파워엘리트 간의 권력 투쟁일 뿐이며, 민생이나 소외된 이들의 삶의 개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정권 초기에 적폐청산 수사를 검찰에 맡긴 아둔함, 수사·기소 분리라는 자명한 해법을 두고 검·경 수사권 조정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등 우회로를 택한 소심함, 검찰을 인사로 장악할 수 있다고 믿었던 순진함도 실패 원인으로 꼽을 수 있겠지만, 검찰개혁 세력의 그릇된 인식이 불러온 적전분열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패인이었다. 인식과 프레임 싸움에서 먼저 지고 시작한 게임이었다.
검찰개혁은 파워엘리트 간의 권력 투쟁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 기본 원리를 회복하려는 운동이다. 국가가 법으로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을 사실상 독점한 검찰은 민주주의 체제의 예외적 존재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해 왔고, 팩트로 언론을 조종하는 능력까지 갖게 되면서 족쇄 풀린 리바이어던이 되었다. 검찰을 이용한 사법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윤석열이 군과 경찰을 동원한 친위 쿠데타를 감행한 것은 자연스러운 전개다. 내란은 검찰개혁 실패의 대가다.
검찰은 내란의 숙주이자 첨병이었다. 윤석열이 물라면 물고 핥으라면 핥았다. 정적 척결이라는 윤석열의 욕망과 반검세력 제거라는 검찰 욕망의 운명적 랑데부! 과거의 제 식구 감싸기와는 차원이 다른 정치적 동맹이 탄생했고, 법과 총을 모두 장악했다고 믿은 윤석열은 장기 독재의 망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질주했다. 검찰개혁이 민주주의 존립에 직결된 사안이며, 국민의 자유와 생명이 걸린 문제라는 사실은 ‘윤석열 내란’에 의해 사후적으로도 증명됐다. 검찰개혁은 민주주의에 필요한 하나의 조처가 아니라 민주정 체제 성립의 기본 전제라는 인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 검찰개혁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며, 정파적 유불리로 따질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시즌3 본격 정주행을 앞두고 해결해야 할 인식의 과제가 많지만, 지면의 한계상 하나만 더 말한다면, 20년 이상 계속된 검찰의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는 일이다. ‘경찰 무능론’이 대표적이다. 거악에는 큰 칼(검찰)이 필요하다는 ‘거악 척결론’도 같은 내용의 변주에 불과하다. 검찰이 유능해 보이는 이유는 영장 청구권과 수사권, 기소권과 형집행권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이지, 사시를 패스한 엘리트여서가 아니다. 변호사 자격증 있는 법률가는 경찰에도 많다. 이번 내란에서도 확인했지만,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제멋대로 반려하고, 가로채기까지 한다. 경찰이 영장을 발부받아 확보한 압수물을 검찰이 영장을 다시 쳐서 빼앗아 가기도 한다. 검찰은 제도가 부여한 권한을 이용해 경찰을 바보로 만들고, 무능하다는 이미지를 조작해 왔다. 공수처 무능론도 마찬가지다. 무능할 수밖에 없도록 조직을 축소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제한한 결과다.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는 개혁의 목표가 아니라 시작이다.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과 경찰과 공수처가 중첩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하고, 기소의 경우 미국의 기소대배심처럼 일반 국민이 주요 사건의 기소를 직접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검찰이 하는 짓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했던 바로 그 분노의 지점에 민주적 원리가 개입해 들어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관철해야 한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는 시즌2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이재성 | 논설위원 한겨레 2025.04.29.
'조선공산당'이라는 금기어에서 '과거 속 미래'를 만나다
조선공산당 창당 100주년 단상
4월 중순에는 기억해야 할 날들이 많다. 퍼뜩 떠오르는 날짜만 해도 4월 16일(세월호)이 있고, 19일(4월 혁명)이 있다. 그런데 올해는 이 대열에 17일도 합류했다. 예년 같으면 별 감회 없이 넘어갔겠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이 날과 연관된 역사적 사건이 정확히 100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 아래 있던 1925년 4월 17일, 경성에서 조선공산당이 창당했던 것이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는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주최로 '항일혁명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전쟁과 분단, 반공독재의 역사에 짓눌린 나라인지라 설령 창당 100주년이라 하더라도 별 행사 없이 지나갈 줄 알았더니, 그렇지 않았다. 긴 암흑 속에서도 끝내 기억을 이어가려는 이들이, 그래도 내 짐작보다는 결코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기념행사조차 그리 순탄하게 진행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 파면 이후에도 여기저기 출몰해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는 극우 시위대가 이 행사장 주변에도 나타나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하긴 조선공산당 창당 장소에 놓인 표석조차 백주에 무참히 파손되는 나라이니, 소동이 안 일어나는 게 더 이상했을지 모른다.
2025년인 지금도 이렇다. '공산당'은 여전히 감히 입에 올리기 힘든 단어이고, 이 말 한 마디에 곧바로 타오를 태세를 갖춘 불씨들이 곳곳에 살아 있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는, 100년을 꼭 채운 이 역사를 더 진지하게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귀신 들린' 역사관에서 벗어나자
문제는 대다수 한국인이 아직도 현대사를 가족 서사의 연장이나 확대판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5천만 명의 삶을 남김없이 꿰는 '피해'라는 고리를 중심으로 모든 이야기가 수렴된다. 피해를 준 자와 피해를 입은 자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악연으로 역사를 기억하고 상상한다. 이런 역사관 속에서 '공산당'은 설명할 길 없는 온갖 악운의 원흉이며, 그 역사적 실체를 초과하는 무시무시한 악의 집약체다.
전쟁의 상처가 워낙 컸던 데다 휴전선 북쪽에 어쨌든 공산주의운동의 역사적 결과물인 독재체제가 버티고 있으니, 이러한 역사 감각이 지금까지 지속될 만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도 짊어지고 갈만한 시각은 결코 아니다. 살아 있는 이들, 살아갈 이들의 미래에 어떻게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역사관이 아니라 '귀신 들린' 역사관이기 때문이다. 2025년을 사는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과 냉철한 이성에 따라 다시 읽는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유령들'이 주인 되어 되뇌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 과거를 돌아보면, 조선공산당을 빼놓고는 항일독립운동사의 거의 2/3가 설명이 안 된다는 엄연한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이 민주공화국의 뿌리라 밝힌 3.1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 가운데 다수가 선택한 투쟁의 길은 무엇이었는가? 3.1운동 이후 가장 커다란 대중투쟁이었던 6.10운동과 원산총파업, 광주학생운동을 준비한 주체는 누구였는가? 해방이 '도둑처럼' 닥칠 때까지 끝내 변절하지 않고 투쟁을 이어간 이들은 누구였는가? 조선공산당을 등장시키지 않고는 답하지 못할 물음들이다. 지난 수십 년간 역사학자들이 거듭 밝힌 진실이고, 이제는 교과서에도 부분적으로 반영된 내용이다.
일단 조선공산당과 항일독립운동의 이런 관계를 받아들이고 나면, 공산주의운동을 당시 참여자들의 입장에서 내재적으로 이해해볼 여지가 생긴다. 그들은 왜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그토록 매력을 느꼈는가? 왜 낯선 나라, 소비에트연방에 그렇게 기대를 걸었는가? 1920년대, 1930년대에 민족해방을 위해 비타협적으로 싸우는 혁명가라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1930년대 말에 일본과 미국의 관계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항일혁명가들이 연대를 기대해볼만한 강대국은 오직 '제국주의 타도'를 외치는 소련뿐이었다. 한때 일본과의 무력 충돌로 이어지리라 기대를 모았던 중국 국민혁명군의 북벌이 1920년대 말 국공내전으로 변질된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일제 식민통치와 함께 이 땅에 자리 잡기 시작한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도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 어느 곳에서든 산업자본주의가 태동기에 자행하는 적나라한 착취에 맞선 저항은 사회주의 이념-운동의 형태를 띤다. 그리고 자국민의 눈치를 조금이라도 보는 정부가 작동하는 곳에서는 혁명을 부르짖는 사회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개혁 노선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흐름이 전개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식민지 조선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인도, 베트남에 허용한 껍데기뿐인 자치의회, 지방의회조차 용납되지 못한 곳이 일제 치하의 조선이었다. 이런 곳에서 사회주의란 오로지 혁명적 사회주의를 뜻했고, 양차 대전 사이 시기에 이는 곧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의 지도를 따르는 '공산주의'였다.
또 다른 필수 과제 – 한계와 오류에 대한 철저한 비판
이제 이런 역사 이해가 민주공화국 시민의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자신의 집단적 역사를 반절 이상의 무참한 누락 없이 온전히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조선공산당의 이러한 역사적 복권에는, 그 동전 반대면에 해당하는 또 다른 필수 과제에도 정직하게 나서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 붙는다. 그 과제란 일제 강점기와 해방정국에 공산주의운동이 보인 한계와 오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다. 과오는 과오대로 선명히 밝히고 엄정히 평가해야 한다. 그래야만 역사 복원 작업이 '유령'에 '유령'으로 맞서는 일이 아니게 된다.
가령 1931년 공산주의자들이 신간회 해소 결정을 주도한 것은 크나큰 오류였다. 민족주의-사회주의 연합전선이었던 신간회는 사실상 식민지 조선이 경험한 유일한 대중정당이었다. 하지만 당시 좌편향에 빠져 있던 코민테른 노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공산주의자들은 신간회 건설에 앞장서던 입장을 바꿔 해체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물론 1930년대 말이 되면 타협적 민족주의자들마저 일제의 탄압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되니, 신간회가 마냥 지속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탄압이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노선 전환으로 자진 해산하고 말았다는 기억은 해방되자마자 좌우 대립부터 나타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해방 직후 각 지역에서 조직된 인민위원회가 하나같이, 몇 년 안 되는 신간회 지부 활동으로 다져진 인맥에 바탕을 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신간회의 이른 해소가 더 뼈아프게 다가온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당대의 다른 나라 마르크스-레닌주의자들과 공유하던 정치관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야만 한다. 막연하게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전혀 다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고 당대 소련 정치체제(일당독재)가 그 구현체라 의심 없이 받아들인 정치관이 공산주의자들의 근본적 한계이자 오류였다. 또한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 혁명-내전, 중국 혁명-내전에 직접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폭력에 대한 무감각에 익숙해진 점 역시 심각한 비극이었다.
이로 인해, 해방 후 재건된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남북한의 여러 공산주의 정파들은 태생적으로 '정치'에는 너무나 미숙한 대신 '내전'에는 너무나 저돌적이었다. 민주공화국 안에서 급진적 사회주의 세력이 포함된 '정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규율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대신에 38선 이북에 당대 소련 정치체제를 그대로 이식하는 데 앞장섰고, 전면전 개시라는 절대로 선택해선 안 될 결정에 가담했다.
물론 해방 후에 벌어진 일들의 책임을 일제 치하의 조선공산당과 그 재건 운동으로 지나치게 소급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비극의 씨앗이 이전 시기부터 잠복해 있었다는 사실에서 눈을 돌려서도 안 된다.
공과 과를 명확히 한 뒤에 새롭게 다시 보이는 '과거 속 미래'들
조선공산당을 놓고 이렇게 공과 과를 분명히 가르는 평가 작업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소수나마 이 주제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들은 이미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역사학 바깥에서도 소설가 최인훈이 말년에 내놓은 걸작 <화두>(전2권, 문학과지성사, 2008)처럼 치열하게 이런 작업을 수행한 사례가 있고, 제주도 민중의 항쟁과 당대 좌파의 문제점을 모두 정직하게 담아낸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전12권, 김환기, 김석동 옮김, 보고사, 2015)도 비슷한 사례라 하겠다. 다만 이런 앞선 작업들과 사회 전반의 상식 사이의 거리가 아직 채 메꿔지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이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히 과거를 향해서뿐만 아니라 미래를 향해서도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안겨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됐던 과거를 되살릴 뿐만 아니라 뜻밖에 '과거 속 미래'와 마주하게 만들 수도 있다.
1990년대에 사회학자 김경일의 노고로 재발견된 '조선공산당 재건 경성준비그룹'의 노동운동 지침이 그러한 사례다. 김경일은 '경성준비그룹'을 이끈 이재유(1905-1944)의 존재와 의의를 널리 알린 선구적 저작(<이재유 평전>, 창비, 1993)에서 이 그룹의 기관지 <적기> 1호(1936년)에 실렸던 요구안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 안에는 "민족적 투쟁의 자유"나 "소작료 지불의 거절"처럼 1930년대 조선 사회의 특수한 사정과 직결된 요구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그대로 통용될만한 내용도 있었다. "노동자 및 청년에 대한 노예제도의 낡은 형태인 연기계약제의 반대"나 "부인, 청년의 이중착취반대",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 등이 그것이었다. 연기계약제란 현대의 비정규 고용처럼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더욱 철저히 종속되게 만드는 제도였고, '경성준비그룹'은 당대의 노동자들에게 이런 보다 열악한 처지의 동료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또한 성별에 따른 임금-노동조건 차별의 철폐를 노동계급 전체의 시급한 과제로 부각시켰다.
