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바꿔야”…강남 한복판에 3만명 모였다, 왜? 2.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 3. 농산물이 병드는 여름, 아픔은 사람에게 닥친다 4. 대파·양파·바나나 ‘닥치고 수입’…윤 정부의 엇나간 기후 인플레 대응 5 “청년들 농촌 오지 마라…정부가 정신 차리기 전까지는” 6. 첨단 도시와 자연의 어울림… 공원의 가치를 생각하다
7. 기후정의행진의 경로는 헌재가 결정하지 않는다 8. 부산시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 MOU 체결 9. 부산 이기대 퐁피두센터 유치 나섰지만... 논란도 커져 10. 9월 취수원 코앞까지 닥친 녹조…부산시민 녹조재난선포
11. 보행자 안전 위해 서울 도심에 ‘튼튼 가로수’ 심는다 1 2. 지구의 경고…서울 사상 첫 9월 폭염경보, 89년만 가장 늦은 열대야 13. 열대야만큼, 갈피 잡기 힘든 기후 대책 14. 제2 이기대 난개발 없도록… 부산시, 지침 바꾼다 15. 태평양 섬나라들 “생태학살, 범죄로 인정하라” ICC 청원 16 공원·정원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시대이다
17시민이 지켜낸 이기대, ‘경관 보존’ 출발점 돼야 18. “우리 아들·딸의 호소라는 느낌”…기후위기 승소 변호사들 19.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국회, 기후위기 본격 대응 움직임 20. ‘현대건설 컨소’가 신공항 부지 공사 21. 가덕신공항 현대 건설 컨소시움이 공사를 하는 것에 대해
“지금 바꿔야”…강남 한복판에 3만명 모였다, 왜?
“우리 집은 텃밭을 하는데 상추랑 옥수수를 키웁니다. 상추는 너무 더워서 다 녹아버렸고, 옥수수는 말라 비틀어져서 딱 한 개밖에 못 먹었어요. 엄마한테 여쭤보니 지구가 아프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엄마 손을 꼭 붙잡고 7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 일대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고은아(8)양이 말했다. 은아양은 행진에 참여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지구가 아파한다는 걸 알리고 같이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부터 청소년,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 백발의 노인까지.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지금 말하고, 지금 바꿔야 한다”며 한목소리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했다.
이날 기후정의행진이 열린 서울 강남대로 일대는 오후 1시께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행사를 주최한 ‘907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조직위)는 “애초 예상한 참석 인원 2만명을 넘겨 3만여명이 행진에 동참했다”고 추산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강남역에서 시작해 역삼역·선릉역·포스코사거리를 거쳐 삼성역을 향해 행진했다.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방출하는 대기업 본사가 즐비한 곳이다. 이들이 종이상자를 재활용해 만든 손팻말에는 “지구는 한 개, 기후위기는 한계”, “지구야 그만 변해, 이제 내가 변할게”, “나는야 녹색전기를 선택하는 소비자” 등의 메시지가 적혔다.
정록 907 기후정의행진 공동집행위원장은 “노동, 인권, 여성, 환경, 반빈곤 운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른 세상을 일구기 위해 분투해온 우리는 ‘기후정의운동’으로 서로를 넘나들며 연결됐고 이렇게 모였다”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을 넘어, 기후 불평등·부정의에 맞서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7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고은아(8)양과 고은찬(10)군이 팻말을 들고 있다. 박고은 기자
본 집회에서 발언에 나선 이들은 곳곳에서 현실화한 기후 재난 앞에 ‘정부의 안일한 인식’을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김현욱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좁은 국토에 전국 15개의 공항도 모자라 10개의 공항을 더 지으려 한다”며 “삶의 지속성을 방해하는 생태계 파괴를 멈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임희자 보철거를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네트워크 집행위원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세종보 재가동 정책을 비판한다”며 “세종보 수문의 재가동은 금강의 죽음”이라고 규탄했다.
‘부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석헌 홍천송전탑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은 “동해안 강릉과 삼척에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고, 거기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장거리 초고압 송전망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다”며 “자본의 이윤을 위해서, 농촌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통과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이재인(14)·차하윤(13)양. 박고은 기자
기후위기의 직접적 피해자로 꼽히는 ‘미래 세대’ 어린이·청소년의 목소리는 한층 거셌다. 윤현정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가 ‘탄소중립 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사실을 언급하며 “지금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우리 삶을 지킬 최전선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제안했다. 서울 목동에서 온 이재인(14)양은 “기후위기가 더 심해지면 어릴 적부터 봐왔던 코카콜라 마스코트 북극곰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며 “우리가 지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친구와 함께 행진에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친구 차하윤(13)양도 “학교 수업 시간에 아마존의 나무가 계속 사라지는 영상을 본 적 있는데, 올해 여름이 너무 더워 기후위기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란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7일 서울 강남구 교보타워 사거리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 참여한 전국금속노동조합 포스코사내하청 광양지회 박종국 수석부지회장과 임용섭 지회장이 작업복을 입고 팻말을 들고 있다. 박고은 기자
참석자들이 강조한 것은 결국 정부와 기업의 결단이었다. 11살·9살 자녀와 참여한 이윤경(36·대구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해바라기방과후 소속)씨는 “기후정의행진에 3년째 참여하고 있는데 매해 참여 인원이 늘어나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건 정부가 시민들의 피부에 와닿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오렌지빛 작업복(방진복)과 방독마스크를 착용한 채 집회에 참여한 임용섭 전국금속노동조합 포스코사내하청 광양지회 지회장은 “분진과 대기 오염 탓에 이 옷과 마스크를 써야만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오염물은 바깥으로도 다 새어 나가 기후환경에도 영향을 미치는 일인데 정부와 포스코는 전혀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행진에 나서는 이유
기후위기가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올해에만 한 달여 넘게 이어지는 폭염, 수많은 사람들이 온열질환에 쓰러지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기까지 했습니다. 가히 기후재난입니다. 새로운 일상이 되어버린 기후재난,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이상기후. 기후가 바뀌고 우리의 일상도 바뀌어 이제 예전처럼 살기 어려워지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합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고 하고 있습니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꿔야 우리 삶을 송두리째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것은 기후위기가 지금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 때문에 야기되고 있는 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윤을 낼 수 있어야 뭐든 돌아간다고 믿는 세상에서,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들이, 돈 있는 이들이 에너지를 맘껏 쓰면서 다시 돈을 법니다. 그렇게 불평등은 더 커지고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화석연료 소비는 줄지 않습니다.
시스템을 바꾸자
이러한 세상에서, 온실가스 배출에 그닥 책임이 크지 않은 이들이 기후위기, 기후재난의 우선적이고도 치명적인 피해를 떠안고 있습니다. 폭염 속에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일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 농민들,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놓을 공간도 부족한 쪽방 내에 갇히다시피 여름을 나야 하는 빈곤층에게 폭염은 그야말로 재난이었습니다. 산업화에 뒤처져 화석연료를 써서 온실가스를 배출할 여력도 없는 가난한 나라들이 해수면 상승에 시달리고, 가뭄과 홍수에 매년 큰 피해를 입습니다.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은 그래서 세계 기후운동의 중요한 구호 중의 하나였습니다. 노동자들에게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먼저 세 가지 사례를 듭니다. 첫 번째는 방금 말씀드린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계급투쟁 없는 환경운동은 정원 가꾸기일 뿐이다'는 말입니다. 새삼스럽게 계급투쟁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정원 가꾸는 것을 폄훼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평등한 세상이 초래한 기후위기에 대해 제기하지 않고서, 이를 바꾸기 위한 공동의 싸움을 만들지 않고서 환경보호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했던 브라질의 환경운동가 치코 멘데스는 결국 아마존 벌목 기업의 사용자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세 번째는 '죽은 행성에는 일자리도 없다'는 것입니다. 노천 채굴을 위해 산꼭대기를 폭파하는 것에 맞서 싸웠던 미국의 환경운동가 주디 본즈의 말입니다. 무너져가는 세상에서 기득권을 둘러싼 논란은 큰 의미가 없음을 이야기하는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 번째 명제는 노동자에게는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줍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노동자에게 일자리는 삶입니다. 나와 가족의 삶과 미래를 지켜주는 일자리는 그만큼 노동자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나 내 일자리 지키는 데 정신이 팔려서 우리 공동체가, 우리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내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세상 무너지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으며, 그렇게 해서는 내 일자리 역시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기업에 재생에너지 산업 내주고
환경 문제에, 기후위기에 노동자들이 소극적이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상당수 노동자들은 그러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내 일자리는 소중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환경 문제에 보수적인 계층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후위기를 직시하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고 마련하는데 나서야 합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이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기후위기에 맞선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이 몇 년 전부터 벌이는 녹색단체협약 캠페인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단체교섭과 단체협약에 기후정의를 불어넣기 위한 것입니다. 내 사업장과 내가 종사하는 산업 자체가 녹색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고 이것을 단체협약을 통해 쟁취하겠다는 것입니다. 갈 길은 아직 멉니다. 시간이 많지도 않습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함께 나서야 합니다. 민주노총이 907 기후정의행진에 함께하는 이유입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뿐만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이 기후정의를 외치고 함께 나설 수 있도록 일터에서, 지역에서, 기후정의행진을 알리고 함께할 것입니다.
2025년 말이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가 본격화됩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서는 화석연료 에너지 산업의 중단과 재생에너지 산업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합니다. 발전 노동자들은 내 일자리 지키겠다고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가로막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폐쇄에 동의하고 기후위기에 함께 맞서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와 지자체는 그 어떤 실효적인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산업을 대폭 확장하겠다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전히 개발과 이윤 추구의 관점에서 바라볼 뿐입니다. 정부는 현재 우리나라 해상풍력발전의 90% 이상을 외국투기자본과 대기업들에 내주고 있습니다. 에너지 공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산업 투자는 극히 미약합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폐쇄하지만 재생에너지 산업은 사기업에 내주고, 발전 노동자들의 고용은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올해 907 기후정의행진은 공공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대와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 적자의 이면에서 엄청난 이윤을 챙기고 있는 에너지 사기업들에 곧 에너지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 재생에너지 영역을 넘겨줄 수는 없습니다. 에너지 전환이 에너지 민영화이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907 기후정의행진에 발전 노동자들도 앞장설 것입니다.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서, 공공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그것이 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고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석 부산민주노총 정책국장/ 오마이뉴스
'불량 숲'을 더 좋아한 곤충·버섯·새들··· 무색해진 편백 힐링 숲
서울 은평구 봉산엔 서울 최초의 편백숲이 있다. ‘오로지 편백 한 종을 위해 있던 숲을 모조리 밀어버리는 게 정당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될 때마다, 관할 지자체는 ‘기존 숲은 불량림이었다’라는 취지의 말로 일관한다. 대체 그곳은 얼마나 불량했던 걸까. 봉산을 찾아 ‘불량림’과 편백림의 생물다양성을 들여다봤다. 왼쪽 사진은 봉산 편백 인공림에서 채집한 편백 낙엽, 오른쪽은 봉산 자연림에서 채집한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팽나무, 때죽나무, 밤나무, 굴참나무, 갈참나무, 쥐똥나무, 아까시나무, 산뽕나무 등 다양한 수종의 낙엽을 하나의 잎으로 형상화한 모습이다.
서울 은평구 남서쪽에는 봉산이라는 이름의 나지막한 산이 있다. 낯선 지명이지만, 봉산은 지난 2020년부터 거의 매해 대벌레,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 등 곤충이 집단 발생하며 미디어에 여러 번 노출된 바 있다. 봉산의 또 다른 연관 키워드는 ‘편백’이다. 2014년부터 은평구가 ‘서울시 최초’ 타이틀을 걸고 진행 중인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 조성 사업의 영향이다. 이는 기존 산림을 베어낸 자리에 편백 숲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은평구는 지난 10년 동안 봉산 내 6.5헥타르(㏊) 규모 산지에 약 1만3,400그루의 편백을 심어왔다.
‘멀쩡한 숲을 훼손한 자리에 기후에 맞지도 않는 수종을 심었다’는 비판이 나올 때마다 은평구가 해명·보도자료를 통해 자주 언급하는 명제가 있다. ‘기존 ‘불량림’을 제거하고 편백림을 조성했다’는 것. 이미 사라진 숲이니 얼마나 불량했는지 직접 확인할 길은 제한적이지만, 인근에 아직 남아 있는 유사한 환경의 숲을 찾아 '불량림'의 실체를 살피고자 했다. 본보는 '생명다양성재단'의 협조를 받아 봉산 내 편백 조림지와 자연림에서 4개 분류군(식물류, 조류, 곤충류, 균류)에 대한 생물상 비교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기간은 지난 8월 5일부터 8월 18일까지, 조사 구역은 2017년 북사면 자연림을 모두베기 하고 조림한 편백림 1ha와 이곳에서 약 470m 떨어진 북사면의 자연림 1ha로 설정했다.
봉산 자연림 생물상 조사 결과 목록. 위에서 아래로 식물류 89종, 곤충류 97종, 조류 16종, 균류 39종.
식물상 조사 결과 편백 조림지에서는 71종이, 자연림에서는 89종이 기록됐다. 이 중 목본(나무)은 자연림(44종)이 조림지(14종)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종이 관찰됐다. 두 조사지 간 교목(목본 중 한 개의 굵은 줄기를 갖는 나무)의 생활사 단계에 차이가 있었다. 인공림에서는 편백나무와 일부 벚나무속을 제외한 대부분의 교목이 어린 임목인 반면, 자연림에서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아까시나무 등 다양한 교목의 성숙 임목과 어린 임목이 고루 관찰됐다. 이는 벌채 후 편백나무를 일괄적으로 심은 인공림에서는 성숙 임목의 종 다양성이 감소한 반면, 자연림에서는 다양한 교목 종이 여러 생활사 단계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봉산 편백 인공림 생물상 조사 결과 목록. 위에서 아래로 식물류 71종, 곤충류 15종, 조류 7종, 균류 7종.
편백림 인공림은 높은 울폐도(숲이 우거진 정도)로 인해 산림 아래쪽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이 적으며, 특히 타감작용(식물에서 화학물질이 생성돼 다른 식물의 생존·성장을 저해하는 작용)이 활발해 하층식생의 종 다양성과 풍부도가 감소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 조림지를 관찰한 바에 따르면 편백이 빼곡히 자라난 지역은 상대적으로 하층식생이 낮은 밀도로 분포하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계곡부 또는 편백이 고사한 구역은 수관층(나무의 꼭대기 부분)이 열리며 지면에 닿는 빛의 양이 증가해 생태계 교란 식물인 환삼덩굴, 서양등골나물, 돼지풀 등이 우세하게 자라나 있었다.
봉산 남측 사면 편백이 죽은 자리마다 외래종 식물 미국자리공이 높은 밀도로 확산하고 있다.
봉산 편백 조림지의 계곡부가 칡과 생태계교란식물인 환삼덩굴로 뒤덮여 있다.
자연 생태계는 먹이사슬로 연결된 피라미드 형태의 네트워크로 비유되곤 한다. 식물계는 이 피라미드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다. 봉산의 경우처럼 편백 한 종을 위해 원래 있던 숲의 식물 다양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면, 바로 위에 위치하며 식물을 먹이 삼는 곤충계가 받을 영향은 자명하다. 곤충상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 112종 중 97종이 자연림에서, 15종이 편백 조림지에서 관찰됐다. 곤충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는 편백 단일종 조림으로 인한 식물 종다양성의 감소, 특히 밀원식물(꿀벌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꽃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식물)의 감소를 이 같은 큰 차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했다. 식물상을 조사한 전문가도 동일하게 언급한 내용이지만, 조림지에서 편백의 고사 등으로 수관이 개방돼 드러난 나지에서는 생태계교란식물로 지정된 환삼덩굴이 우점한 상태인데, 이로 인해 밀원식물의 다양성에 영향을 크게 받는 야생 화분매개자의 다양성 감소가 두드러졌다. 반면, 자연림에서는 청줄벌, 애꽃벌, 스즈키나나니등에, 호리꽃등에, 녹색박각시, 부전나비류와 같은 벌목, 파리목, 나비목 등 화분매개자가 다양하게 발견됐다. 또한 넓적배사마귀, 긴날개여치, 밑들이파리매와 같은 포식자, 동애등에와 초록파리와 같은 분해자 등 생활사 단계의 여러 층위에서 생태적 역할을 수행하는 다양한 곤충들이 발견됐다.
봉산 남측 사면 편백이 고사한 자리로 칡이 우점하고 있다. 남은 편백들(붉은 화살표)이 칡덩굴에 휘감겨 있다.
숭실고 방면 남측 사면에 살아남은 편백들은 저마다 가지 끝에 종자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이들은 생장 환경이 악화했을 때 잎을 새로 달거나 가지를 뻗고 몸집을 키우는 대신 생식에 집중한다.
조류의 먹이가 되는 식이식물을 분석한 결과, 편백 조림지에서 5종(누리장나무, 산딸기 등), 자연림에서 20종(때죽나무, 산딸나무, 가막살나무, 팥배나무 등)이 관찰됐다. 실제 조류상 조사 결과는 이러한 서식 환경을 반영하고 있다. 편백 조림지에서 조류 총 7종 19개체, 자연림에서는 16종 43개체가 관찰되며 종 다양성과 밀도에서 차이를 보였다. 자연림은 하층식생이 풍부하게 발달해 있고, 다층림으로 구성돼 있어 산솔새, 동박새, 동고비, 어치 등 산새들이 다수 관찰됐다. 딱따구리류가 선호하는 고사목도 그대로 있어 먹이활동 터와 번식둥지 터 역할을 하고 있었고, 실제 청딱따구리와 오색딱따구리가 관찰됐다.
봉산 자연림에서 관찰된 노란망태버섯.
봉산 편백 인공림에서 관찰된 직박구리(왼쪽)와 자연림에서 관찰된 파랑새.
