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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어울리기/시사만평-주간 쟁점

24.3.25~ 100일 넘게 보이지 않는 김여사

by 이성근 2024. 3. 24.

 

재건축 분담금 폭탄에 서울 재건축 조합들 혼비백산

낮은 평수로 옮겨가는데도 분담금 무려 12억이라고?

재건축 시장의 절대 강자 압구정에서도 분담금 내야

집값 4억대인데 분담금 5억원할말 잃은 조합원들

공사비는 폭등하고 시장은 대세 하락백약이 무효

윤석열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 중인 부동산 경기부양책 중 대표적인 것이 재건축 활성화다. 윤 정부는 1기 신도시 등에 대해 파격적인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는 한편 사실상 안전진단을 생략한 재건축 추진을 가능케 시도하는 등 재건축을 통한 부동산 시장 부양에 올인 중이다.

하지만 윤 정부의 필사적인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시장은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미동은커녕 오히려 기존에 재건축을 추진 중인 사업장들마저 분담금 폭탄에 아연실색 중이다. 과거에 재건축을 하면 분담금은 고사하고 오히려 현금을 받았던 서울 강남도 예외는 아니다. 폭등하는 공사비와 대세하락 중인 시장의 협공에 재건축 사업장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현재로선 백약이 무효로 보인다.

낮은 평수로 옮겨가는데도 분담금이 무려 12억원이라고?

낮은 평수로 옮겨는데도, 그것도 강남에서, 12억원이 넘는 재건축 분담금을 내야 하는 사업장이 등장해 충격을 던지고 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18337동 재건축조합이 지난해 말 관리처분변경 총회를 열고 공개한 추정 분담금은 실로 놀랍다. 이 자료에 따르면 기존 111(이하 등기부등본상 전유면적)97로 옮겼을 때 121800만 원의 분담금이 예상된다. 기존에 살던 헌집을 재건축을 통해 면적을 줄여 새집으로 받는데도 감당하기 어려운 분담금이 발생하는 것이다. 심지어 54로 줄였을 때도 15690 분담금을 내야한다. 기존 11142로 줄인다고 했을 때 21600만 원을 환급받는 수준이다.

이보다 작은 평형인 기존 50가구의 추정 분담금 역시 엄청나다. 42로 옮겼을 때도 31300만 원을 분담해야 하고 97를 신청할 때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에 소재한 어지간한 전용84한 채 값에 해당하는 166000만 원이나 부담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조합은 지난 총회에서 각 가구의 추정분담금을 공개하고 설계변경 등에 따른 관리처분변경 총회를 개최했지만 안건은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결됐다.

물론 이런 신반포18337동 케이스는 흔한 사례는 아니다. 신반포18337동은 일반 분양 없이 11 재건축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에 분담금을 조합원들이 전부 부담해야 한다. 사정을 더 절망적으로 만든 건 치솟는 공사비다. 이 사업지는 지난해 2월 시공사와 3.3958만 원(795억 원)으로 시공비를 증액한 바 있다. 20199월 계약당시 공사비는 3.3660만 원, 537억 원이었다. 3년 만에 무려 45% 오른 것이다.

압구정3구역 재건축 신속통합기획 조감도, 서울시 제공

재건축 시장의 절대강자인 압구정에서도 분담금 내야

신반포 18337동 케이스가 일반분양분이 없는 사례라고 치부하기에는 재건축 시장의 환경 전체가 너무나 엄혹하다. 재건축 시장의 절대강자라 할 압구정에서도 조합원이 분담금을 내야한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압구정 3구역 조합과 시행사가 제시한 추가 분담금에 따르면, 현재 30평형대(평균 34.7)를 보유한 조합원이 신축 아파트 34평형을 받으려면 3300만 원을 내야 한다. 40평형은 76000만 원, 54평형은 187000만 원이다. 가장 넓은 101평형의 추가분담금은 무려 55억 원이다. 평수 80평형대(평균 86.88)를 보유한 소유주이더라도 같은 평형의 아파트를 받으려면 183000만원을 추가 분담금으로 내야 한다.

재건축 시장의 절대강자라 할 압구정에서도 조합원들이 분담금을 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집값이 4억대인데 분담금은 5할말 잃은 조합원들

한편 집값이 4억 원대인데 가구당 분담금이 5억 원인 단지도 나왔다. 노원구 상계동에 위치한 상계주공 5단지가 그곳이다.

상계주공5단지는 최근 호가가 4500만 원선까지 떨어졌다. 전용 31단일 평형으로 이뤄진 840가구 규모의 이 아파트는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이 아파트는 대세상승의 정점이던 20218억 원에 실거래가 체결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시장에 대세하락이 시작된 지난해에는 4억 원대로 실거래 가격이 곤두박질쳤다.

서울 아파트 분양가와 매매가 추이. 연합뉴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건축 추가분담금이 조합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조합 집행부는 지난해 예상 공사비 등을 근거로 분담금을 추산했는데, 소유주가 전용 84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가구당 분담금이 5억 원에 달할 것으로 계산됐다.

집값 보다 오히려 재건축 분담금이 더 높은 것인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해 사업장은 시공사 교체 추진, 시공사의 맞불 소송 등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사업기간이 길어질수록 조합원들의 분담금 부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 자명하기에 상계 주공 5단지가 갈길은 첩첩산중이다.

폭등하는 공사비와 대세하락 앞에 백약이 무효

재건축 시공사를 구하려 했지만 실패한 강남 소재 단지도 출현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재건축을 진행하는 신반포27차 아파트 조합은 지난달 시공사 선정을 위한 입찰을 진행했으나 건설사들의 무응찰로 유찰됐다. 조합은 전용면적 3.3당 공사비 907만원 수준의 높은 공사비를 제안했지만 시공사들은 사업성 등이 낮다는 이유로 입찰을 포기했다.

한때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서울 재건축이 이렇듯 난항을 거듭 중인 이유는 치솟는 공사비와 부동산 시장의 대세하락이 양쪽에서 협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역별 민간아파트 제곱미터당 평균 분양가격, 주택도시보증공사 제공

공사비의 폭등은 앙등 중인 분양가로 대략 가늠할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 민간 아파트의 3.3당 평균 분양가는 1736만 원으로 전년에 비해 190만 원 올랐다. 이른바 국민평형(전용면적 84·34평형)’으로 따져봤을 때 1년 새 분양가가 약 6460만 원 오른 셈이다.

특히 서울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3.3당 분양가가 3000만원을 웃돌았다. 민간 아파트의 3.3당 상승 폭을 보면 서울은 2022122978만 원에서 지난해 123495만 원으로 517만원 올라 가장 증가 폭이 컸다.

공사비가 분양가를 밀어올리는데 더해 부동산 시장이 2차 대세하락 중이다 보니 재건축 시장은 윤 정부의 전방위적 부양책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백약이 무효한 상태다.

이태경 편집위원/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시민언론 민들레

 

정부는 괜찮다지만부동산PF 시한폭탄 째깍째깍

저축은행 9년 만에 적자연체율 급등

PF 대출 잔액도 3개월 새 1.4조 증가

위험 커지는데도 당국은 위기설 일축

총선 후 숨겨진 PF 부실 드러날 수도

“4월 위기설은 과장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위원장은 21일 열린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정상화 추진을 위한 금융권·건설업계 간담회에서 시장에서 제기되고 있는 총선 이후 부동산 PF발 위기설을 일축했다. 4월에 PF 정상화 계획이 공표되고 5월 이후 문제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를 통해 연착륙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총선 이후 부동산 PF가 터진다는 건 큰 오해라고 주장했다. 현재 상당수 사업장을 정리하는 중이고 이는 총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의 PF 연체율이 급속히 상승하고 있고, 부실 사업장 정리도 잘 되지 않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건설비가 크게 오른 것도 악재다. 지금은 대출 만기 연장으로 겨우 버티고 있으나 부동산 PF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금융당국은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숨겨진 부실이 변수가 될 수 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도 도둑처럼덮쳤다.

불길한 징후는 22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저축은행·상호금융조합 영업실적에서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은 지난해 5000억 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9년 만에 적자를 낸 것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체율이 1년 만에 3%포인트 넘게 올랐다는 사실이다. 자산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 79개 사의 순손실 합계는 5559억 원이었다. 저축은행들이 적자를 낸 것은 2011년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 영향으로 2013회계연도(20137~20146)5089억 원의 적자를 낸 이후 처음이다. 금리가 올라 이자 비용이 증가한 여파도 있으나 부동산 PF 부실로 관련 대손충당금 적립 등에 13000억 원이 들어간 게 결정적이었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말 6.55%로 전년의 3.41%보다 3.14%포인트 상승했다. 이는 12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부동산 PF 대출 비중이 큰 기업 대출 연체율이 2.90%에서 8.02%5.12%포인트 급등했다.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부실 사업장이 늘고 있는데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1356000억 원에 달했다. 3개월 전보다 14000억 원 늘었다. 같은 기간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도 2.42%에서 2.70%로 올랐다. 1년 전 연체율 1.19%와 비교하면 2배 이상 급등한 것이다. 이는 부실 PF 대출과 연체율 관리가 제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치다.

