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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생태환경 뉴스

24.2.22~

by 이성근 2024. 4. 22.

1. 자본의 요구에 응답하는 기후정치와 단절하자 2. 기후재난 취약층에 무관심한 윤 정부  3. 14'삽질' 가덕도신공항, 파행으로 가는 윤 정권의 '거친 질주’  4. 221년 만의 매미겟돈예고1000조 마리 맴맴~’  5. 푸르름에 힐링···어둡게 자랐어도 양지에서 사랑 받는다  6. 삶의 기록으로 남다, 기억조차 폐기되다  7.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8. 얼마나 살리고 싶었으면9. 특별법 통과 후보신탕집 손님 되레 늘었다

10. 폭염 빈도 8.6배 기후재앙까지 5…  11. BTS 앨범 속 이 푸른 바다는 이제 없다  12. <파이낸셜타임스> "한국 성장 기적 끝나간다" 지적  13.‘ K-조경의 대모, 정영선  14. 기후플레이션 15. 인간은 인수공통감염병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15.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한국, 온실가스 감축 책임 방기16. 유럽 전체 2.6, 해수면은 5.5↑…재앙이 된 기후17. 두바이에 떨어진 물폭탄, 범인은 기후위기  18.‘재선충병 재확산에 허연 서리구해줘, 솔숲 몸서리  19. 플라스틱 오염 없애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20. 어머니 나무가 알려주는 것들  21. 부산 물 공급 강변여과수 개발 협약에 의령 주민 '발끈

22. 수출 기업 55% “RE100 몰라”···대응 못해 거래 중단도 고려 23. 기후위기는 인권의 위기다   24. 북항 주거난립 배경 밝힌다칼 겨눈 에 긴장  25. 시민공원 남문 광장 1만 여부전역 연계 개발시민친화 공원 박차   26. KB증권, 뚝섬공원에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깨비정원' 조성

27. 체르노빌 원전 사고 38,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된다  28 체르노빌 핵참사 38주기   29. 기후정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30. 체르노빌 원전 폭발출동 소방관의 비극  31. 갈 길 먼 플라스틱 협약협상 시작되자 돌변한 나라들   32. "두 달이면 2~3" 실뱀장어 마구잡이어족자원 황폐화 /살아있는 화석원시뱀장어, 태평양서 발견/소양호엔 유럽산, 청평호엔 북미산 뱀장어가 산다/민물장어의 심해여행, 사랑과 죽음을 위해   33.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자본의 요구에 응답하는 기후정치와 단절하자

기후정치의 조건

체감의 크기가 나날이 커지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반영하듯 22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보수 정당들도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제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기후위기 앞에 절박함을 호소했던 것에 비해 기후 의제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다루어지지 못해온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총선에서 기후를 둘러싼 정치의 풍경이 사뭇 달라진 것 같다. 과연 22대 국회는 '기후정치'를 담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기후정치'() 등장

선거 시기마다 기후 의제를 정치의 문제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202021대 총선 당시 '기후위기비상행동'으로 결집한 기후운동은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기후관련 정책에 관한 질의와 약속을 요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정당에 공약을 요구하고, 답변 내용에 점수를 매겨 유권자들로 하여금 기후정치를 펼칠 의지가 있는 정당과 후보에게 투표할 것을 요청했다. 2022년 대선에서는 전국의 기후 투쟁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내 정치에 반영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21대 국회는 삼척의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을 위한 5만 국회 입법청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 대기업의 사업권과 이익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석탄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는 물론 신공항 건설 추진에도 물러서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 역시 기후악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후위기를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요구는 정치권의 무능과 무응답에도 불구하고 더 커지고 있다. 연구자, 예술인, 환경단체 활동가 중심으로 결성된 '기후정치 시민 물결''기후정치 원년 시민선언'을 발표하며 더 이상 개인적 실천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만이 아니라 기후를 전면으로 내세운 정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기후정치바람'은 전국 17000명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국민인식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는 33.5%의 유권자가 자신의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기후 공약에 투표할 의사가 있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에 기후정치바람은 22대 총선에 참여하는 모든 정당이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른바'기후정치 씨앗'을 모집해 전체 유권자 중 1.5%의 기후유권자가 선거 이후에도 기후정치를 펼쳐질 수 있도록 (가칭) '기후시민 정치세력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시도는 기후위기를 정치적 의제로 만들기 위해 시민의 기대나 고민을 조직하고, 구체적인 기후정치를 위한 로드맵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더 적극적인 행보다. 이처럼 기후위기 대응을 정치에 기입하기 위한 다양한 흐름이 등장하고 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초당적인' 기후정치?

문제는 기후정치의 방향이다. '기후정치 원년'을 선포한 기후정치 시민 물결은 22대 국회에 더 많은 기후정치인이 진출시키기 위해 "정당과 정파를 넘어 기후위기 대응에 의지가 있는 정당, 기후위기 해결에 열의가 있는 정치인에게 투표하자"고 촉구하고 있다. 기후정치를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야기다. '기후 후보'를 자임하는 정당의 정치인들도 기후위기야말로 여·,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접점을 찾아낼 수 있는 초당적 의제라고도 말한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과 같은 거대 보수정당에서도 기후공약을 내놓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기후위기를 초당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고 볼 수 있을까.

사실상 지난 수년간 보수 양당은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 이미 기후위기 문제를 초당적으로 대응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늘린다는 명분으로 에너지 민영화 법안을 제도화했다. 그 결과 재생에너지 사업자는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전기를 대기업에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흐름을 이어받은 윤석열 정부에서는 지역별 에너지 불균형 문제 해결하겠다며 지역에너지 산업과 계획을 사기업에 맡기는 '분산에너지 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기후위기 대응이란 명목 아래 재생에너지라는 새로운 산업을 자본의 새로운 이윤 추구 수단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전체 재생에너지 중 90%를 민간 자본이 생산하는 지금과 같은 에너지 생산 체제에서 공공성의 개념은 찾아 볼 수 없다. 결국 이런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생산을 늘려간들 이 에너지는 다시 자본의 이윤 축적을 위한 동력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생산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제적인 탄소 규제 압박 속에서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수출 중심 분야의 대기업이 앞장서서 RE100을 선언하며 생존전략을 짜고 있다. 거대 양당은 이런 자본의 전략에 맞춘 공약을 기후정치로 둔갑시키고 있다. 당장 이번 총선이 그 증거다. 국민의힘은 기후 대응 기금을 5조로 확대하고, 청정 수소 생산단지 짓겠다고 나섰고, 민주당은 농촌을 재생에너지 산업단지로 만들며, 녹색 금융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이는 기후위기를 만든 자본주의 체제는 그대로 둔 채 자본의 겉모습만 녹색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자본의 요구에 맞춘 기후위기 대응책은 지구의 온도를 낮추기는커녕 최소한의 탄소배출도 줄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밝혀진 진실이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 양당이 내놓는 기후 공약은 기후위기라는 체제의 문제를 정치로 풀어내야 한다는 시민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 자본의 생존 전략에 발맞추는 정책을 내놓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탄소중립 정책과 기후 후보를 내세우는 동시에 개발과 토건 사업과 같은 공약에 어떤 철회도 약속하지 않는 모순적 행보를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는 '기후정치'를 위해

그간 정치권이 보여온 기후위기 대응은 과연 기후위기가 초당적 협력이 부족한 까닭에 해결되지 않은 것일까. 기후위기가 단지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의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결합한 결과라면 기후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치의 자리는 그 자체로 당파적이고 첨예한 정치적 갈등의 장소이다. 그래서 기후 정치의 장소는 초당적 연합의 자리가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균열을 내는 투쟁의 장소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기후위기를 정치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는 요구는 착취당하는 자연과 생명에 책임감을 느끼며 지금과 다른 세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투쟁 주체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 목소리에 대한 응답을 고작 자본의 기후 대응을 위한 기후공약으로 답하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자.

정부가 녹색성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위해 기업에 수조 원의 혜택을 주고, 기업은 생산 종목을 바꾸는 동안 노동자는 계속해서 불안정 노동으로 내몰리는 현실, 누구의 것도 아닌 바람과 태양을 에너지 상품으로 개발하고 그 비용을 시민에게 전가하는 현실, 자연을 무한정 착취하는 자본에 대한 아무런 통제권도 갖지 못한 채 피해는 기후위기 최일선의 당사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현실. 이런 현실을 바꿔내는 정치야말로 시민들이 요구하는 기후위기 대응이고 정의로운 기후정치이다. 이 정치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를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의 요구와 결탁하는 정치와 단절하고 기후 시민들이 만드는 공공적이고 생태적인 세상을 위한 정치의 장을 만들어 나가야한다. 22대 총선이 '기후정치의 원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인간답고 존엄하게 살아가기 위한 그런 기후정치가 필요하다.

가원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 프레시안

기후재난 취약층에 무관심한 윤 정부

기후위기 앞에서도 사람은 평등하지 않다. 재난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에게 더 가혹하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기후재난으로 더 크게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고 때로는 생명을 잃기도 한다.

2022년 여름 신림동, 폭우로 한 빌라 반지하에 거주하던 여성 노동자, 발달장애인, 그리고 아동으로 구성된 일가족 3명이 사망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을 피하지 못한 탓이었다. 옆집 주민이 창문을 뜯으려 했지만 그마저 가능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사 현장을 방문했고 대통령실은 그때 찍은 사진을 국정홍보용 카드뉴스로 올렸다. 사진 위에는 국민안전이 최우선입니다라는 문구를 박았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방문했다. 근본적인 대책이라며 아예 반지하 주택을 모두 없애겠다라고 선언했다.

참사 때만 나오는 국가가 나서겠다는 헛소리

취약계층의 열악한 집은 재난 상황에서는 흉기가 되어 생명권을 앗아간다. 주거권의 문제, 적정 주거에 대한 권리를 말한다. 그 중에서도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의 하나인 반지하 주택은 비좁고 더운데다 습기와 곰팡이 문제는 물론 침수 피해에 노출되어 있어 열악한 거주환경을 대표한다. 폭우로 물이 차오르자 변기에서 오수가 넘쳐나는 건 영화 기생충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2018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유엔주거권특별보고관은 고시원과 쪽방촌에 사는 이들도 홈리스(노숙인)’로 봐야 한다며 개선책을 권고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나서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지옥고나 쪽방촌의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구주택총조사 자료가 있을 뿐, 전수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반지하의 거주 인원이나 주거의 질, 에너지의 효율성, 침수 예방 설비의 현황과 개선방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기초 데이터도 없다. 민간연구소에서 반지하는 36만 가구에 이르며 70만 명 가까이가 살고 있다고 추정할 뿐이다. 대부분은 저소득 노인이거나 1인 가구, 장애인들이다(한국도시연구소).

자연재난에서 취약계층의 주거권을 보호하고, 자연재난을 일으키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업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들 수 있다. 노후 건축물의 단열, 설비 등의 성능을 개선하고 에너지 효율을 향상해 냉난방 비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면서 쾌적하고 건강한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을 말한다. 게다가 그린 리모델링은 녹색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점에서 그린 뉴딜 정책의 핵심을 차지한다. 그린 뉴딜이 녹색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취업 기회를 확대하고 노동자와 빈곤층의 생활 수준을 높이려는 목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너지 전환이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실업의 우려를 안긴다면 그린 리모델링은 실업을 흡수하는 안전판의 구실을 한다.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이처럼 일자리 창출과 분배 정의, 그리고 기후 정의를 동시에 실현한다는 점에서 주거부문의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불린다. 그린 리모델링은, 하기로만 한다면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신속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제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침수 피해 현장을 방문, 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 반지하 주택에서는 발달장애 가족이 지난밤 폭우로 인한 침수로 고립돼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8.9. 연합뉴스

국정 포기 의구심까지 들게 하는 그린 리모델링 사업

2018년 기준 건물부문의 탄소 배출량은 5210만 톤으로 우리나라 전체 배출량의 7.2%에 이른다(외부에서 생산된 전기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까지 감안하면 24.7%). 정부의 목표는 2030년까지 32.8%를 줄여 3500만 톤으로 묶겠다는 것이다(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정부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감축 수단은 제로 에너지 빌딩(ZEB)의 신축과 그린 리모델링 사업이다.

이 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을까? 먼저 정부는 2030년까지 47000건의 제로 에너지 빌딩을 짓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적은 턱없다. 2017년부터 20243월 말에 이르는 7년 동안 제로 에너지 빌딩의 인증현황은 목표치의 11.5%5400(누적)에 그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로 에너지 빌딩의 건축 의무화 시기를 늦추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30세대 이상의 민간 공동주택(아파트, 다세대, 연립주택)에 대해 제로 에너지 건축을 의무화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2025년으로 유예했다. 제로 에너지 건축을 강제하면 건축 단가가 높아진다는 건설업계의 불만이 있다는 이유였다.

그럼 그린 리모델링 사업은 어떨까? 정부는 2030년까지 건물 160만 호를 그린 리모델링으로 개선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2년 말까지 실적은 목표의 5%에도 미치지 못하는 79000. 정부가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 주요 수단은 민간의 그린 리모델링 사업에 이자를 지원하는 일이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지원된 금액은 9700억 원. 하지만 이자 지원사업은 가구주를 대상으로 삼는 것이어서 취약계층의 주거환경개선이나 에너지 효율의 향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나마 정부는 올들어 이 사업도 중단했다. 금리가 높아지면서 건축주의 부담이 커져 참여가 저조하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정부로서는 건설부문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로드맵도, 그것을 실현할 정책수단도, 심지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방치하는 것을 넘어 국정을 포기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인류가 직면한 존재 위기 앞에서 지구를 지키려는 의지는 물론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전환 리스크를 줄이려는 정책조차 실종된 셈이다. 건축부문은 전환부문과 산업부문, 그리고 수송부문에 이어 네 번째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부문이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간 건축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듯 증가하고 있다. 기후위기 정책이 아니라 정부 자체가 실종됐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기후위기 방치는 인권 침해라는 국제법원의 판결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다. 취약계층에게 기후재난은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하지만 쪽방촌과 지옥고주민들의 주거 질은 정부가 지나가듯이 내놓는 공언에만 존재한다. 그 공언도 기후재난이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그 순간에 그친다. 우리 사회에서 몫 없는 자들의 몫은 없고 목소리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을의 민주주의를 말하고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말하지만, 몫 없는 자들의 목소리는 정부의 정책 속에서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지난 49, 유럽인권재판소(ECHR)64세 이상 여성으로 구성된 스위스 환경단체 '기후 보호를 위한 노인 여성'(KlimaSeniorinnen Schweiz)이 스위스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측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스위스 정부가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기후 변화가 생명, 건강, 복지와 삶의 질에 미치는 심각한 악영향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여성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를 획기적인 기후 판결’(landmark climate case)이라고 표현했다. 국제법원이 최초로 정부가 인권법의 취지에 맞춰 기후목표를 달성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밝혔다는 것이다.

취약계층이 노년 여성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취약성이란 것이 건강권 훼손에 머무는 것도 아니다. 법원이 기후위기에 따른 소외계층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동시에 국가의 의무를 확인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노인들이 인간다운 주거 생활을 할 권리’(주거기본법)는 기후위기에 따른 건강권과 생명권, 행복권, 그리고 에너지 복지를 포함하는 인권의 개념에 가닿는다.

국내에서도 지난 3, ‘60+ 기후행동기후솔루션이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기후위기에 따른 노인피해를 진정했다. 미래세대의 권리 못지않게 현재 세대, 그 중에서도 노인세대의 건강과 생명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리고 그 출발로 기후위기에 직면한 노인들의 실태부터 조사하자고 제안했다. 앞서 말한 스위스 노년 여성단체의 응원과 연대에 바탕을 둔 것이다. 423일에는 헌법재판소에서 청소년, 영유아, 기후단체 등이 낸 4건의 기후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이 열린다.

기후위기 대응과 불평등의 해소는 궤를 같이 한다. 불평등을 확대하는 기후위기를 방치한다면 정의로운 전환은커녕 그 전환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하지 못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감축과 에너지 효율의 향상, 일자리의 창출과 취약계층의 주거권 보장을 내용으로 하는 그린 리모델링이 주목을 받는 이유이자 그 정책의 실종을 우려하는 이유이다./ 박태주 60+기후행동 운영위원 시민언론 민들레

 

14'삽질' 가덕도신공항, 파행으로 가는 윤 정권의 '거친 질주'

[가덕도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가 지금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부산 경남 지역 '민심 달래기'를 위해 내놓았던 이 프로젝트는 동 정권하에서 제정된 특별법이라는 날개를 달고 거의 '지상과제'에 가까운 수준의 절대적인 국책사업으로 위치 설정되었다가, 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불발의 공백을 메우는 데 여념이 없던 윤석열 정권은 이에 엄청난 마력의 가속도를 붙여 무섭게 치고 나가고 있다. 그런데 막대한 규모의 국가 예산이 투입되는, 경제성과 안정성 등 실로 꼼꼼하게 사업의 타당성을 들여다봐야 할 이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가 '질주'라는 용어로밖에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에 심각한 위화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그저 일을 진행하는 속도만을 두고 반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라, 일을 진행하는 데 있어 치명적인 모순, 즉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매우 '불편한 진실'이 속속히 드러나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는 의미다.

첫째,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에 관련된 국토교통부의 '기본계획' 고시를 둘러싼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작년 12월 말에 국토교통부는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을 자신 있게 고시했다. 국토교통부는 이 고시와 함께 가덕도신공항 건설 및 운영의 국민경제 및 부산 지역경제에 미칠 파급효과 수치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 국토교통부의 경제적 파급효과 분석을 위한 계산 방식에 대해서는 차치하더라도(이에 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통해 비판적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국토교통부의 심각한 문제는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그 토대가 되고 근거가 되는 기본계획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그리도 크고 또 지역 균형발전에 절대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실제 효과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라 전체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가덕도신공항의 기본계획을 고시하면서 그 계획을 수립하게 된 분석적 근거가 되는 본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은 치명적인 모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토교통부의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연구 용역은 지금까지도 완료되지 않았고, 게다가 모 국회의원실에 국토교통부 관계자가 전달한 내용에 의하면 그 연구 용역은 현재 '일시 중지' 중에 있다는 점이다. 기본계획의 타당성을 밝히는 연구보고서를 공개하지도 않고 고시만 먼저 강행했다는 절차상의 결함도 문제이거니와, '일시 중지'된 연구, 즉 연구결과도 없이 기본계획을 내놓았다는 것은 너무나도 '불편한 진실'이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가덕도신공항 기본계획 고시 이면에는 국토교통부의 심각한 날림 공정과 졸속 행정, 그리고 혀를 찰 정도의 무모함이 자리 잡고 있다. 현 정부의, 파행으로 가는 '거침없는 질주'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라는 대형 토목공사를 둘러싸고 국토교통부와 대형건설사 간의 연합체제, '국가와 독점자본 간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대형공사 입찰 방법 등에 대한 국토교통부의 공식 입장을 접하면, 가덕도신공항은 무려 14조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투입하여 대형건설사, 즉 토건 독점자본에 대한 '일감 밀어주기' 프로젝트일 가능성이 짙어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가덕도신공항 공사는 설계시공 일괄입찰 계약을 의미하는 이른바 '턴키(Turn-Key)'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말인즉슨, 7~9조 원 규모의 부지조성 공사와 터미널 공사 등을 하나로 묶어 발주함과 동시에, 또 부지조성 공사의 경우 설계와 시공을 하나로 묶어 일괄입찰 방식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덕도신공항 공사가 7조 원 이상의 대규모 단일공사로 발주되는 만큼, 국내 10대 대형건설사 간의 공동도급(컨소시엄)이 공사를 '싹쓸이' 해버리고 만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라는 점에 있다. 결국 자본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건설사가 가덕도신공항 공사를 독점할 가능성이 매우 커서, 이른바 '지역업체 20% 이상 의무 공동도급' 적용과 공항 공사를 통한 지역산업 활성화를 꾀하는 부산시나 부산지역 건설 산업계의 바람과는 달리 부산지역 건설기업들의 공사 참여는 쉽게 허락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조달청은 작년 4월에 10대 대형건설사 간 공동도급에 관한 규제를 완전 폐지했다. 기술형 입찰에서 대형건설사들의 수주 독식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는 20086월부터 줄곧 10대 건설사 간의 공동도급을 제한해 왔는데, 이 규제가 작년에 말끔하게 풀렸다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위화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규제완화 조치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대형건설사의 '돈잔치'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는 점은 매우 분명하므로, '불편한 진실'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10대 대형건설사들은 지금 가덕도신공항 부지공사 참여를 위해 공동도급 구성에 올인 중이다.

가덕도신공항·진해신항 조감도. 경남도

셋째, 국토교통부는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와 관련한, 국토교통부 스스로가 수행한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를 백지화하는 자기모순을 시연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20224월에 가덕도신공항의 사전타당성 검토 보고서를 내놓으며 신공항의 비용편익 열위(劣位) 문제와 부등침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해서, 이 보고서는 많은 국민이 가덕도신공항에 대해 회의적으로까지 인식하게 했을 정도였으며, 국토교통부의 가덕도신공항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특히 보고서는 공사 기간을 앞당기기 위해 육상부와 해상부 연약지반을 걸치는 방식으로 공사하게 되는 경우, 해상 건설에 비해 비용편익이 오히려 떨어지고 육지와 연약지반 차이에 의한 부등침하의 우려가 더 크다는 지적을 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국토교통부는 이와 같은 검토 결과를 전혀 언급하지 않고,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입장으로 돌변했다. 즉 국토교통부는 그들 스스로 지적하고 언급한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은폐하면서, 가덕도신공항을 빨리 착공하고 완공해야 된다는 현 정권의 정치 논리에다 보조를 맞추고 있다.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중앙정부가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하는 현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비용편익의 열위와 부등침하 문제가 명백한데도 불구하고 가덕도신공항 공사를 강행한다는 점이다. 엽기적이기 짝이 없다. 정부가 왜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이른바 '정권 심판'을 운운했던 그 누구도 가덕도신공항 프로젝트의 '미친 질주'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무려 14조 원이나 되는 막대한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부산 바다를 막 뒤집어 퍼서 그곳 해양생태계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파괴적인 '삽질' 프로젝트가 그 근거가 되는 연구가 종료되지도 않는 채, 그 비용편익과 안전성도 담보하지 못한 채, 대형건설사의 독점이익만을 챙기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너무나도 슬픈 현실이다. 총선이 끝난 지금 시점에서 더 유감스러운 것은, 황당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중앙정부의 졸속에 대해 현 정권을 심판하겠다는 거대 범야권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표'를 위해 저지른 문재인 정권의 원죄 때문인 것일까?

양준호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 프레시안

 

221년 만의 매미겟돈예고1000조 마리 맴맴~’

매미. 한겨레 자료 사진.