버섯(담자균류) 조사 결과도 두드러진 차이를 보였다. 조림지에서는 7종, 자연림에서는 39종이 관찰됐다. 조사에 참여한 전문가는 “버섯의 출현은 출현식물과의 연관성이 매우 높다”며 “자연림의 버섯 출현이 많은 것은 아까시나무와 상수리나무 등 교목과 버섯이 건강한 상호 의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증거다”라고 설명했다. 자연림에서는 사마귀광대버섯, 노란대망그물버섯, 꾀꼬리버섯 등 나무와 공생하는 균근균(공생균)이 15종 발견된 반면, 편백림 조림지에서는 2종 발견됐다. 그는 “편백숲 조림사업을 하면서 기존의 숲의 나무들이 가지고 있었던 버섯들의 공생관계도 상당 부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숭실고 방면 남측 사면 꽃잔디 구역에 남은 옛 숲의 흔적. 다양한 나이대, 다양한 수종 그루터기의 존재는 ‘30살 이상 아까시나무 ‘불량림’을 제거했다’는 구청 설명과 배치된다. 현장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편백나무 식재를 목적으로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숲을 개벌했으나, 암반 지대임이 뒤늦게 밝혀지며 편백나무를 심는 데 실패하고 대신 꽃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구청 측은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극심한 지역으로 방치될 경우 산림재해 발생 위험이 높아 정비를 실시했으며, 정비과정에서 지표면이 드러나면서 암반지역임을 인지했다'라는 배경 설명을 내놨으나, 결과적으로 이곳은 산림재해에 더욱 취약한 상태가 됐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경사지에서 벌목을 실시했을 때 잘린 나무의 뿌리가 썩고 새로 심은 나무가 자라는 약 20년 동안 산사태 위험이 증가한다.
숲이 사라진 자리를 꽃잔디로 덮었지만, 이곳의 토양은 여름 태양 아래 속수무책으로 온도가 올라가 있다. 오른쪽 열화상 이미지를 살펴보면 편백을 심으려다 실패해 꽃잔디로 덮어둔 이곳만 노랗게 달아오른 모습이 도드라진다. 이곳은 열섬 현상을 완화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시숲의 기능을 상실했다.
구청 관계자들이 수시로 스프링클러와 물호스를 이용해 꽃잔디에 급수하고 있지만, 수분 용탈이 심한 상부를 중심으로 고사 빈도가 높게 나타난다.
지난 2021년 서울 생물다양성 포럼에서 우리곤충연구소의 정부희 박사는 '도시숲의 곤충생태 및 보전방안'을 주제로 한 발표에서 한 수종으로 이뤄진 단일림 조성 및 원예종 식재가 도시숲 곤충들의 다양성 감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같이 생물다양성을 고려하지 않은 도시 숲 관리는 결국 환경 변화에 민감한 취약종을 감소시키고, 내성이 강한 외래종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조사 결과에서 편백 인공림의 곤충 종 다양성이 자연림과 견주었을 때 매우 낮았을 뿐 아니라, 북미산 외래침입종이자 산림병해충으로 지정된 소나무허리노린재가 대규모로 발견됐다.
지난 28일 봉산 남측 사면 편백 조림지(2014·2015년 식재)에서 구청 관계자들이 편백이 고사한 자리에 자라난 식물들에 대해 대대적인 예초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남측 사면 조림지에서 편백이 고사하면서 생겨난 공간으로 미국자리공과 환삼덩굴, 칡을 비롯한 초본들이 빠른 속도로 확산, 남은 편백 개체들의 생육에 영향을 주자 구청이 나서서 대대적인 예초(풀베기) 작업을 벌였다. 오른쪽 열화상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예초로 인해 나출된 토양의 온도가 치솟아 있다. 온도가 올라간 토양은 더더욱 건조해지고, 남은 편백의 수분 스트레스는 극심해진다.
대기온도는 31도인 반면, 예초로 인해 나출된 대지의 표면 온도는 70도에 이른다.
이번 조사를 총괄한 성민규 생명다양성재단 연구원은 “조림지에서 자연림 대비 식물종은 약 20%(목본:68%), 조류는 약 56%, 곤충은 약 85%, 담자균류는 약 82% 적은 종 수가 출현했다”면서 “식물종의 단순화가 식물을 번식기주, 먹이원, 은신처 등으로 이용하는 곤충과 다양성을 크게 감소시키고, 다양한 곤충과 식물을 먹이로 하는 조류의 다양성도 잇따라 감소시켰으며, 또 임목과 공생하는 공생균과 죽은 임목에서 자라는 부생균의 다양성 감소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성 연구원은 “조사기간이 더 확보됐다면 종 다양성의 격차는 더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여 말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30살 이상 아까시 나무 '불량림'을 제거하고 이산화 흡수 능력과 미세먼지 저감능력이 뛰어난 편백을 심었다"는 은평구청의 설명과 달리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발행한 산림수종 표준 탐수흡수량 측정 자료에 따르면 편백의 연간 탄소 흡수량은 신갈나무나 상수리나무와 같은 참나무류에 한참 못미친다. 이는 연간 흡수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량(30년생 기준)이 ha당 무려 13.79 CO2톤에 이르는 아까시나무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오른쪽 사진은 봉산 편백림 상부에 위치한 공중화장실 모습. 한기가 느껴지는 이 화장실의 에어컨 (희망)온도는 1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한편, 구청이 기존 숲의 벌목과 편백숲 조림의 근거로 드는 영급구조 개선을 통한 '숲의 불균형' 해소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은 “영급개선은 영급(나이대)이 동일한 나무가 있는 숲을 개량해 청년, 중년, 장년등 다양한 연령층이 사는 숲으로 가꾸는 것을 뜻한다”면서 “중간 중간 쇠퇴하는 나무들을 일부 솎아베기하고서 생겨난 공간을 어린 나무로 벌충하는 식으로 숲의 영급구조를 다양화해 나가는 것이지, 봉산처럼 일괄적으로 베고 한 종의 묘목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엄소장은 “봉산은 분류하자면 목재생산이 주목적인 경제림이 아니라 기후 완화 등 공익적 가치에 중점을 두는 도시숲이다”라며 “경제림에서 주로 쓰이는 영급구조 개선이라는 개념이 필요에 따라 오도된 사례”라고 부연했다.
생물상 조사=생명다양성재단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붉게 시들어 죽은 편백, 봉산 힐링 숲 '자연의 경고’
생명을 다한 편백은 녹색에서 갈색으로, 다시 갈색에서 적색으로 변해간다. 그러곤 흙빛으로 색이 바래며 사그라든다. 잘린 채 숲 한쪽 구석에 누운 편백 고사목을 360도 카메라에 담았다. 하상윤 기자
지난 6월 서울 은평구 ‘봉산’의 생태를 조명한 기사(본보 6월 8일 자 14면)가 보도된 지 두 달여 시간이 지났다. 그사이 기록적인 폭우를 동반한 장마가 다녀갔고, 곧이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달 만에 봉산을 다시 찾은 건 낯선 땅에서 낯선 기후를 맞이하고 있을 ‘이민자 나무’ 편백의 안위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서울에 무슨 편백이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서울 북서쪽 봉산엔 분명히 편백이 산다. 2014년부터 은평구가 ‘서울시 최초’ 타이틀을 걸고 진행 중인 ‘봉산 편백나무 치유의 숲(힐링 숲)’ 조성 사업 덕분이다. 이 사업은 기존 산림을 베어낸 자리에 편백나무 숲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은평구는 지난 10년 동안 봉산 내 6.5㏊ 규모 산지에 약 1만3,400그루의 편백나무를 심어왔다.
2014~2016년에 식재된 편백이 붉게 변해 죽은 채 그대로 서 있다. 7월 초부터 8월 초까지 매주 현장을 찾을 때마다 새로운 고사목이 발견됐다. 초록빛 나무들 사이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이들 고사목은 대개 일주일 이내로 잘려나갔다. 하상윤 기자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이 잇따르고 있다. 같은 여름일지라도 어떤 존재들에겐 더욱 가혹하게 다가오곤 한다. 봉산의 편백들은 유난히 낯설고 혹독한 서울의 여름을 나고 있다. 색이 붉게 변하며 죽어간 편백이 뎅강 잘린 채 풀숲에 누워 있다. 하상윤 기자
버려진 고사목 주변을 살펴보면 멀지 않은 위치에서 그루터기가 발견된다. 2014~2015년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들이다. 하상윤 기자
지난 7월 11일 신사2동 방면 등산로를 오르는 동안 붉게 변한 개체들이 높은 빈도로 눈에 띄었다. 항시 푸르른 상록침엽수인 편백은 잎과 줄기의 색상을 통해 생육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 선 채로 붉게 시들어 죽은 나무, 고사 이후 밑동이 잘려 풀숲에 누운 나무, 적갈색을 띠며 붉게 변하기 시작한 나무가 즐비했다. 이미 죽었거나 곧 죽게 될 편백이 10주에 달했다. 죽은 개체들 대부분은 가지 끝에 열매를 주렁주렁 맺어 마지막까지도 생식생장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본지는 지난 기사를 통해 이처럼 생식생장을 보이는 어린나무들의 열악한 생육 상태를 보고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해당 기사에 이미지로 등장했던 개체는 7월 초순에 고사해 중순께 베였다.
왼쪽 사진은 지난 6월 5일 촬영한 봉산 동쪽 사면 편백의 가지 모습. 어린 나무이지만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있다. 당시 현장에서 이 개체의 상태를 확인한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은 "나무가 '나 여기서 못살겠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오른쪽 사진은 지난 7월 15일 촬영한 모습. 공교롭게 해당 개체는 한달 만에 고사했고 현재는 잘려나간 상태다. 하상윤 기자
현장 동행했던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장은 짧은 기간 한 지역에서 여러 편백이 고사한 것을 두고 “나무가 죽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지만, 해당 지역은 토심이 얕아 수분 저장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오면 지상부 수분 손실이 급격히 치솟는데, 이때 나무가 토양으로부터 수분을 충분히 조달하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다가 결국 죽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존 숲에 뿌리내리고 살다 편백림(꽃잔디 동산)을 조성하며 잘린 나무들 중 소나무가 많았던 건 그들이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종이기 때문이다”라고 부연했다.
왼쪽 사진은 2014~2015년경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봉산 편백의 가장자리 모습으로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며 생식생장이 도드라져 보인다. 오른쪽 사진은 전남 장성군 국립장성숲체원에서 촬영한 비슷한 나이대의 편백 개체.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참고 목적으로 병치했다. 임은재 인턴기자·장성=하상윤 기자
죽은 편백이 연달아 발견되고 있는 사면 바로 옆 급경사지에 자리한 ‘꽃잔디 동산’에는 폭우 이후 표토가 흘러내리며 곳곳에 잘린 소나무 뿌리와 돌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현장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편백나무 식재를 목적으로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숲을 개벌했으나, 암반 지대임이 뒤늦게 밝혀지며 편백나무를 심는 데 실패하고 대신 꽃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봉산 숭실고 방면 급경사지에 조성된 ‘꽃잔디 동산’ 가장자리에 벌목된 나무의 뿌리와 암반부가 나출돼 있다. 현장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편백나무 식재를 목적으로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숲을 밀어냈으나, 암반 지대임이 뒤늦게 밝혀지며 편백나무를 심는 데 실패하고 대신 꽃잔디를 심었다고 한다. 하상윤 기자
숲이 사라진 공백을 꽃잔디가 메우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집중 호우 뒤 드러난 꽃잔디 아래 암반. 하상윤 기자
40년 가까이 봉산을 오르내린 지역 주민 이연숙(75)씨는 당시 벌목 현장을 목격했던 일을 회상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30년 넘게 봐왔던 소나무를 하루 아침에 다 잘라놓은 걸 보고 속상해서 항의했더니 현장 관계자가 ‘편백 심는 자리에 소나무가 있으면 되겠냐?’고 되물었다. 더욱 황당한 건 그렇게 좋았던 나무를 다 베고서 그 자리에 엉뚱한 꽃잔디를 심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에 다시금 따져 물었더니 ‘돌바닥이라 편백을 심을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고, 위에서 시키는 일이라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이씨는 이곳 꽃잔디의 활착률이 90%가 넘는다는 은평구청 해명에 대해서도 “초창기 심은 꽃잔디가 제대로 못 살고 많이 죽었다”면서 “사람들이 새로 심는 걸 수시로 목격했다”고 밝혔다.
편백숲을 조성한다는 명목으로 있던 숲을 개벌하고 이때 자른 '불량 나무'를 깎아 가짜 동물로 만들어 세웠다. 이들은 원래 이곳에 있던 숲을 삶터 삼았던 동물들을 대신한다.
지난 7월 29일 오후께 찾은 봉산에서는 엔진음이 진동하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따라간 자리에서 예초기를 든 구청 관계자들을 마주했다. 그들은 봉산 전망대 아래에 마련된 신규 편백 묘목 식재 지역(2023년 조림)에서 새로이 돋아난 ‘잡초’들을 모조리 깎아내고 있었다. 편백을 제외한 모든 식물종은 잘리고 으깨져 바닥에 두껍게 깔렸다.
지난 7월 29일 봉산 전망대 아래 신규 편백 묘목 식재 지역에서 마주친 구청 관계자들. 예초기를 들어 '숲 가꾸기'에 한창이다. 하상윤 기자
김산하 생명다양성재단 사무국장은 산을 모조리 밀고 단일 수종 중심으로 숲을 구성하는 것을 두고 “숲이라는 건 다양성이 우선된 공간이기에, 단일 재배종을 기르는 ‘밭(농경)’과 대척점에 있다”면서 “‘숲 가꾸기’를 명목으로 기후에 맞지도 않는 종을 인간이 개입해 농사짓듯 단일화해 기르는 건 대단히 모순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농산물이 병드는 여름, 아픔은 사람에게 닥친다
열대야는 농산물에게도 치명적이다. 배추, 당근 등 여름철 농산물 피해가 심상치 않다. 기후위기로 인한 농가 피해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농사 이탈’ 현상이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가운데)이 8월8일 강릉시 안반데기에서 배추 생육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제공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에 있는 안반데기는 여름철 여행 명소다. 탁 트인 하늘 아래 높은 지대에 시원하게 펼쳐진 푸르른 배추밭이 아름답다. 여름휴가로 동해 바다를 찾았던 여행객이 이곳에서 추억의 사진을 찍고 간다. 8월8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도 이곳을 찾았다. 휴가차는 아니었다. 여름철 배추 수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 6월과 7월에 이어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폭염 탓이다.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호냉성’ 작물이다. 생육 적정 온도가 18~20℃다. 여름철이면 기온이 낮은 태백·강릉·평창 등 강원도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고랭지 배추’가 유통된다. 고랭지 배추 농사가 잘 됐는지 여부가 다가올 추석 장바구니 물가에도 영향을 끼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여름 들어 무려 아홉 차례나 배추 관련 보도자료를 냈을 정도로 배추 수급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현지 점검 결과 작황이 대체로 양호하다고 밝혔지만, 시장 상황은 다르다. 배추를 비롯한 농산물 가격 오름세가 심상치 않다. 8월19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배추 한 포기 평균 소매가격은 전월 대비 42.62% 상승해 6888원을 기록했다. 배추 수급이 불안정한 여름철에 배춧값이 오르는 건 당연하지만 1년 전과 비교해도 16.8% 올랐다. 배추만이 아니다. 시금치(100g) 소매가격도 3112원으로 전달(1513원)에 비해 두 배 넘게 올랐고, 수박 한 통 값도 50% 넘게 뛰었다.
굳이 관련 통계를 나열할 필요도 없다. 당장 시장이나 마트에 나가보면 농산물 값이 얼마나 올랐는지 절감할 수 있다. 8월20일 서울 은평구 한 마트에서는 상추 한 봉지(200g)를 4800원에 ‘특가’로 팔고 있었다. 상춧값은 이미 7월부터 크게 올라 ‘상추 리필은 곤란하다’라는 안내문을 붙인 도시의 고깃집이 한두 곳이 아니다. 이 밖에 시금치, 무, 양파, 양배추 등 채소류 가격이 전반적으로 크게 뛰었다.
“완마! 상배양양파라는 깡패 놈들이 무당 딸을 감시한다고?”
이게 무슨 소리일까? ‘완마’는 완두와 마늘을 뜻한다. ‘상배양양파’는 상추·배추·양파·양배추·파를, ‘무당 딸’은 무·당근·딸기를 말한다. 그럼 ‘감시’는? 이쯤 되면 맞힐 수 있을 것이다. 감자와 시금치다. 손해평가사 시험 원예학 과목에서 ‘호냉성 작물’을 외울 때 쓰는 암기법이다. 이미 수확이 끝난 딸기를 제외하면, 위 문장에 등장하는 호냉성 작물들은 여름철인 지금 귀한 몸들이다.
8월19일 올해 전국 평균 열대야 일수가 16.9일을 기록하면서 1994년 여름의 기록을 깼다. 열대야는 사람만 고통스럽게 하는 게 아니다. 채소와 과일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식물은 뜨거운 낮에는 광합성을 통해 당을 비롯한 영양소를 만들고, 서늘한 밤에는 그 영양소를 비축한다. 그런데 밤에도 온도가 내려가지 않으면 그 영양소를 에너지로 써버린다. 당연히 맛이 떨어지게 된다. ‘일교차가 커야 과채류의 맛이 좋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색깔이 잘 나지 않고, 수확량도 감소한다. 7월 하순 장마가 끝난 이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새벽에도 25℃를 웃도는 요즘 여름 날씨는 농작물에게 고통을 안긴다. 열대야에 잠 못 이룬 사람이 맥을 못 추듯 식물도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다.
