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로수 가지치기 전 나무의사에게 진단받아야 2. 지구 가열화↑↑↑…곳곳에 폭염·가뭄·폭우 3. "우리도 케이블카 사업하겠다"...강원도내 6개 시군 도전 4. 도시에서 ‘이타적 화단’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5. 아카시아꽃 만발한 5월... 벌이 안 보인다 6. 올리브 생산대국' 이상기후에...올리브유 30% 넘게 올랐다 7. 녹색-정의당’ 이후의 생명정치
8. 지역사랑 탄소 기부로 고향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9. 탄소중립 핵심 대안? 멈춰 선 한국 해상풍력 10. 91% 쓰고 9% 남겨주려는 윤석열 정부... 기막힌 상황
11. 우리는 정말 기후 위기를 직면할 준비가 되었나 12. '文정책' 5년만에 뒤집어…환경부, 댐 신설 내달 발표 13. 구포역을 경의선 숲길처럼… 서부산 관광 1번지 꿈꾼다 14. 누군가 버린 고양이가 부른 멸종 비극…‘새들의 천국’이 위험하다 15. 가덕신공항 공사, 지역업체 참여 길 대폭 열렸다 16. 보존 대책 빠진 반딧불이 축 17. “동물 보호” vs “생활 피해”… 길고양이 급식소 두고 민원 충돌
18. 이제는 해안도 자연에 돌려줄 때... 이 해변의 변신 19. 핵쓰레기 무제한 용인하는 특별법 반대" 20. 올 여름도 펄펄 끓고 폭우 빈번..AI로 홍수특보 발령
가로수 가지치기 전 나무의사에게 진단받아야
앞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은 가로수의 체계적인 조성·관리를 위해 매년 2월 말까지 '연차별 가로수계획'을 수립해야 하며 계획에 제외된 가로수 정비 때는 나무의사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산림청은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도시숲 등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6월 17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10일 밝혔다.
이번에 입법예고된 개정안에는 산림청장이 10년마다 수립·시행하는 '도시숲 등 기본계획'에 도시숲의 병해충 관리와 안전관리 및 재해예방, 국민이용·편의 증진을 위한 시설에 관한 사항 등이 명문화됐다.특히 지방자치단체장은 가로수의 체계적인 조성·관리를 위해 매년 2월 말까지 연차별 가로수계획을 수립하고 도시숲 관련 전문가, 주민대표,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가로수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제거·가지치기 대상 수목은 잘못된 가지치기로 인해 생육이 훼손되거나 도시경관을 해치지 않도록 사업 실행 전 나무의사에게 진단조사를 받아야 한다.
산림청은 이번 법령개정을 통해 합리적인 가로수 관리 체계를 마련하고 공원·녹지·학교숲 등의 생태적 건강성을 강화해 쾌적한 생활환경의 조성·관리에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도시숲법 개정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전자관보와 국민참여입법센터 누리집에서 확인하면 된다.
개정안에 대해 의견이 있는 경우 다음달 17일까지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온라인으로 의견을 등록하거나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에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된다. 개정안의 시행은 7월 24일부터다.
김주열 산림청 도시숲경관과장은 "도시민의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도시숲을 확대하는 한편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국민·전문가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지속해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지구 가열화↑↑↑…곳곳에 폭염·가뭄·폭우
지구 가열화의 끝은 어디일까.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가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목소리만 높일 뿐 온실가스는 줄지 않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되려 증가하고 있다. 지구 평균기온이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는 폭염, 가뭄, 폭우 등 이상기후로 지구촌을 침범하고 있다. 곳곳에서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브라질은 최근 홍수로 지금까지 12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인도에서는 지난 4월 47.2도라는 기록적 기온을 보이면서 폭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올해 4월 지구 지표면 평균기온. 산업화 이전보다 1.58도 더 높았다. 일시적이긴 한데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약속한 '1.5도 방어선'이 무너졌다. [사진=C3S]
유럽의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 분석 자료를 보면 올해 4월이 그동안 가장 더웠던 4월로 기록됐다.올해 4월 지구 지표면 평균온도는 15.03도로 1991~2020년 평균보다 0.67도 높았다. 그동안 평균기온이 가장 높았던 2016년 4월보다 0.14도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올해 4월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보다 1.58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전 세계 각국은 프랑스 파리에 모여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일시적 현상이긴 한데 이 방어선이 무너진 셈이다.
지구 가열화가 계속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의 많은 지역에서는 극심한 폭염, 남아프리카에서는 가뭄, 브라질 남부 등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알바로 실바(Alvaro Silva) 세계기상기구(WMO) 기후 전문가는 “극심한 날씨와 기후 재난 등은 따뜻한 기온에서 더 자주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폭염과 폭우가 ‘가열화된 기온’과 무관치 않다는 거다. 실바 박사는 “해수면 온도가 기록적으로 높아지면서 대기에 더 많은 열과 습기를 보태면서 상태가 악화한다”고 분석했다.
2024년 해수면 온도. 바다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에 열과 습기를 보태면서 폭염과 폭우로 이어지고 있다. [사진=C3S]
C3S 분석 자료를 보면 올해 4월 남위 60도~북위 60도의 전 세계 해수면 온도는 21.04도로 해당 달의 기록상 가장 높은 값을 기록했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인도에서는 4~5월 초에 반복적 폭염을 겪었다. 인도 기상청은 주의보와 경고를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4월 30일 웨스트벵갈에서는 최고 기온 47.2도를 보였다. 방글라데시는 폭염 안전 예방책으로 학교가 문을 닫기도 했다.
태국도 예외는 아니다. 태국 기상청은 지난 4월 27일 므앙 펫차분에서 44.1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미얀마에서는 48.2도의 새로운 최고온도가 기록됐다.브라질 남부에서는 홍수로 지금까지 12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을 보면 이번 폭우로 126명이 숨지고 34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141명은 실종 상태이다.
브라질 남부에 폭우와 홍수가 발생해 지난 7일(현지시간) 포르투알레그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침수 지역 주민들을 배에 태워 대피시키고 있다. [사진=뉴시스]
WMO는 “한 달 또는 1년 동안 (일시적으로) 산업화 이전보다 평균기온이 1.5도를 넘어섰다는 것은 위험할 정도의 초기 징후”라며 “10년 단위 기온 측정에서 산업화 이전보다 1.5도를 넘어서면 지구가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징후가 있을 때 ‘사전약방문’이 있어야 하는데 모두 ‘이 정도는 괜찮다, 괜찮다’ ‘지구 날씨는 늘 오르락내리락 반복했다’는 말만 내뱉으면서 ‘사후약방문’이 될 위험성을 경고했다.
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우리도 케이블카 사업하겠다"...강원도내 6개 시군 도전
강원도민의 숙원 사업인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40여년의 난관을 뚫고 추진되자 도내 6개 시군도 케이블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12일 강원자치도 등에 따르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양양군 서면 오색리 466번지와 설악산 대청봉 왼쪽의 끝청 해발 1430m 지점을 오가는 3.3㎞ 길이의 케이블카를 놓는 사업이다.1982년 처음 추진됐으나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와 환경단체들의 반대에 부딪쳐 41년동안 추진과 무산이 반복됐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대선 후보 시절 오색 케이블카 사업을 강원지역 1호 공약으로 내세웠고 그해 5월 윤 정부가 출범한데 이어 7월 김진태 강원지사가 취임하면서 지난해 첫삽을 뜰 수 있었다.여기에 지난 3월 도청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윤 대통령이 “앞으로도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 곳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더 건설하겠다”고 밝히면서 원주와 강릉, 삼척, 평창, 철원, 고성 등 6개 시군이 케이블카 사업에 적극 달려들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지자체는 강릉시다.
강릉시는 평창군과 함께 강릉-평창 관광케이블카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별도로 주문진읍 소돌항과 영진해변을 잇는 북강릉 케이블카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근 강릉시와 평창군은 적정 노선을 확정한데 이어 최근 주민설명회를 열고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원주시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모델로 치악산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설치 지점은 반곡역~치악산 정상이다.
삼척시는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대이리 동굴지대를 중심으로 케이블카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대이리 동굴지대는 환선굴(대이동굴)을 중심으로 1996년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다.
중부전선 최북단에 위치한 철원군은 철원 평야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금학산 정상(947m)까지 운행하는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준비중이다. 강원특별법을 통해 규제가 완화된만큼 군(軍) 유휴시설을 활용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동해안 최북단 고성군은 2021년부터 설악산 울산바위 케이블카 설치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토성면 신평리와 원암리 일대를 출발해 울산바위 성인대 잇는 총연장 1.3㎞의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계획을 세운 상태며 산림청 등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강원자치도는 오는 6월부터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산림규제를 완화하는 산림이용진흥지구 제도를 본격 시행할 계획이며 산지 규제를 완화해 케이블카 등 관광산업과 치유산업 등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김진태 강원자치도지사도 민생토론회 당일 기자회견에서 "6월부터 시행하는 강원특별법 산림이용진흥지구와 관련해 시군이 요청할 경우 제2, 제3의 오색케이블카가 가능하도록 강원도에서 적극 검토하겠다”고 환영한 바 있다.
kees26@fnnews.com 김기섭 기자
도시에서 ‘이타적 화단’을 가꾸는 사람들이 있다
삭막한 빌라촌서 마주친 ‘비밀의 화원’ 누구일까, 여기 마음 쏟은 이
쓰레기 더미만 보이던 주택가빌라 담장에 모란꽃이, 건물 사이에 흰 백일홍이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활짝누군가 공 들여 돌본 흔적아직 인류애가 있구나 느끼게 해나도 현관에 화분을 내놓아볼까
“오늘은 어디로 가지?”
매일 똑같은 동네에서 똑같은 고민을 한다. 어디로 갈지는 내 맘이다. 지나가는 어르신이 나를 힐끔 본다. ‘저 처자는 벌건 대낮에 일도 안 하나’ 하는 눈빛이다. ‘나는 프리랜서라고요!’ 속으로 항변해 봤자 소용없다. 한낮에 ‘추리닝’을 입고 어디 뭐 재밌는 거 없나 휘적휘적 돌아다니는 모습이 누가 봐도 100% 동네 백수다.
오르막길을 올라 동네 뒷산 입구 쪽으로 가본다. 이곳에는 5층짜리 나지막한 빌라들이 여러 동 있다. 빨간 벽돌을 쓴 것을 보니 1990년대 이전에 지어진 것 같다. 담장에 걸린 알록달록한 빨래, 개똥을 버리지 말라는 분노의 경고문을 눈으로 빠르게 훑고 지나간다.
“응?”
뭔가 대단한 붉은 것이 시야에 살짝 스쳤다. 지나가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몸을 획 돌렸다. 이럴 수가. 모란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모란이다.
홀린 듯이 가까이 가보았다. 빌라와 빌라 사이의 작은 공간, 한 평도 안 될 공간에 모란이, 아니 모란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하나, 둘, 셋…. 만개한 모란이 족히 40송이도 넘는다. 모란은 운현궁에서 본 것보다 크다. 158㎝인 내 키를 훌쩍 뛰어넘는다. 보통 모란은 기껏해야 80㎝ 정도의 나지막한 것만 봤는데 이건 내가 모란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란이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다. 압도적이다. 자주색에 가까운 붉은색의 모란 꽃잎은 마치 벨벳처럼 부드러운 윤기가 흐른다. 가운데 펼쳐진 노란 수술은 마치 왕족이나 달았을 법한 화려한 브로치 같다. 그리고 누가 모란이 향기 없는 꽃이라고 했나? 바람이 불 때마다 진하고 시원한 향기가 코에 가득 들어온다. 나는 벌써 10분 동안 이 앞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란을 이 동네 사람만 봐도 되나? 관광지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옆을 보니 말려 있는 긴 호스가 보인다. 물이 가득 담긴 대야도 보이는데 아마 빗물일 것이다. (정원사들의 말에 따르면 식물에 제일 좋은 물은 빗물이라고.) 모란나무 아랫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가 제법 굵고 단단하다. 멋지게 가지치기가 되어 있고, 지지대로 단단히 묶어 수형을 잘 살렸다. 운현궁 모란나무 못지않게 사랑과 관리를 받는 녀석인 것 같다. 모란은 정말 잠시 핀다고 한다. 일주일도 채 꽃을 못 본다고 하는데 그 잠깐을 위해 누군가는 1년간 공을 들였다. 자기만 보려고 울타리를 치지도 않았다.
