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트지오, 4년간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다
한국석유공사가 분석을 맡긴 2023년 2월, 액트지오가 ‘법인 자격 박탈’ 상태였다는 사실이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액트지오는 영업세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 ‘자격 박탈’ 행정 처분을 받았다.
영일만 인근 석유·가스 매장량을 분석한 미국 기업 액트지오가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법인 자격 박탈(forfeits the charter, certificate or registration of the taxable entity)’ 상태였다는 사실이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한국석유공사가 액트지오에 분석을 맡긴 2023년 2월, 액트지오는 법인 등록이 말소된 상태였다는 의미다.
6월7일 미국 액트지오(Act-Geo)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이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기자실에서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과 관련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액트지오는 2017년에 미국 텍사스주에 설립된 유한책임회사이다. 한국석유공사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미국에 정식으로 등록된 기업명은 ‘Abreu Consulting and Training’이다.
〈시사IN〉은 미국 텍사스 주정부 국무장관실에 등록된 액트지오 관련 서류 6종을 확보했다. 그중 두 가지 서류에서 액트지오가 약 4년간 ‘자격 박탈’ 상태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먼저 2019년 1월25일 등록된 서류(〈그림 1〉)에 따르면, 등록 당일부로 액트지오는 ‘자격 박탈’ 처분을 받았다. 이 서류는 액트지오에 대해 “법인의 법인 설립인가서, 증명서 또는 등록증을 몰수하고 해당 몰수 사실에 관한 본 통지를 법인의 영구 대장에 기록하도록 한다”라고 명령했다. 이 서류에는 행정 처분을 받게 된 구체적인 원인은 적혀있지 않다. 다만 이 처분이 ‘텍사스 세법(Texas Tax Code)’에 따른 것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그림 1〉 2019년 1월25일 미국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제출된 ‘조세 미납에 따른 몰수명령서’ 서류. ⓒ텍사스주 국무장관실
2023년 3월29일 접수된 서류(〈그림 2〉)를 보면, 자격 박탈 처분을 받게 된 구체적인 사유가 나온다. 액트지오는 “‘영업세(Franchise Tax)’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서” ‘자격 박탈’ 처분을 받게 됐다. 이와 같은 처분을 받은 기업은 “복권되지 않는 한, 종료된 신고 법인이 설립되었던 사업 또는 업무를 계속할 목적으로 그 존재를 계속할 수 없다(텍사스주 ‘사업 조직법(Business Organizations Code)’ 섹션 11.356.(b))”.
액트지오는 2023년 3월29일 ‘복권신청서 및 취소·몰수 명령 파기 요청서’를 제출함으로써 자격 박탈 처분에서 벗어났다. “불이행을 시정하고 수수료, 세금 및 벌금 전액을 납부”했기 때문이다.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제출된 이 서류의 제출자에는 지난 6월5일 한국에 입국한 액트지오의 비토르 아브레우 고문 이름이 ‘사장(President)’ 명의로 적혀 있다.
〈그림 2〉 2023년 3월29일 미국 텍사스주 국무장관실에 제출된 ‘복권신청서 및 취소·몰수 명령 파기 요청서’. ⓒ텍사스주 국무장관실
액트지오가 ‘자격 박탈’ 상태였던 2023년 2월, 한국석유공사는 액트지오에 분석 업무를 맡겼다. 6월3일 국정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2023년 2월 ...(중략)... 미국의 액트지오 사에 물리 탐사 심층 분석을 맡겼다”라고 말했다.
〈시사IN〉은 액트지오가 2019년 1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자격 박탈’ 상태였음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자격 박탈’ 상태의 기업과 계약을 맺은 것이 문제가 없는지 한국석유공사 측에 질의했다.
이에 대해 한국석유공사 측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공사는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두고 기술적 전문성과 가격 등의 정당한 기준을 수립하여 이에 따라 입찰 참가 업체들을 평가하여 우선순위 높은 기업을 최종 낙찰자로 선정하였고, 이러한 선정기준 및 입찰 진행과정에서 국제입찰 관련 법령을 모두 준수하였다. 세금 관련 사항에 대해서는, 미국 법인공시사이트(“Opencorporates.com”) 기록에 따르면 2019년 ACT-GEO사가 세금 체납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 3월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이는 ACT-GEO사가 2019년 세금체납 관련 행정처분을 진행한다는 의미이지 이 사실만으로 법인 자격을 박탈당했다고 볼 수 없다. 해당기간 중 다른 해외 용역을 수행한 사례도 있다.”
〈시사IN〉은 한국석유공사 측에 미국 법인공시사이트를 근거로 질의한 것이 아님을 밝히고, 한국석유공사 입장에 대해 추가 질의했다. 이에 한국석유공사 관계자는 “공사의 입장은 액트지오가 법인 자격을 박탈당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시사인 주하은 기자
방송사 '채상병' 보도, MBC 홀로 진실 추적
초기부터 현재까지 공영방송 존재 이유 입증
SBS, 외압 의제 제시했으나 비판 논조 사라져
KBS, 사장 교체 이후 윤 정부 입장 단순 중계
YTN, 통신사 기사 인용, 타사 따라하기 급급
지난해 7월 19일 오후. 한 젊은이가 경북 내성천 부근에서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해병대 채수근 일병이었다. 그는 다음 날 새벽 시신으로 발견됐다.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외아들을 잃은 부모는 오열했고, 해병대는 사건 수사단을 구성했고, 언론은 비통의 현장에서 취재를 시작했다. 그 뒤, 수사단장이 보직 해임됐고, 국방부 장관이 사임했고, 야당이 특별 검사를 통해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공언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누가 관여된 사건인데 현재까지 이 담론은 지속되는 것일까?
사실, 기자는 사회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특정 발생 사건에서 사실을 검증해 정보를 취합한 다음, 언론사 내부 관행에 따라 기사를 작성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기사를 통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그 일에 관여돼 있는지’, 그리고 ‘누가 가장 큰 혜택을 받는지’를 인지할 수 있다. 구성원들은 이렇게 인지된 정보를 통해 사회적 판단과 행동을 한다. 언론이 만든 기사는 사회 정체성을 형성하는 무형의 지식인 셈이다. 그래서, 보도 담론 분석은 언론이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졌는지’를 해석할 수 있게 한다. 그 해석은 향후 전개될 상황까지도 예측 가능하다.
‘채수근 해병대원’(이하, 채 해병)의 사망 사건의 뉴스 담론을 분석해 보겠다. 언론이 이 사건을 초기부터 어떻게 부각하고 보도 담론을 만들어왔는지 톺아 보겠다. 또한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가 채 해병 보도 담론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함께 살펴보겠다. 윤 정부의 언론 궤적을 통해 향후 전개될 언론 상황을 예측해 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분석 대상을 '진영 논리'가 강한 신문사가 아닌 방송사(KBS·MBC·SBS·YTN)로 선정했다. 분석 시기는 2023년 7월 19일부터 2024년 5월 31일까지다.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연구원들은 4개 방송사의 홈페이지에서 ‘채 상병 또는 채 해병’ 키워드로 기사를 선별 취합했다.
mbc의 채 상병 사건 관련 보도 화면.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안전불감증 – 국방부 수사외압- 대통령실 개입 순으로 담론 변화
지난 10개월 동안 ‘채 해병 담론’은 3번의 변곡점을 맞았다. 변화 시기는 2023년 7월 31일- 9월 1일- 2024년 3월 한 달이다. 7월 31일을 기점으로 담론의 중심이 해병대의 안전 불감증에서 국방부 외압으로 옮겨갔다. 9월 1일 이후, 보도 담론의 주체가 국방부와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에서 국회와 공수처로 넘어갔다. 2024년 3월 이후, 뉴스 담론의 중심은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관여 여부였다. 단계별 보도 내용과 언론의 주요 프레임은 아래의 표로 정리할 수 있다.
표: 채 해병 담론 주요 국면
즉, 담론의 생애주기는 초동 수사-(7월 31일, 언론 브리핑 취소)-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수사 외압 의혹 (9월 1일, 박정훈 대령 구속영장 기각) - 공수처 관련자 소환 및 채 해병 특검법 - (24년 3월 초, 피의자 이종섭 호주대사 임명) - 야권 총선 승리 및 특검 재의결 순이다.
언론, 채 해병의 죽음을 ‘안타까움’에서 ‘억울함’으로 바꾸다
초기 보도 담론을 종합하면, 해병대 1사단 소속 장병들은 지난해 7월 17일 오후 경북 예천군 내성천 부근에 도착했다. 수해 복구 지원 작업을 위해서였다. 해병대는 경북 소방본부와 효율적 지원 업무를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 해병대는 하천 부근만 수색하고, 소방본부가 수중 수색 업무를 맡기로 했다. 그래서, 채 해병을 포함한 대원들은 구명조끼가 아닌 삽과 곡괭이만을 지급 받았다.
◊ ‘4사(社) 4색(色)’의 보도 담론들= 채 해병의 사망 사건에 대한 보도 담론의 논조는 방송 4사 모두 달랐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담론 1‧2 단계까지 비슷한 논조를 유지했다. 두 방송사는 담론 초기부터 해병대의 안전조치 미흡과 수색 임무의 부당성을, 박정훈 수사단장 보직 해임의 부당성을, 국방부의 해병대 수사단에 대한 수사 외압 가능성을 적극 보도했다. 하지만, 3단계부터는 보도 논조가 달랐다. 윤석열 정부가 KBS 사장을 강제 교체한 이후 KBS 보도에서 정부 관련 의혹 보도는 사라졌다. 대신,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발표를 그대로 중계하거나 인용했다. 이와는 상반되게, MBC는 2단계에서부터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수사 외압 가능성을, 임성근 해병대 사단장의 거짓말을, 이종섭 피의자를 호주대사에 임명한 부당성을, 그리고 대통령 격노설의 실체를 쟁점화했다. 기사의 출처는 정부 보고서나 관련자들의 증언 등이었다. 이들 공영방송과 비교하자면, SBS의 담론은 2단계에서 MBC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였다. 국방부가 해병대 수사단에 부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담론을 가장 눈에 띄게 보도했다. 하지만, 국방부의 수사 외압만을 집중 조명했을 뿐 대통령실과의 연관성에 대한 보도는 하지 않았다. 이후 보도는 KBS처럼 경찰과 공수처의 동향이나 여야 국회의 정치적 공방 그리고 박정훈 대령의 공판 내용을 단순 중계하는 수준에 그쳤다. YTN는 채 해병 담론에서 통신사의 보도 내용을 편집해 보도하거나 타사의 보도를 따라하기에 급급했다.
◊ 공영방송, 채 해병 임무의 부당성 부각 = 방송 3사 (YTN·MBC·SBS)는 7월 19일 ‘실종자 찾던 해병대원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고, 구명 조끼는 입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KBS는 다음 날 새벽 4시경 실종된 해병대원이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방송했다. 방송 4사의 첫 보도는 전형적인 실종 사망 사건 보도였다. 하지만, 공영방송(MBC‧KBS)과 비 공영방송(SBS‧YTN)의 보도 방식은 달랐다. 공영방송은 현장 검증을 통해 채 해병의 임무가 정당했는지, 그리고 안전 장비 구비 여부를 보도하면서 해병대의 안전 조치 미흡을 질타했다. MBC (7월 27일)가 KBS(7월 31일)보다 검증 보도가 빨랐다. MBC는 첫 단독 보도를 2개 내보냈다. 첫 번째는 해병대가 경북 소방본부와의 약속을 어겼다는 사실(“하천변 수색만 맡았는데 … ” ‘협의’ 깨고 급류 투입한 해병대)과 해병대의 수사 과정(수중 수색 누가 지시? … 1주일 만에 수사 종료)에 의혹을 제기했다. 나흘 뒤, KBS (“강과 경계지역 진입 금지”… 분명히 경고했는데)는 해병대가 소방 당국의 사고 위험 경고를 무시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와 달리, SBS와 YTN 보도에서는 이 같은 취재 방식의 보도는 보이지 않았다. 즉, 공영방송이 담론의 초기부터 채 해병의 사망 사건은 단순 사망 사건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을 부각했다. 해병대가 ‘왜’ 권한 없는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누가 지시했는지에 대한 진상 규명의 쟁점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MBC와 KBS 기자들이 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점검하면서 ‘누가 관여됐는지’에 대한 담론을 시작했다.
SBS 국방부를 묶고, MBC 대통령실을 털다
◊ SBS ‘국방부’ MBC ‘국방부-대통령실’ 외압‧담론 주도= 채 해병 담론은 7월 31일을 기점으로 수사외압 국면으로 전환된다. 해병대는 오후에 예정돼 있던 수사 결과 언론 브리핑을 돌연 취소했다. 이와 관련된 보도는 SBS ‘고(故) 채 상병 조사하던 해병 수사 단장 보직 해임 … 경찰 넘긴 건 항명’ 보도였다. SBS는 이 보도를 통해 군인 사망 사건을 군에서 직접 수사할 수 없도록 법이 개정돼 조사 결과를 경북 경찰청에 넘긴 박정훈 수사단장이 항명 혐의로 보직 해임됐다는 보도였다. 공영방송보다 다소 늦은 ‘채 상병 관련 첫 단독’ 보도였지만, 보도 내용은 탁월했다. 단독 보도된 내용들은 해병대 사단장의 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과 증언들(8.7), 국방부가 수사단 보고서에 명시된 혐의자와 혐의를 방해(8.7.), 이종섭 국방부 장관 결제한 수사보고서 혐의 삭제 지시(8.8), 경찰 해병대 수사단에 ‘사단장 책임 충분히 조사’ 요청 (8.9.), 수사단의 설명 문건 단독 입수 및 대통령실 보고(8.10), 전 해병대 수사단장 군 검찰 수사심의위 신청(8.12), 박 대령을 항명 장교로 규정한 국방부 검찰단의 책임자가 ‘피의자’(8.14) 등이다.
SBS의 보도 내용들은 수사결과 보고서는 국방부 장관의 결재까지 마친 상태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축소 또는 은폐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취재원은 국방부 핵심 관계자 증언과 수사 보고서 등 증빙 서류들이었다.
공영방송인 MBC와 KBS는 SBS의 국방부 외압 보도를 인용하기보다 취재원(채 상병 가족, 채 상병 수색 작업 동료들, 박정훈 수사단장 단독 인터뷰, 수사단 보고서, 장관 서명 보고서)을 달리해 국방부 외압 담론의 폭발력을 키웠다. 하지만, 9월 1일 박정훈 수사단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지상파 2개 사의 권력 감시견 보도는 끊겼다. SBS와 KBS는 국방부와 대통령실 그리고 임성근 사단장의 주장을 단순 중계했고, 보도 건수도 현저하게 줄었다. 이와는 반대로, MBC는 채 상병 보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른 방송사들과 달리 MBC는 ‘국방부-대통령실’ 연계 외압 의혹 보도 <국방장관 보좌관의 문자, 지휘관은 징계로(11.16); 법무 검토했다더니 … 국방부의 말바꾸기 (11.29); 안보실의 집요한 독촉 … 8월 9일에 보고해야(11.30); 빨리 현장에 들어가라 … 임성근 향하는 부하들 증언(12.18); 해병대 수사외압 의혹 피의자를 호주대사로 … 영전 또 영전 (24.3.4)>를 이어 갔다. 특히,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의 출국 장면을 단독 포착하고 호주까지 동행 취재 ‘뭘 여기까지 왔어요? 되물은 이종섭 … 사실상 대사 부임’(24.3.21)한 보도는 채 상병 사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부당함을 국민들에 각인시켰다. 다시 말하면, SBS는 채 해병 수사보고서를 둘러싸고 해병대 수사단과 국방부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탁월하게 보도했지만, MBC처럼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연계 가능성에 대한 취재 담론을 만들지 못했다. 권력층의 ‘누가’ 수사 축소 작업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추적 보도를 하지 못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출국금지 대상인 것도 호주대사 임명 파장 여론도 주도하지 못했다. MBC 홀로 채 해병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추적하고 있었다.