올해 봄과 여름 미국에서 많게는 1000조 마리의 매미 떼가 나타날 것으로 예고됐다. 매미들의 생애 주기가 겹쳤기 때문인데 이는 무려 221년이다20(현지시각)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를 보면, 올해 봄과 여름 미국 중부와 동남부 지역에 예년보다 훨씬 많은 매미가 나타날 것으로 과학계는 예상하고 있다. 매미 전문가인 존 쿨리 코네티컷 대학 생태학·진화생물학 교수는 올해 나타날 매미떼를 영화 아마겟돈에 비유해 매미겟돈이라고 칭할 정도다. 이 기간에 나타날 매미는 적게는 수백조 마리에서 많게는 1000조 마리로 예상된다.

매미 떼의 창궐은 이들의 탄생 주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매미 유충은 10년 이상의 긴 기간을 땅속에서 보내다 밖으로 나온다. 이번에 나타나는 매미들은 13년 주기와 17년 주기 두 종류로, 지난 1803년 이후 무려 221년 만에 두 주기가 겹치면서 특히 많은 매미가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13171과 자신 이외의 자연수로 나뉘지 않는 소수라서 최소공배수인 221년이 동시 출현 주기가 된다. 1803년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재임하던 때다.

이번에 나타날 매미는 총 일곱 종류다. 우선 13년 주기 매미들이 조지아 등 동남부 지역에서 나타난 뒤, 곧이어 중부 지역에서 17년 주기 매미들이 출몰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특히 미 중부의 일리노이주의 일부 지역에서는 두 주기의 매미가 함께 등장할 수 있다. 16개 주에 걸쳐 1에이커(1200)100만 마리씩 나타날 전망이다.

328(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조지아공과대학교에서 생물물리학자가 매미 유충을 손에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매미는 사람에게 직접 위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올해 미국의 매미 떼는 규모가 너무 커 소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쿨리 교수는 “(매미 울음소리는) 110 데시벨에 달한다. 제트기 옆에 머리를 두는 것 같다.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조지아주 메이컨에 사는 라울스는 최근에 땅을 파다가 매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앞으로 더 많은 매미를 볼 것 같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소음으로 당황스러울 것 같다고 에이피(AP)통신에 말했다.

다만 과학자들은 221년 만의 초대형 매미 떼를 귀중한 연구 기회로 본다. 13년 주기 매미와 17년 주기 매미가 종 간의 번식을 통해 새로운 종이 나타날 수 있을지, 매미 사체를 먹는 새 등의 생물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이다. 워싱턴포스트는 과학자들은 매미가 식물에 미치는 영향 등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한다풍부한 매미 사체로 식물에 인과 질소를 공급하는 등 생태학적으로 이점도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푸르름에 힐링···어둡게 자랐어도 양지에서 사랑 받는다

대표적인 어둠의 식물이끼의 재발견

나만의 작은 숲 테라리엄기본 재료

태초의 자연 느낌, 마음 차분하게 해

탄소저감 효과, 친환경 소재로도 주목

비단이끼. 테라리움, 석부작, 분경, 분재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이끼다. 정확한 명칭은 가는흰털이끼. 미니분경 제공

서울 여의도의 한 한식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코스의 첫 번째 요리로 노란 꽃잎이 올라간 에피타이저가 나왔다. 예쁜 음식만큼이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다육식물과 함께 이끼가 소복이 올라간 접시였다. 설마 하고 만져보니 진짜 살아 있는 이끼다. 요즘 식당가에서는 이끼와 드라이아이스 등을 활용해 주메뉴를 돋보이게 하는 플레이팅을 내놓는 곳이 있다. 한우와 같은 고급 식재료를 고객에게 선보일 때도 애용된다. 소셜미디어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이들을 위한 촬영용 세팅이기도 하다. 한 이끼농장은 광화문과 여의도에 매장을 둔 한우전문점이 단골이라고 전했다.

축축한 음지에서 자라는 대표적인 어둠의 식물이끼가 양지에서 사랑받고 있다. 그 옛날 식물채집 숙제 때나 눈여겨보던 이끼의 대중적인 인기를 이끈 것은 테라리엄이다. 유리 용기, 수조 등에 이끼와 작은 식물, 소품 등의 오브제를 활용해 나만의 작은 숲을 만드는 식물 공예 테라리엄은 반려식물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주로 실내에서 잘 자라는 식물을 활용하는데, 이끼가 필수 재료다.

건조한 실내에서 쉽게 죽지 않는 비단이끼(가는흰털이끼)로 구성된 테라리움 키트. 비오토프갤러리 제공

독일마이스터 플로리스트 박민지씨는 테라리엄은 유럽에서는 1900년대 초반부터 있었던 문화인데, 반려식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새로운 식물에 대한 관심이 찾아낸 트렌드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최근 2~3년 부쩍 마니아층이 증가했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얻는 식물 멍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박씨는 습도가 높은 기후 여건상 이끼가 잘 자라 테라리엄 산업이 발달한 일본에서는 버섯 테라리엄이 유행이라고 전했다. 유리 용기가 아닌 돌 위에 식물을 심는 석부작 분경도 이끼 공예의 또 다른 유형이다.

테라리엄은 포인트 플랜테리어로 사랑받는 관상용에 그치지 않는다. 테라리엄을 직접 만드는 클래스도 성업 중이다. “힐링 받고 간다는 후기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재료비와 강습비를 합쳐 4만원에서 10만원 상당의 비용임에도 찾는 예약자가 줄을 잇는다. 관공서나 지자체에서도 심심찮게 관련 클래스가 열린다. 박민지씨는 심리적인 치유 목적으로 식물을 활용하는 것이라며 현대인이 가진 자연 결핍을 채우는 데에도 효과적이라고 추천했다. 클래스를 굳이 찾지 않아도 온라인을 통해 이끼 테라리엄 키트를 구입해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이끼도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다. 이끼공예가 삭 작가의 이끼공예 작품. 비오토프 갤러리 제공

최근 집 안에 비바리움을 꾸민 김대호 아나운서의 일상이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공개되면서 테라리엄은 또 한 번 관심을 받았다. 비바리움은 식물만 키우는 테라리엄과 달리 양서류나 곤충 등 동물을 함께 사육한다. 지난달 김 아나운서는 유튜브 채널 14F ‘4춘기(40대의 취미를 찾아서)’ 코너에서 이끼공예가 삭(박웅택) 작가와 함께 테라리엄을 만드는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코로나 때 뭐가 재밌을까 찾다가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비바리움을 접했다자연의 일부를 집 안에 둘 수 있는점에 반했다고 전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테라리엄의 인기가 급상승했다고 입을 모은다. 강제 격리 시기, 유리 용기 안에 나만의 작은 지구, 오롯한 생태계를 만들며 많은 사람이 안도감을 느꼈다.

이끼는 바로 심자마자 오래된 느낌을 주는 동시에 생동감을 주는 모순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태초의 자연과 같은 모습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죠.”

삭 작가의 작품과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위안을 얻고 간다는 댓글이 유독 많다. 구독자의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사람을 생물로 둔거대한 비바리움으로 꾸민 까페이끼 내부 이미지. 카페이끼 제공

서울 신당동의 카페 이끼는 벽면과 테이블까지 온통 이끼로 채워진 본격 테라리엄 카페다. 지난해 말 카페를 연 최준영 사장은 테라리엄을 기반으로 한 인테리어지만, 실질적으로는 사람을 생물로 둔 비바리움으로 꾸민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본업이 의류디자이너인 최 사장은 공기가 열악한 곳에서 근무하는 인근 봉제공장 밀집 지역 종사자들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독학해 카페를 꾸몄다는 그는 테라리엄 클래스를 여는 등 고객들이 이끼와 친숙해질 수 있는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다.

고목에나 습지에서 자라는 이끼는 육상 생활에 적응한 최초의 식물로 선태식물이라 불린다. 크게 선류(솔이끼 등), 태류(우산이끼 등), 각태류(뿔이끼 등)로 구분한다. 전 세계적으로 2만여종이, 우리나라에는 약 950종이 분포하고 있다. 오래된 아파트 화단에서는 주름솔이끼, 털깃털이끼, 양털이끼 등, 보도블록 틈에서는 담뱃잎이끼, 은이끼 등, 산책로에서는 들솔이끼, 억새이끼 등을 볼 수 있다.

이끼도 취향에 따라 골라서 온라인 주문이 가능하다. 미니분경에서 판매하는 이끼 팩.

이끼는 조경 소재로 먼저 각광받았다. 정부세종청사 옥상 조경을 담당한 미니분경의 윤태근 대표는 겨울에도 죽지 않고 노지 월동이 가능해 사계절 내내 정원의 푸르름을 유지해주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말한다. 이끼의 옥상녹화로 단열효과를 통한 에너지 절약 효과를 보고 있는 곳도 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인삼 포장의 부재료로 널리 쓰이며 무분별 채취로 인한 생태계 파괴 우려를 낳았던 이끼는 재배를 통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 샘플러를 구입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시장화됐다. 한 촉당 몇천원 선에 판매하는 나무이끼 종류도 있지만, 대부분은 저렴한 수준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양지에서도 잘 자라며 조경에 많이 쓰이는 서리이끼의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

삭 작가는 이끼를 키우기 쉽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이끼는 그늘에 사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자연의 그늘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그는 실내에서 키울 경우 조명은 물론 환기도 필수라며 무조건 습하게 키워야 하는 식물이 아니며, 종류도 많으니 이끼별 생장 조건에 대해 공부하고 그 이끼가 살던 공간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끼 및 조경전문가들이 쓴 <실내에서 이끼 키우기>에 따르면 이끼의 생육 온도는 0~25, 생장이 활발한 적정 온도는 18~25도이다. 전반적으로 시원하게 관리해야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이끼를 갈색으로 변하게 하거나 곰팡이, 입 무름 등을 유발한다. 이끼는 계속해서 자라고 번지기 때문에 잘 관리하면 평생을 두고 볼 수도 있다.

꼬리이끼. 가늘고 긴 잎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미니분경 제공

6년 전부터 이끼를 재배하고 있는 윤 대표는 이끼 재배는 쉬우면서도 어렵다고 말한다. ‘흔해 빠진식물이라 쑥쑥 자랄 것 같지만, 판매가 가능할 정도로 자라려면 보통 2년이 걸린다. 야생에서는 포자부터 성체까지 이끼가 정착하는 데에 이보다 긴 4~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상태다. 현재 국내에서는 10여종이 재배되고 있다.

윤 대표는 현재 이끼 시장에서 테라리엄 관련 소비는 10%가량이라며,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이끼의 탄소 저감 효과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생의 자원은 한정적이며 자연 훼손의 우려가 크다는 점도 이끼 재배의 본격화를 강조하는 이유다. 이끼는 공기오염의 지표 식물이다. 2022년 한 연구(<이끼를 활용한 공기정화 시스템 개발 및 이끼별 공기정화 능력평가> 안도현 외)는 전국적으로 유통량이 많은 우산이끼, 쥐꼬리이끼, 깃털이끼, 비단이끼를 대상으로 미세먼지, 혼합가스, CO2의 감소 효과에 대해 실험한 결과 모든 이끼에서 공기정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1촉당 가격이 별도로 책정된 이끼도 있다. 미니분경에서 판매하는 나무이끼.

탄소저감 효과와 친환경 산업 소재로 이끼의 효용에 주목하고 있지만, 관련 움직임은 더디다. 다년간 이끼 재배 기술을 연구해온 충북대 원예과학과 이철희 명예교수는 공기와 중금속 정화 기능 등의 환경적인 측면 외에도 의약품이나 식품 영역 등 이끼의 용처가 많지만 이것을 구체화하고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미미한 것이 아쉽다농민들이 적극적으로 재배에 나설 수 있도록 정책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향 장회정 기자

 

삶의 기록으로 남다, 기억조차 폐기되다

주공아파트, 재건축 이후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일본 도쿄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스를 디자인하면서 한쪽 끝에 1920년 지은 아파트를 재현해 덧붙였다.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에 있는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스는 안도 다다오의 2006년 작품이다. 오모테산도에 들르면 이 건물을 지나지 않기도 어렵다. 하라주쿠역부터 오모테산도역까지 약 1이어지는 느티나무 가로수길에 300m가량 접한 긴 건물이 오모테산도 힐스다. 명품으로 유명한 이 거리에서 샤넬로 시작해 크리스찬 디올, 에르메스를 거쳐 루이비통으로 끝나는 여정에 오모테산도 힐스는 길 건너편에서 묵묵히 함께한다. 가로수가 울창한 계절에는 오모테산도 힐스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안도 다다오가 이 건물을 설계하면서 느티나무 가로수보다 높게 지을 수 없다고 고집한 탓이다. 쟁쟁한 럭셔리 브랜드의 각축장에서 오모테산도 힐스는 지금 홀로 키가 작다.

오모테산도 힐스 자리에는 원래 도준카이아오야마라는 3~4층짜리 낡은 아파트가 있었다. 일본이 간토대지진 후 도쿄를 대대적으로 재건하면서 1927년 지은 건물이다. 지진이 할퀸 자리에 튼튼히 지어야 했기에 집합주택 중에는 일본 최초로 철근 콘크리트조를 썼다. 안도 다다오는 이 아파트를 복합시설로 바꾸는 재건축 프로젝트를 맡았다. 1960년대부터 재건축 시도가 여러 번 무산된 곳이어서 쉽지 않으리라는 점을 안도 다다오는 처음부터 알았다. 그럼에도 그는 토지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 가지 조건을 걸었다. 첫째, 지금 아파트처럼 가로수 높이를 넘지 않을 것. 둘째, 입면을 차분한 느낌으로 디자인할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부글부글한 토지주들의 마음에 마지막 조건이 마침내 불을 질렀다. 셋째, 아파트 2개 동을 그대로 남길 것.

당시 이미 세계적 건축가 반열에 들었던 안도 다다오에게 불명예스러운 비난이 쏟아졌다. “유행에 뒤처진 건축가!” “안도상은 고집불통!” 3개월마다 토지주, 디벨로퍼와의 껄끄러운 만남이 이어졌다. 안도 다다오는 자서전 <,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첫 회합부터 마지막 회합까지 프로젝트에 대한 나의 방침은 큰 틀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 지금까지 아파트가 지켜온 오모테산도의 풍경, 그것은 반드시 남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1995년 한신대지진을 겪은 아파트는 너무 위험해 부숴야 했다. 대신 안도 다다오는 오모테산도 힐스 한쪽 끝에 아파트 한 동을 완전하게 재현해 덧붙인다. 물론 외관만 주택일 뿐, 내부는 상업공간이다. 바로 옆에 공중화장실이 있어 그 주변에서 발걸음을 늦추면, 멀끔한 쇼핑몰과 이질적으로 붙은 아파트에 눈길이 멈춘다. 20세기 초 아오야마아파트의 기억을 만나는 순간이다.

2000년 촬영한 잠실주공아파트 단지 전경. 서울시의 주공아파트 재건축 흔적 남기기는 재건축조합의 버티기와 시정 기조 변화로 무산됐다. 구글맵·서울연구데이터서비스

명품 거리에 남은 1920년대 아파트의 풍경, 우리도 이 전례를 따라서 비슷한 걸 시도한 적 있다. 서울시는 예전에 반포, 잠실, 개포 등지에 지은 아파트 단지를 재건축할 때 옛 아파트를 한두 동씩 남기게 했다. 과거 고속성장 시기에 건설한 주공(한국주택공사)아파트로, 초기 아파트 생활상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라는 이유에서다. 그 시절 아파트에는 연탄 난방에 쓰는 아궁이가 있었고, 남의 집안일을 거들어 생계를 꾸리던 여성들이 머물던 이른바 식모방이 있었다. 요즘의 벽식 구조 대신 입주자 취향껏 공간 구획을 바꿀 수 있는 기둥식 구조가 많았다. 그래서 반포주공 108, 개포주공 1단지 15, 개포주공 4단지 429동과 445, 잠실주공 523동을 그 역사의 증거로 남기려고 했다.

이 사업을 재건축 흔적남기기라고 불렀다. 많은 언론이 그냥 예전 5층짜리 주공아파트를 덩그러니 남기는 것처럼 보도했는데, 그렇지 않다. 서울시는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 등 재생해서 과거 생활상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상가나 커뮤니티 시설로 쓰도록 권고했다. 재건축조합이 이런 흔적남기기를 받아들여 재건축 진도를 빼놓고도 끝까지 손대지 않고 버텼을 뿐이다. 건물은 방치하면 흉물이 된다. ‘흉하니 도로 부숴야 한다는 논리가 생겨났다. 서울시장이 바뀌고 시정 기조도 바뀌면서 흔적남기기는 모조리 없던 일이 됐다.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가 된 개포주공 1단지에는 지난해 말부터 입주가 시작됐는데, 15동이 있던 자리에서는 흔적남기기 사업을 대체할 공원 조성 작업이 뒤늦게 진행 중이다.

일본 유명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스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토지주들 설득

기존 낡은 아파트를 기념비로 재현

서울시도 한때 반포주공·개포주공 등

재건축 흔적남기기시도했지만 실패

 

한국전쟁 이후 부흥의 역사 증언할

독창적 생활유산, 흔적조차 사라져

이렇게 아오야마아파트는 남고, 주공아파트는 남지 못했다. 안도 다다오는 아오야마아파트가 과거를 현재에 전하는 하나의 기념비라고 했다. 기념비로 칠 것 같으면 주공아파트가 아오야마아파트보다 자격이 부족할 이유가 없다. 아오야마아파트가 간토대지진과 이후 복구의 역사라면, 주공아파트는 한국전쟁과 이후 부흥의 역사를 증언한다. 누군가 아궁이, 식모방, 기둥식 같은 미시적 요소에 코웃음을 친다면, 그 너머의 거시적 집합을 보자고 당부하고 싶다. 그 주공아파트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선망하는 보편적 삶의 시발점이라는 사실 말이다.

거의 평생을 주택 연구에 매진한 고 박철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된 유작 <마포주공아파트>우리는 여전히 마포아파트 체제속에 있다라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마포아파트는 주공이 1965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 건설한 10개 동, 642가구 아파트를 말한다. 마포주공은 최초의 역사를 여러 장 썼다.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 최초의 분양 아파트, 최초의 재건축 아파트(1994년 마포삼성아파트로 재건축) 등이 마포주공이 뿌린 ‘K주거의 유전자다. 이 유전자가 널리 퍼져 초중등학교, 대형 상가와 공원까지 품은 3000~4000가구 아파트단지인 반포주공, 잠실주공, 개포주공 등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런 대단지는 더 큰 대단지로 재건축되면서 대단지의 신화를 더욱 탄탄하게 구축한다.

박철수는 이 체제를 말한 것이다. 한국을 연구하는 프랑스 사회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한국의 아파트단지는 20세기 한국이 만들어낸 가장 독창적인 산물이라는 평가를 인용하면서 말이다. 연구자와 이방인의 진단에서 긍정 혹은 부정의 가치 판단을 끌어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거다. 인류 역사상 유례없이 인구가 급증한 시기에 조응한 대단지 체제의 출현, 이것은 분명 역사적 특이점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마포주공을 놓쳤더라도 반포주공·잠실주공·개포주공, 그중 어느 하나라도 붙잡아 기념비를 제대로 남겼어야 했다.

그럼 아오야마아파트는 남고, 주공아파트는 남지 못한 이유는 뭘까. 흔적남기기에 끝까지 어깃장을 놓은 재건축조합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아오야마아파트 토지주들도 오래된 아파트를 남기겠다는 안도 다다오의 발상에 반대했으니까. 자본주의 체제에서 재산권은 헌법상 권리다. 그 권리를 행사하는 일 자체에 시비를 걸기는 어렵다.

다만, 안도 다다오는 토지주 100여명을 상대로 자신의 신념을 4년 동안 고수했고, 끝내 관철했다. 그가 불통했던 건 아니다. 꾸준히 만나고 들으며 신뢰를 쌓았다. 아마 토지주들은 100% 납득하지는 못했더라도 저렇게까지 버티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오모테산도 힐스는 지금도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리고 모리빌딩은 안도 다다오와 끝까지 함께하며 결국 오모테산도 힐스를 완성했다. 모리빌딩은 롯폰기 힐스 등 일본의 굵직한 프로젝트를 일군 대형 부동산 개발회사다. 당시 모리빌딩의 대표 모리 미노루는 개장하면 사람들이 이곳이 미래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 것이라며 안도 다다오를 지지했다. 우리 사회에 없는 게 뚝심 있는 건축가만은 아닌 듯하다. 경향 허남설 기자

 

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이지영 그림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실존주의자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웬만해서는 세계에 함부로 내던져지지 않는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민음사, 1990)에서 그들의 성급한 형이상학을 이렇게 공박한다.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지기에 앞서, 집이라는 요람에 놓여지는 것이다. 삶은 잘 시작된다. 삶은 집의 품속에 포근하게 숨겨지고 보호되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언젠가는 요람 밖으로 내쳐진다는 사실을 바슐라르 또한 모르지 않는다. 다만 실존주의는 인간이 안락한 상태에 놓였던 시원의 단계를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낙원에 대한 몽상을 애초부터 삭제하고 시작하는 실존주의를 ‘2차적인 형이상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린다. 그럴 때,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을 끈질기게 되살리는 바슐라르의 시학은 1차적인 형이상학이 된다.

김혜진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 2023)에 실려 있는 작품 여덟 편은 이 중요한 모티프다. 행복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말대로 하면, 집은 세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포근한 요람이어야 하지만, 이 소설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에게는 집이 없다. ‘미애에 나오는 이혼녀 미애는 여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친구가 잠시 집을 비운 임대동 아파트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친구가 지방에서 돌아오는 석 달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20세기 아이에 나오는 세미의 가족, ‘산무동 320-1번지에 나오는 대리인 부부, 장마철마다 악취가 진동하는 천변 동네의 원룸에서 탈출하는 게 희망인 자전거와 세계의 현지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집이 최고지(‘사랑하는 미래’)”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소설집에 나오는 어떤 주인공들은 집이 있는데도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 ‘목화맨션의 만옥 부부와 이남터미널의 남우 사모님이 그렇다. 만옥 부부는 지은 지 30년이 되는 열 평짜리 오피스텔의 주인이고, 남우 사모님도 그와 비슷한 형편의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집 하나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정보를 모으고, “빛바랜 집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집들. 누구도 원하지 않고, 가지려고 하지 않는 집들(‘이남터미널’)“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빚까지(‘목화맨션’)” 내어 집을 장만했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전세나 월세를 산다.

만옥 부부와 남우 사모님이 빚을 내서 구도심과 외곽 지역에 매물로 나온 낡아빠진 집을 구입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보장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개발 프리미엄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7~8년이 넘도록 된다, 안 된다하던 재개발이 물 건너가면서 이들이 구매한 집은 죽은 동네의 아무도 살지 않으려는 집이 된다. 이러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골칫덩이를 만나게 된다. “돈 주고 산다고 다 자기 집이 되나요?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지(‘목화맨션’).”

