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로보다 더 뜨거운 BRT 정류소에 녹지공간 만들자” 2. 돈줄 엮인 케이블카, 쇠줄 묶인 복원약속 3. 벌써 30도 넘는 한여름 더위…이래도 되나? 4. 대파 파동? 핵심은 기후 인플레이션 5. 기후 항로의 희망봉을 향해 6. 광주 '탈핵' 활동가, 전 재산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영면 7. 이름만 푸른도시국 ,,,환경보다 개발 8. 이름만 푸른도시국 ,,,환경보다 개발
9. 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10. 금사과에 커피, 코코아까지···현실로 다가온 ‘기후 인플레이션’ 11. 기후 위기에 눈 감은 도시에서 12.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산업·업종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13. 카산드라의 저주, 어떻게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가 14. 아이에스동서, 이기대 입구 고층 아파트, 공원 능선 다 가린다
15. 부산 마하사 주지 정산 스님 16. 역대급 삽질 '철도 지하화'에 80조? 그 돈이면 전국 철도망 하나 더 깐다 17. 봉화 석포 제련소 폐쇄를 이들이 주장하는 이유 18. 부산 신재생에너지 자립률 5년째 2%대 정체 19. 뜨거운 해수에 뼈만 남은 산호…‘전지구적 백화’
20. 부산 버스정류장이 정원으로… 도심 자투리땅에 녹색 입힌다 21. ‘바닷물 더 더워진다?’ 동해 등수온선 북상 빨라져 22. 기후소송 승리 76살 슈테른 여사 “한국 청소년들, 용감해지세요” 23. 미래의 교실입니다
24. “20일 부산 황령산에 도토리를 심으러 가요” 25. "온난화 지속되면 2049년까지 세계 소득 평균 19% 감소“ 26. 도심 속 허파' 보문산 개발 사업 '산 넘어 산'... 고민 깊은 대전시 27. 프랑스 3배 크기의 쓰레기 섬…"폐기물은 미래의 시한폭탄" 28. 커져가는 일본의 ‘난카이 대지진’ 공포...17일 밤 규모 6.6 지진에 ‘깜짝’ 29. 나비 출현도 ‘뒤죽박죽’…‘생명의 골짜기’에 위험 신호가 보인다
“도로보다 더 뜨거운 BRT 정류소에 녹지공간 만들자”
도심 중앙 위치 한여름 50도 넘어 가로수 있는 곳 비교 온도 차 현격
선형 녹지축 조성 정책 제안 나와
미국 오리건주 유진의 도로. 정류소 양쪽 끝에만 가로수가 식재된 부산과 달리 버스가 다니는 도로에 녹지가 설치됐다.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도심 중앙에 있어 한여름 도로보다 더 뜨거운 중앙버스전용차로(BRT) 정류소에 ‘녹지축’ 도입으로 열섬현상을 완화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난 12일 부산시 부산진구 부산시민운동지원센터에서 (사)부산그린트러스트 주최로 ‘BRT 버스정류장 도심 선형 녹지축 전환 정책제안 세미나’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성근 상임이사는 “지난해 한여름 서울 BRT 버스정류장을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해본 결과 가장 뜨거운 시간대인 낮 12시부터 오후 3시 사이 52도에서 57도까지 온도가 올라갔다”면서 “인근 가로수가 있는 도로의 경우 31~35도 사이로 큰 차이가 났다”고 설명했다. 부산 BRT 버스 정류소는 전반적으로 정류소 양쪽 끝 정도에만 가로수가 심겨 있어 서울과 다르지 않다. 부산그린트러스트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부산에서 BRT 공사 중 다른 장소로 이식된 수목은 6만 9079그루에 달했다. BRT가 생기면서 많은 가로수가 사라진 셈이다.
이 상임이사는 “부산 BRT 버스가 지나는 사이 공간 약 1.5m에 잔디블록이나 플랜트 박스와 같은 방식으로 식물을 심어 녹지축을 만든다면 총길이 8975.4m, 2만 5189.2㎡(약 7620평)의 녹지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부산 도심에 약 9km의 녹색하천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버스가 다니는 길바닥에 녹지축을 설치한 해외 사례도 있다. 미국 오리건주 소도시 유진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경우 트램이 다니는 도로 하부 좌우 바닥에 식물을 심어 녹지공간을 확보했다. ‘자연주의 기법을 동원한 BRT 정류소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부산그린트러스트 김수진 운영이사는 “선진국의 경우 최근 도심 녹지를 자연주의형 정원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면서 “한 번 심고 나서 관리가 거의 필요 없는 형태인데 자생적으로 자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의 기후에 맞춰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영국 정부가 1000개 이상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버스 정류장 옥상정원인 ‘꿀벌 버스정류장 정원’, 버스정류장과 연계한 소공원을 조성한 미국의 사례 등을 제시했다.
이날 경성대 도시공학과 강동진 교수를 좌장으로 부산시의회 서지연 의원, 광주 대중교통시민모임 박민희 대표, 부산경실련 도한영 사무처장, 부산시 푸른도시국 김성영 공원여가정책과장 등이 참석한 토론회도 이어졌다.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돈줄 엮인 케이블카, 쇠줄 묶인 복원약속
"앞으로 지역주민이 원하는 곳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더 건설하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강원도 민생토론회에서 케이블카 사업 확대 의지를 밝히면서 올 연말까지 한시 운영하는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영구 존치안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강원도 산림자원이 관광산업을 더욱 활성화할 수 있도록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면서 가리왕산 자연과 올림픽 유산을 더 많은 국민이 찾을 수 있도록 ‘산림형 정원’ 조성 추진을 약속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6년. 그간 더 강렬해진 기억도 있고, 뇌리에서 거의 사라진 기억도 있다. '가리왕산의 약속’은 아마도 후자에 속하는 듯하다. 일주일간 대회를 치른 뒤 즉시 복원하겠다던 약속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합리적 복원’, ‘산림형 정원’ 따위의 말장난과 마구 헤집어진 숲만 남았다. 지난 9일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약 4시간에 걸쳐 강원 정선군 가리왕산 케이블카 정상부 정류장에서 상행선 방면 케이블카 객실을 9대당 한 번씩 인터벌(구간) 촬영했다. 빈 객실은 흑백 처리했다. 케이블카는 이동 시 수송케이블에 각 객실이 고정되기 때문에 탑승 인원과 관계없이 단 1명이 이용하더라도 전체 객실이 움직여야 한다.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알파인 스키 활강 경기가 열렸던 장소다. 현재 이곳에서 운영 중인 ‘가리왕산 케이블카’는 올림픽 당시 선수들이 탔던 스키 리프트를 개조한 것이다. 대회 직후 생태복원과 함께 시설물을 전부 철거하는 것이 본래 계획이었으나, 관광 자원화를 요구하는 정선군 주민단체들이 점거 농성을 벌이는 등 반발하면서 정부가 이에 대한 협상책으로 올 12월까지 정선군의 관광용 케이블카 운영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이후 철거 여부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이번 윤 대통령의 발언으로 시설 존치(활용) 측에 더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다.
가리왕산에서는 물막이 공사가 한창이다. 지난 2022년 9월 이곳에서는 폭우로 인한 산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국에서 운영 중인 40개가 넘는 케이블카 중 통영과 여수의 해상 케이블카를 제외한 대다수 시설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5년간 연평균 이용객은 54만여 명을 기록하며 비교적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가되는 경남 사천 바다 케이블카도 개통 이듬해부터 줄곧 적자를 기록해 왔다. 사천 바다 케이블카는 지난 1월에 수익성 개선을 위해 이용료를 1만5,000원(일반 대인 기준)에서 1만8,000원으로 3,000원 인상한 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산을 보전하자'는 구호와는 달리 대회 당시 선수들이 사용했던 리프트와 같은 '진짜 유산'들은 훼손되거나 관광 시설로 개조되며 그 원형을 잃었다.
케이블카 아래 급경사지 위로 산사태 방지 방수포가 덮여 있다.
지난해 17만 명이 다녀간 가리왕산 케이블카의 현재 요금은 1만5,000원(일반 대인 기준)이다. 이용객 모두에게 5,000원 상당의 지역화폐를 돌려주고 있어, 실제 이용료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더 줄어든다. 정선군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정선군이 케이블카에 투자한 돈은 42억1,712만 원, 수익은 20억8,116만 원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약 22분간 가리왕산 하봉에 오르면 '반다비'와 '수호랑' 같은 올림픽 상징물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지난 2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닷새 동안 본지가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취재하는 동안 간혹 단체객이 오는 때를 제외하곤 대부분 상·하부 정류장은 비어 있었고, 이용객보다 운영요원 수가 더 많을 때도 잦았다. 평일임을 감안하더라도 ‘가리왕산케이블카가 사계절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고 밝힌 정선군의 신년 보도자료와 현실은 괴리가 있었다.
가리왕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은 해발 1,381m에 이르는 하봉에 위치한다. 정류장에 설치된 데크 주변으로 신갈 등의 나무들이 건조피해로 인해 고사하거나 고사 직전 상태에 놓여 있다.
경제적 타당성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절차적 정당성에 있다. 가리왕산은 조선시대부터 봉산(벌채를 금지한 산)으로 보호받으며 원시림을 유지해 왔다. 희귀식물이 대거 발견되는 등 생태적 중요도가 매우 높고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대거 포함하고 있어 애당초 개발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정부가 특별법을 근거로 개발을 허가했다. 그렇게 축구장 66개 면적에 준하는 숲이 훼손됐다. 이때 중요하게 삼았던 전제 조건은 ‘대회 후 생태복원’이었다.
과거에 아름드리 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알리는 피켓이 산 중턱에 놓여 있다. 지금은 오래된 낙엽과 돌무덤만 남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법적 합의는 무시됐고, 산은 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6년째 방치되고 있다. 시멘트로 막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계곡과 그 위에 다시 물막이 공사를 하는 굴착기 그리고 덤프트럭, 슬로프와 작업도 가장자리에서 건조 피해로 고사한 신갈과 물푸레나무, 벌거숭이로 변한 정상부(하봉)에 설치된 3층 건물과 엘리베이터. 20분짜리 관광용 케이블카를 타고 천천히 이러한 ‘말 바꿈의 결과’를 내려다보는 일은 ‘다크투어리즘’에 가깝다.
산중턱에 위치한 스키장 제설기. 이곳이 과거 슬로프였음을 말해준다.
현장에 동행한 엄태원 숲복원생태연구소 소장은 “시기상 분명히 늦었더라도 당국과 지자체가 생태적 관점을 공유하고 복원을 위한 첫걸음을 떼는 게 중요하다”면서 “훼손된 지형을 그대로 다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지만 꼭대기를 중심으로 식생과 토양환경 차원의 섬세한 접근이 있다면 건강한 숲으로 복원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엄 소장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케이블카와 같은 단순 관광시설만을 고집할 게 아니다”라며 “산림복원센터를 만들어 그 과정을 시민들과 나누고 교육에 활용함으로써 다른 차원의 가치를 만드는 길도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가리왕산 하봉과 북평면 숙암리를 잇는 경사면에 맨땅이 휑하게 드러나 있다. 올림픽 알파인 경기장 기초공사 당시 슬로프와 작업도로를 만들면서 표면 토양을 모두 긁어내 불모지로 변했다. 고산지에서 5m 깊이의 토양이 자연 복원되는 데는 수백년 이상이 걸린다.
정선= 하상윤 기자 jonyyun@hankookilbo.com
벌써 30도 넘는 한여름 더위…이래도 되나?
서울 29.4도, 영월·춘천 등은 30도 넘어
▲서울 한낮 기온이 29도까지 오르며 초여름 날씨를 보인 14일 오후 시민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한강공원 물빛광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서울의 낮기온이 섭씨 30도에 육박하는 한여름 날씨를 보였다. 일부 지역에서는 섭씨 30도가 넘는 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이날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서울의 낮기온은 섭씨 29.4도까지 올랐다. 당초 예보에서 섭씨 30도에 이르리라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실제 기록적인 수준의 기온 현상이 나타났다.이 같은 기온은 4월 기준 역대 가장 더웠던 2005년 4월 30일(29.8도) 이후 약 15년만에 나타난 고온 현상이다.
서울을 제외하면 실제 섭씨 30도를 넘은 지역도 나왔다. 경기 의왕시 오전동에는 비공식 32.4도에 이르는 고온 현상이 관측됐다. 영월(32.2도), 동두천(30.4도), 춘천(30.2도)에서도 섭씨 30도가 넘는 때이른 무더위 현상이 나타났다.
고온 건조한 현상으로 인해 이날 중부 지방에 건조주의보가 내려졌으나, 저녁부터 제주도를 시작으로 15일 새벽까지 중부서해안과 전라권에서 비가 내리겠다. 특히 제주에서는 이날 밤부터 30에서 100밀리미터(mm), 산지 일부에서는 120mm 이상의 비가 예상된다.
15일 오전 6시 이후부터 정오까지는 전국으로 비가 확대할 전망이다. 비는 모레인 16일 아침 대부분 지역에서 그칠 것으로 보인다. 예상 강수량은 인천.경기북서부와 서해5도 20~60mm, 그 밖의 지역은 5~60mm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대파 파동? 핵심은 기후 인플레이션
4월 10일 서울 마포구 마포농수산물시장에 대파가 전열돼 있다. 연합뉴스
선거 정국을 한동안 흔든 이른바 ‘대파 파동’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징후적인 사건’이다. 대파 파동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18일 서울 양재동 하나로마트에 가서 대파 한 단을 들고 “저도 시장을 많이 봐 봐서, 대파 875원이면 그냥 합리적이라고 생각이 되고”라고 말한 사건이다. 한 단에 2000~3000원이던 대파 가격이 4000~5000원까지 오른 탓에 ‘875원 발언’은 선거 정국에 커다란 논란을 일으켰고, 여당의 큰 악재였다. 혹자는 단순 실언이 아니냐고도 하지만, 대파 발언이 나오기까지 정부와 여당이 ‘운동권 심판’, 마구잡이식으로 감세와 지역개발 약속을 쏟아낸 ‘민생토론회’, “목련 피면 김포가 서울 된다”는 식의 비현실적인 공약 등으로 선거를 치르며 민생과 물가에 무심함을 드러냈기에 자초한 ‘파동’이었다. 문제는 대파 파동의 의미가 공론장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거가 끝난 시점에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를 차분히 살펴보고자 한다.
대파가 알려준 ‘기후 인플레이션의 원년’
이번 대파 파동은 2024년이 기후 인플레이션(기후위기로 인한 물가 상승)의 원년을 알렸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기후위기의 영향이 이상기후와 무역 규범의 변화를 넘어서 우리 먹거리인 농수산물 품목과 생산량의 변동으로 이어졌고, 이번에 처음으로 피부로 느껴지는 물가 상승으로 다가왔다. 문제는 올해가 시작이라는 점이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 이상 높아지지 않도록 제시한 탄소감축량을 각국이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탄소배출량이 많은 ‘기후 악당’ 국가에 속한다. 결국 올해 처음 체감한 ‘기후 인플레이션’을 내년과 후년에 더욱 강력하게 경험할 것이 확실시된다. 전반적으로 더워지고, 때에 맞지 않는 일시적 추위와 더위, 국지성 집중호우, 일조량의 변화, 해충의 증가 등으로 대파와 사과뿐 아니라 감자, 양배추, 양상추, 딸기, 토마토, 참외 등의 가격도 쉽게 출렁거릴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기후 인플레이션이 할 수 있는 긍정적인 역할이라면 ‘인식의 변화’다. 전 세계의 과학자들이 오래전부터 기후 문제를 경고했지만, 국내에서 기후가 와닿는 의제가 된 계기가 ‘미세먼지 문제’였던 것처럼 물가 상승은 체감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맞이한 상황을 ‘기후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자.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지수에서 2024년 3월 품목 성질별 동향을 보면 여러 품목 가운데 과실, 채소, 곡물의 물가 동향이 눈에 띈다.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을 보면 과실 40.3%, 채소 10.9%, 곡물 7.1%로 다른 품목들의 상승세를 압도했다. 농산물의 가격이 이 정도로 오른 사례 자체가 드물다. 2000년대 이후 인플레이션은 현실에선 사라진 유물 취급을 받았고, 심지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금융기관에 대규모 자금을 공급했는데도 인플레이션이 찾아오지 않았다. 다시금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된 시기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주춤해진 2022년 초였다. 특히 원자재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던 2022년 6월 기준으로 석유류 가격지수는 158.6을 기록했다. 이는 2020년의 물가지수를 100으로 상정했을 때 1.586배만큼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격지수가 2024년 3월 기준 과실 168.62, 채소 131.9에 달한다. 가격지수가 높은 다른 품목이 전기·가스·수도류(136.1), 석유류(124.49), 외식(120.21) 등이다. 인플레이션이 다시 찾아온 2021년 이후로 최근의 과실류, 채소류만큼의 가격지수를 보인 품목이 드물다. 2022년 6월 석유류의 가격지수가 158.6을 기록한 적이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로 2024년 3월 소비자물가 총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1% 증가하며 1월 2.8%에서 0.3%포인트 올랐다.
지난 3월 3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사과가 진열돼 있다. 국가·도시별 통계 비교 사이트 넘베오(NUMBEO) 조사에 따르면, 지난 3월 26일 기준 사과 1㎏의 가격은 한국이 6.82달러(약 9124원)로 1위를 기록했다. 연합뉴스
물론 과일, 채소, 곡물 등의 가격 상승이 전체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Consumer Price Index)는 458개의 대표품목으로 구성돼 있고, 통계청은 이 대표품목의 선정기준이 1)전국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일정비율 이상이고 2)동종 품목군의 가격을 대표할 수 있으며 3)시장에서 계속 가격조사가 가능한 품목이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대표품목들이 물가에 각기 똑같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쌀과 현미의 가격이 모두 1000원 올랐어도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가격의 변동은 다른 품목보다 더욱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렇게 품목마다 물가지수에 차등적인 영향을 주는 수단이 ‘가중치’다. 전체 458개 품목의 가중치 총합을 1000으로 배정하고 품목마다 가중치를 부여하는데, 예를 들어 쌀의 가중치가 4.2이고, 현미의 가중치가 0.4다. 같은 값이 올랐어도 쌀이 현미에 비해 소비자물가지수에 10배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이 가중치가 휘발유 24.1, 경유 16.3, 세차료 0.5, 주차료 1.2 등 품목별로도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과일류, 채소류, 곡물류의 가중치는 얼마일까. 각각 14.6, 14.3, 6.3이고, 모두 더하면 총 35.2다. 즉 과일과 채소, 곡물의 가중치를 모두 합쳐도 휘발유와 경유, 두 품목의 가중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렇게 보면 과일, 채소, 곡물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하긴 어렵다.