◊MBC vs 타 방송사 담론 차이 = 2024년 채 해병 담론은 MBC가 주도했다. MBC 대 비MBC로 나눌 수 있다. 단적인 사례가 수사외압 최고 결재권자인 ‘이종섭’의 호주 대사 임명 관련 보도다. MBC는 3월 4일 이종섭의 호주 대사 임명을 보도했다. 피의자 신분인 사람이 어떻게 장관급인 대사로 임명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다른 방송 3사들은 이 사안에 대해서 이종섭과 대통령실 입장을 부각했다.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가 성공을 거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는 사례다. 공영방송인 KBS는 이종섭 관련 기사를 3월 한 달 동안에만 14건을 보도했지만 비판 논조의 기사는 없었다. 오직, 이종섭 또는 대통령실의 입장만을 보도했다. 대표적인 보도들은 [‘출국금지’ 이종섭 내일 호주 출국 예정…공수처 오늘 소환 조사(3.7.), 대통령실 “이종섭 출국 ‘수사 차질’ 주장 맞지 않아”(3.11.), 이종섭 “도피 주장은 정치 공세…자리 연연하지 않아” (3.17), ‘당분간 소환 어렵다’는 공수처…이 대사 “‘출금’ 왜 했나”(3.22)] 등이다.
준 공영방송이었다가 2023년 10월 유진그룹에 매각된 YTN도 유사했다. 3월 한달 동안 ‘YTN 실시간뉴스’에서 이종섭 관련 기사는 7건이었다. 보도 논조는 현 정권에 우호적이었다. 대표적인 보도들은 [이종섭 출국 연기 … “출국금지 이의신청” (3.8)‧‘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 이종섭 전 장관, 오늘 호주 출국 예정’ (3.10)‧대통령실 “이종섭 임명철회 없다 … 공수처-野-언론 결탁한 정치공작 (3.14)‧ 이종섭 곧 귀국·황상무 사퇴 … 물러선 용산(3.20)] 등이다. 건설사가 대주주인 SBS도 별 차이가 없었다. 국방부 외압 담론을 주도했던 SBS는 모기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면서 비판의 논조는 사라졌다.
정리하자면, 소유구조가 다른 방송 4사들이 ‘채 해병’의 보도 담론을 지난 10개월 주도했다. 이들은 채 해병 실종과 죽음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사고 현장에서, 해병대 수사단에서, 국방부에서 검증 보도했다. 공영방송인 MBC와 KBS가 사고 현장과 해병대 수사단 관련 담론을 주도했다. 이에 비해, 매각 시장에 나와 있었던 준 공영방송이었던 YTN은 채 해병 보도 초기부터 존재감이 없었다. 국방부 관련 담론은 SBS가 이끌었다. 국방부 수사 개입의 부당성과 외압의 형태를 독보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국방부와 대통령실의 관련성까진 파고들지 못했다. MBC만 채 해병 죽음을 둘러싼 최고위층의 권력 남용을 추적했다. 아직 현 정부에 장악되지 않은 공영방송 MBC만 ‘누가 관여했는지’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채 해병 담론에서 ‘누가 가장 큰 혜택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은 완성되지 않았다. 공영방송 MBC가 그 매듭을 지을 수 있을지 지켜본다.
<참고문헌>
Meehan, E., Mosco, V. & Wasko, J. (1993). Rethinking Political Economy: Change and Continuity, Journal of Communication, 43(4), pp.105 –116.
van Dijk, T. (1988). News as Discourse. NY: Routledge.
김춘효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상임연구원
"산유국 꿈 응원" 액트지오 한국어 홈페이지, 누가 개설했나?
페이지에는 "도메인, 웹사이트 판매" 문구도... 주소 검색하니 벤쿠버의 한 건물 나와
▲ 액트지오를 소개하는 한국어 홈페이지ⓒ 액트지오 홈페이지 갈무리
동해 포항 영일만의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회사 '액트 지오(ACT Geo)'를 소개하는 한국어 홈페이지가 개설됐습니다.
actgeo.co.kr라는 도메인으로 개설된 홈페이지 첫 화면엔 "동해 유전의 성공 확률은 대단히 높습니다"라는 문구가 크게 적혀 있습니다. 아래에는 "Act Geo는 대한민국 산유국 꿈을 응원합니다"라고도 적혀 있습니다. 또한 "자원탐사 전문업체 ACT GEO Korea"라는 문구와 함께 웹사이트 준비 중이라는 설명도 붙었습니다.
소개란에는 "2016년 미국 휴스턴에 설립된 액트지오(ACT-GEO)는 22국 31개 현장에서 지질 평가와 시추 사업에 참여했다"면서 "미국의 아파치(Apache)사, 중국해양석유(CNOOC) 등 세계의 40여 개 유망 업체와 지질 평가 및 시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2015년에는 미 정유사 엑손모빌과 세계 최대 심해 석유·가스전으로 알려진 남미 가이아나 광구 탐사에도 참여했다"고 밝혀놨습니다.
본래 회사와 다른 아이콘... 한국어 홈페이지 주소 검색해보니
▲ 왼쪽이 액트지오 한국어 홈페이지, 오른쪽이 아브레우 고문이 몸 담고 있는 액트지오 홈페이지. 두 페이지의 홈페이지 아이콘이 서로 다르다.ⓒ 인터넷 갈무리
한국인터넷진흥원의 후이즈(WHOIS) 검색 결과, actgeo.co.kr의 도메인 등록일은 6월 5일이었습니다. 또한 등록인은 "도메인 관리자", 등록대행자는 한국의 한 인터넷 서비스 업체였습니다. 일부 언론은 '회사 전문성에 관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상황이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석유공사는 10일 오후 4시쯤 별도의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액트지오가 국내 공식 한글 홈페이지를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사 내용은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린다"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홈페이지의 구성이 단순하고 페이지 하단에 "도메인, 웹사이트 판매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점에서 도메인 선점과 판매를 노린 누군가가 만든 한국어 홈페이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의문스러운 대목은 또 있습니다. 해당 홈페이지 하단에는 주소 및 사무실 전화번호가 나와 있습니다. 해당 주소를 구글 지도에 검색한 결과 캐나다 벤쿠버 형사재판소 인근의 건물이 나왔습니다. 또한 기재된 사무실 전화번호에 전화를 걸면 "통화량이 많아 연결되지 않았다"는 안내가 나옵니다.
▲ actgeo.co.kr 홈페이지에 기재된 주소를 구글지도에 검색했더니 벤쿠버 형사재판소 인근의 한 건물이 나왔다.ⓒ 구글지도 갈무리
앞서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엑트지오를 가리켜 "사실상 1인 기업이고 본사가 가정집인 구멍가게 수준"이라며 "선정과정에서의 검은 커넥션은 없었을까"라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또한 지난 7일 <시사IN>은 액트지오가 주 영업세를 납부하지 않아 4년간 법인 자격이 박탈된 상태였다고 보도했습니다.
액트지오 아브레우 고문은 지난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본사 주소지가 제 자택이 맞다"면서 "액트지오는 컨설팅 업체로서 소규모 컨설팅 업체가 대형 프로젝트 분석에 나서는 것이 이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날 그는 "석유·가스 부존 가능성이 20%"라고 제시하면서 "굉장히 양호하고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임병도(impeter)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AI가속기와 HBM,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현실
챗GPT의 등장 이후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오픈AI는 물론이고,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 등 내로라하는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AI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AI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AI가속기라 불리는 반도체가 꼭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필요하죠. 현재 AI가속기 시장은 엔비디아가 거의 석권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AMD나 인텔이 신제품을 내놓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아성은 너무도 공고해 보입니다. 오늘은 이 AI가속기가 뭔지, 그리고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컴퓨터나 서버에서 머리 역할을 하는 연산장치를 일반적으로 CPU(Central Processing Unit)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연산도 빠르게 척척 해냈죠. 오랜 세월, CPU의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곧 컴퓨터의 성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CPU 옆에서 다량의 단순 정보를 빠르게 처리해서 화면에 이미지를 구현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 GPU(Graphics Processing Unit)입니다.
다량의 데이터를 학습하는 능력이 필요한 AI가속기에는 어려운 연산을 하나씩 빠르게 처리하는 CPU보다는 간단한 연산을 한꺼번에 많이 처리하는 GPU가 훨씬 더 적합했습니다. AI시대가 시작되면서 CPU를 만드는 인텔보다 GPU를 만드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스무 배 이상이 된 건 그 때문입니다.
▲ AI가속기의 구조. 가운데 검은색이 AI로직 칩, 양쪽에 있는 것이 HBM입니다. ⓒ AMAT 유튜브 동영상
그럼, 엔비디아의 AI가속기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복잡한 부품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최대한 단순화시킨다면 연산을 담당하는 AI로직 칩, 연산을 위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메모리, 그 사이를 이어주는 기판, 이렇게 셋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AI로직 칩은 AI가속기의 핵심으로 병렬연산이 이뤄지는 부분입니다. 미국의 엔비디아가 설계하고 대만의 TSMC가 제작합니다. 이처럼 설계만 담당하는 회사를 팹리스라고 부르고, 외주제작을 하는 회사를 파운드리라고 합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세계 2위지만, 엔비디아나 AMD로부터 AI로직 칩의 제작 주문을 받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AI로직 칩이 처리할 데이터는 메모리에 저장이 됩니다. AI로직 칩 바로 옆에서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다가 연산이 시작되면 바로 전달하는 역할입니다. 예전에는 GPU용 반도체인 GDDR D램이 주로 쓰였지만, 지금은 데이터 전송 속도가 훨씬 빠른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을 사용합니다.
HBM은 우리 기업들도 관련되어 있으니까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HBM보다 먼저 쓰였던 GDDR D램은 외부로 정보를 전달하는 I/O(Input/Output) 핀이 32개입니다. 그런 2GB 용량의 GDDR D램을 AI로직 칩 옆에 12개를 붙여 놓아도 전체 용량은 24GB로 AI로직 칩의 처리 속도에 비해 양도 적고 속도도 아쉬웠습니다.
HBM은 메모리를 수직으로 겹쳐 쌓은 뒤 1024개의 구멍을 뚫어서 신호를 주고받게 설계한 겁니다. 신호를 주고받는 I/O가 32배나 더 많은데, 그걸 12개를 겹쳐 놓으니 HBM 하나의 용량은 24GB로 이미 GDDR D램 12개와 같아집니다. HBM은 AI로직 반도체 옆으로 4개를 붙입니다. HBM은 I/O당 전송속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그 수가 32배나 더 많으니 전체적인 속도는 훨씬 빠를 뿐만 아니라, 용량은 12배나 더 많으니 AI가속기 제작 업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HBM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HBM에 단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칩에 1024개의 구멍을 뚫어 배선을 하고 그 아래 배선과 이어야 하기 때문에 정밀한 작업이 필요합니다. 제품에 따라 여덟 개에서 열두 개까지 위로 쌓아서 정밀한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 불량률이 높습니다. 열 개 만들면 대략 여섯 개 정도만 쓸 수 있습니다. 이걸 수율이라고 부르는데, 얼마 전 SK하이닉스는 수율이 80% 정도 된다고 스스로 밝혀서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대신 속도가 빠르고 용량이 크기 때문에 GDDR D램에 비해 비싼 가격에 팔 수가 있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메모리 3사는 기존 메모리 생산라인을 HBM 생산라인으로 바꿔가며 생산량을 늘리는 중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을 최초로 개발한 회사이며 지금도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 역시 HBM을 생산하고 있으나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에는 아직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4세대 제품인 HBM3가 주로 사용되고 있고, 5세대 제품인 HBM3E는 올해 본격적으로 보급이 될 예정입니다. SK하이닉스는 내년에 나올 6세대 제품인 HMB4부터 TSMC와 협력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다음은 AI로직 반도체와 HBM을 이어주는 기판입니다. 예전에는 유기기판 하나로 신호 전달과 프레임 역할을 모두 했으나 주고받는 신호가 많아지면서 인터포저(Interposer)라고 부르는 또 다른 기판을 하나 더 추가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터포저는 AI로직 반도체와 HBM 사이에 신호를 전달하는 통로이며 처리가 완료된 신호를 유기기판으로 내보내는 중간 역할도 합니다. 인터포저 아래의 유기기판은 칩들을 올려놓는 프레임 역할과 외부로의 신호 전달을 담당합니다.
인터포저는 일반적으로 실리콘으로 제작했으나 보다 크게 만들 수 있고 안정적인 '유리' 기판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 소부장업체 최초로 지원금을 지급한 엡솔릭스가 바로 유리기판 제조사인데 한국 SKC의 자회사입니다. 유리기판을 제작하는 장비나 HBM을 조립하는 장비들도 우리나라 반도체 장비회사들이 잘 만듭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회사들이 메모리 반도체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이처럼 소재, 부품, 장비 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언론과 외신은 왜 다른 이야기를 하나
끝으로 반도체 관련 우리 언론의 보도에 대해 한가지 대통령님에게 주의 사항을 전하겠습니다. AI가속기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점에 가까운 지배력을 보이고 있으며 AMD와 인텔이 독자 제품을 내놓고 시장의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인텔은 독자적으로 웨이퍼 팹을 운영하고 있으니,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은 엔비디아와 AMD로부터 수주를 받느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 언론들도 관련 보도를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 보도만 보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을 작년부터 공급을 시작했고, 올해는 AMD의 최첨단 AI가속기를 파운드리 생산하는 게 기정사실인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기사 제목 몇 개를 보겠습니다.
▲ <한국경제>, <매일경제>, <아주경제> 보도 화면. 경제신문만 보면 삼성은 이미 다 이루었습니다. ⓒ 각 신문 보도화면
- [단독] 삼성전자, 엔비디아 뚫었다…HBM3 공급 합의 <한국경제, 2023.9.1>
- [단독] 삼성, 엔비디아에 납품 초읽기… 2분기로 앞당긴다 <매일경제. 2024.4.19>
- 삼성, AMD와 '3나노 협력'… TSMC 추격 시동 건다 <한국경제. 2024.5.28>
- AMD, 삼성전자 3nm 파운드리 고객사로 합류… GAA 기술 경쟁력 입증 <아주경제 2024.5.28>
- 젠슨 황 "삼성 HBM, 엔비디아 제품에 탑재될 것" <헤럴드경제 2024.6.4>
진작에 "공급 합의"를 했고, "합류"했으며, 곧 탑재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외신의 보도는 "협력", "합류", "탑재"를 주문처럼 외고 있는 우리 언론과는 조금 다릅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월, 삼성전자의 HBM이 발열과 전력 소모 문제 때문에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 발열과 전력소모 문제로 삼성전자 HBM이 엔비디아의 테스트를 아직 통과하지 못했다고 밝히는 지난 5월 24일자 로이터 통신 보도. ⓒ 로이터통신 보도화면
누구 말이 사실일까요? 6월 둘째 주 현재,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발언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HBM은 아직 테스트 중인데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며, AMD CEO 리사 수의 발언에 따르면 3nm 제품과 관련하여 (삼성전자와 같은) 특정 회사를 언급한 적 없고, TSMC와는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향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으로는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 납품 계약을 맺지도 못했고, AMD의 3nm 칩의 파운드리를 수주받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물론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고, AMD의 AI로직 칩을 파운드리 생산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건 언론들이 주문을 왼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의 제품 또는 기술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서 수정한 후 고객사의 요구사항에 맞는 제품을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겁니다.