모두 다 지금 우리에게도 중대한 현안인 문제들이다. 21세기 노동운동이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숙제를 공산주의자들이 100여 년 전에 벌써 제기했던 것이다. 적어도 이 고민에 관한 한, '경성준비그룹'의 운동가들은 시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현재의 노동자들과 직접 대화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이 마지막 논설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8)에서 암시한 대로, 지금 노동운동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 세기 전 혁명가들의 투쟁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다. 과거 운동의 기억을 되살리고 이와 대화하면서 전과 다른 방향에서 미래를 열어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과거 운동의 성공과 실패 자체가 달리 판가름 날 것이다.
비슷한 사례를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조선공산당의 해외 기관지 <불꽃> 7호(1928년)에 실린 '조선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문서는 마치 강령처럼 조선공산당의 궁극 목표와 당면 과제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데, '조선공산당 강령'이라는 정확하지 않은 이름으로 전문연구자 이외의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제하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연구가 일정하게 축적되고 나서야 주목받기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좌파 민족해방운동사를 복원하는 기념비적 작업을 벌여온 임경석 교수(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여운형의 막역한 동지이자 1, 2차 조선공산당 간부로 활동한 조동호(1892-1954)가 이 문서의 집필자라 추정한다("비운의 기록, '조선공산당 선언'은 누가 썼을까", <한겨레21> 1520호, 2024년 7월)
'선언'은 "학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무료 의무의 보통 및 직업 교육을 남녀 16세까지 실시할 것", "빈민 학령 자녀의 의식과 교육용품을 국가의 경비로 공급할 것"을 천명한다. 서유럽 국가들에서도 20여 년쯤 지난 뒤에야 복지국가 건설을 통해 실현된 무상교육을 약속한 것이다. 또한 이 내용은 고스란히,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삼균주의')을 내세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국강령(1941년)에 반영된다. '선언'은 노동과 관련해서는 "무제한의 직업조합의 조직 및 동맹파업의 자유를 가질 것"을, 여성과 관련해서는 "여자를 모든 압박에서 해탈할 것"을 공약한다. 역시 이후 복지국가가 등장한 다음에야 '사회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장될 내용들이다.
한데 '선언'이 이런 사회주의적 이상의 부분적 실현만 주창한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의 정치적 이상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자고 선포하기도 한다. "인민의 신체 혹은 가택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나 "무제한의 양심, 언론-출판-집회-결사 ... 의 자유를 가질 것" 등이 그런 내용들이다. 적어도 '선언'의 문장들만 놓고 보면, 자유주의의 정치적 원칙과 사회주의 이념-운동의 결합은 충분히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일제를 몰아낸 뒤에 건설할 민주공화국의 골간을 제시한 대목이다. "민주공화국을 건설하되, 국가의 최고급 일체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조직한 직접-비밀(무기명투표)-보통 및 평등의 선거로 성립한 입법부에 있을 것"이라 밝히고, "직접-비밀(무기명투표)-보통 및 평등의 선거로 광대한 지방자치를 건설할 것"이라고도 한다. 민주공화국의 핵심 권력기관은 의회이며, 폭넓은 지방자치가 민주공화국의 또 다른 기둥이라는 것이다.
고된 항쟁을 통해 두 차례나 대통령을 파면한 뒤에도 다수의 대한민국 시민은 민주공화국의 핵심 기관이 국회가 아닌 대통령이라 믿으며, 지방자치는 효율적인 중앙집권적 통치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낭비일 뿐이라 여긴다. 이에 비하면, 100여 년 전의 공산주의자는 민주주의를 얼마나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었는가! '선언' 집필자는 모든 민주주의 혁명의 중심 기관인 의회가 우리의 민주공화국에서도 그와 같은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또한 조선왕조 500년과 일제 식민통치 35년 동안 익숙해진 중앙집권주의를 뒤집어야만 제대로 된 민주공화국이 될 수 있음을 명철히 인식했다.
이 점에서, 친위쿠데타를 진압한 뒤에 제6공화국의 모순과 한계를 극복한 새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갈 방안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선언'은 단지 먼지 쌓인 서고에서 찾아낸 고문서만은 아니다. 바로 지금 대화해야 할 '과거 속 미래'다. '조선공산당'이라는 금기어에 가려져 있던 지난 세대의 치열한 궤적 속에 산재한 또 다른 숱한, 미래를 향한 틈들처럼 말이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프레시안 2025.04.29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사람부터 소, 돼지는 물론 곤충과 개미까지 살기를 바라고 죽기 싫어하는 마음은 다 같은 법이지. 어찌 큰 것만 죽음을 싫어하고 작은 것은 그렇지 않겠는가? 그러니 개의 죽음과 이의 죽음은 동일한 것이네.” 이규보가 남긴 <슬견설>의 한 대목이다. 요새 학생들에게는 ‘이’가 무엇인지부터 설명이 필요하긴 하지만, 교과서에 여러 차례 실려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몽둥이로 개를 때려죽이는 잔인한 광경을 목격하고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육류를 먹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는 사람이 첫머리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 글은 동물권을 강조하거나 채식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에게도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이를 잡아 태워 죽이는 것을 보고 나도 마음이 아파서 다시는 이를 잡지 않기로 다짐했다”라고 대꾸하는 화자를 보면 이 작품의 초점이 거기에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의 마음에 공감한다면 나올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모욕감을 느껴 항변하는 상대를 향해 던진 일갈이 위의 인용문이다.
부피감이 작은 파리나 모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잡으면서 큼직한 바퀴벌레를 눌러 죽이기는 꺼려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벌레를 사람과 정을 주고받는 반려동물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크고 작음은 물론, 이롭고 해로움, 심지어 옳고 그름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교와 대조는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이건 되고 저건 안 된다는 판단 역시 자신의 기준에서 그런 것일 뿐이고, 그 기준은 대개 관습과 편견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개와 이는 장자(莊子)의 거대한 붕새와 조그만 메추라기 비유와 연결된다. 9만리 창천으로 날아오르는 붕새를 보며 메추라기는 “쑥대밭 사이만 날아다녀도 이렇게 즐거운데 저 녀석은 대체 뭐하러 저리 높고 멀리 가려는 걸까?”라고 비웃는다. 붕새가 옳은 것도, 메추라기가 옳은 것도 아니다. 장자는, 그리고 이규보는, 이것과 저것, 나와 남의 구별을 넘어설 때 열리는 시야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 절대자유의 소요유(逍遙遊)는 그저 상상에 부칠 뿐이지만, 우리도 ‘원래 그런 것’ ‘절대 안 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려 시도해볼 수는 있지 않을까.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경향 2025.04.29.
‘민주주의’ 고쳐 쓰기
세 번째 ‘대선의 봄’이 그리 따뜻하지 않다. 말문을 닫은 사람들 사이에서 흥은 실종되고, 정치의 온도는 좀체 오르지 않는다. 6·3 조기대선이 열리기까지 한국 사회는 모진 정치의 계절을 견뎌내야 했다. 역사의 심연 속에 박제했다 믿었던 온갖 어두운 기억들이 하룻밤 새 무진을 점령한 안개처럼 밀려오는 것을 목도하였다. 음험한 독재의 망령과 교활한 이념 내전의 유령들, 광기 어린 폭력의 악령들까지. 악몽의 밤들을 견디며 절감한 것은 “민주주의는 고쳐 쓰는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든 고장 날 수 있기에 미리 살펴 예비하는 것 또한 지금 민주주의의 몫이다.
우리는 ‘국가가 어떠해야 한다’는 데는 몰두했지만, 그 ‘어떤 국가’를 만들기 위해 ‘정치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선 깊이 각성하지 못했다. 분쟁도 마다 않을 만큼 ‘열정’엔 능했으나 ‘이성과 논리’에는 서툴렀다. 그리 보면 한국 사회는 아직 국가 건설의 과정에 있는 듯한 착시마저 든다. 한국 민주주의 고쳐 쓰기는 ‘어떤 국가’가 아니라 ‘어떤 정치’에 영감을 주어야 한다. 그럴 때 구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여는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
‘어떤 정치’의 원칙들은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공유되었다. ‘극단’의 배제가 우선이다. 헌법에 집약된 민주주의의 공통분모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은 주장은 해도 정치 시스템에서 중요한 지분을 가져선 안 된다. 포용을 혐오로, 관용을 차별로 파괴하는 그들의 소음은 국가·사회의 통합을 깰 뿐 건강한 정치에 힘을 보태지 못한다. ‘인권·평등·다양성’이 시민들 사이에 확고한 ‘공리’로 자리잡도록 할 책무가 정치에 있다. 그 점에서 내란의 잔재들과 극우에 휘둘리며 퇴행하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은 몹시 우려스럽다.
둘째는 어떤 생산성 있는 정치적 합의 구조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내놔야 한다. 정치가 민생과 국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극단으로부터 공격당할 수밖에 없다. 극단은 현실의 비참을 자양분으로 퍼지는 독버섯이기 때문이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는 5년 전 <글로벌 트렌드 2040>에서 “정치적 연립을 구성하고 사회적 합의를 모으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20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인류 미래 보고서인데 ‘정치 불안’을 세계의 가장 심각한 위험으로 지목하면서였다.
역사를 보면 전쟁을 한 지도자는 모두 종국적으로 실패했지만, 동맹을 고민한 지도자는 대개 성공했다. 이는 정치의 장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연합정치’의 규칙과 문화, 제도화가 필요하다. 대선 9부 능선을 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삼은 것도 같은 문제의식일 것이다. 하지만 가치·방향만으로는 부족하다. 연합정치를 위한 어떤 양보와 절제의 정치 규율을 만들지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다 근원적이고 넓은 민주주의의 확립이 되어야 한다. 악령들의 반동을 보며 민주주의가 우리 사회에 더 깊게 뿌리내려야 함을 절감한다.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문에서 밝혔듯 지금 민주주의의 본질은 ‘다양한 존재를 공정하게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원성·다양성·포용성을 견고하게 만들 보편적 기본권의 확립이 핵심이다. 한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들이 경제발전의 목표가 돼야 하듯, 국가의 성장은 공동체의 가장 작고 외로운 이들을 향해야 한다.
지금 헌법이 태어난 198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다양해진 시민의 목소리가 담기고, 국민주권과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가 보다 여실히 반영되는 민주주의를 구축해야 한다. 정치 시스템만 좀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다. 양당의 독점을 허물고 다당제가 싹틀 수 있도록 제도를 구성하는 결단도 필요하다. 국민발안·국민소환 등 헌법에 없는 직접민주주의 방안들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은 ‘국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금을 다루지만, 그 결과는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정치가 퇴행하다 보면, 정치가 미래를 위한 일임을 자주 잊게 된다. 민주주의 고쳐 쓰기 없이 이대로 또 흘러간다면 권력을 잡고 끊임없이 불화하는 운명은 예정된 것이다. 한 시대가 미래의 평안을 위해 현재를 수술하지 못하면 ‘윤석열들’과 같은 비극을 불러오는 게 정치의 인과응보다. ‘잔인한 4월’의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듯 묵은 정치의 우상 더미를 깨트리고 정치의 새싹을 틔워야 할 새봄이다. 시민의 힘을 민주주의 결함 교정과 정치 변화를 향해 쏟아야 한다. 그때 세계에 영감을 주는 한국 민주주의의 ‘다음 장’은 완성될 수 있다.
김광호 논설위원 경향 2025.04.30.
국민연금, 소득 중심 사회보험으로 전환해야
국민연금 보험료율(내는 돈)과 명목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각각 4%와 3%씩 인상한 모수개혁의 성과와 한계를 딛고 공적연금 전반의 구조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출범했다. 모수개혁이 기금 고갈 시기를 늦춰 재정 안정화에 기여하고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노후소득 보장도 다소 강화한 성과가 있지만, 재정 안정화에도 노후소득 보장에도 미흡한 미봉책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공적연금 개혁의 양대 목표는 재정 안정화와 노후소득 보장 강화이며,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구조개혁의 핵심은 사각지대 해소와 실질 소득대체율 향상을 통한 노후의 빈곤 완화 및 적정 소득 보장에 있으며,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구조개혁에 앞서 연금가입 연령 상한과 수급개시 연령을 정년 연장과 연계해 동시에 올리는 추가 모수개혁이 필요하다고 본다.
