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덕신공항은 들어 봤어도 100년 숲, 동백군락지는 모른다 2. 탄소감축 없인 반도체 못팔 판인데…'손 놓은' 국회, K반도체 '발동동’ 3. 지구 1℃ 오르면 GDP 12% 감소…"전쟁 상황과 비슷“ 4. 도심 출몰 잦아진 멧돼지... 출몰 수 줄이기 위한 방안은? 5. 우리나라 에너지 삼중고 해결 위한 제언 6. 가덕신공항, 2029년 말 개항 2030년 준공 7. 가덕신공항 공사 입찰, 지역기업 지분율 20% 땐 8점 가산
8. 재생에너지도 못 늘린다...누가 전력망 대란을 불렀나 9. 쿠로시오 해류의 진격…적도 열기 품고 6km씩 북상 10. "5월 중순 눈은 처음"… ‘철없는’ 날씨에 속타는 농가 11. '생물다양성'지속가능성 평가시 재무·임팩트 중대성 함께 고려
12. “원숭이들이 사과처럼 떨어졌다” 기록적 폭염에 집단 추락사 13. 겨울철 따뜻하고 강수량 늘어 …결국 양파가 쓰러졌다 14. 헌법재판소에 선 초등학생 "기후위기 해결, 우리에게 떠넘겨" 15. ‘10년 뒤’를 묻자 아이는 꿈 대신 ‘소멸’을 떠올렸다 16. “제 키 30cm 자랄 동안 국가는 뭐 했나요?” 기후소송 첫 변론까지 4년간의 기록 17. 기후변화로 체육수업 중단…청소년 신체활동 줄었다 18 매년 줄어드는 초지면적…지난해 축구장 크기 320여개 줄어
19. 사람을 먹이는 일’, 농업의 원칙을 세우다 20. 세종보 철거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권 철거할 것“ 21. 부산 남구 ‘이기대 풍경 독점’ 고층 아파트, 구청은 도장만 찍어 주나 22. 옛 미군시설에 부산 독립기념관 추진…적정성 찬반논쟁
23파리시, 10월부터 SUV 주차요금 3배 인상 24.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25. 사과, 배나무가 타들어간다... 열흘 만에 작년 피해면적 23% 26. 멸종위기 참고래까지 잡겠다는 일본에 국제사회 "잔인한 결정“ 27. 1000원대 ‘서민 커피’ 사라지나…이상기후로 원두값 ‘껑충’
가덕신공항은 들어 봤어도 100년 숲, 동백군락지는 모른다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④
가덕 출입의 역사가 40년 가깝다. 배를 타고 오갈 때부터 차로 눌차대교를 건너오기까지 그 세월 가덕도라고 온전할 리는 없었다. 그 변화는 어디나 비슷하겠지만 가덕도 또한 섬 내부로 검은 길이 깔리면서 급속히 변화를 거듭했고 급기야는 천성을 경유하여 거제로 가는 해저터널이 만들어졌다. 뒤이어 토지 사냥꾼들이 가덕을 흥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보다 앞서 거대한 부산신항이 만들어지면서 가덕수로가 있는 섬의 북서쪽 바다와 해안이 매립되었다. 거대한 구조물은 일대의 해류를 교란하고 하구의 사주 지형을 변화시켰다. 율리에 있던 팽나무 두 그루는 뿌리째 뽑혀 APEC 나루공원에 이식되었다. 뿌리 뽑힌 것은 팽나무뿐만이 아니었다. 사업지구 내 있던 장항과 율리마을 주민들의 삶은 풍비박산 났다. 2010년이었다.
가덕의 토지 소유주들이 외지인들로 바뀌면서 눌차와 성북 일대의 지형도 변했다. 동쪽 강금봉으로부터 응봉산 매봉 웅주봉 삼박등 구곡산이 에워 싼 눌차만 일대의 농지가 택지개발로 인해 원형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일대는 산과 논 저습지가 있는 한편 경계부에 갯벌과 난바다가 한 지역 안에 고루 형성된 곳이다. 달리 말한다면 다양한 생물서식지가 기막히게 어울려 있던 곳인데다 논밭에 있던 둔벙의 수는 단위 면적당 국내 최고로 많았던 곳이다. 하지만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하기사 부산시는 오래전서부터 눌차만의 개발에 눈독을 들여왔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부산시의 소원대로 된 것이다
예컨대 가덕신공항 사업과 관련 눌차만 일대는 에어시티 이름을 단 배후시설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가덕 사람들은 속내를 감추고 있다. 가덕신공항 특별법이 통과될 때만 하더라도 반신반의 했다. 하도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또 선거 때마다 이랬다저랬다 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고 왠지 고착화 되고 있는 듯해서 주민들의 형언할 수 없는 착찹함이 읽히고 있다. 억울하고 원통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삶이 거래되고 쫒겨나기 때문이다. 쫒겨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특히 신공항이 들어설 국수봉 일원의 대항과 외양포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다. 천성 IC에서 외양포 포구까지 약 3.8km의 천성대항길 도로가 양옆에 빼곡히 내걸린 현수막의 문구는 가덕신공항 개발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가늠하는 상황판이기도 하다.
▲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가덕도신공항반대시민행동 등이 주최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추진 방침 규탄 기자회견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나와 현수막을 바라보고 있다. 2022.4.29. ⓒ연합뉴스
이 봄날 가덕을 찾는 상당수의 상춘객들은 자가용을 끌고 와 외항포 포진지며 해안을 둘러 보고 주차면 100대의 대형 카페들이 있는 대항 새바지로 가서 동행과 즐기다 간다. 그러면서 공항이 적지니 아니니 언쟁하기도 한다. 예정대로 공항이 들어서면 우후죽순 들어섰던 약 20개의 크고 작은 카페며 15곳의 식당들을 비롯하여 갑자기 들어선 빌라 따위도 사라진다. 현재 가덕 대항의 인구는 외지인 포함 400명 수준이다. 여기서 토착민은 절반을 조금 넘는다. 그 절반이라는 수는 토박이들이 원통해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인구가 만 명이라도 되었다면 이런 수모를 받았겠냐는 것이다. 가덕도 전체인구 통 털어 4000명 남짓하다. 어처구니 없게도 이들이 조상대대로 물려받았던 터전을 싹 갈아엎어 부울경 1000만 인구를 먹여 살리는 곳간이 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부산시민들도 이 말을 신뢰하는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딱히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가덕신공항이 만들어 지면 기울고 있던 지역경제가 다시 중심을 잡고 일취월장 풍족한 미래를 선물할 것인가. 그도 아니면 밑빠진 독으로 전락하여 두고두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부산을 더 휘청거리게 할 것인가. 그리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가. 가덕신공항만이 살 길이라며 주구장창 앞장서 설레발을 치던 정치꾼과 토건족과 그 나부랭이들인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찌되던 이 개발 커넥션은 이익을 볼 것이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가 잃을 것은 뭔가. 유감스러운 일은 잃어버리는 것이 뭔지도 모른다는 데 있다. 가덕신공항이 들어설 자리는 지난 2022년 제22회 '이곳만은 지키자' 대상 수상지다. 요약하면 대상을 받을 만큼 생태경관 및 역사문화가 뛰어나고 특별한 곳이기 때문에 그 희소성을 인정받아 수상한 것이다.
그 중심에 해발 264m의 국수봉이 있다. 계곡을 경계로 이웃해 있는 188m의 남산봉과 더불어 뼈대를 이룬다. 가덕도 전체로 보면 459m의 연대봉을 중심으로 남북형태의 역삼각형의 지형이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사람살이의 터는 경사가 완만한 서사면을 중심으로 이루어 졌고 동사면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자연성이 높다. 특히 국수봉 동사면의 경우 낙엽활엽수림과 난대상록수림이 발달해 있다. 숲의 발달은 일대가 군작전 지역이라 출입이 통제되는 시간이 길어짐으로 인해서였다. 그 세월이 백년이다. 백미는 계곡이 바다로 유입되는 해식애 경계부에 자리한 동백군락지다.
부산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지만 시목이 동백나무라는 사실을 우습게 만들 만큼 관심이 없어 보인다. 괜히 언급해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는 판단 때문인지 아니면 공항이 중요하지 그 딴 거 몰라도 돼 라고 얼버무리는 건진 모르겠다만 그 동백군락지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다.
전국의 소문난 동백군락지는 남해안 일원에 여러 곳이 있지만 관련 전문가들의 표현에 의하면 가덕 군락지가 월등히 뛰어나다고 한다. 더욱이 인위적 교란이나 간섭이 적어 대단히 양호한 상태라는 것이다. 동백숲에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주로 3월에서 4월 중순에 이르는 기간에 꽃을 피우는데 이곳의 동백나무는 인색할 정도로 방문자에 대한 서비스가 적다. 다만 지난해 3월은 예외였다. 숲바닥에 핏물이 흥건히 고인 것처럼 벌겋게 깔린 동백꽃들로 인해 발 딛기 미안할 정도였다. 이 숲에서는 해마다 3월이면 가덕이 제 빛깔을 잃지 말고 유지되기를 바라는 바람으로 만든 '가덕본색(加德本色)' 이란 탐방행사가 열린다. 시인과 전통악기 연주자 인디밴드 등이 주축을 이루어 동백숲과 가덕을 위로하거나 공항 건설의 부당함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행사다.
그런데 이런 행사는 언론이 잘 다루지 않는다. 특히 지역 언론은 가덕과 관련된 지역 환경단체의 집회나 기자회견 관련 생태 정보에 대한 보도는 전무한 편이다. 그러니 시민들로서는 개발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일방적 주장만 접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100년 숲이며 동백군락지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열에 열 명이다.
동백 군락지 근처에는 멸종위기동식물 2급 대흥란이 자라기도 한다. 그리고 멸종위기동식물 1급 수달의 서식처가 동백군락지 아래 동백해안에 있다. 수달의 서식지는 신공항 예정지 내 4곳인데 공항이 들어서면 새로운 서식지로 이동하면서 기존의 개체군들과의 피 튀기는 영역쟁탈전이 예고된다. 내쳐 해안에서 열린 바다 쪽을 보면 상괭이들이 돌아다닌다. 상괭이는 IUCN RED LIST 취약종(VU)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 부속 Ⅰ보호종이다. 이 해역에 상괭이가 많은 이유는 먹이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면 해안가를 선회비행하는 맹금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중 솔개는 가장 흔하게 보이고 가끔 매를 비롯하여 말똥가리류를 목격할 수도 있다. 계절에 따라 새호리기며 붉은배새매 같은 이동성 맹금류 대군이 가덕을 경유하여 쓰시마로 이동하기도 한다. 지금 5월, 재수가 좋으면 팔색조와 긴꼬리딱새를 만날 수도 있다. 아름드리나무 숲그늘에서 쉴 양이면 솔부엉이가 운다. 저물녘이면 소쩍새도 소리를 내는데 마치 인자 우짜노 우짜노 하는 것 같다. 이뿐인가. 동백군락지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면 해발 120m에서 220m 지대에는 몇 아름의 거목들이 즐비한 '100년 숲'이 있다. 100년 숲이라 이름 붙인 것은 국수봉 동남사면 140m 지점 계곡부에 뿌리내린 흉고 2.6m의 졸참나무에서 비롯됐다. 나이는 108세 인데 주변의 거목에 비하면 좀 왜소한 편에 속한다.
그렇다면 신공항 예정지에는 이런 거목들이 얼마나 있을까. 선행조사가 있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만 3년간 수행된 부산 전역의 자연환경조사였다. 식생분포현황과 정밀조사가 있었다. 조사에 참여 했던 이들이 선정한 최고의 숲은 가덕도였다. 14개 권역 오래된 나무 3주 씩 선정하고 숲 권역별 평균 나이를 비교해서 내린 값이었다. 가덕에서 설정한 표본목은 80년생 동백나무였다. 그 결과 2위는 삼각산 3위는 아미산으로 나타났다. 이후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식생조사가 환경운동연합과 부산그린트러스트, 파타고니아의 이름으로 이루어 졌다.
거목조사와 관련 대상목은 지역명을 붙여 터주대감나무라는 지위를 부여했다. 앞서 언급했던 졸참나무는 국수봉 터주대감나무 1호에 해당 된다. 대상목의 조사 기준은 초병순찰로 또는 등산로 반경 5~10m 안에 입지하고 흉고는 최소 2.5m로 하였다. 결과 국수봉을 중심으로 한 신공항 예정부지 안에서만 47주가 확인되었다. 대항이며 외양포 마을 안까지 포함하면 50주고 가덕도 전체는 111주였다. 조사 범위를 넘어선 거목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치는 급증한다.
한 지역에서 이렇게 많은 거목들이 있는 곳은 흔치 않다. 100년 숲은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등이 자생하는 상록난대림과 굴참나무-느티나무 군락, 졸참나무-고로쇠나무 군락 등으로 이루어진 낙엽활엽수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숲은 안정화되어 있으며 극상의 단계로 진행 중이다. 사람의 간섭 없이 관리하지 않은 숲은 이렇듯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다. 그래서 가덕 100년 숲은 부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장 오래된, 유일하게 부산 해안가의 식생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숲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치는 부산을 뛰어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알려지다시피 이 숲이 벼랑 끝에 선 것이다. 예정대로라면 올해 12월부터 착공이 이루어진다. 전략환경영향평가 수행과정에서 드러난 부실과 누락,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 같은 조치는 그 어떤 변명을 들먹여도 납득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 적나라함이 단연 돋보이는 전략은 2030월드엑스포의 유치와 그에 맞춘 2029년 개항이었다.
엑스포 유치는 부산시가 전력을 다해 대응했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되고 안 되고에 따라 가덕신공항의 명함이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관련하여 한 장면을 돌이켜 보자면 예컨대 부산교통공사는 시민 개개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지하철을 타기 위해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접촉하는 순간 감사 인사 대신 '나는 부산엑스포를 지지한다'는 멘트가 나오게 만들었다. 이용자에 따라 다른 해석을 가지겠지만 그 순간 느꼈던 당혹과 불쾌한 감정은 극히 개인적인 것일 뿐이었다. 되려 시민의 여망으로 포장되어 묻혀 버렸다.
그 일방성은 가덕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의 발의와 국회통과 이후 전 과정을 통해 관통하는 특징으로 규정되어 진다. 특별법은 무려 31개의 법을 무력화시켰다. 어쨌든 그렇게 공을 들인 엑스포 유치와 가덕신공항과의 연결고리는 2023년 11월 28일 파리 제 173차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2030세계박람회 유치 경쟁국 간 투표에서 산산조각 났다. 무려 119 대 29였다.
투표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역전을 예고하던 생방송이 눈에 선하다. 엑스포를 통해 부산의 재도약을 갈망하던 부산시민들의 낙담과 눈물이 있었고 후폭풍 책임론이 대두되었다. 민심의 이반을 고려한 조치이던가. 사과로는 부족했던지 대통령이 한걸음에 부산으로 왔고 동행했던 재벌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재차 약속을 천명했다. 부산을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기 위해 특별법을 만들고 가덕신공항은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에 뒤질세라 야당도 거들면서 책임론은 소멸되었다. 대신 22대 총선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그 극적인 대목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024년 1월2일 오전 가덕 대항 전망대를 찾았다 김모씨에게 피습되는 장면이다. 정국이 이 테러로 발칵 뒤집혔다. 방송 화면과 지면, 유튜브가 몸져누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하여 괴한으로 지칭된 김씨의 배후를 집중 조명했다. 에나 집중 조명 받아야 할 주체는 가덕도가 아니었던가.
신년벽두 하루 뒤 대항전망대를 찾았던 이재명 대표의 메시지는 가덕신공항은 문재인 정권의 업적이고 민주당은 이를 계승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몸짓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몸짓이 공교롭게도 테러에 묻혀버리긴 했지만 그 몸짓은 기후위기시대 탄소중립이며 생물다양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에 다름 아니다. 끔직한 사실은 정권을 쟁취하기 위해서라면 표를 위해서라면 부모 자식까지 팔수도 있다는 가공할 선거공식이 있을 뿐이다. 가덕도는 그 희생물이다. 여기에 여야가 없다.
22대 총선이 끝나고 급부상한 조국혁신당이 2030월드엑스포를 다시 끄집어냈다. 지난 5월3일 부울경 총선승리 보고대회를 통해 조국 대표는 "시민에게 상실감과 고통을 안긴 책임, 5500억 원이 넘는 혈세를 낭비한 책임, 마실가듯 해외를 순방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책임, 박빙이라며 여론을 호도하고 국민께 거짓보고를 한 책임, 유치 실패 책임자에 총선 출마를 허락한 책임, 그 모든 책임을 국회에서 묻겠다"(프레시안 2024.5.4)고 밝혔다. 정녕 여기까지인가
조국혁신당은 정작 건드려야 할 본질을 빠뜨리고 있다. 그것은 가덕신공항 건설의 명분이자 핵심 장치였던 2030월드엑스포 자체를 관통하는 것이다. 엑스포 유치는 2029년 조기 개통을 위해 2024년 착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셈법을 강제하게 된 배경이다. 하물며 그 절차적 정당성 여부가 제대로 확인된 바도 없다. 최소 13조7000억 원의 국민혈세가 투입되는 사업이다.