▲ 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모습. ⓒ 연합뉴스
언론의 희망 담긴 기사 때문에 삼성전자도, 정부 관계자도 잘못된 판단을 하고 기회를 놓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언론에서 반도체 관련 보도가 나오면 대통령님은 외신도 함께 확인해서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게 어려우면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연재기사를 참조해도 됩니다. 행여 대통령님이 보수 경제지들의 기사들만 보고 반도체 관련해서 엉뚱한 정책을 내놓을지 걱정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에는 반도체가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큽니다. 대통령님이라도 거짓 정보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봉렬(solneum)
뇌물은 배우자에게?' 국민 분노에 입 다문 주류 언론
언론, 권익위 김건희 명품백 수수 종결 단신처리
SNS 등에서는 국민·야당·시민단체 비판 쏟아져
주류 언론, 여전히 민심 외면하고 윤 정권 감싸기
국민권익위가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가 위법 사항이 없어 종결처리한다"고 발표한 내용을 짧게 다룬 6월10일 KBS 9시 뉴스의 한 장면. KBS 홈페이지 갈무리.
국민권익위원회가 10일 김건희 씨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이 없다’며 종결처리를 한 것을 두고 국민적 분노가 일고 있다. SNS와 커뮤니티, 유튜브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권익위 결정에 대한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앞으로 공직자들은 배우자를 통해 금품을 받으시라”며 권익위 결정을 조롱하고 있다.
국민들의 비판과 분노는 당연하다. 대통령 부인이 수백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받은 사실이 동영상을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되었는데도 공직자 비리를 조사하는 국가기관이 이를 눈감아 준 것이다. 권익위는 ‘뇌물 제공자와 대통령의 직무 관련성 여부’ ‘명품백이 대통령 기록물인지’를 검토했고 ‘공직자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6개월이나 조사를 끌다가 김건희 씨 출국 시기에 맞춰 발표한 내용이다.
백주대낮에 버젓이 명품백 선물을 받아 챙긴 대통령 부인과 그걸 신고하지 않은 이 나라 최고권력 윤석열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결정이다. 배우자 제재 규정이 없으면 공직자인 그의 남편 윤석열 대통령도 문제가 없는 것인가? 권익위의 결정대로라면 공직자 비리를 막기 위한 김영란법은 무슨 소용이 있으며 권익위는 왜 필요한가. 정권에 아부하느라 해괴한 논리와 국민의 상식을 짓밟은 결정을 내린 권익위의 이번 결정에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허탈해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야당과 시민단체들의 비판도 거세다. 권익위 결정에 대해 전임 권익위원장이었던 전현희 현 민주당 의원은 “분노를 넘어 참담한 심정”이라고 성토했다. “공직자 반부패를 수호하는 최후의 보루인 청탁금지법을 정권 수호를 위해 무용지물로 전락시키고 제물로 바친 국민권익위는 더 이상 존재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자녀 장학금이 뇌물이라며 언론의 조림돌림 당한 뒤 처벌받고 교수직에서도 해임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국민권익위가 아니라 ‘여사 권익위’가 됐다”고 비난했다. 참여연대도 “부패방지 주무기관으로서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 대통령 부부에게 면죄부를 준 권익위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언론은 국가기관의 몰상식한 행태를 비판해야 한다. 그로 인해 생긴 국민 분노를 정확히, 그리고 최선을 다해 대변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까? 주류 언론들은 윤석열 정권 같은 수구세력이 세운 정부와 국가기관에 대해서는 그동안 별로 감시도, 비판도 없었다. 국민이 분노하고 비판해도 그런 민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조선, 중앙, 동아, 국민, 세계, 매경, 서경 등 대부분의 전국 단위 종합지와 경제지들은 이날 무미건조하게 권익위의 발표 내용을 기사화했다. “권익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제재규정 없어’...사건 종결”(조선), “권익위, 김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사건에 ‘배우자 제재 규정 없어 종결’”(동아), “권익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의혹 종결처리...‘공직자 배우자 제재 규정 없다’”(중앙) 따위의 제목으로 보도했을 뿐이다. 한경은 지면에서 아예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다. 권익위 발표의 의미나 문제점, 국민들의 분노를 다룬 사설이나 칼럼도 없었다. 주류 언론 중에 한겨레와 경향, 한국일보만 지면에서 1면에 관련 기사를 다뤘을 뿐이다.
방송도 비슷했다. MBC는 메인뉴스에서 권익위 결정을 전하고 남은 쟁점과 향후 검찰 수사 방향에 대해 보도했으나 관제방송으로 전락한 KBS를 비롯해 SBS, YTN은 권익위의 종결처리 결정을 주로 전달한 뒤 이에 대한 야당의 비판을 한 줄로 전했을 뿐이다. 특히 KBS는 메인뉴스에서 북한의 대북확성기 재가동, 오물풍선 관련 소식 정도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즉 뇌물수수 혹은 김영란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권익위 조사가 전부는 아니다. 검찰의 수사가 남아있다. 그러나 ‘법 위반사항이 없어 조사 종결처리’라는 권익위 발표는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검찰이 김건희 씨의 주가조작 의혹 등에 대해 미온적 혹은 덮어주기식 수사를 벌여온 행태를 볼 때 명품백 수수 의혹 수사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권익위는 그동안 공영방송 장악을 위해 민주당 정부 때 임명한 KBS, MBC, EBS 인사들에 대해는 청탁금지법, 이해충돌방지법을 들이대 조사권을 남용하더니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씨의 불법 혐의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 혐의는 지난 총선에서도 민심에 불을 붙인 정권심판론의 중요한 요인이었는데도 권익위는 민심을 무시한 것이다.
권익위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고 있고, 국민의 상식을 짓밟는 행태를 계속하는데도 주류 언론들은 별로 문제의식이 없다. 대통령 부인 김건희 씨의 명품백 수수는 진보와 보수, 좌와 우를 떠나 크게 비난받아야 할 부도덕한 일일 뿐 아니라 청탁금지법이라는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게 국민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주류 언론들은 이를 ‘단신’ 처리로 끝낸 것이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윤석열 정권에 분노한 민심을 왜곡하고 감추기 바빴던 주류 언론들은 여전히 민심과는 멀리 떨어져있다. 민심과 멀어진 언론, 기득권 이익 수호에만 관심있는 언론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주류 언론들은 점점 기득권 소식지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국정원보다 김성태 신뢰?…신진우 판사 판결 문제는
김성태, 허위 진술하면 명백하게 유리해지는 상황
검찰 회유, 피의자 입 맞추기로 '일관된 거짓말' 의혹
쌍방울은 이화영 만남 훨씬 전부터 대북 사업 준비
"북한에 공개 협약식 체결 요구하기 위해 보낸 뇌물"
신 판사, 전부 무시해…"선택적 증거 판단의 극단"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800만 달러에 대해 "이재명 경기지사의 방북 비용 대납 성격"이라고 판단한 수원지법 신진우 부장판사의 판결이 논란이다. 신진우 판사는 극단적으로 검찰 쪽 주장에만 귀를 기울인 판결을 내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만으로도 김성태,방용철,이화영은 같은 날 같은 조사실에 불려간 흔적이 쉽게 확인된다. 하지만 대질신문 기록은 없다.
1. 국정원 문건보다 김성태 주장의 신빙성에 더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대법원 판례 등에 따르면 진술 신빙성은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 객관적 상당성, 전후 일관성, 이해관계 유무 등을 아울러서 판단한다. 이번 사건에서 김성태는 대북 송금 동기를 어떻게 진술하느냐에 따라 받게 될 유불리적 상황들이 매우 뚜렷했다. 김성태가 모든 책임을 이화영 전 부지사 쪽으로 떠넘겼을 때 북한에 돈을 보낸 행위에 대한 뇌물죄나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처벌을 피할 수 있고, 각종 주가 조작 행위에 대한 검찰의 추가 수사를 피하면 거액의 추징금 또한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신 판사는 간과했다.
반면, 국정원 요원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국정원 요원들은 쌍방울이 대북 송금을 하는 의도에 대해 "주가 조작을 의심했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법정에서 진술했다. 또한 국정원 문건 생성 당시는 2018년~2020년이다. 국정원 요원들이 미래에 닥칠 정치적 상황을 염려해 이재명 지사의 방북 관련 동향을 일부러 문건에 담지 않았을 거라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신진우 판사는 이에 대해 "국정원 문건에 주가 상승 계획, 김성태의 사익 실현 내용 등이 담겨 있다 하더라도 김성태의 진술 신빙성이 배척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논리가 많이 부족하다.
2. 물론, 신진우 판사는 김성태 진술 외에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 등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는 했다. 신 판사는 판결문에서 "피고인 이화영은 범죄사실을 부인하였으나 피고인 방용철, 김성태 등의 진술 및 전직 경기도 공무원 박OO의 진술과 경기도 공문, 전직 경기도 평화협력국장 신명섭의 메모, 북한 송명철 작성 영수증 등에 의하여 피고인 이화영의 각 외국환거래법 위반이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김성태와 함께 피의자들이 검찰 조사실에 불려가 허위 자백 회유를 오랫동안 당한 뒤 입 맞추기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처음에는 이화영 전 부지사만 '술판 회유' 등을 주장했지만 최근 신명섭 전 경기도 평화국장도 같은 폭로를 했다. 이런 부분들에 대해 신 판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화영 전 부지사 변호인이 수원구치소 쪽에 검찰 출정기록 제출을 요청했지만 수원구치소는 방기했고 신 판사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처를 안 했다.
피의자들이 집단적으로 입을 맞추는 거짓말을 일관되게 유지할 가능성에 대해 너무 안일한 판단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신 판사는 대신 이화영 전 부지사에 대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비합리적인 변명으로 일관하여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에 회유당해 허위 자백을 했다"는 주장이 비합리적인 변명이고 이런 주장을 하면 엄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신 판사는 판단한 것일까.
리포액트가 입수한 국정원 문건
3. 김성태를 쌍방울의 정상적인 CEO로 인정하고 "주가 조작만을 위해 대북 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설명한 부분도 큰 논란이 일고 있다. 김성태가 과거 주가 조작 사건에 연루돼 처벌받았던 건 기사만 검색해봐도 쉽게 알 수 있는데 신 판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무시해버렸다. 그러면서 "이화영 부지사의 제안이 아니었다면 의류 산업 위주의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추진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이화영이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되기 훨씬 전부터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준비하던 정황은 차고 넘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특수 부품을 만드는 장원테크를 2018년 6월 쌍방울 계열사로 인수한 것은 대북 사업 준비라는 업계 분석 기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쌍방울이 전자기기 제조업체 나노스를 인수한 건 무려 2016년 10월이다. 나노스는 김성태 회장이 북한과의 광물개발 사업권 획득을 위해 주요하게 활용한 업체라는 사실이 쌍방울 내부 문건에 수없이 등장하고 이번 재판에 제출되기도 했다.
4. 신 판사는 "김성태 회장이 2019년 초 500만 달러를 북에 보내고 7월 이후 위험을 무릅쓰고 300만 달러라는 거액을 다시 보낸 것은 이화영 부지사의 요청이 아니라면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판결문에 썼다. 그러나 국정원 문건과 쌍방울 내부 문건 등을 보면 이는 "공개 협약식 체결을 북한에 요구하기 위한 뇌물"이라는 정황이 수두룩하다.
쌍방울 대북 송금이 한창 이뤄지던 2019년 10월 29일 국정원 문건에는 "방용철 대표는 '내의 천만 불 지원하는 데 대한 대가로 대북 사업권(태양광 발전 사업권)을 북에 요구" 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대북 송금이 완료된 2020년 1월 31일 국정원 문건에는 ▲북측이 '합의서 공개 체결식' 개최를 미루자 쌍방울 측은 '평양 또는 제3국 개최'를 촉구하는 서한을 북측에 전달(10.23) ▲방용철 대표이사는 2019년 9월 이후 3차례 무단 대북 접촉 통해 북 아태위에 최고급 말안장을 전달(11.27) ▲나노스는 올해 들어 '대북 사업 강화'를 통한 재도약을 선언(1.21) 등의 내용이 등장한다.
신 판사는 의도적으로 국정원 문건을 안 보려고 노력한 것일까. 쌍방울의 대북 송금 의도를 국정원은 2019년~2020년 내내 "대북 사업"과 "주가 조작"이라고 수차례 언급하는 문건을 만들었다. 이 전 부지사 변호인인 김광민 변호사가 표현한 대로 이번 판결은 "선택적 증거 판단의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시민언론 민들레
[PD수첩] ‘입틀막’ 시대? 위기의 한국언론 - 2024년 6월 11일 밤 9시
https://www.youtube.com/watch?v=bEXHhazbjfY
김성태 도피·진술 번복·술자리 회유… 이재명 기소까지 반전 거듭한 대북송금 수사
작년 9월 李 영장기각 수사 최대 고비
이화영 1심 중형… 20개월 수사 종료
검찰이 1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기소하기까지 1년 8개월 동안 수사는 반전을 거듭했다.
이 대표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2019년 이뤄진 쌍방울그룹의 800만 달러 대북송금 사건은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의 억대 뇌물사건 수사 과정에서 처음 불거졌다.
2021년 10월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쌍방울그룹의 이상 거래가 확인됐다”는 내용을 통보받은 수원지검은 이 전 부지사 관련 뇌물 혐의를 수사하면서 쌍방울의 수십억 원대 외화 밀반출 정황을 확인했다. 검찰은 2022년 10월 14일 쌍방울그룹 간부 자택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초기부터 검찰의 칼끝은 스마트팜 등 대북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이 대표를 향했다.
하지만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22년 5월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자취를 감추면서다. 표류하던 수사는 이듬해인 2023년 1월 10일 김 전 회장이 태국의 한 골프장에서 붙잡히며 탄력이 붙었다. 1주일 뒤 국내로 송환된 김 전 회장은 처음에는 “이재명 대표나 경기도의 관련성에 대해 모른다”고 했지만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뒤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의 대북사업 지원을 약속했고, 그래서 북으로 800만 달러를 대신 송금했다. 이재명도 이 사실을 알았다”고 인정했다.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이재명 기소까지. 그래픽=신동준 기자
김 전 회장 폭로로 본격적으로 ‘윗선’을 향하던 검찰 수사는 또 난관에 부딪혔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또 다른 핵심 인물로, 구속 기소된 이 전 부지사가 지난해 6월 검찰 조사에서 “(2019년) 이 지사에게 ‘쌍방울이 북한에 돈을 대납했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가 3개월 뒤 옥중 자필 입장문을 통해 “검찰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아 허위 진술한 것”이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이 대표 검찰 소환 조사를 이틀 앞둔 시점이었다. 이후 검찰 수사는 최대 고비를 맞았다. 지난해 9월 백현동 개발 비리 사건과 대북송금 사건을 묶어 이 대표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기각했기 때문이다.
수사팀에도 균열이 생겼다. 사건 초기부터 수사를 총괄 지휘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2차장이 딸의 학교 입학을 위한 서울 강남 아파트 위장전입 등의 의혹에 휩싸이며 그해 11월 대전고검으로 발령 나며 물러났다. 지난 4월엔 “검찰 조사실에서 자신을 회유하기 위한 술자리가 벌어졌다”는 이 전 부지사의 폭로까지 나왔다.