집이 없는 사람의 불안과 집을 소유한 사람의 불안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불안은 뿌리가 같다. 집이 거주의 목적을 잃고 환금 대상이 되면서 수십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도 집값의 오르내림에 따라 주체 못할 불안을 겪는다. 바슐라르는 집에 4원소(···공기)와 같은 지위를 부여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4원소도 집도 모두 환금과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영어로는 주거 공간을 ‘house()’라 하고, 거기에 사는 구성원을 합한 것을 ‘home(가정)’이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집과 가정의 의미가 일치했으나, 집이 점점 더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되면서 집과 가정은 점점 뜻이 멀어진다. 거주할 집이 없어서 결혼 내지 동거를 하지 못하고, 집이 생길 때까지 아이 낳기를 미루는 것이다. 과장하자면, 가정은 집에 담기는 내용물이다.

이 나라는 부동산 때문에 망할 거야

열악한 주거에 놓인 주인공들은 대개 이혼녀이거나 독신녀이고, 외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아예 부모 없이 자랐다. 또 몇몇 소설에서는 남편이 중병에 걸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적 능력이 없다. 이런 설정은 집과 가정의 밀접성을 강조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정을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소설집의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의 결말은, 어쩌면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두 주인공이 생활동반자(성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일상생활과 가사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돌보는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게 만든다.

산무동 320-1번지의 주인공이 이 나라는 부동산 때문에 망할 거야라고 저주했던 한국의 주택 문제는 SF적 발상으로 접근한 김유담의 스페이스 M(위즈덤하우스, 2024)에서 희극적인 해결을 본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음침한 다세대주택에서 탈출할 길이 없던 임하나는 스페이스 M이라는 회사가 분양 중인 독신자들의 공유주택 미니어처 랜드에 입주한다. 이곳의 입주자들은 공유주택에 출입할 때마다 자신의 몸을 10분의 1 크기로 줄이거나, 본래대로 몸의 크기를 되돌리는 약을 먹어야 한다. 10분의 1 크기로 줄여진 인간에 맞게 지어진 미니어처 랜드는 땅값과 건설비도 그만큼 적게 들었기에 분양권이나 월세도 정상적인 주택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몸이 커지고 작아지는 알약이 아무런 과학적 설명이나 원리에 의거하지 않았기에 이 소설은 SF에 미달하지만, 소설의 주제만은 명확하다. 집이 없는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 아닌, ‘10분의 1’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세계--존재라고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어딘가에 거주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거주의 가장 큰 특성으로 보살핌을 꼽았는데, 인간은 어딘가에 거주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해 있음을 실감하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고 한다. 거주에 대한 이런 정의는 집과 가정의 밀접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김혜진의 소설 사랑하는 미래의 여주인공 강주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되면서 자신의 초라한 집이 달라진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집은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아니다. 그 집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진실한 마음이 머물러 있다. 그녀의 집은 특별하고 유일한 장소다.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다.” 청년들에게 집을 주라. 거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장정일 (소설가)/ 시사인

 

얼마나 살리고 싶었으면

남방큰돌고래들이 무리 지어 나아 갑니다.

끄트머리에서 힘겹게 무리에 따라붙는 돌고래 한 마리. 자세히 보면 주둥이 위에 죽은 새끼가 얹어져 있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보겠다며 바닷속으로 가라앉지 못하게 계속 들어 올리는 겁니다. 온몸에 폐어구가 얽힌 남방큰돌고래 '종달'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견된 모습입니다.

[오승목/영상 감독 (돌고래 영상 촬영) : 돌고래 주둥이에 걸려 있는 그 형태나 모습을 보면 아주 작아요. 새끼 돌고래와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그 정도면 갓 태어나서 하루나 하루가 채 안 된 정도의 돌고래가 되는 거죠.]

최근 1년 사이 이 부근에서 돌고래 사체가 발견되긴 이번이 6번째. 대부분, 새끼들인데, 올해 들어서는 발견 빈도가 짧아지고 있습니다.서식지에서 태어난 새끼 돌고래가 얼마 못 가 죽어버리는 것은 임신 기간 어미 돌고래가 겪는 스트레스 등이 이유로 추정되고 있습니다.이뿐만 아니라 낚싯바늘이 입에 걸려 괴로워하는 돌고래의 모습이 함께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제주 주변 남방큰돌고래 수는 120여 마리로 밖에 되지 않아 한 마리 한 마리가 귀한데, 이대로라면 종 보존에 심각한 상황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김병엽/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 : 이제 서식지가 많이 위협받고 있고, 서식지가 남방 큰돌고래에 대해 안정적이진 않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남방큰돌고래들의 위험 신호가 잇따라 포착되면서 바다 주변 환경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시급해졌습니다.출처 : SBS 뉴스

 

특별법 통과 후보신탕집 손님 되레 늘었다 [개식용종식법 100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100일이 됐다.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선진국 위상에 맞는 생명권, 동물권 보호 등이 강조되면서 불거진 개고기논쟁도 특별법 통과로 마침표를 찍게 됐다. 이런 가운데 전국에서 가장 많은 개농장과 보신탕 가게가 있는 경기도는 특별법 통과 이후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사진은 최근 평택의 한 보신탕 가게에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최근 용인의 한 개농장에서 개들이 뜬장에 갇혀 있는 모습. 금유진·오종민기자 (그래픽=유동수 화백)

일명 개식용종식법으로 불리는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이 지난 19일 국회를 통과했다. 특별법은 개를 식용 목적으로 사육·도살·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72월부터 처벌이 이뤄진다.

지난 2022년 기준 전국에는 1156곳의 개농장이 있는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으며, 이중 35.7%에 달하는 413곳이 경기도에 위치해 있다. 또 보신탕 가게의 경우 전국 1666곳 중 473(28.3%)이 도내에서 영업 중이다. 이 같은 개농장과 보신탕 가게 수는 모두 전국 광역 지자체 중 가장 많은 것이다.

이런 가운데 특별법 통과 후 개고기를 둘러싼 다양한 루머들이 떠돌고 있다.

그래픽=유동수화백

대표적으로 보신탕 가게에 오히려 손님이 더 많아졌다 폐업을 준비 중이던 보신탕 가게도 보상 때문에 간판을 유지한다 보상받기 위해 개농장은 더 커지고, 개 번식도 더 빨라진다 등이다.이에 현장을 직접 찾아 루머의 진위를 확인해 봤다.

먼저 수원, 평택, 광명 등 도내 10개 시·35곳의 보신탕 가게 매출 변화를 확인한 결과, 절반 가량인 17곳이 특별법 통과 후 매출이 늘었다고 밝혔다.

평택의 한 보신탕 가게 주인 A씨는 특별법이 생기고 나서 오히려 손님이 30%나 늘었다올해 복날엔 개고기를 평년보다 5배 이상 늘려 준비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의왕에 위치한 보신탕 가게 주인 B씨는 앞으로 못 먹게 된다고 하니 원래 개고기를 먹지 않던 사람들도 경험해 보고 싶어서 찾아온다고 말했다.또 현장에서는 사실상 개고기를 판매하고 있지 않지만 보상금 때문에 메뉴에 개고기를 유지하고 있는 염소탕 가게 등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수원의 한 염소탕 가게 주인 C씨는 원래 개고기를 판매했지만 갈수록 손님이 줄어 주메뉴를 염소탕으로 바꿨다폐업까지 고민 중이었는데 정부가 개고기집에 보상을 준다고 하니 혹시 몰라 개고기를 메뉴에서 빼지 않고 버티고 있는 중이라고 털어놨다.

개농장의 상황은 어떨까. 김포, 남양주, 화성 등 도내 10개 시·31곳의 개농장을 확인해 본 결과, 9(29%)이 개를 더 데려와 번식을 빠르게 하는 등 수를 늘리고 있었다.

용인의 한 개농장 주인 D씨는 마리당 보상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컷 30마리를 사와 개 숫자를 늘리는 중이라며 농장을 아들한테 물려주려 했는데 안 되니 최대한 번식시켜 보상금을 많이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폭염 빈도 8.6배 기후재앙까지 5

인천시가 지구의날을 맞아 ‘1.5기후위기 시계를 세웠다.

시는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인식 제고 및 탄소중립 기후행동을 확산하기 위해 20일 인천 남동구 인천대공원에 기후위기시계를 설치했다. 지난해 공공청사 최초로 시청에 1호 기후위기시계에 이어 이번 시계는 2호다.

기후위기시계는 산업화 이전보다 1.09상승한 지구 평균온도가 1.5상승까지 남은 시간을 보여준다. 1.5는 우리가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지켜내야 할 마지막 한계온도를 뜻한다. 기온이 1.5상승하면 폭염 발생 빈도 8.6, 가뭄 발생 빈도 2.4, 강수량 1.5, 태풍 강도는 10%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TS 앨범 속 이 푸른 바다는 이제 없다

석탄화력발전소에 빼앗긴 삼척 맹방해변

포스코에서 유연탄 하역장 건설

해변에 공사장 부산물 검은 파도

가동 시작되면 먼지 피해 불 보듯

정부 ‘2050 탈석탄목표에 배치

강원 삼척 맹방해변의 별칭은 명사십리다.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10리에 걸쳐 펼쳐진 장관이라는 뜻이다. 길게 뻗은 하얀 모래사장과 파란 바다가 맹방해변의 자랑이었다. 한때 방탄소년단(BTS) 앨범 재킷 촬영지로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찾던 명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푸르렀던 바다는 4년 만에 검은 파도를 토하고 있었다.

지난 20일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 상업운전 규탄 집회에 모인 시민들이 강원 삼척시 맹방해변에 조성 중인 석탄 하역부두 시설을 내려다보고 있다. 기후연대기구 제공

흉물스럽기 그지없습니다. 그야말로 작정하고 파괴한 현장이에요.” 지난 20, 성원기 강원대 공대 명예교수는 해변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삼척블루파워 모회사인 포스코는 2020년 석탄화력발전에 쓰일 유연탄 하역장을 맹방해변에 짓기로 했다. 방파제를 짓자 해류가 바뀌었다. 넘실거리던 파도는 해변을 침식하기 시작했고, 다량의 모래가 유실됐다.

기후위기비상행동·석탄을넘어서 등 시민단체들과 공공운수노조는 이날 맹방해변 앞에서 삼척블루파워 상업운전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삼척블루파워는 전날 상업운전을 시작할 예정이었으나, 봄철 미세먼지 저감 대책의 하나로 운영이 5월로 연기됐다.

성 교수는 해변에 선 150명의 시민들을 향해 지어서는 안 될 발전소를 지으면서 해변이 그야말로 초토화됐다검은 파도가 치는 이 참혹한 현장을 보라고 말했다. 해안침식이 논란이 되자 포스코는 모래가 쓸려나간 자리에 공사장에서 나온 펄과 슬러지(하수 찌꺼기)를 쏟아부었다. 발전소 터에서 나온 석회석도 바다에 버렸다. 오염된 흙과, 그 흙에서 나온 독성물질에 죽은 명주조개 사체가 뒤섞여 검은색 파도를 일으키고 있었다.

환경단체는 맹방해변 훼손이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한 참사의 예고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통상 화력발전소는 인구 밀집 지역과 떨어진 곳에 지어진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미세먼지는 사망률을 2배 가까이 높이는 유독물질이기 때문이다. 포스코는 동양시멘트가 사용하던 석회석 광산에 발전소를 지었는데, 이 광산은 삼척시청을 포함한 시내 중심부와 불과 5떨어져 있다.

발전소가 가동되면 연간 570t의 초미세먼지가 배출된다. 이 때문에 삼척 시민들도 발전소 가동에 부정적이다. 삼척블루파워 앞에서 건강원을 운영하는 김광열씨(72)아무리 방진을 한다 해도 주민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환경운동연합 조사에 따르면 주민 60%가 삼척블루파워 건설에 반대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삼척블루파워가 가동되면 연간 1300t의 온실가스를 내뿜는다는 것이다. 환경부는 2022~2023년 전력 부문에서 약 1000t의 온실가스 감축 성과를 냈다고 최근 발표했는데, 2년간의 감축량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매년 배출되는 셈이다. 기후연대기구는 그간 탄소중립을 위해 정부가 펼친 각종 정책들을 헛수고로 만드는 수준이라고 했다.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은 정부의 2050 탈석탄 목표에도 반한다. 삼척블루파워가 수명대로 30년간 쓰일 경우 2050년을 넘어서까지 가동된다. 조은혜 기후정의동맹 활동가는 현존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에너지 전환 차원에서 폐쇄의 로드맵을 밟아가고 있는데 삼척블루파워는 짓던 거니까 마저 지었고, 지었으니까 가동한다는 논리를 편다면서 우리 사회시스템이 기후위기 최일선에서 존재의 위기를 겪는 생명보다 기업을 지키는 문제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했다.

경향 이홍근 기자

 

<파이낸셜타임스> "한국 성장 기적 끝나간다" 지적

장기간 국내에 제기된 지적들 총망라용인 반도체 단지 두고는 "옛 모델"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한국의 경제 성장 기적이 끝나간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미 오랜 시간에 걸쳐 국내에서 문제로 지적된 사안이 총정리됐다.

22<FT>'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기사에서 정부의 용인 반도체 단지 투자를 두고 "대부분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칩 제조사들이 최첨단 메모리 칩 분야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AI) 관련 하드웨어의 미래 수요 급증에 대응하기 위해 용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이는 한편으로 한국 성장 모델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징조라고도 해석했다.

<FT>는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 단지 투자를 "한국 정부가 제조업-대기업이라는 전통 성장 동력을 두 배로 키우려는 결정"으로 보고 이는 "활력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는 (한국형) 모델 개혁 의지가 없거나 무능력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용인 메가 클러스터는 한국이 훨씬 가난하고 덜 민주적인 시기 개발된 경제 모델을 유지하려는 한국의 도전"을 보여주지만 "2027년 첫 번째 단지가 완성되면 그에 적합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할 것"이며 "재생 가능 에너지의 충분한 공급이 없이 새로운 원전 건설에 관한 초당적 합의도 없다면 전력이 어떻게 공급될지도 불분명하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22<FT>'한국의 경제 기적이 끝났나?(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 화면 갈무리

<FT>1970~2022년 사이 연평균 6.4% 성장한 한국 경제 성장률이 2020년대 들어 평균 2.1%, 2030년대에는 0.6%, 2040년대에는 0.1%로 둔화하리라는 한국은행 전망을 들어 "저렴한 에너지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는 낡은 모델의 기둥이 흔들린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FT>는 에너지 문제를 두고 "한국 제조업체에 막대한 산업 관세 보조금을 제공하는 국영 에너지 독점 기업인 한국전력은 1500억 달러에 달하는 부채를 축적"했고 노동의 질 문제를 두고는 "(한국을 제외한)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만이 (한국보다) 노동 생산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경제학과 교수는 <FT>와 인터뷰에서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우리의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미국이 발명한 칩이나 리튬이온 배터리와 같은 기술 상용화에 강점이 있지만 새로운 '기반기술' 개발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FT>는 이 같은 문제의 근원으로 성공의 함정, 즉 기존에 통하던 정답이 변화한 시대에 통하지 않는 함정에 한국 경제가 빠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FT>"경제학자들은 '(제조업-대기업이라는)기존 모델' 개혁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매우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반세기도 안 되어 가난한 농촌 사회를 기술강국으로 이끈 한국의 국가주도 자본주의 성과는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졌고 그 결과 "2018년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GDP는 과거 식민지배자였던 일본의 GDP 마저 넘어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핵심 기술 분야에서 한국의 우위는 줄어들었다""2012년 한국 정부가 선정한 120개 중점기술 중 36개 분야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그 숫자가 2020년에는 4개로 줄었다"고 지적했다.<FT>는 박상인 교수를 인용해 "한국의 기술 수출은 중국의 부상과 글로벌 기술 붐이라는 쌍둥이 수요 충격"으로 인해 2011년 현재 모델은 정점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한국의 대규모 투자를 이끈 삼성과 LG"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들이 장악했던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이제) 생존을 위해 분투하고 있다"<FT>는 보도했다. 아울러 한국의 대기업-수출주도형 산업 구조는 한편으로 "주요 대기업이 헤드라인을 장식할 큰 이익을 (하도급이라는) 독점 계약 관계를 통해 국내 공급업체를 희생하면서 얻은 것"이라는 박 교수의 말 또한 <FT>는 인용했다.

그로 인해 "한국 노동력의 80% 이상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은 직원이나 인프라에 투자할 돈이 부족해 낮은 생산성 악화와 혁신 둔화"에 빠져 서비스 부문 성장 억제 요인이 됐다고 신문은 밝혔다. -중소기업간 하도급 구조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내수 희생-수출 주도형이라는 기존 산업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은 장기간 국내 개혁적인 학자들로부터 제기돼 온 바 있다.

비가 내린 지난 15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역 인근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쓰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FT>"2021년 한국인의 6%만을 고용한 대기업이 GDP의 거의 절반을 충당하는 한국의 양분화한 경제 구조(two-tier economy)는 사회적지역적 불평등을 야기한다""이는 다시 서울 안팎에서 소수의 엘리트 대학 자리와 고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놓고 한국 청년층의 급증하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한국 청년층이 가중하는 학업, 경제 및 사회적 부담과 씨름하면서 출산율을 더욱 낮추는 원인이 되고 있다""한국은 OECD에서 가장 성별 임금 격차가 크고 자살률도 가장 높다"<FT>는 밝혔다.

기술혁신성 부족에 더해 극단적인 인구 구조 변화 역시 한국 경제가 직면한 큰 과제라고 <FT>는 밝혔다.<FT>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자료를 인용해 "생산가능인구가 (고령화로 인해) 거의 35% 감소함에 따라 2050년 국내총생산(GDP)2022년 대비 28% 낮아질 것"이라며 "미래 성장 우려가 임박한 인구통계학적 위기로 인해 더욱 악화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인구 고령화를 급격히 발전하는 AI 기술이 대체해 지금의 저출생 현상이 우려만큼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나오지만, <FT>"급락하는 출산율부터 낙후한 에너지 체계, 실적이 저조한 자본시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한국의 부진한 기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역시 성장동력을 갉아먹는 원인이라고 <FT>는 밝혔다.

<FT>"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의 하나"라며 "한국 신혼부부의 평균 빚은 124000달러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는 서구 기준에 비해 낮은 57.5%이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과감한 연금 개혁이 없다면 향후 50년간 이 부채가 3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고도 매체는 덧붙였다. "2070년까지 한국인의 46%65세 이상일 것으로 예상된다""한국은 이미 선진국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FT>는 이번 22대 총선 결과 역시 한국 경제 정책 수립에는 좋지 못한 여건이라고 설명했다.<FT>"한국의 정치 지도 체제는 좌파(더불어민주당)가 장악한 입법부와 인기 없는 보수(국민의힘) 행정부로 양분됐다""이달 초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하면서 2027년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행정부와 입법부 간) 교착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레임덕에 들어간 행정부와 국회 간 갈등으로 인해 국정 동력이 마비돼 3년간 경제 위기에 대한 답을 내놓을 어떤 주도적 정책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국내 일반적 전망을 인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FT>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이 많지만 개혁의 (그간) 기록은 좋지 못했다""대입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교육비 지출은 계속 늘어나고 출산율은 계속 하락"하는 중이며 "연금, 주택, 의료 부문 개혁은 정체된 반면, 대기업에 대한 국가 의존도를 억제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를 늘리고, 기업 가치를 높이고,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고, 서울을 선도적인 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만들려는 시도는 거의 모두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대희 기자 | 프레시안

 

‘K-조경의 대모, 정영선

가드닝의 나라영국의 정원 역사를 훑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최초의 여성 정원 디자이너 혹은 조경가로 기록돼 있는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이다. 그의 작품은 영국, 미국 등에 걸쳐 300개가 넘는다. 그러나 그를 전설로 만든 건 개수가 아니다.

지킬 이전의 정원은 대개 권력과 부, 남성성을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의뢰인도 설계자도 남성인 대부분의 정원은 건축물, 조각, 파빌리온 등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나무, , 잔디밭은 보조재에 불과했다. 이런 인습을 깨고, 식물을 정원의 중심에 앉힌 이가 지킬이다. 여성이면서 화가, 자수 전문가였던 그는 잎과 꽃의 질감·색감을 이용해 흙 위에 그림을 그렸다. 비로소 식물 고유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꽃의 정원이 탄생했다. ‘식재 디자인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다.

영국에 지킬이 있다면, 한국엔 정영선(83)이 있다. 더없이 찬란한 이 봄날, 서울 선유도공원, 광화문광장,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국립중앙박물관 뜰, 서울아산병원 정원, 제주도 오설록 티뮤지엄, 다산생태공원, 올림픽공원, 서울식물원, 양재천, 청계천 중 어느 한곳이라도 거닐었다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원이 부자의 사치로, 조경이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1970년대부터 숱한 정원과 공원 조성 작업에 참여해 한국 조경계의 대모’ ‘1세대 조경가로 불린다.

그러나 조경을 보는 관점은 지킬과 사뭇 다르다. “한국 정원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거나 비싼 나무, 진귀한 꽃을 심을 이유가 없다는 말에서 문득문득 드러난다. 그런 소신이 세계 무대에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정 작가는 지난해 9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주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았다. 그가 앞서 개척한 길을 이젠 황지해 같은 후배들이 따르고 있다. 황 작가는 세계 최고의 정원 박람회라는 첼시 플라워쇼에서 지난해 금상을 수상했다.

사실 정원도 조경도 정답은 없다. 다만 작가를 알고 보면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 때마침 정영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지난 17일 개봉했다. 또 그의 삶과 작업을 소개하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전시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기후플레이션

기후플레이션(Climateflation)은 기후(Climate)와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극한의 날씨 탓에 농작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물가가 치솟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다. 지난해 영국 비비시(BBC) 시사프로그램 뉴스나이트가 기후변화로 인한 고물가를 기획으로 다루면서 이 용어를 사용해 전세계적으로 쓰이게 됐다.

기후플레이션의 대표적 사례는 2022년 여름 유럽의 기록적 폭염으로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는 당시 폭염으로 유럽의 식품 물가가 0.43~0.93%포인트 상승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에 더해 “2035년이 되면 기온 상승에 따른 기후플레이션으로 식품 물가가 최대 3.2%포인트 오르고, 전체 물가는 최대 1.2%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후플레이션이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롯데웰푸드는 빼빼로·칸쵸 등의 가격을 평균 12% 인상하면서 초콜릿의 원재료인 코코아의 국제 가격이 급등한 탓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전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엘니뇨 등 기상이변과 병충해 확산으로 지난해 생산량이 급감했다. 실제로 지난 15일 영국 런던 아이시이(ICE) 선물거래소에서 코코아 선물 가격은 톤당 1559달러를 기록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그뿐만 아니다. ‘국민 반찬인 김의 생산량이 줄어든 것도 기후변화 탓이다. 이상기후로 인한 해수 온도 변화로 전국 김 생산 비중의 77%를 차지하는 전남에서는 지난해 생산량이 11% 감소했다. 이 때문에 최근 조미김·김가루 등 관련 제품 가격이 10~20% 넘게 올랐다.

