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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파리를 닮지 못하면, 올림픽의 미래는 없다 13. 기후 변화로 고생하는 요즘, 이런 사람이 환경부 장관 후보 14. 가덕신공항 공사 ‘쥐꼬리’ 참여… “지역 업체 비중 대폭 늘려야” 15. 부산지역 기후변화 리스크 경고등 “항만물류업 최대 1조9000억 손실” 16. 백조의 호수' 낙동강하구, 운명의 기로에 ...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의 지성과 양심을 믿겠다.“
17. 지구 종말 앞당기는 기술 발전 18. 마린시티 수중 방파제 건립 확정… 시민단체 반대 19. 비가 그친 이후 시작될 것들20. 주류 언론들, ‘체코원전=잭팟’ 정말 맞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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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의 외침 "귀신아 물렀거라!"
남산 정상에 '금줄' 친 이유... '지속가능'이란 말로 포장된 서울 남산 곤돌라 설치사업
▲ 완성된 금줄 앞에서 퍼포먼스 참여자들이 "곤돌라 귀신아 물렀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성수
지난 20일 낮 12시. 서울 남산 정상부 나무에 '금줄'이 둘러졌다. 짚으로 꼰 새끼줄 사이사이 끼운 하얀 한지 조각들이 7월 장맛 바람에 휘날렸다. 예로부터 금줄은 해로운 것을 금하고 부정을 막기 위해 문이나 신성한 대상물에 쳤다. 이 금줄이 왜 서울 한복판, 남산 정상에 드리워졌을까.
남산에 금줄을 치기까지
지난해 6월 서울시는 "남산 생태계를 보존하고 남산을 이용하는 시민의 편의도 증진하겠다"며 "생태와 여가가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남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라고 알렸다.
조화' '지속 가능' 같은 좋은 말로 포장된 남산 프로젝트의 실상은 곤돌라와 스카이 워크 등 대규모 여가 시설의 신규 설치다. 건설 및 운영 과정에서 식생 훼손, 소음, 진동, 빛 공해 등 생태경관 보전지역 생태계 훼손이 불가피한 난개발 사업인 것이다.
시간당 1600명~2000명을 실어 나를 수 있다는 남산 곤돌라, 늘어난 관광객을 감당하기 위한 편의시설 설치와 샛길 증가 역시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사업의 타당성과 환경 영향이 논란이 되자 서울시는 지난 5월 '남산공원 보전 및 이용에 관한 조례'를 공포하며 "남산 곤돌라 운영 수익 전액을 남산 생태환경 보전 사업 등에 활용하겠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조례인 '서울특별시 도시재생기금 설치 및 운용에 관한 조례' 제7조에 따르면 곤돌라 수익금은 '생태환경 보전 사업' 뿐만 아니라 '여가 공간 조성 사업'에도 사용할 수 있다. 남산 곤돌라 수익금으로 남산에 관광 여가시설을 지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서울시는 '지속 가능한 남산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1년이 넘도록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개최한 적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곤돌라 사업에 유리한 일방적 설문조사, 녹색서울시민위원회 심의 패싱 논란 등 거버넌스 부재가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음에도 엄청난 속도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는 다가오는 11월, 곤돌라 건설 공사를 강행할 예정이다. 남산 곤돌라 설계안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는 봤어, 너의 아름다움을
▲ 남산 곤돌라 상부 승강장 예정지에 위치한 느티나무에 금줄이 둘러져 있다.ⓒ 사회적기업(주)시소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되면 벌목될 오래된 나무를 지키기 위해서 서울환경연합과 남산의 친구들 20여 명이 20일 남산 정상 팔각광장에서 '남산 곤돌라' 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남산의 친구들은 서울환경연합이 지난 3월 결성한 남산을 아끼는 시민의 자발적 모임이다.
남산의 친구들은 한지 조각에 곤돌라 건설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적고 이를 새끼줄 사이에 끼워 금줄 60m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곤돌라 상부 승강장 예정지에 위치한 느티나무와 쉬나무 줄기에 휘감아 둘렀다.
이날 퍼포먼스에는 사회적기업(주)시소의 아보리스트(수목관리 전문가) 4인도 함께했다. 전문 자격증을 보유한 이들은 생태경관보전지역 내 곤돌라 경로에 위치한 수령 100년 이상 음나무에 밧줄을 타고 올랐고, 가지 높은 곳에 금줄을 둘러 맸다.
이날 음나무 오른 (주)시소 김명은 아보리스트는 "나무 꼭대기에서 본 음나무는 건강한 생명 그 자체였다"며 "나무는 멀리서 보면 여러 그루 중 하나로 보이지만 나무 위에 올라가서 보면 사람처럼 각각의 생명으로 다가온다. 곤돌라 개발로 얻을 편리함과 돈을 이유로 생명을 잘라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날 퍼포먼스를 진행한 최영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팀장은 "이 금줄에는 곤돌라를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탐욕으로부터 남산을 지켜달라는 친구들의 걱정과 애정이 담겨 있다"며 "순환버스 체계가 편리하게 작동하고 있는 남산에 2개의 케이블카가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남산 곤돌라 상부승강장 예정지에 위치한 쉬나무에 금줄이 둘러져 있다. 금줄에는 "나는 봤어, 아름다움을"이라고 적혀있다.ⓒ 서울환경연합
"나는 봤어, 너의 아름다움을."
남산의 친구들이 염원을 담아 써 내려간 메시지 중 하나이자 이들이 남산에 금줄을 매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남산의 친구들은 지난 3월부터 매월 모여 남산에 살아가는 양서류, 파충류, 곤충, 조류, 수령이 오래된 '어머니 나무', 지의류 등을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단지 관광지로만 여겼던 남산에 수많은 생명이 살아가고 있었음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 것이다. 그 아름다움을 보고야 만 것이다.
우리 민속 신앙에 따르면 금줄을 함부로 제거하거나 침범하면 동티가 난다. 동티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서 일어나는 재앙을 뜻하는 말이다.
기후위기가 초래한 재난을 얼마나 더 많이 겪어야 우리 인간이 더 이상 자연의 신성한 경계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남산의 친구들이 매단 금줄이 서울시의 성급한 행정을 잠시라도 멈추어 주길 바라며 외친다.
"남산 곤돌라 귀신아 물렀거라!"
완성된 금줄 앞에서 퍼포먼스 참여자들이 "곤돌라 귀신아 물렀거라!"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환경운동연합(seoulkfem) 오마이뉴스
지구종말용 밀키트?…‘유통기한 25년’ 비상식량 내놓은 미국 마트
110끼니와 음료 묶음 11만원…건조형태 물 부어 완성
미 코스트코, 11만원짜리 36개 묶어 대용량 347만원
미국 대형마트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유통기한 25년짜리 비상 식량 키트 36개들이. 가격은 347만원. 코스트코 누리집 갈무리
미국 대형마트에서 출시한 유통기한 25년짜리 비상식량 키트가 ‘지구 종말용 식사 키트’ 등의 별명을 얻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18일(현지시각) 미국 엔비시(NBC) 방송과 영국 가디언 등 보도를 보면, 미국 코스트코는 최근 ‘150인용 비상식량 키트’를 미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무게만 6.5㎏에 달하는 상품의 가격은 79.99달러(약 11만원)으로 아침식사 30끼, 주요리와 사이드 메뉴 80끼, 음료 40개를 포함하고 있다. 메뉴는 데리야키 덮밥, 크림 파스타, 치즈 마카로니, 흰쌀밥, 사과 시나몬 시리얼, 바나나 푸딩, 오렌지주스 등으로 다양하다. 재료는 모두 건조된 형태로 물만 부으면 된다고 한다.
미국 대형마트 코스트코에서 판매 중인 유통기한 25년짜리 비상 식량 키트. 코스트코 누리집 갈무리
코스트코는 상품 설명에서 “단순한 식품을 넘어 불확실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도와주는 상품”이라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상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비상사태 대비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고 밝혔다. 특히 ‘최대 25년’이라는 유통기한을 강조하며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닌, 장기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코스트코는 해당 키트를 비축할 수 있도록 36개를 묶어 대용량으로도 판매하고 있다. 이 경우 가격은 2499달러(약 347만원)로 아침식사 1080끼, 주요리와 사이드 메뉴 2880끼, 음료 1440개를 포함한다.
해당 상품 판매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일부 누리꾼들은 ‘최후의 날 밀키트’(doomsday kit), ‘지구 종말용 식사 키트’(apocalypse dinner kit) 등의 별명을 지어줬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해당 상품 구매 후기를 보면 “후기를 남기고 싶지만 내가 이 상품을 사용하게 될 때는 아마도 코스트코는 물론이고 어떤 사회기반시설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총 3개를 구입했는데 25년 안에 이 상품을 쓰지 않고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등 재치 섞인 글도 있다.
엔비시는 “이상 기후의 위협이 커지고 예측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증가하면서 생존을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구원을 줄 수도 있는’ 해당 상품을 찾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폭우로 긴급대피명령... 뉴스에선 왜 서울만 나올까요
장맛비 피해는 전국적으로 심각한데... 교통도, 병원도 서울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비 피해 없으세요?"
지난 한 주간 만난 사람들의 인사는 며칠간 쏟아진 폭우로부터 안전했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비 피해가 없었지만, 지인들의 일터나 집, 논밭엔 흔적이 남아있었다. 충남에 위치한 우리 마을만 해도 좀 더 자라야 했을 옥수수가 거센 비바람을 못 이기고 밭마다 바닥으로 고부라져 있었다. 농부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고추밭이며 옥수수며, 땅바닥으로 고개를 떨군 작물들을 일으켜 세우기 바빴다.
▲ 물에 잠겨 회색빛이 된 방울토마토 전북 익산에 폭우가 내린 9일, 익산시 망성면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재배 중인 방울토마토가 회색빛을 띠고 있다.ⓒ 연합뉴스
시내로 나가는 길, 보이는 밭마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곧게 서있던 작물들이 붕대라도 감은 듯 막대를 박고 끈을 칭칭 감아 작물의 몸을 추켜세워 놓았다. 마을 어르신 한 분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아이들 먹이라며 커다란 봉지를 들이미신다. 열어보니 폭우 때문에 이르게 거둔 옥수수 몇 십 개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길래 장맛비에도 잘 버텨주던 농작물이 다 휘청거릴까. 지난 10일, 전북·충남권에 1시간 동안 100mm가 넘는 양의 비가 하늘이 찢어진 듯 퍼부어 내렸다. 기상청이 "200년에 한 번 나타날 수준의 강수 강도였다"라고 설명할 정도로 내린 비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이 200년에 한 번 나타날 강수에 대전 서구 용촌동은 마을 전체가 잠겼다. 폭우로 둑이 무너지면서 마을이 침수돼 27 가구, 36명 넘는 주민들이 한순간에 이재민이 되었다.
지방에는 이렇게 비가 퍼붓는 동안 서울 날씨는 어땠을까. 비 한 방울 보기 힘들었다. 서울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이 폭우에 6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지만, 뉴스에서는 지방에서 일어난 비 피해 소식을 스쳐 지나가듯 전한 게 전부였다.
18일인 어제, 충남 당진에는 시간당 80mm에 이르는 폭우가 내려 하천 수위가 범람하기 직전까지 차올랐고, 인근 어시장이 모두 침수되었다. 범람할 우려가 높아 하천변 인근 주민에게 긴급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또 충남 서산시 운산면에서는 산사태로 매몰됐던 80대 할머니 한 명이, 대산읍에서도 침수된 주택에서 주민 2명이 구조되었지만 이 소식을 전한 공중파 영상 뉴스는 KBS 단 한 곳뿐이었다.
모든 게 서울 중심
▲ 한순간에 섬이 되어버린 마을 지난 10일 새벽 강한 비가 쏟아져 마을 입구 도로가 모두 물에 잠긴 대전 서구 용촌동 정뱅이 마을에서 소방대원들이 주민들을 고무보트에 실어 나르는 모습.ⓒ 연합뉴스
딱 1년 전의 일이다. 폭우가 내린 서울 강남역과 사당역 인근에서 배수되지 못한 빗물이 역류하면서 일부 도로가 물에 잠겼다. 성인 발목 높이까지 차오른 빗물은 서울 시민들에게 불편함과 불안감을 가져왔다. 강남역 부근의 이런 물난리는 작년에만 일어난 일이 아닌 것도 안다. 그런데 강남역에서 170km나 떨어져 있는 곳에 사는 내가 그곳의 물난리를 어떻게 알고 있을까.
장마철이 되면 강남역이나 서울 곳곳의 물난리가 특집 보도 돼 듯 방송사마다 다루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도 SNS에서도 온통 강남역 물난리에 대한 소식을 전하기에 지방에 사는 나 또한 그곳에서 직접 물난리를 경험한 기분이 들 정도다.
미국 사는 지인도, 다른 지역의 비 피해 소식은 몰라도 강남 물난리 소식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시청자 모두가 서울에만 사는 듯 뉴스가 서울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과거 서울과 지방의 폭우 피해에 대해 보도된 양의 차이는 엄청났다. 한 언론이 비교한 바에 따르면 2022년 8월 수도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전국지 기준 보도 기사 수가 6758개, 2024년 7월 충청권에 폭우가 내렸을 때 전국지 기준 보도 기사 수가 1916개였다.
폭우로 인한 똑같은 재난이고, 똑같이 겪은 아픔이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소식은 내 집 앞에 일어난 일처럼 전 국민이 접하는 반면, 지방의 소식은 짤따랗게 잘린 나무토막처럼 전해지는 것 같다.
이런 걸 서울에 살 때는 잘 몰랐다.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이니 모든 게 익숙했을 테고, 어쩌면 그래서 당연한 듯 지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방에 내려와 지내보니 전 국민이 서울에 살고 있지는 않음을 체감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수술을 하려면 서울의 큰 병원을 찾는 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어린이 병원이 취약한 지방은 아이들 응급상황이 생기면 더 큰 도시를 찾아가야 한다.
말로는 지역 균형을 외치지만
▲ 물폭탄 쏟아진 경기북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서 소방대원들이 침수된 공장에 고립된 근로자를 구조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루는 서울에서 손님이 왔다. 충남 우리 집에 머문 후 대중교통을 이용해 평창으로 갈 예정이었는데, 평창으로 바로 가는 고속버스나 기차는 한 대도 없었다. 손님은 서울로 다시 올라가 동서울터미널에서 평창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방과 지방 사이의 연결 고리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부분의 길은 서울에서 가는 게 가장 빨랐다.
가락농수산물시장만 봐도 그렇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은 소비자를 만나기 전 서울에 위치한 이 시장으로 모였다가 중간 유통과정을 거친 후 다시 지방으로 흩어진다. 지인인 화물기사의 말에 의하면, 필요에 따라 가락농수산물시장으로 올라온 과일을 대구나 부산 등 먼 거리까지 운송하는 일들도 있다고 한다.
왜 지방에서 생산한 먹거리가 굳이 서울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퍼져야 할까. 이 방법이 최선인 걸까. 어쩌면 모든 길은 서울에서 가는 게 가장 빠르기에 이런 방식이 선택된 건 아닐까 싶다.
병원, 대중교통, 먹거리. 사소하거나 일상에서 익숙했던 일들에서도 모든 게 서울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게 보인다. 이미 지역 균형은 무너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정치권에서는 국토균형발전을 이야기하지만, 지난 2월 한 정치인은 "목련 피는 봄이 오면 김포는 서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김포의 서울 편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어쩌면 모두가 서울 시민이기를 강요당하는 요즘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책적으로는 전국이 균등하게 발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인구 집중을 비롯한 경제, 교육, 문화 등 거의 모든 것들에서 지방은 결국 열외가 되는 느낌이다.
자녀들이 자랄수록 때마다 경험해야 할, 경험시켜주고 싶은 것들이 점점 생겨난다. 하지만 자녀들과 관람하고 싶은 전시나 공연, 놀이시설만 해도 결국 수도권으로 진입해야 해결되는 일들이 허다하다. 공연 관람을 위해 서울을 간다 해도 오가는 시간만 왕복 5시간 정도가 걸린다.
우리 마을에 또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를 검색하니 서울에도 비가 온단다. 과연 이번 비는 어느 지역을 얼마나 할퀴고 지나갈지, 그리고 뉴스는 어느 지역의 상처를 얼마나 보도할지 궁금하다.
오마이뉴스 이지혜(charmjota)
381억 들여 정동진 백사장 복원해놓고, 그 위에 주차장을?
'엇박자 행정' 지적 목소리... 강릉시 "어촌뉴딜300사업과 바다부채길 연장의 일환“
▲ 정동진 모래해변 위에 설치된 주차장(2024/7/18)
"저게 뭐죠! 저렇게 하기 위해 381억 원이라는 예산을 들여 공사를 한 것입니까?"
하얀 백사장 위에 콘크리트 주차장이 건설된 것을 보고 해안전문가가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공사를 마친 현장은 주차안내 현수막만 걸린 채 영혼없이 서 있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정동진 해변 이야기다.
지난 18일, 드넓게 펼쳐진 백사장 위에 하얀 콘크리트 구조물이 해수욕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양수산부(아래 해수부)에서 연안정비사업이 잘 되어 아름다운 해변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홍보하는 바로 그 곳이다.
정동진 해변은 매년 겨울철 너울성 고파랑으로 인한 백사장 침식과 레일바이크 철로 유실 피해를 입어 임시복구를 반복했던 곳이다.
381억 투입해 연안정비사업 해놓고...
▲ 높은 파도로 해변이 침식돼 레일바이크 철로 등이 반복적으로 유실된 지역. (2020/11/30)▲ 연안침식지역 겨울철 고파랑 내습으로 인해 백사장 유실이 반복되던 해변. (2020/12/25)
이에 따라 해수부는 2018년부터 381억 원을 투입, 해안침식을 막기 위한 수중 방파제(잠제) 3기와 모래가 바다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 돌제를 설치하고 모래를 보충하는 등 연안침식에 대응한 연안정비사업에 들어갔고 지난 5일 준공했다.
그 결과 정동진역을 기점으로 북쪽 해변은 침식이 되었지만 남쪽 해변은 백사장 폭이 늘어나 침식되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 해안침식을 막기 위해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다. (2022/9/25)ⓒ 진재중 ▲ 정동진 해변 연안정비사업을 준공한 해변, 정동진역을 기점으로 북쪽은 침식, 남쪽은 퇴적된 것을 볼 수가 있다. (2024/7/18)
문제는 강릉시가 모래가 복원된 해변 위에 승용차 74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을 건설했단 점이다.
해안 경관 분야 전문가인 A 박사는 "연안정비 사업으로 어렵게 복원된 모래사장이 콘크리트로 덮이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라며 "주차장도 조성하는 방식이 다양할 텐데 자연친화적인 공법으로 설계할 수는 없었나"라고 아쉬워 했다.
항만 전문가 "중앙정부-지자체 따로 따로 예산 낭비"
정동진은 관광객들이 차량을 주차할 때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해변이다. 정동진에는 역 주차장과 공영 주차장이 잘 조성되어 있다. 관광 성수기임에도 18일 찾은 공원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더구나 새로 조성된 주차장과 공원 주차장은 100여m 거리에 있다. 공원 주차장에서 아치형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바로 해변이 나온다.
정동진 바닷가가 좋아서 온다는 김민수(57)씨는 "이 주차장 바로 앞이 바닷가인데 모래 위에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바다모래가 관광자원인데 어떻게 그 소중한 자원을 묻어 버리고 시멘트를 덮어 주차장을 만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라며 혀를 찬다.
주민들은 지자체 공무원들의 안일함과 편의를 위해 주차장과 시설물 설치를 요구하는 일부 상인들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정동진 1리 어촌계장 정상록(80)씨는 "주민들이 해안침식을 막아 달라고 외치며 난리를 치던 게 엊그제인데 모래가 복원되고 나니까 그곳에 주차장 건설을 요구하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한숨을 쉬었다.
▲ 정동진 해상 전망대 공사. (2023/12/6)ⓒ 진재중
중앙정부에서는 해안침식을 막기 위한 연안정비사업을, 자치단체에서는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물을 설치하는 엇박자 행정이 예산만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항만 전문가 B씨는 "이곳에 주차장을 만들 계획이었으면 사업 초기에 계획을 세워 이중으로 예산이 낭비되는 것을 막았어야 한다"라며 "중앙정부에서 연안침식 방지를 위한 예산을 들이고 자치단체에서 관광객 편의를 위해 주차장을 건설한다는 것은 중앙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 중복 예산을 집행,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강릉시 해양수산과 담당자는 19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해당 주차장 건설에 시 자체예산 5억 5000만 원이 들었다며 "공유수면점용허가와 행정이용협의를 거쳐 어촌뉴딜300사업과 바다부채길 연장의 일환으로 실행"했다고 밝혔다. 또 "여행객과 주민편의를 위한 공공시설로" 보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 정동진 해변 길게 펼진 백사장과 확 트인 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고운 모래와 비취빛 해변은 정동진이 자랑하는 자산이다.ⓒ 진재중
한편 관광객의 편의와 볼거리 제공을 위해 설치한 시설물들이 오히려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드라마 <모래시계> 방영 이후 매년 오고 있다는 관광객 임형일(72)씨는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떨쳤던 과거의 정동진이 아니다"라면서 "과거에는 소나무 한 그루에서 소중한 추억을 담고 바다 모래 위에서 꿈을 담아 갔는데 지금은 각종 조형물, 시설물들이 정동진의 이미지를 흐리게 하고 있어 안타깝다"라고 인공 시설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다른 관광객 김민기(64)씨는 "왜 바다 조망을 망치나. 바다는 강릉시민의 것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들이 같이 공유해야 할 자산"이라며 "저런 시설을 하는 것은 소중한 우리 국토를 망가트리는 행위다"라고 지적했다.
<모래시계>로 유명세를 떨친 정동진은 바닷모래가 자원이다. 배 몇 대를 정박하기 위해 조약돌을 묻어버린 심곡항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길게 펼쳐진 백사장과 확트인 바다가 한눈에 조망되는 해변 위에 건축물을 세우는 등 인공 행위를 하는 것은 정동진의 자산을 시멘트 속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
모처럼 연안정비사업이 잘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정동진 해변이 강릉시의 주차장 건설로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24.07.21 10:00l최종 업데이트 24.07.21 10:32l진재중(wlswownd)
기후재정기금 10억 달러 두고 '면죄부' '그린워싱' 비판 일어
아제르바이잔, COP29 앞두고 기후재정기금 조성 나서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매년 연말쯤엔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열린다. 올해는 29번째다. 벌써 29년이 흘렀다는 거다. 수십 년 동안 COP 총회를 열면서 여러 나라들이 기후변화가 심각하고 대응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문제는 기금이다. 2023년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COP28에서 ‘손실과 피해’ 기금 마련에 국제사회가 합의한 바 있다. ‘손실과 피해’ 기금은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변화를 초래한 유럽과 미국 등이 개발도상국 등 피해국에 어느 정도 기금을 조성해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후변화에 큰 책임이 있는 미국의 경우 1750만 달러를 내놓는 데 그쳤다. 아랍에미리트와 독일은 각각 1억 달러 기금을 약속했고 영국은 약 7600만 달러, 일본은 1000만 달러를 약속했다. 유럽연합(EU)은 최소 2억4500만 달러를 기부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럽의 석탄화력발전소. [사진=AP/뉴시스]
‘손실과 피해’ 부분에 국제적 합의가 있었음에도 기금을 내놓는 데는 인색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원인은 간단하다.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아제르바이잔에서 11월 COP29가 열린다. 총회를 앞두고 주최국인 아제르바이잔은 기후변화에 책임있는 국가와 석유, 가스업체 등을 대상으로 약 10억 달러 기금 조성에 나섰다. 아제르바이잔은 COP29 총회를 앞두고 ‘기후 재정 행동 기금’을 정부 차원에서 설치하고 있다.
기후 재정 행동 기금(Climate Finance Action Fund)은 화석 연료 생산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재정적 기부를 받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 극한 기후 영향에 대한 회복력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발도상국의 프로젝트에 투자한다.