부산시는 '활주로 3.5km 1본 사업비로 7조5400억'이 다라고 하지만 부산시의 논리대로라면 부산시 스스로 확장성을 부정하게 된다. 그 사이 TK 신공항 건설이 결정되었다. 애초 영남권 관문공항으로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그래서 관련 유치산업을 통해 지역산업의 재편을 도모했지만 설정했던 값과 기대효과에서 누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공교롭게도 TK신공항 건설과 병행한 유치산업이 가덕신공항 유치산업과 다를 바 없는 오십보백보다. 이런 것이 국토균형발전인가. 국회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조국혁신당에게 주문하는 바다. 이를 위해 현장을 방문하라. 대항전망대나 선박을 이용해서 강 건너 불 보듯 하지 말고 조대표가 직접 100년 숲, 동백군락지를 찾아 그 나무들과 이바구 하라는 것이다. 현장을 방문했던 사람 열에 아홉은 생각이 바뀌었다.
이성근 부산그린트러스트 상임이사 | 프레시안
탄소감축 없인 반도체 못팔 판인데…'손 놓은' 국회, K반도체 '발동동’
K반도체 고객사'애플·MS, 협력사'ASML' "재생에너지 쓰는 기업과 거래"
삼성전자·SK하이닉스, '100% 재생에너지 전환' RE100 가입불구 진척 더텨
TSMC, 대만 정부 재생에너지 정책 지원으로 경쟁력 강화 중
세액 공제 여전히 美의 30분의 1 수준…해상풍력·전력망 강화 특별법 폐기 수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재생에너지 사용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국내 재생에너지 수급 난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뒤늦게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책을 내놓긴 했지만 주요 국들에 비해서 로드맵 발표가 늦은 감이 있는만큼 산업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애플, ASML 이어 MS도 '넷제로' 촉구…미달성시 불이익 전망
1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시가총액 1위의 빅테크 MS(마이크로소프트)는 주요 공급업체들에게 2030년까지 '넷제로(탄소 순배출량 0)'을 달성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WSJ(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멜라니 나카가와 MS CSO(최고지속가능성책임자)는 "대량 공급 기업들에게 2030년까지 100% 무탄소 전기를 사용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기준을 따르지 않았을 때 공급망에서 퇴출할 지에 대해서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도체 첨단 공정에 필수적인 EUV(극자외선) 노광장비 제조 업체인 ASML도 최근 공개한 연간 보고서를 통해 "2040년까지 고객 업체를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넷제로를 달성하지 못한 고객사에 대해 ASML이 어떤 불이익을 줄지에 대해서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ASML가 이런 고객사에 대한 납품을 후순위로 둘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대표적인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도 "10년 내로 제품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공급망은 원자재를 완제품으로 만들고 고객에게 전달하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공급망 전반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것은 이들 회사에 납품하는 협력사들에 대해서도 탄소중립도 요구하겠다는 것인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에 대한 탄소 감축 압박이 더 커진다는 의미다.
삼성·SK "해외선 100% 재생에너지…국내선 쓸 에너지가 없다"
태양광 발전소. 연합뉴스
반도체 공급망의 이런 움직임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탄소 배출 저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5년까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것을 선언하는 'RE100'에 지난 2020년 가입했고, 삼성전자도 2년 뒤인 2022년 여기에 합류했다.
두 회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과 중국, 유럽 사업장에서는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전환율이 턱없이 낮다. 2022년 기준 재생에너지 전환율은 삼성전자 DS(반도체)부문 23%, SK하이닉스는 20% 등 낮은 수준이다.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국내 사업장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미미한 것은 사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의 양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4시간 공장을 돌려야 하는 반도체 산업은 그 특성 상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 특히 첨단 공정일수록 전기가 더 많이 요구된다. 하지만 영국의 글로벌 싱크탱크 '엠버'가 지난해 전 세계 전체 발전량 대비 재생에너지(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 등) 발전량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율은 9%로 세계 평균(30.3%)보다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22년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5만406GWh(기가와트시)로 전체 발전량(62만6448GWh)의 8.1%에 불과했다. 2022년 삼성전자는 2만1731GWh, SK하이닉스는 1만41GWh의 전력을 사용했는데 한 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중 63% 이상을 두 업체가 모두 사용해야 반도체 공급망에서 요구하는 넛제로를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RE100 달성 목표를 2050년에서 2040년으로 10년 앞당긴 상황이다. TSMC는 지난 2020년 덴마크 풍력 기업 오스테드와 세계 최대 규모 해상풍력 전력 구매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지난해 대만 기업 'ARK 에너지'와 2만GWh에 달하는 태양광 전력을 20년 동안 공급받기로 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산하 '탄소중립 산업정책연구소(Net Zero Industrial Policy Lab)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높아지는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대만과 일본에 뒤쳐졌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대만, 정부차원서 재생에너지 지원…정부, 뒤늦게 재생에너지 정책 발표
연합뉴스
TSMC가 재생에너지 활용 면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들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만 정부의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육성책 등이 있다. 대만은 전체 전력 생산의 80% 이상을 석탄 등 화석연료를 이용한 화력발전이 담당하고 있는 등 우리나라와 비슷한 전력생산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2년 전 재생에너지 비율을 2050년 최대 60%까지 높이는 '2050 탄소 중립 로드맵'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재생에너지 육성에 나선 상태다. 재생에너지개발법을 통해 해상풍력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20년간 고정 가격으로 구매하게 하면서 수익성을 보장해줘 세계 최대 재생에너지 기업인 오스테드 등 많은 재생에너지 기업의 투자를 유지했다. 이런 정책은 TSMC의 RE100 조기 달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지난 16일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및 공급망 강화 전략'을 발표했다. 업계에서는 "늦었지만 다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오는 2035년까지 100GW 이상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제도 보완 목소리는 여전하다. 정부의 이번 대책에서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재생에너지 원에 대한 세금 공제 제도는 빠졌다.
미국 정부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를 통해 ITC(투자세액공제) 등 막대한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주요국들은 재생에너지 전환과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공격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업들은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에 대해 30%의 세액 공제를 지원 받을 수 있다. 반면 국내는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따로 없고 기본공제율이 적용되는데 대기업은 투자 금액의 1%만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 조달이 산업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 변수로 떠올랐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에서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해상풍력발전특별법은 모두 3건인데 여야는 특별법에 대한 이견을 좁히고 이를 통과시키기로 잠정 합의했지만 이번 국회 회기가 보름도 남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통과가 불투명하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달성을 위해서는 송전망 확충 문제도 풀어야할 중요 과제로 꼽힌다. 재생에너지 사업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전력망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펀드사인 블랙록은 전남 신안군 일대에 손자회사인 크레도오프쇼어를 통해 10조원을 투입해 국내에 초대형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지만 불허했다. 정부는 크레도오프쇼어가 제출한 일부 증빙 서류가 재무 능력 입증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업계에서는 현재 해당 지역의 송전망 등 전력계통이 포화 상태에 달해 사업이 완료되더라도 전력 계통 연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무총리실에 '전력망확충위원회'를 만들고 정부 주도 입지 선정과 사업 시행에서 민간의 참여 범위를 넓히는 내용을 담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도 국회 소관 법안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한채 자동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서울과학기술대 창의융합대 유승훈 학장은 "계통 연결 문제로 건설이 마무리 됐음에도 불구하고 놀고 있는 발전소들도 적지 않다"며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해서는 전력망 확충 문제가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CBS노컷뉴스 김수영 기자
지구 1℃ 오르면 GDP 12% 감소…"전쟁 상황과 비슷“
하버드‧노스웨스턴대 연구 논문
"기후위기 경제손실 규모, 기존 추정치의 6배"
연합뉴스
온난화로 지구 온도가 1℃ 상승할 때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2%씩 감소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17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하버드대 경제학자 에이드리언 빌랄과 노스웨스턴대 디에고 칸지그가 최근 발표한 연구 논문을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이들은 논문에서 2100년까지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해 지구 온도가 3℃ 오를 경우 전 세계의 생산 및 자본, 소비가 50% 넘게 급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이 정도의 경제적 손실은 "한 국가 안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에 버금가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50년 사이에도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해 사람들이 실질적인 구매력 감소를 겪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빌랄은 지난 50년간 지구 온난화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의 평균 구매력은 지금보다 37%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이러한 손실이 앞으로 기후 위기가 더욱 빨라지면서 급등할 것이라고 짚었다.이번 논문에서 주장한 기후 위기로 인한 경제 손실의 규모는 그간 미국 등 각국 정부가 추정해 온 손실에 비해 약 6배 더 높은 수준이다.
앞서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탄소가 1톤 배출될 때마다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190달러(약 25만원)로 추정했으나, 이번 연구 논문은 이 비용이 1056달러(약 143만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빌랄은 해당 비용은 단지 개별 국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닌 보다 더 '전체적인' 관점에서 산출한 것이라며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 폭풍, 홍수 피해액을 비롯해 작물 수확량 감소, 근로자 생산성 저하 및 자본 투자 감소 등의 영향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CBS노컷뉴스 정다운 기자
도심 출몰 잦아진 멧돼지... 출몰 수 줄이기 위한 방안은?
산이 많은 부산 특성상 산 타고 넘어오는 개체 수 증가
멧돼지 포획 수보다 개체 수가 더 많은 실정
정책 통해 멧돼지 도심 출몰 개선될지 귀추 주목
멧돼지 개체 수 조절을 통해 도심 출몰로 인한 시민의 피해가 줄어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근 부산 동래구 명륜동 동래문화회관 인근에 이틀 연속으로 멧돼지가 나타나 소동이 벌어졌다. 또한 올해 초에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부산 주요 공원에도 멧돼지가 출몰하는 사건들이 여럿 있었다. 이렇듯 전에는 주로 번식기에 출몰하던 멧돼지가 최근에는 계절과 시간을 가리지 않고 도심에 나타나고 있다.
부산야생동물협회 이종남 부회장이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혜원PD
부산야생동물협회 이종남 부회장은 “부산지역 멧돼지 출몰 현황은 대략 연간 200건이 넘는다”며 “부산 야생동물보호협회 엽사들이 자주 출동하는데 그 외에도 포획된 개체 수를 보면 1000마리가 넘는다”고 말했다. 부산의 멧돼지 도심 출몰 원인에 대해서는 “부산은 다른 도시와 달리 도심지 내에 길게 이어져 있는 산이 많이 분포하고 있어 울산, 양산 등의 산에서 타고 넘어오는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는 밀렵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정 수만큼 엽사들이 활동하며 많은 개체 수를 잡았지만 최근에는 엽사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많은 멧돼지를 다 잡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뚫린 펜스와 야생 멧돼지 (제공: 부산야생동물협회)
멧돼지는 나이가 들거나 출산 경험이 많으면 10마리가 넘는 개체 수를 출산하기도 한다. 또한 개체 수 감소 등의 불안을 느낄 경우 더 많은 새끼를 낳기 때문에 멧돼지의 포획 수보다 개체 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멧돼지 출몰 수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예산을 편성해 포획 1건당 포상금을 지급, 엽사들의 담당 구역을 좁혀 관할 구역 집중화, 다양한 포획틀 활용 등을 꼽았다.
부산시 환경정책과 이용욱 주무관은 “멧돼지의 경우 번식력이 매우 높고 생태계에서 천적이 없기 때문에 포획 등의 인위적인 방법으로 개체 수 조절을 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또한 부산시 멧돼지 출몰 개선 방안에 대해서 “포획을 위해 부산시에서는 멧돼지 포획 관련 예산을 매년 확보할 것이며 총기 포획 유보 지역이 해제되는 대로 각 구·군에 멧돼지 포획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부탁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상치도 못 한 순간에 도심에 출몰하는 멧돼지, 이러한 방안들을 통해 멧돼지 도심 출몰 문제가 개선될지 귀추가 주목된다./박혜원 기자 phw000713@kookje.co.kr
우리나라 에너지 삼중고 해결 위한 제언
최근 우리나라는 에너지 환경과 관련해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경제 성장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내부적으로는 화석연료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부터 재생에너지원으로의 전환 필요성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에너지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외적으로는 국제적 갈등과 날씨 등 여러 요인에 기인한 에너지 가격의 불안이 거의 상수화돼 경제 운영에 차질을 가져오고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바람 가뭄과 이상 저온으로 촉발된 유럽발 에너지 위기, 2024년 초부터 시작된 이-팔 사태 등 일련의 사태는 전세계 물가를 자극하고 우리 같이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나라에 에너지 안보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에너지 정책에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경제성장, 환경보호, 에너지 공급 안보의 세가지 목표를 균형 있게 달성하는 것이다. 물론 개별적으로도 달성이 쉽지 않은 목표지만 그렇다고 어느 한 목표만을 지향하게 되면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경제 성장에 큰 차질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에너지 삼중고는 균형을 갖는 것이 자원배분의 효율성과 경제 성장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2019년 발간된 에너지 시스템 건전성 지수를 보면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으며 특히 안보와 지속가능성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앞으로 많은 개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의 에너지 삼중고(2019)/2019년 한국 트라일레마 삼각형-자료:WEC 트라일레마 홈페이지
세계 에너지 시장은 기후변화의 명분과 화석에너지 중심의 경제적 현실 사이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 문제는 인류가 해결해야 할 중대하고 시급한 사안임에는 틀림없다. 최근 발간된 IPCC 6차 종합보고서와 대부분의 기상학자들은 단기적으로는 기상이변이 속출해 홍수, 가뭄의 피해 사례가 급증하고 장기적으로는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1.5도 혹은 그 이상 상승하는 경우 전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환경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탄소중립의 추진 즉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은 물가, 고용, 성장 등 거시경제적 여건을 크게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선뜻 전향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이전인 1960년대 초반만 해도 땔감용 나무 소위 신탄이라는 에너지 이외에 에너지 자원이 전무한 상황이었다. 이후 산업화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주 오랫동안 화석연료 특히 석탄과 석유 그리고 액화천연가스(LNG)의 수입을 통해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 왔다.
이러한 에너지원은 공급이 안정적이고 경제성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우리의 경제 성장에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세상이 바뀌어 환경도 생각해야 하고 국제 지정학적 리스크도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화석연료로 불리는 이들 에너지원은 시간이 갈수록 상당한 환경적, 경제적 비용을 증가시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석탄과 LNG의 연소는 대기 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해 기후 변화를 악화시키고 미세 먼지 등을 통해 심각한 공중 보건 위험을 초래하고 있다.
그림2와 같이 온실가스 배출도 꾸준한 증가세로 상당수준에 올라와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환경 문제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가격 변동성과 공급 중단 사태에 지극히 취약하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 추이/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와 가스 가격의 변동은 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산업, 소비자 와 전반적인 경제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면전에 들어간다면 원유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크게 상회할 것이며 우리는 다시 한번 경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화석연료 공급 불안의 여러 요소를 감안하더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당연히 화석연료가 가장 우리에게는 적합한 에너지원이다. 우리는 화석연료 관련 기술도 완숙단계에 있고 인프라는 거의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으며 재생에너지와 비교해서 상대 가격도 상당히 낮다.
따라서 경제적 선택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제적인 기후변화 대응 관련해서 우리 산업의 에너지 다소비의 구조적 문제를 들어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아무리 강조하고 설명해도 국제 사회는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경제는 선진국과 이러한 지구적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 위치에 와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여러 갈래로 국제 사회는 우리에게 탈 화석연료의 압력을 가할 것이다.
가시적으로 RE100은 이미 우리 기업에 영향을 주고 있고 유럽과 미국이 추진 중이고 일부 시행 중인 탄소국경조정제도 즉 CBAM(Cross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은 곧 우리의 통상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움직임이 강화되는 경우 화석연료 중심의 우리 제조업은 국제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을 것으로 예상된다.
에너지 구성을 다양화하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할 필요에 따라 우리나라는 점진적으로 재생에너지원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특히 태양광 발전과 풍력 발전은 전통적인 화석연료에 대한 유망한 대안으로 부상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발전차액지원, 세금 인센티브, 규제 지원 등 다양한 정책과 인센티브를 시행해 왔다. 그러나 재생에너지 보급 과정에서 우리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음을 확인했다.
태양광과 풍력 발전에 내재된 간헐성과 가변성은 전력계통 통합 문제를 야기하며 에너지 저장 과 전력망 개선 관리를 포함하는 혁신적인 솔루션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재생 에너지 인프라의 초기 비용은 엄청날 수 있으므로 상당한 투자 재원과 장기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아울러 우리나라와 같이 국토 면적이 좁고, 경제성 있는 부존 재생에너지 자원도 빈약해 특정 지역을 제외하면 경제성 있는 재생에너지의 생산이 아직은 요원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리한 재생에너지 확대 보다는 보다 점진적이로 현실적인 접근 즉 보급의 속도를 조절하며 기술개발과 다각도의 경제성 향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경제 발전 단계에서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과 규제는 우리의 경이로운 산업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앞으로의 정책과 규제도 우리나라의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지속가능성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물론 어려운 과제이지만 정부는 에너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함에 있어 재생 가능 에너지 보급 확대,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 보장, 소비자와 기업을 위한 경제적 에너지 공급의 유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민간 부문 투자를 촉진하며, 청정 에너지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해 규제 개혁이 선행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산업 측면에서 불필요한 규제를 최소화하고 기술적 측면에서는 디지털화와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적극 수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향상하고 기술개발과 투자를 병행해 전력망 운영을 최적화하며 소비자가 에너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시장 참여자가 경쟁을 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고 우리의 에너지 산업이 생산, 수송, 건설, 운영, 거래의 모든 분야에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고 세계 시장에 나아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당면한 에너지 전환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려면 경제적, 환경적, 사회적 고려 사항을 두루 아우르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재생 가능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투자, 에너지 효율성 향상, 청정 에너지 기술 혁신 촉진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 미래를 향한 필수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또한, 국제 협력과 파트너십을 통한 지식 공유, 기술 이전, 역량 강화를 이룬다면 우리나라가 청정에너지 혁신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는 경제와 산업 구조의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서 에너지 부문은 지속 가능 발전의 필요성과 국제 사회의 점증하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재생 가능 에너지를 최대한 수용하되 기존의 화석연료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균형 있고 효과적인 에너지 믹스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기술과 제도혁신을 촉진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증진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보와 경제 번영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투데이에너지-정용헌(전 아주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가덕신공항, 2029년 말 개항 2030년 준공
가덕신공항이 2029년 말 임시 개항을 하고, 2030년 말 정식 개항을 한다. 국토교통부의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입찰공고문에는 공사기간을 착공일로부터 2190일(6년)로 잡아 2030년 말 가덕신공항이 준공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29년 12월 말에 개항해 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승객이 이동하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되, 잔여 매립·포장 공사와 부대토목공사를 2030년 말까지 진행하게 된다.