금 사과논란을 빚은 사과 작황에 영향을 준 것도 기후변화다. 봄철 개화 시기 이상저온(냉해), 여름철 집중호우와 병충해 등 기후변화로 인해 지난해 사과 생산량이 30%나 줄어들면서 값이 폭등한 것이다. 오죽하면 기후변화에 따라 서늘한 지역으로 주산지가 이동해 2070년이 되면 강원 산간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는 터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가 좀 더워지는 것에 관한 걱정이 아니다. 이는 벌써 우리의 밥상 물가를 위협하고 있으며, 머지않아 식량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는 심각한 현재진행형 재난이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인간은 인수공통감염병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다

인간발 종간 전파가 동물발 전파의 약 2

코로나19·메르스·인플루엔자가 대표적 3

인간은 종간 감염병 전파의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해자라는 분석이 나왔다. Unsplash 제공

인간 사회에서 발생하는 전염병 가운데 동물에서 유래된 바이러스로 인한 것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전염병 10개 가운데 6개 이상이 동물에서 전염 가능한 인수공통감염병이며, 새로 출현하는 인간 감염병 4개 가운데 3개는 동물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부터 3년여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든 코로나19는 최악의 인수공통감염병 가운데 하나다.

인간 문명 발전의 저편에서 동물 서식지가 파괴되면서 자연과 인간의 접촉 여지가 더 확대된 것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여기까지 이르면 인간은 종간 감염병 전파의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가해자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진은 공개된 바이러스 게놈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결과, 인간과 동물 사이를 오가는 바이러스의 경우 전체의 64%가 인간을 거쳐 다른 동물에 감염된 사례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생태 및 진화’(Nature Ecology & Evolution)에 발표했다. 분석대로라면 인간은 가축이나 야생동물로부터 바이러스를 받는 것보다 거의 2배나 많은 바이러스를 이들에게 주는 셈이다.

연구진은 다른 동물을 통해 박쥐에서 인간으로 옮겨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염된 후, 인간을 통해 다시 다른 많은 동물에게 확산된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연구진은 바이러스 종간 이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우선 전 세계 바이러스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약 1200만개의 바이러스 염기서열 가운데 불완전하거나 수집 시기, 숙주 종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한 것을 제외하고 전체 게놈 파악이 가능한 약 6만개의 염기서열을 추려낸 뒤 이들의 바이러스 가계도를 만들었다. 이 가계도에 포함된 32개 바이러스 계열은 전체 척추동물 바이러스 종의 24%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이 가계도에서 3000개의 종간 이동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가운데 특히 인간과 관련한 599건의 바이러스 종간 이동 중 대부분은 동물에서 인간으로 넘어온 것이 아니라 인간에서 다른 동물로 건너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동물에게 넘어갔다가 다시 인간으로

연구진은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에 놀랐지만, 80억명에 이르는 사람 수와 이들이 전 세계에 분산돼 살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 분포해 사는 사람 사이에 퍼지는 바이러스가 동물로 넘어갈 기회가 특정지역에 서식하는 동물들 사이에 순환하는 바이러스가 사람한테 넘어갈 기회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 사회의 세계화와 도시화는 바이러스 확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을 조성한다.

분석 결과 사람을 통해 다른 동물에게 가장 널리 전파된 바이러스는 코로나19 바이러스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로 나타났다. 특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사람에게서 반려동물, 동물원 동물, 밍크 같은 농장 동물, 흰꼬리사슴 같은 야생동물로 광범위하게 전파된 사례가 속출했다.

연구진은 그러나 이들 3종의 바이러스가 아닌 경우라도 인간에게서 다른 동물로 전염되는 비율이 54%로 더 많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인간에게서 다른 종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은 멸종 위기 동물에게는 특히 큰 생존 위협이다. 예컨대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침팬지의 경우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인간발 메타뉴모바이러스와 레스피로바이러스에 감염돼 잇따라 희생되고 있다. 메타뉴모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사람에게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지만 침팬지에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발 바이러스의 동물 감염은 부메랑이 되어 또다시 인간 사회로 돌아온다. 동물이 인간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H5N1 조류 인플루엔자 사례에서 보듯 전염병 확산 예방을 위해 수많은 가축을 도살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식량 수급에도 영향을 미친다.

논문 제1저자인 세드릭 탄 박사과정생은 보도자료를 통해 인간이 옮기는 바이러스가 새로운 동물 종을 감염시키는 경우,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서 박멸된 이후에도 동물 집단 속에서 계속 번성하며 새로운 진화를 이뤄 인간을 다시 감염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59-024-02353-4

The evolutionary drivers and correlates of viral host jumps.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국내 첫 기후소송 공개변론한국, 온실가스 감축 책임 방기

청소년기후행동소송 등 총 4건 병합 진행

국민적 관심104석 대심판정 방청객 꽉 차

청구인 쪽 미국, 유럽연합보다 감축률 낮아

정부 쪽 제조업 비중 높아 즉각적 감축 힘들어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23,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공개변론이 열렸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부족해 국민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후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 무리한 탄소배출 감축 목표는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고, 기업경쟁력 약화와 고용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

23,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국내 최초의 기후소송공개변론이 시작됐다. 이날 변론은 2020331일 청소년 환경단체인 청소년기후행동이 낸 헌법소원과 이후 시민·영유아 등이 청구한 다른 3건의 기후소송이 병합돼 진행됐다.

이종석 헌재소장은 이날 공개변론을 시작하며 기후소송인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정부가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불충분해 청구인들의 환경권 등 기본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최근 독일, 네덜란드 등에서 다양한 결정이 선고됐고 최근엔 유럽인권재판소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려 국내 언론에 크게 보도되면서 국민적 관심도 높아졌다재판부도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히 심리하겠다고 밝혔다.

기후위기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청소년기후행동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 활동가와 공동 대리인단이 연 기자회견에서 한 어린이가 빨리 판결을 내려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석탄화력발전소를 그린 그림을 들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공개변론에 대한 이례적 관심”(헌재)을 반영이라도 하듯 이날 104석 규모의 헌재 대심판정은 거의 자리가 채워졌다. 헌재는 이날 대심판정 옆 소심판정(40석 규모)에서 실시간 중계방송을 시청하도록 방청객들에게 개방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과 그 시행령을 통해 국가온실가스감축(NDC) 목표를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목표로 하고 있다. 오후 2시부터 5시간가량 진행된 첫 공개변론에서 양쪽 대리인들은 정부의 감축 목표가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평균 기온 상승을 1.5이하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한다는 내용의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지키기에 미흡한지를 두고 열띤 공방을 이어갔다.

기후위기 헌법소원 첫 공개변론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소를 제기한 청소년기후행동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 활동가와 공동 대리인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소송의 취지 및 쟁점을 설명하며 빠른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청구인 쪽에서는 정부가 정한 탄소 배출량 감축 목표는 책임을 외면하고 후세대에게 감축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라며 위헌을 주장했다. 이병주 변호인은 이와 관련해 “2031년부터 2042년까지는 세부 감축 계획이 없고 연도별 대책도 없으며, 앞선 계획들이 실패했을 때 어떻게 할지 계획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반면 정부 쪽에서는 파리협약이 우리 헌법적 가치보다 상위에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어 나라가 처한 사정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는 게 맞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재학 변호인은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즉각적인 감축이 힘들다우리나라는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즉각적인 감축이 힘들다각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정점의 연도와 산업구조, 감축을 시작한 시기 등이 달라 실정에 맞게 감축 기준을 정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아울러 청구인 쪽에서는 한국은 1인당 배출량 7,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 13위로 책임이 크지만 (2010년을 기준으로 한) 감축률은 27% 수준으로 낮다미국, 유럽연합 등 우리와 비슷한 수준의 주요 국가들(40~50%)에 비해 한국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윤세종 변호인)이라고도 지적했다. 반면 정부 쪽에선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해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환경적 요인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이라며 “(현재 목표도) 사회경제적 대전환이 필요한 도전적 목표”(김재학 변호인)라고 반박했다.

탄소 예산(1.5이하 제한 목표 달성을 위한 탄소 배출량) 소진 시기가 임박했다는 주장 등을 놓고서도 양쪽이 충돌했다. 청구인 쪽 이병주 변호인은 남아 있는 전세계 탄소예산(5천억톤가량)을 각국의 인구 비례 기준으로 나누면 한국은 334천만톤인데, 한국은 2030년 이전에 1.7도 예산까지 다 소진된다현재 감축 목표가 미래 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부 쪽 정한결 변호인은 글로벌 탄소예산을 국가별로 배분하는 방식은 사실상 합의가 불가능하다. 인구 비례를 기준으로 감축 경로를 설정하는 경우 한국은 당장 산업구조 전반을 조정해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변론 과정에서 헌재 재판관들은 정부 쪽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에 필요한 세부적인 규정과 기준을 마련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질의하기도 했다. 정정미 재판관은 ‘2030년 이후 감축 목표와 경로가 없다는 청구인 쪽 주장을 언급하며 “2030년 이후 목표가 없으면 혼선이 발생하지 않겠냐고 했고, 문형배 재판관은 정부가 2030년은 순배출량을 적용하면서도 2018년엔 총배출량을 적용한 점 등을 지적하며 개념을 섞으니 국제사회나 환경단체가 정부의 조치가 투명하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또 김형두 재판관은 ‘2020년 감축목표를 지키지 않고도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청구인 쪽 주장을 들어 실제로 목표를 지키지 못했나라고 묻기도 했다. 김재학 변호인이 김 재판관의 질문에 “2020년 목표를 이후 파리협정에 따라 2030년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고 답변하자, 방청객들 사이에선 실소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날 기후과학자인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과 안영환 숙명여대 기후환경에너지학과 교수를 각각 청구인과 정부 쪽 참고인으로 불러 질문하기도 했다. 조천호 전 원장은 이 자리에서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 매일 공부해서 10~20점 올리는 건 대단히 쉽지만 90점이 된 뒤에 1~2점 올리는 건 어렵다처음에 많이 줄이고 뒤에 가서 천천히 줄이는 형태는 국제사회의 권고이면서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안영환 교수는 “1.5도 목표에서는 멀어지고 있고, 기회의 창은 닫히고 있다고 동의하면서도 다만 탄소중립기본법에 이행점검 조항(9)이 있고, 그에 따라 보고서를 작성해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심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유럽 전체 2.6, 해수면은 5.5↑…재앙이 된 기후

더위 사망’ 20년 전보다 30% 늘어

지난해 87(현지시각) 한낮 기온이 섭씨 40도를 웃돈 스페인의 세비야에서 두 남자가 웃통을 벗어 던지고 에스파냐 광장 분수대의 물에 머리를 담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세비야/AFP 연합뉴스

지난해 유럽 기온이 기록상 가장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화 이전보다 무려 2.6도 높은 수준으로, 더위로 인한 사망도 20년 전보다 30%나 늘어난 것으로 나왔다.22(현지시각) 유럽연합 산하 중기 예보센터인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3S)는 세계기상기구(WMO)와 공동으로 이런 내용의 ‘2023년 유럽 기후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유럽 기온은 평균보다 1, 산업화 이전 수준보다 2.6도 높아 기록상 가장 따뜻한 해가 됐다. 스칸디나비아와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남동부를 제외한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이 평균 이상의 기온을 기록했다. 1년 중 11개월 동안 평년 기온을 웃돌았고, 특히 9월은 기존 최고 기록인 2020년에 비해 1.1도 높아 기록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유럽 전역에서 극심한 더위 스트레스가 발생한 날도 증가 추세를 보였다. 지난 20년 동안 더위로 인한 사망률은 약 30% 증가했다. 지난해 더위로 인한 유럽 지역 사망자 수가 보고서에 명시되진 않았지만 2022년의 7만명보다 많을 것으로 과학자들은 내다봤다.

전 세계 주요 기상관측 기관에서 측정한 1900년 이후 유럽 기온 추이. C3S 보고서 갈무리

유럽 전역의 해양 평균 해수면 온도도 기록상 가장 높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해수면 온도가 평균보다 5.5도 이상 높은 해양 폭염이 발생했다. 6월 아일랜드 서쪽과 영국 주변 대서양에서, 7~8월에는 지중해 15개 지역에서 해양 폭염이 발생했다.

고온으로 유럽의 지붕알프스의 빙하와 눈도 줄었다.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눈이 내리는 날이 평균보다 적었고, 특히 겨울과 봄 중부 유럽과 알프스 지역에서 눈 내리는 날이 더 적었다. 2022년과 2023년에 걸쳐 알프스 빙하 면적은 약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를로 부온템포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 이사는 지난해 유럽은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과 극심한 해양 폭염, 광범위한 파괴적인 홍수를 경험했다라고 말했다. 유럽은 기후변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대륙으로, 기온 상승 속도가 전 세계 평균의 약 2배에 달한다. 유럽에서 기록상 가장 따뜻했던 3년은 모두 2020년 이후, 가장 따뜻했던 10년은 모두 2007년 이후였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두바이에 떨어진 물폭탄, 범인은 기후위기

2024416일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아랍에미리트 최대 도시 두바이에서 한 남성이 침수된 거리를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아라비아 사막의 끝자락에 자리한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에 때아닌 물난리가 났다. 기후위기 탓이다.<걸프뉴스> 등 현지매체 보도를 종합하면, 2024415일 밤 10시께부터 이튿날까지 24시간 동안 두바이에 내린 비는 약 159에 이른다. 두바이의 연평균 강우량은 약 79.3. 2년치 강수량을 넘는 비가 24시간 동안 쏟아졌다는 뜻이다. 1949년 기상 관측 개시 이래 최악의 폭우다.

폭우로 곳곳이 침수되면서 416일 두바이의 각급 공공기관에 원격근무령이 내려졌다. 학교도 임시 휴교에 들어갔다. 세계적 항공교통 중심지인 두바이국제공항은 예외적 날씨를 이유로 착륙 예정이던 항공기를 인근 공항으로 우회시켰다. 불어난 물이 활주로에서도 넘실댔다.

두바이에서 주로 비가 내리는 시기는 11~3월이다. 이때 내린 비가 연평균 강수량의 92%를 차지한다. 4월에 내리는 비는 연평균 3안팎에 그친다. 사막기후인 두바이에서, 그것도 4월에 물난리가 난 것은 쉽게 넘길 일이 아니란 뜻이다. UAE와 국경을 맞댄 오만에서도 414일 들이닥친 폭풍의 여파로 사흘 동안 약 239의 폭우가 쏟아졌다. 연평균 강우량(100)2배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에이피>(AP) 통신은 통학용 차량에 탑승했다가 불어난 물에 휩쓸린 학생 10명을 포함해 417일 오전까지 이번 폭우로 모두 19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2023년은 지구촌 전역이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였다. 유럽연합(EU)에 딸린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C3S)49일 낸 자료를 보면, 20243월 지구촌 평균 기온은 14.14를 기록했다. 1991~2020년 평균치보다 0.73높은 수치다. 20236월 시작된 사상 가장 더운 달기록도 10개월 연속 이어졌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재선충병 재확산에 허연 서리구해줘, 솔숲 몸서리

경북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오류고아라해변에 있는 한 소나무 줄기에 소나무재선충병 예방 나무주사를 놓았다는 표식이 붙어 있다. 주영재 기자

“100년 가까이 된 소나무를 죽일 순 없으니 내가 가꾸고 있어요. 주사약을 두 번째 놓는 중인데, 시기를 놓쳐 죽은 나무도 있어요. 개인이 방제해선 감당이 안 됩니다. 나이 팔십이 다 됐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에요. 주사를 맞지 않은 나무들은 2~3년 사이에 다 죽을 것 같아요.”

지난 49일 경북 경주시 오류리에서 만난 임종진씨(76)는 소나무재선충병으로 이 지역 소나무가 소멸위기에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길가에 앉아 바람에 미역 말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람은 바로 앞 동해에서 추위를 느낄 정도로 세게 불어왔다. 마을 인가 쪽에는 벚꽃이 만발했는데, 뒤편 산엔 가지가 떨어진 채 성냥개비처럼 서 있는 회색빛 소나무가 꽤 많이 보였다.

이곳 토박이인 임씨는 훈증 작업을 하고, 비닐로 덮어놓기도 했는데 감당이 안 되니까 눈에 보이는 도로가 쪽으로만 작업하고, 안쪽은 방치한 상태라면서 포항에선 남구 장기면, 경주에선 감포읍이 제일 심하고, 바닷가 쪽 소나무들은 전부 (예방) 나무주사를 놔서 그나마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자신의 집 주위도 심해 직접 약을 사 주사를 놓고 있다고 했다. 한번 놓으면 5년은 버틴다고 한다.

경주시 감포읍 오류리의 숲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들이 갈색으로 잎이 마른 채 죽어가고 있다. 녹색연합 제공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 / 주영재 기자

치사율 100% 소나무재선충병, 3차 확산?

같은 마을에서 만난 김정훈씨(가명·62)는 집 옆에 있는 텃밭을 가리키며 큰 가지들이 떨어져 농작물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텃밭 위로 비스듬히 기울어진 소나무 줄기는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잎은 생기가 없는 갈색이었고, 가지는 뚝뚝 끊겼다. 전형적인 소나무재선충병 증세다. 나무만 죽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피해를 볼 수 있다. 김씨의 농막 위로도 고사목이 위태롭게 기울어 있었다.

여름에 태풍이 불어 넘어지면 대번에 건물이 피해를 볼 것 같아. 저쪽 집도 태풍 부니까 막 (고사한 소나무들이) 넘어지더라고요. 위험해요. 특히 가지가 잘 떨어져요.” 이 마을 뒷산은 2014~2015년 소나무재선충병 2차 확산기 때도 방제를 위해 나무를 잔뜩 베어낸 곳이다. 그런데도 근래 소나무재선충병이 다시 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소나무 잎이 마르고, 자꾸 번지더니 멀리서 보면 산이 허옇게 보일 정도가 됐어요. 저렇게 말랐다가 나중에 바람이 많이 불면 나무가 부러져 버리더라고. (경주시) 산림과에 전화하니까 방제를 검토하겠다고 하는데 워낙 (피해지역이) 방대하니 이쪽까지는 아예 예산이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소나무가 좋긴 한데 재선충에 취약하다 보니까. 동해안 쪽으로 가다 보면 이렇게 마른 소나무가 많아요.”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이력을 알 수 있도록 QR스티커를 붙여놓았다. 주영재 기자

소나무재선충병을 일으키는 재선충은 식물 기생 선충의 일종이다.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충의 번데기에 기생한다. 매개충이 성충으로 자란 뒤 새로 난 소나무 가지를 먹을 때 나무로 침입한다. 20일이면 암수 한 쌍이 20만 마리로 불어날 만큼 빠르게 번식한다. 소나무가 죽어도 곰팡이를 먹으면서 버티고 온도나 수분, 산소 등 생존 조건이 적합하지 않으면 휴면에 들어가 생명을 유지한다.

재선충은 소나무에 치명적이다. 재선충이나 매개충의 유충을 죽이는 예방주사를 맞지 않은 소나무는 감염 시 100% 죽는다. 이 예방주사도 송진이 줄어드는 12~2월 사이에 놓아야 효과가 있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 과장은 재선충과 함께 소나무 4대 해충으로 꼽히는 솔나방, 솔잎혹파리, 솔껍질깍지벌레는 피해가 심해졌다 약해졌다 정도이지 나무가 갑자기 죽거나 하지는 않는다재선충병은 확인한 순간 이미 죽은 상태다. 외부 증상이 발현되면 내부에선 이미 스위치가 꺼져 있고, 송진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의 발원지는 북아메리카다. 그런데 정작 북아메리카의 소나무는 면역성이 있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 반면 한국의 잣나무와 섬잣나무, 적송(육송)과 해송(곰솔)은 속수무책이다. 같은 땅에서 자라지만 리기다소나무나 스토로브잣나무 등 북미가 자생지인 침엽수는 또 괜찮다.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로의 한 도로 사면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려 죽은 소나무들이 줄기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다. 주영재 기자

국내 소나무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35년간 소나무류는 1500만 그루가 죽었다. 2014년 이후 피해를 줄여나가고 있었는데 2022년 증가추세로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 2006~2007년과 2014~2015년에 이은 소나무재선충병 ‘3확산기라고 본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농학박사)는 아예 소멸기라고 단언하기도 한다. 정 산림기술사는 벌써 (유충 방제를 할 수 없는) 4월 중순이라 성충의 매개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올여름, 가을을 지나면서 (경북지역의 소나무는) 다 죽을 거라고 본다이 나무들이 일시에 소멸한 후 후계림을 어떻게 할지 고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국가 방제대를 설치했고, 중국은 10리의 나무를 다 베서 방제했는데 우린 죽은 나무만 베면서 따라만 다닌 형국이라며 중요한 건 확산 면적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혜림 과장은 지자체와 함께 얼마나 방제 효율을 높여 잘 막느냐가 내년 동안 확산세를 조절할 수 있는 관건이 된다면서 예산이 필요한 작업이고, 결국 사람이 움직여야 방제작업이 가능하다. 최대한 예산을 끌어서 하고 있는데, 방제 시기에 제대로 하려면 예산은 물론 인력, 지자체의 소명 의식 등 모든 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 정천리의 한 야산에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를 벌목한 후 줄기와 가지를 잘라 훈증 처리를 하고 있다. 주영재 기자

예산 제약 속 선택과 집중택한 지자체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매개충은 죽은 소나무에 알을 낳는다. 그래서 고사목의 줄기와 가지를 자른 뒤 약품을 붓고, 비닐로 덮어 훈증 처리를 한다. 소나무재선충이 번진 숲 여기저기에는 초록색 비닐로 덮은 훈증 더미가 무덤처럼 흩어져 있다. 줄기가 잘린 소나무 둥치는 빨간색 페인트로 감염목이라고 표시한다. 병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QR코드도 붙인다.

지난 49일 해돋이로 유명한 포항 호미곶으로 가는 해안도로 주변에는 죽은 나무들이 어지럽게 쓰러져 있었다. ‘낙석주의라는 팻말은 돌덩이보다는 소나무 추락을 경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현장에 함께 간 김원호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활동가는 고사목이 많은 지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사태를 모니터링할 계획이라며 감염 비율이 높은데 경사도 있고, 민가도 인접한 경우에는 산사태 위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재선충병 재확산에 허연 서리구해줘, 솔숲 몸서리

소나무재선충병 예방주사 가격은 2000~5000원이라고 한다. 모든 소나무에 놓기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문화재구역에서 꼭 보호해야 할 나무나 경관이 중요한 관광지, 도심지역 나무 위주로 예방주사를 놓는다. 지난 1월 산림청은 포항시 남구 해안권역(구룡포읍·동해면·장기면·호미곶면)소나무재선충병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고, 포항시는 올해 1월부터 4월 중순까지 70억원을 투입해 소나무재선충병 긴급방제사업을 하고 있다.

