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기대 난개발, 조례 탓인가 구청 의지 부족인가 2. 기후위기는 왜 인권의 문제일까? 3. 11조 세금 들어가는 가덕도 신공항, '턴키방식' 선택한 정부 속내는? 4. 정조의 땅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5.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케이블카 설치 공약? "尹, 환경부 없애나" 6. 기후변화 이정도일줄…서울 주말농장서 바나나 열렸다 7. 국토부 ‘가덕도 신공항공사 재유찰’에 10대 건설사 소집 11. BRT 정류장 도시 숲, 대중교통 여건 개선 계기로
12. 기업 만행 폭로 후 사형당한 남편... 남겨진 그녀의 싸움 13. 한 잔에 ‘각설탕 17개’…생과일에 가려진 스무디의 진실 14'. 일상이 된 후쿠시마 오염수, 우린 너무 일찍 포기했다 15. "예전의 장맛비가 아니다" 강력 폭우 52% 급증 16. 대저·장낙·엄궁대교 또 제동, 국가유산청 ‘보류’
17. 2050년이면 산림도 2.2도 기온상승···재난 밀려온다 18. 4대 금융 ‘탄소 배출왕’은 어디? ESG 보고서 살펴보니 19. 쓰레기 처리하는 노인들, 한국의 민망한 현주소
20. 부산시민단체 "이기대 아파트 사업 계획 승인 보류 촉구" 21. 덴마크, 소·돼지 방귀에 세금 걷는다 22. "가덕도신공항 수의계약 없다"…재입찰 공고 재확인 23. 존 레논의 평화와 저탄소 꿈의 실현
24. 이기대 난개발 질타한 부산시의회, 시·남구청 감사 청구 25. 가덕신공항 공사 ‘공동도급 2→3社’ 입찰 조건 완화 26. 마린시티 길이 500m 수중 방파제 세운다…8년 논란 종지부 27. ‘글로벌 위어딩’ 28.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이기대 난개발, 조례 탓인가 구청 의지 부족인가
부산 대표 해안 경관 자원 이기대를 아이에스동서(주) 아파트가 사유화하는 길을 터준(부산일보 6월 7일자 1면 등 보도) 배경에는 허술한 ‘경관 조례’와 지자체장의 의지 부족이 있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부산시가 이기대 등 수변 끝단의 자원을 잠재적 가치가 큰 자원으로 규정한 만큼, 경관 자원을 지킬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산 남구청은 7일 아이에스동서가 이기대 앞에 짓는 아파트의 경우 시 경관 조례 제25조 4호에 따라 경관 심의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에스동서 아파트는 인허가 과정에서 경관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았다. ‘건축위원회 심의 대상 건축물은 제외한다’는 같은 조례 ‘별표5’에 담긴 예외 규정 때문이다. 해당 아파트의 경우 시가 지난 2월 단 한 차례 개최한 통합심의에서 건축 심의가 함께 이뤄졌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이기대 경관 보존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인허가 과정을 밟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관위와 건축위는 역할과 목적이 엄연히 다르다고 본다. 경관위는 조망과 경관 보호에 대한 전문적 견해를 제시한다. 반면 건축위는 건축 구조, 설비 등을 공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 의견을 제시하는 위원회다. 경관 역시 건축물의 경관, 색채 등을 다루는 데 그친다.
실제 남구청이 의지만 있었다면 따로 경관위원회 심의도 가능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구청에서 경관 심의 신청을 따로 하지 않아 경관 심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시 조례와 남구 경관 조례에는 각각 시장과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경관 심의를 하도록 규정한 조항이 있다. 남구 경관 조례 제26조 4호는 구청장이 경관의 보전·관리 및 형성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항은 경관위원회의 심의 및 자문대상이라고 정해두고 있다.
이에 대해 남구청은 “건축위원회 심의 또는 자문을 거친 경우는 경관위원회 심의를 받은 것으로 본다(의제 처리)”면서 “경관 심의를 추가로 받을 필요가 없는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구청 측은 26조가 아닌 경관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되는 25조를 우선순위에 두고 해당 사안을 처리한 것이다. 이에 지구단위계획과 마찬가지도 경관 심의도 의제처리라는 방식으로 간단히 넘어갔다.
전문가들은 경관 심의가 꼭 필요한 곳임에도 남구청이 사업자에게 유리한 조항만을 적용한 뒤 군색한 변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산시의회 서지연 의원은 “시와 남구청 모두 사업자에게 유리한 법적 근거만 내세우며 사실상 특혜에 가까운 인허가를 밟고 있다”면서 “경관 조례와 주택법은 결국 도시계획 내 적용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 만큼 부실한 과정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강동진 교수는 “이런 선례가 계속 쌓이면 부산 수변 경관은 모두 사유화가 될 것”이라며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시가 수립한 ‘부산광역시 경관계획 재정비’ 보고서에 따르면, 이기대, 오륙도, 동백섬, 태종대, 가덕도, 몰운대, 청사포 등 7곳은 수변 끝단 해안 경관 자원으로 지정돼 있다. 부산시는 수변 끝단에 대해 “유무형 자원과 연계돼 경관적으로 우수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관광자원으로서 잠재적 가치가 큰 자원”이라고 정의했다.
앞서 남구청은 아이에스동서의 자회사 (주)엠엘씨의 남구 용호동 973 일원 아파트 개발 계획을 시 심의에 올렸고, 시 주택사업공동위원회는 지난 2월 이 계획을 조건부 통과시켰다. 당시 용적률은 249.99%로 지구단위계획 구역에 준해 최대치로 적용됐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기후위기는 왜 인권의 문제일까?
전북대 명예교수 강준만은 “서울민국 타파가 나라를 살린다”는 부제가 달린 <지방식민지 독립선언>(2015)이란 책을 냈다. 한국이 지나치게 서울 중심으로 발전했고 서울 ‘이외 지역’에선 ‘지역소멸’을 걱정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흔히 주변에서 누가 시끄럽게 할 때 ‘지방방송 꺼달라’고 하는 걸 보면 우리가 얼마나 무의식중에 서울 이외 지역을 차별하는지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식민지’라는 말은 다소 과장된 표현이란 생각을 하는 이들도 많다.
강준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티라”라는 유언을 자식들에게 남긴 다산 정약용(1762~1836)을 사례로 들며 얼마나 ‘서울제국’과 ‘지방식민지’의 수직구조가 뿌리 깊은지 설명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왜 서울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광역 지방자치단체장은 국무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지, 왜 지자체는 서울로 대학 간 유학생에게 장학금과 살집까지 지원하는지, 대학 때 못가면 취업이라도 서울로 해야 하고, 그것마저 못하면 왜 열패감이 빠지는지 등 ‘서울사람들’이 생각할 필요 없는 다양한 질문이 등장한다.
특히 서울의 ‘중앙 미디어’가 ‘지방’을 어떻게 묘사하고 ‘지방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결정하려 하는지 고민하게 한다. 중앙언론에서 ‘지방’을 오로지 먹거리, 고기잡이, 축제, 사건·사고 등의 용도로만 다룬다는 비판은 출간 10년이 지났지만 유효하다. 사회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서울에 종속돼 있으면서 지방민들이 서울을 지향하게 되며, 서울과 지방의 위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그건 식민지로 부를 만하지 않나. 책을 읽다 보면 왜 지방이 서울의 식민지인지 어느 정도 설득이 된다.
인권학자 조효제의 저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도 비슷하다. 대규모 자연환경 파괴행위를 제노사이드에 비유한 ‘에코사이드(생태살해, ecocide)’란 표현이 과해 보일 수 있다. 300여쪽에 걸친 각종 사례와 논리구조를 따라가 보면 왜 환경위기가 곧 인권위기인지 깨닫게 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에코사이드’는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고엽제를 살포해 자연과 인간 모두를 말살했던 그 경험만을 가리킬 수 없다.
▲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조효제 지음, 창비 펴냄
과장이 아닌 ‘에코사이드’, 환경은 왜 인권인가
나치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수용자들을 ‘효율적’으로 죽이기 위해 독극물인 페놀을 갈빗대 사이에 주사로 놓았다. 인류의 대량학살, 제노사이드다. 이 페놀을 1991년 경북 구미의 두산전자가 식수원으로 쓰는 낙동강에 유출했다. 수백만이 수돗물을 마셨고, 임산부가 유산을 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자연과 인간 모두에게 극심한 해를 끼친 ‘에코사이드’다. 당시 두산그룹 회장이 물러났고 두산전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모든 피해자가 보상을 받은 건 아니지만 가해와 피해의 인과관계가 일부 입증됐다.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삼성중공업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사고로 원유가 유출됐다. 까만 기름을 뒤집어쓴 새 모습으로 상징되는 ‘죽음의 바다’로 변했다. 생태계는 물론 어업과 관광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생태 파괴는 사람들에게 여러 질환 등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태안신문 보도를 보면 남성은 전립선암, 여성은 백혈병이 급증했다. 여기까지는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했던 비극이다.
▲ 태안 앞바다 삼성중공업 유조선 원유 유출 사고로 기름을 뒤집어 쓴 새. 2016년 6월 EBS 방송 갈무리
문제는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출연금이 여전히 피해 주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채 태안 등 관련 지역 내 갈등 요소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삼성은 돈을 내고 떠났지만 그 발전기금으로 만든 허베이사회적협동조합은 피해자들에게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조합 관계자들은 예산을 부적절하게 사용한 혐의로 해양수산부 감사를 받는 등 혼란만 일으키다 지난해 기금을 환수당했다. 허베이조합을 둘러싼 그동안의 갈등을 기름유출사건과 연결해 기억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태안주민들에게 17년 전 이 사건은 현재진행형인 ‘에코사이드’다.
2015년 남미 페루에 사는 한 농부가 독일 전력회사 라인베스트팔렌전력을 상대로 독일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페루 우아라스 상류에 있는 팔카코차 호수 빙하가 녹으며 동네에 물난리 위험이 커졌다는 이유에서다. 수해방지 공사대금의 0.47%를 부담하라는 요구였는데 이는 1988~2015년 사이 배출된 온실가스 중 해당 전력회사가 발생시킨 몫을 뜻한다.
저자는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머지않은 날, 수만리 떨어진 어느 섬나라 주민으로부터 한국에서 유독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체에 고소장이 배달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대”(171쪽)가 이미 도래했다. 지난 4월에는 아시아 최초 기후소송 첫 공개 변론이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2020년 3월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정부의 미흡한 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이란 취지로 헌법소원을 냈고, 이후 여러 건의 기후소송을 묶어 변론이 시작된 것이다. 종합하면 이제 피해와 가해는 서로 마주친 적 없는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고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니다.
▲ 2024년 4월23일 MBC 뉴스데스크 갈무리
피해와 가해의 1:1 구도를 벗어나
경제를 전체적으로 보는 거시경제와 개별수준에서 분석하는 미시경제로 나눈다면, 인권 분야도 미시와 거시를 구분해볼 수 있다. 기존 인권 담론에선 가해자의 존재, 가해와 피해의 인과관계 등이 선명한 사건을 주로 인권 문제로 다뤘고 이는 주로 법적 규제로 해결이 가능하다. 저자인 인권학자 조효제는 ‘거시인권학자’에 가깝다. 2016년 5월3일자 그는 한겨레 칼럼 <인권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에서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물리적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치를 떨지만, 그런 침해를 일으키는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는 알기도 어렵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안다고 해도 뾰족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이라고 썼다.
개개인이 가져야 할 인권 의식도 중요하지만 인권을 지키며 살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을 국가나 사회가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미 1945년 제정한 유엔(UN)헌장 전문에선 “국제연합의 인민들은 (중략)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들을 확립함으로써, 더 많은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 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하였다”고 했다.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신경써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한 부분이다. 세계인권선언 28조에서도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나온 모든 권리와 자유를 온전히 실현될 수 있는 사회질서 및 국제질서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했다. 만약 전쟁이라도 벌어져 생존이 불투명하다면, ‘인권을 지키자’는 당위는 허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저자는 위 칼럼에서도 “(인권 담론에서) 거시적 조건이나 사회과학적 통찰을 접어두고 개별 권리침해의 사실관계 조사와 법적 해결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눈을 들어 넓고 멀리 봐야”하는 문제가 “21세기 인권운동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주장했다. 인권을 거시적인 문제로 보면 기후 위기가 곧 인권의 위기가 된다.
국제사회에서는 인권 전문가들이 기후위기를 심각한 인권 문제로 보고 있다. 지난 2019년 데이비드 보이드 유엔 인권·환경 특별보고관은 보고서에서 “대기오염으로 매시간 800명이 죽어간다”며 “각국은 깨끗한 공기를 마실 인권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지난해 7월3일 제53차 유엔 인권이사회 회의에서 “2021년 8억28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아에 직면했고 기후변화로 금세기 중반까지 최대 8000만 명이 더 기아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 저자 조효제는 기후위기가 곧 인권의 위기라고 주장한다. 사진=pixabay
기후위기 시대의 정의는?
이제 기후변화는 빙하가 녹아 북극곰이 살 곳을 잃는 이야기(물론 그것도 중요한 일이지만)를 넘어 인류와 생태계 전체의 생존 문제다. 선량한 개인들이 일회용품을 덜 쓰는 일도 좋지만 에코사이드를 막으려면 “기후위기, 플라스틱, 대기오염, 물오염, 다이옥신, 살충제, 제초제 등 거의 모든 공해가 주로 기업활동을 통해 배출”되고 “기업의 통제 없이는 기후-생태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140쪽)하기 때문에 기업을 규제하고 에코사이드를 국제범죄화해야 한다.
분명 기후위기에 더 큰 책임이 있는 주체가 있다. 지난해 영국 가디언·국제자선단체 옥스팜·스톡홀름 환경연구원이 공동발표한 연구를 보면 2019년 전 세계 탄소배출량 중 16%가 세계 상위 1% 부유층(연 소득 약 1억8000만 원 이상)이 배출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66%, 50억 명이 배출한 양과 같다. 이제 국제사회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는 행위를 기후범죄로 규정하고는 것을 넘어 기후범죄를 실제 법제화하자고는 주장이 나온다.
▲ Stop Ecocide International 주최로 에코사이드를 형법에 도입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범죄로 다루자는 내용의 청원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YOU MOVE EUROPE 페이지 갈무리
북반구 선진국이나 다국적 대기업, 부유층이 탄소배출을 적극 줄여야 한다. 이 기준을 탄소배출 책임이 거의 없고 오히려 피해를 받는 남반구 저개발 국가나 빈곤층에 똑같이 적용해선 곤란하다. 기후위기를 이유로 경제발전을 막는 것이 이들에게는 인권침해일 수 있다. 저자는 “개발도상국 입장에서 경제개발을 포함한 통합적 발전권을 당장 포기하기는 어렵다”며 “이 경우에도 선진국이 개도국의 에너지 전환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리고 역사적인 기후-생태 부채의 청산을 위해 재정지원과 기술지원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268~269쪽)고 주장한다.
실제 탄소를 많이 배출한 선진국들이 기후위기로 피해를 보는 저개발국을 지원하자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기후위기로 피해를 입은 국가를 지원하기 위한 ‘손실과 피해(loss & damage) 기금’에 합의했고 지난해와 올해 당사국총회에서 이 논의를 이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난 2009년 몰디브에서 기후위기 취약국가 모임인 기후취약국포럼(CVF, Climate Vulnerable Forum)이 시작됐고 이들 중 20개국 재무장관 협의체인 V20(Vulnerable 20 Group)도 만들어졌다.
주요 정치쟁점, 대부분 기후위기와 연관된 문제들
이제 다시 한국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주요 정치 쟁점이 모두 환경과 연결된 문제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지난 대선 때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며 ‘원전 르네상스’를 주장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지난 5월31일 정부는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해 2038년까지 대형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를 추가로 짓기로 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교훈이 사라진 셈이다.