머지않아 노인부양비가 100%를 넘는 세계 초유의 국가가 되고 평균 연금수급 기간, 즉 65세의 기대여명이 25년을 넘어서게 될 것이 명백하다. 평균 가입 기간(보험료 납부 기간)이 25~26년밖에 안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연금수급 기간을 25년 이상으로 유지하면서 충분한 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어떠한 연금제도로도 불가능하다. 덴마크처럼 수급개시 연령을 대폭 올려 평균 수급 기간을 15년 미만으로 유지하지는 못하더라도, 연금 연령 상향과 정년 연장 등 노동시장 개혁이 통합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재정 안정화의 과제를 오로지 구조개혁에 맡기면 노후소득 보장이 너무 약해질 것이다. 국민연금을 완전 적립식으로, 또는 스웨덴처럼 명목 확정기여형으로 전환하면 재정 안정화는 이룰 수 있겠지만 65세 연금 연령을 유지하는 한 노후소득 보장 기능은 매우 취약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구조개혁이 병행되지 않으면 노인 빈곤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명목 소득대체율을 올려도 실질 가입 기간이 늘어나지 않으면 실질 소득대체율 인상 효과는 미미하다. 서구 복지국가들에 비해 한국 연금제도가 취약한 핵심 문제는 넓은 사각지대와 짧은 가입 기간,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의 협소함에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실질 소득대체율 향상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방안으로 논의됐던 소득 중심 사회보험 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은 고용보험에 비해 소득 중심 사회보험으로의 전환이 훨씬 쉬울 것이다. 소득 중심 고용보험은 구직급여(실업급여) 자격과 급여액 산정을 소득 기준으로 하여 모든 취업자를 포괄하려는 구상이다. 실시간 소득 파악이 선결 조건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지급은 실업이나 소득이 아니라 연령을 기준으로 하므로 실시간 소득 파악이 불필요하다. 누구나 성인이 되면 자동 가입시켜 보험료를 국세청이 원천징수하면 된다. 사업장을 가진 자영업자는 소득 신고 시 소득세와 함께 사회보험료를 납부하도록 하면 된다. 고용보험은 근로소득과 사업소득만을 기반으로 하지만 국민연금은 이자·배당·임대 등 모든 소득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부과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소액 이자소득까지 포함하면 성인 중 대부분이 아주 적은 금액이라도 연금보험료를 내게 된다.
사회보험료 원천징수는 저소득 불안정 취업자에게 장기적으로 더 큰 혜택을 주지만, 당장의 소득이 더 급한 저소득층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의 사회보험료를 보편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이는 지금의 근로소득공제 제도를 합리화하면 추가 재정 부담 없이, 또는 약간의 재정 투입만으로도 가능하다.
국민연금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확실한 재정 안정화와 함께 현세대와 미래세대 노인의 빈곤 방지와 노후소득 보장을 이룰 수 있는 획기적인 연금개혁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유종성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 경향 2025.04.30.
무수한 별들의 빛
“사람 마음만큼 잘 변하는 게 있을까.” 지난겨울부터 아껴 읽은 시집의 첫 시에 실린 구절이다. 아름다운 시집은 그냥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 두고 싶다. 그래서 김이듬의 <누구나 밤엔 명작을 쓰잖아요>(타이피스트, 2024)는 책상 근처에 두고 언제든 읽었다. 굳게 마음먹었다가도 금세 무너지곤 하는 것이 흔한 인간사라지만, 이 시집에서는 그 사실이 유독 아프다. 이 구절 다음에는 이런 구절이 온다. 마음은 “희고 부드러운 눈발 같았다가 녹으면서 성질이 변한다”는 것. 깨끗하고 고운 마음은 어째서 영원하지 않을까. 눈발로 세차게 쏟아져 내릴 때는 아름답지만 눈석임물로 줄줄 흐를 때는 덧없는 눈처럼.
모든 시집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시집은 특정 계절의 감각을 가득 품고 있다. 그 계절에만 느껴지는 빛, 온도, 냄새, 소리, 색감이 시집의 분위기로 스며 있다. 어쩌면 시인이란 존재는 그런 미세한 질감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는 이들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그런데 김이듬의 이번 시집은 하나가 아닌 여러 계절이 한꺼번에 뒤섞여 몰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집을 읽어갈수록 그것이야말로 자연스럽다고 여기게 됐다. 우리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배웠으나, 계절은 분절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으니까. 하나의 계절은 언제나 다른 계절과의 관계 속에서 흘러가고 변해가고 사라지고 생겨나는 와중에 있다.
시간이란 것 자체가 애초에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것을 김이듬의 시를 읽으면 모를 수 없다. 시간은 하나의 분명한 시작점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쌓이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흘러갔다가도 다시 돌아오고 이내 흩어진다. 시 ‘블랙 아이스’에는 미국 포틀랜드로 입양됐다가 친모를 찾으러 처음으로 한국에 온 에밀리가 등장한다. 엄마가 자신과 닮았을지, 살아는 있을지, 기대감과 두려움 속에서 태어난 장소를 향해 걷는 에밀리 곁에서 ‘나’는 과거를 떠올린다. 자신을 버리고도 아무런 그리움이나 죄책감이 없던 엄마를 찾아갔던 기억을. 그 길을 걷는 두 사람에게 남겨진 것은 기원을 찾으리라는 확신이 아니라 또 한 번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실제로 가긴 간다 미끄럽고 거무스레한 길로/ 태어나려면 거쳐야 하는 통로 같다// 만나 봐야 좋을 게 없을지라도/ 한 번 더 버려질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명확한 기원도 시작점도 없다면, 그러니까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에게 버려져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시 ‘마지막으로’에서 화자는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을 괴롭게 했던 새어머니와 절연하기 위해 그녀를 ‘마지막으로’ 찾아가려고 한다. 매번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연을 끊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짐은 번번이 무너지고 결별은 생각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더 이상 엮이지 않겠다는 다짐은 이런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다. “무수한 별들은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빛을 발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빛.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따라 돌면서 빛을 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서로의 궤도를 침범하며 그 안으로 끌려들어가기도 한다. 그 빛은 마음먹은 방향으로 뻗어나가거나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닿지 않으려는 긴장을 품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서로 부드럽게 뒤섞이면서 스며들기 때문에 아름답다.
애초에 시작이 없었으니 끝도 없을 것이고, 끝이 없으니 언제든 시작될 수 있다. 그런 시간 속에 우리는 있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경향 2025.04.30.
‘혐중’이란 병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2025년 4월17일, 나는 몇개월 만에 그리운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됐다. 세미나 참석 건이 있어서 부활절 휴가를 이용해 서울에 간 것이다. 한국에 다시 온 것은 매우 기뻤지만, 바로 그날 저녁에 너무나 충격적인 뉴스를 접하게 됐다. ‘윤 어게인’(Yoon again·윤석열을 다시) 집회를 연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일부 광적 지지자들은, 그날 저녁 집회가 해산된 뒤에 건국대학교 근처의 속칭 ‘양꼬치 골목’으로 갔다. 이들은 주로 중국 동포들이 운영하는 점포와 식당이 밀집한 거리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하여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등의 폭언을 퍼붓고 난동을 부렸던 것이다. 충돌 끝에 한 가게의 중국인 직원은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일제강점기에나 종종 있었던 중국인을 향한 물리적인 폭력의 그림자를, 해방 이후로는 최초로 이제 그야말로 ‘다시’ 보게 됐다.
일본에서 자행되고 있는 극우 ‘재특회’의 망동을 그대로 닮은 이와 같은 폭거들은, 과연 어떻게 해서 제국주의적 폭력의 피해자들의 후손들에 의해서 저질러지게 된 것일까? ‘재특회’의 폭력은 식민주의적 인종주의에 그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한국의 속칭 ‘혐중’(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 역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근대에 접어들어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대상이 되면서, 조선의 근대주의자들에게 과거의 지역적 종주국이었던 중국은 빨리 벗어나야 할 ‘전근대’, 신속히 거리를 두어야 할 ‘타자’를 대표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립문의 ‘독립’이란 중국(청나라)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 것이었다. 또한 1882년의 임오군란 이후부터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자, 개화파들은 당시에 중국 노동자들의 유입을 막았던 새로운 ‘문명의 중심’, 즉 미국 못지않게 그들에게 모질게 대하는 것을 ‘근대인의 미덕’으로 여겼다.
“청인(중국인)들이 개화한 나라에 가서도 저들의 야만의 풍속을 고치지 않은즉 그 나라 사람과 당초에 섞이지 못하고 대접받기로 그 나라 안에서 제일 천한 인종이 되니 어찌 교제가 되리오? 근년에 청인들이 조선으로 오기 시작하여 조선 사람들이 할 일과 할 장사를 빼앗아 가며, 가뜩이나 더러운 길을 더 더럽게 하며 아편을 조선 사람 보는 데에 피우니 청인들이 조선에 오는 것은 조금도 이로운 일이 없고 (……) 조선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을 외국 사람들이 와서 하고, 돈을 모은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니 어찌 거머리와 다름이 있으리오?”
옛날 말투만 아니었다면 요즘의 ‘혐중’ 전단과 별로 다르지 않게 보였을 만한 글이지만, 이는 서재필이 쓴 것으로 추측되는 ‘독립신문’ 1896년 5월21일자 논설의 일부다. 그 당시 강자였던 미국인을 선망하여 스스로 그들과 닮아가길 원했던 개화파 인사들의 중국인 멸시관 역시 그 당시 미국인의 인종주의적 중국관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교 사업가들을 경쟁자로 인식했던 일제강점기의 ‘동아일보’, ‘조선일보’ 역시 화교들을 종종 ‘아편 밀매’, ‘인신매매’, ‘부정행위’ 등과 엮어서 ‘위험하고 더러운 사람’으로 묘사했다. 중국인 주인공을 “우리 여인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죽인” 악한으로 그린 김동인의 ‘감자’(1925년)와 같은 그 시대의 문학 작품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 이런 인식의 틀은, 언론을 통해 일반인에게 ‘상식’으로 전달돼 ‘만보산 사건’(1931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화교 학살의 하나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중국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배제와 동시에 조·중 연대 역시 꽃피웠다. 같은 조선의 일간지들은 중국 혁명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장지락, 1905~1938)이나 중국 혁명의 가장 뛰어난 작곡가인 정율성(1914~1976)으로 상징되는 수많은 조선의 지사들은 몸을 돌보지 않고 중국 혁명의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 현장에서는 함께 싸우고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것이 예사였다. 나중에 북한이라는 국가의 ‘핵’이 된 김일성 부대(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6사) 역시 중국인과 조선인들이 섞인 연합 부대였다. 혁명적 연대 이외에도 조선의 화교들과의 사업상의 협력 등도 있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은 그만큼 상당히 국제화된 다민족 사회였다.
배제와 연대, 그리고 협력의 ‘삼중주’는 해방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90년대까지는 아무래도 중국에 대한 반공주의 선전과 박정희 등에 의한 화교 상업 활동 억제책 등으로 상징되는 배제가 더 우세했다. 중국과의 수교 이후 광활한 중국 시장이 열리고 중국 동포를 비롯한 수십만명의 중국 공민들이 한국 국내로 이주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무엇보다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협력의 코드가 주도적이었다. 하지만, 미-중 대립이 본격화되고 사드(종말단계 고고도 지역방어) 체계의 배치가 문제로 떠오른 2017년부터 중국의 반발에 직면한 한국의 보수는 다시 1945년 이전의 중국 혐오를 연상케 하는 배제 모드로 퇴보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언론에 의해서 그 정서가 보편화됐다는 것이다.
중국인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1945년 이전에도 백해무익했다. 함께 손잡고 항일에 나서야 했던 중국인과 조선인 사이에 알력이 생기기를 희망했던 것은, 오히려 일제였다. 지금도 분절화돼가는 미국 패권 이후의 혼란스러운 세계 속에서 살길을 찾아야 하는 한국으로서는 중국이란 협력의 대상이지, 배제의 대상은 절대 아니다. 국내에 와서 없어서는 안 될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된 중국 동포를 포함한 중국 공민들은, 마땅히 연대의 대상이 돼야 한다. 이런 협력과 연대가 가능하자면 한국 지식인 사회가 우선 해야 할 일은 여태까지의 중국과 중국인 인식 등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다. 미국의 인종주의적 중국관을 따라가고, 일제의 조-중 이간질 정책과 보조를 맞추어 중국인을 악마화했던 한국 언론의 과거도 반성의 대상이 돼야 하고, ‘만보산 사건’과 같은 중국인 학살에 대한 반성적 언급 역시 교과서에 실려야 한다. 혐오라는 사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약이란 바로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고, 반인권적 행태들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연대와 협력 본위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는 것이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한겨레 2025.04.30.
헌법에 도전하는 대법원의 오판
대법원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대통령 선거일을 불과 한 달 남짓 앞두고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더구나 이 판결로 자칫 수천만 유권자의 자유로운 대통령 선출권마저 박탈될 수 있는 헌정사상 유례없는 상황을 맞았다.
절차나 내용 면에서 이례적인 이번 대법원 판결로 한국의 민주공화제는 중대한 고비에 직면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의 시대착오적인 친위쿠데타에 뒤이어 내란범의 구속 취소 결정과 이번 대법원 판결로 시대착오적인 친위쿠데타로 손상된 헌정을 회복하는 과업이 차질을 빚고 있는 참담한 현실이 헌법학도의 입장에서 안타깝다 못해 분노가 치민다.