이번엔 언덕 아래로 내려가 본다. 한참을 내려가 지하철역으로 가는 골목에 또 모란이 보인다. 아까 본 압도적인 모란과 달리 쓰레기가 잔뜩 쌓인 골목길 철창 너머 낡은 플라스틱 통에 피어 있다. 주변 환경은 아름답지 않지만, 모란의 자태를 보면 황송하다. 그냥 봐도 되는 걸까? 무릎이라도 꿇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동네를 관찰하며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어디에 무슨 화단이 있는지 빠삭해졌다. 새절역 근처의 한 교회 앞에는 아치로 만든 장미화단이 있다. 여름엔 풍선꽈리도 열린다. 그 근처 어느 왕의 이름을 딴 부동산 앞에는 벼를 키우고 있다. 최근에 새로 도색을 한 나홀로 아파트와 붉은 벽돌의 빌라 사이에는 하얀 백일홍이 피는 한 평짜리 정원이 있다. 이 모든 곳은 관에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땅 한 뙈기를 내버려 두지 못해 가꾸는 것이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민간정원? 셀프화단? 주민 자율화단? 갑자기 ‘이타적 화단’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가 사는 새절역과 응암역 사이는 빌라로 빼곡히 차 있다. 예전에는 주택이 많았던 곳인데 점차 다세대와 빌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빌, ○○맨션, ○○하우스, ○○빌리지, ○○빌라, ○○주택, ○○파크맨션…. 빌라촌은 삭막하다. 빌라 입구에 심어진 나무는 십중팔구 말라 죽어 있고, 그게 아니면 모가지가 싹둑 가지치기 되어 있기 일쑤다.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나무 밑에 담배꽁초가 수북한 걸 보면 인류애가 사라진다. 좁은 골목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지나가고 집 앞마다 먹다 남긴 배달 용기며 부서진 가구 같은 쓰레기가 대충 버려져 있다. 아름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S빌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빌라 앞은 다르다. 이 동네에서 가장 대단한 화단이 그곳에 있다. 식물 한 가지만 빼곡하게 심는다든지 일렬로 팬지나 꽃양배추 같은 것을 배치하는 흔한 관공서표 화단과는 차원이 다르다. 2m가 넘는 새하얀 산수국 나무와 싱싱한 동백나무, 그보다는 작지만 제법 큰 철쭉나무와 단풍나무가 가운데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는 가운데 화단은 완벽한 색상의 균형을 이룬다. 중간 부분은 장미와 수국과 철쭉이, 아랫부분엔 샐비어, 매발톱꽃 등 작은 꽃들이 자리한다. 화단의 빈 곳은 족두리꽃과 접시꽃, 남천이 메꾸고 있다. 화단에 심어진 꽃 종류만 해도 족히 30가지가 넘는다. 봄에서 가을까지 번갈아 가며 꽃을 피운다. 시들시들한 꽃은 하나도 없다. 다들 완벽히 케어받은 상태다. 매일 꼼꼼히 관리하지 않으면 이런 상태는 절대 될 수 없다.
궁금해서 인터넷 지도로 거리뷰를 찾아보았다. 2010년 중반까지도 이곳은 주택이었다. 그러다 2013년 후반 빌라 분양이 시작되었다. 이때는 건설사에서 대충 만들어놓은 허접한 철쭉 화단이 있었다. 그것도 반쯤 말라 죽어 있다. 그러다 2017년의 거리뷰를 보니 내가 아는 그 화단이 시작되고 있다. 3년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대체 누가 허접한 화단을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붙인 걸까? 2017년 거리뷰에서 보이는 철쭉, 접시꽃, 장미, 산수국은 지금은 두 배 이상 커졌다.
S빌 화단이 있어 이 길을 지날 용기가 난다. 누군가가 뱉은 가래침과 반쯤 남은 채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 찢어진 과자봉지와 그걸 먹겠다고 달려드는 새까만 비둘기들을 볼 때 나는 이 화단을 생각한다. “조금만 더 가면 S빌 화단 나오니까 참고 가자.” 그리고 S빌 화단에 도착하면 그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다. 마치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시달리다 휴게소에 들른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누군가가 온 정성을 다해 만들어놓은 최고의 아름다움을 공짜로 눈에 담고, 마음에 채우고 다시 출발한다.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내 바로 옆으로 스쳐 가도 오늘은 화내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도시의 비좁은 틈에 꽃을 기른다. 먹을 수도 없고 돈이 되지도 않는 꽃을 정성스레 기른다.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공유하기까지 한다. 나는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그 계절의 꽃을 볼 수 있다. 누군가가 마음을 쏟은 화단을 보면 ‘아, 세상에 아직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들이 있다니’ 하며 이 사회에 대한 믿음마저 샘솟는다. (오버라고? 진짜다.)
한때 지자체들이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해 골목 중간중간 화분을 놔두곤 했다. 화분이 있으면 사람들이 거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라 기대했다. 퍽이나. 사람들은 화분에 담배꽁초를 눌러 끄고, 먹다 남은 커피를 버렸다. 곧 화분까지 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화분만 덜렁 놔두고 관리를 하지 않으니 유지될 리가 없다. 그런데 아주 적은 확률로 성공한 곳도 있다. 그 앞에 사는 사람이 직접 돌본 곳이다. 꽃이 죽으면 새로 심고, 꽁초를 버리면 하나하나 치우면서 자신만의 화단으로 만들었다. 이런 화단은 쓰레기가 범접하지 못할 아우라를 내뿜는다. 쓰레기를 들고 갔다가도 화단의 기세에 밀려 ‘죄송합니다’ 하고 물러날지도 모른다.
한참 동안 동네의 이타적 화단을 돌아보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는데 건물 앞에 활짝 핀 노란 꽃 화분이 있다. 아래엔 메모도 붙어 있다. “꽃이 피었어요. 같이 보고 싶어 잠시 여기에 둡니다.” 천사가 다녀갔나? ‘같이 보고 싶어서’라는 말이 머리를 때린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집 안으로 들어와 베란다에 놓인 수국 화분을 본다. 종로꽃시장에서 사 온 지 한 달째 파란색 수국이 피어 있다. 내일은 나도 현관에 화분을 내려놓아 볼까?
▶이다/일러스트레이터/경향
아카시아꽃 만발한 5월... 벌이 안 보인다
양봉꿀의 약 70% 아카시아꽃에서 채취하는데 꿀벌 없어 양봉업자 울상
동구 밖 과수원 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 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 과수원길
동요 '과수원 길'의 가사다. 5월, 온통 하얀 세상이다. 가는 곳마다 아카시아(아까시나무) 꽃이 만발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는 특성 때문에 길거리나 산, 들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달리 꽃향기가 강해서 멀리서도 아카시아꽃이 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5월의 전령사다.
4월에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눈꽃이 날리는 것처럼 보였다면 5월에 아카시아꽃이 떨어지는 모습은 싸라기눈이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카시아꽃은 꽃이 맺혀있을 때는 꽃송이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꽃이 필 때쯤은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아래쪽으로 향한다. 같은 가지에서 피는 꽃도 마디와 가까운 곳이 먼저 피고 끝으로 가면서 피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꽃은 탐스럽고 향기까지 좋지만 너무 흔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꽃이다. 꽃은 흰색이 주류고 보라색부터 분홍, 노랑 등 다양하다.
▲ 아카시아꽃 가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하얀꽃
▲ 붉은 아카시아꽃 강릉시 구정면 도로변에 피어있다(2024.5.7).ⓒ 진재중
5월이면 어김없이 아카시아꽃이 피었다. 잎을 한 장씩 따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을 따다 먹기도 했다. 초등학교 등하굣길을 걷게 했던 추억의 꽃이다.아카시아꽃 필 때면 벌은 항상 동반자가 되었다. 꽃 반 꿀벌 반일 정도로 벌이 많았다. 윙윙거리며 꿀을 모으던 벌 몰래 꽃잎을 따다가 벌에 쏘인 경우도 다반사였다.
그런데 올해 5월 초에 꽃이 피기 시작한 이후 10여 일을 아카시아꽃에서 벌을 찾았지만 한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지금은 벌을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고 찾을 수도 없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자리 잡고 있다,
김희석 반려식물연구원 원장(조경학 박사)은 "올해처럼 아카시아꽃이 화사하게 만개한 경우가 없었는데 벌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벌은 꽃과 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수정을 해줘 유실수를 포함한 농작물들이 열매를 맺게 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매개체가 사라지고 있어요. 기후 변화로 농작물이 피해를 보고 있는데 꿀벌마저 사라진다면 농업이 위기입니다"라며 꿀벌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양봉하는 분들은 아카시아꽃 필 때가 가장 바쁜 시기다. 꿀의 약 70%를 아카시아꽃에서 채취한다. 과거에는 양봉업자들이 개화 시기에 맞춰 제주도에서 민통선까지 트럭에 벌꿀 통을 싣고 이동하며 꿀벌을 채취했다. 아카시아나무 아래 터를 잡고 망을 뒤집어쓴 양봉업자의 정겨운 모습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양봉업 하는 김상록(72)씨는 "벌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 양봉업 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을 잃는 것입니다. 벌에 의지해 벌과 함께 살아왔는데 우리 식구와 다름없는 벌이 사라졌어요, 살길이 막막합니다"하고 한숨을 내쉰다.깊은 산속에서 아카시아 밀원을 채취해 지인들에게 선물했던 한 스님도 "전에는 20여 통을 했는데 지금은 벌이 없어 2통밖에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것도 양이 가득 차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수년 전부터 꿀벌이 집단 폐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벌이 겨울을 나는 과정에서 벌통으로 돌아오지 않거나 집단으로 죽어 문제가 되고 있다. 양봉업자들은 2021년부터 최근까지 벌의 집단 폐사로 어려움을 겪는데 지난해 겨울에는 전국 2만 7000여 양봉농가의 17%에 달하는 농가가 집단 폐사의 피해를 보았고 폐사한 꿀벌이 80억 마리에 이른다(관련기사: "올해 꿀벌피해 가장 심각... 정부 속시원한 해결책 없나" https://omn.kr/272t4).
집단 폐사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여러 전문가가 노력하지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벌의 생태교란, 응애류와 말벌 등 천적 증가, 바이러스 등 병충해 발생, 농약 중독 등 여러 원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 꿀벌
벌은 인간의 작물 1500종 중에서 약 30%의 수분을 책임진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세계 식량의 90%를 담당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무려 71종의 수분을 돕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꿀벌이 없으면 과일, 채소, 곡물 성장에 타격을 주고 생산량이 줄어들게 되면 식량 위기가 닥친다.
강릉에서 딸기 농사를 하는 이영돈(66)씨는 "수분을 100% 벌에 의존하는 딸기 원예농가로서는 꿀벌이 줄어들면서 꿀벌 임대가격 상승도 걱정이지만 꿀벌 자체를 구하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호박벌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호박벌은 꿀벌보다 수명이 짧아 딸기를 재배하는 데 어려움이 큽니다"라고 하소연 한다.
아인슈타인은 "벌이 땅에서 사라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종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만큼 주변 환경에 민감한 꿀벌은 환경지표이기도 하다. 꿀벌이 활발하게 서식하는 곳은 생태계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 변화와 인간의 무분별한 농약 사용으로 꿀벌은 멸종 위기에 내몰렸고 이 상태가 지속돼 꿀벌이 멸종한다면 인류는 곧 생태계 파괴와 식량위기에 따른 영양실조를 겪게 될 수 있다고 한다.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꿀벌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지켜야 하겠다. 꿀벌이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곤충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사라지는 것이다.
오는 20일은 '세계 꿀벌의 날'이다. 이날은 2017년 12월 20일 국제연합(UN)이 전 세계의 식량 생산과 생태계 보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꿀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정했다.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질 것이다"라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됐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활짝 핀 아카시아꽃에 벌들이 춤을 추며 큰 소리로 윙윙대기를 기대해 본다. 진재중(wlswownd) 오마이뉴스
올리브 생산대국' 이상기후에...올리브유 30% 넘게 올랐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물가 인상 소식, 이번에는 올리브유입니다.
최대 생산국인 스페인을 포함한 남부 유럽의 이상기후로 국제 올리브유 가격이 오르면서 국내 업체들도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섰습니다. 먼저 인상에 나선 건 CJ제일제당과 샘표입니다.이달 초에 각각 30% 넘게 가격을 올렸고요.사조대림과 동원 F&B도 이달에 올리브유 가격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번 인상은 날씨 문제로 농작물 생산이 줄면서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 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요. 앞서 서아프리카에서 카카오 생산이 줄면서 롯데웰푸드가 초콜릿 제품 가격을 올리기로 했던 것과 같은 사례입니다.
세계 최대 올리브유 생산국인 스페인이 가뭄 등 이상기후에 시달리면서 국제 올리브유 가격은 1년 사이에 40% 넘게 올랐고요. 그리스와 이탈리아, 튀니지와 같은 다른 올리브유 생산국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올리브유가 오르면 자연히 올리브유를 쓰는 외식업계에서도 인상 움직임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100% 올리브유'를 내세웠던 치킨 업체 BBQ는 이미 지난해부터 해바라기유를 섞어 쓰고 있습니다.
장을 보러 간 사람들을 한숨짓게 하는 물가 고공행진,정부가 식품업계에 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효과는 없는 분위기입니다./YTN 이지은 (jelee@ytn.co.kr)
녹색-정의당’ 이후의 생명정치
총선이 끝났다. 녹색-정의 연대도 끝났다. ‘적-녹 연대’, 진보정치와 녹색정치의 연대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나에겐 기묘한 조합이었지만, 국회의원 한 석에 대한 갈망과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적 선택으로서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녹색당은 운이 없었다. 2020년 총선에서는 기회를 놓쳤다. 2024년 총선에서는 기회가 없었다.
적-녹 연대는 이제 그만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나에게 4.10총선의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였다. 첫째, 기존의 보수/진보의 구도를 넘어서 차원변화의 ‘변이’가 출현할 것인가? 둘째 정동(情動)의 생명정치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셋째, 양대 진영정치 사이 녹색정의당은 생존할 수 있는가?총선은 끝났고, 결과는 명료하다. 첫째, 유의미한 변이의 신호는 목격되지 않았다. 둘째, 조국혁신당의 대성공을 통해 ‘정동정치’의 힘이 입증되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셋째, 녹색정의당은 생존에 실패했다. 녹색당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녹색정의당의 실패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선거 구도상 충분히 예측되었다는 것이다.이번 총선을 통해 ‘적-녹 연대’는 강제로 작별을 당했다. 적-녹 연대의 효과와 잠재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꾸로 생각할 수도 있다. 녹색정치가 ‘진보-보수 구도’와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갈 한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녹색당도 민주노총과 연대할 수 있다. 개혁신당과도 정치적 거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보수의 프레임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녹색정치의 퇴색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진보는 녹색“이라는 슬로건은 녹색의 오염에 가까웠다. 그리고 적지 않은 순수한(?) 생태, 생명, 환경친화적 유권자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기후격변의 현실에서 녹색은 분명 ‘진보적’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녹색정치는 성장, 발전, 직선적 진보의 근대적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것 아닌가? 더욱이 ’선거 전략‘으로서도 그 효과가 의문이었다.