정권 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이민청 설립을 제안했다. 이후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등의 문제로 논란이 벌어졌다. 이는 기후위기와 관련이 없을까.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 상당수는 기후불평등의 큰 피해자인 남반구 저개발 국가에서 오고 있다. 2050년 전 세계 기후난민이 1억4300만(세계은행)~2억명(유엔난민기구)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데 이들 다수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남아시아에서 발생한다. 한국은 이주민을 기후난민으로 보고 있을까.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현실과 동떨어진 대파 가격을 언급하며 논란이 됐고 여당 후보로 나선 한 범죄심리학자가 대통령을 옹호했다. 사안이 희화화되는 바람에 해프닝으로 지나갔지만 사실 대파 논란 이면에는 이제 어떠한 농작물도 수급이 불안정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 역시 원인은 기후위기다.
22대 국회 개원 전부터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는 ‘채상병 특검법(순직해병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의 본질은 대통령의 외압 의혹이지만 이 역시 이례적인 폭우와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인재다. 최근 이례적 폭우에 대해 전문가들은 기후위기의 한 현상으로 분류한다.
여당의 총선 패배, 대통령실의 유일한 무기인 거부권(재의요구권) 남발 등으로 취임 2년 무렵 국정 지지율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저로 떨어지자 대통령은 직접 포항 영일만에 석유 시추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 2024년 6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석유 시추에 나서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확률 20% 가능성을 보고 1000억 원을 투자하는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합리적인 국정운영인지 의문이지만 진보당 기후위기대응특위의 6월5일자 성명대로 “행여나 정부 주장대로 140억 배럴(석유 4분의1, 가스 4분의3) 규모를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하면 약 47억7750만 톤이며 이는 2022년 국가 총 배출량의 7.3배”에 달하는데 “모두가 (화석연료 사용을) 멈출 때 대한민국은 최소 2065년까지 화석연료를 펑펑 쓰겠다”는 게 더 문제다. 진보당은 “전 세계가 약속한 2050년 탄소중립도 포기하고 대한민국을 세계 최악의 기후위기 범죄국가로 만드는 짓”이라고 규정했다. ‘여의도 정치’의 핵심 쟁점들이 이미 기후위기이면서 인권의 문제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탄소배출의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9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온실가스 배출권 가격이 오르면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지역의 타격이 더 크다. 비수도권의 탄소배출을 당장 줄여야 하는지도 결정하기 쉽지 않다. 비수도권에선 여전히 각종 발전소와 송전탑 등 혐오시설이 들어서 주민들이 갈라져 싸우는데 이는 서울로 보낼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다. 이런 사례를 보면 비수도권은 서울 중심 발전으로 인한 기후위기 피해 지역이다.
실제 현실은 어떤가. 서울에 있는 중앙언론과 환경수호자들은 비수도권의 개발을 환경의 논리로 비판하지만 탄소배출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수도권 상황에 ‘서울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다. 한국에서 탄소배출 책임이 큰 기업은 어느 곳인지, 서울은 탄소중립을 어떻게 실현해야 하는지, 비수도권의 탄소배출은 어떤 지역부터 언제부터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늦었지만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
'장슬기 기자 : 미디어오늘
11조 세금 들어가는 가덕도 신공항, '턴키방식' 선택한 정부속내는?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⑦
11조 원 규모의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 공사가 턴키(설계와 시공 일괄 입찰)방식으로 추진된다. 부지조성 공사는 건축 공사, 접근도로 공사 등 가덕도 신공항 건설 사업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토목, 전기, 통신 등 여러 공정이 포함된 복합공사라는 점을 고려해 공사기간 단축과 스마트 건설 기술 적용을 위해 턴키 방식을 택했다는 것이 국토부 설명이다.
턴키 방식은 1970년대에 공사 기간 단축과 기술력을 우대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그러니까 산업화 시기 빠른 완공과 개별 기업들의 부족한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시작된 방식이다.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턴키공사는 유효하고 긍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가. 간단히 말해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적절한 사업 형태인지 살펴보자는 말이다.
대형 토목공사가 턴키 방식으로 시행된 국책사업은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후과는 엄청났다. 당시 턴키로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다수의 대형 건설가들은 검찰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는 등 소란스러운 결과를 맞았고, 과도한 공사 기간 단축의 압박으로 노동자 스물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엔지리어링 업계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들의 기사를 일부 요약하면 이렇다.
‘로비에 의한 턴키시스템 운용이 잘못, 기술력 우대 턴키가 기술력 깎아 내린 주범’
(출처 : 엔지니어링데일리_ 2012년 10월 22일)
기사는 90년대 말부터 시작된 턴키는 고난이도 공정을 대상으로 설계기술력에 의해 낙찰자를 결정하는 방식이었지만 2000년 초반부터 시공사의 로비전이 가열되면서 턴키입찰이 기술력보다는 로비로 낙찰여부를 결정했다는 점을 주장하며 제도 운용의 난맥을 지적하고 있다. 또 턴키는 공공시설물을 대상으로 하지만 민간계약이라는 점 때문에 정부가 정한 엔지니어링대가를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한다.
▲ 가덕도. ⓒ연합뉴스
이런 이유로 기타설계에 비해 15~20% 낮은 대가로 설계를 해야하고, 여기에 비자금 조성 압박까지 받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낮은 대가임에도 턴키 특성상 짧은 시간안에 결과물을 도출해야만 하는 엔지니어들은 주당 100시간이 넘는 노동강도를 감내해야 하고 이는 기술력을 깎아 내리는 주범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소수 재벌들을 위한 특혜 제도로 운영되어온 턴키·대안 입찰제도가 존치될 때 중소건설업체에 대한 착취와 건설산업 전반에 대한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5년 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낸 성명서 일부다. 경실련은 "4대강 사업 턴키 발주로 약 1조5000억 원의 예산이 낭비됐다. 재벌 건설업체 배불리는 턴키 발주를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공사가 끝난 뒤 열쇠를 받아서 돌리기만 하면 된다는 뜻의 턴키란 말은 설계와 시공 일괄입찰 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댐을 만들 때 설계와 철근·콘크리트 등으로 만드는 구조물 공사를 묶어서 한 업체에 맡기는 식이다. 주로 300억 원이 넘는 큰 공사를 할 때 쓰인다. 경실련의 주장처럼 실제 턴키 방식에서 재벌 건설사들이 과점체제를 이루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09년 4대강 1차 턴키 공사 16곳 가운데 한양건설이 맡은 영산강 6공구를 제외한 15곳이 현대건설·삼성물산·지에스건설·대우건설·대림산업 등 업계 상위(시공능력평가액 기준) 10위 업체한테 모두 돌아갔다. 공사 금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전체의 무려 94%였다.
정부가 재벌 건설사에 주는 특혜처럼 비치는 턴키 방식은 1975년 도입돼 2년 뒤 삼일항(전남 여수) 석유화학 항만공사에 최초로 적용됐다. 주로 창의적인 설계나 난도가 높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대형 공사에 적합하다는 명분을 등에 업고 유지돼왔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공사의 품질을 보장하기 어려운 형태로 턴키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 공사의 책임을 도맡게되는 수주업체 입장에서는, 신자재 및 신공법을 과감하게 적용하여 단가를 낮추거나 공정의 효율성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현실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자재나 공법을 채택한다면 잠재적인 품질 문제가 발생되는 문제점이 발생할 소지가 더욱 높다는 것이다.
유찰률이 높다는 것도 현재 운용되고 있는 턴키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턴키 입찰은 2011년 106건 중 3건(유찰률 2.8%), 2012년 69건 중 5건(7.2%), 2013년 72건 중 8건(11.1%)등으로 입찰 진행 방식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입찰 담합 문제가 본격화한 2014년부터 유찰률(29건 중 12건, 41.4%)이 급격히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 때 시행된 4대강 공사 입찰 담합 문제가 불거지면서 여론이 악화한 데다 수주 실패 시 과도한 입찰 비용, 수익성 하락 등으로 유찰률이 높아진 것이다.
공사의 적정성과 재앙적인 환경 후과는 차치하더라도 앞서 언급했듯 4대강 사업은 공사 중 2스물 두 명의 노동자 목숨을 앗아갔다.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한 무리한 공사 때문이다. 그리고 담합을 비롯해 건설비와 관련된 부정 등 턴키 공사의 우려점이 고스란히 결과로 드러났다. 이런 경험이 있음에도 11조 원 규모의 가덕도 신공항 부지공사를 턴키방식으로 선택한 정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다른 것 없이 공사 기간을 짧게 가져가기 위함이다. 하지만 누구나 아는 것처럼 가덕도신공항 개항시기의 기준이던 2030년 부산 엑스포는 그 문턱 가까이도 가지 못하고 무산되었다.
물론 이건 이것대로 이야기를 해야겠지만 가덕도신공항에만 국한시켜 이야기를 해보자. 결과적으로 2030년 부산 엑스포가 수포로 돌아간 순간 가덕도신공항의 개항시기 단축시나리오는 무대에 설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왜 여전히 2030년 개항에 목을 매는 것일까.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사비를 깎아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위한 꼼수도 있을 것이다. 해가 갈수록 늘어나는 공사비 추정액을 그나마 상쇄하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더불어 민간의 기술력을 활용하겠다는 국토부의 설명과 반대로 입찰 시 실기설계도와 입찰서를 같이 제출해야 하는 등 기간이 짧은 문제로 민간의 기술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다. 그리고 정확한 예산 산출이 어렵고 입찰을 위해 과소 책정되는 경우가 다수라 적정공사비가 부족해서 공사 품질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리고 입찰 기업의 이윤을 늘이기 위해 건설비는 싸게, 유지관리비는 비싼 공법을 적용할 우려가 있는 것이 턴키방식이다. 이 외에도 총공사비 고정으로 설계변경의 어려움, 한 공사에 턴키공사와 기타 공사를 병행 발주해 전체 공사의 준공시기 지연으로 공사 기간 단축 곤란, 설계와 공사를 동일업체에서 관장함으로써 발주기관의 참여를 제한해 공사 수행 중 발주기관의 점검이 원칙적으로 차단된다는 점 등 턴키공사의 단점은 차고 넘친다. 결국 이런 문제들의 악영향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것이다.
최근 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부지조성공사도 유찰되었다. 국토교통부는 6월 24일 마감한 가덕도 신공항 부지조성공사 2차 입찰 참가자격 사전심사에 현대건설 컨소시엄 한 곳만 참가했다고 밝힘으로써 수의계약으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로써 2029년 12월 개항을 위해 올 상반기에 부지조성공사를 발주하려던 계획 자체가 틀어졌다. 건설업계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공사 기간이 짧은 것에서 위험요인이 많다는 입장이다. 결국 건설사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사업참여를 꺼리게 된다는 것이다. 수의계약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지체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한 무리수가 전체 공사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산정되어 있는 참여 노동자들의 주 52시간 노동문제도 물리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묻자. 가덕도신공항의 거짓과 기후위기 문제는 접어두더라도 턴키방식은 합리적인가. 막대한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토목사업에 그 적정성을 떠나 방식은 정당하고 합당하냐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것도 틀렸다', 이쯤에서 손절매하는 것이 상식이다. 가덕도신공항은 그 위상과 과정도 한참을 어긋났지만, 내용도 정도와는 거리가 너무 멀다. 총체적 난국, 가덕도신공항에 어울리는 결어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 | 프레시안
정조의 땅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수원시 화서역 일대는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손꼽힌다. 수도권에서도 소문난 맛집과 놀거리가 곳곳에 자리한데다 올해 1월 개장한 스타필드 수원까지 개장하면서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줄 잇고 있다.
조선시대까지만해도 이 일대는 ‘대유평’이라는 이름의 넓은 들로 불렸다. 조선시대 정조가 설치한 둔전(국가재정 확보를 위해 경작하는 땅)이었다. 이 땅은 근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일반 시민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 오랫동안 시민 시선 밖이었던 대유평은 ‘대유평공원’이란 이름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정조의 땅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대유평공원 전경. 사진 제공 = 수원시
◇수원의 흉터에서 허파로
대유공원은 장안구 정자동 963번지 일원에 자리 잡고 있다. 11만3784㎡에 달하는 규모로, 수원 관내에서는 네 번째로 크다. 지난달 말 완성돼 완전히 개방됐다. 인근에 산지가 없어 도심에서 좀처럼 즐길 수 없는 탁 트인 풍경을 자랑한다. 공원이 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은 조선대였다. 수원화성을 축조하며 수원에 계획신도시를 만들던 정조대왕이 농경시설 확충과 화성 축조 재원 마련을 위해 수리시설(만석거, 축만제)과 대유둔전을 만들었다. 이후 200년 가까이 대유평은 국가 재정의 젖줄 노릇을 했다. 이후 1960년대 담배를 제조하던 연초제조창으로 변신해 역시 대한민국 산업화에 일조했다. 담배공장은 2003년 가동을 중단했다. 방치된 대유평은 도심의 ‘흉터’ 같은 존재로 20년 가까운 시간을 잠들어 있어야 했다. 대유평이 공원으로 시민 품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수원시가 적지않은 역할을 했다. 2017년 해당 부지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하면서 초기단계부터 부지 중심에 공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후 본격적으로 착공해 2021년 10월 말 1단계 공사 마무리에 이어 지난 5월17일 2단계 공사 완료 공고까지 꼬박 4년5개월의 공사 기간이 필요했다. 덕분에 대규모 공동주택단지와 대형 상업시설이 자리 잡은 노른자 땅 한 가운데에 축구장 16개에 달하는 면적의 공원이 들어서게 됐다.
대유평공원 곳곳에 식재된 수목. 사진 제공 = 수원시
◇문화가 함께하는 도심공원
이번에 개방된 2단계 공원은 1만7000㎡ 규모다. ㄴ자 모양으로 된 부지의 전면부에는 원형광장이 중심에 놓여 있다. 원형광장과 보행육교 사이 공간에는 워터스크린이 설치됐다. 수십개의 가는 물줄기가 배경을 만들어 내는 수경시설이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을 수 있다. 야간에는 물줄기를 스크린 삼아 경관조명을 투영해 특별한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남북 방향이 시원하게 열려 1단계 구간과 이어지는 대유평공원 2단계 부분에는 느티나무, 계수나무, 팽나무 등을 가로수로 활용했다. 로비정원(메이플가든), 계수나무길, 대왕참나무그늘정원, 그라스가든 등 곳곳의 공간을 다양하게 구성해 거대한 정원 같은 느낌을 준다. 또한 교목과 관목, 초화류를 다양하게 식재해 계절의 변화와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도록 구성한 것도 눈길을 끈다.
2단계 공원 아래에는 831면 규모 대규모 주차장이 조성돼 차량을 이용해 방문하는 시민들이 주차 걱정 없이 공원을 즐길 수 있다. 지하주차장은 대형 쇼핑몰과 연결되고 화장실 등 편의시설도 잘 갖춰져 공원 산책과 쇼핑을 함께 하기 편하다. 앞서 1단계로 먼저 조성된 공원 면적은 9만6000여㎡다. 지난 2021년 10월 공사를 마치고 개방됐다. 대각선으로 흐르는 부지 모양을 따라 중심부에는 나들마당, 생태연못, 생태계류 등을 만들었다. 주변부에는 숲속놀이터, 왕벚꽃길, 물가쉼터, 전망데크 등 다채로운 공간을 꾸며 도심 속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했다.