금융권 부동산 PF 대출 잔액. 연합뉴스

위험 신호가 켜졌으나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사업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 근거는 과거 위기 시기에 비해 연체율이 낮고 미분양도 많지 않다는 점을 꼽는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저축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냈던 2012년 말 금융권 연체율은 13.62%에 달했다. 금융위기 때인 2009년 미분양 규모는 166000호였다. 여기에 비하면 현재 연체율이나 미분양은 모두 양호한 편이다. 저축은행의 자기자본비율과 유동성비율, 대손충당금 적립률도 현재로서는 걱정할 수준이 아니라는 게 금융당국 판단이다. 저축은행들도 위기 극복을 위해 PF 사업장 재구조화와 부실 자산 매각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PF 연체율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고 부실 사업장에 대한 정리도 이제 시작 단계라는 점에서 안심할 수만은 없다. 업계에서는 현재 연체율이 낮은 이유는 PF 대출 만기 연장 등에 따른 착시효과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연체율은 계속 높아질 것이란 뜻이다.

저축은행 자산건전성 현황. 연합뉴스

고금리 상황이 1년 넘게 이어지며 부동산 PF 부실화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주단 협약 등을 통해 어떻게든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PF 위기가 가시화하면 선거에서 불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회수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실 사업장이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동산 경기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총선 이후 위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시장 침체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건설비가 급등하고 있는 것도 PF 부실이 커질 수 있는 요인이다. 최근 건설비 급등으로 사업을 접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 아파트 재건축 단지 중에도 건설비를 감당하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는 사업장이 나왔다. 서울이 이 정도니 지방 사업장들은 말할 것도 없다./ 시민언론 민들레

 

허망한 '비명횡사' 프레임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분노가 잘 반영된 공천 결과

검언 카르텔과 가까워 보이던 정치인들은 밀려나

'비명횡사' 합창하다 필요한 구실 못한 '진보'언론

'반미, 종북, 소수자' 공격에 흔들리고 물러선 민주

총선 이후에도 계속될 공격에 굴복 않게 막아서야

한 달이 넘게 진행되던 민주당의 총선 공천이 마무리됐다. 이 공천의 성격에 대해서 보수 언론만이 아니라 주요 진보언론까지 계속해서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했다. 즉 민주당의 이재명 지도부가 직접 개입해서 친명은 공천을 주고 비명은 떨어트리는 방식으로 공천을 진행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상당수 언론이 성실하게 정보와 사실을 취재해서 분석하기보다는 기득권 세력의 프레임에 몇 가지 사실을 꿰맞추는 식으로 게으른 취재와 보도를 반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민주당 공천은 지도부가 개입해서 결과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도나 구조가 아니었고, 그보다는 평당원과 지지자들의 의견이 크게 반영된 결과라고 봐야 한다.

그리고 공천 결과를 보면, 민주당의 평당원과 지지자들은 윤석열 정부의 폭정에 매우 분노해 있고, 그가 누구든 윤석열 정부에 맞서서 가장 강력하게 싸울 수 있고, 싸우겠다고 약속하는 후보에게 지지를 보냈음을 알 수 있다. 친명이냐 비명이냐를 떠나서 그런 후보가 대부분 총선 출마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소영 후보나 고민정 후보는 대표적인 비명이나 반명으로 분류되지만, 윤석열 정부의 양평 고속도로 의혹과 언론 장악 등에서 열심히 싸운 정치인들로서 인정받아 지지를 얻거나 공천받았다. 전현희 후보는 굳이 따지면 친문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온갖 괴롭힘에 맞서 국민권익위를 지키다가 이번에 전략 공천됐다.

이번에 대부분의 언론이 얼마나 '친명, 반명' 프레임으로 일방적으로 민주당에 불리한 보도를 쏟아냈는지 보여주는 그래프/ 뉴스공장 화면 갈무리

이언주 후보는 친명, 비명과 상관없고 국민의힘에서 이탈한 여러 우려가 많은 후보지만, 지난 1년간 윤석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맞서 싸우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번에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도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반면 박용진 의원이 결국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것의 핵심은 이재명 대표와 경쟁해 온 정치인이기 때문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민주당 대선 후보 내부 경선에서 이재명과 경쟁한 정치인에는 박용진 의원만이 아니라 김두관, 추미애 후보도 있었다. 대선 이후에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경쟁한 정치인에는 김민석 의원이나 강훈식 의원도 있었다. 그런데 그 후 박용진 의원은 검찰의 이재명 표적 수사를 은근히 편들고 그것을 이용해서 이재명 지도부를 공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에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의 폭정에 분노하고 강력한 투쟁을 바라는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은 박용진 의원이 그런 과제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민주당을 탈당해서 새로운 당을 만들거나 이준석 신당에 합류한 이낙연 대표, 이원욱과 조응천 의원 등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이 정치인들은 윤석열 정부와 검찰의 사법 리스크라는 프레임을 그대로 받아서 종편과 족벌언론에 나가서 이재명 지도부를 공격해 왔다.

이런 정치인들이 윤석열 신검부나 검언 카르텔과 제대로 싸울 리가 없다고 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실제로 이 정치인들은 민주당에 있으면서 노란봉투법이나 김건희 특검법 등을 지지하지 않았고, 탈당 이후에는 민주당을 향해 종북 세력의 숙주라는 시대착오적 색깔론 공격까지 하고 있다. 이상민 의원과 김영주 의원 등은 아예 한술 더 떠서 탈당하자마자 국민의힘으로 옷을 갈아입고 윤석열 정부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런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대표해서 윤석열 정권과 검찰 권력, 족벌언론에 맞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다고 본 민주당 당원과 지지자들의 판단은 정확했던 셈이다.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에 따라서 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고 민주적이다. 따라서 이것을 비명횡사라거나, “개딸강성 팬덤들의 부당한 횡포인 것처럼 보도하는 조중동만이 아니라 한겨레 경향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말 필요한 것은 김건희 특검법, 이태원 참사 특별법, 노란봉투법, 검찰 수사권 분리 법안, 검사 탄핵안 발의 등에서 어떤 정치인들이 가장 적극적이었고 실제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나 촛불시민들과 함께 거리에서 싸워 왔는지에 대한 취재와 보도였다. 반면에 어떤 의원들이 여러 개혁 법안에 무관심했고 투쟁에 함께하는 대신 윤석열 정권과 검찰의 야당 탄압에 간접적 도움을 줬는지를 지적하며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을 줘야 했다.

그랬다면 김의겸, 권인숙, 이동주, 양이원영 의원 등이 경선에서 탈락하는 아쉬운 결과는 조금이나마 더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이 의원들은 윤석열 검찰공화국에 앞장서 맞서 싸우며 여러 개혁 법안 발의에 함께했을 뿐 아니라 언론 개혁, 성평등, 기후 환경, 소상공인 등 각자의 분야에서 진보와 개혁을 위해 의지와 능력을 보여 주던 정치인들이었다.

예컨대 권인숙 의원은 민주화와 여성운동의 산증인일 뿐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를 가장 강력하게 막아왔으며, 최근에 더욱 업그레이드한 김건희 특별법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진보언론들이 이낙연 대표나 박용진 의원의 억울함을 대변하던 노력의 절반만이라도, 이런 의원들의 목소리와 활동을 소개하는데 할애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을 누르기 어렵다.

그랬다면 국가보안법 폐지 법안 발의에 함께 한 민주당 의원 23명 중에서 총선 후보로 남은 사람이 6명이고 차별금지법안 발의에 함께한 민주당 의원 30명 중에서 총선 후보로 남은 것이 10명밖에 안 되는 아쉬운 결과는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진보언론들마저 프레임으로 사실을 덮으며 조중동을 뒤쫓아 비명횡사만을 반복 합창하다가, 정말로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종편과 족벌언론의 '반미, 종북' 이라는 낙인찍기와 공격 속에 더불어민주연합의 많은 후보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MBN 방송 화면 갈무리

또 정작 민주당 공천에 대해서 필요한 지적과 비판을 진행하지도 못했다. 사실, 민주당 지도부는 이번 공천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개입해서 친명후보를 낙점하고 공천한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할 때 개입해서 보수적 공격에 맞서지 않은 것이 진정한 문제였다. 민주당 지도부와 주요 기구들은 이번에도 중도층이 이탈하지 않도록 국민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면서 거듭해서 보수적 여론의 눈치를 보며 후퇴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지난 5년 동안 반복돼 온 문제였다. 기득권 우파와 족벌언론들은 자신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정치인들에게 어떤 꼬투리라도 잡아서 온갖 부정적 낙인을 찍으며 집중 공격해서 몰아내려고 했다. 그래서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에 가장 적극적이던 처럼회소속 의원들은 계속 제거당했고, 윤미향 의원은 민주당에서 진작 쫓겨나서 이번에 재출마에 관한 이야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윤미향 의원은 검언 카르텔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자 지난 5년간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해서 진보적인 의정 활동을 펼친 정치인인데도 말이다. 또 이재명 대표의 일부 측근들은 한총련이 이 대표를 숙주 삼아 부활을 노리고 있다는 조선일보의 공격 속에 아예 경선에 나서지도 못하고 잘려 나갔다. 조국 신당이 출현했던 초기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바로 연합의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선 긋기에 급급했다.