씨앗을 심었는데 싹이 나지 않았다
올여름 제주도에서는 당근이 죽어가고 있다. 전국 당근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제주도, 그중에서도 주산지인 제주시 구좌읍에서는 올여름 당근 밭이 황무지나 다름없이 변했다. 땅을 방치해서가 아니다. 씨앗을 심었는데도 푸른 싹이 나지 않았다. 고온과 가뭄 탓이다. 7월 중순 폭염특보가 발효된 이래 8월 중순까지 연일 무더위에 비마저 내리지 않아 싹이 땅속에서 발아하지 못하고 말라 죽고 있다. 구좌읍에서 당근 농사를 짓는 이은경씨는 “새벽 일찍 밭에 나가 땅속에 손을 넣어보면 뜨거워서 깜짝 놀랄 정도다. 해발고도가 높은 중산간 지역 말고는 당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폭염과 가뭄으로 제주에서 농작물 피해가 발생하는 가운데 8월12일 오전 오영훈(가운데) 도지사가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의 한 당근 재배지를 찾았다. ⓒ연합뉴스
8월 중순 비가 한 차례 내리면서 농가들이 다시 씨앗을 뿌리고 있지만 제대로 발아될지는 미지수다. 8월 하순에도 불볕더위가 이어질 것이라는 날씨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난해 8월에는 태풍 카눈이 휩쓸고 가면서 당근 농사를 망쳤는데, 올해마저 이러면 농가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라고 말했다.
시시각각 기후위기의 양상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때로 그 반복성으로 인해 체감이 무뎌지곤 한다. 실내 냉방 생활이 보편화된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뉴스에 “평생 이런 날씨는 처음 겪는다”라는 농민의 말이 나오면 으레 하는 말이려니 한다. 그러나 농촌 현장의 목소리는 그냥 흘려들을 내용이 아니다.
5년 전 귀농해 전북 익산에서 수박과 멜론 농사를 짓는 김보경씨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지난해 여름 물동이로 들이붓듯 쏟아지는 폭우에 비닐하우스가 지붕 끄트머리만 내놓은 채 물에 잠긴 사진이었다. 물이 빠질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고 했다. 배수 관리 실패로 인한 인재였다. 그 후에도 끔찍한 악취 속에 뒷수습을 하느라 악몽같은 여름을 났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초봄에는 일조량 부족으로 냉해를 입었고, 7월에는 폭우로 또다시 비닐하우스가 물에 잠겼다. 김씨는 “올여름 농사는 완파되었다"라고 말했다.
전남 무안에서 마늘과 양파 농사를 짓는 최귀례씨는 2년 연속 농가소득이 없다. 지난해 하루 인건비를 13만원씩 주고 농사 인력 10명을 써서 양파 밭 1000평을 일궜는데, 냉해가 닥치면서 노균병과 잎마름병이 발생했다. 올여름에는 쉴 새 없이 비가 오더니 이어진 폭염으로 잎이 다 말라버렸다. 40년째 농사를 짓고 있지만 정말이지 이런 일은 처음 겪는다고 했다. 최씨는 “차라리 농사를 안 지으면 있는 돈 아껴가며 버티면 된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 돈이 더 드는 세상이 되어버렸다”라고 말했다.
기후위기 속에서 농민들이 그나마 기댈 수 있는 것이 농작물 재해보험이다. 농민이 일정액의 보험료를 내면 자연재해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손실을 보전해준다. 그러나 보험 지급 기준이 까다롭다. 비용 과다 지출과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설정한 자기부담률 기준 때문이다. 통상 20% 정도인 자기부담률은 그 비율을 초과하는 피해가 있을 때만 보험금이 지급된다. 태풍으로 과일 100개 중 20개가 떨어져 피해를 입은 농가는 보험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상 궤멸적 피해를 입어야만 보험금이 지급되는 셈이다. 더욱이 올해부터는 발아 출현율(싹이 튼 상태)이 50% 이상 되어야만 농작물 재해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조건이 까다로워졌다. 제주도 당근 밭처럼 싹도 제대로 틔우지 못한 농가는 아예 보험 가입조차 어려워졌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들이 2020년 6월3일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냉해 피해 특별 대책 촉구 및 농작물 재해보험 전면 개정'을 위한 농민대표자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와 NH농협손해보험으로부터 제출받은 ‘농작물 재해보험 신청 및 지급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 재해보험 신청 약 63만 건 중 지급이 거절된 비율이 21.1%에 달했다. 지급거절 사유는 ‘자기부담비율 이내 피해‘가 65.5%로 가장 많았고, ‘평년 수확량 기준 미충족’이 29.9%, ’보상하지 않는 손해’ 4.5% 등이었다.
보험 내용이 기후위기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태풍 등 자연재해로 인한 손실은 보상해주고 있지만, ‘자연재해성 병충해’는 일부 품목(벼·복숭아·감자·고추 등)을 제외하고는 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대다수 농민을 괴롭히는 탄저병(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농작물이 썩어가는 병)은 보험 대상이 아니다. 최귀례씨가 피해를 입은 양파 병충해 역시 보험 대상이 아니다. 피해 농가와 무안군 등 지방자치단체가 관련 대책을 요구하면서 올해 농림축산식품부는 양파 피해를 이상기후에 의한 자연재해로 인정했다. 자연재해로 인정되면 보험 가입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액 일부를 지원받는다.
여성 농민에게 더욱 가혹한 기후위기
기후위기는 여성 농민에게 더욱 가혹하다. 여성 농민은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밭을 일구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직사광선과 지열에 그대로 노출된 채 농사를 짓는 여성 농민은 여름철 온열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에 매우 취약하다. 8월21일 국회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기후재난과 농업, 그리고 여성 농민’ 토론회에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이수미 부소장은 전국의 여성 농민 61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후변화로 여성 농민이 겪는 피해가 얼마나 구체적인지 살펴본 조사였다(〈그림〉 참조).
기후변화로 농업시설 및 농작물 재해가 증가했는지 물은 결과 응답자의 98.5%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외래 병충해가 늘었다는 응답도 95.8%였다. 응답자 90.8%는 기후변화로 인해 노동시간이 증가했다고 답했고, 97.8%는 온열질환 등 육체적 피해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우울감 등 정신적 고통이 증가했다는 응답도 87.3%였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맹 이춘선 정책위원장은 기후위기 시대 농민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렇게 설명한다. ‘흉작으로 생산량 감소→소득 감소→노동시간 증가→건강 악화로 인한 질병 발생.’
이렇다 보니 폭우와 폭염, 태풍이 잇따르는 여름철이면 농사를 그만두는 농민이 차츰 늘어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재배면적 감소가 이를 뒷받침한다. 강원도 내 고랭지 배추의 경우 2000년에는 재배면적이 약 1만㏊였으나 지난해에는 5242㏊로 반토막 났다. 탄저병 피해가 빈번하고 기계화가 어려운 고추도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갈수록 줄고 있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농가 고령화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로 인한 농가 피해 보상이 실질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런 ‘농사 이탈’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농민과 농산물에게 병이 들면 그 여파는 우리 모두에게 닥친다.
8월21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재난과 농업 그리고 여성 농민’ 토론회에서 농민들이 ‘기후재난 근본대책 수립하라’는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8월21일 ‘기후재난과 농업’ 토론회가 열리던 시각 국회에서는 또 다른 토론회가 진행됐다. 올해 ‘금사과’ ‘금대파’ 대란 이후 농산물 공영도매시장의 독과점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두 토론회의 주제는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아졌다.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농업 제도 개혁이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절실하다는 점이었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화양연화
대파·양파·바나나 ‘닥치고 수입’…윤 정부의 엇나간 기후 인플레 대응
강원도 정선에서 40년 넘게 고랭지 배추 농사를 지어온 정덕교씨가 동네 배추밭을 보여주고 있다. 고랭지인 이곳에서도 뜨거운 여름 탓에 배추가 병들었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던 지난 8월 30일, 서울로부터 3시간을 달려 강원도 정선군 화암면의 고랭지 배추밭을 찾았다. 산비탈에 굽이굽이 들어앉은 초록빛 배추밭을 올려다보니, 구름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이곳 고랭지 배추밭의 해발고도는 800~1000m. 오랜만에 느껴보는 서늘한 기운에 감탄하고 있는 동안 동네 배추밭을 안내하던 정덕교씨가 한숨을 쉬었다.
“쯧쯧, 여기도 다 망가졌네. 보세요, 노랗잖아요.”
배추 겉잎들이 노랗게 시들어 축 늘어져 있었다. 속은 그런대로 초록빛을 띠었지만 잎이 촘촘하진 않았다. 정씨는 “내다 팔 수 없는 배추”라고 했다. 가까이서 보니 병든 배추는 한두 포기가 아니었다. 배추밭 전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초록 물결 속에 노란 점과 띠가 보였다.
서울의 남산보다 세 배 높은 곳에 있는 고랭지 배추도 올해 폭염으로 신음했고, 작황은 부진했다. 무름병, 반쪽시듦병을 비롯해 여러 바이러스 감염 증상이 나타났다. 정씨는 말했다. “올해 3만5000평을 지었는데 평소 같았으면 5t 트럭 110차(대)는 나왔을 거예요. 그런데 올해는 50차도 안 나왔습니다. 배추가 노랗게 되고 주저앉아버렸으니까….” 고랭지 배추가 잘 자라는 온도는 18~20도다. 그러나 정선, 태백, 평창, 강릉 등의 고랭지 배추밭에서도 지난달 최고기온은 30도를 넘나들었고 밤에도 25도를 자주 넘겼다.
고랭지 배추의 수난은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다. 고랭지의 평균기온이 꾸준히 오르면서 재배면적이 매해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랭지 배추의 재배면적은 2000년 1만206㏊에서 2024년 4421㏊로 쪼그라들었다. 생산량 역시 절반(38만4715t→19만2130t)으로 줄었다.
30여 년간 정선에서 배추 농사를 지어온 김영돈씨 역시 배추 농사를 ‘포기’한 농부다. “작년에 배추의 밑동이 짓물러 주저앉더라고요. 고갱이가 망가지면 아예 먹지 못하는 배추가 돼요. 영농자재비 다 제하고 나니 다음 농사지을 돈도 안 나오더라고요.” 그가 올해 배추 대신 선택한 작물은 양배추. 김씨는 “올여름이 워낙 뜨거워 양배추도 잘 자라진 않았다”고 했다.
바야흐로 ‘기후플레이션’의 시대다. 기후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inflation)의 합성어인 기후플레이션은 기후위기 탓에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오르고, 물가도 덩달아 뛰는 현상을 말한다.
‘국민 채소’ 배추의 가격도 작황 부진의 영향을 받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올여름 배추 가격은 한 포기에 7561원(지난 8월 27일 기준)까지 올랐다. 평년보다 32.84% 비싸다. 늦여름에 대거 출하된 강릉 안반데기 지역 배추가 가격을 조금씩 끌어내리고 있지만, 소비자는 냉정하게 다른 선택을 했다. 올해 김치 수입량(1~7월·17만3329t)이 역대 최대를 기록한 것이다. 국산보다 40% 저렴한 중국산 김치의 수입 규모는 2021년 ‘알몸 김치’ 동영상 파동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강원도에서 30년간 배추농사를 지었던 김영돈씨는 올해 배추를 포기하고 양배추를 심었다. 김영돈씨 제공
■기후플레이션이 던지는 질문
기후위기가 농산물 가격을 높인다. 대책은 무엇인가. 취재의 출발선이 된 ‘질문’은 애초 이랬다. 그런데 배추 가격에 관한 대화 끝에 정덕교씨가 분통을 터뜨렸다.
“금배추라고요? 언론 때문에 속이 터집니다. 농민 사정은 얘기 안 하고 비싸다고만 합니다. 농사 왜 짓습니까. 돈 벌려고 짓잖아요. 배추 재배면적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기후변화 자체가 아니에요.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는 건 잘못된 정책 때문입니다. 정책만 제대로 펼쳐도 폭염, 폭우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고랭지채소강원도연합회장이기도 한 정씨는 그동안 여러 언론의 요청을 받고 ‘병든 배추’를 보여줬다. 그러나 잘못된 농정을 질타하는 그의 목소리는 번번이 ‘편집’됐다고 한다. “기자들은 변명도 간단하더군요. 위에서 잘랐다고들 해요.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 두고 봐야죠.”
질문은 수정돼야 했다. 정씨의 꾸짖음 때문이 아니다. ‘농산물 가격 인상 대책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철저히 소비자 위주다. 가격에만 초점을 맞출수록 기후위기로 인해 더욱더 위태로워진 농가 경영, 농민의 현실에 관해 논의할 여지가 줄어든다.
‘농민 관점’은 장기적으로는 소비자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농민의 삶이 어느 정도 유지돼야 농산물이 안정적으로 공급돼 물가 안정도 꾀할 수 있다. 기후플레이션을 올바르게 다루기 위해 가장 먼저 갖춰야 할 것은 ‘관점의 균형’이다. 소비자와 농민 모두를 위한 기후플레이션 해법은 뭘까. 품목별 수입은 어느 정도가 적절하며 농가 보호는 어떤 수단이 효과적인가. 전 세계의 기후플레이션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쌀과 보리를 제외하면 곡물자급률이 한 자릿수인 한국은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가. 기후플레이션의 현실적 해법 찾기는 여러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작업인데 확실한 것은 하나다. 눈앞의 농산물 가격만 낮추려는 지금의 정부 대책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가깝다.
2022년12월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의 양파 판매대의 모습. 연합뉴스
■저관세 물량 공세
윤석열 정부의 농산물 가격 상승 대응법은 한마디로 ‘닥치고 수입’이다. 수입 농산물 세금을 대폭 깎아주는 저관세 수입이 빈번하다. 대표적인 저관세 수입 경로가 관세법상의 ‘할당관세’다. 할당관세는 기본세율의 40% 범위에서 관세를 가감하는 제도인데 대개 관세를 거의 없애는 용도로 운용된다.
<표1> 국민 채소 5종, 할당관세 얼마나 자주 이뤄졌을까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파, 무, 양파, 배추, 감자에 대해 관세 인하가 이루어졌던 연도를 붉게 표시했다. 한눈에 봐도 지난 3년간 관세 인하가 빈번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 연도별 기간, 적용 대상 물량 등은 본문 참고.출처: 기획재정부, 법령정보센터, ‘관세법 제71조에 따른 할당관세의 적용에 관한 규정’의 ‘별표’
<표 1>은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대파, 무, 양파, 배추, 감자에 지난 5년간 할당관세가 얼마큼 적용됐는지를 정리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할당관세 적용 때마다 관련 대통령령을 개정하고 관세를 낮춘 품목과 적용 물량을 공개하고 있다. 그중 5가지 채소 관련 명세를 추렸다.
대파는 2020·2021년 할당관세를 적용하지 않았고, 2022년 7월 20일~10월 31일 448t, 지난해 5월 1일~6월 30일 5000t, 지난해 11월 17일~12월 31일 2000t, 올해 1월 19일~4월 30일 6000t에 대해 관세를 없앴다. 무 역시 2020~2022년엔 관세가 정상 부과됐다가 2023년 5월 1일~6월 30일 수입 전량에 무관세를 적용했고, 올해에도 7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무관세 수입이 계속되고 있다. 감자 역시 감자칩 제조용에 한해 2022년 5월 1일~11월 30일 1만2810t, 지난해 5월 1일~11월 30일 1만2810t씩 무관세가 적용됐다.
양파도 마찬가지다. 2022년 8월 17일~12월 31일 9만2000t에 대해 관세율 10%가 적용됐고, 지난해 1월 1일~2월 28일에도 2만t에 관세율 10%가 적용됐다.
양파엔 할당관세와 더불어 또 다른 관세 인하 수단이 동원됐다. ‘시장접근물량(TRQ·Tariff Rate Quota) 증량’이다. 저율관세할당으로도 불리는 TRQ는 세계무역기구(WTO)·자유무역협정(FTA)에서 정한 품목에 대해 ‘기본 물량’까지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로, 관련 시행규칙을 개정하면 낮은 관세가 적용되는 물량을 늘릴 수 있다. 지난해 정부는 수입 양파의 TRQ 물량을 약 2만t에서 11만t까지 늘렸다.
지난 8월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한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문재원 기자
■고추의 사례를 보라
농산물의 저관세 수입은 당장 농산물 가격은 낮출지 몰라도 국내 생산 기반에 충격을 준다. 경남 합천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 농민 A씨는 수입 양파가 쏟아진 이후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양파는 겨울작물이라 병해충이 별로 없었는데 수확기인 봄철이 최근에 너무 더워지고 있잖아요. 5월부터 30도를 넘으니 성장은 잘 안 되고 병해충은 창궐하고…. 생산량이 30%는 줄었어요. 생산비라도 건지려면 20kg 한 망에 1만5000원은 돼야 했는데 1만3000원 정도에 팔렸습니다. 작년에 농협하고 산지유통 상인들이 1만6000원에 사줬다가 수입 양파 때문에 값이 내려가 큰 손해를 봤거든요. 작년 경험 때문에 1만5000원에는 안 팔리는 겁니다. 올해는 정말 ‘양파 농사 더는 못 짓겠다’는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농가 경영이 지속해서 악화한 사실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농식품 공급망에서의 물가 결정요인 분석 연구’(김종진 외·2023년)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농가의 생산물 판매가격은 연평균 2.6% 높아졌지만, 재료비와 인건비 등 농사를 짓는 데 들어간 비용은 연평균 3.5%씩 상승했다. 수익은커녕 비용도 건지지 못하는 상황이 장기간 계속됐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농업구입가격(농사에 투입된 비용)은 2010년 전후와 2022년에 급등하는 모습을 보여 이 기간 농업경영체의 경영 성과지표가 크게 악화했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농가의 고통은 정부의 저관세 수입 결정에 별 고려 요소가 되지 못한다. ‘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TRQ 물량을 증량할 때 ‘증량이 당해물품 생산농가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기획재정부에 제출해야 한다. 농림부가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양파 TRQ 증량 자료’에서 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단 한 줄만 언급됐다. “TRQ 증량 물량은 6월 수확기 이후 7월에 도입되어 국내 생산농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으로 전망.” 영향 분석이라 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A씨는 말한다. “이듬해인 올해 농민들이 직격탄을 맞았는데 영향이 미미하다고요? 게다가 양파 자급률 10%가 날아갔어요. 양파도 결국은 고추처럼 될 겁니다.”