하지만 최근 소비자물가지수의 다른 품목의 상승세는 둔화된 반면에 채소류, 과실류의 가격이 올랐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과실류와 채소류 다음으로 가격지수가 높은 전기·가스·수도류의 경우 가격지수가 1월 136.09에서 3월 136.10으로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 반면 과실류는 같은 기간 149.99에서 168.62로, 채소류는 123.65에서 131.90으로 올랐다. 따라서 최근 소비자물가지수로 표현되는 전체 물가의 상승은 고유가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과실류, 채소류의 가격마저 오른 탓으로 볼 수 있다.
온난화와 이상기후로 과일 수확량 감소
그렇다면 왜 과실류와 채소류의 가격이 올랐을까. 농산물이 생산되는 현장에선 이미 예견된 가격 상승이었다. 예년과 눈에 띄게 차이가 나도록 생산량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2023년 사과 생산량은 전년 대비 30%나 줄어든 39만4000t이었다. 생산량 감소에는 재배면적 감소, 농촌 고령화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최근 눈에 띄는 것은 ‘기후변화’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5일 발표한 이슈보고서(김태후·채홍기)에 따르면 2010년대 기상 이변으로 인해 봄철 서리 발생 빈도가 증가 추세이고, 이로 인해 사과와 배 등 과수작물의 피해가 커졌다고 분석된다. 여기서 ‘서리’란 기온이 영하로 내려갈 때 공기 중의 수증기가 농작물 표면에 달라붙어 얼음이 되는 현상으로 서리가 발생하면 농작물의 조직이 파괴돼 수확량이 감소한다. 보고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과수 꽃이 평년보다 일찍 피지만, 봄철 서리도 더욱 빈번하게 발생해 피해를 더욱 키운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농작물재해보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피해 과실수의 사과 착과 수량은 전년 대비 16.5%, 배는 31.8% 감소했다.
연도별 지역별 봄 서리 발생 빈도(출처 :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기후 위기와 농업?농촌의 대응: ④ 봄철 동상해(서리피해)>)
국내에선 기후변화가 식량 물가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연구가 드물지만, 해외에선 관련 연구가 이미 꽤 진행됐다. 여러 연구 가운데 최신의 연구로는 지난 3월 22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의 지구·환경과학 전문 저널인 ‘커뮤니케이션즈 지구와환경(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실린 ‘인플레이션 압력을 부추기는 지구 온난화와 폭염’이란 보고서가 있다. 이 연구를 수행한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 연구팀은 총 121개국에서 30년간 집계한 월별 소비자물가지수와 날씨 데이터 총 2만7000개를 분석해 지구온난화로 인해 2035년 식량 물가상승률이 전년 대비 최대 3.2%포인트, 전체 물가 상승률이 1.18%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적으로도 위기에 처한 품목이 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바나나의 뿌리를 썩게 만드는 곰팡이가 급격히 퍼지고 있고, 오렌지는 녹화병이 확산하면서 수확량이 줄고 있다. 카카오나무도 달라진 기후로 병충해의 피해를 보고 있고, 커피콩은 온도, 습도의 변화로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기후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과일 직수입이 아닌 장기적 대책이 필요
대파 파동에서 정부의 대응은 1500억원의 자금을 긴급 투입한 할인 지원과 외국 과일의 직수입이었다. 정부의 미세 조정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이것만 하면 안 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각 농수산물의 재배적합 지역, 특징 등이 크게 바뀌고 있다. 사과 과수원을 하루아침에 귤 농장으로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종합적이고도 선제적인 연구가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농업에 대한 관점을 물가 안정과 식량안보의 관점으로 다시 볼 필요도 있다. 농업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기 위해 도시 거주자들의 텃밭농사를 지원하는 정책을 통해 농사를 직접 경험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매년 봄마다 씨감자를 심는 주말 농부들은 농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매년 여름이 앞당겨지는 것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농업 안에서도 하우스 냉난방 등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저탄소 농업으로 전환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후 대응을 비용의 관점이 아닌, 우리가 직면할 여러 위험을 줄인다는 관점에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비용이 더 든다고 기후 대응을 외면한다면 머지않아 더 큰 비용을 감수하게 된다. 이제 시작된 기후 인플레이션이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윤형중 LAB2050 대표/ 경향
기후 항로의 희망봉을 향해
오존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에 매우 중요한 물질이다. 대기 전체로 보면 불과 0.00006%에 불과한 기체이지만 그 대부분이 성층권에 존재한다. 주로 25~30㎞ 상공에 머물며 태양에서 오는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한다. 성층권의 오존층 파괴는 피부암이나 면역 체계 이상 등 건강상의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으며, 작물 생산량을 감소시키고 해양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염화불화탄소(CFCs), 즉 프레온 가스는 1928년 발명됐다. 무독성·무연성을 자랑하며 냉장, 공조, 스프레이 등에 사용되던 독성·인화성 화학물질의 대체재로 주목 받아왔다. 하지만 1985년 영국 과학자 조 파먼은 남극 할레이 만(Halley Bay) 상공의 오존이 1970년대부터 급격하게 감소해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염소의 증가가 원인임을 밝혔다. 그보다 앞선 1974년 미국의 과학자 마리오 몰리나와 셔우드 롤랜드는 프레온 가스가 상층 대기에 도달하면 자외선에 의해 분해되어 염소 원자를 방출하며, 이 염소 원자가 오존과 반응하여 오존층의 파괴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남극의 겨울은 매우 춥다. 때문에 남극 대륙을 감싸고 도는 극소용돌이가 발생한다. 이는 남극의 기후를 고립시키고 겨울을 더욱 혹독하게 만든다. 성층권의 온도가 영하 78도를 밑돌면 극성층권 구름이 생성된다. 이 구름 입자의 표면에서는 염소 화합물과 같이 오존과 잘 반응하는 화학물질이 만들어지는데, 봄이 되어 태양빛이 남극을 다시 비추면 겨우내 극소용돌이에 갇혀있던 이 물질이 광분해되어 폭발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는 남극 상공의 오존층을 파괴해 ‘오존홀’(ozone hole) 현상을 발생시킨다.
이런 연구가 발표되었을 때, 특히 프레온 가스를 생산하거나 사용하는 산업계로부터 상당한 논란과 회의론을 불러일으켰다. 초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후속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며 프레온 가스가 오존층과 지구 생명에 미치는 위험과 영향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다. 그들의 연구는 1987년 프레온 가스 “퇴출”을 약속한 몬트리올 의정서 채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몬트리올 의정서는 가장 성공적인 국제 협약 중 하나로 오존층 파괴 물질의 배출을 크게 감소시켰다. 몰리나와 롤랜드 두 학자는 1995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인류세”의 주창자로도 유명한 네덜란드의 대기 화학자 폴 크루천 또한 질소 순환과 오존층 파괴 기작을 밝혀 같은 해 공동으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오존층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21세기 중반에는 1980년대 이전 수준까지 돌아갈 전망이다. 축복이라고 생각되었던 문명의 이기가 지구 환경과 인간의 삶에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가 연대해 극복해내는 성공의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만을 전하지는 않는다. 프레온 가스의 “퇴출”을 의결하고 30여년이 지나서야 가시적인 효과가 드러나고,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도 수십년이 더 걸린다. 우리는 아직 온실가스의 “퇴출”에 합의를 이루지도 못했고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1.5도 상승까지는 10년이 채 남지 않았다.
1497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 가마 제독은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유럽에서 인도로 가는 항로를 개척했다. 이 항해는 투자금의 60배가 넘는 배당을 받았고 이 발자취는 유럽에 대항해시대를 활짝 열어젖혔다. 원래는 폭풍의 곶이라 불렸던 그 곳처럼 우리가 나아가는 험난한 기후 항로에도 탄소 중립이라는 희망봉이 있다.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임계점을 지나치기 전에 반드시 돌아야 하는 반환점이다.
김형준 |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 한겨레
https://news.knn.co.kr/news/article/155665
광주 '탈핵' 활동가, 전 재산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영면
2007년 광주환경운동연합 가입... 암 발병 후 "탈핵 활동에 써달라" 기부 의사 밝혀
탈핵 운동에 앞장 서온 광주 환경단체 활동가가 전 재산을 광주환경운동연합에 기부하고 세상을 떠났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국순군 회원이 암 투병 끝에 60세를 일기로 영면에 들어갔다고 12일 전했다. 독신이었던 고인은 암 진단 직후인 지난해 7월 자신이 회원으로 활동하던 광주환경연합에 전재산을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누나 2명도 동생 국씨의 기부 의사를 존중했고, 생전에 변호사를 선임해 기부 의사를 담은 공증서까지 작성했다. 고인 명의로 된 재산은 광주 동구 소태동 주택과 임야 등 2억5000만 원 상당이라고 한다.
고인은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선천적으로 거동이 다소 불편했던 탓인지 고정된 직업은 갖지 않았으나, 해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프리랜서 강사 등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광주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10월. "인간의 삶이 자연환경을 파괴하는데 책임을 느낀다"는 가입 동기를 밝히며 정기 후원을 시작했다.
'물리학 전공' 독신... "인간의 자연 파괴에 책임감 느낀다"
물리학 전공자인 그는 탈핵 운동, 핵발전소 및 고준위 핵폐기물 위험성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광주환경운동연합을 매개로 핵발전소 위험성을 시민에게 알리는 데 지속적으로 힘을 보탰다.
특히 광주에서 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전남 영광 한빛핵발전소(한빛원전) 안전성 문제에 많은 정성을 쏟았고, 한빛원전 안전성 강화를 위한 활동, 에너지전환에 관심을 가졌다.
▲ 2018년 원자력발전소 규제 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 규탄 시위에 나설 당시의 국순군씨(왼쪽 여섯 번째).ⓒ 광주환경운동연합
한빛원전에서 크고작은 사고와 고장이 발생하거나 규제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 때면 시민단체와 함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찾아 규탄 시위를 벌였다. 녹색당 탈핵위원장,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 운영위원으로서 원전 자체의 위험성과 함께 고준위(고농도) 핵폐기물에 대한 경각심을 알리는 교육자료 제작 등에 손을 보탰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핵발전소 안전에 관심 쏟아
고인이 경각심을 보인 고준위 핵폐기물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로도 불리는 데, 학계에서는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고준위 핵폐기물은 약 10만년간 독성을 뿜기 때문에 인류와 영구히 격리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김종필 광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고인께서 지난해 7월 전화로 기부 의사를 밝혀온 뒤 변호사를 선임해 기부 의사를 담은 공증서까지 작성하셨다. 누님 두 분도 고인의 뜻을 존중하며 저희와 함께 장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고인의 숭고한 뜻을 이어받아 기부금은 생태전환사회를 만드는 환경운동에 소중한 유산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11일 운명한 고인은 오는 13일 발인 후 광주 영락공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환경과 생태적 전환사회를 위해 실천적 삶을 살아온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소박하게 장례를 치른다고 덧붙였다. 다만 광주환경운동연합은 고인의 뜻을 많은 이들에게 알리는 것이 기증자를 추모하는 옳은 방식이라고 판단, 장례위원회를 구성해 12일 오후 7시 30분 광주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추모식을 개최하기로 했다.
광주환경운동연합은 1989년 창립됐다. 무분별한 개발과 오염으로부터 생태계를 보호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만들기에 앞장서고 있다. 철도 폐선부지 푸른길 공원 제안과 조성, 도시 숲 및 공원 지키기, 탈핵·에너지전환, 유해화학물질로부터 생명권 지키기 활동에 힘을 쏟고 있다. 상근 활동가 3명을 두고 있으며 약 1200명이 내는 후원금으로 단체가 운영되고 있다.
김형호(demian81) 오마이뉴스
사설] 탈원전 폐기로 온실가스 줄였다고 홍보하는 환경부
정부가 탈원전 폐기 정책으로 지난 2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이 감소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폐기하고 원전 발전 비중을 늘린 결과 온실가스 배출량이 2년 연속 감소했다는 취지다. 하지만 지난해 경제활동 위축으로 총발전량이 이례적으로 감소한데다, 같은 기간 재생에너지의 발전량도 원전 못지않게 증가했기 때문에 탈원전 폐기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다는 주장은 견강부회에 가깝다. 게다가 통상 7월에 발표하는 잠정치를 올해는 석달이나 앞당겨 내놓았다. 총선을 앞두고 여당에 유리한 자료를 급조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와 환경부는 지난해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1727만톤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고 지난 7일 밝혔다.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92%를 차지하는 전환(발전), 산업, 건물, 수송 4대 부문에서 모두 감소해 2022년 6억5400만톤보다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온실가스가 2년 연속 감소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원전 발전량을 늘린 ‘원전 복원’이 주효했다는 정부의 설명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지난해 국내 총발전량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1%(6.2TWh) 감소했다. 전체 발전량이 줄면 탄소 배출량도 그만큼 감소하기 마련이다. 정부는 원전 발전량이 4.4TWh 늘어난 것을 강조하지만, 재생에너지도 3.5TWh나 증가했다. 이처럼 ‘원전 복원’이 온실가스 감축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여러 요인을 따져봐야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잠정치만 갖고 탈원전 정책 폐기가 주효했다고 주장하는 건 적절치 않다. 정부가 탈원전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문재인 정부와 야당을 공격하기 위한 노림수로 보인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도 2018년 원전 가짜부품 등 안전 결함 탓으로 일시적으로 가동을 줄였을 뿐이다. 탈원전 정책은 실체가 없다는 반론이 나오는 이유다.
에너지전환포럼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지난해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년 대비 15%나 감축했는데, 재생에너지 비중이 증가한 것이 주효했다고 한다. 2022년 벨기에가 2기의 원전을 폐쇄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독일이 3기의 원전을 폐쇄했다. 탄소중립을 위해 가야 할 길은 ‘원전 복원’이 아닌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4.10 한겨레
이름만 푸른도시국 ,,,환경보다 개발
https://news.knn.co.kr/news/article/155688
벚꽃의 기후리스크 시그널 무시하면 오너리스크
얼마 전 한 지자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광고가 큰 화제가 되었다. 개화 시기를 잘못 예측하는 바람에 지역 벚꽃축제에 벚꽃이 만개하지 않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늘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흥미로운 광고를 게재해서다. 겨울 및 초봄 기온 상승으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어서 많은 지자체가 아마 올해도 개화가 빨라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축제 날짜를 빠르게 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그런데 올해 실제 벚꽃 개화가 기대만큼 빠르지 않아 지자체들은 벚꽃 없는 벚꽃축제를 할 수밖에 없는 슬픈 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문제는 단순히 꽃이 없는 축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곳을 찾은 수십만의 관광객, 준비를 진행한 지자체들의 경제적 손해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게다가 큰맘 먹고 벚꽃을 보기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했던 분들은 내년에 그곳을 다시 찾을지 의문이다. 단순히 개화 시기를 잘못 추정한 것이 경제적 문제를 넘어 정성스레 축제를 준비한 지자체의 지역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온난화에 대한 식물의 반응, 즉 기후변화로 인한 개화 시기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경제, 사회, 지역 문제로 커질 수 있는 사례가 된 것이다.
이번 사례에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식물의 개화 시기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벚나무는 정직하게 자신들이 원하는 조건에 맞추어 개화를 진행하였다. 사람이 잘못 추정한 것이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개화를 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차가운 날과 따뜻한 날을 경험하려 한다. 개화 이후 발생할 서리 피해를 미리 방지하기 위해 일정량의 추위를 경험하고 그 이후 개화를 위해 본격적으로 열을 축적한다. 그리고 식물마다 반응하는 기온(기저기온)과 필요한 열량(생장도일)이 다르다. 예를 들어 벚꽃은 주로 섭씨 5도 이상의 기온에만 반응하여 열을 축적한다. 반면에 개나리는 섭씨 4도 이상의 기온에 반응한다. 같은 종이라도 식물의 서식지 특성, 나이, 토양 특성 등에 따라 기저기온과 열량이 조금 다를 수 있다. 벚꽃 같은 경우 매일 섭씨 5도 이상의 기온에 반응해 열을 축적하여 열량이 약 106 정도가 되면 꽃이 피게 된다. 즉 오늘 기온이 10도이면 5, 내일이 4도면 0(5도 이하면 축적이 없다, 무조건 0) 그다음 날이 15도면 10, 이렇게 되면 3일간 약 5+0+10 총 15만큼의 열량이 축적된 것이고, 이렇게 매일 5도 이상의 숫자가 더해져 총열량이 106이라는 숫자에 도달할 때쯤 꽃이 피는 것이다. 올해 같은 경우 실제 개화 시기 직전인 3월에 기온이 낮았기 때문에 필요한 열량이 벚나무의 턱밑까지 왔다가 계속 뒤로 밀려버린 것이다. 예를 들어 96 정도까지 아주 빠르게 도달하다가 마지막 10이 채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이다. 여기 숫자들은 이해를 돕기 위한 것으로 판단해 주면 좋겠다, 이 숫자로 내년 벚꽃 개화 시기를 예측하면 안 된다!
기업들 기후리스크 대응 부적절
사실 벚꽃축제 해프닝은 피해를 당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아주 시의적절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일반인들이 기후 리스크라는 용어를 이해하기에 아주 좋은 본보기이기 때문이다. 요즘 언론에 기후 리스크란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아주 간단히 말하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위험을 말한다. 유럽과 미국 등 여러 국가에서는 기업들에 재무 공시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비재무 공시인 기후공시를 요구하기 시작해 매일 수십건의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아마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러한 비재무적 공시에 담겨 있는 기후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로,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이다. 전환 리스크는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탄소 가격 변동 및 규제 등으로 발생할 수 있는 금융 손실을 의미하는데, 기업의 정확한 배출량 산정(스코프 1, 2, 3), 목표, 이행 과정 등을 포함하며 국내외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의 영향을 받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포함한다. 물리적 리스크는 폭염, 태풍, 홍수 등 이상기후의 증가나 장기적인 기후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기업 자산 피해, 경제적 비용 및 금융 손실을 의미한다. 이번 벚꽃 사례 같은 경우 기후변화의 장기적 변화 및 날씨의 변동성으로 인한 벚꽃 개화 예측 실패로 발생한 금융 손실, 즉 물리적 리스크이다.