가덕신공항이 건립 예정지인 부산 강서구 가덕도 일대 모습. 정종회 기자 jjh@
19일 가덕신공항 입찰공고문에 따르면 부지 조성 공사 금액은 10조 5300억 원이며, 공사 기간은 착공일부터 2190일(6년)로 잡았다. 공사 기간은 주당 근로시간을 52시간 이내를 감안해 산정됐다. 공사는 설계시공 병행방식으로 시행돼 설계와 시공이 동시에 진행된다.
입찰에서 설계점수와 가격점수에 가중치를 줘, 각각 평가한 결과를 합산해 총점이 가장 높은 업체가 낙찰된다. 입찰 참가자격 대상은 사전심사에 적격 판정을 받아야 한다. 사전심사 신청서는 다음 달 5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입찰자는 공동수급(컨소시엄)을 만들 때 최대 12개 업체 이하, 업체별 계약 참여 지분율은 최소 4% 이상돼야 한다. 4%는 4212억 원이다. 다만 설계분야에만 참가하는 업체는 업체수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사를 진행할 컨소시엄이 오는 11월 확정되면 공사는 올해 12월 말 우선시공부터 착공한다. 본공사 착공은 내년 6월부터다. 우선시공은 환경영향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 현장 사무실 공사와 공사 준비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낙찰자로 하여금 우선시공분의 공사 준비와 인허가 등을 사전에 준비한 다음, 진입로가 확보되는 제작장 주변에서 골재를 먼저 생산하는 등 공사 기간을 최대한 줄이도록 했다”며 “2029년 12월 임시 개항에 지장이 없도록 공정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가덕신공항 공사 입찰, 지역기업 지분율 20% 땐 8점 가산
정부 10조5300억 부지조성공사
- 시공능력 평가 300억 이상인
- 지역건설사 최대 20곳 참가 가능
- 10대사 공동도급 2개사로 제한
- 지역 생산 자재 우선 구매키로
정부가 2029년 말 개항 예정인 가덕신공항 건설 과정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지 조성 공사의 ‘입찰 참가 자격 사전심사’(PQ) 때 지역기업 지분율이 20% 이상이면 가산점 8점을 주기로 확정했다. 또 토목건축 시공능력 평가액이 300억 원 이상인 지역 업체를 20개까지 참여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시행사가 지역 건설기계 우선 사용과 지역민 우선 고용 등에 적극적으로 노력해 달라고 요구했다.
19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조달청은 지난 17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공사’ 입찰 설명서를 공고했다. 공사 금액은 10조5300억 원이다. 입찰 개시일은 11월 14일부터이며 국제입찰도 허용한다. 개찰일은 11월 19일 오전 11시로 정해졌다. 국토부는 낙찰자가 확정되면 2029년 12월 개항을 목표로 곧바로 공사에 착수할 예정이다.
가장 관심 사항이었던 시공능력 평가액 기준 상위 10위 이내 업체 간 공동도급 허용 범위는 조달청의 방침대로 2개 사로 제한한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때는 부등침하(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현상)와 장마철 태풍 등에 대비해야 하는 등 난제가 많아 원활한 공사를 위해서는 공동도급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재 업계는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 대우건설과 DL이앤씨, 금호건설과 HJ중공업 등이 공동으로 사업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번 입찰 때는 부산 업계 등의 요구를 수용해 지역기업 우대 기준이 적용된다. 지역기업 정의는 ‘입찰공고일 현재 90일 이상 부산 울산 경남에 본사를 둔 회사다. 참가 자격은 건설업체 건축사사무소 전기공사업자 정보통신공사업자 소방시설공사업자 엔지니어링사업자 등이다. 대형 건설사가 입찰에 참여할 때 지역기업 지분율이 1% 이상~5% 미만이면 2점, 5% 이상~10% 미만이면 4점, 10% 이상~20% 미만이면 6점, 20% 이상이면 8점의 가산점을 받게 된다. 참여가 가능한 지역기업 숫자는 최대 20개(시공능력 평가액 300억 원 이상)까지다.
이와 함께 국토부는 공사 때 하도급을 하고자 하면 지역기업에 우선권을 주도록 했다. 또 공사 자재도 시행과 품질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지역기업이 생산한 제품을 먼저 구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내세웠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인력이 필요할 때는 지역주민을 1차적으로 고용하도록 입찰공고문에 규정했다. 아울러 지역 건설기계도 우선 사용하도록 주문했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지역기업 우대 기준이 제대로 적용되도록 오는 7월 1일부터 만 3년이 되는 시점마다 실효성을 살핀 뒤 개선 등 조치를 하기로 했다.
국토부 가덕신공항건립추진단 측은 “부지 조성은 10조 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국책 공사여서 진작부터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며 “가장 기술력이 뛰어나고, 지역기업과 상생하려는 의지를 가진 업체를 선정해 가덕신공항이 적기에 개항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염창현 기자 haorem@kookje.co.kr
재생에너지도 못 늘린다...누가 전력망 대란을 불렀나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내가 쓰는 전력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른다. 정부와 전력 당국의 노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값 싸고 질 좋은 전력을 아무 걱정 없이 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석탄과 가스로 지탱해 온 전력산업 전반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원인은 기후위기다. 화석 연료가 뱉어 내는 탄소를 줄여야만 지구 도처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의 심화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기후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자연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대적인 에너지산업 구조조정을 벌였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려 가는 중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새 무역 질서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강제하고 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주요 신재생에너지 설비 공급 물량을 과점하며 세계 시장 주도권을 손에 넣은지 오래다. 기후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에너지 전환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최근 수년간 탈원전이냐, 탈탈원전이냐를 놓고 극한대립을 벌이는 동안 우리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OECD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청정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제품을 팔 수 없게될 우리 대기업은 수 조원을 들여 앞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 뿐만 아니라 수출 주도형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우리는 복합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자연환경에서 바람이나 햇빛으로 충분한 전력을 얻는 게 가능한지 묻는 회의론부터, 난맥상을 보이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 과정, ‘에너지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전력망의 부족, 이제는 짐이 된 경직된 전력시장 구조까지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쉽지 않다.
. <편집자 주>
1)탄소중립 핵심 대안? 멈춰 선 한국 해상풍력
지금도 늘어나는 석탄발전소
기후위기를 초래한 이산화탄소 배출의 주된 ‘악당’은 석탄화력발전소다. 국제에너지기구는 2018년 보고서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인류의 석탄 사용으로, 특히 30% 이상의 책임이 석탄발전에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는 지금도 대형 석탄발전소가 새로 들어서고 있다. 2022년부터 가동한 강릉에코파워, 곧 가동을 앞둔 삼척블루파워 등 동해안에서만 최근 2년 동안 일반 원전 4기 규모에 달하는 석탄발전소가 추가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결정하고 수조 원이 넘는 공사비를 들인 신규 석탄발전소가 10여 년이 지나 하나씩 완공된 것이다. 삼척블루파워를 마지막으로 국내에는 더 이상 석탄발전소를 짓지 않기로 했지만, 이미 30년의 설계수명을 보장받아 최소 2050년대까지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줄이겠다고 국제 사회에 선포한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대책 없는 포퓰리즘 아니냐’는 의구심을 샀던 이유이기도 하다.
▲ 지난해 12월 건설 막바지에 들어선 삼척블루파워 석탄발전소 전경. 출처 : 삼척블루파워 홈페이지
석탄발전소를 덮친 송전망 대란
기후위기에 대한 우려와 빗발치는 반대 여론을 뚫고 건설을 마무리한 동해안의 석탄발전소 사업자들은 이제 안심하고 있을까. 현실은 정반대다. 신규 발전소뿐만 아니라 동해안에 설치된 상당수 석탄발전소는 최근 들어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아예 멈추고 있다. 강릉에코파워, GS동해전력, 삼척 남부발전 등의 석탄발전소는 지난 4월 초부터 발전량을 줄여서 운전하다 이번 달 들어 가동을 중지했다. 업계에 따르면 당분간 정상 가동이 어려워 올해에만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들이 지자체에 납부했던 발전 기금도 크게 줄 수밖에 없어 해당 지자체의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동해안 지역 석탄발전소들이 정상 가동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산된 전력을 보낼 전력망, 즉 송전망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수도권으로 전력을 보내는 송전망이 깔려 있지만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지 오래다. 발전소와 전력망의 관계를 심장과 혈관에 비유하자면, 새로운 대형 심장이 박동을 시작하려는데, 혈액을 공급할 혈관은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심장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기존 혈관이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석탄발전소가 의존하고 있었던 동해안의 혈관, 즉 송전망에 결정적 부담을 안겨준 것은 지난 4월 초 가동이 시작된 핵발전소 신한울 2호기였다. 현재 동해안 송전망이 소화할 수 있는 발전소의 적정 규모는 11기가와트 수준이다. 신한울 2호기가 가동하기 전에도 원전 7기를 포함한 동해안 주요 발전기 총 설비 규모는 이미 13.6기가와트로, 적정 송전 용량을 2기가와트 이상 초과한 상태였다. 여기에 1.4기가와트 규모의 신한울 2호기가 추가된 것이다. 동해안에는 전력망이 부족해 발전소를 수시로 멈춰야 하는 ‘전력망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 경북 울진군에 위치한 한울원자력본부의 신한울 1(왼쪽), 2호기. 출처 : 현대건설 홈페이지
반면 원전의 경우 전력망 대란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동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력 생산 비용이 가장 싼 것으로 평가 받는 원전을 다른 발전기보다 먼저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발전량을 줄이거나 가동을 중단하기 어려운 기술적 특성도 원전이 다른 발전원보다 우선 가동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결국, 석탄발전소 입장에서는 우선 가동되는 원전이 늘수록 사용할 수 있는 전력망이 급격히 줄면서 정상 가동이 더욱 어렵게 된다. 2기가와트 규모의 대형 석탄발전소 삼척블루파워가 조만간 본격 가동에 들어가게 되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동해안 A 석탄발전소 관계자는 “한전에서는 2026년까지 전력망을 보강하겠다고 하지만, 일부 구간은 주민 동의를 구하지 못해 착공조차 못한 상태라 언제 정상 가동을 할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렵다"며 “원전이 고장 나거나 운전을 쉴 때만 가동할 수 있는 상황이라 동해안 석탄발전소들의 가동률은 20% 수준에 그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력망의 절대적 부족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국정 기조에 따라 원전 비중이 계속 확대될 경우, 가동에 제약 받게 되는 발전소의 종류와 숫자도 증가할 전망이다.
▲ 경북 울진군 한울원자력본부 주변에 설치된 송전망. 출처 : 뉴스타파 자료화면
전력망 대란에 발목잡힌 신재생에너지 보급
전력망 대란은 전국적 현상이다. 석탄발전소 사업자들만의 고민도 아니다. 전력망 부족 문제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시급히 높여야 하는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도 심각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발전사업 허가를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전기위원회는 지난해 12월, 4곳의 사업자가 낸 발전사업 신청에 대해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렸다. 총사업비 2조 4,000억 원 규모의 ‘영광 각이 해상풍력' 사업도 그중 하나다.
전남 영광군 각이도 바다에 0.4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를 건설하려는 사업은 정부의 강화된 재무 기준 등을 만족했지만 정식 허가가 아닌 조건부 허가를 받아야 했다. 풍력발전기가 생산한 전력을 실어 나를 송전망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기위원회는 “2031년 예정된 계통(전력망)보강 이후 연계가 가능하다는 한전의 의견을 반영해, 이에 대한 사업자의 동의 여부를 확인한 후 조건부 허가”했다고 밝혔다. 2031년에 전력망이 보강되면 발전소 연결이 가능하다는 조건에 사업자가 동의해야만 발전사업허가를 내준다는 것이다.
▲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 소속 전기위원회는 292차 회의를 개최해 영광 각이해상풍력 사업을 비롯해 4건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한전이 예정하고 있다는 2031년 송전망 보강 또한 ‘예정'일 뿐, 확실히 된다는 보장은 없다. 비단 영광군 해상풍력 사업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최근 1년 간 전기위원회 회의록을 확인한 결과, 조건부 허가 결정을 내린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44건 가운데 60%가 넘는 28건이 송전망 등 전력망 부족에 따른 것이었다.
상황은 계속 악화할 전망이다. 정부는 전력망 부족 문제가 발생한 지역에 대해서는 아예 신규 발전 사업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강원 동해안을 포함해 전남과 제주 등이 대상지로 거론되고 있다. 원전이나 석탄발전소처럼 전통적인 대형 발전소의 경우 신규 허가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신규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주된 불허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 전반이 심각한 침체를 겪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양예빈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아예 사업 인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조건부 허가를 받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업을 추진하거나 그도 아니면 어렵게 만든 발전기를 멈춰 세우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며 “전력망 부족으로 신재생에너지산업 전반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전력망 문제는 뒤로 미룬 채 입지와 사업자를 먼저 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전력망 연계 방안이 반드시 선제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신재생에너지 계획입지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9개국, 2050년까지 해상풍력 300기가와트 보급
발전소를 지어도 전력망이 부족해 가동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난 4월, 취재진이 찾은 덴마크 에너지 당국과 해상풍력 기업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사업자가 먼저 부지를 선정하고 기초 조사를 마친 다음 발전사업 허가를 받는 한국과 달리, 정부가 전력망 연결 계획을 비롯한 사전 입지 조사를 마친 후 사업자를 선정하는 덴마크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발전 사업과 관련된 정부의 인허가를 총괄하는 덴마크 에너지청의 마스 피터 한센 국제 협력 수석 담당관은 “해상풍력 사업자로 선정이 되면 기본적으로 1기가와트까지는 전력망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들 역시 전력 당국이 약속한 시점에 맞춰 전력망을 공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덴마크 국영 해상풍력 기업 오스테드의 오이빈드 베시아 대외협력 이사는 “전력망 문제 때문에 사업이 지연된 사례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력망 부족으로 인한 발전소 가동 제한이 빈번하게 벌어지는 한국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발전소는 지어지는 데 전력망 연결이 안 된다면, 전력망 사업자(한전)와 정부 간에 대화가 없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 2013년 건설된 0.4기가와트 규모의 덴마크 앤홀트 해상풍력단지
전력망 공급을 포함해 정부의 철저한 사전 계획을 바탕으로 성공적인 해상풍력 사업 경험을 축적한 유럽 국가들은 보다 대담한 도전에 나서고 있다. 덴마크,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9개국 에너지 장관들은 지난해 4월 네덜란드 오스텐드에 모여 북해 해상풍력의 규모를 2030년까지 120기가와트, 2050년에는 300기가와트까지 확대하는 ‘오스텐드 선언'을 공동 발표했다. 일반 원전 300기 규모의 풍력 발전기를 북해에 짓겠다는 구상이다.
이들 국가는 급격히 늘어나는 해상풍력 발전소를 뒷받침할 전력망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에너지 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인공섬을 건설하거나 기존의 섬을 이용한 전력망 허브를 마련해 대규모 발전 단지를 육지나 다른 에너지섬으로 한 번에 연결하겠다는 계획이다. 먼바다에 있는 개별 해상풍력 발전단지에서 일일이 육지까지 전력망을 연결할 때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덴마크 또한 북해와 발트해에 2개의 에너지섬을 건설하기로 하고 입지 선정을 진행 중이다. 또한 에너지섬으로 공급되는 신재생에너지 전력을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는 등 추가 사업도 함께 모색 중이다.
▲ 북해에 건설될 대규모 해상풍력단지의 전력망 공급을 위해 덴마크 정부가 추진 중인 에너지섬 구상도. 출처 : 덴마크 기후에너지유틸리티부
발전소 계획 따로, 전력망 계획 따로
덴마크와 달리 한국은 건설된 발전소를 끄는 것도 모자라 소규모 신재생에너지조차 추가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전력망 대란을 마주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나라 발전소 및 송전망의 건설·운영 계획은 법정 계획인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이를 뒤따르는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을 통해 마련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통해 주요 발전설비를 언제까지 얼마나 늘릴지 결정하면, 한전이 필요한 물량과 장소, 시기 등을 고려해 전력망 확충을 위한 송·변전 설비 계획을 내놓는 식이다.