한국의 음식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양념채소 고추의 자급률은 2000년 89%에서 꾸준히 떨어져 지난해 40.1%까지 내려앉았다. 2011년 태풍 피해로 건고추 작황이 좋지 않자, 당시 정부는 건고추 TRQ 물량을 증량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원래 관세가 낮은 중국산 냉동 고추와 고추 다대기(다진 양념)도 대거 시장에 풀리기 시작했다. 이후 외식업체 등 대량수요처 중심으로 중국산이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통계청에 따르면 고추 재배면적은 2004년 6만1894㏊에서 지난해 2만6436㏊로 약 3분의 1토막이 났다. 농가가 고령화된 상황에서 기후변화와 함께 제값을 받지 못하게 만드는 수입 정책으로 타격을 입은 탓이다.
배추도 마찬가지다. 고랭지를 포함한 전국의 배추 재배면적은 지난 24년간 41% 줄었다. 이 사실은 주로 기후변화 영향으로 소개되지만, 주요 원인은 하나가 아니다. 강원도 고랭지 채소를 연구해온 원재희 강원도농업기술원 과장은 “고랭지 배추 재배면적의 큰 감소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면서 “첫 번째가 쌀 소비량 감소와 연동된 김치 소비량 감소 및 대규모 김치 수입이고, 두 번째가 기후변화, 세 번째가 ‘농사해도 돈이 안 된다는 것’으로, 이 원인은 서로 맞물려 있고 하나만을 주요 원인으로 꼽기 어렵다”고 말했다.
돌코리아 홈페이지 캡처
■바나나 수입업체 영업이익 10배
무차별적 저관세 수입은 농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수입업자들의 배는 불린다. 윤석열 정부는 사과, 배 등 과일의 가격이 오르자 국내산을 대체할 수 있는 수입 과일의 관세를 없앴다. 수입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의 경우 2020년·2021년엔 관세가 정상적으로 부과됐으나 2022년 11월~12월 바나나 4만4000t, 파인애플 8600톤t, 망고 1200t에 대해 관세를 없앴다. 지난해에도 파인애플과 망고는 8월~12월 각각 5000t과 2300t, 바나나는 11월~12월 3만t에 대해 관세가 부과되지 않았다. 이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모두 아예 수입 전량이 무관세다.
수입 과일을 취급하는 기업들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나나와 파인애플을 주로 수입하는 ‘돌코리아’의 전자공시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도(33억원)의 10배인 337억원에 이르렀다.
수입과일에 대한 관세인하가 이뤄진 연도를 붉게 표시했다. 최근 3년동안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연도별 구체적인 기간, 적용 대상 물량 등은 본문 참고.출처: 기획재정부, 법령정보센터, ‘관세법 제71조에 따른 할당관세의 적용에 관한 규정’의 ‘별표’
<표2> 수입과일 관세 인하 얼마나 자주했을까
수입과일에 대한 관세인하가 이뤄진 연도를 붉게 표시했다. 최근 3년동안 두드러졌음을 알 수 있다. 연도별 구체적인 기간, 적용 대상 물량 등은 본문 참고.출처: 기획재정부, 법령정보센터, ‘관세법 제71조에 따른 할당관세의 적용에 관한 규정’의 ‘별표’
할당관세는 주로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깎아준 만큼 정부가 예산을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기획재정부의 2021~2023년 할당관세 부과실적 및 결과 보고서를 종합하면 정부의 ‘할당관세 세수 지원액’은 2020년엔 3742억원, 2021년엔 6758억원이었다가 2022년 2조원에 가까워졌고(1조9694억원), 지난해에도 1조753억원(추정)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모두를 위한 해법 찾기
물론 농산물 수입을 안 할 수는 없다. 문제는 소비자와 농민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적정선’을 찾아가려는 노력이다. 품목별로 적절한 수입량을 고민하고 피해가 명확한 농가에 손실보전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일단 저관세 수입 남발부터 막을 제도적 수단이 필요하다. 임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할당관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사료, 비료, 농약 원료에 주로 적용되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 국내 농가 생산물과 직접 경합하는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대파, 당근, 배추 등으로까지 확대됐다”면서 “앞으로는 할당관세 부과 시 국내 농가 피해가 예상되는 경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대책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며 이런 내용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기후위기에 따른 작황 부진과 수입물량 등에 의한 가격하락으로 이중의 피해를 호소하는 농민들을 위한 안전망도 필요하다. 현재 채소가격안정제(정부가 제시한 수급조절 의무 이행하면 손실 80% 보전)가 유사한 취지로 시행 중이지만 가입률은 17%에 그친다. 농협이 손실보전 일부를 부담해야 하는데, 영세 지역농협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민주당은 주요 농산물의 가격이 기준가보다 떨어질 때 차액을 예산으로 보전해주는 가격안정제도(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 개정안)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가에 일정한 보험료 부담을 부여하되 농가 소득이 기준 이하로 떨어지면 차액을 보험금으로 보전해주는 수입안정보험을 추진할 방침이다. 농가의 ‘최소한의 삶’ 유지를 위한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점엔 양측이 인식을 같이하고 있지만, 적절한 재원 규모와 제도의 현실성을 놓고 견해차가 크다.
식량 자급률 높이고 수입국 다변화 해야
기후플레이션과 식량위기 어떻게 할 것인가
기후플레이션을 전 지구적 맥락에서 볼 필요도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작황 부진이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올여름 커피와 초콜릿, 올리브유 가격 상승이 대표 사례다. 인스턴트커피에 많이 들어가는 로부스타의 가격은 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올해 평균가격 1t당 3807달러·aT식품산업통계정보), 고급 커피에 주로 쓰이는 아라비카의 가격 역시 2022년을 제외하면 올해가 역대 최고 수준(1t당 4690달러)이다. 베트남(로부스타), 브라질(아라비카)의 심각한 가뭄으로 생산량이 줄어든 결과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가격의 상승세는 더 가팔랐다. 1년 만에 가격이 두 배 넘게 뛰었다(지난해 1t당 3309달러→올해 7722달러). 세계 코코아의 70~80%가 생산되는 서아프리카에 가뭄과 폭우가 덮쳐 생산량이 감소한 탓이다. 스페인 가뭄으로 인해 CJ, 샘표 등이 판매하는 국내 올리브유 가격은 30% 올랐고 브라질, 미국, 멕시코의 오렌지나무 병해충 확산으로 인해 오렌지주스 농축액 가격 역시 2년 전보다 두 배 이상으로 올랐다(1t당 3868달러→8712달러).
당장은 기호식품이나 과일 등이 문제인데 앞으로는 인류의 에너지원인 ‘곡물’을 둘러싼 식량위기도 심각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각종 저술과 강연을 통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려온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한반도의 기후위기는 식량위기로 올 것”이라고 말한다. 조 전 원장은 “30년 안에 지구 인구는 100억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데,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리려면 사료까지 합해 곡물이 지금보다 70% 늘어나야 한다. 그러나 기온이 올라 곡물생산량이 줄어드는 마당이라 공급이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과일, 채소와 달리 곡물은 생존의 문제다. 나중에는 돈이 있어도 곡물을 살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19.9%에 불과하다. 쌀은 96.2%로 높지만 보리는 25.7%에 그치고, 밀과 옥수수 자급률은 나란히 0.8%로 극히 낮다(농촌경제연구원 2022년도 식품수급표 기준). 미국(122.4%), 캐나다(169.9%), 중국(92.2%)은 물론 일본의 곡물자급률(27.6%)과도 격차가 상당하다.
곡물자급률은 단기간에 올리기 쉽지 않고 커피, 초콜릿, 올리브유 같은 품목은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선 두 가지 방향의 제안이 공존한다. 첫 번째는 수입국 다변화 전략이다. 남재작 정밀농업연구소장은 “정부가 주요 곡물자급률을 설정해 노력하고 있다지만 목표달성에 번번이 실패하는 실정”이라면서 “당장 자급률을 높일 수 없다면 수입국을 다변화해 170개국에서 농산물을 들여오는 싱가포르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식량안보’ 차원에서 곡물자급을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은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밀 공급 차질을 겪었던 일본은 최근 ‘식량안보 확보’를 명시하고 자급률 향상 목표를 설정하는 등의 법 개정을 했다”면서 “우리도 국내 기반을 더 쌓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청년들 농촌 오지 마라…정부가 정신 차리기 전까지는”
‘농부가 된 농업경제학자’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가 목격한 농촌의 현실
올해는 농산물 시장 개방이 결정된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30년이 되는 해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가트)’은 해체되고 이듬해인 1995년 1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농산물의 자유무역은 왜 필요한가. 수입 농산물을 빼놓고는 밥상을 차릴 수 없는 시대가 된 지금은 새삼스러운 질문이다. 그러나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피폐해진 한국 농촌을 돌아보면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범한 가트 체제에서 보호 대상이었던 농산물은 왜 WTO 체제에선 공산품과 같이 ‘자유무역이 필요한’ 상품이 됐을까.
“애초 세계화의 목표는 자유무역을 통해 인류가 함께 잘살자는 것이었죠. 농업까지 개방하면서 WTO가 내건 목표는 ‘기아 해결’이었어요. 30년 지난 지금 해결됐나요? 전혀 아니죠.”
농업경제학자인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30년 전의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비롯해 한·칠레 FTA, 한·미 FTA 등 농산물 시장개방이 이뤄질 때마다 강단과 정부의 여러 위원회 활동을 통해 ‘농업 보호’를 외쳤다. 그는 이렇게 말해왔다. “미국·유럽 등이 농산물 자유무역을 주장한 이유는 농업 생산량이 많은 자국 이득 때문이며, 중소규모 가족농 중심인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 농촌은 위기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농산물 개방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의 농촌은 황폐화의 길을 걸어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농가 수는 99만9000가구로 100만가구 선이 무너졌다. 농가 인구 역시 516만7000명(1994년)에서 208만9000명(지난해)으로 쪼그라들었다.
30년 전 농산물 개방이 초래할 농촌의 위기를 경고했던 학자는 지금 농부로 살고 있다. 2016년 30여 년간의 교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강원도 양양에서 ‘사과 농부’로 새 삶을 시작했다. ‘농부가 된 농업경제학자가 목격한 한국 농촌의 현실’을 주제로 윤 교수와 지난 8월 30일 그의 사과밭에서 대화를 했다.
-농산물 개방 30년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보도는 물론 분석과 연구도 잘 찾아보기 힘들었는데요. 농업에 관한 지식 생산 또한 쪼그라들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강단을 떠나기로 결심한 계기도 농업 관련 학과의 폐과였다고 들었습니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하면서 농업경제를 다루는 산업경제학과를 경제학부로 통합시켰어요. 삼성이 성균관대 인수했을 때도 같은 작업을 했는데요, 재벌에겐 농업 관련 학과가 구조조정 1순위였나 봅니다. 일단 우리 학과로 들어온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나면 은퇴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지난 30년간 강단에서 ‘농업이 중요하다’, ‘농민이 소중하다’ 얘기해왔는데 ‘강남에서 여유롭게 사는 삶’ 같은 건 싫었어요. 평소의 신념대로 농부가 돼 살고 싶었어요. ‘이대로 죽으면 한이 될 것 같다’고, 아내를 겨우 설득했죠. 그렇게 벌써 9년째 농부로 살고 있네요.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경제성장을 향해 달려가다가 어느 시점에 ‘농업을 보호해야겠다’는 걸 인식하고 보조금과 각종 지원제도를 동원해요. 그런데 한국은 이상하게도 그런 ‘터닝 포인트’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일까요.
“글쎄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선진국에선 농업과 농촌만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다원적 기능을 인정하고 있다는 걸 배워야 할 것 같아요. 식량안보, 전통문화 유지, 지역 공간의 유지 등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지켜나가기 위해선 단순히 경쟁력이라는 잣대만을 들이대선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얘기를 나서서 하는 젊은 학자들도 잘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그만큼 농업 분야가 쪼그라든 것이겠지요.”
농부가 된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키운 사과를 보여주고 있다. 송윤경 기자심스레 보여주는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농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렵지 않았나요.
“처음에는 미니사과인 알프스 오토메에 도전했다가 냉해 피해를 보고 실패를 맛봤죠. 그래도 지난해에 처음으로 판매에 성공해 이제까지 400만원 벌었습니다.”
윤 교수와 기자는 500평짜리 사과밭에 딸린 작은 농막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날 그는 사과나무에 석회 유기농비료를 뿌렸다고 했다. 회색 가루가 사과나무들에 곱게 입혀진 것을 바라보니 그가 얼마나 세심한 농부인지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대답을 이어갔다.
“9년을 해보니 농사 정말 힘들어요. 젊은이들에게 농사지으라고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있다면 ‘당신 자식부터 보내라’고 해주고 싶네요. 저는 서른몇 살 먹은 제 아들에게 농사지으라고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 고생할 거면 딴 거 하라고 할 거예요. 농사란 게 본질적으로 힘들어요. 노동생산성, 자본생산성이 낮은 분야인 거예요. 그러니까 정부가 기간산업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농업은 존립할 수가 없습니다. 정부가 정신 차리고 제대로 지원을 한 뒤에 젊은이들에게 오라고 해야지요.”
-정부가 앞으로 5년 이내에 청년 농민을 3만명까지 늘리겠다면서 스마트팜 지원 등을 약속했습니다. 적어도 후계농 지원만큼은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 아닐까요
“수십억원 들여서 유리온실(스마트팜)을 그림같이 지어놓으면 쉽게 될 것 같나요. 그게 다 빚입니다. 평생 갚으며 살아야 해요. 그러면 언제 돈을 모읍니까. AI 같은 첨단기술 활용 다 좋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농업이 다 굴러가지 않아요. 스마트팜으로 길러낼 수 있는 농산물도 제한적이고요.”
지금은 ‘사과 농부’가 됐지만, 윤 교수는 평생 ‘쌀 경제학’을 연구해온 쌀 전문가다. 쌀은 1995~2004년, 2005~2014년 두 번의 개방 유예 끝에 지금은 관세화(관세를 매기며 시장을 여는 것·쌀 관세율은 513%다)가 이뤄졌다.
-농산물이 개방된 지 30년이 됐는데요, 그때 만약 쌀 시장마저 개방됐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요.
“사회가 굉장히 불안정해졌을 거예요.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쌀은 시장 자체가 좁아요. 미국, 중국, 태국, 이탈리아에서 일부 생산되고 있어요. 국내 공급이 조금만 부족해져도 큰 불안을 겪었을 겁니다. 우리가 20년간 관세화를 유예하는 조건으로 의무수입량 40만t을 들여오기로 했는데요, 이거 영원히 들어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관세화를 했잖아요. 그러면 다시 협상을 해야 합니다. 영원한 게 어딨습니까. 지금 쌀이 남는 건 의무수입량 때문이에요.”
-협상이 가능할까요.
“정부가 하겠습니까. 진보나 보수나 농민과 농업, 농촌에 무관심한 건 똑같습니다.”
-지난해 농가소득 중 농업소득이 평균 1114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일각에선 직불금 수입과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이 있으니 괜찮지 않으냐고도 하더군요. 그걸 합해도 연 2900만원 수준인데요.
“농부들이 뭘 해서 먹고사는지 아십니까. 제가 여기서 지켜보니, 이 지역에선 남자는 일용직 노동, 여자는 근처 공단의 공장에서 일해서 먹고삽니다. 사과밭에 저온 냉장고를 설치했는데, 건넛마을 농민 한 분이 기술자와 함께 오셨어요. 3000평 농사를 짓는 분이래요. ‘오늘 일당이 20만원인데, 농사로 언제 20만원 법니까’ 하더라고요. 이게 현실이에요. 상위 5%를 제외한 농민 대다수는 그렇게 삽니다. 금년에 농사 흉년 들면 내년에 안 합니까, 또 해요.”
-‘힘들면 그만두면 될 것 아니냐, 왜 계속 짓느냐’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산이 있으니까 올라가듯 논밭이 거기 있으니까 짓는 거예요. 농민들은 땅이 있으니까 농사지어요. 저도 경제학자지만 논리적으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자신의 노동을 비용으로 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하죠. ‘살면서 하는 건데’라고 여겨요. 절대로 남는 장사라서 하는 게 아닙니다.”
윤 교수가 대답을 이어가다가 잠시 멈췄다. “와, 너무 예쁘다. 햇볕이 쫙, 안 예쁩니까? 저 사과가 곧 빨갛게 됐다가 노랗게 될 거예요. 그가 올해 키우는 시나노 골드는 ‘노란 사과’다. 그는 “요즘은 아무리 유기농이어도 안 예쁘면 안 먹는다”면서 “사과를 모두 두 겹으로 싸놓았다”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봉지를 열어서 사과를 보여줬다. 그러면서 ‘농민으로서 가장 원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제가 한 달 반 지나면 이걸 팔아야 합니다. 봄부터 열심히 키운 놈인데, 이놈이 얼마를 받을지 나도 몰라요. 농민들은 농산물이 비싼 걸 바라지 않아요. 안정적 가격, 안정적 판로를 가장 원해요.”
-금사과 이슈는 어떻게 지켜보셨어요.
“제가 지난해 가을에 유기농 사과니까 나름대로 비싸게 판다고 9개에 4만5000원에 팔았어요. 근데 올초가 되니까 한 개에 만원씩하더군요. 근데 그때는 이미 중소농 농가들은 사과를 다 판 뒤였어요. 누구한테 가 있었을까요. 대형 저장고가 있는 유통인들에게 있었죠. 산지유통 상인들의 역할을 농협이 나서서 해야하는데 금융산업이나 ‘하나로 마트’로 돈 버는 데만 골몰하더군요. 농산물이 싼 시대는 아마 저물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농산물가격은 개방화와 기후변화로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입니다.”