지금 많은 분이 법정 의무 공시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기후 리스크에 대해 고민한다. 특히 산업계에서는 국제 경제 질서의 변화에 따라 많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지금 국내 기업들의 대응을 보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왜 국제사회에서 기후 리스크를 공시에 담으라고 한 것인지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의미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리스크가 담고 있는 두 가지 항목인 전환 리스크와 물리적 리스크는 재무 정보처럼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라는 것이 아니다. 각각 기후변화의 원인물질(전환)과 기후변화의 결과반응(물리)에 해당하는 내용을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하라고 맡겨두면 안 되겠기에 공시라는 제도에 담아 버린 것이다. 즉 지금 지구라는 하나의 행성에 거주하는 모든 국가가 동참해서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하나의 공통된 규범이 필요하고 그것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 수준에서만 파리협약을 지키고 배출량 저감을 위한 탄소중립, 기후변화 피해를 줄이기 위한 기후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기업들이 어떻게 동참할 것이냐에 대한 방법이 기후 리스크 평가이다.
탄소배출 정보 대처 진정성 있어야
기후 리스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한다면 단순히 공시 보고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얼마 전 나와 미팅한 한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임원은 “아직 공시 유예기간이 있으니 좀 여유가 있어 천천히 대응하면 된다. 그리고 유명한 외국 컨설팅 회사에 맡기면 알아서 잘 만들어준다”고 태연하게 얘기했다. 표정으로 드러내진 못했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후 리스크 대응을 일반 업무 처리하듯 넘기면 결국 오너 리스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게 기후변화의 위력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물리적 리스크의 판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도 높은 예측 정보이며 현지에 최적화된 지역 정보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평가는 불확실성이 매우 큰 기후 예측 시나리오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자칫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지나치게 불확실성이 큰 변수를 이용한 재무적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공시 대응을 위한 보고서는 아주 멋지게 작성되겠지만 바로 올해 여름 집중호우로 입을 피해는 그 보고서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착시효과에 주의해야 한다. 그래서 정확한 실시간 감시정보를 이용해서 현실에 맞는 예측 정보를 활용해야 “진짜” 피해를 줄이는 것이다.
전환 리스크도 마찬가지다 정확한 전환 리스크의 산정을 위해서는 기업의 모든 가치사슬의 탄소 배출량 산정이 기본이다. 그런데 탄소배출량이 무엇인가? 바로 그 기업의 경제력이다. 아직은 많은 국내 기업이 탄소와 경제의 탈동조화(우리가 가야 할 미래)를 이루어 내지 못했기에 대다수 기업의 탄소배출 정보는 그 기업의 경제력을 지시하는 지시자의 역할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정보를 많은 글로벌 경쟁사가 고객으로 있는 해외 컨설팅 회사에 맡기는 것이 좋은 방법인지 이제라도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절대적으로 다 문제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정보이기에 기업 스스로 진정성 있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도 여느 해처럼 꽃이 피기 시작하자 많은 언론에서 앞으로도 계속 꽃이 빨리 피냐고 묻는 전화가 왔다. 내 대답은 항상 같다. 계속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라질 것이라고. 지금 우리 모두 기후 리스크에 대응하지 않으면 벚꽃축제는 국사책 속에서나 볼 것이다. 뭐 10년 후에 파인애플 축제를 하면 되겠지 하며 위안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벚꽃을 역사에 묻어 두기에는 너무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기후 리스크를 진정성 있는 자세로 다루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진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말이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경향
금사과에 커피, 코코아까지···현실로 다가온 ‘기후 인플레이션’
코코아콩. 로이터연합뉴스
진한 커피 한 잔에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한 조각. 일상에 녹아든 먹거리의 존재가 더이상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 기후변화로 뜨거워지는 지구만큼 작물 생산도 타격을 입고 있어서다. 이상기후가 작황 부진 등을 불러와 물가를 끌어올리는 ‘기후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15일 유통업계와 국제 상품거래소에 따르면 인스턴트 커피에 들어가는 비교적 값싼 로부스타 커피는 지난 12일 톤(t)당 3948달러로 역대 최고 기록을 새로 썼다. 주 생산지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엘니뇨(적도 부근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현상)로 인한 극심한 가뭄 탓에 생산량이 줄어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면서 구매가 몰렸다.
고품종으로 평가받는 아라비카 커피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두 품종을 혼합해서 쓰는 경우가 있어 로부스타 가격 급등의 영향을 받은 데다 최대 아라비카 커피 생산국인 브라질의 악천후도 가격 상승 원인이 됐다.
카카오 열매 가루로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가격도 1년 만에 3배 이상으로 뛰며 t당 1만달러를 뚫고 사상 최고를 찍었다. 두 달 전만 해도 현재 가격의 절반 수준이었다. 전 세계 코코아의 70%가 생산되는 서아프리카에선 엘니뇨로 계절에 맞지 않는 폭우와 폭염이 이어지면서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폭염은 이미 지난해 말 폭우로 피해를 입은 코코아 나무에 거듭 해를 입혔다. 또한 폭우는 도로 상태를 악화시켜 항구로 향하는 콩 배송을 방해했다. 불법 채굴로 인한 경작지 훼손 같은 구조적 문제도 중단기적으로 서아프리카 코코아 생산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코아 가격 인상으로 수익이 줄어든 네슬레, 허쉬 등 글로벌 초콜릿 제조사들은 제품 가격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도 초콜릿 제품 가격 인상을 검토 중이다.
농업 전문은행 라보뱅크의 원자재 애널리스트 폴 줄스는 월스트리저널에 “(코코아) 가격이 이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하진 않는다”면서도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후가 계속 발생한다면 앞으로 코코아 수확량 측면에서 더 큰 변동성이 나타날 것이며 이는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사과에 커피, 코코아까지···현실로 다가온 ‘기후 인플레이션’
이미 기후변화는 국내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과값이 금값이 된 것도 가장 큰 요인이 기후변화다. 봄철 개화 시기 이상 저온(냉해), 여름철 집중 호우와 병충해 등 악재가 겹쳐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0%나 줄었다. ‘100% 올리브유’를 내세웠던 치킨프랜차이즈 BBQ는 지난해 10월부터 해바라기유를 절반가량 섞어쓰고 있다. 최대 올리브유 생산국인 스페인을 비롯한 지중해 지역 가뭄으로 올리브유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과거 물가와 날씨 데이터를 통해 도출해낸 미래 전망도 우려를 뒷받침한다. 지난달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는 1996∼2021년 121개국의 월별 소비자물가지수와 날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35년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 물가 상승률이 전년 대비 최대 3.2%포인트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식량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전체 물가 상승률은 최대 1.2%포인트 상승한다고 내다봤다./ 경향 노도현 기자
기후 위기에 눈 감은 도시에서
▲ 사진=경남도민일보 제공
경남에는 ‘괴짜’ 기후 활동가가 있다. 이 유난스러운 70대 할아버지는 이 동네 언론계 종사자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름은 ‘박 선생’으로 칭하겠다. 박 선생은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에 이따금 주전부리 들고 찾아온다. 편집국장 혹은 사회부장을 앉혀놓고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설파한다. 그 말을 엿듣고 있노라면 당장 지구가 멸망할 것만 같다.
무수한 말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다. ‘지구 평균 온도 1.5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것. 골든타임은 2025년이라고 한다. 2025년부터 탄소 배출량을 마이너스 추세로 만들지 못하면 1.5도 상승을 막지 못한다는 의미다. 박 선생께 귀동냥으로 들은 기초지식이다.
괴짜 행적은 경남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론에만 갖혀 있지 않는 그는 창원과 김해 등지에 기후위기를 알리는 펼침막을 걸고 다녔다. ‘기후 위기’, ‘1.5도 상승 7년’ 등 글귀가 쓰인 이 펼침막은 창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는데 모두 박 선생 작품이다. 지금까지 남긴 작품이 300건이 넘는다고 한다.
기행의 정점은 한 터널에서 찍었다. 경남도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선생은 2021년 12월 붉은색과 하얀색 페인트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터널과 진전터널, 해안도로 등에 ‘기후위기’ 네 글자를 새겼다. 이로써 재판에 넘겨진 박 선생은 1심 재판에서 벌금 10만 원 형을 받았다. 박 선생은 항소했고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해 기후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힘을 달라”고 호소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으나 12일 상고가 기각되면서 1심 형이 확정됐다. 박 선생은 굴하지 않고 그다운 말을 남겼다. “이제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 내 몸으로 항변할 것이다.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을 살겠다.”
그 곧은 심지에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영화 <돈룩업> 주인공 랜들 민디 교수(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다. 천문학 박사인 랜들 교수는 어느날 에베레스트 크기의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랜들 교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널리 알리려고 하지만 시민들은 그 불편한 소식에 애써 눈을 감는다. 정치인들은 더 가관이다. 눈앞의 선거에만 신경쓰고 정치적 위기를 해결하는 데만 몰두한다.
한국 현실도 일면 비슷하다. 기후환경단체가 4·10 총선에 출마했던 후보 696명의 공약을 분석했더니 ‘기후 공약’은 극히 적었다고 한다. 특히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은 출마자 15%, 더불어민주당은 39%만이 기후 공약을 제시했다. 후보 중 절반이 넘는 342명은 주차장 확대 공약을, 196명은 그린벨트와 상수원·고밀도 개발 등의 규제 완화안을 내놨다고 한다. 더불어 기후 공약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시한 녹색정의당은 지역구, 비례대표 모두 한 석도 얻지 못한 채 원외로 밀려났다. 결국은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건 반기후 개발정책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지구 온난화가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하지만, 대중도 정치인도 이에 둔감하다. 인간이 방심하는 사이에 대자연은 점점 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다. 수박 최대 산지인 경남 함안에서는 올해 2~3월 밭을 갈아엎는 일이 있었고, 사과는 지난해 길게 내린 비의 영향으로 제대로 익지 못해 공급량이 줄면서 이른바 ‘금사과’ 대란을 일으켰다. 이뿐인가? 온난화로 인해 토양 수분이 증발되면서 산불의 빈도가 더 잦아지고 그 규모도 더 커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UN은 2030년까지 전세계에서 거대한 산불이 14% 증가하고, 2050년까지 30%, 세기말에는 50% 증가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 기후위기비상행동 기후정치특위 관계자들이 3월1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22대 국회 정책과제 제안 발표 기자회견’에서 정치권의 현재 기후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최근 총선 방송을 보다가 박 선생이 떠올랐다. 동네에 뭘 자꾸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을 건 거대 양당 후보들이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박 선생은 또 무슨 궁리를 하고 있을까. 이대로라면 틀림없이 직면하게 될 어두운 미래에 모두가 눈 감고 있을 때 ‘당장 행동해야 한다’며 몸부림 치는 연로하고 외소한 박 선생을 떠올리고 있자니, 썩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눈 뜬 자가 이방인인 법이니까.
김연수 경남도민일보 기자/ 미디어오늘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위한 산업·업종별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연결 사회에서 분절된 대응?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얼핏 나만의 독립적인 행위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타인, 사회공동체, 그리고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우리의 삶은 타인의 노동 없이는 영위되기 어렵다. 내가 살고 있는 집, 일하는 곳(사무실, 공장, 도로 곳곳), 이동을 위해 사용하는 대중교통 혹은 자동차, 식당에서 구매하는 음식들, 상점에서 구매하는 식료품과 옷가지, 소통을 위한 통신 등 모든 것은 타인의 노동 없이 내가 사용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인간은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만 자연과도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인간의 의식주 해결을 위해 필요한 원료와 연료는 모두 자연에서 확보되는 것들이고, 그 시효를 다해 폐기되는 쓰레기들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각 가정에서 버리는 비닐과 플라스틱, 음식물 쓰레기는 물론 기업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포함한 각종 대기오염물질과 폐수·폐기물들이 돌아갈 곳은 결국 자연이다. 이 쓰레기들이 축적된 자연은 또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 혹한, 폭우, 폭설, 가뭄, 산불, 그리고 코로나19 전염병의 확산과 같은 재난은 인간과 자연 간의 선순환적인 연결이 깨진 결과이다.
우리가 일하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들은 일정한 시간을 특정 기업(들)을 위해 일을 한다. 나의 일은 일한 만큼의 임금(보수)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일을 하는 동안에도, 일의 결과로 만들어진 상품이 유통되고 사용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자연에 위해가 되는 온실가스 등 유해 물질을 배출한다. 생산-소비-폐기는 연결된 하나의 사이클이다. 광업, 제조업, 서비스업, 운수업, 유통업 등 각종 산업 활동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과 그것이 자연에 끼치는 위험은 개인 실천 차원에서 1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쓰고 종이 타올 대신 손수건을 이용하는 노력으로만은 감당할 수 없는 큰 위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의 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이 중요하다.
'생산의 지점'에서 기후위기 대응의 중요성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연결된 것만큼이나 기후위기 대응 차원에서 산업과 산업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산업을 보자.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업체들은 가솔린이나 디젤을 사용하는 내연기관차 생산을 줄이고 하이브리드차나 전기차 생산을 늘리고 있다. 하지만 구동 원리의 변화만으로 친환경적이라고 보긴 어렵다.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철강업체로부터 철강을 납품받아야 하는데, 이 철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 생산된 철강이 얼마나 많은 탄소를 함유하고 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자동차업체에 기초소재를 납품하는 석유화학업체의 생산과정과 생산품도 마찬가지다. 특히 발전산업은 이들 모든 산업의 생산과 생산품의 활용 과정에 핵심 전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동차는 도로 위에서 교통 문제와 맞물린다. 전기차 운행 과정에서는 내연기관차만큼의 온실가스를 내뿜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많은 전기 수요는 또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마구 쏟아진 전기차로 도로가 꽉 찬다면, 또한 사적 교통수단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동권이 제약된다면, 그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정의로운 전환은 하나의 기업, 하나의 산업 안에서 풀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지배적인 기업별 노사관계와 노동배제적 경영 관행은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노·사 모두의 시야를 '기업 안'으로 가두고, 주요 의사결정은 경영진들만의 테이블로 제한시킨다. 이는 노동자들이 기후위기 대응의 주체로 나서는 것을 저해할 뿐 아니라 정의로운 산업전환과 이와 결부된 노동 전환을 지체시킨다.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거버넌스 재구성
정부는 4.10 총선에서 확인된 민심을 반영하여 기존의 정책 기조를 수정·집행하여야 하는데, 그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거버넌스를 재정비하는 것을 특히 우선순위로 잡아야 할 것이다. 탄소중립기본법은 정부의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을 위한 주요 정책 및 계획과 그 시행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기구로 대통령 소속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둔다고 하였다. 이 위원회는 정부 부처 장관과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 청년, 여성, 노동자, 농어민, 중소상공인, 시민사회단체 등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을 반영하여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같은 법에서 정한 기본원칙(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과 녹색성장의 추진 과정에서 모든 국민의 민주적 참여를 보장한다)과 맥을 같이 한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각 사회계층의 대표성은 축소되었고, 특히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못했다.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재구성하는 일은 비단 본위원회 구성의 민주성 확보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 계획과 그 시행은 전국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산업·업종수준에서도, 지역 수준에서도 이뤄져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둘러싼 의제는 산업·노동·사회·지역정책 모두를 포괄하고 있고, 관할 범위는 전국과 지역, 산업·업종과 기업 등으로 중층적이기 때문이다. 노동연구자 박태주·이정희는 2022년 펴낸 <정의로운 에너지전환과 노동조합의 대응전략> 보고서에서 아래 그림과 같은 중층적 거버넌스의 상을 제시한 바 있다. 본위원회 산하에 업종별위원회를 꾸리는 한편 그 업종별위원회에서 지자체(광역·기초) 수준의 사회적 대화와 산업·업종별(필요한 경우 기업 차원의) 단체교섭과 경영 참여를 관할하는 것을 말한다.
마침 4월 25일부터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다. 이 법은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기존 산업의 침체 및 실업 등 일자리 위험에 대응하여 선제적으로 근로자의 고용안정, 일자리 이동 및 노동 전환을 지원함으로써 산업전환으로 인한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과 노동 전환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어떤 산업전환인가에 대한 논의 없이 노동전환을 지원한다는 것은 한편 공허하다. 그렇기 때문에 민주적 참여를 통해 어떤 전환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국가 수준의 종합적인 거버넌스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프레시안
카산드라의 저주, 어떻게 기후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가
1990년 IPCC 1차 평가 보고서에서 2021년 6차 평가 보고서까지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350억 톤 미만에서 500억 톤 이상으로 43퍼센트 증가했다. 인류는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있지만 오히려 기후위기를 더 일으키고 있다. 기후위기 증거가 충분하다고 해도 태도 변화, 행동 변화, 정치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버트런드 러셀은 “오늘날 문제는 우리가 생존을 위하여 인류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에 있다”라고 말했다. 과학자는 기후위기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런데 ‘알림’이 곧 ‘설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뉴스의 시대’에서 “북극의 빙산이 녹는 것을 어떻게 하면 톱스타의 각선미만큼이나 흥미롭게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과학자는 위험을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이를 시민들에게 설득하여 행동에 나서게 할 능력은 갖추고 있지 않은 것이다. 기후위기 서사는 그리스 신들의 비극만 무력하다. 카산드라는 트로이에 목마를 들이면 위험하다고 예언했지만, 시민을 설득할 수 없어 결국 트로이가 멸망했다. 오늘날 우리도 기후위기라는 카산드라의 저주에 걸려있는 듯하다.
1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참석한 각국 정상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2023.12.01.