이번 판결은 민주공화 헌정에서 사법권의 본질과 선거의 헌법적 의미를 최고법원의 대법관들마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의 대상인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와 그 부속 효과인 선거범죄인의 당선무효나 선거권 박탈은 민주공화국의 주권의 실체에 해당하는 국민대표 선출권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통제장치라는 점에서 근본적 문제가 있다. 법률공무원인 검사나 법관이 국민의 선택을 대체하는 반민주공화적 제도인 것이다.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 추궁과 산적한 국가 현안에 대한 비전과 역량을 두고 국민이 자유롭게 선택해야 할 대통령을, 유력 후보자에 대한 법원 판결에 내맡겨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선거의 제일 원칙은 자유로운 유권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공정은 그 수단적 가치에 불과하다. 허위사실이 불공정선거를 유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이 허위사실인지 일일이 모든 유권자가 알고 투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선거의 본질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심지어 거짓말쟁이 후보라고 하더라도 그보다 더한 거짓말쟁이보다는 낫다는 판단에서 투표할 수 있는 것이 선거다. 선거는 말 한마디의 진실 여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후보자의 이력, 정당이나 정책과 같은 객관적 요소뿐만 아니라 성별, 나이, 출신 지역, 종교와 같은 주관적이고 비합리적 요소도 작용하는 매우 종합적인 선택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은 풀고 돈은 묶는 것이 선거 규제의 대원칙이며 말 몇마디로 선거 결과를 번복하거나 후보 자격을 박탈하는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중대한 위협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은 이번 결정이 선거법 위반 사건의 적시 처리를 도모하고 사법 불신을 해소하는 데 있음을 강변한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신속한 결정은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이례적인 구속취소와 특혜적 대우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오히려 사법 불신을 증폭시켰다는 점에서 전혀 타당성이 없다.
원래 선거 관련 사건은 특별절차인 선거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선거범죄 소송과 같이 형사사건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민주공화정의 안정성을 근본부터 훼손하는 것이다. 설령 그 제도를 도입하는 위헌적 법률이 존재하더라도 사법재량을 활용해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며,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와 권리의 이익으로 처리하는 것이 헌법원칙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같은 처지의 당선자는 내버려두고 낙선자만을 기소해 헌법적 형평성을 결여한 이번 사건의 본질과 엄격히 다루어야 할 선거범죄 소송의 특성을 애써 무시하면서 오히려 선거를 목전에 두고 후보자의 자격 박탈 가능성을 전격적으로 열어젖힘으로써 초래되는 민주주의의 혼란과 위기를 간과하는 헌법적 형량의 오류를 저질렀다.
헌정의 중추기관인 대통령의 선거는 주권자가 직접 헌법기관을 구성하는 중요하면서도 드문 절차인데 말 몇마디에 대한 논란을 이유로 유력 후보자의 자격을 박탈하는 오만한 결정을 통해 스스로가 선거에 영향을 주는 위헌적 행태를 보여준 것이다. 주권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법관들이 알량한 법기술적 판단으로 선거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선거 과정의 거짓말을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책임을 묻는 것은 그 죄의 종류나 정도에 ‘상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형사책임 외에 추가로 당선무효나 피선거권 박탈과 주권자의 후보자 선택권 박탈 결정이 과연 선거나 투표의 본질이나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하는지를 묻는 것이다. 법률공무원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스스로 자유로이 대표를 뽑을 주권자 국민의 선택을 대체할 수 있는가.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경향 2025.05.01.
불교는 자본주의 폭주 막아야 한다
지난달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취임한 해인 2013년 <복음의 기쁨>에서 배제와 불평등, 화폐 숭배, 금융투기 등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새로운 형태의 독재”라고 비판했다. 이듬해 한국의 미사 강론에서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라고 했다. 불교가 태어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2500년 전 석존은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앞으로 다가올 불행을 막기 위해 평생을 길에서 보냈다.
자본주의는 수만년 동안 일궈왔던 공동체를 일거에 해체하고, 자신의 탐욕 원리에 따라 발전해왔다. 16세기부터 상업, 산업,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로 변신해오면서 전 세계에 자본제국을 건설했다. 이로써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 유행병 확산을 가져와 마침내 6번째 인류 대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핵과학자회는 핵전쟁, 인공지능 위협 등의 요인을 더해 최근 지구 종말시계를 자정 전 89초에 맞췄다고 한다. 시장에 쌓여 있는 수많은 제품은 인간의 기술과 노동력으로 창조해낸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온갖 상품을 개발하고 그것에 둘러싸인 행복의 집을 구축한다. 그리고 그 가공의 집을 무한히 확장한다.
국제금융협회는 지난해 전 세계 부채 규모가 45경7000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현재 국제 질서를 무너뜨리며 약육강식의 자본주의를 연출하고 있는 미국의 정부 부채는 5경1000조원이다. 이 빚의 원인은 여럿이겠지만, 무엇보다도 인류가 적정선을 넘어 지구의 자원을 착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후손들이 써야 할 자원을 도둑질하며 사는 것이다. 하나뿐인 지구는 더 이상 견뎌낼 수 없다. 개인의 이기심이 시장 균형을 갖춘다는 이론도, 신기술이 인류의 위기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전망도 믿을 수 없으며, 세계는 부의 불평등과 증오의 전쟁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증폭되고 있다.
<역사의 연구>를 쓴 아널드 토인비가 한 강연에서 20세기 가장 획기적인 사건을 “불교의 서양 진출”이라고 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물질문명을 촉진한 서양과 정신문명을 계발한 동양의 만남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도덕성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단 한 사람이 세계 모든 부의 99%를 차지해도 문제 되지 않는 체제다. 공동운명은 안중에도 없다. 불교는 이 사태의 원인인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는 회광반조(回光返照)하게 하는 힘이 있다.
석존은 <잡아함경>에서 “히말라야산만 한 순금 덩어리를 한 사람이 전부 가져다가 쓴다 해도 마음은 오히려 만족할 줄 모른다”고 설한다. 불교는 오직 인간에 대한 탐구로 일관돼 있다. 몸과 마음을 스캔하듯이 철저히 분석한 불행의 원인인 욕망을 마왕이라고 본다. 석존은 인간 고통의 근원은 뿌리가 없는 욕망을 쌓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화엄경>에서 설하듯 화가와 같은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무아(無我)와 무상(無常)이 진리다.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나 사건들은 찰나에 생겨났다가 찰나에 사라진다. 그럼에도 인간은 오관의 감각적 욕망에만 매달린다. 그러나 그 끝은 쓰다. 영원한 소유는 불가능하다. 허깨비 같은 생각의 지배에서 벗어나 존재 자체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참된 행복이다.
불교는 국가나 부족을 초월해 있다. 언어의 개념에 매여 있지 않고 우상마저도 부정하며, 자신을 구속하는 권위나 권력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현실의 불교는 자본의 그림자가 짙다. 선명상은 소비자본주의에 포획되고, 깨달음을 위한 고귀한 언어는 셔츠에 새겨져 상품이 된다. 눈 푸른 수행자들이 사라진 사찰에는 관광객만이 어슬렁거린다. 이제 한국 불교는 출가자도 수입하고 있다. 인간 욕망에 정면으로 대항해온 불교가 무명(無明)과 갈애(渴愛)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지구를 황폐화시키는 인간에게 회초리를 들지 못한 인과응보다. 무소유의 길을 걸었던 석존처럼 불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본의 폭주에 저항해야 한다. 그것이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원익선 원광대 평화연구소 교무 경향 2025.05.01.
애순이, 금명이, 그다음을 위하여
국제적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16부작을 모두 몰아 보며 펑펑 울었다. 제주도 해녀의 집안에서 할머니와 엄마, 딸로 이어지는 여성 3대의 좌충우돌 인생사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시대적 상황의 변화를 같이 겪어온 엄마 세대인지라, 악조건에서 꿈을 이루어내는 과정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1950년대 가난한 해녀의 딸로 태어난 총명한 엄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시인이 되는 꿈을 가졌지만, 험난한 인생길에서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일편단심 자신을 부추겨준 남편의 도움으로, 또 가난과 편견을 딛고 스스로 길을 찾은 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룬다. 이 이야기는 지난 70년에 걸친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가정과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성을 출산과 가족의 돌봄이란 전통적 역할에 묶어두려는 경향이 여전히 견고하게 남아 있음도 보여준다.
200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남녀 모두 80%를 넘나들며,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남학생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게 되는 20대 중반에는 취업률과 소득에서 남녀 간 차이가 별로 없다. 그렇기에 여성을 우대하는 정책들이 역차별이라고 느끼는 남성들이 2030세대에 많은 것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딱 여기까지다. 경제활동을 하는 남녀 간의 소득 격차는 30대 중반 이후에는 급격히 벌어진다. 취업 뒤 경력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암초와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출산과 육아, 가족 돌봄의 짐이 비대칭적으로 부과되어 여성의 경제활동을 방해한다는 통계와 분석은 넘쳐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정도가 특히 심하다.
일하는 여성의 임금 또는 소득이 남성보다 낮은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그 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은 2023년 현재 약 11% 정도다. 즉, 남성이 100달러를 받을 때 여성은 89달러를 받는 정도의 임금 격차가 존재한다. 이 격차는 지난 수십년간 조금씩 좁혀져 왔고, 대부분의 국가는 2~15% 정도의 격차를 보인다. 20%가 넘는 차이를 보이는 나라는 두곳인데, 일본(22%) 그리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리나라(30%)다. 여성이 직장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갖는지를 평가하는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우리나라는 지난 10여년간 오이시디 국가 중 최하위였다. 심지어 대학의 연구활동을 측정하는 한 지표인 연구비 수주에서도 우리나라의 여성 교수는 남성에 비해 1인당 평균 절반도 안 되는 연구비를 받는 것으로 집계된다.
왜 성별 임금 격차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의견은 남녀 간에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기관인 퓨리서치센터의 올해 보고에 따르면, 약 15%의 임금 격차를 보이는 미국에서 여성들은 절반 이상이 고용주가 여성을 남성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 주원인이라고 답한 반면, 남성들은 여성이 일-가정 균형을 위해 남성과 다른 선택을 하기 때문이라고 답한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여성들은 절반 이상이 기업 내 채용과 승진, 배치에서 차별이 누적된 탓이라고 답한 반면, 남성은 여성이 출산과 육아로 인해 평균 근속연수가 적기 때문이라는 답을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녀 간의 인식 차이는 비슷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클로디아 골딘 하버드대 교수는 성별 임금 격차가 생기는 원인으로 일자리의 성격과 가족에 대한 여성의 부담을 꼽았다. ‘커리어 그리고 가정’(Career and Family)이란 저서에서 그는 187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약 100년 동안 출생한 미국의 여성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경력과 가정 사이에서 어떤 선택과 제한을 경험했는지 분석하였다. 가정과 경력 중 하나를 택했던, 즉 경력을 위해서는 결혼과 출산을 포기했던 1세대부터, 경력을 쌓고 나중에 결혼, 또는 그 반대의 순서로 선후를 바꾸어가면서 선택을 하던 2, 3, 4세대를 거쳐, 경력과 가정을 동시에 추구하려는 5세대(현재 40대 중반 이상)에 이르기까지, 세대별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들과 경력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을 찾았다.
골딘 교수는 여성이 경력을 충분히 발전시키지 못하고 남녀 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는 구조적 원인으로, 보수가 높은 직업들의 상당수가 ‘탐욕스러운 일’(greedy job)을 요구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탐욕스러운 일자리는 높은 밀도로 불규칙한 일정에 대응하는 장기 근무를 요하고, 그 대가로 높은 보수를 지급한다. 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임무를 떠맡은 여성이 배제될 수밖에 없는 일자리다. 행복한 가정과 성공적인 경력을 다 원하지만, 둘 사이에 시간적 충돌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여성은 높은 보수를 포기하고, 가정 친화적인 일을 택할 수밖에 없는 압력을 받게 된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이 성별 임금 격차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이다.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뒤 남녀 간 격차 없이 경력을 시작한 여성들의 상당수가 30대 중후반에 이르면, 가족의 필요에 의한 선택이든 암묵의 차별이든 승진이나 경력의 상승을 포기하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일자리를 선택하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아예 일터를 떠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일을 하다 그만둔 경력 단절 여성이 약 100만명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대부분은 출산과 육아, 가족 돌봄의 부담으로 일을 그만둔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최고의 교육을 받는 데 남녀의 차이가 거의 없어졌다. 작년에 인문사회계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의 55%는 여성이고, 이공계는 박사학위자의 31%가 여성이다. 이들이 경력과 가정 중 하나를 배제해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은 개인을 떠나서 국가적으로도 불행이다.
우리나라가 경제 규모에 걸맞게 사회문화적으로도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행복한 가정과 성공적인 경력’을 추구하는 데 남녀 간에 차이가 없어야 한다. 행복한 가정을 위한 남성의 기여, 성공적인 경력을 위한 여성의 노력이 더 격려되어야 한다. 유연하고 예측가능한 업무 형태가 더 많아져야 하고, 가족 돌봄의 짐이 여성에게 편중되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정과 직장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 만족할 수 있어야 오이시디 최하위권인 행복지수도 올라가고 세계 최하위인 출산율도 올라갈 것이다.
노정혜 | 서울대 생명과학부 명예교수 한겨레 2025.05.01.