민주당이 주도해 건설한 비례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에서는 연합정치시민회의가 후보로 선발한 전지예, 정영이 후보가 '한미 군사훈련과 사드 배치에 반대한 좌파'라는 족벌언론들의 공격 속에서 후보에서 사퇴했다.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며 한반도 평화를 말하던 민주당은 반미·종북이라는 낙인찍기가 시작되니 바로 꼬리 내리며 이런 후보들을 밀어내 버렸다.

이어서 군인권센터 소장이었던 임태훈 후보도 컷오프됐다. 임태훈 후보가 과거에 양심적 병역 거부한 것을 '병역 기피'라고 문제 삼은 것인데, 이것은 아무리 봐도 핑계였다. 민주당 자신이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권리를 보장하는 데 함께해왔기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하고 활동해 온 성소수자를 보수 기독교계의 압박에 밀려서 배제한 것이 핵심으로 보인다.

보수언론과 보수기독교계는 임태훈 후보를 '동성애자'라고 공격했다/ 국민일보 기사 화면 갈무리

실제로 국민일보는 동성애자라며 임 후보를 겨냥했고, 연합정치시민회의의 김상근 목사는 “'성소수자 문제가 불거지면 우리(민주당)가 감당 못 한다'고 하더라. 지역구에서 목사들의 압박이 극심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했다. 연합정치시민회의의 후보 심사위원회 상임위원들은 이런 민주당의 굴복에 강력하게 항의하며 전원 사임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끝이 아니었다.

그다음에는 비례 위성정당에 함께 한 진보당의 장진숙 후보가 20여 년 전에 한총련 대의원으로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탄압받은 것이 문제가 됐다. 보수언론들은 이것을 또 반미·종북 전력이라고 공격하기 시작했고, 그러자 민주당의 압박 속에서 곧이어 장진숙 후보는 사퇴하고 진보당의 다른 후보로 교체됐다. 반민주적 악법을 이용한 종북몰이에 또다시 후퇴한 셈이다.

기득권 우파와 족벌언론들이 힘을 모아서 누군가를 운동권, 개딸, 건폭, 반미, 종북, 동성애등으로 낙인찍으며 공격하는데 진보언론들은 적극 방어하기보다는 기계적 양비론이나 펼치고, 민주당은 슬금슬금 눈치 보며 후퇴한다. 바로 이런 구조와 방식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개혁을 거듭 막아온 것이고 앞으로도 또 막을 것이다.

중도층의 표를 얻어야 하니 이런 타협과 후퇴가 불가피하다고 변명하고 변호해주기는 어렵다. 조국혁신당의 돌풍은 이처럼 중도층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타협하며 우클릭해야 한다는 논리의 허구를 무너뜨리고 있다. 더구나 문제는 총선 이후다. 총선에서 반윤석열 진영이 설사 많은 의석을 얻더라도, 기득권 우파와 족벌언론들은 순순히 물러설 리가 없다.

사회복지와 노동자들의 권리를 늘리면 나라 경제가 흔들리고 동네 빵집과 카페가 다 망한다며 가짜뉴스를 퍼뜨릴 것이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민주주의를 보장하자고 하면 종북이라고 낙인찍을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하면 동성애를 부추기고 가족 질서를 파괴하는 패륜적 시도라고 공격할 것이다.

검찰 개혁이나 언론 개혁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의 흠결이나 실수 등을 어떻게든 샅샅이 찾아내 꼬투리 잡고 마녀사냥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진보당이나 심지어 민주당 일부까지 엮어서 무슨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터뜨릴지도 모른다. 이 모두가 2012년 총선 이후 통합진보당 종북몰이나 2019년 조국몰이 등에서 다 나타났던 일이다.

이럴 때 또 진보언론들이 침묵 동조하고, 민주당이 타협하고 물러서면 다시 기득권 우파와 검언 카르텔이 정국의 주도권을 쥐면서 개혁을 가로막고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윤석열 정권의 폭정을 막고 진정한 사회 개혁과 진보를 이루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번 공천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후퇴 조짐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막아설 필요가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종북몰이 선동은 총선 이후의 공격을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민언론민들레 / 전지윤 편집위원

국제신문 부산kbs 공동 한국리서치

https://news.khan.co.kr/kh_storytelling/2017/party/

 

대한민국 정당사

단숨에 정리하는 한국 정당 정치의 어제와 오늘

news.khan.co.kr

대힌민국정당사 /경향

 

부자 나온다는 소문에···무속행위로 몸살앓는 경남 의령 부자 솥바위

부자 탄생 전설이 내려오는 경남 의령 솥바위 인근 주민과 관광객들이 무분별한 무속행위로 불편을 겪고 있다.경남 의령군은 남강변 솥바위 인근에 무속행위를 자제를 당부하기 위해 안전요원 2명을 배치하고, 펼침막 등을 걸었다고 27일 밝혔다.

의령 남강 정암철교 아래 있는 솥바위는 조선시대 한 도사가 주변 20리에 큰 부자가 나온다고 예언한 곳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솥바위 주변에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 등 3명의 한국 대표 그룹 창업주가 탄생했다.

의령군은 2022리치리치 페스티벌(일명 부자축제)’를 개최하기 위해 솥바위가 바라보이는 남강변 무대(390)를 새롭게 정비했다.

경남 의령 솥바위 앞에서 무속행위가 벌어지고 있다. 바로 옆에는 무속행위 자제를 당부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독자 제공

축제 때는 솥바위까지 부교를 설치해 직접 솥바위를 만지며 저마다 소원을 빌기도 한다. 솥바위에는 지난해 45862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했다.

그러나 최근 이곳에서 굿판 등 무속행위가 자주 벌어지고 있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를 빌려 대규모 무속팀들이 굿판 등 무분별한 행위를 벌이기도 한다.

주민들은 소원을 기원하는 좋은 곳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오는 곳에 종교인이나 무속인들이 한꺼번에 많이 와서 굿판을 벌이니까 관광객들도 싫어한다자제를 당부하고 여러 차례 대책을 세워달라고 의령군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무속행위가 벌어지는 곳은 문화재보호구역이지만 행위 단속규제 기준이 모호해 무조건 막기가 어렵다. 솥바위 인근에는 남강을 가로지르는 정암철교(국가등록문화재)가 있고, ‘의령 여씨 항제시도록 및 시조 제단비는 경남도문화재자료로 등록돼 있다.

현행 경상남도문화재보호조례에는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에서 해당 도지정문화재나 문화재자료 보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음·진동·악취를 유발하거나 대기오염 물질·화학물질·먼지·빛 또는 열 등을 방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조례가 있지만 소음 등 수치화된 뚜렷한 규제가 없어 단속도 어렵다. 경북 경주시도 문무대왕릎 앞에서 대낮 굿판이 벌어지지만 단속근거가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의령군 관계자는 봄철 물고기 방생 시기와 맞물려 무속행위가 이어지고 있다단속 규정이 모호해 무속행위 자제 펼침막, 촛불켜기, 쓰레기 무단투기 금지 등을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경향

경제성장률 1.4%의 한국 경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윤석열식 경제관대로라면, 한국 정부의 역할은 감세, 긴축재정, 그린벨트 해제 등 정부의 경제 개입을 줄이는 것밖에 없다. 이는 정부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순진무구한 사고방식이다.

한국은 끝났다.” 지난해 말, 일본의 한 매체(머니1)가 이런 제목의 기사를 썼다. 한국 경제가 이미 전성기를 지났으며 퇴락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기사는 한국인들은 중국의 경제발전이 끝났다라고 한다지만, 당신들이 중국 걱정할 처지냐라고 비웃는다. 혐한(嫌韓) 성향 매체라니까 하던 짓을 또 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완전한 헛소리일까? 한국 경제가 실제로 장기 하향 추세를 타고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한국의 (실질)경제성장률은 1960년대 중반~1990년대 초반 사이에 매년 10%를 넘나들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엔 4~5%, 2010년대엔 2~3% 사이를 횡보했다. 지난해는 1.4%.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거대한 외부 충격이 가해진 예외적 시기(1998, 2009, 2020)를 빼면 한국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적이 없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2~13배에 달하는 미국의 지난해 성장률은 2.5%.

일본 머니1한국은 끝났다라고 선언한 직후, 민주당은 이 기사를 인용하며 정부·여당을 비판했다. 오로지 윤석열 정부 때문이라면, 정부의 경제정책을 비판하거나 오는 총선에서 야권의 압도적 승리로 남은 임기 동안 강하게 견제하면 된다.

그러나 잠재성장률추이를 보면, 그렇게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잠재성장률은 경제의 기초체력이며 장기 추세다. ‘특정 국가경제에서 사용 가능한 자본과 노동력, 기술(생산성)을 모두 동원했을 때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이 가능한지예측한 수치다. 경제협력기구(OECD) 추정에 따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의 3.5% 이후 단 한 번의 상승도 없이 줄곧 하락해왔다. 지난해는 사상 최초로 2% 이하인 1.9%, 올해는 1.7%로 추정된다. 미국(20241.9%)보다 낮다.