확증 편향
기후위기 대응에 미적거리는 이유는 무지와 이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두뇌가 인식하는 방식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은 한정된 뇌의 역량에 따라 효율적으로 판단하도록 진화해 왔다. 정보가 폭증하다 보면 처리가 버거워지기 마련이므로 결국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태도, 신념과 가치관을 확증해 주는 정보를 선택하고 그에 반하는 정보는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우리가 선택한 정보는 대부분 스크린된 것들이다. 스크린이 잘못되었다면 자기도 모르게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확증 편향으로 인해 이전 경험에 기반하여 주의를 기울일 정보와 무시할 정보를 결정한다. 확증 편향은 눈앞의 위험에 대응할 때는 대단히 유용한 도구이지만 기후위기처럼 장기적으로 일어날 위험에 대한 복잡한 의사결정에 적용하는 경우 중대한 계통 오차를 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에 민감하지만, ‘나중에 거기에’ 영향을 미치는 위험에는 둔감하다. 그리고 이익 위험보다 손실 위험을 훨씬 더 잘 감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 손실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미래에 발생하는 경우에는 더 그렇다. 우리는 나중보다 지금에 훨씬 더 큰 우선순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류는 기후위기처럼 수십 년, 더 나아가 수백 년에 걸친 장기적인 시간 규모에서 다가오는 위기에 책임 있게 행동해 본 경험이 없다.
과거에 위기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 생존에 도움이 되었던 확증 편향이 우리를 더욱더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우리는 내일을 걱정하면서도, 오늘을 살아가기에 더 바쁘다. 늘 긴급한 것이 중요한 것을 압도한다. 이 때문에 본능의 목소리를 누르고 이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여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니 우리는 경고 신호를 알아차린다 해도 무시하기 십상이고, 그러는 만큼 적시에 대응하지 못한다. 이는 흡연의 해로움에 대한 경고를 늘상 듣고도 닥쳐올 건강 악화를 실감하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결국, 이 세상 대부분 사람은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정보를 편향적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되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인지 부조화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이 자신의 신념과 모순될 때 불편해한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인한다. 사회심리학자 리어 페스팅어는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했다. 화석연료가 기후위기를 일으킨다는 인식된 사실과 화석연료를 태워 편익을 누리는 행동 간 인지부조화가 일어나면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을 정당화하려 한다. 우리의 이성은 합리적이기보다는 합리화를 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우리가 기후위기 정보를 많이 안다고 해서, 곧바로 적절한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지부조화는 중요한 결정을 뒤로 미루고 현재 생활양식과 소비 방식을 유지하게 한다. 영화 ‘돈룩업’에서 사회 책임자들은 혜성 충돌을 즉각 대응해야 할 위험으로 보지 않고 여기서도 자기 이익을 취할 기회를 잡으려 한다. 대통령은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려 하고, 민간업자는 희귀광물을 획득하려 하고, 언론인은 시청률을 올리려고 한다. 위험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 간에 서로 다양한 인지부조화로 인해 그 위험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을 날려버린다.
잦아진 대형산불도 기후위기에서 파생된 결과입니다.
조건부 협력자
한편, 사람들 확증 편향과 인지 부조화에서 벗어나 기후위기를 명확히 인식한다고 해도 이러한 인식이 바로 유의미한 기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유의미한 기후 행동이 있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연대야 한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기후정치바람은 전국 1만 7,000명 규모의 설문을 통해 ‘기후유권자’를 찾았다. 기후유권자는 기후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의제를 중심으로 투표를 고려하는 시민이다. 기후유권자의 비율이 33.5%에 달하였다. 여기에서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있다면 지지하는 정당에 상관없이 투표를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응답도 62.5%나 되었다.
2024년 네이쳐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게재된 논문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정치 변화를 지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5개국 약 13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86%의 사람들이 기후위기에 맞서 싸워야 하고 89%는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또한, 69%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자기 소득의 1%를 기꺼이 기부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저소득과 중간 소득 국가의 사람들은 부유한 국가보다 기꺼이 기부할 의향이 더 높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83%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4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우리나라는 73%, 중국은 76%지만 일본은 59%였다. 이는 더 부유한 국가의 시민들은 기후 재해로 인한 생계 위협감이 비교적 적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연구에서 '당신네 나라 동료 시민들의 몇 퍼센트 정도가 1% 기부 의사를 가지고 있는가?'를 물었다. 결과는 69%보다 낮은 43%에 그쳤다. 이 결과는 기후위기에 대하여 자기 의지에 대한 평가와 다른 사람들의 의지에 대한 평가간 차이를 보여준다. 나의 행동의지보다 동료 시민의 행동의지를 과소평가한다는 것이다.
다른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네이쳐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의 80~90%가 기후 정책에 대한 대중 지지를 과소평가했다. 실제 지지율은 66%~80%임에도 불구하고 37%~43%만이 지지자라고 생각했다.
동료 시민의 의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기후 행동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행동 과학자들이 말하는 '조건부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행동한다면 협력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행동하지 않으려 한다. 기후위기 대응의 광범위한 지지를 과소평가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협력할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냉소와 무력감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기 홀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원하지 않아 굳이 미리 나서서 행동하지 않는다.
우리의 의지는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거울반사적 상호작용으로부터 파생된다. 즉, 기후위기를 인식한 사람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이 기후 행동을 할 경우에만 자신도 다른 사람들을 따라나서겠다는 의지가 생긴다.
인류 역사를 통해 보건대, 구성원 대다수가 기존과는 다른 세상을 열망하더라도 불합리한 기존 세상이 버젓이 유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독재체제가 그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 상황 또한 급변할 수 있는데, 거울반사적 상호작용에 따른 사회적 역동성이 때로는 예기치 않게 불거지기 때문이다. 2016년 촛불혁명이 그 대표적인 예다.
나중에는 너무 늦는다
미래 위험에 대한 공포감 조성과 같은 부정적인 방식만으로는 기후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우리는 좀 더 긍정적이고 대안적인 목표가 필요하다. 이러한 적절한 메시지가 기후행동에 대한 지지를 높일 수 있다.
2022년 OECD는 기후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파악하기 위해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72%를 배출하는 20개국(우리나라 포함) 40,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여기서 세 가지 기후위기 대응 조건을 다루었다. 한 그룹에게는 기후위기의 영향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두 번째 그룹은 특정 기후 정책의 영향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그룹은 두 영상을 모두 시청했다. 이후 동영상을 보기 전과 후에 특정 기후 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측정했다. 기후위기의 영향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지지도를 높이는 데 가장 성공하지 못했다. 정책의 세부 사항을 알려주는 영상이 훨씬 더 나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모두 보여준 것이 가장 좋은 결과를 보였다.
다른 에너지와 비교한 재생 에너지 효과, 휘발유차와 비교했을 때 전기 자동차의 탄소 저감 효과, 히트 펌프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성에 대해 알려준다고 해서 그들의 입장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그들의 정당한 우려에 공감하고 기후 대응으로 인한 효과를 객관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개인의 삶, 지역사회, 에너지 가격 또는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한편,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시민들은 기후위기 핵심 정책 중 녹색 인프라 프로그램을 가장 크게 지지하였다. 그 밖에 정책으로는 저탄소 기술 보조금, 건물 단열 법제화와 보조금, 채식 보조금 등에 찬성 비율이 높았다. 탄소세 활용 방안으로는 환경 인프라 자금 지원과 저탄소 기술 보조금에 가장 높게 찬성하였고 저 소득층 현금 지원과 기후 피해를 본 가정과 기업의 지원에도 50% 이상의 지지를 보였다.
포텐셜 에너지(Potential Energy)에서 23개국 약 6만 명을 대상으로 정치적 기후 메시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올바른 프레임과 메시지가 기후 정책과 행동에 대한 대중 지지를 높였다. 가장 효과적인 내러티브는 "나중에는 너무 늦는다, Later is too late"였다. 이처럼 긴급한 대응 요구가 기후 행동에 대한 지지를 전 세계적으로 11%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15% 높였다.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국가에서 경제 성장 또는 불평등 감소보다 환경보호를 통한 건강 개선이 5배, 극심한 날씨 예방이 7배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지구 보호가 12배 더 많이 선택되었다. 즉, 기후위기를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일자리, 번영 심지어 기상이변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사랑이었다.
한편, 이 연구에서 기후위기를 막는데 개인이 책임 있다고 보는 비율은 전 세계적으로 26%였는데 우리나라는 16%로 그 비율이 낮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민은 정부 책임을 41%로, 기업 책임을 40%로 세계 평균보다 높게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보수라고 밝힌 사람들은 진보적이라고 밝힌 사람들보다 기후 대응에 대한 지지가 13% 낮았다.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3%로 보수와 진보 간 차이가 작았다. 즉, 우리나라에서 기후 행동이 일어나면 정파에 상관없이 사회 변화가 크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더 나은 세상과 정치 연대
기후위기는 우리가 의도하여 일으킨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내달려온 세상 그 자체의 결과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세상이 돌아가던 방식을 바꾸어야 해결할 수 있다. 게다가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그려내고 만들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에게 기후위기가 문제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여긴다. 여기에 집중하다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전히 기후위기 피해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논의의 대부분은 해결책이 무엇인지, 그 해결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어떤 이점이 있는지로 이루어져야 한다. 보험회사에서도 자동차보험이나 손해보험은 당장 닥칠 사고와 불행을 이야기하지만, 노년 은퇴보험을 권유할 때는 노부부가 경치 좋은 곳에서 느긋하게 차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가? 마틴 루터 킹 목사도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악몽이 아니라 꿈이 더 나은 세상으로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
기후위기는 각자 의지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함께 그 의지를 드러내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의 여부가 결정된다. 기후위기 대응에 정치적 의지를 나타내는 시민이 늘어나 그 임계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에 진심인 시민 단체와 정치세력이 ‘조건부 협력자’를 얼마나 조직화할 수 있느냐가 카산드라의 저주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참고문헌
로컬에너지랩, 더가능연구소과 녹색전환연구소 (2024), 기후정치, 2023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 전국 보고서, 기후정치바람(준)
Andre, P., Boneva, T., Chopra, F., & Falk, A. (2024). Globally representative evidence on the actual and perceived support for climate action. Nature Climate Change, 1-7.
Dechezleprêtre, A., et al. (2022), "Fighting climate change: International attitudes toward climate policies", OECD Economics Department Working Papers, No. 1714, OECD Publishing, Paris, https://doi.org/10.1787/3406f29a-en.
Potential Energy (2023). Later is Too Late: A comprehensive analysis of the messaging that accelerates climate action in the G20 and beyond.
Sparkman, G., Geiger, N., & Weber, E. U. (2022). Americans experience a false social reality by underestimating popular climate policy support by nearly half. Nature Communications, 13(1), 4779.
조천호 대기과학자, 전 국립기상과학원장. 민중의 소리
이기대 입구 고층 아파트, 공원 능선 다 가린다
아이에스동서, 29~31층 3동 추진
자연경관 사유화 우려 목소리 높아
부산시 심의 ‘주변 조화 권고’ 그쳐
무책임한 시 개발 행정 비판 고조
아이에스동서가 319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부산 남구 용호동 973번지 일원. 김종진 기자 kjj1761@
지난 12일 오후 3시께 부산 남구 용호동 용호만유람선터미널 2층. 화창한 날씨를 배경 삼아 이기대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졌다. 완연한 봄 날씨에 등산복을 입고 이기대 공원을 오가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건설사인 아이에스동서(주) 자회사인 (주)엠엘씨가 고층 아파트 건립을 추진하는 부지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남구 용호동 973 일원에 회색빛 공사장 가림벽이 들어서 이기대 입구를 막은 형국이었다. 파란색 천이 둘러진 측면에서 보이는 부지 내부에는 사무실 용도로 보이는 컨테이너가 여러 개 있었다. 몇몇 시민은 부지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이곳에 31층 아파트가 들어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 시민은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 모 씨는 “대연동에 사는데 집에서 보이던 이기대 풍경도 아파트가 들어서면 다 가려지겠다”며 “아파트가 들어서면 이기대가 입주민 전용 공원처럼 되는 것 아니냐”고 눈살을 찌푸렸다.
부산 이기대공원 턱밑에 고층 아파트 건립이 추진(부산일보 4월 8일 자 11면 보도)되면서 지역 사회에서 조망권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공공이 즐기던 자연경관의 예정된 사유화에 시민들은 벌써부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부산시와 아이에스동서 등에 따르면, 남구 용호동 973 일원 2만 3857㎡ 부지에는 각각 29, 30, 31층 아파트 3개 동이 들어선다. 시 건축 심의에 제출된 계획 내용과 시 관계자 말을 종합하면, 용호부두를 기준으로 높은 순서대로 아파트 3개 동이 일렬로 들어설 전망이다. 바로 뒤 이기대 능선에 따라 아파트 3개 동 높이를 맞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기대 조망권은 크게 훼손될 것으로 보인다. 29층 아파트 높이는 100.7m, 30층은 103.9m, 31층은 110.5m다. 용적률은 최대치인 250% 바로 턱밑인 249.9%까지 설계됐다. 반면 이기대 높이는 127m 수준으로 아파트 건립 시 정상을 제외한 이기대가 완전히 가려진다.
문제는 시 심의가 사실상 아무런 제동도 걸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는 조망권에 대해 “건축물 3개 동의 높이 계획은 사업지 동측(이기대공원) 장자산 능선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조화로운 계획이 되도록 검토해달라”고 권고하는 데 그쳤다. 통경축 부분은 아예 명시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아파트가 이기대 능선을 따라 들어서게 돼 이기대 자체가 거의 가려지게 됐다.
인근 주민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근 아파트 입주민 손 모(75) 씨는 “저 좁은 부지까지 아파트를 들이밀어야 하냐”며 “개발이 된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허락하는 무책임한 시 행정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도시 전문가는 시민 공공재인 경관 보존을 위한 시 대책 부재를 지적했다. 부산대 도시공학과 정주철 교수는 “부산시가 도시 경관을 보존한다고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었는데, 이번 결정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조망권 확보를 위한 통경축 논의 등 공원이나 해안가 주변에 아파트를 지으려면 더욱 까다로운 검증 과정과 조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아이에스동서가 남구 용호동 973 일원 2만 3857㎡ 부지에 고층 아파트 신축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논란이 됐다. 이기대 경관을 사유화하고, 이곳을 해양레저관광단지로 만들겠다는 시 계획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부지는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지난 2월 부산시 주택사업 공동위원회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부산 마하사 주지 정산 스님
수행도량 훼손 케이블카“시민과 함께 저지할 것”
마하사 주지 정산 스님은 “불교 자주화를 지향하며 종법과 제도를 개선했으나 불교 정신과 충돌하는 법도 있다”며 “사회법과 제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율장에 입각해 문제점들을 보완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사진=주영미 기자
부산의 황령산(荒嶺山·427m)은 도심을 감싸고 있다. 숲길 걷는 사람들에게 언제든 청량한 바람을 선사하는가 하면 도심 야경을 보려는 사람들에게도 천연의 달빛과 문명의 빛이 빚은 멋진 풍경을 안겨준다. 황령산에서 금련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에 사찰 하나 앉아있다. 작지만 ‘위대한 사찰’ 마하사(摩訶寺)다. 대대적인 중창 불사(1965∼1970)를 진행하던 중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쓰인 상량문을 대웅전에서 발견했다. 아쉽게도 그 상량문은 현재 찾을 수 없어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부산 최초의 사찰’이라는 자긍심을 갖는 건 무리 없다.
부산 최고(最古)의 산사지만 불교 내외적으로의 역할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여성 독립군을 위한 천도재를 여는가 하면 명상 등을 적용한 체험형 웰니스프로그램 ‘마하 위크’는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이 도량에 새로운 활기가 생긴 건 정산(丁山)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면서다.(2020)
춘천에서 태어났으나 서울에서 자라며 유년을 보냈다. 체질적으로 몸이 약했다. 장티푸스에 복막염까지 앓게 되면서 사선을 넘나들었다. 부모님의 소원이 “살아만 달라”였을 정도다. 체력을 키우지 않고는 생을 장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는 서울 청량리의 한 체육관에서 중국 무술을 시작했다.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근육이 생기니 몸의 변화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파주 보광사 주지 종진 스님과 인연이 있어 절에서 봉사활동 하며 불연이 닿았다. 절 안의 풍경이나 고즈넉함에 조금씩 매료되어 갔는데 언뜻언뜻 들려오는 법담도 좋았다. 어느 날, 범어사 청련암에서 정진 중이었던 적운(현 골굴사 주지) 스님이 체육관을 찾았다. 두 사람만의 짧은 담소가 있었다. 그날 밤 청년은 버스에 몸을 싣고는 범어사로 향했다. 훗날 선무도로 알려진 ‘금강영관(金剛靈觀)’을 창안한 당대 불교 무술의 최고수 양익(兩翼·1934-2006) 스님과 마주했다.
“서울에서 사범을 한다고?”
“예.”
“깎아라!”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양익 스님은 제자를 쉬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단 6개월의 유발 행자 생활을 견뎌내야만 출가를 허락했다. 한 번 만나 보고 삭발하라고 한 건 파격이었다.
범어사 승가대학과 중앙승가대학을 졸업한 정산 스님은 범어사 기획실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14·15·16대), 불교문화사업단장을 맡았으며 개운사, 모은암, 동명불원, 청련암 주지를 역임했다.
시민들의 호응 받는 마하위크 현장.
양익 스님은 엄하기로 정평 났다. 그렇지만 첫 만남에서 제자로 받아들였을 정도이니 애정이 남달랐을 법하다.
“저라고 예외 없었습니다. 두 마디 이상 나눠 본 기억이 없을 정도입니다. ‘해라, 안돼, 하지마, 가거라’하면 끝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도님들에게는 한없이 자비스러우셨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도 끝까지 경청하셨습니다.”
범어사 강원에서 공부하면서도 청련암에서 무술을 익혔는데 이 또한 은사스님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다. 그런데 범어사 강원을 졸업한 그 날 은사스님과 제자의 결이 틀어졌다. 인사를 드리려 청련암을 찾았는데 은사 스님이 마당에 서 있기에 그 자리서 삼배를 올렸다.
“‘고생했다. 뭐 할래?’ 물으셨어요. 내심 ‘청련암에서 정진하겠습니다’라는 말을 기대하셨던 겁니다. 당시 저는 대학에서 한의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 말은 꺼내지 못하고 서울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만 했습니다. 은사스님은 ‘중 노릇 하는데 무슨 대학? 절에 있기 싫으니 별소리를 다 하는구나’ 하셨습니다.”