그러나 뒤늦게 발표되는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조차 선행하는 전력수급 기본 계획과 심각한 괴리를 보인다. 지난해 감사원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력수급 기본계획과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은 문재인 정부 초반부터 심각한 엇박자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가 문재인 정부 정책을 표적 삼은 ‘정치 감사’였다는 일각의 비판을 감안한다 해도, 전력망 확충 대책이 크게 부족했다는 평가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 감사원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2월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내놓으면서 2031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규모를 58.6기가와트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18년 7월 발표된 장기 송·변전설비 계획에서 한전이 확충하겠다고 밝힌 전력망은 2031년 목표치의 25.3%(14.8기가와트)에 불과했다. 앞서 산자부가 발표한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의 설치 위치와 시기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이미 확정된 사업에 대해서만 전력망 보강을 추진하고, 나머지(74.5%, 43.8기가와트)는 차기 계획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3년 뒤 발표된 후속 계획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됐다. 2020년 12월 산업부가 발표한 9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도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충할 지역과 시기를 정하지 않고 목표치만 제시했다. 구체적인 지역과 시기를 명시할 경우, 지역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한전도 마찬가지로 2021년 9월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보급 목표치의 59.1%에 해당하는 일부 송·변전 설비에 대한 확충 계획만 내놨다. 가뜩이나 에너지전환 속도가 느린 것으로 평가 받는 대한민국 정부가, 앞뒤가 맞지 않는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4년 넘게 방치해 온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늘리는 데만 주목한 나머지, 이를 구현할 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9차 전력수급계획과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발표했던 2021년에는 이미 송전망 부족 문제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었다. 특히 삼척블루파워와 신한울 1, 2호기 등 대형 석탄발전소와 원전이 추가되는 동해안 지역의 송전망 부족은 이미 예견됐지만, 결과적으로 대책 마련에 실패했다.
당초 한전은 동해안에 밀집된 석탄발전소와 신규 원전의 송전 물량을 처리하기 위해 동해안-신가평 선로를 2021년까지, 동해안-수도권 선로는 2022년까지 완공하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2021년 발표한 9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에서 각각 2025년과 2026년으로 시기를 미뤘다. 송전 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들의 동의조차 받지 않은 채 사업을 추진하다 반발에 부딪혔고, 새롭게 적용하려는 신형 송전선 기술 또한 아직 안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수도권 반도체 단지, 10기가와트 전력 추가 공급 필요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는 전체 국가 전력망을 2036년까지 1.5배 가량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한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 계획을 내놨다. 이를 실현하려면 2036년까지 56조 5,150억 원의 투자금이 필요하다. 나아가 발전소 건설 계획과 전력망 확충 계획을 사실상 별도로 추진하던 과거 방식을 바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입지를 선정하고, 연결할 수 있는 전력망 범위 내에서 사업자를 선정하는 계획 입지 방식을 새롭게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력계통 혁신 대책’을 발표하며 전력망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10여 년 넘게 적체된 전력망 문제가 원만하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단은 2023년 연말 기준 한전의 누적 부채가 202조 원이 넘는 상황에서 전력망 추가 구축을 위한 재원 마련부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 어려운 문제는 과거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전력망 설비를 기피하고 정부와 한전을 불신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추가로 전력망을 건설할 지역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수도권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발전소뿐만 아니라 송전선로까지 지역이 떠안아야 한다는 논리는 더는 정당성을 얻기 힘들게 됐다. 수도권 중심의 장거리 전력 수송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전력 수요를 분산시키는 한편 수요지에서 직접 전력을 생산해 장거리 송전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의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지난해 5월 여야 합의로 통과 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같은 시기 경기도 용인에 10기가와트 이상의 전력이 필요한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을 선언하면서 정부의 전력망 개혁 의지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단지에 3기가와트 규모의 가스 발전소를 건설하고 나머지 7기가와트는 2037년까지 대규모 전력망을 추가 건설해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5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 반도체관에서 열린 '국민가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세 번째, 민생을 살찌우는 반도체 산업'에서 발언하고 있다.
2050년까지 100% 재생에너지로만 만든 전기를 쓰기로 약속한 ‘RE100’ 가입 기업을 위해 수십 년간 가스 발전소에서 만든 전력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정부가 내놓은 것이다. 당장 동해안 전력망 부족 사태조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정부가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안고 있는 한전이 정권이 두 번 이상 바뀌게 될 10여 년 후에 초대형 전력망을 추가로 건설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그대로 믿는 이들은 드물다.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전력망 부족 사태 해결을 위해 전문가들은 총체적인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전력망 문제 해결을 위한 실행 계획을 세워 매년 성과와 추이를 점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이어가야 하는데, 정부의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까지 있었지만, 전력망 부족 사태를 초래한 산자부와 한전에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 교수는 “송전망이 없어서 해상풍력을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건설을 못 하는 상황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총체적인 시스템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재생에너지를 먼저 끄는 나라
원자력과 석탄, 가스가 지배하던 한국 전력산업을 겨우 비집고 들어온 신재생에너지가 지난해 생산한 전력 비중은 9.2%에 불과하다. 수력발전이나 바이오에너지(가축 분뇨 등을 이용) 등을 제외하고 태양광과 풍력만 계산하면 5% 수준이다. 세계 평균치(13%)에 비교해도 절반 이하 수준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 확대가 더딘 탓이기도 하지만 이유는 또 있다.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은 상태가 되면 핵발전이나 석탄·가스 발전에 비해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기의 ‘스위치'를 먼저 끄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날씨에 따라 변덕이 심한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먼저 꺼야 한다는 논리는 일견 타당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뉴스타파
쿠로시오 해류의 진격…적도 열기 품고 6km씩 북상
한반도의 바다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바다로 적도의 열기를 실어 나르는 쿠로시오 해류의 중심축이 해마다 6킬로미터 씩 북상 중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양식장에 죽은 물고기가 가득합니다. 지난해 전국 바다 양식장에서 넙치 등의 폐사가 잇따라 4백억 원 넘는 피해가 났습니다. 높은 바닷물 온도 탓입니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전 세계 바닷물 평균 온도는 계속 올라가 지난해부터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한반도 남쪽의 쿠로시오 해류가 뜨거운 바닷물을 몰고 옵니다.
[김백민/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 "한반도 같은 경우 일본과 같이 남쪽에서, 적도 태평양에서 뜨겁게 달궈진 바닷물이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서 올라오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거든요."]
KBS가 부경대에 의뢰해 지난 30년간 쿠로시오 해류의 움직임을 분석해보니, 중심축이 북쪽으로 1.7도나 올라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매년 6km씩 북상한 셈인데, 2020년 이후로는 가속도까지 붙고 있습니다. 역시 지구 온난화가 원인으로 추정됩니다.
[김영호/부경대 해양학과 교수 : "쿠로시오가 워낙에 난류이기 때문에 그 난류가 좀 더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우리나라 주변으로 온도가 점차적으로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고요."]
한반도 인근의 고수온 현상은 태풍의 세력을 강화하거나 기록적인 폭우를 몰고 오는 등 기상이변을 부를 수 있습니다.
[임영권/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 박사 : "바다가 뜨거워지면 그만큼 대류 운동이 활발하게 되기 때문에 연직(수직) 쪽으로 대기 순환이 굉장히 폭발적으로 발달을 하게 되고 강수도 많이 발생하지만 열대 폭풍이라든지…."
당장 올 여름이 문제입니다. 기상청은 올 여름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KBS 뉴스 신방실입니다.
"5월 중순 눈은 처음"… ‘철없는’ 날씨에 속타는 농가
이번달 폭설·온난화 등 이상기후 전국 과수 등 종 불문 피해 막심
강릉 고지대 생장기 산나물 냉해 제주선 마늘밭 60% 벌마늘 발생
정부, 재난지원금 등 특단책 마련 “보상액 태부족”… 실효성은 미지수
“갑작스럽게 내린 폭설로 올해 농사를 망쳤습니다.”
이달 17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마을에서 만난 김봉래(58)씨는 고랭지 밭을 뒤덮은 새하얀 눈을 바라보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7년째 이곳에서 3만3057㎡(1만평) 규모 산나물 농사를 짓고 있다. 김씨는 “눈이 잦은 고지대이지만 5월 중순의 눈은 처음”이라며 “눈이 녹는다고 해도 냉해피해를 입은 산나물은 상품 가치가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5월 중순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건 기상 관측 이래 올해가 처음이다.
최근 강원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마을 고랭지 밭에서 산나물 농사를 짓는 김봉래씨가 눈 덮인 산나물을 살피고 있다. 김봉래씨 제공
이상기후로 인한 농가 피해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 때아닌 폭설로 강원 산나물이 냉해 피해를 입는가 하면, 남부지역에서는 예년보다 고온다습한 기온으로 마늘 농사가 ‘도루묵’이 됐다. 딸기와 애호박, 토마토 등 하우스 작물은 겨울철 일조량 부족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사과와 배, 복숭아 등 주요 과수의 경우 온난화로 전염병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20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제주, 전남,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사상 최악의 벌마늘(2차 생장) 피해가 발생했다. 벌마늘은 통상 6~9알 정도여야 하는 마늘 한 쪽에 최대 20여알 정도의 마늘 알이 불규칙하게 자라는 생리장애 현상을 일컫는다. 먹어도 문제없지만 상품성이 떨어져 수확해도 팔 곳이 없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마늘 생산량이 평년보다 6∼7% 감소한 30만5000t 안팎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제주다. 제주도가 최근 표본조사한 결과, 마늘 재배 면적 1088㏊의 57.8%에서 벌마늘 피해가 확인됐다. 생산량 기준 벌마늘 발생률은 58%로 평년(5% 안팎) 대비 10배를 훌쩍 넘었다. 피해 농가는 1360개 농가에 달한다. 서귀포 안덕면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김대승(75)씨는 “45년간 마늘 농사를 하면서 이렇게 벌마늘이 많이 생긴 건 처음”이라며 “농사를 망친 것만도 힘든데 상품성 없는 벌마늘을 걷어내는 데 일손이 필요하다 보니 돈이 또 들어간다”고 토로했다.
전남에서는 전체 마늘 재배 면적 3443㏊ 중 20%에서 벌마늘 피해가 확인됐다. 경남 피해 규모는 206㏊(남해 200㏊, 하동 6㏊)로 파악됐다. 경북 의성, 고령, 영천 등지에서는 3~4% 정도가 벌마늘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벌마늘이 늘어난 것은 고온다습했던 겨울 날씨와 빈번한 봄비 등 이상기후 탓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마늘 생산량은 30만5000t으로 전망됐다. 이는 작년 대비 2~3%, 평년과 비교해서는 6~7% 각각 감소한 수준이다.
2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농협유통센터에서 전국 첫 마늘 수매가 이뤄지고 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조사 결과 제주지역 벌마늘 발생률은 총 57.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벌마늘은 줄기가 생장을 멈추지 않아 이른바 '2차 생장'으로 인해 쪽 개수가 상품보다 두배 가량 많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뉴시스
겨울철 일조량 부족으로 하우스 작물은 생육부진과 병해 발생 피해를 입었다. 충북도가 피해 현황을 조사한 결과 371개 농가 144.9㏊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품목별로는 딸기(44㏊), 애호박(42㏊), 방울토마토(20㏊) 등이 영향을 받았다.
과수도 안심하기 어렵다. 고온다습한 기후가 이어지면서 전염병균이 확산하고 있어서다. 최근 충청지역을 중심으로 사과와 배에 치명적인 ‘과수 화상병’이 유행 중이다. 과일나무가 검게 말라죽는 전염병인데 아직 별다른 치료제가 없다.
정부는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정부는 벌마늘을 농업 재해로 인정하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한편 수매하기로 했다. 하우스 작물 피해 규모는 정밀조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농민들은 보상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제주마늘생산자협회는 “보상액이 농가에서 요구하는 데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강릉·제주·세종=배상철·임성준·이희경 기자
'생물다양성'지속가능성 평가시 재무·임팩트 중대성 함께 고려
쿤밍-몬트리올 국제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기업과 평가’ 강조
생물자원 모니터링 체계 고도화하고 통합적 자료 수집 필요해
뜨거워진 지구만큼이나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전혀 관계가 없는 영역이라 생각되던 경제 분야에서도 금융 투자 시 생물다양성을 고려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지만, 이미 자연자본 공시 제도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진지 오래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소리다.
이번 환경면에서는 뉴노멀로 떠오른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담았다. 온난화는 산사태 등 각종 재난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유기체 유전자에도 변형을 일으켜 미래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시급한 변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금융과 기업이 나서야 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는 △일반적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공시(S1)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S2)에 이어 새로운 공시 기준 S3를 만들기 위해 향후 2년간 자연자본(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생태계서비스)과 인적자본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다. 재무정보 공시를 단순히 좁은 의미의 회계나 화폐 숫자로만 여기면 안 된다. 재무 중대성과 임팩트 중대성은 각각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다.”
9일 백태영 국제지속가능성위원회(ISSB) 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재무 중대성이 환경이나 사회 문제 등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사안들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의미한다면, 임팩트 중대성은 기업 경영활동이 경제·환경·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다. 임팩트 중대성이 좀 더 큰 의미의 영역을 다룬다고 보면 된다.
최근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이들 개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이중 중대성’에 무게중심이 실리는 분위기다. 이중 중대성은 기업 재무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의 지속가능성 관련 환경·사회적 요인과 더불어 기업의 경영활동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 등 내부적 관점과 외부적 관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ISSB는 국제표준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제정하기 위해 국제재무보고기준(IFRS)재단이 2021년 11월 설립했다. 투자자가 기업가치 판단 시 도움이 되는 지속가능성 관련 정보를 기업이 공시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금융 투자 시 생물다양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 사진은 아랍에미리트 우주 비행사 술탄 알네아디가 국제 우주 정거장이 중동 국가 상공을 공전하는 2023년 7월 18일에 이라크 바그다드와 티그리스 강의 도시 불빛을 담은 장면. 인간의 개발로 인해 자연환경이 점점 사라지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진 미국 항공우주국 제공
◆기업 50%, 2030년 자연자본 정보 공시 = 최근 생물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환경보호 영역을 벗어나 경제적인 가치까지 함께 고려해서 접근하는 분위기다.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전통적 경제 통계를 자연자본계정(Natural Capital Account)으로 보완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자연자본계정은 자연자산의 재고나 변화를 측정해 생태계서비스 흐름·가치를 표준 방식으로 회계 및 보고 시스템에 통합하는 방식이다.
2022년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제15차 생물다양성 당사국총회(COP15)에서는 자연자본 공시 제도화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자연자본 공시는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 등을 평가한 정보를 투자자에게 공개하는 제도다.
COP15에서 채택된 전지구적 생물다양성 전략계획인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GBF) 목표 15에서는 ‘기업은 생물 다양성 관련 위험과 부정적인 영향을 평가하고 감소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 목표가 지켜졌는지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자연자본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TNFD)’ 지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9월 유엔(UN) 산하 TNFD에서는 자연자본 공시 관련 지침서를 공표한 바 있다.
10일 서민환 국립생물자원관장은 “공시는 금융당국에서 결정을 하지만 자연자본 특히 환경에 관련한 평가 체계 등은 환경 영역에서 만들 수밖에 없다”며 “GBF에서 특히 강조된 사항 중 하나가 기업과 평가 부분이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국제 추세에 뒤떨어져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정부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GBF에 맞춰 범부처 최상위 전략인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을 수립하면서 자연자본 정보 공시기업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공시 기업 중 자연자본 정보 공시 기업 비율을 2027년 30%에서 2030년 50%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2026년 녹색기업 지정기준 내 생물다양성 증진 분야 가점도 마련한다.
10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환경한림원 환경리더스포럼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생물다양성을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할 때 필요한 점 등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사진 김아영 기자
◆실제 집행하는 절대적 의지 전환 시급 = 김미현 SK증권 환경·사회·투명경영 추진실장(이사)은 10일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환경한림원 환경리더스포럼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투자의 문법으로 정리한 게 환경·사회·투명경영”이라며 “이미 상당수 금융기관들이 구체적인 환경·사회·투명경영 전략을 마련하고 있으므로 이 전략에 생물다양성 보존 이슈를 적절히 포함시키는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는 또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제 겨우 탄소회계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금융기관들은 금융포트폴리오 내 탄소감축으로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에 더해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 금융해법을 찾아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유력한 또는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보증을 제공하는 식으로 관련 대책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대로 된 평가는 기본이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이후승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생물다양성의 안정적인 지속은 기업과 금융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함으로써 성장을 촉진해 줄 수 있다”며 “생물자원 모니터링 체계를 고도화하고 통합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해 정기적인 평가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요환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정책 입안자나 실행자 등 다양한 이들이 생물다양성 중요성을 얘기하고 긍정적이지만 막상 관련 사업을 만들고 시행을 할 때 비중 있게 다뤄지는 지는 의문”이라며 “실제 집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절대적 의지나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원숭이들이 사과처럼 떨어졌다” 기록적 폭염에 집단 추락사
멕시코에서 더위에 지쳐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원숭이 사체가 잇따라 발견됐다.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취약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AP는 21일(현지시간) ‘유카탄검은짖는원숭이’ 최소 83마리가 멕시코 남부 걸프 연안 타바스코주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과테말라검은짖는원숭이’라고도 불리는 이 동물은 짖는 원숭이(Howler monkey)의 일종으로, 이름처럼 울부짖는 게 특징이다. 큰 턱과 이빨을 갖고 있으며, 성체의 키는 2피트(60cm)에 달한다. 동물생태학자인 힐베르토 포소 박사는 “원숭이들이 높은 나무 위에서 사과처럼 떨어졌다”며 “심각한 탈수 상태를 보이다 몇 분 만에 죽음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AP에 말했다.