공원 중간부를 지나는 도로 위로는 둔덕을 조성해 공원의 연결성이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바람언덕과 지붕정원 등으로 명명된 공간으로 보행로가 연결되고, 다시 스테핑가든과 자작나무숲 등으로 이어져 공원의 주요 건축물인 111CM을 만날 수 있다. 2021년 11월1일 개관한 111CM은 옛 연초제조창 건물 일부를 살려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외관과 노동자들이 사용했던 세면장 자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해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원을 조감하는 탁 트인 시야가 자랑인 내부에는 라운지, 커뮤니티공간, 다목적실, 교육실 등이 마련돼 있다. 개관 이후 다양한 전시와 공연은 물론 시민들의 소소한 문화 활동이 이뤄지며 문화 거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유평공원과 이어지는 숙지산 보행로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사진 제공 = 수원시
◇녹지보행축 연결로 더 길게 즐기는 힐링
대유평공원 전체 개방 이후 보행육교는 공원을 100% 즐기는 핵심 공간이 된다. 대유평공원과 숙지산을 연결하는 보행육교 덕에 단절됐던 주요 녹지축이 연결되고, 인근 주민들이 막힘 없이 공원과 녹지를 이용하며 효용을 극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곡선 형태로 만들어진 보행육교는 전체적으로 경사가 완만해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지 않게 육교를 건너갈 수 있다. 폭이 넓고 평평해 자전거와 유모차 등의 통행도 가능하다. 육교 난간이 투명해 위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에도 막힘이 없다. 이 보행육교는 더 많은 주민들이 더 다양한 공원을 이용하는 기회를 만들어 낸다. 현재 화서역 오른편 행정구역은 동서를 가로지르는 수성로를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화서2동, 북쪽으로는 정자2동으로 구분된다. 화서2동쪽에는 숙지공원이 대표적인 녹지공간이고, 정자2동쪽은 대유평공원이 있다. 보행육교는 두 공원을 하나의 공원처럼 이용할 수 있는 연결고리다. 보행육교 끝에서 울창한 숲길 또는 숙지산 주변 도로를 선택해 걸어가면 고즈넉한 화서다산도서관과 숙지공원을 만날 수 있다. 숙지공원부터 시작돼 대유평공원으로 이어지는 녹지는 더 길게 생명력을 뻗어간다. 대유평공원 북측이 서호천과 이어져 끊어지지 않는 녹지보행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다. 서호천을 만나면 서호 방향으로 가거나 만석공원 방향 또는 광교산 방향까지 갈 수 있다. 걷기를 즐기는 시민들은 산과 공원, 하천까지 세 가지 매력을 느끼며 걸을 수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대유평공원이 지역을 상징하는 공원이자 나아가 수원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관리 운영에 많은 고민과 노력을 더하겠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이정도일줄…서울 주말농장서 바나나 열렸다
바나나가 서울에서 열린다니 충격이네요. 정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 지 모르겠어요.”
이화여대 도시농업동아리에서 활동하는 전민준(23)씨는 탐스럽게 열매를 맺은 바나나 나무를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바나나 나무를 본 인도네시아 출신 교환학생 메튜 푸트라(Matthew Putra·19)씨도 “인도네시아에서는 흔한 바나나가 한국에서도 자라는 지는 몰랐는데 놀랍다"고 말했다.
지난 3일 서울경제신문이 방문한 서울 노원구 천수주말농장에는 녹색 이파리를 넓게 펼친 바나나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있었다. 나뭇가지 중간에는 아직 익지 않은 바나나 두 손이 열려있고 가지 끝에는 사람 손바닥 보다 큰 자주색 꽃송이가 늘어져 있었다.
기자에게 바나나 나무를 소개한 오영록(57) 노원도시농업네트워크 팀장은 “예전에 아이들을 가르칠 때 20년 후면 바나나도 열리고 침팬지도 돌아다닐 거라고 했는데 바나나는 열렸고 이제 침팬지만 있으면 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서울 노원구 천수주말농장 교육장 벽면에 덩굴식물인 열매마(하늘마)가 자라고 있다. 이승령 기자
오 팀장과 동료들이 노원구 도시농장에 바나나 나무를 심고 기르기 시작한 것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10년 전 첫 바나나 나무를 심고 어미 나무 주변에 새로 난 어린 순을 겨울이면 온실로 옮겼다가 이듬해 5월이면 다시 노지에 심는 과정을 반복했다. 우리나라 노지에서도 바나나가 열릴 수 있을 지 궁금해 재배를 시작했다는 오 팀장은 “(재배) 7년 만에 꽃이 피더니 올해는 열매가 맺혀서 신기했다”면서도 “호기심에 시작했지만 열매가 열렸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탐스럽게 달린 열매를 보면서도 오 팀장이 걱정하는 것은 한반도의 기후변화다. 오 팀장은 “수치로만 보던 한반도의 기온 상승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라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적응’과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하는 환경에 어떤 작물이 잘 적응하고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지 연구·적용하는 것과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복원하기 위해 환경 당국의 정책 등을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천수주말농장에는 바나나를 제외하고도 열매마(하늘마), 무화과, 차요테 등 3종의 아열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 중 ‘하트 모양’ 잎을 가진 열매마는 줄이나 지지대 타고 올라 벽면을 가득 채우는 덩굴식물이다. 이런 특성 때문에 ‘그린커튼’이라고 불리는 열매마는 이미 상업화에도 성공해 도심 속 건물 벽면에서 탄소저감·건물기온조절 등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도 열대·아열대성 작물이 잘 자라는 생육 환경을 가지게 된 것은 기후 변화 때문이다. 실제 기상청의 ‘2023년 기온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평균기온은 섭씨 13.7도로 1973년 이래 역대 가장 높았다. 연강수량 역시 1746.0mm로 평년 대비 131.8%를 기록하면서 역대 3번째로 많았다. 지난달에도 전국 평균 기온이 22.7도를 기록해 기상 관측 이래 6월 중 가장 무더웠다.
기후변화 시나리오 ‘SSP5’를 적용한 단감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자료=농촌진흥청
현재 수준과 유사하게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미래 기온을 예측한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SSP5-8.5)는 우리나라 평균 기온이 2030년 섭씨 13.3도에서 매년 상승해 2100년에는 19.5도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속되는 기온 상승은 과수 재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미 사과 등을 비롯한 과수 재배 한계선이 지속적으로 북상중이고 단감, 감귤 등 한반도 남부지방 일부에서 자라는 과일의 재배지는 점점 확대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자라지 않았던 올리브나무 같은 품종은 이미 제주 지역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지난 2022년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은 “사과는 과거 30년의 기후 조건과 비교하면 앞으로 지속해서 재배 적지와 재배 가능지가 급격하게 줄고, 2070년대에는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과와 더불어 복숭아와 포도도 각각 2030년대와 2050년대까지 총 재배 가능지 면적을 유지하다가 이후 급격히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과수의 생육은 ‘월동’ 가능 여부가 중요한 탓에 여름철에 열대 과일이 맺혔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당장 열대 과일 재배 가능지가 됐다고 판단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리 여름날씨는 30도 이상이 기온이 지속되는 더위와 장마 등으로 인한 높은 습도를 보인다. 이에 겨울을 나는 동안 나무가 온실 속에서 자라다가 여름철 노지로 나올 경우 꽃이 피고 과수가 맺히는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전지혜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장은 “바나나 등 열대과일이 우리나라에서 재배가 안됐던 이유는 겨울철 한계 온도 때문”이라며 “겨울이 오면 열대성 작물은 죽는데 온실에서 겨울을 보내고 노지에 나온 나무들이라면 우리 여름 날씨에서도 자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겨울이 짧아지고 평균 기온이 올라가고 있는 상황은 우리나라에서 아열대 과일을 재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생육 한계 기온의 상승으로 작물의 월동 가능성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온실의 온도 유지를 위해 투입되는 난방비가 감소하는 등 재배 조건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기온연감을 바탕으로 지난 50년을 10년 단위로 묶어 분석한 결과 1973~1982년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권이었던 해는 총 7개년이었다. 반면, 2013~2022년에는 단 한 해만 겨울철 평균 기온이 영하를 기록했다. 전 소장은 “기후 변화로 과일이 극단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현재 품종과 재배 시스템으로 재배지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서울경제
BRT 정류장 도시 숲, 대중교통 여건 개선 계기로
2026년까지 부산 125곳 설치 예정
요금 환급·편의시설 확대 지속하길
BRT- 간선급행버스체계
부산시가 앞으로 3년간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정류장에 정원형 도시 숲을 만든다. 올해 하반기 송상현광장과 도시철도 초량역·가야역, 동해선 센텀역에서 시작해 2026년까지 125개 정류장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도로 한 가운데 있는 BRT 정류장은 겨울엔 혹한을 피하기 어렵고 여름엔 햇볕과 지열이 강해 승객들 원성이 적지 않았다. 환경단체인 부산그린트러스트가 지난해 8월 서울 BRT 정류장 5곳에서 측정했더니 낮 시간 최고 온도가 57.1도에 달했다. 가로수가 있는 곳보다 최대 1.5배 더 뜨거웠다는 의미다. 올해도 역대급 폭염이 예고돼 있다. 부산·울산·경남의 지난달 평균 기온은 6월 역대 2위인 22.7도를 기록했다. 무더위 고통지수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시는 버스정류장의 작은 정원이 미세먼지 저감뿐만 아니라 BTR 건설로 사라지거나 단절된 녹지 축을 어느 정도 복원해 열섬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미국과 유럽은 대중교통시설을 ‘환경 플랫폼’으로 이용하는 추세다. 영국은 2021년부터 버스정류장 지붕에 ‘꿀벌 정원’을 설치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감소한 꿀벌 서식지를 확대하고 폭염에 대비하기 위해서인데 효과가 검증됐다. 꿀벌 정원의 원조인 네덜란드에선 꿀벌 개체 수 감소가 멈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오리건주 유진시는 버스가 다니는 길 옆에 작은 식물(잔디)을 심어 열섬 현상을 완화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시 역시 트램 노선 바닥에 녹지 축을 만들었다. 부산에선 환경단체가 수 년전부터 ‘BRT 녹지화’ 의제를 제기했는데 시가 올해 정책에 반영하면서 한 걸음 내딛게 됐다.
부산시가 BRT(간선급행버스체계) 정류장에 도시 숲을 만든다. 사진은 부산 중구 자갈치시장 앞 BRT 정류장. 국제신문DB
부산 BRT 건설 과정에서 중앙분리대 화단과 가로수가 사라진 건 두고 두고 아쉽다. 2021년 5월 기준 6만9079그루의 가로수(부산그린트러스트 집계)가 다른 장소로 이식됐다. 버스 통행속도 개선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더위와 매연에 노출된 승객이 많아진 건 사실이다. 승강장만이라도 녹지를 염두에 두고 설계했다면 지금처럼 ‘미니 정원’을 만드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BRT 정원 설치는 환영하면서도 중앙차로 바닥에 잔디블록이나 플랜트 박스 형식으로 식물을 심자고 주장한다. 실현되면 부산 BRT 노선 30㎞가 녹지로 연결된다. ‘예산 많이 든다’고 무시할 게 아니다. 기후위기 시대에는 환경이 우선이다.
우려되는 대목은 승객 안전이다. 승강장과 도로는 좁은데 무리해서 녹지를 만들다 사고 위험을 증가시켜선 안 된다. 시범사업을 통해 공간에 따른 적정한 묘목 산출이 우선이다. 38%대로 하락한 대중교통 수송분담률 높이기는 시급한 과제다. 최근 대중교통비 환급과 냉난방 기능을 갖춘 ‘버스 쉘터’(쉼터) 확산은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승용차 대신 주 4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한 사람이 연간 줄이는 탄소 배출량은 나무 125그루를 심는 효과가 있다. 대중교통의 정시성·쾌적성 확보와 편의시설 설치가 곧 교통복지이자 환경을 살리는 길이다.© 국제신문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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쉘이 나이지리아 니제르델타를 떠난다. 세계 6대 오일 메이저 가운데 하나인 다국적 기업 쉘이 아프리카 서부 나이지리아 일대 석유시추 사업을 접기로 결정했다. 지역 자본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컨소시엄에 24억 달러, 약 3조2000억 원을 받고 지난 90여 년 동안 이 일대 석유개발사업을 이끌어온 '나이지리아 쉘 석유개발회사(SPDC)'를 팔기로 마침내 합의한 것이다.
쉘은 지난 1936년, 역시 영국에 본사를 둔 BP(British Petroleum)과 니제르델타 일대 탐사 목적의 벤처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20년 만에 첫 유정에서 원유 시추에 성공했다. 다시 20여 년 뒤 쉘은 BP의 지분을 모두 사들여 니제르 델타 에너지 사업, 즉 원유 시추를 주도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나이지리아 석유 매장량은 370억 배럴 이상으로 추정된다. 매장량만 해도 세계 10위권이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나이지리아 경제의 5% 이상을 석유산업이 차지할 만큼 핵심 산업으로 평가된다. 1960년 영국의 식민통치로부터 독립한 이래 40년 가까이 독재와 군부쿠데타를 겪어온 나이지리아다. 석유는 불안정한 정부가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산업으로, 쉘은 언제나 정부의 확고부동한 파트너 역할을 수행해왔다.
문제는 쉘의 시추작업이 순조롭기만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보고된 것만 3000여 차례에 이르는 석유누출 사고, 그로 인한 환경파괴가 심각하기 짝이 없었다. '오고니9(Ogoni 9)'이라 불리는 오고니족 활동가 9명의 처형 사건은 쉘의 무리한 석유시추가 불러온 끔찍한 참사였다. 쉘의 무리한 석유시추와 환경파괴를 폭로한 활동가와 교수들이 군사법정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다. 집행은 선고 불과 이틀 뒤 원유수출항인 포트하코트(Port Harcourt)에서 이뤄졌다.
오고니족의 저항은 군사독재 세력에게 꽤나 큰 부담이었음이 분명하다. 쉘의 송유관 공사를 가로막고 오고니족 주민을 결집해 시위에 나섰기 때문이다. 자원으로 인한 수익이 외국기업과 독재정권이 아닌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당시 오고니족 인구의 절반 가량인 30만 명이 시위에 참여할 만큼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바리넴 키오벨은 이 사태로 목숨을 잃은 오고니9 중 하나다. 정부 관료로 쉘과 정부, 오고니 족 사람들 사이의 협상과 중재를 맡았다는 바리넴이다. 아내 에스더는 남편이 쉘로부터 지역 관리자 등의 제안을 받았으나 거부했다고 말한다. 자국민을 배신하지 않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고니9의 일원으로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는 것이었다.
사법살인 당한 남편... 호화 변호인단과 맞서다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지구 비상' 섹션 가운데 <법정에 선 에스더>를 초청해 소개했다. 네덜란드 탐사 저널리스트 타티아나 스헬테마의 작품으로, 헤이그 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쉘의 오고니9 사망 책임을 묻는 재판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72분의 다큐는 바리넴의 아내 에스더 등이 원고가 돼 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모습을, 조국 나이지리아를 찾아 당시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을 구하는 과정을 담았다.
헤이그 법원은 지난 2021년 쉘에게 2030년까지 2019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5%까지 감출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유명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개별기업에게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물은 것으로, 환경 변호사로 명성을 얻은 로저 콕스가 수행한 재판의 결과였다.
이는 2015년 파리협약 이후 전 세계에서 폭증하고 있는 수천 건의 환경소송 가운데서도 단연 특별한 재판이었는데, 다국적 에너지기업인 쉘이 환경파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 재판에 세계적 관심이 쏠린 건 자연스런 일이다.
같은 법원에서 동일한 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이란 점에서 에스더의 소송 또한 큰 관심을 모았다. 쉘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인 니제르델타에서의 흑역사란 점에서도 그랬다. 쉘이 오고니9의 사법살인에 개입된 정황이, 적어도 사법적 책임이 인정된다면 다국적 사업을 진행 중인 이 업체의 윤리적 정당성에 심각한 물음이 떠오를 게 분명했다.
쉘은 언제나처럼 호화 변호인단을 꾸려 법정 싸움에 나선다. 바리넴 등 오고니9에 접촉하지 않았고, 그들을 매수하려 했다는 증거 또한 없다는 게 핵심 근거가 된다. 에스더 측 증인들이 쉘의 대리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등의 증언을 내놓지만 대리인의 이름을 비롯해 구체적 정황까진 떠올리진 못한다.
일진일퇴의 공방 가운데서 에스더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상대 변호사들, 수십 년 전 제 남편이 처형되던 날을 전혀 알지 못하는 네덜란드의 멀끔한 변호사가 아무렇지 않게 거짓을 늘어놓는다고 느껴서다. 그녀는 그 변호사가 악마라고 비난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변호사의 당연한 업이라고 믿는 이가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 아닌가.