한국의 녹색정치는 이제 ’진보/보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 프레임의 차원변화가 요구된다.(물론 ‘녹색=진보’도 ‘녹색은≠아니다’도 하나의 프레임이다.)
16일 국회에서 열린 녹색정의당 회의에서 장혜영 원내대표 직무대행이 발언을 하고 있다. 2024.4.16. 연합뉴스
정치의 차원변화: ‘진리정치’에서 ‘생명정치’로
여기서 ‘차원 변화’란 세계관의 변화나 핵심 가치의 교체가 아니다. 세계관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의 변화를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문명사적 전환의 한 측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지금까지의 인류문명은 동·서를 막론하고, ‘정치적 진리’를 물었다(‘정치적 올바름’이라고 말해도 좋다.).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그러나, 생명정치의 관점에서는 ‘정치’ 역시 사회-우주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세상의 다른 모든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정치’라는 사회적 체계 역시 근본적으로 ‘공(空)’한 것이다. 구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근대적 정치체계 역시 종식될 수 있으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질 수도 있다.
프랑스의 생명철학자 질 들뢰즈를 빌어 말하면, 이제부터 철학은 ‘진리의 사유’가 아니라 ‘생명의 사유’가 되어야 한다. 정치에 빗대어 말하면, 이제부터 정치는 ‘진리의 정치’가 아니라, ‘생명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생명정치는 ‘진리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는다. 특정한 이념과 올바름을 앞세우며 일상의 삶과 사회적 행위를 재단하지 않는다. 생명정치는 삶의 곤고함과 생명의 고통을 알아차리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을 비롯한 ‘생명의 안녕’과 ‘생명의 창조적 진화’를 지지한다. 생명의 감응에 바탕을 둔 ‘우주-사회적 서사’의 공동창조와 실험을 소망한다.
오늘날 다수의 청년들은 ‘삶의 의미’를 의심한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관찰되는 국제정치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가치가 ‘무가치’해졌다. 탈진실의 시대를 실감한다. 민주당의 ‘민주주의’도 ‘국민의 힘’도 ‘자유’도 더 이상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이야기한 대로, 민주의 대한민국도 자유의 대한민국도 ‘상상의 질서’인 게 틀림없다. 민주주의(democracy), 즉 ‘민중의 지배’도 시효를 다해가고 있는지 모른다.
녹색정치는 그 어느 정치집단보다 ‘진리정치’에 진심이었다. 그 어느 정치집단도 따라올 수 없는 ‘선의(善意)의 정치’를 해왔다. 그러나, 의도와 관계 없이 기후격변의 현실을 판정하고, ‘정치적 올바름’와 ‘정체성의 정치’로 수많은 정치를 재단하며 ‘아/타’를 섬세하게 구별했다.
그런데, 민주당과 국민의 힘을 포함해 기존의 정당들의 이익정치는 ‘흥미/이익(interest)’을 중심으로 ‘아’와 ‘타’를 나눈다. 영어 ‘interest’는 사전적으로 ‘흥미’라는 뜻과 함께 흔히 ‘이익’이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정치적 ‘가치와 의미’가 ‘이익과 흥미’에 조응하면 힘을 발휘하지만, 둘 사이가 어긋나면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시/비(是/非)’의 정치적 도식의 표면 아래 생명의 정동(情動)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생명정치에서 생명은 ‘진리의 문제’가 아니다. 괴로움과 허무함, 아픔과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분열과 창조와 진화의 문제이다. ‘불평등’도 ‘진보적 이념’ 이전에 생명의 안녕과 정동의 문제이다. 생명정치의 관점에서 근대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는 ‘생명과 사회의 파열(破裂)’이다. 아이들을 낳을 수도 키울 수도 없다. 기존 체계(시스템)의 종식과 교체가 불가피하다.
덴마크 적녹동맹(Red-Green Alliance)의 정치 대변인 펠레 드라그스테드가 지난 4일 코펜하겐에서 열린 당 연례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4.5.4. EPA 연합뉴스
생명정치, 세력을 형성할 때다
생명정치는 바이러스가 그렇듯이 전염을 통해 확산한다. 이미 기존 체계에서 떠날 수밖에 없는 ‘생명의 무리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혹은 부족적인 은둔이나 가질 수 없는 것들의 선택적 포기를 통해, 혹은 증오를 통해 그것을 표현한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세계 최저의 출생률은 두말할 것도 없이 결정적인 증거이다.
그리고, 전염은 바이러스가 그렇듯이 폭발적인 계기가 있다. 선거판이라는 시공간도 그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번 총선에서 ‘조국현상’이라는 바이러스의 폭발을 목격했다. 조국은 스스로 정치적 사건이 되었다. 모든 정치적 성공이 그렇지만, 조국은 무아(無我)의 상태에서 스스로 새로운 정치적 변이가 되어 폭발적인 정치적 감염을 격발시켰다.
폭발한 ‘조국 현상’
이러한 정치적 사건의 과정에서 ‘무리(黨)’가 형성된다. 세력화가 이루어진다. 19세기 중후반 수십 년간의 개접/파접(開接/罷接)의 감응체험과 ‘영해민란’과 같은 수많은 정치적 사건 등을 통해 동학의 무리(東學黨)가 형성되었다. 반복적이고 재귀적인 무리 경험이 또 다른 무리를 생산한다. (무리와 주체는 구별된다. '주체'가 의식적이고 초월적이라면, '무리'는 신체적이고 경험적이다.)이윽고 무리는 세력이 된다. 생명정치 세력 역시 깊은 산속에서 수련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나타날 수 없다. 한 번의 사건 만들기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무리가 형성되고, 생명정치 사건이 거듭되면서 세력은 확대 강화된다. 다시 말하면, 사건을 통해 출현하고 반복을 통해 구성된다. 노동자계급이 파업을 통해 형성되고, 태극기부대가 태극기시위를 통해서 형성되듯이. 생명평화 탁발순례 5년을 통해 생명평화 진영이 생겨났듯이.
지난 5월 6일 영국 헤이스팅스에서 열린 연례 메이데이 공휴일 축제 잭 인 더 그린(Jack In The Green) 퍼레이드. 2024.5.4. 로이터 연합뉴스
새로운 차원의 진영 만들기, ‘녹색계급’
근대적 정치체계 안에 있는 한 생명정치 역시 ‘여/야’의 이원적 코드와 진영정치를 넘을 수 없다. 문제는 새로운 진영 만들기의 가능성이다. 생명/반생명의 구도가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 브뤼노 라투르가 이야기하는 계급화(classification), 즉 ‘녹색계급의 출현’과 맥을 같이한다.
문명전환기의 현실에서 생명정치는 과도적이고 잠정적인 정치형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초기 서유럽 녹색당이 그렇듯이 ‘반정당의 정당’ 형식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일 수밖에 없다. 문명전환 정당은 자기를 부정하며 자기를 주장해야 한다. ‘자기를 부정하며 자기를 보존하는’ 생명의 역설에서 배울 수 있다. 예컨대, ‘정강정책’ 없는 정당을 상상할 수도 있다. 방향성과 ‘생명/반생명’의 코드만 있는 정당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프론트(front) 정당의 형식을 띨 수밖에 없다(아일랜드, 인도 등 기후문제의 실제적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라는 단체가 생각난다.) 기존의 진보/보수, 좌파/우파의 구도에서 이탈한 모든 무리들이 프론트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섬세한 생명감수성을 지닌 기독교와 불교 등 종교인들과 살림하는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로에 선 지구. 지구의날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인천의 한 야산에 쓰레기들이 녹색 숲을 먹어가듯 쌓여있다. 2024.4.21. 연합뉴스
생생당, '생명-생태 연대'는 어떠한가?
그러나, 생명정치의 무리나 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존의 녹색정치의 성과도 매우 소중하다. 이제 ‘적-녹 연대’가 아니라, 이를테면 ‘생-생 연대’가 필요하다. ‘생명’-‘생태’ 연대가 그것이다. 서구의 생태주의에 입각한 정치적 실험과 한국 및 동아시아의 생명사상에 바탕을 둔 정치적 실험이 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나름의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1994년 동학을 공부한 생명사상가 김지하와 서학을 공부한 생태정치학자 문순홍이 만나서 「생명민회를 제안한다」를 같이 쓰고 함께 책(『생명과 자치』, 후에 『생명학1,2』로 재출간)을 내며, <생명민회(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를 창립한 바 있다. 그리고, 2006년과 전후 지금의 녹색당 창당 이전 <초록정치연대>에는 당시의 환경운동 그룹, 여성운동 그룹과 함께 한살림 활동가 등 다수의 생명평화운동 그룹이 참여한 한 바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이식(移植)’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 녹색정치의 성공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할 수는 없다. 한국형 녹색정치가 요구된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과 대만 등 동아시아에서의 녹색정당의 희미한 존재감은 이를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생명-생태 연대가 지구적 차원에서 문명전환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도 있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의 생태사상가 라투르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과 함께 ‘코스모폴리틱스(cosmo-politics)’를 제안한 바 있다. 여기서 코스모폴리틱스는 맥락상 ‘사물정치’로 이해되지만, 단어만으로도 우주론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우주생명학’과 ‘개벽담론’이 있다.
주요섭 밝은마을생명사상연구소 대표 시민언론 민들레
지역사랑 탄소 기부로 고향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소비지향적 고향사랑기부제의 대안 모색
코로나 시국에 개최되었던 화상회의에서 일본 대학 교수의 발표가 있었다. 당시 한국인 출신의 교수는 논의가 끝나갈 무렵에 콘퍼런스 주제와 무관했던 일본 고향납세제의 답례품이 재미있다며,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정책을 도입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다. 고향납세제는 사실 국내에서도 2007년 대선부터 공약 사항으로 검토된 바가 있으며, 2021에는 법률까지 통과된 상태였다. 덕분에 2023년 들어서는 "고향사랑기부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될 수 있었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주민등록상의 거주지가 아니면, 고향이든 타향이든 상관없이 기부할 수 있는 제도다. 10만 원 한도 내에서 세액 공제라는 혜택을 받기 때문에 아무런 금전적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기부금의 30% 수준에서 지역의 특산품을 받는 일거양득(一擧兩得) 혹은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혜택까지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다른 지역에 소액을 기부하면 연말 정산에서 전부 환급받을 뿐만 아니라, 납부 즉시 선물까지 받는 정책이다. 그야말로 기부자에게는 꿩 먹고 알 먹는, 도랑 치고 가재 잡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국가 사업일 수 있다.
이처럼 기부자에게 혜택이 쏟아지는 고향사랑기부제를 도입한 이유는 비수도권의 인구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낙후 지역의 경기 침체로 인한 지방소멸 위기를 극복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 운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지역 간 재정 격차를 해소하려는 목적의 정책 수단으로 고향사랑기부제가 도입된 것이다. 그렇지만 시행 첫해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기부 건수가 52만 건에 그쳤을 뿐만 아니라, 모금액 자체도 650억 원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한국보다 앞서 도입했던 일본은 어땠을까?
일본도 2008년 도입 첫해의 실적은 5만 건에, 기부금도 81억 엔 정도였다. 그렇지만 세액 공제가 확대되고 지방자치단체의 답례품 경쟁이 벌어지면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2022년에는 기부 횟수가 5184만 건에 달할 뿐만 아니라, 금액 자체도 9654억 엔까지 급성장했다. 이처럼 인기가 폭발했던 정책이다 보니, 일본 대학의 비전공자 교수까지도 고향납세제를 자랑할 정도였다.
▲고향사랑기부제 홈페이지, 고향사랑e음 (출처: www.ilovegohyang.go.kr)
그렇지만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과연 바람직한 모범적 사례인지는 의문이다. 세금을 유치하려는 지자체의 경쟁이 과열되면서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지역과 무관한 전자제품이나 상품권이 선물로 지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가의 특산품을 지급하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심지어는 과다한 답례품 지급으로 인해 수익보다는 지출과 부담이 늘어나 적자 사태까지 발생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첫걸음을 뗀 한국은 어떨까?
국내에서 가장 많은 기부금을 모금한 지자체는 22억 원으로 전남 담양군이었으며, 다음으로는 제주, 전남 고흥군, 전남 나주시, 경북 예천군의 순이었다. 기부금액은 평균적으로는 2억 원이었으며, 하위 20%는 5000만 원에 불과했다. 물론 일본도 고향 납세제의 도입 초창기에는 실적이 저조했기 때문에, 한국도 올해부터 정책 홍보가 활성화된다면 참여자와 기부 건수가 급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본과 한국에 도입된 고향사랑기부제가 동일하게 소비지향적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일본에서 국민이 가장 많이 선택한 답례품은 소고기, 해산물, 햄버거, 이불, 샌드위치 같은 특산품들이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가장 많았던 선택은 농축산물로 전체의 44%였으며, 다음으로 가공식품, 지역상품권, 수산물, 생활용품의 순이었다. 결국 고향사랑기부제는 도시 사람들이 농어촌에 10만 원을 기부해서 지역의 자원을 소비하자는 정부 주도의 캠페인성 사업인 셈이다.