그러나 지난 7일 재판부가 외국환거래법 위반(대북송금)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 전 부지사 혐의 등을 인정해 징역 9년 6개월을 선고하며 수사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이 전 부지사에게 중형을 선고한 법원이 “이재명 대표에게 (대납이) 보고됐다고 들었다”는 김성태 전 회장의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한 점을 고리 삼아 검찰은 2년 가까이 이어온 수사를 종결하고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격노한 이재명 "권력 줬더니 보복하고 개인 사유물로 여기나"
최고위서 민생회복지원금 강조하며 목소리 높여… "정치 왜 하며, 권력 왜 갖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도대체 정치는 왜 하며 권력은 왜 갖느냐. 불필요한 생떼나 쓰고, 권력 줬더니 보복이나 하고. 나라를 무슨 개인 사유물로 여기는 거냐"며 격분한 모습을 보였다. 12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 공개회의에서였다. 이 대표의 '격노'에 다른 최고위원 등 회의 참석자들이 숨을 죽이며 한동안 회의장에 정적이 흐르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출이 최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자영업자 폐업자 수가 곧 100만여 명이 된다는데 어떻게 할 거냐"며 코로나19 대출금 장기분할 상환,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에 대한 신속 처리를 주문했다. 그는 "자영업자 100만 명이 폐업을 하면 종업원들 그리고 가족들, 어떻게 사는가"라며 "외식업 폐업률이 22%라는데, 코로나 때 보다도 6% 포인트가 높다고 한다. 정말 죽을 지경"이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 골목 상권에 지역화폐로 (돈을) 지급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세금으로 되돌아오고 경제 규모 커지고 국민들 소득 늘어나고 동네 골목 상권 활성화되고 영세 자영업자들 매출 늘어나고 이자도 좀 갚고, 폐업도 좀 미루고 그럴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이 대표는 갑자기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그는 "확실치도 않은 유전에 5000억, 1조 원씩 퍼부을 돈은 있으면서, 아프리카에 100억 불씩 원조할 돈은 있으면서, 동네 골목에 폐업하고 이자 못 내서 카드론 빌리러 다니고 사채업자한테 매달리고 그러다가 가족들 껴안고 죽고 이러는 거 안 보이나"라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대표가 뒷말을 잇지 못하면서 회의장에는 10초가량 침묵이 흘렀다.
이 대표는 잠시 후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 자살자 통계 확인해 봤나.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가장 많은 비율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나"라며 "먹고 살기 어려워서 그런 거 아닌가. 도대체 정치는 왜 하며, 권력은 왜 갖나. 놀고 즐기자고 국민들한테 이런 저런 약속하고 권력 위임받나"라고 했다. 이어 "요 며칠 사이 정부나 여당 하는 행태들을 보면 국민들은 죽든지 말든지, 나라 경제는 망쳐지든지 말든지 도대체 제대로 되는 게 없지 않나"라고 비난했다.
이 대표는 자신의 언성이 높아진 상황을 의식한 듯 발언 말미에 "제가 오늘 (최고위원들의) 말씀을 듣다 보니 그랬는데, 정치가 왜 필요한지, 지금 이 순간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하고 살라"며 "권력놀음하느라즐거울지 모르겠지만 그 권력놀음 뒤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족들 손을 잡고 죽느니 사느니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하고 공개회의를 마쳤다.
한편 검찰은 '쌍방울 대북 송금' 연루 의혹과 관련, 이 대표를 이르면 이날 추가 기소할 예정이다. 검찰은 이 대표를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와 공범으로 보고 판결문 검토를 마치는 대로 제3자 뇌물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길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최고위 결과 브리핑에서 이 사안 관련 논의가 있었는지 묻자 "그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전했다.
박정연 기자 | 프레시안
낯 뜨거운 '反인권위원'들의 놀라운 실체, 인권위에 생중계가 필요한 이유
이충상·김용원, 진정 '인권'위원이 맞습니까
"인권은 인간에게 보장되는 것이지, 인간의 탈을 쓴 짐승에게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 회의를 직접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이 발언 때문이었다. 인권위에 반(反)인권 위원들이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정말 저렇게까지 말할까 싶었다. 발언의 주인공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한 김용원 상임위원. 그는 일주일 전 전원위원회에서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며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원회가 각기 다른 기관에서 추천받은 인사들로 구성된 만큼 회의에서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본다. 게다가 나의 경우 국회를 적잖이 다니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언쟁에는 무던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참관했던 10일 인권위 전원위 회의는 지금껏 봤던 그 어떤 것보다 처참한 수준의 회의였다. '회의'라는 말조차 과분할 정도로 맥락 없는 막말과 고성, 호통만이 반복됐다. 방청석에 앉아있던 3시간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뒤로 김용원 상임위원과 이충상 상임위원이 나란히 앉아있다. ⓒ연합뉴스
정부‧여당 추천위원, 환장의 콤비 플레이…"임명하신 분이 이러라고 임명했나"
회의가 열리자마자 마이크를 잡은 이는 김용원 상임위원이었다. 그는 본 안건 논의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아주 오랫동안 했다. 발언의 요지는 최근 인권위가 해병대원 순직 사건 은폐 의혹과 관련해 군인권센터의 정보공개청구를 받아들여 조사 결과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정보공개를 한 직원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송두환 위원장은 "지난번과 거의 같은 내용"이라며 피로감을 내비쳤다. 그러면서도 기왕에 다시 문제 제기가 나왔으니, 앞으로 정보공개 건을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자고 했다. 그러나 논의는 오래가지 못했다. 여당 추천위원인 이충상 상임위원이 위원장에게 "왜 직원 색출을 하지 않느냐"며 따져 묻고 이에 김수정 비상임위원(대법원장 추천)이 제지하자, 김용원 상임위원이 호통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상임위원 한 분이 지금 논의와 관련해서 바른 말씀을 하는데 다른 위원이 끼어들고, 이렇게 몰상식한 위원회에 몰상식한 위원이 있다는 것,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김수정 비상임위원을 향해 박진 사무총장의 "호위무사"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진 사무총장은 "신중하게 고려해서 말해달라"고 당부했다. 청중석에서도 "말 좀 가려서 하라", "그만하라"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이번엔 이충상 상임위원이 청중석을 노려보며 삿대질했다.
"누구요? 뭐라 그랬어요? 갑자기 왜 끼어들어요? 방청석에서 관여를 해요? 퇴장을 시켜야지요."
보다 못한 김수정 비상임위원이 거듭 제지하자, 김용원 상임위원은 "야만적인, 아주 고약한 버릇이 있다"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의 비난은 이번에는 위원장을 향했다.
"성찰 없이 위원회를 행정각부로 생각하고 위원장이 장관이나 되는 듯이 하고 사무총장은 하명을 받아 무소불위로 사무처 직원에게 지시하고, 행정각부처럼 하려면 상임위원을 차관으로 대우를 해줘야 하는 것인데 상임위원은 싹 빼버렸어요. 자기네들끼리 알아서 하고…."
이에 원민경 비상임위원(야당 추천)이 "본인이 차관급이라고 계속 말씀하시는데, (공무원으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행동강령을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버르장머리가 없네. 아주 천박한 저돌적 호위무사."
원민경 비상임위원은 "임명하신 분(윤석열 대통령)께서 이러라고 임명한 것인가. 인권위원뿐 아니라 공무원 전반에 대한 명예훼손인 것 모르시냐"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제가 당했던 모욕과 폭언 언사들을 다른 법조인에게 이야기하면 대신 고소장 써주겠다는 이야기까지 한다"며 "김용원 상임위원에게 사과의 기회를 주고 싶고, 못하신다면 위원장님이 위원들에게 언행에 있어 반드시 지킬 최소한의 기준선을 지켜주십사 하는 당부의 말씀을 해달라"라고 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사과 의향이) 없다. 위원장이 대신 말씀하시라"며 사과를 거부했다. 송두환 위원장이 재차 사과 의향을 물었지만, 김용원 상임위원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면서 다시 송두환 위원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위원장은 작년 11월 제가 없는 자리에서 '김용원은 자격도 없다'고 했습니다. 당사자 없는 자리에서 폭언하고 악질적으로 범행을 부인하는 것의 완결판으로 치면 송두환 위원장이 더합니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송두환 위원장에게 사과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사과하시겠습니까."
송두환 위원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이런 언급이 오고 가는 게 매우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이라며 "동네 목욕탕에 가도 '공중도덕, 매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말아달라'고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말을 아끼던 다른 위원들도 "인권위를 좀 더 품위 있게 운영하자"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언성이 잦아드는 듯했다.
하지만 이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충상 상임위원이 인권위의 조사 내용 공개 여부를 안전보장회의(NSC)에 비유해 발언하다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몹시 흥분한 탓에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송두환 위원장이 "촬영하세요. 이건 영상 찍어야 돼"라며 자조적으로 읊조렸다. 이충상 상임위원도 지지 않고 "찍으세요"라고 맞받아쳤다. 본 안건 논의는 시작도 못 했는데 시간은 이미 세 시간이나 흘러있었다. 기사를 써야 하는데 도무지 쓸 내용이 없었다. 두 상임위원의 "호위무사", "버르장머리", "천박한" 등 막말밖에는.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및 군인권보호관이 고(故) 채수근 상병 사건의 수사와 관련해 성명을 낭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권위 내 '직장 내 괴롭힘'을 생중계하라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의 문제적 발언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기저귀 찬 게이"(이충상), "10.29 이태원 참사는 놀러 가서 죽은 것"(이충상), "언제까지 일본군 성노예 타령을 할 것이냐"(김용원) 등 알려진 것만 해도 차고 넘친다.
이런 발언들은 백 보 양보해 사회 문제에 대한 관점의 차이라고 해두자. 그렇다 해도 주변인에 대한 거친 언사는 어떤 설명으로도 납득이 어렵다. 이날은 동료 위원들에게 "천박하다"느니 "버르장머리 없다"며 지적질을 했지만, 어떤 날은 위원장을 향해서도 "버릇없이, 내가 법조 선배"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세금 한 푼 받지 않는 유튜버도 막말이나 갑질이 알려지면 사과문을 올리고 활동을 중단하는 시대다. 그런데 일반 공무원도 아닌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 그리고 다른 기관도 아닌 인권위의 상임위원이 주변에 상습적으로 폭언을 해댄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내 눈에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이들이 어지간한 막말을 해서는 회의 참가자들이 동요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1년 넘는 세월 동안 얼마나 이런 폭언에 무뎌졌으면 그럴까 싶었다.
두 사람의 지속적 폭언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직장 갑질로 보기에 충분해 보인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직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지속‧반복적인 욕설이나 폭언'이다.
인권위는 과거 상급자가 하급 직원에게 다른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출근하지 말라'고 말한 사건에 대해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보고 특별 인권 교육을 주문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그런데 이보다 심한 일이 지금 인권위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미 인권 단체 등 시민사회에서는 두 사람의 사퇴를 목이 쉬도록 요구해 왔다. 그러나 스스로 결심하지 않는 한, 이들을 물러나게 할 방도는 없다.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는 한 위원 신분이 보장된다고 인권위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퇴진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이건 영상 찍어야 돼"라고 하던 송두환 위원장의 말을 실천에 옮기자. 인권위 회의를 국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그래서 이들이 인권위원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합당한지 국민이 판단하도록 생중계하는 것이다. 인권위 회의는 위원들과 직원, 참관인 소수 몇 명만 볼 수 있다. 이런 폐쇄적 환경이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의 막말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현재 인권위 방청 규정은 '사전 허가 없는' 촬영만을 금지해 촬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지도 않았다.
국회 본회의나 상임위 회의처럼 인권위 위원들의 발언이 하나하나 생중계된다면 어떨까. 과연 김용원‧이충상 두 사람이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보는 앞에서도 호위무사", "버르장머리", "천박한" 같은 발언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서어리 기자 | 프레시안
한국 '좀비 기업' 비중, 역대 최대
10곳 중 4곳 이상이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아
한국 기업 10곳 중 4곳은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 기업'이었다. 한국의 좀비 기업 비중은 역대 최고치로 올라갔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수익성, 성장성은 모두 악화했다.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기업경영분석 결과' 속보치를 보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3만2000여 곳의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은 219.5%였다.이는 1년 전 443.7%에서 절반 수준으로 급락한 수치다.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금융비용은 커진 결과다.
이자보상비율은 영업으로 번 수익으로 기업이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정도를 나타내는 비율이다.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 즉 번 돈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좀비 기업' 비중은 2022년 34.6%에서 지난해 40.1%로 쑥 올라갔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기업의 전반적인 수익성 지표가 일제히 악화했다. 지난해 한국 기업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3.8%에 그쳐 2022년의 5.3%에서 급락했다. 제조업의 영업이익률이 2022년 6.3%에서 지난해는 절반 수준인 3.2%로 떨어졌다. 대기업 영업이익률은 5.4%에서 3.6%로, 중소기업은 4.8%에서 4.4%로 각각 하락했다.
매출액세전순이익률은 5.1%에서 4.4%로 떨어졌다. 제조업의 세전순이익률이 2022년 6.3%에서 지난해 5.2%로 낮아졌다. 이는 매출액에서 매출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2022년 79.9%에서 지난해 80.6%로 올라간 데다, 판매관리비 비중은 같은 기간 14.8%에서 15.6%로 올라간 결과로 풀이된다.
성장성 지표도 크게 악화했다.
지난해 외감기업의 매출액증가율은 -2.0%에 그쳤다. 전년 16.9%에서 마이너스 전환했다. 즉 한국 외감 기업 매출은 지난해 역성장했다. 제조업 매출액증가율이 2022년 16.4%에서 지난해 -2.7%로 악화했다. 특히 석유정제‧코크스(-14.1%), 전자‧영상‧통신장비(-15.9%) 부문 성장률이 좋지 않았다.
비제조업 매출액증가율은 17.5%에서 -1.2%로 떨어졌다. 서비스업 부문 증가율이 13.8%에서 -3.1%로 나빠졌다.총자산증가율도 2022년 7.8%에서 지난해 5.4%로 떨어졌다.
부채비율은 하락했다. 2022년 105.0%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102.6%로 소폭 하락했다. 차입금의존도는 28.8%로 전년과 동일했다.
▲1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3년 기업경영분석 결과' 속보치를 보면, 외부감사대상 비금융 영리법인 3만2000여 곳의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은 219.5%였다. 이자보상비율이 100% 미만, 즉 번 돈으로 이자조차 못 갚는 '좀비 기업' 비중은 2022년 34.6%에서 지난해 40.1%로 쑥 올라갔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이대희 기자 | 프레시안
윤석열 계란말이, 오물풍선, 동해 석유... 한국 언론의 충격적 퇴행
[진단] '권력 감시' 사라진 보도 행태... 저널리즘 존재 이유를 묻는 3가지 사건
최근 '한국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를 묻게 하는 사건들이 잇달아 등장했습니다. 한국 저널리즘이 신뢰를 상실한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저널리즘의 신뢰 회복 없이는 민주주의의 회복도 힘들다는 점에서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언론 학자들은, 저널리즘의 존재 이유가 진실 보도와 공정 보도 그리고 권력 감시에 있다는 데 대체로 공감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언론 학자인 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은 공저 <저널리즘의 기본원칙>에서 "저널리즘의 일차적인 목적은 시민들이 자유로울 수 있고, 그들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진실 보도와 공정 보도에 초점을 둔 말입니다.
셋 중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저널리즘의 가치입니다마는, 저는 '검찰 독재'라고 불릴 정도로 권력의 횡포가 심한 윤석열 정부에서는 '권력 감시'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제 나름대로 이를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강한 자를 억제하고 약한 자를 돕는 것입니다. 즉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신이 이 시대 한국에서 최고의 저널리즘 가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 초청 기자 만찬' 유감
▲ 윤석열 대통령이 5월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간담회에서 계란말이를 만들고 있다. 2024.5.24
그럼, 최근 벌어진 저널리즘 원칙을 훼손한 사건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5월 24일, '대통령의 저녁 초대'라는 이름으로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실 출입기자단 만찬 간담회입니다. 말만 간담회지 국정의 문제를 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 웃고 떠드는 '그들만의 잔치'였습니다.