<법정에 선 에스더>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 출품된 다른 법정영화와 달리 통쾌한 승리를 그리지 않는다. 에스더는 패하고 소송을 낸 이들은 실망한다. 쉘은 오고니9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고니9의 사법살인뿐 아니라 나이지리아에서 지난 한 세기 동안 이어진 환경파괴와 독재정권과의 결탁 등에 대해서도. 그리고 이 영화 상영을 얼마 앞둔 시기, 나이지리아에서의 석유 시추 운영을 완전히 접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거듭되는 다국적 기업 주도 에너지 사업
쉘의 사례는 유럽 등 다국적 자본에 근거한 에너지 기업이 아프리카에서 벌이는 석유시추 사업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쉘과 함께 6개 오일 메이저 중 하나로 꼽히는 토탈에너지는 우간다에서 하루 20만 배럴의 원유를 뽑아 올리는 틸렝가 이코프(Tilenga Eacop) 사업을 진행 중이다. 사업엔 원유생산뿐 아니라 시추장소인 우간다 내륙으로부터 탄자니아의 항구까지 무려 1445km의 송유관을 설치해 원유를 옮기는 작업도 포함돼 있다.
송유관이 지나는 길엔 각종 멸종위기동물이 사는 생태공원이 있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사는 마을도 있다. 그러나 토탈에너지로부터 막대한 부를 보장받은 우간다 정부는 반강제적으로 토지를 수용하고 공원 가운데 길을 낸다. 오고니9의 비극이 얼마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기름유출과 고온 송유관의 설치, 뚫린 길과 토지수용 등은 동물과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러나 시추와 원유 반출로 얻은 부는 그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초국적 기업과 아마도 선진국에 살고 있을 자본가들, 또 현지의 독재자에게 돌아갈 테다. 한 세기 동안 반복돼 온 자본의 에너지 착취,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선수들만 바꿔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를 그를 멈춰야 한다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 고함은 이내 사라져 들리지 않는다.
막대한 에너지수입국인 한국에서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부조리함이, 그 생산부터 운송 사이 깃든 온갖 문제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민망하기까지 한 이야기다. 그리하여 우리는 적어도 <법정에 선 에스더>와 같은 작품을 봐야만 한다.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쓰는 석유와 결코 무관할 수 없는 예멘 난민의 고통 앞에서 그들을 비난하고 모욕했던 참담함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김성호
한 잔에 ‘각설탕 17개’…생과일에 가려진 스무디의 진실
카페에서 판매하는 스무디 한 컵에 평균 각설탕 17개 분량의 당이 들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영양성분 확인이 어려운 중·소형 커피·음료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스무디 93종을 분석한 결과를 8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스무디 한 컵에 들어있는 당 함량은 평균 52.2그램으로, 각설탕 17개 분량에 해당했다. 한국인의 영양소 섭취기준으로 볼 때, 하루 한 컵만 마셔도 하루 섭취 기준치(100그램)의 절반 이상을 먹게 되는 셈이다. 조사 대상 중에는 당 함유량이 한 컵에 94.6그램인 제품도 있었다고 한다.
음료 주문 시 당도 조절을 요청하면 당 함량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분석했다. 당도 수준을 ‘기존 당도’, ‘덜 달게’, ‘반으로 달게’ 세 단계로 구분한 결과, ‘덜 달게’의 평균 당 함량은 44.4그램으로 기존 당도보다 약 15% 줄었다. ‘반으로 달게’의 당 함량은 31.9그램으로, 40%까지 감소했다. 이를 각설탕으로 환산하면 ‘덜 달게’가 약 3개, ‘반으로 달게’가 약 7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연구원은 “당 섭취를 줄이기 위해 표준화된 조리법을 기준으로 단맛 정도를 정량화해 선택할 수 있는 ‘당도 선택제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포장 및 제조 음료의 당 함량에 따라 에이(A)~디(D) 등급으로 나눠 표시하게 하는 ‘영양 등급제’를 실시해 소비자가 당 함량이 낮은 제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일상이 된 후쿠시마 오염수, 우린 너무 일찍 포기했다
앞으로 30~40년 계속 방류...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늘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발한 지 2년 4개월이 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무력 침공한 지 9개월이 되어 간다. 전쟁도 길어지면 일상이 된다. 전쟁이 일상이 되면 죽음도 일상이 된다. 일상이 된 죽음은 더는 끔찍하지도, 참혹하지도 않다.
일본 도쿄전력은 지난 6월 28일 후쿠시마 오염수 7차 해양 방류를 개시했다. 이번 방류는 이번 달 16일까지 진행되며 방류량은 종전 회차와 동일한 7800톤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더는 세간의 관심이 크지 않다.
일본 정부는 2021년 4월 13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나라와 중국 등 주변국은 이해할 수 없는 일본 정부의 결정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여론 또한 들끓었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처리 정화 기술인 ALPS(Advanced Liquid Processing System, 고도액체처리시스템)의 타당성 홍보로 대응했다. 2023년 7월 4일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ALPS로 처리된 후쿠시마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결국 2023년 8월 24일 도쿄전력은 방류를 개시했다. 11개월이 된 지금, 어느덧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UN인권최고대표부 "도쿄전력, 과학 증거 무시하며 계속 기만"
▲ 2023년 8월 24일 후쿠시마현 나미에의 우케도 어항에서 바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시설(뒷면)의 전경.ⓒ AFP=연합뉴스
도쿄전력은 ALPS로 처리된 오염수를 '처리수'라 부른다. 오염되지 않은 안전한 물이라고 한다. 그러니 방류 되는 물을 더 이상 '오염수'라 부르지 말아 달라 한다. 이를 위해 일본 총리 등 고위 정치인들까지 방송에 동원 되곤 한다. 하지만 어불성설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다. 처리수가 안전하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업 용수나 농업 용수로 쓰면 될 일이다. 아까운 물을 굳이 바다에 버릴 이유가 없다. 많은 수고와 돈을 애써 들이면서 말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사용을 촉진하고 원자력 안전과 보안을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는 국제기구이다. 검증기관이라기보다는 국제 협력과 기술 지원, 기준 설정, 감시 활동을 주도하는 다목적 국제기구라 할 수 있다. 검증을 한다면 핵 비확산 분야에 한정된다. 애당초 IAEA는 오염수 방류 여부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다. IAEA가 원자력 분야 전반을 검증하는 기관이라고 생각하는 건 우리의 직관일 뿐이다.
더욱이 IAEA 의견이 유엔(UN)의 공식 의견이라는 오해가 만연하다. UN 인권 최고대표부가 낸 특별보고서는 IAEA와는 상반된 내용을 보여 준다. 독립적인 UN 전문가 집단이 평가했다. 후쿠시마 ALPS 처리수는 여전히 방사성 물질을 포함하는 '오염수'임을 확인한다. 특별보고서는 "도쿄전력이 방사성 트리튬(Tritium) 물질에 계속 기만하고 있으며, 기본적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고, 유기화합물 삼중수소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고 있다"라고 명기하고 있다. 유엔(UN)의 공식 의견은 없다. UN 산하 국제기구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해 합의를 도출한 적이 없다. 전 세계 과학계의 합의도 없다. 미국 전 지역 100여 개 해양연구소로 구성된 미국해양연구소협회는 2022년 12월 12일 공식 성명을 냈다. 성명은 "일본이 주장하는 안전성에는 적절하고 과학적인 데이터가 결여되어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IAEA 종합보고서는 우리에게 '금과옥조'가 되어 있다. 이견을 말하려고 하면 "국제원자력기구도 못 믿으면 괴담을 믿을까" 하면서 타박을 한다. IAEA 종합보고서가 '면죄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인간 사회에 '너무 늦은' 일은 없다
▲ 2023년 8월 24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한 이날 부산해운대해수욕장에서 환경운동연합과 부산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2023.8.24
도쿄전력은 앞으로 30~40년은 계속 방류를 하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보관된 오염수 양과 쌓일 양을 가늠하면 훨씬 더 오래 방류하게 될 거라고 예측한다. 끝이 안 날지도 모른다. 인간 사회에 '너무 늦은' 일은 없다. 잘못 끼운 단추는 풀어서 다시 맞게 끼우면 된다. 상황을 직시하고 마음을 먹으면 된다. 우리는 너무 일찍 포기했다.
도쿄전력은 대외적으론 오염수 해양 방출이 인체에 무해하고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23년 3월 도쿄전력 내부보고서는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잠재적 손해배상 지급을 예상하고 그 규모와 대응 방안을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가 사실 다수에게 직접 피해를 주고 이로 인한 막대한 손해배상은 불가피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다행이다. 다만 한국 법원에서 받아 주지 않아 일본 법원으로 가야 하는 건 못내 아쉽다. 그러다 보니 소송비용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 징벌적 집단소송 전통이 강한 미국 법원을 통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실용적인 선택지가 아닐까 싶다. 이 경우 보통 소송 비용은 법무법인이 감당하니 말이다. 하지만 물질 보상은 부차적이다. 소송으로 압박하는 목적은 결국 반인륜적 오염수 방류를 더 이상 못하게 막기 위함이다.
덧붙이는 글 | 김용만 기자
"예전의 장맛비가 아니다" 강력 폭우 52% 급증
대저·장낙·엄궁대교 또 제동, 국가유산청 ‘보류’
문화재보호구역 현상 변경안
자연유산위원회 심의서 결정
2029년 준공 목표 차질 예상
지역 주민·기업, 교통난 원성
국가유산청이 '제2차 자연유산위원회'를 열어 부산시가 신청한 장낙·대저·엄궁대교 건설 사업 문화재보호구역 현상 변경 신청안을 보류했다. 8일 낙동강을 가로질러 강서구 명지동 에코델타시티와 사상구 엄궁동을 연결하는 엄궁대교 예정지. 김종진 기자 kjj1761@
부산시가 고질적인 서부산권 교통난 해소를 목적으로 추진해 온 대저·장낙·엄궁대교 건설이 또다시 국가유산청 승인을 받지 못했다. 개별적으로 추진되던 3개 대교 건설은 국가유산청이 이른바 '통합 심의'를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부산일보 5월 10일 자 10면 등 보도)하겠다고 막아섰고, 결국 퇴짜를 놓으면서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됐다. 지역 주민과 기업들은 오랜 이동 불편 해소는커녕 막대한 교통·물류비용을 감내하게 됐다며 원성을 쏟아내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달 26일 ‘제2차 자연유산위원회’를 열어 부산시가 신청한 장낙·대저·엄궁대교 건설 사업 문화재보호구역 현상 변경 신청안을 보류했다고 8일 밝혔다. 출석 심의위원 12명 중 조건부 가결은 1명, 부결은 2명, 보류 의견은 9명이었다.
국가유산청은 3개 대교 건설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잇따른 교량 건설이 철새 서식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자연유산 보존과 경관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보류 이유를 설명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추가 자료를 제출하면 심의가 다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환경단체 반발 등으로 추진 어려움에 봉착하자 3개 대교 건설 관련 종합적인 검토를 하기 위해 별도로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3개 대교가 환경에 미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이른바 통합 심의를 해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첫 통합 심의에서 3개 대교 심의는 또 보류됐다.
국가유산청 제동으로 3개 대교 건설은 또 미뤄지게 됐다. 3개 대교 건설 사업은 서부산권에 만성화된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되는 핵심 사업들이다. 대저대교(강서구 식만동~사상구 삼락동)는 2014년, 장낙대교(강서구 생곡동~명지동)와 엄궁대교(강서구 대저동~사상구 엄궁동)는 각각 2018년부터 사업이 추진됐다. 세 사업 모두 2029년 준공이 목표다.
문화재보호구역인 낙동강 하구 철새 도래지를 횡단하는 탓에 낙동강유역환경청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와 국가유산청 문화재보호구역 현상 변경 심의를 통과해야 착공에 들어갈 수 있는데 번번이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며 서부산 주민과 기업들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부산 낙동교와 하굿둑 교량은 교통량이 포화 상태이고, 에코델타시티 등 서부산권에 대규모 주거단지도 속속 조정되고 있어 이 일대 교통 혼잡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3개 대교 건설이 연이어 미뤄지면서 경제적 손실이나 도로 이용 불편도 버텨야 한다.
녹산산단 A 조선기자재업체 대표는 “기본적인 교통 인프라는 갖춰야 일할 사람이 늘어날 텐데 지금은 연산동 거주하는 직원이 강서권 기업으로 출퇴근하는 데만 3시간이 걸린다”며 “교통이 나빠 일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강서구 명지동의 50대 주민도 “서부산권 주민들이 대교 건설을 염원한 지 10년 가까이 됐는데 착공도 못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부산시 모두 서부산 주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부산시 도로계획과 관계자는 “철새 대체 서식지와 자연 유산 보호 등에 대한 구체적인 조치 계획을 국가유산청에 다 설명했는데, 이 내용을 공문으로 명확히 담아서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다시 자료를 제출할 것이며, 준공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2050년이면 산림도 2.2도 기온상승···재난 밀려온다
2022년 3월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 장면. 산림청 제공
화석연료를 지속해서 사용할 경우 2050년대 한반도 산림지역의 평균기온이 2.2도 상승한다는 정부 연구기관의 전망이 나왔다. 이 경우 남한에는 더이상 가문비나무와 눈잣나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지고, 산불 발생위험도는 13.5% 이상, 산사태 피해 면적은 2.4배 늘어날 것으로 에상된다.
9일 국립산림과학원의 ‘제1차 산림·임업분야 기후변화 영향평가 종합보고서’를 보면, 한국 산림지역의 평균 온도는 2050년대에 최대 2.2도 올라 14.1도를 기록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경로 시나리오인 공통사회경제경로(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를 이용한 분석으로, 화석연료를 지속 사용한 도시 위주의 개발이 이어진 상황을 가정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산림 기온은 계속 상승해 2060년대 15.2도, 2070년대 15.9도, 2080년대, 16.9도, 2090년대엔 17.7도까지 계속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 평균기온인 11.9도보다 5.8도 상승한 수치다.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달로 화석연료를 최소화한 상황을 가정하면 2050년대까지 0.7도, 2090년대까지 1.4도 상승해 기온 상승폭이 크게 줄었다.
온도 상승에 비례해 산불의 위험도도 올라갔다. 산불위험의 심각성을 수치화한 산불 발생위험도를 분석한 결과 1971~2000년 평균 산림 기온보다 1.5도 상승 시 위험도가 8.6%, 2도 상승 시 13.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불은 습도와 기온에 영향을 받는데, 산림 기온이 올라갈수록 습도는 줄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산불 발생이 급증하고, 산불이 나면 기후변화가 더 심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산사태 피해 역시 늘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대에 들어서면 에너지 전환과 관계없이 모든 시나리오에서 현재의 2배가 넘는 산사태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기후변화로 강수량은 증가하지만 강수일수는 감소하는 집중호우가 늘어나는 경향이 커지면서 이미 산사태 피해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적었다.
연구진은 이 외에도 산림 기온상승으로 산림 병해충이 증가하고, 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며, 유출량이 증가해 물 부족 및 가뭄·홍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특히 2050년대 침엽수림이 차지하는 면적 비율이 28.5%까지 낮아지고, 눈잣나무, 가문비나무 등이 쇠퇴해 절멸 수준까지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먹고 사는 것에도 영향을 미쳐 약용자원인 참당귀 서식적지 평균고도가 현재 671m에서 1000m로 높아지고, 늦겨울 기온에 민감한 고로쇠 수액의 출수 시작일도 지금보다 열흘 가량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연구진은 “산림은 탄소흡수원인 동시에 기후변화 영향에 노출돼 적응이 필요한 생태계”라면서 “산림의 식물, 동물, 토양 등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음으로써 산림생태계의 구조와 기능이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위기 시대에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는 과학적인 정보에 기반한 기후변화 적응 조치의 발굴과 적용이 시급하다”고 했다.
4대 금융 ‘탄소 배출왕’은 어디? ESG 보고서 살펴보니
사과값이 급등하고 때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린 올해, 기업들의 ‘기후 공시’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은 온실가스 저감 등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어떤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는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지표를 투자자·소비자 등에게 밝히고 있습니다.
최근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은 잇따라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보고서를 내놓으며 각사의 기후 대응 현황을 밝혔습니다. 이들의 기후 공시를 살펴봤습니다.
사실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금융회사의 역할이 무척 중요합니다. 금융회사들이 직접 화석연료를 태워 철강을 만들거나 AI(인공지능)를 개발하진 않지만, 그런 기업의 ‘돈줄’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업에 대한 대출·투자로 간접적으로 발생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금융배출량’이라고 합니다. 4대 금융그룹은 각사의 탄소배출량 지표를 상세하게 공개했습니다.