얄친(Yalchin Rafiyev) COP29 회장단의 수석 협상가는 영국 매체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그동안의 (기후 재정 행동 기금) 방법은 기후위기 과제에 부적절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며 “우리는 다른 접근 방식을 결정했고 이번 기금을 화석 연료를 많이 사용했던 국가와 기업의 기부로 자본화될 것이며 민간 부문을 촉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얄친 협상가는 기금에 대한 기부는 자발적일 것이라고 전제했다.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국가와 기업에 기금을 내라고 강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종의 ‘면죄부’와 ‘그린워싱’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그동안 기후변화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화석연료 업체와 국가가 10억 달러 ‘그린워싱(Greenwashing, 위장환경주의)’으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성이 없을뿐더러 10억 달러는 그동안 화석 연료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업체와 이를 통해 선진국 대열에 오른 국가에 터무니없는 액수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터커(Bronwen Tucker) 오일체인지인터내셔널(Oil Change International)의 공공 재정 책임자는 “(기부를 통한 10억 달러 기금 조성은) 화석 연료에 대한 단계적 폐지를 보장해야 하는 강력한 새로운 기후 재정 목표와 국가 계획을 방해하는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10억 달러 기금’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으로 ‘면죄부’를 줘서는 안 되며 강력한 제재가 뒤따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싱(Harjeet Singh)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 이니셔티브(Fossil Fuel Non-Proliferation Treaty Initiative)의 글로벌 참여 책임자는 “(그동안) 화석연료 산업으로 기후위기가 발생했고 전환과 기후 피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번 기금을 자본화하기 위해 최소 10개 국가와 대기업으로부터 최소 10억 달러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터커 공공재정 책임자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이들에 대해 10억 달러의 자발적 기금이 아니라 수조 달러 규모의 기후 범죄에 대한 비용을 지불케 해야 할 것”이라며 “화석 연료 관련 기업은 그동안 여러 기후변화 대응과 적응 등 솔루션을 의도적으로 차단하고 지연, 훼손해 왔다”고 지적했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
음식물쓰레기 버린 뒤 벌어지는 일... 결과가 충격적
처리방법별 메탄 발생량 살펴보니... 매립, 퇴비화 등 메탄 많이 배출
▲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음식물쓰레기 처리방법별 메탄 발생량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unsplash
메탄은 온실가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에 달하는 치명적인 온실가스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음식물쓰레기 처리방법별 메탄 발생량을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퇴비화, 사료화, 바이오가스화, 소각, 매립 중 어떤 방법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메탄가스가 나오는지 살펴봤는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가장 친환경적인 처리방법으로 평가되던 음식물 쓰레기 '퇴비화' 방법에서 가장 많은 양의 메탄가스가 배출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퇴비화는 음식물류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지만, 부분적인 혐기성조건으로 인해 퇴비화 처리 방법 역시 메탄을 발생시킨다. 본 연구는 퇴비화에서 2022년도에 메탄이 5718톤/년 배출됐을 것으로 추정했으며, 이는 4가지 처리 방법에 따른 총 메탄배출량(1만674톤/년)의 59%에 해당한다.' (기후솔루션 보고서, 2024.7)
17일 <기후솔루션>이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기술연구소 김도완 교수와 함께 발표한 '묻어도 새어 나오는 메탄, 음식물쓰레기: 음식물폐기물 처리 방법별 메탄배출계수 및 메탄회수계수 산정 결과를 중심으로'보고서의 일부 내용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메탄가스 배출량을 100%로 잡았을 때 퇴비화가 전체의 54%로 가장 많았고 매립 39%, 바이오가스화 7%, 소각과 사료화는 0%를 기록했다(사료화의 경우 IPCC(기후변화 정부간협의체)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으로 IPCC는 음식물 쓰레기 사료화의 경우 이론적으로 메탄이 배출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할 때 나오는 메탄가스
▲ 음식물쓰레기 처리방법별 처리량과 메탄 배출량 모식도 (출처 : 기후솔루션 보고서) 출처 : '묻어도 새어 나오는 메탄, 음식물쓰레기 - 음식물류폐기물 처리 방법별 메탄배출계수 및 메탄회수계수 산정 결과를 중심으로' (기후솔루션, 2024.7)ⓒ 기후솔루션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할 때 메탄가스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원리는 이번 조사에서도 그대로 확인되었다. 음식물 폐기물 1톤당 발생하는 메탄 발생량(kg)을 나타내는 매탄배출계수는 매립이 25.71로 가장 높게 나왔다. 퇴비화가 4.00, 바이오가스화 1.00 순서였으니 음식물 쓰레기 1톤을 매립하면 퇴비화보다 6배, 바이오가스의 25배 이상의 메탄가스가 발생하는 꼴이다.
그럼에도 퇴비화가 가장 많은 메탄가스를 배출하고 있는 현실은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처리하는 양이 매립하는 양보다 7배가량 많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음식물류 폐기물 처리 방법 중 매립을 가장 지양해야 하며, 매립하는 양을 절대적으로 줄여야 한다는 중요성을 다시 확인했다. 연구 결과 음식물류폐기물 매립이 퇴비화 대비 6배, 바이오가스 대비 25배 많은 메탄을 배출한다는 것을 계산했다. 매립지에서 메탄을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포집하지 못하고 대기로 배출되는 메탄(2522톤/년)이 매립에서 나오는 메탄 배출량(4181톤/년)의 6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 보고서, 2024.7)
메탄 배출량 가장 적은 처리방법은 '바이오가스화'
바이오가스란 음식물 쓰레기나 가축 분뇨 같은 유기물이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 분해하면서 발생시키는 메탄과 이산화탄소의 혼합물이다. 이를 공기 중으로 그냥 배출하면 온실가스가 되지만 이를 통해 전력을 생산하면 신재생에너지가 된다. 폐열을 활용해 도시가스처럼 난방에너지로 공급하는 방안도 시도되고 있다.
이번 보고서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바이오가스로 만들 경우 오히려 메탄가스를 회수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순 메탄배출계수'가 음(-)의 값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음식물쓰레기 1톤을 바이오가스로 처리하면 오히려 메탄이 감소한다는 것을 뜻하며, 향후 기술 개발을 통해 최대한 메탄을 회수한다면 현재보다 음식물류폐기물 1톤당 메탄 14.51kg를 더 회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를 통해 메탄이 가장 적게 나오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법은 바이오가스화로 나타났다. 당장 내년부터 공공부문의 바이오가스 생산목표제가 시행되면서 음식물쓰레기를 포함한 유기성폐자원이 바이오가스로 만들어질 기회가 많아질 예정이다. 따라서 바이오가스를 도시가스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등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기후솔루션 이상아 연구원)
그렇다면 소각은?
소각은 당장 수도권 곳곳의 현안이기도 하다. 2026년도부터 수도권매립지의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됨에 따라 소각장 추가 건설이 논의되는 중이고, 실제로 서울특별시의 경우 지난해 '제19차 광역자원회수시설 입지선정위원회'를 통해 마포구에 1000톤 규모의 신규 소각장(광역자원회수시설) 건설을 결정 고시했다. 그리고 실제 이번 보고서에서도 음식물 쓰레기를 소각할 경우 바이오가스화보다 메탄배출계수가 작고 메탄 배출량도 거의 없어서 친환경적인 처리 방법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고서 저자들은 또 다른 고려요인을 지적한다.
'(소각이) 친환경적인 처리 방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산화탄소 및 이산화질소를 포함한 다량의 온실가스와 대기오염물질을 발생시키므로 기후, 환경 및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특히, 생활쓰레기가 담긴 종량제봉투나 하수슬러지 등 염소 성분이 들어간 쓰레기를 소각하면 독성물질로 알려진 염화수소가 발생한다.' (기후솔루션 보고서, 2024.7)
현실적 대안은 바이오 가스 사용처 확대
그동안 음식물 쓰레기의 주요 처리방법으로 활용되어 온 퇴비화의 경우 메탄가스 발생량도 많지만, 무상으로 제공된 뒤 실제 농사에 사용되는 비율 또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공처리시설 기준, 음식물류폐기물을 사료 및 퇴비로 만든 후 실제로 사용한 비율은 50%도 채 되지 않았다. 사료화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사료화된 음식물류폐기물은 37.3%만이 실제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이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는데도 이렇다.
따라서 보고서에서는 경제성도 높이고 메탄 배출도 줄일 수 있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법이 국가적인 전략 수립 아래 체계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필요성을 제안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경제성과 저감효과가 뛰어난 바이오가스화에 대해서는 수요처 확대가 현실적인 과제라고 지적한다.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이오가스촉진법에 따라 당장 내년도부터 공공부문의 바이오가스 생산목표제가 시행된다. 현재 유기성폐자원(음식물류폐기물, 하수슬러지 등 혼합)을 활용해서 만들어진 바이오가스의 미이용률은 약 15%이다. 바이오가스 사용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는 바이오가스를 가스 형태(도시가스, CNG 버스연료 등)로 활용하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바이오가스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대책으로 환경부는 지난 6월, '바이오가스 생산·이용 활성화 전략'을 발표했다. 환경부는 해당 전략에 바이오가스 수요처를 다각화하기 위한 '생산 바이오가스 이용 확대' 계획을 포함했다. 이를 통해 도시가스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바이오가스 생산자가 도시가스와 인근 수소 생산시설 등 수요처로 직접 공급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를 늘리는 것, 바이오가스를 이용한 수소와 청정 메탄올을 생산하는 것 등을 제시한 바 있다. 바이오가스를 수소와 청정 메탄올로 전환할 때 소실되는 에너지 효율과 환경적 영향 등을 파악해야 하는 과제도 남아 있다.' (기후솔루션 보고서, 2024.7)
[인용 자료]- '묻어도 새어 나오는 메탄, 음식물쓰레기 - 음식물류폐기물 처리 방법별 메탄배출계수 및 메탄회수계수 산정 결과를 중심으로' (기후솔루션, 2024.7)
- '"친환경인 줄 알았는데" 음식물쓰레기 처리방법 별 메탄배출량 뜯어보니… 54%는 퇴비화 된 쓰레기에서 나온다 (기후솔루션 보도자료, 2024.7.17)
노광준(kbsnkj) 오마이뉴스
원전 로비집단의 '그림'과 언론의 '동조'…오염수 은폐의 '흑역사'를 말한다
[후쿠시마오염수 해양투기를 둘러싼 진실]
도쿄신문은 2024년 7월 16일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해양방출 7회째 끝나, 2024년도는 나머지 4회 실시 예정'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도쿄전력에 의하면, 6월 28일에 개시해 약 7,850t을 방출, 삼중수소의 총량은 약 1조3000억Bq(베크렐). 방출 중에 원전 주변 해수에 포함된 삼중수소 농도가 가장 높았던 것은 방출 개시 직후인 28일에 채수한 ℓ당 18Bq. 최고치는 5월 3일에 검출된 29Bq. 모두 방출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이다. 해양방출 처분은 지난해 8월에 개시해, 지난해는 4회, 올해는 3회 실시했다. 다음번은 7월중이나 8월에 방출을 예정하고 있다. 금년도는 나머지 4회 실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도쿄신문은 지난 6월 28일 '후쿠시마 제1원전 처리수, 풍문(소문)피해 배상은 120건 180억엔…7번째 해양방출 시작'이라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투기가 시작된 지 이제 1년이 다 돼 간다. 그런데 일본 언론은 물론 국내 언론도 오염수 해양투기의 문제점에 대한 기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느새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이야기한 '기준치 이하이기에 안전하다'는 안전신화가 먹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해양투기 전후로 국내외 언론보도 중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각종 은폐 사례가 드러난 것 사례를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 탱크에 보관중인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가운데 일본 정부의 방출 기준을 충족하는 것은 27% 미만에 그치고, 70% 이상이 방출 기준을 넘는다(마이니치신문, 2020년 9월 20일).
- 야마조에 타쿠 일본 공산당 참의원은 ALPS(다핵종제거설비)가 제대로 된 시운전도 거치지 않고 8년간 미검증 상태로 운용되었다고 주장했다(2021년 4월 14일, https://www.youtube.com/watch?v=xRABrxHCCzw)
- 2023년 6월 1일, 일본 국회의 '원전제로 의원모임'이 도쿄전력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아베 도모코 입헌민주당 중의원이 "교반 설비가 없어서 지금처럼 섞지 않고 있고 그러면 정작 방출할 때 결과적으로 다른 결과값이 나오리라 충분히 생각할 수 있지 않나" 등을 지적했다. 이에 도쿄전력 관계자 스즈키는 "교반은 하지 않았습니다. 탱크 뚜껑을 열고, 샘플링 기계 등을 집어넣어 채취하고 있습니다. 방출 시 그럴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죠. 전혀 없다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등을 답했다(JTBC, 2023년 6월 6일).
- '처리수 방출 묵인 IAEA는 정말 중립인가-일본은 거액분담금, 전력업계도 인력 파견’이란 제목 하에 일본 외무성의 2020년도 IAEA 분담금만 약 63억 엔으로 전체 분담률의 10%를 넘어 ‘회원국 중 2위’이며 일본 원자력규제청, 경제산업성, 환경성이 별도로 8억4000만 엔을 갹출해 IAEA에 돈을 냈다. 원자력규제청은 IAEA에 직원 9명을 파견할 전망이다. 일본의 후쿠시마원전 이재민 단체인 ‘원자력발전 사고피해자 상생의 모임’ 구니부 도미오 대표는 “IAEA는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으면서 중립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는가”라며 'IAEA의 해양방출계획에 대한 보증서는 ‘원전 추진파에 의한 코미디’라고 비판했다(도쿄신문, 2023년 7월 8일).
- 2023년 8월 23일, 마이니치신문과 아사히신문은 "탱크의 70%에는 방사성물질 농도가 기준치 미만까지 떨어지지 않은 물이 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방류 완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오염수 외에도) 대량의 핵연료 잔해를 반출할 방법은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당장 오염수를 줄여나가도) 오염수를 계속 만들어내는 원전의 완전 폐기를 2051년까지 한다는데, 구체적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고 빗물-지하수의 유입 차단책도 아직 없다" 등을 보도했다(서울신문・SBS, 2023년 8월 23일).
- 2024년 3월 4일, 일본 후쿠시마 주민들이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을 상대로 낸 방류중단 소송 재판이 시작되었다(KBS, 2024년 3월 15일).
- 2024년 3월 10일, 도쿄신문 설문조사 결과 일본인 10명 중 7명은 오염수 방류를 둘러싼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대내외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해양방류 후 수산물 안전성과 관련해서는 51%가 '우려한다', 49%는 '우려하지 않는다'는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연합뉴스, 2024년 3월 10일).
- 2024년 7월, 후쿠시마현이 포함된 도호쿠지역에서 판매되는 야생 산나물 중 3%에서 식품 기준치를 초과하는 세슘이 검출됐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방사선위생학 연구자인 기무라 신조 돗쿄(獨協)의대 교수가 올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도호쿠지역 휴게소, 직판 매장, 시장 등에서 무작위로 구매한 산나물 245건 중 7건에서 기준치(100㏃/kg)를 넘는 세슘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 이와테현 이치노세키시 직판매장에서 판매된 고사리에서는 세슘이 1㎏당 178.8㏃이나 검출됐다. 이외에 산지가 야마가타현으로 표시된 고사리와 미야기현·이와테현·야마가타현에서 채취한 두릅 등에서도 1㎏당 112.3∼142.4㏃의 세슘이 나왔다(연합뉴스, 2024년 7월 5일).
일본의 방사선과학자인 와타나베 에츠지(渡辺悦司), 엔도 준코(遠藤順子) 등이 공동집필한 <오염수 해양방출의 쟁점-삼중수소의 위험성>(료쿠후출판, 2021)은 삼중수소의 위험성이 역사적으로 은폐돼왔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히로시마・나가사키 피폭자의 피해정보를 수집한 당시 미군의 합동조사단 때부터 내부피폭의 은폐 의도가 명백했으며 특히 '삼중수소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수폭(水爆) 개발경쟁 중에 '군사기밀'로 은폐돼왔다는 것이다.
미국은 1940년부터 1970년에 걸쳐 맨하탄계획, 미국원자력위원회 등의 후원 아래 자원봉사자 등을 대상으로 방사선실험을 했는데 그 보고서가 '미국의 핵 모르모트: 미국 시민에 대한 30년에 걸친 방사선실험'이란 제목으로 1986년에 공표됐다. 그 중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1951~52년, 워싱턴주 리치랜드에 있는 제너럴일렉트릭사 및 로스앨러모스연구소에서 14명의 피험자가 아래팔(12명) 또는 복부(2명)에 삼숭수소수증기를 쬐었다. 삼중수소의 흡수량은 소변의 삼중수소를 측정해 추정했는데 '인체에서는 쥐의 4배 속도로 삼중수소를 피부로 흡수하고 있었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삼중수소의 인체 흡수와 배설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1명은 삼중수소수에 팔을 담그고, 또 1명은 마시고, 7명은 삼중수소수증기를 쬐게 했다는 것이다(<인체 내 방사능의 제거기술 거동과 제염의 메커니즘> 방사선의학종합연구소 감수, 아오키 요시로(靑木芳朗)・와타리 가즈오(渡利一夫) 편, 1996).
이들 결과는 미국원자력위원회의 '인체 및 동물에 있어서 삼중수소의 흡수, 분포 및 배설'에 요약돼 있으며 1952년 로스앨러모스연구소 보고 '경구섭취한 삼중수소수의 흡수 및 인체의 수희석량(水希釋量)' 및 '삼중수소수증기를 흡입했을 때 인체에 있어서 삼중수소수의 폐흡수'로 보고됐다는 것이다.
1945년 7월 16년 미국 뉴멕시코주 앨러모가드에서 행해진 인류 최초의 핵실험인 트리니티실험(플루토늄원폭 폭발실험)은 직경 330m, 깊이 3m의 큰 웅덩이를 남겼다. 이 실험 후 주민영향에 대한 내용을 요악하면 이러하다.
'……3개월 후에 군관계자가 현장 인근(Hot Canyon)을 방문했을 때 소・개 등 많은 동물에게 초기에 보였던 화상이나 출혈, 탈모는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흰털이 점점으로 생기는 것이 눈에 띄었다. 방사성미립자가 피부를 통해 침입한 것이 명백했다. 10월……600마리의 축우가 영향을 받았다……부분적인 화상과 일시적인 탈모가 있었다. 소 등 곳곳에 새롭게 생긴 털이 흰털이었기에 축산시장에서의 평가는 매우 안 좋았다. 군과 로스앨러모스연구소가 각각 75마리, 17마리를 구매하고 다른 소는 오크리지연구소로 옮겼다, 로버트 스톤 전 시카고 건강국 부장은 1946년 2월 로스앨러모스연구소를 방문해 이 소들을 보고 '전시(戰時) 중의 실험에서 판단하면 β선에 의한 피폭 영향과 같았다' (The Dragon's Tail~Radiation safety in Manhattan, 1942-1946 4. Trinity).
미국 라스베이거스 북서 약 105km의 네바다사막에 있는 네바다핵실험장의 피해사례이다. 네바다핵실험장은 1951년부터 1992년에 걸쳐 928회의 핵실험이 행해졌는데 그 중 828회가 지하핵실험이며, 약 100회의 대기권 내 핵실험은 1962년까지 행해졌다. 풍하(風下)지역의 주민 피해는 1960년대 중반부터 드러났지만 1978년 네바다주 북부, 유타주 남부 주민 사이에 핵실험의 '죽음의 재'가 원인이 된 백혈병 등 암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사실이 신문 등에 크게 다뤄져 문제가 됐다.
유타주 남부 주민의 이야기는 이렇다. '1953년 봄경, 버섯구름을 보았다. 바로 육군병이 와서 핫스팟에 있으니 도망가라고 말했으나 12,000마리의 양이 있어 피난가지 않았다. 다음해, 그 다음해에 걸쳐 4,500마리의 양이 죽었다. 양의 귀나 코에 흰 반점이 생기고 콧물을 흘리다 나중에 죽었다. 나의 애마도 그랬다……'(도요사키 히로미쓰(豊﨑博光), 『핵의 그림자를 찾아서-비키니에서부터 체르노빌까지』, NTT출판, 1996).
▲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오염수가 방류되기 시작한 모습. ⓒAFP=연합뉴스
마셜제도에서의 수폭실험 사례도 있다. 1952년 11월 1일 미국은 애니웨이트크환초에서 인류 최초의 수폭실험(아이비작전)을 성공했다. 1954년 3월 1일 비키니환초에서의 '캐슬작전 브라보실험' 과정에서 제5후쿠류호 등 일본 참치어선 수백척이 피폭된 사실은 유명하다. 실제 미국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이들 환초에서 67회의 핵실험을 했는데 총폭발위력은 약 108메가톤, 히로시마원폭(약15Kt) 7,200발분에 상당한다. 특히 약 2개월간 6회의 '캐슬작전' 수폭실험으로 마셜제도 주민들은 방사성물질로 인한 다양한 질환이나 선천적인 장애, 유산・사산 등의 피폭피해로 괴로워해왔다. 이 사실은 유엔인권이사회나 클린턴정권 시대의 미국 하원에 의해 마셜제도 주민들에 대한 '방사선 인체실험'이라는 규탄을 받았다.
특기할 사실은 마셜제도 주민들의 피폭피해를 조사하던 미국 조사단이 또 다시 인체실험을 행했다는 것이다. 마셜제도의 가임 연령대 여성 3명에게 방사성 크롬51과 삼중수소수를 주사한 바 방사선피폭과 신진대사에 미치는 영향 조사나 당뇨병 징후와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등의 이유로 방사성요드나 방사성철(鐵), 탄소14 등을 사용한 광범위한 실험을 했다(히로시마평화연구, 제2권 p.21-46, 도요사키 히로미쓰, <캐슬작전과 마셜제도의 사람들>, 2008).
이런 사실은 뭘 의미하는 것일까? 와타나베 에츠지 등은 이렇게 설명한다.
삼중수소원자핵의 괴변(壞變)에 의해 생기는 β입자는 방출에너지가 낮기 때문에 비정거리가 짧다. 따라서 삼중수소의 에너지(평균 5.7keV, 최대 18.6keV)의 비정거리는 약 1μm(평균) 혹은 7μm(최대)이며 비적(飛跡)의 단위길이당 부여되는 에너지량은 상대적으로 크다. 결국 미소( 微小)환경에서 비적의 종단부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후쿠시마원전사고 후 후쿠시마현 나미에(浪江)정 등에서 방목된 소에 흰 반점이 생겼으나 '원인불명'이 된 사실이 있었고 2011년 봄부터 여름에 걸쳐 인간 피부에도 흰 반점 등이 보여 대소동이 일어났다. 인간의 백반의 원인은 특정 화장품의 미백용 성분(로드데놀)이라는 대대적인 언론을 이용한 캠페인이 벌어져 특정 화장품 탓인가 했지만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은 부분의 목이나 팔, 그리고 그 화장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나 남성에게도 백반이 보였고, 산책을 나간 많은 개들의 발 안쪽에도 점점이 화상이 보였으나 제대로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이처럼 모르는 사이에 피폭될 소지가 많고, 특히 '삼중수소에 의한 피폭'은 정보가 은폐된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 학자는 후쿠시마사고 후에 일본의 방사선피폭정보를 장악해 관리하고 있는 것이 국제원자력로비집단, 특히 IAEA라고 지명한다. IAEA가 후쿠시마현이나 후쿠이현와 체결한 각서에는 'IAEA나 현이 한쪽이 요구하면 공유하고 있는 정보를 비공개할 수 있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는데 가령 사고정보나 측정데이터, 소아갑상선암 등에 대해 어느 한 쪽이 '주민의 불안을 일으킨다' 등의 이유로 비밀지정을 하면 그 정보는 공개되지 않게 된다. IAEA는 후쿠시마를 장악해 후쿠시마현 내외에서 생기는 소아갑상선암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물성물리학자이자 전 류큐대학 교수인 야가사키 가쓰마(矢ケ崎克馬)가 쓴 <방사선피폭의 은폐와 과학<(2021)은 히로시마에서부터 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국제원자력 로비집단이 어떻게 방사선피폭을 은폐해왔는가를 묻고 국제원자력 로비집단의 가짜과학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원수폭(原水爆)이나 원전으로 인한 방사선피폭은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부터 체르노빌・후쿠시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피폭방호의 기준을 핵추진 국가나 기업에 유리하게끔 제정해 사실을 은폐하고 시민의 건강을 무시하며 피해를 확대해왔다고 주장한다. 그 추진세력은 IAEA(국제원자력기구), ICRP(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UNSCER(원자방사선영향에 관한 과학위원회), WHO(세계보건기구) 등 일본 국내외의 원자력 로비집단이며 이들은 가짜과학과 가짜과학자를 총동원해 안전신화를 날조해 사람들을 기만해왔다는 것이다.
야가사키 교수는 "핵전략추진자와 방사선피폭관리자가 동일인물이 돼 있다"며 "원자력 로비집단은 성실하게 사실 탐구를 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기만하는 데이터조작을 행한다. 사냥터관리인과 밀엽자가 동일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술로 모두 밀엽자의 시선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 중 이들 원자력 로비집단의 데이터조작사례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체르노빌원전사고가 초래한 지금까지의 인체피해>(핵전쟁방지국제의사회 독일지부, 고도출판, 2012)는 제1장 앞에 ‘노트(Note)’를 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WHO와 IAEA가 공표하는 데이터는 신뢰할 수 없다'. 2005년 9월에 열린 WHO와 IAEA 공동주최의 '유엔 체르노빌포럼'에서 발표된 체르노빌원전사고가 가져온 건강영향에 관한 보고내용에는 심각한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가령 WHO와 IAEA의 공식발표는 가장 피폭선량이 높은 집단에서 장래 암과 백혈병에 의해 최대 4,000명의 초과사상이 발생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의 근거가 된 WHO보고서에는 사망자수는 8930명이라고 기재돼 있다. 실제로 WHO보고서가 인용한 연구논문에는암과 백혈병으로 인한 초과사망수가 1만 명에서 2만5000명이라고 기재돼 있다. WHO와 IAEA는 자신들이 낸 데이터를 속여 발표한 것이 된다. 체르노빌원전사고의 건강영향에 관한 그들의 발표에는 진정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2005년 방사선방호협회 S. 플루거베일(Pflugbeil) 회장도 WHO와 IAEA의 공식발표, WHO의 보고서, 거기에 인용된 문헌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체르노빌포럼, IAEA, WHO는 그들이 발표한 숫자의 2~5배나 암과 백혈병이 장래 발병한다고 하는 과거 그들이 내놓은 추계치를 공표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6년이 경과한 2011년에도 유엔의 어느 기관도 이들 숫자를 정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UNSCER의 최신 체르노빌원전사고의 영향에 관한 출판물에도 피폭 3개국에서 공표되는 수많은 조사연구 데이터는 인용되지 않고 있다. UNSCER은 6,000명의 아동과 사춘기 젊은이가 갑상선암을 일으켰다는 사실, 체르노빌사고 뒤처리에 참여한 인력인 '릭비다토르(Likvidator)'의 백혈병, 백내장에 관해서만 보도기관에 견해를 발표하고 있다.
2011년 UNSCER의 성명은 이러하다. '이 20년간 행해온 여러 연구의 지혜와 전회의 보고서에 기초해 UNSCER은 대부분의 주민은 체르노빌원전사고에 의해 심각한 건강리스크를 받는다는 염려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예외는 어릴 적 또는 젊은 시절에 방사성요드에 피폭된 사람과 고농도 방사선에 피폭돼 커다란 건강리스크를 안게 된 릭비다토르이다'라는 것이다.