200여 명의 기자가 초대받아 참석했지만, 최대 현안인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 수사 외압의혹은 화제에 오르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실이 마련한 산해진미를 맛보느라 여념이 없었는지 서민의 삶을 옥죄고 있는 물가고를 입에 올리는 기자도 없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레시피'로 만들었다는 김치찌개를 더 달라는 애교 목소리, 윤 대통령이 하얀 목장갑을 끼고 말아주는 계란말이에 환호하는 모습만 돋보였습니다.
대통령과 함께 환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는 기자들의 사진은 쳐다보기 민망했습니다. 여기서 춘향전에 나오는, '금 술잔의 좋은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 쟁반의 맛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다. 촛농 흐를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풍악 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도다'(금준미주 천인혈 金樽美酒千人血, 옥반가효 만성고 玉盤佳肴萬姓膏, 촉루락시 민루락 燭淚落時民淚落, 가성고처 원성고 歌聲高處怨聲高)'라는 유명한 시를 연상한 사람이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장면은 '대한민국 1호 기자'를 자임하는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이 권력 감시는커녕 권력과 한통속이라는 혐의에 확신을 더해줬습니다. 기자 사회에는 '취재원과 가까워서도 멀어서도 안 된다'라는 '불가근불가원'이라는 금언이 있지만, 이제 그 말에서 '불가근'을 삭제해야 할 판이 됐습니다. 만찬 이후에도 참석 기자 200여명 가운데 그날의 일에 관해 제대로 반성하고 성찰하는 글을 쓰는 기자를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한국 저널리즘의 회생에 대한 기대를 '확인 사실'한 꼴입니다.
맥락과 배경 무시한 북한 '오물 풍선' 편파 보도
▲ 북한이 날린 대남 풍선이 6월 9일 오전 경기 파주시 금촌동 한 도로에 떨어져 있다.
다음은 북한의 오물 풍선과 관련한 보도입니다. 주요 미디어의 관련 기사를 쭉 훑어보면, 북한이 분뇨와 쓰레기를 담은 풍선을 날려 남한 주민이 곳곳에서 불편을 겪었고, 남한 정부가 강하게 비난하며 보복 조치를 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무성합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큰 관심사가 아닌 듯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남북 관련 보도에서 사건의 맥락과 원인을 따지지 않고 북한의 행위만 지목해, 그들의 일방적인 도발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마치 '공식'처럼 굳어진 지 오래입니다. 하지만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라는 말이 있듯,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상대의 행위가 없는 일방적인 도발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뭔가 거친 행동을 할 때는, 한국 쪽에서 그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행위가 있었는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이른바 북한의 도발 배경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북한의 오물 풍선 공세도,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먼저 북쪽으로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내용이 담긴 풍선을 날린 데 대한 대항조치였습니다. 북한 당국이 2일 중단을 선언했다가 9일 다시 풍선을 날린 것도, 그 사이 다시 민간 단체가 북쪽으로 풍선을 재차 날린 데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이러한 전후 맥락을 무시하고 북쪽의 행위만 떼어내어 비난하는 것은 진실 보도와 공정 보도의 원칙에 맞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필요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올바른 해결책을 끌어내기는커녕 국민의 감정만 자극해 대북 강경론에 불을 지피는 위험한 '선동 보도'입니다. 미디어와 기자들은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은 때일수록 더욱더 저널리즘의 원칙을 되새기며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습니다.
동해 가스전 보도, 비주류 미디어가 주류 미디어를 이기다
▲ 윤석열 대통령이 6월 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에 참석해 동해 석유·가스 매장과 관련해 설명하고 있다. 윤 대통령 오른쪽은 국정브리핑에 배석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마지막으로 돌아봐야 할 사안은,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동해 가스전 발견 발표입니다. 윤 대통령의 발표는 누가 봐도 설익은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시추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마치 최대 140억 배럴의 천연가스와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처럼, 국민을 현혹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몇몇 주요 미디어는 이를 마치 사실인 양 대서특필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깜짝 발표'를 할 때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이라고 적시한 미국의 액트지오가 어떤 회사인지 의문을 품고 추적한 곳은, 거대 주류 미디어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신문을 비롯한 비주류 소규모 미디어와 개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나서 액트지오라는 회사가 대표의 가정집을 사무실로 쓰는 1인 기업이고, 파산한 전력이 있다는 사실을 들춰냈습니다.
윤 대통령의 장밋빛 발표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와 관련한 보도를 중간 평가해 보면, '주류 미디어의 패배 - 비주류 미디어의 승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의문을 품고 진실을 추구한 것은 저널리즘의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이번 일은, 대통령이 발표했다고 의문 없이 무턱대고 사실처럼 보도부터 하고 보는 관행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해줬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였던 하라 도시오 전 <교도통신> 사장은 <저널리즘의 사상>이라는 책에서 "저널리즘의 적은 언론·보도를 탄압하는 자, '진실 보도'를 저해하는 자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널리스트는, 국적은 '허구'라고 생각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벌어진 세 건의 사안을 대하고 보도하는 한국 저널리즘의 행태를 보면서, 하라 도시오의 말이 죽비 소리처럼 다가왔습니다
오태규(ohtak)오마이뉴스
정치는 전세를 어떻게 망가뜨렸나?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붕괴되고 있다. 서민의 주거권을 지탱하던 시스템 일부가 고장났다는 의미다. 10년 새 폭증한 전세대출부터 잡아야 하지만, 정치권은 위기만 키우고 있다.
서울시 송파구 잠실새내역 인근의 모습. 잠실 아파트 단지 인근에 비아파트 저층 주거지가 넓게 위치해 있다.ⓒ시사IN 이명익
최근 주택 임대차 시장에 두 가지 공포가 퍼지고 있다. 첫 번째는 ‘전세가 상승 공포’다. 서울 아파트를 중심으로 최근 1년 사이 전세가가 부쩍 올랐다. 한국부동산원이 집계하는 ‘주간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5월22일 83.6이던 지수가 올해 5월20일에는 88까지 꾸준히 상승했다. 그러다 보니 ‘전세가가 매매가의 하방을 지지해준다’며 아파트 가격이 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우려 혹은 기대하는 이들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역설적인 공포다. 아파트 전세 임차인들은 전세가 상승의 부담을 느끼지만, 자산을 가진 쪽에서는 이 공포를 ‘하락 리스크가 해소되는’ 호재로 여긴다.
그러나 같은 도시에서 다른 성격의 공포도 번져가고 있다. 바로 ‘비(非)아파트 전세’에 대한 공포와 기피 현상이다. 불과 2년 전인 2022년 3월, 서울 비아파트 월세 거래 비중은 56% 수준이었다. 그러나 전세사기 여파가 커지면서 임차인들이 비아파트 전세를 꺼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월세 비중이 올해 3월 69.7%까지 늘어났다. 그만큼 다가구·다세대·오피스텔 전세 거래는 줄어들었다.
전세사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임대인(집주인)이 임차인(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전세 사고 관련 통계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5월17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4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액은 1조906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6% 늘어났다. 이 추세대로라면 올해의 연간 사고액은 역대 최고치라던 지난해 기록(4조3347억원)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악순환이다. 전세사기가 무서워 비아파트 전세 수요가 줄어드는데, 들어올 임차인이 없으니 전세사기를 비롯한 전세 사고는 더 늘어난다. 아파트만 바라보는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는 현상이다.
■ 빌라 임대차 시장의 붕괴
두 공포는 서로 무관하지 않다. 빌라로 대표되는 다가구·다세대 주택 전세 기피 현상이 강해질수록 자연스럽게 아파트 전세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비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낮고, 적정 시세가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도 용이하다. 결국 안전의 문제다. 요컨대 신축 빌라보다 준공 30년이 넘은 구축 아파트가 적어도 전세보증금을 날릴 걱정이 덜하다는 점에서 훨씬 안전하다. 전세가는 금리, 공급량, 인구의 사회적 이동, 정부 정책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변하지만, 현재 가장 선명한 변수는 바로 ‘비아파트 전세 공포’다.
이 현상은 서민의 주거권을 지탱하던 시스템 일부가 고장 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서울은 빌라로 대표되는 다세대 주택의 비중이 가장 높은 도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비중은 43.45%로 전국 평균(51.93%)을 하회하는 반면, 서울의 다세대주택 비중은 18.9%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비거주용 건물(근린생활시설 등)이나 오피스텔, 고시원 등을 감안하면, 서울에서 비아파트 거주 인구는 절반을 넘는다. 이른바 ‘서민 주거 공간’으로 불리는 곳들이다.
온라인 경매 정보 사이트 ‘경매지도’에서 서울 강서구 화곡동 일대를 캡처한 장면. 전세사기 피해로 인한 경매 물건이 많다.ⓒcourtauctionmap.com 갈무리
서민 주거 시스템 붕괴의 또 다른 현상은 공실이다. 서울에서 잇따른 전세사기·사고로 인해 경매가 진행 중인 집이 많고, 특히 HUG가 임대인 대신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지급한 ‘대위변제’ 사례도 크게 늘고 있다. 전세 기간이 끝나고 임차인이 HUG로부터 대위변제를 받고 퇴거할 경우, 이 집은 HUG가 경매 등으로 변제액을 회수하는 동안 임대가 어렵다. 회수율도 처참한 수준이다. 2023년 HUG의 보증사고 건수는 총 1만9350건이었지만, 회수율은 14.3%에 불과했다.
결국 이들 집이 시장에 풀리기 위해서는 경매 시장에서 누군가 전세가만큼 매수해주거나, 혹은 HUG가 손절(대항력 포기)해야 한다. 비아파트 주택은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높은 깡통주택이 많기 때문에, 경매 시장에서 전세사기·사고 물건은 인기가 떨어진다. 부동산 경매 전문 사이트 지지옥션의 ‘전세피해 경매정보’에 따르면, 2024년 2~4월 3개월 동안 전국 연립·다세대·오피스텔(주거용) 경매 매각률은 18.24%에 그쳤다. 전체 경매 건수도 늘고 있다.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빌라 경매 건수는 총 1494건으로 2006년 1월(1600건) 이후 가장 많았다.
경매 물건의 낙찰률이 높아지려면 결국 전체 매입 가격을 낮추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HUG의 손실이 불가피한 구조다. 이는 전세사기와 역전세로 인한 시장 붕괴의 여파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시스템의 붕괴를 두고 해법이 제각각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이나 임차인들은 전세사기가 제대로 처벌받고, 피해자 구제가 이뤄져야 전세 시장이 본래의 기능을 작동할 것이라 여긴다. 반면 국토교통부는 다른 해법을 그리고 있다.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5월28일, 이 대립의 정점이 정치 현장에서 드러났다.
■ 기관도 어렵다는 그 절차, 개인이 해왔다
5월28일, 제21대 마지막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번 개정안에는 흔히 ‘선구제 후회수’로 불리는 전세 채권 매입 방침이 담겨 있다. HUG와 같은 채권 매입 기관이 임차보증금 반환채권(전세보증금)을 공공 매입해 피해액의 일부(30% 수준)를 먼저 돌려주고, 추후 채권 추심과 매각을 통해 회수하는 방식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소속 피해자들은 이날 국회 본회의를 막막한 심정으로 방청했다. 법안이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결국 다음 날인 5월29일 윤 대통령은 야당의 강행 처리에 반발하며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제21대 국회가 끝난 터라 재의결도 어려워 결국 이 법안은 제22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될 처지에 놓였다.
거부권 행사 분위기는 사전에 감지되었다. 국토교통부가 줄곧 법안에 반대하며 공공연하게 거부권 행사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5월13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특별법에 반대 입장을 밝히며 이렇게 말했다. “피해자를 직접 지원하면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이 고스란히 다른 국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예전에는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당장 비난이 쏟아진 대목은 ‘덜렁덜렁’이라는 표현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전세사기가 청년 스스로의 잘못 때문이라는 말이냐’며 망언을 질타했지만 더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을 통해 채권 매입을 국가가 직접 나설 경우, ‘다른 국민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시각이다. 개정안의 핵심은 국가가 나서서 악성 임대인으로부터 채권을 회수하자는 것인데, 이 같은 관점은 어떻게 도출된 것일까?
정부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정부와 HUG가 주도한 지난 세 차례 토론회를 통해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2차(4월30일), 3차(5월23일) 토론회에서 국토부·HUG·국토연구원·법무부·금융위 등 유관 부처와 기관 관계자 대부분이 크게 세 가지 이유를 들며 특별법 개정을 반대했다.
첫째, 채권 가치를 평가하기가 너무 어렵다. 개정안대로 HUG가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들의 전세 채권을 인수한다고 가정해보자. 채권 매입 기관은 매입하는 채권의 적정 가격을 계산해야 하는데, 전세보증금의 경우 이 가치 평가 자체가 어렵다는 게 정부 내 중론이다. 선순위 채권 관계가 복잡하고, 조세 채권이 얼마나 잡혀 있는지(임대인이 얼마나 세금을 밀렸는지) 알기 어렵고, 등기부에 기록되지 않은 채권도 확인이 어렵다. 채권을 인수하더라도 나중에 얼마에 팔 수 있을지, 경매가 원활하게 진행될지, 경매 기간을 따졌을 때 채권의 현재가치(3년 뒤 1억원에 팔린다면 현재 가치는 얼마가 적정가인가)가 얼마일지도 논란거리다.
둘째는 인력과 역량이다. 4월30일 2차 토론회에서 한 국토부 관계자는 “몇십 명 투입해서 될 일이 아니다. 채권 매입 신청 접수받고, 가치평가하고, 양도계약하고, 경매하고…. 최소 1000억원에서 3000억원 행정비용이 든다”라고 설명했다. 그 모든 일을 국가가, 그것도 HUG라는 조직이 전담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마지막은 ‘재원’이다. 국토교통부는 개정된 특별법이 시행될 경우 약 3조~4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한다. 개정안은 주택도시기금을 활용케 되어 있는데, 2021년 49조원이던 주택도시기금이 2024년 3월에는 13조원까지 떨어져 기금에 여력이 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박상우 장관은 특별법이 통과된 다음 날 브리핑을 열고 “주택도시기금은 무주택 서민의 청약저축에서 빌려온 재원”이라며 기금 활용에 부정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에 대한 실무 차원의 우려는 결코 무시할 내용이 아니다. 채권 평가가 어렵고 대규모 행정 재원 투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그저 수비적인 태도라고 치부하기 어렵다. 이런 걱정을 할 만큼 현재 전세사기·사고 건수가 많으며, 광범위한 피해가 양산되고 있다. 그러나 개정안 반대 논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반론이 제기된다. ‘기관들마저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적정 채권(전세가) 평가를, 기관들이 광범위한 행정 비용이 든다며 고심하는 그 절차를, 그동안은 개인들이 전담해왔다는 것 아닌가?’
전세 거래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정보 불균형이 존재한다. 임대인이 다른 집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세금은 밀리지 않았는지(조세채권), 등기부등본에 나와 있는 선순위 채권 외에 얼마나 빚이 있는지 개별 임차인이 알기 어렵다. 최근 세금 체납 확인을 위한 절차가 보강되긴 했으나, 여전히 계약 방식에 허점이 존재하고 임차인이 유의 사항을 일일이 체크해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제도가 유지되어온 이유는 ‘집값은 높은 확률로 오른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이 같은 ‘정보 격차로 인한 리스크’가 불거지기 시작했고, 제도의 미비점도 하나둘 표출되었다.