한국 경제가 최근(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갑자기 추락한 것이 아니다. 십수 년 전부터 하향 추세였다. 이 경향이 최근 들어 좀 더 뚜렷해졌을 뿐이다. 한국 경제가 성장해온 방식자체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다. 구조적 위기 국면이다.

위기의 원인은 한국 내부와 외부에 모두 존재한다. 국내의 대표적 위기 요인은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15(1.23) 이후 계속 줄어 지난해엔 0.72명을 기록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0.7)와 비슷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의 18.4%에 달했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 202520.6%, 2050년엔 4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 재화·서비스 산출량(GDP)의 증가 속도(성장률) 역시 감소하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연구·개발, 노동자의 숙련도 향상, 경영혁신(자본·인력 등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 등으로 생산성을 높이면 산출량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경제학자들은 생산성 역시 정체된 것으로 본다.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지난 1월 초 한미경제학회 정책포럼에서 한국 경제는 2010년대부터 총요소생산성(노동·자본·토지 등 다양한 생산요소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수치) 증가율이 약 0.7% 수준으로 하락했다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미국의 총요소생산성을 1로 둘 때 한국은 0.61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독일은 0.927, 프랑스는 0.909, 영국은 0.787, 일본은 0.656이었다.

외부 요인은 세계화의 퇴보다. 세계화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다. 각국은 무역장벽을 낮추는 한편 돈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른 나라에 상품을 팔고 사거나(수출입), 투자하는(공장을 세우는) 행위가 쉬워졌다.

탈세계화의 가공할 충격

세계화 이전엔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에 필요한 자재(원자재·중간재·자본재 등)를 주로 자국 내 업체(공급자)들로부터 조달했다. 세계화 이후 대기업들은 자국 내에서가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싸게 자재를 공급할 수 있는업체들을 물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글로벌 공급망이 형성되었다. 다만 개별 국가경제 차원에서 보면, 이전엔 국내에 공장을 세우거나 국내 업체로부터 자재를 조달하던 기업들이 해외로 생산활동을 내보낸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선진 자본주의국 내의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글로벌 공급망과 연결되는 부문(자본과 노동)은 부유해졌으나 그렇지 않은 부문은 황폐해졌다.

공산권 몰락 이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막 편입된 중국이 세계화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선진국 대기업들이 자국에서 생산활동을 빼내 중국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생산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며 급성장했다. 한국 역시 엄청난 규모의 중간재(부품 등)와 자본재(기계설비)를 중국에 수출했다. 중국에 세운 현지 공장에서 저렴하게 생산한 중간재를 한국으로 다시 수입한 뒤 완제품으로 가공해 다른 나라들로 수출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국 대기업 중 일부는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했다. 한국 경제는 성장을 유지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선진국들과 마찬가지로 계층 간, 지역 간, 세대 간 격차도 확대되었다.

이 같은 불평등을 수반한 경제성장혹은 세계화 체제2010년대 들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선진 각국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포섭되지 못한 저소득층의 반란이 격화되면서 이른바 포퓰리즘이 발흥했다. 그들의 기치는 ()세계화. 영국이 유럽연합(EU·일종의 공동시장)에서 탈퇴했다. 미국은 자국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물러났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무력화되었다. 세계화 시대에 자국 제조업을 급격히 발전시킨 중국은 야심만만한 산업정책(‘중국제조 2025’)으로 미국의 첨단산업 패권에 도전장을 냈다. 미국 정치권에선 여야를 불문하고 중국을 첨단산업 부문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몰아내자(디커플링)’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

중국 한 반도체 업체 생산 라인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REUTERS

이런 탈세계화 흐름으로 한국은 크게 두 가지 난관에 처했다. 첫째, 한국 기업들은 중국과 연결된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낮은 비용으로 제품을 만들어 거대 시장 미국에 팔아왔다. 이 방식이 점점 더 작동하기 어렵게 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첨단 반도체 등의 중간재를 중국에 팔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등 첨단산업의 경우, 중국산 원자재 및 중간재가 포함된 제품을 미국 시장에 팔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도 법제화되었다. 둘째, 중국이 자동차·석유화학·조선·전자(한국의 기간산업들) 등에서 한국의 경쟁국으로 성장했다. 이에 따라 이 부문 중간재·자본재 등의 대()중국 수출실적이 빠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 대학 교수는 최근 학술지 일본 정치경제에 기고한 논문 글로벌 경제의 변동에서 한국의 경제성장과 성장 모델에서, 중국 경제의 한국 의존도가 계속 낮아지는 추세를 지적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8년의 1621억 달러에서 20191362억 달러로 줄었다. 이 같은 감소 중 82%는 대()중국 중간재 수출(특히 정보통신 기술 부문) 실적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5년에 20%를 넘긴 뒤 201826.8%로 절정에 달했으나 지난해는 19.7%로 떨어졌다. 심지어 한국의 중국산 중간재 수입이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 대중 무역수지 추이에서 드러난다(그림참조). 한국은행의 무역수지(통관 기준) 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는 2013628억 달러가 정점이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에 289억 달러, 2022년엔 12억 달러로 급락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는 180억 달러 적자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의 수출실적에선 중국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 최근 상황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성장동력인 수출 부문이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한국 내에서는 자산(부동산) 및 노동소득 격차, 수도권 집중, 산업도시의 퇴락, 정규직과 비정규직 격차 등 세계화 시대에 축적된 모순들이 돌출하고 있다. 이런 갈등들은 저성장의 원인이기도 하다. 앞으로 저성장의 지속은 갈등을 일시적으로나마 해소할 수 있는 복지 재원을 줄일 것이다. 이는 다시 갈등을 부추겨 저성장 추세를 심화시킨다. 계속 이렇게 갈 수 없다.

정책 비전 자체가 없는 윤석열 정부

정부·여당은 이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가? 정준호 강원대 교수와 이일영 한신대 교수는 최근 논문 한국형 성장체제의 위기와 한계에서 윤석열 정부를 정책 비전의 체계화를 시도하지 않는 독특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전임 정부들은 경제민주화(박근혜)’소득주도성장 및 한국판 그린 뉴딜(문재인)’ 같은 정책 비전이라도 갖고 있었다. 윤 정부에겐 정책 비전 자체가 없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제라는 건 대통령이 살리는 것이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의 슬로건(“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반박하는 차원이었다. 당시 윤석열 후보는 기업과 민간이 정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돈도 많고 똑똑하기 때문에정부와 대통령은 멍청한 짓 안 하고 정직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집권한 윤석열 대통령은 이른바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겠다며 2024년 예산을 긴축해 자신의 경제관을 실천했다. 심지어 각 부처의 혁신 마인드를 예산 감축으로 평가하겠다고 엄포해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도(2023) 대비 16.6%(52000억원)나 깎았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감축되지 않은 예산이었다. 그만큼 정부는 경제에 덜 개입하게 되었다.

윤석열식 경제관대로라면, 한국 정부의 역할은 감세, 긴축재정, 그린벨트와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등 정부의 경제 개입을 줄이는 것밖에 없다. 나머지는 시장(기업과 민간)이 알아서 할 것이다. 상류층의 소득이 올라가면 그 돈이 넘쳐 밑으로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낙수효과).

정부·경제 관계에 대한 순진무구한 사고방식이다. 세계적 조류와도 어긋난다. 윤석열 정부에겐 재정지출과 시장이 반대말이다. 그러나 다른 선진국 정부들은 대규모 공공투자로 새로운 산업과 시장을 창조하겠다는 정책 비전을 갖고 있다. 국내외적 급변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체제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20228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산업 육성법에 서명하고 있다.EPA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법’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수조 달러 규모의 공공투자 계획을 세워 실행해왔다. 이로써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전환 같은 인류적 과제에 대응할 첨단산업(전기차 배터리·태양광 패널·반도체)을 육성하려고 한다. 해당 산업들의 발전은 새 시대의 좋은 일자리 창출과 중산층 확대에 기여할 것이다. 이런 첨단산업의 공급망을 미국과 동맹국들에 배치함으로써 중국의 글로벌 패권 장악 욕망을 견제하는 것 역시 바이든 정부 공공투자의 안보적 목표다. 공공투자로 시장을 만들어 민간투자까지 이끌어낸다. 향후 10여 년 동안 공공과 민간(심지어 해외 기업까지)을 통틀어 35000억 달러 규모의 투자가 미국 첨단산업 부문에서 이루어질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관은 윤석열 정부의 정책·기조와 대척점에 있다.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4월 브루킹스 연구소에서 연설했다. “‘시장이 자본을 항상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배분한다는 과거의 생각은 틀렸다. 그로 인해 미국에서는 산업기반 위축, 극심한 불평등, 민주주의 위기 같은 부정적 현상이 발생했다.”