WHO와 IAEA의 이론적 지주가 되고 있는 UNSCER에 대해서 방사선생물학자인 키스 베이버스토크(Keith Baverstock) 박사는 "UNSCER은 과학의 전일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압도적인 위원이 이익상반행위를 하기 때문이며 UNSCER에 전문가를 파견하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원자력을 추진・이용하고 있는 나라로 소위 밀엽자와 사냥터지킴이가 동일인물이라는 형국이다"(키스 베이버스토크: 후쿠시마원전사고에 관한 ‘UNSCER 2013년 보고서’에 대한 비판적 검증, 과학1175, 2014)라고 단언한다. 이 위원회가 국제원자력 로비집단의 이론적 지주이라는 사실을 갈파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민간단체인 ICRP는 원전추진기업 및 기관의 기금으로 전면적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이 또한 전형적인 밀엽자와 샤냥터지킴이가 동일인물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야가사키 교수는 또한 방사선피폭의 위험성은 정치권력에 의해 사실이 왜곡돼 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방사선피폭에 관한 역사는 권력지배에 의한 허위와 기만의 역사라며 원폭투하 직후 미 점령군 장성의 원폭피해에 대한 발언이 그 뒤 미국의 피폭관리의 기본이 됐다고 소개했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을 취재하러 온 신문기자가 미・영국 언론에 히로시마와 관련해 '전혀 상처를 입지 않았던 사람이 하루 100명 비율로 죽어가고 있다' 는 보도를 했다. 이에 9월 6일 맨하탄계획 부관인 파렐준장이 도쿄에 와서 '히로시마・나가사키에서는 죽을 사람은 죽었고, 9월 상순 현재 원폭방사능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은 전무하다'고 발언했다. 그 뒤 점령군 등에 의해 파렐 발언에 따른 '조사' '처리'가 행해져 이것이 '공식견해'가 됐다는 것이다. 그 뒤 1968년 미일 양국 정부가 유엔에 공동체출한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의 의학적 피해보고에도 '원폭피해자는 죽을 사람은 모두 사망했고 현재 환자는 한명도 없다'고 씌어졌다고 한다. 게다가 1975년 말 원수폭금지운동 대표로 제1회 유엔요청단(대표 히다 슌타로, 肥田俊太郞)이 유엔에 요청서를 제출하려 했을 때에 위 보고서를 이유로 유엔 사무총장이 그것을 수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보고되고 있다. 그 뒤 전 세계의 인도적인 목소리가 터져 나와 유엔핵무기금지조약이 압도적 다수로 채택되기에 이르자 '핵무기는 인도주의에 반하는 금지해야 할 무기'로 규정됐다는 것이다.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자 부산해운대해수욕장에서 환경운동연합과 부산고리2호기 수명연장·핵폐기장 반대 범시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원전오염수를 뜻하는 대형 노란색 비닐을 활용해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고(故) 아베 총리의 도쿄올림픽 유치결정 후의 기자회견 발언 중 원전사고와 관련해 '건강에 대한 문제는 지금까지도 현재도 앞으로도 전혀 없다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특히 완전히 문제없도록 하는 근본해결을 향한 프로그램을 이미 정부는 결정해 착수하고 있다. 제가 책임을 갖고 실행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는데 그것이 그 뒤 후쿠시마원전방사능과 건강피해처리의 대기본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야가사키 교수는 이처럼 독립국이어야 할 일본에서 미군 점령하의 일본에서와 같은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일본이 입헌민주주의 국가인지 '사실과 도리가 지켜지는 사회'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대하는 사회'가 실현될지 하는 문제가 일본 시민 전원의 과제로서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야가사키 교수는 또한 후쿠시마피폭의 경우 체르노빌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던 후쿠시마 특유의 피해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체르노빌 주변이라면 '이주의무'가 된 5mSv/년 이상의 오염지역에 일본에서는 100만 명 이상의 주민이 살면서 생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르노빌에서는 연간 1mSv이상에 해당하면 정부가 '이곳은 위험합니다. 이주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으면 정부가 지원을 해드립니다'라고 하고, 5mSv 이상에서는 '여기서는 살거나 생산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주는 정부가 책임을 집니다'라며 방사선방호의 기본선을 따라 끝까지 주민보호를 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사고 후 5년에 '피난지시구역' 축소가 시작돼 '지시구역외피난자'에 대한 준가설주택지원이 2017년 3월로 정지됐다. 법에 따른 주민보호가 계속된 체르노빌에 비해 매우 단기간의 보호중단이다. 게다가 2011년 3월 11일 '원자력긴급사태선언' 이후 연간 1mSv기준이 20배나 느슨한 20mSv로 규제가 행해지고 있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스스로 피폭의 확대재생산 메커니즘을 만들어왔으며 이 수치는 일본 시민 인권 저하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둘째, 체르노빌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고(高)오염지역(후쿠시마, 미야기, 도치키, 이바라기, 사이타마현 등)에서의 먹거리 생산 및 유통으로 일본 전토에 내부피폭이 확산하게 됐다. 또한 거주지 주변의 '제염'으로 집적된 대량의 '제염 폐기토'를 정부가 공공사업으로 재이용해 전국으로 확산시켜 줄이려 하다 보니 2차 피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방사성폐기물 기준이 종전의 100Bq/kg이던 것이 8,000Bq/kg로 돼버려 오염토로 인한 2차 피해 또한 우려된다. 주민을 고오염지역에 거주하게 하고 소아갑상선암과 같은 건강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 특유의 방사능피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셋째, 체르노빌에서는 폭발한 노심을 7개월 후에는 석관으로 덮어 방사성물질의 환경 확산을 적극 억제했지만 일본에서는 노심의 오염을 외부 공기나 물과 차단하지 않은 채 폐로작업을 추진해 대량의 지하수로 오염수가 바다로 계속 방출되고 공중으로 방사능방출도 심각하게 계속되고 있다. 2021년 현재 삼중수소와 다른 방사능이 대량 포함된 탱크의 오염수를 바다에 폐기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삼중수소 기타 방사능에 오염된 대량의 오염수를 쌓는 탱크가 엄청난 양으로 늘어 이를 해양방출하겠다는 계획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주민피해 경감의 양적 규제에 큰 차이가 있으며 일본은 '일본 특유의 강제피폭상황'을 '만들어낸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후쿠시마원전 오염수 해양투기는 어쩌다 일어난 일이 아니다. 이처럼 국제 원전 로비집단의 큰 그림 위에 언론의 동조를 통해 부지불식간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방사능피해의 일본 전국 확산 메커니즘을 만든 일본의 잘못된 정치시스템과 함께 이러한 방사능오염의 위험성 은폐의 흑역사가 이제는 전 지구시민, 나아가 미래세대에게 피해를 주는 국제환경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실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 프레시안
쿠바의 ‘특별시기’ 고난의 대안 ‘유기농 혁명’
1959년 혁명 뒤 미국의 고립정책에 따른 자립책
도시농업, 퇴비생산, 시골이주 등 '제2의 혁명'
농부 수입이 교수·의사의 3배 '농자천하지대본'
“동이 틀 무렵의 아바나를 본 적이 있는가?” 1937년 헤밍웨이 소설의 한 구절이다. 낭만과 아름다움이라기보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이후 사실상 미국 식민지로 전락한 쿠바의 서글픈 모습을 묘사하는 맥락이었다. 지난달 평생 꿈에 그리던 쿠바를 조용히 다녀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여행이었다. 바라데로와 마탄사스, 아바나를 주마간산으로 체험했다. 쿠바혁명 65주년이라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65년 전인 1959년, ‘카리브 해의 진주’로 불린 쿠바는 새 ‘공화국’을 선포했다. 우리가 아는,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쿠바혁명이 (숱한 희생 위에) 결실을 거둔 것! 그러나 쿠바혁명이 극도로 거북한 이웃이 있었으니, 불과 150㎞ 떨어진 미국이다. 미국은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와 더불어 탈쿠민(쿠바 탈출 부자들)을 조직, 쿠바를 침공하게 한다든지, 기상천외한 방식의 카스트로 암살도 기도했다. 오죽하면 (637회의 암살 공모와 164회의 실제 암살 시도를 딛고 살아남은) 카스트로(1926~2016)가 “만일 올림픽 게임에 살아남기 종목이 있다면 바로 내가 금메달을 땄을 것”이라며 껄껄 웃었겠는가?
가게 앞에 줄을 선 쿠바인들. 강수돌 촬영
소련 붕괴와 미국의 봉쇄, 이중고에 부닥친 혁명 쿠바의 사회주의
1950년대의 쿠바는 (한국처럼)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혁명 정부가 미국의 정유회사, 설탕공장, 담배공장, 전기회사, 전화회사 등을 국유화하고 무상급식,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 복지정책을 시행하면서 민중의 삶의 급격히 좋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소련)으로부터의 각종 물자 지원은 쿠바가 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었다. 해마다 식량, 석유, 고기, 비료, 농약 등이 소비에트로부터 쿠바에 유입되었던 것! 그런 지원이 30년 간 이어지면서 쿠바인의 ‘생물학적 삶의 질’ 지표는 오히려 미국보다 앞설 정도였다. 즉, 1989년 당시 유아사망률, 문맹률, 평균 수명 등 지표에서 쿠바는 세계 11위, 미국은 15위였다. 그리고 2008년에는 교육과 의료, 국민소득을 종합하는 ‘인간개발지수’에서 180개국 중 51위, 중남미에서는 아르헨티나·칠레·우루과이·코스타리카 뒤로 5위를 기록, 혁명의 성취를 지키는 데도 성공했다.
문제는 1990년경 소련과 동유럽 체제가 (고르바초프 식) ‘개방, 개혁’이라는 구호 속에서 사실상 ‘붕괴·몰락’의 길을 걸으면서 쿠바와 소련 간 유대가 단절된 점이다. 기존 수입 물량의 75%가 줄었고, 석유 공급도 절반 이상 줄었다. 쿠바 전체가 마비 상태로 내몰린 것!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쿠바 봉쇄조치를 강화하는 법령을 거듭 만들어냈다. 말로는 쿠바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 했지만, 실상은 사회주의 쿠바를 자본주의로 만들려는 전략! 단순히 식량이나 약품 등에 대한 무역봉쇄만 노린 게 아니라 미국에 사는 쿠바 탈출자들(수천 명의 부자들)이 쿠바에 두고 온(사실상 뺏긴) 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갖게 하거나, 그 어떤 외국인도 쿠바 내에 투자를 못하게 법적 제약을 걸었다. 한마디로, 쿠바의 사회주의 노선을 철저히 방해하려 했다.
실제로, 1996년에 ‘헬름스-버턴 법’을 만든 제시 헬름스는 ‘솔직하게’ 이 법령의 목적이 카스트로 정부를 붕괴시키고 미국의 마음에 드는 새 정부를 세우는 데 있다고 했다: “금년이 쿠바인들이 피델에게 작별을 고하는 해가 되도록 합시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 근처 정부청사 벽을 장식한 체 게바라 조형물. 강수돌 촬영
체 게바라 ‘집단기억’과 함께 시작한 제2의 혁명은 유기농 혁명
그러나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처럼 쿠바는 사면초가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았다. 400년 간의 스페인 식민지 시절, 그 사탕수수 농장 노예의 상황과 수치의 세월들, 그리고 1902년 형식적 독립 이후 미국 자본에 의한 사실상의 신식민지와 새로운 노예 상황들, 미국 자본에 빌붙은 부패 권력층의 폭력과 오만 등, 이 모두를 극복하려는 것이 1959년 쿠바혁명 아니었던가? 요컨대 1959년의 혁명은 참된 자유와 참된 민주주의를 이루려는 쿠바 민중의 열망이 반영된 변화였다. 그런 ‘아래로부터의’ 집합적 열망과 용기가 없었다면 과연 피델 카스트로나 체 게바라, 카밀로 시엔푸에고스 같은 빛나는 혁명가들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그러기에 강력한 구조 변화를 원했던 쿠바인들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할 수 없었다. 쿠바 정부는 1991년 9월, ‘특별시기(Periodo Especial)’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시 상황과 비슷한 비상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 사회적 전환을 시작했다. 특히, 1959년 혁명 이후 1965년까지 쿠바 혁명의 진전을 위해 노력하다 홀연히 떠난 체 게바라, 1967년에 볼리비아 혁명을 위해 산 중 게릴라 작전 중 생포되어 죽어간 체 게바라, 피델 카스트로와 노선이 달라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란 말을 남기고 조용히 떠난 체 게바라를 사람들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이런 ‘집단 기억’이 작용한 탓일까? 1990년대 이후의 쿠바는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제2의 혁명을 하듯 활기찬 전진과 전환을 시작했다. 그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 ‘쿠바의 유기농 혁명’이다. 그것은 이른바 관행농업이었던 화학농(농약과 비료), 단일작물, 기계(트랙터) 사용 농업에서 소농, 가족농, 가축농, 공동체, 협동조합농 기반의 유기농으로의 변화였다.
첫째, 아바나(전체 인구의 1/5이 거주)를 비롯한 도시의 빈터 곳곳을 사각형 틀을 씌운 유기농텃밭으로 만들었다. 이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쿠바 농무부는 수도 아바나의 빈터를 유기농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도시농업과’를 신설했다. 1990년대 말이 되자 아바나엔 공식적으로도 8천 개 이상의 텃밭이 생겨났고 수만 명(개인, 가족, 이웃, 협동조합)이 도시농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텃밭의 종류도 인민 텃밭, 집약 텃밭, 노동자 텃밭, 특별 농장, 국영기업 농장 등으로 다양했다. 식량자급을 위한 텃밭이기에 당국은 경작용으로 사용하는 한 무료로 빌려 주었다. 참고로, 쿠바는 (일부 ‘투자 이민’은 가능하나) 한국과 같은 ‘부동산 시장’이 없다. 따라서 투기도, 시세차익도, ‘전세왕’ 같은 사기도, 개발이익도, 천문학적인 평당 가격도 없다.
쿠바 농민들이 밭일을 하고 있다. 2001. 1. 9. 연합뉴스 자료사진
삶터와 일터, 농촌과 도시 간 분리와 거리 줄인 집단 생존의 길
둘째, 석유와 비료가 없으니 사람과 소가 일을 더 하게 됐다. 쿠바 전역에 200개 가까운 퇴비 발효 센터가 만들어졌고, 매년 10만 톤 가까운 자연퇴비가 생산되었다. 게다가 도시농업은 석유나 전기를 소비하는 수송, 냉장, 저장의 필요성도 줄여 주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경제봉쇄와 소련의 지원 중단은 역설적으로 쿠바로 하여금 자본주의 산업화 이전의 단계, 즉 생산과 소비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줄이는 단계로 돌아가게 했다. 사실, 자본주의가 발달할수록 삶터와 일터, 농촌과 도시가 분리되고 상호 거리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는데, 특별시기 내지 비상사태를 맞은 쿠바는 집단 생존의 길을 찾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그러한 분리와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셋째, 정책 입안자들은 도시 거주민들이 가능한 한 시골로 이주하도록 장려했다. 유기농은 노동집약적이라 결국 사람 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골의 주거환경을 개선했고 도시민 중에서 굳이 도시에 있을 필요가 없다면 일정 기간 농장에 머물며 일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의 수도권이 전 인구의 1/2을 집중시키고 있는 데 비해, 쿠바의 수도권은 전 인구의 1/5만 집중시키고 있어, 수도라 하지만 비교적 한산하다. 아바나 시내조차 신호등이 별로 없고, 보행자들이 비교적 쾌적하게 걸어 다니며 관광하기도 좋다. 한편, 시골 지역 곳곳에는 경관과 분위기가 빼어난 휴양림 겸 생태공동체가 있다. 아바나 남서쪽으로 70여 킬로미터 떨어진 라스 테라사스(Las Terrazas)에는 약 1천 명이 거주 및 휴양하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물론 이런 마을은 부자들이나 외국 관광객들에겐 저렴한 편이나 쿠바 현지인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기 쉽다.
넷째, 예전의 관행농법에서는 살충제와 제초제를 썼지만, 이제는 과학자들의 지식과 기술에 힘입어 생물학적 해충 방제 프로그램을 가동하게 되었다. 천적을 활용한 방제였다. 소규모, 지역분산적, 협동적 방식의 생물학적 방제 시스템을 위해 200개 이상의 ‘해충통제 센터’가 세워졌다. 농민들은 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살충제 대신 천적이 되는 곤충을 활용하거나 벌레들이 특정 식물로 모이게 유도했다. 효율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농민들 건강도 좋아졌다. 토양이 더 살아나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례로, 바나나 줄기를 잘라 꿀을 발라 개미들을 꼬이게 한 다음 이걸 고구마 밭에 놓으면 고구마 좀벌레들이 개미들의 먹이가 되는 식이다.
쿠바 농촌. 가축을 이용한 밭갈이를 하고 있다. 2001. 1. 9. 연합뉴스 자료사진
식량안보가 만들어낸 쿠바의 ‘농자천하지대본’
다섯째, 예전엔 사탕수수나 담배와 같은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했으나 농업혁명 과정에서 윤작, 녹비, 간작, 혼합작, 토양보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작물을 생산하게 되었다. 다양한 식물이 유기적 관련성을 맺는 것, 이것이야말로 유기농의 또 다른 강점이다. 생물종 다양성은 상호 생명력을 강화하는, 상보 효과가 있다. 원래 순수한 단일종보다 다양한 혼합종이 훨씬 튼실하지 않던가.
여섯째, 그 전에도 그랬지만 느닷없이 식량안보가 중요해지자 농업과 농민의 사회적 가치가 더 올라갔다. 약 20년 전에 쿠바를 방문한 분의 보고에 따르면 쿠바에서는 교수, 의사, 교사, 약사의 월급이 비슷해서 300페소(약 25달러)인데, 농부의 월 소득은 900페소(약 75달러)라 했다. 농부의 수입이 다른 전문가의 수입보다 3배인 셈이다. 설사 다른 직업과 비슷하다 하더라도 놀라운 일인데, 3배나 더 많으니 한국인으로서는 이해 불가 수준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다른 일은 하지 않아도 죽지는 않는데, 식량을 생산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으니, 농사짓는 사람을 가장 높이 대우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쿠바 농민의 절대 소득은 보잘 것 없다 하더라도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모습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물론, 이런 내용만 보면 쿠바는 “유기농 천국”(요시다 타로)이라 할 만하다. 나아가 미국식 자본주의도, 소련식 공산주의도, 석유와 기계, 화학비료와 살충제 등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기에 쿠바야말로 ‘제3의 길’을 대안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각 개인들과 마찬가지로 각 나라 역시 ‘나 홀로’ 살아갈 수는 없다. 쿠바가 1990년대 이후 식량자급률을 95% 정도로 높였다고도 한다. 찬탄할 일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성취(생존, 전환, 혁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쿠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 아바나 시내 곳곳에 있는 빵집(Panaderia) 앞에는 배급을 타기 위한 사람들이 수첩 같은 것을 들고 줄지어 서 있다. 하루에 바게트 같은 긴 빵 하나를 배급 받지만 그걸로는 불충분하니, 대개는 추가로 한 봉지씩 더 사간다. 빵은 찰지나 조금씩 먹으라는 건지 좀 짜다.
‘제3세계 네트워크’ 구축이 쿠바의 새 활로 될 수 있지 않을까?
외국 관광객에게 하룻밤 빌려주면 50달러 내외를 받을 수 있는 까사(민박) 역시 현지인들에겐 비싼 편이다. 역으로, 까사(민박) 사업을 하는 이들은 (30% 세금을 내더라도) 평균 한 달치 월급(약 25달러)을 하루 만에 벌 수 있다. 물론, 이들은 민박 허가를 받기 위해 냉장고, 에어컨, 화장실, 샤워실 등을 갖추어야 하기에 초기 투자비용이 꽤 든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몇 달이면 순이익이 생기기 시작하니, 이런 식으로 빈부 격차가 벌어진다. 오늘날 관광객에게서 나오는 달러 수입이 아니면 나라 살림에 큰 펑크가 생길 정도다. 코로나사태 이후로는 100인 미만의 기업 운영도 비교적 자유로워졌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노동 착취의 여지가 생기고 있다.
물론, 스티븐 준스 미국 샌프란시스코대 교수가 말했듯(<녹색평론> 162호), “우리가 쿠바에 대해 들은 좋은 것들은 전부 진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쿠바에 대해 들은 나쁜 것들도 전부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바로 여기서 이런 질문이 생긴다. 만일 쿠바가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유기농에 집중하는 것과 더불어 ‘제3세계 네트워크’를 새로운 형태로 강화할 수 있다면, 외국인이 가져오는 달러에 의존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물론, 여기엔 미국이라는 변수, 특히 CIA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방해 공작이 있다. 그래서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쿠바의 의학교육(그것도 무상으로)이나 쿠바 의료진들의 국제 연대는 세계적으로 소문나지 않았던가? 그런 연결고리들을 잘 활용하여 ‘제3세계 네트워크’를 제대로 구축한다면 탈제국, 탈식민, 탈자본의 새 세상을 활기차게 열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으로 멕시코, 쿠바, 콩고, 볼리비아 등 세계 곳곳에서 혁명을 꿈꾸다 불과 마흔에 하늘의 별이 되고 만, 체 게바라(1928~1967)! 그의 제안이 이 순간 강렬히 치솟는다.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엔 불가능한 꿈을 품자!” 그리하여, 완전히 새롭게 동이 트는 아바나를 다시 보고 싶다.
강수돌 고려대 명예교수, 전 마을이장/시민언론 민들레
‘고릴라 보호’ 숲에서 밀려난 피그미…밀림 밖에선 ‘난민’이 됐다
우간다 ‘보호구역 난민’
야생 고릴라 위해 국립공원 지정
숲에서 쫓겨난 토착민 바트와족 밀림 밖 사람들과 충돌 ‘비극’ 뒤
모두가 행복한 공생의 꿈 키워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의 마운틴고릴라 중 ‘쿠투 패밀리’의 우두머리 수컷(실버백)의 지위를 승계한 쿠투. ⓒ구정은
동아프리카의 내륙국가 우간다. 남쪽의 르완다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브윈디 국립공원에 산고릴라(마운틴고릴라)가 산다. 지난 2일 그들을 보기 위해 빼곡한 밀림을 힘겹게 헤치고 다니다가 마침내 ‘쿠투’ 패밀리를 만났다. 어미 등에 매달려 가는 새끼 고릴라를 야생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들을 만나는 과정에는 엄격한 규칙이 따라붙는다. 코로나19가 여기서는 여전히 위협이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릴라를 위해서다. 고릴라에게 행여 인간이 병을 옮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트레킹 관광객은 한 팀에 8명을 넘길 수 없다. 거기에 낫을 든 레인저 가이드, 만일에 대비해 장총을 든 레인저,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추적꾼 4명, 그리고 함께 간 외국인 부부 두 쌍이 고용한 포터 4명이 함께하는 여정이다. 몇 시간 안 되는 트레킹에 무슨 짐꾼이냐 싶지만 주민들 돈벌이를 위해 레인저들이 권고하는 것이다. 레인저마다 잘 알고 지내는 고릴라 가족이 있다. 위장복을 입은 여성 레인저 고레스의 친구는 쿠투 가족으로, 13마리로 구성돼 있다. 부계 사회인 고릴라 가족 가운데 우두머리를 실버백이라 부른다. 다 자란 수컷들은 등 쪽에 은빛 털이 자라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이 가족에게는 실버백이 없다. 쿠투의 실버백은 얼마 전 떠돌이 고릴라 두 마리의 공격을 받았다. 간신히 무리를 지켰지만 실버백은 죽고 말았다. 수컷은 열다섯살쯤 되면 은빛 털이 나오는데, 뒤를 이은 현재의 우두머리는 열네살, 등 쪽이 이제 은빛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위풍당당한 실버백이 될 때까지 쿠투 가족은 당분간 브윈디의 숲에서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숲사람들이 갑자기 마을로 왔다”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 내 바트와 마을 사람들의 모습. ⓒ구정은
마운틴고릴라는 세계에 1천마리 남짓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다.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일대에 걸쳐진 비룽가, 우간다와 콩고민주공화국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음가힝가, 그리고 우간다의 브윈디. 세 나라가 만나는 지역의 열대우림 세 곳이 그들의 터전이다. 그중에서도 브윈디에 세계 야생 고릴라의 절반이 산다.
이곳의 정식 명칭은 ‘브윈디 임페니트러블 포리스트 국립공원’이다. 해발 1100m에서 2600m에 이르는 331㎢의 거대한 보호구역은 활엽수와 대나무와 고사리들로 덮여 있다. 영국 작가 조지프 콘래드는 콩고의 밀림 지대를 묘사한 우울한 소설에 ‘어둠의 핵심’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브윈디는 현지어로 ‘어둠의 장소’라는 뜻이다. 어둠으로 가득 찬, 침투할 수 없는 숲(impenetrable forest). 하지만 ‘어둠의 숲’에서 살아온 것은 고릴라만이 아니었다. 사람들도 있었다. 바트와, 츠와, 혹은 트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세계에 ‘피그미’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중부 아프리카의 수렵채집인들이 그들이다.
“생존자들(survivors)은 지금은 잘 어울려 살고 있어요.”
브윈디 국립공원의 남쪽 섹터인 루샤가의 한 마을에서 만난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말했다. 이름이 성탄절인 이유는 성탄절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열정적인 커뮤니티 활동가인 그가 ‘생존자들’이란 말을 했을 때 깜짝 놀랐다. 이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크리스마스는 바키가 부족 출신이다. 마을은 가난하지만 정갈했다. 산 위쪽에 고급 리조트들이 있고 산중턱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전통 바구니 등 공예품을 만들어 흙바닥에 늘어놓고 판다. 더 내려가면 바트와들의 집이 나온다.