고향의 자원을 소진하기보다는, 우리가 애착을 갖고 있는 지역이 친환경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탄소중립 기부금을 납부하고 이를 정부가 세액 공제 해주는 방식으로 제도가 개선된다면 어떨까?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이 2050년까지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농축산 식품이나 특산품을 소비해서 온실가스 배출을 늘리기보다는 고향의 저탄소 친환경 사업을 후원하는 제도가 된다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예를 들면, 대구가 생태도시를 표방하고 태양광 패널을 확대하며 자전거 중심의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미래 비전을 제시했을 때, 서울에서 살고 있는 영남권 출신들이 후원하는 고향사랑기부금이 마련된다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제안은 별도의 법률 개정 없이, 이미 도입된 제도적 틀 안에서 개별 지자체가 쉽게 채택하고 반영할 수 있는 간단한 아이디어라는 장점도 지니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남아 있다. 과연 지역에 10만 원을 기부할 때, 전남 완도군의 해삼과 전복 대신 탄소중립 사업을 선택하는 납세자가 얼마나 될까? 사람들의 욕심은 공익적 후원보다는 개인적 이익에 손이 먼저 가는 게 현실이다. 그래도 일본의 고향납세제가 처음에는 존재감이 없을 정도였다가, 10년 뒤에는 급성장했던 것처럼 확대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라는 기후변화 관련 국제기구는 탄소중립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려면, 인류의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고 단언한 바 있다. 작년에 도입된 한국의 고향사랑기부가 자원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사랑 탄소 기부'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진상현 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 프레시안
탄소중립 핵심 대안? 멈춰 선 한국 해상풍력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내가 쓰는 전력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른다. 정부와 전력 당국의 노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값 싸고 질 좋은 전력을 걱정 없이 써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다. 석탄과 가스로 지탱해 온 전력산업 전반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원인은 ‘기후위기’다. 화석 연료가 뱉어내는 탄소를 줄여야만 기후 재난의 심화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기후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자연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 십여 년이 넘게 대대적인 에너지산업 구조조정을 벌였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는 중이고,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새 무역 질서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강제하고 있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중국도 주요 신재생에너지 설비 공급 물량을 과점하며 세계 시장 주도권을 손에 넣은지 오래다. 이른바 ‘기후 자본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강대국들이 에너지 전환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최근 수년간 탈원전이냐, 탈탈원전이냐를 놓고 대립을 벌이는 동안, 우리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OECD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청정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제품을 팔 수 없게 될 처지에 놓인 우리 대기업은 수 조원을 들여 앞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 뿐만 아니라 수출 주도형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우리는 복합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자연환경에서 바람이나 햇빛으로 충분한 전력을 얻는 게 가능한지 묻는 회의론부터, 복잡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 과정과 전력망의 부족, 이제는 짐이 된 경직된 전력시장 구조까지 어느 것 하나 개선이 쉽지 않다. 해상풍력의 강국, 덴마크를 방문했다
2024년 4월 17일 하늘에서 바라본 덴마크 에스비에르 시가지와 항구의 모습. 출처 : 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석유와 바람의 갈림길
북위 55.4도, 동경 8.4도. 독일에서 북으로 뻗은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 서쪽에 에스비에르라는 곳이 있다. 칼바람 부는 북해를 누볐던 어부와 그 가족들이 1860년대에 일궈낸 이 작은 항구도시는,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산업의 변천사를 그대로 품고 있다.
항만 건설 초기 100여 년 동안 에스비에르 항구는 어업과 농수산물 수출 항만으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1970년대 발생한 두 차례 석유파동이 항구의 운명을 바꿔놨다. 주말이면 차량 운행을 전면 금지해야 할만큼 에너지 빈곤에 시달렸던 덴마크는 북해 해양유전 개발에 박차를 가했고, 영국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 생산국 반열에 올랐다. 북해를 마주한 에스비에르는 석유 가스 산업 배후 항만으로 첫 번째 부흥을 맞았다.
그러나 산유국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2000년대 후반 배럴당 10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2010년대에 들어 30달러 대로 급락했다. 적자에 허덕이던 석유기업들은 각국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노리고 태양광·풍력 산업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덴마크 국영 석유기업 동(DONG·Danish Oil and Natural Gas) 에너지는 정부와 의회의 정치적 합의를 기반으로 보다 급진적 변화를 선택했다. 동 에너지는 2017년 석유와 가스 관련 사업 일체를 매각하고 해상 풍력 전문 기업으로 변신했고, 사명까지 오스테드(Orsted)로 바꿨다. 덴마크 정부가 여전히 지분의 50.1%를 소유하고 있다.
2020년 12월 덴마크 의회는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북해 지역에서 진행 중이던 새로운 석유·가스 탐사 및 생산과 관련한 모든 허가를 취소하는 한편, 2050년까지 생산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석유 대신 바람을 택한 덴마크의 선택은 옳았다. 북해는 세계 주요 석유·가스 생산지에서 세계 최대 해상풍력 발전단지로 거듭나고 있고, 에스비에르는 그 최전방 기지로서 두 번째 부흥을 맞았다. 2007년 화석연료에 매출 93%를 의존했던 오스테드는 해상풍력 선도 기업으로서 지난 해 수익 95%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거둬들였다.
2024년 4월 17일 덴마크 에스비에르 항구 야적장. 거대한 해상풍력 발전기 구조물이 부두를 꽉 태우고 있다. 출처 : 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지난 4월 17일, 취재진이 찾은 에스비에르 항만 야적장에는 북해의 바람을 겨냥한 대형 구조물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풍력발전기 날개에 해당하는 블레이드와 블레이드를 연결하는 로터, 로터의 회전으로부터 전력을 생산하는 터빈, 터빈을 떠 받치는 기둥(하부구조물)이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블레이드와 로터, 터빈, 하부구조물이 조립된 15메가와트급 대형 풍력발전기의 최대 높이는 250미터 안팎으로, 여의도의 63빌딩과 맞먹는다. 에스비에르 항만청의 예스퍼 뱅크(Jesper Bank) 최고운영책임자는 “에스비에르 항만청이 현재까지 진행한 각국 해상풍력 프로젝트는 약 60개로 24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단지 설비 물량을 소화했다”며 “2029년까지 항만이 처리할 수 있는 모든 예약 물량이 꽉 찬 상태"라고 밝혔다.
입지와 제반 여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업계에서는 1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단지를 건설·운영하는데 최소 4~5조 원 이상의 자본이 투입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설비용량 1기가와트는 현재 우리나라에 가동 중인 일반적인 원전 1기의 용량에 해당한다. 에스비에르는 해상풍력 산업 확장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창출됨에 따라 젊은 층의 인구 유입도 기대하고 있다.
예스퍼 뱅크 덴마크 에스비에르 항만청 최고운영책임자가 지난 4월 17일 방문한 한국 취재진에게 항만 운영 체계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 : 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에스비에르 항만청은 유럽의 해상풍력 산업이 성숙기에 이르는 2030년이 되면 다른 경쟁 항구에 밀려 ‘세계 최대 해상풍력 발전단지 배후 항만’ 지위를 내 줄 것으로 보고 해상풍력 관련 후속 산업을 개발 중이다. 예스퍼 뱅크는 “글로벌 시장 통계를 보면 아시아 지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며 “아시아 5대 해상풍력 거점 항만이 생긴다면 중국이 2곳, 한국과 일본, 인도가 각각 1군데를 차지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에스비에르 항만청이 아시아 거점 항만 후보지로 한국을 함께 언급한 것은 해상풍력 발전에 필수 산업으로 분류되는 철강, 조선 분야를 비롯해 주요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도 한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과 석탄, 가스 발전소로 90%에 달하는 전력을 충당하는 한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선 ‘열등생'이다. 한국의 ‘장밋빛 미래’를 말하는 에스비에르의 예상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부족한 건 바람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바람이 센 곳 중 하나로 꼽히는 북해의 평균 풍속은 초속 10~11미터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해상풍력은 밤낮 구분 없이 연중 내내 강풍이 부는 북해에서나 가능한 일’이라는 의구심이 여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해상 풍력의 최소 적정 풍속은 초속 7미터 이상으로, 한국의 바닷바람 역시 합격선 안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자원지도 분석 시스템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근해 해발 120미터 상공 대부분 지역 풍속이 초속 7미터를 넘는 것으로 나온다. 육지에서 멀어질 수록 풍속도 증가해 해상풍력 발전원으로 삼기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연근해 120미터 상공 풍속이 해상풍력발전기 설치 기준인 초속 7미터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 :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자원지도 분석 시스템.
문재인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을 사실상 부정했던 윤석열 정부 또한 해상풍력 만큼은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고 정책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달 산업통상자원부는 2030년까지 14.3기가와트에 달하는 해상풍력 발전 시설을 국내에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해 11월,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 국빈 방문을 계기로 BP등 영국 해상풍력 기업이 1조 5,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약정한 사실을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할 만큼 해상풍력 투자 유치에도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영국 기업 뿐만 아니라 덴마크의 오스테드, CIP(Copenhagen Infrastructure Partners), 프랑스 토탈 등 글로벌 해상풍력 기업들 또한 긍정적으로 사업성을 평가하고 인천, 전남, 울산 지역 해상풍력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해상풍력 보급은 더디게만 흘러가고 있다.
급증하는 세계 해상풍력과 시장을 압도하는 중국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의 설비 규모는 총 837기가 와트이다. 이 중 해상풍력은 57기가와트(6.8%)로, 육상풍력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비율은 오래지 않아 뒤집힐 것으로 전망된다. 신규 설비 기준으로 보면 육상 풍력 설치는 감소하는 반면, 해상 풍력은 급증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육상 풍력의 신규 설치 규모는 2020년 88.4기가와트에서 2021년 72.5기가와트로 줄었지만 해상 풍력의 경우 같은 기간 6.9기가와트에서 21.1기가와트로 3배 이상 늘었다.
해상 풍력의 빠른 성장세는 태양광이나 육상 풍력에 비해 풍부한 바람 자원, 대규모 단지 개발의 용이성, 낮은 환경영향 등이 작용한 결과다. 특히 해상풍력은 다른 발전원에 비해 고용 창출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 많은 국가에서 경기부양 정책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2015년 그린피스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1메가 와트 규모의 발전 설비를 새로 추가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간 고용되는 예상 인원은 해상풍력의 경우 23.8명, 태양광 20.4명, 석탄 16.7명, 13.7명, 육상풍력 8.2명, 가스 2.4명 순이었다.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비용 증가로 최근 증가 속도가 둔화된 측면이 있지만, 해상풍력 시장 규모는 각국의 탄소중립 계획 이행과 함께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태양광과 마찬가지로 세계 해상풍력 시장을 압도하고 있는 국가는 중국이다. 2021년 전 세계 누적 설치량 57기가와트 가운데 절반이 넘는 27.6기가와트가 중국에 설치됐다. 영국(12.5기가와트)과 독일(7.7기가와트)이 2위와 3위다. 신규 해상풍력 설치 현황에서도 중국의 독주는 두드러진다. 2021년 중국은 일반 원전 16기가 넘는 16.9기가와트 규모의 해상풍력 발전기를 설치했다. 영국(2.3기가와트) ,덴마크(0.6기가와트), 네덜란드(0.3기가와트) 등이 뒤를 잇고 있다.
해상풍력 각종 인허가 받는데만 6년
반면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도 대규모 해상풍력 발전 단지 조성 목표를 세웠지만 현실은 암울하다. 2021년 기준 국내에 설치된 모든 해상풍력 발전기 설치 규모는 0.1기가와트가 조금 넘는다. 2021년에는 단 한기도 새로 설치 되지 않았다. 한국의 해상풍력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풍력산업 업계에서는 비효율적이고 부실한 행정 절차를 첫 번째 이유로 꼽는다. 해상풍력 사업을 하려면 사업자는 최대 10개 부처에서 집행하는 29가지 법률에 따른 인·허가를 중앙정부·자체로부터 각각 받아야한다. 사업자가 입지발굴, 사전조사 등 각 단계별 사업인허가를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만 평균 6년 안팎이다.
민간 사업자와 지역 주민과의 마찰 또한 해상풍력 보급에 커다란 장애물이 되고 있다. 정부 주도하에 진행되는 사전조사 단계부터 어업인 등 이해 관계자와 면밀한 협의를 거쳐 입지를 선정하는 덴마크 등 해외 국가들과 달리, 국내에서는 사업자의 초기 투자 이후에 관련 논의가 진행되다 보니 난개발 논란은 물론 지역 주민과의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지자체는 자의적 판단을 근거로 인허가 심의를 진행하면서 사업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사업자 주도의 해상풍력 개발이 인허가 과정에서 극심한 비효율을 낳고, 중요 정보에서 소외된 지역 주민들의 불신이 다시 인허가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막힌 재생에너지 바람
1990년대부터 해상 풍력을 본격화한 덴마크는 ‘원스톱숍(One-stop shop)’ 제도를 통해 인허가 절차에서 발생하는 비효율과 진통을 최소화 하고 있다. ‘원스톱숍’이란 덴마크 기후에너지부 산하의 에너지청(DEA·Danish Energy Agency)이 해상풍력 발전과 관련된 개별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권한을 위임받아 단일 창구로 관리하는 제도를 말한다. 개별 사업자 입장에서는 인허가와 관련된 모든 기관과 일일이 따로 협의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된다. 덴마크 에너지청에 따르면, 원스톱숍을 통해 해상풍력 인허가를 받는 데 걸리는 소요 기간은 평균 34개월 정도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 개발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이 정리한 한국 해상풍력 개발 절차.