포항시에서 재선충병 방제를 담당하는 인원은 3명이다. 이들과 함께 방제 사업체 인력이 투입되는데 방제보다 확산 속도가 더 빠르다. 김태훈 포항시 소나무재선충병방제팀장은 전국적으로 지난해 1011일부터 331일까지였던 방제기한을 415일까지로 연장해 진행했다. 범위가 원체 넓어 차례대로 진행하고 있는데, 직접 방제와 함께 숲가꾸기 사업, 예방 나무주사, 소규모 모두베기 등을 했다. 해안지역인 호미곶 대동배리 일대는 군사지역이라 매년 드론 방제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제 예산은 매년 피해 규모와 연동돼 편성된다. 김원호 활동가는 산림청에서 아무리 예산을 잘 짜도 기재부에서 좀 박하게 평가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방제 예산이 유지될 때 5~10년 뒤에 그 영향이나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걸 유지할 힘이 없는 듯해 안타까운 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김관호 산림청 산림정책과장은 “2014년 소나무재선충병이 크게 확산할 때 집중방제가 이뤄졌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5년 이후에나 나타났다면서 재선충병이 안정세를 보인다고 방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요한 건 예산을 지속해서 투입하는 것이란 의미다.

한혜림 과장은 소나무재선충병은 피해목을 빨리 제거해 확산의 연결고리를 잘라내야만 통제할 수 있지 다른 방법이 없다. 힘들고 무식한 방법 같지만 이것밖엔 없다고 말했다. 저항성이 있는 개체를 조림하고 기생천적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는데 아직 효과가 크지 않다. 한 과장은 재선충은 말 그대로 걸리면 바로 죽어 나가기에 천적으로 관리하기에 적합한 병해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위기 몰린 소나무, 한반도에서 사라질까

소나무는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나무다. 산림과학원이 2022년 우리나라 대표 나무 12개 수종을 제시하고 선호하는 나무를 조사했을 때도 1위로 꼽혔다.

이런 소나무를 50년 뒤엔 남한, 1세기 후엔 한반도 전체에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환경은 점차 침엽수가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소나무는 겨울에도 수분 공급이 많이 필요해 눈이 적절하게 내려야 하는데 가을부터 가뭄이 심해지고, 최근 10년 사이에는 겨울철 눈의 양도 줄었다. 김원호 활동가는 이런 환경이 소나무에 취약성을 누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울진 쪽에선 지난 2월에 폭설 때문에 소나무가 뿌리째 뽑힌 일이 있었는데 연구하는 분들은 눈 때문에 가지가 부러질 순 있어도 뿌리가 뽑힌 상태로 뒤집힌 일은 이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기후 스트레스라고 생각이 드는데, 재선충이 기후 스트레스와 맞물려 더 크게 확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 곧 소나무재선충의 매개충이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우화할 시기가 온다. 겨울이 따뜻하면 우화 시기가 당겨진다. 한혜림 과장은 매개충은 변온동물이라 유충에서 번데기를 거쳐 성충으로 날개를 달고 우화하는 모든 과정이 굉장히 온도 의존적이다. 어느 정도까지 누적된 온도가 있어야 번데기가 되고, 어느 정도 온도가 누적돼야 성충이 되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상당한 관련이 있다. 예년보다 빨리 활동을 시작하고 더 빨리 소나무에 해를 입히게 된다. 매개충의 활동기간이 전반적으로 늘면서 피해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생각되는데 이런 부분이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고온 건조한 기간이 늘면 산불 위험이 커지고, 소나무재선충병은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고사목을 늘린다. 반대로 산불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에 일조하기도 한다. 산불로 죽은 나무에 매개충이 알을 낳기 때문이다. 산림과학원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소나무재선충병 매개충의 서식 밀도는 산불피해지 내에서 더 증가했다. 일례로 경북 상주 사벌면 산불 피해지의 경우 산불이 난 2017년에 비해 2019년 솔수염하늘소는 평균 31.3, 북방수염하늘소는 평균 4.7배로 증가했다. 기후변화와 산불, 소나무재선충병이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돼 우리 숲을 위협하고 있다.

김원호 활동가는 꿀벌이 실종됐다는 기사가 벌써 10년째 나오고 있는데 그 변화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직은 체감이 잘 안 되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그 영향이 적진 않겠죠. 우리 숲에서 소나무가 차지하는 비율(22%)이 높으니까요. 소나무숲이 죽는다면 설치류 같은 야생동물이나 곤충이 은신처와 먹이터를 잃게 되고, 소나무에 둥지를 짖는 새들도 위태로워지겠죠. 물론 반대로 교목들이 사라지면 광합성이 쉬워져 관목이나 덤불이 많아질 수 있고, 이런 환경을 좋아하는 야생동물·곤충이 늘어날 수도 있죠. 재선충이 생태계에 가져올 충격이 어떤 양상일지 아직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에요라고 말했다.

소나무숲이 줄어드는 건 피할 수 없는 길로 보인다. 현재 산림청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지에 소나무를 심는 대신 변화된 기후에 맞게, 목재나 특용 목적 등 산림 경영상의 필요에 따라 대체 조림 수종을 시행하고 있다. 편백, 스트로브잣나무, 백합나무, 벚나무류,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손요환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교수는 기후 조건으로 볼 때 소나무가 자연 천이 현상에 따라 줄어들었고, 앞으로도 줄어들 것이라는 게 과학계의 공통적 예측이다. 소나무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억지로 살려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다만 자연적으로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필요성이 있는 면적은 확보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소나무숲이 유지되지 않을 수 있고, 산불에 취약한 면도 있으니 (산불 피해지역이나 재선충병 후계림으로) 소나무와 다른 나무를 적절히 섞어서 취약성을 낮추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플라스틱 오염 없애는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날로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적 약속이 만들어지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법적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탄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코로나19 이후 플라스틱 사용량이 크게 늘면서 쓰레기 처리 문제가 심각해졌다. 20205월 경기도 수원자원순환센터에 폐플라스틱이 쌓여 있다.시사IN 조남진

우리는 할 만큼 했다. 날마다 쌓이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보며 죄책감에 시달렸고, 배달 음식 용기는 박박 설거지를 해서 내놓고는 했다. 웬만한 전자제품 설명서보다도 난해한 분리수거 매뉴얼을 붙들고, 하나라도 더 살려보겠다고 골머리를 앓았다. 텀블러와 장바구니는 필수, 가급적 새 옷도 사지 않으려 했다. 평범한 소비생활 속에서도 지구와 환경을 지켜보겠다는 선한 몸부림이었다.

현실은 우리의 선의를 받쳐주지 못했다.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20%대에 머물렀다(세계적으로는 9%에 불과하다). 우리가 분류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재활용이 사실상 불가능하게끔 만든 복합재질 포장, 이중삼중의 쓰레기를 양산하는 과포장,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겠다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바꿔버린 정부 정책이 우리를 자포자기하게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배달 음식과 택배의 증가로 플라스틱 쓰레기는 더욱 늘어났다. 지난해 3월 그린피스와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장용철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플라스틱 대한민국 2.0 보고서를 보면 2021년 발생한 플라스틱 폐기물이 총 1193t이었는데, 이는 코로나19 이전인 2017년에 견줘 1.5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특히 배달 음식 포장재를 포함하는 기타 폐합성수지류배출량이 2019년 하루 715.5t에서 2021년 하루 1292.2t으로 80.6%나 증가했다.

그 결과 우리는 1인당 매년 생수 페트병 109(1.6), 일회용 플라스틱 컵 102(1.4), 일회용 비닐봉투 533(10.7), 일회용 플라스틱 배달 용기 568(5.3)를 써버린 것으로 나타났다(그림 1참조, 2020년 기준). 대표적인 네 가지 일회용품만으로도 1인당 1년에 플라스틱 19을 배출한 셈이다.

여기에 다른 플라스틱 폐기물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더욱 뛴다. 2022년 한국환경공단은 서울시민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80이 넘는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더욱이 이는 석유가 원료인 합성섬유(의류 등)나 합성고무(자동차 타이어, 신발 등)는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이를 포함할 경우 플라스틱 폐기물 배출량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개인을 넘어 국가와 기업, 그리고 전 세계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한 소식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플라스틱 국제협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협약을 만들기 위한 정부 간 협상위원회가 가동 중이다. 1~3차 위원회는 이미 마쳤고 423일 캐나다에서 제4차 위원회가 열린다. 그리고 1125일에는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5차 위원회가 예정돼 있다. 5차 부산 위원회를 통해 플라스틱에 관한 첫 국제협약을 만들자는 게 참가국들의 목표다.

석탄발전소보다 플라스틱이 더 악영향

올해 부산에서는 중요한 국제회의가 두 차례 열린다. 하나는 앞서 말한 플라스틱 국제협약 협상이다. 또 하나는 오는 8월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다. 부산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는 처음으로 인류세가 공표될지가 관심사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 공표는 인간의 활동으로 초래한 전 지구적 위기를 인정하기 위해 새로운 지질시대를 명명해야 한다는 움직임이다. 최근 내부 분과위원회 투표 결과 인류세 공표는 어려워질 전망이지만 기후와 환경에 대한 위기감이 각계를 막론하고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인류세의 또 다른 이름은 플라스틱 시대. 지난해 브라질에서는 플라스틱이 녹아서 형성된 플라스틱 암석이 발견돼 충격을 준 바 있다.

전 지구적 위기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세 가지 범주를 말한다. 첫째 기후변화, 둘째 생물다양성의 감소, 셋째 환경오염이다. 기후변화에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생물다양성 문제에는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처럼 위상이 뚜렷한 국제기구가 이미 존재한다. 그런데 해양·수질·토양 오염 등을 다루는 환경오염 분야에는 아직 그런 기구가 없었다. 이번 플라스틱 국제협약 논의와 함께 유엔환경총회에서 통과된 안건이 폐기물 관리와 오염 방지에 관한 과학정책 협의체를 만들자는 내용이다. 플라스틱 오염 논의를 계기로 환경오염 분야에서도 공신력 있는 국제기구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플라스틱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의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시작은 해양오염이었다. 어업 도구, 생활용품 등에 의한 해양오염 문제가 공론화하면서 2014년 제1차 유엔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해양쓰레기에 대한 첫 결의안이 통과됐다. 이후 2021년 르완다와 페루가 공동으로 법적 구속력 있는플라스틱 오염 국제협약 결의 초안을 유엔환경총회에 제출했다. 선진국이 아닌 나라에서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강제적이며 국제적인 약속을 제안한 것이다. 20223월 유엔환경총회에서 2024년까지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만들자는 결의안이 승인되면서 마침내 플라스틱 오염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는 왜 플라스틱 오염을 막아야 할까. 바다거북의 배 속은 물론 신생아의 배내똥에서도 플라스틱이 발견돼서? 최근 혈관 내 미세플라스틱이 뇌졸중과 심장마비 위험을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서? 물론 심각한 문제이지만 이와 더불어 더 큰 이유가 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플라스틱 사용은 어마어마한 탄소 배출을 야기한다. 추출-생산-운반-소각-투기까지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온실가스는 물론 메탄가스와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앞으로는 플라스틱이 석탄화력발전소보다 기후변화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환경단체 태평양 환경(Pacific Environment)’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C 이하로 유지하려면 2050년까지 플라스틱 생산량을 2019년 대비 46~70% 감축해야 한다. 이는 플라스틱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에만 초점을 맞춰 계산한 수치다. 생물다양성과 인간 건강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2040년까지 최소 75% 이상을 감축해야 한다. 해당 연구는 지금과 같은 추세로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플라스틱 생산량이 10~15년 안에 두 배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의 경우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닥쳐오고 있다.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쓰레기 대란을 막으려면 2026년부터는 재활용되지 못한 플라스틱을 소각하는 것 말고는 뚜렷한 해법이 없다. 새로운 소각장을 짓는 것도 큰일이지만, 설령 지역 주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각장이 생겼다 해도 문제다. 플라스틱을 태우는 것은 종이를 태울 때와는 다르다. 철저한 여과를 거친다 해도 소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유독가스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소각장 지역 주민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은 무엇일까. 협상위원회가 계속 진행되고 있으므로 아직 단정할 수는 없지만 큰 틀은 이렇다. 우선 생산량 자체의 감축이다. 플라스틱은 너무 많이 생산되고 그에 따라 남용되는 것이 큰 문제다. 이에 앞서 말했듯 ‘2040년까지 75% 이상 감축같은 구체적 목표가 제시될 수 있다.

특히 일회용 플라스틱은 불가피한 경우(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용 등)를 제외하고는 퇴출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또한 일회용품을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회용품을 쓰도록 강제하는 재사용가이드라인도 제시될 것이다. 유럽연합이 시행하고 있는 플라스틱 포장세(plastic packaging tax·기업의 제품 포장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도 아이디어 중 하나다. 이러한 책무는 소비자보다는 정부, 그리고 오염을 일으키는 기업에 돌아가야 한다고 국제 환경단체들과 유엔 인권위원회의는 주장한다.

잘 와닿지 않는다면 한국의 탄소중립기본계획을 떠올리면 된다. 탄소중립기본계획은 기후변화 대응에 동참하자는 2015년 파리협정을 한국이 비준하면서 만든 계획이다. 에너지, 수송, 건설 등 각 분야에 걸쳐 어떻게 탄소를 감축할 것인지 시기별로 구체적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풍력과 태양광 발전을 늘리고, 전기차를 확대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인 건축물을 짓는 일들이 모두 이런 계획에 따른 결과다.

2022년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플라스틱 오염 결의안이 채택되자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EPA

한국과 전 세계가 플라스틱 국제협약을 비준할 경우 이처럼 거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다만 파리협정과 차이가 있다면 이런 전환을 개별 국가의 자발적 계획에 맡기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국제협약이 세계 공통의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의무화하는 톱다운방식이다. 그래서 앞으로 열릴 4차 캐나다, 5차 부산 회의의 목표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의 완성이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매우 야심 찬 기획이다. 2022년 유엔환경총회 의결 이후 2~3년 안에 실제 협약을 도출하는 것이 목표다. 전례에 비춰 기후 및 환경 관련 국제협약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된 적은 없다.

총선 공약으로 등장한 플라스틱 문제

그만큼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또 높다. 가장 큰 산은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산유국이다. 이들 산유국은 최대한 낮은 수준의 협약을 도출하기 위해 플라스틱 오염 관련 국제회의 때마다 대규모 로비를 벌인다. 플라스틱 감축보다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중국은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의 32%를 차지하고 있지만, 2018년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금지한 것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분해되지 않는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하는 등 규제 정책을 내놓는 등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적극적인 국가는 유럽연합, 태평양 도서 국가, 아프리카 국가 등이다. 이들 90여 개 국가는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이하 우호국 연합)’을 결성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다. 유럽연합 같은 환경 선진국이 여기에 포함된 건 놀랍지 않다. 그런데 아프리카 국가, 태평양 도서 국가들이 여기 소속돼 있다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들 국가는 플라스틱 해양오염의 피해국이거나 선진국의 쓰레기 수출로 몸살을 앓는 국가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은 이른바 저개발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환경협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중간 입장에 선 나라는 미국과 일본 등이다. 이들 국가는 국제적으로 구속력을 지닌 협약보다는 개별 국가의 행동계획에 더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협약이 체결되기를 바란다. 한국은 우호국 연합에 가입된 국가인데 행보는 좀 다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개별 국가가 각자 이행계획을 수립하자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욱이 한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일회용 플라스틱 규제를 철회하는 등 국제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펼쳐 환경단체로부터 공분을 샀다.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국제협약 5차 회의를 한국에서 개최하는 만큼 생산 감축 목표(2040년까지 75% 이상 감축) 등이 협약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라고 밝혔다.

플라스틱은 이번 총선에서도 의제로 등장했다. 주요 정당이 일제히 ()플라스틱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2027년까지 플라스틱 사용 10% 감축 등을, 더불어민주당은 컨트롤타워 설치 및 재생 플라스틱 사용 의무화 등을 들고나왔다. 녹색정의당은 한발 더 나아갔다. 모든 공공기관 및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용품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EPR은 제품 생산자가 폐기물의 재활용까지 책임지는 제도인데, 국내에서는 유명무실했다. 생산업체가 민간 재활용업체에 돈을 건네고 실적을 구매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4, 5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를 앞두고 49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전망과 과제라는 포럼이 열렸다. 그린피스, 동아시아바다공동체 오션, 서울환경연합 등으로 이뤄진 플뿌리 연대(플라스틱 문제를 뿌리뽑는 연대)’가 주관한 이날 포럼에서는 플라스틱 규제의 필요성을 두고는 이견이 없었으나 성공적인 국제협약에 대해서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산유국 및 글로벌 석유업체의 석유화학 투자 증가, 녹색 정책에 대한 피로감 증가, 올해 유럽연합과 미국이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홍 소장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협약이더라도 일단 만들게 되면 각국은 유엔에 관련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것만으로도 한국의 플라스틱 정책을 압박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린피스는 45일 주목할 만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그림 2참조). 한국을 포함해 19개국 시민 19000여 명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국제협약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내용이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시민 81.8%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려면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했다. 이는 우호국 연합 의장국 중 하나인 노르웨이(77.2%)보다 높은 수치다.

이번 조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 시민 역시 플라스틱 감축과 규제에 평균 이상의 응답을 보였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 관한 한 자국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시민의식이 형성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플라스틱의 역사는 당구장에서 시작됐다. 1860년대 당구가 인기를 끌면서 코끼리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상아로 당구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때 미국의 한 발명가가 상아를 대체할 물질로 셀룰로이드를 만든 게 플라스틱의 시초였다. 무엇으로든 변형할 수 있고, 녹슬지 않고, 썩지 않고, 게다가 값도 싼 이 물질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그로부터 100여 년, 플라스틱은 인류의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플라스틱의 모든 장점이 곧 치명적인 단점이 됐다. 어떤 제품이든 값싸게 대량생산할 수 있는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가 감당키 어려운 쓰레기를 배출하는 오염원이 됐다. 플라스틱 국제협약의 전망과 과제를 논의하는 포럼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욕조가 넘치면 수도꼭지를 잠가야 한다.” 수도꼭지를 잠그기 위한 위대한 여정이 시작됐다.

시사인 이오성 기자

 

아스팔트 걷고 잔디 깐 순천시한쪽에선 인도에 아스팔트 포장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대지구 향매로 일대 대로변 인도가 검은 아스팔트 포장으로 덮혀있다. 최창민 기자

도로 아스팔트를 걷어 잔디광장을 조성해 화제가 된 전남 순천시가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한 신도심 인도에 보도블럭을 걷고 아스팔트 포장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지난 8일부터 오는 30일까지 해룡면 신대지구 향매로와 신대로 등 주요 대로변 인도 보도블럭에 대해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순천시가 기존 보도블럭을 모두 걷어내고 도로에 쓰이는 까만 아스팔트 포장으로 인도를 덮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스팔트는 보도블럭에 비해 설치 비용이 저렴하고 시공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또 표면이 매끄러워 노약자나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편리성을 제공한다.

하지만 검은 표면으로 인해 열을 많이 흡수해 여름철 폭염시 뜨겁게 달궈지면서 내뿜는 복사열이 보행자에게 불쾌감을 주는 데다 열섬과 열대야 현상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겨울철에는 블랙 아이스 현상으로 미끄러워 보행자 넘어짐 사고를 유발할 수 있고 도로와 비슷한 환경 조성으로 평소에도 문제가 되는 배달용 오토바이의 위험천만한 인도 교행이 잦아지는 등 주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더욱이 순천시는 순천만 보전과 정원박람회 등을 통해 친환경 정원도시 이미지를 구축해왔는데 전혀 친환경적이지 않은 석유 기반의 아스팔트로 인도를 덮어 도시 정체성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도시들은 도로 포장시 아스팔트의 색깔을 흰색이나 회색을 사용하고, 아예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재활용 폐플라스틱을 활용하거나 콘크리트 포장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남 순천시 오천동 잔디광장 그린아일랜드는 도로 위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조성한 곳으로 애초 도로 위에 설치됐던 신호등과 전봇대가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순천시 제공

순천시의 경우도 지난해 202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준비하면서 멀쩡한 아스팔트 도로를 걷어내고 잔디광장을 조성해 친환경 박람회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해룡면 신대지구 주민들은 자주 이용하는 인도의 갑작스러운 아스팔트 포장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30대 주부 A씨는 "평상시에도 오토바이가 인도로 통행해 사고가 날뻔 한적이 종종 있었는데 앞으로는 아스팔트로 포장된 인도로 진입하는 오토바이가 더 많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여수산단 40대 직장인 B씨는 "여름철 아스팔트 주변은 복사열로 인해 60도 가까이 올라간다"면서 "젊고 유동인구가 많은 신대지구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기 때문에 살짝만 넘어져도 화상이나 열상이 발상할 것"이라며 "여름철에 대비해 그늘막을 설치해놓고는 바닥에서 발생하는 지열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순천시 관계자는 "보도선진화 지침에 따라 지난해부터 도심 주요 지점에 아스콘(아스팔트) 포장을 하고 있다"면서 "보도블럭은 턱이 지게 되어 있지만 아스콘 포장은 유모차나 장애인 등 교통 약자의 보행성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열섬 현상과 관련해서는 "관련한 민원이 접수되어 열 체크, 열 차단 페인트 시공 등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보도블럭과 아스콘은 단가 차이가 크지 않아 경제적인 이유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전남CBS 최창민 기자

 

부산 물 공급 강변여과수 개발 협약에 의령 주민 '발끈'

의령 낙서면 낙동강취수반대대책위 반대 기자회견... , 26일까지 검토해 입장 발표

경남 의령 낙서면 낙동강취수반대대책위원회, 창녕환경운동연합, 낙동강네트워크는 22일 의령군청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창녕환경운동연합

"민의를 짓밟고 의령 강변여과수 개발 강행하는 의령군수 사퇴하라. 의령군민의 민의를 짓밟고 강변여과수 개발 강행하는 환경부장관은 사퇴하고 부산시장은 각성하라."경남 의령 낙서면 낙동강취수반대대책위원회·창녕환경운동연합·낙동강네트워크가 22일 의령군청 마당에서 이같이 외쳤다.

주민들이 의령군청 마당을 찾아와 외친 건 의령군이 부산광역시와 지난 12일 맺은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를 위한 상생발전협약' 때문이다.이는 환경부가 추진하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현재 부산과 창원김해양산은 낙동강 물을 원수로 사용하고 있다. 이명박정부 때 4대강사업을 했지만 낙동강 수질은 더 나빠졌다.

이에 환경부는 '취수원 다변화'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식수원 조성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황강(합천) 쪽 물을 가져가고, 낙동강변에 강변여과수 장치를 둬 물을 가져간다는 것.

그동안 환경부와 부산시는 황강 복류수 45만 톤, 창녕 길곡 강변여과수 45만 톤을 개발해 부산시에 공급한다는 계획을 추진했으나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이에 황강 취수량을 19만 톤으로 축소하면서 부족분을 낙동강변 의령 낙서지정면 쪽에서 강변여과수 24만 톤을 신규로 개발하고 창녕은 47만 톤으로 늘리는 변경계획을 추진한다는 내용이다.이런 가운데 의령군은 부산시와 협약을 맺었다.