일본 정부도 뚜렷한 정책 비전을 갖고 있다. 경제성장 차원에서 반도체, 디지털 전환, 그린 이노베이션(탄소중립) 등에 수십조 엔을 투자할 계획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의 디플레이션을 퇴치하기 위해 세계에서 홀로 초저금리를 고수하고 있다. 기업들에 대한 임금인상 압박, 노동시장 개혁(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직무급제, 재교육), 자산소득 배증 플랜(주가 올리기) 등은 시민들의 소득 증가로 수요를 높여 디플레이션을 끝장내기 위한 큰 그림 중 일부다. EU 역시 1500억 유로 규모의 공공투자로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0)로 만들기 위한 기후변화 대응책이자 산업정책인 유럽 그린딜을 추진 중이다.

세계의 어떤 선진국 정부도 윤석열 대통령처럼 시장에 맡겨놓으면 된다고 하지 않는다. “기업과 민간이 돈도 많고 똑똑하다라는 것을 몰라서가 아니다.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민간기업들이 홀로, 천문학적 투자를 해야 하고 수익이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에너지 전환 같은 사업들에 투자할 수 있겠는가?

이강국 교수는 자신의 최근 논문에 한국 정부는 외부 충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완화할 수 있는 역량을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산업정책을 수용하고 공공 투자를 늘린 미국 등 다른 선진국의 접근 방식과는 극명하게 대조된다라고 썼다.

민생토론회정책이 정말로 해결책?

대통령이 경제를 살릴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정부는 어떤 경제정책을 펼쳤을까? 정준호·이일영 교수는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윤석열 정부는 “(·중 갈등이나 무역수지 등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정부지출 조정 등의 체계적 거시정책으로 대응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시장의 위기를 구조적 해법보다는 사법적 수단 위주로해결하려 시도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부동산시장 침체에 따른 역전세문제를 전세사기문제로 사실상 제한하거나, 노동시장이나 금융시장의 문제를 사법적·행정적 제재로 대응하고 있다”.

311일 윤석열 대통령이 강원도청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박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가 경제를 살릴 수 없다는 신념은 때론 정치가 경제를 크게 망치지는 않을 것이란 모호한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단지 표심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상한 행태나 정책을 꺼내기도 한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실패한 윤 대통령은 부산 국제시장에서 재벌그룹 대표들을 도열시켜 떡볶이 먹방을 연출했다. 총선을 앞두고 공매도 금지와 기업 밸류업프로그램, 그린벨트 및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GTX 카드 등을 꺼냈다. 에너지 전환 체제가 지체될 때 한국 경제 전반에 불거지는 리스크는 정치의 사법화와 정쟁의 틈바구니에서 가볍게 무시된다. 정부·여당은 수도권 집중과 산업도시 붕괴라는 동전의 이면 같은 문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권의 구심력을 한층 강화할 경기도 일부 도시의 서울 편입과 GTX 연장 등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조귀동 경제칼럼니스트는 이런 행태들을 반응형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머니1기사가 설령 이 매체의 혐한성향을 드러냈다 하더라도 그 내용 모두를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한국 경제는 하향 추세를 타고 있으며 이를 반전시키려면 냉정한 현실 인식과 과감한 구조개혁이 불가피하다. 사안마다 제각기 다른 개혁 반대 세력을 설득해 사회적 컨센서스를 형성할 정치적 능력이 절실하다.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저출생, 연금, 이중노동시장, 산업정책, 국제관계 등 경제·안보 측면에서 시민들과 국가에 장기적으로 중요한 구조개혁 의제와 처방을 본격 제기하고 강력 추진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시사인 이종태 기자

몰락 운명에 처한 울산, 되돌릴 수 있을까?

울산의 문제는 한국의 문제다. 자동차·조선 등 울산의 주력산업들은 한국의 기간산업이며, 울산이 앓고 있는 지방 소멸 및 인구 감소의 위기 또한 국가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다.

울산은 한국의 제조업을 상징하는 산업도시다. 한국의 기간산업인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이 이 도시에 뿌리를 내리며 전 세계로 뻗어 나갔다. 울산은 한국 노사관계의 상징이다. 착취와 억압에 분노한 현장 노동자들이 전투적 조합주의로 굳건히 단결해서 자본과 치열하게 싸웠다. 이는 한국 노동운동에 압도적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울산은 글로벌 최강의 산업단지와 중산층 노동자를 겸비한 부자 도시로 발전했다. 울산의 미래는 어떠한가? 지난 10여 년 동안 울산, 거제 등 경상남도 산업도시들에 대한 현장 조사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울산 디스토피아(3월 말 출간 예정) 등 저서를 낸 양승훈 경남대 교수는 이렇게 내다봤다. “한마디로 야단났다. 울산은 산업 수도’ ‘생산 도시로 불려왔는데, 알맹이가 사라지고 있다.”

알맹이가 무엇인가?

구상 기능이다. 생산은 구상실행으로 나눌 수 있다. 무엇을 어떤 공정으로 어떻게 만들고, 필요한 자재와 장비를 어떻게 조달하며, 어떻게 혁신(연구·개발)할 것인지 구상부터 해야 한다. 그 구상을 작업장에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실행이라고 부른다. 애당초 울산은 구상(경영진·엔지니어)과 실행(현장 노동자) 기능을 겸비한 도시였다. 자동차라면, 울산 본사에서 경영진의 지휘 아래 제품 연구와 개발, 설계, 조달 등이 구상되고, 이는 울산 작업장에서 실행되었다. 그런데 구상 기능이 거의 깡그리 수도권으로 옮겨 갔다. 최근엔 실행 기능(제조 공장)까지 구상 기능을 따라 수도권으로 가는 경향이 보인다.

딱 잘라 말하자면, 울산은 수도권의 구상전문가들이 시키는 대로 실행만 하는 도시로 전락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울산이 생산하는 부가가치와 일자리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울산 현장 노동자(실행 기능)들의 숙련약화(탈숙련화)가 있다. 일터에서 오랜 세월 실행을 거듭한 노동자들에겐 지식과 경험(숙련)이 축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산업이나 업체마다 노동자의 숙련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첫 번째는, 경영 측이 작업공정을 조밀하게 설계하거나 로봇을 투입해서 현장 노동자에겐 아주 단순한 반복 작업(숙련이 필요 없는)만 맡기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노동자들의 숙련을 더 우수한 제품 생산과 혁신에 활용하는 것이다. 이 생산방식에서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장에 투입되어 현장 노동자들과 긴밀히 협조한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첫 번째, 일본은 두 번째에 해당한다.

현대자동차는 두 시스템이 혼합된 체제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측이 정리해고에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사와 노조가 서로 불신하게 되었다. 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니까 가능할 때 최대한 많이 받는 것을 중시했다. 생산성 향상이나 자신의 숙련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노동자의 협조가 필요한 생산방식 개편에 대해 자본의 통제라는 관점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사측은 작업용 로봇처럼 노동자들의 숙련을 대체할 수 있는 기술을 대거 도입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노동자 숙련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생산요소로 전락했다. 새 라인 까는 걸 현대자동차만큼 잘하는 회사도 없다. 탈숙련 노동자들은 대체 가능하다.

회사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노동자들과 지역사회는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 것 아닌가?

이미 2015년부터 인구가 계속 빠지는 추세다. 지난해 하반기에 울산 인구가 1000여명 증가했다고 떠들썩했는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 수천 명이 조선업 사내하청에 취업하러 들어온 덕분이었다. 인구 감소 추세 자체엔 전혀 변화가 없다. 더욱이 앞으로 닥칠 산업환경의 변화(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만든 제품만 수출할 수 있는 RE100 같은 규약, 전기차 등)에 울산이 잘 적응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예컨대 현대자동차에 납품하는 울산 부품업체들의 경우, 절대다수가 연구개발을 못할 정도로 영세하다. 그나마 전장(자동차의 전기·전자 장비) 부품을 제조하는 대부분의 업체는 이미 수도권으로 이전했다.

2022113일 인도네시아 베카시 델타마스 공단 내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로봇들이 차체를 조립하고 있다. 연합뉴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울산 현대차의 정규직 직원이 4~5만명, 현대중공업은 3만명 정도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고도성장기에 대량으로 고용되어 민주노조 운동을 경험했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이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년으로 거의 나간다. 1980~1990년대에 태어난 1만여 명만 남는다. 울산의 구매력은 어떻게 될까. 하청업체 직원들의 수입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다. 또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에서도 대졸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여성 고학력자도 대거 증가했다. 그러나 울산엔 이들에게 제공할 만한 일자리가 없다. 대졸자들을 생산직으로 밀어 넣으면 된다고? 울산의 장년 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산직을 하지 말라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냈다. 한국의 다른 산업도시와 마찬가지로 울산 인구 역시 수도권으로 가파르게 유입되고 있다. 고부가가치 일자리가 죄다 수도권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울산이란 도시의 부자 이미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 상황은 대체로 과거에 예측된 것들이다.

그렇다. 울산은 전환에 실패했다. 울산은 중화학공업에 엄청난 투자가 이뤄지던 1970년대 후반기부터 고졸 생산직과 기계를 결합한 생산체제에 기반해 급속히 발전했다. 그 산업들이 성숙해 1990년대부터 이익을 내면서 글로벌 산업단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후 급변하는 상황에 대응해 생산체제와 노사관계를 전환시키지 못했다. 2010년대 이후 문제점들이 연이어 돌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울산은 멈춰 서 있을 뿐이다.