덴마크 에너지청은 해상풍력 발전 단지 입지 선정에도 적극 개입하고 있다. 계획 입지 제도를 통해 난개발을 막고 지역 주민의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까지 직접 관리한다. 해상풍력 발전소가 들어서는 지역 주민들도 공신력 있는 정부 기관을 통해 중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마스 피터 한센 덴마크 에너지청 국제 협력 수석담당관은 “원스톱숍을 통해 다양한 부처와 어민들에게 관련 정보를 즉각적으로 공유하고 있다"며 “어민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보상까지 정리가 됐을 때 사업자에게 인·허가를 내주게 된다"고 설명했다. 덴마크 에너지청은 원스톱숍 운영으로 인허가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주민들과도 원만한 합의를 이룰 수 있게 되면서 더 이상 정부 보조금이 필요 없을 만큼 사업자의 수익성이 크게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보조금 성격의 ‘신재생에너지 인증제도(REC)’가 시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발전설비 규모가 더디게 늘고 있는 한국의 상황과 대비된다.
덴마크에서 운영 중인 '원스톱숍' 구조도. 덴마크 에너지청은 환경식품부 등 해상풍력 개발 과정 등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다수 유관기관의 인허가 권을 위임 받아 총괄하고 있다. 출처 : 덴마크 에너지청(DEA·Danish Energy Agency)
우리나라 역시 덴마크 에너지청의 ‘원스톱숍' 방식과 계획 입지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21대 국회 임기 종료가 임박한 지금까지도 통과되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지난해 2월 인허가 절차를 효율화하고, 투명한 입지 선정과 주민 의견수렴, 사업자 선정을 정부가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해상풍력 특별법을 각각 발의했으나 일부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정책 개발을 위해 설립된 비영리단체 ‘기후솔루션’의 양예빈 연구원은 “해상풍력 계획입지 제도는 이미 2020년부터 정부 주도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라며 “21대 국회는 법제화라는 숙제를 더이상 미루지 말고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 연구원은 이어 “유럽 외에도 일본, 대만, 호주까지 해상풍력 제도 기반을 구축해 주요한 에너지전환 수단이자 산업적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더이상 국제적 추세에 뒤쳐져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신도시에 도로가 없다?
각 부처와 기관으로부터 일일이 인허가를 받고 주민 동의를 얻는다 해도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가동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고비를 넘어야 한다. 해상풍력을 통해 생산된 전력을 운반할 송전망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해상풍력 사업의 시작 단계에 해당하는 ‘발전사업허가'를 취득한 사업자들의 설비 규모는 총 20.8기가와트다. 이 물량만 소화해도 우리 정부가 2030년까지 목표로 하고 있는 14.3기가 달성은 무난해 보인다.
그러나 20.8기가와트 중에 생산된 전력을 운반할 수 있도록 송전 계약이 완료된 물량은 약 25%(5.1기가와트)에 불과하다. 일반 원전 15기의 용량과 맞먹는 나머지 해상풍력 단지는 우여곡절 끝에 건설을 완료한다고 해도 송전망이 없어서 전력 생산이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규모 신도시를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도로를 짓지 않는 상황”에 비유한다. 2회에서는 정부의 거창한 신재생에너지 보급 계획 이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의 송전망 대란을 살펴본다.
지난 2022년 9월 기준 우리나라 해상풍력 사업자들의 인허가 단계별 현황. 개발 사업의 시작점인 발전사업허가 취득자를 100%로 가정했을 때, 생산된 전력을 보낼 수 있는 송전망 계약까지 진행된 사업은 전체의 4분의 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출처 : 기후솔루션
조원일 뉴스타파
91% 쓰고 9% 남겨주려는 윤석열 정부... 기막힌 상황
⑤-기후 퇴행] 세계 흐름에 역행하는 기후 정책 유감
▲ 한국 정부의 기후 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의 첫 공개변론이 열릴 4월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후소송 원고 단체와 공동대리인단 등 시민들이 “한국 정부의 기후 대응 목표가 국민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수준이고, 기후 위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세대에 대한 차별이다”며 “헌법재판소에 명확하고 빠른 판결을 해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인류의 역사는 어린이, 여성, 사회약자, 소수자 등의 권리를 빼앗고 침해하는 것에 저항하며 이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의 기록'이다. 그리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두 날개를 통해 발전해 온 민주주의는 이들의 권리를 누구도 함부로 침해하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기반을 갖춰 왔다.
기후 변화가 가져올 미래세대, 사회약자, 소수자 등의 권리 침해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러 나라에서 기후 위기에 따른 권리 침해를 바로 잡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아래 표에 주요 판결 내용을 정리하였다.
ⓒ 포럼사의재
이러한 판결을 토대로 영국 가디언지는 2024년이 기후 소송에서 중요한 해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 23일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환경권과 생명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청소년단체 등이 낸 헌법소원 4건을 병합해 본격 심리에 들어갔다.
입법·사법·행정 중 가장 신중하게 판단하는 사법부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판결로 기후 위기 해법의 올바른 방향성을 내오기 위해 노력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수장으로 있는 행정부는 이러한 전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다. 윤 정부의 기후분야 역사 퇴행과 정책 후퇴를 하나하나 짚고자 한다.
기후위기 공론장과 거버넌스의 부재
기후 위기로 발생하는 위험의 강도는 취약계층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며 국가 간, 세대 간, 계층 간 편차도 크다. 따라서 한 국가 안에서도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공식적인 논의 틀을 갖추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같은 이유로 1기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아래 탄녹위)는 산업계, 노동계, 농어민, 시민사회, 청년, 지방정부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와 '탄소중립시민회의'를 두어 사회약자와 소수자, 노동자 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틀을 갖췄으며 국민참여분과를 포함한 8개의 분과를 운영하였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탄녹위 구조를 4개 분과로 축소하며 국민참여분과가 사라졌다.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숙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는 구조인 '협의체'와 '탄소중립시민회의'라는 틀을 없앤 것이다. 검찰총장 시절 상명하달의 정점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방식 그대로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 자체를 불필요한 과정으로 여긴 결과가 탄녹위 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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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은 상명하달식의 정책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 국민 모두가 생활의 불편함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논의 과정에서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등장하고, 그 목소리가 반영된 정책이 생산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흔들림 없이 2050 탄소중립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4.10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반영하여 '나만 옳다'는 제왕적 리더십을 버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회복해야 한다. 기후분야에서는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의 '거버넌스 구조 복원'과 '숙의 공론장 형성'이 그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방치, 묵과할 수 없는 대표적 에너지 정책 실패 사례
세계 여러 나라가 2050 탄소중립을 위해 각국의 실정에 맞게 다양한 에너지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으나, 공통된 한 가지 원칙이 있다.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제로화하고 필요한 에너지 사용은 효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마지막으로 에너지 생산에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려가는 거다.
재생에너지 확대가 탄소중립 실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에 그 어느 국가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상수로 두면서, 재생에너지의 불확실성과 변동성(간헐성)으로 인한 전력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과 전력망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오는 것이 기후위기 해법으로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이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달 전문가는 없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는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며 세계적 추세와 달리 한국적 특수 상황에서 에너지원의 하나로 거론되는 원자력발전만 고집하며 CF100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제적 합의를 내오기는 힘든 실정이다. 원자력발전이 이미 해외에서는 경쟁력을 잃은 상황이고, 원전을 세울 수 있는 여건을 갖춘 나라도 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CF100을 외치며 재생에너지 정책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동안 우리 산업의 미래 경쟁력에 빨간불이 켜졌다. 비영리단체와 기업들의 자발적 캠페인인 RE100 참여 기업들(BMW, 애플, 구글 등)이 협력사들에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강하게 요구하면서 재생에너지 조달 및 탄소 배출량 관리가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글로벌기업도 한국에서 생산을 줄이고 해외에서 생산을 확대하는 형태로 나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할 위험이 커졌다. 국내 글로벌기업은 살아남아도 국내 일자리는 감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전세계 7000여 개가 넘는 기업이 온실가스배출량과 탄소경영전략을 공개하고 있는 CDP(탄소공개프로젝트)에 나와 있는 국내 글로벌기업의 RE100 달성 관련 국내공장과 해외공장의 확연한 지표 차이가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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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00은 세계 시민사회의 거센 요구를 기업들이 수용하며 만든 자발적 캠페인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왈가왈부할 일은 없다. 다만 세계 시장의 장벽 중 하나로 RE100이 생겼으니, 우리 기업이 그 장벽에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RE100 실현의 토대가 되는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에 대한 지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우선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목표치를 축소하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2030년 재생에너지 설비의 목표치는 전체 전력생산 설비 중 30.2%를 차지하도록 잡았는데, 윤 정부가 들어서면서 21.6%로 8.6%p 후퇴하였다. 2021년 전 세계 전력생산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 24.7%다. 윤 정부는 2021년 전 세계 평균에도 못 미치는 수치를 2030년 목표로 삼은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목표의 후퇴는 재생에너지분야 정부 예산의 축소로 이어졌다. 재생에너지 지원 예산은 해마다 감소하여 2022년 1조3천억 원 규모에서 2023년 1조 원, 2024년 6천억 원 규모로 2년 만에 반토막 났다. 이에 따라 태양광설비 신규 설치 용량도 2021년 4.1GW 규모에서 2023년 2.5GW로 2년 만에 60% 규모로 축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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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여파로 국내 재생에너지 산업 생태계가 붕괴되고 있다. 특히 태양광설비 시장이 눈에 띄게 후퇴했다. 글로벌 태양광 설비 생산 기업인 한화큐셀은 음성공장 가동을 중단하였고(국내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 6.2GW에서 2.7GW로 축소), 2023년 3분기 시점으로 내수 매출이 약 2062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3663억 원) 대비 43.7% 급감했다. 중견기업인 신성이엔지의 지난 3분기 기준 태양광 제품 매출은 42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14억 원)보다 47.6% 감소했으며, 태양광 모듈 수주액도 같은 기간 302억 원에서 101억 원으로 1/3로 줄어들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또 다른 축, 순환경제도 빨간불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에너지 생산이나 소비만큼 중요한 부분이 자원을 재사용, 재활용하는 순환 경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사회에서 탄소중립 실현은 불가능하기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순환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상징적인 조치로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 포럼사의재
이렇듯 세계가 일회용품 규제를 강화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시행을 유예하거나 백지화하며 세계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 포럼사의재
이에 따라 일회용품 규제 강화를 바라보며 그 대체 시장을 준비해 온 다회용 용기 대여 업체, 종이 빨대 기업들이 도산 위기에 처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지구의 평균 온도를 산업화 이전과 비교하여 1.5℃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인류에게 남은 탄소배출 허용량이 급속하게 줄어들고 있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향후 10년 이내에 탄소예산이 0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강력한 정책과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실질적 탄소배출 저감은 후임 정권에 전가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 민주연구원
윤석열 정부 계획대로라면 2030년까지 현재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탄소예산 45억 톤 중 91%(41억 톤)를 소진하고 남은 9%(4억 톤)로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야 하는 기막힌 상황에 놓이는 것이라고 그린피스는 경고한다.
'호미로 막을 거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할 일들을 유예하고 다음 정부로 미룬다면, 우리에게는 암담한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미래가 잿빛 세상인 현실에선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 해법 없이 저출생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기후위기 해결,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여야가 따로일 수 없다. 22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기후위기와 순환경제를 풀 수 있는 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사회사의재 기후환경특별위원회(sauijae1722)오마이뉴스
<포럼 사의재>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우리는 정말 기후 위기를 직면할 준비가 되었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기후 위기 시대의 정치, 행정, 군사적 낭비
▲ 4월 17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거리가 폭우로 침수돼 차량들이 물에 잠겨 있다. 전날 두바이에는 1년 치 비가 12시간 동안 쏟아지며 주요 도로 등이 물에 잠겼다. ⓒ 연합뉴스
사랑은 가족과 연인 등 가까운 관계에서 출발하지만, 이웃과 사회 등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타자와 연결된 삶은 그저 인간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자기가 몸담고 살아가는 모든 주변 환경, 자연과 우주 만물로 연장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라 생존의 사실임을 기후 위기가 가르쳐주고 있다. 기후 변화는 곧 닥칠 위기의 시나리오가 아니라 이미 심각하게 경험하는 현실이다. 올해만도 3월 말에 벌써 25도에 근접한 낮 더위가 시작되었다. 봄, 가을이 줄어들고 춥지 않은 겨울과 길고 뜨거운 여름에 열대 스콜이 장마를 대신한 날씨가 대한민국에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이는 이미 세계적 현상이다. 4월 중순에는 중동의 사막 땅으로 알고 있던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1년 동안의 강우량에 방불한 100㎜ 정도의 폭우가 단 12시간 만에 쏟아져 큰 피해가 일어났다. 과학자들이 통계를 들이대며 경고한 10년 후, 20년 후 이야기를 기억할 필요도 없이, 지구촌 곳곳에 이미 심각한 기후 위기 징후는 완연하다. 그저 예전보다 더워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래도 될까?' 싶은 두려움이 생긴다.
그러나 뉴스는 뉴스, 닥칠 위기는 위기고, 우리는 당장 불편함을 참을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세계적으로도 기후 위기는 초미의 관심사이기에 유엔은 매년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열어 중요 현안을 논의해 결정한다. 작년 12월에 열린 총회에서도 첫날에 피해 입은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이 합의되었고, 마지막 날에는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환을 가속화 한다는 합의문 타협도 이뤄졌다.