“숲사람들이 갑자기 숲에서 쫓겨나 마을에 왔으니, 규칙도 모르고, 주민들 가축을 죽이기도 하고… 병에도 걸리고, 많이 죽임을 당했죠.” “누가 죽였다는 거예요?” “우리 부족과 그들이 서로 죽였던 거죠.” 크리스마스는 담담하게 설명했다.
수렵·채집하다 돈 주고 사야 했던
브윈디 국립공원의 남쪽 섹터인 루샤가 마을 출신의 크리스마스는 열정적 커뮤니티 활동가로 일한다. ⓒ구정은
그것이 1991년의 일이다. 그해 브윈디가 마운틴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한 국립공원이 됐다. 동시에 ‘숲사람들’은 쫓겨났다. 국제사회는 우간다의 바트와처럼 보호구역이 설정되면서 숲 밖으로 밀려난 토착민들을 ‘보호구역 난민’(conservation refugee)이라고 부른다. 난민이 된 바트와는 22개 정착촌으로 주거가 나누어졌다. 그중 한 곳이 루샤가의 이 마을이다.
피그미는 키가 작은 부족의 대명사처럼 돼 있다. 실제로 바트와들은 키가 작다. 숲에 살던 시절에 쓰던 것과 같은 움막 모형을 짓고, 춤 공연을 하고, 나뭇가지로 불 피우는 법을 시연해 보이며 ‘생존자들’은 돈을 번다. 영국의 인류학자 콜린 턴불은 1961년 발간한 피그미 탐사보고서 ‘숲 사람들’에서 그들의 노래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아름다운지를 설명했다. 루샤가의 바트와족도 숲의 역사를 담은 노래를 춤추며 부르지만, 그들에게 숲은 이제 노래로만 남았다. “처음 숲에서 나왔을 때 이들에겐 아무것도 없었어요. 먹을 것조차도. 이 사람들은 숲에서 먹을 것을 공짜로 얻어왔다는 점을 잊으면 안 돼요. 그런데 갑자기 돈을 주고 사야만 했던 거예요.”
우간다 브윈디 국립공원 내 토착민 바트와족을 지원하는 ‘바트와 피그미 사무소’ 앞 입간판. ⓒ구정은
그 혼란은 얼마나 가혹했을까. 그들을 위해 정부와 지역공동체는 ‘바트와 피그미 사무소’를 만들어 지원하고 있다. 길가의 사무소 알림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바트와 토착민 역량강화기구 ― 헬스케어, 영적 지도, 농업, 교육, 문화 전통 보전, 수공예와 여성 프로그램, 토지 취득과 주택 건설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관광객용 로지(lodge, 임시 숙소)들과 정겨운 시골 마을, 그리고 바트와의 집들은 층층이 대비됐다. 바트와 지역은 아직도 행정이나 사회 규칙이나 현대적인 생활방식이 자리잡지 못한 듯 지저분하고 여기저기 쓰레기와 넝마, 움집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물론 숲에서 살던 시절의 고난과 힘겨움보다는 훨씬 나아진 것일 수 있다. 아프리카를 다니다 보면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토착민의 전통적 삶의 방식은 낭만적이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가난하고 힘겹고 고단하다. 특히 여성들과 아이들, 아픈 이들에게는. 다만 그들을 ‘현대화’시키는 방식이 좀 덜 고통스럽고 덜 폭력적이기를 바라는 것일 뿐이다.
마을 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었다. 지역 댄스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한단다. 이 학교에서 바트와 아이들도 함께 공부한다. ‘바트와 아동교육기금’이라 쓰인 티셔츠를 입은 크리스마스는 바트와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을 위해 일한다. “어떤 사람들은 왜 저들을 위해 나서느냐고 저를 비난해요.” 그는 개의치 않는다. 동네 유기농 커피 협동조합 일에서부터 바트와 아이들의 교육을 돕는 일까지, 할 일이 너무 많다.
그에게는 한 가지 희망이 있다. 내년 총선에 바트와 출신 후보가 나오는데, 당선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루샤가의 바트와 정착촌에서 자라고 공부한 토착민 의원이 탄생하는 것에 크리스마스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쿠투 가족이 얼른 새 실버백과 함께 고릴라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그리고 바트와에게는 더 나은 삶의 기회들이 찾아오기를.
구정은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한겨레
자전거 예찬
자전거를 자주 탄다. 10㎞ 거리의 직장까지 자전거로 출퇴근하기도 하고, 집 근처 커피숍에 갈 때도 자전거를 애용한다. 저녁을 준비하던 아내가 동네 슈퍼에서 빨리 뭘 사 오라고 한다. 자전거 탈 생각에 게으른 몸이 거실 소파에서 쉽게 일으켜진다. 자전거를 타는 게 걷는 것보다 훨씬 더 편하다는 것을 내 몸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걷는 것과 비교하면, 자전거는 절반의 에너지 소비로 3배 이상의 속도를 낸다.
자전거의 높은 에너지 효율성은 물리학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몸의 근육이 자전거 페달을 미는 역학적 일은 100%에 가까운 높은 효율로 바퀴의 회전 운동에너지로 변환된다. 걸을 때는 다르다. 팔이 위아래로 움직이고 몸통이 좌우로 흔들리는 등, 부수적으로 낭비되는 에너지가 많다. 걸을 때는 우리 몸의 무게 중심이 위아래로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것도 자전거와 다른 점이다. 중력에 거슬러 몸의 무게 중심이 위로 이동할 때 큰 에너지가 소비된다. 걷는 것은 앞으로 가기 위한 것인데도, 우리 몸은 위아래 방향의 엉뚱한 움직임으로 큰 에너지를 소비하는 셈이다. 자전거와 한 몸이 된 인간은 두 발로 걷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매년 전 세계에서 1억대 이상의 자전거가 판매되는 이유, 인간의 발명품 중 자전거를 최고로 꼽는 이가 많은 이유다.
자전거는 왜 잘 넘어지지 않을까? 회전축에 줄을 연결해 천장에 자전거 바퀴 하나를 매달고 똑바로 세워 돌리면 바퀴는 수직 방향을 유지하며 한동안 회전한다. 비행기에도 쓰이는 자이로스코프 장치의 원리인 물리학의 각운동량 보존법칙 때문이다. 빠르게 회전하는 바퀴는 쉽게 회전축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전거의 안정성도 자이로스코프 원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땅에 붙어 회전하며 나아가는 바퀴 하나 위에 같은 모양의 바퀴를 딱 붙여 놓은 모습을 떠올려 보라. 아래 바퀴가 회전하면 위의 바퀴는 딱 맞물려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 바로 이 방식으로 자전거의 앞바퀴와 뒷바퀴에 바퀴를 하나씩 추가해 맞물려 놓으면 모두 네 바퀴의 회전에 의한 전체 각운동량은 0이 되어 자이로스코프 원리가 작동할 리 없다. 하지만 이렇게 만든 실험용 자전거도 안정된 자세로 움직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따라서 각운동량 보존법칙만으로는 자전거의 안정성을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핸들을 조정해서 안정성을 유지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이것도 답이 아니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비탈길에서 빈 자전거를 앞으로 밀어 굴려보자. 누가 핸들을 조정하지 않는데도 자전거는 안정적으로 굴러 내려간다. 자전거의 안정성이 운전자가 핸들을 조정하기 때문일 리 없다.
자전거의 역학적 안정성의 이유는 잘 밝혀져 있다. 빈 자전거가 비탈을 내려가다 어쩌다 왼쪽으로 살짝 기울면 핸들이 왼쪽으로 조금 꺾여 경로가 휘어지기 시작한다. 이때 작용하는 원심력은 오른쪽이어서 자전거는 다시 똑바로 서게 되고 핸들도 다시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게 된다. 각운동량 보존과 사람의 핸들 조정도 안정성에 일부 도움을 주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자전거가 기울면 핸들이 돌고 이때 발생한 원심력이 자전거의 안정성을 회복시키기 때문이다.
자전거는 자동차와 비교해도 엄청난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자전거 탈 때는 몸무게에 더해 기껏 15㎏ 정도의 질량이 추가될 뿐이지만, 자동차의 경우에는 내 한 몸 움직이기 위해 무려 100배인 1500㎏의 질량이 추가되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비효율적인 이동 수단이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성격도 다르다. 자전거는 내가 먹은 밥으로 가동하는 친환경 재생에너지로 움직이지만, 자동차는 화석연료나 발전소에서 애써 만든 전기에너지로 움직인다. 가능한 한 쓰지 않는 것이 좋은 귀중한 에너지로 자동차는 굴러가고, 내 몸의 건강을 위해 쓰는 것이 더 나은 에너지로 자전거는 굴러간다.
건강에도 환경에도, 꿩 먹고 알 먹고, 자전거보다 나은 이동 수단은 없다. 도심에서 자동차의 속도가 자전거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자전거의 매력 포인트다. 점점 더 많은 이가 자전거를 타며 목소리를 모아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자전거 친화적 도시 환경으로 바꾸자. 가만히 멈춰 있으면 넘어지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에서 우리 삶의 교훈도 배울 수 있다. 좌절해서 고꾸라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갈 일이다. 자전거를 타자.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경향
가덕신공항 건설 '입찰 조건' 풀었다… "공사 7년으로 연장"
설계 기간 10개월→12개월
정부가 까다로운 입찰 조건에 건설업체들이 쉽사리 나서지 못하자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입찰 조건'을 일부 완화한다.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의 공사 기간과 설계기간을 각각 7년과 12개월로 연장하고 공동도급을 3개 업체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오는 31일 이같은 내용의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입찰조건을 공고할 계획이다.
앞서 국토부는 10조원 규모의 가덕도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를 담당할 업체를 가리기 위한 입찰을 진행했지만 잇따라 유찰을 거듭했다. 1차 입찰은 응찰 업체가 나오지 않았고 2차 입찰에서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해 최소 2개 이상 컨소시엄이 참가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유찰됐다.
이 때문에 정부는 그동안 건설업계 간담회와 전문가 자문회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주요 입찰 조건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공사기간을 착공 후 6년에서 7년으로 1년 연장한다. 제한된 공간에서 다양한 공사 종류가 동시 진행되고 대규모 해양 매립 등 난이도가 높은 공사의 비중이 큰 점 등을 고려해 공사 기간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조치다.
주요 공항시설이 들어설 동쪽 매립지 공사와 활주로, 여객터미널 등 개항에 필수적인 시설을 우선 시공해 2029년 말 개항을 추진하고 서쪽 부지와 전체공사는 공사 기간 내 마무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설계기간은 종전 10개월에서 12개월로 2개월 연장한다. 연약지반에 대한 해상 시추조사는 기상 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고려했다.
아울러 상위 10대 건설업체 공동수급 제한을 2개 업체 이내에서 3개 업체 이내로 완화한다. 사업규모와 공사 난이도를 감안할 때 경쟁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위 건설업체가 추가 참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다. 정부는 변경된 입찰조건을 반영해 오는 22일 입찰안내서를 사전공개하고 31일 입찰 공고를 통해 8월19일까지 사전심사 신청서를 제출받을 예정이다. /머니 S
파리를 닮지 못하면, 올림픽의 미래는 없다
파리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친환경 올림픽’이다. 경기장 신축을 파격적으로 줄이고, 에어컨은 퇴출됐다. 지속가능성은 파리올림픽이 남길 최고의 유산이 될 전망이다.
6월7일 올림픽을 상징하는 오륜링이 설치된 파리 에펠탑 주변에 많은 인파가 몰려 있다.ⓒAP Photo
2024년 파리올림픽(7월26일~8월11일) 및 패럴림픽(8월28일~9월8일)은 두고두고 회자될 스포츠 제전이다. 파리올림픽은 우선 최초의 ‘성평등 올림픽’이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린 이래 처음으로 남녀 성비가 ‘50대 50’이 됐다. 출전 선수가 모두 1만500명인데, 남녀 5250명씩 똑같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남녀 혼성 경기종목을 늘리고, 참가국에 남녀 선수 비율을 맞춰달라며 노력한 결과다. 과거와 달리 여자 마라톤이 대회 마지막 날 올림픽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성평등과 더불어 파리올림픽의 가장 중요한 슬로건은 ‘친환경 올림픽’이다. 키워드는 에어컨, 베르사유 궁전, 그리고 아보카도다. 에어컨은 대회를 앞두고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선수촌에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건물 배치를 효율적으로 해 공기 순환을 촉진시키고, 차가운 지하수를 이용한 수냉식 냉각 시스템을 가동하기로 했다.
모두 알다시피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다. 용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스탠드형 에어컨은 선풍기 30대 이상, 벽걸이형 에어컨만 해도 선풍기 10대 이상 틀 수 있는 전기를 소비한다. 2022년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에어컨과 선풍기 등 공간 냉각장치로 쓴 전기 소비량이 건물 부문 총 전기 소비량의 약 1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에어컨으로 인한 전력 소모는 결국 발전소 가동률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린다.
에어컨에 쓰는 냉매 역시 그 자체로 온실가스다. 현재 에어컨 냉매로 쓰이는 수소불화탄소(HFC)의 지구온난화 지수(GWP·여러 온실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을 나타낸 수치)는 이산화탄소보다 수백 배에서 1만 배까지 높다. 국제사회는 2016년 HFC를 규제 물질로 추가하고 에어컨 배출량을 감축하기로 결의했다. 유럽연합(EU)은 한발 더 나아가 2050년까지 HFC를 완전히 퇴출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에어컨 퇴출이라는 결단은 이런 배경에서 이루어졌지만, 일부 국가가 반발했다. 여름철 폭염으로 인해 선수의 경기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프랑스 북부에 있는 파리의 여름 날씨는 과거 그렇게 무덥지 않았으나 최근 10여 년 사이 이상고온 현상이 속출하면서 논란이 더 커졌다. 결국 7월2일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각국이 자체 비용으로 휴대용 에어컨을 주문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미국·영국·캐나다·이탈리아·독일 등은 숙소에서 휴대용 에어컨을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는 대표팀에 친환경 특수 냉매제를 사용한 쿨링 재킷과 쿨링 시트를 준비했다.
‘NO 에어컨’은 벽에 부딪혔지만, 친환경 올림픽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어쩌면 여기서부터가 백미다. 우선 경기장 신축을 파격적으로 줄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사용될 경기장의 95%는 기존 경기장 시설을 재사용하거나, 파리 시내 명소를 경기장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루이 14세의 궁전으로 잘 알려진 베르사유궁전이 대표적이다. 근대 5종 경기와 승마 경기가 이 유서 깊은 공간에서 열린다. 에펠탑이 보이는 마르스 광장에서는 비치발리볼 경기가, 1900년 만국박람회 전시장이었던 그랑팔레에서는 태권도와 펜싱 경기가 열린다. 파리 시내 한복판에 있는 콩코르드 광장에서는 이번 올림픽에서 최초로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크 댄스를 비롯해 3대 3 농구, 스케이트보드 등 젊은 세대에게 인기 있는 경기가 열린다. 축구 경기는 건립한 지 90년 된 마르세유 경기장 등에서 진행된다.
아보카도가 식단에서 빠진 이유
신축 경기장 역시 전체의 50% 이상을 목재 등 천연 자재로 짓는다. 아쿠아틱 센터 등에 채워지는 의자 1만여 개는 플라스틱 폐기물로 만들었다. 신축 건물에는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고, 대회 운영에 필요한 모든 전력은 풍력·태양광 등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
1회용 플라스틱 병도 사라진다. 대회 기간 중 경기장에는 페트병 반입이 금지된다. 관중은 재사용 가능한 컵을 소지해야 한다. 마라톤 가도에서도 재사용 컵을 사용할 계획이다. 올림픽 공식 후원사인 코카콜라는 재사용 가능한 유리병으로 음료를 제공한다.
근대 5종과 승마 경기는 루이 14세의 궁전으로 알려진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린다.ⓒParis 2024
선수와 자원봉사자 등에게 제공되는 먹을거리도 파격적으로 바뀐다. 프랑스산 식재료를 80% 이상 사용함으로써 요리 과정에서 ‘탄소 발자국’을 크게 줄인다. 여기에는 경기장 반경 250㎞ 이내에서 재배된 제철 식재료 비율을 25% 이상 유지하는 것도 포함된다. 해외에서 수입하는 데다 재배할 때 많은 물이 필요한 아보카도도 식단에서 빠졌다. 동물 학대 논란이 큰 푸아그라도 맛볼 수 없다. 남은 음식은 동물 사료나 퇴비로 활용된다.
올림픽 참가 선수와 경기 입장권을 소지한 관중은 대회 기간에 모든 대중교통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올림픽 기간 중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객에게는 일주일짜리 교통패스를 10만원 남짓에 판매한다. 공항부터 파리 전역 경기장 및 명소를 무제한 이동할 수 있다.
파리올림픽이 ‘기후위기 대응의 제전’이 된 것은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우선 막대한 비용 문제가 있다. 2020 도쿄올림픽은 개최 비용이 약 12조1300억원에 달했다. 당초 추정보다 두 배로 늘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는 8조8000억원이 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총 13조8000억원이 쓰였다. 새롭게 지어진 경기장은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가 되었다. 본전 회수는커녕 관리비용으로만 연간 수십억 원이 들어간다. 반면 경기장 신축 등을 획기적으로 줄인 파리올림픽 개최 비용은 6조원대로 낮아질 것이라고 조직위원회는 밝혔다.
올림픽은 그 자체로 기후위기의 피해 당사자다. 7~8월에 열리는 하계올림픽은 여름철 폭염의 강도가 세지면서 시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동계올림픽은 더 심각하다. 눈과 얼음이 가득한 겨울 도시가 사라지는 탓에 매번 개최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2년 캐나다 워털루 대학에서 발표한 ‘기후변화와 동계올림픽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재 수준을 유지할 경우 과거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21개 도시 중 유일하게 일본 삿포로만 대회를 진행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
올림픽 금메달 3개를 획득한 카누 선수 출신인 토니 에스탕게 파리올림픽 조직위원장은 “파리올림픽은 ‘지속가능성’을 최고의 유산으로 남기는 최초의 올림픽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파리처럼 변하지 않고는 ‘인류의 제전’ 올림픽의 미래가 이어지기 힘들다./시사인 이오성 기자
기후 변화로 고생하는 요즘, 이런 사람이 환경부 장관 후보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 케이블카 사업 대놓고 찬성... 생태 감수성 지닌 전문가가 수장 되어야
저마다 얼굴이 다르듯 지역도 다 다르다. 그 특색에 자부심을 갖느냐 못 갖느냐 차이만 있을 뿐이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킨 나라는 살아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는 기억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역사의 엄혹한 교훈이다. 지역의 현재는 나름의 이야기와 경험이 쌓인 결과다. 그 미래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해야 튼튼한 법이다. 그저 '따라가기'는 안 될 일이다. '케이블카 건설 붐' 이야기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케이블카 설치 계획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물꼬를 튼 곳은 강원도다. 강원도는 지난해 11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을 개최했다. 기세를 몰아 지역 6곳에 추가로 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울산, 전주, 부산, 경남 산청군, 함양군, 전남 구례군 등이 줄을 서고 있다. 예상컨대 더 늘어날 것이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는 추진 41년 만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까지 착공식에 참석했다. 정부가 내락한 모양새다. 이제 지역 케이블카 건설은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다.
케이블카 춘추전국시대
▲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진태 강원도지사 등 내빈들이 20일 강원도 양양군 오색리에서 열린 국립공원 설악산 오색지구 케이블카 착공식을 마친 뒤 사업 부지를 둘러보고 있다. 2023.11.20ⓒ 연합뉴스
해당 지자체는 최대한 환경 파괴 없이 개발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어불성설이다. '최대한'이라는 말이 함정이다. 이 말은 노력해 보겠다는 의미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를 함축한다. 결국 '환경영향평가'로 걸러낼 수밖에 없다. 책임 부서인 환경부가 빈틈없이 임무 수행을 하는 건 당연하다. 아울러 '환경영향평가 국가책임 공탁제' 도입이 시급하다. 사업자 입맛에 맞는 환경영향평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운영되면 지역 내 생산유발 효과와 취업유발 효과가 크다고 한다.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벌이기 전에 시장 조사와 타당성 분석을 철저하게 한다. 기업의 존망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잘못된 분석과 미흡한 조사로 시작된 신사업으로 퇴출되는 기업들이 시장경제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들이 제대로 수익 타당성 검토를 했는지 모르겠다. 시장에 나와 있는 케이블카들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는 뾰족한 방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는 일이다.
강원도는 케이블카 사업에 전부를 건 듯하다. 약속한 대로 가리왕산을 복원하라는 산림청과 환경부의 행정명령에 요지부동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관련기사: 정부 명령이 안 먹히는 이 상황, 뭐라 할지 난감 https://omn.kr/29fbq). 위험해 보이지만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탔으니 내릴 수 없다는 것일까. 부채질한 정부의 책임도 없다고 할 수 없다. 덩달아 다른 지자체들도 호랑이 등에 올라타려 하니 심각한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차가운 제동이 필요하다.
이 와중에 김완섭 전 기획재정부 제2차관이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오는 22일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김 후보자는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힘 강원 원주을에 출마했었다. 당시 공약 가운데 '치악산 케이블카 건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원도 일부 언론은 지역의 숙원사업인 케이블카 사업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반기는 기사를 내놨다. 김 후보자가 강원 출신임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케이블카 사업 대놓고 찬성하는 사람
▲ 4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서 신임 장관급 후보자들이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표 내용을 들으며 자리하고 있다. 왼쪽부터 신임 환경부 장관 후보자 김완섭 전 기획재정부 2차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이진숙 전 대전MBC 사장, 금융위원장 후보자 김병환 전 기획재정부 1차관.ⓒ 연합뉴스
환경부는 환경영향평가를 책임지고 있으며 케이블카 사업 허가권을 가지고 있는 부서다. 그런 부서의 수장 자리에 케이블카 사업을 대놓고 찬성하는 사람이 부적절하다는 것은 명약관화다. 허가권을 주겠다고 하면 말리기도 어렵다. 부서 수장이 이럴진대 환경영향평가가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왜 하필 이때냐'라고 하면 음모론이라고 비난받을 수 있겠다.
하지만 상식선에서 보자. 강원도가 나서고 다른 지자체들이 동조하는 '케이블카 붐' 시국이다. 거기에 케이블카 건설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개발 지향적 인물이 환경부장관에 지명되었다면 의구심이 드는 게 합리적이다.
기상청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평균 기온은 계속 오르고 있다. '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했건만 여전히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는 의미다. 기후위기는 성격상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환경부와 산림청은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양대 축이다. 얼마 전 취임한 산림청장은 산림청 차장 출신이다. 그 분야의 전문가다. 환경부도 '생태 감수성'을 지닌 풍부한 경험과 식견을 가진 전문가가 수장이 되어야 마땅하다. 미래를 위해 타협할 수 없는 선택이다.
오마이뉴스 | 김용만미디어 '플래닛03'(https://www.planet03.com/) 편집인
가덕신공항 공사 ‘쥐꼬리’ 참여… “지역 업체 비중 대폭 늘려야”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재입찰에서 지역 건설업체들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가덕신공항의 예상도. 부산일보DB
국토교통부가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재입찰에 나서면서 지역 건설사들의 비중이 대폭 늘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사비만 10조 5000억 원으로 부산 역대 최대 규모 공사지만, 지금껏 구성된 컨소시엄에 지역 건설업체 비중은 모두 합쳐 11%에 불과(부산일보 6월 26일 자 1면 등 보도)했기 때문이다. 업계는 비중 확대를 위해 정부와 부산시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산시는 22일 대한건설협회 부산시회와 만나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재입찰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이날 밝혔다. 특히 새로 꾸려질 수도 있는 컨소시엄에 지역 건설업체 참여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갖고 의견을 나눴다. 부산시 신공항추진본부 관계자는 “협회로부터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에 참여를 희망하는 지역 업체 명단을 받아볼 계획”이라며 “이를 토대로 건설 대기업을 찾아 다니며 지역 업체 비중 확대를 위해 여러 형태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4일 마감된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사전심사 재입찰에는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단독 응찰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에는 동원개발, 동아지질, 흥우건설, 삼미건설, 협성종합건업, 지원건설(이상 지분율 1%)과 경동건설, 대성문, 영동, 동성산업(이상 0.5%) 등 10곳의 부산 업체가 참여했다. 경남 업체는 대저건설과 대아건설(이상 1%), 정우개발과 대창건설(이상 0.5%) 등 4곳이 이름을 올렸다.
지분율 1%는 1000억 원, 0.5%는 500억 원가량 사업비가 책정됐다.14곳의 지역 업체 지분을 모두 합하면 11%다. 지역 건설업계는 지분율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낮다고 입을 모은다. 국토부는 지역 업체 지분율에 따라 입찰 가산점을 주는데 1~5%는 2점, 5~10%는 4점, 10~20%는 6점, 20% 이상은 8점이다. 가산점 6점을 받기 위해 턱걸이로 지분율 10%를 넘긴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특히 이 컨소시엄에서 정보통신, 전기, 소방, 산업·환경설비 등 비토목 부문에는 지역 건설업체 지분이 하나도 없다. 비토목 부문을 다 합치면 전체 공사 금액의 4.8%에 불과하지만, 총 규모가 10조 5000억 원인 만큼 여기에 할당된 공사비는 5000억 원이 넘는다.
부산의 한 건설업체 고위 관계자는 “지역 업체들의 비중을 다 합치면 20%는 될 줄 알았는데 이보다 한참 모자라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며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이 들지만 이를 감수하면서도 가덕신공항 사업에 높은 비중으로 참여하고 싶은 업체들이 있다. 공사를 원활히 수행하면 전국 단위 건설사로 발돋움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상위 10대 건설사 중 2개사까지만 공동 수급 가능했던 기존 입찰 조건은 이번 재입찰부터 3개사까지 가능토록 확대된다. 업계 의견을 수용해 조건을 완화한 것으로 추가적인 컨소시엄이 꾸려질 수도 있고, 기존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대기업이 1곳 추가될 가능성도 있다.