대안이 있을까?

주력산업을 더욱 고도화하면서 이로부터 파급되는 역량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가면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경남과 인근에 유니스트·경상대·경남대·부산대 등이 있는데 이 연구 기능들을 집약하고 네트워크화해서 자본과 인력을 유인해야 한다. 중소업체들을 통폐합으로 대형화해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고 자동화율을 높여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드는 구조개혁을 실행해야 한다. 이는 물론 울산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유지하는 데 균형발전이 필요한 가치라면, 정부가 국가전략 차원에서 관련 정책에 무게를 두고 구속력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울산의 문제는 결국 한국 경제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시사인 이종태 기자

개혁 실종 한국 사회, 이탈리아로 가는 중?

결국 정치인들은 사회·경제 개혁보다 우리 편 내에서의 대중 동원 기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골몰하기 마련이다. 진보나 보수나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 칼럼니스트 조귀동이 지난해 발간한 이탈리아로 가는 길은 다음과 같은 구절로 시작된다. “한국은 어떤 개혁도 바랄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정치가 헛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을 충실히 반영한 문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연금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은 몇 년 전부터 말만 무성하다.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로 의료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 추세라는데 이를 반전시키기 위한 논의는 어디서도 진지하게 전개되지 않는다. 출산율은 바닥을 뚫고 계속 내려간다. 그런데 왜 이탈리아를 화두로 삼았나? 조귀동의 답변은 이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한국인데 바로 위가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2차 대전 이후 수출지향형 공업화로 경제 기적을 이룬 나라다. 제조업 비중이 유럽에서 독일 다음일 정도로 높다. 더 닮은 것이 있다. 두 나라 모두 정치가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했다. 정치 시스템이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사회적으로 필요한 개혁들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포퓰리즘 정치 세력이 판친다. 한국은 이탈리아로 가는 길을 밟고 있다.”

잠재성장률이나 수출이 불안정한 추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 때문인가?

()중국 수출은 줄어드는 반면 한국과 중국 간 산업 경합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산업부문의 경쟁자로 바뀌었다. 예견된 사태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의제로 삼지 못했다. 장기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중국 문제뿐만이 아니다. 고령화(에 따르는 복지제도의 위기), 저출생, 빠른 기술 변화, 불평등 심화, 외국인 이민자의 증가, 지방 소멸 등에 대해서도 정치는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같은 인구구조에서 복지 수요가 계속 늘어나면 한국의 복지 시스템이 버틸 수 있을까? 정부 재정을 확대하면 될까? 그러나 고도성장이 끝났다면 국가 재정 역시 크게 확대하기 어렵다. 증세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이슈들을 다룰 국가의 정치적 역량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미래를 위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저 운이 좋기만 바라게 된다.

바로 연금 문제가 떠오른다. 문재인 정부는 연금 개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비판하던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낸 개혁안 역시 보험료 인상폭이나 급여 수급 연령 등을 뺀 맹탕이었다.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근로소득세 관련 제도도 10년째 그대로다. 괜찮은 안을 내면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데도 그렇다. 정치권은 유권자의 실질적 이해관계나 국가의 장기적 이익과 관련된 사안들에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일단 양대 정치세력(국민의힘과 민주당)이 고도성장기의 이데올로기(보수는 산업화와 반공, 진보는 민주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미 끝난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민주당 역시 40~50대 대졸 대기업 화이트칼라의 이익 옹호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민주당이 복지·기초연금·수도권 집중 등 40~50대 화이트칼라의 부담을 늘릴 수 있는 개혁 의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양당 모두에서 거시적인 정치 기획이 나오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내 경쟁구조 탓이 크다고 본다. 정치인이 당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은, ‘을 설정하고, 그 적을 타도하는 것만이 지지자들이 상정한 정치적 목표를 이룰 방법이라고 선동하는 것이 되었다. 반공이나 민족주의로 허구의 갈등 전선을 만드는 것도 효율적 방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뜨뜻미지근한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이나 내세웠다간 정치적 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결국 정치인들은 사회개혁보다 우리 편 내에서의 대중 동원 기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골몰하게 되었다. 진보나 보수나 크게 다르지 않다.

1935814일 백악관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사회보장법에 서명하고 있다. AP Photo

그렇다면 정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나.

공동체에서 늘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과 대립을 조율하고 집단적 선택을 내리는 결정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정당은 우리 편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이해관계가 다른 여러 집단을 하나의 안정적 지지 연합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변화가 가능해진다. 예컨대 노동시장을 개혁하면 이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온다. 그러나 그 누구도 손해 보는 사람들에게 투입할 재교육 등 복지비용을 세금으로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서 개혁을 둘러싸고 여러 이해관계가 대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안들을 묶어서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타협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를 구성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정당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진보든 보수든 먹고사는 문제에서 해결책을 만들어 정치적으로 의제화하고 그걸 바탕으로 안정적 지지 연합을 구축해서 표를 얻어 내야 한다. 그래야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굳건히 추진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어떤 정당도 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정당들의 그런 상태가 위기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역사적 사례로 설명한다면?

그 유명한 미국의 뉴딜, ‘꼴통 남부가 본진이던 민주당이 공화당 지지 성향의 가난한 중하층 노동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정책 패키지로 탄탄하고 안정적인 지지 연합을 구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 역사상 유일한 4선 대통령으로 20년간 집권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중하층 대중의 재분배 요구를 적극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에 등장한 공화당 정부도 민주당의 뉴딜 질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의 사회·경제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의제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의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투자자 포퓰리즘으로 채우고 있다. 공매도 금지, 최근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윤석열 정부가 한국 기업 주식의 저평가 현상을 해결하겠다며 내놓은 정책)’ 등이 대표적 사례다. 특히 기업 밸류업은 대기업 지배구조를 바꿔야 하는데, 윤석열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일까? 엑스포 유치 이후 부산 국제시장에서 열린 떡볶이 먹방당시 대통령 뒤에 도열한 재벌들을 상기하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린벨트 해제나 GTX 연장 방안 등도 일종의 투자자 포퓰리즘이다. 철도 교통망으로 서울 중심성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윤석열 정부가 한국의 큰 사회문제 중 하나인 수도권 집중에 아무런 생각도 없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엔 거시적 정치 기획을 통해 지지 연합을 형성하고 더욱 강고하게 만들겠다는 장기 플랜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때그때 이슈에 반응하면서 관련 정책을 던져 표를 얻으려는 의도만 나타난다. ‘반응형 포퓰리즘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시사인 이종태 기자

 

이재명 대 원희룡 격차 여론조사마다 왜 다를까샤이보수효과?

강태웅 대 권영세, 채현일 대 김영주, ‘오차범위 이내’ vs ‘벗어난 결과

전화면접은 민주당에 ARS-인터넷조사 국민의힘에 유리한 결과 분석

총선 격전지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의 지지율에 대한 가상 여론조사 결과가 한쪽은 오차범위 내 차이로, 다른 한쪽은 오차범위를 크게 벗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강태웅 대 권영세(용산), 채현일 대 김영주(영등포갑)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조사결과를 방식에 따라 분류해 들여다보니 공통적으로 전화면접 조사는 민주당에, ARS나 인터넷조사는 국민의힘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샤이보수층이 일부 존재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주장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동아일보가 지난 24일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8일자 기사로 공개한 인천 계양을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50.5%, 국민의힘 원희룡 후보를 뽑겠다는 응답이 37.5%로 오차 오차범위(±4.4%포인트. 8.8%) 밖인 13%포인트였다. 동아일보의 조사는 인천 계양을 거주 성인 507명 대상으로 100% 무선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4.4%포인트다.

응답률도 눈여겨봐야 한다. 우선 접촉률이라는 게 있다. 접촉률은 통화중, 부재중, 접촉이 안되는 등 접촉에서 실패한 사례를 제외한 접촉에 성공한 비율을 말한다. 이 가운데 정상적으로 응답을 마친 비율이 바로 응답률이다. 동아일보 조사의 접촉률은 경우 35.3%이고, 응답률은 10.4%였다.

이와 달리 뉴스핌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5~26일 인천 계양구을 선거구 만18세 이상 남녀 501명에게 지지 후보를 물어본 결과 이 후보가 47.2%, 원 후보가 43.6%를 기록했다. 두 후보 격차는 오차범위 이내(3.6%p)였다. 이 조사는 유무선 ARS(자동응답) 전화조사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p)

뉴스핌 조사에서 응답 대상자 접촉률은 40.3%이고, 이 가운데 응답률은 6.2%였다.

이재명 원희룡 후보 조사의 경우 조사방식별로 놓고 보면, 전화면접은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높게 나왔고, ARS는 원희룡 국민의힘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결과로 나타났다.