그렇다면 4대 금융 중 지난해 ‘탄소배출왕’은 어디일까요? 공들인 보고서가 무색하게도 답은 ‘모른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엿장수’ 맘대로 금융배출량
적용기준·시점 등 제각각
신한금융그룹의 금융배출량 추이. 신한자산운용 배출량은 별도 표기. 신한금융그룹 2023 ESG 보고서
이유는 각사마다 탄소배출량을 측정·검증·공시하는 기준과 방법이 제각각이기 때문입니다. 수치만 보면,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가장 많은 곳은 5605만톤CO2eq(이산화탄소환산톤, 이후 톤으로 기)을 배출한 신한금융입니다. 자세히 보면 대부분이(5596만톤)이 투자·대출 등으로 발생한 금융배출량(스코프3)이었습니다. 이는 신한금융 내부 탄소배출량(스코프 1·2)의 약 800배에 이르죠. 금융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금융회사의 기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수치상으로 그 뒤를 잇는 건 4924만톤을 배출한 KB금융입니다. 하지만 보고서를 잘 들여다보면,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KB금융은 2023년 보고서에 2022년 기준으로 금융배출량을 공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KB금융 관계자는 “2022년도 기업의 총 온실가스배출량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시점이 2024년 2분기쯤이기 때문에 시차가 발생한다”면서 “글로벌 ESG 공시기준은 ‘가장 (가능한) 최신의 정보를 사용하라’고 정한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러니까 신한금융은 2023년을 기준으로, KB금융은 2022년 기준으로 작성된 수치라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KB금융그룹의 금융배출량 추이. KB금융지속가능경영보고서
금융배출량의 측정 기준이 되는 자산 규모도 신한금융은 288조원, KB금융은 208조원 등으로 4대 금융그룹이 모두 다릅니다. 기준도 시점도 다르니 배출량의 숫자만 놓고 단순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은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각각 4752만톤, 2386만톤이라고 공시했습니다. 신한·KB금융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적어보이는데, 이 또한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앞선 두 회사는 금융배출량을 국제 기준(GHG 프로토콜)에 따라 측정하고, 그 결과에 대한 제3자의 검증을 거쳤음을 분명히 밝혔지만 우리·하나금융은 검증 여부 등을 따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각 회사들이 따르고 있는 ‘글로벌 공시 기준’도 제각각입니다. 어떤 회사는 지난 6월부터 통용되고 있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공시 기준을 따르는가 하면, 그 전까지 널리 쓰이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 공개협의체(TCFD)의 기준을 따르는 곳도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가 쏟아져 나오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누가 누가 잘했나’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비교할 방법이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기후 공시 의무화 도대체 언제?
그렇다고 금융회사들이 저마다 다른 기준으로 기후 공시를 했다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국내에서 기후 공시는 의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공시에 나서고 있는 만큼, 어떤 기준을 따를 것인지도 스스로 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업권과 비교하면 금융권이 기후 공시에 그나마 적극적인 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기업들이 의무적·공통적으로 따라야 하는 기후 공시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 흐름은 다릅니다. 유럽연합은 올해 1월부터 기업 지속가능성 공시지침 등을 대기업에 적용하고 있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역시 지난 3월부터 기후 공시 규정을 최종 채택해 내년부터 의무화한다고 하죠.
지난달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국내 ESG 공시제도에 대한 경제계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에서도 논의는 이뤄지고 있습니다. 금융위원회는 한국회계기준원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가 작성한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초안을 발표했죠. 5월부터 오는 8월까지 의견 조회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공개하겠다고 해요.
초안을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습니다. 기후 관련 사항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했지만, 금융배출량이 포함된 스코프3(공급망 내 간접적인 온실가스 배출량)의 공시 의무화는 불투명해보입니다. 탄소배출량의 국제적 측정 기준인 GHG 프로토콜의 사용 여부 역시 기업의 선택에 맡겼고요. 무엇보다 이 공시의 의무화 시점을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재계에서는 2029년까지 미뤄야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전문가들은 공시 의무화 시기를 앞당겨 하루빨리 표준화된 공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김상배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공시에 관한 국제기구의 움직임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내 금융당국 역시 더욱 체계적이고 강제성 있는 공시 규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금융그룹들은 보고서에 명시한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면서 “기후 공시 의무화가 이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경향 김지혜
쓰레기 처리하는 노인들, 한국의 민망한 현주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대상 <문명의 끝에서>
항해사로 먼 바다에 나가 항해한 경험은 내게 세상을 완전히 달리 보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그중 하나는 순환의 고리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걸프만과 말라카, 대만해협까지, 결코 안전하지만은 않은 좁은 해역을 오가는 수많은 배의 행렬을 보며 한국이란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발전과 생산, 소비와 오염의 고리를 떠올리게 되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커진 거대한 선박들이 내뿜는 오염물질을 생각한다. 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역으로 벗어나며 바꾸는 불순한 연료와 검은 연기를, 조악한 배들이 길게 뒤로 늘이는 불유쾌한 흔적들이며, 화려한 거대도시 항만 초입부터 코를 찌르는 썩은 냄새 따위를 기억한다.
에너지를 얼마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가 멀리서 어마어마한 석유와 가스를 매일 같이 빌딩을 눕힌 듯 거대한 배에 가득 채워 들여온다. 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나라의 수도에선 다시 저 멀리 외딴 도시에서 발전한 전기를 송전탑을 통해 끌어다 쓴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한국인, 서울시민이라면 마주해야 한다
어디 에너지뿐일까. 쓰레기도 마찬가지다. 고리의 시작이 에너지라면, 쓰레기는 끝이다. 도시가 내버린 쓰레기는 도시 어딘가로 가지 않는다. 다른 도시, 보다 가난하여 항만의 역할을, 공장의 역할과 물류창고의 역할을 이미 대행하고 있는 주변 어느 도시로 실어 나른다. 쓰레기를 그곳에 매립하면서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새로운 쓰레기를 매일 밀어낸다.
산처럼 쌓인 쓰레기가 무단투기 된 쓰레기산을 이루고, 그마저도 어찌할 수 없을 때 바다에, 또 다른 나라 이름 모를 섬에 몰래 버리고 온다는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행히도 이 모두가 한국, 그 가장 화려한 도시 서울의 민낯이다.
제1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은 임기웅의 <문명의 끝에서>에 돌아갔다. 80분짜리 다큐는 한국사회가 배출한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 민망한 고리를 들추어 관객 앞에 펼쳐 보인다. 마땅히 공공의 역할이어야 할 폐지와 고철처리를 열악한 노인들이 맡아 처리하는 모습을 시작으로 법 테두리 바깥에 선 고물상들과 그곳에서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들이 마침내 도달하는 재활용선별장, 다시 대부분의 걸러지지 않은 쓰레기가 당도하는 매립지까지를 비춘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쓰레기 포화상태, 바다도 한계다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가 매일 서울에서 인천으로 흘러나가고, 우리가 믿는 것과 달리 얼마 재활용되지 못한 채 소각 없이 매립된다. 유해한 가스와 오수가 토양 아래 젖어드는 건 당연지사. 그러나 그보다도 심각한 건 매립지가 거의 들어차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 인천 등이 매립지와 관련해 모두가 만족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도 이들이 밀어낸 쓰레기가 매일 매립지로 답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매립지가 품지 못하는 쓰레기다. 이미 곳곳에 무단투기된 쓰레기가 있단 게 언론보도 등을 통하여 적발되고 있는 것이다. 산중에 무단투기된 쓰레기가 문자 그대로 산을 이룬 쓰레기산은 여적 방치돼 치워지지 않고 있다. 곳곳에서 폐기물 업체가 뿌려놓고 도망친 쓰레기가 문제화되고 있다. 바다로 흘러나간 쓰레기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영화는 얼마 다루지 못하지만, 나는 그 심각성을 직접 눈으로 보았던 것
지난 반세기 넘게 바다에 분뇨며 쓰레기를 무단투기해온, 그마저도 국내외에서 수없이 적발돼 보도까지 되었던 한국이 마치 그런 일이 전혀 없다는 듯 지내는 모습을 보자면 어안이 벙벙해질밖에 없다. 영화 속 연근해 어부가 끌어올린 그물에 잘은 새우 말고는 죄다 비닐과 온갖 쓰레기인 모습이 문제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내보인다.
▲ 문명의 끝에서 스틸컷 ⓒ SIEFF
서울은 피하고, 지방은 감당한다
쓰레기를 비워낸 수도 서울은 갈수록 쾌적해져가지만, 그 쓰레기를 받아내는 수많은 지역은 얼마나 황폐해져 가는가. 그마저도 마땅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 주어질 수도 없는 곳들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를 <문명의 끝에서>가 내보인다.
영화는 쓰레기의 순환을 내보이는 걸 넘어 차츰 그 본질로 넘어가려 한다. 쓰레기의 순환을 개론적으로 훑는 것이 1부 '서쪽 끝 쓰레기 도시'를 이룬다면, 2부 격인 후반부 '나의 살던 고향은'은 지역의 식민화와 재개발 문제를 다룬다. 인천시가 서울 쓰레기를 처리하는 부조리함부터 매립 쓰레기의 태반을 차지하는 건설폐기물이 어떤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지를 묻는다.
수많은 재개발 논의 가운데서 쓰레기에 대한 이야기는 완전히 소외돼 있는 게 현실이다. 국가 경제 부흥을 위하여, 또 건설사며 정치인, 이해관계 있는 온갖 이들의 목적 아래서 무분별한 재개발이 추진되는 과정을 영화는 쓰레기 문제와 연결 짓는다. 재개발이란 이름 아래 보존되지 못하는 장소들을 이야기하고, 재개발이 지역을 더욱 빨리 낙후시키는 현상을 지적한다.
물론 쓰레기의 여정을 뒤쫓는 이야기는 이 영화가 처음이 아니다. 해외에도, 한국에도 관련된 영화며 책이 수두룩하다. 이 작품이 그리고 있는 사실이 문제 전부를 포괄하는 것도 아니고, 한 지점을 꿰뚫을 듯 파고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멀지 않은 쓰레기대란, 이제라도 직면해야
그럼에도 <문명의 끝에서>의 가치는 분명하다. 한국사회가 여전히 쓰레기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쓰레기를 매립할 대체매립지를 아직도 구하지 못하였고, 서울이 자체 배출하는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는 경각심 또한 시민사회에 얼마 형성돼 있지 않다. 구체적 논의 없이 행정적 편의와 힘의 논리 아래서 쓰레기는 약한 연결고리로 밀려날 밖에 없다.
원전폐기물을 원자력발전소 앞마당에 쌓아두고, 막대한 분뇨를 여전히 무단으로 투기하는 이 나라는 쓰레기대란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서도 흥청망청 쓰고 버리기를 반복한다. 이 영화의 유효함은 바로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 더욱 두드러진다.
90% 가량이 재활용되는 건설폐기물이, 그럼에도 전체 쓰레기의 절반가량을 이룬다는 사실 또한 사회적으로 논의돼 마땅하다. 부수고 짓는 일 뒤엔 도시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쓰레기 문제 또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정 붙이고 사는 일을 오늘의 한국인은 왜 더는 하지 못하게 되었는가. 재개발이란 미명 아래 어떻게든 부수고 다시 세울 생각만 하는 것이 결코 정답일 수 없다고 <문명의 끝에서>는 이야기한다.
과연 우리는 오늘의 현실을 지속할 수 있는가. 생명과 환경과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한국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에서 멀리 보내 파묻어 버리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부수고 다시 짓는 일에도 환경적 부담이 있다. 그 사실을 무지의 철옹성에 갇힌 행복한 시민이 이제는 알아야만 한다고 이 다큐가 이야기한다. 마땅히 귀를 기울일 때다.
김성호 평론가 오마이뉴스
부산시민단체 "이기대 아파트 사업 계획 승인 보류 촉구“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10일 오후 남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대 아파트 사업 계획 승인을 보류하고 사업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사진은 발언에 나선 이영경 남구의회 의원. 사진=최승한 기자
아이에스동서가 부산시 남구 이기대 공원 입구에 고층 아파트 단지 건립을 추진하면서 부산 대표 관광 자원인 이기대를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월 부산시는 주택사업공동위원회 심의를 통해 해당 지역 아파트 개발 계획을 조건부 통과시켰으며, 현재 관할 소재지인 남구청의 사업 계획 승인 절차만 남겨둔 상황이다.
이에 부산환경회의를 포함한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는 10일 오후 남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대 아파트 사업 계획 승인을 보류하고 사업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성근 부산환경회의 대표는 "이기대의 해당 부지는 아파트 건설 적지도 아니며 아이에스동서의 사업 계획은 주민 동의와 제대로 된 절차도 없이 행정 편의주의적으로 통과된 내용"이라며 "ESG경영을 주창하는 아이에스동서가 주민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자사의 이익을 위해 부산 자연 관경을 사유화해선 안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이영경 남구의회 의원은 "약 5년 전 공원일몰제 시행으로 당시 주민과 시민사회, 남구청 부산시가 700억 원으로 사유지를 사들여 이기대 공원을 보존한 바 있다"라며 "이곳에 또다시 아파트 난개발이 진행되려 하고 있으며 이는 이기대 일대를 문화예술공원 조성, 용호부두 마리나 시설 계획 등 문화관광벨트로 육성하려는 부산시와 남구의 청사진과도 엇나가는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구 조례에는 구청장이 경관의 보전 관리 형성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에 대해 경관 심의가 가능하다"라며 "중요한 것은 해당 건축물의 심의 대상 여부가 아닌 사업을 막고자 하는 남구청의 의지다"라고 남구청의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한편 남구청은 "아파트 사업 계획이 건축위원회 심의나 자문을 받은 경우 경관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것으로 의제 처리하기 때문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라고 밝혔다.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
“이기대 경관 사유화 안 돼” 반발 목소리 더 커졌다
10일 남구청 앞 시민단체 회견
마지막 보루 구청장 입장 요구
남구의회 의원 4명 회견 동참
주민도 단체 결성 힘 보태기로
구청, 경관 심의 기존 입장 반복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와 부산환경회의, 부산 남구 주민들이 10일 오후 부산 남구청 앞에서 이기대공원 입구 고층 아파트 건설에 대한 남구청의 사업계획 승인 보류와 전면 재검토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종회 기자 jjh@
부산을 대표하는 절경이자 공적 자산인 이기대 턱밑에 아이에스동서(주)가 고층 아파트 신축을 추진하는 것(부산일보 6월 7일 자 1면 등 보도)과 관련해 개별적으로 터져 나오던 반대 목소리가 한데 집결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문제를 제기하던 시민단체와 더불어 남구 주민들도 힘을 보태면서 이기대 경관을 사유화하는 개발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부산시민운동단체연대와 부산환경회의는 10일 오후 2시 남구청 앞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산 시민들과 남구 주민들의 휴식 공간인 이기대 공원이 난개발로 그 기능이 훼손될 위기에 놓였다”며 “남구청은 아파트 사업계획 승인을 보류하고 사업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앞서 지난달 20일 부산시청 앞 광장에서도 기자회견을 열고 이기대 경관을 훼손하는 아이에스동서(주) 고층 아파트 신축에 대한 부실한 인허가 절차를 비판했다.
이날은 착공 전 마지막 행정 단계인 사업계획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남구청에 부산 시민 뜻을 전달하기 위해 모였다. 특히 남구 내부에서 반대 의견을 밝힌 김근우, 박구슬, 이영경, 허미향 등 남구의원 4명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반대 목소리가 집결한 첫 자리였다.
이들은 이기대 보존 여부가 갈리는 마지막 행정 보루가 남구청이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부산 시민의 자긍심이 서려 있는 이기대 보존에 대해 공공 부문에서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남구청 손에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시민 휴식 공간인 이기대가 가지는 상징성과 가치를 고려했을 때, 주민 입장을 충분히 들어보고 향후 사업계획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이들 단체는 “과거 아이에스동서가 이곳에 해상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할 때부터 각계각층이 나서 이기대를 지켰다”며 “그러한 의지가 깃든 곳인데, 이번에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부산의 공동 자산인 이기대를 보존하기 위해 남구청장이 직접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남구 주민들도 직접 참여해서 이기대 경관 사유화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보태고 나섰다. 자신을 LG메트로시티 주민이라 소개한 주민 A 씨는 “천혜 환경 이기대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다. 아이에스동서는 자진해서 고층 아파트 신축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구청장 역시 주민들의 의지에 귀 기울여서 이기대 개발 문제에 대해 현명하게 보살펴 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특히 주민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향후 남구청 앞에서 추가적인 기자회견, 시위도 예견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단체를 결성해서 이기대 경관을 해치는 아이에스동서 고층아파트 신축 계획에 대해 지속해서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는 취지다.