대한건설협회 부산시회 김태하 사무처장은 “컨소시엄에 대기업이 3곳으로 늘어나더라도 여론을 의식한다면 지역 업체 비중을 줄이지 않고 대기업끼리 비율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지역 건설업체 비중이 늘어야 실제 공사 과정에서 지역의 자재나 장비, 인력이 대거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지역 비중을 대폭 확보해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사기업의 결정을 강제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는 없지만, 이 과정에서 정부나 시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부산지역 기후변화 리스크 경고등 “항만물류업 최대 1조9000억 손실”
한은 부산본부 경제영향 보고서
- 자산피해 향후 10년 2.7배 전망
- 연평균 성장률 최대 0.14%p ↓
부산지역 주요 산업인 항만물류업에서 폭염·태풍 등 기후변화 리스크가 가져올 미래의 경제적 손실이 연간 수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은행 부산본부는 22일 조사연구보고서 ‘기후변화 리스크의 부산지역 주요 산업에 대한 경제적 영향 분석’에서 이 같이 지적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환경연구원 채여라 선임연구위원과 서울대 황진환 교수, 키네틱에너지스 김보람 팀장, 대한상공회의소 연정인 연구위원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 대응이 현재 수준에 머무를 경우 향후 10년 부산지역이 입을 직접피해(자산손실)는 현재의 2.7배 수준의 대규모 재난으로 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최다강수량이 1% 증가하면 직접피해액을 6.9% 늘리는데, 부산은 이 기간 평균 일최대강수량이 평년 대비 약 38.8% 증가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화석연료를 최소화하지 않으면 부산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11~0.14%포인트까지 하락한다고 전망했다.
주요 산업 부분별로 보면 제조업은 폭염일수가 늘면서 업무효율을 떨어뜨렸다. 장기적 시계(2041~2060년)에서 부산의 기후변화 대응노력에 따라 업무효율이 현재의 30~40% 하락하는데, 이에 따라 기업의 인건비 지출은 44~70% 높아질 것으로 봤다.
항만물류업은 같은 기간 폭염일수 증가에 따른 경제적 피해액이 7000억~1조1000억 원에 이르며, 태풍이 현재보다 10배 증가하는 극단적 시나리오에서는 피해액이 1조9000억 원에 달하는 경제적 피해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됐다. 항만 인프라 손실에 따른 피해는 다른 부문과 국가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액은 더 커질 수도 있다.
채여라 선임연구위원은 “부산은 일최다강수량의 증가가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기후변화 리스크 요인”이라며 “이에 더해 폭염 태풍 등 주요 산업별 핵심 기후 리스크 요인과 경제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
백조의 호수' 낙동강하구, 운명의 기로에 ...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의 지성과 양심을 믿겠다."
'백조의 호수, 부산 낙동강하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이나 그림, 이야기 등을 통해 우리에게 무척 친숙한 새 백조의 우리말 이름은 고니이다. 이 고니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겨울 평균 3000마리나 찾아오는 도시가 바로 부산이다. 이유는 낙동강하구가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하구는 난개발로 많이 훼손됐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 최고의 습지로 세계적 자연유산이다. 남은 문화재보호구역 면적만도 순천만의 3배, 우포늪의 10배가 넘고, 도래하는 철새의 종류나 수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러나 '백조의 호수' 낙동강하구는 지금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상황에 처해있다. 낙동강하구를 가로지르는 대저대교와 엄궁대교 건설을 부산시가 마구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낙동강하구 일원에는 이미 27개의 각종 다리가 가동되고 있는데 여기에 부산시는 서부산개발이란 이름으로 문화재보호구역 안에 16개의 다리를 추가 건설하려 한다. 16개 신규 추진 교량 중 대저·엄궁·장낙대교 3개 교량은 고니들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서식지여서 6년째 환경시민단체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큰고니는 날 수 있는 새 중 가장 무거운 새에 속한다. 워낙 큰 몸집과 무게를 지녀 앉고 뜨는데, 큰 비행기마냥 활주로를 필요로 한다. 천연기념물인 이 새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려면 교량 사이의 간격이 최소 4km는 유지되어야 한다. 부산대 홍석환 교수의 논문 등 3편의 학술논문과 2021년 6월 대저대교 노선선정을 위한 공동조사 결과를 분석해 환경부가 이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당시 환경부는 현재의 약 4km에 이르는 경전철교와 강서낙동강교 사이의 간격이 대저대교가 가운데 들어서면 교량 간격이 2km 정도씩으로 좁아지는 서식지 파편화로 큰고니의 안정적 서식이 불가하니, 기존 노선 대신 환경부가 제시하는 4개 대안노선 중 하나를 선택해 다시 환경영향평가를 받으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낙동강유역환경청장이 바뀌면서 밀실에서 졸속으로 환경영향평가가 통과되었고, 국가유산청의 문화재보호구역 현상변경 허가 여부가 마지막 행정절차로 남게 되었다. 국가유산청 통과과정은 환경영향평가 통과과정과는 큰 차이가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유역환경청장 등 공무원들이 임의로 통과시킬 수 있으나, 문화재보호구역 해제여부는 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구성된 민간위원회가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조의 호수' 낙동강의 운명은 한국 최고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 7월 18일 오후 3시 낙동강하구에코센터에서 자연유산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이날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에서는 이상석 위원장(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과 백운기(충남대), 이융남(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김용식(영남대 명예교수), 서정호(공주대 문화재보존과학과) 위원이, 국가유산청에서 여성희 자연유산국장, 임종덕 동식물유산과장, 강경보 동식물유산과 팀장이 참석했다.
건설추진 주체인 부산시에서는 임원섭 도시계획국장, 윤태균 도로계획과장 등과 환경영향평가 회사 직원들이 자리했다.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에서는 최종석 전 부산녹색연합 대표(최종석치과 원장)와 박중록 공동집행위원장, 박상현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사무처장대행 등이 참석했다. 필자도 습지와새들의친구 공동대표 자격으로 자리했다.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는 사전에 언론에 이날 회의사실을 알리지 않았고, 전국시민행동 측엔 하루 전날 회의에 참석해 환경시민단체의 입장을 간략히 발표해달라는 요청을 어렵사리 받아낸 것이었다.
이상석 자연유산위원회 위원장은 인사말에서 "서울에 비가 많이 왔는데 부산 오니 비가 그쳐 반갑다. 그간 오랜 시간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교량 건설 추진사업과 관련해 오늘은 현장 조사와 환경단체의 고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었다. 부산시는 10분 정도, 환경관련단체는 30분 정도 입장을 발표하고 환경단체 퇴장 후 부산시와 협의를 하는 걸로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박중록 공동집행위원장은 "국가유산청이 지난번 6월 소위 현장조사 때도 환경시민단체에게 30분 발표시간을 준 뒤 퇴장시키고 부산시와 별도 회의를 했는데 우리가 우려하는 바는 부산시의 환경영향평가 및 교통량 자료가 거짓이 많고, 환경시민단체를 배제하고 사업주체와 별도 회의를 갖는다는 것은 공평성에서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환경시민단체 입회하에 부산시에 질의·응답을 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상석 위원장은 잠시 회의를 가진 뒤 자연유산위원회와 부산시와의 별도 회의시간은 갖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먼저 부산시 윤태균 도로시설과장과 환경영향평가를 맡은 한울자연생태연구소 관계자가 나와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내외 교량 및 도로건설 자연유산위원회 질의답변 및 조건이행계획서'를 발표했다. 윤태균 과장은 교량건설에 따른 저감방안의 핵심은 대체서식지안에 있다며 대체서식지 전담조직(생태복원팀)을 지정했으며 2018년과 2024년 사이에 환경시민단체와 20차례의 대체서식지 조성 및 낙동강하구 환경계획수립 과정에서 논의를 하는 등 거버넌스과정을 거쳐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울자연생태연구소 관계자가 나서 낙동강하류 철새도래지 내 교량건설에 따른 저감방안으로 사장교나 주탑이 있는 형태의 교량을 철새 이동을 고려해 평면교 형태로 변경한 것과 소음저감방안 및 대체서식지 조성 등에 대해 집중 설명하였다. 발표 요지는 이러하다.
전국시민행동 회원들이 낙동강에코센터 입구에서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위원들이 오기 전 '지켜요 낙동강하구' '개발보다 보존'을 쓴 문구를 들고 보존캠페인을 펴고 있다. [사진=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부산시는 1997년 인공도래지 조성을 시작해서 둔치정비사업과 4대강사업 등을 통해 을숙도생태공원이나 대저생태공원 등 많은 대체서식지를 조성하고 먹이주기와 습지관리를 해왔으며, 그 결과 조사자료를 보면 조류도 증가를 보이고 있다. 횡단교량 동시 건설에 따른 소음저감방안으로는 소음진동공정은 철새도래기인 11월~2월에는 공사를 중지하고 2억원을 추가해 6곳이상 먹이터를 적극 조성할 계획이다. 2024년부터 2028년까지 추가로 대체서식지를 조성하고, 2025년 9월까지 조류모니터링을 완료하겠다. 대모잠자리 보존을 위해 대교 건설 예정지의 작은 연못들은 그대로 존치하고, 맹꽁이 보호를 위해서는 유입방지 펜스를 설치하고 전문가 정밀조사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이어 박중록 공동집행위원장이 나서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계획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환경시민단체의 입장을 발표했다. 박 위원장은 "어젯밤에 참석 발표 통지를 받아 좀 당황스러웠다. 부산시의 핵심자료 모니터링 조사자로 우리단체는 10년 이상 참석해왔는데 지금은 부산시가 낙동강하구 조사 기회조차 안 주고 있다 오늘 부산시가 발표한 문화재보호구역 내 교량방식으로 사장교 대신 평면교로 바꾸겠다고 하는 것은 부산시의 잘 알려진 수법이다. 서부산 낙동강 하구의 기존 다리는 이미 평면교이며 가로등도 없다. 평면교는 철새도래지의 교량의 기본인데 이걸 환경영향평가에서 지적을 받으면 저감방안으로 넣는 것은 상투적인 수법이다. 대체서직지 성공사례로 내놓은 부산시의 자료는 자료를 왜곡되게 해석한 것이다. 자연유산위원회 위원들께서 철저히 검증해 심의를 해주기시 바란다"고 말했다.
박 위위원장의 발표요지는 다음과 같다.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일원에는 이미 27개의 각종 교량이 건설돼 이용 중이며 여기에 더해 부산시가 문화재보호구역내에 16개의 신규 교량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이 중 대저·엄궁·장낙대교는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의 핵심지역을 관통해 결정적 훼손을 초래하기에 이 3개 교량의 건설계획만은 재고해주기를 요청하며 2018년 부산녹색연합, 부산환경운동연합, 한국습지NGO네트워크 등 전국 65개 단체가 모여 결성한 것이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이다.
이미 국가유산청에 전국시민행동이 발송한 공문에서 지적하였듯이 교량건설 허가를 심의하기 위해서는 △교량 건설의 필요성 △천연기념물 큰고니들의 핵심서식지 훼손 여부 △대체서직시와 무논 조성의 실효성 여부 △대안의 검토 등이 따라야 하나 지난 6월 국가유산청 소위원회의 결정에는 이런 핵심 내용들에 대한 검토가 빠져 있었다.
이들 3개 교량건설에 대한 부산시의 주장은 사실과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부산시와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소위원회가 교량건설의 핵심대책으로 간주하는 대체서식지와 무논 조성은 실효성이 없을뿐더러 대체서식지 조성사업이 오히려 대모잠자리나 맹꽁이 같은 멸종위기종이 서식지를 파괴하는, 야생생물보호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부산시는 대체서식지 조성으로 조류가 증가한다 하였는데 이는 부산시가 자료를 왜곡한 것이다. 부산시 조사는 2003년부터 시작되었으나 지금의 조사구역이 확정된 것은 2013년 11차 조사 때부터로 11차 조사부터 20차 조사까지의 결과를 비교하여야 해야 같은 기간 같은 면적을 대상으로 한 철새도래수가 비교 가능하다. 그런데 부산시는 조사대상지역이 늘어남에 따라 증가한 철새수를 바탕으로 전체 철새수가 증가한다고 발표하고 있다. 11차에서 20차까지의 10년간 부산시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같은 조건에서 보면 전체 조류, 낙동강하구에 원래 도래하던 물새류는 계속해 감소하고 있으며, 흑기러기나 쇠제비갈매기, 고니류 등의 대표 새는 아예 사라지거나 감소해 대체서식지 조성은 전혀 실효성이 검증된 것이 없다.
부산시가 300ha 규모의 무논을 조성하겠다는 것도 강서구 일원의 논은 제2에코델타시티건설, 연구개발특구 등 개발계획이 이미 수립돼 있기에 무논 조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김해나 창원 쪽의 논은 지자체간의 협조의 실효성이 떨어지며 낙동강하구의 새들이 그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대체서식지가 조성되더라도 서식지 파편화로 법정보호종인 큰고니의 안정적 서식이 불가능해진다는 사실은 이전 환경부의 결정과 관련 학술논문에서 알 수 있다. 부산대 홍석환의 논문과 경상대 이수동 등의 논문은 큰고니의 안정적 서식을 위해 최소 4km의 교량간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산시의 입장에서 발표해온 이종남 등의 논문에서조차 최소 4km 정도의 교량간격이 유지되는 곳에 거의 대부분의 큰고니가 서식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낙동강유역환경청이 서식지 파편화로 인한 서식지 훼손 결론과 4개 대안노선을 담은 공문을 내놓았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또한 추가교량 건설이 불가피하다는 부분에 대해선 부산시 자료 자체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자 한다. 인구와 교통량이 25% 가까이 급증할 것이라는 부산시 계획에 대해 계속된 인구감소와 초고령화사회 진입으로 2016년 이후 부산시 자료로도 교통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고, 낙동강횡단 교량의 교통량도 2015년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국정감사 자료에도 나와 있다. 하단녹산선과 부전마산간 복전철 건설계획 등이 확정되어 향후 교통사정이 개선되며, 건설을 하더라도 2001년 교량건설계획 입안 시와는 제반 여건이 바뀌었으므로, 대중교통이나 도심과의 연계성이 좋은 사상대교을 먼저 건설하는 등 자연도 지키고 교통개선도 큰 다른 대안 모색이 가능하다. 환경시민단체가 부산시의 당초 계획이던 사상대교 우선 건설에 동의한다고 밝혔고, 환경부가 제시한 4개 안 중 2위의 대안노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상대교 건설계획을 부산시가 제외한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박 위원장은 이밖에 △화명대교 접속도로와 하단녹산선 조기 건설 △가락IC-감전IC간 도로와 교량 건설 △을숙도대교와 낙동강 횡단교량 연결 터널 무료화 △출퇴근시간 버스전용차로와 출퇴근전용 공용버스 운영 등을 통해 낙동강하구의 출퇴근시간 교통체증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을 즉각 실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 위원장은 "상황이 이러한데도 부산시는 2001년 세운 도시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고 있는 현실이다. 부산시는 지금까지 환경시민단체와 제대로 협의를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저대교와 엄궁대교가 건설되면 하구둑 상류부는 큰고니의 안정적 서식지가 모두 사라지므로 위원 여러분의 심도 있고 공정한 심의를 당부한다"며 발표를 마쳤다.
이상석 위원장은 "별도의 질의 시간은 갖지 않겠다. 환경시민단체에서 추가 의견이 있으면 짤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에 최종석 전 부산녹색연합 대표가 발언을 했다.
"위원님, 부산시 관계자 여러분, 우리 환경시민단체의 오늘 발표 내용에 엉터리가 있으면 공개적으로 반박해주면 좋겠다. 부산시는 2000년대 초반 명지대교(현 을숙도대교) 건설공사 때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 그전에도 대체서식지 조성으로 철새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나는 그때부터 낙동강하구 보존운동에 참여해온 사람이다. 문제는 부산시에 있다. 국가기관인 낙동강환경유역청이 대체노선을 제시하면 받아들여야 하는데 부산시가 이를 거부했다. 부산시 부시장(시장권한 대행), 유역환경청장, 환경시민단체가 합의해 현지조사를 하고 전문위원회가 결정해 권고한 안을 부산시가 무시했다. 그리고 앞의 부산시 발표에서 부산시가 지금까지 20차례나 환경시민단체와 협의했다고 하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라운드테이블이라고 한다고 해놓고 바뀐 부산시 부시장이 나와 대체노선안을 의제에서 제외하지 않으면 협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한 두 차례 회의 후 라운드테이블은 결별됐다. 지금 위원 여러분이 이 분야 최고전문가이시니까 하는 말인데 이런 식의 일방적인 부산시의 교량건설계획을 형식적으로 받아들일 거라면 문화재심의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나, 문화재보호법을 뭣 때문에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다. 전문가 학자인 여러분의 양심에 기대한다. 소신껏 심의해주길 것을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감사합니다.“
백운기 위원이 해명하겠다며 발언을 했다. "지난번 소위원회 때 환경단체의 발표 이후 환경단체에 퇴장을 요청한 데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충분한 시간 듣지는 못해도 여러분이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검토하고 있다. 환경단체 발표 이후 부산시와의 별도 시간을 가진 것은 소위원회 차원에서 교량건설에 따른 문제점에 대해 별도의 기술적 추가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이상석 위원장은 오후 4시반쯤 위원회를 종결했다. 이날 회의를 바탕으로 한 자연유산위원회의 향후 결정은 그간의 온갖 난개발로 겨우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하는 순간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앞서 전날인 17일 낙동강하구지키기전국시민행동은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파괴 앞장 졸속·밀실 검토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소위원회 결정을 규탄한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 소위원회가 '대저대교와 장낙대교의 건설 승인을 권고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사실상 부산시의 손을 사전에 들어주고 있었던 것이 드러났다. 부산시의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서는 거짓작성으로 2020년 반려되었고, 장낙대교 역시 2021년 평가서가 반려된 바 있다. 대저대교 환경영향평가서는 거짓부실 작성으로 고발되어 지금도 경찰수사가 진행중인 사안이다.
자연유산위원회 소위는 지난 4월 23일 구성되어 불과 2달이 안 된 지난 6월 20일 최종 의견을 제출하면서 이런 핵심 사안을 전혀 검토하지 않았다. 2018년 이후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사안을 속전속결로 매듭지으면서도, 말로는 현지조사를 포함해 4차례 회의를 거치며 “부산시와 환경단체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고 했다. 전국시민행동은 소위가 “전반적인 검토과정에서 교량건설에 따른 서식지 손실을 대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며 아예 노골적으로 교량건설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연유산위원회 회의 전날인 7월 17일 부산시청에서 전국시민행동 회원들이 '낙동강하구 문화재보호구역 파괴결정 국가유산청 소위원회 결정을 규탄한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습지와새들의친구 제공]
전국시민행동은 △국가유산청은 소위원회의 업무태만에 대해 해당 위원의 해임과 소위원회의 결론 폐기 등 책임 있는 조치를 강구하라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는 실시 예정인 현지조사에 시민행동의 동행과 공정한 설명 기회를 보장하라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원회는 시민행동이 제출한 자료와 부산시 제출 자료를 정확히 살펴 공정하고 철저하게 심의를 진행하라 △ 부산시는 거짓부실 환경영향평가서 작성을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부산시는, 낙동강하구의 대자연을 파괴하고 천문학적 예산을 낭비하는, 대저·엄궁·장낙대교 건설계획을 철회하고, 사상대교의 우선 건설과 출퇴근시간 버스전용차로 지정, 출퇴근전용 공영버스 운동 등 실현가능한 대안을 수립하고, 낙동강하구의 대자연을 기반으로 한 국제적 관광도시로의 개발 등 지속가능한 도시발전계획을 수립할 것을 거듭 요구했다.
김해창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인저리타임
지구 종말 앞당기는 기술 발전
기아 전기차 EV3는 지난 6월부터 사전계약을 시작해 3주 만에 1만대를 넘어서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회사 측은 연간 판매 목표량을 2만5000대로 잡았는데, 이미 1만5000대 이상 주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전기차는 2021년 23만대에서 지난해 55만대로 두 배 이상 급증했고, 올해는 74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EV3는 1㎾h의 전력으로 5.1㎞를 갈 수 있다. 연간 2만㎞를 주행한다고 가정하면 전력 소모량은 3921㎾h이다. EV3는 전비가 2등급으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승용 전기차 중 덩치가 가장 큰 EV9은 전비가 4등급이다. 1㎾h로 갈 수 있는 거리가 3.8㎞에 불과하다. 1년 주행거리가 2만㎞인 EV9은 전력 5263㎾h를 먹어야 한다.
한국전력 전력통계월보를 보면 지난해 가정용 전력 사용량은 총 8만2348GWh였다. 이를 2277만가구로 나누면 한 가정에서 3782㎾h를 사용한 셈이다. EV3는 2만㎞를 주행하는 동안 한 가정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전력을 쓴다. EV9은 평균적인 가정보다 1.4배가량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한국 전체 자동차의 절반가량인 1500만대가 모두 전기차로 바뀌면 어떻게 될까. 전비를 ㎾h당 5㎞, 연평균 주행거리를 2만㎞로 가정하면 1500만대가 쓰는 전력은 6만GWh로 가정용 전력 사용량에 근접하게 된다.
전기차는 전에 없었던 새로운 전력 수요처인데,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데이터를 저장하고 관리하는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 등을 갖추고 있다. 특히 최근 널리 쓰이는 인공지능(AI)은 전력 소모가 막대하다. 구글 검색을 할 때 소요되는 전력은 0.3Wh인데, 생성형 AI 챗GPT는 질문당 2.9Wh를 소비한다고 한다. 인구의 절반인 2500만명이 10개씩 챗GPT에 질문을 한다면 하루 전력 사용량은 72만5000㎾h이다. 하루에 전기차 6만6000여대가 54.8㎞씩 주행하면서 쓰는 전력과 맞먹는다.
정부는 지난 5월 말 공개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 2038년 전력 설비를 157.8GW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투자 확대와 AI 확산에 따른 데이터센터 증가로 전력 수요가 급증한다고 판단했다. 부족한 설비 10.6GW의 절반가량은 대형 원전 3기와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세워 충당하기로 했다. 전기본에 원전 신규 건설 계획이 들어간 것은 9년 만이다. 지난해 30.7%였던 원전 발전 비중은 2038년 35.6%로 늘어나게 된다.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을 2022년 23GW에서 2030년 72GW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있다. 하지만 발전 비중은 21.6%로 원전(31.8%)에 한참 못 미친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고 한다. 한국이 8년 사이 재생에너지 비중을 3배로 늘린다고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원전을 제외한 ‘RE100’(재생에너지 100%)을 기업들에 요구하는 글로벌 흐름과도 맞지 않는다.
전기 없이 한시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전기는 인류에게 보다 편한 생활을 선사하지만, 사용이 늘어날수록 지구를 병들게 한다. 발전소 건설에서 발전, 송배전, 사용, 저장, 사용후 처리 등 모든 과정에서 자연을 파괴한다. 친환경이라는 재생에너지도 산과 땅, 바다를 파헤친다. 최근 리튬 배터리 공장 화재에서 보듯 인명을 대량으로 앗아가기도 한다. 화재사고 4건 중 한 건은 전기로 인한 것이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피해가 막심하고, 폐기물 처리 해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인류를 구원할 것으로 각광받았던 기술 발전은 파멸로 몰아넣을 우려가 점점 더 커진다. 파국을 막을 기술을 개발하면 된다는 낙관론이 있다. 그러나 기술은 언제나 환경을 파괴하는 데 몇발짝 앞섰고, 복구하는 기술은 한참 뒤에 따라온다. 지구를 보전하려는 속도는 파괴하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전력 공급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수요관리에도 힘써 전기를 적게 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에너지 사용을 줄여야 한다. 자동차는 연비나 전비가 높은 게 좋은데, 차를 타지 않고 걷는다면 더 좋을 것이다. 전기뿐 아니라 물과 식량도 적게 소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편리함에 길들여진 현대인이 하루아침에 생활습관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후손들과 지구의 미래를 위한 의지가 필요하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경향
마린시티 수중 방파제 건립 확정… 시민단체 반발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 지정
8년 만에 이안제 설치키로
공적 예산 투입·설계 방식 논란
‘시민공감’ 사업 재검토 촉구
부산 시민단체가 23일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린시티 수중 방파제 설치 계획 재검토를 촉구했다.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시민공감 제공
부산 대표 태풍 취약 지역으로 꼽히는 해운대구 마린시티 앞바다에 ‘수중 방파제’ 공사 윤곽이 나왔다. 시민단체는 700억 원에 달하는 공적 예산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이 마린시티 주민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며 재검토를 촉구했다.
23일 부산시와 부산 해운대구청에 따르면 부산시 건설본부는 마린시티 앞바다에 이른바 수중 방파제로 불리는 이안제 설치 계획을 확정하고, 현재 사업을 맡을 업체 선정에 나섰다. 시 건설본부는 마린시티 연안에서 150m 떨어진 해상에 이안제를 설치해 파도 높이를 낮추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추가 절차를 밟고 있다. 이안제는 길이 500m, 높이 14m 규모의 방파석을 쌓는 방식으로 건설된다. 이안제는 해수면으로부터 4m가량 돌출된 형태로 지어질 예정이다.
실제 공사는 오는 10월 착공해 2027년 마무리될 예정이다. 국비 299억 원, 시비 266억 원, 구비 131억 원 등 모두 696억 원이 투입된다.
마린시티 일대는 태풍 내습 시 파도가 제방을 넘는 경우가 많아 그동안 침수 문제에 시달렸다. 실제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2016년 태풍 차바 때 마린시티 일대 월파 문제는 전국적으로 이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그 직후 해당 지역은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선정됐다. 그러나 방재시설 설치와 관련해 사업비와 특혜 시비 등 논란이 이어졌다. 또 해수면 위로 방파제가 돌출되는 문제로 조망권이 가려진다는 인근 상인과 아파트 입주민 반발도 나왔다.