‘무기수출’ 국가폭력 통제 입법이 필요한 이유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의 헌법재판소 최후진술문 77쪽 중 3쪽에 걸쳐 기재된 내용이다. “거대 야당은 방산물자를 수출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방위사업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에 참관단(군대)을 보내려 하자 거대 야당이 국방 장관 탄핵까지 겁박하며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윤석열 쪽의 ‘거대 야당 패악질’ 궤변에서 사례 중 하나로 선택된 이 내용을 마주했을 때, 계엄·내란 직전에도 얼마나 ‘난리’였는지가 떠올랐다.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복원한 북한이 우크라이나에 상당한 병력을 파병한 사실이 알려진 지난해 10월 이후 윤석열 정권은 ‘개별 차원의 (우크라이나) 파병은 국회 동의 없이 가능하다’, ‘살상무기를 직접 공급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북한군의 활동 여하에 따라 유연하게 검토해나갈 수 있다’며 으르렁거렸다. 간접적인 형태겠지만,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벌어지기 직전이었다.
그즈음 대한민국 무기류 수출입 관련 통계가 갑작스레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8개국은 지난해 8월까지 모두 유엔 무역 통계 시스템을 통해 무기류 통계를 공개했다. 그런데 오직 대한민국만 지난해 9월부터 이 세계적인 표준에서 이탈한 거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스라엘에 무기 수출을 하느냐’라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제가 아는 한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며, 태연히 거짓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다.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국회 동의 없는 파병 안 된다!’, ‘전쟁 중이거나 국제법을 위반한 국가에 무기 수출 안 된다!’가 당시의 구호였다. 구호가 기댈 수 있는 헌법과 법령의 원칙적 내용은 존재했지만, 대통령이 폭주하겠다 마음먹으니 무력했다. 더불어민주당이 급하게 관련 법률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우크라이나에 파병하면 국방부 장관을 탄핵하겠다 경고했던 이유다. 당시의 문제의식을 이어가야 한다.
확연하게 커버린 대한민국의 ‘힘’(폭력)은 영토 외부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행사하고 있지만, 우리의 인식은 ‘수출해서 돈 벌자’는 경제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파병이나 무기 수출(지원)이 야기하는 정치·외교적 효과, 인도적·인권적 문제는 엄청나다. 제국주의가 재림하고 있는 변화된 국제질서 속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 국가폭력에 대한 통제 문제가 ‘영토 내부’에 국한되어 있었다면, 윤석열의 폭주를 경험한 이후에는 영토 외부로 나가는 국가폭력 역시 중요한 통제 대상이어야 한다.
먼저 파병. 집권 정당을 가리지 않고 파병에 대한 대한민국의 제도적 방향성은 통제 완화, 즉 국회 동의권을 느슨하게 하는 것이었다. 2009년 제정된 ‘유엔평화유지활동법’을 통해 병력 규모 1천명 이하, 파견 기간 1년 이내의 경우 국회 동의는 ‘사후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10년 제정된 ‘국군의 해외파병업무 훈령’에는 “개인 단위 해외파병은 국회의 동의 없이 국방부 장관이 결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특히 후자에 대해 국회와 시민사회의 위헌성 지적은 계속되었지만, 위헌적 관행만이 축적되었다. 결국 이 훈령은 윤석열이 국회를 무시하고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제1의 근거가 되었다. 위헌적인 훈령 규정은 즉각 폐지하고, 법률 수준에서 국회 동의권 예외의 범위와 기준을 최소한으로,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다음으로 무기 수출(지원). 견제와 통제의 시작이자 끝은 ‘정보’이다. 법률 수준에서 무기 수출입과 대여·양도 등의 정보공개가 보장되어야 한다.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은 윤석열 정부의 무기류 통계 비공개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했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도 평화운동가들이 싸우며 소송을 제기한 덕분이다. 행정청은 위 판결을 수용했고, 현재 무기류 통계는 이전 수준에서 공개되고 있다. 그러나 언제든 후퇴할 수 있음을 우리는 경험했다. 무기 수출(지원)의 허가 기준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하고, 일정 범위에서는 국회 동의권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대통령 한마디에 대한민국 무기가 전쟁과 학살의 현장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는 “방위산업 4대 강국”을 공약했다. 한 언론은 ‘윤석열이 못 이룬 꿈’이라 평했다. ‘K팝에 이은 K방산’이라는 낯 뜨거운 수사도 계속이다. 폐허를 딛고 반드시 있어야 할 정보공개나 통제 방안에 대한 원칙은 보이지 않는다. 폐허를 고통스럽게 응시해야만 한다.
임재성 | 변호사·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 한겨레 2025.05.01.
사람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심리학의 많은 논쟁 중의 하나가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이다. 행동주의자는 환경이라고 하고, 정신역동주의자는 어린 시절의 경험이라고 하며, 특질론자는 개인 성격의 고유성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과연 어느 이론이 맞는 것일까? 각각 일리가 있지만, 사회심리학의 창시자 레빈(Lewin)은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의 장이론을 주장하면서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다. 개인의 성격과 환경이 상호작용을 이루며 집단에 모인 사람들의 성격과 환경이 조화를 이룰 때 집단역동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개인의 특성이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환경 또한 개인의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사람의 행동은 고정된 게 아니라 시간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개인의 특성과 환경도 변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변화는 행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갑작스러운 내란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직 파면으로 새로운 대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역동이 또 다른 시험대를 맞이하는 셈이다. 새로운 대통령은 지난 3년간의 파행과 왜곡, 퇴행의 역사를 정리하고 토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운명으로 갖게 되었다. 이 시기를 어떤 역량으로 헤쳐 나갈 것이며 변화를 끌어낼 준비를 갖췄는지가 이번 대선의 또 다른 의미가 될 것이다.
레빈은 조직의 역동과 변화는 과거와의 작별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조직변화모델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조직의 변화와 혁신은 해동기, 혼란기, 재동결기로 설명된다. 해동(unfreezing)기는 지난 사고방식이나 행동 방식을 바꾸는 시기로, 변화된 현실을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과정으로 지금까지의 방식을 끝내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해동이란 말 속에는 ‘끝낸다’라는 의미가 있기에 이전의 행동 방식과 사고에 ‘종지부를 찍는 일’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변화를 모색할 때 새로운 비전과 꿈을 강조하지만, 예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끝내지 않고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방식이 지금의 문제를 만들어냈다’라는 인식을 갖지 않고 변화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혼란(moving)기에는 이전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기존의 제도와 프로세스가 불필요해지면서 혼란과 갈등이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대개 우리는 일주일 후나 한 달 후조차 내다보는 것이 쉽지 않기에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식으로 변화의 흐름에 저항하기도 한다. 혼란스러운 고뇌의 시간을 견디며 온갖 저항에 맞설 수 있는 인내력을 갖지 않고서는 이 시기를 뚫고 나가기 어렵다. 하지만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신념을 갖고 잘 견디면 새로운 결실을 맺는 시기로 이동한다.
재동결(refreezing)기는 새로운 관점과 사고가 결실을 맺는 시기로 구시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의 성과를 온몸으로 느끼는 긍정적 모멘텀이 만들어진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선의 시기를 맞이하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다시한번 숙고해야 하는 전환기에 들어섰다. 지난 정책과 정치권력의 문제로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양극화가 심화되었고, 자신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서라면 헌정질서를 파괴해도 된다는 극우집단의 난동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해야만 했다. 내란 세력에 복무했던 내란 종사자들이 여전히 각계각처에서 활동하고 있기에, 이후의 과제는 1차적으로 내란 종식과 헌정질서의 복구이다. 하지만 그에 저항하는 세력이 일정하게 포션을 점유하고 있기에 쉽지 않은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과제를 대충 덮어둔다면 변화와 혁신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선 시기가 끝나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비전과 꿈을 통한 ‘새로운 시작’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지금 무엇을 끝내고, 향후 무엇을 끝내야 할 것인지’를 정리하는 것이 우선이다. 시작은 이전의 것을 끝내지 않고서는 출발할 수 없기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도 수많은 비전과 혁신과제를 제시했지만, 어정쩡한 상태에서 흐지부지 좌절하게 된 것은 충분한 해동기를 갖지 못하고 혼란기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혼란기의 갈등이 언론과 수많은 이권 세력의 준동으로 증폭되면서 ‘역시나 정권’이 되었다. 이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끝내는 것부터 해야 할 것이다.
양준석 마음치유 활동가 민중의 소리 2025-05-01
지워짐에 저항하는 방법
지난겨울을 지나 봄까지 광장에서 윤석열 탄핵 광장을 만들었던 박남경(22)씨는 요즘은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왜 우리 같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걸까요? 그는 몇번이나 자신이 중도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각하는 중도란 차별 금지와 인권 존중이다. 윤석열 탄핵 광장의 시민발언대에서 나온 목소리와 같다. 사회적협동조합 빠띠에서 만든 ‘천만의 연결’이 지난 2월 온라인 소통 공간을 만들어 이 공간에 모인 목소리 651개를 중간 분석한 결과, 가장 많이 나온 목소리는 차별 금지와 인권 존중이었다. 이것이 광장에서 나온 중도의 정의였다. 하지만 여의도 정치의 계산법은 달랐다. 압도적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중도 보수’ 선언을 했다. 그동안 보수로 알려졌던 세력이 알고 보니 대부분 극우였으므로 이제 ‘보수가 중도’라는 셈법이었다. 이 정치공학이 바로 광장의 목소리를 지우고 보수로 중도를 대표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자신을 진영의 일원이라기보단 민주주의를 구하는 시민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대표되지 않는다. 보수가 곧 중도가 된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재명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된 전 한나라당 의원 이인기는 2009년 용산 참사 희생자들에게 자살 테러라는 막말을 한 사람이다. 이재명 후보의 출마 선언과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는 ‘먹사니즘’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2009년 1월에 망루에 올랐던 이들도 먹고살기 위해서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생각하는 먹사니즘은 대체 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광장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혹자는 광장의 목소리를 조직할 수 있는 정치세력이 부재한 것이 문제라고 하고, 혹자는 구체적인 정책 요구를 통해 정치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라고도 한다. 다시 문제의 해법을 정치가 아니라 시민에게 풀라고 돌린다. 자신들은 먼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먹고사는 문제는 중요하지만, 광장의 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서 광장에 나온 게 아니었다. 먹고살기 힘듦에도 ‘불구하고’ 광장에 나온 것이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어서, 각자도생하며 경쟁하는 인간이 아니라 협력과 공존의 인간으로 살고 싶어서 광장에 나온 것이다. 이런 식의 지워짐은 처음 겪는 일은 아니다. 저 멀리는 1789년 프랑스혁명 이후부터 가까이는 2025년 한국의 탄핵 광장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혁명에 가담했지만 한번도 그 결실을 수확하지 못했다. 혁명세력을 대표하는 이들에게 정치적 지지를 몰아주었지만 그 결과는 철저한 배신으로 돌아왔다.
남은 것은 오직 글쓰기였다. 프랑스 혁명기 작가 올랭프 드 구주는 “선거권도 피선거권도 갖지 못하고 공직도 맡을 수 없으며 집회 토론에 개입할 수도 없고 어떤 책임도 질 수 없는 처지에서 활동적이며 생각 많은 여자가 글 쓰는 일 말고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죽는 날까지 말하고 글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올랭프 드 구주가 1788년 발표한 ‘한 여성 시민이 쓴 민중에게 보내는 편지 또는 애국 기금 계획’에는 한 세기 뒤에도 실행 여부를 고민하게 하는 전위적인 제안들이 담겨 있다. 노인들을 위한 수용 시설, 노동자 자녀를 위한 집합소, 실업자를 위한 공공 작업장을 비롯하여 이 모든 사회사업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치세’를 제안했고, 유명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선행에 관심을 쏟는 언론들에 실제로 가난이 무엇인지를 알고 서로를 돕는 가난한 사람들을 조명하라고 일갈했다. 1992년 미국 대선 후보로 출마한 여성 퀴어 시인 아일린 마일스의 무기 역시 글쓰기였다. 그는 미국 전역에서 선거운동을 하며 가난하고, 병들고, 비정상적인 존재들을 대변했다. 그의 선거운동은 시 낭송회였고 그의 출마선언문은 “정상이 아닌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시였다. 미국 예술가 조이 레너드는 그의 출마를 지지하면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재정의하고 대의정치의 한계를 꿰뚫었던 유명한 연설문, “우리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를 썼다. 이 말들은 그대로 역사에 남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정치는 무엇보다 ‘말’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쓰고, 기록하고, 듣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의 지워짐에 저항하는 방법이고, 이 저항은 실패한 적이 없다. 글을 쓴다는 건 세계의 한계를 다시 짓는 것이다. “그 실행의 지평으로, 저 바깥을 향해.”
권김현영 | 여성현실연구소장 한겨레 2025.05.02.