목숨을 건진 원숭이들은 지방자치단체와 동물보호단체 등의 도움으로 돌봄 및 치료를 받고 있다. 멕시코 생물 다양성 보전 단체인 ‘코비우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죽은 원숭이들의 열사병 가능성을 지적하며 “탈수와 고열 등 증세를 보이는 원숭이들을 구출해 돌보고 있다”고 썼다. 일부 시민과 자원봉사자는 물과 음식 등을 원숭이 서식지 주변에 전달하고 있다.
현지 수의사와 구조대원들은 최근 멕시코의 폭염이 원숭이 폐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고 AP는 전했다. 현재 멕시코 곳곳에서는 한낮 최고기온 40∼45도를 넘나드는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멕시코 당국 집계에 따르면 지난 3월 17일∼5월 14일 사이 오악사카(와하카), 마사틀란, 산루이스포토시, 미초아칸, 할리스코 등지에서 337건의 온열 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최소 17명이 숨졌다.
더위뿐 아니라 가뭄, 산불, 벌목을 포함한 자연환경 변화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지에서는 영양실조 또는 독성 농약과의 연관성도 제기된다고 일간 아니말폴리티코는 보도했다. 멕시코 정부는 전날 저녁 원숭이 폐사의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향
겨울철 따뜻하고 강수량 늘어 …결국 양파가 쓰러졌다
전남 재배면적 20% 피해
무안·함평 등 ‘잎마름병’
주저앉은 농민 한 농민이 21일 전남 무안군 무안읍의 양파밭에서 누렇게 변한 채 말라버린 양파들을 만져보고 있다. 연합뉴스
전남에서 크기가 작아 수확하지 못하는 양파가 속출하고 있다. 농민들은 “절반 정도는 밭에 버려지고 있다”고 말한다. 마늘이 여러 개로 갈라지는 벌마늘에 이어 양파에서도 ‘생장불량’이 발생하면서 농산물 수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전남도는 21일 “양파 생육장애를 재해로 인정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전남도는 무안과 함평, 신안 등 양파 주산지를 중심으로 잎마름병과 무름병 등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현재 확인된 피해 면적은 1370㏊다. 전남의 전체 양파 재배면적(6862㏊)의 20%에 달한다. 특히 줄기가 병에 걸려 양파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구비대 불량’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한 줄기에서 상품성이 없는 양파 2개가 동시에 자라는 현상도 나타났다.
양파는 지름이 6㎝ 이상 돼야 정상적으로 출하할 수 있다. 상품 등급 양파는 지름 7~8㎝에 무게는 300~400g 정도 나간다. 하지만 올해는 출하할 수 있는 양파가 절반도 안 된다는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출하가 힘든 양파는 시장에 내놓더라도 가격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상품 양파는 1㎏에 1000원 정도를 받지만 크기가 작은 양파는 1㎏ 200~300원에 팔린다. 6월 상순부터 수확하는 중만생종 양파에서도 생장불량이 확인되고 있어 양파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생육장해가 발생한 것은 이상기후 때문이라는 게 전남도의 설명이다. 지난 1~4월 전남 평균기온은 7.9도로 평년(6.7도)보다 1.2도 높았다. 이 기간 강수량은 470.5㎜로 평년(266.5㎜)보다 76%나 많았다. 반면 일조량은 346시간으로 평년(749시간)의 47%에 그쳤다. 김성준 전남도농업기술원 연구사는 “양파 생육불량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있지만 고온과 잦은 강우로 인해 병충해에 노출되고 일조시간이 부족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면서 “앞으로 이상기후로 인한 생육장애가 더 잦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에 선 초등학생 "기후위기 해결, 우리에게 떠넘겨"
[헌재 기후소송 2차 변론] 기후소송 청구인들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 위헌"
이종석 헌법재판소장 : "한제아양, 몇년 몇월 며칠생입니까?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양 : "2012년 4월 10일생입니다."
이종석 소장 : "안 떨려요?"
한제아양 : "2012년 4월 10일.“
▲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앞에서 열린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 공동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종 진술자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
엄숙한 분위기의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이 재차 "안 떨려요?"라고 묻자, 초등학교 6학년생인 한제아양은 그제야 "안 떨려요"라고 답했다. 이종석 소장은 "다행이다. 떨지 말고 편안하게 그냥 이야기하세요. 우리가 잘 들을게요"라고 말했고, 제아양은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대부분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세상을 잘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어른들 말을 잘 들으라고 우리에게 어린이다움을 강조하지만, 기후위기 해결과 같은 중요한 책임에 관해서는 대답을 피하는 듯하고 어쩌면 미래의 어른인 우리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이유기도 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라고 있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아양은 "제가 이 자리에 선 것은 저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미래,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가족, 친구, 사람들 그리고 동물이 위험 없이 살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전했다.
시민기후소송에 참가한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운영위원장은 "기후운동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면서 이상기온으로 사과농사를 망쳐버린 농부, 폭염에 열사병으로 병원에 실려 간 건설노동자, 바닷속 미역이 사라져 한숨짓는 해녀, 장마가 지고 태풍이 오면 밤잠을 못 이루는 반지하방의 주민을 언급했다.
그는 "모두가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면서 "기후위기 한복판에서 각자의 삶과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하는, 이 나라의 주권자들이다. 이들에게 희망과 버팀목이 되는 판결을, 헌법재판소가 내려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이후 양쪽 대리인단의 최종 진술을 마지막으로, 두 차례의 기후소송 공개 변론은 마무리됐다. 이제 선고만 남았다. 헌재 관계자는 "공개변론 이후에도 선고까지 1~2년 걸린 경우도 있다. 선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선대식(sundaisik) 오마이뉴스
10년 뒤’를 묻자 아이는 꿈 대신 ‘소멸’을 떠올렸다
박서율 활동가가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팻말을 들고 서 있다. 한수빈 기자
어느 날 10살 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는 어차피 지구에서 모두 사라질 거야.”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적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7년 남았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말이었다. 1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장래 희망 대신 ‘소멸’을 떠올리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거리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기기후소송 당사자인 박서율군(10)과 엄마 김정덕 활동가는 21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서서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이라고 외쳤다. 이날 헌재에선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의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렸다. 이들 옆에는 황인철 시민기후소송 청구인과 김서경 청소년 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들이 함께 섰다.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민·청소년·어린이들이 탄소중립계획과 녹색성장기본법이 위헌이라고 적은 팻말을 들고 있다. 한수빈 기자
김 활동가는 “제가 아기를 낳은 것은 그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서였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다른 누군가와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는데 아들의 말에 낯이 뜨거워지고 커다란 죄책감이 들었다”면서 “가장 약한 존재들부터 시작해 결국 우리에게 닥칠 재난을 정부가 알아차리고 막을 수 있도록 헌재가 신속하고 정의로운 결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바란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현재 기후위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위기에도 잘 대응하고 있다는 정부 측 논리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공동대리인단 이치선 변호사는 “변호인석에서 정부 측의 변론을 들으며 내내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파리협정의 원칙, 즉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을 자의적으로 곡해하고 있다”면서 “이 원칙은 원래 지구 온난화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더 강화된 감축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인데, 정부는 이를 각국이 사정에 따라 알아서 감축하면 될 뿐이고 어떤 감축목표도 강제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기후 헌법소원 마지막 공개변론일인 2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이(오른쪽)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이날 2차 변론에서 최종 진술자로 나선 김서경, 황인철, 한제아 세 명의 청구인들은 손수 접은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안전한 삶을 바라며 헌재 앞에 섰다”고 말했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이다.
이들은 “정부는 지난 공개변론을 통해 기후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서 “평범한 사람의 삶,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배제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산업계의 감축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의 논의만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재난 앞에서 우리가 각자 알아서 버텨야 한다는 것만을 깨닫게 할 뿐”이라며 “대체 국가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은 단순히 국가가 기후대응을 얼마나 못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정부가 배제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라면서 “이 판결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사회를 기대한다”고 했다.
헌재 심판대 오른 기후소송···“정부 계획 부실” vs “선진국 못지않아”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부실해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논의하는 헌법재판소의 첫 공개변론이 23일 열렸다. 국내에서 이른바 ‘기후소송’이 제기된 지 4년 만이다.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정부의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이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 반면 정부 측은 “온실가스 배출량 40% 감축 목표 등은 충분하다”고 맞섰다. 재판관들이 질문을 던지고 양측 답변이 오가면서 약 5시간 동안 변론이 이어졌다.
4년 기다린 청구인들 “부실한 기후위기 대응으로 기본권 침해”
헌재는 이날 대심판정에서 기후위기 헌법소원 사건의 첫 공개변론을 열었다. 기후소송 4건을 병합해 열린 자리였다. 2020년 제기된 청소년기후소송, 2021년 시민기후소송, 2022년 아기기후소송, 2023년 1차 탄소중립기본계획 헌법소원 등이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기후 소송’의 첫 공개 변론에 참석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청구인 측은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하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기본법과 시행령은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지만 이는 지구 온도 상승폭을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자는 국제사회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청구인 측 윤세종 변호사는 “다른 국가들이 한국과 비슷하게 노력하면 지구 온도를 3도까지 올릴 수 있다”며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지수는 67개국 중 64위로, 산유국들과 함께 최하위로 평가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나 감축 이행을 보장할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도 주요하게 지적했다. 청구인 측 이병주 변호사는 “2031년 이후 감축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독일 기후소송에서도 이 부분이 문제가 돼 독일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렸고, 후속 입법이 바로 이뤄져 2045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명시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감축목표는 2030년 이후를 살아갈 세대에게 막대한 감축부담과 기후변화 피해를 전가해 헌법상 환경권, 생명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논리를 폈다.
온실가스 감축목표 충분하다는 정부··· “이행 보장 안 되지 않느냐”
정부 측은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다른 주요국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맞받았다. “한국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온실가스 감축이 어려운데도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할 정도로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 측 대리인은 “무리한 감축 목표는 기업경쟁력을 약화해 도리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이상적인 목표 수립보다 현실적으로 설정된 목표의 이행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재판관들은 정부 측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에 필요한 세부적인 규정과 기준을 마련했는지 물었다. 정정미 재판관은 “2030년부터 2050년까지 아무런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내버려 둬도 되는 것이 맞느냐”고 질문했다. 정부 측 대리인은 “공백이란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측은 “5년마다 진전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후퇴 금지’ 원칙에 따라 강화된 목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며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이상 국제 신뢰도 문제와 연결돼 이행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정 재판관이 “이행이 중요한데 이행이 안 될 수도 있지 않나”라고 묻자 정부 측 참고인인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는 “6년 밖에 남지 않아서 녹록지 않은 목표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변론에선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안을 발표하면서 ‘이중기준’을 사용한 것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기로 하면서 감축 기준연도인 2018년에는 ‘총배출량’, 목표연도인 2030년엔 ‘순배출량’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에 기준을 총배출량으로 통일하면 실제 감축률은 30%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문형배 재판관은 “2030년도에 순배출량을 적용했는데 왜 2018년도엔 총배출량을 적용했나”라며 “개념을 섞으니 국제사회나 환경단체가 정부의 조치가 투명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게 아닌가”라고 물었다. 정부 측은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선진국들이 사용해온 방식”이라며 “기준을 통일할지는 향후 기본계획에 반영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했다.
헌재는 다음달 21일 2차 공개변론을 열어 재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제 키 30cm 자랄 동안 국가는 뭐 했나요?” 기후소송 첫 변론까지 4년간의 기록
62명의 기후소송 청구인 중 한 명인 김나단군은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다. 2022년, 엄마 손을 잡고 헌법재판소를 찾았던 김군의 키는 그때보다 30㎝가 자랐다. 2020년 고등학생이던 김서연양은 학교를 졸업해 청년 활동가가 됐다. 아기기후소송 당시 20주차 태아였던 ‘딱따구리’는 엄마 배 속을 나와 최희우란 이름을 얻었다. 23일, 헌법소원 제기 4년 만에 열린 기후소송 공개변론을 앞두고 뭉친 이들은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기후소송의 출발은 지난 2020년 3월13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제기한 헌법소원이다. 이들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7년 대비 24.4% 감축하겠다는 옛 녹색성장기본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감축량이 기후위기를 막기에 부족하며, 기후위기를 방치하는 것은 생존권과 평등권, 인간답게 살 권리, 직업 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 침해한다는 것이다. 헌재가 3월24일 원고 자격을 인정하면서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됐다.
정부는 2021년 9월 녹색성장기본법을 탄소중립기본법으로 대체했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35% 이상으로 정한 이 법은 ‘기후위기 대응을 목표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내법’으로 알려졌으나, 환경단체는 이 역시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목표치가 탄소예산을 근거로 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정해져 위헌이라는 주장을 폈다. 탄소예산이란 위험한 수준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허용 가능한 온실가스 최대 배출량을 말한다. 기후위기비상행동이 이같은 주장을 골자로 2021년 헌법소원을 제기하면서 탄소중립기본법도 헌재의 판단을 받게 됐다.
2022년엔 만 5세 이하의 ‘아기’들도 헌법소원에 나섰다. 헌법소원 청구서에 첨부된 분석 자료를 보면, 지구 온도 상승이 1.5도로 제한될 경우 2017년에 태어난 아기는 1950년에 태어난 어른보다 배출할 수 있는 탄소가 8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다. 5세 이하 아기 40명, 6~10세 어린이 22명으로 구성된 청구인단은 이것이 평등권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환경단체들은 지난해 4월 발표된 탄소중립기본계획도 위헌이라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재는 지난 2월15일 이 4개 사건을 병합 결정하고 이날 공개변론 열었다. 최초 소송 제기 이후 4년만에 본격적인 심리가 진행된 것이다.
이번 기후소송은 청년 세대가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물은 세대 간 소송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김나단 군은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지금 온실가스를 조금만 줄이겠다고 하면서 나머지는 우리에게 떠넘기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군은 이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기후위기를 겪었는데, 이제 또 온실가스를 줄일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한다”면서 “헌법재판관님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늦기 전에 우리가 살아갈 권리를 지켜달라”고 말했다.
김서연 활동가도 “정부는 기후위기의 피해자는 산업과 기업이지 우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면서 “현재 위험도 없고, 피해자도 아니라는 식의 논리를 펼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전은 지금 당장의 위기에서 나를 구해주는 것도 있지만 다가올 위기를 막아주는 것도 포함한다”면서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헌법소원의 첫번째 공개변론날인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소년기후소송, 시민기후소송, 아기기후소송, 탄소중립기본계획 소송 청구인 등이 개최한 기자회견 중 한 참석자가 ‘모두의 생존권을 위해 이의있음’이라고 적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한국 헌재의 판단은 동아시아 주변국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019년 네덜란드 대법원이 정부의 감축목표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결이 나온 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해당 판결을 참고해 독일 기후보호법도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기후소송 공동대리인단의 윤세종 변호사는 “각국 사법부에서 판단을 받은 나라들은 자기 몫을 하려 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에서 선진국으로 상징적인 위치에 있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안정된 한국의 판결이 주변국들에 중요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
기후변화로 체육수업 중단…청소년 신체활동 줄었다
악천후·산불로 체육시간 줄어
실내 머무르는 시간 많아져
기후변화가 코로나19 팬데믹만큼이나 청소년들의 신체 활동을 제약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최근 캐나다 생활체육 비영리단체 ‘파티시팩션’(ParticipACTION)은 ‘2024 캐나다 아동 및 청소년의 신체 활동 보고서’를 펴내 캐나다 청소년(12~17살) 39%만이 적극적인 운동 기준(하루 60분, 심장이 빠르게 뛸 수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37%보다 조금 높아졌지만,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8년 49.6%보다 청소년들의 신체활동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 단체는 청소년들의 신체활동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 기후변화를 꼽았다. 조사 결과, 악천후나 폭염으로 인한 산불 등으로 학교 체육 수업을 중단하는 날이 많아 학생들이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캐나다의 기상경보 수는 약 17만건으로 2014년 7만5천 건 대비 127%나 증가했다. 또 지난해에만 캐나다 전역에서 1천건 이상 산불이 발생해 남한 면적이 넘는 일대를 태우는 등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연구에 참여한 니콜라스 쿠직 온타리오 동부 어린이병원 연구원은 “어린이는 성인보다 기도가 짧아 날씨 변화에 더 취약하고 더 빠르게 숨을 쉬어 오염 물질로 인한 폐 질환에 걸릴 위험이 더 크다”며 “심각해진 기후변화로 어린이·청소년의 신체 활동이 줄면 회복력 약화 등 건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매년 줄어드는 초지면적…지난해 축구장 크기 320여개 줄어
지난달 9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생활승마용으로 육성 중인 RDA승용마(국내산 승용마)가 난지축산연구소 내 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초지면적은 전년보다 230㏊ 감소한 3만1700여㏊로 조사됐다. 사라진 면적 크기는 축구장(0.714㏊) 320여개 규모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1일 발표한 ‘2023년 초지관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초지면적은 국토 전체면적의 약 0.3% 규모인 3만1784㏊(헥타르·1㏊는 1만㎡)로 조사됐다. 초지면적은 1년 간 230㏊(0.7%)가 감소했다. 초지전용·산림환원 등으로 244㏊가 초지에서 제외됐으며, 사료작물 재배 등 목적으로 14㏊가 새로 조성됐다.
초지 감소 사유는 주택·산업단지 등 각종 개발사업(121㏊)과 농업용지(49㏊) 등으로 총 170㏊가 전용됐고, 산림 환원과 초지 기능 상실 등으로 74㏊가 초지에서 해제됐다. 지역별로는 제주도가 1만5435㏊(전체의 49%)로 가장 많은 초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어 강원(4944㏊), 충남(2307㏊), 전남(1900㏊) 순으로 나타났다. 충남은 중요 산업시설로의 전용 등으로 전년 대비 초지면적 감소 폭(99㏊)이 가장 컸다.