그러나 화려한 외양과 달리 회의 분위기에서 절박함과 심각성에 의문이 생긴다. 무엇보다 이번 총회는 산유국인 UAE의 두바이에서 열렸고, 관례대로 기후변화협약 의장은 개최국 UAE의 국영석유회사 사장이 맡았다.
그는 의장임에도 화석연료 퇴출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석유 홍보를 하였고, 유럽 선진국들도 기후위기나 기후정의보다는 자신들의 강점인 환경 신산업 홍보에 열을 올리며 흡사 만국박람회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런데 올해 11월에 열릴 29차 총회도 UAE에 이어 역시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릴 예정이라 정말 위기 탈출에 의지가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된다.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만 해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에 기금을 지원한다니 얼핏 '맘 좋은 선심'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후 및 환경 오염 물질은 부유한 나라와 지역이 그렇지 않은 곳보다 훨씬 많이 배출한다. 그런데도 피해는 가난한 나라, 지역에 거의 집중된다.
'옥스팜과 스톡홀름 연구소 등에 따르면 가장 가난한 10%보다 가장 부유한 10%가 최대 40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데,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1970년에서 2019년 사이 발생한 기후재난(날씨, 기후, 물 위험) 사망자의 91%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기후 위기 아래, 우리는 '지구 한 가족'입니다" 기상청 네이버 블로그, 16기 기상청 국민정책기자단 박예원 기자, 2024년 5월 8일)
군비증강과 전쟁
그러므로 선진국이 내는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은 자선도, 기부도 아니고, 사실은 당연한 '피해배상'이다. 문제는 가해와 피해는 일방적인데 반해, 배상은 선택적, 자발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매년 확인되는 급격하고 심각한 기후 변화를 겪으면서도 2023년 한해 지출한 전 세계 군사비는 모두 2조 4430억 달러(약 3365조 원)를 넘는다. 2009년 이후 14년 만에 전 세계 5개 대륙 모두의 군사비가 증가했다.
이에 비해 떠들썩했던 작년 28차 총회 전 세계 197개국이 합의한 '손실과 피해 대응 기금'은 겨우 4억 달러(약 5200억 원)에 불과했다. 이중 작년 8860억 달러를 군사비로 지출한 압도적 1위 미국은 기후 대응 기금으로 약속한 돈이 고작 1750만 달러(약 230억 원)에 불과하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있다. 각각의 형편이 조금씩 다르지만 전 세계 개인, 단체, 기업 모두 탄소 배출량을 줄이고 위기 대응에 목표치를 정해 나름 총력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가장 역행하는 분야가 단연 군사 분야(국방, 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전쟁이 일어난 지 한 달여 만에 양쪽에서 쏟아낸 이산화탄소가 총 6304톤이었는데, 이는 북유럽 선진국이 1년 동안 배출한 양과 비슷하다. 2019년 한해 전 세계 군대가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29억 5000만 톤으로 지구 전체 탄소배출량의 5.5%에 달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 세계 군사비는 중국을 뺀 모든 개발도상국이 온실가스를 줄이고 기후변화 대처에 필요한 연간 예산 2조 달러보다 훨씬 많다(지구온난화 가장 큰 적은 '전쟁', 홍석재 기자, <한겨레> 2023년 12월 13일 자). 군비증강과 전쟁은 지구 온난화를 심각하게 가속화 한다.
더구나 군사 부문은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의무적 국제 보고조차 면제받고 있다. 즉, 무기개발과 운영, 전쟁을 통해 발생하는 탄소와 온실가스가 얼마나 되는지 유엔에 보고할 의무조차 면제받고 있다는 말이다. 이유는 단 하나, 국내에서도 군 관련 비리나 사건, 사고가 일어날 때 자주 듣던 말, '국가안보상 비밀'이기 때문이다.
비록 유엔 보고 의무는 없지만, 한국 정부는 군 온실가스 배출량을 나름 산정하고 있다고 한다. 송옥주 의원실 자료에 의하면 2020년 우리 군의 온실가스 총배출량은 전국 783개 기관 전체 배출량보다 많다고 한다('세계각국 군 관련 온실가스 쉬쉬, 기민도 기자, <한겨레> 2024년 2월 8일 자).
기후 불평등
▲ 초여름 날씨를 보인 4월 14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제 좀 더 좁혀보자. 한국 사회, 공공영역의 편의와 서비스 수준은 짧은 시간 안에 놀랍게 발전했다. 내가 청년 시절만 해도 항상 공공화장실이 부족해 눈치 보며 은행이나 관공서를 찾았고, 위생이나 수리 상태도 안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공공화장실은 물론 거리, 건물, 공원 등 곳곳의 편의와 서비스가 넘쳐난다. 등산로 입구에 먼지 분사기까지 설치된 나라가 대한민국 외에 또 있을까?
그래서 서구에서 다녀간 외국인들조차 자기 나라에서도 누려보지 못한 한국의 호사를 부러워하더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한 마디로 '밝고, 넓고, 깨끗하고, 화려하다.' 너무 좋다. 문제는 이런 편의와 풍요가 과연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냐다. 단지 한국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기후 대응 이야기다. 하다 하다 별것까지 트집이라 생각하지 말라.
지난 4월 중순에도 딸은 반 팔로 외출하는 내게 긴 팔 하나 챙겨가지 않으면 얼어 죽는다고, 자기는 도서관에서도 에어컨을 얼마나 강하게 틀어놓는지 집중이 안 되더라며, 오늘은 잘 버텨야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의 환절기 온도 민원은 종사자들에게도 힘겨운 고역이다. 4월 1일부터 2주간 접수된 관련 민원만 161건이라고 한다.
물론 서울지하철은 여름철 24~26도, 겨울철 18~20도로 정해진 실내 온도 기준에 따라 냉난방기를 조절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 체감상 그게 잘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어제는 더워서 에어컨을 틀었는데, 오늘은 바람 불고 빗방울이 떨어지니 바로 히터를 켜는 버스도 타 봤다.
이러한 일은 대중교통만 아니라 관공서, 공공시설 전체가 거의 그렇다. 사실 담당 공무원이나 업무 종사자가 받아야 할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정치와 행정, 그리고 국민 의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겨울에 땀이 날망정 추우면 안 되고, 여름에 외투를 껴입을망정 더우면 안 된다는 강박에 빠져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좋은 정치, 좋은 행정, 좋은 공공서비스라 여기며 빵빵 틀고, 펑펑 쓴다.
크게 덥지 않고, 크게 춥지 않은 애매한 순간에도 뭔가 작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행정에도, 우리에게도 가득한 것 같다. 그게 정말 '국민(시민)을 위한 정치(행정)'일까? 심각한 기후 위기를 여전히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우리의 불온한 편리함이 정말 불편하다. 조금 더우니 에어컨 틀고, 그래서 더 더워지니 에어컨 더 틀어 기온을 더 올리는 악순환을 과연 지구가 얼마나 더 받아낼 수 있을까?
이미 저출산을 돌이키기 어렵고, 지금도 미분양 주택들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한민국은 도시 주변 농지나 야산은 두고 볼 수 없다는 각오로 다 밀어버리고 어떻게든 아파트를 짓거나 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그건 내가 사는 광명도 예외가 없다. 그리고 이렇게 줄어드는 녹지와 습지는 기후 위기를 한층 재촉할 것이다.
사실 생태와 기후 위기 문제는 우리도 이미 체감하고 있고, 감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우리 다음 세대, 또 그다음 세대, 특히 빈곤한 이들이 더 집중적으로 떠안아야 할 것이다. 기후 불평등이다.
그러므로 기후 위기 시대에도 아랑곳없이 빵빵 틀고 펑펑 쓰며, 더 밝게, 넓게, 쾌적하게만 살려는 지금 우리의 생활방식은 다음 세대에 뿌릴 씨앗조차 당장 털어먹으려는 약탈과 다르지 않다. 미시적, 일상적 차원의 불편함을 각오하지 않는 거시적, 미래의 인류생존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기후 위기를 정직하게 대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구교형(ku6699)오마이뉴스
'文정책' 5년만에 뒤집어…환경부, 댐 신설 내달 발표
환경부가 이르면 다음 달 신규 댐 10개 건설 방안을 포함한 하천 유역 수자원 관리 계획을 발표한다. 예비타당성조사와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치면 2027년 이후에야 본공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15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환경부는 2024년 업무 계획에서 밝힌 신규 댐 건설 계획을 포함한 하천 관리 계획을 6~7월 전후에 내놓는다. 관리 계획에는 댐 건설을 포함해 한강·금강·낙동강 등 하천 유역별 이·치수 대책이 종합적으로 담긴다. 제방 관리와 준설, 해수 담수화 등 종합적인 하천 관리 방안을 한데 모아 발표하는 것이다.
이번 댐 건설 계획은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9월 국가 주도의 대규모 댐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지 5년 만에 치수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다. 4대강 16개 보는 모두 놓아두고 하천 준설도 벌이기로 했다. 이 역시 지난 정부와 정반대다. 2013년 초 마무리된 ‘4대강 사업’ 이후로는 사실상 10여 년 만이다. 신규 댐 건설 예산으로는 올해 63억 원이 편성됐다. 예산은 댐 건설 기본 구상과 타당성 조사에 사용된다.
계획 발표에 앞서 환경부는 적지 검토와 지역 주민 의견 수렴 등을 진행해야 한다. 댐 건설 예정지가 정해진 후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견 조율에 시간이 걸릴 경우 발표 시점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본격적인 공사까지는 수년이 더 소요될 예정이다. 기본 계획 발표 이후 후보지 기본 구상, 타당성 조사를 마무리해야 하며 사업비 규모에 따라 예비타당성조사도 거쳐야 한다. 이후 설계와 환경영향평가가 남아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주민 등 이해관계자와의 이견 조율이 원활하다는 전제하에 이르면 2027년에야 본공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댐 건설 필요성을 느끼는 지자체로부터 받은 건의가 많다”며 “지자체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미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포항 항사댐 건설 계획도 이번 관리 계획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항사댐은 2022년 발생한 태풍 힌남노 피해 대책의 일환으로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18년 포항시의 건설 건의를 시작으로 2025년 하반기 본공사에 들어가 2029년 완료할 예정이다.
서울경제 세종=박신원 기자
구포역을 경의선 숲길처럼… 서부산 관광 1번지 꿈꾼다
부산 북구청, 마스터플랜 수립
총 예산 2100억, 단계적 추진
낙동강은 노을 명소로 상품화
부산 북구가 서부산 대표 관광 1번지 도약을 위해 시동을 걸었다. 낙동강과 공원을 활용한 자연 힐링 관광부터 활동적인 콘텐츠까지 북구만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활용한 관광 인프라를 확충해 미래 먹거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세웠다.
부산 북구청은 지난 8일 ‘북구 트래블로드 마스터플랜 수립 용역 보고회’를 거쳤고 이달 말 용역 최종 결과를 발표한다고 12일 밝혔다. 트래블로드 조성은 민선 8기 역점 사업으로 금정산과 백양산, 낙동강을 연결해 북구만의 인프라로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총 25개 테마를 단계적으로 추진해 2032년까지 트래블로드 조성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북구청은 각 지역이 갖는 역사와 자연, 문화 인프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구역을 분류했다. 북구 전역을 △낙동강을 낀 에코힐링로드(7km) △백양산을 지나는 어반컬쳐로드(4km) △화명수목원 일원 액티브 트레킹로드(7km) 등 3개 공간으로 나눴다.
낙동강과 화명생태공원을 활용하는 에코힐링로드는 도심 속 힐링 콘텐츠 구축에 방점이 찍혔다. 코로나19 이후 치유와 힐링 관광이 인기를 끄는 만큼, 북구를 부산 웰니스 관광 1번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핵심 시설은 식당과 숙박시설이 포함된 ‘네이처 힐링파크’로, 이곳을 거점으로 공원 내 맨발걷기나 트레킹, 요가, 명상 등 프로그램을 다양화할 생각이다. 구포역~화명생태공원 일원은 반려동물 라운지 가든과 산책로를 조성해 반려가구 유입도 늘릴 계획이다.
낙동강을 낀 구포역 일대를 부산의 ‘연트럴파크’(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빗대 서울 마포구 연남동 일대 경의선 숲길을 부르는 별칭)로 꾸미자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간 단절을 만들었던 경부선 철도를 연남동 경의선 숲길처럼 만들어 젊은 층을 적극 유입시키자는 노림수다. 구포역 골목에 디지털 아트를 시도해 분위기를 바꾸고 구포맥주 등 북구 특산물을 활용한 카페·디저트 거리를 만드는 안도 제시됐다.
북구의 지형을 활용한 새로운 체험형 어트랙션 설치도 검토된다. 금정산과 인접한 화명동 일원에 친환경 무동력 카트 레이싱 파크와 놀거리를 제공하고 인근에 캠핑과 피크닉존도 설치해 관광객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이 골자다.
관광객과 지역주민들이 북구 곳곳을 밤늦게까지 즐길 수 있도록 ‘달빛 야간 콘텐츠’도 추진한다. 북구의 낙동강 노을을 브랜딩하고 상품화해 전국적인 노을 명소로 키우겠다는 것이 목표다.