그러다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로 지정된 지 8년 만에 이안제 설치 방식으로 방재시설을 짓는 방안이 최근 확정됐다. 시 건설본부의 사업 추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 목소리가 다시 터져 나온다.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시민공감'은 23일 부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마린시티 수중 방파제 설치 사업의 설계 용역 결과를 공개하고 설치 계획을 재검토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700억 원 가까운 공적자금 투입을 문제 삼았다. 시민공감 측은 “마린시티는 건설 당시 바다와 건물의 간격이 40m에 불과하지만 1~2층 상가주들이 뷰를 가린다는 이유로 항의해 5m 이상 설치될 방파제가 1.5m만 설치됐다”며 “예견된 인재인데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부촌에 대한 특혜”라고 지적했다.
방재 시설이 수중 방파제 방식으로 이뤄지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가 나왔다. 시민공감 측은 “강원도 고성 해변 앞바다도 200억 원을 들여 수중 방파제를 설치했지만, 침식 현상이 심해 주민 반발에 부딪혔고 강릉 주문진 해변 역시도 수중 방파제의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부산시 해운항만과 관계자는 “마린시티 지역은 2003년 태풍 매미 이후 지속적으로 자연재해 피해를 입은 곳으로, 이번 방파제 설치는 자연재해 이력에 근거한 지구 선정과 그에 따른 대책 마련이지 특혜가 아니다”고 밝혔다. 또 “지구 지정, 대책 마련 등 매 단계에서 주민 의견 청취 과정을 거쳤고, 공청회는 계획이 없지만 필요하다면 논의해 보겠다”고 덧붙였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비가 그친 이후 시작될 것들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매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며칠 전 전북 군산에서는 시간당 146㎜의 비가 내렸다. 초등학교 시절 많이 쓰던 15㎝ 자 높이만큼의 물이 1시간 만에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다. 여기가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사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높아졌고 주변 해수면 온도 또한 상승해서 이미 아열대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짧고 굵게 아열대 스콜 같은 집중호우가 내려도 어색한 상황은 아니다.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기상학적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름 기후가 변한 것이다. 한반도 여름 기후 그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똑같은 메커니즘의 강우 패턴이 형성되어도 비가 더 많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비는 분명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집중호우로 예기치 못한 복합재해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 구름, 바람, 습도 등 대부분의 기상요소가 강하거나 약하게 변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집중호우뿐만 아니라 최근에 큰 이슈가 되었던 비행기의 이착륙에 영향을 주는 바람(난류)을 더 강하게 또는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균기온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 특정한 이유로 지면의 기온이 높아지면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는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구름이 되고 강한 비를 뿌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하고 공기는 더 뜨겁고 습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증기를 가득 품고 데워진 공기는 더욱 강한 바람이나 폭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특정 지역에는 더 많은 비가 올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더 적게 올 수 있는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만들어진다.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여러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도 현재 우리가 보는 극단적 날씨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온난화를 늦추지 않는 이상 앞으로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 한다. 즉 비가 극단적으로 많이 오거나 오지 않는 강수량의 변동성 또한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한 집중호우로 너무 많은 비가 내리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다양하게 발생한다. 바로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복합재해다. 기후변화로 인한 하나의 재해가 또 다른 재해를 순차적으로 유발하거나 두 개의 다른 재해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가 더 많이 오면 홍수가 발생하고 심하면 침수 피해가 생긴다. 농경지 같은 경우 농작물의 피해가 발생하여 당장 밥상 물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오늘 식당에서 먹은 상추, 깻잎이 내일은 안 보일 수 있다. 만약 곡물이 원자재라면 2차, 3차 가공식품의 가격이 시간차를 두고 오를 수도 있다. 올여름 이미 축구장 1900개 면적의 농경지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니 큰일이다. 산림지역 또한 집중호우로 인해 산림작물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으며 산사태 발생 시 주변 도로 및 주거지역까지 큰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강한 집중호우가 이어진다는 것은 물이 가득 찬 화분에 계속 물을 부어주는 꼴이다. 상상해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물을 더 부으면 점점 흙이 넘치고 나무가 흔들리다 결국 화분 밖으로 쓰러질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산림지역은 토양의 물이 한가득 차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산사태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산림지역에서 넘치는 물은 결국 멀리 떨어진 하류 지역에 침수 피해를 유발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 지역은 집중호우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여 홍수가 발생하거나 하수 관망의 배수시스템 통수능력에 따라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도시의 침수는 하천 범람 때문이라기보다는 도시 내 배수시스템의 설계 홍수량(예: 서울시 약 75㎜/hr)을 초과하여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심 내 배수시스템의 설계용량을 높이거나 도시 지역에 빗물 저류시설(도시에서 빗물을 담을 수 있는 아주 큰 물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됨)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도심 내 빗물받이는 불투수층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중요한 빗물 배수시스템 중 하나로 빗물을 모아 배수시스템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기반시설 요소이다. 따라서 집중호우 시 빗물받이를 통해 원활하게 배수시스템으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빗물의 흐름에 방해를 줄 수 있는 빗물받이 덮개 위 낙엽 및 쓰레기 등을 미리 잘 처리해야 한다. 특히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로 인해 빗물받이가 막히는 일도 있으니,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계산에 없던 메탄 자연배출도
도시의 침수 피해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집중호우 이후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물웅덩이로 인해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모기가 쉽게 번식하여 개체가 늘어날 때 질병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폭우로 인해 하수와 상수가 섞여 식수원이 오염될 때 위생환경이 취약해져 장티푸스나 세균이질 같은 수인성 감염병이 증가할 수 있으니, 상수원의 오염이 의심되는 지역에서는 물을 바로 마시는 걸 반드시 피해야 한다. 물로 인한 질병 피해는 물이 많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특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횟감인 양식어류는 집중호우로 인한 스트레스와 저염분으로 인한 생리적 장애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 있어 기생충성 질병이나 세균성 질병이 발생해 폐사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최근에 집중호우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바로 집중호우로 인한 온실가스 ‘메탄’의 자연 배출이다. 중앙아프리카의 집중호우로 인해 메마른 초원이 거대한 웅덩이로 바뀌고 그곳에서 다량의 메탄이 생성되어 대기 중으로 배출된 것이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머리 위 700㎞ 상공에서 측정될 만큼 많은 양의 메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메탄은 전 지구 메탄 농도 상승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극도로 건조한 환경이 물에 잠기자, 산소가 없는 환경을 좋아하는 메탄생성균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메탄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표적 온실가스로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대기 중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처럼 대기 중 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메탄은 배출 후 20년 동안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 이상인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대기 중 메탄 농도 증가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 요인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기후 반응과 같은 자연적 과정이 섞여 있기에 정확한 농도 증가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특히 자연계 반응 같은 경우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메탄 발생원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집중호우가 유발하는 새로운 메탄 발생 같은 일은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물질을 더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기후변화로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바닥에 떨어지는 물의 양이 늘어난다는 물리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과정을 통해 서로서로 연결하고 있으므로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폭염이나 가뭄도 마찬가지다. 절대 하나의 물리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 측면에서 복합재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진단하여 피해가 어디까지 발생할 수 있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큰 피해는 비가 그치고 난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주류 언론들, ‘체코원전=잭팟’ 정말 맞습니까?
한수원 체코 원전 수주 '잭팟'이라 대서특필
이 정권에서는 전 분야에 걸쳐 하도 놀랍고 황당한 일이 많아서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뉴노멀’이 됐다. 그런데 며칠 전 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지난 18일 출입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가적 경사인데 두 신문은 1면에 기사 한 줄도 안 썼다, 이 신문들은 어떤 가치로 이 기사를 판단하는 거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국가적 경사’란 전날 언론에 보도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놓고 하는 말이다. 이 사건을 ‘1면에 기사 한 줄도 안 쓴’ 것으로 지목된 두 신문은 경향신문과 한겨레다. 정권의 치적을 보여줄 사건을 1면에서 크게 다루지 않았다며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여러 기자들 앞에서 특정 언론을 지적하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이다. 불만에 그치지 않고 언론사의 기사 가치 판단 기준에도 개입하려 들었다.
윤석열 정권의 인사들의 언론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직자가 언론 전체를 정부와 정권 기관지나 홍보지로 생각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언론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기자들 앞에서 이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까? 마치 언론을 ‘잘 길들여 놓은 애완견’으로 생각했는데 왜 견주(犬主)가 생각한 대로, 시키는 대로 꼬리치지 않느냐는 소리로 들린다.
한수원이 체코에서 1.2기가와트 원전 4기를 짓는 사업의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17일 우리나라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이 로이터·AFP 통신과 산업통상자원부 발표를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총사업비가 24조원이라고도 하고 어떤 매체는 30조원이라고도 썼다. 주류 언론들은 ‘초대형 잭팟 터졌다’ ‘15년 만의 쾌거’ ‘사상 최대 규모’ ‘프랑스 눌렀다’ ‘막판 대역전극’ 등 이 사건이 어마어마한 사건임을 의미하는 말을 기사 제목에 넣어 보도했다. 조간 신문들이 18일자에서 1면 톱으로 보도하고 사설에서도 다뤘다. ‘땡윤 뉴스’의 정권 홍보 매체로 전락한 공영방송 KBS는 폭우로 인한 전국 재난상황 뉴스를 제치고 이 ‘국가적 경사’ 소식을 톱뉴스로 뽑았다.
관련 소식을 다룬 기사·칼럼을 기사 검색 사이트인 빅카인즈에서 검색했다. 주류 언론으로 꼽히는 10개 전국단위 종합일간지·3개 경제지·4개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이 이틀간 무려 200여 건의 기사를 쏟아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도 이 사건을 기사로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한겨레는 초판이 아닌 최종판(밤 12시 이후에 제작·인쇄하는 신문)에서, 경향신문은 경제면(16면)에서 이 뉴스를 전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성에 차지 않았는지 이 ‘국가적 경사’를 1면에서 다루지 않은 두 주류 언론을 꼭 짚어 불만을 드러내고 ‘도대체 어떤 가치로 기사를 판단하느냐’고 항의하듯 물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 결정 직후 이를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윤석열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가 통했다”고 기자들에게 미리 자화자찬 브리핑을 했다고 한다. ‘국가적 경사’를 대통령의 치적으로 포장해 ‘모든’ 언론이 이를 신문 1면 톱 정도의 비중으로 크게 보도하길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 정권의 치적에 한 치의 의심이나 비판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독재정권의 언론관이다.
이런 언론관은 4개월 전 대통령실을 떠난 황상무 당시 시민사회수석의 ‘회칼 테러’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황상무 수석은 여러 출입기자와 식사 자리에서 정권비판적 보도를 자주 해온 MBC 기자를 향해 전두환 폭압정권 시절의 ‘정보사 기자 회칼 테러’ 사건을 언급한 적이 있다. 고분고분 말 안 듣고 자꾸 비판하는 기자는 회칼로 찔러버릴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암시’였다. 윤석열 정권 인사들은 여전히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또 이런 생각을 기자들 앞에서 버젓이 내뱉고 있다.
1면 톱에 보도하지 않아 대통령실의 ‘지적질’을 받은 한겨레에 따르면, 이번 한수원 체코 원전 수주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우선협상대상국’ 선정일 뿐이다. ‘헐값 수주’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수주가 확정되기까지 공사금액 등에 따라 상황이 변할 수 있어 우선 협상대상국으로 선정됐다가 최종 수주가 취소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체코 현지 언론은 ‘한수원의 제안 금액이 거의 덤핑 가격’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과거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이면 계약과 헐값 수주로 오히려 손해를 봤던 사례를 언급하며 ‘마지막까지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을 내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로부터 ‘지적’당한 한겨레 기자는 다음날 대통령실의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장나래 기자는 ‘“국가 경사, 두 신문만 1면에 안 써” 편협한 언론관 또 드러낸 대통령실’ 제목의 칼럼에서 “기사화 여부와 기사 배치에 대한 판단은 각 언론사의 고유 권한”이라며 “체코 원전 수주를 ‘국가적 경사’로만 볼 것인지, 다른 측면도 함께 볼 것인지, 얼마나 비중있게 다룰 것인지는 언론사가 판단할 일이지 대통령실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나래 기자도 또 문제의 ‘회칼 테러’ 발언을 거론하며 “입맛에 맞지 않는 특정 언론사에 불만을 표출하는 윤석열 정부의 편협한 언론관은 바뀐 게 없어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 정권의 언론관은 한겨레의 지적처럼 ‘편협’할 뿐 아니라 폭력적이다. 언론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고 하고 ‘네 편’인 비판 언론에 대해서는 압수수색·고소고발·법정제재 등을 밀어붙여 왔다. 신뢰도와 영향력 높은 공영방송을 장악하거나 사영화해 비판 보도가 나오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아왔다. 독재정권식 언론관에서 나온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행태다.
윤석열 정권 인사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이렇게 편협하고 폭력적이며 시대착오적 언론관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언론의 책임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언론이 다 보도하는데 왜 두 개 매체만 보도하지 않느냐’와 ‘기사판단 기준이 뭐냐’는 말에는 언론을 우습게 보는 오만방자한 시각이 담겨있다. 이미 모든 언론이 다 내 편이니 까불지 말라, 기사 판단 기준을 내 편에 맞추라는 시각이다.
언론의 한수원 해외 원전 수주 관련 기사를 보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이런 시각이 틀렸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앞에서 말했듯이 거의 ‘모든’ 주류 언론들이 ‘1면 톱’으로 크게 보도하고, 게다가 한 치의 의심이나 비판적 관점 없이 ‘잭팟이 터졌다’고만 보도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원전을 추앙하는 일부 주류 언론들은 ‘저의(底意) 의심스런 체코원전 덤핑론, 정권까지 놀아날라’(한국경제) ‘문재인 탈원전 국가 자해를 다시 생각한다’(조선일보)며 이번 원전 수주 우선협상대상국 선정에 터럭만큼의 의심이나 비판조차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이 앞장서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생각한 대로, 시키는 대로 애완견처럼 ‘짖고 있는’ 것이다.
공기업의 해외 사업 수주 그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에서 사업권을 따내는 것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이른바 ‘국뽕’ 기사를 보도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국뽕’ 기사를 쓰는 것이 정권의 치적 홍보인지, 혹시 그 치적이 조작된 것인지 등을 의심하고 캐묻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은 정치인이나 정부가 할 일이지 언론이 앞장서서 할 일은 아니다. 언론의 역할은 단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주류 언론들은 이번에도 질문하지 않았다.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썼을 뿐, 의심도 하지 않고 제대로 질문도 하지 않았다. ‘잭팟’이니 ‘쾌재’라며 미화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한수원의 체코 원전 수주 우선협상대상국 선정은 수주 확정과 똑같은 것인가? ‘덤핑’ 논란은 체코 현지 언론의 음모론에 불과한 것인가? 한수원이 만에 하나라도 손실을 볼 가능성은 없는가? 이런 질문들에 앞서 무엇보다도, 언론은 이런 질문을 해서는 안되는 것인가?
주류 언론들은 질문은커녕 의심도, 질문도 하지 않는다. 대통령실 고위 공직자가 언론의 기사 배치와 기사 가치 판단에 개입하는 발언을 해도 당사자인 한겨레 이외의 다른 언론들은 함께 나서 항의하지도 않는다. 이런 무례한 발언을 듣고도 기자들이 다들 가만히 있으니 이 정권의 인사들이 언론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나무 베어 탄소 중립 해결한다?[노컷체크]
독이 된 녹색, 친환경의 배신: 숲이 위험하다①]
대체로 사실 아님
나무는 탄소를 먹고 자라는 '탄소 흡수원'이다. 장윤우 기자
탄소 중립을 위해 탄소 흡수량을 늘려야 하는 만큼, 흡수원의 확보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일반적으론 '나무를 많이 심자'는 개념을 떠올린다. 나무(탄소흡수원)가 많이 생기면 인간이 배출한 수많은 양의 탄소를 다시 흡수할 수 있다는 논리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산림청이 발표한 '제3차 탄소흡수원 증진 종합계획'은 이같은 내용과 다소 거리가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1970~80년대 조림한 우리나라 산림은 수확기, 즉 베어내야 하는 시기에 도달했다. 한국 산림 2/3가 31~50년생 나무로 구성돼 산림의 이산화탄소(이하 탄소) 흡수량이 감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제3차 탄소흡수원 증진 종합계획 중 '전략1. 산림 탄소흡수능력 강화' 부분 발췌. 산림청 제공
산림청은 "감소하는 국내 산림의 탄소흡수력을 반등시키기 위해서 '산림순환경영'을 촉진할 필요"를 언급한다.숲이 아닌 자리에 새로운 숲을 조성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건 '신규 산림탄소흡수원 확충'으로 또 다른 전략에 해당한다.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 있지만 결국 베어내고 → 그 자리에 새로 심어 → 탄소흡수량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2027년까지 산림에 부여한 전체 탄소 흡수 목표량은 3천만 톤. 이 가운데 94%(2826만톤)를 나무 베어 달성하겠다는 의미다.
한국은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까지 2018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대비 40%를 감축해야 한다. 기한이 10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탄소 흡수원을 '최대한 늘리겠다'가 아니라 '최대한 베어 국가 감축량 21%에 기여하겠다'는 산림청의 목표. 가능한 얘기일까?
2023년 6월 발표된 제3차 탄소흡수원 증진 종합계획(2023~2027). 산림청 제공
나무 베어 탄소 중립 해결한다?
"인간은 어릴 때 성장 속도가 빠르지만, 나이가 들면 점점 줄어든다. 나무도 마찬가지다."
나무를 베어 탄소 중립을 해결하자는 주장의 가장 큰 논거다.
같은 나무일지라도 어린 나무와 늙은 나무의 탄소 흡수량엔 차이가 있다. 노인이 더는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노목(老木)의 생장 활동은 느려진다.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해 몸 속에 저장하며 성장하는 나무의 구조상, 유목(幼木)에 비해 노목의 탄소 흡수량은 현저히 떨어진다.
2008년 이후 국내산림의 이산화탄소 순 흡수량이 감소 추세라는 설명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문제는 한국 숲이 '저출산 고령화' 상태란 점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림은 31~50년생 나무가 76%를 차지한다.
"인간도 고령화되면서 새로운 인구가 유입되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떨어지듯이, (산림의 나무도) 너무 수확하지 않고 계속 유지만 하면 새로운 나무가 자랄 데가 없다"고 국립산림과학원 장윤성 임업연구사는 설명한다.
한정된 공간을 늙은 나무들이 차지하고 있어 새로운 나무를 조성할 공간이 없다는 의미다. 나무를 베어내면→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를 심으니→이들의 적극적인 성장으로 탄소 흡수량이 증가한다는 분석이다.
2016년 한국기후변화학회지에 실린 '벌기령 단축이 미래 산림의 이산화탄소 흡수량에 미치는 영향 분석' 논문도 벌기령(나무가 벌채될 수 있는 최소 나이 기준. 쉽게 말해 노목의 기준)을 낮춰 더 많이 베어내고 재조림(숲을 다시 만드는 것)할 경우 "모든 수종에 걸쳐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늘어난다"고 분석했다.
산림 부담 탄소 흡수량의 94%를 늙은 나무를 베어내는 방식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계획이 탄생한 배경이다.
우리나라 산림의 영급별 면적비율 전망. '영급'에선 수목의 나이를 10년 단위로 구분한다. 1영급은 1~10년생, 2영급은 11~20년생이다. 한국 산림 2/3가 31~50년생 나무로 구성돼있다는 분석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제공
현장은 되물었다 "모두베기, 흙 그리고 시간은요?"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벌목 후 재조림.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반대 측에서도 '벌목' 자체를 죄악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국토의 약 60%가 산림인 상황에서 유용한 자원으로서 활용해야 한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다만 취재진이 현장을 돌며 만난 이들은 '모두베기'와 '흙', 그리고 '시간'을 언급하며 산림청과 다른 목소리를 냈다.
①모두베기
생명의숲 유영민 국장(전 사무처장)은 "우리나라 산림은 대부분 모두베기 방식으로 (벌목을) 진행한다"고 말했다.벌목은 일부 나무를 선택적으로 골라 자르는 △골라베기, 일괄적으로 베어내는 △모두베기로 나뉜다.
보통 산림을 친환경적으로 경영하는 방식으로 골라베기를 꼽는다. 주변 나무는 그대로 둔 채 벌목 기준에 도달한 소수의 나무만을 골라 베어냄으로써 숲의 연속성을 유지해서다. 그러나 우리 현장에선 나무들이 일괄적으로 베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취재진이 돌아본 산림 현장은 적지 않은 규모로 맨 땅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벌채 후 부산물을 모아둔 모습. 지역의 한 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산지의 가파른 지형을 지적했다. 장윤우 기자
실제로 취재진이 돌아본 산림 현장은 작지 않은 규모로 맨땅을 드러낸 경우가 많았다. 현장에선 '연말이 되면 보도블록을 갈아엎듯 불필요하게 난개발을 하고 있다'는 볼멘소리까지 들려왔다.
지역 현장 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산지의 가파른 지형을 지적했다.
그는 "골라베기 기원인 독일은 완만한 지형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나무만 골라 베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 지형에서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골라 벤다 쳐도 (경사가 심하다보니) 나무가 쓰러지면서 옆의 나무를 쳐서 함께 쓰러진다"고 설명했다.이어 "경제적인 득실을 고려했을 때에도 문제가 많다"며 "골라 베면 각각의 원목을 내리는 비용이 더 들고 목재 하나하나의 가치가 너무 떨어진다. 반면 1만㎡ 나무를 다 베어서 공장에 갖다주면 약 600만 원 정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②흙
모두베기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기후솔루션 송한새 연구원은 "토양도 탄소를 가지고 있는데, 모두베기 탓에 흙이 파헤쳐지면서 탄소가 유출된다"고 말했다.
산림이라 하면 흔히 나무와 나무가 이루는 숲만을 떠올리지만, 땅도 포함된다. 사진은 벌채 후 조림 현장. 흙이 파헤쳐 있다. 장윤우 기자
산림은 나무뿐만 아니라 숲과 땅을 모두 포함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토양이 지닌 생태적 가치를 주목하는데, 탄소 저장 능력은 이 중 하나다. 죽은 동식물이 땅에 묻혀 썩는다거나 미생물 활동 등으로 탄소가 발생하는데, 흙은 이 탄소를 저장한다.
대표적인 산림 선진국 오스트리아에선 흙을 간과하지 않는다. 산림법에 토양 피해를 방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대규모 벌채를 적극 지양한다. 서양에선 토양 유기물에 포함된 탄소를 '오가닉 카본(Organic Carbon)'으로 따로 지칭할 정도로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산림 정책에선 토양이 쉽게 등한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스트리아 산림의 골라베기한 모습. 주변 나무는 그대로 둔 채 나무 한 그루만 잘라져 있다. 골라베기는 토양 피해를 최소화한다. 브루크안데어무어=장윤우 기자
송 연구원은 "토양이 탄소를 나무보다 많이 저장하는데,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토양 탄소에 관한 연구도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국내 토양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머금고 있는지 공표된 적은 없다.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흙의 탄소 저장량 조사에 대한 CBS노컷뉴스의 질문에 "(표준화를 위한)탄소 계수 등은 개발했고 내부 공표를 하려고 준비는 하고 있다"고 밝히며 "국제기준에 맞게 20년간의 우리나라 산림토양의 탄소 변화량을 모니터링 중"이라고 부연했다.또 산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산림을 대규모로 벌채하는 과정에서 지력이 감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녹색연합 서재철 위원은 "어찌 됐든 산사태는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손을 댄 곳에서 많이 발생한다"며 "앞으로 집중호우 강도가 더 세질 텐데, 산에 손을 댈 때에는 재해위험 측면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③시간
자라나기 시작한 나무들. 장윤우 기자
또 다른 반대 근거는 시간이다.
유 국장은 "현실적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새로 심는 숲이 기존 숲의 탄소 저장량을 초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탄소를 약 200톤 저장하고 있는 50년생 숲이 있다고 치자. 이 숲은 정부 기준에 따르면 온실가스 최대 흡수시기가 지난 노령림으로 벌채 대상"이라며 2025년 벌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들려줬다.
이어 "이 숲을 내년(2025년)에 베어낸다고 가정하면, 이 숲에 저장된 탄소 200톤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것이다. 새로 심은 묘목이 다시 흡수량 200톤이 될 때까진 50년을 기다려야 한다. 탄소 중립 기한 2050년엔 고작 25년생으로 구성된 숲이 될 뿐"이라며 "결국 최대한 베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 기후 변화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각국의 시민단체에서 부르짖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지역현장 업체 관계자는 "어린나무가 흡수량은 많을 것"이라면서도 "그렇지만 큰 나무에서 조금 빠는 것과 작은 나무에서 많이 빠는 것 중 어떤 게 더 많겠느냐"고 되물었다.
수령 50년이 노목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국제 환경단체 자연과환경(Nature & Environment)의 피터 드종 에너지 프로그램 리더. 암스테르담=정재림 기자
50년의 시간이 나무에겐 결코 오래되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네덜란드 국제 환경단체 자연과환경(Nature & Environment)의 피터 드종(Peter De Jong) 에너지 프로그램 리더는 "나무는 수백년 성장할 수 있고, 한 100년은 자라야 성숙된 숲이라 볼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논문들에 따르면 50년생 나무도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역할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늙은 나무라 치기엔 너무 짧다. 만약 벌목해야 한다면 수령 기준이 아닌, 다른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는 경우에 한해 진행하는 것이 좋은 방향일 것"이라 말했다.