초지는 주로 방목용(42.2%) 또는 사료작물 재배용(22.1%)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축사·부대시설로 일부(3.4%) 활용되고 있다. 관리 소홀 등으로 현재 활용되지 않는 면적도 전체 초지의 3분의 1에 달했다.
김정욱 농식품부 축산정책관은 “초지는 온실가스를 저감할 수 있는 탄소흡수원일 뿐만 아니라 친환경축산 구현을 위한 소중한 자원임에도 각종 개발사업 등으로 전용이 이루어지면서 1990년 이래 매년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향 안광호 기자
사람을 먹이는 일’, 농업의 원칙을 세우다 [유럽 농촌에서 본 ‘오래된 미래’ ①]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거리에 나섰다. ‘농부들의 나라’라 불리는 유럽에 그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높다. 이들은 자신들의 농업 유산에서 해법을 찾는다. ‘소규모 가족농’ ‘도농 연대’ ‘농정 자치’다.
유럽의 소규모 가족농에게 주 1~2회 열리는 농민시장은 직접 재배한 작물과 가공품을 판매하는 중요한 거점이다. 4월27일(현지 시각)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에 열린 사를라 시장.ⓒ대산농촌재단
부셰리 티어리 씨는 매주 토요일 아침 7시 무렵 집을 나선다. 프랑스 남서부 도르도뉴주에 위치한 ‘사를라 라 카네다(Sarlat la Canéda·이하 사를라)’의 농민시장에 가서 직접 기른 작물을 팔기 위해서다.
9년 전 가업인 농장을 이어받은 티어리 씨는 지역 특산품인 송로버섯과 아스파라거스를 재배하고, 양과 닭도 기른다. 그는 단 두 가지 방법으로 농작물을 판다.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거나, 이곳 사를라 시장에서 판매한다.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라며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작은 좌판에 놓인 아스파라거스 한 묶음은 7유로(약 1만원). 4월27일(현지 시각) 오전 11시 무렵, 장이 선 지 3시간 만에 그가 준비한 아스파라거스 대부분이 동났다.
티어리 씨의 좌판으로 한 부부가 다가왔다. 프랑스 남서부 일대를 아내와 여행 중이라는 프레노 조엘 씨는 토요일에 큰 농민시장이 열린다는 말을 듣고 “미식가인 내가 빠질 수 없어서” 이곳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유기농 작물을 재배한 생산자들을 직접 만나는 것은 농민과 연결되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마을 농민시장에서 장을 본다. 낯선 지역을 방문할 때, 그곳의 농민시장을 둘러보는 것은 그에게 관광이 아니라 일상이다.
-함께볼기사
“우리 지역에도 참 좋은 곳이 많은데…” [유럽에서 본 농부의 미래 ②]
농민은 평생에 걸쳐 ‘만들어’진다. [유럽 농촌에서 본 ‘오래된 미래’ ②]
‘소규모 가족농’과 ‘도농 연대’는 유럽 농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그 아래에는 농업인들을 지원하는 독창적 기구가 있다.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농업정책을 시행하는 동시에, 거꾸로 농민의 의견을 모아 정치적 목소리를 전달하기도 하는 농민자치기구 ‘농업회의소(chamber d’agriculture)’다. 유럽 농업을 알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기둥을 이해해야 한다.
여행 중 농민시장을 방문한 프레노 조엘 씨 부부. 평소에도 지역 시장을 이용해 장을 본다며 ‘농민과 만나는 일’이 기쁨을 준다고 말했다. ⓒ시사IN 김다은
유럽은 농업이 처한 위기에 대한 해법을 첨단기술이나 자본이 아니라, 오히려 농업이 오랫동안 지켜온 사회적 가치와 전통에서 찾고 있다. 지난 4월15~30일 〈시사IN〉을 비롯해 한국의 다양한 분야 농업인과 전문가 17명이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프랑스 등 4개국 농촌 현장을 방문해 ‘오래된 미래’를 직접 둘러봤다. 농업·농촌 지원 공익재단인 대산농촌재단이 지원한 이 연수 프로그램의 제목은 ‘미래가 있는 농촌, 지속 가능한 농업’이다. 〈시사IN〉은 이번 호와 다음 호에 걸쳐 유럽 농업이 위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살펴보고, 국내 농업 현장에서의 적용 가능성을 짚어본다. ‘소규모 가족농의 가치’ ‘도시민과 농민의 연대’ ‘상향식 농정 자치’ 등의 키워드에 특히 초점을 두었다.
연수단이 방문한 국가들은 ‘농부들의 나라’라고 불린다. 공동체가 농촌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에 속한 27개국은 농업정책도 공유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2년부터 시행된 공동농업정책(CAP, Common Agriculture Policy)이 그것이다. 농업의 경제적 가치는 2022년 기준 EU 전체 GDP의 1.4%에 불과하지만, 직불금 등을 비롯해 농업 지원에 투입되는 농업 예산은 EU 전체 예산의 3분의 1에 달한다. 2024년 전체 예산 중 2.8%가 농업 예산인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가정의 식탁을 책임지고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농업의 사회적 가치를 존중하는 모습이다.
한국은 이러한 유럽의 농업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국내 농업정책 설계에 적용해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23년 발행한 연구보고서 ‘EU 공동농업정책 개편 과정과 시사점: 직불제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유럽의 ‘직접직불제’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전략’ ‘유럽 그린 딜’ 같은 정책들은 한국에서 ‘공익직불제(2020년)’ ‘국가식량계획(2021년)’ ‘2050 농식품 탄소중립 추진 전략(2021년)’ 등의 이름으로 추진됐다.
지난 3월26일 유럽연합 본사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농민들이 유럽연합의 환경 제재와 값싼 수입농산물에 반대하는 트랙터 시위를 벌였다. ⓒEPA
하지만 ‘농부들의 나라’ 역시 최근 위기를 겪고 있다. 농가 수 감소, 고령화, 값싼 수입 농산물 등 조금씩 곪아온 문제에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환경규제까지 겹쳤다. 지난 1월에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의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거리로 나서기도 했다. 이들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 나갈까? 이번 연수단이 유럽으로 향한 이유다. 선진 농업국의 우수 사례뿐 아니라 그들이 현재 처한 위기와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 역시 참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누적된 ‘농업 위기’는 여전히 길을 잃고 있다. ‘뼛골 빠지게’ 농사를 지어도 농가당 연평균 농업소득이 10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현실(2022년 기준)에서 정부는 수년 전부터 농사 이외의 사업으로 농가 수익을 보존하도록 유도해왔다. 이 과정에서 “가공 중심의 2차 산업 육성에만 초점을 맞춰 농업인을 농부가 아니라 공장장이 되도록 하고(이동윤·화순 복숭아 농장주)” “농업인의 목소리는 반영하지 않은 상명하달식 공모 사업으로 예산을 좌지우지해 농정 자치의 힘을 약화시켜(고광석·고창 농촌중간지원조직 실무자)” “유기농법을 지키는 소농이 설 자리를 지웠다(강보리·보성 쌀농사 농부)”. 기업농과 대농만 살아남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라스 카즈 농장 내 위치한 농가주택. 1층에 직판장이 운영되고 있어 소비자들이 와서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김혜진 제공
■ ‘소규모 가족농’의 3가지 비결
프랑스 남부 지역 알비에 위치한 ‘라스 카즈(Las cases)’ 돼지 농장은 1985년 설립됐다. 40년간 대를 이어온 가족농이다. 이곳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농장 동물이 먹는 곡물을 직접 재배한다. 농장을 창업한 장 뤼크 말랭주 씨의 아들 티보 말랭주 씨는 평야 위에 솟은 ‘검은 산맥’ 누아르(noire)산을 가리켰다. 누아르산 아래 이곳 농장의 돼지 6000마리를 먹일 옥수수와 수수, 밀을 재배하는 110㏊(약 33만 평) 땅이 보였다. 처음에는 40㏊ 크기의 목초지에서 돼지 열 마리를 방목하며 시작했지만, 이제는 프랑스의 평균 농장 면적(2020년 기준 69㏊)보다 1.6배 큰 규모로 확대했다. 티보 씨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동물 사료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사료를 자급하기 위해 노력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라스 카즈 농장에서는 조리하고, 말리고, 자르고, 포장하는 모든 가공 공정을 직접 한다. 농장 부지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아치형 대문을 한 전형적인 2층짜리 농가주택이 보인다. 건물 1층은 손님들이 가공제품과 육류를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는 매장으로 꾸며져 있다. 생고기는 물론 베이컨·햄·소시지·살라미 같은 염지 가공육과 파테, 통조림 등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 진열되어 있다. 지하 조리실과 2층 건조실을 거쳐 나온 제품이다. 가공회사에서 며칠 만에 만들어내는 제품과는 속도와 정성이 다르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유리 통문을 통해 언제든 건조실 내부를 볼 수 있다.
돼지 농장에서 가공품을 생산하게 된 건 돼지고기 가격 등락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1985년에는 돼지고기 생산량이 너무 많아 가격이 곤두박질 쳤다. 사업 초기 아버지 말랭주 씨는 시장의 돼지 가격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수익을 낼 방법을 궁리했다. ‘질 좋은 가공품’은 그가 찾아낸 대안이다. 돼지 가격이 떨어지면 가공품 마진이 올라가는 구조 덕분에 고깃값이 떨어져도 안정적으로 수익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는 ‘이웃’인 소비자의 요구도 큰 영향을 미쳤다. 말랭주 씨는 “이웃들이 깨끗하게 사육하고, 안전하게 가공한 제품을 먹고 싶다고 하더라. 소비자들이 모두 이웃이니까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물론 가공제품을 만드는 농장은 많지만, 우리처럼 동물이 먹는 사료까지 직접 재배하는 곳은 드물다는 걸 이웃들도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라스 카즈 농장은 반경 20㎞ 범위 내에서 모든 제품 판매를 소화한다. 대형 마켓과 온라인으로는 판매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오고, 마을 축제가 있으면 얼굴을 보는 이웃이 주된 소비자다. 농장의 세 번째 특징이다. 농장 내 매장, 5㎞ 떨어진 소농 직판장인 레벨(Revel) 시장, 20㎞ 거리에 있는 알뱅크(L'albinque) 시장에서 생산품 대부분을 판매한다. 농장에서 생산하는 고기의 약 5%는 마을 식품점이나 레스토랑 등에 직접 납품한다.
온라인 상거래가 활발한 한국 사정에 비추면 이해하기 어려운 판매 방식이다. 함께 방문한 한국 농민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말랭주 씨 부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규모를 키워서 더 많은 제품을 팔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가족농 체제를 유지하는 게 우리의 철학이다. ‘내 이웃이 먹을 음식을 우리가 직접 키운다’는 게 우리 농장의 가장 큰 자부심이다.”
말랭주 씨는 농장을 대형화하지 않는 것이 농민에게도 이롭다고 설명했다. “축산의 규모가 커지면 농민들은 잘게 쪼개진 각각의 영역에 갇힌다. 사육·가공·유통 같은 공정 중 하나만 맡게 된다. 수익 규모가 커질지 몰라도 농부의 자율성은 떨어진다. 지금처럼 다양한 제품을 직접 개발하면서 소비자를 만나고, 우리에게 더 나은 사육 방식을 고민하는 것도 어려워질 것이다. 농업의 다양성이 위축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장 뤼크 말랭주 씨(가운데)와 티보 말랭주 씨(오른쪽)는 ‘이웃이 먹을 음식을 우리가 직접 만든다’는 원칙이 라스 카즈 농장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대산농촌재단
라스 카즈 농장은 1차 산업(생산)과 2차 산업(제조·가공), 3차 산업(유통)까지 가족들이 함께하며 가족농 브랜드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생산(1차), 가공(2차), 유통·민박·체험·관광(3차)을 융복합한 ‘6차 산업(농촌융복합산업)’이 모범적으로 이루어지는 셈이다.
‘6차 산업’이라는 개념은 한국 농촌에서 유행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동행한 국내 농업인들은 “지금의 한국형 6차 산업은 농촌의 위기를 극복할 해법이 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았다. 출발점인 1차 농산물 생산 기반이 튼튼해야 지속 가능한 농업 전략이 되는데 ‘6차 산업'이라는 명목하에 기본을 놓치고 있다. 농업이 아니라 서비스업만 남았으며, 애꿎은 컨설팅 업체만 배불리는 부작용이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프랑스 현장을 동행한 김혜진씨(거창 딸기 농장주)도 “외부 컨설팅 업체의 자문을 거쳐야 지원할 수 있는 공모 사업들이 있다. 그러나 조언을 받아보면 내용이 형편없는 컨설팅도 많다. 컨설팅한다고 비용은 비용대로 쓰지만 정작 농민들이 바라는 내용은 담기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반면 유럽 농부들은 ‘기본’을 충실히 한다. 1차 생산물의 질을 올림으로써 농가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는다. 농업의 최종 목표는 ‘사람을 먹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생산자는 음식을 통해 소비자, 지역사회와 연결된다. ‘이웃의 식탁을 책임지는 것’이 라스 카즈 같은 유럽 농가의 철학인 이유다.
장 폴 누벨 씨(왼쪽)와 파비엥 아시에 씨(가운데). 농민들이 직접 만든 공동농업지원협회(ATAG) 소속의 버지니 루설린 씨(오른쪽)는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두 사람이 참여한 가엑 설립에 도움을 주었다. ⓒ대산농촌재단
■ 청년에게 기회 열어준 ‘공동농업그룹’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농업 대국인 프랑스에서도 농업인은 줄어들고 있다. 2020년 기준, 60세 이상 프랑스 농민 중 66%는 후계자가 없다. 후계자가 없어 방치될 위험에 놓인 농가 수가 향후 10년 동안 20만 개에 달하리라 추정된다. 이런 현실에서 프랑스 공동농업그룹인 ‘가엑(GAEC, Groupment Agricole d'Exploitation en Commun)’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청년 창업농 두 명 중 한 명은 가엑 같은 공동체를 통해 농촌에서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만들고 있다. 가엑은 개별 소농이 토지·노동·자본을 공유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협동조합이다.
가엑은 1962년 만들어진 농업기본법에 근거한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농업의 현대화를 통해 식량 자급률을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농장주 한 명이 고용인 여러 명을 두거나, 소수의 농민이 대규모 영농조합을 만드는 것을 ‘현대화’의 옳은 방향이라고 여기지는 않았다. 프랑스 정부와 시민들은 소규모 협업농장을 대안으로 떠올렸고, 가엑은 그 대표적 모델 중 하나다.
프랑스 남부 타른에 있는 앙비알레 지역에서 축사를 운영하는 장 폴 누벨 씨 역시 7년 전 가엑에 가입했다. 1985년 도시에서 학업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누벨 씨는 할아버지의 소 농장을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프랑스 전통 소인 ‘블롱드 다키텐(Blonde d'Aquitaine)’을 사육하는데, 지역 내에서 처음으로 유통업자를 통하지 않고 소비자와 직거래를 시작했다. 누벨 씨는 타른 지역 내 육우 경진대회에서 수상하기도 한 인정받는 농업인이다.
누벨 씨와 아시에 씨가 속한 가엑에서는 프랑스 전통 소 60마리를 키우고 이들이 먹을 사료도 100% 자급한다. ⓒ대산농촌재단
2017년 4월, 연로한 어머니가 농장 운영에 더 이상 참여할 수 없게 되자 누벨 씨는 귀농한 30대 농부 세 명과 가엑을 시작했다. 가엑은 최소 두 명에서 최대 열 명까지 가입할 수 있는데, 개별 소농들도 가족농처럼 함께 연대해 농업 활동의 안전망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엑 설립에는 조건이 있다. 구성원 모두가 반드시 생산부터 가공, 유통 등 농업 활동 전반에 참여해야 한다. 각자 역할을 정확히 배분해 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농민협회 전문가와 함께 향후 그룹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하는 꼼꼼한 정관도 마련해야 한다. 농민의 선한 의지에만 기대 운영하는 조합이 아니다.
가엑은 특히 그동안 농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과 청년에게 기회를 열어줬다. 부부일지라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이지 않고 개별적으로 가엑에 가입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여성 농민도 재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다. 또 땅이 없는 청년에게는 안정적으로 농촌에 진입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누벨 씨와 함께 가엑에 들어온 파비 아시에 씨가 이런 사례다. 그는 농촌에 아무 기반이 없었지만, 공동 농업을 통해 누벨 씨와 함께 농사를 짓고 수익을 나눌 수 있게 됐다.
공동 자금으로 농업 장비를 구입하고, 가엑의 이름으로 보조금을 신청해 시설을 보수했다. 아시에 씨는 축사 위를 덮은 태양광 패널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엑의 자금(20%)과 EU 보조금(20%), 민간 전기회사의 투자 비용(60%)으로 재생에너지 패널을 설치했다. 태양광으로 발생하는 수익은 일정 기간 전기회사가 가져간다. 그 이후부터 생기는 수익은 모두 가엑의 자산이 된다. 협동조합의 지속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받은 셈이다.”
그는 도시에서 벌던 수익의 절반밖에 벌지 못해도 지금의 삶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사방에 펼쳐진 푸른 밀밭에서 어미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농장에서 20분만 걸어가면 그의 집이 나왔다. “아침에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점심에는 같이 밥을 먹고, 가족들과 오붓한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아시에 씨는 자신의 어릴 때 꿈이 농부였으며 지금 그 꿈을 이루었다고 뿌듯하게 말했다.