예산 마련과 개발제한구역으로 인한 제도적 제한은 단계적으로 해결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트래블로드 추정 예산은 약 2100억 원이다. 예산은 향후 부산시나 중앙 공모사업, 민자 유치 등을 통해 확보하거나 상황에 맞게 사업 내용을 변경할 계획이다. 현재까지는 밑그림 수준인 만큼, 주민 의견을 수렴해 단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겠다는 게 구청 설명이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누군가 버린 고양이가 부른 멸종 비극…‘새들의 천국’이 위험하다
어청도 길고양이 증가…수천㎞ 날아온 새들 ‘쉬운 사냥감’
인간이 부른 생태계 교란…제주 까치 방사 사례 돌아봐야
길고양이가 쇠붉은뺨멧새를 사냥했다.
지난 2일 철새들의 이동 시기를 맞아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 탐조에 나섰다.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뱃길로 72㎞, 중국 산둥반도와는 300㎞ 떨어진 섬으로, 서해 중부 해역 가운데 육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2021년 11월부터 새로운 배가 취항하면서 기존 2시간20분이었던 군산~어청도 항해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됐다.
희귀한 여름 철새인 진홍가슴.
어청도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 이동하는 여름 철새에게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해마다 번식지로 향하기 위해 수천 ㎞를 날아오는데, 어청도는 이런 새들에게 정거장 역할을 한다. 진홍가슴, 긴다리솔새사촌, 흰눈썹황금새, 붉은부리찌르레기 등 어청도는 희귀 조류들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어청도를 찾아오는 새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어청도에 새가 없다는 것이 탐조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화두가 되었고, 어청도 주민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수천 ㎞를 날아와 지친 모습의 딱새(왼쪽)와 큰유리새. 무방비 상태로 길고양이의 사냥감이 된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조류의 이동 특성 때문일까? 혹은 어청도에 농경지가 사라지며 생긴 환경 변화 때문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어청도에서 보기 어려웠던 고양이 개체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고양이도 있고, 어선에서 키우다 버려진 길고양이들도 있어서 이들이 만나 번식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새도 아름답지만, 개와 고양이도 사람에게 친숙하고 귀여운 동물이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외모의 이면에는 고양이로서의 포식자 본능이 숨어있다. 고양이는 새를 먹이가 아닌 놀잇감으로 사냥하기도 한다.
길고양이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쇠유리새. 다른 조류에 의한 공격이라면 깃털이 뽑혀있어야 하는데 가슴 부분에 크게 물린 자국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2016년 국제 과학저널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Invasive predators and global biodiversity loss)을 보면, 길고양이는 전 세계 생물 다양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됐다. 논문의 저자인 호주 생태학자 팀 도허티 디킨대 교수와 연구진들은 특히 길고양이들에게 악영향을 받은 종은 멸종위기 조류였다고 전했다. 연구 결과, 조류 약 40종의 멸종 원인이 길고양이에게 있었다.
앞서 뉴질랜드 스티븐스 섬에서 희귀새 한 종이 멸종한 사례가 유명하다. 이 섬에는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참새목 조류 ‘스티븐스 굴뚝새’가 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나는 기능이 퇴화했다. 스티븐스 섬에는 쥐가 없었기 때문에 굴뚝새가 쥐를 대신해 곤충을 잡아먹고 살았다. 그런데 1894년 섬의 등대지기가 고양이를 데려오면서 사달이 났다. 고양이는 날지 못하는 굴뚝새를 쉽게 사냥했고, 결국 섬에서 굴뚝새는 절멸했다.
스티븐스 굴뚝새 표본. 인터넷 갈무리
날지 못하는 스티븐스 굴뚝새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어청도에 도착하는 새들도 수백~수천 ㎞를 날아와 기진맥진 지쳐 섬에 당도한다. 고양이에게는 손쉬운 사냥감이 된다. 오랜 비행에 지쳐 잠시 쉬어가야 할 작은 새들이 안전한 경유지라고 여겼을 어청도에서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고 있다. ‘새들의 천국’이라 불렸던 어청도가 이제는 새들의 무덤으로 변해가고 있다.
주민들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청도는 여름 철새들의 매우 중요한 경로로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은 탐조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탐조인들의 유입은 자연스레 어청도 주민들의 삶에 경제적 기여를 하게 된다. 길고양이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어청도의 생태계는 물론 마을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
까치는 무리 지어 다른 새들을 못살게 군다. 농작물에 극심한 피해를 줘 유해조수로 지정됐다.
진귀한 토종 동물이 서식하거나 존재하는 섬에 그동안 없던 동물이 들어오면 생태계 교란과 절멸을 초래할 수 있다. 제주도의 까치가 좋은 예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제주도에서는 까치를 관찰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9년 아시아나항공과 일간스포츠가 창간 기념행사를 하면서 까치 53마리를 제주도에 방사했다. 텃새인 까치는 이후 현재까지 제주도에 정착해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고 있다. 다행히 어청도에 아직 까치와 참새는 없다. 누군가 일부러 들여오지 않는 이상, 참새와 까치가 날아와 텃세를 부릴 일은 없는 것이다.
몇 년 새 어청도에 길고양이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생태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무심히 버린 고양이가 수천 년을 이어온 새들의 땅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줄 누가 알았으랴. 불필요한 생명이 죽어 나가지 않도록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개입이 부른 일이다. 바로잡는 것이 우리 몫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한겨레
가덕신공항 공사, 지역업체 참여 길 대폭 열렸다
가덕신공항 부지 조성 공사에 지역 건설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정부는 지역기업 우대 조항을 신설(부산일보 4월 8일 자 1면 등 보도)한 뒤 세부적인 기준을 공고했다. 지분율(시공능력 평가액) 300억 원 이상이면 지역 업체 참여가 가능하며 지역업체가 최대 20개사까지 컨소시엄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아울러 지역기업 지분율이 높을수록 입찰 평가 때 가산점이 올라가도록 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덕신공항 건설사업 지역기업 우대 기준’을 15일 공고했다. 국토부는 “가덕신공항 건설사업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부산·울산·경남 내 지역기업 참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우대 기준을 마련한 배경을 설명했다. 지역기업은 입찰공고일 현재 90일 이상 부울경에 본사를 둔 건설업체를 말한다. 국토부는 이번 주 중 부지 조성 공사 입찰공고를 내기로 했다.
가덕신공항 건설사업은 단일공구로 발주되는데 공사 규모가 커 건설업체들 간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하게 된다. 본래 컨소시엄은 지분율 5% 이상, 10개사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가덕신공항은 공사 금액이 10조 5000억 원이어서 지분율 5%는 5250억 원에 달한다. 이럴 경우 지역 업체 참여는 어렵게 된다. 부산에는 시공능력 평가액이 이보다 많은 곳은 3개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에 국토부는 지역기업은 업체당 300억 원 이상 참여할 경우, 최대 20개사까지 추가 참가할 수 있게 했다. 예를 들어 대형업체 10개사와 지역 업체 10개사 등 20개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할 수 있는 것. 300억 원은 시공능력 평가액이며 동시에 공사의 지분율을 말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참여가 가능한 지역기업은 부산은 34개사, 부울경 전체로는 68개사가 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분율이 얼만큼 되는지에 따라 입찰 때 가산점도 달라진다. 가산점은 △지역 업체 지분율 합이 1% 이상 5% 미만은 2점 △5% 이상 10% 미만은 4점 △10% 이상 20% 미만 6점 △20% 이상 8점이다.
다만 이 같은 고시가 정해져도 지역 업체 참여가 의무화된 것은 아니다. 지역 업체 참여를 많이 하면 할수록 입찰 시 가산점을 더 준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건설업체가 하도급을 할 경우, 지역기업을 우선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공사 자재는 품질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중소기업 제품과 지역기업 생산 제품을 구매토록 했다. 아울러 지역 건설기계를 우선 사용하고 지역주민을 우선 고용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는 강제조항은 아니고 권고조항이어서 실제로 얼만큼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현재 대형 건설업체들은 가덕신공항 사업 참여를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능력평가 1~2위인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같은 컨소시엄에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두 기업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이 만들어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보존 대책 빠진 반딧불이 축제
부산 지자체들이 깨끗한 환경을 자랑하려고 매년 반딧불이 축제를 열지만 정작 축제 주인공인 반딧불이 보호는 외면하고 있다.
남구청은 다음 달 10일 대연동 평화공원과 이기대 큰고개쉼터 등지에서 ‘제20회 남구 반딧불이 축제’를 연다. 축제 예산은 8000만 원이며, 5000여 명이 찾을 것으로 추산된다.
남구 반딧불이 축제는 남구의 깨끗한 자연환경을 알리려고 시작됐다. 남구청은 홈페이지에 반딧불이 축제를 ‘기후위기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탄소 중립의 중요성과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친환경 축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구청은 반딧불이 보호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반딧불이 보호나 관리 예산은 전무하고 별도 관리부서도 없다. 이기대 서식 반딧불이 개체 수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구청 관계자는 “축제 직전 이기대 큰고개쉼터 주변을 청소하고 있으며 반딧불이 보호 활동이나 예산 편성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8~11일 기장군 장안사 일원에서 ‘반딧불이 생태체험 학습 행사’를 여는 기장군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행사에는 예산 3600만 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군청 측은 반딧불이 보호 예산은 편성하지 않았다. 다만 장안사 일원 반딧불이 개체 수를 조사하거나 산란기에 맞춰 빛 공해를 줄이기 위해 가로등 소등 조치는 한다. 기장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반딧불이 보호를 하려면 많은 시간, 예산, 인력이 필요하다”며 “인위적 개입에 대한 실효성도 확실치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북 무주군은 반딧불이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어 부산 지자체와 비교된다. 무주군청은 반딧불이 전담팀과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150여 개의 반딧불이 서식지를 관리한다. 올해 예산 2억 원가량을 편성해 반딧불 먹이인 다슬기를 방사하는 등 보호 노력도 한다.
전문가들은 반딧불이를 환경의 깨끗함을 알아보는 지표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고신대 의생명과학과 문태영 명예교수는 “반딧불이를 살리는 게 환경을 살리는 것”이라며 “보여주기 행정으로는 반딧불이 보호가 불가능하다. 지자체뿐 아니라 지역 사회가 함께 반딧불이 보호에 동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동물 보호” vs “생활 피해”… 길고양이 급식소 두고 민원 충돌
022년 부산시 조례 개정 통해공공 급식소 125개로 늘어나
고양이 몰리며 소음·벌레 민원 일부 지자체 자진 철거 나서자
“밥 주는데 행정 왜 방해” 반발
부산 남구 한 아파트 입구 화단에 설치된 길고양이 급식소. 부산일보DB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한 주민 간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양측 민원에 시달리는 지자체도 마땅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동물단체에서는 행정당국이 적극 나서 중재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16일 부산시에 따르면, 이날 기준 부산 지역에 설치된 공공 길고양이 급식소는 모두 125개다. 부산시가 급식소 제작과 설치를 지원하는 곳으로, 시설물 옆에는 부산시가 설치한 시설물임을 안내하는 문구가 붙어 있다.
시는 2022년 4월 ‘부산광역시 동물 보호 및 복지에 관한 조례’ 일부를 개정했다. 길고양이 급식소, 화장실 등의 설치와 지원 근거를 마련하는 게 핵심이었다. 시는 길고양이의 효율적 관리와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사회 조성을 위해 해당 시설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시 노력과 달리 일상 공간에서는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동물 보호를 강조하는 주민과 소음 등 생활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의 생각이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일선 기초지자체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두고 충돌하는 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구청은 지난달 30일 남구 A 공원 내 길고양이 급식소에 대해 자진 철거를 명령하고 철거 요청문을 부착했다. 해당 급식소가 무단 적치물인 데다 급식소에 대한 불만 민원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쪽 주민의 민원이 시작됐다. 자신이 길고양이 밥을 준다고 밝힌 한 주민은 남구청 전자민원창구에 글을 올려 “공원에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왜 행정이 방해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남구청은 최근 다시 입장을 바꿔 자진 철거 요청문을 회수하고, 길고양이 급식소를 일부 남겨 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남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밥을 주는 민원인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 자비를 들여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하는 등 개체 수 관리와 주변 환경 관리를 잘 이행하고 있었다”며 “무조건 철거가 답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번 일 외에도 길고양이 밥을 주는 것에 대해 상충하는 민원이 굉장히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고 덧붙였다.
길고양이 급식을 반대한다는 김 모(48·수영구) 씨는 “밥 주는 곳에 길고양이가 몰리게 되면 밤마다 고양이 울음 소리가 날 수 있다. 고양이 사료 때문에 벌레가 꼬이거나 비둘기가 모이기도 한다”고 말했다.동물보호단체는 생명 존중 차원에서 길고양이 급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단, 고양이 밥을 주는 사람도 주변 청결 유지나 중성화 수술 등 지켜야 할 수칙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부산동물학대방지연합 김애라 대표는 “고양이를 없애는 것은 불가하다. 급식소를 치워도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어서 그 자리에 계속 있다”며 “중성화를 병행한다는 조건으로 급식소를 운영하면 개체 조절도 가능하고, 발정기의 고양이 울음 소리도 없앨 수 있다. 지자체도 주민 갈등을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이제는 해안도 자연에 돌려줄 때... 이 해변의 변신
"여기 있던 지저분한 집들이 다 사라졌네요, 헝클어진 내 머리를 깔끔하게 자른 기분입니다."
무허가 집들을 철거하고 노란 꽃밭으로 변신한 해안마을을 보고 강릉시민이 던지는 말이다. 강릉시 안현동 사근진해변 이야기다.
이 곳에 가면 푸른 파도와 노란 들녘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바다와 가장 가까이서 꽃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사근진 - 순긋은 경포해수욕장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소규모 간이해수욕장으로 아담한 해변이다. 인근의 경포 해변이 젊은이들이 찾는 곳이라면 사근진 - 순긋해변은 조용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단위의 피서객들이 선호하는 곳이다.