당시만 해도 동국대 등의 일반 대학에 진학하면 환속한다는 우려가 있었다.
“더 말씀드려도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제 뜻을 굽힐 수는 없었습니다. 그날 밤 서울로 향하는 야간열차에 올랐습니다.”
한의학도의 꿈은 펼치지 못했다.
“천축사에 머무르며 입시학원에 다녔습니다. 학원비 마련하느라 체육관에서 사범 일을 보았는데 결국 공양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대중 생활을 하다가 혼자 밥을 먹으니 소화도 잘 안되었는데 규칙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결국 탈장 수술을 받았습니다.”(1985)
건강을 다시 챙겼을 때 당시 중앙포교연구회의 핵심 멤버였던 원종(전 중앙승가대 총장) 스님을 만났다.
“중앙승가대에서 ‘불교 민주화 운동’을 이어가자는 제안에 입학을 결정했습니다.”(1986)
정산 스님은 1980년 10·27법난을 목도 했다. 다행히 군인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은사스님과 함께 몸을 피해 큰 화를 입지는 않았지만 신군부 독재 정권이 ‘사회 정화’라는 명분을 앞세워 한국불교를 탄압한 국가폭력을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총무원장 월주 스님을 비롯한 조계종 대표 스님들이 강제 연행되어 조사받았습니다. 폭언, 폭행 등 인권유린이 자행된다는 얘기를 직접 전해 들었습니다. 수사 중간 발표를 통해 200억원을 부정 축재한 비리 집단으로 낙인을 찍어 놓고는 최종 수사 결과는 발표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민 눈에 불교가 어떻게 비추어졌겠습니까.”
마하사 전경.
1970년대 후반 일어난 민중불교 활동은 1980년대 초 불교개혁·사회변혁을 주창한 ‘사원화 운동’으로 발현됐다. 1979년 중앙승가학원으로 설립된 중앙승가대학도 시대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학인스님들이 민중불교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불교 내의 개혁 목소리도 높였는데 중앙승가대(개운사)에서 열린 ‘전국 청년승가 육화(六和) 대회’가 대표적이다.(1981)
전직 승려라고 사칭한 명진홍 목사가 “불교 법당은 귀신의 종합청사”라는 비방 벽보를 부착한 사건이 발생하자 중앙승가대 학인스님들은 동국대 석림회와 함께 해인사 통도사, 범어사, 운문사, 봉녕사 등 전국 강원 학인 500명을 규합해 전국승가학인 연맹을 발족했다.(19 82) 1년 후엔 성연, 진우, 원종, 현관 스님이 승가대 학인스님들의 ‘의식화 교육’을 위해 ‘중앙포교연구회’를 결성했다.(1983)
정산 스님이 원종 스님의 중앙승가대 입학 권유를 흔쾌히 받아들인 건 10·27법난과 명진홍 목사의 훼불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원종 스님이 중앙포교연구회를 이끌던 1986년 정산 스님은 청화, 석용, 진원, 동화 스님과 함께 1년 동안 의식화 과정의 하나인 ‘심화그룹 스터디’를 진행했다.
“스터디를 마친 스님들은 1학년 포교연구회 그룹을 지도하고, 1학년 스님들은 같은 학번 동기 스님들과 스터디를 진행했습니다.”
불교자주화와 사회민주화 기치를 내건 ‘9·7 해인사 승려대회(1986)’가 개최되는 결정적 역할을 한 건 중앙승가대였는데 중앙포교연구회의 역할이 컸다. 그사이 재가자 중심의 사회운동을 표방한 민중불교운동연합(1985), 불교정토구현전국승가회(1986)가 창립됐고 이어서 대승불교승가회(1988)가 출범했다. 인권과 통일, 노동, 환경에 역점을 두고 활동한 대승불교승가회는 주목을 받았으나 그해 6월 발생한 ‘봉은사 사태’로 와해 수순을 밟을 정도의 치명타를 입었다.
봉은사 사태는 종권을 둘러싼 당시 총무원 측과 봉은사 측이 벌인 갈등으로 10여 명의 스님이 크게 다친 사건이었다. 당시 3학년이었던 정산 스님도 연루됐었다.
“중앙승가대 1·2학년 학인 스님들이 봉은사로 들어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들어간다고 해도 고학년인 3·4학년 스님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정당성과 대의적인 명분을 주어야 우리도 앞장설 수 있지요.”
‘봉은사를 중앙승가대학의 운영사찰로 지정한다’는 총무원의 제안을 중앙승가대가 무조건 받아들일 건 아니었다는 얘기다. 사실 이 사건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학교의 발전 방향과 지원은 종단 차원에서 깊이 고민한 후 중장기적 마스터플랜 속에서 진행되어야 할 문제였다. 따라서 총무원의 제안에 대한 신뢰성과 당위성은 당시엔 떨어졌다.
정산 스님은 두 명의 스님과 함께 봉은사로 향했다. 품 안에는 칼이 있었다. 할복할 작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실행 직전에 경찰에 체포돼 극단적인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 사건을 두고 ‘후회하지 않는냐?’ 묻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그때마다 ‘당시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답합니다.”
훗날 전국승가회와 대승불교승가회의 회원 등 진보 성향의 스님들은 대승 차원에서 힘을 합쳐 실천불교전국승가회를 출범시켰다.(1992) 정산 스님은 현재 실천승가회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실천승가회를 비롯한 교계 단체들은 불교 민주화를 지향하며 종법과 제도를 개선하는데 나름의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비한 점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불교 정신과 충돌하는 법도 있습니다. 사회법과 제도를 따라가기보다는 율장에 입각해 문제점들을 보완해 가야 한다고 봅니다.”
1988년 봉은사 사건 직후 청련암을 찾아 은사스님을 친견했다. 한의학을 공부하겠다며 야간열차에 오른 후 처음이었다.
“심신도 쉴 겸 광주 문빈정사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차비는 있느냐?’ 하시더니 천원 지폐로 30만원을 주셨습니다. 참 따듯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서울 가지 말라 한 건 힘든 길 굳이 걷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1996년 범어사로 들어가 청련암에서 4년 동안 지장기도에 매진했다.
“민주투사 이미지가 강한 저였는데 왠지 허전했습니다. 첫 정진으로 시작한 ‘두문불출 100일기도·10만배’를 회향하고 보니 빈자리에 무엇인가 들어차는 듯했습니다. 옛 선지식들의 말씀대로 ‘스님은 수행해야 한다’라는 걸 절감했습니다. 그때 제 아집과 아상을 조금씩 내려놓았습니다. 제 인생의 분기점이었습니다.”
원행(전 조계종 36대 총무원장) 스님의 추천으로 2000년 개운사 주지를 맡았다. 첫 주지 소임이었는데 은사스님은 쉬이 허락했을까?
“허락하시면서 당부하셨습니다. 예불 빼먹지 마라. 모연금 받아 불사하지 마라. 주지를 위한 사조직 만들지 마라. 사표 쓰라고 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 절 살림을 직접 맡아보니 예불 약속만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상(相)이 덕지덕지 남아 있는 결과라 생각하고는 매일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마하사에서도 이어가고 있는데 안거 기간에는 불자들과 함께 매일 독송합니다.”
황령산지키기 범시민운동본부 출범.
황령산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산 정상에 전망대와 호텔,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거다. 2021년 부산시와 민간사업자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본격화됐는데 2023년 부산시는 ‘조건부 승인’했다.
“기후위기시대에 사는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산을 파헤치는 건 그에 역행하는 겁니다. 산 중턱에는 2007년 건설한 후 얼마 안 돼 문 닫은 스키돔이 16년째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호텔을 짓겠다는 건 억지를 넘어 폭력입니다. 황령산 자락의 땅 330만㎡(10만평)는 마하사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도량에 서서 둘러보는 땅 모두가 삼보정재입니다. 도량 훼손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황령산은 시민들의 쉼터이기도 합니다. 마하사는 시민들과 함께 개발계획을 저지할 겁니다.”
마하사에서 퍼져 나간 범종 소리는 해탈의 기쁨을 느낄 만큼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영팔경’의 하나로 꼽혔다. 출가 후 위법망구(爲法忘軀)의 길을 걸어 온 정산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한 ‘그 해탈의 소리’를 지켜낼 것이다. 시민들도 그리 믿고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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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스님은 양익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84년 구족계 수계. 범어사·중앙승가대 졸업. 개운사, 모은암, 동명불원, 청련암 주지, 중앙승가대 동문회 사무처장, 조계종 중앙종회의원(14·15·16대), 불교문화사업단장, 범어사 기획실장 역임. 현재 부산그린트러스트 이사장이자 황련사 한주이며 마하사 주지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법보신문
역대급 삽질 '철도 지하화'에 80조? 그 돈이면 전국 철도망 하나 더 깐다
② 풀뿌리 철도의 죽음과 이상한 나라의 철도
2024년에는 KTX가 스무살이 된다. KTX 개통 20주년은 한국 철도 발전의 상징적 의미를 갖지만, 한국 철도가 처한 현실을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철도는 기술적, 정책적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받지만, 그 이면엔 '민영화'의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 따라 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KTX 노선을 떼서 민영화하겠다는 구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SRT를 새로 설립해 '같은 노선 위를 달리는 두 열차 운영 회사'라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민영화의 우회적 물꼬를 텄다.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한 데 이어 관제를 분리하려는 시도 역시 꾸준히 진행됐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기후 위기 시대 서민의 발이 되고 있는 전국의 철도 노선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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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철도 지하화는 '미친 짓'이다
지금으로부터의 1년 전 있었던 일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한다. 지난 2023년 4월, 수원역에서는 서울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가려던 한 장애인이 승차 거부를 당해 다른 열차를 타야만 했던 일이 있었다. 장애계는 성명을 통해 철도공사가 부적절한 대처를 했다는 논평을 냈고, 여론 역시 장애인 이동권이 철도에서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며 철도 당국을 비난했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설명이 가능하다는 말이지, 괜찮다는 건 물론 아니다). 당시 문제가 된 #1282 무궁화호(11:38 수원 출발)열차가 3량 편성에, 입석 승객이 량당 70명 가까이 들어찬 상태였던 걸 알고 나서다.
좌석(72석)만큼 많은 승객이 탄 무궁화호 차내는 만원 전철과 다를 바 없다. 당연히 휠체어 승객을 태우려면 다수의 승객이 간격을 좁혀 다닥다닥 붙거나, 아예 하차해야 한다. 승무원이 상황을 매끄럽게 풀지 못해 안타깝지만, 입석 승객들에게 직원 안내에 따라 주변 사람들과 다닥다닥 붙거나, 타고 있던 열차를 포기하고 다음 차를 타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는 이 상황을 이렇게 이해하고 싶었다. 어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탓하기에 앞서,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 구조적 이유에서 현실이 됐다는 것.
문제의 열차가 3량이라는 데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런 현상은 무궁화호 객차가 부족해져 나타난 현상이다. 20년 전, 고속철도 개통 직전 무궁화호 객차는 약 1500량에 달했고, 새마을호를 합하면 객차만 2000량에 달했다. 처음 구매했던 KTX1이 총 920량이었음을 감안하면, 고속열차의 2배를 넘어선 수준인데다, 당시 철도공사가 보유한 전동차보다도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객차의 수는 1/4 가까이 쪼그라든 500량 수준이다. ITX-새마을 등의 전기동차를 구매하긴 했지만 이들을 합해도 일반열차의 세력은 800량 정도 뿐이다. 일반열차 공급량 전체가 줄어든 것이다. 한편 서울-수원 사이의 운임은 오히려 내렸다(2008년 6월 기본요금 인하로 인해). 도로는 더욱 막히고, 경부선 무궁화호의 속도는 바로 옆으로 달리는 1호선보다 3배 빠르다. 거의 GTX와 동급이다. 시간만 맞으면 1호선보다 무궁화로 움직이는 게 합리적인 구간이 이 곳이다. 열차는 줄어들었는데, 일반열차를 탈 사람은 여전히 많은 것이 지금의 수도권이고, 그 와중에 나온 파열음이 바로 수원역 휠체어 탑승거부 사건인 셈이다.
말라 죽고 있는 풀뿌리 철도
그렇지만 이 파열음은 사람들의 귀에 거의 들리지 않는 것 같다. 들리지도 않는 만큼, 이 낮은 파열음엔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통은 오늘도 이어진다. 파열음은 아니지만 가청 범위 내에서 들리는 '소음'들은 있다. 사실상 ITX-청춘이나 무궁화 새 노선에 불과한 'GTX 광풍', 철도 지하화를 위해 철도 부지와 자산을 금융기관에 모두 내어주겠다는 '지하화 계획' 같은 당혹스러운 것들 말이다.
사람들의 귀에 거의 가 닿지 않은 다른 파열음도 있었다. 2023년 연말, 디젤동차가 수명을 다해 일제히 폐차된 일이다. 온실가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양의 먼지를 뿜어내는 대표적 염원인 디젤 열차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철도공사는 물론, 지방정부도 후속 열차 계획조차 제대로 세우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동차를 투입하려면 막대한 기반시설 투자가 필요하다. 전철화 역시 킬로미터(Km)당 100억 원 단위는 들어갈 정도로 큰 공사다. 게다가 이 기반시설이 투자 가치가 있으려면 하루 편도 20~30회의 열차 운행이 필요하다. 시간당 1~2편 빈도다. 그런데 경부선을 벗어나면 이렇게 많은 빈도로 운행하는 구간 자체가 많지 않다. 결국 전국 모든 노선에 전동차가 들어가는 건 무리가 있다. 기술적으로 붕 떠 있는 이런 구간에, 현재의 기술로 가능한 대안(가령, 바이오디젤 열차)을 투입하자는 논의 자체도 없는 상태에서, 디젤 동차의 수명이 만료된 게 바로 2023년 연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부부를 비롯한 수많은 영동지역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바다열차든, KTX 광주 송정역의 부족한 대중교통 접속을 보완하던 광주선 셔틀열차든, 동해선 셔틀 열차든 모두 사라졌다. 심지어 경원선 북쪽 말단 구간 열차는 제대로 된 공지도 없이, 일부 구간 전철 개통 이후 복원되지 않고 슬그머니 폐지되었다.
▲지도 1 공중에 붕 뜬 풀뿌리 철도들, 2004~2030. ⓒ
이런 사태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2023년만의 일이 아니란 것이다. '지도 1'은 고속철도 개통 이후 폐지된 주요 객차열차, 디젤동차 열차 및 현재 객차열차 이후 대안이 불투명한 구간을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지선망 열차 폐지는 2000년대 들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리고 오는 2028년, 현행 무궁화호 객차 열차 전면 폐지 이후 대책이 불투명한 지방 노선 또한 여럿 남아 있다.
새 철도, 그리고 철도 지하화
더 재미(?)있는 대조도 있다. 국가철도공단 홈페이지에 등재된 사업중인 철도 사업을 수합해 본 일이 있다. 거의 3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도를 약 100조 원을 들여 건설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특별법까지 만들어 추가로 철도를 짓는 축선도 있다. 국토의 구석을 달리는 열차는 없어지고 있는데, 또다른 국토 한편에서는 기존 철도망만큼 광범위한 노선을 더 짓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이 있을 수 있을까? 다 썩어가는 풀뿌리 철도 같은 건 말라 죽도록 내버려 두고, 새로 건설한 몇몇 대도시 주변 광역철도나 고속철도만 덩그러니 남는 게 한국철도의 미래라는 뜻인가. 이 상황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그건 오해다'라고 납득시킬 자신은 점점 없어져 간다.
▲ 그림 1 철도 지하화와 전체 국가철도망 규모 ⓒ
▲ 그림 2 철도 지하화와 전체 국가철도망 규모 ⓒ
요지경 속에 빠진 2024년의 한국에서는 더 신기한 일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 한국철도를 거의 그대로 복제할 수 있을만큼 방대한 사업비가 들어간다는 철도지하화 사업이 바로 그것이다. 잘 해봐야 주요 대도시 내부 약 100킬로미터 정도의 철도를 지하로 구겨넣겠다는 건데, 총사업비만 80조 원이라고 한다. '그림1'에서 볼 수 있듯 이 돈이면 국가철도공단이 지금 사업중인 모든 종류의 철도를 거의 다 지을 수 있다. 한국철도를 2배 늘릴 돈을 모아와서는, 그 피같은 돈을 전체 망의 수 퍼센트(%)에 불과한 노선에 투입하고 끝내겠다는 게 지하화 사업이다.
용량 확충도, 속도 개선도 없이, 철도를 2배 늘릴 수 있는 막대한 돈을, 철도를 땅 속에 집어넣는데 써서 없애겠다는 말이 정치적 동력까지 받고 있다. 서울에 철도가 많은 것도 아니다. 런던에는 서울역만한 역이 11개, 파리에는 7개 있는데 서울에는 서울역 하나 아니던가? 인구도 유럽 메가시티들보다 배나 많은 도시임에도 '철도의 목을 조르겠다'는 이야기가 양 당의 공약을 지배하고 있다. 집값을 이유로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교통 공급자들이 모두 데모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 일이지만 세상은 아주 조용하다. 속에서 일어나는 천불을 말없이 삭힐 뿐이다.