현장을 둘러본 유지황씨(경남 남해·팜프라 대표이사)는 한국의 농업 현장에도 가엑 같은 제도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반겼다. 유씨는 농촌에 정착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기반을 지원하는 ‘팜프라’를 운영한다. 본인도 일곱 번 귀촌에 실패한 뒤 5년 전에야 마침내 남해에 터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의 농촌은 청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주거·농지·시설·기계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 농지은행이 있다고 하지만 원하는 땅을 구하기 쉽지 않고 가장 힘든 초기 정착 1~5년 차에 수익모델을 만들기 매우 어렵다.” 이런 청년농에게 농업기술과 네트워크 등 다양한 자원을 가진 ‘어른’ 농장주가 함께한다면 어떨까? “내가 가진 것을 내어줄 의사가 있는 농업인과 청년이 만나는 것. 그리고 서로 돌봄을 나누는 것. 그것이 가엑이 지키려는 농촌의 가치 아닐까.”
가엑에 참여한 이후 아시에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였는지 물었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소에게 먹일 콩 사료 값이 5배까지 치솟아 힘들었던 때를 떠올렸다. 가엑 구성원들에게 ‘우리가 직접 콩을 재배하자’고 설득했다. 동네 사람들은 무모한 일이라며 말렸지만, 가엑 구성원은 그를 믿어주었고 8개월의 시도 끝에 마침내 콩 재배에 성공했다. 이제 그가 속한 가엑에서 운영하는 소 농장은 사료를 100% 자급자족한다. 아시에 씨는 만약 혼자 농사를 지었다면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비록 가족이 아닐지라도, 사회적 계약으로 맺어진 농업 공동체는 이처럼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는 농업의 씨앗이 되고 있다.
시사인 프랑스 사를라·알비·앙비알레 김다은 기자
세종보 철거하지 않으면 윤석열 정권 철거할 것“
"생명을 말살하는 개발독재 망령과 당당히 맞서 싸울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세계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인 22일 세종보 농성천막 앞 물속에 들어가 보 재가동 중단과 보 철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세종보·공주보 재가동 추진 중단, 금강 영산강 보 처리방안 복구, 국가물관리기본계획 원상 복구, 한강과 낙동강 수문 개방 등을 촉구했다.
이날 세종보 재가동 중단 등을 주장하며 보 상류 300m 지점에 친 농성천막에는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30여 명이 방문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천막 옆에 금강의 물떼새를 상징하는 솟대를 세우고, 농성장으로 내려오는 한두리대교 교각 벽에 벽화를 그렸다. 또 물속에 들어가 퍼포먼스를 펼치면서 기자회견문을 낭독
세종보는 죽어가는 강을 살릴 최전선"
이날 사회자를 맡은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세계 생물다양성 기념의 날에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까닭은 금강의 3개 보로 많은 생명이 죽은 자리이자, 보 개방으로 새생명이 돌아오는 곳이기 때문"이라면서 "세종보 담수 중단에 이어 4대강 16개 보를 전부 철거해서 생물다양성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문성호 대전충남녹색연합 상임대표는 "16개 보 중 가장 작고, 가장 먼저 개방된 세종보는 4대강사업으로 죽어가고 있는 강을 살릴 수 있는 최전선"이라면서 "세종보 재가동을 막고 금강이 굽이쳐서 바다와 만나게 할 것이고, 나머지 보도 반드시 해체해서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2018년 1월부터 전면 개방한 세종보 주변의 변화된 생태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보 수문을 완전개방한 후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인 흰수마자가 금강 본류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2012년 4대강 정비사업 완공 이후 발견되지 않던 흰수마자의 분포 범위가 상시개방이 길어질수록 넓어지는 것을 확인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인 미호종개도 보 완전 개방 후 2021년 3월부터 지류인 유구천, 지천에서 추가로 확인된다.
세종보와 공주보의 완전개방 후 강바닥에서 사는 수서곤충들과 조개류를 포함한 강바닥 저서동물 등 다양한 종들이 돌아왔다. 출현하는 평균 종수·개체밀도, 유수성 종수·개체밀도 비율 등 모든 면에서 증가했다. 보 개방으로 물웅덩이, 습지, 모래톱 등이 형성되어 서식공간이 늘어나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금개구리, 맹꽁이, 표범장지뱀, 남생이 등 양서파충류의 서식이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에 기자회견을 하는 까닭은..."
노 대표는 이어 "이렇게 세종보, 공주보, 백제보에서 생물종 다양성이 살아나고 있는데 현 정부는 작년 9월, 2021년 의결한 보의 해체 및 완전 개방 결정을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렸다"면서 "정부는 결정 방법론과 위원회 구성의 문제점을 들어 4대강 16개 보의 재가동을 결정했고, 다음달 초부터 재가동에 들어가는 세종보의 담수가 이루어지면 지난 6년 동안 회복되던 강의 자연성과 되살아나던 다양한 종들은 파괴되고 수장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이어 지난 4월 30일 이곳에 농성천막을 치고 24일째 지키고 있는 임도훈 보철거위한금강낙동강영산강시민행동 간사(대전충남녹색연합 팀장)는 환경부의 세종보 재가동 계획의 문제점과 윤석열 정권의 퇴행적인 물정책 수립 과정의 위법성 등을 설명한 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세종보가 다시 닫히면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이 완전히 잠기고 여기에 깃들어 사는 물떼새 등 모든 생명들이 수장될 것입니다. 역행하는 윤석열 정부의 물정책을 멈춰 세우고 정상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수중농성도 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을 호출하겠습니다. 이곳의 생명체들이 물에 잠기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곳으로 달려와 주십시오. 함께 물속에 들어가서 '금강은 살아있다'고 외쳐주십시오. 물 밖에서 생명을 죽이는 부당한 공권력을 고발해주십시오."
"세종보 재가동한다면, 용산 철거, 한화진 철거로 이어질 것"
▲ 환경운동연합은 세계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인 22일 세종보 농성천막 앞 물속에 들어가 보 재가동 중단과 보 철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날 신우용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한 현장 인터뷰를 통해 "오늘은 급하게 추진해서 환경운동연합 10여개 지역 활동가들이 지지방문을 했는데, 앞으로는 전국 50여개 지역으로 확대될 것"이라면서 "정부 의지대로 세종보가 재가동 된다면 4대강 16개 보가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기에 필사적으로 막으려 한다"고 밝혔다.
신 사무총장은 이어 "우리는 보 철거를 주장해 왔는데, 윤석열 정부가 이와는 정면 배치되는 결정을 하면서 세종보 수문을 닫는다면 윤석열 정권의 철거, 용산 철거, 한화진 철거까지 가야 한다"면서 '이런 일을 주도하는 '환경파괴부' 한화진 장관은 역대급 역사적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물속에서 '강물아 흘러라'라고 적힌 대형 걸개그림을 들고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들은 물속에서 '금강 생명 수호 결의문'을 낭독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이 결의문을 통해 "지금, 윤석열 정부의 물관리정책은 후퇴하고 있다"면서 "재자연화는 온데 간데 없고 오롯이 개발 망령에 토목쟁이가 되었다"고 비판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또 "정부와 개발독재 세력은 강의 주인이 될 수 없다"면서 "생명을 말살하는 개발독재의 망령과 당당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21일에는 경남환경운동연합 기자회견... "야당이 불통 정권 폭주 막아라"
▲ 경남환경운동연합은 21일 세종보 농성천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한편 전날인 21일에는 경남환경운동연합이 이곳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금강의 세종보가 열리면 낙동강도 흐른다"면서 세종보 수문가동 계획 백지화를 촉구했다.
곽상수 창녕환경운동연합 의장은 이날 발표한 기자회견문을 통해 "금강의 수문을 다시 가동하여 금강물을 가두게 되면 결국 금강도 낙동강과 같이 녹조 범벅의 강으로 변할 것이다, 금강 주변에서 살고있는 세종시민의 생명과 건강 또한 녹조독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 뻔하다"면서 "금강 세종보 수문 가동 중단 및 물정책정상화를 위하여 정권 견제의 역할과 책임이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물정책 정상화를 선언하고 불통 정권의 폭주를 막아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오마이뉴스
부산 남구 ‘이기대 풍경 독점’ 고층 아파트, 구청은 도장만 찍어 주나
IS동서 사업계획 승인 요청에
“법적 하자 없으면 승인” 원론만
시 심의 거치자 무사 통과할 판
이기대 입구인 부산 남구 용호동 973 일원 아이에스동서 고층 아파트 건립 부지. 김종진 기자 kjj1761@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부산 이기대를 가리는 고층 아파트 건립(부산일보 4월 8일 자 11면 등 보도) 관련해 아이에스동서(주)가 남구청에 사업계획 승인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행정 절차상 공공재 독점을 시도하는 건설사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기회지만 부산 남구청은 원론적인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남구청은 남구 용호동 973 일원 고층 아파트 신축과 관련해 아이에스동서의 사업계획 승인 신청을 받았다고 22일 밝혔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 전 마지막 행정 절차로 구청 승인이 떨어지면 아파트 착공이 가능해진다.
아이에스동서는 이기대 턱밑인 용호동 973 일원 부지에 고층 아파트 3개 동 건립을 추진해 논란에 휩싸였다. 이기대 공원이 자랑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이 아파트 입주민 소유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고 이기대 예술문화공원 조성, 용호부두 마리나 시설 계획 등 이 지역을 문화관광벨트로 육성하려는 부산시와 남구청의 청사진에도 엇나간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러한 논란에도 부산시 주택사업공동위원회는 심의를 거쳐 해당 사업을 지난 2월 조건부로 통과해 줬다. 뒤이어 남구청에 사업계획 승인 신청이 접수되면서 사업 향방의 키는 남구청이 쥐게 됐다. 그러나 남구청은 아이에스동서가 제출한 사업계획 내용이 법적 문제가 없다면 승인을 내줄 수밖에 없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보인다.
또한 사업의 큰 뼈대는 이미 부산시 심의를 통과했다는 이유로 이기대 조망권 등 도시 미관 문제를 다룰 재량권이 기초지자체에는 없다고 밝혔다. 남구청이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하는 사이 주민 권리는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시 주택사업공동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도시 경관 보호 조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맹비난하고 있다. 여기에 남구청까지 무사통과 식으로 승인을 내준다면 주민 의견이 전혀 담기지 않게 된다. 해운대구청 등 인근 지자체들이 최근 무리한 고층 건축물 사업계획 승인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점과도 대조된다.
남구청 건축과 관계자는 “사업계획 승인을 두고 외부 기관 등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고 위법 사항이 없다면 남구청 입장에서는 건설사에 승인을 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용호동 973 일원 고층 아파트 신축에 대한 사업계획 승인 절차는 반년 가량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계획에 보완할 사항, 위법 사항을 외부 기관과 관련 부서가 점검할 예정이다. 사업 부지가 도시공원인 이기대와 바다를 접하고 있어 해양수산부, 부산항만공사 등 평소보다 더 많은 기관과 부서가 협의 과정에 참여한다.
아이에스동서 측은 사업계획 승인을 받는 대로 부동산 경기에 맞춰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옛 미군시설에 부산 독립기념관 추진…적정성 찬반논쟁
캠프 하야리야 시절 지어진 건물, 지금은 시민공원 사랑채로 사용
- 市, 97억 규모 리모델링安 공모
- 전문가 “독립정신 담긴 부적절”
- 광복회 “일단 건립 되는게 우선”
‘부산 독립운동기념관(가칭)’ 건립에 나선 부산시가 부산시민공원의 시민사랑채를 리모델링해 기념관을 짓기로 결정해 논란이 제기된다. 이곳이 시민공원이 조성되기 전 캠프 하야리아 시절 미군을 위한 학교와 체육관 등으로 사용된 시설이어서 지역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고 추모할 공간으로 적절한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부산시가 캠프 하야리아 시절 미군을 위한 학교와 체육관 등으로 사용됐던 부산시민공원 시민사랑채 건물을 리모델링해 ‘부산독립운동기념관(가칭)’ 설립에 나서 논란이 인다. 사진은 국제신문 취재진이 22일 항공촬영한 시민사랑채 건물.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시는 올해 하반기 내 부산시민공원의 시민사랑채를 ‘부산 독립운동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는 설계 공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22일 밝혔다. 1980년대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민사랑채는 1층 건물로, 총면적은 2076㎡다. 시는 총 97억 원을 들여 이곳을 리모델링해 기념관으로 조성할 방침이다.
시는 2019년 광복회 부산지부, 부산 독립운동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부산발전시민재단 등으로부터 기념관 설립 요청을 받았다. 2021년에는 관련 조사·연구용역을 진행해, 해운대수목원 인근 매립지 등을 기념관 조성 최적지로 검토하다가 부산시민공원에 건립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꿔 시민사랑채를 리모델링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시민사랑채 건물은 전시실과 세미나실 등 시민공원을 상징하는 시민참여 공간으로 자리 잡았지만 과거 미군 자녀의 학교와 체육관 등으로 쓰였다. 이 같은 역사를 감안할 때 이곳이 부산 독립운동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독립유공자의 후손인 박시환 전 부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축물이라는 것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다. 독립운동기념관으로 만들 시민사랑채는 미국인이 만들어 쓰던 건물인데, 아무리 리모델링한다고 해도 미국의 뼈대를 두고 여기에 우리의 독립운동 정신을 온전히 담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지어진 지 50년이 다 돼 가는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은 예산대로 들이고, 민족의 자긍심도 무너뜨릴 이 사업의 방향이 맞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부산시는 시민사랑채 건물이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통한 기념관 건립이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김봉철 시 행정자치국장은 “관련 용역과 토론회 등을 거쳐 오랜 검토 끝에 시민사랑채 건물의 리모델링해 기념관을 설립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만큼 새로운 입지나 건축 방식 등 사업방향을 바꾸기가 어렵다”며 “다만 사업이 끝날 때까지 시민 의견을 경청하고 반영하겠다는 입장은 확고하다”고 설명했다.
기념관 건립에 앞장선 광복회 부산지부는 다소 아쉽지만 부지 선정과 예산 확보의 어려움을 감안할 때 하루빨리 기념관이 건립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광복회 부산지부 관계자는 “두 차례 토론회를 거친 만큼 이번에는 반드시 기념관을 설립해야 한다. 당연히 리모델링보다 새 건물을 지어 들어가는 게 맞지만 예산을 확보하려면 기념관 설립시기가 지연될 수도 있는 점을 생각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파리시, 10월부터 SUV 주차요금 3배 인상
도로 안전·공공 공간 확보·환경 위해
무거운 차에 더 많은 요금 부과 결정
한 스포츠 유틸리 차량(SUV)이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시내를 달리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파리가 21일(현지시간) 공공 공간을 확보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스포츠유틸리차(SUV)와 같이 무게가 나가는 차량의 도심 주차요금을 3배 올리기로 했다.
파리 시의회는 이날 회의에서 오는 10월부터 이같은 주차 요금 인상안을 적용하기로 승인했다고 프랑스 일간 르파리지앵이 보도했다. 주차 요금 인상은 배터리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전기차의 경우 2t 이상, 그 외 차량은 1.6t 이상의 SUV를 대상으로 한다. 파리시 거주자나 장애인 등록 차량, 영업용 차량은 주차 요금 변동이 없다.
현재 3.5t 미만인 차량의 주차 요금은 파리 중심부인 1~11구에서 6유료(약 8000원), 외곽인 12~20구에서는 시간당 4유로(약 6000원)다. 최대 주차 시간인 6시간을 다 채우면 중심부에선 75유로(11만원), 외곽에선 50유로(7만원)를 낸다.
10월부터는 요금 인상에 따라 중심부에선 시간당 18유로(2만6000원), 외곽에선 시간당 12유로(1만7000원)을 내야 한다. 최대 요금도 중심부 225유로(약 33만 원), 외곽 150유로(약 22만원)로 늘어난다.
파리시는 도로 안전과 공공 공간 확보, 환경 오염 대응 차원에서 주차 요금 인상을 추진해왔다.
시 당국은 지난 10년간 파리의 자동차 수가 꾸준히 감소했지만 자동차 평균 크기가 커지면서 도로나 공공장소에서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행자와 사고가 났을 때도 더 치명적이며, 무게도 무거워 일반 차량보다 더 많은 연료를 소비하기 때문에 더 많은 오염물질을 배출한다는 점도 주차요금 인상 이유로 꼽힌다.
앞서 파리시는 지난 2월 주민투표를 실시해 의견을 구했다. 투표 결과 주민 54.5%가 주차비 인상에 찬성했다. 다만 투표율은 5.7%에 그쳤다.
이날 시의회의 최종 결정이 나온 뒤에도 주차 요금 인상에 대한 반대 여론은 여전하다. 우선 대형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다자녀 가족에게 불리한 정책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주민 투표에 참여한 시민이 적었는데도 파리시가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별도의 의견수렴 없이 밀어붙였다는 지적도 있다.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한국, 기후난민의 나라가 될 수 있다
지구 온도 상승이 너무 빠르다. 2018년 11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유엔기후총회)에 참여한 200개 나라는 지구 평균 온도를 산업혁명 전 대비 2100년까지 1.5℃ 상승으로 제한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을 이끌어낸 기후과학자들은 1.5℃ 상승 제한이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 어린이날인 지난 5일 제주도에 강풍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면서 항공기 운항에 차질이 빚어지고 행인이 고립되거나 전봇대·나무가 쓰러졌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이날 제주도 산지와 중산간에 호우경보, 서부·남부·동부에 호우주의보가 각각 발효되면서 제주도 한 거리에서 강풍에 신호등이 꺾이는 사고도 있었다. ⓒ 제주소방안전본부
그런데 지난 7일 유럽연합(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는 지난 1년간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 대비 1.61℃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유엔기후총회 이후 아직 2100년이 되지도 않았는데, 단 5년 만에 1.5℃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이다.