JTBC가 지난 27일 뉴스룸에서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강태웅 민주당 후보와 권영세 국민의힘 후보가 오차범위 내 접전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사진=JTBC 뉴스룸 영상 갈무리

용산 선거구 여론조사 결과도 언론사 별 격차가 컸다. JTBC 조사결과와 한국경제 조사결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JTBC27일 뉴스룸 보도 내용을 보면, JTBC가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25~26일 서울 용산구 거주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강태웅 민주당 후보는 44%, 권영세 국민의힘 후보는 39%로 나타나 격차는 5%포인트로 오차범위(±4.4, 8.8%) 내였다. 조사방법은 전화면접 방식이었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4.4%p)

또한 조사대상 접촉률은 35.4%이며, 이 가운데 응답률은 10.1%.

이에 반해 한국경제의 28일자 보도를 보면, 한국경제신문이 피앰아이에 의뢰해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7일간 서울 용산 지역 유권자 500명씩을 대상으로 모바일 웹 조사 방식의 인터넷 여론조사 결과 권영세 후보 37.4%, 강태웅 후보 25.3%로 오차범위 밖인 12.1%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전화면접이나 ARS과 다른 조사방식인 인터넷 조사방식이었고, 조사참여자도 피앰아이가 자체 구축한 리서치 패널이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이 조사 대상에 대한 접촉률은 5.2%로 상대적으로 매우 낮았고, 접촉자의 응답률은 42.4%로 다른 조사와 달리 높았다. 대체로 전화면접이나 ARS의 경우 응답률은 10% 안팎인 경우가 많다. 강태웅 권영세 후보 조사의 경우 조사방식별로 놓고 보면, 전화면접은 강태웅 민주당 후보에, ARS는 권영세 국민의힘 후보에 유리하게 나왔다.

격전지인 서울 영등포갑 조사결과의 격차도 언론사별로 달랐다. JTBC가 앞서 메타보이스에 의뢰해 서울 영등포갑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502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지난 25~2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채현일 더불어민주당 후보 40%, 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김영주 국회부의장이 26%, 허은아 개혁신당 후보 4%로 나타났다. 채 후보가 14%포인트 차로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조사방식은 전화면접 방식이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조사대상에 대한 접촉률은 51.8%로 높은 편이었고, 이 가운데 응답률은 6.7%였다.

이에 반해 뉴스핌의 28일 보도를 보면, 뉴스핌 의뢰로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5~26일 영등포갑에 거주 중인 만 18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무선 ARS 방식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채현일 민주당 후보 지지율 43.7%, 김영주 후보 지지율 35.7%로 집계됐다. 8%포인트 차이지만 오차범위(±4.4%, 8.8%포인트) 내이므로 누가 더 높게 나왔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결과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조사대상에 대한 접촉률은 54.0%로 높은 편이었고, 이 가운데 응답을 마친 응답률은 4.4%였다.

채현일 김영주 후보 조사의 경우 조사방식별로 볼 때, 전화면접은 채현일 민주당 후보가, ARS는 김영주 국민의힘 후보가 유리한 결과로 나타났다.

세가지 케이스를 보면, 전화면접시 응답결과는 민주당 후보가 훨씬 높거나 유리한 결과가 나온 반면, ARS나 인터넷조사의 경우 상대적으로 국민의힘 후보에 좀더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 이를 놓고 조사원과 직접 전화해야 하는 전화면접 방식에서는 보수지지층이 응답을 하지 않는 경향이 일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미디어오늘 조현호 기자

조국이 '진보'를 대표하는 현상,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법무부는 최저임금·밀양송전탑 등 제가 운동에 참여했던 다른 사건과 엮어서 저를 공안사범으로 분류해서 수감시켰습니다. 위신은 조금 떨어졌지만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대단한 시국사범이 아니라고 수차례 얘기했습니다. 통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가석방이 없는 파란색 밧줄에 묶여 호송차에 타야 했습니다. 2014415일이었습니다.

긴 첫날 밤이 지나고, 세월호 침몰 소식을 TV로 보았습니다. TV 속 뉴스가 너무 비현실적이라 교정 당국에서 편집한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방송 화면과 신문의 활자로는 가늠할 수 없었던 그날의 참상은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 교도관들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모포를 덮고 흐느꼈습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나름의 정답을 찾아 감옥에 들어갔습니다만, 창살 밖에서 벌어지는 국가폭력을 가만히 지켜만 봐야 했던 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언론사 기자로 활동하시는 박정훈 기자님도 비슷한 경험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사건의 관찰자이자 전달자로서 지켜야 할 직업윤리들이 때로는 창살처럼 느껴지지는 않으시는지 궁금합니다. 게다가 언론사 기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이 다루는 괴롭고 힘든 사건들은 반복됩니다. 전쟁으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다며 병역거부를 했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민간인들 머리 위로 폭탄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군대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싶었지만, 채상병의 죽음과 박정훈 대령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화가 무엇이냐?'라는 노래를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노래에서는 노동자, 장애인, 농민, 많은 생명들이 차별받고 배제되지 않는 세상을 평화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운 노랫말 같은 세상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병역거부자가 병역거부자의 정치를 응원할 수 없었던 이유

박정훈씨가 2013108일 서울 대한문앞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선언한 모습. 권우성

수많은 실패 속에서 나의 신념을 전시하고 설명하는 것보다 주변의 동료들과 시민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노동운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민주당 위성정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던 임태훈씨의 공천탈락에 같은 병역거부자로서 공분할 수 없었습니다.

평화운동의 현장에는 늘 사람과 돈이 부족한데 능력 있는 사람은 국회로 빠져나갑니다. 평화운동뿐만 아니라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운동이 위기라고 하는데, 운동현장을 등지고 국회의원을 꿈꿉니다. 심지어 진보운동의 힘이 아닌 거대 정당의 힘을 빌려 권력을 가지려고 합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시민사회, 진보당, 새진보연합의 비례연합정당이라고 하지만 비례대표의 최종결정권은 민주당에 있습니다. 더군다나 민주당은 어떠한 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민주당에 의해 모욕적으로 평가당하고 잘려 나가는 진보적 활동가들을 보면서 제가 살아왔던 지난 세월들이 잘려 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시민사회활동가들과 노동운동가들이 정치적 야망과 꿈을 가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물 없는 정치도 공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운동은 사라지고 인물만 남는 정치운동은 사유화되고, 인물은 없고 운동만 있는 정치운동은 쓸쓸합니다.

진보정당도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시민사회운동과 진보정당운동의 위기 속에서 조국혁신당까지 인기를 얻으니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 힘든 나날입니다. 문화적, 사회적 자본을 세습하는 새로운 계급격차 문제를 상징하는 조국이 진보를 대표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인정합니다. 저와 같은 생각은 전체 국민의 지지와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지지와 선택은커녕 진보적 운동을 하면서 정치인을 꿈꾸던 이들의 선택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과 대안 없이 조국혁신당과 위성정당 비판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습니다.

게다가 진보 진영의 상징이었던 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정치 행보를 하고 있습니다. 이준석과 각을 새웠던 류호정 전 의원은 갑자기 이준석과 손을 잡고 개혁신당에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하더니, 결국 후보 등록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는 제3지대 정치는 실패했다고 선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모두의 실패라고 말합니다. 정치인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노동운동이 실패한 것을 두고 전체노동운동의 실패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모두의 실패라고 말할 수 있는 건 함께 결정하고 행동했을 때뿐입니다.

이준석은 그래도 지역구 출마라도 하는데, 진보적 인사들은 민주당의 선택을 받아 비례대표로 의원직을 달려고 합니다. 국민들의 눈에 진보는 권력과 좋은 자리를 쫓아 움직이는 사람들로 보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민주당에서 정치인을 꿈꾸며 바닥부터 열심히 활동했던 당원들의 눈에도 갑자기 나타난 진보적 인사들이 좋게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총선을 독자적인 힘으로 완주하려는 노동당과 녹색정의당을 응원합니다. 정치적 결사체라면, 국민들의 준엄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비록 410일 선거 이후 우리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독자적 진보정당의 간판으로 국민의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진보정당 운동의 폐허위에서도 우리의 삶은 계속되고 저항도 계속될 것입니다. 내가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을 버린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나의 실패가 모두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동료에게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후위기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녹색정의당 후보로 나선 기후전문가 조천호 박사의 정치 도전은 감사하고 소중한 일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형틀목수반장으로 활동했던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1번 남한나의 도전도, 비례대표 후보 2번 유진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의 도전도 응원합니다. 이들의 도전은 진보정당 운동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밀알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노동운동이 희망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본부 조합원과 너머서울, 1만원교통패스연대 회원들이 202332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전력 서울본부 앞에서 공공요금 인상 철회와 사회보험 강화 등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실로 거리행진을 진행하고 있다. 유성호

얼마 전 노조에서 노동안전보건위원회라는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노동자의 산업안전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자들의 회의입니다. 대한항공, 인천공항, 마사회, 지하철, 철도, 가스공사, 발전 산업 등 다종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였습니다. 청소노동자로 일하신 분은 어느새 '근골격계 질환' 산재 전문가가 되어 있었습니다.

마사회 노동자는 사측과의 노동안전문제를 논의하면서 노조에서 배운 어려운 용어를 꺼냈더니 사측이 깜짝 놀라며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합니다. 다들 현장에서 아파보고 다쳐본 후 산재전문가가 되어 동료 노동자의 안전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금배지 대신 노조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의 정치인입니다.