이상한 나라의 철도를 바라보며
고속철도 20주년을 맞이한 오늘날, 한국철도를 휘어감고 있는 이 이상한 상황을 대체 어떻게 압축해 설명할 수 있을까? 한국 철도를 앞으로 어떻게 만들고 활용해 나가야 할 것이냐는 통합적 질문에, 각자가 원칙도 없이 앞다퉈 답변만 내놓고 있다. 철도공사는 고속철도를 조금씩 확장하고 수도권 광역을 유지하는 정도에 만족하면서, 풀뿌리 철도의 고사(枯死)를 방조하고 있다. 철도공단은 철도를 새로 건설해야만 존재 의미가 살아난다. 국토부는 정작 철도의 교통 기능을 훼손하는 철도 지하화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승객이 지나차게 몰린 곳(수도권)이나, 방치되어 사라지고 있는 풀뿌리 철도(비수도권)는 '구시대적 철도'고 규정하고 싹 갈아엎어야 할 대상 정도로 여기는 것 같다. 한국 철도에 가장 책임있는 이들이 이런 식이니, 지방정부나 민간사업자 같은 다른 행위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그간의 관성이라는 것이 있으니, 상황이 빠르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손 놓고 있어도 되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기후 위기의 파고는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고,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은 계속해서 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 모두에게 나는 철도가 답이라고 말하고 싶다. 허나 이 '이상한 나라의 철도' 정책이 계속되면, 이런 답은 한 이상주의자의 설득력 없는 주장 이상이 되지 못할 것 같아 두렵다.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 지금 있는 철도부터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0순위다. 추가로 짓는 노선과 현 노선을 서로 합이 맞도록 만드는 것이 1순위다. 망과 망의 연결을 조금씩 더 강화하는 한편, 대중교통이 운영에 불리한 곳에는 과감하게 새 노선과 새 열차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망이 기존 노선에서 병목을 이루지 않도록 주요 역과 그 주변의 용량을 넉넉하게 준비한다. 철도의 상대는 생애의 5%, 평균 하루 1시간 동안 돌아다닌다는 '승용차'다.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예비력을 갖춰야 철도에게도 승산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제안을 현실로 만드는 데에도 많은 예산이 들 것이지만, 잘못된 정책에 따른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있는 철도부터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철도를 망치는 방법은 쉽다. 고속철도나 GTX 같은 새 사업을 ‘교통 혁명’ 같은 민망한 수사로 치장하는 것(이들이 사실은 하나의 네트워크로 기능한다), 자산유동화증권(Asset Backed Securities, ABS)을 철도 자산에 걸어 철도 전체를 금융화하고자 하는 '철도 지하화' 같은 일, 이런 건 철도의 교통 기능을 훼손하고 '우리 모두'의 철도를 망치는 길이다.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철도망에 따른 이익을 세금으로 거두어, 망의 사각 지대에 되돌려 주는 재정 정책, 통합 대중교통망 운영 방향을 고민하는 게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다.
고속철도 개업 20년을 맞이한 이상한 나라의 철도. 풀뿌리 철도는 점점 더 죽어가고 있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교통망 전체를 보지 못한 채 고속열차와 수도권 일부 망만 비대하게 만들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동을 책임질 철도가 국토와 대도시권의 뼈대가 되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줄기만 붕 뜬 채 뿌리가 썩어가는 철도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지 않도록,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 | 프레시안
봉화 석포 제련소 폐쇄를 이들이 주장하는 이유
최근 3개월 동안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노동자 6명이 목숨을 잃거나 다쳤다. 54년 동안 환경 법령 위반과 산업재해로 논란을 빚어왔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는 제련소 폐쇄를 주장한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위치한 영풍 석포제련소. 1970년에 설립되었다.ⓒ시사IN 이명익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은 태백산, 연화산, 삼방산, 면산 등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경북 최북단 산간마을이다. 석포면은 낙동강이 시작되는 깊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데, 그런 석포면의 정중앙에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다. 공장을 둘러싼 풍경은 을씨년스러웠다. 제련소는 산자락 단면이 훤히 보이게 골짜기를 파헤친 자리에 서 있다. 공장 주변을 둘러싼 붉은 암석들은 삭았고 고목들은 바짝 말라 있었다. 신기선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영풍제련소대책위)’ 회장이 그것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공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며 오염된 물 때문에 커다란 바위들이 산성화되면서 시뻘게졌다. 어린 초목이 땅에 박혀 있질 못하고 뿌리가 다 드러나 흘러내린다. 공장 인근은 몇 년 후면 민둥산이 될 거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허연 수증기가 실안개와 뒤섞이며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시사IN〉 취재진이 본 3월26일 영풍 석포제련소 풍경이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영풍문고’로 잘 알려진 주식회사 영풍그룹 소유의 아연 생산업체다. 연간 최대 아연 40만t, 황산 72만t을 생산하는데, 생산량이 세계 4위 규모다. 재계 순위 28위(2023년 자산총액 기준)인 영풍그룹의 뿌리이자 성장에 핵심적 역할을 한 사업체이기도 하다. 2023년 영풍그룹의 제련 부문 매출은 약 1조5466억원으로 그룹 전체 매출의 약 41%를 차지한다.
영풍은 1970년 일본 도호아연과 손잡고 석포제련소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에선 광산과 제련소에서 배출된 카드뮴으로 인한 이타이이타이병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도호아연은 해외로 눈을 돌려 한국의 영풍과 새 사업을 시작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깊은 산골에 있어 오랫동안 일반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14년 제3공장을 불법 증축하려다 이에 반발하는 주민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영풍제련소대책위가 만들어지며 주목을 받았다. 봉화군 회의장을 점거하는 등 주민의 거센 반대가 이어졌지만 결국 3공장은 2015년 5월부터 가동됐다. 당시 영풍그룹은 건축법 위반에 따른 이행강제금으로 약 14억원을 지불했다.
3월26일 영풍 석포제련소 제1공장 앞에 선 신기선 영풍제련소 봉화군대책위원회 회장. ⓒ시사IN 이명익
이후 시민단체와 환경부 조사로 광범위한 환경오염 실태가 밝혀졌고, 영풍그룹은 지난 10여 년간 국정감사에 단골 기업으로 불려 나갔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대구지방환경청과 경상북도, 봉화군이 55회에 걸쳐 대기·수질·토양·지하수를 점검했는데, 3년간 대기 측정 기록부 1868건을 조작하고 무허가 지하수 관정을 개발하는 등 총 76건에 이르는 환경 법령 위반 사안이 적발되고 이 중 25건은 고발됐다. 봉화군은 제련소 안팎에서 아연·납·카드뮴 찌꺼기 등에 따른 심각한 토양오염이 있었음을 확인하고 2015년부터 토양정화 명령을 아홉 차례 내리기도 했다.
환경부가 내준 통합환경허가
영풍 석포제련소는 1300만 영남인들의 식수원인 낙동강 최상류에 위치해 있어 수질오염의 원인으로도 끊임없이 지목돼왔다. 2019년 환경부는 영풍 석포제련소 쪽에서 제출한 하천수·지하수 현황 보고를 분석하고 자체 조사를 진행했다. 공장 내 지하수에서는 생활용수 기준 대비 최대 33만 배, 제련소 인근 낙동강 지표수에서는 하천 수질 기준 대비 최대 120배에 이르는 카드뮴이 검출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환경부는 영풍 석포제련소가 낙동강 최상류에 독성 중금속인 카드뮴을 불법 배출했다고 판단하고 2021년에 과징금 281억원을 부과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열흘간 공장을 멈추기도 했다. 2018년 영풍 석포제련소는 불소, 셀레늄이 허용 기준을 초과하는 폐수를 낙동강에 무단 방류하다 적발돼 경상북도로부터 조업정지 20일 행정처분을 받았는데, 이에 불응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해 3년 7개월간 재판이 이어졌다. 불소 배출 허용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혐의에 대해 2심 재판부는 경상북도에서도 계산을 잘못했다며 조업정지를 10일만 인정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지난해 열린 국정감사에서도 영풍 석포제련소는 질타를 받았다.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은 영풍 석포제련소를 두고 “이 회사는 악랄하다. 환경법 관련해서 위반은 말할 것도 없고 대기오염에 대해서 배출을 조작한 적도 있다. 개선의 여지가 없는 회사가 아니냐”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형동 의원 역시 2023년 1월부터 8월까지 환경 법령 위반 9건이 적발되고 고발 건수도 3건이나 된다며 ”한강수계 위에 석포제련소가 있다면 어떻겠나? 수도권 분들이 용인하겠나”라고 말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산에서는 고사된 나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시사IN 이명익
하지만 영풍그룹은 ‘친환경 경영’을 내걸고 호조세를 이어왔다. 지속 가능한 투자 관점에서 ‘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평가하는 한국ESG기준원(KCGS)은 영풍의 2023년 ESG 종합등급을 B+(양호)로 상향했다. 환경 부문에서는 B+(양호)로 2단계 상향했고 사회 부문에서는 A(우수)로 1단계 상향했으며 지배구조 부문은 B(보통) 등급을 유지했다.
2022년 12월에는 환경부가 영풍 석포제련소에 조건부 ‘통합환경허가’를 내주며 안정적으로 사업체를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통합환경허가란 2017년 시행된 ‘환경오염시설의 통합관리에 관한 법률(환경오염시설법)’에 따라 환경오염 시설에 대한 지도·단속 등 관리 권한을 지자체에서 환경부로 가져오도록 한 제도다. 통합환경허가를 받으려면 통합관리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만약 사업장이 환경오염시설법에서 정하는 허가 기준을 달성하지 못해 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조업정지 및 폐쇄 순서로 이어진다. 업종별 유예기간에 따라 영풍 석포제련소는 2022년 12월31일까지 해당 허가를 얻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영풍 석포제련소가 그간 수십 차례 환경 법령을 위반해온 만큼 통합관리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이런 예상과 달리 환경부에서는 환경오염시설법에서 정하는 허가 배출 기준과 허가 조건을 최대 3년 내에(2025년까지) 이행하는 것을 전제로 영풍 석포제련소에 통합환경허가를 내줬다. 허가 조건으로 제시된 개선 사항은 총 103건(세분류 총 235건)에 이른다. 환경부 통합허가제도과 담당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영풍 석포제련소에 통합환경허가를 내준 배경에 대해 “석포제련소가 환경법이 정립되기 전인 1970년에 지어진 공장인 만큼 오염물질로 오랫동안 주민들에게 피해를 줘온 건 맞지만, 이제 정기 검사를 받으며 이런 미흡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신기선 영풍제련소대책위 회장은 “세부 개선 사항(조건)이 235개라는 것은 문제가 235개 있다는 뜻이고, 그 정도 문제가 있다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측은 환경 부문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2021년 5월부터 가동 중인 무방류 시스템은 공정 처리과정에서 사용된 처리수를 외부로 유출하지 않고 공장에서 재사용하는 시스템이다. 공장 폐수가 낙동강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공장과 낙동강 사이에 지하수 차집 시설도 설치했다. 영풍 관계자는 “2025년까지 7150억원을 환경 부문에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매년 시설 개선을 하고 있다. 개선 사안을 대구지방환경청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있다”라며, 수질관리뿐만 아니라 토양정화 명령 이행, 굴뚝자동측정기(TMS) 추가 설치 등으로 토양·대기 오염 완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시사IN〉이 확보한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영풍 석포제련소는 2023년 말까지 이행해야 할 당해 할당량의 통합환경허가 조건을 모두 이행했으며 이는 103개 허가 조건 중 77.7%(80건)에 해당한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영풍 석포제련소 측의 주장을 반박한다. “무방류 시스템은 공정에서 사용한 물만 배출하지 않겠다는 거다. 공장 안에 내린 빗물은 처리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흘러 나간다. 지하수 차집 시설 역시 실효성이 의문스럽다. 지하수는 강물과 달라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부 땅에 차수벽과 차집 시설을 설치해도 공장의 지하수가 흘러 나가는 것을 원천 차단할 수 없다.” 가장 오염도가 심한 제1·2공장 부지의 토양정화 수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2023년 12월 봉화군 녹색환경과 자료에 따르면, 오는 6월까지 토양정화 명령 이행을 완료해야 하는 제1공장과 제2공장 부지의 정화처리 수준은 각각 47.3%, 10.3%에 그친다.
3월20일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별관 앞에서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영풍 석포제련소 운영 중단 등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3개월 동안 6명이 죽거나 다쳐
영풍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논란은 환경오염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3월20일, 영풍그룹의 제37회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 앞에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여 영풍 석포제련소 폐쇄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최근 3개월 동안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하청노동자 두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 세 명이 발생한 산업재해 두 건을 지적했다. 노동자 사망사고가 이어짐에 따라 지난 1월9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은 영풍 법인과 대표이사, 제련소장과 하청업체 대표 등을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이틀 뒤 영풍제련소대책위가 장형진 전 영풍그룹 회장(현 영풍그룹 고문)을 실질적 경영책임자로 지목하며 그를 고발하기도 했다. “법적 문제가 터지면 서류상 대표가 책임지면 되기 때문에 영풍은 지금껏 사회적 책임을 외면해왔다. 이번에야말로 노동자 사망사고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의 법적 책임을 실질 사주가 져야 한다”라는 이유였다.
2023년 12월6일 영풍 석포제련소 내 설비 교체 작업을 하던 노동자 4명이 맹독성 가스(아르신) 중독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그중 60대 하청업체 노동자는 치료를 받다 나흘 만에 숨졌다. 사망한 노동자의 몸에서는 비소 치사량인 0.3p㎜의 6배 이상인 2p㎜이 검출됐다. 〈대구신문〉 보도에 따르면, 노동법상 해당 작업을 진행할 때는 방독마스크를 착용해야 하지만 숨진 노동자는 방진마스크만 쓴 것으로 파악됐다. 3월8일에는 냉각탑 석고 제거 작업을 하던 50대 초반 임시직 노동자가 떨어진 석고 물체에 맞아 사망했다. 3개월 만에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다시 발생한 산재였다.
3월26일 봉화에서 만난 영풍 석포제련소 퇴직자 진현철씨는 노동자들의 사망사고 소식에 분통을 터트렸다. “내가 사장이라면 사람이 이렇게 계속 죽어 나가는데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뭐라도 하겠다. 노동자가 일을 하다 죽어도 자기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말이 전부다.” 그는 2009년부터 6년 9개월간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했다. 원래 강원도 태백탄광의 광부였던 그는 50대에 명예퇴직한 뒤 하청업체 직원으로 제련소에 들어갔다. “탄광들은 문을 닫는데 퇴직 후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제련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으로 많이 들어갔다. 내가 어린 축에 속했다.”
진씨는 아연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순물 찌꺼기를 긁어내는 ‘필터 프레스’ 작업을 주로 했다. “지독한 냄새가 나는 가스를 얼굴에 뒤집어쓰면서 해야 하는 일이다. 여과기 없는 방진마스크를 주는데 그게 가스를 막겠나? 어떤 사람은 하루 일하고 관두고, 어떤 사람은 2~3일 만에 일을 그만뒀다. 2인1조로 일하는데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나더러 ‘당신이 14번째 파트너야’라고 하더라.”
진현철씨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하다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시사IN 이명익
대식가에 체중 100㎏이 넘었던 진씨는 어느 날부터 입맛이 없어지고 죽도 못 먹을 만큼 쇠약해졌다. 몸무게가 30㎏ 가까이 빠졌다. 2017년 그는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2019년 근로복지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지만 1년 9개월간 심사한 끝에 산재 신청은 기각됐다. 2021년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11월에야 법원으로부터 ‘산재 승소’ 판결을 받았다. 발병한 지 6년 만이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단독(판사 손혜정)은 고용노동부 특별감독 등이 적발한 제련소 사업장의 작업환경 관리 문제를 지적하며 “원고(진현철씨)가 발암물질에 노출된 수준이 낮았다고 쉽사리 평가할 수 없는 정황”이라는 점을 판결 이유로 설명했다.
60대에 입사해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16년간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한 김여랑씨 역시 숱한 산재를 목격했다. 제련소에서 일한 지 3일 만에 아연 용액을 옮기다 즉사한 사람을 봤다. 김씨 말에 따르면, 근무하는 동안 세척기에 깔린 피투성이 동료를 구하기도 했고, 벨트에 옷이 끼여 팔이 잘린 사람도 보았다. 그래도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공장에서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거 보니까 너무 무서워서 생명보험까지 들었다. 남편이 퇴직하고 오래 병을 앓아서 먹고살려면 뭐든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일을 계속했다.”
김씨는 지금도 제련소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말린다.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노인들이 돈 벌려고 가는 거다. 나는 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하청업체 사장이 월급을 다 주면 자기네는 망한다면서 끝까지 안 주더라. 그때 호흡기가 다 망가져서 숨도 편하게 못 쉰다. 진통제 없이는 잠도 못 자는 몸이 됐다.”
3월26일,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12년간 하청업체 노동자로 일해온 김여랑씨. ⓒ시사IN 이명익
안동환경운동연합과 환경보건시민센터가 1997년부터 올해 3월까지 기록한 영풍 석포제련소 사망사고 일지에 따르면 △간질환 △황산 탱크로리 전복 사고 △카드뮴 중독 △추락사 △침전물 처리 작업 중 빠짐 등으로 노동자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2년에 한 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다른 회사에서도 산재 일어난다”
〈시사IN〉 취재 결과, 3월8일 마지막 사망자가 나오고 열흘 뒤인 3월18일에도 안전사고가 발생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하청업체 노동자 한 명이 아연 쇳물에 두 다리가 빠져 심각한 부상을 입고 대구의 화상전문병원으로 이송됐다. 사고 발생 당시 상황에 대해 영풍 관계자는 “사고를 당한 분에게 (작업에 들어가기 전) 안전조치를 위해 허가서를 봐야 하니까 잠깐 기다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허가서를 보러 간 사이에 아연을 녹여놓은 용탕에 본인이 발을 넣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회사에서도 크고 작은 산재들이 일어난다. 다 이렇게 하나하나 보도가 되어야 하는 사안인지는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영풍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과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정치적 결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간 ‘정치적 개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변화를 이끌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주민·전문가·관계부처 지원단·민간단체들로 구성돼 2017년 출범한 안동댐상류환경관리협의회(현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이다. 2017년 영풍 석포제련소와 안동댐 중간지점에서 물고기 1만7000여 마리가 폐사하자 주민과 영풍제련소, 환경단체 등 사이에 갈등이 심화됐다. 이에 정부가 이견을 조정하자며 협의회 운영을 제안했다. 환경부는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를 주축으로 낙동강 수질·퇴적물 오염 원인 공동조사 등도 추진했다. 2017년부터 5년간 이어진 모니터링 결과가 2022년에 발표됐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안동댐 상류 퇴적물의 카드뮴 오염에 석포제련소가 77∼95%가량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었다. 낙동강상류환경관리협의회는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을 지원한 가장 영향력 있는 협의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협의회 조사 결과는 별다른 정책적 변화를 이끌지 못했다.