서울에서 온 김천일씨(75세) 부부는 "바닷가 인근에서는 제주도에서만 유채꽃을 볼 수가 있었는데 동해안에 와서 이렇게 가깝게 꽃을 본다는게 행운"이라며 즐거워 한다.
한때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신선한 회를 저렴하면서도 맛깔스럽게 먹을 수 있는 횟집들이 줄지어 있어 시민들이 선호하는 해변이었다. 그야말로 가성비 좋은 횟집이 있는 해안가였다.
꽃밭 소문을 듣고 방문했다는 한 강릉시민은 "회를 먹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자주 왔던 곳인데 횟집은 철거가 되어 아쉽지만 노란 유채꽃밭으로 변해있어 너무 좋습니다. 또 다른 시민은 동해안 해안가는 천편일률적으로 소나무(해송) 군락인데 이곳은 노란 유채꽃으로 조성돼있어 신선함을 일으킵니다. 더 많은 볼거리가 생겨 좋습니다"하고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동해안은 고파랑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표사이동으로 인한 연안침식에 노출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너울성 파도로 인해 해안가 도로 뿐만 아니라 주택이 파괴될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임시방편으로 응급복구를 펼쳐왔던 지역이다.
지난 2021년 연안침식실태조사에서 해안침식 위험등급으로 판정 이후 2023년도 역시 같은 등급으로 판정되었던 위험 지대였다.
연안침식실태를 조사하는 장성렬 박사는 "이곳은 예기치못하는 너울성파도와 이상파랑 내습으로 해안침식이 심각해 위험등급인 D등급 판정을 받은 지역이다. 인공구조물인 잠제(수중방파제)를 설치했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또한 정비되지 않은 무허가 건축물들과 해안도로는 해안침식에 그대로 노출된 해변이었다"라고 지적한다.
▲ 순굿해변 반복되는 연안침식으로 몸살을 앓았던 해변이다(2022/10)
▲ 연안침식 아스팔트가 무너져 절벽을 이룬 해안가(2023/12/6)
이곳에 정비되지 않은 불법건축물과 연안침식은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에 2020년 제3차 연안정비기본계획에 포함돼 당초 인공시설물 등을 조성할 계획이었으나 주변 지역 2차 피해 발생이 우려되어 육지에 침식 완충구역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해안 침식을 줄이기 위해 바다에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던 방식에서 육지에 완충구역을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이다. 이는 수온상승과 해수면 상승 등 기후변화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해안침식에 근본적으로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공간을 많이 확보해 해안선 자체를 내륙 쪽으로 후퇴시키는 개념이다. 바로 국민안심해안 사업이다.
▲ 강릉시 해안로에 위치한 순굿해변의 철거전 모습(2023/7/13)
▲ 사근진-순긋해변 불법건축물을 철거하고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2024/5/14)
이 사업은 연안재해 위험이 높은 해안 지역의 토지를 사들여 그 공간에 친환경 공원을 만드는 것이다. 전국에서 강릉시와 전북 고창군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이번 완충구역은 강릉시가 추진하는 경포3지구 녹지축 조성 사업과 맞물려 추진돼 사업 성과가 크게 기대된다.
국민안심해안 사업은 사근진-순긋지구 해안 1.5㎞ 구간 5만 6743㎡로 사업비 220억 원을 들여 2026년까지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사근진-순긋해변은 '국민안심해안'으로 조성돼 나무숲 외에 어떤 인공구조물도 들어설 수 없는 친환경 공원으로, 해안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강릉시의 해변 녹지축 공원화 사업과 맞물려 연안재해로부터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또한 동해안 명소로 조성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아래 사진은 사근진 - 순긋해변 해안침식이 심각했던 2021년 모습과 2024년 4월의 모습을 비교한 것이다. 해안가 인근 45가구 53개 동의 불법건축물을 철거하고 난 이후, 절벽과 임시복구현장은 사라지고 백사장이 다시 회복된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다. 인공구조물인, 해안도로와 집들을 철거한 후퇴 공법이 성공을 거둔 셈이다.
▲ 상습침식지역 침식등급 D등급으로 위험지구로 노출되어있던 해변(2021/9/15)
▲ 순굿해변 침식이 심해 임시방편으로 복구했던 해변이 모래사장으로 변모(2024/5/14)
친환경공법으로 성공, 연안침식이 사라지고 자연생태계를 회복한 서해안 기지포해안 역시, 1970년대부터 인공구조물이 설치되면서 파도의 방향이 바뀌고 바닷모래 채취와 하천 퇴적물 유입 등으로 해안침식이 심각한 해변이었다.
그 심각성을 인식한 국립공원공단은 친환경 공법으로 선회, 해안선이 복구되고 연안침식이 사라진 해변으로 거듭났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모래 포집기가 그 역할을 했다. 포집기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약 1.2m 높이 정도 되는 울타리로 해안가에 지그재그 모양으로 설치해 두면 바람에 날려온 모래가 그 자리에 쌓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
설치 이후 옛 해안가의 모래모습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해안사구가 복원되자 통보리사초, 갯멧꽃, 갯그령 등 사구 식물 10여종도 자연 유입되어 자연식생을 연구하는 많은 탐방객과 관광객이 찾는 해안가로 다시 태어났다.
▲ 갯메꽃
선진국에서는 연안침식이 심각한 해변은 해안도로나 건축물 등 인공구조물을 해안선으로부터 후퇴시켜 해빈을 확보하고 침식을 예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해안침식전문가인 한 교수는 "미국 플로리다 해안도 침식이 심각했던 해변이었습니다. 그러나 해안도로와 건물들을 뒤로 후퇴해 모래해변을 회복하고 그곳에 공원조성함으로써 연안침식 방지는 물론 관광지로서 면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공구조물설치 보다는 친환경공법으로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라고 말한다.
사근진 - 순긋해변은 동해안에서 유일하게 국민안심해안 사업으로 선정된 곳이다. 나무숲 외에 어떤 인공구조물도 들어설 수 없는 친환경 공원으로 조성된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초기 사업인 만큼 본래 목적에 맞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온 전찬길씨(64세)는 "사근진 해변이 동해안 해안가의 또 다른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면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은 몰려드는데 주차공간도 협소하고 화장실도 부족합니다. 이 지역에 살고있는 주민 조차도 어떤 사업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국민안심사업 취지에 맞게 체계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홍보를 해야 합니다"하고 아쉬워 한다.
해안은 사회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불필요한 인공구조물 설치로 인해 연안침식이 지속되고 있다. 또한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고파랑 등의 영향으로 침식은 가속화되고 있다.
이제는 해안도 자연으로 돌려줄 때다. 해안 지역의 접근성 및 이용성을 높이는 친수공간을 마련하고 해안의 공적인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핵쓰레기 무제한 용인하는 특별법 반대"
시민단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졸속 처리 반대' 기자회견
탈핵시민행동, 종교환경회의 소속 단체 회원들이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21대 국회 임기 전 상임위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즉각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1대 국회는 고준위특별법 즉각 폐기하라!
- 문제투성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졸속 처리 반대한다!
21대 국회 임기가 불과 2주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소위 '민생 법안'으로 포장되어 통과되어야 할 법처럼 이야기되고 있다.
이는 민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다. 40년 넘게 무책임하게 방치했던 고준위 핵폐기물이 지금도 넘쳐날 상황인데, 윤석열 정부는 세계적 흐름을 거스르고 핵발전소 수명 연장과 신규 건설 등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 쓰레기장도 없는 상황에 쓰레기를 더 만들 계획만 내놓고 문제가 발생하자, 쓰레기를 임시로 쌓아놓아도 된다는 법을 만들겠다는 식이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고준위 특별법의 가장 큰 문제는 고준위핵폐기물이 한없이 만들어져도 제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실현가능성이 불확실한 영구처분장 건설만 바라보며, 저장 기한도 정해지지 않은 임시저장시설을 핵발전소 부지마다 짓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구나 고준위핵폐기물 부지 내 저장시설을 지을 때 다수의 지역 주민 동의 절차도 없이 공청회 정도의 요식 행위로 의견수렴을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동안 법이 없어서 고준위핵폐기물 처분장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다. 지역 주민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수원은, 경주에 이미 건식지장시설인 맥스터를 건설했으며, 영광과 울진에도 임시 저장시설을 짓겠다고 의결했다. 그런데도 마치 고준위특별법이 없으면 '민생'이 파탄날 것처럼 국민들을 호도하는 것은 오로지 핵산업을 밀어붙이려는 꼼수에 불과하다.
아직까지 우리와 같이 핵발전소를 많이 운영하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어느 나라도 영구처분장을 운영하고 있지 못하다. 그만큼 고준위핵폐기물 문제는 해결이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다. 미국의 경우에도 핵발전소가 문을 닫아도 고준위핵폐기물은 갈 곳이 없어, 폐로 과정의 핵발전소가 사실상 핵폐기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와 처분에 관한 법이 필요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채 수명연장과 신규건설 등을 위해 졸속으로 이를 처리해서는 안 된다.
현재 제출된 여야 법안 모두 제약없이 핵폐기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용인하고, 그 위험을 핵발전소 지역에만 전가하고, 미래로 많은 책임과 부담을 미룬다는 점에서 통과되어서는 안된다. 여야가 그동안 법안을 논의해 온 과정을 보면 그 내용도 후퇴의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독립행정위원회'의 위상으로 제안되었던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위원회가 일반 행정위원회로 격하되고,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기존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심의 의결하게 하는 등 당초 독립적으로 핵폐기물 정책을 논의 결정하기 위한 법안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투성이 고준위방사성폐기물특별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세계적 흐름과 거꾸로 가는 윤석열 정부의 핵발전 진흥 정책을 더 폭주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 이 법안을 졸속으로 통과시킬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다른 법과의 거래 대상으로 떠넘기듯 통과시키는 것은 더욱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현재 논의되는 고준위특별법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그리고 22대 국회에서 그동안 문제로 짚어졌던 내용을 바로잡고 지역과 시민사회, 지방정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4년 5월 16일
탈핵시민행동 종교환경회의
올 여름도 펄펄 끓고 폭우 빈번..AI로 홍수특보 발령
올해 여름철 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강수량도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행정안전부가 산사태·하천재해·지하공간 침수 대책을 꼼꼼하게 챙기고 인공지능(AI)으로 홍수특보를 발령하는 시스템을 갖춘다고 16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형배 행안부 자연재난대응국장은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같은 내용이 담긴 '2024년 여름철 자연재난(풍수해·폭염) 종합대책' 등을 발표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최근 5년(2019~2023년)간 산사태·하천재해·지하공간 침수 등 풍수해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총 170명에 달했다. 지난해 온열 질환자는 2818명, 사망자는 32명으로 집계됐다. 폭염일수도 △2020년 7.7일 △2021년 11.8일 △2022년 10.6일 △지난해 14.2일 등으로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도 여름철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크고 강수량도 평년(622~790㎜)보다 비슷하거나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7~8월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무더운 날이 많고, 대기 불안정·저기압 등으로 폭우가 내릴 가능성이 높다. 태풍도 연평균 약 3개가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비가 필요하다는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행안부는 풍수해와 관련해 인명피해가 집중되는 산사태·하천재해·지하공간 침수 등 3대 유형을 집중 관리한다. 우선 사면 붕괴 우려지역, 민가 주변 임도, 산림피해 복구지역을 점검하고 위험급경사지를 1만곳까지 확대 발굴한다. 또 예비경보 단계 신설 등 산사태 예측정보를 세분화해 추가 대피시간(1시간)을 확보하고 선행강수량도 최장 1일에서 15일로 확대 제공한다.
하천재해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 기반 홍수특보 지점을 기존 75곳에서 223곳으로 확대하고 소하천 계측관리시스템을 880곳으로 늘린다. 운전자를 대상으로 홍수특보 발령 지점 진입 시 내비게이션으로 안내하고, CC(폐쇄회로)TV를 활용해 현장 상황을 사전 확인한 뒤 통제기준에 따라 필요하면 사전 통제한다. 극단적 호우 시에도 수도권에만 재난문자를 보내던 것을 전남·경북권까지 확대한다.
지하차도의 경우 진입차단시설 설치 대상을 452곳으로 확대하고, 침수가 우려되면 4명의 담당자(공무원 2명·경찰 1명·민간 1명)를 지정해 관리한다.침수방지 시설 유지 관리 미흡 시 소유자에게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침수우려지역 내 반지하 주택 등에 거주하는 취약계층에 대한 대피 지원도 전국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그간 서울시에서만 운영돼왔다.
행안부는 아울러 폭염에 대해서도 고령 농·어업인이 가장 취약한 만큼 대응요령 가이드를 배포하고 예찰을 강화한다. 홍수특보 지자체 알림을 폭염 심각단계 발령 시 공사 일시 정지를 권고하고, 무더운 시간대(오후2~5시) 작업 조정 등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취약계층인 전국 경로당(6만8000곳) 냉방비 지원 단가를 인상하고, 에너지 취약 계층에 바우처 지급과 지원 단가 인상(23%), 전기요금 감면 금액 확대(25%) 등의 폭염 대책도 추진한다.
이밖에 축산업에 폭염예방시설 설치 융자 512억원 지원과 축사 내 냉각시설 설치 시 가축재해보험료를 할인해준다. 농업 부문에는 원예작물 피해예방 신기술보급사업을 추진하고, 어업에는 실시간 수온관측정보 등 제공과 함께 양식어가 고수온 대응장비를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