-쌀 전문가로서, 양곡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문재인 정부가 5조원 규모의 공익형 직불제를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하고 예산 몇천억원 늘리는 데 그쳤어요. 그러면서 애먼 쌀소득보전직불제를 폐지해버렸습니다. 목표가격에 못 미치는 만큼의 75%를 보전해주는 제도였습니다. 쌀소득보전직불제가 있었다면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말하는 양곡법 필요 없습니다. 자기들 집권할 땐 안 하고, 야당 되니 태도를 바꾸는 걸 보면 참 답답합니다. 저는 쌀에 관한 한 원래 있던 제도가 낫다는 쪽입니다. 목표가격제(쌀소득보전직불제) 부활하고 매년 들여오게 돼 있는 의무수입량 40만t에 대해 재협상하는 것, 쌀과 관련해서는 당장 이것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농민과 농업, 농촌을 보호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현재 직불금 예산(보조금 예산)이 3조1000억원가량 할 겁니다. 이걸 5조원까지만 늘려줘도 농민들이 원하는 제도를 대부분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농가소득 중 보조금 비율이 70~80%입니다. 아마 그 정도로 농민 예산 늘리자고 하면 국민이 기절초풍하겠지요. 일단 직불금 예산을 5조원까지 늘리는 것만이라도 정부가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예산이 약 600조원 아닙니까.”
경향 송윤경 기자
첨단 도시와 자연의 어울림… 공원의 가치를 생각하다
개발사업을 할 때 지켜야 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다. 바로 사업지에서 가장 좋은 자리는 공원으로 조성하는 일이다. 대개 가장 좋은 자리는 그곳의 가운데다. 그래서 그 공원을 ‘중앙공원’, 영어로는 ‘센트럴파크(Central park)’라고 부른다. 위키피디아로 검색을 해보니 전 세계에 ‘Central Park’라는 이름의 장소는 45개, 경기장과 복합개발시설은 10개 정도가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단연 뉴욕 맨해튼의 센트럴파크다. 19세기 말에 개장한 뉴욕 센트럴파크는 도시 한가운데에 공원을 둠으로써 시민의 위생을 개선하고 도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도시 공간이 공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는 선언의 증표가 됐다. 센트럴파크가 조성되기 전까지 뉴욕에서 도시 공간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부자들이 소유한 광장과 정원을 소유자가 허용했을 때 한시적으로 쓰는 것과 노동자들이 축제를 목적으로 빈터를 임시 사용하는 것밖에 없었다.
뉴욕 센트럴파크가 지닌 역사적 맥락을 전 세계의 다른 센트럴파크가 공유한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사업지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공원으로 조성하여 그 인접 토지의 가치를 확연하게 높이는 전략은 대부분의 센트럴파크에서 공통적이다. 공원은 신도시 개발이 됐든 도시 재생이 됐든 심지어 복원 사업에서도 공공성과 친환경성을 앞세워 개발의 반대 주장을 누그러뜨리고 개발 이익을 희석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공원으로의 접근성이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중앙공원’은 우리나라 신도시에 예외 없이 조성돼 있다.
송도국제도시 중앙에 있는 송도센트럴파크는 주변의 다양한 시설과 마치 ‘핀볼 게임’처럼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시설의 종류와 건물의 생김에 따라 관계의 심도는 각각 다르다.
2003년 개발을 시작한 송도국제도시에도 센트럴파크가 있다. 그 위치는 11개 공구로 나뉘어 있는 송도국제도시의 ‘중앙’에 위치한 국제업무단지(1·3공구)의 ‘가운데’다. 대략 ‘ㄱ’자 형태로 면적은 37만3827㎡다. 송도센트럴파크는 공원 주변 고층 건물들의 수직성과 대비되는 자연의 수평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송도국제도시가 지닌 최첨단, 미래 지향적 이미지와 상반되는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도시와 대조되는 자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 송도센트럴파크를 설계한 KPF는 전통적이고 한국적인 조경설계 개념을 적용했다.
KPF가 찾은 설계 모티브는 ‘한반도의 자연과 문화’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첫 번째 요소는 인공수로다. 폭 12∼110m, 길이 1800m로 공원을 관통하는 인공수로에는 수상택시도 다니고 보트와 카누도 이용할 수 있다. 설계자는 인공수로를 한반도의 지형을 닮은 형태로 설계했다. 그리고 인공수로를 가로지르는 다리에 물이 갖는 순환과 상반되는 환생의 의미를 부여했다.
물의 영역이 우리나라 전통의 ‘순환’과 ‘환생’을 의미한다면 땅의 영역은 ‘산의 나라’를 상징한다. 설계자는 우리나라를 ‘산의 나라’로 정의하며, “매우 감동적인 문화의 상징과 의미를 갖는 소재”로 돌을 선택했다. 그 외 수로에 있는 섬을 통해 다도해의 풍경을, 지압로를 통해 사상의학과 대체의학을, 담장을 통해 한국 전통 조경의 꽃담을 언급했다(월간 플러스 2009년 11월).
사실 이러한 설명은 KPF가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다국적 건축설계사무소이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공감하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그들과 우리가 이해하는 ‘조경’의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조경’을 의미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17세기 이후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당시 랜드스케이프는 ‘땅(Land)’의 ‘형상(Shape)’을 조화롭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반면, 우리에게 조경의 궁극은 실경(實景)을 풍경화(風景化)하여 그 모습을 담은 정원이다. 이제 질문이 바뀐다. 그럼 ‘풍경(風景)’은 무엇일까?
‘풍경에 다가서기’에서 강영조는 “풍경이라는 언어를 수입한 한자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람(風)과 태양광(日)에 따라 섬세하게 변하는 사물(京)의 아름다움을 함께 들여왔다”고 설명하며, “우리나라도 중국에서 풍경이라는 한자 말과 함께 ‘세계를 보는 방법’을 수입했다”고 썼다. 즉 우리에게 조경의 목적은 땅의 생김새를 만드는 것이 아닌 땅이 지닌 그 자체의 변화하는 아름다움에 있다.
송도센트럴파크에서 한국적인 것과 전통에 대한 외국 건축설계사무소의 해석은 솔직히 많이 아쉽다. 하지만 KPF가 적용한 또 다른 개념인 ‘핀볼(Pinball) 게임’은 눈여겨볼 만하다. KPF는 핀볼 게임에서 벽에 맞은 볼이 더 빠른 속도로 튕겨 나가듯이 공원에서 일어나는 행위가 공원 주변에 배치된 공공업무시설, 박물관, 수족관, 공원 변 상점과 같은 다른 용도와 관계를 맺으며 더 활발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송도센트럴파크 변에 있는 G타워,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송도한옥마을, 경원재 호텔, 인천종합관광안내소, 인천도시역사관, 트라이볼(Tri-bowl) 그리고 상가들이 이런 개념으로 조성된 시설들이다.
공원으로의 접근성을 막지 않기 위해 건폐 면적을 최소화한 형태로 설계된 트라이보울.
그런데 ‘핀볼 게임’ 개념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몇 가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공원 변에 배치되는 시설이 공원에서 일어나는 행위와 서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용도로 바뀌었다. 핀볼 게임으로 보면 반발력이 없는 벽이 설치되어 공이 튕겨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흔히 도시 공간이 공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공이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최고급 한옥 호텔과 가격대가 있는 식당은 대중이 ‘기꺼이’ 접근할 수 있는 용도는 아니다. 더군다나 해당 시설은 조성 과정에서 잡음도 있었다.
두 번째는 공원 변에 들어서는 시설이 주변 지역에서 공원으로 접근하는 경로와 시선을 막는 상황이다.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도시공원의 효용을 다하기 위해 설치하는 ‘공원시설’의 종류 중 하나로 교양 시설을 식물원, 동물원, 수족관, 박물관, 야외음악당 등으로 정해 놨다(제2조 제4호 바목).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은 대부분 큰 규모로 지어진다. 그러다 보니 공원이 교양 시설에 둘러싸이는 형국이 벌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막기 위해 몇몇 건축가들은 건물의 바닥 면적(건폐 면적)을 최소화하는 형태나 공원의 녹지와 보행 흐름이 건물을 올라타서 넘어가는 형태로 건축물을 설계한다. 송도센트럴파크에서는 트라이볼(유걸 설계)과 국립세계문자박물관(삼우건축 설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개는 인접한 공원을 향해 건축물의 벽을 들이댄다.
중심이 되는 중요한 곳에 굳이 공원을 만드는 명분은 푸르름으로 가득 채운 휴식의 공간을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공원(公園)’은 누군가가 필요한 시설을 언제든 채워 넣는 ‘비어 있는 정원(空園)’이 아니라 공공을 위한 정원이다./방승환 도시건축작가/ 세계일보
기후정의행진의 경로는 헌재가 결정하지 않는다
'녹색 헌법' 개헌으로 틀을 바꾸자
9월 7일 오후, 서울 강남대로 일대에서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907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지난 8월 29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사건', 즉 기후소송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기후정의행진에 어떤 의미일까?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요지는 이렇다.
첫째,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대응하는 보호조치의 하나인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는 행위'와 헌법상 기본권인 환경권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고, 입법부와 행정부의 환경권 침해 여부를 확인했다. 적어도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하였는지를 의미하는 '과소보호금지원칙'과 행정작용의 본질적인 사항은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 위반 여부를 중심으로 판단했다.
둘째, 전 지구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해 한국이 기여해야 할 몫, 기후위기 영향과 온실가스 배출 제한에 대한 미래 세대의 부담 과중, 온실가스 감축의 제도화 실효성 등을 구체적인 심사 기준으로 고려했다.
셋째, 탄소중립기본법의 2030년까지 감축목표(40%)와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은 환경권을 침해하지 않는다(재판관 4:5, 기각). 비록 위헌 결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에 미치지 못했지만, 재판관 5명은 감축목표 선정 방식(기준연도 총배출량 : 목표연도 순배출량)의 불합리성을 지적하고, 기준연도 순배출량 : 목표연도 순배출량 재산정에 따른 36.4% 감축목표는 탄소중립기본법의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과소보호금지원칙와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하여 환경권을 침해한다는 다수의견을 제출했다.
넷째, 탄소중립기본법상 2031~2049년까지의 감축목표 미설정은 과소보호금지원칙과 과소보호금지원칙 위반으로 2026년 2월 28일까지 법률을 개정하여 장기 감축 목표 및 경로를 명문화해야 한다(전원일치, 헌법불합치 결정).
'기후소송 국제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곳곳에서 2666건의 기후소송이 (지방) 정부와 기업을 대상으로 제기됐거나 현재 진행 중이다.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른 나라 이야기로 전해 듣던 기후소송이 이렇게 끝났다. 공개 변론에 제출된 국무조정실장과 환경부 장관의 입장과 달리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한 환경권을 인정하고, 그 침해 여부를 일부 인용했다는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그러나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의견에 비해서는 한참 부족하다.
"기후변화로 인해 침해되는 현재세대와 미래세대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치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국가의 기본권 보호의무에 위반되고, 포괄위임금지 원칙, 의회유보의 원칙 및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어 대한민국헌법에 위반된다."(국가인권위원회 결정, 1쪽)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서 기후위기 대응 촉구 대규모 집회 참가자들이 삼성역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냉정하게 생각하면, 입법부와 행정부의 의무와 책임 측면에서 크게 바뀔 것은 없어 보인다.
첫째, 제22대 국회는 2031~2049년 감축 목표 및 경로 조항을 신설하는 식으로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하면 된다. 관건은 탄소중립 및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할 것인지, 오목한 모양의 감축경로를 통해 배출량 절대치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이다. 국회의 역할이 강조되지만, 제대로 수행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탄소중립기본법을 제정한 제21대 국회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정치 과정 참여가 제약되는 다양한 당사자를 포함하는 '기후시민의회'를 올바르게 구성하여 운영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둘째, 윤석열 정부는 딱히 할 게 없다.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은 변경하거나 재수립할 이유가 없다. 제2차 NDC(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는 2025년에 유엔에 제출하기로 되어 있다. 탈탄소 산업구조 개편, 공공재생에너지와 녹색대중교통 확대 등 녹색국가로의 전환에 역행하는 정부 입장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 어쩌면 산업계 부담을 이유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마저 재량적 거부권을 행사할지 모른다. 공개 변론에서 국무조정실장과 환경부 장관은 제1차 탄소중립기본계획에서 "산업 부문의 감축 부담을 줄인 것은 탄소 저감이 어려운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내 여건에서 경제에 미칠 영향과 정의로운 전환을 고려한 것으로 단지 일정 부문에 대한 감축 비율 조정을 두고 위헌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셋째, 헌법재판소는 국가와 지역, 계층과 연령, 성별 등에 따른 차별적 요소가 존재함을 언급하지만, 주로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평등한 기본권 보장에 초점을 맞췄다. 다른 차별적 요소와 기후 불평등은 장식용으로도 등장하지 않는다. 탄소중립기본법상 '기후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개념의 인정적, 절차적, 분배적 정의 대부분, 그리고 오염자 부담 원칙은 헌법상 환경권이 품을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부의 권한 행사의 위법 사유나 재량 일탈을 검토할 기준이 될 수 없기 때문일까. 정의로운 전환을 꺼내든 정부의 방어 논리가 인상적일 뿐이다.
제6공화국 대한민국 헌법 해석이 곤란하다면, 이제 '녹색 헌법' 개헌으로 틀을 바꾸면 어떨까. 907 기후정의행진의 요구가 '녹색 헌법'으로 안내한다.
1) 불평등이 기후재난이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거권·노동권·기본권을 보장하라.
2) 위기에도 존엄하게 살 권리! 차별 철폐, 돌봄 증진, 공공 의료 및 공공 교통 확충하라.
3) 핵발전소 수명연장과 신규건설 추진하는 윤석열 정부의 핵 진흥 폭주를 멈추고 에너지정의 실현하라.
4) 기업을 위한 무한정 에너지 공급과 송전탑 건설 중단하고, 노동자 일자리 보장하는 탈석탄·탈화석연료 계획 마련하라.
5) 민주주의와 공공성 훼손하는 재생에너지 민영화 중단하고, 공공재생에너지로 정의롭게 전환하라.
6) 노동자·시민 주도 정의로운 전환. 기후정의·사회정의에 기반한 산업구조 실현하라.
7) 이윤을 위한 생태파괴, 신공항 건설과 국립공원 개발, 4대강 보 사업을 철회하라.
8) 농업재해 대책과 생태농업전환 계획 수립하고, 먹거리기본권 및 농민 생존권을 보장하라.
9) 비인간 동물을 상품화하는 공장식 축산을 정의롭게 전환하고, 동물 착취 시스템을 철폐하라.
10) 무기 수출·전쟁 지원 중단하고, 군비 축소·반전 평화 실현하라.
11) 한국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 강화하고 국제적 책임을 다하라.
이정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 프레시안
부산시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 MOU 체결
9일 부산시청 국제의전실에서 박형준 시장이 화상 연결을 통해 퐁피두센터 로랑 르 본 회장과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박태우 기자 wideneye@
부산시가 프랑스의 세계적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와 남구 이기대공원에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을 건립하기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31년 개관을 목표로 건립이 추진되는 퐁피두센터 분관이 들어서면 지역의 미술 문화 저변 확대는 물론, 부산이 글로벌 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하는 데도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시는 9일 시청 국제의전실에서 퐁피두센터와 ‘퐁피두센터 부산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MOU)식’을 가졌다. 이날 협약은 박형준 부산시장과 퐁피두센터 로랑 르 본 회장이 화상 연결을 통해 체결했다.
시와 퐁피두센터는 현대 미술의 진흥과 발전, 문화 접근성 확대, 공공 문화 교류 등 공동 목표의 실현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시는 미술관 분관 건립·운영, 전시·교육프로그램 기획, 작품 대여 등에 대한 행정·재정적 지원을 담당하고, 퐁피두센터는 전시·교육프로그램 기획과 작품 지원, 브랜드 사용권 및 운영 자문 등을 맡게 된다.
시와 퐁피두센터가 이날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시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왔던 세계적 미술관 부산 유치가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박 시장은 2022년 1월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위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로랑 회장을 만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유치에 대한 원칙적인 합의를 이뤘다. 이후 양측은 화상회의와 로랑 회장의 부산 방문 등 수십 차례의 협의를 거쳐 미술관 유치를 최종 확정했다.
‘퐁피두센터 부산’은 현재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남구 이기대예술공원의 핵심 시설로, 이기대공원 어울마당 일원에 건립될 예정이다. 연면적 1만 5000㎡ 규모로 전시실, 창작스튜디오, 공연장, 교육실, 수장고 등으로 구성된다. 미술관 설계는 향후 국제 공모를 통해 진행되며, 이기대예술공원의 자연환경과 어우러지는 세계적인 건축물로 건립될 예정이다. 시는 퐁피두센터 부산을 기장~해운대~이기대~북항으로 이어지는 ‘부산 문화예술 해안벨트’의 핵심 거점으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행정 절차를 거쳐 2027년 공사에 들어가 2031년 개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술관 건립 총사업비는 부지 매입비를 제외하고 1081억 원으로, 연간 125억 원의 운영비가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시는 개관 첫해에 46만 2000명이 미술관을 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퐁피두센터 부산은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등 거장들의 작품 14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럽 최대 규모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위상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부산만의 독창적인 전시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또 최초 계약 5년 이후 재계약을 통해 지속적으로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시와 퐁피두센터는 예술위원회를 구성해 부산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과 프로그램을 논의하고, 시민·전문가 의견 수렴과 행정 절차를 거쳐 본 계약(MOA)을 체결할 예정이다. 시는 퐁피두센터 부산이 전시와 별도로 지역 예술인을 위한 전시·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등 지역 예술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글로벌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시민과 지역 예술계 등 각계각층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는 원탁회의를 구성해 퐁피두센터 부산의 운영과 건립에 대한 소통과 자문을 수렴하는 등 성공적인 개관 추진을 위해 박차를 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부산 퐁피두센터 유치 나섰지만... 논란도 커져
부산시 업무협약 맺고 "본격 사업 추진" 공식화... 미술인·지역단체는 대책위 꾸려
부산시가 업무협약(MOU)을 통해 프랑스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퐁피두센터의 부산 분관(아래 부산 퐁피두센터) 유치를 공식화하고 나섰다. 부산시는 박형준 시장의 공약대로 세계적인 미술관을 부산에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공론화가 부족하다는 비판 여론도 만만치 않아 파장이 이어질 전망이다.