한편 지난해 11월, 홍준표 대구시장은 대구시민들의 취수원을 안동댐으로 옮기는 내용을 담은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 추진안’을 환경부에 공식 제출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문제를 지적하는 환경단체들이 이에 반대하며 안동댐 앞에서 시위를 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3월4일 대구에서 열여섯 번째 민생토론회를 개최한 후, 우동기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 위원장은 기자들과의 백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맑은물 하이웨이 사업에 대해 “전국적인 체계를 마련하라”고 환경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전했다.
시사인 김다은 기자
부산 신재생에너지 자립률 5년째 2%대 정체
한전 “작년 발전량 564GWh”
- 市 내년 8% 목표 사실상 무산
부산지역 전체 전력 사용량 가운데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자립률)이 수년간 2%대에 머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부산시가 2020년 야심차게 제시한 ‘2025년 부산 신재생에너지 자립률 8.5%’ 목표는 사실상 달성이 불가능하게 됐다.
16일 국제신문이 한국전력(한전)의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부산의 연간 ‘대체에너지’ 발전량은 564GWh(기가와트시)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해 부산지역 전체 전력 사용량(2만1556GWh)의 2.62% 수준이다. 한전 자료에 명시된 대체에너지의 정의는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다. 지난해 부산에서 사용된 전력의 2% 정도만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했다는 의미다.
연간 기준 부산의 대체에너지 자립률은 ▷2018년 2.41% ▷2019년 2.40% ▷2020년 2.32% ▷2021년 2.26% ▷2022년 2.51% 등을 기록했다. 고리원전 2호기 가동이 중단돼 원전 발전량이 줄어든 지난해에는 대체에너지 자립률(2.62%)이 전년보다 다소 높아지기는 했지만 수년째 2%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물론 부산은 원자력발전소 소재지여서 원전 발전 비중(2023년 기준 81.4%)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산지가 상대적으로 많은 전북(2023년 대체에너지 자립률 59.0%) 등과 비교해 태양광 설치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나 조건과는 별개로 부산시가 정한 목표에 한참 못 미치고 있어 지역의 친환경 에너지 도입 속도가 너무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시는 2020년 ‘제6차 지역에너지 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자립률을 2025년 8.5%, 2040년 4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8%대 달성은커녕 2%대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제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데 태양광 등은 (경제성이) 낮은 단점이 있다”며 “오는 6월 (전력 자립도 향상에 도움이 되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이 시행되는 만큼 지역의 신재생에너지 자립률을 끌어올려 탄소중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
뜨거운 해수에 뼈만 남은 산호…‘전지구적 백화’
세계 산호초 54%에 영향
지난 3월5일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에서 잠수부가 백화된 산호를 관찰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기후변화로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지난해부터 전 세계 산호초 지대의 절반 이상에서 대규모 백화 현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번이 지난 30년간 관측된 네 번째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며, “역사상 최악의 백화 현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5일(현지시간)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과 국제산호초이니셔티브(ICRI)는 지난해 2월 이후 전 세계 최소 53개 국가와 지역에서 산호초의 대량 백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백화 현상이란 해수 온도가 높아져 산호 내부에 서식하는 공생 조류가 죽거나 외부로 빠져나가면서 산호가 알록달록한 색을 잃고 희게 변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해양 생물의 주요 서식지가 파괴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산호초는 4000종 이상의 물고기를 포함해 전체 해양 생물의 25%가 생애 가운데 일정 기간 의존해 생식하는 해양 생물의 요람이다.
NOAA 산호초 감시 프로그램의 데릭 만젤로 박사는 “전 세계 산호초 지역의 54% 이상이 백화 수준의 열 스트레스를 경험했으며, 그 면적은 매주 1%씩 증가하고 있다”면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1~2주 안에 역사상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한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관측이 시작된 이래 ‘전 지구적 백화 현상’이 나타난 것은 1998년과 2010년, 2014~2017년 이후 이번이 네 번째다. 대체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는 엘니뇨 기간과 겹쳤다. 문제는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98년에는 전 세계 산호초 지대의 20%에서 나타났고, 그 면적이 2010년에는 35%로, 2014~2017년에는 56%로 증가했다. 이번에는 전체의 54%에서 나타났지만 곧 이전 최고치인 56%를 빠르게 추월할 것으로 관측된다.
기후변화에 엘니뇨 영향까지 더해지면서 지난해 4월부터 연말까지 지구 해수면 평균 온도는 1979년 관측이 시작된 이래 매일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대규모 백화 현상은 미국 플로리다주 카리브해를 비롯해 멕시코 등 동부 열대 태평양 지역, 피지 등 남태평양 지역, 서인도양, 홍해, 페르시아만 등 전 세계 53개 국가와 지역에서 확인됐다.
세계 최대 군락인 호주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 상황도 심각하다. 최근 조사 결과 이 지역 산호초의 약 4분의 3에서 백화 현상이 관측됐으며, 전체의 절반가량은 극심한 수준을 보였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부산 버스정류장이 정원으로… 도심 자투리땅에 녹색 입힌다
시민단체 요청에 올 10억 투입
미세먼지 흡착·소음차단 기대
부산시가 간선급행버스체계(BRT) 조성 과정에서 사라진 도심 녹지공간을 회복하기 위해 버스정류장 자투리땅에 자연식 정원을 조성해 화제다.
부산시는 BRT 정류장 부지 내 자투리 공간에 정원 등의 녹지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올해 1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BRT는 버스 통행을 일반 차량과 분리, 정시성과 수용량을 높인 교통체계로 부산에는 총 4개의 BRT 구간 30.3㎞에 125개의 버스 정류장이 있다. 부산시는 정류장 자투리 공간에 각종 식물을 심은 ‘자연식 정원’이나 화분을 둔 ‘이동식 정원’을 조성한 뒤 지역 기업 후원을 받아 해당 사업 규모를 키울 계획이다.
부산시의 이러한 조치는 시민단체 요청에 따른 것이다. 부산그린트러스트(BGT) 등 시민단체는 “서울·부산·경남 등 전역에서 BRT를 조성하면서 도로 폭이 늘어나는 대신 인도와 인도 안 가로수가 사라지고 중앙분리화단이 중앙버스차로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 결과 가로수의 도심 경관·미세먼지 흡착·소음 차단 등 효과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BRT 확산으로 도시 열섬 현상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BGT가 지난해 8월 종로2가 등 서울시내 BRT 정류장 5곳에서 열화상 측정기로 확인한 결과 낮 12시 이후 온도가 50도를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BGT는 정류장 자투리 공간에 갈대·관엽·초본·목본류 등 각종 식물 식재를 부산시에 제안했는데 이 방식으로 전체 BRT 구간 중 0.03㎢(길이 8.98㎞)를 녹지로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부산시는 BGT 의견을 반영, 올해 안으로 BRT 자투리땅의 녹화 방식을 정하는 연구 용역을 실시키로 했다.
이성근 BGT 상임이사는 “버스전용차로에 잔디를 심는 안도 제안할 예정”이라며 “이렇게 되면 BRT 전체 녹지 축이 완성될 것”이라고 전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인위적 후속 관리가 필요 없도록 기후를 고려한 자생적 녹지 시스템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이승륜 기자 lsr231106@munhwa.com
‘바닷물 더 더워진다?’ 동해 등수온선 북상 빨라져
한반도 동해상 해역 등수온선의 변화도. 살펴보면 남쪽 더운물의 20년간 북상 면적이 북쪽 저수온층보다 넓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국립수산과학원 제공
최근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바다 수온 변화가 더 빨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동해상 등수온선의 북상이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수과원)은 동해의 해양기후 속도가(따뜻한 바닷물이 넓은 해역에서 극쪽으로 이동한 등치선 속도) 최근 평균 49.5㎞/10년으로 측정됐다고 17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불과 10년 전인 2010년대 평균 20.9㎞/10년에 비해 2배 이상 빨라진 것.
이에 더해 동해의 연평균 등수온선별 면적을 분석한 결과, 12℃ 이하 면적이 지속 감소한 반면, 18℃ 이상의 고수온 면적은 지속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수온 면적은 지난 2000년대에 비해 현재 2배 이상 넓게 분포된 상태다.
수과원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기후변화에 따른 복사열 증가와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대마난류 유입량이 지속 증가한 것에 대한 영향이라고 판단했다.
최용석 수과원장은 “해양 기후속도의 빠른 증가 및 수온분포 면적의 변화와 같은 물리적인 환경 변화는 그 해역에 사는 해양생물의 서식지와 어장 형성 해역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앞으로 우리 바다 환경에 대한 기후변화 감시, 예측 기능을 고도화해 기후변화 대응 역량을 더 강화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수과원이 인공위성으로 축적한 표층 수온 자료를 기반으로 분석한 것이다. 우리 바다에서 해양 온난화 영향이 뚜렷이 나타난 2000년대 이후 대양의 성격이 있는 동해를 대상으로 등온선별 연평균 북상 속도를 최초로 산정했다.
[파이낸셜뉴스
기후소송 승리 76살 슈테른 여사 “한국 청소년들, 용감해지세요”
[인터뷰] 엘리자베트 슈테른…한국 기후소송 헌재 공개변론 앞두고 응원 메시지
엘리자베트 슈테른(맨 앞 오른쪽) 대표 이사를 비롯한 ‘스위스 기후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 클럽’ 회원들이 지난 9일(현지시각)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열린 기후 정책 소홀과 관련한 정부 상대 소송에서 승소한 뒤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스트라스부르/EPA 연합뉴스
“판결 전 유럽인권재판소(ECHR) 판사 17명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달라, 옳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용감해져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도 판사에게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설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용감해지세요.”
‘스위스 기후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클럽’의 엘리자베트 슈테른(76) 대표이사는 지난 14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오는 23일 기후위기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을 앞둔 한국의 청소년과 그들의 부모 등 기후시민들을 향해 이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에서 이뤄지는 이번 공개변론은 2020년 3월 청소년 원고 19명이 제기한 ‘청소년기후소송’을 포함해 총 4건의 기후소송이 병합되어 진행되는 것으로, 청구인들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의 감축목표(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 감축)가 국제법이 요구하는 1.5도 온도 제한 목표에 부합하지 않아 생명권, 건강권 등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위헌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 청소년들이 소송을 제기했던 그해, 유럽인권재판소에서 기후소송에 나선 슈테른 이사 등 64살 이상 스위스 여성 2천여명은 지난 9일 ‘스위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아 고령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끌어냈다. 국제법원에서 기후변화와 관련한 특정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평균연령이 74살인 이들이 기후소송에 나선 건 “스위스 정부가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속에서 목숨을 잃는 노인, 특히 여성 노인을 위한 정책을 펴지 않고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제학술지 ‘네이처 의학’에 실린 연구 결과를 보면, 2022년 유럽 폭염 사망자(6만1672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79살 이상 노인이었고, 여성 사망자가 남성보다 63%나 많았다.
슈테른 이사는 “2022년을 비롯해 지난 20년의 여름 동안 2003년 여름 폭염(약 7만2천명) 때보다 사망자 수가 적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 노인들이 기후위기 시대에 사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 방법은 “아무런 사회적 활동 없이 집에만 갇혀 사는 것”이었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여성 노인들을 정부가 제대로 보호하지 않는 사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았다는 얘기다.
엘리자베스 스턴 ‘스위스 기후보호를 위한 여성 시니어클럽’의 대표 이사가 지난 14일 한겨레와 줌 인터뷰를 하며 재판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줌 인터뷰 갈무리
슈테른 이사 등은 이런 이유를 들어 2016년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스위스 연방행정법원은 고령 여성만 유독 기후변화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원고 적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그는 “(당시) 법원은 ‘모든 것들이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겨울 관광산업도 그렇다’고 말했다”며 “겨울 관광산업의 경제적 손실과 우리 목숨을 동일 선상에 놓고, 우리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 같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달려간 유럽인권재판소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스위스 정부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입법이나 필요한 조처를 제때 적절한 방식으로 하지 않아, ‘유럽인권협약 제8조’를 침해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슈테른 이사는 “9년 동안 기다린 판결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며 “가장 중요하고 놀라운 부분은 법원이 기후위기 대응을 인권(보호)이라 선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소송을 통해) ‘늙은 여성은 방 한구석에 앉아 뜨개질이나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모든 여성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서사로 바꿨다”고 “그 점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웃었다.
이날 승소 판결이 전해지던 자리에는 ‘유럽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지 않아 미래세대의 건강권을 침해했다’며 유럽 32개 국가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기한 포르투갈 청소년들이 함께 있었다. 이들은 그 몇 시간 전 각 나라의 국내 법원 판단을 받지 않은데다, 이들이 포르투갈 이외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기각당한 상태였다. 그는 “패소 소식을 들은 10대 여자아이 2명은 펑펑 울면서도 우리 결과가 나오자 껴안고 축하해줬다”며 “슬프고 실망하는 와중에도 ‘당신들이 이겼으니 우리도 이긴 거예요’라고 말해주는 소녀의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고 했다.
슈테른 이사는 “앞으로 (재판 결과에 따라) 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계획의 속도를 높이는지 의회와 함께 감시할 예정”이라며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계속 싸우도록 서로를 지탱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봉비 기자 bee@hani.co.kr
미래의 교실입니다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22일 지구의날 맞아 캠페인
아동·청소년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활동가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들머리에서 기후위기로 아동이 처할 상황을 보여주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기후위기는 아동권리의 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지구에서 가장 오랜 시간 살아갈 아동의 현재와 미래 모두를 위협합니다’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회원들이 지구의날(22일)을 앞두고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앞에서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아동의 참여권 보장 등을 요구하고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기후위기로 아동이 처할 미래의 환경을 보여주었다.
아동·청소년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들머리에서 기후위기로 아동이 처할 상황을 보여주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서 “아동은 기후위기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며 기후위기 및 환경 관련 정책을 만들고 법안을 발의할 때 아동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제도와 절차를 마련할 것과 기후위기 관련 정보와 정책, 교육 및 참여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 플랫폼 구축을 요구했다.또한 기후위기가 아동의 발달권을 위협하지 않도록 지속 가능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는 권리와 실효성 있는 환경 교육 보장을 촉구했다.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아동·청소년들의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을 운영하고 있다. 기후위기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인식 개선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달 27일부터 4월 3일까지 전국 만 10~18살 아동 및 청소년 900명과 20살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2024 기후위기 대중 인식조사’에 따르면 아동·청소년 10명 중 9명(90.8%)이 기후위기를 걱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청소년 모임 지구기후팬클럽 ‘어셈블’ 활동가들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도시건축전시관 들머리에서 학교 교실을 배경으로 기후위기 상황에서 아동이 처할 상황을 보여주는 행위극을 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0일 부산 황령산에 도토리를 심으러 가요”
부산 황령산. 부산그린트러스트 제공
지구의 날을 맞아 부산 도심 허파 구실을 하는 황령산에 도토리 심기 대회가 열린다.
부산그린트러스트·부산환경운동연합·부산환경회의 등 70여개 단체로 꾸려진 ‘황령산지키기 범시민운동본부’는 “54회 지구의 날(4월22일)을 맞아 20일 오전 11시 부산 황령산 봉수대 진구전망대에서 ‘도시 숲 확장 및 생물종 다양성 확대 도모를 위한 부산시민 황령산 도토리 알박기 대회’를 연다”고 18일 밝혔다.
참가자들은 오전 10시 연제구 연산동의 물만골·마하사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뒤 등산로를 따라 봉수대 진구전망대로 올라가면서 주최 쪽이 지급한 도토리를 땅에 심는다. 오전 11시 봉수대 진구전망대에서 인사를 나눈 뒤 시낭송·노래·대금연주를 듣는다.
이어 참가자들은 ‘한 알의 도토리가 나무가 되어 숲을 이루고 황령산을 지킨다’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채택한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황령산은 인간들의 개입으로 민둥산인 시절이 있었지만 지난 30년을 지나오며 어른 숲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리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거름 같은 조력자로서 청년 황령산을 배려하고 대접해야 한다. 우리는 ‘쇠기둥 알박기’로 인해 수많은 생명이 사라진 ‘침묵의 황령산’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수많은 생명체가 공존하며 아우성 요란한 황령산이 되기를 바란다”며 황령산 지킴이가 될 것을 다짐한다. 참가자들은 낮 12시 도토리 알을 다시 심으면서 내려간다.
이성근 황령산지키기 범시민운동본부 운영위원장(부산그린트러스트 사무처장)은 “참가자들에게 1인당 20개 이상의 도토리를 지급하고 모두 1만개를 심으려고 한다. 이번 도토리 알박기 대회는 황령산 보전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니 많은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 시내를 한눈에 내려볼 수 있는 황령산은 숲이 울창해 ‘부산 도심의 허파’로 불렸다. 오래전부터 개발업자들이 눈독을 들였는데, 2007년 8월 ‘4계절 실내 스키장’이 들어섰다가 이듬해 부도가 났다. 실내 스키장은 17년째 흉물로 남아 있다.
부산시는 2021년 8월 민간사업자인 대원플러스그룹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산꼭대기에 25층 높이(70m) 전망대를 설치하는 등 유원지로 개발하고, 번화가인 부산진구 서면을 잇는 539m 길이 케이블카를 설치한다는 내용이다.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건축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에 부산 시민·환경단체 70여곳은 지난 1월 황령산 개발을 저지하는 ‘황령산지키기 범시민운동본부’를 만들었다.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온난화 지속되면 2049년까지 세계 소득 평균 19% 감소“
현재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전 세계에 걸쳐 소득 감소를 겪게 되고 특히나 그 피해는 탄소 배출이 적은 저소득 국가에 집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 연구소 레오니 웬츠 박사팀은 18일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에서 전 세계 1600여 개 지역의 40년간 기후 및 소득 데이터 등을 토대로 기후 시나리오가 경제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이런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현재 온실가스 배출 추세가 계속될 경우 기후 변화 영향이 없을 때와 비교해 2049년까지 세계 경제에서 평균 19%의 소득 감소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같은 피해 규모는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 온난화를 2℃ 이내로 억제하는 데 필요한 기후변화 완화 비용을 단기적으로도 이미 6배나 초과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피해 전망치는 주로 기온 상승 요인을 적용한 것으로 추가적인 기후 요소들을 고려하면 피해 규모 추정치가 5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팀은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는 지금까지 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고 소득 수준이 가장 낮은 것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에 집중돼 온난화가 기후 불공정 영향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량이 적은 저소득 국가는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가 고소득 국가보다 61%, 탄소 고배출 국가보다 40% 더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팀은 이 결과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기온 변동성이 감소하게 될 고위도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주고 가장 큰 피해는 기후변화에 책임이 가장 적은 저위도 지역 저소득 국가가 입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미디어펜=성동규 기자
도심 속 허파' 보문산 개발 사업 '산 넘어 산'... 고민 깊은 대전시
보문산 전망대 전경. 대전시는 보문산에 고층 전망타워와 케이블카 설치, 워터파크와 숙박시설 등을 갖춘 체류형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보물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대전시 제공
대전 시민들의 쉼터이자 도심 속 허파 역할을 하는 보문산 개발 사업이 삐걱거리고 있다. 환경훼손을 우려한 시민사회단체가 반대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김제선 신임 중구청장이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사업 추진에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사업성 부족 문제까지 풀어가야 할 대전시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7일 대전시에 따르면 오는 2027년까지 보문산 일원에 총 3,000억 원을 들여 150m 높이의 고층 전망타워와 케이블카, 워터파크, 숙박시설 등을 갖춘 체류형 관광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보문산은 대전 중구 원도심에 소재한 해발 457.8m의 산으로, 과거 놀이시설과 케이블카가 설치돼 시민들의 휴식처로 큰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수요 감소 등으로 2000년대 들어 놀이시설과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되는 등 인기가 시들해졌다.