이날 기자회견을 비롯해 행정기관이 법·조례 등을 유리하게 해석해 건설사 편익을 봐준다는 지적에 대해 남구청은 입장문을 발표,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남구청 측은 아이에스동서 고층아파트 신축 사업과 관련 해당 아파트는 경관법, ‘부산광역시 경관 조례’에 따라 경관 심의 대상 건축물이라 밝혔다. 또 경관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라 시도지사 소속 건축위원회(건축위) 건축심의를 받는 경우에는 동일 소속의 경관위원회(경관위) 심의를 거쳐야 하므로 남구가 아닌 부산시 경관 심의 대상이라고 부산시로 책임을 넘겼다. 다만, 건축위 심의를 받은 건축물은 경관위 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규정에 따라 별도 경관 심의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덧붙였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덴마크, 소·돼지 방귀에 세금 걷는다
세계 첫 ‘농업 분야 탄소세’ 도입…연말 의회 통과시 주변국 확산 가능성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소들 /AP 자료사진
지구촌이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덴마크가 세계 최초로 ‘농업 분야’에 탄소세를 도입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축이 트림·방귀 등으로 배출하는 ‘메탄’에 세금을 부과해 농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메탄은 대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보다 대기에 머무는 기간은 짧지만, 열을 가둬두는 온실효과가 80배 이상 크다. 이번 법안이 연말 의회를 통과하면 덴마크는 농업 분야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된다. 앞서 유사한 법안을 준비했다가 농민들의 반발에 부딪힌 다른 국가들이 다시 입법에 나설지 주목된다.
CNN과 AP 등 외신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는 2030년부터 소와 양, 돼지 등을 키우는 농가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1t당 300크로네(약 6만원)의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지난 6월 26일 발표했다. 농업, 산업, 환경단체 등과 협상해 합의에 이르렀고 2035년부터는 부과 세금을 1t당 750크로네(약 15만원)로 인상할 예정이다.
다만 실제로는 60%가량의 세금 공제 혜택이 적용돼 2030년 기준 이산화탄소 1t당 120크로네(약 2만4000원), 2035년 기준 300크로네의 세금이 부과될 전망이다. 덴마크 정부는 세금 협상안을 통해 2030년에 메탄 배출량을 이산화탄소환산량으로 180만t가량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도 1990년 수준보다 70%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 “역사적인 세금 협상, 국제 입법 확산 촉각”
예페 브루우스 세무 장관은 “덴마크는 농업에 실질적인 탄소세를 도입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며 “다른 국가들도 이를 따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환경단체인 덴마크 자연 보호 협회도 이번 세금 협상에 대해 “역사적인 타협”이라며 “향후 국가 전체 식품 산업의 구조를 바꾸는 획기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덴마크 정부는 세금 부과 방안과 별도로 농업 분야를 친환경 시스템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400억크로네(약 8조원) 상당의 보조금 지원 방안도 도입한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탄소세만 부과하면 농가 부담만 늘 수 있는데 정부에 내는 (농민) 소득세를 60% 감면해 주는 세수 중립적 세제 개편안을 도입해 협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량은 줄이고 경제 주체들이 경제 활동에 적극 나설 유인을 만들었다”며 “그간 선진국에서도 농업은 보호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는데, 농업부문에 탄소세를 도입한 것은 의미있는 시도”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국토의 60%가 농지이고 소고기와 우유 주요 생산국이라 북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덴마크 정부가 위촉한 자문그룹은 현 상태를 유지된다면 2030년 덴마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5%가 농업에서 나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가축 분뇨·소화 과정에서 생기는 트림, 방귀 등을 통해 나오는 메탄은 지구 온실가스의 11%가량을 차지한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 등 기후 전문기관에 따르면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양은 적지만, 온실효과는 이산화탄소의 80배를 웃돈다. 가축이 먹는 풀의 합성 질소 비료도 온실가스를 만들어 낸다. 소 한 마리가 하루에 방출하는 메탄은 약 280ℓ로 자동차와 비슷하다는 국제 연구 결과도 있다.
지난 1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인근 A35 고속도로에서 농민들이 트랙터로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농민들의 반발은 덴마크 정부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덴마크는 낙농업 생산품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농업 강국이지만 탄소세가 생기면 유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덴마크 농민 협동조합 디엘지(DLG) 측은 “농민들이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이 정책은 유럽연합(EU)의 법안과 함께 가야 한다”며 “덴마크가 혼자 행동에 나선다고 해서 기후나 농업, 또는 관련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U는 지난 6월 의회 선거를 앞두고 농민들의 반대를 의식해 농업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 감축 목표 도입안을 폐기했다. 앞서 뉴질랜드와 아일랜드 등도 탄소세 도입을 검토했지만 농민들의 반발로 막판에 무산됐다. 탄소세 도입 법안이 연말 덴마크 의회를 통과하면, EU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다시 농업 탄소세 부과를 검토할 것이라고 외신은 전망했다.
■ “각국, 육류세 부과·저메탄 사료 개발 고민”
축산물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는 한국에서도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세계적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1월 발표한 ‘축산 분야 2030 온실가스 감축 및 녹색성장 전략’에서 저탄소 사양 관리와 축종별 생산성 향상을 통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940만t)보다 18% 적은 770만t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농림부는 분뇨의 퇴·액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농가에 저감 설비를 56%까지 확대 보급하고, 온실가스 감축 기술 개발도 촉진키로 했다. 또 저메탄·저단백 사료 농가에 사료비를 지원하는 저탄소 프로그램도 도입한다.
다만 앞선 국가들과 달리 식량 자급률이 높지 않은 한국의 경우 현실에 맞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논농사가 발달한 한국은 농업 경쟁력과 식량 안보 문제 등을 감안해 온실가스 감축만 목표로 삼기보다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탄소 중립 사회로 가는 것이 세계적 흐름인 만큼 세금 등의 환경 규제를 했을 때 시장 가격이 올라가는 것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분담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기후학자들 사이에서는 지구온난화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는 만큼 과도한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를 위해 영국과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붉은 고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육류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 투자사 네트워크인 ‘가축 투자 위험과 수익(FAIRR)’ 측은 “파리기후협약이 정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세계 정부가 그들의 육류산업에 중대한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며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고기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많은 가축을 사육하는 것이 과도한 육식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장기적으로는 생산과 소비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가덕도신공항 수의계약 없다"…재입찰 공고 재확인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두 번이나 유찰된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의 수의계약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으며 “경쟁입찰”이라는 원칙을 재확인 했다. 이에 따라 국토부가 향후 재입찰 공고를 하면 지역업체 참여 비중이 대폭 확대될지 주목된다.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은 10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부 업무보고에서 10조 원 규모의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가 2번이나 유찰된 점을 언급하며 “경쟁입찰에 예외를 줄 수 있나”라고 질문, 이 같은 답변을 끌어냈다.
박 장관은 “큰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광범위한 보완방향을 마련해 재입찰 공고를 밟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더불어 “공기 부족, 입찰 수 제한 등 업계에서 요청한 상황에 대해 전문가 자문과 의견을 받고 있다”며 “(재공고를) 빠른 시간 내에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김 의원이 “그 말을 믿어도 되겠냐”고 되묻자, 박 장관은 “믿어도 된다. 큰 공사는 경쟁입찰”이라며 기존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당초 지난달 진행된 가덕도신공항 공사 공모사업 1차 입찰에 응찰한 업체가 없고 2차 입찰에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단독으로 응해 유찰된 만큼 업계에선 사실상 수의계약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2차 입찰에 단독 응찰한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부산·경남 14곳 업체에 할당된 지분은 모두 합쳐도 전체 11% (사업비 1조 1000억 원)정도에 불과했다.
국토부는 지역업체 지분율에 따라 입찰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1~5%는 2점, 5~10%는 4점, 10~20%는 6점, 20% 이상은 8점이다. 이에 가산점 6점 정도를 받기 위해 지역업체 지분율 10%를 겨우 넘긴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토부가 수의계약으로 전환하지 않고 재공모에 나선다면, 다시 컨소시엄을 구성해 지역업체 비중을 더욱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지역 업체들의 지분참여 비중이 최소한 20%는 넘어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업계에선 보고있다.
이와 함께 김 의원은 가덕도신공항 2029년 적기개항을 위해 이주 대책과 토지보상이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의원은 “이주 대책 실시권은 국토부 소관이다. 이주 대책에 대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수탁기관인 부산시에만 맡기지 말고 국토부가 주도해 나가야 한다”며 “현재 진행 중인이주 대책 용역 결과를 연말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이에 박 장관은 “신속하고 합리적인 대책이 나오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바로 실행에 들어가겠다”고 답했다.
김 의원은 앞서 대표 발의한 가덕도신공항 건설 사업이 토지관련 특례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하는 ‘토지보상법 개정안’이 조속히 통과될 수 있도록 국토위 차원의 협조 또한 요청했다.
한편, 박 장관은 가덕도신공항 적기개항에 문제 없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그는 “2029년 (완공이) 틀림없이 가도록 하기 위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전문가의)판단도 있다”며 “국토부도 미룰 이유가 없다. 가능한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을 내서 (입찰)재공고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조원호 기자 cho1ho@kookje.co.k
여야 극한 대립에 글로벌특별법 '찬밥'
발의 두 달 넘도록 행안위 상정 못해
국민지원금 등 당론 현안에만 집중
지역 법안 이야기하기 어려운 상황
국회 통과 위해 부처 의견 수용
금융 특구 혜택·특례 조항 약화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과 국민의힘 김도읍, 김대식 의원 등이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등을 촉구하고 있다. 부산일보DB
22대 국회에서 여야의 ‘극한 대결’이 이어지면서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등 지역 현안 법안 심사가 늦어지고 있다. 여야가 검사 탄핵부터 25만 원 국민지원금까지 ‘당론 현안’에 집중하면서 지역 관련 법안은 논의 테이블에도 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5월 31일 발의된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지난 6월 11일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으나 이후 10일 현재까지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행안위 전체회의는 총 세 차례 열렸으나 상정된 법안은 단 1건뿐이다. 행안위에 상정된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이른바 ‘25만 원 국민지원금’ 지급을 골자로 한 ‘2024년 민생위기 극복을 위한 특별조치법안’이다.
행안위는 민주당 소속 신정훈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어 이 전 대표의 국민지원금 법안 처리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지원금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왜 25만 원만 줍니까. 10억 원씩, 100억 원씩 줘도 되는 것 아니에요”라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국민의힘은 이를 ‘총력 저지’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이 ‘다수 의석’을 앞세워 행안위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국민지원금 법안을 통과시킬 경우 본회의에서는 또다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처럼 여야가 국민지원금 법안을 놓고 갈등하면서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은 논의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행안위에 소속된 한 부산 지역 의원은 “지금 분위기에서는 전체회의에서 지역 관련 법안을 이야기하기 어렵다”면서 “여야가 강하게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당론 추진 법안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행안위의 경우 국민지원금 문제 이외에도 채 상병 사고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 등 여야의 충돌 현안이 많다. 이 때문에 여야 의원들이 관련 현안에 대한 ‘공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부산 의원들은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이 일단 법안심사소위에 오르기만 한다면 다른 법안에 비해 빨리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됐던 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면서 관련 정부 부처와의 협의를 대부분 마친 상태다. 민주당의 협조만 이뤄진다면 법안 처리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게 국민의힘 부산 의원들의 설명이다. 특별법에는 부산 유일의 민주당 의원인 전재수 의원도 이름을 올린 상태여서 민주당이 반대할 명분도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이처럼 특별법이 ‘국회 통과’를 위해 정부 부처 의견을 대폭 받아들이면서 ‘실효성’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22대서 발의된 특별법은 21대 법안에 비해 주요 내용이 바뀌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예비타당성조사 특례’의 경우 22대 법안에서 임의조항으로 약화됐다. ‘금융특구’와 관련된 혜택 조항도 약화됐다..
이에 대해 부산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제정법이기 때문에 우선 통과에 주력하고 향후 법 개정을 통해 특혜 부분을 보완하는 전략을 펴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 지방자치단체가 제각각 ‘특별자치도법’ 등으로 경쟁하고 있는 데다 민주당이 국회 다수를 점한 상황에서 부산 특혜 조항을 넣은 법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존 레논의 평화와 저탄소 꿈의 실현
우크라이나 전쟁의 나비 효과, 탄소중립과 한반도 안보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전쟁이 발생했다. 당시 푸틴 정부는 특별군사작전이라고 호칭하며, 공식적인 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했었다. 그렇지만 2023년 전후로는 러시아 대통령까지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지금은 21세기에 벌어진 국가 간 전쟁의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되고 있다. 물론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쟁은 여전히 종결되지 않고 있다.
사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은 처음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1991년 구(舊)소련의 해체 이래로 크림반도의 영향력 확대 과정에서 발생해왔던 일련의 사태 가운데 하나로도 볼 수 있다. 다만 한동안 잠잠했던 이 지역은 2014년 이후부터 세계의 화약고 가운데 하나로 불리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인 나토의 동진과 동유럽 국가들의 친(親)서방화에 위협을 느낀 러시아의 극단적 대응이 지금의 전쟁 사태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그사이에 여러 차례의 전조 증상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2006년에 가스 가격의 협상 결렬을 이유로 우크라이나를 관통해 유럽으로 공급되던 파이프라인을 러시아가 차단하려는 바람에, 독일을 포함한 주변국들이 위협에 처했던 사례가 있었다. 이후로도 2007년, 2009년, 2014년, 2019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에 걸쳐 가스관과 송유관을 담보로 유사한 갈등이 반복되곤 했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전이었던 2021년 12월에는 천연가스 공급을 일부 중단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말았다. 이처럼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구조적 원인이 내재한 상태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잠재적 갈등이 간헐적으로 표면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방과 미국이 적절한 해결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결국에는 전시 상황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한국은 이번 사태를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받아들였었다. 왜냐하면 유럽이야 원래부터 1·2차 세계대전의 진원지일 정도로 정치·군사적 갈등이 빈발한 곳이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명박 정부에서 공식화되었던 러시아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이 동일한 위험 요인을 지니고 있다며 잠시 주목을 받기는 했지만, 이 역시도 북한의 비협조로 실현되지 못하면서, 한반도와는 무관했던 '세계는 지금'의 한 코너로 간주되는 수준이었다.
이처럼 한국과 관련이 없는 줄 알았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최근 들어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되었던 탈원전·탈석탄의 모범적 사례로 간주되었던 나라가 독일이었는데,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로 등장하면서 국내 찬핵 세력의 비난 근거가 되었다. 즉, 어설프게 탈원전을 추진했다가, 러시아의 천연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유럽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천연가스 공급원을 한국이나 일본처럼 중동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논의됐었다. 다만 독일의 입장에서는 저렴한 파이프라인 천연가스에 대한 중독과 러시아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정치적 자신감이 문제였다.
게다가 독일의 위기는 온실가스 목표 달성의 어려움과도 관련된다. 실제로 전 세계가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태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년도마저 2045년으로 선도적인 국가 가운데 하나가 독일이다. 그렇지만 천연가스 수급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지금은 석탄 발전의 가동을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다행히 석탄 소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재생가능에너지의 확대 및 경기 침체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직 줄어드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독일 입장에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 우호적이지 못한 상황이다. 이런 독일의 사례는 탄소중립 목표를 공유하는 한국에게 간접적인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에게 찻잔 속 나비의 날갯짓 같았던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금은 태풍으로 바뀌어서 한반도를 강타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푸틴 대통령은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했다. 그전에도 러시아는 전쟁으로 인해 부족했던 군수물자와 무기를 북한으로부터 제공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방문은 단순한 협력관계 증진 혹은 양국 정상의 답방 정도로 지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양국의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안보 지형을 흔들어놓고 있다. 즉, 70년 넘게 휴전상태인 남북 관계에 러시아가 '전략적 동반자'를 선언하며, 유사시 북한에 대한 자동적 군사개입 가능성까지 열어놓은 것이다.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은 탈원전·탈탄소 독일을 흔들어놓은 다음에, 한반도까지 집어삼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쌍방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에 서명했다고 조선중앙TV가 2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No Redistribution] ⓒ연합뉴스
만약에 우크라이나 같은 전쟁이 한반도에서 발생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참혹할 수밖에 없다. 국가와 민족의 안위가 위급하고 국민들의 목숨이 위험에 빠지는 상황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당하는 전시 상황에서는 나머지 다른 가치들이 전부 사장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위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그렇듯이 기후위기는 언급조차 되지 못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는 전쟁과 상충될 수밖에 없으며, 한국 정부의 탄소중립은 한반도의 평화와 함께 달성되어야 한다.