▲ 프랑스 퐁피두센터 건물.ⓒ 퐁피두센터 홈페이지
'문화·예술·관광 중심 부산시' 육성... 부산시, 행정·재정적 책임
박 시장은 9일 부산시청 국제의전실에서 로랑 르 본 퐁피두센터장과 화상회의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미술관 유치에 들어갔다. 시는 이날 결과를 놓고 "지난 2022년 1월 박 시장과 로랑 르 본 센터장 간에 원칙적 합의가 오간 이후 2년 6개월 만에 리루어진 조처"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7월 시의회의 부산 퐁피두센터 유치 업무협약 동의안 가결 이후 이뤄진 후속 절차이기도 하다. 재정 투입 등을 이유로 시는 의회에 내용을 보고하는 절차를 밟았고, 시의회는 제출한 원안 그대로 안건을 통과시켰다.
동의안을 보면, 부산시는 14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퐁피두의 분관으로 부산을 글로벌 문화·예술·관광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구체적으로는 부산시가 '미술관 분관 건립 및 운영' 등의 행·재정적인 책임을 지고, 퐁피두센터는 전시 기획과 작품 대여, 브랜드 사용권, 운영 자문 역할을 맡는다.
시가 구상한 장소는 현재 용역 중인 부산시 남구 이기대문화예술공원이다. 총면적 1만5000㎡의 공간에 전시실, 창작스튜디오, 공연장, 교육실, 수장고 등을 구성한다. 시는 부산 퐁피두센터의 초석을 놓은 만큼 본 계약(MOA)까지 더 속도를 낸다. 박 시장은 "성공적인 개관 추진을 위해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건축비 1000억, 연간 운영비 100억 이상 투입... '재검토' 촉구 목소리도
그러나 시의 이러한 평가에도 반대 의견 역시 비등하다. 건축비 1000억여 원, 연간 운영비 100억 원 이상이 투입되는 탓에 이날 부산시청 안팎에서는 '재검토'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퐁피두 분관 유치를 놓고 전원석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의원은 324회 임시회 마지막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졸속적"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전 시의원은 제대로 된 여론 수렴과 부산시립미술관·현대미술관의 발전방안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는데, 시민단체도 같은 주장을 담아 시청사앞 1인 시위를 펼쳤다. 박찬형 부산참여연대 총괄본부장은 "막대한 혈세가 들어가는 데다 적자까지 예상되고, 지역 미술계도 우려를 표시하는 마당에 시가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선 안 된다"라고 규탄했다.
미술계 일각과 시민사회는 별도의 조직을 꾸려 오는 11일 반대 기자회견을 연다. 박 본부장은 "이렇게 가면 시민과 미술인들에 대한 입틀막, 귀틀막이 될 것"이라며 "여러 작가와 지역 단체가 한데 모여 대책위를 꾸린다. 수요일에 MOU 철회 촉구 기자회견을 개최하겠다"라고 추가 대응 계획을 밝혔다.
김보성(kimbsv1) 오마이뉴스
9월 취수원 코앞까지 닥친 녹조…부산·양산 식수 불안 가중
- “농업용수 사용 땐 농작물도 타격”
- 부산시민단체는 시청앞 기자회견
- “독소로부터 시민 건강 책임져야”
낙동강 녹조가 9월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부산과 경남 양산 시민이 마시는 상수원 취수장이 있는 물금읍 일대에까지 번져 지역환경단체가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9일 초록빛 낙동강물을 들어보이는 박재우 양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양산환경운동연합은 9일 물금읍 황산공원 내 낙동강 어민선착장에서 기자회견을 겸한 현장 설명회를 열고 “유해성 낙동강 남조류가 상수원 취수구까지 확산돼 주민의 식수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환경부는 녹조 독소의 유해성을 평가절하하고 시민 건강을 외면하고 있다”며 “양산시는 시민 식수원인 낙동강 녹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라”고 촉구했다.
취재진이 이날 현장을 둘러보니 물금읍 황산공원 어민 선착장 일대 낙동강변은 마치 녹색 물감을 풀어놓은 것 같았다. 이곳은 상수원 취수구와 직선거리로 200m가량 떨어진 곳이다. 남조류는 강 중심부로 갈수록 수심이 깊어지며 농도는 얕아졌지만, 상수원 취수장과 지척까지 짙은 녹조가 뒤덮여 심각성을 더했다. 환경연합 관계자는 “녹조는 통상 8월 말께면 사라졌으나 올해는 9월에도 계속되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녹조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하면 농작물에도 좋지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연합은 낙동강 녹조의 원인인 남세균에서 발생하는 유해성 물질 마이크로시스틴(MC)이 양산에서도 검출된 바 있다며 녹조를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립창원대와 국립부경대가 지난해 11월 공기 중 남세균 독소 검출조사를 벌인 결과, 낙동강에서 3.7㎞ 가량 떨어진 양산의 한 아파트에서 마이크로시스틴 0.65ng/㎥가 검출됐다. 마이크로시스틴은 간·생식 독성물질로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기준치를 강화하는 추세다. 그러나 확산하는 불안감에 대해 양산시 관계자는 “낙동강 원수에서 마이크로시스틴이 검출되는 경우는 있으나 고도정수처리과정에서 모두 제거돼 정수된 물에서는 나온 적이 없다”고 밝혔다.
낙동강네트워크도 이날 부산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심각한 녹조 발생 현황을 알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국립환경과학원 물환경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2일 삼락생태공원 수상레포츠타운 일대에서 유해 남조류 세포수가 126만 셀 검출됐다. 수상레포츠타운 일대는 친수구역 조류 경보 기준이 적용되는 곳으로, 2주 연속 10만 셀 이상인 ‘경계’ 경보가 발령돼 낚시 수상스키 등 친수 활동이 금지됐고 어패류 어획·식용 등이 금지된 상태다.
이날 낙동강네트워크는 낙동강 녹조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 공동대응 방침을 밝혔다. 낙동강네트워크 관계자는 “청산가리의 6600배인 유해남조류 독을 뿜어내는 낙동강 녹조 문제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 녹조독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제
보행자 안전 위해 서울 도심에 ‘튼튼 가로수’ 심는다
튼튼 가로수 식재 개념도. 서울시 제공
‘시청역 급발진’과 같은 보행자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서울 도심 교통섬 등에 크고 굵은 ‘튼튼 가로수(가칭)’가 식재된다.10일 서울시는 “연내 세종대로사거리 교차로 교통섬 등에 튼튼 가로수 50주를 심는 시범 사업을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가로수는 차선에서 이탈한 차의 충격을 완화시켜 주는 완충 기능의 역할이 있다”며 “횡단보도나 교통섬같이 사람들이 멈춰서서 기다리는 장소에 가로수를 확대 식재함으로써 시민들의 불안감을 낮춰주고 보행 안전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는 올해 50주 식재를 시작으로 2025년에 1000주, 2026년에 950주 등 총 2000주의 튼튼 가로수를 심을 예정이다.
튼튼 가로수로 검토 중인 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층층나무, 복자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잘 자라고 목재의 강도가 높은 나무들이다. 유혜미 서울시 조경과장은 “해외 연구를 보면 나무의 직경이 클수록 차량 충돌에 견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된다”며 “한여름에는 가로수가 그늘도 제공하고, 탄소 및 미세먼지 저감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교통섬 등에 굵은 가로수를 심을 경우 운전자의 시야를 가려 사고가 날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에대해 유 과장은 “운전자 시야를 확보하고 표지판이나 간판을 가리지 않도록 가로수의 폭이나 가지 높이 등을 조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향
지구의 경고…서울 사상 첫 9월 폭염경보, 89년만 가장 늦은 열대야
추석 연휴 기간도 ‘낮 최고 33도’ 예상
지난 8월 19일 기상 정보 비주얼맵인 어스널스쿨로 확인한 한반도. 불쾌지수가 붉게 표시돼 있다. 어스널스쿨 갈무리
추석이 코앞인데 이례적인 9월 더위가 전국을 뒤덮고 있다. 서울에선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내려졌고, 89년 만에 가장 늦은 열대야 기록도 새로 쓰였다. 기상청은 이런 가을 더위가 추석 연휴 기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10일 오후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진 가운데, 서울 전역엔 사상 첫 ‘9월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폭염특보는 체감온도가 이틀 이상 33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될 때 ‘주의보’를, 35도 이상이면 ‘경보’를 발효한다. 이날 오후 4시 기준 전국 183개 특보구역 중 91%인 167곳에 폭염특보(경보 69곳·주의보 98곳)가 내려졌다. 가을철인 9월 들어 폭염특보가 내려진 것 자체도 2010년 이후 14년 만으로, 특보의 기준을 체감온도로 바꾼 2020년 이후에도 한번도 없던 일이다.
10일 오후 4시 전국에 내려진 폭염특보 현황. 기상청 제공
9월 최고기온 기록도 줄줄이 깨져서 기상청 기후관측지점 97곳 중 절반이 넘는 52곳에서 기록을 새로 썼다. 경기 양평군 옥천면과 안성시 고삼면은 기온이 37.6도까지 치솟았고, 강원도 정선도 37.1을 기록했다. 전국에서 가장 서늘한 곳으로 알려진 강원 대관령도 30.5도까지 올랐는데, 대관령 9월 기온이 30도를 돌파한 건 1971년 관측 이후 처음이다. 서울은 최고기온이 33.9도를 기록해 역대 9월 평균 기온 중 다섯번째로 높았다.
서울에선 지난 9일 밤 기상관측 이래 가장 늦은 열대야가 나타나기도 했다. 기존 기록은 89년 전인 1935년의 9월8일이었다. 9일엔 대전과 충북 청주, 전남 여수, 부산에서도 열대야가 나타났고, 제주와 서귀포에서도 열대야가 각각 64일·57일째 이어졌다. 두 곳 모두 열대야 지속 일수로 역대 1위를 기록 중이다.
10일 아침 간밤 열대야 현황. 기상청 제공
기상청은 때늦은 열대야와 가을 폭염에 대해 “한반도 대기 상층의 티베트고기압과, 중국 상하이를 향해 북서진하는 제27호 열대저압부, 북태평양고기압 사이로 남동풍이 부는 영향” 때문이라며 “낮 동안 기온이 많이 오른 상태에서 고온다습한 남동풍이 불어와 열기를 가두면서 밤에도 기온이 식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더위는 11일 정점을 찍은 뒤 12일 전국적으로 내리는 비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가 추석 연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12~14일 비와 북쪽 찬 공기 영향으로 폭염특보가 해제·완화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15일 이후엔 대기 상층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다시 기온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추석 연휴 기간 낮 최고기온은 25~33도로 평년(최저 14~20도, 최고 24~28도)보다 높을 전망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열대야만큼, 갈피 잡기 힘든 기후 대책
‘탄소중립기본법이 기업의 탄소 배출 감축을 추동해야 한다.’
시민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부의 책무를 물었던 ‘기후소송’에서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내린 판결에는 기업이 등장하는 대목이 있다. 정부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더 높이기 어려운 이유로 탄소배출이 많은 국내 산업 구조를 이유로 들었는데, 헌재는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감축은 미룰 수 없는 지금의 과제라고 판단했다.
이런 대목이다.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이 많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정부가 사회경제정책 등을 고려하여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결정할 경우, 단기적인 감축의 부담을 완화하고자 하는 유인이 많을 것인데, 이 때문에 감축 비율을 가속화하지 못하면 그만큼 산업구조의 개선 속도도 느려져서 이후의 감축 부담이 다시 가중되는 악순환이 생길 수도 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비율인 ‘2018년 대비 40%만큼 감축’이라는 수치도 2050년 탄소중립에 이르는 중간 목표로 충분치 않은데, 2031년부터 2049년까지 국가의 목표를 세워두지 않은 현행법이 미래 세대에만 부담을 떠넘긴다는 판단이다.
재계는 그동안 기업 여건을 고려해 2030년까지 세운 감축 목표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최근 한 보수신문은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의 구조조정 계획을 두고도, 유럽이 너무 급격한 친환경정책을 세웠기 때문에 제조업이 쇠퇴하는 것이라며 공격적인 탄소배출 감축에 대해 잔뜩 경계하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헌재는 정부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어려운 숙제를 미룬다면, ‘산업구조의 개선 속도’도 늦어져 향후엔 더 뼈아픈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유럽 등에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탄소배출권거래제 등 ‘녹색 장벽’을 점차 높이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기업 경쟁력에도 직결하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예상치 못한 지정학적 변수가 없었다면 유럽의 탈탄소 전환은 다른 나라에 보다 더 빠른 구조조정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크다.
헌재 판결문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또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하여 설비 투자를 포함한 사업 계획을 세워야 하는 기업과 같이 각 부문에서 노력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의 일관성이 실제 배출량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정책은 일관성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가 이를 포기하면 누가 따라가겠느냐는 일침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가 큰 재생에너지 확대 방안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이 빛과 바람으로 가자고 할 수 있겠냐고 짚은 셈이다. 기업 경영의 가장 어려운 점은 불확실성이다.
기업들은 이미 갈피를 잡기 힘들다. 예를 들어 사업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재생에너지 100%로 전환(RE100)하는 속도는 국외 사업장이 국내 사업장보다 훨씬 빠르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경우 오스틴 공장이 있는 미국 법인은 2020년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했지만 국내 사업장은 30년 뒤인 2050년이 목표다. 국외 생산거점이 많은 현대자동차도 2025년까지 미국·멕시코·인도에서 재생에너지 100% 전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내 사업장은 2045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가 재생에너지를 충분히 공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도 기후위기 대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때다. 7일 서울에서 열린 ‘907 기후정의행진’에서 약 3만명에 이르는 참가자들이 역삼역, 선릉역, 포스코 사거리를 거쳐 삼성역을 향해 행진했다. 삼성전자·지에스(GS)칼텍스·포스코 등 지구 온난화에 영향을 끼치는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기후재난에 지친 이들은 누구나 기업의 ‘그린 워싱’에 분노하는 소비자로 바뀔 수 있다. 간밤에도 서울엔 역대 가장 늦은 열대야가 닥쳤다.
제2 이기대 난개발 없도록… 부산시, 지침 바꾼다
주택사업 공동위 운영 지침 개정
사업계획 승인 과정 보완·강화
이기대 아파트 '수상한 용적률' 특혜 의혹까지. 아이에스동서(주)가 고층 아파트 건립을 계획하고 있는 부산 남구 용호동 973번지 일원 주차장 부지 일대 모습. 제2회 주택사업공동위원회는 지난 2월 아이에스동서(주)의 자회사 (주)엠엘씨의 남구 용호동 973번지 일원의 개발 계획에 대해 용적률 249.99%, 건폐율 59.86%로 조건부 의결, 통과시켰다. 정종회 기자 jjh@
아이에스동서(주)가 이기대 경관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다 시민 반발에 부딪혀 철회한 것과 관련, 부산시가 주택 심의 지침 개정에 나섰다. 행정 절차를 보완해 난개발을 차단하려는 조치다.
부산시는 ‘부산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운영 지침’을 개정하는 중이라고 10일 밝혔다. 올해 아이에스동서가 이기대 턱밑에 고층 아파트를 세우려다 지역 반발에 부딪혀 사업을 철회한 일을 계기로,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역할을 강화해 유사한 난개발 시도를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는 주택 건설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건축·도시계획·교통·경관 등 사업계획 승인과 관련된 사항을 통합 심의하는 위원회다. 아이에스동서도 올해 2월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심의를 받았고 1차례 회의를 거쳐 심의를 통과했다.
당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는 주택 건설계획 중 용적률 등이 포함된 지구단위계획과 관련된 내용은 다루지 않아 문제가 됐다. 현재는 건물 형태, 구조, 교통 등 건설 계획 전반에 대한 내용 위주로 심의가 이뤄진다. 행정 절차도 시 주택사업공동위원회를 먼저 통과한 뒤 관할 기초 지자체가 지구단위계획 내용 검토를 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시는 앞으로는 사업자가 지구단위계획 등을 포함한 사업계획 승인을 우선 관할 기초 지자체에 신청한 뒤 이를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가 심의하도록 지침을 변경하기로 했다.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전문위원이 지구단위계획 내용까지 포함된 심의를 진행할 수 있기에 난개발을 막을 절차가 추가된다는 게 시 관계자 설명이다.
시는 또 현행 건축·도시계획·교통·경관 등에 다른 분야도 통합 심의할 수 있는지를 검토 중이다.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역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지침 개정은 이달 말이나 다음 달 마무리될 전망이다. 부산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구청이나 관련 부서가 지구단위계획을 면밀하게 검토해서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하면 전문위원이 다시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지침이 개정되면 각 구·군에 공문을 보내 곧바로 시행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태평양 섬나라들 “생태학살, 범죄로 인정하라” ICC 청원
2022년 12월 13일,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의 수도 수바에서 약 35km 떨어진 토고루 마을의 한 마을에 있는 해안가 주택 근처 해안 침식 지역을 바라보는 주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8월 27일 태평양 섬 정상회담에서 세계 기후 "SOS"를 선언하면서 이 지역의 해수면이 세계 평균보다 훨씬 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2022.12.13. AFP 연합뉴스
바누아투, 피지, 사모아 등 남태평양 섬나라들이 생태학살(ecocide)을 범죄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서를 국제형사법원(ICC)에 제출했다고 <가디언>이 9일 보도했다.
“‘생태학살’을 ‘집단학살’처럼 처벌하게 해 달라” 첫 청원
호주 오른쪽, 뉴질랜드 위쪽의 작은 섬나라들인 이들 3개국은 이날 제출한 청원서에서 “생태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 전쟁범죄와 함께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하기 위한 규칙 변경을 요구했다. 이로써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공식적인 범죄행위로 만들어 기후 붕괴와 환경 파괴에 대한 세계의 대응을 변화시키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 규칙 변경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대규모 오염행위를 저지르는 기업과 국가들의 대표나 원수들을 비롯한 개인들을 환경파괴범으로 기소할 수 있게 된다.