개인이 임대차계약 과정에서 전세보증금이 적정한지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채권이 얼마나 안전한지’를 평가하는 과정과 다를 바 없다. 기관도 평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하는 채권 평가를 개인에게 일임하고 있는 구조 속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적정한 전세가율’ 정도에 불과하다. 전세가율이 높은 빌라 대신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임대차 거래 시스템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제도개선에 부정적인 사람은 많지 않다. 전세사기 피해자, 역전세로 곤란한 상황에 처한 임차인과 임대인, 정부 관계자와 학계 모두 입을 모아 외치는 과제다. 하지만 전세제도 보완에 대해 현 정부가 오히려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월세 신고제 무력화’ 논란이다.
지난 4월17일, 국토교통부는 전월세 신고제 계도기간을 내년 5월31일까지 1년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3법 중 하나로 2021년 6월1일 도입되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의 인적사항, 임대 유형, 계약기간, 임차료 등의 신고를 의무화하고, 신고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제도의 전면 시행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2021년 당시 국토부는 계도기간을 2년으로 잡았으나, 2023년 계도기간을 1년 연장했고, 올해 추가로 1년 미룬다고 선언했다. 최대 100만원까지 부과되기로 했던 과태료도 최대 20만원까지 낮춘다는 게 국토교통부의 계획이다. 사실상 제도가 무력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월세 신고제는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을 확보한다는 장점이 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2022년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월세 신고제를 통해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 확보와 함께 임차인의 합리적 의사결정에 도움이 된다. 전월세 신고제로 확정일자가 자동 부여됨에 따라 임차인 권익 보호도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임대인들은 이 전월세 신고 데이터가 임대소득세 부과 등 과세 자료로 활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임대차 거래를 통해 얻은 소득이 데이터로 남는 것 자체를 꺼린다. 이렇듯 전세제도의 보완책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임대인들의 반발 속에서 시행이 미뤄지고 있다.
비아파트 주택 임대차 시장이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바로 전세대출 축소다. 전세대출 문제는 비단 윤석열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야 공히 책임을 져야 할 정치적 문제이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해소하려면 큰 결심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은행이 임차인에게 돈을 빌려주는 전세대출은 전통적인 금융시장 관점에서 다루기 어려운 대출이다. 전통적인 금융 관점에서 이 대출의 ‘담보’는 전세 채권인데, 앞서 기관들조차 전세는 ‘채권 평가’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결국 전세대출을 시장에 맡겨둔다면, 담보나 신용이 부족한 저소득층과 청년의 전세대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행 전세대출은 각종 기관이 ‘보증서’를 발급해주며 신용을 보강한다. 보증서 발급이 용이해질수록 개별 은행은 전세계약마다 돈을 얼마나 안전하게 돌려받을 수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사라진다. 즉, 전세대출 자체가 정부 정책에 따라 늘리고 줄이는 게 가능해진다.
■ 풀어주기는 쉬워도, 잠그기는 어렵다
전세대출은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꾸준히 늘어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3월20일 발표한 ‘전세제도 관련 실태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세대출 잔액은 지난 15년간 161조원 늘고, 최근 5년 동안 서울에만 120조원이 공급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전세대출이 늘기 시작했지만, 전세대출 증가액의 상당분은 문재인 정부 때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임기 초 36조원이던 전세대출 잔액은 임기 말 162조원으로 126조원 증가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전세대출이 늘어난 것은 ‘청년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공공임대와 같은 직접적 지원 대신 금융을 통한 간접 지원을 꺼내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연령대별 전세자금대출 공급 비율을 살펴보면, 29세 이하가 20%, 30대가 4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이 보증해주는 대출을 통해 청년층의 전세 쏠림이 나타났고, 그만큼 전세 시세도 높아졌다. 거품이 꺼진 뒤, 그 유탄은 오롯이 개별 청년 임차인들이 맞고 있으며, 전세대출을 늘린 후폭풍을 HUG를 통한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나 전세사기 특별법 등으로 뒷수습하는 형국이다. 이 점에서 전세사기의 확대와 비아파트 임대시장 붕괴는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의 책임이 크다.
문제는 전세대출을 축소하는 데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21년과 2022년에도 금융위원회가 은행권 총량규제를 통해 전세대출 억제에 나섰지만, 여론의 부담감으로 인해 제때 줄이지 못했다. 고금리 환경에 놓인 윤석열 정부 역시 ‘전세대출 다이어트’는 요원한 상황이다. 경실련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윤석열 정부의 전세대출 잔액은 임기 초 대비 6000억원 정도가 줄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여기에 더해 정책금리 상품을 통한 전세대출 확대 정책까지 내놓고 있다. 4월4일 ‘민생토론회 후속조치 점검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의 신혼부부 소득 기준을 7500만원에서 1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책금리 상품인 버팀목 전세자금대출은 시중은행 전세대출에 비해 금리가 약 2~3%포인트 낮다. 저출산 환경에서 결혼을 유도하고 신혼부부의 부담을 줄이려는 정책이었지만, 동시에 전세대출을 더 확대하고 전세 수요를 높이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정부의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재원 부족’ 논리도 버팀목 전세자금대출로 인해 무색해진다. 버팀목 전세자금대출과 같은 정책금리 상품은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이자 보전’으로 유지된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가 오르는데도 정책금리 상품의 이자가 싼 이유는, 기금을 통해 금융기관에 이자를 보전해주기 때문이다. 즉, 같은 금고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전세대출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는 상황이 정부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상우 장관은 “기금은 무주택자의 청약을 통해 만들어진다”라고 강조하는데, 이 역시 ‘무주택자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를 두고 한쪽에서는 전세대출의 총량을 늘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전세사기와 역전세가 발생하는 문제가 벌써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전세 문제는 금융의 문제인 동시에, 금융을 동원하려 했던 정치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세대출 축소를 위한 세부 정책을 입안했으나, 시행이 중단된 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세자금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하는 정책이다. 현재 DSR을 산정할 때, 전세대출은 예외 항목으로 분류되고 있다.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에 미치는 영향을 축소해 전세제도의 구조적 위험을 낮추자는 주장이 그동안 제기되었는데, 실제로 금융 당국이 올해 1월 전세대출을 DSR 규제에 포함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시사IN〉 제856호, ‘가계부채 감축 의지, DSR 보면 알 수 있다’ 기사 참조). 그러나 이 정책은 정부 내 반대에 부딪혀 연내 시행을 미뤄둔 상태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 악화를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가계부채 감축과 동시에 전세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정책조차 정치적 의사에 따라 추진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개별 임차인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은 ‘전세가율이 낮은 집에서 임대차 계약을 맺는 것’이다. 전세가율은 모수인 매매가가 오르거나, 전세가가 낮아져야 떨어진다. 매매가를 부양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쉬운 선택이지만, 전세가가 떨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후폭풍을 수습하기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도 전세가를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비아파트 주거 시장을 부양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해 9월 발표한 주택공급 활성화 대책에서도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주택을 사더라도 아파트 청약 때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택 매수 수요를 끌어올려 거래를 늘리고 가격을 방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실수요보다 투기수요에 따라 가격이 오른 비아파트 임대차 시장이 이 같은 정책으로 얼마나 안정될지는 미지수다.
5월2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지켜보고 있다.ⓒ시사IN 조남진
일부 임대인들은 “가격에 거품이 생긴 것도, 거품이 꺼진 것도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 때문이다. 공시가격의 126%로 고정되어 있는 가입 가능 금액을 높여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HUG는 2022년까지 공시가격의 150%를 인정하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금액을 높여왔다. 그러나 이 ‘기준’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전세 거래 가능 금액’으로 인식되면서 공시가보다 훨씬 높은 금액으로 전세 거래가 이뤄지게 했고, 그 결과 전세사기와 역전세 문제가 한꺼번에 불거져 HUG 재정의 위기까지 번졌다.
결국 국토교통부에서는 ‘공시가×126%’로 기준을 낮춰왔는데, 최근 이 기준에 공시가 대신 감정평가 가격을 도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이 경우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가능 금액은 전보다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정책적 차원에서 전세금 상승을 유지하고 매매가 하락을 막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판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럽게 도래한 고금리 환경에서 전세제도의 ‘빈틈’은 유독 도드라진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의 주택시장은 ‘금리나 물가의 영향을 받는’ 임차료 문제가 고민이다. 미국에서도 인플레이션을 견인하는 주요 요인으로 주거비를 꼽을 정도다. 반면 전세대출이 일반화된 한국은 고금리와 인플레이션 여파를 전세대출을 내어준 은행이 가져가는 형국이다. 한국 정치권은 정책금리 상품을 통해 임차료의 부담을 낮춰주었고, 그 후폭풍을 일부 임차인들이 뒤집어쓰는 형태로 위험을 관리해왔다.
방치된 시스템을 고치는 일도 결국 정치의 몫이다. 그러나 현재 여야는 정치적 책임을 서로에게 떠밀며 사태를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전세사기가 확대된 원인이 전 정부의 책임이라며 전 정부에서 추진한 ‘임대차 3법’까지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전세사기 특별법을 밀어붙였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전세대출을 줄이지 못한 데 대한 책임에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야당 차원에서 ‘전세대출 축소’를 먼저 주장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대출을 줄이자는 언급만으로도, ‘여태껏 저렴하게 거주해온 권리를 빼앗는다’는 여론의 역풍이 일 수 있다. 풀어주기는 쉬워도, 잠그기는 어렵다. 선의로 시작한 정책이 경로의존성에 빠졌을 때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불과 10년 사이에 폭증한 전세대출이 여기에 해당한다./시사인 김동인 기자
사업자 1000만 시대 눈앞…4년 전보다 190만개 늘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사업자(법인+개인) 수가 1000만 개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이 대표로 있는 사업자는 처음으로 400만 개를 돌파했다. 국세청이 12일 공개한 ‘2023년 사업자 등록 및 부가가치세 신고 현황’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영업 중인 ‘가동 사업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995만 개로 집계됐다.이는 2022년(이하 연말 기준) 967만7000개보다 2.8%(27만3000개) 증가한 것이다. 4년 전인 2019년(804만6000개)과 비교하면 23.7%(190만4000개) 늘었다. 국세청은 “총사업자 ‘1000만 시대’를 앞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가동 사업자 중 대다수인 864만8000개(86.9%)는 개인 사업자였다. 법인 사업자는 13.1%인 130만2000개로 파악됐다. 업태별로 보면 부동산 임대업이 243만1000개(24.4%)로 가장 많았다. 가동 사업자 4개 중 1개 꼴이다. 이어 ▷서비스업 204만9000개(20.6%) ▷소매업 146만3000개(14.7%) ▷음식업 82만 개(8.2%) 등 순이었다.
대표자 성별로 보면 여성 사업자 수는 401만8000개, 남성은 591만9000개였다. 나머지 1만3000개는 ‘기타’로 분류됐다. 특히 여성 사업자 수는 역대 처음으로 400만 개를 넘어섰다.여성 사업자 업태는 부동산 임대업이 116만4000개로 가장 많았고 서비스업(83만8000개)과 소매업(77만6000개)이 뒤를 이었다. 이들 3개 업태(277만8000개)가 전체 여성 사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9.1%에 달했다.
한편 지난해(이하 1~12월) 창업한 신규 사업자는 127만6000개로 전년(135만2000개)보다 7만6000개 줄었다. 이들 신규 사업자의 연령대는 40대(33만4000개) 30대(31만7000개) 50대(27만4000개) 순으로 많았다.
대일 굴욕외교에서 실리 찾자? 한겨레 맞는가
윤석열 굴욕 외교, 현실로 받아들이자는 주장
윤 있을 때 일본이 '성의' 보여 달라 '부탁'의 말
잘못된 현실 현실로 인정할 때 현실 악화 알아야
한겨레의 10일자에 실린 논설위원의 칼럼 <일본도 코피 한두 방울 흘릴 각오는 해야>가 놀랍다. 윤석열 정권이 대일 굴욕외교를 벌이고 있지만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최대한 실리를 찾자는 논리를 펴고 있는 이런 글을 다른 신문이 아닌 한겨레의 지면에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이 칼럼은 제목에서처럼 일본 정부에 대해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정 어린 조언을 하는 듯한 이 당부의 글은 일본 정부를 향해 윤석열 정권이 굴욕적이며 자해적인 '결단'을 했으니 일본 정부도 이 유리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 달라고 하소연인 듯 애걸인 듯 '부탁'하고 있다.
이 글은 한·일 시민사회가 일본을 상대로 전후보상운동을 벌인 지 30여 년이 돼가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부분 숨을 거두고 있는 ‘막바지 단계’에 이른 상황이라면서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도 '코피 한두 방울' 정도만이라도 '호응'해 달라고, 그래서 한일 관계의 새 시대를 열자고 일본 정부에 완곡하게 요청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눈을 의심할 이들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제호만 가린다면 조선일보라고 해도 될 법하다. 그 논리의 근거와 전제, 그리고 '현실론'을 확고한 전제이자 근거로서 강조하는 그 입장을 읽다 보면 이것이 과연 한겨레에 실린 글이 맞는가, 라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이를 한겨레 전체의 입장이며 논지라고 할 수는 없다. 이 글에 필자의 생각이 전적으로 집약돼 있다고 함부로 단정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글들 하나하나가 모여서 한겨레의 한일 관계에 대한 시각을 구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글의 필자는 한겨레의 국제 분야, 무엇보다 스스로 전 국제부장으로서 일본 특파원을 지낸 이력을 밝히듯이 한일 관계를 다루는 논설위원으로서 한일 문제에 대한 한겨레의 논지를 이끄는 이라고도 볼 수 있다. 최소한 한일 문제에 관한 한 한겨레를 대표하는 이들 중의 한 명이라고 봐도 될 것이라는 점에서 단지 '이런 견해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편의 칼럼으로만 볼 수는 없어 보인다.
16일 서울 용산역 광장 강제징용노동자 상 앞에서 평화나비 네트워크 회원들이 '반성없는 한일정상회담 규탄,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안 거부 대학생 공동행진'에 참석해 대통령실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2023.3.16. 연합뉴스
이 칼럼은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은 피가 튀고 뼈가 꺾이는 것 같은 처절한 갈등을 벌였다"고 얘기하는 데서부터 마치 대법원의 판결이 문제의 근원인 양 주장하려는 듯하다. "이후 등장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제3자 변제안’을 뼈대로 하는 파격적이며 굴욕적인 양보안을 내놓았다"고 했는데, 이어지는 설명은 '굴욕적'인 것보다는 '파격적'인 것에 초점이 맞춰진 듯하다. 나아가 '현실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은 듯하다. 굴욕적인 양보라고 한 대목에서 굴욕보다는 어쩔 수 없는 양보를 한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의 난데 없는 3자 변제안에 대해 "마땅히 위자료를 받아야 하는 원고들에게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라는 해석이 이어진다.
그는 "그렇다고 한·일 시민들이 이뤄낸 이 엄청난 성과를 지금처럼 계속 골방에 방치할 수도 없는 일이다"고 했는데, ‘엄청난 성과’는 시민사회의 성과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윤석열 정부의 파격적이며 현실적인 선택지를 뜻하는 것인가.
이 글은 “3자 변제를 거부하는 이들은 피고인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를 진행하고 있는데, 대법원도 고민이 많겠지만, 이제 그만 결단해야 한다”면서 ‘일본이 높게 평가하는 윤 대통령' 재임 중에 현금화가 이뤄져야 하며 그것이 ‘외교적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의 대통령의 굴욕 외교 노선을 높게 평가하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며, 윤석열 정권이 제공해준 한일관계 역행 상황을 일본 정부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활용하라는 논리를 펴고 싶은 것인가.
"정권이 바뀐 뒤 결정이 나오면, 2018~2019년에 맞먹는 ‘제2의 한일전’이 터지게 될지 모른다"고 했는데,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에서 들어와서 바로 잡으려고 했던 것이 한일전을 불렀다며 비판하고 싶은 것인가.