그래서, 돌고 돌아 ‘윤석열 시즌2’
1일 사퇴한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지난 한달 남짓한 시간은 50여년 공직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한 알 듯 모를 듯 한 발언으로 단숨에 뉴스 인물로 떠올랐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그의 앞에 보수정당은 단일화라는 ‘대선 직행 꽃가마’를 대령해 놓았다. 이에 정권을 넘나들며 핵심 요직을 거친 처세의 달인은 무대 뒤로 퇴장할 시점에 권력의 최정점에 도전하는 길을 택했다. 다만 화려한 경력의 끝에 ‘내란 동조자’라는 오점이 찍힌 ‘늘공’ 한덕수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대선 출마라는 파격적 결정은 ‘이대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주류, 한 전 대행 자신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한 전 대행은 이날 대국민담화에서 “우리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 제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자 저의 직을 내려놓기로 최종 결정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앞서 권한대행으로서 마지막 일정은 안보관계장관회의였다. 과도정부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책임을 스스로 내던지면서, 남은 이들에게 “든든한 안보”를 당부하는 이율배반적 행태다. 그는 2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한 뒤 3일 선출되는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본격적인 단일화 협상에 착수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친윤(친윤석열계) 주류는 한 전 대행을 대선 프레임 전환의 적임자로 판단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을 끊어내지 못한 채 ‘탄핵의 늪’에 빠져 있는 이들은 한 전 대행이 가진 ‘스펙’이 필요하다. 국정 운영 경험과 미국발 통상 전쟁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성, 호남 출신이라는 상징성 등을 강조해 내란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또한 ‘반이재명 빅텐트’로 국민의 이목을 끌고, 몸집을 최대한 불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맞서겠다는 심산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엔 보수 진영의 대표 주자로 염두에 두고 있는 한 전 대행이 윤석열 정권 실패의 공동 책임자이자 비상계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그래서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이 부각된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 전 대행의 지지율이 저조한 반면, 출마 부적절 의견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는 사실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세차례에 걸친 치열한 경선을 거쳐 당원과 지지자들의 선택을 받게 될 대선 후보 역시 한 전 대행의 페이스메이커에 불과할 뿐이다.
사실 현재 국민의힘 경선을 가로지르는 주요 열쇳말은 ‘한덕수 대망론’이 아니라 ‘한동훈 불가론’과 ‘윤심’으로 봐야 한다. 상식적인 정당이라면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경선 룰을 마련해야 하지만, 국민의힘은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다. 일반여론조사에는 역선택 방지 조항을 도입해 지지자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고, 경선에는 당심 50%를 반영했다. ‘배신자 한동훈’은 배제한 뒤, 단일화에 호의적인 후보를 뽑아 한 전 대행과의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당 안팎에선 이런 계획의 배후에 윤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과 2년 반 동안 호흡을 맞춰온 한 전 대행에 대한 신뢰가 강하다고 한다. 자신과 김건희 여사를 보호하고 정권을 계승할 적임자가 한 전 대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복심’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이미 한 전 대행 캠프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친윤 주류는 대선보다는 당권 확보에 관심이 더 많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지지자들을 무시할 수 없고, 대선 이후 당내 기득권을 지키려면 당에 세력이 없는 한 전 대행이 누구보다 적임자다. 한 전 대행 역시 정권이 바뀌면 자신이 윤석열 정권의 각종 실정 및 내란 사태와 관련해 주요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지켜줄 세력으로서 국민의힘이 필요하다.
다만 이들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당무 우선권을 갖게 되는데, 그가 단일화 협상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한동훈 후보는 물론, 단일화에 호의적인 것으로 알려진 김문수 후보 캠프에서도 이미 단일화에 반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손해 볼 생각이 전혀 없는 한 전 대행은 후보 등록일인 11일까지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바로 포기할 것이다. 공정성 논란도 피할 수 없다. 내란 우두머리와 절연하지 못한 ‘원죄’가 족쇄가 되어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혜정 | 논설위원 한겨레 2025.05.02.
'빚 내서 집 사라' 시즌 n번째, 언제까지 봐야 하나?
정책대출에서 지분형 모기지까지
2%대 청년용 주택드림대출 출시했지만…서울아파트는 '그림의 떡'" [부동산360](25.04.22 헤럴드경제)
"1억으로 10억집 산대"...'지분형 모기지' 대박, 아니면 쪽박?(25.04.21 머니투데이)
토허제 나비효과…2030 청년 '영끌' 내 집 마련 올 들어 반등(25.04.25 뉴시스)
4월 가계대출 폭증 조짐?…일주일만에 '1조' 늘었다(25.04.04 연합인포맥스)
"대출 줄인다더니"...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 완화하자 매달 1조씩 늘었다(25.03.03 매일경제)
특례대출 받은 30대, 아파트 '큰손' 됐다…포모(FOMO)도 영향(25.02.16 동아일보)
'빚 내서 집 사라' 정책.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야당과 언론이 정부 정책을 비판하면서 붙인 별명이었다. 집값과 전셋값 동시 상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박근혜 정부는 DTI 등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고, 양도소득세와 취득세를 완화하고, 2015년부터는 기준금리를 서서히 인하했다.
다음 정부인 문재인 정부도 저금리 정책을 이어갔다. 주택담보대출 규제는 강화했지만 임기 초부터 주택임대사업자에게 대출을 집값의 80%까지 허용했다. 시장참여자들은 신용대출 등 갖가지 수단으로 주담대 규제를 우회했다. 무엇보다 전세자금대출 잔액이 매년 급증했다. 임차인의 전세자금대출로 풀린 돈은 전셋값을 상승시키면서 임대인의 갭투자를 뒷받침했다. 코로나 시기에는 금리가 더 낮아지고 자산 가격은 치솟을 대로 치솟았다. 양태는 달랐지만 '빚 내서 집 사라'의 지속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집값이 이미 너무 많이 올라 있었다.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화두였고 기준금리는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빚 내서 집 사라'는 정책을 펼치기에 부적합한 시기였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2023년 1월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신청을 받았다. 2023년 한 해 동안의 주택 매매거래 41만1812호 중 4분의 1 정도인 10만2617건이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을 받아서 이뤄졌다. 정책대출을 통한 아파트값 올리기라는 비판이 나오자 정부는 특례보금자리론 축소를 발표했다.
이듬해인 2024년 1월부터는 신생아특례대출이라는 상품이 출시되었다. 이번에는 부동산시장 부양책이 아니라 저출산 해소 대책이라는 포장지를 입혔다. 신생아특례대출은 기존의 정책대출인 디딤돌 대출과 버팀목 대출의 적용 범위를 확대한 상품으로, 2년 내 출산 또는 입양한 무주택 가구에 주택구입 또는 전세자금을 저리로 빌려준다. 1주택 가구의 경우 대환대출도 가능하다. 대상 주택은 9억 원 이하여야 하고,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이 가능하며, DSR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연소득 6000만 원대인 부부가 기존의 신혼부부전용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받는 경우와 새로 출시된 신생아 특례대출을 4억원씩 받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우대금리 조건 중 청약저축 가입(연 0.3%p)과 부동산 전자계약(0.1%p)을 만족한다고 가정하면 이 부부가 신혼부부전용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받을 경우 금리는 2.85%가 된다. 신생아 특례대출의 경우 금리는 2.25%까지 내려간다. 원리금 균등상환을 가정하면 매월 상환 금액이 약 11만 원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실제로는 체증식 상환도 가능하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약 132만 원이 절감된다. (일반 주담대와 비교하면 연간 400만 원 정도가 절감된다.) 반면 기존에 신혼부부전용 대출을 받을 수 없었던 연 소득 8500만 원 이상인 부부의 경우는 일반 주담대와 비교해야 한다. 주담대 금리를 4.0%로 가정하면 신생아 특례대출로 절감하는 액수는 연간 320만 원 정도가 된다. 즉 신생아 특례대출로 가장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기존에 다른 정책대출 이용이 불가능했던 연 소득 8500만 원 이상인 부부였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초기에는 대환대출 신청이 많았고, 뒤로 갈수록 신규 주택구입자금 신청이 늘어났다(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주택도시보증공사 자료). 2024년 1월~7월 실행금액 기준으로 95%는 아파트 관련 대출이었고, 실행 건수 기준으로는 약 53%가 서울, 경기, 인천에 몰려 있었다. 그리고 2024년 하반기에도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세가 나타났다.
윤석열 정부는 정책금융을 풀다가 아파트값 상승이 문제가 되면 갑자기 금융권을 압박해서 대출을 조이거나, 금리를 일부 올리거나 하는 식으로 시장에 개입했다. 집값은 비싸졌는데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감소해서 소매 판매마저 줄어들던 시기였기에 정책금융은 시장 분위기를 바꿀 정도의 큰 힘을 발휘했다. 2024년 전국에서 아파트를 가장 많이 매입한 연령대가 30대(26.6%)였다는 사실 역시 저금리 정책대출과 무관하지 않다.
최근에는 고소득층을 겨냥한 돈 풀기를 했다. 2024년 12월부터 신생아 특례대출의 소득요건을 부부 합산 2억 원으로 완화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던 21번째 '민생토론회'의 후속 조치라고 했다. 2024년 4월 4일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민생을 챙기는 정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보자. "일부 정부 사업의 소득기준이 신혼부부에게 결혼 페널티로 작용해 혼인신고를 늦춘다는 지적에 따라 부부소득 합산 기준을 대폭 상향하는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안진이
2024년 11월 28일에는 국토부가 신생아 특례대출 소득요건을 연소득 2억 원까지 상향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래서 <매일경제> 기사 제목처럼 "연봉 각각 1억씩인 부부도"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소득요건을 2억 원으로 완화한 2024년 12월부터 2025년 2월까지 특례대출 신청액이 급격히 증가해 월 1조 원을 넘어섰다. 소득이 1억 3000만 원 이상 2억 원 이하인 고소득 신혼부부의 대출 신청이 몰린 영향으로 짐작할 수 있다.
애초에 신생아 특례대출은 27조로 계획되어 있었으나 첫 1년 동안(2024년 1월 29일~2025년 1월 30일) 실제 실행된 금액은 총 10조3438억원이었다(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국토교통부 자료). 그중 7조6711억 원은 주택구입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아마도 정부는 신생아 특례대출 실행 규모가 애초 계획에 미달하자 소득요건 완화를 결정했을 것이다. 결혼도 출산도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개별 가구의 입장에서 보자. 2023년도나 2024년도에 출산한 가구 또는 출산하려고 했던 가구라면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아서 이자 부담을 줄이면 된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던 연소득 6000만 원대 신혼부부라면 어떨까? 연간 100~400만 원 정도의 이자 비용이 절감된다고 해서 아이를 낳게 될까? 육아 비용과 사교육비, 휴직이나 경력 단절의 비용도 생각해야 하므로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신생아 특례대출은 정말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혹시 건설업체와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가계가 빚을 지게 만드는 정책은 아니었을까?
젊은 세대가 미래의 아파트값에 베팅하도록 국가가 유도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신생아 특례대출을 받은 사람들이 장기적으로 이득을 보려면 앞으로 아파트값이 오르거나 최소한 현재 가격이 유지되어야 한다. 반면 아직 대출을 받지 않은 청년들의 경우 신생아 특례대출 여파로 아파트값이 오를 경우 나중에 더 높은 가격에 주택을 구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아이를 낳기는 더 힘들어진다.
주거 문제를 해결해서 출산율을 높이고 싶다면 정공법이 있다. 인위적으로 부동산시장을 부양하지 않고, 예산을 투입해서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공공주택을 얼마나 공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정치인들 중 누군가는 청년층에게 LTV를 전면 폐지하겠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DTI 철폐를 말했다. 당선이 유력한 다른 정치인은 "국민의 욕망을 억제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주거에 대한 공적 책임을 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가 걱정된다. 올해 정책대출도 24년(60조4000억 원)과 비슷하게 60조 원 수준으로 공급하겠다고 하니, '빚 내서 집 사라'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정책은 이름과 숫자만 바꿔서 계속 나온다
지난 18일에는 청년층 무주택자를 위한 저금리 대출 상품인 청년주택드림대출이 출시됐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인 만 39세 이하 무주택자가 청년주택드림통장으로 청약에 당첨될 경우 연 2%대 금리로 분양가의 80%까지 대출을 제공한다.
금융위원회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지분형 모기지’라는 정책은 더 놀랍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지분형 모기지란 '집을 살 돈이 부족하면 집값의 10%만 내세요'라는 정책이다. 나머지 90%는? 40%는 대출을 받고 50%는 정부(정확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투자' 형식으로 지분을 매입한다. 수분양자는 정부 지분에 대해 매달 일정한 사용료를 내고, 나중에 집을 매각할 때 시세차익은 지분 비율대로 나눈다. 혹시 나중에 집값이 떨어질 경우 손실은 정부가 먼저 감당한다. 정부 지분에 대한 사용료가 연 2% 수준이니, 주담대 금리와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수분양자에게 유리하긴 하다. 그러나 부동산시장은 민간의 영역이라면서 집값 하락의 위험을 왜 정부가 떠안아야 하느냐는 의문이 든다. 통계상의 가계부채는 늘리지 않으면서 부채 주도 성장을 도모하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상승 동력이 부족한 부동산시장을 정부가 떠받치려면 점점 위험하고 복잡하고 자극적인 정책이 나오게 된다. 새로 들어설 정부는 '빚 내서 집 사라' 다음 시즌을 찍지 않기를 바란다.