산림청 "모두베기, 법에 따라 가능…산은 회복된다"
산림청은 우리 법이 모두베기를 허용하고, 이후 산이 회복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산림청은 '골라베기 없이 모두베기한다'. '가파른 지형 때문에 모두베기 한다' 등과 관련한 취재진의 질문에 사실이 아니라며 "모두베기 전 (이미) 전 단계들을 거친다. 골라베기 한 이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기준벌기령이 지나면 법에 따라 모두베기가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수확을 위한 벌채를 추진할 경우 영급(나이)과 생육상태를 고려한다"며 "벌채허가권자는 벌채 허가 전 나무의 영급과 생육상태 외 산림 현황, 재해유발 우려 등 다양한 인자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또 "(모두베기 이후) 사면 복구를 하고 나온다. 또 이후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 몇년이 지나면 이전과 동일한 영향을 갖게 된다는 연구자료가 있다"며 산림은 회복된다고 설명했다. 산사태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모두베기와 연관이 없고 강우와 가장 큰 연관성이 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벌목을 진행중인 모습. 장윤우 기자
역할 제한적인데…부풀려진 '산림' 효과
한국이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하는 온실가스 양은 2억 9100만 톤이다. 이 중 산림이 흡수하는 양은 2550만 톤이다. 전체의 약 9%에 불과하다. 탄소 중립에 기여하는 비중은 미미하고 정책 효용은 분명하지 않은 반면, 벌목은 불가역적 선택이다.
산림청은 "지금 (한국 산림은) 30~50년생에 편중되어 있기에 나이 구조를 고르게 가져가자는 계획일 뿐"이라며 "순차적으로 적절히 수확해주고 다시 나무를 심어 결과적으로 나이 구조가 골고루 분포한, 건강한 산림을 만들고자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또 "(부담해야 하는 양에 맞춰) 산림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해나가기 위해 전략을 짰고, 주어진 목표 안에서 임무를 다 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밤나무 숲. 장윤우 기자
그러나 산림청 계획대로 기존 숲을 베어내고 새로운 나무를 심더라도, 베어낸 나무는 배출량으로 계산된다.유 국장은 "기후 변화 대응의 핵심은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더 엄격하게 얘기하면, 나무를 가꾸고-베고-심고-운반하는 데 발생한 온실가스까지 (배출량에) 포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순흡수량은 국제적 산림경영림에 대한 인정기준인 15%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이어 "배출부터 줄이고 '부족한 부분을 나무 심어 해결하자'가 되어야 하는데, (정부에서) '우리 이렇게 감축할 거야'를 먼저 선언하는 것이 아닌 '우리 이렇게 많이 흡수할 거야'를 먼저 띄운 것이 문제다"고 비판했다.
오스트리아는 산림 자원을 적극 이용하는 대표적인 나라지만, '산림의 최대 생장량' 또는 '탄소의 최대 흡수량' 등을 정책 목표로 삼지는 않는다. 산림이 탄소 감축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폴 에어가트너(Paul Ehgartner) 국장은 "산림의 기후 영향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농림부 소속으로 산림 및 지역 관리(Forestry and Regions Office of the Director-General)를 담당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는 산림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대표적인 나라이지만, '산림의 최대 생장량' 또는 '탄소의 최대 흡수량' 등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오스트리아의 농림부 소속 산림 및 지역 관리를 담당하는 폴 에어가트너 국장. 빈=정재림 기자
이어 "단순히 숲에 탄소를 저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다.단적인 예로 빠른 속도로 자라 비교적 더 많은 탄소를 빠르게 저장할 수 있는 외래 수종이 있었으나, 오스트리아 산림법을 통해 이 수종의 조림을 규제했다고 한다.
볼프강 힌트슈타이너(Wolfgang Hintsteiner) 박사는 "침입성 우려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오스트리아 브루크안데어무어(Bruck an der Mur)에 소재한 연방산림학교 HBLA의 산림학과 학과장(headmaster)인 그는 "다양한 수종을 사용하고 자연 갱신을 허용해야 더 안정적이고 활력있는 숲을 만들 수 있다. (오스트리아 정책은) 그것이 생태학적으로도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또 "산림은 탄소 저장 측면에서 제한이 있다"며 "최대 생장량을 얻는 것은 오스트리아 산림 정책의 목표가 아니"라고 명확히 말했다.
'흡수량'만 보는 함정…비극이 시작됐다
송 연구원은 "근본적으로 숲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그는 "(한국) 산림청은 대놓고 숲을 '탄소 통조림'이라고 한다. 탄소를 잡아주는 통조림이라는 건데, 숲(의 역할)이 정말 탄소 통조림뿐인가"라며 "숲은 생물 다양성, 생태계 서비스 등 여러 역할이 있다"고 지적했다.이어 "나무가 늙어 흡수량이 떨어져도 중요한 건 숲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머금고 있는가다. 줄곧 증가하던 흡수량이 줄어들었을 뿐 저장량은 그대로"라며 "단순히 어린나무가 좋다, 이렇게 단일화하는 건 문제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오스트리아는 산림법에서 대규모 벌채를 적극 지양한다. 브루크안데어무어의 울창한 산림. 브루크안데어무어=장윤우 기자
현장에선 이 같은 관점이 근시안적인 산림 정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고부가가치로 이어지는 숲의 숙성을 막는단 지적이다.송 연구원은 "나무를 베더라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빨리 키워 빨리 베어 저급재 목재(일지라도) 활용하자가 산림정책의 기본"이라며 "결국 나무를 오래 길러 벌목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된다"고 덧붙였다.서 위원도 "나무를 베고 다시 심어 탄소를 흡수한다는 건 침소봉대다"라며 "숲을 경영한다는 건 인간의 오만한 표현이다. 지금 시대의 본질은, 인간이 자연을 경영하고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교만이 낳은 위기 아닌가"라고 물었다.
노컷뉴스 기획·취재 : 박기묵 정재림 장윤우 최보금
https://m.nocutnews.co.kr/story/s240722/
당신의 숲 지킴이 성향은
기후과학자도 "놀랄 일" 경악…'지구 가장 뜨거운 날' 하루 만에 깨졌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에서 주민들이 한 공원 분수대에서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AFPBBNews=뉴스1
세계 지표면 기온이 이틀 연속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 기후 감시 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는 22일 세계 지표면 평균 기온이 17.15도를 기록, 역대 최고치를 다시 썼다고 발표했다. 불과 하루 전 기록한 최고치인 17.09도를 0.06도 뛰어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23일과 24일에도 지구 온도가 최고치를 재경신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기온 고점이 연이어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21일 직전 기록은 지난해 7월6일에 쓴 17.08도였는데, 당시에도 7월3일부터 나흘 연속으로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했었다.
다만 올해엔 지구 온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자연 현상인 엘니뇨가 사라진 상황에서 나온 기록이라 지구 온난화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독일 라이프치히대학의 기후과학자 카스텐 하우스테인은 로이터에 "세계가 엘니뇨 없는 중립 단계에서 최고 온도 기록을 경신한 건 놀랄 일"이라고 지적했다.
아일랜드 메이누스대학에서 이카루스 기후연구소를 운영하는 피터 손 교수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산불과 홍수, 폭염이 지구 곳곳을 덮치고 있다"며 "인류는 기온 상승이 가져올 극단 현상들에 대해 아직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고 경고했다.
머니투데이 윤세미 기자
미세플라스틱, 이렇게 위험한 거였어?…‘이 기능’ 저하 유발, 연구결과 ‘충격’
미세플라스틱이 귀에도 영향을 줘 청력과 균형 감각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연구진이 동물실험을 통해 미세플라스틱의 이 같은 위해성을 처음 확인했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방사선 의학연구소 김진수 책임연구원 연구팀이 서울대 의대 이비인후과학 교실 박민현 교수, 중앙대 융합공학부 최종훈 교수 등과 공동으로 미세플라스틱이 내이(內耳)를 손상해 청력 손실과 균형감각 저하를 일으킬 수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팀은 미세플라스틱이 귀에 주는 영향을 밝히기 위해 일회용품 등에 쓰이는 폴리에틸렌을 실험 쥐에 4개월간 매일 10㎍(마이크로그램)을 먹이고 내이의 청력과 균형감각을 살폈다.
내이 지방을 제거해 투명하게 만드는 기법으로 내이를 구성하는 달팽이관과 전정기관에 폴리에틸렌이 0.144㎍ 축적된 것을 확인했다.청력 측정시험에서는 정상 쥐는 31.7㏈(데시벨),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는 54㏈에 반응해 청력 기능이 떨어진 것을 확인했다.
정상 쥐는 작은 소리가 안들리는 정도지만,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는 보통 소리가 안들리는 50% '청력 손실'에 가까운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또 쥐를 트레드밀에 태워 운동부하 검사를 진행한 결과, 정상 쥐는 평균 515.7초간 안정적으로 달렸지만,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가 안정적으로 달린 시간이 평균 322.1초에 그쳐 운동 지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회전 봉에 올렸을 때도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는 회전 봉에서 2배 빨리 떨어졌고, 손발 악력도 30% 정도 낮았다.
여기에 연구팀은 포도당 유사체 방사성의약품을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에게 주사하고 양전자방출단층촬영(FDG PET)을 진행해 청력 감소시 나타나는 대뇌 측두엽의 포도당 대사 감소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단백질 관련 유전정보를 담은 전사체 분석에서도 폴리에틸렌을 먹은 쥐가 세포 사멸과 염증 관련 유전자가 많이 발현돼 달팽이관과 전정기관 손상을 확인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로 미세플라스틱의 생체 위해성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며 "무분별한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18일 국제학술지 '위험물질 저널'에 실렸다.
대저·장낙대교, 현상 변경 허가
국가유산청 자연유산위 통과
철새 대체 서식지 등 적절 평가
엄궁대교는 환경영향평가 중
서부산권 교통난 해소를 위해 부산시가 추진해 온 대저·장낙대교 건설이 사실상 마지막 관문이던 국가유산청의 문화재보호구역 현상변경 절차를 넘어섰다. 대저대교는 오는 8월 보상 절차를 시작으로 본격 건설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장낙대교 역시 올 연말 실시설계 용역이 마무리되면 내년 초 공사에 들어간다. 두 대교는 모두 2029년 말 준공 예정이다.
24일 부산시와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실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이날 ‘제3차 자연유산위원회’를 열어 부산시가 신청한 대저·장낙대교 건설사업에 대한 문화재보호구역 현상변경 신청안을 허가했다. 부산시가 제시한 철새도래지 대체 서식지와 환경 영향 저감 방안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저·장낙대교 건설 사업은 문화재보호구역인 낙동강 하구 철새 도래지를 횡단하는 탓에 낙동강유역환경청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와 국가유산청 문화재보호구역 현상변경 심의를 통과해야 착공이 가능했다. 이번에 국가유산청 심의 통과로 대저·장낙대교 사업은 외부 허가 절차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대저·장낙대교 건설도 조만간 본격화된다. 부산 강서구 식만동과 사상구 삼락동을 연결하는 대저대교는 8.24km 구간 4차로로 건설되며 낙동강 횡단 교량의 교통혼잡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서구 녹산동과 강서구 대저동을 연결하는 장낙대교는 1.53km, 6차로로 건설되며 서부산권 접근 도로망 구축의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저대교와 장낙대교는 모두 2029년 12월 준공 예정이다.
다만 엄궁대교(강서구 대저동~사상구 엄궁동)의 경우 아직 낙동강유역환경청의 소규모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환경청의 승인을 받는대로 국가유산청 국가지정유산 현상변경 허가 신청도 추진될 계획이다.
부산시는 현상변경 허가를 받은 만큼 대저·장낙대교 건설을 위한 도로 구역 결정과 기재부와 총사업비 협의 등 후속 절차를 빠르게 밟겠다는 방침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빠른 시일 내에 대저·장낙대교 착공이 가능할 수 있도록 절차를 빠르게 추진하겠다”이라며 “엄궁대교 승인 절차도 차질없이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김도읍 의원도 “낙동강 횡단 교량의 조속한 건설을 위해 국가유산청과 긴밀하게 협의 해온 결과, 국가지정유산 현상 변경 허가가 났다”면서 “대저대교는 조만간 보상 업무 및 공사 착수에 들어갈 전망이고 장낙대교도 올 연말까지 실시설계 용역을 완료하고 내년 2월 공사를 발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 김종우 기자 kjongwoo@busan.com
부산 저소득층·고소득층 격차, 10년 새 더 커졌다
부산이니셔티브 포럼 실태 발표
영도구는 저소득 비율 가장 높아
강서구는 고소득 40.2%로 최다
‘제4회 부산이니셔티브 포럼’이 24일 오후 벡스코에서 열렸다. ‘시민이 살고 싶은 도시를 위한 과제와 기업의 역할’을 주제로 한 세션 2 토론이 펼쳐지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의 지난 10년간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50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구(가구주 기준)가 많이 늘어났습니다. 저소득층의 점유율 감소는 긍정적이지만 고소득층이 함께 증가했고, 저소득과 고소득 간 격차가 확대됐습니다.”
24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제2전시관에서 열린 제4회 부산이니셔티브 포럼(부산연구원, SK E&S, 부산도시가스 공동 주최)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태완 선임연구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김 위원은 ‘지역민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 기반 구상-다중격차해소 방안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2013년과 2023년의 부산시 소득 변화를 살펴보면 실제로 저소득층 비율이 줄었지만, 고소득층 비율은 더 많이 늘어났다. 가구주의 월평균 가구소득이 100만 원 이하인 저소득층의 경우 2013년 23.9%였는데, 2023년에는 17.3%로 줄어들었다. 반면, 월 500만 원 이상 소득을 벌어들이는 가구주가 있는 가구는 2013년 7.6%에서 2023년 22.4%로 대폭 늘어났다. 그만큼 불평등이 커졌다는 뜻이다.
부산 내 지역별로도 차이가 컸다. 부산 18개 구·군 중 저소득층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영도구였다. 10년 전에도 그랬다. 다만, 소득 1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의 비율이 2013년 36.6%에서 2023년 28.1%로 많이 줄었다. 하지만 500만 원 이상 소득을 올리는 가구 비율이 2023년 13.9%로 부산 내에서 하위권에 속했다.
고소득층 비율은 강서구가 가장 높았다. 2013년에 강서구에서 500만 원 이상 가구소득을 올리는 가구의 비율은 8.0%로 부산 평균과 비슷했는데, 2023년에는 부산 전체 평균인 22.4%를 훨씬 웃도는 40.2%를 기록했다. 명지국제신도시가 들어서며 가구 소득을 크게 끌어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강서구에 이어 500만 원 이상 가구소득을 올리는 가구 비율이 높은 곳은 해운대구(31.2%), 동래구(28.6%), 남구(27.1%) 순이었다.
해가 갈수록 수도권에 비해 부울경의 빈곤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한국복지패널원 자료를 김 위원이 분석한 결과 2021년 한국의 빈곤율은 20.1%였는데 부울경은 23.8%였다. 서울은 17.8%, 인천·경기 등 수도권은 12.6%였다.
10년 전인 2011년의 부울경 빈곤율은 18.4%으로 전체의 18.0%와 큰 차이가 없는데, 10년 사이 특히 부울경에서 빈곤에 빠진 사람이 많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이날 포럼은 부산의 저출생과 지역 소멸 위기, 청년 유출 등 부산이 직면한 사회 현안을 다뤘다. 부산은 지역 소멸 위기에도 행복지수는 전국보다 높았다. 국회미래연구원의 2023년 조사에서 전국이 6.45점이었는데 부산은 6.96점이었다.
국회미래연구원 허종호 삶의질데이터센터장은 “부산의 행복도는 전국 대비 높은 수준이지만 장래 행복 예측에는 전국 추세와 상반되게 감소 추세였다”면서 “20~30대의 경우 행복 수치가 높게 나타나 심층 데이터 분석과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탈원전 포기한 일본, 원전 건설 비용은 ‘전기요금에 전가’ 검토
2012년 ‘세계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일본 도쿄전력 가시와자키·가리와 원전의 모습. 일본 정부는 현재 이 원전의 재가동을 추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탈원전’을 포기한 일본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 증설 비용을 일반 시민이 내는 전기요금에 일부 전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24일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영국의 원전 지원책인 ‘RAB 모델’을 참고해 이같은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원전 건설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전기 소매업체가 건설비와 유지비를 우선 부담하고, 업체는 이후 전기요금을 올려 비용을 환수하는 방식이다. 다만 원전 건설비 명목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할지는 전기 소매업체가 자율적으로 정하게 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이같은 제도를 검토하는 배경에는 원전 건설 비용을 전력 회사로부터 충분히 조달할 수 없는 상황이 자리해 있다. 일본의 독특한 전력 공급 시장 구조가 일단 원인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전기 공급을 독점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2000년 이후 전력시장 자유화에 따라 전력 도매사인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공급받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소매업체 ‘신전력회사’가 여럿 경쟁 중이다. 경쟁에 따른 가격 인하 압력 등을 버티지 못한 발전소는 폐지됐으며 새로운 발전소 투자는 억제됐다.
아사히는 “과거에는 발전소와 송·배전망 건설비를 전기요금에 집어넣는 형태로 확실히 회수할 수 있었지만, 전력 자유화로 이러한 구조가 점차 없어졌다”고 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같은 상황을 심화하는 요인이 됐다. 원전 안전 대책 비용이 크게 늘면서 관련 기업들의 투자가 더욱 얼어붙은 것이다. 아사히가 11개 전력회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이 2013년부터 10년간 기존 원전에 투자한 안전 대책 비용은 적게 잡아도 5조8000억엔(약 51조 9650억원) 수준이다. 일본 정부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 축소로 방침을 정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022년 전력난 해소와 탈탄소 정책 추진을 명목으로 원전 증설 검토를 시사한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 정부는 2030년 발전량의 20~22%를 원전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현재 이 수치는 5.5%에 불과하다. 따라서 원전 증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대기업을 포함한 전력 업계도 원전 지원책을 요구해 왔다.
신문에 따르면 경제산업성은 조만간 구체적인 제도 설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 부담 증가에 따른 반발이 예상된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펄펄 끓는 부울경 전 지역 폭염 특보
부울경이 무더위로 펄펄 끓고 있다. 고온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밤낮으로 더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부울경 전역에 폭염 특보가 발효됐다.
25일 부산지방기상청에 따르면 26일 기준 부산과 울산 동부, 경남 밀양·의령·진주·함양·거창·통영·사천·거제·고성·남해에 폭염 주의보가, 울산 서부와 경남 양산·창원·김해·함안·창녕·하동·산청·합천에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폭염 주의보와 폭염 경보는 각각 낮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될 때 발효된다. 지난 23일 기준 부울경 온열질환자도 104명으로 늘었다.
더위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부산은 올여름에 아직 폭염으로 기록된 날은 없었지만 8월로 접어들수록 폭염 가능성이 높다. 기상청은 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을 ‘폭염’으로 기록한다. 지난해에도 폭염은 8월 들어 처음 나왔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는 8월 1~8일 8일간 폭염이 지속됐다. 2014~2023년까지 폭염이 없는 해는 2014년 딱 한 해밖에 없었다.
열대야도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부산에는 올여름 지난 20~22일까지 3일 연속 열대야가 기록됐다. 부산기상청은 “당분간 부산에서 열대야가 자주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부산의 경우 2021년에는 25일, 2022년에는 26일, 지난해는 27일 열대야가 관측됐다.
소나기도 잦을 전망이다. 오는 26~27일 부울경 지역에 30~80mm의 비가 가끔 내리겠고, 때로 돌풍과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30mm 내외의 매우 강한 소나기가 내리겠다. 경남 남해안과 지리산 부근에는 120mm 이상의 비가 오겠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유엔총장 “지구 점점 뜨거워져…기후변화 대응해야”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5일(현지시간) 뉴욕 유엔 본부에서 극심한 고온 현상에 대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신화연합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25일(현지시간) 올여름 기록적인 이상 고온 현상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며 기후변화 대응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유엔본부에서 언론 브리핑을 열고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기후변화로 극심한 폭염을 겪고 있다”며 “지구는 점점 뜨거워지고 모두에게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22일 세계 평균 기온이 하루 전의 최고 기록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며 “극단적인 폭염은 하루나 일주일, 한 달에 그치고 말 현상이 아니다. 현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특히 올해 10억 명이 넘는 인구가 50도가 넘는 기상 재해 수준의 폭염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최근 이슬람 성지순례(하지) 기간 온열질환으로 1천300명 이상이 숨지는 등 세계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어 그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이상고온 등으로 세계 노동자의 70% 이상이 극심한 고온에 노출돼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보고서를 소개하기도 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우리는 이런 현상이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인간이 초래한 변화임을 알고 있다”며 세계 각국에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는 “국가들이 기후 위기를 악화시키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며 “지도자들이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특히 기후변화 취약층 지원과 고온에 노출된 노동자 보호, 데이터와 과학에 기반한 경제·사회 회복력 지원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유럽연합(EU) 기후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 변화 서비스(C3S)는 22일 전 세계 지표면의 평균 기온이 섭씨 17.15도까지 올라 1940년 기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기후 과학자들은 올해 더위가 지구에 빙하기가 시작된 10만여 년 전 이래 가장 심한 수준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경향 최혜린 기자
“탄소 문맹” 벗어날 공급망 탄소 데이터 플랫폼 만든다
공급망 내 기업 간 탄소 등 각종 데이터 공유 가능한 ‘한국형 카테나X’ 구축 추진
“탄소 문맹” 벗어날 공급망 탄소 데이터 플랫폼 만든다
정부가 국내 기업들이 탄소 규제 강화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일명 ‘한국형 산업 공급망 탄소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해 지원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국제사회에서 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데 따른 조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얼라이언스’ 출범 회의를 열고 탄소중립 전략을 발표했다. 회의에는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자동차, 배터리, 철강, 비철금속, 전기·전자, 섬유,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11개 주요 업종별 협회 대표가 참석했다.
대표적인 탄소 규제는 EU 역내로 수출하는 제품의 탄소 함유량에 탄소 가격을 부과해 징수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비료·전력·수소 등 6개 품목에 우선 적용된다. 지난해 5월 발효한 CBAM은 내년 말까지 전환 기간을 거쳐 2026년 1월 본격 시행한다. 전환 기간에도 EU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분기별로 탄소 배출량 정보를 EU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CBAM은 시작에 불과하다. 배터리 규정, 디지털 제품 여권, 공급망 실사 지침,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등 다양한 EU발 규제가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의 대응은 걸음마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탄소 문맹”이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3월 낸 자료를 보면, 전체 기업의 53%가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조차 곤란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1차 협력업체의 탄소 배출량을 모니터링한다. 하지만 2차 이상 협력업체가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에 대한 자료 확보와 관리에는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협력업체의 사정은 더 절박하다. 여러 원청업체에서 탄소 배출 관련 요구를 받지만 제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탄소 배출량을 관리할 인력이나 시스템도 없는 상태다. 한 화학 중소기업 관계자는 “요구하는 건 많은데 용어도 생소하고, 뭐부터 대응할지도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발표한 탄소중립 전략의 핵심은 민관이 공동으로 구축하는 데이터 플랫폼, 일명 ‘한국형 카테나X’다. 규제를 주도하는 EU는 이미 공급망 안에 있는 기업들이 정해진 표준이나 규칙에 따라 탄소 배출 정보 등 다양한 산업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공급망에 특화된 ‘카테나X’가 대표적이다. 일본도 ‘우라노스 에코시스템’이라는 플랫폼을 구축 중이다. 이들 플랫폼의 특징은 ‘데이터 스페이스’ 방식이라는 점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데이터 스페이스는 블록체인처럼 분산형 시스템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만 하는 플랫폼”이라며 “기업으로서는 탄소 배출 등은 영업기밀에 해당하는 아주 민감한 정보라 클라우드 같은 중앙 서버에 저장되는 플랫폼보다 데이터 스페이스 방식의 플랫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한국형 카테나X’는 우선 탄소 규제가 본격화된 업종인 배터리, 자동차, 가전, 철강·알루미늄, 섬유 산업을 대상으로 오는 2027년까지 구축한다. 5개 업종 플랫폼이 안착하면 향후 모든 업종과 산업 데이터를 포괄하는 플랫폼으로 확대한다. 또 데이터를 중복으로 신고할 필요가 없도록 EU와 일본 등 다른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해 결과 수치를 상호 인정받을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당장 탄소 규제와 관련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이 언제든 문의할 수 있도록 한국무역협회 ‘자유무역협정(FTA) 종합지원센터’ 상담 전화(☎1380)를 통합 창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앞줄 왼쪽 6번째)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앞줄 왼쪽 7번째)을 비롯해 자동차, 배터리, 철강, 비철금속, 전기·전자, 섬유, 시멘트, 석유화학, 정유,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11개 주요 업종별 협회 대표가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산업 공급망 탄소중립 얼라이언스’ 출범식을 연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산업부 제공
한국 '산림 바이오매스' 원목 태운다?[노컷체크]
나무 태워 전기 만드는 산림바이오매스
원목 태우는데 자료 없다? 쌓여있는 목재
"태운다고요? 비쌀텐데…" 해외에서도 의아
판정결과, '사실’
CBS노컷뉴스가 방문한 지역 한 산림 업체. 산에서 수확한 목재들이 쌓여 있다. 정재림 기자
지난 6월 8일(현지 시각) 독일 본(Bonn). 유엔기후변화협약 제60차 부속기구회의(SB60) 주간에 한국의 산림바이오매스가 다시 한 번 언급됐다.기후솔루션·호주열대림보전협회(ARCS)·세계유기농업운동연맹(IFOAM) 등 6개 대륙 환경단체는 숲에서 벤 나무를 화력발전소에 태워 전기로 쓰는 '산림바이오매스' 발전 방식을 비판했다.
한국이 산림바이오매스에 과도한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투입하고 멀쩡한 원목을 태우는 등 지난 2022년에만 온실가스 580만 톤의 감축 부담을 생산국에 떠넘겼다는 주장이다.