주민들은 "군민의 민의를 대변해야 할 의령군수가 민의의 대변자인 군의회에 보고조차 하지 않고 강변여과수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협약을 맺은 것은 민의를 짓밟아버린 것"이라며 "이런 군수를 의령군민을 대표하는 군수자리에 그대로 놔둘 수는 없다"라고 했다.

이들은 "강변여과수 개발로 인한 배후 농지 지하수 고갈은 우려가 아니라 현실이기에 결사반대할 것"이라며 "우리나라 최초의 강변여과수를 개발한 창원에서 주민들이 사용하는 농업용 지하수 관정이 고갈되는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강변여과수 개발예정지인 창녕 길곡은 강변여과수 개발로 배후지역 지하수영향 연구결과 하루 3만 톤 취수 때 지하수위가 1.5m 내려가고, 10개를 동시에 가동할 경우 5m가 내려가는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라며 "강변여과수 개발로 인한 주민들의 피해가 곳곳에서 발생하거나 예측되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이어 "그런데 의령군수는 주민들과의 소통 한번 제대로 가지지 않고 부산시장과 의령 강변여과수를 주겠다는 협약을 맺은 것은 의령군수이기를 포기한 것과 같다"라고 비판했다.

경남 의령 낙서면 낙동강취수반대대책위원회, 창녕환경운동연합, 낙동강네트워크는 22일 의령군청 마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창녕환경운동연합

의령군 "26일까지 검토해 입장 내겠다"

낙서면 주민들이 기자회견을 연 이날 의령군 관계자는 "오는 26일까지 검토를 해서 입장을 낼 것"이라고 밝혔다.의령군은 지난 18일 낸 보도자료를 통해 "환경부가 추진하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과 관련해 군이 주민 모르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의령군은 "'주민 동의' 없이는 이 사업이 애초부터 추진 자체가 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주민 설명과 동의는 계속 가져가는 과제였지, 군민이 모르게 사업을 추진한다는 주장은 명백한 낭설이다. 주민 동의는 협약을 위한 선결 조건이며 주민 동의가 최우선이다"라고 강조했다.

"협약 자체로 이 사업이 곧장 시행될 것처럼 분위기를 몰고 가서는 안 된다"라며 "주민 동의를 전제 조건으로 하는 낙동강 취수원 다변화 사업의 협약 주체는 환경부로, 의령군과 부산시는 이 사업으로 인한 주민 피해가 없도록 함은 물론 주민에게 이익이 되는 방안을 공동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이 이번 협약의 핵심"이라고 했다.

오태완 군수는 "이 사업은 망원경으로 멀리 보면 의령군 재정을 든든하게 해 지역 발전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농민들의 피해가 없는지 현미경으로 촘촘히 살펴볼 필요도 있다""주민 동의 선행과 농가 피해 예방책을 먼저 마련한 이후 환경부의 취수원 다변화 사업이 진행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윤성효(cjnews)오마이뉴스

 

수출 기업 55% “RE100 몰라”···대응 못해 거래 중단도 고려

 

RE100 인지도 및 RE100 달성해야 하는 시점. 무협 제공.

국내 수출기업이 BMW, 애플, 구글 등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을 적극적으로 요구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부 중소기업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거래를 중단하거나 재생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으로 사업장 이전을 고려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수출 실적 100만달러 이상 제조기업 61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수출기업 2곳 중 1(54.8%)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모른다고 답했다. RE100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한 기업은 대기업(62.5%), 중견기업(49.6%), 중소기업(39.2%) 순으로, 기업 규모가 클수록 높았다.

RE100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저조한 것과 달리, 이행 요구는 점차 현실화하고 있다. 응답 기업의 16.7%(103개사)는 국내외 거래업체로 RE100 이행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41.7%는 당장 올해나 내년부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도록 압박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RE100이 당면 과제로 주목받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응에 어려움을 느꼈다. 거래처로부터 RE100 이행 요구를 받았을 때 중소기업의 68.3%RE100을 이행하겠다고 답했지만, 다른 거래처를 물색(13.4%)하거나 해외 등 재생에너지 비용이 저렴한 지역으로 사업장 이전을 고려하겠다(9.5%)고 답한 경우도 있었다. 심지어 요구 기업과의 거래를 중단하겠다(3.6%)고 답한 기업도 있었다.

반면 대기업은 80%RE100을 이행하겠다고 답했다. 재생에너지 사용을 요구하는 기업과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답한 대기업은 없었다. 무협은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를 받으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응답한 기업은 수출액 500만달러 미만의 중소기업인 만큼 이들 업체에 대한 맞춤형 지원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출기업의 14.6%RE100을 이행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행 수단으로는 자가발전(49.4%), 녹색 프리미엄(23.6%), 재생에너지 인증서 구매(18.0%) 순이었다.

수출 제조기업들은 RE100을 이행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비용 부담을 꼽았다. 이에 따라 RE100 대응 지원을 위해 필요한 정책과제로 재생에너지 구매 비용 지원을 택한 기업이 29.2%로 가장 많았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16.4%)재생에너지 전력인프라 확대’(15.7%)가 그 뒤를 이었다.

장현숙 무역협회 그린전환팀장은 “RE100에 참여한 글로벌 기업들이 공급망 내 협력사들에 재생에너지 사용과 정보 제출을 요구함에 따라 재생에너지 조달 및 탄소 배출량 관리가 수출경쟁력과 직결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리 부담 완화, 대출 및 보증 지원, 대출 상환·이자 납부 유예, 투자금에 대한 세액공제 상향 등의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경향 박상영 기자

 

기후위기는 인권의 위기다

지난 49, 유럽인권재판소는 스위스의 64세 이상 여성 2400여명으로 구성된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KlimaSeniorinnen Schweiz)와 스위스 정부의 기후소송에서 단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는 기후변화가 여성 노인의 건강권을 위협하고 있으며, 스위스 정부의 기후위기에 대한 미흡한 노력이 인권침해로 이어졌다고 주장해왔다. 특히, 고령 여성이 폭염으로 인해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건강이 악화되었고, 외출 시에도 질병 및 사망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재판소는 스위스 정부가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지 못했다고 밝히며, 이는 유럽인권협약 제8(사생활과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의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인권협약에 포함된 모든 국가는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현재 유럽인권재판소와 각국 법원에 계류 중인 다른 기후소송도 이 판결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 정부는 새로운 석유 및 가스 면허 발급과 관련한 문제로 환경단체 그린피스에 의해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되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온도 의존성 다발성 경화증을 앓고 있는 한 남성이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미흡하다고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한 바 있다. 영국에서도 장애인 권리 운동가가 정부가 기후변화가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그는 자신을 비롯한 다수의 장애인이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2022년 폭염이 찾아왔을 때 의도치 않은 동면을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미래세대도 기후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209월 포르투갈 청소년 및 어린이 6명은 미래세대가 산불 재난 등 더욱 강한 기후 피해를 볼 것이라며 생명권 침해를 근거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다. 포르투갈 법원을 먼저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유럽인권재판소에서는 사건으로 취급되지 않았지만, 젊은 세대의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였다. 이번 소송의 판결이 발표된 직후, 재판소 밖에서 기후보호를 위한 노인단체 일원들과 포르투갈 소송에 참여했던 청소년, 스위스 어린이들, 미래세대 기후운동가의 대표 격인 그레타 툰베리가 함께 승리를 축하하는 장면은 기후위기에 대한 노력을 촉구하는 세대 간 연대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후진정 및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6일 노년층으로 구성된 ‘60+기후행동은 정부가 기후위기 대책 마련에 나서지 않아 노년층의 생명권이 침해당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이 밖에도 미래세대인 청소년, 어린이와 학부모들이 주축이 되어 제기된 기후소송들도 진행 중이다. 이번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은 기후위기가 인권침해를 수반한다고 주장하는 소송의 선례를 제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이어질 기후행동과 기후소송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경향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북항 주거난립 배경 밝힌다칼 겨눈 에 긴장

1단계 주거가능 총2645, 2단계도 오피스텔 곧 착공

- 경관사유화 비판에도 증가

- “특혜 의혹 철저히 조사를

검찰이 북항재개발 지역의 생활형 숙박시설(레지던스) 인허가 특혜 의혹 등의 수사에 착수하면서 주거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 시설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북항재개발 1단계 구역에 긴장감이 감돈다. 부산 해안가를 둘러싼 레지던스 등은 바다 경관을 사유화해 공공성을 해친다는 비판에도 불구, 계속해서 생기고 있다.

생활형 숙박시설 등 주거 가능 시설의 비중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북항재개발 1단계 사업부지에 있는 롯데캐슬드메르(왼쪽)와 협성마리나G7. 이원준 기자

24일 부산시와 동구에 따르면 북항 재개발 1단계 구역에 인·허가 된 레지던스·오피스텔 등 주거용도로 쓸 수 있는 시설은 총 2645세대()이다. 시가 허가한 레지던스는 두 곳이다. 2021년 협성르네상스가 준공한 협성마리나G7은 지하 4·지상 61층 규모로 2개 동에 레지던스 1028호가 들어섰다. 연면적은 2262에 이르며, 구역은 상업업무지구인 D-1이다. D-3 구역에는 코람코자산신탁(변경 전 부산오션파크)가 시행하고 롯데건설이 시공 중인 롯데캐슬드메르가 있다. 지하5·지상59층 규모로 2개 동이며, 레지던스 1221호로 구성된다. 연면적은 189618이며 공정률은 60%. D-2 구역에는 동원개발이 레지던스를 추진하다가 건축심의 신청을 취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이 구역에 레지던스까지 생겼다면 상업업무지구는 주거 가능 시설만 4000호가 넘어 사실상 주거지역으로 전락할 우려가 컸다.

공공시설인 복합환승센터가 생기는 C-1구역에도 오피스텔이 건립된다. 애초 사업자인 피큐건설은 1028호 규모의 레지던스를 추진했으나 지난 2월 건축 변경을 해 오피스텔 396호로 규모를 줄였다. 이곳은 동구에 허가권이 있다. 게다가 북항2단계지역에서도 북항미디어컴플렉스PFV가 오피스텔 522호를 포함한 건축물이 구의 허가를 받고, 착공을 앞뒀다.

앞서 부산지검 반부패수사부(김익수 부장검사)는 지난주 부산시 건축주택과와 동구 건축과 등을 압수수색했다. 모두 건축물 인허가와 관련된 부서로, 검찰은 북항재개발 1단계 사업과 관련한 참고 자료를 확보했다. 법조계는 사업성과 직결되는 주거숙박시설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를 검찰이 들여다 볼 것이라고 전망한다. 최초 건축심의 신청안이 허가 때 주거 가능 시설의 비중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이에 따른 특혜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검찰이 수사를 의뢰한 감사원은 감사 과정에서 부산항만공사와 부산시, 동구 등에 북항재개발 1단계 구역에 주거숙박 시설 비중이 높아진 이유를 여러 차례 질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이 202211월부터 이번 감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감사 종료 전 검찰에 수사의뢰를 했다. 상업업무지구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건립할 수 없지만 사실상의 주거용으로 전락한 레지던스와 오피스텔은 들어설 수 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도한영 사무처장은 애초 계획한 공공성 측면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개발로, 특혜가 있었다면 반드시 조사를 해서 공공재를 팔아 민간 사업자의 배만 불리는 개발 방식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우 기자 holycow@kookje.co.kr

남문 광장 1만 여부전역 연계 개발시민친화 공원 박차

역사·정체성 맞는 중·장기 플랜 설정

- 외부관광객 유치 명소로 명품화계획

- 남문 부지 활용 용역 올해 9월까지 진행

- 전문가·시민 의견 수렴 후 재단장 방침

 

- 시설공단, 녹지투어 등 나눔 봉사 활동

- 시민 제안에 하야리아 광장 조기 개방

올해 개장 10주년을 맞은 부산의 대표 도심 공원인 부산시민공원이 새로운 미래로 도약을 준비한다. 일제강점기 서면 경마장, 광복 이후 주한미군사령부(캠프 하야리아)를 거쳐 100년이란 세월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공원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 기대를 모은다. 공원을 관리·운영하는 부산시설공단도 이에 발맞춰 시민과 관광객에게 더 친근한 공원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쓴다.

다음 달 1일로 개장 10년을 맞는 부산시민공원은 부산을 대표하는 도심 공원이자 시민 쉼터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부산시민공원을 찾은 가족 단위 나들이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 국제신문 DB

공원의 새로운 미래

부산시는 이달 부산시민공원 명품화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시행하기 위한 입찰에 들어갔다. 이 용역은 개장 10주년을 맞이해 공원의 주변 환경 변화에 맞춰 대응하고자 마련됐다. 내년 부산콘서트홀 개관, 인근 재정비촉진지구 재개발 진행 등과 연계해 공원을 재단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또 실태조사와 문제점 분석 등을 통해 조경 시설물 동선 등을 재정비하고, 풍성하고 깊은 숲을 조성하는 데도 주력한다. 공원 내 남아 있는 캠프 하야리아 시절 보존건축물의 개선과 활용 방안도 다시 점검한다. 공원의 역사성과 정체성에 맞는 중·장기 추진 방향도 설정해 외부 관광객도 유치할 수 있는 명소로 명품화한다는 게 시의 방침이다. 용역 기간은 착수일부터 10개월로, 내년에 용역 내용이 공개될 예정이다.

시는 지난 1월 이 용역과 별개로 시민공원 주변 재정비촉진지구 광장 부지 개발 방안 수립 용역에도 착수했다. 공원 남문 인근 13609규모의 광장 용지를 어떻게 활용할지 정하는 용역으로, 공원과 부전역의 연결 축으로서 광장을 개발하는데 길잡이가 될 전망이다. 시 예산 9500만 원이 투입됐고, 오는 9월까지 진행된다. 안철수 시 푸른도시국장은 용역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각계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을 수렴해 시가 놓치고 있을 수 있는 공원의 발전상도 담긴다“10년 전 트렌드에 맞춰져 있던 공원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역 결과가 나오면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본격적으로 공원을 재단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에게 더 친근한 공원

부산시설공단은 시의 용역과는 별개로 자체적으로 새로운 미래로 향할 공원을 조금 더 시민에게 가까운 곳으로 만들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지난 1월 시와 협력해 공원 방문자센터 내 실내 정원을 마련했다. 센터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143규모에 40종의 식물 5800주를 심어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하는 시민의 힐링 공간을 조성했다.

잔디 발아기인 매년 4월까지 입장이 제한됐던 공원 내 하야리아 잔디광장도 올해는 지난 6일부터 주말과 공휴일에 개방됐다. 오는 27일부터는 전면 개방에 들어간다. 잔디광장의 개방 시기를 앞당기면 좋겠다는 시민의 요구에 공단이 적극 화답한 결과다. 공단은 통제되는 평일을 이용해 잔디 품질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잔디의 생육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공단은 다음 달 초까지 재활시설 원아 40명을 차례대로 초대하는 나눔 봉사 활동도 함께 전개 중이다. 공단 직원이 원아와 함께 영화 감상, 공원 녹지 투어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성림 부산시설공단 이사장은 개장 10주년을 맞아 소외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눔으로써 더 다양한 방문객이 공존하는 공원으로 나아가기 위해 봉사 활동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KB증권, 뚝섬공원에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깨비정원' 조성

KB증권이 사회공한사업의 일환으로 서울 광진구 뚝섬 한강공원에 정원을 조성한다.

KB증권은 지난 19일 서울시와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 기업동행정원조성 사업에 관한 업무협약식을 진행했다고 23일 밝혔다.서울국제정원박람회는 지난해 5월 서울시가 발표한 정원도시, 서울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15년부터 시작한 정원축제로 올해는 뚝섬한강공원에서 개최된다.

KB증권은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 등을 제공하기 위해 해당 박람회의 기업동행정원을 조성하는 사업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KB증권은 브랜드의 가치관을 담은 깨비정원 with KB증권을 조성할 계획이다.

KB증권은 다음 달 16일부터 19일까지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깨비정원 with KB증권을 관람한 후 촬영한 사진을 인증하면 에코백을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한다.KB증권이 조성한 정원은 서울국제정원박람회 이후에도 서울시가 계속해서 유지·관리할 예정이다.

강진두 KB증권 경영지원부문장은 “KB증권은 기후위기 시대, 도시를 살리는 자연과의 동행을 위한 친환경 테마의 사회공헌사업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앞으로도 우리 환경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38, 비극이 반복되어선 안된다

환경 운동가들, 윤 정부 핵 발전 확대 정책 변환 촉구

환경·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 활동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38년전 일어난 체르노빌 핵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윤석열 정부에 핵 발전 확대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 38주기를 하루 앞두고 환경 운동가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윤석열 정부에 탈핵 정책 시행을 촉구했다.

방진복을 입은 서울기후위기비상행동, 에너지정의행동 등 34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탈핵시민행동 소속 활동가들은 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안전한 핵은 불가능하며, 핵발전은 우리 미래 에너지가 될 수 없다고 외쳤다. 이들은 대량 방사능 유출 사고로 수많은 생명이 피해를 입은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로 전세계가 핵발전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알게 되었으며 현재까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핵발전소에 러시아의 드론 공격이 있었다는 소식이 전해져 유럽 전역에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이는 원전 자체가 전쟁과 테러에 위험시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활동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활동가들은 체르노빌 뿐만 아니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배운 교훈을 잊어버린 듯 윤석열 정부는 원전 생태계 복원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밝혔다며 현 정부의 핵 발전 확대 정책의 변환을 촉구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체르노빌 핵참사 38주기

IAEA Imagebank - 02790015

체르노빌 참사(영어: Chernobyl disaster)1986426124(모스크바 기준 시간)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폭발로 인해 방사능이 유출된 사고이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로 기록되었다.[2] 이 사건으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 · 페레스트로이카에 나서게 되었고 소련 붕괴에 결정적인 원인을 주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주민이 대피된 이후 버려진 프리피야티의 파노라마 사진. 2007년에 촬영되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배출된 방사성 물질의 시간에 따른 상대적 피폭 세기

사고 당시 발생한 방사능 낙진은 체르노빌 주변에 있는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세 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곳곳으로 퍼져 많은 지역을 오염시켰다. 우라늄-235의 핵분열 생성물 중 하나인 세슘-137의 농도로 토양의 방사능 오염을 측정한 결과, 유럽 전체에 걸쳐 19만 제곱 킬로미터에 이르는 영역이 제곱미터당 37킬로베크렐 이상의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으며, 주변 3국의 오염 규모는 15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낙진으로 인해 오염된 지역을 표시한 지도. 1996년의 상황

사고발생 후 프리피야티에 방송된 대피 안내방송(러시아어) 한글자막

Pripyat_1986.ogg (Ogg Vorbis 소리 파일, 길이 2 min 34 s, 129 kbps)

사고로부터 약 하루가 지난 427일부터, 발전소로부터 가장 가까운 프리피야티와 야노프 역의 두 곳에서 소개 작업이 제일 처음 개시되었다. 프리피야티의 경우 최초의 폭발이 있은 뒤 같은 날 저녁에 측정한 조사선량이 시간당 1~10밀리 뢴트겐(mR) 수준으로, 즉각 경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나 흑연 발화에 의해 2차 폭발이 일어난 후에는 방사능 조사량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26일 오후 10시에 소련 정부는 이 두 마을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기로 결정하였다.[21] 소개령은 27일 오전 11시에 공표되었고, 1,200대의 버스가 도착하여 427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주민들을 모두 도시에서 내보내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프리피야티 시민 49,360명과 야노프 주민 254명은 최종적으로 키이우의 아파트로 이주되었다. 430일 이후에는 사고 지역 주변 30 km 이내의 다른 주민들에 대한 소개 작업도 이루어졌다

기후정치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

22대 총선이 끝났다. 결과는 여당 108(36%), 야당 192(64%)이다. 선거 전 기후정치바람을 비롯한 16개 시민단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기후공약을 두 가지 이상 제시한 후보는 696명 중 168(24.1%)에 불과했다. 이 중 당선된 후보는 총 64명으로, 여당이 10(15.6%), 야당이 54(84.4%)인 것으로 분석됐다.

기후정치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정책과 행동을 다루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탄소 배출 감축, 재생에너지 촉진, 환경보호 정책, 기후협상 및 국제협력 등이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촉진해야 한다. 범위를 좁혀서 보자면 탄소배출 감축, 그중에서도 압도적 비중(86.9%)을 차지하는 에너지 부문의 혁신이 기후정치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후정치 위기가 심각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기후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24.1%에 불과하고 당선인들의 정당 분포 또한 특정 정당에 쏠리는 현상이 심각한 것이 첫 번째 위기다.

두 번째 위기는 각 정당의 기후정책 공약에 있다. 기후변화청년모임 빅웨이브가 분석한 정당별 탈탄소 관련 정책공약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규제 강화(목표치 상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즉 시장을 정확히 이해하고 시장의 힘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선순환 구조는 어느 정당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공약 제시한 후보 24%

우리나라 정부 차원에서 재생에너지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때는 이미 20여년 전이다. 20038, 정부는 대통령 주재 차세대 성장동력 보고회를 통해 수소연료전지를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했다. 당시 정부는 2012년까지 2차전지 확보 세계 1, 수소연료전지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 15% 달성을 목표로 정하고 전체 전력생산량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8.4%까지 늘리기로 했다.

2010년엔 5년 안에 세계 5대 신재생에너지 강국으로의 도약을 선포하고, 2030년까지 국가 단위의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거창한 선포의 현주소는 초라하기만 하다. 전력 생산 중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9%(202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스마트그리드도 아직 한 도시도 아닌 11000가구의 시범사업에 그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정권 교체가 수차례 이루어졌음에도 모든 정권의 재생에너지 정책은 늘 용두사미 정책으로 끝났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오해가 있었고 또 시장 활용이라는 해법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고 방치한 면이 크다.