2022년 12월 21일,피지의 수도인 수바 외곽에 있는 해안 고속도로 옆 해안선을 공중에서 본 모습.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길 위험에 처한 남태평양 섬나라들. 2022.12.21. AFP 연합뉴스
“심각하고 광범위하고 장기적 환경피해” 알면서도 저지른 행위
바누아투와 피지, 사모아가 제출한 청원서는 생태학살 범죄를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환경 피해가 발생할 실질적인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저지른 불법적 또는 무분별한 행위”로 정의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자체가 해수면 아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이들 나라로서는 대규모 해양오염 행위를 생태학살로 규정하고 조속한 처벌을 요구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지난 8월 22일 일본 동북부 후쿠시마현 오쿠마에 있는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자력 발전소. 2024.8.22. AP 연합뉴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도 처벌 가능?
그런 행위에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 투기도 ICC가 처벌할 수 있는 범죄목록에 포함될 수 있지 않을까. 청원서가 온난화가스 대량 배출을 주요 표적으로 삼고 있지만, “심각하고 광범위하거나 장기적인 환경 피해”로 처벌 가능한 범죄행위 대상을 포괄적으로 설정한 만큼, 주변국들과 태평양 도서국들의 반대를 무시한 채 강행되고 있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도 ICC에 제소할 수 있는 처벌 가능한 범죄로 간주될 수 있어 보인다.
청원 “시간 문제일 뿐 결국 통과될 것”
9일 ICC에 제출된 청원 내용은 논의에 몇 년이 걸릴 가능성이 높고, 격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공개적으로 이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논의는 대부분은 비공개로 진행될 것이다.
생태학살금지재단(Stop Ecocide Foundation)에서 소집한 생태학살의 법률적 정의를 위한 독립 전문가 패널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는 저명한 국제변호사이자 런던대학(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법학 교수인 필립 샌즈 KC는 생태학살이 결국 국제형사법원에서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받게 될 것임을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일한 문제는 언제일지 그 시기”라며,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정말로 믿는다. 일부 국가에서 국내법에 포함했듯이, 이미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이것이 적절한 시기에 나온 적절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벨기에는 최근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채택했고, 유럽연합(EU)은 국제 범죄에 대한 지침 중 일부를 변경해서 이를 “조건부” 범죄로 포함시켰다. 멕시코도 이런 법률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
조조 메타 국제생태학살금지 캠페인 그륩의 공동 설립자.
2019년에 ICC에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로 인정해 줄 것을 처음으로 요구한 나라는 바누아투다. ICC의 옵저버인 국제생태학살금지(Stop Ecocide International) 캠페인 그룹의 공동 설립자인 조조 메타는 이들 남태평양 세 나라의 움직임이 생태학살을 인정하기 위한 싸움에서 “중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원이) ICC의 논의 일정에 오르면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회원국들은 이 문제를 다룰 의무가 없었다”고 했다.
조조 메타는 생태학살을 범죄로 채택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할 나라는 없겠지만, 이 범죄가 (처벌 가능한 공식) 범죄로 채택되면 결국 경영자들이 책임을 져야 할 석유회사들을 포함한 심각한 오염 기업들의 저항과 강력한 로비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사모아 왼쪽과 바로 아랫쪽에 바누아투와 통가, 피지 등의 작은 섬나라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ICC 미가입 오염대국들이 문제
ICC가 이 청원을 고려할 지점에 도달하는 데에만 몇 년이 걸렸다. 국제생태학살금지는 2017년부터 이 문제에 대한 캠페인을 벌여 왔으며, 바누아투는 2019년에 생태학살을 처벌 가능한 범죄행위로 공식 인정해 달라고 ICC에 처음으로 요구했다.
ICC가 청원을 받아들여 변경 사항을 시행하게 되더라도 누군가를 생태학살죄로 기소하게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조조 메타는 9일 ICC에 제출된 청원은 이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지게 만드는데 필수적인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람들이 기후(붕괴)의 위협을 점점 더 인식하게 됨에 따라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사람들은 지구에 이렇게 많은 피해를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했다.
샌즈는 ICC의 토대를 형성하는 조약인 로마 규약(Rome statute)을 생태학살을 인정하는 쪽으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규약을 변경해야 한다. 이건 근본적인 문제다”라며, “그렇지 않고는 ICC가 이 문제를 의미있게 다룰 수 없다”고 말했다.
헤이그에 있는 ICC는 2002년에 설립된 이후 집단학살,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다뤄 왔다. 2010년 로마 규약에 대한 개정안을 통해서 (범죄)목록을 확대해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 무력을 사용하는) 침략범죄를 거기에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영국과 EU를 비롯한 120개국이 넘는 나라들이 ICC에 가입했다. ICC 수석 검사인 카림 칸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체포할 것을 요구했고, 블라디미르 푸틴도 법정에 세우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미국,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온난화 가스 주요 배출국들이 ICC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ICC의 범죄 처벌 적용 범위는 제한적이다.
IAEA도 안전보장하지 못한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
한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와 관련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에 의뢰한 보고서를 앞세워 알프스(다핵종 제거 설비)로 삼중수소를 제외한 반사능 핵종들을 제거한 ‘처리수’를 바다에 흘려보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알프스의 기능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다. 알프스가 제거할 수 없는 삼중수소나 틴소 14 등의 반사능 핵종들의 윔험성에 대한 국제적인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일본정부와 도쿄전력, IAEA가 설정한 안전기준 내의 방사능 오염수 대량방출이 장기간 바다생태계와 인간에게 끼칠ㄷ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연구와 검증 역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상 장기 저장, 콘크리트화, 지하 저장, 기화 등 일본 국내에서 오염수를 처리할 수 있는 다른 여러 선택지들을 거부한 채 수십년, 길게는 몇 세대에 걸친 관찰과 연구를 통해서야 그 위험성을 검증할 수 있는 방사능 오염수를 자국 바깥으로 대량 흘려보내는 것의 위험성과 관련해 IAEA 보고서조차도 방사능 수치가 국제안전기준에 부합한다고 했을 뿐 핵오염수 자체의 안전성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밝혔다./시민언론 민들레
공원·정원 명사가 아니라 동사의 시대이다
우리나라 공원은 어디를 가나 관리하는 직원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외국의 공원을 다녀보면 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것이 정원이든 녹지든 늘 관리자들이 아주 세심하게 정성을 다하여 관리하는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그리고 관리안내판을 통해 현재 하는 일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특히 미국의 센트럴파크는 센트럴파크 컨서번시(Central Park Conservancy)라는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공원을 관리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동으로 명기하던 안내판도 최근에는 단독으로 표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관리비의 85%를 기업과 시민들의 모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300명 이상의 직원과 160명 이상의 전문자원봉사자가 활동하고 있고 매면 7,000만 달러 이상의 공원기금도 모금하고 있다고 한다.
잔디밭이 복구되고 있습니다. 센트럴 파크 컨서번시는 이 잔디밭을 복구하여 많은 사용으로 인한 피해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백만 명의 공원 이용자들이 센트럴 파크의 잔디밭을 즐깁니다. 그 결과로 생기는 마모나 토양 압축은 이 풍경들을 침식이나 잡초에 취약하게 만듭니다. 기존의 잔디를 제거하고 새로운 SOD를 설치하여 보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잔디를 확립하고 잡초 침입을 방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이 중요한 녹색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작업을 할 때 울타리를 넘지말고 잔디밭을 걷는 것을 자제해 주세요.- 미국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잔디 복원을 위한 휴식년제 실시
최근 센트럴파크를 방문하면서 재미있는 사실 중 하나는 입구에 큰 안내판을 최대한 축소하고, 안내서를 따로 배포하지 않는 대신 QR코드로 공원안내를 하고 있었다. 최근 만들어진 리틀 아일랜드도 입구에 안내판 없이 바코드로 공원에 대한 모든 설명을 하고 있고 오디오 가이드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단한 IoT기술이지만 기후변화시대와 스마트공원시대에 맞는 작은 IT기술로 대체되고 있는 모습이다.
센트럴파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까? 코드를 스캔하여 여행 일정을 얻으세요.- 미국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QR코드를 통한 공원안내와 오디오가이드
이제 우리나라도 관리의 시대이다. 이미 만들어진 많은 공간들을 잘 관리해서 그 기능이 잘 유지되도록 할 필요가 있고, 필요에 따라서는 기존의 시설로서 그 기능이 부족할 때는 리모델링을 하기도 한다. 실제 센트럴파크는 지형, 지질학, 수문학, 배수, 토양, 식물 및 야생 동물, 건축, 순환, 사용, 관리 및 인프라와 같은 10가지 주제로 공원 재건관리 및 복원계획을 1985년 완성하었고, 지금도 그것에 기초해서 관리복원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 부는 가장 강한 바람 중 하나가 정원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조성 담당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사후 관리에 대한 부분이다. 정원을 만드는 것보다 관리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만들어진 공간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방치되거나 원형이 훼손되는 경우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로 인해 정원을 조성해보려고 시도하다가도 기존 방식으로 후퇴하는 경우가 많다. 한때 유행했던 띠녹지도 정원형까지도 도입을 하였지만 이제는 시들한 것도 그 때문은 아닐까 추정해본다.
부산현대미술관(2020년)
최근 페트릭 블랑이라는 세계적인 식물학자를 통해 거액을 투자하여 부산현대미술관의 시그니처 수직정원이라는 벽면녹화 설치작품을 남겼지만 매년 조성비의 1/10수준의 과다한 관리비로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구나 초기에 175종이라는 한국의 자생식물을 도입하였고 심지어는 대청부채, 섬개야광나무 등 멸종위기종도 식재하였지만 예술작품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원형보전은 고사하고 지금 남아있는 식물종은 얼마나 될까? 패트릭 블랑은 "식물이 자연스레 병드는 것도 하나의 예술이다"고 밝힌 바 있지만 시민들이나 관리자의 입장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실내공기질관리법이 강화되면서 지하철이나 실내공간에 벽면녹화가 많이 시공되어지고 있지만, 애초부터 공법상의 문제도 있지만 결국은 사후 관리 부실로 식물고사는 물론 공간 자체를 없애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벽면녹화 시장에 부정적 평가가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최근 많은 정원박람회가 개최되고 있지만 작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수한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거나 원형이 사라지는 경우도 결국은 사후 관리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다.
독일 Stuttgart 공원내 정원관리/일본의 정원관리 전문가
센트럴파크 겨울 연못의 익사사고를 방지하는 구조사다리
이제 겨울이 멀지 않았다. 공원은 1년 365일 관리를 해야하지만 겨울에도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진정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그 기능이 유지될 것이다.
센트럴파크는 내가 최근 방문했던 겨울 더구나 비오는 날에도 관리자들이 나와 안전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겨울관리는 물론 봄을 맞이하는 관리도 하고 있었다. 특히 겨울에 떨어진 낙엽·낙지들을 모아 퇴비화하는 사업은 우리도 벤치마킹하여야 할 것이다.
센트럴파크 낙엽낙지의 퇴비화 및 멀칭재로 활용
공원·녹지·정원은 명사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세심한 손길로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동사같은 공간임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와 더불어 공원이나 정원을 관리할 전문가를 양성하여야 한다. 또한 시민들에게 공원관리에 자원봉사할 기회를 주고, 시간이 부족한 사람은 기금으로 동참할 수 있는 옵션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기후변화에 맞는 스마트한 과학적 관리가 필요한 시기이다.
뉴욕시의 Treemap, 수목의 관리안내;
나는 피나무로 24년 1월 22일 식재되었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운 여름에 주에 15∼20갤론의 물과 3인치의 멀칭이 필요함
공원을 매우 좋은 상태로 유지해 주시는 컨서번시 직원과 자원봉사자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나는 공원을 필요로 한다. 공원은 우리를 필요로 한다.- 미국 센트럴파크 컨서번시 -
김동필 교수 · 부산대학교/라펜트
시민이 지켜낸 이기대, ‘경관 보존’ 출발점 돼야 [경관, 부산의 경쟁력]
상. ‘공공재’ 인식, 시스템으로
‘경관은 공공재’ 설문 96% 동의
시민 인식에 지자체 못 따라가
법 핑계로 경관 훼손 견제 부실
이기대 사태 통해 제도 보완을
아이에스동서(주)가 이기대 경관을 가리는 고층 아파트 건설 사업을 전격 철회했다. ‘경관은 공공의 자산’이라는 시민 의식이 발동돼 경관을 지켜낸 부산 첫 사례다. 경관 자원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커지지만 이를 지킬 제도적 장치는 아직 충분치 않다. 부산 해안가에 ‘아파트 병풍’이 쳐진 이유다. 이번 ‘이기대 아파트 사태’는 부산 경관을 지켜내기 위한 논의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
부산은 공공 자산인 경관에 무심한 도시였다. ‘바다 조망’을 프리미엄으로 치는 시대는 부산 해안가를 아파트 병풍으로 뒤덮는 난맥상을 낳았다. 그동안 지자체들은 “법적 문제가 없다면 못 막는다”는 핑계 뒤에 숨어 있었다.
올 2월 이기대를 가리는 아이에스동서 아파트 건설 사업이 부산시 심의에서 통과된 후 심의 참석자들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으면 심의를 통과시켜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관을 무시해 온 부산 건축 행정 현주소다.
현행 부산 지자체 심의에서는 경관 보존 의지 내지는 견제가 작동하지 않는다. 이기대 아파트 심의 때도 건물 유리 색상, 야간 조명 정도만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단적인 사례로 부산시 도시계획과의 경관 훼손에 대한 검토 의견은 깡그리 무시됐다.
당시 해당 부서는 ‘수변 친수공간 전환을 위한 다양한 계획들이 진행 중임을 감안해 주변 경관 훼손이 없도록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사업자와 남구청은 ‘동산교 도로 확폭을 통해 분포로와 차량의 동선이 연계될 수 있도록 계획하였음’이라고 동문서답을 했다.
부산시와 부산 남구청 등에는 경관 심의 관련 조례가 있었지만 이 역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세계적 문화예술공원 조성이 추진되는 부산 남구 이기대공원 일원. 김종진 기자 kjj1761@
정부와 부산 각 지자체도 경관 자원 중요성은 인정하지만 실질적인 보존 의지는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부산시가 수립한 ‘부산광역시 경관계획 재정비’ 보고서에 따르면 이기대, 오륙도, 동백섬, 태종대, 가덕도, 몰운대, 청사포 등 7곳이 수변 끝단 해안 경관 자원으로 지정됐다. 시는 “유무형 자원과 연계돼 경관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관광자원으로서 잠재적 가치가 큰 자원”이라고 정의했다. 현행 경관법에도 경관은 자연, 인공 요소와 주민 생활상 등으로 이뤄진 일단의 지역 환경적 특징으로 규정한다. 실제 행정에서 이런 정책 방향은 단순히 구호에 그쳤다.
하지만 시민 인식은 달랐다. 시민들은 부산이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었다. 어느덧 금정산 백양산 등 진산들을 아파트들이 에워쌌고, 달맞이언덕 해운대 광안리를 따라 아파트들이 진을 친 모습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이런 시도가 이기대에 가 닿자 시민들도 참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시민들은 지난 6월 7일 ‘이기대 고층 아파트 심의, 업자 편만 들다 끝났다’는 본보 기사가 나간 후 질타를 쏟아냈다. 해당 기사에는 ‘진짜 아까운 자리를 또 아파트에 내줬다’ ‘또 하나의 휴식 공간, 아름다운 풍광이 사라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실제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20세 이상 일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경관이 공공재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95.8%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행정기관이 법 타령을 하며 민간 건설사 이익에 더 신경을 쏟는 동안, 시민들 사이에는 경관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고, 경관 훼손 시도에 적극 저항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게 됐다. 경성대 도시계획학과 강동진 교수는 "부산 305km 해안선은 전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부산의 엄청난 경쟁력인 만큼 이를 사익에 넘겨줘서는 안 되며 파괴하거나 훼손하는 일은 부산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부산 경관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회적 합의와 시스템 구축이 꼭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현정 기자(yourfoot@busan.com) 김준현 기자(joon@busan.com)
“우리 아들·딸의 호소라는 느낌”…기후위기 승소 변호사들
“기후대응, 대한민국 기본가치로…추가 목표도 헌소 가능”
“‘기각’ 2030년 목표도 ‘정부 최선다해 감축’ 책임 명시”
“유엔 제출할 2035년 목표, 시민과 함께 구체화해야”
헌법재판소 기후소송 변호사들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치선, 이병주, 김영희, 윤세종 변호사.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지난달 29일 한국 헌법재판소는 2031년 이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없는 현행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했다.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할 2050년까지,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4월과 5월 이례적인 두 차례 공개변론을 거쳐 내린 결론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엔 2031년 이후 ‘감축 경로’를 만들어야 할 숙제가 생겼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2020년 3월 제기된 ‘청소년 기후소송’과 ‘시민 기후소송’(2021년), ‘아기 기후소송’(2022년) 등 네건의 청구가 병합된 것이다. 2300건이 넘는 전 세계 기후소송 가운데 아시아에서 처음 제기된 것이고, 청소년과 태아까지 참여해 국제적 관심이 쏠렸다. 한겨레는 지난 3일 이번 소송의 대리인 9명(김민경·김석연·김영희·이병주·이치선·윤세종·최창민 변호사, 곽태선·신서영 미국변호사) 가운데 이병주, 윤세종(이상 청소년 소송), 이치선(시민), 김영희(아기) 변호사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났다. 이들은 사건이 병합된 올해 2월부터 매주 모여 본격적인 변론 준비를 했다. 이들에게서 소송 참여 과정과 헌재 결정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어쩌다 기후소송을 하게 됐나?
이병주(이하 주) 당시 같은 회사(에스앤엘파트너스) 곽태선 변호사의 강력한 권유로 기후활동을 해온 청소년들을 만났다. 이들이 활동을 시작한 건 2018년 8월인데, 스웨덴의 기후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학교 파업’을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다. 한국의 청소년 기후운동이 툰베리 영향을 받았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아니었다. 청소년들 얘기를 들으며 ‘우리 아들딸들이 부모한테하는 호소’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세종(이하 윤) 중요한 건 청소년들이 먼저 우리를 찾았다는 거다. 이미 여러 변호사를 만나 ‘인정되기 어려운 청구’라는 말을 들은 상태였다. ‘기후활동을 하는 변호사인데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상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시민소송, 아기소송은 어떻게 제기됐나?