그래서 그에게는 일본의 '호응'이 아쉬운 것인 듯 “일본이 이에 대해 지금껏 내놓은 ‘호응 조처’란 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서울 강남의 아파트 한채 값도 안 되는 2억엔(약 17억6000만원)을 내놓겠다고 한 것이 전부다”라고 지적한다. 이는 비판을 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좀 금액이 많기만 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가. 일본 피고 기업들이 피해자들의 자녀들이 본사를 찾아가 면담을 요청하는데도 만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데, 피해자들을 만나 좀 더 많은 돈을 ‘위로금’으로 지급하면 그것은 일본의 ‘전향적 대응’인 것인가.
이 칼럼은 한일간의 피해자 보상 문제를 "이제 후세에 넘겨야 할 때"라고 했다. 마치 피해자에 대한 '위로금' 지급으로 이 문제가 종결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듯하다. "피해자들이 사망하고 있는 상황에서 운동의 성과를 차분히 정리해 후세에 전하는 것은 남은 세대의 몫일 것이다"고 한다. 그러나 한일간의 피해자 보상, 보상 아닌 배상 문제는 이 정도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다. 30여 년, 아니 국교 수교 후 60년, 해방으로부터 80년간 지연되고 있는 문제를 이제야 뒤늦게 풀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위로금'이라는 말 자체가 이 문제의 끝이 아닌 시작을, 해결 시작도 못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게다가 이 사안은 결코 피해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 글은 무엇보다 '현실론'이 대전제로서 깔려 있다. 현실론은 결코 배척할 입장이나 근거가 아니다. 그러나 현실론에 대해 대개 필요한 것은 무엇이 '현실'인가, 라는 질문이다. 이 칼럼은 윤석열 정권의 3자 변제안이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라고 했는데, 그러나 윤석열은 현실적인 선택지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를 바꿔버린 것이었다. 그것이 한일 문제에 대해 특히 요구되는 현실론이다. 현실을 어떤 '현실'이 되게 하느냐, 어떤 현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현실인가에 대한 판단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입장인 것이다.
이 칼럼의 필자는 마지막 대목에서 이 글의 결론으로 일본에게도 ‘당부’한다면서 윤 대통령은 ‘굴욕외교’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피가 철철 흐르는 내상을 감수했는데, 일본도 코피 한두방울쯤 흘릴 각오는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게 싫다면, 지금이라도 고령인 피해자들의 손을 잡고 단 한마디라도 ‘미안했다’고 말해달라고 한다.
굴욕외교를 내상을 감수하는 윤석열의 결단으로, 용단으로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얘기인가. 일본은 코피 한두 방울쯤이면 되니 그 정도로 성의 표시를 하면 된다는 조언을 하려는 것인가. 일본의 진정한 반성 없이는 과거도 미래도 있을 수 없는 이 문제를 상거래쯤으로 여겨 물물교환하듯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이 정당한지는 제쳐놓고라도 과연 코피 한두 방울 정도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식의 그 '부등가 교환'은 과연 타당한 것인가. '한마디라도 미안했다고 말해 달라'고 하는 부탁을 하고 있는데, 가해자에 대해 단 한마디 말 정도의 동정과 시혜만 베풀어주면 된다는 애걸이라도 하려는 것인가.
이 글의 필자가 펴고 있는 현실론을 읽다 보면 묻고 싶어지는 것은 한겨레의 '현실'이다. 한겨레가 보는 한국사회의 현실, 한겨레가 읽고 보며 자신의 지면을 통해 전하는 '현실'은 어떤 현실인가를 묻고 싶다.
그리고 또한 한겨레 내부의 '현실'이다. 위의 글과 같은 도발적인 주장을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 한겨레식의 민주주의적 다양성인 것인지 묻고 싶다. 내부 여론의 다양성과 민주주의는 '한겨레적'인 것이지만 그와 함께 필요한 것은 공론과 인식의 수준에서의 최저치, 양식의 최소한의 문제이다.
윤석열식의 해법에 대해 현실적인 선택지로 인정하기 시작할 때, 그것은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더욱 추락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런 현실론을 펴는 글들을 읽을 때 한겨레의 독자들 가운데 적잖은 이들이 느낄 당혹감과 굴욕감은 '코피 한두 방울'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시민언론민들레
-길윤형 이자는 일본으로부터 뭘 받아 처먹었는지는 모르지만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소문 난 친일파다. 한겨레는 이 자와 성한용 둘이 암 덩어리인데 암세포가 온 몸에 퍼지기 전에 이 둘을 잘라내야 한다. 진보 진영에는 다양한 뉴스를 전하는 신문이 한겨레와 경향 밖에 없다. 민들레 같은 신문이 다양한 뉴스를 충분하게 전할 만큼 성장해서 그들을 대신하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는 봐야 한다. 따라서 문제점을 계속 지적해서 고쳐 쓸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기사는 '전제'가 잘못되었습니다. '한겨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더 이상 '한경오'에 인격체 부여는 헛된 희망입니다. 언제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한경오'에 미련을 두어야 하나요?
"이화영 진상, 법원에 맡겨라" 한겨레 훈계가 놓친 것
항소심에서 다투면 되니 특검 발의 자중하라" 지적
'실체적 진실 규명 주력' 주문, 자신에게 먼저 던져야
법원에 '진실 판정 독점권' 있는 듯 보는 함정에 빠져
조선 중앙과 별 다를 게 없는 결론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징역 9년 6개월 중형을 받은 것에 대해 다수의 언론에서는 이를 검찰의 승리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대한 유죄 예상으로 연결 짓고 있다. 어느 곳보다도 조선일보가 이에 앞장서고 있는데, 재판 직후 나온 사설 ‘대북 송금 이화영 1심 유죄는 이재명 대표에게 유죄 선고된 것과 다름없다’는 제목부터가 이 같은 기류를 요약하고 있다. '보수' 언론들은 법원 판결의 정당성을 확고한 전제로 삼고 있다. “조작할 수 없는 진술과 증거에 대해 법원이 예상 가능한 판결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 언론의 보도는 민주당에 대해 적대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 언론으로부터 나올 것으로 예상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과 다른 편에 서 있는 언론들의 보도는 어떤가. 한겨레의 사설은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이나 중앙일보 등 보수 언론 중심의 보도와는 분명 다르다. “진술조작은 엄중한 사안인 만큼 의혹이 있다면 진상을 규명해야 하며” 검찰에 대해 “야당 수사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의 여지를 남겨선 안 된다”고 짚고 있는 것은 조선이나 중앙일보에서는 보기 힘든 대목이다.
그러나 결론에서는 상당 부분 일치한다. 특히 수원지검이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주가조작 사건을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대북송금 관련 사건으로 둔갑시켰다는 의혹을 특검으로 수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북송금 관련 검찰조작 특검법’을 발의한 것을 철회하라는 데서는 조선 중앙일보와 한겨레 간에 차이가 없다. 조선일보가 “대북 송금 수사에 대한 특검법 발의는 도를 넘은 사법 방해”라고 한 것이나 중앙일보가 ‘방탄 특검법’이라고 규정하고는 “특검법을 철회하고 사법 절차에 성실히 임하는 게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한 것처럼 한겨레는 “정치적 공방만 확대하기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집중하는 게 정도다”고 훈계했다. 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민주당이 이 사건과 관련해 특검법을 주도하는 것은 불필요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이 남아 있는 상황이며, 항소심에서 다시 한 번 유무죄를 다툴 수 있으니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당사자’는 자중하라는 것이다. 일견 온당한 얘기로 들린다.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하라는 주문도 일견 그릇될 게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당사자’가 아닌 제3자로서,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면서 진실 밝히는 데 집중해야 할 이는 누구인가. 거기에 언론은 누구보다 앞선 순위로 올라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겨레가 훈계하듯 당사자는 자중하는 대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나서야 했을 언론은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기 위해 과연 '집중'했는가. 한겨레의 '당사자 자제' 주문에 우선해야 하는 것, 최소한 함께해야 하는 것은 그 같은 자문에 대해 스스로 답하는 것이다.
이번 재판의 결과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절차에 대해서는 민주당뿐만 아니라 적잖은 법조인들, 많은 시민들이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끊임없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한겨레가 재판 결과를 전하는 8일자 관련 보도에서 이에 대한 지적은 “검찰이 자행한 조작 수사가 점차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검찰의 주장을 상당 부분 채택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대변인의 논평을 전하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 후로도 며칠이 지나는 동안 이에 대한 비판과 검증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전에 이번 재판의 결론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수 있는 폭로들이 나왔을 때도 한겨레 경향 등은 매우 소극적이거나 아예 외면했다. 쌍방울과 북측 인사의 주가조작 의혹을 다룬 국정원 문건을 <뉴스타파>가 보도했을 때나, 회유하기 위한 술자리가 있었다는 이화영 부지사의 주장이 나왔을 때도 한겨레와 경향 등이 이를 얼마나 충실히 보도했는지는 의문이다. “쌍방울 직원들이 외부에서 연어·회덮밥 등 음식도 가져다주고 심지어 술도 한 번 먹은 기억이 있다”는 구체적인 진술이나, 국정원 비밀 문건에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대북사업을 내세워 계열사 등의 주가를 띄우고 그 대가를 북한 정찰총국 고위 공작원에게 건네기로 했다는 상세한 정황이 드러났지만 이를 추적하는 보도는 이들 언론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겨레의 ‘진실 다툼의 판정은 법원의 몫’이라는 인식에는 사법부의 판단이 공정하다는 전제에 상당 부분 입각해 있다. 이는 법원 판결이 최종적이며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같은 사법부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 언론이 놓치고 있는 것은 존중받을 만한 사법제도는 ‘사법부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감시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법관이 '양심' 제대로 갖게 하는 것이 언론의 진실 추적 역할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의 '고립'일 수 없다. 사법부의 판단은 법정 내에 갇혀서 행사되는 것이 아니다. 사법부가 내리는 진실 판정은 사실은 그 사회가 함께하는 것이다. ‘진실’의 실체는 고정된 것도, 어느 한 주체들에게만 주어진 것도 아니다. 진실의 규명은 독점될 수 없다. 진실에 대한 판관 역할을 법원이 전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법원에 대한 언론의 역할은 "법원에서 모든 진실이 가려질 것“이라며 사법부에 그 권한과 책임이 독점적으로 귀속되도록 하는 것일 수는 없다. 진실 규명의 과정에서 언론은 법원과 함께 ’경합‘을 벌이며 때로는 법원이 밝혀내지 못하고 외면하는 진실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같이 각자가 제시하는 진실이 언론과 법원 상호 간에 ’진실‘을 더욱 온전한 진실에 가깝게 해 주는 것이다. 그럴 때라야 법원은 오히려 진실에 대한 최종적 판정의 과중한 책무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이화영 사건’ 재판처럼 무죄 유죄에 대한 판정 이전에 수사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는 사안에서는 특히 그 견제와 압박이 더욱 필요하다. 이는 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침해와 부당한 간섭이 아닌 오히려 법원의 독립적 판단을 가능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헌법의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제103조)’는 조항의 ‘양심’은 판사 내면의 의지나 개인적 품성과 심성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법관윤리강령에서 법관에 대해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정당한 권리행사를 보장’하고 ‘자유ㆍ평등ㆍ정의를 실현’하며 사법권을 엄정하게 행사해 ‘민주적 기본질서와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고 규정한 것은 ‘양심’을 이루는 내용과 요건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사법부 현실의 문제는 지난달 30일 보복 기소 검사 탄핵을 기각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공소권 남용 부추기는 판단이라고 비판했듯이 한겨레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검찰이 총력 동원되다시피 한 이번 사건은 유무죄 여부를 넘어선 수사 자체의 출발과 배경에서부터 문제제기가 돼야 하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한겨레는 유독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에 대해서는 ‘사법부 존중의 원칙’을 들고 나오는데, 이번 '이화영 재판'에서 다시 한 번 이를 보여주고 있다.
공판중심주의, 당사자 대등 원칙이라는 형사법 대원칙이 지켜진 재판인가에 대한 상당한 의문이 제기된 이화영 재판 보도에서 한겨레 경향 등에 먼저 필요한 것은 법원에 판단을 넘기고 물러나라는 지적을 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스스로 갖추는 것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더욱 제 역할을 함으로써, 잇달아 제기되는 여러 의혹들에 대한 추적과 보도로써, 법원의 판단이 법관의 '양심다운 양심’에 의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느 판사 개인의 판단에 대한 존중을 넘어서 사법부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될 것이다. /시민언론 민들레
김성태 공범 안부수 판결문엔 "쌍방울 주가 띄우려 대북 송금
기사 요약
① '대북 송금' 공범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1심 판결문엔 "쌍방울이 주가 상승 노리고 대북 사업"
② 안부수 판결문 "스마트팜 비용 대납은 쌍방울이 대북 사업을 추진할 기회를 얻기 위한 것
③ 이화영 재판에서 무죄가 된 '180만 위안'....안부수 재판에선 유죄로 인정해 '오락가락 판결' 논란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이 작성한 판결문에 "쌍방울의 대북 송금은 계열사의 주가 상승이 목적"이라고 적시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 당시 판결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에 대한 1심이었다. 안부수는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로 함께 수사를 받은 공범 신분이다.
안부수에 대한 1심 판결은 지난 8일 같은 법원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대해 내린 1심 판결과 어긋난다. 이화영 사건 재판부는 "쌍방울이 북한에 건넨 돈은 이재명의 방북을 위한 비용"이라고 판단했다. 쌍방울이 자체적인 대북 사업을 위해 돈을 준 것이란 이화영 측의 주장을 배척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화영 전 부지사는 뇌물 및 정치자금법에 더해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까지 모두 유죄가 돼 합계 징역 9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2023.5.23.).
재판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대북 송금' 액수도 달랐다. 이화영 사건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800만 달러 중에 230만 달러만 북한 조선노동당으로 건너갔다고 인정했다. 안부수가 김성태의 요청을 받고 불법 환치기를 통해 북측에 건넨 180만 위안(3억 원) 등은 무죄라고 봤다. 그러나 안부수 사건 재판부는 '180만 위안'을 외국환거래법 위반, 즉 유죄로 판단했다.
수원지방법원 소속 두 개의 재판부가 동일한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판결을 내린 사실이 확인되면서 '대북 송금'의 실체를 두고 2심 재판에서 더욱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안부수 1심 판결문에 "대북송금은 쌍방울 주가 상승 목적"
검찰은 안부수를 2022년 11월 경 체포해서 재판에 넘겼다. 김성태가 태국에서 체포된 건 2023년 1월. 안부수는 이미 별도로 재판을 받고 있던 상태였다. 수원지방법원은 지난해 5월 23일 안부수 회장에게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경기도가 지급한 대북 사업 보조금을 빼돌리고, 불법으로 북한에 돈을 건넨 혐의였다.
이 판결문 3~4쪽에는 안부수의 범죄 사실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다.