안진이 더삶 대표 | 프레시안 2025.05.02.
트럼프가 만든 캐나다 총선의 대반전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복귀 중 하나" … 자유당 지지율 25%차 극복'정권연장'
"미국과의 오랜 동맹관계는 끝났다. 수십년 동안 우리에게 번영을 가져다 준 개방적인 세계무역체제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는 비극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현실이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실시된 캐나다 연방하원 총선에서 자유당을 승리로 이끈 마크 카니 총리의 연설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당인 자유당은 전체 343석 가운데 169석을 얻어 144석에 그친 보수당을 따돌렸다. 4차례 연속 총선 승리를 기록했다. 과반인 172석에는 3석 모자랐지만 캐나다 의원내각제 정치체제에서 자유당은 정권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과의 영원한 동맹은 끝났다”
올해 초만 해도 야당인 보수당은 45%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저스틴 트뤼도 전 총리가 이끌던 자유당에 20% 이상 앞서 있었다. 자유당정부가 연 30만명 수준이던 이민자를 50만명까지 받아들이면서 부동산 가격은 터무니없이 치솟았고, 주택공급은 부진했다. 임금은 정체돼 있는데 물가는 최고 연 8% 가까이 올라 캐나다인들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2015년 정권을 넘겨줬던 보수당은 트뤼도 총리의 인기가 바닥을 치면서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을 기회를 맞았다. 피에르 포이리에브 보수당 대표는 트뤼도 총리에 대한 불신임안 제출을 비롯해 조기총선 실시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결국 트뤼도 총리는 지난 1월 6일 사임 의사를 밝혔고, 자유당은 경선을 통해 10일 뒤 마크 카니를 새 대표로 선출했다.
이 시점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임기를 시작했다. 트럼프는 취임 2주 만에 캐나다에 ‘관세전쟁’을 선포했다. 캐나다 내부에서 미국에 대한 반발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워싱턴포스트’는 캐나다 총선이 끝난 뒤 “자유당의 극적인 반전은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놀라운 정치적 복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반전을 가능하게 한 주인공은 단연 트럼프 대통령이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이슈’가 부동산과 이민, 물가 등 캐나다 총선의 모든 의제를 단번에 집어삼킨 것이다. 캐나다 공영방송 CBC에 출연한 정치전문가는 미국 대통령의 연봉이 40만달러라는 점을 언급하며, “총선에서 이긴 자유당은 기꺼이 그 금액을 선거비용으로 지급할 용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엘보즈 업(Elbows up)’은 ‘필요할 때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아이스하키 용어다. 캐나다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인 아이스하키에서 경기가 과열되면 선수들은 스틱을 빙판에 내던지고 주먹다짐도 피하지 않는다. 하버드대 재학 시절 아이스하키 팀에서 골키퍼를 했던 카니의 선거캠프는 ‘엘보즈 업’을 캠페인 구호로 사용했다. 선거 광고에서 카니는 한 코미디언과 하키 링크에 등장했다. 어쩌면 유치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이 광고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잇따라 도발하는 가운데 캐나다인들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외부의 도발에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자는 의미였다.
“엘보즈 업!” 외친 마크 카니
‘영원한 동맹’으로 인식되던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캐나다인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카니는 ‘강한 캐나다(Canada strong)’를 주창하며 이에 대응했다. 경제전쟁을 벌여야 한다면 결코 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캐나다인의 전의를 한곳으로 모으는 역할을 한 것이다.
반면 정권 탈환이 유력시되던 보수당의 실패는 이런 흐름을 읽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포이리에브 보수당 대표는 지난해부터 트뤼도 전 총리를 공격하는 데 화력을 집중했다. 그가 내세운 구호는 ‘변화’였다. 자유당 10년 정권을 끝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트뤼도가 물러나면서 방향을 잃었다. 더구나 트럼프가 캐나다를 향해 관세 전쟁을 선포했을 때나 합병을 얘기했을 때도 그는 처음부터 강한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트럼프의 핵심 참모역할을 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포이리에브를 지지한 것도 마이너스가 됐다. 머스크 회장은 올해 초 트뤼도를 비판하면서 보수당 대표에게 정치적 유대감을 드러냈다. 특히 트럼프의 발언은 캐나다 총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도 “당신들의 세금을 반으로 줄이고, 군사력을 세계 최고 수준까지 무료로 강화하며, 자동차 철강 에너지 등 모든 산업을 4배 성장시키겠다. 단 캐나다가 미국의 소중한 51번째 주가 될 경우”라고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MAGA 냄새부터 지우라”
브리티시콜롬비아대(UBC) 정치학과 리처드 존스턴 교수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캐나다 총선이 서방 국가와 정치권에 주는 교훈은 ‘MAGA(트럼프식 보수주의)’ 냄새를 지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국 우선주의로 돌아선 트럼프 앞에서 동맹관계를 맹신하지 말라는 경고다.
로이터통신은 캐나다의 사례가 서방 여러 국가에서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예를 들어 호주는 5월 3일 선거를 치르는데 주요 정당은 캐나다 자유당의 지지율 상승 요인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다. 로이터는 호주에서도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인한 우려가 번지면서 유권자들이 중도좌파인 노동당 지지로 기울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역시 트럼프에 온건한 입장을 취한 노동당정부의 인기가 갈수록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몰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마크 카니 총리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맞서 글로벌 리더 역할을 모색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니 총리는 “자유무역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합을 구축하는 데 리더 역할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미국이 더 이상 리더 역할을 원하지 않는다면 캐나다가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캐나다 언론들은 트럼프의 등장에 따른 이번 총선의 결과가 세계 각국의 정치 구도를 재편성하는 기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총선 선거운동 기간 캐나다에서는 지역갈등이 서서히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간지 ‘글로브앤메일’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5명 가운데 3명은 ‘서부 독립’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답했다.
원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산업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앨버타주와 대평원 지역인 사스캐처원, 매니토바주 등에서 분리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다. 특히 이들 지역은 보수당이 강세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니얼 스미스 앨버타 주총리는 연방선거 결과가 나온 뒤 “많은 유권자들은 자유당이 다시 연방정치권을 장악한 데 불만을 갖고 있다”면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앨버타의 이익을 해치려 든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앨버타주에서는 미국으로의 원유와 천연가스 수출이 지역경제의 핵심이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등을 이유로 오일샌드 개발 규제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등 갈등을 빚어 왔다.
트럼프와의 관세협상 등 현안 산적
카니는 선거 유세 중 작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저는 예산을 관리한 경험이 있고 경제를 운용해 봤으며 위기를 다뤄봤다. 지금은 실험이 아니라 경험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대반전을 이뤄내며 총선 승리를 거머쥔 마크 카니 앞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세 협상이 가장 큰 산이다. 총선 직후 양국 정상은 전화통화를 갖고 만남을 약속했다. 트럼프는 “‘나이스 젠틀맨’ 카니 총리가 5월초 백악관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과 인플레, 경기침체 우려 등도 자유당 정권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마크 카니의 정치 경력은 고작해야 몇달 정도다. 하지만 2008년 캐나다중앙은행장을 맡아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기는 리더십을 발휘했다. 영국중앙은행은 2013년 그를 첫 비영국인 총재로 임명했다. G7 국가의 중앙은행 두곳을 이끈 최초의 인물인 셈이다. 그는 영국의 브렉시트 혼란 가운데 유동성 공급으로 시장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크 카니는 자유당 대표가 된 뒤 트뤼도 전 총리가 추진했던 탄소세와 양도소득세 개편안을 철회하는 등 결단력을 보였다
조용호 언론인 | 내일 2025.05.02.
조희대 대법원장님, 30년 경력 판사도 납득 못한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됐다. 이번 상고심은 여러 모로 이례적이었다. 사법은 ‘실체적 공정성’ 못지않게 ‘외관의 공정성’도 중요하다. 과연 이번 판결은 공정했는가.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조희대 대법원장에게 묻는다.
소부에 배당됐던 사건이 왜 전원합의체로?
대법원은 4월 22일 오전 이 후보 사건을 오경미 대법관 등 4인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그러더니 두 시간 만에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사실상 직권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대법관 4인으로 구성된 소부는 전원이 합의해야 선고할 수 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 등 13명으로 구성되는 전합은 과반수가 합의하면 선고가 가능하다.
당초 배당됐던 2부의 오경미 대법관은 5월 1일 전합 선고에서 이흥구 대법관과 함께 반대의견을 낸 2인이다. 오 대법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마지막 대법관이다. 조 대법원장은 진보적 성향을 띤 오 대법관 때문에 소부에서 합의가 지연될까봐 전합으로 넘긴 것 아닌가.
이례적인 초고속 심리·선고의 배경은?
조 대법원장은 전합 회부 당일 심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전합 회부 9일 만에 선고를 강행했다.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초고속이다. 오죽하면 현직 법관들마저 실명 비판에 나섰겠는가.
부산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2일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대법원은 특정사건에 관해 매우 이례적인 절차를 통해 항소심의 무죄 판단을 뒤집는 판결을 선고했다”며 “이러한 ‘이례성’은 결국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비판을 초래할 수 있다”는 글을 올렸다.
청주지법의 한 판사도 “1,2차 합의기일을 가진 후 1주일 후에 판결을 선고했다. 30여년 동안 법관으로 근무하면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초고속 절차 진행”이라고 비판했다. 판사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재판을 주권자들이 받아들이겠는가.
법률심을 맡는 대법원이 왜 사실심을?
한국 사법체계에서 1심과 2심은 사실관계를 다투는 사실심이다. 반면 대법원 상고심은 원심이 법리를 잘못 적용했는지(법리 오해), 증거 수집·채택 과정이 위법했는지(채증법칙 위반)를 따지는 법률심이다. 그런데 이 후보 상고심은 1심 판결문을 사실상 ‘복붙(복사 후 붙여넣기)’하며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을 길게 언급했다.
하승수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법률심의 판결문답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이 어느 점에서 법리 오해를 하고 채증법칙을 위반했는지 지적하는 판결문이 아니었다”면서 “대법원은 마치 사실심의 판결문처럼 판결문이 작성된 이유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도 “파기환송을 했지만 고등법원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더 이상 다툴 여지를 남기지 않았다. (고법은) 그저 형만 결정하라는 취지”라고 비판했다.
‘6·3·3 원칙’을 왜 낙선자에게?
조 대법원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6·3·3 원칙(1심 6개월-항소심 3개월-상고심 3개월) 준수를 강조해왔다. 이 원칙은 본래 당선자를 겨냥한 것이다. 선출된 공직자의 재판을 신속히 처리함으로써, 선거법 위반자들이 임기를 사실상 다 채우는 사태를 막자는 취지다
이번에 대법원은 당선자가 아닌 낙선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더욱이 해당 낙선자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차기 대선의 유력 후보이다. 조 대법원장은 국민주권주의를 무시하고 대선개입을 시도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례가 된다고?
대법원은 ‘속도전’ 배경을 설명하며 2000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대선 재검표 사건(조지 부시 대 앨 고어)을 선례로 들었다. “대선 직후 재검표를 둘러싸고 극심한 선거혼란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연방대법원이 3~4일 만에 재검표 중단을 명해 혼란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당시 판결은 대법원이 밝힌 대로 “대선 직후” 상황을 다룬 것이고, 이번 판결은 “3년 전 대선”을 다룬 것이다. 더욱이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 사법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판결 중 하나로 꼽힌다.
헌법재판소와의 경쟁심이 발동했나?
대법원은 이번 사건 선고의 생중계를 허용했다. 전원합의체 선고가 생중계된 사례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등 극히 드물다. 법조계 관계자들은 이례적 결정의 배경으로 ‘헌법재판소와의 경쟁 관계’를 꼽는다. 최근 윤석열 탄핵심판에서 문형배 당시 헌재소장 대행의 선고문이 국민적 주목을 받으면서 경쟁심이 발동했다는 것이다.
대법원과 헌재의 ‘파워 게임’은 오래된 이야기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두 기관은 ‘한정위헌’을 둘러싸고 갈등을 이어왔다. 한정위헌이란, 특정 법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하는 대신 ‘이 조항을 이렇게 해석하거나 적용하면 위헌’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헌재는 이를 근거로 법원 판결을 취소한 사례가 있다. 대법원은 그러나 한정위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조 대법원장에게 미국 법학자 프레드 로델의 말을 전하고 싶다.
부족 시대에는 주술사가 있었다. 중세에는 성직자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법률가가 있다. 어느 시대에나, 기술적 수법에 뻔뻔하고 그럴듯한 말장난을 첨가해, 인간 사회의 우두머리로 군림하던 영특한 무리들이 있었다.
- 프레드 로델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2025.05.03.