이치선(이하 선) (소 제기 당시인 2021년) 그땐 엔디시(NDC·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높이는 게 기후운동진영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감축 목표가 (2018년 대비) 30~40%에서 정해질 거라는 얘기가 있었고 ‘왜 그거밖에 안 되냐’고 하니 정부 쪽에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마음 먹었다. 법 통과 한달 뒤인 10월 중순 소 제기를 했고 녹색당을 비롯해 7개 진보정당, 기후위기비상행동을 중심으로 청구인을 모집했다.
김영희(이하 김) 감축 목표가 40%로 정해진 걸 보고 ‘가장 어린 세대로 청구인을 모집해 헌법소원을 제기하자’고 생각했다. 특히 태아는 미래 세대의 상징성이 있겠다고 봤다.
―병합과 공개변론 결정이 올해 2월이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한 건가?
윤 우리 주장과 증거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을 추려 정해진 시간 내에 최선의 결론을 압축해 내야 했다. 대리인단(변호사들)의 생각이나 논리도 다 일치해야 했다. 매주 만나 회의했다.
주 각자 낸 변론요지서를 다시 통합해서 냈고 헌재 질문에 대한 서면 답변만 150개 정도를 만들었다. 공개변론 때 진술, 헌재 재판관들과의 질의·응답도 준비했다. 사건 한 지 4~5년 됐는데, 막상 구두변론 준비하면서 우리도 내용을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개최한 기후 헌법소원 최종선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헌재 결정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주 기후위기 대응에 관한 국가의 헌법적 보호 의무를 처음으로 인정한 것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처음이라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선 결정문을 보면 특히 기후변화로 초래된 극단적 날씨, 물 부족, 식량 문제, 해안선 변화 등을 ‘생태붕괴 현상으로 인한 위험’이라고 명확히 정의 내렸다. 기후위기 위험 상황의 존재에 대해 헌법적으로 확고하게 못을 박은 것이며 큰 진전이다. 기후위기 대응 필요성이 대한민국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가 된 것이다.
주 또 앞으로 국가 기후 정책, 기후 법제에 대해 얼마든지 헌법재판을 제기할 판이 열린 것이기도 하다. 그전엔 환경권 사건에서 헌법재판을 하려 하면 바로 각하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새로 감축 목표가 나올 때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재판할 권리가 생겼다.
김 2015년 제기된 미국의 대표적인 기후소송인 ‘줄리애나 사건’의 경우 지난 5월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변화를 안정시키는 일은 정치적 권력기관이나 유권자가 할 일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아니”라며 최종 각하했다. 한데 우리 헌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판단한 거다.
―위헌 판단의 핵심은 2050년까지 감축 경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찌 봐야 할까?
윤 헌재가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에 근거해 검토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단지 빈자리를 메우기만 할 게 아니라, 과학적 근거에 따라, 국제적 기준과 책임을 고려하라는 거다. 기후위기의 과학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지위와 몫,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평가돼야 한다, 이걸 대원칙으로 제시한 거다.
―과학적 사실과 국제 기준이라는 건 곧 ‘탄소예산’과 ‘누적 배출량’ 개념을 적용하란 취지일까? (탄소예산은 ‘1.5도 제한선’까지 인류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양을 이른다. 지구 전체 탄소예산과, 인구 비례와 누적 배출량 등을 기준으로 계산한 각국의 탄소예산이 있다. 특정 국가의 역사적 배출량이 많으면 남은 탄소예산은 그만큼 줄어든다.)
선 독일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환경자문위원회가 인구비례로 계산한 독일 탄소예산을 헌재에 제출했다. 행정부가 낸 것이라 사법부가 인정하고 이를 근거로 판단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아무런 자료를 내지 않았다. 우리 헌재가 “탄소예산 배분에 관해 국가적으로 공인된 도출 방식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정부가 나태하고 무책임했다.
주 유럽연합의 과학자문위원회가 지난해 보고서에서 국가별 탄소예산을 계산한 바 있다. 지난 4월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에서도 스위스의 국가별 탄소예산을 고려하라고 했다. 탄소예산 개념이 국제적 합의로 점점 강화돼 가고 있다. 우리도 국회에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계산해야 한다. 헌재도 결정문에서 누적 배출량을 언급했다.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은 특정 시점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니라 대기 중에 누적되는 양에 비례한다” 같은 대목이 그렇다.
―2030년 목표에 대한 청구는 기각됐다. 문제가 없다고 봐도 될까?
선 그렇지 않다. 헌재 결정문에 2030년 목표도 강화해야한다는 취지를 담은 명시적인 문장이 두개 있다. “위험 상황으로서 기후위기의 성격상, 미래 부담을 가중하지 않기 위해서는 가장 의욕적으로 감축 목표를 정하고 진전시켜야 한다”(결정문 57쪽)는 것과, “현재 설정된 2030년 감축목표를 달성하고 2031년 이후 감축목표를 강화하기 위해 사전에 필요하고 가능한 조치를 다 하지 않으면 2031년 이후 감축 부담은 더욱 증가한다”(43쪽)는 것이다
윤 헌재는 (필요한 보호조치가) “최소한에 못 미쳤다고 할 수는 없다”고 한 것뿐이다. “괜찮다”고는 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도 할 수 없다”며 못을 박기도 했다. 과학과 책임에 기초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근거해 보면, 국회와 정부에 ‘최선을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본 것이다. 2030년 목표가 괜찮다며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주 독일의 법 개정과정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독일 연방 헌재도 2030년 목표를 위헌이라 하지 않았지만, 독일 정부는 2040년 목표로 88%란 숫자를 만들면서 2031년 이후 목표를 더 강력하게 잡았다. 그래서 2030년 목표도 따라서 본래의 (1990년 대비) 55% 감축에서 65%로 강화된 것이다.
윤 헌재가 2031년 이후 목표를 정할 때 ‘반드시 국회가 해야 한다’고 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구조적으로 단기적 이익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회적 논의를 끌어낼 더 좋은 위치에 있는 국회가, 정부에 위임하지 말고 법률에 직접 하라고 했다. 입법자들에게 단기적 이익에 휘둘리지 않는, 탄소중립까지 가는 전체 경로를 만들어야 할 헌법적 책임이 생긴 거다.
―그러기엔 1년 반이 너무 짧지 않을까?
주 헌재가 법 개정에 주는 시간은 통상 그해 말까지거나 6개월 정도다. 진지하게 노력해서 하라는, 충분한 시간을 준 것이다.
―2031년 이후 ‘경로 설정’은 어떻게 해야 할까? 헌재도 볼록한 형태의 경로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 같다. (온실가스 감축 경로는 부담이 배분되는 시기에 따라 ‘오목’, ‘선형’, ‘볼록’의 형태로 나뉜다. 오목은 전반부에, 볼록은 후반부에 감축 부담이 집중된다.)
선 현재 한국 온실가스 배출량의 87%가 에너지 부문에서 나온다. 석탄·가스 발전을 폐쇄하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가장 신속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마침 한국의 발전산업은 운 좋게 공기업이 소유·관리한다. 정부가 정책 의지를 가지면 재생에너지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다. 풍력이나 태양광은 1메가와트(MW) 이상 ‘유틸리티 급’ 발전소 세우는데 14개월이면 충분하다. 또 운송에서도 1억톤가량의 온실가스가 배출되는데 선진국들이 다 하는 내연차 통행, 생산 중단을 빨리 계획해 실행해야 한다. 이와 함께 대중교통을 편리하고 저렴하게 만들어야 하고. 이 두 가지만 돼도 오목 경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선 내년에 2035년 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하게 된다. 이 역시 충분한 수준으로 나오지 않으면 소송 대상이다.
김 에너지는 기후 문제에서 가장 중요하다. 현재 실무안이 나온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윤 헌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관이 아니다. 멈춰있는 문제 해결에 대한 논의를 억지로 돌려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번 결정의 의미를, 기후를 걱정하는 여러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2035년 목표도 시민사회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과학적 근거를 두고 구체화해야 한다. 헌재 결정 날 청구인단의 구호처럼 ‘판결의 끝은 대응의 시작’이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탄소중립법 헌법불합치…국회, 기후위기 본격 대응 움직임
여야 원내대표, 기후특위 구성에 공감대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으로 이전한 '기후위기시계'가 4년 321일 13시 41분 01초를 가리키고 있다. 기후위기시계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1850~1900년) 이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으로 이전한 '기후위기시계'가 4년 321일 13시 41분 01초를 가리키고 있다. 기후위기시계는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1850~1900년) 이전보다 1.5℃ 상승하는 시점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준다. /남윤호 기자
기후위기 심각성이 대두되면서 국회가 본격 대응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9일 주재한 원대 회동에서 22대 국회 기후위기대응특별위원회(기후특위) 구성에 공감대가 이뤄지면서다. 최근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온 것도 계기가 됐다. 22대 국회에서 실질적인 정책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기후특위가 구성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우 의장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기후위기 특강에서 "이번 기후특위만큼은 여러 부처와 상임위로 쪼개진 기후문제를 제대로 다루도록 최소한의 권한을 부여해 특위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2031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실천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했다"며"국회가 미룰 수도 피해갈 수도 없는 문제인 만큼 조속히 입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혁신당도 이날 국회 상설 기후특위 구성을 재차 언급했다. 서왕진 혁신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진심으로 공감하고 환영한다"며 "역대 최악 폭염이었던 올 여름이 당신이 겪을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경고를 눈을 뜨고 귀를 열어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서 정책위의장은 "오로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만이 정도(正道)이자 세계적인 흐름"이라며 "윤석열 정부는 책임 떠넘기기 그만하고 헌재 판결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탄소중립 이행 계획을 신속히 다시 세우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 8월 2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등 시민단체의 기후 헌법소원 최종 선고 공동 기자회견에서 판결은 끝이 아닌 기후 대응의 시작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날 헌재는 헌법소원 4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8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뉴시스
헌재는 지난달 29일 2031년부터 2049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감축 목표의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소보호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 등 기본권 보호의무를 위반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청구인 측은 '2030년까지 2018년 배출한 온실가스 40%를 줄인다'는 정부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미래 세대에게 '안정된 기후에서 살 권리'를 비롯한 환경권, 생명권, 건강권, 행복추구권 등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이유다. 헌재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2026년 2월28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날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최초로 탄소세법(탄소세법안·탄소세의 배당에 관한 법률안)을 당론 발의했다. 탄소세란 지구온난화를 가속화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활동에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말한다.
그는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후위기 심각성에 비해 정치권의 논의는 너무 부진하다"며 "탄소중립으로 나아가기 위해 마땅히 탄소세 도입은 국가적 중요 책무"라고 강조했다. 용 의원의 탄소세법은 탄소배출 전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라 탄소세를 과세하고, 세율은 온실가스 배출량 1톤당 8만원으로 정하고 있다. 또 탄소배출권 유상할당분은 탄소세를 대납할 수 있도록 했다.
용 의원은 이날 <더팩트>와 만나 발의 시점에 대한 물음에 "헌재 판결도 나온 만큼 여야가 이미 공감대를 이룬 기후위기 대응 문제만큼은 빨리 마무리지을 수 있어야 한다"며 "정기국회 초반인 지금 제출해 기획재정위원회 세법 심사가 있을 때 같이 검토돼야한다는 입장"이라고 답했다.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 모두 기후특위 설치에 뜻을 같이 했다는 점에서 국회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관건은 기후특위에 상설화와 기후·에너지 관련 법률안에 대한 심사 및 처리, 기후대응기금 등의 예·결산을 심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느냐다. 양당이 지난 4·10 총선에서 기후특위 상설화와 기후위기 대응 관련 공약을 주요하게 제시한 것, 여야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 각 정당에 기후위기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 등도 긍정적 흐름으로 평가된다. 21대 국회 기후특위는 비상설 특위로 만들어져 1년 2개월 정도 운영됐다. 그러나 입법권과 예산심의권이 없어 기후위기에 실질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관련 부처의 각종 보고를 받는 데 그쳤다.조채원(chaelog@tf.co.kr)
‘현대건설 컨소’가 신공항 부지 공사
4차 유찰 끝 수의계약 가닥
- 현대건설 주간사 컨소시엄
- 대우·포스코이엔씨도 참여
정부가 그동안 4차례 유찰됐던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사업자 선정 방식을 수의계약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의 입찰에서 3회 단독 응찰을 했던 현대건설 연합체(컨소시엄)가 공사를 맡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국제신문 DB
12일 국토교통부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27조에 따라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사업자를 수의계약을 통해 선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날 조달청에 관련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조달청은 현대건설 연합체에 대해 ‘입찰 참가 자격 사전 적격심사’(PQ)를 진행한 뒤 수의계약 참여 의사를 묻는다. 이 과정이 끝나면 정식 계약은 내년 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정부는 여객터미널 건축설계 착수, 접근철도 건설 및 연계 도로 확장 등 가덕도신공항 관련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 왔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부지 조성공사 입찰이 4차례 유찰되며 사업 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1차 입찰 때는 무응찰로 결론 났고, 2~4차 때는 현대건설 연합체만 단독 응찰해 유찰됐다.
공사를 맡을 것이 확실시되는 현대건설 연합체의 회사별 지분율을 보면,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개사의 연합체 지분율은 주간사인 현대건설이 25.5%, 대우건설 18%, 포스코이앤씨가 13.5%다. 금호건설·HL D&I한라·코오롱글로벌·동부건설·KCC건설·쌍용건설·한양·효성중공업은 각 4%다. 지역기업은 14개사가 참가하며 지분율은 11%다. 부산에서는 동원개발·동아지질·흥우건설·삼미건설·협성종합건업·지원건설 등 6개사가 각 1%, 경동건설·대성문·영동·동성산업 등 4개사가 각 0.5%의 지분을 보유했다. 경남에서는 대저건설·대아건설 등 2개사가 각 1%, 정우개발·대창건설 등 2개사가 각 0.5%의 지분을 가진다.
국토부 측은 “수의계약을 통한 실제 계약체결 전까지 입찰 참가 자격 사전심사, 기본설계 적격성 심사 등을 철저히 이행해 고품질의 공항으로 건설하겠다”고 말했다./국제 염창현 기자
가덕신공항 현대 건설 컨소시움이 공사를 하는 것에 대해
시청후문 농성장을 지나시며 관심을 보이는 분들중 일반시민들도 많았지만 주로 가덕도가 고향이라며 내고향이 파괴되고 사라지는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분이 많았습니다. 그 안타까움에서 저는 큰 슬픔을 보았습니다. 다니던 학교가 사라져도 마음이 뻥 뚫린듯한데 고향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다니요. 너무나도 기가 막히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사업하시는 분, 경제 좀 안다는 분들도 서명을 많이 해주셨는데요, 하나같이 말씀하십니다. 이거 이거 말도 안되는 사업이라고, 사업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망하는 사업이라고 한다고, 정치고 뭐고 모르겠고 돈이 되면 뛰어 드는데 이건, 미친짓이라며 고개를 저으셨습니다.
가덕도 신공항 반대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토록 분명한 메세지가 어디있을까. 토건자본이 온국토를 이윤을 위해 갈아 엎고 도륙하는 지금, 자본조차도 등을 돌리는 건설사업이라니..
계속되는 사업유찰은 너무나 자명한 결과일것입니다. 5년의 건설과 개항,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병행해야 하는불안정성,접근교통망과 공단운영비포함 17조의 큰 규모를 감내할만큼 가덕도 신공항이 돈이 될까?남는게 있을까?주사위를 굴려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방분권,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하다던 신공항건설에 지역경제는 어떤 이익과 파급 효과를 얻는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부산 업체 참여는 의무가 아니었고, 그나마 입찰에 참여한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부산·경남 업체의 참여 비중은 11%에 불과합니다. 기존 두 곳으로 한정되어 있던 대기업 참여 제한도 세 곳으로 완화되어 부산·경남 업체의 비중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고 17조가 넘는 거대한 토건사업의 메인은 거대 자본이 될것이 분명하며 지역 업체는 하청, 또 하청의 피라미드속에서 대기업이 던져주는 푼돈이나 받으면서 재벌의 곳간만 채우게 될것입니다.
그렇기에 국토부와 부산시는 지금이라도 상황의 심각함과 공항건설의 불가함을 인정하고 중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수의 계약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그 발표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설마? 이 큰 사업에 ? 입찰실패와 줄어드는 공사기간의 압박으로 저들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습니다. 공정과 민주주의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형식적인 절차와 과정은 지킬줄 알았습니다. 그들에게도 나름의 명분은 필요하니까요.
수의계약이라니요?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결하는 모든 계약은 경쟁계약이 원칙입니다. 수의 계약은 발주자의 의견이 업체선정에 강하게 들어가며 계약체결과정의 부정부패, 업체선정의 공정성,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규모가 몇천만분의 일인 학교등의 업체선정도 다 공개입찰입니다. 다분히 형식적일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그동안 애써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최소단위이자 자부심인것입니다.
그런데 17조의 거대 토건사업인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수의계약, 짬짜미 계약이라니요? 막 가자는 겁니까?뭡니까? 국민의 피땀인 막대한 혈세를 쓰는 일은 그 무엇보다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는데도 즈들끼리 눈가리고 아웅하겠다니요?
기후위기속 생태파괴, 공동체파괴, 문화유산파괴, 위험천만한 입지조건, 천문학적 공사비, 모든 과정과 절차를 무시한 무소불위의 특별법,지역경제에 하등의 도움도 되지 못하는 등, 이 모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의 문제점을 넘어서 결국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는 곳이 그들만의 오래된 관행과 내부거래, 짬짜미들인것입니까?
그들만의 리그, 부산 시민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그만 하십시오.추잡하고 누추합니다.이 말도 안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로 인한 부산시민의 피해와 고통을 지금이라도 멈추고 부산 시민의 남아있는 명예를 지켜주십시오.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사상유례없는 대규모 사기극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부산한살림 임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