앞서 18개국 69개 기후·환경단체는 지난 4월 5일 식목일에 윤석열 대통령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산림바이오매스 관련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가중치, 즉 보조금 폐지를 촉구하는 공동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 2022년에는 750명의 세계 석학들이 윤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정상들에게 발전소에서 태운 산림바이오매스 원료가 벌채 부산물과 잔여물이 아닌 대부분 원목에서 나온다며 산림바이오매스 의존 중단을 촉구하는 공개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과연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일까.
산림바이오매스, 대체 넌 누구냐
목재펠릿(좌측)과 목재칩. 산림청 홈페이지 캡처·정재림 기자
산림바이오매스는 산에서 나오는 목재 물질을 활용해 열과 전기를 만드는 재생에너지 가운데 하나다. 산림청은 산림바이오매스를 화석연료 대체용인 친환경 재생에너지, 즉 탄소중립 에너지로 소개하고 있다.
산림바이오매스의 주된 연료로는 잘게 부순 나무를 압축한 목재 펠릿과 나무를 잘게 파쇄한 목재칩, 그리고 목질계 폐기물을 태우는 바이오 SRF 등이 있다. 발전소에선 석탄 대신 목재 펠릿과 목재칩 또는 바이오 SRF를 태우거나, 석탄과 함께 태워 전기를 생산한다.
여기에 버려지는 잔가지를 수거한 뒤 태우는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도 있다. 산림청은 △수종갱신·목재수확을 통해 나온 원목에 이용되지 않는 부산물 △산지 개발 과정에서 발생된 산물 중 원목 생산에 이용되지 않는 부산물 △숲가꾸기를 통해 나온 산물 등을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라고 정의한다.
늘어나는 산림 바이오매스, 왜?
지난해 한국에너지공단이 발표한 '2022 신·재생 에너지 보급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총 발전량 가운데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전체 대비 지난 2018년 4.99%에서 2022년 9.22%로 2배 가까이 늘었다. 2022년(62만 6448 GWh) 기준으로 보면 △태양광(60.9%) △바이오매스(23.6%) △수력(7%) △풍력(6.6%) 등의 순이었고, 신 에너지로는 △연료전지 △IGCC 등이 있었다.
이 가운데 바이오매스에 속하는 산림바이오매스 발전량은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우드칩(목재칩) 발전량은 지난 2016년 106GWh에서 2022년 319GWh로 3배가 됐다. 특히 목재펠릿 발전량은 같은 기간 2764GWh에서 7393GWh로 급증했으며 바이오 SRF 역시 341GWh에서 1892GWh로 늘었다.
국내 산림 바이오매스의 경우 발전용(80%)이 난방용(20%)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산림청은 난방용에 비해 발전용이 높은 이유로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따른 발전용 목재펠릿·목재칩 수요 확대를 꼽는다.
산림청은 CBS노컷뉴스에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비율에 따라 탄소중립 재생에너지원인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활용한 발전용 목재제품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낮은 난방용 비율의 경우 목재펠릿 난방기기의 보급 규모가 낮다 보니 목재펠릿 연료 수요가 높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IPCC(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가이드라인에선 산림바이오매스를 탄소중립 에너지원으로 인정하고 있다"며 "전문가 사이에서 인정받은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원"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IPCC가 내놓은 6차 평가보고서, 각종 특별 보고서 등에 따르면 바이오매스는 여러차례 언급된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에너지 가운데 하나로 명시돼 있다. IEA(국제 에너지 기구)도 화석 연료를 대체할 재생에너지 중 하나로 산림바이오매스를 꼽는다.
국립산림과학원 정한섭 임업연구사는 "산림바이오매스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탄소중립 재생에너지에 해당한다"며 "태양광, 풍력 등 다른 에너지원이 모든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한 산림바이오매스 발전은 (국내) 에너지 안보에도 기여하는 한 축으로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목 태우는데 자료가 없다?
지역 한 업체가 쌓아둔 목재들. 정재림 기자
이 가운데 국내 산림바이오매스를 두고 멀쩡한 원목까지 태운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최근 3년간 산림청이 발표한 '목재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목재펠릿 원료에 투입된 원목 비율은 29%였으며 2021년에는 37%에 달했다. 2022년에는 급감한 7%로 머물렀지만, 원목은 여전히 쓰이고 있다.산림바이오매스에너지협회 이승록 정책위원은 "원목 또는 원목 형태(품질)의 원재료를 목재펠릿에서 이용하는 이유는 쌀로 밥을 만들고 밀로 빵을 만드는 것과 같다"며 "숲가꾸기 간벌이나 수종갱신 등 산림사업에서 발생하는 직경이 작은 10~30cm 원목이나 커다란 원목을 가공하고 남은 부산물을 주요 원재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국제적으로 목재펠릿을 만드는 원재료로 직경이 작은 원목과 제재소, 가구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목재가공 부산물을 가장 많이 이용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원목으로 만드는 목재펠릿은 불법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2022년 기준 사용된 국산 원목은 354만 1258㎥으로 이 가운데 목재칩 비율은 8%(31만 1576㎥)다. 국가법령지원센터 캡처
국가법령지원센터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기준벌기령, 벌채·굴취기준 및 임도 등의 시설기준'에 따르면 산림바이오매스 에너지의 용도로 사용되는 나무는 일반기준벌기령 중 기업경영림의 기준으로 적용한다. 소나무를 제외한 모든 나무에 적용되는 이 기준은 일반 공·사유림보다 빠르면 10년 정도 먼저 나무를 벨 수 있다.
문제는 목재칩도 국산 원목으로 쓰이고 있지만, 정확한 통계가 집계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무를 파쇄하는 목재칩은 △펄프제조용 △보드(PB)제조용 △연료용 등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2022년 기준 연료용으로 생산한 목재칩 비율은 60%에 달한다. 산림청도 "지난 2021년 이후 해당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이 때문에 수확벌채 과정에서 멀쩡한 원목이 함께 태워지고 있다는 자료도 나오고 있다.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당시 윤미향 의원(무소속)과 기후환경단체인 기후솔루션이 발표한 '대한민국 산림의 땔감화'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증가한 미이용 목재펠릿·목재 칩에 원목이 섞여 들어 가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업부와 산림청 간의 통계가 일치하지 않은 정황이 있다는 내용이다.
기후솔루션 송한새 연구원은 CBS노컷뉴스에 "목재칩의 경우 기본적인 통계도 비어있는 부분이 많았다"며 "애초에 관리감독 수준이 펠릿에 비해 매우 낮은 것 같다. 발전용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목재칩 뿐만이 아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공급에 있어 수확벌채의 원목 혼입량 추정' 연구 보고서도 비슷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벌채를 통해 공급된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의 양은 지난 2019년 약 10만 톤에서 2021년에 약 25만 톤으로 2.5 배 증가했지만, 동일 기간에 원목 수집량은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원목 수집량과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수집량의 합이 벌채량보다 많게 나타났다고도 했다.
해당 보고서는 또 국내 산림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원목과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나누는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규격에 맞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명시했다.
현장에 쌓여있는 원목들…환경단체 "모순적인 상황"
실제로 CBS노컷뉴스는 국내 벌채 현장 등에서 원목들이 쌓여있는 걸 자주 확인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발전용으로 간다고 한다. 멀쩡한 원목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업체 측은 현장에서 기계가 자주 고장나는 등 기술적인 한계를 들었다.
이와 관련 산림바이오매스에너지협회 측은 "나뭇가지는 수거 과정에서 흙, 돌, 철물 등 이물질이 많이 혼입되어 있어 100% 나뭇가지만으로 목재펠릿을 만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직경이 작은 원목이나 원목과 비슷한 품질의 미이용 산림바오매스 목재가공 부산물 등을 적정한 비율로 혼입해 만들어야 규정된 품질의 목재펠릿을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목재펠릿은 품질기준으로 가정용은 △A1 △A2 △B, 산업용은 △I1 △I2 △I3 등과 같은 등급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목재 가공에서 발생하는 부산물 및 잔류물'은 I3 등급에 속한다.
충북대학교 한규성 교수는 "산에서 버려진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만으로 목재펠릿을 만들게 되면 I3등급을 맞추는 게 문턱에서 왔다갔다 하는 수준"이라며 "품질 등급을 넘기기 위해서 극히 적은 물량의 원목들이 사용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만약 사용한다 하더라도 REC 가중치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 펠릿 공장에서도 비싼 원목을 무조건 쓰려고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 측은 멀쩡한 원목을 태우는 게 과연 탄소중립이 되겠느냐는 입장이다.
송한새 연구원은 "업계 사람들은 나뭇가지만 넣으면 품질이 나오지 않아 원목을 섞어서 쓴다고 한다"며 "부산물만 쓴다는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취지에도 반하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목 태운다고요? 비쌀 텐데…" 산림선진국의 반응
오스트리아에서도 산불피해를 입거나 벌레 피해를 받은 나무는 발전용으로 쓴다고 한다. 이는 한국과 같다. 빈=장윤우 기자
그렇다면 산림선진국으로 손꼽는 오스트리아는 어떨까. 오스트리아 바이오매스협회에 따르면 현지 산림바이오매스 발전용 비율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발전용이 80%에 달하는 한국과는 상황이 정 반대다.
오스트리아는 산림바이오매스 난방용 시스템이 잘 구축돼 있다. 설치된 배선망을 통해 지역 난방 보급이 이뤄진다. 오스트리아 농림부에 따르면 현지 전역에 설치된 산림바이오매스 난방용 시설은 약 2451개소에 달한다. 159개에 이르는 발전용 시설에서도 난방을 보급한다.
오스트리아 바이오매스협회 크리스토프 세바스티안 로젠버그(Christoph Sebastian Rosenberger) 차장은 "화석 연료 시설로 관련 일자리가 지역당 8.5개가 창출될 동안 바이오매스는 지역당 61개의 일자리를 생기게 하는 등 지역에서 새로운 가치도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에서는 지속 가능한 산림 및 목재 관리로 산림바이오매스 발전용에는 오직 작은 가지, 줄기, 목재 껍데기 등과 같은 부산물들만 사용한다"며 "산업용으로 사용하고 나서야 남은 부산물을 에너지용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로젠버그 차장은 한국에서 원목을 산림바이오매스 발전용에 투입하는 것을 두고 "에너지로 활용하기에는 원목 자체가 너무 비싸 에너지 가격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폴 에어가트너 국장이 취재진에게 오스트리아 재생에너지 및 바이오매스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빈=정재림 기자
오스트리아의 농림부 소속 산림 및 지역 관리(Forestry and Regions Office of the Director-General)를 담당하는 폴 에어가트너(Paul Ehgartner) 국장도 "(바이오매스에) 건강한 나무는 태우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항상 부산물만 사용한다. 나무가 제재소에 가면 껍질이 벗겨지고 톱밥이 생기는데, 이런 부산물을 사용하거나 산림 과정에서 나오는 산업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목재만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기술적인 이유로 원목을 태우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도 나왔다.
10년 간 IPCC에서 활동하면서 산림바이오매스를 강조한 네덜란드 안드레아 파이(Andre P.C Faaij) 위트레흐트 대학 교수 겸 TNO 수석 과학자는 "질병, 곰팡이 등으로 건축용·펄프용에서도 사용하지 못한 목재를 바이오매스에 사용하는 건 이해된다"면서도 "펠릿의 품질을 맞추기 위해 원목을 사용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산림바이오매스 방향은?
산림청은 지난해 ''제3차 탄소흡수원 증진 종합계획(2023~2027)'을 발표하며 앞으로도 산림바이오매스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림바이오매스가 국제 사회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부각되고 국내에서도 관련 시장이 확대되는 만큼 산림바이오매스 이용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지역 순환형 산림바이오에너지 발전사업' 모델을 실연하고 확산하겠다고도 했다.
빈=CBS노컷뉴스 정재림 기자
코로나 입원 한 달 새 3.5배↑…어린이 백일해·마이코플라스마도 늘어
코로나 예방접종은 10월에 시작
메신저RNA를 이용해 코로나19와 인플루엔자(독감)를 동시에 예방하는 혼합백신이 나올 전망이다. 픽사베이
최근 한 달 사이 코로나19 입원환자가 3배 이상 늘었다. 소아와 청소년에선 백일해와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 유행이 계속됐다.
질병관리청 표본 감시 결과를 26일 보면, 코로나19 주간 입원 환자 수는 6월23∼27일부터 7월14∼20일 4주간 63명에서 225명으로 3.5배 증가했다. 2월 첫째 주 정점(875명) 이후 감소했다가 여름에 증가하는 추세로, 2022년과 지난해에도 겨울 유행 이후 7∼8월 소폭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질병청은 제4급 표본감시 감염병이 된 이후 코로나19 입원 환자를 전국 200병상 이상 병원 220곳에서 표본 감시한다. 올해 입원 환자 1만1069명 가운데 64.9%(7179명)가 65살 이상이다.7월에는 새로운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가 유행 중이다. 지난 4월 국내 검출 바이러스의 83.1%를 차지했던 제이엔원(JN.1) 변이가 7월 19.5%까지 검출률이 내려갔지만, 케이피쓰리(KP.3) 변이 검출률이 4월 0.3%에서 7월 39.8%까지 올라갔다.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인 오미크론 하위 변이인 케이피쓰리 변이가 전파력·중증도가 더 높다는 보고는 아직 없다.
소아·청소년 중심으론 백일해와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이 계속 유행한다. 발작성 기침이 특징인 백일해는 최근 4주간 주간 의심 환자가 1604명에서 3170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입원 환자 가운데 92.5%가 13∼19살(58.5%)과 7∼12살(34.0%) 등 소아·청소년이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 감염증 주간 입원 환자도 지난달 24일 유행주의보 발령 이후 이달 14∼20일 738명으로, 올해 들어 가장 많은 입원 환자가 발생했다. 어린이에게 폐렴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균이다. 실제 최근 4주 동안에도 전체 입원 환자 가운데 78.6%가 7∼12살(51.6%)과 1∼6살(27.0%) 등 소아다.
질병청은 감염병 예방 수칙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손 씻기와 기침할 때 옷소매·휴지로 입과 코를 가리기, 마스크 쓰기, 2시간마다 10분씩 환기하기 등이다. 백일해균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있어 영유아 등은 생후 6주부터 6살까지 제때 백일해 국가예방접종을 받는 게 좋다. 코로나19 예방접종은 10월 중 시작된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상속세 개편으로 초고소득층 18조 감세…저소득층은 오히려 증세"
나라살림연구소, 24년도 세제개편안 비판 "상속세·소득세·법인세 감세-부가세는 증세"
정부가 상속세 최고세율을 40%로 낮추는 등 25년 만에 처음으로 상속세율을 조정한다. 그로 인해 고소득자와 대기업 등에 최대 18조 원이 넘는 세수 감면 효과가 발생하는 반면, 저소득층과 중소기업은 오히려 상속세 개편으로 인해 세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상속세와 소득세, 법인세 등이 감면되면서 고소득층은 유리해지는 반면,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증세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그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상속세 최고세율 40%로 조정…공제액 대폭 확대
25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여론의 큰 관심을 모은 부분은 상속세율 조정이다. 현행 상속세율은 과세표준 30억 원 초과 시 50%, 10억 원 초과~30억 원 이하 40%,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 30%, 1억 원 초과~5억 원 이하 20%, 1억 원 이하 10%다.
이 같은 최고세율을 10억 원 초과 시 40%로 10%포인트 하향 조정한다는 것이 골자다. 5억 원 초과~10억 원 이하 30%, 2억 원 초과~5억 원 이하 20%, 2억 원 이하 10%다.
기존에 50%의 세율을 적용 받던 30억 원을 초과하는 거액의 상속자가 집중적인 혜택을 보고, 20% 세율을 적용받던 1억 원 초과~2억 원 이하 납세자도 세금 감면 효과를 얻는다.상속재산 공제도 늘어난다. 현재 인당 5000만 원인 자녀 공제를 인당 5억 원으로 높인다.
현재 상속세 공제는 기초공제 2억 원에 더해 자녀 1명 당 5000만 원의 자녀공제 합계액 혹은 일괄공제 5억 원이 적용된다.자녀 합계 공제액이 5억 원을 넘는 경우는 좀처럼 없으므로 대부분 상속인이 일괄공제를 선택한다.
그런데 앞으로는 자녀 1인당 공제 기준이 5억 원으로 커진다. 여기에 기초공제와 배우자공제까지 더하면 상속재산 상당액을 공제받게 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 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은 정정훈 세제실장, 오른쪽은 박금철 조세총괄정책관. ⓒ연합뉴스
정부 "상속세 개편으로 4조 감세" vs 민간 "18.4조 감세"
정부는 이번 상속세 과표와 세액 조정으로 세수 2조3000억 원 감면 효과가, 자녀공제 확제로 1조7000억 원 감면 효과가 각각 발생해 세수가 4조565억 원 줄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순액법으로 계산한 결과다.
구체적으로 서민과 중산층은 6282억 원, 고소득자는 1664억 원의 감세 효과를 얻고 중소기업은 2392억 원, 대기업은 917억 원의 감세 효과를 받을 것으로 정부는 예측했다. 기타 부문의 감세 효과는 3조2260억 원이었다.
즉 이번 상속세제 개편으로 인한 혜택은 서민과 중소기업이 더 크게 받는다는 소리다.
그러나 이는 사실을 정반대 해석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이날 보고서를 내 이번 세제 개편안으로 인한 향후 5년간 세수 효과를 추계한 결과, 2025년부터 2029년까지 소득세 감면액은 2조2800억 원, 법인세 감면액은 2100억 원, 상속세와 증여세 감면액은 18조6000억 원이었다고 밝혔다.
반면 부가가치세는 1조7000억 원 증액됐다. 결국 서민으로부터 증세해 세수 감면에 따른 손실을 메운다는 주장과 다름 없다.
▲25일 나라살림연구소가 정부의 이번 세제개편안을 분석한 결과 향후 5년간 발생할 총 감세 규모는 18조4000억 원가량이며 그 대부분은 초고소득층에 집중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라살림연구소
"초고자산가 감세-저소득층·중소기업은 증세"
나라살림연구소는 이번 개편안에 따른 향후 세수 전망 계산 자체가 잘못됐다고 우선 지적했다.나라살림연구소는 "정부는 순액법 합계에 따라 계층별 세부담 귀착효과를 설명하나 이는 실질 현금흐름과 경제적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잘못된 방식"이라며 이 같이 지적했다. 대신 총액법으로 향후 세수 전망을 계산해야 한다는 게 연구소 지적이다.
예를 들어 올해 세제 개편으로 세수가 1조 원 늘어난다고 가정할 때, 이 1조 원은 내년도 세수부터 반영된다. 따라서 향후 5년간 총 세수 합은 5조 원이 된다. 매년 개편된 1조 원의 증가분이 반영되기 때문이다.
순액법을 적용할 경우 개별 연도 세수를 확인하는 데는 좋지만 이를 합산한다면 오류가 발생한다는 게 나라살림연구소 지적이다. 순액법 계산 결과를 합산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설명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한 마디로 말해 순액법으로 합산한 향후 5년의 세수 개편 결과는 이해하는 게 불가능한 개념"이라며 "향후 5년의 세수 합은 총액법으로 합산해야 맞는다"고 지적했다.
합산오류보다 더 큰 문제가 총액법으로 향후 세수를 추계할 경우, 고액 자산가는 감세 효과를 크게 누리는 대신 서민층은 오히려 증세 부담을 지는 것이라는 게 연구소의 지적이다. 구체적으로 연구소는 향후 5년간 고소득층은 최소 18조6000억 원의 세금 감면 효과를 얻고 중산층 이하는 0.25조 원의 세수 증대 효과를 볼 것으로 예측했다.
나라살림연구소는 "(현재) 상속이 발생한 사람 중 상위 5%만 상속세를 납부한다는 점에서 이번 개편으로 이득을 보는 계층은 상위 5% 내외"라며 "이번 상속세 감면으로 인한 5년간 세수 감소효과 18조6000억 원은 전액 고소득자 귀속 세금감면액"이라고 주장했다.
지금도 상위 5% 이하는 상속세를 거의 납부하지 않는 만큼, 이번 개편에 따른 혜택 범위도 5%로 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어 연구소는 "특히 2022년 기준 전체 상속세 결정세액의 92%를 상위 10% 피상속인이 납부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상속세 감면은 초고자산가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가업상속 공제 혜택은 중소기업이나 중산층이 아닌 600억 원 이상을 상속받는 초고자산가에게만 귀속되는 만큼 이는 전액 고소득층 혜택으로 분류해야 하고 최대주주 할증평가 폐지에 따른 특혜도 매출액 5000억 원 이상 재벌기업 주식을 상속받는 재벌 3세, 4세"라고 연구소는 꼬집었다.
정부의 세부담 귀착효과에서 서민과 중산층이 더 큰 감세 혜택을 받는 것으로 나타난 까닭으로 연구소는 "이는 순액법이 가진 한계로 인한 착시효과"라고 설명했다.
정부 세제 개편안에 따르면 부가가치세 증세 효과는 2025년과 2026년에 집중된다. 이 때문에 순액법으로는 부가가치세수 증대의 실질을 반영하지 못한다. 연구소는 "총액법으로는 향후 5년간 발생하는 세수 증액 및 세수 감액 효과를 누적적으로 계산할 수 있지만, 순액법으로는 경제적 실질에 따른 현금흐름을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올해 나라살림 적자는 더 커질 듯?
연구소는 또 서민 및 중소기업으로부터 발생하는 0.25조 원의 증세 효과는 최소 수준이라고도 지적했다. 이번 상속세 개편으로 인한 세수 증가 요인은 창업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액감면 일몰 종료, 신용카드 등 부가가치세 세액공제 축소, 전자신고 세액공제 폐지 등인데 "창업중소기업 등 세액감면 일몰 종료와 전자신고세액공제 폐지 등의 세수 증대효과는 대부분 중소기업과 중산층에 귀속되기 때문에 실제 이들 계층에 귀속되는 세금 증대 효과는 0.25조 원보다 더 클 것"이라는 이유다.
반면 "투자세액공제 증가분 공제율 상향 등은 상당부분 대기업에 귀속되는 만큼 고소득자와 대기업에 귀속되는 5년간 실제 세금 감면 효과는 18조6000억 원보다 더 클 것"이라고도 연구소는 평가했다.
상속세와 법인세 등 고소득층에 매겨지는 세금이 더 줄어드는 반면, 서민과 고소득층이 같이 부담하는 간접세수는 더 늘어난다는 점 역시 중요 평가 요인으로 지적된다.
이번 세제 개편으로 인해 현 정부 들어 심각해지는 세수 결손 현상은 앞으로 더 악화하리라는 우려도 나왔다. 지난해 정부 예산은 56조 원의 사상 최대 세수 결손을 봤다. 그로 인한 관리재정 수지, 즉 작년 나라살림은 87조 원 적자였다.
나라살림연구소는 "올해 본예산 기준 관리재정 수지 예상치는 92조 원 적자에 달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5년간 18조4000억 원 규모의 대규모 감세를 담은 24년도 세법개정안은 재정과 국정을 책임지는 정부안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연구소는 특히 "상속세 감면액이 5년간 18조6000억 원인 반면 부가가치세는 오히려 1조7000억 원 증대되는 등 조세 형평성이 심각하게 무너지는 세법개정안"이라며 "노동 소득보다 상속 소득을 더 유리하게 과세하면 조세 중립성이 무너지고 경제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이대희 기자 | 프레시안
농촌 파괴해 산업단지로...SK에코플랜트, 친환경 기업의 딜레마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사업
폐기물 매립장 조성 계획 담고 있어
주민 반발 갈등 확산… 5년째 표류
전문가 “보존vs개발 균형점 찾아야”
▲ 괴산메가폴리스산업단지 조성예정지 전경. (사진=괴산군 제공)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하는 산업단지 사업이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며 난항을 겪고 있다. 2021년 친환경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하고, 테스 인수를 통해 친환경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했지만, 정작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환경 파괴와 주민 갈등을 야기하며 친환경 기업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한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 사업이 5년째 표류하고 있다. 2019년 시작된 이 사업은 2022년 송인헌 괴산군수 당선 당시 주민들의 격렬한 반발로 원점 재검토에 들어간 이후 뚜렷한 진전이 없다.
사리면 사담·중흥리 일원 약 49만 평 부지에 조성될 예정이었던 이 산업단지는 2027년 착공을 목표로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산업단지 인근 주민들은 환경 파괴, 농업 피해, 산업폐기물 매립장 문제 등을 이유로 강력히 반발하며 사업 중단을 요구했다. 특히, ‘지구환경 사업’을 내세우는 SK에코플랜트가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이윤을 추구한다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산업단지 내에 들어서는 폐기물 매립장에 대한 우려도 크게 제기했다. 대규모 개발로 인한 대기 오염 가능성 역시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약 1년간 지속된 주민들의 시위에 괴산군은 결국 산업단지 조성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과정을 밟으며 사실상 재검토 단계에 들어섰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계획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괴산군은 "올해 초에 메가폴리스가 들어서는 지역이 개발행위허가제한지역에서 해제가 됐지만 아직까지 추가적인 계획은 없는 상황"이라며 "이 부지에 사업을 추진하지의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괴산 메가폴리스 산업단지뿐만 아니라, SK에코플랜트가 추진하는 다른 산업단지 사업에서도 주민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곡, 선장, 대전, 용인 등 여러 지역에서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히며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친환경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언하며 이미지 개선에 힘쓰고 있지만, 정작 산업단지 조성 사업은 환경 파괴 논란을 일으키며 기업 이미지에 먹칠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산업단지 조성은 불가피하게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환경 보호라는 두 가지 가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단지에는 폐기물 처리장이 필수적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반발은 불가피하다”며 “지역 경제 활성화와 환경 보호라는 상반된 요구 사이에서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다경 기자 omotaan@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