정치를 여의도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 곳곳이 국회의사당입니다. 자기 삶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민원을 듣고 자원을 배분하고 서로 대립하고 타협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모든 곳에서 정치투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회의 마이크와 길거리의 마이크 소리의 차이가 작아질 때, 국회 상임위 회의와 노동조합 회의 결과의 차이가 작아질 때 민주주의가 꽃피고 정치에 대한 혐오도 사라질 거라 믿습니다. 이 일을 바로 언론이 하는 게 아닐까요? 배제된 목소리의 볼륨을 높여 공론장으로 끌고 오는 일, 언론노동자 박정훈 기자님은 요즘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박정훈(parti) 오마이뉴스 / 박정훈''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이승만기념관이 이승만의 과오를 기록할 수 있을까

이승만 띄우기가 한창이다. 여러 극우보수 매체에서 재평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4·19혁명 이후 끌어 내려진 동상을 다시 세우자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는 이승만 복권(復權)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승만 띄우기의 정점에 이승만기념관건립 추진이 있다.

지난해 3월 국가보훈처 장(현재는 국가보훈부) 박민식이 이승만기념관 추진을 언급한 이후 기념관 추진위원회에서 국민 모금을 시작했다. 이후 각계에서, 심지어는 대통령과 장관, 서울시장까지 후원금을 기부하면서 이승만기념관은 마치 국가적 사업인 양 추진되고 있다. 모금 주관단체는 현재 모금액이 100억 원을 넘었다며 잔뜩 고무돼 있다.

이승만기념관 추진이 이번 정부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 시절이던 지난 2009년 이후에도 추진되다가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실패했다. 지금은 당시와는 달리 전방위적으로 기념관 추진을 몰아가고 있다. 최근에는 광화문 옆 열린송현광장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부지로 언급된 후 그곳이 최적지라는 목소리가 추진세력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달 서울시의회 시정질문에서 <건국전쟁>을 계기로 이승만기념관 건립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장소를 본격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오 시장은 또 송현광장이 다른 후보지에 비해 교통이 매우 좋다는 평가도 내놨다.

송현광장 건립 추진 세력은 이곳이 미군정 시기에는 미군 숙소로, 이후에는 미국대사관 직원 숙소로 사용된 장소여서 한미동맹의 상징적인 장소라고 강조하면서 ‘(보수의) 성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린송현광장에 이미 이건희기증미술관이 들어서기로 했고, 이승만기념관 건립도 추진되는데다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관까지 옮겨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가장 중심 지역에 극우보수 가치의 장소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이미 광화문 주변을 이승만광장이라고 부르는 집단도 있다. 송현열린광장을 포함한 광화문 일대와 서울시청 광장 등은 촛불 집회 장소 등 시민의 역동적 민주 공간으로 자리매김해 왔으나 그런 역사를 바꾸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기념관 추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이승만이 국가적으로 추앙해 기념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든다. 독재자로서 국민에게 쫓겨난 대통령이었으며, 제주 4·3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의 책임자였고, 일제강점기 위임통치론과 임시정부 대통령직 하야 사건 등 부적합 이유가 한둘이 아니다. 심지어 종교적 분란의 불씨를 제공하였다며 불교계에서도 반대한다.

이승만 정권의 부정선거에 맞선 3.15 민주의거 64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가 이승만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는 서울 열린송현광장에서 이승만기념관 건립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출처:연합뉴스)

이렇듯 기념관 반대 주장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 필자가 굳이 거기에 이유를 더 붙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기념관을 추진하는 세력들이 주장하는 것 중 꼭 짚어야 할 점이 있 다. 그것은 기념관에서 공과(攻過)를 균형 있게 기록하고 전시하겠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개인을 대상으로 건립·운영하는 기념관은 목적이 그 대상 개인을 기리기나 선양(宣揚 /exaltation)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공적은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과오는 피해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과오를 드러낸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거나 주변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아예 언급하지 않기도 한다.

기념관이기 때문에 끄덕이며 양해하기도 한다. 그것이 기념관 건립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기념관은 공과를 균형 있게 기록하고 전시하는 곳이 아니다. 그런데 이승만기념관을 추진하는 주체들은 이승만의 과오는 기념관을 만들고 그곳에 기록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기념관은 자서전이나 회고록과는 다른 것이다. 그래서 기념관의 객관성이라는 말이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본질적으로 기념관은 객관성이 없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주 장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서관·박물관(Richard Nixon Presidential Library and Museum)’의 워터게이트 사건 전시를 들며 공과를 객관적으로 전시하는 사례로 제시하는데 이것도 전후 맥락을 자세히 들여보지 않고 하는 주장이다.

먼저, 닉슨 대통령도서관·박물관은 기념관이 아니고 기록관(Archives)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은 대통령별로 각각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고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대통령기록국(Presidential Libraries, and Museum Services)에서 통할한다. 민간에서 재단을 꾸려 모금을 통해 시설을 건립하고 국가에 기부채납하면 국가가 운영하는 방식이 제도화돼 있다. 보통 대통령도서관(대통령도서관·박물관)이 공식 명칭이다.

이글에서는 대통령기록관이라고 부르지만 재임 중의 대통령기록을 보존관리하고 서비스하며, 박물관을 운영한다. 전직 대통령과 정권의 직분과 책임 그리고 일에 대한 설명책임(Accountability)을 실현하는 기관이다. 결국, 그 시대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제도이고, 도구이다. 예컨대 뉴딜정책 및 제2차 세계대전을 연구하려면 F. 루즈벨트 대통령기록관을, 원폭 투하와 냉전의 기원에 대해서는 트루먼 대통령기록관을, 그리고 베트남전쟁과 대중국 외교에 대해서는 닉슨 대통령기록관의 기록을 뒤져야 한다.

따라서 개별 대통령의 기록관이기 때문에 해당 대통령의 기념사업을 하긴 하지만 기념관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통할하므로 각 대통령의 재단이 일방적으로 운영할 수 없는 구조이다(국가가 운영하는 대통령기념관은 따로 있다. 미국은 워싱턴, 링컨, F.루즈벨트 등 세 대통령의 기념관을 국립공원관리소에 운영한다). 닉슨 대통령기록관도 마찬가지이다. 닉슨 대통령기록관은 미국의 다른 대통령기록관과는 다르다. 닉슨은 불명예로 임기 중 퇴임했기 때문에 물러난 뒤 바로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지 못했고, 재임 중 기록은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직접 관리했다.

1990년에 닉슨 재단에 의해 닉슨도서관이 사설로 설립됐으며, 2007년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협의해 모든 기록을 닉슨도서관에 이관해 옴으로써 대통령기록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어 2016년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의 대통령기록관 체계로 재개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록은 사설 기념관 형태이던 닉슨도서관 초기부터 전시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2007년 닉슨 대통령기록관장이었던 팀 라프탈리(Tim Naftali)에 의하면 사설 도서관이던 시절에는 닉슨충성파들의 대통령 역사 사유화가 극심했다. ‘닉슨충성파들은 워터게이트가 1972년 선거를 뒤집기 위해 언론과 민주당이 조율한 쿠데타였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를 도서관이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산하의 연방기관이 되면서 현재의 틀로 수정됐다고 한다(참고; The Atlantic, Jun 3, 2022).

, 국가가 관리하는 기관이 됨으로써 워터게이트 사건의 전개와 결과에 대한 전시가 가능했다. 만약 사설 기념관으로 계속 존속되었다면 워터게이트 사건 관련 기록은 전시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닉슨의 과오가 기록되고 전시되는 것은 국가가 통할하는 대통령 기록관 체제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승만기념관 추진 세력의 기념관이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박정희기념관의 전례를 보면 알 수 있고, 최근 영화 <건국전쟁>을 보면 더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 문서와 기록에 의해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한다는 <건국전쟁>에서는 이승만은 독재가 아니라 장기집권했을 뿐이며, 4·19혁명이 이승만정권의 교육정책의 힘이고, 3·15부정선거는 이승만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4·3사건과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 사건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아예 언급하지 않고, 항일무장투쟁을 폄훼하거나 위임통치론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이승만 때문에 3·1운동이 무르익었다는 인터뷰를 담기도 했다. 이렇듯 일부는 사실을 다르게 말하거나, 또 다른 일부는 아예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을 왜곡할 것이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이승만기념관이 이승만의 과오까지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전시한다는 주장을 믿기 힘든 까닭이다.

기념관으로는 절대 역사와 특정 개인을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하지 못한다. 그 역할을 기록관이 온전히 수행한다고 말할 수도 없지만 기록관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설명책임을 실현하는 기관이므로 그나마 객관성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이렇듯 한계가 매우 뚜렷한 이승만기념관을 정부와 지차체가 지원하고 나서는 것은 분명 잘못된 현상이다.

만약 이승만기념관을 추진하는 주체들이 재임 중 기록과 유품 등 기념물까지 함께 국가가 관리하고, 국민이 제한없이 이용하는 이승만 대통령기록관을 건립하자고 주장했다면 필자는 그 진정성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조영삼 뉴스타파 전문위원 / 전 서울기록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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