지난 8일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전 세계 기후과학자 380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보도했다. 과학자들은 기후 대응 실패를 한 지구촌 정부들이 앞으로 5년 안에 연속적으로 일어날 극단적 기상 이변, 식량 생산 붕괴, 사회적 혼란에 압도될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한국 정부, 기후위기 대책보다 재난자본주의 선호
마지노선이 무너진 영향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5일 어린이날 하루 동안 제주 950mm, 전남 광양과 진도에 각각 198.6mm, 112.3mm의 비가 내려 그동안의 5월 강우 중 신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로 가면 올여름에는 2022년에 겪었던 강력한 폭우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7일 미국 CNN은 기후싱크탱크 '버클리어스'를 이끄는 과학자 제케 하우스파더를 인용해 "올해가 역사상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역대급 폭우와 폭염이 예보된 가운데 우리 정부는 그 대책을 세우고 있을까? 2022년에 그랬듯 정부가 기후 대책 대신 토건 대책을 세울 것 같아 걱정이다.
▲ 2022년 8월 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동 한 빌라 반지하방이 침수되면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9일 오전 참사가 발생한 반지하 빌라에서 물빼기 작업을 하는 소방대원이 방안을 살펴보고 있다. ⓒ 권우성
2022년 8월 8일로 돌아가 보자. 기상관측 115년 만의 최고치인 381.5mm의 폭우가 서울에 하루 동안 내렸다. 강남이 물에 잠겨 차량 1만 2000여 대가 침수된 날이다. 신림동에는 인근 하천이 넘쳐 저지대 반지하에 사는 가족 세 명이 참사를 당했다. 40대 자매와 13세 소녀의 죽음은 이웃 주민과 시민들의 마음을 비통하게 했다. 1주 전부터 기상청이 폭우 발생 위험성을 예보했지만 정부와 서울시가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아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참사 이틀 후인 8월 10일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공동 대책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록적인 침수 피해를 입은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 대책으로 '모아주택·모아타운' 재개발 사업을 발표했다. 상습 침수 또는 침수 위기 구역의 반지하 가구를 모아서 주택재개발 사업을 하겠다는 대책이다. 보도자료에서 오세훈 시장은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반지하 주택은 사라져야' 하는 것이 근본 대책이라고도 했다.
국토교통부와 오세훈표 모아타운으로 반지하는 이제 기후위기에서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을까? 모아타운은 노후 저층 주거지를 10만㎡(3만 평) 이내로 묶어 정비계획수립 등의 인가 절차를 생략하고 10층 제한 규제를 풀면서 15층까지 아파트를 신속하게 지을 수 있는 사업이다.
5월 16일 현재 서울시 홈페이지에 공개된, 모아타운 절차가 진행되는 대상지는 86개소 581만 6000㎡다. 그런데 여기서 침수 지역 반지하 주민에 대한 대책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시세 차익을 목표로 한 갭 투자, 반복되는 부동산 거래, 공공성을 내세운 민간개발 사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
모아타운 대상지의 한 시민은 '아파트 18평 받으려면 분담금이 3억~4억이다. 집 부수고 입주까지 5년 동안 어디서 살라고 이러는가?'라면서, '모아타운을 제발 그만하라'고 요청했다.
정부와 서울시는 반지하 침수 피해 주민들을 위한다면서 그 자리에 재개발 사업을 띄운 것이다. 기후 피해 지역에서 정작 피해자들은 사라지고 민간 개발사업자 또는 엉뚱한 이들이 혜택을 보는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처럼 재난과 위기, 전쟁 등을 돈벌이 기회로 삼는 것을 '재난자본주의'라 부른다.
2℃ 상승의 비극, 대규모 기후난민 발생 예상
▲ 2℃가 오른 몽골에 모래 폭풍 발생은 일상이 되었다. ⓒ 푸른아시아
재난자본주의는 정부의 기후행동 실패를 촉진하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 지구온도 2℃ 상승도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2℃ 상승이 언제 오는가이다. 지구 평균온도 1℃ 상승을 기록한 해가 2018년이다. 1.5℃ 상승까지는 단 5년 걸렸다. 매년 0.1℃가 오른 것이다.
이대로 가면 2℃ 상승은 빠르면 5년 뒤인 2029년에 올 수 있다. 2℃ 상승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가 대규모 기후난민의 발생이다.
▲ 2024년 2월과 3월 몽골 국토 60%를 덮은 대폭설. 몽골어로 조드라고 한다. ⓒ 푸른아시아
2℃ 상승을 알려면 몽골을 살필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서 온도가 가장 높게 오른 나라는 몽골이다. 24년 전인 2000년 즈음, 몽골은 이미 2℃가 올랐다. 필자도 2000년도 몽골에 가기 전까지 2℃ 상승이 무엇인지 몰랐다. 몽골에 가서야 그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필자가 몽골에서 사막화 방지 활동을 하면서 경험한 바다.
2002년 2월 몽골 설날 전후로 50cm의 눈이 내렸다. 그리고 영하 50℃가 20일 계속되었다. 눈은 빙하처럼 단단해졌고, 몽골 전역이 하얗게 빙하로 얼어붙었다. 겨울철 땅속의 풀뿌리로 연명해 온 양과 염소들은 앞발로 단단하게 얼어버린 눈을 긁다가 굶어 죽어 갔다.
단 20일 만에 1000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었고, 2만여 가구 10만여 명의 유목민들이 가축을 잃고 기후난민이 되었다. 그 후 2010년 1000만 마리, 올해 3월에도 380만 마리의 가축이 굶어 죽었다. 2017년 1월 5일 <가디언>은 몽골 인구 20%인 60만여 명이 기후난민이 되었다고 보도했다.
▲ 가축을 잃은 몽골의 유목민들은 고향을 떠나 울란바토르에 게르촌을 만들고 있다. 이런 기후난민이 현재 6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 푸른아시아
지난 1만 년 동안 조상 대대로 몽골은 유목의 나라였다. 그런데 2℃ 상승으로 유목은 위기에 처하고, 대신 대규모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조만간 지구 온도가 2℃ 오르면 어떻게 될까? 현재의 몽골보다 더 악화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해수면 상승이다. 우리나라도 문제가 된다.
2023년 2월 14일 해수면 상승을 주제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열렸다. 우리나라에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로 익숙한 안보리다. 여기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촌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생각도 못 했던 위기를 경험하고, 그동안 살아온 지역에서 '대탈출'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기후변화 태평양연합'의 사무총장 코럴 파시시는 '2050년까지 해수면이 최소한 1미터 상승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해수면 상승이 핵 안전 못지않은 안보 문제가 되고 있다.
▲ 해수면 상승이 예상되는 경기도 한강 하구에 있는 마을과 논 ⓒ 오기출
우리나라는 이와 같은 해수면 상승 경고를 인지하고 정책적으로 대비하고 있을까? 2015년 9월 부산시 출연연구기관인 '부산발전연구원'은 〈부산 연안역의 기후변화 적응방안〉 보고서에서 해수면이 1미터 또는 2미터 상승할 때의 시나리오를 비교적 자세히 제시했다.
연안역은 바다에서 500미터 이내의 육지를 말하는데, 부산은 연안역이 138.9㎢로 부산 전체 면적의 18%이고, 부산 인구의 25.3%인 84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 온도 1.5℃ 상승으로 해수면 1미터 상승 시 연안역 22%에 해당하는 30.3㎢가 침수되고, 2미터 상승 시 35%에 해당하는 49.3㎢가 잠긴다고 한다. 이럴 경우 수십만 명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 미국 기후싱크탱크 '클라이미트 센트럴'가 만든 2030년 우리나라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 지도로 붉은색이 해수면 아래로 들어가는 지역이다. ⓒ 클라이미트 센트럴
전 세계 해수면 상승을 연구하는 미국 기후싱크탱크 '클라이미트 센트럴'은 2030년도 우리나라 해수면 상승 시나리오를 지도로 만들고 있다. 2020년 9월 그린피스가 공개한 클라이미트 센트럴 자료 따르면, 2030년 한국 국토의 5.8%에 해당하는 5885㎢가 침수되고, 약 330만 명의 사람들이 재산을 잃거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보고들이 과장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기후 시나리오는 너무 잘 맞아 문제다.
기후위기로 재산을 잃는 사람들을 기후난민이라고 한다. 지구 온도 2℃ 상승과 해수면 상승으로 한국도 5년 후에는 몽골처럼 기후난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집단적으로, 대규모로 한꺼번에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를 미리 대비해야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그동안 기후 대책보다 재난자본주의를 선호해온 한국 정부가 앞으로 닥칠 문제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마이뉴스 오기출(ogc619)
사과, 배나무가 타들어간다... 열흘 만에 작년 피해면적 23%
13일 첫 발병 후 32곳 농가 확진
고온다습 환경, 병 확산 유리
확산 시 과일 물가 부담 커질 듯
14일 올해 첫 과수화상병 발생이 확인된 충북 충주 소재 과수원에서 방역당국이 매몰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충주시 제공
별다른 방제약이 없는 과수화상병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과수 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여름철 기상 여건 등 물가 불안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23일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현재 과수화상병 피해 농가는 32곳(22일 기준)으로 늘었다. 13일 충북 충주 사과 과수원과 충남 천안 소재 배 과수원에서 발병한 지 10일 만에 충북과 충남은 물론, 경기‧전북으로도 확산됐다. 피해 면적(25.5㏊)은 지난해 전체 피해 면적(111.8㏊)의 23% 안팎에 달한다.
과수화상병은 감염된 나무의 잎과 꽃, 가지, 과일 등이 불에 탄 것처럼 붉은 갈색이나 검은색으로 변하고 말라 괴사하는 세균성 병해다. 주로 사과와 배, 복숭아나무 등에서 많이 발생한다.
비상 대응에 나선 각 지방자치단체는 과수화상병이 인근 지역으로 추가 확산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총강수량은 많아 병원균 확산에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조재호 농촌진흥청장은 “병원균이 활성화하는 고온다습한 날씨가 지속되면서 과수화상병이 급격히 발생하거나 확산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2015년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과수화상병은 고온다습한 날씨가 이어졌던 2020년 가장 큰 손실을 끼쳤다. 당시 전국 15개 시군 744곳 농가에서 과수화상병이 나타났고 피해 면적 394㏊, 손실보상금은 약 728억 원에 달했다.
과수화상병이 계속 퍼질 경우 햇과일이 나오는 가을철에도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이날 ‘경제관계차관회의 겸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주재한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중동 정세 불안과 이상기후 등 물가 불확실성이 여전히 크다”며 “여름철 기상 여건과 어한기(6~7월) 등 물가 불안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병아리 추가 입식에 올해 190억 원을 지원, 여름철 수요가 증가하는 닭고기 공급을 늘릴 방침이다. 명태·오징어 등 비축물량(총 5,080톤)을 시중에 방출하고, 최근 값이 크게 오른 김은 3월 시작한 할인 지원을 다음 달에도 이어간다. 이번 주 통관이 시작된 김 할당관세 물량 825톤도 신속 도입한다. 김 차관은 “휴가철을 앞두고 숙박·여행·항공요금과 지방축제 물가의 편승 인상이 없도록 소관 부처와 지자체, 업계가 지속 점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세종=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멸종위기 참고래까지 잡겠다는 일본에 국제사회 "잔인한 결정“
일본 수산청, 상업 포경에 참고래 추가
일본 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강력 비판
일본이 멸종위기종 참고래를 상업 포경 대상에 추가하기로 하면서 국내외에서 비판이 일고 있다.
최근 AFP 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일본의 신규 초대형 포경 선박인 '간게이 마루'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항구에서 진수식을 마친 뒤 첫 출항에 나섰다. 9,300톤 규모의 간게이 마루는 참고래와 같은 거대 고래류를 포획 후 도살하고 운반, 보관하는데 용이하도록 제조됐다. 이 선박은 올해 말까지 200마리를 잡는다는 계획이다.
국제포경위원회(IWC)는 상업포경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본은 2019년 IWC에서 탈퇴한 뒤 고래잡이를 계속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아왔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밍크고래, 브라이드고래, 세이고래를 잡고 있는데 일본 수산청은 최근 포경 대상에 참고래를 추가했다.
멸종위기종 밍크고래. 한국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제공.
지구상에서 대왕고래 다음 큰 포유류로 길이가 약 23m에 이르는 참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멸종위기 취약종으로 분류돼 있다.
이번 결정에 대해 일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가 거세게 비판하고 나섰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자국 내 전문가들이 수산청의 계획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수차례 IWC 협상에 참석했던 코마츠 마사유키는 "아직 어떤 과학적 결과가 나온 게 없다"며 "(포경 대상에 참고래를 추가한 것은) 성급한 결정이었다"고 비판했다. 해양 거버넌스 연구소의 최고 연구 책임자인 사나다 야스히로도 "각국 정부로부터 비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참고래는 해양 생물의 상징이며, IWC가 올해 안에 수산청의 결정에 대해 심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고래류연맹(WCA)은 "간게이 마루의 규모를 감안하면 많은 고래류가 크릴새우를 먹기 위해 이동하는 남극에서 고래류를 포획할 계획을 세운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21세기에 상업 포경은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는 순전히 소수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비인도적인 관행이다"라고 비판했다.
이달 23일 일본 도쿄 아리아케 부두에 도착한 대형 포경 선박 간게이마루. 도쿄=AFP 연합뉴스
동물단체들도 일본의 결정에 우려를 나타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HSI)의 야생동물 프로그램 책임자인 아담 페이맨은 “"든 고래류는 기후 변화, 소음 공해, 선박 충돌, 어업 혼획 등 해양 환경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위협과 싸우고 있다"며 "일본이 간게이 마루를 출항시키는 것은 전세계적인 멸종위기종 보호 노력을 무시하는 잔인한 결정"이라고 전했다.
서보라미 한국HSI 정책국장도 "참고래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작살에 맞아 숨이 끊어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그 사이에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며 "일본의 참고래 포획 계획은 매우 우려스럽다" 고 설명했다.
고은경 동물복지 전문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1000원대 ‘서민 커피’ 사라지나…이상기후로 원두값 ‘껑충’
국제 커피 원두값 오름세 유지
이상기후에 따른 원두 작황 불황
업계 “가격인상 계획 없으나 예의주시”
정부, 할당 관세 연장 등 지원책 고려
저렴하면서도 양이 많아 ‘서민 커피’로 불리던 저가 커피들이 가격 인상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커피 원두가 작황 불황을 맞으면서 원두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다음 달 종료되는 커피 원두 할당관세추가 연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
24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이달 커피 원두 국제가격은 로부스타의 경우 ㎏당 3.67달러, 아라비카의 경우 파운드당 2.01달러를 기록했다. 두 원두 모두 지난달보다 가격이 소폭 하락했지만,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하면 각각 40.6%, 7.5% 올랐다. 2020년 원두값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진다. 로부스타의 경우 2020년 ㎏당 1.30달러, 아라비카는 파운드당 1.11달러로 이달과 비교하면 각각 약 세 배, 두 배 오른 수준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발표한 ‘4월 수출입물가지수 및 무역지수’에서도 커피 원두 수입 가격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커피 원두 수입 가격은 전월 대비 14.6%, 전년 대비 46.7% 올랐다. 특히 저가 커피에 주로 사용되는 로부스타 원두의 경우 전년 연평균 가격(2592달러) 대비 51.9% 비싸게 거래됐다. 이처럼 커피 원두값이 급격히 뛰어오른 것은 이상기후로 인한 불황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로부스타 원두 생산 1위 국가로 손꼽히는 베트남에선 고온으로 인한 가뭄으로 작황 상태가 좋지 않다. 또한 대체 작물 재배 등으로 원두 생산량이 줄면서 가격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아라비카 원두를 대부분 생산하는 브라질 역시 냉해와 커피 녹병(커피 잎을 말라 죽게 하는 곰팡이의 일종)으로 생산량이 줄었다.
지난 2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 SETEC에서 열린 ‘2024 서울 카페&베이커리 페어’에서 참관객이 산지별 원두를 고르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커피 원두값 상승에 따라 저가커피 프랜차이즈들도 커피값 인상 여부를 두고 고심 중이다. 앞서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인 더벤티는 지난달 22일 카페라테 등 메뉴 7종 가격을 200~500원까지 인상한 바 있다.
저가커피 업계 한 관계자는 “원두값이 오르고 있는 건 당연히 우려스러운 부분이지만, 당장 가격 인상 계획은 없다”며 “다른 저가 커피 브랜드들의 가격 인상 조치 등에 대해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다음 달 종료되는 할당 관세 연장 등 원두값 상승에 따른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지원책을 정부에 건의했다.
농식품부는 이디야 커피 관계자를 만나 커피 원두값 상승세에 따른 애로사항 청취와 원두 수급 동향 등을 점검했다. 이디야 관계자는 “현재 국제 커피원두 가격이 계속 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 지원 강화를 요청했다.
이에 양주필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관은 “커피 원두 가격이 기후 변화 등으로 변동성이 큰 상황임을 고려해 할당관세 추가 연장 등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변덕호 기자 ddoku120@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