실제로 국제사회는 전쟁의 포기를 약속했던 '부전조약(不戰條約)'을 1928년에 선언했으며, 주요 열강을 포함한 63개국이 동참했던 전례가 있다. 이처럼 인류 최초의 반전 협약이라는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까지 수상하는 계기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평화 조약은 위반 국가에 대한 제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가 지적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1992년에 체결된 기후변화협약도 감축 의무가 누락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나마 2015년 파리협정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탄소국경조정을 통해 실행력을 강화해나가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온실가스 규제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지구 반대편 한국의 평화와 남한의 탄소중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현재 한반도는 평화와 저탄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존 레논이 꿈꾸었던 이상을 우리는 이 땅에서 만들어내야 한다. 둘 다 단순한 꿈일 뿐이라고,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아내고, 기후변화 위기까지 함께 해결해야 하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교수 | 프레시안
이기대 난개발 질타한 부산시의회, 시·남구청 감사 청구
서지연 의원, 11일 시정 질의
난개발에 행정기관 소극적 대응
인허가 과정 특혜·법리 오류 규명
서둘러 최대 용적률·건폐율 적용
지구단위계획 의제 처리 과정 비판
경관지구로 지정해 훼손 막아야
이기대의 경관을 훼손하는 난개발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온 부산시의회 서지연 의원이 11일 오전 본회의에서 부산시를 상대로 시정질문을 하고 있다. 부산시의회 제공
공공의 자산인 이기대 경관을 훼손하고 사유화하는 아이에스동서(주)의 고층 아파트 건립 계획(부산일보 6월 7일 자 1면 등 보도)과 관련, 부산시의원이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나 법률 위배 사항이 있는지에 대한 부산시 감사를 청구했다. 남구청이 아이에스동서 아파트를 위한 지구단위계획 의제 처리가 검토 중인 사안이라고 밝힌 만큼, 의제 처리를 중단하고 경관지구로 지정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11일 오전 열린 부산시의회 제323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는 아이에스동서(주)가 이기대 일원에 고층 아파트를 건립하는 것과 관련한 시정 질의가 진행됐다. 질의는 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 소속 서지연(비례) 의원이 요청했다. 이날 시에서는 김광회 미래혁신부시장, 하성태 주택건축국장, 안철수 푸른녹지국장, 임원섭 도시공간계획국장 등 이번 고층 아파트 개발 사업과 관련 있는 고위 공무원들이 답변을 위해 참석했다.
먼저 지구단위계획 본래 취지를 벗어난 특혜성 절차, 지구단위계획 의제 처리에 대한 비판이 집중됐다. 서 의원은 “부산시 주택공동위원회는 용호동 973번지 일원의 공동주택을 기반시설로 보고 의제 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371세대가 거주할 공동주택이 국토계획법에서 제시하는 기반시설 어디에 해당되는가”라고 따져 물은 뒤 “지구단위계획 의제를 통해 최대 용적률, 건폐율을 적용해 인허가를 내주기 위한 특혜성 절차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아이에스동서(주)가 이기대 앞에 추진 중인 아파트 조감도. 부산시 제공
이어 서 의원은 “아파트 부지 인근에 도합 1만 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돼 있다. 인구 수용 차원에서도 이곳에 지구단위계획을 적용, 용적률을 상향해 주면서까지 공동주택을 시급하게 지을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국토계획법에는 지구단위계획으로 인한 경관 훼손은 지양한다는 점이 분명히 명시돼 있다면서 부산시와 남구청이 보여준 행정의 불합리성을 꼬집었다.
경관 자원을 훼손할 수 있는 개발행위임에도 부산시에 전문심의가 아닌 통합심의를 요청한 남구청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또 남구청에 위임했다는 이유로 지도 감독을 소홀히 하고 기계적으로 대응한 부산시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서 의원은 “부산시 건축위원회에도 도시계획위원과 경관위원이 있지만 해당 위원들은 통합심의에서 제외됐다”면서 “부산시가 경관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개발에 대해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기계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따라 서 의원은 아이에스동서 개발계획 인허가 과정에서 특혜나 법리 해석의 오류가 있었는지 부산시와 남구청에 대한 부산시 감사를 청구했다. 또한 용호동 973번지 일원에 적용된 지구단위계획 의제에 대해서도 명분이 부족하기에 철회를 요구했다. 대신 이 지역을 경관지구로 지정해 줄 것을 주문했다.
과거 아이에스동서가 같은 부지에 추진한 해상 케이블카 사업이 좌초된 이후에 즉각 시가 나서서 이기대 일원에 난개발 방지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천혜 환경 이기대 일대를 난개발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경관지구 등 용도지구 지정이 선제적으로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이날 본회의장 석상에 선 김광회 미래혁신부시장은 “용호동 일원 개발 행위가 계획되고 인허가 절차를 밟는 과정은 적정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한다”며 “경관 관리에 대해 지침이 구체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 용호동 973번지 일원은 과거 주거지로 반영된 지역이기에 아파트로 개발되는 건 자연스럽다. 앞으로 미관을 고려해 사업이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가덕신공항 공사 ‘공동도급 2→3社’ 입찰 조건 완화
국토부 곧 3차 입찰공고…상위 건설사 공동도급, 설계비 등 조건 바꿀 듯
“악조건 속 경쟁입찰 고수…또 유찰 땐 시간끌기 눈총”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사업자 선정과 관련, 경쟁입찰 원칙을 거듭 강조하는 국토교통부가 이른 시일 내에 3차 입찰 공고를 내기로 했다.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개사의 공동도급 범위를 2개사에서 3개사로 늘리는 방안이 담길 것이 확실시된다. 설계비 증액이 포함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공고 조건 변경에도 또 유찰되면 국토부가 외부 여건을 핑계로 ‘시간 끌기’를 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가덕도신공항 개항 예정 부지. 국제신문DB
11일 국토부 측은 사업자 선정을 위한 방식이 확정됐느냐는 국제신문의 단독 질문에 “3차 ‘입찰 참가자격 사전적격심사(PQ)’ 공고를 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답변했다. 시기는 후속 일정을 고려할 때 다음 주 전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어 그동안 업계가 요구했던 사항들도 받아들일지에 관한 질문에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업체의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공사에는 ‘경쟁입찰’과 ‘2029년 12월 말 개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꼭 적용돼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수의계약 포기를 기정사실화한 이 발언은 업계의 공동도급 범위 확대 요구를 수용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박상우 국토부 장관도 지난 10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 원칙을 천명한 바 있다.
현재 국토부는 3차 입찰 공고 때 업계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수용할 것인지를 놓고 장고를 거듭한다. 건설사와 전문가 의견도 수렴 중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지난 3일 시공능력평가액 상위 10개사를 따로 불러 기존의 입찰 공고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지난 8일에는 가덕도신공항건설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등의 관계자 및 항공 분야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공동도급 범위 제한의 한계성을 지적하고 817억 원으로 책정된 설계비 증액 필요성 등을 거론했다.
국토부가 공동도급 범위를 확대해 3차 입찰을 하면 최소 2개 이상의 연합체(컨소시엄)가 입찰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사업에 참여하는 대형 건설사가 많아지면 지역업체의 동참 기회가 늘어난다. 2차 입찰 때 단독 응찰한 현대건설 연합체에는 부산 10개, 경남 4개 등 14개사가 11%의 지분으로 참여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수의계약 대신 재입찰을 시도하는 국토부의 행보에 의문의 시선을 보낸다. 3차 입찰도 무응찰 또는 단독 입찰로 유찰된다면 2029년 12월 말 개항이라는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국토부가 사업을 신속하게 진행할 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 당연하다. 이에 대해 국토부 측은 적기 개항은 일관된 원칙이라며 이 같은 우려를 일축했다.
지역 건설사들은 국토부에 빠른 진행을 촉구했다. 부산시건설협회 측은 “조성공사가 시작될 수 있게 업체 선정 절차를 서둘러야 할 때”라며 “이후에도 2029년 12월 말 개항에 차질이 없도록 정부와 업계가 협력, 패스트트랙 등을 통해 공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말했다.ⓒ국제신문
마린시티 길이 500m 수중 방파제 세운다…8년 논란 종지부
매년 여름 월파 피해 속수무책…부산시·해운대구, 이안제 추진
- 해수면 4m 높이… 696억 투입
- 5m 파도 3m까지 낮추는 효과
- 10월 착공 2027년 하반기 완공
부산의 최고 부촌이지만 태풍 등으로 인한 월파에 속수무책 피해를 입었던 해운대구 마린시티에 방재시설을 짓는 공사가 마침내 시작된다.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된 지 8년 동안 ‘마린시티 주민에게 특혜를 준다’는 논란과 함께 방재 방안이 세워졌다가 무산되길 반복한 끝에 부산시와 해운대구는 ‘수중 방파제’로 방재시설을 설치하기로 결정했다.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앞 수영만에 월파 방지 등을 위한 방재 시설을 설치하는 공사가 시작된다. 사진은 마린시티 앞에 이안제가 설치돼 있는 조감도. 해운대구 제공
해운대구는 수영만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정비사업의 실시계획 수립을 공고했다고 11일 밝혔다. 월파를 막기 위한 방재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방식은 ‘수중 방파제’로 불리는 이안제를 쌓는 것으로 결정됐다.
마린시티 연안과 150m 떨어진 해상에 길이 500m, 전체 14m(해수면에서 4m) 높이 방파석(테트라포드)를 쌓아 파도 높이를 낮춘다는 것이다. 이안제가 생기면 5m 높이 파도를 3m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공사비가 696억 원(국비 299억 원·시비 266억 원·구비 131억 원)이나 들어가는 대형 사업으로, 실제 공사는 부산시 건설본부가 맡는다. 시는 오는 10월에 착공할 계획으로 예상 공사 기간은 36개월이다. 2027년 하반기에 이안제 설치가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마린시티는 매년 여름 태풍 때마다 파도가 제방을 넘어오는 월파에 시달린다. 2016년 태풍 차바에 큰 피해를 입고 구는 같은 해 12월 이곳을 수영만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했다. 방재 방안으로 마린시티 앞바다에 길이 650m짜리 방파제를 짓고 호안을 매립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경제성과 환경 문제 등을 이유로 ‘기립식 차수벽’ 설치를 제안했다. 이 차수벽은 보통 때는 눕혀져 있다가 피해가 예상되면 일으켜 세우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기본 설계 심의 등을 거친 결과 사업비가 애초 보다 크게 늘어나고 설치한다 해도 매년 유지 보수 비용이 상당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 역시 무산됐다. 특히 “정책이주지도 아닌 최고급 주거시설이 있는 마린시티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해예방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특혜”라는 반대 여론도 많았다. 2012년 마린시티 방파벽을 만들 당시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일부 주민과 상인들의 반대에 계획했던 높이보다 낮춘 적도 있었다.
결국 예산을 아끼면서 조망도 해치지 않는 이안제가 방재시설로 결정됐지만 착공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지반조사 과정에서 걸림돌이 발생했다. 수영만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는 마린시티의 육상 구간까지만을 포함해 해상에 이안제를 짓기 위해서는 바다까지 지구 범위를 넓히고 해저의 상태를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인근 어촌계에서 어업 피해를 주장하며 지반 조사 등 이안제 사업에 반대하면서 구는 여러 차례 주민 설명회를 실시하는 등 설득에 나섰다. 이후 지난해 지반 조사를 끝냈고 지난 5월 실시설계를 마치면서 착공을 앞두게 됐다.
김성수 해운대구청장은 “육상과 맞닿은 방파제는 이미 태풍 차바 이후 보강을 한 상태여서 확장하는 것은 조망권 외 여러 이유로 어렵다고 판단됐다”며 “이안제는 파도가 육상에 닿기 전 미리 파도를 부수기 때문에 방재 효과가 크다는 장점이 있다. 시와 함께 조속히 공사를 마쳐 월파 등의 피해를 줄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민정 기자 min55@kookje.co.kr
‘글로벌 위어딩’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지구온난화)은 가고 글로벌 위어딩(global weirding)이 언급되고 있다. 영어 단어 위어드가 형용사로는 이상한, 기이한, 기괴한의 의미로 쓰이지만 명사로는 운명, 숙명의 뜻으로도 쓰인다. ‘기이한’과 ‘운명’이 같은 단어라는 것이 참 이상하게 들린다. 아마도 돌고 돌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에 맞닥뜨릴 때를 운명이라는 명사로 함축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지구온난화가 점점 심해져서 기후가 너무 이상해지고 있는데 온난화 같은 ‘온화한’ 단어로는 이 별난 위기를 표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새로운 용어를 부추기고 있다. 단어가 섬뜩하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상이변을 이 단어보다 더 잘 묘사하긴 어려울 것 같다.
최근 카리브해와 미국 텍사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베릴’은 카테고리 5등급인 최고 수준 바람이다. 평소 8~10월경 불어오던 것과 달리 6월에 시작된 것도 예외적이고, 시속 265㎞ 속도도 너무 강력해 200만명 이상의 거주민들이 정전으로 불안에 떨었다. 더 무서운 건 바다가 점점 더 뜨겁게 달아올라 허리케인의 강도가 지금까지의 카테고리론 측정이 안 될 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6~7등급으로 상향시킬 날이 닥쳐오고 있다고 예측한다. 허리케인의 우리말은 싹쓸바람이다. 문명사회가 구축한 인프라가 한순간 싹 쓸려나갈 것 같은 전조 증상이 우리나라에서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 9일 밤부터 10일 새벽 사이 충청·전북·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물 폭탄’이 쏟아졌다. “200년에 한 번 나타날 기록적 폭우”라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1시간 동안 100㎜가 넘는 집중호우가 내린 지역이 5곳을 넘었고 전북 군산은 131.7㎜의 비가 1시간 만에 쏟아져 역대 가장 많은 시간당 강수량을 기록했다. 특히나 깊이 잠든 새벽에 쏟아진 비로 전국 곳곳에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등 피해도 속출했다. 자기가 살던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안에서 물에 잠겨 사망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1년간 내릴 비의 10% 정도가 1시간 새 쏟아지면 누군들 당해낼 도리가 없다.
글로벌 위어딩이란 용어가 말해주듯, 기상이변은 강도가 강해지면서 불확실성 또한 커지고 있다. 장마냐, 우기냐 이런 정의가 이제는 무의미해졌다. 일기예보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어떻게 이 들쭉날쭉 기상이변을 막을 수 있을까. 한국기상학회 재해기상특별위원장인 손석우 서울대 교수의 발언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시간당 140㎜가 오는데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저는 원천적인 대책이 지금은 없다고 보고 있고요. 그럼 저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잘 도망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도망을 가야 할까. 도망도 못 갈 형편인 사람은 누가 구할까.