책상물림들의 시대착오적 중국 망상
조선 사신단의 중국 사행길 풍경을 그린 연행도(전체 14폭) 중 조양문을 그린 장면. 단원 김홍도의 작품이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제공
12월 말에 중국 북경에 도착한 조선 사신단은 약 두달을 머물렀다가 이듬해 3월 초 귀국길에 올랐다. 북경을 떠나면 곧 계주였다. 계주에서 동쪽으로 30리를 가면 ‘송가성’(宋家城)이란 곳이 있었다. 1766년 3월1일 귀국길에 오른 홍대용은 이틀 뒤 북경으로 가던 길에 들르지 못했던 송가성을 찾고자 하였다. 그런데 사신단의 부사(副使) 김선행은 동행을 거부했다. 이유는 송씨 가문과 청의 관계를 오해한 데 있었다. 김선행은 송씨 가문이 과거 청(淸)에 저항하였고, 현재도 청의 핍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해의 구체적 내용은 이러하다. 송씨들은 명나라의 세신(世臣)으로 청의 군대를 여러차례 패배시켰고, 강희제 때 비로소 항복했다. 청은 송씨들의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성을 파괴하려고 했지만 너무 견고해 실패한다. 또 청은 송씨들을 괴롭히기 위해 1년에 은 1만냥을 벌금으로 바치게 했지만, 송씨들은 아직도 버티며 청의 조정에 벼슬하지 않는다. 송씨들은 조선이 명의 은혜를 받았는데도 청에 복종하고 있기에 조선을 의롭지 않게 여기고 있고, 또 이런 이유로 조선 사람을 경멸한 나머지 침을 뱉는가 하면 불과 물을 달라 해도 주지 않는다. 요컨대 조선 사신단이 송가성을 찾아가면 모욕을 당하리라는 것이 동행을 거부했던 이유였다. 홍대용은 1713년 김창업이 찾아가 확인한 결과, 송가성의 전설은 사실이 아니었고, 만약 또 송씨들이 청에 저항하여 핍박을 받고 있다면, 더욱더 찾아가 보아야 할 것이라고 설득했지만, 김선행은 듣지 않았다.
김선행을 남겨두고 홍대용은 3월4일 송가성을 찾아가 주인 송씨와 중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홍대용이 청조 이후 송가 사람들이 출사(出仕)하고 있는지를 묻자, 송씨는 자신이 진사가 된 지 9년이 되었지만, 아직 벼슬을 못 하고 있다고 답했다. 홍대용은 송씨들이 청나라 조정에 벼슬하지 않는다는 김선행의 말은 ‘모두 헛소문인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어 송가성의 역사에 대한 대화가 있었다.
“사가(私家)에서 어찌 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전조(前朝, 명나라) 때 변방 방어가 매우 급했기 때문에 금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찌해서 유독 존가에서만 이 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도지휘사가 2만 장정을 거느리고 둔전(屯田)을 경작했는데, 이 역시 나라의 일이라 겸하게 된 것입니다. 때로는 남은 재화가 있었으니, 어찌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었겠습니까?”
“본조의 초년에 이 성 역시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언제 귀복(歸復)했는지요?”
“순치 3년(1646) 천하가 완전히 평정되었는데, 그때 귀복했습니다.”
‘순치 3년 천하가 크게 평정되었을 때’란 1644년 청이 북경을 차지한 뒤 일시 성립했던 남명(南明)의 여러 정부 중 복건성을 근거지로 삼았던 당왕(唐王)이 청에게 패배해 죽은 해다. 송씨는 이것을 청의 중국 지배가 확립된 해로 보았던 것이다. 어쨌든 송가성은 스스로 항복했던 것이고, 저항한 역사도 없었던 것이다.
홍대용이 송가성이 파괴된 곳이 많은 것이 과거 청군의 포격 때문인지 묻자, 옹정 연간의 지진으로 파괴되었고, 물력이 부족해서 수리하지 못한 것이라고 답했다. 벌금 ‘1만냥’도 사실이 아니었다. 송가성에는 특별한 저항의 역사도, 핍박의 자취도 없었다. 홍대용의 숙부 홍억이 송씨 가문에서 청조에 들어와 벼슬한 사람이 있는가를 묻자, “전조 때는 여러 대 세습했지만, 지금은 계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성주(聖主, 청의 황제)에게 버림을 받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김선행이 상상했던 것처럼 송가성의 송씨들에게는 저항의 역사와 의지가 실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송가성의 저항이란 조선인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였던 것이다.
지난 3월1일 서울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 참가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드는 가운데, 한 시민이 2020년 총선이 중국이 개입한 부정선거라는 근거 없는 이유로 ‘중국 공산당 아웃’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50여년 전 김창업이 송가성의 전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선행을 비롯한 조선 사람들은 송가성의 저항사(抵抗史)를 믿고 있었고 송씨들은 지금까지도 청의 핍박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청은 절정기를 맞이한 거대한 제국이었다. 작은 성 하나의 저항이라니!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간단했다. 직접 찾아가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김선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현실에 눈을 감고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에 갇혀 있었다.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언젠가 북벌(北伐)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지껄이던 조선의 지배 계급은, 현실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송가성을 찾아가자고 했던 홍대용도 다를 것이 없었다. 그 역시 멸망한 명(明)에 대해 의리를 지켜야 하고, 오랑캐에 대해 언젠가 복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북경에서 청의 관리들이 자신을 눈여겨보면, 만주식으로 바꾸지 않은 자신의 옷을 보고 명을 그리워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역시 일방적인 착각일 뿐이었다.
이것이 조선 후기 지배계급의 중국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었다. 실재하는 청에 대해 별로 아는 것도 없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중국을 대상으로 정상적인 외교가 가능했을까? 요즘 말로, 그것이 국익에 보탬이 되었을 것인가? 한마디 덧붙이자면, 오늘날 대한민국 일각에서 내뱉는, 중국을 혐오하는 발언도 같다. 제발 꿈에서 깨시라.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한겨레 2025.05.03.
'내란이라도 괜찮아'?…'엘리트 카르텔'의 최종 병기 한덕수
대통령 선거가 '경기고 올드보이' 동문회 축제인가?
윤석열은 대한민국의 탐욕스럽고 무능한 엘리트 집단이 만들어낸 최악의 아웃풋이다. 윤석열이 즐겨하는 표현으로 치자면 '엘리트 카르텔'이라 할 수 있겠다. 애초 국정을 운영할 비전도 능력도 없는 윤석열을 만들어낸 건 이 카르텔이다. 윤석열이 상징하는 것은 '서울 법대 엘리트', '고시 사회'와 '출세주의', 남성 중심의 조폭식 '의리 문화', 기득권 종교 집단들이다. 친일과 반공주의 극우를 사상의 뿌리로 둔다.
서울대 법대 출신 윤석열은 육사 출신 김용현파와 함께 전두환 시절의 '육법당(육사+법조)'을 되살렸다. 이 카르텔의 전폭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총선에서 참패하자, 윤석열은 비상 계엄을 통해 '가질 수 없다면 파괴하겠다'는 비뚤어진 몽니를 실행했다.
지난 총선 때 윤석열과 주류 세력의 공천을 받아 살아남은 108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엘리트 이권 카르텔의 표상들이다. 이들은 1996년 정계 입문 이후 30년 동안 보수 정당에 몸바친 홍준표가 후보에서 탈락한 뒤 몇 시간만에 김문수 뒤에 줄을 섰다. 기득권 엘리트들의 이권 카르텔 주변에서 평생 겉돌다 마침내 '반공 극우'의 길로 빠져든 김문수는 엘리트 기득권이 내세운 한덕수의 마중물에 다름 아니다.
내란으로 자폭한 윤석열의 후계자로 한덕수가 거론되고 있다. '한덕수 대망론'에 경기고 출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경기고, 대통령 빼고 대한민국의 모든 요직을 다 차지해 봤다는 그 학교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논외로 친다.) 'KS 라인'(경기고-서울대) 세대는 76·77년 졸업자까지 경기고 입시 마지막 세대를 칭한다. 이들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대한민국 엘리트 계층의 핵심을 이뤘다. 한덕수는 49년생으로 75세다. 'KS 라인'의 전성기 핵심에 그가 있었다. 진작 은퇴했어야 하는 세대다.
한덕수는 '내란 정권'의 총리를 3년 내내 지냈다. 윤석열이 엇나갈 때 그가 고언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일이 없다. 그는 폭주하는 윤석열의 충신이었다. "계엄이 선포되는 걸 꿈뻑꿈뻑 쳐다보기만 했던 총리"(박정하 국민의힘 의원)는 윤석열이 국회와 선관위에 특수부대를 보내는 걸 보고만 있었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그가 윤석열 파면이 원인이 돼 치러지는 대통령 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초현실적이다.
경기고 출신들이 대통령직에 한이 맺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는 2025년에도 여전히 노욕을 부리며 건재한가 보다. 김대중을 모셨다는 경기고 출신 정대철(80세)은 내란 정권의 핵심 한덕수를 "저의 중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이자 친형은 나하고 가까운 친구로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다"고 인연을 나열하며 "대통령 운이 오는 것 같다고 말해줬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DJ가 정대철의 이런 모습을 보며 무슨 얘길 할지 궁금하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당대표까지 지낸 바 있는 경기고 출신 손학규(77세)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어떤 후보자보다 경쟁력이 있다"며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전화한 것도 한 총리를 인정한 것"이라고 낯뜨거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정대철과 손학규는 한덕수와 경기고 서울대, KS 라인 동문이다. '내란 정권 후계자'라도 밀어서 '엘리트 카르텔'을 지키려 하는 눈물겨운 동문 사랑은 노선과 이념을 넘어선다. 경기고 서울법대 출신 이회창이 상고 출신에게 두 번이나 패배하는 걸 지켜본 '트라우마'가 이들의 '이권 카르텔'에 스며든 것인가.
▲ '서울대 총동창회보' 4월호 만평. ⓒ서울대 총동창회보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대 총동창회보' 4월호에 만평이 하나 실렸다. 서울대 마크가 찍힌 운동복 차림의 한나라당 이회창이 장대를 잡고 '상고(商高)'라는 장애물을 뛰어 넘으려는 모습이었다. 기록판의 1차 시기에는 X표가 그려져 있다. 1997년 이회창이 목포상고 출신 김대중에게 패배하고, 2002년 부산상고 출신인 노무현에게 도전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만평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내심의 학벌 엘리트주의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그려낸 작가는 이원복 교수로 그는 이회창의 경기고 서울대 후배다.
2002년 3월 13일자 중앙일보 만평은 김근태가 민주당 대선 경선 초반에 1위를 달리던 노무현에 밀려 사퇴한 것을 두고 경기고 동문들이 그를 조롱하는 내용이다. 만평 속에서 경기고 동문회는 '비상총회'를 열고 김근태에게 '학교 망신이다. 사퇴해!'를 외치고, 김근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알았어'라고 답한다. 예전에 중앙일간지는 "노무현 대통령은 KS 저격수"라는 '괴담'이 돈다는 내용을 기사랍시고 버젓이 소개했다. 고건, 정운찬, 김근태의 대선 불출마를 두고 조롱하는 기사다.
▲2002년 3월 13일자 중앙일보 만평 ⓒ중앙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극우 유튜버로 잘 나가는 고성국은 '부정선거론'의 화신 황교안의 경기고 동기다. 전두환 노태우 독재 시절 한때 진보적 학술운동을 주도하다 국보법 위반으로 고초를 겪기도 한 그는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극우주의자로 변모했고, 동창 황교안 대통령 만들기에 투진했다. 그는 지금 내란 세력의 스피커가 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엘리트 노병들이 내란 정권의 잔당을 뻔뻔하게도 미는 것는 부끄러움이 없어서다. 그리고 한줌 권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자 함이다. 내란 정권의 충신이어도 상관 없다. 한덕수는 고향을 속이며 출세 길을 걷고, 군사 독재시절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 정부까지 '기름장어' 처럼 연명해 온 살아있는 화석이다.
이 화석을 미는 이들은 새로운 KS(강남 8학군-서울대) 한동훈과 같은 '신(新) 엘리트'들의 몸부림도 괘씸하게 본다. 비상계엄을 막고 세대 교체를 주장하는 목소리조차 '배신' 딱지를 붙여 막아내는 '늙은 카르텔'은 여전히 2025년 한국 사회에 펄펄 살아있다. 늙은 기득권이 가진 뻔뻔한 민낯의 마지막 모습일까?
한덕수 대망론을 띄우려 급조된 책의 카피는 '대한민국 시스템 복원의 열쇠'다. 늙은 엘리트 기득권을 '복원' 하고자 하는 그들을 보며 대한민국의 위기를 생각한다. 낡은 것이 갔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는 것, 그것이 위기의 정의다. 그런데 낡은 것이 가지 않고 되레 새로운 것의 싹을 잘라내려 하는 것, 그것은 무엇인가. 낡은 것이 연명하려 몸부림치는 상태를 우린 무어라 불러야 할까.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5.05.03
'세상과 어울리기 > 외부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5.12~18 (0) | 2025.05.19 |
---|---|
25.5.4~11 (0) | 2025.05.12 |
4월4주 4월21일~28일 (0) | 2025.04.28 |
25년4월 3주 13~20 (0) | 2025.04.20 |
25년4월 3주 (7~13) (0) | 202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