그 후 피고인은 위와 같은 인연을 계기로 평소 북한과의 대북사업에 우선적 참여 기회라는 이권뿐만 아니라 계열사가 대북 관련 테마주·수혜주로서 주가 상승의 이익을 노리던 김성태, 방용철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기로 마음먹고, 아태협과 경기도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1회 국제대회 기간 중 김성태, 방용철 등을 조선아태위 부실장 송명철 등에게 소개해주는 등 북한의 주요 인사들과 연결해주었으며, 그 대가로 아래 제1항 기재와 같이 2018.12.12.경부터 쌍방울그룹 등으로부터 지속적으로 기부금을 받기 시작하였는데, 피고인, 김성태, 방용철 등은 향후 북한으로부터 광물 개발사업 등 쌍방울그룹의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에 대하여 우선적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쌍방울그룹 김성태가 마련한 자금을 환치기 방식이나 현금 소지 중국 출국 등 다양한 방법으로 밀반출한 다음 조선노동당이나 그 산하기관인 조선아태위 및 소속 주요 간부들에게 조선노동당에 대한 대북사업 로비 자금 또는 이행보증금 등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계획하였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 3~4쪽(2023.5.23. 선고)
판결문 속에 기재된 범죄 사실은 ▲피고인 및 관련자들의 지위 및 관계 ▲기초 사실 ▲구체적 범죄 사실 순으로 구성된다. 위 내용은 ▲기초 사실에 포함돼있다. 판사는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과 증거 기록을 검토한 후에 판결문을 쓰는데, 대개 ▲기초 사실은 검사의 공소장 내용이 거의 그대로 인용되지만, 판사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는 수정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계열사가 대북 관련 테마주·수혜주로서 주가 상승의 이익을 노리던 김성태, 방용철과 함께 본격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하기로 마음먹고 ▲피고인(안부수), 김성태, 방용철 등은 향후 북한으로부터 광물 개발사업 등 쌍방울그룹의 주가 부양에 도움이 될 만한 사업에 대하여 우선적 협상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조선노동당에 대한 대북사업 로비 자금 또는 이행보증금 등 명목으로 지급하기로 계획 등과 같은 내용은 검사가 법원에 제출한 공소장 내용과 거의 같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2022고합882). 판결문 3~4쪽에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한 경위가 적혀 있다.
즉, 검찰이 안부수를 기소할 때는 이화영을 기소할 때와 달리 '쌍방울의 대북 송금이 주가 상승 목적'이었다고 기소했으며 판사도 이를 인정했다는 의미다.
안부수 1심 판결문 "쌍방울이 대북사업 기회를 얻기 위해서 스마트팜 비용 대납"
판결문 속 ▲기초사실에는 쌍방울이 북한에 대신 내줬다는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 혹은 50억 원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판결문 4쪽에는 '피고인(안부수), 김성태, 방용철 등은 북한 조선노동당으로부터 대북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북한 조선노동당 또는 그 산하기관인 조선아태위에 위 농림복합형 농장 개선 비용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하였다'고 적혔다.
지난 8일 이화영 전 부지사의 1심 선고에서도 쌍방울이 경기도를 대신해서 스마트팜 비용을 대납했다는 점은 인정됐다. 다만 재판부는 이 대납이 쌍방울의 대북 사업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경기도나 이재명 지사를 위한 것인지는 정확히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북 송금 800만 달러 중 230만 달러는 이재명 지사의 방북 비용 혹은 사례금이라고 특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쌍방울 대납을 이재명 지사가 사전에 알았거나 보고 받았는지까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2022고합882). 판결문 4쪽에 쌍방울 '대북 송금'의 목적이 적혀 있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에 대한 1심 판결문(2022고합882). 6쪽에 안부수와 김성태가 외화 밀반출 공범으로 적시돼있다. 그러나 이화영 사건 재판부는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화영 재판에서 무죄 된 '180만 위안'....안부수 재판에선 유죄로 인정
이화영 사건 재판부는 2019년 1월 24일경 안부수가 김성태 측의 요청을 받고 환치기 업체를 통해 밀반출한 180만 위안 등에 대해서 '무죄'라고 판단했다. 김성태가 쌍방울 직원들을 동원해 직접 밀반출한 외화 외에 불법 환치기 업체를 통한 대북 송금은 대부분 무죄로 봤다.
그러나 안부수 1심 판결은 이와 달리 180만 위안 밀반출에 대해서도 유죄로 봤다.
안부수 1심 판결문 55쪽 '선고형의 결정' 부분을 보면 재판부는 "피고인은 한국은행 총재의 허가를 받지 않고 금융제재 대상자인 조선노동당에 2회에 걸쳐 21만 5,040달러 및 180만 위안의 외화를 지급하였는바 그 금액이 다액이다. 남북 관계에서 대북경제협력사업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감안하더라도 그와 같은 남북 교류 협력은 법치주의 원칙에 터 잡아 실정법의 테두리에 내에서 이루어져야 함에도 약 5억 원이 넘는 큰 금액을 임의로 지급하였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시했기 때문이다.
두 재판부의 판단이 달리 나온 것은, 180만 위안이 실제로 조선노동당에 전달되었는지, 혹은 조선노동당에 전달하려고 하는 의사가 있었는지에 대해 달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안부수 1심 재판부는 180만 위안이 북한 아태위를 거쳐 조선노동당에 전달되었다고 본 반면, 이화영 1심 재판부는 '아태위까지 간 것은 인정되지만 실제 금융제재대상인 조선노동당까지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돈을 지급한 목적에 대해서도 두 재판부는 시각을 달리했다. 안부수 1심 판결문 6쪽을 보면 ▲쌍방울 그룹은 조선아태위와 2019년 1월 17일에 합의서를 작성한 후에 '향후에도 대북 사업을 우선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지위를 부여받기 위하여 조선아태위에 외화를 추가로 지급하기로 모의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성태가 돈을 건넨 목적이 '쌍방울의 대북 사업 우선권' 때문이었단 것이다.
이화영이 이 '180만 위안' 부분에 대해서 무죄를 받았기 때문에, 다음달 12일에 열릴 김성태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에서도 역시 무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같은 법원에서 한 개의 사건을 놓고, 두 개의 각기 다른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이화영 사건 재판부의 논리를 안부수에게 그대로 적용하면, 안부수의 외화 밀반출은 무죄가 된다. '대북 송금' 공범들을 어느 재판부에서 판결하느냐에 따라 죄가 되고, 안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검찰이 애초에 공범들을 분리해 기소했고, 재판 중에도 수사를 지속하며 진술이 뒤죽박죽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검찰은 조만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제 3자 뇌물,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 이재명 대표에 대한 1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재명에 대한 1심 결과가 다시 안부수와 김성태의 2심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단 점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박종화
① 쌍방울, 대북송금 핵심 증인 '금품 매수' 정황 포착
기사 요약
① 안부수 아태협 회장 최측근의 폭로 "쌍방울에서 안부수 딸이 살 집 구해줬다"
② 쌍방울 임원과 수시로 통화하고 만난 정황...최측근과 딸의 카카오톡에 고스란히
③ 쌍방울이 제공한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취재진이 가보니 실제로 안부수 딸 거주 중
④ 딸 이사 직후부터 법정에서 기존 증언 뒤집은 안부수...짙어지는 '증인 매수' 의혹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좌)과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우)
쌍방울의 오피스텔 제공 직후부터 뒤바뀐 '법정 증언'
안 회장은 지난해 2월 3일 재판까지만 하더라도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같은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화영 전 부지사가 2019년 5월 북측과 이재명 지사 방북과 관련한 회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런데 지난해 4월부터는 김성태 쌍방울 회장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언을 하기 시작했다. “쌍방울이 북한에 준 800만 달러는 경기도 스마트팜 비용 500만 달러,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방북 비용 300만 달러가 맞다"는 취지로 말을 바꾼 것이다.
아래는 안부수 회장이 지난해 4월 18일에 이화영 전 부지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서 증언한 내용이다. 이화영 측 변호사가 지난 1월 31일에 증언한 내용과 왜 달라졌냐고 묻자, 안부수는 "몸이 안 좋았다가 이제는 조금 안정이 되어서 정신은 다시 돌아오고 기억들이 새롭게 나니까 지금 증언을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라고 답했다. 변호사가 증언 변경을 계속 추궁하자 "그건 잘못 진술한 것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위증죄 처벌을 무릅쓰고서라도 자신의 증언을 뒤집어야만 하는 이유로 보기엔 부족한 답변들이다.
이화영 전 부지사에 재판에 출석한 안부수 회장의 증언 녹취서(2013.4.18)
쌍방울 김성태의 '증인 매수'...수원지검 '진술 세미나'에서 합의됐을 가능성
쌍방울 김성태 회장의 '증인 매수' 의혹은 구속된 피의자들끼리 검찰에서 만나 이른바 '진술 세미나'를 벌였다는 의혹과도 연결된다.
뉴스타파 취재에 근거해 사건의 경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1) 2023년 1월 김성태 쌍방울 회장이 체포됐고 2) 같은해 2~3월 수원지검 검사실에서 김성태와 안부수 등이 만나 상의했다는 일명 '진술 세미나' 의혹이 있었다. 3) 이어서 쌍방울 임원이 안부수 회장의 딸과 측근 B씨를 접촉했다. 4) 그 결과 3월 31일 안부수 딸이 송파구 오피스텔 이사(3.31)했고 5) 마침내 4월 안부수의 법정 증언 내용이 김성태와 같은 방향으로 변경됐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수원지법은 이화영 전 부지사 1심 선고 직후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이화영 부지사는 범죄사실을 부인했지만, 김성태 회장과 쌍방울 직원들, 그리고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의 진술이 일치한다 ▲김성태 회장은 국내에서 기업 집단을 운영하는 CEO고, 주가 조작만을 위해 대북사업을 추진했다는 것은 경험칙상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게 판사의 주된 선고 이유라고 밝혔다.
만약 구속된 김성태의 지시를 받은 쌍방울 임원이 회삿돈으로 안부수의 딸에게 오피스텔을 제공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재판 결과의 정당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이 사건 판사는 별다른 물증 없이 "김성태와 쌍방울 직원들, 그리고 안부수의 증언이 일치한다"는 사실에 크게 의존해 중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② 쌍방울 임원 "윗선 지시로 안부수 딸에게 주택 제공"
기사 요약
① '대북 송금' 재판 핵심 증인 안부수 아태협 회장에 대한 쌍방울 측의 '주택 제공' 정황
② 쌍방울 핵심 관계자 "윗선 지시로 안부수 딸에게 서울 송파구 오피스텔 얻어줬다"
③ 지난해 2월경 수원지검 '진술 세미나' → 쌍방울의 주택 제공(3월) → 안부수 증언 변경(4월)
④ '사건 관계자 접촉 금지' 조건으로 석방된 안부수, 쌍방울 사옥에 사무실 마련하고 출근 제보도
'대북송금' 1심 판결 뒤집는 쌍방울 임원의 폭로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365쪽). 김성태 · 방용철· 안부수의 진술에 강한 신빙성을 부여하면서, 이들의 진술이 국가정보원 문건보다 더 믿을 만하다고 적었다.
판사가 믿었던 핵심 3인방 '김성태 · 방용철· 안부수'
수원지법은 지난 7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징역 9년 6개월에 벌금 2억 5천만 원의 중형을 선고했다. 뇌물과 정치자금법, 외국환거래법, 증거인멸 등 4개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이 중 논란이 됐던 '대북 송금'은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항이다.
판사는 쌍방울 김성태 회장과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가 공모하여 북한에 800만 달러를 불법적으로 건넸다고 봤다. 이렇게 판단한 근거는 김성태(쌍방울 회장), 방용철(쌍방울 부회장), 안부수(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 세 명의 법정 증언이었다. 판결문 곳곳에 '관련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들의 일치된 증언은 이번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됐다.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쌍방울과 북한 정찰총국 대남요원 리호남이 공모해 주가 조작을 시도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가정보원 보고서보다 3인방의 '증언'을 더 신뢰
앞서 뉴스타파는 '대북송금 사건'과 관련해 김성태 회장이 자사의 주가를 띄우기 위해 북한 측 인사와 사전에 모의했고, 이를 통해 발생할 수익금도 북측과 나누기로 했다는 첩보가 담긴 국가정보원 비밀 문건을 입수해 보도했다. 모두 45건에 이르는 문건에는 쌍방울이 대북 사업 호재를 이용해 주가 조작에 나섰고, 국정원이 그에 따른 대책까지 세웠던 사실이 들어있다.
이에 더해 뉴스타파는 국정원 블랙요원 김모씨가 지난해 비공개로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을 자세하게 전했다. 김 씨는 2019년 2월 1일에 2급 비밀 문건 '○○96○○ 종결 계획'을 작성했다. ○○96○○은 협조자 안부수를 뜻하고, 종결이란 표현은 관계를 정리하겠다는 의미다. 요원 김 씨는 자신이 협조자로 발탁한 안부수를 해고(종결)하면서 이 문건을 작성했다. 보고서 4쪽에는 종결 사유로 '○○96○○ 주변 인물(쌍방울 오너 김성태)의 주가 조작 및 국정원 연루 의혹 제기 가능성에 따른 사전 예방적 차원에서 종결(1.30.)'이라고 적었다. 요원 김 씨는 이미 당시에 쌍방울의 주가 조작 가능성을 파악했던 것이다.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8쪽). 판사가 쌍방울 주가 조작을 내용으로하는 국정원 문건(2020.1.31.)을 믿을 수 없는 이유를 적었다.
뿐만 아니라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보고서에는 쌍방울의 '주가 조작'이 실제로 실행된 정황이 자세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화영 재판부는 '주가 조작'과 관련된 국정원 문건을 모두 배척했다. 이는 판사가 3인방의 진술을 전적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면 판사는 요원 김 씨가 법정에서 구체적으로 증언한 내용들은 판결문에 싣지 않았다. 예컨대 요원 김 씨는 2020년 1월 31일자 보고서에 대해 자신이 이 보고서를 만들진 않았지만 "쌍방울과 이호남의 주가 조작 공모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을 보고서에 담을 순 없다"고 증언한 사실이 있다.
이화영 재판부는 국가정보원 문건 45건 중 검찰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극히 일부 문건만을 증거로 삼았다. 공소사실과 충돌하거나 오히려 반대되는 내용의 문건에 대해선 3인방의 진술이나 판사의 의견을 전제로 '믿기 어렵다'고 단정했다.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9쪽). 이화영 1심 판결문 200쪽(총 218쪽). 판사가 쌍방울 주가 조작을 내용으로하는 국정원 문건(2020.1.31.)을 믿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로 리호남이 자체적인 '대남공작'을 도모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적었다. 즉, 김성태와 리호남이 공모한 것이 아니라, 리호남 혼자서 주가 조작을 실행했을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쌍방울 임원 A씨의 증언 내용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3인방 진술 뒤집고, 판결 흔드는 쌍방울 임원의 폭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판부는 3인방의 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이들의 진술 신빙성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중요한 증언을 확보했다. 그 주인공은 대북 송금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던 쌍방울그룹 고위 임원 A씨다.
A씨의 증언은 철저히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했으며, 구체적이고 정확했다. 또 다른 제보자인 안부수 아태협회장의 측근 B씨 그리고 B씨가 안부수의 딸과 나눈 SNS 대화도 A씨 증언과 일치한다.
A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그룹 윗선의 지시를 받고 회삿돈으로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오피스텔을 얻어준 사실이 있으며, 수원지검에서 김성태 회장과 공범들이 수시로 만났다"고 폭로했다. 의혹만 무성하던 '진술 세미나'에 A씨 자신도 직접 참여했고, 핵심 증인인 안부수에게 쌍방울이 금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증인 매수' 의혹은 '진술 세미나' 정황과도 연결된다.
사건의 경과를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① 2023년 1월 김성태 쌍방울 회장 체포 ② 같은 해 2월부터 수원지검 검사실에서 일명 '진술 세미나' 시작 ③ 이어서 쌍방울 임원이 안부수 회장의 딸과 측근 B씨를 접촉 ④ 그 결과 3월 31일 안부수 딸이 송파구 오피스텔로 이사 ⑤ 마침내 4월 안부수의 법정 증언 내용이 김성태와 같은 방향으로 변경됐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
'진술 세미나'와 '증인 매수' 정황은 복수의 증언과 물증으로 확인된다. 이에 따라 법원이 철썩같이 믿은 안부수 증언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쌍방울 소속 두 명(김성태, 방용철)의 증언에 한껏 힘을 실어준 안부수가 무너지면, 3인방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화영 1심 판결에 대한 정당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뉴스타파 봉지욱 2024년 06월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