환란 가운데 무리를 안전하게 이끄는 자를 우리는 지도자라 부른다. 지난 8일 대통령이 정부기관에 내린 장마 대비 ‘16자 지시사항’이 논란을 일으켰다. 아무리 당대표 경선이 중하다 한들 남부지방을 쓸고간 폭우에 우려나마 표한 여당 후보도 없다. 정치가 유권자의 안전과 생명, 일상생활의 문제와 점점 멀어지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 그래서 혼돈의 기후보다 현재의 정치인들이 내게는 더 기이해 보인다. 위어드한 정치행보가 도달할 운명의 끝은 어디일까.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AI는 전기를 먹고 자란다
인공지능이 기후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빅테크 기업과 각국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전력 수요를 감당하면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경기도 안산시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내에 만들어진 카카오 데이터센터 안산의 서버실. ⓒ카카오 제공
인공지능(AI)이 기후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처럼 말하고 반응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탄소중립’을 위협하는 새로운 변수가 됐다. 생성형 AI에 대해 말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 있다.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정확한 최신 정보를 계속해서 학습한 AI만이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거대언어모델(LLM)을 ‘공부’시키고, 데이터를 저장하고, 복잡한 알고리즘을 연산해 실행하기 위한 모든 과정에는 단순 검색을 통해 답변을 얻는 것보다 수십 배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구글에서 일반 검색을 할 때 사용되는 전력은 0.3Wh(와트시)이지만 같은 내용을 챗GPT로 검색할 경우엔 10배인 2.9Wh가 사용된다. 만약 구글 검색엔진에 AI 기능이 통합될 경우, 최대 30배까지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개별 검색당 6.9~8.9Wh).
AI가 구동되는 모든 과정은 ‘데이터센터’에서 이루어진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컴퓨터, 네트워크 회선, 데이터 스토리지(저장장치) 등 IT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한 건물에 모아둔, 연중 24시간 전력을 써야 하는 ‘전력 다소비 시설’이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서버 수천 대를 돌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버 수십만 대를 운영하며 대량의 데이터를 집적하고 연산하는 AI 전용 ‘하이퍼스케일(Hyperscale)’ 데이터센터가 만들어지고 있다.
AI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한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구축에 지갑을 열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AI와 2028년까지 1000억 달러(약 135조원)를 투입해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의 가장 큰 데이터센터에 투입된 금액보다 100배 많은 규모다. 이런 막대한 투자 추세는 당분간 계속 이어지리라 보인다.
당연히 이런 거대한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전력량은 탄소 배출량과도 연결된다. 서버 수십만 대가 가동되는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탐욕적일 만큼’ 많은 전력을 필요로 한다. 서버를 구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뿐만 아니라, 서버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써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연간 전력 소모량은 460TWh(테라와트시)로, 프랑스(425TWh), 독일(490TWh)의 국가 연간 전력 소모량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2026년에 데이터센터가 필요로 하는 전력량은 그 두 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들의 탄소중립 계획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MS는 2022년 일명 ‘탄소 문샷(Moonshot)’ 계획을 선언했다.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순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로 만드는 것)’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AI 기술 개발 등으로 지난해 MS의 탄소 배출은 오히려 30% 늘었다. 지난 5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브래드 스미스 MS 부회장은 “AI 열풍과 전력 수요 때문에 2020년에 비해 탄소 네거티브라는 달(목표)이 5배 더 멀리 떨어지게 됐다”라고 말했다. 기업에서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100 선언에 동참한 빅테크 기업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면서도 전력 공급망 충격에 대비하기 위한 방안을 고심 중이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엄청난 양의 전기를 어디서,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라는 시급한 과제가 떨어졌다. 빅테크 기업들은 데이터센터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전 세계에 ‘전기가 흐르는 땅’을 찾아 돈을 풀고 있다. 한국에도 아마존웹서비스(AWS)가 인천 서구에 첫 자체 데이터센터를 짓고 2027년까지 국내 클라우드 인프라에 약 8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한국에 60MW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프로젝트 투자계획을 밝혔다. ⓒREUTERS
하지만 이런 투자에는 ‘전력난’이라는 비싼 청구서가 붙는다. 토지와 전력이 저렴한 미국 조지아주는 구글, AT&T 등의 데이터센터 50여 개가 세워진 대표적인 ‘신흥 유망’ 지역이다. 조지아주는 두둑한 법인세 수입을 반겼지만, 정작 주민들은 수십 배 뛴 전기요금을 감당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전력 계통의 불안정성이 높아져 전력 수급에 불안을 느껴야 했다. 미국 전력업체 조지아파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따라 2030년 겨울까지 조지아주에 필요하다고 예측했던 산업용 전력 수요는 6600MW로 기존 예측보다 17배나 많은 양에 이르렀다. 충분한 발전원과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은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경우 블랙아웃(출력 제한)과 전기요금 폭등이라는 리스크가 불가피하다.
빅테크 기업이 가장 선호하는 발전원은?
이런 이유로 데이터센터 건립을 규제하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데이터센터 허브라 불리는 미국 버지니아주 의회에서는 올 1월, 데이터센터 신설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아일랜드는 2028년까지 더블린 지역의 신규 데이터센터 건립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 이곳에 지어진 데이터센터들이 국가 전체 전력의 28%를 쓰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도 변화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70여 개 설립돼 있는 싱가포르는 전체 전력 소비량의 7%를 데이터센터가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월, 싱가포르 정부는 ‘그린 데이터센터 로드맵’을 발표했다.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 총량을 규제하고 개별 기업 투자계획을 엄격히 심사하는 등 데이터센터 설립에 제동을 걸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경우에만 인센티브를 주기로 한 것이다.
5월31일 정동욱 중앙대 교수가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표한 ‘AI 혁명에 부응한 선제적 전력공급·전력망 확충 긴요’ 보고서에도 AI 데이터센터가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6배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는 점을 짚으며 AI 시대 전력 수요 증가가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전기(적정 전원)를 제공해야 하는가’ ‘미흡한 송배전망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가’ 등이다. 이는 AI 시대를 맞이하며 전력 수요 증가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정부가 답해야 할 질문이기도 하다. 각 과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전문가들의 평가는 어떨까.
첫 번째 과제에 대한 정부의 답은 지난 5월31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발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을 통해 알 수 있다. 앞선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 따르면 2029년까지 건설을 요청한 데이터센터의 전력 용량은 총 4만9297MW 수준이다. 이 경우 발전기 및 변압기에서의 전력 손실 등을 고려해 1000MW(1GW)급 발전기 53기를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에 필요한 전력 수요량을 예측해 제11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2030년 전력 수요량이 2023년 수요량보다 2배 증가할 것이라 봤다. 이에 대응하는 발전설비 계획 중 가장 눈에 띄는 점은 9년 만에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밝힌 것과 전력수급기본계획 최초로 한국식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했다는 점이다.
우선 실무안에서는 2038년까지 이전 계획보다 10.6GW 더 많은 신규 발전설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추가 전력 수요를 위해 대형 신규 원전 최대 3기(4.2GW) 건설을 권고했다. 신규 원전 증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오픈AI를 비롯해 MS 등도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인 ‘헬리온에너지’ 등에 적극 투자하며 전력 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원자력을 통한 전력 확보를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빅테크 기업들은 태양광·수소·지열 같은 다양한 발전원에도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MS는 지난 5월, 2030년까지 미국과 유럽에 10.5GW 상당의 재생에너지 용량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핵융합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주 발전원인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기 위한 ‘예비 투자’에 가깝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탄소중립 네거티브를 달성하겠다는 ‘탄소 문샷’ 계획을 발표했지만 최근 AI 개발 등에 따른 전력 사용 증가로 오히려 탄소 배출이 늘었다. ⓒREUTERS
지난 5월5일 〈이코노미스트〉는 ‘빅테크 기업의 AI 전력 장악’이라는 기사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MS는 미국 최대 원자력 운영업체인 ‘콘스텔레이션 에너지’와 원자력 전력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이 불가능할 때를 대비한 투자다.” 전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민간 테크기업의 생존을 건 전방위적 투자의 일환인 것이다. 특히 2024년 3월 기준, 미국에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약 8000곳 중 3분의 1인 5400여 개가 설립돼 있다. 미국은 빠른 시간 안에 전력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는 미국 내 빅테크 기업들의 공포심을 자극해 다양한 발전원에 대한 투자를 이끌고 있다. 반면 국가의 에너지 정책을 관할하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다르다. ‘어떻게든’ 전력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력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해 그에 따른 에너지 전략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은기환 한화그린히어로펀드 책임운용역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에 ‘당장 필요한 전력’과 이들이 ‘미래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전력’은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전력을 조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고려할 때 빅테크 기업에게 원전은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AI 기술 경쟁을 하는 빅테크 입장에서 시간은 돈이다. 하루라도 빨리 전력을 조달할 수 있다면 가격이 조금 비싸더라도 투자한다. 원전은 당장 신규로 지으려고 해도 전력 생산까지 10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인공지능 기술 경쟁 구도에서는 당장 2~3년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신규 원전은 1순위가 될 수 없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 역시 대형 원전의 경우 건설기간이 13년11개월가량 걸린다는 점을 짚고 있다.
“한국, 재생에너지 구하기 너무 어렵다”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빅테크 입장으로서는 전력 공급이 중단된다는 것은 악몽이다. 그런 만큼 해당 기업들은 여러 발전원의 장단점을 고려해 전력 포트폴리오를 넓혀가고 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데이터센터 전력 발전원은 재생에너지다. 올해 2월 발간된 신한투자증권의 데이터센터 추세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빅테크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투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RE100 달성’이라는 점을 설명한다. 이를 강제하는 외부적 요인도 있다. 유럽에서는 2030년까지 데이터센터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후 중립 데이터센터 협약’ 등을 추진하고 있으며 아마존, 구글, MS 및 글로벌 디지털 인프라 기업 에퀴닉스(Equinix) 등이 이 협약에 가입했다. 보고서는 미국 역시 이러한 유럽의 규제 추세에 따라 데이터센터 전력을 규제해나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역시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초기 5년 내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대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원전을 가동해 전력을 공급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AI로 인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폭증은 당장 몇 년 내외에 일어날 일이다. RE100에서 인정하는 에너지원은 아니지만 원전과 천연가스 같은 무탄소 전원을 다변화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당장 필요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태양광 에너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보는 다국적 빅테크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한국에 요구되는 과제다. 지난해 12월 아마존은 한국에서 첫 번째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인 60MW 규모의 태양광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2025년부터 AWS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아마존 사업장에 필요한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자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6월11일 켄 헤이그 AWS 아시아태평양 및 일본 에너지 환경정책 총괄은 MBC와 한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재생에너지를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다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투자할 기회가 생긴다면 투자 우선순위가 (한국이 아닌) 그 나라로 바뀔 수도 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은 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 허가를 받는 일뿐만 아니라 발전소 완공 뒤 전력망을 연결하기도 어렵다며 “한국 내 기업들이 굉장히 작은 규모의 재생에너지 파이를 두고 극심한 경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마을 주민들이 송전탑 예정 부지에서 천막 투쟁을 이어갔던 경남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의 765㎸ 121번 송전탑. 논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정부는 데이터센터에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방안으로 데이터센터의 지방 이전도 추진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3년 3월 발표한 ‘데이터센터 수도권 집중 완화 방안’에 따르면 현재 데이터센터 60%가 수도권에 설립돼 있고, 전력 수요의 70% 역시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그에 따라 2029년까지 설립을 신청한 수도권 지역 신규 데이터센터 601곳 중 고작 40개(6.7%)에만 전력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다고도 밝혔다. 데이터센터의 지역 분산이 불가피한 상황인 것이다.
데이터센터 지역 분산은 송배전망 설립에 따른 갈등을 줄이는 데도 효과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수도권 전력자급률은 0.67이다. 가장 전력자급률이 높은 강원권은 1.96에 이른다. 수도권은 재생에너지가 있는 호남권, 화력발전소가 있는 강원권, 원전이 있는 영남권 등에서 장거리 송전망을 통해 전력을 ‘수혈’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 다소비 시설인 데이터센터가 수도권에 지어질 경우 추가 전력망 확충 문제가 새로운 사회갈등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에서 전력공급에 제약이 생기는 주된 이유는 발전 능력이 아니라 송전 문제다. 예를 들면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선로 설립이 지연되고 있는 강원 동해안 화력발전소들은 일부 가동을 멈추거나, 발전량을 20~30% 수준으로 낮춰 적자 운영을 이어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결국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구조를 만들어 장거리 송전망 건설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정부는 데이터센터 수도권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시설 부담금 할인과 예비전력 요금 면제 혜택 같은 인센티브를 제안했다. 대규모 전력소비 기업들이 지역별 전력 여건을 미리 알 수 있도록 ‘전력공급 여유정보 공개 시스템’도 구축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그림〉 참조). 동시에 신규 데이터센터가 전력 계통에 미치는 영향을 엄격히 평가(전력계통 영향평가)해 전력 계통에 부담을 줄 경우 전기 공급을 유예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한전에 부여하는 규제책도 시행했다.
정부 계획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비수도권 지역은 IT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데다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고급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이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면, 지자체들은 세수 확보 및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데이터센터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민생토론회에서 강원특별자치도를 데이터산업 중심의 ‘강원데이터밸리’로 육성하겠다는 비전을 밝혔다. 소양강댐의 수력발전, 수상태양광 등을 활용해 무탄소 에너지를 제공하는 ‘데이터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데이터센터 지방 이전, 될까?
전라남도 해남에서도 2037년까지 40MW급 데이터센터 25곳을 한곳에 모아 총 1GW 규모의 ‘데이터센터 파크’를 조성할 계획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이 영농회사법인으로 참여하는 태양광 집적화단지를 조성해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데이터센터에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해남군 데이터센터팀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해당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 지자체 차원의 지원은 없지만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분산에너지법)’ 시행에 따른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6월14일 시행된 분산에너지법에 따르면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가 가까울 경우 ‘지역별 차등 전기요금’ 적용을 받아 저렴하게 전기를 이용할 수 있고, 내년에 공모가 시작되는 ‘분산에너지 특구’로 지정될 경우 한전을 거치지 않고도 발전사업자와 소비자가 직접 전력을 거래할 수 있어 재생에너지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솔라시도 데이터센터파크 조감도. 전라남도 해남에 2037년까지 데이터센터 25곳을 모을 예정이다.ⓒ보성산업 제공
다만 분산에너지법이 실효성을 갖고 지역에너지 분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 과감한 시장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은 지난해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요금제’ 도입이 산업계의 반발로 현재까지 무기한 유예된 상황을 지적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기업이 전력을 직접 구매할 경우 한전에서 PPA 요금제를 적용받게 되는데, 문제는 해당 요금제가 적용되면 지금보다 더 비싼 전기 요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다고 해도,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혹은 발전원의 수리보수 등에 의해 전기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기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럴 때 기업은 한전을 통해 전기를 공급받아야 한다. 이런 업체를 대상으로 한전은 ‘PPA 전용 요금제’를 신설해 적용하겠다고 했는데 산업용 요금과 비교해 기본요금을 최대 1.5배나 더 높였다. 그러면 어떤 기업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와 계약을 맺겠나? 재생에너지 직접거래 활성화를 한전이 차단한 것과 마찬가지다.” 한전이 판매 독점에 따른 지위를 악용하는 사태를 보완할 제도가 없는 한, 분산에너지법을 시행한다 해도 그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결국 산업계가 반발하면서 한전은 예고된 PPA 요금제를 수정·완화하겠다는 방침만 밝힌 채 현재까지 시행을 무기한 유예 중이다.
조성봉 회장은 정부가 다른 사업자의 진입을 규제하면서 한전의 전력 판매 독점권을 보호해주는 것은 ‘전기가 필요한 곳에 한전이 책임지고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암묵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이 더 이상 전기를 안정적으로 배달(송전)하지 못한다면 한전이 전력 생태계를 독점하는 수직적 구조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제 그 권한을 나누어야 한다. 전력 다소비 시대인 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한 첫 걸음은 한전의 전력 공급 독점 체제를 넘어서서, 다양한 전력 사업자가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할 기회를 줌으로써 소비자들에게 민주적인 ‘전력 선택권’을 보장히는 일이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연구위원은 한전 독점체제의 부작용으로 전기요금이 정치화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소득 역진성이 강한 기존의 ‘전기요금 할인’으로 ‘선심성 복지 정책’을 반복하는 대신 대신 탄소중립 시대에 걸맞게 효율성을 높인 ‘에너지 복지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AI 기술 발전과 데이터센터 수요 폭증은 글로벌 경쟁의 문법을 바꿨다.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깨끗한 에너지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시대다. 에너지 패권 시대에 접어드는 지금, 기후위기 대응에 걸맞은 전력 확보를 위한 국가 전략이 필요한 때다.
시사인 김다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