첫 번째 오해는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여건이 안 된다는 믿음이다. 우리나라 여건이 세계 최고의 수준은 아니지만 산업경쟁력을 다투는 나라와는 비슷하거나 우수하다. 태양광 평균 일사량은 11459kWh(킬로와트시)로 중국(1457), 일본(1355), 독일(1056)에 비해 우수하다. 육상풍력발전 평균이용률은 약 23%로 일본(20)·호주(27)·중국(26)과 비슷하며, 해상풍력발전은 약 30%로 일본(30)·중국(35) 미국(30~50, 일부지역은 30~31)과 비슷한 수준이다. 풍속 범위는 초당 5.39~8.12m(중위값 6.2m)로 경제성 확보 기준인 6m를 넘는 지역이 다수 존재한다.(한국에너지공단)

두 번째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필수적인 한국전력의 독점 체제 개편을 민영화로 오해한다는 점이다. 환경적·경제적으로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기 전까지는 한전 독점 체제가 나름대로 장점이 많았다. 정부와 한전도 나름대로 잘 운영했고 덕분에 기업과 국민들도 품질 좋은 전기를 싼값에 마음껏 사용했다. 그러나 재생에너지가 중요해지면서 이러한 독점 체제는 한계에 도달했다. 재생에너지는 기후와 날씨의 영향으로 전기 생산의 지역적 편재성과 간헐성·변동성이 심하다. 이러한 전기를 잘 저장했다가 소비자가 원하는 시간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존 전력 시스템보다 4.9배의 설비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디지털 전환과 AI, 에너지 신기술을 이용하여 효율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오해 불식시켜야

그러나 모든 비용을 보상해주는 총괄원가주의하에서 송전·배전·판매 부문의 독점을 영위하는 한전으로서는 이런 대규모 전환을 위한 장기적 비용투자를 감행할 인센티브가 희박하다. 대안은 한전은 기존대로 역할을 수행하면서 배전·판매 부문을 개방하여 신규 기술로 무장한 사업자들과의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RE100도 가능하다. 민영화가 아니다. 우체국 택배와 민간 택배가 경쟁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세 번째는 주택용 전기를 비싸게 해서 산업용 전기를 지원한다는 오해다. 2010년 이전까지는 산업용을 싸게 공급한 게 맞다.

그런데 2003년부터 2013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은 총 1280.6%(누계)를 인상하고 주택용은 5회 인상 및 4회 인하하여 총 4.2%(누계) 인하를 했다. 코로나19 이후에는 20222분기부터 현재까지 kWh당 주택용은 총 540.4원을 인상했다. 반면에 대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고압B)20233분기에는 평균보다 4배 이상 차등 인상하고 4분기에는 산업용만 13.5원 올리는 등 총 63.1원을 인상했다. 2023년 판매단가(/kWh)는 평균 152.8, 산업용 153.7, 일반용 169.5, 주택용 149.8, 기타 100.9였다(한전IR).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3.9원 더 높다. 그런데 전기요금은 이러한 표면단가보다 원가회수율로 판단해야 한다. 산업용은 고압으로 송전하므로 주택용보다 송전 손실률이 적고 전봇대도 적게 든다. 반면에 주택용은 저압을 사용하므로 가가호호 배전 비용과 검침 비용이 많이 든다. 이러한 요인을 감안하면 산업용은 주택용보다 원가가 20원 이상 낮다. 따라서 이제는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을 보조해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기후정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세 가지 오해를 불식시켜 시장 친화적 정책의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 김경식 ESG네트워크 대표/ 경향

 

체르노빌 원전 폭발출동 소방관의 비극

볼로디미르 프라비크 (1962~1986)

1979328,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의 원자력 발전소에서 방사능이 유출되었다. 주민 14만명이 대피했다. 사고가 터졌을 때 바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없었지만 주변 지역에 암환자가 늘었다는 주장이 있다.

소련은 1954년에 세계 최초로 원자력 발전을 성공시킨 나라. 1986년 초, 고르바초프는 “5년 안에 원자력 발전 설비를 2배 반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땅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특히 안전하다고 자부했다(우크라이나 이름으로는 초르노빌). 발전소 냉각수 연못에 물고기를 길렀다.

1986425일은 금요일이었다. 다음날부터 긴 연휴의 시작이었다. 소방팀 팀장 볼로디미르 프라비크는 당직을 서며 신혼의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연휴에 부모님 텃밭 일을 거들 계획이었다. 이날 밤, 체르노빌의 기술자들이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테스트를 했다. 무리한 테스트 탓에 426일 새벽 123분에 원자로가 폭발. 프라비크는 신고를 받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발전소로 달려갔다. 덮개가 날아간 원자로 지붕에 직접 올라가 불길과 싸웠다.

원자로 지붕에서 보낸 시간은 30분이 되지 않았다. 소방대원들은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갔다. 깜짝 놀라 달려온 가족을, 프라비크는 병원 창문 너머로 만났다. 갓 태어난 딸을 데리고 체르노빌에서 멀리 떠나라고 아내에게 당부. 소방대원들은 얼마 뒤 모스크바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몸 상태는 더 나빠졌다. 프라비크는 스물네번째 생일을 앞둔 511일에 숨을 거두었다. 현장에 출동했던 다른 대원들도 목숨을 잃었다.

원자로는 절대 안전하다고들 말하지 않았소?” 사고 소식을 들은 고르바초프의 반응. 체르노빌 사고로 고향을 등진 사람이 35만명 이상, 갑상샘암에 걸린 어린이가 수천명이었다.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날 이후 안전을 위해 업계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원자력 발전소도 이제는 안전해졌다고들 했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난 2011311일까지는.

김태권 만화가

 

갈 길 먼 플라스틱 협약협상 시작되자 돌변한 나라들

생산량 감축 vs. 폐기물 처리 중심 등 숱한 쟁점

기후변화협약처럼 선진국·개도국 차별 주장도

부산 5차 협상회의 성공 4차 회의 성과에 달려

전 세계에서 모인 환경단체 활동가, 기후운동가 등이 지난 21일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연방의회에서 플라스틱 협약문 성안을 위한 협상장인 샤우센터까지 행진하며 국제사회에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할 강력한 협약문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제공

레스 플라스틱! 모어 라이프!” (플라스틱은 줄이고! 생명은 늘리고!)

지난 21일 오전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의회 언덕에 모인 세계 각국의 환경단체 활동가, 기후 운동가, 원주민 지도자, 과학자 등 200여명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시대를 끝내기 위한 행진으로 이름 붙인 이들의 행진은 직선거리로 500m가량 떨어진 샤우 컨벤션 센터까지 이어졌다. 샤우 센터에서는 23일부터 플라스틱 협약문을 성안하기 위한 제4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회의(INC-4)가 열리고 있다.

플라스틱 협약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체결하려고 하는 협약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이번 협상 회의에 제출한 플라스틱 오염 과학최신 보고서를 보면, 전 세계 연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0023400t에서 10년 만인 2019년에 46000t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에 따라 2019년 한 해에만 36000t가량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으나 이 가운데 재활용된 것은 9%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머지 90% 이상이 환경 중에 버려지거나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며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킨 것이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이 남극의 얼음 속과 심해저까지 없는 곳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지구를 뒤덮으며 생물의 생명은 물론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쌓여 가고 있다. 게다가 플라스틱 생산과 폐기 등의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된다는 것도 문제다.

유엔환경계획 보고서는 2020년 플라스틱으로 발생한 온실가스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6%18t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추세가 계속된다면 2040년에는 플라스틱 생산량이 7t을 넘어서고, 2060년에는 플라스틱 폐기물 발생량이 10t을 돌파해 플라스틱에 의한 위협이 더욱 가중될 우려가 크다. 2022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 참석한 160여개 나라가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는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을 체결하기 위해 2024년까지 협약문을 마련하기로 결의한 것은 이런 상황 인식을 공유한 결과다.

2060년 플라스틱 폐기물 10t 돌파 추정

협약문을 성안하기 위해 오타와에서 열리고 있는 4차 협상 회의는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릴 5차 최종 협상회의의 성패를 가늠할 분기점이 되는 회의다. 3차례 협상 회의를 거치면서 합의되지 못한 숱한 쟁점들이 오타와에서 어느 정도 정리되지 않으면 부산에서 제대로 된 협약문이 완성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루이스 바야스 발디비에소 4차 협상회의 의장은 회의 개막에 앞서 발표한 회의 시나리오에서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효과적으로 이행할 수 있도록 회원국들을 지원하는 협약의 문안을 5차 회의에서 최종 확정할 수 있도록 협상을 진전시키는 것4차 회의의 목표로 제시했다. 이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진행된 협상 과정과 4차 회의에서 내놓은 주요 국가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국제 플라스틱 협약 제4차 정부 간 협상위원회(INC-4) 회의가 열리는 캐나다 오타와 쇼 컨벤션 센터 앞에 설치된 플라스틱 쓰레기 조형물에 한 여성이 플라스틱 없는 삶은 환상적이라고 쓰인 팻말을 붙이고 있다. 오타와/AP 연합뉴스

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2년여의 짧은 기간 안에 법적 구속력 있는 플라스틱 협약문을 만들어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하겠다는 강한 의욕을 보였던 많은 나라는 막상 협약문 협상장이 시작되자 태도를 바꿨다. 플라스틱 협약문의 조항 하나하나가 자국의 산업에 끼칠 영향을 따지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1·2차 협상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정리된 31쪽의 협약문 초안이 지난해 11월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3차 협상회의가 끝나자 다양한 선택지가 덧붙어 69쪽으로 불어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자국이 플라스틱의 원료 공급국인지, 플라스틱 제품의 주요 생산국인지 소비국인지 등에 따라 이견을 분출했기 때문이다. 오타와 협상회의 테이블에 올라온 개정된 초안은 협약의 핵심인 협약의 범위항목에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자는 제안부터 제품 설계부터 다루자는 제안, 원료의 추출·가공 단계는 제외하자는 제안을 포함해 모두 16개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있다.

대다수 국가가 플라스틱 오염 종식이라는 공동 목표에는 공감했지만, 오타와 협상회의 이전까지 세 차례 협상회의에서 구체적인 목표 연도 설정을 비롯해 기술·제도적 쟁점 모두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참여국들은 플라스틱 제품의 원료인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생산 감축 규제 대상 플라스틱과 규제 수준 재활용 기법을 포함한 폐기물 관리 등을 어떻게 할지를 비롯해 각 국가의 협약 이행에 대한 평가 형식과 구속력 협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문제 등에서 이견을 보인다. 특히 1차 플라스틱인 폴리머 생산량 감축을 두고도 원료를 공급하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등의 산유국과 주요 생산국인 중국 등은 반대가 완강하다. 생산을 감축하지 않고 생산된 이후 관리를 통해서도 오염 종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 공감쟁점들엔 합의 못해

이들의 입장은 오타와 회의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이란은 공식회의 첫날인 23(현지시각) 발표한 국가 성명에서 오염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플라스틱 제품이 현대 생활의 초석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더 나은 플라스틱 폐기물 관리를 통해 오염을 줄이고 제거할 수 있는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협상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도 같은 날 성명에서 모든 당사국이 최대한 포용력을 발휘해야 한다플라스틱의 환경 유출로 인한 오염을 방지하는 핵심문제에 집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구의 날인 22일 경기도 수원시자원순환센터에 플라스틱 재활용 쓰레기가 가득 쌓여 있다. 연합뉴스

협약 이행을 참여국들에 구속력 있는 의무로 부여할 것인지도 좁혀지지 않고 있는 쟁점이다. 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법적 구속력 있는 협약문 마련이 결의됐지만, 중국은 오타와 회의 첫날 성명에서 국가자율 원칙을 충분히 존중하고 획일적인 해결책을 피해 광범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란은 같은 날 한 발 더 나가 선진국이 법적 구속력이 있는 방식으로 주도하고, 개발도상국은 자발적인 접근을 통해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온실가스를 대상으로 한 기후변화협약과 마찬가지로 플라스틱협약도 공통의 그러나 차별화된 책임’(CBRD) 원칙에 따라 선진국과 개도국에 분리 적용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11월에 부산에서 성공적인 협약문이 마련되기 위해서는 이번 오타와 회의에서 이런 쟁점들에서 큰 진전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획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지금까지 협상 진전 상황으로 미뤄볼 때 부산의 5차 회의에서 협약문을 마무리하려면 애초에 목표한 강한 구속력 있는 협약으로 가지는 못하고 절충해서 일단 협약을 체결한 뒤 보완해가는 방식으로 가고, 애초 목표를 고수하려면 협상 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 같다이번 오타와 회의에서 의장국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두 달이면 2~3" 실뱀장어 마구잡이어족자원 황폐화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은 민물장어는 인공부화가 어려워 새끼인 실뱀장어를 잡아 양식합니다.

지금이 실뱀장어 잡는 시기인데, 돈이 된다 싶으니까 불법 조업이 판을 치면서 씨가 마르고 있습니다.

기자 충청남도 서천과 전라북도 군산 경계인 금강입니다.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오는 실뱀장어 길목을 어선들이 점령했습니다. 어림잡아 50척이 넘는데 하나같이 등록 표지판이 없는 무허가 어선입니다. 실뱀장어는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돼 정해진 구역에서 허가받은 어민만 잡을 수 있지만, 마리당 3천 원이 넘다 보니 불법이 판을 치는 겁니다.

인터뷰 : 실뱀장어 조업 어민

- "2월 말부터 5월 말까지 하는데 지금이 한 달 남았는데도 2~3억 벌었다고 해요."

불법 어선들은 주로 밤에 움직입니다. 조업이 금지된 구역에서 초록색 불을 켠 배 가까이 가봤습니다. 한 명은 망을 보고 다른 한 명은 뜰채를 휘적이며 실뱀장어를 건져 올립니다. 잠시 뒤 잠복 중이던 해경이 어선에 다가가자 곧바로 도주합니다.

- "멈춰요. 멈춰."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어선은 붙잡힙니다.

 

인터뷰 : 불법 조업 어민

- "(잡으면 안 되잖아요.) 잠도 안 오고 나이가 일흔 먹어서 할 것도 없고 그냥."

인터뷰 : 윤형술 / 군산해양경찰서 형사계

- "어획물을 버려서 증거를 없애려고 하고 빠져나가려고 노력을 하니까 (단속이 쉽지 않습니다.)"

불법 어선들은 강 전역에 그물을 설치해 해양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 지역 어민

- "불법으로 모기장 어망을 어마어마하게 깔아 놔서 실뱀장어 잡으면서 (다른 어종의) 치어알을 다 잡아 죽이기 때문에."

돈이 된다면 마구 잡는 불법 조업을 근절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 시급합니다.

MBN뉴스 강세훈

뱀장어 산란지역은 2천년대 들어 밝혀졌는데, 우리나라 강에서 자란 뱀장어는 산란기가 되면 3km 떨어진 태평양 마리아나 해구로 나가 알을 낳습니다. 부화한 어린 고기는 해마다 봄이 되면 해류를 따라 어미가 살던 강으로 돌아옵니다. 이 때를 노린 불법 어획이 수십년째 남획 수준으로 이어지면서, 개체수가 크게 줄고 있습니다.

[임현정/국립수산과학원 과장]"어획량으로 자원량을 추정해보면 2009년에 실뱀장어가 16톤 정도 어획된 이후에 최근에는 매년 1톤에서 3톤 정도 (잡히고 있습니다.)"

뱀장어는 지난 2014년 세계 멸종 위기 종으로 지정된 데 이어, 현재 국제 거래를 금지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MBC뉴스 류현준

실뱀장어가 길 찾는 방법은?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위기의 뱀장어

세계자연보전연맹(IUCN)2014년 일본 뱀장어는 물론 미국 뱀장어까지 멸종위기종으로 판정한 바 있다. 세계 곳곳의 장어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얘기다.

뱀장어가 세계 곳곳에서 멸종위기에 몰리는 이유는 뭘까. 식용으로 쓰기 위한 남획과 하천과 바다 등 서식지 환경의 악화, 해류의 변화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국제 사회는 세계 최대 뱀장어 소비국 일본을 주목한다. 일본은 1년 동안 소비하는 장어(32600t)56%를 외국에서 수입한다. 중국·대만·한국·홍콩·인도네시아·필리핀 아시아지역 국가는 물론 프랑스·스페인·덴마크·미국·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생산되는 장어 중 상당량이 일본으로 들어오고 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고 있는 뱀장어의 70%가 일본으로 수입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일본인만큼 뱀장어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다. 일본인들은 예로부터 장어를 신성한 물고기로 여겨오면서 뱀장어 관련 식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일본인들은 논농사가 시작된 기원전 3세기 야요이(彌生)시대부터 뱀장어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뱀장어요리는 중요한 보양식으로 여겨진다. 많은 일본인들은 사시사철 장어요리를 즐기는데, 여름철에 특히 많이 먹는다.

신비로운 뱀장어의 일생

바다와 강을 오가는 회유어종인 뱀장어가 어디에서 알을 낳는지에 대해 알게 된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뱀장어 연구를 지속해온 일본의 도쿄(東京)대 해양연구소와 수산종합연구센터는 2009년 세계 최초로 장어의 알을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괌 인근) 앞의 수심 3000~4000m 바닷속에서 장어의 알을 채취했다. 연구진은 태평양에서 부화한 장어 치어가 해류를 따라 아시아지역 국가의 하천과 호수늪지에서 성장하다가 다시 바다로 돌아가 산란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2020.06.16.

살아있는 화석원시뱀장어, 태평양서 발견

공룡 시대 초기인 약 2억 년 전부터 바닷속에 뱀장어가 서식했다는 증거가 발견돼 관심을 끌고 있다.

17일 미국 디스커버리뉴스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태평양 도서국가인 팔라우 응게멜리스섬의 한 해저동굴에서 발견됐던 신종 뱀장어가 공룡이 살던 시대부터 생존한 원시 뱀장어로 나타났다.

영국 학술지 왕립학회 B 회보의 최신호를 통해 소개된 이번 논문에서 이 뱀장어는 약 2억년 전 고생물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어 팔라우에서 발견된 초기 뱀장어란 의미로 프로토앵귈라 팔라우’(Protoanguilla palau)로 명명됐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팔라우 공동 연구팀에 따르면 이 원시 뱀장어는 오랜 세월 동안에도 아주 작은 신체 변화를 겪은 원시종으로 밝혀져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고 있다.

연구팀은 이 원시 뱀장어에 대해 큰 머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몸통 등 여러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면서 아주 기괴한 생김새라 어떠한 어류학자도 바로 뱀장어과인지 확인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18cm 정도의 몸길이를 가진 이 원시 뱀장어는 적갈색 몸이 두드러지며 밝은 흰색이 포함된 무지개 빛깔의 지느러미로 눈에 띈다. 과학적인 분석으로도 이 원시 뱀장어는 뱀장어과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존하는 뱀장어는 19종 정도로 분류되며 그 아래는 약 800여 종이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뱀장어로는 화석을 통해 약 100만 년 전 백악기에 서식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원시 뱀장어는 그보다 더 고대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연구팀을 이끈 데이비드 존슨의 말을 따르면 이 원시 뱀장어은 기존에 발견된 백악기 화석에서 나타난 위턱뼈의 존재, 두개골과 연결된 척추뼈, 이빨 달린 아가미갈퀴 같은 원시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꼬리 지느러미줄은 화석보다 좀 더 뒤로 펼쳐져 있는데 이 같은 특징은 원시 뱀장어의 또다른 특징이라고.아울러 이 원시 뱀장어의 동굴 서식지는 뱀장어의 역사에 비해 짧게는 1만년 길게는 11만년전으로 짧아, 이들 서식지가 마지막 남은 곳일 가능성도 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사진=디스커버리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2011.08.17.

 

소양호엔 유럽산, 청평호엔 북미산 뱀장어가 산다

외래종 뱀장어 3종 출현

수입해 기르던 외국 뱀장어

자원조성 위해 방류하며 섞인 듯

생태계 교란, 유전자 오염 우려

금강하구 정치망에 포획된 뱀장어. 극히 일부이지만 우리나라 자연에는 외국산 뱀장어가 살아가고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소양호에서 정치망을 쳐 뱀장어 122마리를 잡은 중앙 내수면연구소 연구원들은 유전자 분석을 하면서 깜짝 놀랐다. 길이 79, 무게 1남짓한 뱀장어 한 마리가 유럽산 뱀장어로 나타난 것이다. 청평호에서는 유럽산과 함께 북미산 뱀장어도 잡혔다. 금강하굿둑 바로 아래에선 인도네시아 등 열대 아시아에 서식하는 동남아산 뱀장어가 나왔다.

외래종 뱀장어 3종이 우리나라 하천과 호수에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국립수산과학원 중앙 내수면연구소는 201415년 동안 전국의 뱀장어 주요 분포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포획한 뱀장어 429마리 가운데 4마리가 외래종으로 확인됐다고 한국통합생물학회가 발간하는 학술지 <동물 세포와 시스템>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국내에서 외래종 뱀장어의 서식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내수면연구소 연구진이 금강하굿둑 하류에서 뱀장어 조사를 벌이고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유럽과 북미의 뱀장어는 북대서양 한가운데 있는 사르가소 해에서 번식한다. 동북아산 뱀장어는 태평양 마리아나제도 근처에서 산란한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뱀장어 해류를 타고 표류하다 자라난 고향의 하천으로 수천의 긴 여행을 떠난다. 유럽과 북미산 뱀장어가 자연적으로 우리나라 하천에 올 가능성은 전혀 없다. 다른 외래 어종처럼 사람이 옮겨왔을 수밖에 없다.

연구진은 이들 외래종 뱀장어가 실뱀장어 상태로 수입해 양식하던 것을 자원조성을 위해 지자체가 방류할 때 섞여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소양호와 청평호 유역에는 뱀장어 양식장이 없어 외래종 뱀장어가 탈출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북아산 뱀장어는 한국·일본·중국·베트남 등 동북아 하천에 살다 성숙하면 서태평양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이동해 번식한다(관련 기사: 민물장어의 심해여행, 사랑과 죽음을 위해). 양식이 불가능해(최근에 실험실에서 성공했지만) 치어(실뱀장어)를 잡아 기르는 방식으로 생산해 왔다.

뱀장어 수요가 급증해 치어가 모자라자 1993년 이후 다른 나라의 실뱀장어를 수입했다. 유럽산 뱀장어의 치어는 2005년부터 수입됐다. 유럽에선 뱀장어 개체 수의 90%가 사라지자 2007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모로코 등 북아프리카의 유럽산 뱀장어 수출은 지속해 지난해 모로코는 중국에 이어 2번째로 큰 실뱀장어 수입선이었다. 실뱀장어 수입국은 19개국에 이른다. 북미산 실뱀장어도 2004년 이후 계속 수입하고 있다.

금강하굿둑에서 잡힌 동남아산 뱀장어의 기원은 불분명하다.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 살지만 최근 일본과 대만으로 서식지를 넓혔기 때문에 해수온 상승을 따라 한반도로 분포지를 넓혔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금강 유역에 동남아 뱀장어를 수입해 기르는 양식장이 있어 탈출한 개체일 수도 있다.