과거 보문산에서 운행됐던 케이블카 모습. 대전시 제공
시는 이에 따라 2009년 '뉴 그린파크 프로젝트'를 수립하는 등 보문산 개발에 나섰지만, 사업 추진은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민선 8기 이장우 대전시장은 침체한 원도심과 지역관광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보문산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동물원과 놀이시설이 갖춰진 오월드, 뿌리공원 등 주변 관광자원을 연계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 시장은 "보문산 일대에 체류형 관광시설을 조성하는 보문산 관광 개발은 지역 숙원사업으로, 장기간 답보 상태를 보였다"며 보물산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임기 내 착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환경 훼손 우려 등을 들어 반대하고 있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15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보문산 난개발반대 시민대책위원회(대책위)를 구성해 사업 중단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명서에는 현재 1,000여명이 서명한 상태다. 릴레이로 1인 시위도 이어가고 있다.
임도훈 대책위 간사는 "최근 보문산에 노란목도리담비와 하늘다람쥐, 삵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는 게 확인됐다"며 "보문산 일대를 개발하면 환경과 생태계 파괴가 불가피한 만큼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선 7기 당시 보문산 개발과 관련한 민관공동위원회 합의사항을 이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고층타워 설치와 케이블카, 모노레일 설치 등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는데 시가 이를 지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와 시민사회단체 간 갈등은 급기야 법적 다툼으로 번졌다. 지난해 8월 공청회 당시 대책위가 반발한 것을 두고, 대전시가 같은 해 9월 업무방해와 퇴거불응 등 혐으로 고발한 것이다. 업무방해는 무혐의로 결론 났고, 퇴거불응은 약식기소 처분됐다. 대책위 측이 불복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1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김제선 중구청장이 이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시와 중구 간 갈등마저 예고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선거 다음날인 11일 기자간담회에서 보문산 개발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대전시가 좀 더 명료한 입장을 가져야 하는데, 운영 적자가 거의 확실시되는 걸 민자로 하겠다는 것은 보문산을 현재적 자원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별 의지가 없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전망타워도 민자로 계획했다가 안 돼 이제 공공재정을 투입하겠다고 한다"며 "이장우 시장을 만나면 시 재정을 투입해 보문산의 활용성과 접근성, 생태환경을 보전할 수 있는 방법을 요청드리고 협력을 구하겠다"고 했다.
실제 시의 구상대로 보문산 개발을 실현하려면 사업성 부족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시는 지난해 7월 보문산 전망타워와 케이블카 조성 사업을 맡을 민간사업자 공모를 진행했지만 1개 업체만 단독으로 참여했고, 이 업체는 사전 적격성 심사에서 탈락했다. 경기가 어려운 데다 사업성 확보가 불확실하다 보니 사업자들이 선뜻 나서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시는 이에 지난해 12월 전망타워 건립은 자율 제안사항으로 조건을 완화해 재공모를 진행했고, 케이블카 설치만 제안한 지역 업체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돈이 필요한 워터파크와 숙박시설 조성을 맡을 민간사업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노기수 시 문화관광국장은 "일단 전망타워 건립은 시 재정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며 "워터파크와 숙박시설을 책임질 사업자는 현재 진행 중인 관련 용역 결과를 토대로 공모를 통해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사업 추진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현실성 있는 계획을 마련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프랑스 3배 크기의 쓰레기 섬…"폐기물은 미래의 시한폭탄“
더러운 것이라면 적어도 외면하거나 피하려는 습성이 인간에겐 있다. 미관상 좋지 않고, 냄새도 고약한 쓰레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쓰레기가 나온다. 하지만 대개 그 잔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관심 밖이다. 통찰력 있는 소설가 돈 드릴로는 소설 '언더월드'에서 "쓰레기는 비밀의 역사이자, 하위역사"라고 썼다. 그에 따르면 쓰레기는 숨기고 싶은 어떤 비밀과 맞닿아 있다.
인간이 쓰레기를 대하는 방식은 가령 이런 식이다. 쓰레기차는 사람들이 보기 힘든 새벽이나 밤늦게 돌아다닌다. 폐기물 시설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교외에 있는 경우가 많다. 폐기물 처리 산업에 대해 알려진 정보도 별로 없다. 수에즈, 비파,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지만 신문 지면에선 만나기 어렵다. 세계 고형 폐기물 처리 산업 규모가 수십억 달러에 달함에도 그렇다.
말레이시아 음식물 쓰레기
이 같은 인간의 외면 속에 쓰레기 규모는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태평양에는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 생겨났다.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약 1천100만t의 플라스틱이 환류로 한 곳에 모이면서 만들어졌는데, 이제는 프랑스 크기의 세 배나 되어버렸다고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에베레스트산에서도 마리아나 해구에서도 발견된다. 심지어 우주에도 인간이 버린 수많은 쓰레기가 떠돈다. 그중에는 일론 머스크가 쏘아 올린 테슬라도 있다.
해양 쓰레기
실제 개인들은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버린다. 2016년을 기준으로 영국에선 인당 매일 1.1㎏의 쓰레기를, 미국에선 인당 2㎏을 버린다. 고형 쓰레기 집하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저개발국에선 약 20억명이 쓰레기를 바다나 강에 그냥 버리거나 태워 버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오염물질이 대기와 해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집하시설에서 쓰레기가 폐기되는 건 그나마 낫지만, 여기도 형편이 썩 좋은 건 아니다. 파키스탄 라호르에 있는 한 쓰레기 매립장에선 시간당 126톤의 메테인이 나온다. 약 6천200대의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메테인 배출량과 같은 규모다. 가장 안전한 매립 시설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설이 부식되면 어쩔 수 없이 내용물이 유출된다. 쓰레기는 빠져나갈 구멍을 야금야금 만들어내고, 자연은 안으로 들어올 방법을 어떻게든 찾기 때문이다.
© 제공: 연합뉴스
영국 저널리스트 올리버 프랭클린-월리스가 쓴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가 외면하는 쓰레기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 쓰레기 매립장부터, 폐허로 변한 미국의 광산, 영국 런던 강가의 오염수, 핀란드의 핵폐기장까지 세계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가 가져온 지구 온난화의 실상과 수많은 환경 오염, 그리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핵폐기물 드럼통 모형
책에 따르면 쓰레기는 국경을 넘나든다. 선진국은 쓰레기를 국내에서 고비용으로 처리하는 대신 개발도상국으로 수출하고, 그곳에선 적은 비용으로 쓰레기를 재활용하거나 폐기한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오염물질이 나와 현지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전자제품 업계나 의류 업계는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멀쩡한 생산품을 폐기하기도 한다. 가령 스마트폰의 배터리 수명을 일부러 줄여 판매하는 사례도 있다고 저자는 전한다.
저자는 이 같은 소비 생활, 생산 관행을 당장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쓰레기의 양을 줄이는 동시에, 투명한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기업의 '그린 워싱'(Greenwashing)을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린 워싱이란 기업이 실제로는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광고 등을 통해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내세우는 행위를 말한다.
만약 인간의 이런 자정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쓰레기 더미는 "미래의 시한폭탄"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RHK. 480쪽.
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커져가는 일본의 ‘난카이 대지진’ 공포...17일 밤 규모 6.6 지진에 ‘깜짝’
최근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일본에서 지난 17일 규모 6.6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사망 피해가 보고되지 않았으나, 발생한 위치 등으로 인해 100여년 주기로 발생하는 ‘난카이 해구 대지진’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를 또다시 키운 사건이 됐다.
18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전날밤 11시 14분쯤 일본 서쪽 규슈와 시코쿠 사이 해협에서 발생했다. 일본 기상청은 당초 속보치로 지진 규모를 6.4, 진원 깊이를 50㎞로 발표했으나 약 2시간 뒤 규모 6.6, 진원 깊이 39㎞로 정보를 정정했다.
이번 지진으로 시코쿠 서부인 고치현 스쿠모시와 에히메현 아이난초에서는 진도 6약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고치현과 에히메현에서 이 정도의 흔들림이 관측된 것은 일본의 현행 지진 등급 체계가 도입된 1996년 이후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진 발생 이후 일부 지역에서는 가로등이 쓰러지고 수도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으나, 건물 붕괴나 사망 등의 큰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 부상자는 18일 오전 기준 8명 가량으로 집계됐다. 일본 정부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우려도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이번 지진은 난카이 대지진의 예상 진원역에서 발생했기에, 지진 직후 일본인들의 우려는 적지 않았다. 난카이 대지진은 수도권 서쪽 시즈오카현 앞바다에서 시코쿠 남부 해역까지 이어진 난카이 해구에서 100∼150년 간격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 지진이다. 가장 최근에 발생한 것은 1946년 ‘쇼와 난카이 지진’으로 1400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 산하 지진조사위원회는 2022년 기준으로 이 지진이 40년내 발생할 확률을 90% 수준으로 잡았으며, 최악의 경우 사망자만 32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에 이 지진은 일본인들의 근심거리가 돼 왔다. 최근 노토 반도에서 강진이 발생하자, 학계 일각에서는 이를 난카이 해구 대지진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고 보고 경계를 당부하기도 했다.
일본 기상청은 현재 난카이 대지진의 예상 진원역에서 규모 6.8 이상의 지진이 발생하면 대지진의 가능성이 높아졌는지를 즉각 조사토록 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규모가 기준치에 다소 미치지 못했기에 구체적인 조사까진 이르지 않았다. 다만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자, 기상청 측은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지진으로) 난카이 대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급격히 높아졌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지진에 따른 여진이 이어질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계속 (지진) 피해 등 정보를 수집 중”이라며 “앞으로 1주일 정도는 진도 6약의 지진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주의해 달라”고 밝혔다./경향
나비 출현도 ‘뒤죽박죽’…‘생명의 골짜기’에 위험 신호가 보인다
팽나무 잎을 맛있게 먹고 있는 제주꼬마밤나방 애벌레.
남녘에서 이미 끝난 봄꽃 축제가 강원도 산속에서는 이제야 시작이다. 추운 겨울을 뚫고 가장 먼저 봄을 알려준다는 매화나무가 막 꽃을 피웠고 노란색 개나리, 붉은 물감 들인 진달래와 선홍빛 복숭아꽃과 벚꽃이 피어나는 소리를 듣는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동요를 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순서를 기다려 차례차례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가파르게 오르는 기온에 따라 형형색색의 꽃이 앞다투어 한꺼번에 피었다. 며칠 보지도 못했는데 봄비에 꽃잎이 떨어져 흩날리니 서운하기도 하다.
남녘에서 이미 끝난 봄꽃 축제가 강원도 산속에서는 이제야 시작이다. 사진은 선홍빛 복숭아꽃.
오늘(19일)은 봄의 마지막 절기 곡우(穀雨).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에 맞게 엊그제 흠뻑 내린 비로 가뭄을 해결하고, 올해 농사를 시작했다. 이제 꽃 지고, 잎이 피기 시작했으니 봄날이 가고 본격적인 여름이다. 계절이 바뀌면서 바람과 햇빛과 풀과 나무 모든 것이 푸르러졌다.
지난 주말(13~14일) 기온이 폭염 수준인 32도를 넘기면서 때 이른 여름 날씨로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보도가 많았다. 지금과 같은 ‘기후위기 시기’에 때가 이르다거나 늦다는 표현은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막연히 지구가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날씨를 넘어 극한의 추위와 더위가 불규칙하고 반복적으로 늘어나는 현상이다.
극심한 환경 변화로 생태계 내 견제와 균형이 깨져 더 따뜻하고 더 습해지면 ‘에코데믹’(eco-demic), 즉 환경 감염병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기후변화를 자연환경에만 미치는 영향으로 이해해왔지만, 에코데믹은 인간의 건강과 목숨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기온을 맞추지 못해 순서 없이 한꺼번에 핀 식물과 마찬가지로 곤충들도 차례 없이 발생하고 있다. 필자가 직접 실험을 통해 확인한 호랑나비 3종의 월동 번데기 발육임계온도(Low Temperature Threshold, 번데기가 월동에서 깨어나는 온도)는 애호랑나비 8.1℃, 호랑나비 10.5℃, 꼬리명주나비는 12.4℃였다.
산초나무에 낳은 호랑나비 알.
족두리풀에 낳은 애호랑나비 알.
실험 결과를 보면, 애호랑나비가 나오고 다음에 호랑나비, 그다음에 꼬리명주나비가 번데기에서 나와 나비가 되어야 정상이지만, 몇 년 전부터 앞뒤 없이 어지러워졌다. 애벌레가 번데기 안에서 발육을 시작하고 날개돋이에 필요한 온도를 기다리는 동안 밖에서는 겨우내 굶주렸던 나비에게 꿀을 제공할 진달래와 복숭아꽃, 벚꽃이 피어난다. 애호랑나비, 호랑나비, 꼬리명주나비도 각각 족두리풀, 산초나무, 쥐방울덩굴 새싹에 알을 낳아야 하는데 뒤죽박죽이 되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곤충과 식물의 발생 시기가 달라지는 생태계 변화를 실제 체험하면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걱정한다. 언제 어디서든 인간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저 불편한 정도가 아니라 질병을 일으키고 식량난을 유발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자연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기후변화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변온성 동물인 곤충의 돌발적 발생이 그 진행 상황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뿔나비 애벌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한 햇볕을 따라다니며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늘을 찾아다니며 일을 한다. 우람하게 성장한 팽나무가 제격인데 팽나무와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연구소에는 살지 않던 나무인데, 다양한 애벌레들이 즐겨 먹는 식물이라 27년 전 아내의 친구로부터 기증을 받아 심었다. 쇠꼬챙이같이 가느다란 묘목을 심었는데 토양이 좋아서인지 100년은 된듯한 웅장한 모습으로 자라나 큰 숲을 이루고 있다. 많은 곤충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면서 인간에게도 큰 그늘을 주는 고마운 나무다.
겨우내 축사에서 지내던 소 ‘코프리스’와 ‘업쇠’를 방목지로 풀었다. 코프리스는 뿔소똥구리 소명을 따서 이름을 붙였고, 업쇠는 필자의 어머님이 좋은 업을 많이 지은 소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 소들은 멸종위기 곤총 소똥구리들에게 신선한 먹이원인 소똥을 공급해 주고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방목지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던 녀석들인데, 풀이 마르는 늦가을부터는 축사에서 생활한다. 온도가 오르자 초원으로 달려가고 싶어 온종일 풀어달라고 아우성치던 녀석들을 봄비를 흠뻑 맞아 푸르러진 초원에 풀어놓으니 좋아서 펄쩍펄쩍 줄달음 친다. 말보다 더 빠르다.
소똥구리는 똥을 굴리거나 지하에 복잡한 둥지를 만들어 먹이인 똥을 저장하고 그 똥으로 경단을 만들고 경단 안에 알을 낳는 특별한 번식 행동으로 유명한 곤충이다. 행동이 특이하고 신기하여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고 있지만, 생태적 역할은 더욱 크다.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모든 동물의 배설물을 먹어치워 냄새 없고 깨끗한 세상을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파리의 애벌레를 잡아먹는 응애를 태우고 다니며 질병을 일으키는 매개 곤충을 없애줘 인간의 건강도 지켜 준다. 훌륭한 일밖에 하지 않는 경이롭고 훌륭한 곤충들이 멸종된다는 사실이 가슴 아파 소를 키운 지 18년. 멸종위기종 보전하려 소 키우다가 내가 먼저 멸종할 것이란 생각도 한다.
생명으로 충천한 이 골짜기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었다. 호랑나비가 산초나무 잎마다 한 개씩 알을 낳았고, 애호랑나비도 족두리풀에 알을 낳았다. 손끝이 살짝만 닿아도 또르르 굴러떨어지는 진주알같이 영롱하다.
생물들이 깨어나자 아내의 말수도 늘었다. ‘미안, 먹이가 떨어진 줄 몰랐어. 조금만 참아. 같은 날 나왔는데 너는 왜 이렇게 자라지 못했니. 좀 열심히 먹어.’ ‘햇볕이 너무 드는구나? 가리개로 가려줄게.’ 아내는 오랜 기간 멸종위기종을 극진히 살피면서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속닥이는 버릇이 생겼다. 붉은점모시나비에게, 물장군에게 아내는 생명을 살리는 등불이 되고 있다.
생물들과 끊임없이 수다를 떨던 아내가 얼마 전 ‘홀로세생태연구소’를 찾은 대학 친구들과 2박 3일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노동이 생활의 일부라 익숙하지만, 아내가 최근 크게 아프며 ‘몸이 닳아 없어지는 것 같다’고 하소연할 때는 살짝 눈물이 났다. 곤충이 아닌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어색했지만, 보통은 이 모습이 더 일반적인 것이겠지.
할 수 없다. 멸종위기 곤충 연구와 보전에 발을 들인 이상 내 생활을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곤충의 생활에 맞춰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것. “두고 가기 너무 가슴 아프다”라는 아내 친구의 마지막 말이 귀에 쟁쟁하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