유럽산 뱀장어 치어. 한때 우리나라에서 다량 수입했지만 멸종위기로 2007년 이후 국제거래가 중단됐다. 우베 킬스/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북아산 뱀장어는 유럽산과 북미산 뱀장어와 같은 온대지역 뱀장어로서 형태가 비슷해 정확하게 구분하려면 이번 연구에서처럼 유전자 분석을 해야 한다. 동남아산 뱀장어는 등지느러미 시작점과 항문 사이의 거리가 상대적으로 짧아 형태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논문 주저자인 홍양기 중앙 내수면연구소 박사(현 국립중앙과학관 박사)외래종의 출현 개체수가 미미해 당장 별다른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뱀장어가 최상위 포식자여서 토종과의 경쟁과 기생충이나 병원체 전파, 유전자 오염 등 생태계 교란 우려가 있어 면밀한 조사와 추가 유입 방지대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실뱀장어를 외국에서 수입하는 일본과 대만 등은 이미 외래종 뱀장어가 유입돼 자연계에 퍼지고 있다. 1970년대부터 실뱀장어 수입이 급증한 일본은 2000년대 들어 외래종 뱀장어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최근 코마 아라이 도쿄대 생물학자 등은 과학저널 <어업학>에 실린 논문에서 관동지방 도네 강 상류 뱀장어가 거의 모두 유럽산 뱀장어인 사실을 보고해 충격을 주었다. 도네 강은 일본에서 유역이 가장 넓은 강이다. 연구자들은 주변에 양식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풀어놓은 것으로 보았다. 일본에서도 자원조성을 명목으로 물고기를 마구 풀어놓는 관행이 있다.

유럽산 뱀장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렇다면 외래종 뱀장어가 생태계에 끼칠 영향은 없을까. 논문 교신저자인 이완옥 중앙 내수면연구소 박사는 몇 년 전에는 무분별한 방류가 이뤄졌지만 현재는 유전자를 확인한 뒤에만 방류하도록 하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안전판은 마련된 셈이다.

그렇지만 일단 외래종이 자연에 풀려나오면 주워담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뱀장어는 최상위 포식자여서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앞서 일본 도네 강에서도 유럽산 뱀장어는 유럽의 개체들보다 오히려 발육상태가 좋았다. 토종 뱀장어에 강력한 경쟁상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북미산 뱀장어. 유럽산, 동아시아산 뱀장어와 함께 온대 지역에 서식하는 3대 뱀장어이다. 클린턴 앤드 찰스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외래종이 전파할 기생충과 병원체도 저항력이 없는 토종에 괴멸적 타격을 줄 수 있다. 역설적으로 동북아산 뱀장어에서 기원한 기생충이 유럽과 미국 뱀장어의 부레에 심한 손상을 입혀 심각한 개체수 감소를 일으키기도 했다.

맨눈으로 구분이 어려운 유럽과 미국산 뱀장어를 모르고 또는 의도적으로 방류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양식장에서 외래종 뱀장어의 우발적인 탈출을 막기 위해 유출구 봉인, 담장 건조상태 유지, 양식장 유출수의 소독 등의 규제가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동북아산 뱀장어. 외래종에 의해 유전자 오염이 일어날 우려도 있다. 홍양기 박사 제공.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유전자 오염이다. 우리나라에서 성숙한 외래종 뱀장어가 토종과 교잡을 형성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금강에서 잡힌 열대 뱀장어는 바다로 산란여행을 떠나기 위해 노란빛에서 은빛으로 몸 빛깔이 바뀐 상태였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들이 별개의 종이고 산란 시기나 장소 등이 달라 교잡의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 연구자들은 성숙한 유럽산 뱀장어가 동북아산 뱀장어와 함께 번식지로 이동하던 것을 동중국해에서 포획해 우려를 낳았다. 일본의 뱀장어 전문가 아키히로 오카무라는 동북아산 뱀장어와 유럽산 뱀장어가 인공적으로 잡종화할 수 있음을 실험으로 보였다. 유럽산 뱀장어와 북미산 뱀장어의 잡종은 자연상태에서도 나타났다. 따라서 유럽산 뱀장어가 동북아 뱀장어와 같은 시기에 함께 무리 지어 마리아나 해산의 번식지에 간다면 잡종화가 일어나, 새로운 중간 형질의 뱀장어가 동아시아 하천으로 확산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자원확보를 이유로 1960년대 이후 외래 어종을 대규모로 방류해 왔으며, 파랑볼우럭(블루길), 큰입배스, 떡붕어 등이 토종 물고기 자리를 차지하는 등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Yang-Ki Hong, Jung-Eun Kim, Jeong-Ho Lee, Mi-Young Song, Hee-Won Park & Wan-Ok Lee (2017): Occurrence of exotic eels in natural waters of South Korea, Animal Cells and Systems, DOI: 10.1080/19768354.2017.137710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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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도 박사의 물고기 이야기 뱀장어()

민물서 7년 살고 태평양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3000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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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천장어의 비밀

뱀장어하면, 그 맛있다는 고창 선운사 풍천장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풍천'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이제 최종 정리하자면 고창, 그곳엔 풍천이 없다. 그곳에 있는 하천은 '인천강'이다.

그럼 풍천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나라 서, 남해에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하구(河口), 즉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기수역이 풍천(風川)이다. 기수역이란 평균 염분 35(퍼어밀이란 천분율을 말한다)의 짠 바닷물(海水, sea water)과 맹 맛의 민물(淡水, fresh water)이 만나 염분이 낮은 건건짭짤한 기수(汽水, brackish water)가 모여 있는 하구역에 해당한다.

풍천은 조석(달과 태양의 인력에 의해 밀물과 썰물이 나타나는 현상)에 의한 조차(밀물과 썰물에 따른 해수위 차이)가 큰 서해안에 인접한 강이나 하천에 간만(밀물과 썰물) 변화에 물흐름의 변화가 생기고, 해풍과 육풍이 교대로 부는 이곳에 서식하는 장어가 바닷물과 함께 바람을 몰고 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하구에서 육지로부터 영양염류 유입이 많고, 담수종과 해수종의 플랑크톤이 함께 서식하여 먹이가 풍부하며, 수온차가 크고 들물과 날물에 따른 물의 흐름이 커서 육질이 좋고 영양이 최고라 하여 민물장어 중에서 하구역 뱀장어인 풍천장어를 최고로 친다.

어류생물학회지

사실, 뱀장어는 바다에서 태어나서 강물로 회유하도록 진화되어 있으나, 민물로 올라가지 못하고 하구에서 머물러 사는 놈들도 있다. 어쨋튼, 강으로부터 풍부한 영양염이 흘러 내려오고 바다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물살이 일어 뱀장어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는 하구에서 잡은 뱀장어가 어찌 맛있지 않겠는가?

장어 조사 십수년에 자연산 뱀장어 한 마리 맛보지 못했다. 그러다가 낙동강 하구에서 실뱀장어 수집상을 하는 하영두씨가 물가에 떠 있는 바지선에서 숯불로 구어 준 자연산 뱀장어는 잊을 수가 없다.

실뱀장어 어도실험을 위해 시료를 구하다 진작에 인연을 맺었으나 특별한 개인적 만남이 없었는데, 어느 늦가을날 초대를 받았다. 찾아간 우리를 배에 태워 어디론가 데려갔는데, 그곳은 낙동강 하구 한가운데 떠있는 바지선이었다. 화로 숯불 위 석쇠에 자연산 뱀장어가 왕소금이 뿌려진 채 누워있었다.

겨울이 오면 김 양식을 겸하는 하 선장 부부가 그동안 인연에 대한 끈끈한 의리로 뱀장어를 구워 소주 한 잔을 대접해준 것이다. 낙동강 한가운데서 다소 쌀쌀한 늦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뱀장어 한 점에 소주 한 잔이 끝없이 넘어가는 가을밤은 깊어만 갔다.

'뻘두적'을 아십니까

뱀장어는 장어로 이루어진 것으로 장어(長魚)는 긴 물고기란 말이다. 그러니까 뱀장어란 뱀처럼 긴 물고기란 뜻이다. 뱀장어는 민물장어, 드물장어, 구무장어, 궁장어, 밈장어, 배무장우, 배암장어, 뱀종어, 장어, 짱어, 비암치, 참장어 등의 방언이 각 지방에서 쓰이고 있으며, 전남 고흥 지방에서는 늦은 가을 펄 속에서 잡히는 맛좋은 뱀장어는 뻘두적이라 부른다.

영어권에서는 '(eel)'이라고 부르는데, 원주민이 장어를 부르는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우나기(ウトギ, )'라 부른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으나 뱀처럼 구불거리며 기어간다는 것을 우네루(ウネル)라 하므로 그 말이 변하여 우나기로 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만리(鰻驪), 바이산(白鱔)으로 부른다.

뱀장어 종류에 천연기념물 장어가 있다는데, 어떤 장어일까? 제주도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학명 Anguilla marmorata)가 천연기념물이다. 이는 민물장어와는 다른 종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천지연에만 살고 있지는 않다. 남해안 일부에서도 살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시중에 장어라고 통칭하는 것엔 여러 종류가 포함되어 있다. ‘민물장어라고 불리는 뱀장어(Anguilla japonicus), ‘아나고라고 불리며 횟감으로 즐겨먹는 붕장어(Conger myriaster), ‘하모라고 불리며 여수에서나 여름철에 하모 유비끼’(필자는 갯장어 포 데침이라고 우리말 이름을 붙였다)로 먹을 수 있는 갯장어(Muraenesox cinereus), 그리고 포장마차 연탄불에 즐겨 구워 먹던 꼼장어라고 불리는 먹장어가 그것이다.

뱀장어, 붕장어, 갯장어는 척추가 딱딱한 뼈로 이루어진 경골어류인데 반해, 먹장어는 입이 흡반 형태에 눈이 퇴화된 원구류로 체형은 장어 모양으로 비슷하나 분류학상 다른 체계에 속한다.

뱀장어의 한살이의 미스터리

뱀장어는 연어와 반대로 민물에서 자라다가 산란을 할 때가 되면 깊은 바다로 회유하는데, 바닷물에 적응하기 위하여 2~3개월 동안 강어귀에 머물다가 가을에 먼 바다 산란장으로 이동한다. 이와 같이 뱀장어는 성어기 대부분을 민물에 살기 때문에 흔히 민물장어라 부른다.

뱀장어와 같이 바닷물과 민물을 왕래하는 왕복성 어류 환경 변화에 적응해야 살 수 있다. 김장 김치 담글 때 배추 숨을 죽이기 위해 소금물에 절이면 그 생생하던 배추가 축 늘어지는 것과 같이 해수와 담수간에는 소금기인 염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황을 뱀장어는 다행히 삼투압 조절이라는 생리적응을 통해 이겨낸다.

그러면 민물에서 자란 뱀장어는 자신이 태어났던 먼 바다의 산란장을 어떻게 찾아갈까? ‘망망대해에 무슨 이정표가 있을 리 없고 오로지 감각과 본능을 내비게이션 삼아 헤엄쳐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이제까지 뱀장어는 심해의 바닥을 따라가는 줄 알았으나, 최근 뱀장어에 무선추적기를 달고 인공위성으로 추적한 결과, 낮에는 천적을 피해 수심 500~900m의 깊은 곳을 헤엄치다 해가 지면 100~300m 수심의 비교적 얕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약 3000떨어진 산란장을 어떻게 찾아가는지, 구체적인 이동경로는 아무도 모른 채 숙제로 남겨져있다.

이동하는 6개월 동안 뱀장어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위와 장은 퇴화해 거의 보이지 않고 그 빈자리를 생식소가 채우고 있다. 그러다가 필리핀 동쪽, 괌의 서쪽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 북쪽의 마리아나 해저산맥으로 향한다. 뱀장어는 해저산맥 때문에 교란된 지자기와 염분과 수온이 다른 해류가 만나는 독특한 심해 바닷물을 감지하여 그곳산란장을 찾는다는 설이 있을 뿐이다.

뱀장어의 생활사와 회유 과정.산란할 때가 되면 암컷 뱀장어는 눈에 띄게 부푼 배를 하고 있고 수컷은 이보다 조금 작다. 수온은 25~27도로 따뜻한 4~8월 사이 수심 160m쯤 되는 그곳 해저 산봉우리에서 달이 없어 캄캄한 그믐밤에 떼로 모여 산란을 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뱀장어는 애초 심해어였다가 경쟁을 피해 육지의 담수로 피신해 살지만 죽을 때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와 알을 낳아 자손을 번식하는 마지막 할 일을 다한다. 모든 것을 쏟아낸 어미 뱀장어는 커다란 눈과 꼬리만 남아 처음 바다를 떠날 때보다 몸무게가 5분의 1로 줄 정도로 수척해진다.

이렇게 종족번식의 사명을 다한 어미들은 산란 후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다에 살다 강에 와서 알을 낳고 최후를 맞는 연어와는 정반대지만, 새끼를 낳는 어미의 숭고한 사랑은 매 한가지인 것 같다.

뱀장어의 이러한 신비로운 생활사 때문에 20세기 초부터 뱀장어의 생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으나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아 미스테리로 남아 있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강에 사는 동북아 뱀장어(학명 Anguilla japonica)의 산란장이 어렴풋이 밝혀진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일본 동경대학교 해양연구소는 20여년 동안 태평양 일대를 뒤진 끝에 지난 1991년 필리핀 동쪽 해역에서 뱀장어 치어 수백 마리를 잡는데 성공했다. 이 연구소의 쓰카모토 교수는 필리핀과 마리아나 해저산맥 사이의 서북 태평양을 뱀장어 산란장이라고 추정하는 논문을<네이처>에 발표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계속된 노력으로 추정 산란장에서 2006년에는 3일된 난황을 가진 새끼를, 2008년엔 알을 품은 성어를, 그리고 2009년에는 알과 성숙한 뱀장어를 발견함으로써 산란장을 알 수 없었던 뱀장어의 생태는 베일을 벗고 있다. 필자도 2006년에 해양조사선 하쿠호마루호를 타고 태평양 한복판에 있는 마리아나 해산을 누볐던 기억이 난다.

동북아산 뱀장어는 북위 15도 동경 140도 부근의 마리아나 해산 서쪽 태평양에서 알에서 깨어 렙토세팔루스(leptocephalus)’라는 투명한 대나무 잎(유럽에서는 버들잎으로 표현함) 모양의 댓잎뱀장어 형태로 북적도 해류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 후,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6~12 개월 간 약 3000의 끝없는 여행을 해 오다가 대륙사면에 이르면 측편된 몸이 원통형의 실뱀장어(glass eel)로 변태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연안으로 들어온다.

이와 같이 자기 어미가 자란 민물로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모천회유(母川回遊)를 한다는 것은 신비에 가깝다. 댓잎뱀장어에서 원통형의 투명한 실뱀장어로 변태할 때 몸길이가 7~8에서 5~6로 오히려 작아지고, 어미와 그 모양이 완전히 달라 옛날에는 다른 종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댓잎뱀장어는 대륙사면 밖에서만 채집되며, 변태 과정의 댓잎뱀장어는 동중국해의 1,000m 수심보다 깊은 곳에서만 몇 마리가 채집되었을 뿐으로 자료부족 때문에 뱀장어 유어의 대륙사면 변태기와 대륙붕 회유기에 대한 생태는 아직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면 유영력이 약한 댓잎뱀장어가 그렇게 먼 바다에서 어떻게 우리나라 하구까지 올수 있는지, 또 매년 같은 양의 실뱀장어가 올라오는지가 의문이다. 원래 뱀장어는 바다에서 산란해 상대적으로 거친 서식환경과 많은 포식자를 피해 강으로 회유해 와서 성장하고 다시 산란을 위해 강을 내려가도록 진화해온 강하성(降河性, catadromus, 강내림) 물고기이다.

태평양에서 부화한 뱀장어 새끼는 북적도 해류와 쿠로시오 해류가 만나 염분이 다른 경계면을 따라 이동하여 우리나라 하구로 회유하게 된다. 이와 같이 동북아산 뱀장어 유생은 몇 만년 동안 계속하여 해류를 잘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살아 남았고, 현재의 회유형태를 형성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얼마 전 연구에서는 해에 따라 변하는 염분전선의 위치와 무역풍에 따른 해수 유동 패턴이 동북아산 뱀장어 자원량 변동을 지배한다고 밝혔다. 태평양 적도 부근에는 폭이 넓은 북적도 해류가 항상 동에서 서로 흐르고, 필리핀 근해에서 쿠로시오 해류와 이와 반대 방향으로 흐르는 민다나오 해류로 나누어진다.

만약 뱀장어 유생이 남쪽으로 치우쳐 위치하면 동북아산 뱀장어가 서식하고 있지 않는 민다나오 해류역으로 운반되어 버리고, 훨씬 북쪽에 위치한다면 유속이 아주 느리기 때문에 댓잎뱀장어에서 변태한 실뱀장어가 육지로 회유하는 시기를 놓쳐버리게 된다.

1998년 엘니뇨 때에는 전선의 위치와 해수 유동이 바뀌어 치어가 성공적으로 쿠로시오에 이르지 못했고, 이에 따라 실뱀장어 어획량이 감소한 일이 있었다. 이는 평상시에는 염분전선이 북위 15~16도에 있었으나, 엘니뇨 발생시에는 적도쪽으로 이동하여 뱀장어가 염분전선 남쪽에서 산란하므로 쿠로시오 해류에 편승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엘니뇨 같은 지구적 기상변동으로 바다 환경이 달라지면 실뱀장어가 동아시아로 돌아오는 패턴에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실뱀장어 어획량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치어 회유기 동안 염분전선 위치 확인과 북서태평양 해류 양상을 조사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실뱀장어는 대만 및 일본 남부 도서에는 12월부터, 제주도 및 양쯔강 하구는 1월부터, 남해안에는 2월부터, 서해 연안에는 3월부터 약 3달간 소상(遡上, 강오름)하는데, 남쪽일수록 빠르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때부터 몸에 색소가 형성되기 시작한 엘버(elver)’를 통틀어 실처럼 가늘고 길다고 해서 실뱀장어라고 부른다. 뱀장어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성장함에 따라 이름이 달라 부화 직후부터 어미 뱀장어가 될 때까지 댓잎뱀장어, 흰실뱀장어, 흑실뱀장어로 부르고 있다.

부화 후 2년까지는 암수 구별이 어려우며(체장 35가 되어야 암수 구별이 가능하다), 자연에서 성장한 뱀장어는 등이 아주 검지 않고 약간 노란색이며 배쪽도 약간 노란색을 띠나, 양식산은 등이 검고 배쪽이 흰색으로 자연산과 구분된다.

뱀장어는 여름철 수온 20~32도 범위에서 새우, , 곤충까지 잡아먹는 등 활발한 먹이활동을 하지만, 수온이 내려가면 식욕이 줄고 10도 이하에서는 거의 먹지 않으며 겨울철에는 진흙 속에 묻혀 지낸다.

이렇게 민물에서 평균 5~7(우리나라에선 최대 17년생 발견)간 생활하다가 성숙하면 바다로 내려가 산란한 후 죽는 것으로 추정된다. 민물장어 가운데 민물에 사는 것은 배 부분이 노랗게 되어 있어 황뱀장어라 부르며 10~11월 가을에 산란하러 바다로 내려가는 놈은 은뱀장어라 한다.

황선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위원 이메일 : sanisdhwang@hanmail.net

시대정신이 사라진 나라

한때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중요한 선거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에야 날개를 펴듯, 시대정신은 그 시대가 저물 때에 비로소 알 수 있다고 헤겔은 말했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 알아채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 비밀을 먼저 손에 쥐면 시대의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할 자신이 있든 없든, 일단 그것을 천명하려고 노력했다. 권위주의에서 보통사람들의 시대로, 다시는 군인이 권력을 잡을 수 없는 문민통치의 시대로, 평화적 정권교체로 증명된 민주주의의 기반을 다지고 관치를 넘어 공정한 시장경제의 틀을 만드는 것, 선거 때 표만 던지는 유권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들이 만들어 가는 민주주의, 이런 것들이 시대정신이었다.

어느 순간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시대는 역행했다. 이명박 후보의 747 공약은 박정희 개발독재 모조품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향수의 결정체였다. 민주화 이후 30년 만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대통령을 탄핵했지만, 앞당겨 치른 대선에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묻는 리더는 없었다. 탄핵 후의 정부는 부패를 청산하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적폐청산이 어떻게 시대정신이 될 수 있겠는가. 다음 정권도 전 정부 탓만 하며 2년을 보냈다. 그렇게 시대정신은 사라졌다. 모든 것이 무너졌고, 새로운 것은 아직 탄생하지 않았다.

시대정신이 사라지자 선거와 정치는 비전경쟁이 아니라 그저 상대를 심판하는 도구가 되었다. 이번 총선도 시대정신의 부재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권심판, 운동권심판, ·조심판 등 심판만 넘쳐났다. 선거는 평가일 수 있다. 시대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거나, 엉뚱한 비전을 시대정신으로 착각한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민주적 절차다. 그러나 심판은 그렇지 않다. 심판은 사법절차처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고 거기서 멈춘다. 심판에서 승리한 세력은 그 정치적 재판 결과에 만족할 뿐 시대정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탄핵 이후 우리에게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할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했다. 그러나 포용국가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 성장전략이나 분배원리라고 하기에도 실체와 위상이 모호했다. 공정? 공정이 어떻게 한 국가의 비전이 될 수 있겠는가.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포용과 공정은 서로 상충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부패와 무능은 단순히 개인들의 이기심과 비도덕이 빚은 결과가 아니라 돈과 권력을 향한 무한경쟁의 산물이었다. 세월호가 그래서 침몰했고, 정유라는 도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늘어나는 자살과 줄어드는 출생, 초등학생들의 꿈이 건물주인 나라, 모두 삶의 가치가 사라진 세계의 결과물이었다. 홍세화 선생이 말한 부자되세요이데올로기의 완전한 승리였다. 개천에서 다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정은 능력주의의 다른 말이었다. 불에 기름을 끼얹은 모양새였다.

오독한 시대정신의 귀결은 정권교체였다. 윤석열 후보는 문재인 정부 용어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검사 손에 쥐어진 적폐청산과 공정이라는 칼은 썩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지금 보는 대로다. 청산과 심판의 정치는 양극화와 포퓰리즘, 팬덤을 만나서 괴물이 됐다. 대통령은 통치에 관심이 없고, 검찰은 칼춤을 추고, 야당은 심판을 외칠 뿐이다. 우리의 시간은 2016년 겨울에 아직도 멈춰 있다.

정책이 없는 총선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정책은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시대정신이 먼저 서고, 그 비전을 구현하는 도구로 제시되는 것이다. 방향이 없는데 무슨 정책이 있겠는가. 공산전체주의와 싸우기 위해 자유의 연대를 만들고, 자유를 방해하는 카르텔을 사법 권력으로 처단하자는 식의 아무 말을 국정기조라고 착각하는 정권에 무슨 정책을 기대하겠는가. 야당은 다른가. 한국에서 성장의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대기업들이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 시점에, 25만원 지원금이 과연 문제를 해결할 대안일까. 아이 낳으면 돈 준다는 식의 저출생 극복 대책에는 어떤 시대정신이 담겨 있을까.

지금 대한민국은 아무런 방향도 없이 그저 물 위를 이리저리 흘러다니는 멍텅구리 배 같다. 우리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그 길에 폭풍우를 어떻게 피할 것인지, 힘들 때 어떻게 연대하고 공존할지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빵과 잠자리를 두고 서로를 적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패를 갈라서 물어뜯는 중이다. 한때는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너무 진부했다. 그 진부한 말이 이제는 아려온다./이관후 정치학자/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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